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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운천, 바른정당 탈당 유보…“지역구 내려가 의견 수렴”

    정운천, 바른정당 탈당 유보…“지역구 내려가 의견 수렴”

    바른정당 소속 국회의원 13인이 2일 집단 탈당하고 자유한국당에 입당한 가운데 정운천 의원이 탈당을 유보했다.정 의원은 이날 오전 인터뷰에서 “나는 탈당 판단을 유보했다”며 “우선 전주(지역구)로 내려와 의견을 수렴한 뒤 자유한국당 복당과 무소속 신분 둘 중에서 최종 판단을 내릴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호남에서 유일하게 바른정당 소속인 내가 한국당으로 다시 돌아간다는 것은 지역주민들에게 마땅한 명분이 없다”며 “관망하고 최종 결정을 내릴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의원들의 탈당으로 바른정당 소속 의원 숫자는 19명으로 줄었으며, 이에 따라 원내교섭단체(20석 이상) 지위를 상실했다. 정 의원까지 탈당에 동참하면 바른정당의 국회 의석수는 18석으로 줄어들게 된다. 옛 새누리당으로부터의 분당 5개월, 신당 창당 4개월도 채 되지 않은 바른정당은 좌초 위기에 처했다. 유 후보는 같은 당 의원들의 탈당에 대해 “정말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면서도 대선 완주 의지를 재차 확인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바른정당 ‘비유승민계 의원 13명’ 탈당···옛 새누리당 복귀

    바른정당 ‘비유승민계 의원 13명’ 탈당···옛 새누리당 복귀

    지난 1일 같은 정당의 대선 후보인 유승민 후보 대신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를 지지한다고 밝힌 바른정당 소속 국회의원 13명이 집단 탈당을 결정한 것으로 2일 전해졌다. 전날 홍 후보 지지를 선언한 의원은 권성동·김성태·김재경·김학용·박성중·박순자·여상규·이군현·이진복·장제원·홍문표·홍일표·황영철(가나다 순) 의원이다. 당초 14명이 이날 탈당하려고 했으나 정운천 의원은 3일 후에 지구당에서 탈당을 선언하기로 했다고 홍문표 의원이 전했다. 이들은 이날 탈당 후 자유한국당(옛 새누리당)으로의 복당과 함께 홍 후보의 지지를 공식적으로 선언할 것으로 보인다. 조만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자신들의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힐 예정이다. 앞서 김성태 의원은 홍 후보에 대한 지지가 “보수를 바로세우고 위기의 대한민국을 살리는 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이 자유주의·민주주의·공화주의라는 보수의 기본 가치를 배신했고, 자신의 패권을 지키고 기득권만 옹호하는 가짜 보수”였기 때문에 자유한국당에서 나왔다는 것이 지난 1월 24일 바른정당 창당대회에서 정병국 당시 초대 당 대표가 밝힌 창당 이유였다. 유 후보는 같은 당 의원들의 탈당에 대해 기자들에게 “정말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면서도 대선 완주 의지를 재차 확인했다. 의원들의 탈당으로 바른정당 소속 의원 숫자는 19명으로 줄었으며, 이에 따라 원내교섭단체(20석 이상) 지위를 상실했다. 정운천 의원까지 탈당에 동참하면 바른정당의 국회 의석 수는 18석으로 줄어든다. 이로써 바른정당은 옛 새누리당으로부터의 분당 5개월, 신당 창당 4개월도 채 되지 않은 시점에서 좌초될 위기에 처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이준석, 바른정당 탈당파에 “배신자 칭호는 과분…‘쫄보’다”

    이준석, 바른정당 탈당파에 “배신자 칭호는 과분…‘쫄보’다”

    이준석 바른정당 서울 노원병 당협위원장은 1일 바른정당 탈당파들에 직격탄을 날렸다. 이 당협의원장은 이날 탈당파 의원 14명이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와 회동을 한 것과 관련해 “배신자들은 그들에게 과분한 칭호”라며 “적절한 칭호는 저렴한 표현이지만 ‘쫄보’라고 본다”고 말했다.해당 글을 올린 지 3시간 후 이 위원장은 다시 장문의 심경글을 올렸다. 본인을 ‘바른정당의 막내’라고 소개한 이 위원장은 “우리가 잊고 있었던 우리의 원래 이름. 개혁보수신당”이라며 “그동안 패권에 눌려 우리가 하고 싶었던 말을 못하고 민심에 닿지 못한 부분이 있었다면 이제는 그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기대감이 아마 우리가 탈당을 감행했던 이유였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의석도 없는 당협위원장이 탈당을 감행했던 이유는 신뢰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토로했다. 이후 당내 탈당파 의원들의 이름을 거명하며 하나씩 평가한 이 위원장은 “저는 담담하게 내년 보궐선거에서 기호 4번도 한 번 해보고 싶다”며 “이긴 들, 진 들 후회없이 나아가 보고 싶다. 바르게 정치하기 위해서 정치를 하는 것이지 무조건 정치를 하기 위해서 가치관을 흔들지는 않고 싶다”고 말했다. 끝으로 이 의원장은 “오늘 우리 당의 다른 의견들이 지지자들의 귀에 닿기 전에, 우리가 추구하던 개혁보수의 가치를 재확인하고 개혁보수 시민들의 마음에 다시 한번 불을 질렀으면 좋겠다”며 “바른정당의 무기는 진정성”이라고 말했다. 한편 바른정당 비유승민계 의원 14명이 2일 회동을 하고 탈당 여부 등 거취를 결정할 예정이다. 14명은 권성동 김성태 김재경 김학용 박성중 박순자 여상규 이군현 이진복 장제원 정운천 홍문표 홍일표 황영철(가나다 순) 의원 등이다. 다음은 이준석 위원장 글 전문이다. 안녕하세요. 이준석입니다. 저는 바른정당에서 가장 어린 지역구 책임자입니다. 그리고 당장 내년 6월에 보궐선거가 닥친 상황입니다. 아마 당내에서 가장 선거 고민을 일찍하고 있을 겁니다. 우리가 잊고 있었던 우리의 원래 이름. 개혁보수신당입니다. 그동안 패권에 눌려 우리가 하고 싶었던 말을 못하고 민심에 닿지 못한 부분이 있었다면 이제는 그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기대감이 아마 우리가 탈당을 감행했던 이유였다고 봅니다. 의석도 없는 당협위원장이 탈당을 감행했던 이유는 신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같이하는 멤버들에 대한 신뢰였습니다. 누구보다도 자신감있게 국조특위에서 그들을 몰아붙이던 김성태 국조위원장은 강단있음의 상징이었습니다. 위증을 하는 증인들을 몰아붙이고 보수가 자성할 수 있다는 모습을 보여준 장제원 의원님은 날카로움의 상징이었습니다. 비상시국회의를 주재하면서 원만하게 갈등과 이해관계를 조정해 나가시던 김재경 의원님은 부드러움의 아이콘이었습니다. 항상 일이 조금 뒤쳐진다 싶을때 총대를 매고 먼저 나서주시던 김학용 의원님은 행동력의 상징이었습니다. 상주에서 보궐선거 지원 나가셔서 길가는 노인과도 셀카를 찍어서 전송해주시던 정운천 의원님의 모습은 `하면된다`와 지역구도 타파의 상징이었습니다. 탄핵국면에서 헌재판결을 앞두고 흔들리던 당을 붙들어주신 확신에 가득찬 권성동 법사위원장의 모습은 우리 당이 존재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창당 준비를 하면서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당내 소통시스템을, 전산시스템을 어떻게 구축할지 고민해오셨던 박성중 의원님의 모습은 우리 당이 새로움에 가득찰 수 있다는 확신이었습니다. 박순자 의원님이 입당하셨을 때 저에게 창당대회에서 말씀주셨던 새로움에 대한 기대는 현재진행형입니다. 과거 전당대회에서 젊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누구보다 솔직하게 청년들의 질문에 답해주시던 김용태 의원님의 모습은 젊음에 다가설 수 있는 용기를 주었습니다. 하태경 의원님의 치밀한 논리와 준비는 저에게 드디어 영국식 합리적 보수정당이 꾸려질 수 있다는 자신감이었습니다. 우리가 지난 4개월간 축적했던 이 모든 자산을 내려놓고 과연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정치를 시작한 뒤로 저는 가장 희망에 부풀어 있습니다. 후보와 유세를 다닐 때마다 보이는 청년과 젊은 사람들의 물결. 박근혜 대통령 선거운동하면서는 한번도 못느꼈던 감동입니다. 바른정당의 가치는 이제 동원된 버스의 수로 평가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유한국당 후보의 유세장에 모인 관광버스와 대비되는 문화는 유세에 참석했다 지하철 타고 버스타고 흩어지는 우리의 새로운 문화입니다. 자유한국당의 의원하나 하나가 길거리에 나가도 그들에게 사인해달라고 하고 사진같이 찍자고 하는 젊은이들이 있다는 이야기는 못들었습니다. 어제 대구 동성로 유세장에서 “혹시 장제원 의원님은 안오시나요? 김성태 의원님 꼭 보고싶어요. 하태경의원님 전화번호좀 알 수 있을까요?” 라고 이야기했던 대학생들이 우리의 멋이고, 보수의 희망입니다. 그 젊은, 바른정당으로 인해 희망을 찾은 젊은이들에게 저는 실망을 돌려줄 용기가 없습니다. 저는 담담하게 내년 보궐선거에서 기호 4번도 한 번 해보고 싶습니다. 이긴 들, 진 들 후회없이 나아가 보고 싶습니다. 바르게 정치하기 위해서 정치를 하는 것이지 무조건 정치를 하기 위해서 가치관을 흔들지는 않고 싶습니다.  오늘 우리 당의 다른 의견들이 지지자들의 귀에 닿기 전에, 우리가 추구하던 개혁보수의 가치를 재확인하고 개혁보수 시민들의 마음에 다시 한번 불을 질렀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개혁보수를 세워보겠다는 초심으로 내일 다시 뭉칠 수 있다면 그것은 감동과 반전, 희망일 것이고, 정상배들의 꼬임에 우리 스스로의 가치를 저버리게 된다면 실망과 좌절, 나아가서는 우리가 꿈꿨던 개혁적 보수의 종언일 것입니다. 어렵고 지치겠지만, 두렵지는 않습니다. 바른정당의 무기는 진정성일테니까요. 2017.05.01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앉아 죽으나 나가 죽으나 마찬가지”라던 장제원이···▶ 바른정당 남은 하태경 “산은 사람을 떠나지 않는데 사람이 산을 떠나”▶ 정운천, 바른정당 탈당 유보…“지역구 내려가 의견 수렴”
  • [사설] 8일 남은 대선, 당당한 완주를 기대한다

    19대 대통령 선거가 종반에 접어들었다. 초반부터 제기됐던 후보 단일화 논의는 변죽만 울렸을 뿐 물밑으로 잠복했다. 투표 용지의 인쇄가 시작된 어제까지 주요 후보들의 단일화가 성사되지 않아 사실상 물 건너갔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막판의 극적인 단일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나 후보들의 완주 의지가 강해 불가능에 가깝다. 대통령 탄핵으로 기존의 여당이 3개 당으로 쪼개지면서 5·9 대선은 원내 6당이 대통령 후보를 내는 드문 기록을 남겼다. 이런 구도는 1987년 민주화 이후 5차례의 대선에서도 드물었다. 헌정 사상 초유의 탄핵이 빚어낸 일시적인 현상인지는 선거 후 정계 개편의 향방을 봐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유권자로선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해 자유한국당, 국민의당, 바른정당, 정의당에 이르기까지 여러 정당이 존재하는 것이 정치적 지향에 맞춰 투표할 수 있는 선택지의 다양성 면에서 의미를 가진다. 대한민국의 고질적인 지역과 이념 대립, 빈부 격차를 비롯한 양극화, 세대 간 갈등을 정치적으로 담아내고 표출하기에는 양당제보다 스펙트럼이 넓은 다당제가 유용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TV 토론에 참여하고 있는 5당 후보들이 완주할 가능성이 높아진 이번 대선은 다당제 정착 여부의 시금석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어느 후보가 당선되든 인위적인 정계 대개편을 하지 않는 한 정당 간 협치는 필수불가결하다. 2018년 지방선거 때 국민투표를 목표로 하고 있는 개헌은 물론이고 어떠한 법안이든 적어도 2~3개 당의 협치 없이는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다. 문재인 후보가 내세운 통합 정부, 안철수 후보가 주장하는 공동 정부는 협치의 정신을 구현한 대안으로 볼 수 있다. 홍준표 후보는 통합이든 공동정부든 좌파연합이라고 깎아내리고 있지만, 홍 후보라고 해서 당선되면 협치를 하지 않고 나홀로 정부를 구성해서는 국회의 협조를 얻지 못한다는 점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유승민 후보의 지지율이 저조하자 바른정당 소속 33명 의원 가운데 20명이 지난주 또다시 연대서명으로 후보 단일화를 요구했다. 일부 의원은 탈당해 한국당으로 되돌아 갔다. 지지율이 낮으니 판에서 내려오라는 것이 개혁 보수를 하겠다며 신당을 창당한 정신은 아닐 것이다. 대선판을 흔드는 대형 이슈나 부자연스러운 단일화 없이, 8일 앞으로 다가온 이번 대선은 우리 사회의 정치적 다양성을 인정하고 확인하는 실험이라는 점에서 후보들의 당당한 완주를 많은 유권자들은 기대하고 있다.
  • 르펜 당 대표직 사퇴…극우 감추기 ‘승부수’

    르펜 당 대표직 사퇴…극우 감추기 ‘승부수’

    올랑드 “분열 안 된다” 마크롱 지지 1차 마크롱 24.01%·르펜 21.3%다음달 7일 치러지는 프랑스 대선 결선에 진출한 극우정당 국민전선(FN)의 마린 르펜(48) 후보가 ‘대표직 사퇴’로 승부수를 띄웠다고 BBC가 2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대선에서 모두 결집해 극우세력의 집권을 막는 프랑스 특유의 ‘공화주의 정신’을 타개하기 위한 전략으로 보인다. 르펜은 이날 프랑스 공영방송 ‘프랑스2’에 출연해 “프랑스 대통령이라면 모든 프랑스인의 대통령이자 모든 프랑스인을 아우르는 존재여야 한다고 생각하며 말을 행동으로 보여 주겠다”며 “나는 더이상 FN 대표가 아니며 당론에 구애를 받지 않는 사람이 될 것”이라고 사임 의사를 밝혔다. 르펜은 또 “국민 없이, 국민에 반해 행동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극우 정부에 대한 우려를 잠재우려 했다. 르펜의 발언은 전체주의, 국수주의, 인종주의를 옹호하는 극우정당을 향한 대중의 반감을 피하면서 극우 후보로서 직면한 ‘유리 천장’을 우회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프랑스 대통령 선거에서는 모든 세력이 결집해 극우세력의 집권을 막는 불문율이 있다. 지난 23일(현지시간) 실시된 1차 투표에서 중도신당 ‘앙마르슈’의 에마뉘엘 마크롱과 르펜이 각각 1, 2위로 결선에 진출하자 1차 투표에서 고배를 마신 공화당 프랑수아 피용과 사회당 브누아 아몽 등이 곧바로 마크롱 지지를 선언했다.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도 이날 TV 연설에서 “테러리즘의 위협에 맞서 연대와 단결이 필요한 시점에 극우세력은 일부 시민에게 낙인을 찍고 국가를 분열시킬 것이며 결국 우리의 자유를 시험대에 올려놓을 것”이라며 마크롱 지지 뜻을 밝혔다. FN을 창당한 르펜의 아버지 장마리 르펜도 2002년 대선 결선에 진출하는 파란을 일으켰으나 대패하고 말았다. 최근 여론조사도 마크롱이 60% 득표율로 르펜(40%)을 압도할 것이라는 전망을 하고 있다. 그러나 르펜은 “우리는 이길 것”이라며 강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한편 프랑스 내무부는 이날 최종 집계 결과 마크롱은 1차 투표에서 24.01%, 르펜은 21.3%를 득표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심현희 기자 macduck@seoul.co.kr
  • 佛 흔든 ‘데가지즘’… 변방의 39세 엘리제궁 새 주인 될까

    佛 흔든 ‘데가지즘’… 변방의 39세 엘리제궁 새 주인 될까

    23일(현지시간) 치러진 프랑스 대선 1차 투표 결과 중도신당 ‘앙마르슈’의 에마뉘엘 마크롱(39)과 극우 국민전선(FN)의 마린 르펜(48)이 결선 진출을 확정하면서 프랑스 정치지형의 대변혁을 예고했다. 현 결선투표 제도가 마련된 1965년 이후 처음으로 비주류 정당 후보끼리 결선에서 맞붙게 된 것이다. 반면 기성 거대정당인 사회당, 공화당이 모두 결선 진출에 실패하면서 지난 50여년간 양당 체제를 구축해 온 프랑스 정치 구도가 향후 대대적으로 재편될 것으로 전망된다.24일 프랑스 내무부가 집계한 1차 투표 결과 마크롱과 르펜이 각각 23.86%, 21.43%로 나란히 1, 2위를 기록했다. 중도 우파 성향의 제1야당인 공화당의 프랑수아 피용이 19.94%로 3위, 극좌 장뤼크 멜랑숑이 19.62%로 4위에 올랐다. 집권당인 사회당의 브누아 아몽은 6.35%에 그쳤다. 마크롱과 르펜은 다음달 7일 열리는 결선 투표에서 사상 첫 비주류 출신 프랑스 대통령 자리를 놓고 승부를 겨룬다. 프랑스 대선은 1차 투표에서 과반을 얻은 후보가 나오지 않으면 상위 2명을 대상으로 결선 투표를 치러 대통령을 결정한다. 1965년 이후 대선 때마다 결선 투표가 진행됐다. 모두 10번 치러진 결선 투표 중 이번 선거를 제외한 9번은 중도 좌우를 대표하는 사회당과 공화당 후보 중 한 명이 반드시 진출했다. 또 9번 중 7번은 사회당과 공화당 후보가 대결했다.●‘기득권 타파’ 외친 마크롱 그동안 주류 좌우 정당의 후보가 주거니 받거니 하며 엘리제궁을 차지해 왔지만 이번 선거에서는 사회당과 공화당이 정계 변방의 ‘이단아’에게 주역 자리를 내줬다. 이 같은 결과는 프랑스 유권자의 기성 정치권에 대한 심각한 불신과 염증이 반영된 것이다.블룸버그통신은 유권자들이 주요 양당을 ‘거부’한 것은 이슬람 테러, 경기 침체, 실업률 악화 등의 충격을 겪으면서 프랑스 사회에 내재된 분노를 여실히 보여 준다고 지적했다. 영국 일간 더타임스는 구체제나 인물의 청산을 뜻하는 ‘데가지즘’이 프랑스 정치의 새로운 사조로 떠올랐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마크롱은 대선 레이스 기간 ‘기득권 타파’를 외치며 거대정당에 염증을 느낀 유권자를 파고들면서 무서운 속도로 상승세를 탔다. 그는 현 사회당 정부에서 경제장관을 지냈으나 좌우로 양분된 프랑스 정치를 혁신하겠다면서 ‘제3지대’를 표방한 앙마르슈를 창당했다. 그 결과 마크롱은 선출직 첫 도전에서 기성 정당 대선 후보를 누르는 기염을 토했다. 마크롱이 결선 투표에서도 승리하면 1848년 나폴레옹 3세 이후 최연소 프랑스 대통령직에 오르게 된다.●‘원조 극우’ 父 극복… 입지 키운 르펜 르펜도 기득권과는 거리가 멀다. FN은 1972년 르펜의 아버지 장마리 르펜이 창당했으나 결선에 진출한 2002년 외에는 주로 주변부 정당에 머물렀다. 하원 의석도 전체 577석 중 2석에 불과하다. 그러나 르펜은 기성 정치권에 대한 염증과 잇따른 테러, 경제 불황을 ‘프랑스 우선주의’와 보호무역으로 헤쳐 나가겠다는 포퓰리즘적 공약으로 지지층을 확보하면서 ‘원조 극우’로 불리는 아버지를 극복하고 정치적 입지를 키웠다. 선거 결과는 사회당, 공화당으로 양분된 프랑스의 전통적 정치지형에도 큰 변화를 가져올 전망이다. 당장 사회당과 공화당은 6월 총선에서 1당과 2당 자리를 지켜내야 하는 난제를 안게 됐다. 반면 현재 하원에 의석을 갖고 있지 않은 신당 ‘앙마르슈’는 마크롱이 결선에서 승리해 집권하면 그 바람을 타고 총선에서 상당한 의석을 확보할 것으로 전망된다. 결선에서는 마크롱의 압승이 예상된다. 여론조사 기관 ‘입소스 소프라 스테리아’와 ‘해리스 인터랙티브’가 전날 각각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오늘 당장 결선이 실시될 경우 마크롱을 지지하겠다”는 응답이 62∼64%로 르펜(36∼38%)을 압도했다. 그러나 마크롱보다 르펜의 지지층이 견고하다는 점, 최근 잇따른 테러로 안보가 주요 이슈로 떠올랐다는 점에서 르펜 당선이라는 대이변이 연출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파리정치대 세르주 갈람 교수의 시뮬레이션에서 르펜 지지자의 90%가 투표하고 마크롱 지지자의 65%가 투표한다고 가정하면 르펜이 50.07%의 득표율로 승리한다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심현희 기자 macduck@seoul.co.kr
  • “모든 것을 잃는다”…대선 2등 잔혹사

    “모든 것을 잃는다”…대선 2등 잔혹사

    1등만이 모든 것을 다 갖는 냉혹한 승자 독식의 승부, 대통령 선거. 대한민국은 막강한 권력에 취해 이를 사유화한 박근혜 전 대통령, 지금은 그저 ‘수인번호 503번’이 된 사람 탓에 이 냉혹한 승부를 예정보다 이른 오는 5월 9일 또 치르게 됐다. 대통령이라는 자리를 눈앞에 두고 눈물을 삼켜야 했던 2등들은 다시 1등에 오르기 위해 5~10여 년 간 표심 다지기 나서거나, 중앙 정치 무대에서 쓸쓸히 퇴장하기도 했다.1992년 제14대 대선부터 지난 5차례 대선에서 2등에 머물렀던 정치인의 발자취를 되돌아봤다.  ● 정계 은퇴와 출국…민주화 거목 김대중1992년 12월 18일 제14대 대선. 13대 대통령 노태우의 퇴장과 함께 대한민국에 실질적인 민주 정부가 들어서는 중대한 선거였다. 대선은 영남 지역을 정치 기반으로 둔 김영삼 민주자유당 후보와 호남 지역을 기반으로 둔 김대중 민주당 후보 양강 구도로 치러졌다. 두 정치인 모두 과거 군부정권에 맞서 선봉에서 싸운 민주화 운동의 거목이었다.유권자 2942만 2658명 81.9%가 투표에 참여한 결과 대한민국 최고 권좌는 42.0%를 득표한 김영삼 후보에게 돌아갔다. 김영삼 후보와는 190만여 표 차이(34.0%)로 낙선한 김대중 후보는 선거 결과에 승복, 대선 이튿날 정계 은퇴 성명을 발표하고 1993년 1월 영국으로 떠났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 객원교수로 활동하던 그는 아시아·태평양 민주지도자회의(아태재단)를 설립하며 한국 정계 복귀를 위한 초석을 마련한 뒤 1995년 7월 국내 정계 복귀를 선언하고 옛 민주당 탈당 의원들과 함께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했다.해외와 국내 정치의 외곽을 떠돌던 김대중은 1997년 제15대 대선에도 다시 도전, 당시 대통령으로 유력했던 이회창 신한국당 후보를 39만여 표 차로 간신히 누르고 그토록 갈망하던 대통령에 당선됐다. 15대 대선은 보수층의 지지를 등에 업은 이회창 후보에게 다소 유리한 흐름이었으나 신한국당 경선에서 이회창에 밀린 이인제 전 경기도지사가 국민신당을 창당해 출마하면서 결국 일부 보수층이 분열, 김대중 후보 당선에 기여한 결과만 낳았다. ● 삽질하고 햄버거 먹고…대법관 출신 ‘대쪽’ 이회창1993년 12월 대법관 출신 이회창이 김영삼 정부 국무총리를 시작으로 현실 정치에 등장했다. 그는 과거 군사정권에서도 정권의 압력에 굴하지 않고 소신껏 판결을 해 법조계와 정치권에서는 ‘대쪽 판사’로 정평이 나 있었다. 이후 총리 사임 뒤 변호사로 활동하던 이회창은 1996년 다시 김영삼 대통령의 영입으로 신한국당에 입당, 1997년 대선에 출마했지만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후보에 밀려 2위에 그쳤다.15대 대선에서 낙선한 이회창은 당을 이끌며 다음 대선을 준비했다. 2002년 16대 대선 유세에서는 기존 ‘대쪽 판사’의 강직한 이미지를 유지하면서도 서민과 함께하는 친근한 대통령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 출근 시간대 만원 지하철에 올라 유권자들을 만나고, 패스트푸드점과 포장마차 대화 등 서민 행보에도 주력했다. 하지만 그의 친서민 행보는 진짜 서민적 정서를 기반으로 한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후보라는 벽을 넘지 못했다.  ● 족구하고 분식 먹으며 분투했지만…초라한 패배 정동영2007년 12월 17대 대선은 10명의 후보가 난립한 가운데 전국 63.0%라는 대선 역대 최저 투표율로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가 당선(48.7%)됐다. 2등은 득표율 26.1%에 그친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다. 이 후보와 표 차이는 무려 530만 표가 넘었다. 문화방송 기자와 메인 뉴스 앵커를 거치며 전국적 인지도가 높았던 정동영은 1996년 제15대 총선에서 당선되며 정치활동을 시작, 노무현 정부에서 통일부 장관까지 지냈지만 대선 후보로는 중량감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았다. 당시 대권 경쟁자 중에서는 현대건설 사장과 서울시장을 지낸 이명박 후보가 ‘한반도 대운하 사업’과 경제 성장 747 공약(연 경제성장률 7%, 1인당 국민소득 4만달러, 세계 7대 강국 진입) 등 굵직한 대선 이슈를 선점하며 당선이 유력한 상황이었다.정동영 후보는 ‘안보 대통령’, ‘일자리 창출 경제 대통령’ 등 이미지 강화에 나섰지만 민심의 흐름에는 이렇다 할 영향을 미치지 못했고, 대선 이듬해 4월 치러진 제18대 총선에서도 서울 동작구에 출마한 정몽준 당시 한나라당 후보에 밀리며 고배를 마셨다.  ● 제2의 노무현을 꿈꿨지만…재수에 나선 문재인2008년 2월 노무현 대통령 퇴임과 이듬해 5월 노 대통령 서거로 국내 정치권에서 이른바 ‘친노’ 정치 계보도 막을 내리는 듯했다. 하지만 제도 정치권에서 비켜 서 있던 문재인 참여정부 비서실장이 전면에 등장했다. 그는 정치권과는 거리를 뒀었지만, 2012년 제18대 대선이 다가오면서 이명박 보수정권에 반감을 가진 정치권과 유권자들의 출마 요구가 이어지자 2012년 4월 민주통합당 소속으로 총선에 출마해 당선됐다. 문 후보는 총선 출마를 앞두고 출간한 저서 ‘운명’에서 “당신(노무현)은 이제 운명에서 해방됐지만, 나는 당신이 남긴 숙제에서 꼼작하지 못하게 됐다”며 정치 입문 배경을 밝힌 바 있다.2012년 12월 대선은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후보와 문 후보 양강 구도로 진행됐다. 대선을 앞두고 당시 무소속 안철수 현 국민의당 전 대표도 유력 대권 주자로 떠올랐으나 문 후보로 단일화하면서 대선 후보에서 사퇴했다. 그러나 ‘박정희 향수’와 유권자의 보수성은 강했고, 국가정보원의 대선 개입 논란 끝에 박 후보가 51.6% 득표로 48.0% 득표에 그친 문 후보를 눌렀다. ● 사상 초유 대통령 궐위 대선, 누가 울 게 될 것인가?대한민국 첫 여성 대통령이었던 박근혜 전 대통령은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으로 민간인이 됐고, 법원의 구속영장 발부로 지금은 구치소에 수감 중인 미결수로 전락했다. 이 탓에 애초 올해 12월로 예정됐던 제19대 대선은 오는 5월 9일로 당겨 치러진다.현재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 심상정 정의당 후보,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가 경쟁 중인 가운데 지난 13일 리얼미터 조사 결과에 따르면 문 후보가 44.8%, 안 후보가 36.5% 지지율로 양강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에 대항하기 위해 힘을 합쳤던 두 후보가 이번 대선에서는 최대 라이벌이 된 것이다.대선 시계는 점차 빠르게 돌아가고 있다. 2017년 5월 9일, 이번에는 누가 2등 자리에서 눈물을 삼키게 될까.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 새누리당 창당 이후 첫 태극기집회…“박근혜 대통령 석방하라”

    새누리당 창당 이후 첫 태극기집회…“박근혜 대통령 석방하라”

    친박(친박근혜) 단체들이 신당 ‘새누리당’ 창당 이후 처음으로 8일 서울 도심에서 태극기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석방을 주장하면서 이번 19대 대선에서 대통령을 내겠다고 밝혔다. ‘대통령 탄핵무효 국민저항총궐기 운동본부(국민저항본부)’는 이날 오후 2시 서울 중구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제5차 탄핵무효 국민저항 총궐기 국민대회’를 열었다. 집회 참가자들은 검찰의 3차 옥중조사가 진행되는 이날 ‘대통령을 석방하라’, ‘대통령을 돌려다오’ 등 구호를 외쳤다. 일부 참가자는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북한에 대한 미국의 선제공격을 촉구하는 현수막을 들고 오기도 했다. 다만 이날 집회에서는 ‘탄핵 무효’ 등 기존 주장보다 ‘새누리당에서 대통령을 내야 한다’는 주장에 집중한 모습이었다. 새누리당 사무총장을 맡은 정광용 국민저항본부 대변인은 “새누리당에서 대통령이 나와야 진정한 민주국가다, 우리 당은 할 수 있다”며 조원진 자유한국당 의원을 소개했다. 조원진 자유한국당 의원은 이 자리에서 직접 대선 후보 수락 의사를 밝히지는 않았지만 “종북 좌파, 얼치기 보수에게 정권을 넘기지 말자”고 강조하며 자유한국당 탈당을 선언했다. 조 의원은 “이제 한국당은 보수당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지킬 수 있는 새로운 우파 정당이 생겨야 한다”며 “오늘부로 자유한국당을 탈당한다”고 말했다. 참가자들은 이에 조원진 의원을 연호하며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발언자들은 5월9일 대통령 선거에서 ‘종북정권’의 집권을 막기 위해서는 ‘새누리당’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하기도 했다. 새누리당 공동대표인 권영해 전 안기부장은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정당이라는 이름을 가져야 우리의 참정권을 지키고 우리의 저항을 제도권에 불어넣을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태극기집회 참가자들은 이날 집회를 마치고 을지로입구, 을지로2가, 퇴계로 입구, 명동역, 회현4거리, 한국은행, 숭례문을 거쳐 대한문으로 돌아가는 경로로 행진할 예정이다. 장은석 기자 esjang@seoul.co.kr
  • DJP연합 주역 김용환 한국당 상임고문 별세

    DJP연합 주역 김용환 한국당 상임고문 별세

    4선 국회의원을 지내며 ‘DJP(김대중·김종필) 연합’을 이뤄냈던 김용환 자유한국당 상임고문이 7일 별세했다. 향년 85세. 경제관료 출신인 김 상임고문은 박정희 정권에서 대통령 경제수석비서관을 지냈다. 1988년 제13대 총선에서 충청남도 대천·보령에 공화당 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됐다. 특히 1997년 대선에서 DJP 연합을 성사시켜 이회창 후보를 꺾는 데 역할을 했던 김 상임고문은 이후 2002년 대선 때 한나라당에서 이회창 후보를 도왔다. 박정희 정부의 경제정책을 지휘한 경제 전문가다. 1932년 충청남도 보령에서 태어난 김 고문은 공주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고시행정과에 합격해 재무부에서 경제 관료의 길을 걸었다. 재무부 이재국장과 세정차관보, 농림부 농정차관보를 거쳐 1970년 청와대에 입성, 대통령 외자관리담당비서관을 지냈다. 이후 상공부 차관과 재무부 차관을 지낸 김 고문은 1973년 대통령 경제담당특별보좌관을 거쳐 대통령 경제수석비서관으로 발탁됐다. 40대 초반이던 1974년부터 4년 동안 재무부 장관을 맡아 정부 주도의 고도성장 경제 개발 정책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87년 신민주공화당 정책위의장으로 정계에 입문했고, 이듬해 13대 총선에서 고향인 충남 대천·보령 지역구에서 당선돼 원내 진입에 성공했다. 같은 지역에서 내리 4선을 했으며 민자당 정책위의장, 아·태경제연구소 회장, 국민당 최고위원, 자유민주연합 부총재와 사무총장을 두루 역임했다. 자민련 사무총장을 지내던 1996년 말부터 막후에서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DJ) 총재와 자민련 김종필(JP) 총재 사이의 ‘DJP 연합’ 협상을 주도해 정권 창출의 공신이 됐다. 새정치국민회의의 협상 파트너는 한광옥 현 청와대 비서실장이다. 그러나 집권 후 JP가 내각제를 포기한 데 반발해 1999년 자민련을 탈당, 한국신당을 창당해 대표를 맡았다가 2001년 한나라당에 입당했다. 한나라당에서 국가혁신위원장, 지도위원장, 상임고문을 역임했으며 2012년 총선에서 새누리당의 충청권 승리에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측근 원로그룹인 ‘7인회’에서 좌장 역할을 하며 2대에 걸쳐 박 전 대통령 부녀를 도왔으나, 최근에는 사이가 소원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빈소는 서울대학교 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장례는 4일장으로 치러진다. 유족으로는 나춘구 여사와 두 아들(김기주·김기영)이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벤처 신화로 꽃길… ‘또 철수’ 오명 딛고… 다시 安風

    벤처 신화로 꽃길… ‘또 철수’ 오명 딛고… 다시 安風

    국민의당 안철수(55) 전 대표의 대선 도전은 두 번째지만, 본선에서 국민의 선택을 묻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안철수신드롬’에 힘입어 2012년 9월 19일 18대 대선 출마를 선언했던 그는 65일 만인 11월 23일 “정권 교체를 위한 백의종군”을 선언하면서 ‘미완의 정치실험’을 끝냈었다.‘2012년의 안철수’와 ‘2017년의 안철수’는 천양지차다. 지난 대선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했던 그는 이제 39명 의원이 소속된 원내 3당의 후보가 됐다. 2012년의 그는 정치 경험이 전무했지만 지금은 재선의원으로 ‘여의도’를 알아가는 단계다. 또 4·13 총선(국민의당)은 물론 앞서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 시절 지방선거,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까지 세 번의 전국단위 선거를 지휘했다. 그가 “압축을 넘어 농축 경험을 했다”고 자신하는 이유다.정치에 입문하기 전 따라다니던 수식어는 ‘벤처 신화’, ‘1세대 정보기술(IT) 개발자’, ‘컴퓨터 의사’처럼 화려했다. 대중들은 그가 의사 집안에서 태어나 ‘꽃길’만을 걸었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본인은 ‘노력형’, ‘대기만성형’이라고 말한다. “초등학교 때 성적표에 ‘수’가 보인 게 이름 철수의 ‘수’뿐”이라고 우스갯소리를 할 정도로 어렸을 때는 평범한 아이였다고 한다. 활자 중독이라고 할 만큼 독서를 좋아했고, 고교 2학년이 돼서 비로소 성적이 올랐다. 공대에 가고 싶었지만 부모님의 뜻대로 서울대 의대에 진학했다. 그의 인생을 바꾼 ‘컴퓨터 바이러스’와의 인연은 1988년 의대 박사 과정을 밟던 때 찾아왔다. PC가 ‘브레인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을 발견, ‘V1’이라는 백신프로그램을 개발했다. 그는 “그때부터 7년간 밤에는 백신을 만들고 낮에는 의사로 일했다”고 한다. 그리고 백신 프로그램을 무료로 배포했다.결국 1995년 의대 교수직 사표를 내고 컴퓨터 벤처기업 안철수연구소를 설립한다. 결단력과 추진력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그는 “컴퓨터를 하면서 느끼던 자부심과 성취감 등은 의학을 공부하면서는 느낄 수 없었다”고 회상했다. 안철수연구소 최고경영자(CEO)로서 헤쳐 나간 10년간의 세월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직원들에게 월급을 주는 날이 돌아오는 게 무서웠다”고 말할 정도로 힘든 시기를 거쳤다. 안철수연구소는 이후 1999년 대한민국 소프트웨어 업체로는 한글과컴퓨터에 이어 두 번째로 연매출 100억원을 돌파했다. CEO 출신의 고집스러움이 이 시기 강화됐다는 지적도 있다. 2005년 안랩의 대표이사직을 그만두고 학자의 길로 나선다. 2모작도 쉽지 않은 인생인데 3모작을 일찌감치 시작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에서 경영학석사(MBA) 과정을 밟은 후 2008년 귀국, KAIST 경영학과 교수로 부임했고, 2011년 모교인 서울대의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을 맡았다.터닝포인트가 찾아온 것은 2009년 6월 MBC ‘무릎팍도사’에 출연하면서다. 이후 법륜 스님, 시골의사 박경철씨 등과 함께 ‘청춘콘서트’를 진행하면서 인기를 한 몸에 받았다. 정치를 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적이 없었는데도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50% 가까운 지지율을 넘나들며 유력 후보로 부상한다. ‘안풍’(안철수 바람), ‘안철수 신드롬’의 서막이다. 하지만 지지율 5%였던 박원순 현 서울시장에게 조건도 없이 후보를 양보했다. 정치권에 넌덜머리가 났던 대중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안풍은 더 거세졌다. 2012년 9월 19일 ‘새정치’를 기치로 걸고 대선에 출마했다. 인생의 마지막 승부수로 직업정치인의 길을 택했다. 공익재단인 동그라미재단에 1500여억원을 기부했다. 그러나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와 단일화 협상에 실패했고, 결국 후보직을 사퇴하며 물러났다.대중의 관심에서 잠시 멀어졌지만, 2013년 서울 노원병 보궐선거를 통해 재기했다. 기세를 몰아 독자 신당 창당을 목표로 정치세력화를 시도했다. 하지만 현실 정치의 벽에 부딪히면서 2014년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민주통합당과 합당했다. ‘또 철수(撤收)’라는 비아냥을 듣기도 했다. 그를 도왔던 많은 이들이 떠났다. 2015년 2·8 전당대회로 문재인 대표 체제가 들어선 뒤 당 지도부와 마찰을 빚었다. 결국 같은 해 12월 탈당해 국민의당을 창당했고, 불과 3개월여 만에 치러진 4·13 총선에서 38석을 얻으며 양당 체제를 깨고 제3당의 지위에 올랐다. 당 안팎의 연대론 압박에도 불구하고 ‘자강론’을 고수한 끝에 얻은 성과였다. 측근 박선숙 사무총장이 연루된 총선 리베이트 의혹으로 대표직에서 물러났지만, 1심에서 관련자들이 무죄 판결을 받으면서 기회를 얻었다. 문제는 지지율이었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성남시장, 안희정 충남지사 등이 번갈아 20% 안팎까지 치솟는 동안 안 후보는 좀처럼 10%를 넘지 못했다. 그래도 “결국, 안철수의 시간은 온다”, “이번 대선은 문재인과 안철수의 대결”이라며 당 안팎의 동요를 막아냈다. 그의 말은 조금씩 현실이 됐다.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를 불러들여 경선의 판을 키웠고, 앞서 불출마를 선언한 반 전 총장, 그리고 안 지사를 지지했던 중도 또는 합리적 보수 성향의 표심을 흡수하면서 민주당 문재인 후보의 가장 강력한 대항마로 떠올랐다. 송수연 기자 songsy@seoul.co.kr
  • “변희재 정미홍 정광용 태극기신당 통해 대선 출마 선언”

    “변희재 정미홍 정광용 태극기신당 통해 대선 출마 선언”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와 정미홍 더코칭 대표가 태극기 신당을 창당, 대권에 도전한다. 4일 미디어워치 보도에 따르면 박근혜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주축이 된 태극기집회 참가자들은 5일 장충체육관에서 새누리당(가칭) 창당 대회를 열고 대선 출마 선언을 할 예정이다. 창당일에 1차로 공모한 후보들의 정견발표 기회를 주고, 컷오프 등을 통해 2차 연설회 등등을 통해 후보를 정하겠다는 방침이다. 변희재 대표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태극기 신당 4월 5일부터 경선 레이스 돌입”이라고 적었다. 변 대표는 SNSTV나 참깨방송을 통해 출마의사를 밝힐 계획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촛불·태극기 소강 국면…‘○○당 심판’ 팻말 17일부터 선거법 위반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구속으로 탄핵 찬반을 주장하며 서울 광화문과 시청 앞을 가득 메웠던 이른바 ‘촛불’과 ‘태극기’ 집회가 상당부분 소강 국면에 접어들었다. 하지만 태극기집회 측은 신당 창당을 알리며 주말 집회를 이어갔고, 촛불집회 측도 ‘사드 배치 반대’, ‘비정규직 철폐’ 등 정치·노동이슈를 중심으로 산발적인 주말 집회를 진행했다. 지난 1일 ‘대통령 탄핵무효 국민저항총궐기 운동본부’(탄무국)는 서울 중구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집회를 열고 ‘탄핵무효’와 ‘박 전 대통령 석방’을 외쳤다. 여전히 태극기와 성조기가 등장했지만 참가자 수는 지난 주말보다 확연히 줄어든 모습이었다. 하지만 주말 집회는 계속될 전망이다. 탄무국 관계자는 “오는 5일 서울 중구 장충체육관에서 애국 신당 창당대회를 열고 대선 독자 후보를 내겠다. 갈 데까지 가볼 것”이라고 2일 밝혔다. 촛불집회 측도 세월호 참사 3주기를 앞두고 오는 15일 대규모 집회를 예고했다. 하지만 규모는 이전보다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럼에도 양측 집회의 장외 대립이 계속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집회가 선거운동으로 흐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선거관리위원회는 선거운동 기간이 시작되는 오는 17일부터 대통령 선거를 치르는 다음달 9일까지 집회에서 특정 정당·후보자를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행위는 전면 금지된다고 밝혔다. 태극기 집회 측이 창당대회 형식으로 집회를 이어가려 하는 계획에 대해서는 선거 120일 전부터 도심 집회는 불가하고, 역시 정당·후보자 지지 및 반대 행위도 금지된다고 설명했다. 선관위 관계자는 “‘사드 배치 반대(찬성)’라는 펼침막·손팻말·구호 등은 허용되지만 ‘○○당을 선거에서 심판하자’, ‘정권 교체(정권 재창출)하자’, ‘탄핵 찬성(반대)한 ○○○을 뽑지 말자’ 등의 내용은 허용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 “정당 창당해 계속 탄핵 거부 운동”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반발하며 집회를 이어 온 ‘대통령 탄핵 무효 국민저항 총궐기 운동본부’(국민저항본부)가 창당집회 형태로 탄핵 거부 운동을 이어 갈 태세다. 국민저항본부 측은 지난 18일 오후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제2차 탄핵무효 국민저항총궐기 국민대회’(태극기집회)를 갖고 5월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선거법에 저촉되지 않게 정당을 창당하고 ‘정당 집회’를 이어 간다고 밝혔다. 또 이들은 ‘불법탄핵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려 자체 조사에 나설 계획이다. 정광용 국민저항본부 대변인은 “선거법에 따르면 4월 17일 이후 집회를 열 수 없다”며 “정당을 창당하면 전국에 지역구가 253개니까 지역구 창당 대회를 이곳에서 253번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형사, 검사 출신 변호사 등 각계 전문가로 구성된 불법탄핵 진상조사위원회를 발족한다”며 “녹음파일 2000개를 다 들어 보겠다”고 덧붙였다. 국민저항본부가 추진하는 ‘애국 신당’ 창당과 관련해 도태우 변호사는 “시·도당 6개 이상이 마무리됐고 다음 주말까지 중앙당 등록이 가능하다”며 “다다음주에는 온라인 당원 가입이 가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 전 대통령의 탄핵심판 변호인이었던 김평우 변호사는 미국에서 보낸 영상 메시지에서 “‘헌법 재판에 승복하느냐’고 묻는 것은 의사표시 강요죄”라며 “이는 판결 당사자에게 물어야 하는 질문으로, 우리를 테스트하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변호사는 헌법재판소의 박 전 대통령 파면 선고 직후인 지난 14일 박 전 대통령을 삼성동 자택에서 만난 일화도 소개했다. 김 변호사는 “제 불찰과 무능을 사죄드리려고 갔는데 천만뜻밖에도 환히 웃으시며 밝은 표정으로 오히려 저를 보고 ‘너무 많이 애쓰셨다’고 감사와 격려 말씀을 주셨다”고 말했다. 국민저항본부는 본 집회에 앞서 지난 10일 헌법재판소 앞 시위에서 사망한 김모(72), 이모(74), 김모(67)씨를 열사로 칭하고 영결식과 추모제를 진행했다. 이들은 박 전 대통령이 검찰에 소환되는 21일에는 삼성동 자택과 서초동 검찰청사 등에서 집회를 열 예정이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 영애 18년, 야인 18년, 정치인 19년…박근혜 전 대통령 일대기

    영애 18년, 야인 18년, 정치인 19년…박근혜 전 대통령 일대기

    대한민국 첫 여성 대통령이었던 박근혜 대통령이 헌정 사상 첫 ‘탄핵 대통령’이 됐다. 과거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로 ‘영애’ 시절부터 청와대에 오랜 기간 머물렀던 박 전 대통령은 ‘40년 지기’ 최순실(61) 게이트에 발목이 잡히며 19년 정치인생이 한 순간에 무너졌다. ◆ ‘영애’와 ‘퍼스트레이디’로서의 18년…은둔생활 18년 1952년 2월 2일 육군 소령인 박정희 전 대통령과 교사 출신 육영수 여사의 2녀 1남 중 장녀로 태어난 박 전 대통령은 이후 5·16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아버지에 의해 1963년 2월 청와대에 입성했다. 이후 18년간을 박 전 대통령은 영애와 퍼스트레이디로서 청와대에 지내게 된다.서강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뒤 1974년 2월 프랑스 유학길에 올랐던 박 전 대통령은 그해 8월 15일, 어머니 육영수 여사가 문세광에 의해 암살당하며 급거 귀국길에 올랐다. 이후 그는 22세의 나이에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했다. 이어 1979년 10월 26일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마저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쏜 총에 맞아 서거하면서 이후 1개월 만에 서울 신당동 사저로 돌아갔다. 이후 18년간의 은둔생활에 들어갔다. 육영재단 이사장, 영남재 재단 이사장, 정수장학회 이사장으로 활동하긴 했으나 언론에 일제 모습을 내비치지 않았다. ◆ ‘정치인’ 박근혜의 19년이지만 한동안 칩거를 이어가던 박 전 대통령은 1997년 11월 한나라당(현 자유한국당)에 입당했다. 국제통화기금(IMF) 위기를 방관할 수 없다며 대중 앞에 나선 것. 이후 ‘정치인’ 박근혜로서의 인생이 시작됐다. 박 전 대통령은 1998년 4월 대구 달성 15대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승리하면서 여의도로 입성했으며 19대 때까지 5선 의원을 지냈다.박 전 대통령은 미래연합 창당 등 혼란기를 거쳐 2004년부터 유력 정치인으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차떼기’로 상징되는 불법 대선자금 사건과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역풍’으로 위기에 처한 한나라당의 구원투수로 역할을 하면서 정치적 입지를 키운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은 이때부터 2년 3개월 동안 당 대표를 지내며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와 지방선거 등에서 당시 집권여당인 열린우리당을 상대로 ‘40대 0’이라는 완승을 거두면서 ‘선거의 여왕’이라는 호칭까지 얻게 됐다. 유력 대 주자로 발돋움한 박 전 대통령은 2007년 대선 후보 경선에 나섰지만 패배했다. 이때 결과에 깨끗이 승복하는 연설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와 함께 2009∼2010년 세종시 수정안 논란 때는 “약속을 지켜야 한다”며 원안을 고수해 이명박 정부의 세종시 수정안을 부결시키면서 ‘원칙과 신뢰’의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를 확고히 다졌다. 이를 토대로 2012년 대선에 승리해 대한민국 첫 여성 대통령이라는 기록을 세우게 됐다. 제18대 대통령이 됐다.그러나 집권 4년 차인 2016년에 최순실 파문이 터지면서 박 전 대통령의 19년 정치인생도 뿌리째 흔들렸다. 정치인으로서의 인생이 지난해 국회에서 탄핵안이 가결됨으로 끝났다. 풍문으로 나돌던 박 전 대통령과 최 씨와의 관계가 드러나고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이 걷잡을 수 없이 터져 나오면서 국민적 퇴진 요구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결국 지난해 12월 9일 국회의 탄핵소추안 가결로 직무가 정지되는 수모를 겪었다.박 전 대통령은 관저 칩거 생활 속에서 명예 회복을 위해 헌법재판소 탄핵심판과 특별검사 수사에 총력 대응했다. 19년 관직 생활이 끝났지만 정치인으로서의 생명은 지난해 끝난 셈이다. 그러나 특검은 박 전 대통령을 피의자로 입건했으며 헌재가 탄핵소추안을 받아들이면서 박 전 대통령은 권력의 정점에서 내려와 ‘법적 투쟁’의 길을 가게 됐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박근혜 대통령 파면] 변희재 “다음 대통령 죽었다”

    [박근혜 대통령 파면] 변희재 “다음 대통령 죽었다”

    헌법재판소가 10일 오전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인용을 결정한 가운데 변희재 전 미디어워치 대표가 “박 대통령 파면 기준 갖다대면 살아남을 대통령이 없다”며 “다음 대통령 죽었다”고 말했다. 변희재 전 대표는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제가 헌재 판결 보면서, 딱 들었던 생각은 ‘다음 대통령 죽었다’는 것”이라며 박 대통령 파면 기준 갖다대면 살아남을 대통령이 없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변 전 대표는 이어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언급하며 “겁 잔뜩 먹었을 것”이라며 집권해봐야, 그 수많은 친노, 친문패들 좋은 뜻이든 나쁜 뜻이든 이권 챙겨주지 못한다“고 적었다. 그는 ”그 점에서 저는 헌재가 대통령 권력을 빼앗겠다는 국회의 손을 들어주었다고 본다“며 ”이 상황에서 대통령제 유지가 불가능해졌다“고 단언했다. 또한 “그럼 당연히 김종인, 박지원, 김무성, 인명진 등이 내각제 개헌을 추진할 거다. 1차적으로 문재인 집권 저지 이전에, 내각제 개헌 음모부터 분쇄해야 한다. 만약 인명진 패거리들이 내각제 추진하면, 이에 반대하는 의원들 규합해서 신당 창당에도 나서야 한다”며 “현재 대한민국에 가장 필요한 제도는 미국식 정·부통령제이다”라고 했다. 변 전 대표는 “미국식 정·부통령제였다면, 대통령이 탄핵되어도 직무를 유지하고, 설사 탄핵이 상원에서 인용이 되어도 부통령이 임기를 채우기 때문에 이번 건처럼 탄핵을 쉽게 하지 않는다”며 “내각제를 분쇄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대선을 미뤄지고, 내각제를 국민투표로 저지하면서 국회와 타락 언론을 심판, 세를 모아, 문재인 세력과 정부통령제로 한판 붙으면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건 박 대통령이 돌아와도 어차피 진행될 상수였다. 크게 보면 탄핵 인용과 기각, 큰 차이가 없었던 겁니다. 김종인·김무성 등이 내세울, 문재인 집권 저지하기 위해 다 모이자, 이런 선동에만 넘어가지 않으면 된다”고 덧붙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정치 뒷담화] 대통령 나온 천하 명당 ‘서여의도’로 헤쳐 모여

    [정치 뒷담화] 대통령 나온 천하 명당 ‘서여의도’로 헤쳐 모여

    대통령을 배출하는 천하의 명당이 있을까. ‘천운’이 따라야 한다는 대통령선거, 그에 앞서 ‘예선’에 해당하는 각 당 경선에서 승리를 거머쥐어야만 하는 건곤일척의 승부를 준비하다 보니 여야 대선 주자들은 선거캠프의 터를 결정하는 데에도 각별한 공을 들인다. 그렇다면 대선캠프 ‘명당’의 기준은 뭘까. 첫 번째는 역대 대선에서 대통령을 배출한 빌딩이다. 수차례의 대선을 치렀다는 정치권 관계자는 “아무래도 역대 대통령을 배출했다고 하면 그곳에 둥지를 틀면 좋은 기운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DJ·박근혜 승리한 대하빌딩… 반기문 계약해지 정치권에서 ‘선거 명당’으로 유명한 곳은 서여의도 대하빌딩이다.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의 경선캠프가 있던 곳이며 1997년에는 김대중 후보의 새정치국민회의 대선 캠프가 차려졌던 곳이다. 조순·고건 전 서울시장도 이곳에서 승리를 거뒀다. 2008년 17대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의 외곽조직도 이곳을 거쳐 갔다. 명당인 만큼 임대료도 일대에서 가장 비싼 편으로 알려졌다. 평당(3.3㎡) 보증금은 현재 기준 43만원, 평당 임대료는 4만 3000원 정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일 전격적으로 대선 불출마를 선언한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도 본래 대하빌딩에서 새 살림을 시작하려 했다. 반 전 총장 측은 660㎡(약 200평) 규모의 사무실 계약까지 완료했었으나 출마를 포기한 후 계약을 해지했다. 반면 2002년 노무현 전 대통령과 2007년 이명박 전 대통령이 각각 캠프를 뒀던 금강빌딩과 용산빌딩에는 이번에는 아무도 인연을 맺지 않는다고 한다. 명당의 또 다른 조건은 국회와의 인접성 및 임대료다. 캠프를 돕는 국회의원이나 보좌진 등이 주로 여의도 국회에서 상주하는데다 국회에 상주하는 정치부 기자들과의 접근성이 용이한 서여의도 빌딩촌이 선호되는 까닭이다.야권과 인연 깊은 대산빌딩… 문재인 후보 ‘둥지’ 재수에 나선 ‘대세론’의 주인공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서여의도 대산빌딩에 둥지를 튼다. 4층 일부와 5층 전체를 사무실로 사용하며 브리핑실을 포함해 460㎡(약 139평)가량을 6개월간 임대했다. 2012년 대선 때 문 전 대표의 ‘담쟁이캠프’가 입주했던 동여의도 증권거래소 인근 동화빌딩 660㎡ 크기의 사무실보다는 작다. 입주는 4일부터 시작할 예정이다. 최근 대선 불출마를 선언한 박원순 서울시장도 이 건물에 캠프 사무실을 뒀었다. 대산빌딩은 야권과 유독 인연이 깊다. 2012년 대선 패배 후 민주당이 기득권 내려놓기와 정치 혁신의 목적으로 영등포 당사를 폐쇄하고 이곳에 ‘미니 당사’를 뒀다. 천정배 의원이 국민의당에 합류하기 전 창당한 신당 ‘국민회의’도 이 건물에 있었다. 2015년에는 송영길 민주당 의원이 이 건물에 ‘먹고사는 문제연구소’를 열고서 정치 복귀를 선언했고 지난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며 캠프를 차렸었다. 안희정, 文 캠프와 200m 떨어진 곳에 베이스캠프 문재인 캠프와 200m 떨어진 동우국제빌딩에는 안희정 충남지사가 230㎡(약 70평) 규모의 베이스캠프를 만들었다. 이 빌딩은 더불어민주당의 정책연구기관인 민주연구원이 있는 데다 다수 정치인이 캠프를 꾸렸던 곳이다. 추미애 대표가 지난해 당대표 선거 캠프를 꾸렸고, 문 전 대표가 2015년 2·8 전당대회를 앞두고 캠프를 열었던 곳이다. 또 새누리당 나경원 의원도 2010년 서울시장 경선 때 이곳에 사무소를 열었다. 민주당 김부겸 의원 캠프는 정원빌딩 9층에 132㎡(약 40평) 규모로 마련돼 있다. 국민의당 당사로 쓰이는 신축건물에 이재명 이재명 성남시장의 캠프 사무실은 국회도서관과 국회대로를 사이에 둔 신축건물 ‘비앤비타워’ 13층 중 3~4층에 열었다. 이 건물의 5개층은 국민의당 당사로도 활용된다. 성남과 서울의 동선이 길었던 이 시장은 이곳에 집무실도 마련했다. 3층은 열린 공간으로 만들어 기자들이 캠프를 언제든지 방문할 수 있게 한 것은 물론 이 시장의 지지자 모임인 ‘손가락 혁명군’이 활용할 수 있게 했다. 이 시장 측 관계자는 “풍수지리보다는 여의도 정치와 가깝고 당장 입주할 수 있는 곳을 찾다 보니 그곳에 사무실을 꾸리게 됐다”고 설명했다. 산정빌딩 자리 잡은 안철수·유승민 ‘적과의 동침’ 서여의도에 몰리다 보니 본의 아니게 ‘적과의 동침’을 하게 된 주자들도 있다. 국민의당 안철수 전 상임공동대표와 바른정당 유승민 의원이다. 이들은 산정빌딩에 자리를 잡았다. 안 전 대표는 10층에, 유 의원은 6층에 캠프를 마련했다. 여권의 또 다른 후보인 바른정당 소속 남경필 경기 지사는 신동해빌딩 7층에 자리잡았다. 이 빌딩은 2012년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가 대선 경선캠프를 차렸던 곳이다. 남 지사는 대산빌딩에 입주하려고 했으나 계약을 미루는 사이 문 전 대표에게 선수를 뺏겼다. 새누리당 김문수 전 경기지사는 한양빌딩에 자리를 잡았다. 대하빌딩과 마주한 한양빌딩은 1997년 김대중 대통령 당선 당시 새정치국민회의가 입주했고 2007년 이명박 대통령 당선 땐 한나라당이 자리잡았던 곳이다. 같은 당 원유철 의원은 국회 맞은편 진미파라곤 건물에 캠프를 꾸렸다. 대선 일정이 갑작스레 당겨질 가능성이 커지다 보니 주자마다 서둘러 입주할 곳을 찾느라 고생이 많았다고 한다. 대선캠프를 꺼리는 건물주들도 많다. 정치인들과 언론 등 오가는 사람들이 많아 시끄럽고 경비가 힘들기 때문이다. 또 건물주로서는 대부분 짧게 임대했다가 철수하기 때문에 이른바 ‘복비’(부동산 중개수수료) 부담도 만만치 않다. 다른 지역에 비해서는 그래도 여의도가 단기 임대가 가능한 건물이 많은 편이라고 한다 야권 대선 주자 캠프의 한 관계자는 “대선 주자들은 몇 개월만 쓰면 되기 때문에 대부분 보증금 없이 들어갈 수 있는 건물을 선호한다”면서 “건물주들이 이런 이유로 웃돈을 요구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기성 정치권과 거리 둔 손학규 등은 마포구 대선캠프 위치의 상징성에 가장 큰 의미를 두고 여의도가 아닌 다른 지역에 캠프를 꾸리는 주자들도 있다. 대부분 정당 소속이 아니고 기성 정치권과 거리를 두려는 주자들인 경우가 그렇다. 여의도는 ‘정치 1번지’라는 이미지가 강하기 때문이다. 민주당을 탈당한 손학규 국민주권개혁회의 의장은 마포구의 다보빌딩에 개인 사무실을 두고 캠프로도 활용하고 있다. 반 전 총장도 귀국 후 마포구 도화동 트라팰리스에 임시 사무실을 마련했었다. 바로 옆 건물에는 안 전 대표의 싱크탱크인 ‘정책네트워크 내일’(도화동 성우빌딩)이, 400m 거리에는 문 전 대표의 싱크탱크 ‘정책공간 국민성장’(용강동 광산회관)이 자리 잡고 있다. 마포는 여의도와 다리 하나 사이로 접근성이 좋은데다 세간의 시선에서도 자유로운 편이라 정치인들이 선호하는 지역 중 하나다. 2012년 대선에서 무소속으로 도전장을 내밀었던 안 전 대표는 당시 종로구 공평동에 선거캠프를 꾸렸었다. 안 전 대표가 ‘새 정치’를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웠던 만큼 여의도와 떨어진 곳을 물색했었고 ‘공평’(公平)이라는 지명도 마음에 들어 했다는 후문이다. 송수연 기자 songsy@seoul.co.kr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반기문 만난 박지원 “지금은 함께하기 힘들다”

    김무성과 회동… “패권주의 청산”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이르면 이번 주 안으로 대선 캠프를 띄우고, 다음주에는 출마를 공식 선언할 것으로 30일 알려졌다. 앞서 반 전 총장은 설 연휴 기간 국민주권개혁회의 손학규 의장(27일)과 바른정당 김무성 의원(29일), 국민의당 박지원 대표(30일) 등과 연쇄 회동을 가졌다. 박 대표는 회동 후 “개혁정부가 들어서야 한다고 말했고 반 전 총장도 동의했다”면서도 반 전 총장의 귀국 후 행보를 거론하면서 “국민의당 입당을 원하더라도 지금은 받을 수 없고 함께하기 힘들다는 말씀을 분명히 했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반 전 총장에게 ‘새누리당에 가서 할 수 있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부정적인 답변을 했다”고도 전했다. 또 김 의원은 회동에 대해 “친박·친문 패권주의를 청산하기 위한 대통합에 뜻을 같이했다”면서 “대선에서 ‘정치 교체’의 시대적 과제 수행에 협력하고, 제왕적 대통령제를 극복하기 위한 분권형 개헌을 추진하자고 의견을 모았다”고 밝혔다. 반 전 총장은 이번 주에 자신의 활동을 지원해 온 ‘마포팀’과는 별도로 여의도에 공식 대선 캠프를 꾸릴 예정이다. 최근 권영세 전 주중 대사가 캠프에 합류했고 이 밖에 전·현직 정치인과 전문가 그룹 등을 대거 영입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다만 신당 창당에 무게를 둔 ‘반기문 승리의 길’ 전략보고서가 언론에 공개된 것과 관련, 캠프 관계자는 “보고된 적도 없는 문건”이라면서 “제3지대에서 세력화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충북 음성군과 충주시는 반 전 총장을 내걸고 추진해 온 사업 명칭을 모두 바꾸기로 했다. 반 전 총장의 대선 행보와 맞물려 사전 선거운동 논란을 일으킬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음성군은 ‘반기문 마라톤대회’를 ‘음성 국제평화마라톤대회’로, 충주시는 ‘세계 속의 반기문 알리기 국제협력사업’을 ‘새마을 국제협력사업’ 등으로 각각 변경했다. 서울 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음성 남인우 기자 niw7263@seoul.co.kr
  • ‘중원’ 합종연횡… 본게임 신호탄

    문재인 대 反문재인 구도 속… 潘, 제3지대 연대 주력할 듯 설 연휴를 기점으로 사상 유례없이 많은 대선주자군(群)이 난립하는 복잡다기한 대선 국면이 본격화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본선에서 최소 3자 내지 4자 구도가 펼쳐질 수도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직선제 개헌 이후 최다(4자) 유력 후보 난립 사례는 1987년 대선인데 그때는 노태우·김영삼·김대중·김종필 등 일찌감치 각 당의 후보가 확립됐었다. 반면 지금은 어떤 구도로 어떤 후보가 최종적으로 격돌할지 안갯속이다. 현재 지지율 1위(문재인 전 대표) 주자를 보유한 더불어민주당과 박근혜 대통령 탄핵 반대 세력이 주축인 새누리당의 변동성이 상대적으로 작은 가운데 변수는 중원지대에 널려 있다. 안철수 전 대표가 대선 주자로 있는 국민의당과 유승민 의원 및 남경필 경기지사가 출마한 바른정당이 당내 경선을 준비하고 있는 상황에서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과 손학규 국민주권개혁회의 의장, 정운찬 전 국무총리 등이 외곽에서 연대를 저울질하고 있다. 연휴 마지막 날인 30일 반 전 총장과 박지원 국민의당 대표가 전격 회동하는 한편 안 전 대표와 정 전 총리도 따로 만나 연대를 타진한 것은 중원지대의 합종연횡이 본게임에 들어갔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앞서 반 전 총장은 전날 김무성 바른정당 고문과, 지난 27일에는 손 의장과 만나 연대를 타진했다. 특히 반 전 총장은 당분간 특정 정당 입당이나 신당 창당보다는 제3지대 세력화를 통한 연대에 주력할 것으로 알려져 난립 구도는 장기화할 전망이다. 현재 정치권에서는 성향상 ‘안철수·손학규·정운찬’ 조합이 ‘준플레이오프’를 치르고 다른 한편에서는 ‘반기문·유승민·남경필’이 준플레이오프를 한 뒤 각각의 승자가 플레이오프로 후보를 단일화하는 시나리오가 회자된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하나의 시나리오일 뿐 반 전 총장이 국민의당과 먼저 손을 잡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결국 큰 방향은 ‘문재인 대 반(反)문재인’ 구도다. 실제 유 의원은 이날 “문 후보를 상대로 승리할 보수 후보로 단일화하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면서 ‘단일 보수후보론’을 제기했다. 일각에서는 연대론의 범위를 종국적으로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대선 주자로 포진한 새누리당까지로 확장하기도 한다. 정치권 관계자는 “단일 후보론은 어디까지나 연대가 순조로울 경우”라며 “박 대통령 탄핵 심판 결과에 따른 영향 등 대형 변수가 남아 있어 구도를 속단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했다. 김상연 기자 carlos@seoul.co.kr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 반기문, 이르면 이번주 대선 캠프 공식 출범

    반기문, 이르면 이번주 대선 캠프 공식 출범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이르면 이번 주 안에 대선 캠프를 공식 출범할 것으로 알려졌다. 30일 반 전 총장 측은 연합뉴스를 통해 “이번 주에 조직을 좀 더 체계적으로 갖추고 인원도 보강하는 방향으로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반 전 총장은 지난 12일 귀국 이후 마포의 한 오피스텔에 사무실을 두고 활동해 왔다. 이곳에서 상근하는 이른바 ‘마포팀’이 실무를 담당해 왔으나, 현재의 조직과 인력으로는 대선 준비에 역부족이라는 게 안팎의 공통된 견해였다. 반 전 총장 측은 캠프 사무실이 입주할 지역으로 여의도 국회의사당 주변을 물색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캠프 구성 과정에서 전·현직 정치인과 전문가 집단을 영입해 정책, 메시지, 기획, 공보라인을 강화하는 방향이 검토될 것으로 보인다. 반 전 총장은 당분간 ‘제3지대’에서 독자 노선을 걸을 것으로 전망되지만, 신당 창당이나 정치적 연대 등 구체적인 방향은 아직 정해지지 않은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반기문 측 ‘내부 전략보고서’…“2월말~3월초 창당 완료” 로드맵

    반기문 측 ‘내부 전략보고서’…“2월말~3월초 창당 완료” 로드맵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측이 만든 내부 전략보고서의 내용이 언론을 통해 공개됐다. 반 전 총장 측은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해 신당을 창당해야 한다고 분석하고, 늦어도 3월 초까지 창당을 해야 한다는 구체적인 로드맵을 제시했다. 30일 TV조선은 이와 같은 내용의 ‘반기문 승리의 길’이라는 반 전 총장 측 내부 문건을 입수해 보도했다. 이 보고서에서는 대선 레이스의 5가지 길을 하나하나 분석했다. 특히 기존 정당 후보로는 승리가 불가능하며 ‘반기문 신당 창당’이 해답이라고 했다. 내달 10일 창당준비위원회를 발족해 다음달 말이나 늦어도 3월 초까지는 창당을 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창당은 김종인 전 민주당 대표나 정의화 전 국회의장 등 중도적 인물이 주도해야 한다고 나와 있었다. 또 야당 출신 전직 의원을 먼저 포진시키고 이후 충청권 현역을 비롯해 새누리당 바른정당 인사들을 배치해야 한다고도 했다. 창당 비용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 것으로 평가했다. 국민의당이 2억 원, 바른정당이 4억 원 정도 들었는데 창당발기인들의 모금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창당 발표와 함께 ‘공동개혁정부론’을 꺼내 바른정당이나 국민의당과의 연대를 모색하자고 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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