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금 파문」 확산/「DJ 정치자금 괴문서」 사실일까
◎출처·배경 등 싸고 관심 고조/내역 소상히 기록… 일각선 “신빙성 있다”/“신당 「4천억 공세」 차단용” 등 추측 난무
「전직대통령 거액 가·차명 계좌설」 파문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8일 가칭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상임고문의 정치자금 운용내역서라고 주장하는 「괴문서」가 나타나 정치권 전체가 「비자금설」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있다.이 괴문서는 전직대통령 비자금 파문이 여야정치지도자의 정치자금에 대한 의혹으로 증폭되고 있는 과정에서 돌출됐다는 점에서 사실여부,출처와 유포배경등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날 새벽 언론사등에 팩스로 배포된 출처불명의 이 한쪽짜리 괴문서는 92년 대선 때인 11·12월 김대중 당시 민주당후보가 받았다는 정치자금 8백억원의 내역을 10여개 대기업별로 10억∼1백50억원까지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다.특히 자금 액수와 제공일자 및 장소,제공인사까지 소상히 기록돼 있다.
이 문서는 또 6·27지방선거 때의 자금내역,김고문의 자금관리 내역등도 담고 있는데 11개항목으로 된 김고문의 자금 관리내역은 국내외 금융기관 이름과 관리방법,관리인등을 구체적으로 적시하고 있어 주목을 끌고 있다.
이 문건의 말미에는 「자료제공자:김대중 후보비서실 근무,아태재단 중앙위원」이라고 가공의 인물일 것으로 보이는 사람을 제공자로 밝히고 있어 내용은 매우 구체적으나 신빙성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 괴문서에 대해 새정치회의측은 『우리를 음해하려는 공작에 불과하다』며 일고의 가치도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오히려 반응을 보이면 사안이 커질 수 있다고 판단,아예 묵살해버리기로 한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잔류파 민주당등 야권 일각에서는 문서 내용이 오래전부터 정가에서 떠돌던 것으로 사실에 부합되는 것일 가능성이 높다며 김고문 흠집내기에 나설 태세다.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자금이 집중 제공된 것으로 적혀 있는 대선당시인 92년 11월 25일부터 12월 15일까지는 김대중후보가 각종 여론조사에서 상승세를 탈 무렵이었다』면서 『이런 정황으로 볼 때 대기업들의 자금이 이 시기에 집중 제공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아태재단 활동에 참여했던 민주당의 한 의원도 『대선자금에 대해서는 아는 바 없으나 6·27지방선거를 앞두고 재단 중앙위원들로부터 자금을 모금한 것은 사실』이라고 밝혔다.
문건의 출처와 배경은 전혀 알려지고 있지 않으나 새정치회의측이 5·6공의 정치자금을 거론,파문을 확대하려는 자세를 보이자 이에 자극받은 세력이 맞불작전을 벌이는 게 아니냐는 추측,3김시대 종식 및 세대교체 희구세력의 「김대중 죽이기」기도가 아니냐는 등 근거 없는 추측들이 난무하고 있다.
정치자금문제가 국민적 관심사가 되고 있는 시점을 이용해 괴문서를 유포한 의도가 분명히 읽혀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문서내용은 정가의 큰 관심사로 남게 될 전망이다.
◎정계 반응/“공작정치… 「4천억」 초점 흐릴까 우려”신당/“아니땐 굴뚝에 연기… 진위수사 촉구”민주/논평 자제속 “DJ 경고 담긴것 같다”민자
가칭 「새정치국민회의」김대중상임고문의 정치자금과 관련한 괴문서가 8일 나돌자 여야는 사안의 심각성을 감안한 듯 신중한 자세를 보이면서 사태의 추이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새정치 국민회의 『신당을 음해하기 위한 공작정치에 불과하다』며 어이 없어 하는 표정이다.괴문서에서 정치자금을 받은 것으로 거명된 의원들은 『금시초문이다』,『모기관이 꾸민 유치한 소행』이라고 일축했다.
그러나 괴문서의 옳고 그름과 관계 없이 신당이 비자금의 소용돌이에 휘말리지 않을까 상당히 우려하는 눈치다.이날 열린 지도위원회에서도 이같은 분위기를 반영하듯,당의 공식적 입장을 밝혀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으나 결국 『물귀신 작전에 휘말릴 뿐』이라며 대응을 자제했다.
박지원 대변인은 『신당에는 어떠한 정치자금도 없음을 분명히 밝힌다』고 못박은 뒤 『이번 일로 전직대통령의 가·차명계좌 및 동화은행 비자금과 관련한 수사의 초점이 흐려지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박대변인은 또 『일부 야권에서 신당의 비자금을 거론하는 것은 현정권의 사주를 받은 처사』라며 『증거가 있으면 증거를 대라』고 민주당을 공격했다.
괴문서에서 장기신용은행을 통해 김대중 상임고문의 비자금을관리한 것으로 돼 있는 이경재의원(아태재단 후원회 부회장)은 『장기은행에 아는 사람이 없을 뿐 더러 그런 돈이 있는지 조차 모른다』면서 『누군가 상당히 연구한 뒤 조작한 것 같다』고 말했다.
김고문의 측근인 김옥두의원은 『신당창당을 방해하기 위해 모기관이나 모당에서 꾸민 일』이라고 펄쩍 뛰었으며 공천과 관련해 자금을 건네준 것으로 돼 있는 박광태의원은 『특정 정파의 소행으로 보고 싶지 않다』며 공작정치라고 주장했다.권로갑의원은 『말할 필요도 없다』고 일축했다.
▷민주당◁
김고문을 겨냥,야권지도자의 정치자금에 대한 검찰수사를 주장하던 터에 괴문서가 나타나자 신당의 도덕성에 흠집을 낼 수 있는 호재를 만났다는 분위기다.애써 신중한 자세를 보이면서도 문서의 진위를 가리기 위한 검찰수사를 촉구하고 나서는 등 파문을 확산시키기 위해 부심하고 있다.
이규택 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통해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나랴는 속담이 있지만 우리는 이 문서가 진실이 아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밝혔다.이대변인은 그러나 『정치자금과 관련해 기업이름과 수수장소,관련인사의 명단까지 구체적으로 적시돼 있는 점으로 볼 때 김고문의 해명과 검찰의 수사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며 『이번 사건을 공작운운하면서 그냥 넘기려 한다면 김고문에 대한 국민들의 의구심과 정치불신은 더욱 커질 것』이라고 말해 신당측에 대한 공세의 고삐를 잔뜩 죄었다.
이기택 총재도 이날 이대변인으로부터 괴문서에 대한 보고를 받은 뒤 『놀라움과 경악을 금할 수 없다』면서 『사실 여부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것이 없지만 그냥 넘길 사안은 아니다』고 말해 집요하게 신당측을 추궁할 방침임을 시사했다.
▷민자당◁
민자당은 공식논평을 자제하면서도 정치권 전반에 쏠릴 국민의 시선을 의식하며 예의주시하는 표정이다.
박범진 대변인은 『아는 바가 없다』고 공식 논평을 거부한 뒤 『아는 사람이 있을 테니 그 사람이 대답해야 한다』고 「누군가」를 향해 해명을 간접요구했다.박대변인은 『이 문서에는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상임고문을 향한 경고의 의도가 담긴 것 같다』고 분석한 뒤 『전직대통령 가·차명계좌설에 이어 이런 문서가 나돌면 국민들은 이 기회에 다 밝히자는 재야·시민단체들의 의견과 지난 일은 그만두고 이제부터나 잘하라는 두가지 반응을 보일 수 있다』고 전망했다.
강용식대표 비서실장은 『문건에는 상당히 구체적 내용이 담겨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하고 『이렇게 여러가지 설과 폭로가 마구 쏟아지면 결국 어느 쪽도 규명하지 못하고 모두 덮어버리는 것으로 끝날지 모른다』고 관측했다.
◎재계 반응/“조작 됐다” 거명 기업들 불쾌감/“주요그룹 제외된것 봐도 허위”
일부 기업들이 야당 정치인에게 거액의 정치자금을 줬다는 괴문서가 정가에 나돌아 비상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으나 이 문서에 들어 있는 그룹과 기업들은 한결 같이 정치자금 제공을 부인하고 있다.오히려 무슨 이유로 자신들이 거명되는지 조차 모르겠다며 불쾌해하는 반응이다.
출처를 알 수 없는 이 괴문서에는 건설회사와 호남출신 기업들이 상대적으로 많이 포함돼 있다.현대·삼성·LG·대우그룹 등 주요그룹은 빠져있다.정치자금 규모는 10억∼1백50억원이며 언제·누가·어디에서·누구에게 줬다는 내용이 구체적으로 돼 있다.
A그룹의 관계자는 『말도 안되는 소리며,괴문서에서 밝힌 정황도 조작된 것이 분명하다』며 언급할 가치조차 없다는 입장이다.그는 『오너가 해외출장 중 정치자금을 건넸다고 괴문서에 나와 있으나 우리 그룹의 오너는 나이가 많아 해외출장을 거의 하지 않을 뿐 아니라 돈을 건넸다는 김씨성을 가진 임원도 관련부서에 없다』고 말했다.
B그룹의 관계자는 『지역적인 연관을 갖고 지어낸,말도 안되는 소문』이라고 일축하면서 『말도 안되는 소문으로 괜한 피해를 볼 것을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그는 『증권가에서도 기업을 음해하는 루머(소문)가 여러 차례 있었지만,이번 것은 좀 심한 것 같다』며 『특정기업을 음해하려는 자들의 짓』이라며 흥분했다.
C그룹의 관계자도 『말도 되지 않는 소리』라며 『논평할 가치조차 없다』고 말했다.그는 『이 명단에 국내 최대그룹이 빠져있는 것만 봐도,이 문서의 신뢰도가 낮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고 덧붙였다.
D그룹의 관계자는 『우리 그룹은 원래 정경유착과는 관계가 없는 것으로 널리 알려지지 않았느냐』고 반문한 뒤 『말도 되지 않는 얘기』라고 일축했다.
명단에 올라있는 그밖의 기업들의 반응도 당연한 일이지만 한결 같이 「노(No)」다.
한 재계 인사는 『주요 기업들이 특히 각종 선거를 앞두고 여·야에 공히 정치자금을 준다는 「심증」은 있지만,「물증」을 찾기는 힘들다』고 털어놨다.정치자금을 주더라도,최고 경영층만 아는 극비 사항이기 때문이다.
일부 기업의 관계자들은 주요 재벌은 빠진 채,일부 기업만이 정치자금을 건넨 것으로 나온 배경에 관심을 갖는다.신당 추진과 관련된 정치적인 목적에서 뿌려진 문서로 보는 시각도 없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