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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대협출범식 광주서 강행/어제 전남대서/경찰과 대치속 1만여명참가

    ◎금남로 1차 국민대회는 무산 【광주=임시취재반】 전남대학생을 비롯,전국에서 모여든 「전대협」소속 대학생 1만5천여명은 19일 하오7시쯤부터 20일 상오2시쯤까지 광주 전남대에서 「제4기출범식」을 강행했다. 학생들은 이날 「출범식」이후 가두시위를 벌일것이라는 당초 예상과는 달리 교내에서 밤을 새웠으며 경찰도 교내진입을 하지 않아 특별한 충돌이나 불상사는 없었다. 경찰은 당초 이날 집회를 불법으로 규정,강제해산시킨다는 방침아래 4천5백명의 경찰을 교내에 투입하려했으나 한밤에 학생들이 강경하게 맞설경우 상당한 피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는 판단에 따라 강제해산 계획을 철회했다. 이날 「출범식」에는 구속영장이 미리 나와 있는 「전대협」의장 송갑석군(24ㆍ전남대총학생회장)이 나와 선언문을 통해 『「전대협」은 지난 87년 출범이후 백만학도의 정의와 애국적 신념을 담아왔던 단결과 투쟁의 심장부』라고 주장,『앞으로 민자당 분쇄및 노정권 퇴진투쟁과 반미통일운동,학원자주화투쟁을 벌여 나가겠다』고 밝혔다. 이에앞서 경찰의 검문검색을 피해 전남대에 집결한 전국 1백여개 대학생 8천여명은 강의실에서 밤을 지낸뒤 이날 상오9시부터 「남대협」소속 대학생 4천여명과 함께 스크럼을 짜고 교내 시위를 벌였다. 한편 「광주ㆍ전남민주연합」이 이날 하오2시 금남로일대에서 열기로 한 「5월항쟁계승과 민자당일당독재분쇄를 위한 1차국민대회」는 경찰의 원천봉쇄로 무산됐다. 또 「마 창노련」소속 근로자등 1천여명도 이날 하오9시20분쯤부터 조선대 실내체육관에서 「전국노동자대회전야제」를 가졌다.
  • 무의미한 파업과 시위(사설)

    전면파업과 격렬시위의 확대가 우려되고 있다. 답답한 일이다. 무엇보다 확대되어야 할 어떤 이유나 명분마저 찾을 수 없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현대자동차 파업만 하더라도 노조집행부 자신이 과격한 행동만의 장기화가 노사 어느 쪽에도 희생만 가져올 뿐 얻을 것이 없다는 데 의견을 같이 하면서도 사태는 더욱 커지기만 하고 있다. 높은 목청과 거친 행동의 관성에 붙들려 이제는 본질마저 잊고 있다고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전대협이 다시 준비하고 있다는 20일 광주에서의 대규모 시위계획도 마찬가지다. 서울에서 지난 5ㆍ9시위로 1차 시도해 보았지만 아무리 격렬함을 확대해 보아도 그 호응을 얻을 수 없음이 확인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조직을 해가고 있는 것을 보면 시위 그 자체를 하나의 업으로 간주하고 있다고밖에는 판단되지 않는다. 이것이 무엇보다 답답한 일이다. 우리는 물론 우리의 가장 바람직한 민주화 체제의 성립을 위해 이러한 현상을 한번은 앓고 지나가야 할 열병이라고 생각할 수는 있다. 또 이미 그랬기 때문에 우리는 견딜수 없을 만큼 혼란된 일상의 삶마저 양해해 왔다. 시위속에 타고 깨어진 사재의 손실마저 민주화를 위한 시민의 부담쯤으로 여겨왔다. 그러나 이러한 이해가 무조건 끊임없이 계속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최소한 무엇인가 가야할 방향이 분명하며 이 방향을 가는 과정에 있어서도 조그마한 것이나마 믿고 지켜가야 할 가치나 지표들이 형성되어야만 우리는 이에 심정적만이라도 동의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단지 협량의 개별적 이익들이거나 무의미한 질서의 파괴들일 뿐이다. 운동의 입장에서는 혹시 기존질서의 보다 강력한 대응을 유도하여 이로써 운동의 전기를 마련할 수 있다고 생각할지는 모른다. 하지만 이 역시 이슈가 분명하고 목표가 설득력을 가질 때에만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이 가능성마저 반복적으로 성립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민주화라는 국민적 가치의 설정은 이미 그 출발점이 마련되었고 이제는 누구도 변화시킬 수 없는 신념으로 되어 있다. 따라서 오늘에 국민적 동의를 얻을 수 있는 이슈란 오직 민주적 과정일 뿐이다. 얼마쯤 지루할지는 모르지만 민주적 절차가 지켜져야 하고 어느 누구의 지배도 아닌 모든 견해의 견제와 균형을 통한 합의의 결실만이 중요할 뿐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민주적 권위의 회복도 바라고 있다. 어느 체제만의 공권력이 아닌 한 국민적 공권력은 오히려 그 권위를 확고히 해야 마땅하고,일단 지키기로 한 질서의 위배일 때는 그 벌과에 있어서도 누구나 평등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민주적 사회라는 것이 실은 별것이 아니다. 하나의 주장이나 체계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집단과 조직체들이 평등한 관계속에서 상호견제와 경쟁을 하면서 균형을 만들어내는 다원화 사회를 말할 뿐이다. 바로 이점에서 우리는 이 시점에서의 전면파업과 격렬시위야말로 비민주적 과정의 확대에 불과하다고 본다. 그리고 또 이로써 국민적 삶의 환경을 불안정하게 하는 거대한 손실까지 주고 있다. 여기에는 자제라는 표현마저 부적절하다.이제는 전면적이며 격렬한 형식의 행동은 끝내야 한다. 이것이 실은 바른 전기의 마련이다.
  • 내한한 84년 미 부통령후보 페라로여사(인터뷰)

    ◎“적극적 정치참여로 여성지위 향상을”/환경ㆍ인권문제 등에 관심 돌려야 지난 84년 민주당 먼데일 대통령후보의 러닝메이트로 미국 최초의 여성 부통령후보가 돼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바 있는 미국의 여성 정치지도자 제럴딘 A 페라로여사(55)가 15일 내한했다. 페라로여사의 이번 한국방문은 평민당초청에 의한 것으로 16일 하오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여성의 정치참여와 선거제도를 주제로 강연을 갖고 한국 여성정치인들을 만나 여성의 정계진출확대방안에 대해 의견을 교환한 후 판문점을 둘러보고 18일 출국할 계획이다. 『지금 이 시대는 여성들이 한국과 미국으로 구분하거나 국한할 것이 아니라 지구촌의 여성은 하나라는 기본생각을 갖고 공동으로 처한 문제를 함께 연구하고 풀어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이를 위해서는 정계의 여성진출 확대와 함께 정계에서의 여성지위 향상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35년 뉴욕에서 태어난 페라로여사는 메리마운트맨해턴 야간대학에서 법학을 전공,변호사가 되고 하원의원에 당선(3선)된투철한 신념의 여성. 지금은 내일을 염려하는 미국인(ACT)을 통해 정계에서 활약중이다. 『미국은 노동력의 44%를 여성들이 맡고 있습니다. 이는 16세이상 여성의 54%,25∼44세 여성의 70%이며 1세미만의 아기를 둔 주부중 절반이 집밖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페라로여사는 여성들이 직업을 갖고 일을 하는 것은 반드시 경제적인 문제만이 아니고 자기성취라는 긍정적 요소가 더 중요하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여성들은 안타깝게도 같은 일을 하면서도 남성보다 낮은 보수에 보조적 역할만 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현재 미국여성들은 환경ㆍ군축ㆍ인권문제에 많은 관심을 갖고 걱정을 합니다. 그렇지만 이렇다할 움직임을 못보이고 있는데 여성들이 힘을 결집한다면 좋은 미래사회도 가능하다고 믿습니다』 미국에서는 1백21명의 여성이 주요도시의 시장으로 재직하고 있으며 이밖에도 많은 여성들이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정계진출을 희망한다고. 남편 존 자카로씨(부동산업)와의 사이에 1남2녀를 두고 행복한 가정을 위해 알뜰주부로서의 노력도 잊지 않는 페라로여사는 92년 상원의원에 출마,본격적인 정치활동을 다시해 볼 계획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 김영삼 민자대표 회견 일문일답

    ◎“「지자제 연내 실시」 당방침 변함없다”/“부동산 투기관련땐 정치인도 과감히 제거/국회ㆍ당직 등 모든 인사 계파별 안배 않을터” 민자당의 김영삼대표최고위원은 11일 취임후 첫 기자회견에서 계파를 초월한 당운영방안,개혁을 통한 난국극복,내각제 개헌문제 등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내각제 논의는 언제부터 시작할 것인가. 『권력구조문제는 40여년 우리 정치사에서 대단히 중요하고 미묘한 문제였던 점을 상기해 달라. 권력구조 변화는 무엇보다 국민의 공감대가 전제되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은 민자당이 총체적 난국해결을 위해 당력을 총집중해야 할 시기인 만큼 현 시점에서의 내각제 개헌논의는 옳지 않다』 ­김종필최고위원은 내각제 시사 강령채택은 내각제 논의 가운데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고 말했고 박태준최고위원도 내각제 개헌을 위해 진이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밝힌 바 있는데 내각제 개헌과 관련한 당내 논의를 허용치 않겠다는 뜻인가. 『정치는 국민과 더불어 가는 것이며 국민의 공감대가 있어야 모든 것을 할 수있다. 나 자신도 과거에 대통령중심제나 내각책임제등 어느 체제도 배제하지 않는다고 말한 적이 있다. 중요한 것은 여론이며 내각제 논의가 시기적으로 옳지 않다』 ­당내 계파간 갈등해소를 위한 구체적인 복안은. 『그동안은 3최고위원이 마치 어느 당의 대변자처럼 되어 있었다. 그러나 전당대회이후 나 자신부터가 3계파를 초월한 대표최고위원이므로 앞으로 국회직등 모든 인사에서 원칙과 능력ㆍ경력ㆍ서열 등을 고려해 결정할 것이다. 계파안배는 생각할 수 없다. 3개월여의 합당과정에서 국민들에게 걱정을 끼친 점을 이 자리서 사죄하고 용서를 구한다. 앞으로 경륜있는 김종필ㆍ박태준최고위원과 격의없이 당무를 상의하고 노태우대통령과도 그런 차원에서 단합된 모습을 보이겠다 』 ­반민자당 시위가 계속되고 있는데. 『정당은 신념이 같은 사람들이 모인 단체이며 정당법에도 명시돼 있다. 만약 지금 소수의견처럼 4당체제로 복귀했을 경우 우리나라가 어떻게 되겠는지 상상해보라. 지금 민자당 타도라든가 해체주장은 반지성적인 행동이며 용납할 수 없는 상식밖의 일이다. 정당을 만드는 것은 자유이며 심판은 국민이 하는 것이다. 92년과 93년에 선거를 통해 3당통합이 잘 됐느냐를 당당하게 심판받겠다』 ­92년 총선,93년 대통령선거를 통해 국민심판을 받겠다고 했는데 내각제 반대발언으로 봐도 되는가. 『현행 헌법을 놓고 당연히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이며 더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총체적 난국을 총체적 개혁으로 극복한다고 했는데 이말에는 법적ㆍ제도적 개혁도 포함되는가. 『개혁을 통해 안정을 이루고 경제난국 극복을 위해 당의 운명을 걸겠다. 정부도 적극 추진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체제수호도 필요하다. 부동산투기등의 문제에 고급 공무원뿐만 아니라 정치인이 가담돼 있으면 과감히 척결하는 등 정치적 개혁도 뒤따라야 한다』 ­아직도 야당체질을 못벗어났다는 지적이 있는데. 『30여년간 야당생활로 굳어진 체질을 하루아침에 바꾸기는 어렵다. 그러나 집권당 대표최고위원이 된 만큼 체질을 바꿀 필요가 있으면 바꾸겠다』 ­평민당의 김대중총재와는 어떻게 대화하겠는가.『평민당과 적극적으로 대화하겠으며 당3역들을 통한 대화도 적극 추진하겠다』 ­대권밀약설과 후계구도에 대해서는. 『나자신이 대권에 욕심이 있었다면 3당통합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도 같은 생각이며 국민의 이익을 위해 최선을 다할 뿐이다』 ­지자제 실시는 언제할 것인가. 『금년내 실시한다는 당방침에는 변함없다. 5월 임시국회에서 지자제 관련법안 통과를 위해 야당과 함께 노력하겠다』
  • 중증의 과소비사회/소비자단체들이 치유에 나서라(사설)

    우리의 과소비풍조를 어찌해야 할 것인가 개탄해 온지도 한참이지만 이제 이 증상은 개탄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닌 것같다. 이를 보다 구체적으로 확인하는 경제수치들을 보면서 과연 이제 우리는 중증의 단계에 있구나 하는 것을 실감한다. 그 수치의 하나는 경제기획원이 발표한 「89년도 도ㆍ산매업 및 음식ㆍ숙박업통계조사결과」에 들어 있다. 얼른 두드러지게 눈에 띄는 것만 보아도 지난 1년새 호텔 총매출액이 47ㆍ7%,백화점의 총매출액은 46.4% 증가했다. 이것을 금액으로 보면 호텔 매출증가액이 3천3백54억원이고 백화점 매출증가액이 6천4백2억원이다. 우리의 지난해 경제상황을 설명하는 어떤 경제수치보다 그 성장률은 파격적으로 높고,높을 뿐만 아니라 기형적인 폭증을 보이고 있다. 이 수치를 우리가 어떤 관점에서든 발전이라고 말할 수 없음에 누구든 동의할 것이다. 이를 방증해 주는 것이 또 하나의 수치,한은이 집계한 올해 1분기 경상수지의 적자계수이다. 지난 3개월간 외국과의 거래에서 발생한 경상수지의 적자는 10억9천만달러를 넘어서서이는 지난 83년 이래 7년만에 보이는 최대규모이다. 더욱 답답한 것은 이 속에 들어 있는 관광경비ㆍ해외송금ㆍ사치품 수입들의 적자항목이다. 호화사치품 수입은 이제 봇물처럼 터져 3천㏄ 넘는 승용차가 전년대비 7배가 되었다는 것 같은 수치는 별로 시각적 자극도 주지 않는다. 외화에서나 보던 호화 자가용 요트도 이미 들어와 있고 질적으로 어떤 보증도 없는 그림ㆍ도자기ㆍ골동품까지 단지 고가품이라는 레테르로 4천5백만 달러어치나 수입됐다. 그리고 이들은 다시 시가의 13배에 이르는 투기대상으로까지 변하고 있다. 오늘날 무역역조의 원인이 바로 과소비에 있다는 것을 이렇게 물증으로 확인하는 것처럼 답답하고 망연한 일은 없다. 그러나 좀더 자료들을 들춰보면 우리의 과소비 증거가 돈 많이 가진 자의 호화판 낭비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평균적인 국민들의 생활태도에도 있다는 것을 찾을 수 있다. 지난 3월 경북 선산군은 세무자료를 통해 군민의 1년간 과소비 실태를 조사했다. 군민의 84%가 연간 2회이상 외지를 여행해 27억원을 소비했고 술값으로 86억원,차값으로 24억원 등 1백37억원을 써서 이것만으로도 가구당 평균 79만원을 소비했다. 이는 동군의 89년 추곡수매가 2백61억원의 53%에 해당된다. 이것은 꼭 이 군의 증상일리가 없고 실은 우리 모든 국민의 오늘날 일반적 행태로 보아야만 할 것이다. 왜 우리는 이렇게 가고 있는가를 좀더 본격적으로 심각하게 생각해야만 할 것 같다. 우리의 과소비 풍조에는 그 나름대로 우리의 특수성이 있다고 보인다. 무엇보다 일찍이 미국의 사회학자 베블렌이 말했던 「위세의 낭비」가 과도하게 확대돼 있는 것 같다. 실제적이고 실질적인 면에서 분수있고 실속있는 생활을 하기 보다는 우선 남의 이목이나 자기체면을 위한 과시욕이 너무 크게 앞서 있는 것이 우리의 정신적 상황이다. 그러니 자연 나를 남에게 표현하는 길은 나날이 더 과시를 위한 낭비로 전개될 수 밖에 없고,이는 또 한단계 더 나아가 상대를 제압하려는 방법으로까지 쓰이고 있다고 말해도 별로 과언이 아닐 것이다. 여기에다 우리에겐 어떻게 사는 것이 보다 충실한 삶인가에 대한 교육적 문화환경적 접근마저 시도되어 있지를 않다. 교육은 한 개인이 물량적 가치에 의해서만 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물질적 빈곤속에서도 정신적ㆍ문화적 가치의 소유로써 더 긍지롭게 살 수 있다는 것을 우선적으로 가르쳐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에 상반되는 단순한 점수경쟁으로만 훈련을 시켜가고 있다. 금전이나 시간의 여유가 있을 때 이를 어떻게 국민이 문화적으로 사용하느냐에는 또 그 사회가 가진 문화시설과 문화프로그램들이 있어야만 이를 바르게 이끌 수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기초적 조건들이 지금 우리에겐 준비돼 있지 않다. 그러므로 실은 할 줄 알고 할 수 밖에 없는 것이 과소비 일 수 밖에 없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검소와 절약의 미덕이라는 것도 개개인이 그 사회속에서 교육에 의해 신념화가 되어야만 존재하는 것이다. 이 중증의 과소비 사회를 극복하기 위한 국가의 총체적 구상이 진실로 급히 마련되어야만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동안 상당한 역량을 구촉해온 소비자운동 단체들이 우선 앞서서 이 일에 나서는 것이 첩경이라고본다. 이미 사치풍조 추방을 새 운동목표로 설정한 단체들도 있음을 알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대부분의 운동체는 질의 검사,피해보상 및 불공정거래들을 중심으로 한 소비자보호운동 영역에 있다. 이러한 접근이 잘못됐다는 것은 물론 아니다. 단지 우리의 오늘날 소비행태는 소비자 자신의 건실한 소비양식의 틀도 다져져야 한다는 특수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이 역시 소비자 운동의 과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할 뿐이다. 실제로 소비자운동에 의해 치유되어야 할 부분도 상당히 큰 것이다.
  • 남아공의 교훈/장수근 국제부차장(오늘의 눈)

    지구상에서 가장 혹독한 인종차별정책(아파르트헤이트)을 고집,전 세계로부터 지탄을 받아온 남아공 정부가 마침내 빠른 시일안에 인종차별정책을 철폐하기로 야당과 합의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남아공의 인종차별은 그 유례를 찾을 수 없을만큼 가혹한 것으로 유명하다. 주거지역이 다른 것은 물론 심지어 해수욕장도 백인용ㆍ흑인용이 구분돼 있어 이를 어길 경우 가차없이 처벌을 받는다. 그래서 어느 핸가 일부 흑인 민권운동가들이 백인정부에 대한 저항의 표시로 백인전용 해변에 뛰어든게 뉴스로 세계에 타전된 일도 있다. 흑인의 참정권 실현을 목표로 한 개헌협상 조기개최에 합의하고 난뒤 3일 드 클레르크대통령은 『여러가지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보이지만 우리의 현안들이 협상을 통해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는 신념과 확신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지구의 한쪽 끝 남아공에서 지난 3백50년간 숱한 희생이 따랐던 흑백인간의 주종관계 청산합의가 협상을 통해 이뤄지고 있는 판에 지금 우리나라에선 한발짝 씩만 뒤로 물러서면 해결될 쟁점들을풀지 못하고 노사가 극한으로 맞선 대결상황이 도처에서 노정되고 있다. 한쪽은 만사를 법으로 해결하겠다 버티고 또 다른 한쪽은 요구조건을 들어 주지 않으면 모든걸 끝장 내겠다고 고집하고 있는 것이다. 서로 흉금을 털어 놓고 양보할 것과 주장할 것의 수급을 가리는 자리­바로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기를 한사코 거부하는 바람에 빚어진 갈등이자 불협화음인 셈이다. 우리가 현재 겪고 있는 혼란과 위기상황은 6ㆍ29선언이후 갑자기 확산된 민주화 요구와 계층간 불균형의 시정,분배정의 실현등의 욕구가 동시 다발적으로 분출되고 있는데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을 한꺼번에 해결할 재주는 이 세상 누구에게도 없는 것이다. 플라톤은 『자제는 최대의 승리』라고 했다. 차근차근 쉬운 것부터 하나씩 대화로 답을 얻어가는 지혜와 자제가 아쉬운 시점이다. 매사를 다중의 물리력으로 해결하려 들 경우 돌아오는 것은 파국밖에 없다는 교훈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또 하나,「나」 보다는 「우리 다함께」를 먼저 생각하는 건전한 사회의식의 회복에 모두의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사회는 나만이 아닌 남과의 만남이요 모임」이다. 남의 존재가치를 무시하는 것은 곧 사회와 자신의 연결고리를 끊는 것이다. 따라서 내가 있기 위해서는 남과 더불어 살아야만 한다. 지금은 「나」와 「너」를 떠나 「우리」가 함께 탄 공동의 배의 노를 힘모아 저어가야 할 때다. 다함께 침몰하지 않기 위해서….
  • “노사안정돼야 경제난 극복”/노대통령,군포공단ㆍ시경기동대 방문

    노태우대통령은 1일 『현재 우리가 당면한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노사의 안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기업인도 기업이 개인의 것이라는 생각을 버리고 근로자들과 힘을 합쳐 경제회복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대통령은 이날 상오 자동차 부품공장인 서진산업주식회사(경기도 군포시 금정동)를 방문,공장시설을 둘러보고 근로자들을 격려하는 자리에서 이같이 강조했다. 노대통령은 이에앞서 서울 경찰 제1기동대를 방문,『법과 질서는 특정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국민과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지적하고 『대원들은 민주주의를 지킨다는 확고한 신념을 갖고 봉사해달라』고 당부했다. 노대통령은 이어 이날 하오 청와대에서 법의날 수상자 등을 접견하는 자리에서 『우리의 현행 법체계는 국민의 총의를 모아 민주적 절차에 의해 만든 우리의 법이므로 법을 무시하거나 법질서를 파괴하는 행위는 어떤 이유에서라도 용납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 경제단체ㆍ투신사등과 증시회복 공동노력

    ◎증권사 사장단,안정기금 2조 조성 총력 25개 증권사사장단은 27일 하오 증권업협회에서 지난 25일 결의한 2조원 규모의 증시안정기금조성에 대한 투자자들의 불신을 해소하기 위해 각증권사가 창구지도등을 통해 총력을 기울이는 한편 전경련등 각종 경제단체및 투신사등 기관투자가들의 증시회복을 위한 공동참여를 적극 유도키로 했다. 이날 회의에서 사장단은 최근의 주가폭락사태가 무엇 보다도 정부및 증권업계에 대한 투자자들의 뿌리깊은 이같은 불신감에서 비롯됐다는데 인식을 같이하고 불신감을 해소하기 위해 ▲증권사 임직원들이 확고한 신념을 갖고 창구지도를 통해 투자자들의 인식전환을 유도하고 ▲안정기금 조성은 증권사가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차질 없이 이행해 나가기로 했다. 또 기금조성및 운영을 위해 협회내에 증권투자조합(가칭) 설립추진반을 구성,세부추진사항을 확정한후 5월7일 부터 조합사무국을 설치할 예정이다. 한편 전날 협회는 내달 19일까지 조성키로 한 기본출자금 5천억원에 대해 각 증권사별 분담금액을 확정지었다.
  • 네팔,민주화의 구심” 가네시 만 싱

    ◎비폭력 저항운동에 앞장…15년간 옥고/75세 노구로 야연합 결성,민주화결실 네팔의회당(NCP)의 지도자 가네시 만 싱은 네팔의 민주화대장정을 선도하고 있는 최고 반체제인사. 15년간 옥고를 치른 싱은 75세라는 고령과 병으로 쇠약한 몸이지만 히말라야 산록을 휘몰아친 민주화바람의 구심점이 되고 있다. 네팔의 호메이니옹이자 국민들로부터 「철인」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싱은 요즘 자신의 몸을 던져 네팔의회당과 7개 좌파공산세력을 연합,국왕을 헌법의 테두리 안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비렌드라의 절대왕정에 도전하고 있다. 고등학교 시절 대대로 총리자리를 세습해오던 라나족의 한 아들을 구타해 퇴학당한 일도 있긴하지만 싱은 비폭력 저항운동을 민주화투쟁의 기조로 하고 있다. 그는 인도에서 대학시절 인도의 독립운동을 체험하며 『악에 대해서 싸워 이길 수 있으며 평화적 저항을 통해 많은 것을 성취할 수 있다는 신념과 영감을 깨달았다』고 밝힌 바 있다. 싱은 1940년 방학을 이용,카트만두로 돌아와 라나족의 족벌통치체제에 저항하는 운동에 가담했으나 곧 체포돼 종신형을 선고 받았다. 그러나 그는 4년간의 감옥생활후 극적으로 탈출,인도로 건너가 네팔의 반체제운동 영웅 코이랄라가 이끄는 민주화운동에 가담했다. 코이랄라와 함께 47년 네팔의회당을 창설한 싱은 50년부터 59년까지 네팔의회당이 연정에 참여하자 한때 각료직을 맡기도 했다. 싱은 79년 정당정치가 중단되고 왕정이 실시되면서 지난 10년간 야인의 길을 걸아왔으나 네팔의 민주화운동이 점화되면서 노구를 무릅쓰고 그 선봉에 나서고 있다. 그는 한국기자들과의 기자회견에서 『한국이 이룩한 민주정치의 발전이 네팔의 다당제 민주주의 실현에 자극과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재야세력을 대표하는 싱은 지난 13일 비렌드라 네팔국왕과 단독회담을 갖고 과도정부수립 등의 많은 양보를 받아냈다. 그러나 살아있는 신으로 군림해온 비렌드라국왕이 진정한 다당제 허용,국왕의 정치권력 포기 등 획기적 개혁까지는 받아들이지 않을 것으로 전망돼 네팔의 민주화와 그의 투쟁 전도는 매우 험난할 것으로 보인다.
  • 일 야오한백화점의 성공비결(해외경제)

    ◎남이 등돌린 곳 집중공략 “빅히트”/지방에 체인점,중급품 중점취급/홍콩 국제본부선 중국시장 “노크”/채소가게서 1백여지점 갖춘 대산업으로 부상 일본의 기업들은 지나친 모험을 피한채 잘 닦여진 길을 쫓아 성공을 거두는게 보통이다. 이같은 일반적인 경향과는 달리 남들이 가지 않으려는 길을 개척해감으로써 성공적으로 기업을 키워온 사람이 있어 주목을 끌고있다. 화제의 인물은 야오한백화점그룹을 이끌고 있는 와다 가즈오씨. 그가 사업을 경영하는 방침은 한 마디로 말해 『다른 기업들이 갖지 못한 특징을 갖도록 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일본유통업계가 도쿄의 중심가로 몰려 드는 반면 야오한 체인소속 백화점들은 도쿄를 피해 현으로 눈을 돌렸다. 일본기업들이 해외로 진출 할때 유럽이나 미국등 부국을 대상지로 삼은데 반해 야오한은 홍콩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대만 브루나이 등에 초점을 맞췄다. 또 야오한은 눈에 띄는 장소에 개업하기 보다는 덜 화려하지만 임대료가 싸고 채소라도 팔 수 있는 정도의 「실용적인」장소를 택해 왔다.모험을 피하지 않는 와다씨의 기업경영방침은 지난해말 야오한의 국제본부를 일본에서 홍콩으로 옮기겠다고 발표한데서도 잘 드러난다. 오는 97년 중국에 귀속될 홍콩의 장래에 대해 두려움과 걱정을 느끼는 홍콩주민들이나 기업가들과는 달리 와다씨는 「기회」를 보고 있는 것이다. 그는 홍콩에 마련될 새 본부에서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잠재력을 가진 시장을 내다볼 것이라고 포부를 밝히고 있다. 물론 그의 경영방식에는 낮은 세금,싼 임대료를 고려하는 측면도 없지 않다. 그러나 그의 경영철학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그의 가족들이라 해야 옳을것 같다. 그의 어머니는 TV로 방영돼 일본인의 우상이 된 「오싱」의 실제 인물로 온갖 역경을 딛고 오직 근면과 노력만으로 성공을 거둔 사람이다. TV극속에서 그녀는 가난 때문에 7살 어린 나이로 쌀 한가마에 남의집 더부살이로 팔려간다. 갖은 고생끝에 일본 동북지방의 한촌에 채소가게를 열었고 그것이 자라나 야오한그룹의 모태가 됐다. 그녀의 노력과 성공은 허름한 곳에서라도 성공을 거둘 수 있다는 교훈을 남겨 주었던 것이다. 여기에다 와다씨의 『이제는 아시아의 시대』라는 신념도 한몫 거들고 있다. 특히 와다씨는 중국이 현재로서는 그의 백화점ㆍ슈퍼마켓을 이용할 만큼 잘 살지는 못하지만 멀지 않아 그날이 올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하고 있다. 그는 앞으로 수십년동안 중국해안지역을 따라 구ㆍ판매체인점을 개설할 계획이며 야오한그룹을 아시아 전역을 연결하는 가장 광범위한 유통시스템으로 발전시킬 포부를 밝히고 있다. 그의 포부는 야오한그룹이 보여준 과거의 눈부신 실적,그리고 아시아지역의 경제전망이 매우 밝다는 점에서 흥미를 끌기에 충분한 것같다. 채소가게에서 출발한 야오한그룹은 현재 일본내에서만 55개의 직영점포와 35개의 특약점을,그리고 해외에 22개의 지점을 두고 있다. 매출액도 83년 4억여달러에서 89년 12억달러로 껑충 뛰었다. 89년 이윤액이 1천8백50만달러로 전년도에 비해 32%나 증가했다. 그러나 바클레이증권회사의 유통담당분석가인 마이크 앨런은 와씨의 계획에 커다란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우선 야오한이 중급품을 취급해 온 까닭에 「중급」의 이미지를 벗기 어렵다는 것이다. 따라서 나중에 이윤이 큰 고급품을 취급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그는 지적한다. 둘째로 회사의 엄격한 근무방침을 어디서든 철저히 준수토록 요구하고 있어 해외에서는 노동문제를 야기시킬 것이라는 점. 그러나 앨런은 장기적으로 보면 와다씨의 포부는 매력적인 것이라고 덧붙였다. 와다씨는 지금도 거의 모든 아시아국가의 국민소득과 경제전망을 거의 정확하게 술술 외울 정도다. 문제가 있다고 여겨지는 곳에서 기회를 포착해온 독특한 경영방식이 과연 그의 말처럼 전아시아를 자신의 집으로 만들어 줄 것인지 야오한그룹의 미래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강석진기자〉
  • 유해환경과 「우리아이」/어머니가 나서면 못할 일이 없다(사설)

    유해환경의 심각성은 이미 도를 넘고 있다. 주거지 깊숙이 퇴폐업소가 침범해 들어와 있고 초중고교 주변에 유흥업소나 오락장이 어깨를 비비며 번창하고 있어도 속수무책이다. 학교앞 문방구점에서는 국민학교 저학년이 본드를 사러가도 『비닐봉투는 필요없니?』하고 묻는 주인이 예사롭다. 본드를 사 가는 청소년이 「비닐봉투」를 함께 사간다는 것은 본드를 거기다 짜넣고 흡입하기 위함을 뜻한다. 청소년의 교육을 조금이라도 생각해 보는 어른이라면 본드는 팔아도 비닐봉투와 함께는 팔지 못해야 한다. 이런 가시적 유해환경만이 아니다. 성장기청소년의 정신을 좀먹는 온갖 음란 매체들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저속하고 퇴폐적인 어른용 극화가 한데 섞인 만화가게,뒷방에 대형 스크린을 걸어놓고 음란비디오를 돌리는 심야 비디오가게를 겸업하는 만화가게도 얼마든지 있다. 외설내용으로 어른들도 보기에 역한 음란물이나 끔찍끔찍한 폭력으로 가득찬 영상들이 비디오로 스크린으로 널려 있다. 먹으면 그대로 독이 될 불량식품도 심각하기는 마찬가지다.이 유해환경의 추방을 위해 사회단체와 주부모임들이 활발하게 운동을 벌이고 있고 성과를 쌓아가고 있다는 소식(서울신문 7일자)은 일말의 희망을 느끼게 한다. 불량출판물이나 만화ㆍ장난감을 감시하는 모임도 있고 품질좋은 것을 판별하여 천거하는 단체도 있다. 어떤 일은 저항하고 자구를 위한 집단운동을 벌이고 고발도 한다.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고 있는 수입상품,부도덕한 백화점의 상행위,공해물질에 의한 환경파괴,식품에 남는 잔류 농약검사 등 본격적이고 전문적인 활동까지도 그들은 벌이고 있다. 대체로 20대에서 40대까지의 주부가 주동이 되어 활동을 벌이는 것이 이런 모임의 특징이라고 한다. 그들을 그럴 수 있게 하는 것은 「어머니의 힘」이라고 생각된다. 어머니들에게는 그럴 권리와 의무가 있다. 2세들을 잘 기르기 위해 환경정화를 당당히 요구해야 하고 주장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감시하고 추적하고 고발할 수 있어야 한다. 부릅뜬 눈으로 누가 더럽히는지,어떤 공직자가 직무를 다하지 않는지,어떤 우범자가 죄를 지으려 하는지,어떤 악덕상인이 아이들의 영혼을 병들게 하는지 지켜보고 찾아내야 한다. 현대의 주부인력은 대단히 유능하고 풍부하기도하다. 고학력의 어머니가 유휴상태에 있고 모성의 순수함과 진실됨이 성실한 성과를 기약해 주기도 한다. 그리고 대체로 여성은 정직하고 비겁할 줄을 모른다. 거기에 어머니의 헌신하는 성품까지 더하면 고급한 인력이 된다. 학교 주변 폭력이 아이들을 너무 괴롭히자 서울의 어느 학교에서는 사친방범대를 만든 적이 있었다. 공권력을 믿지 못해 이런 움직임까지 일어난다는 것은 서글픈 일이긴 하지만 사정에 따라서는 이런 것도 훌륭한 자구행위다. 팔짱끼고 앉아서 잘못 되어가는 세상을 보고만 있다면 내 아이도,내 아이의 아이들도 살기 힘든 사회가 될 것이다. 팔을 걷고 나서는 편이 성실한 시민이다. 미래에의 전망이 밝지 않다고 자조하기 쉬운 탄광촌에서도 부모들이 모여 자녀를 선도하고 함께 모여 대화하는 모임을 만들었더니 청소년탈선도 많이 막을 수 있었고 가정의 결손도 훨씬 방지할 수 있었다는 사례가 있다. 노력은절대로 우리를 배신하지 않는다. 다만 어머니들이 이렇게 환경정화에 기여하기 위해 나서려면 먼저 그들 자신이 확고하게 다져야 할 의지가 필요하다. 「내아이」를 위해서는 「우리아이」가 다함께 구원되어야 한다는 신념을 지녀야 한다. 무섭게 확산되는 종교인구에도 불구하고 우리사회가 사막처럼 황폐해가는 것은 가족이기주의에만 치열하게 몰두하는 오늘의 풍조때문이기도 하다. 각성한 「어머니의 힘」이 나서면 집안도 구하고 사회도 구한다. 그리고 당연히 나라도 구한다.
  • 양대보선 당선자 인터뷰

    ◎대구서갑 문희갑씨/“유권자의 뜻 국정에 반영”/서민 잘사는 풍토조성에 최선/경험부족ㆍ조직취약 힘들었다 『이번선거를 통해 드러난 유권자들의 뜻을 겸허하게 받들어 국정에 최대한 반영하도록 노력 하겠습니다』 대구서갑 보궐선거에서 승리한 민자당의 문희갑당선자는 4일하오 자신의 선거사무실에서 기자들과 만나 당선소감을 털어놨다. 『이번 선거는 정호용씨의 사퇴파동 등으로 지나치게 과열됨에 따라 유권자들이 입후보자의 공약이나 정치적신념 등에 대해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지 못했다』고 밝힌 문당선자는 『처음부터 선거전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은 했지만 별다른 사고 없이 무사히 마치게 돼 다행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문당선자는 당초 예상과는 달리 백승홍후보와 접전을 벌인끝에 어렵게 승리한 사실에 대해 『이번 선거는 정치적으로 지나치게 다양한 의미가 부여됐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특히 이번 보궐선거과정에서 후보를 사퇴한 정호용씨에 대해 『외유까지 나선 그분의 심정을 생각하면 지금도가슴이 아프다』면서 자신의 당선이 정씨에게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뛰어준 선거운동원들과 특히 정씨 지지자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이번선거를 치르면서 어려웠던 점은. 『처음 선거를 치러 경험부족으로 인한 어려움이 가장컸다. 특히 구민정당조직이 정후보측에 흡수돼 있어 조직을 복구하는데도 많은 곤란을 겪었다』 ­앞으로 정치활동 방향은. 『이번 선거운동을 통해 극빈층의 생활실태를 직접 목격하고 균형발전을 위한 개혁조치가 시급하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앞으로 의정활동에서 나의 전공인 경제정책분야를 적극적으로 활용,서민이 잘 살 수 있는 세상이 되도록 노력하곗다』 문당선자는 85년 12대총선때 당시 민정당의 전국구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했으나 그해 7월에 바로 경제기획원차관으로 복귀해 6공초기인 88년말까지 장수하면서 각종 경제정책의 교통정리에 남다른 솜씨를 발휘했다.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으로 자리를 옮긴 뒤에도 6공화국의 경제개혁정책을 뒤에서 밀고 때로는 앞에서 챙기는 등 경제정책에 대해 막강한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부인 정송자씨와의 사이에 두딸을 두고 있다.〈우득정기자〉 ◎진천ㆍ음성 허탁씨/“정치판도에 큰변화 확신”/골프장건설 저지에 온힘 쏟을터/민주당,야통합 구심점 역할 할것 『이번 보궐선거의 승리는 6공화국에 대한 중간평가인 동시에 3당통합에 대한 국민심판의 의미를 갖고 있다』 충북 진천ㆍ음성보궐선거에서 민자당의 민태구후보를 6천2백63표차로 따돌리고 승리한 허탁당선자(가칭 민주당)는 4일 새벽 당선이 확정되자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음성군청 개표장에서 당선소감을 밝혔다. ­당선소감은. 『당선시켜준 음성ㆍ진천유권자 여러분께 감사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지지해준 중앙당간부들과 어려운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준 지구당원 여러분께도 감사드린다』 ­이길 것을 예상했는지. 『처음에는 방대한 조직과 자금력을 갖고 있는 여당에 이기리라곤 생각 못했다. 그러나 유세가 시작돼 유권자의 여론을 감지한 지난달 28,29일쯤 승리를 확신했다』 ­앞으로 활동계획은. 『선거유세중 이지역에 골프장이 건설되는 것을 막겠다고 공약했는데 이를 관철 시키는 노력을 기울이겠다』 ­낙선한 민후보에게 하고 싶은말은. 『그동안 선거유세 과정을 지켜보니 민후보는 훌륭한 행정가로 보였다. 앞으로 지자제가 실시돼 도지사로 출마해 당선되면 다시 훌륭한 도백으로 일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이번 승리가 민주당(가칭)의 위상에 미칠 영향은. 『정치판도에 큰 변화를 초래할 것이다. 내가 들어가더라도 민주당의원은 8명으로 원내교섭 단체조차 구성할 수 없지만 이번 승리를 계기로 과거 민주ㆍ공화당에 몸 담았던 의원들 가운데 우리 당으로 올 분들이 많을 것으로 본다. 그렇게 되면 원내교섭단체 구성도 가능할 것이고 야당통합의 구심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허당선자는 야당후보로 세번이나 낙선한 끝에 4번째 도전에 성공한 집념파 정치인. 10대때 통일당 후보로 나서 첫 고배를 마신후 11대때는 민한당후보로 출마했다. 좌절을 겪은데 이어 88년 4.26총선에서는 무소속으로 나섰으나 24.6%의 득표율로 3위를 기록. 충북 중원군 출신인 허씨는 현재 음성군생극중학교 재단이사장과 대한염업조합이사장을 맡고 있다. 부인 이계영씨(58)와 2남4녀.〈구본영기자〉
  • 외언내언

    고르바초프 페레스토로이카의 배경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필요」와 「이익」이다. 팽배한 관료주의의 지배아래 창의력과 성취력을 잃은 그 상태로 둔다면 소련은 21세기를 향해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수 없을뿐더러 끝내는 2류 공업국으로 전락하고 말리라는 절대절명의 위기감의 소산이라 해도 좋다. ◆일반적으로 소련인은 정치는 「힘」이라는 신념을 갖고 있다. 국내정치도 국가관계도 최종적으로는 힘에 의해 결판난다는 신념이다. 이데올로기나 체제의 역할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소련인은 그런 것도 주먹 앞에서는 결국은 부차적인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러시아인은 힘이 없는 동지보다도 강력한 적을 내심으로는 훨씬 존경하는 쪽이다. 과거 쿠바 사건에서의 소련의 굴욕은 미국의 압도적인 군사력과 강한 결의 앞에 무릎을 꿇었던 사건이다. 그때까지는 케네디대통령을 연약한 풋나기 정도로 얕보고 있었던 소련인도 이사건 뒤에는 그를 아주 존경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쿠바의 굴욕은 소련의 군비확장의 큰 동기가 되었다. 그 소련이 지금 왜 군축에 앞장 서는가. 그들의 짐이 너무 무겁기 때문이다. ◆쿠바사건의 소련측 당사자는 흐루시초프였다. 따지고 보면 오늘의 동서화해나 군축추세 또는 페레스토로이카의 연원을 거슬러 찾자면 흐루시초프에 이를지 모른다. 그가 은퇴한 뒤 써낸 회고록에서는 6ㆍ25 한국전쟁의 배후에 소련이 있음을 명확히 했다. 『김일성이 모스크바를 두차례나 찾아와 스탈린에게 남침계획을 보고했고 미군의 개입이 없을 것이라는 다짐을 받은 스탈린이 마침내 동의했다』 ◆최근들어 6ㆍ25에 관해서는 「남침」이었다는 전통주의가 북침설 또는 남침유도설 따위 수정주의에 의해 도전받고 있다. 그러나 역사는 「실재의 과거」이다. 사실은 수정되지 않는다. 드디어 소련은 6ㆍ25기간중 7만명의 공군병력을 동원,북한을 지원했고 지상군을 투입시킬 계획을 세웠었다고 참전을 시인했다. 그것도 관영 모스크바 방송이다. 지금은 아주 가까워진 소련이다. 그러나 역사는 남고 현재는 흐르는 것이다.
  • 변호사 출신 루터교주… 시장경제 주창/마이치레는 누구

    기민당(CDU)의 로타르 데 마이치레 총재(50)는 종교적 신념이 확고한 인물로 기민당을 오랜 정치적 침체에서 벗어나게 한 장본인. 원래 바이올린 연주가였다가 변호사로 변신한 데 마이치레는 열렬한 루터교 교회신도로 현재 개신교회 회의의 부회장직을 맡고 있으며 오래전부터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기민당을 혁신해야 한다고 믿어왔었다. 그는 베를린장벽이 붕괴된지 8일만인 지난해 11월18일 한스 모드로브 총리에 의해 종교문제 담당 부총리에 임명됨으로써 처음으로 정부관리직을 경험하게 됐다. 그후 그는 지난 40여년간 공산당과의 연립으로 말미암아 오랫동안 그들의 그늘에 가려져 있던 기민당을 쇄신,시장경제와 독일통일을 주창하는 새로운 정당으로 변모시켰다. 그는 지난해 11월 변호사회 회장에 당선됐으며 기민당을 쇄신시킬 수 있는 중요한 인물로 지목돼 왔다. 지난해 11월 중순 게랄트 괴팅겐 총재 후임으로 등단한 데 마이치레는 기독교도들이 다당제하의 새로운 사회주의 체제에 참여해야 한다는 종전의 입장을 서독의 압력으로 변경하고동독 기민당의 자매정당인 서독 기민당과 제휴했다.
  • 외언내언

    50대인 J씨는 지금도 새 운동화를 보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설레는 듯한 느낌이 든다고 한다. 구두는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수제의 살롱구두나 외제상표의 것이라도 가슴이 두근거리는 듯한 설레임의 동반따위는 없다. 그러나 조깅이라도 하기 위해 새 운동화를 샀을 때는 끈을 꿰어보고 신어보고 신고서 저벅저벅 걸어도 본다. ◆이렇게 좋은 운동화가 이렇게도 쉽게 이렇게 흔하게 널려있다는 것이 J씨같은 세대에게는 문득 신기해지는 것이다. 국민학교에 입학하여 처음으로 「운동화」라는 걸 구경한 J씨는 그나마 60명 한반에 2∼3켤레 할당나온 것을 먼빛으로만 본 것이 전부였다. 제비를 뽑아 떨어졌으니까. ◆중고등학교를 거치며 한켤레의 운동화로 1년도 견뎌야 하고 걸핏하면 좀도둑이 들어 집어가는 통에 신발을 들고 들어가 방웃목에 벗어 놓아야 하는 시절도 겪다 보니까 어느 사이 「새 운동화」는 보석처럼 빛나는 귀한 물건이 되어 버렸다. J씨와 비슷한 성장기를 보낸 것이 우리의 50대 이상의 대부분 사람들이다. ◆신발만은 한국산이 세계적으로 「가장 우수한 품질」에 든다고 한다. 이렇게 된 데에는 운동화에 깃들인 우리들 기성세대의 한이 기여한 바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운동화라도 한번 원없이 신어봤으면 하는 원망이 에너지가 됐을 터이니까. ◆공진청이 검사를 해봤더니 재봉틀과 냉장고도 미제보다 한국산이 우수했다고 한다. 가난하고 의심많은 고난의 시대를 살아온 기성세대로서는 『설마?』하는 의심이 고개를 들지만 과학적인 검사 결과가 그렇게 나왔다는 것이다. 웨스팅하우스의 냉장고와 가전3사의 것을 견주어 보았더니 소비전력도 덜들고 성애제거기능도 더 우수했고 소음도 적었다고 한다. 재봉틀도 손색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궁상맞고 초라하던 시기를 거쳐 오늘의 풍요에 도달한 운동화를 생각하면 재봉틀이고 냉장고이고 안될 것은 없다. 의심하는 마음으로 외제를 넘볼게 아니라,신념을 가지고 우리 제품을 사랑해 볼 일이다.
  • 유엔가입 2∼3년내 실현/최외무 밝혀/연내 대중ㆍ소수교에 외교총력

    ◎북한개방 유도,새 관계 정립 모색 공관장 회의 90년도 재외공관장회의가 2일 상오 정부종합청사 19층 회의실에서 강영훈 국무총리와 최호중 외무ㆍ이규성 재무ㆍ이홍구 통일원 등 19개 관계부처장관,그리고 박동진 주미대사 등 94개 공관장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최장관은 이날 개회사를 통해 『정부는 금년중 중국ㆍ소련과의 관계개선을 우리 외교의 최우선 과제로 하는 북방외교를 계속 추진하겠다』고 말하고 『중소와의 국교수립은 반드시 이뤄져야 하며 기필코 달성된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외교역량을 총동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최장관은 또 『늦어도 앞으로 2∼3년내에 유엔가입을 실현하기 위해 면밀한 전략을 수립,실행토록 하겠다』고 밝히고 북한문제에 관해서도 『7ㆍ7선언의 정신에 따라 북한의 개방을 유도하고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을 실현하기 위한 여건조성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강영훈 총리는 이에 앞서 치사를 통해 『소련ㆍ중국 기타 동구권국가와의 외교관계수립과 더불어 북한과의 새로운 관계정립은 우리의국정수행에 있어 최우선 순위의 중요한 현안과제』라고 밝혔다.
  • 「불고지 친족」 처벌 감면 필수적/민자 보안법 개정작업 어떻게

    ◎예비음모죄 적용대상도 대폭 줄이기로/반국가단체의 개념ㆍ고무찬양죄엔 이견 국가보안법 개폐을 둘러싼 정치권과 재야ㆍ운동권의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민자당의 국가보안법 심사소위가 24일 국가보안법의 불고지죄ㆍ예비음모죄의 적용대상을 대폭 축소하기로 하는 등 전향적인 자세를 취함에 따라 국가보안법 논쟁은 새로운 국면을 맞고있다. 그러나 국가보안법중 최대의 독소조항으로 지적돼온 고무ㆍ찬양죄(7조)의 개정을 둘러싸고 민자당내 정파간의 의견이 엇갈리고 있는데다 평민당측은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고 사상상 국가안전을 위태롭게하는 집단이나 행위 등 간첩죄만 처벌하는 내용의 「민주질서보호법」으로의 대체입법을 주장하고 있어 이번 임시국회 회기내 국가보안법 개정안의 처리가 불투명한 상태. ○…이번 민자당의 개정안 중 가장 두드러진 대목은 불고지죄와 예비음모죄의 대상축소. 지난해 공안정국 이래 논란의 대상이 됐던 불고지죄는 폐지를 주장하는 민주계와 현체계 고수를 요구하는 민정ㆍ공화계가 접전을 벌인 끝에 반국가단체구성,목적수행,금품수수,잠입ㆍ탈출 등 4가지 중요 범죄에만 적용시키기로 결론. 이와함께 법집행과 인륜사이에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불고지죄의 단서조항을 「친족관계가 있는 때에는 그 형을 감경 혹은 면제할 수 있다」는 임의적인 규정을 「감경 혹은 면제해야 한다」 필요적 규정으로 개정함으로써 이같은 논란에 일단 종지부. 그러나 한때 검토의 대상이 됐던 형의 감경 혹은 면제의 대상으로 변호사ㆍ의사ㆍ기자 등 업무상 범죄사실을 인지하게 된 자를 포함시키는 문제는 한계설정을 확실히 할 수 없는 법기술상의 어려움 때문에 검찰의 기소편의주의나 법관의 자유재량권에 맡겨 사실상 동일한 효과를 거둔다는 선에서 매듭. 불고지와 함께 존속여부를 놓고 민주계와 민정ㆍ공화계 사이에 첨예하게 맞섰던 예비음모죄의 경우 「반국가단체 구성이나 잠입탈출 등 국가안보에 결정적인 위해를 끼칠 수 있는 범죄를 예비단계에서부터 검속하지 않을 경우 반국가사범에 대한 수사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현실론을 민주계가 수용하고 「편의제공ㆍ금품수수등 경미한 범죄에까지 예비음모죄를 적용하면 반국가사범을 양산시킬 수 있다」는 명분론을 민정ㆍ공화계가 수용함으로써 중요 범죄에만 적용시키기로 타협. ○…국가보안법상 중요 범죄로 지목된 목적수행죄(4조)도 당초 민정ㆍ민주ㆍ공화 3정파간에 현행법을 그대로 유지키로 했으나 「전향적으로 검토한다」는 정신에 따라 사형 또는 무기에 처하도록 규정된 2항을 분리,군사기밀등 국가안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소지가 있는 행위만 2항을 그대로 적용하고 보다 경미한 내용의 기밀을 탐지ㆍ누설했을 경우에는 처벌형량을 완화한 조항을 신설키로 합의했다. 이와함께 6항의 「허위사실을 날조ㆍ유포 또는 사실을 왜곡하여 전파한 때」를 민주계가 요구하는 「허위사실을 날조하거나 유포한 때」로 개정,대상을 축소시키기로 합의. 또 현행 결과범에 대해 동기여부에 상관없이 처벌토록 규정한 잠입ㆍ탈출ㆍ금품수수죄의 경우 남북교류확대라는 정치현실을 감안,「반국가단체를 이롭게 할 목적으로」라는 구절을 넣어 목적범으로 축소조정했다. 목적범이 아닌경우에는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에 처벌조항을 신설해 질서범으로 처벌을 완화했다. 특히 불법구금ㆍ수사의 논쟁을 불러 일으켰던 구속기간의 연장조항(19조)은 반국가단체 구성ㆍ목적수행 등 사실상 간첩죄에 해당되는 범죄에 대해서만 1ㆍ2차에 걸쳐 수사편의를 위해 구속기간을 연장할 수 있도록 법적구속 요건을 강화. ○…그러나 국가보안법 개정작업의 핵심사항이라고 할 수 있는 반국가단체의 개념규정이나 고무ㆍ찬양죄에 대해서는 민정ㆍ공화계와 민주계 사이에 첨예한 대립을 노출. 2조에 규정된 「국가를 변란할 것을 목적으로 하는 국내외의 결사,또는 집단」이라는 반국가단체 개념의 내용면에서는 3정파간에 이견이 없으나 민주계측에서는 「헌법의 기본질서인 자유민주주의 질서를 변란할 목적으로」로 표현을 바꾸고 「결사와 단체」를 보다 구체화할 것을 요구. 이에대해 민정ㆍ공화계는 2조에 대한 지금까지의 판례에 혼란을 야기시킬 소지가 있다며 반대. 또 고무ㆍ찬양죄의 경우 민주계는 남용의 소지가 있는 대표적인 조항일 뿐만 아니라 이 조항에 대한 폐지나 「폭력을 찬양 고무할 경우」로 한정하는 등 대폭 개정없이는 국가보안법을 개정했다는 명분이 없다는 입장을 견지. 그러나 민정ㆍ공화계는 학술적인 표현이나 자기신념의 단순표현은 적용대상에서 배제할 수 있으나 민주계의 주장을 받아들일 경우 극도의 이념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며 폐지나 대폭 개정에는 반대.
  • 김영삼씨의 정적들/송정숙 논설위원(서울칼럼)

    지난 12일 밤 관훈토론회에는 김영삼 민자당최고위원이 등장했다. 관훈토론사상 5번씩이나 토론에 초청된 연사는 김씨가 처음이다. 그런데도 이날 저녁의 그는 「등장」했다는 말이 합당했다. 이날의 그는 자신있는 「승자」였다. 성숙하고 여유있고 그리고 당당하게 토론상대를 선도하였고 청중을 사로잡았다. 그의 이런 모습은 우리에게 처음이다. 13일 청와대서 있었던 민자당최고위원 오찬자리에서는 김종필씨의 치통이 화제가 된 일이 있었다고 한다. 이자리서 불쑥 김영삼씨가 『나는 어른이 애들처럼 볼거리를 앓는다』고 말해 폭소가 터졌다는 기사가 있었다. ­애들처럼 볼거리를 앓는 정치지도자. 그것은 김영삼씨의 인상과 부합된다. 정확치 못한 발음과 잘선택되지 못한 어휘ㆍ용어로 실수를 탕탕 하면서도 소년같은 순수함과 열정 때문에 장내는 따근따근하게 달아오르고 사람들은 긴장을 푼채 유쾌한 상태로 들어간다. 그리고 마침내 그에게 「우군」이 되어주어야 할 것같은 친화력이 생기게하는 정치인이다. 그런 그였지만 12일 저녁의 관훈토론에서는 좀 달랐다. 대개의 질문자들이 그렇듯 불의의 습격으로 던지는 공을 그는 처음부터 늠름한 자세로 받아치웠다. 합당제의가 어느 때,어떤 경로로 누구에게서 왔는가를 물은 첫 질문에 쾌쾌히 대답을 한 것은 물론이고 질문속에 담긴 묵시적인 속질문에까지 미리 대답을 해치웠다. 『…토론에 부치지 않았다고 어떤분들은 말합니다만,솔직히 말해봅시다. 이런 가히 혁명적인 일을 만약에 토론에 부쳤더라면 합당은 실패했을 겝니다. 그래서 극비에 부치기로 노대통령과 둘이서 합의를 본 것입니다…』 이러 어조는 응어리를 쏘아 분쇄시키는 효력이 있었다. 잘 윤색된 현학적 논리보다 사람들은 이런 정직함에 약하다. 여유있는 미소로 「밀약설」을 일축하고 「고뇌로 지새운 나날」을 신념있게 강조했다. 이날 김영삼이라는 정치인을 통해 우리는 새로운 경험을 한가지 보탰다. 이땅의 정치인도 이제는 「정적의 관리」를 정착시키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정적이란 승리와 패배를 한몸에 지닌 표리이며 승리의 영광은 패배한 정적이 있음으로써 완성될 수 있다.정적이란 일방적으로 매도하고 흔적도 없이 지워버리는 것으로 승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날 보여준 김영삼씨의 정적관은 변전을 거듭해온 한국정치의 또다른 축도였다. 우선 김대중씨의 대목에서 그는 여러번 「축복」이라는 말을 썼다. 『…내가 야당으로 남고 김대중씨가 바꿔 되었다면 나는 그를 위해 축복을 보냈을 것이다』고도 했고 『…김대중씨가 정치를 해 나가는데 있어 행운이 있기를 축복한다』고도 했다. 「정통야당」경쟁으로 지새우던 시절의 애증이 칡덩굴처럼 얽힌 라이벌에게서 축복을 받기도 하고 주기도 하고 싶은 심경이 아마도 가장 간절한 감정인듯했다. 불과 몇달전까지도 『확실하게 종식시켜야 할 군정』의 일환이었던 노태우씨도 김영삼씨의 정적이었었다. 그를 동지로 맏아들인 「가히 혁명적인 변화」에 김영삼씨는 스스로 아주 개운한 뒷맛을 즐기는 것 같아 보였다. 『…노대통령은 알고 보니 매우 성실하고 솔직하고 능력있는 분이더라』는 말을 그는 거침없이 했고 노씨가 민정당의 간판을 내린 「영단」을 거듭거듭 칭송했다. 자신의 민주당 간판 내리기보다도 훨씬 강조된 의미를 두는 듯한 그 어투에는 계산속 없는 김영삼씨의 인품이 담겨 있었다. 12일의 관훈토론에서 그가 그의 옛모습을 그대로 기억나게 한 대목은 그의 또하나의 「정적」인 전두환씨 대목이었다. 화려한 승자가 되어 관대하고 사려깊은 정치지도자로 손색이 없던 그가 이 대목에서만은 느닷없이 옛날 목소리를 냈다. 『…아니 뭐,그 사람 연희동 사저로 온다느니 하는 얘기가 있습니다만 그게 말이나 됩니까. 본인이 국가에 헌납한다 해놓고 어딜 또 온다는 겁니까…』 소년스럽게 상기된 옛모습을 띤 그 모습은 아량있는 승자의 것과는 달랐다. 무장해제된 적장에게 발길질을 하는 것같은 추기가 느껴졌다. 「정통야당」이란 말에 집착했던 과거를 잘못으로 생각하고 세상에 영원히 야당하기 위한 정당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그. 『세상은 변하는데 죽어도 안변한다고 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성숙한 말을 하게된 그가 전씨 대목에 이르러 이렇게 상혈하는 것은 아마도 품은 한이 아직도 삭지 않았음을뜻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더라도 이 부분은 그의 승자적 금도에는 그늘을 만들었다. 옛날,한 아버지가 어린 아들을 가르치며 특히 큰 마음이기를 교육했다. 사나이다운 대범함과 큰 기량을 소망했기 때문이었다. 하루는 창밖에 눈이 펑펑 쏟아졌다. 어린 아들은 평소에 크게 놀기를 강조하던 아버지 교훈이 생각나서 눈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아,저 눈이 모두 솜이었으며 좋겠다…』쏟아지는 눈이 모두 솜이라니,그리하면 「큰 것」아닌가. 아버지는 아들의 그 말이 신통했다. 만족스러운 김에 아버지는 아들에게 다그쳤다. 『…그래. 그 솜을 무엇에 쓰려느냐?』하고. 그러자 어린 아들은 대답했다. 『…쥐구멍을 막을까 한다』 전두환씨에게라면 김영삼씨는 이제 노여움의 정력도 소모할 것이 없을 것이다. 그는 이제 김영삼씨와의 「정적시절」도 지나친 사람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김영삼씨가 큰 정치의 왕도를 걷도록 기대한다. 정적과의 운명적 만남에서도 정치의 왕도는 빛나기를 기대한다. 그리하여 그의 정치적 성과가 아름답게 완성되기를바란다. 정치인의 승리는 「좋은정치」를 전제로 이룩될 수 있다. 우리에게도 그것만이 희망을 주는 것이므로 포기할 수가 없는 것이다.
  • 민주자유당 창당 선언문

    우리는 오늘 민주ㆍ번영ㆍ통일의 새로운 민족사를 위한 중추적 일꾼이 될 것을 다짐하면서 민족민주세력을 총결집하여 민주자유당의 깃발을 올린다. 2천년대 여명앞에 한민족이 새세기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서는 새로운 사고,새로운 태세가 필요하다는 자각아래 이제 우리는 신념에 찬 발걸음을 내딛는다. 우리는 오랫동안 우리 정치사를 얼룩지웠던 갈등과 반목의 기억을 역사의 대하속에 흘려보내고 민주발전과 국민화합ㆍ국리민복과 민족통일의 과업을 실현시키는 것이 우리의 시급한 책무임을 확인한다. 세계질서가 재편성되고 있는 가운데 많은 나라들이 자기개혁의 소용돌이속에 놓여 있다. 이러한 현실은 우리의 정치가 창조적인 개혁으로 새로워질 것을 요구하고 있으므로 청신한 국민정당의 등장이야말로 이러한 요구에 부응하는 길임을 굳게 믿는다. 이러한 확신에서 우리는 나라와 겨레의 부름에 기꺼이 순응하여 온 나라의 민주세력을 하나로 결속시킨 민주자유당을 창당할 것을 엄숙히 선언한다. 위대한 새출발을 하는 우리 당원들은 국민을 안심시키고 희망을 주며 나라를 밝은 미래로 이끌 포부에 온 가슴이 벅차옴을 금할 수 없다. 우리당은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를 나라의 기틀로 삼고 조국의 민주적 통일을 주도하여 자주ㆍ자존의 바탕위에서 세계속에 우뚝설 선진복지국가를 이룩하려 한다. 우리는 대화와 타협을 통해 참다운 민주발전을 이룩하는 정치,지속적인 성장으로 국민복지를 뒷받침하는 경제,법과 질서가 존중되고 정의와 양심이 살아 숨쉬는 사회,그리고 자주적이고 창조적인 민족문화,이 모든 것을 구현하는 데 온갖 힘과 정열을 다 쏟고자 한다. 우리는 지역간ㆍ계층간ㆍ세대간의 갈등을 해소하고 국민대화합을 실현하여 모든 국민이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우리는 이제 「더 넓은 세계로,더 밝은 미래로」 출발하는 선상에 스스로 서 있음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국민적 역량을 한데 모으고 나라를 다시 세운다는 각오로 조국의 정치사에 신기원을 여는 오늘,우리의 눈은 빛나고 발길은 당당하다. 시대의 도도한 흐름이 우리와 함께하고 국민의 우렁찬 박수가우리를 성원해 주고 있다. 90년대의 서장을 열면서 영구히 민족과 함께할 믿음직한 국민정당을 우리손으로 출범시키게 된 것을 다시 없는 영광으로 가슴에 새긴다. 우리의 이러한 보람이 곧 나라의 영광,겨레의 영광이 될 것임을 확신하면서 우리는 이를 위해 새 시대의 주역이라는 자긍심으로 국민의 봉사자로서 정성을 기울일 것을 역사앞에 선언한다. ◎국민에게 드리는 메시지 우리는 오늘 새로운 민족사의 전개를 갈망하는 국민적 소망에 따라 민주세력을 총결집하여 민주자유당을 출범시켰습니다. 세계의 많은 나라가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에 맞추어 자기개혁의 몸부림을 치고 있는 이때 우리는 민주ㆍ번영ㆍ통일을 국민 모두에게 약속하고 그 실현 위하여 뜻을 모으고 일을 함께할 새로운 국민정당이 되고자 합니다. 2천년대의 여명을 눈앞에 두고 새로 태어난 우리당이 추구하는 모습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세계각국의 민주개혁 과정에서도 그 우월성이 입증된 자유민주주의 정치체제와 건전한 자유시장경제체제를 수호ㆍ발전시키는 민주정당이 되겠습니다. 둘째,현실에 안주하는 구태의연한 권위주의적 정당이 아니라 민주적으로 결정하고 항상 전향적으로 행동하는 개혁지향정당이 되겠습니다. 셋째,특정지역ㆍ특정계층ㆍ특정세대만을 대변하는 정당이 아니라 국민과 함께 호흡하고 국민속에 뿌리를 내리는 국민정당이 되겠습니다. 넷째,인기에 영합하여 공허한 약속을 남발하는 무책임한 정당이 아니라 국민에게 약속한 공약에 대해서는 반드시 책임을 지고 민의를 수렴하여 광범위한 정책을 개발하는 정책정당이 되겠습니다. 다섯째,민족의 동질성과 신뢰를 회복하기 위하여 남북간의 교류와 협력을 적극화하고 정치ㆍ군사문제 등의 협의를 통해 국민적 합의를 바탕으로 한 통일정책을 추진하여 자주ㆍ민주ㆍ평화적인 통일을 앞당기는 통일정당이 되겠습니다. 번영된 조국의 미래를 우리당 혼자만의 노력으로 이루기에는 넘어야 할 산이 너무나 많습니다. 국민 여러분의 지지와 성원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정치인에 대한 불신과 정치에 대한 무력감을 떨쳐버리고 새 정치시대를 열고자 하는 우리를 적극적으로 지원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90년대를 연다/새희망을 가꾸는 사람들:9

    ◎국토개발연구원 이정식 실장/“쾌적한 국토” 새 설계에 도전/“지역 균형개발,환경오염ㆍ훼손 방지 주력/통일된 「한반도 개발」 구상 기회 왔으면… ” 90년대 우리나라는 「모든지역이 골고루 풍요롭고 쾌적한 국토」로 가꾸는 것을 최대 목표로 삼고있다. 이 일에 온 몸과 마음을 다 바치고 있는 국토개발연구원의 국토개발연구실장 이정식박사(45)는 그래서 90년대들어 가장 바쁜 사람의 하나가 됐다. 국토개발연구원은 지난달말 74명의 연구진으로 국토개발계획단을 구성,제3차 국토종합개발계획을 수립하는데 온 힘을 다 하고 있다. 이 계획단의 단장은 부원장인 조정제박사(51)이고 이박사는 ▲개발목표 및 전략 ▲도시ㆍ농어촌의 정주체제 ▲산업입지 ▲교통 및 통신 ▲국민생활환경 ▲국토이용관리 ▲투자재원의 조달 등 7개 부문 연구진을 총괄하는 책임을 맡고 있다. 제3차 국토종합개발은 오는 92년부터 2001년까지 시행되나 그 계획은 이박사 등에 의해 올해안에 시안을 마련,관계부처와의 협의를 가진 뒤 내년 상반기에 공청회 등을 거쳐 확정된다. 따라서 이박사 등 연구진에겐 올해가 가장 바쁜 해일수밖에 없다. 『일자리 주거 교육 문화에 선택의 폭을 넓혀주고 국제화 개방화시대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며 환경오염을 줄여 쾌적한 국토로 만드는 것』이 이번 「3차 국토종합개발계획」의 요체라는 것이 이박사의 설명이다. 이박사는 『전국의 대도시ㆍ중소도시 개발 및 지역균형발전,농어촌과의 유기적인 통합,고속도로ㆍ철도ㆍ항만 등 교통망과 통신망의 배치,신공업단지의 건설,댐ㆍ하천정비ㆍ간척사업ㆍ농림수산자원의 이용은 물론 주택ㆍ상하수도 등 생활환경문제에 이르기까지 국토개발과 관련된 방대한 부문을 구체적으로 다루게 되지만 「균형」과 「인간화」의 정신을 충분히 살려 삶의 질을 보다 높이는데 기여하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돌이켜보면 지난 72년부터 81년까지의 첫 국토개발계획(1972∼1981년)과 82년부터 91년까지의 2차계획은 정부의 수출주도 정책에 따라 수도권을 비롯한 부산 대구 등 몇개 거점지역만 육성시켜 지역간 불균형과 인구밀집현상 등 부작용을 낳았을뿐 아니라경제성만을 앞세워 국토를 훼손하고 환경오염을 심화시키는 등 적지않은 시행착오를 겪었다는게 일반적인 지적이다. 그러나 이박사는 이에대해 『1,2차 계획이 수립될 당시의 원안자체는 그대로 집행만됐다면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것이었습니다만 정치ㆍ경제ㆍ사회적인 여건변화에 따라 그때그때 뜯어 고쳐지는 바람에 일관성을 잃었고 부작용까지 일으켰다』고 아쉬워하면서 이번에는 그런 시행착오가 없기를 바랐다. 이박사가 국토개발계획연구에 처음 참가한 것은 2차 계획수립이 마무리단계에 들어서던 지난81년. 같은해 이박사는 미국 하와이대에서 지리학박사학위를 받고 국내대학으로부터 교수초빙을 받았으나 이를 마다하고 『국토개발계획을 내손으로 직접 수립해보겠다』는 신념으로 국토개발연구원에 들어갔다. 『국토개발은 자손만대에 물려준다는 생각으로 「백년대계」의 관점에서 이뤄져야 하며 그것은 한번 잘못되면 원상회복이 불가능한 매우 중요한 사안』이라며 이박사는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정권이 바뀌더라도 국토개발계획만큼은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금수강산이라 불릴만큼 아름다운 우리 국토를 효율적으로 개발하되 더욱 아름답게 보존하는 것과 통일이 돼 한반도 전체의 국토개발계획을 세우는 것』이 이박사의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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