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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한 김정일 호칭 위대한 수령 사용

    【도쿄 연합】 북한 평양방송은 19일 김정일에 대해 처음으로 「위대한 수령」이라는 호칭을 사용했다고 일본언론들이 보도했다. NHK등 일본언론들은 평양방송이 이날 논평에서 『위대한 김정일 장군은 만민의 염원을 품고 탄생,우리 인민들에게 필승의 신념과 미래에 대한 희망을 안겨준 절세의 위인이고 인민의 위대한 수령』이라고 강조했다고 전했다.
  • 변호사·검사 개별적 판사방문 금지/대법 「사법제도 개혁안」주요내용

    ◎생보자·국가 유공자 청구 즉시 국선변호인/경매수수료 평균 28%인하… 법전 폐쇄 TV 대법원이 19일 「법관윤리강령」과 함께 발표한 「사법제도 개혁안」은 지난 4월 세계화추진위원회와 함께 마련한 사법개혁 방안을 실현성에 바탕을 두고 구체화시킨 것으로 앞으로 법조의 운영에 커다란 변화를 부를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그 주요 내용을 간추려본다. ▲전관예우근절=이른바 「전관예우」의 관행에 대한 시비와 의혹을 불식하기 위해 대법원예규로 「특정형사사건의 재배당에 관한 특별관리제도」를 만들어 7월1일부터 시행한다.이 특별관리제도의 대상은 1·2심의 형사 및 감호사건·구속적부심·보석청구사건 등이다.이러한 사건들은 재판부와 변호사의 친소관계에 따라 정실이 개입될 소지가 크기 때문이다.그러나 법률심인 대법원의 상고심사건과 민사사건은 대상에서 제외했다. 특별관리를 받는 변호사는 재판부와 같은 법원에서 법관으로 근무하다가 퇴직한 변호사다.대상 법원도 퇴직 때의 최종근무 법원을 원칙으로 하되 전보된지 1년 안에 퇴직했을때는 그 직전에 근무한 법원도 해당된다.특별관리기간은 퇴직 1년이내이며 전보되기 직전의 법원은 전보된 때로부터 1년으로 정했다. 각 재판부는 이같은 사건을 배당받거나 배당사건에 해당 변호사가 선임됐을 때는 특별재판부에 재배당을 요구해야 한다. ▲변호사·검사 판사면담 금지=변호사나 검사가 사건과 관련해 개별적으로 판사실을 방문,사건을 설명함으로써 이뤄지는 재판에 대한 불신을 원칙적으로 막기 위한 조치다. 93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변호사 및 검사의 법관면담절차에 관한 지침」이 사실상 사문화 된데 따른 보완책이다.다만 기일의 원활한 진행 및 화해의 성사 등에 따른 절차적인 문제를 협의하거나 기타 특별한 사정이 있을 때는 엄격한 면담절차를 거쳐 예외적으로 면담을 허용한다.이 때도 면담을 원하는 일시로부터 24시간 전에 그 사유를 밝힌 면담신청서를 제출,법관의 허가를 받도록 했다. ▲법조 일원화 실현=지금 1천2백54명인 판사를 2000년말까지 1천5백명,2005년에는 1천8백50명 수준으로 지금보다 50%가량 늘린다.이를 위해해마다 3월과 9월 단행되는 법관정기인사에 앞서 1월과 7월 두차례에 걸쳐 변호사들로부터 판사임용 신청을 받으며 선발인원은 퇴직법관수와 법원별 증원요인등을 종합적으로 고려,적임자를 뽑는다.재조경력을 가진 변호사와 연수원졸업때 성적미달로 변호사를 택한 사람이 법관임용을 희망할 때는 고법판사급 이하의 서열에서 문호를 개방한다. ▲법률복지 확충=국선변호를 대폭 확대하기 위해 대법원예규를 개정,재판부의 국선변호인 선정대상 피고인을 ▲한달 평균수입 1백만원미만 ▲6급이하 공직자 ▲생활보호 대상자 ▲국가유공자와 그 가족 ▲구속 피고인 가운데 경제능력 부족으로 변호인 선임이 어려운 사람등으로 정했다. 민사소송의 고액화에 따른 인지대 부담을 줄이기 위해 올 하반기부터 소송가액의 0.5%인 인지세를 0.5∼0.3%의 3∼4단계로 구분,신축적으로 운용하기로 했다. ▲경매관련 제도 개선=경매수수료를 최고 42%,평균 28% 내리고 집달관의 정원을 33명 늘리면서 그 자격요건도 강화했다.이와 함께 입찰법정에 폐쇄회로 텔레비전(CC­TV)을설치,경매브로커들의 관여를 방지한다. ◎“강령 어기면 징계대상”/최종영 법원행정처장 기자회견/전국 법관의견 수렴… 대법관 회의서 의결 『법관윤리강령의 제정·선포는 지금 진행되고 있는 사법개혁작업의 마무리를 눈앞에 둔 사법부로서 할 수 있는 마지막 자구노력입니다.아무리 좋은 제도가 있다고 하더라도 재판부및 재판결과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헛일이기 때문입니다』 19일 법관윤리강령과 사법제도개혁안을 발표한 최종영 법원행정처장은 우리 사법사상 처음으로 만들어진 법관윤리강령은 법관 스스로 국민에게 봉사하는 자세를 가다듬고 재판에 임하는 자세를 새롭게 해 신뢰받는 사법부와 법관상을 구현하기 위해 제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단한 의미를 갖고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윤리강령을 어겼을 때는 어떻게 되는지. ▲윤리강령은 법관들이 반드시 지켜야할 윤리기준이므로 징계처분의 대상이다.그러나 강령은 선언적·윤리적 기준으로 처벌규정이 따로 없기 때문에 강령위배자체로 징계할 수는 없으므로 법관징계법에 따라 처벌을 하게 된다. ­윤리강령의 제정과정은. ▲윤리강령은 미국의 「법관행위전범」과 법조윤리에 관련된 국내 논문을 참고로 초안을 만들었다.사법사상 최초의 윤리강령이라는 점을 중시,그동안 여러차례에 걸쳐 법원행정처 실·국장회의를 열었으며 전국 법관들의 의견도 충실하게 수렴했다.특히 강령의 제정과 시행이 갖는 의미에 무게를 싣기 위해 13명의 대법관전원이 참석하는 대법관회의의 의결을 거쳐 대법원규칙으로 정했다. ­품위유지 등 10가지에 이르는 항목을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진통이나 법관들의 이의제기가 있었을 법한데. ▲의견수렴과정에서 일부 판사들의 소수의견이 개진된 것은 사실이다.그러나 대다수의 법관들은 이같은 윤리강령을 제정하는데 긍정적이었다.특별히 진통을 겪은 항목은 없었다. ◎법관 윤리강령 전문 제1조(목적)이 강령은 신뢰받는 재판을 통하여 국민의 정당한 권리행사를 보장하고 기본적 인권을 보호하며 정의를 실현하기 위하여 법관이 준수하여야 할 윤리기준을 제시하는데 목적이 있다. 제2조(법치주의의 확립)법관은 헌법을 수호하고 법과 질서를 지키는 책무를 다함으로써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확고히 하고 법치주의의 원칙을 확립한다. 제3조(사법권독립의 수호)법관은 정치권력·여론 그 밖의 모든 외부의 영향으로부터 사법권의 독립을 지키고 자신의 개인적인 사상·가치관·종교등으로부터 오는 편견을 가지지 아니한다. 제4조(청렴성 및 공정성의 유지)법관은 청렴성과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한 강한 신념과 용기를 가진다. 제5조(품위유지)법관은 명예를 존중하고 품위를 유지하며 부적절한 언행을 삼간다. 제6조(직무의 충실한 수행)법관은 맡은 바 직무를 근면하고 성실하게 수행한다. 제7조(직무능력의 향상)법관은 변화하는 사회현상에 맞추어 필요한 지식을 익혀 터득함으로써 직무능력의 향상을 위하여 노력한다. 제8조(재판의 신속·적정한 수행)법관은 재판을 신속하고 능률적으로 진행하며 신중하고 충분한 심리를 통하여 재판의 적정성이 보장되도록 한다. 제9조(재판의 공정성에 대한 신뢰를 해치는 면담의금지)법관은 재판업무와 관련하여 법령이 허용하는 절차 밖에서 당사자 또는 그 소송대리인이나 변호인 등과 면담하지 아니한다. 제10조(소송관계인에 대한 태도)법관은 소송당사자·검사·변호사 기타 소송관계인을 친절하고 정중하게 대한다. ◇부칙 이 규칙은 95년 7월 1일부터 시행한다.
  • 로프(영화탄생 100년/감동의 명화)

    ◎“초인사상 비판한 가장 히치콕적 작품”/하나의 공간서 연속적 촬영기법 도입한 걸작 히치콕 감독의 영화 53편가운데 일반적으로 가장 뛰어나다고 인정받는 작품은 단연 「현기증」이다.물론 나도 그렇게 생각할 뿐 아니라 개인적으로 이 세상 영화중 으뜸으로 치고 있을 정도다.말하자면 만장일치인 셈인데 영화의 신으로 추앙받는 히치콕에게도 과소평가받는 영화가 있다면 좀 어이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바로 「로프」가 그렇다.역사상 전무후무한 실험에 관해서만 언급할 뿐 누구도 이것이 위대하다고 하지는 않는다.하지만 「로프」야말로 가장 히치콕적인 영화,내가 보기엔 걸작중의 걸작이다. 전설적인 형식실험이란 이런 것이다.보통 영화는 평균 700∼800개의 쇼트로 이루어져 있는데 「로프」는 단 하나로 찍혔다는 점,단일한 공간에서 극중 시간과 상영시간이 일치되면서 벌어지는 이 이야기는 한번도 필름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는 방식으로 전개된다.실제로 이렇게 촬영하는 일은 우선 카메라에 장전되는 필름의 양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불가능한데 히치콕은 교활하다고 볼 수밖에 없는 재치로 이 제한을 극복해낸다.즉 필름이 다 떨어질 때쯤 되면 인물의 등짝이나 가구의 옆면으로 카메라를 가까이 들이대면서 화면을 시커멓게 가리게 한 다음 필름 교환을 하고 바로 거기서부터 새로 시작하는 것이다.이렇게 해서 사실은 열개의 쇼트이지만 화면에서는 하나로 보이는 기적이 이루어진다. 바로 이런 트릭의 교묘함에 정작 작품의 사상이 가려져 안타깝다는 말이다.히치콕이 여기서 시도했던건 니체를 필두로 한 초인사상에 대한 비판이었다.지적으로 우월한 소수의 인간에게는 열등하고 타락한 자를 살해할 특권이 주어진다는 논리를 추종한 두 게이가 실제로 일을 벌이고 나서 자기들에게 그 사상을 전수한 선생을 초대해 파티를 벌인다는 내용은 전범재판이 한창이었던 48년 상황에서 심장한 의미를 지니지 않을 수 없었다.누가 초인이고 범인이란 말인가.그런 기준은 누가 정하는가.선생은 자기가 뿌린 씨앗이 낳은 결과를 보면서 절규한다.이 질식해 버릴 것만 같은 아파트 공간속에서 인물들은 자기네신념과 행위의 로프에 묶인 나머지 끔직한 폐소공포증에 시달린다.시체를 눕혀놓은 고리짝을 뷔페용 식탁으로 사용한다는 지독한 조크는 식욕과 성욕,권력욕을 잇는 로프로 작용하면서 영화를 시종 음울한 가운데 씁쓸한 유머가 가득한 분위기로 몰고 간다.히치콕이 온 정성을 다해 마련한 이 만찬을 뉘라서 거부하겠는가.닭고기 접시아래 누운 존재만 잠시 잊을 수 있다면….박찬욱(영화감독)
  • 사라진 여 프리미엄(6·27 선거풍토 점검:5)

    ◎「공무원 연고지 출장→여지원」은 옛말/전직관료 다수 야후보 출마… 되레 「역풍」우려/중앙당 지원자금 절반이상 끊겨 조달 애로/「부재자 투표­선거시기 선택」의 이점도 없어져 부산시장선거에 출마한 문정수 전의원이 최근 펴낸 수상집에는 자신이 대학을 졸업한 직후를 회상한 대목이 있다. 당시 노동청 공무원이던 문 전의원은 총선이 다가오자 김영삼 대통령이 국회의원에 출마한 부산으로 내려가 6개월 동안 선거운동을 했다.선거가 끝난 며칠뒤 그는 노동청에서 날아온 전보를 한통 받았다.서울로 출두하라는 것이었다.그는 공무원 신분으로 야당의 선거운동을 한 것이 마음에 걸려 겁을 먹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막상 사무실에 올라가보니 직속상사는 『선거가 끝났는데 왜 아직도 출근을 하지않았느냐』고 출근을 권유하는 말 뿐이었다.선거 때만 되면 공무원들이 직장을 팽개치고 연고지에 출장을 내려가 있는 것을 당연시해 신경도 쓰지않는 분위기였다는 것이다. ○야후보지원 걱정 각종 선거에 관권이 개입하는 적나라한 예를 보여주는 이일화는 물론 1960년대 이야기다.문 전의원은 공무원 신분으로 전전긍긍하며 야당의 선거운동을 했지만 연고지 출장을 내려간 거의 1백%의 다른 공무원들은 여당의 선거운동원이었음은 당연한 일이다. 흔히 「여당 프리미엄」으로 치부되는 공무원의 선거개입은 최근까지 심심치않게 구설수에 오르내린 것이 사실이었다.그러나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서울시 구청장 출신으로 야당공천을 받아 출마한 후보가 적지않다.따라서 구청공무원들이 이들 야당후보를 돕는 「역관권개입」을 오히려 여당쪽에서 걱정해야 할 판이다. 서울에 지역구를 두고 있는 민자당의 한 지역구 의원이 들려준 경험담은 과거 「여당 프리미엄」이란 어떤 것이었나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13대에 처음 공천을 받은 그는 있는 돈을 다 털어넣고 집까지 저당잡혀 선거운동을 했지만 개표결과는 낙선이었다.그뒤에도 지구당 조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돈이 들어갔다.억대에 이르는 빚도 졌다. 그러나 14대 총선에 다시 공천을 받고 당선 가능성이 있다는 평가가 내려지자 상황은 달라졌다.우선 중앙당의 지원이 전과 달랐다.여기에 여기저기서 들어오는 촌성이 쏠쏠했다.그는 먼저 집을 담보로 한 은행융자와 빚을 갚았다.그리고도 남은 선거자금을 가지고 선거를 치러 너끈히 당선됐다.그러나 그는 이번 지방선거를 앞두고 다시 고민에 빠졌다.씀씀이는 전과 다름없는데 중앙당도,과거 도움을 주었던 사람들도 아는 체를 안한다는 것이다. 행정력 동원과 풍부한 자금력 말고도 여당 프리미엄은 더 있었다.야당 조차 거론하기를 껄끄러워하던 군 부재자 투표 문제였다.군 부재자투표는 「60만 대군」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선거 때 마다 당락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요인임에 틀림없었다. ○당략 주요 변수로 과거 3공 시절,부대에 따라서는 90% 이상의 엄청난 여당 지지율을 보인 군부재자투표는 불과 몇년전까지만 해도 의심섞인 눈총을 받아야 했다. 군관계자들은 이를 두고 『국방의 의무를 다하다보니 투철한 국가관이 확립된 까닭』이라고 구차하게 설명하곤 했다.평균적인 여당 지지율보다 군 부재자 투표의 여당 지지율이 높은 탓이었다.그결과 이를 얼버무리기 위해 부재자 투표함을 일반 투표함과 섞어 개표하는 「전통」이 세워지기도 했다. 그러나 92년 대통령 선거 때 부터 상황은 달라졌다.군 부재자들이 영내가 아닌 영외에서 투표를 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상명하복의 위계질서가 확실한 영내에서 마음만 먹으면 투표에 지휘관의 입김이 쐬어질 수 있는 여지가 원천봉쇄된 셈이다. 여당의 「좋은 시절」이 지나갔음을 확실하게 증명한 것은 지난해 치러진 「8·2 보궐선거」였다.대구 수성갑과 경북 경주,강원 영월·평창등 세곳에서 치러진 보궐선거에서 민자당은 대구와 경주를 잃고 강원도에서만 1석을 건졌다.「돈은 묶고 입은 푸는」 개혁선거법 아래 치러진 첫번째 선거였다.집권당의 프리미엄이 많이 없어졌기 때문이었다. 이렇게되자 「선거시기의 선택」이라는 여당이 가진 또 하나의 프리미엄도 사라진 것으로 나타났다.야당은 전통적으로 너무 춥거나 너무 더운 계절을 피해 선거일자를 잡으려 애쓴다.유권자들이 선거에 흥미를 잃는 시기를 피하려는 것이다.여당의 탄탄한 조직과이를 움직이는 자금에 대항하는 유일한 방법은 유권자들의 참여 뿐이라는 판단에서다. 사실 「8·2 보선」이 치러진 날,여당은 승리를 자신했었다.투표율이 지난 총선 때 보다 평균 20%나 낮게 나타난 것을 청신호로 받아들였다.투표율이 낮은 것은 선거에 관심이 적다는 증거이고 그렇다면 여당에 유리하다고 오판했던 것이다. 민자당은 당시 『중앙당은 10원 한장 지원하지 않겠다』고 공언했다.그러자 「프리미엄 선거」에 익숙해진 일부당원들은 『「실탄」을 지급하지 않고 전쟁을 치르라니 말이 되느냐』고 아우성을 쳤다.무보수 선거운동지원을 요청하자 『나는 조직을 관리하는 사람이지 자원봉사하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거절하는 사람도 있었다.「휘발유론」과 「공중전화론」도 나왔다.「여당의 조직원은 부은 기름만큼만 간다」거나 「넣은 동전 액수 만큼만 유권자를 설득한다」는 뜻이라고 했다.여당은 조직이 당원들의 정치적 신념과 자금력의 조화로 유지되던 시대는 이 때로 끝났다는 판정을 내렸다. 민자당의 한 당직자는 당시를 회상하며 『후보가 당선과 낙선의 갈림길에 서 있었다면,당은 계속 집권하느냐 아니면 공명선거에 만족하느냐의 갈림길에 서 있었다』고 말했다.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서는 「여권 프리미엄」을 다시 동원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무엇보다 끌어들일 돈이 없었고 공명선거의 실현이라는 시대의 대세를 거스를 수도 없었다는 것이다. 민자당은 지금 「여당 프리미엄」은 사라졌지만 「여당 프리미엄에 대한 기대」는 아직도 남아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듯 하다.그래서 내년 총선과 후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초대규모인 이번 선거를 치르는 데 대해 내심 다행스러워하는 측면도 엿보인다.즉 이번 선거를 통해 체질변화에 총력을 기울인 결과가 곧 총선과 대선 결과를 가름한다는 것이 민자당의 판단인 것 같다.
  • 경선 후유증(6·27선거 풍토 점검:4)

    ◎「탈락」후보 잇단 집단탈당 추태/흑색선전·금품수수 사례 오히려 늘어나/대의원보다 중앙당·지구당위장 입김 커 민주주의의 기본원칙은 민의의 수렴이고 이는 곧 선거라는 형식을 통해 이룩된다.정당의 민주성이라는 것도 결국 공정한 내부경쟁을 통해 각급 선거후보를 선출하는 과정이 보장될 때 실현된다.이런 점에서 이번 지방선거에 임하는 우리 정당의 당내 민주화는 몇점을 줄수 있을까. 이제 걸음마 단계라는 점을 감안할 때 여야 모두 경선을 통한 후보선출을 시도했다는 점은 평가받을 만하다.그러나 중앙당의 개입이 없는 진정한 의미의 후보경선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던데다 경선이 이뤄졌다고 해도 여전히 극심한 혼탁상을 보여 정당발전을 위한 숙제로 남게 됐다. ○정치발전의 숙제 민자당은 이번 지방선거를 맞아 서울과 경기·제주등 3개 광역단체장후보와 19개 기초단체장 후보를 경선형식을 빌려 선출했다.전체 후보의 10%에 채 못미치는 수치다.나머지 지역은 대부분 각 시도지부와 지구당의 추천을 받아 중앙당이 임명한 케이스다.민주당역시 경선원칙에도 불구하고 대의원대회를 열어 경선으로 후보를 가린 곳은 전체 15개 시도지부와 2백30개 지구당 가운데 10% 정도에 불과하다.다만 나머지 지역은 15∼99명으로 구성된 후보선정위의 투표를 통해 후보를 선출한 만큼 간접경선의 형식은 갖췄다고 할 수 있다. 경선을 통해 후보를 선출했다고 하더라도 사실상 중앙당이나 지구당위원장의 입김이 작용한 곳이 대부분이다.특히 대의원들의 투표를 통해 후보를 가리는 민주당의 경우 투표자격이 있는 각 지구당 대의원수가 15∼20명에 불과한데다 이들마저 지구당위원장이 임명한 인사들이어서 진정한 공개경쟁으로는 보기 어렵다.민자당 역시 대규모 선거인단을 구성해 경선을 실시했지만 이 선거인단의 70%가 지구당위원장이 구성하는 지구당운영위에서 선출된 인사들이어서 결국 당지도부의 의사가 그대로 반영된 곳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이런 가운데서도 일부 지역에서나마 지도부의 뜻이 대의원들에 의해 정면으로 거부되는 「사건」이 일어나 정치발전의 가능성을 엿보게 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민주당의 전남지사후보 경선이 이의 대표적인 사례로 이곳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갖고 있던 동교동계의 지원을 등에 업은 중앙대 김성훈 교수가 허경만 의원에게 일격을 당한 것이다.이는 김교수가 아닌 동교동계의 패배이며 지도부에 대한 대의원들의 승리라는 게 정치권의 지적이다.이를 두고 서울대의 김광웅 교수(정치발전학)는 『지방자치시대의 문턱에서 우리 정치가 거둔 정치발전의 중요한 성과』라고 평가하고 있다. 후보경선과정에서 나타난 부패·혼탁상도 극복해야 할 과제로 남았다.지방선거와 관련해 지난해 1월이후 이달초까지 중앙선관위에 접수된 각종 불법선거 고발건수는 모두 5백45건에 이른다.이 가운데 후보선출을 앞두고 금품및 향응제공 혐의로 고발된 건수는 1백92건으로 35%를 차지하고 있다.그러나 이같은 수치는 겉으로 드러난 것에 불과하다.이보다 훨씬 많은 불법·타락사례가 저질러진 게 현실이다. ○고발1객92건 민주당의 경우 전북 전주,전남 담양·장성,전북 고창,경기 고양,광주 남구·서구,전남 영광·함평,전북 군산,전남광양,서울 서대문·성동등 전국 2백30개 지구당 가운데 90여곳에서 후보선출과정에서의 시비로 이의신청이 제기됐다.규모나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대부분 경기도지사후보경선에서의 돈봉투사건및 폭력사태와 비슷한 유형의 마찰들이 빚어졌다.민자당 역시 공식적인 이의신청지역은 전체 2백37개 지구당 가운데 5%미만에 불과하지만 경기도 여주와 강원도 고성등 많은 지역에서 탈당사태가 속출한 점에 비추어 적지않은 잡음이 일었던 게 사실이다.이미 민자당은 2명의 후보가 금품수수혐의로 구속된 상태다. 흑색선전도 난무했다.민주당 전남지사후보경선에서 패배한 김성훈 교수는 『부동산투기로 20억원을 축재했다는 등 온갖 매터도가 난무했다』며 단 10일간의 「추악한」 정치체험에 고개를 저었다.민자당 김윤환 조직위원장의 방에는 한때 하루 4∼5건의 투서가 날아들었다.간통·강간·축첩등 상대후보의 사생활에 대한 허위 폭로가 주를 이뤘다.경북의 한 지역금융기관 대표는 출마의사를 밝혔다가 부도설이 나돌아 진짜 부도를 맞을 뻔했다.이처럼 흑색선전이 난무한 데 대해 서울대의 오연천 교수는 『후보들의 과거행적을 공개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한편 경선에서 탈락한 데 대한 불만으로 집단탈당하는 사례도 많았다.민자당 부산진갑지구당 위원장과 금정지구당 부위원장등은 공천에서 탈락하자 곧바로 탈당,민주당 후보로 나서 대표적인 「철새정치인」의 모습을 보여주었다.민주당에 입당한 여권인사 가운데 상당수가 이처럼 정치적 소신이 아닌 공천탈락의 불만으로 당을 옮긴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민주당에서도 경기 군포시장후보 선출과정에서 당원 5백여명이 집단탈당한 것을 비롯해 10여개 지구당에서 집단탈당사태가 빚어졌다.국민대의 윤영오 교수(비교정치학)는 이에 대해 『정치신념 부재와 유권자들의 도덕적 둔감증 등 정당정치가 제도화하지 못한데 따른 것』이라고 진단하고 『철새정치인이 더이상 정치권에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유권자들이 투표를 통해 심판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각당이 실시한 후보경선이 이처럼 많은 문제점을 드러냈지만 정치학자들은 대부분 이를 「필요악」으로 규정하면서 점진적인 개선을 통해 경선문화를 정착시키는 것이 정치 선진화의 첩경이라고 주장하고 있다.김광웅 교수는 『경선 실시여부는 전적으로 정당이 결정할 문제』라고 전제하면서도 『그러나 현실에서 알 수 있듯이 후보경선보다는 후보임명과정에서 더 많은 부정과 비리가 발생하고 있는 만큼 경선을 확대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그는 이어 『선거문화는 하루아침에,그것도 지방선거에 국한해 개선될 수는 없는 것』이라고 말하고 『대통령후보선출 역시 공정한 경선이 보장되는 풍토를 만드는 각 정당의 노력이 중요하다』고 밝혔다.또 서울대 행정대학원의 김신복 교수(행정학)도 『이번 지방선거를 계기로 정당내 경선이 앞으로 민주화추세에 발맞춰 확대돼 나갈 것』이라고 전망하고 『경선문화의 빠른 정착을 위해 각 정당은 내년 국회의원선거에서도 지구당 경선을 통해 후보를 공천하는 방안을 적극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와타나베 망언은 민족모독이다(사설)

    오늘은 현충일이다.나라를 위해 목숨바친 영령들께 머리 깊이 숙여 절하는 날이다.우리가 오늘 절하고 뵈올 분들 중에는 6·25전쟁에서 꽃다운 나이로 산화한 유무명의 국군 용사도 있고 일제식민지배하에 있던 조국의 독립을 위해 온갖 신고를 겪은 독립지사 열사들도 계시다.특히 나라 잃은 설움속에 만리타향을 헤매며 적신을 탄알삼아 침략국의 심장에 타격을 가하려고 생명을 초개같이 버렸던 분들이 묻혀 계시다.광복한지 50년에 이르고도 분단의 운명 때문에 미처 못모신 분들의 유해를 송구해하며 우리는 오늘을 맞고 있다. ○현충일 아침에 듣는 일 망언 바로 그 현충일에 우리는 다시 한번 일본의 해괴한 망언과 접한다.침략의 야심으로 왕비시해의 만행까지 서슴지않고,옥새찍기를 거부한 국왕을 겁주기 위해 온갖 실질적이고 상징적인 물리력을 다 동원하여 강압으로 성사시킨 이른바 「한일합방조약」이란 것을 『원만히 체결된 조약』일 뿐이라고 망령되게 우기는 사람이 하필 일본의 외교행정을 대표하던 전임 외무장관이다. 그것은 우발적이고 일과적인 말이 아니다.악의적이고 계획된 민족모독의 망언이다.망언 레이스의 선수가 「와타나베」로 이어졌을 뿐 51년에 「요시다 시게루」를 시작으로 53년에 「구보다」가,64년에는 「오노」가,88년에는 「오쿠노」가 이어 뛰고 오늘 「와타나베」가 또하나의 계주선수로 등장한 망언의 집요함에 우리는 넌더리가 난다. ○일과 아닌 계획적 망언계주 그 집요함이 증명하는 것은 이 나라가 지닌 근원적인 부도덕성이다.와타나베의 교언이 가증스런 것은 『공식문서 어디에도』일본이 한국을 식민지배 했다는 단어가 씌어있지 않다고 한 대목이다.개인이 볼모상태에서 인정한 문서도 억압이 풀리고 자유로운 상태가 되면 바로 잡는다.국가간의 조약들에서 강압이 이뤄진 것은 역사가 바로 잡는다.그것이 국가간의 양식이고 도의다.일본은 그것을 하지 않고 기회 있을 때마다 그것을 뒤집기 위한 망언선수를 내세운다. 망언이 있을 때마다 확인되는 것은 앞으로도 그것이 고쳐질 징조가 안보인다는 것이다.총리로부터 주요장관에 이어지는 거물들의 이어달리기가 전외무로까지 이른 망언계주는 우리에게 분노보다 참담한 실망을 안겨준다.그러나 한국은 일본의 양심을 비치는 거울이다.그것이 일본의 운명이기도 하다. ○도덕적 미성숙의 나라 일본 비록 경제적으로는 거인의 체격을 지녔지만 세계를 주도하는 선진국 역할이 일본에 맡겨질 수 없는 것은 일본이 도덕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나라이기 때문이라는 것이 국제사회의 지적이다.우리는 일본이 그런 나라로 머물기를 원치 않는다.두나라의 운명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도 일본이 도덕적으로 거듭나 우리곁에 있기를 바란다.그러나 여전히 일본은 선의를 저버린다. 나라사이의 역사도 순환의 원리를 겪는다는 것이 우리의 신념이다.문명사의 중심이 동북아에 있을 때 일본은 한반도로부터 은혜를 입었다.그들이 문명의 주도권을 바꿔쥔 서양을 받아들였을 때 한민족은 그들의 흙묻은 발아래 짓밟혔지만 앞으로 다가 오는 태평양 문화권의 시대에는 한국민족이 뼈대 곧은 중심국으로 설 것이다.그 기운은 일본의 생존과 발전을 위해서도 절실하다는 것을 우리는 확신한다. ○망언·취소의 놀음도 끝내야 국교정상화 30년을 맞으며 『올바른 역사인식의 바탕으로 21세기를 향한 미래지향적 관계를 정립』하자는 일본에 대한 우리의 제의가 우리만을 위한 것이 아님을 영리한 그들도 당연히 알고 있다.그런데 여전히 이런 망언을 뱉어놓는 것은 세계사람들에게 그들의 순화되지 못하는 악의의 본성을 들키는 일이라고 할수 있다. 수치로운 일이다.일본의 생각 깊은 사람들이 나서서 이 소멸될줄 모르는 불순한 인자의 소탕에 힘쓰기를 당부한다.그리고 이제 망언과 취소의 놀음도 여기서 끝내주기 바란다.
  • 일 후쿠오카/개폐식 돔구장(걸작건축감상:17)

    ◎하이테크로 이룬 전천후 경기장/“하늘가린 노천야구장” 환상의 공간실현/야구의 기능·조명시설 과학적 분석,설계/5만관중 11분만에 탈출… 방재계획도 완벽 일본은 산업 전분야에서 막강한 국제경쟁력을 가지고 있다.「상품성」에 관한한 해가 지지않는 나라다.선진제국이 일찍이 자국생산을 포기한 지우개나 연필에서부터 패트리어트 미사일의 핵심부품까지 일본인의 치밀함과 화려한 포장술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이 없다. ○「빅에그」에 이어 두번재 건설분야에서도 일본은 예외없이 세계 최고수준의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이미 자체 기술로 완공한 탄환열차가 30여년간 기적과 같은 안전성을 보이고 있는 것도 기존의 토목기술로는 상상못할 시공 정확도를 구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후쿠오카돔은 1988년 도쿄의 빅에그라는 고라쿠엔 돔이 완공된 이래 또다시 그들의 기술을 과시한 하이테크 공간의 전형이다.로마의 콜로세움이나 판테온에서 보이는 군중들의 운집공간이며 석조돔의 꿈은 파란 하늘빛과 전천후 관람의 상반된 요소를 하나의 공간에 수용하는 것이었다.전천후 경기장은 그 지붕 때문에 하늘을 볼 수 없고,개방형 스타디움은 비내리는 날의 불안감을 지워주지 못한다.지금도 운동경기장의 운영자는 온갖 국지기상정보를 제공 받으면서 그들의 일정실패로 인한 충격을 최소화 하고 있다.그러나 내리는 비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하나,푸른 하늘을 포기하는 길 밖에 더 있겠는가. 문제해결의 방법,그 메커니즘은 누구나 알 수 있다.카메라의 조리개처럼 지붕을 열고 닫게 만들면 된다.그러나 그 일이 「하면된다」는 신념이나 착상으로 될 수 있는 일이 아니다.아마추어적인 관점에서 보면,거대한 구조물의 조립이나 설치에 건설 노하우가 있는 것으로 보기 쉽다.그러나 그것은 매우 안이한 판단이다.건축물을 구조물로 보고,구조적 해결이 관건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매우 원시적인 발상이다.건축물의 기술은 그 공간의 질을 확보하기 위한 지식의 깊이와 구현능력으로 판단해야 한다.그렇지 않아도 부실시공 콤플렉스에 젖어있는 우리는 어느 틈엔가 건축물과 구조물을 하나로 인식하는 타성에 빠져 있고,그러한 타성은 우리의 건축수준을 저질화시키는 것은 물론 이른바 엔지니어링 기술의 선진화를 가로 막는 걸림돌이 되고 있다. ○태양 고도변화도 감안 후쿠오카돔의 계획은 우선 야구장으로서의 기본 기능 분석에서 출발한다.일본 프로야구 페넌트 레이스는 4월부터 10월에 걸쳐 열린다.그 게임시간은 하오2시부터 일몰후 종료시간 까지다.이 시간대에 외야수가 태양을 바라보게 해서는 안된다.미국의 경우는 타자중심의 배치지만 일본은 그 반대이기 때문이다.방위결정을 위해서,지름 2백20m의 원형 구장은 입체적으로 구상되어 우선 태양의 고도변화를 중심으로 1차 시뮬레이션을 하게 되었다.방위각의 결정과 지붕그림자의 도달지점을 기본으로 다이아몬드를 그려넣고 관객석의 시야를 고려한 공간설계가 이루어졌다.이어서 빛의 설계 개념이 확립되었다. 낮에 태양은 돔 외부에서 빛을 쏟아내리지만 밤이 되면 내부의 빛이 공간을 채운다.빛의 반사방향이 모두 반대방향으로 되기 때문에 눈부심을 막기위한 세심한 배려가 요구되었다.수많은 틈새 조명과 덕트 등의 부품위치가 조명계획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지붕의 높이는 야구공의 도달고도를 추정하여 설계되었다.이미 도쿄 빅에그 설계때 실증한 높이가 채용되었으나 최고도 도달지점만 원형돔의 중심부로 이동시켜 공간의 형태를 경제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배려하였다.투수의 마운드 위치가 결정됨에 따라 또다른 고려사항이 대두되었다.마운드는 주변보다 높게 북돋워 주어야 하기 때문에 야구 이외의 용도로 실내 구장을 사용하는 경우 높이 조정을 위한 번잡함이 발생한다.그때 그때 리어카로 흙을 실어 나른다면 초현대식 구장의 주변기술과는 레벨이 맞지 않는 모양새가 된다.갓쓰고 자전거타는 꼴이 된다고나 할까.궁리 끝에 결정한 것이 엘리베이터식의 마운드.용도변경때 마운드가 지하로 침강하는 구조다. ○화재상황 시뮬레이션 물리적인 형상,규모가 윤곽을 드러내면서 이 거대한 개폐형돔의 설계핵심은 인간중심의 문제로 이행되었다.그 최대 이슈는 방재(방재)계획이다.5만2천명의 수용시설인 실내돔에 불이 나면 어떻게 될 것인가.이미 1986년 영국의 야외 축구장에서도 화재가 발생하여 다수의 인명피해를 발생시킨 사례가 있다.재해시때 문제를 검토하기 위해서,모든 경우에 대한 시나리오가 면밀히 검토되었다.전시회장으로 사용할 때나 음악회로 사용하는 경우등 야구 이외의 용도 변경때 객석은 어떻게 분포될 것인가.불은 어디서 날 것인가.결국 안전을 위한 궁극적 개념은 재해를 조기에 감지하여 관객을 대피시키는 것이며,그 보조적인 수단은 온갖 재해 진압장비를 동원하는 것이다. 가장 위협적인 재해는 불이다.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연기가 발생되어 돔의 천장에서부터 연기층이 쌓여 내려온다.불을 목격하고 서둘러서 대피하는 관객들로 출구는 초만원을 이를 것이고 결국 유독가스의 피해를 막을 수 없다.돔이 열려 있는 경우에는 맹렬한 연소확대가 우려되고 닫혀 있는 경우에는 밀폐공간의 가스흡입가능성이 매우 크다.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전문가들이 총동원되어 화재상황을 시뮬레이션 하였다.불이 번지는 속도,연기층의 하강속도등 모든 계산 변수가 채용되어 피난소요시간의 적정성이평가되었다.지금 후쿠오카돔의 5만2천여 관객은 불과 11분만에 전원 안전지역으로 대피할 수 있는 완벽한 환경을 보장받고 있다. 기타 후쿠오카돔에 결집된 음향해석기술이나 공기조화기술은 가히 기술의 절정이라 할만 하다.이러한 공학적인 설계는 물론 기계적인 인상을 주는 분위기를 보다 친화력 있게 만들기 위한 실내외 조경,색채계획,주차장이나 객석의 유도표시도 주목할만 하다. 기술발전의 타산지석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부산,서울등지에 돔형구장을 건설하기 위한 계획이 추진중이다.국내에 개폐식돔형 구장을 갖게 된다는 자체가 우리의 높아가는 경제수준과 건축기술을 암시한다는 생각에 매우 뿌듯함을 느낀다.그러나 한편에서 간절히 바라고 싶은 것이 있다.이번 만큼은 상품성을 높이기 위한 선전용으로서가 아니라,말 그대로 인간을 고려한 인간 중심의 계획방법을 체득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삼았으면 하는 것이다.그 구조물의 위용에 집착하지 말고,그 건물을 사랑하고 활용하는 다수의 인명을 책임질 수 있는 설계가 되도록 내실을 기하자는것이다.
  • 「동북아 신국제질서와 미래안보」 세미나/경남대 극동문제연 주최

    25일부터 이틀간 경남대 개교 50주년 행사로 열린 「동북아의 신국제질서와 미래안보」를 주제로 한 국제학술회의는 냉전시대의 희생양이었던 한반도의 미래와 제네바 협상 이후 동북아시아를 둘러싼 신국제질서의 앞날을 집중 조명했다.경남대 부설 극동문제연구소가 서울 스위스그랜드호텔에서 개최한 이번 회의에서는 구소련 붕괴전부터 미·소 양국에서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문제의 권위자였던 로버트 스칼라피노교수(UC버클리)와 알렉산더 야코블레프 러시아 국영방송위원회 위원장이 주제발표에 나섰다.다음은 주제발표 요지. ◎세계적·지역적 패권국 없어/하나의 국제질서 기대 어렵다/로버트 스칼라피노/미 UC버클리대교수 세계는 지금 전대미문의 혁명을 겪고 있다.이는 과학·기술의 발달과 이로 인한 삶의 방식,공동체의식,가치관등에서 급격한 변화를 수반한다.나아가 물질주의가 모든 사회의 주도적 특징이 되고 있다. 사회주의와 시장경제간의 갈등은 시장경제의 승리로 끝났다.지금은 또한 신념의 위기,특히 정치에 대한 신뢰의 위기를 보여주고있다.그렇다고 해서 국가의 역할이 퇴색하지는 않는다.국가는 거시경제정책과 산업정책과 같은 새로운 형태의 중상주의를 추진하고 있다. 지금은 또한 신념의 위기,특히 정치에 대한 신뢰의 위기를 보여주고 있다.그 결과 인종·종교·지역주의 또는 지방주의 등과 같은 기초집단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즉 공동체주의가 새로운 형태로 제기되고 있다. 요컨대 지금의 세계는 경제적 상호의존,전지구적 통신,이동의 가능성으로 인한 통합의 추세와 동시에 개인 및 집단의 소외현상이 공존하고 있다. 동북아의 경우는 경제적 측면에서 불균등 상황과 많은 문제점을 내재하고 있지만 전반적으로 낙관적이다.비록 국가계획,거시경제 통제,역내 상호의존등이 공존할 것이지만 주도적인 경제발전전략은 시장화전략이다. 특히 대만∼홍콩∼광동권,한국∼산동권,두만강지역권,동해권,황해권등으로 역내에서 진행되고 있는 「자연적 경제권」에 유의해야 한다. 정치적 차원에서 볼때 동북아시아는 우선 비교적 동질성을 갖고 있다는 긍정적 측면을 지적할 수 있다.인종·종교로 인한 갈등의 소지가 적고 급속한 경제성장은 불안정 요인을 감소시켰으며 유연성을 가진 시민사회가 등장하고 있다.중국이나 북한도 권위주의적 다원주의로 발전할 것이고 한국과 대만도 민주화에서 상당한 진전을 보였다.그러나 여전히 정치제도가 약하고 사법의 독립성이 결여됐으며 개인 통치의 경향이 남아있다. 하나의 새로운 세계적 질서를 당장 기대하기 힘들다.이런 질서를 추진할 만한 세계적 혹은 지역적 패권국도 없을 뿐 아니라 국제적 차원에서의 세력균형도 상당히 유동적이다. ◎새 대전 회피할 시스템 필요/미·일·러·중이 힘의 균형역을/알렉산더 야코블레프/러시아 국영방송위원장 동북아지역의 안보와 국제관계적 안정성을 보장할 만한 정치기구나 메커니즘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매우 우려할 만한 일이다. 문제는 동북아에서 새로운 적대상황과 제3차 세계대전을 회피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왜냐하면 제3차 세계대전이 발발한다면 그 시작이 바로 이 지역부터 시작된다고 믿기 때문이다.과거가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양극체제였다면 현재의 세계는 단극체제이다.단극체제는 건설적이거나 혹은 파괴적인 혼란으로 귀결되는 다극체제로 이행될 가능성이 크다. 국제법과 질서를 유지하는 문제는 매우 예민한 문제이다.이를 위해서는 국가간 상호이해와 국제적 협조뿐만 아니라 국제적인 제재시스템이 필요하다.이와 관련해 뉘른베르크재판과 같은 국제분쟁 해결을 위한 사법기구의 성립 필요성을 제안한다. 남북통일을 가로막는 외적장벽은 존재하지도 않고,또한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즉 통일문제는 남북당사자의 의지와 행동에 달려있다.지금의 조건에서 근본적으로 새로운 문제를 야기할 수 있는 것은 남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할 가능성이다. 단기적 관점에서 한반도안보에 대한 도전은 내전의 재연이라는 특수한 요인에 의해 좌우될 것이다.남북간 갈등은 냉전 그 자체의 요인에 의해 촉발되지 않는한 가열되지 않을 것이다.지금은 냉전에 따른 외부적 요인들이 사라지고 남북한이 실질적으로 그들 자신만의 복잡한 관계에 직면해 있다. 장기적 관점에서 이지역 안보와 관련,중국 러시아 미국 일본 모두가 일종의 현상유지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고 보여진다.물론 이들 모두가 현존하는 균형에 만족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그것을 변화시킨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대안이 될 것이다. 이런 상황을 「지역적 평화유지체제」라고 명명하고자 한다.상호 배타성에 근거해 동북아지역에서 국제적 균형을 유지하는 수단으로 승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특히 「지역적 평화유지체제」를 국제공동체로서의 동북아시아의 정치진보를 위한 체제로 전환시킬 필요성이 있다.
  • 김진현 서울시립대 총장 취임사

    ◎“인류는 제3물결의 문명사적 변혁 직면/인구·공해 등 도시화문제 해결에 힘모아야” 언론인 출신으로 처음 종합대총장에 취임한 김진현 서울시립대총장이 23일 취임사를 통해 우리나라는 이제 「제3의 물결」을 타고 비상·도약해야 한다는 내용의 독특한 연설을 하여 화제가 되고 있다.김총장은 이날 연설에서 현대도시문명,서울의 도시문화,동북아도시의 위기,인류의 생존양식문제등을 포괄적으로 진단하고 변화와 변혁을 강조했다.연설요지를 소개한다. 지금 우리나라 대학이 서 있는 지반에는 거대한 지각 변동이 진행되고 있습니다.그것은 이 땅의 민주화·경제성장·지방화·자율화,그리고 교육 인구의 구조적 변화로 표현되는 발전 때문이기도 합니다.그것은 또한 세계화·지구촌화·개방화라는 밖의 도전 때문이기도 합니다.그러나 그것은 뒤처진 대학 자체의 결함 때문이기도 합니다.우리 대학이 우리 사회 공동체의 도덕의 중심,정신의 샘,우주관의 햇빛,인격의 모범 그리고 개혁과 진보의 전위가 되기에 충실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도덕,윤리,양심,정직,정의,겸손,믿음,인격,신념,용기,지조,사랑,관용,사람다움에 대한 목마름이 강이 되어 흐르고 있습니다. 대학이 키우고 닦고 빛내야 할 덕목들입니다.대학이 앞장서고 정치와 언론과 법조가 더불어 지켰어야 할 명제들입니다. 1995년 금년은 「해방 50주년」이 됩니다.민족 통일의 갈증으로 목이 탑니다.삶의 욕구가 분출합니다.지방화의 구심력과 세계화의 원심력이 긴장하고 있습니다.환경과 성장간에 갈등이 깊어지고 있습니다.주변 4대강국으로부터의 「제2의 해방」,진지하고 충실한 자주가 필요합니다. 목타는 갈증,분출하는 욕구,증폭되는 긴장,깊어가는 갈등을 풀고 「제2의 해방」을 이룩하기 위해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정상이 정상으로 제자리를 찾게 하는 일입니다.대학이 진리에,정치가 정의에,언론이 진실에,법이 공평에,관이 봉사에,종교가 하느님에 충실하고,충실한 제자리에 돌아갈 때만이 제1의 해방에서도 찾지 못한 것,이른바 「한강의 기적」에서도 얻지 못한 것,19세기 개화 이후 130년 4세대가 지나도록 잡지 못하고 있는 정상을 창조할 수 있습니다. 이 자리를 빛내 주신 귀빈과 지도자 여러분,시립대 가족 여러분. 이제 다시 50년 뒤 2045년,우리 2세대 다음 자녀들이 우리들에게 묻거든,우리는 1995년 제1 해방 50년을 맞아 대학이 중심이 되어 이 땅의 사회공동체가 진지하고 충실한 「제2의 해방」을 창조하고,사람다움의 덕목들을 정상으로 되돌리는 노심과 노력의 원년이었다고 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학자는 각야니 자각하고 각타하고 각행이 원만일때 고명대학」(명대지욱대선사의 「대학직지」)인 것입니다. 인류 문명은 제3의 물결,문명사적 대변혁을 맞고 있습니다.지금 우리가 맞고 있는 변혁은 탈냉전·탈20세기·탈공산주의·탈자본주의·탈근대산업사회·탈민족국가·탈근대라는 역사의 새로운 토막,고대·중세·근대라는 세번째 토막이 끝이 나고,네번째 토막으로 에너지와 쓰레기와 환경과 도시문명의 「문제군」은 「역사의 시간」을 넘어 「진화론적 시간」의 고려를 요구하고 있습니다.지구가 태양에서 나온지 40억년,인간이라는 동물의종이 나온지 40만년,인간이 동물로부터 분리하여 「역사」의 문화를 갖기 시작한지 1만년이 됩니다.우리는 과거 5년,10년의 시간적 길이 정도는 관리의 대상으로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당장 30년,50년까지도 관리해야 할 문제들이 눈에 보입니다.그런데 눈에 보이지는 않으나,에너지와 환경과 쓰레기와 도시화의 문제군들은 1만년,10만년,100만년이라는 진화론적 시간으로도 고려해야 하는 도전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인류의 인구는 서기 원년 예수 그리스도 시절 1억에 불과했습니다.1900년간에 걸쳐서 10배 10억에 이르렀던 것이,20세기 100년 동안에만 60억으로 6배가 늘었고,2020년 80억∼90억,2050년엔 100억∼150억으로 추산됩니다.이 급증하는 인구의 욕망구조는 교육과 통신과 정보화에 따라 전 인류에 평준화되어 가고 있습니다.한국의 지도급인사가 하루에 쓰는 열량은 우리 할아버지들이 일생 소비했던 열량보다 많을 것입니다. 이렇게 높은 욕망과 사람다움의 보장,인류역사상 있어본 적 없는 천문학적 에너지소비,진화론적 시간의 쓰레기환경처리문제가곁들여지면서 급격한 도시화가 온 세계를 뒤덮고 있습니다.우리나라도 이미 도시화율 80%,2001년 90%를 내다보고 있습니다.2050년 세계의 도시화률은 80%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이제 인류는 인류가 만들어 낸 최고의 걸작품인 도시를 인류의 복지공간으로 가꿀 수 있는가,아니면 「도시문제군」이라고 하는 인구·슬럼·교통·쓰레기·공해·범죄·테러·가족파괴·인간소외 등 재앙의 전시장으로 만들 것인가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최근만 해도 도쿄·요코하마·고베·서울·대구·중경·본계·상해·오클라호마·체르노빌·킨샤사등 이들 도시의 사건들은 어떤 문명사적 의미를 상징합니까? 특히 한반도를 중심으로 황해·동해 바다를 연하여 살고 있는 한국·중국·일본·대만등 15억의 생명 조건이야말로 진실로 인간이 얼마나 밀집된 지역에서 사람답게 살수 있는가를 실험하는 인류 최후의 결전장입니다. 이 지역이야말로 지구에서 가장 많은 인구가 밀집된 지역입니다.대도시가 가장 많은 지역입니다.그러면서도 경제성장률이 가장 높은 지역입니다.이미 세계 최대 제조업 생산기지이며,따라서 에너지소비증가율이 가장 높은 지역이며,석탄수입 1위와 2위 국가가 있는 지역입니다. 이미 세계에서 두번째,세번째로 가장 오염된 바다를 끼고 살고 있는 지역이며,세계에서 최고로 오염된 공기가 나오는 지역이기도 합니다.이는 곧 세계 최대 쓰레기발생지역이 되며 세계 최대 인구 이동지역이며 세계 최대 물류·금류(자본)집적지역이며,세계최대 에너지소비지역이며 세계 최악의 환경오염지역이 되는 것을 뜻합니다.곧 세계인류문제군의 핵심지역이 됩니다. 서울은 바로 황해,동해지역의 중심이며,BESETO지역,즉 북경과 도쿄를 잇는 동북아 대도시 회랑지역의 중심입니다.세계 인류 문제군의 핵심지역의 중심이 바로 서울입니다.세계 도시 문제군의 핵심이 바로 서울입니다.제3물결시대 인류문제군의 핵심이 바로 서울입니다. 제1물결시대 천하지대본의 원천의 표상이 바로 이 자리였듯이,제3물결시대의 천하지대본문제군의 학문적 탐구의 원천이 이 자리일 수밖에 없습니다.이제 서울시립대학교는 제3의 물결 시대에서 한국의 도시문제군,황해와 동해(서양사람들 지리적 개념으로 동북아)지역 도시문제군,그리고 인류의 생존문제군을 끌어안고 고뇌하고 탐구하고 돌파해야 할 역사적·문명사적 책임이 주어졌고,자리 매김되었습니다. 서울시립대학교가 도시문제군을 학문적으로 탐구하고 종합적으로 연구하는 세계적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BESETO문제군의 중심대학이 되어야 합니다.세계도시문제군의 핵심을 끼고 살고 있는 서울의 문명사적 도전을 해결하는 창조의 대학이 되어야 합니다.서울시립대학교가 교육하고 연구하는 도시사회과학·도시공물공학·도시환경학·도시사회간접자본·도시문화·도시문학·도시예술·도시복지학·도시경제학·도시경영학·도시법률학·도시행정학·도시외교·도시인구·사회학·도시역사학…이 세계에 발신되고 세계지성이 몰려드는 「도시 학문의 메카」가 되어야 합니다.
  • 민자 선대본부 발족/시·도지부장 지역대책위장 임명

    민자당은 18일 여의도당사에서 지방선거 중앙대책위원회 발족식 및 현판식을 갖고 공식적으로 당을 선거체제로 전환했다. 이와 함께 이날 하오 서울 리틀엔젤스회관에서 이대표를 비롯한 주요 당직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중앙당 사무처 필승결의대회를 열어 4대 지방선거에서의 승리를 다짐했다. 이대표는 선거대책본부 발족식에서 『우리당은 능력을 검증받은 인사를 후보로 내세우면서 주민자치,생활자치의 실현이라는 논리와 함께 4백만 당원의 결의등 3박자를 모두 갖춘 만큼 필승의 신념으로 선거에 임하자』고 강조했다. 민자당은 이날 이 대표를 선거대책위원장으로,김 총장을 선거대책본부장으로 선임해 지방선거를 총괄지휘토록 하고 15개 시·도지부별로 시·도지부장을 선거대책위원장으로 임명하는 한편 지역사정에 따라 선거대책본부를 구성키로 했다.
  • IPI 서울총회/김 대통령 연설

    ◎새로운 국제정보질서 구축 모두의 과제/「더불어 잘사는 지구공동체」의 중추되길 국제언론인협회가 창설된 이래 지난 44년동안 지구상에는 거대한 변화가 있었습니다.전후 세계를 지배하던 동서냉전의 완강한 장벽은 마침내 무너졌습니다.자유와 민주 그리고 인간존엄이 인류보편의 가치로 확고하게 자리잡는 시대가 왔습니다. 나는 언론의 역할이 없었더라면 이같은 역사의 진보가 결코 이루어지지 못했을 것으로 확신합니다.나는 국제언론인협회를 중심으로 한 세계언론이 지난 40여년의 세계사에 남긴 지대한 공헌에 대해 경의를 표합니다. 한국에서도 언론은 역사발전을 앞서 이끌어 왔습니다.우리는 식민통치와 빈곤,분단과 전쟁,그리고 독재라는 최악의 조건속에서도 민주화와 산업화를 동시에 이루어 냈습니다.그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습니다.바로 그 기적의 뒤에는 언론이 있었습니다. 특히 민주화를 이룰때까지 권위주의의 탄압과 고난을 견디어 낸 한국언론의 크나큰 활약이 있었습니다.40여년에 걸친 나의 민주화투쟁에서 한국언론은 언제나 나의 동지이며 후원자였습니다.나자신 언론자유의 쟁취를 민주화운동의 가장 중요한 목표로 삼아왔습니다.그것은 자유언론이야 말로 민주화의 기초라는 나의 신념에 바탕한 것이었습니다. 83년5월 가택연금중 민주화를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 목숨을 건 단식투쟁에 들어가면서 나는 「언론자유」를 무엇보다도 강력하게 요구했습니다.이 23일에 걸친 단식투쟁은 범국민적인 민주화 운동의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우리의 민주화운동에는 세계 언론의 많은 지지와 성원이 있었습니다.특히 국제언론인협회는 여러차례 한국의 언론탄압을 규탄하고 언론자유를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습니다.나는 여러분의 지원에 대해 남다른 고마움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이제 한국국민은 민주주의와 언론자유를 마음껏 누리고 있습니다.국제언론인협회 총회가 서울에서 열리고 있다는 사실이 그것을 극명하게 입증하고 있습니다.서울은 민주주의와 언론자유라는 국제언론인협회의 이상이 승리를 거둔 현장으로 기록될 것입니다. 세계에는 이미 새로운 세기가 시작되었습니다.정보화와세계화의 물결이 「문명사적인 변혁」을 일으키고 있습니다.언론은 인류 운명에 대하여 중요한 매체가 아니라 결정적 매체가 된 것입니다. 정보화와 세계화의 새로운 시대적 흐름에 부응하여 언론이 먼저 세계화되어야 합니다.무엇보다 국가간,지역간 균형있는 정보유통과 공정한 뉴스선정이 이루어 질 수 있는 새로운 국제정보질서를 구축하는 것이 우리 모두의 과제일 것입니다.그리하여 국제언론인협회가 국가와 지역,민족과 문화를 뛰어넘어 「더불어 잘 사는 지구공동체」를 구현하는 중추가 되기를 충심으로 기대합니다. 한국 역시 문호를 더욱 활짝 열어 세계와 교류하고 협력하기 위한 「세계화정책」을 적극 펴 나가고 있습니다.세계로,미래로 향한 우리의 발걸음은 세계평화와 인류번영에 더 큰 보탬이 될 것입니다.그러나 이러한 우리의 꿈은 아직 휴전선을 넘지 못하고 있습니다.지상의 마지막 냉전지역인 한반도에는 역사상 유례없는 「정보의 단절」이 반세기나 지속되고 있습니다. 남북간에 흩어진 수백만명의 이산가족들은 서로 생사조차 알지 못하며 편지 한장,전화 한통 주고 받을 수 없습니다.북한 주민은 외부세계와의 차단 속에서 인권이 무엇인지 조차 모르는 통제와 억압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북한주민의 인권문제는 국제언론인협회의 이상을 구현하기 위해서도 각별한 관심의 대상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분단을 강요당한 민족이 다시 하나가 되는 것은 역사의 순리입니다.그렇다고 우리가 급격하고도 일방적인 통합을 원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반세기에 이르는 분단사에 비추어 남과 북은 점진적인 단계를 거쳐 상호 조화를 도모하는 방향으로 통일을 이룩해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북한 체제의 안정과 질서있는 변화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합니다.그러한 차원에서 우리는 북한이 당장 필요로 하는 곡물을 비롯한 원료와 물자를 장기저리로 제공할 용의가 있음을 거듭 밝힙니다. 우리는 남과 북이 함께 번영하는 한민족공동발전을 추구하고 있습니다.한국정부가 북한 핵문제에도 불구하고 대북경제협력을 점차 확대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러한 뜻에서 입니다.나는 남북한이 서로 협조하여 공동의 번영을 추구하는 날이 반드시 오리라고 믿습니다.그날은 우리 민족의 평화통일을 성큼 앞당기고 세계의 평화와 번영에 크게 기여하기 시작하는 새 출발의 날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참으로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곳을 찾아왔습니다.오늘의 시점은 세계사적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광복 반세기를 맞는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도 뜻깊은 전환기입니다. 산업화와 민주화의 토대위에서 세계화를 추구하는 문민정부의 이상이 바야흐로 열매맺기 시작하는 시기이기도 합니다.서울은 여전히 지난 시대의 마지막 긴장이 살아있는 현장이면서 21세기의 세계를 앞서 이끌 동아시아의 중심입니다.바로 이러한 때에 바로 이곳에서 세계 언론의 진로를 논의하고 한반도의 장래를 위해 함께 고뇌하는 것은 참으로 뜻깊은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 남북협상 전야(새로 쓰는 한국현대사:19)

    ◎김구·김규식 잇단 제안… 하지,“북 음모” 비난/평양,인민군창설 선포… 「정치 제스처」 드러나 남한에서 남북협상론은 유엔한국임시위원단이 서울에 들어온 지 얼마 안되어 머리를 들었다.1948년1월26일 남북정치지도자 연석회의를 제안한 김구의 담화로 시작되어 다음날 같은 맥락의 김규식의 담화로 이어졌다.남한과도정부 민정장관 안재홍도 이에 동조하고 나섰다. 그러나 미군정의 반응은 냉랭했다.미군정사령관 하지는 공산주의자들의 음모라는 비난과 함께 거부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김일성,18일전 선제안 우리는 여기서 하지의 불편한 심기를 한번쯤 읽어보아야 할 것 같다.남북정치지도자 연석회의는 일찍이 북한이 제안한 사안으로 김일성이 기회 있을 때마다 강조한 사실에 주목했을 것이다.특히 남한의 민족주의자들이 남북정치지도자 연석회의를 제안하는 담화가 나오기 직전 1월8일의 김일성의 발언에 주목했다. 김일성은 이 발언에서 『전민족적 통일전선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미제국주의를 추종하지 않는 우익민족주의세력,특히 김구와 대담하게 합작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여러 증언을 종합하면 김일성은 1월13일 자신의 발언과 부합되는 내용의 편지를 김구와 김규식에게 보낸 것으로 되어 있다. 남한의 좌익세력들도 물론 가세했다.2월초 홍명희의 비밀방북도 그런 움직임의 하나인 것이다.그는 북한에 머물면서 남한의 단독정부수립에 반대하는 세력과의 이면통합활동을 벌이기로 합의하고 서울로 돌아왔다.그리고 나서 김구·김규식·조소앙·여운홍등과 접촉했다. 홍명희는 이보다 앞서 1947년11월에도 북로당위원장 김두봉의 편지를 통해 남한의 단독정부수립에 반대할 것과 광범한 세력과의 연대로 통일전선을 강화해야 된다는 주문을 받았다.이 시기에 공산주의진영의 민전도 남북을 부지런히 넘나들었다. 이 무렵 북로당은 대남연락부장 임해(임해)를 서울로 밀파했다.남한의 정치상황을 체크하고 2월25일 평양으로 돌아갔다.그는 민전확대회의에서 『김구와 김규식의 남북협상제의는 애국적 결단』이라고 극찬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소련의도와 먼 거리 북로당은 이 보고를 토대로 남북협상 주요대상의 연합을 적극 모색한다는 정치노선을 채택한다.주요대상은 과거 반탁진영에 속한 우익세력 가운데 단정에 반대하는 그룹을 지칭한 것이다.북한이 남북연석회의를 정치적 공작차원에서 계획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북한의 남북협상 움직임은 사실상 이율배반적 정치제스처에 지나지 않았다.남북협상론이 본격적으로 대두한 2월 북한은 이미 작성해놓은 헌법초안에 대한 지지결의대회를 확산시키고 있었다.그리고 인민군 창설까지 선포하고 난 뒤였다.이러한 북한의 정치행보는 북한을 볼셰비키화하는 소련의 뚜렷한 목표를 따른 것이어서 수정할 수 없는 것이었다. 서울에 온 유엔한국임시위원단의장 메논이 두 이데올로기의 장단점을 취사선택한 한국적 정치조직의 탄생을 기대한 적이 있다.그러나 북한을 볼셰비키화하려는 소련의 의도와는 거리가 멀었다.유엔임시위원단의 입북을 거부한 이유도 여기 있다. 유엔총회가 유엔감시하의 남한 단독선거를 결정한 것은 1948년2월26일이다.그러니까 북한이 서둘러 취한 일련의 조치,헌법초안에 대한 이른바 전인민적 토의와 지지결의라든가 인민군창건 선포등이 있고 나서다. 2월10일에는 국호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하는 임시헌법초안이 공포되었다.이렇듯 북한은 정권수립과정을 재빨리 밟아나갔다.그들대로의 단독정권의 기틀을 남한보다 먼저 다져놓은 것이다. 그리고 나서 북한에 독자적 공산주의정부를 수립하는 것은 민족자결원칙에 충실한 민주적인 동시에 민족의 분열을 막는 구국적 대책이라고 선전했다. 김일성은 인민군창설을 정식으로 선포하는 열병식 연설에서는 「북조선 민주기지에 의거한 무력통일」의도를 처음 드러내 보였다.이때 남로당은 북한정권수립을 지원하기 위한 2·7폭동을 일으켰다.김일성의 열병식 연설에 나타난 민주기지에 의한 무력통일은 당시 남한의 2·7폭동과 맞물린 것이지만 오늘날까지도 이어내려오는 북한의 통일전략이다.남북의 역량을 3으로 볼 때 남북혁명세력을 2,나머지 1을 남한의 보수세력으로 계산한 전략이라 할 수 있다.이를 가리켜 흔히 「1+1/2전략」이라 부른다. 소련이 유엔감시하의 남북총선거를 반대하면서 미·소 양군의 철수를 주장한 이면에도 이 전략이 깔려 있었다.미·소 양군이 철수하고 한반도문제를 한국인에게 자율적으로 맡겨야 한다는 소련의 주장은 북조선공산당(북로당)과 북조선인민위원회,남한의 남로당을 포함하는 좌익세력을 신뢰한 데서 비롯됐다. 1948년3월9일 북한의 민전 중앙위원회에 참석한 김일성은 소련의 입장을 적극 지지하고 나섰다.그는 소련의 주장을 지지하는 것은 물론 남한의 단독정부수립에 반대하는 투쟁을 광범위하게 펼치자고 선동했다. 이러한 남북의 정치상황 속에서 3월25일 북한의 9개 정당과 단체이름으로 내놓은 성명문이 평양방송의 전파를 탔다.「남조선 단독정부수립을 반대하는 남조선 정당·사회단체에 고함」이라는 성명문이었다.조국의 민족통일을 위해 투쟁하는 남한 정당·사회단체들을 4월19일 평양에서 여는 「전조선 정당·사회단체대표자 연석회의」(남북연석회의)에 초청한다는 형식으로 발표되었다.그 속에 포함된 남한인사는 좌·우·중간파 15명이었다. ○북,대외적 선전거리로 어떻든 북한은 정부수립으로 가는 모든 절차를 갖추어놓은 상태에서 남북협상을 절호의 선전기회로 삼았다.이 성명이 나온 이틀 뒤인 3월27일 「소범위 지도자연석회의」소집에 동의한다고 김일성과 김두봉이 연서했다. 김구가 주도한 한독당과 김규식을 중심으로 하는 민족자주연맹은 자신들의 협상제의를 전적으로 무시해버린 북한태도에 불쾌한 감정을 느꼈다.북한 민전이 사실상 단독결정으로 준비하고,또 개최할 남북연석회의에 초청객으로 참가하느냐 마느냐를 놓고 고심했다.결국은 참가를 결심했고,김일성과 김두봉이 연서한 남북연석회의 초청편지는 2월27일 밤 김구와 김규식에게 전달되었다.이 편지는 공개적으로 온 것이 아니라 북로당 연락부 요원이 직접 가지고 내려와 좌익계열의 성시백을 통해 전달했다.편지내용은 흰 인조견에다 썼다고 한다. 북한은 남북연석회의 소집을 발표한 나흘 후인 3월28일부터 평양에서 북로당 제2차 대회를 열었다.이 날짜는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연석회의에 앞서 북한의 정치세력을 과시하는 한편 회의에서 기선을 잡자는 술수를 깐 것이다. ◎“북,남공산주의자에 「단선 방해」 지령”/UNTCOK작성 「공당 활동」/“미군 철수” 주장… 정세분석 협조도 거부/우익계 대동청년단 등에도 “붉은 손길” 한반도정치문제가 유엔으로 넘어가 유엔한국임시위원단(UNTCOK)이 서울에 들어온 19 48년의 봄은 혼란스럽게 다가왔다.남북총선을 위해 입북하려는 한국임시위원단을 저지한 북한은 남한 단독선거를 방해하려는 온갖 투쟁수단을 동원했다.서울신문 특별취재반은 최근 미국에서 기밀이 해제된 UNTCOK 관계문서를 입수,이같은 사실을 밝혀냈다. 이 문서는 48년1∼3월 사이의 한국인의 정치활동을 주한미군사령부 정보처(G­2)와 방첩대(CIC)의 정보보고및 평양의 대남방송내용을 통해 분석한 것이다.남한의 공산주의자들은 UNTCOK의 임무를 혁명적 방법으로 반대한다고 전제한 이 문서는 모스크바와 평양의 지령에 의해 군대철수를 주장하고 있다고 적었다.이어 남한의 정세를 기록하기 위해 좌익계열의 허헌 등 4명을 UNTCOK에 나오도록 초청했으나 이를 거부했다는내용도 보인다. 그리고 38선이 지나가는 경기도 옹진반도의 공산주의활동을 소상히 기록했다.공산주의자는 성인인구의 10%에도 못미치지만 우익에 극력하게 침투,효과적인 간첩행위를 강요하고 있다는 사실도 들추어냈다.또 공산주의를 배격하고 있는 우익계 대동청년단과 민족청년단체에까지 침투한 공산주의자들의 2·7폭동에 대해서도 상세히 기술했다.이 2·7폭동은 주모자들의 검거로 행동반경이 위축되는 듯하다가 3·1절과 3월25∼29일 사이에 재개되었다는 것이다. 이 문서에는 소련에 의해 통합된 임시헌법의 초안내용,인민군의 창군행진,남한단독선거에 반대하는 군중의 숫자를 평양방송이 연일 선전하고 있다는 내용도 포함되었다.이와 더불어 평양방송이 3월25일 방송한 북한 민전의 남북연석회의 제안내용을 전하면서 이 역시 소련의 전략으로 평가했다. 끝으로 북한사람들은 한반도를 소련이 지배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확신있게 분석하고 남한에 장차 수립될 단독정부가 장래 통일을 실현할 것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는 내용을 덧붙였다.이는 6·25 당시 남하한 인구를 보면 실증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한 것이다. □특별취재반 황규호 문화부 부국장급 이용원 〃 기자 김성호 〃 〃 김경운 조사부 〃
  • 김숙희씨의 미숙한 역사관/이태동 서강대 문과대학장(기고)

    요즘 우리정부의 몇몇 장관들은 선진국 장관들보다 수명이 너무나 짧은 경향이 없지 않다.그래서 국민들 사이에는 대통령이 능력있고 귀중한 사람들을 잠시 기용했다가 특별한 이유가 없이 소모품으로 만들지 않는가 하는 피상적인 의구심을 가지는 소리가 없지 않다.그러나 또다른 한편 많은 사람들은 피상적인 가정과 현실은 언제나 다를 것이라고 말한다.즉 그들은 막중한 책임을 맡은 사람이 자기의 임무를 다하지 못할 때 물러나야 사회의 기강이 잡히고 질서가 유지될 것이란 것을 생각하면 국가를 통치하는 사람으로서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한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에서 고위공직자들의 수명이 긴 것은 그들이 맡은 일에 최고의 전문가일 뿐만아니라 그들이 맡은 일을 치밀한 계획과 비전으로 그만큼 탁월하게 성공적으로 수행할 능력을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분단상황에 있는 우리의 현실은 선진국의 안정된 상황과는 달리 불안하고 과도기적이기 때문에 우리나라 공직자들의 책임과 전문성은 그들보다 훨씬 더 크게 요구된다고 하겠다. 이러한 위기상황 속에서 정부의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있는 김숙희 장관의 국방대학원에서 행한 연설은 지극히 미숙하고 무책임하다.우선 교육정책방향을 얘기하러 국방대학원에 간 교육부장관이 왜 자신의 전문분야가 아닌 군의 명예와 가치관이 관련된 역사문제를 균형을 잃은 편견된 시각으로 보는 자세를 나타내었어야만 했을까.확고한 공직자로서의 신념보다는 정치적인 인기를 얻기 위한 순간적인 착각때문일까. 역사를 보는 관점은 다양할 수가 있겠지만 『6·25는 명분약한 동주상잔』이라고 김숙희장관이 발언한 것은 6·25를 경험하지 않은 젊은이들이 듣기에는 그럴듯할지도 모른다.그러나 그것의 속뜻을 삭여서 생각하면 적지 않게 모순되고 위험하기 짝이 없다.공산주의로부터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싸움이 명분이 없다면 공산 천하가 되었어도 무방하다는 말인가.만일 6·25당시 조국수호를 위해 우리의 아버지와 형들이 피를 흘리지 않고 또 그후 수많은 젊은이들이 고된 병영생활을 하며 각고의 인내속에서 귀중한 시간을 보내지 않았다면 김숙희씨도장관이라는 영광스러운 자리에 오르지 못했을 것이다.6·25전쟁은 미·소의 대리전적인 인상도 없지 않지만 결코 우리는 외국의 이해를 위해서만 싸우지 않았다. 월남전의 파병문제에 대한 김장관의 강연도 얼핏보아 진보적인 것으로만 들릴지 모른다.그러나 월남파병에 대한 김장관의 발언 역시 균형된 진실을 담고 있지 못하다.물론 월남전 당시 경제적인 문제로 참전한 병사도 없지 않다.그러나 그 당시 국제정세 및 한·미관계로 보아 월남파병은 우리나라를 공산주의로부터 수호하기 위한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강재구 소령의 희생적인 죽음을 보고 조국을 위해 월남으로 달려가 산화한 젊은 장교들은 결코 돈만을 위해서 팔려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보통사람도 「말하기 전에 생각을 한다」는데 일국의 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장관이 자신의 전문분야도 아닌 역사관을 피력하면서 균형을 잃은 시각을 보여 물의를 일으킨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김숙희장관은 그와 같은 진보적인 발언으로 민족주의자적인 마스크를 보일지 모르지만 그것이 젊은 학생들의 의식을 잘못 바꿔놓을 위험성도 결코 없지 않다.김숙희장관이 어린이 영어교육을 졸속으로 실시하겠다는 성급함을 보이면서도 불행한 현대사를 편견된 시각으로 해석하는 것은 어딘가 모순되고 걸맞지 않는 느낌이 없지 않다.
  • “역시 경륜”…초반부터 6대4 압도/민자 서울시장후보경선 이모저모

    ◎“사실상 서울시장 선출” 축제 열기 고조/당선발표에 축포·환호… 단합·저력과시 12일 하오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서울시장 후보경선대회는 모두 1만2천여명이 참여한 초대형 이벤트였다.정원식전국무총리의 「경륜」과 이명박의원의 「패기」가 자유경선의 열기속에 맞붙으며 화려한 예비선거전을 펼쳐 보였다는 중평이었다. ○…이날 하오 6시20분쯤 정후보의 당선이 확정됐다는 선관위원장인 이세기서울시지부장의 발표가 있자 장내는 축포가 터지고 오색 은박지가 수를 놓는 가운데 박수와 환호로 가득찼다. 이에 단상에 있던 이후보는 정후보의 손을 들어주며 당선을 축하했다. 이춘구 대표와 김덕룡 사무총장 등 당직자와 지구당위원장들도 일제히 단상 앞으로 나와 정 후보와 손을 맞잡아 올리며 대의원들의 환호에 답했다. 정후보는 당선인사에서 『정당사상 유례 없는 대규모 경선을 축제 분위기속에 치른 것은 우리당의 저력』이라면서 『용기와 신념을 갖고 지방선거에서 승리하겠다』고 다짐했다. 이후보도 『축제분위기 속에역사적 경선을 치를 수 있게 해 준 총재와 당에 감사드린다』고 말한 뒤 『시장선거에서 정후보를 중심으로 단합해 승리하도록 힘을 모으자』고 호소,박수를 받았다. 이대표는 격려사에서 『오늘 경선은 승자도 패자도 없는 우리 모두의 승리』라고 치하한 뒤 『정후보를 본선에서 반드시 당선시켜 안정속에 지자제를 정착시키자』고 당부했다. ○…하오 5시20분부터 시작된 개표는 시비의 소지를 막기 위해 투표함을 섞어서 진행됐다. 정후보는 개표 초반부터 이후보를 6대4 정도로 앞서가 승리를 일찌감치 예고했다. 이후보는 개표가 시작된 지 얼마후 승용차로 대회장을 떠나 경선과정에 불만을 표시한 것으로 비쳐졌으나 정작 이후보측은 『잠시 인근 다방에 쉬러간것 뿐』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앞서 투표가 시작되자 두 후보는 후보대기석을 마다하고 장내를 돌며 한표라도 더 건지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낮 12시쯤부터 선거인단이 입장하기 시작하자 이후보는 10여명의 보좌진과 함께 대회장 입구에서 악수를 청하며 지지를 호소했다.반면 정후보는대회시작 전까지 VIP실에서 메모형식으로 준비한 정견발표문을 가다듬는데 열중했다. 식전행사에는 방송인 김동건씨와 가수 현철씨,테너 고성현씨등이 나와 흥을 돋우었다. ○…기호순서에 따라 먼저 20분간의 정견발표에 나선 정후보는 『서울특별시는 국무총리의 직할이라서 총리를 지낸 나로서는 누구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경륜을 강조했다. 반면 이후보는 『내게는 항상 현장에서 일을 할 수 있는 작업복과 헬멧이 준비돼 있다』고 건설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경험을 내세웠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정전총리가 승리하자 『대의원들이 현명한 선택을 했으며 이제 본선에서 이기는 일만이 남았다』고 말했다. 김대통령은 다음주초 정후보와 이후보,이세기서울시지부장을 청와대로 불러 노고를 치하하고 6월 서울시장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단합해 줄 것을 당부할 예정이다. ◎정원식 민자 서울시장후보 인터뷰/“경선은 흐뭇한 체험… 이제부터 뛸터” 정원식 전총리는 12일 민자당의 서울시장후보로 확정된 직후 『참으로 흐뭇한 체험이었다』고 감회를 피력했다. 정전총리는 기자회견에서 『특히 이명박의원의 선전에 대해 만강의 경의를 표한다』면서 『이의원은 앞으로 있을 총선에서 기필코 지역구인 종로에서 당선되어 서울을 위해 많은 일을 할 것』이라고 덕담을 잊지 않았다. ­본선에서 내세울 「캐치 프레이즈」는 무엇이며 다른후보와의 차별화 전략은. ▲솔직이 아직 준비가 안돼있다.이제 시작이다.구호도 만들고 본격적인 준비작업을 할것이다. ­승리의 요인은. ▲선거인단의 심리를 정확히 파악하기는 어렵다.대의원들이 패기도 중요하고 건설일꾼도 중요하지만 국정운영의 경험과 행정력이 서울시장으로 활동하는데 도움이 되고 본선에서도 유리할것이라고 본것이 아닌가 짐작할 뿐이다. ­본선에서 맞설 조순후보와 박찬종후보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조순후보는 오랫동안 서울대에서 함게 교수생활을 해 가까운 사이다.서울대를 관악캠퍼스로 옮기는데 함께 지혜를 모으기도 했다.대단히 훌륭한 경제학자이고 존경받는 인물이다.그러나 정치적 식견이 어떤지는 모르겠다.박후보에 대해서는 신문지상의 보도로만 알고 있는 정도다. ­다른 두 후보에 비해 출마선언이 늦었는데. ▲남들은 3백m나 뛰어갔는데 이제 기지개를 켜는 형국이다.특별한 대책이 있을 수 있나.소신에 따라 성실하게 나의 이미지를 부각시켜 나갈 것이다. ­91년 외대사건이 여당을 구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 얼마뒤 광역선거에서 80% 이상의 압승을 거둔 것이 사실이다.서울의 안정희구세력,안정과 지속적 발전을 바라는 층이 당시 일부 학생들에 대해 매우 비판적인 시각을 갖는 계기가 돼 여당이 반사적 이익을 거둔것이 아닌가 한다. ­문교장관 재직시 전교조 사태가 있었는데. ▲전교조에 대한 대응은 한마디로 교육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체제를 보호하기 위한 소신의 피력이었다.이른바 의식화 교육이 어린 학생들을 상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는가.그때 사랑하는 많은 제자가 교단을 떠났지만 시간이 지난뒤 그들의 복직을 위해 힘썼다. ­재산공개를 한번도 하지않았는데. ▲20년전부터 살아온 화곡동의 1백60평짜리 집한채와 아파트 해약금 등 합치면 6억원이 조금 안될 것이다.
  • 오늘 민자 서울시장 후보 경선… 두 출마자에 들어본 「진인사」

    「정원식 전총리의 경륜이냐,이명박 의원의 패기냐」.민자당은 12일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1만2천여명의 선거인단이 참석한 가운데 정전총리와 이의원의 경선을 통해 서울시장 후보를 선출한다.결전을 하루 앞둔 11일 두 후보는 서울지역 44개 지구당 순방을 마치고 경선장에서의 정견발표문을 손질하는 데 마지막 힘을 쏟아부었다.정전총리가 우세할 것이라는 대체적인 전망속에 정총리는 『낙관은 금물』,이의원은 『최선을 다할 뿐』이라는 말로 각오를 대신했다. ◎정원식씨/“눈문쓰던 기분으로 공약 마련”/준비된 전략도 사무실도 없다 『경선참여 의사를 밝힐 때부터 유·불리나 득표율은 계산해 보지 않았습니다.주어진 조건에서 최선을 다할 뿐이죠』 정원식 전국무총리는 11일 이명박 의원과의 한판대결을 맞는 소회를 이렇게 밝혔다. 정 전총리는 이날 강동을 등 6개 지구당을 방문,경선후보로 확정되면서 3일만에 서울의 44개 지구당을 모두 순회하는 숨가쁜 일정을 마쳤다. ­득표활동은 충분히 했나. ▲경선출마 선언 뒤 3일밖에 시간이없었다.따로 전략적 준비를 해온 것도 아니고 스태프진이나 사무실도 없다.1만2천여명의 대의원들에 대한 대면 접촉은 물론 체계적인 전화홍보도 불가능했다. ­지구당 순회 분위기는 어떻게 평가하고 있나. ▲중앙당은 중립이지만 지구당에서는 경선에 나서기를 잘했다고 하더라.민주주의에 대한 신념과 당의 결속을 위해 경선을 수용한 점을 인정해주니 고마운 일이다. ­경선장에서의 정견발표는 어떻게 준비하고 있나. ▲이미지 전략상 내게는 아주 중요한 대목이다.대학에 있을 때 논문쓰던 기분으로 필요한 자료를 모두 가져다 놓고 체계화하고 있다. ­시정계획으로 제시할 내용은. ▲시정에 대한 나름의 방향만을 제시하고 구체적인 공약은 본선에서 밝힐 문제다.총리시절부터 가져온 관심과 생각을 새서울 건설에 쏟아 넣겠다. ­이명박후보측에서 불공정 경선이라는 주장도 있는데. ▲큰 회사를 경영해 본 경험이 있는 이후보는 젊고 일할 수 있는 일꾼이다.불공정시비는 잘 모르겠다. ­승부에 자신이 있나. ▲지난 대선 때 선거대책본부장을 맡기는 했지만 나 자신의 선거는 국민학교 반장,대학 때 과대표 선거가 고작이다.일부에서는 70% 우세를 점치기도 하지만 함부로 오산하는 것은 금물이다. ◎이명박씨/“건설일꾼 30년 경험 살려 최선”/밑바닥서 지지해 결과 좋을것 「젊은 서울.일하는 시장」 이명박 의원은 11일 이같은 캐치프레이즈를 골자로 한 연설문 초안작성에 온통 매달렸다.남은 선거운동이라고는 경선장에서의 정견발표 밖에 없다는 「진인사」의 표정이 역력했다. ­선거인단의 분위기를 어떻게 보나. ▲밑바닥에서는 반가워하더라.좋아한다는 말도 많이 들었다.그러나 위원장 등 윗사람들은 냉랭한 느낌이다. ­경선에 자신있나. ▲추대로 기울던 것을 경선으로 이끌어냈다.최선을 다할 뿐이다. ­연설문에 가장 역점을 두는 사안은. ▲교량 지하철 가스등 각종 사고로부터의 안전이 가장 중요하다.교통문제도 마찬가지다.열사의 사막에서 동토의 시베리아까지 뛰어다닌 30여년 일꾼의 경험을 살려 안전사고,부실공사를 막겠다는 점을 내세우겠다.서울시 예산의 80%가건설행정분야라는 데도 초점을 맞추겠다.특히 현재 5조원의 빚을 안고 있는 서울시는 기업식 경영기법 도입이 절실하고,그 적임자가 본인임을 부각시킬 것이다. ­이번 경선과정이 공정하지 못하다고 불만을 제기했는데. ▲대통령의 의중은 작용하지 않을 것으로 믿는다.밑에서 알아서 움직이면 대통령에게 누가 될 것이다.축제분위기로 경선을 못해 아쉽다.본선보다 예선이 더 어렵다. ­정원식 후보를 어떻게 평가하나. ▲개인적으로 훌륭한 분이라고 생각한다.평소부터 존경해 왔다.그러나 선거인단이 그분과 나를 비교해 평가를 내릴 것이다. ­만일 본선에 나간다면. ▲이론경제가인 조 순후보나 정치전문가인 박찬종과 차별화를 시도하겠다.실물경제,건설분야에 대한 나의 오랜 경험은 시민들의 판단을 쉽게 해줄 것이다.
  • 맞불놓기로 여 잠재력 “폭발” 겨냥/정원식 전총리 경선수용 안팎

    ◎“누가 뽑혀도 본선 득된다” 자신감 고조/청와대·당지도부 “중립”… 결과 예측 불허 정원식 전국무총리가 8일 민자당의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 나서겠다고 선언함에 따라 민자당은 그동안의 경선 논란의 늪에서 탈출,「서울시장 만들기」를 향한 급상승 무드를 타고 있다. 당사 주변에선 정전총리가 승리하면 본선에서의 득표력을 높이는 결과가 될 것이고 만약 이명박의원이 선출되는 역전극이 벌어지면 그것 자체가 국민들에게 참신한 「사건」으로 받아들여져 민자당 후보의 당선가능성을 높여주게 될 것이라며 어느 경우라도 손해볼 것이 없는 경선이라고 풀이했다. ○…정 전총리는 이날 상오 8시30분쯤 여의도 민자당사로 이춘구대표를 방문,『당의 민주화와 결속을 위해 경선에 나서기로 결심했다』고 밝힌 뒤 기자실로 내려와 이를 발표했다. 정전총리는 이어 관훈동 서울시지부를 찾아 이세기지부장에게도 자신의 뜻을 전했다.이에 이지부장은 『대인다운 결심을 해 주셔서 지구당위원장들의 어깨가 가벼워졌다』고 환영했다. 정 전총리는 『지난번대선 이후 지구당위원장들을 만날 기회가 없었다』면서 경선에 대비,지구당 순회를 시작했다. ○…김영삼 대통령은 이날 정전총리가 서울시장 후보 경선을 수용한 것과 관련,『역시 훌륭한 분』 『인격자』라고 높이 평가면서 『정전총리가 그렇게 결심했으니 기꺼이 수용해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고 청와대의 한 고위관계자가 전했다. 이 관계자는 『정전총리 스스로가 어려운 결단을 내려 주었다』면서 『서울시장후보 경선이 민자당의 전체 선거전략에 도움을 줄 것』이라고 기대했다.또 『김대통령이 이미 개인적으로는 정전총리가 후보가 되길 원한다고 밝혔지만 경선에 개입치 않고 중립을 지킬 것』이라고 예고했다. 다른 관계자는 『정전총리가 지난 7일 저녁 민관식 윤형섭 김기춘씨등 친지들과 식사를 하면서 자문을 구했는데 그때 대부분 인사들이 경선이 낫다고 얘기한 것으로 들었다』고 전했다. ○…당 관계자들은 정전총리의 결심에 대해 『2년여동안 당을 떠나있던 분으로서 어려움을 무릅쓰고 용단을 내린 것을 보면 훌륭한 인품과 용기를 갖춘 분』(김운환 조직위원장) 『용기있고 넉넉한 인물』(백남치 의원)등으로 극찬했다. 정전총리에 이어 서울시지부와 여의도 당사를 찾은 이명박의원도 『당과 정전총리가 훌륭한 결정을 내려준 데 대해 감사한다』면서 『공정하고 투명한 경선을 통해 본선에서 야당에게 승리할 수 있는 후보가 탄생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정전총리가 극적으로 경선에 나서기로 결심한 것은 이명박의원이 완강하게 경선을 주장해 온데다 지난 3일 경선으로 조순후보를 등장시킨 민주당에 대해 「맞불」을 놓아야 한다는 당내여론을 참작한 때문으로 보인다. 정전총리는 이날 회견에서 『어제 청와대에 결심을 전달했지만 그전에 누구와도 협의하지 않았다』면서도 『경선 여부를 둘러싼 그동안의 논란을 알고 있다』고 말해 그동안 고민이 적지 않았음을 시사했다. 김덕룡 사무총장 등 당 지도부는 김대통령이 지난달 27일 초·재선의원 만찬에서 정전총리를 극찬하면서 서울시장 후보로 추대할 뜻을 밝힌 뒤에도 『아직 공식 결정이 내려지지 않았다』고 경선의 가능성을 완전 배제하지는 않았었다.또 이춘구대표는 지난 6일 청와대 주례당무보고에서 지구당위원장들의 경선 선호 분위기를 전달했다는 후문이다. 한편 경선 전망에 대해 이세기지부장은 『8백여명의 대의원으로 조순후보를 확정한 민주당과 달리 1만1천2백88명의 대의원들이 참석하는 대규모 경선의 결과를 누가 예단할 수 있겠느냐』고 공정한 경선이 될 것임을 강조했다. ◎“경선수용은 단독 결정”/정 전총리 일문일답/청와대엔 어제 알려… 날 이해할 것/경선 반대한 적 없어… 결과에 승복 사실상의 민자당 서울시장후보로 여겨졌던 정원식 전국무총리가 8일 『경선 수용』을 선언하자 여의도당사는 활기에 찬 분위기였다.이춘구대표에게 경선에 나설 뜻을 전한뒤 기자실을 찾은 정 전총리는 『나로서는 매우 중요한 결심을 밝히고자 한다』며 경선수용 결심을 밝혔다. ­경선 결심을 굳힌 배경은. ▲당으로부터 서울시장후보 영입교섭을 받고 수락했었다.그러나 다소 논란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추대냐 경선이냐 하고.이제 나는길게 말할 필요 없이 당의 결속을 다지고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또 당 운영에 대한 민주적인 신념에 따라 경선에 나서기로 분명히 밝히고 싶다.결과가 어떻든 절대로 승복하겠다. ­그동안 경선에 반대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천만의 말씀이다.나는 영입 교섭을받고 수락했다는 사실도 아직 공식적으로는 밝힌 적이 없다.이 자리가 공식으로 말하는 첫 자리다.추대냐 경선이냐에 대해서도 찬성이나 반대를 말한 바 없다. ­당이나 청와대에 미리 통보했나. ▲당에는 사전통지 없이 오늘 불시에 방문해 결심을 전했다.당 지도부와 사전교감이 있거나 의논한 바 없다.지도부도 내 결심을 이해해 줄 것으로 믿는다.청와대에는 어제 결심을 알렸다.당총재인 김영삼대통령도 나의 생각을 충분히 이해하고 양해하리라 믿는다. ­김대통령과 통화했나. ▲직접 통화하지는 않았다.이는 어디까지나 나의 자의적 결정이다.누구와도 의논하지 않았다.당지도부에 결례한 부분이 없지 않다.서울시지부에도 다소 결례가 될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명박 의원을 만난일이 있는가. ▲없다. ­최근 청와대에 간 적이 있나. ▲미국에서 돌아온 뒤 청와대에서 김대통령으로부터 후보영입에 관련한 의사타진을 받은 바 있다. ­서울시장 후보로 나서는 포부는. ▲12일로 예정되어 있는 대의원대회에서 나의 생각을 밝힐 예정이다.이 자리에서는 말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
  • 48년 UN임시위원단 활동(새로쓰는 한국현대사:17)

    ◎소군이 입북막아 남북한 총선거 계획 무산/「단독선거」 이승만 적극환영… 김구·김규식은 반대/단정수립 5·10선거 감시 1948년 1월8일 군용 비행장인 김포공항에 비행기 한대가 착륙했다.이윽고 유엔 한국임시위원단(UNTCOK)위원인 KPS 메논 인도대표를 비롯한 오스트레일리아·시리아등 3개국 대표가 트랩을 내려 한국땅에 첫발을 디뎠다.위원단 일행은 서울로 들어오는 동안 길가에 늘어선 25만∼30만명의 한국인들에게서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가능하면 3월31일까지 남북한 전지역에서 총선거를 실시,국회나 중앙정부를 수립하도록」감시하는 역할을 맡은 유엔한국임시위원단 활동이 시작된 것이다. ○대표환영 시민대회 열려 이어 캐나다·프랑스·필리핀·엘살바도르 대표가 29일까지 모두 한국에 왔다.중국대표는 호세택 서울총영사가 그 임무를 맡았다.당초 유엔총회가 선정한 위원국에는 우크라이나사회주의공화국이 포함됐으나 소연방국인 우크라이나는 참여를 거부했다. 서울 수도호텔에 숙소를,덕수궁에 사무실을 정한 위원단은 12일 첫회의를 열어 메논을 의장으로 선출했다.이틀 뒤 이들을 환영하는 시민대회가 서울운동장에서 열렸고 밤에는 덕수궁에서 리셉션이 개최됐다.극진한 환대 분위기 속에서 위원단 활동은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처럼 보였다.당시 메논 의장은 『우리 위원단은 38선을 인정하지 않으며 한국은 결코 분단돼서는 안될 나라』라고 강조하고 『미·소의 양 제도를 체험한 한국인은 그 장점만을 살려 한국적인 정치체제를 육성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자신만만하게 피력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난관은 곧 닥쳤다.위원단은 1월30일 미군정 연락장교를 평양에 보내 소련군정측에 입북(입북)을 신청했다.이에 대해 소련군사령관 참모장인 샤닌소장은 『우리는 위원단을 인정할 권한을 갖고 있지 않다』고 딱 잘라 거절했다.소련정부의 입장은 유엔총회 토의과정에서 분명히 밝혔으므로 위원단 입북을 주둔군으로서는 허락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임시위원단은 입북에 실패하자 유엔 사무총장에게 소련측의 비협조를 제소했으나 돌아온 대답은 소련정부의 「부정적 입장」뿐이었다.위원단은북한지역에 들어갈 수 없음을 2월6일 공식발표한다. ○“식민지화 음모” 매도 이에 앞서 김일성은 유엔임시위원단을 극렬하게 비난함으로써 애당초 위원단 입북을 허용치 않겠다는 의사를 명확히 했다.1월12일 발표한 이 성명에서 김일성은 『유엔한국임시위원단은 조선을 식민지화하려는 미 제국주의자들의 심부름꾼으로 왔다』고 매도하고 『한덩어리로 뭉쳐 열렬히 투쟁하자』고 선동한 바 있다. 소련의 거부로 「남북한 전역에서 총선거를 실시한다」는 처음 계획이 틀어지자 위원단은 남한에서만이라도 단독선거를 실시해야 하는지를 놓고 미군정,남쪽의 정치지도자들과 연속회담을 벌였다.우파들은 대부분 적극 환영하며 즉시 선거를 실시하라고 요구했다.그러나 우파인 김구의 한국독립당과 좌파세력,김규식을 비롯한 중도파는 통일을 가로막는다는 이유로 맹렬히 반대했다.미군정은 물론 단독선거 실시에 찬성했다. 이를 계기로 이승만과 김구·김규식은 정치적으로 완전결별한다.결과는 물론 실패로 돌아갔지만 김구와 김규식은 남북협상에 정치적 운명을 걸었다.해방공간에 돌아온 직후부터 미군정과 마찰을 빚어가면서 공산주의를 통렬히 비난한 이승만은 우파진영을 이끌고 단선 참가로 나아가는 발빠른 움직임을 보였다. 위원단 내부에서도 「남한 단독선거」가 유엔 결의에 부합되는지를 놓고 의견이 엇갈렸다.결국 위원단은 단독선거 실시에 대한 결정을 유엔 소총회에 넘겼다.2월19일 열린 소총회에서 미국대표는 『예견하지 못한 사태가 아니다』라고 전제한 뒤 위원단은 접촉이 가능한 지역(남한)에서만이라도 그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또 『한국인 가운데 3분의2가 선거에 참여해 중앙정부를 성립하면 북한도 이에 참여하기 위해 협상에 나설 것』이라고도 주장했다. 소총회 투표에서는 미국의 입장이 찬성 31,반대 2,기권 11로 채택됐다.반대표를 던진 오스트레일리아 대표는 『남한에 수립되는 정부는 북한과 대립하게 될 위험성이 짙다』고 지적했다.그는 만약 북한이 한국정부에 위협을 가하게 되면 유엔은 스스로 수립한 한국정부에 대해 적극 원조하든가,모든 책임을 포기하는 난처한 처지에 빠질 것이라고 경고했다.소련은 이 회의에 아예 불참했다. 유엔 소총회에서 단독선거의 합법성을 인정하자 한국임시위원단은 선거준비에 박차를 가한다.2월28일 위원단은 『접촉이 가능한 지역에서 늦어도 5월10일까지는 선거를 실시하겠다』고 성명서를 발표했다.그러나 임시위원단에게는 선거를 주관할만한 능력이 현실적으로 없었으며 스스로도 선거를 감시하고 그 결과를 총회에 보고하는 정도를 가능한 일로 받아들였다.이는 곧 선거를 관리하는 주체가 미군정임을 인정한 것이었다. 미군정은 위원단 발표에 이어 『총선을 5월10일 실시하겠다』고 공표했고 위원단은 이를 추인했다.선거는 1947년 8월 과도입법의원이 통과시킨 선거법에 따라 시행하기로 했다.위원단은 선거기간동안 30명의 인원으로 전국을 돌며 선거과정을 감시했다.「5·10선거」가 끝나고 위원단은 6월25일 선거결과를 평가하는 회의를 열었다.그들은 『1945년 5월10일의 선거결과는 한국민의 3분의2를 차지하는 주민들이 자유의사를 합법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만장일치로 결론을 내렸다. ○북도 서둘러 단정 구성 위원단은 이같은 내용의 보고서를 그해 9월 파리에서 열린 총회에 보고했다.회기 막바지인 12월12일 총회는 보고서를 승인,대한민국의 합법성을 인정했다.이와 함께 한국의 통일을 달성하기 위해 임시위원단의 업무를 대신 수행할 「유엔 한국위원단」을 설치한다고 결정했다.이로써 유엔 결의에 따라 남한의 단독선거를 감시·평가한 「유엔한국임시위원단」활동은 1년여만에 막을 내렸다. 한편 북한은 임시위원단 입국후 단독정부 구성을 서둘렀다.1948년 5월1일 조선인민위원회는 「헌법」을 발표하고 8월25일에는 최고인민회의 의원을 선출하는 선거를 치렀다.이어 9월7일 북조선인민공화국 수립을 선포,스스로 전한국을 대표하는 정부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유엔한국임시위원단이 한국내 활동을 개시한 뒤 정국은 「유엔 감시아래 남한 단독선거­남한 단정 수립­이에 대응하는 북한정권 등장」이라는 예정된 수순을 밟아나갔다.이는 한반도를 점령한 미·소의 첨예한 대립 속에서 일찍부터 예견된 이데올로기적 정치구도를 그대로 드러낸 것이었다. ◎북,인민정부 세우려 민의조작/「유엔한위문서」가 밝힌 단선저지 움직임/“남한단독선거 반대 349만 시위” 주장/“「소련식 헌법」추천서 4만건 접수” 선전 「유엔 한국임시위원단」이 한국에 들어와 본격적으로 활동에 나서자 북한정권은 이를 저지하려고 안간힘을 썼다.1948년 미군 정보부대가 작성,기밀문서로 보관돼 오다 지난 85년 비밀해제된 「유엔 한국임시위원단 관계문서」는 당시 북한 내에서 벌어진 일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북한당국의 의도는 임시위원단으로부터 주도권을 빼앗고 남한 단독선거 실시를 막자는 것이었다.이에 따라 한반도 전역에 소련식 인민정부를 수립하고자 조작된 민의를 총동원했다.평양방송이 3월 한달동안 대남방송한 내용을 보면 ▲남한 단독선거에 반대해 이북에서 3백49만9천4백63명이 시위등 항거에 나섰고 ▲항의편지가 1만6천3백57통 전달됐다고 주장했다. 그런가 하면 「한국의 자유와 독립을 달성하는 유일한 길은 전국에 걸쳐 소련식 인민위원회를 구성하는 것」이라는 주장 아래 소련것을 본떠 마련한 「헌법」에 대한 추천서가 4만건이나 접수됐다고 선전했다.이밖에 인민군이 「임시위원단 반대」행진을 벌였다거나,남한에서 단독선거를 반대한다는 단체 그리고 북한에서 「헌법」을 토의·찬성했다는 집회 명칭을 쉴새없이 늘어놓기도 했다. 그러나 이 문서 끝에 붙은 미군 971방첩대(CIC)보고서는 이같은 선전들이 북한주민의 일반적인 정서와는 크게 다르다고 보았다.이 보고서는 『북한 사람 대부분은 임시위원단에게 큰 기대를 가졌다.이 기대는 비록 위원단의 입북이 거절된 뒤 많이 사라져가긴 했다.그러나 일부에서는 아직도 유엔임시위원단 또는 남한 단독정부가 한국 전체를 통일하리라는 신념을 갖고 있다』고 분석했다.
  • 조작가 문신(이 세기의 인물탐구:73)

    ◎“미래가 기억해야할 위대한 예술가”/우주를 향한 기운응축… 작품마다 생명력 넘실/푸른창공·지평을 배경할때 절묘한 조화 이뤄/유별난 애향심… 지난해 마산에다 「문신미술관」건립 개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키프로스의 왕이며 조각가인 피그말리온은 자신이 조각한 말없는 조상들의 세계에 파묻혀 속세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았다.이 시대가 낳은 「위대한 예술가」 문신은 그의 문신미술관과 함께 그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에 머물러있다. 마산시 추산동 52번지,합포만이 눈앞에 내려다보이는 문신미술관에 들어서면 그가 왜 「프랑스의 영광」으로 불리게 됐는지를 한눈에 당장 알아볼수 있게 된다.10여년전 그곳에 들렀을 때만해도 주변은 황폐한 황무지에 지나지 않았다.그러나 지금은 산마다 온통 작가의 숨결과 손길이 깃들여 추산동 산기슭은 고매한 명작으로 빛나고 있다. ○추산동 기슭에 정착 실제로 그의 작품들은 아름다운 광택이 나는 흑단이나 브론즈나 스테인리스스틸을 막론하고 형체외의 형체와 색채외의 색채를 구사하면서 우주의 섭리에육박하려는 의지가 강하다.수직으로 치솟은 구조는 자연스러운 시메트리를 성립하고 유성과 같은 순환의 동작은 견고한 타원형을 유지하고 있다.원과 고와 직선과 각의 대칭적 조화는 불협화음까지를 화음으로 이끄는 공간적 음률의 시각화라 할 수 있다.그래선지 그의 작품들은 푸른 창공과 바다를 배경으로한 지평선이나 수평선에 서 있을 때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것 같다. 그의 제작노트에 보면 「인간은 엄연한 현실에 살면서 보이지 않는 미래에 대한 꿈을 그리고 있다」고 쓰고 있다.그리고 보이지 않는 미래의 꿈은 현실의 대지에 닻을 내려 확고부동한 영토를 조성한다.예를 들어 서울 올림픽공원에 세워진 「올림픽 88」은 맴돌듯 창공을 차고 오르는 미지에 대한 희망과 설렘과 꿈의 상징일 것이다. 프랑스의 국제예술평론가인 자크 도판은 「이 예술가가 언제나 나를 감동시키는 것은 그의 위대한 독창성」이라고 지적한바 있다.그의 예술의 독창성과 세련미와 영감에 가득찬 천재성으로 인해 「문신은 미래가 기억해야할 예술가」이며 알렉산더 칼더나헨리무어 자코메디의 작품이 저마다 특성이 다르듯 문신의 작품은 그것이 「문신적인 포름」임을 명확하게 과시하고 있다고 단정한다.일찍이 근원 김용준은 「혜성같이 빛나는 문신의 개인전」이란 글에서 이와 비슷한 의견을 내놓고 있다.「우주를 향해 성장하는 기운을 응축하면서 유기적인 생명을 지속시키는 예술작업에 놀랐다」는 내용이 그것이다.그는 또한 「예술가는 흉중에 고고특절한 품성」을 지녀야하며 세파와 척박한 시속기에 타협하지 않는 「문신은 진정한 의미의 예술가」라고 찬사해 마지않았다.그는 일상생활에서도 유행이나 허명에 들뜨지 않아 반듯하게 자신의 행동을 지켜왔고 예술원 같은데서 동료작가들이 그의 영입을 권유할 때도 일별하지 않는채 작가는 오로지 작품으로 말한다는 신념을 지켰다.오죽하면 소설가 이병주씨는 그의 인생과 예술을 말하는 자리에서 「이 격렬한 인간을 말하다보니 나의 말에 빈곤을 느낀다」고 고백했을 정도다.밤낮을 통해 이미 신비의 세계를 구축해놓은 절세의 예술가를 짧은 지면에 거론하는 것은 여간 민망한 노릇이 아니라는 얘기다. ○불서 석공·목수일도 그는 파란의 굴곡이 심한 운명속에서 유목처럼 흘러버리지 않고 자신의 풍모자체를 예술로 만들어버린 천성의 예술가다.예술가가 아니고선 상상할 수 없는 고집과 정열과 기품이 융합되어 어둠속에서도 광명의 존재를 의심치 않았고 곤경에 처한 경우에도 자신을 스스로 일으켜세워 망설이거나 주저하지 않는다.태어날때부터 순탄치 않았으나 예술을 하기 위해 이미 설정해논 배경처럼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그는 당연하게 감수하여 슬기롭게 대처해 나갔다. 그는 일본 규슈의 탄광에서 일하던 문찬이(56년 작고)씨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어릴때 어머니와 헤어져 외롭고 불우한 어린시절을 보냈다.열여섯살 되던 해 혼자서 일본에 밀항,구두닦이 극장 포스터붙이기 산부인과조수 영화사잡일등 안해본 일이 없지만 결단코 궁박에 지치지도 않았다.오히려 자신이 나가야할 방향과 내부에 도사린 무수한 광맥을 예지하고 있었고 심재인 흑단을 발견하면서 줄기차게 창작을 잉태시켰다. ○24세 연하와결혼 그 시절 그가 그린 자화상은 목덜미 부분이 벌겋게 술에 취한 색깔이 나타날 정도였으나 주변에서는 이 초상화를 보고 「자신의 화업에만 열중하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풍겨나는 자기선언이며 앞날이 보장된 재능의 표출」로 해석해 주었다. 그는 일본미술학교 양화과를 졸업하고 해방과 함께 귀국, 주로 서양화·채화로 작품활동을 하다가 좀더 본격적으로 공부한다는 각오로 61년 도불, 처음 3년간은 고성의 보수 수식작업을 맡아 석공 목수 미장이로 일했고 그의 이런 기간은 곧잘 석공 목수를 거쳐 조각가가 된 로댕에 비유되기도 한다. 70년 프랑스 포르­바카레스 야외미술관의 국제심포지엄에서 13m 높이의 거대한 목조각을 선보인 것을 계기로 그는 유럽 각지의 유수한 조각전에 초대되는등 굳건한 형태적인 조형으로 화단의 주목을 받았다. 그가 마산에 정착한 것은 프랑스에서 영구귀국한 80년부터다.유난히 애향심이 강했던 그는 「고향은 멀리 떠나서 살면 더욱 잊을 수 없는 곳」이며 그를 낳아준 고향에 보답한다는 뜻에서 미술관건립을 계획,이거대한 작품이 고향의 번영에 밑거름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57세 되던해 5월, 지금의 부인인 최성숙씨와 결혼,서울대미대출신의 그는 노래하는 이미지의 그림을 그리는 동양화가로 그들은 24세의 나이차이에도 불구하고 영원한 동반자로 낙을 나누면서 미술관 건립에 힘을 합쳐왔다. 지난해 문신미술관의 화려한 개막행사와 함께 서울에서 「문신예술 50년 회고전」을 열때까지 그는 하루 10시간의 작업을 할만큼 건강체로 보였으나 실은 몇년전부터 위암을 앓아왔고 최근 다리를 다쳐 치료받는 과정에서 병이 더욱 악화되어 식이요법에만 의존하고 있는 상태다.더구나 혼신을 다한 미술관부근에 경관을 가로 막는 아파트공사로 우울할대로 우울해 있다.그리고 고향을 위해 할 수 있었던 보람찬 결실을 서로가 아끼고 지켜주지는 못할망정 이를 무참하게 훼손시킨 것에 실망감과 상실감을 감추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경남대가 그의 미술관건립과 관련,「향토문화예술계뿐만 아니라 마산시민들에게 예술적 토양을 제공하는데 공헌」했다는 이유로 명예문학박사학위를 주는 자리에 그는 휠체어를 타고나와 좌중을 숙연케 했다. 「흙으로 돌아가는 최후의 순간까지 예술혼을 불태우며 장엄하게 산화하고자 한다」면서 「나의 전생애가 집약된 미술관을 민족예술의 성지로 가꾸고 싶다」는 내용이 그것이다.물론 훌륭한 예술가가 품은 어떤 상념은 한낱 시류에 휩쓸려 소침해 질수는 없을 것이다. 그는 우리가 널리 자랑해 마지않는 세계적인 예술가다.따라서 그의 거대한 작품은 이미 「결정된 신전」이며 우주를 향해 예술가가 도달해야할 궁극의 목적은 「청명」일 것이다.또 그의 작품은 진흙속에 있더라도 여전히 단엄하고 간경하며 염려하고 정결하다. 자크 도판의 말이 아니더라도 그의 미술관은 「매혹적인 거대한 보석」으로 수목같은 싱그러운 숨결과 시적인 서정의 향기마저 흩뿌린다.「미래가 기억해야할 위대한 작가」인 그는 눈을 감으면 이제 우주가 보이는 경지다.결국 별빛같은 그의 작품들속에서 보이지 않는 미래의 꿈을 이룬 그는 언제 어디서나 우리의 머리위에서 눈부신 광휘로 화려하게 빛나는 존재일 것이다. □연보 ▲1922년 마산출생 ▲1938년 도쿄 일본미술학교 졸업 ▲1945년 귀국 ▲1949년 서울 개인전(동화화랑) ▲1961년 도불,파리 라버넬성 수식작업 ▲1965년 일시귀국,홍익대 교수,재도불전(신세계화랑) ▲1967년 파리정착 ▲1970∼72년 프랑스 포르­바카레스 야외미술관 국제심포지엄서 13m의 토템제작,스위스 발르 국제예술시장전,파리 현대미술관 살롱 드메,파리 크라반화랑 개막전등 살롱전 그룹전참가 ▲1974년 서독 함부르크 개인전(맨슈화랑),이탈리아에서 국제야외조각전 ▲1976년 서울 진화랑 초대전,파리 메트르알베르 화랑 개인전 ▲1979년 파리 오를리슈드 국제공항 예술화랑및 서울 현대화랑초대전 ▲1980년 부산 국제화랑 수도화랑초대전,마산문화회관 작품전 ▲1981년 서울 개인전(미화랑) ▲1983년 서울 개인전(신세계미술관) ▲1985년 현대작가초대전(국립현대미술관) ▲1986년 서울 개인전(예화랑) ▲1987년 회화작품초대전(한국화랑) ▲1988년 88서울 올림픽 예술의 올림피아드 25m「올림픽 88」제작 ▲1989년 동구라파 순회전 ▲1990∼92년 유럽순회 회고전(자그레브 프로스토박물관,부다페스트 역사박물관,파리 현대미술관,로마 뒤브로브니크), 프랑스 예술문학영주상 ▲1993년 중앙일보미술대전 운영위원 ▲1994년 문신미술관 개관 「불빛 조각축제」, 「문신미술 50년 회고전」(조선일보 미술관) ▲1995년 경남대서 명예문학박사
  • 적대감 떨쳐 버릴수 없나/김향숙 작가(기고)

    한차례 감기를 지독하게 앓느라 바깥출입을 못했던 까닭인지 비 온 뒤의 거리 풍경은 참으로 아름답게 다가 왔었다.샛노란 종들의 합창소리가 들려 올 듯한 개나리며 그 고운 꽃잎의 아른한 색감으로 온 세상을 물들일 듯 화사한 연분홍빛 벚꽃,그리고 겨우내 뒤집어썼던 먼지를 말끔히 털어버린 초록빛 나무들의 싱싱함은 얼마나 아름다운지.절기가 바뀌어도 덤덤하기 일쑤인 마음도 비온 다음 날의 초록빛을 보는 동안엔 그 아름다운 봄의 색깔들로 찰랑이는 듯했었다. 겨우내 앓는 동안 다시는 잎을 틔울 것 같지 않던,고목나무만 같은 마음에도 새순이 돋으려고 해 자연의 힘이 가진 치유력에 다시한번 감복하기도 했었다.어찌해 볼 수 없는 굳은 습관처럼 된 삶에 대해 또 다시 새로운 희망을 꿈꾸게 하는 힘이 봄의 풍경속에는 깃들어 있었던 것이다.이처럼 아름다운 절기에 난데없이 듣게 된 폭탄음이란.폭탄이 터지는 굉음속에서 죽어간 혹은 부상한 사람들의 고통스런 신음소리란 지하도며 쇼핑센터 구석에서 피어오른 독가스의 악취란.개발이라는 명목으로자연을 끊임없이 괴롭히고 파괴하려드는 인간의 저 멈출 줄 모르는 욕망에도 불구하고 저 자신이 가진 아름다운 순화력을 아직 잃지 않은 자연을 비웃기라도 하듯 사람들 중의 누군가는 오클라호마시티 연방건물에 폭탄을 던지고 요코하마의 쇼핑센터 어딘가에 독가스를 가져다 놓음으로써 봄기운에 피냄새와 독기를 퍼뜨리고야 말았다니. 4월이 사계절 중에서도 가장 초록빛이 연하고 부드럽게 아름다운 계절 이어서인가.오클라호마시티의 한적한 거리에서 벌어진 그 살육의 현장이 문득 실감없이 다가오기도 한다.분노하게 되기보다는 내 자신 폭탄이 터지는 굉음 뒤의 멍함 속에서 내가 본 처절하게 무너진 연방건물의 잔해가 영화의 한 장면처럼 여겨지기도 하는 것이다.떠올리기도 싫은 피범벅이 된 아기들 모습,목숨을 구하기 위해 다리를 잘라야 했다는 젊은 여성의 모습이 분노보다는 슬픔을 불러일으키질 않았던가.굳이 철학자가 아니더라도 삶과 죽음의 경계가 한 순간임을 절감하는 시대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음을 다시한번 생각해 보게도 된다. 인간은대체 어떤 존재일까 하는 물음도 쉽게 머릿속에서 떠나려 하질 않는다.이 아름다운 계절에,겨울의 스산한 무거움을 떨치고 살아 볼만한 기운을 얻었을 사람들로 가득한 곳에 폭탄과 독가스를 가져다 놓는 마음의 정체는 무엇일까.폭탄과 독가스를 던지는 마음속에 가득한 것은 적대감일까.그렇게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적대감을 어쩌지 못해 그 일을 하게 된 것일까 하는 생각만으로도 두려움이 샘솟는다.폭탄과 독가스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이미 적대감 때문에 자식이 아버지를,아내가 남편을,아버지가 자식과 아내를 살해하는 경우를 보아왔다. 나처럼 아둔한 사람은 귀와 눈을 열어두는 것이 내키지 않을 정도로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숨가쁘게 달려가는 여러 현상들을 보여준다.정보화 사회니 인터넷이니 하는 용어들의 홍수 속에 있다보면 낙오자가 된 듯한 기분이 들고 앞으로 이 세상의 주역들이 될 젊은 세대들은 참 힘들겠다는 노파심에 빠져들게도 된다.이 변화의 시대에 발맞추기 어려운 사람들의 소외감일까,허득임같은 감정들도 내 것인 양 이해할 수 있기도 한 것이다.이처럼 빡빡하고 급격한 변화의 시대의 시대를 살아야 한다는 게 꼭 바람직한 것일까 하는 물음도 어쩔 수 없이 떠올리게 된다.미국연방수사국이나 일본 경찰청은 범인들을 잡기 위해 애쓰고 있다니까 범인들은 잡힐 테고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민족주의적 감정이나 종교적 신념 같은 것을 말할 수도 있겠지만 어째서인지 나로선 그 모든 명분들 밑에 썩은 물처럼 고여있을 적대감을 떨쳐버리기가 쉽지 않다. 어떤 그릇된 명분이나 종교적 맹신은 그것의 주술이 걷히고 나면 떨쳐버릴 수 있을 것만 같다.그러나 우리들 마음속에 지워지지 않을 더께처럼 앉은 적대감은 그리 쉽게 떨쳐버릴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노릇의 어려움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고 우리가 만들어 가는 세상의 복합적인 힘이 너무 무겁게 다가와,어떻게 하면 이 숨막힐 듯한 속도전의 세상에서 자신만의 쉼터를 만들 수 있을까,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다.
  • 「제네바 합의」/정부내 북핵대응 강경기류

    ◎“잘못끼운 단추” 비판론 급부상/대북협상서 한국 소외는 실책/핵과거 규명 불능… 위협도 여전/새안보팀 “미 뜻대로 일방양보 안한다” 단호 제네바합의는 우리에게 무엇인가.그것은 과연 북한 핵문제를 해결하는 최선의 방안인가.이러한 근본적 의문이 북한 핵문제를 담당하고 있는 정부 일각에서 조심스럽게,그러나 진지하게 제기되고 있다. 지난 93년 봄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하면서 고조된 한반도의 핵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북­미간의 3단계 협상을 거쳐 나온 해결책이 제네바 북­미 기본합의문이다.한국과 미국 정부는 지난해 10월 21일 제네바합의가 이뤄진 뒤 북한 핵문제가 명쾌하게 해결된 것처럼 발표하기도 했다.그러나 합의후 6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핵개발 재개를 공언하는 북한의 핵위협은 여전하다는 현실이 정부내 강경분위기를 만들어가는 것 같다. 최근 미국의 공화당 의원들은 제네바합의 6개월간의 공과를 평가한 바 있다.미 의원들은 ▲북한의 핵개발을 동결시켰고 ▲국제원자력기구(IAEA)보다 강화된 핵사찰을 실시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을 공으로 돌렸다.반면 ▲특별사찰의 지연으로 북한이 핵개발할 시간을 벌게했으며 ▲북한이 경수로만 받고 핵카드를 계속 사용할 경우 대책이 없다는 것이 결점으로 지적됐다. 국내에서의 평가도 대체로 이와 비슷하다.다만 정부는 공식적으로는 이러한 평가를 접어두고 제네바 합의구도에 따른 북한핵 문제해결을 계속 모색하며,미국측이 제안한 갈루치­강석주 회담에 실낱같은 기대를 걸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제네바합의에 회의를 갖고 있는 강경론자」들의 생각은 다르다.미국측이 만든 제네바합의의 성적표에 결정적 불만 몇가지가 추가된다.우선 이들은 제네바합의라는 것이 북한의 「벼랑끝 전술」에 말려든 미국이 우리측의 일방적인 양보를 얻어내 만들어진 산물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또 제네바합의로는 북한의 과거 핵개발에 대한 투명성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문제점을 제시한다.그리고 무엇보다도 북한 핵문제의 당사자인 우리가 북한과의 협상에서 소외됐다는 점을 지적한다. 나웅배 부총리 겸 통일원장관은 21일 한 강연회에서 이러한 점을 지적하며 『미국 의사를 따라갈 수밖에 없는 제네바 합의구도는 깨져야 한다』고 공언했다.나부총리의 발언은 정부내 「강경론자」의 움직임이 물밑에 숨어있지만은 않다는 상황을 시사해 준다. 지난 연말의 개각에서 대폭 교체된 외교안보팀의 성향은 제네바 합의를 만들어낸 「온건팀」쪽보다는 이러한 생각을 가진 「강경」쪽에 가깝다는 것이 일반적 평가다.따라서 제네바합의 당사자인 갈루치­강석주 북미 회담에 대해서도 비판적 시각을 가진 당국자들이 많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한국형 경수로와 한국의 중심적 역할이란 것이 우리로서는 양보할 수 없는 원칙이지만,동시에 북한으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제안』이라면서 『제네바합의의 이행은 결국 남북한이 타협할 수 없는 원칙을 놓고 시간만 끌고 있는 과정』이라고 혹평했다. 문제는 이러한 입장을 가진 측이 제네바합의를 대체하기 위해 내놓을 수 있는 대안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이들은 북한과의 협상에 한국이 직접 참여할 수 있어야 하며,핵문제와 관련해서 우리가북한이나 미국측에 더이상의 양보를 해서는 안된다는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다.그러나 이러한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지는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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