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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느 옛 선비의 공직관/양태진 영토문제연구가(굄돌)

    조선조 중기 김수팽 형제는 미관말직에 있었으나 직분에 충실해 칭송이 자자했다.수팽이 하루는 급히 처리할 일이 있어 공문서를 가지고 상관의 집을 찾으니 마침 손님과 바둑을 두고 있었다.인사를 하니 머리만 끄덕일 뿐 바둑에만 열중하고 있었다.기다리다 못해 수팽은 바둑판을 쓸어버렸다.그리고는 곧바로 무릎을 꿇고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라고 사죄하고 급한 결재사항에 관해 아룀으로써 결재를 받아 곧바로 다른 아전에게 서류를 넘기고 사표를 제출하니 선공후사를 실천한 수범자라 하여 사표가 철회되었다. 이 당시 나라에서는 민가의 처녀 가운데 궁인을 선발하였는데 이는 국법으로 정해져 있었다.마침 수팽의 딸이 궁인으로 뽐힘에 그는 신문고를 두드려 임금께 그 폐단을 직소하니 즉시 이 법을 폐지하게 함으로써 수팽은 위민입법에 공헌하였다.어느날 수팽이 숙직을 하는데 환관이 느닷없이 긴급히 일금 10만량을 지출하라고 요구해 왔다.환관의 독촉이 심할수록 수팽은 절차를 차근차근 밟아 진행해 환관을 화나게 하였다.환관은 임금께 고해 수팽을 즉시 파면 하옥시켜야 한다고 하였으나 임금은 전후사정을 듣고 난 후 직분에 충실,적법준행한 관리라 하여 특진시켰다. 이렇듯 수팽이 올바르고 기개있는 품격으로 공직을 수행할 수 있었던 것은 강직한 어머니의 가르침과 생활관에 있었다고 한다.수팽이 어렸을때 어머니가 아궁이 속에서 금덩이를 발견하자 아무도 모르게 아궁이속에 다시 묻어버리고 이사를 해버리고 말았다.얼마후 이 사실을 남편에게 말하고 또한 자식들에게는 『벼락부자가 되는 것은 상서로운 일이 아니며 횡재는 횡액을 낳으니 사람은 언제나 정당한 노력의 대가로 살아가야 한다』라는 신념하에 자식들을 교육시켰다. 이 이야기는 정조때 추사의 문하에서 수련을 쌓아 시인으로 화가로 명필로 이름이 높았던 우봉 조희용의 사외사적 열전이라 할 수 있는 호산외사에 실려있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교훈이 되지 않을까 하여 소개해 보았다.
  • “무형전력 극대화로 강군 육성”/전군지휘관회의

    ◎사병 삐삐·현금카드 회수 국방부는 5일 상오 김동진 국방장관 주재로 합참의장,각군 참모총장 등 주요 지휘관들이 참석한 가운데 전군 주요지휘관 회의를 열고 내년도 국방정책의 방향 및 군기강 확립 방안 등에 관해 집중논의했다. 김장관은 이날 훈시 및 장관 지휘서신 1호를 통해 『향후 1∼2년이 안보의 최대 취약기로써 군은 북한의 어떠한 도발에도 즉각 대응할 수 있는 태세를 완비함과 아울러 장병의 무형전력 극대화를 위해 최대의 노력을 경주해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장관은 『군의 무형전력 극대화는 사기,군기,단결,신념을 강화함으로써 달성된다』며 『강한 훈련을 통해 자신감을 기르고 편의위주의 부대관리 및 병영생활을 지양하는 동시에 투철한 군인관과 대적관을 확립,군인다운 군인,싸워 이길 수 있는 군대를 육성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방부는 군 기강확립과 관련,일부 사병들이 가진 현금카드와 무선호출기(삐삐)를 회수해 가족들에게 돌려주고 카세트나 소형라디오 등의 소지를 불허하는 한편 빨래방과 노래방,부대내에 설치된공중전화도 자유시간에만 사용토록 제한할 방침이다. 한편 이날 회의에서 지휘관들은 강군육성을 위해 전 장병이 안보상황에 대한 위기의식을 갖고 지휘관을 중심으로 군의 무형전력을 극대화하는 한편 자주적인 방위역량을 조기에 확충하는데 전 역량을 기울여 나가기로 결의했다.
  • 「96클린턴행정부 외교정책…」/토머스 핸릭슨(해외논단)

    ◎“미의 대북정책 너무 유화적이고 무원칙”/핵협상 한·일에 협조유도… 북엔 부당한 보상 미국의 저명한 정책연구소인 후버연구소는 최근 펴낸 「96년도 클린턴 대통령의 외교정책­소말리아,보스니아,아이티,북한정책」이란 보고서를 통해 클린턴 미국대통령의 외교정책이 원칙없이 표류하고 있다고 신랄히 비판했다.선임연구원 토머스 핸드릭슨이 작성한 이 보고서는 특히 클린턴행정부의 북한정책이 너무 유화적이고 무원칙적이라고 지적하고 한미 공조와 힘에 바탕을 둔 대북 정책을 펴줄 것을 주문했다.다음은 이 보고서중 북한부문의 요지. 클린턴 대통령은 전임기간중 외교면에서 4가지 주요 문제점을 다루어왔다.소말리아,보스니아,아이티 그리고 북한 등이 그것이다.그러나 클린턴행정부는 이 지역문제들을 처리하면서 결단력이 부족하고 애매모호한 모습들을 보여줬다.쇠퇴했지만 여전히 매우 위험한 북한을 다루면서 클린턴행정부는 수시로 정책을 수정시켜왔다.게다가 북한과의 핵협상을 통해서는 미,일,한국의 협조를 유도하면서 북한에게는 부당하게 많은 보상을 안겨주었다. 북한은 제네바 핵회담 성사의 대가로 5만t의 난방용 중유를 제공받게 됐다.또 다른 부수입으로 미국과 북한에 연락사무소를 개설키로 했는데 이는 북한이 오랫동안 갈구해오던 것이다. IAEA사찰은 최소한 5년동안 연기돼왔다.더구나 그 핵협상에서는 북한의 대륙간 탄도미사일에 대한 조항을 빠뜨리는 실수도 있었다.북한의 미사일위협은 적어도 1개이상의 핵폭탄 제조에 충분한 플루토늄 생산가능성과 맞물려 점차 위협을 더해가고 있다. 미국의 대북한 접근에는 여러가지 우려가 나오고 있다.첫째 팀스피리트 훈련을 취소한데 대해 반대·우려하는 목소리가 많다.응분의 대가도 없이 이를 취소,북한의 기습공격에 적절히 대응하는데 대한 우려를 높였다.두번째로 클린턴행정부는 카터가 중재자의 역할로 북한에 가 협상하기 전부터 IAEA의 사찰은 고위급회담이 열리기 전에 행해져야할 전제조건이라고 주장했었다.이 강경노선은 그러나 협상이 진행되며 오래지 않아 잊혀졌다.클린턴의 협상대표들은 IAEA가 사용후 연료봉에 대한 사찰을 실시하기 이전에 북한과 연락사무소를 설치키로 합의해버렸다.세번째는 새로 건설될 경수로가 기존의 흑연감속로보다도 더 많은 플루토늄을 생산할 수 있다는 우려다.물론 발생열의 절대량에 비교한 생산량은 경수로가 적지만 경수로의 규모가 워낙 크기 때문에 전체적인 생산량은 더 많을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클린턴행정부가 더 많은 플루토늄을 생산할 수도 있는 이 협상을 왜 했을까 하는 의문점이 생긴다.그 답은 클린턴 행정부는 이 협상안이 이행되기 전에 2기 임기도 끝나 백악관을 나설 것이라는 계산을 했다는 가정에서 찾을 수 있다.그 결과 클린턴 다음의 행정부는 보다 더 심화된 북한의 위협에 직면할 것이다. 제네바협상 성사시기는 1994년 미의회선거를 2주일 앞둔 시점이다.클린턴은 북한의 위협을 해결하지 않은채 선거에 임할 경우 선거에 미칠 악역향 때문에 협상타결을 서둘렀을 것이란 지적이다.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클린턴은 미국의 안보를 정당의 이익 때문에 희생시킨 것이다.북한에 핵발전소가 들어서는 한 그것은 미국 핵정책의 한 예외로 남을 것이고 그렇게 됨으로써 미국은 핵발전소를 가진 다른 나라들이 미국의 질서를 따라오도록 만들기가 어려울 것이다. 미국이 스탈린주의의 북한의 문을 열기위해 계속 유지해야할 정책은 다음과 같은 두가지의 전제조건이 갖춰져야 할 것이다.그것은 미국의 정책은 힘을 갖춘 위치에서 행해져야 할 것이며 그에 상응하는 적절한 결과가 평양으로부터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워싱턴은 평양과 거래를 하면서 우방인 한국과의 관계에 손상을 입혀서는 안된다. 지금 클린턴의 첫임기를 끝내는 시점에서 그가 처음 대통령직을 맡을 때와 같은 의문점이 제기된다.즉 도대체 세계 정책을 수행할 때 미국의 역할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워싱턴은 국방비를 증가시켜 강력한 군사방어체계를 유지해야 한다.튼튼한 방위력만이 미국우방과 해외에서 미국의 신념을 지키고 평화를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클린턴은 미국의 주요 위협은 사라졌다는 가정 아래 군사비를 줄였고 그것은 미군의 능력을 저하시켰다.클린턴이 소말리아나 보스니아 그리고 북한 등에서 비교적 작은 규모의 작전을 수행했다.그러나 앞으로는 보다 심각한 도전이 전개될 것이다.견고한 지도력과 미국의 힘은 냉전시대에도 매우 중요했지만 지금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미 후버연 선임연구원/정리=최철호 기자〉
  • 증언 의무 다해야/주명두 변호사·목사(굄돌)

    우리나라 형사소송법은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증인이 될 의무가 있음을 규정하고 있다.모든 국민이라 함은 지위가 높건 낮건,남녀노소,가진 자건 못가진 자건,어떤 종교적·정치적 신념을 가진 자건 이를 묻지 않는다는 의미이다.만약 그가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데 중요한 사실을 친히 경험하여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증인이 될 법적 의무가 있는 것이다.전직대통령이 법원의 증인소환에 거듭 거부하면서 그 거부이유를 대통령의 재임중 행위에 대해 해명하면 역사에 나쁜 선례를 남긴다고 하였다.분명히 그 이유에는 일리가 있다.대통령이라는 국가최고의 직에 있다 보면 많은 고급비밀을 알고 있을텐데 이러한 점을 법정에 서서 증언을 한다면 역사에 나쁜 전례를 만드는 것임에 틀림이 없다.모든 국민에게 책임지워진 증언의 의무가 더 중요한 초소송법적 이익을 침해하는 경우에까지 이른다면 이것 또한 정의가 아닐 것이다.다행히도 우리 법은 이러한 초소송법적 이익이 있는 경우에는 증언할 의무를 면제해주도록 친절하게 규정하고 있다.즉,공무원 또는 공무원이었던 자가 그 직무에 관하여 알게 된 사실에 관하여 본인 또는 당해공무소가 직무상 비밀에 관한 사항임을 신고할 때 그 사람은 증언을 거부할 수 있도록 하였다.이에 해당되지 아니한 사람은 모두가 증언할 의무가 있다.전직대통령이 증언을 하게 될 내용이 이게 해당된다면 증언을 거부하는 것은 당연하다.그러나 이에 해당되지 않는다면 이번 증언거부가 증언의 의무가 있는 사람도 끝까지 버티기만 하면 과태료 10만원으로 때울 수 있다는 또 하나의 나쁜 선례를 만들 수 있다.미국의 경우 빌 클린턴을 비롯하여 지미 카터 대통령 등이 현직에 있을때 증언한 바 있다. 이들의 증언은 대통령이라도 법에 정해진 증언의 의무를 저버릴 수 없다는 좋은 선례를 미국역사와 미국 국민에게 남겼는데 우리나라와 좋은 대조를 이룬다.
  • 대중매체세미나… 김양희 연구원 주제발표

    ◎“TV 저녁9시뉴스 남성앵커 주도”/방송심의도 여성비하·차별에는 관대 정부는 지난해 10월 「여성의 사회참여확대를 위한 10대과제」를 발표하면서 「대중매체를 통한 성차별적 의식 개선」이라는 정책과제를 설정,프로그램에 나타나는 성차별적 요소를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이와 관련,정무제2장관실은 성차별지표 시안을 마련,22일 서울 불광동 여성공동의 장에서 「대중매체의 성차별 지표활용방안 세미나」를 연다.「TV의 여성차별 지표」를 주제로 시안을 프로그램에 적용해 대중매체의 성차별의식을 드러낸 김양희 여성개발원 책임연구원의 발제문을 요약한다. 미디어 조직의 성 평등한 고용관행 및 제작관행을 유도하기 위해서 서구에서는 다양한 정책적 시도를 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이렇다할 시도가 없었다.대중매체의 성차별 관행에 대한 모니터가 어느 때보다 절실히 요청되는 현실에서 TV의 여성차별문제를 종합적으로 나타내는 지표체계를 개발,정치적 상징성이 큰 뉴스와 파급 영향력이 높은 드라마를 분석해보았다. TV의 9시뉴스 다섯편을 무차별 선정,분석해본 결과 취재기자·인터뷰대상·초점보도 대상 등이 거의 모두 남성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평균 20.3명의 취재기자 중 여성 1.6명,인터뷰대상 21.5명 중 여성 4.4명에 불과했다.남녀 한명씩 나오는 앵커의 경우 시작멘트와 끝멘트는 모두 남성이 맡으며 평균 31.1개의 뉴스 아이템중 여성이 12.05개만을 맡는등 뉴스의 진행을 남성앵커가 주도했다.정치뉴스는 물론,문화뉴스를 제외한 거의 모든 중심뉴스를 남성앵커가 더 많이 보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비문제를 보도할때 여성을 사치성 소비재의 주범으로 취급하는 경향,성폭력문제에서 피해여성의 책임을 강조하는 경향,여성의 신체를 상품화하는 접근 등 여성차별적 관점이 눈에 띄었다. 한편 KBS 주말극「목욕탕집 사람들」,일일극「사랑할때까지」 등 드라마를 대상으로 한 분석에서는 여성인물들의 특징이 「감정적,낭만적 성향」「여성적 이미지,외모」나 「열망,야망이 없다」로 나타나는데 비해 남성인물들은 「강한 야심」,「강인한 신념」 「소탈,속넓은」 「독립적」 등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았다.두 드라마 모두 갈등은 남녀관계나 남자들간 관계에 비해 여자들간의 관계에서 높게 나타났으며 남녀가 상호작용할 경우 남성우위인 경우가 월등해 드라마가 성평등한 관계의 정립에 협조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양 드라마에서 가장 자주 나타난 차별적 가치는 가부장중심성,남존여비,남아선호,여성비하 등이었으며 이밖에 여성을 유아적이고 사치스럽게 그리는 경향과 모성 및 현모양처 이데올로기의 지나친 강조도 문제점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의 방송심의가 지나친 폭력성과 선정성,비속한 언어사용 등은 강하게 제재하면서 여성차별에 대해서는 관대했던 점등에 비춰 앞으로 심의규정 및 심의내용의 변화에 성차별 지표가 적극 활돼야 할것으로 보인다.〈정리=손정숙 기자〉
  • 연대 동서문화연 국제학술회의… 미 마빈 다이몰리 주제발표

    ◎“미국인들 재미한인 이방인으로 인식”/주거지 고립·「부자」 등 고정관념에 범죄표적 「21세기 동북아시아의 역사인식과 평화」를 주제로 한 국제학술회의가 15일 연세대 알렌관에서 개막됐다.연세대 동서문제연구원이 주최하고 공보처 해외공보관과 한국언론회관이 후원한 이 학술회의는 16일에는 서울 스위스그랜드호텔로 자리를 옮겨 열릴 예정.마빈 다이몰리 전 미국 하원의원이 16일 발표할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미국의 이미지」를 요약한다. 한국전쟁이 발발하기까지 한국을 아는 미국인은 거의 없었다.한국인 역시 미국에 유학온 학자들을 제외하면 미국과 미국인들에 대해 제대로 알지를 못했다. 그러나 한국전쟁이 끝난뒤 새로운 현상이 발생하게 된다.1950년대 후반부터 70년대까지 한국인들은 대규모로 미국으로 이주했다.그러나 당시 한국인들은 준법적이었고 종교적이었으며,미국인들의 일자리를 빼앗지도 않았고 미국정치인들을 위협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차츰 이민자가 늘어나면서 새로운 혁명이 일어났다.한국인들은 조그만 사업들을 시작하며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60∼70년대 도시폭동이 일어나며 유태인들은 상점을 한국인들에게 팔기 시작했다.한국인들의 불안정한 생활은 좋지않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로스앤젤스에서는 거친 손님들과 한국인들 사이에 충돌이 일어나고,뉴욕의 빈민가에서는 한국상점들이 흑인들을 고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시위를 하기도 했다. 이러한 가운데 「로드니 킹 사건」이 터지고 연속적으로 폭동이 일어났다.대략 1천6백개의 한국인 상점이 불에 타거나 피해를 보았다.지금까지도 이들의 상당수는 다시 일어서지 못하고 있다. 자력갱생했던 한국인들은 처음으로 자신의 재생을 위해 그들의 정부에게로 관심을 돌리기 시작했다. 이러는 동안 한국에서는 새로운 민주주의가 출현하고 있었다.이제 미국의 한인 2세들은 한국을 새로운 기회의 장소로 인식하고 있다. 이제 새로운 문제들이 제기되고 있다.미국의 한국인들은 한국과 자신들의 이미지 개선을 위해 무슨 일을 할 것인가를 궁리하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의 여정은 매우 험난할 것이다.진정한 문제는한국의 미래와 미국에게 투영되는 한국의 이미지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인들은 모두 강한 국민들이다.그러나 미국인들이 한국인들에게 갖고 있는 이러한 존경심과는 별도로 개발 초기 캘리포니아에 들어왔던 중국인이나 일본인 만큼 한국인들을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미국 한인들은 거주지역의 고립 등으로 이방인으로 인식되고 있다.고립주의는 또 「모든 한국인들이 부자」라는 고정관념을 유발했다.한국인에 대한 고정관념은 또 화려한 몸치장과 비싼 자동차에서부터 연유한다.결국 이러한 인상들은 한국인들이 범죄의 좋은 목표로 만들었다. 그러나 전후에 출생한 새로운 한국인 세대가 성장하고 있다.그들은 젊고,미래정신을 가지고 있으며,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을 갖고 있다.그들이 다소 주춤했던 한국의 후퇴적 양상을 다시 되돌릴 수 있을 것이라는데 대해 누구도 의심하지 않고 있다. 결국 최종적으로 가족과 종교·노동과 교육에 대한 한국인들의 가치는 확산되어 갈 것이다.
  • 남파간첩 깐수 전향한다/변호인 “오늘중 전향서 재판부에 제출”

    ◎“공산주의 망신 벗고 자유롭게 학문연구 하고파” 「무하마드 깐수」 교수로 위장,12년동안 국내에서 암약하다 지난 7월 검거,기소된 고정간첩 정수일(62·전 단국대 교수)이 전향한다.. 정의 변호인인 김한수 변호사는 12일 『정수일이 최종적으로 전향을 결심했으며,오는 14일 열리는 공판에서 공식적으로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 김변호사는 『정이 전향하게 된 가장 큰 동기는 「학문 연구를 계속하고 싶다」는 것』이라며 『현재 정과 구체적인 전향 절차에 대해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김변호사는 『정이 전향을 망설여온 것은 공산주의에 대한 신념이 투철해서라기 보다는 수십년간 따라온 이념을 하루 아침에 바꾸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라며 『한국 고대사 분야에서 탁월한 실력을 인정받고 있는 정이 그동안 준비해온 저서 「고대동서교류사」 등을 완성하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은 검거된 직후 『끝까지 노동당에 충성하겠다』며 전향을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지난달 8일 김변호사가 『최근 정이 북한에 대해 맹목적인 신앙을 버린 것 같다』고 말하면서 전향여부에 대해 기대를 모았었다. 이에대해 담당재판부인 서울지법 형사 합의23부(재판장 전봉진 부장판사)는 『남파 간첩에 포섭된 국내간첩이 전향한 전례는 있지만 북에서 정식으로 지령을 받고 남파된 간첩이 재판 과정에서 전향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정수일이 전향을 공식적으로 밝히면 양형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밝혔다. 정은 지난 34년 중국 길림성 조선족 가정에서 태어나 모로코 주재 중국외교관(2등 서기관) 생활을 하다 63년 입북,74년부터 5년동안 간첩 교육을 받았다.그뒤 아랍인과 외모가 흡사하다는 점을 이용,2차례 국적 세탁 과정을 거쳐 84년부터 12년동안 국내에서 암약해 왔다. 정은 북한에 처자를 남겨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지난 80년대 말 한국에서 결혼한 윤모씨(45·간호사)가 김변호사와 함께 정의 전향을 설득해 왔다.
  • 외계 생명체 과연 존재하나/김영사간 데이비스의 「우리뿐인가?」

    ◎「하나뿐인 인간」에 대한 끈질긴 의문 해부/“우리는 장엄한 우주적 과정의 일부일뿐” 외계생명체의 존재에 대한 믿음과 탐사는 그 역사가 고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일찍이 기원전 4세기 그리스의 철학자 에피쿠로스는 헤로도투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썼다.『우리가 사는 이 세계와 같은 세계,그리고 우리가 사는 세계와 다른 세계 모두 무수히 존재한다.왜냐하면 숱한 원자들이 광대한 공간 속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다….우리는 이 세계에서 볼 수 있는 피조물들이 다른 모든 세계에서도 존재한다는 것을 믿지 않으면 안된다』외계 생명체는 과연 존재하는 것일까. 최근 도서출판 김영사에서 펴낸 「우리 뿐인가?」(원제 Are We Alone?·이상헌 옮김)는 인류의 가장 오랜 물음 가운데 하나인 외계 생명체의 존재에 관한 궁금증을 하나씩 풀어가는 과학교양서로 관심을 모은다.지은이는 「현대물리학이 발견한 창조주」 「현대물리학이 탐색하는 신의 마음」 「우주의 청사진」 「초힘」 등으로 널리 알려진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의 과학저술가 폴 데이비스. 외계 생명체 논쟁은 최근 화성의 운석에서 생명체의 흔적을 발견했다는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발표로 새 국면을 맞고 있다.항공우주국의 예산을 대폭 삭감했던 클린턴 대통령은 화성 생명체 발표 이후 새로운 지원을 약속했으며,「화성 글로벌 서베이어」호를 비롯한 우주탐사선들이 잇따라 발사될 예정이다.「외계 생명체 찾기」는 21세기 과학의 가장 중요한 화두가 될 것임이 분명하다. 외계 생명체에 관한 이론적 축적은 현대과학의 성과만은 아니다.그 중심사상은 에피쿠로스,데모크리토스,아리스토텔레스,피타고라스 등 그리스 고대 철학자들의 사유에 뿌리를 둔다.천문학 분야의 경험적 연구가 없없던 이 시대에는 외계에 대한 탐구가 대부분 사색을 통해 이루어졌기 때문에 철학적 논쟁이 성했다.하나의 예로 아리스토텔레스는 『여러개의 세계는 있을 수 없다』고 단언한 반면 피타고라스 학파는 지구의 피조물 보다 우수한 존재가 달에 살고 있다고 주장했다.그러나 그리스·로마시대 이후 서양의 정신을 지배한 기독교적 세계관은 외계 생명체,특히인간과 같은 지능적 생명체가 지구 밖에 존재한다는 가정 자체를 종교의 권위로 단호히 물리쳤다.망원경 등 새로운 관측기구의 등장으로 이같은 흐름은 한층 강화돼 19세기가 끝날 무렵까지 이어졌다.이 책에서는 외계 생명체 존재에 대한 부정론으로 브랜던 카터의 「인간적 원리」,엔리코 페르미의 「그들은 어디 있는가」,리처드 도킨즈,스티븐 제이 굴드의 「신다윈주의의 우연성」 논리 등이 소개된다. 외계 생명체에 대한 인간의 끈질긴 탐사노력은 92년 시작된 미국 항공우주국의 대규모 「외계 지능체 탐사(Search for Extraterrestrial Intelligence,약칭 SETI)」작업에 의해 커다란 전기를 맞았다.이 프로젝트가 외계로부터 온 전파신호나 메시지를 탐지하는데 성공해 외계의 「형제생명체」를 발견한다면 인류는 혹시 불확실성의 혼돈속에 빠지지나 않을까.이와 관련,데이비스는 우리의 세계관과 가치관,신념체계의 일대 지진을 예고하되 결코 희망의 단서를 잃지 않는다.『외계 생명체의 발견은 과학이 약탈해간 인간의 존엄성을 인간에게 되돌려 주고 인간이 창조의 중심이 아니라 거대하고 장엄한 우주적 과정의 일부일 뿐이라는 점을 겸허히 받아들이게 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게 지은이의 결론이다.
  • 여야 “정신무장 전쟁”/대선겨냥 당직자 연수·단합대회 봇물

    여야의 「정신무장 전쟁」이 막이 올랐다.내년 대선을 13개월 앞둔 시점에서 여권은 「정권재창출」을,야권은 「정권교체」의 신념을 당직자들에게 불어넣고 있다. 신한국당은 금년말까지 당직자와 중앙상무위원,직능단체회원 등 핵심요원 2만여명의 연수교육을 계획하고 있다.이에따라 지난달 13일부터 천안 중앙연수원에서 모두 34회로 나눠 「대선승리」의 각오를 다지고 있다. 국민회의도 매월 3주 금요일을 정신무장일로 잡았다.근무시간도 1시간 연장하는 「비상체제」를 선언했다.소속의원과 당직자 전원의 책상과 승용차에도 「정권교체­해야한다.할수있다」는 문구의 스티커를 붙였다. 자민련의 대대적 단합대회도 눈에 띈다.8일 부여 청소년 연수원에서 2천여명이 참가한 연수를 가진데 이어 오는 14일과 21일에는 충북 속리산 유스타운에서 1천400여명의 수도권 지구당 당직자 단합대회가 열린다.
  • “아빠… 내아들아”… 유족들 오열/전사 장병 합동분향소 이모저모

    ◎오 대령 아들 “추석때 뵌것이 마지막 될줄이야”/“진작 제대했어야 했는데” 서 대위 누이 맞잊어…/외아들 강 상병 어머니 “내소망 사라졌다” 혼절 5일 공비소탕작전중 전사한 오영안 대령,서형원 대위,강민성 상병 등의 사체는 이날 하오6시쯤 각각 헬기와 앰뷸런스로 합동분향소가 마련된 서울 국군수도통합병원 영안실로 옮겨졌다. 김영삼 대통령이 하오6시55분쯤 빈소를 찾은데 이어 7시15분쯤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가 방문했다. ○…하오2시쯤부터 영안실을 지키던 고 오대령의 미망인 윤옥순씨(45)는 줄곧 빈소 끝에 앉아 가족들의 손을 잡은채 고개를 떨궜고 혁재(19)·혁진(17)형제도 말을 잃은채 충혈된 모습으로 상주의 자리를 지켜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두형제는 『지난 추석때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뵈었다』며 『그날 「엄마말씀 잘듣고 공부 열심히 하라」고 하셨는데 그게 마지막이 될줄 몰랐다』며 오열. 가족들은 뇌출혈로 인천의 한 병원에 입원중인 오대령의 8순노모에게 소식을 전할 일이 막막하다며 한숨. 오대령의 기무사 동기 10여명은 『성격이 좋아 친구들이 많았던 오대령은 이날도 새벽에 현지에 도착,업무를 파악할 만큼 매사에 적극적이었다』며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했다. ○…고 서대위의 가족들은 하오2시쯤 전사소식을 듣고 급거 병원에 도착,서대위의 영정을 보고 한동안 망연자실하다 통곡. 서대위의 두 누이는 『진작 제대했어야 했는데…』라며 회한의 눈물을 쏟았고 맏형 용원씨(49)는 『서대위는 신념이 확실한 군인이었다』고 회고. ○…1남2녀의 막내인 고 강상병의 유족들은 하오 늦게 빈소에 도착.울음을 터뜨리며 영안실에 들어선 어머니 김문자씨(58)는 외아들의 영정을 끌어안고는 『이제 내 소망이 사라졌다』고 말한뒤 혼절. 후두암을 앓고 있는 아버지 원조씨(65)는 『민성이가 입대전 아르바이트로 모은 1백50만원을 어머니께 드릴 만큼 효자였다』며 『이달중 휴가를 온다고 해 오랜만에 얼굴을 볼 수 있을까 기대했는데…』라며 말을 흐렸다.
  • 나남출판사서 조지훈전집 전9권 완간

    ◎시인 조지훈/업적·면모 총체적 조명/문화사학자로서 국학에 대한 애정 초점/전통·새로움 바탕 한국사상 창출 발자취 한국 현대시사에 큰 봉우리를 이루고 있는 청록파 시인 지훈 조동탁(1920∼1968).그의 시세계뿐 아니라 한국학의 토대를 마련한 국학자로서의 업적,불의에 맞서 싸웠던 지사로서의 면모 등을 총체적으로 조명한 「조지훈전집」(전9권·나남출판사)이 완간됐다. 지난 3월 1차분으로 네권(제1권 「시」,제2권 「시의 원리」,제7권 「한국문화사서설」,제9권 「채근담」)이 나온데 이어 이번에 나머지 다섯권(제3권 「문학론」,제4권 「수필의 미학」,제5권 「지조론」,제6권 「한국민족운동사」,제8권 「한국학 연구」)이 출간된 것.홍일식 고려대 총장을 비롯해 최동호·인권환·이동환·김인환 고려대 교수,동국대 홍기삼교수,연세대 최정호 교수,서울대 이성원 교수,한양대 박노준 교수 등 9명이 편집위원으로 참여했다.『항상 현실을 토대로 사물을 구체적으로 파악하려 했고,멋을 척도삼아 인간을 전체적으로 포착하려 했던 「전체가 부분의집합보다 큰 인물」인 조지훈의 전체상을 살핀다』는 것이 이들이 밝히는 전집발간 목적. 이에 따라 이번 전집에서는 민속학과 역사학을 두 기둥으로 하는 한국문화사를 스스로 자신의 전공이라고 여겼을 만큼 국학분야에 애정을 보인 「문화사학자 조동탁」 교수의 학문세계를 비추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전통과 새로움의 조화속에서 한국사상을 창출해내려 했던 지훈의 학문적 자취는 「한국민족운동사」와 「한국문화사서설」,그리고 「한국학연구」 등 3권에 그대로 드러나 있다. 「한국민족운동사」는 갑신정변(1884)에서 을유광복(1945)에 이르는 60년간의 한국근대민족운동사를 정리한 것이며,「한국문화사서설」은 한국의 종교·철학·예술을 중심으로 한 정신사 분야의 논문을 모은 책이다.「한국문화사서설」에서 지훈은 한국예술의 원형을 「힘의 예술」「꿈의 예술」「슬픔의 예술」「멋의 예술」등 네 범주로 나눠 설명한다.또 신라의 예술은 고전주의적이고 조각적이며,고려의 예술은 낭만주의적이고 회화적이며,조선의 예술은 자연주의적이고 음악적이라는 주장도 편다. 「한국학 연구」는 불모지나 마찬가지였던 광복이후 한국 민속학의 체계를 잡게 한 사람이 바로 지훈임을 보여주는 책.누석단,신수,당집 등 우리 민속과 신앙에 관한 관한 깊이있는 논문들이 실렸다.이 책에는 또 한국적 미의식의 구조를 밝힌 참신한 시각의 글들이 「멋의 연구」란 제목으로 묶여져 있어 지훈의 미적 이념을 엿보게 한다. 매천 황현과 만해 한용운을 이어 지훈은 지조를 목숨처럼 중히 여기는 지사의 전형을 보여준 인물로 평가된다.지훈은 일찍이 오대산 월정사 외전강사시절 일제가 싱가포르 함락을 축하하는 행렬을 주지에게 강요한다는 말을 듣고 종일 통음하다 피를 토한 적이 있었다.또 자유당의 독재에 아부하는 지식인의 세태는 지훈을 한시대의 가장 격렬한 비판자로 만들었다.「지조론」은 이처럼 선비로서의 기개와 절의를 드날렸던 지훈이 민족 전체의 생존을 위해 토해낸 뜨거운 양심의 기록이다.『지조란 순일한 정신을 지키기 위한 불타는 신념이요,눈물겨운 정성이며,냉철한 확집이요,고귀한 투쟁』이라는지훈의 지조관은 엄격하기가 추상열일같다. 이밖에 「문학론」은 문학일반에 관한 지훈의 여러 글들을 묶은 것으로,지훈의 시세계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그의 실형 세림 조동진의 유고시집이 부록으로 실려 사료적 가치를 높여주고 있다.이 책에 실린 글들은 평소 『문학관은 곧 예술관이요 인생관이며 세계관이기도 하다』라고 말했던 지훈의 문학정신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적잖은 실마리를 제공해준다.
  • 정치학회 포럼… 이남영·김선종 교수 주제발표

    ◎“내각제 도입 만성적 정치불안 자초”/차기대통령 국민대화합 역량 갖춰야” 한국정치학회는 2일 하오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21세기의 정치제도와 정치지도자」라는 주제로 정치포럼을 열어 차기 정부의 과제와 차기 지도자의 덕목을 놓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이남영 숙대 교수와 김선종 강원대 교수의 주제발표 내용을 요약한다. ▲「21세기의 새로운 정치지도자상」(이남영 교수)=첫째,차기 대통령은 국민에게 신뢰받을 수 있으며 정치적 경륜을 가진 사람이어야 한다.신뢰회복이야말로 우리 정치의 장에서 대화와 타협,국가적 사안에 대한 초당적 대응을 가능케 하는 필요조건이다. 지도자 선정과정에서 그 정치인이 과거 민주화 투쟁시절에 어디에서 무엇을 어떻게 했는가를 묻는 것은 중요하다. 둘째,사회적 갈등을 해소시켜 화합을 유도할 수 있는 자질을 가진 사람이어야 한다.대내적으로 낭비적 분열을 지양하여 국가적 차원의 문제에 대해 여야가 협조하는 정치적 분위기를 창출하고 이를 바탕으로 대외적으로 자신있게 국가이익을 위한 정책을 펴나가야 한다. 또 대통령은 지역주의에 의해 피해보는 지역이 없도록 중간자의 입장에 서야 한다.대통령 스스로 한 분파의 수장으로서의 기능을 포기하고 모든 분파들의 이해관계를 조율하는 입장에 서야 한다. 셋째,목표에 대한 강한 신념과 실천력을 가진 사람이어야 한다. 통일문제에 관한한 정치지도자에게 요구되는 것은 통일을 이루겠다는 강한 의지이며 통일을 지향한 결정사항에 대해서는 정치적으로 다소 위험부담이 있더라도 적극적으로 밀고 나가는 강한 실천력을 보여야 한다. 넷째,권력사용을 절제할 수 있고 탈관료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이어야 한다.대통령은 제도적으로 견제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권력을 갖고 있는데다 우리 사회가 아직 권위주의적 정치문화에 젖어있기 때문이다. ▲「21세기를 향한 정치제도 개혁」(김선종 교수)=미국처럼 성숙한 민주적 정치문화가 구조적으로 뿌리내리지 못하고 있다는 이유로 한국에서 대통령제가 꽃을 피울 수 없다는 견해는 결코 타당하지 않다. 권위주의적 정치문화 토양에서 의원내각제를 도입하는 것은 발전이 아닌 쇠퇴로 한국정치를 몰아갈 것이다. 내각제는 정당제도가 일정정도 발전한 나라에서 꽃피울 수 있는 제도다.정당들의 이합집산과 합종연횡이 다반사인 우리에게 내각책임제하의 연립내각은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수시로 흔들릴 것이며 이는 만성적인 정치 불안정을 가져올 것이다. 특히 통일과 체제개혁 등 중차대한 현안을 눈앞에 두고 있는 우리 형편에서 내각제를 도입하는 것은 정치적 위기의 악순환을 자초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지금의 정치사회적 상황은 결코 권력구조 개혁을 둘러싼 소모적인 논쟁을 필요로 하는 때가 아니다.오히려 기존의 제도와 절차가 가치와 안정을 얻기위한 대안을 모색하고 나아가 환경 적응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제도의 구조적 개혁에 국민적 관심을 몰아가야 할 때이다. 중장기적 정치발전과 의회민주주의의 활성화를 위해 정치개혁의 방향을 제시하고 최선의 정책적 대안을 모색하는 것이 중요하다.
  • 무용가 김현자(이세기의 인물탐구:109)

    ◎일체의 형식 거부… 생명·자유를 춤춘다/끈질긴 실험정신… 공연마다 변형춤 창조/5살부터 정식 사사… 발레·현대무 고루 섭렵 2년전 백남준의 초청으로 뉴욕 코트하우스시어터에서 김현자가 「생춤」공연을 가졌을때 뉴욕타임스는 생춤을 「Lived dance」로 표기하고 「무대에서의 빛의 번쩍거림과 깊은 어둠의 교차조차 춤이며 빛의 어둠과 밝음의 존재를 수묵화로 그려낸 춤」이라고 평했다.특히 가야금산조에 맞춘 그의 「묵」과 「샘」은 한국춤에서의 정중동과 동중정을 아름답게 일깨우면서 때론 훨훨 벗고 때론 독수리처럼 훨훨 날면서 비상중의 정지,빛과 어둠속에서의 움직임과 정지를 교묘하게 엇가른다. 중앙대 정병호 교수는 김현자를 두고 이렇게 말한적이 있다.『그는 무한한 창의력과 에너지로 자신의 춤을 추고있다.남의 춤을 흉내내는 춤은 아무리 잘추어도 「좋은 춤」이라고 하기는 어렵다.무용가라면 시의에 맞는 자신의 춤을 만들수 있어야하며 그가 바로 김현자다』 그리고 「현대한국무용」이라는 차원에서 「그의 춤은 단연 빼어나다」고 못박았다. 92년 문예회관대극장에서 「백남준의 퍼포먼스와 김현자의 춤」을 공연했을때도 이를 관람한 도올 김용옥은 「백남준 선생의 해프닝 등 두개의 퍼포먼스가 한무대에 있어야만하는 아무 의미나 커넥션을 발견할수 없었으나」 「얼음덩어리들이 매달려있는 좁은 연단위에서 김현자선생이 추는 춤에대해서는 누구나 좋았다고 생각했고 탁월한 수작이라는데 이의가 없었다」고 그의 「석도화론」에 쓰고 있다. 김현자는 의외성이 많은 무용가다.한군데 머물러 「스스로 고이거나 누적되지 않고」「춤의 완성」을 위한 끈질긴 집념을 불태운다.그의 대명사로 일컬어지는 「생춤」은 이른바 「무와의 대결」이며 시인 김영태에 의하면 「얽히고 설킨 칡넝쿨이 바람에 쓸리고 흔들리면서 춤이 자연의 일부임을 가장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춤」이다. 그는 지금까지의 식상과 타성에서 벗어나 「모든 것을 버림으로써 얻는다」는 신념으로 오늘에 이른 예술가다. ○의외성 많은 무용가 69년 「황진이」부터 82년 대한민국무용제 연기상을 수상한 「열녀문」까지는 그의 선배들이 걷던 전통춤의 맥을 잇는 작업이었고 그때는 철저하게 계산된 스토리가 있는 정교한 극춤을 추었었다.특히나 흰수건을 떠받치고 추는 「살풀이」는 「살을 푸는 그의 떨림이 관객의 피부에 예리하게 촉감」될 정도였고 그의 부드러움은 「안개와 같다」고 찬사하는 이들도 있었다.이후 대한민국무용제 대상작품인 「홰」에 이르러 원로 박용구씨는 「단일하고 통일된 상상력과 구성력을 갖춘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하는가하면 김태원은 신무용의 전통과 밀착된 「신신무용」이란 새로운 용어를 등장시키기도 했다.그의 「춤의 비약」의 기미는 그렇게 태동하고 있었다. 둘째는 87년 럭키무용단을 창단하면서 그는 본격적인 실험정신이 깃든 춤을 선보이고 나섰다.창단기념공연인 「황금가지」는 인위적으로 모자이크된 박제된 춤을 버리고 무용수들이 거의 반라로 무대에 올라 「외설시비」를 불러일으킬만큼 센세이셔널한 충격을 던졌다.「그것이 한국춤이냐 아니냐」는 논란이전에 그의 변형춤은 그가 춤출때마다 하나의 사건으로 무용계를 긴장시켰고 철근골조와 육체의 대비를 그린 「회일」경우는 「강렬하고 자신만만하게 허심탄회를 춤추었다」는 평을 받았다.다음은 수년간 기훈련에 심취하더니 최근 7,8년사이 「인체에 내재하는 자연의 섭리」로 「육체와 정신의 무화」를 꾀한 자연스러운 춤을 끌어내게 되었다. ○럭키무용단 해체 아픔 그는 경관이 수려한 진주에서 태어나 푸르른 남강을 내려다보면서 장래 「강물처럼 춤추는 무용가」가 될것을 꿈꿔왔다.부친은 소설가 이병주씨와 절친하던 김성범씨(전 마산대 교수)이고 그를 실질적으로 무용가로 키워낸 사람은 그의 어머니 조우상달 여사(76)다.만 다섯살이전에 황무봉문하에 들어가 춤을 배웠고 김백봉 송범 이매방 한영숙을 사사, 발레와 현대무용을 고루 섭렵하면서 일찍이 「비범」을 보여 주변의 기대를 한몸에 모았다.무용가답게 아름답고 아담한 체구에 강인한 그의 춤은 언제나 「최고」라는 찬사에 둘러싸여 있었으나 「살아있지 않은 춤, 자신을 일깨우지 못하거나 상투적인 무대형식」을 경계하여 「무위」로 가기 위한 긴 몸부림을겪을 수밖에 없었다.그리고 「자연그대로의 생생한 춤」, 모든 형식에서 벗어나서 생명의 가장 근본적인 기로 추는 「생명의 춤, 자유의 춤」을 달성하게 된 것이다. 그는 정이 많고 대범하면서도 불투명한 것은 참지 못하는 선명한 성격이다.춤에 침몰하여 「우주의 심장에 도사린 춤의 핵심」에 파고들뿐 사교적인 자리에 나타나거나 단체공연에는 비교적 참가하지 않는다.그처럼 철저한 그에게 얼룩이 있었다면 럭키산하의 무용단 창단후 「세계적인 무용단」을 표방하고 밤낮없이 하드 트레이닝을 강행한 것이 단원들의 반발을 산것과 단체를 2년만에 해산한 것, 이로인해 아끼던 제자들과의 결별이 아픔으로 남아있으나 지금도 「공들이지 않고 달콤한 아름다움만을 추구하는 안일한 정신은 용서되지 않는다」고 외면한다. 그동안 부산에 살고있다가 7년전 서울근교인 경기도 하남시 하산곡동에 정착, 부군 정정철씨는 철학과 종교에 심취한 자유인이고 어머니와 아들과 함께 살면서 일주일에 3일은 부산대 강의, 그외엔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집에 머물러 주로 안무와 관련된 사색을 즐긴다. 「묵」과 「샘」이후 지난봄 호암아트홀에서 보여준 그의 「메꽃」은 「예살과 서기를 배제하고 몸으로부터 치솟는 샘물같은 정기와 몸속깊이 스민 묵존을 춤추어」 다시한번 관객의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그러나 「회전하는 버선끝에서는 살풀이나 승무의 무보가 현란하고 사선과 나선형으로 말려 올리는 자진몰이부분은 한층 미의 극치를 이루어」 지난날 김영태가 그의 「살풀이」를 보고 「김현자의 살풀이는 독하고 요기가 서려 한의 끝자락이 강물에 녹는듯하다」던 평을 상기시킨다. 한군데 머무르기를 거부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만들면서도 그것이 한낱 시도나 실험정신이 아닌 「완성된 정품」이기를 원하는 그는 무대 한복판에 박힌 「한덩어리의 보석」인양 언제라도 눈부신 광채를 발하면서 「이시대 찬연한 존재」임을 그때마다 확인시켜 주고 있다. □연보 ▲1947년 경남 진주 출생 ▲54∼74년 황무봉 사사외 김백봉 한상묵 이매방 송범 한영숙 사사 ▲57년 진주개천예술제 특상·한국무용협회 주최 대한민국문화예술상 신인상 ▲63년 이화여대 주최 전국무용콩쿠르 1등 ▲70년 이대 무용과 졸업 ▲75년 김현자 무용발표회 ▲76∼82년 부산시립무용단장 ▲79년 일본 오키나와 한국인위령탑건립 5주년기념 초청공연 ▲82년 논문 「동래 기방무에 대한 연구」로 동아대대학원서 석사 ▲83∼현재 부산대 무용과 교수 ▲83년 김현자무용단 창단,뉴욕 한국문화원 및 호암아트홀개관기념 초청공연,마사 그레이엄센터 하계 연수 ▲84년 뉴욕 아시아소사이어티 및 미국 한스빌본브라운센터 초청공연,머스 커닝햄댄스스튜디오 연수 ▲85∼87년 럭키창작무용단장 ▲96년 아시안게임 개막식 안무 ▲87년 김현자 춤아카데미 설립,서울창작무용제 주관 ▲89년 김현자 「생춤」 발표 ▲92년 「백남준의 퍼포먼스와 김현자의 춤」 공연(문예회관 대극장) ▲94년 한양대서 이학박사,백남준 기획초청 뉴욕 코트하우스극장공연 ▲96년 하와이대 동서문화센터초청 「한국의 소리」,현대춤작가전 「메꽃」 공연(호암아트홀) 〈대표작〉 「황금가지」 「분리에서 합으로」 「윤사월」 「바람개비」 「갯마을」 「여자 새되어 울다」 「보리피리」 「홰」 「하루1,2」 「생춤」 「샘」 「묵」 등 다수 〈수상〉 대한민국무용제 연기상(82년) 대한민국무용제 대상(84년) 부산예술대상(90년) 〈저서〉 「김현자 생춤의 세계」(문학사)
  • 중국 통사 「사기」 국내 처음 완역/도서출판 까치 전7권 펴내

    ◎소장학자 60여명 참여 2년만에 번역 마쳐/신문소설로는 서울신문이 최초 연재중 중국 한무제때의 역사가 사마천(BC 145?∼BC86?)이 편찬한 중국 최초의 세계사적인 통사 「사기(전7권·도서출판 까지)가 국내 처음으로 완역돼 나왔다. 「사기」는 상고시대의 황제로부터 전한의 무제에 이르기까지 중국과 그 주변민족의 역사를 포괄해 기술한 것으로,역대왕조의 편년사인 「본기」 12권,연표인 「표」 10권,부문별 문화제도사인 「세가」30권,개인의 전기집인 「열전」 70권 등 모두 130편으로 구성돼 있다. 그동안 「사기」는 「열전」을 중심으로 작가 김병총씨에 의해 평역된 이후 서울신문에 연재소설로는 처음 소개되고 있으며 완역이 이뤄지기는 이번이 처음.정범진 성균관대 중문과 교수를 중심으로 60여명의 소장 학자들이 참여해 2년여만에 번역을 마쳤다. 「사기」는 역대 중국 정사의 모범이 된 기전체의 효시로 본래 명칭은 「태사공서」.「태사공서」가 「사기」라는 이름으로 굳어진 것은 당나라 때부터다. 사마천은 10세때 이미 옛 전적을 탐독하기 시작했으며,청장년 시절에는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각 지방의 풍습과 역사적 인물들의 기문일사를 수집하는 등 「사서」찬술의 기초를 쌓았다.사마천의 「사기」를 쓰게된 데는 대대로 사관을 배출해온 전통적인 관료가문 출신으로 천문역법과 도서를 관장하는 태사령 벼슬을 지낸 아버지 사마담의 유언이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이릉사건으로 한나라 무제의 미움을 사 치욕스런 궁형까지 겪었지만 사마천은 『하늘과 사람의 관계를 구명하고,고금의 변화에 통달하여 일가지언을 이룩한다』는 신념 하나로 「사기」를 완성했다.집필을 시작한지 15년,이때 사마천의 나이는 55세였다. 「사기」의 첫 머리를 장식하는 「본기」는 세계와 역대 제왕들의 통치이념을 서술한 연대기이며,「표」는 도표형식으로 사건을 기록한 연표다.또 「서」는 봉건사회의 사회적 규범과 제도적 법식에 대해 서술하고 논평한 책이며,「세가」는 춘추전국시대 이후 주왕실의 중앙집권체제가 무너지고 봉국을 세습한 제후들이 발호하던 봉건시대를 배경으로 한 흥망성쇠의 역사다. 국내독자들이 비교적 친숙하게 여기는 것이 바로 「사기」의 마지막 부분을 이루는 「열전」.고대로부터 한대 사회에 이르기까지 제왕과 제후를 제외한 다양한 인물들의 발자취를 전기형식으로 엮은 것으로 인물묘사가 생생해 전기문학의 전범으로 꼽힌다.또 「열전」의 끝 편인 「태사공자서는 「사기」의 체재와 내용,규모에 대해 소상히 설명하고 있어 「사기」전체의 총론구실을 한다. 이번 완역본에서는 무엇보다 동자이음의 독음을 통일시키는데 주의를 기울였다.예를 들어 「적」자는 「적」으로도 「책」으로도 읽는다.또 인명으로 사용될 때는 대부분 「책」으로 읽힌다.이 책은 이처럼 단어의 유래를 찾고 원음을 추적,한서번역본에서 흔히 있을 수 있는 오류를 원천봉쇄하고 있다는데 또다른 미덕이 있다.〈김종면 기자〉
  • 벤처기업 성공사례(G7으로 가는 길:43)

    ◎탄탄한 기술력 불황을 모른다 □터보테크 ·매출액 25% 연구개발 투자 ·산업현장 요구 반영 다품종 소량생산 ·수입의존 컨트롤러 국산화 성공 □큐닉스 컴퓨터 ·생산직 제외 전직원 연봉제 ·학력·성·연령무시 능력별 대우 ·한글·한자·영문 WP로 사무환경 혁신 □메디슨 ·결재란 대폭 축소… 시간낭비 없게 ·기안서 24시간 넘으면 패기 ·세계 초음반진단기시장 20% 장악 □건인 ·“공학 주무대는 실물경제” 89년 창업 ·가정용 CD반주기 「휴맥스」 선풍 주역 ·국내 첫 디저털 위성방송수신기 개발 「기술로 세계를 제패한다」 (주)터보 테크(TURBO TEK)의 장흥순 사장(37)이 밝히는 야심찬 청사진이다. 장사장은 한국과학기술원(KAIST) 전기·전자 박사출신으로 학생신분이던 지난 88년 동료 5명과 사업을 시작했다. 「터보」(TURBO)라는 이름은 「끊임없이 참된 연구를 하는 강력한 젊은이들의 모임」이라는 영자약어로 그가 직접 지었다. 이 회사의 주요 생산품은 CNC(컴퓨터를 이용한 수치제어기)의 핵심부품인 컨트롤러. 컴퓨터와 제어장치를 내장한 「컨트롤러」는 기계를 자동으로 작동하는 두뇌구실을 하는 공장자동화의 필수품이다. ○자칭 “기술독립군” 고부가가치제품이지만 중소기업들은 자금과 기술력부족으로 뛰어들 엄두를 내지 못했고 대기업조차 높은 개발비와 생산비를 우려해 주로 일본제품을 수입해 사용해 왔다. 하지만 그는 모든 산업기술의 토대인 CNC시장을 일본이 더 이상 독점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에서 과감하게 이 분야에 손을 댔다. 처음 4년동안은 전공과 다른 생소한 분야이기 때문에 투자한 돈만 계속 까먹으면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 91년에는 일본에 400대의 공작기계 컨트롤러를 수출했다가 전량 반품당했던 쓰라린 기억도 갖고 있다. 디자인은 좋았지만 납땜처리한 부분이 떨어져 나가고 종이포장된 것이 부서져 버렸기 때문이다. 이 때 5억원을 손해 봤다. 장사장은 소프트웨어뿐 아니라 하드웨어도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는 교훈을 여기서 얻었다고 털어놓는다. 그 뒤 「다품종 소량생산」체제로 전략을 바꾸고 매출액의 25%를 연구개발에 쏟았다.과감한 투자와 산업현장에서 요구하는제품을 개발한 전략은 서서히 효과를 나타냈다. 지금은 컨트롤러 분야의 세계적 강자인 일본 화낙(FANUC)사의 68%에 육박하던 국내시장 점유율을 50%대까지 끌어내릴 정도로 성장했다. 매출액도 해마다 2배씩 불어났다.올해 예상매출은 지난 해 1백3억원의 두 배가 넘는 2백20억원.내년에는 4백80억원이 목표다. 수입에만 의존하던 제품을 국산화에 성공함으로써 엄청난 수입대체효과를 거두게 된 것은 말할것도 없다. 그는 스스로를 「기술독립군」이라고 말한다.일본등 선진 외국의 기술종속에서 벗어나 기술로 자립하는 선봉장이 되겠다는 뜻이란다. 몇 년안에 첨단기술력을 무기로 해외시장에서도 화낙사를 제칠 것이라고 장담한다.그래서 요즘도 하루 4시간밖에 못자고 일에 매달리지만 조금도 피곤한 줄을 모른다. 곧 장외등록을 하고 스톡옵션제(주식매입선택권)를 시행,또 한번의 비상을 준비하고 있다. 「컴퓨터」라는 단어가 아직 낯설었던 지난 81년 창업된 (주)큐닉스컴퓨터도 이젠 널리 알려진 벤처기업이다.한국과학기술원 전산학 박사로 모교에서 교수로 있던 이범천 회장(46)이 후배,제자등 4명과 함께 창업한 회사다. 자본금 5천만원으로 시작했으나 매년 빠르게 성장,지금은 직원이 420명으로 늘었다.지난해에 처음으로 매출액 1천억원을 돌파했고 올해 매출목표는 1천6백억원이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한글·한자·영문 워드프로세서 「글마당」을 개발,사무환경에 일대혁신을 가져온 이 회사는 잉크젯 프린터,레이저 프린터,네트워크 솔루션 등 소프트웨어산업의 선두주자로 자리를 잡았다. 이회장은 특히 지난 4월부터는 생산직을 제외한 모든 직원을 대상으로 연봉제를 실시하고 있다. 능력있는 우수 인재를 확보하고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학력,성별,연령을 중심으로 한 지금의 호봉제 임금체계가 부적합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소프트웨어산업 선두 가장 성공한 벤처기업으로 꼽히는 (주)메디슨은 전자의료기기 전문업체이다. 국내 초음파 진단기 시장의 70%,전 세계시장의 20%를 장악하고 있다. 더 이상 벤처기업이라는 표현이 맞지 않을 정도로성장한 것. 이 회사는 다른 기업과는 달리 결재과정이 매우 단순하다.결재란에는 「제안자­검토자­결정자」 세 칸밖에 없다. 세 칸이 서명으로 채워지는데 허용된 시간은 24시간.하루를 넘긴 기안서는 「폐지」취급을 받는다. 복잡한 결재과정에서 불필요하게 낭비되는 시간을 줄이려는 의도다. 지난 85년 전자공학박사 이민화 사장(44)을 중심으로 한국과학기술원(KAIST) 출신 공학도 7명이 자본금 5천만원으로 시작,현재 직원 260여명에 연구직만 60명이 넘는다.업계에서는 이같은 메디슨의 급성장을 「신화」로 여긴다. 하지만 이사장은 뛰어난 기술을 바탕으로 과감하게 연구개발에 주력한 결과라고 잘라 말한다. 실제로 이 회사는 국내기업 가운데 연구개발비를 가장 많이 투자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올 상반기중 국내 기업들이 평균적으로 매출액의 1.3%만을 연구개발비(R&D)로 사용하고 있는데 반해 메디슨은 올 상반기 매출의 45.2%에 달하는 1백26억원을 연구개발에 투자했다. ○연구개발비 최다 투자 기술개발을 통해 경쟁력을 확보한다는 이사장의 신념에 따른 것이다. 멀티미디어 사업체 (주)건인도 주목을 받고 있는 벤처기업. 서울대 제어계측학 박사인 변대규 사장(36)이 「소니(SONY)」에 도전한다는 다부진 각오로 학교 동기 1명,후배 1명과 지난 89년 창업했다. 공학이란 학문의 주무대는 연구실이 아니라 실물경제여야 한다는 변사장의 소신에 따른 것이었다. CD 1장에 2천578곡을 담은 가정용 CD반주기 「휴맥스」는 출시되자 마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ASIC라는 주문형 반도체 칩의 설계부문에서도 국내 최고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 해 1백20억원의 매출을 올렸고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디지털 위성방송 수신기(셋톱박스)를 자체 개발했다. 올해와 내년의 매출목표액을 각각 2백50억원과 8백8억원으로 잡을 정도로 고속성장을 하고 있다. 날로 치열해지고 있는 무한경쟁속에서도 탄탄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벤처기업들은 불황을 잊고 있다.〈김성수 기자〉 ◎터보테크사 장흥순씨/“기술만의 승부는 위험/철저한 시장조사 병행” 공작기계 제작 전문업체 (주)「터보 테크」의 장흥순사장(37)은 벤처산업육성에 한국산업의 미래가 달려있다고 단언한다. 기업환경변화에 발빠르게 적응할 수 있고 상품화에 순발력이 높은 기술집약형 벤처기업이야말로 21세기를 선도할 기업이라는 것. 연구원의 길을 포기하고 벤처기업을 시작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특히 자본재 산업인 공작기계분야에서 일본기업 화낙(FANUC)이 국내시장을 독점하고 있다는 걸 우연히 알게 된 뒤 이 분야에 뛰어들어 국산화를 이뤄야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전공과는 무관한 공작기계산업을 택한 이유는 뭡니까. ▲우리나라는 반도체 D램의 세계 1위 수출국이면서도 D램을 생산하는 반도체 장비와 소재는 대부분 일본,미국에 의존하고 있습니다.자동차 생산도 세계 5∼6위권이지만 자동차를 만드는 핵심기계는 수입에 의존합니다.자본재 산업의 국산화가 시급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소자본으로 사업을 시작해 어려운 점은 없었습니까. ▲시장에 대한 철저한 준비없이 기술만 믿고 뛰어들어 초반에는 고전을 면치 못했습니다.벤처기업을 하려는 사람들은 대개 처음부터기술로만 승부를 보려고 하는데 기술은 충분조건이지 결코 필요충분조건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충고하고 싶습니다. ­벤처기업이 앞으로 한국 산업의 미래를 떠맡게 된다고 했는데. ▲고부가가치의 첨단기술을 앞세우는 벤처기업의 활성화는 산업전체의 기술기반을 강화하는 효과와 함께 대기업에의한 경제력집중과 부의 편중을 완화시킵니다. 국내 벤처기업들은 앞으로 핵심자본재,컴퓨터,정밀장비,소프트웨어,통신사업,MIS(경영정보시스템)등 첨단산업에서 외국에 종속됐던 기술을 국산화시키는데 앞장서게 될 겁니다. ­무한경쟁시대에 앞선 기업이 되기 위한 경영전략은 어떤 겁니까. ▲과거에는 하드웨어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소프트웨어로 승부가 날수밖에 없습니다.지난해 말까지 통계로 중소벤처기업만 1천740여개나 됩니다.이젠 정말 전문기술력을 바탕으로 특화한 기업들만 살아남게 됩니다.〈김성수 기자〉
  • “수하트로 대통령 하야 준비” 시사

    ◎수하트로 아들 “인니는 새 지도자 찾을 시기” 【자카르타 AP 연합】 수하르토 인도네시아 대통령의 아들이 18일 인도네시아는 새로운 지도자를 찾아내야만 한다고 발언함으로써 수하르토 대통령이 30년 집권 끝에 하야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추측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시시주간지 뉴스위크는 이날 수하르토 대통령의 아들인 후토모(토미) 난달라 푸트라와의 지난 14일자 회견을 인용,올해 75세 된 수하르토 대통령이 반드시 종신 대통령이 될 필요는 없다는 말을 했다고 보도했다. 후투모 난달라 푸트라는 이어서 『그(수하르토 대통령)보다 20∼25세가 젊은 이들에게 국가를 이끌어 갈 신념을 심워줄 시기가 됐다』고 말했다. 수하르토는 후계자를 아직 부상시키지 않고 있으나 트라이 수트리스노 부통령에게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또 다른 대권 물망에 오르는 인사로는 정치적 활동이 큰 수하르토 대통령의 딸인 시티 하르디얀티 루크마나와 BJ하비비 기술장관등이 거론되고 있다.
  • 신임 군수뇌 프로필

    ◎윤용남 합참의장/기동전 능통 전략가… 강군신념 뚜렷 3군사령관 등 야전지휘관을 두루거치고 현대전의 요체인 기동전에 능통한 군사전략가.육군 총장재임중 「강한 군대 육성」을 지휘목표로 「육군발전 목표 및 방향」을 강력히 추진했다.육군교육개혁을 추진,지상군 전법을 구현할 수 있는 교육훈련체계를 확립했다.다부지게 조직을 장악해 끌고 나가는 스타일이나 주변 여론을 충분히 수렴하지 않는다는 평도 있다. 부인 하미경씨(55)와의 사이에 1남.불교신자에 취미는 독서 ▲경남 의령(56세) ▲육사 19기 ▲사단장 ▲국방부 정책기획관 ▲군단장 ▲합참 전략기획참모부장 ▲3군사령관 ▲육군참모총장 ◎도일규 육군 참모총장/인자한 성품의 덕장… 군내 고른 신망 인자하면서도 중후한 성품을 지닌 덕장으로 군 내부에서 고른 신망을 얻고 있다.73년 「윤필용사건」 수사 당시 반하나회 편에 섰던 강창성 보안사령관의 보좌관(소령)을 지내 하나회측의 미움을 사 한동안 어려운 군생활을 했다.93년 김영삼 대통령의 군개혁때 수방사령관(중장)으로 발탁승진된 뒤 군실세로 부상했다.군사전력과 한·미군사협력,연합작전 등에 탁월한 안목을 지녔다는 평.부인 김경자씨(51)와 사이에 1남1녀.천주교신자로 검도 5단에 테니스도 수준급 ▲경기 양주(56) ▲육사 20기 ▲연합사 작전처장 ▲사단장 ▲연합사 부참모장 ▲수방사령관 ▲3군사령관 ◎이재관 1군사령관/지덕겸비 외유내강형 지략과 덕을 겸비한 외유내강형의 정통 야전군인.국방정책과 전력증강 분야에 정통.치밀하고 명쾌한 판단력과 소신있는 업무추진력을 인정받고 있다.부인 정순영씨(51)와 3남.둘째 아들 호종군은 해병대 중위로 복무중.천주교 신자로 취미는 독서와 테니스 ▲경기 이천(54) ▲서울 보성고 ▲육사 21기 ▲육본 인사처장 ▲사단장 ▲국방부 전력계획관 ▲군단장 ▲육군참모차장 ◎김진호 2군사령관/배짱 두둑… 학군 2기 박세환 신한국당의원(학군1기)에 이은 2번째 학군출신 4성장군이 됐다.두둑한 배짱에 보스기질이 있는 야전무골형이란 평.럭비선수 출신의 만능 스포츠맨이며 적극적이고 활발한 성품으로 부하들의 신망이 두텁다.부인 심기숙씨(55)와의 사이에 1남1녀.불교신자로 취미는 테니스와 바둑. ▲서울(55세) ▲배재고 ▲고려대 사학과 ▲학군2기 ▲사단장 ▲육본정보참모부장 ▲군단장 ▲1군부사령관 ◎유재열 3군사령관/치밀한 성품… 군수통 군수통으로는 드물게 4성 장군에 올랐다.군내에서는 원만하고 치밀한 성품을 가진 덕장으로 통한다.국방부·육본·연합사 등의 군수분야를 맡으면서 군수체계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는 평.부인 정태영씨(47)와의 사이에 2남.천주교신자로 등산과 테니스가 취미 ▲경남 산청(54세) ▲진주고 ▲육사 21기 ▲육본 군수차장 ▲사단장 ▲국방부 군수국장 ▲군단장 ▲군수사령관 ◎김동신 연합사 부사령관/현역중 영어 가장 능통 현역 군인 가운데 영어에 가장 능통하다는 평가를 받는 미국통으로 한·미 연합사 부사령관에 적임이라는 평.야전생활과 함께 국방부와 합참의 전략,정책분야를 두루거쳤다.합참작전참모부장에 보임되고 평시작전권 이양문제 등 어려운 일을 많이 해결했다.부인 이혜정씨(52)와의 사이에 1남1녀.▲광주(55세) ▲광주일고 ▲육사21기 ▲연대장 ▲사단장 ▲전력기획부장 ▲수도군단장 ▲합참 작전참모부장
  • 미는 대북정책 재검토해야(박화진 칼럼)

    탈냉전바람이 휘몰아치면서 베를린장벽이 무너지고 독일통일이 이루어지던 무렵의 이야기다.세계 지도급 보수정객들의 런던모임에서 만난 레이건과 대처간에 교환되었다는 북한에 관한 대화가 생각난다.『동독이 소멸된 지금 세계지도에서 지워져야할 또 한 나라가 있다.그것은 바로 북한이다.북한이 남아있어야 할 이유나 명분은 아무것도 없다』 ○클린턴외교 기대 미흡 「민주화」와 「도덕성」을 내건 클린턴 미국대통령의 출현은 북한을 포함하는 아시아의 탈냉전과 민주화개혁도 가속시키게 될것으로 우리는 기대했었다.선거유세에서 클린턴은 중국인권문제를 강력히 제기했으며 세계의 보편적 가치로서 민주주의의 확산을 적극 추구하겠다고 다짐했었다.그러한 신념엔 지금도 추호의 변함이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그러나 지난 4년간 우리가 경험한 클린턴의 대외정책,특히 대북정책은 유감스럽게도 그러한 기대에 크게 못미치고 불만스러운 것이었다고 하지 않을수 없다. 북한의 핵개발 저지와 갑작스런 붕괴방지는 클린턴정부가 추구해온 대북정책의 기본목표였으며 우리도 그러한 목표 자체에는 이의가 없었다.그러나 과거를 불문에 부친 핵타결,남북관계 개선노력 약속의 무시에도 불구한 식량 제공과 연락사무소 설치추진 등 유화와 양보 일변도의 대북 저자세외교는 우리의 인내에 대한 시험 그것이라 할수 있는 것이었다. ○유화정책에 비판 여론 미 정치평론가 마이클 미첼의 워싱턴타임스 기고문(북한비위 맞추기 당장 그만두라)은 미국내에서도 클린턴의 무원칙한 유화일변도에 대한 비판이 만만치않음을 보여준다.『클린턴정부는 깡패 테러정권들이 미국의 달러와 정치적 지원에 감지덕지해 얌전해질 것이란 환상을 갖고 움직인다.북한이 못되게 굴더라도 내부적 갈등때문이라고 이해할 수 없는 이해심을 발휘하여 기꺼이 눈감아 주고 있다』 이번 북한잠수함 무장공비침투와 적반하장식 전쟁위협은 미국의 그러한 선의가 먹혀들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증거라 할 수 있다.북한은 나진·선봉 투자설명회를 하고있던 바로 그 시각에 무장공비와 안내 및 승조원 26명을 태운 잠수함을 출발시켰으며 그 잠수함은 작년에 우리가 총리도 참석한 가운데 대북 쌀제공 첫배를 출항시킨 바로 그 강릉항 해안침투를 시도했던 것이다. ○공비사건 반응에 실망 그럼에도 불구하고 클린턴정부가 보인 첫반응은 우리로 하여금 실망을 넘어 분노를 느끼게 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대통령선거가 아무리 중요한 상황이라해도 북한의 그러한 도발에 대해 한국 또한 책임이 있는듯 암시한 크리스토퍼 국무와 폐리 국방의 「쌍방책임 및 자제론」은 『어떻게 미국이 이럴수가…』하는 강한 분노와 배신감같은 것을 느끼게하는 충격이 아닐수 없다. 미국정부가 로드 동아·태담당 국무차관보를 파한하는 등 사태수습에 나서고 있는것은 다행스런 일이지만 그처럼 잘못된 인식과 정책에 대해 진지한 반성이 없는 이상 우리국민의 대미 불신감을 해소시키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2차대전을 막기 위한 영국총리 체임벌린의 히틀러에 대한 뮌헨양보의 교훈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유화와 양보일변도 정책에 대한 대답이 무장공비침투와 전쟁위협이라면 그 정책은 당연히 재검토되어야 한다. ○「뮌헨 양보」교훈 기억을 북한이 남북대화와 4자회담을 외면하고 무장공비침투 등 도발을 자행하는 것은 클린턴정부의 일방적 유화·양보정책의 결과가 아닌가.미국의 양보가 북한내에서 온건파 아닌 강경파의 입지만 강화·고무시킨 것은 아닌가.개방·개혁을 통해 북한을 점진적으로 민주화시키겠다는 소프트랜딩(연착륙) 구상은 실현불가능의 환상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닌가 등. 그러한 문제에 대해 미국이 정말 진지하게 반성해야할 계기라고 생각한다.로드 차관보의 방한은 미국입장을 강요하거나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정부의 입장과 국민의 시각 그리고 북한의 실상을 올바르게 파악하고 이해하는 기회가 되어야할 것이다.대선후의 근본적인 정책 재검토를 위한 진솔한 준비작업이 되기를 기대한다.〈심의·논설위원〉
  • 길림성 장춘시 음마하 집체농장(송화강 5천리:8)

    ◎조선족­한족 더불어 사는 공동체 일궈/48년전 황량한 습ㅈ디에 노동자 이주/조선족 60가구 한족도움으로 삶터닦아/두레농사로 기반구축… 32개 한족촌도 귀속/한족에 논농사 가르치며 함께 사는 지혜 터득 오늘의 길림성 장춘시 관할구역은 옛 부여국의 고토다.장춘에서 북쪽으로 100여㎞ 떨어진 농안에는 아직도 부여성 성터가 남아있다.이른바 황룡부 고성이라는 성이 본래 부여성이다.그러니까 황룡부 고성은 부여의 첫 도읍지였다. 장춘시가 지금 관할하는 지역의 인구는 모두 4백57만명에 이르고 있다.이 가운데 조선족은 4.06%인 4만8천42명에 지나지 않았다.쌀에 뉘처럼 섞여 사는 것이다.그런데 장춘시 구대현 음마하진은 사정이 좀 달라 전체인구 2만2천500명 가운데 2만1천명이 조선족이다.특히 음마하진 홍광촌은 316가구 1천675명이 조선족이고,한족은 겨우 10가구 55명에 불과했다. 음마하진은 길림시에서 장춘시로 가는 철길가에 자리잡았다.청나라때 광희아니면 건륭황제로 여겨지는 황제가 동북지역을 돌아보는 동순길에 쉬어서 말에게 물을 먹였대서 음마하가 되었다는 유래가 있다.그 이면에는 아첨을 일삼는 관리가 음마하라고 새긴 비석을 세웠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온다.황제의 발길이 지나갔다는 음마하는 1948년까지만 해도 황량한 습지였다니,벽해상전이 실감났다. 1947년 토지개혁 당시만 해도 음마하에는 여전히 사람들이 살지 않았다.그러다가 길림성 정부 농업청이 음마하로 노동자들을 이주시키는 천민정책을 펴기 시작했다.해방 이후 많은 공장들이 문을 닫아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을 음마하로 보냈던 것이다.당시 길림성 노동청장 서원천은 천민정책에 심혈을 기울여 일은 아주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조선족은 1949년 3월1일 우선 44가구가 음마하로 들어왔다.이영조와 임춘국 등 다섯 사람이 주동이 되어 기반가의 조선족 144가구 가운데 우선 44가구가 들어온데 이어 반석현의 조선족 16가구가 뒤따라 와서 자리를 잡았다.모두 60가구가 들어왔기 때문에 이른바 「음마하 60호」라는 조선족마을이 생겼다.오늘의 홍광촌 뿌리는 바로 「음마하 60호」인 것이다. ○장춘시는 부여국의고토 1954년에는 부평초마냥 도처를 유랑하던 조선족 20가구가 음마하로 들어와 합세했다.이들 20가구는 역사의 비극이기도 한 만보산사건의 희생자들이었다.1931년 관개용수로를 두고 조선족과 한족 사이에 일어난 이 사건은 물싸움으로 시작되었다.처음부터 일제침략자들이 조종한 만보산사건은 한반도로까지 번져 당시 조선에 살던 화교들까지 박해를 받았다.이 사건은 8·18사변으로도 불리는 만주사변의 서막이기도 했다. 만보산사건의 피해자는 물론 한족들이었다.일본은 조선인을 대륙침략에 이용하기 위해 조선족을 보호하는 체 술수를 썼다.이 때문에 조선족은 해방이 되면서 만보산촌에 살기가 어려웠다.그런 판국에 1947년 2월 만보산사건에 관련된 한족 학영덕과 조선족 변상인 등이 장춘지방법원 법정에 섰다.이 사건은 이듬해 11월4일 원동국제군사법정으로 올라갔다.그런데 공산당군이 장춘에 주둔한 군민당군을 포위공격했다.이 무렵 조선족은 모두 만보산촌을 떠나고 말았다. 만보산촌은 장춘시에서 동쪽으로 20여㎞ 떨어졌다.오늘의 장춘시 덕해현 삼승향 황가촌육사에 해당한다.벽돌기와집과 토벽돌기와집이 반반씩 들어선 서쪽 넓은 들판으로 이통하가 흘렀다.이통하 둑 안으로는 옥수수와 콩이 자라고 있었다.문제가 되었던 그 물길가 둑에 만보산사건 옛터 「만보산사건구지」라는 시멘트 팻말이 서있다.마을에는 65가구 353명의 한족이 살고있는데,만보산촌에서 태어난 사람은 마만림(80)이라는 노인 한분뿐이었다. 『나는 당시 사건을 보고 겪은 사람입니다』그때에 광휘,삼성포,변계둔,시간유방은 조선족 마을이었습니다.70여호 500여명의 조선족이 살았지요.조선족은 논농사를 짓고 우리는 밭농사를 하면서 살았어요.해방이 날때까지 조선족은 숫자도 늘고,논도 불어났습니다.그러다 해방 이후 모두 빠져나가 지금은 조선족이라고는 한 사람도 없습니다』 어떻든 음마하진 홍광촌은 기반가와 반석현의 조선족,유랑하던 조선족 등 세 그룹이 모여 마을을 형성했다.이주 초기에는 집도 없고 먹을 양식도 없었다.그러니 씨앗은 물론 부릴 마소가 있을리 만무했다.이웃 마을의 한족은 조선족의 딱한 사정을보고 방앗간이나 가축 외양간을 고쳐 와서 살도록 배려했다.길림정부에서도 당시 동북화폐로 5억원을 마을에 대부해 주었다. 그 돈으로 집을 짓고 논을 개간했다.뭉치지 않으면 살 수 없다는 신념으로 처음부터 두레농사를 지었다.말하자면 집체소유였는데,중국 정부가 구소련의 집체농장제도 콜호스를 공식 수용하기 3년전의 일이었다.그래서 1953년 성정부는 홍광촌 농업기반을 주축으로 음마하 전체를 집체농장으로 묶어 비준했다. ○만보산사건후 20가구 이주 이와 더불어 부근의 한족촌 32개를 음마하집체농장에 귀속시켰다. 음마하집체농장은 논농사 전담 수전대와 밭농사 전담 한전대로 구분한 22개 생산대를 두었다.한족은 논농사를 지을줄 몰라서 조선족 4∼5명씩을 보내어 기술지도에 나섰다.당시 음마하집체농장은 길림성 3대농장의 하나였다.그래서 1957년 2월22일 노동모범대표대회에 나가 모택동,주은래,유소기,등소평의 접견을 받기도 했다.그해에 불가리아 주석이 다녀갔고 소련에서는 이름있는 명마 「돈강의 말」 2필을 농장에 보내왔다. 이제는 조선족이나 한족들은 더불어 사는 지혜를 터득했다.농업뿐이 아니라 산업체에서도 두 민족이 공존하고 있다.중국에서 첫 손을 꼽는 장춘자동차공장의 경우 수만명 일꾼 가운데 1천명 이상이 조선족이다.퇴직한 노동자와 간부도 300여명이나 되어 공장에서 20만원을 들여 이들을 위한 조선족 노인회관을 지어주었다.
  • ILO/근로자 사생활 보호규약 마련

    ◎일터에서 고용주 부당한 감시·통제 못하게/174개 회원국에 입법지침으로 권장 방침 【제네바 AP 연합】 국제노동기구(ILO)는 7일 고용주의 프라이버시 침해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권리보호 규약을 마련했다. 제네바의 ILO본부에서 세계 20여국 전문가들이 모여 채택한 이 규약은 작업장에서 노동자 개인의 정보가 악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처음으로 만들어진 국제 지침이다.이 규약은 ILO산하 174개 회원국들에게 구속력 없는 권장 입법지침으로 하달된다. 이 규약의 주요 골자는 다음과 같다. ▲고용주는 노동자에 관한 정보를 반드시 작업과 관련된 범주에서 본인으로부터 직접 취득해야 한다. ▲고용주는 노동자의 성생활이나 정치·종교적 신념에 관한 정보를 취득하려 해서는 안된다. ▲노동자는 프라이버시에 관한 권리를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노동자에 대한 마약복용 여부 검사는 반드시 법률규정에 따라야 하며 자의적 검사는 허용되지 않는다. ▲고용주가 특정 노동자를 감시할 경우 본인에게 그 사유와 방법·시간 등을 통보해야 한다.비밀 감시는 형사범죄 용의자에게만 해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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