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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진 창작자 발굴·육성하는 CJ문화재단… K컬처 토양 마련

    신진 창작자 발굴·육성하는 CJ문화재단… K컬처 토양 마련

    CJ그룹의 ‘문화보국’ 철학이 사회공헌을 통해 결실을 보고 있다. 올해 설립 20주년을 맞은 CJ문화재단이 신진 창작자 중심의 문화 생태계를 구축하며 대한민국 대중문화의 저변을 넓히는 버팀목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기업은 젊은이의 꿈지기가 되어야 한다’는 신념 아래 2006년 출범한 재단은 일회성 후원을 넘어 창작자가 자생력을 갖추도록 돕는 데 주력해 왔다. 특히 인디 뮤지션 지원 ‘튠업’, 신인 영화 창작자 지원 ‘스토리업’, 뮤지컬 창작자 육성 ‘스테이지업’을 통해 소외된 비주류 장르를 집중 육성했다. 기획개발부터 멘토링, 제작, 시장 연계까지 이어지는 ‘전주기 맞춤형 지원’이 핵심이다. 성과도 독보적이다. 지난해까지 85팀의 인디 뮤지션을 발굴했고, 45명의 단편영화 감독을 배출했으며, 25편의 창작 뮤지컬을 정식 무대에 올렸다.
  • 류기성 장편 ‘죽은 자(이토)가 죄인이다’ - 적군이 마주한 인간 안중근 조명

    류기성 장편 ‘죽은 자(이토)가 죄인이다’ - 적군이 마주한 인간 안중근 조명

    일본인 간수가 곁에서 본 인간 안중근은 어땠을까? 올해는 안중근 의사가 뤼순 감옥에서 생을 마감한 지 116년째 되는 해다. 대중은 1909년 하얼빈역의 총성과 영웅적 면모만 기억하지만, ‘인간 안중근’의 진짜 내면은 간과한다. 소설가 류기성은 편향된 역사의 벽을 허물고자 소설 ‘죽은 자(이토)가 죄인이다’의 화자로 일본인 간수 치바 도시치를 택했다. 죄수와 간수라는 극단적 관계조차 무너뜨린 두 사람의 교감은 안중근이라는 인간이 지닌 깊이를 증명하는 핵심 고리다. 이 작품은 맹목적인 민족주의 프레임을 벗겨내고, 국경을 넘어 적국의 간수마저 매료시켰던 그의 고결한 인품과 ‘동양평화론’의 진정한 가치를 담담히 비춘다. 일본인 간수 치바 도시치는 처음에 안중근을 이토를 살해한 ‘폭도’이자 ‘테러리스트’로 간주했다. 이는 당시 일본 제국주의가 국민에게 주입한 전형적인 세뇌의 프레임이었다. 그러나 옥중에서 안중근이 보여준 의연함과 동양 평화에 대한 고결한 신념은 치바의 편견을 단숨에 끊어버렸다. 류 작가는 안중근이 옥중에서 보여준 소소한 일상의 태도에 주목한다. 죽음을 앞둔 극한의 상황에서도 평정심을 잃지 않고 글을 쓰며 기도를 올렸던 안중근의 모습은 진정한 양생(養生)적 삶의 극치다. 안중근에게 옥중 생활은 단순한 구속이 아니라 자신의 사상을 완성하고 타인을 감화시키는 마지막 여행지였다. 이토 히로부미라는 ‘죽은 자’가 저지른 침략과 학살의 죄악을 안중근은 총탄으로 심판했지만 그가 진정으로 꿈꿨던 것은 피의 복수가 아닌 상생의 길이었다. 일본인 간수조차 인연으로 품어 안았던 안중근의 넉넉한 도량은 오늘날 갈등과 증오로 점철된 우리 사회에 중대한 시사점을 던진다. 치바 도시치가 전역 후 고향으로 돌아가 평생 안중근의 사진과 글씨를 모시고 매일 아침 차를 올렸다는 사실은 안중근의 승리가 단지 하얼빈의 총성에 그치지 않았음을 말해준다. 그것은 적의 영혼마저 구원한 진정한 정신의 승리였다. 류 작가는 이 소설을 쓰게 된 이유에 대해 “모든 일에는 원인과 결과가 있다. 결과를 탓하기 전에 그 원인을 바로잡아야 하며, 패권적 제국주의를 추구한 일본의 나쁜 정치인들에 의해 만들어진 잘못된 사상이나 주의가 선량한 국민과 주변 국가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준다는 사실을 밝히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지구가 멸망하지 않는 한 전쟁은 영원히 피할 수 없는 것이겠지만 이 이야기를 통해 한국과 일본 두 나라의 사람들이 서로 화해하고 함께 공감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소회를 전했다. 이제 우리는 안중근이 건네는 진실의 열쇠를 들고 우리 내면의 편견을 걷어내야 한다. 아전인수식의 편협한 역사 인식을 넘어 적조차 감화시켰던 그의 위대한 인간성을 우리 삶의 지침으로 삼아야 한다. 류 작가가 빚어낸 ‘인간 안중근’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가장 중대한 역사의 선물이 될 것이다. 평화는 칼날 끝이 아니라 깊은 예의와 인연의 회복에서 시작된다.
  • [김동완의 오늘의 운세] 2026년 5월 20일

    [김동완의 오늘의 운세] 2026년 5월 20일

    쥐 36년생 : 자기 것을 단단히 지키라. 48년생 : 속단은 피하고 살피라. 60년생 : 서두른 판단보다 살피는 태도가 더 이롭다. 72년생 : 좋은 위치에 오르는 흐름이다. 84년생 : 건강과 분수를 챙기라. 96년생 : 추진하는 일이 막힘 없는 날이다. 소 37년생 : 욕심 말고 차근히 하라. 49년생 : 자신감이 성과로 이어진다. 61년생 : 쌓아온 믿음이 오늘 조용히 빛을 낸다. 73년생 : 복이 서서히 찾아드는 날이다. 85년생 : 여유 있는 생활이 답이다. 97년생 : 인정과 즐거움이 함께이다. 호랑이 38년생 : 마음 안정이 먼저인 때이다. 50년생 : 근심이 생겨도 정리하라. 62년생 : 주변의 손길이 예상보다 큰 힘이 되어준다. 74년생 : 시비가 생기면 불리한 날이다. 86년생 : 자기 관리를 하면 이득이다. 98년생 : 충돌은 피하고 물러서라. 토끼 39년생 : 소망한 일은 곧 풀리는 흐름이다. 51년생 : 집안의 밝은 기운이 마음을 먼저 살린다. 63년생 : 주관대로 움직이면 편안하다. 75년생 : 오해가 생기니 말을 고르라. 87년생 : 자신감이 성공의 바탕이다. 99년생 : 심난해도 균형을 잡으라. 용 40년생 : 희망이 보이는 하루이다. 52년생 : 빛이 서서히 드러나는 때이다. 64년생 : 드러나지 않아도 묵묵함이 결국 통한다. 76년생 : 자중하며 자신에 충실하라. 88년생 : 새 분야로 길이 열리는 날이다. 00년생 : 안정하면 큰 행운이 따른다. 뱀 41년생 : 뜻대로 풀리니 마음이 편하다. 53년생 : 일이 성사되는 기운이 강하다. 65년생 : 준비된 마음이 뜻밖의 위기를 막아준다. 77년생 : 아직은 시기상조이니 미루라. 89년생 : 새로운 길이 열리는 날이다. 01년생 : 소득이 커도 정리를 하라. 말 42년생 : 이익이 생기니 챙길 날이다. 54년생 : 호전 기미가 보이는 날이다. 66년생 : 반가운 기운이 천천히 하루를 밝힌다. 78년생 : 한발 물러서면 길이 열린다. 90년생 : 기회를 포착하는 눈이 필요하다. 02년생 : 고비가 있으니 신중히 하라. 양 43년생 : 계산은 분명히 정리하라. 55년생 : 잠깐의 어려움은 지나가니 마음을 놓아라. 67년생 : 집안의 경사가 따르는 날이다. 79년생 : 기회는 빠르게 붙잡으라. 91년생 : 분수를 지키는 선택이 답이다. 03년생 : 도울 사람을 만나는 흐름이다. 원숭이 44년생 : 좋은 기회가 오니 잡으라. 56년생 : 체면보다 실속을 택하면 웃을 일이 생긴다. 68년생 : 하는 일마다 잘 풀린다. 80년생 : 솔깃한 말은 한 번 더 보라. 92년생 : 귀한 인연이 찾아오는 흐름이다. 04년생 : 재물복이 따르는 날이다. 닭 45년생 : 집안의 경사가 반갑다. 57년생 : 낮은 자세가 결국 명예를 더욱 살려준다. 69년생 : 계산은 분명히 해두라. 81년생 : 감언이설은 경계하라. 93년생 : 착한 마음이 복을 부른다. 05년생 : 당장은 어려워도 곧 풀린다. 개 46년생 : 신념으로 꾸준히 밀고 가라. 58년생 : 막힌 듯 보여도 꾸준함이 해답이 된다. 70년생 : 불필요한 말은 줄이는 날이다. 82년생 : 노력하면 소득이 따른다. 94년생 : 경솔한 행동은 금물이다. 06년생 : 현실에 충실하면 길하다. 돼지 47년생 : 조금만 참고 기다리는 날이다. 59년생 : 늦게라도 어려움이 풀린다. 71년생 : 느긋한 기다림 끝에 흐름이 서서히 풀린다. 83년생 : 대범한 태도가 도움이 된다. 95년생 : 좋은 기회를 놓치지 말라. 07년생 : 실속이 약하니 점검하라.
  • 5원짜리 ‘꿀꿀이죽’의 한(恨), 세계 홀린 ‘불닭볶음면’ 기틀로[창업주의 비밀노트]

    5원짜리 ‘꿀꿀이죽’의 한(恨), 세계 홀린 ‘불닭볶음면’ 기틀로[창업주의 비밀노트]

    “국민의 굶주림을 해결하지 못하는 정치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기업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배고픈 국민을 구하는 것이야말로 기업의 가장 큰 도리입니다.” 1960년대 초 어느 날, 서울 남대문시장 한복판. 미군 부대에서 버린 잔반을 끓여낸 ‘꿀꿀이죽’ 한 그릇을 받기 위해 시민들이 뙤약볕 아래 길게 줄을 서 있었습니다. 그 행렬 끝에서 발길을 멈춘 한 남성이 있었습니다. 당시 국내 유수의 보험사인 제일생명보험의 사장이었던 고 전중윤 삼양식품 명예회장이었습니다. 금융계의 거물, ‘안락한 의자’를 버리고 가시밭길로전 회장은 라면 사업에 뛰어들기 전 이미 금융업계에서 독보적인 자취를 남겼습니다. 일제강점기 선린상업학교를 졸업하고 조선총독부 체신국에서 금융 실무를 익힌 그는 해방 후 파산 위기에 처했던 제일생명을 인수해 단기간에 정상화하며 경영 능력을 입증했습니다. 당시 보험업은 신용이 생명이었고, 전 회장은 이 시기부터 ‘정직과 신용’이라는 철학을 경영의 최우선 가치로 삼았습니다. 보험업계에서 안락한 미래가 보장되어 있었지만, 그는 시장 바닥에서 꿀꿀이죽을 먹는 동포들을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배불리 먹지 못하면 신용도, 보험도 사치다”라는 생각에 그는 안정적인 보험사 사장직을 내려놓고 식량 보국의 기치를 내걸었습니다. 금융을 통해 경제의 혈맥을 짚던 통찰력은 이제 국민의 생존권인 ‘먹거리’ 문제로 향하게 됩니다. 실권자 설득해 얻어낸 ‘운명의 5만 달러’ 전 회장은 일본 방문 당시 접했던 라면이 한국의 식량 문제를 해결할 최적의 대안이라고 확신했습니다. 조리법이 간편하고 열량이 높아 쌀을 대체할 ‘제2의 주식’으로 손색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라면 제조 시설을 들여오기 위해서는 당시로선 천문학적인 액수인 외화가 필요했습니다. 그는 당시 실권자였던 김종필 중앙정보부장을 찾아갔습니다. 김 부장이 국가 예산 부족을 이유로 난색을 보이자, 전 회장은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그는 “국민이 쓰레기 죽을 먹고 있는데 정치인들이 보고만 있을 수는 없지 않으냐”며 식량난 해결의 시급함을 절절하게 피력했습니다. 그의 진심 어린 호소와 논리에 움직인 김 부장은 결국 농림부에 할당된 외화 10만 달러 중 절반인 5만 달러를 전 회장에게 배정했습니다. 이것이 대한민국 라면 산업의 시초가 된 ‘운명의 자금’이 되었습니다. 묘조식품 오쿠이 사장과 ‘백색 봉투’의 기적 자금을 확보한 전 회장은 일본의 묘조(明星)식품을 찾아가 오쿠이 기요즈미 사장을 만났습니다. 당시 라면 제조 기술은 일본 기업의 핵심 기밀이었기에 오쿠이 사장은 처음엔 기술 전수를 단칼에 거절했습니다. 하지만 전 회장은 포기하지 않고 매일같이 그를 찾아가 한국의 비참한 식량 사정을 설명하며 끈질기게 매달렸습니다. 결국 오쿠이 사장은 전 회장의 호소에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그는 “한국의 배고픈 국민을 돕겠다는 당신의 결심에 동참하겠다”며 당시 최신식 라면 제조 시설 2대를 파격적인 가격인 2만 6000달러에 넘겨주기로 했습니다. 기계 가격만 간신히 보전하는 수준의 특혜였습니다. 또다른 기적은 전 회장이 한국으로 떠나기 전날 밤 일어났습니다. 오쿠이 사장은 호텔로 그를 찾아와 하얀 봉투 하나를 건넸습니다. 그 안에는 절대 공개하지 않기로 했던 라면 맛의 핵심, ‘스프 배합표’가 담겨 있었습니다. 아무런 대가 없는 무상 전수였죠. 이 기술을 바탕으로 1963년 9월 15일, 대한민국 최초의 라면인 ‘삼양라면’이 세상에 첫선을 보였습니다. 대관령 황무지에 일군 600만평의 ‘단백질 보국’ 라면 출시 이후 전 회장의 집념은 다시 한번 불가능해 보이는 영역으로 향했습니다. 바로 축산업이었습니다. 1970년대 초, 그는 “라면에 부족한 단백질을 보충하기 위해 쇠고기가 필요하다”는 신념을 가졌습니다. 단순히 스프의 원료를 구하는 차원을 넘어, 국민에게 고기 한 점이라도 더 먹여 영양 상태를 개선하겠다는 원대한 계획이었습니다. 그는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대관령의 거친 황무지 개간에 착수했습니다. 1972년부터 시작된 이 대규모 프로젝트를 통해 그는 600만평에 달하는 동양 최대 규모의 ‘삼양 목장’을 일궜습니다. 전 회장은 노구에도 직접 짚신을 신고 산등성이를 누비며 초지 조성 과정을 진두지휘했습니다. 주변에서는 산간 오지에 목장을 만드는 것은 미친 짓이라며 고개를 저었지만, 전 회장은 묵묵히 소를 키우고 우유를 생산했습니다. 라면과 축산, 이 두 축은 국민의 배고픔과 영양 결핍을 동시에 해결하려 했던 그의 ‘식량 보국’ 철학이 완성되는 과정이었습니다. 시련과 결백: ‘우지 파동’과 정직의 가치승승장구하던 삼양식품은 1989년 이른바 ‘우지 파동’이라는 기업 존립의 위기를 맞습니다. 공업용 유지를 사용하여 라면을 튀겼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삼양라면은 순식간에 시장에서 외면받고 공장은 가동을 멈췄습니다. 기업가로서 가장 치명적인 ‘신뢰’의 위기가 찾아온 것입니다. 하지만 전 회장은 “식품은 정직해야 한다”는 신념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그는 타협 대신 진실을 밝히는 길을 택했습니다. 7년 9개월이라는 긴 세월 동안 이어진 법정 공방 끝에, 대법원은 결국 삼양식품의 무죄를 판결하며 전 회장의 결백을 증명했습니다. 그는 평생을 청렴하게 살았습니다. 퇴임 시에도 주식 1주나 퇴직금 1원조차 챙기지 않은 채 빈손으로 회사를 떠났습니다. “기업의 이익은 사회로 환원되어야 한다”는 그의 평소 지론을 몸소 실천한 것입니다. 이러한 그의 ‘청교도적 기업가’ 정신은 오늘날까지도 많은 경영인에게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꿀꿀이죽의 한(恨)을 넘어, 글로벌 ‘불닭’ 신화로 60여년 전, 남대문시장의 꿀꿀이죽 줄 뒤에서 희망을 보았던 전 회장의 집념은 이제 전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는 강력한 ‘K-푸드’의 상징으로 승화되었습니다. 특히 그의 며느리인 김정수 부회장이 주도한 ‘불닭볶음면’ 시리즈는 현재 전 세계 90여개국에 수출되며 삼양식품을 명실상부한 글로벌 메가 브랜드 반열에 올려놓았습니다. 삼양식품은 현재 전체 매출의 70% 이상을 해외에서 벌어들이며 역대 최대 실적을 경신하고 있습니다. 단순한 식품 수출을 넘어 전 세계적인 매운맛 챌린지 열풍을 일으키며 한국 문화의 위상을 높이고 있습니다. 가난했던 시절, 국민의 배를 채워주던 10원짜리 삼양라면의 진심이 불닭볶음면의 뜨거운 맛으로 이어진 셈입니다.
  • 충절의 혼이 깃든 터전, 장수 논개 생가지 [두시기행문]

    충절의 혼이 깃든 터전, 장수 논개 생가지 [두시기행문]

    전북특별자치도 장수군 장계면 대곡리. 소백산맥의 줄기가 포근하게 감싸 안은 이곳은 임진왜란 당시 적장을 안고 남강에 투신해 나라를 지킨 의암(義巖) 주논개(1574~1593)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다. 흔히 기생으로 오해받기도 하지만, 논개는 본래 이곳 서당 훈장이었던 주달문과 밀양 박씨 사이에서 태어난 양반가의 딸로, 기개와 효심이 남달랐던 인물이다. 그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원래의 집터는 대곡제 저수지 축조로 인해 물 아래 잠겼으나, 2000년 현재의 위치에 약 2만 평 규모의 생가지를 복원하며 그 숭고한 정신을 계승하고 있다. 생가지 부지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단아하게 복원된 초가집 생가다. 주변으로는 그의 의로운 넋을 기리는 의랑루(義娘樓)와 단아정(丹娥亭), 그리고 고요한 연못이 자리해 정갈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 밖에도 논개 동상과 부모의 묘역, 사적불망비, 최경회 현감 선덕추모비 등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어, 방문객들로 하여금 당시의 역사적 배경과 한 여인의 신념을 차분히 되새기게 한다. 생가 마당에서 느껴지는 고요한 공기는 세월을 넘어 전해지는 충절의 무게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생가지와 인접한 곳에는 논개생가 체험마을인 ‘주촌 민속마을’이 조성되어 있다. 마을 주민들은 논개의 정신을 잇기 위해 전체를 민속마을로 가꾸며 전통의 맥을 유지하고 있다. 마을 입구에는 논개 탄생을 위해 정성을 들였다는 성황당이 지킴이처럼 서 있고, 정초마다 마을의 안녕을 비는 산신제가 거행되는 등 옛 풍습이 지금까지도 살아 숨 쉰다. 호수가 된 옛 생가터 인근에는 부친의 병을 낫게 했다는 약수천이 남아 있어, 논개가 지녔던 깊은 효심의 흔적을 짐작게 한다. 주변의 즐길 거리와 편의시설 또한 잘 갖춰져 있다. 2016년에 준공된 한옥 숙박단지는 전통 가옥의 정취를 느끼며 하룻밤 머물기에 부족함이 없으며, 대곡호의 수변을 따라 조성된 힐링 산책로는 사색을 즐기기에 최적의 코스다. 아이들과 함께라면 도깨비 전시관이 있는 대곡 관광지를 방문해 장수 지역에 전해 내려오는 설화를 체험해 보는 것도 좋다. 봄이면 산과 들에 꽃이 피고, 여름이면 대곡제에서 불어오는 싱그러운 바람이 산책의 즐거움을 더한다. 장수를 대표하는 의암 주논개의 생애를 온전히 이해하고 싶다면, 이곳 생가지에서 출발해 의암공원과 논개사당으로 이어지는 여정을 추천한다. 사계절의 변화에 따라 옷을 갈아입는 산책길은 계절마다 다른 깊이의 평온함을 선사한다.
  • 신곡 가사에 ‘이승만 연설’…‘멸공’까지 외친 유명 래퍼 누구길래

    신곡 가사에 ‘이승만 연설’…‘멸공’까지 외친 유명 래퍼 누구길래

    유명 래퍼 비와이(32)가 최근 발표한 신곡에 고(故) 이승만 전 대통령의 육성으로 추정되는 음성과 ‘멸공’을 연상시키는 단어 등을 넣어 팬들 사이에서 엇갈린 반응을 낳고 있다. 그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서 가사에 종교적 신념을 담아왔는데, 최근 들어 자신의 보수적인 정치 성향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12일 가요계에 따르면 비와이는 지난 8일 신곡 ‘사우스사이드 프리스타일(SOUTHSIDE FREESTYLE)’을 발표했다. 이달 말 발표하는 정규 3집 ‘POP IS CRYIN’의 선공개곡이다. 팬들은 신곡에서 그의 정치 성향을 담은 요소들을 찾아냈다. 곡의 도입부에는 “생명의 소식이요, 자유의 소식입니다”라는 목소리가 삽입됐다. 이는 1942년 미국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이승만 박사가 그해 6월 13일 미국의 소리(VOA) 단파방송을 통해 고국에 전한 연설의 한 구절이다. 또 “나 선했다면 꿇었겠지 / 낫과 망치 앞에”라는 가사에 담긴 ‘낫과 망치’는 공산주의와 공산당, 공산 국가의 상징이다. 이를 근거로 팬들은 보수 성향인 비와이가 공산주의에 대한 반감을 드러낸 것으로 해석했다. 이어 “음녀는 선동 할라해 사랑 멸종 / 내 목소리엔 성공 미녀 목소리엔 멸-(삐처리)”라는 가사에는 ‘선동’이라는 단어와 함께, 뒷글자가 생략됐지만 ‘멸공’으로 추정되는 단어가 있다. 보수 성향의 팬들은 그의 유튜브 채널 댓글 등에 “비와이가 국부(이승만 전 대통령)를 샤라웃(Shout-out·공개적인 존경 표시)했다”, “공산주의를 저격했다”, “국힙 원탑은 비와이” 등의 댓글을 달며 환호했다. 반면 정치 성향과 무관하게 그의 음악을 좋아해왔던 팬들은 “좋아하는 래퍼의 음악에서 정치 논쟁을 접하고 싶지 않다”, “마음 편히 즐길 수 없다”, “국민의 반을 등돌리게 하는 게 괜찮은지 모르겠다” 등 우려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한편에서는 “어느 성향이든 자신의 생각을 가사로 표현하는 게 힙합이다. 이걸 비판하고 못 하게 하면 억압”, “그의 성향에 동의하지 않으면 안 들으면 그만”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2014년 첫 디지털 싱글로 데뷔한 비와이는 2016년 엠넷 힙합 경연 프로그램 ‘쇼미더머니 시즌5’에서 우승하며 힙합 신의 ‘대세’로 떠올랐다. 그는 거친 표현이 난무하는 힙합계에 종교적 성찰을 담은 가사로 높은 평가를 받아왔는데, 최근 수년 사이 자신의 종교적 보수 성향은 물론 특정 정치적 성향까지 가감없이 가사에 드러내기 시작했다. 지난 3월 엠넷 ‘쇼미더머니12’ 세미파이널 무대에서 참가자 권오선의 무대에 피처링으로 등장한 그는 “싹 다 까보면 놀라겠지, 그 급은 마치 선구안 위”라는 가사를 선보였다. 야구 용어인 ‘선구안’을 활용한 라임처럼 들리지만, 팬들은 그의 발음이 마치 ‘선관위(중앙선거관리위원회)’로 들린다면서 부정선거론을 주장하는 게 아니냐는 해석을 제기했다.
  • ‘받들어총’ 논란 뚫고 베일 벗은 감사의 정원(종합)

    ‘받들어총’ 논란 뚫고 베일 벗은 감사의 정원(종합)

    6·25 전쟁 참전국들을 기리기 위해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 조성된 ‘감사의 정원’이 12일 공개됐다. 서울시는 이날 김성보 서울시장 권한대행과 6·25 참전 22개국 주한대사, 참전 용사, 보훈 단체 관계자 등 약 170명이 참석한 가운데 감사의 정원 준공식을 열었다고 밝혔다. 지난해 11월 착공한 감사의 정원은 서울의 랜드마크인 광화문광장에서 자유와 평화의 가치를 되새기기 위해 추진됐다. 김 권한대행(행정2부시장)은 환영사에서 “70여년 전 22개국 젊은이들은 자유를 지키겠다는 단 하나의 신념으로 대한민국과 함께했다”고 말했다.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는 축사에서 “광화문광장에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호국 정신과 세종대왕의 애민 정신도 살아있었지만, 자유대한민국의 자유와 번영, 연대를 기억하는 공간이 없었다”고 밝혔다. 참전국을 대표해 연단에 오른 데시 달키 두카모 주한에티오피아 대사는 “그 어려운 시기에 한국 국민과 국제사회와 함께했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전했다. 이날 참석자들은 지상부 상징조형물 ‘감사의 빛 23’과 지하 미디어 체험공간 ‘프리덤 홀’을 둘러봤다. 6·25 전쟁 참전국의 연대를 뜻하는 6.25m 높이 23개 석재 조형물은 참전 시기 순으로 배치됐다. 당초 우리나라를 제외한 22개국으로부터 석재를 기증받을 계획이었지만, 베를린 장벽 일부를 보낸 독일을 비롯해 네덜란드, 인도 등 7개국이 기증한 석재만 우선 활용했다. 미국, 호주 등 5개국의 석재는 연말까지 전달받아 교체할 계획이다. 매일 오후 8시부터 11시까지는 30분 간격으로 빛을 하늘로 쏘는 장면도 연출된다. 일각에서 “광화문광장에 빛기둥이 하늘로 솟아오르는 ‘받들어총’ 모양의 조형물을 두는 건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시 관계자는 “누구나 일상에서 희생과 감사를 전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의장대 사열이 모티브”라고 밝혔다. 아직 석재를 기증하지 않은 국가 조형물의 경우 “우선 인도산 스틸 석재로 제작했다”며 “각국마다 사정이 다르기에 석재가 오는 대로 교체하겠다”고 덧붙였다. 조형물 지하에는 4가지 미디어 시설을 체험할 수 있다. 가장 앞쪽에 배치된 ‘메모리얼 월’은 대한민국과 22개 참전국을 상징하는 23개 삼각 발광다이오드(LED) 기둥이다. 각국 국화로 연대와 희생을 표현한 영상 ‘블룸투게더’와 참전용사에 대한 감사와 경의를 폭포로 표현한 ‘평화의 폭포수’가 상영된다. 구 모양인 ‘연결의 창’에서는 뉴욕 타임스퀘어 영상을 실시간 중계하는 ‘월드포털’, 인공지능(AI)으로 복원한 6·25 사진 ‘되살아나는 과거’ 등을 감상할 수 있다. 그 밖에 참전용사 인터뷰, 평화의 메시지 남기기 등 체험형 콘텐츠도 마련됐다. 시는 오는 13일부터 감사의 정원 전시해설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매주 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오전 10시부터 오후 8시까지 하루 12회(회당 20명) 진행된다. 서울시 공공서비스 예약에서 참가 신청을 할 수 있다. 자유 관람은 상시 가능하다. 김 권한대행은 “참전국과 함께 완성한 감사의 정원은 서울의 명소를 넘어 전 세계와 세대를 하나로 잇는 기억과 연결의 장이 될 것”이라며 “서울시는 앞으로도 자유와 평화의 가치를 굳게 새기는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역할과 책임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 주식 1주도 퇴직금 1원도 마다한 ‘철강왕’…박태준이 ‘보국’ 강조한 이유 [창업주의 비밀노트]

    주식 1주도 퇴직금 1원도 마다한 ‘철강왕’…박태준이 ‘보국’ 강조한 이유 [창업주의 비밀노트]

    “선조들 피 값으로 짓는 제철소…실패는 없다”“선조들의 피값으로 짓는 것이다. 제철소 건설에 실패한다면 우리 모두가 민족사에 씻을 수 없는 죄를 짓는 것이다. 실패할 경우 우리 모두 우향우하여 영일만에 투신해야 한다.” 요즘은 쉽게 떠올리기 어려운 이 비장한 구호는 포항제철(현 포스코)의 창업자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이 1968년 경북 포항 영일만 모래사장에 제철소 부지를 만들며 직원들에게 한 말입니다. 1960년대 한국이 제철소를 세운다고 하자 세계은행(IBRD) 등 안팎의 시선은 냉정했습니다. “한국 같은 개발도상국이 일관제철소를 운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예상이 지배적이었습니다. 하지만 비관적인 시선과 달리 제철소는 착공 3년 2개월만에 첫 쇳물을 뽑아냈습니다. 쇳물은 마중물이 되어 한강의 기적으로 이어졌습니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든 박 명예회장은 피와 땀을 쏟은 포스코에서 1992년 물러날 때 퇴직금도, 단 한 주의 주식도 받지 않았습니다. 40년간 거주하던 서울 아현동 소재 주택을 판 돈 10억원도 기부했습니다. ‘짧은 인생을 영원(永遠) 조국에’라는 평생의 좌우명처럼 사리사욕 대신 국가를 앞세운 그의 신념이 제철소 탄생을 가능케 했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입니다. ‘제철소 특명’ 받았지만 좌절 이어져1927년 경남 동래군에서 태어난 박 명예회장은 아버지를 따라 6세에 일본으로 건너갑니다. 일본 이야마북중학교에 다니던 시절, 제2차 세계대전 때 제철 근로봉사에 동원되며 용광로와 처음 만났습니다. 수학에 재능이 있었던 그는 온도와 관련된 방정식이나 화학적 반응에 흥미를 가졌다고 합니다. 제철소와의 만남은 이후 한국에서 이어집니다. 와세다대 공대 2학년 재학 중 해방을 맞아 귀국한 뒤 1948년 육군사관학교 6기로 임관한 그는 교수로 재직하던 박정희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습니다. 이후 박 전 대통령에게 제철소 건설이라는 특명을 받고 1968년 포항종합제철 사장으로 임명됩니다. 해방 이후 한국의 종합제철소 건설 시도는 네 차례나 좌절됐습니다. 가장 큰 좌절은 1969년 대한국제제철차관단(KISA)이 지원을 최종 거부했을 때입니다. 박 명예회장은 1983년 4월 27일 사보 ‘쇳물’ 인터뷰에서 당시 상황에 대해 “그때의 절망감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절체절명의 위기였다”고 회고합니다. “책임을 다하지 못하면 역사의 죄인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각오를 다지며 새로운 돌파구를 모색했습니다. 이때 실패하면 차라리 영일만에 빠져 죽자는 ‘우향우 정신’이 생겨났습니다.” 차관을 거절당한 뒤 그는 대일청구권자금에서 돌파구를 찾습니다. 대일청구권자금은 1965년 한일 국교를 정상화하면서 한국이 일본에서 받은 자금입니다. 농림수산 부문에 쓰기로 협약됐던 이 돈을 전용하기 위해 박 명예회장은 일본 정계와 철강협회를 끈질기게 설득했고, 결국 종잣돈 7370만 달러를 받습니다. 그는 “선조들의 피 값에 보답하는 길은 종합제철소를 성공적으로 건설하는 것”이라며 여가생활과 취미활동을 끊고 제철소 건설에 매진했습니다. 현장 직원들도 밤낮없이 매달렸습니다. 1970년 4월 1일 포항 1기 설비 종합착공을 시작한 뒤 3년 2개월 만인 1973년 6월 9일 오전 7시 30분. 우리나라 최초의 용광로에서 시뻘건 쇳물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전 임직원이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만세를 불렀습니다. 첫 쇳물이 나온 이날은 법정기념일인 ‘철의 날’로 지정됐습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한 포스코인들은 어렵고 힘들 때마다 ‘우향우’를 외쳤고 ‘우향우’는 포스코의 정신을 상징하는 단어가 됐다고 합니다. 제철보국·교육보국, 철강 신화를 만들다 “창업 이래 지금까지 제철보국(製鐵報國)을 잊은 적이 없습니다. 철은 산업의 쌀입니다. 쌀이 생명과 성장의 근원이듯, 철은 모든 산업의 기초 소재입니다. 양질의 철을 값싸게 대량으로 생산하여 국부를 증대시키고, 국민 생활을 윤택하게 하며 복지사회 건설에 이바지하자는 것이 곧 제철보국입니다.” (1978년 3월 28일 연수원 특강 중) 박 명예회장이 세운 포스코의 설립 정신은 ‘제철보국’입니다. 보국이란 국가의 은혜에 보답한다는 의미와, 국가를 강하게 보존해 후손에게 계승한다는 의미를 포함합니다. 국가는 내 존재의 기반이자 모태이기 때문에 보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동시에 제철을 통해 자립경제 달성에 기여하겠다는 정신이기도 합니다. 제철보국 아래 포스코는 국내에 저렴하게 소재를 공급했고 기업들이 국제 경쟁력을 확보하는 밑거름이 됐습니다. 포항제철 건설 뒤 1967년 현대자동차, 1969년 삼성전자, 1972년 현대중공업이 탄생하며 공업 발전의 기틀이 다져졌습니다. 이런 신념의 뿌리에 대해 전문가들은 “군인 출신인 그의 정체성과 발전주의 국가 체제에서의 민족중흥주의, 부국강병론이 결합한 것”이라고 봅니다. 김왕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박태준의 국가관과 사회관’에서 “박태준의 보국 이념은 중화학공업의 견인차가 되는 철강산업을 부흥시킴으로써 구체화됐다”며 “제철보국의 이념은 책임감, 돌파력, 추진력을 가능케 하는 행동 강령이었다”고 분석했습니다. 제철보국의 사명감 아래 포스코는 확장을 거듭했습니다. 포항제철소 2~4기, 광양제철소 1~4기, 광양 5고로 증설 등 한국을 세계 5위 철강 대국까지 끌어 올렸습니다. 1937년 45만t이던 조강생산량은 2010년 3540만t을 넘어 80배 가까이 늘어났습니다. 보국의 다른 축은 ‘교육보국’입니다. 박 명예회장은 1986년 국내 최초로 연구중심대학을 표방한 포스텍을 설립했습니다. 일찍부터 연구개발의 중요성을 인식했던 그는 포스코-포항공대-포항산업과학연구원 등 3개 축으로 하는 산학연 연구개발 체제를 구축했습니다. 학사운영정책, 신입생 선발에서 획기적인 정책을 과감히 추진해 국내 정상의 대학에서 세계가 주목하는 대학으로 성장시켰습니다. 박태준 정신으로 쇄신의 길 찾는 철강산업 신화적인 초고속 성장을 이룩해 온 한국 철강 산업은 최근 전례 없는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중국산 저가 수입재 증가와 글로벌 과잉 공급, 보호무역 강화와 관세, 수요 부진 등으로 불황이 길어지고 있습니다. 기존의 방법만으로는 타개할 수 없는 복합 위기의 시대에 철강 업계는 다시 ‘박태준 정신’을 떠올립니다. 포스코는 전통적 산업 패러다임의 쇄신과 혁신을 꾀하고 있습니다. 탈탄소 등 미래 철강 산업의 흐름에 대비하기 위해서입니다. 화석연료 대신 수소를 사용하여 철을 생산하는 수소환원제철, 국내 생산의 한계를 넘어 인도·미국 등으로 뻗어나가는 ‘완결형 현지화 전략’ 등을 추진 중입니다. 또 미래 모빌리티와 에너지 시장을 겨냥해 8대 핵심 전략제품을 선정하고 고부가가치 제품 개발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장인화 포스코 회장은 “완결형 현지화 전략을 통해 확보한 수익이 국내 탈탄소 전환 투자의 기반이 되는 선순환 체계를 만들 때 보호주의와 탄소중립은 위기가 아닌 기회의 씨앗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정치권도 철강이 무너지면 국내 제조업 전체가 타격이라는 공감대 속에 ‘K-스틸법’(철강산업 경쟁력 강화 및 탄소중립 전환을 위한 특별법)을 만들어 지원 근거를 마련했습니다. 지난 60년간 한국 근대화를 이끌어온 철강 산업이 한번 더 혁신을 주도하고 새 역사를 쓸지 주목됩니다.
  • “계엄도 하나님 계획?” 외신 질문에…장동혁 “개인적 신념”

    “계엄도 하나님 계획?” 외신 질문에…장동혁 “개인적 신념”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8일 “계엄에도 하나님의 계획이 있다”는 과거 발언과 관련한 외신 기자 질문에 “크리스천인 제 개인적 신념에 기반한 것”이라고 밝혔다. 장동혁 대표는 이날 서울 중구 서울외신기자클럽(SFCC) 초청 간담회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사태가 여전히 국민의힘에 큰 타격이 되고 있다”는 외신 기자 질문을 받고 이같이 답했다. 앞서 그는 지난해 3월 보수 기독교 단체 ‘세이브코리아’ 집회에서 “비상계엄에도 하나님의 계획이 있다”고 말해 논란이 됐다. 다만 장 대표는 지난해 12·3 비상계엄 당시 국회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 18명 중 한 명이었다. 이날 대만 공영방송 PTS 기자는 “계엄에는 반대하지만 탄핵은 반대했던 것이냐” “입장이 달라진 것이라면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이에 장 대표는 “정치적 사건이나 사회적 사건을 바라보는 데 있어 법조인으로서 시각이 있을 수 있고 정치인으로서 시각이 있을 수 있으며, 크리스천인 제 신념에 기반한 시각도 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저는 계엄 해제에 찬성 표결을 한 사람”이라며 “탄핵이나 이후 국면에서의 입장을 두고 계엄에 대한 제 법적 판단이 바뀌었다고 보는 것은 질문의 전제가 잘못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당시 국민의힘 의원들의 표결 불참 논란과 관련해서는 “저는 본회의장에 들어갈 수 있는 상황이었고 다른 의원들은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며 “결과적으로 표결에 참여하지 못한 현상이 나타난 것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계엄을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이 탄핵은 아니었다”며 “당내에서 점진적 퇴진 논의도 있었지만 내부 분열로 결국 국민의힘 스스로 탄핵의 문을 열어줬다”고 전했다. 장 대표는 계엄 사태를 두고 종교적 신념을 재차 강조하기도 했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외면할 때도, 우상을 숭배할 때도 하나님은 늘 함께하셨다”며 “대한민국 건국을 지켜본 하나님이 그 순간에도 대한민국을 지켜보고 있었다고 믿는다”고 밝혔다. 이어 “계엄이 국민들에게 상처를 주고 혼란을 가져왔을 수 있다”면서도 “시간이 지나면 대한민국이 상처를 딛고 또 다른 모습으로 나아가는 하나의 사건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외신 기자들은 이 밖에도 국민의힘 지지율 하락 원인, 중도층 확장 전략, 대중 외교 방향, 윤석열 전 대통령과 가까운 인사들에 대한 공천 논란 등을 질문했다. 장 대표는 국민의힘 지지율 하락 이유에 대해 “정권 초기에는 여당과 대통령 지지율이 높을 수밖에 없는 조건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중도층을 설득하기 위해 보수정당의 가치와 방향성을 버리지는 않겠다”며 “정책을 더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는 방식으로 중도층을 설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중 외교와 관련해서는 “이재명 정부가 이전 보수정권보다 중국에 치우친 외교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고, 대만 유사시 대응 질문에는 “미국·일본과 궤를 같이하는 입장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 서울시의회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의 광화문광장 호국 상징물 설치 계획 비판… 시민 정서 반하는 일방적 행정 중단 요구

    서울시의회 더불어민주당은 오세훈 시장이 추진하는 광화문광장 내 ‘받들어총’ 형상의 국가상징 조형물 조성을 강하게 비판하며, 시민 정서에 반하는 일방적 행정을 중단함과 동시에 해당 사업을 즉각 폐기할 것을 요구했다. 다음은 서울시의회 더불어민주당 박수빈 대변인 논평 전문 “광화문 광장은 자주독립과 민주주의의 상징, 얄팍한 ‘호국’팔이 당장 중단해야” 광화문광장으로부터 불과 5km 떨어진 용산 전쟁기념관에 6·25전쟁 당시 참전했던 22개 국가를 기리는 국기와 기념비가 대규모 조성되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수백억의 혈세를 들여 유사·중복 시설을 조성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시민사회의 이 물음은 간단하고도 명료하다. 그러나 오세훈 시장은 단 한 번에 이에 대한 명확한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 정책의 당위성과 합리적 근거를 묻는 질문에 “당연한 감사의 표현을 반대하면 좌파”라는 얄팍한 정치적 호도로 일관하고 있다. 오늘 자 언론 기사를 인용하자면, 오세훈 시장은 “국가상징공간에 상징 조형물을 설치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했다고 한다. 2024년 9월 서울시의회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다수의 서울시민들은 광화문광장 국가상징 조형물 주제로 ‘독립운동가’를 상징하는 조형물을 설치하는 것이 가장 적합하다고 답변했다. 그러나 오세훈 시장은 독립운동 상징물 대신 논란의 ‘받들어총’을 강행했다. 윤석열 전 정부와 국민의힘은 줄곧 독립운동의 역사를 지우고 일제강점기 피해를 덮기 위해 골몰해 왔다. 육군사관학교가 홍범도 장군 등 독립 영웅 5인의 흉상에 대해 철거·이전을 추진하는가 하면, “일본이 100년 전 일로 무릎 꿇고 용서를 구할 필요가 없다”라며 강제 동원 피해자 셀프배상에 합의하고, 방사능 폐오염수 방류를 방조했다. 서울 시내에 욱일기를 게시할 수 있게 하는 조례 개정안을 발의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우리는 묻는다. 광화문광장이 가진 국가상징성이 단지 6·25 전쟁인가? 대한민국의 자주독립과 인류 평등의 대의를 실천한 ‘독립운동’은 국가상징공간의 상징 조형물이 될 수 없는가? 무도하고 부패했던 군부독재로부터 국민의 자유와 권리, 존엄을 지키고 자유민주주의 사회 구현을 위해 희생을 마다치 않았던 대한민국의 민주화 역사를 국가의 상징으로 천명하는 것이 매우 불편한가? ‘받들어총’을 ‘받들어총’이라고 가장 먼저 명명한 것은 오세훈 시장이다. 자신의 SNS에서 ‘받들어총’을 조성하겠다고 한 글자 한 글자 정성스럽게도 썼던 오 시장이 극심한 반대 여론에 부딪히자 이제와서는 돌연 “전쟁을 상징하는 받들어총이라고 폄하를 하는 것은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이 매우 부족한 이념적인 한계를 드러내는 것”이라고 한다.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이 매우 부족한 이념적 한계를 지닌’ 오세훈 시장에게 세 번째로 묻는다. 편향된 진영 인식으로 광화문광장에 100m에 이르는 국기 게양대를 세우고, 송현동 부지를 이승만 기념관으로 조성해서 국민의 열린 광장인 광화문광장을 이념의 닫힌 광장으로 만들고자 했던 오세훈 시장이 이도 저도 안 되니 ‘호국’을 팔아 지지를 구걸하는 것이 아닌가? 감사의 정원은 국민이 반대하고, 불필요한 갈등을 초래하고, 중복사업으로 수백억의 세수를 낭비하는 나쁜 정치이다. ‘호국(護國)’이 아니라 위기를 조장하는 ‘위국(危國)’일 뿐이다. 민의를 거스르는 진영 정치용 전시사업을 두고 ‘호국’ 운운하는 것은 막대한 국가적 위기를 초래한 계엄이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조치였다는 궤변과 다를 바 없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가상징공간 광화문광장은 우리 사회가 어떤 역사와 가치를 기억할 것인지 보여주는 상징이 되어야 한다. 지금 광화문광장에 상징물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용산에 있는 참전기념물을 복붙한 수백억짜리 돌기둥이 아닌 소박한 목도리를 두른 ‘평화의 소녀상’, 기미독립선언서를 상징하는 조형물, 민주화 시대에 광장을 가득 메웠던 국민의 함성을 상징하는 조형물일 것이다. 서울시의회 더불어민주당(대표의원 성흠제)은 4·19와 6월 민주항쟁, 촛불과 빛의 혁명으로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역사를 기록해 온 광화문광장에 ‘받들어총’ 돌기둥 조성을 반대한다. ‘받들어총’을 반대하는 시민의 여론을 외면하고 막대한 혈세를 지출한 책임은 무거운 고지서로 오세훈 시장에게 되돌아갈 것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서울시의회 더불어민주당 대변인 박수빈
  • “선열 희생·헌신을 미래 세대로”…‘백범의 손녀사위’ 빙그레 회장[창업주의 비밀노트]

    “선열 희생·헌신을 미래 세대로”…‘백범의 손녀사위’ 빙그레 회장[창업주의 비밀노트]

    “서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빙그레’ 웃는 세상을 만들어야 하겠소.” 암울했던 식민지 시절, 도산 안창호 선생은 밝은 미소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사는 밝은 세상을 꿈꿨다고 합니다. 도산은 이런 ‘빙그레 정신’을 우리 민족이 가져야 할 본연의 웃음으로 강조했죠. 목욕탕에서 한 번쯤 마셔봤을 법한 ‘바나나맛우유’, 떠먹는 요구르트 ‘요플레’, 국민 아이스크림 ‘메로나’로 잘 알려진 식품기업 빙그레의 사명도 이 ‘빙그레 사상’에서 비롯됐습니다. 좋은 제품으로 국민 건강을 증진하고, 기쁨과 웃음을 전하겠다는 뜻입니다. 김호연(71) 빙그레 회장 역시 역사와 가치에 대한 관심이 깊은 경영인으로 평가됩니다. 김종희 한화그룹 창업주 차남…‘학구파’ 경영인 김 회장은 1955년생으로 고 김종희 한화그룹 창업주의 차남입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동생으로도 잘 알려져 있죠. 경기고와 서강대 무역학과를 졸업한 뒤 일본 히토쓰바시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 연세대 행정대학원에서 외교안보 석사를 취득했고, 서강대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재계에서는 ‘학구파’ 경영인으로 꼽힙니다. 빙그레는 1967년 설립 당시 회사 이름이 대일양행(대일유업)이었지만 1973년 한화그룹에 인수됐고, 1982년 현재의 사명으로 바뀌었습니다. 이후 1992년 계열분리를 통해 독립 경영에 나섰습니다. 부채비율 4000% 넘는 재무 위기 체질 개선 당시 회사는 부채비율이 4000%를 넘는 심각한 재무 위기 상황에 놓여 있었다고 합니다. 자본잠식 상태에 가까웠던 기업을 맡은 김 회장은 강도 높은 체질 개선과 장기적 관점의 경영 전략을 통해 회사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켰습니다. 그 결과 현재 빙그레는 부채비율 약 40%, 매출 약 1조 5000억원 규모의 안정적인 재무구조를 갖춘 기업으로 탈바꿈했습니다. 외형 성장에 그치지 않고, 재무 건전성과 지속가능성을 동시에 확보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빙그레의 경영 효율화 시도는 현재도 진행 중입니다. 빙그레는 지난 4월 해태아이스크림을 흡수합병하는 방식으로 인수를 마무리했습니다. 이번 결정은 내수 시장의 성장 한계를 넘어 글로벌 사업을 본격적으로 확대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됩니다. 이를 계기로 빙그레가 ‘K-아이스크림’을 대표하는 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립니다. 18대 충남 천안을 국회의원 지내…2014년 경영 일선 복귀김 회장은 한때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정치에 도전했습니다. 2008년 정계 진출을 공식 선언한 이후, 빙그레는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됐습니다.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충청남도 천안시을 선거구에 출마했지만 낙선했지만, 2010년 재보궐선거에서 같은 지역구에 다시 출마해 당선되며 국회에 입성했습니다. 의정 활동 기간에는 과학벨트 천안 유치 추진, 보훈 가족과 유족 지원을 위한 국가보훈법 개정 발의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적극적인 활동을 펼쳤습니다. 이후 제19대 총선에서 다시 고배를 마신 뒤 정계를 떠났고, 2014년 빙그레 등기이사로 복귀하며 경영 일선으로 돌아왔습니다. “선열 희생과 헌신, 미래 세대 전달돼야”…다양한 공익활동 김 회장은 백범 김구 선생의 손녀사위로도 유명합니다. 부인 김미(69) 여사는 김구 선생의 둘째 아들인 고 김신 전 교통부 장관의 딸입니다. 이런 배경 때문인지 김 회장은 독립운동의 역사와 가치에 깊은 책임감을 갖고 다양한 공익활동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김 회장은 “선열들의 희생과 헌신이 제대로 기억되고, 그 정신이 미래 세대에 온전히 전달돼야 한다”는 신념 아래 공익 활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사재를 출연해 김구재단을 설립했고, 1995년에는 후손 없이 순국한 이봉창 의사의 기념사업회를 재건해 직접 회장을 맡았습니다. 또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 부회장, 독립기념관 이사 등을 지내며 독립유공자와 그 후손을 위한 지원과 기념사업을 지속해 이끌어왔습니다. 독립유공자와 후손 조명 공익 캠페인 지속…국민적 공감 김 회장은 기업의 성장은 사회적 책임과 함께해야 한다는 경영 철학을 갖고 있습니다. 이에 빙그레는 2019년부터 독립유공자와 그 후손을 조명하는 공익 캠페인 영상을 매년 제작·방영하고 있습니다. 이 캠페인은 ‘기억과 감사’를 주제로, 독립운동의 가치를 현재와 미래 세대에 전달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특히 2023년 이후 진행된 캠페인은 대중적 공감과 사회적 반향을 동시에 이끌어냈습니다. 학업을 포기했던 학생 독립운동가들을 기리는 ‘세상에서 가장 늦은 졸업식’, 옥중의 모습을 영웅의 서사로 재해석한 ‘처음 입는 광복’, 광복의 의미를 후손의 시선에서 풀어낸 ‘처음 듣는 광복’ 등은 국민적 공감을 얻으며 독립정신을 재조명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해군 장병들에게 ‘투게더’ 후원…빙그레공익재단 설립 보훈 문화 확산도 지원하고 있습니다. 2024년 빙그레는 해군본부와 협약을 맺고 해군 장병들에게 아이스크림 ‘투게더’를 후원했습니다. 약 20만 개의 제품이 함정 승조원과 도서·격오지 근무 장병들에게 전달되며 사기 진작에 기여했습니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이 장병들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 아이스크림을 보급했던 사례에서 착안한 것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끕니다. 이런 지원은 지난해에도 이어지며, 단발성 지원이 아닌 지속 가능한 보훈 활동으로 자리잡았습니다. 김 회장은 2011년 빙그레공익재단을 설립하며 사회공헌 활동을 보다 체계화했습니다. 재단은 특히 독립유공자 후손 지원에 중점을 두고 장학사업을 지속적으로 확대해왔습니다. 2018년부터 국가보훈부와 협력해 진행 중인 장학사업은 현재까지 415명의 장학생에게 총 5억 7000만원을 지원했습니다. 지난해에는 사업을 확대해 향후 5년간 7억 5000만원 규모로 지원을 늘리고, 대상도 제복근무자 자녀까지 확대했습니다. 또 경찰청과의 협약을 통해 독립유공자 및 순직 경찰관 자녀 지원으로 영역을 넓히는 등 지원 범위를 지속적으로 확장하고 있습니다. 경영자 철학, 기업 활동으로 확장된 빙그레…공익활동 확장 기대 김 회장은 개별 독립운동가에 대한 기념사업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습니다. 2023년에는 ‘오성 장군’으로 불리는 김홍일 장군의 기념사업회가 설립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접하고, 사재를 출연해 설립과 운영을 지원했습니다. 김 회장의 행보는 ‘기업의 성장과 사회적 책임은 함께 가야 한다’는 철학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빙그레의 다양한 공익 캠페인 역시 단순한 기업 홍보를 넘어, 경영자의 철학이 기업 활동으로 확장된 사례로 평가됩니다. 향후 그의 경영과 공익 활동이 어떤 방식으로 이어질지 주목됩니다.
  • 삼성家 상속세 12조 완납… ‘노블레스 오블리주’ 실천

    삼성家 상속세 12조 완납… ‘노블레스 오블리주’ 실천

    보건·의료·보육·복지 ‘사회 공헌’ 문화재·미술품 2만 3000점 환원‘이건희 컬렉션’ K컬처 위상 높여 고 이건희 삼성전자 선대회장의 유산에 대한 상속 절차가 5년 만에 마무리됐다. 삼성가에서 납부한 상속세는 총 12조원으로, 기업의 대표적인 ‘노블레스 오블리주’(지도층의 사회적 책임) 사례로 남게 됐다. 3일 재계에 따르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홍라희 리움미술관 명예관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물산 사장 등 삼성가 유족들은 최근 이 선대회장의 상속세를 완납했다. 이 선대회장의 삼성 지분과 부동산 등을 고려하면 상속세는 12조원 규모다. 유족들은 2020년 10월 이 선대회장의 별세 후 2021년 4월부터 총 6회에 걸쳐 상속세를 냈다. 상속세 12조원은 2024년 정부가 거둬들인 상속세 총액(8조 2000억원)의 약 1.5배에 달한다. 이 선대회장의 상속세는 국가 재정으로 유입되면서 복지, 보건, 사회 인프라 등 다양한 분야에 활용되고 있다. 대표적인 사회 공헌 분야는 보건·의료다. 삼성가는 코로나19가 확산 중이던 2021년 4월 국립중앙의료원에 7000억원을 출연했다. 이중 5000억원은 한국 최초의 감염병 전문 병원인 ‘중앙감염병병원’을 건립하는 데 사용됐다. 감염병 대응 교육∙훈련과 감염병 임상 연구를 수행하는 중앙감염병병원은 2030년 서울 중구에 150병상 규모로 건립된다. 유족들은 어린이 보육·복지에 힘을 쏟았던 이 선대회장의 뜻을 기려 2021년 4월 소아암∙희귀질환 환아 지원을 위해 서울대학교병원에 3000억원을 기부했다. 1500억원은 소아암 진단 및 치료에 사용됐으며 600억원은 희귀질환, 900억원은 공동 임상 연구 및 연구 인프라 구축 등에 쓰이고 있다. 예술 애호가였던 이 선대회장의 신념을 이어받아 문화·예술 분야에서도 사회 환원이 이뤄졌다. 유족들은 국보급 문화재를 포함한 총 2만 3000여점의 미술품을 사회에 환원했다. 2021년부터 3년간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 등이 개최한 ‘이건희 컬렉션’ 순회전은 총 35회에 걸쳐 누적 관람객 350만명을 기록했다. 국내 미술 전시 중 최다 관람 기록이다. 이건희 컬렉션 해외 순회전은 지난해 11월 미국 워싱턴DC 스미스소니언 국립아시아예술박물관에서 열렸고, 지난 1월 순회전의 성공 개최를 기념해 갈라 디너도 열렸다. 해외 순회전은 오는 7월까지 미국 시카고미술관에서 열리고, 10월 영국 런던으로 이어진다.
  • 들켰네요, 당신 안의 ‘악의 얼굴’

    들켰네요, 당신 안의 ‘악의 얼굴’

    독일 심리학 연구자 3명이 10년 이상 현장에서 250만명의 데이터로 완성한 악에 대한 연구 결과를 책으로 묶었다. 인간의 어두운 본성을 단순한 도덕적 문제로 환원하지 않고 실증적 데이터에 기반해 과학적으로 분석했다. 이들은 악의적 성향을 단 하나의 성격 특성인 다크 팩터(D-인자)로 명명한다. D-인자는 “타인의 희생을 통해 자기 이익을 극대화하고, 우월한 자신에게 그러한 권리가 있음을 정당화하려는 신념을 갖는 것”이다. ●우월감·불신·위계의식으로 정당화 여기서 핵심은 타인에게 피해를 초래하는 행위에 있다. D-인자가 높은 사람들은 자기 이익을 남보다 우위에 두기 때문에 타인의 고통은 부차적이거나 무의미한 것으로 취급한다. 이러한 성향은 내가 남들보다 우월하다는 ‘우월감’, 세상은 위험한 곳이라 믿는 ‘불신’, 생존을 둘러싼 경쟁에서 남보다 우위에 있어야 한다는 ‘위계의식’ 등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려는 신념으로 발현된다. D-인자는 이기주의, 악의, 탐욕, 자기중심성, 가학성, 특권의식, 자기애, 도덕적 해이, 마키아벨리즘 등 성격 특징 사이의 공통된 특성으로 측정된다. 연구에 따르면 전반적으로 남성이 여성보다 D-인자 수치가 높았으며, 나이가 들수록 D-인자가 감소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교육이나 소득 수준과는 큰 상관관계가 없으며 유전보다는 환경적인 영향이 더 큰 것으로 드러났다. ●악한 행동, 삶의 만족도는 낮아 악한 행동이 본질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것으로 악할수록 삶 전반에서 높은 만족도를 경험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고 저자들은 밝힌다. D-인자가 높은 사람들은 간절히 원하는 것을 실제로는 이루지 못하고, 대인관계가 원만하지 못하다. 희망을 품기 어려운 세계관을 지닌 탓에 삶에 덜 만족한다는 설명이다. 이 책을 통해 독자는 자기 자신과 자신의 신념을 되돌아보는 계기로 삼을 수 있고 D-인자를 지닌 사람을 어떻게 알아보고 피할지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도 있다. 한국어 설문조사도 가능하니 자신의 D-인자를 확인해 보는 것도 추천한다.
  • 이정선 단일화, 실력·현장·혁신 전남광주교육 ‘골든크로스’

    이정선 단일화, 실력·현장·혁신 전남광주교육 ‘골든크로스’

    난립하던 전남·광주 통합특별시 교육감 선거판이 요동치고 있다. 이정선, 김해룡, 고두갑 예비후보가 30일 ‘이정선 단일 후보’로 전격 합의하면서, 8파전 양상의 선거 구도가 급격히 재편됐다. 이번 단일화는 단순한 후보 숫자의 줄이기를 넘어, 각 후보가 가진 강점을 ‘가치 통합’이라는 틀로 묶어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광주시교육청 브리핑룸에서 30일 열린 공동 기자회견의 핵심 키워드는 ‘중단 없는 발전’과 ‘가치 통합’이었다. 세 후보는 개인의 정치적 신념과 이해관계를 뒤로하고, 전남·광주 교육의 미래를 위해 이정선 후보를 중심으로 힘을 모으기로 합의했다. 이번 단일화의 내실은 후보 간 역할 분담에서 드러난다. 김해룡 후보의 ‘청렴하고 올곧은 교육 철학’과 고두갑 후보의 ‘현장 중심적 혁신 역량’을 이정선 후보의 ‘정책적 비전’과 결합하겠다는 구상이다. 이번 단일화는 철저히 객관적인 지표인 ‘여론조사 100%’ 결과를 바탕으로 이뤄졌다. 전남 560명, 광주 440명 등 총 1,000여 명의 시도민을 대상으로 진행된 조사에서 가장 높은 지지율을 얻은 이정선 후보가 최종 낙점됐다. 단일화 이후 이들은 당선 뒤 ‘공동정부’ 성격의 협력 체계를 꾸리기로 합의했다. 실제 이정선 후보는 김해룡, 고두갑 두 후보를 ‘총괄 선대본부장’으로 영입하고, 각 캠프 인력 역시 차별 없이 통합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선거 승리뿐 아니라 당선 이후의 교육 행정까지 공유하겠다는 강력한 결속의 의지로 풀이된다. 단일화된 ‘상생 원팀’ 내용을 보면 이 후보는 ▲기초학력 책임제 ▲교육격차 해소 ▲미래 교육 완성을 3대 핵심 약속으로 제시했다. 이정선 후보는 “두 후보의 정책적 자산과 교육에 대한 열정을 이어받아 전남·광주의 실력 회복과 교육 복지 확대에 힘쓰겠다”며 “검증된 실력을 바탕으로 아이들에게는 따뜻함을, 미래를 여는 길에는 유능함을 보여주겠다”고 강조했다.
  • 성폭행·강제 결혼 일삼던 종교 단체 적발…JMS 정명석 판박이 [핫이슈]

    성폭행·강제 결혼 일삼던 종교 단체 적발…JMS 정명석 판박이 [핫이슈]

    신도에 대한 성적 학대와 강제 결혼, 현대판 노예 등을 일삼던 이슬람 기반의 종교 단체가 적발됐다. 영국 가디언 등 현지 언론은 29일(현지시간) “전날 잉글랜드 북서부 전역에서 차출된 경찰관 500명이 아흐마디 평화와 빛의 종교(Ahmadi Religion of Peace and Light, 이하 AROPL) 본부를 급습했다”고 보도했다. 아흐마디 평화와 빛의 종교는 2010년대 후반부터 활동을 시작한 이슬람 교단으로, 압둘라 하심 아바 알사디크가 자신을 “신이 선택한 인물”이라고 주장하며 신도들을 모았다. 중동과 유럽,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확산한 이 종교는 구세주의 도래를 중심으로 한 종말론적 세계관과 현재 지도자가 구세주와 연결돼 있다는 주장을 중심으로 신도들을 현혹했다. 보도에 따르면 지난 3월 아일랜드에 거주하는 한 여성이 해당 종교 본부에서 강간 및 성추행을 당했다며 신고하면서 이들의 범죄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해당 여성은 “AROPL의 신도였던 2023년 당시 교단 내에서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이후 경찰은 추가 조사 끝에 체셔주에 있는 본부를 급습했고 인신매매, 성폭행, 강제 결혼, 현대판 노예제도 등 다양한 혐의로 남성 6명과 여성 3명을 체포했다. 용의자들의 국적은 미국, 멕시코, 스페인, 이집트, 이탈리아, 스웨덴 등 다양했다. 현지 경찰은 “이번 수사는 종교 자체에 대한 것이 아니라 제보된 심각한 혐의에 대한 수사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싶다”면서 “우리는 모든 성폭력 신고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으며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이비 종교 JMS 닮은 AROPLAROPL은 2021년 영국 체셔주 크루로 본부를 옮긴 종교 단체로 알려졌다. 이들은 외계인이 미국 대통령을 조종한다는 음모론과 이슬람 교리 등을 결합한 교리로 신도들을 끌어모았다. 신도들은 일반적으로 검은색 모자를 쓰고 있으며 교주가 병을 고치고 달을 사라지게 할 수 있다는 가스라이팅 등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AROPL 측은 자신들이 이슬람 시아파에서 파생된 평화롭고 개방적이며 투명한 종교단체이며, 평등과 인권에 대한 신념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박해를 받고 있다고 주장해 왔다. 경찰이 급습한 본부에는 신도 약 150명이 함께 거주하고 있었으며, 이들은 대체로 본부에서 제작한 영상과 SNS를 통해 포교 활동을 펼쳐 왔다. AROPL은 과거 한국 사회를 들끓게 만든 기독교복음선교회(JMS)를 떠올리게 한다. 창립자이자 교주로 활동한 정명석 역시 AROPL과 마찬가지로 스스로를 메시아 또는 구원자라고 주장하며 개인의 권위를 강조했다. 또 두 종교 모두 종말과 구원을 활용하며 선택된 집단과 개인만이 구원받는다는 서사를 강조했다. 더불어 AROPL은 SNS와 유튜브 등을 적극 이용해 글로벌 신흥 종교로 성장했고, JMS는 대학 동아리와 문화 활동, 대인관계를 중심으로 포교하는 등 일상 속에서 자연스러운 접근을 시도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무엇보다 AROPL과 JMS 모두 신도들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 이단과 사이비 논쟁에 휘말렸으며 사회를 혼란과 충격에 빠뜨렸다.
  • 李대통령 “대외 문제서 자해행위 있어… 공적 입장 가져야”

    李대통령 “대외 문제서 자해행위 있어… 공적 입장 가져야”

    이재명 대통령은 29일 “다른 나라 사례를 보더라도 국내 문제에 대해서는 의견이 달라 다투더라도, 대외 문제에서 자해적 행위를 하는 경우는 찾기 쉽지 않다”며 “아쉽게도 우리 안에는 그런 요소들이 조금은 남아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 비교섭단체·무소속 국회의원을 초청해 진행한 오찬 간담회에서 “대외적 상황이 매우 좋지 않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 대통령은 “국내 상황도 매우 혼란스러웠지만 그것은 우리 자신의 힘으로 이겨나갈 수 있다”며 “그러나 대외 환경이 악화되는 문제는 우리만의 힘으로 해결하기가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에 “이런 어려운 상황을 이겨나가기 위해서는 특히 국내에서 대외 관계를 바라볼 때 입장을 공적으로 가져주시면 좋겠다”며 ‘대외 문제에서의 자해 행위’를 언급했다. 다만 “여기 계신 분들이 그렇다는 말씀은 전혀 아니다”면서 “우리 국민들께서는 이 위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정치가 통합의 역량을 발휘해 주기를 바라실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국가와 국민을 위한 정치’를 강조했다. 그는 “정치라고 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남의 일을 대신하는 것”이라며 “각자의 정치적 신념을 실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국가와 국민의 더 나은 삶과 미래가 아닌가 싶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각자의 이익도 있겠지만, 더 본질적으로는 국가와 국민을 위해 무엇이 더 나은지 고민하고 또 누가 더 잘하는지를 경쟁해서 국민의 선택을 받는 것이 진정한 정치가 아닐까 생각한다”고 했다. 이날 간담회에는 조국혁신당, 진보당, 개혁신당, 사회민주당 원내대표와 의원, 무소속 의원 등 총 21명이 참석했다. 청와대에서는 강훈식 비서실장, 조정식 정무특보, 홍익표 정무수석 등이 자리했다. 서왕진 조국혁신당 원내대표는 “아직 이재명 정부 취임 1년이 채 되기 전입니다만 한 2, 3년은 열심히 뛰어온 것처럼 큰 변화를 체감한다”고 평가했다. 아울러 수도권 내 불균형 문제를 지적하며 경기 북부와 평택에 대한 지원을 요청했다. 서 원내대표는 “평택의 경우 시민들은 미군 기지 이전, 해군 2함대 유치 등 국가 안보를 위해 큰 희생을 수십 년째 감내하고 있다”며 관심과 지원을 당부했다. 윤종오 진보당 원내대표는 이 대통령의 부동산 정상화 의지에 깊이 공감한다면서 “조세 형평성 훼손은 물론 매물 잠김을 초래하는 장기보유특별공제는 반드시 개편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공임대주택 공급의 확대와 임차인의 권리 보장도 요청했다. 노란봉투법의 조속한 안착을 위한 정부의 역할도 요구했다. 천하람 개혁신당 원내대표는 이 대통령의 전날 ‘소풍·수학여행’ 발언을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전날 국무회의에서 안전사고 위험 때문에 소풍·수학여행을 안 가는 현실을 지적하며 “구더기 생기지 않을까 싶어 장독을 없애면 안 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천 원내대표는 “장 담그다가 장독이 깨졌을 때 일선 선생님들이 독박 책임을 지는 게 문제라는 이야기를 많이 하신다”며 교사 소송 국가 책임제를 제언했다. 또한 전남광주통합특별시의 통합 필수 예산이 삭감됐음을 지적하며 이 대통령의 관심을 촉구했다. 한창민 사회민주당 대표 겸 원내대표는 쿠팡 문제를 언급하며 온라인 독점 규제법이 추진될 수 있도록 대통령이 챙겨줄 것을 요청했다. 홈플러스 사태에 대한 관심과 인공지능(AI) 전환 대응 정책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이어 개헌이 정치권에서 긴밀하게 논의될 수 있도록 대통령이 독려해줄 것을 요청했다.
  • 장동혁의 ‘책임정치’?… 막스 베버가 본다면[노정태의 뉴스 인문학]

    장동혁의 ‘책임정치’?… 막스 베버가 본다면[노정태의 뉴스 인문학]

    막스 베버 ‘소명으로서의 정치’ 저술정치를 소명으로 삼고 있는 정치인신념윤리 넘어 ‘책임윤리’ 고민해야의도 좋아도 결과 나쁘면 소용없어장동혁, 상황 좋지 않으면 물러나야선거 승리에 모든 것 바칠 각오 필요대표직 버티는 건 철없는 ‘신념윤리’ “상황이 좋지 않다고 당 대표에서 물러나는 것은 책임지는 정치인의 모습이 아니다.” 지난 24일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페이스북을 통해 밝힌 입장이다. 전후 맥락을 짚어 보자.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장 대표는 미국을 방문했다. 김민수 국민의힘 최고위원과 환한 표정으로 찍은 ‘인생샷’이 논란을 일으키는 가운데 정작 미국에서 만난 사람조차 국무부 고위급 인사가 아니라는 논란이 불거지고 말았다. 국민의힘 지지율이 낮게는 15%까지 내려앉은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거취를 정리해야 한다는 책임론이 불거질 수밖에 없는 상황. 장 대표는 그런 요구를 일거에 거절한 것이다. ‘나는 정치적 책임을 지기 위해 당대표직을 유지하겠다.’ 장 대표의 논리에도 일리가 있다. 당대표는 당원이 뽑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자진 사퇴, 지도부 5인 중 4인의 사퇴 혹은 탄핵 외에는 합법적으로 뽑힌 당대표가 자리를 내려놓게 할 수 없다. 요컨대 절차적 정당성을 지니고 있다. 민주적 원칙을 놓고 보더라도 그렇다. 국민의힘 중진들이 비판하는 것처럼 장동혁 체제가 지방선거 승리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해 보자. 설령 그렇다 한들 그것이 장동혁을 당대표로 뽑은 당원들의 뜻이 ‘민주적’으로 반영된 결과라고 한다면 수긍해야 하는 것 아닐까?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정치,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단위인 정당의 운영이 민주적이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민주적 원리를 교조적으로 내세우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현실 속의 정치는 그보다 훨씬 다양한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현상이다. ●“국가만이 물리적 폭력 사용할 권리” 당대표로서 임기를 다하는 것이 책임을 지는 일이라는 말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정치를 소명으로 받아들이고 직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이라면 특히 ‘책임’이라는 말의 무게를 더욱 엄중히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가 쓴 불멸의 고전 ‘소명으로서의 정치’를 펼쳐 볼 때다. 1919년 1월 베버는 강연을 시작했다. 뮌헨의 진보적 학생 단체, 말하자면 ‘운동권’인 ‘자유학생연맹’의 초청을 수락했기 때문이었다. 뮌헨대학 사회학 석좌교수, 베버는 높은 명성을 지닌 학자였다. 민주주의를 정치적 이상으로 품고 있었지만 당장 군주제를 전복해야 한다는 과격한 주장에 동참하지 않는 현실주의적 관점을 지닌 인물이기도 했다. 그런 그가 ‘소명으로서의 정치’라는 제목의 강연을 한다는 소식에 학생들은 강당으로 몰려왔다. 정치 현안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며 학생들의 손을 들어 주기를 기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베버는 단호했다. “여러분의 요청으로 이 강의를 하게 되었지만, 틀림없이 내 강의는 여러분을 여러모로 실망시키게 될 것이다.” 독일어 단어 ‘Beruf’는 ‘소명’과 ‘직업’이라는 두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 단어를 선택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정치는 단순한 직업이 아니라 소명의식을 가져야 할 수 있는 특별한 일이라고 베버는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왜일까? 소명으로서의 정치에 대해 고찰하려면 우선 정치 그 자체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직장, 취미 활동, 심지어 베버 스스로도 언급했다시피 “남편을 영악할 정도로 잘 다루는 부인의 현명한 정책을 두고도 사람들은” 정치적이라고 말하곤 한다. 요컨대 사람이 모여서 벌이는 모든 활동은 정치적이다. 베버는 강연의 주제를 한정 지었다. “오늘 우리는 단지 특정의 정치적인 결사체, 오늘날에는 국가를 의미하는 정치적 결사체의 지도력 또는 이를 둘러싼 영향력의 작용에 대해서만 알아보려 한다.” 인간의 정치적 활동 전체가 아니라 ‘국가’를 중심으로 한 정치만을 살펴보기로 한 것이다. 국가가 지닌 특별한 성격 때문이다. 베버의 설명을 들어 보자. “사회학적 관점에서 볼 때 다른 모든 정치적 결사체들과 마찬가지로 근대국가란, 국가만이 하는 고유 업무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것이 고유하게 지니고 있는 수단을 준거로 정의될 수밖에 없게 되는데, 그 수단이란 곧 물리적 폭력·강권력(Gewaltsamkeit)이다. (중략) 왜냐하면 근대에 와서, 국가 이외의 다른 모든 조직체나 개인은 오로지 국가가 정하는 범위 내에서만 물리적 폭력·강권력을 행사할 수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국가는 폭력·강권력을 사용할 ‘권리’(Rechts)의 유일한 원천으로 간주되고 있는 것이다.” ●베버, 정치적 본질에 대한 통찰 쉽게 풀어 보자. 국가에서 벌어지는 정치나 동네 배드민턴 모임에서 벌어지는 정치나 본질은 같다. 갈등을 조절하고 공통의 의사 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하지만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은 전혀 다르다. 회비를 내지 않는 회원은 클럽 출입 자격을 제한당하고 쫓겨날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폭력이 동원되지는 않고, 그럴 수도 없다. 반면 국민이 세금을 내지 않으면 국가는 공권력을 동원해 재산을 확인하고 필요에 따라 강제 징수를 한다. 미국처럼 국세청의 권한이 막강한 나라는 심지어 직접 무장한 인원을 동원하는 일도 벌어진다. 이것이 국가의 정치를 다른 집단의 정치와 구분 짓는 가장 근본적인 차이다. 국가는 군대나 경찰 등의 무장집단을 보유하고 있다. 근대 이전에는 국가 말고도 다른 무장집단이 존재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하지만 근대국가는 자신의 영토 내에서 국가 외의 다른 어떤 조직된 폭력도 허용하지 않는다. 비싼 돈을 주고 고용하는 사설 경비 업체의 역할이 경찰에 비해 제한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국가는 폭력을 독점한다. 그렇다면 권력을 지닌 자가 누군가에게 없는 죄를 뒤집어씌우거나, 엉뚱한 사람을 잡아 가두고 고문해 거짓 증언을 받아낸 후 감옥에 보내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그런 일을 막기 위해 근대국가는 국가가 독점한 폭력의 행사를 규제한다. 헌법과 형사소송법 등이 존재하는 것은 그래서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는 국가의 폭력에 대한 법적 통제가 비교적 잘 작동하는 세상 속에 살고 있다. 하지만 정치의 본질에 대한 베버의 통찰은 오늘날도 여전히 유효하다. 그 겉모습이 어찌 됐건 국가는 폭력을 독점한 기구다. 정치는 그 폭력의 통제권을 둘러싼 다툼이다. 그러므로 정치를 직업이자 소명으로 삼고 있는 이들에게는 평범한 사람들과는 다른 차원의 윤리가 요구된다. 신념윤리를 넘어 책임윤리에 대해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야당 참패하면 여당 독주 견제 못 해 신념윤리와 책임윤리를 가르는 기준은 분명하다. ‘결과’다. 신념윤리는 행위자의 의도를 결과보다 중시하는 것이다. 반대로 책임윤리는 행위자의 의도보다 결과를 중시한다. 때로는 결과가 나쁘다면 의도가 아무리 좋아도 소용없다는 비판까지 가능해진다. 물론 베버가 말했듯 “신념 윤리는 무책임과, 책임 윤리는 무신념과 동일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하지만 양자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고, 정치를 소명으로 삼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책임윤리에 따라야 한다. 대통령이 바뀌면 나라의 방향이 바뀐다. 국회의원 선거로 국회의 구성이 달라지면 나라의 근간을 이루는 법체계가 순식간에 뒤흔들릴 수 있다. 정치를 소명과 직업으로 삼는 사람이라면 선거 승리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칠 각오로 임해야 한다. 우리의 현실로 돌아와 보자. 더불어민주당은 대통령과 과반 의석을 보유한 상태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그 구도가 바뀔 수는 없지만, 야당이 참패한다면 민주당의 독단적 국정 운영과 입법 폭주는 한층 더 가속화될 수밖에 없다. 가령 민주당 의원들이 발의한 한국예술종합대학교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이전과 대학원 설치 법안을 떠올려 보자. 예술학교의 특성은 고려하지 않은 채 특정 지역의 이익을 위한 법안이 발의되었지만, 야당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기에 정치권에서 제대로 논의조차 이루어지지 않는 현실이다. “상황이 좋지 않다고 당 대표에서 물러나는 것은 책임지는 정치인의 모습이 아니”라는 장 대표의 말을 납득하기 어려운 것도 그래서다. 상황이 좋지 않으면 당연히 책임을 져야 한다. 이대로면 결과가 뻔한데 ‘지방선거 후에 평가받겠다’며 버티는 건 정치인의 책임윤리가 아니다. 베버를 초청한 운동권 학생들을 연상시키는 철없는 신념윤리일 뿐이다. 장동혁 의원이 정치인으로서 소명을 다하는 일은 당대표라는 직책을 내려놓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노정태 작가·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
  • 음모·망상 추종하는 사람들…거짓인 줄 알면서 왜 믿는가

    음모·망상 추종하는 사람들…거짓인 줄 알면서 왜 믿는가

    정치성향과 진영논리에 따라 서로 다른 진실을 구성하는 경향이 심해지고 있다. 정치인들은 복잡한 현실을 단순화하기 위해 음모와 적대로 얼룩진 서사를 동원하며 권력 유지의 수단으로 삼기도 한다. 그 절정이 12·3 비상계엄 내란이다. 현실의 실제적 위기가 아니라 ‘위기 서사’를 앞세워 발생한 이 정치적 사건의 표면과 심층을 아울 수 있는 단어는 바로 ‘망상’이다. 반(半)연간 문예지 ‘쓺-문학의 이름으로’ 22호(2026년 상권)는 ‘망상의 시대’를 주제로 특집을 꾸몄다. 정신병리학, 사회·문화, 정치, 문학의 장에서 망상이 형성되고 작동하는 방식을 예리하게 분석한 글 7편과 문학이 어떻게 우리 사회의 집단 망상을 완충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글 5편이 실렸다. 신찬영 건국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망상은 명백한 반증에도 불구하고 수정되지 않는 비합리적이고 고정된 믿음이라고 정의하고 망상이 형성되는 원인을 설명한다. 신 교수는 인간의 신념 체계는 ‘확신-신념-확증편향-망상’으로 이어지는 연속적 인지 스펙트럼 위에 존재하는 만큼 망상은 일반적인 인지 과정의 극단적 형태라고 지적했다. 문화사회학자인 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명백한 거짓인 음모 망상을 계속 믿는 이유를 분석했다. 전 교수는 사람들이 거짓임을 알면서도 계속 믿는 이유를 설명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한나 아렌트의 지적에서 출발해 음모 망상을 사회학적 현상으로 설명했다. 21세기 음모 망상의 확산에는 ‘에이전시 패닉’이 핵심 동력으로 작용한다. 에이전시 패닉은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자유의지나 자율성이 위협을 받는다고 느낄 때 생기는 불안과 공포를 의미한다. 쉽게 얘기하면 “나는 내 의지대로 선택한다고 생각했는데 광고나 알고리즘, 사회 시스템, 또는 다른 누군가에게 조종당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공포로 바뀌는 현상이다. 여기에 음모 망상 추종자는 수동적 소비자가 아니라 파편화된 단서를 조합해 서사를 스스로 구성하는 능동적 참여자로 강력한 효능감과 재미를 얻기 때문에 단순히 ‘미친 사람’ 취급하기는 어렵다는 설명이다.
  • [포착] 예수상을 거꾸로 매달고 ‘망치질’…이스라엘군 사진 파문 확산

    [포착] 예수상을 거꾸로 매달고 ‘망치질’…이스라엘군 사진 파문 확산

    이스라엘의 한 군인이 망치로 예수 그리스도상을 내리치는 모습을 담은 사진이 소셜미디어(SNS)에 공개돼 파문이 커지고 있다. 20일(현지시간) 미국 CNN 등 외신은 이스라엘 당국이 문제의 사진을 확인하고 조사에 착수했다고 보도했다. 19일 첫 공개된 사진을 보면 이스라엘군의 한 병사가 거꾸로 매달린 예수상을 망치 혹은 도끼로 보이는 도구로 내리치는 모습이 확인된다. 애초 이스라엘 방위군(IDF)은 이 사진의 진위를 조사하겠다고 밝혔으나 이후 사실임을 인정하고 심각한 사건으로 규정했다. IDF는 성명을 통해 “이번 사건을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면서 “해당 병사의 행동은 군인에게 기대되는 가치와 완전히 상반된다”고 밝혔다. IDF 북부사령부도 “이번 사건을 조사 중으로 결과에 따라 관련자들에게 적절한 조처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보도에 따르면 사진이 촬영된 곳은 현재 이스라엘이 점령 중인 레바논 남부 지역 내 55개 마을 중 하나인 데블이다. 데블의 마룬 나시프 부시장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이 수치스러운 행위는 우리의 종교적 감정을 모욕하며 신성한 신념을 공격하는 것으로 강력히 규탄한다”고 비판했다. 앞서 이스라엘은 3월 초부터 레바논 무장단체 헤즈볼라의 대규모 로켓 공격에 대응한다는 명목으로 수도 베이루트 등에 대대적인 공습을 시작했다. 이후 이스라엘군은 레바논 남부 접경 지역에 5개 사단 규모의 병력을 투입해 본격적인 지상 작전을 개시했다. 다만 지난 16일부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중재로 이스라엘과 레바논은 10일간의 임시 휴전에 들어간 상태다,
  • 짧은 생 위대한 예술, 에곤 실레[이명옥의 예술가의 명언]

    짧은 생 위대한 예술, 에곤 실레[이명옥의 예술가의 명언]

    스물여덟 생애, 작품 활동 10년334점 유화·2503점 드로잉 남겨“예술가 최고 덕목 독창성·진실성”인간의 근원적인 고독과 생명력‘육체’를 통해 증명해 낸 선구자오스트리아가 낳은 천재 화가 에곤 실레(1890~1918)는 스물여덟이라는 짧은 생을 살았지만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그림에 쏟아부으며 미술사에 거대한 발자국을 남긴 예술가다. 그가 스페인 독감으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본격적으로 활동한 시간은 불과 10년 남짓이었지만 334점의 유화와 2503점의 드로잉을 남기며 오스트리아 표현주의를 대표하는 거장으로 자리잡았다. 무엇이 젊은 화가로 하여금 육체와 정신이 한계에 달하는 순간까지 작업에 몰두하게 했을까? 실레가 남긴 편지와 일기를 따라가며 짧은 생애를 밀도 높은 예술로 바꾸어 낸 힘이 무엇이었는지 살펴보려 한다. 첫 번째 명언 “새로운 예술가는 반드시 자기 자신이어야 한다. 그는 창조자여야 한다.” 이 말은 예술가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은 모방이 아니라 독창성과 진실성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당시 유럽 화단은 조화롭고 아름다운 전통적 미의 기준을 중시하고 있었다. 실레에게 예술은 남의 양식을 빌려 오지 않고 자신만의 화풍을 창조하는 일이었다. 가장 나다운 것을 찾겠다는 실레의 인생관을 이해하려면 그가 어떤 환경 속에서 성장했는지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실레는 1890년 오스트리아의 도시 툴른에서 기차역장의 아들로 태어났다. 경제적으로는 안정된 중산층 가정이었지만 정서적으로는 평온하지 않았다. 실레가 누구보다 의지했던 아버지가 매독으로 오랫동안 병을 앓다가 그가 열네 살이 되던 해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그는 훗날 편지에서 “나의 고귀한 아버지를 이토록 슬프게 기억하는 사람이 또 있을까”라고 적을 만큼 아버지의 부재를 깊은 상처로 안고 살았다. 이른 상실의 경험은 소년의 마음속에 죽음에 대한 불안과 삶에 대한 집착을 심어 주었고 훗날 그의 독창적인 예술세계를 이루는 바탕이 된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 법적 후견인이 된 숙부 레오폴트는 실레가 철도 공무원이 되기를 바랐지만 그는 완강히 거부하고 열여섯 살에 빈 미술 아카데미에 최연소로 입학하며 자신만의 길을 선택한다. 빈 미술 아카데미는 고전적인 이상미와 역사화의 전통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매우 보수적인 교육 기관이었다. 실레의 지도 교수 크리스티안 그리펜케는 학생들에게 석고상을 정확히 베끼는 훈련을 강요했고 실레의 예민한 감수성과 재능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전해지는 일화에 따르면 그는 실레의 그림을 보고 “악마가 너를 내 수업에 배설해 놓았구나”라고 폭언을 퍼부었다고 한다. 결국 실레는 입학한 지 3년 만인 1909년 학교를 떠나게 된다. 남이 정한 기준이 아니라 자기만의 예술을 창조해야만 진정한 예술가가 될 수 있다는 신념은 그가 남긴 100여점의 자화상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다. ‘중국 등불꽃과 함께한 자화상’은 화가로서의 자부심과 내면의 불안이라는 상반된 감정을 함께 드러내며 보는 이의 시선을 단번에 붙잡는다. 실레의 예리한 눈빛은 오른쪽을 향하지만 고개는 왼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어긋난 방향성 때문에 어깨선이 각진 턱뼈까지 바짝 치켜 올라가며 화면 전체에 팽팽한 긴장감이 감돈다. 자칫 불안정하게 보일 수 있는 구도를 절묘하게 붙잡아 주는 것이 화면 왼편의 중국 등불꽃(꽈리)이다. 기울어진 어깨와 조응하는 가느다란 줄기와 붉은 열매는 피부와 눈동자, 입술에 스며든 붉은 기운과 호응하며 화면 전체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이 자화상에서 실레는 자신을 미화하지 않는다. 그는 날카로운 선과 거친 붓터치, 탁월한 색채 감각으로 육체 안에 숨겨진 자기 과시, 본능적인 욕망과 공포, 꿈틀거리는 생명력을 구현했다. 두 번째 명언 “나는 3월까지 클림트의 길을 따랐으나 오늘은 그와 전혀 다르다고 생각한다.” 실레가 1910년 11월 오스트리아의 미술평론가 아서 뢰슬러에게 보낸 편지에 적은 말이다. 오스트리아의 거장 구스타프 클림트의 영향 아래 화단에 입문한 실레가 스승의 그늘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길을 걷겠다고 밝힌 역사적인 선언이라 할 수 있다. 전통을 거부하고 빈 분리파를 이끌며 새로운 예술적 자유를 개척한 인물인 클림트는 실레가 가장 닮고 싶어 했던 우상이었다. 특히 “시대에는 그 시대의 예술을, 예술에는 자유를”이라는 클림트의 메시지는 아카데미 안에서 문제아로 취급받던 실레에게 자신의 길을 가도 된다는 신호와도 같았다. 1907년 열일곱 살의 실레는 클림트의 제자가 되기로 결심하고 그의 작업실을 찾아가 자신의 드로잉을 보여 준다. 클림트는 그의 비범한 재능을 단번에 알아보고 “자네는 재능이 있네. 다만 너무 많아서 탈이지”라고 격려했다고 전해진다. 그 이후 한동안 실레의 초기 작품에는 금박과 화려한 문양, 평면적인 구성과 우아한 곡선 등 황금의 화가 클림트의 서명과도 같은 요소들이 짙게 스며든다. 그러나 1909년 빈에서 열린 국제 쿤스트샤우 전시는 실레가 스승의 영향권을 벗어나 자기만의 독창적인 표현주의 세계로 나아가는 결정적 전환점이 된다. 클림트는 자신이 주도한 국제 미술전에 열아홉 살의 실레를 참여시키며 그가 본격적으로 작가로 데뷔할 수 있는 무대를 마련해 줬다. 실레가 출품한 네 점 가운데 한 점이 막내 여동생 게르티를 모델로 한 ‘게르티 실레의 초상’이다. 이 그림은 당시 실레가 스승 클림트의 조형 언어를 얼마나 깊이 받아들이고 있었는지를 잘 보여 준다. 게르티의 옷은 금색과 은색, 정교한 기하학적 문양으로 장식되었고 인물의 자세 역시 클림트가 초상화에서 즐겨 사용하던 구도를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실레는 국제 쿤스트샤우 전시에서 또 다른 세계와 마주하게 된다. 그곳에서 그는 반 고흐, 폴 고갱, 마티스 등 후기 인상주의와 야수파를 이끌던 거장들의 작품을 처음으로 직접 보게 된다. 클림트의 장식적 화풍과는 전혀 다른 인간 내면의 고통과 감정을 화면 위에 거침없이 분출하는 새로운 예술이 그의 눈앞에 펼쳐진 것이다. 이 충격이 실레를 흔들어 깨웠다. 그는 1909년 아카데미에 자퇴서를 제출하고 뜻을 같이하는 동료들과 신예술그룹을 결성한다. 마침내 “나는 클림트를 통과했다”고 선언하며 예술가의 주관적 감정과 실존적 불안을 표현하는 표현주의라는 새로운 길로 나아간다. 세 번째 명언 “예술가를 억압하는 것은 범죄이며, 그것은 싹트는 생명을 살해하는 행위다.” 이 말은 실레의 생애에서 가장 치욕적이면서도 예술가로서의 각오를 단단하게 벼려 낸 노이렝바흐 사건과 맞닿아 있다. 1912년 연인 발리 노이칠과 함께 오스트리아의 시골 마을 노이렝바흐에 머물던 실레는 미성년자 유괴 및 추행 혐의로 체포되어 24일간 투옥되는 시련을 겪는다. 중범죄 혐의는 무죄로 밝혀졌지만 아이들이 드나드는 작업실에 누드 드로잉을 두었다는 이유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법정에서 판사가 그의 드로잉 한 점을 촛불로 불태우는 충격적인 일도 벌어졌다. 예술이 도덕의 이름으로 검열되고 처벌받는 현실에 분노한 실레는 옥중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나는 처벌받는 것이 아니라 정화되는 기분이다. 내 그림은 신성한 사원에 걸려야 한다.” 실레가 에로티시즘에 주목한 배경에는 매독으로 세상을 떠난 아버지에 대한 기억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저물어가던 세기말 빈의 사회 분위기가 함께 작용하고 있었다. 당시 빈은 겉으로는 제국의 질서와 도덕이 견고하게 유지되는 듯 보였지만 이면에는 성매매와 성병이 만연한 이중성을 띠고 있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이 무의식과 성적 충동의 문제를 깊이 파고들던 때도 바로 이 시기였다. 실레는 이런 사회적·지적 흐름을 누구보다 예민하게 포착한 화가였다. 그는 겉치레와 위선을 중시하는 빈 사회의 도덕주의를 혐오했고 성이야말로 인간의 가장 원초적이고 실존적인 진실이라고 보았다. 이는 “성욕을 부정하는 자야말로 가장 추잡한 인간이며 자신을 낳아 준 부모를 욕되게 하는 비열한 자”라는 그의 말에서도 잘 드러난다. 성(性)이 자아를 탐구하고 억눌린 욕망과 불안을 드러내는 심리적 통로라고 여겼던 실레의 예술관은 연인 발리 노이칠을 그린 ‘빨간 블라우스를 입고 등을 대고 누운 발리’에서 선명하게 나타난다. 화면 속 발리는 성적 욕망을 암시하는 새빨간 블라우스를 입고 누운 채 관람자를 바라본다. 허벅지를 노출하고 있는 그녀의 자세는 도발적이지만 표정에는 불안과 긴장감이 서려 있다. 그래서 이 작품은 성적 욕망과 실존적 고독이 깃든 인간 내면의 초상처럼 다가온다. 1915년 에디트 하름스의 결혼은 실레의 화풍에 중요한 변화를 가져온다. 초기 작업을 지배하던 에로티시즘과 날카로운 시선 대신 가족애와 모성을 주제로 한 작품들이 등장한다. 이전에는 뼈마디가 드러나는 앙상한 신체와 뒤틀린 인물 표현으로 불안과 고립감을 극대화했다면 결혼 후에는 선이 한층 부드러워지고 신체는 안정된 형태를 띠게 된다. 미술사학자들이 이 시기를 실레 예술의 심리적 안정기이자 회화적 완성기로 평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1918년 2월 클림트가 세상을 떠난 뒤 실레는 빈 화단을 이끌 젊은 거장으로 떠오른다. 같은 해 3월에 열린 빈 분리파 제49회 전시회는 그에게 경제적 안정과 국제적 명성을 안겨 주었다. 출품작 대부분이 판매되고 하름스를 모델로 한 후기 대표작 ‘예술가의 아내’는 오스트리아 주립 갤러리(오늘날의 벨베데레 미술관)에 소장되는 영광을 누렸다. 그러나 그의 명성이 절정에 달하던 그해 가을 스페인 독감이 빈을 덮치면서 임신 중이던 하름스가 세상을 떠났고 실레도 사흘 뒤인 10월 31일 스물여덟 살로 생을 마감했다. 실레는 생전에 이렇게 말했다. “나는 틀림없이 가장 크고 아름다우며 가치 있고 순수하며 소중한 열매가 될 것이다. 나는 영원한 존재가 될 것이다.” 그의 말은 자신의 미래를 내다본 예언처럼 들린다. 오늘날 실레는 육체를 통해 인간의 근원적 고독과 생명력을 증명해 낸 선구자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짧은 생애를 살았지만 인간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을 바꾸어 놓았다. 실레가 확신했던 것처럼 그는 미술사에서 가장 풍요로운 예술의 열매로 남아 있다. 이명옥 사비나 미술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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