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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EO칼럼] 스톡테일 패러독스/김진수 CJ제일제당 사장

    [CEO칼럼] 스톡테일 패러독스/김진수 CJ제일제당 사장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GOOD TO GREAT)’의 저자 짐 콜린스가 짐 스톡테일에게 물었다. 스톡테일은 베트남 전쟁 중 전쟁포로수용소에서 8년간 20여차례의 고문을 당하고도 살아남은 해군 3성(星) 장군이다. “수용소 생활을 견뎌내지 못한 사람들은 누구였습니까.” “낙관주의자들입니다.”고개를 갸우뚱하는 그에게 스톡테일 장군은 “‘크리스마스 때까지는 나갈 거야.’라고 말하던 사람들말입니다. 그러다가 크리스마스가 오면 그들은 ‘부활절까지는 나갈 거야.’라고 말합니다. 그러고 부활절이 오고 다시 부활절이 가지요. 다음에는 추수감사절, 그러고는 다시 크리스마스를 고대합니다. 그러다가 상심해서 죽지요.”‘결국에는 성공하리라는 믿음을 잃지 않는 동시에 눈앞에 닥친 냉혹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는 뜻의 ‘스톡테일 패러독스’는 이렇게 탄생한다. 기업경영을 하다 보면 스톡테일이 겪었던 것과 유사한 ‘통제불가능한 요소’를 맞닥뜨릴 때가 적지 않다. 통제불가능한 요소란 쉽게 말해 도저히 어떻게 하려야 할 수 없는 것들이다. 요즘 같으면 자고 일어나면 치솟는 원자재 가격과 유가, 롤러코스트 환율이 그것에 해당될 것이다. 도저히 뛰어넘을 수 없을 것 같은 기술 장벽이나 기업경영을 하는 데 끊임없이 발목을 잡는 법과 제도도 그중 하나일 것이다. 일견 ‘주어진 환경’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런 통제불가능한 요소를 만났을 때 어떤 태도를 보이느냐에 따라 그 기업의 성공과 실패가 갈린다. 회사생활을 하다 보면 ‘어찌할 수 없음’의 불가피성을 상사에게 보고하고 할 일을 마쳤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적지 않음을 볼 수 있다. 이런 ‘핑계형 인간’들이 주도하는 조직의 모습은 어떨까. 반면 만만치 않은 난관에 부딪혔을 때 경쟁자와 차별화할 수 있는 기회를 만났다고 생각하면서 우회하기보다는 뚫어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많은 조직도 있다. 이러한 도전을 가능케 하는 것이 신념이다. 신념은 긍정적인 상상력과 자기 자신의 역량발전에 대한 믿음에서 출발하지만 몽상과 낙천과는 다르다. 신념형 인간들이 주도하는 조직은 남다른 성장과 수익을 올리고 있다. 독극물 사건으로 곤욕을 치른 존슨앤드존슨이나 2차 대전후 심각한 재정위기에 처했던 도요타, 잘나가다가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존폐기로에 섰던 IBM 등은 당시 “이제 그 기업은 끝이야.”라는 소리를 들었던 기업들이지만 모두 불가능하게 여겼던 난관을 극복하고 현재의 위치에 올라섰다. 바로 신념형 인간들이 주도했던 조직들이다. 필자가 굳게 믿는 것 중 하나는 “변화가 격심할 때 위기 못지않게 기회도 많다.”는 것이다. 요즘이 그런 시기이다. 단 위기를 기회로 만들기 위해서는 구성원이, 또 그 조직이 굳은 신념으로 뭉쳐야 한다. 스톡테일 장군과 달리 단순한 낙관주의자는 자신이 처한 냉혹한 현실을 바로보지 못하고 막연히 잘될 거야라는 낙관만 가지다 스스로 무너진 사람들이다. 그것은 진정한 낙관의 힘이 아니며 신념과 확신이 없는 사람들이었다.‘꿈은 이루어진다.’는 진정한 믿음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꿈과 비전은 두려움을 떨쳐버리고 현실에 발을 딛고 있으면서 ‘할 수 있다.’는 신념으로 뭉쳐질 때 성취될 수 있다. 요즘 같은 불확실성의 시대에 한번쯤 자신을 거울에 비춰보고 이런 물음을 던져보는 건 어떨까.“나는 신념형 인간인가, 핑계형 인간인가.” 김진수 CJ제일제당 사장
  • 폭력 없는 미래/마이클 네이글러 지음

    미국 캘리포니아대(버클리) 명예교수이자 세계적 평화학자 마이클 네이글러의 책 ‘폭력 없는 미래’(이창희 옮김, 두레 펴냄)의 핵심 메시지를 요약하자면 이렇다. 비폭력은 강하다. 비폭력은 폭력에 대한 ‘수세적 대응’이 아니라, 폭력을 이기는 ‘적극적 전략’이다. 비폭력은 가끔 효과가 있으며, 궁극적으로 항상 효과가 있다. 폭력은 가끔 효과가 있지만, 궁극적으론 전혀 효과가 없다. ‘비폭력만이 살길’임을 역설하는 책은 많다. 비폭력의 역사적 근원을 추적하고 철학적 가치 체계를 탐구하며 종종 비폭력 운동가의 숭고한 삶을 예로 제시한다. 언어는 매우 차분하다. 네이글러가 비폭력을 이야기하는 방식은 다르다. 그는 비폭력을 이론적으로 탐구하지 않는다. 매우 강력한 신념으로 비폭력의 당위성을 소리 높여 주창한다. 언어는 차분하다기보다 간혹 선동적이기까지 하다. 선동하되 폭력이 아닌 비폭력을 선동한다. 비폭력이 폭력을 이긴 수많은 사례를 소개하고, 비폭력적 삶을 위한 구체적 방법을 제시한다. 네이글러에게 비폭력은 수동성을 의미하지 않는다. 약자의 어쩔 수 없는 선택도 아니다. 비폭력은 ‘적극적 행동’이자 ‘역사적 필연’이다. 그는 역사상 비폭력이 얼마나 강력한 힘을 발휘해 왔는지 역설한다. 서기 39년, 예루살렘 성전 안에 자신의 상을 세우겠다는 로마 칼리굴라 황제의 계획을 중단시킨 것은 예루살렘에 모여든 맨손의 유대인들이었다.1930년, 인도 구자라트주 소금공장에서 몽둥이세례를 받으며 소금세 폐지를 주장했던 마하트마 간디와 그 동료들의 ‘사티아그라하’(‘진실에의 헌신’을 뜻하는 인도어) 행진은 비폭력 불복종운동을 지칭하는 관용어가 됐다.1943년, 나치 치하 베를린에서 게슈타포가 비유대인들과 결혼한 유대인 남성들을 로젠슈트라세 수용소로 끌고 갔을 때 이들을 석방시킨 것은 6000여명의 아내와 어머니들의 집단 항의였다. 네이글러는 “아무리 돈이 많아도, 아무리 군사력이 강해도, 남의 권리를 무시하고 오만한 행동을 하는 사람이나 국가가 행복해진 적은 없다.”면서 “일단 폭력을 선택하면 안전과는 결별해야 한다.”고 말한다.9·11 사태 직후 취해진 미국의 폭력적 대응방식에 대해서는 “사상 유례 없는 군국주의화” “매카시와 밀로셰비치 시절 수준의 인권제한” 등 분노에 가까운 비판을 퍼붓는다. 네이글러는 냉소적인 사람은 되지 말라고 당부한다. 비폭력도 훈련과 조직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가 제안한 실천전략 ‘우리 자신의 비폭력적 미래를 위한 다섯 단계’는 ‘생각의 진정함’→‘자신의 마음 돌보기’→‘관계맺기 속의 진실’→‘비폭력적 소양 쌓기’ 과정을 거쳐야 ‘평화를 위한 행동’에 가 닿는다. 사회와 세계의 평화는 자신의 평화, 이웃과의 평화에 뿌리를 둬야 한다는 생각이다. 폭력을 ‘하찮은 것’으로 여기게 만드는 미디어와의 절연도 제안한다. 사소한 것들에서부터 폭력을 거부하는 자세가 폭력을 이기는 필수요건이란 얘기다. 미국의 주요 고등교육기관에서 교과서로 채택됐고,2002년에는 전미국도서상을 받았다.2만 2500원.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사설] 올림픽 성화, 서울서 꺼지는 일 없어야

    베이징올림픽 성화의 국내 봉송 주자로 선정된 인사들이 중국의 티베트 무력진압에 항의하는 뜻으로 속속 거부의사를 밝힌 데 이어 시민사회단체들이 봉송저지에 나서기로 했다고 한다. 성화봉송 행사가 열리는 27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내 ‘평화의 문’에서 대규모 성화봉송 반대행사를 가질 예정인 시민사회단체들은 성화봉송 코스를 막고 봉송저지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중국 정부의 반인권적·반인도적 처사를 규탄하는 것은 개인의 신념으로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그러나 물리력을 동원해 성화봉송 자체를 막는다거나 중단시키는 것은 옳은 행동이 아니라고 본다. 중국은 주자 2만 1000명이 참여해 20개국 13만 7000㎞를 달리는 성화봉송을 ‘화해의 여정’이라 부른다. 그러나 아쉽게도 봉송행사가 티베트 유혈사태로 정치바람을 타면서 수난이 이어지고 있다. 그리스 올림피아의 성화채화시 시위자 3명이 난입한 것을 시작으로 런던에서 성화탈취 기도가 있었고, 파리에서는 반중(反中)시위대에 밀려 세차례나 성화가 꺼지는 사상 초유의 사태까지 벌어졌다. 봉송구간을 단축하거나 축하행사가 취소되기도 했다. 한국에서 그런 불상사가 되풀이돼선 안 된다. 20년 전 서울에서 올림픽이 성공리에 치러졌다. 숭고한 올림픽 정신을 이어가는 의미의 봉송행사 역시 탈없이 치러져야 한다. 인류 제전이자 순수한 스포츠 행사인 올림픽을 밝힐 성화가 서울에서 꺼지는 일은 없어야 한다. 진정 평화를 사랑한다면 올림픽 성화가 무사히 지나가도록 협조해야 한다.
  • [삼성특검 수사 발표] “구조본 개입 증거 확보”

    “가능한 범위 내에서 의미있는 거래는 10만원짜리까지 다 따라갔습니다. 오로지 진실을 파헤친다는 신념과 각오로 최선을 다해 수사했습니다.” 17일 삼성 특검 최종수사결과를 발표한 조준웅 특검은 “에버랜드 사건과 삼성SDS 사건 등에 구조본이 개입했다는 간접적 증거와 진술을 확보, 공소유지에는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본다.”면서 “하지만 배임 행위로 인한 손해와 이득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재판과정에서 치열한 법리공방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이건희 회장이 에버랜드 사건을 지시한 것인가, 보고만 받은 것인가. -지시는 자인하지 않았고, 보고받은 것은 인정했다. 구체적인 내용을 전부 보고받고 승인한 것이 아니라 이재용 전무가 인수한다는 사실을 보고받았고, 알았다고 했으니 승인한 것으로 봤다. ▶차명계좌에 있는 재산을 이 회장의 상속재산으로 결론내린 근거는. -삼성생명 지분 배당금이 차명계좌로 흘러들어와 미술품 구매 등 개인적인 용도로 쓰인 것이 결정적이었다. ▶중죄라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구속수사하지 않은 이유는. -자기를 위해 회사를 망치는 전형적인 배임과는 다르지 않나. 차명 자체만으로는 엄청난 범죄도 아니고, 법적·제도적 규제 등이 차명으로 재산을 운용할 수밖에 없는 현실과 괴리가 있다. 장형우기자 zangzak@seoul.co.kr
  • ‘X파일’ 속편 제목은 ‘I Want to Believe’

    ‘X파일’ 속편 제목은 ‘I Want to Believe’

    영화 엑스파일(X-file)이 10년 만에 찾아온다. 오는 7월 25일 현지 개봉하는 속편의 제목은 ‘The X-files: I Want to Believe’ (나는 믿고 싶다)로 이는 원작인 TV 시리즈에서 주인공 멀더 (데이비드 듀코브니 분)의 책상 위에 붙어있는 포스터의 문구와 같다. 제작자인 크리스 카터는 이 제목이 “초자연적인 현상을 믿는 멀더의 신념과 과학사이의 충돌을 암시한다.”고 말했다. 또 “이번 영화는 드라마 엑스파일의 연장이 아니다.”며 “드라마를 모르는 어린 관객들과 팬들 모두를 만족 시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엑스파일은 2002년 9시즌으로 막을 내릴 때까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미국 SF 드라마 시리즈다. 첫 번째 극장판 영화인 ‘엑스파일: 미래와의 전쟁’ (The X-Files)은 98년도에 제작됐으며 이번에도 폭스 멀더 역의 데이비드 듀코브니와 대나 스컬리 역의 질리언 앤더슨이 다시 뭉쳤다. 한편 영화 관계자는 “영화를 비밀리에 만들기 위해 주요 제작진만이 카메라가 설치된 방 안에서 대본을 읽을 수 있었다.”고 전했다. 영화 제목 역시 제작 시점부터 비밀로 붙여져오다 제작사인 20세기 폭스사의 허락 하에 지난 16일(현지시간) 아침에 공개됐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김지아 기자@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교황 美서 ‘유연한 이미지’ 심을까

    교황 베네딕토16세가 2005년 취임 후 처음으로 15∼20일(현지시간) 미국을 방문한다. 교황의 백악관 방문은 1979년 요한 바오로2세에 이어 29년 만이다. 카리스마와 쇼맨십이 강한 전임자와 달리 수줍음 많은 학자 스타일의 그가 미국인을 비롯한 전세계인들에게 어떤 메시지와 인상을 남길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교황 81세 생일축하 만찬도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전례없는 극진한 환대를 준비중이다. 워싱턴 도착 당일인 15일 앤드루 공군기지에 직접 나가 교황을 영접한다. 부시는 물론 역대 어느 미국 대통령도 외국 국가원수를 공항에 나가 맞이한 적은 없었다고 AP통신 등은 14일 전했다. 16일 백악관 남쪽 잔디밭에서 열리는 공식 환영행사에는 무려 1만 2000여명의 관중이 참석한다. 부시 임기중 최대 규모다. 지난해 봄,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2세의 방미 때도 7000여명 언저리였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날 저녁에는 교황의 81세 생일을 축하하는 성대한 만찬이 마련된다. 메뉴도 각별히 신경써서 교황이 태어난 독일 바이에른주의 음식으로 식탁을 차린다. 하지만 정작 교황은 워싱턴 국립대성당에서 열리는 미국 주교들과의 기도회 때문에 참석하지 못한다고 백악관측은 밝혔다. 부시 대통령은 교황을 특별히 환대하는 이유에 대해 “정치인이 아닌 종교지도자이기 때문이며,‘도덕적 상대성이 보다 희망적이고 자유로운 사회를 만들 가능성을 훼손한다.’는 교황의 신념에 존경을 표하고 싶어서”라고 한 가톨릭언론 인터뷰에서 밝혔다.●가톨릭 성직자 성추문 사과 여부 관심 교황은 방미 기간중 워싱턴 내셔널파크와 뉴욕 양키스타디움에서 두차례 대중 미사를 갖는 한편 18일 유엔에서 연설할 예정이다. 마지막날인 20일에는 9·11테러 추모지인 그라운드제로에서 희생자를 위한 기도회를 연다. 취임 초기 엄격하고 보수적인 언행으로 이목을 끌었던 교황 베네딕토16세는 이번 방문에선 할 말은 하되 좀더 긍정적인 방식으로 전달하는 노선을 택할 것으로 보인다.영국 더 타임스는 바티칸 전문가인 존 앨런을 인용,“교황은 한때 교회의 다스베이더(영화 ‘스타워스’에 등장하는 악역)로 비춰지는 실수를 범했다.”면서 “이제 종교의 가치가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좀더 긍정적으로 전달하는 방법을 찾고 있다.”고 전했다. 교황은 이번 방미 기간동안 뉴욕의 시나고그(유대교회)를 방문하는 것을 비롯해 이슬람교도와 불교신자, 힌두교인들을 두루 만날 예정이다. 낙태, 동성간 결혼, 줄기세포 연구 등에 대해선 부시 대통령과 뜻을 같이하지만 이라크전쟁에 관한 한 의견차가 큰 교황이 백악관 면담에서 이 문제를 어떻게 다룰지도 관심사다. 이와 더불어 가톨릭 성직자들의 성추문으로 상처입은 미국내 가톨릭 신자들의 신뢰 회복을 위해 교황이 이번 방문에서 공식 사과를 할 것인지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킹 목사의 꿈, 오바마가 이룰까

    4일(현지시간)은 미국의 흑인 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암살된 지 40주년이 되는 날이다. 올해는 특히 민주당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의 선전으로 미 역사상 최초 흑인 대통령 탄생 가능성이 대두되면서 킹 목사가 못다 이룬 ‘꿈’이 되살아날 수 있을 지 기대를 모으고 있다. 킹 목사는 1963년 워싱턴 링컨기념관 앞 광장에서 “나에겐 꿈이 있습니다.”로 시작되는 명연설을 통해 인종차별 없는 평등한 세상에 대한 신념을 전파했다. 하지만 그의 ‘꿈’은 68년 테네시주 멤피스에서 암살범의 총탄에 산산이 부서졌다. 그리고 40년 후, 오바마 의원이 그의 뒤를 이어 인종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했다. 오바마 의원은 지난달 18일 필라델피아 헌법기념관 연설에서 “미국 사회에 엄존하는 인종차별의 현실을 직시하면서도 이를 넘어설 수 있다는 희망을 잃지 말자.”고 목소리를 높여 깊은 감명을 남겼다. 킹 목사의 측근들은 오바마 의원에 대한 기대를 숨기지 않고 있다. 킹 목사의 장남인 마틴 루터 킹 3세는 3일 영국 인디펜던트와의 인터뷰에서 “대선의 성패를 떠나 오바마는 그 자체로 리더십의 새로운 모델을 창조해 냈다.”면서 “그가 주요 대선 후보가 될 수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엄청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킹 목사의 제자로 암살 현장에 있었던 제시 잭슨 목사도 이날 가디언과 가진 인터뷰에서 “남성이 여성 후보에게 투표하고, 백인이 흑인 후보에게 투표하는 숫자가 많아지면 미국은 새롭게 태어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경상수지 적자 대책은 없나] (중) 강만수의 ‘1996 트라우마’ 깨라

    [경상수지 적자 대책은 없나] (중) 강만수의 ‘1996 트라우마’ 깨라

    ‘1996년은 물가를 희생해서라도 환율을 크게 올려 수출을 늘리고, 수입을 억제했어야 했다.10%가 넘는 임금상승에서 가격경쟁력 상실을 보전할 수 있는 수단도 사실상 환율뿐이었다.’-‘현장에서 본 한국경제 30년’ 377쪽. 10년 만에 ‘야인’에서 새 정부 경제 사령탑으로 복귀한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의 저서에 나오는 글이다. 원화 약세를 유지해 수출 경쟁력을 강화시키고 경상수지 적자를 막겠다는 강 장관.1996년은 외환위기가 발발하기 1년 전으로, 그해의 경상수지 적자규모가 231억달러였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4.1%였다. 일반적으로 3%를 넘으면 지급불능 상태로 보기 때문에 국가재정이 위험한 상황이었다. ●올 경상적자 GDP대비 0.3~0.7% 예상 환란 이후 11년만에 처음으로 경상수지 적자가 예상되는 현재의 경제 상황은 어떠한가. 올해 적자 규모를 한은은 30억달러, 정부는 70억달러로 예상한다. 올 GDP는 1조달러를 상회할 것으로 보이므로 GDP 대비 0.3∼0.7%에 불과하다. 한국은행 이성태 총재도 최근 “경상수지 적자가 GDP 1% 이내면 크게 걱정할 것 없다.”고 말했다. 이에 전문가들도 대체로 동의한다. 권순우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도 같은 의견이었다. 다만 우리는 외환위기를 겪었기 때문에 경상수지 적자에 정부나 외국인 투자자가 다소 예민하게 반응할 수 있다. 실제 지난달 전세계적인 달러 약세에도 원화는 초약세를 보이기도 했다.1,2월 경상수지 적자가 큰 악재로 부각된 것이다. 또한 외환위기를 겪은 나라들은 2차 위기에 노출되는 경향도 있다.‘국제수지는 종합건강지수다. 국제수지가 나쁘면 경제에 탈이 난 것’이라는 강 장관의 신념은 그래서 수긍할 만한 대목이다. ●기초체력 없던 환란때와 달라 성장 우선을 문제는 올해 상황이 10여년 전과 상당히 다른데 정부가 경상수지 적자에 과민 반응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한 전문가는 강 장관의 ‘트라우마(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거론했다. 그는 “외환위기 당시 정부 당사자로서 과거 10년간 절치부심했던 강 장관이 의식·무의식적으로 정책의 우선 순위를 ‘국제수지-성장-물가’ 순으로 잡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면서 “어차피 ‘세마리의 토끼’를 다 잡을 수 없는 만큼 ‘성장-물가-국제수지’로 순서를 잡는 것이 국민경제에 더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권순우 수석연구원은 “1996년의 적자는 가격경쟁력 하락으로 수출은 잘 안 되는데 재벌기업들이 투자를 위해 엄청나게 중간재를 수입하면서 발생한 것이다. 반면 현재의 적자는 수출이 1∼2월 전년 동월보다 각각 15%,18% 상승하는 가운데 원유 등 원자재 가격이 급등해 발생한 것으로 성격과 구조가 완전히 다르다.”고 했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정부가 큰 문제가 없는 경상수지 적자 규모를 우려해 원화 부양의 ‘환율주권론’을 펼친다면 경제에 구조적으로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하나의 예로 기업들이 원화 상승에 따른 가격 경쟁력에 기대어 품질로 수출 경쟁력을 높이는 것을 등한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외국의 적자 해결 사례보니 美, 中에 시장개방 등 통상으로 대응 印·브라질 적자불구 성장에 더 무게 미국은 1992년부터 경상수지 적자를 보고 있고 GDP 대비 비율이 6%를 넘기도 했다. 지난해 비우량주택담보대출 부실사태로 달러가 약세를 보이며 적자 폭이 줄어들고 있다. 반면 달러 약세가 원자재값 상승을 부추기면서 일부 국가들의 경상수지가 악화되고 있다. 달러 약세가 자국 통화의 강세를 가져오면서 경상수지가 악화되는 경우도 있다. 2006년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는 8115억달러로 GDP의 6.2%다.2007년에는 7386억원으로 GDP 대비 5.3%로 줄었다. 수출이 8.1% 늘어난 반면 수입이 1.9% 증가에 그쳤기 때문이다. 금융문제 해결을 위한 조치가 경상수지 적자 문제 해결에 도움을 준 셈이다. 미국은 경상수지 적자를 통상으로 해결하려고 한다. 대(對) 중국 무역역조를 막기 위해 중국통으로 알려진 잭 폴슨을 재무장관에 임명한다거나, 중국에 시장 개방과 환율절상을 줄기차게 요구한다. 한국경제연구원 허찬국 경제연구본부장은 “현재 국내의 물가불안 문제가 상당히 심각한 상황에서 경상수지 적자 문제만 보고 있을 때가 아니다.”면서 “여러 문제 가운데 더 크고, 급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던 미국처럼 우리도 경상수지 적자보다는 물가불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신경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인도는 2003년까지는 경상수지가 104억달러 흑자였다.2004년에 64억달러 적자로 돌아서더니 2007년 적자는 222억달러로 급증했다. 인도 정부는 경상수지 적자에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는 반면 금리를 올려 인플레이션에 적극 대응하겠다는 방침을 밝히고 있다. 대외경제연구원 이순철 부연구위원은 “금리를 내려 소비를 진작할 경우 제조업으로 돈이 흘러들어 가는 것이 아니고 수입이 늘어나는 현상이 발생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브라질도 경상수지가 지난 1월 42억달러로 적자로 전환됐다. 동양종금증권 이철희 연구원은 “브라질 정부는 지금 정도의 적자라면 내수를 통해 성장을 유지하는 것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전경하 김재천기자 lark3@seoul.co.kr
  • [CEO칼럼] 일의 시작과 끝은 갈등 풀기의 연속/원완권 우림건설 사장

    [CEO칼럼] 일의 시작과 끝은 갈등 풀기의 연속/원완권 우림건설 사장

    세상의 일들은 온통 갈등투성이다. 갈등이란 칡덩굴과 등나무가 서로 얽힌 꼴이다. 세상만사 주장과 견해, 이해관계가 달라 적대시하고 불화를 일으키거나 긴장 관계를 야기하는 것을 의미한다. 갈(葛)은 칡덩굴로서 오른쪽 감기를 하며 성장하고, 등(藤)나무는 왼쪽 돌기를 하며 성장하는 식물이다. 유전자 정보를 가진 DNA도 97%가 오른돌기이며 3%가 왼돌기로서 이중나선형구조로 되었다고 한다. 조물주는 모든 생물과 무생물, 인간 행동의 모습까지도 좌우대칭과 좌우 방향성으로 조화를 이루도록 창조했다. 사람의 마음도 한쪽으로만 치우침이 없도록 생각과 사상, 신념, 관념 모든 것이 같지 않고 항상 다른 견해와 주장이 나타나도록 만들어 놓은 것 같다. 그래서 갈등은 좌우 대칭과 방향성을 이루기 위해 발생하는 필연적이고 숙명적인 것이어서 어떻게 올바르게 풀어 나갈지가 중요한 관점이 아닌가 싶다. 이는 냉철한 이성의 두뇌로 원칙과 지식을 바탕으로, 또한 뜨거운 열정과 사랑과 인내로 풀어나가야 한다. 그러나 냉철한 이성의 원칙과 지식은 반드시 숙성화 과정을 거쳐야만 지혜가 된다. 지혜는 사고와 이해의 폭이 넓어져 큰 틀 안에서 질 높은 의사 결정을 할 수 있도록 자유를 준다. 그러나 지식이 잘 숙성되지 않으면 자만에 빠질 수 있으며 나아가 오만과 교만으로 흐를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자만은 자신을 너무 뽐내는 것이며, 오만은 더이상 남의 말을 듣지 않는 것을 말한다. 나아가 남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교만으로 흐른다면 더 큰 문제다.‘병교필패(兵驕必敗·교만하면 반드시 패한다)’ 교훈도 이의 중요성을 얘기한다. 또 지식이 잘 발효, 숙성하지 않고 부패한다면 자신의 지식과 신념만이 옳다고 믿는 고집불통으로 변모하게 된다. 아집과 편견으로 본인만의 고립된 지식에 휩싸여 세상과의 소통이 끊어지는 것이다. 얼마 전 숭례문에 불을 지른 범인은 땅 보상비가 적다며 정부를 상대로 탄원하다 받아들여지지 않자 적대감을 품고 불을 질렀다고 한다.600년 동안 이어져 온 조상의 숨결과 얼이 담긴 문화유산을 좁쌀처럼 편협하고 부패된 지식을 가진 고집불통 영감으로 인해 잃고 말았다. 잘못된 확신과 지식을 가진 사람이 사회에서 얼마나 위험한 존재인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평범한 한 사람의 잘못된 아집만으로도 숭례문을 태우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났는데, 만약 그런 사람이 높은 책임을 가진 자리에 있다면 더한 사고가 발생할 수 있을 것이다. 한 조직의 리더가 부패된 지식으로 인해 고집불통이거나 자만과 오만, 교만에 빠진다면 그 조직과 집단은 송두리째 잘못된 의사결정으로 최악의 위기에 내몰릴 수 있다. 한 나라의 지도자가 그릇된 신념과 생각으로 국민을 호도한다면 그 나라의 국민 또한 비극을 맞을 것은 자명하다. 우리는 사고를 유연하게 함과 동시에 폭넓은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여 독선과 독단, 자만과 교만으로 흐르지 않도록 의사를 결정할 수 있는 툴(Tool)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또한 지도자라면 뜨거운 가슴에서 나오는 열정과 사랑으로 인내하며 충분히 숙성화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항상 겸허하고 겸양의 자세로 상대를 이해하고 자신을 올바르게 바라볼 수 있는 혜안을 동시에 갖춰 올바르고 폭넓은 의사결정을 통해 갈등이 해소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원완권 우림건설 사장
  • [부고] ‘진보당 사건’ 최후 생존자 정태영씨

    ‘진보당 조봉암 사건’의 마지막 생존자인 정태영씨가 지난 21일 숙환으로 별세했다.77세. 1931년 전북 익산에서 태어나 서울대 문리대를 졸업한 그는 26살에 독립운동가 죽산 조봉암을 만나 진보당에 가입했다.진보당에서 청년 조직 확대를 담당했던 그는 1958년 1월 ‘북한에서 교육받은 당 이론가’로 몰려 국가변란 혐의로 조봉암 등과 함께 전격 체포됐다.3심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출소한 그는 4·19 직후 혁신계 및 3선 개헌 반대특위 등에 참여하는 등 평생 진보정당에 대한 신념을 실천하는 삶을 살았다. 고려대 정책과학대학원과 건국대 정치외교학과에서 석·박사학위를 취득한 고인의 저서로는 ‘조봉암과 진보당’(1991),‘한국 사회민주주의 정당의 역사적 기원’(2006) 등이 있다. 빈소는 서울 강남성모병원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24일 오전 8시다.(02)590-2538.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작가는 왜 쓰는가/ 제임스 미치너 지음

    ”소설을 구성해 나가는데 있어 자극적인 주제를 가지고 시작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일반적으로 ‘무엇인가 특별한 것에 대한’ 소설은 늘 실패로 끝난다.…성공한 소설은 인물로부터 시작하고 그들과 함께 지적·정신적으로 성장한다.” 첫소설 ‘남태평양 이야기’로 퓰리처상을 받은 미국 작가 제임스 미치너의 창작론의 한 대목이다. 이 타고난 이야기꾼이 평생 간직한 글쓰기 원칙 혹은 신념이란 어떤 것일까. ‘작가는 왜 쓰는가’(제임스 미치너 지음, 이종인 옮김, 예담 펴냄)는 작가가 50년 문학인생을 반추하며 쓴 일종의 ‘글쓰기 지침서’다. 특히 소설 창작에 대한 친절하고 명쾌한 원칙들이 잘 정리돼 있다.“소설의 처음 몇 장을 아주 어렵게 만들라. 그렇게 해 일부 독자들을 떨어져 나가게 하라(내가 쓴 소설을 읽으면서 시간을 낭비하지 말아야 할 사람들이 분명 있기 때문이다).”“과도한 상징과 부자연스러운 은유는 천재작가 혹은 문예 창작과 학생들이나 사용하는 것이다.” 책에는 어니스트 헤밍웨이를 비롯해 마거릿 미첼, 트루먼 커포티 등 자신에게 큰 영향을 끼친 작가들과의 일화도 실려 있다. 미치너는 헤밍웨이 소설이 최악의 혹평을 받을 당시 씌어진 ‘노인과 바다’의 서문을 자진해서 써줬다. 책은 미치너가 ‘노인과 바다’의 교정쇄를 처음 읽어본 곳이 바로 전쟁이 한창인 한국의 어느 산골 참호 안이었다는 사실을 소상히 전해 눈길을 끈다. 한국전쟁에 참여했던 작가는 훗날 그 경험을 바탕으로 한 중편소설 ‘도곡리 철교’를 쓰기도 했다. 마흔이 돼 뒤늦게 소설을 쓰기 시작했음에도 세계적인 작가로 우뚝 선 미치너. 글쓰기에 대한 노(老)대가의 따뜻한 충언이 담긴 이 책은 흔히 미국의 베스트셀러 작가 스티븐 킹의 책 ‘유혹하는 글쓰기’와 비교된다. 두 작가는 한 목소리로 강조하는 것은 “모름지기 명쾌하고 진실성이 담긴 글을 쓰라.”는 것이다.1만 2000원.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문화마당] 한국문학, 왜 노벨상 못 받을까?/김성곤 서울대 영문과 교수·문학평론가

    [문화마당] 한국문학, 왜 노벨상 못 받을까?/김성곤 서울대 영문과 교수·문학평론가

    한국문학은 왜 세계문단의 관심사가 되지 못하고, 아직도 노벨상을 받지 못하고 있는가? 우선은 국력이나 국가의 이미지가 약하기 때문일 것이다. 중국이나 일본과는 달리, 한국은 아직도 국제사회에 잘 알려져 있지 않고, 문화적 특징도 국가로서의 매력도 부족하다. 그런 면에서 우리나라를 선진강국으로 만들지 못하고 권력다툼이나 벌여온 우리 정치인들의 책임이 크다. 유럽에서 열리는 한국문학 행사에 모이는 현지 청중의 대부분이 대사관에서 동원한 사람들이라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며, 그들조차도 중국이나 일본문화에 더 많은 관심이 있다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한국의 지명도나 국력을 세계 4위쯤으로 착각하고 있는 우리 월드컵세대들에게는 미안한 얘기지만, 국가 경쟁력과 축구실력은 전혀 상관이 없다. 그나마 그 축구실력조차도 고액과외 덕분이라면 더욱 그러할 수밖에 없다. 한국문학의 외국 현지 출판이 어렵고, 또 번역출판된 후에도 판매가 부진한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전통적으로 문학을 좋아하는 프랑스나 이웃 나라인 중국과 일본을 제외하면, 한국문학 번역 작품은 잘 팔리지 않는다. 그러니 해외 출판사에서 한국문학 번역을 적극적으로 출간하려 할 리가 없다. 유명 출판사에서 한국문학을 출간하면 되지, 왜 소규모 출판사에 출판지원금까지 주면서 출판하려 하느냐고 의아해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상업적 이윤을 추구하는 대형출판사에서는 독자가 없어 판매가 되지 않는 책은 아예 출간하려 하지 않는다. 한국문학이 세계문단의 주목을 받지 못하는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한국문학이 세계문학과 호흡을 맞추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민족문학이나 민중문학 같은 것들은 세계문단에서는 이미 오래 전에 사라진 것들이다. 지금은 민족주의나 정치 이데올로기가 근간이 되는 문학은 세계 어디에서도 읽히지 않는다. 또 우리 여성작가들이 1990년대에 많이 썼던 사적인 고뇌나 가족 간의 갈등이나 불륜의 미화 같은 것도 오늘날 세계문단에서는 별 관심이 없다. 이 시대 세계문단의 공통관심사를 알려면, 국제사회에서 주목받는 주요작품들을 살펴보면 된다. 예컨대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 오르한 파묵의 ‘내 이름은 빨강’, 매슈 펄의 ‘단테 클럽’,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 그리고 J K 롤링의 ‘해리 포터’에는 모두 지금 세계적인 관심사가 되고 있는 공통 주제가 있다. 즉 절대적 진리나 신념에 대한 회의, 또 하나의 진리나 감추어진 역사 새롭게 조명하기, 열린사회와 닫힌사회의 대립, 이분법적 사고방식의 타파, 경계 해체, 스스로를 진리나 순수혈통이라고 믿는 사람들의 독선과 횡포, 그리고 그들로부터 차별받는 소수그룹과 혼혈들의 발견과 인정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와 같은 주제들은 지난 60년대 이래 전 세계적으로 시작된 거대한 인식의 전환을 잘 반영해주고 있다. 한국문학이 세계문학으로 부상하려면, 우리 작가들이 그러한 변화를 알고, 세계작가들과 인식을 같이하며, 공통의 주제의식에 동참해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두 동강난 반도에 갇힌 채 우리끼리만 살지 말고, 지금 세계가 어떻게 변하고 있는가에 부단히 촉각을 곤두세우고, 새로운 문예이론을 공부하며, 열심히 동시대 외국작가들의 작품을 읽어야만 한다. 그러다 보면 우리 문단에도 ‘장미의 이름’이나 ‘내 이름은 빨강’ 같은 고유성과 범세계적 보편성을 동시에 갖는 훌륭한 작품들이 나오게 될 것이다. 바로 그럴 때, 세계문단의 인정과 노벨문학상은 자연히 우리에게 주어질 것이다. 김성곤 서울대 영문과 교수·문학평론가
  • [경제살린 세계의 지도자] (3) 고이즈미 전 日총리

    [경제살린 세계의 지도자] (3) 고이즈미 전 日총리

    |도쿄 박홍기특파원|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전 총리의 별명은 ‘괴짜(變人·헨진)´이다.5년 5개월 동안의 총리 재직 시절 내내 붙어다녔다. 고이즈미는 스스로 ‘정치가로서의 괴짜다. 괴짜는 개혁하는 사람이다.´라고 떠벌렸다. 정치판에서는 괴짜일지 모르지만 일반인들의 눈에 비치는 자신은 평범한 사람이라는 얘기다. 그는 자민당의 철저한 파벌정치에도 끼지 않았다. 오히려 모리파에서 뛰쳐 나왔다. 이른바 ‘무당파´다. 또 후생상과 우정상을 지냈을 뿐 외무상 등 주요 장관직을 맡아본 적이 없다. 주요 당직도 거치지 않았다. 파벌 쪽에서 보면 괴짜다. 그렇지만 괴짜는 불가능해 보이던 개혁을 실행한 장본인이다.2001년 4월 자민당 총재선거에서 “자민당을 깬다.”,“나의 정책을 비판하는 사람은 모두 저항세력”이라며 서슴지 않고 자민당을 겨냥했다. 국민들의 고이즈미에 대한 열풍은 뜨거웠다. 변화를 바라던 터였던 탓이다. 특히 정치에 관심이 없던 젊은이와 여성들이 열광했다. 고이즈미는 국민의 전폭적인 인기에 힘입어 총재에 당선돼 총리에 취임했다. 세 차례에 걸친 도전의 결과였다. ●정부산하법인 163곳 중 136곳 폐지·민영화 그의 ‘괴짜’ 근성은 정부개혁과 행정혁신 과정에서 고스란히 묻어났다. 총리에 취임하자 “구조개혁없이 성장 없다.”며 개혁의 기치를 올렸다. 효율적인 ‘작은 정부’의 구축에 나섰다. 일본의 경제는 거품이 붕괴된 뒤 이래 10년간 허우적거렸다. 만성적인 재정적자에다 디플레이션에 따른 투자위축, 공적 자금에도 되살아나지 않는 개인소비 등 사실상 성장 동력은 멈춰섰었다. 소위 ‘잃어버린 10년’이다. 개혁의 기본이념은 ‘개혁없이 성장 없다.’ 이외에 ‘민간이 할 수 있는 것은 민간에게’,‘지방이 할 수 있는 것은 지방에게’를 내세웠다. 작은 정부는 규제 철폐없이 의미가 없다는 판단에서다. 선택과 집중으로 집약되는 신자유주의의 한 축이다. 나아가 총리 직할로 ‘경제재정자문회의’를 구성, 직접 개혁을 진두지휘했다. 자민당 내각이 아닌 총리가 톱다운 방식으로 주도하는 새로운 체제다. 자문회의에는 다케나카 헤이조 게이오대 교수 등 민간인들을 대거 포진시켰다. 정부산하 법인 163개 가운데 136개를 폐지하거나 민영화나 독립법인화를 시행했다. 공공부문의 개혁은 4년간 1조 5000억엔의 재정지출을 줄이는 효과를 거뒀다. ●기업규제 완화 힘써… 신생기업 해마다 10% 증가 개혁의 선봉에 서 총무상 등을 역임했던 다케나카 교수는 최근 “글로벌 경쟁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경제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 정부가 개입할수록 효율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개혁 논리를 설명했다. 또 규제 철폐 및 완화와 함께 부실채권의 정리, 금융개혁 등 경제 전반에 대한 개혁을 단행했다. 정부기업 활동에 걸림돌로 작용하는 1500건의 규제를 철폐하거나 완화했다.2002년 합병절차를 간소화해 구조조정을 촉진시키기 위한 ‘주식보유총액제한제’ 폐지와 창업을 활성화시킨 최저자본금 특례제의 실시가 대표적 사례이다. 최저자본금을 1엔으로 낮춘 특례제의 영향으로 회사설립은 2년 동안 해마다 10% 증가, 새로운 기업만 2만 6000개사에 달했다. 금융개혁도 마찬가지다.2003년 4월 산업재생기구를 설립해 공적자금을 투입해 30조엔이 넘던 금융기관의 부실채권을 인수하면서 통폐합을 진행했다. 산업재생기구는 부실기업의 실질적인 경영권을 장악, 구조조정을 주도했다. 기업 부실이 금융기관의 부실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다. 후쿠가와 유키코 와세다대 교수는 “고이즈미 총리는 규제 개편과 동시에 끊임없이 개혁의 분위기를 조성, 민간기업들이 스스로 체질을 개선, 자생력을 키웠다.”고 평가했다. ●우정개혁에 ‘자신을 던지다´ 행정 개혁의 핵심은 우정 민영화였다.‘메이지 유신’이래 가장 큰 개혁이라고 일컬어졌다. 금융·재정·행정·사회 전반에 걸쳐 변화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우정공사는 우편·예금·보험 등 3대 업무를 총괄할 뿐만 아니라 개인금융자산의 4분의1인 360조엔을 보유한 ‘공룡’ 같은 존재였다. 사원만 24만명에 이르렀다. 그러나 민간기업에 비해 인건비는 높고, 이익은 적은 전형적인 국영기업이었다. 특혜에다 불공정거래의 논란도 끊이지 않았다. 우정성에 자금이 집중됨에 따라 금융시장의 자금 활용에도 장애를 가져 왔다. 금융시장의 자금은 경색될 수밖에 없었다. 고이즈미는 ‘우정 민영화=개혁=경제성장’이라는 단순 등식으로 개혁의 당위성을 강조했다.TV 등 매스컴을 최대한 활용, 국민과 소통하며 공감대를 형성해 나갔다. 총리를 비롯, 각료들이 전국 30여개의 방송국에 출연했다. 총리 자신이 주연·감독·각본·연출을 도맡은 고이즈미의 ‘극장식 정치’다. 또 개혁의 진행 상황을 내각부의 홈페이지에 공개, 국민들과 호흡을 맞췄다. 자민당 내부 반발은 엄청났다. 우정공사의 이익을 옹호하는 ‘우정족’ 의원은 자민당의 70%에 달했다. 우정공사는 자민당내 파벌의 정치자금줄 역할을 하고 있었다. 때문에 우정 개혁은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는 정치개혁이기도 했다.2005년 8월 ‘우정 사업의 민영화법안’은 중의원을 통과한 뒤 참의원에서 부결됐다. 고이즈미는 총리 권한으로 중의원을 해산, 승부수를 던졌다. 정면 돌파다. 당시 모리 요시로 전 총리가 중의원 해산을 만류하자 “신념이다. 죽어도 좋다.”며 거부했다. 중의원을 해산한 직후,“민영화에 찬성하는지, 반대하는지 국민에게 묻겠다.”고 밝혔다. 우정 개혁에 ‘국민의 이름’을 내걸었다. 개인적인 인기를 정치적 도구로 삼은 것이다. 게다가 우정성 개혁에 반대했던 의원 36명을 공천에서 탈락시켰다. 국민들은 고이즈미의 손을 들어 줬다. 전체 480석 가운데 무려 306석을 몰아줬다. 민영화 법안은 중의원에서 다시 가결됐다. 참의원에서 부결된 법안을 중의원에 다시 상정,3분의2 이상의 찬성을 얻으면 확정되는 헌법의 규정을 이용한 것이다. 우정성은 지난해 10월1일 ‘일본우정그룹(JP)’이라는 지주회사 체제로 민영화에 첫발을 내디뎠다. 고이즈미의 개혁은 정부의 조직을 바꿨고 경제를 부활시켰다.10년간의 불황 늪에서 벗어나게 했다. 실업률은 취임 초기 5%에서 2002년 5.5%까지 상승했다가 2006년 9월 퇴임 때 3.9%까지 떨어졌다. 경제성장률도 취임 초기 0.2%에서 퇴임 때 2.2%를 기록했다. hkpark@seoul.co.kr ■ ‘괴짜 총리’의 개혁 부작용 |도쿄 박홍기특파원|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개혁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성공적’이란 단어로 요약된다. 일본 경제의 활성화를 견인했다. 퇴임 후에 인기도 아직 여전하다. 최근 산케이신문의 여론조사 결과, 지지율은 57%를 기록했다. 또 총리 하마평에서도 빠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비판도 없지 않다. 개혁의 피로증과 함께 부작용도 낳았다. 전형적인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이란 비난이다. 호주국립대 동북아전문가 거번 매코맥 교수는 2005년 10월 영국의 월간지 뉴 리포트 리뷰에서 “실질적인 성과가 없음에도 국민들에게 개혁이라는 환상을 심어 줘 장기집권에 성공했다.”고 혹평했다. 개혁 과정에서 도·농간, 소득계층간의 양극화 문제가 심화됐다는 지적이 많다. 지자체의 시선은 곱지 않다.‘국가에서 지방에’라는 기치 아래 재정 자립이 충분치 않은 상황에서 지방에 주던 국가 보조금 및 지방교부세의 삭감 등으로 더욱 재정 형편이 어려워졌다는 이유에서다. 지방의 병원이나 기업들은 채산성을 맞추지 못해 문을 닫는 사태도 일어나고 있다. 게다가 비정규직의 처우 개선을 위해 ‘근로자 파견법’을 개정, 파견기간을 1년에서 3년 이상 무제한으로 연장한 조치는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불안정안 고용 구조를 가져 왔다. 기업들은 고용의 유연성과 비용의 절감을 위해 정규직보다는 비정규직의 채용을 선호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정규직은 2002년 29.4%에서 2005년 32.6%,2006년 33%로 증가했다. 허동만 센슈대 교수는 “정규직에 비해 싼 임금에다 고용과 해고가 쉬운 비정규직의 증가는 양극화 문제와 직결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민영화된 ‘일본우정그룹’ 역시 향후 10년간 정부 지원이 계속되기 때문에 거대금융그룹으로 자리잡아, 민간금융기관을 위축시킬 수도 있다는 우려다. 후쿠가와 유키코 와세다대 교수는 “개혁 때문이 아니라 세계화 과정 속에 양극화는 불가피하게 심화되고 있다.”면서 “개혁을 달갑지 않게 여기는 이들의 정치적인 해석”이라고 후한 점수를 주었다. hkpark@seoul.co.kr
  • 잠자리서 칼질한 아내의 열애(熱愛)

    잠자리서 칼질한 아내의 열애(熱愛)

    「여자가 원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속담을 실증이라도 하려는 듯 전주(全州)에서 국부절단 사건이 났고, 대구(大邱)에서는 사건을 저지른 여자가 출옥 1개월을 남기고 있다. 사랑과 미움의 감정속에서 곤두박질해야했던 「사랑했으므로 잘랐노라」의 이 무서운 여자들은 하나같이 「그 남자 아니면 못산다」니…. 사랑하는 남편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던 여인이 마지막 수단을 사용했다. 국부를 잘라버린 것이 물론 마지막 수단일수는 없지만 피묻은 손으로 자수를 한 여인은 자기 행위에 『변명의 여지가 없다』고 통곡 하면서도 그러나 소원은 『그이가 나를 버리지 않았으면…』-. 첫눈에 반해 맺어졌으나 시집 식구들 학대 심하고 『나의 참 사랑을 다른 여자에게 빼앗기고 싶지 않아 끔찍스런 일을 저질렀습니다』 남편의 육체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부분을 면도칼로 자른 전북(全北) 전주(全州)시 서부 노송(西部 老松)동 김(金)봉선 여인(25·가명)이 지난 1일 하오 전주지검 전팔현(全八現)검사 앞에서 참회의 눈물을 흘리며 목메인 소리로 한 말이다. 남들은 표독스러운 여인이라고 지탄하지만 김여인으로서는 그의 사랑하는 남편을 해치기까지에는 깊은 사연이 있었다. 전주 태생인 김여인은 68년 12월 어느날 친구의 소개로 얼굴이 미남형에다 체구도 남달리 큰 윤종무(尹種無)씨(26·가명)를 알게됐다. 겨우 국민학교를 졸업한 김여인이 중학교를 나와 시내 정수장에서 노동일을 하는 윤씨를 만나자 첫 눈에 마음이 끌려 갔고, 김여인의 적극적인 태도로 이 두 남녀는 서로 만나는 횟수가 많아졌다. 남몰래 계속된 밀회로 서로의 애정은 불에 타는 듯 타올랐으며 끝내는 넘어서는 안될 선까지 넘어섰다. 이러한 사랑의 결실로 김여인은 처녀의 몸으로 임신을 하게 되었고 70년 11월 7일 남아를 낳았다. 처녀가 어린애를 낳았기 때문에 서로의 비밀은 그 이상 감출수 없었다. 양가의 부모들도 이들의 깊은 관계를 알게되어 두 남녀는 털어놓고 김여인의 집에서 동거생활을 하게됐다. 그러나 올 1월 7일 뜻하지 않게 이들 사이에 생겨난 어린애가 갑자기 병을 앓다 그만 숨지고 말았다. 김여인은 자식을 잃은 슬픔보다 혹시나 남편 윤씨의 마음이 변하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이 되었다. “너만을 사랑한다”던 남편 집에까지 딴처녀 데려와 그래서 김여인은 자식을 잃은 뒤 결혼식을 빨리 올리자고 남편을 졸라댔다. 이 성화에 견디지 못한 윤씨는 지난 2월 6일 양가의 부모들과 가까운 친지들만 모인 가운데 아주 간소하게 화촉을 밝히고 시내 동완산(東完山)동 1가 윤씨의 집에 신방을 차려 단란한 가정을 꾸렸다. 그러나 윤씨의 부모들을 비롯해서 온식구들이 김여인을 신부로 맞는데 불만이 많았고 시부모들의 학대가 심했다. 육체적 고통보다는 정신적인 고통이 컸던 김여인은 『이 집안에 들어올때 남편 하나만 믿고 시집온 내가 어떤 역경에 처하더라도 참고 견디어 나가야한다』고 스스로 마음을 달래며 살아왔다. 이러한 신념의 보람없이 신혼 생활 한달만에 하늘처럼 믿어 왔던 남편 윤씨가 바람을 피우기 시작했다. 김제(金堤)읍 에 살고 있다는 처녀와 사귄 윤씨는 이 처녀를 집에까지 데려와서는 시부모들에게 인사를 드리게 했으며 시부모들도 이 처녀와 재혼시킬 눈치.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부부생활이 편할리 없었다. 싸움이 잦았고 끝내는 김여인이 집을 나가 친정에 가 있게됐다. 그러나 윤씨는 김여인과의 옛 정을 잊을 수 없었던지 이틀에 한번씩 김여인을 찾아 주었으며, 그때마다 자기는 재혼할 생각이 없는데 부모들이 재혼해야한다는 주장을 굽힐 수 없어 고민에 빠져 있다면서 결코『당신을 버리지 않겠다』고 김여인을 위로했다. 지난 5월 19일. 예와 다름없이 찾아온 윤씨를 붙들고 김여인은 『진정 나를 사랑하고 버릴 생각이 없다면 우리 이곳을 떠나 다른 먼곳에 가서 살자』면서 도망 가자고 제의했다. 윤씨도 김여인을 버릴 생각이 없었던지 이 제의를 받아들여 두 남녀는 이날 아침 고속「버스」를 타고 무작정 서울에 갔다. 그러나 이들을 맞이해줄사람 없는 서울의 거리를 하루 종일 떠돌다 다음날 늦게 다시 전주로 되돌아 왔다. 김여인은 오늘밤 집에 돌아가기가 싫다면서 어디서든지 하룻밤을 함께 지낸후에 헤어져 달라고 애원했다. 간곡한 애원에 마음이 약해진 윤씨는 김여인의 이 부탁을 받아 들여 인근에 있는 서부 노송(西部 老松)동 E하숙옥 3호실에 들어서 잠자리를 같이했다. 김여인은 피곤해 하면서 깊은 잠에 빠진 남편의 얼굴을 들여다 보는 순간 자기와 혼인신고도 하지 않고 있는데다가 어느때 자기 곁에서 영원히 떠나갈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다른 여인과 혼인을 못하게 막아야한다는 착잡한 생각으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녀는 연필을 깎기위해 사놓은 5원짜리 면도칼을 호주머니에서 꺼내 만지작거리며 망설였다. 병신으로라도 만들어 남의 사람이 못되게 하느냐, 눈물을 머금고 단념하느냐의 갈등과 주저로 몸부림 하기 수10분. 그녀는 입을 꽉 다물고 결심했다. 평생동안 불구를 만들어 버리면 결코 남에겐 갈 수 없으리라 생각했다. 그녀는 남편의 국부를 순식간에 잘라 내고 말았다. 그리고는 아픔에 질린 윤씨의 얼굴 세곳을 난도질 하고는 하숙집을 뛰쳐 나왔다. 김여인은 피로 범벅된 손바닥으로 역앞 파출소에 들어가 자기의 범행을 자수했다. 피투성이가 된 윤씨는 하숙집 주인의 재빠른 응급조치로 시내 태평동 대한병원으로 옮겨져 겨우 끊긴 것을 잇기는 했으나 정상적인 기능을 할수 있을지는 당장 장담할수 없다는 의사의 진단. 김검사도 김여인의 범행수법이 잔인하기는 하나 여자의 정상은 동정이 간다고 말하고있다. <전주(全州) 송종호(宋鍾虎) 기자> [선데이서울 71년 6월 13일호 제4권 23호 통권 제 140호]
  • 이수광 소설 ‘대륙의 영혼 최재형’

    이수광 소설 ‘대륙의 영혼 최재형’

    독립운동가 최재형(1860∼1920). 그의 삶의 역정은 혼란의 시대에서도 단연 두드러진다.‘러시아 정부가 인정한 정치인’‘시베리아 항일운동의 대부’‘재러 한인사회 지도자’‘독립운동가’‘일본군의 총탄도 두려워하지 않은 거인’…. 일반인들에게는 낯설겠지만 러시아에서는 전설적인 민중운동가이자 독립운동가로 꼽힌다. ‘노비’로 태어나서 굶주림을 피하고자 두만강을 건너 러시아 연해주로 간 최재형 선생은 온갖 밑바닥 생활을 하며 자산가로 성장했다. 삶이 안정되자 재러 한인사회의 근대화에 힘을 쏟아 재러동포들은 물론 러시아 정부로부터도 두터운 신망을 얻었다. 특히 1905년 항일운동에 발을 들여 놓은 이후 1920년 연해주에서 일본군에 처형될 때까지 의병을 조직하고, 민족 언론을 운영하는가 하면 재산을 독립운동 자금으로 아낌없이 바치는 등 온몸으로 일제에 저항했다. 헤이그 특사 이상설,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안중근, 민족 사학자 신채호 등 독립운동가들을 물심양면으로 도운 이가 바로 그다. 사망하기 전인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초대 재무총장으로 선출된 그는 독립운동의 현장을 지킨다는 신념으로 취임치 않고 끝까지 러시아에 남아 있다가 일본군의 총탄을 맞고 쓰러져 세상을 떠났다. 최재형 선생이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것은 주요 활동무대가 중국이 아닌 교류가 적은 러시아였기 때문이다. 그의 파란만장한 삶이 소설 ‘대륙의 영혼 최재형’(이수광 지음, 랜덤하우스 펴냄)으로 부활됐다.‘노비’로 어렵게 보낸 소년기부터 시신조차 남기지 못했던 비참한 죽음, 풍비박산 난 가족들의 모습에 이르기까지 최재형 선생의 일생을 생생하면서도 드라마틱하게 복원한 팩션이다. 작가는 “최재형 선생은 동지들과 민중의 지지를 끝까지 잃지 않았다는 점에서 체 게바라를 능가하는 인물”이라면서 “자산가로 성공했는데도 자기 삶에 안주하지 않고 민족과 조국을 위한 혁명과 독립운동에 영혼까지 송두리째 바쳤다는 사실이 너무 존경스럽다.”고 밝혔다.1만 2000원.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밴티지 포인트’ 숨막히는 추격전…서스펜스 만끽

    ‘밴티지 포인트’ 숨막히는 추격전…서스펜스 만끽

    대통령이 저격당한다? 할리우드 영화 ‘밴티지 포인트’(Vantage Point:유리한 지점이라는 뜻감독 피트 트레비스)는 25일 새 대통령 취임을 앞두고 ‘2월28일 대통령이 저격당한다.’는 카피로 먼저 관객을 자극했다. 작품에 대한 판단은 둘째 문제. 이 문구를 담은 포스터와 홍보물에 대해 시민들의 신고가 이어졌고 경찰의 요청으로 카피를 바꾸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새로 바뀐 카피는 서스펜스 영화치곤 좀 구태의연하다.‘1초도 눈을 떼지 마라.90분의 숨막히는 추격전’. 어쨌든 ‘밴티지 포인트’는 카피와 상관없이 눈을 떼기 곤란한 영화다. 미국 대통령이 암살되는 극적인 장면 때문만은 아니다. 영화는 테러 현장의 23분간을 6번이나 돌려 보여주기 때문에 ‘놓쳤다.’는 낭패감은 안기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있던 각기 다른 8명의 시점으로 사건의 경위를 밝혀낸다는 것. 한 사람의 시선만 놓쳐도 연결고리가 헐거워진다.‘밴티지 포인트’가 긴박감을 가지고 내달리는 이유, 관객이 집중력을 가지고 내달려야 하는 이유다. 스페인 살라망가의 마요르 광장. 낮 12시. 여기에 세계 150여개국 정상들이 모여든다. 서방과 아랍국의 대테러 방지 협약을 위한 역사적인 정상회담이 열리는 자리. 수개의 화면으로 현장을 지켜보던 뉴스 프로듀서 렉스(시거니 위버)는 한 카메라맨에게 일갈한다.“반대시위 그딴 거 찍지마. 그림 안 되잖아.” “독수리(대통령)가 움직인다.”는 무전이 떨어지자마자 경호원들의 얼굴은 경직된다. 경호원 반즈(데니스 퀘이드)는 1년전 임무수행 중 총상을 입은 후 막 복귀한 참이다. 미국인 관광객 하워드(포레스트 휘태커)는 아내와의 별거 후 혼자만의 여행에 나서 현장을 자신의 카메라에 담는다. 여기에 당시 현장에 있던 또 다른 목격자들이 참여하며 8개의 시선을 만들어 낸다. 90분이 점점 줄어들수록 ‘오지랖’ 넓은 미국인 관광객 하워드(포레스트 휘태커)가 찍은 ENG카메라, 뉴스 카메라맨이 잡은 무의미한 화면에는 범인을 가려낼 중요한 순간이 담겨 있음이 속속 드러난다. 역순으로 계속 사건을 되돌려보며 짚어 보게 되는 것은 세계평화를 외치는 역사적인 순간에도 불거지는 ‘개인의 역사´와 신념이다.‘이 전쟁은 영원히 끝나지 않는다’는 교훈이기도 하다. 영화에는 8명의 시점이 고루 담겼다고 하지만, 결과도 공정한지에 대한 대답은 유보적이다. 총알과 폭탄에도 살아남는 자, 테러에도 불구하고 정의로운 자는 언제나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28일 국내 개봉.15세 이상 관람가.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씨줄날줄] 마르크스 구명운동/구본영 논설위원

    “한 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 공산주의라는 유령이.” 칼 마르크스는 1847년 ‘공산당 선언’의 첫머리를 이렇게 시작했다. 이 구절이 그의 사후에도 유효하리라곤 그 자신도 몰랐을 게다. 그의 이론은 현실에선 ‘성공적으로’ 뿌리내리지 못했지만, 아직도 지구촌을 유령처럼 떠돌고 있으므로…. 마르크스는 독특한 가정법에 따라 자본주의 경제의 붕괴와 공산주의 사회의 도래를 확신했다.1867년에 출간된 자본론에는 그의 이런 신념이 포괄적 사상체계로 집약돼 있다. 그러나 그의 치명적 오류는 자본주의 체제의 자정능력을 무시한 점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불평등도 노동 현장의 요구를 제도권 안으로 끌어들임으로써 시정될 것이란 사실을 간과한 것이다. 그가 살았던 19세기에 이미 영국·독일에서 사회보장법이 통과됐는 데도 말이다. 그는 유복한 유대계 독일인 부모 밑에서 자랐지만, 평생 가난의 굴레를 못 벗어났다. 박사 학위를 받고 교수직을 얻으려 노력했지만, 그의 과격한 정치선전 활동이 끝내 결격사유가 됐다. 그래서 그의 사후 동서를 막론하고 그를 연구하는 게 생업인 교수들이 양산된 사실은 퍽 역설적이다. 서울대 경제학부 대학원생들이 그제 마르크스 경제학을 전공하는 교수를 채용해 달라는 대자보를 붙였다.33명의 경제학부 교수 가운데 유일하게 마르크스 경제학을 전공한 김수행 교수가 이달말 정년퇴임하기 때문이란다. 김 교수는 국내서 처음으로 자본론을 완역했다. 그가 퇴임하면 석·박사 과정의 관련 전공 지도를 할 교수가 없게 된다. 학생들의 호소가 가슴에 와닿는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런던 교외 마르크스 묘비에 적힌 구절이다. 그러나 그가 꿈꾸던 공산혁명은 일어나지 않았고, 소련과 동유럽의 사회주의 실험도 실패로 끝났다. 그의 이론도 현실 경제에서 설명력을 상당부분 상실하면서 폴 새뮤얼슨 등의 신고전파 종합이 주류 경제이론으로 자리잡았다. 그렇다 하더라도 마르크스 경제학의 명맥은 이어져 학문의 다양성은 확보돼야 한다. 시장경제가 쇄신을 통해 건강성을 확보하는 데도 사회주의 경제이론이 안티테제의 역할을 하지 않았던가. 구본영 논설위원 kby7@seoul.co.kr
  • [20&30] 입사 후 내가 변했다?!

    [20&30] 입사 후 내가 변했다?!

    최근 온라인 채용업체 잡코리아와 비즈몬이 주5일 근무제를 시행하고 있는 회사의 정규직 1273명을 조사한 결과 이들의 하루 평균 근무 시간이 10시간을 넘었다. 회사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다 보니 직장의 조직문화와 근무환경이 구성원의 사소한 습관과 태도, 심지어 신념까지 바꿔놓기도 한다. 부당한 지시나 대우에도 입을 다물거나 조직문화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성격을 개조(?)하는 부정적인 측면이 있는 반면, 끊임없이 자기계발을 하고 뒤늦게 재테크에 눈을 뜨기도 한다. 입사 후 나는 얼마나, 어떻게 변했을까? 20∼30대 직장인의 속마음을 들어봤다. ● 통장에 돈을 쏙쏙 vs 자기계발 욕심 쑥쑥 가전제품 제조업체에서 근무하는 최모(28·여)씨는 이른바 ‘돈치’에서 재테크 달인’으로 변했다며 즐거워했다. 입사 3년차인 최씨는 처음 1년간은 대학 시절 처럼 쓰고 남은 돈을 저금하는 주먹구구식 재테크를 했다. 하지만 선배들은 돈에 무식한(?) 최씨를 가만두지 않았다. 이런 저런 펀드를 추천하고 돈을 쌓는 노하우를 얻는 비법 등을 전수했다. “선배들이 추천한 인터넷 재테크 카페에도 가입하고 관련 책을 읽어 나갔어요. 저녁이면 금융권에 근무하는 친구에게 밥을 사면서 어떤 펀드가 좋은지 묻고 다녔죠.” 그 결과 입사 이후 일에는 별다른 재미를 느끼지 못했지만 돈은 1억원 정도를 모았다.“동료들은 저를 ‘최부자’라고 불러요. 노하우를 묻곤 하지만 알려줄 수 있나요.2∼3년 바짝 모아 결혼한 뒤 회사는 그만두고 예쁜 옷가게를 내려고요.” 가전제품 판매업체에서 근무하는 김모(30)씨는 입사한 뒤 자기계발 욕구가 샘솟는 슈퍼맨(?)으로 변신했다. 물론 자기계발이 성과나 승진 등에도 도움이 되지만 이처럼 즐겁게 공부하는 자신의 모습에 스스로 놀란다고 했다.“아침 6시에 일어나 토익 학원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신나요. 공부는 결과 만큼이나 과정을 즐기는 것이라는 말이 새삼 떠오릅니다.” 김씨는 올해 경영대학원에 들어갈 생각이다. 직장을 다녀야 하는 경제적 형편 때문에 외국 MBA까지는 꿈꾸지 못하지만 낮에는 실전 수업, 밤에는 이론 수업을 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부풀어 있다.“솔직히 대학원생은 현실을 도피하는 것 같았어요. 하지만 요즘에는 회사일에 구애 받지 않고 공부만 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물론 공부만 하다보면 다시 공부가 지겨워질 수도 있겠죠.” ● 패션이 달라졌어요 vs 외모지상주의 버렸어요 철강회사에 근무하는 김모(27)씨는 대학 시절 군대가 좋아 1학년 1학기만 마치고 입대를 자원할 정도로 남자들의 세계를 동경했다. 교통비가 모자라도 친구들과 마신 술 값을 계산해야 직성이 풀렸고 친구들을 하숙집에 ‘무료로’ 묵을 수 있도록 배려했다. “당시 유행하던 무스, 젤은 물론이고 한 겨울에 로션도 바르지 않았어요. 옷은 계절당 많아야 두 세벌 이었죠. 여자친구요?씩씩한 솔로부대였는데요.” 하지만 김씨는 영업직 사원으로 회사에 입사하면서 패션과 외모가 얼마나 중요한지 뼈저리게 깨달았다. 김씨는 얼굴 피부 상태, 양복의 질, 머리 모양까지 고객에게 영향을 미친다고 털어놨다. 그는 사내 여직원들에게 패션과 피부마사지 방법 등을 열심히 문의하고 실천에 옮겼다. 그리고 만 3년, 그는 달라졌다. 요즘에는 검정 벨벳 슈트에 회색 바지, 청색 와이셔츠를 주로 입는다.“지난해 사귄 애인은 제가 멋스럽고 깔끔하대요. 솔직히 예전에는 내면의 자신감만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외모의 자신감이 받쳐줄 때 실력도 더 잘 발휘되는 것 같아요.” 반면 패션 회사에서 디자이너로 일하는 양모(27·여)씨는 직장에 다니면서 내면의 아름다움을 중요시하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대학 시절 그는 소개팅을 할 때 남성의 외모나 패션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곧바로 일어날 정도로 외모지상주의자였다. “당시에는 외모는 그 사람의 내면이 드러난다고 믿었죠. 세련된 내면, 패셔너블한 내면이 존재한다고 믿었어요.” 하지만 지난 2년간의 직장 생활을 통해 남자를 보는 눈이 바뀌었다. 외모와 스타일이 마음에 쏙 드는 남자 동료가 관심을 보였지만, 그 동료는 남에게 상처되는 말을 너무 쉽게 뱉었다. 또 다른 미남 동료는 일을 책임감 있게 처리하지 못했다.“남자를 보는 시야가 넓어졌어요. 대학 때는 몰랐던 것이죠.” 현재 그는 사내 커플이 됐다. 대학 동창들에게 애인을 소개했을 때 친구들은 “외모만 보더니 의외다.”라는 반응을 보였지만 그는 그냥 웃기만 한다. “지금도 멋진 남자에게 가끔 눈이 가지만,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것을 느끼면서 스스로 변했다며 웃곤 해요.” ● 점심시간마다 맛집 찾는 재미 “나도 이젠 미식가” 3년차 회사원 전모(26·여)씨는 점심 시간마다 맛집을 찾아다니면서 삶이 싱싱해졌다고 말했다. 그는 어릴때부터 입이 까탈스러워 식사를 즐기지 않았다. 어머니는 “까다로운 식성 때문에 신경이 예민하고 만사에 짜증을 부린다.”고 충고하곤 했다. 전씨는 식도락의 즐거움에 빠진 뒤로 어머니의 말 뜻을 깨달았다고 한다. “광화문에는 맛집이 무궁무진해요. 고르는 재미와 먹는 재미에 하루가 즐겁고, 그러다 보니 다른 이에게도 웃음이 전달되더군요.” 그는 저마다 다른 이유로 점심을 거르는 동료들에게 때때로 작은 도시락을 사다주곤 한다.“내 삶을 생기있게 변하도록 한 음식의 마법이 다른 이에게도 전염되었으면 좋겠어요.” 이경주기자 kdlrudwn@seoul.co.kr ● 꼬박꼬박 말대답 하던 나… 이젠 고분고분 3년차 회사원 최현정(27·여)씨는 할 말은 다해야 직성이 풀리는 스타일이었다. 부서에 배치 받고 한달 쯤 지난 어느 날, 상사가 바로 옆에 복사기를 두고도 ‘현정씨 복사좀 해줘.´라며 서류를 건넸다. “이건 아니다 싶었죠. 그래서 ‘대리님 옆에 복사기가 있는데 꼭 저를 시키셔야 해요. 이건 아니죠.´라고 속에 있는 말을 다 했죠.” 그 상사는 예상하지 못한 후배의 반응에 당황했는지 얼굴이 빨개지더니 그대로 자리를 떴다. 문제는 그 뒤였다. 아예 말도 건네지 않는 것은 물론, 다른 동료와 얘기를 하다가도 최씨가 다가가면 다른 곳으로 가버리는 등 철저하게 무시했다. 상사의 무관심도 힘들었지만 회사 분위기도 최씨의 행동을 좋게 보지는 않는 듯 했다. “그 뒤부터는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속에 담아두고 절대 하지 않아요. 한번은 상사가 커피를 타오라고 시켰어요.‘전 커피타러 들어온 게 아니라고요.´라고 말했을 지도 모른지만 이제 그럴 수 없다는 것을 배웠죠.” 회사원 김민정(31·여)씨는 입사 초까지만 해도 ‘골수 페미(니스트)´로 통했다. 하지만 입사 초의 한 사건이 그를 바꿔 놓았다. 동기 가운데 한 명이 회식 자리에서 간부에게 성희롱을 당한 것. 김씨를 비롯한 동기들은 간부를 찾아가 사과를 요구했지만 그는 끝내 발뺌했다. 김씨 등은 이 문제를 공론화하려고 갖은 애를 썼지만 소용 없었다. 회사측에선 “그럴 분이 아닌데 한 번 실수한 것 가지고 이러면 곤란하다. 외부로 알려지면 회사 망신이고 당신도 1∼2년 다니다 그만둘 것은 아니지 않느냐.”며 덮어둘 것을 요구했다. 회사측의 각개격파 전략에 동기들은 하나, 둘 물러섰고 결국 끝까지 버틴 김씨만 한동안 상사들의 따가운 시선에 시달려야 했다. “얼마전 술자리에서 주사가 심한 상사가 ‘나랑 키스 할래, 같이 잘래.´라며 수작을 부리더라고요. 예전 같으면 술자리를 뒤짚고, 이후 공론화시켜서 회사에 발도 못 붙이게 했겠죠. 하지만 그냥 넘어가게 되더라고요. 확실한 증거도 없는데 또 나만 당하는 것 아닌가란 생각이 들었죠.” IT업계에서 일하는 김정현(26)씨는 입사 전에는 돈을 벌지 못해도 하고 싶은 일만 할 수 있다면 그만이라는 생각이었다. 선배들이 ‘나는 연봉 얼마 밑으로는 절대 안 간다.´고 얘기하면 속물이라고 생각했다. 지난해 1월 김씨는 연봉 2000만원대 초반으로 돈은 좀 적게 받지만, 마음껏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중소 IT업체에서 사회 생활의 첫 발을 딛었다. “점점 돈만 중시하는 모습을 발견하게 되죠. 일은 별로 하지 않고도 연봉을 많이 받는 이들을 보면 짜증이 나고 굳이 야근까지 해야 될 상황도 아닌데 야근비를 챙기려고 회사에 남게 되고요.1년 만에 만난 친구에게 고작 ‘넌 연봉 얼마 받냐.´고 하는 내 모습에 흠칫 놀라기도 해요.” ●‘분위기남(男)´, 회식계의 별이 되다. 건설회사 3년차 조모(32)씨는 조용한 성격에 클래식과 와인을 즐기는 우아한(?) 남자였다. 하지만 이젠 더이상 클래식을 들으며 독서에 빠져드는 ‘분위기남´이 아니다. 부단한 체력관리로 언제나 3∼4차까지 함께하는 ‘회식계의 신성´이 됐다. 건설회사의 특성상 과도한 남자다움을 요구한다는 이야기는 익히 들었지만 첫 부서 회식에서 겪은 충격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아무렇지 않은 듯 소주를 맥주잔에 부어 단박에 들이키는 모습은 엄청난 충격이었다. 그 많은 술이 다 어디로 들어가는지.2∼3차 쯤이면 배가 부를 법도 하건만 노래방에서도 선배들은 끝없이 ‘양폭´(양주와 맥주를 섞은 술)을 들이부었다. 그렇게 마신 다음 날에도 멀쩡하게 출근하는 선배들의 모습은 경의의 대상이었다. 그때부터 조씨도 체력을 관리하기 시작했다. 오로지 회식에서 살아남기 위해 아무리 술을 많이 마셨더라도 다음날 새벽이면 피트니스 클럽에서 열심히 땀을 뺀다. 술 앞에 무너지는 약한 조대리가 되지 않기 위해. 공기업 2년차인 신모(27·여)씨는 대학 때만 해도 활달한 성격에 넘치는 장난기를 주체하지 못해 ‘똘´이란 별명으로 불렸다. 하지만 엄격하고 보수적인 분위기로 정평이 난 회사에 입사한지 2년 만에 신씨는 확 달라졌다. 늘 재치있고 웃음이 많아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하며 인기를 누려온 그였지만 어느날 부터인가 회사 안에서 조용히 있을 수밖에 없게 됐다. 발단은 입사 직후 다른 부서에서 교육 받던 동기와 수다를 떨다가 선배에게 눈물이 쏙 빠지도록 혼이 난 것이었다. 그 뒤 출근 인사와 동시에 퇴근 때까지 침묵의 시간을 보냈다. 퇴근하고 집에 가면 얼마나 입을 꾹 다물고 있었는지 입냄새가 날 정도. 회사에서의 사정을 하소연했더니 묵묵히 듣던 아버지는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말했다. 보수적이기로 소문난 회사 분위기에 맞추다 보니 이제는 주변 사람이 신씨를 ‘맏며느리´로 부를 정도라고 한다.“새로 들어온 후배들의 군기 반장 역할을 하고 있는 제 모습을 보면 깜짝깜짝 놀라기도 해요.” 임일영 신혜원기자 argus@seoul.co.kr
  • [시론] 공천갈등 지역 전당대회 개방이 해법/김진하 계명대 국제관계학 교수

    [시론] 공천갈등 지역 전당대회 개방이 해법/김진하 계명대 국제관계학 교수

    대선 승리와 진보 진영의 지리멸렬로 인해 이미 총선 승리를 얻어낸 것처럼 밥그릇 싸움을 하는 한나라당을 바라보는 국민 시선이 고울 수는 없다. 한나라당의 내분은 한국 정당의 기형적 구조 때문에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범여권 대선 후보군의 지지율이 한 자릿수에 머물던 시절, 한나라당의 현역의원들과 당원협의회 위원장, 그리고 정치 지망생들이 대선 후보들 뒤로 줄 서기를 했을 때 이미 예고되었던 갈등이었다. 일부 정치학자들은 그 때 이미, 대선 이후 범여권 정당의 궤멸과 이명박당, 박근혜당으로의 한나라당 분열 가능성을 점칠 정도로 총선 공천을 둘러싼 한나라당의 갈등은 변수가 아니라 상수였던 것이다. 지금 대통합민주신당이 겪고 있는 내홍이나 민주당과의 통합 난항도 공천과 관련된 것으로, 어떤 정당도 공천 갈등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 한국정치의 현실이다. 공천이 늘 문제가 되는 것은 한국 정당의 성격과 국회의원 후보자 선정 구조 때문이다. 한국의 정당들은 정치적 신념을 공유하는 정치적 집단이 아니라, 단기적 목표를 공유하는 정치적 연합체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대통합민주신당의 전신인 열린우리당은 정치적 신념을 공유한 집단이 아니라 호남·충청의 일부, 노사모, 재야, 일부 진보세력, 전통적인 보수 야당 세력의 반(反)한나라 연합이었다. 정치적 신념이 아니라 한나라당의 집권을 막기 위해 결성된 정당이기에 노무현 대통령은 집권에 성공했지만, 집권 초부터 외로운 싸움을 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의 한나라당은 또 어떠한가. 영남,3공의 산업화세력,5공의 군부,YS의 전통적 보수 야당세력, 중산층 등이 반 노무현·보수의 이름으로 한 당을 구성하고 있지만 정권 획득의 목표가 달성된 뒤에도 정치적 핵심 가치들을 공유할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 구성원들의 정치적 신념이 비교적 균일해보였던 민주노동당도 자주파와 평등파로 분당되고 있는 형국이고 보면, 정당이 정치적 신념을 공유하는 정치적 집단이라는 교과서적 정의는 한국 정당에는 잘 맞지 않고, 그러다 보니 오월동주의 형국이 한 정당 내에서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국회의원 후보를 지역주민이나 당원들이 선출하지 못하고, 중앙당의 공천심사위원회에서 결정하는 현행 공천제도는 국회의원들이 의정활동보다 대선후보 뒤에 줄 서기에 몰두하고, 계파간 공천다툼이 벌어지는 근본 원인이다. 한나라당의 경선이 파국 직전까지 갔던 것도 줄 서기를 하고 있던 국회의원 지망생들의 샅바싸움 때문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지역의 전당대회에서 국회의원 후보 선출을 하지 않고, 중앙당에서 공천을 주는 이유는 무엇인가. 만약 지역구의 전당대회에 국회의원 후보자 선출을 맡겨놓으면 토착권력을 가진 지역유지들이 당원 동원을 통해 계속적으로 국회의원 후보로 선출되어, 참신한 정치신인의 발탁이 어려워진다. 그래서 공천심사위에서 능력있는 참신한 후보를 공천한다는 명분에도 일리는 있다. 그러나 현행 공천제도 뒤에는 계파간 지분을 나누고, 보스는 공천권을 통해 영향력을 유지하려는 진짜 이유가 숨겨져 있다. 토착 권력의 견제를 위해서라면 지역 전당대회를 개방하면 된다. 좋은 후보라면 지역민이 먼저 알기 때문이다. 보스주의에서 벗어나 후보자 선출권을 국민에게 돌려주는 것만이 공천갈등을 없애는 길이다. 김진하 계명대 국제관계학 교수
  • [서울광장] 화려한 귀향이 초라해 보일 때/함혜리 논설위원

    [서울광장] 화려한 귀향이 초라해 보일 때/함혜리 논설위원

    ‘내가 죽으면 장례는 가족장으로 치르기 바란다. 나의 무덤은 딸 안(Anne) 옆에 만들어 달라. 묘비에는 샤를 드골,1890년 태어나 몇년에 죽었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적지 말라.’ 20세기 프랑스 역사에서 가장 빛나는 지도자 드골의 유서 내용이다.2차 대전의 영웅이거나, 강한 프랑스를 이끈 대통령으로서 권위를 지키기 위해 애쓴 흔적은 조금도 보이지 않는다.‘조국을 위해 태어났다.’는 신념으로 군인이 되고, 조국 재건을 위해 정계에 뛰어든 드골은 자신에 대한 국민의 신망이 사라진 것을 확인한 즉시 미련없이 대통령직을 물러났다. 콜롱베의 시골집에서 회고록을 집필하며 은둔생활을 하던 드골은 1970년 11월9일 동맥류 파열로 숨을 거둔다. 프랑스를 위해 수많은 업적을 남긴 그가 가족에게 남긴 것은 낡은 돌집 한 채뿐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한때 드골의 리더십에 큰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소신의 정치를 펼친 것 외에는 공통점을 찾을 수 없으니 드골의 리더십에 대해 본격적으로 연구한 것 같지는 않다. 특히 대통령 퇴임 전후 부분은 간과한 모양이다. 달라도 참 많이 다르기에 하는 말이다. 20일 앞으로 다가온 노 대통령의 ‘화려한 귀향’이 여론의 도마 위에 올라 있다. 기획예산처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제출한 ‘봉하마을 지원사업’ 보고서에 따르면 경남 김해시 진영읍과 봉하마을에 건설 중인 노 대통령의 퇴임 후 관련 시설에 총 495억원의 중앙·지방정부 예산이 배정됐다. 노 대통령은 취임 초 “퇴임하면 조촐한 임대주택에 가서 살겠다.”고 해서 화제가 됐었다. 역대 대통령 가운데 처음으로 귀향을 택한 것도 신선했다. 그런데 뚜껑을 열어 보니 그게 아니다. 소박한 임대주택이 3만 6459㎡(1만 1028평)의 화려한 노무현 타운으로 변신한 것이다. 노대통령은 퇴임과 함께 평범한 대한민국 국민으로 돌아간다. 한 개인을 위해, 한 마을에 이토록 많은 나랏돈을 배정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청와대는 봉하마을 주변의 개발사업을 지시하지 않았다고 했지만 알면서도 막지 않았다면 지시한 것이나 다름없다. 지난 5년간 대통령으로서 권세를 누리고도 모자란 것일까, 아니면 참여정부 5년의 초라한 성적표를 감추기 위해 화려하게 치장을 하고 가는 것일까. 어쨌든 보기 민망하다. 그래도 노 대통령이 국민들의 신망을 되찾을 수 있는 기회는 남아 있다. 회고록을 쓰면서 인권 변호사로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봉사를 하는 것도 좋다.‘노무현 생태타운’의 뜻을 살려 환경운동가로 변신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현실 정치에 관여해 평지풍파를 일으키는 것 말고도 할 일은 많다.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을 역할 모델로 삼아보길 권하고 싶다. 그는 자신의 고향인 조지아주의 시골마을 플레인스에 있는 마라나사 침례교회에서 30여년째 주일 성경공부를 주도하는 집사일을 하고 있다. 그러면서 홈리스 구호기관인 해비탯 인터내셔널 운동을 펼치고, 팔레스타인 문제 등 분쟁해결에 적극 나서 2002년 노벨평화상도 탔다. 현직을 떠난 뒤 그처럼 빛나는 삶을 사는 지도자는 찾기 어렵다. 드골은 회고록에 이렇게 썼다.“침묵처럼 권위를 높이는 것은 없다.”노 대통령이 퇴임 후 묵묵히 행동으로 소신을 펼쳐 보인다면 스스로 무너뜨린 권위를 다시 세울 수 있을지 모른다. 역사의 평가도 달라질 것이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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