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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시의회 “특혜 검증-책임 없는 SIFC 매각 묵과 못한다”

    서울시의회 “특혜 검증-책임 없는 SIFC 매각 묵과 못한다”

    ‘서울특별시의회 서울국제금융센터(SIFC) 특혜의혹 진상규명을 위한 행정사무조사 특별위원회’(이하 ‘특별위원회’)는 9일(수) 서울시의회 본관 기자회견장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특별위원회는 AIG가 이스트딜사(Eastdil Secured)를 매각주간사로 삼아 서울국제금융센터의 매각을 추진한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그간 서울국제금융센터를 둘러싼 특혜 의혹들을 규명하고 매각에 따른 대책을 마련하여 서울국제금융센터를 정상화하고자 2015년 12월 21일에 구성됐다. 특별위원회는 그동안 활동을 통하여 파악된 서울국제금융센터 사업과 관련 계약의 문제점으로 i) 납득하기 힘든 사유로 서울시의회의 승인과 사업의 타당성 조사 등을 회피한 점, ii) 50년의 임대기간 외에 추가로 49년을 보장하면서 서울시의 갱신권한을 박탈한 점, iii) AIG가 당시 회장의 친서와 계약내용에 명시된 지역본부급 사무실의 이전 의무를 불이행하고 있는 점, iv) 국제금융중심지 육성이라는 서울시의 정책적 목적에 공감하여 서울국제금융센터의 운영자로 선정된 AIG가 자사의 이윤만 추구하고 있는 점 등을 지적했다. 특별위원회는 특히 서울국제금융센터 매각 추진 사태에 대한 대책 마련을 위하여 서울시에 AIG에 대한 계약이행 요구와 계약상 불공정(갱신의무 조항)과 관련한 무효 확인을 위한 중재 신청 그리고 AIG 특혜 의혹에 대한 검증이 끝날 때까지 서울국제금융센터 매각을 우선 중지시킬 것을 요구했다. 또한 특별위원회는 AIG에게 계약의무의 이행과 서울시의 정책적 파트너로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글로벌 기업으로서 양식있는 행동을 촉구했다. 김현아 위원장(더불어 민주당, 비례대표)은 “특별위원회는 특혜에 대한 제대로 된 검증과 책임 없이 부동산 투기를 목적으로 한 AIG의 서울국제금융센터(SIFC) 매매는 절대 묵과하지 않을 것이며 ‘제2의 론스타’ 사태를 막기 위한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뛰는 슈퍼노트 나는 슈퍼렌즈

    뛰는 슈퍼노트 나는 슈퍼렌즈

    KEB하나, 국과수보다 뛰어난 최첨단 감별 장비 도입 달러부터 위안화까지 고액 위조 지폐가 급증하면서 국내 은행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적발된 위조 외화 규모가 해마다 2배 이상 늘어나는 추세다. 은행들은 수억원대 감별장비까지 도입해 가며 ‘슈퍼노트’(식별이 어려운 초정밀 위폐)와의 전쟁에 나섰다. 8일 한국은행과 금융권에 따르면 2013년 달러·위안화 등 위조 외화 적발 규모는 국내 금융권 통틀어 773건, 5만 3800달러(미 달러 환산 기준)였다. 2014년에는 998건, 10만 9700달러로 껑충 불었다. 지난해에는 1732건, 26만 2813달러로 치솟았다. 위폐는 대부분 최고액권인 100달러와 100위안짜리다. 중·저급 위폐가 아닌 ‘슈퍼노트’가 적지 않다. 주범은 새 옷을 입고 등장한 달러와 위안화 고액권이다. 2013년 10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는 100달러짜리 신권을, 지난해 11월 중국 인민은행은 10년 만에 100위안짜리 신권을 각각 발행했다. 위·변조를 막겠다는 이유였지만 부작용은 이후 전 세계로 번지고 있다. 원진오 KEB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 과장은 “통상 위폐는 신권이 만들어지면 시장에 대량으로 풀리는 속성이 있다”면서 “자신들이 어렵게 만든 위폐가 휴지 조각이 될 수 있다는 위기의식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맞서는 은행들도 ‘수’가 발달하고 있다. KEB하나은행은 위폐를 감별할 수 있는 최첨단 위·변조 영상분석 광학 장비를 들여왔다. 영국 포스터앤드프리맨사가 제작한 이 장비는 발광다이오드(LED)와 정밀 렌즈를 이용해 지폐를 최대 180배까지 확대해 볼 수 있다. 현존하는 지폐 영상분석 장비로는 최고 사양이다. 대당 가격이 2억원에 이른다. KEB하나은행 측은 “선진국 수사기관과 정보기관이 쓰는 장비”라며 “우리나라 경찰청이나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이 갖고 있는 것보다 더 뛰어난 기종”이라고 설명했다.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이 합쳐진 KEB하나은행은 위변조대응센터 인원을 5명에서 15명으로 늘렸다. 국가정보원에서 12년간 위폐 금융범죄 담당관으로 근무한 직원을 스카우트하기도 했다. 우리은행은 지난해 말부터 인천공항지점에서 고객에게 위안화를 환전해 줄 때 고액권(50위안·100위안)은 모두 중국에서 직수입한 신권으로만 지급한다. 또 논란을 막기 위해 지급 전 고객이 보는 앞에서 위폐 감별기를 돌려 진폐임을 보여 준 뒤 돈을 지급한다. 유영규 기자 whoami@seoul.co.kr
  •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 이야기] 경기 남양주 수락산 흥국사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 이야기] 경기 남양주 수락산 흥국사

    조선은 성리학을 새로운 국가 이념으로 내세웠지만, 1000년에 이르는 불교국가의 전통이 하루아침에 흐지부지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왕실부터가 건국 초기부터 줄곧 불교에 호의적이었으니 숭유억불(崇儒抑佛)이 국시라지만 불교는 기회만 있으면 다시 고개를 들고 일어났다. 신권(臣權)이 왕권(王權)의 위세에 억울린 영·정조 시대가 그랬고, 세도정치로 국가의 기강이 무너져 내린 시대에는 더했다. 19세기에는 비빈(妃嬪)은 물론 상궁과 세도가의 부녀까지 시주에 나서면서 왕실의 원당(願堂)이 도성 주변에 집중적으로 세워진다. 원당은 세상을 떠난 이의 명복을 빌고 후손의 발복(發福)을 염원하는 사찰이다. 조선의 기본 법전인 ‘경국대전’에는 ‘낡은 사찰의 수리만 허용할 뿐 새 절의 건립을 금지한다’(凡寺社勿新創 唯重修古基者)고 했지만, 원당 사찰은 새로 지으면서 논밭을 내려받고 세금을 면제받는 특권까지 누릴 수 있었다. ●신라 원광법사 창건 기록… 선조때 원당으로 경기 남양주 수락산 자락의 흥국사(興國寺)는 대표적 원당의 하나다. ‘흥국사 사적(寺蹟)’에는 ‘신라 진평왕 21년(599) 원광 법사가 수락사라는 이름으로 창건했다’고 적혀 있지만 뒷받침하는 유물이나 유적은 남아 있는 것이 없다. 원당이 된 것은 선조 시절이다. 즉위 원년(1568) 아버지인 덕흥대원군을 기리고자 수락사에 원당을 짓고 흥덕사(興德寺)라 편액했다. 흥국사라는 이름을 다시 내린 것은 인조 4년(1626)이라고 한다. 흥국사를 흔히 ‘덕절’로 부르는 것도 이런 내력 때문이다. 실제 흥국사에서 볼 때 오른쪽 산자락에 덕흥대원군 묘소가 있다. 서울 상계동에서 별내신도시로 넘어가는 코스를 택한다면 왼쪽으로 덕흥대원군 묘소를 알리는 푯말이 먼저 나타난다. 200m쯤 산길을 올라가다 보면 풍수지리에 문외한이라도 명당 자리라는 탄성이 절로 나오는 곳에 무덤이 나타난다. 덕흥대원군은 중종의 일곱째 아들이다. 명종이 왕위를 이을 자식을 남기지 못하고 승하하자 덕흥대원군의 셋째 아들 하성군이 왕위를 물려받는데 곧 선조다. 선조는 아버지를 덕흥대원군으로 추존했는데, 왕이 아닌 왕의 아버지를 대원군이라고 부르는 전통의 시작이다. 덕흥대원군 무덤 아래 보이는 무덤은 그의 첫째 아들이자 선조의 맏형인 하원군의 것이다. 흥국사는 우수한 화승(畵僧)을 다수 배출한 사찰로 알려졌다. ‘덕절 중은 불을 때면서도 막대기로 시왕초(十王草)를 그린다’는 우스개도 그래서 나왔을 것이다. 보물로 지정된 ‘소조석가여래삼존좌상 및 16나한상 일괄’을 비롯해 중요한 문화재도 많다. 하지만 흥국사는 대방(大房)의 존재로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부엌까지 갖춘 대방… 도성에서 반나절 거리 부엌을 포함한 다양한 공간을 가진 대방은 스님들이 생활하는 복합 공간을 뜻한다. 하지만 흥국사 대방은 왕실과 세도가 여인들이 편안하게 머물며 기도할 수 있는 ‘원스톱’ 신앙 공간의 성격이 짙다. 흥국사가 19세기 들어 다시 왕실의 중요한 의례 공간으로 떠오른 것은 도성에서 반나절 거리에 길도 크게 험하지 않다는 지리적 이점이 한몫했을 것이다. 흥국사 대방은 만세루방이라고도 불린다. 대방 건축 이전에 다른 절처럼 큰법당 앞에 만세루라는 누각에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만세루는 순조 18년(1818) 흥국사 대화재 당시 소실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대방은 대리청정을 하고 있던 효명세가의 명으로 1830년 세웠다. 덕흥대원군이 태어난 지 300주년이 되는 해다. 30칸의 대방은 고종 14년(1877) 다시 불탔고, 철종비인 철인왕후 김대비의 시주로 2년 뒤 37칸에 이르는 현재의 모습으로 중건됐다. 규모가 커졌다는 것은 드나드는 사람도 많아졌다는 뜻이다. 대방의 기둥에는 조선시대에는 궁궐이 아니면 쓸 수 없었던 다듬은 돌(熟石)이 대거 사용됐다. 대방 건축 자체를 궁궐 대목장이 지휘했을 것이다. 글 사진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씨줄날줄] 헨리 8세의 ‘화해’/박홍기 논설위원

    [씨줄날줄] 헨리 8세의 ‘화해’/박홍기 논설위원

    영국 헨리 8세(1491~1547)는 절대군주다. 가장 많은 이야깃거리를 낳은 파란만장한 영국의 왕이다. 여성 편력 탓에 왕비를 무려 6명이나 뒀다. 첫 번째 왕비인 에스파냐 공주 캐서린과는 정략결혼을 했다. 캐서린은 결혼한 지 5개월 만에 숨진 형 아더의 아내였다. 형수다. 캐서린과의 사이에 낳은 자녀 5명 가운데 딸 메리를 제외한 나머지는 어려서 사망했다. 헨리 8세는 아들을 간절히 원했다. 두 번째 왕비는 앤 블린이다. 캐서린 왕비의 시녀였다. 헨리 8세는 앤의 도도한 매력에 푹 빠졌다. 앤은 처음에는 왕의 청혼을 완강히 거절했다. 결혼에 이르러서는 자신이 낳을 아들이 서자(庶子)가 될 수 없다는 점을 못 박았다. 헨리 8세는 캐서린 왕비와 이혼을 원했다. 로마 교황청에 캐서린과의 이혼 승인을 요청했다. 교황청은 허락하지 않았다. 가톨릭은 이혼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른바 조당(阻?) 즉, 혼인 장애에 걸리는 것이다. 가톨릭에서는 ‘일부일처와 함께 죽음이 두 사람을 갈라놓을 때까지’라는 혼인 원칙을 갖고 있다. 헨리 8세는 억지 이혼을 감행했다. 교황과의 결별이자 신권에 대한 대항이었다. 헨리 8세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다. 독일에서 루터가 종교개혁에 나섰을 때 반박하는 장문으로 교황청으로부터 신뢰를 받고 있었다. 그렇지만 후계자 욕심에 종교적 신념을 내팽개쳤다. 가톨릭 국가 전체와 적이 되는 위험마저 감수했다. 또 1534년 국왕이 영국 교회의 최고 수장이라는 수장령(首長令)을 공표했다. 성공회가 영국 국교로 탄생한 것이다. 교황청은 헨리 8세를 파문했다. 앤의 아들은 태어나자마자 죽었다. 둘째를 낳았지만 딸이었다. 교황과도 등지면서 왕비의 왕관을 씌워줬지만 아들을 갖지 못했다. 헨리 8세의 앤에 대한 사랑도 식어버렸다. 결국 1536년 앤을 간통죄로 몰아 참수형에 처했다. 결혼도 무효화했다. 영국판 장희빈 격이다. 헨리 8세와 앤과의 사랑, 배신, 죽음, 음모, 종교, 외교 분쟁 등을 담은 영화가 ‘천일의 앤(1969)’, ‘천일의 스캔들(2008)’이다. 캐서린의 딸 메리는 영국 최초의 여왕 메리 1세(1533~1558)로 등극했다. 하지만 공포와 압제 정치 때문에 ‘블러디(피투성이) 메리’라고 불리고 있다. 앤의 딸은 영국이 가장 사랑하는 여왕 엘리자베스 1세(1558~1603)다. 결혼을 권유할 때마다 “국가와 결혼했다”고 선언하며 대영제국의 기틀을 다진 처녀 여왕이다. 헨리 8세가 주궁(主宮)으로 삼았던 햄프턴 코트의 로열 채플에서 그제 가톨릭 미사가 열렸다. 15~16세기의 라틴어 성가가 울렸다. 헨리 8세가 교황청과 단교한 지 450여년 만이다. 성공회와 가톨릭 간의 화해다. 참 오랜 세월이 지나서다. 빈센트 니컬스 영국 추기경은 “매우 놀라운 순간”이라고 말했다. 감정을 풀고 감싸 안는 화해의 참뜻을 곱씹어볼 만하다. 박홍기 논설위원 hkpark@seoul.co.kr
  • 예전 세뱃돈은 담뱃잎 요즘 세뱃돈은 가치株

    예전 세뱃돈은 담뱃잎 요즘 세뱃돈은 가치株

    붉은 돈 봉투 ‘훙바오’ 주는 중국 영향설… 새 돈 드물었던 시절, 신권은 사회적 지위 과시 수단 입춘(立春)이 지났지만 옷섶을 파고드는 바람은 아직도 매섭다. 하지만 귀성객들의 마음은 이미 따뜻한 고향집 대문간에 닿은 듯 푸근하다. 설 아침 정성껏 준비한 명절 음식을 차례상에 올리고 나면 온 가족이 둘러앉는다. 곱게 한복을 차려입고 세배를 하는 자식, 손주에게 덕담과 함께 세뱃돈을 주는 모습은 언제 봐도 정겹다. 세뱃돈은 단순히 용돈이 아니라 새해의 무탈과 복을 기원하며 주는 돈이라고 해서 ‘복돈’이라고도 불린다. 가족과 친지들의 복을 기원하는 간절한 마음에 세뱃돈을 미리 새 돈으로 바꿔 오는 번거로움쯤은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다. 설 풍경에서 꼭 빠질 수 없는 세뱃돈. 그런데 우리는 언제부터 이 세뱃돈을 주고받았을까. 세뱃돈은 꼭 새 돈으로만 줘야 하는 걸까. ●조선 문신 최영년 시집 ‘해동죽지’에 최초 등장 흔히들 세뱃돈이 우리의 아주 오래된 풍습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세뱃돈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20세기 초반으로 추정된다. 조선 말기 문신이자 서예가였던 최영년이 작성한 시집 ‘해동죽지’(海東竹枝)에 ‘세배전’(歲拜錢)이란 단어가 등장한 것이 최초다. 조선 후기 순조 때 학자였던 홍석모가 연중행사와 풍속들을 정리한 ‘동국세시기’에선 세뱃돈과 관련한 언급이 없다. 김영재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관은 “20세기 전엔 세뱃돈 대신 세찬(음식)이나 세초(담뱃잎)를 주는 게 일반적이었다”고 말했다. 물자와 화폐(엽전)가 귀하던 조선 후기까지만 해도 명절에 가족들이 모여 새로 지은 음식을 나눠 먹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었다는 얘기다. 설에 ‘돈’을 주는 풍습이 어떻게 생겨난 것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다만 ‘일제강점기 영향설’과 ‘중국 영향설’ 두 가지 추론이 있다. 일단 일제강점기 영향설의 근거는 이렇다. 일본은 에도시대(1603~1868년)에 경제가 발달한 일부 도시 지역에서 세뱃돈을 줬다고 한다. 20세기 초중반까지 일제 식민 치하를 겪으며 우리나라에도 이런 일본의 풍습이 건너왔을 것이란 추론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가능성이 낮다는 의견이다. 김 연구관은 “일본에서 세뱃돈이 전국적으로 퍼진 것은 1960년대부터”라고 소개했다. 그보단 중국 영향설에 더 무게가 실린다. 중국에서는 정월 초하루, 즉 설날이 되면 결혼하지 않은 자식에게 ‘돈을 많이 벌라’는 뜻으로 돈을 주는 풍습이 있다. 과거에는 이 세뱃돈을 ‘야쑤이첸’(壓歲錢)이라 불렀지만 지금은 ‘훙바오’(红包)가 더 널리 쓰이는 말이다. 훙바오는 세뱃돈을 담아 주는 붉은색 봉투를 이르는 말이다. 중국에선 붉은색이 악한 기운을 쫓고 행운을 불러온다고 여겨진다. 중국 문화권 영향을 받았던 한국과 일본, 베트남 등에는 세뱃돈 문화가 지금도 남아 있다. ●화폐개혁 단행된 1960년대 이후부터 일반화 우리나라에서는 1960년대 이후부터 세뱃돈이 일반화됐다. 1960년대 ‘환’에서 ‘원’으로 화폐단위가 바뀌는 화폐개혁이 단행됐고 1970~1980년대 경제 성장과 함께 화폐 사용량이 늘면서 세뱃돈이 설 대표 풍속으로 자리잡았다. 시중은행 영업점에는 신권을 찾으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하지만 세뱃돈을 새 돈으로 주는 것은 우리의 전통 풍속은 아니다. 김 연구관은 “중국에서는 꼬깃꼬깃한 돈이라도 빳빳한 봉투(훙바오)에 담아 준다”며 “우리나라의 과거 사료에서도 세뱃돈을 ‘새 돈’으로 줬다는 기록은 없다”고 전했다. 세뱃돈이 일반화되기 시작한 1960~1970년대에도 신권으로 세뱃돈을 주는 경우는 드물었다고 한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한국은행이 신권을 적게 찍어내 고액 거래 고객들을 제외하곤 일반인들은 은행 창구에서 신권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우리은행 은행사박물관 관계자는 “이전에는 명절에 새 돈을 줄 수 있다는 것이 경제적 능력이나 사회적 지위를 과시하는 수단이 되기도 했다”며 “새 돈 구하기가 어려웠던 만큼 세뱃돈을 새 돈으로 주면 그만큼 정성과 노력이 더 담겨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고 말했다. 새 돈의 희소성 때문에 ‘세뱃돈=새 돈’ 선호 현상이 생겨났을 것이란 분석이다. ●짜장면 30원이던 1970년대 중고생 200원 받아 최근 세뱃돈으로 줄 새 돈 교환 수요가 불필요한 비용을 초래한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실제로 매년 설을 앞두고 한국은행이 공급하는 화폐 규모가 늘고 있다. 설 직전 10영업일간 화폐 순발행액은 2013년 4조 4000억원에서 2014년 5조 2000억원으로 증가했다. 지난해에도 5조 2000억원 선을 유지했다. 이 때문에 한은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세뱃돈, 꼭 새 돈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마음을 담은 깨끗한 돈이면 충분합니다’라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세뱃돈의 단위 역시 화폐의 변화와 물가 상승률에 따라 ‘성장’해 왔다. 한 조사에 따르면 1970년대 세뱃돈의 평균 액수는 초등학생이 100원, 중·고등학생이 200원이었다고 한다. 당시 짜장면 한 그릇 가격이 30~50원 전후였던 것을 감안하면 적지 않은 돈이다. 1980년대에는 초등학생 1000원, 중·고등학생과 대학생에게는 5000원씩 세뱃돈을 주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인식이 자리잡았다. 최근엔 5만원권 사용이 일반화되면서 신권 중 5만원권의 인기가 가장 높다. 세뱃돈 금액도 5만원 안팎으로 껑충 뛰었다.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최근 496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중·고등학생이 원하는 세뱃돈 금액은 1인당 평균 5만 5458원으로 나타났다. 대학생은 6만 6638원이었다. 반대로 세뱃돈을 주는 입장인 어른들은 ‘적당한 세뱃돈’ 금액으로 중·고등학생에게는 1인당 3만 9788원을, 대학생에게는 1인당 6만 4610원을 주겠다고 응답했다. 세뱃돈을 받는 사람과 주는 사람 간의 금액 차이가 존재하는 셈이다. 세뱃돈을 반드시 ‘돈’으로 줘야 한다는 인식도 변하고 있다. 응답자의 35.1%만 현금을 고집했을 뿐 나머지 응답자들은 기프티콘이나 문화상품권을 받아도(줘도) 좋다는 생각이었다. ●자산가들은 수억원 가치 재테크 상품 주기도 자산가들 사이에선 손주들에게 세뱃돈 대신 주식이나 재테크 상품을 주는 모습도 흔하다. 황세영 한국씨티 강남CPC센터장은 “예전엔 손주들에게 줄 세뱃돈을 정기예금 통장에 넣어서 줬지만 최근엔 금리가 워낙 내려가다 보니 장기로 보유할 수 있는 주식(가치주)을 세뱃돈으로 선물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금액도 수천만원에서 억원 단위까지 뛴다. 일종의 증여인 셈이다. 유학이나 이민 인구가 늘며 외화 세뱃돈도 인기다. KEB하나은행은 외환은행 시절이었던 2007년부터 해마다 외화 세뱃돈 세트를 판매해 오고 있다. 미국 달러, 유로화, 캐나다 달러, 중국 위안화, 호주 달러 등으로 구성된 외화세트는 구성에 따라 약 2만원, 약 3만 6000원 두 종류다. 해마다 이맘때 1만 5000세트(원화 환산 5억원 선)를 내놨는데 매번 매진됐다. 올해는 3만 세트로 판매량을 늘렸다. 이유미 기자 yium@seoul.co.kr
  • [성큼 다가온 설 연휴…알아두면 유용한 정보] 세뱃돈 교환은 대학가 은행점포 유리

    한국은행이 설 자금으로 방출한 신권이 3일부터 시중은행 영업점을 통해 순차적으로 배포되고 있다. 이맘때면 신권을 찾는 고객들이 한꺼번에 몰려 신권 구하기가 만만치 않다. 한은과 금융권은 “헌 돈이어도 깨끗하기만 하면 세뱃돈으로 충분하다”고 강조한다. 그럼에도 ‘빳빳한’ 세뱃돈을 원하는 고객들을 위해 몇 가지 노하우를 소개한다. 신권 교환을 시작하는 날짜는 은행 영업점마다 조금씩 다르다. 가까운 영업점에 미리 연락해 신권이 들어오는 날짜를 확인하는 것이 성공률을 높이는 방법이다. 영업점의 위치와 시간대도 중요하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신권 교환수요가 적은 대학가나 유동인구가 많지 않은 외곽 영업점이 유리하다”며 “대부분 하루 신권 교환 규모를 정해놓기 때문에 은행 문 연 직후인 오전 9시쯤에 방문하는 것이 좋다”고 귀띔했다. 시중은행의 1인당 신권 교환한도는 1만원권 10만~20만원, 5만원권 최대 50만원이다. 대출이나 예·적금 상품 가입 계획이 있다면 이때 신권을 함께 교환하는 것도 좋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상품 가입 고객을 특별히 우대하지는 않지만 아무래도 더 신경을 써줄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경쟁이 치열한 1만·5만원권 대신 1000·5000원권으로 눈길을 돌리는 것도 방법이다. 한은은 신권 ‘인심’이 더 후하다. 서울 남대문로 본점은 1인당 1만원권 50만원, 5만원권 100만원까지 교환해준다. 부산·대전·광주 등 지역에도 본부(16곳)가 있다. 단, 교환 한도는 조금씩 다를 수 있다. 설 연휴에 각 시중은행이 운영하는 이동점포는 ‘블루오션’이다. 신한(서해안 화성휴게소), KB국민(경부 기흥휴게소, KTX 광명역), 우리(중부 마장휴게소), KEB하나(영동 용인휴게소), 농협(경부 망향휴게소·중부 하남 만남의광장), 기업(행담도·가평휴게소) 은행의 이동점포에 설치된 자동화기기(ATM)에서 돈을 찾으면 빳빳한 신권이 나온다. 이유미 기자 yium@seoul.co.kr
  • “아베가 안 와서 우리가 간다”

    “아베가 안 와서 우리가 간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이옥선(90)·강일출(89) 할머니가 다음달 1일까지 도쿄, 오사카 등에서 피해 증언 활동을 하기 위해 도쿄 하네다 공항을 통해 25일 일본에 입국했다. 지난해 말 한·일 간에 타결된 위안부 문제 합의 이후 피해자들이 일본을 찾은 것은 처음으로 나눔의 집 안신권 소장과 김효정 간사가 동행했다. 이 할머니는 이날 “원래는 (일본 정부가) 피해자 앞에 와서 사죄해야 하는데 그런 것이 없었다”며 “그런 점에서 이번 협력(합의)은 참 잘못됐다”고 말했다. 또 “(아베 신조) 총리가 피해자들에게 사죄해야 한다”면서 “일본의 책임자가 와서 잘못을 뉘우치면 관대하게 처리할 텐데 너무 이렇게 하니까 할머니들은 감정만 상한다”고 덧붙였다. 강 할머니는 “우리가 안 죽고 살아 있는데,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우리는 당했어도 후세는 안 당해야 한다. 대한민국이 안 당해야 한다”고 말했다. 두 할머니는 26일 오전 10시 도쿄 중의원 제1의원회관 제1면회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오후 2시 중의원회관 대회의실로 자리를 옮겨 한·일 합의 무효를 주장하고 피해 참상을 증언한다. 이어 27일 도쿄 전국노동연합회관, 29일 오사카 구민센터, 30일 오사카 리가로열NCB센터, 31일 오사카 사회복지회관에서 각각 증언회를 연다. 두 할머니는 지난 13일 옛 주한일본대사관 앞 ‘수요집회’에서 “피해 당사자를 배제하고 피해자와 지원단체가 요구했던 진상 규명 등의 조치가 무시된 이번 한·일 합의는 무효”라고 지적하고 범죄로 인정할 것과 법적 배상을 할 것 등을 일본 정부에 촉구했다. 도쿄 이석우 특파원 jun88@seoul.co.kr
  • “한일 합의 무효”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 직접 일본 찾는다

    “한일 합의 무효”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 직접 일본 찾는다

    “한일 합의 무효”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 직접 일본 찾는다 한일 합의 무효 지난해 말 한일 정부 간 위안부 문제 합의 이후 처음으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자신들이 겪은 참상을 알리기 위해 해외 증언활동에 나선다. 경기 광주 나눔의 집에서 생활하는 이옥선(90), 강일출(89) 할머니는 25일 오전 출국, 일본을 방문한다. 할머니들은 26일 오전 10시 도쿄 중의원 제1의원회관 제1면회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이어 오후 2시 중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한일 합의 무효’를 주장하고 피해 참상을 증언한다. 또 27일에는 도쿄 전국노동연합회관, 29일 오사카 구민센터, 30일 오사카 리가로얄NCB센터, 31일 오사카 사회복지관에서도 각각 증언회를 가질 계획이다. 할머니들의 일본 방문에는 안신권 나눔의 집 소장과 김효정 간사가 동행한다. 할머니들은 지난 13일 옛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수요집회에서 피해 당사자를 배제하고 피해자와 지원단체가 요구했던 진상 규명 등의 조치가 무시된 한일 합의는 무효라고 선언하고, 정부에 제대로 된 해결을 촉구한 바 있다. 일본 정부에 대해서도 ‘위안부’에 대한 범죄 인정과 법적 배상을 촉구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한일 합의 무효”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 결국 직접 나서… “피해 참상 알릴 것”

    “한일 합의 무효”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 결국 직접 나서… “피해 참상 알릴 것”

    “한일 합의 무효”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 결국 직접 나서… “피해 참상 알릴 것”한일 합의 무효 지난해 말 한일 정부 간 위안부 문제 합의 이후 처음으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자신들이 겪은 참상을 알리기 위해 해외 증언활동에 나선다. 경기 광주 나눔의 집에서 생활하는 이옥선(90), 강일출(89) 할머니는 25일 오전 출국, 일본을 방문한다. 할머니들은 26일 오전 10시 도쿄 중의원 제1의원회관 제1면회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이어 오후 2시 중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한일 합의 무효’를 주장하고 피해 참상을 증언한다. 또 27일에는 도쿄 전국노동연합회관, 29일 오사카 구민센터, 30일 오사카 리가로얄NCB센터, 31일 오사카 사회복지관에서도 각각 증언회를 가질 계획이다. 할머니들의 일본 방문에는 안신권 나눔의 집 소장과 김효정 간사가 동행한다. 할머니들은 지난 13일 옛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수요집회에서 피해 당사자를 배제하고 피해자와 지원단체가 요구했던 진상 규명 등의 조치가 무시된 한일 합의는 무효라고 선언하고, 정부에 제대로 된 해결을 촉구한 바 있다. 일본 정부에 대해서도 ‘위안부’에 대한 범죄 인정과 법적 배상을 촉구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더민주당 영입’ 김선현, 위안부 할머니 그림 논란 해명 “구두허락 받았다”

    ‘더민주당 영입’ 김선현, 위안부 할머니 그림 논란 해명 “구두허락 받았다”

    ‘더민주당 영입’ 김선현 교수, “위안부 할머니 그림 사용 구두허락 받았다”김선현 더불어민주당에 ‘여성인재 1호’로 영입된 김선현 차의과대학교 교수가 8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그린 그림을 무단으로 사용했다는 의혹에 대해 적극 반박했다. 더민주당도 당 대변인이 직접 나서 김 교수에게 제기된 의혹들을 일일이 해명했다. 김 교수는 이날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미술치료 과정에서 할머니들이 그린 그림과 치료 장면 사진을 학술·연구 목적으로 가져가면서 위안부 피해자 지원시설인 ‘나눔의 집’의 사전 허락을 구했고 이후 반환 요청을 받고 서둘러 돌려줬다고 해명했다. 김 교수는 “구두로 허락받았다”면서 “나눔의 집에서 허락하지 않았다면 제 탓이다. 이 논란으로 할머니 마음을 상하게 하는 일이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강조했다. 김 교수가 2012년 10월 할머니들의 그림과 사진을 담은 ‘역사가 된 그림: 위안부 할머니들의 미술치료 사례집’을 출간하고 2014년 12월 이 책을 국가기록원에 등재한 과정에 대해서는 김성수 대변인이 “나눔의 집 안신권 소장이 당시에는 ‘책 내는 부분은 알아서 하라’고 구두로 오케이 했지만 이후 나눔의 집 운영위원들이 기록물을 돌려받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문제제기를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또 김 교수가 입당 기자회견에서 할머니들의 미술치료를 한 시기를 7년이라고 밝혔는데 실제로는 1년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김 대변인은 “김 교수가 본격적인 치료에 앞서 할머니들과의 관계 형성을 위해 2006년부터 2008년까지 나눔의 집을 간헐적으로 방문해 할머니들과 대화하고 미술작업을 했다”면서 “이후 2012년까지는 매주 수요일에 치료팀을 구성해 본격적인 치료를 했다”고 밝혔다. 당시 작성한 임상미술치료 일지도 공개했다. 김 교수가 여성가족부에서 치료비 명목으로 800만원을 받았다는 데 대해서는 “자원봉사라고 했는데 나눔의 집에서 400만원을 줘서 일부는 자비로 운전한 봉사자에게 지원하고 나머지는 나눔의 집에 기부했다. 저에게 이야기를 안 하고 2009년 연말에 400만원을 더 계좌로 입금한 사실을 뒤늦게 확인했다”고 말했다. 한편 김 교수가 차의과대학원 원장으로 있을 당시 자신이 회장을 맡고 있던 대한임상미술치료학회의 미술치료사 자격증 프로그램 참여를 대학원 신입생들에게 강요했다는 논란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김 대변인은 “취업하려면 자격증이 필요한데 대부분 대한임상미술치료학회에서 딴다”면서 “이 학회에 꼭 가라고 강제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는 게 학교 측의 설명”이라고 전했다.또 김 교수가 스승의 날 학생들에게 100만원짜리 상품권을 요구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김 교수는 대학원장 재직 시절 오히려 스승의 날에 선물 가져오지 말라는 문자를 발송했다”고 말했다. 김 교수도 “제가 부족한 면이 있겠지만 갑질 논란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日 입장 안 변해 큰 기대는 안 한다…아베 사죄·법적 배상 없이 恨 못 풀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에 대해 일본 정부가 과거보다 전향적인 자세로 나오고 있지만 피해 당사자 및 지원단체들은 대체로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동안 일본 측이 보여 온 행태를 감안할 때 회담이 열리더라도 큰 기대는 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대부분이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쉼터인 경기 광주 ‘나눔의 집’에서 지내는 강일출(87) 할머니는 25일 “일본 총리의 진정성 있는 사죄, 법적 배상 없이는 피해자들의 한(恨)을 결코 풀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강 할머니는 “지금까지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해 온 걸 봐서는 일본 외무상이 와서 이야기를 한들 위안부 문제가 풀리지는 않을 것”이라면서 “우리 정부가 노력해 주는 것은 고맙지만 일본 정부의 공식 사죄, 법적 배상이라는 원칙을 갖고 회담에 임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안신권 나눔의 집 소장은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 체결 때 다뤄진 대일 청구권은 재산권에 관한 문제였을 뿐 위안부 문제, 사할린 해외 동포 문제, 원자폭탄 피해자 등의 문제는 전혀 다뤄지지 않았다”고 전제하고, “이 문제는 식민 지배 책임이 있는 일본이 한발 물러서야 하는 것이지만 일본이 한·일 청구권 협정 체결로 법적 배상이 모두 끝났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이번 회담에서 큰 결실을 맺기는 어려워 보인다”고 전망했다. 이번 한·일 장관급 회담이 위안부 문제 해결 때문에 성사되긴 했지만 일본이 과거 한국인들을 근로자, 군무원 등으로 강제 동원해 국외에 보낸 행위 등도 함께 다뤄져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김희리 기자 hitit@seoul.co.kr
  • [주말 영화]

    ■유 콜 잇 러브(EBS 1 토요일 밤 11시 5분) 서로 너무나 다른 불완전한 두 남녀가 만나 사랑을 하는 과정을 그렸다. 작곡가 겸 연주자인 이혼남 에드워드와 중학교 교사이면서 자격증을 따기 위해 공부하는 발렌틴. 둘은 스키를 타러 갔다가 우연히 리프트 안에서 만나 운명적인 사랑에 빠진다. 발렌틴은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면서 낮에는 아이들을 가르치랴 수업을 들으랴 바쁘고, 에드워드는 지방을 돌면서 저녁에 연주를 해야 하기 때문에 서로 전화통화조차 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하지만 둘은 새벽에 전화를 주고받으며 서로에게 점점 더 빠져들게 된다. 그러나 너무나 다른 인생을 사는 이들은 어느 날 사소한 오해 때문에 크게 다툰다. 그리고 발렌틴이 교사 자격 구술시험을 보는 날, 발렌틴은 자신을 찾아온 에드워드가 보는 앞에서 극작가 ‘몰리에르의 사랑’에 대한 질문을 받게 되는데…. ■영원한 제국(OBS 토요일 오후 1시 50분) 1800년 조선, 절대주의적 왕권정치를 추구하는 정조와 귀족주의적 신권정치를 주장하는 노론의 이념 대립이 극에 달해 있던 어느 날. 정조의 명을 받아 선대왕인 영조의 서책을 정리하던 장종오가 숙직 중 알 수 없는 이유로 숨진다. 장종오의 죽음을 가장 처음 알게 된 사람은 규장각 대교인 이인몽. 그는 정조가 노론 세력을 견제하고자 암암리에 지원을 하고 있던 남인 세력의 일원으로 왕의 아낌없는 총애를 받고 있는 터였다. 날이 밝고 이인몽의 보고를 받은 정조는 어찌 된 일인지 정적이자 노론의 총수인 심환지에게 수사를 명한다.
  • 1000원이 1환으로 바뀌면… 득? 실? 지하경제로 자금 유입 여부가 관건

    1000원이 1환으로 바뀌면… 득? 실? 지하경제로 자금 유입 여부가 관건

    발음하기도 힘든 리디노미네이션(redenomination)이 언론에 자주 오르내린다. 정부는 검토한 적이 없다고 하지만 잊을 만하면 다시 불거져 나온다. 화폐단위를 바꾸는 리디노미네이션은 왜 자꾸 나오고 나올 때마다 일부에서 경기를 일으키는 걸까. 그 궁금증을 짚어 봤다. 가나, 루마니아, 모잠비크, 베네수엘라, 벨라루스, 아제르바이잔, 아프가니스탄, 짐바브웨, 터키, 투르크메니스탄. 2000년대 들어 화폐개혁을 한 나라들이다. 화폐개혁은 전 세계를 놓고 보면 낯선 일은 아니다. 유럽연합(EU)에 가입한 리투아니아가 올 1월 1일부터 유로화를 도입한 것도 화폐개혁에 해당한다. 화폐개혁은 화폐단위를 바꾸는 것 외에 신권 발행, 고액권 발행 등도 포함한다. 2002년 7월 당시 박승 한국은행 총재가 한은 내부에 구성한 화폐제도 개혁 추진팀이 연구했던 일이 이 세 가지다. 신권 발행과 5만원 고액권 발행은 순차적으로 이뤄졌으나 1000원을 1환으로 바꾸는 화폐단위 변경은 이뤄지지 못했다. 당시 재정경제부가 반대했기 때문이다. 화폐단위 변경에 대한 연구를 한은이 독자적으로 했을 리는 없다. 정부와 어느 정도 교감이 있었다는 후문이다. 그럼 정부는 왜 막판에 없던 일로 덮었을까. 그동안 있었던 화폐개혁에 따른 부작용이 다시 나타날 조짐을 보였기 때문이다. ●세계 최저 화폐단위 원화가 큰 편… 韓 50년간 화폐개혁 안 해 우리나라에서는 1953년과 1962년 두 번의 화폐개혁이 있었다. 1953년은 한국전쟁 직후로 거액의 군사비 지출 등으로 인한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서였다. 100환이 1원으로 바뀌는 100대1의 화폐단위 변경이다. 1962년은 경제개발계획에 들어가는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10환을 1원으로 바꾼 10대1 변경이었다. 두 번 모두 긴급명령 형태로 발표됐다. 구권의 화폐유통은 금지됐고 예금의 일부를 동결시켰다. 예상하지 않았던 조치가 가져온 충격, 그리고 일부 예금 동결로 재산을 잃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 속에 화폐개혁이 진행된 것이다. 박 전 총재는 “당시 우리가 추진했던 화폐단위 변경은 구권을 신권으로 무한정 바꿔 주고 예금 동결도 없이 공개적으로 추진하자는 안이었다”며 “심리적 효과는 있을지 모르겠지만 두려워할 필요는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박 전 총재의 자서전 ‘하늘을 보고 별을 보고’에 따르면 한은 조사팀은 독일과 이탈리아의 유로화 전환을 주로 연구했다. 일각에서 우려했던 것처럼 물가 상승효과는 미미한 것으로 결론지어졌다. 관건은 지하경제로 자금이 숨어들어갈 가능성이었다. 유로화 전환을 앞두고 일부 국가에서 고급 요트나 귀금속 구매가 두드러졌기 때문이다. KB국민은행의 부동산 시세에 따르면 2002년 전국의 집값은 전년보다 16.43% 올랐다. 1990년 21.04%에 이어 관련 통계가 집계된 1987년 이후 두 번째로 높은 상승률이다. 정부로서는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리디노미네이션이 자꾸 거론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국제화다. 미국의 1달러는 우리나라 돈으로 1000원가량이다. 각국의 최저 화폐단위를 높고 보면 1달러에 해당하는 숫자는 원화가 큰 편이다. 각국의 최저 단위 지폐의 가치는 대체적으로 미국의 1달러보다 크거나 비슷하다. 영국과 EU의 경우 미국 1달러에 해당하는 1파운드와 1유로는 동전이다. 두 번째는 경제 규모다. 우리나라 화폐단위는 1962년 정해진 뒤 50여년간 변화가 없다. 1962년 24억 달러에 불과했던 국내총생산(GDP)은 지난해 1조 4100억 달러로 500배 이상 커졌다. 이 과정에서 돈의 가치가 떨어지며 음식점에서 1000원이나 100원 단위를 생략한 메뉴판을 쓰는 경우도 나오고 있다. 예를 들어 1만원짜리 음식값을 10.0이라고 표시하는 방식이다. 이런 관점에서 리디노미네이션을 잘한 국가가 터키다. 2005년 이전 터키 이스탄불국제공항에서는 환전된 액수가 맞는지 세어 보는 외국인을 종종 볼 수 있었다. 당시 미국 1달러는 130만 터키리라였다. 버스 요금은 90만 터키리라, 커피 한 잔 값은 100만 터키리라, 호텔 1박 비용은 1억 터키리라 수준이었다. 화폐단위 표기가 일이 됐고 여기에 더해 살인적인 인플레이션도 발생했다. 터키는 2005년 1월 100만대1의 교환 비율로 화폐단위를 변경했다. 지금 환율은 1달러당 3터키리라 안팎이다. 2터키리라 수준이었으나 최근 원자재 신흥국의 통화가치가 하락하면서 환율이 큰 폭으로 올랐다. 화폐개혁은 성공보다 실패가 많았다. 짐바브웨는 2000년대 들어서 세 번(2006, 2008, 2009년)에 걸쳐 화폐단위를 바꿨다. 살인적인 물가 상승이 계속됐고 경기는 더욱 침체됐다. 이제 짐바브웨 국민들은 자국 통화가 아닌 미국 달러로 거래를 하곤 한다. 1985년 베트남은 보수파의 주도로 화폐개혁을 했다. 기대와 달리 경제성장률 하락, 물가 상승률 급등이 나타나 공산당 안에서 보수파가 위축되고 개혁파가 주도하면서 1986년 ‘도이머이’(쇄신) 정책이 등장했다. ●“늦을수록 사회적 비용 커져” vs “인플레이션 은폐 시도” 화폐단위가 바뀌면 물가 상승과 비용 부담이 발생한다. 예를 들어 1000원이 1환으로 바뀌면 2800원짜리 커피는 2.8환이 된다. 판매자 입장에서는 이를 3환으로 올리고 싶은 욕구가 발생한다. 이른바 단수 효과다. 국민들이 돈의 가치에 무뎌지거나 신·구권 겸용에 따른 혼란을 겪을 수 있다. 화폐가 바뀌면 자동판매기의 화폐 투입구, 현금자동입출금기(ATM) 등도 바뀌어야 한다. 경기 호황기에는 부작용이지만 불황기라면 투자가 늘어나는 효과가 된다. 장단점이 팽팽히 맞서기 때문에 이를 둘러싼 논란도 뜨겁다. 박 전 총재는 “신권 발행, 고액권 발행, 화폐단위 변경 세 가지를 동시에 하려고 했던 것은 사회적 혼란과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였다”면서 “화폐단위 변경은 언젠가는 해야 할 텐데 늦을수록 사회적인 비용이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배영목 충북대 경제학과 교수는 “리디노미네이션은 통화관리를 잘하지 못해 나타난 인플레이션의 역사를 은폐하려는 시도”라며 “경제 상황을 해결할 정책 수단으로 리디노미네이션을 고려할 것이 아니라 원화의 신뢰성을 높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반박했다. 전경하 기자 lark3@seoul.co.kr [용어 클릭] ■리디노미네이션(redenomination) ‘다시’를 뜻하는 ‘리’(re)와 ‘화폐 체계’를 뜻하는 ‘디노미네이션’(denomination)의 합성어다. 말 그대로 화폐 체계를 다시 한다는 뜻이다. 모든 지폐와 동전의 실질 가치는 그대로 두고 액면 숫자를 동일한 비율로 낮추는 식이다. 예컨대 1000대1로 낮추면 1000원짜리가 1원이 되지만 1원의 가치는 종전대로 1000원이다. 돈에 붙는 ‘동그라미’(O)가 줄어들어 표기가 훨씬 간단해진다. 화폐단위뿐만 아니라 화폐 이름을 바꾸는 것도 포함한다.
  • 교황에겐 열광 시진핑엔 냉랭

    교황에겐 열광 시진핑엔 냉랭

    미국이 22일(현지시간) 프란치스코 교황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같은 기간 방문으로 들떴다. ‘빅 2’인 이들의 경호와 교통 체증에 미국은 비상이 걸렸다. 이들의 행보는 닮은 듯 다른 꼴이다. ●NYT·WSJ 머리기사는 모두 교황 쿠바를 방문한 교황은 이날 오후 수도인 동부 워싱턴DC에 도착한다. ‘신권의 상징’으로 국가 정상급 예우를 받으며 언론의 조명이 집중된다. 반면 글로벌 리더십의 정점에 선 시 주석은 취임 이후 처음 미국을 국빈 방문한다. 같은 날 정오쯤에 서부 워싱턴주 시애틀에 닿지만 미국 정부나 언론이 인권과 사이버 해킹 문제 등으로 벼르고 있는 중이다. 미국 신문에서는 교황이 판정승을 거뒀다. 뉴욕타임스와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제호 아래 주요 기사로 교황을 다뤘고 시 주석에 대해선 비판이 주류였다. 교황의 발길에는 지지자들이 몰려 열광하지만 시 주석 방문지에서는 시위대가 ‘수행 시위’를 벌인다. 시 주석이 이날 취임 후 처음으로 4박 5일간의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공직 생활 시작 이후 7번째인 이번 방미는 시 주석에게 기회이자 위기다. 중국을 미국과 동급의 위치에 올려놓을 수 있는 발판이 될 수도 있고 ‘호랑이 굴’에서 약점만 노출하는 무대가 될 수도 있다. 중국 정부와 언론은 시 주석의 방미를 ‘신뢰를 증진하고 의심을 해소하는 여행’(增信釋疑之旅)이라고 규정하며 결과를 낙관하고 있다. 특히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의 신경전보다는 서부 시애틀에서 펼쳐질 각종 경제협력에 무게를 두고 있다. 관영 인터넷 매체 펑파이는 “시애틀은 ‘서부의 워싱턴’이자 미국이 중국에 열어 놓은 기회의 창”이라고 전했다. ●中, 중국계 미국인 체포… 양국 긴장 관영 차이나데일리는 “방미 기간에 기후변화와 관련한 협약을 포함해 40개 이상의 합의와 협정을 도출해낼 것”이라고 전망했다. 7년째 교착상태가 이어진 양국 간 투자협정(BIT)도 진전이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사이버 공간에서의 군축협정’이 처음으로 논의될 예정이며 미국 여객기 구매 및 보잉사 중국 공장 건설, 미국 고속철 건설 등 대형 프로젝트에도 합의할 전망이다. 경제협력은 뜨겁지만 시 주석은 25일 백악관에서 열리는 미·중 정상회담에서 오바마 대통령의 ‘돌직구’를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중국 당국이 최근 중국계 미국인 판 판 길리스를 간첩 혐의로 정식 체포했다고 WSJ 등 미국 언론이 21일 보도하면서 정상회담을 앞두고 양국 간 긴장은 한층 높아질 전망이다. 중국 외교부는 22일 보도 내용이 사실임을 확인했다. ●교황·시진핑 만날 일은 없을 듯 22일 워싱턴DC에 방미 첫발을 내딛는 프란치스코 교황에 대해서는 분위기가 열광적으로 변하고 있다. 교황은 오바마 대통령 내외에게서 최고 의전의 환영을 받으며 생애 첫 미국 방문 일정을 시작한다. 백악관은 “2008년 당시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베네딕토 16세를 직접 영접한 전례를 따르기로 한 것”이라고 밝혔다. 23일 백악관 행사에서는 교황이 밟을 레드카펫과 21발의 예포, 군악대 연주 등이 마련된다. 교황은 시 주석이 워싱턴DC에 도착하기 몇 시간 전에 뉴욕으로 떠나 이들의 조우는 성사되지 않는다. 시 주석과 교황은 비슷한 시기에 워싱턴에서 각각 2박 3일 머문다. 교황이 먼저 도착해 오바마 대통령을 만나고 시 주석은 하지 않는 미 의회 합동연설까지 하면서 이목이 더 집중된 상황이다. 가톨릭 교계 언론 ‘내셔널 가톨릭 리포터’의 평론가 마이클 숀 윈터스는 WSJ에 “시 주석의 방문이 신문 (1면이 아닌) 경제면으로 밀릴 것 같다”며 “교황을 이길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시 주석의 방미가 교황의 후광에 가려질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시 주석이 미 공화당, 특히 대선 후보들의 집중 공격을 받고 미·중 간 갈등에 대한 여론도 우호적이지 않은 상황에서 교황처럼 너무 두드러지기보다는 소기의 성과를 달성하고 돌아가는 것도 성공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워싱턴 김미경 특파원 chaplin7@seoul.co.kr
  • 나눔의 집 찾은 인권위원장 “아픔 함께하겠다”

    나눔의 집 찾은 인권위원장 “아픔 함께하겠다”

    “위원장님 오셨으니 여쭤 보고 싶습니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는 권리가 있나요?” “다 있습니다. 누구나 다 보장된 권리가 있습니다.” “우리도 권리가 다 있나요? 똑같은 인간으로 태어났는데 나라가 없으니…어려서 사람 공출(供出)을 당해 가지고…인간으로서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고서는 지금도 우리가 말을 못하고…수치스러워서 사람들 앞에 나설 수도 없었고. 그런 우리한테도 권리가 다 있어요?” 20일 오후 4시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보호시설인 경기 광주 ‘나눔의 집’. 위안부 피해자 유희남(86) 할머니가 떨리는 목소리로 더듬더듬 말을 이어갔다. 이성호 국가인권위원장은 유 할머니의 지적에 ‘할머님들과 아픔을 함께하며 인권침해의 역사를 잊지 않고 기억하며 모든 이의 인권이 존중되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방명록 글귀로 답했다. 이 위원장은 “우리 역사상 여기 할머니들께서 가장 끔찍하고 중대한 인권 피해자이시기 때문에 말씀을 듣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취임 후 첫 인권 현장 방문지로 이곳을 택한 이유를 설명했다. 이 위원장을 맞이한 나눔의 집 부원장 호련 스님은 “할머니들 한 분이라도 더 생존해 계실 때 반인륜적인 행동을 하고도 반성하지 못하고 있는 일본 정부가 사죄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며 “할머님들 문제 해결을 위해 좀더 적극적이고 힘이 돼 주셨으면 좋겠다”고 이 위원장에게 청했다. 이 위원장은 안신권 나눔의 집 소장의 안내를 받으며 위안부 피해 사실을 국제사회에 처음으로 증언한 고 김학순 할머니의 흉상을 어루만졌다. 또 일본군 위안부의 생애를 그린 영화 ‘귀향’을 함께 관람했다. 이 위원장의 이런 행보는 전임 현병철 위원장과는 차별화되는 인권위를 만들어 가겠다는 의지를 나타내려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 위원장은 앞서 취임 첫날인 지난 13일 인권위 건물 옥상에서 농성 중인 기아차 비정규직 노동자 가족들을 만나 그들의 사정을 듣기도 했다. 이에 김형완 인권정책연구소장은 “인권위원장이 비정규직 문제, 고공 농성을 다 풀지 못하겠지만 가족들을 만나는 그런 자세가 중요한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아직은 취임한 지 얼마 안 된 만큼 인권위에 부여된 과제를 이 위원장이 잘 이행하는지 지켜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더 크다. 명숙 인권위제자리찾기공동행동 집행위원은 “현병철 전 위원장도 처음엔 권력에 아부하거나 눈치 보기 하지 않는 무색무취한 인물이 아니겠느냐는 얘기가 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렇지 않았다”며 “이 위원장이 개별 사안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갖고 어떻게 처리하는지를 봐야 그가 인권위를 책임질 적임자인지 여부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위안부 할머니 “왜 우릴 아프게 하나” 눈물

    위안부 할머니 “왜 우릴 아프게 하나” 눈물

    국내 시민단체들은 14일 발표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전후 70년 담화에 대해 “책임 회피로 일관하고 식민 지배와 침략에 따른 희생자 문제에 대한 해결 의지도 보이지 않았다”며 강력 반발하고 나섰다. 시민단체 사이에서는 이날 아베 총리의 담화에 대해 “알맹이가 없다”고 평가절하하는 기류가 팽배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비롯한 일본 정부의 반인도적 범죄 행위에 대한 사실 인정 등을 찾아볼 수 없는 알맹이 없는 반성문”이라고 평했다. 안신권 경기 광주 나눔의 집 소장은 “아베 총리가 ‘전장에서는 존엄에 상처받은 여성들이 있었다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되겠다’고 발언했지만 그 여성들이 누구인지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며 “위안부 피해자 언급 자체를 회피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은 ‘왜 이렇게 우리 가슴을 아프게 하느냐. 아예 안 보는 게 낫겠다’고 가슴을 치며 눈물을 흘렸다”고도 전했다. 민족문제연구소 측은 “유체 이탈 화법과 모호한 표현을 써 침략 전쟁을 합리화하고 가해 주체를 드러내지 않는 책임 회피로 일관했다”고 평가했다. 아베 담화의 ‘과거형 사죄’에 대한 비판도 쏟아졌다. 김진영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간사는 “우리가 보기를 원한 것은 일본 정부가 과거의 침략 행위에 대해 오늘날 어떻게 기억하는가였다”며 “이번 담화는 자신들의 과오를 과거 일로 치부하고 선을 긋는 모양새”라고 말했다. 아베 담화가 1993년 고노 담화나 1995년 무라야마 담화보다 크게 후퇴했다는 우려도 나왔다. 양순임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장은 “무라야마 담화를 유지하지는 못할망정 자신은 사죄하지 않고 과거형으로 ‘사죄해 왔다’고 표현했다”고 지적했다. 안 소장도 “고노 담화 때는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간접적인 사과를, 무라야마 담화에서는 위안부 문제의 원인이 된 식민지 지배를 사과했는데 이번에는 아예 ‘과거형 사과’에 그쳤다”고 강조했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강일출 할머니, 뉴욕서 “우리도 유대인처럼 전쟁 피해자” 규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강일출 할머니, 뉴욕서 “우리도 유대인처럼 전쟁 피해자” 규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강일출(87) 할머니가 6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위안부로 끌려가 겪은 피해를 알리고 위안부 기림비 및 소녀상을 추가로 건립하기 위한 활동을 벌였다. 강 할머니는 애틀랜타를 거쳐 지난 4일 뉴욕에 도착한 뒤 뉴욕주 롱아일랜드 낫소 카운티에 있는 홀로코스트 센터를 찾아 일제의 만행을 알리고 위안부 피해자들에 사죄하지 않는 일본 정부를 비판했다. 강 할머니는 스티븐 마커위츠 센터장과 면담을 갖고 “우리도 유대인처럼 전쟁 피해자”라면서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 문제는 독일의 사죄로 해결됐지만, 우리의 경우 일본 정부가 사죄하지 않아 문제 해결이 안 됐다”고 지적했다. 강 할머니는 그러면서 “일본의 범죄행위에 대해서도 더 많이 다뤄주기 바란다”고 센터 측에 요청했다고 면담에 배석했던 안신권 ‘나눔의 집’ 소장이 전했다. 이에 대해 마커위츠 센터장은 세계 각지의 인권침해를 알리는 각종 전시·강연이 센터에서 이뤄지고 있다고 말하면서 “내년 3월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를 주제로 특별전을 하는데, 협조를 요청드린다”고 말했다. 강 할머니는 이어 낫소 카운티 아이젠하워 공원 베테란스 메모리얼에 있는 위안부 기림비를 찾아 참배했다. 이 자리에서 강 할머니는 “미국에 더 많은 위안부 기림비와 소녀상이 세워지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강 할머니는 7일 오후 미국 유력지인 뉴욕타임스(NYT)와 인터뷰하는 데 이어 10일에는 그레이스 맹 연방 하원의원을 면담할 계획이다. 지난 1일 미국 방문을 시작한 강 할머니는 애틀랜타에서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평통) 애틀랜타 지부 출범식, 현지 한인연합교회 예배에 잇따라 참석하며 일제의 만행을 동포 사회에 알렸다. 강 할머니는 10박 12일의 일정을 마치고 11일 뉴욕을 출발해, 귀국길에 오른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데스크 시각] 유승민과 정도전/김상연 특별기획팀장

    [데스크 시각] 유승민과 정도전/김상연 특별기획팀장

    최근의 ‘유승민 사태’는 한 생애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고차원적 권력투쟁이었다고 규정하고 싶다. ‘대권 주자로서의 인기를 노린 유승민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의 정치적 계산’이라는 둥 ‘박근혜 대통령과의 개인적 감정싸움’이라는 둥의 부박한 정치평론들을 걷어 내고 보면, 의회권력과 행정권력(대통령)의 헤게모니 싸움이라는 이번 사태의 진면목이 눈에 들어온다. 의회가 행정부를 실질적으로 통제해야 한다는 견해와 의회의 행정부 견제에는 한계가 있어야 한다는 시각이 맞서는 선진국형 논쟁의 성격에 정치적 소신(또는 고집)이 유독 강한 두 정치 지도자가 배수진을 치고 정면충돌한 게 이번 사태의 실상이다. 같은 배를 탄 대통령과 여당 원내대표의 정면 충돌은 지난 60여년의 대한민국 현대 정치사는 물론 의회권력이 우리보다 강한 미국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에서 ‘세기적 사건’이라 할 만하다. 이번 사태는 차라리 수백 년을 훌쩍 거슬러 올라가 조선왕조 초기 태종(이방원)과 정도전(鄭道傳)의 권력투쟁에서 유사점을 발견할 수 있다. 이방원과 정도전은 조선왕조 개국의 1등 공신이자 동지들이었지만, 둘의 관계는 파국으로 끝난다. 조선왕조를 설계한 정도전은 신권(臣權)이 왕권(王權)을 컨트롤하는 권력구조를 이상적 국체로 추구한 반면 이방원은 신권의 도전을 용납하지 않는 강력한 왕권을 추구했고, 결국 정도전은 이방원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한때 ‘원조 친박(親朴)’으로서 박근혜 정권 탄생에 공을 세운 유 전 원내대표가 감히 서슬퍼런 현직 대통령과 정면충돌한 것은 상당 부분 소신에 힘입지 않고서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단순히 정치적 계산의 발로였다면 유 전 원내대표는 일부 비박계 의원들마저 그에게 등을 돌리는 최저점에 이르기 전 적절한 시점에 ‘쿨하게’ 사퇴했을 것이다. 또 오로지 대통령과의 감정싸움이었다면 90도로 허리를 숙여 사과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유 전 원내대표의 진심은 그가 단말마적 사퇴의 변에서 밝힌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에 있다고 본다. 여기에서 그가 말한 민주(民主)는 ‘국민이 주인’이라는 1차적 의미보다는 민의의 대표기관인 의회가 행정권력을 컨트롤해야 한다는 2차적 의미로 해석된다. 이 대목에서 유 전 원내대표에게 묻고 싶다. 과연 그가 지향한 의회권력의 강대화는 우리 현실에 맞을까. 나라마다 정치체제가 제각각인 것은 고유의 환경과 역사, 국민성 등이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가 대통령제 대표 국가인 미국에 비해 의회권력이 약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구심력이 허약한 축에 속한다는 특성이 있다.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는 국왕이 없고, 압도적 종교(불교와 기독교의 교세가 한국처럼 비슷한 나라도 드물다)도 없는 데다 이념적 분화(이념적으로 정반대의 집단과 휴전선을 맞대고 있고 통일을 이뤄야 한다)마저 심한 나라는 세계에서 대한민국이 거의 유일하다. 이런 현실에서 권력의 구심점이 둘(대통령과 의회)로 나뉘어 가파르게 대척하는 게 과연 효율적일까. 이런 고민스런 질문에 대한 유 전 원내대표의 답변을 들어 보지도 못한 채 사태가 황망하게 끝나 버린 게 아쉽다. 하긴 600여년 전 정도전도 척살되기 전 태종과 무슨 정치적 토론을 주고받지는 못했을 것이다. 역사는 늘 미완의 숙제들을 남겨 놓고 비틀비틀 앞으로 나아가는가 보다. carlos@seoul.co.kr
  • 안동 ‘한정판’ 현금 기념품 관광객 입소문에 인기몰이

    안동 ‘한정판’ 현금 기념품 관광객 입소문에 인기몰이

    “현금으로 만든 기념품을 주세요.” 경북 안동시 방문객들이 현금 기념품을 요구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2일 시에 따르면 올 들어 시청을 찾는 외지 방문객들이 현금 1000원권으로 만든 기념품을 선물로 요구하는 경우가 잦아 시를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이는 시가 지난해 전국 처음으로 지역 홍보를 위해 1000원권 화폐를 이용해 시범 제작한 기념품이 입소문을 탔기 때문이다. 1000원권에 안동 출신 퇴계 이황(1501~1570)의 얼굴과 함께 도산서원의 매화나무가 푸른빛으로 담겨 있는 데서 착안했다. 기념품은 크리스털 케이스에 1000원권 신권이 넣어져 있고, 겉에는 ‘천원권을 소지하면~ 퇴계처럼 겸손과 섬김의 리더로 존경받는 인물이 된다’는 문구가 새겨졌다. 시는 지난 한 해 동안 외지 방문객 1500명에게 이 기념품을 선물했다. 반응은 ‘기존의 하회탈 기념품보다 훨씬 낫다’, ‘안동의 색다른 아이디어 상품이다’, ‘외국인들도 많이 좋아한다’는 등으로 다양했다. 특히 이 선물은 중앙이나 지방 가릴 것 없이 공무원들 사이에 인기가 높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의 대학자이자 선비로 이름이 높은 퇴계 그림이 있는 돈으로 만든 기념품을 사무실 등에 보관하면 출세에 도움이 된다는 소문이 퍼져 나갔기 때문. 하지만 시는 올 들어 우리나라에서 화폐를 선물하는 게 정서상 부담스럽다고 생각해 이 기념품을 더이상 제작하지 않았다. 그러나 시 방문객 가운데 1000원권 기념품을 찾는 사람들이 갈수록 늘자 시는 추가 제작을 검토하고 있다. 시 관계자는 “1000원권 화폐를 통해 안동을 대표하는 인물과 관광지를 널리 알리고자 시도한 게 좋은 반응으로 나타나고 있다”면서 “화폐 통용에 방해되거나 기부 행위 등의 부작용 우려가 크지 않은 만큼 추가 제작해 홍보에 활용하겠다”고 말했다. 안동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위안부 피해자 모욕한 일본인’ 21일 고소·고발

    ‘위안부 피해자 모욕한 일본인’ 21일 고소·고발

    이틀 전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살고 있는 경기 광주 나눔의 집과 서울의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에 할머니들을 모욕하는 소녀상 모형 등을 국제우편으로 보낸 일본의 스즈키 노부유키(50)에 대해 법적 대응이 진행된다. 나눔의 집에 사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은 21일 오후 스즈키를 명예훼손 및 모욕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하기로 했다. 이와는 별도로 안신권 나눔의 집 소장과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 국제평화인권센터 활동가들도 같은 혐의로 고발장을 낸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가운데 일부는 안 소장과 함께 서울중앙지검을 직접 방문해 고소·고발장을 제출한다. 앞서 지난해 6월에는 서울중앙지법 재판부가 2012년 위안부 소녀상 등에 ‘말뚝 테러’를 한 혐의로 기소된 스즈키에 대해 구속영장을 발부했지만, 스즈키가 한국으로 입국하지 않아 영장을 집행하지 못했다. 이에 따라 이번에 다시 법적 대응에 나선다고 해도 실효는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나눔의 집은 “피해 당사자인 할머니들이 같은 사안으로 두 번이나 모욕을 당해 억울해 하고 있다”며 “형사처벌의 실효를 거두지 못한다 해도 역사에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는 의견에 따라 법적 대응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나눔의 집 관계자는 “당초 광주경찰서에 고소·고발장을 제출하려고 했으나 사안이 중요한 데다 2012년에도 같은 사안을 수사한 경험이 있는 서울중앙지검에 내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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