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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추석 연휴 다채로운 공연 잇달아

    ◎한가위 풍물찾아 세상 시름 잊어보자/국립국악원,사물놀이·흥부가 한마당/세종문화회관,시립관현악단·무용단 공연/정동극장,미귀향 도시민·외국인 위안잔치/예술의 전당,야외정원서 봉산탈춤 “얼쑤” 민족 고유 명절인 한가위를 맞아 서울시내 각 공연장에서 다채로운 기념잔치가 펼쳐진다. 국립국악원은 ‘한가위 달빛 여운,지음인(知音人)의 소리 나들이’를 5일 오후7시 국악원 놀이마당에서 갖는다.국립국악원 사물놀이패의 ‘달맞이 길놀이’와 박동진의 판소리 ‘흥부가’,실내악단 소리누리의 ‘창작국악 실내악 모음’ 등을 들려준다.무료공연.(02)580­3300.이어 6일 세종문화회관에선 ‘한가위 큰잔치’가 오후2시·5시 두 차례 공연된다. 서울시립관현악단과 시립무용단,명창 안숙선 등이 출연,‘길놀이’와 ‘함녕지곡’ 등을 공연하며 코미디언 백남봉이 특별출연해 익살스런 만담을 들려준다.이 공연에는 수재민 1,000명이 무료 초청되며 효도상품권이란 이름으로 공연티켓을 할인 판매한다.금초롱 티켓은 5장에 6만원,은초롱 티켓은 4장에 4만5,000원.(02)399­1626 정동극장에선 고향을 찾지 못한 도시민과 외국인들을 위한 ‘한가위 민속공연 한마당’이 2일(오후7시30분),5일(오후4시),6일(오후7시30분) 펼쳐진다.전속 공연팀이 출연해 판소리,산조합주,판굿,삼도풍물굿,삼도설장구,살풀이 등 다채로운 공연을 선보인다.한복 착용자나 3대가 함께 온 가족에게는 할인 혜택을 준다.(02)773­8960.한편 예술의전당은 일요야외무대 ‘어울림,탈춤’을 4일 오후4시 예술의전당 한국정원에서 무료로 공연한다.고수 윤 옥의 장단에 맞춰 김성민,조주현,강신구 등이 황해도 지방의 대표적 탈춤인 ‘봉산탈춤’을 공연,한가위의 흥취를 더해준다.(02)580­1234
  • 물고기장식 백제금동신발 첫 공개/나주 복암리 출토

    물고기 모양의 장식이 달린 백제시대 금동신발이 처음으로 일반에 공개됐다. 문화재관리국 국립문화재연구소 보존과학연구실은 22일 지난 96년 8월 전남 나주시 다시면 복암리 3호분 석실내 4호 옹관 주변에서 출토된 금동신발 1쌍을 2년여 보존처리 후 공개했다. 크기는 현존길이 26.8㎝,폭 9.5㎝,높이 7㎝로 뒤축이 떨어져 나갔고 앞코부분은 약간 둥그런 모습을 하고 있다.표면에는 귀갑문(龜甲文)과 영락(瓔珞·구슬장식)을 달았고 바닥에는 길이 1㎝의 뾰족한 스파이크를 2개씩 3열로 붙여 놓았다. 현재까지 금동신발은 18건 가량 출토됐으나 허리띠 장식에만 사용되던 어형 장신구가 붙어있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 日王 천황 호칭 공식화(쟁점)

    ◎찬/상대국 고유 호칭 쓰는게 외교 관례/徐東晩 외교안보연구원 교수 정부는 일본정부에 대해서 ‘천황(天皇)’을 공식표현으로 쓰기로 최종정리하였다.이번 결정은 옳은 판단이다.한·일 국교정상화 이래 정부는 외교 관례에 따라 모든 공문서에 천황이란 호칭을 사용해 왔으며,역대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했을 때도 천황에 대해 의전적인 예의를 갖춰왔다.89년 이래 일시적으로 ‘일황(日皇)’이란 표현을 사용했으나 국내에서의 호칭이지,일본에 대해서는 천황이란 호칭을 써 왔다.외교적 관례나 일관성이란 측면에서 천황이란 호칭을 쓰는 것이 옳다. 한국정부가 천황이란 호칭을 쓸 때,그 이유는 우선 외교적인 배려로서 일본 고유의 호칭을 써 준다는 것이지만,천황이란 한국 내에서도 이미 역사적 존재로서 굳어진 명칭으로 통용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또한 천황이란 일본 역사에서 차지하는 독특한 위치에서 볼 때,상징적 원수로서 헌법적 의미외에도 역사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일본 황실은 ‘만세일계’란 말로 황실의 연속성을 강조한다. 따라서 한·일 관계에서 볼 때에도,천황은 일본의 상징적 국가원수 이상의 역사적 위치를 가지고 있다.일본은 천황제 국가로서 한국을 식민지화했다.현재의 아키히토 일본 천황은 한국을 식민지화했던 히로히토 천황의 아들이다. 한국의 대일 외교에 있어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과거사 청산외교’이다.과거사 청산의 주체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실질적인 국가수반인 일본총리 외에 바로 역사적 존재로서의 천황인 것이다. 식민지 지배에 대한 사죄를 할 때,천황의 발언은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갖게 된다.일본에서 사죄를 할 때,그토록 어려운 것은 천황의 경우이다.‘천황’으로서 사죄해야 하기 때문에,일본 국민 자신도 무슨 뜻인지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나 애매한 표현을 찾아내서 ‘사죄’라고 하고 있는 것이다. 천황은 일본정부 못지 않게 우리 과거사 청산 외교의 대상이다.과거사 청산은 어디까지나 천황의 이름으로 이루어져야 한다.천황으로부터 사죄를 받기 위해서도 우리가 천황이란 호칭을 사용하는 것이 합당하다. ◎반/일왕 숭배 장식물 따를 필요없어/韓相範 동국대 법학과 교수 일제시대를 살아 본 사람에게 가장 깊은 정신적 상처와 불구화를 남긴 것은 일제의 왕을 신(現人神­아라히토가미)으로 섬기도록 정신세뇌를 당한 후유증이다.다같은 생물을 신(神)으로 둔갑시켜 정치적 주문으로 우민화를 자행한 사연은 메이지유신의 왕정복고 지배구조에도 원인이 있다.이같은 정치적 신화는 군국주의 정신의 온상이 되었고,나아가 아시아 2,000만의 민중을 학살하기도 했다.그런데 이 미신과 신화는 아직도 우익반동의 온상인 채로 과학적·합리적 사고방식을 가로막아 오고 있다.바로 이 봉건적이고 시대착오적,반(反)민주적 정치신화의 상징적 언어가 ‘천황폐하(天皇陛下)’라는 말이다. 일본 왕을 영어로는 emperor라고 하므로 구미 외교계에서는 다른 나라의 군주처럼 그렇게 부르기도 한다.그런데 우리말로 부를 경우 ‘왕’이나 ‘군주’라고 하면 그만이다.굳이 일본말인 ‘천황’으로 부를 필요는 없다.원래 ‘천황’이라는 칭호는 일본사람들이 사용하는 말이다.현행 일본국 헌법은 주권이 국민에게있다는 국민주권원리에 입각하고 있다.1946년 1월 1일 일본왕은,자신은 신도 아니며 또 일본인만이 우월하다는 편견도 잘못됐다는 내용의 신앙고백을 한 바 있다.그는 자신의 신격화를 부정한 대가로 전쟁범죄의 공격을 교묘하게 벗어난 것이 아닌가 하는 점도 있다. 우리가 일본 왕의 칭호를 두고 신중을 기하고자 하는 것은 정부 대표가 사용하는 용어는 역사적·정치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다.히로히토는 한국침략에 대해 “통석의 염을 금할 수 없다”고 하는 애매하고도 무성의한 표현으로 과거사 문제에 대한 책임을 비켜 갔다.전후 일관된 일본의 역사왜곡·날조는 왕을 신격화해 무책임의 논리를 구축한 기형적·비합리적 정신구조에서 연유한 것이다. 천황숭배주의의 장식물인 ‘천황’이란 일본식 말 표현을 우리가 따를 것은 없다.우리 말로 ‘왕’이나 ‘국왕’이라고 하면 그만이다.외교통상부 일부에서 말하는 ‘천황’칭호는 일본식 용어이니 따를 것은 아니다.우리 말대로 자연스럽게 부르면 되지 여기에 무슨 외교의례상의 문제가 있겠는가?
  • 고미술 精髓 한자리에/다보성 신자료 소품展 31일까지

    ◎상당수 미공개 명품 말모양 띠고리 ‘국보급’/청자관음보살 입상 화관 서양식 ‘이채’/백제 환두패도 눈길 니금산수도·금강산도도 우리나라 고미술품의 정수를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다보성 고미술품 신자료 소품전’이 서울 서초구 서초동 다보성 고미술전시관(581­5600)에서 열린다. 31일까지. 이 전시회에서는 희귀한 말모양 띠고리를 비롯해,토기 목기 금속 도자기 회화 민예품 등 500점이 전시된다. 이 중 상당수는 그동안 공개되지 않은 소품들이다. 전시작 중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길이 6㎝의 청동기시대 말모양 띠고리. 동물모양 장신구의 일종인 이 띠고리는 허리에 두르는 띠 한쪽에 고리를 만들어 부착시킨 것이다. 이같은 문양과 형태는 발견된 예가 드물어 국보급으로 손색이 없다는 게 전시회를 갖는 다보성측 주장이다. ‘청자 관음보살 입상’도 보기 드문 명품이다. 12세기 고려시대의 것으로 보이는 관음상은 머리에 화관을 쓰고 양손에 향통을 들고 있다. 안면 각 부분의 표현이 명확하고 화관의 묘사도 중세 서양의 왕관인 크라운 모양을 보이는 등 이제까지 발견된 관음상과는 형태에서 차이를 보인다. 통일신라시대의 ‘금동여래입사오도 볼만한 작품. 이 여래입상은 소발한 머리에 큼직한 육계,그리고 둥글고 탄력있는 눈과 코,작은 입 등을 볼 때 근엄한 표정이 나타나는 통일신라기의 전형을 보여준다. 불상은 팔각연화대좌 위에 자연스러우면서도 당당한 자세로 서있다. 갑옷 칼 등 백제시대의 철제장식 일괄품도 출품된다. 이중 환두태도(環頭太刀)는 고구려 고분 삼실총 벽화에 보이는 무사가 지닌 칼과 유사하다. 손잡이 부분과 칼집이 다소 부식했을 뿐 원형은 잘 보존돼 있다. 이밖에 15세기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분청사기 흑상감모란문 장군’도 시선을 끄는 작품. 장군이란 물이나 술,간장 등을 담는 그릇. 이번에 출품된 높이 23㎝, 길이 21㎝의 장군은 분청에 흑상감을 했다는 점에서 특히 눈길을 끈다. 분청사기에 흑상감을 한 작품은 지금까지 발견된 경우가 거의 없다고 한다. 그런가하면 조선시대 도제(陶製)인형,조선 초기의 유명화가 이징의 ‘니금산수도’(泥金山水圖),겸재 정선의 ‘금강산도’ 등 걸작과 함께 고려시대 ‘청자국화문화병’ ‘청자상감국화문잔탁’,조선시대 ‘백자청화매죽문항아리’ ‘백자청화죽문주전자’ 등 청자와 백자 명품도 선을 보인다.
  • 폐교 문예산실로 거듭난다/창작 스튜디오로 활용

    ◎문화부 내년 시범설치/예술인 창작의욕 부축 폐교가 창작스튜디오로 활용된다. 문화관광부가 창작공간의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작가들에게 폐교 등 사장된 공간을 제공하기로 한 것. 문화부는 우선 내년까지 수도권과 충청권,영·호남권 등 권역별로 1∼2개소의 창작스튜디오를 시범설치한 뒤 이를 각 시도로 확대해나가는 한편 지방자치단체와 문화예술단체,민간기업이 추진중인 창작공간사업도 계속 지원할 방침이다. 창작스튜디오는 작품활동 위주의 창작공간과 전시 및 공연·강좌·세미나 등의 다목적 공간,인터넷 등 정보통신과 비디오 필름 서적 등을 갖춘 자료실,예술체험과 작품제작실습을 위한 학습체험공간,화장실·주방·숙박시설을 갖춘 휴게공간 등으로 꾸며진다. 이들 스튜디오는 3가지 유형으로,작가의 성향과 주민의 문화수요 등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예정이다. A형은 회화실·판화실을 갖춘 평면조형 위주이고,B형은 목조형실·철조형실·단조실로 구성된 입체조형 위주,C형은 유리공예실과 도예실·금속장신구실 등의 창작공간을 갖춘다. 작품제작에 필요한 각종 기기와 기구,설비 등은 공통적으로 갖춰진다. 지금까지는 일부 지방자치단체와 문예단체가 농촌지역의 폐교에 창작실을 운영하고 있으나 시설과 장비 등의 미비로 제구실을 다하지 못했다. 창작스튜디오가 본격 운영되면 창조적인 작품활동의 산실이 될 뿐 아니라 학생들에게 소중한 예술체험 학습장으로,또 다양한 프로그램이 펼쳐지는 지역 문화예술의 교류장터로,주변 문화공간과 문화유적이 연계된 새로운 문화관광명소로 자리잡을 것으로 보인다. 문화부는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는 폐교 가운데 600개가 활용 가능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창작스튜디오의 운영은 지자체에 맡기되 관리는 문화예술단체나 스튜디오 입주자들에게 위탁할 예정이다. 현재 문예진흥원이 시범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창작스튜디오는 2곳. 충남 논산시 양촌초등학교의 장원분교,강화군 불은면의 신성초등학교 등에 설치돼 있다. 지금까지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추진되어온 문화예술분야 투자는 도서관 박물관 문예회관 등 주로 주민 문화향수권 확대에집중돼 왔다. 그러나 이번 창작스튜디오는 생산자를 위한 즉,문화예술인들의 창작의욕 고취와 작품활동 여건 조성에 주력하면서 주민들의 문화예술 활동의 참여를 가능케 한다는 점에서 특징적이다. 이는 지난 76년 폐교된 초등학교 건물을 개조한 미국의 비영리 미술공간을 모델로 하고 있다. 현재 미국에는 매년 4천여명이 활용하는 70여개의 창작스튜디오가 폐교에 설치돼 운영되고 있다. 프랑스와 독일에도 30여개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하회동 탈박물관(생활속의 박물관·미술관:7)

    ◎슬픈 각시… 허풍떠는 양반… 붉은얼굴 말뚝이…/민초의 恨 달래주던 ‘그 얼굴들’/기이한 외모에 걸죽한 입담 절로 나올듯/북청·봉산 등 다른 지방 탈 비교 기회도/30여개국 돌며 수집한 700점 한자리에/아프리카 武像·창·풍물 등 300점 함께 낙동강이 태극모양으로 휘감아 흐른다 해 이름이 붙여졌다는 하회(河回).비옥한 풍산들판을 가로질러 하회별신굿탈놀이(중요무형문화재 69호)의 고장 하회마을로 들어가다 보면 마을 입구에 자리를 틀고 앉아 있는 독특한 외모의 2층건물이 시선을 모은다.우리나라 최초의 탈전문박물관 ‘하회동탈박물관’이다.20여년간 하회탈을 만들어온 金東表씨(47)가 지난 95년 사재 5억여원을 들여 이룬 평생숙원의 결정체다.고풍스런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이곳은 수원성과 문경새재 관문을 본떠 설계됐다고 한다. 240여평의 박물관 1·2층 전시실에는 우리나라 각 지방과 세계 30여개국에서 수집된 각양각색의 탈 700여점이 전시돼 있다.박물관 바깥에는 탈놀이 공연을 할 수 있는 200여평의 야외공연장이,뒤편에는 金씨가탈을 제작하는 공방이 있다. 1층 전시장에 들어서면 기묘한 표정의 우리 전통 탈들이 시선을 낚아챈다. 입을 꾹 다물고 눈은 살포시 내리깔고 있는 각시탈은 힘든 시집살이를 말해주는 듯 하다.양반탈은 “양반은 대추 세 알 먹고도 배부르다”는 말처럼 허풍과 여유스러움이 배어 있다.둥근 눈과 주름이 많은 눈두덩이에 능청스런 웃음을 띤 파계승탈은 영락없는 호색가상이다.눈·코가 비정상적으로 크고 붉은 색을 띤 말뚝이는 온갖 심술로 양반들을 골려주기에 제격이다.할미,싹불이,서울아기,옴중,미양할미,샌님,취발이,신장수,종가도령,초란이,문둥이,꺽쇠,먹쇠 등,표정 만큼이나 이름도 다양하고 재미있다. 이런 탈을 쓰고 과거 계급사회의 하층민들은 억눌린 한을 풀어냈다.탈놀이는 70·80년대 군부독재 시대에 대학생들의 대표적인 현실 저항의 몸짓이기도 했다.백정이 소우랑(쇠부랄)을 사라고 선비에게 익살을 떨고 파계승이 ‘부네(소첩이나 기녀의 신분으로 등장)’를 유혹해 놀다가 초랭이(양반의 종)에게 들키는 하회별신굿의 장면들.이것은 상전의위선에 대한 비웃음이었고 독재자에 대한 경고이기도 했다.탈은 기상천외한 모습으로 구수하고 걸죽한 입담을 토해내 우리 서민들에게 카타르시스를 맛보게 했다. 이곳에는 하회별신굿 외에도 함경도의 북청사자놀이,황해도의 봉산·은율·강령탈춤,경기도의 양주별산대놀이 남사당덧뵈기,서울의 송파산대놀이,영남지방의 고성·통영·가산오광대,수영·동래아류,강원도의 강릉관노가면극 등 중요무형문화재에 등록된 각 지방 탈놀이에 쓰이는 모든 탈이 알기쉽게 구분·전시돼 있다.대부분 각 무형문화재 보존회가 제작했으며 하회탈은 金씨가 제작한 것들이다. 탈의 재료로는 주로 구하기 쉬한 박바가지와 한지,마분지,나무 등이 쓰이는데 金씨가 제작하는 하회탈은 나무로만 제작된다.“하회탈은 전통적으로 토종 오리나무를 써야하나 구하기가 어려워 피나무를 많이 쓴다”는 게 그의 설명.운좋게 金씨가 탈을 제작할 때 박물관을 찾는 관람객은 탈 구경과 함께 공방에 들려 하회탈 제작과정도 볼 수 있다. 2층 전시실에서는 아프리카 지역을 중심으로한 외국탈300여점과 각종 생활용품 등을 볼 수 있다.우리 탈이 해학적이고 풍자적인 표정으로 주로 인간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반면,외국탈은 대체로 엄숙하거나 무표정한 신(神)적 분위기를 낸다.주술적인 목적으로 주로 사용됐던 때문인 듯.그러나 색채가 화려한 게 많고 모양이 아주 다양하다.전쟁을 치르기 전 승전무를 출 때 사용했다는 자이르의 탈은 튀어나온 입술이 영락없는 아프리카인이다.무꾸리(신령을 모시는 사람에게 길흉을 점치는 일)에 사용되는 것으로 여신을 상징한다는 콩고의 탈은 눈을 감은 채 엄숙한 것이 무당 점치는 표정을 빼닮았다. 파도를 다스리는 신을 나타낸다는 쿡제도의 탈은 신령스런 분위기와 세밀하게 조각된 무늬 등 예술적 감각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이곳에는 탈 이외에도 창,칼,인형,장신구,추장지팡이,모자,나팔 등 아프리카와 아시아 여러나라들의 풍물들이 많아,이 지역 문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의 발길이 잦은 편이다. ◎탈박물관 가는길/안동서 버스로 40분/도산서원·봉정사 등 전통의 향기‘솔솔’ 서울에서 안동까지는 동서울터미널에서 직행버스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매일 9회 운행되고,4시간 쯤 걸린다.안동시내에선 하루 6회 운행하는 하회마을행 46번 시내버스를 타고 가다 박물관 앞에서 내리면 된다.40분쯤 소요.시간이 촉박해 택시를 타려면 풍산까지만 버스를 타고 그곳부터 택시를 타면 된다.안동에서 풍산까지는 버스가 자주 있다. 개관 시간은 상오 9시30분 부터 하오 6시 까지고 관람에 필요한 시간은 1시간 정도.매주 화요일 휴관한다.관람료는 어른 1,100원,어린이 660원이고 단체는 각각 770원 및 440원이다. 이곳에는 하회동탈박물관 말고도 전통가옥이 잘 보존돼 있는 하회마을을 비롯,병산서원,봉정사,안동민속박물관,도산서원 등 전통의 향기를 만끽할 수 있는 곳들이 많다.(0571)53­2288·2938 ◎金東表 관장/“단순한 볼거리 탈피 전통문화 배움터로”/私財 5억 들여 건립 자부심/해외공연때마다 구입 열의/유럽·美洲로 발 돌릴 계획 20년 이상 탈과 함께한 때문인지 金東表 관장의 얼굴은 하회탈을 꼭 빼닮았다.그의 탈과의인연은 아주 우연하게 시작됐다.군 입대전 목각기술을 익혔던 그는 제대후 조각가 김창범씨 밑에서 1년간 조수로 일하다 서울 천호동에 개인공방을 냈다.어느날 한 손님이 하회탈이 그려진 그림을 들고와 똑 같은 탈을 만들어 달라고 했고, 金씨는 이내 수락 했던 것.그런데 그게 쉽지 않았다. “도저히 같은 표정이 나오지 않았어요.수십번 시행착오를 겪은 후에 비슷한 작품을 만들 수 있었고 그때부터 하회탈 제작에 푹 빠져버렸지요.” 그가 만든 하회탈은 각 백화점에서 인기가 있었다.그러나 사업수완이 부족해선지 밑천을 들어먹고 고향인 안동 구담에 내려와 마을회관을 빌려 본격적으로 하회탈제작에 나섰다.문화재보존재단인 ‘한국의집’에 탈을 납품한 그는 안동시청에서 하회마을에 자리를 마련해주고 탈을 제작해달라고 하자 지난 96년까지 그곳에서 하회탈을 만들었다.그의 하회탈 제작 솜씨는 전국적인 명성을 얻어 주문을 소화하기가 바쁠 정도였고 돈도 벌어,박물관 건립의 밑천도 마련할 수 있었다. “탈을 보여달라는 사람은 많았지만 공방이좁아 몇개밖에 걸어놓지 못해 항상 안타까웠어요.그때부터 ‘우리나라에 없는 탈박물관을 내가 만들어보자’고 결심했지요.” 그런데 탈을 모으다 보니 기왕이면 다른 나라의 탈도 함께 전시하자는 욕심이 생겼다고.金씨는 탈문화가 발달했던 아프리카 각국을 돌기도 하고,프랑스 벼룩시장도 기웃거리면서 외국탈을 모았다.하회별신굿탈놀이 이수자로 각시역할을 하는 그는 해외공연을 갈 때도 그곳에서 탈을 구입하는 것이 일상사가 됐다.대전엑스포가 열렸을 때도 각국 전시관에서 외국탈을 많이 구입했다. 金관장은 탈박물관이 단순한 탈 구경장소가 아닌 탈을 통해 우리 전통문화와 외국문화를 체험하는 산 교육의 장으로 인식되기를 원한다.이를 위해 우리 탈놀이장면과 탈에 대한 설명을 담은 다양한 시청각자료도 비치해 놓았고,야외공연장을 탈놀이를 비롯한 각종 민속놀이 공간으로 개방해놓고 있다.또 오는 9월 25일∼29일 안동시내와 하회마을에서 열리는 안동 국제탈춤 페스티벌 기간에는 박물관에서 ‘아프리카풍물전’을 열기로 했다. 아프리카·아시아뿐만 아니라 유럽이나 아메리카 지역의 다양하고 진귀한 탈도 수집,세계적인 탈박물관으로 발전시키는 게 그의 목표다.
  • 制憲 50돌을 돌아본다:3(정직한 역사 되찾기)

    ◎고쳐야할 법/국가보안법의 어제와 오늘/취중 농담 한마디로 ‘철창행’/“예비군훈련 싫어 북한 가고파”­국가보안법 위반/백일잔치에 모여 시국 이야기­反국가단체 결성죄/“北 지하철 남한보다 7년 앞서”­反국가단체 찬양 고무죄 “예비군훈련이 지긋지긋해서 북한으로 넘어가 버리겠다”고 농담을 했다. 그저 예비군훈련이 싫어서 한 농담이었다. 북한으로 넘어갈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그러나 그는 그 농담 때문에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구속됐다. 영화나 소설 속의 이야기 같지만 60년·70년대 우리의 현실이었다. 농담이나 취중에 한 말도 보안법 위반이 되었던 것이다. 그 당시 유행하던 ‘막걸리 보안법’이란 말은 인권침해의 시대상황을 증언하고 있다. 국가보안법을 둘러싼 논쟁은 그러나 한 세대전의 과거 일만은 아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비슷한 유형의 사건을 놓고 유·무죄 공방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지난 96년 ‘미제침략백년사’를 소지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기소됐던 신희주씨. 전남대 사학과 4년 재학중이던 그는 재판부에낸 자기변론문에서 이렇게 주장하고 있다. “역사를 공부하는 대학생이 역사자료를 소지·탐독하는 것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면 이는 시대착오적인 발상입니다. 저에 대한 판결은 죄의 유무를 가리는 것이 아니라 ‘상식’과 ‘억지’의 싸움이라고 봅니다.” 국가보안법 만큼 거센 ‘악법’ 시비와 논란속에도 자리를 굳건히 지켜온 법도 드물다. 일제하의 치안유지법을 그대로 계승했다는 태생적 시비에서부터 위헌성 및 기타 법률과의 중복성,남북관계법과의 상충성에 대한 논란 등이 끊이지 않고 있다. 현행 국가보안법은 4장25조로 구성돼 있다. 그중 제3조∼제10조까지가 핵심이다. 여기에서도 제7조(찬양·고무등)는 법학자와 인권단체들로부터 가장 독소적이이고 가장 심각하게 남용되는 조항이라고 비판 받는 부분이다. 반국가단체를 찬양·고무하거나,이를 목적으로 단체를 구성하거나 가입한자,이러한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 표현물을 제작·반포·판매한 자 등을 처벌하게 돼 있다. 그러한 조항을 근거로 교사,대학강사들이 동료 딸 백일잔치에 모여 시국 이야기를 한 것이 ‘반국가단체 결성죄’가 됐고,“북한 지하철은 우리보다 7년이나 앞섰다”는 발언은 ‘반국가단체 찬양·고무죄’가 됐다. 재미교포가 북한에서 만난 가족으로부터 받은 가족사진을 남쪽의 동생에게 보여줬는데, 그 동생은 이를 신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입건됐다. 국가보안법 제10조의 이른바 ‘불고지죄’를 지은 것이다. 이러한 논란과 혹독한 비판속에서도 역대 정부는 남북분단이라는 ‘특수상황’ 때문에 보안법을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북한 형법 44조∼45조는 반국가범죄의 처벌을 부작위범까지 포함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형량도 사형과 남은 가족의 전재산 몰수 등 엄청나게 가혹하다. 북한은 또 ‘조선노동당 규약’을 헌법의 상위규범으로 삼고 있어,애초부터 죄형법정주의 정신을 찾아볼 수 없다. 일부 학자들은 북한의 이러한 상황을 고려할 때 “보안법 폐지는 남쪽만의 무장해제다.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내기 위해서는 보안법을 반드시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인권보호 차원에서 보안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소리가 여전히 높다. □악법 논란이 있는 현행 법률 ◆보안관찰법(제정 혹은 전문 개정일:89.6.16) ·집회 참석 금지, 매3개월 중요활동 보고, 타보호관찰대상자와 회합통신 금지 ·한번 처벌받은 일로 다시 처벌­일사부재리원칙 위배 ·행정부(법무부장관)가 처분 결정­죄형법정주의 위배 *비고:89년 폐지된 사회안전법의 보안관찰처분 강화시켜 입법 ◆사회보호법(80.12.18) ·재범 우려 있는 범죄자에게 보호감호, 치료감호, 보호관찰 처분 ·동일 행위로 이중 형벌­인권침해 소지 *비고:89년 보호감호기간이 7년 넘지 않게 개정 ◆정기간행물의 등록에 관한 법률(87.11.18) ·95년 발행인 결격사유 확대하고, 공보처장관이 등록취소할 수 있게 개정 ·비판과 감시의 역할 상당히 약화시킬 위험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89.3.29) ·허가제에서 신고제로 바뀌기는 했으나 신고절차가 까다롭고 ‘금지통고제’ 남용의 소지가 있어 ‘사실상의 허가제’란 비판 ◆국가안전기획부법(80.12.3) ·93년 검찰에 넘겨줬던 국보법7조 및 10조 위반자 수사권 넘겨받아 권위주의 회귀 논란 *비고:96년 12월 개정안 여당 단독처리 ◆군사기밀보호법(93.12.27) ·기밀 분류에 대한 군관계자의 자의적 해석 가능­죄형법정주의 위배 논란 *비고:92년 기밀 범위를 확장 해석해서는 안된다는 헌재의 ‘한정합헌’ 결정 ◆행형법(61.12.23) ·형의 선고로 재소자의 기본권이 어디까지 구체적으로 제한돼야 하는지 명백한 기준 부족­교도소에 지나친 재량권 부여로 인권유린과 비리의 소지 높음 ◎기고/朴元淳 변호사·참여연대사무처장/보안법 어떻게 할것인가/쿠데타로 집권했던 권력자들/국민의 인권 짓밟고 숨통 조여/이제는 그들의 눈물 닦아줄때 국가재건최고회의,비상국무회의,국가보위입법회의….젊은 세대들은 이 명칭들의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하리라. 모두 쿠데타 입법기관이다. 멀쩡한 국회를 해산한 다음 군인과 독재자들이 그 대신 만든 기관이다. 이들 ‘무허가 입법기관’들은 아무런 국민의 위임도 없이 하루에도 몇십건씩 수백개의 법률들을 양산했다. 이 법률들은 말할 것도 없이 그러한 권위주의 통치를 정당화하거나 용이하게 하는 것이어서 국민들의 권익을 침해할 가능성이 극도로 높은 것이었다. 말이 법이지 폭력에 다름아니라고 비판하는 견해가 적지 않았다. 국가보안법,반공법,형사소송법,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노동관계법…. 악법의 상징인 국가보안법은 일부 개정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국민의 기본권침해의 여지를 수없이 남기고 있다. 지난 1993년 유엔인권이사회가 한국정부에 대하여 아무리 특수한 안보여건을 고려하더라도 이 법은 반민주적인 것이므로 개폐되어야 한다는 공식적 권고를 하기에 이르렀다. 형사소송법도 인신구속에 관한 대수술이 있었지만 국민의 기본권을 지키는 모법으로서는 여전히 한계가 많다. 피의자 수사시에 변호인 입회권 하나 보장되지 않으며 검찰 불기소결정에 대해 재정신청을 허용하는 범죄는 극히 제한되어 있다. 이러한 정치적 기본권에 관한 법률 외에도 국민의 일상생활과 관련된 수많은 법률들에서 악법의 요소를 발견하기란 한강에서 모래알을 줍기 만큼 쉬운 일이다. 이러한 법률에의해 제한되고 침해된 국민들의 권리란 미처 헤아리기조차 어렵다. 억울하게 구속되거나 재산을 뺏기고도 말못한 채 수십년을 살아야 했다. 조금 숨통이 트이고 권력의 눈치를 덜 보는 세상이 되어 소송,고소를 제기하자 법원은 소멸시효기간 경과니 공소시효 완료니 하면서 기각하는 것을 다반사로 삼았다. 재심이라는 것도 너무 엄격하여 쓸모가 없었다. 한숨과 절망만이 이들의 것이었다. 지난 ‘80년의 봄’을 짓밟은 군부 쿠데타에 저항한 상당수 시민들이 포고령 위반 또는 계엄법위반으로 징역을 살았다. 이때의 희생자들이 재심에 의해 무죄를 받는 사례들이 언론에 보도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이들은 자신들의 비용으로 재심을 신청하고 재판을 또다시 받아야 했다. 왜 우리는 이들 정의로운 역사의 희생자에게 특별법이라도 만들어 간단한 방법에 의한 재심으로 무죄를 선고받게 하고 국가가 그들의 희생에 대해 보상을 하도록 하지 않는가. 지난 金泳三 정부는 많은 것을 “역사의 평가”에 맡기고자 하였다. 역사의 저편 무대로 사라지기에는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구체적인 고통에 시달리고 있고 계속 그런 피해자를 양산하는 악법이 엄존하고 있음에도 아무런 시정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양심수는 쌓이고 악법의 피해자들은 세상을 떠돌고 있었다. 누더기가 된 법은 국민의 불신과 불만을 초래하였다. ‘법을 지키는 사람만 바보’되기 일쑤인 사회에서 법치주의는 설 자리가 없었다. 새 정부는 ‘국민의 정부’‘제2의 건국’이라는 구호를 좋아했다. 진정한 ‘국민의 정부’가 되기 위해서는 金大中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언명한 것처럼 국민의 눈물을 닦아 줄 수 있어야 한다. ‘제2의 건국’을 이루기 위해서는 그동안 역대 정부가 저지른 잘못을 이 정부는 시정해 주어야 한다. 지난 1978년 미국정부는 자신들이 1943년 태평양전쟁 시기 미국 서해안 거주 일본계 미국인들을 강제로 집단 이주시킨 행위에 대하여 사죄하고 1인당 2만달러씩의 보상금을 지급하였다. ‘왕은 잘못이 없다’는 이론이 전제군주시대에는 있었다. 그러나 민주사회에서 정부가 잘못한 것은 그 다음 정부에서라도 당연히 시정하고 잘못에대한 배상을 하여야 한다. 그것이 아무리 ‘판도라의 상자’처럼 끝없이 귀찮은 청소작업이라고 하더라도 이제는 착수해야 할 일이다. 새정부 처음으로 맞는 제헌절에 ‘악법 청소청’이라도 만들고 ‘악법희생자 신문고’라도 만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악법,이대로 둘 수는 없다.
  • 趙世衡 국민회의 총재대행/비장한 각오속 광명乙 출정(초점인물)

    ◎스타급의원 투입 선대본부 구성 마쳐 국민회의 趙世衡 총재권한대행이 29일 광명을로 본거지를 옮겼다.홀가분한 마음으로 보궐선거에만 전념키 위해서다.원내총무 경선도 마무리했다. 당무도 鄭均桓 사무총장에게 위임했다. 그는 이날 상오 총무경선이 끝나자 곧바로 광명을 선거사무실로 향했다. 기자회견을 갖고 선거에 임하는 비장한 각오도 밝혔다. ‘개혁의 시작과 완성’이 그가 던진 화두다.정부의 총체적 국정 개혁을 뒷받침하기 위해 보선 출마를 결심했다고 강조했다.나아가 개혁의 완성을 위해 광명을에서 압승을 거둬야 한다고 설명했다. 선거 대책본부도 구성했다.국민회의와 자민련간 공조체제를 과시하기 위해 자민련 車鍾太 지구당 위원장에게 본부장 자리를 맡겼다.선거기간 동안 鄭東泳 의원 등 스타급 당 소속 의원들이 대거 투입된다.전체 유권자의 60%를 차지하는 20∼30대 유권자,개혁 성향의 유권자들의 지지를 끌어내기 위해서다.공천 1순위로 꼽혔던 朴炳錫 수석대변인과 許仁會 당무위원의 도움도 큰 힘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모든게순조로운 편이다. 하지만 그의 마음이 가벼운 것만은 아니다.상대후보가 만만찮아서다.이곳 시장 출신인 한나라당 全在姬 후보가 유권자들에게 상당한 어필을 하고 있다는 분석이다.야당에서 성대결,신구대결로 몰고갈 경우 어려움이 예상된다.따라서 그는 선거전을 ‘개혁의 완성이냐,중단이냐’로 몰고 갈 방침이다.金大中 대통령이 직접 나서 출마를 권고한 만큼 국정에 대한 중간 평가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는 것이다. 당 안팎에서는 그의 낙승을 점치는 분위기다.그러나 선거는 선거다.지난 4·11 총선에서의 악몽이 되풀이 될 수도 있다.정치생명을 건 한판 승부일 수 밖에 없다.
  • 그리운 금강산/任英淑 논설위원(外言內言)

    신라시대 문장가 崔致遠은 금강산 구룡폭포를 보고 “천길 흰 비단필이 내리 드리운 듯 하고/만섬 진주알이 쏟아지는 듯 하여라”고 읊었다. 고려 공민왕 때 정승 李齊賢은 금강산 깎아 지른 절벽앞에서 “차가운 바람은 바위서리에 풍기고/골짜기에 담긴 물은 깊고 푸르구나/지팡이에 의지하여 벼랑을 바라보니/나는 듯한 처마는 구름을 탄 듯 하구나”고 감탄했다. 조선조의 松江 鄭澈은 “행장을 다 떨치고 석경에 막대 짚어/백천동 곁에두고 만폭동 들어가니/은같은 무지개 옥같은 용의 초리/섯돌며 뿜는 소리 십리에 잦았으니/들을 제는 우뢰러니 보니난 눈이로다/금강대 맨 윗층에 선학이 새끼치니/춘풍 옥저소리에 첫잠을 깨돗던지”(관동별곡)라고 금강산 만폭동과 금강대를 노래했다. 그밖에 金時習 成俔 南孝溫 李珥 金天澤 金壽長 朴孝寬 楊士彦 朴世堂 朴齊家 朴趾源 김삿갓등 수많은 선비들이 금강산에 관한 글을 남겼다. 조선조까지 금강산을 노래한 시들을 모은 책에 오른 이름만도 300여명에 이른다. 이들이 묘사한 금강산은 “산위에 산이 있으니하늘에서 땅이 나왔나/물가에 물이 흐르니 물가운데 하늘이로다…”(楊士彦)고 “소나무 소나무 잣나무 잣나무/바위바위마다 둘러서 있고 /물물 산산 가는 곳마다 신구하구나…”(김삿갓)싶다. 또 “일만송이 연꽃이 피어/이슬에 씻은 얼굴을 드러낸 것 같고/일천자루 창을 꽂아/서리 어린 날끝을 세운 것 같다”(朴世堂). 조선조 이후에는 崔南善의 ‘금강예찬’,李光洙의 ‘금강산유기’,李殷相의 ‘금강행’,鄭飛石의 ‘산정무한’등이 금강산송(頌)으로 전한다. 그러나 금강산을 내 마음속에 각인시킨 것은 선인들의 이런 절창(絶唱)이 아니라 서지(書誌)학자 남애(南涯) 安春根이다. 지난 80년대 말 설악산에서 열린 출판관련 세미나를 마치고 찾아간 고성 통일전망대에서 그는 해금강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통일전망대에서 보이는 해금강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 온 절경(絶景)을 떠올리기에는 너무 멀었지만 한 실향민의 눈물은 그 가물가물한 풍경을 체험속의 공간으로 끌어 들였다. 지난 93년 타계한 安春根은 고성군 외금강면에 있는 고향 남애리의 이름을 따 호를 지을만큼 고향을 그리워해 유고(遺稿) 수필집으로 ‘언제 고향에 갈 수 있을까’을 남겼는데 드디어 올 가을부터 금강산 관광이 시작될 수 있을 듯 싶다. 금강산을 찾는 유람선이 단순한 관광용이 아니라는 점에서 그 뱃길이 훤히 뚫리고 육로(陸路)까지 열려서 통일의 날도 앞당겨 오기를 바란다.
  • ‘민족 서정시의 계승자’/故 박재삼 시인 詩 세계 여행

    ◎1주기 추모 60·70년대 작품묶어 ‘시전집 1권’ 발간/시집 2권·산문집 준비 ‘해방이후 한국 서정시의 정점’에 자리잡은 박재삼(朴在森) 시인이 주위의 안타까움을 훌훌 털고 세상을 떠난 지도 1년.그의 ‘시전집 1권’이 민음사에서 나왔다. 이 전집은 시인의 첫번째 시집 ‘춘향의 마음’(62년,신구문화사)부터 다섯번째 시집 ‘뜨거운 달’(79년,근역서재)까지를 묶은 것이다.시 세계의 정수(精髓)가 담긴 시절의 작품들이다.생전에 펴낸 시집을 모아 두 권을 더 펴내고 한 권의 산문집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한 작가를 떠올릴 때 한 마디로 집약할 수 있는 말,일체의 형용사를 다 발라내고 박재삼 시인 앞에 붙는 것은‘서러움’이다.그에겐 삶이 서러웠고 시가 서러웠다.그의 설움이 세상에겐 위로였다. 인생의 절반을 병마와 가난과 싸우면서도 올곧은 자세를 흩뜨리지 않았던 박재삼 시인의 존재는 한국 시사(詩史)적인 의미로만 보더라도 김소월,서정주로 이어지는 민족서정시의 계승자였다.전통적인 리듬에 고유의 정서인 한을 접맥시켜 온 흐름에풍부한 물줄기를 보태고 있다. 그 물줄기는 지금도 의미를 띠면서 유유히 흐른다.80년대엔 ‘싸움터의 소리’에 치이고,90년대엔 ‘현란한 감각의 난장(亂場)’에 치이면서 지칠 대로 지친 현재의 시단에서 그의 시가 지니는 위치는 어떤 것인가. 전집을 기획한 문학평론가 이광호씨는 이렇게 말한다.“시인의 1주기를 맞아 한국 서정시의 원류를 탐색하는 징검다리를 놓아 보고 싶었다.90년대를 고비로 선정성·실험성이 주춤하는 우리 시의 현주소에서 시의 서정성에 대해 밀도있는 고찰을 하려면 꼭 짚고 넘어가야 할 시인이 박재삼이다” 세월이 지나도 빛바램이 없는 시인의 육성.(‘천년의 바람’) 자연의 변함없음에 빗대어 인간사의 가벼운 팔랑거림을 나무라고 있다.영리에 눈먼 세상의 덧없음을 한탄한다.그 음조는 비애미(悲哀美)다.(‘사람이 사는 길 밑에’) 시인의 몸은 떠나도 노래의 반짝거림은 남는다.변함없는 음성으로 시 정신의 한 갈래를 지켜 온 그의 자취를 더듬다 보면 오늘의 노래도 더 풍성해지리라. 시인은 1933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났다.53년 ‘문예’지에 ‘강물에서’,55년 ‘현대문학’에 ‘정적’등이 추천되어 등단했다.고려대 국문과를 수료했으며 평생 가난을 벗삼아 지냈다.살아갈 방도 삼아 서울신문에 ‘요석자(樂石子)’라는 이름으로 바둑 관전기를 싣기도 했다.
  • “정계개편 순리따라 할것”/金鍾泌 총리 일문일답

    ◎현상태로는 안돼… 과반수는 무너뜨려야/캐스팅보트 쥘 제3·4의 당 출현 바람직 金鍾泌 국무총리서리는 2일 청와대에서 金大中 대통령과 독대(獨對)한 뒤 기자간담회를 자청했다.金총리서리는 이 자리에서 정치권의 핵심 현안인 정계개편의 방향을 제시했다.공동정권의 한 축인 金총리서리가 정계개편을 공식화한 것이어서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정계개편에 대한 계획은. ▲우리도 참을만큼 참았다.어떤 방향으로 할 것인가는 지켜봐달라.재작년에 신한국당이 우리당 의원 7명을 빼내가는 것을 비난했었다.이제와서 우리가 물리력으로 그러면 되겠는가.순리에 의해 할 것이다.그러나 현 상태대로는 안된다.과반수는 무너뜨려야 한다. ­대통령 방미중 개편이 있나. ▲대통령이 나가서 힘들게 외교활동을 하는데 거북한 일을 만들지 않는 것이 좋다.한나라당은 평소에도 마구 덤벼드는데 대통령 부재중에 그런 일을 하면 가만히 있겠는가. ­정계개편 방향은. ▲절대다수는 안된다.그리고 우리의 정신구조를 갖고 양당제를 하면 매일 싸우게 된다.우리 국민정서상 캐스팅 보트를 쥘 수 있는 제3·제4의 당이 있는 게 좋다.선거후에도 그런 식으로 정계개편이 됐으면 한다.대통령제에서는 연립이 어렵다.지금도 집권당이 다수가 못되고 있다.내각제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3,4개 당이면 지역당 아닌가. ▲내각제를 한다면 지역갈등 문제가 없어질 것이다. ­金潤煥 李仁濟씨와 만났나. ▲金潤煥씨는 만난 적 없다.선거가 끝난뒤 한나라당 임시 전당대회가 있을테니 지켜보자.李仁濟씨는 대선직후에 만나 위로한 적이 있다.다른 사람(李會昌씨를 지칭한 듯)도 전화해서 위로하고 그랬다.
  • 북아일랜드 ‘평화의 봄’ 오나/평화협정 주민 압도적 지지로 통과

    ◎자치의회 구성·정치범 석방 등 변수 될듯 “북아일랜드의 평화와 희망,미래를 위한 거대한 행보가 시작됐다”(토니 블레어 영국총리).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에서 22일 동시에 실시된 북아일랜드 평화협정 국민투표결과 두 지역에서 각각 71.1%,94.4%라는 압도적인 지지가 나옴으로써 피로 얼룩진 북아일랜드에 평화가 정착될 것이란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그러나 평화의 도래를 축하하는 트럼펫 소리는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분석이 만만찮다. 북아일랜드 평화협정은 지난 4월10일 아일랜드공화국군(IRA)의 정치조직 신페인당 및 신교도 최대 정당인 얼스터통합당(UUP)등 8개 북아일랜드 정파와 영국,아일랜드가 극적으로 타결했다.골자는 북아일랜드를 지금처럼 영국의 지배아래 두되 주민투표로 구성될 자치의회가 자치정부를 수립,영국의 입법행정권을 인수한다는 것. 쌍방의 존재를 인정하는 이른바 ‘북아일랜드식(式)평화안’이다. 아일랜드와 통합하려는 북아일랜드의 구교도와 영연방에 남기를 원하는 신교도가 권력을 공유하고,북아일랜드에 대한 영토권을 규정한 아일랜드의 헌법을 수정한다는 내용이다. 협정을 통한 평화정착 과정에서 대두된 첫 걸림돌은 북아일랜드내 신교파의 협정안 ‘반대’움직임.그러나 투표결과 찬성률이 70%를 넘김으로써 안정적인 출발은 할 수 있게 됐다. ‘테러에 지친 북아일랜드의 아이들에게 평화의 유산을 물려주자’며 이번 평화협정 투표에 임했던 많은 국민들의 기대에도 불구,전문가들의 전망은 회의적이다. 먼저 6월25일로 예정된 자치의회 선거문제.108명을 뽑는 이 선거에서 신구교도간 갈등 재연은 불 보듯 뻔하며 그 조짐은 투표전 신교도측의 강력한 저지투쟁에서 드러났다는 것이다. 6월말까지 양측은 무장테러범 석방안을 입법,2000년 여름까지 실행에 옮겨야한다.이는 양측 준군사조직의 무장해제(시한 2000년 5월)와 함께 갈등·대립을 부를 수 있는 불씨들이다.
  • 北 아일랜드 평화협정 승인 확실/오늘 개표

    ◎주민 지지율 71%線 예상 【브뤼셀 연합】 북아일랜드 평화협정에 대한 찬반 여부를 묻는 역사적 주민투표가 22일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에서 동시에 실시됐다.아일랜드의 일간 아이리시 타임스지는 21일 보도한 북아일랜드 여론조사에서 협정안에 대한 찬성이 60%,반대 25%,부동표 15%로 나타났다고 밝히고 협정안이 71%선의 지지를 얻어 통과될 것으로 예상했다. 1922년 아일랜드가 분할된 이후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지적되는 이번 주민투표에서 협정이 승인되면 북아일랜드는 수세기간 계속된 신구교도 유혈분쟁의 종식과 평화공존의 제도적 틀을 확정하게 된다. 협정안은 남북 아일랜드에서 모두 투표자 과반수의 찬성으로 통과될 것으로 점쳐지고 있으나 앞으로 순조로운 평화 정착 가능성 여부를 가늠할 수 있는 북아일랜드 주민들의 지지율에 국내외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개표 결과는 23일 하오(현지시간)에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 이강백­이윤택 예사롭지 않은 첫 만남/느낌,극락같은

    예술의전당 이강백 연극제에서 ‘느낌,극락같은’은 단연 화제작.네편 가운데 이것만 초연이다.작가 이강백과 연출자 이윤택의 첫 만남이기도 하다.작가는 현실을 은유하는 묵중한 대사,알레고리 등 관객을 ‘괴롭히는’ 관념적 작품으로 진작부터 입지를 다져온 중진.반면 연출자는 90년대 인기 절정인건 분명하지만 대중의 혀에 착 감기는 요리 감각으로 ‘고급대중극’을 표방한 인물이다.이질의 만남이 불러일으킬 흥미의 파장을 당사자가 먼저 안다는 듯 둘은 서로의 예술세계를 겨냥,한판 설전을 치뤄 상품성을 더욱 높여놨다.22일 서울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서 드디어 막이 오른다. 불교를 축으로 한 그 기둥줄거리는 낯익다.한 스승한테 배운 불상제작자동연과 서연은 불상 만들때 형식이냐 마음이냐를 놓고 갈라진다.갈등의 골이 패가던 중 동연이 스승의 딸 함이정을 범하고 서연은 ‘진정한 부처 마음’을 찾겠다며 길을 떠난다.함이정의 아들이 대립을 지양할 화두로 찾아든 것은 음악.일견 전형적인 ‘극락’궁구 드라마를 연출이 어떻게 ‘느낌’으로육질화할지가 주목거리다. 스승 함묘진에 신구·고능석,서연 조영진,동연 이용근,함이정에 김소희 등.동연과 서연의 불상을 사람에게 맡기고 불상 코러스 12명까지 동원한 것에서만도 감각적 연출이 엿보인다.6월14일까지.평일 하오 7시30분 토 하오 3시,7시30분 일 하오 3시.580­1880.
  • 귀금속가공 기능사­전자계산기 기사(이런 자격증 어때요)

    다용도·다기능 제품이 소비자들에게 인기있는 것처럼 자격증에서도 일석이조의 효과를 노릴 수 있는 게 좋다.취업 또는 소규모 창업이가능한 자격증을 소개한다. ◎귀금속가공 기능사/장신구 제작­수리 업무/감각 중요… 여성에 유리 귀금속은 가공기술에 따라 그 가치가 확연히 달라지기 때문에 전문적인 기능인력이 요구된다.예술적이고 창조적인 아이디어가 중요하므로 여성에게 유리하다. 기능사는 세공할 모양과 형태에 따라 귀금속 보석광물 합성석 및 모조석을 소재로 금속용 수공구 및 동력공구를 사용,반지 목거리 귀걸이 등 신변 장신구를 제작하고 수리하는 업무를 수행한다. 전문지식을 바탕으로 소규모 금은방을 경영할 수 있으며 대규모의 금은세공업체와 귀금속 및 보석가공품의 수출을 전문으로 하는 대량 생산업체 등에 진출이 가능하다. 불황에도 불구,창조적인 아이디어를 가미한 실용적이고 저렴한 장신구는 언제든지 수요가 있기 때문에 전문직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직종이다. 한달 평균수입은 70만원선이나 경력에 따라 상당한 수입도가능하다.한국산업인력공단 (02)3271­9190,한국귀금속보석기술협회 (02)765­8707. ◎전자계산기 기사/전산망 설계­운용 총괄/정보처리직 전업 가능 전자회로와 기계적인 장치로 구성되어 있는 컴퓨터 하드웨어를 설계할 수있는 전문인력의 수요가 늘고 있다. 기사는 시스템을 구성하는 중앙처리장치 주변장치 입력장치 출력장치 및 보조기억장치들의 성능을 향상시키기 위하여 컴퓨터 시스템을 설계하고 운용하는 업무를 수행한다. 데이터통신 업무를 운용하는 기업체 및 공공기관,전자계산기 생산업체 및 판매업체,정보처리대행업체,전자계산기 주변장치의 제작 및 설치업체에 진출이 가능하다.특히 21세기에 유망한 정보처리 및 데이터통신 등의 직종으로 직업을 전환할 수 있는 것이 강점이다.한달 평균수입은 90만원선. 한국산업인력공단 (02)3271­9190.
  • 소설가 金周榮(이세기의 인물탐구:168)

    ◎날로 확대­심화해온 소설세계/봇짐장수 삶 그린 ‘객주’ 5년간 본지에 연재 호평/대작 ‘임꺽쩡’ 등에 비견되는 역사소설 주로 집필 180센티의 큰키에 언제나 말이 없고 진실한 이미지가 작가 金周榮의 모습이다. 그와 절친한 소설가 이문구에 의하면 그는 ‘어진 사람’‘법없이도 사는 사람’이며 ‘교통순경과 방범대원을 구별하지 못할만큼’ 아는 것은 알지만 모르는 분야는 깜깜하다. 그는 세월의 흐름과 더불어 작품세계의 확대(擴大)와 심화(深化)를 끊임없이 이룩해왔고 그러한 과정을 통해 ‘분단소설의 지평을 개척하는가하면 성장소설의 아름다움과 민중적 역사소설의 높은 봉우리를 역력(歷歷)하게 정복’해 왔다. 그리고 지금도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 소리가 메아리져 돌아오는 생의(生意)의 소설’을 쓰고 있다. ○분단소설 지평 개척 그의 초기소설은 주로 ‘상경한 촌놈이 겪는 도시의 세상물정’이 주류를 이룬다. ‘멀쩡하던 사람들이 타관의 물을 먹고나면 진솔하고 소박한 모습은 간데없이 사라지고 이해타산과 세파에 시달려 속된 인간으로 변모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나머지 이를 풍자하고 비판하는 시각을 지켰다. 이러한 풍자는 단편소설에서는 ‘경쾌한 속도감, 재치의 반전으로 소설적 재미를 가속화시키는 반면 촌철살인(寸鐵殺人)의 구성의 묘(妙)로써 문학적 향기’를 뿜어내고 장편소설에서는 ‘걸쭉한 입담과 해박한 풍물묘사에 의존한 특유의 지구력으로 수준높은 세태풍속’을 그려나간다.그중에서도 그가 유년의 시골장터에서 목격한 봇짐장수들의 고달프고 강인한 삶을 그린 ‘객주(客主)’는 79년부터 5년간 서울신문에 연재되어 근현대 역사소설의 빛나는 업적들인 ‘임꺽정’과 ‘장길산’ 등에 비견되기도 한다. 그 무렵의 그는 녹음기와 카메라를 갖춘 취재가방을 둘러메고 장이 서는곳마다 찾아다니면서 현장에서 채집한 언어들로 문학적 생동감을 소설속에 되살려내고 있다. 그와 한평생을 어울려 지낸 소설가 이문구는 김주영이 소설을 쓰기 위해 깨알같이 메모해둔 노트를 보고 ‘이것은 피다.이것은 피를 흘리는 김주영의 모세혈관(毛細血管)’이라고 쓴적이 있다.그의 문학생활에서 가장 센세이셔널한 사건은 89년의 ‘절필선언’을 들수 있다. 정상을 달리던 한 중견작가가 갑자기 ‘절필’을 선언하고 일간신문연재를 중단해버리자 문단은 온통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때 평론가 정현기와의 한 대담에서 그는 지금까지의 자신의 소설을 돌아볼때 ‘동어반복(同語反復)이 너무 심하다는 것’, 근 10년동안 줄기차게 신문연재에 매달리다보니 자신도 모르게 ‘상업적 측면에 침식되어가고 있다’는 경각심과 신문소설이 요구하는 반문학적 요소들이 ‘자신의 문학적 성채(城砦)를 집요하게 공격하여’ 마침내 절박감에 다다를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고백하고 있다. ○상업성 우려 89년 절필 ‘나에게 가장 무서운 것은 내자신에게 가하는 나의 검증’이며 ‘비평가들의 비판이나 상찬이나 독자의 갈채도 나는 두렵지 않았다’고 했다. ‘오랜 글쓰기의 경험으로 독자를 교묘하게 속일수 있다손 치더라도, 그러나 도대체 그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원고료와 인세가 나의 생활인가. 그렇지 않다. 그렇지 않아야한다. 그럴수는 없다’는 절규가 그것이다. 그의 이러한 선언은 문학하는 이들의 양심에 칼날이 되어 타성적인 문학행위에 충격을 가하는 계기가 되었고 ‘껑충한 허우대와 맑고 박(撲)한 성정, 씩씩한 소년티를 벗지못한 소탈한 모습’에서 ‘눈크고 키큰 용량만큼이나 외로운 자기자신을 가누기 힘들어하는 천부적 질박함이 그의 문학적 원형질’임을 실감할수 있게 했다. 그는 경북 청송군 진보면의 배고프고 외진 마을에서 태어났다. 군청에 다니던 金海允씨의 2남1녀중 장남. 가난과 더불어 ‘말문이 트이기 시작하면서’ 혹독한 굶주림에 시달려왔고 ‘이틀돌이’로 품앗이를 다니는 어머니를 동구밖에서 기다리는 핍색(逼塞)의 어린시절을 보냈다. 그의 청소년기는 ‘길가의 잡초’였고 ‘시’를 쓰고 싶다는 강렬한 열망을 간직한채 16살때 대구로 와서 ‘풍찬노숙(風餐露宿)’을 일삼으며 대구 농림고를 졸업, 다시 서울에 올라와 친구집에 기식한채 서라벌예대에 입학하자 서정주 박목월등 기라성같은 스승들을 만나면서 비로소 문학의 앞길에 서조(瑞兆)가 비치는 듯했다.그러나 박목월씨로부터 ‘시보다는 소설’을 쓸것을 권유받았고 이후10년간은 연고지가 아닌 안동에 내려가 엽연초생산조합에 취직하고 있었다.가족은 고향에서 유년기를 함께 보낸 부인 金震得씨와의 사이에 3남2녀. ○단편 ‘휴면기’로 등단 조직이란 사회에 일단 자신을 내던지게 되면 ‘그들과 비슷한 모습으로 살아가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에서 그는 ‘중뿔나게 아는체도 고독한체도 하지 않았고 무사하게 살아남기 위해 대세를 따르는 가운데 날이 갈수록 가슴에 응어리가 쌓이는 바람에 자기자신을 술자리로 데리고 갈수밖에 없었다’고 술회한다. 이 시기에 겪었던 정신적 고통과 자기학대는 결국 ‘문학에 대한 끊이지않는 욕구’때문이며 회사를 그만두고 71년, 단편 ‘휴면기(休眠期)’로 문단에 등단하자 ‘숨결이 야무지게 살아있는 언어’‘호흡을 흐트러뜨리지 않고 일정한 밀도를 유지하는 문장력’으로 주변의 시선을 끌기 시작했다. 취미는 낚시에다 절륜의 술실력. 노래판이 벌어지면 ‘개화창가에서 신구잡가, 신체유행가’를 거침없이 노래부르고 재담 농담에도 능하다. 그는 전9권에서 5권의 역사소설전집만을 주로 내다가 최근 한 10년만에 한권짜리 장편소설인 ‘홍어’를 출간했다. 이 소설은 ‘중견작가의 빛나는 감수성으로 눈이 시릴 정도의 박꽃같은 순백한 사랑을 순정미학(純正美學)의 진수(眞髓)로 그려낸다’고 평가된다. 인생의 긴 도정을 지나 그는 그의 삶의 결핍된 부분들을 인간적 정서와 무르익은 인간미로 채우는 시기다. 결국 그의 문학은 우여곡절을 지나 정상에 오르게 되었고 문학에 대한 심한 갈등과 의혹과 고뇌를 되풀이하는 어쩔수없는 작가의 자세를 지킨다. 그는 처음에도 정직하게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더니 오늘도 여일하게 진실한, 이 시대 ‘대기거영(大器巨影)’의 얼굴이다. □연보 ▲1972년 소설 ‘휴면기(休眠期)’(월간문학)로 등단 ▲1976년 경향신문에 첫장편소설 ‘목마위의 여자’ 연재 ▲1979년부터 서울신문에 ‘객주(客主)’연재 ▲1983년부터 중앙일보에 ‘활빈도(活貧盜)’ 연재 ▲1988년 한국일보에 ‘화척(禾尺) 7년 계약, ‘중국기행’연재 ▲1991년 동아일보에 ‘야정(野丁)’ 연재 ▲1995년 서울신문에 아프리카기행 연재 장편소설 ‘객주’ 전9권 (81년 창작과 비평사) ‘아들의 겨울’(82년 전예원) ‘천둥소리’(86년 민음사) ‘활빈도’ 전3권(87년 중앙일보사) ‘고기잡이는 갈대를 꺾지 않는다’(88년 민음사) ‘외설 춘향전’(94년민음사) ‘화척’ 전5권 (95년 문이당) ‘야정’ 전5권(96년 문학과 지성사) ‘홍어’(98년 문이당)출간, 단편집 ‘겨울새’(83년 민음사) ‘새를 찾아서’(87년 도서출판 나남)등 소설문학상(82년) 유주현문학상(84년) 대한민국문화예술상(93년) 이산문학상(96년)
  • 北아일랜드 평화 불안한 출발

    ◎신·구교 강경파 “분리장벽 추가 설치” 【벨파스트 AFP 연합】 북아일랜드 평화협정서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신구교 양쪽의 강경파들은 벨파스트의 신교지구와 구교지구를 분리시키는 새로운 장벽을 세울 것을 계획하고 있어 양측의 화해가 결코 쉽지 않을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정치가들은 역사적인 평화협정을 체결했지만 구교도들에 대한 증오에 차 있는 신교도 주민들은 구교도 거주지역과의 사이에 높은 장벽을 세우는 일에 골몰하고 있다. 현재 구교도 거주지역과의 사이에 존재하고 있는 나무 울타리는 며칠 내로 높이 3m,길이 400m의 견고한 장벽으로 대체될 예정인데,이 장벽은 두 적대적인 사회간의 평화를 지켜줄 “평화선”이라는 것이 장벽을 짓는 명분이다. 런던측이 평화협정에 고무돼 북아일랜드에 분파주의를 종식시킬 것을 호소하고 있는 시점에서 새로운 장벽을 세운다는 계획은 양측간 증오의 정도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미 북아일랜드의 수도인 벨파스트에는 이같은 장벽들이 15개나 존재하고 있으며 이것들은 지난 30년간의 갈등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상징물이 됐다.
  • 대중가극의 성공예감/崔秉烈 기자(객석에서)

    ◎새 연극실험 ‘눈물의 여왕’ 관객 반응 좋아 대중가극의 성공예감-.27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무대에 오른 대중가극 ‘눈물의 여왕’에 대한 관객들의 반응이 좋다.초반 도입부의 늘어지는 듯한 전개때 다소 지루한 반응을 보이던 객석의 분위기는 점차 스토리 전개의 템포가 빨라지고 귀에 익은 옛노래가 흐르면서 생기를 회복,극의 대단원과 함께 열렬한 커튼콜로 이어졌다. ‘눈물의 여왕’은 연출을 맡은 이윤택의 새로운 연극실험이라는 점에서 공연전 연극계의 관심이 컸다.이윤택이 누구인가.‘문화 게릴라’ 또는 ‘문화 테러리스트’란 별명이 말해주듯 기존의 연극틀 및 풍토에의 저항과 부정이 특기인데 그런 그가 대중주의 연극을 부르짖으며 내놓은 예고편이 바로이 작품이다. 연출자 스스로 밝히고 있듯 ‘눈물의 여왕’은 크게 두 가지를 실험한다.하나는 대중과 예술의 결합이고 다른 하나는 대중가극이라는 새로운 공연양식을 창조,일반장르로 자리매김하는 일이다.특히 대중가극의 창조는 악극붐 속에서 악극을 비판하되 그러면서도 악극적인 새 모델을 찾는 작업이라 할수 있다.아직은 공연이 초반이지만 ‘눈물의 여왕’은 이 두 가지 실험에서 성공할 것 같다. 작품의 기본소재는 옛 가극배우 전옥의 인생스토리와 30∼50년대를 풍미했던 유행가들로 기존 악극의 소재와 크게 다르지 않다.하지만 이를 과감하게 단순 소품으로 삼으면서 분단의 남과 북,이데올로기와 사랑,전쟁과 예술 등 대립적 주제들을 중심축으로 부각시켜 회고적 취향의 악극과는 확연한 차별화를 이루고 있다. 또한 주제는 무겁고 장중하지만 탄탄한 짜임새와 다양한 음악 및 볼거리로 이를 극복하고 있다.현실과 극을 넘나드는 극중극의 형태이되 난해하지 않고 옛날의 유행가,군가,민요풍에다 클래식까지 망라된 진폭큰 음악들도 극의 전개와 매끄러운 조화를 이루고 있다.여기에 현실과 극중의 전옥역을 맡은 이혜영과 전도연의 대비되는 연기,황금심과 전옥딸역의 이윤표·임선애의 옛날가수 뺨치는 노래솜씨,중견배우 신구의 선굵은 연기력 등이 관객들에게 볼거리의 재미를 안겨주었다. 무엇보다 악극처럼 노·장년층이 관객의 다수를 차지했지만 정작 이들보다는 이들을 모시고 온 30∼40대 자식들이 진한 감동과 재미를 느끼고 있다는 점에서 악극을 초월한 대중가극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고 할수 있다. 그러나 일부 코믹함을 강조한 부분에서는 부자연스러움이 느껴지고 치열한 이데올로기의 충돌상황 끝에 주인공 신정하의 돌발적 자살만으로 종결되도록 한 종막처리는 아쉬움을 던져준다.
  • 중고생 12%/“외제 청바지 구입”

    ◎청소년개발연 ‘IMF와 용돈실태’ 조사/용돈 줄었지만 구매 욕구 높아/‘본인의 현금카드 있다’ 38%나 우리나라 청소년들은 1인 평균 필기구 3.48개,청바지 1.4벌,신발 1.03켤레씩 외제를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IMF이후 용돈규모와 백화점을 찾는 빈도는 줄었지만 98년도에도 10%이상이 외제 옷이나 장신구를 샀다. 이는 한국청소년개발원(원장 金思興)이 올 3월6∼16일 서울 남녀 중고생 75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IMF체제 관련 생활변화와 소비 및 용돈실태’ 설문조사 결과. 이에 따르면 98년 2월 학생들의 평균 용돈은 2만6천600원으로 97년 상반기 월평균 2만8천400원보다 줄었고 백화점과 재래시장 이용률은 25% 대 23%로 97년 10월 IMF이전 조사때의 44.2% 대 2.7%와 견줘 간격이 크게 좁아졌다.하지만 학생 12%가 98년 10만원 상당의 외제 청바지를,15%가 5만원 상당의 외제 배낭가방을,1.9%가 10만원 상당의 외제 선글라스,7,3%가 5만원 상당의 외제향수를 샀다고 응답,IMF 한파에도 청소년들의 구매욕구는 상당히 높았다.▲부모님을 속여 돈을타내 사고 싶은 것을 샀다(28%) ▲자기 현금카드가 있다(38%)는 응답률도 높았다.
  • 배우 전옥의 삶·예술 부활/‘눈물의 여왕’ 27일부터 공연

    ◎한국 무대공연사의 전설 ‘눈물의 여왕’ 전옥­.1911년 함흥 출생.코흘리개때도 군것질값보다는 극장비를 달라고 떼를 썼을 만큼 무대를 동경했던 소녀.팔푼이한테 시집가는게 싫어 열다섯에 도망하다시피 서울로 올라와 배우가 됐고 나중 백조가극단을 만들어 이땅에 가극바람을 일으키며 한시절 무대를 주름잡았던 해방 전후사의 대표적인 광대. 일단 무대에만 서면 하늘도,땅도 울렸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 ‘눈물의 여왕’.북한 최고의 인민배우 강홍식의 아내였다가 남한 공연예술의 기수 최일의 아내가 돼야 했고 전쟁 뒤에는 영화의 그늘에 가려 마음으로만 무대를 꿈꾸다 74년 58살의 젊은 나이로 쓸쓸히 삶을 마감한 시대와 이데올로기의 희생자. 이제는 한국 무대공연사에서 전설이 돼버린 전옥이 그의 시대와 삶,예술과 함께 다시 부활한다.부활의 무대는 삼성영상사업단이 27일부터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하는 ‘눈물의 여왕’.한동안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한국화에 주력해온 삼성영상사업단이 그동안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방향을 틀어 해외 수출용으로 제작하는 첫 창작품이다.아울러 대본과 연출을 맡은 이윤택이 ‘대중주의를 통한 연극의 부흥’을 목표로 대중가극이라는 새로운 장르 개척에 도전하는 시험무대이기도 하다. 작품의 배경은 이땅에서 이데올로기가 가장 치열하게 충돌했던 6·25전쟁.이데올로기의 대립 속에서 전옥과 그가 이끌던 백조가극단이 겪게 되는 시련과 애환,그리고 그 속에서 피어나는 숙명적 사랑과 비극이 중심줄거리를 이루어 대사와 독백,노래와 음악으로 펼쳐지는 대중가극이다. 주인공 전옥과 토벌대장 차일혁총경,빨치산의 거두 이현상을 비롯해 배삼룡·허장강·고복수·황금심 등 유명 실존인물들이 많이 등장하며 배역 역시 이혜영(전옥)·조민기(차일혁)·전도연(신정하)·이현상(신구) 등 호화 캐스팅이다.특히 전옥의 실제 수양딸 원희옥이 직접 출연,어린 시절의 자신을 연기하는 임선애와 신·구 노래대결을 벌인다.4월12일까지.278­44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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