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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난한 사랑 노래’ 쓴 민중시인, 하늘로 떠나다

    ‘가난한 사랑 노래’ 쓴 민중시인, 하늘로 떠나다

    민중 곁 몸소 느낀 점 詩로 표상농민 삶 천착 ‘농무’ 민중詩 상징서울신문 신춘문예 심사위원도도종환 “우리 詩 아버지 같은 분”대한민국 문인장으로 장례 치러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 돌아서는 내 등 뒤에 터지던 네 울음. /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시 ‘가난한 사랑 노래’ 중에서) 민중의 삶과 애환을 노래하며 때로는 그들을 둘러싼 엄혹한 현실에 처절히 분노하기도 했던 민중시인 신경림이 22일 타계했다. 88세. 문학계에 따르면 암으로 투병하던 신경림은 이날 경기 고양시 국립암센터에서 숨을 거뒀다. 한국 현대시단에 끼친 영향력과 높은 위상을 고려해 시인의 장례는 주요 문인단체들이 함께하는 대한민국 문인장으로 치러진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이다. 1936년 충북 충주에서 태어난 시인은 1956년 문예지 ‘문학예술’에 시 ‘갈대’, ‘묘비’ 등이 추천되며 등단했다. 그러나 이후 10여년간 시인으로 활동하지 않으며 강원도, 충청도 등지를 떠돌았다고 한다. 그러다 1965년 ‘겨울밤’ 이후 1971년 계간 ‘창작과 비평’ 가을호에 ‘농무’와 ‘전야’ 등을 발표하며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그의 첫 시집 ‘농무’는 원래 1973년 ‘월간문학사’에서 간행됐다. 월간문학사는 소설가 이문구가 일하던 잡지 ‘월간문학’의 이름을 빌려준 곳으로 제대로 된 출판사라고 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러다 이 시집이 문단 내 폭발적인 반향을 낳았고 1974년 창비가 제정한 만해문학상의 첫 번째 수상작으로도 선정된다. 이후 1975년 ‘창비시선’ 1번으로 재발행됐다. 고달픈 농민의 삶에 천착한 ‘농무’는 1970년대를 수놓았던 민중시의 상징과도 같은 작품이다. 창비는 최근 창비시선 500번 출간을 기념한 특별 시선집 ‘한 사람의 노래가 온 거리에 노래를’을 냈는데 이 제목도 ‘농무’에 수록된 시 ‘그 여름’에서 따온 것이다. 특히 그의 시는 서구적 주체의 관점에서 민중을 계몽해야 할 대상으로 보지 않았다. 시인이 직접 민중의 곁에서 그들을 체험하며 몸소 느낀 걸 시로 표상했다는 점에서 독특한 미학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시인이자 문학평론가로 활동했던 그의 평론 ‘문학과 민중’은 이런 신경림의 시학을 잘 드러내 주는 글이다. 1991~2002년 중학교 교과서에 실렸던 그의 시 ‘가난한 사랑 노래’(1988)는 섬세한 묘사와 절제된 언어로 여전히 애송되는 명시다. 또 ‘목계장터’, ‘겨울밤’, ‘낙타’ 등의 시가 잘 알려져 있다. 수필도 썼던 그는 문학인으로서 자신의 삶을 일별한 ‘못난 놈들은 얼굴만 봐도 흥겹다’, 동시대 시인들을 집중적으로 조명했던 ‘시인을 찾아서’(1·2권) 등의 책으로도 사랑받았다. 동국대 영문과를 졸업한 그는 동국대 국문과 석좌교수로도 있었다.그는 특히 200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심사위원을 맡는 등 젊은 문인들을 발굴하는 데도 앞장섰다. 시인은 또 2017년 서울신문 창간 113주년 기념 서울 광화문 프레스센터 앞에서 열린 ‘한여름 밤 광화문 시 낭독회’에서 자작시 ‘정릉동 동방주택에서 길음시장까지’를 낭송하며 시민들과 호흡하기도 했다. 신경림의 주선으로 첫 시집을 창비에서 내게 됐다는 후배 시인 도종환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우리 시의 아버지 같은 분으로 그가 없는 한국 문단을 생각하면 마음이 먹먹하다”며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 못난 사람 편에 서서 가장 따뜻한 시를 써 주셨던 분”이라고 애도했다. 유족으로는 아들 병진·병규씨와 딸 옥진씨 등이 있으며 발인은 25일 오전 5시 30분, 장지는 충북 충주시 노은면 연하리. (02)2072-2010.
  •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민중시인 신경림 타계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민중시인 신경림 타계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 돌아서는 내 등 뒤에 터지던 네 울음. /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시 ‘가난한 사랑 노래’ 중에서) 민중의 삶과 애환을 노래하며 때로는 그들을 둘러싼 엄혹한 현실에 처절히 분노하기도 했던 민중시인 신경림이 22일 타계했다. 88세. 문학계에 따르면 암으로 투병하던 신경림은 경기 고양에 있는 국립암센터에서 이날 오전 숨을 거뒀다. 한국 현대시단에 끼친 영향력과 높은 위상을 고려해 시인의 장례는 주요 문인단체들이 함께하는 대한민국 문인장으로 치러진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이다. 1936년 충북 충주에서 태어난 시인은 1956년 문예지 ‘문학예술’에 시 ‘갈대’, ‘묘비’ 등이 추천되며 등단했다. 그러나 이후 10여년간 시인으로 활동하지 않으며 강원도, 충청도 등지를 떠돌았다고 한다. 그러다 1965년 ‘겨울 밤’ 이후 1971년 계간 ‘창작과 비평’ 가을호에 ‘농무’와 ‘전야’ 등을 발표하며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그의 첫 시집 ‘농무’는 원래 1973년 ‘월간문학사’에서 간행됐다. 월간문학사는 소설가 이문구가 일하던 잡지 ‘월간문학’의 이름을 빌려준 곳으로 제대로 된 출판사라고 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러다 이 시집이 문단 내 폭발적인 반향을 낳았고 1974년 창비가 제정한 만해문학상의 첫 번째 수상작으로도 선정된다. 이후 1975년 ‘창비시선’ 1번으로 재발행됐다. 고달픈 농민의 삶에 천착한 ‘농무’는 1970년대를 수놓았던 민중시의 상징과도 같은 작품이다. 창비는 최근 창비시선 500번 출간을 기념한 특별 시선집 ‘한 사람의 노래가 온 거리에 노래를’을 냈는데, 이 제목도 ‘농무’에 수록된 시 ‘그 여름’에서 따온 것이다. 특히 그의 시는 서구적 주체의 관점에서 민중을 계몽해야 할 대상으로 보지 않았다. 시인이 직접 민중의 곁에서 그들을 체험하며 몸소 느낀 걸 시로 표상했다는 점에서 독특한 미학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시인이면서 동시에 문학평론가로도 활동했던 그의 평론 ‘문학과 민중’은 이런 신경림의 시학을 잘 드러내 주는 글이기도 하다. 1991년부터 2002년까지 중학교 교과서에도 실렸던 그의 시 ‘가난한 사랑 노래’(1988)는 섬세한 묘사와 절제된 언어로 여전히 애송되고 있는 명시다. 이 외에도 ‘목계장터’, ‘겨울밤’, ‘낙타’ 등의 시가 잘 알려져 있다. 수필가로도 활동했던 신경림은 문학인으로서 자신의 삶을 일별한 ‘못난 놈들은 얼굴만 봐도 흥겹다’, 동시대 시인들을 집중적으로 조명했던 ‘시인을 찾아서’(1·2권) 등의 책으로도 사랑받았다. 동국대 영문과를 졸업한 시인은 동국대 국문과 석좌교수로도 있었다. 200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심사위원 등 젊은 문인들을 발굴하는 데도 앞장섰다. 신경림의 주선으로 첫 시집을 창비에서 내게 된 인연이 있다는 후배 시인 도종환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이날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우리 시의 아버지 같은 분으로 그가 없는 한국 문단을 생각하면 마음이 먹먹하다”면서 “가난한 사람, 소외된 사람, 못난 사람 편에 서서 가장 따뜻한 시를 써주셨던 분”이라고 애도했다.
  • ‘가난한 사랑노래’ ‘농무’ 신경림 시인 별세

    ‘가난한 사랑노래’ ‘농무’ 신경림 시인 별세

    ‘가난한 사랑 노래’, ‘농무’ 등의 명시를 쓴 신경림 시인이 22일 오전 8시 17분쯤 별세했다. 88세. 문단 관계자들에 따르면 암으로 투병하던 신 시인은 이날 오전 일산 국립암센터에서 숨을 거뒀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질 예정이다. 1936년 충북 충주 출생인 고인은 동국대 영문과 재학 중 문예지 ‘문학예술’에 ‘갈대’, ‘낮달’ 등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데뷔했다. 시집은 ‘농무(農舞)’, ‘새재’, ‘가난한 사랑노래’, ‘어머니와 할머니의 실루엣’, ‘낙타’ 등이 있다. 만해문학상, 단재문학상, 대산문학상, 호암상(예술부문), 4·19문화상 등을 수상했고, 한국작가회의 이사장, 민족예술인총연합 의장 등을 역임했다.
  • 반세기 자유·전위의 반복… 켜켜이 담은 詩의 목소리

    반세기 자유·전위의 반복… 켜켜이 담은 詩의 목소리

    문지시인선표지의 프레임·컷·색깔 유명1호는 황동규 ‘나는 바퀴를…’기형도 ‘입 속의 검은 잎’ 94쇄창비시선1호는 1975년 신경림 ‘농무’최영미 ‘서른, 잔치는 끝났다’출간 1년간 50만부이상 팔려 한국 현대시의 흐름을 한마디로 정의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엄혹한 현실에서 자유를 위해 투쟁하면서도 예술의 변방에서 끝없는 전위와 혁신을 거듭해야 했기 때문이다. 반세기 가까이 멈추지 않고 이들을 후원했던 출판사 문학과지성사와 창비는 그 여정의 든든한 동반자다.7일 문학계에 따르면 최근 2주 사이를 두고 문학과지성사의 ‘문지시인선(詩人選)’이 600호(‘시는 나를 끌고 당신에게로 간다’·4월 3일)를, 창비의 ‘창비시선’이 500호(‘한 사람의 노래가 온 거리에 노래를’·3월 27일)를 돌파했다. 문지시인선은 시집을 낼 때마다 국내 시인선 최다 호수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첫 출간 시기는 민음사의 ‘오늘의 시인총서’(1974년)나 창비시선(1975년)보다 늦었지만 가장 활발히 시집을 펴내며 한국문학을 대표하는 시인선으로 거듭났다. 문지시인선 1호는 황동규 시인의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로 1978년 출간 이후 46년이 됐다. 한 해 평균 13권 이상의 시집을 내놓은 셈이다. 창비도 꾸준히 시인선을 펼치며 ‘500호’라는 금자탑을 쌓았다. 창비시선 1호는 신경림의 ‘농무’다. 이광호 문학과지성사 대표이사 겸 문학평론가는 “시적 자아의 측면에서 신경림은 농민을 대변해야 한다는 위치에 서 있던 반면, 황동규의 시집은 ‘나’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으로 채워져 있다”고 말했다. 문지시인선 중에서는 기형도 시인의 ‘입 속의 검은 잎’(1989년)이 가장 많은 94쇄를 찍으며 꾸준히 사랑받았다. 황지우의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1983년)가 67쇄, 최승자의 ‘이 시대의 사랑’(1981년)이 57쇄를 찍었다.문지시인선의 역사는 표지의 미학을 빼고 이야기할 수 없다. ‘시인들의 시인’으로 불리는 오규원이 디자인한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액자를 연상케 하는 사각형 틀 안에 소설가 이제하와 시인 겸 무용평론가 김영태가 그린 캐리커처를 배치한다. 2007년 김영태 시인이 작고한 뒤로는 주로 이제하 소설가가 컷을 그리고 있다. 표지의 색깔은 100호를 전후로 변해 왔다. 황토색으로 시작해 청색, 초록색, 고동색, 군청색, 자주색에서 600호부터는 청량한 개방감을 주는 하늘색이다. 시인들 사이에서는 문지시인선 디자인이 이번에 대폭 바뀔 거라는 소문이 돌기도 했으나 기존 디자인을 고수하는 쪽으로 정해졌다. 이 대표는 “표지 프레임과 컷은 비단 한 출판사의 디자인이 아니라 한국 현대시의 유산이며 젊은 세대에게도 여전히 상당한 영향을 준다는 점에서 기존의 디자인을 존중하는 쪽으로 결정했다”고 전했다.창비에서는 정호승 시인의 ‘슬픔이 기쁨에게’(1979년)가 59쇄를 기록하며 지금까지도 애송되고 있다. 최영미 시인의 ‘서른, 잔치는 끝났다’(1994년)는 출간 후 1년간 무려 50만부가 넘게 팔렸다. 최근에는 499호로 2000년생 ‘Z세대 시인’ 한재범의 ‘웃긴 게 뭔지 아세요’를 내놓으며 새로운 감각으로 독자와 호흡하고 있다. 후발주자들도 가세하며 한국 시단은 더욱 다채로워졌다. 민음사는 시인의 선집 개념인 ‘오늘의 시인총서’ 외에도 1986년 시작한 ‘민음의 시’ 시인선으로 최근 320호를 펴냈다. 문학동네도 2011년부터 ‘문학동네시인선’을 출간하며 최근 208호까지 이르렀다. 대형 출판사 외에도 ‘걷는사람 시인선’, ‘문학수첩 시인선’, ‘책만드는집 시인선’ 등 다양한 출판사가 시인선을 선보이고 있다. 한국의 시가 최근 세계 독자들의 마음에 가닿기 시작했다. 김혜순 시인의 ‘날개 환상통’이 지난달 미국에서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을 받은 것은 한국 현대시사(史)의 쾌거다. 문학과지성사에 따르면 문지시인선 시인 35명의 시집 86권이 현재 영어·독일어·프랑스어·일본어 등 세계 각국의 언어로 옮겨졌다.
  • 현실과 자유, 시적 전위 넘나들며…반세기 담아온 詩의 목소리

    현실과 자유, 시적 전위 넘나들며…반세기 담아온 詩의 목소리

    한국 현대시의 흐름을 한마디로 정의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엄혹한 현실에서 자유를 위해 투쟁하면서도 예술의 변방에서 끝없는 전위와 혁신을 거듭해야 했기 때문이다. 반세기 가까이 멈추지 않고 이들을 후원했던 출판사 문학과지성사와 창비는 그 여정의 든든한 동반자다. 7일 문학계에 따르면 최근 2주 사이를 두고 문학과지성사의 ‘문지시인선’이 600호(‘시는 나를 끌고 당신에게로 간다’·4월 3일)를, 창비의 ‘창비시선’이 500호(‘한 사람의 노래가 온 거리에 노래를’·3월 27일)를 돌파했다. 두 출판사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 서울 모처에서 각각 간담회를 열고 시인선의 흐름을 일별하며 그것의 문학적 의미를 되짚었다.문지시인선은 시집을 낼 때마다 국내 시인선 최다 호수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첫 출간 시기는 민음사의 ‘오늘의 시인총서’(1974년)나 창비시선(1975년)보다 늦었지만 가장 활발히 시집을 펴내며 한국문학을 대표하는 시인선으로 거듭났다. 문지시인선 1호는 황동규 시인의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로 1978년 출간 이후 46년이 됐다. 한 해 평균 13권 이상의 시집을 내놓은 셈이다. 속도는 다소 느렸지만, 창비도 꾸준히 시인선을 펼치며 ‘500호’라는 금자탑을 쌓았다. 창비시선 1호는 신경림의 ‘농무’다. 500호 특별시선집의 제목은 이 시집에 수록된 시 ‘그 여름’에서 따온 것이다. 2000년대 이후로는 많이 퇴색했지만, 한때는 출판사의 지향점과 해당 시선의 색깔이 비슷한 경향을 보이기도 했다. 아주 범박하게 표현하자면, 창비가 현실에 발을 디딘 채로 사회와 현실의 문제를 고민했던 반면 문학과지성사는 좀더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시에 힘을 실었다고도 하겠다. 물론 한 시인이 여러 출판사에서 시집을 내는 만큼 이런 경향에 모두 묶이는 것은 아니다. 이광호 문학과지성사 대표이사 겸 문학평론가는 “(시인선의) 정체성을 하나로 규정하는 것은 폭력적이고 어려운 것”이라면서도 “시적 자아의 측면에서 신경림은 농민을 대변해야 한다는 위치에 서 있던 반면, 황동규의 시집은 ‘나’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으로 채워져 있다”고 말했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문지시인선 중에서 가장 많은 94쇄를 찍으며 꾸준히 사랑받은 기형도 시인의 ‘입 속의 검은 잎’(1989년)에 수록된 ‘질투는 나의 힘’의 마지막 문장이다. 이 밖에도 황지우의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1983년)가 67쇄, 최승자의 ‘이 시대의 사랑’(1981년)이 57쇄, 이성복의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1980년)가 57쇄를 찍었다.창비에서는 정호승 시인의 ‘슬픔이 기쁨에게’(1979년)가 59쇄를 기록하며 시대를 뛰어넘어 지금까지도 애송되고 있다. 최영미 시인의 ‘서른, 잔치는 끝났다’(1994년)는 출간 후 1년간 무려 50만부가 넘게 팔리는 등 어마어마한 화제성으로도 주목받았다. 최근에는 499호로 2000년생 ‘Z세대 시인’ 한재범의 ‘웃긴 게 뭔지 아세요’도 내놓으며 새로운 감각으로 독자와 호흡하고 있다. 백지연 창비 부주간은 “다채롭고 젊은 감각을 담는 동시에 서정의 진화를 꾀하는 새로운 시적인 방법들로 창비시선이 풍성해지고 있다”고 짚었다.문지시인선의 역사는 표지의 미학을 빼고 이야기할 수 없다. ‘시인들의 시인’으로 불리는 오규원이 디자인한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액자를 연상케 하는 사각형 틀 안에 소설가 이제하와 시인 겸 무용평론가 김영태가 그린 캐리커처를 배치한다. 2007년 김영태 시인이 작고한 뒤로는 주로 이제하 소설가가 컷을 그리고 있다. 액자의 색깔은 100호를 전후로 변해왔다. 황토색(1~100호)으로 시작해 청색(101~199호), 초록색(200~299), 고동색(300~399), 군청색(400~499), 자주색(500~599)에서 600호부터는 청량한 개방감을 주는 하늘색이다. 600호를 앞두고 시인들 사이에서는 문지시인선 디자인이 대폭 바뀔 거라는 소문이 돌기도 했으나 기존 디자인을 고수하는 쪽으로 정해졌다. 이광호 대표는 “엄청나게 고민했고 개인적으로는 바꾸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면서도 “이 프레임과 컷은 비단 한 출판사의 디자인이 아니라 한국 현대시의 유산이며 젊은 세대에게도 여전히 상당한 영향을 주고 있다는 점에서 기존의 디자인을 존중하는 쪽으로 결정했다”고 전했다. 후발주자들도 가세하며 한국 시단은 더욱 다채로워졌다. 민음사는 기존에 시집을 낸 시인의 선집 개념인 ‘오늘의 시인총서’ 외에도 1986년 시작한 ‘민음의 시’ 시인선으로 최근 320호를 펴냈다. 문학동네도 개별 시인들의 시집을 내다가 2011년부터 ‘문학동네시인선’을 출간하며 최근 208호까지 이르렀다. 대형 출판사의 시인선 외에도 ‘걷는사람 시인선’, ‘문학수첩 시인선’, ‘책만드는집 시인선’에 지난 2월 시작한 ‘타이피스트 시인선’ 등 다양한 출판사가 시인선을 선보이며 한국 동시대 시문학에 다양한 목소리를 더하고 있다. 어떤 시는 모국어 화자가 읽어도 쉽게 독해되지 않는다. 시를 외국어로 번역하는 게 그만큼 어렵다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한국의 시가 최근 세계 독자들의 마음에 가닿기 시작했다. 문지시인선 527호인 김혜순 시인의 ‘날개 환상통’이 지난달 미국에서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을 받은 것은 한국 현대시사(史)의 쾌거다. 문학과지성사에 따르면 문지시인선 35명의 시인의 시집 86권이 현재 영어·독일어·프랑스어·일본어 등 세계 각국의 언어로 옮겨졌다. 강동호 문학평론가는 “한국 현대시가 서구의 보편성을 따라잡는 것에 주안점을 오래 뒀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지만, 2000년대 중반부터는 연구자들 사이에서 우열이나 경쟁까진 없지만 ‘콤플렉스’를 가질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구축됐다”면서 “한국어에 대한 첨예한 의식으로 시를 통해 모험적인 실험을 하려고 했던 노력이 세계적인 수준에 도달했다는 분명한 인식이 있다”고 진단했다.
  • “내 유일한 음식은 고독… 시가 품은 아픔 읽어줘 감사”

    “내 유일한 음식은 고독… 시가 품은 아픔 읽어줘 감사”

    “공초문학상이 이제야 이렇게 제게 찾아왔습니다. 여기엔 가슴 때리는 어떤 이유가 있을 듯한데, 그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제31회 공초문학상 수상자인 문정희 시인은 카랑한 목소리로 수상 소감을 전했다. 문 시인은 지난해 출간한 시집 ‘오늘은 좀 추운 사랑도 좋아’(민음사)에 수록된 시 ‘도착’으로 올해 공초문학상을 받았다. 이날 서울 광화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문 시인은 “‘시인이 먹어야 할 유일한 음식은 고독이요 시인이 마셔야 할 유일한 공기는 자유’라는 말을 즐겨 했는데, 최근 들어 ‘여기가 어디지’ 이런 말을 스스로 되묻는다”면서 “남들보다 고독하고 방랑하며 살았다고 생각했지만, 최근엔 공초에 비해 세상의 때가 많이 묻어 버렸다는 생각도 든다”고 돌아봤다. 수상작으로 ‘도착’을 선정한 것에 대해 “다른 수식어를 다 던져버리고 툭툭 던지듯이 쓴 시가 품은 작은 아픔이나 고통, 중량감 이런 걸 읽어 주신 심사위원님께 감사드린다”고 전했다. 이날 시상식에는 공초숭모회장인 이근배 시인, 최금녀 제30회 공초문학상 수상자, 유자효 한국시인협회장(27회 수상자), 민윤기 서울시인협회장 등이 참석했다. 심사위원장인 이근배 시인은 “수상작에 ‘이름도 무엇도 없는 여기에 도착했어’라는 시구가 있는데, 이 표현이 공초 선생의 ‘무의의 사상’에 접근하는 게 아닐까 싶다”고 했다. 이어 “역대 수상자 명단을 보더라도 문 시인의 수상은 다소 늦은 감이 있는데, 국제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느라 국내에선 늦은 것 아니겠느냐”고 재치 있게 표현해 박수 갈채를 받았다. 곽태헌 서울신문사 사장은 “수상작 ‘도착’은 ‘지는 것’과 ‘내던지는 것’에 대한 긍정적 고백의 언어를 투명하게 들려주는 동시에 눈물 나게 좋은 순간의 자유를 지향하는 목소리를 들려주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아름다운 마음의 풍경을 완성한 우리 시대 대표 시인께 축하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참석자들은 시상식 뒤 강북구 수유리에 있는 공초 선생 묘소를 찾아 60주기 추모제를 지냈다. 공초문학상은 한국 신시의 선구자인 오상순 시인의 문학적 업적을 기리기 위해 1992년 제정됐다. 등단 20년이 넘는 시인이 최근 1년 이내에 발간한 작품을 대상으로 한다. 신경림, 김지하, 정현종, 천양희, 신달자, 정호승, 도종환, 유안진, 나태주, 오탁번 등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시인들이 역대 수상자 명단에 올라 있다.
  • 공초문학상은

    공초문학상은

    공초(空超) 오상순은 아침에 일어나 잠자리에 들 때까지 담배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한다. 지인들은 ‘공초’라는 아호보다 ‘꽁초’라는 별호로 불렀다. 활발한 활동에도 살아생전 한 권의 시집도 내지 않았다. 결국 후배들이 사후에야 존경을 담아 시집을 만들었다. 그저 재미난 이야기와 후배들의 존경만으론 그를 예단키 어렵다. 구상 시인은 공초의 시 ‘아시아의 마지막 밤 풍경’을 평하면서 그를 “무교리의 종교가이며 사상가”로 규정했다. 한국 근대 시의 개척자인 시인은 1920년대 한국 신시운동의 선구가 된 ‘폐허’의 동인으로 참여했다. ‘허무혼의 선언’, ‘방랑의 마음’, ‘아시아의 마지막 밤 풍경’ 등 50여편의 시를 남겼다. 1926년 작품 활동을 그만두고 부산 동래 범어사에 입산해 불교와 인연을 맺었다. 불교의 공(空)을 초월하고 싶은 마음이 담긴 ‘공초’라는 호를 사용한 것도 이 무렵부터다. 혈육도 집도 없이 평생 독신으로 무욕의 삶을 살았다. 1992년 무소유를 실천한 그를 기리기 위해 공초문학상을 제정했다. 1993년 첫 수상자를 낸 공초문학상은 등단 20년차 이상의 중견 시인들이 최근 1년 이내에 발표한 작품 중에서 수상작을 고른다. 역대 수상자로 신경림, 오세영, 김지하, 고은, 정현종, 신달자, 정호승, 도종환, 나태주, 오탁번 시인 등이 있다. 올해 31회 시상식은 1일 오전 10시 30분 서울 광화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다.
  • 책을 사는 것, 읽을 시간도 사는 것…책과 사는 것, 어떻게 사느냐 결정[김언호의 서재탐험]

    책을 사는 것, 읽을 시간도 사는 것…책과 사는 것, 어떻게 사느냐 결정[김언호의 서재탐험]

    ●이른 새벽에 검찰에 연행됐다 1992년 10월 29일 새벽. 네 명의 검찰 수사관이 집으로 밀어닥쳤다. 출판인 장석주는 곧장 서울지검으로 연행돼 갔다. 연세대 마광수 교수가 이미 연행돼 와 있었다. 검찰은 마 교수가 그해 써낸 장편소설 ‘즐거운 사라’를 ‘음란물’로 규정했다. 검찰권력은 마 교수와 책을 펴낸 청하출판사 장석주 대표를 ‘음란문서 제조 및 반포’ 혐의로 몰아 그날 저녁 8시에 전격 구속했다. 두 사람은 포토라인에 세워졌고 언론들은 신나게 사진을 찍었다. 그날 밤 텔레비전 9시 뉴스는 두 문화인의 구속을 난리가 난 듯이 보도해댔다. 검찰은 작가와 출판인을 이미 6개월 전부터 수사하고 있었다. 국무총리 현승종은 “어찌 이런 야한 내용이 공공연하게 출판될 수 있느냐”면서 화를 냈다는 것이었다. 뒷날 검찰총장이 되는 김진태가 담당 검사였고, 이건개가 서울지검 검사장이었다. 두 ‘공범’은 포승줄에 묶이고 수갑을 찬 채 끌려다니다가 두 달 만에 ‘징역 8개월 집행유예 2년’으로 풀려났다. 진보적인 이념으로 민주화운동이 치열하게 전개되던 1980년대에 마 교수는 단독자로 성(性)담론을 들고 나왔다. 그는 청하출판사에서 이미 ‘상징시학’, ‘심리주의 비평의 이해’, ‘마광수 문학론집’을 펴냈다. “그는 독특한 유형의 천재였습니다. 솔직하고 유쾌한 성정의 사람이었습니다.” 검찰권력이 들이댄 문학의 잣대는 그 작가와 그 출판인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와 사건이 됐다. 마 교수는 재직하던 연세대로부터 추방당했다. 법정 싸움을 통해 해직과 복직을 반복해야 했다. 결국 2017년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심약하고 고립된 예술가에게 이 사회는 저주를 퍼부었습니다. 한 문학가를 우리 사회 전체가 공모해서 죽인 것입니다. 빈센트 반고흐의 자살도 ‘사회적 타살’이라고 하듯이, 마 선생의 죽음도 자살의 형식을 빌렸지만 우리 사회가 타살한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그를 ‘변태’라고 몰아세워 죽음에 이르게 했습니다.” 출판인 장석주에게도 ‘즐거운 사라’ 사건은 인생의 변곡점이 됐다. 그해 12월 30일 ‘석방’됐지만, 1993년 1월 3일 새해를 맞아 서귀포로 가서 한 달을 머물며 고민했다. 결국 출판을 접기로 했다. 청담동의 사옥과 대치동의 집을 팔고 출판사를 정리했다. 1억원이 남았다. 의왕시로 가서 30평형 아파트를 세 얻었다. 책 만들기 13년 만이었다. 나름 개성 있는 책들을 기획해 냈다. 베스트셀러를 여럿 펴냈다. 서정윤의 시집 ‘홀로서기’(1987)는 200만 부의 슈퍼셀러였다. 몇만 권씩 읽히는 ‘니체전집’ 10권도 여느 출판사가 펴내지 못하는 기획이었다. 장 그르니에 선집을 펴냈고 인문과학시리즈 ‘청하신서’를 펴냈다. 1979년 고려원에 입사해 3년 동안 편집자로 일하다가 1982년 청하출판사를 창립해 500종 이상을 출간했다. 책에 대한 장석주의 헌신은 개성 있는 출판사 청하의 이미지를 출판계에 각인시켰다. “출판사명 ‘청하’(淸河)는 아들의 이름이었습니다. 아들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않는 책을 만들자는 소박한 생각을 했습니다.”●정독도서관, 청소년 시절의 책 읽기 그가 펴낸 책들과 작가들이 그를 말한다. 미국 시인 실비아 플라스는 32세에 자살한다.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독일 시인 파울 첼란도 센강에 투신자살한다. 멕시코의 시인 옥타비오 파스의 ‘태양의 돌’과 프랑스의 시인 프랑시스 퐁주의 ‘사물시편’이 그의 정신의 한 내면일 것이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삶이란 무엇인가를 성찰하는 실존의 문제가 그의 가슴에 내재하고 있지 않았을까. 이 땅의 젊은이들이 온몸으로 온정신으로 책 읽고 행동하는 시대, 그 혁명적 정조(情調)의 시대에 출판인 장석주의 책 만들기는 인간의 본성탐구 그것이었을 것이다. 1955년 충남 논산의 농촌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장석주는 10세 때 가족과 함께 서울로 이사 왔다. 아버지는 가난한 목수였다. 서울에서 장석주가 만난 책의 세계는 ‘문화충격’ 그것이었다. 책은 무한의 총체였다. 학급문고와 친구들과 형들이 읽던 책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독서가 장석주의 탄생이었다. “청운중학교 시절, 친구 집에서 빌려 온 오영수 전집을 단숨에 읽고는 제 안의 노스탤지어가 폭발했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김소월의 압도적인 영향 아래 시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학원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학교 수업보다 정독도서관에서의 책 읽기가 그의 모든 것이었다. 1970년대 박정희의 권위주의 권력은 학교를 병영화시켰다. 그는 책의 세계로 도피했다. 저항의 몸짓 같은 것이었다. 정독도서관은 독서로 구현되는 피안의 세계였다. 황순원·김동리·손창섭·이제하·김승옥·이청준·박태순·이문구·박상륭·황석영·최인호 같은 한국소설가들, 고은·김종삼·김수영·김지하·황동규·신경림·김영태 같은 한국시인들, 카프카·카뮈·헤세·헤밍웨이 같은 국외 소설가들, 니체·바슐라르·사르트르·프로이트·융 같은 철학가와 사상가를 가리지 않고 읽었다. 미술사·성서고고학을 탐독했다. 노트했다. 정독도서관 시절의 이 노트들과 습작들이 1979년 신춘문예에 당선되는 시와 평론의 기초가 됐다. “저는 정독도서관에서 동과 서, 어제와 오늘의 책들을 두루 찾아 읽으면서 청년 시절을 보냈습니다. 어깨 너머로 햇빛이 쏟아져 들어오던 정독도서관 열람실에서의 책 읽기는 잊을 수 없는 세월이었습니다. 희망 없는 내일과 궁핍이 의식을 옥죄었지만, 날마다 책 읽는 것으로 그 고통을 견디어 냈습니다.” 그토록 책 읽기에 매달린 것은 책이 그를 새로운 의미의 존재로 이끄는 충만한 세계이기 때문이었다. “책은 심오한 통찰로 이루어진 위대함, 무한한 사유와 창조를 이끄는 촉매제였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자주 샛길로 빠져 엉뚱한 영역에서 헤맸지만, 그 자체가 경이로웠습니다. 그 일탈의 경험은 또 다른 사유와 무한한 형태의 창조적 진화에 이르게 하는 것이었지요. 책의 권능이었지요. 저는 독서를 즐거움의 수단으로 삼았지만, 이 즐거움이야말로 제 안의 ‘혁명’이자 ‘결단’이었습니다.” 20대 초반에 그가 읽은 다양한 문학이론서들. 프랑스의 가스통 바슐라르의 책들, 김우창과 김현의 비평서들이었다. 문학의 내재적 가치에 눈뜨고 나름의 방법론을 세웠다. 문학비평으로 가는 길이었다. 책 읽기는 그의 삶의 대안이었고, 사유의 모든 것이었다. 책 읽기로 시인이 됐고, 평론가가 됐고, 저술가가 됐다. “시와 철학은 오성(吾性)을 향하는 길에서 방법론적 차이를 가질 뿐 한 혈통입니다. 시는 상상력을, 철학은 사유를 방법론적 매개로 삼습니다. 시는 자명함을 배제함으로써 자명함에 닿고, 철학은 의미를 배제함으로써 의미에 닿습니다. 철학은 상식·대화·지혜 너머로 나아가려는 사유 속에서 뜨겁게 달아올라 빛을 내는 행위입니다.” ‘나는 읽는다, 고로 존재한다.’ 장석주에게 가장 진실한 명제일 것이다. 읽음으로써 그는 현실 속에서 실체를 구현해 내는 것이었다. 독서가 장석주! ●니체와의 만남 “제 인생 철학책은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였습니다. 저는 이 책을 읽고 또 읽었습니다. 생각하고 생각했습니다. 니체의 철학은 벼락처럼 제 머리에 꽂혔습니다. 니체의 책들이 굶주린 짐승처럼 그르렁거리는 인식욕을 채워 주는 한편 제 절박한 내적 필요에 응답했습니다. 20대 때 저는 광대의 역할을 떨치고 일어나 사자의 심장을 갖고 생활전선에 뛰어들었습니다. 니체는 제게 속삭였습니다. ‘나는 너의 미로다’라고. 저는 굶주린 자가 젖과 꿀에 탐닉하듯이 니체 철학의 정수를 정신없이 들이켜며 철학이 건네주는 황홀과 도취 속에서, 부정의 정신에서 긍정의 정신으로 돌아섰습니다. 어느 순간 삶에 얽힌 매듭들이 주르륵 풀렸습니다. 더는 삶을 버거워하며 우울감에 빠지거나 주눅들지 않았습니다.” 장석주가 그동안 읽고 모은 책들이 3만 권이 된다. 온갖 책들의 섭렵이다. 그가 소장하고 있는 시집이 물경 5000권이나 된다. 소설이 수천 권이 될 것이다. 문학이론·인문서·예술서들이 또 얼마나 될까. 이렇게 다양한 책들을, 때로는 여러 번씩 읽다 보니 100권이 더 되는 책을 저술해 냈다. 장석주는 자신을 ‘산책자’ 겸 ‘문장노동자’라고 칭한다. 사람들은 그를 ‘인문학 저술가’라고도 부른다. 책의 내용을 널리 알리고 책 읽기를 권하는 ‘독서교사’가 됐다. 세상의 친구들에게 책의 가치를, 독서의 즐거움을 알리는 작업이란, 책과 책 읽기를 사랑하고 스스로 출판해 낸 그에게는 운명 같은 일이다. 그가 북리뷰해서 써낸 책들이 열 권을 넘어서고 있다. 젊은 친구들에게 책의 가치와 즐거움을 이야기해 주는 일이야말로 그 무엇보다 행복하다. 그가 써낸 책들이 우리 현대문예사의 한 장르가 돼 가고 있다. 첫 시집 ‘햇빛사냥’으로부터 가장 최근의 시집 ‘헤어진 사람의 품에 얼굴을 묻고 울었다’ 등 18권의 시집을 냈다. 문학을 통해 본 현대한국의 사회문화사인 ‘20세기 한국문학의 탐구’(전 5권), ‘일상의 인문학’, ‘이상과 모던뽀이들’, 이광수에서 배수아까지의 작가론인 ‘나는 문학이다’, ‘풍경의 탄생: 한국시의 이미지 계보학을 위해’, 동양철학에서 우리 시를 읽는 ‘상처 입은 용들의 노래’, ‘은유의 힘’ 등이 그것이다. ‘한 완전주의자의 책읽기’가 기억에 남는 한 권의 책이다. ●생의 고비마다 책이 있었다 보르헤스는 말했다. “쟁기와 칼은 손의 확장이다. 그러나 책은 그 이상이다. 책은 기억의 확장이다”라고. 한두 권의 책이 아니라, 수많은 책들 속에서, 그 책들의 내면을 탐험하면서 그는 자신의 세계를 구축해 낸다. “살아온 인생을 되짚어 보면 항상 중요한 국면마다 책이 있었습니다. 아직 뼈가 약하고 살이 연할 때 저를 키우고 단련한 것도 책이고, 세상으로부터 외면당해 스스로 낙오자가 되어 시골로 내려와 쓸쓸한 살림을 꾸릴 때, 힘과 용기를 준 것도 책이었습니다. 평생을 책과 벗하며 살아왔으니, 제가 읽은 책들이 곧 내 우주였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제 안에 다정함이나 너그러움, 취향의 깨끗함, 투명한 미적 감수성, 올곧은 일에 늠름할 수 있는 용기가 손톱만큼이라도 있다면 그것은 모두 책에서 얻은 것입니다.” 독서가 장석주의 시 ‘대추 한 알’이 교과서에 실려 있다. 수많은 책들이 합창하면서 창출해 내는 그의 정신의 한 풍경일 것이다. “저는 늘 책을 삽니다. 책을 사들일 때 책을 읽을 시간도 함께 사는 것입니다. 책을 읽고 싶다면 서점에 나가 책을 사십시오. 그래야 비로소 책을 읽을 시간도 얻습니다. 인생은 책을 얼마나 읽었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한길사·한길책박물관 대표
  • 이천 학산빌딩 화재 희생자 빈소에 추모 발길

    이천 학산빌딩 화재 희생자 빈소에 추모 발길

    경기 이천시 관고동 학산빌딩 화재 희생자 5명의 빈소가 차려진 경기도의료원 이천병원 장례식장에는 6일 조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투석 환자들의 대피를 돕다가 희생된 열린의원 현은경(50) 간호사의 유가족들은 지친 기색으로 조문객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열린의원에서 10년 넘게 근무한 것으로 알려진 현 간호사는 이날이 친정아버지의 팔순 생일로 알려지면서 조문객들의 마음을 더 아프게 했다. 6일 대한간호협회에 따르면 전날 현 간호사를 위한 추모위원회를 구성하고, 협회 홈페이지에 환자를 끝까지 지킨 간호사의 삶을 기억하고 죽음을 애도하기 위한 온라인 추모관을 개설했다. 추모의 글은 누구나 남길 수 있다. 추모 게시판에는 “고인은 가셨지만 후배간호사들은 기억할 겁니다”, “같은 간호사로서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끝까지 환자와 함께한 의료인의 모습을 존경합니다” 등의 애도 글 수백 건이 올라와 있다. 신경림 대한간호협회 회장은 “환자에 대한 책임감과 사명감으로 최선의 간호를 펼친 고인을 위해 협회 차원에서 도울 수 있는 다각적인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말했다. 투석 치료를 받던 70대 여성 A씨는 치료 종료 40여분을 남기고 화마에 희생됐다. 거동이 불편해서 남편과 함께 병원을 찾았던 그는 투석이 끝나면 자신을 데리러 올 남편과 함께 집에 돌아갈 예정이었다. A씨의 손녀는 “할머니는 매우 친절하시고 긍정적인 분이셨다. 어제 일은 마치 해프닝 같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날 빈소에는 정·관계 인사들의 추모 발길도 이어졌다. 한덕수 총리는 “고인은 20년간 간호사로 근무하며 환자들을 가족처럼 살뜰히 챙겨온 헌신적인 분이라고 들었다”고 말한 뒤 “다른 희생자 네 분도 가족과 작별할 틈 없이 황망하게 눈을 감았다”며 애도의 뜻을 표시했다.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과 안상훈 사회수석도 이날 장례식장을 찾아 희생자들을 애도하고 유족들을 위로했다. 김 실장은 유족들에게 “윤석열 대통령이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철저한 원인 규명과 예방 조치를 해달라고 지시했다”며 “윤 대통령이 현 간호사의 살신성인 정신에 깊은 감동과 함께 안타까움을 표했다”고 전했다. 장례식장 복도에는 김동연 경기지사, 김경희 이천시장, 이기일 보건복지부 2차관 등이 보낸 많은 조기와 조화가 놓여 있다. 이번 학산빌딩 화재는 4층짜리 건물 3층 스크린골프장에서 발생했으나 짙은 연기가 바로 위층 투석 전문 병원인 열린의원으로 유입되면서 투석 치료를 받던 환자 4명과 이들을 돌보던 간호사 1명 등 5명이 미처 대피하지 못하고 숨졌다.
  • “마르던 식물이 물 만난 듯… 30년 역사 큰 상에 절망 사라져”

    “마르던 식물이 물 만난 듯… 30년 역사 큰 상에 절망 사라져”

    “공초문학상은 문인이면 누구나 받고 싶어 하는 큰 상입니다. 수상 소식을 듣고 말라 가던 식물이 물 만난 듯 싱싱해진 것처럼 시에 대한 저의 절망도 사라졌습니다.” 서울신문사가 주최하는 공초문학상의 서른 번째 주인공 최금녀(83) 시인은 특유의 쾌활한 목소리로 수상 소감을 읊었다. 2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제30회 공초문학상 시상식에서 최 시인은 “공초문학상은 공초 오상순 선생의 뜻을 기려 문학인의 사기를 드높이는 큰 상”이라며 “이 상은 제가 좀더 좋은 시를 쓸 수 있다는 용기를 줬다”고 말했다. 이날 시상식에는 최 시인의 남편 신경식 전 국회의원을 비롯해 곽태헌 서울신문 사장, 심사를 맡은 이근배 공초숭모회장과 신달자·허형만 시인, 신영균 한국영화인원로회 명예회장, 김후란 문학의집·서울 이사장, 유자효 한국시인협회장 등이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최 시인은 “늘그막에 시라고 쓰면서 상을 받는 제가 자랑스러운지 남편이 여기저기 사람을 불러 모아 너무나 송구스럽다”고 말해 좌중을 웃게 했다. 신 전 의원도 멋쩍게 머리를 만지며 함께 웃었다. 곽태헌 사장은 “최 시인은 소설로 등단했다가 60세에 다시 시로 등단했다”면서 “젊은 시인보다 열정적으로 시를 써 내려가며 8권의 시집과 2편의 시선집을 내셨다”고 소개했다. 이근배 회장은 “최 선생께서 1962년 작가가 되셨는데 그때부터 소설을 썼다면 박경리, 박완서 못지않은 대가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셨을 것”이라며 “정치하시는 어른 옆에서 현모양처로 내조하다 다시 붓을 잡으셨는데 얼마나 대단한 일이냐. 축하드린다”고 인사를 전했다. 축사를 한 신영균 회장은 “문화예술계가 참 어려운데 30년이나 공초 선생님을 기리는 문학상을 제정해 매년 이끌어 가는 서울신문사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최 시인은 “첫 시집 출판기념회에서 신 회장님이 축사를 해 주셨다”며 두 사람의 각별한 인연을 소개해 참석자들을 놀라게 했다. 참석자들은 시상식 뒤 강북구 수유리에 있는 공초 선생 묘소를 찾아 59주기 추모제를 지냈다. 등단 20년이 넘는 시인이 최근 1년 이내에 발간한 작품을 대상으로 하는 공초문학상은 한국 신시의 선구자인 오상순 시인의 문학적 업적을 기리기 위해 1992년 제정됐다. 신경림, 김지하, 정현종, 천양희, 신달자, 정호승, 도종환, 유안진, 고은, 나태주 등 당대를 대표하는 시인을 수상자로 배출했다.
  • 공초문학상은

    공초문학상은

    ‘나와 시와 담배는/ 이음동곡(異音同曲)의 삼위일체/ 나와 내 시혼은/ 곤곤히 샘솟는 연기/ 끝없는 곡선의 선율을 타고/ 영원히 푸른 하늘 품속으로/ 각각 물들어 스며든다’. 시 ‘나와 시와 담배’에서 자신과 담배를 동일시했던 시인. 그래서 ‘꽁초’라는 별호가 더 친숙한 공초(空超) 오상순(사진·吳相淳). 1920년 동인지 ‘폐허’에 ‘시대고와 그 희생’이란 글을 발표하며 문단에 입문, 50여편의 시를 통해 ‘허무’와 ‘방랑’의 시인으로 불린다. 대표작 ‘허무혼의 선언’에서 물, 구름, 흙, 바다, 별, 인간, 신을 차례로 부정하고 ‘방랑자의 마음’에서는 ‘흐름 위에 보금자리 친 나의 혼’이라고 말한다. 그의 작품은 삼라만상을 아우르는 광대한 철학으로까지 나아간다. 평생 독신으로 살던 시인은 혈육 하나, 집 한 칸 두지 않은 무욕의 삶을 살았다. 1992년 시인을 기리기 위해 공초문학상이 제정됐다. 1993년 첫 수상자로 이형기 시인을 선정한 이래 매해 등단 20년 이상 중견 시인을 대상으로 최근 1년 새 발표한 작품 중 수상작을 고른다. 역대 수상자로 신경림, 오세영, 김지하, 고은, 정현종, 신달자, 정호승, 도종환, 나태주 시인 등이 있다. 올해 30회 시상식은 2일 오후 2시 서울 광화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다.
  • [단독] 해외상 중심에 K문학… 김혜순, 10년간 최다 수상

    [단독] 해외상 중심에 K문학… 김혜순, 10년간 최다 수상

    최근 10년간 해외 주요 문학상을 가장 많이 받은 국내 작가는 김혜순 시인으로 나타났다. 2000년대 이후 해외 문학상 최다 수상자는 ‘민족 문학’을 대표해 온 고은 시인이지만, 최근 들어 해외 독자들에게 와 닿는 K문학은 한국적 특수성에서 여성주의나 삶과 죽음에 대한 성찰과 같은 보편적 주제로 옮겨 가고 있음을 보여 준다.서울신문이 23일 한국문학번역원을 통해 확인한 자료에 따르면 번역원이 공식 집계를 시작한 2003년 이후 국내 작가들은 주요 해외 문학상을 모두 35차례 받았다. 이 가운데 고은 시인이 6개, 김혜순 시인 4개, 한강·김영하 소설가가 각각 3개로 뒤를 이었다. 이 밖에 신경숙 소설가와 김이듬 시인이 각각 2개를 받았다. 오정희·이혜경·황석영·편혜영·김탁환·김애란·윤고은·손원평·박민규·이정명 소설가, 신경림·문정희·이상(사후 수상) 시인, 김금숙·마영신 만화가 등도 해외 수상의 주인공이 됐다.2012년 이후인 최근 10년 내로 범위를 좁히면 김혜순(4개), 한강·김영하(3개), 고은(2개) 순이다. 해외 수상 집계는 개별 작품이나 작가 개인에게 수여한 상을 모두 포함한 수치다. 고은 시인은 시카다상(2006·스웨덴), 북캘리포니아 문학상 번역 부문(2007·미국), 그리핀 시 문학상 평생공로상(2008·캐나다), 아메리칸어워드(2011·미국), 스트루가 국제 시 축제 황금화관상(2014·마케도니아), 로마재단 국제시인상(2017·이탈리아) 등을 받았다. 김혜순 시인은 시집 ‘당신의 첫’과 ‘죽음의 자서전’으로 미국 루시엔 스트릭 번역상을 두 차례(2012·2019) 받았다. 2019년엔 ‘죽음의 자서전’으로 그리핀 시문학상 국제부문(캐나다)을 수상했고, 지난해엔 시카다상의 영예를 안았다.한강 작가는 소설 ‘채식주의자’로 2016년 영국 부커상 국제부문과 2018년 스페인 산 클레멘테 문학상을 수상했고, 2017년에는 ‘소년이 온다’로 이탈리아 말라파르테상을 받았다. 김영하 작가는 추리소설 ‘살인자의 기 억법’으로 2020년 독일 추리문학상 국제부문과 독일 독립출판사 문학상, 일본번역대상(2018)을 수상했다. 2010년대 이후 수상이 집중된 김혜순 시인과 한강·김영하 소설가, 김이듬 시인 등에게 문학계의 관심이 쏠린다. 고은 시인에 대한 해외 평가가 민주화 운동 이력과 분단 등 한국적 특수성에 방점이 찍혀 있었다면, 김혜순 시인은 여성적 존재에 대한 탐색과 죽음의 아픔 같은 보편적인 주제로 해외 독자들의 공감을 일으켰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강 작가는 시적 문체와 예민한 여성작가의 시선, 트라우마에 대한 공감 능력이 돋보인다.우찬제 서강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김혜순 시인의 여성주의와 동물과의 상생 등 보편적 감수성은 전 지구적 관심의 문제”라며 “한강·김영하 소설의 캐릭터들도 외국 독자들에게도 스며들어 문화적 국경이 허물어지는 21세기에 호소력을 얻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경수 중앙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도 “예전 한국 문학에서 이념적 지향성이 앞서 있었다면 최근엔 젊은 작가들을 중심으로 페미니즘, 퀴어, 기후위기 등 지구인으로서의 다양한 문제의식이 발현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 [단독]10년간 해외문학상 최다 수상 작가는 김혜순…민족에서 보편으로 K문학 중심 이동

    [단독]10년간 해외문학상 최다 수상 작가는 김혜순…민족에서 보편으로 K문학 중심 이동

    최근 10년간 해외 주요 문학상을 가장 많이 받은 국내 작가는 김혜순 시인으로 나타났다. 2000년대 이후 해외 문학상 최다 수상자는 ‘민족 문학’을 대표해 온 고은 시인이지만, 최근 들어 해외 독자들에게 와 닿는 K문학은 한국적 특수성에서 여성주의나 삶과 죽음에 대한 성찰과 같은 보편적 주제로 옮겨 가고 있음을 보여 준다. 서울신문이 23일 한국문학번역원을 통해 확인한 자료에 따르면 번역원이 공식 집계를 시작한 2003년 이후 국내 작가들은 주요 해외 문학상을 모두 35차례 받았다. 이 가운데 고은 시인이 6개, 김혜순 시인 4개, 한강·김영하 소설가가 각각 3개로 뒤를 이었다. 이 밖에 신경숙 소설가와 김이듬 시인이 각각 2개를 받았다. 오정희·이혜경·황석영·편혜영·김탁환·김애란·윤고은·손원평·박민규·이정명 소설가, 신경림·문정희·이상(사후 수상) 시인, 김금숙·마영신 만화가 등도 해외 수상의 주인공이 됐다. 2012년 이후인 최근 10년 내로 범위를 좁히면 김혜순(4개), 한강·김영하(3개), 고은(2개) 순이다. 해외 수상 집계는 개별 작품이나 작가 개인에게 수여한 상을 모두 포함한 수치다.고은 시인은 시카다상(2006·스웨덴), 북캘리포니아 문학상 번역 부문(2007·미국), 그리핀 시 문학상 평생공로상(2008·캐나다), 아메리칸어워드(2011·미국), 스트루가 국제 시 축제 황금화관상(2014·마케도니아), 로마재단 국제시인상(2017·이탈리아) 등을 받았다. 김혜순 시인은 시집 ‘당신의 첫’과 ‘죽음의 자서전’으로 미국 루시엔 스트릭 번역상을 두 차례(2012·2019) 받았다. 2019년엔 ‘죽음의 자서전’으로 그리핀 시문학상 국제부문(캐나다)을 수상했고, 지난해엔 시카다상의 영예를 안았다.한강 작가는 소설 ‘채식주의자’로 2016년 영국 부커상 국제부문과 2018년 스페인 산 클레멘테 문학상을 수상했고, 2017년에는 ‘소년이 온다’로 이탈리아 말라파르테상을 받았다. 김영하 작가는 추리소설 ‘살인자의 기억법’으로 2020년 독일 추리문학상 국제부문과 독일 독립출판사 문학상, 일본번역대상(2018)을 수상했다.2010년대 이후 수상이 집중된 김혜순 시인과 한강·김영하 소설가, 김이듬 시인 등에게 문학계의 관심이 쏠린다. 고은 시인에 대한 해외 평가가 민주화 운동 이력과 분단 등 한국적 특수성에 방점이 찍혀 있었다면, 김혜순 시인은 여성적 존재에 대한 탐색과 죽음의 아픔 같은 보편적인 주제로 해외 독자들의 공감을 일으켰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강 작가는 시적 문체와 예민한 여성작가의 시선, 트라우마에 대한 공감 능력이 돋보인다.우찬제 서강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김혜순 시인의 여성주의와 동물과의 상생 등 보편적 감수성은 전 지구적 관심의 문제”라며 “한강·김영하 소설의 캐릭터들도 외국 독자들에게도 스며들어 문화적 국경이 허물어지는 21세기에 호소력을 얻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경수 중앙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도 “예전 한국 문학에서 이념적 지향성이 앞서 있었다면 최근엔 젊은 작가들을 중심으로 페미니즘, 퀴어, 기후위기 등 지구인으로서의 다양한 문제의식이 발현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 간협, 신속한 간호법 제정 촉구

    대한간호협회가 신속한 간호법 제정을 촉구했다. 신경림 간협 회장은 7일 국회의원회관 제1소회의실에서 열린 간호법 제정 촉구 토론회 인사말에서 “진료와 치료를 지원하고 노인과 장애인 등에 요구되는 간호와 돌봄 제공 체계를 법제화하기 위해 간호법이 필요하다”면서 “ 간호법은 간호사의 이익이 아니라 국민 건강 증진과 환자 안전을 위해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동안 간호계에서는 간호사의 전문성을 고려해 의료법과 독립된 간호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요구해왔다. 현재 간호사는 의사와 치과의사, 한의사 등과 함께 의료인으로 분류돼 의료법 적용을 받고 있다. 간호법의 주된 내용은 ▲간호사 업무 범위 명확화 ▲간호종합계획 수립과 실태조사 실시 ▲환자 안전을 위한 적정 간호사 확보와 배치 ▲처우 개선 기본지침 제정 및 재원 확보방안 마련 ▲간호사 인권 침해 방지 조사 및 교육 의무 부과 등이다. 간호계의 요구를 반영한 간호법 제정안이 지난해 11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소위에 올랐으나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보류된 상태다. 정재수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실장은 “인구 고령화로 만성질환자가 증가하면서 간호 인력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고 있지만, 숙련도 높은 간호인력이 여전히 부족하다”며 “간호인력 문제 해결을 위한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계획 수립이 절실한 상황에서 간호법이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봤다.
  • 이재명 “전 부족한 사람…귀를 키우고 입은 줄이겠다”

    이재명 “전 부족한 사람…귀를 키우고 입은 줄이겠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는 31일 “가난하고 비통한, 차별받는 이들 곁을 반드시 지키겠다”고 밝혔다. 이 후보는 이날 페이스북에 ‘한없이 죄송하고, 늘 감사합니다’라는 제목으로 올린 글에서 “포기할 것이 산적한 ‘차가운 나라’이 아니라, 함께 잘사는 ‘따뜻한 나라’를 만들겠다”며 이렇게 말했다. 이 후보는 “저는 부족한 사람”이라고 운을 뗀 뒤 “특히 제 개인문제에 대해 염려해주시는 분들을 만나 뵈면 더없이 송구하다”고 말했다. 이어 “저로 인해 번번이 마음 졸이신 분들, 그럼에도 믿고 감싸고 응원해주신 분들, 때로는 따끔한 질책을 아끼지 않으시는 분들(에게) 늘 감사하다”고 전했다. 이 후보는 “생각이 다른 국민 여러분의 의견일수록 더 귀담아 듣겠다”며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고 마음을 나누다 보면 합일점에 도달할 것이라 믿는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래야 정치문법에 매몰된 진영의 논리를 넘어, 놀라운 집단지성의 요체인 우리 국민 여러분의 시각과 논리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 후보는 “코로나19로 인한 민생고가 절망적이다. 재난은 가난할수록 혹독하게 몰아친다”며 “신경림 시인의 ‘가난한 사랑 노래’처럼, 가난한 이가 어찌 자유를 모르겠는가. 다만 뭐든 포기해야 함을 알아버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두고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의 ‘극빈층 자유’ 발언을 겨냥했다는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 앞서 윤 후보는 “극빈 생활을 하고 배운 게 없는 사람은 자유가 뭔지도 모를 뿐 아니라 자유가 왜 개인에게 필요한지 자체를 느끼지 못한다”고 해 논란이 일었다. 이 후보는 또 “그래서 정치가 제 일을 해야 한다. 가장 비통한 이에게도 희망이 있는 세상을 만드는 일이 정치의 몫”이라고 강조했다. 이 후보는 ““귀를 키우고, 입은 줄이겠다. 모든 의견을 폭넓게 흡수하겠다”며 “저 이재명을 우리 모두가 원하는 나라를 만드는데 도구로 사용해주시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 여야 국회의원 56인 공동주최 2021 통일걷기, 대장정 마무리

    여야 국회의원 56인 공동주최 2021 통일걷기, 대장정 마무리

    민통선을 걸어 평화와 통일의 길을 만든다는 취지로 여야 국회의원 56인이 공동주최한 ‘2021 통일걷기 “평화와 통일, 멈출 수 없는 발걸음”’ 행사가 7일 막을 내렸다. 이날 오후 경기도 파주 임진각에서 이인영 통일부 장관을 비롯한 다수의 공동주최 의원이 참석한 가운데 고민정 의원의 사회로 2021 통일걷기 해단식이 진행됐다. 이날 행사에는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 강민정 열린민주당 원내대표, 신경림 대한간호협회 회장, 이용권 산림청 남북산림협력단장이 내빈으로 참석하여 평화와 통일을 향한 뜻을 함께했다. 2017년 첫 통일걷기를 시작한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이날 환영사에서 “무엇을 해야한다는 절박감에 걷기 시작했다”며 “이제는 휴전선 이남을 횡단하는 것이 아니라 부산, 목포에서 걸어 휴전선을 뚫고 한반도를 종단하고 싶다”고 희망했다. 이어 “한반도 종전선언을 올해 내로 꼭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걸었다”는 소회와 함께 “내년에는 100명이 넘는 의원님들이 함께 걸었으면 한다”며 내년 통일걷기에 대한 포부도 밝혔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당대표는 “어느 날 새벽같이 올 그날을 기다리며, 함께 땀 흘리는 염원이 하나씩 차곡차곡 쌓여서 통일걷기가 평양 대동강 변을 걷길 희망한다”며 “우리의 꿈이 하나하나 쌓이면 분단의 벽이 무너질 그 날이 올 것이라고 염원한다”며 평화와 통일의 의지를 내비쳤다. 강민정 열린민주당 원내대표는 “철책선을 옆으로 끼고 걸으면서 『철망 앞에서』라는 노래가 계속 입안에서 맴돌았다”면서 “우리가 두 발을 내딛으면서 걸었던 발걸음을 계속 이어 철망을 걷어내고 대동강, 백두산까지 함께 갈 날을 빨리 만들어야겠다”고 소회를 밝혔다.올해로 다섯 번째를 맞은 통일걷기는 올해는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진행됐다. 11월 5일부터 7일까지 2박 3일 동안 6개의 조가 동시에 이어걷기 형태로 진행했는데, 코로나-19 감염의 위험을 줄이기 위해 행사기간을 줄이고 조별로 제한된 인원만 참여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총 여섯 개의 조가 각 코스(1조는 연천~철원, 2조는 철원, 3조는 철원~화천, 4조는 화천~양구, 5조는 양구~고성, 6조는 고성)를 1박 2일간(11.5~6) 걷고 마지막 날(11.7) 연천~파주 임진각까지 다 함께 걷는 일정으로 약 324km의 이어걷기 대장정을 마무리했다. 6개 조로 나뉘어 진행한 만큼 이색 소통방식도 눈길을 끌었다. 5일 오전 9시 30분에 진행된 출정식은 서로 다른 코스를 걷기에 온라인으로 진행됐는데, 각 조의 조장은 서로 다른 장소에서 온택트 소통에 함께했다. 1조 박상혁 의원과 2조 민병덕 의원은 차량이동 중에, 3조 이인영 의원은 국회에서, 4조 조오섭 의원은 화천에서, 5조 김원이 의원은 선대위 회의 준비 중에, 6조 최종윤 의원은 고성에서 참여하여 통일 걷기의 출발을 알렸다. 다음 날 이루어진 온택트 소통에서는 참가자들이 이틀간 민통선을 걸으며 겪은 다채로운 경험을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정재우 인플루언서의 사회로 진행된 온택트 소통에서는, 걸으며 만난 접경지역 주민, 민통선 산의 가을 풍경, 걸으며 떠올린 평화의 모습, 남겨진 전쟁의 상흔 등을 이야기하며 각자가 그리는 평화와 통일의 모습을 나눴다. 신형철 기자 hsdori@seoul.co.kr
  • 한국작가회의 “예술원, 존경할 분만 있는지 회의적…위상·역할 재정립해야”

    한국작가회의 “예술원, 존경할 분만 있는지 회의적…위상·역할 재정립해야”

    진보 문인단체인 한국작가회의가 문화예술계 원로원 격인 대한민국예술원 회원들의 자격에 의문을 제기하며 예술원의 위상과 역할 재정립을 정부에 요구하고 나섰다. 작가회의는 19일 성명을 통해 “현재 대한민국예술원 회원들이 국민과 작가들 대다수가 존경하는 분들로만 구성되어 있는가에 대해서는 몹시 회의적”이라며 “예술원의 혁신은 반드시 필요하며 예술원의 환골탈태는 시대적 요청”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국가가 예술원을 운영하는 데 있어 국민의 세금을 무분별하게 사용하거나 일부 예술가들의 특권적 지위를 보장하는 데 그친다면 그것을 가능케 하는 현재 법령이나 운영 방법은 예술계의 보편적 정서와 시대정신에 따라 개정하고 혁신돼야 마땅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작가회의는 또 “아르코 청년예술가 지원 사업비 가운데 문학 부문 예산은 고작 4000만원에 불과하다”면서 “예술가에 대한 국가의 지원 정책이 적어도 예술가들의 보편적 공감대와 형평성은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작가회의는 문화체육관광부와 예술원을 향해 예술원의 위상과 역할을 재정립하는 관련 법령 개정, 기존 회원이 신입 회원을 심사하는 회원 가입 제도의 개정, 예술원 혁신을 위한 소통의 자리 마련을 공식 요구했다. 이 같은 움직임은 지난달 소설가 이기호가 청와대 청원을 통해 예술원 회원에 대한 종신 연금 지급 등을 사실상 반대한 것의 연장선으로 여겨진다. 그는 예술원이 반공 문예 조직과 문화계 보수우파 인사들에 대해 물질적 보상을 제공하는 성격의 기구로 회원 선출 방식도 군부 정권의 유산이라는 취지의 주장을 해왔다. 대한민국예술원은 대한민국예술원법에 근거해 예술계 각 분야에서 업적을 남긴 원로 예술가들을 예우하고자 1954년 설립된 정부 산하 특수기관이다. 정원은 100명이고 현 회원은 87명이다. 문학, 미술, 음악, 연극·무용·영화 4개 분과와 8개 위원회, 사무국으로 구성됐다. 예술원법에 따라 예술 경력 30년 이상 국민 중 예술 발전에 공적이 있는 사람만 회원 자격을 얻을 수 있다. 종신 임기로 매월 수당 180만원을 받는다. 현재 예술원 문학 분야 회원은 김남조, 이어령, 신경림, 오세영, 정현종, 유안진, 김주영, 오정희, 신달자, 윤흥길, 전상국, 최동호, 오탁번, 권영민 등이 있다.
  • 의료인 코로나 감염 올 들어 291명, 간호사가 65%로 최다

    의료인 코로나 감염 올 들어 291명, 간호사가 65%로 최다

    코로나19 환자를 치료하다 감염된 의료인 수가 올해 들어 급격히 늘고 있다. 16일 중앙방역대책본부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최연숙 의원(국민의당)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들어 6월 말까지 환자를 돌보다 코로나19에 확진된 의료인은 모두 291명이다. 이중 간호사가 188명(64.6%)으로 가장 많았고, 의사 67명(23.0%), 치과의사 25명(8.6%), 한의사 11명(3.8%) 순이었다. 코로나19 감염이 본격화한 지난해 2월 이후 지금까지 환자를 치료하다 확진된 의료인은 565명이며, 이 가운데서도 간호사가 415명(73.5%)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의사 113명(20.0%), 치과의사 26명(4.6%), 한의사 11명(1.9%)이었다. 대한간호협회는 “코로나에 감염된 간호사가 의료진 가운데 가장 많은 것은 방역이나 치료현장에서 근무하는 간호업무의 특수성 때문”이라면서 “코로나19 장기화로 면역력이 떨어진 데다 최근 확진자가 급증하면서 간호사의 안전도 더욱 위협받는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특히 이달 들어 무더위가 지속되고 확진자가 급증하면서 간호사들은 선별진료소 등 방역현장에 더 많은 업무를 요구받고 있다. 중환자실, 병동, 생활치료센터에서도 24시간 환자 곁을 지키고 있다. 지난 2월 코로나 환자와 접촉해 감염됐다 완치된 서울 한 의료기관의 A간호사는 “병동 입원 환자 중에 확진 환자가 발생하면서 더 안전하게 간호하려고 했지만 어쩔수 없었다”며 “남편과 가족들이 혹시 감염되어 2차 피해를 주면 어쩌지 하는 걱정과 불안감에 심적인 고통이 루 말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신경림 간호협회장은 “선별진료소와 코로나 병동 간호사 수를 지금보다 크게 늘려 근무 시간을 줄이고, 충분한 휴식 시간을 보장해 간호사의 안전대책을 세워야 한다”며 “간호사들의 체력이 소진되지 않도록 배치기준을 보다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 허형만 시인 “변방서 날 불러준 공초 선생께 감사”

    허형만 시인 “변방서 날 불러준 공초 선생께 감사”

    “수상 소식을 듣고 30년간 봉직했던 대학 강단에서 1920년대 ‘폐허’ 동인지와 공초 오상순 선생의 시 ‘아시아의 마지막 밤 풍경’에 대해 열강했던 기억을 떠올렸습니다. 공초 선생님, 오늘 저를 변방에서 불러내 이 자리에 서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서울신문사가 주최하는 공초문학상의 스물아홉 번째 주인공인 허형만(76) 시인은 대학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열정을 되살린 듯 설레는 목소리로 수상 소감을 읊었다. 3일 서울 중구 세종대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제29회 공초문학상 시상식에서 허 시인은 “작품 활동을 한 지 50년이 다 돼 가는 동안 우리 시단에서 항상 변방에 자리해 왔다. 이 변방의 힘이 저에게 시를 쓰게 했고, ‘써야 할 때 쓰지 않으면 쓰고 싶을 때 쓸 수 없다’는 제 나름의 신념을 지킬 수 있었다”고 돌이켰다. 이어 “코로나19로 옹색해진 시대 오로지 시 쓰는 일에만 전념하겠다”면서 “시를 찾아가는 진정한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허 시인은 지난해 계간지 ‘예술가’ 가을호에 실린 시 ‘산까치’로 올해 공초문학상을 받았다. 공초숭모회장으로 심사위원장을 맡은 이근배 대한민국예술원 회장은 “공초 선생님은 무소유의 삶을 살다가 돌아가시는 순간 ‘자유가 나를 구속하는구나’라는 말씀을 남기신 무위의 구도자셨다”며 “‘산까치’는 이러한 공초의 시심을 유감없이 발휘한 작품이라 공초 선생님도 칭찬하실 것 같다”고 말했다. 고광헌 서울신문사 사장은 “오늘은 마침 허 시인의 ‘산까치’ 첫 행처럼 보슬비가 오시는 날”이라며 “생명 지향의 언어를 통해 사물의 존재 형식에 대한 발견에 참여하신 시인께 감사드린다”고 했다. 7회 수상자이기도 한 오세영 시인은 축사를 통해 “모름지기 시인의 창조 활동은 공초 선생과 마찬가지로 자유스럽고, 고독하고 속된 것과 거리를 두는 가운데 이뤄진다”며 “문학상이라는 것은 앞으로 작품을 잘 쓰라는 격려의 의미이므로 정진하길 바란다”고 격려했다. 이날 시상식에서는 허 시인과 친분이 깊은 소리꾼 장사익 선생이 허 시인의 시 ‘아버지’를 노래로 불러 호응을 얻었다. 등단한 지 20년이 넘는 시인이 최근 1년 이내에 발간한 작품을 대상으로 하는 공초문학상은 한국 신시의 선구자 공초 오상순(1894~1963) 선생을 기리기 위해 1992년 제정됐다. 1993년 이후 신경림, 신달자, 정호승, 나태주, 오탁번 등 당대를 대표하는 시인들을 수상자로 배출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제29회 공초문학상] 공초문학상은

    [제29회 공초문학상] 공초문학상은

    1950년대 서울에선 “술이라 하면 수주(변영로)를 뛰어넘을 자가 없고, 담배라 하면 공초(오상순)를 뛰어넘을 자가 없다”는 유행어가 돌았다. 이처럼 입에서 담배를 뗄 줄 몰랐던 공초(空超) 오상순(1894~1963) 시인은 공간을 초월해 시간 속에 영원히 산다는 의미로 ‘공초’라 불렸다. 시인은 1920년대 신시운동의 선구가 된 동인지 ‘폐허’를 결성하며 서구의 폐허 의식을 국내에 처음 소개했다. ‘허무혼의 선언’, ‘방랑의 마음’ 등 명시를 발표하고 혈육이나 집도 없이 그득한 담배연기처럼 살다 간 기인이었다. 무소유로 일관하며 세계 평등사상과 인간 해방의 꿈을 품은 뜨거운 가슴의 지식인이기도 했다. 오상순 시인을 기리고자 1992년에 제정된 공초문학상은 공초숭모회와 서울신문사가 주관하고 있다. 등단 20년 이상 중견 시인들이 최근 1년 이내 발표한 작품 중에서 수상작을 고른다. 1993년 첫 수상자 이형기 시인부터 박남수, 신경림, 신달자, 정호승, 나태주, 오탁번 등 시에 대한 열정과 인간과 삶에 대한 문학적 탐구에 천착한 시인들이 상을 받았다. 제29회 시상식은 3일 오후 3시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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