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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 韓流 대륙을 적신다

    문학 韓流 대륙을 적신다

    중국의 내로라하는 문예지가 한국작가들로만 꾸민 특집호를 만들어 화제다. 그동안 부분적으로만 소개돼온 한국 문학에 대한 중국 문단의 높아진 관심을 반영한다. 중국 최고 권위의 문예지 가운데 하나인 ‘쭤자(作家)’는 4월호 전체를 평소보다 두 배 이상 두툼한 분량의 한국문학 특집호로 만들었다. 새달 23일 발행 예정이다. 이 같은 사실은 얼마 전 중국어 번역 및 감수 작업이 끝나면서 알려졌다. 중국 문단에서 활동 중인 소설가 겸 번역가 박명애씨가 번역을 맡았고, 지난해 초 국내에 소개된 장편소설 ‘감언이설’을 쓴 중국 소설가 리얼(李?)이 감수했다. ‘쭤자’는 중국 문인들의 필독서로 꼽힌다. 위화(余華), 모옌(莫言), 리얼, 왕안이(王安憶) 등 노벨문학상에 바짝 다가선 것으로 평가받는 당대의 중국 작가들이 세계 문단에 중국 문학을 소개하는 통로로 꼽기도 한다. 특집호가 엄선한 한국작가 작품은 신경숙, 박범신, 이승우, 한강, 김연수 등 소설가 16명의 중·단편과 신경림, 신달자, 도종환, 정끝별, 김기택 등 시인 12명의 대표시 28편. 세대별, 작품세계별로 안배한 흔적이 엿보인다. 작품마다 작가사진, 약력, 약평 등도 일일이 달았다고 한다. 최근 몇 년 동안 한·중 문학 교류가 활발해지고는 있지만 몇몇 개별 작가의 작품을 번역, 소개하는 정도에 그치는 실정이다. 게다가 중국 출판업계의 특징상 베이징에서 출판되면 상하이나 다른 지역 서점에 소개되지 않기 일쑤였고, 그 반대 역시 마찬가지였다. ‘쭤자’에서도 지난해 한국 시(8편)와 소설(2편), 평론(2편) 등을 일부 소개하기는 했지만, 한국 문학의 실체를 파악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문학이 중국 문단에 전면적으로 소개된다는 점은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는 게 국내 문단의 평가다. 아시아 속 한국 문학의 위상을 다시 한번 확인시켰다는 반응이다. 김태성 한성문화연구소 대표는 22일 “그동안 양국의 문학 교류가 이벤트성 행사에 그쳤고, 중국 문학의 국내 소개에 비해 한국 문학의 중국 소개는 부족했다.”면서 “중국에서도 한국 문학에 대한 관심이 점점 높아지고 있는 만큼 환영할 만한 일”이라고 말했다. 박명애씨는 서울신문과의 국제전화에서 “중국에서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배출하며 세계 문단의 중심으로 진출하려는 움직임은 국가적 과제에 가깝다.”면서 “한국 특집호는 우리 문학의 위상을 다른 방식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쭤자’를 세계 문단 중심부 진출과정의 디딤돌이자 건널목으로 활용할 만하다는 얘기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용어 클릭] ●쭤자(作家) 1956년에 창간됐다. 민간 잡지가 아닌 중국 정부가 발행하는 월간 문예지다. 매달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등 세계 6개국 언어로 번역 출간된다. ‘중국 문학의 노벨상 프로젝트’ 창구 역할을 담당한다.
  • [책꽂이]

    ●육주 홍기삼과 나(신경림·윤흥길 외 지음, 생각의 나무 펴냄) 문학평론가 홍기삼의 고희를 기념하는 회고록. 김홍신, 신경림, 윤흥길, 이근배, 정희성 등 동료와 선·후배 문인들이 곁에서 지켜본 홍기삼의 문학과 삶에 대해 썼다. 대학시절의 인연, 문단 활동의 에피소드 등도 담겼다. 회고록과 함께 신작 평론집 ‘민족어와 한국문학’도 나왔다. 각 1만 8000원. ●농담의 세계(조중의 지음, 휴먼앤북스 펴냄) 3년 동안의 가뭄으로 고통받는 상상의 공간 ‘동주시’를 배경으로 현실 정치의 타락과 위선을 날카롭게 풍자했다. 목이 말라 죽은 이무기, 사람을 잡아 먹는 나무, 시정잡배가 끼어들어 엉망이 된 국회 등 농담처럼 전개되는 이야기 속에 뼈저린 현실감각이 숨어 있다. 1만원.
  • 충남 홍성·보령 오서산 능선 억새풀밭

    충남 홍성·보령 오서산 능선 억새풀밭

    가을은 청춘(靑春)의 뒷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무더운 여름을 지나온 뒤 어렵사리 찾아오는 것이 가을이다. 풍성함과 여유로움으로 그렇게 오래 머물 줄만 알았던 가을은, 야속하게도 어느날 훌쩍 찬 바람과 함께 떠난다. 가을이 그러하듯 청춘 또한 그러지 않나. 어느날 문득 눈뜨면 서른 살이 돼 있기를 바라는 불안과 격정의 청춘들은 지금도 가슴 속 들끓음을 애써 다스리고 있다. 쇠붙이와 온갖 불안, 두려움 따위를 녹이는 용광로의 뜨거움은 자칫 내일의 희망과 약속까지 녹여버리곤 한다. 소중하게 다스려야 할 짧은 청춘이다. 아직 20대의 언저리에 있다면, 혹은, 40대건, 50대건 심장 한편에서 청춘의 격동이 여전히 느껴진다면 마음껏 이를 누리고 발산해야 한다. 미국의 시인 새무얼 울먼이 노래하지 않았던가. ‘믿음만큼 젊고, 의심만큼 늙는다. 자신감만큼 젊고, 두려움만큼 늙는다. 희망만큼 젊고, 실망만큼 늙는다.’고. 쓸쓸히 고개 숙인 채 터벅거리고 사라지는 가을의 뒷모습에 경의를 보내며 배웅하는 것은 가을을 한껏 누린 자들의 몫이다. 가버린, 혹은 가고 있는 청춘의 뒷모습이 그러하듯 말이다. 비록 강원도 산간 지역이긴 했지만 이달 초 무섭게 몰아친 눈발을 보며 사람들은 일제히 겨울을 떠올렸다. 그리고 가을이 이렇게 끝나가고 있음을 새삼스레 절감했다. 허둥거리는 와중에 떠나가는 가을을 기억해야 할 의무가 있음도 함께 절감했다. 충남 홍성군과 보령시 경계 즈음에 걸쳐 있는 오서산 능선의 억새풀 벌판도 그렇게 사라지고 있었다. 오서산 정상과 오서정 정자를 잇는 능선 사이에 피어났던 억새풀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바람에 몸을 맡겨놓으며 흔들거리고 있었다. 불과 2~3주 전 단풍 못지않게 화려함을 자랑하던, 풍성하고 눈부신 은빛의 향연은 사라졌지만 이들은 뿌리, 줄기, 풀꽃 순서로 점점 땅의 색을 닮아가며 갈색으로 바뀌었다. 일년 단위로 돌아가는 시간의 반복과, 그럼에도 한결 같은 공간의 동일함은 씨줄과 날줄처럼 얽혀 우주적 순환의 상징이 된다. 바람에 몸을 맡겨 수런거리고 있는 오서산의 억새풀이 그러하다. 이곳까지 다다르는 등산로에 떨어진 낙엽들은 한때는 울긋불긋한 노란색, 붉은색을 자랑했겠건만 바스라지고, 또 바스라지다가 이제는 검은 부엽토로 바뀌어 푸근한 흙길이 됐다. 등산화의 두꺼운 밑창을 뚫고 전해지는 푹신함은 거추장스러운 신발, 양말을 벗어던지고픈 충동을 일으키게 한다. ●남당리 ‘끝물 대하’ 꼭 맛보세요 오서산은 오서산자연휴양림에서 올라도 좋다. 아니면 보령시 청소면 성연리에서 주능선을 타고 오른 뒤 억새 벌판을 지나 정암사 상담마을로 내려와도 좋고, 거꾸로 길을 밟아도 좋다. 정상이 790m 정도니 어디에서 올라도 2시간 안쪽이면 가을의 뒷모습을 누리기에 충분하다. 오서산을 내려와 차로 30~40분 남짓이면 대하로 유명한 남당리에 닿는다. 이달 초까지 대하축제니, 전어축제니 하며 흥청거리던 서해의 포구에는 스산함마저 든다. 이곳 역시 가을의 뒤안길에서 갈무리를 준비 중이다. 축제가 끝난 휑한 광장에서는 이곳저곳 횟집의 아낙들이 불러대는 소리만이 메아리친다. 대하도 뒤안길에 들어섰다. 조금만 시간이 흐르면 다시 1년을 기다려야 맛볼 수 있는 녀석들이다. 가격은 어디나 마찬가지다. 2만 9000원어치 1㎏이면 50마리가 훌쩍 넘는다. 2~3명이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양이다. 썰물의 갯벌 바로 곁에서 오지 않는 손님을 기다리며 ‘뽑기’를 파는 노인의 모습이 눈에 밟힌다. ●서천 갈대밭 둘러보고 지친 몸은 온천에서 풀고 시인 황지우는 컴컴한 영화관에 울리는 애국가 화면을 보며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를 썼다. 시인은 ‘…자기들의 세상을/ 이 세상에서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가는 흰 새떼들을 보며 시대의 모짐과 신산함, 계절의 쓸쓸함을 읊조렸다. 황지우 심상의 레플리카는 충남 서천군 금강 하구에 있는 신성리 갈대밭에서도 가능하다. 이곳 갈대밭은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의 촬영지로 유명해진 곳이다. 2~3주 전의 갈대만큼은 아니지만 키높이로 남아 있는 갈대숲 사이에 서면 뉘엿뉘엿 넘어가는 주황색, 보라색 석양 위로 깃을 치고 날아오르는 철새떼를 만날 수 있다. 산책로 데크를 따라 숲길을 누비다보면 늦가을의 비감은 더욱 커진다. 바람이 불 때마다 ‘우스스’거리는 갈대숲을 보노라면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보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갈대’ 중)고 노래한 시인 신경림이 문득 떠오른다. 역시 가을여행의 맛은 인생의 비의(秘意)를 찾는 데 있음을 다시금 깨닫는다. 지친 몸과 마음에 주는 위로의 선물로는 온천이 좋다. 오서산에서 40분간, 서천에서 1시간30분 거리에 있는 보령시 덕산온천지구는 덕산스파캐슬 등 곳곳이 온천이다. 산행의 피로도, 가을의 우수도 잠시 잊을 수 있다. 가족, 연인과 함께라면 금상첨화다. 덕산온천지구 근처 덕숭산에 있는 수덕사도 있다. 가을의 고즈넉함이 참 좋지만 장삿속이 심하다. 주차료, 입장료를 2000원씩 따로따로 받는다. 오서산을 보지않았다면 충분히 둘러볼 곳이지만, 오서산과 신성리 갈대밭까지 봤다면 굳이 들를 필요는 없겠다. ●여행 팁 ▲가는 길 오서산까지라면 서해안고속도로 타고 보령나들목 또는 광천나들목으로 진입하면 된다. 가장 좋은 코스는 오전에 오서산을 등산한 뒤 해질녘 즈음해서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서천나들목까지 내려가 신성리 갈대밭의 철새 군무를 본 뒤 다시 길을 되밟아 덕산온천지구로 이동, 뜨끈하게 몸을 푸는 것이 이상적이다. ▲먹을 거리 서해가 가깝다. 지금 가면 대하를 맛볼 수 있고, 새조개가 슬슬 잡히고 있다. 또 봄철처럼 알박이는 아니지만 탱탱한 쭈꾸미(1㎏ 2만원)도 가격대비 만족도가 높다. 갯것이 별로면, 해미나들목까지 올라가 보자. 톨게이트를 빠져나와 10분 남짓 거리에 있는 읍성뚝배기(041-688-2101)는 소머리곰탕과 소머리수육으로 이름난 집이다. 잡냄새도 없는데다 야들야들한 육질이 최고의 맛을 보장한다. 2~3명이 먹기 충분한 수육 큰 게 3만원이니 가격도 적당하다. 그날 판매분이 동나면 문을 닫는 ‘진짜 맛집만의 공통분모’도 빼놓지 않은 곳이다. 글 사진 홍성·보령·서천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그림으로 만나는 ‘청계천의 구보’

    그림으로 만나는 ‘청계천의 구보’

    1930년대 청계천을 터벅거리며 사람들을 물끄러미 구경하던 구보 박태원(1909~1986)은 세상을 뜬 지 오래다. 궁핍한 일상 속에서 빨래하는 아낙네들이 모여 수다를 떨던 풍경은 사라지고 없다. 물론 청계천도 그 시절 그 청계천이 아님은 마찬가지다. 부재(不在)한 것들의 복원(復原)이야 불가능하지만 회억(回憶)은 가능하다.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은 구보의 삶과 문학세계를 돌아보는 문학그림전 ‘구보, 다시 청계천을 읽다’가 청계천 광장에서 오는 12일 열린다. 이날 오후 6시 청계천 광장 특설무대에서 구보의 막내딸 박은영씨, 소설가 윤후명, 연극인 전무송 등이 구보의 소설을 낭독하는 ‘낭독공감’을 시작으로 나흘 동안 펼쳐진다. 이번 문학그림전에서는 청계천 일대를 소설의 주무대로 삼았던 구보의 작품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천변풍경’ 등을 그림으로 형상화한 작품 30여점이 전시될 예정이다. 구보의 소설에 대한 되새김은 물론 그 시절에 대한 향수를 되살릴 수 있는 풍경들이 펼쳐져 할아버지부터 손자까지 세대를 뛰어넘어 함께 즐길 수 있는 문화 체험의 기회가 제공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최석운, 민정기, 임만혁, 김성엽, 주영근 등 한국 회화를 대표하는 화가 8명이 내놓은 작품들과 함께 소설가 윤후명이 그려낸 소설 속 인물들이 책에서 튀어나와 전시될 예정이다. 구보의 장편소설 ‘천변풍경’은 70여명의 청계천변 인물 군상들의 일상을 가치 개입 없이 관찰하듯 펼쳐낸 작품으로 한국 근대문학의 지평을 새롭게 열어젖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번 문학그림전 전시를 마친 작품들은 19~27일 서울 종로구 경운동 부남미술관으로 자리를 옮겨 계속 전시될 예정이다. 한편 서울시 한강사업본부와 서울문화재단, 한강문화포럼이 주최하고 대산문화재단이 주관하는 ‘2009 한강 문학축전’이 ‘문학, 한강에서 놀다’를 주제로 오는 17일 한강 선유도공원 일대에서 펼쳐진다. 이번 축전에서는 한국 현대문학 100년 연보와 대표작품이 실린 걸개그림 100점이 선유도 곳곳에 전시되며 신경림, 문정희, 박범신, 은희경, 김경주 등 작가들과 작품 등에 대해 얘기 나눌 수 있는 ‘작가카페’, ‘작가와 함께하는 문학산책’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됐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영역별 지상강의-수능의 맥]언어, 수리 (가)·(나) 6회

    [영역별 지상강의-수능의 맥]언어, 수리 (가)·(나) 6회

    ■언어-두 개의 詩 비교땐 ‘개념어’ 정확히 파악 ※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가) 어둠이 오는 것이 왜 두렵지 않으리 / 불어 닥치는 비바람이 왜 무섭지 않으리 잎들 더러 썩고 떨어지는 어둠 속에서 / 가지들 휘고 꺾이는 비바람 속에서 보인다 꼭 잡은 너희들 작은 손들이 / 손을 타고 흐르는 숨죽인 흐느낌이 어둠과 비바람까지도 삭여서 / 더 단단히 뿌리와 몸통을 키운다면 너희 왜 모르랴 밝는 날 어깨와 가슴에 / 더 많은 꽃과 열매를 달게 되리라는 걸 산바람 바닷바람보다도 짓궂은 이웃들의 / 비웃음과 발길질이 더 아프고 서러워 산비알과 바위너설에서 목 움츠린 나무들아 / 다시 고개 들고 절로 터져 나올 잎과 꽃으로 숲과 들판에 떼 지어 설 나무들아 - 신경림, 나무를 위하여 - (나) 사립을 젖혀 쓰고 망혜를 조여 신고, / 조대(釣臺)로 내려가니 내 노래 한가하다. 원근 산천이 홍일(紅日)을 띄었으니, / 만경창파는 모두 다 금빛이라. 낚시를 드리우고 무심히 앉았으니, / 은린옥척(銀鱗玉尺)이 절로 와 무는구나. 구태여 내 마음이 취어(取魚)가 아니로다 지취(志趣)를 취함이라. 낚대를 떨쳐 드니 사면에 잠든 백구(白鷗), 내 낚대 그림자에 저 잡을 날만 여겨 다 놀라 날겠구나. 백구야 날지 마라 너 잡을 내 아니다. / 네 본디 영물이라 내 마음 모를소냐. 평생의 곱던 임을 천 리에 이별하고, / 사랑은커니와 그리움을 못 이기어, 수심이 첩첩하니 마음을 둘 데 없어, / 흥 없는 일간죽(一竿竹)을 실없이 드렸은들, 고기도 상관 않거늘 하물며 너 잡으랴. 그래도 내 마음을 아무도 못 믿거든, / 너 가진 긴 부리로 내 가슴 쪼아 헤쳐, 흉중의 붉은 마음 보면은 아오리라. 공명도 다 던지고 성은을 갚으려니, / 갚을 법도 있거니와 이 사이 일 없으니, 성세(盛世)에 한민(閒民) 되어 너 좇아 다니려니, / 날 보고 날지 마라 네 벗님 되오리라. - 안조원, 만언사 - [문제](가)와 (나)의 시상 전개 방식을 비교한 것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가)와 (나) 모두 설의적 표현을 활용하며 시상을 전개한다. ② (가)와 (나) 모두 계절의 변화를 축으로 삼아 시상을 전개한다. ③ (가)는 (나)와 달리 여러 대상으로 관심을 옮겨 가며 시상을 전개한다. ④ (가)는 시각적 이미지를, (나)는 청각적 이미지를 위주로 시상을 전개한다. ⑤ (가)는 시적 화자의 심리 묘사를, (나)는 외부 대상 묘사를 위주로 시상을 전개한다. ●함정에 빠진 이유 두 작품 모두 삶의 과정에서 만날 수 있는 시련의 순간을 창작의 계기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시상 전개상의 특징을 묻는 문제는 전개상의 특징만을 묻는다기보다는 시 전체의 맥락과 흐름을 종합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가를 평가하는 문항이다. 그렇기 때문에 전체적인 시의 흐름을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고 선택지에 기술된 개념어를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 ●함정을 피하는 방법 시 작품을 이해하는 데에는 무엇을(ㄱ) 어떻게(ㄴ) 전달하고 있는가의 문제에서 ㄱ은 주제를, ㄴ은 전개 방법, 시의 장치, 표현 기법 등을 말하는데, 이 문항은 ㄴ에 해당한다. 시의 내용 전개 방식만 파악하는 데 그치지 말고, 시의 주제 구현의 측면에서 전개상의 특징을 올바르게 파악해야 한다. (가)에서 화자는 어둠과 비바람 속에 서 있는 나무를 바라보고 있는데, 비록 지금은 움츠린 나무들이지만 절로 터져 나올 잎과 꽃으로 숲과 들판에 떼 지어 설 나무를 생각하고 있다. 즉 화자는 나무가 자라는 모습을 보면서 나무의 생리를 여러 가지 측면에서 생각하고 있다. (나)에서 화자는 조대에 내려가 낚시를 하고, 백구를 바라보고 있다. 즉 낚시를 하는 행위를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려내고 있다. 그러면 두 작품에 드러난 시상 전개상의 특징을 살펴보자. (가)에서는 ‘어둠이 오는 것이 왜 두렵지 않으리 / 불어닥치는 비바람이 왜 무섭지 않으리’처럼 시의 전반부에 설의적 의문형을 배치해 놓고 시상을 전개하고 있다. (나) 또한 ‘너(백구) 본디 영물이라 내 마음 모를소냐’와 ‘하물며 너 잡으랴’와 같이 설의적인 의문형을 사용하여 시상을 전개하고 있다. 그러면 ②의 경우를 보자. 계절을 드러내는 소재가 언급되었다고 해서 이 선택지를 고르면 함정에 빠지게 된다. 과연 계절의 변화가 언급되었는지 확인해야 한다. (가)의 경우 ‘목 움츠린 나무들아 / 다시 고개 들고 절로 터져 나올 잎과 꽃으로 / 숲과 들판에 떼 지어 설 나무들아’에서 바뀔 계절의 변화를 언급하고 있다. 그런데 (나)에서는 자연적 배경이 드러나 있기는 하지만 계절의 변화가 드러난 것은 아니다. 그리고 ④의 경우도 비바람에 나무가 흔들리는 모습, 곧 시각적 이미지가 중심이 되나, 청각적 이미지(바람소리,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 소리)도 연상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시각적 이미지가 중심이 되고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이석록 메가스터디 언어영역 강사 ■수리(가)-벡터 모든 내용 두루 출제 [대비전략] 벡터의 모든 내용이 수능에 골고루 출제되고 있으므로 기본 내용을 바탕으로 많은 문제를 풀어 벡터의 기본 유형을 숙달하고 있어야 한다. 특히 위치벡터의 내적 및 직선과 평면의 방정식은 자주 출제되는 유형을 확실히 이해하고 정리해 두어야 한다. 그리고 벡터의 기본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점의 자취를 묻는 유형의 문제 등 다른 단원과 융합된 형태의 사고력을 필요로 하는 문제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출제되고 있으므로 많은 관심을 갖고 다루어 보는 것이 좋다. ■수리(나)-‘경우의 수’ 잘 나누는 훈련을 [대비전략] ‘경우의 수’를 구하는 데 있어 답지의 풀이에 너무 의존하지 말고 다양하게 생각해 보는 것이 좋다. 같은 것이 있는 경우와 같이 자주 출제되는 유형은 잘 이해를 해 두고 특정한 조건이 있는 문제는 상황에 따라 경우를 잘 나누는 훈련을 하여야 한다. 순열, 조합, 이항계수들에 대해 무턱대고 암기하지 말고 그 원리를 파악해 두어야 새로운 문제나 변형된 문제에 당황하지 않는다. 남언우 이투스 수리영역 강사
  • 어둠과 침묵의 시대 깬 외침 불의 맞선 그의 전모 한눈에

    어둠과 침묵의 시대 깬 외침 불의 맞선 그의 전모 한눈에

    어둠과 침묵의 시대, 번뜩이는 식칼의 시퍼런 서슬처럼 분연히 저항과 희망을 노래했던 시인이 떠난 지 꼬박 10년이 됐다. ‘국토’, ‘식칼론’ 등으로 민족·민중시의 전형을 만들어낸 조태일(1941~1999년)이다. 그는 1999년 9월7일, ‘국토 서시’(1975년)에서 노래했듯 ‘…일렁이는 피와 다 닳아진 살결과 / 허연 뼈까지를 통째로 보탤 일’인 듯 위암을 선고받은 지 불과 50일 만에 홀연 세상을 떠났다. 故 조태일 시인 창비에서 문학 세계 36년, 광야의 인생 58년을 되짚어 보는 ‘조태일 전집’(작은 전 4권)을 출간했다. 1964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아침선박’ 등이 담긴 동명 첫 시집(1965년)부터 시작해 숨지기 직전 내놓은 여덟번째 시집 ‘혼자 타오르고 있었네’(1999년)까지 수록된 시 454편을 비롯해 시집에 묶이지 않았던 64편 등을 모두 아울렀다. 여기에 시론, 시대를 직접 평하며 조태일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산문 등까지 한데 묶었다. 또한 10주기에 맞춰 그의 고향이자 문학관이 설립된 전남 곡성군에서 추모 학술행사와 공연 등도 펼쳐질 예정이다. 전집을 보면 평생에 걸쳐 ‘불의와 겨루기’와 ‘희망 만들기’를 꾀해 왔던 조태일의 전모가 한눈에 보인다. ●광야의 인생 58년 되짚어본다 초기에는 2000년대 젊은 시인들을 부끄럽게 하는 감각적인 언어를 구사하는 낭만적인 모더니스트로서의 조태일이 엿보인다. 김광섭, 조병화의 제자다운 모습이다. 그러나 1968년 육군 중위(ROTC 4기)로 예편한 뒤 내놓은 두 번째 시집 ‘식칼론’(1969년)부터 예의 우리가 알고 있는 모습의 조태일이 등장한다. 낭만의 언어가 잉태한, 저항의 리얼리즘을 노래한다. 독재자의 간담이 서늘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가 만든 시 전문지 ‘시인’도 비슷한 시기 김지하의 그 유명한 시론(詩論) ‘풍자냐 자살이냐’를 실은 뒤 창간 1년 만에 폐간의 운명에 처하고 말았다. 이후 세 번째 시집 ‘국토’가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판매금지되는 등 그간 밥먹고 차마시듯 판매금지, 구속, 투옥 등 광야의 삶이 거듭됐다. ●김지하·김준태 등이 그를 통해 발굴 1990년대 들어 그의 시는 다시 한 번 변신한다. 시인 신경림은 “그의 후기시는 우리 시가 침체의 늪에서 탈출하는데 단단히 한몫을 하리라 생각한다.”면서 “고전적 시의 미학이라 할 절제와 압축의 전범을 보여 주며 시 읽는 재미를 한껏 맛보게 해 준다.”고 높게 평가했다. 이렇듯 조태일의 시와 삶에는 암흑의 시기 침묵을 깨트리는 저항의 외침이 있고, 국토와 그 땅에 발딛고 사는 사람들에 대한 가없는 애정이 있다. 그의 서정성 가득한 민족·민중시가 후배들에게 이정표가 됐음은 물론이다. 익히 알려졌듯 김지하, 김준태, 양성우 등 1980년대의 독재자들이 지긋지긋해했던 시인들이 그를 통해 발굴됐다. 4년에 걸쳐 시집을 엮은 이동순 전남대 인문과학연구소 전임연구원은 “자료 정리를 마치고 나서 시인의 생애와 작품을 비교하다 보니 작품이 쓰인 시대상황과 시의 내용이 거의 합치하는 것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고 말했다. 한편 5일 오후 4시 전남 곡성 태안사에서 백낙청 박석무 김정남 등 동료들의 시인에 대한 회고담과 도종환 나희덕 양인숙 등 후배 문인들의 시낭송, 노래로 변신한 조태일의 시 ‘봄이 오는 소리’, ‘어머니를 찾아서’ 합창 등 다채로운 행사가 마련된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한국대표작가는 소설가 공지영

    한국대표작가는 소설가 공지영

    인터넷서점 예스24가 ‘제6회 네티즌 추천 한국의 대표작가’ 온라인 투표를 실시한 결과 공지영이 1만 3172표(17.8%)를 얻어 1위를 차지했다고 4일 밝혔다. 지난 7월10일부터 31일까지 4만 5984명의 네티즌이 참여한 온라인 투표는 ‘1인 3번 투표’ 형식으로 진행됐다. 2위는 김훈(1만 162표, 13.7%), 3위는 이문열(9545표,12.9%)이었다. 이와 함께 ‘한국의 젊은 작가’ 부문에서는 영화로 상영되어 화제가 되었던 ‘아내가 결혼했다’의 박현욱이 1만 2329표(18%)로 1위, ‘미실’의 김별아가 7344표(10.7%)로 2위, 김영하가 5780표(8.4%)로 3위를 차지했다. ‘2009 한국인 필독서’ 시 부문에서는 신경림의 ‘낙타’가 1만 1350표(15.9%)로 1위에 뽑혔고, 고은의 ‘허공’(6105표, 8.6%)이 2위, 김지하의 ‘못난 시들’(5978표, 8.4%) 이 3위에 선정됐다. 소설은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 황석영의 ‘개밥바라기별’, 공지영의 ‘도가니’, 구병모의 ‘위저드 베이커리’ 순이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노무현 49재 앞두고 추모 문집 발간

    ‘시대가 짐지운 운명을 거절하지 않고 / 자기자신 밖에는 가진 것 없이도 /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갔던 사람 / 그가 떠났다’(유시민, ‘서울역 분향소에서’) 지난 5월 우리 곁을 떠난 노무현 전 대통령의 49재를 앞두고 추모문집이 발간됐다. ‘탄생-바보 노무현 바보 세상 바로보기’(강은교 외 지음, 작가마을 펴냄)는 시인, 소설가를 비롯, 신부, 교수 등 각계 인사들이 쓴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추모시와 추모글을 모았다. 1부로 묶은 추모시들은 오랜 기간 이어진 추모열기를 대변하듯 현실에 대한 울분과 떠난 이에 대한 그리움을 함께 노래한다. 강은교 박노해 신경림 안도현 등 29명의 시인이 각 1편씩 작품을 썼다. 여기에서 박노해 시인은 ‘아 나는 ‘바보’와 사랑을 했네 / 속 깊은 슬픔과 분노로 되살아나는 / 우리는 ‘바보’와 사랑을 했네’라고 고백한다. 신경림은 ‘당신은 부활하고 있습니다 / 거리와 골목과 광장을 뒤덮은 흐느낌을 타고 / 당신의 눈이 되살아나고 꿈이 되살아납니다’라면서 시민들의 사랑으로 부활하는 노 전 대통령을 노래한다. 2부에 추모글을 실은 소설가 하성란은 “세계의 대장관이라고 알려진 그 어떤 풍경 앞에 가 선다고 해도 이처럼 가슴 떨리는 일은 두 번 다시 없을 것이다.”면서 노란빛 물결이 가득 흐르던 날의 추모풍경을 그려낸다. 송기인 신부도 “우리는 당신의 가식없는 웃음과 소탈했던 대화를 오랫동안 기억할 것입니다.”라면서 추모의 말을 전한다. 책은 그간 각종 매체에 발표됐던 글을 한데 모은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의 사진도 곳곳에 함께 실었다. 기획위원회는 “특별한 모양을 보여주려는 것이 아니라 순간의 국민적 정서를 대변해 놓은 역사적 기록들임을 인식해주길 바란다.”고 기획 의도를 전했다. 1만 2000원. 한편 시집 외에도 노 전 대통령을 기리는 출판물들은 연일 쏟아지고 있다. ‘노무현의 외로운 전쟁’(김용한 지음, 포북 펴냄)은 지역주의 타파를 위해 부산출마를 선언했던 2004년 4월 총선을 배경으로 화합의 길을 추구했던 노 전 대통령의 정치적 행보를 되짚어본다. ‘똑똑한 바보 대통령 노무현’(글 김태광·그림 심인섭, 소울 펴냄)은 위인전의 형식으로 어린이들에게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한 길을 제시한다. 노 전 대통령이 기획하고 대통령 비서진이 집필했던 ‘노무현, “한국정치 이의 있습니다”’(참여정부 대통령비서실 지음, 역사비평사 펴냄)도 다시 출간됐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신경림 누항 나들이] 죽산 조봉암사건을 다시 떠올리는 이유

    [신경림 누항 나들이] 죽산 조봉암사건을 다시 떠올리는 이유

    올해는 죽산 조봉암이 사형을 당한 지 꼭 반 백 년이 되는 해다. 1958년 1월에 이른바 진보당 사건으로 체포되어 다음해 7월 간첩죄로 처형되었으니 실로 일사천리의 고속 재판이었다. 그가 저지른 죄라는 것은 누구의 눈에도 뻔했으니 그 전전해 치러진 대선에서 너무 많은 표를 얻음으로써 보수정치인들에게 큰 위협으로 떠올랐다는 점이 그 하나요, 그때까지도 금기시되었던 남북의 평화통일을 주장했다는 것이 그 둘이었다. 그 재판이 가진 정치적 성격을 알고 있는 1심 재판부는 간첩죄에는 무죄를 내리고 국가보안법 일부에 비교적 가벼운 5년 형을 선고했으며, 진보당 간부들은 모두 무죄로 석방을 했다. 그러나 항소심은 검찰이 구형한 대로 간첩죄를 적용, 그에게 사용언도를 내렸으며, 이듬해의 상고심에서도 그대로 사형언도가 되풀이되었다. 그리고 5개월 뒤의 재심청구가 대법원에서 기각된 바로 다음날(7월31일) 사형이 집행되었다. 이때의 비통하고 절망적이던 느낌을 나는 ‘그날’이라는 시에서 비유적으로 형상화한 바도 있지만,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잠이 잘 오지 않는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 명명백백한 사법살인의 희생자인 죽산이 아직도 명예회복이 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 우리 민주주의는 크게 퇴행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래도 상당한 수준의 민주화를 성취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 역사가 아직도 후진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다. 이렇게 장황하게 죽산에 대한 얘기를 늘어놓고 있는 것은 그 재판과정에서 한 재판관이 보여준 용기있는 결단이 최근 새삼스럽게 생각나서다. 1심의 재판장이던 그는 세간의 예상을 뒤엎고 무죄를 선고함으로써 죽산의 평화통일론에 손을 들어주었다. 북진통일 이외의 어떠한 방식의 통일도 논해서는 안 되는 서슬 퍼런 시대에 말이다. 매일처럼 경찰의 노골적인 비호 아래 용공판사를 규탄하는 데모가 벌어졌고, 당국은 공공연히 그에게 사퇴 압력을 가했다. 그 뒤 압력을 이겨 내지 못하고 그가 사퇴한 것으로 알지만, 그가 남긴 기록 한 대목을 나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그 책(아마도 ‘어느 재판관의 고뇌’라는 책이 아니었나싶다)에서 그는 이런 말을 했다. 육이오 때 그는 부역자들을 재판하는 고역을 맡게 되었다. 그러나 급조된 계엄법은 재판관의 재량을 한껏 제한, 유죄인 경우 사형, 무기, 15년의 세 가지 형을 선고하는 자유밖에 주지 않았다. 그는 명확한 증거가 없는 한 거의 모두에게 무죄를 선고했으며, 범법의 심증이 있을 경우에도 그것이 가벼운 것이면 무죄로 판결했다. 강제 동원되어 노래 몇 마디 부르고 박수 몇 차례 쳤다가 15년의 긴 세월을 감옥에서 보내는 불행한 삶이 있게 하는 것이 법의 취지는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법이 인간을 위해 있는 것이지 인간 위에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통한 죽음과 죽산의 사법 살인은 서로 닮은 곳이 없다. 그런데도 문득 죽산 사건이 생각난 것은 그 재판관이 피의자에 대해서 가졌던 태도와 노 전 대통령을 다룬 검찰의 태도가 너무나 판이해서였다. 그 재판관은 피의자는 유죄가 확정되기까지는 일단 무죄라는 생각으로 피의자를 대했으며, 피의자도 인간으로서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고 믿었다. 피의자를 조롱하고 망신주고 모욕하는 일을 법관이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터부로 여긴다는 뜻의 진술도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이런 합리적이고 온유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검찰에 몇 사람만 있었어도, 전직 대통령의 자결이라는 불행한 광경을 우리는 역사에서 보지 않았어도 좋았을는지도 모른다는 가정이 새삼스럽게 그를 생각나게 하며 죽산사건을 떠오르게 한다. 법도 역시 사람을 위해서 기능하는 것이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그 법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인간을 사랑하고 귀하게 여기는 인간적인 사람들이 아니어서는 안 된다는 뜻의 진술도 잊히지 않는다. 시인
  • 2009 호암상 시상식

    2009 호암상 시상식

    호암재단(이사장 이현재)은 1일 서울 호암아트홀에서 2009년도 호암상 시상식을 가졌다. 시상식에서는 올해 부문별 수상자인 ▲과학상 황준묵(45) 고등과학원 교수 ▲공학상 정덕균(50) 서울대 교수 ▲의학상 김빛내리(39) 서울대 교수 ▲예술상 신경림(74) 시인 ▲사회봉사상 박청수(71) 원불교 교무 등 5명에게 각 2억원의 상금과 순금 메달(50돈쭝)이 부상으로 주어졌다. 한승수 총리는 축사에서 “수상자들의 업적은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자산이며, 우리 국민에게는 훌륭한 귀감이 되는 것으로 호암상 수상자 여러분이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큰 꿈과 희망을 심어 주는 사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호암재단은 시상식을 전후해 호암상 수상자들의 전국 순회강연회를 전국 12곳의 대학, 과학고, 학회 등에서 개최할 예정이다. 이날 시상식에는 한 총리를 비롯, 이석연 법제처장, 정진곤 청와대 교육과학문화수석, 김상주 대한민국학술원 회장, 이수빈 삼성생명 회장, 김상하 삼양그룹 명예회장, 강신호 전경련 명예회장, 이세웅 예술의전당 이사장 등 각계에서 600여명이 참석했다. 호암상은 삼성 창업자인 호암 이병철 선대회장의 사회공익정신을 이어받아 학술·예술 및 사회발전과 인류복지 증진에 탁월한 업적을 이룬 인사를 포상하기 위해 지난 1990년 이건희 전 삼성회장이 제정한 상이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공초문학상] 17년 전통 공초문학상은

    공초 문학상은 무소유의 삶을 실천하고, 그 삶을 고스란히 시 세계에 투영했던 공초(空超) 오상순(1894~1963) 시인을 기리기 위해 1992년 제정된 시 문학상이다. 17년의 세월을 건너 오는 동안 역대 수상자들의 면면을 보면 1992년 초대 수상자인 이형기(1933~2005) 시인을 비롯해 박남수(1918~1994·1993년 수상), 신경림(1998), 오세영(1999), 김종해(2002), 김지하(2004), 성찬경(2006) 시인, 그리고 지난해 조오현 시조시인 등까지 예술 세계의 정점에 올랐다고 평가받는 중진-혹은 원로-시인들이 어김없이 등장한다. 혹시 지명도에 수상 여부가 좌우됐을까 하는 의문을 가져 볼 수 있다. 일단 ‘등단 20년 이상 시인의 작품’이라는 심사 대상의 엄격한 제한이 그 배경임을 유추해 볼 수 있다. 더욱이 ‘인품이 훌륭한 사람’이라는 다소 모호한 기준이 절묘하게 수상작 선정에 관철됐음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공초문학상이 단순히 작가 이름값으로 가려지지 않음은 수상 작품을 읽어 보면 더욱 명확해진다. 매회 수상작가의 작품은 우주와 세계에 대한 깊이 있는 관조를 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게다가 이것이 단순한 관념의 세계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천의무봉의 시어를 빌려 나타나니 독자들로 하여금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깨달음까지 안겨 준다. 소박하며 고졸한 시어와 폭풍처럼 몰아치는 광대한 격정의 시어가 조금도 어색하지 않게 조화를 이루는 것이 공초 시 세계의 형식적 특징이다. 또한 집착과 욕심으로부터 완전한 해탈을 담아낸 시의 내용은 쉬 흉내내기 어려운 공초의 높은 경지를 드러내고 있다. 이는 한 걸음 더 들어가면 아침에 눈 떠 저녁에 잠들 때까지 담배를 놓지 않는 등 김관식, 고은, 천상병 등과 함께 ‘문단의 대표 기인(奇人)’으로 유명했던 공초의 시 세계가 후배들에게 드리운 자락이 지금까지도 끝이 보이지 않게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신경림 누항 나들이] ‘가난은 우리의 무기’를 다시 생각할 때

    [신경림 누항 나들이] ‘가난은 우리의 무기’를 다시 생각할 때

    이 제목은 1970년대 말엽 발표되어 화제가 되었던 이종욱 시인의 시 제목이다. 시는 “전쟁 직후에 익숙해졌던 수제비/ 국민소득 1천 달러가 된다는 요즈음 다시 익숙해진다는 수제비/ 그제나 이제나 가난은 우리의 무기”로 첫 연을 시작한다. 30년 전 우리가 어떻게 살았는가를 한눈에 보게 만드는 대목으로, 여기서 가난은 이른바 신자유주의가 가난을 무기로 가난한 나라들을 더 가난하게 만든다는 개념과는 정반대의 무기가 된다. 지금이야 소득이 2만달러에 근접해 있다지만, 그때는 1000달러도 엄청난 것이어서 국민들은 유신독재 아래서 겪는 큰 희생과 고통을 불가피한 비용으로 받아들이게끔 강요되었다. 하긴 그 10여년 전에는 소득이 100달러도 안 되었으니 정부로서도 큰소리칠 만은 했다. 위의 시는 그 1000달러의 효력도 일부에 한정된 채 고루 미치지 못했음을 암시한다. 전쟁 직후에 익숙했던 수제비가 다시 익숙해진다는 진술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이 시의 방점은 거기 있는 것은 아니다. 비록 우리는 가난하지만 서로 돌보고 힘을 합치며 꿈을 가지고 살고 있다는 메시지를 읽을 수 있다. 가난 타령에 넌더리를 낼 사람이 적지 않겠지만 정말 그 무렵 우리는 가난했다. 서울 변두리는 무허가 주택으로 빼곡한 빈민촌들이 차지했으며, 동네에는 공중화장실밖에 없어 아침이면 용변을 보고 버스로 등교해야 하는 학생들로 장사진을 이루었다. 골목은 어둡고 침침해서 밤이면 여간 조심하지 않고는 신발에 오물을 뒤집어쓰기가 보통이었다. 아마도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라면으로 점심 저녁을 때우는 노동자들이 없었으면 산업화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런 가운데서도 가난한 사람들은 서로 보살피고 꿈을 가지고 살았으니 ‘가난은 우리의 무기’라는 에피그램이 호소력을 가지는 것은 이래서일 터이다. 말하자면 그렇게 가난할 때는 모두가 가난했기 때문에 ‘가난은 우리의 무기’가 될 수 있었는데 지금은 우리가 풍요라는 허위의식에 취해 가난한 이웃을 외면하고 버려둠으로써 그 말은 빛을 잃었다. 제각기 자기이익에만 눈이 어두워 가난한 이웃이 아직도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아예 잊어 버렸다. 얼마 전 한 노숙자가 오랜 노숙이라는 고생 끝에 1억 2800만원이라는 큰돈을 모으고도 써 보지도 못하고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난 슬픈 사건이 그 사실을 잘 말해 준다. 그는 호적이 없는 사람으로 이름도 성도 나이도 모른다. ‘나해동’이라는 이름으로 십수년에 걸쳐 모아 저축한 큰돈이 있었지만 실명제가 실시되면서 그 돈을 찾을 수가 없게 된 것이다. 고물을 주워서 팔고 평생 리어커에서 웅크리고 자면서 모은 피맺힌 돈이다. 마침내 법원의 판결로 이름도 갖게 되고 돈도 찾게 되었지만 이미 그는 병이 깊어 돈을 만져 보지도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가난은 우리의 무기’라는 정서 속에서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오늘도 서울역을 비롯해 이곳저곳에 수십명 수백명의 노숙자들이 우글거린다. 지하철에서는 하루에도 여러 차례 구걸하는 장애인을 만나게 되고, 공원은 무료급식으로 하루를 넘기는 노인들로 넘친다. 국민소득 2만달러라는 이 풍요의 시대에 말이다. “어린 것들 배도 못 채우는 아버지라니/ 중랑교를 넘어가는 밤버스에는 어김없이 예닐곱 노동자가 졸고/ 검푸른 냇물 위로는 어김없이 불빛은 번쩍이고/ 망우리 근처에서는 밥상마다/ 끓는 냄비에 마구잡이로 뜯어 넣은 수제비 같은 한숨”(‘가난은 우리의 무기’ 4연) 같은 풍경은 이제 우리 곁에서 볼 수 없는 것이 되었다고 자만할 때가 아니다. 부자 감세며 4대강 살리기 등에 역점을 둔 정책이 이런 풍경을 다시 만들어내고 있다는 일부 진단을 허투루 들어서는 안 된다. 나해동이나 “어린 것들 배도 못 채우는 아버지”들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는 보도도 들린다. ‘가난은 우리의 무기’를 다시 심각하게 생각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시인 신경림
  • “못난 놈들과 얼굴만 봐도 흥겹던 그 시절 그리워”

    15일 서울 태평로 코리아나호텔에서 기자간담회를 가진 시인 신경림은 참 순박한 모습이었다. 그는 “책 내고 기자들 만난 건 처음”이라며 터지는 카메라 플래시에도 어쩔 줄 몰라했다. 새로 낸 자전적 에세이집 ‘못난 놈들이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문학의문학 펴냄)를 소개하는 자리였다. ●가족도 못먹여 살리던 문인은 ‘못난 놈’ 그가 일제강점기를 지나온 유년시절부터 시인으로 문단을 누비던 때까지 이야기를 모두 담은 자전적 책을 쓴 건 처음이다. “재미없는 인생이라 에세이를 지금껏 안 냈는데, 지금 젊은이들이 그 시절 이야기를 알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책을 냈다.”는 시인. 식민 현실도 모른 채 자랐던 어린 시절 이야기를 1부, 천상병·이문구 등 문우들과 함께했던 1960~70년대 문단 이야기를 2부로 해서 썼다. 2002년 ‘우리교육’과 2003~04년 ‘세계일보’에 연재한 것을 수정·보완해서 묶은 것이다. 스스로 재미없고 평범한 인생이라 하지만 시인은 반주로 낸 와인을 한 잔 하고 나니 재미있는 얘기를 술술 한다. “그때는 전화도 없고 서로 주소도 몰랐는데 용케도 서로 만나지더라.”며 문단 얘기를 꺼낸다. “원고료 받으러 신문사·잡지사로 직접 가니까 거기서 친구들 만나고 했지. 또 명동 갈채다방 같은 데 앉아 있으면 사람들을 다 만나. 누가 원고료 받아 들고 오면 같이 술로 다 마셔 버리고 그랬지.” 그는 자신을 포함해 가난하고 권력도 없어 가족들도 못 먹여 살리던 문인들을 ‘못난 놈’이라 했다. 그는 대통령도 우리 손으로 못 뽑던 시절이지만, 그래도 못난 놈들과 웃던 그 시절이 그립다고 한다. “그래도 그때는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거든.”이라며. ●“황석영, 변절이라고 할 것까지야…” 최근 이명박 대통령의 중앙아시아 방문 공식수행과 현지 발언 등으로 ‘변절 논란’이 일고 있는 문우 황석영 얘기를 꺼내니 별 얘기를 안 한다. “그럴 수도 있겠지 뭐.” 하며 “변절이라고 할 것까지 있나. 한번 운동권이었던 사람이 어디 가겠냐.”고 슬며시 덧붙인다. 한편 황석영씨는 이날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비난을 예상했지만 이렇게 드셀 줄 몰랐다. 설명이 잘 안된 채로 대통령 순방에 동행한 것이 원인 같다.”고 해명했다. ●“조태일·이문구 제일 그리워” 술이 몇 잔 더 돌고 얼굴이 불콰해지니 그리운 사람 이야기를 꺼낸다. “조태일(시인·1941~1999)이하고 이문구(소설가·1941~2003) 이런 친구들이 제일 그립지. 조태일이 고향인 태안사도 같이 가고,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때는 감옥도 같이 갔었어.”라고 한다. 80년 민주화운동 때도 조태일은 그와 함께했었다고 한다. 그들이 세상에 없는 지금 시인이 재미를 두고 있는 건 술. 또 시인 구중서 등 친구들과 두는 내기바둑이다. 그리고 평생 손에서 놓지 않았던 것, 바로 시 쓰기다. 시인은 현재도 꾸준히 작품을 써내고 있다. 당분간 다른 책 쓸 계획은 없으며, 다음에는 시집으로 돌아올 예정이라고 한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신경림 누항 나들이] 딸을 예사로 팔아먹던 옛일이 생각나는 까닭

    [신경림 누항 나들이] 딸을 예사로 팔아먹던 옛일이 생각나는 까닭

    현 덕이라는 작가를 기억하는 독자는 많지 않을 것이다. 1930~40년대에 주옥 같은 동화와 소설을 쓴 작가이면서도 월북하는 바람에 남쪽에선 잊혀졌고 북쪽에서도 제대로 인정을 받지 못해 남북 문학사에서 다같이 빠져 있는 작가다. 소년시절 그의 중편 ‘군맹(群盲)’을 읽고 감동을 받은 기억이 아직도 새롭다. 동대문 밖 낙산 아래 빈민촌이 무대로 남의 땅에 움막을 짓고 사는 가난하고 못난 사람들 이야기인데, 가장 신나는 대목은 딸을 팔아 한밑천 잡으려던 부모 모르게 딸 점숙이 몸값을 미리 챙겨들고 애인인 만성과 함께 줄행랑을 놓는 장면이다. 그것을 뒤늦게 안 뒤 동네 이웃 사람들은 허탈하면서도 시원해하는 장면도 잊혀지지 않는다. 아마도 이렇게 딸을 팔아먹는 풍습은 옛날 우리에게는 그다지 낯선 것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김동인의 단편 ‘감자’의 비극도 주인공 복녀가 무능하고 게으른 늙은이한테 돈 몇 푼에 팔려가면서 비롯된 것이고, 이용악의 시 ‘북쪽’에도 “북쪽은 고향/ 그 북쪽은 여인이 팔려간 나라”라는 표현으로, 가난하던 시절 국경지대의 우리 조상들이 딸들을 남의 나라 사람들에게 팔아먹기도 했음을 암시한다. 불과 70, 80년 전 우리 현실이지만 여성이 유력한 차기 대통령 후보로 꼽히고 사법시험에 여성들이 절반을 차지할뿐더러 사관학교에서 수석졸업을 여학생이 예사로 하는 요즘, 상상인들 할 수 있는 일이겠는가. 한데도 뜬금없이 딸 팔아먹던 옛날 얘기를 꺼내는 것은 여성을 학대해서 돈을 챙기는 못된 행태가 자주 뉴스거리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바로 딸을 팔아먹는 것은 아니라 하더라고 이 또한 그 비뚤어진 풍습의 변형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예컨대 등록금을 댈 수 없는 여학생이 고리로 돈을 얻어 썼다가 갚지 못해 업소에 나가 성매매를 하고, 견디다 못한 딸의 고백으로 사실을 안 아버지가 딸을 죽이고 자살을 하는 비극만 해도 그렇다. 고리대금업자는 그 여학생이 어떤 부당한 조건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을 만큼 돈이 급하지만 결국은 고리를 감당하지 못할 것이라는 점을 이용, 샤일록식 계약으로 옭아맨 뒤 마침내 성매매까지를 강요해서 그 돈마저 착취한다. 이 현실에서 나는 성을 상품으로 전락시켜 이득을 챙기는 고약한 뚜쟁이들과 함께, 예쁜 딸을 팔아 생존을 이어갈 수밖에 없었던 못난 우리들 옛 아버지들이 생각난 것이다. 문제는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여성이라는 성을 돈이나 출세와 연계시키는 후진적 인식이 남아 있다는 점이지만 진정으로 딸을 귀하게 생각할 줄 모르는 인식이 그 기저에 깔려 있음은 더 따질 필요도 없다. 정말로 딸을 귀하게 생각한다면 남의 딸 또한 귀하게 생각해야 맞는 것이 아니겠는가. 장자연 자살의 비극도 그렇다. 무언가 이루어 보기 위해서 노력하는 한 젊은 여성을 그 약점을 이용해서 원하지 않는 일을 거부하지 못하게 한 것이 먼저 잘못된 일이지만 그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 약자인 여성을 농락하려는 자들이 범람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또한 문제다. 청와대 고위직이 연관된 성접대 스캔들도 마찬가지로 그런 자들이 대체로 지도적 위치에 있는 힘 있는 자들이어서 아무런 처벌도 제재도 받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소문이라도 날까 봐 모두들 쉬쉬하는 것이 우리의 현주소이다. 이 소문을 축소하느라고 박연차 게이트가 의도적으로 과장되고 있다는 유언비어를 나는 믿지 않지만 말이다. 진심으로 딸들을 귀하게 여기는 정서가 여전히 결여되어 있는 한, 여성이 유력한 차기 대통령 후보에 오르고 여학생이 경찰학교에서 수석을 하는데도 우리나라는 여전히 “북쪽은 고향/ 그 북쪽은 여인이 팔려간 나라”의 후진국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군맹’의 점숙이나 ‘감자’의 복녀가 지금 국민소득 2만달러의 우리나라 곳곳에 존재하고 있다니 참으로 슬프고도 안타까운 일이다. 시인 신경림
  • 시대정신 담기 35년… 아직도 타는 목마름

    시대정신 담기 35년… 아직도 타는 목마름

    창작과 비평(창비) 시선이 최근 35년 만에 300번째 시집을 냈다. 1번 시집 ‘농무’ 이후 김용택의 ‘섬진강’, 김지하의 ‘타는 목마름으로’, 최영미의 ‘서른, 잔치는 끝났다’ 등 현실 참여 성향의 시로 한국시사에 굵직한 발자취를 남겨 왔다. 우리 문학사의 한획을 긋기에 그동안 도도하게 흘러 왔던 시의 물줄기를 편지형식으로 기사화했다. 네, 창비시선입니다. 그때는 몰랐습니다. 1975년 3월 신경림(73)의 첫 시집 ‘농무(農舞)’로 첫선을 보일 때만 해도 이렇게 길게 갈 줄 몰랐습니다. 거센 바람이 몰아쳐도 어깨 겯고 버티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을 뿐이었습니다. 버티는 것조차 버거워지면 어쩔 수 없이 꺾이는 거라고 내심 생각도 했습니다. 또한 그렇게 주저앉는 것도 훗날 역사가 기억해줄 것이라고 미리 위로도 해봤습니다. 꼬박 서른 다섯 번 봄꽃이 피었다가 저물었습니다. 남루한 우리네 삶을 시의 언어로 바꿔내는 시인들은 도처에 많았습니다. 절망 속에서 애써 아름다움을 얘기한 희망의 시인들도 있었습니다. 그제껏 밤하늘 별나라 얘기처럼 멀게만 느껴지던 시를, 사람의 얘기, 이 땅의 얘기로 채워내려 뚜벅뚜벅 걸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문득 뒤돌아보니 무려 299개의 발자국이 남겨져 있네요. 이제 막 하나 더 보탰으니 딱 300개입니다. ●이종욱 ‘꽃샘추위’ 등 숱한 시집 판금조치 신경림의 ‘농무’는 어땠나요. ‘민중’의 실체조차 과학적으로 정립되지 않았을 때였지요. 또 혹독한 현실은 지식인, 문인들조차 ‘모더니즘’이라는 이름으로 자기 안으로만 빠져들게 만들 때였지요. 하지만 ‘농무’를 통해 민중이야말로 꿈틀거리는 역동성과 함께, 현실을 딛고 설 수 있는 건강성을 품고 있는 사회 변혁의 주체임을 문학적으로 드러냈다고 자부합니다. 예상은 했지만 고통스러웠습니다. 그저 시집 한 권 내는 것이 시대와의 싸움이었습니다. 노래로, 연극으로 모양을 달리하며 끈질기게 이어온 김지하의 ‘타는 목마름으로’(1982년)는 당시 편집장이었던 시인 이시영이 안기부에 끌려가 고초를 겪게 만들었습니다. 그뿐이었나요. 조태일의 ‘국토’(1975), 황명걸의 ‘한국의 아이’(1976년), 양성우의 ‘북치는 앉은뱅이’(1980년), 이종욱의 ‘꽃샘추위’(1981년) 등 숱한 시집들이 합법적으로 읽히지 못한 채 판매 금지됐습니다. 그런 곡절을 거치며 모더니즘이 주류를 이루던 당시 시작(詩作) 경향을 ‘리얼리즘’으로 바꿔 내는 한복판-결국은 그곳이 사람 속, 민중 속이었습니다-에 있었음은 고통이었고 즐거움이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세상도 많이 바뀌었습니다. 1990년대 들어 나온 최영미의 ‘서른, 잔치는 끝났다’는 51만부가 넘게 팔려 초대형 베스트셀러 시집이 됐습니다. 박노해의 ‘참된 시작’(10만 7000부), 정호승의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12만부) 등도 보태져 시집도 베스트셀러가 될 수 있음을 증명했습니다. 35년 동안 신경림이 8권, 김용택·정호승이 각각 7권, 고은이 6권의 시집을 창비에서 냈지만 이제 창비만을 고집하는 시인은 많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것은 있죠. 최근 저희를 통해 첫 시집을 냈던 김선우의 ‘내 혀가 입속에 갇혀 있길 거부한다면’(2000년), 문태준의 ‘수런거리는 뒤란’(2000년), 손택수의 ‘호랑이 발자국’(2003년) 등 젊은 시인들의 시를 한 번 읽어 보세요. 저희의 변함없는 사람과 삶에 대한 애정, 그리고 또 다른 35년을 읽을 수 있을 것입니다. 300개 발자국 하나하나마다 새벽 이슬이 맺혔고, 비가 내렸고, 우리의 눈물이 고였습니다. 밤하늘에 박혀 있던 별이 조심스레 내려와 또 다른 별을 새겨 놓았습니다. 굳이 높은 곳만 보지 않더라도 땅을 보고, 사람을 보고도 밤길을 걸을 수 있게 총총히 밝혔다고 조심스레 자부합니다. 이제 다음달에 만나게 될 301번째 발걸음 ‘야생사과’(나희덕 지음)부터는 판형을 조금 키우고 표지 디자인도 바꾸려고 합니다. 또 다른 300번의 걸음의 시작이 된다 생각하니 처음의 긴장이 새록 솟아나는 듯합니다. ●현실참여 ‘리얼리즘’ 詩作 꽃 피워 지난 20일 300번째 시선집 ‘걸었던 자리마다 별이 빛나다’(박형준·이장욱 엮음)를 내놓은 기념으로 북콘서트를 가졌습니다. 24일에는 광화문 한 선술집에서 299개 발자국의 주인공들이 모두 모여 조촐한 축하잔치를 가질 것입니다. 그리고 24일 수원을 시작으로 6월 하순까지 광주, 울산, 부산, 전주, 제주 등 전국을 돌며 시 낭송회를 가지려 합니다. 꼭 오시면 좋겠지만 설령 못 오시더라도 저희의 기쁨을 나눌 수 있도록 지난 35년 동안의 주요 시집 36종의 시인 자필 사인본을 판매할 것입니다. 시(詩)는 노래되어야 시니까요.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10일 TV 하이라이트]

    ●낭독의 발견(KBS1 밤 12시) 반세기가 넘는 세월 동안 시인의 눈으로, 시인의 마음으로 고단한 민초들을 보듬어 온 시인 신경림. 대학생에서 주부·직장인·중년신사까지 시인의 시에서 삶을 위로받은 다양한 관객들 사이로, 자신의 시집을 한아름 안은 노시인이 낭독무대에 오른다. 시인의 10번째 시집 표제작 ‘낙타’를 낭독하며 첫 무대를 연다. ●비타민(KBS2 오후 8시55분) 두피의 혈액 순환을 돕고 모근을 튼튼하게 하는 오메가-3 지방산. ‘이 식품’에는 오메가-3 지방산이 풍부하다. ‘위대한 밥상’이 제안하는 탈모 예방 식품은 무엇인지 알아본다. 중년 남성은 물론 어린이, 여성까지 누구도 예외일 수 없는 탈모의 위험. 탈모에서 탈출하고 동안으로 거듭날 수 있는 방법도 알아본다. ●태희 혜교 지현이(MBC 오후 7시45분) 희정이 만든 샌드위치를 맛본 여자들은 샌드위치 장사를 해보라며 희정을 부추긴다. 미선의 부동산 한편에서 본격적인 장사를 시작한 희정. 그러나 킹왕빵 샌드위치와의 경쟁으로 선경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미선과도 갈등을 빚는다. 한편 희진과 희준이 사귄다는 소문이 방송국 성민의 귀에도 들어간다. ●아내의 유혹(SBS 오후 7시15분) 강재가 하늘에게 프로포즈한 일 때문에 고민하던 민 여사는 강재에게 은재 일과는 상관없이 하늘을 받아달라고 부탁하고, 강재는 오래전부터 하늘과 결혼할 마음은 있었지만 다시 속을 끓이고 싶지는 않다고 말한다. 한편 메이크업아티스트 선발대회에 지원했다가 탈락하게 된 애리는 은재에게 이를 따진다. ●리얼실험프로젝트X(EBS 오후 8시50분) 도시 아이들은 넉넉한 자연이 아쉽고, 시골 아이들은 도시의 다양한 교육 환경이 아쉽다. 그래서 도시 아이와 시골 아이가 서로 집을 바꿔 생활하는 실험을 한다. 2주간 서로의 집을 바꾼 아이들은, 그 아이가 살던 그대로 일상을 체험하게 된다. 아이들은 어떤 변화를 겪고, 무엇을 깨닫게 될까? ●시네마 투데이(YTN 오후 8시35분) ‘인사동 스캔들’로 찾아온 김래원, 엄정화를 인터뷰한다. 또한 한예슬의 목소리 더빙으로 관심을 모으고 있는 ‘몬스터 vs 에이리언’의 시사회 현장, 정재영과 정려원 주연의 코믹 영화 ‘김씨 표류기’의 제작보고회 현장을 방문하고, 공효진, 신민아 주연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의 흥행 포인트를 분석해본다.
  • 신경림 시인 등 5명 호암상 수상

    호암재단은 10일 2009년 호암상 수상자를 확정, 발표했다. 과학상에 황준묵(45·고등과학원 교수) 박사, 공학상 정덕균(50·서울대 교수) 박사, 의학상 김빛내리(39·서울대 교수) 박사, 예술상 신경림(74) 시인, 사회봉사상 박청수(71) 원불교 교무 등 5명이다. 황 박사는 2004년 예술상 수상자인 이화여대 황병기 명예교수의 장남으로 호암상 최초로 부자(父子)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시상식은 오는 6월1일 오후 3시 호암아트홀에서 열린다.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신경림 누항 나들이] 오체투지와 소통의 문제

    [신경림 누항 나들이] 오체투지와 소통의 문제

    지금 수경 스님, 문규현 신부 그리고 정종훈 신부 셋은 북쪽이 로켓을 쏘아올리고 많은 전·현직 정치인이 검은 돈과 연관된 혐의로 검찰에 불려다니는 어수선한 상황 속에서 오체투지로 ‘사람과 생명과 평화’의 길을 찾아 국토를 순례하고 있다.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3월28일 계룡산 신원사를 출발하여 임진각까지 75일 예정의 대순례다. 상황이 좋아진다면 내년에는 임진각을 출발, 휴전선을 넘어 묘향산까지 가는 3차 연도 순례도 계획하고 있다. 오체투지는 흔히 티베트 불교에서 하는 의식으로, 이마와 양 팔굽과 양 무릎을 땅에 붙임으로써 가장 낮은 자세로 땅과 하나가 되면서 나를 낮추어 다른 모든 것들을 우러른다는 상징을 갖는다. 수경 스님은 “오체투지는 몸을 낮추는 과정을 통하여 마음을 낮추는 기도 행위”라고 정리한 바 있는데, 이 말은 지금 우리나라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이러한 기도 행위라는 뜻으로 읽어도 좋을 것이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 생명의 소중함이 지켜지는 세상, 폭력과 전쟁이 발붙이지 못하는 세상, 이런 세상을 만들려면 나 스스로 몸을 낮추고 다른 모든 것들을 우러르는 것만이 가장 빠른 길이라고 오체투지는 호소한다. 우리 사회가 지금 위기에 처했다는 말을 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빈부 격차가 갈수록 셰레현상(가위모양)으로 벌어지며 많은 사람이 거리로 내쫓겨 사람으로서의 존엄성을 지키지 못하고, 경제논리만을 앞세운 마구잡이 개발로 사람뿐 아니라 더불어 살아야 할 모든 생명체들이 죽어가고 있으며, 북쪽의 고집스러운 핵 외교와 남쪽의 지혜롭지 못한 대처가 평화를 위협한다고 많은 논자들은 지적한다. 오체투지를 보면서 나는 새삼스럽게 우리가 가장 낮은 자세가 되어 상대를 높이면서, 상대를 존중하면서 이런 문제들을 깊이 생각해 보는 일이 다시금 중요해졌다는 생각을 한다. 오체투지가 호소하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소통의 필요성이다. 사실 우리 사회의 문제들은 많은 것이 소통의 부재에 연유한다고 보아도 지나치지 않을 터이다. 거리로 내쫓기는 자와 내쫓는 자가 소통이 없고 개발로 이익을 얻는 자와 피해를 보는 자가 또한 소통이 없으며 남과 북의 대화가 끊어진 지는 너무 오래다. 촛불 시위나 용산 참사나 개성공단이나 금강산에서 발생하는 여러 문제가 그 요인으로 소통의 부재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 백낙청 교수가 지난달 관훈클럽 토론에서 “우리 사회의 합리적인 보수와 책임 있는 진보가 협력하여 폭넓은 중도세력을 형성하면서 정부 및 정치권과 시민사회가 동참하는 새로운 거버넌스 체계”를 형성하자고 한 제의는 그 단면을 아주 잘 집어낸 처방이다. 우리 사회의 혼란과 부조리는 자기 생각이나 주장만을 옳다고 여기면서 남의 말에는 전혀 귀를 기울이려 하지 않는 극단주의자들이 조장한 면이 많다. 세상이 다 아는데도 북한의 인권문제가 한국의 인권문제보다 더 문제될 것이 무엇이냐고 강변하는 청맹과니 좌파나 3·1절에 성조기를 흔들며 설치는(백낙청 교수가 한 신문의 인터뷰에서 한 말) 우파가 득시글거리는 것이 그 한 예다. 상대의 생각과 주장을 존중하면서 내 생각과 말을 듣게 할 때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많은 문제들이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며, 오체투지에서 이런 메시지를 읽는 것은 결코 아전인수가 아니다. 얼마나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영조와 정조가 다같이 탕평책을 썼지만 영조가 각 당파의 과격파를 고루 등용한 반면 정조는 과격파를 철저하게 배제했다는 설이 있다. 남의 말도 들을 줄 알고 남의 생각도 존중할 줄 아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우리 사회의 주류가 될 때 우리 사회도 비로소 안정을 얻게 되지 않을까. 수경 스님들이 하는 오체투지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한다. 이것은 강한 자들, 힘있는 자들이 먼저 몸을 낮추고 사회적 약자들을 존중하며 그 말에 귀 기울일 때만 있을 수 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시인 신경림
  • 오체투지로 다시 만나는 성직자들

    오체투지로 다시 만나는 성직자들

    “천지자연의 순리를 따라 국민과 국토를 무한히 섬기겠다는 서약입니다. 우리사회가 당면한 어려움을 이기고 대립과 갈등을 넘어 좀더 나은 세상으로 나가는데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지난해 가을 50일간 지리산 노고단에서 계룡산 중악단까지 오체투지 순례에 나섰던 불교, 천주교 성직자들이 다시 뭉쳐 오체투지 순례를 이어간다. 지난해 장정을 함께 한 수경(화계사 주지) 스님과 천주교 문규현 신부, 그리고 지난해 9월부터 안식년을 맞아 최근 순례에 합류한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대표 전종훈 신부 등이 주인공. 이들은 오는 28일 계룡산 신원사 중악단을 출발해 75일 동안 하루 4㎞씩 무릎과 팔꿈치, 이마 등 몸의 다섯 부분이 땅에 닿는 절을 하는 오체투지 기도로 서울과 임진각을 거쳐 북한의 묘향산에 이르는 순례를 진행할 계획이다. 이번 동행은 따지고 보면 지난해 ‘사람의 길, 생명의 길, 평화의 길을 찾아서’라는 제목 아래 원래 북한 묘향산까지로 정했던 순례의 나머지 구간을 이어가는 행사. 순례단은 계룡산 신원사 앞에서 신경림 시인이 작성한 ‘고천문’을 낭독한 뒤 수덕사 설정 스님의 법문을 듣고 출발한다. 충남 공주, 공주읍 정안면, 천안시 목천읍, 천안시를 거쳐 4월23일 경기도에 입성한 뒤 평택 오산 화성 수원 의왕 안양 과천을 지나 5월13일 남태령을 넘어 서울에 도착할 예정. 서울 입성 후 일정은 확정짓지 못했지만 5월17일 서울시청 앞, 다음날 명동성당과 조계사에서의 오체투지 기도에 이어 6월10일 1차 목표지인 임진각에 도달할 계획을 세워 놓고 있다. 지난해 순례는 연인원 5000여 명이 참여한 데다 마지막 구간에서 2000여 명이 동참하는 바람에 행렬이 3.5㎞에 이를 만큼 큰 관심을 모았던 행사. 그 마무리 순례인 이번 오체투지는 적지 않은 난항이 예상된다. 우선 북한 지역내 일정과 관련해 순례단은 임진각과 군사분계선을 통과해 묘향산에 이르는 구간 절차를 북한 천주교중앙협의회측과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차량 통행이 많은 서울과 수도권 지역의 순례도 지방에 몰렸던 지난해 순례와는 사뭇 다르다. 특히 서울시내 순례를 향한 당국의 시선도 순례 일정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순례에 동참한 전종훈 신부는 오체투지 순례에 대해 “모든 문제를 경제적으로 해결하려는 우리 사회의 모순을 극복하고 해법을 찾기 위해 성직자들이 먼저 성찰하고 반성한다는 차원의 기도 순례로 본다.”면서 “이번 순례를 계기로 많은 이들이 제대로 된 사람의 길, 평화의 길, 생명의 길을 진지하게 고민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신경림 누항 나들이] 북한산과 한강, 그리고 4대강 정비

    [신경림 누항 나들이] 북한산과 한강, 그리고 4대강 정비

    북한산에 바른 이름을 찾아 주자는 움직임이 있다. 북한산은 일제가 침략해서 바꾼 이름이니까 본 이름인 삼각산으로 되돌려 놓자는 주장이다. 그러나 영·정조 시대 한시 4대가로 일컬어지던 이서구(李書九)의 시에 ‘북한산을 오르며’(遊北漢山中)가 있고, 같은 시대 역시 4대가로 불리던 실학자 이덕무(李德懋)의 글에도 “이틀 밤을 자고 다섯 끼니를 먹으면서 북한산에 있는 열한 곳의 사찰”을 다녔다는 ‘북한산 기행’이 있는 것을 보면, 이 주장이 반드시 옳은 것 같지는 않다. 물론 조선조 개국공신 정도전은 ‘신도가(新都歌)’에서 “앞엔 한강수여 뒤엔 삼각산이여”라 했고, 병자호란 때 심양으로 끌려가던 김상헌도 포로가 되어 잡혀가는 회한을 “가노라 북한산아” 하지 않고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 보자 한강수야” 하고 노래했으니, 삼각산이 보편적인 명칭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북한산이라는 이름도 별칭으로 쓰였을 것임은 서울이 고구려 때는 북한산군으로 불렸다는 기록이 여러 곳에 남아 있는 것으로 미루어 알 수 있다. 내가 북한산 타령을 하는 것은 여러 군데서 우리나라 특히 서울에는 외국 관광객들에게 보여 줄 것이 너무 없다는 소리를 들어서다. 관광도 세계화한 마당에 이집트나 로마 또는 이스탄불을 구경한 사람들에게 서울이 눈에 차겠느냐는 것이다. 동아시아로 좁혀 놓고 보아도 그렇단다. 베이징이나 교토를 다녀온 사람들에게 서울이 과연 그만큼 감동을 줄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경제나 문화에서만이 아니고 관광에서도 우리는 중국과 일본 사이에 샌드위치가 되어 있다는 자조적인 말도 듣는다.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북한산을 관광명소로 만들 수는 없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한다. 북한산이야말로 그만 한 요소를 가지고 있지 않을까 해서다. 케이블카를 놓는 둥 산을 요란하게 개발하자는 얘기는 아니다. 산을 다치지 않고도 관광객에게 북한산을 알리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을 터다. 가령 산 아래로 도보나 자전거로 일주하면서 산을 즐길 수 있는 환도로를 만드는 것도 한 예가 된다. 나는 외국 친구들을 여러 번 북한산에 데리고 간 일이 있다. 그들은 한결같이 서울과 어우러진 북한산이 세계의 어떠한 산보다 아름답다고 감탄했다. 북한산 못지않게 관광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는 곳이 한강이다. 여행을 많이 한 사람들이 파리의 센강이나 런던 템스강이 어디 한강을 따라오느냐고 장담하는 것은 흔히 듣는 소리다. 한편 한강은 관광자원으로서만 아니고 국민의 정신 및 육체 건강을 위한 수양과 휴식을 위한 터전으로서도 얼마든지 선용될 수 있는 곳이다. 그런데도 안타깝게 도보나 자전거로 강을 따라 갈 수 있는 길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다. 한동안 한강과 낙동강을 연결하는 대운하 운운이 세상을 시끄럽게 만들다가 이것이 4대강 정비로 귀결된 것은 그나마 다행한 일이다. 이것이 대운하를 위한 꼼수가 아니라면 말이다. 물이 턱없이 부족하고 또 우기에는 홍수가 빈발하여 막대한 피해를 입는 현실에서 4대강 정비를 덮어놓고 반대한다는 것은 안 될 말이다. 다만 그 정비가 경제논리에 함몰되어 일률적으로 강바닥을 긁어내고 둑을 높이는 토목공사적 발상에만 머물러서는 안 될 것이다. 이 정비에는 우선 강을 따라 걷거나 달릴 수 있는 길을 만드는 일이 포함되어, 강을 모든 국민이 진정으로 자기 것으로 가지면서 사랑하게 만들어야 한다. 또 친환경적 상상력에 바탕하여, 산소가 풍부한 여울과 소로 이루어진 계류와 상류, 물 흐름이 느리고 바닥에 자갈과 모래가 섞여 있는 중상류, 강폭이 넓고 물 흐름이 비교적 느린 중류 등의 특성을 제대로 살리는 정비가 되어야 한다. 여울과 소, 자갈과 모래가 많은 곳, 물 흐름이 느린 곳에 사는 고기가 조금씩 다르다는 점을 간과해서도 안 된다. 당장 몇 만의 일자리도 중요하고 강과 산 정비도 꼭 필요하지만, 문화적 상상력이 결여되면서 강만 훼손하는 결과를 가져올까봐 걱정이다. 시인 신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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