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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몸… 때론 욕망의 표현 때론 문화의 저항

    몸… 때론 욕망의 표현 때론 문화의 저항

    몸의 역사1/다니엘 아라스, 로이 포터 외 지음/주명철 옮김 길/630쪽/4만 5000원 “역사가는 오랫동안 몸을 잊고 있었다. 그러나 사회과학은 그 중요성과 깊이를 밝혔다. 몸의 독창적 위치는 개인과 사회적 경험이 만나는 데 있다는 사실로 알 수 있다.” 인간의 몸은 생각과 욕망을 표현하고, 그 시대의 문화를 소비하는 장소다. 그런가 하면 공동체의 규범과 틀 속에서 개인의 생각과 욕망을 억제하거나 곁눈질하면서 한계를 넘을까 말까 고민하는, 즉 문화적 저항이 나타나는 곳이기도 하다. 그런 까닭에 몸의 역사에 눈길을 돌리면 그 시대의 정치·사회·문화 속에서 인간이 느끼고 행동하는 방식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문화 전반의 흐름을 생생하게 볼 수 있다. 몸을 국가 차원에서 사회관계 속에서 또는 종교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보면 문제는 더욱 복잡해진다. 하지만 그 중요성과 깊이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몸을 정치·역사 담론에서 다룬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다. 프랑스의 아날학파가 1974년 ‘역사하기’ 제 3권에서 몸을 새로운 연구대상으로 등록하면서 역사학의 틀 속에서 몸을 다루게 된다. 신간 ‘몸의 역사 1: 르네상스에서 계몽주의 시대까지’는 오랫동안 잊혀졌던 몸에 대한 담론을 역사적 측면에서 고찰한다. 프랑스 파리 5대학 사회역사학 교수로 사회과학고등연구원(EHESS) 학제간 연구센터 공동소장과 프랑스 국립도서관 과학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한 조르주 비가렐로가 책임편집을 맡았다. 사고방식과 상징, 종교, 예절, 풍속, 미술의 중심에 몸이 있는 만큼 이 책이 다루는 주제는 방대하다. 제 1장의 저자는 온갖 고통을 겪은 예수의 몸에 난 다섯개의 상처를 통해 몸의 신성함에 집중한다. 로마병사의 창에 상처 난 구세주의 몸에서 흐르는 피는 하느님의 인간에 대한 사랑과 연결되는 신성한 의미를 갖는다. 중세만큼은 아니지만 르네상스와 근대까지 종교가 일상의 모든 것을 지배한 만큼 ‘몸’ 역시 그 프레임 안에 머문다. 3장에서는 르네상스 시대부터 앙시앵 레짐 말까지 성욕의 역사를 통해 몸에 접근한다. 제도와 문화적 규범 속에서 개인의 처세와 경험은 어떻게 나타날 수 있는지를 보는 것은 흥미롭다. 이 밖에 몸을 보는 관점과 태도, 운동과 관련된 담론, 해부술과 해부학, 건강과 질병, 비인간적인 몸, 왕의 몸 등 다양한 주제들을 전문가들은 각자의 관점에서 분석했다. 몸의 역사를 르네상스부터 시작한 이유에 대해 바가렐로는 “근대의 몸이 르네상스 시대에 출현했기 때문”이라고 단정한다. 그는 “그 시대 사람들은 몸이 그 자체의 추진력과 그 자신의 힘만으로 설명할 수 있는 기능을 가졌다고 규정하기 시작했고, 몸을 개별화하는 문화가 생겨 옛 문화와 충돌했다”고 설명한다. 르네상스 시기부터 몸을 표현하는 방식이 다양해지고 사실적이 되었을 정도로 가치체계가 바뀌었다. 그러나 여전히 종교와 관습은 몸의 해방과 개별화를 늦추는 힘으로 작용했다. 계몽주의 시대에 이르러 몸에 정신을 집중하고 합리적인 제도로 개인의 정체성이 발현되도록 뒷받침해 주면서 몸에 대한 담론도 바뀐다. 공동체의 규제가 강하게 작용하는 가운데 개인의 해방이 두드러진다. 이렇게 근대인의 몸은 복종과 해방이라는 두가지 역동적 요소가 뒤섞인 특별한 곳이 됐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영유아 교육, 유기농 동요, 12개월 아이 오감 자극하는 음악 도움

    영유아 교육, 유기농 동요, 12개월 아이 오감 자극하는 음악 도움

    영유아기 아이들에게 놀이는 학습과 연관된다. 아이들은 일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을 통해 신체, 인지, 정서 및 사회적 발달을 이루며 사소한 자극 하나도 특별하게 받아들인다. 때문에 인지능력이 발달하는 생후 12~24개월 자녀를 둔 부모라면 ‘무엇을 가지고 놀아주지?’라는 생각보단 ‘어떻게 놀아주지?’를 고민하는 것이 더욱 적합하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이 시기는 오감자극에 민감한 아이들에게 청각자극을 통해 우뇌를 발달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기도 한다. 12~24개월 아기들은 옹알이를 시작하는 시기를 지나 단어로 의사를 표현하는데, 이때 좋은 음악을 들을 수록 아기의 두뇌 성장과 지능 발달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런 중요한 시기에 아이의 청각을 자극시킬 유기농 동요와 함께 말놀이, 오감각놀이, 음악놀이, 미술놀이, 몸놀이 등으로 발달에 맞는 재미있는 놀이들로 책에 담겨 출간된다. 신간 ‘유기농 동요와 하루 10분, 베이비 홈스쿨링’은 생후 12개월 아기의 언어, 인지, 신체, 정서, 사회성 등 성장 발달 상태를 고려한 오감 활동을 충분히 할 수 있는 총 160여 가지의 기본 활동과 확장 활동을 책에 수록했다. 책에는 귀가 편안한 유기농 동요 12곡이 담겨 있다. 출판사인 리틀버디에 따르면, 전자신호를 합성해 만든 신사이저 음원으로 구성된 일반 동요CD가 조미료라면, ‘유기농 동요와 하루 10분, 베이비 홈스쿨링’의 동요 연주는 유기농 음식으로 해석할 수 있다. 특히 유기농 동요는 바이올린, 클라리넷, 플루트 등 10여가지 이상의 어쿠스틱 악기와 목에 자극적이지 않은두성 발성을 한 동요 12곡으로 편곡 제작됐다. 어쿠스틱 악기가 만들어낸, 귀가 편안한 유기농 동요와 아이의 발달에 맞는 놀이를 제공함으로써 부모와 자녀간 애착 관계 형성에도 도움을 준다. 또 영유아기에는 엄마와 정서적인 교감으로 우뇌가 발달하며, 역동적인 신체활동으로 좌뇌의 교감도 활발히 일어나는데 이때 정서적인 교감을 ‘엄마놀이’, 역동적인 활동을 ‘아빠놀이’라고 부른다. 이 때부모는 두가지 놀이를 적절하게 조화해 아이와 잘 놀아주는 것이 중요한데, 그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신간 ‘유기농 동요와 하루 10분, 베이비 홈스쿨링’이다. 리틀버디 관계자는 “유아교육 전문가로 구성된 저자가 제안하는 놀이법을 통해 부모는 가장 좋은 놀이 선생님이 될 수 있을 것”이라며 아기와 올바른 애착을 형성하고 싶은 부모, 아기와 노는 방법을 모르는 초보 부모, 아기와 잘 놀아주고 싶은 아빠들에게 ‘유기농 동요와 하루 10분, 베이비 홈스쿨링’을 추천했다. 한편 ‘유기농 동요와 하루 10분, 베이비 홈스쿨링’를 펴낸 리틀버디(www.littlebuddy.co.kr)는 아이와 부모를 위한 참신한 아이디어를 책과 스마트 TV, IPTV 등을 통해 다양한 영유아 교육 콘텐츠를 서비스하고 있다. 업체는 앞으로 가족중심의 다양한 놀이교육과 유아교육 구독 서비스 및 온 오프라인 서비스를 진행하며 아이들과 가족이 함께 즐기고 배울 수 있는 공간을 제시할 예정이다. ■ 유기농 동요와 하루 10분, 베이비 홈스쿨링 임현희, 남승연, 조승윤 공동집필/리틀버디북스 펴냄/ (페이지수)168p/ (금액)15,000원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경기침체 탓… 인터넷서도 외면당하는 책들

    경기침체 탓… 인터넷서도 외면당하는 책들

    지난해 소비자들이 인터넷으로 책을 사는 데 쓴 돈이 2012년보다 6%나 줄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계속된 경기 침체로 소비자들의 지갑이 굳게 닫히면서 책 소비량이 줄고 도서 발행 부수가 감소한 원인이 컸다. 통계청이 25일 발표한 ‘2013년 연간 전자상거래 및 사이버쇼핑 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사이버쇼핑 거래액은 총 38조 4940억원으로 전년 대비 13.0% 증가했다. 여행, 의류, 생활용품, 가전제품, 식료품 등 18개 주요 상품군의 거래액은 모두 늘었지만 서적 판매액만 감소했다. 지난해 4분기 사이버 쇼핑에서 서적 판매액은 2012년 같은 기간에 비해 6.7%나 줄었다. 지난 2012년 2분기에 -0.1%로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2001년 이후 처음으로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한 뒤 7분기 연속으로 전년 동기 대비 판매액이 줄었다. 사이버 쇼핑에서 서적 판매액은 2004년 4분기~2010년 4분기까지 6년 연속 두 자릿수 성장을 거듭하며 가파른 상승세를 보였지만 2011년부터 판매액이 점차 감소하기 시작했다. 최정수 통계청 서비스업동향과장은 “최근 전자책이 보급된 영향도 있지만, 경기 침체로 책 소비량의 상당 부분을 차지했던 아동 전집류의 판매가 줄었고 신간 서적 발행이 감소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대한출판문화협회에 따르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도서 발행 부수가 감소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2007년 17.1%에 달했던 전년 대비 도서 발행 부수 증감률은 2008년 -19.6%로 급감했다. 2012년에는 -20.7%, 2013년에는 -0.5%로 2년 연속 감소했다. 세종 장은석 기자 esjang@seoul.co.kr
  • ‘골칫덩어리’ 변신한 10대 아들의 속내

    ‘골칫덩어리’ 변신한 10대 아들의 속내

    아들이 사는 세상/로잘린드 와이즈먼 지음/이주혜 옮김/중앙 m&b/312쪽/1만 4800원 엊그제까지만 해도 귀여웠던 순둥이 아들이 왜 갑자기 ‘골치 아픈 놈’이 되어 버리는 걸까. 대체 아들은 왜 점점 말이 없어지는 걸까. 그토록 착하던 아들 입에서 욕설이 등장하고 거짓말이 늘어나는가. 호환마마보다도 무섭다는 ‘중2병’에서 우리 아들을 구할 수는 없는가. 청소년기의 아들을 둔 부모들의 고민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미국 오바마 행정부의 청소년 문제 자문담당을 맡고 있는 청소년 전문가 로잘린드 와이즈먼의 신간 ‘아들이 사는 세상’이 어느 정도 이런 고민에 대한 해답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전작 ‘여왕벌과 추종자들’을 통해 소녀들의 세계를 리얼하게 풀어낸 바 있는 저자가 ‘아들들의 이야기를 들려달라’는 부모들의 요청에 진지하게 응답한 책이다. 실제 10대의 두 아들을 둔 엄마인 저자는 20년간 청소년 전문가로 쌓은 지식과 경험에다 10대 소년 160명과의 인터뷰와 토론을 바탕으로 부모와 아들이 맞닥뜨린 일반적인 역학관계와 어려움을 살펴보고, 현실적인 조언과 해결책을 제안하고 있다. 책은 소년 세계의 사회적 구조를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부모를 비롯한 사회 전체가 소년들에게 남자다움을 유무언의 메시지를 통해 계속해서 주입하고, 남자다움의 가치를 가장 많이 갖춘 아이를 우두머리로 하고 나머지는 부하가 되는 그들만의 은밀한 계급문화가 형성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아이들은 이런 가혹한 현실에서 도피하기 위해 게임에 몰두하고 대화는 단절된다. 신체 성장, 인터넷과 SNS, 포르노, 여자친구 문제까지 골고루 다루며 부모들이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해선 안 될 말이 무엇인지,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피상적 해결책이 아니라 인터뷰에 참여한 소년들의 입을 통해서 듣고 싶은 답을 들려 준다. 저자는 책을 읽기에 앞서 소년들에 대해 다음 몇 가지를 염두에 둘 것을 당부했다. ‘소년들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똑똑하고, 친구나 가족과 정말 복잡한 문제를 겪을 수 있으며, 괜찮지 않을 때에도 “괜찮아요. 걱정하지 마세요”라고 말한다. 어떤 소년들은 자극적이고 파괴적인 것을 좋아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미쳤거나 못됐다는 뜻은 아니다. 반대로 그런 것을 좋아하지 않는 소년들도 있는데 그들이 나약하고 이상하다는 뜻도 아니다.’ 그러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부모가 자기 아이와 대화를 통해 그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을 직접 들어야 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한국에서 살아가기’… 이주노동자들의 꿈과 사랑

    ‘한국에서 살아가기’… 이주노동자들의 꿈과 사랑

    우리는 모두 집을 떠난다/김현미 지음/돌베개/236쪽/1만 3000원 안전행정부의 외국인 주민 현황분석에 따르면 2012년 현재 한국에서 살아가는 이주자들은 140만명에 이른다. 우리나라 주민등록 인구가 5094만여명인 사실을 감안하면 약 36명 가운데 1명이 외국인 주민인 셈이다. 이런 변화는 최근 20년간 갑작스럽게 일어났으며, 한국 사회에서 그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주 노동자들만 보더라도 기간산업에서부터 서비스 부문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생산 및 재생산 영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이들의 이주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해 봤는지 물어온다면 선뜻 대답을 내놓기가 어려울 것이다. 신간 ‘우리는 모두 집을 떠난다:한국에서 이주자로 살아가기’는 저자가 지난 10년 동안 이주자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이주의 현실과 문제점, 그들의 생활방식 등을 생생하게 기록한 책이다. 이주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신자유주의 경제질서에 속한 한국의 현실을 점검하고 단일문화에서 다문화로 진전할 수 있는 사회적 감수성이 무엇인지를 살피면서 이주자의 진정한 삶과 희망, 일 등을 정직하게 탐색한다. 예컨대 한국인 남성과 그와 결혼하는 베트남 여성이 상상하는 ‘가족’에는 차이가 있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한국인 남성은 부계 가족을 구성할 일원으로 이주 여성을 바라보는 데 비해 이주 여성은 더 나은 삶에 대한 이주 동기의 실현과 본국 가족을 위한 경제적 지원을 함께 고려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이주 동기의 실현을 ‘송금과 사랑’이라는 이질적인 두 개의 키워드로 표현한다. 이 책은 이주 노동자, 결혼여성 이주자 등과 한국에 찾아온 난민도 이주자 범주에 포함하면서 이주 문제와 이주자 권리가 어째서 ‘우리’의 문제인지를 각인시킨다. 아울러 한국의 이주정책 및 제도가 이주 노동자의 통제와 권리에 그 목적이 있을 뿐 이들의 인권과 노동권에는 무관심하다고 비판한다. 또한 한국을 좀 더 민주적인 사회로 만들기 위해서는 이주자의 언어를 경청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김문 선임기자 km@seoul.co.kr
  • 일제, 조선인부대로 항일 조선인 열사를 치다

    일제, 조선인부대로 항일 조선인 열사를 치다

    간도특설대/김효순 지음/서해문집/384쪽/1만 5000원 1938년 9월, 일본이 중국 북동부에 세운 괴뢰국인 만주국 치안부 산하에 조선인특설부대 창설이 결정됐다. 특설부대는 일본인 장교를 제외하고는 모두 조선인으로 채워졌다. 주요 임무는 항일 무장 세력의 섬멸이다. 중국 옌볜 조선족자치주가 조사한 항일 열사 3125명 가운데 조선인이 98%를 차지한 것을 보면, 결국 이 부대는 일본 이이제이(以夷制夷) 전략의 산물이나 마찬가지였다. 1980년대만 해도 이 부대를 ‘민족의 자랑’ ‘무적의 상승부대’로 평가하기도 했다. 간도특설대 선임지휘관이었던 김석범은 ‘만주군국지’(1987년 10월)에 “일제 탄압하에 조국 땅을 떠나 유서 깊은 만주에서 독립정신과 민족의식을 함양하며… 그 공훈은 건국건군사에서 빛나고 있다”고 썼다. 부대에 몸담았던 한 인사는 “독립군은 보지도 못했고 토벌 대상은 공비나 팔로군이었을 뿐”이라고도 했다. ‘공비’라는 표현으로 척결 대상을 희석시켰지만 일본 관동군과 만주국 치안기관이 당시 항일세력을 ‘공비’라고 불렀던 것을 감안하면, 결국 대상은 항일 조선인이었던 셈이다. 간도특설대의 존재는 분명한 사실이지만, 창설 배경과 가담자, 활동 양상 등을 명확하게 밝히지는 못하고 있다. 대부분 자료가 중국과 일본에 분산돼 있기 때문이다. 신간 ‘간도특설대’를 낸 김효순 ‘포럼 진실과 정의’ 공동대표는 20일 전화통화에서 “간도특설대는 우물쩍 끝낼 문제가 아닌, 치욕의 역사”라면서 “누군가는 간도특설대의 역사를 정리할 필요가 있었기에 책을 썼다”고 설명했다. 책은 간도특설대를 중심으로 한 역사·지리적 의미, 파시즘과 군국주의 투쟁, 항일연군의 정체와 풍상, 간도특설대에 복무한 장교들의 전후 행적과 출세 가도까지를 매우 포괄적이고 입체적으로 분석했다. 이를 위해 저자는 중국 옌볜조선족자치주가 낸 문서를 비롯해 관동군헌병대 자료, 만주군에 근무한 일본인들의 희귀 자료집 등을 치밀하게 활용했다. 특히 간도특설대의 장교였던 백선엽 장군의 저서 ‘대게릴라전-미국은 왜 졌는가’(1993)와 ‘젊은 장군의 조선전쟁’(2000)의 일어판을 파헤친 것이 눈에 띈다. 백 장군은 한국어판에는 이 부대에 대해 말을 극히 아끼지만 일어판에는 훨씬 상세하게 서술했다고 소개했다. 조선인과 중국인의 항일연군을 일소한 것을 언급하고는 “특필해야 할 전과를 올린” 부대로 평가하고, 한겨울 눈 속에서 ‘게릴라’를 소탕하기 위한 사명감에 타오르지 않으면 할 수 없는 매복을 했음을 회고하기도 했다. 간도특설대의 의문은 풀리지만, 끝내 맞닥뜨리는 한국사의 모순에는 답답해진다. 만주군에서 활동한 박정희가 해방 조선에서는 ‘광복군 정신이 씩씩하게 넘친다’는 내용의 노래 가사를 썼다는 건 유머 수준이다. 항일투사 자손인 박남표 장군이 만주 관동군 헌병보좌관 출신인 허정일에게 되레 “빨갱이 집안”이라는 모략을 당하거나, 항일운동을 한 송지영이 5·16군사정변 이후 특수반국가행위 위반으로 극형을 선고받자 독립운동가 50여명이 박정희에게 관용을 애원하는 상황 등은 먹먹한 역사의 아이러니다. 최여경 기자 cyk@seoul.co.kr
  • 농경문 청동기·이차돈 순교비 보물 예고

    농경문 청동기·이차돈 순교비 보물 예고

    초기 철기시대 한반도의 농경 활동과 신앙을 보여주는 ‘농경문 청동기’(農耕文 靑銅器)와 신라시대 불교 순교자 이차돈을 추모하는 ‘경주 이차돈 순교비’(慶州 異次頓 殉敎碑)를 국가지정문화재인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고 문화재청이 10일 밝혔다. 농경문 청동기는 한 면에 농기구로 밭을 가는 남성과 추수하는 여성을 표현하고 반대 면에는 나뭇가지 위에 새가 앉은 모습을 새긴 청동의기(靑銅儀器)다. 풍요를 기원하는 농경의례, 삼국지·후한서 등에 나오는 소도(蘇塗)와 솟대, 한국 민간신앙에 나타나는 신간(神竿)을 표현한 것으로 추정된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역사 기록이나 고고학적 조사로 밝힐 수 없는 초기 철기시대 생업과 신앙을 상징적으로 보여줘 역사·문화사적 가치가 크다”고 설명했다. 경주 이차돈 순교비는 삼국사기, 삼국유사 등에서 전해지는 이차돈의 순교 모습을 새긴 비석이다. 불교 공인을 기록한 사료로는 현존하는 것 중 가장 오래됐고 통일신라 시대 복식·조각사 연구에 매우 귀중한 자료다. 이번 보물 지정 예고는 문화재청이 지난해 8월 국립중앙박물관과 맺은 ‘문화재 보존 관리 협력에 관한 협약’에 따른 후속 조치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그들은 2007년 금융공황에 어떻게 대처했을까

    그들은 2007년 금융공황에 어떻게 대처했을까

    연금술사들 닐/어윈 지음/김선영 옮김/비즈니스맵/616쪽/2만 5000원 지난 3일 공식 취임한 재닛 옐런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연준) 의장에게 전 세계의 관심이 쏠려 있다. 연준 100년 역사상 첫 여성 의장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말 한마디가 세계 금융시장에 미치는 파괴력이 엄청난 까닭이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준 못지않게 유럽중앙은행(ECB), 영국 중앙은행(영란은행)이 세계경제에 끼치는 영향력도 막강하다. 이들 은행이 독점적으로 발행하는 미국 달러화, 유로화, 영국 파운드화를 통해서다. 세계경제를 쥐락펴락하는 3대 중앙은행의 수장을 ‘세계 경제대통령’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신간 ‘연금술사들’은 세계 금융위기가 본격화한 2007년 8월 당시 세계 3대 중앙은행의 수장이었던 벤 버냉키 미국 연준의장, 장클로드 트리셰 ECB 총재, 머빈 킹 영란은행 총재가 금융 공황을 막기 위해 어떻게 대처했는지를 생생히 기록한 책이다. 현재 뉴욕타임스의 수석경제전문기자인 저자는 2007년부터 2012년까지 연준 및 지역 연방준비은행의 워싱턴포스트 출입기자로 활약하며 세계 금융위기와 경기후퇴, 위기의 여파 등을 취재했다. 중앙은행의 출발부터 앨런 그린스펀 시대를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중앙은행 수장들이 자신들의 권한과 특별한 인맥을 이용해 어떤 결단을 내렸는지가 이야기의 핵심이다. 버냉키, 킹, 트리셰 등 세 사람의 성격과 경력, 리더십을 비교하며 치열했던 순간들을 풀어나간 점이 흥미롭다. 이들은 2007년 이후 5년간 동료 중앙은행장들과 함께 금융공황을 억제하기 위해 수조원에 달하는 달러, 파운드, 유로를 투입했다. 전례 없는 규모였고, 여느 대통령이나 의회가 따라갈 수 없는 속도로 정책을 집행했다. 중앙은행 중에서도 미국 연준의 움직임이 가장 기민했던 것은 1930년 대공황에서 교훈을 얻은 결과였다. 학자 출신인 버냉키는 대공황 당시 정책 실수로 인한 은행 파산이 취약한 경제에 불을 붙여 심리적 불안을 가중시켰으며 결국 다른 은행의 파산을 부채질하는 악순환이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2007년 금융위기를 맞자 그는 연준이 구사할 수 있는 온갖 수단을 동원해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겠다는 결단을 내린다. 문학과 철학에 열정을 보이다 정치로 방향을 바꾼 트리셰는 뛰어난 협상가였다. 그는 미국발 금융위기가 2009년 유로 위기로 비화하자 갈등 관계인 유럽 각국 정부와 은행들로부터 공동의 목표를 향한 구조조정 방안을 이끌어냈다. 유로존 국가의 채권을 사들였고 회원국의 예산, 조세, 규제 결정에도 깊숙이 개입했다. 엄밀한 분석과 이론적 접근을 중시하는 킹은 정치적 갈등을 감수하며 비(非)개입방침을 깨고 정부의 재정전략을 가차 없이 비판했다. 이들 3명이 처한 상황과 대응방식은 각자 달랐지만 실패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각오는 한결같았다. 그들은 ‘중앙은행장들이 실책하면 사회도 실패한다’는 것을 금융공황의 역사에서 배운 사람들이었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한국 부모는 자녀의 코치…미국 부모는 자녀 열혈팬

    한국 부모는 자녀의 코치…미국 부모는 자녀 열혈팬

    무엇이 이 나라 학생들을 똑똑하게 만드는가/아만다 리플리 지음/ 김희정 옮김/부키/432쪽/1만 4800원 “한국의 교육열을 배워라.” 몇 년 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한 이 말에 많은 한국 학생이 의문을 가졌다. 대체 왜? 무슨 근거로? 정작 한국에서는 학생들이 ‘과열 경쟁’으로 ‘공부하는 기계’가 됐다고 한탄하는 판에. 그런 시각차는 신간 ‘무엇이 이 나라 학생들을 똑똑하게 만드는가’를 읽어 보면 이해가 된다. 책은 시사주간지 타임 등에 교육 칼럼을 쓰는 아만다 리플리가 ‘공부 잘하는 아이들을 길러 내는 나라’를 찾아 분석한 세계 교육 보고서다. 리플리에게 ‘너무 부드럽기만 한 소재’였던 교육은 교사와 학자들, 아이들과 부모들을 만나면서 수수께끼로 바뀌었다. “왜 어떤 아이들은 그토록 많은 것을 배우고, 다른 어떤 아이들은 거의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는 것일까?” 이런 호기심에서 시작한 탐구는 3년 동안 한국, 독일, 핀란드, 폴란드에서 교육 관계자 400여명을 만나고 교환학생들을 인터뷰하면서 답을 찾아내는 대장정으로 이어졌다. 저자의 평가는 객관적이고, 통찰력은 뛰어나다. 특히 미국 교환학생 에릭, 미국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공부하는 한국 학생 제니, 이주호 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 관계자들을 인터뷰하면서 이끌어 낸 한국 교육의 현실에 대한 정의는 명쾌하다. ‘자녀의 열혈 팬’을 자처하는 미국 부모와 ‘코치 역할’의 한국 부모를 병치시킨다. 미국 부모는 아이들의 자존감을 지켜 주기 위해 노력하지만, 자녀가 비판적 사고 능력을 갖추도록 도움을 주는 효과는 썩 좋지 않다. 반면 한국 부모는 집에서 아이들을 훈련하는 데 시간을 더 할애한다.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 주고, 밥을 하면서 구구단을 물어본다. 이것이 엄정한 코치 역할이 아니라 관심과 칭찬으로 발현되면 아이들의 능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 저자의 분석이다. 하지만 한국의 많은 부모가 이런 코치 노릇을 너무 지나치게 해 실수를 저지른다는 점도 지적한다. 사실 책은 다른 교육 강국들과 비교하면서 미국 교육계에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성격이 강하다. 그러나 ‘교육의 정체성’에 극심한 혼란을 겪고 있는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최여경 기자 cyk@seoul.co.kr
  • “국립중앙도서관 장서 2018년 1142만권”

    “국립중앙도서관 장서 2018년 1142만권”

    “도서관은 결코 평화로운 곳이 아닙니다. ‘마침표’와 ‘쉼표’만 틀려도 자료의 의미가 완전히 달라지죠.” 임원선(52) 국립중앙도서관장은 22일 오후 서울시내 한 식당에서 간담회를 열고 2018년까지 진행할 ‘국립중앙도서관 중기(2014~2018) 발전계획안’을 내놨다. 중앙도서관의 장서를 2018년까지 현재보다 205만권 늘어난 1142만권을 보유하고, 정책정보협력망을 22곳에서 1600개 기관으로 확충하는 내용이다. 국가 지식문화유산 보존·복원을 위한 ‘자료보존연구센터’도 들어선다. 임 관장은 “국립중앙도서관은 1945년 개관 이후 국내에서 발행되는 지식정보자원을 빠짐없이 수집해 보존하는 최후의 보루 역할을 해왔다”면서 “온라인 모바일 시대가 도래하면서 지식문화유산을 수집·보존하고 제공하는 임무가 더 중요해져 이번 계획안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이번 계획안은 디지털 매체의 확산 및 모바일 등 환경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것으로 압축된다. ▲국가 지식정보자원 수집·보존 강화 ▲지식정보자원 이용서비스 고도화 ▲도서관계에 대한 지원·협력 강화 등 3대 추진목표 아래 9개 주요과제 및 28개 세부과제로 구성했다. 오는 3월부터 공무원을 대상으로 제공하는 ‘학술지 신간 목차 메일링 서비스’와 디지털 매체 확산에 대응하도록 설계된 링크드 오픈 데이터(LOD) 변환 서비스가 눈에 띈다. 메일링 서비스는 관심분야 연구동향을 손쉽게 파악하도록 돕고, 5만 5000여종의 학술지를 한 번에 검색할 수 있도록 했다. 또 LOD는 주요 장서의 디지털화를 기존 44만 건에서 94만 건까지 늘리도록 돕는다. 도서·도서관 정보통으로 통하는 임 관장은 지금도 한 달에 10권 이상의 책을 읽는다고 했다. 임 관장은“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하는 동안 실수하지 않으려 늘 긴장 속에 살지만 동시에 재미와 보람이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북한산 둘레길 찾아 건강 챙기고 추억 만들길”

    “북한산 둘레길 찾아 건강 챙기고 추억 만들길”

    북한산국립공원의 둘레길이 조성된 지 2년 반이 지났다. 공원공단에서는 둘레길을 더 즐겁게 이용할 수 있도록 전 구간 완주를 위한 ‘스템프투어’와 각종 문화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이사장 박보환)은 지난해 한 해 동안 280만명이 북한산둘레길을 이용한 것으로 집계됐다고 19일 밝혔다. 북한산 둘레길은 탐방객들의 건강증진은 물론, 저지대 탐방문화를 확산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공단은 지난해 탐방객 68명을 대상으로 둘레길을 걷게 한 뒤 성인병 등의 건강 변화를 체크한 결과 혈당, 콜레스테롤, 복부비만 등 성인병 지표들이 실내운동 효과보다 큰 것으로 조사됐다. 북한산 둘레길은 21개 구간 72㎞로 서울시내 어디서든 대중교통을 이용해 쉽게 접근할 수 있다. 흰구름길 구간처럼 약간의 땀을 흘릴 정도의 경사가 있는 곳도 있고, 순례길처럼 시름을 잊고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산책 구간도 있다. 가벼운 복장으로도 걸을 수 있는 곳이 북한산 둘레길이다. 공단은 건강과 색다른 체험을 위해 북한산 둘레길 21개 구간을 완주해볼 것을 권하고 있다. 완주를 위해서는 공단이 운영하는 스템프투어를 활용하면 도움이 된다. 스템프투어는 구간별로 설치돼 있는 포토 포인트에서 인증 사진을 찍고, 둘레길 입구 탐방지원센터에 가면 전용수첩에 스템프를 찍어주는 식으로 운영된다. 선물을 겸한 스템프투어 전용수첩은 탐방지원센터에서 4000원에 구입할 수 있다. 강북구 수유동 순례길 구간에는 공단이 운영하는 둘레길 북 카페도 있다. 이곳에는 신간서적 1500여권이 비치돼 있다. 창문을 밀어젖히면 그림 같은 자연의 공간이 이어진다. 이곳에서는 주말마다 재능나눔기부를 통해 ‘열린예술극장’도 열린다. 유진상 기자 jsr@seoul.co.kr
  • 세상을 변혁시킨 인물들의 숨겨진 힘은

    세상을 변혁시킨 인물들의 숨겨진 힘은

    독서독인/박홍규 지음/인물과사상사/348쪽/1만 5000원 나폴레옹은 독서가 낳은 괴물이다. 그만큼 독서광이라는 뜻이다. 그의 평생을 지배한 책은 플루타르코스가 쓴 영웅전 ‘알렉산드로스’와 카이사르의 전기였다. 특히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그에게 아주 중요한 책이었다. 나폴레옹의 영웅주의, 야망주의, 경쟁주의는 세계사에서 불행을 낳았다. 그의 세계 정복은 제국주의를 초래했고 독재를 불렀다. 그의 뒤에는 언제나 책 바구니를 든 사서가 따라다니면서 새 책을 소개하고 작가들의 청원을 전했다. 그 사서는 나폴레옹이 전장에 나갈 때마다 따라다니면서 이동식 도서관을 운영했다. 마오쩌둥과 체 게바라의 경우도 그런 점에서 닮았다. 하지만 나폴레옹의 독서는 지식을 얻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유일한 휴식의 수단이었다. 체 게바라도 그랬다. 링컨은 어린 시절부터 독서를 좋아했다. 하원의원으로 일하면서 독학으로 법을 공부했다. 또한 로버트 번스와 조지 바이런을 열심히 읽었다. 특히 번스의 시 ‘멀리 떠난 자들의 건강을 위하여’를 좋아했다. ‘읽는 자들에게 자유를/쓰는 자들에게 자유를/진실에 의해 비난받을 자들만큼/진실이 알려지기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없나니’라는 구절을 사랑했다. 링컨은 농민 시인 번스가 독학에 관한 한 자신과 비슷하다고 여겼다. 신간 ‘독서독인’은 나폴레옹과 링컨을 비롯해 레닌, 스탈린, 히틀러, 호찌민, 마르크스, 톨스토이, 간디, 체 게바라, 만델라 등 세계사를 풍미했던 인물 20명의 독서습관을 조명했다. 책은 이들의 사상이 대부분 독서를 통해 만들어졌다고 강조한다. 독서로 권력을 훔치고, 독서로 권력에 맞섰다는 것이다. 독서는 인간을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어떤 형태로 단련시키며, 또 책이 인간의 영혼과 어떤 식으로 융합하느냐에 따라 권력자 혹은 반권력자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주지시킨다. 참된 독서는 세상을 변혁시키는 혁명운동과 다름없다는 것이다. 김문 선임기자 km@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월 매출 1300만원 만화가게 ‘현이와 양이’ 운영 정미선씨

    [김문이 만난사람] 월 매출 1300만원 만화가게 ‘현이와 양이’ 운영 정미선씨

    누구나 만화방에 대한 추억은 한 가지 이상 가지고 있을 터. 학창 시절, 만화방에 자주 들러 만화에 푹 빠진 여러 기억들도 있을 테고, 때문에 공부를 안 한다며 부모한테 야단도 많이 맞았을 것이다. 또 만화방은 남녀 학생들의 자연스러운 만남의 장소이기도 했다. 아이나 어른이나 만화를 보고 흥미진진한 상상력을 키울 수 있었고 사회풍자와 역사를 읽을 수 있어 인기를 끌었다. 특히 IMF 외환위기 때는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은 실직자들이 만화방을 찾아 잠시나마 설움을 달래기도 했다. 만화는 예나 지금이나 대중문화의 중요한 자리를 떠나지 않고 있다. 디지털 세상인 요즘 만화방이 세월의 저편으로 사라진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그곳은 어느 동네를 가든 한구석에 조용히 자리를 잡아 추억의 독자와 만화 마니아들을 기다리고 있다. 지난 8일 오전 서울 영등포역 뒤편 고가도로 인근의 만화가게 ‘현이와 양이’. 안으로 들어서자 한가로운 오전 시간임에도 30~40대로 보이는 남자 손님 6~7명이 독서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의자 앞 탁자에는 만화책과 판타지 소설책 등이 여러 권 올려져 있었다. 자세로 봐서 이 정도는 금방 읽어버릴 심산이다. 만화가게 안을 잠시 둘러봤다. 벽면은 3중 책장으로 돼 있었고 빽빽하게 진열된 책이 어림잡아 몇 만권쯤 돼 보였다. 입구에는 ‘오늘의 신간’이라는 안내판과 사용 요금표가 붙어 있었다. 궁금해서 슬쩍 요금표를 들여다봤다. ‘주간정액 1만원(오전 9시~오후 10시)’, ‘야간정액 6000원(오후 10시~오전 9시)’, ‘시간제 3시간 4000원’ 등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리고 바로 옆 음료수 자판기에는 ‘머릿속에서 선택하고 그것을 과감히 꺼내라, 성웅 이순신’이라는 글귀가 붙어 있었다. 앙증맞은 만화 캐릭터들도 눈에 띄었다. 잠시 후 만화가게의 정미선(48) 대표와 마주 앉았다. 그는 지난달 31일 서울 보신각에서 열린 제야의 종 타종행사 때 11명의 시민대표 중 한 사람으로 참석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먼저 만화가게 규모 등 몇 가지 궁금증에 대해 물었더니 넓이가 90여㎡(약 30평)이며 3중 책장에 꽂혀진 책은 모두 5만권 정도 된다고 했다. 국내에서 출간되는 신간 만화책은 대부분 비치되며 10년 이상된 옛날 책들도 많다고 했다. 한 달 평균 신간 값으로 250만원 정도 지출한다고 귀띔했다. 그렇다면 매출은 얼마나 될까. “하루에 평균 45만~50만원 수준입니다. 연중무휴로 운영되니까 월 매출 1300만~1400만원 되는 셈이지요. 아르바이트 고용 비용, 월세 등을 빼고 나면 매출의 절반 정도를 집으로 가져간다고 할 수 있지요.” 만화가게를 하면서 월 1300만원 이상 매출을 올린다는 사실에 솔깃해진다. 그것도 최근의 일이 아니라 지난 27년 동안 만화가게를 운영하면서 자녀 둘을 대학까지 보냈다고 한다. 은행 빚을 떠안고 어렵게 꾸려 나가는 중소 자영업자들한테는 ‘어떻게 운영하길래’ 하는 생각이 들게끔 하는 대목이다. 그가 지난 연말 제야의 타종행사 때 시민대표로 뽑힌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성공하는 자영업자도 있지만 폐업하는 사람들에게 힘이 될 수 있다는 ‘귀감 케이스’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떤 길을 걸어왔을까. “고등학교 때 인쇄소에서 아르바이트를 잠깐 했습니다. 금방 인쇄돼 나오는 따끈따끈한 책의 온기가 아주 좋았습니다. 그래서 고교를 졸업하자마자 대전에 있는 출판사에 취직했습니다. 기대와는 달리 출판사 대표는 책을 팔아 오라고 하더군요. 경험이 없던 터라 겁이 났지만 할 수 없이 책을 들고 집집마다 다니면서 초인종을 눌렀습니다. 개가 짖어대고, 문전박대당하고 마음 상하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날씨가 추워 손이 부르튼 적도 많았지요.” 1년여 회사를 다니다가 그만두었다. 하지만 다니던 회사에서 계속 출근하라는 전화가 걸려 왔다. 그는 이 전화를 받지 않기 위해 동네 만화방으로 피신했다. 이때 처음 본 만화가 이현세의 ‘공포의 외인구단’이었다. 미처 다 읽지 못한 만화는 집으로 빌려갔다. 그런데 주인이 이름도 전화번호도 물어보지도 않았다. 그는 고마운 마음에 오히려 더 빨리 성실하게 책을 반납했다. 그러다 보니 단골이 됐고 나중에는 주인이 사정이 생길 때면 대신 만화방을 봐주기도 했다. 이런 인연으로 주인한테 싼값에 만화방을 넘겨받았다. 나이 21세 때 만화가게 대표가 된 셈이다. 정 대표가 운영하면서 만화가게는 날로 손님이 많아졌다. 하루는 다른 만화가게 주인이 찾아와 “돈을 더 얹어줄 테니 서로 맞바꾸자”고 했다. 기꺼이 승낙했다. 정 대표는 바꾼 만화가게를 다시 키운 뒤 대전역 인근으로 옮겼다. 이곳에서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둘 무렵, 그는 손님이 없어 문을 닫을 지경에 놓인 주안역 앞의 만화가게를 인수했다. 공교롭게도 정 대표가 손을 대는 만화가게는 죄다 번창하는 것이었다. 주안역 인근의 만화가게도 마찬가지였다. 손님이 많아지자 하루는 건물주인이 찾아와 직접 경영하겠다고 했다. 이렇게 해서 지금의 영등포역 뒤편에 있는 ‘현이와 양이’까지 다섯 번 자리를 옮기며 오늘에 이르게 된다. 손님을 끌어모으는 비결이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별 거 없습니다. 장사가 잘 안 된다고 내놓은 만화가게를 조금 싸게 인수해서 몇 가지 고치고 하다 보면 손님들이 자연스럽게 많아지곤 했지요. 잘 안 됐던 이유가 무엇이며 어떤 것을 시정해야 할지 눈에 보이거든요.” 그는 지금까지 만화가게를 잘 운영할 수 있는 가장 큰 바탕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일찌감치 사회에서 밑바닥 영업인생을 경험했던 것이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몇 가지 철칙을 이야기한다. 첫째, 만화가게를 새로 인수할 때 기존의 상호명을 바꾸지 않는 것이다. 다만 간판 색깔을 바꿔 눈에 잘 들어오도록 했다. 2년 전 지금의 ‘현이와 양이’를 인수할 때에도 주인이 바뀌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간판 색깔을 바꿨을 뿐이다. 두번째는 손님들에게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어주고 마음껏 책을 보게 하는 것이다. 손님들의 개인 프라이버시에 대한 철저한 배려정신이다. 주인은 물론 다른 손님과도 눈이 마주치는 일이 없도록 내부 공간에 신경을 썼다. 또 손님들을 위해 사탕, 커피 등도 맛있게 아낌없이 무료로 서비스한다는 것이다. 매달 커피믹스 값으로 10만원이 들어가지만 아깝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고객들이 공짜 커피 이상의 가치를 돌려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장년층을 위한 돋보기도 친절하게 비치했으며 다른 만화가게처럼 손님들이 들고온 가방을 카운터에 맡기게 하는 일도 없다. 그뿐만 아니다. 데이트족들이 서로 만화를 즐길 수 있도록 팔거리가 없는 2인용 소파, 여성 고객을 위한 담요와 여성잡지 진열대 등도 준비했다. 이에 대해 정 대표는 “그동안 책을 잃어버린 적이 한번도 없다”면서 “이곳에 오는 손님은 누구든지 최대한 편하게 즐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뭐든지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세번째는 볼거리를 풍성하게 하는 것이다. 본업이 책방이기 때문에 가장 중요시하게 여기는 부분이다. 어떤 만화가게는 돈이 들어간다는 이유로 신간을 잘 사지 않지만 정 대표는 신간 위주로 볼거리를 채운다. “음식점은 음식이 맛있어야 손님들이 가고, 옷가게는 마음에 드는 옷이 있어야 가게 됩니다. 물론 친절하면 한두 번 정도 가겠지만 세 번은 가지 않습니다. 그냥 다른 맛집이나 다른 옷가게를 가게 됩니다. 만화가게는 뭐니뭐니 해도 볼거리가 많아야 합니다. 그 전 주인은 신간을 사지 않았습니다. 하루 매출이 10여만원에 불과했지요. 제가 인수한 뒤로 신간 위주의 볼거리를 채우면서 3일 만에 20만원을 넘었고 이후 평균매출이 40만원대를 유지했습니다.” 다시 말해 그의 장사비결은 철저하게 손님에 대한 배려와 존중 정신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에다 대형마트처럼 딱딱하게 장사하는 것이 아니라 재래시장처럼 때로는 손님의 사정을 봐가며 가격도 약간 깎아주는 등 정감 넘치게 운영한다. 단골손님들이 가끔 친구들을 데려오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만화가게에는 주로 어떤 손님들이 찾을까. 주로 학생? 정 대표의 대답은 예상과 달랐다. “학생들이 즐겨 볼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초·중등 학생들은 거의 없고 20대가 20%, 30대가 40%, 그리고 50대 이상 장년층이 25% 정도 되고 있습니다. 아줌마들도 가끔 오지요. 점심 시간대에는 직장인들이 잠깐 들러 커피를 마시면서 좋아하는 만화책 몇 권을 읽고 가기도 합니다.” 요즘에는 인터넷으로 만화를 보기 때문에 만화방이 사라지고 있지 않으냐고 하자 “대여점은 사라지고 있지만 만화방은 그렇지 않다. 만화방 한 곳이 없어지면 어딘가에서 다른 한 곳이 생겨나고 있다”고 설명한다.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갖고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만화 쪽은 얼마든지 자신있다”면서 “언젠가 건물을 사게 되면 1층에는 일반 카페, 2층과 3층에는 여성전용 만화카페, 3층에는 남성전용 만화카페, 그리고 4층에는 만화박물관 같은 분위기를 만들고 싶다”고 대답한다. “제가 말띠거든요. 말띠해이니까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더욱 열심히 일해야 되겠지요. 지난 연말 보신각에서 종을 칠 때 마음속으로 꼭꼭 다짐했습니다(웃음).” 선임기자 km@seoul.co.kr >>>정미선 대표는 1966년 포천에서 태어났다. 서울 일신여상을 졸업하고 대전에 있는 출판사에 취직했다. 1년 뒤 회사를 그만두고 만화방에서 아르바이트를 잠시 하다가 21세 때 만화방 주인이 됐다. 이후 대전과 주안역 인근에 있는 만화가게 등을 거쳐 현재 영등포역 뒤편에서 만화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전국의 만화가게 대표를 중심으로 결성된 ‘전국만화협회’에서 소설 신간 분석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슬하에 자녀 둘을 두고 있다.
  • [커버스토리-디자인 서울] “서울의 역사성 로마에 꿀리지 않아… 그 결 그대로 살려서 디자인해야”

    [커버스토리-디자인 서울] “서울의 역사성 로마에 꿀리지 않아… 그 결 그대로 살려서 디자인해야”

    도시는 생물이다. 인간이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 도시가 살아나고 죽는다. 그러나 보통 인간은 자본의 논리로 그것을 황폐하게 한 뒤 다른 곳으로 옮겨가 똑같은 일을 한다. 고서와 금석학의 거리였던 서울 종로구 인사동이 중국산 제품과 질 낮은 공예품이 판치는 국적 불명의 장소가 된 것이 대표적이다. 푸진 음식으로 서민의 주린 배를 달랜 종로 피맛골, 근대 역사를 품은 동대문운동장 등은 초고층 빌딩과 온갖 상업시설들에 잠식당했다. 600년 고도(古都) 서울은, 대체 어디까지 더 ‘세련’돼지기만 할 것인가. 권영걸(63·서울대 미술관장) 서울대 디자인학부 교수는 “서울은 역사문화 도시로 분명하게 자리 잡아야 한다”고 못을 박았다. 10일 인터뷰에서 권 교수는 서울의 역사를 먼저 훑었다. 서울 송파구 방이동의 풍납토성과 오륜동 몽촌토성 지역을 백제의 도읍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는 점을 언급하면서 그는 “아주 겸손하게 잡아도 서울은 2000년 역사를 가진 도시로서, 유럽 어느 도시와 비교해도 전혀 꿀리지 않는다”고 했다. “로마나 아테네보다 훨씬 더 오랜 역사의 결이 켜켜이 쌓인 도시”라고 강조했다. ‘디자인 서울’을 내세운 오세훈 서울시장 시절 초대 디자인서울총괄본부장을 맡았던 그는 “서울시장은 행정가여야 하는데 역대 시장을 살펴보면 정치가 성향이 더 강했다”고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임기 초반에 뭔가를 보여 줘야 한다는 과잉 의욕이 디자인의 오남용을 불렀던 점이 없지 않았다. 서울이 역사문화도시로 자리매김해야 한다는 인식도 약간은 부족했다”고 고백했다. “고층빌딩을 세우고 지역 개발을 할 때 유적과 유물이 나오면 개발 방향을 틀고 설계 변경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권 교수는 “서울을 세계적인 문화유산으로 만들기 위해서 ‘개발’보다 ‘역사보존’을 앞세우고 문화재법을 지엄하게 여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제라도’라는 단어에 힘을 주면서 “공무원도, 자치단체장도, 중앙정부도 이제는 ‘유물이 나오면 개발을 중단한다’는 방향으로 인식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권 교수가 3년 만에 탈고해 내놓은 신간 ‘나의 국가디자인전략’ 역시 그런 기조를 깔고 있다. 책에서 그는 ‘공공성’을 바탕에 둔 88개 디자인 전략을 제안한다. “좋은 디자인은 공공성 관점에서 바라봐야 합니다. 디자인의 본래 가치는 자연의 도를 따르고 인간을 섬기는 것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최여경 기자 cyk@seoul.co.kr
  • 삼성 위협하는 中화웨이 그 성장비밀을 파헤치다

    삼성 위협하는 中화웨이 그 성장비밀을 파헤치다

    화웨이의 위대한 늑대문화/톈타오·우춘보 지음/이지은 옮김/스타리치북스/435쪽/2만원 요즘 중국의 최대 통신장비업체 ‘화웨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20여년 전 창업 당시 자금, 상품, 인재, 기술 모두가 별 볼 일 없는 5명의 직원에 지나지 않았던 화웨이가 지금은 세계 2위의 통신회사로 성장했다. 2010년 ‘포천’지는 최단 기간 임직원 15만명의 글로벌 통신회사로 성장한 화웨이를 세계 50대 기업으로 선정했다. 이렇듯 화웨이는 더 이상 중국 기업에 머무르지 않고 글로벌 이슈를 만들어내며 세계 통신업계를 뒤흔드는 강자로 우뚝 섰다. 세계 각국의 많은 통신기업들이 화웨이를 주목하는 동시에 가장 유력한 경쟁자로 지목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신간 ‘화웨이의 위대한 늑대문화’는 중국의 스티브 잡스라고 불리는 화웨이 CEO 런정페이의 창조경영을 조명하고 기업의 인문, 역사, 철학 등을 그려낸 경영철학서라고 할 수 있다. 기술 변화가 빠르고 시장이 급변하는 통신업계에서 중국의 작은 IT기업이 세계 2위의 통신회사가 되기까지 고군분투하는 성장 스토리를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 특히 화웨이의 독창적인 기업문화와 창업 당시부터 현재까지 방대한 경영 스토리를 국내 처음 심층 분석했다는 점에서 관심을 끌 만하다. 가장 중국다우면서도 중국을 넘어서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며 세계로 도약하는 과정을 흥미롭게 풀어내고 있다. 화웨이는 불과 5~6년 전까지만 해도 외부에 자신을 철저히 감추고 오로지 기술 개발과 사업 확장에만 주력했다. 다른 IT기업들이 지속 가능한 영속성을 확보하지 못한 채 매스컴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순식간에 무너지는 많은 사례를 보면서 초심을 잃지 않았다. 이러한 신비주의는 중국 내에서도 질타와 시기의 대상이 됐다. 런정페이는 하루도 실패를 생각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고 회고한다. 화웨이 기업문화는 ‘늑대문화’로 대표된다. ‘팀플레이 정신’과 환경 변화에 민첩하게 반응하는 ‘생존력’, 극한을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정신’을 말한다. 이 책은 21세기 글로벌 기업의 나아갈 길인 ‘고객 지향적 미래’를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김문 선임기자 km@seoul.co.kr
  • 워킹 푸어·하우스 푸어… ‘신빈곤의 시대’

    워킹 푸어·하우스 푸어… ‘신빈곤의 시대’

    빈곤을 보는 눈/신명호 지음/개마고원/304쪽/1만 5000원 워킹 푸어, 하우스 푸어, 렌트 푸어, 베이비 푸어, 실버 푸어…. 요즘 우리 사회에서는 ‘~푸어’들을 이야기하는 목소리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커지는 빈부 격차와 중산층의 붕괴로 직면한 이른바 ‘신빈곤의 시대’를 의미하는 말들이다. 우리나라의 빈곤율은 현재 15%에 이른다고 한다. 100명 중 15명이 빈곤층이라는 뜻이다. 문제는 1990년대 초반부터 꾸준히 떨어지던 빈곤율이 1990년대 후반부터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하우스푸어 현상이나 만성적인 고용불안, 높은 청년 실업률 등으로 인해 이런 추세가 지속된다는 것이다. 예전 같으면 높은 경제성장으로 가난을 몰아낸다고 하지만 오늘날에는 그 성장률이 정부의 의지대로 높아지지도 않을 전망이다. 도시빈민연구소의 책임연구원으로 일했던 저자는 오랫동안 쌓은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오늘날의 빈곤문제를 신간 ‘빈곤을 보는 눈’에서 자세하게 풀어내고 있다. 빈곤을 협소하게 볼 것이 아니라 넓고 깊이 있게 들여다봐야 한다는 것이 책의 핵심이다. 예를 들어 보릿고개를 경험한 노인이 휴대전화가 없어서 괴로워하는 청소년을 보고 무슨 배부른 소리냐고 말하겠지만 그런다고 그 청소년의 괴로움이 덜어지는 것이 아니다. 또 그 노인 역시 다음 달 방세를 걱정하는 처지라면 역시 행복하다고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람은 밥만으로 사는 것이 아니며 평균적인 삶의 기준에 한참 미달한 채 겨우 생존하고 있는 사람들, 즉 빈곤층은 항상 동시대 같은 사회의 구성원을 기준으로 평가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단지 소득이 부족한 것이 빈곤의 전부가 아니라 주거, 고용, 교육, 건강, 시민권 및 정치참여의 기회 등 다양한 차원에서 결핍상태에 있는 것이 빈곤이라고 정의한다. 또한 최저임금이나 실업연금과 같은 사회안전망의 문제, 고용이 없는 성장이 진행되고 소득 양극화가 발생하는 문제 등을 간과하고서는 빈곤의 실체를 제대로 볼 수 없다면서 빈곤을 일으키는 경제 문제와 가난한 이들의 정치참여 문제 등을 두루 심도 있게 다루고 있다. 김문 선임기자 km@seoul.co.kr
  • 런던서 뉴욕까지 걷다 찾은 자아

    런던서 뉴욕까지 걷다 찾은 자아

    사이코지오그래피/윌 셀프 지음/박지훈 옮김/21세기북스/336쪽/3만원 심리지리학(사이코지오그래피)은 장소, 기억, 정체성의 상호작용을 탐험하려는 시도로 프랑스 철학자 기 드보르가 1995년 창안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도시와 주변 환경의 배치가 우리의 사고에 어떤 영향을 미치며, 또 그 주변 환경의 변화에 따른 의식의 흐름이 어떠한지 등을 연구하려는 데서 출발했다. 그러다 보니 필연적으로 걷는 행위가 수반될 수밖에 없다. 신간 ‘사이코지오그래피’의 저자는 책 제목에 걸맞게 자신의 고향인 런던의 집에서 어머니의 고향인 뉴욕을 심리지리학적으로 연결시키기 위해 도보여행을 한다. 그러면서 일, 가족, 여행 혹은 순전히 개인적인 호기심으로 촘촘하게 짜인 연상이라는 거미줄을 타고 마음대로 돌아다닌다. 풍부한 상상력과 날카로운 촉수를 내밀어 건물과 풍경, 그리고 사람들을 대하면서 그의 심리에 미친 영향에 대해 가차 없이 말한다. 발걸음이 닿는 곳의 독특함에 취하고 지리가 감정에 미치는 영향에 주목하며 자신의 기억, 꿈, 연상을 자유롭게 들락날락한다. 이 책의 주된 테마는 ‘런던에서 뉴욕까지 걸어가기’이다. 두 곳에서의 도보여행을 통해 저자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간다. 이후엔 ‘인디펜던트’지에 ‘사이코지오그래피’라는 제목으로 실린 단편들의 모음으로 이어진다. 런던에서 뉴욕까지의 여정과 전 세계 각지를 여행하며 풀어낸 해석에서 그만의 독특한 시각을 보여주며 어떨 때에는 괴짜 같은 면모를 보여주기도 한다. 예를 들어 싱가포르는 뇌하수체로 가득 찬 베이싱토크, 도시 계획을 세우지 않은 상파울로는 런던과 로스앤젤레스가 불경스러운 교잡을 통해 낳은 사생아로 취급한다. ‘리오의 히틀러’에서는 여행이 다른 문화를 침범하는 현상을 날카로운 시각으로 관찰한다. 저자는 참화를 겪은 영국 땅을 두 차례 이상 돌아다녔다. 그래서일까. 이 책에서 그는 걷는 행위가 우리 문명에 재앙이 오기를 바라는 자들을 치유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김문 선임기자 km@seoul.co.kr
  • [주말 인사이드] 책의 생애주기 갈수록 짧아져… 베스트셀러 1~2주 안에 결판

    [주말 인사이드] 책의 생애주기 갈수록 짧아져… 베스트셀러 1~2주 안에 결판

    대형서점은 베스트셀러, 주요 신간 등 출판계의 동향을 한눈에 가늠할 수 있는 바로미터다. 바쁜 현대인의 일상에서 독서의 여유가 흐르는 곳으로 보이지만 사실상 이곳은 매일 책의 생사가 판가름 나는 ‘책의 전장’이다. 전장의 최전선에서 고객과 책을 이어 주는 출판시장의 숨은 큰손, 서점 MD(머천다이저·상품기획자)들에게 ‘책의 운명’을 들어 봤다. 전체 면적 8600㎡에 이르는 국내 최대 오프라인 서점, 교보문고 광화문점. 이곳에 입고되는 책은 하루 평균 2만여권에 이른다. 특히 여름·겨울방학과 맞물리는 7~8월, 12월은 책이 물밀듯 쏟아지는 최대 성수기다. 매일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2시간 간격으로 다섯 차례에 걸쳐 인수처로 책이 들어온다. 비수기에는 오전 10시 30분부터 2시간 간격으로 하루 네 차례 책이 입고된다. 인수처로 들어온 책들은 컨베이어 벨트를 통해 분야별로 자동 분류돼 문학·인문, 경제·자연, 외국서적, 예술, 어린이·학습 등 5개 주요 코너로 이동된다. 이 가운데 베스트셀러에서 스테디셀러로 오래 살아남는 책은 극히 일부다. 종합 베스트셀러 10위 안에 입성하려면 일주일에 최소 1000부 이상은 팔려야 한다. 하지만 이 경쟁에서 살아남는 길은 점점 험난해지고 있다. 여기에 교보문고가 이달에 주목할 책으로 선정하는 책은 매달 50종에 불과하다. 이를 판단하는 요인으로는 저자와 출판사의 인지도가 50% 이상이며, 과거 유사 책의 매출, 현재 출판계 트렌드, 마케팅 등이 나머지를 차지한다. 서점 MD(교보문고는 ‘북마스터’라는 명칭 사용)들은 책의 생애 주기(책 한 권이 출간돼 베스트셀러, 스테디셀러를 거쳐 시장에서 사라지기까지를 일컫는 말)가 점점 짧아지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김은경 교보문고 전략구매팀장은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책이 세상에 갓 나와 베스트셀러에 오르기까지 3~4주는 걸렸는데, 요즘은 1~2주 안에 운명이 결정 난다”며 “무라카미 하루키 등과 같은 대형 저자의 작품은 예약 판매, 인터넷서점 이용 등이 활발해지면서 책이 나오기도 전에 이미 베스트셀러에 오른다”고 말했다. ‘신간 자격’으로 독자들과 마주하는 시간도 줄어들고 있다. 서점의 신간 매대에서 분야별 매대를 거쳐 서가로 밀려나기까지, 과거에는 3개월 걸리던 것이 요즘은 2개월 정도로 짧아졌다. 교보문고는 모든 신간은 최소 2주간 신간 매대에 진열한다는 원칙을 세우고 있다. 그 이상 버티기는 쉽지 않다. 판매 실적이 좋은 책은 한 달이라도 매대에 눌러앉을 수 있지만, 성적이 신통치 않으면 서가에 꽂히는 신세가 된다. 매대 진열은 판매 성적에 따라 2주 단위로 교체된다. 출판사로 완전히 반품되는 책은 2년간 단 1부도 움직이지 않는 경우다. MD들이 “더 이상 팔릴 가능성이 없다”고 판정하면서 영원히 ‘링’ 밖으로 퇴장되는 셈이다. 독자들이 무심코 훑어보는 매대에도 알고 보면 ‘명당’이 있고 ‘흉당’이 있다. 올해 경력 15년 차인 류현덕(33) 교보문고 북마스터는 “매대 중에서도 복도 쪽을 바라보는 앞쪽, 매대 양 끝 쪽이 출판사 마케터들이 가장 선호하는 명당이고 그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흉당”이라고 말했다. 경력 10년을 넘긴 북마스터들은 이제 신간을 훑어만 봐도 판매량이 대충 감지될 정도로 ‘도사’가 됐다. 경력 16년 차인 김은옥(47) 북마스터는 “매일 쏟아지는 신간이지만 한 분야에서 오래 일하다 보면 표지, 저자 이름, 출판사만 봐도 계산이 대충 나온다”고 밝혔다. MD들의 역할은 크게 네 가지로 나뉜다. 고객 상담가, 도서 전문가, 상품 기획자, 멘토 등이다. 고객의 관심사, 연령, 직업 등에 따라 웬만한 분야별 책 추천 리스트는 머릿속에 다 꿰고 있는 MD들이 책의 운명을 바꾸는 경우도 많다. 특히 MD들은 “인기 도서와 비인기 도서의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독자들이 다른 책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의 폭이 좁아지는 게 안타깝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이 때문에 내용이 좋아도 자본력·저자 파워·홍보 부족 등으로 생명이 꺼져 가는 책을 MD들이 다시 살려내기도 한다. 각 분야마다 MD들이 기획선을 따로 마련해 주는 것. 실제로 뒷방 늙은이 신세에서 베스트셀러로 화려하게 운명을 바꾼 책도 있다. “‘심플하게 산다’라는 책이 올해 출간 직후 잠깐 팔리다가 서가로 들어갔는데 해당 파트 MD들이 광고비를 받은 게 아니라, ‘이 책은 그냥 잊어지기 아까운데 좀 밀어줬으면 좋겠다’고 해서 전 매장에 게시했어요. 그랬더니 하루 평균 80권, 한 달에 600부 이상 나가면서 해당 분야에서 1위, 종합 베스트셀러 20위 안에까지 들었죠.”(류현덕 북마스터) 가장 중요한 업무는 고객과의 책 상담. 하지만 각별한 단골 고객들과는 아예 인생 상담으로 판이 커지기도 한다. “자주 통화하는 고객들은 가정사까지 미주알고주알 다 말씀하세요. 그래서 가끔 내가 인생 상담가인가 착각도 들어요. 딸이 서른다섯인데 결혼을 못했다면서 책을 추천해 달라는 고객님이 몇 년이 지나 그 딸이 아기를 가지면 육아, 출산 관련 책을 권해 달라고 하시죠. 쉬는 날에 문자나 책 사진을 보내면서 품절된 책을 구해 달라는 고객님도 계시고요. 이제는 가족이 다 됐어요(웃음).”(김은옥 북마스터) 한번 안면을 튼 고객들은 서점을 찾을 때면 감사 인사를 담은 손 편지를 건네거나 직접 만든 부침개까지 싸 와 MD들을 감동시키곤 한다. 하지만 이따금씩 ‘진상 고객’들도 출몰한다. 고객인 척하면서 책 진열을 문제 삼는 출판사 관계자, 저자 등이다. 책을 찾아 달라고 했다가 서가에 꽂혀 있으면 “왜 책을 구석에 처박아 두냐”, “왜 내 책을 눈에 띄는 곳에 안 깔아 주느냐”고 막무가내로 고함부터 치는 이도 있다. “한번은 책을 50부 이상 대량 주문하고 찾으러 오지 않은 고객이 있었어요. 그런데 고객 휴대전화와 책을 낸 출판사 번호가 비슷해서 이상하다 싶어 추적해 보니 주문자가 출판사 대표더라고요. 자사의 책을 많이 보유해 달라고 그런 방법을 쓴 거예요. 출판사마다 한번이라도 더 노출되기 위해 그러는데, 그만큼 경쟁이 심하다는 것을 아니까 화가 나면서도 안타까울 때가 많아요.”(양경미 북마스터) 독자들의 책을 찾는 취향이 과거와 달라졌음을 가장 먼저 체감하는 것도 MD들이다. 1980~1990년대만 해도 신문 서평을 들고 찾아오는 고객이 많았던 반면, 요즘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나 팟캐스트의 영향이 커졌다. 책도 사진, 표지 등 볼거리 위주로 선택하는 경향이 뚜렷해졌다. 경력 11년 차인 양경미(32) 북마스터는 “젊은 세대들은 추리소설, 중년 이상 독자들은 에세이 등 세대를 막론하고 쉽고 재미있게, 가볍게 소비할 수 있는 책을 찾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했다. 문학 쪽에서는 신춘문예나 문학상 출신 작가의 힘이 빠졌음이 뚜렷이 감지된다. 김은옥 북마스터는 “처음 입사했을 때만 해도 이상문학상 등 문학상 수상작을 엮은 책들은 매대에 쌓아 놓고 돌아서면 다 없어지곤 했는데, 요즘은 문학상이 하도 많이 생겨나고 받는 사람만 받는 중복 현상이 심해져서인지 독자들의 관심이 많이 떨어졌다”고 지적했다. ‘책이 팔리지 않는 시대’라는 말이 입에 붙은 요즘, 책을 다루는 이들이 바라보는 책은 어떤 존재일까. “아무리 새로운 매체가 등장해도 책을 통해 얻는 지식을 넘어서는 게 있을까요. 책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습니다.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이 많아졌다지만 그들 가운데 1%에게라도 책을 읽히면 세상은 훨씬 살 만해질 거예요.”(김은경 전략구매팀장)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살이 찐다고요? 스트레스와 잘 싸운다는 증거!

    살이 찐다고요? 스트레스와 잘 싸운다는 증거!

    다이어트의 배신/아힘 페터스 지음/이덕임 옮김/에코리브르/288쪽/1만 5000원 #1. 르네상스 시대의 가장 아름다운 여성상은 산드로 보티첼리가 그린 ‘비너스의 탄생’(1485년 작)에 담겨 있다. 이탈리아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 3층에 걸려 있는 이 작품에는 회화 역사상 가장 우아한 여성이 등장한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비너스는 요즘 기준과는 좀 거리가 있다. 엉덩이는 지나치게 풍만하고 배는 볼록하며 팔과 허벅지는 두툼하다. 비너스가 오늘날 환생해 모델 에이전시라도 찾아갔다가는 당장 퇴짜 맞을 몸매다. 과학자들은 비너스의 나이를 19세, 키를 175㎝로 가정할 경우 체중은 77㎏ 안팎이라고 추정한다. 이때 체질량지수(BMI)는 25 안팎으로 20~25를 오가는 21세기의 또래 여성과 비교해 과체중 상태라는 진단이 내려질 만하다. 이 기준은 타당한 것일까. #2. 181㎝의 키에 체중 75㎏인 50대 남성 외르크의 BMI는 23에 불과하다. 콜레스테롤 수치가 약간 높은 것 외에는 이렇다 할 문제도 없다. 담배를 피우지 않고 일주일에 세 차례 이상 조깅하는 등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나름의 규칙적인 생활방식까지 갖고 있다. 반면 동갑내기 스벤의 BMI는 32에 달한다. 176㎝의 키에 99㎏의 체중을 지닌 그는 35세 때부터 의사로부터 과체중에 따른 심장과 동맥의 위험을 경고받았다. 공교롭게도 같은 날 심근경색으로 병원 응급실에 실려 온 두 사람 중 무사히 걸어서 병원을 나선 사람은 ‘뚱뚱보’인 스벤이다. 외르크는 안타깝게도 중환자실에서 목숨을 잃는다. 신간 ‘다이어트의 배신’은 단순히 살찐 이에게 보내는 위로가 아니다. 일종의 ‘논리적인’ 비만 분석서란 표현이 알맞다. 독일 뤼베크대 교수로 세계적인 뇌과학자이자 내과의학자인 저자는 비만이야말로 인체가 가장 자연스럽게 스트레스에 대응하는 성공적인 전략이라고 역설한다. ‘이기적인 뇌’는 스트레스를 극복하기 위해 많은 에너지를 요구하고, 이는 음식의 섭취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살찌는 것이 질병의 신호라는 견해는 애초부터 잘못된 연구 가설이란 반론이 나올 법하다. 저자는 현대사회에서 뚱뚱한 채로 산다는 것은 인종차별보다 더한 주위 편견과 무시를 견뎌야 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살찐 사람에 대한 사회의 평가는 “게으르고 의지가 약하다”로 압축된다. 그런데 다이어트 책과 치료법이 넘쳐나는데도 정작 비만이 3배가량 더 증가한 현실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저자는 21세기 신장 전문의들이 제시한 ‘비만 패러독스’를 들고나온다. 과도한 지방이 신장질환의 발병 원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증상 악화를 억제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다. 이는 뇌졸중이나 뇌출혈, 심근경색, 폐·간 기능 장애 등에도 적용된다. 저자의 관점에서 다이어트는 뇌의 심각한 에너지 위기와 같다. 다이어트로 몸 안의 균형이 무너지면서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이 과다 분비되고 뼈나 근육의 감퇴, 심혈관계 질환, 우울증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영화 ‘타이타닉’으로 알려진 월드 스타 케이트 윈즐릿이 대표적인 사례다. 20년 이상 BMI 21을 유지하느라 ‘섭식 억제자’로 살아오면서 탈선과 방종, 이혼, 탈진과 재활센터 입원 등의 소식으로 가판대 잡지의 표지를 장식했다는 극단적인 분석까지 내놓는다. 저자의 주장에 방점을 찍는 것은 1944년 미국 미네소타대에서 실시된 악명 높은 ‘굶주림에 관한 실험’이다. 양심적 병역 거부자 36명을 대상으로 6개월간 진행된 굶주림 체험에서 참여자의 대부분은 공포와 우울증, 자살충동에 시달렸다. 뇌로 가야 할 포도당 공급이 급감한 탓이다. 그는 연구의 연장선상에서 현대사회의 심각한 스트레스에 노출된 사람들이 왜 뚱뚱할 수밖에 없는지를 의학적으로 설명한다. 나아가 영국의 학자 피켓과 윌킨슨의 스트레스 연구를 인용, 사회적 불공정과 체중이 상관관계를 드러낸다는 결론에 이른다. 빈부격차가 심한 미국에는 뚱뚱한 사람이 많은 반면 스웨덴과 핀란드에선 비만도가 현저히 떨어진다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비만을 벗어나기 위한 가장 좋은 치료법은 무엇일까. 저자는 스트레스 조절을 첫손에 꼽으며 무방비 상태에 노출된 아이들을 먼저 돌보라고 강조한다. 가난의 비참함에서 벗어나도록 돕는 사회의 역할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높인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한국인 첫 유엔기구 수장의 삶과 역정

    한국인 첫 유엔기구 수장의 삶과 역정

    이종욱 평전/데스몬드 에버리 지음/이한중 옮김/나무와숲/ 327쪽/ 1만 5000 2006년 세상을 떠난 이종욱 박사는 인류를 위협하는 질병을 물리치는 데 크게 기여한 공로로 국제 사회에서 ‘백신의 황제’, ‘아시아의 슈바이처’, ‘작은 거인’ 등으로 불릴 만큼 존경을 받았다. 그는 일찍이 사람들이 두려워하고 꺼리는 한센병 환자들을 돌보는 것을 시작으로 결핵과 천연두, 소아마비, 에이즈 등을 퇴치하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을 했다. 소아마비 발생률이 세계 인구 1만명당 한 명으로 낮아진 것도 그의 노력 덕분이다. 국제 보건의료계에서 거의 무명에 가까웠던 이종욱 박사는 2003년 5월 한국인 최초의 유엔기구 수장(세계보건기구 사무총장)으로 선출되는 파란을 일으켰다. 그리고 1년에 30만㎞ 넘게 지구촌 구석구석 가난하고 병든 이들이 있는 곳을 찾아다니며 공중보건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했다. 2005년까지 300만명의 에이즈 환자들에게 치료제를 공급하자는 캠페인을 전개했다. 또 신종 인플루엔자에 적극 대처하기 위해 국제보건 규칙을 30년 만에 개정했으며 대유행병 6단계 로드맵 등을 구축했다. 그의 꿈은 가난한 사람들도 최고의 보건 서비스를 받는 것이었다. 생전에 “누구도 약을 구하지 못해 목숨을 잃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외쳤다. 신간 ‘이종욱 평전’에는 그의 삶이 고스란히 담겼다. 생애 대부분을 세계보건기구(WHO)에 몸담았던 이 박사의 일생을 촘촘히 기록했다. 책의 지은이는 이 박사가 사무총장이던 시절 연설문을 작성했던 데스몬드 에버리. 이 박사의 개인 서신, 가족과 동료들의 회고, 친구들의 편지글 등을 인용하면서 그의 삶과 업적을 입체적으로 정리했다. 한국인 최초로 선출직 유엔기구 수장이 된 ‘세계 보건기구 대통령’ 이종욱의 삶과 업적을 돌아볼 수 있는 소중한 자료다. 책 말미에 실린 이 박사의 연설 선집과 연보는 특히 눈길을 끈다. 국제기구 진출을 꿈꾸는 젊은이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만하다. 김문 선임기자 k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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