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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구 역점사업] 양천구

    서울 양천구가 차별화를 앞세운 문화복지 프로그램을 통해 주민의 삶의 질높이기에 적극 나서고 있다. 특히 독서인구의 저변 확대를 위한 사업과 동사무소 및 문화의 집을 이용한문화교양교실은 구의 가장 큰 자랑거리다. 지난 97년부터 추진해온 ‘1동 1도서방’사업을 통해 구민회관과 20개 동마다 설치된 도서방은 이미 주민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공간으로 자리잡았다.모두 9만여권의 도서를 보유한데다 2개월에 한번씩 신간도서를 구입,주민들의독서욕구를 만족시키고 있다. 올해에만 지난 4월까지 이용인원 7만300여명에 도서대출 20만2,000권을 기록할 정도로 주민들의 이용도가 높다. 하드웨어 뿐아니라 소프트웨어도 알차다.주민들로 구성된 도서방운영위원회가 도서구입 목록을 자율적으로 선정하는 한편,상·하반기 1차례씩 초·중학생 학부모를 대상으로 한 독서지도특강이 열린다.또 7∼8월에는 독후감을 공모·시상하는 독서경진대회가 마련되고,10월엔 각 동 도서방별로 이용실적이 가장 많은 주민 2명에게 ‘구민다독상’이 주어진다.이밖에 9월에는 구민회관 도서방에서 ‘도서 교환·기증코너’를 운영,각 가정에서 읽고난 도서를교환 또는 기증할 수 있는 기회를 갖고 있다. 각 동사무소 회의실은 주민들이 문화·교양 수준을 업그레이드하는 곳으로활용되고 있다. 어학·서예·주부가요·탁구·전통무용·바둑·꽃꽂이·동화구연·종이접기등 130여개의 다양한 강좌가 마련돼 주민들에게 인기가 높다. 올들어서만 이미 785차례의 프로그램에 1만7,000여명이 참여했다. 이와 함께 목2·목5·신월6동에 설치된 문화의 집은 인터넷·비디오·CD부스와 영상음악실,음악연습실,PC교육실,다목적홀,전시장 등이 갖춰져 있어 문화정보를 쉽게 얻고 체험할 수 있는 열린공간 구실을 하고 있다. 양천구는 이같은 문화의 집을 올해 안에 관내 모든 동으로 확대설치할 계획이다. 김재순기자 fidelis@
  • 신간 맛보기

    ◆국내는 물론 중국·일본학계를 통틀어 고구려 고분벽화 연구로는 처음으로박사 학위를 받은 울산대 역사문화학과 전호태교수가 ‘고구려 고분벽화 연구’를 펴냈다.전교수는 고분벽화를 “죽은 자와 그를 묻은 사람들이 어떤세계에 살았고,사후 세계를 어떻게 상정했는지를 알려주는 장의예술”이라고규정한다. 생활풍속·장식무늬·사신(四神)으로 주제를 나누어 거기에 담긴내세관을 설명한다.도판 370여장이 보는 맛을 더한다.‘통구12호분’이 11가지 이름으로 불리는 등 그 동안 혼선을 빚어온 고분 명칭과 편년을 총정리한것이 이 책의 최대 장점이다.사계절 2만9,000원. ◆발레예술의 혁신자 장 조르주 노베르에서부터 20세기 최고 발레스타 누레예프까지.음악과 무용에 두루 해박한 이덕희씨의 새 책 '불멸의 무용가들'은한마디로 ‘한권으로 보는 세계무용사’다.책은 두가지 측면으로 훑어볼 수있다. 궁정무용에서 시작된 발레가 오늘날 현대무용으로 발전된 과정 등 무용의 변천사 자체를 짚어보는 측면과,무용가들의 생애와 예술을 연대기적으로 들여다보는 측면이다.‘고전발레의 아버지’ 카를로 블라시스,춤연극의창안자 얼윈 니콜라이 등 21명의 무용가가 조명됐다. 작가정신 1만5,000원. ◆유럽문화의 근원으로 독자를 이끄는 두 권의 인문교양서가 나란히 나왔다. 도서출판 백의에서 펴낸 ‘그리스·로마 철학기행’(클라우스 헬트 지음,최상안 옮김,1만5,000원)과 ‘로마 문학기행’(마리온 기벨 지음,박종대 옮김,1만2,000원).‘…철학기행’이 밀레토스에서 북아프리카 알렉산드리아에 이르는 지중해 주변 고대철학의 현장을 답사해 쓴 기행문 형식의 철학사라면,‘…문학기행’은 카툴루스로부터 아우구스티누스까지 로마의 인물들이 연대순으로 등장하는 문학여행 가이드다.소설처럼 재미 있게 읽을 수 있는 한편 내용의 깊이도 있어 전공자들의 구미도 당길 만하다. ◆'손정의 크게 말하다'는 재일동포 출신의 세계적 경영인인 손정의 소프트뱅크 사장이 들려주는 인터넷 혁명시대의 경영전략서다.다케무라 겐이치가인터뷰 형식으로 엮었다.손사장은 “이제 곧 인터넷은 펑크가 난다고 말하는사람이 있지만그런 일은 생기지 않는다.도로가 펑크난다는 말과 마찬가지”라며 인터넷 거품론을 일언지하에 박살낸다.미국은 농경사회와 공업사회를거쳐 정보사회로 넘어갔지만 일본은 아직 공업사회 끝자락에 머물러 있는 것이 최근 미·일 양국의 호·불황 차이의 원인이라고 말한다.새물결 9,800원.
  • 이도학교수 신간 ‘궁예 견훤 왕건과 열정의 시대’서 강조

    궁예는 패륜아가 아니다.그는 도탄에 빠진 백성에게 미륵불의 도래를 예고하며 현세에 이상향을 이루려고 한 급진 개혁주의자이다. 진훤(견훤)은 역사의 패자(敗者)다.그렇다고 해서 용렬하거나 무능하지는 않았다.그도 왕건처럼 연호를 사용했고 대왕을 칭했다.다만 승부에서 졌을 뿐이다. 왕건은 물론 한반도 재통일을 이룰만큼 걸출한 위인이다.그렇지만 그를 성인(聖人)처럼 미화한 것은 역사가 이긴 자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백제 고대국가 연구’‘새로 쓰는 백제사’등 백제사 관련 역저들을 잇따라 발표해온 이도학교수(국립 한국전통문화학교 문화재관리학과)가 이번에는 후삼국사를 정리했다.최근 발간한 역사교양서 ‘궁예 진훤 왕건과 열정의시대’(김영사)가 그것. 후삼국시대는 우리 역사연구에서 가장 소외된 시기였다.그동안에는 통일신라의 종말 또는 고려의 탄생과 얽혀 부수적으로 언급될 뿐이었다.따라서 이교수의 이번 저서는,논문의 정밀한 틀을 벗어났다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 시대를 총체적으로 조망한 첫 역사서란 점에서 가치가 높다.게다가 TV드라마와 각종 소설류 발간으로 ‘왕건 붐’이 일어난 가운데 대중에게 그 시대의 진면목을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주목받을 만하다. 이교수는 후삼국 시기를 “우리나라 역사상 단연 박진감 넘치고 생기 가득찼던 시대”라고 꼽는다.그 까닭은 “천년왕국 신라를 지탱하던 골품제의 사슬이 끊겨 신분이나 혈통이 아닌 능력이 중시됐기 때문”이라고 풀이한다.따라서 “민족의 에너지와 개인의 역량을 유감없이 발산한,그래서 궁예 진훤 왕건이라는 걸출한 영웅 3명이 역사의 전면에 선 시대”라고 강조한다. 이교수는 세 영웅의 삶의 궤적을 섞어짜가며 후삼국사를 재구성한다. 신라 왕자로 태어난 궁예는 승려로 떠돌며 민초들의 곤궁한 삶을 체험한다. 그는 지방호족들의 수탈로부터 농민해방을 선포했고 기존 불교의 폐해를 통렬하게 비판했다.그는 하층 농민들에게서 열광적인 환영을 받았다. 궁예와자웅을 겨룬 진훤은 경북 문경의 농민 출신.군인의 길을 택한 그는 전남 순천만(灣)에서 근무하며 해적소탕에 발군의 공을 세워 기반을 닦았다.이 시기 그는 순천만을 통해 오가는 당나라 무역선,유학생·유학승에게서 세상을 보는 안목을 키운다. 한때 통일신라 영토의 3분지2를 차지한 궁예가 결국 왕건에게 쫓겨난 원인은 무엇일까?궁예는 처음 ‘고구려 부흥’을 내세웠으나 세력이 확대되자 백제와 신라계까지 포용하려고 했다.또 저항세력에게는 피의 숙청을 단행했는데 이같은 일들이 황해도와 경기도 북부의 옛 고구려 출신 호족들을 불안케 했다.이들이왕건을 중심으로 뭉쳐 반기를 들었다는 게 이교수의 해석이다. 이밖에 ▲왕건과 진훤이 황제(또는 대왕)를 칭했다▲통일신라는 알려진 것보다 통합이 덜 된 상태였다▲왕건은 신라에 우호적이지 않았다는 등 새 주장이 많이 담겨 있다.아울러 이 시기와 관련한 갖가지 편견에 대해서도 예리한 칼날을 들이댔다. 딱딱한 논문 형식을 벗어나 때로는 소설처럼,역사기행처럼 자유롭게 풀어쓴이 글은 그러나 문헌과 고고학의 탄탄한 토대 위에서 서술됐다.지은이가 직접 찍어 수록한 현장사진들은 세련되지는 않되 그의 부지런함을 보여주는 증표이기도 하다. 이용원기자 ywyi@
  • 신간소개

    ◆ 똑똑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도올 김용옥이 “그의 일거수 일투족이몽땅 난해하다”고 평한 ‘천재’가 있다.디자이너,일러스트레이터이자 그림동화작가인 ‘뚱딴지식 아이디어 맨’ 강우현.단 한 줄의 메모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칸 영화제 공식 포스터 작가로 뽑혔고,유리 탁자 위에 휴지를 깔고감자를 기르기도 했다. 그가 ‘클릭! 내 머리속의 아이디어 터치’(에디터)에서 자신의 아이디어발상법을 털어놓았다.생각이 막히면 아이가 되기,오늘은 다른 길로 출근해보기 등 15가지.사업의 성패를 좌우하는 아이디어 세계에서 논리보다는 끊임없는 자기훈련만이 필요하단다.값 9,500원. ◆ EBS에서 노자사상을 강의해 폭발적인 인기를 끈 도올 김용옥의 ‘노자와 21세기(3)’(통나무)은 노자강론 완결편이다.1·2권이 방송교재인 데 견줘 3권은 방송에서 다루지 못한 부분,곧 ‘도덕경’가운데 ‘도경(道經)’의 25∼37장을 풀어 설명했다. 앞선 책들에는 대중의 이해를 돕는다는 뜻에서 알레고리와 일상적 담화를많이 실었다면,이 책에서는 본격적인 문헌비평과 철학적 해석을 엄밀한 언어로 담아냈다.지은이 스스로 “1·2권에서 말하고자 한 모든 논리를 명료하게 종합했다”면서 “이제야 EBS 강의를 끝내는 셈”이라고 밝혔다.값 8,500원. ◆ 인간이 태양계를 향해 물음표를 찍기 시작한 지점은 어디쯤일까.태양계의궁금증을 풀어가는 길에서 역사속 인간들은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듭했다.있지도 않은 행성이나 위성을 찾느라 소란을 떤 적도 얼마나 많았었나? 수원대 물리학과 곽영직·김충섭 교수가 함께 쓴 ‘CD롬과 함께 가는 태양계 여행’(사이언스북스)은 태양계에 대한 숱한 의문들을 풀어주되,쉽고 재미있어 눈길을 끄는 책이다.태양계 관측과 탐사에 관한 정보들을 총천연색으로 편집한 배려가 돋보인다.부록으로 딸린 CD롬에는 책에 미처 다 풀어놓지못한 태양계 탐사이야기가 담겼다.값 1만5,000원
  • 근대계몽기 학술·문예사상 집약

    1894년 갑오경장에서 1910년 일제에 국권을 빼앗기기까지 한국사회 지식인들은 나라를 되살리고자 온힘을 기울였다.이는 교육·출판·언론·문학·산업 등 여러 부문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됐다.그 노력은 비록 큰성과를 거두지 못했지만 지금껏 학술사에 소중한 유산으로 남아 있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나온 주요 저서의 서문과 발문을 한데 모은 책‘근대계몽기의 학술·문예 사상’이 최근 나왔다(소명출판,값 2만원). 책 첫머리에 나오는 서문이나 맨뒤에 붙이는 발문에는 발간 취지가 집약돼있으므로 서발문만 보아도 편저자의 의식을 알 수 있다.따라서 ‘근대계몽기…’는 당시 한국사상을 원형 그대로 집약한 셈이다. 수록된 저서는 모두 77종으로 그 줄기는 크게 3가지로 구분된다.하나는 ‘옛것을 몰아내고 새것을 널리 퍼뜨린다’는 제구포신(除舊布新)이었다.이는교육을 비롯해 여성·정치·법률·사회사상 등에 폭넓게 퍼졌다. “오늘날에는 여권이 해방되니 여자의 배움이 남자의 배움보다 시급하다”(이원긍의 ‘초등여학독본’)는 주장이나 “천자문과 동몽선습으로 자제들을가르치며 나아가서는 통감·사략 등에 이르니 이런 유의 책들은 천부의 자유를 포기하고 노예 습성을 양성하는 것”(현채의 ‘유년필독석의’)이라는 비판이 강력하게 제기됐다. 또 하나의 줄기는 우리 전통에서 부국강병의 방도를 찾는 것이었다.정약용의 ‘흠흠신서’‘목민심서’‘경세유표’와 박지원의 ‘연암집’등 실학자의 저작들이 이때 인쇄,유포됐다. 성균관 대사성을 역임한 민치헌이 ‘흠흠신서’ 발문에 쓴,“황제(고종)께서 권장함에 힘입어 (출판사인) 광문사를설치했는데 이 책이 가장 먼저 나왔다”는 구절은 대한제국이 실학서 발간에큰 관심을 가졌음을 알려주는 대목이다. 국내외 역사서와 영웅들의 전기를 국민에게 알려 흥망(興亡)의 교훈을 전하고 애국심을 고취하는 일도 계몽운동의 큰 몫이었다.신채호가 지은 ‘을지문덕’ ‘이순신전’이라든지 번역서인 ‘서사(스위스)건국지’ ‘애급(이집트)근세사’‘월남망국사’들을 앞다투어 출간했다. 한시대 사상의 흐름을 알기 쉽게 전달하기란 그야말로 쉽지 않다.그러나 이책은 서발문을 통해 접근함으로써 무거움을 벗어버리는 데 성공한 것으로보인다.귀중본들을 한데 모아 자료로서의 가치도 뛰어나다. 어문,소설,역사,지리,정법(政法)·사회,과학·기술 등 6개 분야로 구분해수록했고 각 저서의 내용을 해제와 번역,원문 순으로 소개했다.원문은 대부분 한문 또는 국한문혼용체이다.이밖에 책자 77종 전부와 당시 대한매일신보등에 실린 신간서적 광고를 원색화보에 담았으며,부록으로 저자 및 서발문필자의 약력을 소개했다. 편역한 이는 임형택 성균관대 교수 등 민족문학사연구소 회원 4명이다.연구소는 여러차례 세미나를 열어 수록대상 저작을 선정했다. 이용원기자 ywyi@
  • ‘참가족’일깨우는 책 ‘봇물’

    5월은 가정의 달.가족들이 단란한 시간을 함께하려고 여느 때보다 한층 더노력하는 달이다.손을 맞잡고 나들이를 하거나 선물을 주고받으며 도타운 정을 나누기도 한다. 가족 간의 사랑을 확인하고 키워가는데는 다른 사람의 경험도 큰 보탬이 된다.그래서인지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일깨워주고 방법론까지 제시하는 신간들이 이달 들어 풍성하게 나왔다. ‘가시고기 아빠 장종수씨 그리고 한결이와 새힘이 이야기’(예림당,값 5,000원)는 부인 없이도 5년째 두 아이를 밝게 키워가는 저자 가족의 애환을 그렸다.알을 낳자마자 떠나버리는 어미를 대신해 자신의 살까지 내어주는 아비가시고기를 닮았다. 그는 왼쪽 팔이 성치 않다.부인은 사이비종교에 빠져 큰 빚만 남긴 채 사라졌다.야간 간병일과 구연동화가로 근근이 생계를 꾸려간다.물질적으론 항상부족해도 아이들에게 늘 웃음을 선사하려고 애쓴다.‘일요일은 일단 웃는 날’을 위시해 일주일 내내 웃도록 웃음달력을 만드는 등 유머를 즐긴다.도시락을 쌀 때나 집을 비울 때 짧지만 사랑이 담긴 쪽지편지를전한다.매일밤아이들을 품고 동화를 읽어준다.방송국 주최 동화구연대회에서 대상을 받을정도로 수준급이다. 초등학교 6학년 딸이 ‘엄마 찾아 3만리’ 독후감 숙제를 받아와서는 “왜하필 그 책이냐”며 펑펑 울 때,위험한 놀이를 계속하는 딸에게 신문지 몽둥이로 매를 가할 때는 가슴이 미어지는 듯 했다.그러나 대화와 사랑으로 극복할 수 있었다.98년에는 ‘올해의 좋은 아버지상’을 탔다. 어린이들이 어려운 일을 당하더라도 절망하지 않고 맑게 자랄 수 있고,부모들도 의지와 노력만 있다면 어린이의 세계를 이해하고 함께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이 책은 던진다. ‘젖병을 든 아빠,아이와 함께 크는 이야기’(돌베개,값 8,000원)는 늦깎이아빠 이강옥 교수(영남대 국어교육과)가 첫 아이를 홀로 키운 육아에세이다. 부인의 유학으로 젖먹이 때부터 세살 무렵까지 한시적이기는 했다.그러나그간 겪은 고초는 이루 말할 수 없다.밤마다 울어대는 아이 때문에 14일동안불면증에 시달리면서도 진정 화를 내본 적이 없단다.아이 업고 젖병 들고제자의 결혼식에참석하기도 했다.그러는 사이에 “내 빈약한 젖꼭지에서도젖이 흘러내리는 듯”할 정도로 모성이 무르익어갔다. 저자는 육아가 여성의 몫이 아니라 아빠의 행복한 권리라고 단호하게 말한다.아이가 자신을 키우는 또다른 ‘아이’를 넉넉하고 참을성 있는 어른이되게 만든다고 주장한다. ‘나의 아버지 나의 어머니’(뜨란,박지민 옮김,값 7,000원)는 중국 인민일보 사진기자 지아오보(焦波)가 60여년 동안 해로한 80대 노부모의 최근 20년간 모습을 꾸밈없이 촬영한 사진과 100년에 걸친 가족사,산동지방 산촌의 정감어린 삶의 풍경에 대한 추억을 담은 사진산문집이다.험난한 세월을 이겨낸부모세대의 강인한 의지와 가족을 위한 희생이 우리에게도 낯설게 느껴지지만은 않는다. ‘엄마 아빠,사랑해요’(씨앗가게,값 6,000원)는 초등학생들이 부모와 대화를 통해 직접 글을 쓰고 초상화와 삽화도 그려넣은 부모님 전기다.저자 서성원 교사(상천초등학교)는 이 교육프로그램이 확대되기를 기대한다. 나침반출판사는 아들과 딸의 인생을 잡아줄 지침서인 아버지 학교 시리즈 1,2권을 냈다.마이클 패리스 지음,값6,000원김주혁기자 jhkm@
  • 베트남 통일 25주년/ (상)현황

    호치민시티(옛 사이공)의 중앙광장 한 편에 혁명지도자 호치민(胡志明)의대형초상화가 걸려 있다.이 초상화 밑에는 ‘공산주의의 위대한 승리는 1,000년을 지속할 것’이라는 구호가 적혀 있다.그의 초상화가 바라보는 광장 건너편에는 몇달 전까지만 해도 미국의 패션모델 신디 크로포드의 입간판이 서있었다. 지금은 베트남 당국이 통일 25주년 기념을 위해 철거했지만 크로포드는 호치민과 나란히 서서 미국산 고급시계를 사라고 베트남인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호치민의 초상화와 크로포드의 입간판은 베트남전(베트남인들은 미국전쟁이라고 부른다)이 끝나고 남북으로 갈라졌던 베트남이 통일된지 25주년을 맞는베트남의 오늘을 잘 보여준다.미국은 베트남의 적이었고 모든 악의 근원이었다. 베트남 지도자들에게는 지금도 마찬가지다.그러나 베트남 젊은이들에게 미국은 적이 아니라 모든 좋은 것의 상징이다. 현재 베트남의 인구 7,800만 가운데 절반 이상이 75년 통일 이후 태어났다. 사진과 이야기를 통해서만 베트남전쟁을 아는 이들에게 베트남전쟁은 역사의일부분일 뿐이다.30일의 통일기념일도 그저 휴일일 뿐 큰 의미를 갖지 못한다.이들에겐 많은 돈을 벌어 편안한 삶을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여전히 사회주의 노선을 고집하는 베트남 지도층과 이같은 젊은이들의 의식차이는 오늘날 베트남이 안고 있는 고민을 대변해준다.전쟁은 베트남에 통일을 안겨주었지만 대신 경제를 파탄에 빠뜨렸다.베트남의 1인당 국민소득은 380달러로 세계 최빈국 가운데 하나다.국민의 80%가 시골에 살고 있는데 이들에게는 깨끗한 식수와 전기조차도 사치로 여겨질 정도다. 통일 후 사회주의 경제를 도입하고 자본주의의 모든 폐해를 제거하기 위해안간힘을 썼던 베트남은 결국 86년 경제를 되살리기 위해 ‘도이모이’(혁신) 정책을 채택했다.어쩔 수 없이 자본주의에 문을 연 것이다.95년에는 미국과의 외교관계도 재개했다. 도이모이 정책은 외국인 투자를 불러오는 등 성공하는 듯 보였지만 97년 아시아 외환위기의 여파로 타격을 받았다.95년 9.5%를 기록했던 경제성장률은지난해 4.8%로 뚝 떨어졌고 96년 최고 90억달러에 육박했던 외국인 투자도지난해에는 14억달러로 격감했다.올해는 더 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처럼 외국인 투자가 감소하는 것은 베트남의 개혁이 외국으로부터 신뢰를얻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베트남은 지난해 미국과의 무역협정을 마무리짓고도 최종 단계에서 조인을 연기했다.무역협정이 조인됐다면 수출도 크게 늘어나고 외국인 투자도 늘어날 수 있었다.그러나 공산당의 사회 장악이 약화되고 국가지배체제가 흔들릴 것을 우려한 나머지 지도부가 방향을 바꾼 것이다.외국 투자가들로선 베트남의 개혁정책에 의심을 품을 수 밖에 없다. 베트남 정부는 사회주의와 자주독립노선을 유지하면서 경제 개방에 의한 경제개발도 계속한다는 계획이다.그러나 문제는 사회주의와 경제 개방이 양립하기 힘들다는데 있다.개혁을 택할 것이냐 보수를 택할 것이냐 베트남은 지금 생존을 위한 심각한 교차점에 서 있는 것이다. 전쟁은 실제로 25년전 끝났다.그러나 베트남에서 전쟁은 지금도 계속되고있다.베트남 지도자들은 경제를 통한 미국 등 서방의 침공을 막아야 한다고생각하고 있다.이들은 기본적으로 과거지향적이다.그러나 전쟁 후 태어난 젊은이들은 이들과 다르다.베트남이 잘 살기 위해서는 세계경제로 진입해야 한다.그리고 그 열쇠는 바로 미국이라는 것이 젊은이들의 생각이다.젊은이들은미래지향적이다. 과거지향의 지도층과 미래지향의 젊은이들간에 경제를 중심으로 한 서방의 가치를 둘러싸고 보이지 않는 전쟁이 치러지고 있는 것이다. 남과 북의 경제적 격차도 점점 커지고 있다.남쪽은 외국인 투자도 많고 그런대로 번영을 누리고 있지만 북쪽은 상대적으로 경제가 더 어려운 형편이다.베트남 정부는 북쪽의 경제를 살리기 위해 남쪽에의 투자를 외면하고 있다. 남쪽에서는 북부지역을 살리기 위해 남부지역의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는 불만이 쏟아져나오고 있다.통일이 됐다고 해도 경제적인 측면에서 보면 남과북은 대립은 계속되고 있고 실제적인 통일은 이뤄지지 않았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근면한 국민성,높은 교육열 등 베트남의 가능성만은 무한하다는데많은 베트남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이들은 베트남만큼 잠재적 가능성과 현실과의 괴리가 큰 나라는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유세진기자 yujin@. *100만명 아직도 고엽제 후유증. 베트남은 남북이 통일된 지 25년을 맞았지만 여전히 ‘통일전쟁’의 후유증을 앓고 있다.역사는 승자의 기록이기 때문에 남베트남인들의 희생은 철저히통일 베트남 역사에서 잊혀지고 있다.남북 베트남 출신간 갈등은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그 골은 여전히 깊다.10년간 지속된 민족전쟁에 따른 빈곤문제,고엽제 문제와 실종자 및 난민(보트피플)문제,미군과 최근 불거진 한국군의 주민학살 문제 등 당면한 문제가 산적해 있다. 1965년부터 1975년까지 10년간 계속된 전쟁으로 300만명의 베트남 국민들이사망했다. 이중 200만명이 민간인이다.북베트남 군인중 30만명이 실종됐고남베트남 군인의 실종자수는 아예 잡혀 있지도 않다.100만명이 고엽제 후유증으로 시달리고 있다.한편 미군은 5만8,000명이 전사했고 2,000여명이 실종됐다.한국군은 4,960명이 전사했다. □민족갈등 종전후 100만명 이상이 베트남을빠져나갔다.40만명 가량은 '재교육‘ 명목 아래 수용소에 보내졌고 140만명은 전쟁으로 황폐해진 베트남남부의 ‘신경제구역’에 강제이주당한 뒤 가난에 허덕이고 있다.똑같은 전쟁 참전군인 유족이지만 남베트남 군인의 유족들은 얼마 안되는 연금마저 받지 못하고 어렵게 생활하고 있다.베트남의 한 언론인은 “1975년에 지리적으로 남북이 통일됐고 76년에 법적으로 통일국가를 세웠지만 정서적으로 완전히 통일이 되려면 수십년이 더 걸릴 것”이라고 지적,그만큼 남북간 감정의골이 치유되기 어렵다는 점을 인정했다. 아직도 당서기장,총리,대통령 등 3역을 뽑을 때 묵시적으로 지역 안배를 하고 있고 경제특구를 설정할 때도 마찬가지다.이같은 지역갈등은 베트남의 완전 개방을 가로막는 요인중 하나로 지적되고 있다. □고엽제 문제 미군이 베트콩의 보급로를 차단하고 정글 속에 설치된 근거지를 찾아내기 위해 62∼71년까지 정글에 쏟아부은 고엽제는 약 4,200만ℓ. 베트남 정부는 현재 7,800만 인구중 100만명이 고엽제의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밝혔다.고엽제는 암,면역결핍증,기형아 출산 등의 주원인으로 알려져왔으며 특히 최근 미 공군이 발표한 연구자료에 따르면 고엽제는 당뇨병과 심장질환을 유발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고엽제 피해자들에게 미국이 지원을약속했고 1월부터 베트남 정부와 관련단체들이 매달 일정액의 보상금을 지급하고 있지만 보상금 규모가 턱없이 미미해 이들은 적절한 치료는 차치하고끼니를 때우기에도 부족한 실정이다. □난민(보트피플)문제 70년대까지만 해도 정치적·종교적 자유를 찾아 무작정 배에 몸을 실어 망망대해로 떠났던 이들에게 세계는 동정적이었다.상당수가 홍콩,태국,말레이지아,인도네시아,필리핀,한국 등지의 난민촌을 거쳐 미국이나 캐나다 영국 호주 등에서 재정착했다.그러나 80∼90년대 경제난을 피해 도망친 사람들의 경우는 사정이 다르다.세계의 시선도 냉정해졌다.이들은난민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대부분 본국으로 이송됐다.되돌아온 이들을 끌어안고 경제난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지가 최대의 과제다. □양민학살 문제 미군은 68년 3월16일 무방비 상태의 미라이 주민 수백명을학살했다.이 사건은 미군의 수치와 은폐의 동의어가 됐고 미국의 여론을 반전으로 바꾸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최근 들어서는 한국군의 주민학살 논쟁까지 가세했다.베트남 정부는 과거의 문제로 접어두고 경제개발에 모든 노력을 기울이겠다는 입장이다.하지만 언제든 보상문제는 당사국간에 현안으로떠오를 수 있다. □대미관계 윌리엄 코언 미 국방장관이 3월 베트남을 방문,고엽제 피해자에대한 지원을 약속했다.실종자 문제는 양국이 합동조사위원회를 설치해 조사중이다.아직 양국간 전쟁과 관련 어떠한 보상협상도 이뤄지지 않은 상황이어서 본협상이 이뤄질 경우 어떻게 결론날지 미지수다. 김균미기자 kmkim@
  • 北관련 신간서적도 봇물

    오는 6월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앞두고 북한관련 서적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이에 따라 교보 등 대형서점들은 ‘특설코너’를 설치하는 등 독자의 눈길을 끌기 위해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최근 나온 북한관련 서적은 서대숙 영남대 극동문제연구소장의 ‘현대북한의 지도자:김일성과 김정일’(을유문화사) 등 7종에 이른다.이중 서 교수의책과 정치학자 이주철씨의 ‘김정일의 생각읽기’(지식공작소) 등 북한지도자 소개서가 독자의 인기를 모으는 대표적인 책이다. 이같이 새로 출간된 책 뿐아니라 이미 나온 서적 50여종도 새삼 관심을 끌고 있다.이런 책은 ‘21세기 북한’(나남),‘현대북한체제론’(을유문화사),‘북한인식과 한반도’(살림),‘남북한 경제통합론’(오름),‘북한의 국어연구’(일조각),‘북한의 명산’(서문당),‘금강산 100배 즐기기’(중앙M&B)등이 있다. 서점가의 관계자들은 이와 관련,“정상회담 개최 소식이 전해진 뒤 북한 관계 서적을 찾는 독자들이 다소 늘고 있다”면서 “특히 김정일을 소개한 책과 북한 명소를 안내한 책들이잘 팔리는 편”이라고 말했다. 박재범기자
  • [4·13총선 테마 조명] 재격돌(3)

    ◆서울 은평갑. 서울 은평갑은 민주당 손세일(孫世一)의원과 한나라당 강인섭(姜仁燮)전의원 등 언론인 출신간 2파전이 예상된다.15대 총선에서도 맞붙어 당시 국민회의 후보였던 손의원이 2,000여표 차로 신승했다. 현재까지 30∼40%의 부동층이 있는 것으로 양측은 분석하고 있다.때문에 부동표 공략이 당락에 최대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일단 손의원측은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인물론에서는 강전의원을 앞서고 있다는 것이다.‘깨끗한 정치인’ ‘개혁의 정치인’ ‘정책 전문가’ 등 3가지 테마를 인물론과 연계시킨다는 전략이다.중산층과 서민층이 많은 사는 곳으로 20∼30대 젊은층과 개혁적인 층을 지지세력으로 보고 있다.손의원은 200여회의 의정보고회를 통해 “지역발전을 위해 정부예산을 확보해 오겠다”며 여당 의원의 프리미엄을 강조하고 있다. 반면 강전의원은 청와대 정무수석 경력을 갖춘 정치인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유권자를 파고 들고 있다. 세무서와 의료보험조합이 인근 서대문으로 옮겨가는 등 지역여론이 좋지 않다고 판단,‘현역 교체’를 부르짖고 있다.손의원이 시민단체가 선정한 공천부적격자에 포함된 것도 활용할 계획이다.주된 득표기반은 구여권 지지층이다.공약으로 자연친화적 지역사업의 적극 육성을 내세우고 있다. 이밖에 민국당 남요원(南堯元)씨,활빈당 당수 홍정식(洪貞植)씨,청년진보당조규식(曺圭湜)씨, 한국신당 이근봉(李根鳳)씨 등이 양자대결 구도의 틈새를노리고 있다. 박준석기자 pjs@. ◆인천 계양. 민주당 송영길(宋永吉)변호사와 한나라당 안상수(安相洙)의원이 지난해 6월15대 보궐선거에 이어 인천 계양에서 재접전을 펼친다. 인천 계양은 학교 등 도시 기반시설이 부족해 지역발전이 최대 총선 쟁점이다. 연세대 총학생회장 출신인 민주당 송변호사는 대우자동차 용접공으로 근무하면서 34세에 사법고시에 합격했다.지난해 9,424표차로 낙선했던 송위원장은 그동안 설욕을 위해 절치부심해 왔다. 노동자들과 함께 생활해온 만큼 지역에서도 인천개인택시사업조합노동연맹고문변호사 등을 맡아 노동자 인권문제 해결에 앞장서 왔다는 설명이다.요즘은 1주일에 한번씩 택시운전기사로 나서 하루종일 지역민의를 수렴한다.공항직통버스노선 개설,학교 증축 등 지역문제 해결에 발벗고 나서고 있다. 한나라당 안의원은 20여년 이상 국제금융과 정보통신분야에서 활동해온 전문 기업인 출신이다.국회교육위원을 맡아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 개정을 주도,교육시설비 등을 대폭 확보토록했다는 설명이다.예결위에서는 학교환경개설특별회계를 3,000억원에서 4,000여억원으로 증액 편성토록 하는 데 앞장섰다고 주장한다.지역학교 증설을 위해 교육청 등을 발로 뛰며 선거공약을 실현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한편 자민련 조봉래(趙奉來)전 계양새마을지회장과 민국당 이병현(李炳賢)민주시민모임 상임대표도 가세했으나 양자 대결구도를 깨기에는 힘에 부치는인상이다. 주현진기자 jhj@
  • [김삼웅 칼럼] 일제시대 三節士

    역사나 민족문제에 무관심하다가도 3월이면 숙연해지는 사람이 적잖을 것이다. 아직 봄이기에는 바람결 매운 이계절에 우리는 조국해방을 위해 일제와싸우다 가신 선열들을 생각한다. 그리고 오늘의 지도자들을 돌아본다. 참혹했던 일제시대에도 자랑스런 한국인이 많았다. 그들의 희생으로 해방을맞았고 망국사를 독립운동사로 고쳐쓸 수 있게 되었다. 한국사는 변혁기나 국난기에 의롭게 희생된 지사들을 묶어 시대정신으로 받드는 전통을 갖고있다. 백제말 성충·흥수·계백의 삼충(三忠), 고려말 정몽주·이색·길재의 삼은(三隱), 청국에 끝까지 항복을 반대하다가 척화신으로 청나라에 붙잡혀가 살해당한 삼학사(三學士), 온몸을 던져 일제와 싸운 삼의사(三義士)가 대표적이다. 이런 전통으로 식민지시대 돈독한 학문적 바탕에서 절개를 지키면서 끝까지일제와 싸운 단재(丹齋)신채호, 만해(萬海)한용운, 심산(心山) 김창숙선생을삼절사(三節士)로 부르면 어떨까. ‘절개가 있는 사람’을 일컫는 ‘절사’가 어찌 이들 뿐이랴만 세분은 출생연도나 옥고·활동·업적에서 유사한 부분이 너무 많고, 생존시 절친한 사이였기 때문이다. 올해는 단재 탄생 120주년이고 만해와 심산은 119주년이다. 왜 삼절사일까. 본래 ‘삼절(三節)’은 공자가 주역을 너무 여러번 읽어서‘위편(韋編)’이 세차례나 떨어졌다는 ‘위편삼절’의 고사에서 유래한다. 또다른 의미는 “세가지의 뛰어난 일”을 뜻한다. 여기서는 고사나 사전적의미보다 ‘절개를 지키면서 싸운 선비’의 뜻에서 3절사로 부르고자 한다. 단재는 한말과 일제시대 실천적 지식인의 전형으로서 언론·역사·독립운동을 한 흔치않은 인물이다. 황성신문·대한매일신보·권업신문의 주필을 지내면서 항일구국의 필봉을 날린, 언론의 한 분야만으로도 독보적 역할을 했다. 조선상고사·독사신론·조선사연구초 등 사학자로서도 독보적 업적을 남기고‘조선혁명선언’집필 등 독립운동과 중국의 일제감옥에서 옥사당한 것만으로도 위대한 독립운동가로 대접 받는다. 만해는 동학운동에 뛰어들고 불교계 대표로 33인에 선정되어 3·1운동을 주도하고, 옥중에서 ‘조선독립의 서’를 쓰고, 신간회를 지도하고 불교관계항일단체인 만당사건으로 구속되고 시문학과 불교개혁의 기념비적인 ‘님의 침묵’과 ‘불교유신론’을 쓰고 국내에서 끝까지 버티면서 창시개명을 거부하는 등 비타협 노선을 견지했다. 독립운동·시문학·불교재건 등 각분야에서 독보적 역할을 했다. 심산은 매국노의 목을 베라는 상소문을 올리고 국채보상운동에 참가하고 파리강화회의 ‘파리장서’를 주도하고 망명하여 상해임시정부 의정원부의장을맡고 북경에서 단재와 잡지 ‘천고(天鼓)’를 발간하고 체포되어 국내로 압송되어 14년형을 선고받고 앉은뱅이가 되도록 고문을 당하고 건국동맹남조선 책임을 맡고 ‘자서종요(字書綜要)’‘벽옹70년회상기’등의 저술을 남겼다. 세분은 고결한 인품과 불굴의 독립정신,극심한 고문과 옥고를 겪으면서도 신념을 지킨 한국선비의 사표가 되었다. ‘곧지 않으면 바르지 못한다’는 동양의 전형적 지식인상이다. “아! 과거 수십년 역사야말로 용자(勇者)는 침을 뱉고 욕할 역사가 될 뿐이며 인자(仁者)로 보면 상심할역사가 될 뿐이다.”(단재‘조선혁명선언’) “개성 송악산에서 흐르는 물은 만월대의 티끌은 씻어가도 선죽교의 피는못씻으며 진주 남강에 흐르는 물은 촉석루 먼지는 씻어가도 의암에 서려있는논개의 이름은 못씻는다.”(만해 ‘출옥 후 연설’) “성인의 글을 읽고도 세상을 구제하던 성인의 뜻에 깨우침이 없으면 이것은 거짓 선비다.”(심산‘벽옹73년회상기’) 단재는 추운 겨울에도 꼿꼿이 서서 세수를 했다. 일본놈 천지에 동서남북어느쪽으로도 허리를 굽힐 수 없다는 오기였다. 만해는 주위에서 성북동에 심우당이란 거처를 마련해주자 동남향 창문을 손수 뜯어 북향으로 고쳤다. 총독부가 보이는 쪽에 창문을 낼 수 없다는 독기였다. 심산은 모진 고문 끝에 앉은뱅이까지 되어 평생을 병 속에 살아왔다하여 누군가 그를 벽옹이라 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농을 한즉 그는 그후 자기를‘벽옹’으로 불렀다. 앉은뱅이도 자랑스럽다는 결기였다. 김삼웅 주필
  • 서대문형무소 역사 첫 고찰

    ‘현저동 101번지’. 서울 서대문구 무악재 왼편 언덕바지,현 독립공원 일대를 지칭한 지번이다. 조선왕조의 도읍을 한양(현 서울)으로 정한 무학대사는 일찍이 이 일대를 가리켜 “과연 명당중의 명당이나 한때 3,000명의 홀아비가 탄식할 곳”이라고예언한 바 있다. 무학대사의 말은 과연 적중했다.‘한일병합’ 2년전이자 ‘헤이그밀사사건’ 이듬해인 1908년 10월 이곳에는 당시로선 ‘동양최대·최신 규모’의 경성(京城)감옥이 들어섰다.당시 이미 조선병합을 꾀하고 있던통감부는 장차 일제에 항거하는 ‘죄인’들이 크게 늘어날 것에 대비,미리이곳에 대형 감옥을 만든 것이다.이후 이곳은 우리나라 감옥의 대명사로 불렸다.그러나 놀랍게도 서대문형무소의 역사를 들여다볼 수 있는 자료집 한권이 없는 실정이다. 오랫동안 친일문제와 한국현대사를 천착해온 대한매일 김삼웅 주필(57) 이최근 출간한 ‘서대문형무소 근현대사’(나남출판)는 서대문형무소의 역사를처음으로 다뤘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이 책은 김 주필이 순국선열유족회가 발행하는 월간지 ‘순국’에 97년 11월부터 금년 1월호까지 기고한 25회 분량의 연재물에 이승만 관련 부분을 보탠 것이다.저자는 집필과정에서 “관련자료의 절대부족이 가장 큰 애로였다”고 토로했다. 지난 88년 서울시가 옥사(獄舍)·담장·망루 등을 대거 철거,독립공원을 조성하면서 지금 이곳은 한낱 놀이터로 변모하였다.그런 이곳을 저자는 당시자료와 증언을 통해 이곳이 대표적인 민족수난사의 현장임을 입증해 보이고있다.백범 김구·이승만 등을 비롯해 3·1의거만세·105인사건·신간회사건·수양동우회사건 등 일제강점기 대형 독립운동사건에 연루된 애국지사들이이곳에서 옥고를 치렀음을 당시 재판기록과 관련문서를 통해 밝혀내고 있다. 64세의 노구로 사이토(齋藤實)총독에게 폭탄을 던진 강우규 의사를 비롯해한말 의병장 허위·이강년 선생,유관순 열사,임시정부 노동국총판 김동삼 선생 등이 최후를 마친 곳도 모두 이곳이다.일제의 보복을 두려워한 나머지 김동삼 선생의 시신을 수습하려는 자가 나서지 않자 만해 한용운 선생이 “내평생 선생님의 시신만이라도 뫼실 수 있다면 큰 영광”이라며 김 선생의 시신을 수습한 것은 가슴 뭉클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이 책은 단순히 독립운동가들의 행적만 살핀 것이 아니다.일제의 감옥정책,당시 일제가 사용한 형구(刑具),서대문감옥에서 애국지사들이 남긴 시·서한등을 비롯해 조선총독부 시정연보를 통해 당시 한국의 감옥실태 등 우리 행형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들도 곁들이고 있다.부록으로 여기서 옥고를 치른독립운동가들의 신상기록이 수록돼 있다.해방이후 역사에 대해서는 후편에서다룰 예정이다. 저자는 “우리 학계가 독립운동사처럼 명분·명예가 따르는 연구에만 매달리다 보니 서대문형무소 같은 ‘어두운 역사’는 언제나 망각,또는 배척의대상이 돼 왔다”고 말했다.값 1만5,000원. 정운현기자 jwh59@
  • [독자의 소리] 문화수입 수준 머문 출판풍토 개선 절실

    대형서점을 찾으면 신간이 마구 쏟아진다는 느낌을 받는다.그렇지만 산더미처럼 쌓인 책들이 얼마나 유익한 것인지 알 길이 없다.신문과 방송에선 양서를 소개하지만 극히 일부이다. 국내 출판계의 수준은 필요한 출판물에 대한 저작권을 외국에서 사들여 번역,출판해내는 문화수입국에 머물러 있는 실정이다.그러나 법의 미비로 저작권법 발효 이전의 책들이 비싼 저작권료를 주고 출판한 책과 나란히 진열대에 오르는 일도 있다고 한다.최근 신문에 자주 오르내리는 출판사들을 주제로 문화권력에 대해서 쓴 논문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거대 출판자본과 기획이벤트가 맞물린 요즘의 출판활성화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해봐야 할 때이다. 이원희[eleww@yahoo.co.kr]
  • [우리구 역점사업] 서초구

    서초구(구청장 趙南浩)는 올해 구정의 목표를 주민의 문화 및 여가활동 지원에 두고 있다. 도시기반시설은 어느 정도 갖춰져있다는 점을 감안,지역개발보다는 음악회나 교양강좌 등 문화프로그램을 적극 개발해 주민들의 문화욕구를 충족시키는 데 구정의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이를 위해 구민회관을 주민들의 문화예술활동 터전으로 적극 활용,금요음악회나 클래식감상회 등 각종 공연 및 강좌의 횟수를 늘려나가기로 했다. 또 회원들에게 공연 및 문화정보를 알려주는 ‘문화엽서제’의 회원을 현재의 3,000명에서 올해말까지 1만명으로 늘려 보다 많은 주민들이 문화혜택을누릴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주민들을 위한 소규모 도서관인 ‘책사랑방’도 밀레니엄 역점사업으로 정하고 현재의 19곳에서 대폭 늘려나가고 있다. 특히 관내 대형서점과 손잡고 다음달중 구청사 1층에도 책사랑방을 개설할예정이다.구청을 찾는 주민들이 언제든지 손쉽게 책을 빌려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책사랑방의 활성화를 위해서 독서운동이 필요하다고 보고 동사무소별로주민 및 공무원들이 참여하는 ‘책사랑 동아리’를 구성,매달 신간서적을 비치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지역의 고유문화도 적극 발굴,주민들에게 애향심을 길러주고 있다.이를 위해 관내 토박이 주민들을 주축으로 자문위원회를 구성,부락명칭등에 얽힌 이야기와 지형지물의 유래 전설 사진 등을 수집하고 있다. 자문위원들은 수집된 자료를 고증을 거쳐 구 소식지에 연재하고 오는 10월에는 단행본으로 펴낼 예정이다. 조구청장은 “주민들의 수준높은 문화욕구를 충족시켜 품격있는 문화도시를만들어나가겠다”고 말했다. 문창동기자 moon@
  • [김삼웅 칼럼] 2·8독립선언과 노애국지사들

    “3·1운동은 우리 근대사의 서리고 서린 산맥 가운데 위연히 솟은 한 고봉(高峰),이 봉우리 위에 서서 보면,외세의 침노 속에 끈질기게 저항하면서 생성 발전해온 우리 민족의 발자취가 멀리 가까이 제자리를 드러내면서 부각된다.3·1운동은 우리 근대민족운동사의 큰 호수,이 이전의 모든 근대 민족운동의 물줄기가 이리로 흘러들고,이후의 모든 근대 민족운동이 여기서 흘러나가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천관우,‘3·1운동 50주년 기념논문집’ 편집후기) 3·1운동은 근대 민족운동사의 거대한 호수다.그렇다면 3·1운동의 발원지는 어디인가? 바로 1919년 2월 8일 일본 도쿄 조선기독교청년회관(YMCA)에서 일본에 유학중이던 학생들이 한국의 독립을 요구하는 선언서와 결의문을 선포한 것에서 비롯한다.재일 유학생들은 11명의 실행위원을 선출하여 조선청년독립단을 조직하고 2월 8일 오전 독립청원서와 독립선언서를 도쿄 주재 각국대사관,일본정부,중의원,조선총독부에 보내고 오후 2시 500여 회원의 환호속에서 2·8독립선언서를 발표했다. 유학생 거의 전원이 모인 이날 독립선언회의에서 학생들은 독립실행방법을토의하려다가 일경에 강제해산당하고 실행위원들은 체포되었다.이에 앞서 송계백과 최근우가 선언서 일부를 국내로 반입하여 현상윤·송진우·최남선 등에게 전달,3·1운동의 직접적인 계기를 만들었다.재일 한국 독립운동의 성지 YMCA 건물은 그동안 부채로 존폐의 위기에 있던 것을 지난 연말 정부가 21억6,000만원을 지원하여 은행빚과 건물지하공사비를 갚게 되었다. 스가모감옥터의 노애국지사들 2월 8일 도쿄 YMCA 회의실에서는 2·8독립선언 81주년 기념행사가 조촐하게 거행되었다.재일본 한국 YMCA가 주최한 이날 행사에는 국내에서 윤경빈(尹慶彬) 광복회장과 이강훈(李康勳) 전 회장 등 생존 애국지사와 독립운동가후손 40여명이 참석하여 기념식의 의미를 새롭게 했다. 동경한국학교 초등부 어머니합창단이 ‘독도는 우리 땅’을 불러 참석자들을 숙연케 만들었다.행사후 가진 간담회에서 유학생 대표들은 활자로만 읽었던 노애국지사들과의 대면을 감격스러워하면서 새로운 한·일관계와 학생운동의 진로 등을 물었다. 다른 외국에 비해 ‘재일유학생’의 존재는 유별하다.그것은 한말 신사유람단의 일원으로 파견된 유학생중에 매국노로 변신하거나 2·8독립선언을 주도한 학생중에 악질 친일파가 된 경우, 일제시대 많은 유학생들이 총독부 관리나 법관이 되어 일제의 주구노릇을 하고 해방후에는 독재정권의 앞잡이로 전락한 때문이다.독립운동에 참가한 사람은 소수에 불과했다. 일본유학생들은 이 부분에서 갈등을 느낀다고 했다.그래서 말했다.같은 물을 소가 먹으면 젖을 만들지만 뱀이 먹으면 독을 만든다,어찌 일본유학생들뿐이겠는가.국내외의 명문대학 출신들이 친일파가 되고 독재의 주구노릇을한 다른 쪽에서는 의로운 길을 선택한 사람도 적지 않다,역사가 어느 쪽을승자로 기록할지는 자명하지 않은가라고. 방일 첫날 노애국지사들은 일제식민지 시대 많은 한인애국자를 수감하고 처형한 스가모(巢鴨)형무소를 방문했다.지금은 공원으로 바뀐 이곳은 이봉창·김지섭 의사 등이 옥고를 치르다 사형이 집행된 곳이다.이강훈 옹도 13년 옥살이를 했다.노애국지사들은 만감이 서린 표정으로 구석구석을 살피고, 우리 애국선열들의 명복을 비는 묵념에는 생존 지사들의 흐느낌이 배어 2월의 차디찬 스가모 공원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켰다.이곳에서 숨진 선열들을 기리는돌비석 하나라도 세웠으면. 도쿄헌책방의 노애국지사들 유학생들과의 간담회 자리에서 한 학생이 물었다.생존애국지사들이 대부분7,80 고령인데 사후 광복회의 존립문제와,일제와 맞서 싸운 세대가 아직 생존해 있는데도 독립운동사가 먼 망각의 역사로 퇴락하고 있는 터에 이를 잇는 방법은 무엇인가-. 이것이 어찌 일본유학생들만의 의문일까만 나는 예상외의 장소에서 ‘해답’을 얻었다.행사를 마치고 도쿄 번화가에 즐비한 헌책방에서 삼삼오오로 만난 우리 노애국지사들의 형형한 눈빛에서 그리고 그들이 찾는 일제시대의 자료와 일본을 알아야 한다면서 푼푼이 모은 용돈으로 일본현대사의 신간을 사는 모습에서,“노병은 사라질지언정 죽지 않는다”는 것을.-일본 도쿄에서[김삼웅 주필]
  • ‘러시아 혁명사’ 대폭 손질

    정치학자인 김학준 인천대총장이 자신의 대표적 저서인 ‘러시아혁명사’의수정·증보판을 최근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했다. 값 3만8,000원.무려 1,000쪽에 달하는 방대한 규모의 개정판은 79년 12월 초판을 출간한지 꼭 20년만의 일로 그간 이 책은 사회과학서적으로는 드물게 22쇄를 찍었다. 김총장은 수정·증보판 출간의 변으로 “신간 출현과 함께 새로운 자료와해석들이 쏟아져 나온데다 러시아혁명의 직접적 산물인 소련의 해체,그리고러시아혁명의 이념적·이론적 기관차였던 맑시즘·레닌이즘의 붕괴로 초판내용의 수정,보완이 불가피했다”고 밝혔다. 91년 이후 8차례에 걸친 소련방문을 통해 현지에서 수집한 자료를 토대로 김총장은 이번 수정·증보판에서 초판내용의 상당한 부분을 손질하였다. 우선 러시아 전제정치의 상징이자 핵심인 차리즘의 성립과정과 그 성격을 밝히는 일에 많은 지면을 할애하였다.또 초판에서 러시아혁명의 전개과정을 레닌,트로츠키,스탈린 등 세 혁명가에게 지나치게 편향됐다는 반성에서 개정판에서는 혁명 전개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여타 혁명가들에게 초점을맞춘 것도 한 특징이다. 이밖에 니콜라이 2세 일가의 ‘처형’,또는 ‘살해’를 별도의 장에서 다루었으며 케렌스키·레닌·트로츠키·스탈린·베리아 등 대표적 러시아혁명가들의 최후를 무덤 답사를 통해 확인하였다. 정운현기자
  • 56개大 어제 특차접수 마감

    ■ 56개대 어제 특차접수 마감 서울의 26개대를 포함,전국 56개대의 특차모집 원서접수 마감날인 21일 수험생들의 막판 눈치작전은 여전했다. 연세대·고려대·성균관대·이화여대 등 주요대학의 법학·의학 등 인기학과는 일찍감치 정원을 넘어섰지만 나머지 학과들은 접수마감 시간을 1∼2시간 앞두고서야 지원자들이 몰려 북새통을 이뤘다.또 중위권 대학들은 예년과같이 상당수 미달됐다. 또 의대·한의대·사범대·법대·상경대·예체능계 등 취업률이 높거나 전문직종과 관련된 학과에 소신지원하는 경향이 뚜렷했다. 이날 3시 현재 연세대는 2,234명 모집에 3,917명이 지원,1.75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27명을 뽑는 치의예과에는 239명,54명을 선발하는 의예과에는 281명이 원서를 접수,각각 8.85대1과 5.20대1를 기록했다.하지만 이학·인문·자연과학 등 기초학문계열은 미달돼 인기학과와 비인기학과의 뚜렷한 차이를나타냈다. 고려대의 경우,평균 1.85대1의 경쟁률을 보인 가운데 의학(4.2대1),법학(3. 7대1),사회체육(6대1) 등에 많은 지원자가 몰렸다. 이화여대는 1,769명 모집에 4,353명이 지원,2.46대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성악(11.5대1),작곡(10.2대1),기악(9.8대1) 등 예·체능계열이 경쟁률 상승을 주도했다.동덕여대도 피아노(13.3대1),한국무용(11.3대1) 등이 강세였다. 60명을 모집하는 경희대 한의예과에는 156명이 지원했다.중앙대 연극학과연기전공은 12명 모집에 979명이 지원,81.58대 1의 가장 높은 경쟁률을 보였다. 한국외대·숙명여대·국민대 등도 총 정원을 넘어섰으나 상당수 학과가 미달됐다. ■ 8개대 설립인가 교육부는 21일 내년 3월 개교할 동해대 등 4개 대학을 포함,전문대·기능대·대학원 대학 등 8개교의 설립을 인가했다. 입학정원은 강원도 동해대가 750명,전남 목포가톨릭대 100명,전남 순천 명신대 100명,전북 임실 예원대 200명이다.동해대와 목포가톨릭대는 전문대인동해대와 성신간호대에서 대학으로 개편됐다. 강원 횡성의 전문대인 송호대의 입학 정원은 300명,울산 중구의 울산기능대는 330명,경기 광주의 계약신학대학원대학은 33명,서울 영등포구의 오성스포츠산업대학원대학은 40명으로 각각 새로 인가를 받았다. 박홍기·이창구 장택동기자 hkpark@
  • 지자체, 옛 총무처간부‘모셔가기’

    행정자치부내 옛 총무처 출신 간부들은 연일 ‘상한가’다.부단체장 자리가비게될 시·도에서 행자부 출신 간부들에게 손짓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연말에 59세의 고령 부지사·부시장(1급)이 그만둘 것으로 예상되는 시·도는 전북·울산·강원·제주.내년초 경기 북부지청 발족을 앞두고 있어 1급수요는 5명이다. 전북부지사에는 유종근(柳鍾根)지사의 요청에 따라 이성렬(李星烈) 행자부의정관이 이미 내정됐다.이의정관은 “지방근무는 처음이지만 열심히 해볼생각”이라고 의욕을 불태우고 있다. 이의정관은 유지사와 고향(마산)이나 학연(서울고·서울대 상대)도 다르고“만난 적도 없다”고 밝히고 있어 의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행자부 고위간부가 능력있는 인물로 유지사에게 강력히 천거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울산 부시장에는 C국장(총무처 출신)과 중앙공무원교육원의 J부장(내무부출신)이 경합중인 것으로 알려진다.김기재(金杞載)장관은 14일 울산지역 새마을지도자대회에 참석해 심완구(沈完求)시장과 이 문제를 협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강원부지사에도 총무처 출신의 K국장이 거론되고 있다. 김진선(金鎭선)지사는 행정고시 동기인데다 친한 K국장을 파견보내줄 것을 희망했다는 후문이다.총무처 출신들의 인기는 행정력이 있는데다 단체장에게 잠재적인 경쟁상대로 떠오를 가능성이 적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제주는 맞트레이드 조건이 맞지 않아 행자부 출신 전출이 무산된 상태이고,경기 북부 부지사는 경기도 간부들이 차지할 것으로 예측된다. 총무처 출신간부들이 대거 지방으로 내려가게 되자 총무처출신 사이에서는“총무처 간부들이 다 빠져나가 버리면 일은 어떻게 하느냐”는 불만도 새어나온다.내무부출신들이 내려가지 않으려 하는 속셈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낸다. “1급 부지사·부시장으로 갔다가 본부로 돌아온 전례가 없다”는 내무부출신 한 과장의 말은 총무처 출신들을 긴장시키기에 충분하다.총무처 출신들은 이에대해 ‘새로운 관행론’으로 맞서고 있다. 행자부 고위관계자는 “옛날부터 내무부 본부에는 인력자원이 많지 않았다”며 “총무처 출신들이 반발하고 있어 3명 모두 내려보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충남·경북·전남 부지사에 이어 총무처 출신들이 대거 지방으로 내려가면이들이 되돌아올 2년후에는 ‘1급 과포화’현상이 빚어질 것이라는 우려도제기되고 있다. 박정현기자 jhpark@
  • “중국인 8대국민병에 시달린다”

    ‘도덕 진공상태의 중국’.최근 ‘한국인이여 상놈이 돼라’라는 기묘한 제목의 한국문화 비평서를 펴냈던 김문학씨가 신간 ‘반문화 지향의 중국인’(이채 펴냄)에서 중국인을 평가한 대목이다.김씨는 조선족 출신으로 중국 대학에서 강의하다 일본 히로시마 대학원에서 문화인류학 등을 전공하는 비교문화 전문가.한·중·일 3국을 고루 경험한 독특한 바탕으로 촌철살인의 동북아 3국 문화비평을 즐긴다. 김씨는 중국의 국민병을 ▲거짓말을 일삼고 가짜가 판을 치는 기만병 ▲좀도둑이 창궐하는 도둑병 ▲남하고 똑같아야 한다는 대동병 ▲약자를 깔보고강자에게 굽실대는 노예병 ▲과거 지향의 보수병 ▲자기중심,유아독존의 유치병 ▲공익을 외면한 채 사리사욕 채우기에 앞장서는 사심병 ▲황금만능주의의 실리병 등 여덟가지를 꼽는다. 김씨는 중국의 국민병이 이같이 심각한 지경에 이른 것은 수없는 전쟁,최근100여년의 고난 등에서 ‘자기보신 의식’이 팽배한 탓으로 보고 있다. 나아가 동양문화의 발상지라는 역사성 때문에 자존자고(自尊自高)의 허상에 빠짐으로써 가치관의 이중성에 시달리고 있다고 지적한다. 특히 중국에서 과학이 발달하지 못한 이유로 과거제도의 발달을 꼽는다.몇가지 경전을 토대로 출제자의 의도에 맞춰 문제를 풀어야 하는 등용방식이중국을 반문화 반지식 사회로 만들었다고 신랄하게 비판한다. 김씨는 “명분과 실리의 이중성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는 모습은 한국과 중국이 놀라울 정도로 비슷하다”면서 “한국은 둘중 하나를 택해야 하는 상황이면 명분 쪽으로 기울지만 중국은 실리를 따른다는 게 다소 다르다”고 지적한다.값 7,500원. 박재범기자 jaebum@
  • 과소평가 된 민족주의자 홍명희

    대하소설 ‘임꺽정(林巨正)’의 작가로 유명한 벽초(碧初) 홍명희(洪命熹). 해방후 북한정권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문학적 업적마저 한동안 기피의 대상이 됐던 홍명희가 우리 앞에 되살아나고 있다.상명대 국어교육과 강영주(姜玲珠·47)교수가 지난 10여년동안에 걸친 자료수집과 연구끝에 최근 ‘벽초홍명희 연구’를 펴낸 것. 춘원 이광수,육당 최남선과 함께 ‘조선3재(三才)’로 불린 벽초의 인생역정은 물론 그의 다양한 면모까지 관련자료와 증언을 통해 복원했다는 점에서노작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근대이후 우리의 역사인물 가운데 벽초만큼 민족적이고 흥미로운 인물도 많지 않다.그동안 그의 면모는 분단 장벽 때문에 많은 부분이 왜곡,내지 축소돼 알려져 왔다.그러나 근대이후 식민지 시대와 해방공간에서 문학인·독립운동가·언론인·학자·정치인으로서 일관된 민족주의 노선과 자세를 견지한그의 삶은 절대로 과소평가될수 없는 것이다.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던 벽초의 삶을 아우를수 있는 단어는 ‘민족주의자’다.이는 그가 경술국치때 자결로 순국한 홍범식(洪範植)의 아들로 태어났던 것이 한 배경이 됐을 것이다.말년에 그는 자녀들에게 “나는 ‘임꺽정’을 쓴 작가도 아니고 학자도 아니다.홍범식의 아들,애국자이다.일생동안 애국자라는 그 명예를 잃을까봐,그 명예에 티끌조차 묻을세라 마음쓰며 살아왔다”고 토로한 바 있는데 이는 그가 명예와 지조를 최고의 덕목으로 삼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의 이같은 사상과 생활신조는 식민지 아래에서 자연스럽게 독립운동과 연관을 맺게 되었다.일본 유학후 상하이를 무대로 민족진영에 발을 들여놓은벽초는 1919년 충북 괴산에서 3·1의거를 주도,1년여 실형을 살았다.출옥후20년대 초반 동아·시대일보 등에서 편집국장,사장 등을 지낸 그는 27년 민족진영의 첫 좌우합작체인 신간회 창립을 주도하기도 했다.일생동안 그는 민족통일전선 노선을 일관되게 견지했는데 해방후 그가 단독정부 수립을 반대하는 중간파 세력을 규합,민족독립당의 대표로서 남북연석회를 추진한 것도이 연장선 상에서 이해돼야 할 것이다. 양반집안 출신으로 양반계급을 비판하면서도 선비정신은 고스란히 간직한인물이 바로 벽초였다는 것.저자 강 교수는 “벽초는 지나친 결벽 때문에 글을 잘 쓰지 않았으며 주위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임꺽정’ 이외에 단 한편의 소설도 쓰지 않았다”고 밝혔다.조선조말에 태어나 식민지시기를 거쳐 해방과 분단시기를 살면서 다양한 분야에서 열정을 쏟아낸 벽초. 강 교수는 “벽초의 삶의 복원을 통해 격동기 우리역사의 한 중대한 공백을 메우려고 했다”고 말했다.96년부터 매년 ‘홍명희문학제’가 열리고 있다. 또 작년 가을에는 벽초의 향리 괴산에 그의 문학비가 세워졌다.뒤늦은 일이지만 반가운 일이다. 정운현기자 jwh59@
  • [고시촌 산책]‘수험서 홍수’에 휩쓸리면 낭패

    ‘새로 나온 책을 사야 하는지,말아야 하는지…’쏟아져 나오는 신간들 앞에서 고시준비생이면 누구나 한번쯤은 겪게되는 갈등이다. 오히려 책을 많이 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푸념들도 하곤 한다.보통 1과목당 기본서,문제집,참고서 등을 보게 되고,법 과목은 판례집까지 필수로 봐야하니 수험생들의 부담은 날로 커지고 있다. 얼마 전에는 모교수의 민법 책이 출판되면서 통신에서는 “완벽한 수험서다,아직 검증되지 않았다”는 등의 논쟁이 벌어졌다.또 한 교수의 경우는 1년에 두 번이나 책을 개정해서 수험생들의 원성을 듣기도 했다. 최근에는 유명교수들이 수험생을 대상으로 한 책들을 많이 출판하고 있다. 거기다가 내용상으로는 별반 차이들이 없어 보이는 수험서들도 많은 상태라서점에 들르면 우선 스트레스부터 받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이렇듯 신간서적의 홍수 속에서 옥석을 가려내는 일은 수험생들에게 요구되는 또 하나의 능력이다. 그러나 기본서를 고르는 방법은 비교적 간단하다. 합격자나 고시반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하다보면 거의같은 책의 이름이 오르내리는 것을 볼 수 있다.많은 사람들이 보는 책을 선택하는 것이 가장 무난하다는 얘기다. 학교수업과 관련이 있는 책도 그 기준이 될 수 있을 것이다.기본기에 충실한 자세가 강조되고 있는 요즘 추세에서는 처음부터 수험용 요약집으로 쉽게 접근하는 방법은 지양해야 할 것 같다. 어렵더라도 몇 번 반복해서 보는 인내가 필요하다.한 책을 여러 번 보는 것이 훨씬 좋은 방법인 것이다. 쏟아져 나오는 책과 정보의 물결에 휩쓸려들지 않도록 얼마간 무뎌질 필요도 있을 것이다.얼마나 많은 책을 봤느냐보다는 오히려 잘 버리는 것이 효과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기본서만 잘 소화해도 합격할 수 있다는 합격생들의 조언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오선희 고시컨설턴트 유망고시길라잡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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