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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조들 목숨 바쳐 지켜 낸 독도 영토·주권 소중함 다시 일깨워”

    “선조들 목숨 바쳐 지켜 낸 독도 영토·주권 소중함 다시 일깨워”

    유공자 자녀·순직군경 가족 등 밤새 배타고 항구 닿자 감격 “외신들 반복된 오류에 분노…정부 더 집요하게 홍보해야”“3·1절에 선조들이 목숨 걸고 지킨 독도에 오니 애국심에 가슴이 뜨거워집니다.” 독립유공자 송기호의 후손인 송원섭(58)씨는 해양경찰교육원의 해양영토 순례 프로그램을 통해 28일 독도를 방문한 자리에서 “할아버지가 새삼 자랑스럽게 느껴지고 애국심이 샘솟는다”며 이렇게 말했다. 송씨는 “할아버지는 1919년 3월 10일 광주에서 독립만세 시위를 주도하다 붙잡혀 감옥에서 병을 앓다 28세에 돌아가셨다”면서 “큰할아버지(송내호)도 서울에서 신간회 간부를 맡아 독립운동을 주도했다”고 소개했다. 해양경찰교육원은 제99주년 3·1절을 맞아 민·관·군을 대상으로 ‘해양영토(독도) 순례’ 행사를 개최했다. 올해로 4년째다. 이번 행사에는 독립유공자 후손과 순직경찰 가족, 해군 등 80여명이 참가했다. 이들은 지난 27일 전남 여수에서 4300t급 훈련함을 타고 출발해 이날 독도에 도착했다. 2015년 3월 전남 신안군 흑산면 가거도 인근 해상에서 응급환자를 후송하다 헬기가 추락해 순직한 백동훈 경감의 가족도 이날 독도행 배에 올랐다. 윤성현 해양경찰교육원장은 “영토에 대한 주권의식이 약해지는 시점에서 애국심과 주권의식을 고취시킬 필요가 있다”면서 “순국선열의 숭고한 정신과 해양영토의 소중함을 일반 시민들과 지속적으로 공유하고자 마련된 행사”라고 취지를 밝혔다. 독도 순례 행사 참가자들 사이에서는 2018 평창동계올림픽이 화제에 올랐다. 그중에서도 독도와 관련된 얘기가 주를 이뤘다. 과로사로 순직한 하영춘 경위의 유족인 김은자(55)씨는 “한국의 민유라·알렉산더 겜린 선수가 피겨스케이팅 프리댄스에서 ‘홀로 아리랑’을 배경음악으로 연기할 때 ‘독도야 간밤에 잘 잤느냐’라는 가사 부분에서 ‘독도’가 무음으로 처리됐다”고 지적한 뒤 “독도에 오니 한국 선수들이 보여 준 애국심이 얼마나 큰지 느껴져 가슴이 벅차다”고 말했다. 외신들이 독도를 일본 소유의 섬으로 표현한 사실에 여전히 분을 삭이지 못하는 참가자도 있었다. 해경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참가한 최돈성(65)씨는 “미국의 NBC와 영국의 더타임스가 독도와 관련해 잘못된 보도를 한 것에 분노하면서 일본도 참 끈질기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우리 정부도 일본처럼 독도를 더욱 집요하게 홍보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우수 교관으로 선정돼 순례단에 참가한 해군 하영대(39) 상사는 “독도는 누가 뭐라 해도 우리의 땅이며 목숨을 바쳐서라도 지켜내야 할 우리 영토”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일반 시민들도 독도 방문에 뭉클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330개 계단을 밟고 독도경비대가 있는 독도 정상까지 오른 김순덕(49)씨와 두 자녀는 독도를 지키는 삽살개 2마리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이날 독도 주변의 수백 마리 갈매기 떼들도 끼룩끼룩 울며 해양순례단의 방문을 반겼다. 독도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 ‘함께 읽는’ 독립선언서… 3ㆍ1절 기념식 틀 깬다

    ‘함께 읽는’ 독립선언서… 3ㆍ1절 기념식 틀 깬다

    제99주년 3·1절 기념식이 다음달 1일 처음으로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서 열린다. 독립유공자 50명도 이번에 정부 포상을 받는다.행정안전부는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첫 3·1절 기념식을 상징성과 현장성을 높이고 국민이 참여할 수 있는 행사로 진행하겠다고 26일 밝혔다. 이날 기념식엔 독립유공자, 주한 외교단, 시민 등 1300여명이 참석한다. 이를 위해 정형화된 식순에서 벗어나 독립유공자 후손과 전문낭송인 등이 참여하는 ‘독립선언서 함께 읽기’ 등 내용을 다양하게 구성했다. 참석자·시민이 함께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서 독립문 앞까지 3·1만세운동을 재연하며 행진도 한다. 이번 기념식과 연계해 판결문, 피살자명부, 독립선언서 등 50여점의 독립운동 관련 기록물 특별전시를 다음달 1일부터 한 달 동안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서 연다. 이번에 정부 포상을 받는 독립유공자는 총 50명이다. 1919년 3월 14일 황해 해주군에서 독립만세 운동에 참여했다가 체포돼 징역 1년 6개월을 받은 조양원 지사, 신간회 길주지회 서무부 상무로 1927년 1월 길주청년동맹 집행위원으로 활동하다가 징역 1년 6개월을 받은 이용국 지사 등이다. 이들 등 5명의 후손이 직접 기념식에 참석해 훈장·포장·대통령표창 등을 받는다. 각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자체 기념식이 이어진다. 오경진 기자 oh3@seoul.co.kr
  • [노주석의 서울살이] 기농 정세권 선생을 생각함

    [노주석의 서울살이] 기농 정세권 선생을 생각함

    서울 한복판에 송해길이 생겼다. 종로구 육의전 빌딩에서 낙원상가 앞까지 240m이다. 아흔 살 ‘국민 오빠’ 송해를 기리는 길이라고 한다. 송해의 사무실이 있고, 즐겨 다니는 2000원짜리 해장국집이 있다. 지하철 종로3가역 5번 출입구 앞에 그의 흉상도 놓였다. 거부감은 없다. 웃자는 게 코미디고, 웃기자는 게 코미디언 아닌가. 웃으면 그만이다. 좀 찜찜하긴 하다. 살아 있는 사람의 이름을 길에 붙이고, 동상을 세운 뒤 벌어진 좋지 않은 추억 때문이다. 시비 붙는 사람 없으니 다행이다. 한 사람이 생각났다. 기농 정세권(1888~1965)이다. 서울에 한옥을 남긴 분이다. 가회동·삼청동·재동·계동·안국동·사간동·소격동·수송동·견지동·관철동·관훈동·익선동·봉익동·권농동·통의동·체부동·사직동·신문로·명륜동·창신동·이화동·신설동·왕십리·행당동·휘경동·충정로에 남아 있는 한옥 대부분이 그분의 작품이다. 1920~30년대 개량 한옥을 짓고, 한옥지구를 조성한 건축가이자 부동산 개발가이다. ‘궁궐의 도시’ 서울의 사대문 안은 왕과 일족이 사는 40여개의 궁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기농은 일제강점기 몰락한 왕족과 벌열(閥閱)들의 고대광실을 사들여 필지를 잘게 쪼갠 뒤 중산층용 개량 한옥을 지어 공급했다. 요즘 각광받는 익선동 166번지는 종친 이해승의 누동궁 한 채를 68채의 한옥으로 재개발한 것이다. 선생은 “일본인들이 종로에 발붙이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되뇌었다. 그의 한옥 개량과 지역 선점이 없었더라면 아마 지금 서울 북촌과 서촌은 일본식 문화주택으로 덮였을 것이다. 건축가 정기용은 “북촌 한옥은 서울의 존재이며, 장소이고, 기억”이라고 말했다. 그가 남긴 도시형 한옥은 서울의 징표가 됐다. 조선은 망하고, 국왕은 폐위됐지만, 분야별 왕이 있었다. ‘백화점왕’ 박흥식, ‘광산왕’ 최창학, ‘부동산왕’ 민영휘, ‘문화재왕’ 전형필이 그들이다. 정세권은 ‘건축왕’이었다. 전형필과 정세권 두 분의 선각자가 문화재와 한옥을 지켰다. 기농은 부동산 개발로 번 돈을 신간회와 조선물산장려운동에 썼다. 우리말큰사전 편찬을 도우려고 조선어학회에 회관과 토지를 기증했고 자금을 댔다. 조선어학회사건으로 재산을 강탈당하고, 세 번이나 옥고를 겪었다.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은 독립지사 정세권은 경남 고성에서 태어나 31세에 상경, 70대에 낙향, 78세 타계할 때까지 서울을 서울답게 만들었다. 춘원 이광수는 “그를 존경하지 아니할 수 없다”라고 했다. 만해 한용운도 ‘정세권씨에게 감사하라’는 이례적인 글을 기고했다. 그런 정세권이 잊혔다. 서울 어디에도 흔적이 없다. 서울의 기와집을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전통가옥으로 잘못 아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서울에서 가장 오래되고 유일한 양반가 한옥은 1870년에 지어진 안국동 윤보선가이다. 서울의 기와 한옥 1만 8000채 중 6000채 이상은 기농이 남긴 선물이다. 1644년 대화재로 사라진 영국 런던을 재건한 크리스토퍼 렌, 1850년대에 프랑스 파리를 오늘의 파리로 만든 E 오스만, 1923년 관동대지진 이후 도쿄를 부활시킨 고토 신페이처럼 서울의 미래를 만든 사람은 기농 선생이 아닐까. 그런데 왜 정세권의 업적은 기록되지 않고, 정세권 길은 만들지 않으며, 정세권 동상은 세우지 않나. 서울을 서울답게 만드는 사람, 정세권 정신을 가진 서울사람을 기리는 정세권의 날과 정세권상은 왜 제정하지 않는가.
  • 99칸 한옥을 퓨전한옥으로… 서울 표정 바꾼 ‘경성의 건축왕’

    99칸 한옥을 퓨전한옥으로… 서울 표정 바꾼 ‘경성의 건축왕’

    오늘날 우리가 보고 즐기는 북촌은 기농 정세권(鄭世權·1888~1965)이라는 우리나라 최초의 부동산 디벨로퍼가 설계하고 건설한 거대한 퓨전 한옥지구라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다.정세권은 북촌과 익선동, 봉익동, 성북동, 혜화동, 창신동, 서대문, 왕십리 등 서울 전역에 한옥단지를 건설해 서울의 표정을 바꾼 사람이다. 만약 그가 없었다면 서울은 일본 적산가옥이 점령한 도쿄의 아류도시로 전락했을 것이다. 서울을 찾은 외국관광객은 무엇을 찾는가. 서울의 경관을 지배하는 빌딩숲이나 공룡 같은 아파트단지를 보러 오지는 않는다. 1930년대에 한 선각자가 지은 북촌 한옥밀집지역이 있었기에 서울은 서울다워졌다. 그리고 지금 이곳은 서울의 몇 안 되는 볼거리로 남았다. 북촌 한옥밀집지구는 국보도, 보물도, 사적도, 지정문화재도, 등록문화재도 아니지만 한국의 대표 문화유산이다. 바로 서울미래유산이다. 기농은 북촌에 자리잡은 왕족이나 권문세가의 99칸 한옥을 매입해 작은 한옥으로 쪼개 팔았다. 불편한 전통한옥에 근대적 라이프 스타일을 반영한 개량 한옥의 개념을 심었다. 주거문화의 혁신을 가져왔다. 일제강점기 청계천을 경계로 조선사람은 북촌, 일본인은 남촌에 살게 된 것도 그가 지은 한옥의 역할이 크다. “일본인들이 종로에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되뇌인 선생 덕택이다. 부동산 개발로 번 돈은 아낌없이 신간회와 조선물산장려운동에 썼으며 조선어학회에 회관과 토지를 기증했고 우리말큰사전 편찬 자금을 댔다. 납북되기 전 춘원 이광수는 “그를 존경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한 사람의 인격의 힘이 이처럼 영향력이 큰가를 느꼈다”면서 정세권의 자서전을 집필하려 할 정도였다. 만해 한용운도 이례적으로 ‘정세권씨에게 감사하라’는 제목의 글을 잡지에 기고한 바 있다. 그러나 그는 하찮은 집장수로 취급받아 역사책이나, 교과서에 실리지 않은 인물로 잊혀졌었다. 우리는 북촌에 열광하면서도 누가 이런 동네를 만들었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 정세권은 사후 반세기 만에 북촌 한옥과 더불어 ‘경성의 건축왕’으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서울미래유산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장
  • 송혜교·서경덕, 도쿄 내 한국 유적 안내서 배포

    송혜교·서경덕, 도쿄 내 한국 유적 안내서 배포

    배우 송혜교와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가 3·1절을 맞아 ‘해외에서 만난 우리 역사 이야기-도쿄 편’ 안내서 1만부를 도쿄 전역에 배포했다고 1일 밝혔다. 한국어와 일본어로 제작한 안내서는 2·8 독립선언기념자료실, 이봉창 의사 폭탄 투척 의거지와 순국지, 신간회 도쿄지회 창립지 등 도쿄 내 한국 역사 유적지를 소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서 교수가 안내서를 기획하고 송혜교는 제작비 전액을 후원했다. 연합뉴스
  • 민족문제연구소측 “황국신민 되겠다던 기사 있다” 김무성 대표측 “단군묘 주장해 고초 겪었다”

    민족문제연구소측 “황국신민 되겠다던 기사 있다” 김무성 대표측 “단군묘 주장해 고초 겪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부친 김용주 전 전남방직 회장(이하 김용주)의 친일 논란이, 친일인명사전 편찬 작업을 주도해 온 민족문제연구소와의 공방전으로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있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로 격화된 김용주의 ‘애국·친일 논쟁’은 김 대표의 향후 대선 가도와도 맞물려 있다. 양측의 주장 및 논거 자료를 대조해 보고 반박을 들어본다. Q. 친일단체 간부로 활동했다? vs 애국활동 했다? A. 연구소가 지난 9월 17일 발표한 ‘김용주, 과연 애국자였나’란 자료에 따르면 김용주는 경북 도회의원, 국민총력경상북도수산연맹 이사, 조선임전보국단 발기인 등을 지내며 신사 건립, 내선동조론 전파, 군용기 헌납운동 등을 주도했다. 이런 주장에 대해 김 대표 측은 “1920년대부터 1940년대에 걸쳐 치안유지범으로 일제에 검거되기도 했고 신간회 활동, 조선인을 위한 학교 인수, 도회의원으로 총독부에 맞선 발언 등이 수십 건 근거로 남아 있다”고 반박했다. 지난달 27일 배포한 ‘고 김용주 선생의 친일 행적 논란에 대한 입장’ 자료에는 애국활동 사례 22건이 실렸다. Q. 징병제 실시를 찬양하고 전쟁 동원 선동했다? A. 1943년 10월 열린 전선공직자대회(매일신보 보도)에서 김용주는 “가장 급한 일은…정신적 내선일체화를 꾀하여 충실한 황국신민이 될 것”이라며 “징병을 보낼 반도의 부모로서…귀여운 자식이 호국의 신으로 야스쿠니 신사에 받들어 모시어질 영광을 충분히 인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김 대표 측은 “1940년 경북도의회 재선 이후 ‘전국에 단군묘(檀君廟) 건립’ 주장을 내세우다 고초를 겪는 등 민족운동을 이어갔다”고 주장한다. Q. 일제 패망 시절 ‘살해 대상 1호’였다? A. 김 대표 측은 김용주가 반일 행적으로 인해 태평양전쟁 말기 일제의 포항 지역 총살 대상 1호였다고 주장한다. 조선 계엄령 발포 시 지역 내 주요 조선인 8명의 총살 지시가 일본국 사령부로부터 내려왔다는 것. 이런 내용은 지난 8월 출간된 김용주 평전 ‘강을 건너는 산’에도 등장한다. 그러나 연구소 측은 김용주가 전해 들은 얘기를 본인 회고록과 평전에 인용한, 객관적 근거 없는 얘기라고 일축했다. Q. 조선인을 위한 학교 인수 및 야학의 성과. A. 평전에 따르면 김용주는 29세이던 1933년 존폐 위기에 처한 포항 영흥학교를 인수, 교장직을 겸하고 훈육에도 참여했다. 그러나 동아일보 1936년 2월 8일자에는 ‘최경성 교장 등이 진력하였으나 (학교) 경영난은 최후 결정에 달하였다는데…’라고 나와 운영 시기가 엇갈린다는 게 연구소 측 주장이다. “일본어도 가르친 야학을 애국야학이라고 할 수 없다”고도 했다. 그러나 김 대표 측은 “조선어 금지, 신문폐간 등 민족말살정책이 극에 달했던 당시 상황을 전혀 무시한 초보적인 지적”이라고 반박했다. Q. 애국활동 사례 22개 중 2개는 동명이인? A. 김용주는 1931년 6월 동아일보에 ‘충무공 유적 보전을 위한 성금 일급 시전을 냈다’고 나와 있다. 또 같은 해 11월 재만피란동포 위호금품(만주 동포를 위한 성금모금)으로 일금 삼십전을 냈다고 한다. 그러나 기사에 충무공 성금을 낸 이는 ‘마산 거주 김용주’로 나온다. 포항에서 활동했던 김용주와 동명이인이라는 반론이다. 만주동포 성금 기부자도 ‘경성부 애우수소양소년회 김용주’로, 서울 소년단체에 김용주가 가입되었을 리 없어 서로 다른 이라는 주장이다. Q. 비행기 헌납운동의 진실. A. 1944년 7월 아사히신문은 ‘결전은 하늘이다. 보내자 비행기를!’ 광고주 명단에 김용주 이름을 올렸다. 또 1942년 2월 매일신보에 따르면 김용주는 조선임전보국단 경북지부에서 군용기 헌납에 27만원을 모금했다. 이에 대해 김 대표 측은 매우 적극적으로 반박했다. “일제 말기인 1940년대는 본인 의사와 관계없는 동원 기사·광고가 많이 나왔다”면서 “놋수저 하나까지 징발됐던 당시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고 맞섰다. Q. 김용주는 변절했나. A. 연구소 측도 “김용주가 청년기엔 민족의식을 보였고 신간회·청년단체 독서회 활동 등은 인정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일제 침략이 본격화되는 1930년대부터 완전히 돌아섰다”고 결론 냈다. 하지만 김 대표 측은 “1926년 3·1운동 정신을 이어받은 삼일상회 설립, 1938년 강제 면화재배 정책에 대한 국가 보상 요구 등 당시 상황에서 가능한 구국활동을 했다”고 부인했다. 1940년 1월 동아일보에 따르면, 김용주가 영흥 학교에 사재 2만원을 기부하는 등 민족운동을 유추할 만한 증거들도 나온다. Q. 매일신보는 기관지여서 신빙성이 없다? A. 연구소 측은 주요 증거로 활용한 매일신보에 대해 “총독부 기관지인 경성일보의 자매지였다고 해서 사료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라며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가 친일인사 1006명의 명단을 발표했을 때도 매일신보를 주요 사료로 삼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김 대표 측은 “당시 당사자 동의 없는 강제 기고, 허위사실 수록에 대한 증언이 많아 전적으로 믿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Q. 김용주는 왜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지 않았나. A. 김 대표 측은 “연구소가 10년 동안 300만여건을 검토했다던 사전에 여태껏 등재하지 않다가 김 대표가 여당 대표가 되고 나니 태도를 바꿨다”고 공격했다. 연구소 측은 “2009년 첫 출간 당시 자료 부족으로 해외·지방 친일반민족행위를 전면조사할 수 없었다”며 “김용주에 대해서는 추가 조사가 필요했기 때문에 보류했고 발간된 개정판에는 누락됐던 인사가 다수 등재될 것”이라고 답변했다. Q. 연좌제라는 주장. A. 김 대표 측은 “모든 일에는 공과가 있는데 애국적 활동은 편향되게 평가하고, 친일 행적만으로 후손에게 연좌제를 적용하려 한다”고 반박한다. 하지만 연구소 측은 “평전 출간 등 김 대표가 부친의 친일 행적을 애국으로 미화하고 있다”고 맞받았다. 그러면서 “연좌제에 반대하지만 김 대표처럼 연고자의 친일 행적을 왜곡하는 경우에는 예외”라는 입장을 밝혔다. 연구소 측은 이런 이견에 대한 맞짱토론을 제안했지만 김 대표 쪽에선 “일일이 대응하는 것은 격에 맞지 않는다”며 거부했다. 1차 친일인명사전 대상자 발표 때 편향성 논란에 휘말리고, 임헌영 소장이 국보법 위반으로 복역하는 등 연구소 활동의 순수성에 문제가 있다는 입장이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 윤우식 선생 생가·교남 YMCA회관 문화재 등록 예고

    윤우식 선생 생가·교남 YMCA회관 문화재 등록 예고

    문화재청은 경북 예천의 윤우식 생가와 대구의 옛 교남(嶠南) YMCA회관 등 항일유적지 2곳을 문화재로 등록 예고한다고 14일 밝혔다. 남석(南石) 윤우식(尹雨植·1906~1934)은 일제강점기 항일운동 단체인 무명당(無名堂)의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1933년 9월 예천 지역에서 조선인의 이익을 옹호하는 운동을 전개하다가 일제에 구속돼 이듬해 재판 중 사망했다. 그의 예천 생가는 영남 지역의 전형적인 가옥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ㄴ’ 자형 건물인 사랑채와 ‘ㄱ’ 자형 건물인 안채가 ‘ㅁ’ 자형 배치를 이루며 우측에는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의 사당이 자리한다. 옛 교남 YMCA회관은 3·1독립만세 운동 당시 주요 지도자들이 회합하던 장소다. 교남 YMCA의 임원과 회원 등 17명은 해방 뒤 건국훈장 애국장 등 포상을 받았다. 또 물산장려운동과 기독교농촌운동, 신간회(新幹會)운동 등 기독교 민족운동의 거점 공간으로 사용된 역사적인 곳이다. 1914년 건립된 2층 붉은 벽돌 건물로, 1층과 2층 사이가 ‘돌림띠’(Cornice)로 장식됐다. 창 위쪽은 아치로 인방(引枋)을 만들어 사각형 창문을 설치하는 등 1910~1920년대 조적조(組積造) 건축양식을 대변하고 있다. 문화재청은 향후 30일간의 등록 예고 기간과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문화재로 등록할 예정이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순경 필기시험 D-9 마무리 정리법

    순경 필기시험 D-9 마무리 정리법

    올 하반기 순경 공채 필기시험이 오는 25일 치러진다. 일반순경, 전의경 특채, 101경비단 등을 모집하는 이번 채용에는 모두 558명을 최종 선발한다. 여기에 3만 1480명이 지원해 56.4대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영어·한국사(비전공 과목)와 형사소송법·경찰학·형법(전공 과목)으로 나눠 2회에 걸쳐 최근 출제 경향을 짚어 본다. 지난해 하반기와 올 상반기 경찰 영어시험에서는 생활영어가 전과 달리 3문제 이상 출제된 것이 특징으로 꼽힌다. 이영신 김재규경찰학원 영어 강사는 “기출 문제를 중심으로 자주 쓰이는 표현을 따로 정리하고 시간을 정해 규칙적으로 복습하라.”면서 “무리하게 두꺼운 생활영어 책을 보는 것은 좋지 않다.”고 조언했다. ●영어 기출 문제 중요… 가끔 그대로 출제되기도 이번에도 앞뒤 대화를 바탕으로 빈칸을 채우는 문제 등이 출제될 가능성이 높다. 이를테면 A, B의 대화에서 A가 “Can I give you a hand?”(제가 도와드릴까요?)라고 B의 대답을 들은 뒤 ‘No, not at all.”(아뇨. 전혀요)라고 대답했을 때 B가 한 말을 고르는 문제가 나올 수 있다. “If you don’t mind.”(괜찮으시다면요)라는 ‘부정을 통한 긍정 대답’이 답이다. 또 ‘Don’t bother’(괜찮다. 그럴 필요없다), ‘Your party’(너의 일행·동료), ‘Don’t bite off more than you can chew’(분수를 지키자) 등의 표현도 알아 둬야 한다. 문법은 지난해 하반기 3문제, 올 상반기에는 4문제가 출제됐다. 문법은 기초 실력부터 쌓아 올려야 하는 부분이라 공부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렇더라도 순경 채용시험의 경쟁률이 나날이 높아지고 있어 고득점이 필수다. 특히 문법의 경우 문제를 푸는 것뿐만 아니라 영어의 전반적인 부분에까지 영향을 주기 때문에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 무조건 암기만 하기보다는 좀 쉬운 교재부터 자기 수준에 맞게 체계적으로 공부하는 편이 낫다. 어휘 문제는 지난해 하반기와 올 상반기에 각각 4~5문제가 출제됐다. 최근에는 어려운 어휘보다는 중·하급 난이도의 어휘가 많이 출제되고 있다. ‘take down’(철수하다), ‘hang around’(돌아다니다), ‘turn a deaf ear to’(~에 조금도 귀 기울이지 않다), ‘make up for’(보상하다, 보충하다), ‘turn down’(거절하다), ‘look after’(돌보다) 등의 어휘가 출제될 수 있다. 또 ‘locate’(~을 찾다, 발견하다), ‘violation’(위반, 침해), ‘tendency’(경향, 추세), ‘esteem’(존경), ‘preface’(서문), ‘prelude’(전조, 전주곡) 등의 어휘도 헷갈릴 수 있으므로 꼼꼼히 챙겨 둬야 한다. 독해 문제는 매년 9문제씩 가장 큰 비중으로 출제되고 있다. 지난해 상반기에는 13문제가 독해에서 출제되기도 했다. 주로 주제, 요지, 제목을 찾는 문제가 많이 출제되고 있으며 빈칸, 글의 흐름, 일치, 순서, 지칭추론 등이 최근 집중적으로 출제되는 경향이다. 이 강사는 마무리 공부법으로 우선 지금까지 자신이 봐 왔던 교재를 꾸준히 반복학습할 것을 강조했다. “자신의 손때가 묻은 교재로 차분히 마음을 가다듬고 전체 목차를 잡아 보는 방식 등으로 최종 마무리를 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기출 문제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그는 “경찰 영어는 기출 문제가 거의 비슷하게 출제되거나, 심지어 그대로 반복 출제되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정책·고시·취업>최신 뉴스 보러가기 ●한국사 개념 문제는 주로 경제사·사회사에 집중 올 상반기 처음 실시된 한국사에서는 자료 제시형 문제가 10문제, 개념이나 지식을 묻는 일반적인 단답형 문제가 10문제 각각 출제됐다. 단원별로는 부여의 풍습 등 초기 국가에서 1문항, 고대에서 5문항(왕들의 업적, 삼국시대의 문화, 통일신라 시기 유학, 농민 안정책, 발해사), 중세 고려에서 3문항(정치기구, 사회시책, 사회조직), 근대 태동기 조선에서 4문항(조선 후기 국학연구, 사회구조의 변동, 조세제도, 성리학의 변화), 근·현대사에서 6문항(흥선대원군의 업적, 갑신정변, 독립협회와 대한제국, 3·1운동, 신간회, 근대 사학사), 그리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서 1문항이 출제됐다. 신명섭 강사는 “상반기에는 첫 출제라 조금 쉽게 출제됐지만, 이번부터 난이도가 오를 수 있다.”고 전망했다. 우선 조선정치사 부문은 상반기에 전혀 출제되지 않아 이번 출제 가능성이 점쳐진다. 조선 전기 체제정비 과정에서 주요 왕들의 업적, 사림의 대두와 붕당 정치, 조선의 통치체제는 반드시 정리해 둬야 한다. 또 선사시대 관련 내용은 꼭 암기해야 한다. 석기시대의 유적지와 청동기, 철기시대의 주요 주제와 특히 고조선과 관련된 내용을 정리하고, 석기시대 유적지는 단순히 암기만 하지 말고 지도를 통해 위치를 파악해야 하며, 고조선은 청동기·철기 시대와 관련지어 공부해야 한다. 또 신라와 발해의 관계, 고려와 조선의 대외관계 변화, 대청 관계의 변화 등 시대별 대외 상황도 정리해야 한다. 일제강점기 민족의 독립운동은 국내·만주·중국 본토로 나눠 내용을 잘 정리해 둬야 한다. 또 해방과 분단과정 그리고 민주주의의 발전과정 전체도 중요하다. 한국사 시험에서 개념 문제는 주로 경제사와 사회사에 집중된다. 수취체제의 변화과정을 시대별로 비교해 알아 둬야 한다. 고대에서는 민정문서, 조선 수취체제의 변화 등이 출제 빈도가 높다. 영정법, 대동법, 군역의 변화과정과 결과, 영향도 꼼꼼히 챙겨 두자. 토지제도의 시대별 변화 역시 전체적으로 살필 부분이다. 특히 조선에서 과전법, 직전법, 관수관급제, 녹봉제로의 변화와 그 결과 국가의 토지 지배력 강화와 지주전호제의 확산은 반드시 숙지해야 한다. 사회사에서는 여성의 지위와 가족, 혼인제도의 변화와 관련해 고려와 조선을 비교하는 문제가 출제될 것으로 예상된다. 신 강사는 마무리 공부법으로 ▲단원별 개요로 빠른 시간에 내용을 정리해 볼 것 ▲기본서의 단원별 큰 제목과 소제목을 중심으로 다시 읽어 볼 것 ▲주제·단원별 문제집으로 부족한 부분을 채울 것 등을 강조했다. 김양진기자 ky0295@seoul.co.kr
  • [국가직 7급 과목별 마무리 대비법] (2) 국어·영어·한국사

    [국가직 7급 과목별 마무리 대비법] (2) 국어·영어·한국사

    국가직 7급 필기시험이 오는 28일 치러진다. 지난주에 이어 국어·영어·한국사 등 일반 과목 마무리 대비법을 알아본다. 김영준 공무원 단기학교 국어강사는 “7급 국어 문제 유형이 ‘수능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고력을 중심으로 평가하겠다는 출제자의 의도가 담겼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출제된 부분은 현대·고전 문법 3문제, 국어생활 4문제, 한문 5문제, 비문학 6문제, 현대문학 2문제 등이다. 한문이 2010년 2문제에서 5문제로 비중이 훌쩍 커진 것이 특징이다. ●15~19세기 고전문법 시간순서대로 정리를 출제 영역도 다양하다. 지난해에는 한자어를 묻는 문제 뿐 아니라 농와지경(瓦之慶·딸을 낳은 경사), 백아절현(伯牙絶絃·절친한 벗의 죽음을 슬퍼함) 등 한자성어 문제도 출제됐다. ‘이번에 아드님을 얻은 농와지경을 축하드립니다.’라고 잘못 기술한 보기가 답이었다. 당나라 시인 왕유(王維)의 ‘송원이사안서’(送元二使安西)라는 시를 보기로 놓고 주제를 고르는 문제도 등장했다. 김병태 국어강사는 ▲주요 한시, 한자어, 한문 문장의 문법요소 등을 꼼꼼히 정리할 것 ▲문학사의 중요 작가들 대표작의 의미 해석 등을 미리 정리할 것 ▲15~19세기 고전문법을 시간 순서대로 정리할 것 등을 마무리 대비법으로 강조했다. 또 최근 3년간 기출문제를 반복해서 풀고 영역별 정리를 할 땐 교재 앞부분에 기술된 핵심내용 중심으로 범위를 좁혀서 정리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문법·영작 비중 25%… 문제풀이로 실전감각 7급 영어가 9급 영어와 다른 눈에 띄는 특징은 높은 어휘 수준이다. 10문제 정도 출제되는 독해 문제에서 고득점하려면 어휘력이 관건이다. ‘드러내 놓고’ ‘대단히 비싼’이라는 뜻의 ostentatious, ‘호전적인’이라는 뜻의 bellicose, ‘급속히’ ‘대폭’이라는 뜻의 by leaps and bounds 등의 어휘가 지난해 출제됐다. 조은정 영어강사는 “남은 기간 평소 보던 어휘기본서·단어집을 반복해서 보고 동의·파생어 등 관련 어휘를 묶어 공부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조언했다. 또 “예문에 있는 어휘의 문맥 속 의미를 추론하는 식의 연습이 좋다.”고 말했다. ☞<정책·고시·취업>최신 뉴스 보러가기 7급 영어에서 문법·영작 비중은 25%가 넘는다. 또 문장 길이가 복잡해서 어렵다. 개념서를 무턱대고 읽기보다 문제 풀이를 통해 실전 감각을 극대화하고 부족한 문법 요소를 보충해야 한다. 독해는 감각을 유지하고 시간을 단축하는 훈련이 중요하다. 지문 전반부를 차분하게 읽되 글 전체 흐름을 예측하며 중심생각이 무엇인지, 필자의 의도가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주제문만 제대로 읽어도 답을 알 수 있는 경우가 많다. ●제2연평해전 10주년 관련내용 정리 필요 한국사는 고등학교 국사·근현대사 교과서를 바탕으로 출제된다. 수준은 7·9급이 거의 비슷하다. 전한길 한국사 강사는 “문제를 풀다 보면 생소한 표현이 있어 어려워 보이는 보기는 정답과 상관없을 때가 많다.”면서 “두려움을 버리고 핵심내용을 정리하면 어렵지 않다.”고 말했다. 최근 삼국·고려·조선시대 왕들의 업적을 묻는 문제는 시대별로 출제되는데, 몇몇 헷갈리는 문제도 나오고 있다. 지난해 출제되지 않았던 붕당정치·탕평책 등 조선후기 정치사 부분은 올해 출제 가능성이 크다. 경제사의 수취·토지제도도 필수다. 문화사에서는 불교의 영향을 받은 고대·중세문화 관련 문제가 출제될 수 있다. 주요 승려, 불교 건축 등이 중요하다. 조선 전기 부분에서는 이황과 이이의 사상 비교, 조선 후기 부분에서는 중농학파와 중상학파 실학자들의 업적을 비교할 수 있어야 한다. 근현대사는 대원군~강화도 조약~임오군란~갑신정변~동학농민운동~갑오개혁~아관파천~독립협회~대한제국~의병과 애국계몽운동~국권피탈 과정~일제 통치방식의 변화~토지조사 사업과 산미증식 계획의 비교~임시정부의 시기별 활동~의열단과 애국단 비교~신간회 활동 등에 대해서 시대 흐름과 함께 활동을 꼼꼼하게 점검해야 한다. 해방 후에는 헌법개정과 박정희 정부의 경제개발, 그리고 통일을 위한 노력 등이 출제될 수 있다. 시기별 역사책의 특징을 묻는 문제도 종종 출제된다. 특히 조선후기의 동사강목, 해동역사, 연려실기술, 동사, 발해고와 관련한 내용을 정리해야 한다. 일제시대 역사서와 관련해 신채호, 박은식, 백남운 등을 비교하는 문제도 출제될 가능성이 크다. 또 이덕무의 청장관전서,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 이의봉의 고금석림 등도 점검해야 한다. 시사적인 주제들도 짚어야 한다. 2011년에 반환된 외규장각 자료 약탈과 관련 있는 병인양요, 지난해 새롭게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5·18 광주기록물과 일성록, 그리고 세계문화유산과 기록유산 등을 잘 기억해야 한다. 또한 올해가 제2연평해전 10주년이 되는 해이므로 1999년 제1연평해전과 2002년의 제2연평해전의 연도를 알아두는 것이 좋다. 지난달 말에는 강원 고성 문암리 유적에서 동아시아 최초로 신석기 밭 유적지가 발견됐다. 몇 해 전에 송국리식 토기가 연속 출제됐던 것처럼 새롭게 발견되는 유물과 유적도 잘 정리해 둬야 유리하다. 김양진기자 ky0295@seoul.co.kr ■도움말 공무원단기학교
  • 독립운동 사적지 실태 점검해 보니

    독립운동 사적지 실태 점검해 보니

    만해 한용운 선생 등 항일 독립투사들의 흔적이 지워지고 있다. 후대의 무관심 탓이다. 사적지에 쓰레기가 쌓여 있는가 하면 엉뚱한 곳에 표석이 세워지기도 했다. 표석의 오류를 알면서도 글자 한 자 고치지 않고 있다. 사적지를 관리하는 서울시의 무성의가 후대를 몰역사의 수렁으로 이끌고 있다. ●대부분 4년전 그대로 29일 서울신문이 서울의 독립운동 사적지 90여곳을 2008년에 이어 다시 점검한 결과 4년 전 지적했던 유적지 훼손이나 오류가 대부분 개선되지 않고 있었다. 앞서 2008년 중앙대 중앙사학연구소는 독립기념관의 의뢰로 독립운동 사적지에 대한 실태조사를 벌여 서울의 독립운동 사적지 90곳 중 70곳이 도로공사와 재개발 등으로 사라졌다고 발표했다. 대표적인 곳이 한용운 선생이 머무르며 불교 잡지 ‘유심’을 발행했던 유심사 터다. 만해는 이곳에서 3·1운동 직전인 1919년 2월 28일 중앙학림 학생들을 불러 독립선언서 3000장을 전달했다. 3·1운동을 촉발한 뜻깊은 발원지인 셈이다. ●쓰레기 쌓여있고 엉뚱한 곳에 표석 유심사의 원래 위치는 종로구 계동 43번지다. 그러나 표석은 엉뚱하게도 100m 정도 떨어진 계동 58번지 뒷길에 세워졌다. 유심사 터에는 현재 ‘만해당’이라는 게스트하우스가 들어서 운영되고 있다. 이런 사실을 서울시도 알지만 4년째 모른 척만 하고 있다. 위치만 틀린 것이 아니다. 표석의 문구 역시 ‘중앙학림’이 ‘중앙학교’로 잘못 적혀 있다. 중앙학림은 1922년 세워진 불교계 고등교육기관으로, 불교계 항일운동의 본산이지만 표석에는 인근 사립 고등학교의 이름을 새겨 넣은 것이다. 심지어 종로구는 표석 뒷면에 쓰레기 무단 투기 금지 안내판까지 덧대 놓았다. 주민 정모(66)씨는 “여기에 쓰레기를 버리는 주민도 문제지만 독립운동 사적을 알리는 표석에 커다란 안내문을 붙이는 구청 조치가 참 한심하다.”고 지적했다. ●여운형 선생 집터 흔적도 없이 사라져 여운형 선생이 머물렀던 계동 집터는 1989년 도로 확장 공사로 집 앞쪽이 절반 이상 잘려 나갔고 남은 반쪽도 칼국수집으로 바뀌어 있다. 이곳이 선생의 집터였음을 알리는 것은 건물 건너편에 있는 작은 표석이 전부다. 1920년대 후반 좌우 항일 세력이 합작해 결성한 신간회의 창립본부 터는 흔적조차 사라지고 없다. 이봉창 의사의 집터(용산구 효창동 118번지)를 알리는 표석은 황당하게도 원래 집터에서 약 250m나 떨어진 6호선 효창공원앞역 1번 출구에 박혀 있다. 한성 임시정부 수립을 논의했던 독립운동의 아지트(한성오 집터) 역시 표지석은 엉뚱한 곳에 세워져 있다. 4년 전 사적지 실태조사를 담당했던 장규식 중앙대 교수는 “보존·복원 대책은 고사하고 4년이 넘도록 간단한 오류조차 고치지 않은 것이 아쉬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장 교수는 “사적지 복원이 어렵다고 작은 표석 하나 세우는 것은 결코 대안이 될 수 없다.”면서 “후손들이 항일 투쟁의 역사를 기억할 수 있도록 ‘3·1운동길’과 같은 답사코스를 만드는 등 적극적인 복원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글 사진 신진호·홍인기·최지숙기자 sayho@seoul.co.kr
  • [시민단체 정치속으로] 시민단체의 뿌리는…

    [시민단체 정치속으로] 시민단체의 뿌리는…

    1987년 6월항쟁의 경험과 성과는 시민사회운동단체 설립의 토대를 마련했다. 1989년 경제정의실천 시민연합 출범을 시작으로 정치·경제·행정·환경·교육·여성·언론·문화·소비자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회적 이슈와 연결된 시민단체들이 봇물처럼 늘어났다. 이전까지 사회 변혁의 동력이 학생·노동운동에서 나왔다면, 1990년대 절차적 민주주의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는 시민사회단체의 역할이 단연 돋보였다는 얘기다. 물론 1987년 이전에도 시민사회운동단체들은 존재했다. 출범 배경과 목적, 운동의 방향과 양상이 시대적 좌표에 따라 달라졌을 뿐이다. 100여년 전 첫발을 뗀 이후 현재까지도 활발한 활동하고 있는 YMCA(기독교청년회)는 물론, YWCA(기독교여자청년회), 흥사단 등을 보면 시민단체들의 변화상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시민사회운동의 시초로 평가받는 YMCA가 가장 먼저 1903년 황성기독교청년회란 이름으로 첫발을 디뎠다. 1913년 도산 안창호 선생이 민족 인재 양성을 목적으로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설립한 흥사단이, 1922년에는 YWCA(당시 조선여자기독교청년회)가 뒤를 이었다. 일제의 서슬이 퍼렇던 시절, 이 단체들은 근대화 및 민족 계몽과 더불어 독립운동의 인큐베이터 및 운영자금 조달 역할에 집중했다. 105인 사건(1911)과 2·8 독립선언, 3·1운동(이상 1919), 신간회(1927) 등이 대표적이다. 해방 이후 구호·부흥사업 등에 주력하던 시민단체들이 역사의 전면에 재등장한 것은 역설적으로 군사독재정권의 압제와 맞물려 있다. 흥사단이 1963년 한국사회의 지도자 배출을 목적으로 전국 대학·고교생을 대상으로 운영한 아카데미는 훗날 민주화 및 시민운동 인력을 키워내는 핵심 역할을 했다. 1980년대 초 떠들썩했던 학림(전국민주학생연맹)사건의 주역 이태복(전 보건복지부 장관)씨와 이선근씨 등이 대표적이다. 1973년 발족한 ‘서울YMCA 사회개발단’은 시민의식 개발을 위한 시민논단, 시민권익 옹호를 위한 시민중계실, 양곡은행, 이동사회관 등을 통해 민중 속으로 다가가면서 한국 시민사회운동의 모형을 제시했다. 1986년 YMCA 중등교사협회 소속 교사 600여명의 교육민주화선언은 훗날 전국교직원노동조합운동의 시발점이 됐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5월 독립운동가 어윤희 선생, 5월의 호국인물 이진무 선생

    5월 독립운동가 어윤희 선생, 5월의 호국인물 이진무 선생

    국가보훈처는 29일 3·1운동 당시 개성에서 만세시위를 주도한 어윤희(여) 선생을 ‘5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충북 충주 소태면에서 태어난 선생은 동학군인 남편이 전사하자 10여년간 황해도 평산, 해주 등을 전전했다. 경기 개성에 정착한 선생은 민족 대표 33인 중 한명인 정춘수의 설교에 감명받아 애국 계몽 운동가로 활동했다. 1919년 3·1운동이 지방으로 확산되자 선생은 조선독립선언서 80장을 받아 개성 읍내에서 배포했다. 보안법 위반으로 1년 6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 투옥됐으나 유관순 등 옥중의 동지들과 함께 일제에 항거했다. 신간회 개성지회 설립 준비 단계부터 간사로 활동했다. 1931년 5월 신간회 해산 이후에도 아동 복지 활동에 헌신했다. 이와 함께 전쟁기념관은 일제 강점기 때 항일무장투쟁을 벌이다 순국한 이진무 선생을 ‘5월의 호국인물’로 선정했다. 평북 정주군 옥천면에서 출생한 선생은 19세 때인 1919년 만주로 건너가 광복군총영에 가입했다. 이듬해 8월 미국 상·하의원들로 구성된 동양시찰단 일행의 서울 방문을 틈타 입국해 신의주 호텔에 폭탄을 투척했다. 1924년 11월 정의부 제5중대에 배속되어 경찰 주재소를 습격하고 일경을 사살하고 1931년 노농자위군을 조직해 대장을 맡았다. 1932년 안동에서 체포돼 이듬해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1934년 평양형무소에서 순국했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독립유적지 92% 사라지거나 훼손…부끄러운 후손

    독립유적지 92% 사라지거나 훼손…부끄러운 후손

    올해는 광복 65주년, 경술국치 100년인 해다. 치욕스러운 역사에 대한 국민적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런 가운데 국내 독립운동 유적지 10곳 가운데 9곳이 정부와 국민의 무관심으로 방치돼 이미 사라졌거나 훼손된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던지고 있다. 이 같은 사실은 13일 국가보훈처 용역의뢰를 받은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소장 김상기)가 전국에 흩어져 있는 수천 곳(추정)의 독립운동 유적지 가운데 우선 보존 가치가 높은 1585곳을 대상으로 벌인 ‘독립운동 유적지 실태조사’에서 밝혀졌다. 조사는 2007년 8월부터 올 1월까지 이뤄졌다. 전국적인 독립운동 유적지 실태조사는 이번이 처음이다. ●현충시설 지정 1616곳중 독립관련 29곳뿐 조사 결과 조사 대상 유적지 가운데 멸실돼 흔적을 찾기 어려운 곳이 무려 868곳(55%)으로 파악됐다. 521곳(33%)의 유적지는 변형됐고, 9곳도 상당 부분 훼손된 것으로 나타났다. 원형 보존유적지는 125곳(8%)에 불과했다. 나머지 1460곳(92%)이 이미 사라졌거나 심하게 훼손·변형돼 유적지의 기능을 잃었다. 이중 62곳은 그나마 복원됐다. 1920년대 후반 좌우익 세력이 합작하여 결성한 대표적인 항일단체인 ‘신간회 창립본부 터’(서울)와 1914년 독립운동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부산에 설립된 ‘백산상회’ 등은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 독립운동가 ‘손병희 선생 생가’(충북 청원)와 ‘김좌진 장군 생가’(충남 홍성) 등 9곳은 다시 복원돼 교육·관광자원으로 활용되고 있다.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국무위원 겸 군무부장을 역임하면서 한국광복군 창설의 기틀을 마련한 ‘청사 조성환 선생의 생가’(경기 여주)와 충북 제천의 의병 창의지인 ‘자양영당’ 등은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유적지다. ●광복 65년되도록 정부차원 조사 안해 연구소는 “유적지 훼손은 광복 65년이 지나면서도 정부가 단 한 차례도 실태조사를 벌이지 않은 무관심과 방치에서 비롯됐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국내 항일 독립운동 및 6·25 전쟁과 관련된 전국 1616곳의 시설물 등을 현충시설로 지정했다. 이 가운데 독립운동 관련 유적지는 29곳에 불과할 정도다. 연구소 이정은 책임연구위원은 “이번 조사에서 빠진 미확인 유적지와 1차 조사 대상 가운데 심층조사가 필요한 유적지를 정밀조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박정훈기자 jhp@seoul.co.kr
  • [방치되는 독립유적지] 신간회 창립본부 터 기념표석 하나 없이 모텔만…

    [방치되는 독립유적지] 신간회 창립본부 터 기념표석 하나 없이 모텔만…

    조국 독립을 위해 일제에 맞섰던 선열들의 항일 유적지에 대한 방치는 소중한 역사 자산에 대한 국민적 무지를 드러내고 우리의 반성을 촉구하고 있다. 서울의 파고다공원(변형)·태화관(멸실)·독립문(변형), 충남 천안의 유관순 생가(복원), 충남 홍성의 김좌진 생가(복원), 경남 하동의 무명 의병 공동묘지(훼손) 등 1585곳의 항일 독립운동 유적지를 3년 넘게 조사해 온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의 자료를 토대로 유적지 훼손 실상을 살펴본다. ●흔적조차 없는 안타까운 현실 서울 종로구 관수동 143번지. 나이스코리아 빌딩과 S모텔 등이 들어선 이곳은 1920년대 후반 활동했던 대표적인 항일단체인 ‘신간회’ 창립본부 터였다. 지금은 모텔 등이 들어서 신간회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주민 최모(55)씨는 “20년 넘게 이곳에 살았지만, 신간회 창립본부가 있었다는 사실을 들어 본 적이 없다.”면서 “신간회가 어떤 단체인지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고, 관련 자료가 없어 어쩌면 모르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좌우익 세력이 조국 독립을 위해 결성한 신간회 창립본부 자리였던 만큼 최소한 기념표석이라도 설치해 역사적 의미를 되살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안희제 선생이 국외 독립운동지도자들과의 연락망이자, 독립운동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부산에 설립했던 ‘백산상회’도 사라진 유적지다. 부산 중구 동광동 3가 12번지의 백산상회 터에는 프라임 원룸이 들어서 있다. 여기서 조금 떨어진 10-2번지에 백산기념관이 마련돼 있지만, 부산지역 독립운동과 관련된 학습장으로 활용하기는 미흡한 실정이다. 또 지리산 기슭인 경남 하동군 화개면 의신마을 인근 ‘항일의병 공동묘지’는 무덤 흔적만 남아 있다. 한·일 강제병합 2년 전 일제에 결사항전하다 최후를 맞이한 의병 30여명이 묻혀 있는 곳이다. 이른바 ‘무명 항일투사 공동무덤’으로 불린다. 과거사정리위워회가 이곳을 복원할 것을 권고했으나, 국가보훈처와 하동군은 계속 내버려 두고 있다. ●“정부·지자체 보전대책 세워야” 1921년 설립돼 경북 영천지역 민족교육의 산실로 불린 ‘백학학원’은 붕괴 직전의 폐가로 방치돼 있다. 백학학원은 이육사, 조재만, 이원대, 이진영 등 독립운동가를 배출했다. 잡초가 우거진 텃밭과 방문마저 떨어져 나간 폐가만 옛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곳에서 이육사 등 독립운동가들이 교육을 받았을까라는 의문이 들 정도다. 일부에서는 이곳을 복원한 뒤 표지석과 안내판 등을 설치해 교육현장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전남 보성군의 교통 중심지인 복내면 복내리 379 일대는 ‘원봉’ 안규홍 의병부대의 손꼽히는 전투지다. 한말 후기 의병을 대표하는 안규홍 부대는 이곳에서 일본군에 맞서 항일투쟁을 벌였다. 당시 일본군 수비대가 주둔했던 건물은 사라지고 현재 민가가 들어서 있다. 역사적 사실을 알리고 주민들의 자긍심을 높이기 위해 안내판이나 표지석을 세워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되고 있다. 서울 서대문형무소 동남쪽에 건립됐던 ‘독립문’(1879년 11월·서대문구 현저동 941)도 1979년 성산대로 고가도로 건설로 원래 위치에서 70m 떨어진 지점으로 옮겨졌다. 반면 3·1운동을 주도한 ‘유관순 열사 생가’(충남 천안)와 ‘손병희 선생의 유허지’는 복원돼 교육·관광자원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 밖에 충남 홍성의 ‘김좌진 장군 생가’와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위원 겸 군무부장을 역임한 ‘조성환 선생 생가’, 충북 제천의 의병 창의지인 ‘자양영당’ 등도 복원돼 학생과 관광객을 맞고 있다. 이정은 연구위원은 “국내 유적지 가운데 상당수가 후손이나 기념사업 주체가 없어 방치·훼손되고 있다.”면서 “보전 가치가 높은 유적지는 정부와 지자체가 적극적으로 나서 보전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박정훈기자 jhp@seoul.co.kr
  • [고전 톡톡 다시 읽기](1)홍명희作 ‘임꺽정’

    [고전 톡톡 다시 읽기](1)홍명희作 ‘임꺽정’

    “너 어디 사느냐?” “양주 읍내 삽니다.” “나이 몇 살이냐?” “서른다섯살입니다.” “부모와 처자가 있느냐?” “아버지가 있고 처자도 있습니다.” “네 집에서는 농사하느냐?” “아닙니다. 아무 것도 안하고 놉니다.” “아무 것도 아니하고 놀아? 네 아비는 무엇하는 사람이냐?” “소 백정입니다.” (강조 필자, 3권 381쪽) 꺽정이는 직업이 없다. 아비가 백정이라 아주 가끔 백정일을 거들기는 하지만 그걸 ‘업’으로 삼을 생각은 전혀 없다. 한마디로 ‘노는 남자’다. 비단 꺽정이만 그런 것도 아니다. 칠두령은 물론이려니와, 대부분의 등장인물들이 제대로 된 직업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거의 없다. ●‘노는’ 남자들 혹은 ‘배우는’ 남자들 그럼 뭘 하고 노는가? 배우면서 논다. 꺽정이는 봉학이, 유복이와 더불어 서울 갖바치의 집에서 청년기를 보낸다. 갖바치는 당대 최고의 사상가이지만, 꺽정이에게는 집안 어른이자 스승이다. 꺽정이와 그의 친구들은 갖바치의 집에 더부살이를 하면서 많은 걸 배운다. 물론 문자를 워낙 싫어하다 보니 배우는 게 주로 병법, 기예 같은 것들이다. 그럼, 배워서 뭐하지? 아무 이유 없다! -“대체 검술을 배워 무엇하니?”라고 묻자, 꺽정이의 대답. “그저 배워두었으면 좋으려니 생각할 뿐이지. 무엇하려는 작정은 없소.” 그냥 배운다. 놀면서 배우고, 배우면서 논다. 그리고 그게 일상이다. 놀랍지 않은가? 이들은 소위 백수다. 그런데 자괴감에 찌들기는커녕 정규직들은 상상할 수 없는 자유를 만끽한다. 비정규직 800만, 청년실업 100만명 시대에 대하소설 ‘임꺽정’에 필이 꽂힌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길 위의 향연-배우고 사랑하고 싸운다 저자는 벽초 홍명희(1888~1968). 구한말 명망 높은 양반 가문에서 태어나 이광수, 최남선 등과 더불어 조선의 ‘3대 천재’로 꼽혔다. 1920년대 민족운동사에 한 획을 그은 ‘통일전선’ 신간회를 이끈 지도자이기도 하다. ‘임꺽정’은 그의 유일한 작품이자, 20세기가 낳은 걸작이다. 남북한이 함께 자랑해마지 않는, 아주 드문 고전이기도 하다. 시대 배경은 명종 때. 당대를 주름잡던 화적패 ‘청석골 칠두령’을 밑그림으로 조선시대의 사화와 정쟁, 풍속과 일상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작가의 야심 찬 선언대로 ‘순(純) 조선적’ 정조(情調)를 유감없이 발휘한 작품이다. 하여, 서구적 의미의 소설이라기보다는 ‘이야기’에 가깝다. 그만큼 구술문화의 입담이 생생하게 살아 있다. 위에서 보다시피 꺽정이와 그의 친구들은 정착민이 아니다. 농사를 짓자니 땅이 없고, 장사를 하자니 밑천이 없다. 출신성분이야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유복이는 이름대로 유복자고, 봉학이는 기묘사화때 집안이 풍비박산 나는 바람에 할머니 밑에서 자랐다. 곽오주는 ‘임노동자’, 길막봉이는 소금장수고, 배돌석이는 떠돌이 룸펜이다. 천왕동이는 백두산에서 살다 제 누이가 꺽정이랑 혼인을 하는 바람에 꺽정이네 집에 와서 더부살이를 한다. 한마디로 결손가족에, 집에서 내놓은 자식들이다. 따라서 이들을 하나의 집단, 하나의 계급으로 묶기란 참, 곤란하다. 말하자면, 특정 범주로 포섭하기 어려운, 체제의 변경을 떠도는 ‘마이너’들인 셈. 그러니 이들의 인생역정은 대부분 길 위에서 이루어진다. 예컨대, 유복이는 청년기를 앉은뱅이 신세로 지내는데, 하도 할 일이 없어 혼자 표창 연습을 하다 댓가지창의 명인이 된다. 그의 실력이 어느 정도냐 하면, 누워서 던져도 파리를 맞힐 수 있는 수준이다.(와우~) 그 인연으로 지나가는 이인을 만나 병을 고치고 차력사로 거듭난다. 어머니의 유언에 따라 아버지의 원수를 갚은 다음, 관가의 추격을 피해 도주하다 얼떨결에 최영장군 사당에서 각시를 얻는다.(이게 웬 떡!) 마을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하는 벌역 따위엔 아랑곳없이 각시를 데리고 튄다. 이렇듯 이들은 모두 천민이자 도망자들이지만 사랑과 성을 박탈당하기는커녕 오히려 더 화끈하게 누린다. 장군귀신의 마누라를 달고 튄 유복이의 사랑도 ‘대박’이지만, 백두산에서 꽃핀 꺽정이와 운총이의 ‘풋사랑’이나 귀신도 녹여버린 봉학이와 계월향이의 열애 등도 하나같이 다 ‘블록버스터’다. 이 사랑의 서사 속에 조선조 민중의 ‘인정물태’가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녹아있다. ●청석골-움직이는 요새 이 작품이 리얼리즘이나 민중성, 계급성 등으로 포획되지 않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청석골 칠두령’을 움직이는 건 도탄에 빠진 민을 구하겠다든가 혹은 썩어빠진 정치를 갈아엎겠다든가 하는 식의 명분이나 이념 따위가 아니다. 굳이 말한다면, 어떤 권위에도 복종하기를 거부하는 ‘자존심’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이들의 자존심은 ‘원초적 야생성’과 ‘치기어린 객기’ 사이에서 동요한다. 하여, 때론 눈부시고, 때론 위태롭다. 이 작품이 신비로운 영웅담이 아니라, 희비극을 오가는 ‘인생극장’처럼 느껴지는 건 이런 맥락에서다. 그러므로 그들의 본거지인 청석골은 산중 깊숙한 곳에 있지만 결코 닫혀 있지 않다. 인근마을은 물론 서울 한복판까지 ‘한통속’으로 엮여 있다. 게다가 여차하면 요새를 버리고 튄다. 작품의 대미가 청석골을 버리고 자모산성으로 들어가는 장면인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요컨대, 청석골은 길 위의 인생들에게 있어선 ‘움직이는 요새’이자 ‘자유의 새로운 시공간’이었던 것. 바야흐로 ‘집의 시대’가 지나가고 ‘길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집으로 귀환했던 모든 의미들이 연기처럼 사라지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길 위에서 어떻게 ‘공부와 밥과 우정’의 향연을 펼칠 것인가. 이 시대의 청년들에겐 그야말로 절실한 화두다. 이 화두와 정면으로 맞짱을 뜰 용기만 있다면, ‘임꺽정’은 그에 대한 아주 멋진 응답이 될 수 있으리라. 글 고미숙 ■ 고미숙은… 1960년 강원도 정선 출생. 고전평론가. 고려대학교에서 고전문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그린비 펴냄), ‘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그린비), ‘임꺽정, 길 위에서 펼쳐지는 마이너리그의 향연’(사계절) 등이 있다.
  • ‘조선왕릉 40기’ 시사문제 출제 가능성

    ‘조선왕릉 40기’ 시사문제 출제 가능성

    올해 지방직 9급 시험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서울을 제외한 전국 15개 시·도에서 동시에 치러지는 이번 시험에는 모두 13만 3688명의 수험생이 원서를 내, 바늘구멍처럼 좁은 공직 문을 두드린다. 에듀윌과 에듀스파, 이그잼 고시학원의 전문 강사들로부터 암기과목인 한국사·행정학·행정법에서 출제될 가능성이 높은 ‘족집게’ 예상문제를 들어봤다. ●한국사 고대 분야에서는 통일신라의 민정문서가 출제될 가능성이 높다. 신라말 고려 초기의 사회상과 조선 21대 왕 영조의 탕평책도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영정법·대동법·균역법 등 조선 후기 수취제도의 개선도 이번 시험 예상문제다. 강사들은 또 신민회와 신간회의 활동을 꼭 구분해 정리해 둘 것을 권했고, 일제강점기 무장독립투쟁도 나올 확률이 높다고 했다. 시사문제로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될 가능성이 높은 조선왕릉 40기에 대해 물을 가능성이 높다. 단순히 왕릉 이름을 암기하는 것이 아니라 왕릉이 담고 있는 유교적·풍수적 전통과 당시 건축 양식, 조경학적 특징 등을 폭넓게 정리할 필요가 있다. 감은사지석탑과 정조어찰 등 최근 거론된 문화유산도 강사들이 찍은 예상문제다. 박용선 에듀윌 한국사 강사는 “최근 남북 관계가 이슈로 떠오른 만큼, 우리나라의 통일정책을 전반적으로 묻는 문제가 출제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행정학 정책행정론 분야에서는 ‘정책평가의 내적 타당성과 외적 타당성의 저해요인’에 대해 물을 수 있다. 체제분석과 정책분석의 차이점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재무행정에서는 성과주의예산(PBS)과 계획예산(PPBS), 영기준예산(ZBB) 등의 개념을 명확히 정리하는 것이 필수다. 최근에는 지방행정에 대한 관심이 높은 만큼, 우리나라 주민참정제도와 지방세·국고보조금·지방교부세 등 지방재정제도도 출제될 가능성이 있다. 노종태 이그잼 고시학원 수험전략연구소장은 “복식부기, 총액예산제도, BTL 등 새롭게 도입된 제도는 반드시 숙지하고 시험장에 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방성은 남부행정고시학원 행정학 강사는 “행정안전부가 문제를 출제하는 만큼, 과거의 지엽적인 내용에서 이해 중심의 내용으로 모든 범위가 고르게 출제될 것”이라고 말했다. ●행정법 ‘신뢰보호 원칙’과 관련한 판례는 출제 가능성이 높다. ‘국적이탈신고 반려처분’이나 ‘지방병무청 민원팀장의 보충력 편입’ 등의 판례를 주의 깊게 볼 필요가 있다. 행정쟁송법의 ‘취소판결 효력’에 관한 문제와 ‘행정조사기본법’ ‘질서유발행위규제법’ 등과 관련한 판례 문제는 여러 강사들이 나올 것으로 예상했다. 김유환 남부행정고시학원 행정법 강사는 “지난 4월 치러졌던 국가직 시험의 경우 만점자가 속출하는 등 난이도 조절에 실패했다.”면서 “이번 시험은 좀 더 어렵게 출제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한편 전문가들은 응시원서를 중복 제출한 수험생이 많아 경쟁률이 실제보다는 높게 나타난 만큼, 포기하지 말고 반드시 시험을 치르라고 권했다. 또 시험 전날에는 고사장을 미리 찾아 위치를 정확히 확인해둬야 하며, 타지역으로 시험을 치러 갈 경우 서둘러 표를 구해두라고 조언했다. 박선순 에듀스파 이사는 “시험 당일에는 자주 헷갈리거나 틀리는 부분을 볼 수 있는 오답노트를 고사장에 꼭 가져가 최종 점검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주형기자 hermes@seoul.co.kr
  • 독립유공자 361명 광복 63주년 포상

    국가보훈처는 제63주년 광복절을 맞아 신간회 총무간사로 활약한 이춘숙(李春塾·1889∼1935) 선생과 도산 안창호 선생의 부인 이혜련(李惠鍊·1884∼1969), 안중근 의사의 모친 조마리아(?∼1927) 여사 등 361명의 독립유공자를 포상한다고 11일 밝혔다. 이번에 포상하는 독립유공자는 건국훈장 166명(독립장 2명, 애국장 59명, 애족장 105명), 건국포장 65명, 대통령표창 130명 등이며, 이 가운데 생존자는 4명이고 여성은 10명이다. 이들은 오는 15일 광복절 중앙경축식장과 지방자치단체 주관 경축식장에서 훈장을 받거나 추서되며, 국외 거주자는 재외공관을 통해 본인과 유족에게 훈장이 전달된다.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된 이춘숙 선생은 1919년 3·1운동 직후 중국 상하이 등을 오가며 임시정부 수립운동에 참여한 뒤 같은 해 4월 상하이로 망명해 1920년 4월까지 임시의정원 의원, 부의장을 지냈다. 이후 임시정부 군부차장과 학무차장 등을 역임하면서 임정의 헌법 개정, 공채발행 조례 등의 제정에 참여하고, 상하이 민단장 여운형 선생이 발기한 신한문화동맹 등에 각각 참여해 활동했다.1920년 11월 일경에 체포된 후 국내로 압송돼 징역 5년을 선고받고 출소했으며,1927년부터 1931년 5월까지 신간회 경성지회의 총무간사, 중앙집행위원, 중앙상무위원, 조사부장 등으로 활동했다. 같은 독립장이 추서된 유기석(柳基石·1907∼?) 선생은 1928년 중국 상하이에서 재중국조선인무정부주의연맹을 결성했고,1930년 남화한인청년연맹에서 활동했다.1932년 이후 베이징으로 건너가 동북의용군 등의 항일단체에 가입해 톈진 일본총영사관 및 일본기선에 수류탄을 투척했다.1938년 김구 선생과 일본의 국제적 지위를 실추시키기 위한 활동을 전개하고 1943년부터 1945년까지 난징에서 한족동맹의장 겸 한국광복군 징모 제3분처 대장으로 활약했다.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된 안창호 선생의 부인 이혜련 여사는 1909년부터 독립운동단체에 자금을 지원하고 1919년 미국 LA에서 조직된 부인친애회, 대한여자애국단에서 활동했다. 안 의사의 모친 조마리아 여사는 1907년 국채보상의연금을 기부하고 1926년에는 상하이 재류동포 정부경제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는 등 직접 독립운동에 헌신했다. 대통령표창이 추서된 정막래(丁幕來·1899∼1976)·이소선(李小先·1900∼?) 여사는 기녀 출신으로 1919년 경남 통영군 통영면 기생조합에서 동료와 함께 기생단을 조직해 독립만세 시위운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돼 각각 6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건국훈장 독립장 柳基石(중국방면) 李春塾(임시정부) ●건국훈장 애국장 具錫圭(의병) 權能道(만주방면) 金炳鉉(만주방면) 金士極(만주방면) 金相周(만주방면) 金瑞雲(만주방면) 金錫元(의병) 金錫弘(만주방면) 金演性(의병) 金用三(만주방면) 金龍玉(만주방면) 金龍澤(만주방면) 金允涉(만주방면) 金俊元(만주방면) 金昌鉉(만주방면) 金恒龍(만주방면) 盧秉漢(인니방면) 朴基運(의병) 朴貞鍵(중국방면) 朴定勳(만주방면) 朴琮植(국내항일) 方成柱(만주방면) 裵敬鎭(국내항일) 白圭三(노령방면) 白一龍(만주방면) 徐光道(의병) 徐允峯(만주방면) 孫亮燮(인니방면) 孫正彬(만주방면) 申英七(의병) 申應奎(만주방면) 申 훤(만주방면) 吳民聲(중국방면) 李灌鎔(국내항일) 李光河(만주방면) 李相寬(만주방면) 李錫吉(의병) 李成鎬(중국방면) 李元甫(국내항일) 李泰涉(만주방면) 李赫魯(국내항일) 李鉉稷(국내항일) 李華榮(의병) 任成祐(국내항일) 鄭天和(3·1운동) 鄭泰玉(국내항일) 趙正來(국내항일) 崔敬京(만주방면) 崔文武(만주방면) 崔文鳳(노령방면) 崔聖必(의병) 崔承觀(만주방면) 韓慶錫(학생운동) 韓大弘(만주방면) 許璋煥(국내항일) 玄思桂(만주방면) 黃甲用(의병) 黃稷淵(국내항일) 黃海龍(국내항일) ●건국훈장 애족장 姜極模(만주방면) 姜明秀(3·1운동) 高圭永(국내항일) 高德鳳(만주방면) 權靑松(의병) 金敬俊(3·1운동) 金光壽(3·1운동) 金大支(3·1운동) 金東赫(학생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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洪琪煥(국내항일) 洪思哲(3·1운동) 洪鎭玉(3.1운동) 黃乭伊(3·1운동) 黃萬模(3·1운동)
  • [Seoul Law] ‘전문변호사’ 찾아주기 나섰다

    [Seoul Law] ‘전문변호사’ 찾아주기 나섰다

    오는 9월23일 창립 100주년을 맞는 서울지방변호사회 하창우(53) 회장을 26일 만났다. 그는 서울 서초동 변호사회 사무실에서 ‘변호사 찾기’라는 서류를 보고 있었다. 하 회장은 ‘변호사 찾기’는 시민들이 사건을 맡길 변호사를 쉽게 찾을 수 있도록 하는 서울변호사회의 서비스라고 강조했다.1986년부터 21년 동안 변호사 생활을 하다 올해 1월 서울지방변호사 회장을 맡은 하 회장이 변호사 생활을 하면서 의뢰인들로부터 들은 가장 많은 고충은 변호사를 찾기가 힘들다는 것. 변호사 찾기가 힘들기 때문에 법조 브로커들이 생겨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변호사 분야별 구분 승소율 등 정보 제공 하 회장은 “의뢰인들은 사건이 당장 닥쳤는데도 어떤 변호사에게 사건을 맡겨야 할지, 변호사의 전문 분야는 무엇인지, 변호사의 승소율은 어떻게 되는지를 몰라 애를 먹는다.”면서 ‘변호사 찾기’ 서비스를 강화하는 배경을 설명했다. 하 회장은 서울변호사회 100주년 사업으로 변호사 찾기 서비스와 무료법률상담 강화, 시민과 함께하는 마라톤대회 등을 준비하고 있다. 하 회장은 “변호사는 국민으로부터 먼 곳에 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면서 “변호사는 앞으로 국민의 곁으로 다가설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래서 100주년 캐치프레이즈를 ‘변호사는 여러분의 든든한 동반자입니다.’로 내걸었다. 변호사 찾기 서비스는 변호사의 전문 분야와 주요 승소 사례, 의뢰인과의 상담 사례, 동료 변호사와 의뢰인의 추천 의견, 수상 경력 등을 제공할 계획이다. 징계 내용도 공개한다. 현재 서울변호사회 홈페이지(seoulbar.or.kr)의 유명무실한 ‘변호사 찾기’ 서비스를 확대 강화하겠다는 얘기다. 그래서 의뢰인들은 검색란에 사건의 종류만 쳐도 해당 사건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변호사들의 이름이 뜨도록 만들겠다는 게 하 회장의 구상이다. 예를 들면 이혼 분야뿐 아니라 이혼 뒤의 양육문제를 전문으로 다루는 변호사 명단을 알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하 회장은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피의자가 구치소에 있는 형사사건의 경우에는 가족이나 친지들이 대신 홈페이지를 방문해 전문변호사를 찾아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변호사법 위반에 징계 강화할 것 하 회장은 최근 변호사의 변호사법 위반사건이 늘어나고 있는 것과 관련해 “서울지방변호사회의 분쟁조정위원회에 변호사 수가 적던 시절에 보기 힘들던 생계형 비리가 많이 늘었다.”면서 “징계를 강화하고, 어려운 변호사와 젊은 변호사들에게 무료법률상담이나 법원 조정위원, 검찰 항고심사위원 등에 참여할 것을 권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무한경쟁시대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변호사들이 무료법률상담에 적극 참여할 것을 주문했다. 무료법률상담은 결국 사건 수임을 늘릴 수 있는 지름길이라는 얘기다. 법원 조정위원과 검찰 항고심사위원을 맡으면 실무경험도 늘릴 수 있다고 조언했다. 박지윤기자 jypark@seoul.co.kr ■서울지방변호사회 어제와 오늘 국내 최초의 소송대리인은 일본에서 법률학을 배웠던 장훈씨. 그는 1900년 일본 상인에게 6200원의 채권을 돌려받지 못한 실업가 이재필의 소송을 대리해 승소 판결을 받아냈었다. 국내 변호사 1호는 1906년 변호사 자격증을 딴 홍재기 변호사다. 이어 이면우·정명섭 변호사 등이 1907년 9월23일 한성변호사회를 결성해 창립인가를 받았다.1905년 국내 변호사 제도가 처음 도입된 지 2년 뒤다. 당시 변호사법이 만들어진 이유는 1903년 러·일 전쟁 뒤 일본인이 한국에 많이 진출, 각종 이권에 개입해 일본인과 한국인 사이에 분쟁이 많았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 때는 독립운동에 가담한 변호사들도 나왔다. 허헌 변호사는 3·1운동 지도자들의 무료 변론과 신간회 활동을 하다가 4년간 옥고를 치렸다. 광복 이후 변호사들은 고소득·전문직으로 부러움을 샀고, 상당한 부를 축적했다.80년대 초까지만 해도 전국 변호사 수가 1000명을 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약자와 정의를 위해 살던 변호사들도 적지 않다. 고 이병린 변호사는 1964년 한·일회담 반대 시위로 비상계엄이 선포되자 계엄 해제와 구속자 석방을 건의했다가 구속됐다. 1980년대 대표적인 민주투사인 고 조영래 변호사는 1984년 최초의 빈민 집단소송인 망원동 수재 사건을,1986년 공권력에 의한 여성 인권 유린이 처음 폭로된 부천 성고문 사건을 변론했다. 이 사건은 1987년 민주화 투쟁의 기폭제가 됐다. 강신옥 변호사는 1974년 군법회의 법정에서 ‘민청학련’사건 피고인들을 변론한 게 문제가 돼 기소되는 등 인권변호사들이 고초를 겪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서울지방변호사회는 올해 100주년을 맞아 김주원 변호사를 위원장으로 하는 100년사 편집소위를 꾸려 100년사를 작성하고 있다. 박지윤기자 jypark@seoul.co.kr
  • 새해 ‘이달의 독립운동가’ 13명 선정

    저항시인 윤동주, 독립운동단체 신간회 부회장을 지낸 권동진, 헤이그 만국평화회의 특사로 활동한 이위종 등 13명이 2007년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됐다 국가보훈처는 21일 광복회·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내년도 이달의 독립운동가를 선정해 발표했다. 내년이 신민회 창건과 국채보상운동, 헤이그특사 파견 100주년이라는 점을 고려해 관련 인물들이 대거 뽑혔다. 신민회 사건으로 옥고를 치르고 임시정부 연통제 참사를 지낸 임치정, 국채보상운동을 주도한 김광제·서상돈 등이 대표적이다. 순국 100주년을 맞는 의병장 정환직·권득수, 탄생 150주년을 맞는 구춘선 북간도 대한국민회 회장, 좌·우합작 여성운동단체 근우회를 창립한 조신성 등도 함께 뽑혔다. 보훈처는 국민들의 관심도를 높이기 위해 포털사이트에 이달의 독립운동가 카페(cafe.naver.com//bohunstar)를 개설, 각종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다. 다음은 월별 독립운동가 명단이다. 임치정(1월), 김광제·서상돈(2월), 권동진(3월), 손정도(임시정부 교통총장·4월), 조신성(5월), 이위종(6월), 구춘선(7월·대한독립군단 결성), 정환직(8월), 박시창(9월·한국광복군 상하이지대장), 권득수(10월), 주기철(11월·신사참배 거부 옥사), 윤동주(12월).이세영기자 sylee@seoul.co.kr
  • 8월의 서울시 문화재 만해선생 ‘심우장’ 선정

    서울시는 광복절이 있는 8월을 맞아 만해 한용운 선생이 만년을 보낸 서울 성북구 성북동 ‘심우장’을 8월의 서울시 문화재로 선정했다고 31일 밝혔다. 한용운은 1919년 3·1운동을 주도한 것 외에도 1910년 불교의 변혁을 주장하는 ‘조선불교유신론’을 저술했고 1926년엔 ‘님의 침묵’을 펴 냈다.1927년 민족운동단체인 신간회 결성에 참여했다. 심우장은 한용운이 3·1운동으로 3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한 뒤 성북동에서 어려운 생활을 하던 중 한 지인의 도움을 받아 1933년 땅을 매입하고 지은 집으로 심우장이란 이름은 선종(禪宗)의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는 과정을 잃어버린 소를 찾는 것에 비유한 열 가지 수행 단계 가운데 하나인 ‘자기의 본성인 소를 찾는다.’는 심우(尋牛)에서 유래한 것이다. 심우장의 가장 큰 특징은 북향인 점. 한용운은 조선총독부가 있는 남쪽과 마주치기 싫어 북쪽을 향해 집을 지었다. 하지만 한용운은 끝내 조국의 광복을 보지 못하고 1944년 이곳에서 생을 마쳤다. 8월 한 달 동안 매주 토요일 오후 2∼4시 심우장에서는 해설가의 도움으로 심우장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박지윤기자 jypark@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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