곳곳에 ‘죽음의 덫’… 야생동물 ‘살육’ 기승
#1 지난해 12월 경북 봉화군 태백산맥 자락의 산속. 생후 4년 된 산양(천연기념물 217호, 환경부지정 1급 멸종위기종)은 사정없이 내리치는 몽둥이질에 속수무책이었다. 밀렵꾼 박모(63)씨가 쳐놓은 강력한 덫은 도망도, 반항도 허락하지 않았다. 그렇게 숨져간 산양은 입을거리로 쓰기 위해 가죽이 벗겨진 뒤 사람들의 밥상에 올라감으로써 생을 마감했다. 산양은 우리나라에 겨우 수백마리 남아 있을 뿐이다.
#2 사진작가 최협(28·돌베개출판사)씨는 두 달 전 강원도 철원군 대마리 들판을 찾았다. 독수리가 허공 높은 곳에서 빙빙 맴도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니나 다를까. 현장에선 쇠기러기 수십마리가 흰 거품을 문 채 쓰러져 있었다. 사체를 부검하니, 식도엔 갓 삼켜진 듯한 볍씨가 잔뜩 들어있다. 누군가가 볍씨에 독극물을 묻혀 뿌려놓은 것이다. 최씨는 이런 경험이 “흔한 편”이라고 한다.
●“웬만한 산은 야생동물의 지뢰밭”
야생동물의 겨울나기는 힘겹다. 먹잇감이 적어서도 그렇지만 가장 큰 위협은 사람들의 밀렵이다. 동네 야산이든, 깊은 산속이든 올무나 덫·그물·총포·독극물 등 다양한 형태의 밀렵도구들이 장소를 가리지 않고 발견된다. 그래서 “야생동물에게 웬만한 산이나 들은 모두 ‘지뢰밭’”(야생동물보호협회 최인봉 부산·경남지회장)이라고 한다.
환경부에 따르면 지난 한해 동안 적발된 밀렵행위는 653건(971명), 밀렵·밀거래된 야생동물의 숫자는 957마리에 이른다. 멧돼지·고라니·너구리 등 포유류와 각종 조류, 양서·파충류 등이 망라돼 있다. 예년보다 다소 줄긴 했지만 밀렵행위 자체가 감소한 것은 아니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밀렵·밀거래가 더욱 은밀해져 적발되는 경우가 줄었을 뿐”이라는 주장이다. 지난해 수거한 올무 등 불법엽구(2만 449개)가 예년보다 훨씬 는 점도 이를 방증한다.
한번 밀렵도구에 걸려든 야생동물은 용케 구조되더라도 대부분 생사의 고비를 또 한번 넘어야 한다. 덫이나 올무에서 빠져나오려고 몸부림을 치다 다리가 부러지거나 살이 어 들어가는 경우가 다반사인데,“겁이 많고 예민한 고라니 등 초식동물들은 치료하는 과정에서 충격의 여파로 죽기도 한다.”(한국야생동물구조센터 조광일 원장)는 것이다. 수술에 성공해 살아남아도 이전과 같은 야생의 삶을 기대할 순 없다. 한 쪽 다리가 없어진 불구로는 아무래도 자연 도태될 확률이 높기 때문에 “무조건 방사하기는 어려운 실정”(조 원장)이라고 한다.
●年 시장규모 1500억… 주로 건강원 통해 거래
밀렵이 성행하는 건 물론 수요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수요는 야생동물의 ‘어느 부위가, 몸에 어떻게 좋다.’는 식의 ‘보신(補身)문화’에서 대부분 비롯된다. 환경부에 따르면 전국의 밀렵꾼은 1만 6000여명, 연간 시장규모는 1500억원으로 추산될 정도다. 최인봉 지회장은 “밀렵꾼들을 다수 거느리고 있는 건강원을 통해 주로 거래가 이뤄지는데 멧돼지 쓸개와 고기가 각각 50만∼150만원씩, 오소리는 100만원, 고라니는 40만원 정도”라고 말했다. 밀렵행위에 대한 단호한 처벌이 뒤따르지 않는 것도 밀렵을 부추기는 요인이다.“대부분 200만원 안팎의 벌금으로 끝나기 때문에 두 번만 밀렵해도 본전을 뽑는 구조가 문제”(야생동물보호협회 최성규 사무국장)라는 지적이다.
야생동물도 삶을 부지하기 위해 나름대로 대응 능력을 높여가고 있다. 멧돼지처럼 후각이 예민한 야생동물은 올무에 쉬 걸려들지 않을 정도다.“철사로 만든 올무에 녹이 슬거나 비에 젖어 있을 경우 냄새를 맡고 함정을 피해 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은 뾰족한 수가 되지 못한다. 언제나 한 술 더 뜨는 인간을 당해낼 수 없기 때문이다. 최 사무국장은 “요즘은 고무로 코팅한 올무나 스프링올무가 나오는 등 밀렵도구가 더 ‘발전’했고, 밀렵단속이 심해지자 등산객으로 가장해 도구를 등산가방에 넣고 다니는 등 갈수록 수법이 교묘해지고 있다.”며 혀를 찼다. 밀렵은 사람에 의한 ‘야생동물 잔혹사’나 다름없다는 얘기다.
박은호기자 unopark@seoul.co.kr
■ 야생동·식물보호법 문답풀이
지난해 2월 제정돼 1년간의 경과기간을 거친 뒤 오는 10일부터 발효되는 야생동·식물보호법의 주요 내용을 문답으로 간추린다.
●먹는자 처벌
야생동물은 어떤 경우든 먹어선 안되나.
-야생동물 32종(표 참조)만 해당한다. 합법적으로 허가를 받아 사육된 동물은 대상이 아니며, 밀렵되거나 밀수된 야생동물을 먹을 때만 처벌을 받는다.
밀렵 여부를 몰랐을 때는 어떻게 되나.
-밀렵된 사실을 알면서 먹을 경우에만 처벌한다. 그러나 자라 등 인공증식되는 일부 종(種)을 제외한 나머지 동물의 밀렵 여부는 상식적으로 판단이 가능하다. 식품위생법상 음식점에서 판매가 불가능한 데다, 고가로 은밀히 거래되기 때문이다.
해를 끼치는 멧돼지나 고라니를 잡아서 먹을 경우는.
-농작물·과수원에 해를 끼치는 경우 유해동물 포획허가를 받은 뒤 잡아먹는 것은 가능하다. 수렵장에서 수렵허가를 받은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것을 스스로 처분해야 하지, 판매·유통시켜서는 안된다.
●포획 금지
모든 종류의 야생동물 포획이 금지되나.
-포유류와 조류는 모든 종류가, 양서·파충류는 32종(표 참조)만 금지된다. 국내에 43종의 양서·파충류가 있는데 이 가운데 비교적 흔하거나 보신용으로 쓰이지 않는 11종은 대상이 아니다.
살모사 등 독사도 못 잡나.
-생태계의 중요한 구성요소이므로 이유없이 포획할 수 없다. 그러나 인체에 위해를 미칠 우려가 있는 경우는 허가없이 잡아도 된다.
학교에서 개구리 해부를 위해 잡는 것도 금지되나.
-학술연구 목적으로 지방자치단체장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사육 개구리를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박은호기자 unopark@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