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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외언내언

    『북한에도 개혁과 개방을 지지하는 세력이 있다.폐쇄경제·족벌주의·권력세습·고립주의 등에 반대하나 아직은 행동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과학자·지식인·관료등 이른바 테크너크랫들은 기술만도 북한이 한국에 20년은 뒤졌다는 등의 현실을 직시하고 있다』북한에 정통한 루마니아 반체제지도자였던 브루칸박사의 2년전 주장이다.◆얼마전 북한을 다녀온 대우의 김우중회장도 이런 말을 했었다.『북의 보수·개혁파간에 갈등이 빚어지고있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고위급회담때 남측언론의 과장보도로 보수파에 대한 입장이 곤란할 때가 많다는 말을 북측 고위층으로부터 들었다.대북관계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해 보인다』◆남북고위급회담을 통해 북대표들을 자주 대하는 사람들도 비슷한 말을 한다.직접적인 시청각감시를 당하는 평양이나 판문점회담땐 경직되는 북한대표들도 서울에 오고 사석에 가면 솔직한 심경을 털어놓는 경우가 많단다.이들이 말하자면 북한의 개혁파요 온건파가 아니겠느냐는 분석.그들의 입지를 돕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쉬운 일은 아니라는것.◆지난 22일 비무장지대의 북한군 군사분계선 침범사건에 대한 의혹이 무성하다.왜,지금,무엇때문에,무슨목적으로 그런 무모한 도발을 할필요가 있었겠는가.우발적 혹은 간첩침투 또는 화해분위기 교란? 그래도 의문은 남는다.남한의 자작 혹은 조작극이라 주장하던 북이 25일 「군사분과위」에선 화해방해목적의 「제3세력」소행일거라 주장해 응구와 호기심만 더욱 자극.◆북에도 온건개혁파와 이를 못마땅해하는 강경보수파의 대립이 있는 것인가.온건개혁파의 입지약화를노린 군일부초강경파의 자의적이며 의도적인 사건인가.북에 당정통일정책위배행동을할 무장세력은 있을리 없다는 주장도 이상하다.개혁개방의 온건파가 강경보수파의 저항을 살만큼 성장했다면 다행이지만 보수파저항이 걱정스러워지기도 한다.
  • 임란 4백년 세미나 참석/일 마키 히로시박사(인터뷰)

    ◎“한국인의 반일감정 임란의 상처때문” 『일본의 지식인들 중에는 「임진왜란이 도대체 무엇을 얻기 위한 전쟁이었나」 하는 근본적인 의문을 던지는 사람이 많습니다.전쟁의 참화에 비해 전쟁의 목적과 과정,수단이 허무맹랑하다는 것입니다』 일본인 지한파 학자로 잘 알려진 일본 동양대 동양학연구소 마키 히로시(전호사·72)박사가 지난주 한국문화재보호협회 주최로 열린 「임진왜란 4백주년 학술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에 왔다.그는 『7년동안의 전란으로 조선과 일본,명 등 3개국 국민들의 삶을 비참하게 만들고서도 결국 전쟁의 목적인 명나라 땅은 밟아보지도 못한 채 철군해야 했다』며 『선전포고도 없이 왔다가 항복선언도 없이 슬그머니 떠나가 버려 전쟁의 기본개념에도 들어맞지 않는다』고 말한다. 마키씨는 최근 김성한씨의 소설인 「임진왜란」을 일본어로 번역하고 있다.일본인 독자들을 위해 소설 원문 이외에 당시 일본과 중국의 국내사정도 포함시켰다. 마키씨가 「임진왜란」을 번역하게 된 것은 한국인들이 가진 반일감정의 뿌리를 일본인들에게 알려주기 위한 것.그는 한국인들이 임진왜란에서 마음의 상처를 크게 입어 그때부터 일본과 일본인을 적대시 하게된 것으로 보고있다. 마키씨는 그러나 자신이 「지한파」이긴 해도 주요 관심사는 한국의 의·식·주와 풍속이라고 말한다.그는 특히 한국의 음식에 보통한국인 이상으로 관심을 가지고 일본 사회에 한국 음식을 소개해왔다.10년 걸려 「한국음식 이야기」란 책을 일본에서 펴내기도 했다. 마키씨는 다음달 23일 일본 도쿄 한국대사관 문화원에서 열리는 세미나 「임진왜란의 재조명」에서 주제발표를 한다.
  • 뚝심과 결단의 역정40년… “정치거산”/김영삼후보가 걸어온 길

    ◎한번 만나면 “내사람”… 뛰어난 친화력/반독재투쟁 선봉… 숱한 박해 받기도/요즘도 아침조깅으로 건강다지고 경제공부에 열중 김영삼대표는 이제 출발점에 섰다. 「불굴」과 「좌절」이 교차됐던 기나긴 영욕의 정치터널을 지나 이제 명실상부한 집권여당의 대통령후보로 우뚝 선것이다. 긴세월,대권을 향한 「김영삼집념」은 이제 실현됐다. 그가 집권여당의 대권후보로 거듭나리라고 믿었던 사람은 없었다. 이것은 역사는 끊임없이 전진한다는 사실,또 내부적으로 극적인 반전효과를 지닌다는 속성을 여실히 보여준 것이다. 「미래의 대통령 김영삼」­중학시절 하숙방에 써 붙였다는 대망대로 그는 꾸준히 걸어왔다.특유의 뚝심으로 목표를 향해 밀어붙였다. 따라서 그는 격변하는 정치 소용돌이 속에서 항상 출발점에 서 있는 것처럼 보여졌다.목표와 그를 분리해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기지 않았다. 물론 집권당의 대통령후보가 됐다고 해서 곧바로 대통령이 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가장 유리한 고지에서 목표를 향하고 있다는 사실은 어느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다. 그가 이자리에 이르기까지는 핍박과 고통의 연속이었다. 이 과정에서 그는 단단해졌고 또 그의 표현대로 『결과에 승리가 있을뿐 패배를 생각해본적 없다』는 자기 암시가 가능해진 것인지도 모른다. 「40대기수 김영삼」「독재타도 김영삼」「군정종식 김영삼」「문민정치 김영삼」「큰정치 김영삼」. 그의 40년 정치역정을 대표하는 수사들이다. 「40대 기수론」도 그가 제창했던 구호였다. 또 반독재투쟁을 벌이면서 여러차례의 가택연금,23일간의 단식,국회의원직 제명,야당총재 직무정지등 숱한 고난을 겪었다.심지어는 가택연금중 자신의 장남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하는 등 인간적인 비애도 감수해야 했었다. 집권여당 대표로 변신한 이후에도 끊임없이 내부의 경쟁자들과 싸워왔고 이제 승리자로 남겨졌다. 그의 정치적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현재로서는 「타고난 감(감)의 정치인」「뛰어난 결단의 승부사」라는 그의 별칭에 그 기원을 둘수 있다. 또 40년 정치역정중 남달랐던 친화력을 꼽을수 있다. 여야로 나뉘어상대방 헐뜯기에 열중하던 시절,야당총재이던 YS를 남보다 앞서 비난했던 한 여권인사는 『가까이에서 보니 인간적인 매력을 느꼈다』『그의 정치적 투쟁과 소신이 새삼 돋보였다』고 지지로 돌아선 배경을 밝혔다. 무엇보다도 그의 화려했던 정치경력은 그가 정치 거목이었음을 입증한다. 의정사상 최연소인 26세로 3대국회의원 당선(54년 경남 거제)이후 5·6·7·8·9·10·13·14대 당선 기록은 현존하는 정치인중 최다선이다. 그의 정당생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화려하다.의정단상에 오른뒤 원내총무 5회,대변인 2회,4차례의 야당당수,13대대통령후보,여권의 2인자 등을 거치면서 「최연소 의원」「최장수 원내총무」「최연소 당수」등 거듭 신기록을 경신했다. 야당시절 투쟁경력도 그의 무게를 뒷받침하고 있다. 유신반대,80년이후 두차례에 걸쳐 2년간 가택연금,83년 5월18일부터 6월9일까지 민주화를 요구하며 23일간 단식,87년 6월항쟁의 선두에 나섰던 것이 대표적인 투쟁이다. 그가 당시 인용했던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말은 암울했던 시대적 상황과 함께 지식인들의 유행어가 되기도 했다. 그는 그러나 화려했던 야당시절,70년 신민당 대통령후보 경선전과 87년 대통령선거 낙선,88년 4월총선 패배등 뼈아픈 좌절의 시기를 맞기도 했다. 신민당 대통령후보 선거에서 승리를 장담했던 그는 후보경선 전날밤 승리를 낙관,후보수락 연설문을 다듬다가 마지막까지 대의원 포섭을 벌였던 김대중씨에게 2차결선투표에서 역전패하는 쓰라림을 맛보았다. 또 87년 대선에서 후보단일화 실패후 대통령선거에서도 낙선했고 뒤이은 총선에서도 제1야당의 자리마저 평민당에 넘겨주는 시련을 겪어야 했다. 그는 결국 민정·평민·민주·공화등 4당구조의 불안정을 극복하기 위해 「구국의 결단」이라는 명분아래 3당통합을 결행,집권당 2인자 자리를 확보했다. 지난 89년 6월 당시 민주당총재 자격으로 소련을 방문한데 이어 90년 3당통합후 민자당대표자격으로 미수교국이었던 소련을 다시찾아 고르바초프대통령을 면담,한소수교의 물꼬를 트는등 정당외교사에 새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듣기도했다. 그는 여당으로 변신한후 「감각과 이론」을 겸비한 정치인으로 거듭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으며 특히 경제전문가들로부터 거의 매일 경제강의를 받는등 국가의 경제활력제고에 남다른 관심을 쏟고 있다. 27년 12월20일생으로 금년 65세인 그는 요즘도 새벽 5시30분부터 6시30분까지 상도동자택 인근 야산에 올라 4㎞씩 조깅을 하며 건강을 다지고 있는데 조깅을 시작한지 25년동안 비가오나 눈이오나 해외출장중일때도 하루도 빠짐없이 계속하고 있어 그의 끈질긴 승부근성의 일면을 엿보게 한다. 늘웃는 얼굴로 사람을 대하지만 그는 유신직후 가택연금을 당하자 양주 두병의 주량과 하루 서너갑씩이나 피우던 담배를 하루아침에 끊을만큼 「독기」도 있다. 김대표는 6남매중 외아들로 부인 손명순여사와의 사이에 2남3녀를 두고 있으며 마산에 거주하는 부친 김홍조옹(81세)에게 매일 아침저녁 문안전화를 드리는등 극진한 효자로도 알려져 있다. 아무튼 김대표는 『세상을 살아가는데 과거도 현재도 중요하다.그러나 어제보다 오늘,오늘보다는내일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제 더 중요한 내일을 위한 출발인 것이다. ○김영삼후보 연보 ▲54∼58년 제3대 민의원 ▲60∼61년 제5대 민의원 ▲63년 신민당 부산시 당위원장 ▲63∼67년 제6대 국회의원,민정당 선전부장,민중당 원내총무겸 대변인 ▲67∼72년 제7대 국회의원,신민당 원내총무,정무위원 ▲71∼72년 제8대 국회의원,한국문제연구소 소장 ▲73∼79년 제9대 국회의원,신민당 부총재,정무회의 부의장,총재겸 지도위원회 의장,정무회의 의장 ▲74년 미타우슨 주립대 명예문학박사학위 수여 ▲76년 신민당고문 ▲79∼80년 제10대 국회의원,신민당총재 ▲79년 총재직무집행 가처분,의원직제명 ▲80년 정치활동규제 ▲81년 민주산악회 결성 고문 ▲82∼83년 2년동안 가택연금 ▲83년 단식투쟁(23일간) ▲84∼87년 민추협 공동의장 ▲85년 민족문제연구소 고문 ▲86∼87년 신민당 상임고문 ▲87년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 고문 ▲87년 통일민주당 창당준비위원장 ▲87∼88년 통일민주당 총재,대통령후보 ▲88년 제13대국회의원 ▲88∼90년 통일민주당 총재 ▲90년 민자당 대표최고위원 ▲91년 윤봉길의사 의거 제6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장 ▲92년 제14대 국회의원 ­40대 기수론(71년) ­정직과 진실이 승리하는 사회(87년) ­민주화 구국의 길(87년) ­나의 결단(87년) ­지도자의 길(몽고메리저) ­생을 뜻있게 보내려면(윌리엄 J 래이리 저)
  • 아직도 사회주의 혁명인가(사설)

    아직도 이땅에 파르티잔식 보급투쟁으로 자본주의와 정면대결하면서 사회주의 폭력혁명을 기도하는 세력이 있었는가.그사실에 우리는 보통사람들로서의 상식에서 귀와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로맹」들은 3천5백여명의 조직체로서 공장들과 대학가에 침투하려했고 은신처와 인맥을 이용하며 공산주의식 비밀공동생활을 유지,암약했다.정말이지 놀랄일이다.그들의 황당한 사회주의 이념과 폭력혁명 논리를 비판하기에 앞서 그들이 세상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사실에 아연할수밖에 없다. 그들은 대개 지식인들이다.조금이라도 배운사람이라면 그가 발딛고 사는 세상과 현실에 대한 「생활인식」이 있을 것이다.일찍이 공산주의혁명전략사상의 종주국이요,지난 70여년간 사회주의이념과 체제의 실험실이었던 소비에트 사회주의공화국연방은 이미 세상에 없다. 정통마르크스 레닌주의도 사라졌고 계급혁명이론이나 무산자에 의한 폭력혁명도,또 자본주의의 필연적인 소멸이라는 자의적인 변증법적역사발전의 이론도 지금은 박물관의 유물전시관에서밖에 찾을 수 없다.공산주의 정당은 이제 북한땅에서 간신히 「우리식 사회주의」라는 이름으로 남아있고 공산주의 중국에서 역시 그 국가이념자체로는 색이 바랜채 자본주의를 실험하는 이른바 주자적개혁과 개방속에서 퇴색되고 있다. 그런데 「사로맹」들은 마르크스 레닌주의를 혁명이념으로 삼아 노동자 계급중심의 폭력투쟁으로 현 정부를 타도하고 사회주의를 건설한다는 노선을 추진해왔다.좌우익이 대립하던 건국초기의 혼란기에 조직된 남로당말고는 정부수립 이후 「남민전」등 크고 작은 좌경조직들이 당국에 적발되기는 했으나 이 「사노맹」과 같이 조직원들의 수가 많고 체제가 완비된 조직은 없었다는 당국의 설명이다. 「…남한의 혁명적 사회주의 운동의 실날을 이어 사회주의 혁명투쟁에 살고 죽으려한다」는 출범선언문을 보면 이른바 극좌노선의 마르크스 레닌 교조주의 맹신자들이 분명하다.시대조오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역사전개의 측면에서 정치사회의 발전이론으로 볼때 지배세력의 억압과 부의 불공정한 배분에 저항하는 이른바 변혁이데올로기는 어느한면 긍정적인 평가를 가질수 있다.그러나 우리가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발전과 변혁의 이데올로기를 정립하더라도 이미 폐기처분된 마르크스 레닌이나 스탈린·모택동·김일성의 낡은 교조만은 답습하지 말라는 것이다. 「사노맹」의 허황된 노선이 우리 현대사에 대한 극좌계열의 이론적왜곡에 바탕하고 있다면 그것도 문제이다.그러나 이른바 그 「주사파」들도 이제 우리의 대학가나 노동계를 오염시킬수는 없다.「사노맹」들의 철없음을 탓함과 함께 그들 극좌파운동논리의 역사왜곡을 단절·발본할 계기에 이르렀다고 우리는 보는 것이다.
  • 필리핀 대선/투표 하루 앞으로… 표밭기류 점검

    ◎라모스­미트라 대접전/인신공격 난무속 분위기 혼탁/코후앙코,마르코스 기반 흡수 “맹추격”/이멜다·라우렐도 참여… 큰 변수 못될듯 지난 86년 2월의 피플 파워(시민혁명)로 마르코스독재를 종식시킨지 6년만에 처음으로 치러지는 필리핀의 대통령선거가 폭력과 쿠데타설이 나돌고있는 가운데 오는 11일 실시된다. 대선과 함께 부통령·상하원 및 주지사·지방의원등 1만7천2백여명의 각급 지방행정 책임자를 선출하는 선거도 이날 동시에 치러져 필리핀열도는 지금 「선거열풍」에 휩싸여있다. 대권고지를 향해 치열한 각축을 벌이고있는 후보는 7명으로 이중 피델 라모스 전국방장관과 라몬 미트라 하원의장,그리고 독재자 마르코스 추종세력인 실업가 에두아르도 코후앙코등 3명이 선두다툼을 벌여왔다. 아키노 대통령의 지지를 받으며「안정속의 개혁」을 내세우고 있는 라모스와 집권 필리핀 민주투쟁당(LDP)의 공식후보인 미트라등 두명의 여당 후보가 한치의 양보도 없이 팽팽한 접전을 벌이고있는 가운데 코후앙코는 마르코스 지지기반의 상당부분을흡수하고 있으나 카톨릭계의 배척 뿐만아니라 지식인층의 그에대한 거부감도 만만치않아 결과를 예측하기가 쉽지않다. 이밖에도 미리암 산티아고(여)전농지개혁장관을 비롯,호비토 살롱가전상원의장,「3천켤레 구두」의 주인공 이멜다 마르코스,반아키노기치를 내세운 국민당의 살바도르 라우렐 부통령도 대통령경선에 나섰으나 당선 가능성은 희박한 편이다 현지 분석가들은 6년전의 마르코스­아키노 대결 때와는 달리 이같은 후보 난립상의 원인을 아키노현정권의 실정과 지도력 부재에서 찾고있다.국민들의 열화같은 지지로 취임한 아키노대통령의 집권기간동안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로 떨어졌으며 필리핀내 미군기지를 둘러싼 국론분열,정책집행 과정에서의 우유부단,그리고 정부내의 부패등으로 인해 여·야를 막론하고 후보조정 기능이 약화됐기 때문이다. 이번 선거를 앞두고 집권세력이 내부분열을 겪고있는 직접적인 이유는 지난해 11월 전당대회에서 LPD창당을 주도했던 「조직의 명수」미트라가 차기 대통령후보로 결정됐으나 아키노대통령이 이를 뒤집고 라모스를 후계자로 지명했기 때문이다.아키노의 라모스에 대한 지지는 마르코스 정권말기에 반란에 가담,86년의 피플파워를 성공적으로 이끌고 자신의 집권기간에 발생한 7차례의 쿠데타를 진압한 공을 인정한 것이지만 과거 인권탄압에 대한 그의 전력시비로 종교계와 지식인들의 반감이 만만치않다. 이와관련,전국민의 85%가 카톨릭신자인 필리핀의 정신적 지주 하이메 신추기경은 최근 『과거 마르코스시절 거들먹거렸던 인물들에게 표를 던져서는 안된다』며 라모스·이멜다·코후앙코및 개신교도인 살롱가등을 이번선거에서의 기피인물 명단에 올려놓고 있어 주목되고 있다.
  • 김영삼대표 명예훼손/월간잡지 발행인 구속

    서울지검형사2부 배성수검사는 7일 「민자당 김영삼대표에게 숨겨놓은 딸이 있다」는 허위기사를 실은 월간잡지 「인사이더 월드」발행인겸 편집인인 손충식씨(51)를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혐의로 구속했다. 손씨는 이 잡지 5월호에 「김대표가 60년대초 서울 종로구 소재 모요정에서 당시 인기절정에 있던 기생 이모씨를 만나 딸을 낳았으며 이 딸이 일본식인 가네다 가오리란 이름으로 지금 뉴욕에 살고 있다」는 허위기사를 게재해 김대표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를 받고 있다.
  • 백악관레이스 먹구름… 부시 당혹

    ◎부시/연방군투입결정등 조기수습 부심/클린턴/흑인표 겨냥 “사법제도 잘못” 맹비난 로스앤젤레스 흑인폭동수습을 위한 미연방정부의 대처방향은 두가지로 나눠 생각할 수 있다. 하나는 법과 질서유지를 위해 연방정부가 직접 나서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번 로드니 킹사건 관련 4명의 경찰관을 연방민권법에 의해 사법처리하는 방안이다. 부시대통령은 LA소요사태가 이틀째 계속되고 다른 도시에서도 흑인들의 항의시위가 벌어지는등 전국규모의 본격적인 흑백마찰로 확산되자 이날 낮 4천명의 연방군 병력과 1천명의 연방경찰을 LA흑인폭동사태 진압을 위해 파견토록 명령했다. 그러나 이들 병력중 연방경찰은 즉시 시내로 투입돼 치안유지에 동원될 것으로 알려졌으나 연방군은 필요시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투입될 수 있는 LA의 한 병력집결지로 우선 이동할 뿐 바로 투입되지는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부시대통령은 또 『끝까지 주정부와 시당국이 해결할 수 있도록 노력하라』고 강조하고 있어 어쩔수 없이 투입결정은 내렸어도 내심으로는 연방군이 직접 이 사건에 개입하는 것은 원치 않는듯한 인상을 풍기고 있다. 부시대통령은 30일 성명발표를 전후하여 피트 윌슨 캘리포니아주지사,톰 브래들리 LA시장 등과 전화통화를 한뒤 윌리엄 바 법무장관및 행정부내 유일한 흑인각료인 루이스 설리번 보건후생부장관 등과 긴급회동,소요사태의 조기수습을 위해 연방정부가 취할 수 있는 방안들을 협의했는데 여기에서는 관련경찰관에 대한 사법처리가 일차 거론된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법무부당국은 부시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관련경찰관들이 직무집행에 있어 인종차별을 해서는 안된다는 민권법을 위반했는지를 철저히 조사할 것이라고 밝혔기 때문이다. 바 법무장관이 『배심원의 무죄평결로써 이번 사건의 모든 절차가 끝난것은 아니다』라고 말한 것은 연방검찰이 관련경찰에 대한 조사를 한뒤 이들을 기소할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이번 사건이 흑인들의 분노를 폭발시키게한 직접적인 동기는 『81초짜리 비디오 필름이 생생히 보여준 「잔인한 공권력」의 현장이 인종차별을 바탕에 한법의 불공정한 집행』이라는 것이었기 때문에 부시대통령으로서도 이 점을 분명히 규명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번 사건이 부시대통령을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는 이유중의 하나는 11월의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있다는 시기적인 미묘성이다. 다시 말하면 이번 사건의 처리향방은 곧바로 표의 흐름에 어떤 형태로든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고 따라서 부시행정부로서는 신중한 태도를 견지해야하는 입장이다. 부시대통령의 이날 성명에서도 나타났듯이 부시는 이번 사건에 대해 기본적으로 양비론의 입장에 서있다. 『경찰의 과잉진압에도 관심을 가지지만 이와 동등하게 법과 질서의 파괴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 대목은 「관련경찰」도 잘못됐고 「폭도」들도 잘못됐다는 시각이다. 이같은 양비론적 입장은 국정최고책임자로서 당연한 언급이기는 하겠지만 선거득표전략의 차원에서 보면 흑인표도 놓쳐서는 안되겠고 그렇다고 「보수세력」의 표도 잃어서는 안되겠다는 고려라고도 할 수 있다. 민주당의 유력한 대통령후보인 빌 클린턴은 『부시는적어도 「비디오 필름」이 단순히 흑인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미국인으로 하여금 평결의 공정성에 의문을 제기토록 했다는 사실을 인식했어야 했다』며 부시대통령의 「보수적」인 시각을 은근히 비판,흑인들에게 환심을 사는 제스처를 취했다. 민주당의 대통령후보지명 경쟁자인 제리 브라운도 『배심원의 평결은 우리의 현행사법제도로서는 특히 경찰관을 처벌할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것』이라고 지적,정부의 공권력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부시대통령은 흑인표를 겨냥한 야당 경쟁자들의 비판을 상쇄시키기라도 하겠다는 듯이 금주중에 전국의 지역사회지도자들과 만나 인종갈등문제를 협의할 것이라고 백악관 대변인을 통해 발표하는등 민감하게 대응하고 있다. 이번 사건은 또 지난 68년 마틴 루터 킹목사 피살사건을 계기로 전국을 휩쓴 폭동이후 마련된 민권법의 엄격한 이행을 총점검하는 촉진제가 될것 같다.흑인사회뿐만 아니라 미국의 지식인들은 이번 로드니 킹사건을 계기로 미국의 양식에 비추어 과연 편협한 인종주의가 전혀 없는 것인지를 냉철히 따져야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미연방정부가 이번 사건의 심각성을 직시,민첩하게 대응하고 있고 법과 질서를 존중해야한다는 여론이 비등하고 있으나 이번 사태가 쉽사리 진정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 14년내전 끝났어도 「불씨」는 잠복/불안한 과도정부의 앞날

    ◎주도권 노리는 강경파향배가 변수/내전 재개땐 유고식분열 가능성도 아프가니스탄의 이슬람 집권평의회가 28일 정권을 공식인수함으로써 14년에 걸친 아프간내전은 반군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그러나 아프간 새정부의 앞날이 결코 순탄한 것만은 아니다.이제까지는 공산정권타도라는 공통된 목표를 위해 서로 이념과 노선을 달리하는 반군파벌들간에 협조체제를 유지할 수 있었지만 공통목표가 사라진 지금 각 파벌들은 주도권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어 집권평의회의 지도아래 하나로 뭉칠 수 있을지 매우 불투명한 실정이다. 아프간반군의 양대세력 지도자인 온건파의 아메드 샤 마수드와 강경파의 굴부딘 헤크마티야르가 집권평의회의 의장이 되지 못하고 집권기반이 약한 시브가툴라 모자디디가 2개월간의 과도기간 지도자로 선출된 사실이 반군파벌간의 화합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보여준다.모자디디의 선출은 반군파벌간의 타협의 결과지만 14년의 내전기간중 어떤 합의사항도 장기간 지켜본 경험이 없는 반군 각 파벌이 이같은 타협을 얼마나 오래 지켜나갈 것인지 현재로선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따라서 모자디디가 풀어야할 첫번째 과제는 이념과 종파·종주이 제각각인 각 파벌들을 하나로 단합시키는 것이다.그리고 이를 위한 최대관건은 집권평의회에의 참여를 거부하고 있는 헤크마티야르를 어떻게 무마하느냐에 달렸있다. 그러나 이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모자디디는 헤크마티야르를 「살인자」라고 비난하는등 둘사이가 극도로 좋지 않기 때문이다.더욱이 헤크마티야르는 이스람법률의 엄격한 적용을 고집하고 있어 온건노선의 모자디디와는 융합하기 어려운 형편이다.반면 마수드는 이슬람정부가 수립되더라도 회교법률의 적용에는 비교적 탄력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어 모자디디를 비롯한 반군들의 상당수로부터 지지를 받고 있다.또 이란과 같은 강력한 회교정부의 출현을 께름칙하게 생각하는 서방세계도 헤크마티야르보다는 마수드를 환영하는 입장이다.그러나 문제는 헤크마티야를를 완전히 제외시키고는 아프간의 평화정착이 보장될 수 없으며 그를 제외시킬 현실적인 방법도 없다는데 있다.따라서 헤크마티야르를 집권평의회안에 끌어들이지 못하는한 모자디디는 반군파벌들간의 반목과 대립에 시달릴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할 수 있다. 만일 반군들간의 타협이 깨져 내전이 다시 벌어질 경우 아프간이 유고와 같이 분열될 가능성도 많다.이는 다수민족인 파슈툰족을 이끌고 있는 헤크마티야르가 정권인수에 실패할 경우 파슈툰족만으로 독립국가를 건설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그럴 경우 소수민족인 타지크·우즈베크족으로 구성된 새 국가의 탄생이 불가피한데 중앙아시아의 회교공화국들을 포함한 주변지역들로 아프간사태의 여파가 확산될 것을 국제사회는 우려하고 있다. 한편 농업을 주산업으로 해온 아프간의 경제는 14년에 걸친 내전으로 논밭이 지뢰밭으로 변해 경작이 거의 불가능해지는등 완전한 피폐상태에 놓여 있다.그러나 이처럼 시급한 경제문제를 눈앞에 두고도 이의 해결을 위해 매달리지 못하고 반군파벌간의 대립과 반목을 방지하는게 더 급하다는 사실이 아프간이 처한 어려움을 입증하고 있다.수니파와 시아파,파슈툰족과타지크·우즈베크족의 대립등 모자디디의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는 아프간반군간의 복잡한 대립은 내전종식이 아프간사태의 해결이 아니라 새로운 문제의 시작임을 보여주고 있다.
  • 「임진왜란」펴낸 일인작가/오다 마코토씨(인터뷰)

    ◎“정신대등 일 침략역사 작품화할터” 『일본이 한국을 침략했던 사실을 일본인의 한사람으로서 부끄럽게 생각합니다.한일간의 바람직한 관계 정립은 일본이 침략사실을 인정하고 이를 청산하는 일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자신의 「임진왜란」소설과 수필집 「오모니」의 국내출간에 맞춰 28일 15박16일 일정으로 한국을 방문한 일본의 진보적 작가이자 사회운동가인 오다 마코토씨(소전 실·60)는 기자회견에서 『한일간의 과거청산으로 양국이 서로 돕게됨으로써 세계에의 공헌도를 높일 수 있으며 그 실질적 방편으로 양국민들간의 개별적 교류가 증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다씨는 또 작가로서 『조선인 강제연행과 정신대문제등 일본의 침략역사를 작품화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며 『이를 논의하기 위해 한국의 작가들과도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89년 소설 「히로시마」로 제3세계의 권위있는 문학상인 로터스문학상을 수상할만큼 저명작가인 오다씨는 일본 TV방송에 나가 『침략적인 천황제를 폐지해야 한다』고 서슴없이 말할정도로 일본의 깨어있는 양심적 지식인.최근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 움직임은 『사회주의와 제3세계가 붕괴되고 오직 부자나라와 가난한 나라만이 남은 시점에서 부자나라인 일본의 오만불손한 태도』라고 거침없이 비판했다. 또한 75년 한국의 반체제 시인 김지하씨 석방을 위한 집회를 주관하기도 했던 오다씨는 그의 거의 모든 작품에 한국인이 등장할 정도로 한국에 호감을 가진 친한작가로 꼽힌다.이번에 국내에 번역소개되는 수필집 「오마니」는 그의 한국인 장모를 따뜻한 사랑과 존경의 시선으로 바라본 글모음이며 「임진왜란」소설은 일본 소년 소녀의 눈을 통한 객관적 시각으로 조선민중의 아픔까지도 포용하고 있다. 현재 한국과 일본,중국 등의 역사를 총체적으로 끌어들이는 대하소설을 구상중이라는 오다씨는 한국문학및 문화에도 관심이 많다며 자신이 참여한 「중심21」이란 단체 주관으로 오는 9월중 한국에서 심포지엄을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재일교포인 부인 현순혜씨와 딸 나라양과 함께 내한한 오다씨는 출판기념회·강연회 등에 참석하고 5월13일 출국할 예정이다.
  • 인기끄는 이규학박사의 신건강학강좌를 소개하면…

    ◎“암예방위해 TV·컴퓨터 멀리하라”/유해 전자기파가 암발생의 중요인자/가공식품 삼가고 김치등 발효식 먹길/재미과학자… 암을 생리학·물리학 연계 연구 요즈음 지난89년 엔돌핀생성촉진론의 「이상F열풍」을 연상케 하는 「암을 예방하려면 유해 전자파를 차단해야 한다」는 새로운 건강학인 「이규학 선풍」이 불고있어 주목을 끌고 있다. 서울에서 있은 한 강연에서 3시간이상 질문공세를 받은 적이 있는 이규학박사(50·미머시의료재단 산하 생전자기파및 DNA생체전자기파연구소부소장).최근 전주·광주등 지방강연을 다녀왔으며 27일 하오1시 대한암협회(이사장 서울대 내과 김진복교수)주최로 한국종합전시장에서 「암예방치료 무료강좌」를 갖는등 신건강학 강연이 인기이다. 이박사의 신건강학 요지는 『우주전자기파,지하전자기파,인조전자기파등 외부에서 발생하는 전자기파의 차단과 생체전자기파를어떻게 조절하느냐가 암예방의 요체』이며 『TV·컴퓨터등을 생활공간에서 멀리하고 집주위에 나무를 심으며,튀김류나 가공식품을 삼가고 2차 발효식품인 한식을 먹으라』는 것. 이박사는 또한 암은 어느날 갑자기 뛰어든 침입자가 아니고 몸속에서 오랫동안 함께 자라온 변이세포라며 환경·음식물등 외부 자극을 차단해 줄것을 강조한다. 이박사는 지난 82년 전자기파에 노출된 심장과 신장의 변이를 연구,명성을 얻은 생체전자기파의 권위자.그가 연구해온 의물리학은 1백여년전 퀴리부인이 시조로 인체를 생리학적 측면에서 물리학으로 분해하는 학문.50년대부터 생리학과 연계시키면서 인체의 암기전을 연구하다가 70년대들어 노벨의학상을 받은 서전트 게오르기박사에 의해 생체전자기파와 암관계의 규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현재 에르빈 네허·서전트 게오르기등 39명의 노벨수상자를 비롯,3백20여명이 학회를 구성해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의학자들은 암은 박테리아의 일종인 헬리스벡터 파이로리,바이러스 등에 의해 정상세포가 암세포로 변한다는 것으로 1천7백11종의 식물안에 있는 독성,각종 가공식품의 독성및 화학성분이 작용하는 것으로 추측한다.또 생물학자들은 DNA복제과정에서DNA가 태우거나 기름에 튀길 경우 생기는 화학물질인 벤조피렌 등이 DNA분자구조와 비슷하므로 자기 것으로 착각해 정보를 줘 활성산소가 생성,간여함으로써 오는 유전변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의물리학에서는 세포와 세포사이에 있는 전자기파의 통로에 지나치게 콜레스테롤이 낌으로써 외부의 간섭을 받거나 내부의 생체전자기파가 에너지균형을 깨면 세포사이에 병목현상이 생겨 에너지불균형 상태가 초래돼 대사장애를 가져옴으로써 발병한다는 것. □예방을 위해서는 우주환경에서 오는 등의 우주전자기파·땅속 깊은 곳에서 나오는 지자기·지전기·지방사선 등의 지하전자기파,통신과 TV·컴퓨터 등으로부터 생성되는 인조전자기파 등으로부터 격리시키고 음악을 듣는 등으로 평화스런 상태를 유지해 생체전자기파를 조절하는 것이다.식생활은 튀김류나 바비큐류의 가공식품은 삼가고 전자기파에 의해 생긴 활성산소의 활동을 없애는 2차숙주(2번발효)음식인 된장·김치등 한식을 즐겨 먹는것이 좋다. □치료의 경우 현대의학은 조기발견→수술→면역요법및 화학요법,조기발견→방사선치료→면역요법 등의 수순을 밟는 것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의물리학에서는 암인 악성종양을 떼어냈다고 치료가 끝난 것이 아니라 암의 발생메커니즘은 그대로 살아있으므로 이를 찾아 원천봉쇄해야 한다는 것이 이박사의 주장. 1차적으로 수술등 병원치료를 받은 후 재가치료를 과학적이고 항암적으로 하는 것이 중요하므로 TV·컴퓨터 등을 멀리두고 집주위에 나무를 심는등 발암기전을 제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 “중국의 고르비”/주용기 차기총리 물망

    ◎상해시장 재직때 증시개설·개혁주도/한때 우파로 몰려 숙청… 서방서도 지지 서방에서 「중국의 미하일 고르바초프」로 불리는 부총리 주용기(63)가 금년 후반 중국의 총리 자리를 차지할 가능성이 있는 인물로 국내외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중국정부내의 온건파 관리들과 지식인들,그리고 중국과 사업하는 외국의 기업체 간부들은 한결같이 금년 후반 중국공산당의 제14회전국대표대회(14전)에서 주가 총리직에 오르게 되기를 열렬히 희망하고 있다. 무엇보다 주의 강점은 과거의 금기를 과감히 무시하고 새로운 변화를 선도할수 있는 능력으로서 그는 지난 88년 상해 시장 재직시 중국 최초의 주식시장을 개설하자는 진보적 경제학자들의 건의에 처음에는 반대했으나 곧 주식시장에 대한 연구에 골몰한 끝에 열렬한 주식시장 지지자가 되었던 인물이다. 그로부터 4년후인 지금 상해의 주식시장은 번창하고 있으며 주는 막강한 부총리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주는 중국의 새로운 지도자그룹의 선두주자로서 다른 지도자들처럼 소련에서 교육을 받은 일이없으며 비교적 자유로운 진보파이다. 중국 경극의 열렬한 팬이기도 한 주는 오는 14전대회를 앞두고 권력 투쟁이 전개되자 조용하지만 확고한 발걸음으로 개혁 선도자의 역할,최고 실권자인 등소평이 연출하는 개혁이라는 연극에서의 주인공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등소평이 수주전 개혁의 가속을 촉구한 이래 주는 더욱 활발하게 개혁의 선도역할을 맡고 나섰다. 그는 각료들을 만나 등의 지시를 수행하는데 방해가 되는 모든 행정적 권한을 포기하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큰 키에 유창하게 영어를 구사하는 그는 서방으로 볼때도 가장 인기있는 대화상대자가 되어 있다.현재의 총리 이붕은 지난 89년 천안문학살의 그림자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한채 서방으로부터 기피되고 있다. 북경의 권위있는 청화대학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한 주는 21세에 공산당에 입당했으나 변화에 관한 그의 열광은 곧 말썽을 일으켰다.그는 57년 지도층를 비판한 뒤 「우익분자」로 숙청되었다가 22년이 지난후에 복권되었다. 그는 89년 천안문사건당시 군대가 상해시내로 들어오지못하도록 저지함으로써 많은 찬사를 받았다. 그러나 분석가들은 중국의 고르바초프인 그가 경제적 변화에 대한 소신과 함께 정치문제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확실히 밝혀야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지난 91년 4월 부총리에 승진한 이래 그는 강력한 권한을 행사하고 있다. 그는 내각의 국가생산국을 이끌면서 중국의 가장 중요한 경제 문제을 해결하고 국가산업 분야에 시장경제제도를 도입하려는 과감한 계획을 제시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이같는 자리는 양쪽 날을 가진 칼과 같은 것이어서 그가 성공을 거두면 정치적 행운을 함께 얻을 수 있으나 실패하면 그 반대의 결과를 감수해야 한다. 그가 특히 외국의 기업인들 사이에서 높은 인기를 누리는 이유는 관료주의에 대한 강력한 반대자라는 점이다. 『그는 외국 기업인들에게는 최고의 친구이다』고 한 미국회사의 북경사무소 대표는 말했다. 그러나 이같이 국내외에서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능력보다는 인간 관계가 더 큰 작용을 하는 중국이라는 나라에서얼마나 많은 지지를 얻을 수 있을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 이붕이 14전에서 교체되는 것은 거의 확실하지만 지난 87년에야 중앙위 후보위원에 선출된 주의 중앙위내 위치가 아직 확고하다고는 말할 수 없어 그의 총리직 승진이 보장된 것은 아니다.
  • 등,북경대보수성 비난/“개혁반대” 공격보고서 작성 지시

    【북경·홍콩 로이터 연합】 중국 최고지도자 등소평은 경제개혁을 가속화하기 위해 강경파들에 대한 권력투쟁을 마침내 북경대학으로 까지 끌고 들어가는 대담하고 위험스런 도박에 나섰다.등소평은 지난 3월 일부 대학생들과 교수들을 소집해 북경대학 당국이 경제개혁노선을 포기하고 등의 심천 등 남부지역 순회연설인 「남순강화」를 막기 위해 여러 방법들을 동원했다고 비난하는 보고서들을 작성토록 했다고 정통한 중국 소식통들이 22일 밝혔다. 소식통들은 이 보고서들이 중국공산당 최고위층으로 보내졌으며 등의 지지자들은 이를 무기로 사용할 것이라고 말하고 등이 지지를 찾아 대학으로 나선 것은 개혁정책을 저지하려는 반대파 세력에 대한 그의 좌절과 분노를 표시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등의 자녀들을 포함한 그의 측근들은 개혁파 지식인들을 적극적으로 포섭하고 있다고 홍콩의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지가 23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중국 소식통들을 인용,등소평의 장남 등박방(중국장애자협회 주석)과 2녀 등남(국가과학기술위 부주임)및 막내 딸 등용(등의 비서격)을 포함한 그의 측근자들이 최근 여러 지방을 방문하면서 중앙과 지방의 개혁파 간부 및 지식인들과 관계를 강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 「백범암살 재조명」 계기 책출간·연구모임 잇따라

    ◎“친일청산” 학계논의 활발/친일파 인명사전·역사강좌 등장/“일시적관심 아닌 현대사정립 계기로” 지적 백범 김구선생의 암살사건 배후에 친일경력을 지닌 지배세력이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친일청산에 대해 학계는 물론 일반인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백범의 일생과 친일문제를 다룬 책들을 찾는 사람들이 줄을 서고 있고 재야사학자 고 임종국씨가 정리한 친일관련자료집 「친일파 인명사전」「임종국전집」「친일파총사」등이 잇따라 발간될 예정이며 이문제를 특집으로 다룬 잡지가 발간되고 시민역사강좌가 열린다. 역사문제연구소(소장 이리화)는 오는 23일부터 6월4일까지 연구소 강연실에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친일파·민족반역자 열전」이라는 주제로 한국사교실를 개최한다.매주 목요일 하오 7시에 열리는 한국사교실은 모두 7차례에 걸쳐 친일파집단의 형태를 유형별로 나눠 대표적인 인물들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오는 23일 서중석교수(성균관대)의 「친일파를 다시 본다­친일파·민족반역자에 대한 역사적 평가」라는 제목의 강의로 시작되는 이번 「친일파강좌」는 이리화소장의 「영원히 씻을 수 없는 매국노의 오명­이완용·송병준」,문학평론가 임헌영씨의 「친일을 애국으로 착각한 지식인들­이광수·최남선」,박현채교수(조선대)의 「비행기를 헌납한 친일기업인들­박흥식·문명기」,미술평론가 윤범모씨의 「일제를 위해 붓을 잡은 화가들­김기창·김은호」,강정숙씨(영남대 강사)의 「이땅의 아들 딸을 전쟁터로 몰아낸 여성명사들­김활란·모윤숙」,그리고 방기중연구실장의「8·15이후의 친일파집단­이승만정권을 떠받친 경찰·관료·지식인들」순서로 진행된다. 서중석교수는 『근·현대사를 연구하는데 있어 친일파의 문제를 항상 걸림돌이 되어왔다』고 전제하고 『해방을 맞은지도 반세기가 되어가는 시점에서 과거사에 대한 처벌보다는 잘잘못을 학문적으로 정확히 분석하고 특히 이들이 친일행위를 하게 된 동기와 배경및 구체적인 과정을 규명해내는 일은 현대사를 제대로 이해하는 길』이라면서 이번강좌의 기획의도를 설명했다. 그동안 일본문제를 자주 다뤄온 격월간지 「순국」도 이와같은 맥락에서 3·4월호에 「한국현대사를 움직인 친일군상」이라는 특집을 실고 친일문인과 친일교육계인사,친일화가·음악가·영화인 그리고 언론인등으로 분야를 나눠 친일파문제를 다루고 있다. 지난 2월말 반민족문제연구소(소장 김봉우)가 주최한 「식민지배 청산문제의 민족사적 이해」라는 주제로 열린 3·1절기념학술심포지엄에서도 친일파문제가 본격적으로 논의됐는데 이 자리에서 참석자들은 친일파문제를 비롯,식민지배의 청산은 민족의 주체적·평화적 재통일의 방향을 설정하는데 불가결한 밑거름이라는데 의견을 모으고 연구에 박차를 가할 것을 다짐했었다. 그러나 친일파연구는 친일파의 대명사격인 이완용이라는 인물을 분석해놓은 논문 한편 없을 정도로 아직은 미진한 상태이다. 이에대해 서중석교수는 『현재 학계의 연구가 초보단계에 머물러있지만 관련자료도 풍부하고 연구의 필요성에 인식이 모아져 일단 연구만 시작되면 해방전후 우리 현대사에 대한 종합적인 연구의 기초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학계의 연구와 함께 최근 정신대문제와 MBC­TV에서 방영되고 있는 「분노의 왕국」등을 둘러싼 한일양국간의 외교적인 갈등,일본의 재무장·군사대국화의도의 표면화,그리고 백범 김구선생의 암살배후에 대한 새롭게 밝혀진 사실등이 맞물리면서 고조된 친일파와 일본에 대한 국민적인 관심은 일시적인 호기심의 차원이 아니라 진정한 과거청산의 계기가 되어야한다는 지적이 많다.
  • 한·일 관계/“감정대립 지양,이해폭 넓혀야”

    ◎「분노의 왕국」파문 계기,바람직한 발전방향을 찾는다/일왕저격장면은 픽션… 흥분은 과민반응/과거앙금 씻고 아태시대 협력길 모색을 한일관계가 불편한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연초 일본총리의 방한에 때맞춰 본격적으로 제기된 정신대문제와 최근 MBC에서 제작·방영중인 미니시리즈 「분노의 왕국」에 의해 표출된 한일양국의 반일·혐한감정이 외교갈등으로까지 번지고 있다.이성의 통제를 벗어난 민족감정의 대결은 한일 두 나라의 국가이익을 위해 어느쪽에도 바람직하지 않으며 과거청산을 위한 관점에서도 아무런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한다.감정대립을 지양하고 문제의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좌담을 마련해 보았다. ▷좌담◁ 신희석·외교안보연 교수 이병훈·M­TV 제작부국장 이시즈카·신지 동경신문 서울지국장 ▲신희석=요즘 한일관계가 국교정상화 이후 가장 어려운 시기에 있다고 합니다.미야자와 일본수상 방한후 긴장되기 시작한 양국간 관계가 최근엔 MBC미니시리즈 「분노의 왕국」에 대한 일본측 반응으로 더욱 어려운 국면으로 빠져들고 있는듯합니다.우선 최근 문제가 된 「분노의 왕국」제작동기와 배경 그리고 MBC의 입장에 대해 이국장께서 말씀해 주시지요. ○역사성 높아 드라마화 ▲이병훈=「분노의 왕국」은 지난해 MBC문학상 당선작을 바탕으로 한 드라마입니다.구한말 조선왕조 마지막 황제 순종에게 아들이 있었다는 가설을 설정한 이 작품은 당시 일본의 침략분위기가 무르익고 한국의 외교권이 박탈당하던 때 우리역사가 자주적이기보다는 수동적이었음을 감안해 역사의 굴절되고 탈락된 부분이 있었음직하다고 보고있지요.거기서 순종의 아들 이하연이란 가상 인물이 왕족의 후손임에도 겪은 비참한 생활끝에 모든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고 일왕 즉위식때 저격을 기도하게 됩니다.MBC측으로선 이 작품의 역사성이 높다고 판단,드라마로 제작키로 결정했던 것입니다. ▲이시즈카신지=「분노의 왕국」에서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습니다.개인적으로 일본 천황에 대한 특별한 감정이 없지만 이 드라마를 보고 대부분의 일본인들이 어떤 생각을 할지 걱정이 됐지요.앞으로 정상적인 한일관계를 위해선 서로가 양국입장을 이해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이번 MBC드라마는 일본사람들에게 있어서 천황의 존재가 어떤 것인지를 고려하지 않은 채 만들어졌다고 봅니다. ○일에도 「국왕암살 영화」 ▲이=천황을 한 나라의 원수요 상징이라고 볼 때 당연히 존중해야지요.문제는 픽션드라마는 별개라는 인식입니다.실제로 영국 저격수의 드골대통령 암살기도를 다룬 영국작가 프레데릭 포사이스의 「더 데이 애프터 자칼」도 미국에서 영화로 제작됐고 일본의 경우에도 천황암살을 다룬 「벌거벗은 군대」라는 영화가 지난 87년 제작된 사례가 있습니다.국왕을 존중하는 심정이 없는 게 아니라 있음직한 가상의 세계를 다룬 픽션에 불과하다는 얘기죠. ▲신=MBC드라마 자체가 문제됐다고 볼 수도 있지만 그 저변엔 지배와 피지배로 구별된 과거역사가 깔려 있다고 보는데요.특히 정신대문제는 일본의 군국주의를 달성하기 위한 과정에서 저질러진 한 수단이란 견해가 이 땅에선 지배적인데 일본 지식인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이시즈카=정신대문제는 한일협정체결로 일단락됐다고 보는 게 일본의 공식적인 입장이지만 제개인적으론 근본적인 해결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봅니다.또는 과거 역사에 대한 일본의 책임이 없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한일관계를 다루는 양국의 언론이 조심스런 자세를 가져야 할 것만은 틀림없다고 봅니다.한국에선 정신대 문제가 본격적으로 거론되기 시작했을 때 한국의 신문들이 정신대=종군위안부라는 인식으로 몰아갔던 사실을 기억합니다. ▲이=정신대문제는 일본의 물질적 보상보다는 「비인간적인 행동을 했다」는 역사에 대한 일본인의 반성이 전달되고 받아들여지면 된다고 봅니다. 중요한 건 정신대=종군위안부라는 표현방식이 아니라 그것에 담긴 역사적 내용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이시즈카=현재 한일관계는 「싸움」의 관계에 있다고 봅니다.그 싸움의 관계는 나쁘다고만 볼 수 없습니다.유럽에서 프랑스­독일관계도 마찬가지라고 여겨지는데요.논쟁을 통해 서로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아나갈 수 있지 않을까요. ▲신=한국측의 언론책임을 지적하셨는데일본측 매스컴에도 문제는 마찬가지라고 봅니다.일본 언론의 한국관계 교양프로속에서 한국인들이 상당히 왜소하고 부정적으로 다루어지는 것을 보고 개인적으로 자존심이 상한 경험이 있습니다.이런 점에서 양쪽이 마찬가지 아닐까요. ▲이시즈카=맞습니다.일본매스컴도 사실상 같은 문제점을 충분히 갖고 있지요.정도의 문제지만 무언가 반성할 게 있다면 양쪽 모두가 반성해야겠지요. ○양국언론도 신중해야 ▲신=우리 사극에선 역사속의 일본인들이 어떻게 다루어지고 있습니까? ▲이=과거 한일관계에서 우리쪽은 문화전수,일본쪽에선 침공의 주체로 인식되는 게 보편적이지요.그런 점에선 미래거향적이어야 한다는 견해에 긍정합니다.다만 이번 프로그램과 관련해선 젊은 사람들이 과거 한일역사를 잘 몰라 어느면에선 이 드라마가 과거 한일역사를 통해 미래지향적 시각을 심어줄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유쾌하지 않더라도 이해하고 느끼는 자세가 선진 민주주의 국민의 자세가 아닐까요.예를 들어 일본 문예춘추에서 한국에 대해 비판적인 기사를 많이 다루지만 한국에서 그것을 문제 삼는다면 국제사회에서 우스꽝스런 일이 아닐 수 없지요. ▲신=상호간에 인식의 갭이 크다는 생각이 많이 드는군요. ▲이시즈카=현재 한국인에게서 보여지는 일본에 대한 인식의 갭을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고 봅니다.첫째는 역사적인 배경에서 잉태된 「미움」이고 다른 하나는 경제적으로 발전된 현재 일본의 모습에 대한 「동경」이지요. ▲신=「분노의 왕국」방영과 관련해 발생한 일본 극우파의 요코하마 총영사관 차량진입사건은 정신대·무역불균형·문화갈등문제가 산적한 상황에서 양국간에 도움이 안 된다고 봅니다.곧 닥쳐올 21세기는 흔히 아시아태평양시대라고 합니다.아·태국가중 지정학·역사적으로 가장 인접한 한·일 양국이 앞으로 불편한 관계를 정리하고 바람직한 존재양식을 찾는다면 무엇이 될까요. ○일 근대사교육에 소홀 ▲이=서로가 과거를 잘 알고 화합한다면 바람직한 미래를 맞을 수 있다고 봅니다.3년전쯤 작품헌팅관계로 30대 중반의 일본 방송인을 현지에서 만난 적이 있습니다.당시 「민비암살」이라는 일본인이 쓴 작품이 상당히 인기를 끌고 있었는데 의외로 그 젊은이는 전혀 민비암살사건을 모르고 있더군요.이번 요코하마 총영사관 난입사건도 일본국민이 과거 역사를 잘 알았더라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신=피해자의 상처가 더 오래가는 법입니다.과거와 현재를 무시하고 무조건 미래지향으로 치닫기는 불가능하지요. ▲이시즈카=전적으로 동감입니다.일본 우익단체의 요코하마 한국총영사관 난입사건은 있을 수 없는 일이지요.일본 역사교육과정에서도 근현대사가 다루어지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부족합니다.그래서 일본 젊은이들이 특히 한일 근대사에 대해 잘 모르고 있는 게 사실이지요.저만해도 고교시절 몰랐던 역사적 사실들을 졸업후에야 알게 된 부분이 많지요.한일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사교육이라고 봅니다.양국관계의 오해를 풀기 위해선 정부대 정부의 협상도 중요하지만 민간레벨,그 중에서도 청소년교류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절실히 하고 있습니다. ▲이=그렇습니다.한일양국이 과거를 잘 알때 아·태시대속의 동반자관계를 무리없이 이끌어 갈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그런 측면에서 「분노의 왕국」과 관련된 이번 사태도 프로그램측면에서만 이해해 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이번에 나쁜 선례를 남기게 되면 양국관계에서 악순환이 계속될 게 불을 보듯 뻔합니다.이번 드라마가 일왕을 모독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가상의 역사적 사실을 통해 한일과거사를 짚어보자는 뜻이기에 혐한감정의 빌미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시즈카=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해결됩니다.현재 한일간 어려운 문제가 산적해 있지만 사회적 특성을 고려해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도록 노력한다면 좋은 결과가 있게 되겠지요. ▲신=어찌 보면 한일관계는 휴화산에 비유할 수도 있겠습니다.항상 불을 머금고 있지만 언제든지 내뿜을 수 있는 상태지요. 마지막으로 이번 드라마가 과거역사를 정확히 알자는 계몽의식을 담았다는 배경이해를 통해 더이상의 불상사가 없이 마무리되기를 바라며 양국이 서로의 이해를 통한 21세기 아·태시대의 동반자적 관계로 발전하기를 기원해 봅니다.
  • 나지불라 권한박탈 이후/아프간 무정부상태 직면

    ◎군부 권력장악불구,반군과 타협가능성 희박/「유엔평화안」도 무산 위기… 유혈내전 조짐 유엔의 아프간평화계획 실행이 10여일 앞으로 임박하면서 평화의 기운이 감돌던 아프가니스탄은 반군의 공세에 밀린 나지불라대통령이 탈출을 기도하다 체포되고 모든 권한을 박탈당함으로써 무정부상태의 위기를 맞으면서 다시 한치앞을 내다볼 수 없는 혼미상태로 빠져들고 있다. 이로써 신정부협상 성사로 「평화주역」을 꿈꾸었던 나지불라의 희망은 좌절되고 지난 87년 11월이후 5년동안 지속돼온 그의 강권통치는 사실상 종식됐다. 나지불라대통령은 16일 국외탈출을 시도하다 체포됐으며 모든 권력은 군부내 장성 4명과 회교저항군 사령관인 아메드 샤 무수드로 구성된 5인협의기구의 수중에 넘어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현재상태에서는 이 협의기구 구성원들 상호간,그리고 정부군이나 다른 반군단체들과의 타협가능성이 희박,아프간은 새로운 유혈내전의 수렁에 빠져들 조짐이 짙어지고 있다. 따라서 지난 79년 구소련이 아프간을 침공,친소정권을 수립한 이래 정부군과 회교반군간에 반목과 갈등이 끊이지 않았던 이 지역에 13년간의 내전을 종식시키려는 유엔의 평화정착계획은 착수도 되기 전에 무산될 위기를 맞고있다. 현재 남북 두방향에서 수도 카불로의 입성을 목전에 두고있는 2개의 반군세력은 종파를 달리하는 수니파와 시아파인 회교도들인 것으로 알려졌다.이 두세력은 무자헤딘 7개집단중 가장 강력한 자미아트­E이슬라미와 헤즈비­E이슬라미 그룹으로 아프간정부군과 맞서 싸우면서도 쌍방간에 피나는 전투를 벌여온 오월동주의 관계에 있기 때문에 아프간 지식인은 물론 미국등 서방측에서도 주시의 대상이 돼왔다. 이와관련,카불의 서방관측통들은 『이들세력이 무력으로 현정권을 전복할 경우 유엔의 평화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카불에서는 피의 숙청이 야기될 것이며 선량한 민간인이 엄청난 고통을 받게될 것』이라고 우려를 표시해왔다. 이제 냉전체제의 종식에 따라 오랜 내전끝에 어렵사리 마련된 유엔의 아프간 평화유지방안이 수포로 돌아가느냐,아니면 난관을 극복하고 실효를 거두느냐의 여부는 이들 반군세력이 앞으로 정파의 이익을 떠나 얼마만큼의 자제력을 보이느냐에 달려있다고 하겠다.그리고 이는 수도 카불점령 가능성을 일축하면서 카불 인근의 전략요충지 점령은 나지불라정권의 목줄을 서서히 조여 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던 자미아트그룹과 헤즈비그룹이 기존주장을 얼마나 충실히 견지하느냐가 관건이라고 볼 수 있다.
  • 작년 증시인구 30만명 떠났다/장기침체 여파

    ◎봉급자등 소액투자가 거의 손떼/10만주이상 큰손은 크게 늘어 증시의 침체로 지난해 30만명에 이르는 주식투자가들이 주식시장을 떠난 것으로 나타났다. 증권거래소가 15일 지난해말 현재 6백86개 전상장사를 대상으로 전수조사한 주식분포상황에 따르면 국민주를 제외한 지난해말의 실질주식인구는 전체인구의 3.3%인 1백43만1천8백8명으로 90년말의 1백73만1천2백65명보다 17.3%인 29만9천4백57명이 줄었다. 포철·한전등 2개의 국민주를 포함할 경우 지난해말의 주식인구는 2백15만2천80명으로 90년의 2백41만8천3백29명보다 11.2%인 26만6천2백49명이 줄어들었다. 국민주를 제외한 1천주미만의 소액투자자는 지난해말 1백15만8천6백45명으로 90년말의 1백46만6천8백72명보다 30만8천2백27명이 줄어들어 봉급생활자·주부등 소액투자가들이 증시의 장기침체로 증시를 떠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반해 1천주이상의 주식을 갖고 있는 비교적 여유있는 투자가는 지난해말 27만3천1백63명으로 90년말의 26만4천3백93명보다 8천7백70명이 늘어났다. 특히 10만주이상을 갖고 있는 주주는 지난해말 현재 총주식인구의 0.2%인 2천9백28명으로 90년말의 2천10명보다 45.7%가 늘어났으며,보유주식 지분율도 64.9%로 90년보다 7.5% 포인트가 높아졌다. 총 주식인구의 80.9%를 차지하는 1천주미만 소액투자자의 보유 주식지분율은 지난해말 6.8%로 90년말의 8.3%보다 1.5%포인트가 줄어들었다. 법인을 제외한 개인들의 경우 서울지역의 주식인구가 전체의 40.2%인 57만4천7백16명이었고 이들의 보유 주식비율은 64.1%였다.
  • 연극 「우리들의…」 사진으로 재구성/정진국씨 「포토 로망」전

    사진작가 정진국씨(37)가 새로운 예술형식인 「포토 로망(PHOTO ROMAN)」전이라는 이색적인 전시회를 열어 화제가 되고 있다. 서울 갤러리아 미술관(514­6948)에서 오는 23일까지 열리는 「복제된 구경거리」라는 제목이 붙은 개인사진전이 바로 그것.정씨는 이문렬원작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장기공연중인 극단 까망의 동명연극을 사진 이미지로 재해석,이번 전시회를 통해 「중개예술」로서 사진의 또 다른 표현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정씨는 또 이번에 전시된 작품들을 원작소설과 엮은 책 「이문열 포토 로망­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민음사간)을 펴냈다. 글과 사진이미지가 함께 어우러진 책을 이르는 「포토 로망」은 장편만화처럼 화면으로 이어지는 사진에 오리지널 각본이나 소설이 곁들여지는 형식으로 구성돼 있어 마치 한 편의 영화를 한 권의 책으로 옮겨놓은 것과 같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이탈리아에서 시작돼 유럽 전 지역으로 보급된 「포토 로망」은 영상매체의 영향력이 날로 커지는 추세에 새로운 형식의 대안문화로서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국내에는 아직 생소한 「포토 로망」은 미술관이나 화랑중심의 미술처럼 관객에게 높은 교양을 요구하지 않으면서도 만화와 같은 대중예술에서 다루기 어려운 진지한 주제들을 다룰 수 있다.
  • 일본서 연출되는 「반한극」(사설)

    일본의 시위대들이 주일한국공관에 침입을 했다고 한다.즉위하는 일본왕을 향해 총을 쏘는 장면이 묘사된 한국의 한 드라마 장면을 꼬투리잡아 연일 협박과 공격을 계속하던 일본의 우익단체소속 폭력배들의 소행인 것으로 짐작되고 있다.우려를 자아내는 일이다. 이 일이,단순히 한편의 드라마가 끼친 즉흥적이고 우발적인 감정의 폭발이라고만 볼 수 없기 때문에 더욱 걱정스런 것이 사실이기도 하다.지난 연초,한일정상회담을 위한 일본총이의 방한이 이뤄졌을때 이미 사태는 발단되었다.급격히 제기된 이른바 「정신대」문제로 민간단위의 반일감정은 극도로 나빠졌고 그 여파로 시위대에 의해 일왕의 화형식까지 벌어졌었다.그때부터 악순환이 시작된 것이다. 거기에다,『노라고 할 수 있는 일본』의 감정에 고무된 전체 일본인들의 민족감정까지 상승되어 한국에 대해서도 『하고싶은 말을 실컷 하겠다』는 분위기가 한껏 무르익고 있는 듯하다.소위 우익필진이 일제히 포문을 열어 한국을 비판하고 나섰으며 그런 「이론지원」에 힘입은 행동부대들은 한국 대사관 영사관 언론사들을 무차별 협박하고 공격하고 있다.바로 그런 시점에서 MBC의 미니시리즈 「분노의 왕국」이 방영되자 기어코 치외법권구역인 한국공관까지 침입하는 본격적인 난동을 부리게 된 것이다.흡사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이 드라마를 물고 늘어지는 그들의 태도에서 우리는 「잠재된적의」를 실감하는 느낌마저든다. 누구나 알다시피 「분노의 왕국」은 한 민영방송이 내보내는 가상극이다.일본처럼 사상의 자유가 보장된 선진적인 민주주의의 나라에서는 법이에 의한 제재가 아닌 어떤 물이력으로도 표현의 자유를 구속할수 없다. 엄연한 역사적 사실조차도 자국리기주의에 입각하여 왜곡하기를 서슴지않는 「관점」을 확대하여 외국의 문화예술적 표현까지 간섭하는 듯한 태도는 옳은 것이 아니다.특히 그들의 침략으로 멸망한 이웃나라 왕조의 가상적 후손이 연극속에서 적중도 못시킨 총구를 그들 왕에게 겨눴다고 해서 극우행동대원들이 독기를 뿜으며 나선다는 것은 용인하기 어렵다. 이 사태를 보며 우리가 느끼는 것은 일본의 관과 민이 암암리에 손발을 맞춘 거대한 연출을 보는 듯하다는 사실이다.『암살기도장면이 국민감정에 상처를 남기지 않을수 없다』는 정부인사의 발언을 신호처럼 우익 테러분자들은 행동에 나섰다.그때가 『시의적절』하게도 사회당과 자민당 의원들이 백수십명씩 떼를 지어 북한을 방문하는 시기와 일치하고 있다.「국익」이라면 지식인과 언론과 「야쿠사」까지도 일사불란하게 단결하는 것이 일본사회다.이런 일로 「민주감정」이라는 무기의 효용성을 휘두르는 일본의 태도에도 변화가 있어야 하리라고 생각한다. 한일관계가 악화하는 것이 양국의 미래에 해로운 일이라는 것을 우리도 알고있다.그러므로 서로 국위에 상처를 주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사실에 깊이 동의한다.그러므로 「방송」같은 공공매체는 신중하고 성숙해야 한다는 뜻을 충분히 새기도록 당부한다.그와함께 같은 인식을 일본 또한 깊이 지녀야 한다고 생각한다.가해자의 반성에 전혀 성의가 없으면서 여전히 강자의 환상을 버리지 못하는 한 그들은 세계정치의 지도국이 될만한 도덕적 성숙성을 지니지 못하게 될 것이다.
  • 중국공산정권,소 붕괴전철 밟는다/망명 방려지 주장

    ◎당·정 중간간부 이미 탈이념/젊은장교 반공쿠데타 가능성 【홍콩 연합】 미국에 망명중인 중국의 저명한 반체제 지식인 방려지교수는 중국도 소련과 동유럽처럼 공산정권이 몰락하는 과정을 밟게 될 것이나 그 과정과 방향이 소련과는 다른 양상을 나타낼 것으로 예견했다고 홍콩의 사우스차이나 모닝 포스트지가 13일 보도했다. 모닝 포스트지는 「포커스」라는 특집판의 방려지교수 특별회견 기사에서 중국공산당도 마침내 소련공산당과 동일한 종말의 길을 걷게될 것으로 전망하고,그러나 중국공산당은 소련공산당처럼 갑자기 붕괴되지는 않을 것이며 중국이 곧 다른 체제로 변화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예언했다. 89년 6월 천안문 유혈사태후 북경주재 영국대사관에 피신해 있다가 중국당국의 극적인 양보로 미국으로 망명한 방교수는 이미 많은 중간층 간부들이 스스로 변해있다고 설명하면서 『중국의 중간간부들은 이제 이념에 집착하지 않으며 이들은 오히려 부와 사업에 관해 더 많은 생각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중국은 많은 전란과 고난을 겪었기 때문에 아무도 혼란의 위험이 따르는 갑작스러운 변화를 원치 않는다고 전제하고 이 때문에 중국은 갑작스러운 공산당의 몰락이나 체제변화를 보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 한글 어휘·문장론 펴낸 이오덕씨(저자와의 대화)

    ◎“잘못 쓰여지는 우리말 바로 잡아야지요”/논문·감상문등 우리식으로 쓰는법 제시/「혈의 누」등 근대소설의 표현오류도 지적 이오덕씨는 『학자·언론인·소설가 같은 지식인들이 글을 함부로 씀으로써 우리 글을 망치고 있다』고 개판하며 『말하듯이 쓰는 글이 가장 좋은 글』이라고 말한다.왼쪽은 이씨가 쓴 3권의 책들. 분명 학술서인데 하나도 어렵지 않다.평소에 주고받는 말과 조금도 다름없는 우리 글로 책을 썼기 때문이다.어떻든 엄연한 한글 어휘론,문장론이다.모든 학자들이 이렇게 쉽게 학술서를 쓴다면 우리나라 학문 발전의 속도가 몇배 더할 것이라고 기대해도 좋겠다는 느낌마저 갖는다. 최근 70살을 바라보는 할아버지 한 분이 우리 글을 바로 쓰자는 내용의 책을 3권이나 펴냈다.40여년 동안 시골 국민학교 어린이들과 생활하며 우리 글 바로쓰기 운동을 펼쳐온 이오덕씨(68)가 그 사람으로 이번에 낸 책은 「우리글 바로쓰기」1,2권과 「우리 문장 쓰기」들이다. 이 책들이 모두 외래어에 찌든 우리 글을 바로 쓰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진것이지만 특히 「우리글…」은 여러가지 글에 나타나는 개개의 잘못된 낱말을 주로 다루고 있는데 비해 「우리 문장쓰기」는 감상문,논문,서사문 등 각종 글을 우리 식으로 쓰는 방법을 다루고 있다. 『우리는 많은 학술서나 논문 심지어 신문기사,소설에 이르기까지 표현상의 어색함 때문에 잘 이해가 되지 않았던 기억을 갖고 있습니다.특히 그 가운데 일본식 관형격조사 「의」와 중국글자말의 토로 중요한 뼈대를 이루는 「­적」의 폐해는 정도를 넘어선 것입니다』 「나뭇잎 배」를 일본인들은 「나무의 잎의 배」로 쓰고 있지만 우리가 그렇게 쓴다면 무슨 말인지 선뜻 머리에 들어오지 않을 것인데도 우리 주변의 많은 글이 그런 표현을 서슴치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말은 생활 변화에 보조를 맞춰 발전해야 합니다.생활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 일시적인 문화충격때문에 말이 덩달아 변화한 것은 그 자체가 잘못된 것입니다』 근현대에 일본어와 영어 따위의 외래어가 우리 글에 미친 폐해를 뿌리뽑아야 한다는 당위성을 이렇게 말한다.이씨는 섣부른 외래문화의 흡수,소화,발전을 경계한다.36년 동안 이어졌던 일제시대를 비롯,우리나라가 근현대에 걸쳐 많은 외침을 당해 우리 말과 글이 인위적으로 변화를 겪었으나 이것이 우리의 뿌리를 바꿔놓지는 못했다는 말이다.학자들과 문필가,언론인들이 앞장 서서 외래문화를 받아들이는데 앞장섰으나 우리 말은 여전히 농촌에 그대로 살아 남았다는 설명이다.우리 말이 생활속에 그대로 살아남아 있는데 글만 따로 변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못박는다. 이씨는 우리의 글을 잘못된 방향으로 가게 한데 가장 큰 책임을 져야할 사람은 소설가라고 지목한다.소설이야말로 살아있는 말을 써야 하는 글이기 때문이라는 것. 이씨는 「우리글 바로쓰기」2에서 우리말로 쓴 맨처음의 소설인 허균의 「홍길동전」에서 시작하여 이인직의 신소설 「혈의 누」,「귀의 성」를 거쳐 1920년대 전영택의 「화수분」,그리고 30년대 이효석,김유정,채만식같은 이들의 소설을 새김질했다.이 소설들 대부분은 일본의 관형격조사 「의」 또는 영어문법의 과거완료형인 「­었었다」따위를 잘못 쓴 곳이 작품마다 10∼30여 군데에서 발견됐다.이씨의 따가운 질책의 눈길을 벗어난 소설가는 김유정으로 그가 쓴 「산골나그네」「금 따는 뽕밭」「봄 봄」「따라지」들은 외국말글의 해독을 가장 적게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씨는 지난 44년 이후 주로 농촌지역의 국민학교에 근무하면서 글쓰기를 통한 교육을 연구·실천해 왔으며 그 노력을 인정받아 한길사가 제정한 제3회 「단재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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