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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건국위 예산 대폭 증액 논란소지

    내년도 정부 예산에서 눈에 띄는 대목 가운데 하나는 제2건국 범국민추진위의 예산이 크게 늘어난 점. 제2건국위의 예산은 올해보다 50%나 늘어난 30억원이 책정됐다. 이는 지난해의 20억원보다 10억원이 늘어난 규모다. 기획예산처 관계자는 이와 관련,22일 “제2건국위의 홍보사업비가 올해의 7억원에서 10억원으로 늘고,신지식인보고대회 개최비용 1억원이 추가되는 등예산증액 필요성이 제기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제2건국위의 예산 대폭 증가는 다른 위원회 예산이 소폭 증가한 것과 크게대비된다.지방자치단체를 포함,각급 행정기관이 별도 책정한 사업예산까지감안하면 제2건국운동 관련 예산은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따라 국회 예산 심의과정에서 사업추진과 예산집행에 있어서 보다 엄정한 관리가 필요하다는 지적과 함께 논란이 일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노사정위원회도 올해보다 3억원 증액된 25억원의 예산을 책정받았다. 위원수가 15명에서 20명으로 늘어난데다 업무추진비,연구용역비 등이 다소증액된 때문이라는 것이 기획예산처의 설명이다. 최근 출범한 반부패추방특별위원회에는 홍보비 5억원을 비롯해 모두 13억원이 책정됐다. 진경호기자
  • [클로즈 업] 67년 동백림사건의 진실

    1967년 7월 부정선거로 민심을 잃은 박정희정권은 교수 유학생 등 200여명을간첩 혐의로 검거한다.‘동백림 사건’이라 이름붙은 그 ‘사건’의 실체가공개된다. MBC는 19일 밤11시30분 ‘이제는 말할 수 있다’의 2편 ‘끝나지 않은 동백림사건’을 방영한다.제작진은 중앙정보부 수사과장,사건을 촉발한 최초의제보자 임모교수,독일로 돌아간 뒤 국적을 바꾸고 다시는 고국을 찾지 않는광부와 유학생들의 증언을 청취했다. 증언 중에는 “당시 평양에 다녀왔다”는 광부 박성옥씨 것도 포함됐다.그럼에도 중앙정보부가 작성한 조서에는 이 사실이 전혀 적혀 있지 않았다.중정이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 보다는 반정부 지식인들을 ‘엮는 데’만 관심을기울였음을 입증한 것이다. 김학준 인천대 총장이 서울구치소 교도관으로부터 들었다는 “동백림 관련자중 들것에 실려다니지 않은 사람이 없다”는 충격적인 얘기도 전한다. 천상병 시인의 안타까운 죽음 앞에 국가보안법 폐지 논쟁을 다시금 생각해보는기회를 갖는다. 임병선기자 **
  • 대학 예약입학제 대폭 확대

    정부는 고등학교 1∼2년생에게 조기에 대학 입학을 약속하는‘예약 입학제’를 활성화하기로 했다.대학 설립요건을 완화해 기업들이 보다 자유롭게 대학을 설립할 수 있게 하고,우수 교원을 유치하도록 연공서열형인 교원 임금체계도 개선하는 방안을 검토키로 했다.재정자립도가 높은 사립 중·고등학교에 학생 선발과 수업료 결정 등에서 자율권을 주는 방안도 강구할 방침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 등 10개 연구기관은 16일 서울 은행회관에서 이같은내용의 ‘지식기반경제발전 종합계획’ 공청회를 열었다.정부는 종합계획안을 10월 중순까지 대통령직속 국민경제자문회의에 상정,사안별로 단계적으로시행할 방침이다. 종합계획안은 ▲인재양성과 신지식인 양성 ▲과학기술혁신 능력의 극대화▲기업의 지식경영 유도 ▲지식인프라의 개발과 확충 ▲지식의 공유와 확산을 위한 정보인프라의 구축 및 소프트웨어산업 육성 ▲문화·관광산업 활성화 등 크게 6개분야로 구성돼 있다. 정부는 기업들이 근로자의 성과급을 확대 실시하도록 근로기준법상 법정수당,평균임금과 통상임금의 기준을 현실에 맞게 재조정하는 방안을 추진할 방침이다.국립대학을 장기적으로 민영화하고 공립학교 교원신분을 국가공무원에서 지방공무원으로 바꾸는 방안과,테마파크 설립 활성화를 위해 세제를 개선해 제조업 수준으로 우대해주는 방안 등도 검토키로 했다. 이날 공청회에서는 대학의 진입과 퇴출을 보다 자유롭게 하는 방안이 제시됐으나 찬반 양론이 격렬하게 대립했다. 재정경제부 이철환(李喆煥) 산업경제과장은 “종합계획의 내용은 준비단계부터 정부와의 협의를 거친 만큼 상당부분이 정책에 반영될 것”이라고 전제하고 “그러나 사안에 따라 부처간 이견도 있어 내용이 다소 수정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상일 김균미 기자 bruce@
  • [지구촌 밀레니엄 준비] 프랑스

    파리의 명물 에펠탑에는 2000년을 기념하는 전광판이 설치돼 오래전부터 파리를 찾는 관광객의 시선을 모으고 있다.이 대형 전광판은 2000년 1월1일까지의 잔여일을 알리면서 밀레니엄을 맞이하는 프랑스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있다. 신밀레니엄은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프랑스 사람들에게 또 하나의 좋은계기를 마련해 주고 있다.1997년 범국가적 차원에서 신밀레니엄 사업단이 조직되고 단장으로 프랑스 현대문화를 대표하는 장자크 아야공 퐁피두 현대 미술관장이 임명됐다. 행사 내용은 주로 문화행사로 구성되어 있는데 크게 보아 세가지다. 첫째는 축제다.99년12월31일을 기해 에펠탑의 전광판이 ‘0’을 기록하는순간 샹젤리제 거리에서 2000년을 상징하는 20개의 대형 원형바퀴가 ‘무한’이라는 주제로 개선문에서 콩코드 광장을 향하여 굴러가도록 계획돼 있다. 파리의 ‘순환도로 록 축제’와 먼커그시로부터 파리를 거쳐 스페인의 말세로나시까지 자오선이 통과하는 지역에 나무를 심는 ‘녹색 자오선’이 주요내용이다. 둘째는 특별행사인데 15개 주요도시에서 ‘2000년 포럼’과 심포지엄을 개최한다.또한 ‘청소년 2000년의 유럽’ 프로그램에 따라 2000년에 20세가 되는 청소년 2,000명에게 1개월 동안 유럽을 여행하는 장학금을 지급한다.‘모든 지식인의 대학’이라는 일종의 성인교육 프로그램을 개설,파리의 각종 문화센터에서 366회의 강연회를 개최한다.‘리스본-모스크바 문화열차’를 운행하고 문필가 및 석학들이 탑승해 문화대화를 나눈다. 셋째는 각종 전시회다.이 전시회는 파리를 포함한 수많은 지방도시에서 각종 주제로 펼쳐진다.미술·시·과학·음악·무역에 관한 전시와 세계 각종정원 소개 등 이색적이고 다채로운 행사가 동시 다발로 전개된다. 프랑스의 신밀레니엄은 이처럼 문화와 예술에 관한 축제들로 구성되어 있다.프랑스는 2000년을 계기로 사회의 변혁을 추구하거나 정치발전 또는 경제개혁의 시발점으로 삼기보다 사회발전의 연장선에서 새천년을 기획하고 있다. 그동안 이뤄온 문화·예술·과학을 집대성,유럽의 축제로 승화시키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이웃 영국이 대형 돔을 신축하여 새로운 2000년을 기념하지만 프랑스는 ‘문화적인 풍요의 나라’로서 새로운 소프트웨어만 고안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문화적 자부심’이 대단하다. 우리는 지금 세계화를 목표로 개방과 개혁을 서두르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한국에 번듯한 국제기구가 없는 것은 깊이 생각해 봐야 할 일이다. 그동안 우리는 밖으로만 나갔지 외국을 국내에 끌어들이는 노력이 부족했다.10명의 한국인이 외국에 나가 견문을 넓히는 것보다 1명의 외국인이 한국에 와서 함께 생활할 때 우리의 세계화는 더욱 빨라지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2000년에 열리는 제 3차 아시아·유럽 정상회의(ASEM)는우리에게 절호의 기회다.우리는 이 기회를 포착,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국제기구를 설립하고 유치할 수 있을 것이다.신밀레니엄을 맞아 아시아와 유럽의 문화교류를 주활동으로 하는 아시아·유럽 문화센터도 구상해 볼수 있다. 프랑스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문화대국이며 문화정책이 외교정책의 큰 틀을형성하고 있다.이처럼 문화에 많은 비중을 두고 관심을 갖고 있는프랑스와손만 잘 잡으면 서울에 아시아·유럽 문화센터를 유치하는 문제는 그리 어렵지 않다고 본다.우리는 문화센터 사무국을 맡으면 될 것이다. 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시작된 한국의 세계화 여정이 제 3차 ASEM 정상회의,그리고 2002년 월드컵을 통하여 활짝 꽃을 피우길 기대해 본다. [權仁赫 駐프랑스대사]
  • [義烈 독립투쟁] (6) 윤봉길 의사

    1932년 4월29일 오전 11시30분쯤 상하이(上海) 홍구(虹口)공원(현 노신공원)에서는 일본군이 상하이사변의 승전기념식을 겸해 일본국왕의 생일잔치,이른바 천장절(天長節) 기념식이 거행되고 있었다.이날 한국의 의혈청년 윤봉길(尹奉吉)이 그 단상에 폭탄을 던져 상하이 침공의 우두머리인 일본군사령관 시라카와(白川義則)대장을 비롯한 10여명의 원흉들을 쓰러뜨렸다. 당시 현장에서 러시아 여행객이 찍은 비디오를 보면,사열대와 함께 엎어지고 쓰러지는 원흉들의 모습은 마치 일본 제국주의와 세계 제국주의가 함께무너지는 장쾌함을 보였다.윤의사가 세계로부터 정의의 삶을 대변한 ‘의사'로 불리고 있는 것는 바로 이 때문이다.당시 세계의 언론들은 상하이를 주목했는데 인도주의를 지향하는 언론일수록 제국주의를 맹타한 윤의사를 높이치켜세웠고 또 한국의 독립운동을 들먹였다.국내외 동포들은 한국인의 독립운동에 대해 자부심을 갖게 되었다.특히 ‘상하이의거’를 주도한 임시정부와 한인애국단,그리고 한인애국단 단장 백범 김구(金九)를 주목하기 시작했다.임시정부가 한인애국단을 결성해 의열투쟁을 전개했던 것도 그러한 주목을 끌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왜냐하면 1차대전이 끝난 뒤에는 파리강화회의의 안정기조라고 하는 신제국주의적 질서에 온 세계가 눌려 독립운동도 외면당하고 있었으므로 그 신질서를 깨야 할 필요가 있었다.그 기회를 만들기 위해 한인애국단을 만들고 의열투쟁을 전개했던 것이다. 때마침 뉴욕 월가(街)의 증권파동을 계기로 경제공황이 몰아쳐 왔고,일본제국주의가 만주를 침공하더니 다시 상하이를 침공하여 상하이의 한국 임시정부 인사들은 그것을 파리강화체제를 무너뜨리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임시정부는 한인애국단을 만들면서 일본 군국주의의 대륙침략에 대한 반격작전을 세웠다.이봉창(李奉昌)의사로 하여금 일제의 심장인 도쿄 궁성을,최흥식(崔興植)·유상근(柳相根)의사로 하여금 만주침략의 아성인 관동군사령부를 공격토록 한데 이어 윤의사로 하여금 상하이 침공의 선봉을 꺾어놓는다는 소위 ‘삼면작전’을 세웠다.이같은 작전을 구상한 사람은 백범이었는데윤의사의 ‘상하이 의거’ 성공으로 전세계를 진동시켰다. 윤의사는 원래 농민운동을 통해 고향의 부흥을 꾀하던 진보적 계몽주의자였다.고향인 충남 예산군 덕산면 시량리에서 야학당과 청년회·체육회·부흥원을 조직하였으며 ‘농민독본’도 저술했다.그러나 경제공황까지 덮친 식민지 하에서 농민운동이 성공하기는 어려웠다.윤의사는 마침내 ‘장부출가 생불환(丈夫出家生不還)’ 즉 ‘대장부는 뜻을 세워 한번 집을 나서면 살아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결연한 의지를 불태우며 중국 대륙으로 향했다.그것이 1930년 윤의사가 23세 때의 일이다. 처음 산둥(山東)반도의 칭다오(靑島)에서 세탁부로 일하던 윤의사는 이듬해5월 상하이로 건너갔다. 때마침 상하이에서 상하이사변이 일어나 일본군과중국군이 싸우는 대포소리를 들으며 고향의 어머님께 보낸 편지에서 “민족과 민족이 부닥치는 소리가 꽝꽝합니다”라고 표현했다. 그 꽝꽝하는,민족과민족이 부닥치는 소리를 들으며 윤의사는 의사가 되기 위해 꿈을 키웠다. 청년 윤봉길은 백범 김구를 찾아가 한인애국단에 가입하였다.자신의 생명을불태워 정의를 현양하는 꿈을 실현코자 했다. 윤의사는 ‘성인군자는 살아서영예가 있지만 의사는 죽어서 말한다’는‘꿈’에 한 걸음 더 다가간 것이다. 1932년 4월29일 아침 윤의사는 일본식 도시락과 물통,일본 국기를 들고 홍구공원을 향해 떠났다.도시락과 물통이 바로 폭탄이었다.이 폭탄은 당시 중국군 장교로 상하이 병공창에 근무하던 김홍일(金弘壹·중국명 王雄·전광복회장)이 만든 것이었다. 의거 당일 아침 윤의사는 백범과 살아서는 ‘마지막 식사’를 같이했다.그리고 윤의사는 자신의 시계와 백범의 시계를 바꾸어 찼다.자신의 시계는 6원짜리였고 백범의 것은 2원짜리였다.“선생님,나는 한시간밖에는 시계가 필요치 않습니다”라며.죽음을 앞에 둔 청년이 보여준 태연한 여유를 보면서 백범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그렇게 떠나간 윤의사에게 시계는 아니나 다를까한 시간밖에 필요치 않았다.11시반쯤 홍구공원의 폭음과 함께 그 시계도 멈추고 말았다. 윤의사의 의거로 침체됐던 독립운동이 생기를 찾고 활기를 띠게됐다.또 국내외 동포가 다시 임시정부로 마음을 모으게 됐고 국제적으로도 한국독립을새롭게 인식하게 됐다. 중일전쟁 와중에서 임시정부가 중국대륙 곳곳으로 이동하면서도 쓰러지지 않고 항전할 수 있었던 것이나 1940년 충칭(重慶)에 정착,8·15광복때까지 항전할 수 있었던 것은 윤의사의 의거로 국내외 동포들의 마음을 한 군데로 모으고 중국정부를 비롯한 국제적 지원을 얻어낸 결과라고 할 수 있다.의거후 현장에서 체포된 윤의사는 일본으로 이송돼 그해 12월19일 가네자와(金澤)형무소에서 순국하였다.일제는 윤의사의 시신을 길거리에 묻어 행인들이 밟고 다니게 했는데 이같은 야만성은 일본제국주의밖에는 없다.해방후 윤의사의 유해는 백범의 지시로 이봉창·백정기(白貞基)의사등과 함께 봉환,효창공원에 안장됐다. [조동걸 국민대 명예교수] *尹의사의 사회개혁 활동 매헌(梅軒) 윤봉길 의사는 초창기 야학·문맹퇴치운동 등에 헌신한 개혁주의 성향의 농촌운동가였다.윤의사가 20세 되던 해인 1927년에 출간한 ‘농민독본(農民讀本)’은 윤의사의 계몽사상을 집약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당초3권으로 구성된 이 책은 제1권은 유실되고 현재 제2·3권만 전해오고 있다. 제2권은 ‘계몽편’으로 편지 쓰는 법,인사법 등 생활교양과 조선지도,백두산 등에 대한 소개 등 일반상식을 가르치고 있는데 현재 8과까지만 보존돼있다. ‘농민의 앞길’이란 제목의 제3권은 농촌개혁 방향과 농민의 당면과제 등을 제시하고 있다.앞부분에는 ‘소리의 갈래’등 한글맞춤법도 소개돼 있다. 총 25과로 구성된 제3권은 현재 7과까지만 보존돼 있다. 제2권이 기초학습자료라면 제3권은 일종의 사상독본이라고 할 수 있다.당시 윤의사로부터 야학지도를 받은 예산군 덕산마을 사람들은 오랫동안 이 ‘농민독본’을 암송하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김학준(金學俊)인천대총장은 윤의사 평전에서 “매헌은 한낱 시골의 야학당교사가 아니라 이미 이 무렵부터 사회개혁과 이상국가 건설을 꿈꾼 선각자적 지식인이었다”고 평했다. 정운현기자 jwh59@kdaily·com *윤봉길의사 직계후손들 근황 윤의사는 부인 배용순(裵用順·88년 작고)여사와의 사이에 두 아들을 두었다.윤의사 의거 당시 장남 종(淙)씨는 세살이었고 둘째 담(淡)은 배 여사 뱃속에 있었다.둘째 담은 두살때 영양실조로 일찍 세상을 떴다. 일제때는 일제의 방해로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한 장남 종(淙)씨는 해방후 성균관대 경제학과를 졸업,10여년간 농수산부 공무원으로 근무하다 84년간경화로 타계했다. 윤의사의 부인 배여사는 남편없이 외아들을 키우며 어렵게 살다가 88년 82세로 작고했는데 배여사의 장례는 사회장으로 치러졌다.윤의사 의거 50주년인 82년 배여사는 국민훈장 목련장을 받았는데 이 해 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는 ‘배용순 효부상’을 제정,매년 윤의사 의거일인 4월29일 예산 충의사(忠義祠)에서 시상하고 있다. 현재 윤의사 직계후손 가운데 가장 웃어른은 윤의사 며느리 김옥남(金玉南·67·서울 동작구 상도동 거주)씨.김씨는 딸 여섯에 끝으로 아들 하나를 두어 겨우 윤의사의 대를 이었다.김씨는 “백범 김구 선생의 아들 김신(金信)장군이 교통부장관 재직시절 김포공항에 스낵 가게를 주선해줘 겨우 살림을꾸려왔다”며 “윤의사의 후예 7남매를 모두 반듯하게 키운 것이 큰 보람”이라고 말했다. 윤의사의 유일한 손자 주웅(柱雄·29)씨는 고려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현재 현대자동차 남양연구소에 재직중인데 97년에 결혼,아들 하나를 두고 있다.주웅씨 위로 누나 여섯 사람도 모두 출가했다. [정운현기자]
  • 지식기반 경제발전계획 분야별 요약

    올해 4대 국정과제의 하나인 ‘지식기반 확충’을 위한 실천방안이 제시됐다. 정부가 지난 5월부터 작업중인 ‘지식기반 경제발전 종합계획’에 대한 정책제안의 성격을 띤 16일 공청회에서는 인재양성과 과학기술혁신 능력 극대화,지식인프라 개발 등을 위한 다양한 정책아이디어들이 나왔다.재정경제부는 이날 제시된 정책제안과 의견을 수렴,관련부처와의 협의를 거쳐 다음달초최종안을 마련한다.다음은 분야별 요약이다. ?인재양성 유아교육에서 고등학교까지 영재를 발굴,교육하는 별도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제도화한다.대학입학전형에서 학교생활기록부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도록 하고 전형 대상을 고교 1∼2년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다양화한다. 조기입학을 허용하는 ‘예약입학제’나 ‘예비선발제’를 활성화한다.일정요건을 충족하는 사립 중·고교에 대해 학생 선발 및 수업료 결정 등에 대한자율권을 허용,자립형 사립학교의 설립을 늘린다.‘탈규제학교’ ‘자율운영학교’ 등 다양한 학교유형을 개발,보급한다. 교원 직급을 다단계화하고 공립학교 교원신분을 국가공무원에서 지방공무원으로 바꾸며 교원의 순환근무제를 없앤다.실직자가 다시 대학에 들어갈 수있는 ‘대학리콜’제를 도입한다.방송통신중학교·대학원을 신설하고 사이버평생학습공동체를 건설한다. 취업근로자를 대상으로 평생학습을 총괄적으로기록,관리하는 ‘교육계좌제’를 도입한다. ?신지식인 육성 공공직업훈련기관은 독립채산제 방식을 거쳐 단계적으로 민영화하고 직업정보제공,상담 및 훈련,근로자파견 등을 일괄 취급하는 ‘종합인력개발회사’를 설립해 민간 직업훈련산업을 활성화한다.민간자격 공인제를 통해 민간자격제도를 활성화하고 직업기초능력인증제,인력개발조직인증제를 도입한다. ?과학기술혁신능력의 극대화 ‘국가과학기술위원회’의 사전조정기능을 강화해 부처별로 분산 추진되고 있는 국가연구개발사업에 대한 중복을 막고 사업간 연계를 강화한다. ?기업의 지식경영 성과 중심의 인적자원 관리를 정착시키기 위해 노동관련법을 정비하고 노동시장의 유연성 확보와 조직 구성원들의 시장가치를 높이는 방향으로 관련법을 고친다. ?지식인프라의 개발·확충 전자상거래를 확산시키기 위해 신뢰성과 안정성을 높일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고 정부 부문의 연구개발에서 주제선정과 재원배분을 범국가적 관점에서 조정한다. ?정보인프라 구축방안 정보시스템간 연계 등 소프트웨어적 인프라가 미흡한 실정이다.관련법·제도를 조기에 정비해야 한다.정보통신망 고속화,고도화,인터넷 기반의 시스템 연계,국가지식관리시스템 구축,전국민 정보화 교육 등을 추진한다. ?문화·관광산업 활성화 애니메이션·게임·전통문화산업을 집중 육성한다. 번역원을 설립해 외국문화와의 접점을 확대한다.정보기술을 활용,관광사업추진주체간 네트워크를 구축한다. 김균미기자 kmkim@
  • 공공부문 경영혁신 실태 대통령이 직접 챙긴다

    다음달부터 공공부문의 경영혁신 실태를 대통령이 직접 챙긴다. 기획예산처는 정부부처와 지방자치단체,공기업,산하 연구기관 등 공공부문의 경영혁신 사례를 소관 장관이 대통령이 주재하는 국무회의에 직접 보고토록 하겠다고 14일 밝혔다. 기획예산처는 다음달 2일까지 행정자치부와 함께 각 공공기관의 경영혁신사례를 취합,심사한 뒤 2주에 한번씩 1∼2건의 우수사례를 소관부처 장관이 국무회의에서 소개할 방침이다. 기획예산처는 민영화,아웃소싱(위탁경영) 회계제도 개선을 통한 예산절감 인사·보수제도 개선 업무방식 개선 직원의 신지식인화 민간 경제활동 활성화 고객만족 향상 행정 투명성 제고 사례 등을 각 부문별 경영혁신 사례로 꼽았다. 기획예산처는 국무회의에 보고된 우수사례를 중심으로 내년 5월 ‘공공부문경영혁신대회’를 열어 우수기관을 포상할 계획이다. 진경호기자 jade@
  • 中문학의 큰별 ‘루쉰’ ‘자오수리’ 일대기 출간

    ‘루쉰(魯迅)과 자오수리(趙樹理)’.둘은 중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들이다. 루쉰(1881∼1936)은 중국문학 전문가들에게서 단연 최고봉으로 꼽히는 대가이며 한국에서도 유명하다.1918년 ‘광인일기’로 중국 현대문학의 문을 처음으로 열었다.그의 ‘아큐정전(阿Q正傳)’은 중국인들에게 셰익스피어의 ‘햄릿’에 맞먹는 명작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마오쩌뚱(毛澤東)은 그를 “문화혁명의 주장으로 위대한 문학가,사상가,혁명가”라고 칭송하기도 했다. 그러나 자오수리(1906∼1970)는 국내에는 다소 낯설다.루쉰이 지식인에게초점을 둔 것과 달리 자오수리는 농민을 주제로 삼았다.‘루쉰’을 애독했지만 독자적인 문학의 길을 개척해 대장정 시기에 마오쩌뚱 주더(朱德)에 못지않게 이름을 떨쳤다. 이처럼 중국 현대문학계에서 위대한 작가로 추앙받는 이들의 일대기가 최근 출판사 ‘동과서’에 의해 출판됐다.‘인간 루쉰’(왕샤오밍 지음,이윤희옮김)과 ‘자오수리 평전’(가마야 오사무 지음,조성환 옮김). ‘인간 루쉰’은 사대부의 맏아들로 태어나의사의 길을 걷고자 일본 유학을 떠났으나 중국의 비참한 현실을 깨닫고 귀국,문예로써 중국인의 정신을계몽하고 절망에 투쟁하는 개혁주의자의 모습을 담담하게 보여준다.루쉰의문학은 민족적 자존심과 타협없는 비판정신으로 요약된다.55세때 병으로 숨진 그는 60여년이 지난 요즘까지도 ‘아름다운 향기’를 남기고 있다. ‘자오수리 평전’도 역시 위대한 작가정신을 보여준다.자오수리는 농사를지으며 농촌의 개혁을 외친 농민작가였다.그러나 그는 문화혁명기에 홍위병의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라오셔(老舍·1898∼1966)등 다른 인민작가와 함께 ‘중간적인 지식인’으로 지목돼 변을 당한 것이다.중국은 자오수리의 죽음을 9년만에 공개,그의 사망을 한동안 숨겼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루쉰과 자오수리는 같은 점도,다른 점도 많았다.중국의 어두운 현실을 개혁하는데 힘을 쏟은 점과 30대의 나이에 뒤늦게 작가로 나선 점은 같은 부분이다.그러나 루쉰은 사대부집 출신이었고 자오수리는 가난한 농부의 아들이었다.루쉰은 지식인을 독자로 삼았으나 자오수리는 길거리에서 좌판을 놓고 자신의 책을 농민들에게 보여주는 ‘노점의 문학가’가 되고 싶어했다. 출신과 인생역정,죽음의 모습은 차이가 있어도 이들은 둘다 문학을 통해 민중의 생명력을 꽃피우려 한 지식인이라는 점에서 중국문학계에서 위대한 작가로 높이 평가받고 있는 것이다.‘인간 루쉰’ 8,500원,‘자오수리 평전’7,000원. 박재범기자 jaebum@
  • [굄돌] 꽃다발 없는 졸업식

    한 사람의 여성으로부터 꾸준히 사랑을 받아온 나는 행복한 영화평론가다. 아내의 행복이 곧 나의 행복이라는 게 나의 지론이다.하지만 줄곧 아내를 혹사시켜온 이기주의적인 남편의 한 사람이다.원고는 항상 아내의 손질을 거쳐세상에 나왔고, 그 덕분에 나쁜 글을 쓰는 지식인이라는 ‘오명’은 아직 듣지 않는다. 아내에 대한 혹사하는 계속된다.지난주 일주일은 아산에서 있은 제 1회 한·일 청소년 영화제에 참여하느라 꼬박 집을 비웠다.사랑하는 아들과 딸,이두 아이와 아내는 번갈아 가며 전화를 주었다.“제발 목소리만이라도 듣고살자”며 멀고도 가까운 거리감을 따뜻한 마음으로 메꿨다.하지만 서울에 도착한 즉시 딱 하루 집에서 자고 충무로 일로 바쁘다. 새벽 2시 넘어서 귀가하는 남편을 위해 잠을 자지 않고 온유한 미소로 맞아주고 함께 목욕하고 잔다. 그것도 잠깐 4시간 가량 눈을 붙이고 나서 일터로나가는 남편을 위해 따뜻한 ‘국 한 그릇’을 정성껏 차려주고 “여보,열심히 사는 모습 보니까 좋다”라고 용기를 얹어준다.아 나는 이 행복을얼마나오래 누릴 수 있을까 .감사의 표현이 모자란 나에게 있어 나는 정말 글로 먹고 사는 영화평론가의 자질이 있는 지 의문에 빠지기도 한다. 아내의 하루를 생각해 본 지가 꽤 오래 되었다.교육개혁을 부르짖을 때 성실한 교사들이 속앓이를 겪을 시기에 위로의 말도 제대로 건네지 못했다.수업 이외에 특활지도에 힘쓰는 노력은 야간대학원을 다니는 학문적 열정으로까지 이어졌다.두 아이의 친구이자 말벗의 일인자로서 손색이 없다.아내에게는 거짓이 없다.우리는 거짓을 밀어내는 인생을 살기로 하고 결혼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가훈처럼 껴안고 실천하고 있다.아내의 삶의 성실과 지혜로움,매력적인 목소리는 위기의 40대인 나에게 활력소가 되고 있다.그런데 지난 8월에 있은 아내의 대학원 졸업식때 꽃다발을 준비하지 않았다.아내에게 가혹한 일상을 안겨준 어제의 일들이 어째 꽃다발 하나로 보상될 수 있겠는가.내가 쓰는 영화평론의 힘은 아내로부터 나온 것이다.“여보,사랑해.”[양윤모 영화평론가]
  • 平統 각계 154명 설문조사 “통일 앞서 지역갈등 해소”

    상당수 지식인들은 통일을 위해선 지역·계층·세대간의 갈등해소가 먼저이뤄져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것으로 조사됐다.또 통일기반 강화를 위해 정부가 추진해야 할 가장 중요한 정책과제로 민족화해와 국민대화합을 꼽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같은 사실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처(사무처장 孫進榮)가 최근 전국 주요 대학교수,정부연구기관장 및 통일 관련 단체장,언론인,여성지도자 등각계 대표 15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확인됐다. 통일에 대비해 우선 이뤄져야 할 과제에 대해 46.9%는 우리 내부의 지역ㆍ계층ㆍ세대간 갈등해소를 들었다.이어 남북 교류협력 활성화(32.9%),남북주민간 이질감 해소(10.6%),적극적인 정부정책 홍보(7.1%) 등을 꼽았다.통일기반 강화를 위한 우선 정책과제로는 34%가 민족화해와 국민대화합의 실현을들었고 한반도에서의 전쟁 억지력 확보(26.8%),통일정책에 대한 국민적 합의 형성(23.5%)도 중요한 것으로 응답했다. 또 응답자의 50%는 국민화합의 정도가 지난 3∼4년 전보다 크게 달라지지않았다고 평가했다.26.5%는 더 나빠졌다고 답했으며 화합의 정도가 좋아졌다는 평가는 23.3%에 불과했다. 지역갈등의 발생원인으론 이해관계 차이(42.9%),경제적 격차(15.6%),정치적 이념 차이(14.9%),역사적 기반 차이(10.4%),생활방식 차이(1.3%) 등을 꼽았다. 이석우기자 swlee@
  • ‘돈 경멸’ 선비들의 美德?…평론가 이동하교수

    조선시대의 선비들은 ‘돈’을 천시했다.한마디로 재물을 철저히 경멸했다. 어떤 이들은 그 결과 조선이 자본주의적 근대화를 이루지 못했고,결국 조금더 빨리 근대화된 이웃나라의 식민지가 되지않았느냐고 비판하기도 한다. 이처럼 돈,나아가 경제활동을 지나치게 경멸한 조선의 선비정신에 오늘날에는 상당한 책임을 묻는 분위기가 있는 것 같다.그렇다면 한국의 문인들이 돈을 바라보는 시각은 어떤 것일까. 문학평론가 이동하(서울시립대교수)는 최근 펴낸 산문집 ‘한 자유주의자의세상읽기(문이당)’의 상당 부분을 ‘한국문학과 돈’문제에 할애했다. 결론은 “돈을 경멸하는 조선시대 사상은 염상섭이나 채만식같은 특출한 작가를 제외하면 20세기 들어서도 한국작가 상당수의 가슴속 깊은 곳에,여전히완강히 살아 있다”는 것이다. 그는 “돈을 멸시하는 조선조 선비들의 정신에는 그것대로 아름다움이 존재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러한 정신에 깃든 문제점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한사회를 건강하고,풍요롭게 만들기 위해서는 정치·문화·경제 엘리트가모두 존중받는 가운데 협력하면서,견제하는 관계로 존립해야 한다.그런데 조선조는 앞의 두가지에만 드높은 가치를 부여하고,마지막 한가지는 철저히 배척·부정했다. 이런 한계를 어느 정도 극복한 집단이 그래도 실학파 지식인들 가운데 북학파다.그러나 북학파를 대표하는 연암 박지원 마저 그 한계를 완벽하게 넘어서지는 못했다.‘열하일기(熱河日記)’가운데 ‘옥갑야화(玉匣夜話)’에 나오는 허생은 연암이 생각하는 가장 바람직스러운 지식인의 모델이다.그러나허생 조차 경제엘리트를 마음속으로 천시하는 등 선비정신의 한계만 선명하게 드러냈다.더 큰 문제는 오늘날에도 ‘옥갑야화’류의 작가정신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데 있다.20세기 한국소설에서 기업인을 다루는 방식은 천편일률적으로 부정 일변도다.소설속에서 긍정적으로 조명하는 예는 많지않다. 중립적인 시각으로 대하는 때 조차 흔치 않다. 이를 가장 먼저 문제삼은 것은 지난 66년 ‘풍속적 인간’을 발표한 문학평론가 김현이다.그는 “한국소설에서 여러가지 타입으로 형상화되어 있는 소위 ‘근대인’들이 겪고 있는 치명적인 결점은 돈에 대한 모멸,혹은 경멸에기반을 두고 있는 듯 하다”면서 “한국소설이 그처럼 재미없이 성교를 다루고,그처럼 구질구질하게 관념을 잘게 짓이겨놓은 것은 바로 돈에 대한 경멸때문”이라고 말했다.김현의 통찰은 그러나 아직도 작가와 평론가 모두에게수용되지 않고 있다. 이동하는 조선말의 비극이 시사하듯 “작가들이 돈과 기업인을 너무 부정적으로만 그리는 경향은 수정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그럼에도 그렇게되지못하고 있는 것은 ‘한국 현대 지식인들 일반의 반자본주의적 편향’ 때문이라고 지적한다.결국 우리 사회가 참다운 의미에서 근대적 사회,진보된 사회,열린 사회로 나아가려면 이러한 편향성을 철저하게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 이동하의 결론이자 충고다. 서동철기자 dcsuh@
  • [김삼웅 칼럼] 지식인의 정치참여문제

    16대 총선을 7개월 앞두고 여야가 신당 창당과 새 인물 영입,제2창당을 서두르면서 유망한 지식인·전문가들의 정치참여문제가 관심을 모으고 있다.현 정치인들에게 21세기 국가운명을 맡기기 어렵다는 것이 국민여론이라면 인물교체는 당연하다.정치인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면서 정치혐오증과 무관심이 깊어지는 현상도 인물교체의 필요성으로 작용한다. 신당 창당이나 제2창당이‘그 나물에 그 밥’으로 간판과 메뉴만 바뀌어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인적청산과 인물교체를 통해 정치가 활력을 찾고 국민에게 희망을 안겨주고 국민통합과 새 천년을 이끌 주체가 되도록 해야 한다.그러자면 지식인·전문가들이 과감하게 참여해야 한다. 지식인과 전문가들의 인식변화가 중요하다.도덕적으로 깨끗하고 학식과 전문성을 갖춘 식자 중에는 정치참여를 꺼리는 사람이 적지않다.정치에 참여하면 피해를 당한다는 외상의식(外傷意識)이 작용하는 까닭이다.조선시대의 무오·갑자·기묘·을사 등 각종 사화와 붕당에 가담했던 사람이면 대부분 화를 입어 위방불입(危方不入)과 오불관언(吾不關言)의 피해의식 때문이다. 또한 역대 독재정권이 정통성의 포장용으로 차출(또는 자원)하여 방패막이로 써먹고 용도 폐기하거나 부정선거,인권탄압의 하수인으로 전락시킴으로써 참여지식인에 대한 국민의 인식이 좋지 않은 이유도 작용한다.따라서 순수한 지식인·전문가일수록 정치참여에는 상당한 용기를 필요로 한다. 지식인 참여의‘원칙’과 관련해서 논어의 가르침 이상의 정답은 없다고 본다. 天下有道則見(천하유도칙견)無道則隱(무도칙은)邦有道 貧且賤焉 恥也(방유도 빈차천언 치야)邦無道 富且貴焉 恥也(방무도 부차귀언 치야) 국가에 도가 섰을 때는 참여하고 도가 없을 때에는 은거해야 한다 도가 있는 데 빈천함은 수치이고 도가 없는 데 부귀함도 수치이다. 지식인의 참여가 선행일 경우와 악행일 때가 있다.독재정권의 이데올로그나 하수인으로 참여한 지식인이 후자라면 반독재저항운동에 참여한 지식인은전자라고 하겠다.아직 이들에 대한 공과가 가려지지 않고 단죄와 포상이 이뤄지지 못한 것은 우리 지성계의 숙제로남는다. 지식인이 배운 학식과 재능을 후진교육과 함께 국가발전에 기여하는 것은당연한 일이다.‘국가발전’의 영역은 대학이나 연구소일 수도 있고 정부나공공기관 또는 국회일 수도 있다.문제는 어떤 자세로 어디에 참여하느냐다. 독재정권하에서의 정치참여는 어용지식인의 권력욕이지만 50년 만의 수평적정권교체가 이루어진 민주화시대의 정치참여는 국가에 대한 헌신이고 떳떳한 주권행사다. 드골정권의 문교상으로 입각한 앙드레 말로를 어용문인으로 평가하는 사람도 없고,닉슨정권에서 국무장관이 된 키신저를 정치교수라고 험담하는 사람도 없다.페이비언주의자나 루스벨트 대통령과 케네디정부의 브레인트러스트를 어용으로 보거나 권력욕으로 비판하지 않는다. 선택한 권력이 정통성을 갖고 재야나 재조(在朝)에서나 신념과 원칙을 지킬 수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정치참여는 지식인 참여의 성공한 모델로 남는다. 지금까지 역대 정부나 국회에 적잖은 지식인과 전문가가 참여했다.그렇지만 대부분 기성 정치인화,관료화하거나 독재권력의 이론가 또는악법 제정의전문가 역할에 그쳤다.정치발전의 역할은커녕‘한물에 휩쓸려’서 제도권으로 쉽게 응고되었다. 이젠 달라져야 한다.지식인그룹이 정치에 참여하여 전문성과 참신성으로 비생산·파쟁·비능률을 불식시키고 국가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해야 한다.정치는 아무나 할 수 있다는 잘못된 풍조가 정치의 저질과 후진성을 불러왔다. 새 인물에 대한 기대가 큰 만큼 이들에 대한 검증작업도 필요하다.현역 중에도 유능한 의원이 있고‘새피’중에도 낡은 인물이 있을 수 있다.철저한예비검증을 통해 깨끗한 정치인·전문성 있는 정치인들로하여금 새 시대를이끌도록 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막스 베버의“정치가 그 고향으로 삼아 정착할 곳이 바로 도덕이다”란 경구를 정치인 검증의 첫 관문으로 삼았으면 한다./주필
  • [깊이읽기] 조너선 스펜스의 ‘마테오리치,기억의 궁전’

    사람들이 자기가 익힌 지식과 정보를 마치 집을 짓듯이 원하는 형태로 정돈해 두고 자유자재로 이용할 수는 없을까.상상 속에서나 가능할 듯한 이런 바람이 실제로 고대 유럽에서는 특별한 훈련,즉 기억과 관념을 구체적 형태를가진 기억용 이미지로 만들어 ‘기억의 궁전’에 보관하는 기억술을 통해 실현되고 있었다.16세기 후반,이탈리아 출신의 예수회 선교사 마테오 리치(1552-1610)는 전교를 위해 파견된 중국에서 기억의 궁전을 건설한다.리치는 ‘기법(記法)’이라는 저술을 통해 이런 유럽의 기억술을 중국 지식인들에게소개한다.그는 기억술을 통해 중국인이 유럽 문화에 관심을 갖고 나아가 가톨릭 신앙에 관심을 갖게 되기를 기대했을 것이다. 이로부터 약 400년이 지난 오늘날,중국사학계의 거장 조너선 스펜스는 시간에 묻혀 잊혀졌던 리치의 기억의 궁전을 재건했다.스펜스는 궁전의 문을 여는 단서로 ‘기법’에서 제시된 무(武),요(要),이(利),호(好)의 4글자로 만든 4개의 이미지와,리치가 ‘정씨묵원(程氏墨苑)’이라는 화집에 실은 4장의성화를상호 연결시키는 방법을 택했다. 글자와 그림의 이미지들은 바로 리치가 속했던 고전 라틴문화와 유럽 문명의 산물임과 동시에 그의 갖가지 인생 경험이 축적된 내면세계 그 자체를 나타낸다고 본 것이다.이 이미지를 통해 리치의 일생의 핵심을 이루는 주요한 주제들,즉 분쟁 항해 교리 학술 경제 배덕 성모신앙 등으로 궁전을 구성하였고 리치가 거쳐간 유럽과 인도,중국의 각 문화권에서 이 주제들이 어떻게 형성,변화되어 가는지를 추적하고있다. 그 결과 마테오 리치의 기억의 궁전에는 낯선 땅에서 신앙의 씨앗을 뿌리기 위해 분투하는 한 선교사의 일생과 함께 16세기 후반의 유럽 및 동아시아세계가 다면적으로 재현된다.당시 유럽은 지리적 발견과 대항해 시대로 대표되는 팽창기에 들어섰고 리치의 중국 파견도 그 선상에서 이해될 수 있다.동서의 양 세계는 교역 등의 물리적 차원에서부터 리치의 파견과 같은 문화적 측면에 이르기까지 일찍이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양상으로 상호 접촉과 충돌을시험하고 있었던 것이다.리치의 기억 속에서 동과 서는 상호의 지적체계의이해를 통한 내면적인 만남을 시도하고 있다.리치는 놀라운 의지와 능력으로동아시아의 정신 문화의 핵심부에 도달할 수 있었고 중국의 지식인들과 여러방면에서 지적 교류의 단서를 만든다.이 만남은 유럽의 제국주의적 침략으로얼룩진 이후의 역사에서는 단절되어 잊혀지게 된다. 양 세계의 굴절된 상호인식,오해와 편견 등이 여전히 위력을 떨치고 있는 오늘날,리치의 기억의 궁전으로의 여행은 16세기의 세계와 인간에 대한 풍부한 지식과 함께 우리의고정된 기억들에 새로운 의문을 안겨주는 의미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차혜원 연세대 강사
  • [대한시론] 정보·지식 공유하는 사회로

    20세기에 접어들어 각종 정보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며 오늘날 우리는 정보의 홍수속에 살고 있다.1900년에서 1950년 사이에 지구상의 정보보유량은 두배로 증가했고 1970년에는 또 그 두배로 증가했다고 한다.즉 정보의 총량이 두배가 되는 속도가 50년에서 20년으로 줄었고 최근에는 그 주기가 5년 정도로 단축되었다고 하는데 2020년경에는 불과 몇 개월마다 두배가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그렇게 엄청나게 쏟아지는 산발적인 정보들을 취사선택하여 활용할 수 있는, 살아있는 지식으로 만드는 것이 이른바 지식기반사회를 실현하는 요체라 하겠다. 다니엘 벨은 후기산업사회를 지식기반사회로 특징지은 바 있다.지식기반사회의 핵심요소인 지식은 단편적인 정보와는 다르다.벨 교수는 지식을 “이성적판단이나 경험적 결과에 관한 사실이나 개념을 조직화·체계화한 집합체”라고 보았다.따라서 정보는 전달받은 사람이 습득하여 가공한 후에야 그 사람의 지식이 된다.그러므로 지식의 가치는 정보를 흡수하여 얼마나 체계화하고 활용할 수 있느냐 하는개인의 능력에 크게 좌우되는 것이다. 우리가 지식기반사회를 이끌어가는 세대로서의 역할을 다하려면 이러한 자질을 갖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한다.우선 풍부한 정보와 전문성을 습득하기 위해 끊임없이 공부하고 자기계발을 위해 투자해야 한다.그리고 그러한 정보를 체계화해 자기 직무수행과 생활에 활용하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더 나아가서 지식인들에게 기대하는 것은 도구로서의 지식을 갖는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가치있게 활용하는데 필요한 지혜와 윤리의식을 확립하는 일이다.잘못 사용한 지식은 무지보다도 더 큰 해독을 끼칠수 있다.사전에 보면지혜(wisdom)는 정확하게 식별하고 판단하는 능력,또는 적절한지 부적절한지를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규정하고 있다.소크라테스도 지혜란 “지식을적절하게 그리고 올바르게 사용할줄 아는 것”이라고 했다. 특히 사회의 지도계층을 형성하고 있는 지식인들은 전문적인 지식의 축적에그치지 않고 소유한 지식을 공익의 실현과 사회의 발전을 위해 활용하는 공인(公人)의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많은 사람들의 피와 땀으로 형성된 정보와 지식을 자신이나 자기 조직만의 이익을 위해 이용하고 타인에게는 그것을 감추거나 악용한다면 그것은 지식을 생성해온 인류사회의 은혜를 저버리는 범죄 행위라 할 수 있다. 다른 물질적인 재산과 달리 정보나 지식은 나눌수록 작아지는 것이 아니라공유할수록 양적으로 확대될 뿐 아니라 질적으로 내실화되는 속성을 가지고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작년 3월부터 전개되고 있는 교육정보 공유운동은 매우 바람직하고 의미있는 일로서 높이 평가하고 싶다.교원들중에서 직무수행과 관련하여 자신이 개발한 자료나 아이디어를 에듀넷(edunet)이라는 인터넷망에 올려 다른 모든 교원들이 활용할수 있게 하는 운동이다.금년 6월말까지800명 이상의 교원들이 1만2,000여건의 자료를 에듀넷에 띄웠으며 거기에 접속하여 이용한 사람은 연 1백만명이 넘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자기가 애써 수집하여 체계적으로 재구성하거나 창의적으로 개발한 정보나지식을 얼굴도 모르는 모든 사람들에게 제공하여 활용할 수 있도록인터넷에올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시간과 노력과 경비가 소요되는번거로운 작업일 뿐 아니라, 혼자서 독점해도 무방한 자원을 타인에게 개방하여 함께 활용하게 하겠다는 자세가 전제되어 있지 않으면 안된다.제2세 국민을 양성하는 교원들 사이에 이러한 운동이 확산되고 있는 것은 교육적인견지에서도 큰 파급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오늘날 지도계층에게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자세는 더불어 사는 협동·봉사정신이다.내가 사는 조직과 사회의 부족한 부분을 내가 솔선해서 메우고,가지지 못한 구성원들에게 내가 가진 물질과 지식과 기술을 나누어주면서 봉사하겠다는 태도가 절실히 요구된다. 특히 가진 자와 지도계층이 진실로 자신을 낮추는 겸손한 자세로 조직을 운영하고 사회를 이끌어 가야만 민주복지사회가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金信福 서울대 행정대학원장 한국행정학회장]
  • [굄돌] 지식의 지배

    ‘부는 지식이 결정한다’는 명제를 달고 나온 레스터 C.서로의 ‘지식의지배’가 출간되자마자 대형서점 종합베스트셀러 1위에 2주 연속 올랐다.이런 유형의 책이 종합 1위에 오른 것은 비단 이 책만이 아니다.이미 ‘제3의길’(앤서니 기든스)과 ‘생각의 속도’(빌 게이츠)가 최근 종합 1위에 올랐었다.이밖에도 ‘세계화의 덫’(한스 피터 마르틴 외),‘세계 자본주의의 위기’(조지 소로스) 등이 베스트 상위권에 진입하며 단숨에 5만부 이상이 팔려나갔다. 경박단소(輕薄短小)한 책이 아니면 베스트셀러에 오르지 못하며 웬만큼 지명도가 있는 작가의 소설책이 1∼2만 권을 넘기기 어려운 최근의 우리 독서시장에서 벌어지는 이같은 현상은 매우 고무적임에 틀림없다. 지식·정보화시대의 주요 생산요소는 지식과 정보다.대중 모두에겐 지식과정보를 수집하되 그 지식들을 가공하여 자신에게 유용한 지식으로 만드는 능력이 필요하게 되었다.그러나 조직에서 지시만 받는 것이 일상화된 사람들에게는 그런 능력이 쉽게 형성되지 않는다. 사상 초유의 IMF라는대환란을 맞게 되고 난공불락처럼 여겨지던 대기업들도 ‘워크아웃’을 당하는 지경에 처하는 현실을 목도하게 되는 대중은 오늘 우리가 맞이하는 시대가 혼란스럽기만 하다.그들에겐 이 세상을 새롭게 읽을 새로운 안목이 필요하다.그런 안목을 키워주는 책은 출판불황 속에서도출간되자마자 불티나게 팔려나가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지켜보면서 아쉬운 점이 적지 않다.가장 큰 아쉬움은 국내저자의 책이 없다는 것이다.‘신지식인’이란 개념이 등장하자 지식인들은우리 사회가 지나치게 경제논리에만 치중해 계량적 이익이 큰 지식만을 추구함으로서 결국 비판적 지식인의 존재 자체를 부정한다고 불평만 하였지 정작 대중의 목마른 갈증을 채워주진 못하고 있다. 앞의 책들이 한국적 현실에서의 유용성은 별개의 문제다.새로운 세상을 읽을 수 있는 정보를 자신에게 유용하게 분석해서 하루빨리 판단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절박한 이 시대의 ‘인간’에게는 이 마저도 이미 가뭄에 단비일것이기 때문이다. 지식이 지배한다는 시대에 정작 지식인이 제 자리를 찾지못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 아이러니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장]
  • 공무원 스터디그룹-영어연구모임 ‘CEM’

    “우리 모임은 회원들이 습득한 영어 지식이나 정보를 공유,확산·재창조하려는 영어 분야 신지식인 모임입니다”. 인터넷으로 영어공부를 하는 공무원 연구모임인 CEM(Cyber English Mania)회원들의 자기소개다. 이 모임은 영어를 지속적으로 공부하고 싶으나 시간내기가 어려운 사람들끼리 사이버공간에 모여 서로 학습하자는 취지에서 행정자치부 공무원들이 중심이 되어 지난 3월 결성됐다. 회원은 국가·지방공무원은 물론이고 민간인,학생 등 누구나 가입할 수 있게 개방되어 있다.현재 60여명의 회원이 가입했다. 사이버 연구모임답게 회원들의 소속 부처는 다양하다.행자부,농림부,노동부,정보통신부,법무부,해양수산부,경찰청 등 중앙부처에서부터 서울시 마포구청,경북 상주교육청,대전 중구청,문경시청 교통행정과 등 지방공무원과 장기유학생도 포함되어 있다. 가입하려면 사이버 교육훈련 홈페이지(www:training.go.kr)의 ‘함께하는영어방’에 들어가 성명,근무처,연락처,전자메일 주소,간단한 자기소개와 함께 가입의사를 밝히면 된다. 가입은 자유로우나 2개월 이상 특별한 사유도 없이 참여실적이 없으면 자동적으로 탈퇴 처리된다. 그러나 아직까지 자동 탈퇴당한 회원이 한 명도 없을 정도로 모임은 활기차게 돌아가고 있다. 회원들의 참여는 인터넷에 글을 띄우는 것으로 이뤄지고 있다. 일상생활에서는 물론 각종 시험에서 자주 나오는 숙어를 띄우는가 하면 알기 쉬운 영문법,Time지로 배우는 영어,영자신문 초보 읽기,유머로 배우는 영어 등도 실리고 있다. ‘TEPS 따라잡기’를 연재하고 있는 기술표준원의 오기수(吳奇洙)씨는 “갈수록 회원이 늘고 있다”고 자랑스러워 했다. 모임의 총무를 맡고 있는 중앙공무원교육원의 박문규(朴文圭)씨는 “앞으로 회원간의 유대강화 및 실력배양을 위해 강사를 초빙,강의를 들으며 공부하는 자리도 만들 계획이며 초기에 개설했다가 서버용량 부족으로 폐쇄한 영어토론 대화방도 곧 재개설할 것”이라며 많은 참여를 당부했다. 박현갑기자 eagleduo@
  • [변혁으로서의 문학과 역사] (32회)-’미친 새’(상)

    ◆ 박양호의 우화소설 '미친 새'(상) 유신통치 시기의 민주화운동은 편의상 긴급조치 1호(1974년 1월8일 선포.헌법에 대한 일체의 논의 비판 금지 및 유언비어 금지),4호(4월3일 선포.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 관련 활동 금지) 시대를 그 전반기로 구분할 수 있다.1·4호에 의한 구속자들이 대폭 석방된 1975년 2월15일 직후인 5월13일 박정희 전대통령은 긴급조치 9호(유신헌법의 부정·반대·왜곡·비방·개정 및폐기를 주장하거나 청원·선동 또는 이를 보도하는 행위 일체 금지)를 선포하여 독재권력의 마지막 유지에 매달리고 있었는데,이후를 긴급조치 9호 시기,즉 유신통치 후반기로 볼 수 있다. 이미 독재의 고삐가 풀어져 가던 1976년 3월1일,윤보선·김대중·함석헌·함세웅 등 20명이 명동성당에서 ‘민주구국 선언문’을 전격 발표하여 구속된 것은 그로부터 열흘 뒤인 3월10일이었다.이후 한국의 민주화 운동은 세계적 지평으로 떠올라 고조되고 있었다.그러나 국내에서는 오히려 지식인·언론에 의한 박대통령과 유신통치의 찬양 논조가 늘어나던 시기이기도 했다.명동성당의 3·1구국사건을 “시대착오적인 반국가적 파괴음모”라고 맹비난을퍼부었던 당시의 주요 신문 사설이나, 유신통치를 “민족주체 사상”이라고추켜 세웠던 모모한 어용교수들의 글은 역사의 영원한 반사교훈으로 남을 것이다(자세한 사항은 김삼웅 ‘곡필로 본 해방 50년’ 참고). 바로 이 어수선한 시절에 작가 박양호는 중앙대 예술대학 강사로 나가는 한편 열심히 창작에 전념하며 지냈다.그는 인간이 생존 조건의 변화에 대하여어떻게 반응하는가를 관심있게 추구하던 중 ‘생각하는 개’란 우화소설을발표한 바 있다.항상 묶여있는 개와 끈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려는 개의 우화는 인간의 자유 문제로 비약한다. 1977년 여름 밀양 표충사에 한 달 가량 머물면서 박양호는 다른 중편과 함께,인간을 비롯한 생명체를 가진 모든 존재는 자유를 지향한다는 취지에서소품 ‘미친 새’란 우화소설을 썼다.상경 즉시 그 원고는 ‘현대문학’에넘겨졌고,10월호(통상 9월 하순이면 발매)에 게재되어 독자들의 시선에 들어갔다. 그런데 작가는 주변에서 뭔가 이상하게 조여오는 느낌이었다.호적상 본적지로 되어있는 동빙고동에서 약국을 하던 누님의 집 주변부터 형제들,그리고작가가 살고있던 남가좌동 주변과 강의를 나가는 대학에 이르기까지 철저한배후조사가 진행되고 있었다.경찰관을 지냈던 아버지여서 집안의 신원조회는그럭저럭 넘어간 듯 했으나 교우관계부터 여성문제, 돈 등 온갖 사항을 두루파고드는 낌새 속에서 작가는 일말의 불안에 싸였다. 마침 조치원의 한 친구에게 문상 갈 일이 생겨 옷과 돈을 여유있게 챙겨 나간 10월15일 그는 전격경찰에 연행당해 피신을 준비했다고 뜻밖의 추궁을 견뎌야만 했다. 어떤 필화사건도 그 첫 심문은 반국가적인 조직과의 연관 여부에 대한 추궁이다.박양호에게 집요하게 추궁한 것도 ‘미친 새’가 “너의 머리 속에서나온 것이냐” 아니면 “다른 인물과 접촉하여 이런 이야기를 쓰라고 해서쓴 것이냐”는 질문이었다.작가 나름대로의 진지한 문학론과 상관없이 수사기관에서는 이미 소설보다 더 긴 소설을 써두고 거기에 맞춰 나가는 것이 필화의 상례인데,박양호라고 예외일 수는 없었다. 절차와 수순에 따라 박양호는 적당히 얻어맞으며 인격적인 모독을 열흘 동안이나 견뎌야 했는데,경찰 유치장 기록에서는 그를 ‘특수절도’죄로 분류하고 있었다.취재진이나 외부인에게 긴급조치 사실을 은폐하기 위한 조처였다.10월25일 구속영장이 떨어져 서대문 구치소로 옮겨진 박양호는 그 당시로서는 실로 운좋게 한 달만에 기소유예로 풀려났다. 任軒永 문학평론가
  • ‘숨은 걸작’다시 읽기…최인훈 ‘서유기’

    한 작가의 이른바 ‘대표작’은 영원히 대표작일 수 있을까.안정된 사회에서는 ‘인정받는 작가의 잊혀진 명작’이란 존재하기 힘들다.그러나 불과 50년 사이에 온갖 풍상을 다 겪은 한국 현대문학에 이르면 상황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런 우리 문단이 ‘지나간 시대’에 눈을 돌리고 있다.‘문학과 사회’ 가을호가 ‘숨어 있는 걸작을 다시 읽는다’를 실어 이런 분위기를 선도한다. 첫번째 ‘숨어 있는 걸작’으로는 최인훈의 ‘서유기(1966)’가 지목됐다. 지난 시대의 작품을 새삼스럽게 다시 찾아내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문학과 사회’의 채호기 주간은 “우리 문학사에는 말 그대로의 걸작들이 다른 대표작에 가려져 있다”면서 “그런 작품들을 다시 수면위로 끌어내려는의도”라고 말한다.그러면서 “요즘 작가들은 과거와의 연결고리없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 처럼 생각하고,예전의 장인적인 글쓰기와도 너무 멀어져 있는 것 같다”고 치열한 작가정신을 부각시킴으로서 문단에 경종을 울리겠다는 뜻도 없지않음을 내비치기도 했다. 그러나문학사의 폭을 조금 넓힌다거나,과거의 작가정신을 온고지신(溫故知新)으로 삼는 것이 한 때는 미처 걸작으로 생각치 못했던 작품을 눈 비비고다시 쳐다보는 이유의 전부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이번에 ‘서유기’를 분석한 문학평론가 권오룡의 고심도 여기서 출발했던것 같다.그는 ‘발표된지 30년이 넘는 작품을 다시 읽는 의미’에 대한 답으로 ‘그 작품이 지금 이 시점에서도 발언할 수 있는가’를 제시했다. 권오룡에 따르면 ‘서유기’는 최인훈의 대표작인 ‘광장(1960)’과 내용적으로 대칭적이다.두 소설 사이에는 또 ‘회색인(1963)’이 겹쳐 있다고 한다. 그런데 ‘광장’에서‘서유기’로의 이행은 작가의 개인적 문학 세계의 테두리 속에서만의 의미로 한정되지는 않는다. 정치주의 혹은 운동주의에서 문학주의로,집단의 논리에서 개인의 감성으로,이념의 추구에서 자아의 탐색으로 전환하는 내용에서 ‘광장’에서‘서유기’에 이르는 진행과정과 80년대 문학에서 90년대 문학으로서의 이행과정은 매우 흡사하게 닮아 있다. 60년대 한 지식인의 개인적 체험이라는 의미로 한정될 수 밖에 없었던 이념의 혼란을,객관적 현실로 체험되고 입증된 90년대의 상황과 겹쳐놓으면 그의미는 더 이상 특이한 감수성의 범주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60년대 독자들의 손쉬운 접근을 가로막았던 난해함의 근원이 어디에 있었는지도 이해할듯 하다. 이같은 주장을 수용하면 ‘서유기’는 작품이 씌어질 당시 보다는 90년대에더 크게 발언하는 소설로 다가온다.‘서유기’의 진정한 가치가 어떻든 ‘숨어있는 걸작’을 다시 읽어야 하는 의미는 분명해진 셈이다. ‘숨어 있는 걸작…’은 소설과 시를 번갈아 한편씩 선정할 계획이다.따라서 다음은 시가 된다.시의 첫회는 김수영이 될지,그 다음 세대가 될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지만 주목해도 좋을 것 같다. 서동철기자 dcsuh@
  • [외언내언] 장애인 불임

    정신병적인 발작으로 자신의 왼쪽귀를 자른 네덜란드의 화가 반 고흐는 자신은 정신병을 앓고 있지만 정신적으로 끝없이 시달리는 다른 예술가들에 비해 정신지체가 그림을 그리는데 장애가 된 적은 없다고 했다. 정신지체는 유전이라기보다 심리·사회적 환경변화에 따른 충격요인이 대부분이며 꾸준한사랑과 주변의 관심이 이를 치료할 수 있다고 학자들은 말한다. 지난 97년 스웨덴의 유력지 다겐스 니헤테르지는 1935년에서 76년까지 집시나 부랑자,정신지체장애인,미혼모 등 ‘열등하다’고 판단되는 6만명의 강제불임수술을 폭로하여 충격을 던진 바 있다. 각 시민단체와 지식인들이 악명높은 나치의 우생학 정책을 연상시키는 악법을 지탄하고 일어서자 스웨덴 정부는 공식사과와 함께 희생자에 대한 보상을 추진해 나갔다. 국내에서도 정신지체장애인 66명이 수용중인 보호시설에 의해 강제불임수술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한나라당 김홍신의원이 발표한 ‘장애인 강제불임수술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60개 정신지체장애인 시설에서 83년부터 98년까지 불임수술을 받은 75명중 66명이 강제수술을 받았다는 것이다. 정신지체장애는 신체장애와는 달리 육신은 멀쩡한데 남보다 지능이 좀 낮은 경우다. 그러나 그들이 정확히 판단하고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은아니다. 2세가 정상적으로 태어날 보장이 없는데다 기를 능력이 없는 임신을 그냥 내버려둘 수도 없는 노릇이다. 불임수술을 시술하는 입장에서도 불임수술을 시켜서 남녀가 함께 살게 해주는 것이 인도적인지,수술하지 않고 그대로 결혼을 시킨다음 불행한 가족과 2세를 또한번 만들어내는 것이 옳은지를 고민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강제불임수술은 엄연한 불법이자 인권유린이다. 더구나정신지체 부모가 정신지체아를 낳을 확률이 높다는 확실한 임상실험결과도나와있지 않은 상태다. 지능이 낮다고 해서 자녀를 출산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행복추구권에 어긋나는 비인도적 처사다. 프랑스에서는 정신지체 부모가아이를 낳으면 국가가 책임지는 등 선진국에서는 정신지체장애인에게도 임신을 허용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정신질환자는 드러나지 않은 환자까지 감안하여 120여만명. 갓난아기처럼 천진무구한 그들은 가족과 함께 있을때 가장 행복을 느낀다. 그들에게 진정한 가족사랑을 실천시키는 일이 질높은 사회복지가 아닐까 생각된다. 무관심 속에 방치하거나 편견을 갖지 말고 따뜻하게 감싸고 사랑하면서 정신지체가 그들의 삶에 장애가 되지 않도록 사회와 주변이 도와줘야한다. 이세기 논설위원
  • [대한시론] 아…, 부끄럽다

    지난 2주동안 오마에 겐이치라는 한 일본인의 한국경제 비판으로 지상언론이 꽤 요란했다.그의 주장의 요지는 ‘경제전략도 장기적 산업정책을 생각하는 지도자도 없는 김대중 정부의 미국 금융제국주의에 대한 순응’,일본경제를 본받으라는 암시,‘미국 투자자를 추종한 재벌의 해체’에 대한 비판,‘금융제국주의 미국의 백년 하도급’으로 전락할 한국경제의 부정적 전망,‘한국은 1차 산업은 호주에,2차 산업은 일본에,3차 산업은 미국에 먹힐 것’,‘공업은 대만에 밀리고 소프트웨어와 정보화는 미국과 인도에 밀릴 것’등이다. 이런 주장에 대해 대부분의 한국 언론인과 학자들은 ‘정곡을 찔렀다’,‘문제는 있지만 일리 있는 말도 있다’는 등의 논평으로 지면을 채웠다.중앙일보의 김정수 기자,로버트 파우저 일본 구마모토대 교수 등 소수의 예리한전문가들만이 오마에의 주장에 대해 ‘백해무익한 충고’,‘한국은 경제개혁 실패로 장기불황에 빠진 일본을 본받아선 안 된다’는 등 올바른 반비판을가했을 뿐이다.게다가 모 신문은 ‘정부의 재벌개혁을좌절시키기 위해 이일본 논객을 동원했다는 정보가 입수되었다’고 보도했다(한겨레신문 8월19일자). 우리는 이 일련의 작태를 어떻게 봐야 하는가? 아….부끄러울 뿐이다.광복절을 전후하여 일본인 한 명의 헛소리에 놀아나는 일부 한국 지식인들의 지적(知的) 태도도 부끄럽고 국내의 개혁세력을 공격하기 위해 외세를 이용하는 작태도 부끄럽다. 오마에의 주장은 기본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이다.‘한국 경제가 일어설 수 없는 이유’중의 하나로 부품산업이 취약하다는 것을 들면서 한국경제가 ‘백년 하도급’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그것이다.하도급 경제는 부품산업만을 위주로 하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또 1차 산업이 호주에 먹힐 것이라는전망은 한우(韓牛),김밥,김치 등에 대한 우리 국민의 신토불이식(身土不二式)취향이 외국 쇠고기와 패스트푸드에 대해 형성하고 있는 강력한 비관세(非關稅)장벽을 무시하는 말이다. 한국 정보산업의 미래에 대한 오마에의 예측도 신뢰성이 없다.반대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지식기반경제자료집’(1999)은한국의 지식기반 산업이 27개 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빠른 신장세를 보이고 있다고 평가했다. 한국은 85∼96년간 지식기반 산업 및 서비스 분야에서 창출된 실질부가가치증가율이 12.5%(OECD 평균은 3.3%)로 1위 국가이고 R&D투자 GDP 비율은 한국이 2.7%로 스웨덴·일본에 이어 3위, 발명특허건수 증가율은 27%(1위), 미국특허상표청(USPTO)의 특허인증건수 증가율에서 한국은 3위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우리는 21세기 한국경제가 장기적으로 20세기보다 더 나을 것이라는낙관적 전망을 두가지 이유에서 공유할 수 있다. 첫째로 20세기에 영토가 작은,따라서 인구와 부존자원이 적은 나라는 숙명적으로 약소국일 수밖에 없었으나,지식·정보·문화 등 무형(無形)의 자원이 국력을 결정하는 21세기에는 우리나라 같은 소국(小國)도 네덜란드처럼 특정분야에서 초강국이 될수 있다. 둘째,조상으로부터 유구하고 찬란한 문화전통과 높은 교육열을 물려받은 우리 민족은 ‘21세기의 준비된 민족’이다.이것은 타민족이 갖지 못한 우리의 주체적 강점이다.따라서 주·객관적 기회와 강점이 결합될 때,한국경제의 21세기 전망은 장기적으로 낙관할 수 있는 것이다.우리는 이제 부끄러운 ‘민족허무주의’의 잔재를 청산하고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민족적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오늘날 세계적 경쟁관계 속에 들어있는 21세기 한국경제의 성패는 지식기반화를 촉진하여 우리의 낙관적 전망을 실현하기 위한 경제개혁의 속도와 근본성에 달려 있다.민족적 자신감만이 새 천년의 국운개척을 위한 ‘신속하고근본적인 개혁’의 동력이다.민족허무주의는 우리의 독약일 뿐이다. [황태연 동국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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