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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요영화]

    ●조스(KBS1TV 오후 11시25분) 식인 상어를 소재로 한 해양 공포영화의 대명사.스필버그 감독의 첫 상업영화 데뷔작이자,할리우드 영화 사상 최초로 1억 달러를 돌파한 대흥행작이다.비명이 절로 나오는 길이 20피트의 거대한 식인상어의 모습,얼어붙는 긴장감과 한숨을 내쉬는 휴식을 절묘하게 교차시키는 연출의 기법,섬뜩하게 울리는 배경 음악,극적인 긴장감과 현장감을 보여주는 촬영과 편집 등이 한 데 어우러져 멋진 해양드라마의 걸작을 창조했다. 미국 뉴잉글랜드의 피서지 애미티에 식인 상어가 나타난다.그러나 이런 사실은 관광객들이 해안을 많이 찾는 피서철엔 돈벌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시장은 사람들의 입을 막는다.결국 해수욕장에서 사람이 상어에게 물려 죽는 사고가 발생한다. 경찰서장 마틴은 아들을 상어에게 잃은 뒤 사람들을 모아 상어를 잡으러 나선다.마틴과 함께 하기로 한 사람은 상어잡이인 퀸트와 해양학자 후퍼.바다로 나간 세 남자는 상어와 거친 사투를 벌인다.철창 속에서 상어와 마주쳤던 후퍼는 간신히 도망쳐 살아남지만 퀸트는 상어에 물려 목숨을 잃는다.마틴은 결국 탱크의 폭발을 이용해 상어를 처치하는 데 성공한다. ●스크림3(SBS 오후 11시45분) 엄청난 흥행대작 ‘스크림’시리즈의 완결편.할리우드를 배경으로 영화 제작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연쇄 살인사건을 다루고 있다.영화 ‘스탭 3’의 촬영 현장인 선라이즈 스튜디오에서 연쇄 살인사건이 발생한다.이후 주연배우들에게 위험이 닥쳐온다.시드니는 여성문제 상담원으로 은둔하다시피 지내고 있다.보안관으로 일했던 듀이는 영화 촬영현장에 실제 경험을 가진 조언자로 참여한다.여기자 게일과 듀이가 다시 만나고,이들이 시드니와 재회하면서 예전의 팀이 다시 뭉치는데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세비 6만원씩 사회공헌기금으로”

    ‘티끌모아 태산,세비 1% 기부’ 쓸 곳에 비해 세비가 부족하다는 의원들이 적지않은 가운데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임기 동안 세비 일부를 사회공헌 기금으로 내기로 해 화제다. 사회 지도층의 책임의식인 ‘노블리제 오블리주’가 부족한 상황에서 이같은 움직임이 윤리정치를 바라는 국민적 기대에 부응하는 새로운 정치인상(像) 정립의 계기가 될지 주목된다. 열린우리당 사회공헌 추진단장인 장향숙 의원은 29일 “사회적으로 관심이 높은 봉사와 나눔문화 확산에 정치인들부터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차원에서 세비 1%를 사회공헌 기금으로 적립하는 운동을 중앙당 차원에서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지난 4·15 총선당시 사회공헌 추진단이 발족한 이래 이같은 나눔운동에 동참의사를 밝힌 우리당 의원들은 현재 100명에 이른다. 문희상 천정배 김근태 김덕규 이계안 이미경 김맹곤 조배숙 이강래 선병렬 김원웅 노웅래 김형주 안영근 문학진 이원영 홍미영 의원 등이다. 다달이 CMS 자동이체방식으로 모으기로 한 1%의 세비는 6만원으로 정해졌다.당초 월급명세서에 나오는 총수령액 (800여만원)을 기준으로 1%인 8만원을 모으기로 했으나 “우리도 손벌리는 데가 많아서 어렵다.”며 하소연하는 의원들이 적지않아 실수령액(600여만원) 기준으로 조정했다.100명이 참여할 경우,다달이 600만원씩 연간 7200만원이 적립된다. 우리당은 아직 참여하지 않고 있는 나머지 의원들은 물론 일반당원들의 참여도 유도한 뒤,현 사회공헌 추진단을 오는 8월 말 ‘나눔과 공헌 운동본부’로 확대개편,발대식을 갖고 9월부터 본격적인 사업에 착수할 방침이다. 기금은 ▲문맹여성 교육▲장애인 자립지원▲노인·부랑자시설▲노숙자쉼터,열린청소년 쉼터 등 어려운 이웃을 돕는 데 사용된다.구체적인 기금운영 및 관리는 ‘아름다운 재단’ 등 기부금 전문관리기관에 맡기는 방안이 유력하다.장 의원은 “당원들도 자기 시간의 1% 등을 불우한 이웃을 돕는데 쓰겠다는 등 봉사와 나눔이라는 사회풍토 조성에 동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동참을 권유했다. 박현갑기자 eagleduo@seoul.co.kr
  • [고시·취업] 7·9급 공무원시험 ‘대수술’

    참여정부는 이공계 인력의 공직진출 확대를 주요한 정책과제로 제시하고 있다.이미 5급 이상 상위직에 대해서는 직급통합·복수직위 확대 등 여러 방안이 마련됐다. 이제는 6급 이하 하위직 공무원에 대한 대비책도 준비하고 있다.정부는 연구용역 결과가 나옴에 따라 관계부처 협의를 통해 이른 시일 내에 개선안을 마련키로 했다.이럴 경우 ‘7·9급 공채’로 상징되는 공무원 시험에도 대대적인 변화의 바람이 불 것으로 보인다.지난 27일 한양대에서 열린 ‘우수 이공계 인력의 공공분야 진출 활성화 방안’ 공청회를 중심으로 변화방향을 살펴본다. ●채용시험 ‘형식파괴’ 불가피 주제발표한 최병대 한양대 행정문제연구소장은 7·9급 공채시험의 대대적인 개혁을 주문했다.현재 ‘전체필수과목+직렬필수과목’ 형식인 시험을 ‘공직적격성평가(PSAT)와 토익 등 영어능력검정시험+직렬필수+공직특성교육’으로 바꾸자고 제안했다.전체필수과목은 폐지하고 직렬필수과목은 2∼4개에서 1∼2개로 줄이되,공직특성과 관련된 과목을 하나 추가하자는 것이다. 공채 뿐 아니라 특채와 개방형,인턴제 활용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것을 권고했다.특히 특채의 경우 전문인력을 끌어올 수 있는 중요한 방법인 만큼 잘 활용되어야 한다는 지적이다.중앙인사위 하동원 인력개발국장은 아예 “별도의 수험준비 없이 전문성만으로 쉽게 채용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면서 “이제껏 개별기관별로 해오던 특채를 공채처럼 전 부처 공통으로 동시에 실시하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암기식으로 교과서를 외운 인재로는 더 이상 전문화되어 가는 행정수요를 감당해낼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가산점은 합격 필수요건 최근 가산점은 공무원시험 합격에서 거의 필수적인 요건이다.소수점 이하의 점수 차이에서 당락이 결정되는 시험이다 보니 단 1점이라도 가산점을 가진 사람이 절대 유리할 수밖에 없다.실제 국가직이든 지방직이든 합격자 가운데 가산점을 보유한 수험생들의 비율이 70∼80%대에 이른다. 선발인원이 적은 일부 직렬에는 아예 합격자 전원이 가산점 보유자인 경우도 있다.이러다 보니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려면 자격증 등을 통해 가산점을 우선 확보해두는 것이 중요했다. 비판적인 시각도 만만치 않다.한양대 이영무 교수는 “1급과 기술사 자격증의 가산점이 동일하고 워드프로세서 1급이 1.5점의 가산점을 얻는데 석·박사학위에 가산점이 없는 점 등은 충격적”이라면서 “특히 석·박사학위자들에게 가산점을 주지 않는 것은 교육제도를 스스로 부정하는 행위”라고 지적했다.대안으로는 대학이나 대학원에 공직 관련 커리큘럼을 만들어 이 과목을 이수했을 경우 가산점을 주는 제도를 제시했다. 중앙인사위 하 국장 역시 개인의견임을 전제로 “가산점으로 인한 합격자 비율이 50% 이하로 내려가야 기본적으로 선발시험으로서의 의미가 있지 않은가 생각한다.”며 비판적인 태도를 보였다.직렬과 그 직렬에 필요한 자격증으로 인한 가산점제가 전면적으로 재검토돼야 한다는 설명이다. ●대학 커리큘럼 개선돼야 이공계 인력의 활용방안이 논의되면서 가장 강조됐던 부분 가운데 하나가 대학 커리큘럼 개선이다.인문학적 소양을 기를 수 있는 과목이 대폭 늘어야 한다는 주장이 많았다.토론자로 참가한 정인학 서울신문 교육담당 대기자는 “어떤 사장이 이공계 전공자를 우대하려했지만 관리직을 맡기기에는 인문·사회적 소양이 빈곤해 포기했다는 말을 하더라.”면서 “기술관료의 천국이라는 중국의 칭화대학에서는 이공계 학생에게 졸업 때까지 100권의 고전을 읽힌다는 점을 충격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채시험 과목과 대학 커리큘럼이 연계성을 가져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아쉬운대로 PSAT와 연계된 과목을 대학이나 대학원에 개설하는 방안이 거론됐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儒林(146)-제2부 周遊列國 제1장 첫 번째 출국

    儒林(146)-제2부 周遊列國 제1장 첫 번째 출국

    제2부 周遊列國 제1장 첫 번째 출국 예수는 고향 사람들이 자신을 불신하자 “어디서나 존경받는 예언자도 제 고향과 제 집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고 탄식하였는데,이는 서양철학의 아버지인 소크라테스도 마찬가지여서 세상을 속이고 혹세무민(惑世誣民)한다 하여 독배를 마시고 죽었으며,부처 역시 이교도들로부터 박해받으며 방랑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공자도 마찬가지여서 평생 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비난과 조롱의 대상이었는데,특히 중국 역사상 최고의 정치가였던 안영으로부터 받은 부정적인 평가는 공자 역시 뛰어난 예언가였으면서도 당대의 권력가와 지식인들로부터 ‘반대 받는 표적’이었음을 명명백백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공자가 돌아간 후 경공은 크게 감탄하며 먼저 번처럼 공자에게 봉토를 하사하고 중용하여 곁에 두려 하였다.그러나 이 말을 들은 안영은 머리를 흔들며 이렇게 말하였다고 사마천은 사기에 기록하고 있다. “대체로 유자란 말만 그럴듯하지 바른 규범을 지키지 못하며,거만하게 자기만을 내세워 남의 밑자리에 들어가기를 꺼리고 있습니다.또한 상례(喪禮)를 지나치게 숭상하여 파산을 하면서까지 성대하게 장사를 지내니,풍속으로 삼을 수도 없을 것이며,여러 나라를 유세하며 구걸하고 빌리기만을 잘하니 나라를 위하는 것도 못됩니다.” 안영이 공자를 지나치게 제사와 상례를 중요시하는 형식주의자로 보고 있음은 안영의 합리적인 사고방식과 상반되기 때문인데,안영의 이런 태도는 ‘안자춘추’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어느 때 혜성이 나타나서 불길한 징조를 보여 주고 있었다.중국에서는 전통적으로 자연의 기변(奇變)은 인간사의 불의를 반영하는 것으로 믿는,이른바 천인상관설(天人相關說)이 전통적으로 내려오고 있었으므로 혜성의 등장은 하늘이 인간에게 내려주는 경고라고 생각하고 있던 경공은 천재지변을 사전에 경고하기 위해서 신관으로 하여금 하늘에 제사를 올리고 빌도록 하였던 것이다.이에 안영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그러실 필요는 없습니다.혜성이 나타난 것은 이 세상에 부도덕한 자를 없애기 위함입니다.만약 임금께서 부도덕함이 없으실 것 같으면 기도드릴 필요는 없습니다.그러나 만약 임금께서 부도덕함이 있을 것 같으면 기도를 드려 보았자 혜성은 꿈쩍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 일화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안영은 허례허식(虛禮虛飾) 같은 것을 이미 초월한 실존주의자였던 것이다.그러므로 안영이 예를 숭상하는 공자를 ‘지나치게 상례를 숭상하는 율법주의자’로 보고 있음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안영의 말을 들은 경공은 그러나 여전히 미련을 갖고 말하였다. “경은 월석부(越石父)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경공의 질문에 안영이 대답하였다. “신은 월석부를 현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면 경은 공구를 월석부보다 못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러자 안영은 머리를 흔들며 말하였다. “아닙니다,전하.공구는 현인 중의 현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찌하여 경은 공구를 중용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인가.” 경공은 평소에 안영이 현인(賢人)을 존경하고 있음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질문을 던진 것이었다.원래 현인은 ‘어진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덕행이 뛰어난 성인(聖人)의 다음가는 군자를 가리키는 말이었던 것이다. 경공의 질문에 안영은 대답하였다. “물론 공구는 현인 중의 현인이요,군자 중의 군자입니다.그러나 크게 현명한 사람이 나오지 않게 된 이래로 주나라의 왕실은 쇠약해지고,예악은 많이 소멸되었습니다.…”
  • [김영희 이혼클리닉] 열쇠 3개 바라는 예비 시어머니

    9월에 결혼할 예비신부입니다.저는 음악대학을 졸업했고 아버지는 조그만 중소기업을 경영합니다.4개월 전 중매로 만나 결혼을 준비하고 있습니다.남편감은 종합병원 이비인후과 의사예요.그래서인지 시어머니는 “혼수와 예물을 충분히 준비해라.병원을 차리려면 지참금이 필요하다.”며 이것저것 많이 요구합니다.며칠 전에는 전셋집보다 아파트를 사는 게 좋겠다고 은근히 압력을 가하네요.전세금으로 아버지,어머니가 5000만원이나 보탰는데도 말입니다.불쾌하고 자존심도 상하고….결혼하지 않겠다고 말했더니 어머니는 남들 보기 창피하다며 그냥 진행하자고 하는데.어쩌면 좋을까요? -양소연- 양소연씨.행복한 결혼을 눈앞에 두고 혼수문제로 고민을 하고 있는 것 같아서 안타깝네요.물질 만능시대라고는 하지만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은 성스러워야 할 결혼에서 혼수·예물 주고받는 것을 마치 시장에서 물건 흥정하듯 하려는 경우도 있어 참으로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인륜지대사인 결혼을,그것도 내 자식과 평생을 같이 할 배우자를 선택하는데 사람 됨됨이보다는 부모의 재력이나,명예를 따져보며 며느리,사윗감을 저울질하는 부모들이 적지 않은 것이 우리사회의 현실입니다. 몇 년전 미국에 살고 있는 제 아들이 결혼을 했습니다.결혼 예물을 준비해야 할 것 같아 전화로 결혼 반지 말을 꺼냈다가 아들에게 무안을 당했습니다.결혼 반지는 이미 14k 금반지를 마련해 뒀다며 어머니가 해 줄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하더군요.아들 결혼식인데….나는 작은 다이아몬드 반지 하나만이라도 해주고 싶다고 했더니 “어머니가 해준 비싼 다이아몬드 반지보다,제가 벌어서 저축한 것으로 해주는 결혼 반지가 캐롤(미국며느리)에게 더 의미가 있을 거예요.저를 이 만큼 훌륭하게 키워주신 것만으로 모든 걸 다 하신 겁니다.”라고 하더군요.대견스럽기도 하고,섭섭하기도 하고…. 그래도 그냥 넘길 수 없다며 꼭 하나만 하자고 사정(?)을 했더니,그럼 옥반지 한쌍만 사달라고 했습니다.그것도 비싸면 그만두라면서요.몇년전 아들이 한국에 다니러 왔을 때 백화점 진열대에서 옥으로 만든 쌍가락지를 봤는데 그 빛깔과 모양이 너무도 아름답고 신비스러워 이 다음 아내 될 여자에게 꼭 사주고 싶었다고 했습니다.제가 외아들 결혼 때 해준 것이라고는 옥 쌍가락지,귀고리,팔찌로 80만원 들었고,딸 결혼 선물로는 미화 1000달러를 예금통장에 넣어준 것이 전부였습니다. 미국 사람들은 부모에게 바라지 않아서 그런다고 말들 하는데 모두가 그렇지는 않지요.각자 의식에 따라 다르다고 생각하는데,우리나라의 젊은이들도 건실한 결혼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일류 호텔의 사치스러운 결혼식,호화스러운 신혼여행이 가져다 준 행복은 며칠이면 끝나고 말지요. 소연씨.시어머니 되실 분이 지나친 혼수를 요구하고 있는 사실을 깊이 생각해 봐야할 것 같습니다.많은 사람들이 결혼해서 살 집은 신랑측에서,시부모님을 비롯해 일가친척 예물,신접살림에 필요한 가구며 가전제품,생활용품까지를 신부쪽에서 마련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들을 하고 있는데,수십년 쓸 물건을 결혼할 때 다 가져가야 하는지….그래서 ‘딸 셋 결혼시키고 나면,집안 기둥뿌리만 남는다.’는 말이 있는 것 같습니다.이제는 우리 사회도 이런 관습과 관념을 과감히 깨뜨려야 할 때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혼수문제로 생긴 불화가 고부갈등으로 이어져 이혼하는 부부가 많습니다.소연씨 경우,예비 시어머니가 과다한 혼수를 요구하고 이젠 아파트까지 사오라고 한다면 앞으로 더 많은 요구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소연씨 부모는 결혼이 깨지면 일가친척들과 주위사람들에게 망신스럽다는 생각으로 그 쪽 요구를 들어주고라도 결혼을 강행할 생각인 것 같은데….시작도 안한 결혼생활에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부모들의 체면이 딸의 인생보다 앞설 수 없지요.체면은 한 순간일 뿐이지만,당신이 살아갈 날은,길고도 깁니다.소연씨.결혼할 배우자와 솔직한 의논을 해본 다음,그 사람도 시어머니 될 분과 같은 생각이라면,마음의 결단을 내리는 게 좋겠습니다.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
  • [김영희 이혼클리닉] 열쇠 3개 바라는 예비 시어머니

    [김영희 이혼클리닉] 열쇠 3개 바라는 예비 시어머니

    9월에 결혼할 예비신부입니다.저는 음악대학을 졸업했고 아버지는 조그만 중소기업을 경영합니다.4개월 전 중매로 만나 결혼을 준비하고 있습니다.남편감은 종합병원 이비인후과 의사예요.그래서인지 시어머니는 “혼수와 예물을 충분히 준비해라.병원을 차리려면 지참금이 필요하다.”며 이것저것 많이 요구합니다.며칠 전에는 전셋집보다 아파트를 사는 게 좋겠다고 은근히 압력을 가하네요.전세금으로 아버지,어머니가 5000만원이나 보탰는데도 말입니다.불쾌하고 자존심도 상하고….결혼하지 않겠다고 말했더니 어머니는 남들 보기 창피하다며 그냥 진행하자고 하는데.어쩌면 좋을까요? -양소연- 양소연씨.행복한 결혼을 눈앞에 두고 혼수문제로 고민을 하고 있는 것 같아서 안타깝네요.물질 만능시대라고는 하지만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은 성스러워야 할 결혼에서 혼수·예물 주고받는 것을 마치 시장에서 물건 흥정하듯 하려는 경우도 있어 참으로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인륜지대사인 결혼을,그것도 내 자식과 평생을 같이 할 배우자를 선택하는데 사람 됨됨이보다는 부모의 재력이나,명예를 따져보며 며느리,사윗감을 저울질하는 부모들이 적지 않은 것이 우리사회의 현실입니다. 몇 년전 미국에 살고 있는 제 아들이 결혼을 했습니다.결혼 예물을 준비해야 할 것 같아 전화로 결혼 반지 말을 꺼냈다가 아들에게 무안을 당했습니다.결혼 반지는 이미 14k 금반지를 마련해 뒀다며 어머니가 해 줄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하더군요.아들 결혼식인데….나는 작은 다이아몬드 반지 하나만이라도 해주고 싶다고 했더니 “어머니가 해준 비싼 다이아몬드 반지보다,제가 벌어서 저축한 것으로 해주는 결혼 반지가 캐롤(미국며느리)에게 더 의미가 있을 거예요.저를 이 만큼 훌륭하게 키워주신 것만으로 모든 걸 다 하신 겁니다.”라고 하더군요.대견스럽기도 하고,섭섭하기도 하고…. 그래도 그냥 넘길 수 없다며 꼭 하나만 하자고 사정(?)을 했더니,그럼 옥반지 한쌍만 사달라고 했습니다.그것도 비싸면 그만두라면서요.몇년전 아들이 한국에 다니러 왔을 때 백화점 진열대에서 옥으로 만든 쌍가락지를 봤는데 그 빛깔과 모양이 너무도 아름답고 신비스러워 이 다음 아내 될 여자에게 꼭 사주고 싶었다고 했습니다.제가 외아들 결혼 때 해준 것이라고는 옥 쌍가락지,귀고리,팔찌로 80만원 들었고,딸 결혼 선물로는 미화 1000달러를 예금통장에 넣어준 것이 전부였습니다. 미국 사람들은 부모에게 바라지 않아서 그런다고 말들 하는데 모두가 그렇지는 않지요.각자 의식에 따라 다르다고 생각하는데,우리나라의 젊은이들도 건실한 결혼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일류 호텔의 사치스러운 결혼식,호화스러운 신혼여행이 가져다 준 행복은 며칠이면 끝나고 말지요. 소연씨.시어머니 되실 분이 지나친 혼수를 요구하고 있는 사실을 깊이 생각해 봐야할 것 같습니다.많은 사람들이 결혼해서 살 집은 신랑측에서,시부모님을 비롯해 일가친척 예물,신접살림에 필요한 가구며 가전제품,생활용품까지를 신부쪽에서 마련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들을 하고 있는데,수십년 쓸 물건을 결혼할 때 다 가져가야 하는지….그래서 ‘딸 셋 결혼시키고 나면,집안 기둥뿌리만 남는다.’는 말이 있는 것 같습니다.이제는 우리 사회도 이런 관습과 관념을 과감히 깨뜨려야 할 때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혼수문제로 생긴 불화가 고부갈등으로 이어져 이혼하는 부부가 많습니다.소연씨 경우,예비 시어머니가 과다한 혼수를 요구하고 이젠 아파트까지 사오라고 한다면 앞으로 더 많은 요구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소연씨 부모는 결혼이 깨지면 일가친척들과 주위사람들에게 망신스럽다는 생각으로 그 쪽 요구를 들어주고라도 결혼을 강행할 생각인 것 같은데….시작도 안한 결혼생활에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부모들의 체면이 딸의 인생보다 앞설 수 없지요.체면은 한 순간일 뿐이지만,당신이 살아갈 날은,길고도 깁니다.소연씨.결혼할 배우자와 솔직한 의논을 해본 다음,그 사람도 시어머니 될 분과 같은 생각이라면,마음의 결단을 내리는 게 좋겠습니다.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
  • 儒林(146)-제2부 周遊列國 제1장 첫 번째 출국

    제2부 周遊列國 제1장 첫 번째 출국 예수는 고향 사람들이 자신을 불신하자 “어디서나 존경받는 예언자도 제 고향과 제 집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고 탄식하였는데,이는 서양철학의 아버지인 소크라테스도 마찬가지여서 세상을 속이고 혹세무민(惑世誣民)한다 하여 독배를 마시고 죽었으며,부처 역시 이교도들로부터 박해받으며 방랑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공자도 마찬가지여서 평생 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비난과 조롱의 대상이었는데,특히 중국 역사상 최고의 정치가였던 안영으로부터 받은 부정적인 평가는 공자 역시 뛰어난 예언가였으면서도 당대의 권력가와 지식인들로부터 ‘반대 받는 표적’이었음을 명명백백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공자가 돌아간 후 경공은 크게 감탄하며 먼저 번처럼 공자에게 봉토를 하사하고 중용하여 곁에 두려 하였다.그러나 이 말을 들은 안영은 머리를 흔들며 이렇게 말하였다고 사마천은 사기에 기록하고 있다. “대체로 유자란 말만 그럴듯하지 바른 규범을 지키지 못하며,거만하게 자기만을 내세워 남의 밑자리에 들어가기를 꺼리고 있습니다.또한 상례(喪禮)를 지나치게 숭상하여 파산을 하면서까지 성대하게 장사를 지내니,풍속으로 삼을 수도 없을 것이며,여러 나라를 유세하며 구걸하고 빌리기만을 잘하니 나라를 위하는 것도 못됩니다.” 안영이 공자를 지나치게 제사와 상례를 중요시하는 형식주의자로 보고 있음은 안영의 합리적인 사고방식과 상반되기 때문인데,안영의 이런 태도는 ‘안자춘추’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어느 때 혜성이 나타나서 불길한 징조를 보여 주고 있었다.중국에서는 전통적으로 자연의 기변(奇變)은 인간사의 불의를 반영하는 것으로 믿는,이른바 천인상관설(天人相關說)이 전통적으로 내려오고 있었으므로 혜성의 등장은 하늘이 인간에게 내려주는 경고라고 생각하고 있던 경공은 천재지변을 사전에 경고하기 위해서 신관으로 하여금 하늘에 제사를 올리고 빌도록 하였던 것이다.이에 안영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그러실 필요는 없습니다.혜성이 나타난 것은 이 세상에 부도덕한 자를 없애기 위함입니다.만약 임금께서 부도덕함이 없으실 것 같으면 기도드릴 필요는 없습니다.그러나 만약 임금께서 부도덕함이 있을 것 같으면 기도를 드려 보았자 혜성은 꿈쩍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 일화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안영은 허례허식(虛禮虛飾) 같은 것을 이미 초월한 실존주의자였던 것이다.그러므로 안영이 예를 숭상하는 공자를 ‘지나치게 상례를 숭상하는 율법주의자’로 보고 있음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안영의 말을 들은 경공은 그러나 여전히 미련을 갖고 말하였다. “경은 월석부(越石父)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경공의 질문에 안영이 대답하였다. “신은 월석부를 현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면 경은 공구를 월석부보다 못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러자 안영은 머리를 흔들며 말하였다. “아닙니다,전하.공구는 현인 중의 현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찌하여 경은 공구를 중용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인가.” 경공은 평소에 안영이 현인(賢人)을 존경하고 있음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질문을 던진 것이었다.원래 현인은 ‘어진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덕행이 뛰어난 성인(聖人)의 다음가는 군자를 가리키는 말이었던 것이다. 경공의 질문에 안영은 대답하였다. “물론 공구는 현인 중의 현인이요,군자 중의 군자입니다.그러나 크게 현명한 사람이 나오지 않게 된 이래로 주나라의 왕실은 쇠약해지고,예악은 많이 소멸되었습니다.…”
  • [2004 美대선] “멍청이 부시” “빨갱이 케리”

    “케리 너는 빨갱이” “부시 너는 멍청이” 26일(현지시간) 민주당 전당대회의 개막과 함께 미국 대통령선거 레이스에 불이 붙은 가운데 공화당과 민주당 대선 후보인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존 케리(매사추세츠) 상원의원을 노골적으로 비판한 패러디 동영상이 인기를 끌고 있다. 화제의 동영상은 인터넷 광고제작사인 집잡(jibjab.com)을 운영하는 그렉과 에반 형제가 70년대 포크가수 우디 거스리(Woody Guthrie)의 노래에 가사를 새로 붙여 만든 ‘이 땅 (This Land·미국을 지칭)’이라는 플래시 동영상. 동영상은 부시 대통령과 케리 의원이 서로를 욕하며 “이 땅은 내 땅이라 나에게 표를 줄 것”이라고 주장하는 내용으로 이뤄져 있다.동영상에서 부시 대통령이 “나는 텍사스 호랑이.너(케리)는 자유주의 겁쟁이.”이라고 비난하면 케리 의원은 “나는 배운 지식인.너는 골 빈 멍청이.”라고 응수한다.또 둘이 “이 땅은 내 땅”이라며 우기면 인디언이 나타나 “이 땅은 본디 내 땅이었어.”라며 면박을 준다. 동영상의 인기로 26일 NBC방송의 토크쇼 ‘더 투나잇 쇼’에 제작자인 그렉과 에반 형제가 초청되는 등 현지 언론들은 대선과 관련해 이를 앞다투어 다루고 있다. 황장석기자 surono@seoul.co.kr
  • 儒林(145)-제2부 周遊列國 제1장 첫 번째 출국

    제2부 周遊列國 제1장 첫 번째 출국 올바른 정치를 하는 방법에 대해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신하는 신하다워야 하며,아버지는 아버지다워야 하고,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고 대답한 공자의 정치관은 한마디로 공자의 정치철학의 핵심이다.이 대답 역시 매우 관념적이고 형이상학적인 논리처럼 느껴지지만 시대를 초월한 금과옥조인 것이다. 임금답지 않은 임금이 나라를 다스리고,신하답지 않은 신하가 정치를 하고,아버지답지 않은 아버지가 가정을 이끌면 그 나라와 가정은 한마디로 붕괴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는 공자의 정명주의(正名主義)에서 비롯된 말인데,정명이란 ‘명분을 올바르게 한다.’ 또는 ‘명칭(이름)을 바로잡는다.’는 뜻이지만 단순하면서도 실행하기 어려운 공자의 핵심적인 정치사상인 것이다. 한마디로 공자는 논어에서 ‘정치란 바로잡는 것이다.(政者正也)’라는 말로 이를 함축시키고 있는데,이는 ‘모든 사람들과 사물들이 자기에게 주어지는 명칭이나 명분과 꼭 맞는 올바른 상태에 있다는 것은 질서의 극치’를 뜻하고 있음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 논어의 자로(子路)편에는 이러한 공자의 사상이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자로가 공자에게 여쭈었다. ‘위나라의 임금이 선생님을 모셔다가 정치를 부탁드린다면 선생님께서는 무엇부터 먼저 하시겠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반드시 명분부터 바로잡겠다.(必也正名乎)’ 이 말을 들은 자로는 너무나 단순한 스승의 말에 실망하여 다음과 같이 반문하였다. ‘그런 게 있습니까? 선생님은 우원(迂遠)하십니다.어째서 그것을(그처럼 무의미한 것을) 바로잡으시겠다는 것입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어리석구나,너는.군자는 자기가 모르는 일에는 입을 다물고 있는 법이다.명분이 바로 서지 않으면 말이 순조롭지 못하고,말이 순조롭지 못하면 일이 이루어지지 못하고,일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예악(禮樂)이 일어나지 못하고,예악이 일어나지 않으면 형벌이 적중하지 못하고,형벌이 적중하지 못하면 백성들이 손발 둘 곳이 없게 된다.’ 그러고 나서 공자는 다음과 같은 말로 결론을 내린다. ‘그러므로 군자는 사물에 이름을 붙일 때에는 반드시 말로써 전달될 수 있어야 하며,말로써 전달되면 반드시 실행해야 한다.군자는 말에 있어 구차스러운 바가 없어야 하는 것이다.(故君子名之 必可言也 言之 必可行也 君子於其言 無所苟而已矣)’” 공자의 정명론 역시 오늘을 사는 우리들이 반드시 가슴 속에 새겨야 할 교훈이다.공자는 정치가들에게 있어 말이 얼마나 중요한 것이며 그를 실행하는 것이야말로 ‘정치를 바로잡는 것’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공자의 이러한 정치사상은 중국 역사상 전제군주들의 사상적 근거로 이용되어 왔다.세계의 질서를 천자를 정점으로 하는 대일통(大一統) 속에 유지하는 것을 이상주의로 본 공자의 사상은 한(漢)대 이후 계속 봉건체제의 정치적 이데올로기로 발전되어 왔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공자의 정치철학 역시 곁에서 이를 지켜보고 있던 안영의 눈으로 보면 공허하고 관념적인 아마추어리즘에 불과한 것이었다. 공자가 돌아간 후 경공과 안영이 공자에 대해 나눈 대화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위대한 예언자들은 당대의 권력자와 지식인들로부터 배척받고 있음을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예수가 ‘여우도 굴이 있고,하늘의 새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예수 자신)은 머리 둘 곳도 없다.’고 한탄하였던 것처럼 공자 역시 안영으로부터 모욕적인 멸시를 받게 되는 것이다.
  • 儒林(145)-제2부 周遊列國 제1장 첫 번째 출국

    儒林(145)-제2부 周遊列國 제1장 첫 번째 출국

    제2부 周遊列國 제1장 첫 번째 출국 올바른 정치를 하는 방법에 대해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신하는 신하다워야 하며,아버지는 아버지다워야 하고,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고 대답한 공자의 정치관은 한마디로 공자의 정치철학의 핵심이다.이 대답 역시 매우 관념적이고 형이상학적인 논리처럼 느껴지지만 시대를 초월한 금과옥조인 것이다. 임금답지 않은 임금이 나라를 다스리고,신하답지 않은 신하가 정치를 하고,아버지답지 않은 아버지가 가정을 이끌면 그 나라와 가정은 한마디로 붕괴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는 공자의 정명주의(正名主義)에서 비롯된 말인데,정명이란 ‘명분을 올바르게 한다.’ 또는 ‘명칭(이름)을 바로잡는다.’는 뜻이지만 단순하면서도 실행하기 어려운 공자의 핵심적인 정치사상인 것이다. 한마디로 공자는 논어에서 ‘정치란 바로잡는 것이다.(政者正也)’라는 말로 이를 함축시키고 있는데,이는 ‘모든 사람들과 사물들이 자기에게 주어지는 명칭이나 명분과 꼭 맞는 올바른 상태에 있다는 것은 질서의 극치’를 뜻하고 있음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 논어의 자로(子路)편에는 이러한 공자의 사상이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자로가 공자에게 여쭈었다. ‘위나라의 임금이 선생님을 모셔다가 정치를 부탁드린다면 선생님께서는 무엇부터 먼저 하시겠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반드시 명분부터 바로잡겠다.(必也正名乎)’ 이 말을 들은 자로는 너무나 단순한 스승의 말에 실망하여 다음과 같이 반문하였다. ‘그런 게 있습니까? 선생님은 우원(迂遠)하십니다.어째서 그것을(그처럼 무의미한 것을) 바로잡으시겠다는 것입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어리석구나,너는.군자는 자기가 모르는 일에는 입을 다물고 있는 법이다.명분이 바로 서지 않으면 말이 순조롭지 못하고,말이 순조롭지 못하면 일이 이루어지지 못하고,일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예악(禮樂)이 일어나지 못하고,예악이 일어나지 않으면 형벌이 적중하지 못하고,형벌이 적중하지 못하면 백성들이 손발 둘 곳이 없게 된다.’ 그러고 나서 공자는 다음과 같은 말로 결론을 내린다. ‘그러므로 군자는 사물에 이름을 붙일 때에는 반드시 말로써 전달될 수 있어야 하며,말로써 전달되면 반드시 실행해야 한다.군자는 말에 있어 구차스러운 바가 없어야 하는 것이다.(故君子名之 必可言也 言之 必可行也 君子於其言 無所苟而已矣)’” 공자의 정명론 역시 오늘을 사는 우리들이 반드시 가슴 속에 새겨야 할 교훈이다.공자는 정치가들에게 있어 말이 얼마나 중요한 것이며 그를 실행하는 것이야말로 ‘정치를 바로잡는 것’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공자의 이러한 정치사상은 중국 역사상 전제군주들의 사상적 근거로 이용되어 왔다.세계의 질서를 천자를 정점으로 하는 대일통(大一統) 속에 유지하는 것을 이상주의로 본 공자의 사상은 한(漢)대 이후 계속 봉건체제의 정치적 이데올로기로 발전되어 왔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공자의 정치철학 역시 곁에서 이를 지켜보고 있던 안영의 눈으로 보면 공허하고 관념적인 아마추어리즘에 불과한 것이었다. 공자가 돌아간 후 경공과 안영이 공자에 대해 나눈 대화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위대한 예언자들은 당대의 권력자와 지식인들로부터 배척받고 있음을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예수가 ‘여우도 굴이 있고,하늘의 새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예수 자신)은 머리 둘 곳도 없다.’고 한탄하였던 것처럼 공자 역시 안영으로부터 모욕적인 멸시를 받게 되는 것이다.
  • 공격적 신문광고 눈길 ‘확’

    1898년초 프랑스의 로로르(L’aurore)지에 실려 전 세계 지식인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던진 에밀 졸라의 ‘나는 고발한다(J’accuse)’가 2004년 대한민국 신문지상에 다시 등장했다.최근 신문광고마다 등장하고 있는 카피 ‘나는 …이다.’시리즈가 그것이다. 어느 고속도로변,한 교통 경찰관이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하고 있다.피켓에는 “(르노삼성) SM3 1600cc 출시 반대합니다.”라는 문구가 선명하게 적혀 있다. 사정인 즉,신차의 힘과 가속력이 너무 뛰어나 경찰관이 추격하기가 힘들다는 것이다.주유소 앞에서는 주유소 직원이 신차 출시를 반대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연비 걱정없이 파워가 좋아진 이번 신차 때문에 주유소 영업에 타격이 이만 저만이 아니라는 뜻이다. 15초 동안 수많은 장면으로 다양한 내용을 전달할 수 있는 TV CF와 달리 단 한 장면에 모든 것을 담아야 하는 신문광고의 제약을 오히려 장점으로 활용했다.광고주와 제작사는 성능 소개 위주의 기존 자동차 중심 광고의 관행을 깼다.뛰어난 파워와 순간 가속력,우수한 코너링과 핸들링,높은 연비 등 신차가 갖춘 장점을 빽빽한 수치로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경찰관과 주유소 직원의 하소연으로 강조했다. ‘교통경찰편’은 모델,의상,장소 헌팅까지 최대한 리얼리티를 살렸다.기존 모델들이 대부분 ‘꽃미남’들이어서 교통경찰의 이미지를 제대로 살릴 수 없어 고민하던 제작진은 얼굴이 알려지지 않은 신인 모델을 택했다.의상은 따로 제작했고 장소는 고속도로 상황을 잘 표현할 수 있는 서울외곽순환도로이다.상황이 워낙 똑같다 보니 광고 촬영을 목격한 시민들이 경찰에 신고,실제 경찰이 출동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광고대행사 웰콤 관계자는 “TV CF로는 기존 자동차 광고와 차별화된 모습을 보여주기 어려워 ‘튀는’ 광고를 집행할 수 있는 신문지면을 택했다.”면서 “자동차 내수가 불황인데도 광고가 나간 뒤 매출이 30% 이상 늘어나는 등 효과도 만점”이라고 말했다. 한국시장 상륙 2년 만에 업계 3위 자리를 넘보고 있는 도시바 코리아도 기존 모델 고소영을 교체하면서 도발적인 신문 광고로 눈길을 끌고 있다. 래퍼 후니훈과 탐험가 함길수씨 등이 등장하는 광고의 카피는 ‘나는 도시바다.당신은?’이다.도시바 노트북의 멀티미디어 기능이 후니훈의 비트 박스를 가능케 했고 함씨는 전 세계를 다니면서 어디서든 노트북 서비스를 받을 수 있었다고 ‘증언’을 한다. 도시바 관계자는 “건방져 보일 정도로 도발적인 카피로 제품 성능에 대한 자신감을 나타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인터넷 업계를 뜨겁게 달군 e메일 용량 경쟁에서는 야후코리아의 ‘나는 1기가다.’라는 광고가 눈에 띈다.부제마저 ‘얘들아 메일 팍팍 보내라.’로 설정,단순하면서도 명확하게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류길상기자 ukelvin@seoul.co.kr
  • [환경엄마 김순영의 건강한 밥상] 자연산 생선이라고 안전할까

    근래에 우리나라의 생선 소비량이 크게 증가했다.농촌경제연구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의 수산물 소비량이 생선회를 즐기는 것으로 유명한 일본을 따라잡고,드디어 세계 최고 수준으로 높아졌다.2001년 기준으로 국민 1인당 연간 소비량이 66.9㎏으로,수산물 요리를 좋아한다고 알려진 타이완(40.3㎏),프랑스(31.3㎏),스웨덴(30.9㎏)은 물론이고,일본(66.8㎏)보다 소비량이 많다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 식생활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생선이지만 사실 생선의 안전성에 대해서는 아직도 둔감한 편이다. 우리는 흔히 생선을 고를 때 가장 중요한 잣대로 자연산인가,양식인가와 싱싱한 것인지 아닌지를 따지곤 한다.물론 중요한 잣대다.단적으로 말해 아직도 자연산과 양식의 차이는 크다고 할 수밖에 없다. 생선을 양식할 때는 가축을 밀집 사육할 때 생기는 모든 문제가 발생한다.사료에 들어가는 재료의 안전성 문제,첨가물 문제,밀집 양식으로 인해 물고기 자체가 만들어 내는 생체 독성 문제,그리고 이런 점들로 인해 물고기들이 약해져 전염병에 잘 걸리며,이를 해결하기 위해 투여하는 각종 항생제 문제 등을 생각해 보면 정말 양식어류를 선택하는 일이 두려운 게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점 외에 또 다른 잣대를 추가해야만 한다.어느 생선이 보다 덜 오염되었을까 하는 점이다.바다가 점점 심각하게 오염되면서 양식 어류가 아닌 자연산 생선이라도 더는 안전한 먹을거리가 아닌 것이다.물이 오염되면 그곳에 사는 물고기는 쉬지 않고 그 물을 빨아들이고 내보내면서 꾸준히 오염물질을 자신의 체내에 축적하게 된다.이게 사람 몸에 들어가 2차 오염원으로 작용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비교적 안전한 생선은 없는가.틀림없이 있다.먼저 물이 차고 맑은 바다에서 살면서 운동량이 많은 생선이 훨씬 안전하다.삼치 고등어 명태 오징어 등이 그런 생선이다.연근해보다 먼 바다에서 잡히는 생선이 더 나음은 물론이다. 생선을 먹을 때도 부위에 신경을 쓰는 것이 좋다.대부분의 화학물질은 지방에 좀더 잘 녹는다.따라서 생선 부위 중에서도 지방이 많은 곳에 오염물질의 농축이 더 심하다.이 때문에 기름기가 많은 생선이나,생선 부위 중에서는 내장 알 아가미 등 지방이 많은 부위는 가능한 한 먹는 걸 삼가는 게 좋다.오염물질이 많이 묻어 있는 비늘을 잘 긁어내는 것도 중요하다. 헬렌 니어링은 그의 저서 ‘소박한 밥상’에서 기름에 지지고,볶고,튀기는 요리법을 피해 날로 먹을 수 있는 것은 날로 먹고,아니면 살짝 데치거나,찌거나,삶거나,조려서 먹을 수 있는 요리법으로 바꾸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생선도 그렇다. 생선을 조리할 때도 튀기는 것보다 지지거나 조리는 것이 낫고,그것보다는 굽는 게 더 낫다.그러나 무엇보다 좋은 방법은 쪄서 먹는 것이다. 혹은 생선을 어떻게 찌느냐고 묻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그러나 간단하다.물을 솥바닥에 조금 붓고,그 위에 스테인리스 국그릇 같은 용기를 엎어놓은 뒤 그 위에 생선을 올려놓고 불을 가하면 된다. 먹어 보면 찐 생선은 가시를 발라 먹기도 좋고,육질이 부드러운가 하면 기름이 쪽 빠져 정말 담백하다.이것을 몇 번 먹어 본 사람은 그 다음부터 기름에 튀긴 생선이 부담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국물이 있는 생선 요리라면 국물 표면에 떠오르는 거품을 잘 걷어 내야 한다.이 거품에는 오염물질도 많이 포함돼 있고,여러가지 나쁜 냄새를 풍기는 성분도 들어 있기 때문이다.거품을 잘 제거하면 훨씬 안전하면서 맛도 깔끔한 생선찌개가 된다. 생선은 육류보다 안전한 동물성 단백질 공급원으로 평가받고 있다.그런데도 많은 아이들이 생선을 먹지 않으려고 한다.그런 자녀가 있다면 주말 야외프로그램의 하나로 온 가족이 수산시장 나들이를 하는 것도 좋다.애들이 스스로 고른 생선에는 아무래도 젓가락이 한번이라도 더 가기 마련이다. 물론 보너스로 살아 있는 어시장의 활기와 흥분의 체험을 담아올 수도 있다.
  • 예산처 ‘톱다운제’ 지방순회 설명

    기획예산처는 올해부터 도입한 총액배분 자율편성 예산편성 방식인 이른바 ‘톱다운’ 제도에 대한 지방순회 토론회를 개최한다고 25일 밝혔다. 김병일 예산처장관이 직접 지방을 순회하며 개최하는 토론회는 지난 23일 제주를 시작으로 다음달 5일까지 전주(27일),대전(28일),광주(30일),대구·부산(8월2일),춘천(5일) 등에서 잇따라 열린다.서울·경기·인천 등 수도권지역 설명회는 따로 일정과 장소를 정해 실시할 방침이다. 박은호기자 unopark@seoul.co.kr
  • “미래지향적인 판결” “경악… 체포조 결성”

    지난해 송두율 교수를 국내에 초청했던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와 학계 및 인권단체 등은 21일 “북한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볼 수 없다.”는 항소심 선고 결과에 “한 지식인의 양심과 진실의 실체를 인정한 미래지향적 판결”이라고 환영했다.반면 보수단체들은 “체제의 근간을 흔드는 경악스러운 판결”이라며 ‘체포조 결성’을 주장하며 강하게 반발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박형규 이사장은 “초청한 손님이 감옥에 갇히게 돼 마음이 불편했는데 사법부의 진일보한 판결로 석방돼 한결 마음이 홀가분해졌다.”고 소감을 밝혔다. 박 이사장은 그러나 “정치국 후보위원이라는 증거가 없다면 무죄가 선고돼야 하는데,검찰 구형량(15년)을 의식한 듯 집행유예가 선고돼 아쉽다.”면서 “양심과 학문의 자유가 아직도 국가보안법에 의해 제약을 받고 있는 현실이 버겁다.”고 말했다. 반면 보수단체는 송 교수에 대한 체포조 결성을 논의하는 등 유감을 표시했다.신혜식 바른선택국민행동 사무총장은 “1심에서 입증된 혐의를 뒤집은 이번 판결은 존중할 수는 있어도 받아들일 수는 없다.”고 밝혔다. 네티즌의 반응도 극명하게 엇갈렸다.‘남상덕’씨는 포털사이트 다음에서 “사법부의 현명한 결정에 지지를 보낸다.더이상 시대착오적인 국가보안법으로 피해를 입는 사람들이 없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반면 아이디 ‘이순현’씨는 “예상된 면죄부로 별로 놀랄 일도 아니다.간첩이 민주인사로 판정 받고,간첩으로 처벌 받은 자가 의문사위 조사관으로 현직 장성을 소환해 조사하는 세상이다.”라고 냉소했다. 안동환기자 sunstory@seoul.co.kr
  • “미래지향적인 판결” “경악… 체포조 결성”

    지난해 송두율 교수를 국내에 초청했던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와 학계 및 인권단체 등은 21일 “북한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볼 수 없다.”는 항소심 선고 결과에 “한 지식인의 양심과 진실의 실체를 인정한 미래지향적 판결”이라고 환영했다.반면 보수단체들은 “체제의 근간을 흔드는 경악스러운 판결”이라며 ‘체포조 결성’을 주장하며 강하게 반발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박형규 이사장은 “초청한 손님이 감옥에 갇히게 돼 마음이 불편했는데 사법부의 진일보한 판결로 석방돼 한결 마음이 홀가분해졌다.”고 소감을 밝혔다. 박 이사장은 그러나 “정치국 후보위원이라는 증거가 없다면 무죄가 선고돼야 하는데,검찰 구형량(15년)을 의식한 듯 집행유예가 선고돼 아쉽다.”면서 “양심과 학문의 자유가 아직도 국가보안법에 의해 제약을 받고 있는 현실이 버겁다.”고 말했다. 반면 보수단체는 송 교수에 대한 체포조 결성을 논의하는 등 유감을 표시했다.신혜식 바른선택국민행동 사무총장은 “1심에서 입증된 혐의를 뒤집은 이번 판결은 존중할 수는 있어도 받아들일 수는 없다.”고 밝혔다. 네티즌의 반응도 극명하게 엇갈렸다.‘남상덕’씨는 포털사이트 다음에서 “사법부의 현명한 결정에 지지를 보낸다.더이상 시대착오적인 국가보안법으로 피해를 입는 사람들이 없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반면 아이디 ‘이순현’씨는 “예상된 면죄부로 별로 놀랄 일도 아니다.간첩이 민주인사로 판정 받고,간첩으로 처벌 받은 자가 의문사위 조사관으로 현직 장성을 소환해 조사하는 세상이다.”라고 냉소했다. 안동환기자 sunstory@seoul.co.kr
  • ‘아토피’ 조기유학생 노린다

    조기유학 바람에다 여름방학을 맞아 어학연수까지 가세하면서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출국이 러시를 이루고 있다.교육인적자원부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해외 유학생이 16만명에 이르며,단기 어학연수와 배낭여행까지 포함,줄잡아 30여만 명의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이국에서 생활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문제는 이들이 대부분 먹거리 등 생활환경의 영향을 그대로 반영하는 아토피 피부염에 고스란히 노출돼 있다는 것이다. 부모의 관심권에서 벗어나면서 고칼로리의 패스트푸드로 끼니를 때우기 일쑤인데다 환경변화에 공부 스트레스까지 겹치면서 아토피 피부염의 고통을 이기지 못해 조기 귀국하는 사례까지 생기고 있다. 실제로 서울의 H한의원이 지난해 9월부터 지난달까지 이곳에서 치료받은 초진 환자 93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6.7%인 63명이 유학이나 어학연수로 아토피피부염이 발병했거나 심해져 치료를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큰 맘 먹고 떠난 유학과 어학연수의 함정인 아토피 피부염,어떻게 다뤄야 할까. ●문제 아토피 피부염은 예민하거나 소화기가 약한 데서 기인한 체질적 요인,음식과 스트레스 등 생활습관적 요인,공해와 오염 등 환경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병한다.조기유학생이나 어학연수생의 경우 부모가 보살필 수 없는 환경에다 전혀 다른 음식과 스트레스까지 겹쳐 없던 증세가 생기거나 경미한 증세를 키우는 사례가 많으며,그나마 외국에서는 치료조차 쉽지 않아 현지 적응을 더욱 어렵게 하기도 한다. ●원인 가장 중요한 원인은 역시 음식.아토피의 원인이기도 한 서구식 인스턴트식품과 패스트푸드를 먹는 횟수가 늘어나면서 결정적으로 병증을 키우게 된다.미국의 경우 주식인 패스트푸드류의 60%가 지방 등 고칼로리 성분이며,1회 분량 또한 한국인의 평균 섭취량보다 많아 문제가 된다.홈스테이를 하더라도 냉동식품 의존도가 높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실제로 표준 한식의 경우 평균 열량이 600㎉ 안팎인 반면 햄버거,시리얼,샌드위치 등 서양식은 대부분 700∼800㎉에 이르며,영양불균형도 심해 피부가려움증을 심하게 하기도 한다.더러는 이때 식습관이 바뀌어 귀국해서 비만의 고통을 겪기도 한다. 또다른 문제는 스트레스.현지 적응과 공부 때문에 스트레스 부담이 국내와는 비교할 수가 없다.이런 스트레스는 가려움증을 심하게 하거나 아토피를 악화시키는 주된 원인이 된다.게다가 가려움증과 피부 짓무름으로 주변 시선을 의식하다 보면 자신감을 잃고 위축되거나 다른 사람과 어울리지 못하는 병폐를 낳기도 한다. 피부관리에 소홀할 수밖에 없다는 점도 문제가 된다.아토피는 피부를 청결하고 건조하지 않게 유지해야 하는데,혼자 생활하다 보면 청결은 물론 보습에 소홀하게 되며,강한 자외선과 잦은 선텐 역시 아토피를 악화하는 주요인이 된다. 한국인이 몰리는 해외 유학 선호지역은 대부분 주거환경이 그다지 좋지 않다는 점도 유의할 대목이다.일사량이 많고,개발에 따른 환경오염이 심해 아토피 피부염뿐 아니라 습진,진균증 같은 피부질환 감염 확률이 상대적으로 높다.비용을 아끼기 위해 선택한 열악한 주거,카펫이 깔린 입식생활도 아토피 발병 인자가 된다. ●준비 앞서 열거한 원인을 알고 착실히 준비하면 된다.유학이나 연수지역을 선택할 때는 건조하거나 일사량이 많은 곳,대도시를 피하는 것이 좋다.유학의 특성상 이런 제약을 극복하기 어렵다면 사전에 준비를 철저히 할 필요가 있다.미리 체질과 영양상태,아토피지수 등을 파악해 자신에게 맞는 약제,의복,목욕용품,보습제는 물론 누룽지 미숫가루 생식,햇반,죽 등 레토르트식품이 포함된 대용식과 현지 대체식단 등을 준비해야 한다.현지에 가서도 1∼2개월 동안은 한식을 먹되 규칙적인 운동과 식사로 적응력을 높이며,잦은 파티에서도 술과 담배를 가까이 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 도움말 혜원한의원 권기영 원장 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
  • 환상소설첩/방민호 엮음

    ‘일제시대 문인들의 수필’‘자전적 소설’ 등 한국의 현대문학에 질서를 부여할 테마를 찾아 유목의 길을 걸어온 소장 국문학자 방민호 서울대 교수가 이번엔 ‘환상성’에 주목했다.향연출판사에서 나온 ‘환상소설첩’(근대편·동시대편) 2권은 그 환상성을 주제로 한 작품을 엮은 것. 그러나 저자가 정의하는 ‘환상성’은 여느 환상 개념과는 다르다. 그는 환상성이 그저 비현실적인 황당무계한 상황이 아니라 “작가가 발견한 새로운 현실의 존재를 풍부하게 암시하고 드러내는 유력한 방법” 혹은 “아직 인간적 현실로 분명하게 인준되지 못한 미지의 영역을 향해 내미는 인간의 예지적인 촉수”라고 규정한다.이 환상성의 개념을 통해 저자는 그동안 자신이 문학을 분석해온 주요틀인 리얼리즘의 개념을 확장시킨다. 이런 분석틀에 바탕하여 저자는 멀리는 김동인의 ‘광염 소나타’에서 가까이는 전성태의 ‘웃음과 슬픔의 변주곡’이나 신경숙의 ‘마당에 관한 짧은 얘기’ 등 20편의 작품을 아우르면서 다양한 형태로 변주된 환상성을 보여준다. 저자가 상정한 ‘환상성’이란 프리즘을 통과한 소설은 4가지 색깔의 빛으로 분리된다. 현실의 변화를 추구하는 저항적 메시지를 담은 작품(이기영 ‘쥐 이야기’,최서해 ‘기아와 살육’),현실적 압력에서의 탈주(나도향 ‘꿈’,최인석 ‘내 영혼의 우물’),지식인·예술가의 정신적 강박증(박태원 ‘적멸’,이상 ‘날개’) 그리고 낭만적 도피(안회남 ‘동물집’,윤대녕 ‘빛의 걸음걸이’) 등이 그것이다. 이종수기자 vielee@seoul.co.kr˝
  • [창간 100주년- 학술대회·지면분석]

    서울신문이 국내 현존 언론 중 처음으로 창간 100주년을 맞았다.서울신문은 1904년 7월18일 창간된 대한매일신보의 구국독립정신을 이어받아 21세기에도 바른 보도로 공공이익과 민족화합에 앞장선다는 사명감을 갖고 있다.대한매일신보에서 시작되는 민족언론의 뿌리가 서울신문으로 어떻게 이어져 왔으며,이 시대에 대한매일신보가 던져주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살펴보기 위한 학술회의가 지난 7일 열렸다.서울신문사와 한국언론학회가 공동으로 개최한 ‘대한매일신보 창간 100주년 기념 학술회의’ 내용을 주제별로 정리한다. ●정리 논설위원실 1. 창간의 역사적 의의 /정진석 외대 명예교수 대한매일신보 창간 이래 오늘날까지 100년을 이어온 발자취는 한국 현대사의 축도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명암과 굴절이 많았다.이 신문이 한국의 언론사와 더불어 현대사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특이하고 중요하다. 러·일전쟁이 일어난 직후 열강의 침탈에 국운이 기울던 시기에 창간돼 1904년부터 6년 동안 민족의 혼을 불러일으키면서 강력한 항일언론을 펼쳤다.한일병합이 강제로 체결된 후에는 매일신보로 제호가 바뀌면서 총독부의 기관지가 됐다.광복 후에는 서울신문으로 재출발했다가 한때 제호를 대한매일로 바꾸었고,이제 또다시 서울신문이 됐다.대한매일신보의 이같은 굴절은 한국 현대사의 고난과 비극이 그대로 반영된 것이다. 대한매일신보가 항일 신문으로 발행될 수 있었던 것은 발행인이자 소유주였던 배설이 영국인이었고,그가 치외법권의 보호를 받을 수 있었기에 가능했다.발행인 배설은 민간인 신분이었으나 영국인이었기에 대한제국의 법률로는 처벌할 수 없었으며,실권을 장악하고 있던 일본도 그를 추방하거나 신문의 발행을 금지할 수 없었다.대한매일신보는 항일무장 의병투쟁을 국내외에 널리 알리고,국채보상운동을 지원하면서 강력한 항일비밀결사 신민회(新民會)의 본거지가 됐다. 한국의 민족진영은 이 신문을 열렬히 지지하고 성원했다.반면에 일본은 이 항일신문을 침략정책의 가장 큰 장애요인으로 여겼다.영국의 입장에서는 영국인이 한국에서 누리고 있는 치외법권을 손상받지 않도록 하려 했다. 영국과 일본이 처음에는 다같이 배설을 한국의 법률 또는 일본의 군율 등으로 간단히 처리해 보려 했지만,결국은 영국의 법정에서 진행하는 재판에 회부하게 됐다.대한매일신보가 발행되던 한말에 있었던 재판은 다섯 차례나 됐고,한국·영국·일본의 법관이 이를 다루었으며,재판 장소도 서울과 상하이까지 걸치게 됐다.재판은 한일병합 후까지 계속됐다. 대한매일신보사는 국채보상운동의 총합소가 되기도 했고,양기탁·박은식·신채호 선생 등은 논설로써 일제의 침략에 항거하는 한편으로는 비밀결사 신민회를 결성해 항일독립운동을 조직적으로 전개했다.따라서 이 신문은 당시의 역사적 사실과 시대상을 연구하는 데도 중요한 사료적 가치를 지닌다. 대한매일신보는 한말에 발행된 신문 가운데 가장 큰 영향력을 지닌 최대의 민족지였다.신문의 발행부수도 당시로서는 최고였지만,국한문·한글·영문의 3종을 동시에 발행한 신문은 한국 언론 사상 처음이었다. 대한매일신보는 자주개화운동의 근본으로서 한글 사용을 주장했다.또한 지면에 실린 항일 시가(詩歌) 등은 국문학상 중요한 연구대상이 되고 있다. 대한매일신보의 창간을 고종 또는 민족진영이 주도했다는 주장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나는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하고 경영한 주체는 배설이라는 입장을 확고히 하고 있다.고종이나 민족진영의 자금지원이 있었지만,그것이 신문발간의 계기가 된 것은 아니라고 본다. 서울신문을 한말 대한매일신보의 후신으로 보는 것이 옳은가,과거의 역사로부터 단절시켜야 하는가 하는 문제는 사관(史觀)에 따라 다른 결론이 나올 수밖에 없다.그것은 언론의 역사를 민족사관(民族史觀)에서 파악하는가,있었던 사실을 객관적으로 받아들이는 실증사관(實證史觀)의 입장인가 하는 근본적 문제이기 때문이다. 광복 후 1945년 11월23일 제호가 서울신문으로 바뀔 때에는 대한매일신보에서 매일신보까지의 지령을 이어받아 13738호부터 시작했다.제호는 바뀌었지만 신문의 역사는 계승한다는 뜻이었다.그러나 자유당 말기였던 1959년 3월23일부터는 매일신보의 역사를 단절하고 지령을 다시 조정했다. 1998년 11월11일부터는 단절시켰던 과거 역사를 복원한다는 의미에서 제호를 대한매일로 바꾸고 지령도 새롭게 계산했다.대한매일신보를 지령에 넣되 매일신보라는 이름으로 발행된 부분은 지령에서 뺌으로써 매일신보를 건너뛰고 역사를 계승했음을 밝혔다.2004년 1월1일부터 서울신문으로 제호를 다시 환원했다.이 날짜 지령은 20095호로 역시 한말 대한매일신보 지령을 합친 것이다.대한매일신보에서 서울신문으로 역사를 이은 것이다. 2. 참여인물·언론사상/박정규 한남대 교수 대한매일신보 발간과 운영에 참여한 인물 중 배설과 양기탁에 대해서는 완벽할 정도로 연구가 이뤄져 있다.그러나 가장 중요한 논객이었던 박은식과 신채호의 재직 기간 중 활동,지사(支社)설치 상황과 종사자들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또,기명이 안된 사설의 집필자에 대해서도 재검토가 필요한 부분이 많다. 배설은 영문 논설이나 기사 외에 국한문판 신보에 직접 집필한 형식의 글들을 발표했다.그러나 이는 배설이 한국어로 쓴 기사라기보다 한국인 기자들이 치외법권적 지위를 가진 배설의 이름을 빌려 사회문제 등에 대해 맘껏 필봉을 휘둘렀다고 보아야 한다. 박은식은 성리학자였던 만큼 전통 한문체의 글을 썼다.1907년 박은식의 뒤를 이어 주필이 된 신채호는 가장 영향력이 컸던 논객이다.신채호는 애국사상이 담긴 특유의 선동적 문장을 통해 국민들의 국권회복 정신을 북돋우는 등 독자를 감동시켰다.양기탁의 글로 알려진 ‘학계(學界)의 화(花)’ 등 2편의 논설은 집필시점과 문체로 보아 신채호가 집필한 것으로 보인다.양기탁은 총무로서 신문 경영 외에 국채보상운동과 비밀결사인 신민회 활동의 중심인물로 활동해 논설집필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신보는 국한문판 발행을 본격화하면서 1905년 평양,선천,장련 등 관서재방 세 곳에 최초의 지사를 설치하게 된다.장련의 지사는 백범 김구가 운영했다.1908년 평양 태극서관 지사장을 맡은 안태국은 교사이자 이 지역 신민회의 중심적 인물이었다.신보의 전국 지사 중 절반이 평안도에 집중 돼 있었던 것은 총무 양기탁이 이 지역 출신이었고 안태국과 같은 지사원의 활약에 힘입었기 때문이다.1910년 6월 전국 지사 수는 59개소,지사원은 250명에 달했는데 이들은 신민회의 지방거점,국권회복운동가들로 추정할 수 있다.회계 임치정은 양기탁이 가장 신임한 동지였다.이완용 암살미수사건,신민회사건 등으로 구속되기도 했고 신채호와도 친밀한 관계였다. 3. 국채보상운동 주도/이연 선문대 교수 차관을 이유로 조선민중을 식민지의 올가미에 옭아 매려는 일제의 획책에서 벗어나기 위한 국권회복운동이 바로 국채보상운동이다. 이 운동은 1907년 대구 광문사(廣文社·현 수창초등학교 뒤 대성사 자리)에서 시작됐다.“우리나라의 국채가 현재 1300만원인데 정부의 국고금으로는 갚을 수 없는 형편이라,국채를 갚지 못하면 장차 토지라도 주어야 할 형편이다.우리 2000만 동포가 담배를 끊고 그 대금으로 매월 1명당 20전씩 모은다면,3개월 만에 국채를 다 갚을 수 있을 것이다.”라는 게 주요 내용이다. 국채보상운동은 일제 강점하의 물산장려운동이나 해방 후 국산품 애용운동,1998년 IMF 이후의 금모으기 운동처럼 국난을 극복하고자 하는 애국운동으로,세계사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국민운동이었다.최초 발의는 상인들에 의해 시작됐으나,한 푼 두 푼 성금을 모으는 과정에서 농민들이나 봇짐장수,가정주부에 이르기까지 전 국민적으로 확산됐다. 이 운동을 거국적인 민족운동으로 승화시킨 데는 무엇보다도 대한매일신보 등 언론들이 적극적으로 민족운동을 전개한 게 동력이 됐다.이 신문들은 기사나 논설을 통해 국채보상운동의 의의와 당위성을 호소하면서 날마다 의연자의 명단 및 납부금액을 게재해 온 국민들의 동참을 역설했다.조선통감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는 “나의 백 마디 말보다 신문의 한마디가 조선인을 감동케 하는 힘이 크다.”고 개탄했다고 대한매일신보가 보도했다. 조선통감부는 국채보상운동을 배일운동으로 간주하면서 갖은 탄압과 모략을 획책했다.일제는 을사 5적 중 한 사람인 이지용과 일진회의 송병준,이용구 등 친일파를 동원해 반대하는 책동을 일으키게 했다.그러나 대한매일신보 배설 사장과 양기탁 총무는 이러한 탄압과 이간책동에도 불구하고 이 운동을 계속 전개했다.일제는 결국 이들의 언론활동을 봉쇄하기 위해 배설의 국외추방과 양기탁을 탄압해 제거하기에 이른다. 4. 대한매일신보 지면분석- 논설/김덕모 호남대 교수 대한매일신보의 과정은 크게 4단계로 나누어 평가된다. 제1기는 창간 때부터 1905년 3월10일 일시 휴간 때까지의 시기이다.6면중 4면은 ‘The Korea Daily News’라는 제호로 영문면을 만들고,나머지 2면은 대한매일신보라는 제호로 국문면을 만들었다. 제2기는 대한매일신보를 속간하기 시작한 1905년 8월11일부터 1907년 3월말까지의 단계다.이 시기에는 ‘을사5조약’ 반대투쟁을 전개하면서 애국계몽운동을 시작했다. 제3기는 대한매일신보가 신민회의 기관지로 전환되기 시작한 1907년 4월 초부터 대한매일신보사가 이장훈에게 팔려 양기탁 등 신민회 간부들이 대한매일신보사를 떠난 1910년 6월13일까지의 시기다. 제4기는 배설에 이어 사장직을 승계한 만함이 일제의 공작에 말려들어 회사 일체를 사원 이장훈에게 매도하고 귀국해버린 1910년 6월14일부터 일제가 한국을 완전식민지로 병합하여 대한매일신보를 폐간시켜버린 1910년 8월29일까지의 2개월 반 간의 기간이다. 제1기에는 러·일전쟁의 와중에서 한국의 입장을 대변하여 국가의 안녕질서에 대한 모든 주제에 대해 공평한 변론을 전개했다고 평가받고 있다. 제2기는 한국인의 문명지식을 계몽하고 세계 각국에 대한 견문을 공유하기 위한 개화의 목적에 역점이 두어졌다. 제3기 이후는 우리나라의 국권회복에 초점을 맞춰 항일구국운동에 앞장섰다. 대한매일신보가 개화기 구국계몽운동의 선봉이 될 수 있었던 데 대해서는 발행인이 영국인이었기에 광무신문지법에 의한 일제의 탄압과 검열을 피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있어왔다. 그러나 신용하 교수 등의 연구는 이러한 외적요인에 더하여 대한매일신보가 구국운동 단체인 신민회의 기관지가 된 이후 더욱 과감하게 국권회복을 위한 언론구국운동을 전개했다고 평가한다. 이러한 평가는 논설 분석 결과로도 입증된다. 이 시기 논설은 민족의 자립정신,교육과 나라정신,산업진흥,친일언론과 단체에 대한 비판,독립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또 일본의 통감부 설치가 식민 지배를 감추기 위한 기만책임을 통렬히 비판하고,국채보상운동,헤이그 특사 파견,고종황제 퇴위,한일병합조약,동양척식회사 설립 등 역사적 사건을 맞을 때마다 과감하고 열렬한 언론구국투쟁을 전개하였다. 이제 오늘의 신문들은 이러한 전통을 어떻게 계승 발전시켜 나갈지 심각하게 고민할 시점이다. 5. 대한매일신보 지면분석- 광고/안종묵 외대 연구원 대한매일신보는 창간 때부터 광고를 게재했다.사기업인 대한매일신보는 신문의 안정적인 발행을 위해 광고가 중요했다. 창간 초기의 광고료는 1인치에 50전이었고 한달에 5원이었다.발행부수가 다른 신문의 3배 이상이어서 광고의 효과면에서 대단히 컸다.한글과 영문이 혼용된 6면이 발행된 시기에는 운수광고(16%),은행(14%),잡화점(9%) 등이 주요 광고주였다.광고주의 국적은 한국이 13%,외국이 43%,미상이 44%다. 1907년 5월23일부터 발행된 한글판 대한매일신보의 광고는 그해 하루 평균 5.26개이던 것이 1910년에는 10.25개로 두배 가까이 증가했다. 10대 광고업종은 약국,서적,사고광고 등이었다.약국 가운데 이응선의 종로 화평당약방과 이경봉의 남대문 제생당약방이 최대 광고주였다. 서적광고는 전체의 16.5%를 차지했다.애국계몽운동가인 이승훈이 운영하던 태극서관이라는 서점 광고가 집중적으로 등장했다.‘국한문신옥편’이라는 실용적인 서적부터 ‘서사건국지’‘애국부인전’ 등 국권회복을 자극하는 계몽적 성격의 서적들이 광고됐다. 1908년과 1909년에는 사고(社告)광고가 많이 등장하는데 명함 인쇄와 국채보상운동과 관련된 사고였다.국채보상운동 취지를 제일먼저 보도한 신문은 대한매일신보였다.흥미로운 것은 신보가 국채보상운동을 촉구하고 있을 때 일제 담배광고가 많이 광고되었던 점이다.이는 광고가 국채보상운동과는 큰 관계없이 운영되었음을 말해준다. 6.대한매일신보 지면분석- 독자 인식/김영희 서울대 강사 대한매일신보 독자들이 투고한 기서(寄書)에서 신문에 대해 가장 자주 요구한 것은 춘추필법으로 공정하게 계도하는 엄한 스승으로서의 언론의 모습이었다.다음으로 많이 주문한 것은 다양한 분야의 광범한 지식을 제공하는 문명진보 수단으로서의 역할이었다.이 두 요인 또는 인식은 지금까지 개화기 신문에 대한 대부분의 연구에서 설명된 것으로,이 시기 신문발행에 참여한 발행 주체들의 신문에 대한 인식이 일반 신문 독자들의 인식으로 확산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세 번째로 자주 언급된 것으로 신문이 독립자유의 감발심(感發沈)을 격동케 하고,새로운 자각을 유발시킨다는 인식이었다.이러한 인식은 신문의 춘추필법과 지식 제공으로 자극을 받아 생성되는 기쁨,감격,분노,안타까움,흐뭇함 등의 정서적 반응이었다. 대한매일신보를 읽은 독자들이 남긴 다양한 글에서도 당시 대한매일신보가 어떻게 평가되고 있었는지 알 수 있다.황현은 대한매일신보를 설명하면서 “각 신문사에서도 의병들을 폭도나 비류(匪類)로 칭하였지만 오직 매일신보는 의병으로 칭하며,그 논설도 조금도 굴하지 않고 일본인의 악행을 게재하여 들으면 들은 대로 모두 폭로하였다.그러므로 사람들은 모두 그 신문을 구독하여 한때 품귀 상태에까지 이르렀고,1년도 못되어 매일 간행되는 신문이 7000∼8000장이나 되었다.”고 평가한 바 있다. 제주도에 유배되어 있으면서 대한매일신보를 읽었던 김윤식은 대한매일신보가 일본을 비판하는 내용은 사람으로 하여금 매우 통쾌하게 한다고 기록하였다.이러한 논의들은 신문의 공공성을 지키면서 보도와 논평 기능을 통해 환경을 감시하고,다양한 분야의 정보를 제공하여 국민을 개명 진보로 이끌고자 한 대한매일신보의 역할에 대해 높이 평가하면서 그러한 대한매일신보의 모습을 신문의 전형으로 인식했음을 알려준다. 7. 대한매일신보 지면분석- 잡보(사회면)/채백 부산대 교수 오늘날의 사회면 기사에 해당하는 것이 ‘잡보’다.대한매일신보의 잡보 중에서는 사실보도가 전체의 76.1%를 차지했다.반면 의견이 개입된 기사,즉 사실+해설과 해설기사를 합치면 전체의 14.2%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결과를 독립신문의 분석결과와 비교해 보면 의견기사가 줄어들고 사실보도가 늘어났음을 알 수 있다.대한매일신보의 잡보란에 실린 기사의 주제는 다양하지만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것은 정부 관련 정보였다.전체의 24.5%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 다음으로는 사회문제,유명인사 동정,관의 비리와 폐해 순서로 나타났다.사회문제 기사에서는 1907년 군대해산 이후 활발했던 의병 관련 기사나 교육 관련 기사가 포함됐다. 독립신문에서는 해외토픽류의 흥미 위주의 기사가 있었지만 대한매일신보에서는 이런 기사를 찾아볼 수 없다.반면 일식이나 태풍,자살 기사 등이 ‘사고와 흥미거리’ 기사에 포함됐다. 잡보란에 등장하는 기사들의 관련지역을 보면 한성에 대한 집중도가 매우 높아 전체의 59.6%에 이른다.그밖의 지역은 전체적으로 고른 분포를 보이고 있다.외국에 대해서도 많지는 않았지만 여러 나라가 등장했다.특히 일본이 가장 많았다. 잡보기사의 주인공도 다양했다.잡보 기사의 주인공으로는 지식인과 단체가 26.3%로 가장 많았고,그 다음으로 왕실과 정부가 22.3%를 차지했고,일반인이 15.6%로 그 뒤를 이었다. 잡보기사의 보도태도를 긍정,중립,비판 세가지로 분류해보면 긍적적이 6.8%,중립적이 85.8%,비판적이 7.4%의 분포를 보였다.대한매일신보의 잡보에 나타난 주요 특징은 몇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기사의 건수가 독립신문에 비해 대폭 늘었다는 점이다. 이는 지면의 판형이 커지고 단수가 늘어나는 등의 외형적 요인 외에도 신문이 정착기에 들어가면서 취재여건이 다소나마 좋아졌던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다음으로는 사실보도와 중립적 보도태도가 늘어났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이는 신문이 지향해야 할 이념으로서 중립성과 객관성을 표방하는 객관저널리즘에 좀 더 접근한 모습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사실보도 위주로 가면서 단위 기사의 분량도 점차 짧아지는 경향을 보여 주었다. 세번째로는 기사의 관련 지역이나 주인공,정보원 등에서 특정의 편향을 강하게 보였다는 점이다.지역면에서는 한성,주인공이나 정보원 측면에서는 정부나 관리에 대한 의존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 [한국근대사 100년-좌담] “한국전쟁·반공국가주의가 좌우이념 공존 차단”

    왕조시대의 몰락,서양문물의 유입과 함께 시작한 우리의 근대는 서울신문의 궤적이기도 하다.1904년 서울신문의 전신 대한매일신보가 창간될 즈음,우리에게 이식된 서구의 이념은 100년의 세월동안 한국을 움직이는 기간 동력이었다.근대 공간에서 이념은 때로는 항일이나 민족,때로는 개발 논리,또 이후에는 민주주의를 지향하며 우리 사회를 견인했다.그러나 냉전체제가 해체되고 우리 사회가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하면서 이념적 모순과 정체성의 혼란을 겪기 시작했다.아직도 보수와 진보,좌파와 우파를 보는 우리의 시각은 협소하고 뒤틀려 갈등과 대립상을 씻어내지 못하고 있다.여기에 21세기 진로와 정당성에 대한 비판까지 겹쳐 국민들을 혼란스럽게 한다.서울신문은 창간 100주년을 맞아 임지현(한양대 사학)교수와 김호기(연세대 사회학과)교수의 대담을 통해 한국 사회를 관통해 온 이념의 좌표와 미래를 짚는다. -임 공교롭게도 서울신문의 전신 대한매일신보의 창간과 우리가 셈하는 근대의 시기가 거의 일치한다.대한매일신보가 창간된 1904년은 안팎으로 시련기였으며,대한매일신보는 이런 시대적 요청과 필요성으로 태어났다.여기에 주목해 보면 우리의 근대사와 영욕을 함께한 서울신문의 존재 의미도 자연스레 살필 수 있지 않을까. -김 신문이라는 매체의 등장이 바로 새로운 이념의 산물이었다.당시는 국운이 쇠해 국가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던 때였다.이때 대한매일신보가 창간된 것은 ‘항일’과 ‘민족’이라는 가치를 지향하는 것이었는데,그런 가치가 우리 근대에 크고 깊게 자취를 남겼음을 부인할 수 없다.아쉬운 것은 일제 강점기와 1970∼80년대 개발시대를 지나면서 일제와 독재정권에 예속돼 제 목소리를 잃었다는 점이다.90년대 중반 제호를 서울신문에서 대한매일로 바꾸면서까지 그런 과거와 단절하려고 노력했고,지난해 서울신문으로 다시 태어나 확실히 권력과 거리를 두고 건강한 긴장관계를 지키고 있다고 본다.긍정적인 변화다. -임 그런 각성 위에서 서울신문이 우리 사회 공론의 장이 되고,또 새로운 성장의 토대로 작용할 것이라는 기대를 갖는다.개화기 대한매일신보의 계몽적 역할은 아무리 그 의의를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하지만 21세기의 신문은 달라야 한다.계몽이 강조되다 보면 일방적 주의주장이나 자기정당화의 덫에 걸릴 위험이 많다. 이념 측면에서 지난 100년을 정의하는 것은 쉽지 않다.일제하에서는 지식인 중심의 좌파적 경향이 지배했고,광복 후에도 이런 배경 때문에 좌우 대립이 치열했다.그러나 당시의 좌우대립은 지금처럼 경직된 모습은 아니었다.그런 점에서 한국전쟁과 이후 박정희 시대의 반공국가주의는 냉전의식의 확산과 좌우 이념의 공존을 차단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고 본다. ●식민통치·분단·민주화 거치며 대전환 완성 -김 근대 100년은 전통사회에서 근대로의 전환이 이뤄진 시기로,식민통치와 분단,민주화라는 큰 궤적을 거치면서 대전환이 완성됐다.문제는 이런 전환이 현재 인권과 분배,환경문제 등에 얼마나 중요한 가치를 부여하는가 하는 점이다. -임 우리 사회는 보수와 진보를 고정된 실체로 이해하는 경향이 짙다.이념 구획이 냉전적이다.세계주의가 곧 신자유주의고,이게 보수라는 그릇된 인식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살펴보면 우리의 세계주의는 민족주의에 발목이 잡혀 있다.지금은 민족주의자도 세계화를 공유해야 한다. -김 60년대까지도 우리는 보수가 곧 우파이며,진보는 좌파라는 인식,나아가 보수는 안정이고 진보는 변화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들여다보면 진보적 보수도 있고,보수적 보수도 있다.이런 시각에서 신자유주의는 세계적 보수,국내의 파병반대 이념은 세계적 진보의 표면화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지금은 ‘보수=우파,진보=좌파’라는 인식이 적용되지 않는 세상이다.보수와 진보라는 2분법에 세계주의가 더해진 분류법이 제시되고 있다. 역사적으로 광복 후 가장 큰 이념적 분기점은 분단으로 본다.이후 80년대까지는 우파 주도의 사회였고,진보주의자나 좌파에는 정치적 시민권이 부여되지 않았다.결국 이런 족쇄가 이념적 지형과 사유의 폭을 협소하게 했는데,이게 80년대 들어 해빙된 것이다. -임 우리 이념체계의 골격인 민족주의 문제도 짚을 필요가 있다.지금의 국제주의는 전 지구적이며,네트워크화하는 특성을 보이는데,우리는 여전히 민족주의에 발목이 잡혀 있다.일제강점이나 광복,한국전쟁 등은 한마디로 서구에서 시작된 ‘근대성’이 세계로 확산되는 과정의 일환으로 이해할 수 있는데,그것은 이념적으로 공산주의 대 반공주의,제국주의 대 민족주의,독재 대 민주주의처럼 이항대립적 이념틀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수용하게 했고,특히 한반도에서 그 대립은 경직된 형태로 나타났다.그 결과,현실이 이념적 대립에 포박 당해,관념이 승하고 그 관념이 다시 현실을 악화시키는 기제로 작동했다고 본다. -김 사실,오늘날 진보주의는 국가주의와 민족주의를 어떻게 볼 것인가를 두고 딜레마에 빠져있다.국가주의와 민족주의를 적극 사고하는 부류가 있는가 하면,이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다.세계화의 다중적 특징의 하나는 무한경쟁인데,여기에서 국가나 민족의 개념을 뺀다는 것은 무장해제와 다름없다.최근 논란을 빚고 있는 파병 문제도 결국 민족국가적 선택일 텐데,이런 국가주의,민족주의가 개인주의와 개개인의 자율을 기반으로 하는 민주주의와 맞서지만,긍정적 면도 간과할 수 없다.예를 들어 월드컵 때의 거리응원을 두고 일부는 파시즘적이라고 비판하지만 다른 쪽에서는 잠재력의 분출이나 민족주의의 표출로 읽는다.이 이중성을 이해하고 극복하는 대안을 찾아내는 것이 진보주의자의 과제일 것이다. -임 민족주의나 국가주의에도 좋고 나쁜 모델이 따로 있는데,많은 경우 서로 섞여 그 경계가 모호하다는 점이 문제다.우리의 경우 식민통치를 경험해 저항적 민족주의의 경향이 강한데,이후 박정희가 지배통치를 강화하기 위해 이를 이용했던 게 사실이다.이런 문제를 극복해야 바람직한 국가 혹은 이념모델의 정립이 가능하지 않겠나.살펴보면 민주화 세력과 박정희 반공독재는 항상 길항관계를 유지했으면서도 당시의 진보주의자나 좌파는 체제 내에서 존재했다. -김 나는 민족주의를 열린 민족주의와 닫힌 민족주의로 구분하고 싶다.닫힌 민족주의는 공존과 다양성에서 한계를 갖는데,이에 대한 대안이 바로 열린 민족주의다.이는 인간과 민주주의에 대한 보편적 가치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다른 민족,다른 국가의 이익을 훼손하지 않고 기능하는 민족주의일 것이다.여기에서 필요한 것이 바로 세계주의와 공존할 수 있는 민족주의 프로그램이다. ●민족주의안에 내장된 폐쇄성 극복해야 -임 우리 사회에 뿌리내린 민족주의의 에너지는 엄청나지만 그 안에 내장된 폐쇄성의 코드를 극복하는 게 필요하다.돌이켜보면 광복 이후 민족이라는 대아(大我)에 개인이라는 소아(小我)가 철저히 매몰돼 개인과 개인의 자율성이 민족주의에 포박된 시기였다. -김 지금의 강고한 민족주의 흐름은 근본적인 자기 비판을 통해 부정적인 면을 해체해야 한다.이런 면에서 바람직한 민족주의는 NGO나 기업 등 다양한 중간조직이 활성화된 것이라야 한다. -임 확실히 80년대 이후 한국사회의 공공성은 신장되고 있다.그런 점에서 우리의 이념적 미래는 일정하게 건강성을 유지할 것으로 본다.그러나 진보주의자들이 스스로를 진보라고 규정하고 ‘그러므로 내가 정답’이라고 여기는 행태는 바뀌어야 한다.그건 독선이다. -김 향후 우리 사회의 과제를 개혁과 민주적 통합이라고 본다면,시급한 것은 박정희 시대와 그 시대의 이념으로부터의 단절일 것이다.그런 점에서 일부 문제가 없지 않으나 80년대 이후 진보주의자의 운동 방향을 옳다고 본다.문제는 지금 보이는 박정희 시대에의 향수와 반공국가주의로의 회귀 움직임인데,우리의 보수가 아직도 박정희의 그늘에 안주해서야 되겠나.좋은 사회란 보수와 진보가 제대로 각을 세워야 하는데,우리 보수는 지리멸렬해 있다.보수와 진보는 결국 적대적 의존관계 아니겠는가. -임 엄밀하게 말해 지금 세계가 당면한 새로운 역사적 조건들은 앞 시대의 이항대립적 이념으로는 해석하기 어려운 것이다.신채호가 말했듯,‘조선의 주의가 아니라,주의의 조선이 되는’ 관념과 현실의 전도된 관계를 넘어서는 발상이 중요한데도 우리가 그동안 시민사회의 진보적 가치에 너무 집착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없지 않다.언론의 역할에 기대를 갖고,또 서울신문의 창간 100주년이 의미있다고 보는 것도 이런 시각과 다르지 않다.과거의 문화적 기제를 점검하고 새 모델을 제시하는 일은 바로 언론과 지식인의 몫이다. 정리 심재억·박상숙기자 jeshim@seoul.co.kr 김호기 교수 ●약력 △연대 및 대학원(석사.동양사회,현대사회론)△독일 레펠트대학 대학원(박사)△미국 UCLA 초빙연구원△현,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 국민통합분과 위원△현,연대 사회학과 교수 임지현 교수 ●약력 △서강대 사학과 및 대학원(박사.서양사상사)△폴란드 바르샤바대학 및 영국 포츠머스대학 연구 및 강의△하버드 옌칭연구소 초빙연구원△현,한양대 사학과 교수 ˝
  • [정가 카페] 민노당 ‘화씨 9/11’ 국회시사회

    이라크 전쟁의 허위성을 폭로한 반전영화 ‘화씨 9/11’이 국내 개봉에 앞서 국회 시사회를 갖는다. 민주노동당은 오는 19일 오후 4시,7시30분 두 차례에 걸쳐 440석 규모의 국회 의원회관 대강당에서 미국의 좌파 지식인 마이클 무어 감독이 만든 ‘화씨 9/11’을 상영한다.당원은 물론,일반 시민 모두 무료다.당초 국회 본청앞 잔디밭에서 야외 상영하는 것도 검토했으나 국회 사무처가 “전례가 없다.”며 난색을 표명해 장소를 바꿨다. 민주노동당 천영세 의원단대표는 “이라크 전쟁의 부당성 및 파병 철회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유도하기 위해 시사회를 추진했다.”고 말했다.이 영화는 최근 미국 상원 정보위가 ‘이라크 전쟁의 근거는 잘못됐다.’는 최종결론을 내린 직후여서 더욱 주목받고 있다. 특히 민주노동당은 영화 상영에 맞춰 ‘당원,민주노총 조합원 영화보기’ 캠페인을 적극 검토하고 있으며 수익금의 일부를 ‘파병반대 국민행동’에 기부하는 방안도 추진중이다. 미국 868개 영화관에서 상영중인 ‘화씨 9/11’은 다큐멘터리로는 처음으로 올해 칸 영화제에서 대상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했으며 미국내 첫 주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는 등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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