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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과비평 40돌 “현장에 더 가까이”

    올해로 창간 40주년을 맞은 계간 `창작과비평´(이하 창비)이 4월부터 창비주간논평을 온라인으로 발행한다. 또 창비가 생산해내는 한국의 문학·인문·사회적 담론을 동아시아 차원으로 확산하고 상호 토론과 소통의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4월에 일본어판 ‘창비’ 웹진을 개설한다. 이어 중국어판도 곧 만들 계획이다. 창비는 14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창간 40주년 기자간담회를 열고 지면 혁신과 올해 사업계획 등을 밝혔다. 온라인 주간논평은 창비가 계간지로서 갖고 있는 시의적 한계를 넘어 독자들과 일상적으로 대화를 나누고 현장성을 강화할 목적으로 개설하는 것. 사회적 이슈에 대한 논평과 문학·문화 칼럼 등을 수록해 매주 독자들을 찾아간다. 창비의 일본어판과 중국어판 웹진은 동아시아 진보지식인 네트워크를 강화하기 위한 것이다. 창비 편집주간인 백영서(53) 연세대 사학과 교수는 “잡지 초기의 운동성을 회복해 현장과 보다 밀착된 논쟁적인 `창비표´ 글쓰기를 활성화해 나갈 것”이라며 “운동성의 요체는 편집진의 자기 쇄신”이라고 말했다. 창비는 이를 위해 올해 초 백영서 교수를 편집주간으로 영입하고, 이남주 성공회대 교수, 문학평론가 진정석·이장욱씨 등으로 편집 진용을 새롭게 짰다. 창비는 해방 후 창간된 국내 최초의 문예계간지로 1966년 1월15일 첫 호를 냈다. 창비의 발행부수 1만 5000부는 계간지로는 유례가 없는 수치다.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영화 ‘죠스’ 원작자 벤츨리 별세

    영화 ‘죠스’의 원작자 피터 벤츨리가 지난 11일 밤(현지시간)지병인 폐섬유증으로 미국 프린스턴 자택에서 별세했다.65세. 그의 소설이 1975년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면서 전세계가 식인상어의 무서움을 알게 됐지만 정작 그는 철저한 상어 보호론자였다.1940년 뉴욕에서 작가 나다니엘 벤츨리의 아들로 태어나 뉴햄프셔의 필립스 엑세터 아카데미와 하버드 대학을 졸업했다. 워싱턴포스트와 뉴욕위크에서 일했고 2년 동안 존슨 대통령의 연설문 작가로 활동하기도 했다. 아내 웬디 벤츨리는 그가 베트남전에 관한 몇몇 ‘어려운’ 연설문을 썼다고 회고했다. 1960년대 중반 롱아일랜드의 한 어부가 4550파운드(약 2063㎏)의 백상어를 잡았다는 이야기에서 작품의 동기를 얻은 그는 74년에 소설 ‘죠스’를 출간, 세계적인 작가 대열에 올랐다.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죠스’에도 출연, 기자 역할을 맡았다. 그와 41년을 함께 산 아내 웬디는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생전의 피터는 스필버그가 가장 멋진 영화를 만들었다고 기뻐했다.”면서 “그러나 피터는 영화 ‘대부’의 원작자 마리오 푸조가 독자들의 ‘마피아 공포증’에 책임이 있는 것과 달리 자신은 상어에 대한 두려움에 책임이 없다고 말하곤 했다.”고 전했다.이세영기자 sylee@seoul.co.kr
  • 소주3社 “신제품 ‘물’로 봐주세요”

    소주 3대 메이커가 순한 소주를 놓고 치열한 물 전쟁을 벌이고 있다. ㈜두산주류BG가 지난 7일 알코올 20도짜리 알칼리수 소주 ‘처음처럼’을 출시하자 진로가 다음날 20.1도 ‘참이슬’리뉴얼 제품을 내놓았다. 금복주 역시 15일부터 20도짜리 ‘참소주’를 시장에 낼 계획이다. 순한 소주가 최근 잇따라 나오는 이유는 소주의 고객층이 바뀌었기 때문. 주요 소비층인 젊은층과 여성층이 목넘김이 좋은 순한 소주를 찾는 까닭이다. ‘산’소주 이후 5년만에 신제품을 내놓은 두산이 광고전을 먼저 일으켰다.‘처음처럼’의 첫 광고에서 두산 주류BG의 한기선(55)사장이 직접 소비자들에게 전하는 편지글을 담아 강도높은 전면전을 선언했다. 신제품 시작 광고가 사장의 편지 형식인 것도 이례적이다.‘소주를 사랑하시는 모든 분들께 올립니다’라는 제목의 신문광고에서 소주의 80%를 차지하는 물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세상의 좋은 물이란 물은 다 찾아다닌 얘기, 암 투병을 성공적으로 이끈 알칼리수(水)의 경험, 차(茶)동호회 사람들이 차 우려낼 때 깊은 맛과 향을 살리기 위해 물 대신 알칼리수를 사용하는 원리에 착안해 알칼리수 소주 처음처럼을 출시하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담담하게 전하고 있다. 두산주류BG의 한 사장은 지난 1988년 진로에 입사, 참이슬의 인기를 다졌던 ‘진로맨’ 출신. 지난 2002년 두산 OB맥주로 자리를 옮겼으며 대장암 발병 이후 성공적으로 암 투병을 마치고 2004년 10월 두산 주류BG 부사장으로 소주업계에 컴백한 드라마틱한 인물이다. 소주업계의 산 증인으로서 자신의 인생 이야기와 함께 선뜻 밝히기 어려운 암 투병 경험까지 진솔하게 밝혔다는 점에서 소비자들에게 신뢰감을 높이고 있다. 지난해 55.4%의 점유율로 1위인 진로는 참이슬 리뉴얼제품으로 ‘2006 참이슬 무엇이 좋아졌을까’라는 제목으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됐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대나무숯으로 4번 걸러 깨끗하다, 가장 맛있는 온도에서 파란색 복두꺼비가 나타난다는 등으로 신선함을 부각시키고 있다. 또 처음처럼을 의식한 듯, 대나무숯으로 여과하면 알카리성 물로 바뀐다는 내용으로 대응하고 있다. 진로는 2차 캠페인에서 탤런트 남상미를 모델로 선정해 여성층을 집중 공략한다는 방침이다. 대구·경북지역을 연고로 삼은 금복주는 기존의 21도짜리 외에도 20도짜리 참소주를 15일부터 출시한다. 모델은 지난가을 서동요에 출연한 탤런트 이보영.20도 참소주 제품 특징으로 “지하 162m 맥반석 암반수를 사용해 천연 미네랄과 아미노산류가 풍부하며, 특허받은 알칼리성 소주 제조방법과 참나무 숯을 이용해 만들었다.”는 내용이다. 진로의 참이슬도 대나무숯으로 걸러 ‘알카리성’이 된다는 내용이어서 알칼리성 물에 대한 논쟁이 재미있다. 오랜만에 재개된 소주 광고전에서 물 논쟁이 새로운 관전거리로 부각됐다.이기철기자 chuli@seoul.co.kr
  • [열린세상] 좌파·우파여,中央을 향하라/강지원 변호사

    지금 이 나라 지식인들은 상당수 적대적 감정과 투쟁심, 그리고 승부욕으로 가득 차 있다. 사람들이 갈기갈기 찢어져 입을 뗐다 하면 욕설이고 급기야 머리띠를 두르고 길거리를 누비기 일쑤다. 부득이 그렇게 해야 할 경우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지나치면 문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혼돈의 시대에 이 나라 여러 지식인·운동가들에게 한마디 권고를 보내고 싶다. 먼저 요즘 한창 득세하고 있는 좌파 지식인, 좌파 운동가들에게 권하고자 한다.“여러분은 좀더 오른쪽으로 이동하십시오. 그렇게 오른쪽으로 향하다 보면 정(正)중앙 점에 다다를 것입니다. 그러면 그 곳에서 조화의 묘미를 만끽해 보십시오.” 동시에 똑같이 우파 지식인, 우파 운동가들에게도 권하고자 한다.“여러분은 좀더 왼쪽으로 이동하십시오. 그렇게 왼쪽으로 향하다 보면 정중앙 점에 다다를 것입니다. 그러면 그 곳에서 조화의 묘미를 만끽해 보십시오.” 좌파는 좌파로되, 외곬으로 한쪽에만 고착되거나 더욱 극단으로 치달아서는 안 된다. 우파는 우파로되, 외곬으로 한쪽에만 고착되거나 더욱 극단으로 치달아서는 안 된다. 그것은 독선이며 편견이고 심하면 극단적인 편집증이 될 뿐이다. 좌파는 오히려 늘 오른쪽을 향해야 하고 우파는 늘 왼쪽을 향해야 한다. 그쪽은 바로 중앙점이 있는 방향이다. 방향을 향한다는 것은 싸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 소통하기 위한 것이다. 좀더 나아가 서로 ‘배우려는’ 자세까지 가져야 한다. 좌파는 우파에게서 배우고 우파는 좌파에게서 배우라는 것이다. 좌파와 우파는 서로 적군이어서는 안 된다. 생각의 차이, 느낌의 차이가 있어 서로 간격이 있지만 그런 차이들을 서로 존중하고 다가가려 해야 한다. 그러지 아니하고 서로 싸움질만 계속해댄다면 그것은 곧 죄악이요, 타락일 뿐이다. 시계추는 항상 중앙을 향한다. 어느새 오른 쪽으로 치켜올라갔다가는 다시 중앙을 향해 내려온다. 또 그 탄력으로 어느새 왼쪽으로 치켜올라갔다가는 또 열심히 중앙을 향해 내려온다. 그리고 그 움직임의 폭이 크면 클수록 순간순간 구경꾼들에게 안줏감이 될 수는 있을지언정 그 큰 혼란은 걷잡을 수 없게 된다. 수직(|)과 수평(-)이 합하면 ‘+’(플러스) 모양이 된다. 수직에는 위·아래가 있고 수평에는 좌·우가 있다. 그것들이 한데 만나는 지점이 정중앙 점이다. 위는 아래를, 아래는 위를, 좌는 우를, 우는 좌를 향할 때 만나는 점이다. 모든 조화는 여기서 일어난다. 나는 이를 ‘+’(플러스)형 모형이라고 부른다. 나는 여성문제에 대해 매우 진보적인 입장에 서는가 하면 음란물 규제에 대해서는 아주 보수적인 입장에 선다. 왜 사안에 따라 입장이 다르게 될까. 세상이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 있다고 느껴지면 그것을 바로잡는 쪽으로 움직여지기 때문이다. 아직도 한국에선 여성의 지위가 열악한 탓으로 나는 그 지위를 올리는 쪽에 서게 된다. 만일 세상이 지나치게 여성편향적으로 변한다면 나는 보수적으로 변할 것이다. 음란물에 대해서는 이 나라처럼 이렇게 질펀한 나라가 없다고 보고 있다. 그래서 자연 보수적인 규제 쪽으로 손을 들게 된다. 만일 세상이 변하면 진보적인 표현의 자유 쪽에 손을 들게 될 것이다. 이런 시각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그래서 나와 다른 견해를 가진 많은 이들로부터 배우려 한다. 이 나라 지식인·운동가들에게 가슴의 말을 전하라고 한다면 이런 말을 하고 싶다.“좌파와 우파는 서로 사랑하라.”라고. 강지원 변호사
  • CEO 칭기즈칸처럼 경영하라/쓰마안 지음

    CEO 칭기즈칸처럼 경영하라/쓰마안 지음

    경영은 일종의 전쟁이다. 그래서일까. 오늘날 경영인들은 군사 고전 ‘손자병법’으로부터 커다란 지혜를 얻는다.‘손자병법’은 요즘으로 말하면 신세대 지식인인 손무가 쿠데타로 막 정권을 잡은 오나라 왕 합려에게 내놓은 군사전략보고서다.6000여개의 한자로 이뤄진 이 전쟁에 관한 짧은 보고서는 지금도 국경을 초월해 널리 읽힌다.‘손자병법’에는 단순한 전쟁의 기술을 넘어선 철학과 휴머니즘이 있고, 현대를 살아갈 치열한 생존전략이 담겨 있다. 경영자들이 ‘손자’를 즐겨 찾는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칭기즈칸이다.‘손자병법’이 선인들의 전쟁 경험을 토대로 한 병법서라면, 칭기즈칸의 전략 사상은 오로지 스스로의 실전 경험을 통해 쌓아올린 것이다. 그런 만큼 더욱 생생한 데가 있다.‘CEO 칭기즈칸처럼 경영하라’(쓰마안 지음, 김보경 옮김, 일빛 펴냄)는 최근 부쩍 주목받고 있는 칭기즈칸의 리더십을 다룬 책이다. ‘CEO 칭기즈칸’이란 말은 더이상 낯설지 않다. 그만큼 벤치마킹의 대상이 돼 왔다는 얘기다. 칭기즈칸에게는 아시아의 비옥한 들판을 황무지로 만들어버린 침략자, 온갖 잔인한 방법으로 아시아를 피로 물들인 야만인 등 혹독한 비난이 따른다. 계몽주의 사상가 볼테르는 자신의 희곡 ‘중국의 고아’에서 칭기즈칸을 “오만하게 왕들의 목을 짓밟은 파괴적인 압제자”로 묘사하기도 했다. 그러나 역사는 그를 다시 보기 시작했다. 미국의 워싱턴포스트는 지난 1000년간 인류사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로 칭기즈칸을 선정했으며, 세계적인 CEO 잭 웰치는 “21세기는 새로운 유목사회이며, 나는 칭기즈칸을 닮겠다.”고 했다. 이 천년의 영웅으로부터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중국 베이징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저자는 짐작한 대로 노마드, 즉 유목민의 정신을 강조한다. 인류가 1만년의 정착생활을 끝내고 디지털 장비로 무장한 채 세계를 떠도는 신(新)노마드 시대, 유목민의 상징인 칭기즈칸의 리더십을 배우자는 것이다. 아시아 내륙의 초원을 떠돌던 몽골족을 통합하고 10만명의 기마병으로 태평양에서 지중해까지 동서 8000㎞의 대제국을 지배한 칭기즈칸. 그에게는 남다른 통치철학과 글로벌 경영전략이 있었다. 비록 유목민의 흉포함과 잔인함으로 몽골제국을 건설했지만 전광석화와 같은 속도, 잘 짜여진 조직체제와 효율적인 정보망, 기술자를 죽이지 않는 기술우대 정책, 능력 위주의 인재 등용, 주위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개방적 리더십 등은 오늘날 비즈니스 현장에서 활동하는 이들이 반드시 주목하고 실천해야 할 덕목들이다. 책은 현대적 감각에 맞게 재해석한 43가지의 칭기즈칸 관리잠언을 통해 진정한 ‘노마드 경영’이란 어떤 것인가를 보여준다. 칭기즈칸의 대표적인 전법 가운데 하나가 대우회(大迂廻) 전략과 번개전술이다. 대우회 전략은 몽골인의 사냥 습관에서 비롯됐다. 특징은 속도와 흉포함. 일단 광활한 전투 공간을 확보한 뒤 집중 공격, 분할 포위, 신속 돌격, 원거리 기습, 위장 퇴각, 이동 중 공격 등의 방법을 두루 사용한다. 칭기즈칸은 송나라와 금나라의 원한관계를 이용, 송나라의 길을 빌려 전략적 대우회를 했고 송의 군대와 연합해 금나라를 섬멸했다. 중국의 ‘가전왕국’ 갈란츠가 에어컨 시장을 공략할 때 구사했던 방법이 바로 이같은 대우회 전략이다. 스피드 경영의 중요성은 “계속 이동하면 살고, 성을 쌓으면 패배한다.”는 말에 그대로 드러나 있다. ‘백락(伯樂)이 나고 천리마가 났다.’는 옛말이 있다. 백락은 춘추시대 천리마 감정의 명인. 천리마가 있어도 그것을 알아보는 백락이 없으면 천리마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른바 인재경영, 인재제일주의를 강조하는 말로도 해석할 수 있다. 칭기즈칸의 기술자관(觀) 역시 이와 통한다. 몽골군은 항복하면 살려주지만 저항하면 모든 사람을 다 죽일 만큼 잔인했다. 하지만 기술자만은 예외였다. 어느 나라 어느 성을 함락하든 기술자는 학살 대상에서 제외해 몽골제국의 무기 제조기술을 한 단계 끌어올리고 문화발전에 기여하도록 했다. 이같은 기술우선주의는 신기술을 확보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오늘의 기업들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칭기즈칸의 잠언들이 모두 금과옥조가 될 수는 없다. 하지만 그의 사상을 현실에 접목시키는 과정에서 우리는 나름의 정신적 각성을 얻게 된다. 그것만으로도 ‘칭기즈칸 경영학’은 절반의 성공을 거두는 셈이다.1만 2800원.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해방전후사 재인식’ 대담

    ‘해방전후사 재인식’ 대담

    ‘해방전후사의 인식’(이하 ‘인식’)을 비판하겠다며 지난 8일 출간된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이하 ‘재인식’)을 놓고 이완범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와 김명섭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무릎을 맞댔다. 이 책의 출간 의미를 어떻게 해석하느냐를 두고 10일 서울신문 회의실에서 열린 대담에서였다. 이 교수는 ‘인식’‘재인식’ 모두에 글을 실었고, 김 교수는 ‘인식’의 집필은 물론 기획에도 깊숙이 관여했던 학자다. ●“‘인식’에 대해 정당한 대우를 해달라” 이완범 ‘재인식’뿐 아니라 ‘인식’의 집필에도 참가한 사람으로서 두 책을 동등하게 봐달라고 하고 싶다. 우선 ‘재인식’은 뉴라이트가 아니다. 책임편집을 맡은 박지향 교수는 민족에 기댄 반지성주의적이고 운동만능주의적인 풍토를 비판하는 것이지 ‘뉴라이트’라는 이름까지 동의하지는 않는다.‘인식’ 역시 민족중심적이기는 해도 민족지상주의라고까지 생각하지는 않는다. 김명섭 ‘인식’이 좌쪽에 가깝긴 하다. 그러나 당시 시대상황을 생각해 보면, 그렇기 때문에 인식을 넓혀줄 수 있었다.‘현대사에 대한 인식의 사보타주’를 끝내기 위한 작업이었다. 그렇다고 당시 집필에 참가한 사람들이 지금도 그때의 생각에 머물러 있지는 않다. 계속해서 후속 연구결과를 내면서 변화·발전하고 있다. 또 한 가지는 미국에서도 끝난 ‘수정주의’를 아직도 한국에서 하고 있느냐는 식의 얘기다. 참 어이가 없다. 수정주의가 옳다는 게 아니라, 미국이 끝내면 우리는 더이상 연구하면 안 되나? 정말 주변적인 사고다. ●“재인식 주장에 이의 있다” 이 ‘인식’이 북한의 일제청산을 완벽하다고 평가했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재인식’은 300만명을 남으로 내쫓았으니 북의 청산은 청산이 아니라는데 나는 그것도 어쨌든 청산이라 생각한다. 또 일제 천황제가 북한의 수령제로 연결되기 때문에 북에서 일제청산이 안 됐다는 대목에도 이의가 있다. 카스트로의 독재가 스탈린의 독재에서 보고 배웠다 해서 카스트로가 청산을 안 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여기에다 에커트는 박정희가 만주 모델을 베껴 와서 한국의 경제성장을 이뤘다고 말하는데 흥미로운 주장이며 검증해볼 주장이다. 그런데 만주 모델 때문에 박정희한테 친일잔재가 있다고 해석하는 것은 에커트 주장에 대한 확대해석이다. 오히려 만주국군 출신 정일권을 국무총리에 앉힌 것에서 친일파를 등용했다면 모를까. 김 스탈린의 세계전략으로 한국전쟁이 발생했다는 ‘재인식’의 주장은 정말 세계학계에 안 먹힐 주장이다. 스탈린의 세계전략이 원인으로 꼽혔던 것은 유럽중심적 연구 때문이었다. 서구 연구자들이 김일성과 북한은 잘 모르니 소련과 스탈린에다 초점을 맞췄고, 그러니 스탈린의 세계전략으로만 모든 걸 설명하려 든 것이다.‘인식’은 그게 아니라 한국전쟁은 김일성이 이니셔티브를 쥔 전쟁이라는 점을 처음으로 명확히 했다. 사실 당시 대학가에는 북침설과 미국에 의한 남침 유도설 등이 번지고 있었을 때였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인식’이 외려 남침설을 가장 확실하게 제시했다고 볼 수 있다. 이 앞뒤도 안 맞다. 분단 초기에는 스탈린이 한국에 관심도 없다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한국전쟁을 키웠다고 설명한다. 김 그것도 중요한 결점이거니와 스탈린의 심경변화를 드러낼 자료를 아무것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비교사·문명사·미시사적 연구? 아무 내용 없다” 김 ‘재인식’의 가장 큰 문제는 ‘인식’을 일국사·민족사로 폄하하면서 비교사·문명사를 얘기하는데, 정작 비판에 걸맞은 연구성과물은 없다는 데 있다. 예를 들어 이분법적인 친일·반일구도를 비판하기 위해 조선어학회가 조선총독부의 지원을 받았다는 사실을 발굴한 것까지는 좋다. 그렇다면 일제가 동남아지역을 침략하면서 동남아 원주민 언어를 되살리려는 노력을 기울였던 사실과 비교해야 비로소 비교사가 된다. 특히 인도·미얀마 같은 지역은 영국과 일본의 침략을 동시에 받은 경우인데 이런 경험에 대한 이해가 전혀 드러나지 않아 ‘재인식’이 비교사적 작업인지 회의가 든다. 또 이영훈 교수는 문명사 얘기를 하는데, 참 좋은 얘기다. 주목할 점은 문명사 바람이 불고 있는 프랑스에서 지금 쏟아져 나오고 있는 책이 주로 노예무역을 다룬 책이라는 점이다. 문명 건설과정에서 팽창과 확대만 보는 게 아니라, 숨어 있는 검은 그림들까지 다 드러내보자, 명(明)뿐 아니라 암(暗)까지 함께 보자는 것이다. 왜 이런 측면은 무시하는지 모르겠다. 동시에 일반인의 생활상을 드러내는 미시사·문화사적 접근도 좋다. 그런데 1930년대 이후를 다루면서 어떻게 그 관점만 고집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1937년 중·일전쟁으로 완전한 전시체제가 들어서는데 이 틀은 무시한 채 모던 보이, 모던 걸만 얘기할 수 있나. ●‘인식’,‘재인식’보다 더 흥분한 언론들 이 어떤 기자는 뉴라이트로 쏠린 보도에 자기는 책임 없다는 식으로 해명전화를 했다. 원래 처음 책 출간 소식을 알린 신문은 그 뉴스를 특종으로 생각하고 다른 신문은 이미 예전에 다 나왔던 기사로 생각하더라. 그런 것들을 보니 특종 욕심 속보 욕심에 싸움 붙이고, 그런 것에 언론이 더이상 집중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김 학문적 논쟁 자체는 문제될 것이 없다.‘인식’과 ‘재인식’ 필자들이 무슨 원수진 것도 아니고…. 그런데 언론에서 차분하게 따져 보기보다 그냥 ‘인식’을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니까 문제다. 더구나 ‘인식’의 저자들은 가르치는 것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들이다. 이런 식으로 ‘인식’을 매도하면 ‘인식’의 저자들은 모두 ‘천박한 프로파간다나 하는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인식’은 기본적으로 몇몇 학자들이 동원되다시피 해서 쓴 책이 아니다. ●생산적 논의로 이어져야 이 어쨌든 기존의 틀에 박힌 현대사를 재인식한다는 것은 가치 있는 일이다. 다만 평행선을 달리는 것처럼 논쟁을 벌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기본적으로 ‘재인식’은 ‘인식’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다. 그렇다면 ‘인식’이 가지고 있던 사회사적인 의미나 학술운동적인 의미 등을 받아들이고 제대로 평가해 주는 바탕 위에서 ‘재인식’이 진행돼야 한다. 왜 선학들의 고민이 쌓인 책을 ‘빨갱이 책’으로만 몰아가야만 하나. 김 어떤 분들은 사회가 한쪽으로 쏠렸을 때 지식인들이 반대쪽 얘기를 해서 ‘물타기’를 해야 한다는 말씀도 한다. 그래서 ‘인식’과 ‘재인식’이 자꾸만 맞물려서 계속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거기에 대해서는 공감한다. 다만 프랑스와 비교할 때 한국사의 경계가 더 넓어져야 한다. 프랑스는 ‘어디까지가 프랑스의 역사냐.’를 구분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프랑스사가 아니라 역사를 가르친다. 이에 반해 우리는 한국사와 서양사간의 골이 너무 깊다. 넘나드는 역사인식이 필요할 듯하다. 대담 김종면 문화부차장 jmkim@seoul.co.kr 정리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사진 이언탁기자 utl@seoul.co.kr ■ “이광수 친일적 민족주의자 평가도 모순” ‘재인식´ 출간에 대한 진보쪽 인사들의 평가는 냉혹하다. 한국 근·현대사 박사학위 1호인 성균관대 서중석 교수는 “한국사의 몇몇 특징적인 계기만 잡아내 확대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사 전반에 대해 깊이있는 연구를 했는지 의문”이라면서 “결국 양측이 앞으로 계속 내놓을 논문으로 평가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또 일제시대·북한문학 연구자로 유명한 원광대 김재용 교수는 춘원 이광수를 ‘친일적 민족주의자’라고 평가한 ‘재인식’의 주장을 “형용모순”이라고 비판했다. 김 교수는 “문인들의 경우 외형적으로 어떤 직위를 차지했느냐 안 했느냐, 무슨 글을 발표했느냐 안 했느냐와 같은 단순잣대를 들이대지 말고 그 개인의 내면논리로서 친일 여부를 봐야 한다는 점에서는 동의한다.”면서 “그러나 기본적으로 민족주의는 식민주의에 반대한다는 점에서 ‘일제를 용인하는 민족주의’,‘친일적 민족주의’란 존재할 수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박정희시대 평가를 두고 재인식의 책임편집자 가운데 한 명인 서울대 이영훈 교수와 논쟁을 벌여왔던 경상대 장상환 교수 역시 ‘재인식’에 대한 평가가 지나치게 부풀려졌다고 봤다. 장 교수는 “일례로 ‘농지개혁’문제를 다룬 성균관대 김일영 교수의 글은 ‘인식’의 글과 큰 차별성이 없다.”면서 “좌파적인 ‘인식’을 우파적인 ‘재인식’이 뒤집었다고 단순하게 평가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인지 일부는 기존 우익의 역사인식을 그대로 따온 데다 대부분 특별히 진전된 내용이 없다는 점을 들어 ‘재인식’이라기보다 ‘재탕’에 가깝다는 혹평도 나오고 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토지 공유제 주장은 위험한 발상 출자총액제가 기업 투자 막아”

    재계가 산하 연구원을 내세우거나 세미나를 통해 정부의 경제 정책과 경제 브레인의 주장을 비판하고 나서 주목된다.9일 전국경제인연합회는 한국경제연구원을 통해 토지 사유제 폐지 주장을 반박했고, 대한상의는 이날 열린 세미나에서 기업의 출자총액제한제도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토지 무상몰수 정의 관점서 수용못해” 한경연은 ‘토지는 공유돼야 하는가-진보와 빈곤에 나타난 헨리 조지의 토지사상 평가’보고서(저자 곽태원 서강대 교수)를 통해 조지의 주장들을 조목조목 반박했다.특히 현 정부의 일부 경제 브레인들을 비롯해 진보성향의 국내 지식인들에게 큰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진 조지의 ‘토지공유사상’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위험한 논리라고 지적했다. 조지는 “토지 사유화는 지주가 노동자들의 생산물 중 많은 부분을 지대로 빼앗아가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원천적인 권리가 침해된다.”면서 “토지에 대한 천부적 공유권 회복을 위해 지대를 100% 징수하는 토지단일세를 통해 토지를 공유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경연은 그러나 “모든 인류의 토지공유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고, 토지는 자유재이거나 공공재도 아닌 공유가 적절치 않은 자원”이며 “무상몰수는 정의의 관점에서도 수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투자 활성화…출총제 개선해야” 상의는 기업투자활성화 방안 세미나를 열고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상무의 주장을 빌려 “우리의 창업절차는 12단계로 캐나다·호주의 2단계, 홍콩의 5단계보다 훨씬 복잡하고 출자총액제한제도 때문에 기업들이 신사업 진출이나 신규 투자에 애를 먹고 있다.”고 지적했다. 유 상무는 “국내 투자가 지난 80∼90년대에 비해 크게 둔화됐으며, 구조적으로는 중소·내수기업의 투자부진이 두드러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투자부진의 원인으로 ▲고비용 등 투자여건 악화▲경기부진▲보수적인 기업경영▲반기업 정서▲투자관련 규제 등 5가지를 꼽았다. 그는 특히 “대외경쟁력이 약화된 기존 산업이나 낙후된 서비스산업의 경우 투자의욕이 높은 기업들의 신규 진입을 촉진하면 산업의 역동성이 높아질 수 있는데도 출총제가 진입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다.”며 개선을 주장했다.류찬희기자 chani@seoul.co.kr
  • 부산, IOC총회 유치 실패

    부산이 2009년 국제올림픽위원회(IOC)총회 유치에 실패했다. 부산은 8일 밤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열린 제118차 IOC총회에서 2009년 IOC총회 및 올림픽총회 개최지 결정 5차 투표에서 탈락의 쓴 잔을 들었다. 코펜하겐(덴마크)은 결선투표에서 59표를 얻어 40표에 그친 카이로(이집트)를 제치고 개최지로 확정됐다. 투표는 IOC의 전통 방식인 ‘떨어뜨리기’ 방식에 의해 진행됐다. 유치를 신청한 7개 도시 가운데 과반수를 얻은 도시가 나오지 않자 가장 적은 표를 얻은 아테네(그리스)가 일찌감치 탈락했고,2차에서는 리가(라트비아)가,3·4차에서는 각각 타이베이와 싱가포르가 떨어졌다. 부산은 당초 예상과 달리 결선에도 오르지 못하고 카이로와 코펜하겐에 밀려 5차에서 발목이 잡혔다. 부산의 탈락은 당초 유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전망했던 덴마크의 ‘마호메트 풍자 만화 사태’에 도리어 역풍을 맞은 결과로 분석된다. 뜻밖에 카이로가 결선투표까지 오르면서 이슬람권 IOC위원들이 부산이 아니라 카이로에 몰표를 던진 때문이라는 것.반면 코펜하겐은 절반이 넘는 유럽파 IOC 위원들의 표를 상당부분 흡수한 것으로 전해졌다.지난달 부산이 IOC 위원들과 개별 접촉, 윤리 규정 위반으로 망신을 산 것도 유치 실패에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또 국내에서 홍역을 앓고 있는 이건희·박용성씨 등 한국의 IOC 위원들이 모두 불참, 막판 로비에 실패했다는 불만도 제기됐다. 그러나 부산의 탈락은 총회와 올림픽 등 굵직한 대회를 한 나라에 몰아주지 않는 IOC의 관례에 비춰 2014년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에는 오히려 득이 될 전망이다.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수도권플러스] 노원구 전직원이 ‘푸드마켓’ 후원자

    서울 노원구(구청장 이기재) 직원들의 아름다운 이웃 사랑이 훈훈한 감동을 주고 있다. 구 소속 공무원들이 최근 개장한 무료 식품 나눔터인 ‘노원 두레푸드마켓’의 후원자로 발벗고 나섰기 때문이다. 후원 등록을 시작한 지 열흘만인 6일 현재 전체 직원 1337명 중 이 구청장 등 1035명이 후원자 약정을 체결했다. 이들은 매월 2000원에서 1만원까지 자신이 지정한 계좌에 자동이체 기부 방식인 ‘1인 1계좌 사랑나누기’운동에 가입했다. 금액으로 환산하면 월 420여만원이 매달 후원계좌를 통해 푸드마켓에 성금으로 전달된다. 푸드마켓은 지난해 12월29일 옛 공릉 2동 사무소에 문을 연 무료 식품나눔터로 음식뿐만 아니라 성금이나 생필품 등 전 품목을 기탁받아 어려운 이웃과 나누는 공간으로 현재 3446명의 기초생활수급자가 회원으로 등록돼 있다. 하루 평균 120명이 이용하고 있다. 푸드마켓 관계자는 “구 직원들의 사랑이 담긴 후원금이 어려운 이웃들에게 큰 힘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 [여연스님의 재미있는 茶이야기] (28) 일본의 茶室

    [여연스님의 재미있는 茶이야기] (28) 일본의 茶室

    차를 마시는 공간인 ‘차실(茶室)’을 세계인들이 주목하는 문화공간으로 만든 나라는 바로 일본이다. 차와 선(禪)에 관심있는 많은 세계인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일본의 차실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를 풀어가 보고자 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일본의 차실은 자연과 인간을 연결해주는 하나의 문화적 가치로 세계인들의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을 정도로 그 가치가 깊고도 넓다. 요즘 들어 큰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은 차인들간의 국제교류다. 한국내 차인 교류가 아니라 중국·일본 차인들과의 교류가 이제는 상당한 수준에 이를 정도로 연속성을 갖고 이어지는 것이다. 한국 중국 일본 차인들의 최근 관심사는 각 나라의 차의 역사성과 교류, 그리고 그 원류가 어디에서 어디로 이어지는가에 있다. 2001년 일본내 한국문화원들의 주선으로 일본을 방문했을 때 일이다. 초의차문화연구원을 초청한 곳은 일본의 대표적인 차인회들이 결집해 있는 교토, 도쿄, 고베 등에 위치한 한국문화원이었다. 한국문화원들은 한국-일본차 교류를 통한 문화적 교류를 시도하려는 의도로 차인들간 만남을 주선한 것이다. 고베문화원에서의 일이다. 차회에 참석한 차인들은 일본의 전통의상인 기모노를 입고 있었다. 초의차문화연구원에서는 초의 스님의 선차를 선보였다. 담백하고 간결한 느낌을 주는 초의 스님의 선차법은 일본의 차인들이 선호하는 말차의 행다와 많이 흡사하다. 그들은 초의차문화연구원의 행다에 감탄사를 연발했다. 그러나 의문이 있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 거리는 차인들이 보였다. 행다시연이 끝난 뒤 그중 한 명과 대화를 했다. “참으로 감탄스럽습니다. 맑고 담백한 행다가 참으로 격식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초의 스님의 행다와 우리 일본차의 행다에 비슷한 점이 많이 보이기도 합니다.” 그 차인은 조심스럽게 초의 스님 행다에 얽힌 의문을 놓고 대화를 시도했다. “초의 스님의 행다는 삼국시대부터 이어져온 우리 고유의 행다 중 하나입니다. 일본의 행다와 초의 스님 행다가 비슷한 것은 차 문화 역사가 흘러온 역사성 때문으로 보입니다. 일본 차 유파들의 행다와 우리의 행다는 크게 다를 수 없다고 봅니다. 여러 역사적 사료에서 밝혀지듯 일본문화의 많은 부분은 백제와 고구려 등 삼국의 것을 받아들인 것들입니다. 그것에 대해 일정 정도 동의한다면 우리가 오늘 여기에서 보여준 행다의 역사와 원형에 대해 동의하리라 믿습니다. 그런 점에서 만약 여러분들이 백제시대 고구려시대의 차 문화 원형을 유지 보존해 왔다면 당연하게 유사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최근 들어 우리도 옛 행다법을 복원, 그 전통 맥을 이어가고 있는 중입니다.” 일본차회 인사들은 필자의 답변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들의 표정에서는 필자의 역사성과 발언을 도저히 믿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읽혔다. 그들의 당혹감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다른 문화는 몰라도 초암과 말차로 대표되는 일본 차문화만큼은 충분히 독자성을 갖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행다뿐만 아니라 일본 차문화의 대표격일 수 있는 초암다실도 마찬가지였다. 그로부터 1년도 지나지 않아 일본차인들이 일지암을 방문했다. 다음해인 2002년 한국문화의 달을 맞아 일본의 한국문화원들과 연결, 일지암을 방문한 것이다. 그들의 검증과 철저함에 필자는 무서운 느낌마저 들었다.2차세계대전의 실패를 딛고 경제강국으로 부상한 그들의 저력이 어디에 있는가를 새삼스럽게 느낄 수 있는 대목이었다. 2002년 5월 일본차회를 대표하는 인사 40여명이 일지암을 찾았다. 일지암 초당을 본 그들은 경악할 만큼 당혹스러워했다. 졸졸 흐르는 유천, 그리고 작고 아담한 봉창을 가진 일지암의 초당, 자우홍련사의 작은 연못과 툇마루를 본 그들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일지암 차실과 행다는 우리 전통 차문화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초의 스님의 선차와 차실은 여러분들이 지금 행하고 있는 행다와 맥을 같이하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행다와 일본의 행다는 뿌리가 같다는 점을 유추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일본의 한국문화원에서 만났던 초의차문화연구원의 초의스님 행다가 결코 낯설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그들은 묵묵히 말이 없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일본의 초암차실에 대해서도 그 역사성을 그들에게 확인시켜 주고 싶었다. 아직도 시골 산간에 남아있는 우리 전통 초가집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일본차인들에게 전해진 충격은 너무도 놀라운 것이었다. 눈앞에 자연스럽게 펼쳐진 초가집들은 단순히 차를 마시는 공간을 넘어 일상화된 삶으로서 자리매김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들 차문화의 자존심인 초암다실의 원형이 어디에 있었는지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일본의 차문화와 차실이 아름다움의 미학 차원에서 준비되고 이루어졌다면 우리의 차와 차실은 바로 삶이었다는 것이 매우 다른 점입니다. 우리의 초가집은 삶의 여유를 즐기려는 차실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삶의 전부로 그 기능성을 갖춘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초가집은 바로 궁핍한 삶속에서도 넉넉한 여유를 담을 수 있었던 우리 민중의 삶을 그대로 닮은 것입니다. 일본의 차실과 우리의 초가집이 같으면서도 다른 점이 바로 이것입니다.” 일본의 차실은 자연에 조금 더 다가가 차를 마시려는 염원을 담고 있다. 그래서 자연과 일체화를 이루기 위해 작고 아담한 차실을 가꾸고, 차실을 감싸고 있는 봉창(덧문)도 작게 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 초가집의 덧문은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탄생했다. 제대로 된 건축설계도 없이 어림 눈대중으로 겨우 바람과 비를 피할 수 있을 정도면 된다는 생각으로 이루어진 것이 바로 우리의 초가집인 것이다. 일본차의 핵심은 권력으로부터 회귀하여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황금차실과 이른바 도자기 전쟁으로 불리는 임진왜란은 이같은 사실을 잘 입증하고 있다. 전국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는 큰 고민거리가 있었다. 지방의 토호들인 지방막부들을 동원해 일궈낸 통일의 성과로 돌려주고 분배할 땅이 없었기 때문이다. 고민에 빠진 도요토미가 생각해낸 것이 바로 황금차실이다. 도요토미는 황금차실을 만들어놓고 지방막부들이 참여한 대규모 차회를 열었다. 당시 지방의 막부들은 문화적으로 소외되어 있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중앙문화에 굶주려 있는 지방막부들의 관심을 사치스러운 엘리트 차문화로 돌려보고 싶었던 것이다. 문화적 갈증해소를 통해 지방막부들의 불만을 해소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황금차실은 아마도 최초의 차 문화상품일 것으로 보여진다. 도요토미는 지방막부들에게 행다를 하기 위해 필요한 값비싼 도자기 문화를 조성했다. 그러나 송나라의 찻그릇은 너무도 고가여서 지방의 몇몇 막부들을 제외한 사람들의 빈약한 재정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다. 도요토미는 이들을 위해 값싼 조선의 도자기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임진왜란은 일본내의 정치적 목적이 교묘하게 배합된 도자기 전쟁이었음을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일본의 다성’으로 불리는 센노리큐와 도요토미와의 관계도 일본 차실의 역사를 알 수 있는 대목 중 하나다. 당시 센노리큐는 일본차문화의 정신적 지주였을 뿐만 아니라 청나라 도자기를 판매, 이윤을 남기는 찻그릇 상인이기도 했다. 센노리큐는 청나라 도자기 판매를 통해 막대한 이윤을 남겼다. 센노리큐의 이윤은 상대적으로 국가로 귀속될 재정에 피해를 주는 것이었다. 정신적인 측면에서도 권력과의 다툼을 피할 수 없었다. 센노리큐는 제자들이 목상을 만들어 추앙하고 경배할 정도로 거대한 정신적 지주역할을 했다. 이같은 현상은 당시 최고통치자였던 도요토미에게 큰 부담이었다. 죽음으로 일본차의 세계를 연 센노리큐가 탄생할 수 있는 주·객관적인 조건이 갖추어진 셈이었다. 차실은 한발짝 더 나아가서 통치이데올로기를 형성할 수 있는 담론의 장 역할도 했다. 막부시대로 대별되는 일본의 무사시대는 통치행위를 정당화할 수 있는 담론을 형성할 수 없는 파괴적인 권위를 담보하고 있었다. 그런 통치이데올로기의 공백을 메워준 곳이 바로 차실이다. 일본의 차실은 평화와 담론의 공간이었다. 무사들도 차실에 들어갈 때는 칼뿐만 아니라 손가락에 끼고 있던 반지까지 빼놓아야 했다. 차실에서 그들은 자유롭게 정치적 담론을 형성할 수 있었다. 차실은 그런 점에서 문화아카데미 역할을 한 것이다 일본초암의 완성자라고 불리는 센노리큐는 권력자들이 정치적 야망을 비판하고 좌절시키기 위해 황금차실과 비교되는 차실을 창조해낸 것이다. 일본초암차실의 원형은 결국 정치와 자연, 그리고 차와의 절묘한 배합에 있다는 것이다. 인위적으로 자연을 끌어들여 교묘하게 정치와 접목시켜 당대의 정신문화를 창조해낸 것이 바로 일본 초암차실의 미학인 것이다. 일본을 대표하는 차실은 그러면 얼마나 많을까. 그 숫자가 통계학적으로 나와 있지 않지만 많은 유파가 존재하듯 수백개가 될 듯하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교토의 금일암, 무마모토의 차실, 나고야의 차실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100∼200년의 역사를 갖는 일본의 차실은 매우 많다. 일본통계에 따르면 현재 교토의 사찰 수는 약 2000곳에 달한다. 각 사찰들은 그 사찰의 가장 중요하고 아름다운 곳에 차실을 만들어놓고 있다. 그렇다면 교토에만 일본의 차실은 2000곳 정도가 존재한다고 보면 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일본의 역사성을 갖지 않은 일본의 차실은 수만개가 존재한다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일본인들은 이렇게 자연을 축소지향적으로 끌어들여 새로운 차의 문화를 구현해냈다. 자연 그 자체를 삶속에 끌어들여 정서적인 보편성을 확보했던 우리의 차실과는 너무도 다른 측면이기도 하다. 일지암 암주 ■ 日 상국사 차실 이야기 차 교류를 위해 일본을 방문했을 때 많은 일화들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명원문화재단의 자문역으로 갔을 때의 일이다. 바로 상국사(相國寺) 차회. 상국사는 태평양전쟁 후 가장 눈길을 끈 지식인 유키오의 작품무대가 됐던 금국사의 원찰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상국사를 방문한 명원문화재단은 우리 차의례 중 가장 아름답고 고아한 행다미를 주는 육법공양을 시연했다. 육법공양의 전통행다례를 본 상국사와 일본차인들의 눈길은 감탄사를 연발할 정도로 놀라운 것이었다. 상국사에서는 두 가지 행사가 열렸다. 하나는 우리 전통다례 중 하나인 육법공양 시연이었고 또 하나는 온양의 민속박물관에 있는 문화재들을 전시한 것이다. 상국사는 정원부터 독특했다. 정원이 사찰의 앞에 있지 않고 사찰의 뒷쪽에 있었다. 그 정원은 말로 형언할 수 없이 아름다웠다. 수천년을 견뎌온 듯한 노송들이 숲처럼 우거졌고, 세월속에서 이끼가 끼고 끼어 마치 푸른 바다를 연상케 하는 바위틈을 타고 흐르는 작은 샘물은 감탄사를 연발할 만큼 아름다웠다. 상국사의 차실은 그 사찰의 최고권위를 자랑하는 방장실이었다. 방장실 자체가 바로 차실인 것이다. 상국사의 방장은 그곳에서 찾아온 손님을 차로서 접대할 뿐만 아니라 제자들에게 법(法)도 논하고 있었다. 상국사의 방장 스님은 찾아온 손님들이나 제자들에게 직접 말차를 우려내 권한다. 찻물은 뒤편 정원에서 천년 넘게 바위 틈에 흐르는 물을 사용했다. 자연과 차에 대한 그들의 미학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다완 역시 매우 진귀했다. 아름답고 품격이 있어보이는 녹유다완을 준비한 방장 스님은 우리에게 물었다.“여러분들이 살고 있는 한국땅의 작은 연못은 매우 아름답기 짝이 없습니다. 그 작은 연못이 더욱 아름다운 것은 바로 연못에 피는 수련 때문입니다. 여러분에게 수련의 문양 같은 아름다운 말차를 마실 수 있게 준비하겠습니다.” 그 방장 스님은 검푸른 하늘을 아름답게 밝히고 있는 은하수가 두둥실 떠있는 것처럼, 또한 별이 아름답게 떠있는 것처럼 아름다운 별빛 같은 말차를 우리에게 선보였다. 참으로 쉽게 맛볼 수 없는 진귀한 것이었다. 일본 차실이 갖는 정신적인 권위와 풍부함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차실은 매우 아담하고 담백했다. 전형적인 다다미방이었으며, 차의 비조로 불리는 백장선사의 초상화와 백제향로가 놓여있을 뿐이었다. 상국사의 방장 스님이 직접 주관한 차회는 안타까움을 던져주고 있었다. 저 멀리 임진왜란이라는 처절한 민족적 상처 속에서 탄생한 찻그릇으로 보여준 저들의 차 정신 속에 우리의 거친 삶이 공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거친 삶 속에 유연하고 부드러운 삶이 싹트고 그곳에서 만들어진 조선 찻사발들은 그 어떤 말로도 형언할 수 없는 깊이를 담고 있다. 그러나 역사의 뒤안길로 들어가보면 그곳에는 우리의 잃어버린 피와 땀, 그리고 도공들의 쓸쓸한 영혼이 아직도 우리곁을 떠돌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의 삶 속에서 탄생한 조선 찻사발들로 일본의 차인들은 차문화의 품격과 역사성을 높이고 있다. 그 같은 역사의 아이러니 탓에 한 사람의 차인으로서 한 사람의 민중으로서, 차회 내내 영혼을 속절없이 태우고 있었다.
  • ‘마호메트 만평’ 유럽5개국 언론도 게재 일파만파

    ‘마호메트 만평’ 유럽5개국 언론도 게재 일파만파

    |파리 함혜리특파원·서울 이세영기자|4개월 전 덴마크 일간지 율란츠-포스텐에 실려 격렬한 신성모독 논란을 불러일으킨 마호메트 풍자 만평(서울신문 1월2일자 15면 참조)이 유럽과 이슬람권의 관계를 최악의 국면으로 몰아넣고 있다. 지난달 31일 율란츠-포스텐의 사과로 진정되는 듯했지만,1일 프랑스·독일 등 서유럽 5개국의 일부 신문이 ‘표현의 자유’를 내세우며 문제의 만평을 다시 게재하는 바람에 더욱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다. ●리비아 “덴마크 대사관 폐쇄” 2일 알 자지라 방송은 알 아크사 순교자 여단 등 2개 팔레스타인 무장조직이 일부 언론이 마호메트 만평을 게재한 덴마크, 프랑스, 노르웨이의 국민들을 공격하겠다고 경고했다고 전했다. 두 조직은 공동 발표한 성명에서 “이들 국가의 국민과 공관 고용원들이 공격 목표로 간주될 것”이라고 밝혔다. 가자지구에서는 이슬람 지하드와 파타당 계열 조직인 ‘야세르 아라파트 여단’ 소속원 10여명이 유럽연합(EU) 사무소 주변에서 하늘을 향해 실탄을 발사하는 위협을 가했다. 시리아, 사우디아라비아 등 일부 아랍국가는 해당 신문사에 대한 제재를 상대 국가 정부에 요구하며 덴마크 주재 대사를 소환했고, 리비아는 대사관 폐쇄 방침까지 발표했다. 파키스탄의 무슬림 학교 연맹도 덴마크 주재 자국 대사의 소환을 요구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수십명의 시민이 남부 술라웨시 주정부를 방문한 덴마크 적십자사의 사무처장에게 항의하면서 피켓 시위를 벌였다. ‘레고’‘뱅 앤 올룹슨’ 등 덴마크 기업에 대한 불매운동도 확산돼 대형 유통업체들이 덴마크산 제품을 진열장에서 거둬들이는 모습도 눈에 띄고 있다. 불매운동 영향으로 덴마크가 입은 경제적 손실은 이미 5500만달러를 넘어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표현의 자유론’ 우익·상업언론이 주도 지난해 9월30일 율란츠-포스텐이 실은 12개의 연작 만평 중에는 마호메트가 폭탄 모양의 터번을 두른 채 등장해 하늘나라로 올라온 폭탄 테러범에게 “포상으로 처녀를 제공하라.”고 명령하는 장면이 담겨 있다. 마호메트에 대한 일체의 형상화를 금기시하는 이슬람 교리 탓에 이 만화는 ‘신성모독’으로 간주돼 유럽과 아랍권에서 4개월 넘게 시위가 이어졌다. 만평을 인용해 실은 신문에는 독일의 유력 일간지 디 벨트도 포함돼 있다. 이 신문은 1면에 만평 1컷과 함께 “시리아 TV에서는 유대교 랍비를 식인종으로 묘사하기도 했다.”면서 “덴마크 신문에 사과하라고 으르는 무슬림들의 태도는 위선적”이라고 반격했다. 12컷의 만평을 모두 실은 일간 프랑스 수아르는 “세속화된 사회에서는 종교적 독단이 설 자리가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 만평을 실었다.”고 밝혔다. 만평 게재 행렬에는 네덜란드와 이탈리아, 스페인 일간지도 가세했다. 국경없는 기자회는 아랍권의 반발을 언론자유에 대한 이해 부족 탓으로 돌렸다. 그러나 이들 신문을 바라보는 시선은 우호적이지 않다. 대체로 디 벨트처럼 우익 성향이거나 프랑스 수아르처럼 상업성이 강한 신문들이 만평을 게재했기 때문이다.AP통신은 프랑스 수아르가 “생존과 독자 확보를 위해 고투 중인 신문”이라고 꼬집었다. 유럽에서도 무슬림 인구가 가장 많은 프랑스 정부가 즉각 진화에 나섰다. 프랑스 외무부는 “표현의 자유는 소중하지만, 개인의 신념과 종교적 확신에 상처를 주려는 행위는 비난받아야 마땅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무슬림의 반발은 누그러지지 않고 있다. 프랑스 무슬림회의의 다릴 부바케르 의장은 “만평은 수백만 무슬림에 대한 도발”이라며 신문을 상대로 소송을 벌이겠다고 밝혔다. 독일 무슬림연맹의 미첼 무하마드 파프도 “만평은 나치 선전지의 악의적인 유대인 캐리커처를 떠올리게 한다.”고 일침을 놓았다. lotus@seoul.co.kr
  • 秋史친필 등 2700점 日서 기증

    조선 후기 대표적인 학자이자 서화가인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1786∼1856)의 서거 150주년을 맞아 그가 동생에게 쓴 편지 등 친필 20여점이 포함된 추사 관련 자료 2700여점이 국내 최초로 공개됐다. 이들 자료는 식민지시대에 추사 연구를 개척한 일본인 학자 후지쓰카 쓰카시(1879∼1948)가 평생 수집한 자료 중 집안에 소장해온 자료 일체로, 그의 아들인 후지쓰카 아키나오(94)가 최근 경기도 과천시에 기증한 것이다. 앞으로 추사 연구가 종합적·체계적으로 이뤄질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과천시는 2일 시 청사에서 ‘추사 김정희 유적자료 인수’ 기자회견을 열고, 기증품 현황과 인수과정, 향후 관리계획 등을 설명했다. 기증품 중에는 특히 추사가 1852년 과천에 머물면서 제자인 이상적(李尙迪)에게 보낸 간찰(편지)을 비롯,40대 초반에 두 동생 김명희(金命喜)와 김상희(金相喜)에게 보낸 편지 13건 등 친필 20여점이 눈에 띈다. 추사연구회 김영복 운영위원은 “동생들에게 보낸 간찰첩은 추사체 완성 전 매우 드문 글씨체로, 추사의 가족사 연구에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스승 완원(阮元)이 추사에게 전한 학술총서인 ‘황청경해’(전 680책)와 금석문에 대한 추사의 견해를 수록한 청나라 학자 옹방강(翁方綱)의 세계 유일한 친필본 `해동금석영기´ 등 추사와 관련된 고서적 2400여권, 서화 40여점, 사진자료 300여점 등도 기증됐다. 특히 청나라 학자들이 추사에게 보낸 편지와 서화를 비롯, 제자·스승들과 함께 만든 서간첩 등도 공개됐다. 또 추사의 영정사진과 가족사진, 추사와 주변학자들의 친필 학술자료 등을 찍은 사진자료도 기증돼 추사를 비롯한 조선 후기 지식인 사회가 청대 학술·문화계와 어떻게 교류했는지를 밝히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과천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네이버의 성공비결은?

    인터넷 검색 1위 네이버의 성공비결은 뭘까. 31일 전국경제인연합회와 산업자원부가 공동 발간한 ‘사례로 배우는 e비즈니스Ⅳ’는 그 해답을 네이버의 ‘지식인(iN)’ 서비스에서 찾았다.‘야한 생각을 하면 정말 머리가 빨리 자랄까.’와 같은 일상 속의 다양한 궁금증을 빠르게 해소시켜주고, 지식검색을 일종의 게임화해 이용자의 충성도를 높였으며, 다양한 창의적 광고 마케팅을 활용했다고 분석했다. 그 결과 검색분야 5위에 머무르던 네이버는 3년만에 야후코리아를 뛰어넘어 독보적 1위를 지키고 있으며, 운영업체인 NHN은 코스닥 1위 기업으로 액면가의 350배 이상에 이르는 기업가치를 달성했다고 진단했다. e비즈니스를 통해 경영혁신과 전략경영을 성공적으로 추진한 기업의 사례를 설명한 사례집 시리즈의 네번째인 이 보고서는 ‘지식iN’ 서비스의 핵심 성공요인으로 ▲최고경영자(CEO)의 검색에 대한 지식과 경영철학 및 강력한 추진력 ▲검색 서비스의 핵심을 데이터베이스(DB) 확보로 본 점 ▲창의적 마케팅의 활용 ▲자율적 기업문화 ▲적절한 의사결정 등을 꼽았다. 보고서는 또 NHN의 경쟁업체인 다음커뮤니케이션의 경우 적지 않은 과제가 있음을 지적했다. 보고서는 2005년 말 현재 회원수 5500만명, 매출액 5000억원을 달성해 질적·양적으로 국내 최대의 인터넷 비즈니스 기업으로 성장했다고 밝혔지만 지식검색 서비스를 기반으로 한 NHN이 검색시장에서 다음을 추월했고, 미니홈페이지 서비스를 강점으로 삼은 SK커뮤니케이션즈가 다음카페의 위상을 위협하고 있으며, 해외시장 진출을 위해 2004년 인수한 라이코스의 인수는 다음의 재무제표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분석했다.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사설] 시대를 앞선 ‘백남준 예술혼’을 기리며

    비디오아트의 창시자인 백남준 선생이 어제 미국 마이애미의 자택에서 74세를 일기로 숨을 거두었다.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예술가의 타계 소식에 접해 우리는 시대를 앞서 인류사회가 나아가는 길을 예측하고, 이를 예술의 장에서 구현하고자 혼신의 노력을 다한 그 예술혼에 다시금 경의를 표한다. 아울러 영전에 깊은 애도의 뜻을 전한다. 선생은 전자매체의 발달이 결국은 지구촌을 하나로 묶는 전자커뮤니케이션 시대를 불러오리라는 사실을 일찌감치 예견했다. 그리고 그같은 변화를 회화·조각 등으로 구분되는 기존의 예술 장르에 나눠 담기에는 한계가 있음을 알았다. 그 결과 TV·비디오 등 전자기기를 활용해 현대사회의 새로운 삶과 사상을 농축해 보여주는 방식인 비디오아트라는 예술 장르를 탄생시켰다. 그의 예술세계는 1960년대 초 이미 유럽·미국의 예술계에서 인정 받아 비디오아트의 창시자이며 현대예술의 선구자로서 자리매김되었다. 그후에도 선생은 끊임없는 실험성을 추구함으로써 예술의 지평을 넓혀 나갔으며, 그 치열한 작가정신은 10년전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에도 중단되지 않았다. 선생이 세상을 떠난 날에도 서울에서는 ‘로봇, 백남준에서 휴보까지’가, 뉴욕에서는 ‘무빙 타임전’이 열리는 등 세계 곳곳에서 그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다. 또 국내에는 ‘백남준미술관’이 오는 5월 착공돼 내년 10월 문을 열 예정이다. 선생은 가도 그의 예술, 예술혼은 계속 빛을 발하는 것이다. 이 땅이 배출한 세계적인 예술가의 죽음을 기리며 우리는 제2, 제3의 백남준이 줄이어 등장해 인류문화를 더욱 풍성하게 해줄 그날을 기다린다.
  • 장금이 덕 좀 볼까? 중국가는 전주비빔밥

    전주의 대표 음식인 비빔밥이 중국에 본격적으로 진출한다. 24일 전주시에 따르면 ‘중국시장 개척단’에 참여한 ㈜전주비빔밥은 최근 중국 칭다오(靑島)에서 칭다오 보세구삼풍화 무역유한공사와 80만달러어치의 비빔밥 수출 계약을 체결했다. 전주비빔밥과 무역유한공사는 또 중국 상하이(上海)와 칭다오에 합작법인을 설립해 비빔밥의 유통망을 중국 전역으로 넓혀가기로 합의했다. 함씨네토종콩종합식품도 이번 시장개척에서 30만달러 상당의 마늘환을 수출하기로 중국 지닝(濟寧)시 대외무역경제합작국과 합의했다. 중국시장 개척단 관계자는 “전주비빔밥이 드라마 대장금 등을 통해 이미 중국에 소개돼 인기가 높다.”며 “비빔밥이 최고의 한국음식이 되도록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중국 산둥(山東)성이 전주 정보기술(IT)기업의 중국시장 개척을 지원하고 합작파트너를 소개해주기로 약속했다.”며 “전주시와 산둥성 칭다오시는 IT와 영상분야에 대한 기술, 인력, 프로그램 등도 교류하기로 합의했다.”고 덧붙였다.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儒林(526)-제5부 格物致知 제2장 居敬窮理(16)

    儒林(526)-제5부 格物致知 제2장 居敬窮理(16)

    제5부 格物致知 제2장 居敬窮理(16) 대오(大悟)와 해오(解悟)는 둘 다 ‘진리를 깨달았다.’는 뜻이지만 그 경계는 하늘과 땅의 천양지차(天壤之差)이다. 대오는 번뇌를 벗고 진리를 크게 깨달아 한 점의 의혹도 없는 대오각성을 뜻하지만 해오는 문자 그대로 머리로만 깨달음을 이해하고 깨달음의 경지를 머리로 체득한 일종의 철학적 사변에 불과한 것이다. 훗날 아홉 번이나 장원급제하여 ‘구도장원(九度壯元)’이라고 불릴 정도로 영민하였던 율곡은 1년 반의 금강산행을 통하여 돈오(頓悟), 즉 한순간의 깨달음을 얻는 부처의 경지에 오르고 싶어 하였으나 부처가 되기에는 아는 것이 너무 많은 재기가 승한 지식인, 즉 엘리트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율곡은 마침내 불교에 대해 회의를 느끼게 된다. 살아있는 부처라는 평판을 받을 만큼 열심히 정진하였지만 기대만큼의 성취를 얻지 못하였을 만큼 화두라는 것에 가탁(假託)하여 모든 정신을 하나로 집중시키는 불교적 참선법도 허황한 가르침에 불과하다는 결론을 얻은 것이었다. 불교의 가르침에는 달리 기묘한 것이 없고, 함부로 마음이 요동치는 것을 끊어서 정신을 한곳에 집중시켜 허명(虛明)한 경지에 이르게 하는 참선이라는 것도 결국 사람들이 열심히 공부하는 생각을 금하게 하여 사람을 속이는 사술(邪術)이라고까지 생각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율곡은 태생적으로 불인(佛人)이 아니라 유인(儒人)이었던 것처럼 보인다. 율곡의 이러한 태도는 율곡이 금강산의 작은 암자에 홀로 살고 있던 노승과 만났을 때 서로 나누었던 선문답에서도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풍악산에서 작은 암자에 있는 노승에게 시를 지어주다(楓岳贈小庵老僧)’라는 제목의 이 장시 속에는 율곡이 노승과 나누었던 선문답이 서사시 형태로 표현되고 있다. 이 장시는 마치 한편의 드라마를 보듯 생생하게 묘사되고 있는데, 율곡의 시를 통해 재구성한 이 극적인 장면은 다음과 같다. “내가 풍악산을 유람하며 하루는 혼자서 깊은 골짜기를 몇리쯤 걸어 들어가다가 조그마한 암자 하나를 발견하였다. 암자 안에는 어떤 늙은 중이 가사를 걸친 채 단정히 앉아 있었는데, 나를 보고서도 일어나지도 않고 한마디의 말도 없었다. 암자 속을 두루 살펴보았으나 아무것도 다른 물건은 없고, 부엌살림은 밥을 지은 것도 며칠이나 된 듯 썰렁하였다. 내가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소.’하고 물었으나 그 중은 웃기만할 뿐 대답하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다시 물었다. ‘여기서 무엇을 먹으며 굶주림을 면하고 있소이까.’ 이에 노승은 소나무를 가리키며 말하였다. ‘저것이 나의 식량이라오.’” 소나무의 솔잎을 따먹음으로써 굶주림을 면하고 있다는 노승의 말을 듣자 율곡은 이 노승과 한바탕의 논전을 벌이고 싶은 투지가 불타올랐다. 이러한 심정을 율곡은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나는 문득 노승의 변론을 시험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 이영탁이사장 “증권거래소 연내 상장”

    이영탁 증권선물거래소 이사장은 23일 통합거래소 창립 1주년을 맞아 기자회견을 갖고 “현재 1000억원인 자본금을 2000억원으로 무상증자한 뒤 증자물량 전부를 시장에 파는 구주매출방식으로 올해 안에 증권선물거래소를 상장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기존 주주들의 거래소 지분은 50%로 줄어들게 된다. 거래소는 다음달 초 구체적인 기업공개(IPO) 방안에 대해 발표할 예정이다. 거래소 상장과정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시장감시위원회의 독립성 문제에 대해서는 “금융감독원이라는 감시기구가 있기 때문에 감시위원회를 거래소에 두고 독립성을 강화하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이 이사장은 공익기금 조성에 대해서는 “연구용역 결과 적정한 공익기금 규모는 1200억∼1800억원으로 나왔으나 일부 주주사들이 부정적 입장을 보여 2월초까지 입장을 정리하겠다.”고 설명했다. 공익기금은 증권선물 분야의 인력양성에 주로 쓰일 전망이다. 그는 “증권시장의 수요기반 확충 방안의 하나로 올해 KRX100선물과 유로화선물, 돼지고기선물 등 5개 신상품을 개발하고 내년에는 스타지수옵션, 석유제품선물,10년국채선물, 산업별지수선물 등 4개의 신상품을 출시하겠다.”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자본시장 통합에 따른 다양한 상품에 대한 환경변화에 미리 대처하기 위해 다음달부터 대규모 해외 신상품 조사단도 파견된다. 한편 오는 3월3일로 개장 50주년을 맞는 증권시장은 주식 시가총액이 지난해 말 현재 7180억달러로 세계 15위에 올랐다.50년 동안 상장사는 12개에서 1620개로, 연간 거래대금은 3억 9400만원에서 1232조원으로 단순 비교가 어려울 정도로 커졌다. 주식인구도 1968년 4만명에서 지난해 310만명으로 늘어 주식투자가 대중화됐다. 전경하기자 lark3@seoul.co.kr
  • [사진으로 본 전통의 숨결] (14) 전통 북(鼓)

    [사진으로 본 전통의 숨결] (14) 전통 북(鼓)

    북은 우리 민족이 가장 즐기는 악기다. 부여의 제천의식인 영고(迎鼓)는 “북을 울려 신을 맞이한다.”는 뜻이다. 북이 신과 접촉하기 위한 신기(神器) 구실을 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원시신앙의 중요한 부분이었던 북은 이후 국가의 상징으로 전해내려 왔다. 고구려의 시조 동명성왕은 비류국과 주종관계를 결정짓는 전투에서 북과 나팔을 빼앗고 항복을 받아냈다고 한다. 호동왕자와 낙랑공주의 비극적인 사랑 얘기를 담고 있는 자명고(自鳴鼓) 이야기도 있다. 북이 고대국가의 권위를 나타내는 악기였음을 말해 주는 대목이다. 삼국시대 이후 우리 조상들은 농사철이면 북을 중심으로 여러 악기를 치며 신명을 돋웠다. 특히 고려시대에 당악과 아악이 들어오며 장구, 교방고(敎坊鼓), 진고(晉鼓) 등 많은 북이 들어와 궁중음악 연주에 쓰였다는 기록이 있다. 무속음악과 마을 풍물굿을 비롯해 판소리, 승무 등 다양한 전통음악과 춤을 통해 북은 우리 문화의 모태가 되었다. 북은 민중의 삶을 가장 진솔하게 담아 내는 그릇이었던 셈이다. 북은 오천년 한민족의 역사와 정신을 오롯이 담고 있다. 오늘날에는 조상이 물려준 빼어난 음악성인 ‘장단’과 맞물려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우리의 전통을 세계로 이어주는 훌륭한 통로 역할까지도 하고 있다. 윤종국(중요무형문화재 42호 전수장)씨는 이렇듯 우리 삶의 한 부분으로 깊숙이 자리 잡아온 악기인 북을 전통방식 그대로 재현하고 있는 장인(匠人)이다. “북은 메우며 담은 정성만큼 소리가 나옵니다.” 그는 가죽을 북통에 씌우는 북 메우기가 북의 소리를 좌우하는 가장 힘든 작업이라고 말했다.“원래 북 메우기 기술은 기록된 것이 없고 구전으로만 전해 왔어요.” 경기무형문화재로 등록된 후 ‘전통북 전수소’를 운영하면서 북 메우기의 본격적인 전수가 비로소 대를 이어 이뤄지기 시작했단다. “아버지(윤덕진·작고)는 북이 ‘소리를 담아내는 도구’를 넘어서 ‘우리 혼의 소리를 담아내는 악기’라고 하셨어요.” 윤씨도 이젠 어엿한 장인 소리를 듣지만, 아직 부친의 그림자 끝에도 못 미친다며 겸손해한다. 4대를 이어온 장인의 혼을 담아서 고집스레 메우는 전통북. 거기서 울려나오는 소리는 바로 우리 민족의 웅장한 고동(鼓動)소리인 것이다. 글 사진 도준석기자 pado@seoul.co.kr
  • GT ‘깔끔하고 신중’ DY ‘강인하고 명확’

    “깔끔하고 신중하다.”(김근태)VS “강인하고 명확하다.”(정동영) 2·18 열린우리당 전당대회의 빅매치 주자가 가진 미디어 이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말이다.다음달 2일 예비선거가 끝나면 사실상 후보자들의 미디어 이미지가 승패를 가르는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선거법 개정으로 합동연설회나 방송토론회 등이 중요한 선거운동 공간으로 부각되면서 미디어가 ‘적극적인 정치 서비스의 마당’이 되고 있다.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해 보면 정치인에게 요구되는 미디어 이미지 능력은 전문성과 신뢰성, 역동성으로 집약된다. 컨설팅 회사인 ‘메트윈’의 태윤정 대표는 “전문성은 지적 능력을, 신뢰성은 일관성 있는 태도, 역동성은 대중에게 비쳐지는 이미지를 뜻한다.”고 설명했다. 김근태 의원의 강점은 소박하고 깔끔한 어법, 신뢰감으로 모아진다. 반면 구어체가 부족하고 경직돼 있으며 미괄식인 화법은 단점으로 지적된다.김현주 광운대 미디어 영상학부 교수는 “군더더기 말이 없어 김 의원의 말을 받아 적으면 그대로 텍스트가 될 만큼 신뢰감을 준다.”고 평가했다.하지만 “김 의원만의 특징이 없다. 양극화 해법을 내놓지만 ‘김근태만의 양극화’를 연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시선이 부드럽지 않고 잘 웃지 않는 점도 보완점으로 꼽혔다. 최근 각계 전문가들로부터 조언을 듣고 자문을 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동영 상임고문은 강인하고 명확하다는 장점이 있다. 방송기자와 앵커 경력만 18년이라 스스로가 미디어 전문가로 통한다.쉽게 다가가는 어투와 연설 포인트를 잡는 데 일가견이 있다는 평가다. 캠프에는 방송기자 20년 경력의 박영선 의원과 시사평론가 출신의 이재경 공보실장 등 미디어 전문가 그룹이 포진해 있다.젊고 강렬한 인상을 주는 원색 계통의 넥타이와 신뢰감을 주는 감색 양복을 주로 입는다.박태순 전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 토론팀장은 “너무 완벽하려고 하면 거부감이 먼저 생긴다. 특정 지지층은 열광하지만 보편성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놓았다.구혜영 박지연 기자 koohy@seoul.co.kr
  • [코드로 읽는책] 고뇌하는 중국/왕후이·친후이 등 지음

    90년대 이후 중국을 바라보는 창은 경제적 측면에 집중되어 있다. 개혁과 개방정책 이후 폭발적으로 성장해온 중국은 우리에게 하나의 거대한 시장이자 기회의 땅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고도성장이란 외형 이면에 중국은 적지 않은 본질적·현실적 문제들을 안고 있다. 그리고 이같은 문제들은 경제적 목적을 위해서라도 중국을 제대로 알아야 하는 우리가 결코 외면할 수 없는 것들이다. ‘고뇌하는 중국’(왕후이·친후이 등 지음, 장영석·안치영 옮김, 길 펴냄)은 90년대 이후 새롭게 부각되어 현대 중국 지식인계를 이끌고 있는 좌, 우파 지식인들이 중국 현실문제에 대해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책이다. 칭화대, 상하이대, 베이징대, 하버드대 등의 교수로 있는 학자 16명이 필진을 구성하고 있다. 이들은 문화대혁명 시기 중·고등학교를 다녔고, 지금은 중국사회의 허리를 맡고 있는 40∼50대의 이른바 ‘라오산제’(老三屈) 세대다. 거의 예외 없이 중국인들의 입장에 서서 정부를 비판하는 자유주의파 및 신좌파 지식인들이다. 현재 중국의 자유주의파 지식인들중 절대 다수는 중국공산당의 독재를 반대한다. 이 점에서 그들은 현정권과 양립할 수 없다. 반면 이들은 시장의 확대를 무척 환영하는데, 이는 현 정권이 목표로 삼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의 비판과 항의는 시장의 사회 침투가 아니라 정치권력의 부패와 시장의 왜곡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반면 신좌파 사상가들은 ‘시장’의 본질적 문제에 대해 지속적인 비판담론을 토대로 중국 현실문제에 대한 발언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고도성장 뒤에 가려진 도시와 농촌의 양극화 문제, 공업화에 따른 환경오염 문제, 상업문화의 범람 등이 그것이다. 저자들은 다양한 사상적 스펙트럼을 보여주는 가운데 중국이 처한 위기의 실상을 포착해 낸다. 중국이 고도성장을 통해 지속적으로 발전할 것처럼 보이지만,IMF와 같은 사태가 중국에서 발생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으며, 이같은 위기가 얼마나 심각한지 노동자·농촌문제 등 중국 경제의 구조적 문제에 초점을 맞춰 분석하고 있다. 또 정부가 지원하고 있는 ‘교육산업화’ 정책에서 중국의 보통교육과 고등교육 시스템 안에서 확대되고 있는 불평등 문제, 그리고 여성과 청년 문제에 대해 심각한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이와 함께 1989년 천안문 사태 이후 드러난 사회와 문화의 모순을 분석하고, 향후 중국의 정치 전망에 대해 심도있는 논의를 펼쳐나간다. 이 책은 현대 중국문제에 대한 본질적 접근을 통해 중국의 정치·경제·사회·문화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돕기 위해 기획된 ‘중국학총서’의 첫 권. 패권국가 중국을 전망한 ‘중국의 강대국화’, 중국 지식인들의 세계문제에 대한 시각을 담은 ‘천하체계’ 등도 잇달아 나올 예정이다.2만 8000원.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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