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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정일 사망설로 ‘출렁’ 코스피 15P↓… 환율 4원↑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사망설에 8일 막판 주가가 하락하고 환율도 올랐다. 코스피는 전날보다 15.96포인트(0.83%) 하락한 1903.14포인트에 거래를 마쳤고, 코스닥은 2.66포인트(0.52%) 하락한 507.11에 마감했다. 전날 종가와 비슷한 1915선에서 움직였던 코스피는 오후 2시쯤 증권가에 김 위원장 사망설이 돌면서 뒷걸음칠 쳤고, 장중 내내 상승세를 보였던 코스닥도 하락 반전했다. 반면 방위산업체 주식인 S&T중공업은 전날보다 6.0% 급등한 1만 5900원에 장을 마쳤고, 스페코도 4.19% 상승했다. 원·달러 환율도 김정일 사망설에 상승으로 반전, 전날보다 4.1원 상승한 1121원에 마감됐다. 임주형기자 hermes@seoul.co.kr
  • [열린세상] 100년 전 실패의 역사를 생각한다/허동현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열린세상] 100년 전 실패의 역사를 생각한다/허동현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을 놓고 찬반 양론이 팽팽히 맞선 오늘. 미국과의 수교를 놓고 수구파와 개화파의 대립이 파열음을 울리던 1881년이 생각난다. 충돌의 계기는 한 해 전 일본에 갔던 수신사 김홍집이 청국 외교관 황준헌에게서 받아 온 ‘조선책략’이 제공했다. “러시아의 침략은 조선으로부터 시작될 것이다. 오늘 조선의 급무는 러시아를 막는 계책을 세우는 것이다. 오대주(五大洲) 사람들이 다 조선이 위태롭다 하는데 조선인들만 절박한 재앙을 알지 못하니, 집에 불이 난지도 모르고 재재거리는 처마 밑 제비나 참새 꼴과 무엇이 다르겠소.” 그가 러시아 침략이 임박했음을 경고하며 던진 ‘연작처당’(燕雀處堂)의 경구는 조선왕조 위정자들의 정수리에 일침으로 꽂혔다. “중국과 친하고(親中國), 일본과 맺고(結日本), 미국과 연대해(聯美國) 자강을 도모하라.” 그가 제시한 러시아 침략 대비책은 고종의 마음을 움직였다. 고종은 일본과 중국의 근대화 경험을 따라 배우려 했다. 조사(朝士)시찰단과 영선사(領選使)를 보내고 신식군대 별기군도 만들었으며, 대미 수교도 추진하기 시작했다. 중국의 양무(洋務)운동과 일본의 메이지 유신에 비해 시기적으로 20여년 늦었지만, 대외개방과 부국강병에 나선 고종의 판단은 옳았다. 양반 유생들이 감긴 눈을 뜨길 바란 고종은 정문일침의 깨침을 준 ‘조선책략’을 전국에 배포했다. 그러나 그때 유생들은 “천주교, 기독교와 다르니 포교를 허용해도 큰 탈이 없을 것”이라는 구절을 빌미로 삼아 정부의 개화정책에 반발하는 거국적 시위에 나섰다. 공자와 주자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 인간세계가 추구할 바른 목표라고 여겼던 선비들에게 유교 외의 모든 사상과 종교는 배척의 대상일 뿐이었다. 그때 위정척사(衛正斥邪)를 모토로 정부에 반기를 들었다 처형된 홍재학의 상소는 이를 웅변한다. “중국이 시궁창에 빠져 온 세상에 짐승냄새를 풍긴 지 300년이나 되었습니다. 어찌 삼천리 우리 옛 강토가 오늘에 와서 개, 돼지가 사는 곳으로 되고 500년 공자·주자의 예의가 오늘에 와서 똥물에 빠질 줄을 생각했겠습니까?” 유생들은 우물 밖을 나와 큰 시각으로 세상의 흐름을 볼 것을 바란 고종의 기대를 저버렸다. 그들은 힘의 정치가 작동하던 서세동점(西勢東漸)의 시대를 맞이하고도 유교화 정도를 기준으로 세상을 중화와 이적으로 가르는 화이(華夷)론의 세계관을 고집했다. 정저지와(井底之蛙)의 어리석음을 범한 그들의 눈에 비친 미국은 예의염치를 모르는 오랑캐 나라에 지나지 않았다. 전국적인 유교 지식인들의 반대에 밀린 정부는 대미 수교 교섭을 중단하고 궁여지책으로 협상실무를 종주국인 청국에 일임하고 말았다. 조약협상 과정에서 청나라가 조선이 자국의 속국임을 명시하려 한 데서 알 수 있듯이 우리의 자주권은 큰 상처를 입었다. 한 세기가 흐른 오늘의 시점에서 볼 때 개화정책을 펴려 한 고종과 개화파의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 소중화(小中華)의 낡은 사상과 양반 지배 체제를 사수하려 한 유생들은 시대착오의 오판을 한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수구와 개화 세력이 범한 우(愚)의 차이는 전쟁에서 적에게 등을 보이고 오십 걸음을 달아난 이가 백 걸음을 도망친 사람을 보고 비웃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예의로 나라를 세웠기에 남의 땅과 백성을 탐하지 않으며, 굳이 정치에 간여하지도 않는다.” 황준헌이 한 미국에 대한 찬사는 조미조약 제1조에 거중조정(居中調停) 조항이 들어가면서 우리 위정자들에게 사실로 믿겨졌다. 중국이나 일본의 경우에 비해 고율인 10~30%의 협정관세율도 환심을 사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다른 나라의 부당한 간섭이나 침략에 대한 중재를 규정한 거중조정은 외교적 꾸밈말에 지나지 않았으며, 고율관세도 최혜국대우조관으로 인해 명목에 지나지 않았다. 한·미 FTA 비준의 핵심쟁점인 투자자 국가소송제도(ISD)에 대한 찬반논쟁이 거리로 확산되고 있는 오늘. 훗날 사가(史家)들이 여기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어떻게 기록할지 두렵다. 여야 모두 한 세기 전 아프디아픈 실패의 역사를 곱씹어 교훈과 지혜를 찾길 바랄 뿐이다.
  • [두 금융권의 꼼수] 은행들은 예대마진 고수익 몰두

    [두 금융권의 꼼수] 은행들은 예대마진 고수익 몰두

    올해 들어 9월까지 은행권 가계대출 금리 인상폭이 수신금리 인상폭의 2배가 넘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올 들어 은행들은 예대마진의 차이를 이용해 2조원이 넘는 이자를 더 거둬들였다. ●주택대출금리 올 0.52%P 올라 시장금리가 안정돼 정부와 기업, 은행들이 금리 부담에서 벗어난 것과 반대로 서민들만 고통을 당하고 있는 셈이다. 이는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 추이에 따라 대출 금리가 결정되는 현행 금리 시스템의 영향이 적지 않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증권사 설문조사로 정하는 CD 금리는 그동안 인상 일변도로 움직였다. 한국은행은 6일 은행의 잔액 기준 수신금리가 지난해 말 연 2.85%에서 올해 9월 말 현재 3.10%로 0.25% 포인트 올랐다고 밝혔다. 예금 종류별로 보면 목돈을 한꺼번에 맡기는 형태인 정기예금 금리는 9개월 동안 연 3.58%에서 3.93%로 0.35% 포인트 올랐다. 같은 기간 매달 일정액을 붓는 정기적금의 금리는 연 3.88%에서 3.93%로 0.05% 포인트 높아지는 데 그쳤다. 서민의 목돈 모으기 방식인 적금의 효용이 사실상 사라진 셈이다. 저축은행 구조조정과 증시 폭락, 부동산 경기 침체가 겹치면서 갈 곳을 잃은 돈이 은행 예금으로 쏠렸기 때문에 예금 이자가 크게 상승하지 못했다는 게 은행들의 대체적인 설명이다.이미 예금이 넘쳐나기 때문에 고금리로 고객을 유치할 이유가 없는 데다가 돈을 굴릴 곳도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CD금리 연동 0.78%P↑… 가계만 손해 이런 설명이 통하지 않는 유일한 금리가 가계대출 금리이다. 가계대출 중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9개월 동안 연 4.71%에서 5.23%로 0.52% 포인트 상승했다. 신용대출 금리는 연 6.65%에서 7.36%로 0.71% 포인트 올랐다. 은행권 전체 가계대출이 449조원에 달하는 점을 감안하면, 대출금리가 수신금리처럼 0.25% 포인트 오르는 데 그쳤다면 대출자들이 2조 3000억원의 이자 부담을 덜 질 수 있었다는 계산이 나온다. 가계대출 금리 인상폭이 유독 높은 이유는 은행이 올해 들어 0.78% 포인트나 상승한 CD 금리에 대출금리를 연동시켰기 때문이다. 문제는 2009년 150조원, 2010년 75조원이던 CD 발행액이 올해 들어 8월까지 41조원으로 급감한 데 있다. 발행량이 적어 시장 참가자들의 의사가 반영될 수 없다 보니 CD 금리는 15개 증권사에 설문조사를 하는 형태로 책정된다. 증권사들은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기준금리라도 인상하면 즉시 CD 금리를 높이지만, 시장금리 하락분은 CD 금리 책정에 거의 반영하지 않고 있다. 0결국 ‘은행의 예금 위주 자금 조달→CD 발행 급감과 금리 체계 왜곡→CD 연동 가계대출자의 금리 부담’이라는 악순환 고리가 형성돼 가계만 고스란히 피해를 보고 있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31) 中 혁명의 아이콘 마오쩌둥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31) 中 혁명의 아이콘 마오쩌둥

    1966년 마오쩌둥(毛澤東·1893~1976)이 천안문 광장을 가득 채운 홍위병들을 사열하는 순간 문화혁명은 중국 전역으로 퍼졌다. 그리고 10년 동안 중국은 상처로 얼룩져 갔다. 1976년 마오의 죽음과 함께 문화대혁명은 종결되었고, ‘마오’라는 아우라에 지배되던 중국 현대사도 일단락됐다. 마오는 중국 공산당 창립(1921년) 멤버 12인 중 한 사람으로, 혁명의 씨앗을 뿌린 ‘대장정’(1934년)을 이끌었던 홍군의 일인이었다. 아울러 국공합작을 이끌어 중일전쟁(1937년)에서 승리하고, 1949년 10월에는 중화인민민주주의공화국 성립을 선포하는 천안문 광장에 섰다. 신중국 성립 이후 많은 지식인들에게 깊은 상흔을 남긴, ‘내란’ 문혁 때도 마오는 홍위병 곁에 있었다. ‘마오쩌둥 어록’은 홍위병들의 성경이었다. 이렇듯 중국 현대사는 마오의 족적을 빼고는 아무것도 말할 수 없을 정도다. 마오가 걸어간 길은 곧 중국혁명이 걸어간 길이다. 그렇기에 지금도 마오에 대한 역사적 평가와 인민들의 평가는 양가(兩價)적일 수밖에 없다. 마오에 대한 평가는 바로 중국 인민인 ‘나’, ‘우리’에 대한 평가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혁명은 현실에 대한 ‘나’의 저항서 시작 마오쩌둥은 후난(湖南)성 샹탄(香潭)현 출신으로, 소작농에서 자수성가하여 중농이 된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배를 곯지는 않았지만 어려서부터 머슴과 마찬가지로 호되게 어른 몫의 일을 해야 했다고 한다. 마오의 어린 시절 학업은 3년 정도의 서당 공부가 전부인데, 부친이 수를 셈하고 장부를 정리할 정도의 지력만 키우고, 소송에 대처할 수 있는 고문만 배울 것을 원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과 관련해서 마오는 자신이 저질렀던(?) 두 가지 일을 자랑스레 이야기하곤 했다. 하나는 권위적이고 위압적인 서당 훈장에게 저항하여 수업을 거부하고 땡땡이쳤던 일이고, 다른 하나는 경제력과 힘으로 가족을 억누르는 부친에게 목숨을 걸고 대들면서 반항했던 일이다. 어찌 보면 평범한 경험이라고 할 수 있지만, 마오는 그 사건들을 의미 있는 것으로 기억했다. “공개적인 반항으로 나의 권리를 지키려고 할 때면 아버지가 누그러지고, 내가 온순하게 복종하는 태도를 보일 때는 그가 오로지 욕만 하면서 때린다는 사실을 알았다.”(‘마오쩌둥 자서전’) 마오는 경험을 통해 약자가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저항’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체득했다. 혁명이란 다른 누구로부터 선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저항을 통해서만 획득된다는 것. 그것은 중국 인민 전체에게 적용되는 문제였다. 마오는 신해혁명을 창사(長沙)에서 맞았다. 하지만 신해혁명의 성공 이면에서 혁명의 ‘덧없음’을 경험했다. 그는 빈자와 피억압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후난의 혁명가들이 상인, 학자, 부르주아지 및 돌아선 군중에 의해 살해당하는 현장을 보게 된다. 혁명이 반혁명으로 변질되던 1910년대에 베이징의 한 처량한 회관에서 탁본을 베껴 쓰면서 적막감을 토로했던 루쉰처럼 마오도 학교로, 도서관으로 돌아갔다. 몇 해 동안 점심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을 도서관에서 서구와 중국의 근대 지식을 흡수하는 데 쏟았을 정도다. 그러다 5·4운동(1919년)이 일어날 즈음 마오는 베이징도서관 사서의 조수로 일하면서 마르크스주의와 접하게 된다. 오랜 적막 뒤 마오가 깨달은 것은 노동자와 농민에게 혁명을 수행하도록 강요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이었다. 인민 스스로가 자신을 해방하고 혁명의 주체가 되는 것, 그것이 혁명이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혁명가의 임무란 무엇인가. 공산당원은 어디에 서야 하는가. 인민을 계몽하거나 그들에게 혁명의 열매를 시혜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스스로 혁명의 주체로 서게끔 실마리를 풀어 주고, 옆에서 뒤에서 그들을 돕는 것, 그게 혁명가의 임무였다. ●‘인민에 의한’ 혁명을 꿈꾸다 “지식을 얻으려면 현실을 변혁하는 실천에 참여하라.”(‘실천론’, 1937년)는 말대로 마오는 혁명에 관한 지식과 이론을 현실의 농민들에게서 ‘몸으로’ 배웠다. 그에게 ‘몸으로’는 결코 은유가 아니었다. 학창 시절에는 ‘신체단련’이라는 명목으로 한겨울에 들판을 누비거나 산을 오르내리는가 하면, 남중국 일대를 무전여행하기도 했다. 걸어 다니면서 가난한 농촌의 현실을 직접 보고 들을 기회를 가졌음은 물론이다. 게다가 중농 출신인 마오는 스스로를 인민의 ‘지도자’로 자처하는 지식인들과는 달랐다. 마오는 ‘인민을 위한’ 혁명이 아닌, ‘인민에 의한’ 혁명을 꿈꿨다. 그리고 스스로를 그 ‘인민’이라고 생각했다. 마오는 소련의 사회주의 이론이나 강령에 중국 현실 꿰맞추기를 거부하고, 혁명의 현장에 대한 정확한 장악과 실제적인 조직화 사업을 통해 ‘중국적 사회주의 이론’을 정립했다. 그는 먼저 농촌 근거지를 만들고 농민운동을 조직화하는 일에 참여했다. 그 경험의 결과물이 ‘후난성 농민운동 시찰보고서’(1926년)인데, 여기서 마오는 농민의 실생활을 직접 조사하고, 농촌에서의 혁명 가능성을 객관적인 자료로 보여 줬다. 농촌 경제의 모순과 농민의 계급분화 및 갈등은 혁명의 도화선이 되기에 충분해 보였다. 이런 판단하에 그는 소유 토지 면적이나 높은 이자율뿐만 아니라 돼지기름, 소금, 석유, 차, 종자, 비료, 장작, 가축, 농기구 유지 비용까지 자세히 분류한 후, 그 소유 정도에 맞춰 농민계급을 보다 세분화했다. 이런 실천적 분석을 통해 마오는 농민을 중심으로 하는 중국혁명을 구상해 냈는데, 이것이 바로 ‘중국식 사회주의’의 탄생이었다. 몇 차례 계속된 국민당의 포위공격을 피해 장시(江西)성 징강(井岡)산에서 활동하던 공산당원들은 근거지를 버리고 ‘도주의 길’을 떠났다. 그러나 도망으로 시작한 ‘대장정’은 승리로 귀결되었다. 1년 동안 공산당은 18개의 산맥을 넘고(그중 5개의 산은 만년설로 덮여 있었다), 24개의 강을 건넜으며, 12개의 성을 통과했다. 또 62개의 마을과 도시를 점령했으며, 전투를 치르고 돌파한 지방 군벌의 포위망이 무려 10개에 달했다. 지나가는 곳마다 대중 집회를 열어 노예를 해방하고 토지개혁을 실시했다. 이 초인적인 고난의 행군을 가능하게 했던 규율은 가난한 농민들로부터는 어떤 것도 빼앗지 않는다는 것, 지주들에게 몰수한 재산은 소비에트 정부에 전달해서 처분한다는 것, 농민들과의 모든 거래는 정직하고 예의 바르고 정중하게 한다는 것 등이었다. 지도자라고 해서 특별대우를 받는다거나 하는 일은 아예 없었다. 마오는 이들과 똑같이 자기 ‘몸으로’ 산을 넘고 강을 건넜다. 대장정을 마치고 섬서 지역에 마련된 근거지에서 마오가 다른 홍군에 비해 특별대우를 받은 것이 있다면 모기장 정도였다고 한다. ●주어는 ‘나’가 아니라 ‘우리’다 1938년 미국 언론인 에드가 스노는 대장정을 마친 공산당의 근거지를 찾아가 직접 보고 들은 중국공산당의 실체와 역사를 담은 ‘중국의 붉은 별’을 출간했다. 여기에는 마오를 비롯한 공산당원들의 자전적 이야기가 포함돼 있다. 스노는 마오의 회고담을 들으면서 역사적 사건들 속에서 마오가 행한 역할은 선명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개인적인 마오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는 점을 의아해했다. 어느 순간부터 마오의 진술에서 사용되는 주어는 더 이상 ‘나’가 아니라 ‘우리’였기 때문이다. 어느 혁명가가 혁명이 진행되는 과정에 자신의 모든 것을 잃지 않았겠는가마는 마오는 자신을 온전하게 인민 속으로 던졌다. 때문에 역사적 현장에서 마오는 비인칭으로 존재했다. 자신의 이름을 잊고 혁명의 흐름에 몸을 던지면서 인민과 함께 걸어간 혁명의 동반자 마오의 혁명은 실패였을까 성공이었을까. 한마디로 단언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성공이든 실패든, 그것을 내 삶의 지침으로, 나의 앎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그 변혁의 순간에 자신을 던져야 한다는 것, 그것이 마오의 삶이 일관되게 보여 주는 메시지다. 마오는 어떤 일이든 자신을 온전히 그 현장에 넣지 못하면, 몸으로 전력으로 저항하지 않으면 어떠한 열매도 얻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때문에 마오쩌둥이 중국 현대사의 선봉에 선 카리스마 넘치는 정치가였음은 분명하지만, 그에게는 정치가라는 이름보다 혁명의 순간에 자신을 내던져 자신을 산 혁명가라는 이름이 더 어울린다. 최정옥 남산 강학원 연구원
  • [심재억 전문기자의 건강노트] 물만 먹어도 살 찐다?

    “물만 먹어도 살이 찐다.”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별로 먹는 것도 없는데 자꾸 살이 찐다고 스스로 믿는 경우일 텐데, 사실은 그런 사람들이 물만 먹는 건 절대 아닙니다. 세상에 원인 없는 결과란 없지요. 잘 살펴보면 살이 찌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다 있습니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정리되지요. 인정을 하든 그러지 않든 필요 이상으로 많이 먹거나, 많이 먹지는 않지만 몸 속의 에너지를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입니다. 우리가 섭취한 지방은 유리지방산으로 바뀌어 혈액을 타고 몸 곳곳을 떠돌아다닙니다. 운동할 때 가장 먼저 사용되는 이 유리지방산이 연소되어 활동에너지를 만들게 됩니다. 문제는 이게 다 소모되지 못하고 중성지방으로 바뀌어 세포 속에 들어앉는 경우입니다. 지금, 당신의 출렁이는 뱃살을 한움큼 쥐어 보세요. 부드럽게 잡히는 살이 대부분 중성지방입니다. 그러면 왜 이런 반갑잖은 중성지방이 세포에 터를 잡을까요. 간단합니다. 인체는 필요할 때 쓸 수 있도록 잉여 지방을 끌어다 저장하려는 특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너무 많이 쌓아 문제가 되는 거지요. 이처럼 지방이 쌓이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포도당입니다. 중성지방은 유리지방산에서만 생성되는 게 아니고, 글리세롤이라는 물질에서도 생성되는데, 이 물질의 원료가 포도당이지요. 포도당은 우리의 주식인 쌀·밀가루 등 곡물류로 섭취하는 탄수화물의 2차 산물입니다. 그렇다고 보면 “물만 먹어도 살이 찐다.”는 말은 안 해야 합니다. 그럴 리가 없으니까요. 요새 회자되는 “살 안 찌려면 밥 적게 먹으라.”는 말도 이런 점에서 근거가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밥을 안 먹는다면 인체는 뭔가 대체식품을 찾아 부족한 열량을 충당하려고 합니다. 안 먹고 살 수는 없으니까요. 또 살아남으려면 당연히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답이 나오지 않습니까. 안 먹기보다 알맞게 먹으면서 운동이든 일이든 에너지를 태울 활동을 하면 됩니다. 그것이 살 안 찌거나, 찐 살을 빼는 유일한 길입니다. 다른 왕도는 없습니다. jeshim@seoul.co.kr
  • 아이폰4S 마진율 75% 폭리… 한국 소비자는 ‘봉’

    아이폰4S 마진율 75% 폭리… 한국 소비자는 ‘봉’

    한국 소비자가 봉인가. 아이폰4S의 국내 출고가가 해외 다른 출시국보다 비싼 것으로 드러나면서 애플이 한국에서 고가 정책을 펴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다. 서울신문이 4일 조사한 주요 국가의 아이폰4S 출고가 분석 결과를 보면 아이폰4S의 경우 국내 공급가에서 추정 제조원가를 뺀 마진율은 75%에 달해 폭리라는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 이날 아이폰4S의 예약 판매에 돌입한 KT와 SK텔레콤의 무약정 출고가는 똑같이 16기가바이트(GB) 81만 4000원, 32GB 94만 6000원, 64GB 107만 8000원이다. 32GB 기준으로 주요 출시국의 무약정 단말기 가격(세금 포함)과 비교하면 미국보다 11만원, 일본보다는 13만원이 더 비싸다. 미 반도체 부문 조사기관인 IHS서플라이가 최근 발표한 아이폰4S의 제조원가는 16GB 188달러, 32GB 207달러, 64GB 245달러이다. 제조원가로 추산한 아이폰4S 32GB의 국내 판매 마진율은 75.7%에 이른다. 올 3분기 애플의 전체 매출 총 이익은 40.3%였다. 출고가가 높아지면 통신사가 적용하는 약정 조건 및 요금제를 적용해도 국내 소비자 판매가 자체는 높아질 수밖에 없다. 국내 예약 판매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아이폰4S 32GB 모델은 4만 4000원 요금제 기준으로 KT 39만 6000원, SKT 39만 6400원이며, 무제한데이터 요금제(5만 4000원)에서는 각각 34만 4000원, 36만 2800원이다. 미국 AT&T의 2년 약정 시 16GB는 199달러, 32GB는 299달러, 64GB는 399달러로 국내보다 저렴하다. 물론 국가별 소비자 판매가를 동일한 기준으로 비교하는 건 무리다. 출시국 통신사마다 요금제와 약정조건, 판매 보조금에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똑같은 아이폰4S인데도 나라마다 출고가가 비싸고 싼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이는 애플이 국내 통신사와의 가격 협상에서 고가 정책을 취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국내 통신사업자들은 애플에 대해 ‘고압적인 협상 파트너’라고 지적한다. 미국, 일본의 통신사업자와 달리 국내 통신사에 대해서는 애플이 스스로 결정한 공급가를 밀어붙이는 태도를 보이기 때문이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미국, 일본, 중국 등과 비교해 국내 시장이 상대적으로 작아 개런티 물량과 공급가를 높게 책정하는 경향이 짙다.”고 지적한다. 지난해 출시된 아이폰4의 경우에도 국내와 해외 출고가 차이는 14만원에 달했다. 제조사 장려금 등 불투명한 유통 과정도 국내 스마트폰 시장의 ‘가격 왜곡’ 현상의 원인으로 꼽힌다. 삼성전자, LG전자 등 국내 제조사의 스마트폰도 해외보다 국내 출고가가 더 비싸다. 스마트폰은 이통사가 제조사로부터 구매해 소비자에게 재판매하는 방식인데, 출고가를 높게 책정한 후 보조금 및 약정할인을 통해 실제 판매가를 낮추는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다. 이에 출고가 자체가 거품이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한편 이날 0시부터 시작된 예약 판매에는 신청자가 폭증하면서 이통사 예약 사이트 서버가 다운되거나 접속이 지연됐다. SKT와 KT는 각각 파격적인 보상 조건을 제시하며 아이폰4S 판매 전쟁을 시작했다. SKT는 아이폰3GS를 반납하고 아이폰4S를 구매하는 가입자에게 상태에 따라 최소 4만원에서 최대 23만원 할인 혜택을 부여한다. 아이폰4 32GB 모델의 보상가는 25만~34만원으로 책정했다. 아이폰3GS 32GB 모델을 반납하는 가입자는 아이폰4S 16GB를 800원에 살 수 있다. KT도 기존 보상조건을 강화했다. 당초 최대 10만원이었던 아이폰3GS 보상가를 8GB 10만원, 16GB 13만원, 32GB 15만원으로 상향 조정하고 아이폰4 최대 보상가도 8GB 16만원, 16GB 19만원, 32GB 21만원으로 대체했다. 예약 가입은 SKT와 KT에 동시 신청할 수 있으며 보상 조건을 비교한 후 취소할 수 있다. 안동환기자 ipsofacto@seoul.co.kr
  • [문화계 블로그] 유럽내 K팝 열풍

    [문화계 블로그] 유럽내 K팝 열풍

    그룹 JYJ의 유럽 공연 취재를 떠나면서 가장 궁금했던 점은 과연 유럽에 K팝 열풍이 실재하느냐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실재했다. 다만, 한국에서 생각하는 것만큼 크고 넓지는 않았다. 아직은 작지만 단단한 팬층을 다져가는 모습이었다.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일본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소개하는 ‘망가 페스티벌’이 열리던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한 건물 앞에는 유럽의 한류 팬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 페스티벌 행사의 일환으로 열린 JYJ의 공연을 보기 위해서였다. 스페인은 물론 프랑스, 이탈리아, 스웨덴에서 온 10~20대의 소녀팬들은 단 2곡을 부르는 JYJ의 짧은 공연을 보기 위해 몇 시간 전부터 자국 국기를 들고 길게 줄 지어 있었다. 행사 성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유럽의 K팝 인기는 J팝에서부터 시작됐다. 십수년 전 이미 유럽에 진출한 J팝의 마니아들이 K팝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한 것. 사라고사에서 왔다는 학생 미리암은 “동방신기가 일본 애니메이션 ‘원피스’의 삽입곡을 부른 뒤부터 K팝에 관심이 생겼다.”고 털어놓았다. 이렇듯 K팝 인기는 J팝에서부터 시작됐지만, 마니아층은 상당히 단단하다. ‘쉐어링유천’이라는 JYJ 팬클럽 스페인 지부를 운영하고 있는 사라는 “30~50명씩 모여 함께 춤추거나 K팝 클럽에 간다.”고 전했다. 현지 관계자들은 K팝이 J팝에 비해 템포도 빠르고 춤 추기에 좋기 때문에 유럽 젊은이들에게 특히 어필한다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유럽의 K팝 열기는 아시아에는 못 미쳤다. 스페인의 대중음악 앨범 판매 체인인 ‘프낙’에서 K팝 앨범을 찾아보기는 힘들었다. 일본, 태국 등지에 K팝 코너가 따로 만들어져 한국 가수들의 CD와 잡지를 판매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해외문화홍보원에 따르면 해외 20개 지역에 182개의 한류 팬클럽이 결성돼 330만명 정도의 회원이 활동 중인 것으로 집계됐다. 장진상 주 스페인 한국문화원장은 “유럽은 다양한 국가의 문화를 존중하는 풍토가 강하기 때문에 아시아 지역처럼 K팝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면서 “하지만 서구 중심 문화에 한계를 느낀 유럽의 나이 든 지식인들이 아시아 문화에 눈을 돌리고 있는 만큼 K팝의 미래는 매우 밝다.”고 내다봤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문화계 블로그] 유럽내 한류 어디까지 왔나

    [문화계 블로그] 유럽내 한류 어디까지 왔나

     그룹 JYJ의 유럽 공연 취재를 떠나면서 가장 궁금했던 점은 과연 유럽에 K팝 열풍이 실재하느냐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실재했다. 다만, 한국에서 생각하는 것만큼 크고 넓지는 않았다. 아직은 작지만 단단한 팬층을 다져가는 모습이었다.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일본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소개하는 ‘망가 페스티벌’이 열리던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한 건물 앞에는 유럽의 한류 팬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 페스티벌 행사의 일환으로 열린 JYJ의 공연을 보기 위해서였다. 스페인은 물론 프랑스, 이탈리아, 스웨덴에서 온 10~20대의 소녀팬들은 단 2곡을 부르는 JYJ의 짧은 공연을 보기 위해 몇 시간 전부터 자국 국기를 들고 길게 줄 지어 있었다.  행사 성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유럽의 K팝 인기는 J팝에서부터 시작됐다. 십수년 전 이미 유럽에 진출한 J팝의 마니아들이 K팝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한 것. 사라고사에서 왔다는 학생 미리암은 “동방신기가 일본 애니메이션 ‘원피스’의 삽입곡을 부른 뒤부터 K팝에 관심이 생겼다.”고 털어놓았다. 스페인에서 ‘영원히 sub’라는 한류 관련 동영상 번역 사이트를 운영한다는 라우라도 “우연히 일본 드라마에 잠깐 나온 K팝을 접한 뒤 관심을 갖게 됐다.”고 전했다.  이렇듯 K팝 인기는 J팝에서부터 시작됐지만, 마니아층은 상당히 단단하다. ‘쉐어링유천’이라는 JYJ 팬클럽 스페인 지부를 운영하고 있는 사라는 “30~50명씩 모여 함께 춤추거나 K팝 클럽에 간다.”고 전했다. 바르셀로나 그랑비아 거리에는 ‘클럽 아레나’ 등 K팝만 틀어주는 클럽이 문전성시였다. 현지 관계자들은 K팝이 J팝에 비해 템포도 빠르고 춤 추기에 좋기 때문에 유럽 젊은이들에게 특히 어필한다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유럽의 K팝 열기는 아시아에는 못 미쳤다. 스페인의 대중음악 앨범 판매 체인인 ‘프낙’에서 K팝 앨범을 찾아보기는 힘들었다. 일본, 태국 등지에 K팝 코너가 따로 만들어져 한국 가수들의 CD와 잡지를 판매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해외문화홍보원에 따르면 해외 20개 지역에 182개의 한류 팬클럽이 결성돼 330만명 정도의 회원이 활동 중인 것으로 집계됐다. 권역별로는 일본·중국·베트남 등 아시아 8개 지역에 231만명, 워싱턴·뉴욕·아르헨티나 등 미주 4개 지역에 50만명, 영국·프랑스·터키 등 유럽 7개 지역에 46만명이다.  장진상 주 스페인 한국문화원장은 “유럽은 다양한 국가의 문화를 존중하는 풍토가 강하기 때문에 아시아 지역처럼 K팝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면서 “하지만 서구 중심 문화에 한계를 느낀 유럽의 나이 든 지식인들이 아시아 문화에 눈을 돌리고 있는 만큼 K팝의 미래는 매우 밝다.”고 내다봤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서울 부동산시장 ‘박원순 효과’는

    서울 부동산시장 ‘박원순 효과’는

    10·26보궐선거 이후 서울지역 부동산시장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 것으로 보인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뉴타운 계획의 전면 수정과 재건축·재개발 속도 조절을 강조함에 따라 수익형 부동산 외에는 향후 거래 부진과 시세 하락을 이어갈 것이란 우려가 지배적이다. 하지만 박 시장 측에서도 서울지역 아파트의 최장 40년 재건축 연한 해제를 선별 검토하는 등 유연성을 내비치는 데다 내년 부동산시장이 박 시장의 정책보다는 글로벌 경제위기 등 거시적 요인에 더 큰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여 지나친 비관론이란 이견도 만만찮다. ●한강르네상스 등 대형사업 백지화 30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박 시장의 부동산정책은 ‘복지’에 방점을 찍었다. 헌집을 새집으로 고쳐주는 소규모 지역공동체 개발방식인 두꺼비 하우징 사업을 현행 뉴타운 개발의 대안으로 제시하고, 공공임대주택 공급 목표를 오세훈 전 시장보다 2만 가구 늘릴 방침이다. 전·월세 보증센터를 설치하고 주택 임대료 상한제를 도입한다는 약속도 나왔다. 대신 한강르네상스사업이나 서해뱃길, 지천 운하사업 등 대형사업은 모두 백지화할 가능성이 크다. 이를 전임 시장의 전시성 토건사업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사업의 용적률 상향조정이 어렵게 되고, 상암DMC랜드마크 등 다른 개발사업도 축소될 것으로 보고 있다. 반응은 엇갈린다. 가격 상승에 따른 경기 활성화와 거리가 먼 정책들로 인해 부동산경기의 저점을 올해 말 또는 내년 초로 예상했던 기존 전망을 수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먼저 나온다. 박상언 유엔알컨설팅 대표는 “뉴타운과 재건축·재개발, 한강르네상스 등 대규모 개발을 통한 시세 상승을 기대하긴 어려운 상황”이라며 “다만 박 시장도 1~2인 가구를 위한 소형주택 공급은 지속적으로 확대할 계획이어서 도시형생활주택 등 임대 목적의 투자 수요는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양지영 리얼투데이팀장도 “한강르네상스 사업계획이 바뀌면 강남권 재건축 아파트가 타격을 크게 받을 것”이라며 “전면 취소될 경우 가격 하락은 뻔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조민이 에이플러스리얼티 팀장은 “여의도나 압구정 지역은 서울시가 용적률 상승에 따른 민간 토지의 기부채납을 요구해 사업진행이 원래 지지부진했던 곳들”이라며 “고가주택 단지라 피해가 비교적 적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성수나 합정 지역 등은 소액투자자들이 많아 피해가 클 수 있다고 지적한다. 허윤경 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내년 서울지역 부동산시장은 글로벌 경제위기 등 거시적 요소에 더 큰 영향을 받을 것”이라며 “(재건축 연한 폐지 등) 개발 호재는 경기가 좋을 때나 영향을 끼치는데 지금은 반대 상황이라 누가 시장이 됐든 큰 영향을 주진 못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뉴타운사업 양극화 심화될 듯 뉴타운사업에선 오히려 양극화가 심화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면 궤도 수정이 불가피한 가운데 추진 속도가 현저히 떨어지는 지구에선 대폭 축소나 백지화 가능성이 크지만, 이미 사업이 진행 중인 곳은 희소성을 띠게 될 것이란 판단에서다. 현재 서울지역 뉴타운 사업구역 241곳 가운데 70곳은 추진위조차 구성하지 못하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등의 속도조절에 따른 거래 위축론도 힘을 받는다. 조 팀장은 “재건축 이주시기 조절 등은 오세훈 전 시장도 추진했던 것”이라며 “다만 재건축 추진이 시장과 밀접하게 연관돼 추후 논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시장의 우려 속에서도 임대주택 활성화 등 서민주거 안정책은 다소 긍정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박원갑 국민은행 수석부동산팀장은 “서민주거 안정이란 정책에 누구도 반대하진 않을 것”이라며 ”다만 SH공사의 부채가 16조원이나 되는 상황에서 재원 확보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조주현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전세금 상한제나 지나친 분양가 규제 등은 부작용이 우려돼 시장동향을 잘 살펴 검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Weekend inside] 불출마 선언에도… 美 대선 ‘힐러리 바람’ 왜?

    앞으로 대선에 출마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음에도 불구하고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의 인기가 식을줄 모르는 기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27일(현지시간) 시사주간지 타임 최신호가 공개한 여론조사 결과는 가히 ‘충격적’이라 할 만하다. 힐러리가 내년 대선 1대1 가상대결에서 민주당 후보로서 공화당의 선두권 대선 주자들을 압도적으로 이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힐러리는 밋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에게 지지율이 55% 대 38%로 17% 포인트 앞섰다. 반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롬니에게 불과 3% 포인트 앞서는 데 그쳤다. 힐러리는 릭 페리 텍사스 주지사와의 가상대결에서도 58% 대 32%로 26% 포인트 차이로 이겼다. 반면 오바마는 페리에게 12% 포인트 우위를 보였다. 오바마의 지지율이 급락한 지난 8월부터 내년 대선을 겨낭한 ‘힐러리 대안론’이 심심치 않게 제기되자, 지난 17일 힐러리는 “나는 구식인물”이라며 내년뿐 아니라 2016년 대선에까지 나가지 않겠다고 못 박았다. 이쯤 되면 지지율이 수그러들만도 한데 오히려 더 올라가는 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타임은 “올해 64세인 힐러리는 2016년엔 69세가 된다.”며 “인기의 근원을 추측하지는 않겠다.”는 말로 ‘기현상’이라는 시각을 내비쳤다. 사실 ‘힐러리 바람’은 정치권의 통념상 특이한 경우다. 일반적으로 정치인이 라이벌 밑으로 들어가 부하 역할을 하면 종속 변수가 되면서 왜소화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실제 힐러리는 장관으로서 오바마에게 한번도 반기를 든 적이 없고 대통령을 깍듯이 예우하는 처신을 보였다. 힐러리 바람의 근저에는 2008년 민주당 경선에서 오바마와 접전 끝에 근소한 차이로 패배한 데 따른 아쉬움이 작용하고 있다는 게 미국 정치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오바마 정부 아래서 경기침체가 나아질 기미가 안 보이자 “차라리 그때 힐러리를 뽑았더라면….”이라는 심리가 생겼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유례없는 경제호황을 이끌었던 빌 클린턴 정부에 대한 향수가 깃들어져 있을 수 있다. 경선 패배 후 힐러리가 보여준 처신이 그를 더욱 빛나게 한다는 평가도 있다. 힐러리는 대선 본선에서 오바마의 승리를 도왔고, 오바마 취임 후에는 국무장관으로서 권력투쟁에 발을 담그지 않고 묵묵히 맡은 일을 성실히 수행해 왔다. 이런 모습들이 그의 카리스마를 더욱 키웠다는 것이다. 물론 공화당 대선 주자들 가운데 딱히 마음을 끄는 인물이 없다는 점도 힐러리 바람을 키우는 요인일 수 있다. 타임은 그러면서 “힐러리는 T S 엘리엇의 시 ‘이스트 코커’(East Coker)의 ‘저항에 맞서 거듭거듭 시도한다.’는 내용을 가장 좋아하는데, 그것은 그녀가 얼마나 오랫동안 권력에 대해 생각해 왔는지를 시사한다.”며 대권을 향한 힐러리의 꿈이 계속될 것이란 시각을 넌지시 내비쳤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블룸버그 뉴욕시장 한인들과 첫 타운홀 미팅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시장이 26일(현지시간) 타운홀 미팅을 통해 한인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2002년 1월 취임한 블룸버그 시장이 3선을 거치는 동안 한인들과 대화의 장을 가진 것은 처음이다. 미주지역 한인들의 모임인 한인커뮤니티재단(KACF)은 오후 5시 30분부터 1시간 동안 블룸버그 시장과 각 분야 국장들이 참석한 가운데 퀸즈 플러싱 소재 퀸즈도서관에서 열린 타운홀 미팅에서 한인사회의 다양한 요구 사항들을 전달했다. 한인사회는 한국음식점의 위생등급이 낮게 나오는데 이는 발효음식인 김치의 특성상 숙성될 때까지 냉장고 바깥에 둘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며 어려움을 호소했고, 시 당국은 규정상 음식을 냉장고 바깥에 둘 수 있는 시간이 제한되어 있다고 해명했다. 이에 블룸버그 시장은 자신이 오래전부터 김치를 즐기고 있다고 소개하고서는 담당 국장을 향해 “식당에서 김치를 먹고 죽은 사람이 있느냐.”고 반문, 300여명 청중의 웃음을 유도한 뒤 적절한 방안을 모색하라고 지시했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호주서 식인상어 또 습격…스쿠버다이빙男 사망

    호주서 식인상어 또 습격…스쿠버다이빙男 사망

    스쿠버다이빙을 즐기던 한 남성이 상어에게 습격당해 사망하는 참사가 벌어졌다. 최근 호주 서해안의 휴양지인 로트네스트섬에서 스쿠버다이빙을 즐기던 미국인 조지 웨인라이트(32)가 3m 크기의 상어에 물려 사망했다. 당시 함께 배 위에 있었던 친구들은 “웨인라이트가 다이빙을 하고 있었을 때 상어가 나타나 바다속으로 그를 끌고 들어갔다.” 며 “잠시 후 끔찍한 시체가 바다위로 떠올랐다.”고 밝혔다.  또 “우리가 그를 구할 수 있는 어떠한 방법도 없었다.”며 울먹였다. 현지 주당국은 상어의 습격으로 로트네스트섬 전해안을 폐쇄했으며 상어의 출몰을 알리는 경고판을 곳곳에 설치했다. 콜린 바네트 서호주 주지사는 “포획이 금지된 상어를 잡을 것을 정부로부터 특별히 허용받았다.” 며 “2달 사이에 세번째 사상자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최근 호주 서해안에서는 식인 상어가 출몰해 사람들의 피해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에는 21세의 한남성이 보드를 타다 상어에 물려 숨졌으며 64세의 한 남성도 수영중 상어에게 습격당해 중상을 당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오감도’ 이상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오감도’ 이상

    ●박제가 되어 버린 천재? 1934년 식민도시 경성의 여름은 뜨거웠다. ‘조선중앙일보’에 7월 24일부터 연재되기 시작한 작품 ‘오감도’(烏瞰圖) 때문이다. 작가는 2000여편 중에서 30편을 골라 연재할 계획이었지만, 결국 15회를 넘기지 못했다. 띄어쓰기 무시! 문법 파괴! 기호와 숫자가 문자를 대신하는 시! 독자들은 분노했다. 이것은 시가 아니다, 당장 원고를 불살라라, 작가가 미쳤다! 하지만 작가는 자신을 미쳤다고 비난하는 독자들에게 반문한다. ‘왜 미쳤다고들 그러는지. 대체 우리는 남보다 수십년씩 뒤떨어져도 마음 놓고 지낼 작정이냐?’ 그가 보기에 대중은 게으르고 편협했다. 자신은 지금 시대의 어리석음과 무지를 뛰어넘고 있는 중인데 독자들은 아직도 구태의연한 문학관만 소비하는 중이니 말이다. ‘오감도’의 작가 이상(李箱·1910~1937). 그는 정말 시대와 불화한 천재였을까. 시대가 박제시켜 버린 천재였을까.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재능이나 영감에 의지해 개성을 뽐내는 그런 천재는 아니었다. 모두가 문명화, 근대화라는 덧없는 망상 속에서 허둥댈 때, 그는 아무도 보지 못했던 문명의 메커니즘을 보고, 시대의 이면을 볼 줄 아는 눈을 가진, 비상(非常)한, 비상(飛上)을 꿈꾼 지식인이었다. ●모던 경성, 적빈(赤貧)의 시공간 1910년 9월생인 그는 일본어를 국어로 하는 세상에서 태어나 문화통치 기간인 1920년대에 학교교육을 받으며 성장했다. 1920년대 중반이 되면 제국 일본의 식민 경영이 본격적으로 뿌리내리게 된다. 아울러 경성의 도시경관은 총독부 건물, 경성제국대학, 백화점을 중심으로 근대 도시의 풍모를 갖추어 나가기 시작한다. 그 안에서 근대적 학교교육이 본격적으로 보급되고 출판산업 규모가 비약적으로 커졌다. 그리하여 1920년대에는 신문과 잡지를 통해 동시대의 근대문화를 흡수하고 소비하는 ‘대중’이 유럽풍 옷가지와 장신구로 몸을 두르고 커피 한잔을 찾아 방랑하는, 보들레르가 명명했던 ‘산보객들’이 경성 한복판에 등장하기에 이른다. 경성고등보통학교 건축과 학생이었던 이상 역시 화구통을 메고 거리를 어슬렁거린다. 그러나 그의 눈에 비친 것은 가난이었다. 끼니를 잇기 힘든 가난한 중인 가문의 장남이었던 그는 현미빵을 팔아 학교를 다녔다. 그가 배우는 최신 기하학과 건축학이 식구들과 이웃의 허기를 달래줄 날은 참으로 요원했다. 하지만 이런 물질적 가난보다 더 무서운 것은 정신의 가난이었다. 생활은 점점 더 돈을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었다. 돈은 아비와 자식, 친구와 애인을 연결시켜 주는 가장 강력한 매개체였다. 의리도 인정도 돈 앞에서는 힘을 쓸 수 없었다. 지독한 정신의 가난은 가난한 서민들뿐 아니라 도시인 전체를 갉아먹고 있었다. 대중매체가 선전하는 소비와 향락, 학교에서 강요하는 청결하고 근면한 생활. 이상이 보기에 이것은 실상 일본식 유행풍속을 좇아 양복을 입고 몇 개 안 되는 다방을 전전하면서 ‘교양입네’ 하는 꼴이었다. 제국 일본의 식민도시 경성은 제대로 문명화를 구가하지도 못하면서 박래품 소비에만 열광하는 ‘무늬만 근대도시’였다 경성의 도시인들은 모두 ‘모던’(modern)이라는 거울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보지만, 정작 자신의 텅 빈 정신은 보지 못하는 불구자들이었다. 왼팔을 들면 거울 속의 나는 오른팔을 들어 올리는 기묘한 형국처럼 도시인들은 자신을 비추는 문명의 거울 앞에서 분열증에 시달렸다. 지독한 정신의 가난 속에서도 겉으로는 잘사는 척, 문명인인 척하기에 급급한 삶이라니! 이상은 이 사태가 공포스러웠다. 그 수선스러움에 질식할 것 같았다. 이 가난에 맞서야 한다! ●나의 펜은 나의 칼이다 1930년 ‘조선’에 연재된 첫 장편소설 ‘십이월 십이일’을 필두로, ‘이상한 가역반응’, ‘삼차각설계도’, ‘건축무한육면각체’ 등 기하학과 일본어가 맞물린 시들과 ‘지도의 암실’ 등의 소설, 다양한 수필이 발표된다. 문명을 지탱하는 정신의 가난과 대결하면서 그가 집중적으로 관심을 기울인 것은 언어의 문제였다. 식민지 조선에서는 일본어가 국어다. 하지만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말은 조선어다. 그는 식민지에서의 가난과 소외가 무엇보다도 언어와 그 언어 사용자 사이에 놓인 간극 때문에 발생한다고 생각했다. 예컨대 1930년대를 지배하는 ‘모던’이라는 말 안에는 그 어떤 진지한 성찰도 부재했다. 도시의 소비자들은 양복(洋服), 양행(洋行)과 같이 서양풍을 내세운 습속에만 매달릴 뿐 왜 서양식 옷을 입고 서양에서 나온 책을 읽어야 하는지에 대해 자문하지 않았다. ‘모던’이란 말은 식민지 조선에서 텅 빈 기호였다. 그 안에서 어떤 정신적 가치도 찾을 수 없었다. 이상은 그런 시대를 ‘활자허무시대’라고 명명했다. 이상은 그렇게 기호에 갇혀 자기 삶의 진실을 외면하는 문명인의 삶을 해부하기로 했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그런 그에게 문학은 대중이 기대하는 여가선용이나 위안의 도구일 수 없었다. 그렇다고 사회주의자들이 주장하듯 특정한 계급의 현실을 드러내고 정치적 방향을 선동하는 이념의 도구에 머무를 수도 없었다. 문명의 매커니즘을 해부하고, 소외된 삶을 극복하는 것! 이것이 문학의 일차적인 임무여야 했다. 이상에게 펜은 그런 가난한 문명과 나태한 정신을 향해 휘두르는 칼이어야 했다. 그의 시 ‘오감도’는 숫자와 여러 가지 기호들을 통해 근대적 삶의 폐쇄성과 불구성을 해부하는 ‘메스’로서의 문학이었던 셈이다. ‘오감도’ 연재가 중단된 후 자신의 시도가 불러일으킨 적대적 반응에도 불구하고 이상은 실망하지 않았다. 자신을 몰라보는 대중을 무시하지도 않았으며, 관광객의 시선으로 그들의 삶을 관조하지도 않았다. 속악한 돈의 횡포나 비정한 이기주의를 직시하면서도, 그는 자신 역시 허위에 찬 근대의 산물임을 처절하게 의식했다. 박태원과 김기림 같은 지인들은 이상이 퇴폐적 카페를 열고 여급들과 연애하는 것을 보면서, 그가 문학만이 아니라 자신의 삶으로도 문명을 비판하고 자조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는 감추려고도, 미화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자신이 겪은 배반과 궁핍을 솔직하게 드러내면서 근대문명을 고민하고, 그 안을 휘청거리며 걸었다. ●이상, 시대의 혈서를 쓰는 자 1936년 가을, 이상은 일본 도쿄로 떠났다. ‘날개’를 통해 평단으로부터 큰 주목과 호평을 받은 직후였다. ‘날개’는 돈으로 마음과 정신을 사고파는 근대인의 삶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작품이다. 여기서 이상은 주인공이 날개를 얻어 비상할 것을 꿈꾸는 장면으로 작품을 마무리했다. 해부를 넘어 새로운 도덕을 발견할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는 어쩌면 그 도덕적 비전이 식민지 조선 바깥에, 현해탄 건너 문명의 본산에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도쿄에서 그를 기다리는 것은 허영의 낙원이었다. 특가품, 할인품, 온갖 상품들로 넘쳐나는 긴자 거리에서 사람들은 모두 성병에 걸린 듯 화려하게 치장한 채 돌아다녔으며, 최신 서적들은 그저 교양으로 소비되고 있었다. 거기에도 자기 삶의 정열을 태우는 인간은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현대 자본주의의 병폐가 더 노골적으로 발산되고 있었다. 영국 런던에 가도 사정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어딜 가도 적막, 암흑, 권태뿐이다. 그렇다면 어디에서 새로운 도덕을 찾아야 한단 말인가. 20세기가 그토록 찬미해 마지않는 문명이란 정신의 가난만 키우는 황금만능의 허위 세계임을, 이상은 낯선 땅에서 뼛속 깊이 절감한다. 그해 겨울 도쿄 거리에서 이상은 불온한 조선인으로 낙인찍혀 감방에 갇히게 된다. 도일(渡日)하기 전부터 앓았던 폐병은 급속도로 악화되었고, 문명의 속악성은 그의 마음에서 한 가닥 희망마저 앗아가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그는 글을 쓰면서 돌파구를 모색하겠다는 의지를 포기하지 않았다. 1937년 4월 17일. 채 십년이 되지 않는 창작 기간 동안 오직 근대문명의 실상을 파헤치기 위해 글을 썼던 이상이 죽었다. 그의 죽음은 친구 김기림의 말대로 제 육체의 마지막 조각을 갖고 제 혈관을 짜서 쓴 시대의 혈서였다. 죽기 몇 달 전 탈고한 소설 ‘종생기’(終生記)에서 이상은 자신의 묘지명을 작성한다. “일세의 귀재(鬼才) 이상은 그 통생(通生)의 대작 ‘종생기’ 일편을 남기고 서력 기원후 일천구백삼십칠년 정축(丁丑) 삼월삼일 미시(未時) 여기 백일(白日) 아래서 그 파란만장(?)의 생애를 끝막고 문득 졸하다. 향년 만이십오세와 십일개월.” 자신을 죽이고, 그 시체로부터 생과 예술의 본질을 투시하려 했던 자. 임박한 죽음 앞에서도 이상은 그렇게 끝까지 예리한 언어의 칼날을 거두지 않았다. 오선민 남산강학원 연구원
  • 독일 여행자 ‘먹은’ 식인족 수배사진 보니…

    여행지에서 실종된 독일 여행객이 식인종에게 먹힌 것으로 추정되는 가운데, 해외 언론들이 용의자로 지목되고 있는 여행 가이드 앙리 아이티의 사진을 공개했다. 스테판 레이민이라는 이름의 이 독일 여행객은 최근 여자친구와 프랑스령 폴리네시아의 누쿠히바섬을 찾았다가 실종됐다. 당시 레이민은 현지 여행 가이드인 아이티와 전통 염소 사냥을 나갔다가 돌아오지 않았으며, 함께 섬을 찾았던 레이민의 여자친구는 가이드에게 성폭행 당했다고 주장하고 있는 상태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조사단은 깊은 숲 속에서 다 탄 장작과 일부 뼈, 재 등을 발견했다. 여기에는 사람의 턱 뼈와 치아, 치아 치료에 주로 사용되는 봉(Falling)등이 포함돼 있었다. 경찰은 이것이 사람을 난도질 해 조각을 낸 뒤 불에 올린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건장한 몸집과 부리부리한 눈매를 가진 용의자 아이티는 카이오이 부족(Kaioi tribe)으로, 왼쪽 어깨에 눈에 띄는 문신을 가지고 있다. 이 문신은 마이오이 부족의 전사들이 주로 하는 문신으로 보인다고 독일 타투 전문가는 밝혔다. 식인종 전문가인 건돌프 크루거 박사는 “현재의 폴리네시아 사람들은 기독교를 믿고 글을 쓸 줄 아는 만큼 교육을 받은 이들”이라면서 “하지만 이번 범죄는 부족의 오래된 종교적 의식 때문에 벌어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한편 경찰은 현장의 흔적으로 보아 사람을 난도질 해 조각을 낸 뒤 불에 태운 것으로 추정하고, 증거물을 수집해 레이민의 신원과 일치하는지 확인하는 작업을 거칠 것으로 알려졌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식품업계 미래 먹거리 영토전쟁

    식품업계 미래 먹거리 영토전쟁

    식품업계에서 새로운 수익창출원 발굴은 큰 화두다. 우유업체가 커피를 만들고, 두부 회사가 홍삼 제품을 내놓는 등 영토다툼이 치열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커피믹스로 부동의 1위를 점유해 오던 동서식품은 지난해 후발주자들의 거센 도전을 받고 위기의식을 느낀 뒤 시장 다변화에 애쓰고 있다. 분유 매출 감소로 사업 다각화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남양유업은 커피믹스 시장에 이어 전망 밝은 건강기능식품 시장에도 출사표를 던졌다. 동서식품은 19일 인스턴트 원두커피 브랜드 ‘카누’(KANU)를 내놓는다고 밝혔다. 카누는 ‘새로운(New) 커피(Coffee)’라는 뜻으로 가격은 한 봉지에 325원이다. 핵심 공략층은 커피전문점을 주로 이용하는 20~40대 젊은 소비자들이다. 1조 5000억원대 커피믹스 시장의 70%를 점유하고 있는 동서식품이 원두커피 시장에 주목하는 이유는 소비자의 입맛과 취향 변화에 따른 것이다. 업계에 따르면 커피전문점을 포함한 국내 원두커피 시장의 규모는 약 9000억원. 지난해 커피믹스 시장은 전년 대비 10% 정도 성장한 반면 원두커피 시장은 무려 60%의 성장세를 보였다. 이날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신제품 출시 간담회에서 이창환 대표는 “2000년대 중반부터 커피전문점이 급증하면서 소비자의 변화를 인지하고 계속해서 준비해 왔다.”며 “카누의 경쟁 상대는 커피전문점”이라고 단언했다. 카누는 커피전문점에서 원두커피를 추출하는 방식인 에스프레소 추출 방법으로 뽑은 커피를 그대로 냉동 건조한 커피 파우더에 미세하게 분쇄한 볶은 커피를 코팅한 인스턴트 커피. 물에 타기만 하면 바로 커피전문점에서 맛볼 수 있는 커피를 간편하고 쉽게 즐길 수 있도록 한 것이 특징이다. 남양유업 앞에 이제 유가공업체라는 이름표를 넣는 것은 무색하다. 지난해 ‘프렌치카페 카페믹스’로 커피믹스 시장에 진출, 최근 2위 네슬레를 제친 남양유업은 신사업 확장에 더욱 속도를 내고 있다. 남양유업은 19일 임산부를 위한 종합 비타민제인 ‘메가비트’를 출시하고 본격적으로 건강기능식품 사업을 전개한다고 밝혔다. 그동안 임산부용 비타민 시장은 동구제약, 일진제약 등 중소 제약업체들의 판이었다. 식품 대기업으로는 남양유업이 처음 뛰어들었다. 남양유업 성장경 전무는 “대대적인 마케팅을 통해 올해 안에 임산부용 비타민 시장에서 점유율 20%를 넘기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 [열린세상] 인류무형유산 보전을 위한 NGO 역할/이세섭 문화재보호재단 이사장

    [열린세상] 인류무형유산 보전을 위한 NGO 역할/이세섭 문화재보호재단 이사장

    지난해 6월 유네스코 무형유산 자문 비정부기구(NGO)로 승인받은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은 지난 12일부터 15일까지 3박4일 동안 국내외 9개의 NGO를 초청, 유네스코 무형유산 자문기구 국제포럼을 열었다. 아태지역 NGO 간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이를 바탕으로 활동 방향과 그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였다. 이 포럼에는 유네스코 NGO로 활동하는 인도의 공예부흥트러스트(CRT)와 고아문화유산집행기구(GHAG), 중국 과학기술사학회(CSHST), 베트남 문화연구자원개발센터(A&C) 관계자들과 유네스코 방콕사무소 관계자, 국내 전문가와 활동가들이 참여하여 활발한 발표와 토론이 이뤄졌다. 특히 인도의 CRT와 GHAG의 활동에 대해 참가자들 모두가 찬사를 보내며 NGO ‘모범사례‘로 꼽았다. 이들이 발표한 내용을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인도는 460개가 넘는 부족 공동체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부족들은 서로 다른 언어와 장신구, 구전으로 전해지는 민요, 이야기, 음악과 춤 등으로 표현되는 다양한 문화를 형성하고 있다고 전했다. 각 부족의 조직적 종교의 신념체계, 고대 민중의 지혜를 체계화한 수없이 많은 종교집단과 종파도 부족단위만큼 많고 다양하다고 이들은 밝혔다. 하지만 인도 역시 다른 지역의 무형유산처럼 산업화, 세계화, 도시화의 파도에 휩쓸리며 중요한 무형유산들이 사라질 위험에 놓여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젊은 세대들의 관심 부족, 무형유산에 대한 잘못된 인식, 지위의 불평등과 교육의 확산, 새로운 고용형태, 문명의 이기에 의한 삶의 변화로 무형유산들이 훼손되고 파괴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도 인도의 이 분야 지식인과 활동가들은 NGO를 꾸려 무형유산 보호를 위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중에는 유네스코 무형유산 자문 NGO로 활동하고 있는 CRT와 GHAG의 활동이 주목할 만하다고 밝혔다. 1999년에 출범하여 13년째 운영되고 있는 CRT는 현재 남아시아의 공예, 직물, 민속예술을 포함한 전통문화 관련 기술과 정보를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사이트(www.craftrevival.org)를 구축하고 있다는 것이다. 남아시아 8개국에 걸친 6만명 이상의 전통문화 계승자와 현역 활동가들에 대한 접촉 목록, 모범사례연구, 시민사회조직, 3500권의 책과 자료, 토론가 대담 등의 자료를 게시하며 공유하고 있다고 했다. 11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GHAG 역시 인도 서부 고아 주(州) 지역의 인류무형유산의 전승과 보존을 위해 전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GHAG는 수년에 걸쳐 고아 주의 수도 파나지 지방자치단체, 남아시아와 동아시아에서 활동하고 있는 포르투갈 문화재단, 인도 고고학연구소, 인도 문화예술유산트러스트 등과 다양한 협력관계를 유지하며 고아 지역의 문화유산 보호에 필요한 기준을 제공했다고 강조했다. 문화유산 구조 및 특성 목록, 예술, 음식, 춤, 무대 예술을 문서화하여 자료화했다. 대중문화침입으로 위험에 처해 있는 고아 주의 하위계층과 주변 집단의 문화예술에 대한 문서기록, 문화유산 구조와 자연 유적지 보호를 위한 법령까지 마련할 정도로 역량을 갖췄다고 말했다. 이번 포럼에서 무형유산 보호를 위해 활동하고 있는 NGO들은 자신들의 활동상을 바탕으로, 무형유산 보호를 위한 공동의 관심사를 치열하게 논의하고 협의했다. 다문화시대 문화원형성의 범위는 어디까지 봐야 하는지, 무형유산 등재의 대륙별 불균형 해소를 위해 NGO는 어떤 역할과 노력을 해야 할 것인지 등은 이번 포럼에서 논의된 핵심 사항이었다. 97개인 자문기구의 조직화 방안, 무형문화유산 프로그램을 통한 국가·지역·계층 간 문화 불균형 해소 방안, 무형유산 정보소통을 위한 ‘국제 플랫폼’ 기능의 필요성, NGO 간 지속적인 상호교류를 통한 협력강화 등도 핵심쟁점이었다. 한국문화재보호재단도 유네스코 자문 NGO로서 이번 포럼에서 제기되고 논의된 내용을 중심으로 활동방향을 고민하면서 포럼에 참여한 다른 나라 NGO의 요청대로 무형유산 정보소통을 위한 ‘국제 플랫폼’ 역할을 다할 생각이다.
  • [여야 잠룡들 주연급 활약] 문재인, 부산 상주하며 서울 유세도 원격지원

    [여야 잠룡들 주연급 활약] 문재인, 부산 상주하며 서울 유세도 원격지원

    야권의 잠재적 대선주자로 꼽히는 문재인(얼굴)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서울과 부산을 오가며 10·26 재·보선 지원 유세에 적극 나서고 있다. 문 이사장은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나선 박원순 범야권 후보와 22회 사법시험 동기로서 박 후보 측 공동 선대위원장을 맡고 있다. 정치권에 첫발을 내딛는 그가 대권주자로서 정치력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박 후보의 당선이 필수적이다. 그가 서울시장 선거에서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이유다. 문 이사장은 18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잠실종합운동장에서 열린 ‘범외식인 10만인 결의대회’를 찾아 박 후보의 선거유세를 지원했다. 박 후보와 함께 행사장 곳곳을 돌며 외식인들에게 지지를 호소한 문 이사장은 박 후보에게 쏟아지는 여권의 네거티브 공세에 대해 “젊은 유권자들이 정치를 불신하고 비웃게 만들도록 해 반사이익을 보려는 것 같은데, 이는 구태정치의 전형”이라면서 “시민들이 단호히 나서서 투표를 통해 네거티브하면 안 된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 논란에 대해서도 맹비난했다. 문 이사장은 “나경원 후보가 노무현 전 대통령 사저에 대해 아방궁이라고 비난했는데 명예훼손 행위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면서 “내곡동 사저는 충분히 가졌으면서도 탐욕을 부리는 것으로, 공공선을 위해 헌신하고 봉사해 온 박 후보와 뚜렷하게 대비된다.”고 말했다. 문 이사장은 20일부터 선거 직전까지 부산에 상주하며 부산 동구청장 선거 지원에 주력할 예정이다. 동구청장 재선거는 한나라당의 대선주자인 박근혜 전 대표와 대권을 놓고 벌이는 대리전으로도 불린다. 여당의 텃밭인 부산에서 민주당 이해성 야권단일후보가 당선된다면 문 이사장은 손학규 민주당 대표,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과 함께 대권주자로 급부상하게 된다. 문 이사장은 부산 동구청장 재선거 판세에 대해 “부산 판세는 좋다. 우세한 판세가 투표에 반영돼야 한다.”면서 “투표율을 높이는 게 관건이다. 앞으로 동구에 상주하며 투표율을 높이는 데 노력을 다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황비웅기자 stylist@seoul.co.kr
  • [서울시장 보선 D-7] 朴, 복지 외치고

    [서울시장 보선 D-7] 朴, 복지 외치고

    박원순 범야권 서울시장 후보는 18일 ‘막말·흑색선전’ 네거티브 선거 추방 유세전을 벌이면서 무상급식·보육에 대한 정책협약식을 갖는 등 복지 행보에 나섰다. 복지 대 반(反)복지 구도를 형성해 한나라당과의 차별화를 시도하고 동시에 적전 분열을 시도하는 행보다. ●문재인 “이런 네거티브전 처음” 박 후보는 이날도 한나라당의 네거티브 선거전에 대한 비판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서울 잠실종합운동장에서 열린 ‘범외식인 10만인 결의대회’에 손학규 민주당 대표,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 등과 참석해 인사를 한 뒤 기자들을 만나 한나라당의 네거티브전을 “청산해야 할 구태정치의 상징”이라고 규정했다. 박 후보는 “한나라당의 네거티브에 제가 (네거티브로)반격하고 있지는 않지만 흑색선전, 인식공격을 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면서 “새로운 정치를 하기 위해 한나라당의 네거티브가 청산대상임을 보여주고 미래정치와 비전 능력을 보여주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네거티브는 선거에서 이길 수 없다.”고 덧붙였다. 박 후보는 한나라당이 병역기피 의혹을 거듭 제기하는 데 대해 “그렇게 해서 제 병역비리가 드러났느냐. 속이고 부정을 저질렀다는 게 밝혀졌느냐.”고 반문했다. 문 이사장도 “정당 차원의 이런 뻔뻔스러운 네거티브는 처음 본다.”면서 나경원 한나라당 후보가 노무현 전 대통령 사저를 아방궁이라고 비판한 것을 거론한 뒤 “(나 후보에게)사과를 요구했는데 의혹을 가질 만한 게 더 있는 것처럼 명예를 훼손하는 작태를 계속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朴 “보육교사 처우 개선” 약속 박 후보는 이날 문 이사장 등과 함께 서울 강북구 수유역 주변 상가와 도봉구 도깨비시장 등을 돌며 ‘흑색선전 막말정치 추방한다’는 내용의 유세전을 통해 지지표를 끌어모았다. 손 대표도 의원총회를 통해 의원들의 선거 참여를 독려하는 등 전방위 선거 유세를 지원했다. 앞서 박 후보는 오전 서울친환경무상급식추진운동본부, 전국지역아동센터교사협의회와 잇따라 정책협약식을 갖고 질 높은 친환경 무상급식 확대와 보육교사 처우 개선을 약속했다. 강주리기자 jurik@seoul.co.kr
  • [한국은 수수료 공화국] “카드수수료 더 낮춰라” 외식인 ‘솥단지 시위’

    18일 ‘점심대란’은 없었다. 음식점 주인들은 종업원들이 영업을 계속하도록 조치했다. 때문에 ‘점심장사’를 하는 사무실 밀집지역의 음식점들은 정상적으로 돌아갔다. 일부 식당은 일일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하기도 했다. 음식점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한국음식업중앙회는 이날 오전 11시 예정대로 ‘범외식인 10만 결의대회’를 서울 올림픽 주경기장에서 열었다. 당초 중앙회가 목표했던 10만명에는 못미쳤지만 7만 5000명(경찰 추산 5만명)이 참석했다. 지난 2004년 11월 한강시민공원에 3만명이 모인 집회 이래 최대 규모다. 행사장 주변의 인근 도로는 오전부터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관광버스 1700여대가 몰리는 바람에 큰 교통혼잡을 빚었다. 그나마 참가자들이 승용차 대신 관광버스를 이용해 교통대란 수준은 아니었다. 주경기장 입구에는 ‘외식산업의 역군, 미래를 여는 주인공’이라고 적힌 초록색 대형 현수막과 대형 애드벌룬이 내걸렸다. 버스에서 내린 참가자들은 ‘300만 외식업 종사자의 생존권을 보장하라’, ‘음식업이 봉이냐 신용카드수수료 즉각 인하하라’고 적힌 피켓을 앞세우고 경기장 안으로 들어갔다. 중앙회 충남도지회 소속 최모(57)씨는 “오죽했으면 서울까지 올라왔겠느냐. 문을 열어도 손님이 없고, 그나마 찾아오는 손님도 음식값이 만원이 안 되는데 신용카드를 긁는다.”면서 “카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돈 벌어서 개 주는 꼴”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중앙회 수원지부 한명희(49·여)씨도 “카드사의 수수료 인하율은 체감도 안 되는 수준”이라면서 “국민들이 어렵게 장사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해 줬으면 한다.”고 호소했다. 남상만 중앙회장은 개회사에서 “카드사들이 내놓은 수수료율 인하 방안은 아무런 실효성이 없다.”면서 “여신금융업법 개정만이 해답”이라고 주장했다. 또 “우리가 하루 영업을 포기하면서까지 이 자리에 모인 이유는 관계 부처의 홀대와 국가의 무관심에 대응해 우리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서다.”라고 말하자 환호와 박수가 터져나왔다. 음식점 주인들은 결의대회에 맞춰 철저하게 준비해 놓았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 모 음식점 종업원 오현숙(37·여)씨는 “평소에는 사장 부부 등 다섯명이 일하는데 오늘은 서빙 종업원 3명만 남아 바빴지만 별다른 차질없이 점심을 제공했다.”고 말했다. 특히 서울 강남, 명동 등 직장인 밀집지역은 예상 외로 혼란이 적었다. 서울 중구 무교동의 한 회사에 다니는 김모(31)씨는 “점심 대란이 있을 거라는 말을 듣고 다소 걱정했지만 다행히 큰 불편 없이 음식점을 이용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윤샘이나기자 sam@seoul.co.kr
  • [기고] 가갸거겨 거리/최민호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청장

    [기고] 가갸거겨 거리/최민호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청장

    최근 세종시의 마을 공원 도로 등을 순우리말로 이름지어 한글로 표기하는 데 대해 국민의 많은 관심과 격려가 있었다. 우리 역사상 가장 위대한 명군 세종대왕의 업적 중 우리 민족의 만년 세세 영원한 자랑이자 긍지인 한글. 그리고 그런 자부심을 직접 구현했다는 점에서 가슴 벅차다. 일본의 대표적 지식인 시바 료타로(司馬遼太郞)의 일화가 생각난다. 하루는 한국의 젊은 외교관에게 물었다. “한국이 세계에 자랑할 만한 것이 있다면 무엇이겠소?” “한글이라고 생각합니다.” 시바 료타로는 또 물었다. “한글이 한국의 독자적인 창조물이기 때문입니까?” “독자적일 뿐만 아니라 당시 세계의 수많은 문자 체계를 집대성한 결과일 수도 있으니까요.” 시바 료타로가 말했다. “그렇습니다. 한글의 위대성은 많은 한국인이 자랑하는 독자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국제성에 있는 것입니다. 한글은 당대 최고의 지성이 중국을 오가며 산스크리트어, 파스파 문자, 티베트문자, 굽타 문자, 나아가 렙차문자까지 연구하여 그 결정체를 집적시켜 만든 문자입니다. 표음문자는 인류의 문자체계 중 가장 나중에 발달한 문자체계이지요. 우연히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한국인은 그러한 위대한 종합성을 말하지 않고 늘 세종대왕이 창제한 독자성만 말하더군요. 한국의 지성은 편협하다고 생각했습니다만, 오늘 학자도 아닌 관료에게서 그런 말을 들으니 반갑기도 하고 놀랍기도 합니다.” 세종시의 거리나 시설물의 이름을 순수 우리말로 정해 한글로 표기해 보고자 하는?생각은 바로 이러한,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한글을 세종시의 삶에 잇대어 보고자 하는 실마리에서 출발하게 된 것이었다. 거리의 순서대로 ㄱ(기역), ㄴ(니은), ㄷ(디귿)으로 이름이 붙여졌다. 자음 14개의 구역으로 구분되어 차례대로 도로 이름이 붙여졌다. 겨레로, 늘빛로, 다솜(사랑의 옛말)로, 라온(즐거운의 옛말)로, 배움로, 슬기로…. 교량 또한 마찬가지이다. 금강1교, 금강2교 하던 이름이 가람교, 학나래교, 한두리교, 우람 한교, 우람 두교 등으로 바뀐다. 학교 또한 참샘 초등학교, 솔밭 중학교, 한솔고등학교이다. 한뜰 마을, 큰뜰 공원 등 아름답고 산뜻한 이름이 계속 이어진다. 세종시의 보도블록은 예쁜 한글의 자음과 모음 문양으로 디자인된다. 독특한 우리만의 거리 문양과 이름이 탄생하면서 누구든 길을 걸으면서 한글을 깨우칠 수 있다. 현 위치를 말할 때 긴 설명이 필요 없다. 도로 이름만 들어도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 한글의 과학성이 유감없이 발휘된다. 세종대왕께서 백성을 사랑하고 민족의 영원한 자존을 위해 창제하신 한글이 600년 뒤에 세종시라는 도시의 거리에서 그 가치를 발하게 된 것이다. 세종시는 나라의 미래를 좌우할 정책 결정의 행정중심지, 국가 발전의 원동력이 될 과학기술의 허브, 우리 국민의 미래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수준 높은 미래도시, 그리고 가장 한국적인 전통이 살아 숨쉬는 문화예술의 명품도시다. 도시 전체가 순우리말로 이름지어져 한글로 표기된 국내 유일의 도시로서, 세종시는 앞으로 한글의 세계화 전진기지가 될 것이다. 세종시를 명군 세종대왕이 내려주신 최대의 선물로 생각하고, 최고의 세종시 건설에 하나하나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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