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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북 한의사 김지은의 고려의학 이야기] (21) 다한증엔 황기 달여 마시길

    8월 하순으로 접어들면서 무더위가 한풀 꺾였지만 아직도 한낮 날씨는 한여름만큼 뜨겁다. 만나는 사람마다 휴가는 다녀왔느냐고 인사처럼 묻는 계절이다. 하지만 이런 휴가철 분위기가 싫고 이 계절이 괴로운 사람들도 있다. 땀을 병적으로 많이 흘리는 다한증 환자들이다. 다한증 환자가 선풍기나 에어컨이 없는 곳에 1분이라도 서 있으면 땀이 비 오듯 흐른다. 다한증이 괴로운 것은 단순히 땀이 많아서가 아니다. 스트레스가 심하다 보니 대인기피증까지 오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반드시 치료해야 한다. 다한증은 면역체계 이상으로 자율신경계가 오작동해 나타나는 증상이다. 땀이 많아 손과 발바닥이 항상 젖어 있고, 사타구니에서도 속옷이 젖을 정도로 땀이 나고 이유 없이 전신에서 땀이 흐르기도 한다. 다한증 치료에는 보통 황기를 쓴다. 황기는 기를 보하는 약재로 알려져 있으나 피부표면의 땀구멍을 조여 땀이 잘 나지 않게 하는 작용도 한다. 황기는 보통 12g을 물에 달여 하루 세 번 식후에 먹는다. 땀을 많이 흘리면 체력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 스트레스가 심해져 소화장애가 발생하게 된다. 이때 사용할 수 있는 약재가 백출(삽주뿌리)과 귤 껍질이다. 백출과 귤 껍질을 2대1의 비율로 섞어 곱게 가루를 내고서 한 번에 6g씩 하루 세 번 식사 사이에 먹으면 된다. 참기름 한 숟가락을 거품이 없어지도록 끓여 식힌 다음 계란 3개를 넣고 잘 섞어 하루 세 번 끼니 전에 먹어도 도움이 된다. 정수리 부근 백회혈과 척추 부근의 간유혈에 흰 쌀알 크기의 뜸봉으로 뜸을 떠도 땀이 멎는다. 다한증은 면역체계의 이상과 신경계의 불균형으로 발생하는 질환이기 때문에 평소 스트레스 관리를 비롯한 건강관리를 잘 해줘야 한다. 결핵이나 늑막염과 같은 기저질환을 앓아 땀을 많이 흘리는 환자는 우선 기저질환부터 치료해야 한다. 몸이 약해 잠자리가 젖도록 식은땀을 흘리는 것도 병이다. 어린이들이 식은땀을 많이 흘리면 자주 몸을 닦아주고 옷을 얇게 입히거나 얇은 이불을 덮어주는 게 좋다. 잠자리와 속옷은 마른 것으로 자주 갈아줘야 2차 질환을 예방할 수 있다.
  • 쉬려고 떠난 휴가, 장거리 운전으로 허리는 고생

    쉬려고 떠난 휴가, 장거리 운전으로 허리는 고생

    강서구 화곡동에 사는 김모씨(45세, 남)는 7월 한 달 내내 휴가날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올 여름 피서지를 동해안의 멋진 풀빌라 펜션에서 보내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드디어 고대하던 휴가날, 빽빽하게 차가 들어선 고속도로 위에서 김 씨는 갑자기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파오면서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잠시 휴게소에 들러 스트레칭도 해보고 휴식을 취해봤지만 도통 통증이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아 결국 숙소에 도착하기도 전에 근처 병원을 찾았다. 그런데 ‘오랜만에 장거리 운전을 해서 일시적으로 허리가 아픈 거겠지’ 라고 생각한 김 씨는 뜻밖의 진단에 할 말을 잃었다. 허리디스크가 이미 상당부분 진행돼 전문치료를 받아야 하는 상황까지 진전되어있던 것이다. 김씨 처럼 최근 휴가철을 맞아 장시간 운전을 한 뒤 허리 통증을 호소하며 병원을 찾는 사람들이 점차 늘고 있다. 전문가들은 장시간 운전을 할 경우 허리에 뻐근한 통증이 쉽게 올 수 있는데 대부분 잘못된 자세로 운전하는 습관이 들여진 것이 주요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허리와 엉덩이가 움푹 들어가는 자동차 운전석의 구조는 운전자의 허리를 휘게 하고, 어깨를 굽게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운전을 몇 시간 하고 나면 허리에 뻐근한 통증이 느껴지는 것이다. 따라서 휴가철 장거리 운전을 앞두고 있다면 허리와 관절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예방법을 알아두는 것이 좋다. 먼저, 고속도로에서의 긴 정체가 예상된다면 긴장한 상태로 허리와 관절이 오랜 시간 경직 돼 있지 않도록 올바른 운전 자세를 유지하는 것이 좋다. 시트의 등받이 각도를 약 110도 정도로 맞추고, 핸들을 잡는 손은 10시 10분 정도 위치할 수 있도록 해 허리와 등, 어깨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한다. 아울러 휴게소가 보이면 최대한 자주 쉬어주며, 차에서 내려 가벼운 스트레칭으로 뭉친 근육을 풀어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다. 그런데, 만약 장거리 운전처럼 허리에 부담이 가해지는 활동이 일상생활에서도 지속된다면 최악의 경우 허리디스크와 관절에 무리를 주어 디스크가 조금씩 밀려날 수 있는 위험이 있다. 나누리강서병원 박정현 원장(신경외과 전문의)은 “허리 디스크는 디스크에 퇴행성 변화가 오면서 발생하는 질병으로, 요추 뼈 사이의 물렁뼈가 튀어나가면서 신경을 눌러 통증이 발생되게 된다”며, “초기에는 증상을 잘 느끼지 못할 수 있지만 진행될수록 다리, 허리 등의 통증이 심각해져 약간의 통증이 왔을 때 조기치료를 받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허리디스크는 허리에 가해지는 부담이 큰 원인이 된다. 김 씨의 경우 휴가철 장시간 운전으로 인해 그 동안 조금씩 진행 돼 온 허리디스크가 문제를 일으킨 경우이지만, 운전직이나 오래 앉아 근무하는 사무직 직장인, 잘못된 자세로 공부하는 학생들에게도 허리디스크는 어느 날 갑자기 불현듯 찾아올 수 있다. 이러한 허리디스크는 초기에만 올바른 치료를 해준다면 90% 이상 호전 될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디스크는 초기에 큰 통증이 오지 않기 때문에 자신이 디스크인지 확실히 인지를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이유로 초기치료를 위해서는 증상에 대한 정확한 파악이 중요하다. 만약 허리 통증과 함께 다리가 저리고 당기는 등의 증세가 함께 나타난다면 허리디스크 초기 증상일 가능성이 높으므로 자가진단을 통해 적극적인 치료를 돕는 것이 좋다. 또한 가정에서도 허리디스크를 진단해볼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거실 바닥에 누워 다리를 천천히 들어 올릴 때 30~70도 사이에서 다리의 통증이나 저린 느낌이 나타나는가에 대한 여부를 체크하는 것이다. 이때 엉덩이 끝부분부터 허벅지까지 저리고 당기는 증상이 온다면 허리디스크를 의심해볼 수 있다. 아울러 까치발을 들고 걸을 때 발가락 끝부터 엉치까지 저리다거나 걷는 것이 어려울 정도로 통증이 온다면 탈출된 디스크가 신경을 자극하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파악해볼 수 있다. 이처럼 자가진단을 통해 허리디스크 초기진단을 파악한 경우, 빠른 시간 안에 병원을 찾아 치료를 받는 것이 좋다. 최근 비수술적 치료가 시술시간이 짧고 외상도 적어 많은 디스크환자들이 선호하고 있는 추세다. 치료 후 일상으로의 복귀가 빠르며, 수술적 치료에 비해 짧은 입원기간으로 치료비 부담이 적다는 장점이 있다. 나누리강서병원 박정현 병원장은 “초기진단을 통해 병원에서 전문적인 치료를 받는다면 허리디스크는 충분히 호전 가능하다”며, “요즘에는 수술적인 치료 말고도 경막외 신경성형술(라츠), 고주파 신경치료술 등 비수술적인 요법으로도 충분히 효과적인 치료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초기에 증상을 느낀다면 빠르게 치료를 받는 것이 좋다”고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시골로 유학 간 도시 아이들… 자연에서 교육을 보다

    시골로 유학 간 도시 아이들… 자연에서 교육을 보다

    수학과 영어, 논술 학원 등 방과 후 수업에 다니는 도시의 아이들. 이들에게 유년시절은 어떻게 기억될까. EBS의 ‘하나뿐인 지구’는 8일 밤 8시 50분에 방영되는 ’시골학교, 도시 아이들’을 통해 풍부한 생명력과 치유력을 가진 자연이 어떤 학원보다 아이에게 최고의 교육환경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전한다. 프로그램은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해외 유학을 떠나는 대신 시골 학교를 택한 도시 아이들의 모습을 따라가 본다. 충북 단양군 가곡면에 자리한 한드미마을에는 얼마 전까지 도시에서 살았던 초등학생 30여명이 있다. 손에 스마트폰을 쥐고 살며 대형 할인점에서 마음껏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었던 아이들은 구멍가게 하나 없는 산골마을을 전자기기 없이 누빈다. 학생들을 이곳으로 이끈 것은 산촌유학센터다. 2008년 한드미마을 인근의 가곡초등학교 대곡분교는 폐교 위기에 처했었지만, 산촌유학이 시작되면서 폐교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산촌유학 3개월 차인 한우진(12)군은 서울에선 학원 5곳을 다녔다. 감당하기에 버거운 스케줄 탓에 어머니와 갈등의 골만 깊어졌다. 마을로 이사 온 우진이는 학원 대신 동네 텃밭으로 간다. 간식용 감자를 캐러 간 아이들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감자보다 애벌레다. 친구들과 줄지어 마을 어귀의 동굴 탐험에 나서면 어느 순간 등골이 오싹해지면서 식은땀이 흐른다. 도시의 학교생활이나 과도한 경쟁에 상처를 입은 아이들은 대자연에서 맘껏 에너지를 발산하고 자연의 생명력을 보면서 변하기 시작했다. 자연은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체험! 중앙119구조본부 재난현장 서바이벌] 처참한 붕괴 현장… 빛 찾아 구사일생

    [체험! 중앙119구조본부 재난현장 서바이벌] 처참한 붕괴 현장… 빛 찾아 구사일생

    세월호 참사 이후 선박사고를 비롯해 화재, 지하철사고 등 각종 재난사고 방지 대책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정부는 국가안전처를 신설하는 등 정부조직법 개정 작업에 착수했고, 소방관의 국가직 전환이 온 국민의 관심을 받는 등 ‘안전’이라는 단어가 연일 강조되고 있다. 그러나 실제 재난상황과 마주했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알고 있는 사람을 주변에서 찾아보기는 드물다. 초·중·고등학교나 공공기관 등 그 어느 곳에서도 필수적으로 실습형 안전교육을 하는 곳은 없기 때문이다. 중앙119구조본부(이하 구조본부)가 진행하고 있는 ‘재난현장 서바이벌’은 제대로 된 안전교육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준다. 건물 붕괴, 수난 사고, 지하철 사고, 응급환자 발생 등 각종 재난 상황에서 대응방법과 행동요령을 실체 체험을 통해 몸으로 익힐 수 있다. 지난 15일 경기 고양시 시민 100명이 참석한 가운데 경기 남양주시에서 진행된 이 프로그램에 취재진이 직접 뛰어들었다. “붕괴된 건물 안에 고립된다고 상상해 보신 적 있나요. 이번 훈련은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등 대형 재난에 대비한 실전 훈련입니다.” 외벽이 절반 이상 무너져 뼈대만 남은 3층 건물 앞에서 훈련 교관은 건물에 고립됐을 때 행동요령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불필요한 행동이나 고함 등을 질러 체력을 소모하지 말 것. 규칙적으로 벽이나 파이프, 벽을 두드려 사람이 있음을 알릴 것. 휴대전화는 한 시간 간격 등 규칙적으로 켜서 배터리를 절약할 것. 2차 붕괴를 대비해 테이블 밑 등에 대피해 있을 것. 식수 확보를 위해 화장실이나 세면대 등을 미리 찾아 놓을 것. 설명은 이어가던 교관은 “지금까지는 위험이 없어질 때까지 대기하는 수동적인 행동요령에 대한 설명”이라며 “이제 실제 붕괴상황을 체험하며 능동적으로 탈출공간을 확보하는 훈련을 해보겠다”고 말했다. 훈련에 참석한 시민들은 뼈대만 남은 3층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붕괴된 건물을 그대로 재현한 훈련장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웠다. 교관의 지시에 따라 휴대전화 전원을 모두 끄고 나니 그제야 두려움이 엄습해왔다. “허리 굽히면서 자세 최대한 낮추고, 오로지 붕괴된 이 건물에서 나가는 것만 생각하세요. 두 손과 발을 모두 사용해서 주변을 탐지하고, 소리가 크게 들리는 방향, 조금이라도 빛이 나오는 방향으로 이동해야 합니다.” 어둠 속에서는 오로지 사람들의 침 넘기는 소리만 들렸다. 훈련 시작 전 이야기를 나누며 웃고 떠들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폭이 1m도 채 되지 않는 건물 복도 곳곳에는 무너진 콘크리트와 매트리스, 소파, 책상 등 각종 집기가 널브러져 있었다. 귀를 쑤시는 드릴 소리와 떨어지는 빗물, 한 줄기 빛조차 허락하지 않은 암흑 속의 붕괴 현장은 처참했다. ●암흑 속 50m 이동에 30여분 걸려 진땀 훈련에 참가한 시민들은 암흑 속에서 손끝과 발끝의 감각만으로 탈출구를 찾기 시작했다. 이동하는 내내 각종 집기와 잔해들에 치이는가 하면 ‘보이지 않는다’는 공포감과 긴장감에 식은땀이 흘러 어느새 온몸이 젖어 있었다. 50m라는 짧은 구간이 수십㎞처럼 느껴졌다. 콘크리트 잔해들 사이로 새어나오는 빛을 따라 이동한 지 30여분이 지나서야 탈출구를 찾았다. 탈출구는 한 사람이 기어서야 겨우 통과할 수 있는 크기였다. 사람들이 붕괴된 건물에서 나오고 이내 훈련에 참석한 시민들이 무너진 건물 안에서 구조하기로 돼 있었던 25㎏짜리 사람 모형도 함께 탈출했다. 훈련장에 들어가기 전 “전체 길이가 50m 정도면 탈출하는 데 10분 정도면 충분하지”라며 자신만만해 했던 박동빈(50)씨의 얼굴은 땀으로 뒤덮여 있었다. 박씨는 “실제로 붕괴된 건물은 이곳보다 더 처참할 것 아니냐”며 “그나마 이번 체험을 통해 탈출 요령이나 생존방법을 터득해서 비슷한 재난 상황이 닥쳐도 어느 정도 대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은 생겼다”고 말했다. ●매일 타는 지하철인데… 수동 개폐장치 어딨더라 붕괴된 건물에서 빠져나오고 난 뒤에는 지하철 화재 발생 때 탈출 요령에 대한 훈련이 진행됐다. 훈련장에는 서울지하철 차량을 그대로 가져와 체험용으로 개조한 실물 전동차가 있었다. 소화기나 수동 개폐장치의 위치도 그대로였다. 실제 훈련을 하기 전 화재발생 때 행동요령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노약자·장애인석 옆에 있는 비상 버튼을 눌러 승무원과 연락할 것. 객차마다 배치된 소화기를 사용할 것. 출입문을 수동으로 열거나 비상용 망치나 소화기로 유리창을 깰 것. 스크린도어가 열리지 않으면 스크린도어에 설치된 빨간색 바를 밀고 나갈 것. 실제 훈련이 시작되자 메케한 연기가 지하철을 가득 메웠고 빨간 조명이 깜박이는 등 화재 상황이 그대로 연출됐다. 참석자들은 교육받은 대로 침착하게 문을 열고 탈출했다. 훈련에 참석한 하영란(59·여)씨는 “교육을 받기 전 모의 탈출훈련에서는 지하철 문이 열리지 않아 당황했다”며 “매일 타고 다니는 지하철이지만 수동 개폐장치가 어디 있는지는 오늘에서야 알게 됐다”고 말했다. ●선박사고 비상벨 울리고 구명조끼 착용 필수 선박·수난사고 훈련에서는 세월호 참사의 영향인지 교육에 참석한 시민들의 질문 공세가 이어졌다. 훈련교관은 “실제 선박사고는 변수가 많아 훈련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면서도 “휴대전화나 비상벨로 사고발생 사실을 알리고 구명조끼를 착용하는 것은 필수”라고 강조했다. 이날은 훈련장 사정상 수난 구조훈련만 이뤄졌지만 평소에는 배가 침몰하는 상황을 가정해 최대 수심이 10m인 수영장 속으로 구명조끼를 입고 뛰어드는 ‘비상 퇴선 훈련’도 이뤄진다. 훈련에 참석한 시민들과 훈련 교관들은 재난 및 사고에 대비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안은 안전 교육의 의무화라고 입을 모았다. 어릴 때부터 반복적인 교육과 훈련을 통해 재난에 대응하는 행동과 요령이 몸에 배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훈련에 참석한 강성우(55)씨는 “국가안전처를 만들고, 장관을 교체하는 것으로 제대로 된 재난 대응이 이뤄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정부가 답답하다”며 “오늘 체험한 훈련처럼 내실 있는 안전교육을 제대로 알리고 보급하고, 점차적으로 교육 대상을 넓혀가는 것부터 해야 되는 것 아니냐”며 세월호 참사 이후 정부의 대응을 따끔하게 지적했다. 강씨는 이어 “기성세대뿐 아니라 초등학생이나 유치원생 등 아이들을 상대로 이러한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무·상시 안전교육 실시해야 함성균(42)씨는 “지금까지 모르고 있었던 사고대비 행동요령들이 너무 많았다”며 “아무것도 모른 채로 사고상황을 맞이하면 당황하다가 목숨을 잃는 위험까지 처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함씨는 “이러한 안전교육이 한 번으로 끝나는 이벤트식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학교, 단체, 회사, 관공서 등에서 의무적·상시적으로 실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난교육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총괄하고 있는 박종복 소방위도 “안전사고 대비 교육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돼야 한다”며 “특히 세월호 참사 이후 국민안전 의식의 중요성이 강화되고 있는 만큼 안전교육이 일반 국민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안전사고 예방과 대처 방법 등을 개발해 보급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 [응급처치 이렇게] 뱀에 물리면 5~10㎝ 위 묶고…상처 째거나 빨지 말아야

    [응급처치 이렇게] 뱀에 물리면 5~10㎝ 위 묶고…상처 째거나 빨지 말아야

    여름철에는 물가나 숲이 우거진 산악 지역에서 뱀에 물리는 사고가 급증한다.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독사의 독은 그다지 강하지 않아 설령 물렸다 해도 급사할 만큼 치명적이지는 않다. 하지만 뱀에 물리면 동물에 물렸을 때처럼 일반적으로 파상풍과 국소감염, 과민증상과 같은 합병증이 발생할 수 있어 반드시 응급실에서 치료를 받아야 한다. 뱀에 물렸을 때는 우선 독사인지 아닌지부터 확인해야 하지만 뱀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일반인이 어떤 뱀인지 아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 사람을 물고 빠르게 도망가기 때문에 대부분의 경우 뱀의 꼬리조차 제대로 볼 수 없다. 만약 동료를 문 뱀을 보게 된다면 현장에서 모습을 확인하거나 가능하면 사진을 찍어두는 것이 좋다. 독사는 삼각형 모양의 머리, 수직형태의 동공, 두 개의 송곳니, 코와 눈을 연결하는 주름형태의 골, 꼬리의 가로선이 한 줄 형태이며 독사가 아닌 뱀은 머리와 동공이 둥글고 송곳니가 없고 꼬리의 가로선이 두 줄이다. 독사는 먹이에게 독을 주입하기 위해 입 앞쪽에 송곳 같은 독니를 갖고 있다. 따라서 물린 부위에는 1~2개의 깊은 구멍이 생기게 된다. 독사가 아닌 뱀에 물린 자국은 말굽 모양이다. 응급처치는 당황하지 말고 차분하게 해야 한다. 먼저 환자를 뱀으로부터 피신시킨 뒤 눕혀 안심시키고 나중에 부을 것에 대비해 반지 등을 뺀다. 물린 부위는 심장보다 낮게 위치시킨다. 흥분은 절대 금물이다. 소위, ‘호들갑’을 떨어 물린 환자가 긴장하면 혈류 속도가 빨라져 독소가 더 빨리 전신으로 퍼질 수 있다. 나뭇가지 등을 사용할 수 있다면 물린 팔 또는 다리에 부목을 대 고정한다. 근처에 물이 있다면 물린 부위를 닦아내 피부에 남은 독의 일부를 제거한다. 팔이나 다리를 물렸을 때는 넓은 헝겊(손수건, 찢은 셔츠 등)으로 물린 부위의 5~10㎝ 위를 묶어준다. 상처부위에서 심장으로 가는 정맥 혈류와 림프액의 흐름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동맥을 차단하는 것이 아니므로 지혈할 때처럼 강하게 묶으면 안 된다. 묶은 후 피부와 헝겊 사이에 손가락 하나가 통과할 수 있을 정도의 세기이면 충분하다. 구조대를 기다리는 동안 환자가 식은땀을 흘리고 구역질을 하거나 의식이 흐려지면 쇼크 징후이므로 눕힌 상태에서 물리지 않은 다리를 30도 정도 들어준다. 물린 상처를 칼로 째는 행위, 독을 입으로 빨아내는 행위는 하지 않는다. 환자에게는 먹을 것이나 마실 것을 줘서도 안 되며 곧바로 119에 신고한다. 윤한덕 국립중앙의료원 응급의료센터장
  • [응급처치 이렇게] 해파리 쏘이면 바닷물로 10분 세척… 피부에 박힌 촉수 빼야

    [응급처치 이렇게] 해파리 쏘이면 바닷물로 10분 세척… 피부에 박힌 촉수 빼야

    바닷가로 물놀이를 나가는 여름철에는 바다 생물에게 쏘이거나 다치는 환자가 늘어난다. 해파리에 쏘인 경우 대개 경미한 피부 증상을 보이고 곧 회복되지만 최근에는 작은부레관해파리와 입방해파리같이 생명이 위독할 정도의 전신반응을 일으키는 맹독성 해파리가 발견되고 있어 특히 주의해야 한다. 독성이 강한 해파리에 쏘이면 피부의 국소 반응을 동반한 심한 통증이 나타난다. 생명을 위협하는 전신 독성 반응, 심한 알레르기 반응이 나타날 수도 있다. 독성이 강하지 않은 종류에게 쏘인 경우에는 급성 피부 반응을 보이는데 쏘인 부위가 아프고 빨갛게 부어오른다. 보통 수일 내에 저절로 가라앉지만 종종 염증이 생겨 피부 착색이 생길 수도 있다. 해파리에 쏘였을 때는 바닷물로 10분 이상 환부를 세척하고 피부에 남아있는 촉수를 제거해야 한다. 수돗물과 같은 민물은 독주머니를 터뜨릴 수 있기 때문에 민물로 세척하는 것은 권하지 않는다. 촉수를 제거할 때는 절대 맨손으로 만지지 말고 신용카드 등 플라스틱 카드로 살살 긁어 제거하는 게 좋다. 이때 쏘인 부위를 너무 문지르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맹독성의 입방해파리에 쏘인 경우 독을 억제하는 데 식초가 효과적이다. 해파리의 종류에 따라 알코올이나 베이킹소다가 효과적인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일반인이 해파리의 종류를 구분하는 것은 쉽지 않으므로 현장에서 응급처치를 할 때는 바닷물 세척을 권한다. 해파리의 독은 열에 약하다. 이전에는 쏘인 부위에 얼음주머니를 대주라고 권했지만 최근에는 열이 해파리의 독성을 감소시킨다는 연구 결과도 나오고 있다. 45도 정도의 온수에 20분 정도 해파리에 쏘인 부위를 담근 환자의 87%가 통증이 감소했다고 한다. 반면 얼음주머니를 댄 환자의 경우 33%가 통증이 감소했다는 보고가 있다. 다만 입방해파리 같이 독성이 강한 해파리에도 온수 샤워가 효과가 있는지는 연구가 더 필요하다. 해파리 쏘임의 대부분은 응급처치 정도로 증상이 가라앉지만 쏘인 부위의 국소 반응 외에 오심, 구토, 식은땀, 실신 등의 전신 증상이 나타나면 즉시 응급실로 이송해야 한다. 독성 반응이 뒤늦게 나타날 수도 있기 때문에 해파리에 쏘이고 전신 반응을 보인 환자들은 최소 8시간 이상 주의 깊게 관찰해야 한다. 입방해파리 같이 많은 양의 촉수에 쏘여 광범위한 피부괴사가 발생했다면 세척 후에 화상에 준한 상처치료를 해야 한다. 눈의 각막을 쏘인 경우에는 생리식염수로 세척하고 안과 진료를 받아야 한다. 정시영 중앙응급의료센터 응급의료평가팀장
  • [길섶에서] 부끄러움/박찬구 논설위원

    출근시간,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뒷발이 빠져나오기 무섭게 철커덩 문이 닫힌다. 뒤에서 닫힘 버튼을 눌렀나 보다. 꼬리가 잘려나가는 기분, 왠지 씁쓸했다. 누군가의 바쁜 일상에 짐이 된 듯한 민망함, 혹은 내침을 당한 듯한 괘씸함이 엇갈린다. 혀를 찼다. 반나절이 지났을 무렵, 하행 엘리베이터를 탔다. 중간에 서고, 또 서고를 반복했다. 나도 모르게 버튼을 눌러대며 앞사람의 꼬리를 계속 자르고 있었다. 피식하며 쓴웃음이 샜다. 퇴근길, 약속시간에 쫓기며 간신히 지하철 2호선에 올랐다. 몸을 돌리기 힘들 정도로 붐볐다. 바로 옆 20대 승객에게 눈길이 갔다. 양손으로 스마트폰을 쥐고 게임에 몰입해 있었다. 다른 승객 서넛도 스마트폰에 시선을 고정한 채 기사를 검색하거나 드라마를 보고 있었다. 양쪽 팔은 죄다 ‘V’자, 그 팔들만 일자로 뻗어 내려도 주변 사람들의 불편함이 덜할 텐데…. 순간 뒤쪽에서 누군가 거친 숨을 쉬며 내 등을 떠민다. 아차 싶었다. 온갖 잡동사니로 불룩한 배낭을 얼른 등에서 내려 양다리 사이로 가져갔다. 화끈하며 식은땀이 흘렀다. 박찬구 논설위원 ckpark@seoul.co.kr
  • 빨리 온 무더위… 물 섭취 충분히, 낮엔 시원하게

    빨리 온 무더위… 물 섭취 충분히, 낮엔 시원하게

    예년보다 빨리 찾아온 무더위에 미세먼지까지 겹치면서 여름철 건강관리에 비상이 걸렸다. 겨울 동안 움츠러들었던 신진대사기능이 봄을 맞아 활발해지면서 일종의 피로 증상인 춘곤증이 나타나듯 계절 변화에 적응하기까지는 적어도 1~2주간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초여름을 느끼기도 전에 준비도 없이 한여름을 맞은 우리 몸은 이미 과부하가 걸린 상태다.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의 ‘서울의 여름철 고온현상 사망자 발생 연구’ 결과를 살펴보면 요즘같이 때 이른 무더위가 닥쳤을 때 한여름보다 고령자들의 사망률이 급증했다. 하루 평균기온이 똑같이 30도까지 치솟아도 한여름에는 사망자가 23% 늘어난 데 비해 초여름에는 36%까지 늘어났다. 대개 6월의 이른 더위보다 다가올 한여름의 뙤약볕을 걱정하지만 요즘 같은 이른 더위가 몸에 훨씬 해롭다는 얘기다. 우리나라의 여름철 평균기온과 폭염일수 빈도, 강도는 해마다 상승하고 있으며 특히 올해 여름철 기온은 북태평양 고기압의 영향으로 평년보다 높을 것으로 기상청은 예상했다. 여름철 건강을 관리하는 최선의 방법은 물을 자주 마시고, 시원하게 지내고 낮 12시부터 오후 5시까지 가장 더운 시간대에는 쉬는 것이다. 야외 활동과 작업이 불가피한 경우라면 적어도 자신의 건강상태를 살피며 활동 강도를 조절해야 일사병을 피할 수 있다. 흔히 ‘더위 먹은 병’이라고 불리는 일사병은 더운 공기와 강한 태양의 직사광선을 오래 받아 우리 몸이 체온을 제대로 조절하지 못해 생기는 질환으로, 수분과 전해질이 떨어져 무력감, 현기증, 심한 두통이 나타난다. 시원한 곳에서 쉬며 열을 식히고 수분을 보충하면 보통 증세가 금방 가라앉는다. 그러나 생명까지 위협하는 열사병은 그렇지 않다. 일사병은 체온의 변화가 크지 않지만 열사병은 체온조절 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아 40도 이상의 고열이 난다. 얼굴이 창백해지고 식은땀이 나면서 탈진 상태를 보이기도 하고 의식이 흐려져 혼수상태에 빠지기도 쉽다. 지난해도 살인적인 폭염이 계속되면서 14명이 열사병 등으로 사망했다. 땀을 많이 흘리고 극심한 무력감과 피로가 나타나는 열탈진, 팔과 다리 등 근육 부위에 경련이 일어나는 열경련, 일시적으로 의식을 잃거나 어지러움증이 나타나는 열신실, 손이나 발목 등에 부종이 생기는 열부종 등도 모두 주의해야 할 온열질환이다. 만약 이런 증상이 나타난다면 일단 온열질환부터 의심하고 병원을 찾아야 한다. 더위로 면역력이 떨어지는 여름에는 피부에 물집이 생기면서 심한 통증을 유발하는 대상포진도 조심해야 한다. 대상포진은 과거 수두에 걸렸거나 수두 예방 주사를 맞은 사람의 몸속에 잠복해 있던 수두 바이러스가 면역력이 떨어진 틈을 타 다시 활동하면서 신경을 따라 피부에 병을 일으키는 질환이다. 노령 환자의 경우 약 절반 정도에서 마약성 진통제가 필요할 정도로 통증이 심하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대상포진은 이상기온 등의 영향을 받아 최근 5년간 연평균 8.3% 증가했고, 주로 7~9월에 환자가 집중됐다. 대상포진을 예방하려면 지금부터라도 체력을 단련해 면역력을 키우는 수밖에 없다. 한여름에는 밤이 짧은데다 열대야까지 기승을 부려 잠을 설치는 사람이 많은데, 이 때문에 생체리듬이 깨지면 질병에 대한 면역력도 함께 약해진다. 따라서 이런 악순환을 피하려면 미리미리 수면 시간을 일정하게 유지해 잠자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고혈압보다 위험하다는 저혈압도 주로 여름에 나타난다. 인체의 수분량은 콩팥에서 만드는 소변과 땀 등을 통해 조절되는데, 여름철에는 땀을 많이 흘리게 돼 몸 안의 수분량 변화가 심해지면서 조절 기능이 한계에 도달해 혈압이 낮아질 수 있다. 가장 일반적인 저혈압 증상은 현기증이나 두통, 무기력증이지만 심한 경우 시력장애나 실신 등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열사병, 대상포진, 저혈압 등은 병에 걸리기 쉬운 60대 이상의 고령층이 여름에 특히 주의해야 할 질환들이다. 어린아이들은 여름철 수족구병을 조심해야 한다. 수족구병은 가벼운 미열과 함께 혀, 잇몸, 뺨의 안쪽 점막과 손, 발 등에 빨갛게 수포성 발진이 생기는 질환으로 대부분 가벼운 감기 증상으로 끝나지만 면역체계가 아직 발달하지 않은 신생아가 걸리면 사망할 가능성도 있다. 덥고 습한 여름의 불청객 땀띠도 아이들을 괴롭히는 대표적인 여름철 질환이다. 건보공단이 땀띠로 병원을 찾은 환자를 월별로 분석한 결과 전체 방문 횟수의 절반가량이 7~8월에 집중됐다. 땀띠는 땀관이나 땀구멍의 일부가 막혀서 땀이 배출되지 못해 생기는 발진으로 고온다습한 환경에서 잘 생긴다. 땀띠가 생겼을 때 비타민 C를 복용하면 도움이 된다. 춥지 않다고 방심했다가는 겨울 감기보다 지독한 여름 감기에 걸릴 수도 있으니 개인위생은 항상 철저히 해야 한다. 2012년에는 파라인플루엔자 바이러스(PIV) 감염에 의한 감기환자가 급증해 때아닌 감기환자 비상이 걸리기도 했다. 일사병도 문제지만 거꾸로 냉방병도 문제다. 냉방이 잘되는 실내에서 생활하면 인체가 기온 변화에 적응할 기회를 갖지 못해 자율신경계 탈진 증상이 계속된다. 우리 몸이 적응할 수 있는 온도변화는 5도 내외이므로, 실내와 외부 온도 차이는 5도 정도를 유지하는 게 좋다. 강한 에어컨 바람을 계속 쐬면 안구건조증이 생길 수도 있다. 여름만 되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무좀도 개인위생관리로 충분히 피해갈 수 있다. 무좀을 일으키는 피부사상균은 고온다습한 상태에서 잘 번식하기 때문에 외출 후에는 따뜻한 물과 비누로 발가락 사이까지 깨끗이 씻고 수건과 드라이기를 사용해 완전히 건조시키는 것이 좋다. 또 통풍이 잘되지 않는 하이힐, 부츠, 스타킹 착용은 되도록 피하고 가급적 면 양말을 신거나 실내에서 슬리퍼를 착용하는 게 도움이 된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어젯밤 꾼 ‘악몽’, 심장마비 징후일 수 있다”

    “어젯밤 꾼 ‘악몽’, 심장마비 징후일 수 있다”

    누구나 한번 쯤 지독히 무서운 ‘악몽’에 시달리다 새벽에 식은땀을 흘리며 깨어나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보통 악몽은 불안·죄책감 등과 관련이 있는 스트레스 장애의 주요 증상 중 하나로 통계자료를 보면 3~5세 사이 아동의 10~50%, 성인의 50%가 악몽을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나있다. 그런데 이런 악몽이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실제로 몸 속 질환을 알려주는 주요 징후일 수도 있지 않을까? 최근 미국 교육전문 사이트 ‘Grandparents.com’에 건강 전문 저널리스트 베스 레빈이 기고한 칼럼을 보면 악몽은 당신 몸속에 숨겨진 질환을 알려주는 징조일 수도 있다. 보스턴 대학 의대 신경학과 패트릭 맥나마라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통상적으로 꿈은 사람이 REM 수면을 하는 동안 발생한다. 이때 호흡 문제, 강렬한 호르몬 변화, 스트레스가 나타나면 이 자극이 뇌로 전달돼 악몽을 유발할 수 있다. 즉, 신체적 변화가 악몽과 어느 정도 연관이 있다는 뜻이다. 1. 심장 질환 지난 2003년 스웨덴 의학 연구결과를 보면, 중장년층 남성과 여성들이 악몽을 꿀 때 심장박동이 갑자기 증가하는 등 불규칙해지고 가슴경련과 통증이 유발됐다. 특히 이 증세는 40~64세 사이 여성층에게서 자주 나타났는데 폐경 후 더 심각해지는 것으로 조사됐다. 악몽도 꿈의 일부이기에 이는 REM 수면과 관련이 깊다. 미 국립 신경장애·뇌졸중 연구소는 REM 수면 시 신체에 가해지는 일정 스트레스가 호흡을 가쁘게 하고 심장박동에 영향을 준다고 설명한다. 이는 REM수면 시 빠르게 안구가 운동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 맥나마라 교수는 REM 수면이 뇌 부분 자율 신경계에 영향을 주는 것이 과민 반응으로 이어지고 자연히 심장에도 영향을 주는 것이라고 분석한다. 그는 이 부분만 제외하면 악몽이 심장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고 덧붙였다. 2. 파킨슨 병 및 기타 퇴행성 신경 질환 최근 의학 연구 사례 중에는 수면 중 강렬한 악몽을 경험한 이들 중 파킨슨 병 같은 퇴행성 신경 질환을 앓는 경우가 종종 보고되고 있다. 이는 REM수면 장애와 연관되는데 보통 건강한 사람들은 REM 수면 동안 몸이 마비돼 움직이지 못하지만 파킨슨 병 및 기타 신경 퇴행성 질환이 있는 사람들은 REM 수면 시 몸이 마비유지능력을 잃게 돼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게 되고 이것이 피해로 이어지게 된다. 3. 수면 무호흡증 악몽은 수면 무호흡증과도 연관이 있다. 미국 플로리다 수면 연구소 의학박사 윌리엄 콜러의 설명에 따르면, 수면 중 일시적으로 호흡이 곤란해지는 환자들이 악몽을 꾸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산소 부족이 뇌에 영향을 줘 일시적으로 REM 수면을 방해하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특히 이들은 기도가 막혀 있는 경우가 많은데 수면 의학 저널에 발표된 최근 연구를 보면 기도양압술을 받은 환자의 91%가 악몽이 사라진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맥나마라 교수는 이러한 질환 외에 악몽 자체로 고통 받는 이들의 경우, 의료기관을 방문해 전문 ‘최면치료’, ‘이미지 반전 치료’, ‘약물 치료’를 받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조언한다. 자료사진=포토리아 조우상 기자 wscho@seoul.co.kr
  • 자책감 방치하면 ‘외상 후 스트레스’… 옆에서 자리 지켜주세요

    자책감 방치하면 ‘외상 후 스트레스’… 옆에서 자리 지켜주세요

    세월호 참사 발생 10일째. 생존자와 실종자 가족들은 물론 전 국민이 비통함에 잠겨 있다. 생존자 구조 소식은 들리지 않고 사망자만 늘어나는 가운데 시간이 지날수록 트라우마(정신적 외상)도 심각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대형 참사를 직간접적으로 겪은 이들에게 나타날 수 있는 심리적 증상 및 대처법은 무엇인지를 전문의로부터 듣는다. 다음은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차원에서 25일 경기 안산 통합재난심리지원단에 파견 나와 피해자들을 돕고 있는 백종우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와의 일문일답. →세월호 참사의 생존자들에게 어떤 증상이 나타날 수 있나. -생존자들의 경우는 흔히 ‘생존자 증후군’으로 표현되는 불안, 공포, 과민함 등 부정적인 감정 반응과 함께 불면, 식욕저하, 통증, 식은땀 등 신체 증상들을 경험할 수 있다. 이런 반응이 심해지면 급성 스트레스 장애라고 하는데, 이것이 한 달 이상 경과하면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로 진행될 수 있다는 점에서 관심과 지지가 필요하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흔히 사고와 연관된 기억의 재경험, 이에 대한 회피와 무감각, 지나친 과각성(과민 반응하는 상태), 해리(연속적 의식의 단절 현상)나 공황 등을 특징으로 한다. →특히 청소년기에 이런 사고를 겪으면 어떤 영향이 있나. -세상이 안전하고 희망적이라는 긍정적인 사고에 심각한 영향을 줄 수 있다. 불안 때문에 쉽게 집중할 수 없고 우유부단해지며 예민해진다. 작은 일에도 잘 놀라고 이에 따라 학교생활에 곤란을 겪을 수 있다. 충분한 지지와 도움이 있다면 극복할 수 있겠지만 이런 심각한 스트레스를 받은 청소년 중 10% 이상은 향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발병할 수 있다. 치료받지 않으면 몇 년간 만성화될 수 있으므로 초기에 적절한 개입이 중요하다. →유가족들은 생존자들과는 또 다른 고통을 겪을 텐데. -서구의 경우 가장 큰 스트레스로 배우자의 사망을 1순위로 꼽는다. 그러나 한국 등 동북아에서는 자식의 사망이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번 참사의 많은 피해자가 미성년자임을 감안했을 때 갑작스러운 사고로 자식을 잃은 부모들은 말로 다 하기 어려운 고통을 겪고 있을 것이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물론, 우울증이나 알코올 문제 등이 발생할 수 있다. 무엇보다 삶의 희망을 잃고 자살을 시도하는 일이 없도록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생존자 및 유가족들이 이를 극복하려면 어떤 대처법이 필요할까. -주위에서 생존자와 유가족들의 얘기에 귀를 기울여주고, 자신의 고통스러운 경험을 본인의 생각대로 표현하게 하며 위로해야 한다. 때로는 옆에서 그냥 자리를 지켜주는 것도 필요하다. 성급하게 문제를 해결해주려고 하거나 충고하는 태도는 별반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일반적인 정신치료는 진료실에서 이뤄지지만 재난 상황에서는 더욱 적극적이어야 한다. 방문상담을 포함, 조기에 도움을 줘야 하고 질환을 사전에 발견해 정도에 따라 항우울제나 인지행동 치료와 같은 적극적 치료를 시작해야 한다. 이전에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나 대구지하철 참사 등에서는 이런 심리적 지원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었다. 이번에는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정부 차원 등 조직화된 심리적 지원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일반 국민도 이번 사고로 충격과 신경과민 등 증세를 보이는 이들이 늘고 있는데. -그만큼 많은 국민이 이 사건을 자신의 일처럼 같이 아파하고 공감하는 데에서 생기는 현상이다. 실제로 요즘 외래진료를 하다 보면 불안이나 우울증세가 있는 환자들이 ‘너무 힘들다’고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전 국민이 영향을 받고 있다고 할 정도로 우울, 불안, 불면, 집중력 저하 등 스트레스 반응이 나타나는 상황이다. 흔히 분노와 짜증도 동반된다. 이런 심리적 상태는 불가피한 부분도 있지만 개인적·사회적으로 부정적 측면이 돼 나타날 수도 있다. →일반 국민의 이런 증상 예방·극복 방법은. -성장기의 소아·청소년이나 불안, 우울에 취약한 사람들은 방송 시청을 가능한 한 줄이는 것이 필요하다. 또 이러한 시기에는 가장 기본적인 것들, 즉 충분한 수면, 휴식, 식사 등이 중요하다. 가족이나 지인들과 이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서로 소중함을 느끼는 시간을 갖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최지숙 기자 truth173@seoul.co.kr
  • 전 국민이 ‘집단 트라우마’... 외상후 스트레스장애 우려

    세월호 사고로 전 국민이 ‘집단 트라우마’ 상태에서 헤매고 있다. 구조된 학생이나 실종·사망자 가족뿐 아니라 구조에 참가한 수색대원, 미디어를 통해 사고 소식을 접하는 국민들도 간접적인 외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런 충격적인 사고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사람들의 불안증세가 심해지면 외상후 스트레스장애로 발전하기 쉽다. 특히 이번 세월호 사고는 후유증이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여 심리적 치료에 대한 관심도 덩달아 커지고 있다. 전문의를 통해 외상후 스트레스장애에 대해 알아본다.   ■사고 후 3개월 안에 증상 시작, 몇 년 후에 나타나기도 외상후 스트레스장애는 신체적인 손상이나 생명이 위협받는 사고에서 심리적으로 충격을 받은 뒤에 나타나는 정신 질환으로, PTSD(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충격후 스트레스장애, 외상성 스트레스장애 혹은 외상후 스트레스증후군이라고도 한다. 과거에는 주로 군인들이 전쟁터에서 겪었던 충격과 공포로 인해 전쟁이 끝난 뒤에도 전쟁의 공포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할 때 내려지는 진단이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자연재해·교통사고·테러·강도 등 각종 사건·사고 등을 겪은 뒤에 발병하는 경우가 많다. 외상후 스트레스장애는 연령·인종·성별 등에 관계없이 누구나 걸릴 수 있는 질환으로, 사고를 직접 경험한 사람은 물론 사고를 당한 친구나 가족을 옆에서 지켜 본 사람도 겪을 수 있다.  외상후 스트레스장애는 초기 급성스트레스 장애로 시작된다. 급성스트레스 장애는 충격적 경험 이후 나타날 수 있는 정상적인 스트레스 반응으로, 특별히 심약하지 않아도 누구에게나 나타날 수 있다. 그러나 증상이 단기간에 그치지 않고 1개월 이상 지속되면 외상후 스트레스장애로 판단한다.   ■회피 및 과도한 각성상태가 주요 증상 외상후 스트레스장애는 주로 재경험·회피반응·각성상태 등 3가지 증상으로 나타난다.  재경험 증상은 자신이 겪은 사건이 꿈이나 환각을 통해 마치 다시 일어나는 것처럼 느껴져 식은땀을 흘리거나 심장이 뛰는 신체적 증상이 나타나는 현상이다. 외상후 스트레스의 주 증상인 회피반응은 교통사고를 당했던 사람이 차를 타지 않으려고 하는 것처럼 사고가 연상되는 상황을 극단적으로 회피하려는 반응이다. 뿐만 아니라 사고와 관련된 생각이나 말, 사고를 기억하게 하는 환경적인 단서들로부터도 필사적으로 피하려고 한다. 그 결과, 아예 마음의 문을 닫아 바깥 세상을 외면하는 심한 정서적 위축상태에 빠지게 되거나 마치 넋이 나간 듯 감정이 없는 사람처럼 보이기도 한다. 더러는 사고의 일부를 기억하지 못하는 현상이 나타나기까지 한다. 이와 달리 과도한 각성 상태에 빠지기도 한다. 전화벨만 울려도 깜짝 깜짝 놀라고 가슴이 두근거리며 진정이 안 되는 것이 대표적인 증상이다. 신경이 너무 긴장해 있으며, 외부 자극에 지나치게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 이 상태에서는 잠도 제대로 잘 수 없고, 집중력도 떨어지며, 신경질적으로 변한다. 을지대병원 정신과 유제춘 교수는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는 사고로 인한 고통스러운 증상이 보통은 수개월 이상 지속되며, 회복에 수년이 걸리거나 평생 지속되기도 해 적극적인 예방과 치료가 중요하다”면서 “그러나 조기에 치료할 경우 비교적 치료반응이 좋으므로 초기에 필요한 치료를 받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약물 및 정신치료 병행해야 외상후 스트레스장애 치료는 보통 약물치료와 정신치료를 병행한다. 약물치료는 주로 항우울제나 항불안제를 사용해 불안과 우울 증상을 완화시킨다. 또 혈압을 떨어뜨리는 프라조신(Prazosin)이라는 약물을 사용하기도 하는데, 이는 악몽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안정시키기 위해 처방한다. 정신치료는 주로 인지치료와 행동치료를 각각 적용하거나 두 가지를 병용하기도 한다. 인지치료는 대화를 통해 자신과 환경에 대해 갖고 있는 비현실적 믿음과 비논리적 추론을 스스로 발견해 수정하도록 돕는 치료법으로, 이를 통해 자신의 삶을 파괴하는 행동에서 벗어날 수 있다. 행동치료는 학습이론에 근거해 환자가 자기 행동을 관찰·분석해 문제행동을 바꿔나가도록 돕는 치료법으로, 바람직한 행동은 증가시키고 그렇지 못한 행동은 줄여 힘겨운 상황에 적절하게 반응하고 대처하도록 하는 치료법이다. 이밖에 가족이나 친구들의 지지와 함께 사고를 같이 경험한 사람들이 모여 집단치료를 하면서 서로 지지를 주고받는 것도 매우 효과적인 치료다.   ■평소 스트레스에 대처하는 방식 익혀야 똑같은 사고를 당해도 누구는 멀쩡하고, 누구는 외상후 스트레스장애에 노출된다. 사람마다 경험과 성격이 달라 스트레스에 대한 반응양상과 대처 방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평소에 스트레스에 잘 대응하도록 스스로 준비하면 정신적 트라우마를 예방할 수 있다. 이와 함께 심각한 사고나 정서적 외상을 경험한 후 외상후 스트레스장애 증상이 나타나면 주저하지 말고 전문의를 찾는 것이 현명하다. 도움말: 을지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유제춘 교수. 심재억 의학전문기자 jeshim@seoul.co.kr
  • 한국, OECD국 중 결핵 유병률·다제내성 환자 1위 ‘불명예’

    우리나라는 2000년 직전만 해도 결핵 완전퇴치국으로 분류됐다. 정부도 이를 공언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세계보건기구(WHO)의 ‘글로벌 결핵관리 보고’에 따르면 2011년 현재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결핵 발생률·유병률·사망률이 가장 높은 나라다. 또 결핵 치료제에 내성을 가져 치료제의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다제내성 결핵환자 수도 단연 1위에 올라있다. 근절되지 않는 결핵, ‘세계 결핵의 날’(3월 24일)을 맞아 결핵 퇴치를 위한 치료와 예방법을 알아본다. ■노약자와 아이들 특히 주의해야 결핵은 결핵균에 의해 인체 어느 곳에서나 발생할 수 있는 전염성 질환이다. 그 중 폐에 가장 쉽게 균이 침범하고 발병하기 때문에 폐결핵이 많을 뿐이다. 폐결핵은 초기에는 대부분 특별한 증상이 없다. 하지만 병이 진행되면서 전신 권태감·미열·식은땀·기침·가래·체중감소·객혈 등의 증세가 나타난다. 결핵은 조기에 발견하면 약물치료로 완치가 가능하지만 치료가 이뤄지지 않으면 전반적인 면역기능 약화에 따른 합병증으로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 특히, 면역력이 약한 사람이 감염되면 폐는 물론 뇌와 신장 등이 치명적인 손상을 입기도 한다. 결핵은 환자의 기침이나 재채기·노래·대화를 할 때 배출되는 가래 방울에 결핵균이 섞여 공기 중에 떠돌다가 다른 사람에게 흡입돼 전파된다. 따라서 면역기능이 떨어진 환자 즉, 당뇨병 환자·노약자·간 질환자, 알코올중독자·만성 신부전증 환자·영양결핍 환자·규폐증 환자 등이 결핵 환자와 접촉할 경우 결핵에 걸릴 가능성이 높다. 이밖에 스테로이드나 항암제 치료 등 면역력을 떨어뜨리는 약제를 투약받는 환자도 결핵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 ■기침 2주 이상 지속되면 결핵 의심 결핵은 침범한 장기에 따라 증세가 다양하게 나타난다. 가장 많은 폐결핵의 경우 주요 증상은 미열·체중 감소·오한 등이다. 처음에는 감기와 비슷한 증세가 계속되다가 서서히 만성적으로 진행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환자들은 정확한 발병 시기를 모르고 지나친다. 이런 증상 말고도 기침·가래·가슴통증·호흡곤란·권태감·식욕부진 등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특이성이 없어 스스로 자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기타 장기 감염의 경우, 늑막염일 때는 흉통·기침·호흡곤란·발열 등의 자각증세가, 장결핵일 때는 전신증세 외에 복통·설사·헛배부름 등이, 림프선결핵은 전신증세는 심하지 않은 대신 목 주위의 림프선이 비대해져 혹같이 만져지기도 한다. 신장결핵은 소변에 적혈구·백혈구가 보이고, 심하면 고름처럼 보일 수도 있다. ■6개월 이상 꾸준히 약 복용해야 결핵은 가슴 X-레이 촬영 후 객담(가래)검사를 통해 확진한다. 결핵의 X-레이 검사 소견은 매우 다양해 폐암·폐농양·폐렴·진폐증 등 다른 질환과 감별이 잘 안 되는 경우가 많다. 이를 ‘결핵 의증’ 또는 ‘의사 결핵’이라고 한다. 이런 경우 객담검사에서 결핵균 검출 여부를 확인하면 확진이 가능하다. 객담검사 외에도 필요에 따라 면역반응검사, 혈액검사 등을 시행하기도 하며, 폐 이외의 다른 장기에 침범한 결핵은 해당 장기에 대한 검사를 따로 실시한다. 결핵은 적절한 치료를 통해 완치가 가능한 질병이다. 이를 위해서는 최소한 6개월 이상 중단하지 않고 약물을 복용해야 한다. 약물을 복용하다가 문제가 발생했더라도 임의로 투약을 멈춰서는 안 되며, 반드시 의사와 상의해야 한다. 임의로 투약을 중단하거나 약제를 바꿀 경우 결핵균의 내성을 키워 약에 반응하지 않는 결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처음부터 약을 복용하지 않는 것보다 나쁜 상황에 빠지기 쉽다. 약은 하루에 한번, 아침식사 후 30분~1시간 안에 복용하는 것이 원칙이다. 치료를 제대로 받는다면 대부분의 경우 약 복용 후 2주일이 지나면 전염성은 거의 없어진다. 따라서 제대로 치료를 받고 있다면 결핵 때문에 일상적인 활동을 억제하거나 다른 사람과의 접촉을 피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치료 시작 전에 타인에게 전염시켰을 가능성이 있으므로 결핵 환자와 같이 생활하는 가족, 특히 어린이나 노약자는 반드시 감염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또 결핵 환자는 특별히 음식을 가리지 않아도 되므로 모든 음식을 가리지 말고 먹어 고른 영양 섭취가 되도록 해야 한다. 도움말: 심재정 고려대 구로병원 호흡기내과 교수. 심재억 의학전문기자 jeshim@seoul.co.kr
  • 춘곤증, 태음인은 봄에 식욕 왕성해져 더 심해

    춘곤증, 태음인은 봄에 식욕 왕성해져 더 심해

    고단백 식품과 무기질, 냉이·두릅·달래·씀바귀·민들레 같은 봄나물 모두 봄철 노곤해진 몸에 기운을 북돋아주는 훌륭한 음식들이지만 모든 사람에게 좋은 것은 아니다. 성질이 따뜻한 달래는 몸에 열이 많은 사람은 먹지 않는 게 좋다. 씀바귀는 소양인과 태양인에게 특히 좋은 나물이다. 사상의학에서는 춘곤증에도 소음·소양·태음·태양 체질별로 대처법이 다르기 때문에 맞춤형 건강관리가 필요하다고 권장한다. 평소 체력도 소화기능도 약한 소음인은 봄이 더 힘들다. 만성피로와 다양한 소화기 증상, 식욕저하, 어지럼증, 잦은 입병 등이 한꺼번에 나타날 수 있다. 항상 충분히 자고 휴식을 취하면서 따뜻한 성질의 음식이나 약간의 자극성 있는 균형 있는 영양식을 먹어야 한다. 과격한 운동보다는 산책, 맨손체조 등 가벼운 운동을 하는 게 좋고 같은 운동이라도 가급적 짧게 하는 게 체력소모를 줄일 수 있다. 목욕도 마찬가지다. 만약 만성피로, 소화장애, 지속되는 설사, 식은땀, 수족냉증 등의 증상이 나타나면 건강에 많은 부담이 오고 있다는 신호이기 때문에 진료를 받는 게 좋다. 소양인은 신경이 예민하고 급한데다 몸에 열이 많고 기운을 밖으로 발산하는 체질이어서 봄이 오면 생활리듬이 흐트러지기 쉽다. 특히 수면시간이 불규칙해지고 깊은 잠을 못 이루게 되어 낮 동안 심한 피로감을 호소하는 이들이 많다. 불면, 항강통(뒷목과 어깨가 무겁거나 통증을 느낌), 두통, 눈 피로, 입 마름, 흉민(가슴이 답답한 증상), 소변적삽(소변량이 줄고, 소변색이 탁해지며, 간헐적으로 배뇨 불쾌감을 느낌)등의 증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 야채, 해물 등 성질이 서늘한 음식을 먹되 맵고 짜며 성질이 더운 음식은 피하는 게 좋다. 하체를 튼튼하게 할 수 있는 등산, 조깅이나 적극적으로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운동을 하는 게 도움이 된다. 충분히 자고 규칙적으로 생활해 생활리듬이 깨지지 않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 만약 수면장애, 상열감(머리나 상체에 열이 있는 증상), 변비, 소변장애가 있거나 가슴이 답답하며 입이 쓰고 마른 증상이 지속되면 병원을 찾는 게 좋다. 태음인은 봄철 춘곤증을 더 많이 겪는다. 봄이 오면 입맛이 없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태음인은 오히려 식욕이 왕성해져 체중이 늘기도 한다. 평소 과다한 영양섭취와 운동부족으로 쉽게 살이 찌는 체질인데다 심혈관질환이나 호흡기질환에도 취약하다. 겨울철 운동부족으로 체중이 증가한 상태에서 봄을 맞게 되면 몸이 더 노곤해지기 쉽다. 입이 마르거나 쓴맛을 느껴 물을 많이 마시게 되고 속이 메슥거리거나 배에 가스가 쉽게 차고 배변이 원활하지 못한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또 가슴이 두근거리거나 소변이 탁해지고 무기력증을 느끼기도 한다. 태음인은 고지방, 고칼로리 음식을 피하고 과식, 폭식, 야식 등을 절제하면서 가급적 천천히 식사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춘곤증이 밀려온다고 식사 후 바로 눕거나 자는 것은 건강을 해치는 지름길이다. 운동량이 충분한 유산소 운동을 하는 게 좋고, 목욕이나 사우나를 해서 땀을 내주는 것도 도움이 된다. 태양인은 에너지를 소모하고 기운을 밖으로 발산하는 체질이다. 반대로 소화 기능은 약해 기운을 안으로 모아주지 못하면 구역감, 만성변비가 생기는 경우도 있다. 특히 봄은 겨우내 응축됐던 에너지가 퍼져 나가는 기운이 강하기 때문에 태양인은 되도록 기운을 모으고 유지해주는 단전호흡, 요가 같은 정적인 운동을 하는 게 좋다. 짜고 매운 음식보다 채소를 담백하게 요리해 먹는 게 좋고 지방이 많은 고기보다 조개 등의 해산물이 좋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도움말 경희대한방병원 사상체질과 이준희교수
  • 강민경 대게, 홍어 생식기 시식 후 ‘식은땀’ 100% 리얼 먹방

    강민경 대게, 홍어 생식기 시식 후 ‘식은땀’ 100% 리얼 먹방

    강민경 대게 먹방이 화제다. 31일 방송된 KBS 2TV ‘밥상의 신’에서는 ‘정력에 좋은 음식 4대 천왕’이라는 주제로 퀴즈를 맞히는 내용이 전파를 탔다. 이날 대게, 돼지고기에 이어 정력에 좋은 음식으로 홍어가 소개됐다. 여신 팀은 다섯 가지 홍어의 특수부위를 시식했다. 홍어 생식기가 당첨된 김신영은 크게 당황해 하며 어쩔 줄 몰라했다. 특히 홍어 특유의 냄새가 나 웃기만 했다. 김신영은 “기미상궁 강민경이 독이 들었는지 안 들었는지 확인해 달라. 강민경이 먹으면 나도 먹겠다”며 초장을 듬뿍 묻힌 홍어생식기를 강민경에게 권했다. 강민경은 “궁금한 걸 못 참는 스타일이라 먹겠다”며 홍어생식기를 먹었다. 강민경은 “초장맛 밖에 안난다”고 아무렇지 않은 모습을 보이다가 갑자기 몸을 베베 꼬기 시작했다. 삭힌 홍어 특유의 맛과 향기가 퍼지기 시작한 것. 강민경은 식은땀까지 흘리며 “홍어 특유의 냄새가 뼛속까지 전해지는 느낌이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한편 이날 강민경은 대게를 폭풍 시식한 후 “대게회는 처음 먹어보는데 구수한 맛이 느껴지고 대게찜은 싱싱하고 진짜 게의 맛이 느껴진다”고 음식평을 하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사진 = KBS 2TV (강민경 대게)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장동혁 공황장애 고백 “햇빛조차 싫었다” 2년 공백 이유 ‘충격’

    장동혁 공황장애 고백 “햇빛조차 싫었다” 2년 공백 이유 ‘충격’

    ‘장동혁 공황장애 고백’ 개그맨 장동혁이 과거 공황장애를 겪었던 사실을 고백했다. 7일 방송된 SBS ‘심장이 뛴다’에서는 어지럼증을 호소하는 할아버지가 병원으로 이송됐다. 의사는 할아버지에 상태에 대해 “공황장애 같다”고 판단했다. 이에 장동혁은 제작진과의 인터뷰에서 “방송을 2년 정도 쉬었다. 한창 힘들 때는 햇빛이 들어오는 것조차 싫었다. 사람 많은 곳에 가면 나 혼자 시무룩하고 식은땀이 났다. 아버님과 오버랩 되면서 남 일 같지 않았다”고 공황장애를 앓았음을 털어놨다. 네티즌들은 “장동혁 공황장애 고백, 안타까웠다”, “장동혁 공황장애 고백, 힘들었겠다”, “장동혁 공황장애, 스트레스가 많았나 보다”, “장동혁 한동안 안 보여서 궁금했는데 그런일이 있었구나” 등의 반응을 보였다. 사진 = SBS(장동혁 공황장애 고백) 연예팀 seoulen@seoul.co.kr
  • [2014 신춘문예-소설 당선작] 길을 잃다/이태영

    [2014 신춘문예-소설 당선작] 길을 잃다/이태영

    소니가 앞뒤로 몸을 흔든다. 몸을 숙일 때마다 등의‘보호외국인’이란 흰 글자가 형광등 불빛에 번쩍거렸다. 흔들림은 조금씩 빨라지고 있었다. 나는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하필 근무 첫날부터 이런 일이 생기다니. 여자 보호실에는 그녀와 나 단 둘뿐이었다. 입술이 바싹 타들어 갔다. 위급한 일이 생기면 당직실로 연락하라고 이 반장은 말했었다. 소니가 요란하게 몸을 떨더니 구역질을 해대기 시작했다. 나는 당직실 내선 번호를 눌렀다. 신호음은 갔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시계를 보니 자정이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이 반장은 밤새 직원이 당직실에서 대기하고 있을 거라 했었는데, 나는 어찌해야 할지 모른 채 망연히 소니만 바라봤다. 소니는 비린내를 맡은 임산부처럼 헛구역질을 해댔다. 붉게 충혈된 그녀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소니가 말했다. “언니, 제발, 소니 물 줘.” 소니의 일그러진 입가에서 침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어눌한 소니의 말투는 어딘가 모르게 우스꽝스러웠다. 얼굴을 잔뜩 찡그리고 있던 소니도 영문을 모른 채 나를 따라 웃었다. 보호소를 안내해주던 이 반장은 말했었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소니한테 물어보라고. 저래 보여도 사무소에서만큼은 나보다 선임이니깐.” 이 반장은 소니를 가리키면서도 내 쪽을 흘끔거렸다. 철장 안의 소니보다 나를 더 신기해하는 것 같았다. 살아오며 항상 마주쳐야 했던 눈빛이었기에 새삼스럽진 않았지만 좀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출입국관리사무소 직원이라면 많은 혼혈을 봤을 텐데. 마치 외국인을 처음 본 사람처럼 계속해서 곁눈으로 슬그머니 흘겨봤다. 아마도 같이 일하는 사람 중 혼혈은 처음인 것 같았다. 나는 이 반장이 가리키고 있는 소니를 쳐다봤다. 내 옅은 커피색 피부보다 소니의 피부는 희었다. 소니의 피부는 한국인들이 살색이라 부르는 옅은 귤색에 가까웠다. 나는 종이컵에 물을 따르려 했다. 그 모습을 본 소니가 언니, 하며 나를 불렀다. 그녀는 한 아름 크기의 원을 손으로 그렸다. 나는 그녀의 뜻을 이해했지만 왜 그렇게 많은 물이 필요한지 이해되지 않았다. 소니가 다시 헛구역질하기 시작했다. 나는 서둘러 화장실로 가 빨간 고무 대야에 물을 받아왔다. 대야 한가득 담긴 물을 본 소니는 구역질을 멈췄다. 소니는 대야를 바닥에 내려놓고 그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는 한참 동안 수면 위를 내려다봤다.‘후훕 후훕’소니의 날숨과 들숨소리가 보호실에 울려 퍼졌다. 한참을 내려다보던 소니가 천천히 자신의 얼굴을 대야에 담갔다. 넘쳐난 물이 바닥을 적셨다. 정수리까지 잠기자 찰랑대며 흘러넘쳤던 물결이 잠잠해졌다. 소니의 숨소리가 사라지자 보호소는 파도가 멈춘 바닷가처럼 고요해졌다. 오직 들리는 소리라고는 얕은 내 숨소리뿐이었다. 소니의 앞머리가 흘러내렸다. 수면 위로 소금쟁이 발자국 같은 작은 물결이 일렁였다. 얼마나 지난 걸까. 흘러내린 머리카락은 가라앉은 지 오래였고 숨 쉬는 것도 잊은 듯 소니는 미동조차 않았다.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게 아닐까, 마음이 초조해졌다. 철창을 열려는데 소니가 대야에서 고개를 들었다. 물방울들이 그녀의 얼굴에서 뚝뚝 떨어졌다. 소니가 소매로 얼굴을 훔치며 말했다. “소니 땅 멀미했다. 이젠 괜찮다.” 땅 멀미? 배를 오래 탄 선원들이 뭍에 올라오면 멀미를 한다고 하던데, 그걸 말하는 건가. 소니의 말을 제대로 이해한 게 맞는지 의심스러웠다. 같은 모국어를 쓰는 사람들끼리도 온전히 자기 뜻을 전달하지 못하는데, 하물며 소니는 지금 외국어를 구사하고 있지 않은가. 쇠창살에 기대앉은 소니가 말했다. “소니는 바다에 살았다. 발, 땅에 안 디뎠다.” 물방울이 소니의 이마에서 볼을 타고 턱까지 흘러내렸다. 채 마르지 않은 물방울의 궤적을 따라 형광등 불빛이 반사됐다. 소니가 손바닥으로 얼굴의 물기를 훔치며 말했다. “소니 여러 여름 전, 바다 떠났다.” 그녀는 땅 위로 올라올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러나 올라선 땅은 흔들렸다. 바다에서는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울렁거림을 겪어야 했다. 바다를 떠나야 했던 이유를 그녀가 설명했지만 어눌한 발음에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녀는 흔들리지 않는 땅을 찾아 헤맸다. 그렇게 한국까지 흘러들어왔다. 하지만 이곳도 마찬가지였다. 공장에서도, 쪽방에서도, 화장실에서도 매 순간 속은 메슥거렸다. 나는 며칠 전 봤었던 한 다큐멘터리를 떠올렸다. 바다에서 생활하는 소수종족에 관한 이야기였는데 바다 집시라 불리는 그들은 육지에 올라오면 오히려 멀미를 느낀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구온난화와 주변 국가의 압력 때문에 땅에 정착해야만 했다. 그들은 자신을 찍고 있는 카메라를 향해 물었다. “어디로 가야 하나요?” 다큐멘터리를 보는 내내 나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엄마를 떠올렸다. 아버지는 엄마가 동생을 낳다 죽었다고 했다. 나는 엄마의 얼굴도, 목소리도 심지어 그녀의 국적조차도 알지 못했다. 그저 내 피부색을 보며 다큐멘터리에 나온 저들처럼 바다와 강렬한 해가 있는 지역 출신이 아닐까 추측해볼 뿐이다. 그러고 보니 소니의 피부색은 그들이나 나보다 옅었다. 지하층 계단에는 해가 들지 않았다. 등이 나간 지 한 달이 지났는데도 집주인은 갈아주지 않고 있었다. 흐릿한 빛에 의지해 현관문을 열었다. 안은 말라버린 우물 속처럼 컴컴했다. 벽을 더듬자 콘크리트의 냉기가 손끝에 스며들었다. 스위치를 찾지 못한 나는 어둠 속에서 신발을 벗어야 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채 몇 걸음 떼지도 못한 채 균형을 잃고 넘어져 버렸다. 무릎과 정강이로 둔탁한 통증이 밀려왔다. 찔끔 오줌이 허벅지를 타고 흘러내렸다. 퀴퀴한 지린내가 밀려왔다. 나는 팬티를 갈아입을 생각도 않은 채 그대로 침대까지 기어가 누웠다. 첫 밤샘근무였고 한밤중에 소동까지, 피로에 찌든 몸은 솜사탕처럼 녹아내리고 있었다. 나는 그대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눈을 떴다. 얼마나 잔 걸까? 알 수 없었다. 방은 여전히 어두웠다. 나는 습관적으로 손을 들어 눈가를 만졌다. 다행히 손끝에 느껴지는 물기는 없었다. 언제부턴가 나는 잠에서 깨어날 때마다 채 마르지 않은 눈물 자국을 발견했다. 처음에는 눈에 무슨 이상이 생긴 줄 알았다. 그러다 나중에 알게 되었다. 꿈을 꾸며 눈물을 흘린다는 걸. 무슨 꿈인지는 알지 못했다. 마치 교통사고 후의 기억상실증처럼 꿈에 대한 기억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대신 깨어날 때마다 채워지지 않을 것 같은 허기가 엄습해왔다. 더듬거리며 일어나 방에 불을 켰다. 시계를 보니 벌써 한밤중이었다. 통증처럼 허기가 밀려왔다. 라면 두 개를 끓였다. 밥까지 말아 먹고 나자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다 먹고 난 냄비를 싱크대에 놓았다. 수도꼭지를 틀자 빈 냄비 속으로 물이 쏟아졌다. 냄비 속 옅어진 갈색 국물이 거품을 내며 소용돌이쳤다. 밥풀 하나가 위태롭게 흔들리다 넘쳐나는 물을 따라 개수대로 흘러갔다. 땅멀미를 한다는 소니의 얼굴이 떠올랐다. 갑자기 몸이 붕 떠오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멀미할 때처럼 속이 울렁였다. 그때 핸드폰이 울렸다. 동생에게서 문자가 와 있었다. 나는 메시지 내용을 확인하지 않았다. 놀이기구를 탄 것처럼 울렁임은 더욱 심해졌다. 배를 채우면 이 메스꺼움이 좀 가라앉지 않을까. 찬장에서 감자칩을 꺼내 한 움큼 입에 털어 넣었다. 제대로 씹지도 않고 삼키듯이 넘겼지만 메스꺼움은 쉬이 달래지지 않았다. 보호실 철문이 열리고 이 반장과 함께 한 남자가 들어왔다. 남자는 이런 곳이 처음인지 창살 안을 힐끔힐끔 쳐다봤다. 어린이 팔뚝만 한 쇠봉이 한 뼘 간격으로 세워진 창살 안에는 다양한 피부색의 여자 외국인들이 수감되어 있었다. 그녀들은 마루 형식으로 된 바닥에 국적별로 삼삼오오 앉아 있었다. 소니만이 누구와도 어울리지 않은 채 구석에 앉아 티브이를 보고 있었다. 사무소 직원이 아닌 듯 남자는 관복을 입지 않고 있었다. 검은색 쟈켓에 베이지색 면바지, 그리고 특징 없는 인상은 길에서 흔히 마주치는 사십대 아저씨의 모습이었다. 이 반장이 소니를 조사실로 호출했다. 남자는 조사실로 들어갔다. 둘은 삼십 분 정도 조사실에 있었다. 가끔 소니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평소와는 다른 웃음이었다. 끈적끈적하니 교태가 묻어있는 웃음이었다. 조사실에서 나온 남자는 한쪽 입꼬리를 어그러뜨렸다. 황당하다는 웃음 같기도, 싱겁다는 표정 같기도 했다. 남자와는 다르게 뒤따라 나오는 소니는 평상시와 다를 바 없어 보였다. 남자는 이 반장에게 짧게 말을 전한 후 돌아갔다. 나는 이 반장에게 다가갔다. 저분은 누구예요, 라는 내 물음에 이 반장은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비밀이야.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로 순순히 돌아갔다. 내 태도에 이 반장은 당황한 듯싶었다. 쩝쩝 소리를 내며 입맛을 다시더니 슬며시 다가와 물었다. “소니가 진짜 이름일까?” 나는 그제야 이 반장이 비밀에 대해 말하고 싶어 했다는 걸 눈치챘다. 나는 궁금하다는 표정을 최대한 지어보려 노력했다. 그러나 어딘지 모르게 어색한 표정이 되어 버렸다. 나는 사람들의 표정을 잘 직시하지 못했다. 나의 피부색을 처음 본 사람들은 반사적으로 표정이 굳는다. 그리고는 바로 꼬인 가방끈을 고쳐 매듯 낯을 바꾼다. 마치 아무것도 못 봤다는 듯이. 어떤 반감이 있어서 그러는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그냥 본능적인 반응이다. 그러나 그 표정을 본 나로서는 더는 그들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한다. 이 반장은 혀를 내밀어 입술에 침을 묻히고는 말했다. “당연히 진짜 이름 아니지. 소니 들어봤잖아. 워크맨 만드는 전자회사” 작년 겨울, 한 베트남인이 여고생을 성추행하는 사건이 발생했었다. 이 사건은 십분 정도 모 포털 사이트 검색어 톱을 차지했다. 첫눈이 오기 전날 대대적인 불법 체류 외국인 단속이 벌어졌다. 그날 밤 노래방을 덮친 경찰은 손님의 노래에 맞춰 탬버린을 치고 있는 소니를 붙잡았다. 경찰서에서 하룻밤을 보낸 그녀는 첫눈을 맞으며 출입국관리사무소로 넘겨졌다. 그녀의 지문과 일치하는 한국인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출입국 관리 사무소로 넘겨진 불법 체류 외국인들은 사무소 내에 있는 보호실에 임시로 수감된다. 제일 먼저 그들의 국적을 확인하는데 가끔 추방에 대한 두려움으로 자신의 국적을 말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소니는 아예 한국어를 모르는 척했다. 여러 언어의 통역사들이 말을 걸어봤지만, 그녀는 한마디 대꾸도 하지 않았다. 모르는 척 연기를 했을지 모르겠지만, 그녀가 협조하지 않는 한 그녀의 모국어가 무엇인지 알 방법은 없었다. 이런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직원들은 굉장히 난감해했다. 직원들은 소니의 소지품을 확인했다. 수거된 소지품에서 신원의 단서를 찾아내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생각보다 사람들은 많은 것들을 품에 지니고 다닌다. 신분증부터 휴대폰, 수첩, 메모 등. 그러나 그녀의 소지품이라고는‘SQNY’라고 로고가 박힌 짝퉁 휴대용 라디오뿐이었다. 나중에 그녀가 한국어를 할 줄 안다는 사실은 발각되었지만, 그녀의 국적은 밝혀지지 않았다. 그녀는 절대 신원의 실마리가 될 이야기나 행동을 하지 않았다. 그해 겨울 마지막 눈이 녹았지만, 여전히 아무도 그녀의 정체를 알지 못했다. 심문에 잘 대답하다가도 신분이 노출될 만한 질문이 들어오면 입을 다물거나 딴소리를 해댔다. 그 엉뚱한 말들 때문이었을까, 심문했던 직원들 중 몇은 그녀가 미쳤다고 생각했다. 결국, 그녀는 정신병원에 보내져 검사를 받아야 했다. 그뿐만 아니라 각국 대사관에 그녀의 사진이 포함된 협조문도 보내졌다. 미친 것은 아니라는 의사의 소견과 자기네 국민이 아니라는 답변만이 돌아왔다. 몇몇 국가는 아예 회신조차 하지 않았다. 원칙적으로 출입국 관리 사무소의 보호실은 외국인 보호소로 이송되기 전, 하루나 이틀 정도 임시 수용되는 곳이었다. 하지만 골치 아플 것을 눈치챈 외국인 보호소는 신원이 확인될 때까지 절대 받을 수 없다고 못을 박아 버렸다. 이름이 없으니 불편함을 느낀 직원 하나가 그녀를 소니라 부르기 시작했다. 그녀도 그 이름이 맘에 들었는지 자신을 소니라 소개했다. 이야기를 듣던 나는 이상함을 느꼈다. 근무 첫날 그녀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이 반장에게 했다. 소니가 바다에서 왔다는 내 말에 이 반장은 껄껄대며 웃었다. “소니는 신입이 오면 꼭 한 번씩 골탕을 먹이더라고. 내가 말해 줬어야 했는데 미안해. 그냥 맘 편하게 신고식이었다고 생각하도록 해.” 이 반장은 은근히 흐뭇해하는 눈치였다. 어리둥절해하는 나에게 이 반장은 말했다. “나도 올 초 여기 사무소로 발령받아 왔을 때 감쪽같이 속았다고. 소니가 자기는 동생한테 이름을 빼앗겼다는 거야.” 소니는 자신이 일 가구 일 자녀 정책을 펴는 중국에서 태어났다고, 이 반장에게 말했었다. 소니의 아버지는 아들을 원했다. 첫아이가 소니이자 벌금을 낼 형편이 못 됐던 그녀의 아버지는 앞으로 태어날 남동생을 위해 그녀의 출생신고를 하지 않았다. 그녀에겐 이름조차 주어지지 않았고 대신 미리 지어 놨던 남자 이름, 남동생에게 주어질 이름으로 그녀를 불렀다. 하지만 그마저도 곧 태어난 남동생이 가져가 버렸다. 그녀는 이름도 없고 서류상으로도 태어나지 않은 존재가 되었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을 증명할 방법이 없다고 했다. 소니의 비밀을 알게 된 이 반장은 그녀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백방으로 수소문했다. “그런데 다 거짓말이었어. 중국대사관에 동생 이름을 문의해 봤더니 그런 자는 없다는 거야.” 소니의 말이 모두 거짓이라는 것이 밝혀졌지만, 이상하게도 먹먹해진 내 가슴은 진정되지 않았다. 내 안의 무언가가 건드려진 것 같았다. 나는 만난 적 없는 엄마와 기억나지 않는 꿈을 떠올렸다. “아마도 소니는 여기서 두 번째 겨울은 나지 못할 것 같아.” 이 반장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도 모르게 눈이 커졌나 보다. 내 반응에 이 반장은 신이 났는지 다시 목소리가 커졌다. 아직 결론이 난 건 아니지만, 윗분들이 그녀를 풀어주려 한다고 했다. 어차피 더는 그녀의 신원을 알아낼 방법도 없고 그렇다고 언제까지 가둬 둘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러자 ‘혹시 간첩이 아닐까 ’누군가 농담처럼 했던 말이 새롭게 부각되었다. 방금 전 소니를 조사했던 남자는 이를 규명하기 위해 온 것이었다. 남자가 지었던 표정으로 봐서 그녀는 간첩이 아닌 게 분명했다. 창살 사이로 소니를 바라봤다. 분명 우리의 이야기를 들었을 텐데 그녀는 시치미를 뚝 떼고 티브이만 바라보고 있었다. 두터운 쌍꺼풀에 불거진 광대뼈, 두꺼운 입술 위로 큼지막하게 자리한 뭉툭한 코. 아무리 뜯어 봐도 어디 사람인지 헤아리기 어려웠다. 속으로 삼키듯 소니를 발음해 봤다.‘SONY’라는 글자를 전 세계 사람 모두 소니라고 발음한다는 기사를 어딘가에서 읽은 기억이 났다. 마치 하늘에서 뚝 떨어진 별똥별 같은 느낌을 주는 소니라는 어감은 소비자들의 거부감을 최소화한다고 했다. 어디에서 왔는지 알 수 없는 그녀와 잘 어울리는 이름 같았다. 비록 ‘SQNY’라 적힌 그녀의 라디오는 짝퉁이지만. 핸드폰 벨소리에 눈을 떴다. 팔을 뻗어 보려 했지만, 몸은 움직여지지 않았다. 야간근무를 시작한 후부터 낮에는 앓는 사람처럼 곯아떨어져 버렸다. 벨소리는 곧 끊어졌다. 다시 잠을 청하려 했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자리에서 일어나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동생에게서 부재중 전화와 함께 문자가 와 있었다. ‘어머니 제사 때는 집에 올 거지?’ 동생의 문자를 다 읽은 나는 그대로 이불 위로 쓰러졌다. 가만히 천장을 응시하며 꿈을 기억해 내려 노력했다. 그러나 존재하지 않는 어머니의 추억처럼 꿈은 기억나지 않았다. 손등으로 눈가를 훔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냉장고 문을 열자 어제 먹다 남긴 치킨이 보였다. 차가운 치킨을 데우지도 않고 먹기 시작했다. 살코기는 푸석댔고 닭 껍질은 질겼다. 차가울 뿐 아무 맛도 나지 않았다. 그저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기계적으로 씹을 뿐이었다. 접시 위의 치킨은 모두 없어졌지만, 허기는 사라지지 않았다. 온전한 것을 찾아 수북이 쌓인 닭 뼈 사이를 뒤적였다. 손에 닭 목이 걸려 올라왔다. 튀김가루가 다 떨어져 앙상해진 닭 목을 통째로 씹었다. ‘빠드득’ 입안에서 뭔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손가락을 입속에 집어넣었다. 어금니가 심하게 흔들렸다.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입 밖으로 삐죽거리며 새어 나왔다. 엄마의 제사는 연극 같았다. 나는 엄마가 죽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아버지에게서 도망친 엄마는 불법 체류 외국인이 되어 아직도 이 땅에서 살아가고 있다. 엄마를 만나고 싶었다. 만나 물어보고 싶었다. ‘왜 나를 낳았는지, 왜 고향으로 가지 않고 이곳에 남았는지, 그리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 하지만 나는 엄마를 찾지 않았다. 대신 단속에 걸린 불법체류 외국인들이 보호실로 들어올 때마다, 엄마 또래의 외국인들을 유심히 살폈다. 그러나 나는 엄마의 얼굴을 모른다. 마치 쏘기 직전의 활처럼 소니와 나이지리아 여자는 서로를 노려보고 있다. 어제 들어온 금발의 우즈베키스탄 아가씨는 커다란 눈망울로 둘의 눈치만 살폈다. 나는 슬며시 수화기를 들어 이 반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이지리아 여자는 들어온 지 일주일이 넘었다. 벌써 외국인 보호소로 넘어갔어야 했는데 난민신청 문제로 이송이 지연되고 있었다. 소니는 그동안 보호실의 터줏대감처럼 행동했었다. 워낙 오래 있었고 기가 셌기 때문에 처음 들어온 외국인들은 그녀에게 한 수 접어 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나이지리아 여자는 자신의 덩치를 믿고 그녀를 무시했다. 아슬아슬했던 둘 사이가 결국 터지려 하고 있었다. 나이지리아 여자가 소니의 영역을 침범한 것이다. 금이 그어져 있는 건 아니었지만, 소니의 영역은 티브이 맞은편 창가 아래였다. 사람들은 아무리 보호실이 붐벼도 그 영역을 침범하지 않았고 직원들도 암묵적으로 용인하고 있었다. 불안해하고 초조해하는 다른 수감자들과는 달리 소니는 너무나 편안한 얼굴로 그곳에서 티브이를 보거나 낮잠을 청했다. 소니가 나이지리아 여자에게 먼저 주먹을 날렸다. 소니의 주먹이 정확히 나이지리아 여자의 얼굴을 때렸지만, 나이지리아 여자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도리어 나이지리아 여자가 성큼 달려들어 소니의 머리채를 잡아챘다. 검은 표범을 연상시키는 그녀는 보통의 남자보다 몸무게도 더 나갔으며 몸도 더 우람했다. 작은 키에 마른 편인 소니는 금방이라도 찢길 듯 위태로워 보였다. 나이지리아 여자는 소니의 머리를 흔들어 대며 괴성을 질러댔다. 그 기세에 우즈베키스탄 아가씨는 구석으로 도망쳤고 철문을 열고 들어가려던 나도 멈칫했다. 아직 이 반장은 도착하지 않고 있었다. 잠깐 망설였지만 뭉치로 뽑혀 휘날리는 소니의 머리카락을 보자, 큰일 나겠다 싶었다. 무작정 안으로 뛰어들어 나이지리아 여자의 팔을 잡고 늘어졌다. 나이지리아 여자가 파리를 쫓듯 팔을 휘젓자 나는 그대로 날아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 틈에 소니는 나이지리아 여자의 팔을 깨물었다. 나이지리아 여자가 고래고래 비명을 지르며 소니의 머리카락을 잡아끌었다. 얼마나 세게 당기는지 소니의 이마에 주름이 잡혔고 눈초리는 찢어질 듯 하늘을 향해 치켜 올라갔다. 하지만 소니는 나이지리아 여자의 팔을 두 손으로 꽉 쥐고는 놓아주지 않는다. 흰자위로 금이 가듯 붉은 실핏줄이 섬뜩하게 번져 갔다. 이 반장이 도착했을 때 나이지리아 여자는 제발 놓아 달라며 울고 있었다. 나와 이 반장, 우즈베키스탄 아가씨가 달려들어 겨우 소니를 떼어 놓을 수 있었다. 소니의 입은 거품과 피로 범벅이 되어 있었고 나이지리아 여자의 팔뚝은 처참하게 살점이 뜯겨 있었다. 소니는 분이 안 풀리는지 몇 번이고 이를 드러내며 나이지리아 여자에게 달려들었다. 보고를 받은 김 실장이 달려왔다. 나이지리아 여자는 병원으로 이송됐고 김 실장은 입을 굳게 다물고 소니를 한참 동안 노려봤다. 다음 날 아침, 퇴근을 준비하고 있는데 이 반장이 들어왔다. “같이 병원 좀 가줘야겠는데.” 이 반장은 소니와 나를 차에 태우고 인근 정신병원으로 향했다. 어제 싸움을 보고 김 실장이 특별 지시를 내린 모양이었다. 여자 수감자가 외출할 때는 반드시 여직원이 동행해야 했다. 소니는 차창 밖으로 거리의 사람들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오랜만의 외출이어선지 살짝 들뜬 것처럼 보였다. 이른 아침인데도 병원 대기실에는 사람이 많았다. 여러 번 왔었는지 이 반장은 간호사와 아는 척을 했다. 대기 순번을 보니 좀 기다려야 할 것 같았다. 접수를 마친 이 반장은 의자에 앉아 신문을 펴들었다. 느긋한 그의 모습을 보니 짜증이 밀려왔다. 지금쯤이면 거의 집에 도착했을 시간인데. 당장 쓰러질 것같이 피곤했다. 핸드폰 벨소리가 고요한 대기실에 울렸다. 이 반장이 황급히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며 밖으로 나갔다. 간호사들만 이리저리 바삐 움직일 뿐 대기실은 다시 조용해졌다. 사람들은 멍하니 티브이만 들여다볼 뿐 아무 말이 없었다. 한참이 지났는데도 밖으로 나간 이 반장은 돌아오지 않았다. 들어올 때만 해도 어스레했었는데 어느새 대기실은 햇살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슬슬 데워지기 시작한 볕은 커피 잔의 온기처럼 따스했다. 머리가 무거워지며 눈꺼풀이 스르륵 감겨 왔다. 고개를 흔들어 봤지만 집요하게 따라 붙는 졸음을 물리치기엔 역부족이었다. 슬쩍 소니를 쳐다봤다. 소니도 대기실의 다른 이들처럼 아침드라마에 넋을 놓고 있었다. 열중했는지 흘러내리는 머리카락도 신경 쓰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주먹 쥔 손이 스르륵 풀리며 잠에 빠져들었다. 꿈속에서 나는 사막에 있었다. 작은 모래 구릉들이 끝없이 펼쳐진 사막이었다. 나 이외에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제일 높아 보이는 모래 구릉으로 올라갔다. 주변을 살펴봤지만, 예상대로 모래벌판 외에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때 어디선가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소리를 쫓아 달리기 시작했다. 질척이는 모래 속에서 한참을 달렸지만, 소리의 주인은 찾을 수 없었다. 기진맥진해진 나는 멈춰서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남자의 목소리, 여자의 목소리, 격양된 노인의 언성과 가는 아이의 음성, 사투리도 들려왔고 처음 들어보는 외국어도 있었다. 마치 밤하늘의 별처럼 수많은 목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다. 나는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을 잡을 수 없었다. 무력감에 빠져 주저앉는데 저 멀리 누군가 걸어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히잡 같은 스카프를 머리에 둘렀고 발목까지 내려오는 치마를 입고 있었다. 그녀를 쫓았지만, 그녀와의 거리는 줄어들지 않았다. 오히려 조금씩 그녀에게서 멀어져 갔다. 나는 두려워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나는 있는 힘을 다해 소리쳤다. ‘여보세요! 당신은 어디로 가고 있나요? 나는 어디로 가야 하나요? 제발 알려주세요.’ 그녀가 우뚝 멈춰 섰다. 그리고 고개를 돌리려 했다. 그녀가 바로 엄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누군가 어깨를 두드리고 있었다. 눈을 떠 보니 간호사가 보였다. “괜찮으세요?” 손을 들어 눈가로 가져갔다. 축축한 물기가 만져졌다. 나는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손등으로 훔쳐 냈다. 간호사가 주위를 둘러보며 물었다. “그런데 환자분 어디 가셨어요? 진료실로 들어오시라는데.” 옆을 보니 소니가 앉아 있어야 할 의자가 비어 있었다. 뒤통수가 서늘해지며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주위를 둘러보니 방금 전까지만 해도 대기했던 사람들은 사라지고 없었다. 대신 뒷줄에 새로 온 이들이 보였다. 화장실로 달려가 봤지만, 소니는 없었다. 사람들에게 소니를 봤는지 물어봤지만 모두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다리에 힘이 풀리며 목이 탁 막혀 왔다. 그때 문이 열리며 이 반장이 들어왔다. 나는 울상을 지으며 소니가 사라졌다고 말했다. 자초지종이라고 할 것도 없는 내 이야기를 들은 이 반장이 밖으로 뛰쳐나갔다. 나도 이 반장을 쫓아 밖으로 나왔다. 하지만 이 반장의 모습은 벌써 사라지고 없었다. 소니는 어디로 간 걸까. 소니에 대해서 아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알고 있는 것이라고는 그녀가 한국인이 아니라는 것뿐, 어디로 갔을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마치 고장 난 라디오처럼 수많은 목소리와 거리의 소음들이 한꺼번에 귀로 파고들었다. 나는 손가락을 들어 귀를 틀어막았다. 그런 내 모습이 이상했던지 지나가던 사람들은 흘끔거리며 나를 쳐다봤다. 문득 스쳐 가는 한 여자의 옆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여자의 옆모습은 소니와 닮아 보였다. 황급히 그녀의 어깨를 잡아챘다. 안경을 쓴 여자가 무슨 일이냐는 표정으로 돌아봤다. 소니는 안경을 쓰지 않았다. 여자에게 사과한 후 무턱대고 앞으로 걸어갔다. 정류장이 보였다. 버스가 멈춰 서자 소니와 닮은 여자들이 우수수 쏟아져 내렸다. 나는 누구를 쫓아야 할지 몰라 망설이다 가방을 멘 여자를 따라갔다. 한참을 쫓는데 여자가 핸드폰을 꺼냈다. 이번에도 소니가 아니었다. 여자의 한국말은 너무나도 유창했다. 나는 어디로 가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이 반장에게 전화를 해봤지만, 그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출입국 관리 사무소로 돌아갈까. 그러고 보니 여기가 어딘지 알 수 없었다. 택시를 잡기 위해 팔을 들어 올리는데 옅은 커피색 피부의 손등이 보였다. 보호소 철장 안에 이런 피부색을 가진 사람들은 많았다. 갑자기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도망쳐 나온 게 내가 아닐까. 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거리를 가득 메운 간판들을 읽을 수가 없었다. 일그러진 간판의 글자들은 처음 보는 외국어처럼 낯설었다. 내가 한국인이라는 걸 증명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지금 여기 이곳의 내가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 자리에서 어찌할 바를 모른 채, 빈 석상처럼 그대로 서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있었던 걸까, 핸드폰이 울렸다. 이 반장에게 온 전화였다. 그는 소니를 찾았으니 집으로 퇴근하라 했다. 소니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새침한 표정으로 자신의 영역에 앉아 있었다. 그런 그녀를 보는 내 기분은 가을비처럼 오락가락했다. 도망친 것에 대해 화가 나기도 했고 돌아와 준 것에 대해 고맙기도 했다. 소니는 도망친 지 네 시간여 만에 자기 발로 사무실에 돌아왔다. 직원들은 그녀가 어디를 갔다 온 건지 몸이 달 정도로 궁금해했다. 하지만 소니는 일언반구 말하지 않았다. 며칠 후 이 반장이 비디오테이프를 가져왔다. 병원 근처 지하철역의 개찰구와 그 앞 대합실을 찍은 CCTV 영상이었다. 하단의 숫자는 소니가 도망친 날의 아침을 가리키고 있었다. 화면 속에서 수많은 사람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이 반장이 ‘저기다. 저기’라고 말하며 손가락으로 한 사람을 가리켰다. 화면 끝에서 소니가 걸어오고 있었다. 시간을 보니 아홉 시 삼십 분이었다. 병원에서 역까지는 걸어서 십분 정도 거리였다. 내가 졸자마자 도망친 게 분명했다. 그녀는 대합실에 설치된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멍하니 지나는 사람들을 바라봤다. 하단의 숫자가 열두 시를 넘었지만, 여전히 그녀는 일어서지 않았다. 아무도 그녀에게 다가가지도 눈길을 보내지도 않았다. 이 반장이 비아냥거렸다. “돈이 없으니 아무 데도 못 가네.” 나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내가 아는 소니는 가고 싶은 곳이 있다면 사람을 속여서라도 갈 사람이었다. 이 반장은 의심스러운 장면이 있는지 확인해 보라며 한 번 더 비디오를 틀었다. 사람들은 빠르게 화면을 스쳐 지나갔고 의자에 앉은 소니는 여전히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이 반장과 나는 어떤 징계도 받지 않았다. 오히려 소니의 도주 사실이 외부로 새어 나갈까 봐 다들 쉬쉬하는 분위기였다. 그 사건 이후에도 소니는 예전과 다름없이 행동했다. 새로 들어온 외국인들에게 텃세를 부렸고 자신의 영역에 누워 드라마를 봤다. 그렇게 소니가 또다시 겨울을 보호소에서 날 줄 알았다. 하지만 첫눈 예보가 있던 날 소니의 석방이 통보되었다. 그 소식을 들은 소니는 거품을 물고 뒤로 나자빠졌다. 그래도 통하지 않자 자신의 몸에 자해를 했다. 결국, 소니는 병원으로 실려 갔다. 하지만 윗사람들은 단호했다. 그런 소동을 부렸음에도 다음 날로 석방이 미뤄졌을 뿐이었다. 새로 온 소장은 골치 아픈 문제를 빨리 치우고 싶어 했다. 이 반장은 병원에서 돌아온 소니를 잘 감시하라고 신신당부했다. 첫날처럼 보호실에는 나와 소니 둘만이 남았다.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다른 수감자들은 일찌감치 외국인 보호소로 보내 버렸다. 취침시간이 지났는데도 소니는 자리에 눕지 않았다. 불을 끌 엄두가 나지 않았다. 대답을 바라는 말인지 혼잣말인지 알 수 없는 톤으로 소니가 말했다. “소니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다.” 지하철역을 말하는 건가, 나는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소니가 말했다. “사람들은 걸을 때 참 무서운 얼굴을 한다. 그런 얼굴로 다들 어디로 가는 걸까?” 내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소니는 고개를 돌려 나의 눈을 바라봤다. 소니의 눈동자는 마치 갓난아기의 눈처럼 샛말갰다. 사람들의 머리와 어깨 위로 흰 얼룩 같은 눈송이가 쌓이고 있었다. 어제 내릴 거라던 첫눈은 오늘 아침에야 내리기 시작했다. 파도처럼 밀려오는 인파 속에서 나는 어디로 가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소니는 예정대로 오늘 아침 석방되었다. 아침 일찍부터 불법체류 외국인들이 이송되어 왔기 때문에 나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퇴근 시간이 다 되어서야 소니가 더는 보이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기분이 이상했다. 소니는 어디로 간 걸까. 마치 이 세상에 나 홀로 남겨진 것만 같았다. 거리에는 눈이 쌓여 가고 있었다. 나는 소니의 발자국을 찾으려 했다. 하지만 벌써 거리는 출근하는 사람들에 의해 어지럽혀 있었다. 무작정 소니의 흔적이라 짐작되는 발자국을 따라갔다. 눈바람이 날리기 시작했고 사람들의 발자국들은 뭉개졌다. 나는 발자국을 놓쳤다.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봤다. 역 앞이었다. 나는 역으로 들어갔다. 출근하는 사람들로 역은 붐볐다. 부딪히지 않게 나는 어깨를 움츠려야 했다. 그때, 왠지 낯이 익은 의자가 눈에 들어왔다. 도망친 소니가 앉았던 지하철역의 의자였다. 나는 그 의자로 가 앉았다. 소니의 말대로 사람들은 무서운 얼굴을 하고 빠르게 내 앞을 지나쳐 갔다. ‘어디로 가야 하나요?’ 나는 누구에게라도 묻고 싶었다. 그러나 아무도 나를 쳐다보지 않았다. 지우개로 지워지듯 오고 가는 사람들은 점점 옅어져 갔다. 결국, 신기루처럼 모두 사라져 버렸고 역에는 나 홀로 남게 되었다. 그러나 소리들은 그대로였다. 사람들의 말소리와 주변 소음은 오히려 증폭되어 귓전을 때렸다. 전차가 진입하는 소리가 아련하게 들려왔다. 전차는 A시 공단역으로 갈 것이다. 엄마는 A시 공단역의 공장에서 일하고 있다. 나는 오래전부터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아버지에게서 온 전화였다. 나는 어찌해야 할지 모른 채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소니는 대체 어디로 간 걸까. <끝>
  • ‘별그대’ 전지현 통해 본 ‘☆들의 은밀한 사생활’

    ‘별그대’ 전지현 통해 본 ‘☆들의 은밀한 사생활’

    SBS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에서 ‘왕싸가지’ 한류 여신 천송이 역을 맡은 전지현이 앞과 뒤가 다른 톱스타를 사랑스럽게 그려내며 웃음을 선사하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스타, 어디까지가 진짜일까. ◆ 하루종일 사과 1개 양배추 반 개 먹고 “많이 먹어도 살 안 쪄요” 하루종일 쌓인 스트레스를 풀며 노래를 부르던 천송이는 시끄럽다며 항의하러온 옆집 남자 도민준(김수현 분)에게 “하루종일 사과 1개에 양배추 반쪽만 먹었는데도 욕을 많이 먹어서 배부르다”고 고백한다. 또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치맥(치킨과 맥주)”이라면서도 “칼로리가 무려 1500kcal다. 먹을 수 없다”고 토로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SNS에는 먹지도 않은 모카라테 인증샷을 올리며 많이 먹는 척 하는 앙큼함을 보여줬다. ◆ 새벽부터 꼼꼼 메이크업 하고 “어머 세수만 하고 나왔는데” 천송이는 자신의 하루 일과를 담은 리얼다큐 프로그램을 찍기로 했다. 아침부터 취재진이 천송이의 집 앞으로 찾아왔고 청초한 미모로 등장한 천송이는 “세수만 하고 나왔는데. 이거 정말 너무 리얼이다. 로션이라도 바를 걸”이라고 호들갑을 떨었다. 그러나 알고 보니 천송이는 새벽부터 일어나 메이크업 아티스트에게 “민낯처럼 보여야 돼”라고 주문하며 꼼꼼한 메이크업을 받았다. ◆ 맹장염으로 쓰러질 때도 폭풍 치장 “병원 패션도 내가 최고” 천송이의 가식은 맹장염으로 쓰러질 때 정점을 찍었다. 복부 통증을 호소하던 천송이는 매니저가 집으로 데리러 오지 못한다고 하자 직접 병원으로 가야했다. 그녀는 식은땀을 흘리며 배를 움켜잡은 채 메이크업에 돌입했다. 병원에 갈 때조차도 민낯은 허락할 수 없는 법. 완벽한 메이크업과 스타일링을 마친 천송이는 “병원 패션도 내가 최고여야 해”라고 말하며 집을 나섰다. 늘 생각 없이 밝을 것 같은 귀여운 허세녀지만 뒤에는 남모를 눈물도 있다. 인기만큼 뒤따르는 악플에 천송이는 “사람들은 앞에서는 다 나를 좋다고 하는데 뒤에서는 나를 욕해”라며 눈물을 보인다. 앞과 뒤가 다른 것은 톱스타 천송이뿐만이 아니라 우리도 마찬가지 아닐까.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군더더기 다 걷어냈다, 음악만 남기고”

    “군더더기 다 걷어냈다, 음악만 남기고”

    회사의 기획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들의 앨범을 직접 만드는 아이돌 그룹은 손에 꼽을 정도다. 2009년 데뷔해 한류 아이돌 대열에 선 그룹 비스트는 지난 7월 발표한 정규 2집 앨범에서부터 ‘자체 프로듀싱 그룹’의 타이틀을 달았다. 그 뒤에는 멤버 용준형(24)이 있었다. 그는 비스트와 동료 가수들의 곡을 써 오다 지난해 12월 솔로로 나선 멤버 양요섭의 앨범과 비스트 정규 2집에서 프로듀서를 맡았다. 전곡을 작사·작곡하고 앨범 전체를 조율하며 ‘아이돌’이라 얕보기 어려운 뮤지션으로서의 가능성을 보였다. 이번에는 자신의 이름을 내건 솔로 앨범 ‘플라워’를 내놓았다. “내 것도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을 데뷔 5년 만에 실현했다. “제 솔로 앨범에 대한 아무런 계획도, 구상도 없을 때 컴퓨터에 ‘용준형’이라는 폴더를 만들어 놨어요. 제가 하고 싶은 곡들을 만들어 폴더에 모아뒀죠. 음악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후 이제서야 첫발을 디딘 느낌입니다.” 타이틀곡인 ‘플라워’는 힙합 비트 위에 올려진 일렉트로닉 피아노와 색소폰 연주가 몽환적인 느낌을 준다. 낮게 읊조리는 노래와 랩에는 지나간 사랑의 순간을 꽃에 비유하는 시적인 가사가 담겨 있다. 역시 힙합 비트와 일렉트로닉 피아노로 따뜻한 느낌을 준 ‘슬로우’, 가수 지나와 함께 부른 팝 넘버 ‘애니씽’ 등 5곡이 수록됐다. 지금껏 함께 곡 작업을 해 온 단짝 친구 김태주와 작사·작곡한 곡들로, 전반적으로 힙합 비트 위에 어두우면서 서정적인 감성을 얹었다. 그런데 아이돌 그룹 멤버의 솔로 신고식치고는 어딘가 소박하다. 가만히 서 있는 옆모습이 새겨진 앨범 표지부터 뮤직비디오, 의상, 콘셉트 등 어느 하나도 파격적이거나 자극적인 것이 없다. “다른 것보다 음악을 돋보이게 하고 싶었어요. 그냥 투명한 플라스틱 케이스에 시디를 넣어 내놓고 싶었을 정도로 다른 겉치레 없이 음악만을 들려드리고 싶었어요. 그래서 군더더기는 다 걷어냈습니다.” 앨범이 나오기까지 그가 만들어 놓은 곡은 하드디스크 2개를 가득 채울 정도다. 한참 친구들과 어울려 다닐 나이인데도 그는 작업실에 ‘출석체크’를 한단다. 어떤 곡은 비트만 만들어 놓고, 어떤 곡은 가사까지 써 놓고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버렸다. “작업할 때는 곡이 잘 나온다 싶다가도 다음 날 다시 들어보면 ‘내가 왜 이런 곡을?’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아요.” 하지만 만들고 지우는 반복 속에서도 한 뼘씩 성장함을 느낀다. “예전에 작업해 놓은 곡을 가끔씩 꺼내서 들어보면 민망해서 식은땀이 날 정도예요. 그러면서 ‘내가 발전을 하긴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지난 한 해 그는 그룹 활동과 작사·작곡 외에도 tvN 드라마 ‘몬스타’에 출연하면서 연기 신고식도 치렀다. “사람이 죽을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했을 정도로 극한의 스케줄을 경험했다. 하지만 그의 욕심은 끝이 없다. “음악도, 연기도 지금 시작일 뿐 목표 이상을 이뤄낸 건 아닙니다. 내년의 목표라면 누가 봐도 ‘쟤 많이 늘었네’라고 생각하게끔 하는 것입니다.”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그녀는 카리스마 지휘자 아닌 단원들의 ‘살가운 엄마’다

    그녀는 카리스마 지휘자 아닌 단원들의 ‘살가운 엄마’다

    “지휘자의 고국으로 공연하러 간다니까 오히려 아이들이 설레어 해요. 오스트리아에서도 불고기를 많이 먹는데 제가 ‘한국에 가면 오리지널 불고기를 먹을 수 있다’고 하니 저보다 더 들떠 있네요(웃음).” 지난해 9월 520여년 역사의 오스트리아 빈소년합창단은 파격적인 선택을 했다. 처음으로 여성이자 동양인을 상임지휘자(모차르트반)로 ‘간택’한 것.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합창단을 이끌게 된 주인공은 빈국립음대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김보미(35)씨다. 지휘자가 된 이후 첫 내한 공연(내년 1월 17~19일, 23~25일)을 앞두고 전화 인터뷰로 만난 그는 카리스마 있는 지휘자라기보다 살가운 엄마에 더 가까운 느낌이었다. “단원들이 모두 기숙사 생활을 하기 때문에 스킨십이 무엇보다 중요해요. 옷 입는 것, 손톱 깎는 것은 물론, 주말엔 동생이랑 뭐하고 놀았는지 학교 성적은 잘 나왔는지 제가 일일이 참견하고 귀찮게 하죠. 아이들이 그렇게 제 손아귀에 들어와 있어야 호흡도 잘 맞고 좋은 공연을 만들 수 있거든요.” 그가 생각하는 지휘자의 리더십에 대해 묻자 “손에 실을 쥐고 있는 느낌”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무슨 말일까. “각자 성향이 다른 사람들을 데리고 원하는 음악을 만들어 낸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이겠어요. 그걸 잘 조율하려면 단원들 각각의 특성을 잘 알고 있어야 돼요. 그래서 늘 제 손에 23명의 단원과 연결된 실이 쥐여 있다고 생각해요. 마이키라는 아이와 연결된 실을 느슨하게 놓을 때도 있고, 당길 때도 있겠죠. 하지만 내가 그들과 연결돼 있다는 느낌만은 잊지 않아요. 그 느낌을 놓치면 아이들을 이끌 수가 없거든요.” 처음에는 서로 탐색하는 과정도 치렀다. 단원들이 피아노 페달 밑에 조그만 콩알탄을 넣어 두는 등 짓궂은 장난으로 그를 ‘테스트’했던 것. 그러나 그는 이제 아이들에게 감동하는 순간이 더 많다고 했다. “소리만 요란하게 나는 콩알탄 정도요? 그 정도는 제가 가뿐하고 대범하게 받아 주죠. 그보다는 성품이 안 좋던 아이들이 조금씩 변화될 때 감격하곤 해요. 감정적으로 음악적으로 서로 통하기 시작하니 아이들이 저를 놀라게 하곤 합니다. 제 생일에 직접 생일 케이크를 구워 온 아이도 있었어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아이들을 이끌다 보니 공연 때 식은땀이 쭉 나는 돌발 상황도 부지기수다. “얼마 전 일요일에 뮌헨의 큰 교회에서 공연을 하는데 추운 데다 돌바닥이어서 냉기가 그대로 올라오니 아이 하나가 딸꾹질을 멈추지 않는 거예요. 솔로 부분을 맡은 아이인데 노래는커녕 숨이 가쁠 정도로 딸꾹질을 해 대니 결국 저도 웃고 관객도 웃고 웃음바다가 됐죠.” 첫 여성·아시아인 지휘자라는 수식어의 무게, 100여명의 단원 가운데 유일한 여성이라는 부담이 클 법도 하다. 하지만 도리어 그는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게 좋다”며 현재를 한껏 즐기고 있었다. 지난 14일에는 오스트리아에서 합창 음악에 기여한 음악가에게 주는 오르츠너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다. “오히려 저는 ‘이런 금녀의 시스템 안에 여자가 한 명 있다는 걸 다행으로 알아라’라며 당당하게 다녀요(웃음). 제가 들어오면서 합창단의 분위기도 경쾌해졌어요. 빈소년합창단은 나라를 대표하는 문화사절단이기 때문에 저를 처음 보는 관객들은 ‘웬 여자냐, 웬 동양인이냐’ 할 수도 있죠. 그렇게 튀는 만큼 잘 해내지 못하면 두 배로 더 눈에 띄겠지만, 잘하면 그만큼 돋보이는 장점이 있어요. 그게 저를 성장시키는 동력이죠.” 1498년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의 막시밀리안 1세 황제의 칙령으로 세워진 빈소년합창단은 10~14세 소년 100여명으로 이뤄져 있다. 이들은 모차르트, 슈베르트, 하이든, 브루크너 등 4개 반으로 나뉘어 연간 350회의 공연을 치른다. 상임지휘자는 특별한 결격사유가 없는 한 사실상 종신 자격을 얻는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40대 남성, 살 빠지거나 식은땀… 혈액건강 체크를

    40대 남성, 살 빠지거나 식은땀… 혈액건강 체크를

    질병, 특히 암에는 낭만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 일단 발병하면 생사를 건 투병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문학작품 등의 영향으로 백혈병을 ‘로맨틱한 암’으로 여기는 분위기가 없지 않다. 만성 골수성 백혈병(CML·Chronic myeloid leukemia)도 그런 대상이다. 그러나 막연하게나마 그렇게 생각하기에는 환자들이 감당해야 하는 고통이 너무 크고 무겁다. 2002년 한국중앙암등록사업본부 통계에 따르면 국내 조혈계통의 암 발생 빈도는 2.6%로 전체 암 중 8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CML은 20% 정도를 점유하고 있다. 또 해마다 300명가량의 환자가 새로 발생하고 있다. 이런 CML을 두고 서울성모병원 혈액내과 김동욱 교수와 얘기를 나눴다. 이 병원 암병원 연구부장을 맡고 있는 김 교수는 CML에 관한 다국적 연구를 주도하는 등 세계적인 CML 권위자로 꼽힌다. →CML을 정의해 달라. -CML은 정상인에게는 존재하지 않는 유전자의 이상으로 혈액세포가 과다 증식하여 백혈구나 혈소판이 증가하는 병으로, 만성적인 경과를 보이는 혈액암의 일종이다. 급성 백혈병과는 달리 발병 후 진단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 만성기로부터 가속기, 급성기로 서서히 진행하는 만성적인 경과를 보이며, 조기에 치료 계획을 세워 환자의 상태에 따라 적절한 치료가 되어야만 완치나 장기 생존을 기대할 수 있다. →CML은 세부적으로 어떻게 구분하는가. -이 혈액암의 가장 특징적인 현상은 만성기·가속기·급성기 등 3병기로 나눠지며 97% 이상, 즉 대부분의 환자들은 만성기에 진단을 받게 되지만 처음부터 가속기 또는 말기인 급성기로 진단되는 환자도 3%가량 된다. 지금처럼 치료 효과가 좋은 표적항암제들이 쓰이기 이전인 2000년까지만 해도 CML은 진단 이후 평균 4∼5년 뒤에는 가속기로 악화하고, 다시 1년 이내에 급성기로 진행되어 치명적인 상태에 이르곤 했다. →우리나라에서의 발생 추이는 어떤가. -2011년 자료에 따르면 국내에서는 매년 250∼300명의 환자가 새로 발생하며, 현재 2500∼3000명가량의 CML 환자가 생존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 병은 여성보다 남성에서 1.6∼1.8배 많이 발생하며, 한국인의 평균 발병 연령은 40∼45세 사이로 파악되고 있다. 이는 평균 50∼55세 사이에 발병하는 유럽이나 미국 등 서양 환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젊은 나이에 발병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러나 최근 들어 글리벡을 포함한 슈펙트, 타시그나, 스프라이셀 등 다양한 표적항암제가 개발돼 7년 생존율이 94%에 이르고 있다. →발생 원인은 무엇인지 상세히 설명해 달라. -안타깝게도 무엇 때문에 필라델피아 염색체의 이상이 발생하는지는 아직도 자세히 파악되지 않고 있다. 다만 방사능에 피폭된 사람이나 중금속, 염색약, 반도체, 와이퍼 표면의 세척에 쓰이는 벤젠이나 톨루엔 등 유기화학물질에 과다 노출되거나 아니면 소량이라도 장기간 노출될 경우 상관관계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런 경우라도 실제로는 소수에서만 연관성이 규명되고 있다. →이런 발생 원인이 구체적으로 CML 발병에 어떻게 관여하는가. -이런 요인들이 장기지속적으로 유전자에 손상을 가하게 되면 결국 유전자의 불안정성이 유발되어 암을 일으키는 유전자로 변형된다. →최근의 국내 발병률 추이에 관여하는 특정 원인이 따로 있나. -이에 대한 연구가 있었지만 알려진 것과 크게 차이는 없었다. →증상은 어떻게 나타나는지 병기별로 구분해 설명해 달라. -가장 흔한 증상은 피로감과 쇠약감이다. 그러나 처음에는 일반적인 증상 상태로 나타나 단순히 업무나 일상생활이 힘들어 그러는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이 밖에 빈혈·고열을 동반한 감기몸살 증상·출혈·뼈와 관절의 통증·체중 감소와 대사성 부작용이 나타나기도 한다. 간 또는 비장이 커지며, 많은 환자들이 밤에 잠자리에 든 뒤 식은땀을 흘리는가 하면 실제로는 열이 없지만 몸이 뜨거워지는 열감을 보이기도 한다. 증상이 진행되어 백혈구 수가 증가하면 혈액의 점도가 높아져 끈적거리게 되며, 이 때문에 남성에서 성기 발기현상이 나타나거나 귀울림, 멍한 정신상태 등이 초래되기도 한다. 병기별로 보면, 만성기의 경우 피로감과 체중감소, 식욕부진, 복부팽만감과 조기 포만감·발한·비장 및 간 비대 등이 나타난다. 가속기에 접어들면 빈혈과 필라델피아 염색체 외에 다른 염색체 이상이 나타날 수 있고, 암세포가 골수가 아닌 다른 신체 조직이나 기관을 침범할 수도 있다. 또 비장이 더욱 커지는 등 급성백혈병과 유사한 증상이 나타난다. 급성기에는 가속기의 일반적인 증상이 지속되는 가운데 비장이 더욱 커지고, 빈번하게 감염과 출혈이 반복된다. 그런가 하면 증식한 백혈구가 엉겨 폐와 뇌의 혈류 저하를 초래, 폐렴·호흡곤란·어지럼증·운동 능력의 부조화 등이 나타나며 겨드랑이와 사타구니 림프선이 비대해지기도 한다. →특히 환자가 자각할 수 있는 특징적인 증상이 따로 있나. -피로감과 체중감소, 감기몸살 등 비특이적인 증상이 있지만 이런 증상으로는 CML을 특정하기가 쉽지 않다. CML이 아닌 다른 요인 때문에도 흔히 생기는 증상들이기 때문이다. 이외에는 특이한 증상이 거의 없다. →검사 및 진단은 어떻게 하는가. -임상적으로는 비장이 커지는 증상이 중요하지만 모든 환자에게 나타나는 소견은 아니다. 따라서 혈액검사를 통해 백혈구나 혈소판의 증가가 확인되면 CML을 의심한다. 일단 의심 소견이 제시되면 골수흡인 및 조직검사를 통해 확진하게 된다. CML 환자의 경우 골수검사를 해보면 형태가 다양한 골수구 계열의 세포들이 보이는데, 여기에는 미성숙 단계의 세포는 물론 성숙한 호중구들이 많이 증식해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최종적으로는 말초혈액이나 골수를 이용하여 암 유전자인 ‘Bcr-Abl’, 필라델피아 염색체를 확인하기 위해 분자생물학적 유전자 증폭검사나 염색체 검사를 시행하게 된다. 심재억 전문기자 jesh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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