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식민지
    2026-06-15
    검색기록 지우기
  • 우호
    2026-06-15
    검색기록 지우기
  • 문체부
    2026-06-15
    검색기록 지우기
  • 신영
    2026-06-15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5,605
  • 건국후 최대좌경조직 사실상 와해/「사노맹」 일망타진의 의미

    ◎사회주의 폭력혁명 기도 중도차단/극렬운동권 세약화… 활동 위축될듯 사회주의 폭력혁명을 내세우고 활동해온 건국이후 최대의 좌경지하조직인 「사노맹」은 이 단체 중앙상임위원으로 가장 핵심적인 인물인 백태웅씨와 중앙위원 7명등이 함께 검거됨으로써 사실상 와해되게 됐다. 지난 90년9월부터 「사노맹」의 수사에 나선뒤 「얼굴없는 시인 박노해」로 알려졌던 이단체 중앙상임위원인 박기평씨등 핵심조직원들을 붙잡았으나 백씨등을 붙잡지 못해 아쉬움이 이만저만 아니었던 수사당국으로서는 오랜만의 개가라 할수있다.이 조직을 수사해온 국가안전기획부는 지난 90년10월 중앙위원 남진현씨(27)등 핵심조직원 54명을 검거한데 이어 지난해 2월에는 박기평씨등 15명을 검거,「사노맹」의 정체를 어느정도 밝혀냈었다. 그러나 「사노맹」은 중앙상임위원 박씨가 붙잡힌 뒤에도 백씨를 중심으로 조직의 재건을 꾀해 왔으며 최근에는 그 세력이 수사착수 전과 같은 정도로 확장된 것으로 수사당국은 추정해왔다. 특히 백씨는 「사노맹」의 최고이론가로서조직원들을 선동하는 우두머리의 역할을 해왔기 때문에 백씨의 검거가 「사노맹」의 정확한 정체를 밝혀내고 조직을 와해시키는 지름길이라고 보고 추적대상 1호로 지명,끈질긴 추적수사를 벌여왔다. 지금까지의 수사결과로는 「사노맹」이 북한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북한의 대남전략단체인 「한민전」방송을 그대로 답습해 이를 조직의 이념으로 삼아 활동해온 점 등을 감안할때 이 부분에 대한 수사도 관심거리라 할 수 있다. 이 단체의 목표는 「우리사회가 제국주의세력인 미국·일본에 종속되어 노동자등 민중을 착취하는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라는 가설아래 반정부세력을 규합해 노동자계급의 전위당을 결성하고 무장봉기로 「민족민주혁명」을 달성하며 「임시민주정부」를 구성해 「민중공화국」을 수립한다는 것이다. 나아가 이 단체는 자본주의제도를 철폐하고 사회주의 혁명을 완수해 「완전한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하는 것을 최종 목표로 하고 있다. 그 중간단계로 이른바 「남한 사회주의노동자당」의 결성 연도를 오는94년으로 잡아놓고 3천5백여명으로 추정되는 좌경 운동권세력들을 학원·노동·종교·정치계까지 침투시켜놓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따라서 백씨등 검거된 사람들의 수사가 마무리되면 각계에서 암약하고 있는 「사노맹」조직원들에 대한 수사는 크게 활기를 띨 전망이다. 위장간판을 내걸고 활동하고 있는 산하 조직들과 노동현장이나 학원가에 침투한 조직원들의 신분과 정체가 속속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사노맹」의 「사회주의 폭력혁명」기도는 이번 핵심인물들의 검거로 중도에 차단되게 됐으며 좌경운동권세력의 규합과 활동에도 큰 타격을 줄 것으로 보인다. ▷사건일지◁ ▲88·4 백태웅 박기평 남진현 김형기 등이 「사노맹 출범준비위원회」구성. ▲89·11·12 서울대에서의 시국집회서 처음으로 「사노맹」정체드러냄. ▲90·10·30 남진현중앙위원등 40명 구속. ▲91·2·27 박기평의 부인 김진주 검거. ▲91·3·10 박기평 검거 ▲91·4·3 중앙상임위원 박기평 김진주등 12명 구속송치. ▲91·8·20 서울지검 박기평에 사형구형. ▲91·9·10 서울형사지법 박기평에 무기징역선고. ▲91·12·30 서울고법 박기평 항소기각. ▲92·4·24 대법원 박기평 상고기각 무기확정 ▲92·4·29 백태웅등 핵심요원 39명 검거.
  • 「백범암살 재조명」 계기 책출간·연구모임 잇따라

    ◎“친일청산” 학계논의 활발/친일파 인명사전·역사강좌 등장/“일시적관심 아닌 현대사정립 계기로” 지적 백범 김구선생의 암살사건 배후에 친일경력을 지닌 지배세력이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친일청산에 대해 학계는 물론 일반인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백범의 일생과 친일문제를 다룬 책들을 찾는 사람들이 줄을 서고 있고 재야사학자 고 임종국씨가 정리한 친일관련자료집 「친일파 인명사전」「임종국전집」「친일파총사」등이 잇따라 발간될 예정이며 이문제를 특집으로 다룬 잡지가 발간되고 시민역사강좌가 열린다. 역사문제연구소(소장 이리화)는 오는 23일부터 6월4일까지 연구소 강연실에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친일파·민족반역자 열전」이라는 주제로 한국사교실를 개최한다.매주 목요일 하오 7시에 열리는 한국사교실은 모두 7차례에 걸쳐 친일파집단의 형태를 유형별로 나눠 대표적인 인물들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오는 23일 서중석교수(성균관대)의 「친일파를 다시 본다­친일파·민족반역자에 대한 역사적 평가」라는 제목의 강의로 시작되는 이번 「친일파강좌」는 이리화소장의 「영원히 씻을 수 없는 매국노의 오명­이완용·송병준」,문학평론가 임헌영씨의 「친일을 애국으로 착각한 지식인들­이광수·최남선」,박현채교수(조선대)의 「비행기를 헌납한 친일기업인들­박흥식·문명기」,미술평론가 윤범모씨의 「일제를 위해 붓을 잡은 화가들­김기창·김은호」,강정숙씨(영남대 강사)의 「이땅의 아들 딸을 전쟁터로 몰아낸 여성명사들­김활란·모윤숙」,그리고 방기중연구실장의「8·15이후의 친일파집단­이승만정권을 떠받친 경찰·관료·지식인들」순서로 진행된다. 서중석교수는 『근·현대사를 연구하는데 있어 친일파의 문제를 항상 걸림돌이 되어왔다』고 전제하고 『해방을 맞은지도 반세기가 되어가는 시점에서 과거사에 대한 처벌보다는 잘잘못을 학문적으로 정확히 분석하고 특히 이들이 친일행위를 하게 된 동기와 배경및 구체적인 과정을 규명해내는 일은 현대사를 제대로 이해하는 길』이라면서 이번강좌의 기획의도를 설명했다. 그동안 일본문제를 자주 다뤄온 격월간지 「순국」도 이와같은 맥락에서 3·4월호에 「한국현대사를 움직인 친일군상」이라는 특집을 실고 친일문인과 친일교육계인사,친일화가·음악가·영화인 그리고 언론인등으로 분야를 나눠 친일파문제를 다루고 있다. 지난 2월말 반민족문제연구소(소장 김봉우)가 주최한 「식민지배 청산문제의 민족사적 이해」라는 주제로 열린 3·1절기념학술심포지엄에서도 친일파문제가 본격적으로 논의됐는데 이 자리에서 참석자들은 친일파문제를 비롯,식민지배의 청산은 민족의 주체적·평화적 재통일의 방향을 설정하는데 불가결한 밑거름이라는데 의견을 모으고 연구에 박차를 가할 것을 다짐했었다. 그러나 친일파연구는 친일파의 대명사격인 이완용이라는 인물을 분석해놓은 논문 한편 없을 정도로 아직은 미진한 상태이다. 이에대해 서중석교수는 『현재 학계의 연구가 초보단계에 머물러있지만 관련자료도 풍부하고 연구의 필요성에 인식이 모아져 일단 연구만 시작되면 해방전후 우리 현대사에 대한 종합적인 연구의 기초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학계의 연구와 함께 최근 정신대문제와 MBC­TV에서 방영되고 있는 「분노의 왕국」등을 둘러싼 한일양국간의 외교적인 갈등,일본의 재무장·군사대국화의도의 표면화,그리고 백범 김구선생의 암살배후에 대한 새롭게 밝혀진 사실등이 맞물리면서 고조된 친일파와 일본에 대한 국민적인 관심은 일시적인 호기심의 차원이 아니라 진정한 과거청산의 계기가 되어야한다는 지적이 많다.
  • 외언내언

    서울에서 지구의 중심을 꿰뚫고 간다면 어디가 될까.필시 지구의 저쪽 남미의 어디쯤이 될 것이다.브라질의 상파울루에 가면 「일본행지름길」이란 푯말의 수직땅굴이 관광의 명소로 인기를 모으고 있다고 한다.이웃한 페루의 수도 리마에도 그런 푯말의 명소가 하나쯤 생기지 않았나 궁금하다.◆1백28만㎦로 한반도의 약6배 넓이에 인구는 2천2백만.원주민 45%에 혼혈 37%이고 백인은 15%인 나라.이곳에서 기타 3%에 속하는 동양계 이민 일본인2세가 대통령에 선출되어 세계의 화제가 되었던 것이 1년9개월전의 일.농업경제학자 출신의 금년 52세인 후지모리대통령이 다시 세계의 관심과 화제의 대상이 되고 있다.◆친위쿠데타를 단행한 것.군부와 손잡고 헌법을 정지시키는 한편 의회를 해산하고 반발하는 야당지도자들을 속속 구속하는가 하면 부패 법관들을 대거 숙청하고 있다.경제파탄과 좌익게릴라준동에 콜레라창궐의 3중고에 시달리고 있는 페루를 구출하기 위한 정책들이 번번이 여소야대의회로부터 거부당하자 참지 못하고 칼을 뽑은 것.야당과 사법부의 부정·부패를 비난하면서 6주내에 국민의 신임을 묻겠다고 천명하고 있다.◆일부 백인 기득권층을 제외한 80%이상의 국민으로부터 지지를 받고 있다며 여유있는 자세.그러나 문제는 지원이 필요한 해외의 반응.미국이 즉각 원조를 중단하고 남미 이웃나라들도 비난일색.식민지 종주국이었던 스페인이 특히 강한 비판의 반발을 보이는 것도 흥미롭다.목적이 수단을 정당화 할 수는 없으며 좋은 쿠데타란 없다는 논리.◆대조적인 것은 일본의 반응.후지모리에 호감을 갖고 그의 성공을 바라며 돕고 있는 일본은 민주정치의 부정을 지지할 수는 없으나 비상조치는 이해한다는 입장이다.민주정치란 인내의 정치.얼마나 참을 수 있느냐가 성패의 열쇠.많은 것을 생각게 하는 후지모리의 친위 쿠데타라고나 할까.귀추가 주목된다.
  • 「4월의 문화인물」에 우장춘박사

    ◎세계적 육종학자로 다윈진화론 일부 수정/「씨없는 수박」은 유명… 각종 기념행사 펼쳐 문화부는 과학의 달인 4월의 문화인물로 세계적인 육종학자 우장춘박사(1898∼1959)를 선정,농림수산부,과학기술처와 공동으로 사업을 벌인다. 기념사업은 ▲강연회(4월8일 하오4시 국립중앙박물관 사회교육관·우장춘박사의 업적­김태욱 원우회고문,21일 하오2시 국립중앙과학관 강당 우장춘박사의 학문세계 및 그의 응용­ 강혁 유전공학 연구소박사,24일 원예시험장 남부지장 원예산업 발전에 끼친 우장춘 박사의 업적­원우회 남부지회) ▲세미나(4월5일 하오2시 유전공학 연구소·작물의 육종과 생명공학­박효근 서울농대교수 등) ▲심포지엄(4월30일 농촌진흥청 강당 ·UR대응 작물육종의 현재와 미래­이수성 중앙대 교수등) ▲우장춘박사 생애 수록 비디오테이프 보급등이 있다. 우박사는 구한말 개화파의 정객으로 망명한 아버지 우범선과 일본인어머니 사카이나카(주정 중)사이에서 1898면 4월8일 도쿄에서 태어났다.수구당이 일본에 파견한 자객 고영근에 의해다섯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가난으로 고아원에 맡겨지는 어려운 유년을 보냈다.조선인이라는 멸시속에서도 어머니가 들려준,짓밟히면서도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민들레의 교훈은 평생 좌우명이 됐다.식민지인이라는 이유로 동경제국대학 공과 진학을 포기하고 1916년 농학실과에 입학,각고의 노력끝에 졸업했다.이후 일본농림성 농사시험장,용정 연구농장장으로 연구에 전념,36년 「종의 합성에 관한 연구」로 농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육종학의 세계적 권위자가 되었다. 특히 홑페츄니아를 겹꽃으로 만들어 이름을 떨쳤으며,나팔꽃의 변이·유채꽃의 종의 합성을 통해 그 유명한 다윈의 진화론을 일부 수정하는 등 빛나는 업적을 남겼다.37년 일본 농림성이 그를 중국에 신설하는 면화시험장장으로 승진 발령하면서 창씨개명과 일본국적 취득을 조건으로 내걸었을 때,사표를 내고 자영농장에서 연구했다.해방과 더불어 귀국을 결심했으나 일본 정부는 허가를 내주지 않자 국내의 「우장춘박사 환국추진위원회」의 도움을 얻어 강제 송환형식으로 50년 3월 가족들을일본에 둔 채 혼자 귀국했다. 우박사는 10년간 우리토양과 기후에 맞는 벼와 배추 양파등 각종 채소 종자개량에 몰두,국산 우량종자가 그가 책임자로 있던 부산 원예시험장에서 속속 개발되었다. 노모의 장례식 때 들어온 조의금으로 부산 원예시험장 내에 우물을 파 자류천이라 이름짓고 이 물을 원예재배 용수로 사용했으며,지금도 우박사의 유적지로 보존되고 있다. 우박사는 「채소의 우량종자 생산」「벼의 연2회 수확」등 뛰어난 업적을 남긴채 59년8월10일 만61세를 일기로 생애를 마쳤다. 죽기 사흘 전 병상에서 작곡가 안익태에 이어 건국이래 두번째로 문화포장을 받았으며 유해는 농촌진흥청 뒷산인 수원 서둔동 여기산 기슭에 안장됐다.
  • 일­북 조기수교 가능성/일 외상 의회서 밝혀

    【도쿄=이창순특파원】 와타나베(도변) 일본외무장관은 26일 참의원 외무위원회에서 일·북한 국교정상화교섭 전망에 대해 『그렇게 시간이 많이 걸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해 조기수교의 가능성을 시사했다. 와타나베외무장관은 또 『일·북한의 국교정상화는 북한의 핵의혹이 해결되어야 하고 한·일기본조약과 같은 방법을 벗어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해 북한이 주장하는 일본의 식민지지배에 대한 배상이나 보상에는 응하지 않고 재산청구권문제로 해결할 방침임을 밝혔다.
  • 이광수·김동인의 역사소설/“일제침략 합리화” 이색주장

    ◎역사학자 정두희교수,「역사비평」에 기고/「단종애사」「대수양」 세조즉위 정당화/1940년대 작가자신들의 현실관 반영 세조대를 배경으로 하는 춘원 이광수와 김동인의 역사소설이 당시의 시대상에 빗대 일제의 한국침략및 대륙침략을 합리화,이에 순응하는 친일역사관에 입각해 쓰여진 것이라는 비판이 한 역사학자에 의해 제기됐다.. 월간 대중역사지「역사비평」 봄호에 「단종과 세조에 대한 역사소설의 검토」라는 기고문을 발표한 정두희 서강대교수(한국사)는 이 논문에서 『당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지식인이요 작가였던 이들이 세조대에 대한 평가기준을 매우 잘못 선정하고 있었다는 것은 자신들의 현실문제를 그릇 판단하고 있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며 『소설을 통해 자신들의 현실관을 정당화하려는 목적을 지니고 있었는지도 모른다』고 주장했다. 단종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를 배경으로 삼고있는 「단종애사」(1928∼29년 동아일보연재)에서 작가 이광수는 자신의 현실과 단종­세조대의 역사적 현실을 대비,단종을 망국의 설움에 젖은 조국으로,수양을 야심만만한 일제로 보며 세조의 행위를 불의로는 인식하면서도 이를 철저하게 비판하지는 못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러나 이광수가 소설 「세조대왕」(1941)에 이르면 세조의 왕위찬탈을 불의가 아닌 「살신성인의 성불」로 간주,세조의 행위를 극적으로 합리화하고 나서 「단종애사」에서 미약하나마 드러났던 도덕적 판단마저 자취를 감췄다고 주장했다.그는 또 작가가 이작품을 통해 세조가 불교에 귀의해 자신의 다스림이 곧 중생을 구원하는 행위로 만든것에 대해 『불교적인 교리를 교묘하게 위장한 작가의 역사관은 그냥 묵과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또 이광수에게는 도덕과 조국보다는 현재와 미래에 펼쳐질 위대한 세상에 대한 희망과 염원만이 남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않고 현세의 권력을 장악한 존재를 모두 정당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김동인은 이광수와는 좀 다른 입장에서 「대수양」(19 40)을 썼다.그는 우선 「춘원연구」라는 글에서 『이광수의 「단종애사」가 남효온의 「추강집」「육신전」등 잘못된사실을 근거로 수양을 악의 대변자로 설정한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비판하고 대신 수양을 악의 화신이 아니라 처음부터 나라의 운명을 크게 열 원대한 계획을 가지고 행동한 뛰어난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정교수는 또 작가가 양녕대군의 입을 빌어 『국가의 안목으로 보자면 스라소니(세자)와 스라소니의 새끼(세손)는 제거해 버리는 편이 좋겠다』는 극단적인 표현을 한 것은 당시 역사적인 상황에 대한 작가의 무지를 드러낸 것이라고 지적했다.또 자신의 입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세종사후의 상황을 위기적인 상황으로 몰아가고 정무를 번거로워하는 단종이 왕위를 선양하겠다고 하도 간곡하게 졸라 세조가 더 이상 거절할 수 없어 왕위에 오르게 된 것으로 소설을 끌고가 결국 사육신의 죽음과 금성대군의 죽음은 물론 단종의 유배와 죽음에 대해 일체의 언급을 할 필요도 없이 소설을 끝내버린 작가의 몰가치적인 태도에 놀라움을 금할수 없다고 비판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정교수는 이어 『역사적인 자각이 더욱 요청되던 식민지시대에 살았던 작가의 입장을생각해본다면 「대수양」에서 나타난 그의 태도는 반역사적이며 그가 결국 적극적인 친일파로 전락하고 일본의 역사를 소재로 역사소설을 쓰는 지경에까지 가게된 것은 차라리 당연한 일처럼 느껴진다』고 주장했다.
  • 일­북한 5조원보상 합의설/일지 보도에 외무성선 부인

    【도쿄=이창순특파원】 국교정상화회담을 하고 있는 북한과 일본은 식민지 지배에 대한 보상규모를 9천억엔(한화 5조원) 정도에서 타결하기로 내부적으로 합의했다고 홋카이도(북해도)신문이 최근 보도했다. 이 신문은 집권 자민당의 막후실력자인 가네마루 신(금환신)의 아들인 신고씨가 북한을 방문,북한정부의 고위관리와 만나 이같이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일본 외무성의 한 관계자는 『신고씨가 북한을 방문한 사실은 알고 있지만 식민지 보상액수에 대해 합의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이를 부인하고 『일본 정부는 비공식 채널을 통해서도 피해보상액을 협의한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 한인 강제연행실태/일 민간단체서 조사

    【도쿄=이창순특파원】 종군위안부 등 일본식민지시대의 한국인 강제연행의 실태조사를 위한 일본민간인들의 전국조직이 처음으로 오사카(대판)에 설립됐다.
  • 정신대문제 국제여론화 추진/대책협의회·여성단체등서 활발한 움직임

    ◎유엔 인권위·여성위에 안건으로 상정/세계법조위에 진정서… 대일 압력 가중 일본식민지정책의 잔학상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정신대문제가 유엔인권위원회와 유엔여성지위위원회에 상정돼 국제적 차원에서 쟁점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여성계에 의해 주도되는 이같은 움직임은 결국 국제적으로 여론화되어 일본에 대한 압력으로도 작용할 전망이다.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이효재공동대표는 정신대 문제를 유엔인권위원회에 상정하기 위해 지난달 12일 미국으로 떠나 현재 뉴욕·워싱턴등지에서 관계자들을 만나 활발한 로비활동을 벌여 오고 있다.이대표의 노력과 현지 교포들의 적극적인 지지로 정신대문제는 이미 유엔인권위원회 소위원회의 안건으로 받아들여졌다.또 뉴욕 유엔본부에 상주하고 있는 여성지위위원회 연락관인 실비 브라이언트씨를 통해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리는 유엔 여성지위위원회(3월12∼20일)에 이 문건이 제출됐다. 이와는 별도로 재일동포 최창화목사는 인권단체인 「일본내 소수 한인 자유운동」과 한국 정대협공동명의로 제네바 인권위원회 본부에 상정했으며 이태영씨(한국가정법률상담소소장)도 유엔법률자문기관인 세계법조위원회(ICJ)멤버 자격으로 정신대문제에 대한 진정을 제출한 바 있다.따라서 정신대문제는 오는 8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는 유엔인권위원회 분과위원회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돼 내년초 총회의 주요 안건으로 채택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이대표는 본지와의 국제전화를 통해 『정신대문제는 뉴욕타임스에서도 수차례 다뤄져 이곳 사람들도 잘알고 있다.세계사에서 찾아볼 수 없는 비인간적인 일본의 만행을 왜 이제서야 문제 삼느냐는 식으로 상당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현지의 분위기를 전했다.그러면서 ▲일본이 유엔 인권위원회의 성차별 철폐협약 가입국이므로 유엔으로부터의 압력에 순응해야할 의무가 있으며 ▲유엔인권위원회가 성폭력 및 여성의 성도구화를 내년도 총회주제로 삼아 시기적으로 좋은 이슈로 등장,충분히 국제여론화 될것으로 내다봤다. 한편 한국여신학자협회 공동대표 김혜원씨는 2월29일부터 한달간 한국지원초교파기독교단체(KEEP)의초청으로 스웨덴·영국·네덜란드·독일 등의 주요도시를 순회하며 유럽인들에게도 정신대문제 실상을 주지시키고 있다.또 정신대 출신인 심미자·황금주할머니를 포함한 한국교회여성연합회의 「정신대발자취를 따라서」팀은 3·1절을 기해 일본 오키나와 도카시키섬에서 한국인 종군위안부들에 대한 추모제를 갖는 한편 일본의 정치인들과 양심세력들에게 진실을 밝혔다.
  • 일제 징용·배상 학술토론 잇따라

    ◎반민족문제연·36년사연 주최 심포지엄 종군위안부문제와 관련된 일본정부의 사과와 배상,북한과 일본의 수교협상에서 현실적으로 가장 큰 쟁점으로 배상문제가 부각되는등 남북관계의 진전과 국제질서의 변화속에서 식민지배의 청산문제가 새로운 현안으로 등장하고 있다. 3·1절 73주년을 맞아 반민족문제연구소(소장 김봉우)는 「식민지배 청산문제의 민족사적 이해」라는 주제로 지난 27일 흥사단강당에서 기념학술심포지엄을 열고 우리민족의 미래와 관련,식민지배청산의 중요성과 역사성에 대한 열띤 논의를 벌였다. 고려대 강만길교수는 「일제침략전쟁의 성격과 그 피해」라는 발제문을 통해 『민족분단 자체가 바로 식민지배의 미청산이므로 식민지배의 청산은 민족의 주체적 평화적 재통일에서 이루어질 수 밖에 없다』고 전제하고『때문에 현시점에서 식민지배 청산문제를 재조명해보는 것은 민족재통일의 방향을 설정하는데 불가결한 밑거름』이라고 주장했다. 강교수는 식민지배의 피해를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의 발전기회를 박탈하고 경제적으로는 민족자본의 축적에 의한 자율적인 산업혁명의 기회의 박탈,문화적으로는 민족성과 주체성·자존심을 훼손당한 점 등으로 정리했다. 한편 격월간지 「순국」 1·2월호는 「다시 보는 한·일간 전후배상」이라는 특집을 싣고 식민지배문제의 처리와 최근 진행되고 있는 북한과 일본의 수교협상에 대해 다루고 있다. 윤해동씨(역사문제연구소 상임연구원)는 「한일간 식민지 지배문제 처리의 현황과 과제」라는 기고문에서 강제연행자문제를 포함,한일간의 전후처리문제가 미흡하게 처리된 원인은 한국이 전승국으로 대우받지 못한 것과 60년대 한일간의 교섭과정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윤씨는 한일합병조약을 무효화시키고 일본의 사과와 배상을 받아낼 수 있게 지난 65년 체결된 한일기본조약을 개정하고 북한·일본의 수교조약도 위와 같은 논리로 관철될 수 있도록 정부차원의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식민지배청산의 과제라고 주장한다. 이와함께 일제36년사연구소(소장 서남현스님)는 29일 서울에서 한·일 학자들이 모여 해방 47년만에 처음으로 일제하에 강제연행됐던 징용·징병·군속·정신대등 강제연행문제를 다루는 「조선인 강제연행에 관한 국제심포지엄­북해도지역을 중심으로」를 열어 진상규명과 역사속에서의 올바른 자리매김을 놓고 활발한 논의를 벌였다.
  • 6차 남북 고위급회담 기조연설

    ◎연 총리/“정신대문제 남북한이 공동대응을” 이번에 발효된 합의문건들에는 앞으로 북과 남이 공동으로 해야 할 사업방향과내용들이 포괄적으로 반영되어 있다고 봅니다. 쌍방이 재확인한 조국통일 3대원칙에 기초한다면 합의문건들의 구체적 사항을 협의하고 이행해 나가는데서 어떠한 난문제나 견해상 차이도 능히 민족공동의 이익의 견지에서 그리고 조국통일에 유리하게 풀어나갈 수 있다고 우리는 확신하고 있습니다. 이제 북남 사이에 합의서가 채택되고 발효된 조건에서 외국군대철수문제를 주저할 아무런 근거도 없습니다.우리는 미군철수문제에 대하여 결단을 내릴 때가 왔으며 또한 미군과의 합동군사연습도 완전히 전면적으로 중지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북남 사이에 평화문제를 해결하는데서 기본이 되는 것은 불가침에 관한 합의이며 불가침에 관한 합의를 가장 믿음직하게 담보하는 것은 군축입니다. 북과 남은 절대로 군비확장으로 나가서는 안되며 합의서에서 확약한대로 불가침에 관한 합의에 따르는 군축조치를 시급히 취해 나가야합니다. 우리는 북남합의서가 발효되여 북과 남이 상대방에 존재하는 제도를 인정하고 존중하며 민족구성원들의 자유로운 내왕과 접촉을 실현하자고 한 소견에서 화해와 단합에 저촉되는 법률이 더 이상 존재해서는 안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울러 이 법에 의해 구속된 문익환목사와 임수경학생을 비롯한 방북접촉인사들의 석방문제도 하루 빨리 해결되어야 한다는 것을 다시금 강조하는 바입니다. 고위급회담사업은 오늘로써 막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분야별로 확대된 기구를가지고 실천적이며 구체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단계로 더욱 심화되게 되었습니다. 요즘 태평양전쟁시기 일제가 감한한 「정신대」에 관한 자료들이 연이어 폭로되어 온 민족의 격분을 크게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일제가 우리나라를 식민지로 만들고 조선사람의 성과 이름까지 빼앗다 못해 나어린 소녀들까지도 침략전쟁의 「종군위안부」로 강제로 내몰아 온갖 잔악무도한 악행을 감행한 사실은 참으로 격분을 금할 수없는 일입니다. 이러한 때 북과 남의 당국이 7천만 겨레와 목소리를 같이하여 일본에 대하여 공동으로 사죄와 보상을 요구하는 것은 수난과 모욕을 함께 당해온 같은 민족으로서 특히 책임있는 정부당국으로서 응당히 취해야 할 태도라고 인정합니다. 우리 민족은 피해자로서 가해자인 일본에 대하여 민족의 이름으로 북과 남의 당국이 나서서 사죄와 보상을 요구할 수 있는 당당한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취지에서 나는 정신대문제와 일본의 핵개발문제와 관련하여 쌍방이 시급히 공동대응책을 협의하고 쌍방당국의 공동결의안을 채택하자는 것을 정중히 제의하는 바입니다.
  • 요절시인 이상 실명소설 출간/소설가 표성흠씨 「친구의 초상」펴내

    ◎짧은 생애 불구 숱한 화제남긴 고인 삶·예술 묘사 요절한 천재시인 이상(1910∼1937)을 실명인물로 한 소설이 출간됐다. 소설가 표성흠씨(46)가 최근 펴낸 「친구의 초상」(도서출판 영웅)은 이상의 삶과 예술을 소재로 다룬 본격적인 첫 소설로서 기존의 시각과는 다른 이상의 모습을 그리고 있어 화제가 되고 있다.이제까지의 이상은 천재로서건 미치광이로서건 문학도들의 우상이었던 것만은 틀림이 없었다.그러나 이상에 대해 학위논문까지 썼다는 작가는 이상을 자신의 삶의 무게에 짓눌려 몸서리치고 있는 한 연약한 사내로 만들어 놓았다. 이 소설 속에서 이상은 그의 단짝이었던 꼽추화가 구본웅과 함께 현세의 흐름을 잊고 식민지 치하의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갖가지 기행과 파행을 일삼는 인물로 등장한다. 이상에 대한 색다른 설정으로 먼저 이상이 소년시절 누이동생 옥희를 근친상간하려 했던 사건때문에 평생 원죄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가설은 흥미롭다.나아가 작가는 옥희와 큰어머니,친어머니의 영향으로 이상이 가학적인 이상성욕자가된 것처럼 묘사하고 있다.그같은 설정에 따라 이상은 고등학교시절 견자라는 일본기생을 만나 가학적인 사랑을 하고 그녀의 죽음에 자신을 학대함은 물론 도피적 일상을 살아간다. 또한 금홍이라는 평양기생과의 동거는 이상의 소설 「날개」에서 보여주는 것과 흡사하게 묘사되고 있다.이상이 금홍의 다른 남자와의 동침을 허용하고 가끔 화대도 챙기는 식이다.게다가 「제비」「69」등 다방운영에 실패하고 금홍마저 떠나버린뒤 구본웅의 배다른 동생인 변동림과의 결혼생활은 변태성욕자로서의 이상 설정의 극치 이에 대해 작자인 표성흠씨는 작가의 말에 『결국 나는 그(이상)를 악마로 만들기로 하였다.악마의 역할이 시인에게는 더 어울리고 악마를 통하여 우리는 더욱 극명한 빛을 보기 때문이다』라고 썼다.『이 이야기는 하나의 가능성을 확대한 어디까지나 소설로서 사실은 아니다』라고 못박은 표씨는 『언젠가 누군가에게서 더 진실한 이야기가 씌어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 태평양전쟁 유족/1천명 집단소송/도쿄재판소에

    【도쿄=이창순특파원】 일본 식민지시대에 강제징용된 한국인 군인,군속 노동자 및 유족 등 1천89명이 17일 일본정부를 상대로 공식사과와 손해배상의무 확인을 요구하는 소송을 도쿄지방법원에 제기했다. 한국인들의 식민지시대의 피해보상을 요구하는 소송은 여러번 있었으나 1천명이 넘는 대규모 소송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에 소송을 제기한 사람들은 태평양전쟁 희생자유족회 광주지부 회원들로 광주등 호남지역 주민들이다.
  • “정신대문제는 한국 책임”일,역공세

    ◎「문예춘추」지 「정신대대담」서 억지/65년 「일·한조약」으로 일 책임 끝나/「한강의 기적」도 일 지원덕택 “강변” 「사죄하는 만큼 악화되는 일한관계」일본의 대표적인 종합월간지 문예춘추 3월호에 실린 종군위안부문제에 대한 대담기사의 제목이다.다나카(전중)다쿠쇼쿠(탁식)대교수와 사토(좌등)월간「현대코리아」지주간은 이 기사에서 종군위안부문제는 한국이 일본에 「응석」을 부리는 구조를 조장하고 있다고 주장,일본의 과거 침략사에 대한 반성보다는 오히려 한국을 비판하고 있다.지난주에 발매된 월간지 제군3월호도 종군위안부문제와 관련,한국을 비판하는 기사를 게재했다.일부 일본 지식인들의 역사인식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문예춘추의 대담기사를 요약한다. 지난 1월 미야자와(궁택)총리의 방한때 양국정상회담에서도 종군위안부문제등 「과거문제」가 주요 의제였다는 것은 한심한 일이다.냉전후의 일한관계는 매번 한국의 사죄요구와 일본의 사죄 반복으로 일본인들의 반한·혐한감정만 증폭시키고 있다.일한간에는 진정한 의미의 외교관계가 없다. 양국간의 보상문제는 지난 65년 일한기본조약으로 모두 끝났다.한국인들이 요구하는 보상의 법적근거는 무엇인가.일본은 유상무상의 정부차관 5억달러,민간차관 3억달러등 8억달러를 한국측에 제공,36년간 식민지지배에 대한 역사적 책임을 다했다. 박정희대통령은 75년까지 일본이 제공한 총23억달러의 차관을 유효적절히 사용,「한강의 기적」을 이룩했다.일본은 이미 과거에 대한 보상을 끝마쳤기 때문에 종군위안부들에 대한 보상도 한국정부가 하여야하며 피해자들에게 어떻게 분배할 것이냐는 한국의 주권에 속하는 것이다. 한국은 보상문제가 끝났음에도 일본에 보상하라고 한다.자신들이 맺은 조약을 간단히 무시하는 것이다.한국인들의 이같은 의식때문에 일본에 대한 한국의 「응석」구조가 생겨났다.박대통령시대에는 한국의 긍지가 있었다.박대통령은 한국을 훌륭한 나라로 만들려는 열의가 있었다.그러나 전대통령과 노대통령에게는 과거와 같은 비전이나 열의가 느껴지지 않는다. 한국은 입으로는 반일을 외치면서도 중요한 것은 일본에 의존하려는 경향이 있다.한국은 과거문제 뿐만아니라 현재의 문제인 무역불균형·기술이전 등에서도 요구만 한다.무역적자는 원료와 부품을 일본으로부터 수입,상품화시켜 수출하는 한국의 경제구조때문인데도 일본 탓으로 돌린다.더욱이 일본기업이 막대한 자금을 들여 개발한 첨단기술을 일본정부가 마음대로 넘겨줄수 있다고 보는 한국인들의 의식구조가 문제다.한국은 땀을 흘려 기술을 개발하고 일본에서 팔리는 상품을 만들어야 한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재벌총수는 정당을 만드는 등 정치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한국에는 일본기업이 진출할 매력이 없어졌다.
  • 드러나는 일제 만행의 진상(사설)

    일제정신대(종군위안부)만행의 진상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미야자와(궁택)일본총리 방한을 계기로 폭로된 국민학교 10대소녀동원의 진상은 만행의 정도가 얼마나 악랄하고 비인간적인 것이었던가를 보여주는 자료로 충격을 주었었다.이번에 일본과 한국에서 연이어 발견된 새로운 자료들은 일제가 얼마나 조직적으로 깊이 정신대만행을 주도했나를 보여주는 확실한 증거로 주목된다. 한국에서 밝혀진 자료는 일본국회도서관에 소장된 일본 「법령전서」(44년8월호)로 한인여성을 정신대로 동원할 수 있게한 「여자정신근로령」전문이다.일왕의 칙령으로 일본은 물론 총리등 4명의 각료가 서명하고 있는 생생하고도 확실한 자료다.일본 교도(공동)통신이 보도한 일방위청자료도 정신대의 동원이 일제전시내각의 주도와 군수뇌부의 지시에 따라 이루어진 것임을 입증하고 있다. 정신대문제가 처음 보도되기 시작했을 때 일본정부는 일제의 관여사실 자체도 부정하고 민간차원의 매춘행위로 호도하는 적반하장의 태도를 보이기까지 했었다.새로운 자료가 여기저기서 제시되어 어쩔 수 없게되자 옛 일본군이 관여했음을 인정한다는 정도의 애매한 자세로 사태가 진정되기만 기다리는 듯한 무성의한 태도를 보여왔다.새 자료가 그것은 일왕의 재가까지 받아 정부차원에서 행한 만행임을 입증하게된 이제 일본정부는 또 무슨 변명을 하고 어떤 대응을 보일지 궁금하다. 일제가 저지른 반인간적이고 비도덕적인 만행은 비단 정신대뿐이 아니다.살아있는 인간을 세균전목적의 생체실험 재료로 동원한 중국만주에서의 저유명한 관동군 731부대의 만행이라든가 남경대학살등을 비롯해 한반도와 중국 그리고 동남아를 무대로 저지른 일제의 만행은 독일나치스의 유태인박해와 학살만행에 조금도 손색이 없는 것이었다. 전후 독일에선 유태인학살의 진상이 철저히 규명되고 범죄자들이 처형되었으며 도망자가 지금까지도 추적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전후의 일본에선 단 한번도 스스로 일제만행의 진상을 규명하려 노력한 흔적이 없었다.불가피한 애국행위로 옹호되는 분위기마저 있었다.교과서 왜곡파동과 이번의 정신대사건 진상규명과정에서 처럼 가능한한 은폐와 외면과 변명으로 일관해온 것이 일본정부 태도였다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선진문명 대국이된 일본으로서는 과거의 일본이 식민지여성을 동원한 매춘강요라든가 생체실험과 민간인 대량학살 등의 야만행위를 조직적인 정부주도로 감행한 사실을 부끄럽고 창피해서 제대로 보고 듣고 인정하기는 물론 후세에 가르치기도 싫을지 모른다.그러나 오늘의 일본은 그것을 해야한다.그러기 위해선 우선 진상을 있는 그대로 정확히 밝히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다. 일제만행의 진상을 은폐하고 외면하기보단 철저히 규명하고 결과에 대한 응분의 청산을 하는 것이야말로 일본의 양심과 긍지가 해야할 제1의 급선무일 것이다.세계와 동아시아및 한국의 대일 신뢰를 위해서도 그것은 제일먼저 해야할 일의 하나일 것이다.일본이 주도하고 한·중·동남아 등의 협조를 얻는 장기적이고도 종합적인 일제만행진상규명및 청산국제조사위원회 같은 것이라도 구성한다면 일본을 보는 세계와 아시아의 시선은 한결 달라질 것이다.
  • 정신대 일왕 칙령으로 동원/4대신 부서한 법령전문 첫 발견

    ◎선발방법·기간등 명시/천안 성화대 이동춘씨,일 국회도서관서 찾아내 공개 【천안=최용규기자】 일본정부가 한국여성들을 정신대로 동원할 수 있도록 제정 공포했던 「여자정신근로령」전문(전문)을 우리나라 대학도서관 간부가 일본국회도서관에서 찾아내 7일 공개했다. 이 법령은 천안 성화대도서관 이동춘부관장(55)이 지난 2일 일본국회도서관 특별열람과에 소장된 일본 「법령전서」(소화19년 8월호)를 샅샅이 열람해 찾아냈다. 일본내각이 매월 한차례씩 발행하는 이 법령전서에 실린 「여자정신근로령」은 지난 1944년 8월22일부터 한국여성을 포함한 식민지 여성들을 정신대로 동원하도록 일본 「천황」이 재가,공포했으며 당시 내각총리대신 고이소 구니아키(소기국소)를 비롯,군수대신 후지하라 긴지로(등원은차낭),외무대신 오다치 시게오(대달무웅),후생대신 히로세 히사다다(광뢰구충)등 4명의 관계장관이 부서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이부관장은 『지난 1월15일 조선총독부 기관지인 「조선」9월호(1944년9월 발행)에서 「여자정신근로령」이 공포됐던 사실을 발견하고 법령전문을 찾기 위해 직접 일본까지 갔었다』며 『이 자료의 발견으로 일본이 태평양 전쟁당시 정신대 강제동윈을 자신들이 제정한 법령에 의거,우리나라 전역에서 조직적으로 수행한 사실이 명백히 드러났으며 따라서 일본정부의 배상책임도 분명해졌다』고 말했다. 「여자정신근로령」은 맨 앞에 『여자정신근로령을 재가하여 이를 공포한다』라고 적고 일본 「천황」의 서명날인이 찍혀 있으며 이어 칙령 제519호로 표시 한뒤 제1조부터 23조까지 정신대의 선발방법·기간등을 명시하고 있다. 또 이 법령 내용중에는 군부대등이 여자정신대를 조달받고자 하는 경우 지방장관(도지사)에게 청구 또는 신청할 수 있도록 규정돼 있으며 해당 장관은 각 마을단위 단체장과 학교장에게 정신근로여성들을 징발하도록 명령,이들을 통해 여성들을 선발하도록 돼 있다.
  • 식민지 피해보상 합의 실패/입증책임 공방… 정신대는 일서 사죄

    ◎일­북한 수교회담 3∼4월 재개 【도쿄=이창순특파원】 북한과 일본은 1일 북경에서 열린 국교정상화 6차회담 마지막날 회의에서 식민지지배의 피해보상문제 등에 관한 심한 견해차를 좁히지 못했다. 그러나 나카히라(중평)일본측 수석대표는 『미야자와(궁택)총리의 종군위안부 문제에 대한 사과는 한반도 출신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한 것』이라고 말해 종군위안부 문제에 관해 북한측에 대해서도 처음으로 사죄했다.양측은 오는 3월말과 4월초 사이에 다음 7차회담을 갖기로 합의했다. 일본은 핵문제와 관련,북한의 국제원자력기구(IAEA)와의 핵사찰협정 조기비준과 완전이행을 촉구한 반면 북한은 일본이 필요이상의 플루토늄 축적으로 일본의 핵위협이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은 피해보상은 청구권문제로 처리한다는 방침과 청구액 산정을 위한 객관적 사실관계및 법률상의 구체적 근거는 청구하는 측인 북한이 제출해야 한다는 종래의 주장을 되풀이한 반면 북한측은 가해자인 일본측에 객관적 사실을 입증하는 자료가 많이 있기 때문에 일본도 자료를 제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북,「핵서명」 지렛대로 대일 협상/북·일 6차수교회담 안팎

    ◎핵사찰·과거보상문제등엔 여전히 이견/북,「정신대」 새로 제기… 교섭 걸림돌로 북한과 일본의 국교정상화회담은 이번 6차 회담을 통해 보다 실질적인 교섭단계로 접어들었다.그러나 양국은 구체적인 문제에 많은 시각차를 나타내고 있다. 북경에서 열리고 있는 이번 회담에서 북한과 일본측 대표는 경제보상·핵문제·식민지 지배문제 및 국교정상화 때의 합의문서 등 구체적인 문제를 논의했으나 의견접근에 실패했다.양측은 회담일정을 하루 더 연기,2월1일까지 경제보상문제등에 대해 협의를 계속한다. 북한은 합의문서에 지배권 포기를 명시하자는 새로운 제안을 내놓았다.그러나 일본은 『필요없다』며 이에 반대했다.핵문제와 관련,전인철 북한측 수석대표는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핵사찰협정에 서명했기 때문에 핵문제는 이제 해결됐다』고 강조했다.그러나 나카히라(중평)일본측 수석대표는 『핵사찰협정 서명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핵사찰의 실질적인 실시』라고 말했다. 한일합방조약(1910년)에 대해서도 양쪽은 근본적인 시각차를 노출했다.전인철 북한대표는 『한일합방조약은 당초부터 무력으로 부당하게 체결됐기 때문에 무효』라고 주장했다.반면 나카히라 일본대표는 『현재는 무효이지만 당시는 유효하게 체결,실시됐다』고 강조했다. 북한측은 더욱이 이번 회담에서 종군위안부 문제를 새로이 제기,일본에게 어려운 과제를 안겨주었다.북한측은 종군위안부 문제를 여러번 거론하며 반인륜적인 만행이라고 강도높게 비난했다.북한측은 또 일본은 식민지 지배에 대해 가해자로서의 진정한 청산노력을 하지않고 역사적 책임을 회피해 왔다고 지적했다. 일본의 정치평론가들은 북한의 이같은 강도높은 비난은 일본의 약점을 이용,보다 많은 경제보상을 받아내고 국교정상화회담을 경제문제 중심으로 전환시키기 위한 전략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북한은 지난 5차회담에서 식민지지배 시대의 인적·물적피해와 고통에 대해서만 보상을 요구했었다.일본측도 이번 회담에서 지난번의 북한측 제안을 바탕으로 더 자세한 경제보상을 논의하자고 제의했다. 북한은 이번 회담을 통해 국교정상화 교섭을급히 서두르고 있음을 보여주었다.북한의 전대표는 『본직적인 문제는 답보상태에 머무르고 있다』고 강조하고 회담의 실질적인 진전을 위해 일본이 보다 적극적인 자세로 임해줄 것을 촉구했다. 북한이 국교정상화회담을 서두르는 이유는 현재 조심스럽게 진행되고 있는 「개방화」움직임과 경제난 극복을 위한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일본은 지금까지 구체적인 협상에 소극적이었다.그러나 북한의 IAEA와의 핵사찰협정서명을 계기로 보다 적극적인 협상자세로 전환할 것으로 예상된다.일본은 여전히 북한과 핵문제에 대한 인식의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북한의 핵사찰서명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일본은 더욱이 북한이 실제로 IAEA의 핵사찰을 받을 경우를 대비,본격적인 협상을 준비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일부 정치평론가들은 지적한다. 국교정상화교섭을 시작한지 1년만에 열린 이번 회담에서도 양국은 팽팽한 대립을 보이고 있다.이러한 대립으로 정상화회담이 답보상태에 머물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는 없다.하지만 북한의 핵정책 전환을 계기로 앞으로의 회담은 보다 탄력적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일본의 국교정상화 4개원칙제시로 정상화회담은 중요한 새 국면을 맞고 있다.
  • 「보상문제」 협의 진전/북­일 수교회담/정신대 사죄문제도 거론

    【도쿄=이창순특파원】 북한과 일본의 국교정상화 6차회담 첫날 회의가 30일 북경주재 북한대사관에서 열렸다. 이날 회담에서 전인철북한측 수석대표는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핵사찰 협정을 체결함으로써 핵문제는 모두 해결되었다』고 말하고 일본측에 실질적인 회담의 촉진을 강력히 촉구했다. 나카히라(중평) 일본측 수석대표는 이에앞서 『북한이 실질적으로 핵사찰을 받는 것이 중요하며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그러나 그는 지난번 회담에서 북한측이 제의한 식민지시대 손실에 대한 보상문제를 바탕으로 더 자세한 경제보상문제를 논의하자고 북한측에 제의했다. 전대표는 일본의 식민지지배와 관련,일본은 가해자로서의 진정한 반성이나 청산노력이 없이 역사적 책임을 회피해 왔다고 비난하고 종군위안부문제를 제기했다.
  • 이효석은 변절자 아니다/이상옥교수,가산의 문학·생애 재조명

    ◎예리한 감성지닌 심미주의자/프로문학 참여는 “단순한 외도” 작가 이효석에 대해 기존의 평가와는 다른 견해를 제시하는 책이 나왔다. 서울대 영문학과 이상옥교수가 최근 펴낸 「이효석­문학과 생애」는 가산 이효석(1907∼1942)사후 50주년을 맞아 그의 문학과 생애를 재조명하고 있다.이제까지 이효석에 대한 연구는 그를 단지 「메밀꽃 필 무렵」의 작가로만 알려지게 할만큼 미흡한 것이었다.더욱이 그는 동반자 작가로서 나중에 탐미주의적 세계에 몰두했다는 이유로 식민지적 현실에서 도피한 비굴한 지식인으로까지 간주되는 등 그에 대한 학계의 평가는 대체로 부정적인 것이었다.이에 대해 저자인 이교수는 이제까지 이효석연구에 있어서의이분법적 사고를 배제하고 이효석의 양면 가치지향적인 성격을 고려한다면 그의 변신은 변절도 도피도 아니라고 주장한다.이교수는 먼저 프롤레타리아문학에 대한 이효석의 관심은 『어디까지나 추상적이고 이상적인 것으로만 머물러 있었지 결코 그 관념의 구체적 행동화라는 수준까지는 이르지 못했었다』고지적한다. 그 이유로 이교수는 『이효석이 프롤레타리아문학에서 요구하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행하기에는 너무나 여린 정감과 예리한 감수성을 갖추고 있었다』고 설명한다.따라서 이효석이 20년대 말기에 동반자 작가로서 문단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일종의 시류 순응적이고 세태 추종적인 외도에 불과했으므로 이에서 탈피,탐미주의적인 작품세계로 옮아갔던 것이 그로서는 어려운 일도 질책받을 만한 일도 아니었다는 분석이다.이교수는 또 이효석이 당시 서구의 심미주의 문학에 대해 상당한 지식을 갖추고 있었고 나름대로 심미주의 이론을 확립하고 있었다는 점을 들며 이효석의 탐미문학이 단순한 현실도피의 방편이 아니었다고 강조한다.그는 특히 『이효석은 타고난 심미주의자였다』며 이효석의 변신이 『자기자신의 작가적 체질과 동질성을 띠고 있는 문학적 본령으로 돌아가기 위함이었다』고 풀이했다.그러나 그는 이효석의 심미주의문학 역시 좌익이념문학과 마찬가지로 수작이 없으므로 이효석문학의 진가는 자연과 성의 문제를 천착하는 작품들 속에서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