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식민지
    2026-06-14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5,605
  • “「주변4강」 표현 안쓰겠다”/김 대통령,스승의날 수상자들에 밝혀

    ◎이젠 우리도 약소국 아닌 열강/국력신장 맞춰 「4각」 표현 마땅 정부는 그동안 미국·일본·중국·러시아를 가리켰던 「주변 4강」이란 말을 앞으로는 쓰지 않기로 했다. 김영삼대통령은 14일 스승의 날 수상자와 오찬을 나누는 자리에서 『앞으로는 「주변 4강 외교」라는 말 대신 「주변 4각 외교」라는 말을 쓰겠다』고 밝혀 국가자존심의 회복을 선언했다.「4강」은 한국이 약소국이란 전제아래 나온 대칭어이기 때문이다. 김대통령은 『미국·일본·중국·러시아가 과거 1백년동안 사실상 우리를 지배해온 강국들이지만 우리도 이제 세계 10대 무역대국이고 군사력이나 인구,국민총생산등을 고려하면 세계열강의 대열에 포함된다』고 말하고 『우리를 약소국으로 전제한 「4강」이나 「강대국」이란 말을 쓰고 싶지 않다』고 밝혔다. 김대통령은 이어 『이런 뜻에서 이번 러시아 방문도 「주변4강외교의 완성」이 아니라 「주변4각외교의 완성」으로 부르고 싶다』고 말했다. 김대통령은 지난 11일 녹지원에서 이화여대생들과 가진 대화에서도 같은 요지의 발언을 한 적이 있어 이는 갑자기 한 말이 아니라 정리된 견해를 밝힌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와 관련,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우리가 찬란한 문화민족으로서의 역사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근세의 식민지 경험등으로 서양문화에 이유없는 열등의식을 갖고 있는게 사실』이라고 말하고 『우리의 국력신장에 맞는 언어정리로부터 민족 자존심회복운동이 시작되어야하고 이같은 차원에서 대통령의 발언을 이해하고 싶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이어 『민족자존심을 회복해야만 세계로의 웅비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 하타 일총리 “나가노 발언 사과”/김 대통령에 전화

    ◎식민통치·침략행위도 사죄 하타 쓰토무(우전자)일본총리는 10일 하오 김영삼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나가노(영야)전법상의 망언에 대해 유감의 뜻을 전달했다. 하타총리는 『이번 나가노법상의 발언으로 한국국민등 아시아 근린 여러나라 국민들에게 상처를 준 것은 매우 유감스럽다』고 말하고 자신이 이날 일본의회에서 이 문제와 관련해 행한 소신연설내용을 설명했다. 김대통령은 이에 대해 『총리가 국회에서 소신연설을 통해 과거식민지통치를 반성하고 내각이 새로운 각오로 새 역사인식의 토대위에서 출발한다는 점을 평가한다』고 밝히고 『이번 나가노 법상의 발언은 우리국민에게 큰 충격과 상처를 입혔다』고 유감을 표시했다. 김대통령은 『역사를 바로 인식하고 미래를 지향해 나가자는 것이 나의 생각』이라고 전제,『그렇기 때문에 일본의 각료가 다시 과거사에 대한 왜곡으로 역사를 오도하는 발언을 함으로써 우리국민에게 상처를 주는 일은 없어야하며 올바른 역사인식과 과거를 직시하고 미래로 가야한다』고 말했다. 【도쿄=이창순특파원】 하타 쓰토무(우전자) 일본총리는 10일 나가노 시게토(영야무문) 전법상의 망언과 관련,김영삼대통령과 이붕 중국총리에게 각각 전화와 친서를 통해 유감의 뜻을 나타내고 식민지지배와 침략행위에 대한 반성과 사죄를 표명했다.
  • “흑백화합 새출발” 15만명 참석 축복/남아공 만델라대통령 취임

    【프리토리아 외신 종합】 흑인인권운동의 기수 넬슨 만델라 남아프리카민족회의(ANC)의장이 10일 하오(이하 현지시간) 남아공 최초의 민선대통령으로 공식취임했다. 만델라대통령은 취임식을 가진 뒤 곧바로 집무에 들어가 3백42년간에 걸친 소수백인통치와 46년간 유지돼온 인종차별정책을 청산하고 본격적인 다인종민주주의의 실험에 들어갔다. 만델라대통령은 이날 낮12시17분쯤 행정수도인 프리토리아의 정부청사 유니온빌딩에서 각국 정상들을 비롯한 수천명의 귀빈과 수만명의 시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마이클 코베트대법원장앞에서 역사적인 취임선서를 했다. 만델라대통령은 이에 앞서 9일 개원한 남아공 최초의 전인종의회에서 만장일치로 대통령에 선출된 바 있다. 만델라는 이날 취임선서를 통해 『본인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직무에 충실하며,공화국에 해가 되는 모든 것에 반대하며,모든 이를 공평하게 대우하며,국가와 모든 국민들의 번영을 위해 헌신할 것을 엄숙히 맹세한다』고 밝혔다. 이날 취임식에는 피델 카스트로 쿠바대통령,앨 고어 미국부통령,야세르 아라파크 팔레스타인해방기구의장,에제르 바이즈만 이스라엘대통령등 각국 정상들과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정책)의 종식을 축하하는 수만명의 남아공시민들이 참석했다. ◎“가난과 핍박 해방” 취임사서 약속/선서식 성경,영·아어로 특별주문/고어·아라파트·카스트로등 명사 축하사절로/만델라 대통령 취임식 표정 넬슨 만델라 아프리카민족회의(ANC)의장이 10일 남아공 최초의 흑인대통령으로 취임함으로써 갈등과 대립을 넘어 화합과 단결을 뿌리내리려는 민주 남아공의 대장정이 시작됐다.이날 만델라의 취임식에는 세계각국의 지도자들이 대거 몰려들어 새로 출범하는 남아공의 앞날에 진심어린 축복을 기꺼이 보냈다.그러나 행사장 주변에는 종족소요등을 우려해 경찰병력이 삼엄한 경비에 들어가는 등 곳곳에 무장병력이 눈에 띄곤 했다. ○…정부청사인 유니온빌딩 대강당에서 진행된 남아공 대통령취임행사에는 앨 고어 미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 미대통령부인을 비롯,카스트로 쿠바국가평의회의장,이스라엘의 에제르 바이즈만 대통령,아라파트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의장등 외국사절들이 대거 참석.행사준비위측은 이날 『국내외 귀빈등 모두 15만명이 취임식에 참석했다』고 밝혔다. ○“민주주의 교훈” ○…앨 고어 미부통령은 『만델라의 취임은 미국과 새롭고 긴밀한 관계를 열고 이웃 아프리카 지역국들과 세계 여러 나라들에 민주주의의 교훈을 전파하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라고 강조. ○“평화­화합 기원”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의장은 초록색 군복 차림에 대규모 사절단을 거느리고 입국해 이채.카스트로는 『역사적인 일이다.참석케 돼 매우 기쁘며 만델라 대통령의 전도에 평화와 화합,단결이 있기를 바란다』고 기원. ○…이번 만델라의 취임 선서식에서는 과거와는 달리 특별히 새롭게 마련된 성경이 사용됐다.1천1백92쪽에 달하는 이 성경은 남아공 성경협회가 마련한 것으로 영어와 아프리칸어로 적혀 있으며 갈색 송아지 가죽으로 된 끈을 달고 테두리에 금박을 입혔다고. ○「유니온」서 거행 ○…대통령 취임식이 열린 유니온빌딩은 식민지로부터 하나의 독립국가로의 탄생을 나타내는「상징」이 됐다고.황토색 사석을 재료로 81년전 지어진 이 건물은 구대영제국에서 가장 인상적인 건물중의 하나로 남아공의 첫 탄생을 기념한 이래 지난 반세기동안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정책)를 실시한 백인정부가 들어서 있었기 때문. ○중국·애 수교제의 ○…중국과 이집트는 이번 취임식 참석을 이용해 쌍방간의 외교관계수립에 비중을 두는 느낌.강택민중국 국가주석은 이날 양국간의 관계수립을 제안,외교관계 수립에 기민성을 발휘.현재 대만과 수교하고 있는 남아공은 중국과의 수교를 위해선 먼저 대만과 단교를 해야할 처지에 있다. 이집트도 만델라대통령 취임식 당일인 10일 남아공과 대사급 외교관계를 재개할 계획.이집트는 지난 89년 남아공에 민주화가 싹트기 시작하면서부터 관계정상화를 모색해왔는데 남아공에서 아파르트헤이트가 완전 철폐되기를 기다려 외교관계를 재개한다는 방침을 취해왔다. ○축하메시지 쇄도 ○…세계 각국에서 만델라대통령의 취임에 대한 축하메시지가 쇄도하는 가운데 탄자니아는 국민들이 취임식에 참석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 10일을 임시 공휴일로 지정. ○“긴밀한 협력 다짐” ○…만델라대통령과 데 클레르크부통령은 각국 지도자들이 모인 가운데 서로 상대방의 지도력을 칭찬.클레르크는 『우리는 단결된 정부에서 긴밀히 협력해 나갈 것』이라면서 만델라 당선자에 대한 경의를 표시.클레르크는 이어 지금까지의 정치행로에 후회는 없다면서 『새 남아공은 각각의 면에서 빛나는 다이아몬드와 같이 하나의 별이 될 것이다』고 역설. ◎클레르크 부통령/만델라 해금… 흑인단체 인정/백인설득… 전인종 총선 결행 넬슨 만델라가 흑인해방운동의 투사였다면 프레데릭 데 클레르크 전남아공 대통령(58)은 흑인들에게 제도적으로 해방의 길을 열어준 「아프리카의 링컨」이라고 할 수 있다. 데 클레르크는 1936년 요하네스버그의 캘빈파 기독교집안에서 태어났다.그의 집안은 정치명문가로서 증조부와 아버지가 상원의원을 지냈고 삼촌이 총리를 역임했다.36세때인 72년 요하네스버그 남부 베리니깅주에서 국민당후보로 출마,의회선거에서 당선한 이래 체신·노동·교육부장관등을 지냈으며 85년 백인의회의 각료평의회의장을 거쳐 89년2월 국민당 당수에 오른뒤 같은해 9월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그는 취임즉시 각종 악법을 철폐해나갔다.또한 무장투쟁을 외치는 흑인들을 협상테이블로 끌어내기 위해 90년2월 만델라를 전격 석방하고 모든 흑인정치단체들을 합법화했다. ◎만델라전부인 위니/다혈질 강경파… 국모칭송/테러 연루 “흠”… 92년 이혼 10일 남아공 최초의 민선대통령으로 취임한 넬슨 만델라 아프리카민족회의(ANC)의장의 전부인 위니 만델라(59)는 남편못지않은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아왔다. 1935년 트란스케이에서 태어난 위니는 요하네스버그에서 사회사업공부를 하던중 16살 연상의 만델라를 만나 58년 결혼했다.결혼 4년뒤 흑인인권을 위해 투쟁하던 남편이 체포돼 종신형을 선고받자 위니는 ANC내 강경파를 이끌며 비타협적 노선을 견지,「남아공의 국모」로 까지 추앙받았다. 그러나 지난 91년 흑인어린이 4명의 납치 살해를 방조한 협의로 유죄판결을받았으며 92년 만델라와 이혼했다. 지난해 12월 ANC여성연맹위원장에 압도적 지지로 당선,재기에 성공한 위니는 이번 선거에서 전국을 돌며 남편의 지지를 호소했다.그 결과 ANC전국구 31번으로 의원자리는 확보됐다.
  • 북핵 등 긴급사태/한·미와 긴밀대응/하타총리,의회 연설

    【도쿄=이창순특파원】 하타 쓰토무(우전자) 일본총리는 10일 국회에서의 소신표명연설을 통해 『일본의 침략행위와 식민지지배등이 많은 사람들에게 참기 어려운 고통과 슬픔을 주었다는 인식을 새롭게 하고 이를 후세에 전하겠다』고 밝혔다. 하타총리는 또 『(과거침략행위에 대한) 깊은 반성위에 평화창조와 아시아·태평양지역의 미래건설에 전력을 다하는 것이 일본의 갈길이며 이를 정치신조로서 언제나 염두에 두고 정치를 하겠다』고 강조,「태평양전쟁은 침략전쟁이었다」는 호소카와정권의 역사인식의 계승을 분명히 했다.
  • 기업메세나운동에 바란다/김문환(일요일 아침에)

    우루과이 라운드로 상징되는 새로운 세계 환경을 맞이하면서 우리 사회는 지금 국제화·개방화·세계화에 대비하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고 있다.그와 함께 국제경쟁력의 강화가 초미의 관심사로 부각되기도 한다.경쟁력은 우선 경제적인 의미를 지닌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피상적인 관찰일 뿐,경제력의 강화를 위해서도 문화와의 연대가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요청되고 있다. 붕괴된 냉전체제의 공백을 메우면서 새로운 세계질서를 주도하는 힘이 경제력이라는 관찰은 물론 그나름대로 일리가 없지 않다.그러나 그 경제력을 뒷받침해주는 핵심이 한 나라의 총체적 지력이요,문화력이라는 사실도 결코 간과될 수 없다.이런 관점에서 볼 때,문화를 경제의 종속변수 쯤으로 보는 것은 극히 위험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오히려 경제가 국제화의 다른 측면인 특화를 가능케 하는 문화의 힘을 배경으로 하지 않을 수 없다.다가오는 21세기를 흔히 정보사회라고 하지만,무한적인 경제전쟁에서 문화상품이 차지하는 비율이 점차 늘어난다는 사실을 감안한다 해도 이는 쉽게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문화의 힘을 믿지 않을 때,우리는 단순히 문화적으로 뿐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강국의 식민지화·종속화를 면치 못하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4월18일에 발족한 기업메세나협의회는 바로 이와 같은 상황에 대한 가장 적절한 대응의 하나라고 본다.널리 알려진대로 메세나란 예술·문화·과학진흥을 위한 공공적 지원이 그 출발점이 되지만,기업의 문화예술활동참여가 세계적인 추세가 되면서 기업에 의한 예술·문화진흥이라는 뜻이 오히려 더 본래적인 것이 되었다.이로써 본래 자유를 생명으로 삼는 예술·문화는 국가에 대한 의존과 시장경제의 종속으로부터 좀더 여유롭게 벗어나면서,다양성을 더해 갈 수 있게 된다.이제까지도 기업의 예술활동참여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부가가치가 높은 상품의 개발을 위해서라도 세계적인 환경의 변화에 발맞추어 이의 본격화가 절실히 요청되고 있다.이제 기업은 예술에 경의를 표하는 동시에 예술이 직면한 위험을 대신함으로써 단순한 문화의 상업화를 넘어서서문화·예술과의 연대를 통해 스스로의 이미지를 높이는 동시에 기업시민으로서의 정당한 사회적 평가를 획득하는 소득을 취할 때이다. 때마침 문민정부의 출범에 힘입어 과거 권위주의시대에서 처럼 준조세적 성격의 지출이 사라지게 된 만큼 우리 기업들이 문화·예술과의 연대에 좀더 박차를 가할 만한 계기가 마련되었다.물론 반대급부를 기대하는 문화활동도 그나름대로 의의가 없지 않으나,문화지원과 선전행위를 구별하면서 기업 역시「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좀더 본격적인 메세나운동을 전개할 때에 이른 것이다. 일반 문화·예술활동의 지원 뿐 아니라,이를 위한 조직정비촉진,인재양성,미학이나 문화경제학을 비롯한 예술관련학문과 대학문화의 진흥,그리고 기업메세나를 활성화해 줄 세제개선추진등 기업메세나협의회의 일감은 참으로 많다.날로 그 중요성이 더해가는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 우리나라가 문화외교적으로도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일도 어느 일 못지 않게 중대한 의의를 지니고 있다. 예술문화활동을 지원하는기업 상호간의 연락과 협의를 도모하고,예술문화지원에 관한 계몽,정보제공,포상등을 통해 우리나라 문화예술의 향상과 발전에 기여코자 한국기업메세나협의회에 많은 기업들이 동참하기를 기대해 마지 않는다. 물론 기업메세나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리라고 기대해서는 안된다.그런 뜻에서 문화예산이 아직 전체의 1%도 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공익자금을 방송이나 광고발전을 위해서만 지출하겠다는 발상은 극히 편협된 사고가 아닐 수 없다.예컨대 아직 아무도 신청하지 않은 유선방송의 문화·예술프로그램을 위한 자금을 국고나 공익자금이 아니라 기업메세나에 기대하는 발상도 이에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는 것이 아닐까.초대회장을 맡은 동아건설의 최원석회장이 사장급의 대우를 약속하면서 한국기업메세나협의회의 사무처장을 공모하는 광고를 낸 것은 지극히 다행스러운 조처이기는 하지만,아직 이 제3영역에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해서는 안된다.우선은 작은 성과를 통해서나마 문화의 힘을 믿는 기업의 숫자를 조금씩 늘려가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보기때문이다.
  • 뿌리 깊은 일 국수주의/되풀이 되는 망언의 저변

    ◎“군사주의 정당화” 보수세력 공통된 인식 일본의 군국주의 「정당화」 망언으로 국제적 파문을 일으켰던 나가노 시게토(영야무문) 법상이 7일 사임했다.그러나 그가 사임했다고 해서 일본의 왜곡된 역사인식이 바뀌는 것은 아니며 이번 사건을 통해 일본에 대한 국제적 불신은 더욱 높아졌다. 하타 쓰토무 총리는 나가노의 망언이 심각한 외교문제화되고 야당의 정치공세가 강화되자 그의 사표를 수리했다.그의 사임은 한국·중국등 아시아국가들의 반발을 무마하고 국내의 정치공세를 약화시키기 위한 것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취임 10일만에 물러나는 나가노법상의 사임은 소수연립정권으로 불안한 출범을 한 하타정권에 중대한 정치적 타격이 아닐수 없다.더욱이 야당이 하타총리의 책임론을 주장하고 있어 하타정권의 정국운영은 매우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사회당등 야당은 하타정권이 헌법으로 금지된 「집단적 자위권」에 대한 논의의 필요성을 강조하는등 군사적 역할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여 호소카와정권과는 그 성격이 바뀌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나가노법상은 사임했지만 일본의 왜곡된 역사인식에는 변화가 없다는 사실이다.군국주의를 정당화하는 것은 오늘의 일본을 지배하고 있는 보수세력의 공통된 역사인식이다.나가노 법상은 6일의 기자회견에서 『남경대학살이 정말로 많은 사람을 죽인 대학살인지 의문을 갖고 있다.1천명이나 2천명을 죽인것도 대학살이라고 정의할수 있다는 의미에서 대학살이라고 말할수 있다』고 밝혀 1천∼2천명 정도만 희생됐다는 뉘앙스를 나타냈다.그러나 남경대학살은 수십만명이 희생된 역사적 사실이다. 일본의 보수우익을 대표하는 산케이(산경)신문은 더욱이 6일 석간에서 「남경대학살」이라고 부르는 것은 문제가 있으며 희생자수가 확실치 않기때문에 「남경사건」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많다고 보도했다.일본교과서에 「대학살」이라고 표기된 것은 정부의 실책이라고 이 신문은 지적했다.일본의 보수세력은 태평양전쟁도 식민지해방과 대동아공영권 확립을 위한 전쟁이었다고 「합리화」하기 위해 「대동아전쟁」이라고 부르는 경향이 강하다.그러나 더욱 섬뜩한 것은 일본의 두개의 얼굴이다.나가노법상이 자신의 망언을 3일만에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철회하듯이 일본은 망언과 사죄라는 편리한 이중행동을 반복해오며 국민들에게 우월의식과 국수적 민족주의를 심어주고 있다.일본을 더욱 신뢰할 수 없는 것도 이러한 이중성때문이다. 일본은 힘이 있을때마다 밖으로 눈을 돌렸다.그것이 일본의 실체다.일본은 지금 전후 축적한 경제적 힘을 정치·군사적 영향력으로 전환시키는 실험을 하고 있다.
  • 나가노망언/일 정부의 후속조치 주시/우리정부 대응과 양국관계 전망

    ◎북핵공조 고려,필요이상 「강수」 자제/결자해지로 외교마찰 최소화 기대/미래지향적 동반자관계엔 큰 영향 없을듯 나가노 시게토(영야무문) 일본 법상의 망언에 대해 우리정부는 두나라 정상이 어렵사리 길을 연 「미래지향적 한일관계」에 그리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는 보지 않고 있다. 다만 일본 지도층의 망언이 잊을만 하면 한번씩 난데 없이 터져 나와 두나라의 관계를 냉각시키는 데 대해 못마땅하고 불쾌하게 여기는 쪽이다. 한승주외무부장관이 6일 고토 도시오(후등리웅) 주한일본대사를 불러 유감의 뜻을 전하고 고위당국자가 논평을 통해 『잘못된 역사인식』이라고 지적하고 있는 것도 이 테두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다.기본적인 한일관계,두나라의 새정부가 쌓기 시작한 동반자적 관계에 중대한 차질을 빚을 것이라는 우려보다는 「두나라 새정부가 애써 쌓은 탑이 무너질 수도 있으니 조심하라」는 경고의 성격이 짙다.한장관은 이날 『지금까지의 관계를 보다 확대해 나가려는 두나라 정상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라고 경고했다.우리정부 관계자들은 되도록 적극적인 대응을 자제하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우선은 일본정부가 적절한 조치를 취해줬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는 것 같다.일본정부의 각료가 문제를 만들었으므로 스스로 사태를 푸는 것이 외교적 마찰을 최소화하는 방안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정부도 처음엔 공식 성명을 발표하려다 이를 취소하고 한장관이 일본대사를 불러 유감을 표명하는 것으로 일단 공식대응을 마무리지었다.정부의 이같은 대응은 한일관계가 두나라 국민의 정서와 여론에 따라 좌우되는 측면이 강한 점을 고려,문제가 더이상 확산되는 것은 바람직스럽지 않다는 판단 때문인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외무부의 한 당국자는 이날 『유럽을 순방하고 있는 하타 쓰토무(우전자)총리가 이미 유감을 표명했고,나가노 법상도 6일 하오 기자회견을 통해 사과한 시점에서 우리 정부가 이보다 더 치고 나가는 것은 필요 이상으로 두나라 관계를 악화시킬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이 당국자는 또 『북한핵문제에 대한 일본과의 공조가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라고 덧붙였다. 정부가 여론에 앞서 필요 이상의 「강수」를 두게되면 오히려 「불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이다. 두나라 새정부가 구축해놓은 과거 어느 정권 때보다 돈독한 우호협력 관계를 손상 없이 그대로 유지해 보려는 계산이기도 하다. 정부는 그러면서도 호소카와 모리히로(세천호희)전총리의 「진사」 발언에도 불구,일본 지도층의 역사인식에 대한 강한 의구심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드러나진 않지만 느닷 없이 튀어나온 나가노의 망언이 일본 지도층의 전반적인 역사인식을 어느 정도 반영한 측면이 강한 것으로 보는 것이다. 이 때문인지 유병우외무부아주국장은 유감을 표시한 뒤 『일본정부의 반응과 조치를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비록 두나라 정상이 과거사 문제를 뛰어넘었지만 실무 차원에서 일본 정부의 앞으로의 조치가 불충분하다고 판단되면 적절한 대응책을 구사하겠다는 뜻이다. ◎「나가노 망언」 주용내용 한국은 물론 중국과 동남아 각국등에 큰 파문을 일으킨 나가노 시게토(영야무문) 일본 법상의지난 3일 마이니치신문 인터뷰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태평양 전쟁의 위치 부여=침략전쟁이라는 정의 부여는 지금도 잘못됐다고 생각한다.전쟁에 동반하는 침략적 행위 즉 갖가지 피해,잔학한 것을 포함해 여러가지 폐를 끼치는 것,이것은 절대로 나쁜 것으로 전쟁 그 자체가 악이다.다만 일본에서 말하는 대동아전쟁(태평양전쟁)이라는 것이 침략 목적으로 했던 것인가.일본이 무너질 것같아 살기 위해 궐기한 것으로 동시에 식민지를 해방한다,대동아 공영권을 확립한다고 하는 것을 신중히 생각했다.(일본의 상황을)여기까지 가져 오게 한 제외국이 문제다.전쟁 목적 그 자체는 당시로서는 기본적으로 허용되는 정당한 것이었다. ▲남경대학살=(전쟁에 동반)일본군대가 여기저기서 행한 학살,방화,파괴를 하거나 위안부 문제 등은… 나는 남경사건이라고 하는 것은 날조라고 생각한다.나는 남경 사건후에 남경에 있었다.어쨌든 그러한 것은 전쟁에 동반하는 악으로 그것이 『절대 나쁘다』고 하는 것은 그말 그대로다.그것을 침략적 행위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글쎄 그렇다고 말할 수도 있겠으나 일본은 그 곳을 일본 영토로 하려 했던 것도 아니고 그러한 곳을 점령했던 것도 아니다.
  • 망언의 배경을 경계한다(사설)

    새일본정부의 법무장관이라는 사람이 일제의 태평양전쟁을 「식민지와 대동아공영권 해방」을 위한 정의의 전쟁으로 옹호하고 나섰다고 한다.수십만의 무고한 중국민간인을 살해한 「남경대학살」은 날조된 것이며 식민지 부녀자를 강제연행한 정신대도 일제만의 잘못은 아니라고 강변했다고 한다.정말이지 어이가 없고 기가 찬다고 밖에 달리 할말이 없다. 새삼 부정할 가치도 없는 망언이 아닌가 한다.침략전쟁등 일제의 만행에 대해서는 그 주도자인 일왕자신이 이미 외국을 방문하거나 일본을 찾는 외국정상들을 맞을때마다 형식과 정도야 어떠했든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해왔다.역대총리도 마찬가지다.특히 최근 연립여당의 호소카와 전총리는 보다 솔직한 침략전쟁 인정과 사과로 아시아 이웃나라들의 환영까지 받은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않다는 이따위 부정의 오만불손하고 건방진 망언들이 일부 극우민족주의자들의 입을 통해서지만 왜 한두번도 아니고 기회있을때마다 계속 나오고 있는 것인가.그많은 인정과 사과및 반성에도 불구하고 일제의만행을 만행으로 생각치 않는 일본인이 많음을 보여주는 증거라 하지 않을수 없다. 우리는 이번 망언이 개혁정치를 표방하고 국제사회에 대한 일본의 적극적인 기여를 강조하는 신생당등 연립여당 정부 각료의 입을 통해 나왔다는 사실을 특히 주목한다.연립여당은 일본이 과거사를 솔직히 인정·사과하고 새출발 해야 한다는 것을 기본정책으로 삼고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이번 법무장관의 망언은 그것이 결국 말만의 사탕발림이 아닌가하는 의구심을 갖게 하는 것이다. 본인은 발언을 취소했으며 연립여당정부는 일단 나가노장관의 단순한 개인적 실언임을 강조하고 있다.물론 그럴수도 있다.그러나 그는 일제침략전쟁에 앞장섰던 군국주의자였던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망언에서 보듯이 조금의 반성도 하지 않고 있다.그런 그가 어떻게 새 일본연립정부의 그것도 법무장관에 기용될수 있었단 말인가.일본과 연립연정및 그 반성의 실체와 한계를 보는것 같은 느낌이다. 탈냉전이후 일본에서는 신일본민족주의가 크게 고개를 들고 있다.연립여당은 물론 일본정국재편을 주도하는 오자와 신생당 대표간사도 바로 그러한 신민족주의 세력을 대표하는 인물이다.그가 지향하는 일본「보통국가론」은 일본의 정치군사대국화를 위한 과거사인정과 반성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나가노망언도 따지고 보면 같은 맥락이라 할수 있다. 결국 새일본도 경계하지 않을수 없게 하는 망언해프닝이 아닐수 없다.우리는 그동안 과거사에서 해방된 미래지향적인 새한일관계의 구축을 위해 노력해 왔다.우리의 그러한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이번 망언의 뒤처리를 특히 지켜볼 것이다.
  • 일 나가노법상 망언 파문

    ◎“태평양전쟁은 정당행위/대동아공영권 해방 목적” 【도쿄=이창순특파원】 일본의 나가노 시게토(영야무문)법상이 3일 태평양전쟁은 침략전쟁이 아니라 「정당행위」였으며 중국의 남경대학살은 날조된 것이라는 망언을 해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나가노법상은 이날 마이니치(매일)신문과의 회견에서 이같이 말했으며 현직각료가 남경대학살의 존재를 부정하는 견해를 공공연하게 밝힌 것은 중국정부등의 반발은 물론 국내에서도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킬 것같다고 4일 이 신문은 보도했다. 그는 태평양전쟁에 대해 『그 전쟁을 침략전쟁이라고 말하는 것은 잘못이다.침략을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식민지해방,대동아공영권해방을 상정한 전쟁이었다』며 태평양전쟁의 정당성을 강조하는 망언을 했다. 그는 남경대학살에 대해서도 『나는 날조된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으며 그 이유로는 『사건직후 내가 남경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 일 각료의 과거사 불감증/이창순 도쿄특파원(오늘의 눈)

    전후 일본의 역사인식은 늘 아시아인들로부터 불신을 받아왔다.그것은 일본인들이 아시아침략행위를 솔직이 사죄하지 않고 과거사에 눈을 감으려하기 때문이다. 일본의 이같은 과거사에 대한 윤리적 불감증이 다시 문제가 되고 있다.새로 출범한 「하타정권」의 나가노 시게토(영야무문)법상이 태평양전쟁을 「정당한 행위」였다고 강변하는 망언을 한 것이다. 나가노 법상은 일본 마이니치(매일)신문과의 회견에서 『태평양전쟁을 침략전쟁이라고 말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식민지해방,대동아공영권 해방을 위한 전쟁이었다』며 「정당성」을 역설했다. 그는 또 역사적 사실인 남경대학살을 『날조된 사건』이라고 말하기도 했다.그의 이러한 망언은 『태평양전쟁은 침략전쟁이었다』고 말한 호소카와 모리히로 전총리등 일부 정치지도자들의 솔직한 과거사 사죄 움직임을 역행하는 것이다. 그의 발언은 더욱이 황군출신 각료의 단순한 망상이 아니다.역사적 전환기를 맞은 일본의 시대적 흐름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는 데 그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일본에서는 지금 군사면을 포함한 적극적인 국제공헌을 강조하는 오자와 이치로 신생당대표간사의 이른바 「보통국가론」의 방향으로 국가 개조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나가노 법상은 오자와의 이러한 국가관을 적극 지지하는 개헌론자로 알려져 있다.그는 신보수 우익정치를 지향하는 신생당 소속 각료다. 오늘의 일본정치는 오자와와 신생당이 주도하고 있으며 그의 발언은 신생당의 국가전략과도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정통파 군출신인 그를 법상으로 임명한 것은 북한의 핵문제등을 빌미로 유사시를 대비한 「유사립법」을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도 있다. 일본에서는 이같이 과거사에 대한 솔직한 사죄움직임과 함께 군사적 역할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이 공존하고 있다.그런 가운데 일본은 「사죄」를 바탕으로한 미래지향적 우호관계를 강조하고 있다. 한국등 아시아국가들도 호소카와 전총리나 하타 쓰토무 총리의 솔직한 역사인식을 높이 평가,일본과의 미래지향적 관계를 추구하고 있다. 한국도 미래지향적 관계가 물론 중요하지만 일본사회 밑바닥에 흐르고있는 아시아에 대한 그들의 「우월의식」을 잊어서는 안된다.
  • 최서해/박태원/비운의 두 작가/소설 동시 출간

    ◎20∼30년대 필봉 날렸던 작가 재평가/최/신문연재 됐던 「호의시대」 단행본으로/박/「소설가 구보씨…」·「천변풍경」 재발간 지난 20∼30년대 필봉을 날렸으면서도 일반 독자들에게선 멀기만 했던 작가 2인의 작품이 동시에 출간됐다.문학과지성사가 최서해(1901∼1932)의 유일한 장편소설 「호외시대」를 단행본으로 처음 펴낸데 이어 깊은샘도 월북작가 박태원(1907∼1987)의 소설집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과 장편 「천편풍경」을 재출간한 것. 이 작품들은 식민지적인 특수상황에 따른 평단으로부터의 배척과 월북작가라는 꼬리표로 인한 판금등 수난을 겪었던 것들인만큼 적지않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소년시절 몸에밴 가난과,아버지를 따라 겪었던 간도에서의 체험을 토대로 가난하고 궁핍한 사람들의 호소와 절규를 주로 작품에 담아냈던 최서해는 8년남짓의 작가생활을 통해 50편의 단편과 1편의 장편을 남겼던 것으로 전해진다.유일한 장편 「호외시대」는 1930년 9월부터 이듬해 8월까지 매일신보에 3백3회에 걸쳐 연재된 소설로 지금까지 단행본으로 간행된 적이 없어 독자들로부터 멀어져 있었다. 동국대 국문과 곽근교수가 지난 87년 20∼30년대 신문·잡지를 샅샅이 뒤져 최서해의 소설 수필 평론자료들을 찾아내 57편의 단편소설과 46편의 수필및 13편의 평론으로 엮은 「최서해전집」(상·하 2권)을 펴내며 최서해 재평가작업을 벌이기도 했지만 여기서도 「호외시대」는 빠져 있었다. 이번 단행본 「호외시대」의 편저자이기도한 곽씨는 『당시 계급주의 진영은 프로의식 결여를 문제삼아 졸작으로 몰아갔고 민족주의 진영에서는 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에 입사한 최서해를 타락한 작가로 판단,무조건 태작으로 간주하는등 「호외시대」가 작품외적인 요소로 인해 도외시된 경향이 짙다』며 이 작품에 대한 재평가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월북작가 박태원의 경우도 우리 문학사상 30년대를 태표하는 작가로 자리매김 돼 있지만 월북후 해금까지 40년간이나 그의 작품이 묻혀있었던 비운의 작가이기는 마찬가지. 그는 월북전 이데올로기 성향과 예술지상주의등 어느쪽에도 치우침없이 식민지치하 서울 서민층의 사는 모습을 객관적으로 그렸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작품경향은 대체로 소시민적인 사건을 소재로한 세태소설류와 심리주의적인 수법으로 무기력한 지식층을 다룬 작품·통속소설 애국소설등으로 나타나는데 장편 「천변풍경」은 세태소설쪽,중편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은 무기력한 인텔리를 꼬집은 심리주의 소설의 대표격으로 모두 19 38년 출간됐었다. 이 소설들은 지난 89년 깊은샘이 재출간 함으로써 해금된 셈인데 이번 재출간된 소설집 「소설가 구보…」와 장편 「천변풍경」은 89년 출간작품들을 원본과 대조해 오류를 줄이고 사투리 표기법등을 현대어로 바꾼 개정본이다.
  • 복지부동이 말이 되는가(사설)

    지금 우리공무원들에게는 「복지부동」이라는 말이 덮씌워져 있다.중뿔나게 나섰다가 혹시라도 잘못되어 다치느니보다는 가만히만 있으면 본전은 잃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아무일도 안하며 눈치껏 『엎드려 있는 것』이란 뜻이 이말에는 담겨 있다.사려있는 공무원이라면 굴욕스럽고 자존심상할 일이다. 공무원은 인생을 공직에 걸기로 작정한 사람들이다.그러므로 공무원이란 단순한 생업이 아니다.국가 사회를 위해 봉사하고 기여한다는 명분을 함께 지닌 직이다.그런 사람들이 시대로 보나 나라를 위해서나 지금처럼 중요한 시기에 불명예스런 오명속에 봉직한다는 일이 얼마나 수치스럽고 유감스러울 것인가.풍요와 윤기를 만족시키지는 못해도 삶의 의미로 다소의 영예를 느끼게 하는 건전한 직업이다.그런 공직이 엎드려 눈만 굴리는 비겁한 집단으로 비친다는 것은 비참한 일이다. 우리 공무원은 진작부터 너무 지탄의 대상이 되어오고 있었다.사람들은 공무원을 비난하는데 아무 주저함이 없고 부정한 것의 대명사가 되기도 하며 안일하고 무능하고 무소신한 집단의 모형처럼 일컬어지기도 했다.공직자의 모습이 이렇게 상징된다는 것은 누가 뭐래도 공직자자신들이 지은 업이다.현세적 영화나 안일을 위해 선택한 것이 아닌 공직의 길을 그렇게 절하시킨 허물이 공무원자신에게 있으므로 공무원들은 그것을 벗는 노력을 피나게 기울이지 않으면 안된다.그래야만 스스로의 신성한 선택을 빛나게 할 수 있다. 한편 오늘날의 공무원상이 그토록 무참히 절하되어 있다는 것은 국가적인 불행이다.그들은 우리가 버려도 고만인 식민지시대의 이촉도 아니고 적대해도 고만인 남도 아니다.우리의 국정을 마침내 집행하도록 맡겨야 할 최후의 보루다.다소 마땅치 않고 실망스럽더라도 그들을 배제하고는 아무것도 이뤄질수가 없는 이나라의 중추다.그런 공무원들이 실의와 좌절의 늪을 헤매며 딴전만 피게 해서는 안된다.그들이 왜그렇게 몸을 사릴수 밖에 없는지 무엇이 그들의 신명을 그토록 앗아갔는지를 헤아려야 한다.김영삼대통령이 『공직자가 신명나게 일할 수 있는 길』을 찾도록 지시한 말에 온축된 의미를 살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더구나 지금은 우리가 생존을 위한 개혁을 해야하는 시대다.개혁은 그 당대의 인적자원이 하는 일이다.특히 국정은 어느 경우든 공무원이 한다.외연에서의 방관적인 비판이나 탁상의 사변만으로는 되지 않는다.공무원의 도덕적 자질과 능력의 수준에 좌우되는 것이 개혁의 성패다.굴욕스런 모욕이나 신랄한 비난만으로 「엎드려 있는」 그들을 일으키지 못한다.동지적 애정과 희생을 공유하는 상하관계를 포함한 획기적 방책이 세워져야 할 것이다.그리고 그일은 아주 초미에 와닿은 다급한 일이라는 것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 남아공(외언내언)

    서울에서 지구중심을 향해 일직선으로 뚫고 들어가면 남미 아르헨티나 어딘가로 나가게 된다고 한다.지리적으로 서울에서 가장 먼곳이란 이야기다.그러나 이제는 한국이민도 살고 원양어선 조업소식도 자주 들리는 그곳보다 더 멀리 느껴지는 곳이 남아공이라고 한다면 지나친 말일까. 검은 대륙 아프리카의 최남단이다.1488년 포르투갈 항해가 디아스가 발견하고 10년후 인도양항로를 개척한 역시 포르투갈의 모험가 바스코 다 가마가 이름붙인 희망봉의 나라다.대서양과 인도양의 경계를 이루는 이곳 흑인들만의 천국에 1652년 처음 백인식민지를 개척한 것은 네덜란드였다. 세계제일의 김과 다이아몬드광산이 발견되면서 양차에 걸친 보어전쟁등 각축끝에 영국의 식민지가 되고 이어서 남아연방,그리고 61년5월 남아공화국으로 독립했다.「백인 위에 흑인 없고 흑인 밑에 백인 없다」는 악명높은 아파르트헤이트의 인종격리정책이 본격적으로 실시되기 시작한 것은 독립이후부터다. 세계최악의 인종차별국으로 유엔의 제재까지 받고 있던 이 땅에 인종평등의 복음이 울리기 시작한 것은 89년 드 클레르크 현대통령이 집권하면서부터다.세계적으로 구소련·동구의 개방·개혁과 신사고바람이 절정을 이루던 시절이었다.종신옥살이의 흑인민족주의지도자 만델라를 27년만에 석방하고 흑백공존을 선언한 드 클레르크는 말하자면 남아공의 고르바초프였다. 그 남아공에 26일부터 3일간 의회의원을 뽑는 총선거가 실시되고 있다.유사이래 처음으로 흑인들에게도 투표권이 부여된 인종평등의 자유총선이다.4천만 인구의 75%가 흑인인 만큼 만델라의 아프리카흑인회의(ANC) 승리가 확실시되고 있다.만델라 흑인대통령에 드 클레르크 백인부통령의 시대가 시작되는 것이다.3백42년만의 백인통치 종식이요,아프리카대륙 흑인해방의 완성이다.현대사가 목격하는 또하나의 위대한 변화요 승리다.「검정이여 아름다워라!」
  • 호치민경제 80년대… 하노이는 60년대(생동하는 베트남:하)

    ◎해외투자 80% 몰려… 네온사인 “휘황”/호치민/자전거 주교통수단… 군사문화 “출렁”/하노이/농촌생활은 남·북 비슷… 안전한 식수 공급이 가장 큰 난제 전혀 다른 두개의 나라 같다.베트남의 두 도시 하노이와 호치민(베트남 공산당은 통일직후 사이공을 베트남 민족의 지도자 이름을 따 호치민으로 바꾸었다)은 그토록 이질적이다.하노이가 금욕적인 혁명가의 모습이라면 호치민은 아오자이를 입은 간드러진 여인의 모습이다. 우선 하노이는 겨울 코트를 입은 사람이 있을 정도로 추웠지만 호치민은 온도계의 수은주가 30도를 넘을만큼 무덥다.3층 이상의 건물이 드문 하노이 거리에는 자전거가 많고 월맹군의 모자였다는 녹색의 「무캇」이 흔히 보이지만 호치민에는 자전거보다는 오토바이와 자동차가 훨씬 많다.따라서 거리의 속도감이 전혀 다르다.호치민에서는 눈을 씻고 보아도 무캇은 찾을수 없고 꼿꼿이 허리를 편채 오토바이를 모는 매력적인 젊은 여인들이 눈길을 잡는다.불빛이 적은 밤의 하노이는 조용한 정적속에 놓여 있었지만 카페와 나이트클럽의 네온사인이 휘황한 호치민의 밤거리는 「디쪼이」(오토바이를 타고 시내를 돌며 바람을 쐬는것)하는 젊은이들로 가득하다. 무엇보다 시간의 흐름이 다르다.하노이가 60년대라면 호치민은 이미 70∼80년대에 접어 들었다.자본주의 사회의 여행객들도 호치민에서는 거의 불편을 느끼지 않는다.하노이 호텔의 비누는 쓸 수 없을만큼 조악했지만 리모트 컨트롤로 냉방시스템을 조종하도록 한 호치민의 호텔방 침대에는 투숙객을 환영하는 장미꽃까지 놓여 있다. ○남·북부간 갈등 심각 지난날 남과 북의 수도였던 호치민과 하노이의 너무나 다른 모습은 남북간의 보이지 않는 단절을 드러내는 것이다.모든 정부조직과 기업의 상층부는 북부 출신이 장악하고 있지만 경제적으로는 남부 사람들이 훨씬 잘 살아,하노이의 연평균 소득이 2백달러인데 비해 호치민은 3백달러가 넘는다.호치민이 자리 잡은 남부 메콩 삼각주의 넓이가 하노이가 있는 북부 송카이(홍하)강의 삼각주보다 4배나 넓은 지리적 이점 탓이기도 하겠지만 남부지역엔 자본주의 시절의 항만 도로등 사회기간시설이 그런대로 남아있어 해외투자의 80%이상이 이곳에 집중되고 있기 때문이다.우리 기업들도 이곳에 집중돼 있다.하노이에는 삼성 현대등 대기업 20여개사(주재원 3백여명)가 진출해 있는데 비해 호치민에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90여개(주재원 1천여명)가 몰려 있는 것이다. 통일후 정치와 경제의 이같은 분리,그리고 중국문화의 영향을 받은 북부와 남방문화의 영향을 받은 남부의 서로 다른 체제경험에서 비롯된 이질감은 물과 기름처럼 섞이기 어려워서 우리의 영호남 갈등보다 심각하다고 한다. 이처럼 남부의 경제발전 속도가 북부보다 빠르다고는 하지만 농촌지역의 생활환경은 양쪽에 큰 차이가 없는듯 싶었다.베트남 유니세프는 우리 일행에게 남부 붕타우성 한 마을의 수동펌프 준공식에 참석할 기회를 마련해 주었는데 안전한 급수문제는 영양실조문제와 함께 베트남 농촌의 가장 큰 문제다. 베트남 인구의 40%,약 3천만명이 14세 이하 어린이.그중 약 절반이 영양실조(중부 산간지역은 60%를 넘기도 한다)로 고통받고 있으며 농촌지역의 80%가 더러운 식수 때문에 콜레라와 피부병에 시달리고 급성 설사병과 기생충 감염으로 해마다 수만명의 어린이가 희생되고 있다.식수문제는 오랜 건기에 비위생적인 방법으로 모은 빗물을 식수로 사용하고 연못을 화장실로 사용하는 습관때문에 빚어진 것이다. ○펌프중공식 축제로 베트남의 영양실조율은 파푸아 뉴기니나 인도네시아보다 높은 것으로 아시아에서 최악의 상황을 보여준다.베트남 아동보호위원회 트란 티 탄 탄 위원장(장관)은 『어린이 영양실조는 가난 탓이기도 하지만 잘못된 식습관 때문에 부잣집 어린이들에게서 발생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아이가 크면 출산이 어렵다고 임신때 충분한 식사를 하지 않는등 부적절한 영양·보건 지식이 베트남 어린이의 영양실조율을 높이고 있다는 것이다. 쌀밥에만 의존하는 식습관때문에 비타민A 부족으로 해마다 약 5천명의 어린이가 시력을 잃고 심할 경우 사망하기까지 하며 특히 산간지방에서는 요드결핍으로 어린이 지능발달이 지체되고 약 2백80만명의 인구가 갑상선 질환을 앓고 있다 한다. 수동펌프 준공식에 참석하기 위해 붕타우로 가는 길에 우리 일행은 교통사고를 당했다. 베트남에서의 교통사고는 전혀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물소가 끄는 짐수레와 자전거와 오토바이와 자동차가 뒤섞여 달리는 도로에서 사고가 나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 될 것이다.자동차가 등장한지 얼마 안된 하노이에는 교통규칙 자체가 없다.도로의 중앙선 표시도 물론 없다.그래서 교통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누가 잘못했는가를 따지기보다는 차의 크기에 따라 책임이 돌아간다고 한다.예를 들면 자전거와 오토바이가 부딪치면 오토바이가,오토바이와 자동차가 부딪치면 자동차가 책임을 진다는 것이다. 프랑스 식민지 시절부터 유명한 해변휴양도시 붕타우시가 있는 바리아 붕타우성은 최근 유전개발이 활발하고 베트남의 53개성 가운데서 중앙정부예산에 돈을 보태는 7개성에 포함돼 있을만큼 부유한 지역이다.그럼에도 1백50가구당 1개씩 유니세프 지원으로 설치되는 수동펌프 준공식이 그 지역의 성대한 축제로 치러지고 있었다.인민위원회 위원장을 비롯,지역 유력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엄숙하게 준공 테이프를 끊고 국민학교 고적대가 축하연주도 했다. 2백달러(16만원)로 설치할 수 있는 수동펌프 한개가 베트남 농촌주민 수백명에게 그토록 큰 기쁨을 안겨주는것에 우리는 미소지었는데 붕타우시 보건소에서 우리의 미소는 얼어붙고 말았다.걸을수가 없어 침대에만 누워있는 어린이,심한 언청이로 거의 괴물처럼 보이는 어린이,뇌성마비,청각장애,언어장애등 장애어린이들의 비참한 실상을 그곳에서 목격한 것이다. 붕타우 보건소장은 『최근의 불충분한 조사결과만으로도 붕타우성의 인구당 장애아 비율이 0·57%에 이른다.보다 정확한 조사가 이루어지면 그 비율이 훨씬 더 높아질것』이라면서 『장애원인은 의료수준과 시설의 제한으로 확실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지만 가난과 무지와 전쟁탓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치열한 전투장이었던 곳,전쟁이 끝난 1975년 당시엔 사람이 살지 않던 지역에 장애어린이가 더 많은데 이 지역에서는 한가정 5명의 어린이가 모두 장애자인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전쟁후유증 시달려베트남전쟁에서는 고엽제를 비롯,전쟁사상 유례없이 많은 화학무기가 사용됐고 화학무기가 사용된 전장은 남부와 중부지역에 집중돼 있었다.붕타우등 남부는 물론 중부지역의 장애어린이들은 호치민으로 가야만 치료를 받을수 있는데 호치민도 그들을 수용할 능력이 턱없이 모자란다. 호치민의 언청이 전문병원인 오돈토 막실로 페이셜 센터의 병상은 총 40개.입원환자는 1백50명에 달한다.침대 하나에 3∼4명의 환자가 입원한 셈이다.그럼에도 1천2백명의 환자가 입원대기중에 있다. 『환자 1명을 수술하는데 50달러가 듭니다.수술만 하면 그들의 인생은 달라집니다.신문팔이였던 한 어린이는 수술후 신문을 더 많이 팔수 있게 됐다고 기뻐했습니다.그러나 정부의 지원부족으로 많은 환자들을 수술할수가 없어 안타깝습니다』 자신의 월급이 15달러라고 밝힌 이 병원 여의사 누엔 티 둑씨는 『돈도 필요하지만 선진 의료기술의 지원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노이와 북부 농촌지역이 가난함에도 불구하고 밝고 활기 넘쳐 보였던 것은 그곳이 직접적인 전쟁의 피해지역이 아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호치민과 남부 농촌지역은 그 상대적 풍요로움에도 불구하고 20년이 되도록 아물지 않은 전쟁의 상흔때문에 우리를 착잡하게 만들었다. 베트남에 한국군이 첫발을 내디딘지 올해로 30주년이 된다.지난 64년 태권도 교관단과 이동병원이 붕타우에 상륙함으로써 한국군의 베트남전쟁 개입이 시작됐다.남쪽을 우방으로,북쪽을 적으로 싸운 그 전쟁에서 우리의 70년대 경제발전의 밑거름이 일부 마련된 것으로 얘기되기도 한다.통일된 그 나라와 새로운 우정을 맺은 우리가 이제 할 일은 베트남 어린이들을 돕는 일이라고 생각된다.
  • 영토주권과 정보기술 주권/이상희(일요일 아침에)

    역사변화에 대한 해석은 대개 1백년을 한주기로 이뤄진다는 가정하에 우리 역사를 정확히 1백년 전으로 후퇴시키면 1894년은 청일전쟁과 갑오경장이 일어난 해다. 당시 우리사회는 서구 열강에 비해 뒤늦게 근대화에 착수,복식개량에서부터 비효율적인 사회제도 개혁에 이르기까지 「손볼 곳」도 많았고,보수세력의 저항도 컸다.그러나 이 문제점들을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풀어가기 보다는 일·러·청등 외부세력을 유혹하여 보수세력에 밀리는 근대화 개혁문제를 쉽게 극복해보려는 안일한 현실감각이 결국 중대한 역사의 과오를 자초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특히 우리가 내민 손목에 이끌려 조선의 안방에 「초대」된 외부세력들은 차라리 그 안방을 차지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됐고,급기야 청일전쟁,노일전쟁으로 발전하면서 그야말로 「한반도 쟁탈전」의 주경기장이 되어버린 형국이었다. 역사의 물줄기는 농업사회의 영토주권 시대에서 정보화 사회의 정보기술 주권으로 바뀌면서 오늘의 상황은 청일전쟁이 일어났던 바로 1백년전의 한반도 상황과크게 다를바 없다고 전문가들은 우려하고 있다.그것은 첫째,당시와 마찬가지로 역사의 발전방향을 함께 달릴만한 정보기술 기반이 부족한데다 둘째,주변 「열강」들의 「정보 기술전쟁」이 날로 치열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역사를 주도해가는 선진국들의 힘은 무엇보다 역사의 방향을 누구보다 앞서 읽어내고 거기에 모든 국민적 힘을 집결해 강력히 실천한다는데 있다. 실제 이미 장도에 오른 미국의 국가정보하부기반(NII)구축이나 일본의 신사회 자본으로의 정보화 구축전략들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UR·GR·TR를 결국 정보기술라운드로 마무리하면서 신산업창출,신고용 증대등 국내문제의 해결까지 노리는,가히 바둑9단들의 수읽기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특히 일본의 경우 마치 지난날 「만주 철도부설권」을 따내듯이 21세기 세계정보시장 지배를 위해 「세계 정보고속도로 부설권」을 획득하려는 야심마저 엿보이고 있다. 또 얼마전 미국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빌게이츠 회장과 매코 셀룰러사 크레이크 매코회장이 미연방 통신위원회(FCC)에 제출한「21세기의 우주멀티미디어전쟁」이란 계획서­통신위성수만 무려 8백40개이며 총7조2천억원을 투입하는 이 계획은 그야말로 세계 정보시장을 쟁탈하기 위한 실질적인 전쟁선포와 다름 없었다. 1천개에 달하는 첨단위성이 해변가의 조약돌처럼 반짝거리며 땅위의 모든 것을 감시하고,서로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상상해보자.그것을 통해 우리의 정보기술주권은 어떻게 될것이며,물건을 사고파는 시장만이 아닌 머리와 입,귀를 빼앗기고 단지 그들을 위한 정보기술 식민지로 전락하는 불행을 염려한다면 지나친 기우일까. 미국의 변화는 세계의 변화를 예고하는 것이다.21세기를 바라보며 선진국들이 퍼붓는 「정보화 압력」은 지금 진행되는 UR나 GR·BR·TR의 위협보다 더욱 강력하게 우리의 입지를 위태롭게 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최근 우리정부도 「초고속정보통시스템」구축의 포문을 열기 시작했다.정보고속도로 건설은 세계화·정보화·지방화시대의 필수조건이다.더욱이 이것은 대도시와 도서벽지,대기업과 소기업,중앙과 지방,그리고 대학과 유치원에 이르기까지 빠르고 동등한 발전기회를 제공하면서 국가경쟁력 강화의 기본 수단이 된다.더불어 남북통일에 대비한 국력기반 확보를 가능하게 하며,나아가 아·태지역의 주변국에서 탈피,세계의 중심국으로 진입하는 첩경이기도 하다. 그러나 덧붙인다면 비단 통신망이라는 하드웨어적 측면 뿐만 아니라 정치·행정·교육등 소프트웨어 측면의 정보화가 종합적으로 정비되고,그에 따른 정보기술 개발,정보 산업육성을 우리의 땀과 의지로 그 바탕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바로 1백년전의 역사적 불행을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는 고언일 것이다. 1백년전의 청일전쟁이 「정보통신 전쟁」으로 이름만 바꿔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그 뼈아픈 역사의 경험을 되새기면서 이제 우리 스스로의 결집된 노력을 통해,대내적으로는 정보기술 기반의 입지를 마련하고,대외적으로 정보화 사회의 역사적 대세를 업는 「정보 기술주권」을 확립해가는데 국민적 합의를 이뤄야겠다.
  • 남아공 “백인 대탈출사태”/월말 선거 유혈 우려

    ◎짐바브웨에 1만명 유입 【요하네스버그 로이터 연합】 남아공화국 최초의 다인종 선거를 앞두고 정치폭력에 불안을 느낀 수많은 백인들이 남아공을 빠져나가고 있어 20년전 아프리카대륙에서 포르투갈 식민지들이 독립한 이후 최대의 유럽인 대탈출이 벌어지고 있다. 여행사 관계자들은 9일 일부 백인들은 남아공에서 아주 떠나고 있고 다른 백인들은 이웃 나라들에서 선거가 끝날때까지 사태를 지켜볼 생각인것 같다고 말했다. 서방 대사관들은 오는 26∼28일에 실시되는 다인종 선거후 남아공에 정치폭력이 휩쓸 경우 그들의 남은 자국민들을 소개하기 위한 비상대책마련에 신중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 한편 짐바브웨 여행관계자들은 지난 며칠동안 1만명의 남아공 사람들이 격화될지도 모를 정치폭력을 피해 짐바브웨로 들어왔다고 말했다.
  • 김 대통령 출국인사 요지

    나는 오늘부터 일주일동안 대통령 취임후 처음으로 일본과 중국을국빈자격으로 공식 방문합니다. 세계화의 조류속에서 오늘의 국제사회는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있습니다.나라사이의 거리는 더욱 가까워지고 상호의존관계는 더욱 깊어지고 있습니다.특히 UR이후의 새로운 세계무역질서는 무한경쟁에 접어들고 있습니다.이러한 시대변화속에서 한·중·일 세나라가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번영을 함께 누리기 위해서는 서로 긴밀하게 협력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일본과 중국은 우리의 두번째와 세번째 교역국입니다.중국은 우리의 해외투자가 가장 많이 이루어지고 있는 나라입니다.경제의 세계화 추세속에서 산업구조와 그 발전단계가 다른 세나라가 협력할 여지는 얼마든지 있습니다.세나라는 상호 보완적인 협력과 제휴를 통해 각기의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또 이번 방문에서 동아시아의 안정과 평화를 위해 세나라가 협조할 방안에관해 깊이 있는 협의를 가질 것입니다.특히 북한의 핵문제는 우리의 직접 문제일뿐아니라 동아시아의 안정과 깊은 관련을 가지고 있습니다. 북한은 IAEA핵사찰을 성실히 받지 않고 남북대화마저 일방적으로 단절하여 한반도의 위기를 조성하고 있습니다.심지어 전쟁불사 등의 극언으로 우리 국민을 협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미간의 굳건한 안보협력 체제아래 우리는 저들의 어떠한 도발도 단호히 물리칠 것입니다.우리는 결코 저들의 협박에 굴하지 않을 것입니다.그러나 저들이 언제라도 자세를 바꾸어 대화에 응해올 수 있도록 문호를 열어둘 것입니다. 나는 이번 순방에서 북한 핵문제의 해결과 국제적으로 고립된 북한의 개혁·개방을 위해 두나라의 협력을 구할 것입니다.한·중·일 세나라는 북한의 핵문제 해결을위해 각기 해야할 몫을 가지고 있습니다.한반도의 진정한 화해와 평화가 동아시아는 물론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안정과 번영을 위해 매우 긴요한 일임을 두나라 지도자들에게 설명하고 협조를 구할 것입니다. 이제 한국은 더이상 지구의 변두리 나라가 아닙니다.문민시대를 열고 세계 13위의 경제력을 가진 한국은 21세기의 중심국가중의 하나로 떠오르고있습니다.우리앞에 다가온 태평양시대의 새로운 질서형성에 적극 참여하고 기여하는 나라입니다. 우리 모두 자부심과 함께 사명감을 가집시다.개혁과 국제화로 우리의 꿈을 실현합시다.인류공영과 새문명 창조에 기여하는 나라를 만듭시다. ◎일왕 만찬사 귀국은 우리나라에 있어 가장 가까운 이웃으로서 사람들의 교류는 역사책에 밝혀지기 이전의 먼 옛날부터 이루어져 왔습니다.그리고 귀국으로부터 다양한 문물이 우리나라에 전달돼 우리의 선조들은 귀국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이와 같이 양국이 오랫동안 밀접한 교류를 하던 중 우리나라가 한반도의 여러분들에게 다대한 고난을 끼친 한시기가 있었습니다.본인은 몇년전 이러한 점에 대해 매우 슬픈 마음을 표명한 적이 있습니다만 지금도 변치않는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전후 우리나라 국민은 과거의 역사에 대한 깊은 반성에 입각하여 귀국 국민과 흔들리지 않는 신뢰와 우정을 쌓기위해 노력하여 왔습니다. 최근 기쁘게 생각하는 것은 양국민들의 우호협력관계가 여러분야에서 진전되고 재작년 가야문화전을 비롯한 한국문화통신사 사업이나 작년 대전 국제박람회등 양국국민을 잇는 유대가 굳건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일한 양국은 우호협력관계를 더욱더 강화시켜 미래에의 길을 개척해가야만 합니다. 「신한국 창조」와 일한 양국관계의 강화를 진지하게 추진하고 계시는 대통령각하의 금번 방일은 양국장래에 있어 커다란 의의가 있다고 확신합니다. ◎김 대통령 답사 나는 우리 두나라가 마음을 열고 내일을 향해 서로 협력하는,진정한 선린우호관계로 나아가야 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귀국을 방문했습니다.양국관계는 금세기초 역사의 거센 바람과 격랑으로 시련을 겪기도 했습니다.그러나 더 이상 과거가 미래를 속박해서는 안될 것입니다.과거를 있는 그대로 직시하고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을 진솔하게 받아들일 때 새로운 한일관계가 열리게 될 것으로 믿습니다.우리 두나라 국민이 이러한 자세로 여러분야에서 교류를 확대해가면 틀림없이 새로운 선린의 장이 열릴 것입니다. 다가오는 21세기는 아시아·태평양시대가 될 것입니다.우리 두나라는 새로운 세대를 여는 동반자로서 상호협력해 나가야 할 역사적 소명을 띠고 있다고 믿습니다.평화와 번영을 위한 양국의 확고한 의지와 경험은 새로운 아시아,새로운 태평양,새로운 세계를 만들어가는 인류의 도정에 커다란 힘이 될 것입니다. 우리 두나라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공통으로 추구하고 있습니다.아시아속의 한일,세계속의 한일이라는 시대적 요청에 걸맞는 동반자 관계의 구축을 통해 21세기 세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대장정에 앞장서야 할 것입니다. □과거사 관련 일본측 주요사과발언 발언자 일시·장소 발 언 내 용 히로히토일왕 84년9월6일 금세기의 한시기기에 있어서 양국 전두환대통령 간에 불행한 역사가 있었던 것은 방일만찬사 진심으로 유감이며 다시 되풀이되 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함 아키히토일왕 90년5월24일 우리나라에 의해 초래된 이 불행 노태우대통령 했던 시기에 귀국 국민들이 겪었 방일만찬사던 고통을 생각하고 본인은 통석 의 념을 금할수 없음 가이후총리 90년5월24일 과거의 한 시기,한반도의 여러분 노태우대통령 들이 우리나라의 행위에 의해 견 방일회담 디기 어려운 고난과 슬픔을 체험 하게 된데 대해 겸허히 반성하며 솔직히 사죄를 드리고자 함 호소카와총리 93월11월6일 과거 우리의 식민지지배시절에 한 경주정상회담 반도의 여러분들에게 예를들어 모 국어교육 기회를 빼앗거나 타국언 러을 강제로 사용케하거나 창씨개 명이란 이상한 일이 강제되고 중 군위안부,노동자의 강제연행등 각 종 문제가 있었음. 이러한 참을 수 없는 고통을 강요당한데 대해 가해자로서 우리가 한일에 대해서 깊이 반성하며 이번기회에 다시한 번 진사드림 아키히토일왕 94년3월24일우리나라가 한반도의 여러분들에게 김영삼대통령 다대한 고난을 끼친 한시기가 있 방일만찬사 었음.우리나라 국민은 과거의 역 사에 대한 깊은 반성에 입각하여 귀국국민과 흔들리지 않은 신뢰와 우정을 쌓기 위해 노력해왔음
  • 일제 관여 이유로 「왕조실록」서 누락/고·순종대 「승정원일기」번역

    ◎민족문화추진회,올해 15집까지 간행/완간된 「실록」 미진한 부분 보완/근대사 연구에 필수… 2002년까지 완역 「조선왕조실록」국역사업을 사실상 마무리 할 고종·순종대의 「승정원일기」가 번역된다. 민족문화추진회(회장 이원순)는 「조선왕조실록」이 완간됨에 따라 「승정원일기」국역에 들어가 올해안에 15집까지 간행키로 했다. 「승정원일기」는 1623년(인조 원년)3월부터 조선왕조가 막을 내릴 때까지 승정원에서 처리한 왕명의 출납과 제반 행정사무,의례적 사항등을 매일 꼼꼼히 담은 기록이다.모두 3천2백45권에 이르는 이 방대한 분량의 「승정원일기」가운데 고종과 순종 부분 2백20권만을 추려 먼저 번역키로 한 것은 국역된 「조선왕조실록」의 미진한 부분을 보완한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민족문화추진회와 세종대왕기념사업회는 지난 1968년 조선왕조 태조 원년(1392년)에서 부터 철종 말년(1863년)까지 4백71년동안의 「조선왕조실록」을 국역하는 작업에 들어가 26년만인 지난해 말 완간했다.그러나 모두 4백13책에 이르는 번역본에는 고종과 순종 부분이 빠져있다.조선왕조를 말살한 일제의 식민지 관료가 주도해 위작임이 분명한 「고종태황제실록」과 「순종황제실록」은 사료로 가치를 인정할수 없기 때문이다. 실록은 국왕이 죽고 새 국왕이 즉위하면 즉시 실록청을 설치해 죽은 국왕 재위기간의 역사를 편년체로 서술한 기본적인 관찬사서이다.실록편찬의 가장 중요한 근거자료는 사관의 사초였다.사관은 그들이 듣고 본 그대로를 적어야 했다.또 사관의 사초에 대해서는 시비를 가릴수 없었고 수정을 가하지도 못하도록 되어 있었다.실록은 한마디로 공정성과 정확성이 생명이었다.그러나 이른바 고·순종실록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고·순종실록은 1926년 순종이 죽자 다음해 4월 조선왕조의 궁내부를 축소·격하시킨 이왕직 산하에 준비실이 설치된뒤 1930년 4월부터 편찬이 시작되어 1934년6월에 끝났다.편찬의 총책임자인 편찬위원장은 물론 33명의 편찬위원가운데 11명이 일본인이었다.여기에 조선총독부 경시를 편찬보조위원으로 모든부서에 참여시켜 한국인들을 감시케 했다고 한다.이처럼 역사서술의 공정성과 정확성을 처음부터 기대할수 없는 형편이니 「조선왕조실록」국역작업에 포함시키는 것이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설명이다. 그런만큼 개항 이후 다소 소략해지기는 했으나 광범위한 국가적 공사와 의례를 담은 「승정원일기」는 왕조실록 못지않은 귀중한 기본사료로 한국 근대사의 혼란기인 고·순종 시대를 연구하는데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민족문화추진회는 고종·순종 시대의 「승정원일기」를 일단 오는 2002년까지 완역한다는 목표를 세웠다.올해 국역해 간행할 「승정원일기」는 고종 원년1월부터 3년3월까지를 담게 된다.
  • 법따로 현실따로(이동화칼럼)

    최근 대법원 판결로 검·경에 충격을 준 경찰서보호실 유치관행은 법이 현실에서 구조적으로 실종되어온 하나의 사례라 할 수 있다.이는 관의 편의주의가 국민의 권리를 부당하게 뛰어넘은데서 나온 결과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역시 대법원에 의해 발목이 잡힌 보사부의 생수시판금지조치도 이와 비슷한 유형이다.공식적으로는 시판이 금지되어 있음에도 거리낌없이 팔려 최근의 한 조사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서울시민 5명중 한명꼴로 생수를 사 마시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준법투쟁」의 아이러니 이런 「법따로,현실따로」의 현상때문에 우리는 요즘 아주 아이러니한 현상까지 보고있다.시내버스로조의 「준법투쟁」이 그것이다.버스운전기사들이 교통법규를 제대로 지키면서 운행하는 것을 노사교섭의 무기로 내놓은 것이다.이는 그동안 시민들이 느낀대로 시내버스들이 대부분 교통규칙을 마구 위반하며 다녔다는 얘기다.어떻게든지 한번이라도 더 다녀 사용자가 이익을 도모했고 그만큼 시민의 이익을 해쳐온 것이다.법과 현실의 괴리를 상징하는 「준법투쟁」이었다. 사실 서울등 대도시의 현교통상황에서 경찰이 교통법규를 엄격하게 적용하면 엄청난 교통체증을 유발할 것이라는 역설이 가능한 현실이다. 이밖에도 여러가지 사례가 있겠지만 법과 현실이 따로 노는 문제들을 하나하나 잡아나가는 것이 앞으로의 중요한 개혁과제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법이 훌륭하면 거기에 맞추도록 유도하고 강제하든지,잘못된 법은 현실에 맞게 고치든지,양쪽을 서로당겨 맞추든지간에 이같은 괴리는 좁혀져야 참다운 준법과 민주주의가 자리할 수 있을 것이다. 잘못을 고치기 위해서는 우선 진단이 필요하다.법과 현실의 괴리현상이 왜 일어났는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첫째 법과 규정을 만드는 쪽의 편의주의를 들 수 있다.책임회피,부처이기주의,나아가 법의 제정과 집행이 공직자의 생계나 치부수단과 연결된 것등이 이런 범주에 속한다 하겠다. ○법의 올바른 운영 둘째 권력과 국민과의 관계가 비정상적이었던 데서 나온 오랜 관습과 문화를 들 수 있다.전근대적 수탈과 식민지배,그리고 독재체제의 시대를거치면서 국민들 사이에는 법을 집행하는 공권력의 정통성과 도덕성 등에 대해 뿌리깊은 불신풍토가 자리잡았고 이것이 법경시풍조로 이어졌다.나아가 권력유지나 지배층의 보호수단으로까지 인식된 법에 맞서는 것이 오히려 정의인 것으로 인식되는 왜곡된 측면도 있었다. 이제 문민정부의 등장은 정권이나 공권력의 정통성과 도덕성문제를 바로잡았다는 신호이다.그런만큼 정부로서는 법을 본래의 목적대로 운영하는데 진력함은 물론 현실과의 괴리를 근원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모든 가능한 수단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이런 노력이 하나하나씩 열매를 맺을때 국민들의 준법정신은 하나둘 제자리를 찾을 것이다. 지난 1년여동안 김영삼정부의 개혁드라이브는 이런 관점에서도 몇가지 중요한 가시적 성과를 거두었다고 본다.특히 금융실명제 실시는 「돈따로 이름따로」에서 나온 수많은 비리와 부작용을 구조적으로 막음으로써 불법에 대해 경종을 울리고 정치·경제·사회적 정의의 실현에 크게 공헌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크든 작든 이런류의 개혁은 이제 시작에 불과한 것이다. 「법따로 현실따로」와 관련하여 대표적 사례의 하나라 할 수 있는 선거관계법은 세인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지난 국회에서 여야합의로 처리되었을 뿐아니라 엊그제 대통령이 공개서명식을 갖고 법의 준수를 다짐함으로써 법의 운영이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이다.돈안쓰고 공명한 선거를 겨냥하고 있는 이 법은 선거운동범위를 현실화한 측면이 있으나 「돈」은 그야말로 꽁꽁 묶었다. ○돈안쓰는 선거 가능한가 지난 14대총선에서 후보자당 평균 1억2천5백만원이던 공식선거비용을 5천3백만원선으로 하향조정했을 뿐 아니라 꼭 지키도록 하겠다는 의지가 현재로서는 넘쳐흐르고 있다.14대나 그 이전 선거에서도 법은 있었으나 사문화되다시피 해 대개의 경우 법정비용의 10배이상을 쓴 사례가 적지 않았다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획기적인 개혁의지이다.아울러 많은 사람들이 지켜질 수 있을까 회의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최근 공보처조사결과도 86.7%가 이런 우려를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정책의지가 강한 법이 지켜지려면 잘못된 현실적 상황과 의식을 타파,현실이 법에 다가오도록 유도하고 강제하는 수밖에 없다.이것은 매우 어렵고 인내가 요구되는 작업이다.또 정교한 계획이 필요하기도 하다.이런 계획과 작업은 결국 정치권과 후보자들,그리고 나아가 유권자들이 「법을 지켜야 한다」는 의식을 갖도록 만들때 목적하는 바를 달성할 수 있는 것이다. 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생활과 관련된 모든 분야에서 법과 현실을 합치시키려는 노력이 다각적으로 꾸준히 계속되어야 준법정신이 확산될 것이라는 점이다.
  • 보존함으로써 개발한다/오세탁(일요일 아침에)

    초고층아파트 건립으로 천년고도가 사라진다는 신문기사가 났다.개발을 앞세운 주택정책과 이를 빌미로 삼은 건설업자들의 약삭빠른 욕심에 밀려 보존해야 할 천년고도의 모습이 사라지고 있다는 사회고발이다. 필자도 지난 1월 하순에 경주를 찾은 일이 있다.3년만에 본 시가지는 많이 변하고 있었다.작은 언덕인양 바라보이는 왕릉들 사이로 들어선 신흥주거단지에는 단조로운 직사각형의 주택이 널려있고 용강택지개발지구내에 즐비한 아파트는 계림의 아름다운 정취를 무색케 하였다. 그때 받은 충격은 컸다.이른바 「개발」과 「보존」이라는 대명제 앞에서 말이다.하기야 얼마전 김유신장군묘 부근의 충효택지개발지구에 고층아파트를 건립하려던 현대산업개발이 장군묘와 송화산 고분등을 가린다는 각계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혀 회사측이 그 사업을 취소한 일이 있었고,지금 현재도 향토사학자들을 중심으로 주민들의 유적보존운동이 줄기차게 이어져 오고 있는 것으로 전해듣고 있으나 그 세력은 미미하다. 돌이켜 보건대 우리는 너무나 어려운 삶을 이어왔다.식민지하에서 민족문화가 말살되고 문화재가 여지없이 파괴되었었다.지금 우리가 공주·부여 어디에서 백제고도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단 말인가. 70년대에는 개발의 시대라 했다.경제개발에 밀려 정치적자유를 포함해 환경보전이나 문화재보존은 이름 뿐이었고 그것은 80년대까지 이어졌다.그동안에도 그 중요성이 전혀 무시된 것은 아니다.국가기본법인 헌법에 환경권조항과 문화조항이 등장한 것이 그것을 의미한다.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헌법에 규정된 자유권적기본권의 경우와 한가지로 국토개발,경제발전과 남북문제라는 시책아래 번번이 무시당해 온것이 숨길수 없는 사실이다. 이제 문민정부 출범 1년만에 대망하던 정치개혁법도 여야합의로 타결되었고 경재지표도 희망적이라는 보도가 국민을 안도케 하고 있다.그리고 경재발전을 주도하는 국토개발의 필요성도 국민은 모두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개발이라는 것도 결국은 「우리」를 토대로 해서 우리가 보다 행복해지려는 것이고,무엇보다도 먼저 우리를 찾고,우리를 알고,우리를 보존하는 일이 선결되어야 한다는 것은 자명한 진리라 아니할 수 없다. 여기에 문화유적의 소중함과 문화재보존의 참다운 뜻이 있는 것이다. 지금 나는 스크랩에서 1977년3월15일자 서울신문 기사를 펼쳐보고 있다.독립문 이전에 관련한 충격적인 사건기사이다.그 후로도 얼마나 많은 문화유적이 행정상의 편의나 개발상의 불가피성이라는 이유로 파괴되고,우리문화를 욕되게 해왔는가. 분명 문화재는 민족예지의 총합체이며 민족의 얼을 상징하는 국민적 재산이고 역사의 징표이다.그것은 행복하고자 노력하는 우리 전통의 결정체이며 번영의 미래를 향하는 현재의 기반이다.그러면서 그것은 일단 파괴되거나 변형되면 다시는 회복할 수 없게 가치를 상실한다.이렇듯 문화재보존의 당위성이 뚜렷한 것임에도 지금까지의 정부시책은 이를 소홀히 다루어 왔다는 비난을 면치 못하고 있다. 물론 어쩌다 정책의 가중치에서 밀려난 것에 지나지 않다는 변명이 있을지라도 이를 용납할 수는 없다.때를 놓치면 안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에,법이 있다고 해서 방관할 수만은없다.방관해서도 안된다.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우리의 국민운동으로 우리 문화재를 보존하며 우리의 역사를 지켜야 한다.이미 영국은 20세기에 들어오면서 거대한 내셔널 트러스트운동을 전개해 왔으나,일본은 60년대에 와서야 문화재보존국민운동이 정착되었으므로 때늦은 것을 몹시 후회하고 있다는 사연을 절실히 터득해야 한다. 그렇다.우리는 과감히 우리를 찾아야 한다.우리의 정치적자유를 위한 운동이 있었듯이 우리를 찾는 문화재보존운동이 하루속히 정착되어야 한다. 그것은 이미 1972년에 유네스코가 채택한 「문화유적 및 자연유산의 국내적 보호에 관한 권고」에도 있듯이 보존함으로써 개발한다는 방향에서만 가능하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