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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범민족대회 중단 의미

    남북정상이 합의서명한 6·15공동선언 이후 한반도 해빙무드가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느낌이다.북한은 정상회담 직후 휴전선 일대에서 대남비방을 중단한데 이어 노동신문 대남비난 코너를 없애는 등 원색적인 비방·중상을 크게 줄였다.그동안 해마다 6월25일부터 7월27일을‘반미공동 투쟁월간’으로 설정하고 남측을‘미제의 식민지’로 폄하·비난했던 대규모정치 행사도 중단시켰다.정상회담 공동선언의 첫 실천조치로 이산가족 방문단을 서울과 평양으로 동시교환하고 9월 비전향장기수 전원송환 즉시 이산가족 면회소 설치문제를 협의·확정키로 한것은 남북화해를 위해 매우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반세기동안 대결과 반목으로 얼룩졌던 냉전적 남북관계가 정상회담이후 화해·협력관계로 급속히 전환되고 있음을 실감케 한다.특히 북한은 해마다 실시하던 범민족대회를 올해에는 개최하지 않는다는 후속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져 남북관계 개선에 획기적 전기를 마련하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정부당국자는 3일 북한이“올해 11차범민족대회를 열지 않기로 내부방침을정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지난달 말 조국통일범민족청년학생연합(범청학련)북측본부가 남측본부에 팩시밀리를 통해“올해는 범민족대회가 열리지 않으니 대회참가를 위해 사람을 보내지 않아도 된다”는 뜻을 알려온 것은 범민족대회가 중단됐음을 확인시켜 주는 대목이다. 북한이 지난 90년 8월이후 10년동안 한해도 거르지 않고 개최해왔던 범민족대회를 올해 중단시킨 것은 남북화해를 위한 획기적 조치로 받아 들여진다. 범민족대회는 북한의 대표적 통일전략전술로 상징되는 정치행사라는 점에서보면 더욱 그렇다.남,북,해외 3자 연대방식으로 동시에 개최되는 범민족대회는 친북(親北)반한(反韓)인사들이 주로 참석해서 연방제통일방안 지지를 비롯,주한미군 철수,국가보안법 철폐등 북한의 대남통일전략을 일방적으로 주장했던 정치행사다.또 과거 전대협,한총련등 대학운동권에서 해마다 제3국을 경유,대표를 파견함으로써 우리정부와 심각한 마찰을 빚기도 했다. 남북간에 첨예한 반목과 불신을 불러일으키고 냉전의 상징으로 지목됐던 범민족대회를 중단키로 한것은 북한의 매우 전향적인 변화로 인식된다.정상회담이후 조성된 남북화해 분위기를 해치지 않으려는 정책적 판단에 따른 것으로도 풀이된다.이산가족상봉과 비전향장기수 송환등 남북관계 개선과 화해분위기가 조성되는 상황에서 마찰에 소지가 큰 범민족대회를 굳이 열어야 할필요성이 없어진 점이 크게 작용했다고 본다.범민족대회 중단으로 형성되는남북간의 신뢰증진과 화해무드를 소중하게 키워 나가야 하겠다.남북은 정상회담이후 마련된 화해 분위기가 더욱 무르익도록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할것이다.
  • “한국문학 웃음 속엔 진한 눈물의 향기가”

    문학하는 사람들은 흔히 시대와의 불화를 이야기한다.한국의 현대문학은 식민지·분단현실,반독재,민주주의 등을 주된 관심사로 삼았고 그것은 늘 논의의 한복판을 지켜왔다.그러나 한편으로는 시대상황이 몰고온 주제 자체에 빠져 구체적인 작품 속에 녹아 있는 작가의 에스프리나 문학적 감성 등은 제대로 조명하지 못한 점도 없지 않다.원로 국문학자 김영수씨(66·청주대 명예교수)가 펴낸 ‘한국문학 그 웃음의 미학’(국학자료원)은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저자에 따르면 현단계 한국문학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웃음의 미학을 확립하는 일이다.이를 위해 저자는 먼저 한국 문학에 다채롭게 나타나는 웃음의능선을 따라가며 해학의 현장을 확인한다.그리고 해학이라는 잣대를 통해 한국문학의 정체성을 살핀다. 웃음에 대한 저자의 지적 섭렵은 ‘춘향전’에 대한 기존의 해석을 비판한‘미학없는 해학론’(1970)에서 비롯된다.그러나 그로 하여금 웃음의 본질을 새삼 되새기게 한 것은 문학평론가 김현이 ‘예술기행’에서 밝힌 “동양인이 자주 웃는것은 서양인들이 너무 착취를 해,그 고통을 숨기기 위한 것”이라는 구절이다.저자는 한국인 특유의 이러한 ‘역설의 철학’에서 웃음의묘미를 발견한다.거기서 그치지 않고 한국인의 원형적인 웃음과 멋을 상생의 원리로 승화시킨다. 저자는 희대의 ‘주술적인’ 시인 서정주,흥부보다 놀부가 인간적이라는 최인훈,‘거대한 뿌리’의 김수영,‘너무도 희극적인’ 최인호 등 유머에 능한작가들의 작품을 골계적 사유의 대상으로 삼는다.그들이 빚어내는 웃음 속에는 한결같이 진한 눈물의 향기가 배어 있다는 게 저자의 말.한 예로 최인호의 작품 ‘술꾼’의 경우,그 절망의 희화적 수법은 바로 눈물의 웃음이다.골계라는 도구를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최인호의 상상력은 가장 가난한 거지가 ‘이 지상에서 가장 큰 집’을 짓는 역설의 미학을 구축한다.그런가하면‘잠자는 신화’에서는 성기도난 사건으로 또 하나의 수수께끼를 만들어낸다. 저자는 최인호를 웃음과 눈물을 씨실과 날실로 삼아 천길 우수를 보여주는‘자유혼의 작가’로 평가한다. 저자는 21세기는가벼운 재치와 유머로 반짝이는 작가,농담으로 진담을 할줄 아는 작가,농담같이 살아가는 인생이 힘을 얻는 세상이 될 것으로 전망한다.그런 점에서 보르헤스가 환상에서,유미리가 꿈에서 문학의 활로를 찾은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말한다.특히 ‘유사고고학적 환상’을 구사하는보르헤스의 논법은 얼핏 황당해 보이지만 섬광같은 기지야말로 문학이 적자생존의 ‘감동산업’으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필요조건이라는 것이다. 웃음에 관한 이야기는 자칫 통속성에 물들거나 경박성에 빠지기 쉽다.저자는 나름의 학문적인 엄정성을 지켜가며 이를 슬기롭게 극복한다.경쾌한 에세이 형식을 띤 이 책은 해학의 정신을 통해 문학적 자기혁명을 꿈꾸는 통문화적 성격의 작가론이자 작품론이다. 김종면기자 jmkim@
  • 정부 “北, 올 범민족대회 취소”

    통일부 김형기(金炯基) 통일정책실장은 3일 “북한은 매년 8월 개최해온 범민족대회를 올해는 열지 않기로 내부방침을 정한 것같다”며 “현재 북한은해외 범민련과 범청학련에 이러한 사실을 통보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실장은 기자간담회를 통해 “북측은 매년 6·25를 맞아서는 남측을 ‘미제의 식민지’로 비난해왔지만,올해는 노동신문 사설에서조차 6·25란 말 자체를 언급하지 않았다”며 북측의 태도가 남북정상회담 이후 매우 우호적으로 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최근엔 한 척의 북측 어선도 북방한계선(NLL)을 넘지 않고 있으며,휴전선 일대의 대남 비방 간판도 내용을 바꾸고 있다”고 전했다. 김실장은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은 6·15공동선언에 대해 ‘내가 서명한 만큼 지킨다’는 입장을 확고히 밝혔다”면서 “남북이 다시 긴장대결상태로 갈 가능성은 매우 적다”고 말했다. 김상연기자
  • [발언대] 일본식 관직명 우리말로 바꾸자

    공무원의 명칭을 새롭게 바꿔야 한다.우리나라는 공무원의 명칭을 포괄하는 ‘공무원 명칭에 관한 법률(가칭·이하 공무원명칭법)’이 없다.생활 속에서 별 불편이 없기 때문이지만 분명히 극복돼야 할 과제가 있다. 관리관,이사관,서기관,사무관,주사,서기.이들 우리가 현재 사용하는 공무원 명칭 대부분에 일제의 잔재가 남아있음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일본의 근대 관제는 1867년 메이지 유신 뒤 계속된 법과 제도의 정비과정에서 법제관이나 주사,서기관 등으로 형성됐다. 한편 이러한 일본식 관직 명칭은 갑오개혁 뒤 개혁파들이 일본식 법과 제도를 무차별 도입했고 일제 식민통치를 겪으며 고스란히 우리의 관제에 이식돼 사용됐다.그럼에도 공무원 직급 명칭은 물론이고 일반 용어에 있어서도 일본 것과의 구별의식이 여전히 희박하니 결국 언어 식민지(?)에서 아직도 해방되지 못한 안타까운 상황이 계속되고 있는 현실이다. 공직자들과 국민들에게 묻고 싶다.우리의 공직이름으로 거듭나고 싶은 충동을 느끼지 않는지 또 우리 공직자들에게 고유한 우리의 공직 이름표를 새겨줄 의향이 있는지 말이다. 우리는 이미 몇년 전 일본식 용어였던 ‘국민학교’를 초등학교로 바꾼 소중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법제처는 어렵고 이해하기 어려운 일본식 법률용어를 우리말로 바로잡을 계획이라 하고,행정자치부도 6급 이하 공무원의 대외직명을 조만간 개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늦었지만 다행스럽고 바람직한 일이다.나아가 이참에 아예 공무원 전체의명칭을 근본적으로 재정립하는 계기로 삼았으면 한다.예컨대 우리나라 고대관직명을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 국민의 신뢰 속에서 21세기형 공무원 명칭으로 거듭났으면 하는 바람에서공무원 명칭법 제정을 주장하며 아울러 이에 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지기를 기대한다. 이 재 학 노사정위원회
  • “한국, 日대중문화 내일 3차 개방”

    [도쿄 연합] 한국 정부는 제3차 일본 대중문화 개방을 27일 발표할 예정이라고 교도통신이 24일 한국 정부 소식통을 인용,보도했다. 소식통에 의하면 한국 정부는 이번 3차 발표에서 일본 가요의 공연 규모 제한을 사실상 철폐하고 TV와 라디오에서 일본 가요의 방송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조정하고 있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5월29일 방한한 모리 요시로(森喜朗) 총리에게 금년 상반기중 제3차 개방을 단행할 방침임을 전한 바 있다. 한국에서는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대한 경험 등으로 인해 일본 대중문화의유입을 규제해 왔으나 김 대통령이 한·일관계 개선의 일환으로 98년 10월유명 영화제에서 수상한 영화와 만화를 부분적으로 개방한데 이어 작년 9월에는 영화를 거의 전면 개방하고 가요곡의 실내 공연을 규모를 제한,허가한바 있다고 통신은 설명했다.
  • 한국전 참전향군연맹 총회 남아공 대표 렐로 회장

    “6.25전쟁 당시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참전한 군인의 한 사람으로서 남·북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이뤄진 것이 매우 자랑스럽고 경이롭습니다” 6.25전쟁 참전 16개국의 한 곳인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공군 조종사로 참전한존 E 렐로 예비역 준장(남아공 참전용사회 회장)은 22일 그동안 ‘끝나지 않은 전쟁’으로 생각해 온 한국전쟁이 이번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비로소 완결된 것 같다고 말했다. 렐로 회장은 오는 23일 재향군인회가 주최하는 ‘국제 한국전 참전향군연맹제6차 총회’에 남아공 대표로 입국했다. 이날 오후 참전국 대표단 등 일행 25명과 함께 청와대로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을 예방한 렐로 회장은 “김 대통령으로부터 남북 평화통일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느꼈다”면서 “특히 참전용사들에게 보답하려는 마음이 읽혀졌다”고 말했다. 렐로 회장은 전쟁발발 당시 영국의 식민지를 지낸 남아공이 한국과 비슷한처지였기 때문에 유엔군의 일원으로 자진 참전했으며 자신은 진해에 있던 공군기지본부에 근무하면서 여러 작전에 투입됐었다고 밝혔다. 특히 전쟁당시 한강인도교, 한강철교,광진교 등 3개밖에 없던 한강 다리가지금은 너무 많아 자신이 머물고 있는 곳이 정말 한국땅인 지 믿기지 않을정도라고 말했다. 렐로 예비역준장은 종전후 남아공 공군작전사령부 계획장교 등을 지낸 뒤수송사령관을 마지막으로 퇴역했다. 노주석기자 joo@
  • 남북 화해시대/ 訪北 姜萬吉교수 인터뷰

    남북정상회담 특별수행원 가운데 민화협 상임의장 자격으로 방북했던 강만길(姜萬吉·67) 고려대 명예교수는 16일 성북구청 뒤 개인서재로 찾아간 기자에게 “평양에서의 감격 때문에 지난밤 거의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방북소감 첫마디를 꺼냈다.일행 가운데 유일한 역사학자로 참가한 강교수는 “이번남북정상회담은 남북한 분단 비극사에 종지부를 찍는 대사건이었다”고 평가했다.원로 역사학자의 식견을 통해 이번 정상회담의 의의와 성과, 향후과제 등을 짚어보았다.다음은 일문일답.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건배를 제의하면서 ‘이젠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말씀하셨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분단 55년만에 남북의 두 정상이 만나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누는 그 역사적 자리에 제가 있었습니다.내 평생 다시는 그런 감격스런 장면을 접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고은 시인도 나와 똑같은 말을 하더군요”◆역사학자로서 이번 정상회담의 역사적 의의를 간단히 평가해주십시오. “20세기 우리의 민족사는 한마디로 ‘한(恨)의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전반기 식민지배와 후반기 분단이 그것인데 모두 우리의 의지와 무관하게생성된 것입니다.그러나 이번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민족사의 절반의 한에 종지부를 찍었다고 봅니다” ◆공동선언 내용 가운데 이산가족 문제는 구체적인 진전을 보인 성과라고 생각됩니다만 이와 함께 묶어서 풀어야할 숙제도 적지 않다고 봅니다. “그동안 이산가족문제라면 흔히 북에서 월남한 사람들을 주로 다뤄왔습니다만 월북·납북자,특수요원으로 북에 밀파된 후 소식이 끊긴 사람 등에 대해서도 인권차원에서 동일하게 다뤄야 할 것입니다.비전향 장기수 문제가 해결될 때 이에 대한 해결책도 제시될 것으로 봅니다.”◆정상회담을 계기로 통일·북한교육의 재검토와 교과서 개편문제도 거론되고 있습니다.이를 어떻게 보십니까. “기존 통일교육은 반공이데올로기 체제 하에서 대결구도 일색이었습니다만 이제는 화해·협력으로의 방향전환이 불가피하다고 봅니다.이를 위해서는건전한 대북관·통일관을 갗춘 교수요원 확보와 교재준비가 시급한 과제라고봅니다.저는 이런 분야에서 민족을 위해 여생을 바치고자 합니다.”◆이제 통일은 ‘선언’이 아니라 ‘실천’의 문제라고 봅니다.그 첫 단계작업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무엇보다도 민족동질성을 회복하는 노력입니다.남북한은 같은 언어·문자를 사용하고 있지만 공동으로 제작한 국어사전 하나가 없습니다.‘국보(國寶)도록’같이 정치성이 없으면서도 남북이 공유할 수 있는 주제를 우선적으로골라 남북 공동작업을 해나갈 것을 관계기관에 제의합니다”◆정상회담 이후의 과제를 간단히 요약해 주십시오. “공동선언에서 밝힌 내용에 대한 적극적인 실천 노력이 뒤따라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평화체제 구축과 통일은 저절로 수반될 것입니다.아울러 이번남북정상회담의 성과를 바탕으로 우리민족도 동아시아의 평화,나아가 세계평화 등 세계사에 공헌하는 민족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고 봅니다”정운현기자 jwh59@
  • 訪韓 초청 대표단 맞은 달라이 라마

    인도 다람살라에서 망명정부를 이끌며 티베트인들의 정치·정신적 지도자로추앙받고 있는 제14대 달라이 라마가 오는 11월 중순쯤 한국땅을 밟는다.달라이 라마가 14일 한국방문 초청 대표단을 맞은 곳은 멀리 동북쪽 히말라야의 만년설이 어렴풋이 올려다 보이는 고지 다람살라에서도 맨 꼭대기에 초라하게 앉은 그의 거처.접견실에서 초청장을 전달받은 뒤 한국기자들과 만나처음 꺼낸 말은 “지난 41년간의 망명생활은 세상에 알려진 것과는 달리 세계시민의 한 사람으로 열심히 살아낸 것뿐”이라는 것이었다.이례적으로 오랜시간 동안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그는 한국의 종교와 사회에 깊은 관심을 보이면서 남북정상회담과 관련해 양쪽 정상과 국민들에 대한 당부도 잊지않았다. ◆한국을 방문할 때 가장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특별히 만나고 싶은 사람과 가고 싶은 곳은. 외국을 방문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인간의 가치를 증진시키는 데 도움이 되려는 것이고 두번째는 종교적 화합을 이루는 것이다.지금까지 주로 비정치적이고 정신적인 이유로 외국을 다녀왔다.이번 한국 방문에서는 한국의 불교를 이해하면서 티베트 불교도 전해주고 싶은 생각이 앞선다.한국인 친구들이 김치를 가져와 맛을 본 적이 있다.김치의 본토에서 맛을느껴보고 싶다.불교 관련 학자들과 일반학자들,그리고 대중들을 만날 것이다.정치지도자들도 그들이 원한다면 만날 것이다. ◆한국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은. 60년대 중반쯤 관리 한 사람을 보내 동국대에 경전을 기증한 적이 있다.그 이후 몇차례 초청받았고 관심도 많았다.한국은 전통성이 매우 강한 나라로 알고 있다.많은 불자와 종교인들이 활동하고 있어 세계종교 화합에 중요한 역할을 할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어디를가든 그 나라의 정부와 국민들에게 불편을 끼치고 싶지 않다.이번 한국의 경우도 마찬가지다.나로 인해 한국정부와 국민들이 부담을 갖게 되지 않기를바라며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진행됐으면 한다. ◆한국불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한국불교의 장점은 무엇이며 미래는 어떠한가. 한국불교는 대승불교의 전통을 갖고 있고 대승불경을 중시한다고 들었다.이 점은 티베트불교와 유사한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한국불교에 친근감이 있다.가장 중요하고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인간이 어떤 종교나 신념을 받아들인다면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이다.그래서 어떤 이들은 불교를종교가 아닌 ‘마음의 과학’이라고도 한다.장차 한국불교가 인류애와 환경측면에서 큰 공헌을 할 것이다.한국불교와 티베트불교 모두 석가모니 부처를스승으로 모신다.같은 불자로 만날 수 있게 돼 기쁘다. ◆티베트불교의 특징은 무엇이며 인류의 당면문제 해결에 어떤 도움을 줄수있는가. 티베트불교는 대승·소승불교의 가르침과 탄트라의 가르침을 모두수행하는 것이라고 할수 있다.한가지 분명한 것은 티베트불교는 사람의 심성은 물론 동물에까지 미치는 ‘자비’로 표현할 수 있다고 본다.이런 것들이서방의 자비심을 키우고 자비를 통해 마음의 평화를 얻게 한다면 훌륭한 일일 것이다.티베트불교는 바로 이 자비심을 돋우는 수행종교랄수 있다. ◆불교에서 모든 고통은 무지와 집착에서 비롯된다고 한다.일상생활에서 무지와 집착을 없앨 수 있는방법은 무엇인가. 삶속에서 무지를 없애는 가장좋은 방법은 ‘지혜의 수행’이다.세상은 모든 것이 인연에 따라 움직이고발전하기 때문에 개개의 사물이나 생명체가 갖고 있는 가치를 찾으며 노력해야 한다.평소 겉모습을 넘어 궁극적인 본질을 보려고 꾸준히 노력한다면 큰도움이 될 것이다.그리고 집착을 없애기 위해서는 만족하는 마음이 필요하다.이를 위해서는 수행이 반드시 요구된다. ◆한국에선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이 온 국민의 첨예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있다, 정상회담에 대해 느낀 점과 두 정상에게 하고 싶은 말은. 나의 근본적인 믿음은 이 세상 모든 분쟁의 소멸이다.무력을 써서 문제를 해결하려 하면안된다. 무력은 반드시 부정적인 결과를 낳는다.따라서 대화가 필요하다.사람들은 대화 없이 자신만의 고집을 주장하려는 경향이 많지만 한발짝만 다가서 대화한다면 문제 해결이 쉬워진다.남북회담의 경우도 마찬가지다.남북정상들은 모두 경험이 많은 유능한 지도자들이다.양쪽 모두 인내와 결단력,그리고 전체를 내다볼 수 있는 자세를 지킨다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티베트는 독립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고 한국은 분단상태에서 통일의 꿈을 실현하려 노력중이다.티베트와 한국이 접목되는 부분이 있는데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국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양국이 특수상황인 점을 인정한다.그러나 티베트는 자주독립을 원하는 게 아니라 티베트 고유의 종교·문화를 유지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음을 강조하고 싶다.티베트나 한국 모두중요한 것은 앞서 말했듯이 인내와 결단력,그리고 전체를 넓게 볼 수 있는안목이라고 본다.그런 점에서 한국인들에게 지난 분단 50여년은 인내를 기를수 있는 충분한 기간이었다고 생각한다.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은. 특별한 것은 없다.충분히 잠을 자고 잘 먹으며마음의 평화를 유지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곁이야기지만 한국의 인삼이 좋다고 들었는데 아직 맛보지 못했다. ◆하루 일정은 어떻게 짜여지나. 오전 3시30분에 일어나 5시30분에 아침식사를 한다.8시30분 명상을 한 뒤 그 이후부터는 방문객들을 만나거나 책을 본다.낮12시 점심식사후엔 아무 것도 먹지 않는다.오후 6시 예불을 올린 뒤엔찾아오는 사람을 만나거나 공부를 하며 8시30분 잠자리에 든다. ◆평소 어떤 책을 주로 읽나. 대부분 불교서적이다.특히 마음의 평화를 얻기위해 ‘불교인식론’을 매일 읽는다. 다람살라(인도) 김성호기자 kimus@. *달라이 라마 누구인가. 10만여 티베트인들과 함께 인도 북부 다람살라에서 망명정부를 이끌고 있는티베트의 정치적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그는 ‘비폭력 인권운동’으로일관, 중국의 탄압과 티베트 인권문제를 국제적으로 부각시키며 티베트인들로부터 생불(生佛)로 추앙받는 존재다.원래 ‘달라이 라마’란 ‘큰 바다와같이 넓고 큰 덕을 지닌 고승’이란 뜻.그러나 티베트인들은 달라이 라마대신 ‘걀와린포체’(보석과 같은 승자)나 ‘아발로키테시바라’(자비의 부처님)로 받아들인다. 1935년 티베트 북동부 지역 가난한 농부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달라이 라마의 본명은 텐첸 카초.티베트 불교의 전통에 따라 두살때 13대 달라이 라마의후신으로 추앙받아 네살때인 1940년 14대 달라이 라마에 즉위, 티베트의 수도 라사의 포탈라 궁전에 모셔졌다. 15세 때인 1950년 티베트 최고수반에 올랐으나 그해 10월 중국군 8만명의 침공을 받아 험한 여정을 시작한다.59년 중국의 식민지 수탈과 정치적 탄압에맞서 전국적인 봉기가 일어났지만 3,000여개의 불교사원이 파괴되고 수많은티베트인들이 학살되는 참사를 맞게된다.마침내 그해 달라이 라마는 수백명의 추종자들과 함께 히말라야를 넘어 인도에 망명정부를 세웠다. 73년부터는 직접 각국을 돌며 박해받는 티베트의 현실을 알리고 지원을 호소했다.협상대표들을 베이징에 보내고 88년 중국정부의 동의하에 자치정부수립을 요구하는 협상안을 제시했지만 모두 성과를 보지 못했다. 이후 중국 정부는 달라이 라마의 방문지와 언행에 끊임없이 촉각을 곤두세웠고 달라이 라마의 뜻과 행동을 따르는 세계의 많은 지식인들과 할리우드 스타,음악인들이 그의 활동을 지원해오고 있다. 89년 노벨 평화상을 받을때 “전세계 억압받는 민중들을 대표한다”는 소감을 밝힌 달라이 라마.세계를 돌며 평화주의에 입각한 독립운동과 종교·문화간 상호존중을 이해시키고 있는 그는 포탈라궁으로 귀환해 티베트의 자치를회복한 뒤 평범한 승려로 돌아가는 게 꿈이다. 김성호기자
  • 특별기고/ 맑은 마음으로 허심탄회해지시라

    모레,2000년 6월12일,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을 위해 김대중 대통령을 비롯한 우리 대표단과 취재단 일행이 대거 평양으로 들어간다.그렇게 2박 3일간의 북한 체류 일정이 시작된다. 남북 당국간에 이 합의가 이뤄진 뒤 지난 두어달 어간에,이 나라의 수많은논자들은 이번 이 회담의 거창한 뜻을 중언부언 강조한 바 있거니와,정작 이 날에 와 닿으니,그 수다한 말,말,말 너머의 본원적인 떨림,전율이 온 몸을휘감아 온다. 더러는 ‘언외(言外)’의 국면이라는 것이 있다.한두마디 말로는 도저히 해낼 수 없는 어느 절대절명의 정지.말 몇마디나 글 몇줄이 일거에 싹수가 없게 떨어져버리는 국면.이번 남북 정상회담이야말로 바로 대표적으로 그런 정지요,국면이다. 1948년 대한민국이 선포되고,같은 해에 역시 인민공화국이 선포되면서 나라가 반 동강이 난 뒤,실로 처음으로 남북 두 정상이 마주 앉는 이 자리는,비단 지난 55년간의 피 어린 남북 분단만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그 이전, 19세기 말부터 이 나라 운세가 곤두박질 쳐 오다가 끝내는 35년간식민지로전락해 버렸던 저 망국의 비운까지, 지난 백년 어간의 이 나라 이민족의 갖은 환란과 굴욕을, 그리고 끝내는 제 땅에서 못 살고 이국 땅을 떠돌다가 유랑민으로 숨져갔던 선대들의 통한까지를 안 자락으로 깔고 있는 것이다. 남북 정상 두 분께서 만나는 그 현장을 우리 산 사람은 산 사람들대로 텔레비전 화면으로 볼 것이지만,이미 저승에 가서도 유한(遺恨)을 품은 채 삭이지 못하는 6·25전란시의 저 수다한 남북 양측 전사자들의 원혼과,그 이전에 나라를 잃고 이국 땅에서 비명에 간 저 수많은 우리 선대들도 선대들대로,한껏 눈을 부릅뜨고 두 정상이 만나는 저 광경을 뜨겁게 지켜보고 있을 것이 틀림없다.그렇게 ‘망국’에서 ‘식민지’로,다시 ‘분단’으로,지난 백년을 악몽으로 얼룩지게 했던 우리 현대사는 한 맥락이었음이 이 자리서도 새삼스럽게 확인이 된다. 따라서 이 민족의 지난 현대사 백년의 그 깊은 질곡을 이 참에 끝장내고,이 민족이 명실상부하게 새롭게 일어서며 웅비(雄飛)해갈 수 있는 기본 터전을 마련해 보자는 웅대한 뜻이 이번 이회담에는 담겨 있다.두 정상께서는 어련하시겠지만,2박 3일 긴 체북(滯北) 일정을 지켜보게 될 우리 모두 이만한시야는 모름지기 지니고 있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거창한 뜻을 중언부언 강조하는 것이 이 자리에서는 조금 어색하고 가당치 않아 보이기도 한다.왜냐하면 남북 정상의 만남이 바로 코 끝에 와 닿은 이 마당에서는,그런 종류의 장중한 연설은 그 분들의 운신을 필요 이상으로 무겁게 할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듣자 하니,며칠 전의 모 기관 여론조사에서는 응답자의 73.3%가 2차 정상회담도 열릴 것으로 벌써 전망들을 하고 있었으며,서울에서 열릴 경우 95.1%가 찬성한다고 하였고,특히 81.9%는 그럴 경우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 방문을 환영할 것이라고도 하고 있었다.환영할 것이라고…!! 아,어떤가.놀랍지 않은가.이 정도로까지 우리 남쪽 인심은 지난 2,3년 어간에 급변하고 있었던 것이다.98년 ‘현대’의 정주영옹이 소 1,000마리를 끌고 판문점을 넘어 입북(入北)할 때만 하더라도 우리 모두가 기겁을 하게 놀랐었고,온 세계가그 그로테스크한 정경에 혀를 내둘렀었지 않은가.그리고작년 99년에는 서해상에서 남북 함정 간에 불을 뿜으며 투덕투덕 맞붙기도했었는데,이젠 북의 국방위원장이 서울로 오게 되면 환영할 것이라고들 하고 있으니,이거야말로 명실공히 격세지감이 아니고 무엇인가.우리 남북 관계는 비록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이런 정도로 급변해 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점은 우리뿐만 아니라 북도 마찬가지였다.지난 2년 어간에 북도북대로 알게 모르게 엄청나게 변해 가고 있었던 것이다.오죽하면,김정일 총비서가 예고도 없이 비밀리에 베이징을 방문,중국 요인들을 만났을 것인가…!! 요컨대 결론은 간명할수록 좋다.무겁고 장중한 것일랑 일단 차후로 미루고,우선은 남북 정상 두 분께서는 진정으로 맑은 마음으로 허심탄회해지시라.그렇게 두 분부터 그 간에 50여년간 끊겼던 동족의 정분이 싸목싸목 되살아 오며,공히 가슴이 화릇하게 따뜻해지시라. 두 분이 같이 파안대소로 많이 많이 웃으시라.우리 모두 이번 두 정상의 ‘만남’에서는 그 이상으로 더 바라질랑말자.과욕을 부릴 것 없이,이번 ‘만남’에서는 이런 정도면 족하다.이거야말로 바로 남북간의 새로운 ‘패러다임’의 시발이 될 것일테니까…. 이호철 소설가·경원대 초빙교수
  • ‘한국 현대미술의 시원’展 새달 27일까지

    한국 현대미술은 흔히 1957년부터 시작된 것으로 이야기된다.1956년 구상중심의 국전에 반기를 든 김충선·문우식·김영환·박서보가 ‘4인전’을 열어화단에 충격을 준 데 이어 57년에는 국전 출신작가로 구성된 창작미술가협회가 반추상작으로 전람회를 열었다.그러나 이 특정 시점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않다.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한국 현대미술의 시원’전(7월 27일까지)은 그런 문제의식으로부터 출발한 기획전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추상미술이 뿌리내리기 시작한 1950년대부터 60년대에 이르는 초기 한국 모더니즘 미술을 집중적으로 다룬다.한국미술에 서양의 모더니즘이 도입된 것은 김환기,유영국 같은 1930∼40년대 일본 유학생들을 통해서다.그들이 선택한 모더니즘 양식은 아카데미즘 화가들보다 훨씬 진취적이었다.하지만 그것은 식민지현실에서 일본이라는 매개를 통해 유입된 양식적모더니즘이라는 점에서 한계를 지닌다.본래 서양 모더니즘이 지닌 진취적 분위기는 해방이후 이념갈등과 전쟁이라는 정신적 공황상태를 겪은 후에야 비로소 나타났다.그런 맥락에서 1950년대 말 박서보,김창렬 등 젊은 세대들이반국전(反國展)을 내세우며 일으킨 집단적 추상미술운동,즉 앵포르멜 운동이현대미술의 시원으로 논의되기도 한다.2차대전을 거치며 나타난 앵포르멜은전후 유럽추상미술을 대표하는 경향으로 자리잡았다.볼스,포트리에,뒤뷔페등이 그 선구자다.전쟁 피해가 적었던 미국도 유럽작가들이 건너가면서 크게영향받았다.잭슨 폴록,윌렘 드 쿠닝,마크 로스코 등은 격렬한 추상회화로내면을 표출했다.이 시대의 격랑은 한국에도 상륙,식민시절 모더니즘적 추상이라는 한국추상미술의 초보성을 벗는 계기가 됐다.그러나 이번 전시는 초기모더니스트들의 양식적 시도나 국전을 중심으로 활동하면서 독특한 서정주의를 개척해나간 류경채 같은 창작미협 작가들의 미적 성과에도 주목한다. 출품작은 김창렬 ‘제사’(1965),박서보 ‘원형질’(1964),유영국 ‘산’(1959),김환기 ‘산월’(1958),김종영 ‘작품,58-3’(1958),박래현 ‘노점’(1956년),이응로 ‘해저’(1950) 등 100여명의 작가가 낸 200여점.장르별·경향별로 정리해 한국 현대미술의 역사를 한 눈에 살펴볼 수 있다.(02)2188-6034. 김종면기자 jmkim@
  • 김양호 장편소설 「사랑이여, 영원히」

    중견 소설가 김양호가 ‘사랑이여,영원히.’(에듀북스)를 냈다. 76년 등단한 작가의 두번째 장편소설로서 일제시대를 배경으로 “죽음보다영원할 수 있는 사랑은 과연 어떤 것인가”라는 물음을 담았다고 작가는 말한다. 1918년 경성,세 사람의 죽마고우가 각기 다른 길을 걷는다.경술국치로 자살한 조부 때문에 일제의 감시 하에 살아가는 조운선과 기생 출신으로 그를 사모하는 한채옥이란 여인의 사랑 이야기가 작품의 중심축을 이룬다.이 두 남녀의 사랑은 경성에서 시작하여 멀리 북만주,연해주까지 이어진다.남녀 주인공은 3·1운동과 만주독립군,봉오동전투와 청산리전투,흑하참변 등 역사적사건의 물결에 휩쓸린다. 이 작품에 대해 소설가 박범신은 “한 여인의 사랑이 한 사내에 대한 정결하고도 절절한 사랑이면서 동시에 식민지 조국의 현실을 뒤바꾸기 위한 거대한 싸움의 일환일 수 있다면 그 얼마나 아름답고 의미있을 것인가”라면서“여주인공 채옥이 독립운동가 운선을 사랑하는 광휘로운 아름다움이 저 어두운 식민지 조국의 뒤안에서 빛을 뿜는다.사랑이 이쯤이어야 참사랑이라 할수 있지 않을까”라고 말하고 있다. 김재영기자
  • [김삼웅 칼럼] 韓美 현안 어떻게 풀 것인가

    연초 미 정치학회장 로버트 코핸은 한 인터뷰에서 “제국(Empire)이라는 말은 미국을 표현하는 데 적절치 않다.역사상의 제국들과 달리 미국은 민주주의 체제이고 식민지 확장에 이해관계를 갖지 않는 나라이기 때문이다.대국(Great Power)이라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미국의 지위는 기술적 지위가 계속되는 한 계속될 수 있을 것이다”란 말을 남겼다. 미국에 비판적인 사람(국가)들은 ‘미제(美帝)’ 즉 미제국주의라 부르고우호적인 사람들은 ‘우방’ 또는 ‘혈맹’이라 호칭한다.코핸은 미국이 민주주의 체제이고 식민지를 만들지 않기 때문에 ‘제국’이 아니라지만 보기에 따라 민주주의는 ‘국내용’이고 수많은 약소국가에 대한 이해 다툼은 ‘신식민지’ 정책이나 ‘속방’의 다른 이름일 수도 있다.그렇지만 과거 일본제국주의나 독일·러시아제국주의와는 존재양상이 크게 다른 것도 사실이다. 이렇게 ‘두 얼굴의 미국’이 우리에게는 어떤가.일제로부터 나라를 찾아준해방자, 6·25전쟁에서 국가를 지켜준 구원자,배고플 때 도와준 은혜의 나라,수많은 유학생과 이민을 받아준 기회의 나라,상품수출의 최대시장 등 긍정적인 측면이 너무 많다.반면에 가쓰라-태프트 밀약으로 일본의 침략을 양해해준 행위,분단의 배후,양민학살,독재정권 지원,대리전쟁(한국전과 베트남전) 조종,불평등한 한·미행정협정(SOFA) 등 부정적 측면 또한 심한 편이다.호오(好惡)와 선악이 동시적으로 존재한다. ■두 측면 함께 살펴야 개인이나 국제관계나 좋은 부분은 발전시키고 좋지 않은 부분은 시정해 나가는 것이 정도이다.한·미관계도 마찬가지다.80년 광주항쟁 이전까지 “양키 고 홈” 소리가 없는 곳이 한국이었다.그러던 것이 최근 양국관계가 곳곳에서 마찰이 생기고 긍정적인 측면보다 부정적인 측면이 부각되고 있다. 노근리와 매향리,린다 김,그리고 미8군 소속 매카시 상병 사건이 엎치고 겹치면서 그동안 묻히고 맺힌 일들이 터져나오기 시작했다.주한미군의 본질문제에서부터 행정협정 개정,여기에 미군기지와 훈련장 등이 들어선 ‘공여지’문제,심지어 미군기의 착륙소음과 쓰레기 문제까지 제기되고 있다. 언젠가드러나고 시정돼야 할 일들이지만 한꺼번에 분출되고 이것이 감정적으로 악화되어 양국의 우호관계와 공조체제에 손상을 가져와서는 안되겠다. 무엇보다 미국측이 한·미행정협정을 미·일협정이나 나토협정의 수준으로개정하려는 노력을 보여야 한다.노근리나 매향리 사건도 진실을 밝히고 응분의 배상을 해야 한다.한·미 두 나라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대등한 동반자관계이기 위해서는 상호주의 원칙이 존중돼야 하기 때문이다. 주한미군에 대한 평가 역시 마찬가지다.전쟁억지력인 점에서 한반도의 평화유지에 크게 기여해온 한편 미국의 입장에서는 최소한의 병력과 예산으로 동북아지역의 안전유지라는 국익에도 큰 역할을 해왔다.결코 일방적 시혜가 될수 없는 것이다. 이와 함께 우리로서는 미군이 수도 한복판에 주둔하고 전시작전통제권을 장악하고 있다는 현실적·역사적 상황을 인식하면서도,“일본이 미국의 배를 빌려 바다로 나가는(借船出海)식으로,이 기회를 자주방위의계기로 삼으려는”(李景治 북경인민대 교수)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주한미군의존재는 한반도의 전쟁억지력과 함께 중국과 일본의 군비경쟁과 대립을 완충시키는 동북아지역의 힘의 균형자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도 주목해야 한다.감정적이나 민족주의적 관점에서만 주한미군의 존재에 대처할 것이 아니라 국제질서의 안목에서 이를 인식하면서 친미냐 반미냐의 수평논리보다 독일과 일본처럼 그들을 ‘활용’하는 입체논리가 중요하다. ■정상회담 앞둔 반미분위기 우려 우리는 지금 분단 반세기 만에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있다.정부의 역량인지 국가의 행운인지,워싱턴·베이징·도쿄·모스크바가 모두 햇볕정책을 지지하고 정상회담의 성공을 바라고 있다.이 기회에 한반도의 냉전체제 종식과교류협력의 증대를 위해 모든 역량을 정상회담의 성공에 집중시켜야 한다. 주한미군 문제나 SOFA 문제도 이 큰 원칙에서 예외일 수 없다. 미국측의 태도도 바뀌어야 한다.‘미제’가 아닌 ‘우방’이기 위해서는 아메리카정신인 ‘합리주의’의 바탕에서 SOFA 문제나 현안을 풀어나가는 성실성을 보여야 한다.“웃는 얼굴에 침뱉을 수 없다”는 전통적인 한국인의 정서를 미국은 헤아릴 줄 알아야 한다. 김삼웅 주필.
  • [끊이지 않는 지구촌 분쟁] (2)독립요구 거센 比모로족

    필리핀 제2의 섬 민다나오.천혜의 자원과 비옥한 토양,수려한 경관을 자랑하는 민다나오는 그러나 지난 30여년간 폭탄테러와 납치로 얼룩진 ‘살상의 섬’으로 각인돼왔다.민다나오섬 남부와 인근 바실란섬 술루제도에 근거를 둔이슬람 교도 모로족의 이슬람 독립국 수립을 위한 반정부 무력투쟁이 끊이지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필리핀 공산 반군 신인민군(NPA)도 민다나오섬에근거를 두고 반정부투쟁을 계속하고 있다.지난 30년간 사망자는 10만여명.수백만명의 난민이 발생했다. ◆재연되는 테러,인질극. 지난 4월 이후 필리핀 이슬람반군의 유혈 폭탄테러,납치극은 극에 달하고있다.정부군과 반군의 시가전도 급증하고 있다.수도 마닐라에서도 테러와 교전이 벌어졌다.지난달 20일과 23일 이슬람 무장단체 아부 사이야프는 잇따라두건의 인질극을 벌였다. 바실란 섬에서 50명의 현지인을 납치,부분적으로석방했으나 가톨릭 신부 4명은 처형됐다.23일엔 19명의 외국인을 포함한 21명의 인질을 인근 휴양지 시파단섬에서 납치,자신들의 근거지 홀로섬에 억류했다.국제문제로까지 비화된 이 사건은 27일 전격적으로 이뤄진 반군과 필리핀정부의 협상 결과 인질 석방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점쳐지고 있으나 최종결과는 두고봐야 한다는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배경. 원래 민다나오는 독립된 이슬람 국가였다.1521년 필리핀이 스페인에 정복되면서 민다나오 섬도 함께 복속됐다. 이후 1898년 미국 식민지로 전락한 이후 1946년 독립할 때까지 미국과 필리핀 정부의 모로족 차별정책이 계속됐다.본토 로존섬에서 토지없는 농민을 의도적으로 민다나오섬에 보내 경제적 부를 축적해왔다.특히 모로족과 이주민사이에 무장 충돌이 발생한 1971년 필리핀 정부의 모로족 학살을 계기로 대정부 투쟁으로 발전했다. 770만 인구가운데 가톨릭 인구는 83%,개신교는 9%이며 이슬람은 5%에 불과하다.민다나오섬을 비롯한 모로족 주 거주지역의 경제적인 낙후,상대적인 박탈감이 모로족의 이슬람국가 수립을 부추기는 커다란 배경이다. ◆모로 이슬람 반군 단체. 최근 인질극을 벌인 아부 사아야프와 MILF등 5개 조직이 있다.아부 사아야프는 ‘신의 검객’이란 뜻.조직원은 200여명에 불과하다.하지만 각종 테러와 납치에 관한한 최고 정예부대란 평이다.지도자는 카다피 잔하라니. 72년 결성된 모로민족해방전선(MNLF)은 조직원 1만5,000명으로 최대규모다. 96년 8월 당시 라모스 대통령과 MNLF의 미수아리 의장의 남부 자치주 주지사자리를 조건으로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등 정치 참여 노선을 택하고 있다.이에 반기를 들고 파생된 조직이 MILF.조직원 1만3,000여명.지도자는 살라마트하심이다. 이밖에 모로이슬람개혁집단(MIRG)이 있다.이들 반군단체들은 특히리비아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등 회교권 국가들로부터 지원을 받아왔다. ◆전망. 필리핀 조지프 에스트라다 대통령 정부를 곤혹스럽게 하고 있는 반군 문제앞날은 한마디로 어둡다.심화되고 있는 경제난,지역 경제성장 불균형 등 문제가 해결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30일 MILF측과 평화협상을 갖기로 돼있지만 만남 자체가 성사될지도 미지수다.미수아리 등 온건파 지도자들의 노선에불만을 품은 젊은 모로 청년들이 늘고 있는 것도 평화정착의 걸림돌.게다가필리핀 정부로서는 노선을 달리하는 개별 반군들과 각각 협상을 진행해야한다는 한계가 있다. 김수정기자 crystal@. *모로족은. ‘모로(Moro)’족은 사실은 인종적으로 필리핀인들과 다르지 않다.16세기중반 필리핀을 정복한 스페인이 필리핀 남부의 이슬람교도들을 이베리아 반도의 이슬람교도와 동일하게 ‘모로’(영어로는 무어)라 부르면서 정착된 말이다. 모로라는 말에는 원래 이슬람교도를 경멸하는 뜻이 담겨있지만 이들은 모로족이라고 불리는 것에 상당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필리핀인들과 달리 자신들만이 갖고 있는 문화,전통생활 양식 등에 강한 애착을 갖고 전승시키려 한다.언어학적인 분류로 10개 부족으로 나눠져있다.거주지는 민다나오섬과 술루제도,팔라완섬,바실란섬 등.이들은 이 거주지를 통틀어 ‘모로랜드’라 부르고 이슬람 독립 국가건설을 위한 꿈을 키워가고 있다. 모로족과 지배집단과의 갈등,투쟁,이른바 모로 지하드(聖戰) 역사는 수세기를 걸친 지난한 것이었다.모로 이슬람해방전선(MILF)의 살라하크 하심의장은최근 한 이슬람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필리핀땅에 가톨릭을 옮겨 심은 스페인과의 성전은 1시기(1521∼1898년),미국에 대해 투쟁한 1898∼1946년은 2시기 성전”이라고 구분했다.이어 필리핀 가톨릭 세력과 전면전에 들어선 1970년부터 현재까지가 제3기 성전으로 “성전에서 승리할 때까지 투쟁은 계속된다”고 밝혀 필리핀 정부를 움찔하게 만들었다. 모로 이슬람교도들의 입장에서 필리핀 정부군은 스페인,미국과 같은 외국제국주의 세력과 마찬가지인 ‘적군’인 것이다. 2차대전후 해외 이슬람국가로 유학떠났던 종교지도자들이 이집트 이란 리비아 등 범 이슬람권과의 연계 속에 귀국한뒤 독립국가 수립을 향한 총구를 내려놓지 않고 있다. 김수정기자
  • [기고] 장보고대사의 교훈

    21세기는 ‘해양의 시대’이다.“해양을 다스리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는 영국의 월터 럴리(Walter Laleigh)경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세계사의흐름은 해양문명에 의해 주도되어 왔다.21세기를 맞아 바다는 인류의 생존을위한 자원, 식량,환경문제 등을 해결할 수 있는 마지막 보루로 인식되고 있다.이 점에서 해양의 중요성은 한층 높아지고 있다.이에 따라 세계 각국은자국의 해양권익 수호라는 명분 아래 해군력 증강을 가속화하고 있고,미래안보의 중심축 역시 바다로 이동하고 있는 실정이다. 장보고 대사는 이러한 시대적 흐름을 빨리 파악하여 우리 민족이 동아시아의 강력한 해양세력으로 위세를 떨칠 수 있게 했다.그는 통일신라가 쇠퇴의길을 걷고 있던 9세기 중엽 완도에 청해진을 세운 828년부터 사망한 841년까지 약 14년동안 서해와 남해를 무대로 활약하였다.미국의 라이샤워 교수는그를 ‘한국 무역의 왕자’라 칭했으며 당대의 중국시인 두목(杜牧)과 ‘입당구법순례기(入唐求法巡禮記)를 쓴 일본 승려 엔닌 또한 장보고 대사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았음을 문헌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청해진 대사가 되어 서남해 일대의 해상패권을 장악하고 해적을 완전히 소탕해 연해민들에게 평화로운 생업활동을 보장해주었으며,청해진을 국제무역항으로 활용해 동남아,이슬람국과의 중계무역을 독점함으로써 ‘상업제국’의 ‘무역왕’이 되었다.이처럼 장보고의 해상세력은 동아시아 세계에처음으로 해상질서를 확립시켰다.그러나 장보고 이래 바다에 소홀했던 우리민족은 결국 해상세력을 키운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로 전락하고 말았다.이제야 우리는 6·25를 딛고 일어서서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루고 세계 10위권의 국가해양력을 보유하게 되었다.현재 우리나라 수출입 물동량의 99.8%를해상교역에 의존하고 있으니 우리에게 바다는 민족의 생존과 번영의 터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21세기는 아시아 태평양의 시대이자 세계화의 시대이다.해양중심국가로의부상을 꾀하고 있는 현재의 우리가 1,100여년 전의 장보고 대사의 활동과 업적을 통해서 배워야 하는 교훈은 무엇일까. 동아시아의 해상교통로나 해외무역기지 개척 등 해상 개척정신을 비롯해 해적을 소탕하여 신라인의 노예화를 근절한 인도주의 정신,나·당·일 삼국의삼각무역 및 서방과의 국제무역을 주도한 무역입국정신 등 여러 측면에서 장보고는 국제인으로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해상방어를 담당하고 있는 필자는 장보고 대사의 업적중 해군력에 의한 동북아시아 해상질서 확립에 주목해 보았다.장보고 대사는 청해진이라는 군사체제와 당시 신라인들의 뛰어난 조선술,항해술을 바탕으로 난립하던 해상군진을 통합해, 해적을 소탕하여 해상교통로를 안전하게 확보함으로써 국제적번영을 이룰 수 있었다. 앞서 언급했듯 우리나라는 그동안 해양을 통해 국부를 축적하였으며 범세계적인 해양화 추세에 맞게 국가적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그러나 해양세력간의냉혹한 경쟁으로 국제상황이 급변하고 있는 가운데 우리나라는 과연 해상교통로 확보와 해양안보 수호의 핵심 요소인 해군력을 충분히 갖추고 있는가. 지난해 연평해전에서 대북 우세를 증명하였지만,선진국의 막강한 해군력과비교해볼 때 그 전력을 자랑하기에는 역부족인 듯 하다. 해외시장과 해외무역은 우리 겨레의 살길이며 이를 위해서는 확고한 해상교통로 확보 및 해상통제권 확립이 절실하다.우리의 해상안보를 보장해주던 미해군력이 점차 동북아시아에서 감소되는 시점에서 장보고 대사가 우리에게던져주는 교훈은 21세기 일류 해양부국의 건설을 위해서는 강력한 해군력이전제돼야 한다는 점일 것이다. 서 영 길 해군사관학교 교장·중장
  • [대한시론] 한국의 영세중립

    1894년 동학운동의 좌절은 청일전쟁의 도화선이 되어 우리 국토는 외국군대의 전쟁터가 되었다.한국 근대사의 비극,특히 지난 한세기 동안 이어진 식민지화,동족상잔,그리고 남북분단의 고착화 등은 한결같이 직·간접적인 외세에 의한 민족적인 수난이었다.이제 통일은 단순한 꿈이 아니라 현실성을 지니고 다가오고 있는데 지난날의 민족적 수난을 거울 삼아 단순한 한반도의통일이 아닌 동북아 전역에 관한 평화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 민족적 염원을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미래상으로 한반도의 영세중립을 제안한다.한반도는 국제,특히 동북아시아의 태풍의 눈의 위치에 있어 왔으며,주변 여러 나라의 이익이 상충하고 이들 세력의 이해가 크게 엇갈리는 시점에서는 으레 중립안이 제기되어왔다. 러일전쟁을 앞두고 동북아시아 일대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하자고종황제는 한반도가 전쟁터가 될 것을 염려하여 일본과 교섭해 한국의 중립을 요구했으나 거절당했다.또 8·15해방 직후 미국 워터마이어 대장이 다가올 미·소의 세력균형을 위해 한반도의 중립을 제안한 바 있으며,휴전 후에도 간헐적으로 국내외 인사들에 의해 중립이 제안된 바 있고,4·19 이후 냉전의 돌파구를 중립으로 타개하기 위한 복수의 중립안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남한에서의 중립화 주장은 용공주의자,북한에서는 미 제국주의의 스파이 내지는 반동으로 몰려 탄압받았다.자위력이 없는 나라,그리고 주변국가의 이익이 일치하지 않을 때의 중립선언은 그림의 떡에 불과하다.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중립에 대한 민족의 강한 의지이다. 머지않아 남북정상회담이 실현될텐데 성숙한 열매를 맺기 위해 우선 남북간에 신뢰가 구축되어야 한다. 서로가 상대에게 총을 겨누면서는 진실한 신뢰가 성립할 수 없으므로 남북한이 함께 군비를 축소해야 할 것이다.한국이 중립하기 위해서는 주변국 사이의 이해 일치와,공격포기가 필수적인 조건이며,그러기 위해서는 아시아 경제권(Asia Union)과 같은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평화공존,군비축소,주변 국가로부터의 비침략 보장과 아시아 경제권의 설치가 모두 같은 의의를 지니는것이다. 전 인류의 바람은 평화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한반도에서 일어난 소용돌이는 동북아시아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불행하게 했었다.앞으로 이들 일련의 체제가 성취될 때 한국의 지정학적 조건은 동북아시아의 교량에서 중심으로 탈바꿈하게 되어 한민족의 평화적 번영을 달성할 수 있으며,동북아 평화가가능하다. 한국의 공항과 항만은 중국,일본,미국,러시아로의 중계지가 될 것이며,동북아시아의 중심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휴전선은 세계 평화공원이 되어 한국독립기념관,중국의 난징학살기념관과 일본의 원폭기념관 등 인권과 평화에관련된 것들이 모두 이 자리에 모여 전 인류에게 과거의 반성과 미래를 열어 가는 지혜와 희망을 주게 될 것을 바란다. 민족은 생명체이다.개인에게 꿈이 있음으로써 목적이 성취되는 것처럼 민족에게도 꿈이 있어야 발전의 가능성이 있다.그러나 이 거창한 꿈은 소박하고충동적인 미국철수론과 같은 주장을 조심해야 하며 국제 역학을 이용할 수있는 슬기가 필요하다.스위스의 영세중립은 근 350여년간의 줄기찬 노력으로 실현되었다.유럽연합(EU)의 구상은 이미 200여년 전 V.위고에 의해 제창되었다. 처음에는 허황된 망상으로 여겨졌던 일이지만 그 꿈이 있었으므로 한 발자국씩 다가갈 수가 있었던 것이다.제1차 대전 직후 케인스는 ‘루르지방의 석탄과 철광의 공동관리(실질적인 대안)’를 제안했다.제2차 대전을 앞둔 시기에 서구의 지성들은 줄기차게 이 꿈의 실현을 생각해 온 것이다.전 독일 총리는 “유러화의 실현은 단순한 경제적 이익이 아니라 전쟁과 평화의 문제”라고 갈파했다.같은 맥락에서 한국의 영세중립,AU의 실현은 민족의 생존과 세계 평화에 직결되는 문제이다. ◆金容雲 한양대 명예교수창의기획학회 회장
  • [발언대] “기무사터에 일제침략박물관 세우자”

    억겁의 역사는 도도히 흐른다.역사를 올바로 읽으면 옷깃을 여미게 되고,역사를 바로 알면 마음의 두려움이 생긴다.그렇기에 옛 사람들은 역사를 ‘통감(通鑑)’이라고도 하고 ‘통사(通史)’에 비유하기도 했다. 역사를 올바로 살피는 첩경은 상황과 흐름을 정확히 읽어야 하고 객관적인판단으로 더듬어야 한다.그러므로 역사를 단편적으로 끊어 이해하면 생각하지 못했던 큰 오류를 범하게 된다.역사에는 오묘한 흐름이 있고 엄숙한 법도가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1876년 2월 2일 체결된 병자수호조약 제1조에는 ‘조선국 자주지방 보유여일본국 평등지권(朝鮮國 自主之邦 保有與 日本國 平等之權)’이라고 규정하고 있어 외관상으로는 조선과 일본은 마치 평등하고 공정하게 체결된 것 같다.그러나 이 조약은 일제가 차제에 정치적 우월권을 명확히 하여 청국의 발언권을 사전에 봉쇄하겠다는 복심이 있었던 것이다. 이후 일제는 침략의 독수를 뻗쳐 1905년 11월 17일 조선의 외교권을 빼앗고,1910년 8월 29일에는 급기야 조선을 식민지로 전락시켰다. 필자는 광복이후 처음으로 지난 3월10일 문화관광부 장관에게 일제침략박물관이나 일제침략사료관 건립 의견서를 제출한 바 있다. 마침 정부는 지난 14일 종로구 소격동에 위치한 국군 기무사령부를 서울 외곽으로 이전하기로 최종방침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필자는 이곳 일대가 일제 식민통치의 심장부였음을 감안하여 일제 침략박물관이나 침략사료관을 건립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본다.당국은 과천 국립현대미술관과 천안 독립기념관이 지리적인 사정으로 시민,외국관광객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는 우를 다시는 범하지 말기를 바란다. 5,000년 우리 민족사에서 씻을 수 없는 치욕의 표상물들을 서울시내 한복판에 마련하여야 할 당위성은,친일파건 애국자건 모두가 역사의 한 울 안에서생성되고 소멸되는 편린들이지만,어떤 경우에도 당대에서 끝나지 않고 후대로 이어지는 것이 역사임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신영길[한국장서가협회 회장]
  • [대한시론] 우리사회 터부와 시민문화

    우리는 97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여러가지 비판의 소리를 들어왔다.그 하나가 ‘패거리(Crony) 자본주의’란 지적이다.아마도 대표적인 대상은 재벌의 족벌 지배체제일 것이다.또 지연,학연,혈연으로 맺어지는 생활양식을 들수 있다. 그것은 속성상 파벌주의이며 가족주의이기 때문에 폐쇄적이다.농경사회에서는 혈연과 지연 및 신분의 연고를 통해 모인 폐쇄적 집단이 공동체를 이루어살았다. 그러나 사회는 변한다.농경 본위의 신분사회에서 산업화한 시민사회로 발전했다.농경사회의 신분윤리는 시민사회의 사회윤리로서 구실할 수 없게 됐다. 혈연공동체인 농경사회의 가부장적 지배사회에서 통한 유교윤리인 ‘충효’는 시민사회의 인간존중과 공공정신 및 봉사의 정신을 대신할 수 없다.지금충성의 의미는 군주나 독재자에 대한 맹종과 헌신이 아니라 겨레를 사랑하는공공 봉사의 정신을 말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혈연,지연,학연의 파벌적 폐쇄적 이기주의를 극복하지 못했다.물론 민주주의 지도자가 아닌 국부나 독재자들에겐 연고를 통한 파벌주의를 이용하는 것이 집권에 편리했다.그래서 해방후 독버섯처럼 퍼져 온 것이패거리 자본주의이고 패거리 정치 문화이다. 그러나 이런 경제구조와 정치문화로는 살아남지 못한다.봉건적 패거리문화는 이기주의이고 폐쇄적이며 이성을 외면한 감상주의를 기초로 한다.그런데시민문화에서는 공공정신과 봉사이고 공개와 비판 검증이며 이성에 따른 토론과 설득의 보장이다.이런 시민문화는 하루 아침에 익숙해지는 것이 아니다. 한마디로 이루기 어렵다.그렇지만 우리가 시민문화가 주는 인간존중과 풍요와 협조를 누리려면 그 사회의 정신과 사회구조에 익숙해져야 한다. 천자문과 논어의 암송실력으로 합리적 비판과 검증을 대신할 수 없고,주역으로 컴퓨터를 배제할 수 없다.아무리 선현의 말씀이 훌륭해도 그 말씀을 익히는 목적이 출세하기 위한 것에 그치면 그것이 진리탐구의 학문정신과 시민적 정의를 배우는 시민정치교육을 대신할 수 없지 않은가.봉건적 시대의 고전을 연구하는 것과 그것을 실천덕목으로 맹신하는 것은 다르다. 우리는 자유와 민주주의는 수입만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해방후50년을 통해 체험했다.자유는 자유인이 되는 자질을 갖추고 결단이 있어야가능하며,민주주의는 민주방식으로 나라를 운영할 정치능력이 있어야만 되는것이다.우리 역사에 새로운 장을 연 총선시민연대 운동은 패거리 정치문화의 맹점에 기생한 구정치세력에 대한 도전이 아니었나?패거리 문화로 얽히고 설킨 한국사회는 식민지배와 독재로 얼룩지며 왜곡굴절되어,비판의 터부(禁忌)가 엄연히 법률 이상의 제도로 위력을 발휘해 왔다. 우리 사회의 법률은 거미줄 같아서 잠자리처럼 약한 것은 걸려서 거미의 먹이가 되지만,박쥐같은 힘센 악당은 흔히 그대로 뚫고 지나갔다.그런데 이 묵시적 율법으로 통하는 터부는 위반하는 자에게 무서운 보복과 징벌을 가한다. 지연과 학연의 패거리에서 이탈한 자,재벌을 비판하는 신중치 못한 자,기득권 옹호의 언론에 이의를 제기하는 반항아,일제시대와 독재시대에 덕을 본기득권층을 부정하는 자 등은 이 사회의 터부를 침해한 것이 된다.그들에겐엄중한 보복과 처벌이 따른다는 현실이 있다.이것이야말로 현실에서 실제로효력이 있는 법률이고 제도인 것을 약삭빠른 이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그렇지만 이 터부가 그대로 있고선 아무 것도 안된다. 그래서 우리는 개량이 아니라,개혁을 철저히 해야 한다.그런데 우리는 아직도 이 말조차도 꺼리고 있는 판국이다.왜냐하면 50년 만의 정권교체로 세상이 달라졌다고 하지만,아직도 구시대의 터부가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고 있고,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감히 말한다.간디가 진리를 통해 두려움을 극복하라고 했듯이 우리는진실을 통해 실상에서 눈을 뜸으로써 자기를 찾아야 한다.세상흐름에 맡겨적당히 살아가는 것이 슬기롭다고 하는 것은 구시대의 전제폭군 밑에서 살아온 노예들의 처세술이다.우리는 자유인이어야 한다.세상이 달라졌다.달라지게 해야 한다. 현대에 있어서 노예 처세술의 답습은 우리를 자멸로 인도한다.그래서 우리는개량이 아니라 개혁을 위해 이 사회의 터부를 깨부수어야 한다.지난 총선에서 시민운동이 그 선례인데,그것은 한번만으로 그치는 것이 되어선 안된다. 韓 相 範 동국대교수·법학
  • [끊이지 않는 지구촌 분쟁] (1)17년 내전 스리랑카

    지구촌 곳곳에서 인종간,종교간 반목과 무력분규가 갈수록 격렬해지고 그범위가 확산되고 있다.무력 분규는 코소보,체첸등 옛소련,동구지역에서 시작해 지금은 아시아,유럽,아프리카등 지구촌 전역을 무대로 동시다발로 진행되고 있다.제3세계 분쟁지역의 경우 무지와 가난,천재지변,질병등이 겹쳐 자체해결의 희망이 없는 경우가 태반이고 유엔이나 서방의 관심권 밖에 있어 외부의 도움을 기대하기도 어렵다.주요 분쟁지역의 현황과 분쟁이 일어난 배경,해당 민족들의 역사,문제점등을 시리즈로 보도한다. ‘긴급…,스리랑카 반군 자프나 탈환 임박’‘정부군 2만여명 자프나에 고립’,‘반군 150명 사망’.외신들이 남아시아 끝에 위치한 스리랑카로부터급박하게 전개되는 내전소식을 연일 전세계로 전송하고 있다. 타밀족 독립 무장단체인 타밀엘람해방호랑이(LTTE)가 5년만에 옛 수도인 북부의 자프나 탈환을 눈앞에 두고 정부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다.올해를 ‘전쟁의 해’로 선언한 반군이 자프나에서 1㎞ 떨어진 곳까지 진출,정부군에 “항복하거나수도를 즉각 떠나라”고 최후통첩을 보냈다.4월말 자프나지역과 본섬을 잇는 길목인 ‘코끼리 통로’를 반군에 내주고 자프나 반도에 고립된 정부군 2만여명은 2,000여명의 반군에 대항,유일한 보급로이자 퇴각로인 팔라리 공군기지와 인근 항구를 사수하고 있다.수적 우세에도 불구하고 사기가 땅에 떨어진 정부군에겐 이마저 힘에 부친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스리랑카 정부는 인도를 비롯,외국에 지원을 요청했다. 국내 언론의 보도를 전면 통제하고 전비충당을 위해 세금을 인상하는 등 비상조치를 취했다.인도가 개입 의사를 시사했고 평화협상 중재자로 나선 노르웨이 외무차관이 찬드리카 쿠라마퉁가 대통령과 만나 8만명의 사망자와 70만명의 난민을 낸 17년 내전을 종식시킬 방안을 논의중이다.쿠라마퉁가 대통령이 타밀족에 자치를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중이지만 야당과 정부내 반발,자치가 아닌 완전 독립을 요구하는 반군의 주장에 밀려 결실을 맺을 지는 미지수다. ◆분쟁의 역사 스리랑카는 16세기 포르투갈을 시작으로 네덜란드 영국의 지배를 받아오다1948년 영연방 자치령으로 독립했다. 65년부터 소수 힌두계 타밀족(18%)은 다수 불교계 싱할리족(75%)으로부터분리독립운동을 펴왔다.이것이 민족·종교간 분쟁으로 내닫기 시작한 것은 72년 타밀족에 대한 차별정책에서 비롯됐다.싱할리족 정부가 싱할리어와 불교를 우대하는 등 타밀족에 불리하게 헌법을 개정했기 때문이다.영국식민지 시절 타밀족에 대한 우대정책으로 이들의 지배를 받았던 싱할리족의 보복조치인 셈이다. 이에 반발,타밀족의 폭동이 77년,81년,83년 간헐적으로 일어났다.83년 7월타밀족의 본거지인 자프나에서 싱할리족 군인 13명이 살해되자 수도 콜롬보등에서 싱할리족에 의한 무차별 보복전이 시작됐다.전국적으로 1,000여명의타밀족이 살해되는 이른바 ‘대학살’이 자행됐고 콜롬보시에서만 10만명의난민이 발생했다.이를 계기로 타밀엘람해방호랑이가 결성되면서 무력대결로치달았다.90년부터 5년간 자프나 지역에서 사실상의 독립정부 역할을 해왔던반군은 그러나 95년 9월 정부군의 대규모 공격을 받고 정글로 쫓겨났다. ◆끝이 보이지 않는 내전정부군과 반군이 기존 입장을 고수하는 한 평화적해결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노르웨이가 중재는 하고 있지만 역사적으로 밀접한 인도가 국내외 역학관계에 발목이 잡혀 적극적인 개입을 자제하고 있다.두차례 군대까지 파병했지만 이번에는 군사개입은 배제한 채 양쪽이 요청할 경우 중재 의사만 밝혔다.91년 인도군을 파병했던 라지브 간디 총리의 암살 악몽을 잊지 못하는 인도 국민들과 연정을 이룬 타밀 정당들의 반대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하지만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자리를 노리는 상황에서 지역 맹주로서의 이미지를 제고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기도 아쉬워 인도 정부는 개입여부를 놓고딜레마에 빠져있다.그래서 사태가 진정돼 지친 반군이 협상테이블에 나오도록 유도하는 수밖에 없다는 자조적 분석까지 나온다. 김균미기자 kmkim@. *'엘람해방호랑이' 어떤조직. 83년 결성된 타밀엘람해방호랑이(LTTE)는 타밀족 분리독립을 주도하고 있는무장반군 조직이다. 병력은 1만여명으로 추산되는데 이는 10만명이 넘는정부군의 10%에 불과하다.이들은 자동소총에서부터 지대공미사일과 로켓포 등중화기를 능숙하게 다룰 줄 아는 세계에서 훈련이 가장 잘된 최정예 전사로불리운다.야포와 탱크 등으로 중무장하고 해군력까지 보유하고 있다.특히 포로로 잡히는 것을 피하기 위해 항상 몸에 청산가리를 소지하고 다닌다. 반군 지도자는 벨루필라이 프라바카란(46).인도 타밀족 출신으로 무자비하고 포악하기로 이름난 그는 18살때인 72년 자프나 시장을 살해하면서 반군활동에 참여했다.86년 LTTE의 유사 타밀 무장조직인 TELO의 지도자를 모두살해하고 89년 타밀 무장조직을 통합했다. 반군은 특히 ‘검은 호랑이’로 불리는 자살특공대로 악명이 높다.2차 대전때 일본 가미카제나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을 연상시킨다.프레마다사 대통령(93년 5월),위저라튼 국방장관(90.12월),디사나야케 대통령 후보를 암살했다.91년 라지브 간디 인도총리도 자살특공대 소속 여성대원에게 암살됐다.95년스리랑카 해군에서 둘째로 큰 군함이 소녀대원 3명의 자폭공격으로 침몰됐으며,지난 3월10일 수도 콜롬보 국회의사당 앞에서 자살폭탄 테러로 28명이 사망하고 60여명이 부상했다.지난해 12월대통령 선거 유세현장에서 자살테러가발생, 집권당 후보였던 찬드리카 쿠마라퉁가 대통령이 한쪽 눈을 실명했고 3명의 장관 등 38명이 숨졌다. 전사자가 늘면서 남성대원들의 자리를 여성들로 채우기 시작,현재 전체 병력의 30%를 차지하며 상당수가 자살특공대로 활동중이다. 인도 남부의 5,000만 타밀족과 캐나다 영국 등 해외에 거주하는 수십만 동족들로부터 자금지원을 받고 있다. 김균미기자
  • [대한광장] 5·18과 386세대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 평생 싸우자던 뜨거운 맹세…산 자여따르라!’. 만주일대를 휩쓸던 독립투사들의 장엄한 절규같은 이 노래는 식민지 시대 행진곡이 아니다. 바로 ‘80년의 봄’ 광주의 노래다.‘빛고을의봄’ 당시 민주화운동의 중심 세대였던 소위 386 세대가 이번 총선에서 돌풍을 일으켰다.‘5·18 민주항쟁 정신’이 금배지의 젊은 대열로 대거 여의도 행군으로 들어서게 한 것이다. 5월 18일 아침,날씨 맑음,그러나 전남 도청은 그 전날부터 어두움의 깊은공포로 웅크리고 있었다.전날밤 자정을 기준으로 정동년,김상윤 등 복학생과전남대 총학생회 간부들이 무자비하게 끌려가고 01시,시계가 땡! 울리는 것과 동시에 광주일원에 공수부대가 기습공격을 감행했다.한편 01시45분경,무장한 제 33사단 병력을 계엄군으로 해서 국회의사당을 포위하였다.이렇게 5·18의 새벽은 피튀기는 살육의 전야제로 시작된 것이다. 작전 개시 전야,야당 지도자 김대중을 비롯한 민주인사가 사전에 체포되었고,전국의 대학교 등에는 탱크가 위협하고 있었다.그 중심에 있었던 80년대학번들인 386 세대가 이제 30대가 되어 ‘바꿔 바꿔’ 열풍을 타고 탱크가가로막고 있던 바로 그 여의도에 다시 입성하게 된 것이다.금남로 일대의 이현장기록이 나중에 ‘타임’지에 의해 전 세계로 찍혀나가자 그 필름을 숨죽여 보던 사람들은 시린 어금니를 딱딱거리며 치를 떨었다. 빛고을 뿐이랴,이미 그 전 해의 12·12사태 이후부터 전국적으로 양심세력과 대학생들이 분노하고 있었다.5월 17일 계엄확대는 신군부 ‘하나회’를중심으로 한,전두환 군사정권의 쿠데타를 음모하고 있었다.이번 총선에서의‘낙천낙선’운동의 주역들도 이들이다.참여연대 등 각 사회단체의 중심세력들도 이들 386이다.‘반영남-반호남’의 지역대결로 38선보다 더 분명하게갈라진 이번 총선에서 ‘우리들 386 초선의원들은 당의 단순한 거수기가 아니다’며 언성을 높이는 것도 5·18정신의 계승과 무관하지 않다. 과연 여야 흑백대결로만 구도화된 여의도 정치관행에서 이들의 언성이 얼마나 실현될 지는 두고 보아야 하겠지만 우선은 당을 초월하여‘386 시대정신’으로 결집한다는 의지는 신선하다.민주당 총재 비서실장인 김민석 의원이한나라당의 남경필 의원 등을 만나서 ‘새천년 새청년’ 정신으로 여의도를바꾸자는 깃발이 좋다.어찌 보면 마피아 조직보다도 더 경직된 정치조직의벽을 이들이 어떻게 깰 것이냐가 지금 486 세대들에겐 흥미거리이다. 그 결과가 펜티엄세대는 물론이지만 밀레니엄시대 한국정치의 향방을 가늠하는 또 하나의 실험대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이들의 병역 납세 재산 등의문제는 ‘총선시민연대’ 등을 통해서도 이미 깨끗하게 통과되었다.위법적문제를 무릅쓰고 결행된 ‘낙천낙선’운동이 없었더라면 과거와 같이 또 구린내가 나는 전과자들이 타이어같은 낯가죽으로 대거 여의도를 거들먹거렸으리라.그래서 이번의 검증절차는 ‘필요악’이었다.앞으로는 미국 등과 같은‘선거시민’ 운동이 ‘필요선’이 될 것이다. 97년 대선에서 돈과 조직이매우 빈약했던 이인제 의원이 거의 500만표 가까운 지지표를 얻었다는 것도높아진 시민의식의 반증이 아니겠는가.앞으로의 대선이나총선도 더욱 이러한 민주의식으로 고양될 것이다. 그것은 386 세대들이 5·18 민주 정신으로 우리 사회를 중심적으로 이끌어가는 청장년세대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그 연장선 상에서 당시 ‘5·18’ 주체의 핵심 가운데 하나였던 김대중 대통령이 이제는 청와대의 주인으로서 평양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포옹도 예견되고 있다.5·18 정신이 ‘햇볕정신’으로 승화되어 남북한의 민주화가 오기를 기대해 보아도 좋을 꺼나? 신상성 용인대교수 소설가.
  • [기고] 가슴을 열고

    지난 20 세기를 살아온 우리 민족은 역사 속에 많은 아픔을 안고 있다.국권의 침탈과 국토의 분열,동족간의 참혹한 전쟁과 적대관계는 아직도 아물지않은 상처로 남아 있다.5,000년의 민족사에서 가장 한 맺힌 이 고난의 역정은 나라의 안보를 소홀히 한 필연의 산물이었다.20세기,세계를 뒤흔들어 놓았던 이데올로기 싸움은 공산체제의 무너짐으로 종언을 고했으나,한반도는 21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로 남아 있다. 인류의 역사는 귀족이 노예를 지배하고 독재자가 백성을 유린하며,심지어신(神)의 이름으로 인간을 억압하던 국가·사회의 계층구조로부터 보통사람이 중심이 되는 시스템으로 바뀌었다.오랜 세월을 딛고 그렇게 사람은 조금씩 인간다워진 것이다.그럼에도 우리와 가장 가까운 땅,북녘에는 한 핏줄을타고 난 2,200만의 동포가 독재와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다.1,000만의 이산가족은 대책없이 50년을 목메어 했으며,10만의 탈북자는 만주와 중국,시베리아동토에서 난민 대우조차 받지 못한 채 강제송환의 불안 속에 생존을 위협받고 있다. 남북은 애초에우리가 원해서 갈라선 게 아니다.동북아의 한 가엾은 식민지를 놓고,세계대전에서 승리한 연합국은 강자의 논리에 따라 어느 날 지도의38도선 상에 줄을 그어놓음으로써 잘려진 강토요 통치권의 분할이었다.남들이 쪼개놓은 영토인데 이제는 우리끼리도 합치지 못하는 땅덩이가 되어 버렸다. 지난날의 아픈 상처를 들추는 것은 역사에서 배우고자 함이다.잘못된 역사의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된다는 자각을 일깨우기 위함이다.나라를 지키는 일의 소중함을 결코 잊어서는 안되겠기에,1,000년전 만주대륙을 지배하고 동북아를 호령하던 배달족은 좁은 나라 땅 마저 두 갈래로 나눠,서로가 먹느냐먹히느냐의 무시무시한 싸움판을 벌려놓고 잠시도 편할 날이 없었다. 하지만 새 천년에는 다르다.역사가 변하고 정세가 바뀌고 있다.21세기에 한반도는 동방의 빛이 되는 세계의 중심에서 스스로의 명운을 열어갈 것이다. 우리는 한강의 기적을 되살리고 아시아의 용으로 다시 부상할 진운의 길에들어섰다.국가 부도위기를 2년만에 복원시켰으며,주변 강대국과 4강외교로한국이 주도적 입장에서 대북정책을 펴나가고 있다.정부는 남북 간에 평화공존을 실현하고 민족공동의 이익을 증진하기 위해,포괄적이고 호혜적이며 포용성있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우선 남북기본합의서를 바탕으로,남북경제 협력을정부차원에서 구체화하고,이산가족의 만남을 주선하며,북한의 식량문제 해결을 위한 지원과,대북경수로사업을 약속대로 이행해야 할 것이다. 한편,포용정책은 무조건 주기만 하고 얻는 게 없는 정책이라는 오해를 불식시키는 일이 중요하다.북측은 변하지 않았는데 우리만 일방적으로 짝사랑하면서 그들을 이롭게 해주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귀담아들으면서,온 국민이 장기적 비전을 이해하고 동참하는 대내적 결속을 다지는데도 큰 비중을두어야 한다.대북 포용은 안보와는 수레의 양 바퀴처럼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인식하는데서 출발한다. 공산주의의 담담타타(談談打打) 전술과,북한의 대남 무력적화 통일전략의불변성에 대해서는 철저한 안보태세만이 대응방법이라는 전제 하에 세워진정책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군(軍) 은 포용정책의 가장 든든한 배경이다.포용은 가슴이 넓고 힘이 센 강자만이 할 수 있는 것.그래서 우리의 국군은 튼실한 거인의 모습이어야 한다.믿음직하고 강한 군대 말이다. 6월에는 남북정상회담이 열린다.분단 55년사에 새로운 장을 여는 역사적 날이다.국민의 염원을 담아 국민의 정부가 노력한 결과요,세계의 진운이 우리를 돕고 있는 소치이며,민족적 자각이 움트기 시작했음이다.모처럼의 귀한기회다.조급하지 않고,변덕부리지 말며,지혜와 인내와 정성으로 가슴을 여는남북의 만남이길 빈다. 민주평화통일 자문위원 예비역 육군 준장 정영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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