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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28) 근대의 불빛 우도 등대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28) 근대의 불빛 우도 등대

    ‘근대’는 그림처럼 다가왔다.그것이 ‘식민지 근대’였건,‘제국주의 근대’였건 어김없이 왔다.비행기가 없었던 시절,‘문명’이라 이름붙은 것들은 대개 해양을 통해 들어왔다.19세기말의 조선도 예외가 아니었다. ‘제국의 바다’는 등대 건설로부터 시작됐다.침략이었건,무역교류였건,해저 지형에 익숙지 않은 외국배가 들어오자면 등대는 필수 시설이었다.이 땅의 등대는 그렇게 제국주의 뱃길을 인도하는 길라잡이로 태동했다.어느날 갑자기 포구 앞의 무인도에 일본인들이 높다란 기둥 건물을 세우자 사람들은 그것을 ‘등대’라고 부르며 수군댔다.등대에 불이 점화되고 그렇게 100년의 시간이 흘렀다. 지난해,인천 앞바다 칠발도등대에서는 뜻깊은 행사가 열렸다.‘한국 등대 100주년 기념식’이 그것.100주년 회년은 비단 칠발도에서만 그치지 않는다.울기등대(1906),시하도등대(1909),죽변등대(1910),어룡도등대(1910) 등 전국의 수많은 등대들이 속속 회년을 기다리고 있다. 제주도 우도등대의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서 지난 100년을 생각한다.양정식(32) 등대지기가 길안내를 맡는데 세살배기 아들이 쫄랑거리며 층계를 앞서 오른다.등대 주변에서 사는 덕분에 그 나이에도 인근의 지형지물을 꿰뚫고 있다. 등대지기의 삶은 이처럼 가족공동체적일 수밖에 없다.등대지기 중에는 더러 급환으로 자식이나 가족을 잃은 애달픈 경험도 가지고 있다.편의상 등대지기라고 부르지만 그들의 공식 직함은 ‘항로표지원’.명칭은 아무래도 좋다.뱃길을 지켜주는 ‘바다의 지킴이’ 역할은 그대로이므로. ●세계 등대역사 실물 모형 한눈에 우도를 찾은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다.섬에 만들어진 등대공원은 우도가 처음이다.호미곶,부산영도,여수 오동도 등지의 등대들이 속속 박물관·조망관·체험관 등으로 재탄생하기 시작한 것은 근래의 일.제주도 우도등대도 그 행렬에 동참했는데,특기할 점은 세계의 등대 역사를 알려주는 실물 모형을 만들어 앉은 자리에서 세계 등대여행을 할 수 있게 한 점이다. 상하이항의 파고다,신화 속의 등대인 파로스,독일의 브레머헤븐,일본 최초의 양식 등대인 쓰루가만 입구의 다데이시사키,1355년에 세워진 프랑스 코르투앙,뉴욕 허드슨강 입구의 킹스턴,그리고 한반도의 이러저러한 등대들이 모형으로 모여 있는 산교육장이다. 서기 874년 중국 상하이의 마호강 중앙에 세워진 마호타파고다등대는 글자 그대로 탑이다.송나라 때인 1279년까지 불을 밝혔으며 1962년에 국보로 지정되었다.목탑 양식으로 서구의 근대적인 기능형 등대와는 다른 민족적 조형미를 보여준다.오로지 원통형기둥이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젖어 있는 대다수 사람들에게 파고다등대는 등대 건축에서도 민족적 형식이 도입될 수 있음을 일깨워 준다.더구나 신화 속의 등대로만 알려진 파로스등대에 이르면 서구의 등대가 가히 빌딩 수준의 규모였음을 알게된다. 우리 등대도 근래 들어 다양한 건축적 실험을 시도하고 있다.등대가 항로표지뿐 아니라 정서적,미학적 공간으로서의 기능도 갖는다는 각성이 낳은 결과다.거북선 모형의 한산도등대,새가 올라앉은 형상의 몽하도등대,첨성대를 바위에 올려놓은 듯한 호도등대 같은 재미있는 등대도 있다. 민족건축 양식은 아니더라도 현존하는 오래된 등대의 건축사적 의미를 과소평가할 수는 없다.등대 건축은 1900년대 초반부터 콘크리트를 사용한,당대로서는 최첨단 공법이 적용된 건축물이었다.벽돌조,철근콘크리트조,철골조 등 다양한 건축기술은 다양한 실험을 가능하게 해 로마시대나 르네상스풍을 연상케하는 등대도 많다. 칠발도등대(1905)를 필두로 팔미도(1903)·부도(1904)·거문도(1905)·제뢰(1905)·우도(1906)·울기(1906)·죽도(1907)·시하도(1907)·당사도(1909)·목덕도(1909)·하조도(1909)·격렬비도(1909)·가덕도(1909)·죽변(1910)·소리도(1910)·방화도(1911)·어청도(1912)·산지(1916)·주문진(1918)·홍도(1931)·미조항(1939)·서이말등대(1944) 등은 대한제국기와 일제 침략의 요동치는 현장을 지켜본 근대 문화유산의 총아들이다.그런 점에서 지금 남아 있는 수십개의 등대들을 문화재로 지정하는 일을 더 미뤄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그만큼 문화사적으로 값진 유산이기 때문이다. ●일제 침략 현장 지킨 근대 문화유산 우도에 왜 이렇게 수많은 등대모형을 만들어 전시했느냐고 묻자 부원찬 제주해양수산청장은 이렇게 답변했다.“한국 등대사가 100년을 돌파했음은 새로운 100년을 준비하라는 뜻이기도 합니다.21세기가 문화의 세기인 만큼 등대도 변해야 합니다.바닷길만 밝힐 게 아니라 시민들과 함께하는 해양문화의 바닷길도 아울러 열어야지요.” 등대의 역사 자체가 ‘제국의 역사’였던 만큼 이전까지만 해도 ‘시민과 함께하는 등대’는 사실 구두선이었다.그러나 근래 등대들은 분명히 변신을 시작하였다.영도등대에서는 문학인들의 시낭송회가 열리고,우도등대에도 숙박을 하며 등대를 생각해 볼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있다.이제는 명승지나 대충 둘러보고 마는 바다여행이 아니라 등대 여행도 꿈꿔볼 일이다. ●“바닷가 절경엔 등대 아니면 초소” 필자는 지인들에게 가끔 이런 농담을 하곤 한다.‘대한민국 바다에서 가장 뛰어난 절경은 등대 아니면 해안초소’라고.동해안의 절경마다 해안초소가 서있어 접근을 막는다면,만이 훤히 굽어보이는 높다란 곳에는 또한 등대가 서있었다.그러니 근대적 관해(觀海)의 가장 빼어난 조망지는 등대일 수밖에 없다.불빛이 퍼지자면 사방팔방 관망되는 절벽이나 산봉우리,우뚝 솟은 암초의 등을 타고 서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도등대도 그런 곳이다.등대에 오르니 그야말로 일망무제의 바다가 열린다.절벽 아래로 아낌없이 부딪혀 깨어지는 파도를 보노라니 세상을 잊고 이곳에서 살았으면 하는 과욕(?)이 머리를 쳐든다.조용하다.그리고 아름답다.그러나 막상 역할이 바뀌어 정작 내가 등대지기가 되어도 주변의 모든 것이 마냥 아름답고 조용하기만 할까.오고가는 배들이 모두 걱정거리로 보이는데도 말이다.그래도 좋다.제주도에서 풍광이 가장 뛰어난 곳 가운데 한 곳에 서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다. 우도등대는 돔형의 탑으로 1906년 3월부터 불을 밝히기 시작했다.2년만 지나면 이 등대도 100살의 나이를 채운다.이렇듯 오래 전에 만들어진 등대들은 나름의 설치 배경이 있다.모두 하나같이 외해(外海)로부터 들어오는 길목의 험난한 곳에 자리를 잡고 있다.우도등대 바로 앞은 물살이 거세기로 유명한 곳이다.수심도 깊다.그래서 다리도 놓지 못하고 늘 도항선으로 오가야 한다.제주도 등대의 맏형이 된 것은 이런 배경 때문이다. ●등대 ‘낭만’은 만들어진 환상 1123년에 북송의 사신으로 고려를 다녀갔던 서긍이 남긴 ‘고려도경’에도 ‘바닷길은 깊은 곳이 두려운 곳이 아니라 얕은 곳이 무섭다.’고 기록돼 있다.이른바 ‘배가 깨지는’ 해난사고는 대부분 해변에 가까운 곳에서 빚어지는 사고다.등대는 이런 곳에 설치된다. 등대는 ‘낭만’인가.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한다.그러나,단연코 그렇지 않다.‘등대낭만’은 등대에 관한 수많은 미화와 환상이 불러일으킨 환영일 뿐이다.영국의 사학자 홉스 바움의 표현대로 ‘만들어진 전통’이다.근대적 등대가 선보인 이래 등대의 전통을 만들어나가는 ‘환상 창조’의 위력이 문학예술 곳곳에서 발휘돼 그런 ‘환영’을 만들어낸 것이다. 우리나라에 등대가 처음으로 도입되었던 20세기 초만 해도 등대는 ‘선진기술’의 집약체였다.단순하게 불빛만 비추는 곳이 아니라 이곳에 최초로 무선전신지국을 설치해 시시각각 변화하는 국제정세의 동향을 감지하고 보고하는 중요한 목적까지 수행했다.무선국의 존재는 등대지기가 최소한 무선기술을 습득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말인데,당시에 무선사는 최고의 첨단기술자였다.그러니 전쟁이 벌어지면 적의 함대나 항공기가 등대를 우선 공격목표로 삼았던 이유를 알 것 같다. 그래서 일제시기의 모든 등대장들은 일본인들로 채워졌다.비밀유지를 위해서였으며,한국인들은 일용직으로만 일할 뿐이었다.광복 당시에 한국인으로서 정식 등대원으로 잔존한 사람은 고작 4명에 불과했다.지방에서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면 등대장도 초대받아 한 자리를 차지했으니 그 사회적 위상이 만만치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광복되던 해,많은 등대들이 민중들의 공격을 받았다.일본인 등대지기가 철수한 상태에서 등대의 값진 설비들을 모조리 뜯어가기도 했다.그만큼 등대의 장비가 첨단 시설이자,고가품이었다는 방증이다.또 당시 민중들의 의식 속에 깃든 등대에 대한 민족적 적대감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등대는 24시간 가동하므로 3교대를 돌리자면 쉴틈이 없다.우도등대의 경우 주변에 흩어진 8개의 등표도 함께 관리해야 한다.하루에 세 번씩 이상유무를 점검해 해난의 여지를 살핀다.선박 조난의 책임을 등대에서 져야 할 이유는 없지만 막상 관할 해역에서 사고라도 나면 등대원들의 마음은 무겁기만 하다.그런 즉,등대를 두고 말하는 ‘낭만타령’은 얼마나 속절없는가! 지금도 등대가 밝히는 뱃길을 따라 상상을 초월하는 물동량과 정보가 숨가쁘게 세계에 전달된다.그 ‘오고 감’이 없다면 우리 경제가 아예 돌아가지 않는다.등대는 ‘현실’이다.
  • 미국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것,미국사/케네스 데이비스 지음

    미국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것,미국사/케네스 데이비스 지음

    고대의 영웅은 물론 신화 하나 변변히 없는 미국으로선 ‘유사’영웅이라도 만들어내야 했다.그렇게 해서 생겨난 게 서부 개척시대의 카우보이다.19세기의 ‘신화제조기’인 미국 언론은 이 카우보이들에게서 적절한 영웅상을 발견해냈다.완벽한 개인주의적 삶을 추구하고 인디언의 야만스러운 공격을 막아내는 용감무쌍한 소몰이꾼,아니면 한낮에 대로에서 6연발 권총으로 악한과 결투를 벌이는 영웅적인 보안관….이렇게 만들어진 인위적인 서부 개척 스토리는 아메리카판 ‘일리아드’‘오디세이’가 됐고,마침내 미국인의 정신세계에 침투해 대통령이 카우보이의 규범을 따르는 일까지 일어났다.시어도어 루스벨트,린든 B 존슨,로널드 레이건 등이 그런 인물들이다. ●17세기 대륙 발견서 9·11까지 재조명 미국의 대표적인 교양서 시리즈 ‘Don’t Know Much About‘의 저자로 널리 알려진 케네스 데이비스는 이처럼 미국 역사의 어느 한 단면을 이야기해도 비교적 솔직하고 균형잡힌 시각을 보여줘 거부감을 주지 않는다.미국인으로서 미국 역사에 대해 반성할 건 반성하고 인정할 건 인정하자는 태도다.‘미국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것,미국사’(이순호 옮김,책과함께 펴냄)는 이런 관점에서 쓰여진 그의 대표 저서다.미국에서는 ‘대안교과서’의 하나로 인정돼 150만부 이상 팔려 나간 베스트셀러다. 책은 17세기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부터 2001년 9·11사건까지 미국의 역사를 주제에 따라 문답식으로 다룬다.이런 종류의 역사책이 빠지기 쉬운 함정은 이야기의 흐름이 끊어지기 쉽다는 점.그러나 이 책은 관련 주제들을 일관성 있게 이어 놓아 그런 단점을 극복하고 있다. 예컨대 인디언에 관해 이 책은 포카혼타스 전설의 진실,‘눈물의 행렬’이란 이름의 인디언 강제이주,수우족 전사들의 리틀빅혼 전투 등 여러 관련 주제들을 함께 다룬다.인디언 처녀 포카혼타스는 정말 존 스미스 선장을 구했을까.존 스미스는 제임스타운에 영국 식민지를 건설하는 데 앞장섰던 인물.인디언들이 스미스의 머리를 몽둥이로 내려치려는 순간 포와탄 추장의 딸인 포카혼타스가 팔로 그의 머리를 감싸며 스미스의 목숨을 구해달라고 간청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그러나 저자는 이것은 스미스의 현란한 자서전에 근거한 것일 뿐,정확한 사실은 알 수 없다고 말한다.제임스타운은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을까라는 질문도 던진다.1607년 영국의 이주민들은 대서양 연안의 체서피크만에 도착해 삼각형 모양의 나무 요새를 짓고 이곳을 제임스포트라 명명했다.제임스타운은 나중에 붙여진 이름이다.저자는 미국인들은 제임스타운을 영웅적인 이주민들의 거주지,곧 ‘미국의 탄생지’로 기념해오고 있지만,그 이면도 아울러 기억할 것을 주문한다.허기에 지친 이주민들 중에는 식인종으로 전락한 이들도 있었다. ●카우보이 정신규범 대통령도 따라 미국의 노예문제 또한 저자의 비판적인 눈으로 재조명된다.링컨은 진짜 노예해방론자였을까.저자에 따르면 링컨은 ‘인종주의자’다.링컨은 흑인에게 선거권,배심원 자격,흑백결혼,심지어 시민권을 주는 데도 찬성하지 않았다.그러나 링컨은 대통령 선거에서 상대방 후보인 스티븐 더글러스와 맞붙으면서 점차 노예해방론자로 대중에게 인식됐다.책은 이들의 토론내용을 별도의 주제로 다뤄 이야기의 흐름을 이어간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승리는 정당한 것인가.2000년 미국의 대선은 미국 역사상 최초로 선거를 둘러싼 법적 공방이 연방 대법원까지 올라간 선거였다.대법원은 부시의 손을 들어줬지만 ‘미국 대법원 역사상 가장 부패한 판결’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았다.하지만 뜨거웠던 선거논쟁은 9·11사건이 일어나면서 까맣게 잊혀졌다.이 책에는 각종 연설문과 편지,책,법원판결문 등을 실은 ‘미국의 소리’라는 별도의 코너가 있어 당시의 시대상을 엿보게 한다. 프랑스의 계몽사상가 볼테르는 역사를 “산 자가 죽은 자에 대해 부리는 술책”이라고 했고,영국의 비평가 토머스 칼라일은 역사를 “소문의 증류물”로 보았다.저자는 그들의 주장이 모두 일리가 있는 것임을 미국 역사의 다양한 얼굴을 통해 보여준다.역사는 결코 지루하지 않다.저자의 말대로 “역사는 살아 있고 인간적이며 늘 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2만 3000원.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길섶에서]황톳길/오풍연 논설위원

    “황톳길에 선연한/핏자욱 핏자욱 따라/나는 간다 애비야(중략)낡은 짝배들 햇볕에 바스라진/뻘길을 지나면 다시 모밀밭(중략)부줏머리 갯가에 숭어가 띌 때/가마니 속에서 네가 죽은 곳(김지하의 ‘황톳길’)”“천안(天安) 삼거리를 지나도/수세미 같은 해는 서산에 남는데/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숨막히는 더위 속으로/절름거리며 가는 길(중략)가도 가도 천리(千里)/먼 전라도 길(한하운의 ‘소록도 가는길’)” 암울했던 시절 시인들은 황톳길을 주제로 민중의 애환을 읊었다.이 시들을 읽노라면 눈물이 앞선다.왠지 숙연해지고 가슴 속 깊이 북받쳐 오름을 느낄 수 있다.척박한 식민지의 땅과 그 속에서 목숨을 부지하고 살아온 민중의 체취가 와닿는 듯하다.현대사에 조명된 민중들은 시련과 고난의 연속이었다.수난의 역사라고 할까. 소년의 동네에도 황톳길이 있었다.보리밭과 밀밭을 사이에 둔 길은 끝을 알 수 없었다.특히 도회지로 떠난 누나와 함께 걷던 기억은 잊혀지지 않는다.이젠 어디를 가도 붉은 흙길을 찾아보기 쉽지 않다.고향의 황톳길도 빛 바랜 시멘트로 포장돼 있었다. 오풍연 논설위원 poongynn@seoul.co.kr
  • [열린세상] 새 역사교육체계 수립 시급하다/이영호 인하대 한국사 교수

    한·중·일 3국 사이에 동아시아 역사분쟁에 대한 논란이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중국이 고구려사를 자국사에 편입하려 해 지난 1년여 동안 우리의 혈압을 오르게 했지만 시원스레 해결되지 못하고 잠복했다.중국 외교당국이 내년도 검정예정인 역사교과서에 반영하지 않을 것이라는 외교적 언사가 구두로 나왔을 뿐 확실한 보장을 하지 않고 있다.게다가 역사교과서에 수록되지 않는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정작 고구려를 중국 소수민족의 지방정권이라고 교과서에 기술하는 것을 감행하고,중국 외교당국이 지방 민간학자들의 활동임을 내세워 방어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해결의 기미를 보이지 않는 북한 핵문제,날로 높아가는 중국과의 무역 비중,패권주의적 중국의 대외정책 등에 떼밀려 엎질러진 물이니 어쩌겠느냐,수년 뒤의 개정을 위해 노력하자는 식으로 얼버무려 버리지나 않을까 우려하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내년 봄에는 식민 지배를 미화하는 일본의 우익 역사교과서 재검정이 있고,현장에서 그 교과서를 채택하는 비율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일본의 독도영유권 주장도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국제사회에서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하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아지고 있고,일본 총리를 비롯한 각료,국회의원들의 야스쿠니 신사참배에 대한 우리의 항의는 완전히 무시당하고 있다.중국과의 역사분쟁에 한국이 대응하는 방식을 보았으니 일본도 이참에 좀더 강경하게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한·중·일 3국간의 역사분쟁 실상을 너무 어둡게 그렸는지 모르겠으나 강대국 사이에 끼인 우리의 처지는 이처럼 불안하기 짝이 없다. 안으로 눈을 돌려보면 어떠한가.어떤 학자는 고구려의 역사는 고구려의 주민에게 돌려주자고 주장하는데,고구려의 주민은 찾을 길이 없다.우리가 고구려의 땅을 전부 우리 땅이라고 내놓으라는 것도 아니고 오늘의 우리가 어떻게 형성돼 왔는지 역사계승관계를 살펴 우리의 정체성을 탐구하자는 것인데,그것조차 부정하면서 고구려는 중국사도 한국사도 아니니 해방시키라고 한다.오히려 해방시켜야 할 대상은 중국 주변의 수많은 소수민족과 그들의 국가 및 역사이다.주목해야 할 것은 북한의 변화가 미·중 관계와 남북통일에 미칠 영향이다.북한의 변화방향에 따라서는 이제까지 겪어온 세월 이상으로 분단상황이 지속되지 말란 법이 없다.중국이 이것을 염두에 두고 역사문제를 중심으로 포석하는 것이라면 단호하게 배격해야 한다. 경제적 지표에만 의존해 식민지시대에 성공적으로 근대화가 이루어졌다고 평가하는 학자도 있다.그렇다면 왜 500여만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나라를 잃고 디아스포라가 되어 세계를 떠돌았는가.경제적 지표 못지않게 역사의 전체상을 바라보아야 한다.조선총독부,또는 일본정부가 일본군 위안부를 강제 동원한 자료가 없다고 하여 그 사실이 없는 것으로 볼 것이 아니라 일본이 식민지시대의 정책문서를 공개하지 않는 것을 추궁해야 한다. 지난달 11일 남북 역사학자교류협의회에서 남북 공동으로 고구려의 역사와 문화를 지키자는 결의를 하고 실천방안을 모색하기로 한 것은,중·일의 패권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남북이 연대하는 방식이 어떠해야 할지를 가늠하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장기적으로 우리 역사교육의 시스템을 안정화시키는 일이다.동아시아 평화체제의 구축이라는 관점에서 중국과 일본의 패권주의를 비판하는 한편,우리의 극단적 국수주의도 극복할 수 있는 균형잡힌 역사의식을 갖추도록 교육해야 한다. 그렇다면 현재의 중·고교 교육과정에서처럼 역사과목이 사회과목의 품안에 파묻혀 있어서는 제대로 된 역사교육을 기대하기 어렵다.역사과목을 사회과목으로부터 독립시키는 일이 시급하다.역사교육을 소홀히 하고서는 민족과 국가,역사와 문화 그 어느 것도 지킬 수 없다. 이영호 인하대 한국사 교수
  • 친일인명사전 준비 조문기 민족문제硏 이사장

    친일인명사전 준비 조문기 민족문제硏 이사장

    가을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지난 1일 오후 서울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입구.아주 특별한 전시를 알리는 조촐한 개막식이 열리고 있었다.사회를 맡은 문학평론가 임헌영 교수는 내빈들에게 “전시 장소를 선정하는 데 있어서 다들 기피하는 바람에 어려움이 많았다.이같은 현실이 정말 절망스럽다.”면서 “이번 ‘식민지 조선과 전쟁미술전’은 일제 때 독립투사들이 갇혔던 형무소를 연상하며 그림을 감상해달라.”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전시된 1000여점은 명백한 ‘친일그림’만을 골랐으며 형무소 분위기를 느끼기 위해 조명 역시 일부러 어둡게 했다고 덧붙였다.잠시 후 100여명의 관람객들이 전시장(형무소 복도) 안으로 들어갔다.한 안내자는 “총동원 체제기(1937∼45년)를 중심으로 일제의 식민통치와 침략전쟁을 미화·찬양한 친일미술가들의 작품”이라고 설명했다.일본인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이완용의 서예작품,박득순의 전쟁화 등이 눈에 띄었다.또 친일행적으로 논란이 일었던 김기창·김경승·심형구·김은호 화백 등 미술계 거장들의 작품도 내걸려 있었다. 이밖에 성전화첩,한일합병 기념화첩,각종 친일잡지 등도 전시돼 있었다.특히 ‘해남도 특별전’에는 중국 하이난(海南)도에서 학살된 조선인들의 관련 사진을 처음으로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이런 그림들 바로 옆에서 당시 온갖 고초를 겪었던,독립투사들의 혼이 담겨진 3∼5평 크기의 감방들이 생생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오는 10일까지 계속되는 이번 전시는 사단법인 민족문제연구소가 오랜 세월 동안 국내외를 오가며 하나둘씩 힘들게 모아온 결과물이었다.이 연구소의 조문기(78) 이사장을 만났다.그는 1945년 ‘부민관 폭탄투하’의 주역으로 요즘 ‘친일인명사전’ 발간준비에 온 정성을 쏟고 있다. “아주 어려운 작업이었어.독립운동을 한다는 정신으로 그림을 모았지.우리 사회에는 친일파 후손들이 여전히 득세하고 있어.그런데 광복은 무슨 광복이야.친일청산? 아직도 멀었어.지금이라도 다들 뉘우쳐야 돼.이번 전시도 그런 기회를 주려고 했어.” 그는 담배(라일락)를 연방 입에 물며 억양을 점점 높였다.그는 올해에도 3·1절과 8·15행사에 초청을 받았으나 역시 참석하지 않았다.우리나라가 아직 진정한 광복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다.김대중 정부 시절에도 독립투사 30여명과 청와대로 오찬을 초청받았으나 거절했다.오히려 그 시각에 서울 시청앞에서 ‘박정희기념관’ 건립에 반대하는 1인시위를 벌였다. 그는 친일청산 특별법이 지지부진한 이유에 대해 “국회에 친일 후손들이 많기 때문”이라고 말했다.또 그 후손들은 막강한 권력의 후계세력을 길러내 우리 사회의 상층부에서 주류를 이루고 있다고 부연했다.즉 ‘신(新)친일파’들의 득세 때문에 독립운동을 더욱 펼쳐야 한다는 주장이다. “제2의 신기남 의원 같은 경우가 얼마든지 더 생겨날 수 있어.내가 아는 것만 해도 (국회내에)몇 명은 돼.그들이 당이나 국회 상층부를 장악하려 할 때 틀림없이 친일행적이 나오게 돼 있어.김희선 의원? 복잡하긴 한데 김학규 장군과 전혀 관계없는 것은 아니지.일부 언론에서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경향도 있더군.”그는 아울러 만약 친일 집안의 후손이라면 적어도 우리나라 정계에서 출세할 생각은 말아야 한다고 거듭 지적했다.그는 또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일행적과 관련,“(친일청산 특별법을 두고)박 대통령이 아니라 오히려 딸이 벽이 되고 있다.”면서 “(박근혜 의원은)민족의 양심으로 돌아와 아버지 대신 사과하고 뉘우치고 민족을 위해 한몸 바쳐 일하겠다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서도 한마디를 쏘았다.그는 노 대통령과는 대선후보 때 서대문형무소 자리에서 만났다.그는 이때 노 후보에게 친일인명 사전 발간사업을 도와달라며 ‘친일문학론’을 선물했다.노 후보는 ‘책값으로 돈은 드리지 못하지만 (당선되면 사업을)팍팍 밀겠다.’는 약속을 했다.하지만 여전히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단다. “인명사전? 한창 편람작업 중이지.앞으로 공청회 등을 거쳐 수록 범위 등을 확정한 뒤 내년 1월부터 발간할 예정이지.” 그에게 어떻게 해서 19살 나이에 독립운동에 참여할 수 있었느냐고 물었다.그는 “사실은 16살 때부터 시작했지.”하며 잠시 당시를 회고했다.그는 1926년 경기도 화성군 매송면 야몽리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외조부 밑에서 자랐다.이 때문에 외조부의 항일사상을 자연스럽게 이어받았다. 1942년 16살 때 혼자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강관주식회사라는 군수품공장에 취직했다.여기에는 한국인 노동자 3000여명이 일하고 있었다.그는 어느날 일본인의 만행을 견디다 못해 대규모 파업을 주동하기에 이르렀다.이 일로 인해 그는 동지 류만수와 함께 지명수배됐다.도피생활 중 독립투사를 만나 문서전달 등의 활동을 하게 되면서 독립운동의 길로 들어서게 됐다. 45년 1월 류만수와 함께 귀국했다.이어 그해 5월 ‘대한애국청년단’을 결성하는 등 본격적인 독립운동을 계획했다.그러던 중 7월24일 친일파의 거두로 한국인 학살에 앞장서온 박춘금에 의해 결성된 ‘대의당’이 부민관(지금의 서울시 의회)에서 또 다른 민족학살 모의를 하고 있다는 정보를 접했다.그는 지체할 것 없이 류만수 등과 함께 부민관에 침입해 두발의 폭탄을 던져 학살음모를 사전에 차단했다. 그는 “일제의 만행을 일일이 얘기하자면 한도 끝도 없지.”라며 비 내리는 서대문형무소 쪽으로 눈길을 옮겼다.그는 수원에서 10여평짜리 서민아파트에 살고 있다.‘독립운동가는 빈곤하다.’는 말이 떠올랐다. 김문기자 km@seoul.co.kr
  • [녹색공간] 상생과 공존을 위한 전략/이상헌 지속가능발전위 에너지산업팀장

    한국 사람들은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경제성장을 해왔다.다른 나라에서 100년,200년이 걸렸던 산업화와 도시화를 불과 40년이라는 짧은 시간에,그것도 전쟁의 폐허로 아무런 기반도 없는 상태에서 이루어낸 근저에는 강한 인종적 민족주의가 자리잡고 있다.그러나 배타적인 민족주의적 성장 전략이 지정학적으로 유리할 게 별로 없는 우리의 처지에서 앞으로도 계속 도움이 될는지는 의문이다. 중국은 막대한 규모의 저임금 노동력을 이용하여 우리와의 격차를 좁히고 있으며 우수한 인재 양성과 해외 자본의 유치에 힘입어 기술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얼마 전 언론에 보도됐듯이 우리의 미래 성장을 견인할 핵심기술 분야에서 중국과의 기술격차는 평균 2년 남짓하다고 한다.또 삼협댐 프로젝트나 남수북조(南水北調) 사업 등과 같은 대규모 환경 파괴형 개발 프로젝트를 수행함으로써 자국만이 아니라 한반도 생태계도 위협하고 있으며,동북공정 사업을 통해 고구려사를 왜곡하는 장기적인 포석으로 남북통일 이후의 상황을 준비하고 있다. 러시아의 행보도 우리에게 중요하다.우리가 앞으로 러시아의 석유나 천연가스를 수입한다는 상황도 있을 수 있지만,그보다는 유럽연합(EU)이 러시아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인정하는 것에 화답하기 위해 지난 9월30일 러시아가 교토의정서 비준법안을 연방하원의회에 제출했으며 올해 말이나 내년 초에는 교토의정서가 비준될 것이라는 점이다.그동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이면서도 의무감축대상국에서 제외돼 있었던 우리나라는 이렇게 되면 2차 공약기간이 시작되는 2013년부터 의무감축 압력을 거세게 받게 될 것이다.1990년에 비해 에너지 소비가 거의 3배로 늘어난 우리나라에서 1990년 수준으로 줄이라는 것은 상당한 규모의 산업구조조정과 에너지 수요 감축을 의미하며,우리가 겪어야 할 변화는 과거 경제성장보다 더 극적으로 전개될 것이다.폐쇄적 체제 유지로 인해 발생하는 비용과 경제 개방에 따른 이익의 크기를 저울질하면서 핵문제를 다각도로 이용하는 북한의 외교 전략,북한인권법안을 통과시킴으로써 어렵게 성사시켰던 6자회담의 전망을 어둡게 하는 미국의 패권주의,장기 불황에서 벗어나 새롭게 도약하는 동시에 평화헌법을 수정하여 재무장을 시도하는 일본의 야심도 우리에게 어려운 과제로 남아 있다. 이처럼 막강한 국가들의 틈바구니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분명한 것은 강력한 주변국과의 배타적인 경쟁이나 단기간의 성과에 치중하는 성장 전략은 한계에 부딪힐 것이라는 점이다.세계적으로 환경무역장벽이 높아지고,기후변화협약 등으로 인해 환경친화적인 산업구조조정이 불가피하게 된 상황에서 인접국과의 경쟁보다는 상호공존이 전략적으로 보다 유리하다.따라서 우리의 경우 동북아시아 지역에서의 협조와 상생을 지향하는 지혜롭고도 지속가능한 발전 전략이 필요하다.이러한 전략의 수립에는 기존의 발상을 넘어서는 혁신적 사고가 요청된다. 중국의 학자 쑨거(孫歌)는 식민지와 전쟁이라는 외상의 역사를 가진 동아시아에서 과거의 아픔을 치유하는 동시에 공존의 미래를 열기 위해 민족국가 단위보다는 아시아를 사유 단위로 고려해보자는 의견을 제시했다.민족국가가 정치적으로는 분리돼 있어도 생태적으로는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점을 감안할 때 쑨거의 주장은 새겨들을 만하다.생태계에서는 독불장군이란 없기 때문이다.주변국과의 상생과 공존을 위한 지혜로운 지속가능발전 전략이 우리에게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이상헌 지속가능발전위 에너지산업팀장
  • [이런 책 어때요] 영국의 인도 통치 정책/조길태 지음

    대표적인 제국주의 국가로서 대영제국이 누린 영광은 식민지 인도를 떠나선 생각하기 어렵다.인도는 영국이 유럽 열강과의 경쟁에서 패권을 차지하고 산업발전을 이루는 데 큰 역할을 했다.영국의 자본주의적 제국주의는 인도 착취를 바탕으로 성립됐다.이 책은 제국주의 식민통치의 전형이라 할 영국의 인도 지배사를 살핀다.200년에 걸친 영국과 인도간의 식민·피식민 관계를 단순히 ‘지배하는 제국주의’와 ‘저항하는 식민지’라는 이분법으로 파악함으로써 제국주의의 작동 기제를 단순화하는 오류에 빠지지 않고,복합적인 상호작용으로 본 점이 주목된다.2만원.
  • [책꽂이]

    ●에스파냐 이상(앙헬 가니베트 이 가르시아 지음,장선영 옮김,한길사 펴냄) 에스파냐의 정신은 무엇이며,에스파냐인들은 누구인가를 다룬 철학서.에스파냐(스페인)의 평론가이자 소설가인 저자의 사상은 1898년 미국·에스파냐 전쟁 이후 쇠락해가는 조국의 운명을 반성하고 그 위상을 드높이기 위해 다양한 작품활동을 전개한 ‘98년도 세대’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에스파냐는 1898년 그나마 남아있던 식민지인 필리핀과 푸에르토리코를 미국과의 전쟁에서 잃었고,국가는 왕당파와 공화파로 완전히 양분됐다.마침내 내란(1936∼1939)까지 일어났다.2만원. ●자유인 사마천과 사기의 세계(미야자키 이치사다 지음,이경덕 옮김,다른세상 펴냄) 중국 정사의 기초가 된 역사서 ‘사기’의 전체 구성과 내용을 알기 쉽게 풀어썼다.‘사기’중에서 가장 흥미롭다는 ‘열전’이나 ‘본기’만을 번역해놓은 다른 ‘사기’관련 서적과 달리 ‘본기’와 ‘세가’ ‘연표’ ‘열전’ 등 총 130권 52만 6500자로 이루어진 ‘사기’의 본문 전체를 개괄한 것이 특징이다.사마천은 일종의 변증법적 역사관을 가지고 있었고,이런 변증법적 사유는 ‘사기’ 곳곳에서 발견된다는 게 저자(전 교토대 교수)의 분석이다.1만 1000원. ●암행어사열전(김원석 엮음,문학수첩 펴냄) 암행어사는 임금이 직접 지방에 파견해 백성들의 고충과 지방 수령들과 관리들의 잘잘못을 비밀리에 조사하도록 한 조선시대 임시 관직이다.박문수 김수익 홍우건 이건필 이익보 홍양한 김우항 이종백 이문보 노수신 정만석 황정 등 남다른 고사를 남긴 암행어사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8500원.
  • ‘국가별 호감도’ 중·독·북·미·일 順

    ‘국가별 호감도’ 중·독·북·미·일 順

    일본 시즈오카현립대학이 실시한 ‘자국과 주변국에 대한 인식조사’는 한국의 서울과 중국의 상하이로 대상을 한정했다.두 나라에서 가장 소비력이 큰 도시민의 사회·문화적 기반을 파악하는 것은 외교 및 통상 경쟁에서 상대적인 우위에 서는 기반이 된다는 점에서 이번 조사가 반갑지만은 않은 일이다.우리 쪽에서도 조사에서 나타난 국민들의 일본에 대한 인식을 충실히 분석해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조사 결과 ‘앞으로 우리나라와 가장 중요한 관계가 될 나라’로는 중국 64.5%,미국 26.0%,일본 7.1%,러시아 0.3% 등으로 나타났다.‘앞으로 우리나라와 두 번째로 중요한 관계가 될 나라’로는 37.4%를 차지한 미국을 선두로 일본이 32.2%로 바짝 뒤를 좇았다.이어 중국 22.4%,러시아 1.7%.프랑스 0.6% 등의 순이었다. 반면 ‘국가별 호감도’에서 일본은 53.6%로 5위에 그쳤다.68.8%의 중국이 1위였고,62.8%의 독일,60.3%의 북한,55.5%의 미국,43.7%의 러시아가 뒤를 이었다.일본으로서는 현재보다는 미래에 더욱 한국과의 관계가 돈독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수치로 확인한 셈이다. ‘앞으로 우리나라와 가장 중요한 관계가 될 나라’의 연령별 응답도 같은 결과를 보여준다.일본을 꼽은 사람이 40대는 2.1%에 불과했지만 30대 5.7%,20대 11.8%,18∼19세 14.5%로 늘어났다. 나이가 적을수록 일본에 호감을 갖는 추세는 ‘가전제품에 대한 신뢰도’와 맞물리면서 한국에서 일본상품이 더욱 인기를 끌 것이라는 전망을 가능케 한다.‘우리나라 가전제품 대비 국가별 가전제품 신뢰도’를 종합하면 일본제품이 우리나라 것보다 신뢰할 수 있다는 응답은 80.7%나 되는 반면 ‘비슷하다’와 ‘신뢰 안함’은 각각 14.6%와 4.5%에 그쳤다.중국 제품은 응답자의 4.1%가 신뢰하고,9.7%가 비슷하게 생각하며,85.4%가 한국 것보다 못하다고 답했다.‘품질이 같다면 외국산보다 국산을 구입한다.’는 항목에서는 ‘그렇다’는 응답이 95.6%로 압도적이었다. ‘아시아 식민지화에 대한 일본의 사죄 여부 인식’을 묻는 항목에서 가장 많은 62.7%는 ‘사죄하지 않았다.’고 밝혔다.‘사죄는 했으나 충분하다고 할 수 없다.’는 36.0%,‘충분히 사죄했다.’는 0.9%에 그쳤다. 그러나 ‘충분한 사죄’를 일본에 요구하면서도 구체적인 역사에는 크게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었다.‘한·일 관계에 있어 2005년의 의미에 대한 인식’을 묻는 항목에서는 ‘광복 60년’을 든 사람이 45.1%로 가장 많았다.하지만 일본과 국교를 재개한 ‘한·일수교 40년’을 든 사람이 34.8%나 됐던 반면 사실상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을사보호조약 체결 100주년’을 든 사람은 10.3%에 그쳐 아쉬움을 주었다. 서동철기자 dcsuh@seoul.co.kr
  • [사설] 日 안보리 상임이사국 자격 있나

    일본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진출 의지를 공식 표명했다.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는 어제 유엔총회 연설을 통해 “일본은 그동안의 역할로 미뤄 상임이사국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유엔 활동에 물질적으로,정치적으로 크게 기여한 만큼 상임이사국의 ‘자격’을 갖췄다는 얘기다.일본은 역시 상임이사국 진출을 노리는 독일,인도,브라질 등과 행보를 같이하고 있다. 유엔 및 안보리의 개편은 시대적 요청이라고 본다.유엔 회원국은 지난 1945년 창설 당시 51개국에서 191개국으로 늘어났다.소수의 강대국이 전 세계의 주요 이슈들을 좌지우지하는 유엔 체제는 현실에 맞지 않다.지역을 대변하고 개도국과 저개발국의 목소리도 반영할 필요가 있다.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이 각국 지도자 16명을 위촉해 결성한 ‘저명인사 위원회’는 오는 12월1일까지 유엔 개혁방안에 관한 보고서를 낸다고 한다.상임이사국 개편 방안도 구체적으로 논의될 것이 확실하다. 우리는 일본의 상임이사국 진출에 발목을 잡을 생각은 없다.하지만 일본이 국제사회에서 ‘지도국가’로 대접받기 위해 간과해서는 안 될 일이 있다.먼저 한국,북한,중국 등 이웃 나라들과의 관계부터 매끄럽게 정립하는 일이다.일본 정부는 과거 식민지 침략행위에 대해 깨끗한 청산은커녕 오히려 기회있을 때마다 역사왜곡 행위를 일삼고 있다.야스쿠니 신사참배,교과서 왜곡,영토분쟁 등으로 외교마찰을 일으키면서 세계 평화의 파수꾼을 자처하고 나서는 것은 모순된 태도다.“상임이사국은 돈으로 살 수 없다.”는 중국 외교부 대변인의 말은 무엇을 의미하겠는가.일본은 상임이사국 진출에 앞서 유엔헌장에 적시된 ‘적국(敵國)’의 오명부터 벗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 [열린세상] 모국사랑 그릇을 만들자/이정옥 대구가톨릭대 사회학

    10년 전 하버드 대학 교정에서 알게된 최숙렬씨가 한국에 온 지 한달이 다 되어간다.하버드 대학 학생회가 주최한 강연회 자리에서 한차례 만났을 뿐인데도 그녀의 쓸쓸한 모국방문이 내 책임인 것 같아 마음에 걸린다. 왜냐하면 그녀가 미국 땅에서 조용하지만,알차게 한국인과 한국 문화를 어떻게 알렸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린 소녀의 눈에 비친 정신대 문제,징용 문제와 분단의 역사를 쓴 그녀의 자전적 소설 ‘안녕이라고 말할 수 없는 세월’(Year of Impossible Goodbye,Houghton Mifflin Co.,1991)은 이미 일본어,프랑스어,스페인어,이탈리아어로 번역되었고 미국의 중·고등학교,대학에서 정식 교재로 채택된 지 오래다. 그녀는 미국의 중·고등학교,대학교,공공도서관을 다니면서 한국과 한국인,한국 문화를 감동적인 언어로 알리고 있다.자그만 체구의 그녀가 벌이는 여정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항상 빚진 기분이 든다. 빚쟁이 기분은 다른 해외동포들에게도 마찬가지다.중앙아시아 한인 연구를 체계화하는데 송희현 선생의 도움은 절대적이었다.송희현 선생은 1995년 중앙아시아 한인 연구를 도와주기 위해 하바로프스크에서 서울로,다시 서울에서 타슈켄트와 알마티의 집단농장을 도는 무리한 여정을 마다하지 않으셨다. 섭씨 50도를 오르내리는 불볕더위 속 강행군이 원인이 되었는지 연구가 끝난 그 해(1995년) 11월에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간접적으로 전해 들었다. 가끔은 화가 신 니콜라이의 창고 화랑과 그가 손수 만들어 주었던 기름밥(우리의 볶음밥)이 생각나기도 한다.아홉 살 때 겪었던 강제 이주의 기억은 신 니콜라이 화백에게는 아이를 잃은 어머니의 비명소리로 남았다.그는 레퀴엠이라는 제목으로 어린 영혼이 살아남아 즐거운 결혼식을 올리는 상상화를 밤마다 그렸다.지하 화실을 가득 메운 레퀴엠,쌀가마 위에 환하게 웃고 있는 신랑 신부의 그림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rmf로벌 시대가 되면서 해외 동포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해외 동포의 네트워크를 가장 잘 활용하는 것은 이스라엘만이 아니다.도쿄에서 열린 아시안 디아스포라에 관한 국제회의에서 베이징 대학 이안산 교수의 발표에 의하면 중국은 해외 유학생들에 대한 것은 물론,각 대륙별로 흩어져 있는 화교 연구를 치밀하게 쌓아두고 있다고 한다. 해외동포 연구는 대중 매체를 통해 중국인들의 안방까지 파고들고 있었다.홍콩의 NGO단체에서 일하고 있는 아킹은 텔레비전에서 본 남극의 화교 이야기,아프리카의 화교 이야기를 신이 나서 들려주었다. 뉴욕 맨해튼의 토요일은 소수 민족의 국기와 풍물로 다채롭다.소수 민족들에게 할애한 문화의 날에 소수 민족들은 모국의 국기 아래 한데 모여 자신들의 문화를 뽐낸다.지리적 국경을 넘었다고 마음의 국경까지 넘어가는 것은 아니다. 해외동포의 모국애가 21세기의 새로운 자산이라는 것을 알고 다른 나라들은 일찍이 해외동포 연구와 해외동포 네트워크 만들기를 중요한 국책 사업으로 정립하였다.분단된 현실은 모국애를 마음놓고 담을 수 없는 그릇이다.그러기에 해외동포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이름들은 식민지 시기 이전으로 퇴행하고 있다. 중앙아시아 한인들은 카레이스키(고려인),재중한인은 조선족,재일교포들은 ‘조선적’,‘해외동포’,‘재일이세(자이니치)’라고 서로 이름을 달리 부르고 있다.부르는 이름은 달라도 모국에 대한 사랑은 한결같다.모국에 대한 그들의 사랑을 담을 그릇을 마련해 줄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해외 동포의 모국애를 담아 낼 때 우리는 21세기의 역사를 다시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정옥 대구가톨릭대 사회학
  • [뒷골목 맛세상]가리봉 조선족 골목

    [뒷골목 맛세상]가리봉 조선족 골목

    풍미(風味)라는 말이 있다.이 아름다운 말은 음식뿐만이 아니라 사람에게도 함께 쓰인다.이희승 편 국어대사전에서는 ‘1.음식의 고상한 맛 2.사람의 됨됨이가 멋스럽고 아름다움’으로 풀어내고 있다. 가리봉 시장의 조선족 골목 일대를 기웃거리고 다니면서 혹은 골목 안에 있는 용성식당(龍成食堂)이나 연길양육관(延吉羊肉串),금단반점(今丹飯店),삼팔교자관(三八餃子館)의 식탁에 앉아서,풍미라는 말을 몇 번이고 입안에서 되뇌였다.나에게는 고국 아닌 고국에 돌아와 가리봉동 시장의 한 귀퉁이에 자신들만의 골목을 이루고,하루가 끝나는 저녁이면 이 골목에 돌아와 자신들 특유의 음식을 찾는 조선족들이 음식과 사람을 포함하여 두루 풍미로웠다. ●고국서 절망적으로 무너져버린 자존심 조선족이 누구인가.조선 후기부터 시작하여 일제에 이르기까지 봉건지배와 식민지배의 수탈에 못 견딘 나머지 남부여대로 한반도를 떠나 유랑의 길에 올라야 했던 바로 우리의 핏줄이 아니던가.그렇게 러시아로 흘러든 우리 핏줄은 고려인이 되고,만주벌판을 헤매던 우리 핏줄은 조선족이 되지 않았으랴. 조선족은 엄연히 국가와 민족을 구별한다.그리고 자신들이 조선족임을 단 한번도 부끄럽게 여겨본 적은 없다.비록 중국이라는 거대한 다민족 국가에 소수민족으로 편입되었지만,자신들만의 문화와 정체성을 굳게 지키며 살아왔다.그런 조선족으로서의 자존심이 다른 곳도 아닌 고국에서 절망적으로 무너져버린 셈이다. 고국 아닌 고국에 돌아온 조선족들은 이미 20만명이 넘는다.그리고 그들 태반이 불법체류자로 몰려 범죄자 아닌 범죄자가 되어 있다.불과 얼마 전만 해도 고려인과 조선족은 해외동포로 인정하지 않는 정부의 정책 때문에 고국방문이 어렵게 돼 결국 고국에 오기 위해서는 3개월의 관광비자를 받는 데만 1000만원이 넘는 불법적인 돈을 내는 것은 물론 끝내 범죄자가 되고 말았다. 중국인이 우리나라를 방문하는 데 필요한 공식적인 비용은 10여만원에 불과하지만,조선족이 ‘코리안드림’이라는 꿈을 좇아 고국에 오는 비용은 상상을 초월한다.조선족에게 1000만원이란 중국에 있는 가산을 팔거나 아니면 고국에서의 미래를 담보로 해 고율의 이자가 붙은 빚을 내야 가능한 돈인 것이다.도대체 무슨 수로 3개월 만에 그런 돈을 벌고 게다가 ‘코리안드림’이라는 필생의 꿈까지 이룬단 말인가. ●코리안 드림 좇다 태반이 불법체류 조선족이 가리봉 시장에 그들만의 골목을 만든 것은 다름 아닌,바로 옆에 있는 ‘구로동 벌집’ 때문이다.1960,70년대 경제성장을 주도해온 값싼 노동력 위주의 구로공단 전성기에,이 땅의 곳곳에서 몰려든 어린 노동자들을 노려 한 평 남짓하게 마구잡이로 지었던 많은 방들이 바로 ‘구로동 벌집’이었다.그리고 우리 경제에서 값싼 노동력 위주의 구로동 시대가 끝나고 벌집들마저 버려지게 되자,기다렸다는 듯이 이번에는 조선족들이 벌집을 채운 것이었다. 만일 그대가 이 글을 읽고 한번쯤 호기심을 일으켜 가리봉 시장 조선족 골목을 갈 예정이라면,나는 그대에게 이제 막 저녁 어스름이 지는 시간을 권하고 싶다.저녁노을을 등지고 지하철 7호선 남구로역 3번 출구 옆에 서 있으면,그대는 퇴근시간이 되기 무섭게 출구를 빠져나오는 많은 인파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그 인파의 대부분이 조선족이라 해도 틀림없다.그대는 망설이지 말고 그 인파의 뒤를 따라가라. 조선족은 얼핏 보기에 그대와 똑같은 얼굴에 똑같은 옷차림이어서 전혀 그대와 분간이 안 될지도 모른다.그러나 결례를 무릅쓰고 그들 표정을 조금만 자세히 살핀다면 그대는 쉽게 조선족의 특징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약간 주눅이 든 듯 분명치 않은 표정에,보고 듣고 느끼는 감정을 다른 사람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나름대로 안으로 갈무리한 눈길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긴장 속에 얼핏얼핏 순수함이 내비치는 얼굴. 그런 얼굴들을 쫓아 몇 걸음 걷지 않으면 그대는 붉고 혹은 노란 한자 위주의 이국적 간판들을 만나게 된다.그렇게 가리봉 시장 초입 삼거리에 다다르면 그대는 삼삼오오 몰려든 비슷비슷한 얼굴들이 서로 손을 잡거나 어깨를 껴안는 풍경을 만나게 될 터이다. 언제 주눅이 들어 안으로만 감정을 갈무리했냐 싶게 드러내놓고 기뻐하며 어떠한 긴장감도 없이 애오라지 들뜬 표정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그대는 문득 하나의 단어가 뇌리에 스쳐 지날지도 모른다. ●주눅 든 듯한 표정에 얼핏얼핏 순수함 해방구.그렇다.조선족이란 우리 핏줄에게 가리봉 시장 골목은 단순한 골목이 아니라 일종의 해방구다.얼핏 3개월의 체류기간을 넘기고 당연히 불법체류라는 범죄자가 되어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동안에,처음 겪는 자본주의 시장경제라는 틀의 맨 밑바닥에서 흡사 몸에 맞지 않은 옷처럼 이질적인 문화와 가치관을 받아들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던 그들에게,이곳이야말로 이질적인 옷 따위는 훌쩍 벗어던지고 참다운 제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는 해방구나 다름없는 것이다. 만일 그대가 좀더 용기를 내어 그들을 따라 골목에 즐비한 음식점들의 한 곳에까지 따라 들어간다면 그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맛과 사람이 함께 어울려 만드는 어떤 풍미에 빠져들게 될 것이다.나는 그대가 많은 조선족 음식점들 중에서도 ‘양러우촨’(羊肉串)이라는 일종의 양꼬치구이 식당으로 따라가는 행운이 있기를 빈다. 연길양육관(02-838-0014)은 이름 그대로 양러우촨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이다.조선족들은 양뀀 혹은 양고기뀀이라고 하는데,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좁은 식당에서 이글이글 타오르는 숯탄에 양뀀을 구우면서 땀을 뻘뻘 흘리는 이들을 보면 흡사 무슨 종교적 의식이라도 대하듯 숙연하기까지 하다.그만큼 양뀀이야말로 조선족 음식의 어떤 정체성을 대표한다. 양뀀에서는 양고기 특유의 지독한 노린내를 거의 맡을 수 없다.그것은 무엇보다도 양뀀에 곁들여 나오는 고춧가루와 참깨,즈란이라고 부르는 향신료 때문이다.게다가 양뀀에 껍질을 까지 않은 통마늘을 함께 구워 고기와 함께 먹다 보면 노린내 따위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춧가루와 참깨 그리고 마늘이야말로 우리 핏줄인 조선족의 정체성이 아니랴. 혹시 중국이나 아니면 중앙아시아 지역을 여행하면서 길거리나 식당에서 양러우촨을 대하고 불쑥 일어난 호기심에서 한번쯤 맛을 본 이들도 없지 않을 것이다.그리고 그런 이들 중에 자칫 비위가 약한 사람이라면 지독한 노린내를 참지 못하여 그만 헛구역질마저 일으킨 경험도 없지 않을 터이다.그 지독한 노린내를 조선족은 다름 아닌 고춧가루와 참깨,마늘로 해결하고 거뜬히 조선족 특유의 음식으로 만든 것이리라. ●정체성 잃지 않고 고유의 맛 유지 연길양육관에 비해 용성식당(02-3281-6403)은 조선족 골목 안에서는 가장 많은 일품요리를 내는 식당이다.일품요리라고 해서 가격 따위에 겁먹을 필요는 없다.어떤 요리건 대부분이 1만원 안팎이기 때문이다.그 중에서도 조선족이 즐겨 찾는 것은 우리의 탕수육 비슷한 ‘궈바우러우’와 닭고기 요리인 ‘라지지딩’,돼지고기를 가늘게 채썰어 볶아내어 종이장처럼 엷은 건두부에 싸먹는 ‘징장러우스’,그리고 도미를 통째로 굽고 튀겨서 만든 ‘뤄붸’라는 훌륭한 요리가 있다. 그러나 조선족 골목에 있는 식당 메뉴 중에서 가장 흔하게 눈에 띄는 것은 ‘고러우훠궈’(狗肉火鍋)라는 일종의 개고기 샤부샤부이다.원래 옌볜에서는 개탕을 즐겨먹는데 거우러훠궈는 이 개탕을 또다시 우리의 샤부샤부 문화에 변형시킨 격이다. 그러고 보면 조선족들은 가는 곳마다 그 곳의 음식에 맛을 들이면서도 결코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나름대로 풍미를 만들어 내는 셈이다.이왕에 여기까지 왔으면 그대는 과감히 고러우훠궈까지 주문하기 바란다. 맛의 끝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애오라지 무리하게 맛만을 좇다 보면 맛 자체는 물론 사람마저도 황폐해지고 말지도 모른다.만일 맛의 끝에서 음식의 맛만이 아닌 사람의 맛까지 함께 거둘 수 있다면,그런 맛이야 말로 풍미에 다름없을 터이다. 누군가의 짧은 글에서 읽은 적이 있다.‘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빵은 눈물에 젖은 빵이다.’누군가는 바로 음식의 맛에서 사람의 맛까지 함께 풍미를 맛본 이가 틀림없으리라.그렇게 맛의 끝까지 가본 이가 틀림없으리라.그런 이라면 어떤 거친 음식인들 맛없는 음식이 있을 수 있으랴. ■집들이등 경사때 즐기는 손님 접대용 ●옌볜의 개탕 우리의 보신탕과는 다르게 옌볜의 개탕은 마늘이며 생강 파 같은 양념류나 야채 따위를 일절 넣지 않고 고기만을 맑게 끓여낸 뒤 개즙이라는 양념장에 찍어먹는다. 개즙은 개고기의 내장 따위를 갈아서 거기에 고수라는 향신채를 곁들여 조선족 특유의 양념장을 만들어낸 것이다.이를테면 고기의 맑고 순수한 맛을 지켜내면서 중국에 와서 익힌 향신료 문화를 가미하여 개탕을 즐기는 셈이다. 개탕의 맛은 바로 개즙에서 나오는 것인데,이 개즙의 맛은 집집마다 서로 달라서 개즙의 맛을 비교하여 어느 집 개탕 솜씨가 더 뛰어난가를 가름하는 식이다. 대부분 옌볜의 조선족들은 새로 집을 사서 집들이를 하거나 아니면 특히 경사로운 일이 있을 때면 반드시 개 한 마리를 잡아 개탕을 마련하여 손님을 접대한다. 그리고 남녀노소 없이 가까운 이웃이며 친척들이 모여 누구나 기꺼이 개탕을 즐긴다.그렇듯이 개탕을 못 먹으면 자랑스러운 조선족이 아닌 셈이다.
  • [이경기의 스크린1인치]할리우드와 통하는 中

    할리우드에서 중국 출신 영화인들의 활약이 일취월장하고 있다.이들은 13억 인구의 본토를 비롯해 홍콩 그리고 타이완 출신 등 다양하다. 중국 본토 출신의 경우 엄격한 검열이 시행되는 사회주의의 한계에도 불구,천카이커 감독은 1993년 ‘패왕별희’로 제인 캠피온 감독의 ‘피아노’와 함께 칸 황금종려상을 공동 수상하는 쾌거를 이룩했다.50여년 동안 중국 전통 경극 배우로 활동한 2명의 남자가 엮어내는 애증을 소재로 한 영화였다. 천 감독과 베이징 영화학교 동기인 장이머우는 돈 많은 양조장 주인의 첩으로 들어간 생활력 강한 여인의 사연을 다룬 ‘국두’로 90년 칸 황금종려상 후보,91년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 후보에 오르는 성과를 거두었다.1920년대를 시대 배경으로 가난한 집 규수가 갑부집 세도가의 4번째 첩으로 들어갔다가 주인의 환심을 얻기 위해 벌어지는 첩들끼리의 치열한 암투에 끼어 들게 된다는 ‘홍등’으로 91년 베니스 은사자상과 92년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후보로 추천됐다.이러한 성과를 등에 업고 히로인역의 궁리는 현재 동양권을 대표하는 여배우로 대접 받고 있다. 청룽(성룡)은 단연 홍콩을 상징하는 국제적 배우.신작 ‘80일간의 세계 일주’에서는 80일 동안 세계 일주를 성공시키겠다는 영국 발명가의 목표가 성사되도록 헌신을 다하는 중국인 라우역을 맡아 액션 오락극의 잔재미를 부추겨 주는 데 절대적 공헌을 하고 있다. 중국 광저우 출신으로 홍콩에서 ‘영웅본색’ ‘첩혈쌍웅’의 히트작을 공개해 80년대 후반 한국에서도 홍콩 누아르라는 신조어를 탄생시켰던 우위썬은 할리우드로 진출해 존 트래볼타의 ‘브로큰 애로’를 비롯해 ‘페이스 오프’ ‘윈드 토커’ ‘미션 임파서블2’ 등의 메가톤급 히트작을 연속 발표해 할리우드 1급 감독군에 합류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양쯔충은 ‘예스 마담’ 등으로 80년대 홍콩 여형사 드라마 붐을 주도했던 주역.007 제임스 본드 ‘네버 다이’에서 3차 세계 대전을 유발 시키려는 언론 재벌의 음모를 제압하는 중국 보안대 소속 여형사 역으로 캐스팅돼 성적 매력만을 내세웠던 백인 여배우들의 본드걸 이미지에서 탈피해 남성과 대등한 관계를 이루어 가는 새로운 본드걸 모습을 보여 주었다. ‘취권’의 감독 겸 무술을 담당했던 위안허핑은 ‘매트릭스’ 시리즈에서 주인공 네오(키아누 리브스)가 날아 오는 총알을 피하거나 고층 빌딩을 자유자재로 뛰어 넘는 호쾌한 액션 장면만을 특별 지도하는 무술 감독역을 맡아 특수 효과와 쿵후를 접목한 사이버 액션을 고안해 냈다.리안 감독의 ‘와호장룡’과 장이머우 감독의 신작 ‘연인’의 주인공 장쯔이는 한때 김희선의 캐스팅 설이 나돌던 스필버그 제작의 ‘게이샤의 추억’의 주역으로 최종 캐스팅됐다. 중국 영화인들이 세계 영화가에서 두각을 드러낼 수 있는 원인은 무엇일까?할리우드에서 발간되는 영화 전문지들은 여러 가지 분석 기사를 내놓고 있다.그중 쿵후로 단련된 능수능란한 몸놀림,영국 식민지 덕분에 영국식 전통 영어를 구사할 수 있다는 언어적 강점,그리고 한때 세계 4대 문명을 주도했던 거대 국가가 보유하고 있는 화려한 문화 유산에 대한 서구인들의 호기심 등이 어우러져 중국 신드롬을 낳고 있다고 분석했다.
  • “친일행적 문서고증으로 입증을”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에서 행해진 나치부역행위 처벌에서도 후손에게 책임을 묻지 않았던 것처럼 조상의 책임을 후손에게 전가하는 것만은 절대 없어야 한다.” 이화여대 초청강연을 위해 한국을 방문한 하버드대 한국학연구소장 카터 J 에커트(59) 교수가 7일 최근 정치권에서 논의되고 있는 ‘친일진상 규명’에 대해 밝힌 의견이다. 일제 식민지 시대 전문가인 에커트 교수는 강연에 앞서 기자들과 만나 “친일파 문제는 매우 복잡하고 다면적이라 학자로서 견해를 밝히기가 매우 곤란하다.”면서도 “다만 학술적으로만 볼 때 기준이 불명확하고 도식적인 친일파라는 단어로 당시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 모두를 재단하는 것은 개인적으로 반대한다.”고 말했다.그는 “총독부나 경찰서에 근무했던 한국인만을 친일파로 봐야 하냐.그 시대에 살며 혜택을 입은 많은 사람들도 모두 친일파로 구분지어야 하는지 ‘친일파’라는 기준 자체가 불명확하고 도식적”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친일청산 방법과 관련해 “한국인들이 과거사에 대해 공개적인 토론과 논의로 해결책을 마련해야 하며 철저한 문서 고증의 방식으로 친일행적을 입증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에커트 교수는 이대 학생문화관 300석의 소강당을 가득 메운 강연에서 “박정희 정권이 1968년 광화문에 이순신 동상을 세워 무사도 정신을 강조하려 했던 것처럼 문화적 조형물 하나도 모두 역사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면서 한국사 연구가 좀더 일상 생활에서 역사적 의미를 찾을 수 있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에커트 교수는 “일제 식민시대를 살펴봐도 이제까지의 관심사는 언제나 유관순과 같은 정치적 주요인물이었다.”면서 “냉전 이후 정치적인 관심보다 문화적 관심이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지금은 당시 사회적 주변부에서 일상을 살아갔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살필 줄 알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고구려사 논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한 학생의 질문에 “학자로서 고구려는 한국의 역사라고 생각하지만 지금 이 문제가 너무 정치적인 관점으로 다뤄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면서 “이번 이슈를 계기로 근현대사보다 상대적으로 연구가 부족했던 고전 한국사에 좀더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1968년 한국의 근대화 격변기에 평화봉사단으로 한국에 와 8년 동안 머물며 한국사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면서 “당시 여의도에 단 하나밖에 없었던 아파트가 빠른 속도로 늘어나는 놀라운 경제발전 과정을 목격했다.”고 회고했다.그는 또 “박정희 시대는 정치적 암흑기였지만 역설적으로 풀뿌리 민주주의가 싹터 법제도를 통해 민주주의를 발전시킨 다른 나라와 달리 한국인은 길거리에서 민주주의를 만들어냈다.”고 말했다. 에커트 박사는 1985년부터 하버드대에서 한국학을 가르치고 있는 세계적 석학으로 현재 학부생에게 ‘두 개의 한국’이라는 과목으로 남북 문제를 가르치고 있다.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이런 책 어때요] 서기 1000년의 세계/브뤽게마이어 등 지음

    서기 1000년의 세계는 식민지 쟁탈전과 세계화로 인해 획일화된 20세기와 달리 여러 문화가 다양하게 꽃핀 시기였다.서기 1000년은 이슬람교가 퍼져나가고,동아시아가 문화적 주도권을 쥐고있던 시기였다.반면 유럽은 아직 변방에 머물고 있었다.유럽이 세계를 주도하게 된 것은 르네상스와 산업혁명을 거치면서부터.책은 서기 1000년을 전후한 세계를 집중적으로 다룬다.북유럽의 바이킹이야말로 최초의 아메리카대륙 발견자였다는 사실,이슬람의 기발한 농법,만리장성보다 긴 성벽을 쌓은 북아프리카 베닌왕국의 경이로운 축성술 등도 밝힌다.2만 5000원.
  • [문학이 머문 풍경]광주 황룡강과 시인 박용철

    [문학이 머문 풍경]광주 황룡강과 시인 박용철

    용아 박용철(1904∼1938).1930년대 영랑 등과 함께 ‘순수시’ 탄생을 이끌었던 시인이다.학창시절 ‘떠나가는 배’의 작자 정도로만 기억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고,어디서 태어나서 어떤 삶을 살았는지도 잘 모르는 사람도 많다. 광주시 광산구 소촌동 어등산 끝자락에 자리한 생가를 찾았다.구릉지 아래 꼿꼿이 선 아름드리 고목이 본채와 행랑·사랑채를 굽어본다.용아가 고고성을 울렸던 본채는 돌담으로 쌓은 석축 위에 원형대로 잘 보존돼 있다.사랑채는 최근 복원된 듯 붉은 황토벽이 드러나 보인다. 본채와 사랑채 사이엔 꽃과 나무들이 빽빽한 정원이다.지금은 앞에 큰 건물들이 들어서 시야를 가린다.사방으로 도로가 뚫려 여느 도심속의 외딴 민가쯤으로 보인다. 용아가 유소년기를 보냈던 일제 말기,당시엔 앞뜰에 서면 황룡강과 영산강이 흐르고 드넓은 농토가 펼쳐졌을 것이다. 그는 1904년 8월 이곳 솔머리 마을에서 대지주였던 박하준의 셋째아들로 태어났다.충주 박씨 씨족 마을이었던 터라 일가 친척들이 행랑채에 모여들었다.위로 두 형이 있었으나 모두 병약하여 집안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집안 사람들의 기대와 축복속에 태어난 그가 1930년대 한국현대시사에 큰 획을 그은 ‘시문학파’ 주도자이다. 현재 그의 생가에 살고 있는 육촌 여동생 박숙철(69)씨는 “오빠가 요절한데다 너무 어린 시절이어서 그에 대한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아무튼 그는 당시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서울과 일본 도쿄를 오가며 신식 교육을 받은 엘리트였다.수리와 어학에 뛰어났으며,전남 강진의 영랑 김윤식과 교류하며 문학도의 길로 접어든다. 그의 소년기에는 광주를 중심으로 장성,함평,담양,나주 등지에서 한말(韓末) 의병활동이 활발했다.그의 집에서 멀지 않은 어등산이 의병활동의 거점지였고,이들이 최후를 맞은 역사적 현장이기도 하다. 나라 잃은 설움과 갈곳 잃은 백성들의 처지를 뼈아프게 체험했을 것이다. 그는 1930년 영랑 등과 함께 시문학 동인을 결성하고 사재를 털어 ‘시문학’을 창간했다.이 잡지 창간호에 그의 대표작인 ‘떠나가는 배’,‘비 내리는 밤’ 등을 발표했다. 1925년에 쓰여진 이 시는 당시 문단의 절망과 허무의식을 그대로 담고 있다.당시의 절망적인 식민지 현실과 3·1운동 실패라는 시대적 배경에서 나온다.이런 어려움을 벗어나려는 노력과 떠남에도 ‘앞 대일 언덕’ 같은 희망이 없는 ‘비애’를 잘 보여주고 있다. 용아가 이끌었던 시문학파는 ‘시문학’발간에 참여한 김영랑,박용철,정지용,신석정,이하윤 등을 가리키며 흔히 순수시의 대명사처럼 사용된다. 이들은 1920년대 경향시의 이념성에 반발하여 시의 예술성을 높이는 데 관심을 기울였다.이들은 시가 언어의 예술이라는 점에 착안,시어의 조탁에 힘썼고 시의 음악성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는 김영랑에 비해 ‘시인’으로서는 덜 성공한 편이다.그러나 비평문학,번역문학,잡지편집 등에 탁월한 재능을 보였다.‘시문학’ 외에도 ‘문예월간’‘문학’등 각종 문예지 발간에도 주력했다. 그는 1938년 폐결핵과 싸우면서도 ‘박용철 시론’의 핵심인 ‘시적 변용해 대해서’를 ‘삼천리문학’ 창간호에 게재한 후 35세의 나이로 짧은 생애를 마쳤다. 올해로 탄생 100주년을 맞았으며 백일장대회,시비건립,생가 기념물 지정 등 각종 기념사업이 펼쳐지고 있다. 류복현(60)광산문화원장은 “용아 선생은 우리 국문학사에 큰 족적을 남긴 민족 애국시인”이라며 “후세가 그의 문학정신을 바탕으로 ‘문향’ 광주의 이미지를 드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
  • [씨줄날줄] 민영교도소/손성진 논설위원

    재작년 4월 방문한 미국 LA 근교 민영 ‘태프트 교도소’는 마치 대학캠퍼스 같은 느낌이었다.잔디가 깔린 운동장에서 평상복을 입고 축구를 즐기고 음악감상실에서 느긋하게 선율을 즐기는 재소자도 있었다.넓은 면회실에선 재소자들이 찾아온 가족들과 자유롭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는데 누가 재소자이고 면회객인지 구분되지 않을 정도였다.일부러 죄를 짓고 이곳에 들어오는 사람도 더러 있다고 했다. 민영교도소가 미국에 도입된 지는 20여년 되지만 유럽 초기의 교도소는 민간이 운영했다고 한다.중세의 구치감은 대부분 민간인이 맡았고 수용자로부터 비용을 징수하기도 했다.식민지 시절 미국도 사정이 같아서 재소자들이 수용비용을 지불하지 못해 노동력을 착취당하고 사망하는 일도 많았다.1666년에는 메릴랜드에 민영교도소가 생겨 정부와 민간기업이 계약을 맺고 수형자의 노동력을 사용했다. 이런 역사적 배경을 지닌 미국이 다시 민영교도소를 만든 것은 폭발적인 재소자 증가 때문이었다.미국의 민영교도소는 처음부터 영리 목적으로 출발한 기업형이다.미국 민영교도소 시장의 70%를 점유하는 CCA와 WCC는 영국과 호주 등지에 지사망을 갖춘 다국적 교정회사다.CCA는 뉴욕 증시의 상장기업인데 상장 당시 5000만달러였던 총자산이 12년만에 35억달러로 늘어 급성장한 회사 다섯 곳에 뽑히기도 했다.미국에서는 민영교도소가 가히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불릴 만한 사업인 것이다.민영교도소가 돈을 버는 것은 정부보조금을 받고 수용자들의 노동력으로 물건을 생산하기 때문이다. 비영리 민영교도소의 모범 모델은 브라질의 휴마이타 교도소로 미국과 비슷한 시기인 1984년 설립됐다.종교적 교화를 목적으로 하는 이 교도소는 재범률이 4%에 불과할 정도로 성공을 거두었다.수형자가 이곳에 도착하면 즉시 수갑을 풀어주고 “이 교도소에서는 사랑의 수갑이 당신의 마음을 묶습니다.”라는 말을 들려준다. 2006년에 경기도 여주에서 문을 여는 국내 첫 민영교도소는 기독교재단이 운영하는 브라질형 교도소다.인권단체들은 민영교도소가 종교적 자유를 박탈하고 노동력을 착취하거나 인권을 유린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한다.민영교도소가 성공하려면 이런 문제들이 해결돼야 한다. 손성진 논설위원 sonsj@seoul.co.kr
  • [논술 비타민] 미디어가 폭력이라니?

    [논술 비타민] 미디어가 폭력이라니?

    정보화가 급속히 진전되면서 사이버스페이스에 대한 논의가 활성화되고 있다.오른쪽 두 예시문에 나타난 사이버스페이스에서의 국가의 역할에 대한 입장의 차이가 무엇인지를 밝히고,바람직한 사이버스페이스의 발전을 위한 국가의 역할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논술하시오.(2004 서강대 논술고사 대비 예시 문제) (1) “산업세계의 정권들,너 살덩이와 쇳덩이의 지겨운 괴물아.나는 마음(Mind)의 새 고향 사이버스페이스에서 왔노라.미래의 이름으로 너 과거의 망령에게 명하노니 우리를 건드리지 마라.너희는 환영받지 못한다.네게는 우리의 영토를 통치할 권한이 없다.” 우리는 우리가 뽑은 정부가 없을 뿐 아니라 그것의 필요성도 느끼지 않는다.그래서 자유가 명하는 대로 네게 말하겠노라.우리가 건설하고 있는 전지구적인 사회 공간은 네가 우리에게 덮어 씌우려는 독재와는 무관한 것이다.너는 우리를 지배할 도덕적 권리도 없고 우리가 무서워할 만한 강제적인 방법도 갖고 있지 못하다. 정부는 시민의 동의에서 자신의 정당한 권력을 얻는다.너희는 우리의 동의를 얻지도 않았고 부름받지도 않았다.우리가 너희를 언제 초청했느냐? 너희는 우리에 대해서도 우리의 세계에 대해서도 전혀 모른다.사이버스페이스는 너의 관할권 바깥에 있다.사이버스페이스를 마치 공공 건설 사업쯤으로 생각하여 너희가 그것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너희는 만들 수 없다.사이버스페이스는 자연의 움직임이며 우리의 집단적인 행동을 통해 스스로 성장한다.너희는 우리의 위대한 대화에 참여하지도 않았으며 우리 시장의 부를 만들지도 않았다.너희는 너희의 법률이 얻는 것보다 훨씬 질서정연한 우리의 문화와 윤리,불문법에 대해 모른다. 너희는 우리에게 문제가 있으니 너희가 개입해서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주장한다.너희는 우리 구역에 침범하기 위한 구실로 이런 주장을 사용한다.하지만 그런 문제는 존재하지 않는다.진정으로 갈등이 있는 곳,문제가 있는 곳이 있다면 우리가 그것을 찾아내어 우리의 방법으로 그것을 밝히겠다.우리는 스스로 우리 자신의 사회 계약을 만들고 있다.이러한 집행은 너희의 세계가 아니라 우리 세계의 조건에 따라 생겨날 것이다.우리 세계는 너희의 세계와 다르다. 사이버스페이스는 웹에서 이루어지는 의사소통의 물결처럼 계약과 관계 그리고 사유 그 자체로 이루어진다.우리의 세계는 모든 곳에 있으면서 아무 곳에도 없지만 우리의 육체가 거하는 곳은 아니다.우리는 인종,경제력,군사력,태어난 곳에 따른 특권과 편견이 없이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그런 세상을 만들고 있다.우리는 비록 혼자일지라도 침묵과 동조를 강요당하지 않으면서 누구나 어디에서나 그의 믿음을 표현할 수 있는 그런 세상을 만들고 있다.너희가 생각하는 재산,표현,정체성,운동,맥락에 관한 법적인 개념들은 우리에게 적용되지 않는다.그것들은 물질에 기반 하는데 사이버스페이스에는 아무런 물질이 없다.우리의 정체는 너희와 달리 육체가 없기 때문에 물리적 강제력으로 질서를 만들 수 없다.우리는 윤리와 개명된 자기이해,그리고 공공복지에서 우리의 정체가 나타나리라 믿는다.우리의 정체는 너희의 관할권을 건너 퍼질 수 있다.우리의 선거인 문화가 일반적으로 받아들이는 법률은 황금률이다.우리는 이 근거에서 우리의 특수한 해결책을 만들 수 있기를 바란다. …(중략)… 너희의 진부한 정보산업이 미국이나 다른 곳에서 전 세계적으로 연설권을 확보한다고 주장하는 법률을 제안함으로써 자신을 존속시킬 수 있다.이들 법률은 아이디어를 쇳덩어리와 똑같이 취급하여 이것이 또 하나의 산업 생산물이라고 주장할 것이다.우리의 세계에서는 인간의 마음이 만들 수 있는 모든 것이 복제되고 아무런 비용 없이 무한히 배분될 수 있다.사고가 전 지구적으로 퍼지는 것은 너희의 공장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날로 늘어가는 적대적이고 식민지적인 조치들은 우리로 하여금 자유를 사랑하고 스스로 결단했던 자율적인 우리의 선조처럼 먼 곳에서 온 제복의 권위를 거부하도록 만든다.비록 우리가 우리의 육체에 대한 너희의 지배를 받아들이지만 이제 너희의 지배에 견딜 수 있는 우리의 가상 주체를 선언해야 한다.우리는 우리 자신을 지구 전체로 퍼뜨려 아무도 우리의 생각을 추적하지 못하도록 할 것이다. 우리는 사이버스페이스에서 마음의 문명을 건설할 것이다.그것은 너희 정부가 이전에 만든 것보다 더 인간적이고 공정한 세상이 될 것이다. (존 페리 바를로,사이버스페이스 독립선언서) (2) 1.기술은 중립적이지 않다.우리 시대의 가장 큰 오해는,기술은 생명이 없는 인공의 산물이기 때문에 아무런 치우침도 없다는 생각이다.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의도적이든 아니든 기술은 사회적,정치적,경제적 편향을 담고 있다.모든 기술적 도구들은 그 이용자들에게 세상을 보는 특정한 틀과 다른 사람과 반응하는 방식을 제공한다.여러 기술에 깃든 편견을 고려하고,그것이 우리의 가치관과 생각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파악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2.인터넷은 혁명적이지만,유토피아를 약속하지는 않는다.인터넷은 개인과 단체,기업,정부 등에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는 획기적인 커뮤니케이션 도구다.그러나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접속하면서,인터넷의 사이버스페이스는 현실 세계를 닮아가고 있다.따라서 인터넷의 장점만큼 그것의 뒤틀어지고 악의적인 면모에도 주목하지 않으면 안된다. 3.정부는 사이버스페이스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사이버스페이스는 치외법권 지역이 아니다.물론 이곳의 새로운 규칙과 관례를 존중하고,섣불리 비효율적인 규제나 검열을 시도하지 않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그러나 기술 표준과 사생활 보호 문제 등은 정부의 개입 없이 시장 논리에만 맡기기에는 너무나 중차대한 사안이다. …(중략)… 6.정보는 보호받아야 한다.사이버스페이스에서도 창안자가 주도권을 갖고 자신의 지적 산물을 통제해야 한다.그를 위해 낡은 저작권법은 수정 보완돼야 한다. (www.technorealism.org). 1.사오정 올림픽 폐인되다 “눈이 왜 그렇게 빨개?” 저팔계는 사오정의 초췌한 모습에 깜짝 놀랐다.“올림픽 때문에 그렇지 뭐! 누구 말마따나 왜 그리스에서는 축구를 새벽에 하는지 모르겠어.헤헤헤!” 사오정의 우스갯소리에 저팔계도 따라 웃었다.“너도 그 방송 봤구나.어쨌거나 유럽 쪽에서 경기하면 시차 때문에 잠을 설치게 돼서 좀 그렇더라.오죽하면 ‘올림픽 폐인’이라는 소리가 나오겠냐?” “맞아.새벽까지 경기 보고 인터넷으로 관련 소식 검색하다 보면 금방 날이 샌다니까.” 사오정은 연신 불평을 늘어놓으면서도 싫지 않은 표정이다.“그래도 우리 선수들 너무 자랑스럽잖아.탁구만 해도 김택수 코치가 후배에게 국가대표를 양보한 거 하며,유승민 선수가 6전 전패였던 상대를 결승에서 만나 불굴의 의지로 이긴 거 하며….” 사오정은 아직도 감격을 못 잊은 듯 주먹을 불끈 쥔다.“너도 완전히 올림픽 폐인 수준이구나.금메달을 따는 장면들도 재미있지만 메달은 못 땄었어도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꾸준히 노력해 세계의 강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최선을 다하는 모습들도 참 보기 좋더라. 이때,삼장 선생이 들어 왔다.“자,오늘도 문제를 하나 풀어볼까? 그런데 사오정 너 굉장히 피곤해 보이는구나.무슨 일 있니?” 올림픽 때문에 그렇다는 얘기를 들은 삼장 선생은 혀를 차며 말했다.“시험을 앞둔 녀석이 한가하기도 하구나.텔레비전을 보는 것은 좋다마는 너무 빠지면 텔레비전의 노예가 될 수 있으니 조심하렴.” 둘은 삼장 선생이 준 문제를 열심히 풀었다. 2.삼장,논점을 설명하다 “잘들 썼구나.이 문제는 두 예시문에 나타난 사이버스페이스에서의 국가의 역할에 대한 입장의 차이가 무엇인지를 밝히고,바람직한 사이버스페이스의 발전을 위한 국가의 역할에 대하여 자신의 견해를 논술하라는 것이다.어떤 내용이 포함되어야 하는지 보면,우선 각 예시문에 나타난 사이버스페이스에서의 국가의 역할에 대한 입장 차이가 정리되어야 한다.첫째 글에서는 사이버스페이스를 현실의 국가로부터 자유로운 ‘치외법권의 공간’으로 파악을 하고 있다.국가의 역할은 불필요하다는 입장이다.반면 둘째 글은 사이버스페이스가 무질서한 상태에 빠질 가능성이 있으므로 오히려 국가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입장이다.이런 점을 제시한 후 자기의 견해를 피력하면 될 것이다. 이 문제에서는 세 가지 관점의 답변이 가능하다.하나는 (1)의 견해처럼 사이버스페이스에서 국가의 역할이 불필요하다는 답변이고,둘째는 (2)의 입장과 같이 사이버스페이스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가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입장이다.셋째는 양자를 절충한 답변이다.가능한 답변의 방향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각각의 입장에 관한 뒷받침을 논리적으로 얼마나 설득력 있게 잘 표현하는가 하는 점이 관건이 될 것이다. 사오정은 인터넷을 즐기는 ‘올림픽 폐인’답게 사이버스페이스에서 국가의 역할은 불필요하다는 입장인데,비교적 논리적 뒷받침을 잘 하고 있다.저팔계는 양자의 입장을 절충해야 사이버스페이스의 발전을 도모할 수 있다는 취지의 글을 썼는데 어설픈 중재가 아니어서 다행이다.두 답변 모두 일리가 있는 내용이다.하지만 이 문제의 경우 사이버스페이스의 발전을 위한 국가의 역할을 묻고 있으므로 국가의 역할이 불필요하다는 극단적인 입장을 취하는 사오정의 답변보다는 양자를 합리적으로 절충해 나가야 한다는 저팔계의 답변에 더 높은 점수를 주고 싶구나.사실 두 제시문의 입장은 극단적인 해결 방안이기 때문이다.바람직한 발전을 위해서는 단점을 줄이고 장점을 살려야 한다는 점에서 보더라도 저팔계의 답변 내용이 좀더 바람직한 면이 있다고 할 것이다.이미 저작권 보호 문제,유해한 정보의 유통 문제,개인정보의 유출 문제 등 여러 병리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사이버스페이스가 저절로 유토피아가 될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이다.따라서 당장에 발생하고 있는 여러 문제를 해결하고 완화시키려는 노력은 필요한 것이며,현실적으로 국가만큼 이런 역할에 적합한 경우도 드문 점을 감안하면 국가가 어느 정도 역할을 해 줄 필요는 있다고 하겠다.다만 지나치게 개입할 경우 사이버스페이스의 최대 강점인 자유가 제한을 받을 소지가 있기 때문에 국가의 개입이 이런 장점을 약화시키지 않는 선에서 일정한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저팔계의 답변은 이런 점을 논리적으로 잘 표현하고 있다.” 3.삼장 선생 아쉬워하다 “참! 말이 나온 김에 정보화 시대와 관련해서 미디어 문제는 꼭 한 번 정리해 두기 바란다.아까 ‘올림픽 폐인’이라는 말이 나왔는데,그것도 엄밀히 말하면 미디어의 폭력이라 할 수 있다.사오정은 올림픽을 즐겼으니 그나마 다행이지만 운동 경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은 모든 방송이 올림픽 경기만을 중계해 주면 자기가 좋아하는 프로그램을 선택할 권리를 빼앗기는 결과가 된단다.결과적으로는 방송사가 일방적으로 ‘어떤 프로그램을 봐라.’하고 강요하는 셈이다.사실 요즘은 많이 없어졌지만 예전에는 이런 스포츠 중계를 이용해 민감한 정치적 사안을 희석시키고 국민의 관심을 딴 데로 돌리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하는 사례들도 있었단다. 최근 소위 정보화 시대에 접어들면서 미디어가 국가 사회는 물론이고 개인에게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대표적인 경우가 지난 대통령 탄핵 사태이다.탄핵에 좌절한 의원들의 모습이 가감없이 방영됐고,이는 탄핵을 주도한 정당들의 몰락으로 이어졌다.정보의 전달 매체인 미디어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이러한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미디어는 그 자체로서 또 하나의 권력을 지니게 되는데,이러한 권력이 남용되거나 오용되는 경우 폭력적이고 비극적인 결말을 낳을 수밖에 없다.특히 최근 인터넷 등을 통한 뉴미디어의 출현은 여러 가지 가능성과 함께 위험성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논란의 여지가 많은 부분이다.그만큼 논술 고사에서도 중요하게 취급될 소지가 높다.꼭 논술 고사 때문이 아니더라도 미디어 폭력의 희생양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감시의 눈초리를 거둬서는 안 될 것이다.따라서 미디어의 특성이나 현대 사회에서 미디어가 갖는 그 의미와 한계 등을 잘 정리해 둘 필요가 있단다.” 4.사오정,텔레비전을 끊다? “선생님,저 오늘부터 텔레비전 안 볼 생각입니다.” 사오정의 말에 삼장 선생은 눈이 휘둥그레졌다.“아니? 그럼 네가 좋아하는 올림픽은 어떡하고?” “헉!” 사오정은 잠시 생각하더니 “이번 올림픽은 이왕 보기 시작한 거니까 이번 올림픽까지만 보고 다음에는 안 보겠습니다.”라고 말했다.“허허! 그래 한번 보자.정말 텔레비전을 안 보나.그리고 텔레비전의 영향력이 막강하다고 해서 그것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닌데 그렇게 극단적인 행동을 하는 것을 보니 네가 미디어의 폭력성에 은연중에 물든 것 아니냐? 지나치게 자극적이니 말이다.허허허!” 사오정은 쑥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사실은 자신 없어요.텔레비전 없이 어떻게 살아요.” “네가 그러면 그렇지.아예 텔레비전하고 살아라.살아.” 삼장 선생과 저팔계는 박장대소했다. 다음 주에는 ‘그래도 인간인데?’라는 제목의 강좌가 진행됩니다. 논술과 심층면접 지상강의 내용에 대해 이해가 안 되거나 궁금한 점이 있으면 http://cafe.daum.net/seoulinseoul로 문의하면 선생님들의 조언과 설명을 들을 수 있습니다.
  • 시민단체들 ‘日우익교과서 채택’ 분노

    일본 도쿄(東京)도 교육위원회의 후소샤(扶桑社)교과서 채택 사실이 알려지자 관련 시민사회단체는 ‘채택 철회’를 요구하며 거세게 반발했다.주변 강국인 중국과 일본이 앞다투어 역사왜곡에 나서는 상황을 우려하며 우리 정부의 적극적인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한·중·일 3국의 역사왜곡 시정운동단체로 이뤄진 ‘아시아평화와 역사교육연대’는 26일 성명을 내고 “한·일 양국의 화해와 공존에 찬물을 끼얹는 처사”라면서 “도쿄도 교육위원회는 위험한 역사왜곡 교과서인 후소샤 교과서 채택을 즉각 철회하라.”고 촉구했다.이들은 또 “일본 정부는 침략사실을 반성하고 올바른 역사교육을 실시해야 한다.”고 성토했다. 이들은 “후소샤 교과서는 과거 일제의 침략전쟁을 옹호하고 국익을 위한 방편으로 전쟁을 미화하고 있다.”면서 “특히 일제 식민지시대 피해자들의 고통을 외면한 채 일본군 위안부와 강제동원을 정치적이라고 말하는 등 식민지 피해 자체를 부인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지난 2001년 후소샤 교과서의 전국 채택률이 0.039%에 그쳤을 때도 장애인학교에 이 교과서를 채택했던 도쿄도 교육위원회가 또다시 기만적 행위를 저질렀다고 규탄했다. 이들은 “3국의 시민사회단체들은 역사왜곡을 바로잡는 길이 동북아 평화의 지름길이라고 생각해 역사 인식공유와 화해를 위한 한·중·일 공동역사 부교재 발간을 눈앞에 두고 있다.”면서 “도쿄도 교육위원회도 반역사적인 교과서 채택을 철회해 수도 도쿄가 군국주의 부활을 주도하는 역사 왜곡세력의 거점이 아닌 아시아 평화의 발상지로 거듭나기를 바란다.”고 주장했다. 태평양전쟁피해자 보상추진협의회 이희자 공동대표는 “일본이 자신의 잘못을 덮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후세에게 부끄러운 것이 무엇인지 숨기고 거짓 역사를 가르치려 한다.”면서 “잘못을 끝까지 인정하지 않으려는 일본의 모습에 분노를 넘어 불쌍하다는 생각까지 든다.”고 말했다. 민족문제연구소 방학진 사무국장은 “이번 일본의 후소샤 교과서 채택은 대단히 유감스러운 일”이라면서 “중국에 이어 일본까지 역사 왜곡에 나서는 상황을 예의주시해야 한다.”고 우려했다. 그는 “이같은 현상은 자국의 이익을 강화한다는 측면도 있지만 우리 스스로 우리의 역사를 제대로 정리하지 못해 빌미를 주는 측면도 있다.”며 역사 재평가 작업 등 대책마련을 호소했다. 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도쿄都 ‘왜곡교과서’ 첫 채택…정부 “유감”

    도쿄都 ‘왜곡교과서’ 첫 채택…정부 “유감”

    |도쿄 이춘규특파원·서울 이지운 기자|일본 도쿄(東京)도(都) 교육위원회가 내년 4월에 개교할 첫 도립 중·고 일관교육학교인 하쿠오(白鷗)고교부속중학교가 사용할 역사교과서로 우익단체 ‘새로운 역사를 만드는 모임’이 만든 후소샤(扶桑社)판을 채택키로 결정했다. ‘새역모’의 후소샤판 역사교과서는 난징(南京)학살과 조선인 및 군대위안부 강제연행 등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고 침략전쟁을 정당화해 2001년에 이미 큰 파문을 일으킨 바 있다. 이에 대해 외교통상부 신봉길 대변인은 “일본의 자국중심주의적 사관에 입각해 과거의 잘못을 합리화하고 있는 ‘후소샤’ 교과서를 채택한 데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논평했다.그는 이어 “일본 스스로 과거를 직시하고 역사인식 문제 해결을 위해 지혜를 찾는 노력을 보다 강화해 나갈 필요가 있음을 강조한다.”고 덧붙였다. 특히 ‘새역모’가 일본 문부과학성에 검정을 신청한 내년도 개정판은 2001년 외교 파문을 일으킬 당시 난징학살과 조선인 및 위안부 강제연행 등에 대해 모호하게나마 일본의 잘못을 인정했던 부분을 아예 삭제한 것으로 알려져 파장이 확대되고 있다. 이 교과서는 특히 ▲한국합병이 동아시아를 안정시켰다 ▲식민지배가 조선 근대화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는 식의 국수주의적 주장과 함께 ▲제2차 세계대전을 대동아전쟁으로 표기 ▲임나일본부 존재 기정사실화 등을 비롯해 곳곳에서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 26일 오전 도쿄도 제2청사에서 열린 도쿄도교육위원회 회의에서 6명의 위원중 5명이 후소샤판 채택에 찬성했다. ‘새역모’는 외교문제를 일으켰던 2001년에 자신들이 만든 교과서가 “학생수 기준 10%가 채택토록 한다.”는 목표를 세웠으나 실제 채택률은 0.1%도 되지 않았다. 올해 이 교과서를 사용한 공립학교는 도립양호학교 2개와 에히메(愛媛)현에 있는 농·양호학교 5개 등 모두 10개다.‘새역모’ 교과서 채택에 반대하는 시민단체 ‘에히메 교과서재판을 지지하는 모임’의 오쿠무라 에쓰오(奧村悅夫)는 이날 결정에 대해 “학생들에게 전쟁 찬미사상 주입을 목표로 한 것”이라며 “도쿄도 교육위원회의 결정에 분노를 느낀다.”고 말했다. ●‘새역모’ 어떤 단체인가 1997년 도쿄대학 후지오카 노부카쓰(藤岡信勝) 교수와 전기통신대학 니시오(西尾)교수 등이 중심이 돼 만든 우익단체로 ‘자유사관에 입각한 민족주의’를 표방하고 있다. tae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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