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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린세상] 시간의 힘/이공주 이화여대 분자생명과학부 교수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들어가 첫 월급을 탔을 때의 일이다. 어머니는 한 달치 적금이 입금된 3년만기 통장을 건네며 “이제 월급을 받으니 돈도 모아야 한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매월 일정액을 36번이나 넣어야 하는 것이 너무 지루해 어머니 몰래 적금을 해약해 버렸다. 젊은 나이에는 시간 감각이 지금과는 달라 3년을 참 길다고 느꼈던 것 같다. 그 후로 3년씩 무려 5번,15년이나 흐른 지금은 한 해 한 해가 왜 그리도 빨리 가는지…. 작은 게 쌓여 큰 게 되는 것을 몰랐던, 성급했던 시절이었다. 낙엽 지고 추운 겨울이 되면 대학에 새내기가 들어오고, 졸업해서 나가는 정든 얼굴들은 진로를 선택해야 하는데, 나의 젊은 날처럼 결정을 내릴 때 성급함이 군데군데 묻어 있음을 본다. 그들은 어느 직업이 좋으니 무슨 과를 꼭 가야 하고 초임이 많고 대기업이기 때문에 어느 회사에 가야 한다며, 마치 그것만이 최선의 선택인 것처럼 모든 것을 건다. 국가가 가야 할 길을 결정할 때나 개인이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할 때, 혹은 작은 일을 결정할 때도 시간이라는 요인을 고려하지 않고 바로 눈앞의 이해나 가까운 미래만 생각하곤 한다. 앞으로 1년,5년,20년 후를 생각한다면 현재의 선택이 확 바뀌게 될지도 모르는데…. 정확하게 예측하고 방향을 잘 정하기 위한 선택은 흔히 과거의 역사에 근거해 판단하는 것이다. 우리는 불행하거나 성공한 역사를 모두 가지고 있어 무엇에 근거해 판단해야 할지 혼돈스러울 때가 많다. 과학사에서 보면 20세기 초에야 현대 물리학의 기본 개념이 확립됐다. 화학에서는 주기율표가 완성돼 공유결합 등에 대한 개념이 정립됐고,20세기 중반엔 DNA 구조가 처음 밝혀졌다. 그후 50년이 지난 21세기 벽두에 사람의 유전자 배열을 전부 밝히게 됐다. 그러나 우리 역사에서 20세기 초반을 생각해 보면, 일본에 나라를 빼앗겨 36년간 정지된 역사를 갖고 있다. 세계가 뛰어가고 있을 때 우리는 무엇을 했는가. 어두운 역사를 되새기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하는 한심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현재의 우리를 돌아보면,50여년 전 전쟁의 폐허에서 시작해 자동차·철강·조선·반도체를 거쳐 정보산업에 이르기까지 큰 발전을 이루었다. 이런 과정에서 다양한 정치·사회적 변화도 겪었다. 빠른 변화로 부작용도 많았다. 그러나 넓은 땅을 갖고 있지도 않고 식민지에서 여분의 부를 가져오지도 않았으면서도 짧은 시간에 이만큼 성장한 나라는 지구상에 한국밖에 없다. 이런 성공의 역사를 생각하면 10∼20년의 노력은 세계를 바꿀 수 있다는 매우 긍정적인 사고를 낳을 수 있다. 역사 속에서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철학도 상반되는 게 많다. 국가적 방향 설정을 위해 외국인의 견해에 의존하거나 벤치마킹을 해야 한다는 주장을 자주 접한다. 그러나 우리는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 성공했고, 우리의 크기, 사회환경에 따라 지향점을 정할 수 있다. 우리가 정한 방향은 곧 세계의 새로운 방향이 될 수 있다는 자신감도 가져야 한다. 짧은 시간에 매우 상반된 역사가 정착되지 않은 채 새로운 혼돈 속으로 흘러가고 있다. 무엇이 옳은지, 무엇이 소중한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요즘 가치관의 부재로 심란하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해야 할 일, 이루어야 할 일들을 누군가가 오랫동안 차분히 이루어 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들은 목소리가 크지도 않았고 주장이 강하지도 않았다. 자기 인생을 바치는 것이어서 그 일을 소중하게 생각했을 뿐이다. 일이 잘 되도록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인다면, 시간을 들여 차곡차곡 이룬 일이라면 쉽사리 무너지지 않는다. 해야 할 일을 차분히 이룩해 내는 것을 가장 큰 미덕으로 생각하는 사회, 일은 하지 않으면서 입으로만 떠벌리는 자는 반드시 힘을 잃어 버리는 사회, 시간을 들여 하나씩 쌓아가는 것만이 발전의 축이 된다는 철학을 가진 사회가 되기를 희망해 본다. 이공주 이화여대 분자생명과학부 교수
  • ‘인디언 시내출입 금지’ 규정 보스턴市, 329년만에 폐지

    |뉴욕 연합|인디언은 시내에 출입하지 못한다는 미국 보스턴시의 낡은 규정이 무려 329년만에 폐지된다고 뉴욕 타임스가 25일 보도했다. 신문은 토머스 메니노 보스턴 시장이 1675년 제정된 ‘인디언 수감법’의 폐지 청원에 서명해 의회로 넘겼으며 시의회는 12월1일 이 청원을 심의, 통과시킬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이후 미트 롬니 매사추세츠 주지사가 폐지 법안에 서명하면 이 법은 공식 폐지된다. 영국 식민지 시대의 보스턴시는 매사추세츠주 인디언 부족인 왐파노아그족과 인근 플리머스시 백인 정착민 사이의 전쟁이 절정에 달했을 무렵인 1675년 인디언들이 시내에 출몰해 시민들에게 해악을 끼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이 법을 제정했다.
  • [열린세상] 사립학교 이사회 개방해야/박상기 연세대 법대학장

    4대 개혁 입법안을 놓고 여야 대치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특히 사립학교법 개정안의 경우 구체적 사실관계에 대한 현격한 진단의 차이로 인해 접점을 찾기가 어려워 보인다. 사립학교 운영과 관련해 사학재단이 오랜 세월동안 누려온 독점적이고 배타적인 기득권이 사라질 위험성이 있다는 판단이 사학재단으로 하여금 거리로 나서게 한 것 같다. 교육은 국민이 받아야 할 기본권이다. 교육의 본질은 인간적 가치를 깨우치게 하고 인간이 스스로의 능력을 발현할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육은 국가가 맡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식민지화에 이어 전쟁으로 인해 국가재정이 국민 교육을 모두 감당할 수 없었다. 그 결과, 외국에 비해 많은 사립학교들이 설립되었다. 대학교육의 80% 이상을 사학이 담당하고 있다는 사실에서도 확인된다. 초창기의 사립학교는 주로 외국 선교사에 의해 설립되어 우리나라 최초로 근대교육을 실시한 공적이 크며, 선각자적 정신으로 사재를 학교설립에 보탠 경우도 많다. 이들의 건학정신은 학교를 사적 재산으로 생각하기보다 훌륭한 인재를 길러내는 요람으로 발전하기를 바랐던 측면이 강하다. 이렇게 설립된 사립학교는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의 교육열로 인해 무섭게 양적 성장을 거듭했다. 허술한 교육시설을 가지고도 학생모집에는 별 어려움이 없었다. 등록금은 교육환경이 우수한 학교와 같거나 더 비싸도 학생들은 몰려왔다. 재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처럼 수지맞는 시장에 뛰어들고 싶은 유혹을 뿌리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후죽순 격으로 수많은 사립학교가 생겨났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학교를 설립하면 대외적으로는 그럴듯한 육영사업가로 비치고, 내부적으로는 축재의 훌륭한 수단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하였던 것이다. 사학재단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사립학교법은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는데 더할 나위 없는 방어망이 되었다. 교육은 공공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학교의 교주는 종교적 교주가 신앙을 전파하듯이 교육을 전파하는 것이 아니다. 건학이념이 있다고 하지만 그것이 교육의 공공성과 배치된다면 그러한 건학이념은 잘못된 것이다. 사학관계자들은 사립학교법 개정안에 대해 학교법인 이사회에 개방형 이사를 도입하는 것은 건학정신에 위배되기 때문에 반대한다고 하지만 법인이사회의 개방성이야말로 학교운영을 투명하고 공정하게 하는 첫걸음이다. 폐쇄적이고 독점적인 이사회 구성은 그 운영 역시 학교 구성원들의 의사와 배치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노동조합과 같은 이익단체가 목적 달성을 위해 법인이사회를 장악하려는 시도를 우려할 수는 있다. 그러나 개인의 이익보다 학교발전에 더 관심이 많은 외부인사를 이사회에 포함시키는 것이 건학정신을 구현하지 못하도록 하는 이유는 아닐 것이다. 교사나 교수를 채용하는 절차에서도 교사나 교수의 의견을 존중하는 것이 이사회가 전권을 행사하는 것보다 분명히 낫다. 절차가 투명해질 것이고 이를 통해 인사비리가 사라지며 보다 우수한 사람이 임용될 것이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될 것임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사립학교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학교를 폐쇄하겠다는 사학재단 이사회의 결의는 열심히 가르치고 공부하는 수많은 교사와 학생들을 교육의 주체가 아니라 사학의 한낱 부속물로 여기는 것이나 다름없다. 교육의 본질에서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다. 우리나라에는 순수한 육영가의 정신으로 설립된 학교도 적지 않으며 건전한 사학도 많다. 그러나 학교 운영구조가 잘못되거나, 능력은 없으면서 사욕으로 가득한 운영자에 의해 학교가 피폐해지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교육의 공공성을 회복하고 학교운영의 투명성을 확보하는 것만이 이를 막을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사립학교법 개정은 필요하다. 박상기 연세대 법대학장
  • “볼것없고 무서워”…해외 관광사이트 정보왜곡

    “볼것없고 무서워”…해외 관광사이트 정보왜곡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서울은 적절한 곳이 못 된다.”(싱가포르 여행정보 사이트) “한국은 시위가 많으며, 시위가 폭동으로 돌변하기도 한다.”(호주 여행정보 사이트) 외국인들이 한국 방문을 꺼리게 만드는 이 같은 왜곡 정보가 ‘관광 한국’의 위상을 위협하고 있다. 21일 국정홍보처 해외홍보원에 따르면 지난 1일부터 진행중인 ‘인터넷 오류찾기 대회’에 하루 70∼80건의 오류신고가 접수되고 있으며, 이 가운데 상당수가 한국의 이미지를 왜곡하는 정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해외홍보원에는 1200여건의 오류 신고가 접수됐으며, 오류찾기는 다음달 10일까지 계속된다. ●외국인 관광객 유치 걸림돌 인터넷은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의 첫 인상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정보. 해외 인터넷 상에 떠돌아다니는 한국 관광 정보가 외국인들의 ‘한국행’을 가로막고 있다는 게 여행업계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해외홍보원에 접수된 사례에 따르면 싱가포르 유력 여행정보사이트인 ‘도아시아’는 “서울은 네온사인과 콘크리트 뿐이며, 새들도 나무도 없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사람에게는 적절한 곳이 아니다.”고 소개했다. 또 호주 외무부 여행정보에는 “한국은 교통사고 사망자가 가장 많은 국가중 하나다. 시위가 자주 있으며, 폭동으로 돌변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스페인 여행정보공유사이트에는 한국의 국가 명칭을 ‘남조선’으로, 동해를 일본해로 오기한 데 이어 스페인 야후 여행정보사이트에는 한국의 주요 산업이 농업이며, 국제 공항이 김포공항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또 피레네 세계 민속축제 공식웹사이트에는 한복이 기모노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적었고, 미국 여성 정보공유사이트에는 태권도가 일본 식민지 시대때 일본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기술했다. 여행업계 관계자는 “왜곡된 정보로 인해 외국인들이 아직도 한국을 전쟁중인 국가, 또는 범죄가 많은 후진국, 볼 것 없는 나라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다.”면서 “외국인 관광객의 적극적인 유치를 위해서는 인터넷 등지의 한국 이미지 개선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쉽지 않은 오류 수정 해외오류가 발견된다고 하더라도 수정이 쉽지 않다는 게 더 큰 문제다. 미국 국무부가 “서울 등 한국의 대도시는 소매치기, 날치기, 폭행, 호텔 절도 등의 범죄율이 더 높고 외국인도 그 대상이 될 수 있다.”고 기술했고, 캐나다 외교부 웹사이트의 “캐나다인 또는 외국인에 대한 성범죄가 발생할 수 있다.”고 적은 사실이 지난 8월 밝혀졌으나 수정되지 않은 상태다. 해외홍보원이 미국 CIA의 ‘월드팩트북’에 노무현 대통령의 영문 표기의 성을 ‘NO’에서 ‘ROH’로 바꾸기 위해 9차례나 끈질긴 시정요청을 한 끝에 지난달에야 겨우 시정할 수 있었다는 것은 이를 반증한다. 정부 관계자는 “해당 국가가 자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차원에서 올린 주관적인 글로 일방적인 수정요구가 어렵다.”고 털어놨다. ●정부차원 대응 시급 해외 오류를 시정하는 노력은 시민단체인 ‘반크’의 활동 덕분에 정부 차원으로 확산되고 있지만 여전히 미미한 수준이다. 해외홍보원은 지난달 초에야 ‘오류시정 전담팀’을 만들어 인력을 11명에서 14명을 보강했다. 그러나 인력의 상당수가 여전히 계약직 신분이며,1년 예산도 계약직 인건비를 포함해 2억 6000만원에 불과한 상태다. 유재웅 해외홍보원장은 “현재 지명 또는 역사 표기 오류 등의 경우 상당수 수정을 하는 등 많은 부분이 개선됐다.”면서 “그러나 주관적인 내용의 수정이 경우 쉽지 않은 만큼 외교적인 접근을 통해 한국에 대한 이미지 개선하는데 역점을 두겠다.”고 설명했다. 유 원장은 이어 “국내 거주 외국인에 대한 홍보와 함께 정부와 민간이 합동으로 대책반을 만들어 해당 국가의 친한파 인사 등을 동원하는 등의 개선하는 방안을 마련중에 있다.”고 덧붙였다.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열린세상] 강한 자만이 남을 칭찬할 수 있다/이정옥 대구 가톨릭대 사회학교수

    일본이 올해의 언어로 ‘욘사마’를 정했다고 한다. 이 소식을 접하면서 기쁨보다 놀라움이 앞섰다. 최근 태국 방콕에서 열린 회의에서 만난 베트남 사회학교수가 들려준 베트남에서의 ‘대장금’ 열풍과 겹쳐 한국 대중문화의 저력을 인정받는 기쁨보다 한국 TV 드라마 주인공의 애칭을 자기들의 한해 언어로 선정한 일본 사회의 내적 자신감과 국경을 뛰어넘는 열린 마음에 대한 놀라움 때문에서다. 니가타 강진의 여파로 흔들리는 도쿄의 식당에서 한·일시민사회포럼 준비를 위해 일본의 대학교수, 언론인, 변호사들과 자리를 함께했다. 화제는 그날 있었던 한국의 헌법재판소 판결결과와 일본의 욘사마 신드롬이었다. 참가자 대부분이 남성들이었던 만큼 일본 중년여성의 욘사마 열풍에 그들도 놀랐다는 반응이다. 일본 공영 NHK-TV에서는 배용준의 ‘겨울연가’를 세차례나 방영했고 고이즈미 일본 총리가 욘사마의 인기에 질투를 느낄 정도라는 등의 이야기가 꼬리를 물었다. 내년은 을사보호조약으로 주권을 잃은 지 100년이 되는 해이다. 침략과 피침, 억압과 저항, 정복과 해방으로 점철된 한·일의 비극적인 역사가 공식적으로 시작되는 것도 을사보호조약이다. 내년 중 일본은 역사교과서를 새로 채택하게 된다. 일본 시민사회의 개입이 실험대에 오르는 해가 바로 내년이다. 이런 무거운 이야기를 덮는 화제가 욘사마였다. 욘사마의 소식을 접하면서 미국 하버드대 데이비드 란데스 교수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란데스 교수는 저서 ‘부자 나라, 가난한 나라’에서 일본 근대화의 성공 요인을 강한 정신적 자신감으로 풀이하고 있다.19세기 말 제국주의 세력의 서세동점(西勢東漸) 시대에 일본이 유일하게 근대화에 성공을 거둔 이유는 강한 정신적 자신감이라는 인프라에 터를 두고 겸손하게 강자의 장점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강한 정신적 자신감을 바탕으로 마음의 문을 열고 강자의 장점을 받아들일 수 있었기 때문에 더욱 강자가 될 수 있었고, 강자가 될수록 더 한층 마음의 문을 열고 겸손해 지면서 타인의 지적 자산을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일본은 서방 선진국에 대해 겸손을 무기로 삼는다. 그들은 자기보다 앞선 사람들의 이야기를 열심히 기록하고 녹음하며 사진을 찍는다. 겸손을 통해 강자의 자부심과 자만심을 부추겨 무장해제시킴으로써 강자들이 갖고 있는 모든 것을 털어놓게 한다는 것이다. 일본의 경제적 성공은 식민지 지배를 볼모로 한 것이라는 우리의 상투적인 생각과는 다른 란데스 교수의 분석을 접하면서 우리가 반성해야 할 부분을 지적당한 느낌이다. 욘사마 신드롬을 보는 우리의 시선은 한류 열풍에 대한 자화자찬이 대부분이다. 어떤 동료는 사실은 번역이 잘 되어 한국에서 우리가 보았던 ‘겨울연가’와는 수준이 다른 것이라는 해석을 내놓기도 한다. 그렇지만 한번쯤 입장을 바꾸어 올해의 언어를 딱 하나만 고르라고 했을 때 이웃나라 대중문화 주역의 애칭을 선택할 용기가 있을까 자문해본다. 타인을 존중하지 않는 자는 자기 자신도 존중하지 않는 자이다. 타인을 존중하지 않고 칭찬에 인색한 자는 그만큼 내적 자신감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욘사마 이야기와 관련해서 떠오르는 것은 지나친 사고의 비약일까. 상대방을 전혀 존중하지 않는 정치권의 공방이 국민들까지 편 가르기를 부추기고 있다. 나를 존중할 때 사실은 상대방도 존중할 수 있다. 표현이 무엇이든 그것이 나라 사랑이라는 동기에서 나왔다는 것을 인정해줄 때 상대방의 장점이 보이고 마음의 문도 열리는 법이다. 우리끼리 마음의 문을 열지 않고서는 세계화의 파고를 이길 수 없다. 을사보호조약 100주년을 앞두고 일본과 우리의 선택을 다시 비교해본다. 욘사마와 일본인, 그리고 세계화와 열린 마음, 열린 사회와 관련해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오른다. 진정 강한 자만이 남을 칭찬할 수 있는 것이다. 이정옥 대구 가톨릭대 사회학교수
  • 성스러운 암소신화/드위젠드라 N 자 지음

    성스러운 암소신화/드위젠드라 N 자 지음

    요즘 정치권에서는 ‘정체성’이란 단어가 유행이다. 그런데 선험적으로 주어진 정체성이란 게 있을까. 혹은 누가 일률적으로 정할 수 있을까. 그런 식으로 정체성을 일방적으로 규정하는 것 자체가 폭력이 아닐까. 이런 의문을 가진 사람이라면 인도 델리대학 역사학과 교수 드위젠드라 N 자(Jha)의 ‘성스러운 암소신화’(이광수 옮김, 푸른역사 펴냄)는 꽤 흥미로운 책이 될 듯하다. ●참고문헌 목록 100쪽 넘어 ‘인도 민족주의의 역사만들기’라는 부제가 보여주듯 이 책은 ‘인도답다.’의 간판격인 암소숭배가 착각에 지나지 않음을 논증하고 있다. 논증은 일일이 증거를 들이대는 우직한 방식이다.180여쪽 분량의 본문을 떠받치기 위해 고고학적·역사학적 각주해설과 참고문헌 목록은 100쪽이 넘게 이어진다. 자 교수는 인도문화 형성기인 베다시대(BC 1500∼BC 600년) 초기를 다룬 문헌 ‘리그베다’에서 200∼300 마리 정도의 소를 한꺼번에 죽여 제사지냈다는 광범위한 자료를 찾아낸다. 물론 베다시대 말기부터 살생금지를 주장하는 일부 문헌이 나타난다. 이 때쯤 등장하는 불교와 자이나교는 살생금지를 중요한 덕목으로 제시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암소가 신성해서가 아니라 유목생활이 농경생활로 바뀌면서 소, 특히 새끼를 낳는 암소를 무더기로 죽이는 것이 비경제적이었기 때문이다. 현대 인도에서도 암소는 유유자적 노니는 게 아니라 밭을 갈고 수레를 끈다. 인도의 연간 쇠고기 생산량은 놀랍게도 114만t에 이른다. 자 교수는 “암소 여신도, 암소를 모신 사원도 존재한 적이 없다. 뭐라고 말하든지 (암소숭배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다.”는 당연한 결론에 이른다. 남은 의문은 ‘누가 왜?’이다. 대답은 인도의 식민지배 경험, 이슬람교 국가인 파키스탄과의 카슈미르 분쟁, 그리고 그 틈바구니에서 자라난 광적인 힌두민족주의다. 사실 역사해석이 현재와 밀접한 연관이 있고 필요에 따라 변형되기도 한다는 게 아주 새로운 시각은 아니다. 영국 역사학자 에릭 홈스봄이 ‘만들어진 전통’이란 책을 엮어낸 1983년 이래 서구에서는 근대국가라는 개념 자체가 상징조작으로 이뤄졌다는 연구서가 쏟아져 나왔다. ●인도선 출판 거부당해 그럼에도 이 책이 예사롭지 않은 까닭은 자 교수가 책을 쓰기 전후의 상황 때문이다. 자 교수는 옛 조상들이 쇠고기를 먹었다는 사실을 논증한 학자에게 ‘마르크스주의자’라는 딱지가 붙는 상황에 분개해 이 책을 썼다. 그러나 인도 내 출판은 거부당했고 힌두민족주의자들은 온갖 소송과 협박으로 자 교수를 압박했다. 정체성을 일방적으로 규정한 뒤 상대를 마르크스주의자로 몰아가는 게 낯선 풍경만은 아니지 않은가. 우리에게 다소 낯선 인도역사를 다루고 있어 술술 읽히지 않는 게 흠.1만 5000원.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盧, 역대 대통령 ‘품평’ 눈길

    |산티아고(칠레) 박정현특파원|칠레를 공식 방문 중인 노무현 대통령이 역대 대통령들을 품평해 눈길을 끌었다. 노 대통령은 18일 오후(한국시간 19일 오전) 숙소 호텔에서 가진 동포간담회에서 “남미를 순방하면서 한국에 대해 생각을 많이 했다. 왜 한국이 성공했을까.”라면서 “예전 지도자들이 실책이 더러 있었지만 그래도 한가지씩은 다 했고 국가 발전에 필수불가결한 몇가지를 해놨다.”며 역대 대통령들의 업적을 순서대로 짚었다. 노 대통령은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해 “자유당 시대를 완전히 독재시대, 식민지에서 해방됐지만 암흑시대, 어두컴컴한 시대로 생각했는데 그때 토지개혁, 농지 분배를 했다.”며 “지나고 보면 정말 획기적 정책이고 역사를 바꾼 사건이 아니었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그것을 해서 한국전쟁이 터지면서 국가 독립, 안전을 지켜냈고 국민이 하나로 뭉쳐 체제를 지켜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어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그 뒤 하나하나 다 얘기하지 않더라도 독재라는 부정적 평가를 받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산업화 과정을 이뤄왔고 여기까지 왔다.”며 평가했다. 노 대통령은 또 “김영삼 전 대통령, 김대중 전 대통령은 더 설명하지 않아도 한몫씩 다 잘했다.”면서도 “(그러나) 다음 시대에 숙제를 한가지씩 꼬박꼬박 넘기긴 했다. 저도 풀어야할 숙제가 있는데 잘 풀어내겠다.”고 묘한 여운을 남겼다. 자신에 대해서는 “다음 대통령에게는 너무 어려운 숙제를 넘기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 박수를 받기도 했다. jhpark@seoul.co.kr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39)속초 아바이마을의 삶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39)속초 아바이마을의 삶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 찬 흥남부두’에 목을 놓아 불러도 보고, 찾아도 봤던 그 금순이는 어디로 갔을까.‘피눈물을 흘리면서 1·4 이후 나홀로 왔다.’던 무수한 그 ‘아바이’들은 어디로 갔을까. 속초시의 바닷가 마을 청호동의 이른바 ‘아바이마을’로 더 유명한 ‘함경도촌’을 찾아가면 그네들이 살아온 삶의 내력을 엿볼 수 있다. 속초에서 서울로 오자면 미시령을 넘게 마련인데, 그 고갯목에 차를 세우고 굽어보면 속초 시내와 동해가 한 눈에 들어온다. 왼쪽의 영랑호, 오른쪽의 청초호, 그 뒤편으로 동해가 배경막처럼 놓여져 산과 바다와 호수의 동네임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그토록 아름답던 청초호의 길이 1㎞, 너비 80여m 남짓한 백사장에 함경도 피란민들이 처음 피란선의 닻을 내렸다. 그럭저럭 살다보면 돌아갈 수 있으려니 생각했으나 영영 불귀의 몸이 되어 하나, 둘 세상을 떠났다.1세대 세상은 거의 막을 내렸고,2세대도 이제는 거의 중년을 넘겼다. 그렇게 50여년을 청초호 바닷가에 뿌리 내리고 살았다. 속초는 본디 자그마한 읍내였다. 속초면이 속초읍이 된 시점이 1942년, 해방 이후는 38선 이북에 포함되어 있었다. 설악산을 병풍처럼 끼고 있고, 석호가 그야말로 그림같이 펼쳐져서 시인묵객들이 풍류를 즐기던 관동팔경의 하나이다. 주민들은 어업보다 주로 농업에 종사했다.1930년대, 정어리떼가 청초호로 몰려들어 배들이 새까맣게 닻을 내렸을 때도 정작 속초배들은 별로 없었다. 전쟁은 중앙의 역사만이 아니라 지역사도 송두리째 바꿔 놓았으니 속초도 예외가 아니었다. 어업에 종사하는 피란민이 원주민보다 많아지면서 급속도로 어업 중심지로 바뀌었다. 종전 이후에도 연고를 찾아 몰려드는 연쇄 이동이 맞물렸다.‘일가 친척 없는 몸’들이 고향 사람을 찾아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5만여명이 배를 타거나 육로로 내려와 이곳에 여장을 풀었다. 선단을 이룬 이들은 청초호 모래톱에 배를 댔다. 육로로 내려온 이들은 학사평(지금의 공설운동장 쪽)에 ‘해방촌’을 꾸렸으나 차차 흩어져서 도시 속에 녹아들었다. 반면, 본디 어업에 종사하던 청호동 사람들은 강인한 단결력을 과시하며 지금껏 버티고 있는 중이다. ●쌀로 빚은 가자미식해·북청 사자놀이 일품 함경도, 그 중에서도 함경남도 사람들이 7할 정도 차지한다. 정평 이원 영흥 단천 흥원 신창 신포마을 등 청호동 집단취락명은 이네들이 내려와서도 응집력을 갖고 살아왔음을 웅변한다. 이 중에서도 단천과 신포마을이 헤게모니를 쥐고 살았다. 속초에는 지금도 함남도민회, 원산시민회, 함흥시민회, 북청군민회 등등 무수한 ‘월남 조직’이 있어 ‘피란민 도시’의 면모를 보인다. 이들이 석호의 모래톱에 불과한 청호동을 선택하게 된 동기는 무엇보다 국가 소유 해빈(海濱)인지라 무단 정착이 용이하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가지고 있는 유일한 밥벌이 기술’인 어업을 지속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분단기에 이북 어민들이 전국 해안에 뿌리를 내리면서 ‘어업의 장기지속성’을 보여준 사실에 대한 연구는 본격적으로 이뤄진 적이 없다. 그러나 전국을 돌아보면 해안 곳곳에 이들이 정착했음을 알 수 있다. 가령 서해안 덕적도 진리포구는 황해도민이 집단 거주하며, 화성의 마산포같이 작은 포구에도 황해도촌이 존재한다. 인천시 화수부두에도 유별나게 황해도민이 많았으니, 김금화같은 무당들이 인천을 거점으로 배연신굿을 하는 토대도 바로 이곳이다. 전쟁때 선단을 통한 대대적인 피란과 정착이 이뤄졌음을 말해준다. 모진 해풍이 불어닥치는 낯선 바닷가에 당도하여 고생고생한 대목은 필설로 이루 말하기 어렵다. 한 마디로 분단의 비극이었다. 미군부대의 철조망 주변에 널린 레이션 박스를 주워 오고, 부서진 배 등을 엮어서 집이랄 것도 없는 집을 지었다. 겨울이 오면 흙을 발라서 흙집이 되었다. 구겨진 드럼통을 펴서 지붕을 얹기도 했고, 주변에 돌아다니는 모든 물건들을 주워 모아 청호동을 만들어 나갔다. 남해안의 여수, 거제 등으로 피란 갔던 이들, 경상도의 후포, 구룡포, 강원도의 양양, 대포 등에도 이들은 몰려 들었다. 나중에는 이른바 ‘반공포로’ 중에서도 많은 이들이 이곳으로 찾아 들었다. 참으로 모진 세월이었다. 청호동에서도 모래톱 맨끝에 형성된 신포마을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신포는 오늘날 북한 최대의 수산사업소가 있는 어업 전진기지이며, 일제시대에 함경도 어업의 최대 거점이었다. 한마디로 신포사람들은 동해안에서 가장 뛰어난 어민들이었으니, 이들의 저력이 모여 강원도 유수의 어항 속초를 만드는 힘이 되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신포는 남쪽으로 봉화반도가 뻗어 나왔고, 서쪽과 북쪽에 산이 있어 바람을 피하기 좋다.‘한국수산지’(1905)에 따르면, 호수 300, 인구 1360여명이었으며 명태 집산지로 이름 높았던 곳이다. 당시에 인구 1000명이 넘는 포구라면 상당한 규모다. 식민지로 접어들자 시가가 번창하며 기선 출입이 잦고 일본인 거주자가 증가했다. 건너편 북청으로 정기선이 다녔으며, 성진 원산 부산 등지로 연안 회항선도 다녔다. 1905년 당시에 이미 일본인 거주자는 수비대, 헌병대를 제외하고도 남자 31, 여자 23명이 살았으며, 직업도 무역상 기선업 잡화상 매약상 여인숙 음식점 과자상 우육상 등 다양했다. 신포 바로 앞의 마량도 출신인 박임학(79)옹의 증언.“북청군 신포읍 마량도가 고향이지요. 지금 경수로 만드는 곳까지 포함해 신포시가 되었어요. 신포 앞 섬, 거기가 내 고향 마량도지요. 신포 읍내에서 마량까지 수로로 10리 밖에 안되요. 연락선이 있었는데, 하루에 세번씩 다녔지요. 마량도는 12개 마을(리)로 되어 있었습니다. 소방서, 주재소, 그리고 국민학교도 있고,300여 호가 살았지요. 평지 대신 산이 많았고….” 지도를 펼쳐볼 필요가 있다. 신포와 홍원 사이의 마량도가 바로 코앞이다.12개의 마을이 형성될 정도의 크기이니 동해안에 섬이 없다는 우리들의 통념을 깰만 하다. 밑으로는 함흥이 있고, 함흥만 아래에 원산이 있어 천혜의 산란장이다. 이른바 한반도의 허리라고 하는 바로 그곳이다. 신포사람들은 청호동에 정착한 이래 한 시도 배를 떠나지 않았다. 함경도 명태잡이 기술이 이곳에 고스란히 전파되었다. 피란민을 통한 어업기술의 전파가 이루어진 것. 당연히 ‘아바이 말씨’와 음식도 함께 와 뿌리를 이어갔다. 덕분에 지금도 청호동 골목길에는 아바이순대를 비롯하여 함흥냉면 간판 등이 줄지어 서있다. 단천 출신으로 단천식당이란 작은 가게를 운영하는 윤복자(63)씨는 함경도 음식 중에서 해산물로 명란젓 창란젓 아가미젓 꽁치젓 메가리젓 오징어젓 등의 젓갈류를 꼽았는데, 그 중 가장 함경도적인 것으로 가자미식해(食)를 내세웠다. 생선을 소금에 절이면 염장어가 되고, 발효시키면 식해 또는 어장(魚醬)이 되는 것이니, 이런 유의 음식은 전 세계에 분포되어 있다. 생선식해는 이른바 ‘감주’식혜와는 다른 것이지만, 발효시킨다는 뿌리는 같다. 곡식과 생선을 섞어 발효시킨 것이 가자미식해이니, 동해안의 원래 주인공인 동예(東濊)나 발해인들이 바로 이 식해를 먹었을 것이다. 곡식과 생선을 버무려서 발효시켜 저장하는 기술은 선사시대 이래의 식생활이니 가자미식해는 한반도에 흔치않게 남아있는, 그 자체가 바로 살아있는 무형의 문화유산 아니겠는가. ●명태잡이 어업기술 고스란히 전파 사실 동해안에 가자미만큼 흔한 고기도 없다.“왜 식해를 만들때 수많은 생선 중에서 가자미를 쓰느냐.”는 질문에 “뼉다구가 날래 물르기(빨리 삭기) 때문”이란다. 덧붙여 “가재미 식해는 뼈가 물러야지 좋으니까.”라고 사족을 단다. 재미있는 것은 조밥 대신에 쌀밥을 쓴다는 점.“경상도 사람들이 조밥을 넣지, 여기서는 그리 안해요.”이런 습속은 다른 곳도 같아 강릉시 사천면 진리 일대 등 여타 강릉시 일대에서도 흰 쌀밥을 이용해 식해를 만든다. 조로 만드는 것과 비교해 맛이 어떠냐고 묻자 “조밥보다 쌀밥이 더 맛있어요. 예전에는 값도 쌀이 비쌌지요. 삼척 넘어가고 경상도 가니까 다 조밥 넣데요. 그러나 이 인근은 모두 쌀밥으로 해요.”우리가 알던 ‘조밥 가자미식해’와는 다르다. 반백년쯤 지나다보니 아바이들의 삶도 서서히 변해 갔다.2세대들은 강원도 원주민과 많이 결혼했으며,3세대들은 학교, 직장 문제 등으로 외지로 나가 사는 경우도 많아 ‘아바이마을’의 정체성이 서서히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게다가 속초시는 낙후된 이 일대를 대대적으로 ‘개선’하려는 계획도 갖고 있다. 지금도 드라마 ‘가을동화’에 등장한 ‘갯배’라는 독특한 도항 수단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새 다리가 완공되면서 거대한 교각에 마을 경관이 눌린 꼴이 되고 말았다. ●취락지 보존 ‘아바이박물관’으로 이런 생각을 해본다. 어차피 2세,3세로 내려가면서 피가 섞이고, 함경도적 정체성도 사라지고 있다. 그렇다면 오히려 적극적으로 청호동 바닷가 취락지를 보존해 ‘살아있는 아바이박물관’ 정도로 했으면 하는 희망이다. 분단시대의 박물관이자 분단의 균열 속에서도 고향의 응집력을 지니고 반백년을 살아온 그네들의 삶은 그 자체가 ‘역사자료’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해양문화사적으로 그들의 어업기술사는 이북의 신포와 마량도 어업사를 고스란히 옮겨온 경우에 해당된다. 옛 사진첩에 1950년대의 북청사자놀이가 확인되니, 무형문화재로 지정되기 훨씬 이전부터 고향의 춤과 노래를 계속 이어왔다는 증거 아닌가. 쌀밥으로 빚은 가자미식해와 북청사자놀이의 호탕한 대륙적 음악이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는 한 ‘아바이 삶’도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만 같다. 시신을 화장하여 속초 바닷가에 뿌리면서 바닷물을 통해서라도 고향으로 되돌아가길 기원하는 아바이들이 존재하는 한, 청호동은 지켜지고, 또 살아 남으리라.
  • [기고] 선열들의 희생정신 되새겨야/박유철 국가보훈처장

    서대문 형무소를 향하는 길은 아직 단풍으로 곱게 물들어 있다. 멀리서 보이는 건물은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일제 당시의 모습을 재현해 놓은 그 곳에 들어서는 순간, 잔악한 고문 광경에 민족의 비애를 느끼게 됨은 방문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는 감정일 것이다. 지난 8월 국가보훈처 초청으로 우리나라를 방문하게 된 재 러시아 독립유공자 유족이 “서대문 형무소에 있는 일제의 고문 기구들을 보면서 우리 증조할아버지들이 얼마나 영웅적이었는지 알게 됐습니다.”라고 소감을 밝힌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우리는 오늘의 대한민국이 존립하기까지 조국 광복을 위해 수많은 애국지사들이 일본의 온갖 잔혹한 고문으로 옥사했거나 이국의 황량한 들판에서 고군분투하다 순국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 분들의 거룩한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의 한국이 있는 것이다. 17일은 예순다섯 돌을 맞는 ‘순국선열의 날’이다. 지난 세기 초 우리 민족이 일제 식민지하에서 비운을 겪고 있을 때, 선열들은 이 나라 동천 하늘의 어두운 장막을 걷어내고 조국을 찾기까지 국내는 물론 이역만리 낯선 땅에서 풍찬노숙하며 고난의 가시밭길을 걸었다. ‘순국선열의 날’은 수많은 애국선열들이 방법은 각기 달랐으나 자주독립을 이루겠다는 염원 아래 일제에 항거하다 순국하신 선열들의 위훈을 기리는 정부기념일로 1939년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제정한 ‘순국선열공동기념일’이 그 기원이다. 의병들은 항일투쟁을 벌였으며, 학생들은 독서회 등을 결성하여 독립운동 역량을 키워나갔다. 온 겨레가 하나되어 일어났던 3·1독립만세운동, 상하이임시정부의 구국활동, 독립군과 광복군의 항일 무장투쟁은 우리 민족에게 자주독립의 의지를 심어 주었다. 지식인들은 계몽활동을 펼쳤고, 교육가들은 학교를 세워 민족의식을 고취했다. 우리 민족의 역사와 말과 글을 지키기 위해 박은식 선생이나 신채호 선생 같은 분들은 고난의 망명지에서 생활하면서도 초지일관 민족사관에 입각한 빼어난 역사서를 저술하여 민족정신을 일깨워 주셨다. 이 두 역사학자들이 집필한 ‘한국통사’,‘한국독립운동사’ ‘조선상고사’ 등이 나올 때마다 일제 당국은 금서로 지정했으나 이 분들은 대한인의 자존의지로 뜻을 굽히지 않았다. 이처럼 선열들은 국내외에서 일본의 감시와 탄압을 받으면서도 항일투쟁에 신명을 바쳤다. 거기에 순국선열들의 희생정신을 계승하려는 노력이 있었고, 불굴의 의지로 기어이 독립을 쟁취할 수 있었다. 우리는 그 어려웠던 시대를 산 선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지고지순(至高至順)한 삶과 그 순정의 애국혼은 오랜 세월을 넘어 지금 우리들에게 소중한 정신적 가치로 자리매김되고 있다. “나는 천국에 가서도 마땅히 우리나라의 회복을 위해 힘쓸 것이다.”라고 한 안중근 의사의 유언은 지금도 우리의 가슴을 적시고 있다. 동암 차이석 선생이 “우리는 권력, 재력, 시간, 환경이 모자라서 독립운동이 부족함이 아니라, 우리 겨레 모두의 단결이 부족했던 탓”이라고 하여 모든 독립운동 세력의 단합을 호소한 말씀은, 국민화합이 절실한 오늘날 우리 모두 교훈으로 새겨야 한다. 과거를 잊은 민족에게는 밝은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다는 말이 있듯이, 지난 역사를 교훈으로 삼아 선열들의 희생정신을 기리고 계승하는 일이야말로 희망찬 내일을 만들어 가는 지름길이다. 순국선열의 날을 맞아 대의를 위해 자신의 안위를 버리고 오직 나라와 겨레를 위해 하나가 되었던 선열들의 위국헌신 정신을 되새겨 국가발전의 정신적 원동력으로 승화시켜 나가야 하겠다. 박유철 국가보훈처장
  • 박경리 소설무대에 표석 세운다

    원로작가 박경리(78)씨의 소설 ‘김약국의 딸들’과 ‘토지’ 일부의 배경이 된 경남 통영에 작품내용을 담은 표석이 설치된다. 통영시는 14일 ‘통영을 빛낸 예술인 기념사업’의 하나로 내달 두 소설에 등장하는 시내 지명 28곳을 선정, 박 선생과 협의를 벌여 이 가운데 명정동 생가를 비롯해 명정골, 충렬사, 죽림고개, 서문고개, 간창골 등 8곳을 최종 엄선해 표석을 설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들 가운데 죽림고개는 김약국의 딸들 속에 ‘타관의 영락한 양반들이 이 고장을 찾을 때 통영 어구에 있는 죽림고개에서 갓을 벗어 나무에다 걸어놓고 들어온다.’라고 적혀 있고 서문고개는 토지 속에 ‘서문안 고개는 가난한 초가들로 이뤄졌고, 그곳에서 충렬사로 이르게 되는 내리막의 골짜기는 대개 가난한 서민들의 주거다.’라고 소개돼 있다. 표석은 해당 지명이 등장하는 소설의 이같은 내용을 담은 동판과 함께 소설책이 포개진 모양으로 만들어진다. 김약국의 딸들은 1894년부터 1930년 사이 통영 바닷가를 배경으로 약국을 운영하는 한 집안이 욕망에 얽혀 다섯 딸이 불행한 삶을 사는 등 비극적인 몰락을 그린 작품이다. 토지는 1897년부터 1945년까지 하동군 평사리 최씨 가문의 4대에 걸친 비극적인 사건을 통해 한국과 중국을 배경으로 식민지적 고통과 운명, 민족의 한을 다룬 대하소설이다. 통영시 관계자는 “내년에는 미술분야의 예술인과 2006년에는 음악분야의 윤이상 선생에 대해서도 이들 예술인이 남긴 흔적과 업적을 토대로 표석을 설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창원 이정규기자 jeong@seoul.co.kr
  • [책꽂이]

    ●파이 이야기(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작가정신 펴냄) 열여섯살 인도 소년 파이가 벵골 호랑이와 함께 구명보트를 타고 227일 동안 태평양을 표류하는 줄거리의 장편소설.2002년 부커상 수상작으로,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연상시킨다는 찬사를 받았다.‘식스센스’의 나이트 샤말란 감독이 판권을 사서 영화로 제작중일 만큼 극적 구성이 탁월하다.1만원. ●나를 발효시킨다(이가희 지음, 문학세계사 펴냄) ‘한국 토종엄마의 하버드 프로젝트’를 펴내 화제가 된 시인 이가희가 첫 시집을 냈다. 무심히 뒹구는 일상속 글감들에 생명을 불어넣는 감각이 재치있고 여유롭다.6000원. ●그 스님의 여자(강은자 지음, 해와달 펴냄) 현실을 회피하기 위해 머리를 깎고 절로 들어간 남자가 창녀와 사랑의 시련을 겪으면서 조금씩 구도의 길에 접어드는 얼개의 장편소설. 지난해 프랑스 파이야르 출판사에서 출간돼 ‘부르고뉴 신인작가상’을 수상했다. 당시 작가는 ‘프랑스어권 문학의 혜성’‘동양의 진주’ 등의 찬사를 받았다.9000원. ●태평양을 막는 방파제(전2권)(마르그리트 뒤라스 지음, 김정란 옮김, 새움 펴냄) 인기소설 ‘연인’으로 관능적 문체를 각인시킨 마르그리트 뒤라스가 1950년에 발표한 자전소설.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에서 10대를 보낸 작가가 식민지의 경험을 문학적으로 승화시켜 ‘시적 리얼리즘’을 일구었다는 평가를 이끌어냈다. 시인이자 문학평론가 김정란의 번역이 꼼꼼하다. 각권 8500원. ●뿌리(상·하)(알렉스 헤일리 지음, 안정효 옮김, 열린책들 펴냄) 1976년 발표된 미국 흑인문학의 고전 ‘뿌리’를 소설가 안정효가 다시 번역했다.1977년 안정효 자신이 번역한 책에서 빠진 부분(하권)을 보충하고, 만연체 원문의 특징을 최대한 살렸다. 각권 7500원. ●사랑(임의진 지음, 샘터 펴냄) 시인이자 포크송 가수, 수필가이기도 한 재주 많은 작가가 최근에 쓴 수필과 시들을 모아 책으로 엮었다. 전남 땅끝마을 강진의 흙집에서 살고 있는 작가는 자연과 생명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행간에 넘치도록 담아냈다. 작가가 손수 그린 기기묘묘한 그림들도 흥미롭다.9000원.
  • ‘발톱’ 숨긴 美 통상전략

    100년도 지난 얘기다.1889년 미 워싱턴에서 범아메리카 회의가 열렸다. 당시 미 국무장관 내정자인 제임스 블레인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브라질이 남반구에서 가진 영향력은 미국이 북반구에 미치는 것과 같다.” 미국은 이후 50년간 브라질을 ‘세계적인 강대국’으로 부르며 협력관계(?)를 유지했다.2차대전 이후 브라질 수출입의 절반은 미국이 차지했다. 워싱턴 정가에선 소련의 브라질 접근을 차단하기 위해 아마존 열대우림을 지나는 ‘대륙횡단철도’를 건설해야 한다는 황당한 ‘아이디어’까지 등장했다. 1963년 후아오 굴라토 좌파정권이 미군 지원의 군사 쿠데타로 무너지자 백악관은 ‘민주주의의 진전’으로 평가했다. 이어 자본과 공산품을 브라질에 쏟아붓고 브라질로부터는 1차산품을 얻었다. 이른바 ‘종속경제’다. 노동당 출신인 현 룰라 좌파정권이 개혁을 추진하지만 한번 덫에 걸린 브라질 경제의 회복은 더디기만 하다. 지난 6월 미 의회 산하 ‘미·중 경제안보재검토위원회’는 색다른 보고서를 냈다. 중국이 아시아에서 무역투자를 늘리고 정치적 영향력을 증강시킨다며 미국은 대중(對中) 관계를 전면 재검토하고 ‘실질적’ 대응 방안을 강구하라고 촉구했다. 중국의 통화체제를 변동환율제로 바꾸는 것이 그 출발점이 돼야 한다고도 말했다. 중국과 브라질은 모건 스탠리가 명명한 ‘브릭스(Brics)’의 멤버다. 자원과 노동력이 풍부해 인도, 러시아와 함께 세계가 주목할 국가군으로 분류했다. 그러나 단순한 동경의 대상이 아니라 이들을 통제권에 둬야 한다는 모종의 ‘암수(暗數)’가 내포됐다. 윌슨의 ‘민족자결주의’는 식민지 국가의 독립심을 고취시켰다고 한다. 그러나 경제적 측면에선 미국이 선점한 ‘시장’을 유럽 등 경쟁국에 내놓지 않겠다는 일방적 선언으로 풀이된다. 과거 브라질에 그랬듯이 미국은 중국 등의 브릭스에 ‘윌슨식’ 접근법을 취하고 있다. 모건 스탠리는 사실상 미 국익을 대변하는 월가의 첨병이다. 의회는 말할 것도 없다. 자유무역을 내세우는 친기업 성향의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재선됐다. 하지만 밑바탕에는 늘 19세기의 ‘시장 약탈전’이 꿈틀댄다. 중국에는 환율 문제로, 브라질에는 국제통화기금(IMF)을 우회한 차관 문제로 이미 개입 중이다. 중국은 연말 복수통화 바스켓 제도로 전환할 계획이다. 브라질도 IMF의 정책 권고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중국과 브라질이 호락호락 당할 성싶지는 않지만 ‘미소’로 시작해 ‘발톱’으로 끝나는 게 미국이다. 그만큼 집요하고 끈덕지다. 우리도 친미, 반미를 뛰어넘는 이성적 변별력이 필요할 때다. mip@seoul.co.kr
  • “18세기 지도 셋중 둘 동해표기”

    |파리 함혜리특파원|“한국과 일본 사이의 바다 명칭에 대해 일본이 역사적인 기득권을 주장하고 있지만 서양에서 제작된 고지도에는 ‘한국해’라는 표기가 압도적이다.” 한국과 일본이 동해(東海) 명칭을 놓고 분쟁 중인 가운데 4일(현지시간) 파리의 국제학생기숙사촌에서 개막된 ‘제10차 바다 명칭에 관한 국제학술회의’에서 리옹 3대학의 이진명 교수는 “18세기 서구에서 제작된 바다 명칭 표기 지도의 66% 이상이 한국과 일본 사이의 바다를 ‘한국해’로 표기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동해연구회(회장 김진현) 주최로 열린 이번 학술회의 주제발표자로 나선 이 교수는 17세기 후반에는 동양해가 동해를 지칭하고 일본해 명칭이 한국해보다 많이 사용된 것이 사실이지만 18세기 들어오면서 프랑스 학자 기욤 들릴, 자크 벨랭 등이 한국해를 사용하기 시작했으며 이들의 영향으로 영국, 독일 등 서구에서 제작된 바다 명칭이 표기된 지도 250점의 3분의2 이상에서 한국해 명칭이 사용됐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한국해 명칭이 18세기에 압도적으로 사용된 계기와 관련,“17세기 후반에 출판돼 당시 큰 반향을 일으켰던 저서 속에 실린 지도의 영향 때문인 것 같다.”고 분석했다. 네덜란드인 몬타누스(1669년), 프랑스인 타베르니에(1679년), 독일인 캠페르(1700년)는 일본에 관한 저서를 출간했으며 이들 책에 실린 지도에도 한국해가 사용됐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국제수로기구(IHO)가 1929년 ‘해양과 바다의 경계’ 초판부터 일본해를 공식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한국이 식민지였는데다 해양 대국이었던 일본이 IHO 창립 멤버였기 때문에 가능했다.”며 “일본은 현재까지 열도 주변의 해도 및 수로지 작성을 담당해오고 있고 서양 여러 나라의 수로부가 이 자료를 받아 사용하기 때문에 바다 명칭에 대해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금까지 세계 지도에 사용된 ‘동양해’,‘한국해’,‘일본해’ 명칭은 모두 서양인들이 붙인 외래 명칭인데 반해 동해는 유일한 토속·재래·현지어 명칭이라 동해에 접해 생활하는 한민족이 사용하는 동해 명칭을 국제사회가 외면할 수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진현 동해연구회 회장은 “궁극적으로는 동해 단독 표기를 원하지만 현재 우리의 공식 입장은 동해·일본해를 병기하자는 것이고 이런 방향으로 개선 노력을 펼치고 있다.”고 말했다. lotus@seoul.co.kr
  • [열린세상] 근현대사교육과 과거사 청산/이영호 인하대 한국사 교수

    지난 10월4일 교육부에 대한 국회의 국정감사에서 ‘한국 근현대사’ 고등학교 검정교과서 가운데 한 교과서의 좌파적 편향성 문제가 제기됐다.‘색깔논쟁’으로까지 비화되면서 우리 사회는 또다시 회오리에 휩싸였다. 이에 역사교육 및 연구분야의 대표적인 학술단체인 역사교육연구회, 한국사연구회, 한국역사연구회 등 3개 단체는 10월14일 연합심포지엄을 갖고 편향성 시비를 학술적 관점에서 검토했다. 그 결과, 검정체제는 종래의 국정체제가 지녔던 문제점을 극복해가는 긍정적 의미가 있고, 진보와 보수로 대비된 검정교과서들 사이에 나타난 사소한 서술의 차이는 이념적 잣대로 평가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러한 결론을 바탕으로 역사교육은 당리당략이나 이념공세의 수단으로 삼아서는 안 되며, 교육적이고 학문적인 차원에서 교육계와 학계가 자율적으로 풀어가도록 보장되어야 한다는 학계의 의견서가 10월20일 공표됐다. 사회적 논란의 한가운데 놓인 주제에 대해 학계가 학문적으로 검토하고 그 결과를 모아 의견서를 냄으로써 그 파장을 수습하고 교육현장의 동요를 막을 수 있게 된 것은 다행이라고 하겠다. 교과서의 내용 못지않게 문제로 삼아야 할 대상은 근현대사가 처한 교육과정상의 위치다. 고교 1학년 ‘국사’에서는 근현대사를 가르치지 않는다. 고교 2학년과 3학년의 ‘한국 근현대사’ 과목은 9개 선택과목 중 하나로 설정돼 학생들이 근현대사를 공부하지 않아도 무방하게 되어 있다. 필수과정에서 전근대사만 가르치고 근현대사를 제외한 것은 역사교육의 상식을 뒤집는 기형적인 것이다. 흔히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대화라고 하는데 그 현재적 관점을 배제함으로써 역사를 지식의 대상으로 전락시키고 말았다. 이처럼 근현대사의 내용이나 교육체계가 문제되는 이유는 근현대사의 진실이 제대로 밝혀지지 못하고 그것이 교육과정에 수용되지 못한 때문이다. 친일반민족행위가 반공논리에 가려졌고, 독재정권의 인권탄압은 경제성장논리로 분식(粉飾)되었다. 그동안 ‘국사’에 포함된 근현대사 부분은 분단 고착화 및 정권홍보물 정도에 불과했다. 한국 근현대사에 대한 바른 이해를 막고 있는 것은 역사적 과오를 바로잡을 수 있는 과거사 청산의 과제를 해결하지 못한 때문이기도 하다. 광복 직후에는 식민지시대의 반민족 행위에 대해 청산하지 못했고, 민주화 이후에는 독재시대의 반인권적 행위를 청산하지 못했다. 과거사 청산의 실패는 남북 분단과 독재 권력에 의해 양성된 냉전·수구세력의 권력독점 때문이었다. 남북 교류 및 화해가 진전되고 고난을 딛고 민주화를 진행시켜가는 이 시점에서 과거사 청산은 역사적 당위이다. 지금 정치권에서는 이 문제가 수구세력의 청산과 맞물려 대결의 양상을 빚고 있는데, 진정한 민주적 발전을 위해서는 진보와 보수의 견제 및 경쟁이 공정한 규칙에 의해 보장되어야 한다. 공정한 규칙을 인정하지 않는 냉전·수구세력은 역사의 무대에서 물러나야 한다. 냉전·수구세력과 혼재된 보수세력은 그와 결별하여 자기 정체성을 확립해야 한다.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방식으로 결집될 보수세력이 냉전·수구세력의 역사적 과오의 책임을 뒤집어쓸 필요는 없다. 결별의 방법은 과거사 청산이다. 다만 그것이 또 다른 사회적 갈등과 대결을 불러일으켜 역사발전의 발목을 잡지 않도록, 열린 마음에서의 배려가 ‘진실규명과 화해’일 것이다. 진실규명과 그 기록을 내용으로 하는 과거사 청산을 통해 한국 근현대의 역사가 바로 서고 그 교육적 제공에 의해 우리 사회가 한단계 진전될 것을 기원하면서 정치권의 대타협을 촉구한다. 샛노란 은행잎이나 빠알간 단풍잎의 아름다움 못지않게 여러 색이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는 벚나무의 물든 잎 모습이 이번 가을에는 더욱 아름답게 느껴진다. 이영호 인하대 한국사 교수
  • 얼음의 나라, 초원의 나라 칠레

    얼음의 나라, 초원의 나라 칠레

    한반도를 기준으로 지구 정 반대편에 있는 ‘기형적’으로 긴 나라, 언제부터인지 와인으로 제법 유명한 곳. 누가 칠레에 대해 물어본다면 아마 이 정도에서 답변이 막히지 않을까. 칠레는 우리에게 그만큼 낯설다. 국내에서 가장 큰 서점인 교보문고에 가도 우리글로 된 여행서 하나 없는 곳이 바로 칠레다. 그나마 한국과 FTA 협정을 체결하면서 일부 관심의 대상이 됐다. 오는 11월 중순에는 이곳에서 세계 주요나라의 정상이 한 자리에 모이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CE) 정상회담이 열린다. 우리에게 이렇게 낯설기만한 칠레는 그러나 세계 어느 곳보다 장대하고 아름다운 자연, 독특한 생태환경을 갖고 있는 보석같은 나라다. 수도 산티아고가 있는 중부는 연중 온화한 지중해성 기후를 자랑하고, 남극과 가까운 남부 파타고니아 지방엔 빙하와 설산이 장관을 연출한다. 사막과 산악지대인 북부에 가면 화산과 호수, 거대한 계곡이 파노라마를 펼친다.APEC 정상회담을 앞두고 장엄함이 느껴지는 장대한 칠레의 자연을 2회에 걸쳐 소개한다. 칠레의 최남단 도시 푼타아레나스. 서울에서 이곳까지 오는데만 무려 하루 24시간 하고도 13시간이 더 걸렸다. 한국에서 직항노선이 없는 칠레는 지구 정 반대편에 위치한 데 따른 긴 비행시간뿐만 아니라 잦은 환승과 대기로 기자를 그로기 상태로 몰았다. 칠레 남단은 이제 막 봄이 시작되고 있었다. 툰드라 지형이 일부 섞인 독특한 기후대의 땅 칠레의 남부 파타고니아. 푼타아레나스는 파타고니아의 중심도시로 남아메리카 남단과 바로 앞의 거대한 섬 티에라 델 푸에고 사이를 가르는 마젤란 해협을 끼고 있다. 남단 최대의 중심도시라고 하지만 인구는 10만명이 조금 넘는다. 그림같은 피요르드 해안을 지나는 다양한 크루즈 및 항공기여행, 남극 탐험 등 칠레 남부의 다채로운 관광은 모두 푼타아레나스에서 시작된다. 칠레 남부 여행의 핵심은 마치 도화지에 물감을 흩뿌려놓은 듯 굴곡이 심한 해안과 섬으로 이루어진 피요르드와 빙하 탐사다. 또 화강암 등 암석으로 이루어진 타워와 뿔 모양의 거대한 봉우리, 빙하와 호수가 드라마틱한 풍광을 선사하는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 답사를 빼놓을 수 없다. ●피요르드, 빙하 크루즈 파타고니아 지방의 피요르드와 섬, 협곡 등 독특한 지형은 빙하에 의해 형성됐다. 안데스의 산들을 덮었던 빙하들이 점차 바다까지 밀려내려오면서 산 곳곳에 협곡을 만들고, 다양한 굴곡의 해안과 섬을 조각해냈다. 세계 최남단의 처녀지로 꼽히는 파타고니아의 비경을 만끽하려면 크루즈여행이 가장 좋다. 선택에 따라 3일,4일,7일 일정의 프로그램이 있으며, 매년 10월부터 4월까지 이용할 수 있다. 마젤란 해협 및 비글해협을 항해하면서 피요르드, 만, 빙하 덩어리 및 섬들을 스쳐가게 된다. 이것들은 대부분 칠레의 푼타아레나스와 아르헨티나의 도시인 우슈아이아 사이에 있으며, 티에라 델 푸에고섬 안에도 있다. 10여개 업체에서 크루즈 프로그램을 운영하는데, 업체별로 또는 일정별로 코스가 다양하다. 그중 하나인 ‘마레 아우스트랄리스’의 소형 크루즈 선박을 타고 2박3일 일정으로 크루즈에 나섰다. 푼타아레나스의 항구를 떠난 유람선.63개의 객실이 있는 비교적 작은 크기의 배지만 내부시설은 고급스럽고 안락하다. 오후 9시쯤 떠난 배는 서서히 마젤란 해협을 통해 파타고니아의 피요르드 해안을 헤쳐나간다. 이른 아침, 일출이나 볼까하고 새벽 5시에 일어나 갑판에 나갔지만 동쪽은 구름이 덮여 있다. 배는 이미 바다 여기저기 떠다니는 빙하 덩어리들 사이에 있었다. 멀리 반쯤 눈에 덮인 설산을 배경으로 바다 가득 펼쳐진 빙하 덩어리들. 사람들은 경이로움 반, 신비함 반으로 ‘원더풀’을 연발한다. 빙하를 좀 더 가까이 보고, 주변 생태도 구경하러 아인스호르트만에 상륙했다. 작은 보트에 나눠타고 상륙한 그곳엔 바다뿐만 아니라 육지에까지 빙하덩어리들이 올라와 있었다. 빙하 색깔은 연한 녹색. 에메랄드빛 바다는 많이 보았지만 얼음덩어리는 처음이다. 해안을 벗어나 산 아래쪽으로 가니 이끼와 각종 식물이 땅을 덮고 있다. 이른 봄을 맞은 이곳엔 간간이 빨간 꽃과 열매가 눈길을 끈다. 커이리, 린가, 카넬로, 칼라파테 등 낯선 식물들에 대해 가이드가 열심히 설명한다. 그중 한번 열매를 먹으면 반드시 파타고니아에 돌아온다는 전설이 있다는 칼라파테에 대해 사람들이 큰 관심을 나타낸다. 일부 바닥은 스펀지처럼 푹신푹신한 이끼와 균류가 덮고 있어 밟는 느낌이 이색적이다. 트레킹을 마무리할 즈음, 해변에 바다코끼리 가족이 망중한을 즐기고 있다. 수컷 한마리와 암컷 세마리, 그리고 새끼 한마리. 수컷 한마리가 모든 암컷을 임신시켰는데 그중 한 마리가 얼마전 새끼를 낳았다고 한다. 다음날은 부룩스베이에 상륙했다. 산에서 거대한 협곡을 이룬 빙하가 바다로 흘러내리는 현장이다. 가까이 다가가니 가끔씩 쿠쿠쿵 굉음과 함께 바다로 떨어져 내리는 게 너무 생생하다. 좀 더 높은 곳까지 올라가니 유람선이 떠있는 부룩스베이가 한 눈에 들어온다. 설산이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베이가 마치 호수같고, 수면에 비친 설산의 모습이 그림처럼 아름답다. 마지막 날엔 펭귄 서식지인 막달레나섬에 상륙했다. 자그마한 섬을 펭귄과 가마우지가 가득 덮고 있다. 많을 때는 20만마리에 육박한다고. 남극의 펭귄들처럼 얼음 위에 있는 게 아니라 땅 위에서 놀고 있어선지 일부 관광객들은 실망스러운 눈치다. 섬은 구멍 투성이다. 펭귄들이 판 동굴로, 이곳에 알을 낳는다. 사람구경을 많이 해선지 가까이 가도 별로 도망도 가지 않고, 간 큰 놈들은 사람을 졸졸 따라다니기도 한다. 막달레나 섬 탐험은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멋진 섬의 조망을 만끽할 수 있는 ‘라이트하우스’에서 끝을 맺는다. 그 안에는 환경전시센터가 있다. 전시된 패널을 통해 해협에서의 항해 및 지역 식민지 역사, 새와 해양동물들의 역사 등을 상세히 보여준다. 막달레나 섬 탐험은 크루즈와 별도로 하루 일정의 프로그램도 많으므로 푼타아레나스의 여행업체들에 문의하면 된다.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 푼타아레나스에서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까지의 거리는 350㎞에 달한다. 버스로 5시간 정도 걸린다. 보통 국립공원에 1시간쯤 못미쳐 나오는 소도시 푸에르토 나탈레스에 묵으며 공원을 둘러보게 된다. 푸에르토 나탈레스엔 2만여명의 주민들이 어업과 관광, 양농장업 등에 종사하며 산다. 1978년 세계 생물권 보호지역으로 지정된 이곳은 바다로부터 해발 3050m 높이에 위치해 있다. 화강암 등 암석으로 이루어진 타워와 뾰족한 뿔모양의 지형들로 인해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이 국립공원은 예민한 생태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는데, 여우와 퓨마, 구아나코, 냔두 등 수많은 야생동물이 서식한다. 푼타아레나스에서 이곳까지 가는 동안에도 이들의 생생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특히 수십마리씩 떼를 지어 다니는 구아나코스, 타조를 축소해놓은 듯한 냔두가 자주 모습을 나타냈다. 토레스 델 파이네는 이곳의 트레이드 마크인 타워와 뿔 모양의 장대한 설산, 설산에서 빙하가 녹아내린 호수들이 가장 큰 볼거리다. 공원내엔 자동차와 사람이 다닐 수 있는 여러개의 길이 있다. 먼저 자동차를 타고 100㎞에 이르는 공원 횡단로를 여행하는 코스가 가장 일반적이다. 중간중간 차를 세우고 수많은 빙하와 호수, 강, 폭포 등이 연출하는 비경을 관람할 수 있다. 특히 페오에 호수에서 바라보는 토레스 델 파이네의 모습은 장엄함 그 자체다. 거대한 타워와 뿔 모양을 한 두개의 암봉, 즉 시에라 콘트레라스와 마시조 델파이네가 나란히 우뚝 선 모습이 압권이다. 높이가 해발 3500m에 달하는데, 워낙 기상 변화가 심해 하루에도 몇번씩 구름에 덮인다. 특히 정상 부근엔 항상 거센 바람과 함께 구름이 덮여 있다. 그레이빙하에서 빙하 덩어리가 떨어져 나오는 그레이호수도 꼭 가볼 만하다. 페오에 호수에서 차로 30분 정도면 갈 수 있다. 보트를 타고 빙하 가까이 가보니 산에서 밀려내려온 엄청난 두께의 빙하에서 덩어리들이 뚝뚝 떨어져 호수로 떨어져내리고 있다. 그레이빙하는 길이가 6㎞, 두께가 30m에 달한다. 보트를 타고 거대한 빙하 덩어리 사이를 비집고 다니는 기분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특별하다. 또 다른 선택은 날짜를 충분히 잡아 트레킹이나 하이킹을 시도하는 것. 길마다 편의시설과 표지판이 상세히 갖춰져 있다. 토레스 델 파이네의 뒷면까지 완전하게 돌아보려면 6일에서 10일 정도는 잡아야 한다. 이 방법을 선택하면 협곡과 언덕, 강 등을 수없이 넘고 건너야 한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푸에르토 나탈레스 시내에서 20분쯤 거리에 있는 밀로돈 동굴에도 가보자. 이 동굴은 1896년 ‘밀로돈’이라는 선사시대 동물의 모피와 뼈, 머리카락, 배설물 등이 발견되면서 주목받게 됐다. 동굴 입구는 높이가 30m, 너비가 70m, 깊이가 200m에 달한다. 밀로돈이라는 동물의 모습은 동굴 입구에 서 있는 모형을 보아서는 아주 작아보이지만, 키가 3m, 몸무게가 1000㎏에 달할 정도로 매우 컸다고 한다. 밀로돈의 흔적에 푹 빠진 헤스케스 프리차드라는 영국인은 1902년 살아있는 밀로돈 발견에 대한 희망을 갖고 파타고니아 지방을 탐험했지만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칠레는 어떤나라 공식국명은 칠레공화국. 남미 대륙 서쪽 중반에서 하단까지 좁고 긴 형태로 위치하며, 남북 총 연장이 4300㎞에 달한다. 면적은 75만 6700㎢로 한반도의 약 3.5배다. 남반구에 위치하고 있어서 계절과 낮밤이 우리나라와 정반대다. 인구 1570만명중 600여만명이 중부에 위치한 수도 산티아고에 거주한다. ●항공편 한국에서 직항노선이 없어서 유럽이나 미국을 경유해 가야한다. 미국 비자가 있을 경우 LA에서 환승해 산티아고까지 가면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갈아타는 것보다 5시간 정도 시간이 단축된다. 서울∼LA∼산티아고의 경우 환승대기시간까지 합쳐 27시간, 서울∼프랑크푸르트∼산티아고는 32시간 정도 소요된다. 칠레 남·북부를 여행하려면 산티아고에서 란칠레항공 국내선을 이용해야 한다. 남부는 푼타아레나스, 북부는 칼라마가 관광의 중심도시임. 란칠레항공 한국대리점(02-775-1500). ●화폐, 시차, 비자 화폐단위는 페소로 환율은 1달러에 600페소 정도. 호텔 등 큰 업소에선 달러 사용에 문제가 없으나 그외의 곳에선 페소 사용이 유리하다. 시간은 한국보다 13시간 늦지만 지금은 서머타임기간(10∼3월)이라 12시간 차이가 난다. 무비자로 입국 가능. ●기후 중부는 지중해성 기후로 온화하다. 남부는 한랭기후로 연평균 기온이 섭씨 9도에 불과하며, 북부는 사막과 아열대기후가 섞여 있다. 특히 북부에선 낮기온이 25도 이상 올라가는 반면 밤엔 영하로 떨어질때가 많으므로 여름, 겨울 옷이 모두 필요하다. ●음식, 호텔 육류와 해산물, 야채, 과일 등이 풍부하고 저렴한 편이다. 레스토랑에 가면 다양한 메뉴가 있는데 대체로 3000∼5000페소면 애피타이저와 주메뉴, 와인, 디저트까지 해결할 수 있다. 킹크랩 등 선호도가 높은 해물은 좀 더 비싸다. 조개·전복·홍합 등 해물과 양고기를 넣어 밥을 지은 ‘초리토스’가 우리 입맛에 잘 맞았다. 푼타아레나스와 푸레르토나탈레스엔 특급호텔은 많지 않으나 3∼4성급 중급호텔들이 많다. 숙박료는 80∼120달러. ●여행상품 국내엔 칠레만 돌아보는 여행상품은 없고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과 연계한 상품이 판매중이다. 가격은 500만∼700만원. 칠레 남·중·북부를 보고 싶으면 개별적으로 항공편을 예약해야 한다. 산티아고, 푼타아레나스, 칼라마 등에서 각 지역의 명소를 돌아볼 수 있는 다양한 패키지를 구입할 수 있다. 시내의 거리 곳곳에 여행상품 판매와 서비스를 담당하는 업소가 많으므로 찾는데 어려움은 없다. 파타고니아 여행 관련 문의=ONAS(61-412707/412034),AVENTOUR(61-241197/220174). 칠레 국가번호는 56. 글 임창용 sdragon@seoul.co.kr 사진 안주영기자 jya@seoul.co.kr
  • [길섶에서] 일확천금/오풍연 논설위원

    1930년대 강원도 산골 마을. 응칠은 전과 4범으로 만무방이다. 그는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도박과 절도로 일확천금(一攫千金)을 꿈꾼다. 성팔, 기호, 용구도 그랬다. 반면 아우 응오는 모범적인 소작농. 응칠은 동생네 벼가 없어지자 도둑을 잡겠다고 나선다. 그러나 벼도둑을 잡고 보니 응오인 것을 알고 우두망찰한다. 동생처럼 성실한 농민도 지주의 벼를 훔쳐야만 살 수 있었던 것이다. 김유정은 ‘만무방’을 통해 식민지 농촌사회의 피폐상을 이처럼 고발했다. 요즘도 일확천금을 꿈꾸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먹고 살기 힘들어질수록 요행(僥倖)을 바라게 된다. 대박 신드롬 역시 그렇다. ‘한탕주의’도 마찬가지다. 신용불량자처럼 어려운 처지에 있다면 특히 현혹되기 쉬울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옛날에도 그랬지만 디지털 시대에 ‘한탕’이 통하겠는가. 주위에 허황된 꿈을 좇는 사람이 여럿 있다. 안 되는 일만 골라 하니 안타까운 마음뿐이다. 그렇다고 소탐대실(小貪大失)해서는 안 될 것이다. 에둘러 가는 것도 그렇다. 자기 분수에 맞게 사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다. 오풍연 논설위원 poongynn@seoul.co.kr
  • [기고] 한류와 문화 선진국/장호순 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외국여행을 하다가 상점에 전시된 한국 상품을 발견하고 감격하던 시절이 한때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외국의 거리에서 한국산 자동차나 전자제품 광고간판을 마주치는 것은 대수롭지 않은 경험이 되었다. 한류열풍이 휘몰아치고 있는 중국이나 동남아에서는 문화선진국이라는 우월감에 젖기도 한다. 그러나 정작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과연 한국 문화가 무엇인지 의문이 생긴다.5000년 역사를 가진 단일민족이라면서도 한국적 전통이나 문화를 일상에서 발견하기 어렵다. 매일 먹는 김치를 빼고 나면, 한국인에게 전통문화라는 것은 대부분 의례용이거나 전시용이다. 한복은 결혼식 때 입는 것이고, 한옥은 관광객을 위해 지은 건물이며, 국악이나 민요는 외국인이 많이 가는 식당에서나 들을 수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한국처럼 일상에서 고유문화와 관습이 사라진 국가는 찾아보기 힘들다. 미국이나 유럽은 물론이고, 일본만 하더라도 수백년 이어온 각종 생활관습과 전통축제가 풍성하다. 대형 백화점이 즐비한 홍콩 시내이지만 도심 곳곳의 시장에 가보면 수천년간 이어져 내려온 중국인들의 삶의 양식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한국사회에서 전통문화와 관습을 경시하게 된 것은 지난 한 세기 동안 겪은 역사적 질곡의 결과라 할 수 있다. 근대화의 시기와 일제 식민지 지배가 겹치면서, 외국의 것은 합리적이고 좋은 것이지만, 고유한 것은 낡고 불합리하다는 식민지 사고가 한국인들에게 강요되었다. 광복 이후에는 가난하고 배고팠던 과거로부터 탈피하려 경제성장에 몰두하면서 전통적인 것을 외면하는 사고방식이 또다시 체질화되었다. 전통문화와 관습의 급격한 퇴조현상은 여전히 진행 중이기도 하다. 지독할 정도로 나이 서열을 중시하던 사회가 불과 몇 년 사이에 나이많은 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사회로 바뀌었다. 이혼을 금기시하던 한국사회가 어느새 세계 최고의 이혼율을 기록한 나라가 되기도 했다. 너무나도 쉽게 옛 것을 버리고 새 것을 받아들이는 한국사회인 것이다. 문화적 뿌리가 허약한 한국사회는 정체성 위기를 겪으며 혼란스럽고 불안할 수밖에 없다. 경제적 수준이 높아지고, 정치적 자유가 증진되고, 문화적 다양성이 확대되긴 했지만, 사회 구성원간의 소통을 돕고 유대를 형성하는 문화적 공통분모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제라도 역사적 뜀박질에서 숨을 조금 돌리고 우리 고유의 문화적 정체성을 재정립해야 할 시점이다. 특히 지난 한 세기 동안 한국사회가 형성한 새로운 전통문화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가혹한 정치적 격랑을 겪으면서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문화적 전통을 축적했기 때문이다. 식민지 지배로 인해 친일도 우리의 문화였고, 반일독립도 우리의 문화였다. 공산주의와 반공이데올로기 모두 우리의 문화였고, 독재정권과 민주화 투쟁 모두 우리의 문화유산이 되었다. 그 결과 서로 상충하고 모순되는 가치들이 공존하는 독특한 한국적 문화가 형성되었다. 아시아에서 한류 열풍이 일고, 한국영화들이 세계적인 호평을 받는 것은 이러한 상호모순적인 가치들, 특히 아시아의 유교적 전통과 서구 개인주의적 가치가 충돌하고 공존하는 한국사회의 역동성에 외국인들이 공감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역사와 경험을 토대로 고유문화를 재정립해 나아갈 때 진정한 문화선진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을 것이다. 장호순 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 아편, 그 황홀한 죽음의 기록/마틴 부스 지음

    아편, 그 황홀한 죽음의 기록/마틴 부스 지음

    신비의 약인가, 죽음의 물질인가. 오늘날 아편이란 단어만큼 우리의 주의를 환기시키는 말도 드물다. 아편은 원래 고대 그리스에서 ‘양귀비 꼬투리의 수액’이란 뜻으로 사용한 평범한 단어였다. 그러나 지금은 결코 그 본래의 뜻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아편 하면 으레 부정적인 연상이 앞선다.‘아편, 그 황홀한 죽음의 기록’(마틴 부스 지음, 오희섭 옮김. 수막새 펴냄)은 바로 그런 점을 염두에 두고 쓴 아편의 문화사다. 영국의 소설가이자 역사기록 작가인 저자는 그리스와 로마시대부터 중세와 근대를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아편을 둘러싼 갖가지 인간사를 다룬다. ●고대~현대 아편을 둘러싼 인간사 아편은 인류가 사용한 최초의 약품으로 인간문명 속으로 들어왔다. 기원전 3400년경 인류 최초의 문명인이었던 수메르인들은 양귀비를 ‘기쁨을 주는 식물’이라는 뜻의 ‘헐(hul)’ 또는 ‘길(gil)’이라 부르며 양귀비를 재배하기 시작했다. 양귀비는 기원전 2000년 말까지 유럽과 중동, 북아프리카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죽은 사람에 대한 슬픔을 잊기 위해 아편을 복용했으며, 로마인들은 양귀비를 수면과 죽음의 상징으로 여겼다. 중세 스위스의 유명한 의사이자 화학자인 파라셀수스는 아편을 ‘불멸의 돌’이라 찬양하며 우울증 환자와 궤양 환자를 치료하는 데 사용했다. 아편은 인류 문화의 창조에도 적잖이 기여했다. 대부분의 작가들은 아편에 익숙했다. 토머스 드 퀸시, 조지 크래브, 새뮤얼 테일러 콜리지, 존 키츠, 윌키 콜린스, 월터 스콧, 찰스 디킨스, 에드가 앨런 포, 장 콕토 등 수많은 문인들이 아편의 몽환적 특성을 창작에 활용했다. 셰익스피어 또한 아편에 대해 남다른 관심을 보였다. 그의 작품 곳곳에서 그런 성향을 찾아볼 수 있다. 셰익스피어는 아편을 “사람을 졸리게 하는 시럽”으로 묘사했다.‘어느 아편중독자의 고백’이라는 자전소설을 남긴 영국 작가 토머스 드 퀸시는 아편을 가리켜 “공기와 같이 삶에 없어서는 안될 성스러운 것”이라고 하기도 했다. 그러나 신비의 명약으로 인식되던 아편은 18∼19세기 들어 사람들에 의해 남용되면서 중독의 폐해를 낳기 시작했다. 또 영국 등 제국주의 열강은 대포와 아편을 이용해 새로운 식민지를 건설하는 데 열을 올렸다. 영국과 중국 사이의 아편전쟁이 대표적인 예다. 이 책에서는 ‘중화(中華)에서 중독(中毒)으로’라는 제목으로 중국의 아편 역사와 문화를 다룬다. 아편은 일반적으로 7세기에 아랍인들에 의해 중국에 전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전에 아편에 관한 문헌이 중국에 있었음을 감안하면 논란의 여지가 없지 않다. 중국과 아편은 종종 동의어처럼 인식된다. ●중독폐해·진통기능등 양면성 지녀 19세기 중반부터 중국인들의 해외 이주가 시작되면서 아편도 세계화의 길을 걸었음을 암시한다. 외국으로 나간 중국 노무자들은 이른바 ‘돼지무역’의 대상이 돼 혹사당하며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았다. 그들은 오로지 아편을 통해 비천한 삶을 위로받았다. 저자에 따르면 미국에서 처음으로 아편을 흡입하게 된 것도 캘리포니아 골드러시 때 들어온 중국인 노무자들에 의해서다. 그렇게 시작한 아편은 이제 마약이 돼 미국을 ‘중독된 거인’으로 만들고 있다. 옛날에는 모든 길이 로마로 통했다. 하지만 오늘날 모든 마약은 미국으로 통한다. 미국의 66번 고속도로는 다름아닌 헤로인의 운송로다. 얼마나 많은 헤로인이 이곳을 통해 운반되는가는 밀수업자들이 즐겨 부르는 롤링스톤스의 ‘66번 국도’라는 노래가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아편의 역성을 드는 듯한 태도를 보인다. 아편은 인간이 사용한 최초의 의학적 물질 가운데 하나였으며 수많은 이의 고통을 잠재워준 신의 선물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요컨대 아편은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약도 되고 독도 될 수 있다.2만 1000원.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롯데 인테리어 매장]주인님~ 집안을 바꿔 드릴까요

    [롯데 인테리어 매장]주인님~ 집안을 바꿔 드릴까요

    롯데백화점 본점8층. 가을철 집안분위기를 깔끔하게 매만져 주는 홈 인테리어전문매장들. 유럽·미국풍의 이국정서가 물씬 풍기는 다양한 인테리어제품들이 소비자 발길을 잡는다. 산 정상에서 시작된 아름답고 화려한 단풍이 산 전체를 물들이면서 점점 가을이 깊어지고 있다.집 안의 벽지나 가구를 바꾸는 ‘대형 공사’는 말할 것도 없고,침구·커튼·쿠션·러그(소형 카펫) 등 패브릭(섬유)제품을 통해 포인트를 주는 것만으로도 무르익는 가을 정취를 한껏 맛볼 수 있다. 하지만 해마다 계속되는 진부함은 싫증이 나는 까닭에 뭔가 참신하고 색다른 분위기를 연출하고 싶다면 이곳을 찾아보면 어떨까. 롯데백화점 본점 8층에 있는 ‘로라애슐리’와 ‘플라망’,‘케빈 리 컬렉션’은 가을철 집안 분위기를 깔끔하게 매만져 주는 홈 인테리어 전문매장들이다.유럽이나 미국풍의 이국(異國)정서가 물씬 풍기는 가을을 맛보게 해주는 다양한 토털 홈 인테리어 제품으로 소비자들을 발길을 잡고 있다. 집안 분위기를 영국 꽃무늬의 로맨틱한 스타일로 바꾸기를 원한다면 ‘로라애슐리’를,유럽풍의 현대와 고전이 공존하는 스타일의 가구와 소품을 사려면 ‘플라망’을,아름다운 꽃과 현대적인 감각의 가구,악센트를 줄 수 있는 고전적인 장식품으로 미국풍 분위기로 꾸미고 싶다면 ‘케빈 리 컬렉션’을 선택하는 것이 제격이다. 이곳에서 만난 주부 전경숙(37·서울 성동구 금호1동)씨는 “생활소품에서부터 침구,장식품,커튼,가구에 이르기까지 집안의 공간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다양한 인테리어 소품들을 한데 모아 놓고 있어 원스톱 쇼핑이 가능한 것이 최대의 장점”이라며 “계절이 바뀌거나 마음이 답답하면 자주 들러 새로운 유행 경향을 알아보기도 하고 간단한 인테리어 소품을 구입해 집안 분위기를 바꾸기도 한다.”고 말했다. ●영국풍의 로맨틱 분위기 영국 인테리어·패션 브랜드인 ‘로라애슐리’는 편안한 꽃무늬와 고급스러운 색감이 트레이드 마크다.가구와 커튼,소파와 장식용품에서부터 여성의류인 ‘레디스웨어’와 2∼9살 여자 어린이들을 위한 ‘걸스’에 이르기까지 최상의 품질을 지향하는 상품을 선보였다.200개가 넘는 원단으로 만든 주문형 커튼과 소파,벽지,쿠션,조명 등의 제품은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움을 준다. 특히 다양하게 디자인한 패브릭 제품을 소비자가 직접 선택할 수 있기 때문에 자신들의 취향을 한껏 살려 독특한 집안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는 것이 강점.침구류의 경우 싱글세트 30만원대,퀸세트는 40만원대,2인용 소파의 경우 200만∼300만원대,커튼(원단 1m당)은 4만 5000∼12만원,쿠션 7만원대,러그 40만원대,조명은 10만원대 등이다. ●할아버지의 고풍스러움 벨기에 출신 플라망 형제의 작품인 ‘플라망’은 할아버지 세대에서 물려받은 듯한 고풍스러움과 편안함,어머니의 품속과 같은 포근함을 추구하고 있다.원목 테이블을 가득 채운 아기자기한 크리스털 그릇들,은촛대에 불을 환히 밝히고 아이리시 꽃을 꽂은 크리스털 유리병 등이 대표적인 제품들이다.일일이 손으로 다듬은 수제품들이 많아 고급스러움도 곁들여져 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이 덕분에 플라망의 브랜드 인지도는 이미 세계적이다.세계 27개국,500여개의 매장을 보유하고 있다.입점 심사가 까다롭기로 널리 알려진 영국 헤롯 백화점,프랑스의 라파예트 백화점과 쁘렝땅 백화점에도 매장을 갖고 있다.플라망은 여느 제품보다 견고성도 강조하고 있다.묵직한 가구는 옻칠을 한 후 7년 이상 말려 못조차 들어가지 않을 정도다.대대로 물려줄 수 있도록 만들어 가문의 역사를 가구 속 깊이 스며들게 한 셈이다. 여기에다 거실과 부엌,안방과 서재,아이들 방의 인테리어와 욕실 인테리어에도 중점을 두고 있다.긴장을 풀어주도록 편안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욕실 액세서리,달콤한 향기의 샤워젤,목욕크림 등을 내놓고 있다.플라망 제품을 수입하는 라미아이앤씨 김윤완 기획실장은 “할아버지에게서 느낄 수 있는 푸근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이 제품의 주요 컨셉트 가운데 하나인 만큼 플라망은 과거를 재창조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며 “바로크 등의 화려함보다는 단순하고 튼튼함을 강조하는 콜로니얼(식민지적)풍과 스칸디나비아 스타일,벨기에와 프랑스를 모두 아우르고 있는 프랑스 프로방스 지역의 분위기가 혼합된 이미지를 연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고가구풍의 앤티크 스타일과는 달리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고전미와 현대적 감각이 공존하는 스타일의 소파,테이블,테이블 웨어,장식소품 등을 판매한다.가격은 그릇이나 와인잔이 1만∼3만원.하지만 가구류의 경우 수제품이 많아 소파,장식장은 300만∼700만원으로 비교적 비싼 편이다. ●현대와 고전의 조화 ‘케빈 리 컬렉션’은 미국에서 활동하며 미국 부호들의 인테리어 디자인과 파티,결혼식 장식을 해주고 있는 재미교포 디자이너 케빈 리의 독특한 스타일이 담겨 있는 인테리어 소품을 내놓고 있다.그는 아카데미 영화제 시상식을 비롯해 브래드 피트,마이클 잭슨,줄리아 로버츠 등 할리우드 스타들의 파티를 직접 디자인해 주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박동주 롯데백화점 가정매입팀 인테리어부틱 담당 바이어는 “‘케빈 리 컬렉션’은 현대적인 감각의 가구류와 여기에 악센트를 줄 수 있는 고전적인 분위기의 소품들이 잘 어우러져 있으며 수시로 상품에 변화를 주어 새로운 스타일을 선보이고 있다.”며 “이 때문에 장식용 조화와 가구,도자기류의 소품 등이 주로 판매되고 있다.”고 밝혔다. 매장은 케빈 리가 직접 디자인한 실크 플라워와 식탁,소파,커피 테이블,장식용 접시,그릇,샹들리에,램프,액자,촛대 등을 내놓고 있다.가격대는 2만원부터 180만원까지 제품의 크기와 소재에 따라 천차만별.실크 플라워는 8000∼3만 5000원,가구는 10만∼200만원대.하지만 가구류 중 소파의 경우 소파 천의 탈부착이 가능한 심플한 스타일이 200만∼300만원대.소파 천갈이만 할 경우 50만원대.샹들리에,테이블 램프,촛대류 등의 조명소품은 4만 5000∼500만원이다.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與 과거사 기본법안 발표…정책적 사안 포함

    與 과거사 기본법안 발표…정책적 사안 포함

    열린우리당 천정배 원내대표는 13일 과거사 진상규명 법률안을 확정,발표했다.정식 명칭은 ‘진실규명과 화해를 위한 기본법안’으로 했다.초안보다 조사범위를 약간 축소하되,조사기구의 권한은 대폭 강화한 게 특징이다. 그런데 열린우리당의 법안은 한나라당이 별도로 마련한 ‘현대사정리기본법안’과는 조사범위와 조사기구의 권한 등에서 큰 차이를 보이고 있어,국회 논의과정에서 진통이 예상된다. ●“역사책을 새로 쓴다” 열린우리당이 마련한 최종안의 조사범위를 보면,가히 우리 현대사를 새로 쓰려는 의지가 읽혀진다.특히 (1)‘식민지 지배권력의 개입 및 권위주의적 통치로 인해 왜곡되거나 밝혀지지 않은 항일 독립운동’과 (2)‘1948년 건국 이후 권위주의 통치 하에서 헌정질서 파괴행위 등 위법 또는 부당한 공권력의 행사로 발생한 사망·상해·실종사건’ 등 현대사에서 논란의 중심이 돼온 두 축을 조사범위로 광범위하게 규정한 대목은 예사롭지 않다.조사결과에 따라서는 기존에 믿어왔던 역사의 선(善)과 악(惡)이 일거에 뒤바뀌는 극단적 형태의 충격파도 배제할 수 없게 된 것이다. (1)의 경우,항일 독립운동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권위주의 통치 하에서 정치적인 이유로 왜곡된 사건과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의 복권(復權)에 진상규명의 초점이 맞춰질 것 같다.(2)는 사실상 박정희 전 대통령 시대를 겨냥한 것이라 할 만하다.특히 ‘헌정질서 파괴행위’라는 대목과 관련,열린우리당 관계자는 “5·16 군사쿠데타도 해당될 수 있다.”고 밝혀 3∼4공화국의 정통성을 통째로 부정하는 결과를 부를 수도 있게 됐다.이 부분은 곧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의 정체성과도 연결되는 문제여서 여야간 논란의 핵으로 부상할 공산이 크다. 구체적 의혹사건으로는 인혁당,통혁당,민청학련 사건,유서대필 사건,정인숙 사건,김형욱 납치사건 등이 조사대상에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박정희 시대 이전의 의혹사건으로는 김구 선생 암살사건 등이 대상이 될 것이 확실시 된다. 이밖에 열린우리당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이란 항목을 조사범위로 명기,한·일국교정상화 협상 등 정책적 사안까지도 대상에 포함될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해방과 한국전쟁 사이에 불법적으로 이뤄진 민간인 집단 희생사건’도 조사범위로 명시했지만,노근리사건 등은 이미 별도의 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는 이유로 제외했다.초안에 포함시켰던 일제하 강제동원도 같이 빠졌다. 반면,한나라당은 북한정권 및 좌익세력에 의한 테러와 민주화운동을 가장한 친북 이적행위 등을 조사범위에 포함시키자는 입장이어서 앞으로 치열한 논란이 예상된다. ●조사기구 권한 세다 열린우리당의 최종안에 따르면 조사기구인 ‘진실화해위원회’의 성격은 국가기구로 하되,입법·사법·행정부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완전 독립기구로 국가인권위원회와 같은 위상을 갖고 있다.위원은 대통령이 국회의 동의를 받아 임명하지만 조사기간 중 대통령의 지시와 통제를 받지 않으며 최종보고서만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것으로 했다. 권한은 기존의 의문사위에 비해 대폭 강화했다.자료제출요구권,압수수색영장청구의뢰권,청문회실시권,통신자료요구권,동행명령권,국가기관 상호간 협조의무 등을 부여했다.다만 금융자료제출 요구권은 금융기관들의 자료보관기간이 5∼10년을 넘지 않는다는 점에서 실효성이 없다는 이유로 배제했다. 특히 동행명령을 거부하는 피조사인에게는 2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도 있도록 했고,자료제출을 거부하는 국가기관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 청구를 검찰에 의뢰할 수 있게 했다.또 위원장에게는 위원회에 파견되는 공무원의 교체와 승진을 요청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고,자문기구도 설치할 수 있도록 했다. 반면,한나라당은 조사기구의 성격을 민간기구인 학술원 산하 위원회로 하고,조사권한도 ‘인권침해방지’를 이유로 출석요구,자료제출요구 등 최소한으로 국한하고 있어 한판승부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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