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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프간 피랍이후 해외선교 어디로] (2) 해외선교에 목매는 이유

    지난 1970∼80년대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을 만큼 폭발적인 교회성장을 일군 한국 개신교는 세계 기독교계로부터 ‘이해할 수 없는 나라’로 인식된다. 짧은 기간 그 많은 신자를 교회로 불러들인 방식과, 도시는 물론 오지 구석구석까지 교회를 우뚝우뚝 세울 수 있는 힘이 과연 무엇인지 선뜻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기독교가 전 세계적으로 쇠퇴의 길을 걷고 있는 상황에서 갖는 당연한 의문일 것이다. 전파과정에서 자본주의를 앞세운 미국 기독교에 절대적인 영향을 받은 한국 개신교는 자본주의 속성에 철저하게 물들어 있다. 실제로 신자 수와 헌금액 같은 외형적 규모가 ‘좋은 교회’‘나쁜 교회’의 일차적인 척도가 되고 있다. 한국 개신교가 해외선교에 목을 매는 것은 바로 이 성장주의와 실적주의의 함정에 빠진 탓이 크다. ●90년대 교세 위축… 해외선교 돌파구로 70∼80년대와는 달리 90년대 들어 개신교가 포화상태에 이른 상황에서 당연히 나라 밖으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교회의 조직 메커니즘 차원에서 계속 성장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태생적인 속성상 90년대 이후 교세가 위축되면서 위기의식을 느꼈고 그 돌파구를 해외에서 찾았다고 할 수 있다. 교세가 늘면서 몸집을 키워온 교회들의 예산은 매년 늘어나는 데 비해 성장 위축으로 적자가 쌓이면서 해외선교가 더욱 기승을 부리게 된 것이다. 교회가 계속 성장할 것이란 장밋빛 기대에 부풀어 각 교단이 앞다투어 늘려 왔던 신학자의 공급과잉도 해외선교의 큰 이유. 가장 큰 교단인 장로교단(통합)만 하더라도 지난 10년간 교회와 교인 수가 각각 23%,15% 증가한데 비해 목사 수는 63%나 늘어났다. 해마다 300명의 잉여 목회자가 배출되고 있는 셈이다. 지난해 졸업생의 45%만이 전임전도사로 진출한 것을 보면 절반도 안되는 인원만 임지를 찾아가는 실정이다. 성장주의에 익숙한 교회들의 내적 동력이 약해진 상황에서 극심한 취업난에 허덕이는 잉여 목회자들을 밖으로 밖으로 쏟아낸 것이다. 교회들이 선교 불모지대인 위험지역에 더 눈독을 들일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 실제로 교계에서는 위험한 곳에 얼마나 더 많은 선교사를 파견했는지를 ‘독실한 신앙심’의 척도로 여긴다. 공격적 선교에 치중하는 복음주의 교회들일수록 위험지역과 오지에 더 많은 선교사를 보내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수천명이 사는 외딴 작은 마을에 한국인 선교사 수십명이 몰려드는 경우도 생긴다. ●위험지 파송 선교사 수가 교회 세 좌우 위험지역에 파송되는 선교사들이 차세대 리더로 부상하고 있는 점도 눈여겨볼 대목. 분쟁지역과 이슬람권 등 위험지역에서 선교를 이끄는 목회자가 귀국후 차세대 지도자로 주목받아 부상하는데 “정치인들의 커리어쌓기와 아주 유사하다.”고 교계의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따라서 위험지역 선교를 개인적인 지명도 향상의 수단으로 삼는 젊은 목회자들은 이들 지역 파송을 주저하지 않는다. 위험지역에서 선교경력을 쌓은, 인기있는 젊은 목회자들을 따라 교인들이 많이 몰려들고 당연히 교인들의 교회에 대한 충성도와 헌금 액수도 높아진다. 위험지역에 많은 선교사를 보내는 교회일수록 높은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고 심지어는 위험지역에 파송되는 선교사 수가 교회의 세와 인기도를 평가하는 기준이 되고 만 것이다. 교회들은 인기있는 차세대 리더들을 보고 몰려드는 젊은 신자들이 늘어나면서 교회의 노령화 극복이란 이득도 얻고 있다. 김진호 목사(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장)는 “미국 기독교의 영향을 압도적으로 받은 한국 개신교는 기본적으로 식민지 지배의 제국주의적 선교 성향이 강하다.”면서 “해외선교의 깊숙한 늪에 빠진 한국 교회들이 태생적인 성장과 실적주의에서 벗어나 원초적인 ‘구원’의 의미를 찾아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김성호 문화전문기자 kimus@seoul.co.kr
  • “한국 민족주의 과잉 왜?”

    “한국 민족주의 과잉 왜?”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는 한국이 ‘단일 민족국가’ 이미지를 극복해야 한다고 18일 권고했다. 단일민족 논리의 ‘사실 왜곡’이 이주노동자와 이주결혼 여성 등에 대한 인권침해의 주요인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전혀 사실이 아님에도 ‘순수혈통’ 신화는 어떻게 의심받지 않는 ‘역사적 진실’로 창조될 수 있었을까? 영화 ‘디 워’의 완성도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왜 네티즌들로부터 집단 이지메를 당하고 있을까?일본 지하철 승객을 구하고 숨진 이수현씨는 왜 개인이 아닌 국가적 의인이 됐고, 평소 천대받던 기지촌 여성은 미군에게 살해되는 순간 왜 ‘순결한 민족의 누이’로 탈바꿈될까? 버지니아공대 총기난사사건을 접한 한국 국민은 왜 국민적 죄의식에 사로잡혔을까? 이들 질문의 저변에 깔린 ‘집단적 흥분’의 요체는 바로 민족주의다. 최근 출간된 ‘제국 그 사이의 한국’(휴머니스트 펴냄)은 1895(청일전쟁)∼1919년(3·1운동) 사이 한국 민족주의의 기원을 풍부한 실증자료를 바탕으로 세밀하게 파헤쳤다.“민족주의는 위기를 먹고 자란다.” 저자 앙드레 슈미드(캐나다 토론토대 동아시아 연구분과 교수)는 민족주의 ‘발명’의 핵심 메커니즘을 한마디 선언적 명제로 정의한다.‘대한제국’이란 국명도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민족’ 개념이 정치·경제·문화 등 모든 사회 담론의 최전선에 배치될 수 있었던 까닭은 국난극복이란 절체절명의 시대적 과제 때문이었다. 당시 민족 개념 형성과 확산의 첨병은 신문이었다.‘대한매일신보’와 ‘황성신문’ 등 민족지가 선두에 섰고, 신채호와 장지연은 당대의 스타이자 ‘펜을 든 무사’였다. 당시는 최초의 미디어전쟁 시기이기도 했다. 일본은 식민지 한국에 걸맞은 이미지 창조가 시급했고, 한국 민족주의자들에겐 국권침탈에 맞설 단결된 민족 이미지가 필요했다. 각자 ‘의도된 편집’을 십분 활용했다. 슈미드는 “다양한 섹션을 한 지면에 묶어내는 신문의 지면 구성은 단번에 다양한 화제들을 조사할 수 있게 해주었다.”면서 “이러한 화제들은 서로 관련이 없어 보일지라도 민족적 관점에서 그 취지를 천명하기 위해 편집부가 분명하게 또는 암묵적으로 짜깁기한 것들이었다.”고 적었다. 슈미드는 저항담론으로서 민족주의의 시대적 당위를 긍정하면서도, 민족주의가 수반하는 경직성 또한 놓치지 않는다. 민족지 편집자들은 의병의 애국심에 연민의 태도를 보이면서도 의병의 폭력저항이 자신들이 의도하는 문명화전략과 충돌한다고 비난했다. 한국 민족주의 운동의 은폐된 갈등이다. 슈미드는 민족지 편집자들의 문명개화 전략이 일제의 식민주의 전략과 묘하게 공명했다는 ‘논쟁적 지적’도 피해가지 않는다. 그는 “두 집단 모두 문명개화를 중심으로 정치적 계획을 수립했기에, 편집자들은 1905년 이후 자신들이 그렇게 열심히 전달하려는 지식이 사실상 한반도의 식민지화를 부추길지도 모른다는 딜레마에 부딪히게 된다.”고 주장했다. 옮긴이인 문학평론가 정여울씨는 “수치와 분노로 가득찬 ‘원한의 민족주의’를 벗어날 수 있을 때,100년 전 저마다 애끓는 동상이몽으로 민족을 사유했던 옛사람들의 꿈은 새로운 역사적 상상력의 도화선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특파원 칼럼] 광복절과 종전기념일/박홍기 도쿄 특파원

    사흘전은 8·15 광복절이었다. 반면 일본에는 종전기념일이다.62년전 그날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은 무조건 항복했다. 동시에 한국은 36년 동안 잃었던 빛을 되찾았다. 일본의 종전기념일은 기념일이기보다 추모일이다.‘흙 다시 만져보자. 바닷물도 춤을 춘다.’라는 광복절의 노랫말처럼 감격에 휩싸인 날이 아니다. 패망의 슬픔과 상처를 달래는 그런 날이다. 올해도 곳곳에서 ‘전국 전몰자 추도식’이 열렸다. 일본에서 맞은 종전기념일은 낯설기 그지없다. 가해자로서의 전범이 아닌 원자폭탄을 맞고 어쩔 수 없이 백기를 든 전쟁의 피해자로서만 부각시키는 일본의 태도 때문이다. 8월 초입부터 미국에 의한 원폭 투하와 태평양 전쟁은 사회적 이슈로 다가왔다. 미디어들은 일제히 당시의 원폭 피해자, 참전 군인들의 증언이나 자료 등을 발굴, 전쟁의 참혹함을 드러내는 데 여념 없었다.8월6일 히로시마,8월9일 나가사키에 원폭이 떨어진 날을 평화의 날로 지정한 것도 따지고 보면 전쟁의 폐해를 통해 평화의 소중함을 강조한 듯하다. 실제 종전기념일까지 10일 동안 3차례에 걸쳐 ‘평화’를 염원하는 공식 행사가 치러진다. 일본에서는 1945년 8월6일부터 8월15일까지만 전쟁을 벌인 것 같은 착각이 든다. 길게 잡아야 미국의 도쿄 대공습이 있었던 3월10일부터다. 초점이 원폭과 대공습 등의 전흔에만 맞춰진 까닭에서다. 일본, 자신들에 의한 전쟁은 없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를 아예 빼거나 왜곡시킨 탓이다. 더욱이 62년이라는 세월과 맞물려 전쟁의 폐해를 몸으로 경험한 일본인들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나아가 젊은이들은 자국의 전쟁 도발과 식민지에서의 야만성 등에 대한 근·현대사에 별다른 관심조차 없다. 공교육에서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게 일반적인 지적이다. 최근 만난 일본의 한 고교 교사의 ‘근·현대사를 가르칠 기회도, 제도적인 여건도 안 돼 일본이 일으킨 전쟁의 실상을 거의 알지 못한다.’는 말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일본의 역사인식은 독선적이다. 아전인수격의 역사관에 갇혀 한국을 비롯, 주변국들이 겪었던 질곡과 고난의 역사를 인정할 만한 자세를 갖지 못해서다. 전쟁터로 끌려가 희생된 수많은 한국의 학도병, 위안부, 건설노동자 등에 대한 진실된 사죄는커녕, 반성도 없다. 물론 아베 신조 총리는 올해 종전기념일의 추도사에서 “깊은 반성과 희생자들에게 애도를 표한다.”고 했지만 진정성에 대한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 지난 1995년 이른바 ‘무라야마 담화’를 통해서도 “과거 식민지 지배와 침략으로 아시아 국민들에게 손해와 고통을 줬다.”며 공표했던 적도 있다. 그러나 정권에 따라, 시대의 상황에 따라 반성과 사과는 형식적으로만 되풀이됐다. 야스쿠니신사 참배, 교과서 왜곡, 독도 등의 문제도 변화없이 그냥 그대로다. 신뢰성을 담보할 수 없는 이유다. 아베 총리 스스로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부인한 것도 대표적인 사례이다. 일본은 분명 가해자로서의 과거사 청산에 적극 나서야 한다. 역사의 겸허함을 수용해야 한다. 굳이 독일이 실천한 ‘전후 피해 보상과 화해의 과정’을 거론할 필요도 없다. 깊은 사죄만이 유일한 길이다.1965년 한·일 회담에서 이미 강점기와 관련해 포괄적인 해결이 이뤄졌음을 주장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당시 회담은 국제 정세에 따른 안보논리에 의거해 이뤄졌다는 것이 공공연한 사실이다. 62년전의 역사를 새삼 들춰낸 것은 광복절을 계기로 종전기념일에 전쟁의 피해를 내세워 역사적 진실을 호도하는 일본을 경계하기 위해서다. 다시 올 종전기념일은 패망을 위무하는 자신들만의 날이 아닌 국제 평화와 화해를 도모하는 날이 됐으면 한다. 나아가 사죄와 용서를 통해 진실된 소통이 가능한 한국과 일본의 미래 관계가 조성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박홍기 도쿄 특파원 hkpark@seoul.co.kr
  • [어린이 책꽂이]

    ●식민지 소년(김하기 지음, 청년사 펴냄)가난한 식민지 소년 ‘나’ 김덕경은 일장기가 걸린 학교에 다니게 된다.‘나’는 소 치고 고기 잡고 황새알 훔치며 놀던 시절이 그립다. 일본 사무라이로 만들어주겠다며 약장수가 씌워준 일본 삿갓은 눈앞의 세상을 캄캄하게 한다. 분단문학 작가로 잘 알려진 지은이가 담백한 웃음과 저릿한 아픔으로 그린 성장소설.8800원.●청소년 경제수첩(크리스티아네 오퍼만·한대희 지음, 신홍민 옮김, 양철북 펴냄)생산과 소비, 저축과 투자, 국가 경제와 세계 경제 등 경제 전반을 91가지의 물음으로 압축했다. 유명 연예인이 홍보하는 교복의 광고비는 누가 지불하는 걸까, 유명 브랜드의 청바지가 할인판매를 하는 이유는 뭘까 등 청소년들이 궁금해하는 생활경제 이야기를 담았다. 주식과 투자, 부동산 투기, 유럽연합과 지역화에 대한 이야기도 현장성이 강하다.9000원.●행복, 그게 뭔데?(베르트랑 페리에 지음, 이선주 옮김, 도서출판 낮은산 펴냄)겉보기에는 멀쩡한 가정이지만 주인공 소년은 가정폭력과 아동학대로 속이 곪아 들어간다. 부모와 자식 간에는 험한 말이 오가고 소년은 점점 자기만의 공간으로 침잠해 들어간다. 어른들은 불편해할 묘사가 많지만 작가는 여러 시민단체를 통해 수집한 아동학대 사례를 바탕으로 소년의 심리를 세밀하게 따라간다.9000원.●어른이 되면 괜찮을까요?(스티안 홀레 지음, 이유진 옮김, 웅진주니어 펴냄)여섯살 난 주근깨투성이 가르만. 이제 막 삶에 발을 내딛는 가르만은 자전거도 못 타고 글도 잘 쓸 줄 모른다. 그러나 여름이 되면 학교에 가야 한다는 사실에 겁이 난다. 그런데 어른인 할머니, 아빠, 엄마에게도 겁이 나는 게 있다는데…. 사진과 그림을 활용한 포토몽타주 기법의 그림이 환상적이다.9000원.
  • [한나라당 경선후보 정책 검증] 외교·안보·통일

    [한나라당 경선후보 정책 검증] 외교·안보·통일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오는 28일 평양 정상회담을 계기로 대선 경선 후보의 외교·안보·통일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명박·박근혜 한나라당 대선 경선 후보의 외교·안보·통일 분야 공약은 기본적으로 DJ정부와 참여정부의 대북 포용정책에 대해 ‘원칙 없는 퍼주기로 인한 실패’라는 인식을 바탕에 깔고 있다. 때문에 두 후보 모두 한·미 안보협력체제를 강화·발전시켜 ‘힘에 바탕을 둔 대북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두 후보는 북핵문제를 최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하며, 북방한계선(NLL) 양보는 절대 안 된다고 입을 모은다. 이 후보는 지난 11일 열린 3차 TV토론회에서 “주한미군 철수 등을 양보한다면 차기 정권에 굉장한 부담을 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후보 역시 “헌법에 위배되는 통일방안에는 합의하면 안 된다.”면서 서해교전에서 전사한 장병들까지 언급했다. 하지만 힘에 바탕을 둔 대북정책은 여전히 냉전과 남북대결구도라는 보수적인 관점에서 비롯된다는 지적이다. 동국대 국제관계학과 이철기 교수는 “정전체제 종식과 북·미 간의 대사급 수교가 논의되고 있는 시점에 두 후보의 통일분야 공약과 정세 인식은 뭔가 한참 부족해 보인다.”면서 “보수적 지지층의 눈치를 봐야 하고 햇볕정책의 성과를 인정할 수도 없는 양 후보의 딜레마가 공약에 그대로 베어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보수적 지지층을 결집시키기 위해 ‘냉전적 정체성’을 고집하기에는 세상이 너무 빠르게 변해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명박의 안보·통일 공약 이명박 후보가 내세우고 있는 대북 정책의 기본 골자는 ‘경제 줄게, 평화 다오’식의 경제와 평화 교환 전략이다.‘비핵·개방·3000’ 공약은 북핵을 제거하고 북한의 경제를 수출 주도형으로 전환해 현재 500달러 수준인 북한의 1인당 국민소득을 10년 뒤 3000달러까지 끌어올리겠다는 구상이다. 이 후보 측은 ▲300만달러 이상 수출기업 100개 육성 ▲30만 산업인력 양성 ▲400억달러 상당 국제협력자금 조성 ▲신경의고속도로 건설 ▲인간다운 삶을 위한 복지지원 등 ‘5대 분야 패키지 지원’을 수단으로 제시한다. 한강 하구의 하중도에 여의도 10배 크기인 900만평 규모의 남북경제협력단지를 조성하겠다는 ‘나들섬’ 구상도 북한에 제시할 당근 중 하나이다. 남측의 기술·자본과 북측의 노동력이 결합된 신도시 형태로 해외이탈 중소기업도 유턴시키는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 후보의 ‘북한 부흥안’은 통일을 위해 북한 경제를 일정 수준까지 끌어올리겠다는 얘기다. 차영구 전 국방부 정책실장은 “이 후보의 대북 정책은 한국판 ‘마셜 플랜(2차대전 이후 유럽에 대한 미국의 원조 정책)’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비판-“남한에 흡수통일 되지 않으면 불가능” 동국대 국제관계학과 이철기 교수는 “국민소득 3000달러 달성을 위해 필요한 북한의 연간 17% 고도성장의 현실성도 의문이지만, 더 큰 문제점은 남한식의 개발독재형 경제정책을 북한에 그대로 적용하려는 것”이라면서 “이 구상은 북한이 남한에 흡수통일돼 자본주의 체제로 편입되지 않는 한 불가능해 보인다.”고 비판했다. 평화네트워크 정욱식 대표는 “북핵 문제가 해결되면 어떻게 하겠다는 계획은 제시하면서도 북핵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겠다는 구체적인 정책은 없다.”면서 “개발지상주의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고, 북한을 경제 식민지화하려 든다는 우려가 제기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후보측 재반박-협상 테이블 유인책 이 후보 측은 “비핵·개방·3000 공약은 북한이 체제의 위협을 느끼지 않고 협상 테이블에 나오도록 하는 당근 내지는 미끼”라면서 “북한에서도 공약 내용에 관심을 보이며 자세한 자료를 보내달라고 비공식 제안했다.”고 밝혔다. ■박근혜의 안보·통일 공약 이명박·박근혜 후보의 대북 정책은 기본적으로 ‘북핵 폐기 뒤 지원’이라는 같은 형식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이 후보는 ‘지원’에 초점을 맞추고 있고, 박 후보는 ‘북핵 폐기’에 방점을 찍고 있다는 점에서 다르다. 박 후보는 ▲평화 정착 ▲경제 통일(작은 통일) ▲정치 통일(큰 통일)이라는 ‘3단계 평화통일론’을 내세운다. 전제조건은 북핵 제거와 군사적 대립구조 해소다. 박 후보 측은 “정치적 통일에 성급하게 매달린다면 혼란을 초래하고 통일 비용만 커질 뿐”이라며 남북 경제공동체 건설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박 후보 측은 한반도 문제의 핵심은 북한이 변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선군정치를 폐기하고 선민정치로 나와야 대화와 협상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북한이 약속을 이행하면 보상하고, 합의를 깨면 불이익을 주는 ‘변화의 인센티브’를 엄격히 적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를 위해 6자회담 당사국들과의 철저한 공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박 후보 측은 “시간을 끌 수록 북한의 핵보유는 기정사실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비판-“당근과 채찍 조화 쉽지 않다” 차영구 전 국방부 정책실장은 “박 후보의 대북정책은 소신과 힘이 있어 보이지만, 북한이 그 뜻을 전혀 따라주지 않을 것이라는 과거의 사실이 이런 대북정책의 성공을 의심스럽게 한다.”면서 “당근과 채찍 정책을 조화시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며, 실제로 부시 행정부의 힘있는 초기 대북정책도 결국 북한의 핵무기 수준만 더 높여줬다는 비판을 받았다.”고 지적했다. 평화네트워크 정욱식 대표는 “박 후보의 공약은 당근과 채찍론, 국제공조를 통한 대북 압박, 핵을 가진 북한과 공존 불가 등의 내용에 있어 ‘실패한 부시의 대북정책론’과 거의 같다.”면서 “이는 결과적으로 실패로 돌아갔고, 부시가 결국 북·미 양자 대화와 확실한 인센티브 제시를 통해 2·13 합의에 도달했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고 조언했다. ●후보측 재반박-행동바탕 신뢰 구축해야 박 후보 측은 “2·13 합의의 핵심은 ‘행동 대 행동’의 원칙으로 국제사회가 북측의 행동을 하나하나 확인해가며 신뢰를 쌓고 이를 바탕으로 궁극적으로 북핵을 폐기하도록 유도해야 한다.”면서 “핵을 가진 북한과는 결코 평화공존할 수 없으며, 의구심이 남는 결과는 수용 불가”라고 밝혔다. ■홍준표·원희룡의 외교·통일 공약 홍준표·원희룡 후보는 햇볕정책의 수정을 주장하는 이명박·박근혜 후보와 달리 ‘햇볕정책 계승’을 외교·안보정책의 큰 틀로 잡고 있다. 홍 후보는 ‘북한의 정상국가화를 통한 통일’을 지향한다. 북한을 정상국가로 만들어야 핵문제를 해결하고 통일도 모색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먼저 남북 경제공동체를 구성하고, 남북 상주대표부를 교환설치해 민족동질성 회복을 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원 후보는 남북 정상회담 정례화, 남북 경협에 정부예산 1% 지원 등의 공약을 내세웠다. 북한이 핵폐기를 완료하면 북한 경제재건 프로그램을 가동하겠다는 계획을 제시한다. 외교안보 분야에서 두 후보 모두 ‘실용주의적 노선’을 표방한다. 하지만 각론에서는 차이가 난다. 홍 후보는 대미 자주노선을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원 후보는 국익을 실현하기 위해 오히려 한·미 동맹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념 중심의 친미-반미 논쟁을 털고 서로 이기는 ‘윈윈(Win-Win)’관계로 발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두 후보 모두 동북아 중심의 다자적 외교관계가 강화돼야 한다는 데는 입장을 같이 한다. 눈에 띄는 공약은 홍 후보의 ‘무장 평화’와 원 후보의 ‘한민족 공동체 네트워크’공약이다. 홍 후보는 통일이 될 때까지 ‘무장 평화’를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원 후보의 ‘한민족 공동체 네트워크’는 재외국민의 온·오프라인 공동체를 강화하고, 약 300만명의 재외국민에게 참정권을 부여하겠다는 공약이다. 재외국민과 동포의 원어민교사 임용 확대도 약속했다. 두 후보 모두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구체성 부족’이다. 홍 후보의 ‘남북경제공동체’ 건설 공약은 추상적이다. 개성공단·금강산 관광특구 등 기존 정책과의 차별성도 모호하다. 원 후보도 핵 폐기 후의 북한경제 재건 프로그램의 방향이나 규모, 시행 시기 등을 명시하지 않고 있다. 특별취재팀 이창구 유지혜 김민희기자 window2@seoul.co.kr
  • 일제때 고국 뜬 한인·일인 할머니들

    KBS 1TV 수요기획은 광복절을 맞아 ‘8·15특집-고향의 봄’을 15일 오후 10시30분에 방송한다. 지난 세기, 그것도 일제강점기의 상처를 아직도 끌어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비춘다. 지난 7월 일본의 치매환자 요양시설에서 만난 김득생 할머니. 시설 직원에 따르면 ‘일본사람인 척하는 할머니’다.“한국 사람이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할머니는 한국말로 “저는 한국 사람이 아니에요.”라고 대답한다. 반면 한국에서 만난 기미코 할머니는 끝까지 인터뷰를 거절한다. 자기가 일본 사람인 것을 이웃이 알게 될까봐 두렵다고 말한다. 서울 하월곡동에 사는 아오키 할머니는 고향 홋카이도에서 어머니가 담가 주시던 우메보시의 맛을 잊지 못한다. 우메보시는 매실을 소금에 절여 만든 일본의 전통음식. 그는 고향을 떠난 지 60년이 지난 지금도 만들어 먹는다. 서울 대방동에는 한국에 사는 일본인 부인의 모임인 ‘부용회’가 자리잡고 있다. 그들은 일제 강점기에 한국 남자와 사랑에 빠져 광복 이후에도 한국에 남은 사람들이다. 그러나 ‘식민지 시대 가해자’란 멍에를 쓰기 일쑤이고 자식한테서까지 ‘일본놈’ 소리를 들으며 살아와야 했다. 이밖에 재일한국인 차별의 역사와 현실을 보여주는 우토로 마을, 일본군 비행장 건설에 동원되었던 징용피해자 최씨 할아버지의 고독한 죽음도 살펴본다.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애국가의 한 소절에 등장하는 무궁화는 이땅에서 일찍이 ‘나라꽃’이었다. 고조선 이전부터 하늘나라의 꽃으로 귀하게 여겨졌고, 신라는 스스로를 ‘근화향(槿花鄕:무궁화의 나라)’이라 칭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사실 무궁화가 국화로 정해진 근거는 법으로 명시된 바 없다. 국회의 인준기록도 없다. 그러나 예부터 한반도 전역에 널리 분포되어 꽃이 아름답고 꽃피는 기간이 길어서 우리 민족의 오랜 사랑을 받아 온 것이다. 일제강점기 동안 무궁화는 한민족을 상징하는 꽃으로 알려져 일본인들에 의해 뽑히고 잘리는 등 큰 수난을 당했다. 이후 민족의 꽃, 나라의 꽃으로 누구나 믿게 되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무궁화가 국화로서 부적합하다는 논란도 있다.38선 이남에 주로 피는 꽃이라는 지역적 한계성과 수명이 100일 정도로 짧다는 단점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무궁화는 국가기관의 문양 등에 사용되고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마케팅에도 여전히 자주 등장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국가의 3권인 행정부와 사법기관인 법원, 그리고 입법기관인 국회는 무궁화 안에 약자를 넣어 문양을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각종 훈장과 계급장에도 무궁화가 사용된다. 국가에서 수여하는 훈장 중에서 가장 권위가 있는 것이 ‘무궁화대훈장’이다. 국화로서의 위상을 엿볼 수 있는 사례다. 7~8월이면 전국 곳곳에서 선을 보이는 무궁화는 현재 한국에서만 200여종의 품종을 가지고 있다. 색깔에 따라 ‘배달계’ ‘단심계’ ‘아사달계’의 세 가지로 나뉘어 진다. 품종의 이름 또한 ‘새빛’ ‘눈보라’ ‘옥토끼’ ‘화랑’ ‘수줍어’ 등 한국적인 것들이 대부분이다. 무궁화는 현재도 농촌진흥청 산하 원예연구소 등에서 교배활동을 통한 품종개량이 꾸준히 진행 중이다. 식민지시대에 일제의 ‘문화정치’에 대항하여 여성의 민족해방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전개했던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항일단체인 ‘근우회’. 현재는 한복에 무궁화 수를 놓는 작업 등의 무궁화홍보와 함께 ‘나라사랑과 겨레사랑’을 표방하며 여성의 지위 향상 운동을 펼치고 있다. 이희자 회장은 “무궁화는 우리나라의 혼이며 바로 우리 민족의 모습 그 자체다.”라며 무궁화 예찬을 펼친다. 나라꽃은 민족의 정신적 상징이며, 혼이다. 선열들은 한 떨기 무궁화에서 나라를 찾기 위한 힘과 용기를 얻었다. 꽃속에 스며있는 겨레의 혼과 정신은 그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위대한 것이기에. 예순두돌 광복절을 맞아 국민 모두의 무궁화 사랑을 기대해 본다. 정연호기자 tpgod@seoul.co.kr
  • [기고] 자주독립정신 되새기는 광복절 아침이기를/김정복 국가보훈처장

    광복 62주년을 맞는다.1945년 8월15일. 광복의 감격은 어느 수필가의 글처럼 “얼었던 심장이 녹고 막혔던 혈관이 뚫리는 것 같았다. 모두 다 ‘나’가 아니고 ‘우리’였다.” 우리 선열들은 50여년에 걸친 길고도 험난한 독립운동을 활발하게 전개했다. 의병의 활약, 독립군과 광복군의 활동,3·1운동, 의열투쟁, 무장투쟁, 상하이임시정부 수립, 학생운동, 문화운동, 외교활동 등으로 광복을 맞는 그날까지 피어린 항일투쟁을 전개했다. 국내는 물론 중국, 러시아, 미주와 유럽대륙, 심지어 일본 열도까지 전 세계를 무대로 독립운동을 펼쳤다. 이러한 수많은 애국선열들의 항일독립운동이 있었기에 우리 민족은 광복을 쟁취할 수 있었고 지금 우리는 자유로운 대한민국에 살고 있다. 선열들은 이 나라의 어둠과 울분시대에 겨레의 한을 대신한 한줄기 의로운 빛이었다. 그 암흑 속에서도 선열들은 조국 광복의 일념으로 절개를 굽히지 않았고, 조국을 사랑한 마음과 앞날을 예언한 말씀은 오늘날 우리에게 교훈이 된다. 윤봉길 의사는 “우리의 독립은 머지않아 꼭 실현되리라 믿는다.”는 예언을 했고, 안중근 의사는 “조국의 역사는 조국을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이끌어가고 또 계승해 가는 것”이라는 유언을 남겼다. 이준 열사는 “위대한 인물은 반드시 조국을 위해 생명의 피가 되어야 한다.”라는 가르침을 남겼으며, 이상설 선생은 “동지들을 합세하여 조국광복을 기필코 이룩하라.”는 유언을 남겼다. 오늘 우리에게는 선열들의 이러한 나라사랑, 독립정신이 필요하다. 우리의 염원인 평화통일과 조국의 자유, 인류의 평화가 모두 그 힘에 의해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외국에서는 이러한 희생과 헌신에 보답하고 예우하는 ‘보훈’을 국민통합을 이루는 국가의 근본정신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이러한 사례는 얼마 전 헤이그 특사 100주년 기념식을 위해 정부대표로 방문한 네덜란드에서 경험할 수 있었다. 헤이그에서는 이준 열사 순국 100주년과 헤이그특사 파견 100주년을 기리는 거리축제와 전시 등 다채로운 행사가 열렸다. 헤이그시는 7월14일을 ‘이준 평화의 날’로 선포하고 이준 문화유적지 지정 등 열사의 숭고한 뜻을 널리 알렸다. 이렇듯 네덜란드에서는 100년 전 온갖 수모를 당하며 자국의 독립을 위해 필사적인 투쟁을 한 타국의 특사라도 그 숭고한 정신에는 뜻을 함께하였던 것이다. 자유와 평화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그들의 국경을 떠난 ‘보훈’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올해는 민족혼의 산실인 독립기념관 개관 20주년을 맞는 해이기도 하다. 광복절을 기해 개관 20주년 기념행사와 더불어 제4관 ‘겨레의 함성’이 새롭게 단장하고 문을 연다. 앞으로 많은 국민이 달라진 독립기념관에서 8·15의 감격과 국난극복의 역사를 되새기고 통일과 선진조국의 꿈을 키웠으면 한다. 역사는 현실을 이해하고 미래를 지향하는 거울이다. 지난 세기 우리 민족이 일제 식민지하에서 고통 받고 있을 때 선열들이 보여 주었던 나라사랑 정신을 오늘의 소중한 정신적 가치로 자리매김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것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몫이다. 국민통합과 진정한 민족공동체정신이 필요한 이때 8·15 광복절을 맞아 선열들이 보여준 독립투쟁과 사상, 국가가 위난에 처했을 때 신명을 바쳤던 애국선열들의 숭고한 자주독립정신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보았으면 한다. 김정복 국가보훈처장
  • 15일 독립기념관 개관20돌 김삼웅 관장

    15일 독립기념관 개관20돌 김삼웅 관장

    9일 오후 독립기념관(충남 천안시)은 23회(피랍자 23명 상징)의 종을 울렸다. 아프가니스탄 피랍 한국인들의 무사귀환과 명복을 비는 뜻에서였다. 같은 날 폴란드 아우슈비츠국가기념관, 인도 네루기념관 등 4개국 5개 평화기념관 대표들과 ‘반침략 평화선언’을 했다. 지구상에서 더 이상 전쟁과 테러, 폭력과 인권유린이 발생하지 않기를 기원했다. 지난달 말 미 하원이 ‘위안부’ 결의안을 통과시켰을 땐 격려 메시지를 보냈다.3월엔 결의안을 무산시키려는 일본 정부의 로비에 흔들리지 말 것을 호소하기도 했다. 과거를 기념하는 독립기념관이 현실 속에서 움직이고 있다. 역사를 기억하고 전시하는 데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현재화·미래화하고 있는 것이다. 김삼웅(65) 관장은 “유물 전시하고 관람객 안내나 하는 게 독립기념관 역할이 아니다.”라고 단언한다.15일 광복절이면 독립기념관이 개관 20주년을 맞는다. 김 관장 또한 9월이면 3년 임기를 꽉 채운다. 재임 기간 동안 김 관장은 ‘독립’을 재정의해왔다. 광복절을 맞아 그가 말하는 ‘독립’의 현재적 의미를 들어봤다. ●“통일 없인 독립도 없다” 취임 후 김 관장의 주된 관심사는 독립기념관 안팎의 ‘리모델링’이라 할 수 있다. 노후한 전시관을 현대적 기법으로 교체하고, 지역의 참여를 높이기 위해 ‘3·1절 버스투어’와 ‘찾아가는 독립기념관’ 프로그램을 진행했다.‘역사용어 바로잡기 학술심포지엄’을 열어 ‘을사보호조약’을 ‘을사늑약’으로 바로잡았고, 독립운동가 상을 제정했다. 기념관 내 친일인사들의 물품을 철거했고, 비정상적 직원채용 관행을 바로잡아 노사갈등을 치유했다. 최하위를 달리던 정부 경영평가도 4단계 상승했다. 김 관장은 그러나 기념관 외형 개선보다 역할 재조정에 더 큰 방점을 찍었다.‘독립’과 ‘통일’의 연계작업이 대표적이다.‘민족주의 조선민족 반일투쟁’ 학술심포지엄 차 7월초 북한을 방문한 그는 조선혁명박물관과 자료교류협정을 맺었다. “남북이 가장 쉽게 동질성을 느낄 수 있는 게 일제 강점기에 독립운동을 함께 했다는 거예요. 독립은 통합과 통일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입니다. 이번 달부터 나오는 신채호 전집도 북한 자료를 지원받아 출간합니다. 남북한 독립운동사 공동연구는 독립기념관이 통일을 위해 기여할 수 있는 작은 역할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가 통일을 중시하는 것은 “통일 없인 진정한 독립도 없다.”는 믿음 때문이다. 김 관장은 “남북으로 쪼개진 절름발이식 국가체제는 일제강점기 독립투사들이 염원했던 독립과 상충된다.”면서 “21세기 세계화 파고 속에서 민족역량 강화와 자주권 수호는 통일된 민족국가로서만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그가 2차 남북정상회담에 큰 기대를 거는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일본의 독도침탈이나 중국의 동북공정을 지켜보면서 언제까지 남북이 서로 적대시만 할 겁니까. 이번 정상회담이 통일을 향해 한걸음 내딛는 계기가 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여야, 보수·진보를 막론하고 통일을 위한 협력은 시대적 당위입니다.” ●“식민지근대화론은 무장해제론” 김 관장은 최근 기세를 높이고 있는 식민지근대화론자들의 주장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했다. 그는 “식민지근대화론의 의도나 배경을 잘 꿰뚫어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에서는 군국주의 강화와 평화헌법 개정 흐름이 커지고 있잖아요. 방위청을 방위성으로 격상했고, 교육법을 개정해 정부가 직접 역사기술을 통제하고 있습니다. 상대는 칼을 가는데, 우리는 스스로 무장해제하고 있는 겁니다. 식민지근대화론자들의 주장에 일본이 개입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듭니다.” 김 관장은 ‘한국 사학계의 과도한 민족주의가 선진화를 가로막는다.´는 식민지근대화론자들의 논리에도 날을 세웠다. 그는 “그들이 선진국이라 말하는 미국이나 유럽은 역사적으로 더 이상 민족주의가 필요 없는 곳”이라면서 “반면 일본과 중국이 점점 더 보수화되는 아시아에서 민족주의는 생존과 직결된다.”고 지적했다. 김 관장의 민족주의 비판은 진보진영도 비켜가지 않았다. “북한을 적대시하는 보수적 민족주의가 외세지향적이라면, 진보주의자들의 탈민족주의 역시 우리 상황을 망각한 서구식 사고예요. 국제화시대에 민족주의가 시대착오적인 것처럼 말하지만, 이는 한국 현실을 망각한 관념론자들의 인식입니다.” ●9월로 3년 임기 끝나 개관 20년을 통과하는 독립기념관은 앞으로도 적지 않은 과제를 안고 있다. 접근성 제고를 위해 전철역 개통을 추진하고 있고, 신세대 관람객의 발길을 붙들기 위해 서곡 지역에 복합문화타운 건설도 진행 중이다. 고질적인 연구인력 부족을 해결하는 것도 시급하다. 하지만 이 일들을 김 관장 손으로 마무리 지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독립기념관 7대 관장이자 첫 번째 공모제 관장인 그는 오는 9월이면 3년 임기를 마친다.8대 관장부터는 정부의 경영평가를 거쳐 1년 단위로 임명된다. 김 관장은 연임 여부는 신경 쓰지 않는다고 했다. 취임 당시 그는 몇몇 언론으로부터 자격시비에 시달린 바 있다. 독립유공자가 아니란 이유였다. 그는 “일을 시작하고부터는 조용해졌다. 별로 시비 걸 게 없었나 보다.”라며 웃었다.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26) 이곳에 없으면 세상에 없다

    (26) 이곳에 없으면 세상에 없다

    벼르고 별러서 마르카토(Markato)에 다녀왔다. 가기 전에 제발 혼자 가지 말라고 말리는 사람들이 많아서 내심 기대가 없던 것도 아니었다. 일단, 여행하면서 본 다른 어떤 지역의 마르카토 보다 규모가 크긴 컸다. 그러나 뚜껑이 없어 하늘을 보면서 구경할 거라 기대했는데 점차 뚜껑이 있는 상태로 가고 있는 과도기였다. 동아프리카 최대의 재래시장이라고 하는 마르카토에 다녀왔다. 아프리카 최대의 재래시장이라고 하는 현지인들도 만났는데 비교대상이 없으니 믿을 수가 있나. 그러나 동아프리카 지역에 이 정도 규모의 재래시장이 있을만한 곳은 에티오피아뿐이니 그 말은 믿을밖에. 마르카토는 ‘시장’이란 뜻의 이탈리어어다. 단 5년 동안의 식민지 경영으로 이탈리아는 참 많은 것을 에티오피아에 남겨놓고 갔다. 그러니 우리나라에 몽고의 것과 일본의 것이 얼마나 많을지 쉽게 상상이 간다. 아디스 아바바에 시장이 많은 데 유독 이곳만 마르카토라고 부른다. 지방 여행하면서 찾아간 시장들을 마르카토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있지만 현지인들은 고개를 심하게 흔들며 마르카토는 아디스 아바바에만 있다고 주장한다. 에티오피아에서 ‘마르카토’는 더 이상 시장의 의미가 아니라 고유명사화 되었다는 느낌이 든다. 마르카토는 품목별로 구획이 잘 나누어져 있다. 향신료를 파는 곳에 가면 향신료만, 생활용품을 파는 곳에 가면 생활용품만 모아져 있다. 특히 커피의 경우 이곳이 발상지답게 그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향이 정말 끝내준다. 그리고 품목은 다르지만 각 민족별로 네트워크가 잘 되어 있어 전국 각지에서 몰려 온 오로모족, 암하라족, 티그레이족, 구라게족 등의 그룹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다. 어디서 왔느냐고 물어봐서 한국에서 왔다고 했더니 한국제품을 권해주는데 주전자, 냄비 같은 양은 제품이 현지 물건에 비해 아주 고가로 거래되고 있었다. 비싸다고 했더니 좀 아래 등급이라며 권하는데 중국산이었다. 아프리카 전체에 중국산이 홍수를 이루는데 에티오피아도 예외는 아니었다. 질이 낮아 선진국에는 수출할 꿈도 못 꾸는 물건들이 중국 노동자들의 손에 들려 다 에티오피아로 들어오는 것 같다. 신발은 냄새가 나서 신을 수가 없고, 전자제품도 한번 쓰면 더 이상 사용하기가 힘들다. 중국, 얘들은 왜 그러지? 볼펜 정도의 굵기에 10cm 정도 길이의 나무조각을 상자에 담아 파는 사람들이 있어 용도가 뭐냐고 했더니 양치용 나무란다. 양치를 안하고 이것만 사용하는 지 모르겠지만 이것으로 치아를 문지르기도 하고 즙이 나오는지 오래도록 물고 있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이 나무조각이 원인인지는 모르겠지만 에티오피아 사람들은 치아가 고르고 치아 색깔이 아주 하얗다. 이곳에서 만난 일본인들은 에티오피아인들의 치아를 많이 부러워했다. 마르카토에는 이런 나무조각에서부터 전자제품까지 없는 게 없다. 이 나라 사람들은 마르카토에 엄청난 자부심을 가지고 있어 감히 ‘이곳에 없으면 세상에도 없다’고 주장한다. 김치도 없고, 삼겹살도 없으면서 말이다. 현대식 건물도 많이 올라가고 있는데 이런 건물 안은 우리나라 동대문이나 남대문 시장과 별 차이가 없다. 실내보다 바깥에 볼 거리가 많지만 사람과 자동차, 노새(현지에서는 ‘로바’)까지 뒤엉켜 미로 같은 길을 걷다 보면 정신이 없다. 이럴 때 주의해야 한다. 우리나라도 재래시장을 다닐 때는 주머니 관리를 잘해야 하듯이 여기서도 예외가 아니다. 외국인들은 관광가이드나 현지를 잘 아는 에티오피아 사람들과 가는 게 안전하지만 사람 사는 곳이라고 생각하고 편하게 마음을 먹으면 하루를 즐겁게 보낼 수 있다. 마르카토에 대한 악성루머가 많아 차에서 내리지도 않고 차창으로 구경하는 외국인들이 있는데 자기 사정이지만 별로 권할 일은 못 된다. 지갑과 카메라를 주의하고 혹시 악수를 청하는 꼬마들을 만나면 정신을 바짝 차릴 것. 난 바보처럼 악수에 눈이 멀어 메켈레 시장에서 카메라를 잃어버렸다. 마르카토 북쪽에는 장거리 버스 터미널이 있다. 여기서 버스를 타고 에티오피아 여기저기를 여행 할 수 있으니 위치를 확인해두면 좋다. 그러나 차 시간은 별 의미가 없다. 에티오피아에서는 어떤 지역에서도 차에 손님이 다 타야 출발한다. 손님이 없으면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기다려야 한다. 그 날 손님이 다 안차면 안 간다고 하는 황당한 경우도 있다. 그렇다고 어이없어하며 화를 내는 사람들은 외국인들 밖에 없다. 현지인들은 저 사람들 왜 저러지, 손님이 없어 안간다는데, 이런 표정이다. 심지어 국내선 비행기에서도 이런 일이 있어 늦게 출발하고 늦게 도착하는 건 애교고 한 도시에서 며칠씩 기다려야 할 때도 있다. 뭐 이런 나라가 있어, 하면 그 여행은 한없이 힘들어지지만 아, 이 나라는 이런가보다, 체념해버리면 그래도 여행할만하다. 마르카토를 나오면서 마르카토가 어떻게 이런 형태의 상가 모습을 갖추게 되었느냐고 현지인에게 물어봤다. 과거의 마르카토 모습은 그 옛날 이곳을 여행했던 사람들이 그린 삽화를 통해 본 적이 있는데 지금과는 모양도 규모도 많이 다르다. 현지인에 따르면 나라는 태국인지 대만인지 기억을 못하는데 그 나라 사람들이 와서 원래 재래시장으로 이용되던 이곳을 개발해 대형 몰을 지을 생각을 했었나 보다. 그래서 터잡는 공사를 하면서 이곳에서 이미 자리를 잡고 장사하는 사람들을 일일이 찾아 다니면서 보상을 해 줄 테니 떠나라고 했단다. 지금도 느리고 서두르는 게 없는 에티오피아 사람들은 그 사람들한테도 그런 태도를 보였나보다. 일부 보상을 받고 떠난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그 작업의 끝이 보이지 않아 결국 태국인지 대만에서 온 사람들은 몰을 짓는 작업을 포기하고 이곳을 떠났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주거지역과 상가지역이 혼재되어 지금과 같은 모습의 마르카토가 만들어졌고 지금도 유지가 되고 있단다. 당연한 이야기 같지만, 일반 슈퍼마켓이나 백화점 보다 물건값은 마르카토가 몇 배나 싸다. 그러나 흥정을 아주 오래 해야 한다. 재래 시장에서의 흥정은 게임이다. 게임에서 이기면 내가 돈을 따지만, 지면 잃어야 한다. 이건 만고불변의 게임의 법칙이다.       <윤오순>
  • 대한제국 황실비사/곤도 시로스케 지음

    ‘대한제국 황실비사’(곤도 시로스케 지음, 이언숙 옮김, 신명호 감수·해설, 도서출판 이마고 펴냄)는 대한제국에서 일제강점기에 이르는 시기에 창덕궁에서 순종의 측근으로 일한 일본인이 쓴 회고록이다. 지은이 곤도 시로스케는 1907년부터 1920년까지 대한제국 황실 궁내부와 경술국치 이후에는 이왕직에서 관리로 지냈다. 말이 관리이지 일본이 파견한 감시자에 다름 없었다. 어쨌건 그는 당시의 경험을 1926년 ‘조선신문’에 ‘창덕궁의 15년’이란 제목으로 연재했고, 같은 해 조선신문사에서 이것을 ‘이왕궁비사(李王宮秘史)’라는 단행본으로 출판했다. 이 책에는 이제껏 알려지지 않았던 궁내부의 업무와 주요 관료의 면모, 이토 히로부미의 ‘궁중 숙청’의 실상 등이 자세히 그려져 있다. 또 1910년 경술국치의 과정과 순종황제의 굴욕적인 일본 방문기 등도 생생히 담겨 있다. 화재로 소실된 대조전의 재건축 과정 및 이곳에 그림을 그리게 된 친일화가들의 모습,3·1독립만세운동 당시 광화문과 덕수궁의 풍경 등은 오직 이 책에서만 접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다. 곤도 시로스케는 순종황제에게 우호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긴 하지만,‘한일합병은 조선민중을 위한 것이고 식민지배는 정당하다.’는 왜곡된 역사 의식을 그대로 지니고 있다. 저변에 깔려있는 ‘문명개화한 일본이 조선을 구원해야 한다.’는 사고방식에 독자들은, 옮긴이가 걱정하듯 “화가 치밀어 올라 책을 집어던지게 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찬찬히 읽어볼 가치가 있는 것은 이 책처럼 대한제국 황실에 대해 상세히 기록을 남긴 사료도 거의 없기 때문이다. ‘조선왕조실록’은 무미건조한 정사라는 점에서,‘매천야록’ 같은 야사는 풍문이라는 점에서 어딘가 모를 부족함을 느꼈던 독자라면, 이 책에서 궁중의 소소한 일상사에 대한 신빙성 있는 기술을 접하는 드문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 고려대 사학과 출신으로 일본어 번역·통역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는 옮긴이 이언숙씨와 부경대 사학과 교수인 감수자 신명호 교수는 지은이의 아전인수식 해석에 정확한 역사적 사실을 주석으로 붙여 이해를 돕고 있다.1만 3000원. 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위안부 결의안 채택 의미] 결의안 요지

    일본 정부는 1930년대부터 2차 세계대전 기간 ‘위안부’로 알려진 젊은 여성들을 제국군에 대한 성적 서비스 목적으로 동원하는 것을 공식 위임했으며, 일본 정부에 의한 강제 군대매춘 제도인 위안부는 집단 강간과 강제유산, 수치, 그리고 신체 절단과 사망 및 궁극적인 자살을 초래한 성적 폭행 등 잔학성과 규모 면에서 전례없는 20세기 최대 규모의 인신매매 가운데 하나이다. 일본학교들에서 사용되고 있는 새로운 교과서들은 위안부 비극과 다른 2차 대전 중 일본의 전쟁범죄를 축소하려 하고 있다. 일본의 공공 및 민간 관계자들은 최근 위안부의 고통에 대한 정부의 진지한 사과를 담은 지난 1993년 고노 요헤이 관방장관의 위안부 관련 담화를 희석하거나 철회하려는 의도를 나타내고 있다. 일본정부는 1921년 여성과 아동의 인신매매금지협약에 서명하고 2000년 무력분쟁이 여성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여성, 평화, 안보에 관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결의 1325호도 지지한 바 있다. 하원은 인간의 안전과 인권, 민주적 가치, 법의 통치 및 안보리 결의 1325호에 대한 지지 등 일본의 노력을 치하한다. 다음은 미 하원의 공통된 의견이다. (1) 일본 정부는 1930년대부터 제2차 세계대전 종전에 이르기까지 아시아 국가들과 태평양 제도를 식민지화하거나 전시에 점령하는 과정에서 일본 제국주의 군대가 강제로 젊은 여성들을 위안부로 알려진 성의 노예로 만든 사실을 확실하고 분명한 태도로 공식 인정하면서 사과하고 역사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 (2) 일본 총리가 공식 성명을 통해 사과를 한다면 종전에 발표한 성명의 진실성과 수준에 대해 되풀이되는 의혹을 해소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3) 일본 정부는 일본군들이 위안부를 성의 노예로 삼고 인신매매를 한 사실이 결코 없다는 어떠한 주장에 대해서도 분명하고 공개적으로 반박해야 한다. (4) 일본 정부는 국제사회가 제시한 위안부 권고를 따라 현 세대와 미래세대를 대상으로 끔찍한 범죄에 대한 교육을 해야 한다.
  • 식민지근대화론 지나치다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이하 ‘재인식’, 책세상)출간 후 기세를 올려온 ‘식민지근대화론’에 역사학자들이 반격하고 나섰다. 전면전이라기보다는 각개전투에 가깝다. 역사학계의 시각은 이미 ‘식민지수탈론-식민지근대화론’ ‘민족-반민족’의 대결 구도를 벗어나 다양한 입장들로 분화되고 있다. 반면 식민지근대화론에는 복잡다기한 역사적 해석을 지나치게 ‘민족주의 대 탈민족주의’의 대립으로 몰아간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민족주의 사학에 대한 식민지근대화론의 비판(이분법적 평가에 따른 사실 왜곡)이 부메랑으로 되돌아오는 양상이다. 한국이 일제 식민지배 하에서 근대화됐다는 식민지근대화론은 현재 뉴라이트 계열 학자들의 ‘대 민족주의 사상투쟁’의 이론적 전초기지 역할을 하고 있다. 이론을 정립한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뉴라이트재단 이사장)가 사상투쟁의 좌장이고,‘재인식’의 주요 필자인 이영훈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낙성대연구소 소장)가 최전선에서 전투에 임하고 있다. 이 교수는 뉴라이트재단 기관지 ‘시대정신’ 올 여름호에서 식민지근대화론적 시각으로 소설가 조정래를 공격하는가 하면, 지난 5월엔 ‘재인식’의 해설판인 ‘대한민국 이야기’를 출간해 ‘식민지수탈론’을 거듭 비판했다.●허수열 “지속성장은 60년대 이후 현상” 식민지근대화론의 공세가 거세지면서, 다소 관망적 입장을 취하던 기존 역사학계가 최근 몇몇 학자들 중심으로 적극적인 대응에 나서고 있다. 논박의 일차 대상은 식민지근대화론자들의 최대 이론적 무기인 ‘객관적 근거’다. 허수열 충남대 경제무역학부 교수는 지난달 초 출간된 ‘다시 대한민국을 묻는다’(한울)에서 자신의 실증적 연구를 토대로 일제시대에 1인당 GDP가 성장했다는 식민지근대화론의 주장을 반박한다. 1인당 GDP의 지속적 성장은 1960년대 이후의 현상이란 것이다. 이만열 전 국사편찬위원장(숙명여대 명예교수)도 최근 펴낸 ‘한국 근현대 역사학의 흐름(푸른역사)에서 “수치와 통계의 마력은 자기를 객관화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돼 있지 않을 때 제국주의를 미화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고 경고했다.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교수(한국사)는 ‘원형과 변용’(서울대출판부)에서 한국의 경제발전이 일제식민정책에서 비롯됐다는 주장을 거부한다. 식민지시대의 경험과 유산뿐 아니라 ▲국가 주도의 경제발전 ▲1950년대 동아시아 개발국가들의 경제개발 움직임 ▲미국의 원조정책 ▲한국인의 교육열 등 다양한 요인이 작용했다는 것이다. 식민지근대화론이 배타적 민족주의에 의한 사실 왜곡을 경계하는 것 이상으로, 식민지근대화론 자체가 민족주의 역사학계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재단이란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이승렬 연세대 교수(역사문제연구소 부소장)는 13일 열린 ‘계간 역사비평 창간 20주년 기념 학술대회’에서 “민족주의 역사학도 하나로 범주화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한데, 무조건 민족주의라고 폄훼하는 것은 자신의 이론을 세우기 위해 역사학계를 왜곡하는 것”이란 요지의 논문을 발표했다.●이만열 “능동적 발전의지만큼은 주목” 식민지근대화론이 일제 수탈 속에서도 한국인의 능동적 경제발전 의지에 주목한 것만큼은 긍정 평가하고 적극적으로 토론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이만열 교수는 “식민지근대화론이 제기한 문제를 한국 역사학계가 진지하게 토론의 장으로 이끌어갈 때 한국 근현대사는 더욱 풍부한 결실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굴절된 식민지근대사 바로 쓴다

    굴절된 식민지근대사 바로 쓴다

    일제가 문화·경제 침탈을 위해 작위적으로 흐트려놓아 훼손되거나 묻혔던 구한말 공문서들이 체계적인 재분류 작업을 통해 복원됐다. 이에 따라 일제의 식민지화 과정을 국가 문서로 확인하는 작업에 가속도가 붙게 됐다.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은 22일 ‘한국 국가기록 체계화 사업’을 마무리짓고 일제에 의해 훼손·왜곡됐던 규장각 소장 고종시대(1864∼1910년) 공문서에 대한 체계적인 재분류 작업을 끝냈다고 밝혔다. 공문서들은 한일합병 직후인 1911∼1916년 조선총독부가 ‘규장각 도서 정리사업’을 명목으로 고도서와 함께 뿔뿔이 흩어져 있던 것이다. 국내에서 가장 많은 구한말 공문서를 소장하고 있는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은 전근대사회에서 근대사회로 이행하던 구한말 공문서의 자료적·문화적 가치를 회복하기 위해 2004년 9월부터 3년여에 걸쳐 규장각 소장 자료인 3만 8000여종 가운데 고종시대 정부에서 생산한 공문서 1만 1000여종을 골라냈다. 이상찬(국사학과) 서울대 교수는 “한일합병 이후 일제가 ‘도서 정리’를 명목으로 공문서를 작위적으로 흐트려놓아 역사적 증빙 자료인 국가 문서가 묻히거나 훼손됐다.”면서 “공문서철에 묶인 문건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유기적으로 파악할 수 없었고 대한제국에 관한 논의의 수준을 한 단계 발전시키는 데 걸림돌로 작용해왔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공문서가 제자리를 찾아 역사 왜곡에 대응할 수 있는 근거를 확보하고, 일제 식민지화의 구체적인 모습과 근대 정부 각 기구에 관한 연구를 심화시킬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재희기자 s123@seoul.co.kr
  • 일제, 공문서 훼손 어떻게 했나

    일제가 1910년 한일합병 이후 규장각 도서 정리작업을 통해 조선의 기록관리 체계를 조직적으로 무너뜨리고 식민통치 정책을 수립한 것으로 드러났다. 22일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이 2004년부터 진행한 ‘한국 국가기록 체계화 사업’에 따르면 조선총독부의 고의적인 문서 조작으로 역사적으로 중요한 증빙 자료가 묻혀 있었다. ●절반이 경제 관련… 경제적 식민화과정 규명 기대 연구팀은 재분류한 공문서 가운데 5000∼6000여종이 경제 관련 공문서인 점에 주목, 이번 재분류 작업을 토대로 일제의 황실 재산 침탈과 경제적 식민지화 과정을 낱낱이 밝힐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를 위해 ‘대한제국기 황실재정 공문서 발굴·정리와 체계화사업’을 2007학년도 연구 과제로 정하고, 황실 재정과 관련된 공문서 분석을 통해 1904년 이후 일제가 ‘황실재정정리’를 명분으로 황실의 재산을 침탈해간 과정을 밝힐 계획이다. 조선총독부는 황실 재정 관련 서류들은 여러 책을 한 권으로 묶고 내용과 관련 없는 제목을 붙여 은폐했다. 대한제국 황실의 재산을 관리하던 ‘궁내부제실재산정리국(宮內府帝室財産整理局)’이 1908년 생산한 수십종의 문서들을 단행본으로 취급해 구체적인 내용을 숨기는 효과를 냈다. ●도서명 고의로 조작·은폐 ‘전라남도각군문서급소장철(全羅南道各郡文書及訴狀綴)’이라는 제목이 붙은 문서철에는 경상도와 경기도 등에서 생산한 문서를 포함시키고 문서뿐만 아니라 보고서, 지령 등을 한데 묶었다. 규장각 목록에는 실제 내용과 상관없는 ‘본청관원 4월 조봉급지출청구서(本廳官員四月條俸給支出請求書)’라고 적었다.‘각도청원철(各道請願·1905년)’ 등에는 청원 내용과 첨부 문서, 조치 내용 등을 각각 별개의 도서에 포함시켜 알 수 없도록 하는 등 연관된 문서를 별개 도서명의 책으로 묶어 분산시키기도 했다. 또 의병 활동과 조직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 문서인 1907년 충청도 임천군 입포리에 내걸린 의병의 격문은 아예 목록에서 제외했다. 연구팀은 대한제국기 백두산에서 압록강을 경계로 설치된 진위대의 대지도형을 묶은 공문서철인 ‘진위대대지도형(鎭衛隊岱地圖形)’과 간도에 한인이 거주했다는 간도 영토주권에 관한 공문서인 ‘함경남북도내거안(咸鏡南北道來去案·1903년)’을 찾아냈다. 또 통상 및 개방에 관한 공문서인, 인천항에 거류하는 일본인 거류지를 표시한 채색지도와 1900년 강원 통천군의 일부 지역을 러시아인에게 조차한 공문서와 지도·관세관 등의 복장 및 견장·모자 등의 그림을 담은 ‘관세관복장(管稅官服將·1906년) 규칙 및 복장도식(服將圖式)’ 등과 함께 토지개혁 공문서인 ‘대한제국전답관계(大韓帝國田沓官契)’, 근대적 교육에 관한 공문서인 ‘사범학교교습합동(師範學校敎習合同·1897년)’ 등을 체계적으로 재분류했다. ●대한제국기 중요 공문서 체계적 분류 이상찬(국사학과) 서울대 교수는 “조선총독부의 ‘정리작업’은 그 목표가 식민통치 정책 수립을 위한 문헌 조사에 있었다.”면서 “조선시대 기록관리 체계를 복원시키고 묻혀 있던 자료 연구를 통해 식민화 과정을 낱낱이 밝혀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연구팀은 공문서 목록을 ▲최종 소장 관리기구별 ▲문서 생산 기관별 ▲규장각 도서 번호순 ▲도서명순 등 4가지 형태로 간행할 예정이다. 또 목록을 규장각 홈페이지와 ‘e-규장각’에 공개해 일반인들에게 제공한다. 서재희기자 s123@seoul.co.kr
  • 신사임당 끊임없이 ‘상징조작’

    신사임당처럼 시대적 필요에 따라 상징조작돼 온 인물도 흔치 않다. 김수진 연세대 교수는 19일 연세대 국학연구원이 이 대학 광복관에서 개최한 ‘분단체제하 남북한의 사회변동과 민족통일의 전망’이란 학술대회에서 ‘민족의 영웅’에서 ‘군국의 어머니’로, 다시 ‘현모양처’와 ‘한국의 여성’으로 끊임없이 ‘활용’돼 온 신사임당의 불행한 사후 역사를 조명했다. 김 교수의 발표문 ‘전통의 창안과 여성의 국민화:신사임당을 중심으로’에 따르면, 신사임당은 1900년대 애국계몽운동 시기 국권박탈의 위기 대응 차원에서 계몽 여성의 모델로 주목받았다.그후 식민지 시기로 접어들며 신사임당은 ‘군국의 어머니’로 재탄생한다. 전쟁에 필요한 병력과 노동력을 낳고 기르는 기능주의적 여성이 필요했던 일본과 친일지식인은 조선 역사에서 적절한 모델을 찾던 끝에 신사임당을 발견한다. 김 교수는 “식민지 조선 여성에게 자식을 국가에 바친다는 것, 국민으로서 자각을 가진다는 것은 매우 낯선 것이었다.”면서 “황민화의 길에 동참한 친일 지식인들이 식민지 조선에서 군국의 어머니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역사의 재해석이 필요했다.”고 분석했다.1945년 동양극장에서 공연되며 폭발적 반응을 불러일으킨 연극 ‘신사임당’은 신사임당 상징조작에 적극 활용된 예다. 60∼70년대 박정희 정권은 신사임당을 국가주의 이데올로기 강화에 동원했다.1976년 대통령령으로 개원한 사임당교육원의 원훈 ‘충(忠)·효(孝)·예(禮)·지(知)·신(信)’ 또한 성리학의 오덕(五德) 중 ‘인’과 ‘의’를 ‘충’과 ‘효’로 바꾼 것으로, 이데올로기화의 도구가 됐다는 분석이다. 신사임당상을 제정해 자녀교육과 가계부기록 등의 실천을 강조한 주부클럽연합회 활동도 마찬가지다.김 교수는 “군사정권 시기 신사임당은 단지 역사 속의 뛰어난 여성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한국의 민족적 주체성을 구현한 여성이자 국가적 인물이 됐다.”고 평가했다.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서울신문 창간103주년] 문화키워드

    [서울신문 창간103주년] 문화키워드

    ■ 신문 연재소설로 본 시대상 신문 연재소설에는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관심과 열망과 한숨이 배어 있다. 이것은 대중과 호흡을 함께해 나가는 신문이 그들의 이목을 끌고 그들을 지면에 이끌어 들이고자 만들어 내는 현상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신문 연재소설을 써나가는 주체란 단순히 작가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신문과 독자, 그리고 그들과 함께 당대를 만들어 나가는 사회 그 자체라 할 것이다. 우리는 저 멀리 ‘대한매일신보’가 숨쉬던 구한말에서 애달픈 식민지 시대, 해방공간, 한국전쟁, 긴 독재체제를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아주 긴 목록의 신문 연재소설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한국인들이 무엇을 알고 싶어 했고 무엇에 아파했으며 무엇을 원했는지 보여준다. 신문 연재소설은 우리에게 당대의 문화적 코드가 무엇이었는지 알려준다. 신문 연재소설을 통해 당대의 문화키워드를 살펴본다. 구한말의 문화적 키워드는 단연 나라 지키기에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당시 애국계몽을 표방한 신문 ‘대한매일신보’에는 ‘소경과 안즘방이 문답’(1905.11.17∼12.3),‘거부오해’(1906.2.20∼3.7) 같은 작품들이 연재되었다. 이 과도기적 ‘소설’들에는 어떻게 기울어가는 나라를 개혁할 것인가, 외세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하는 고민이 복합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1910년대의 지식인들은 국권을 침탈당한 비극적 분위기 속에서 현실을 헤쳐나갈 수 있는 길을 여전히 유학과 교육과 계몽에서 찾았다. 문단으로 보면 이때는 이광수와 최남선의 시대였다. 이광수의 ‘무정’(‘매일신보’,1917.1.1∼6.14)은 경성학교 영어교사인 이형식과 기생 영채의 사랑의 엇갈림을 그리면서 그들, 그리고 과거와 현재가 하나가 될 수 있는 길을 새로운 학문을 위한 유학에서 찾았다. 여기서 이광수는 과학이라는 새로운 구호를 제창했다. 1920년대는 3·1운동의 좌절이 가져다 준 절망적 분위기 속에서 고독한 자아의 구원을 열망하는 흐름과 절망을 대신할 새로운 사회적 희망을 추구하는 흐름으로 나뉘었다. 어머니를 잃고 오빠와 함께 살아가는 혜숙의 가련한 운명을 그린 나도향의 ‘환희’(‘동아일보’,1922.11.21∼1923.3.21)는 전자의 흐름을,3·1운동의 좌절을 배경으로 순영과 봉구의 사랑과 죽음, 기약을 그린 이광수의 ‘재생’은 후자의 흐름을 대변한다. 1930년대는 어두운 현실에 대한 인식과 식민지 근대의 성숙 과정에서 배태된 대중문화, 그리고 여성에 대한 관심이 고조된 때였다. 한 예로 염상섭의 ‘삼대’(‘조선일보’,1931.1.1∼9.17)는 타락한 윗세대와 사회주의 운동이 풍미한 복잡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삶의 균형을 고민하는 새로운 세대의 주인공을 그리고 있다. 1940년 8월10일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폐간되자 신문 연재소설의 현장은 다시 ‘매일신보’로 넘겨졌다. 이태준, 채만식, 박태원, 이효석 같은 대작가들은 가혹한 천황제 파시즘에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체제의 강압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하는 고민과 문제의식을 그들의 소설들에 각인시켰다. 예를 들어 이효석의 ‘창공’(‘매일신보’,1940.1.25∼7.28)은 천일마라는 주인공이 만주 하얼빈에서 만난 러시아 여성 나아자와 결혼하여 함께 조선의 문화를 공유해 나가는 이야기를 통해 천황제 파시즘의 대동아주의 이데올로기에 균열을 냈다. 해방공간과 한국전쟁 발발에 이르기까지 잠시 침체한 양상을 보였던 신문 연재소설이 새로운 활력을 얻게 된 것은 1950년대였다. 대중의 폭발적인 반향을 얻으면서 논쟁에까지 휩쓸려 이른바 낙양의 지가를 올린 정비석의 ‘자유부인’(‘서울신문’,1954.1.1∼8.9)은 대학의 국문학 교수 장태연과 그 부인 오선영의 뒤얽힌 생활상을 통해 당대의 문화 풍속도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1960년대에 들어서자 한국사회는 군사독재 체제, 산업화, 타락과 부패라는 복합적인 문제들에 봉착하게 된다. 손창섭의 장편소설들, 예컨대 ‘이성연구’(‘서울신문’,1965.12.1∼1966.12.30)나 이호철의 ‘서울은 만원이다’(‘동아일보’,1966.2.8∼10.31) 같은 작품들은 대도시화한 서울을 배경으로 간척사업, 공공사업 등과 같은 당대적 사건들을 다루면서 물신주의가 팽배한 1960년대 사회의 기묘한 위선, 타락, 무질서, 음모를 그려나갔다. 1970년대에 들어서자 민중이 사회적 관심사로 부상하기 시작한다. 군사독재와 산업화 속에서 짓눌린 민중에 대한 관심은 수많은 문제작들을 낳았던바 신문 연재소설에서 이것은 대하소설이라는 문제적인 양식과 접맥된다.‘서울신문’에 1979년 6월부터 1983년 2월까지 약 4년에 가깝게 연재된 김주영의 ‘객주’는 보부상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조선 후기 역사적 상황과 생생한 민중생활 양상을 풍부하게 재현한 문제작이다.‘한국일보’에 1974년부터 1984년까지 10년씩이나 연재된 황석영의 대하소설 ‘장길산’도 단 몇 줄의 역사기록밖에 없는 인물의 일대기를 중심으로 민중의 애환과 바람을 그린 작품이었다. 1980년대에서 1990년대로 이어지는 역사적 격변의 시대에 신문 연재소설의 주된 테마를 이룬 것은 한국현대사에 대한 관심이었다.1983년부터 잡지에 연재하면서 폭발적인 반응을 얻은 ‘태백산맥’에 이어 1998년부터 ‘한겨레신문’에 연재한 조정래의 대하소설 ‘한강’은 파란으로 점철된 한국현대사에 연속성을 부여하려 한 작가적 신념의 소산이다. 여러 곳에 나뉘어 연재되면서 1994년에 완간된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해석되어야 할 거작이다. 2000년대에는 민주주의가 사회적 원리로 정착해 나가는 대신에 자본주의의 물질적 독점력이 새로운 문제로 부각된다. 고도로 국가화·독점화한 자본주의가 과거의 정치적 독재를 대신하여 새로운 권력적 힘을 발휘하는 시대가 바로 2000년대다. 경제적 갈등, 반목과 생존 경쟁, 물신주의가 이처럼 일상을 확고히 지배한 시대는 일찍이 없었다. 여기에 민주주의가 낳은 정신적 타락 및 비속화·비소화한 시민들의 삶은 새롭고 숭고한 정신적 가치를 찾아 헤맨다. ‘서울신문’에 2004년 1월5일부터 최근까지 장기간 연재됐던 최인호의 ‘유림’은 그러한 숭고에 대한 열망이 투영된 소설이라고 하겠다.‘상도’에서 ‘유림’에 이르는 최인호의 집필과정은 시대의 추이를 예민하게 감지할 줄 아는 능력의 존재를 시사한다. 이렇듯 신문 연재소설은 한국사회 및 대중의 관심사와 그 문화적 추이를 깊이 있게 받아들이고 촉진한 시대의 바로미터와 같은 역할을 해왔던 것이다. 방민호(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 ■ 서울신문 연재소설 소개 ▶ 소경과 안즘방이 문답 1905년 11월17일부터 12월3일까지 대한매일신보에 연재된 개화기 신소설로 신문에 실린 최초의 소설 형태의 글이다. 개화로 인해 생활이 어려워진 복술가 소경과 망건장수 앉은뱅이의 대화가 전개되는 문답체로 자주적 국권 의식을 강조하는 작품이다. ▶ 무정 1917년 1월부터 6월까지 이광수가 매일신보에 연재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장편소설이다. 한국 현대 문학의 출발점이 된 작품으로 근대문명에 대한 동경과 신교육 사상, 자유연애 찬양, 남녀 평등 사상 등을 주제로 내세우면서 대중계몽 역할을 꾀해 독자들의 관심을 모았다. 근현대문학 사상 가장 많이 읽혀지고 연구되어온 이광수의 대표작이다. ▶ 자유부인 1954년 1월부터 8월까지 서울신문에 연재된 작품으로 한국 신문 연재 소설 사상 최고의 화제를 낳았다. 성윤리에 대한 논란을 비롯, 갖가지 유행어를 탄생시키며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정비석의 화제작. 대학교수 부인 오선영의 ‘일탈’를 통해 6·25전쟁 직후 만연한 퇴폐적인 사회 풍조와 전쟁 미망인들의 취업상을 단적으로 보여줬다. ▶ 객주 1979년 6월6일부터 1983년 2월29일까지 서울신문에 1465회 연재돼 역사소설의 새 지평을 연 작가 김주영의 역작.3부작으로 구성됐으며 조선 후기 보부상과 노비, 관료, 농민들의 갈등과 유착을 다루며 당시 사회의 변동상을 그려냈다.19세기 말의 풍속을 구체적으로 재현했으며 평민층의 입말을 잘 살려내 사실성이 높다는 평가를 받았다. ▶ 유림 1977년 서울신문에 소설 ‘파란 꽃’을 첫 연재한 최인호가 2004년 1월5일부터 2006년 12월30일까지 연재한 장편소설. 유교가 흘러온 2500년의 역사를 조망한 작품으로 왕도국가를 세우려다 실패한 조광조와 이상국가를 꿈꿨던 공자, 성리학을 발전시킨 퇴계 이황 등 유학자들의 삶을 엮었다.‘유림’은 유교와 유학자들을 소설로 형상화해 독자들의 많은 호응을 얻었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프론티어 5인이 말하는 미래 문화키워드 서울신문은 창간 103주년을 맞아 문화계 인사들로부터 미래 사회의 문화를 이끌 화두가 무엇인지 들어봤다. 문학·영화·방송·음악·미술 방면의 전문가 5명은 한마디로 규정하기 어렵다면서도 명징한 키워드로 향후 문화에 대한 전망을 제시했다. ‘예술가 사회’‘글로벌’‘탈경계’‘다양화’‘탈장르’ 등으로 요약되는 이 문화 핵심어들은 저마다 고유한 속성을 지니면서도 의미있는 공통분모가 적지 않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진지한 생각거리를 제공한다. ● “장르파괴 가속화” 최완규 ‘주몽’ 드라마 작가 “앞으로는 영화와 드라마의 경계가 점점 줄어들 것입니다. 물론 지금까지도 드라마 연출자가 영화 감독을 맡거나 영화제작사가 드라마를 제작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지만, 이렇다할 성공 사례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제작인력의 양분화가 점차 미미해지고 두 장르간 벽을 허무는 사례들이 쏟아져 나올 것입니다.” 국민 드라마 ‘주몽’의 최완규(43) 작가는 미래 방송계의 키워드를 이처럼 ‘탈경계’란 말로 압축해 표현했다.‘종합병원’‘허준’‘올인’ 등 사극과 현대물을 오가며 인상깊은 작품들을 남겨온 그는 현재 그 자신도 드라마와 영화를 오가는 작업을 하고 있다. “요즘 우리나라에 미드(미국 드라마) 열풍이 불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미국 사람들도 새삼스럽게 미드에 재미를 느끼고 있다고 합니다. 이는 할리우드의 우수한 영화 제작인력과 기획력이 드라마로 대거 투입된 결과로 볼 수 있어요. 우리도 이같은 탈경계 현상이 가속화될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드라마 제작환경은 아직까지 그리 여의치 않다. 최 작가는 “현재 방송사·외주제작사들은 시한폭탄을 안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며 “십중팔구는 제작비를 맞추지 못해 적자를 떠안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동안 드라마는 한류 열풍을 등에 업고 규모를 급속도로 키워 왔지만, 그 수혜가 몇몇 연기자와 작가들에게 집중되는 등 문제점도 함께 키워 왔다.”고 덧붙였다. 최 작가는 “‘CSI’나 ‘프리즌 브레이크’는 작가 한명의 머리에서는 도저히 나올 수 없는 작품”이라며 “무엇보다 사전제작을 염두에 둔 시리즈물이 일반화돼야 하며, 밀도 높은 작품을 위한 집단창작시스템이 활성화돼야 한다.”는 권고도 잊지 않았다. 시청률이나 해외 마케팅에 신경쓰기 앞서 ‘질적 완성도가 높은 작품은 시청자들이 먼저 알아 본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는 것도 강조했다. 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프로·아마 벽 무너져” 김영하 소설가 “미래는 모두가 예술가가 되는 세상입니다.‘예술가 사회’라 하면 어떨까요?” 소설가 김영하(39)는 20세기 후반, 자본가가 된 우리 모두는 21세기가 끝나기 전에 예술가가 될 거라 장담했다. “요즘 삼청동에 가보면 사진기자들이 쓸 만한 장비를 들고 수백명이 순례를 하고 있어요. 모든 예술의 진입장벽이 낮아진 거죠.” 그는 프로가 좋은 작품을 만들고 아마추어가 ‘후진’ 작품을 만들 것이라는 경계는 무너질 것으로 내다봤다.“문학이야말로 아마추어가 하는 겁니다. 뭐든 쓸 수 있죠. 랭보와 카뮈도 아마추어였어요. 문학사는 아마추어가 쓴 엄청난 작품을 많이 알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김영하는 ‘개인’도 미래의 문화 키워드로 꼽았다. 사람들간에 공통적인 경험이 줄어들고 다른 처지에서 세상과 직면하기 때문이다. 그는 1950년대,60년대 문학과 같은 트렌드는 사라지고 작가 개인의 문체 특성이 한층 심화될 것으로 전망한다.“문학도 이제 개인의 내면과 경험을 제출하는 방식입니다. 김영하 다르고, 박민규 다르죠. 공통분모를 찾는 건 부질없는 노력입니다. 서구 비평가들이 하듯 한 작가에 천착하게 되고 작가는 우주의 별처럼 존재하게 될 것입니다.” 그는 장편소설 대망론을 믿으면서도 최근 출판사와 일부 언론에서 일고 있는 ‘장사 논리’는 경계했다.“문학을 해외시장에 수출하기 위해, 일본 문학에 대응하기 위해 장편소설을 내라는 건 박정희 시대의 논리죠. 요즘 일부 언론에서 만든 문학상이나 출판사들은 새로운 네이밍을 통해 작가들에게 대중소설이라는 수요를 창출할 것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필요로 하는 건 독자들이 원하는 거죠. 잘 된 장편은 독자를 일주일간 기쁘게 해줍니다.” 김영하는 ‘예술가 사회’에선 모두가 행복해질 거라고 내다봤다.“미래에 나쁜 일만 생길 거라 보는 문화적 비관주의는 언제나 실패해왔습니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영어제작으로 월드마켓 공략” 이승재 LJ필름 대표 “향후 한국영화 산업을 지배할 키워드는 ‘글로벌’이다.” 이승재(43) LJ필름 대표는 “지난 15년 동안 꾸준히 성장해온 한국영화 산업은 현재 한계점에 다다랐다.”면서 “이제 해외로 눈을 돌려야 한다.”고 말했다. 인력, 유통 등 성장을 담보하는 제반 여건이 다 갖춰진 한국영화 내수시장은 더이상 ‘파이’를 늘릴 수 없는 상태라는 것. 그는 비용 대비 수익률이 마이너스 30∼40%에 달하는 현 시점에서 대안은 해외시장 개척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한국영화를 잘 만들어 수출하는 단순한 차원을 넘어 우리의 문화를 영어로 제작해 알리는 방식이 돼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유럽이나 아프리카 영화인들이 자신들의 문화적 정체성을 세계 공용어인 영어로 제작해 알렸듯이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는 ‘괴물’을 예로 들면서 아무리 훌륭한 콘텐츠라도 자국 언어로 제작되면 ‘월드 마켓’에서 뛰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러한 전망을 대변하듯 올들어 충무로에서는 해외 합작이 심심찮게 추진되고 있다. 나우필름이 미국 영화사 VOX3과 손잡고 만든 첫번째 합작영화 ‘두번째 사랑’이 얼마 전 한국 관객과 만났고, LJ필름 또한 ‘프린세스 줄리아’를 한·미합작으로 제작한다. 영화는 조선의 마지막 황태손이었던 이구와 그의 미국인 부인 줄리아 멀록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와호장룡’ 등을 제작한 미국 유니버셜 포커스와 손잡은 이 영화는 현재 시나리오 마무리 단계에 있다. 이 대표는 “미국에서 2억달러를 벌어들인 그리스 영화 ‘나의 그리스식 웨딩’처럼 한국적인 소재이면서도 다같이 공감할 수 있는 ‘크로스컬처 아이템’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 “대가보다 다수 결집 창작 증가” 김현철 작곡가 겸 가수 가수 김현철(39)은 미래 대중음악의 키워드로 ‘다양화’를 제시했다. 그것은 또한 21세기와 이전의 대중음악을 구분짓는 잣대가 되기도 한다. “2000년 가까이 전해져 내려온 음악이 대중화되기 시작한 것은 불과 100년쯤 전입니다. 대중에게 대량으로 접근할 수 있는 음반이란 형태의 ‘디바이스(도구)’가 등장한 덕분이죠. 현재도 CD를 거쳐 MP3 등으로 더욱 다양하게 진화하고 있고요. 이런 다양한 형태의 도구들이 급격한 음악시장의 변화를 가져왔고, 앞으로 어느 방향으로 튈지는 아무도 쉽게 예상하기 어렵습니다.” 21세기 대중음악의 트렌드는 소수의 대가가 아니라 다양한 뮤지션들이 함께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 특징. 방송과 몇몇 가요제가 가수 등용문의 전부였던 예전과 달리 UCC 등을 통해 누구라도 쉽게 가수가 될 수 있는 세상이 됐다. 대중이 음악을 접하는 도구 또한 공중파 방송 일변도에서 모바일, 케이블 음악방송, 인터넷 음악전문 사이트 등으로 다양하게 재편되고 있다. “음악을 전달하고 수용하는 도구의 확대는 음악가들에게 더욱 다양한 음악을 생산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장르의 융합단계는 이미 넘어섰습니다. 이제 모바일에 적합한 음원은 물론, 데커레이션 음악(장난감에 사용되는 음악)까지도 만들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런 다양성이 양질의 음악 생산까지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공연문화가 활성화되면서 ‘공연 브랜드’가 많이 등장하게 될 겁니다. 또한 음악가와 다양한 ‘디바이스’를 연결해주는 기획·프로모션 부문에 현재보다 한층 진보된 ‘새로운 사람들’이 등장하게 될 겁니다.”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표현도구 다양화” 정연두 최연소 ‘올해의 작가’ “한국 현대미술의 미래는 밝고 발전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동안 작품의 질에 비해 저평가돼 왔죠.” 회화, 조각 등으로 경계를 나누는 것이 더 이상 무의미한 현대미술. 사진, 영상, 설치 등 다양한 매체를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독특한 접근방식을 보여주는 작가 정연두(38) 역시 한마디로 규정하기 힘들다.‘탈장르’로 규정되는 현대미술의 흐름을 그는 멀티 플레이어적인 작업으로 보여준다. 국립현대미술관이 95년부터 매년 뽑는 ‘올해의 작가’에 30대로는 처음 선정된 정연두는 현대미술의 변화와 흐름을 잘 보여주고 대처하는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무형에 의해 지배되는 유형’처럼 현대 미술에서 장르의 경계를 만드는 것 자체가 우습다.”며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확실한 세계가 있다면 어떤 표현매체든 상관없다.”고 말했다. 그 역시 대학에서는 조소를 전공했지만 요즘 주로 사용하는 표현방식은 사진과 비디오다. 정연두는 앞으로 그처럼 작품활동만 하는 한국의 전업작가가 더욱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전업작가 한 명이 탄생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한 작가를 공부하고, 응원하는 팬이자 컬렉터가 있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지금은 대한민국 인구의 겨우 1%가 컬렉터지만, 그 수가 늘어나면 전업작가 시스템도 더욱 탄탄해질 것으로 보인다. 작가들은 일회성이 아닌 꾸준한 작업태도를 견지할 수 있고, 컬렉터층도 극소수의 부유층이 아닌 개미군단으로 넓어질 것이란 전망이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또 다른 왜곡 막게 고국 많이 배워 갈래요”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일 뿐입니다.” 왜곡된 역사소설 ‘요코이야기’를 배울 수 없다며 1주일간 등교를 거부한 끝에 학교측의 교재 사용 중단을 이끌었던 뉴욕 R중학교의 허보은(11·미국명 알렉스 허)양이 고국을 찾았다. 재외동포재단과 YMCA전국연맹이 개최하는 ‘동포 청소년 모국 연수’에 참가한 허양은 17일 “어머니를 따라 한국을 방문해 일본인들이 식민지 통치시절 한국인들에게 피해를 줬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수업을 들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허양은 “언제, 어디서 또 다른 왜곡 사태가 터질지 모르기 때문에 이번 연수 기간에 고국을 더 많이 알고 체험하고 싶다.”면서 “이런 프로그램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이번 방한 기간에 몸이 아파 병원 신세를 지고 있는 허양을 대신해 어머니 박영순씨는 “딸은 말 수가 적고 나서길 싫어하는 성격”이라면서 “평소 책 읽고 글쓰기를 좋아했기에 소신있는 행동을 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보은이의 결정이 워낙 단호해 당시 도움을 줄 수밖에 없었다.”는 박씨는 “동포 1.5∼2세들이 한국과 한국문화에 더 관심을 가져 다시는 요코이야기 같은 소설이 판치지 못하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에서 태어난 허양은 지난해 9월 영어시간에 요코이야기가 교재로 배포되자 미리 읽어보고 이를 배울 수 없다며 등교를 거부했고, 학교 측은 허양의 뜻을 받아들여 교재 채택을 중단했었다. 소설가나 수의사가 되고 싶다는 허양은 “연수 일정을 다 함께 할 수는 없지만 친구를 많이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의 언론이 더 이상 제 얘기를 보도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면서 “그 상황에서는 한국인이면 누구든 똑같이 행동했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22일까지 이어지는 이번 연수에 참가한 해외동포와 국내 학생 130여명은 이날 그룹별로 안동, 경주, 순창, 홍성 등지에서 모국의 전통문화를 체험했다. 연합뉴스
  • 日방위백서 3년째 ‘독도=자국 영토’

    |도쿄 박홍기특파원·서울 이세영기자|일본 방위성은 6일 ‘2007년 방위백서’에서 독도를 여전히 자국의 고유영토로 표기, 우리 정부가 강력 항의하고 시정을 촉구했다. 일본측은 ‘2005년 방위백서’에서부터 ‘일본의 고유영토인 북방영토와 다케시마(독도)의 영토 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고 기술, 해마다 우리 정부가 강하게 항의했으나 수정하지 않았다. 정부는 일본이 올해 백서에서도 독도를 자국의 영토라고 주장하자 즉각 성명을 내고 강한 유감을 표시한 뒤 신속한 시정을 요구했다. 정부는 “계속되는 독도 영유권 주장이 과거 식민지 침탈 행위를 정당화함으로써 양국관계의 미래지향적 발전을 가로막는 행위라는 점을 일본정부가 깊이 인식하기를 촉구하며, 강력한 항의의 뜻을 전달한다.”고 밝혔다. 주무부처인 국방부는 이날 오후 주한 일본대사관 국방무관 가미노타니 히로시 대령을 청사로 불러 강한 항의의 뜻을 전달했다. 한편 일본의 방위백서는 이밖에 북한의 장거리미사일을 포함, 정교한 무기개발에 맞서 가능한 한 오는 2011년까지 미사일 방어(MD)체제를 구축한다는 목표를 세웠다고 밝혔다. 나아가 북한은 일본뿐만 아니라 잠재적으로는 알래스카 일부와 호주의 북단 등 동아시아 전역을 사거리로 두기 위해 미사일 체제를 개량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북한은 사거리 6000㎞의 ‘대포동2호’를 2단식에서 3단식으로 개량해 사거리를 늘리는 데 주력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했다. 일본은 지난 1998년 북한이 일본 쪽으로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한 것을 계기로 미국과 협력,MD체제 구축에 들어갔다. 백서는 북한의 핵과 관련,‘북한이 핵무기 계획을 한층 더 진전시킬 가능성이 충분한 만큼 소형화·탄두화 등을 포함, 동향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hkpark@seoul.co.kr
  • EU, 中의 阿 진출 ‘위기감’

    |파리 이종수특파원|거세지는 중국의 아프리카 진출에 유럽연합(EU)이 긴장하기 시작했다. EU집행위원회는 27일(현지시간) 발표한 정책보고서에서 “아프리카에서 중국의 영향력 확대에 대처하려면 과거 식민지였던 아프리카 국가들과 동등한 동반자 관계로 거듭나야 한다.”고 촉구했다. 보고서는 이어 “오는 12월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열리는 EU-아프리카 정상회의에서 관계 개선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EU집행위가 회원국의 인식 전환을 촉구한 것은 중국의 아프리카 교역이 급증하면서 영향력이 커지는 상황을 견제하자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이날 정책보고서에 참석한 한 EU관계자는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중국이 아프리카에서 큰손이 됐다.”고 말했다. EU가 지난해 아프리카와 교역한 규모는 2000억 유로(250조여원)로 여전히 세계 최대다. 그러나 중국도 430억유로로 오르며 최대교역국 자리를 넘보게 됐다. 최근 중국이 각종 지원과 원조 확대를 노리고 아프리카에 물량 공세를 퍼부으면서 유럽 등 서방과 에너지 자원을 확보하기 위한 신경전을 벌여 왔다.viele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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