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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외교부 1984년 작성된 26만여쪽 외교문서 공개

    외교부 1984년 작성된 26만여쪽 외교문서 공개

    한·일 간 과거사 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나라 정상의 첫 일본 국빈방문이 이뤄졌던 1984년 일본은 일왕이 어떤 수준으로든 과거사 반성 발언을 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으로 나타났다. 외교부가 30일 공개한 1597권(26만여쪽)의 외교문서에는 이 같은 내용을 포함해 전두환 당시 대통령의 국빈 방일 이후 남북한을 중국 및 일본이 교차승인하는 ‘한강개발계획’을 추진했던 것도 드러났다. 주로 1984년 작성된 외교문서 원문은 외교사료관에서 열람·출력을 할 수 있다. 외교사료관 홈페이지 등을 통해 외교문서목록 데이터베이스(DB)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일, 일왕 과거사 반성 언급 불가피 인식 공개된 외교문서에 따르면 정부는 1983년 한국을 공식 방문한 나카소네 야스히로 일본 총리의 방한에 대한 답방 차원에서 전두환 당시 대통령이 일본을 우리나라 정상으로는 처음으로 국빈 방문하는 무궁화 계획을 1984년 초 설립했다. 양국은 전 대통령의 9월 방문 일정을 확정한 뒤 의제 협의 과정에서 과서 식민지배의 상징적인 책임이 있는 히로히토 일왕의 과거사 발언을 놓고 의견을 주고받았다. 정부는 국민 정서를 감안할 때 일왕의 과거사 반성 발언이 반드시 있어야 하며 형식도 만찬사와 같은 공식적인 형태여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일본 역시 과거사 발언을 언급하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인정했다. 다만 일왕의 발언 내용 자체가 외교 교섭 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 때문인지 히로히토 일왕은 1984년 9월 전 대통령이 참석한 만찬 때 “금세기의 한 시기에 있어 양국 간 불행한 역사가 있었던 것은 진심으로 유감”이라고 말했다. ●중·일이 남북한 교차 승인 추진 외교문서에는 전 대통령의 방일 이후 중국과 일본이 남북한을 교차 승인하는 이른바 ‘한강개발계획’을 추진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1984년 11월 작성된 보고서에는 정부가 1986년 아시안게임 전후로 한국과 중국, 북한과 일본 간 교차 접촉을 본격화하고 1988년 서울올림픽을 전후로 동시에 교차승인하도록 한다는 계획이 담겨 있었다. 정부는 1984년 12월 나카소네 총리에게 제안을 전달한 뒤 미국의 협조를 기대했다. 하지만 정작 미국은 정부의 제안을 중국이 받아들일 가능성이 낮다며 미온적인 입장을 보였다. 처드 워커 당시 주한미국 대사는 정부에 북한의 거부 전망과 함께 중국 역시 한·중 직접 교역이 시기상조라는 반응을 소개했다. 전 대통령은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에게 친서를 보내 지원을 요청했으나 레이건 대통령은 “접근을 시도함에 있어 시기와 상황을 고려함이 중요한 것 같다”며 신중한 입장을 반복했다. 외교문서에는 또 정부가 김일성 북한 주석의 소련, 동유럽 순방이 고별 방문 성격이 짙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1984년 7월 박세직 당시 안기부 제2차장 주재 아래 청와대와 총리실, 외무부, 내무부, 국방부, 통일원, 문화공보부 등이 참여하는 실무국장회의를 열었던 것도 드러났다. 정부는 김일성 생존 시와 사망 시로 나눠 문공부 장관이 발표할 김정일 권력승계 관련 대북 성명 골자도 마련했다. 특히 김정일 정권의 비정통성에 대해 ‘은밀한 홍보활동’을 편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군 내부에서는 김정일 정권이 대남 무력 도발을 감행할 구체적 시기를 예상하기도 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제훈 기자 parti98@seoul.co.kr
  • 4·3문학 대표 소설가 40년 문학인생 오롯이

    4·3문학 대표 소설가 40년 문학인생 오롯이

    제주 4·3 사건의 은폐된 진실을 파고드는 데 주력했던 제주 출신 소설가 현기영(74)의 중·단편전집(전3권·창비)이 나왔다. 등단 40주년을 맞아 그의 작품을 새롭게 조명하기 위해서다. 작가는 1978년 계간 ‘창작과비평’에 ‘순이 삼촌’을 발표하며 문단 안팎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오랫동안 금기시돼 실체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4·3 사건’을 최초로 파헤쳤기 때문이다. 학살 현장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났지만 환청과 신경쇠약에 시달리다 농약을 먹고 자살하고 마는 순이 삼촌을 통해 제주 현대사의 비극을 그렸다. ‘4·3 소설’의 최고봉이자 ‘4·3사건’ 그 자체라는 평가를 받았다. 첫째 권 ‘순이 삼촌’에는 표제작을 비롯해 10편의 소설이 실렸다. ‘순이 삼촌’ ‘도령마루의 까마귀’ ‘해룡 이야기’ 등 4·3 사건의 비극을 다룬 초기 3부작이 돋보인다. 지식인의 고뇌와 개인의 무력감을 그린 ‘아내와 개오동’, 소시민의식을 역설적으로 비판한 ‘동냥꾼’ 등 작가의 사회의식이 잘 드러난 작품도 있다. 둘째 권 ‘아스팔트’에는 ‘잃어버린 시절’ ‘아스파트’ 등 ‘4·3 소설’ 외에도 제주 출신 영세민의 애환을 그린 ‘귀환선’, 식민지 잔재가 온존하는 교육현장을 고발한 ‘나카무라씨의 영어’ 등 다양한 소재의 작품들이 실렸다. 셋째 권 ‘마지막 테우리’에는 “단편소설이 요구하는 모든 요소를 고루 갖춘, 우리 단편문학 역사에 빛날 명작”(염무웅 문학평론가)이라는 극찬을 받은 표제작을 비롯해 자전적 소설 ‘위기의 사내’, 당대 현실을 다룬 ‘야만의 시간’ 등 7편의 소설과 장편 ‘변방에 우짖는 새’를 각색한 희곡이 수록됐다. 최원식 문학평론가는 “현기영은 제주도 문제를 민족 내부의 종속 지역에 대한 문제로 보면서도 민족사의 심상부로 끌어들임으로써 보편적 차원으로 들어 올리고 있다”며 “그의 문학이 제주도의 것일 뿐 아니라 우리 민족문학의 중대한 자산이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평했다. 작가는 “군사독재의 공포정치 속에서 두려움에 떨면서, 자기검열에 찌들면서, 어떻게든 ‘아니다’고 말해보려고 부심하는 모습들…. 중·단편전집 발간을 계기로 작품들을 되돌아보니 젊은 날의 그 생생한 열정, 분노, 두려움, 우울증이 부럽다”고 회고했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열린세상] 新대항해시대 사이버 공간의 국제정치/조화순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열린세상] 新대항해시대 사이버 공간의 국제정치/조화순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신대항해 시대가 열리고 있다. 이 새로운 시대는 모험과 탐험 정신에 가득 차 바다를 항해하며 신대륙을 발견하고 글로벌 무역을 일으킨 유럽인들의 대항해 시대에 필적할 만하다. 15세기 후반부터 18세기까지 지속된 대항해 시대가 범선을 타고 미지의 바다로 나아간 것이라면, 21세기 신대항해 시대는 인터넷을 타고 사이버 공간으로 항해가 이루어진다. 기존의 공간 개념을 초월하는 사이버 공간은 다양한 배경과 정보를 보유한 개인들이 국경을 초월해 만나고, 친분을 쌓고, 지식과 정보를 교류하는 네트워크의 바다다. 이미 세계의 많은 기업들은 스스로를 사이버 네트워크에 연결시킴으로써 특정 국가의 경계를 벗어나 사이버 공간에 비즈니스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대항해 시대 유럽인들이 미지의 무역 루트를 개척하고 상업 디아스포라를 통해 부를 축적하며 역동적인 팽창을 이룩했다면, 21세기 세계인들은 사이버 바다를 탐험하며 벤처 기업을 꿈꾸고 보다 자유롭고 민주적인 사회를 건설하고자 시도하고 있다. 대항해 시대는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식민지로 전락시키고 폭력과 약탈이 자행된 어두운 시대이기도 했다. 대항해 시대 동안 유럽은 노예무역을 통해 막대한 자본을 축적했으며,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한 노예들은 대규모 사탕수수 농장에서 가혹한 노동에 시달렸다. 아프리카와 아시아를 두고 패권 경쟁을 벌이면서 유럽 국가들은 19세기를 제국주의적 팽창과 위협의 시대로 전락시켰다. 모험 정신과 열정으로 시작된 새로운 항해 기술이 세계사의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21세기 신대항해 시대 역시 팽창과 폭력의 동인들을 축적하고 있다. 인류가 사이버 신공간에 건설하려던 유토피아는 사라지고 패권적 갈등과 폭력의 세계화가 출현하는 것이다. 먼저 사이버 공간으로 옮겨 간 강대국의 치열한 패권 경쟁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구글아키’라는 말처럼 구글의 개방형 링크에 기반을 둔 검색 방식이 하나의 글로벌 질서가 되고, 마이크로소프트와 애플을 내세운 미국은 세계 표준의 지위를 선점했다. 이러한 미국의 움직임을 뒤늦게 쫓는 중국은 알리바바·바이두 등을 세계 무대에 등장시켜 대항의 전열을 가다듬고 있다. 중국에 대한 미국의 사이버 스파이 행위와 그 행위를 폭로한 스노든 사태, 미국의 기간 시설에 대한 중국 인민해방군 사이버부대의 해킹은 사이버 공간에서 일어나는 미국과 중국의 전쟁이다. 둘째, 대항해 시대에 유럽인들이 퍼뜨린 천연두와 매독처럼 바이러스를 내세운 사이버 테러와 해킹이 조용히 그러나 빠르게 번지고 있다. 지난해 12월 북한 정찰국이 주도한 한국수력원자력의 원전도면 해킹 사태, 2009년 디도스 공격 등은 이러한 위협의 시작을 알리는 사건들이었다. 원전 반대그룹을 자칭한 해커 조직은 한수원 측에 원전 가동을 중단하지 않으면 원전 설계 도면을 공개하겠다고 협박했다. 또한 인터넷을 통한 무장 과격단체의 형성과 확산도 문제인데, 인터넷으로 새로운 조직원을 포섭하고 참수 영상을 공개하는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대표적인 사례다. 대항해 시대에 출몰했던 해적들처럼 해커들이 글로벌 사이버 공간에서 교란 행위를 일삼고 있지만 무정부주의적 네트워크의 바다에서 세계인들은 자신의 안녕과 안보를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형국이다. 사이버 테러와 해킹의 난무, 강대국들의 사이버 패권 경쟁은 신대항해 시대에 우리나라가 직면한 새로운 국제정치 현실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네트워크화된 국가 가운데 하나인 한국은 안타깝게도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있는 패권 경쟁과 사이버 전쟁을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대항해 시대에 비유럽 대륙의 주민들은 익숙하지 않은 유럽식 전쟁 방식과 무기들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고, 이들과의 접촉 이후 식민지로 전락했다. 확고한 문명을 바탕으로 체계적 사회 질서를 유지했던 아시아 일부 국가들만이 제국주의의 침탈에서 자주권을 보전했다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다가오는 사이버 패권주의와 사이버 전쟁에서 우리나라가 안전과 국익을 수호할 방법은 건강하고 체계적인 사이버 문명을 구축하고 발전시키는 것이다. 정부와 인터넷을 사용하는 모든 국민이 곱씹어 생각하고 참여와 실천을 통해 새로운 질서를 열어 갈 때다.
  • [격동의 한·일 70년] “위안부 문제 해결이 관건… 정상회담 통한 연대로 극복해야”

    [격동의 한·일 70년] “위안부 문제 해결이 관건… 정상회담 통한 연대로 극복해야”

    서울신문은 올해 1월 2일부터 ‘격동의 한·일 70주년’ 관련 시리즈를 9회에 걸쳐 연재했다. 시리즈 마지막으로 양기호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와 이원덕 국민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등 일본 전문가들과 함께 바람직한 한·일 관계에 대한 방향을 모색했다. 지난 13일 서울신문 편집국에서 이뤄진 좌담회는 정치부 이제훈 기자의 사회로 진행됐다. →한·일 간 현주소를 어떻게 봐야 하는지. -양:한·일 관계가 상당한 위기라는 말이 나온다. 하나는 국제공조화 측면에서 한·일 관계가 상호 간의 전략적 가치를 발견하기 힘든 지점에 와 있다고 본다. 미·일 동맹을 중시하는 일본의 입장과 한·중 관계 심화 속에서 한·미 관계를 강조하는 한국의 입장이 애매모호한 상태로 외교적인 위기 상태에서 출발했다는 점이다. 한·일 간 위안부 문제가 가장 크며 이 문제가 국제쟁점화되면서 다시 한·일 관계를 악화시키는 악순환 구조에 와 있다. 뿐만 아니라 한국 정부가 미국과 유럽, 유엔에 가서 일본의 부도덕성을 고발하는 등 구조적인 긴장과 위기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복합골절’이라고 본다. -이:한·일 관계 50년사에서 최악의 상황에 와 있다고 많이 얘기를 하고 있다. 하지만 1970년대 김대중 납치 사건, 문세광의 대통령 암살 미수 사건이 있을 때와 비교하면 그렇게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다. 특히 일본의 혐한론이 대두되는 상황이고 한국은 한국대로 일본 무시론, 경시론 등 이런 것들이 새로운 풍조로 등장하고 있다. 최고 지도자의 소통이 부재된 가운데 여러 가지 오해와 불신이 정부 레벨에서뿐만 아니라 국민 수준에서 확산되고 있다. 일본은 일본대로 약간 전도된 피해 의식을 한국에 대해 느끼고 있다. 한국이 거듭된 사죄를 반복적으로 요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즉 한반도 전략론의 부재가 오늘날 한·일 관계의 현주소다. →위안부 문제, 독도 문제에 대한 평가는 어떻게 보는지. -양:위안부 문제가 쟁점화돼 있다. 한·일 간의 최대 문제고 이 문제가 풀리지 않는 한 진전은 없다. 그래서 이 문제를 해결하는 주체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피해자 할머니들이다. 정대협이라는 강력한 조직이 있다. 현재 문제는 위안부 건에 대해서는 한국 정부와 일본 정부의 타협이 부재한 상태에서 양국 정부가 최대의 현안으로 삼으면서 이 문제가 결과적으로 악화됐다. 일본 정부가 고노 담화를 수정한다든지 하는 것이 위안부 할머니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피해자에게 사과하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한국 정부가 골대를 옮긴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일본에서는 “도대체 어디까지 사과해야 하냐”고 말하는데. -이:일본 측에서 보면 그런 면이 있다. 한·일 관계가 전체고 역사 문제가 부분이고 여러 가지 이슈 중 하나가 위안부 문제다. 역사 문제가 한·일 관계 전체를 포섭하는 비대칭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격이다. 국익이나 전략적인 입장에서 볼 때도 대단히 이 문제를 잘못 다루고 있다고 본다. 개념 정리가 모호한 상태에서 일본에 공을 던지고 선제적 조치가 전제되지 않으면 해결이 없다는 논리로 접근한다. -양:입법 조치를 통해, 즉 특별법을 만들어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이 있다. 하지만 일본은 위안부 배상에 대해서는 현재 고려치 않고 있다. 일본 국회에서 과감하게 특별법을 만들어 전쟁 범죄를 인정하고 사죄하면 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어렵다. 아베 내각에서 특별법을 만든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위안부 문제 때문에 독도 문제가 가려져 있는데. -이:독도 문제는 근본적으로 양국 간의 기본 입장이 충돌하고 있기 때문에 단기적인 처방은 없다. 아베 정부 들어서 영토 인식이 강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마찰 요인이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가 실효지배를 하고 있기 때문에 현상을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일본의 행태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대국적 견지에서 관리해 나가야 한다. →우리가 독도 문제에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양:과거 이명박 전 대통령이 독도에 대해 집착을 보였다. 결과적으로 이명박 전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일왕 사과 발언 이후 일본에서 한국을 지지하던 매체나 기반이 상실됐다. →원폭 피해자 2, 3세 문제는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국내 지원이 부족하다는 평가가 있는데. -양:지난 2월 국회에 원폭 피해자 보상과 관련한 법이 상정된 상태다. 일본은 1965년에 피해보상권을 다 인정했다고 얘기하면서 어떻게든 피해 보상을 하지 않으려고 회피했다. 한국 정부는 원폭 피해자에 대한 보상을 못 하고 있다. 원폭 피해자 1, 2세보다 3, 4세에 대한 피해 보상이 더 필요한 상황이다. -이:원폭 피해자는 매우 작은 쟁점이고 피해자들도 일본 정부와 시민단체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갖고 있는 경우도 있다. 한·일 간의 핵심 이슈는 아니다. 더 큰 이슈를 꼽으라면 강제 징용 문제에 따른 대법원 판결이다. →일본 기업이 우려를 표시하고 있는데 대법원 판결에 따른 압류 등의 조치가 이뤄진다면 어떻게 봐야 하나. -이:대법원은 그 이유가 일본의 식민지배가 불법이라고 규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본 최고재판소는 대일 역사 청산과 관련해 이미 1965년 피해보상 문제가 해결됐다는 관점이다. 이런 가운데 한국 정부가 일본 해당 기업에 대해 몰수나 강제 집행을 하는 것인데 그것이 가져올 파장은 엄청나다. 외교부 당국자들이 고민하는 것을 볼 때 강제동원 피해자에게 줄 돈이 1억원이라고 하면 30조원 정도의 예산이 필요한 것으로 나온다. 이것을 한국 정부가 지불해야 할 것인지, 일본 측에서 해야 할지 문제가 된다. 이럴 경우 외교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넘어선다. -양:한국은 2005년 민관공동위원회에서 강제징용에 대해 상당 부분 해결됐다고 얘기했다가 2012년 한국 대법원에서 일본이 불법 점거했던 것이기 때문에 일본의 배상 책임이 있다고 판결했다. 일본이 한국이 골대를 바꾼다고 얘기하는 것은 바로 2012년에 2005년과 달라졌기 때문이다. 한국의 약점이라면 약점이다. 독일 같은 경우 기업이 재단을 만들어 계속 배상을 하고 있다. 포스코 같은 곳에서 돈을 내고, 일본 기업도 돈을 내서 재단을 만들어 보상하는 방법도 있다. →악재들만 있는데 문화재 반환 부분도 폭탄 중 하나인가. -이:한·일 관계의 최대 문제는 인식론에서 불균형에 있다고 생각한다. 대일 외교의 균형점을 찾는 게 중요하다. 양국 간에 폭탄은 언제든지 있었다. 마치 한·일 관계는 이런 폭탄들만 보이는 것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한·일 관계에서 무역, 인적왕래, 경제, 문화 또 문화교류의 미담도 있다. 그러나 한·일 관계의 관심이 온통 악재 쪽으로 가 있는 것이 문제의 근원이라고 본다. 한·일 관계를 개선하는 것은 균형점으로 돌아오는 것이 시작이다. -양:문화재 문제는 쓰시마섬 불상 문제, 일본의 반한 감정이 이슈인 것 같지만 사실 잘 해온 것도 있다. 몽유도원도를 세 번 빌려서 전시한 적도 있고 의궤도 반환받은 바 있다. 문화재 반환을 쟁점으로 하고 하나씩 풀어 나가는 것이 좋다고 본다. 조선왕실의궤를 반환받은 것은 한·일 간 밝은 뉴스 중 하나다. 위안부 문제만 쟁점화하지 말고 위안부 문제를 보완할 수 있는 한·일 관계 해결의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문화재 반환이 좋은 사례가 될 것으로 본다. →8월로 예상되는 아베 담화를 어떻게 보나. 대일 외교는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나. -이:단기적인 해법은 정상회담이 가장 효과적이다. 한·일 관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 한 방을 찾으라면 정상회담이다. 정상회담을 통해 신뢰가 구축돼야 이 문제를 풀어 갈 수 있다. 정상회담을 통해 공동기구를 구성하고 양국 전문가가 모여서 합리적인 해법을 찾는 방식으로 가는 게 합당하다고 본다. 올해 중반까지 정상회담이 없다면 한·일 간 기회를 찾기가 어렵다. 일본 역대 정권 중 아베 정권은 가장 극단적인 정치적 DNA를 가지고 있다. 일본 국민과 정권을 분리하고 다른 생각을 가진 세력과 국경을 넘는 연대를 통해 한·일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양:향후 한·일 관계를 비관적으로 보면 장기적으로 악화될 수 있다. 중국의 부상으로 한국은 중국과 협력할 수밖에 없고 일본은 중국을 견제할 수밖에 없는 관계다. 이런 구조가 당분간 갈등의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본다. 동북아 구조상 일본 헌법 9조가 노벨평화상 후보로 오르는 것도 중요하다. 평화헌법을 그냥 두는 것이 한·일 양국은 물론 한반도 평화로 가는 기재이기 때문이다. 정리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타계한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는 누구?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 타계’ 23일 타계한 리콴유(李光耀) 전 싱가포르 총리는 작지만 강하고 잘사는 싱가포르의 기적과 신화를 이룬 인물로, 아시아의 대표적 지도자로 통한다. 정치, 사회적 안정과 경제적 번영을 동시에 달성한 사례가 드문 동남아시아에서 도시국가 싱가포르를 아시아에서 최고 잘사는 나라로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세계적 금융 및 물류 중심지로 탈바꿈시키고, 부정부패가 드문 깨끗한 사회로 건설한 리 전 총리는 국부(國父)로 일컬어진다. 그는 싱가포르가 영국 식민지였던 1959년부터 자치정부 총리를 지냈다. 이후 1965년 말레이시아 연방에서 독립한 싱가포르의 초대 총리로 취임해 1990년 퇴임할 때까지 26년간 총리로 재직했다. 자치정부 시절까지 합하면 31년 동안 총리로 재직해 세계 사상 가장 오랫동안 총리로 재직했다. 독립 당시 400달러 수준이었던 싱가포르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그가 총리직에서 퇴직한 1990년에 1만2천750달러를 달성했다. 지난해 싱가포르의 1인당 GDP는 5만6천113달러로 세계 8위, 아시아 1위이며, 세계경제포럼(WEF) 조사 국가경쟁력은 세계 2위, 국제투명성기구 조사 국가청렴도는 세계 5위이다. 오늘의 싱가포르를 있게 한 주인공이 리콴유라는 데 이견이 없다. 리콴유는 1923년 영국 식민지 시절 싱가포르에서 부유한 화교 이민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1949년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 소속인 피츠윌리엄 칼리지에서 법학을 전공했다. 1951년 귀국해 변호사로 개업했으며 1954년 인민행동당(PAP)을 창당하고 사무총장에 올랐다. 1959년 자치정부 총리가 됐을 때 그의 나이는 불과 35세였다. 그가 독립 싱가포르의 총리로 취임했던 1965년 싱가포르는 부존 자원은커녕 마실 물조차 부족해 이웃 말레이시아에서 사와야 할 정도로 암울했다. 하지만 현재 싱가포르는 ‘아테네 이후 가장 놀라운 도시국가’로 불리고 있다. 그는 집권 후 재정 안정화, 서민주택 보급, 공직비리조사국 설치, 해외투자 유치 등의 정책을 시행했다. 개발도상국이 소홀히 하기 쉬운 환경보호에도 노력을 기울여 싱가포르는 세계에서 가장 깨끗한 도시 중 하나가 됐다. 그는 싱가포르 항만공사를 설립해 세계 일류 수준의 컨테이너 항구를 건설했고, 석유파동 속에서도 미래에 대비해 창이 국제공항을 건설하는 등 주요 사업에는 과감한 투자를 감행했다. 이 같은 장기적 안목의 투자는 싱가포르를 물류 중심지, 동서양 항공의 요충지로 만들었다. 또 세계 유명 금융기관을 적극적으로 유치해 싱가포르를 동남아시아 금융 중심지로 일으켰다. 그러나 그의 리더십에는 비판과 논란도 뒤따랐다. 싱가포르가 세계적으로 깨끗하고 범죄율이 낮은 도시가 된 배경에는 무거운 벌금, 태형 등 강력한 처벌이 자리잡고 있다. 마약 소지자는 엄벌에 처하고 껌만 뱉어도 벌금을 부과하는 등 엄격한 통제를 국가경영에 도입했다. 이 때문에 그는 아시아의 히틀러로 불리기도 했으며, 경제적인 부에도 한때 싱가포르의 국민행복지수는 150개국 중 149위로 평가되기도 했다. 그의 이런 통치 방식은 ‘온건한 독재’, ‘가부장적 통치’로 불렸다. 그러나 동남아의 다른 독재자들처럼 무력을 동원하거나 경제개발 과정에서 착취나 인권침해 논란을 초래하지 않았다. 노조활동과 임금인상을 억제했지만 성과급 제도를 적극 도입했다. 유능한 인재의 공직 진출을 유도하고, 공무원들이 부정부패 유혹에 넘어가지 않도록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보수를 공무원들에게 지급했다. 그를 지지하는 정치 전문가들은 그의 독재적 방식이 국가통치를 효율화하는 수준을 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리 전 총리 자신은 독재적이라는 비난에 대해 서구에 비해 개발이 뒤진 아시아가 서구를 따라잡기 위해서는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아시아적 가치’를 주장했다. 이는 당시 아시아에 만연했던 독재를 옹호하기 위한 것이라는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마하티르 모하마드 전 말레이시아 총리 등이 아시아적 가치에 동조했으나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가 터져 아시아의 정치, 경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나자 더 이상 아시아적 가치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리콴유는 세계와 미래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지녀, 덩샤오핑에서 시진핑 주석에 이르기까지 중국 지도자들의 스승 역할을 했다. 또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부터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미국 대통령들도 그에게 조언을 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리콴유는 1990년 고촉동 전 총리에게 총리 자리를 물려줬다. 2004년 14년간 총리로 재임했던 고 전 총리가 물러나 리콴유의 첫째 아들인 리셴룽(李顯龍)이 새 총리로 취임했다. 리셴룽 총리의 등장은 또다른 형태의 권력세습이 아니냐는 지적도 없지 않다. 그러나 오랫 동안 정치, 행정 분야 요직을 거치면서 지도자 교육을 받았던 리셴룽 총리는 싱가포르 국민뿐만 아니라 아시아에서 대체로 존경받는 지도자로 통한다. 리콴유는 2010년 세상을 먼저 떠난 부인 콰걱추(柯玉芝) 여사와 2남 1녀를 뒀으며 한국도 수차례 방문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 타계… ‘국부’ 그는 누구인가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 타계… ‘국부’ 그는 누구인가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 타계’ 23일 타계한 리콴유(李光耀) 전 싱가포르 총리는 작지만 강하고 잘사는 싱가포르의 기적과 신화를 이룬 인물로, 아시아의 대표적 지도자로 통한다. 정치, 사회적 안정과 경제적 번영을 동시에 달성한 사례가 드문 동남아시아에서 도시국가 싱가포르를 아시아에서 최고 잘사는 나라로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세계적 금융 및 물류 중심지로 탈바꿈시키고, 부정부패가 드문 깨끗한 사회로 건설한 리 전 총리는 국부(國父)로 일컬어진다. 그는 싱가포르가 영국 식민지였던 1959년부터 자치정부 총리를 지냈다. 이후 1965년 말레이시아 연방에서 독립한 싱가포르의 초대 총리로 취임해 1990년 퇴임할 때까지 26년간 총리로 재직했다. 자치정부 시절까지 합하면 31년 동안 총리로 재직해 세계 사상 가장 오랫동안 총리로 재직했다. 독립 당시 400달러 수준이었던 싱가포르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그가 총리직에서 퇴직한 1990년에 1만2천750달러를 달성했다. 지난해 싱가포르의 1인당 GDP는 5만6천113달러로 세계 8위, 아시아 1위이며, 세계경제포럼(WEF) 조사 국가경쟁력은 세계 2위, 국제투명성기구 조사 국가청렴도는 세계 5위이다. 오늘의 싱가포르를 있게 한 주인공이 리콴유라는 데 이견이 없다. 리콴유는 1923년 영국 식민지 시절 싱가포르에서 부유한 화교 이민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1949년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 소속인 피츠윌리엄 칼리지에서 법학을 전공했다. 1951년 귀국해 변호사로 개업했으며 1954년 인민행동당(PAP)을 창당하고 사무총장에 올랐다. 1959년 자치정부 총리가 됐을 때 그의 나이는 불과 35세였다. 그가 독립 싱가포르의 총리로 취임했던 1965년 싱가포르는 부존 자원은커녕 마실 물조차 부족해 이웃 말레이시아에서 사와야 할 정도로 암울했다. 하지만 현재 싱가포르는 ‘아테네 이후 가장 놀라운 도시국가’로 불리고 있다. 그는 집권 후 재정 안정화, 서민주택 보급, 공직비리조사국 설치, 해외투자 유치 등의 정책을 시행했다. 개발도상국이 소홀히 하기 쉬운 환경보호에도 노력을 기울여 싱가포르는 세계에서 가장 깨끗한 도시 중 하나가 됐다. 그는 싱가포르 항만공사를 설립해 세계 일류 수준의 컨테이너 항구를 건설했고, 석유파동 속에서도 미래에 대비해 창이 국제공항을 건설하는 등 주요 사업에는 과감한 투자를 감행했다. 이 같은 장기적 안목의 투자는 싱가포르를 물류 중심지, 동서양 항공의 요충지로 만들었다. 또 세계 유명 금융기관을 적극적으로 유치해 싱가포르를 동남아시아 금융 중심지로 일으켰다. 그러나 그의 리더십에는 비판과 논란도 뒤따랐다. 싱가포르가 세계적으로 깨끗하고 범죄율이 낮은 도시가 된 배경에는 무거운 벌금, 태형 등 강력한 처벌이 자리잡고 있다. 마약 소지자는 엄벌에 처하고 껌만 뱉어도 벌금을 부과하는 등 엄격한 통제를 국가경영에 도입했다. 이 때문에 그는 아시아의 히틀러로 불리기도 했으며, 경제적인 부에도 한때 싱가포르의 국민행복지수는 150개국 중 149위로 평가되기도 했다. 그의 이런 통치 방식은 ‘온건한 독재’, ‘가부장적 통치’로 불렸다. 그러나 동남아의 다른 독재자들처럼 무력을 동원하거나 경제개발 과정에서 착취나 인권침해 논란을 초래하지 않았다. 노조활동과 임금인상을 억제했지만 성과급 제도를 적극 도입했다. 유능한 인재의 공직 진출을 유도하고, 공무원들이 부정부패 유혹에 넘어가지 않도록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보수를 공무원들에게 지급했다. 그를 지지하는 정치 전문가들은 그의 독재적 방식이 국가통치를 효율화하는 수준을 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리 전 총리 자신은 독재적이라는 비난에 대해 서구에 비해 개발이 뒤진 아시아가 서구를 따라잡기 위해서는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아시아적 가치’를 주장했다. 이는 당시 아시아에 만연했던 독재를 옹호하기 위한 것이라는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마하티르 모하마드 전 말레이시아 총리 등이 아시아적 가치에 동조했으나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가 터져 아시아의 정치, 경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나자 더 이상 아시아적 가치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리콴유는 세계와 미래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지녀, 덩샤오핑에서 시진핑 주석에 이르기까지 중국 지도자들의 스승 역할을 했다. 또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부터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미국 대통령들도 그에게 조언을 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리콴유는 1990년 고촉동 전 총리에게 총리 자리를 물려줬다. 2004년 14년간 총리로 재임했던 고 전 총리가 물러나 리콴유의 첫째 아들인 리셴룽(李顯龍)이 새 총리로 취임했다. 리셴룽 총리의 등장은 또다른 형태의 권력세습이 아니냐는 지적도 없지 않다. 그러나 오랫 동안 정치, 행정 분야 요직을 거치면서 지도자 교육을 받았던 리셴룽 총리는 싱가포르 국민뿐만 아니라 아시아에서 대체로 존경받는 지도자로 통한다. 리콴유는 2010년 세상을 먼저 떠난 부인 콰걱추(柯玉芝) 여사와 2남 1녀를 뒀으며 한국도 수차례 방문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세종로의 아침] 셔먼 對 메르켈/김성호 문화부 선임기자

    [세종로의 아침] 셔먼 對 메르켈/김성호 문화부 선임기자

    요즘 부쩍 과거사와 관련한 아베 신조 일본 정부의 역사의식을 겨눈 발언이 봇물 터지듯 나오고 있다. ‘과거사 빨리 정리하고, 북핵 같은 현안에 치중하자’(웬디 셔먼 미 국무부 차관), ‘독일은 과거와 정면으로 마주했다’(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8월의 아베 담화가 미래지향적이길 기대한다’(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일본의 사죄 아직도 충분하지 않다’(오에 겐자부로)…. 국제적 거물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던진 말의 파장이 만만치 않다. 특히 셔먼 차관과 메르켈 총리의 언사는 대비되는 시각과 반향 탓에 뒤끝이 시끌벅적하다. 이들의 말을 다시 곱씹어 보자. 셔먼은 과거사 문제의 해결과 화해가 안 되는 책임이 한·중·일 모두에 있다고 했다. 여기에 ‘정치 지도자가 과거의 적을 비난해 값싼 박수를 받는’ 식의 표현이 자극적이다. 지난 1월 방한 때 ‘위안부 동원 강제성을 인정하고 일본의 아시아 침략·식민지배에 사죄한 고노·무라야마 담화가 견지되기를 바란다’던 것과는 사뭇 다르다. 반면에 일본 심장부에서 ‘과거사 정리가 화해를 위한 전제’라며 아베 총리에게 전범국가의 진정한 반성을 촉구한 메르켈은 ‘존경의 아이콘’으로 등극한 느낌이다. 셔먼 차관의 말에 ‘우리 편인 줄 알았는데 뒤통수 맞았다’는 반응이 쏟아졌다면 메르켈 총리의 발언에는 ‘속이 시원하다’는 평이 압도적이다. 말의 전후 사정은 뒤로 물린 채 일단 ‘내 편 네 편’ 식의 보편적인 점수 매기기가 월등히 앞선다. 과거사 해결 방식을 향한 한국민의 입장이야 대동소이할 것이다. 가해자 일본의 책임 인정과 반성, 그 후 더 나아가서 보상이다. 셔먼 미 국무부 차관이나 메르켈 독일 총리의 언사는 당연히 그 국민적 감정을 거스르거나 보듬는 것이다. 하지만 역사를 되돌아보자. 좋게 만들었건 나쁘게 만들었건 한반도의 운명을 갈랐던 주체들이 뭘 책임졌는가. 주어진 굴레를 짊어지고 해결한 건 늘 우리였다. 한마디에 웃고 우는 어린애 같은 단세포적 반응을 이젠 치우자는 말이다. ‘말의 성찬’에 우왕좌왕 쏠리기보다 현실을 직시하는 게 우선이다. ‘독일 정부에 들어보니 일본 정부더러 어떻게 하라는 건 아니었다고 하더라.’ 메르켈 총리의 과거사 관련 발언에 일본 정부를 대변하는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이 낸 이 공식 논평이 압권이지 않은가. 하기야 그 강변은 새삼스럽지 않다. 문제의 발언을 한 메르켈 총리의 방일 하루 전 집권 자민당이 창당 60주년을 기념해 올해 주요 활동 목표로 설정한 게 바로 ‘평화헌법’ 개정과 야스쿠니 신사 참배이다. 누가 뭐래도 ‘군사 대국화’ 구상을 밀어붙이겠다는 심산이 빤해 보인다. 일본이 8월 발표할 예정인 전후 70년 담화에 ‘통절한 반성’이니 ‘마음으로부터의 사죄’ 같은 표현이 담길지 모른다는 기대가 있다고 한다. 물론 기대되는 일이다. 하지만 ‘눈 가리고 아웅’ 식의 입에 발린 말은 상처를 더 깊이 곪게 만들 뿐이다. ‘혹시’와 ‘역시’의 되풀이 대신 눈을 부릅떠 현실을 지켜보자. 미 국무부 홈페이지 지도에 ‘리앙쿠르암’(독도의 서양식 표기)이 왜 사라졌다가 불쑥 나타났는지 그 이유부터 정색하고 따지자는 말이다. kimus@seoul.co.kr
  • “中, 아베담화 내용 보고 한·중·일 정상회담 판단”

    중국이 한·중·일 정상회담 개최 시기와 관련,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패전 70주년인 올여름 발표할 ‘아베 담화’의 내용을 확인한 뒤 판단한다는 의향을 일본 정부에 전달했다고 교도통신이 17일 보도했다. 통신은 중·일 관계 소식통을 인용해 중국이 복수의 경로를 통해 “(아베 담화가) 1998년 공동 선언을 포함해 중·일 양국 간 작성된 4개의 기본 문서를 준수할 필요가 있다”고 요구했다고 전했다. 1998년 공동선언은 당시 장쩌민(江?民) 중국 국가주석과 오부치 게이조 일본 총리가 발표한 것으로, ‘중국에 대한 침략’ 표현과 함께 식민 지배와 침략에 대해 사죄한 1995년 무라야마 담화의 계승 방침을 담은 것이다. 4개의 기본 문서는 이 외에 1972년 공동성명, 1978년 평화우호조약, 2008년 전략적 호혜 관계에 대한 공동성명을 일컫는다. 중국은 담화의 구체적인 내용을 파악해 일본 지도자의 ‘올바른 역사인식’을 확인하지 못한다면 한·중·일 정상회담에 응하기 어렵다는 인식을 전달했다고 통신은 소개했다. 특히 중국은 아베 총리가 담화에 ‘침략’이라는 표현을 넣을지 여부를 판단 기준으로 삼을 것으로 보인다. 아베 총리는 무라야마 담화를 “전체적으로 계승”한다면서도 식민지배와 침략, 사죄 등 무라야마 담화의 핵심 표현을 아베 담화에서 계승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모호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도쿄 김민희 특파원 haru@seoul.co.kr
  • 은밀한 한 컷, 위대한 변화…웃겨라, 세상을 뒤집을 만큼

    은밀한 한 컷, 위대한 변화…웃겨라, 세상을 뒤집을 만큼

    풍자, 자유의 언어 웃음의 정치/전경옥 지음/책세상/584쪽/3만원 지난 1월 7일 프랑스 파리에서 이슬람 근본주의 성향의 두 형제 테러리스트는 그동안 마호메트를 우스꽝스럽게 그리면서 조롱과 풍자를 한 시사 풍자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를 상대로 피의 복수극을 벌였다.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린 이 테러는 언론의 자유와 한계에 대한 사회적 논의에 불을 붙이는 계기가 됐다. 글보다 더 함축적이고 즉각적으로 비판하거나 공격하려는 대상과 의도를 환기하면서 여론을 효과적으로 움직이는 풍자 이미지는 기원전 1360년 이집트에서 클레오파트라부터 하급정부 관리에 이르는 지배층을 공격할 때 처음 등장했다는 기록이 있다. ‘풍자, 자유의 언어 웃음의 정치’는 풍자 이미지를 통해 근대 유럽의 정치·경제·사회·문화를 조망한 책이다. 근대는 절대권력, 신흥계급, 교회, 대중, 국제관계, 여성을 둘러싸고 큰 변화가 일어나면서 중세의 봉건적 질서를 벗어나 시민사회로 이행하는 역동적인 시기였다. 자유와 평등 개념이 확산하고 정치적 규범과 철학이 대거 형성되면서 사회 전반에서 발전이 이뤄졌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연재해와 전쟁에 따른 인명 희생, 산업화와 도시화가 낳은 빈곤과 노동착취, 빈부격차 문제도 심각해졌다. 책은 이처럼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지닌 근대의 두 얼굴을 당시 유행한 풍자 이미지를 통해 생생히 보여 준다. 책은 특히 정치·경제적으로 강성했고 근대성의 요소를 공통으로 많이 지닌 16~19세기 영국·프랑스·독일에 초점을 맞춘다. 자유주의 정신이 확산되고, 정치적 규범과 철학이 대거 형성됨으로써 정치·사회·문화 전반에서 눈부신 발전을 이뤘고 급속하게 산업화가 진행되던 당시 만화와 만평, 캐리커처, 전단지, 풍자소설 등이 어떻게 생겨나 어떤 경로로 유포되고 향유됐으며 어떤 반향을 일으켰는지를 우선 살핀다. 이어 중세의 봉건제가 무너지고 절대왕정이 성립되어 가는 과정, 왕족과 귀족, 고위 성직자가 모든 특권을 독차지한 것에 대한 반발과 자유 평등 개념의 확산으로 시민혁명이 일어나는 과정이 펼쳐진다. 가톨릭의 부패와 성직자의 타락, 이에 대한 반발로 종교개혁이 일어나는 과정,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간의 갈등과 막대한 희생을 부른 종교전쟁도 풍자의 대상이 됐다. 불공평과 불의에 맞서기도 하지만 쉽게 해이해지는 대중의 속성을 꼬집고, 근대에 새로이 등장한 지식 엘리트와 신정치 엘리트에 대한 풍자도 흥미롭다. 근대의 유럽 풍자 이미지에서 여성은 중세의 폐쇄적인 인식에서 다소 벗어나긴 했지만 여성의 사회적 역할, 지위, 사회참여에 대해서는 여전히 차별적이고 가부장적인 인식을 드러냈다. 여성을 사치스러운 생활의 표본 혹은 정치적 부패의 원인으로 그리면서 ‘친절하지만 나약하고, 정의롭지만 악마의 유혹에 쉽게 빠지고, 남성의존적이며 공적인 영역에 적합한 자질이 없다’는 인식을 드러냈다. 종교, 왕권, 식민지, 무역 등을 둘러싸고 일어난 국가 간의 갈등과 충돌도 풍자의 주요 소재였다. 라이벌 관계였던 영국과 프랑스에서 정치적 선전과 선동을 목적으로 배포된 풍자화들에서 같은 사안을 놓고 상반된 시각을 펼치는 점도 흥미롭다. 19세기 초반 전 유럽을 상대로 정복전쟁을 벌인 나폴레옹은 단골 등장인물로 당시 정세와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표현된다. 책에 따르면 “풍자는 편견, 악덕, 모순, 부조리, 어리석음 등을 비난하거나 이를 개선하려는 기대감을 갖는 빈정거림이며 보이는 것에만 가치를 두는 것을 경계하는 대안”으로 “대중담론을 형성하는 방법이며 일종의 현실 참여적인 정치행위”였다. 서양정치사상을 연구해 온 저자는 서문에서 “풍자만화는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들도 세상을 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게 한다”며 “이미지라는 문화적 형태와 풍자라는 문화적 행위가 어떻게 정치적인 것이 되는지 보여 주려고 했다”고 밝혔다. 영국의 제임스 길레이와 윌리엄 호가스, 프랑스의 자크 칼로와 샤를 필리퐁, 오노레 도미에 등 당대를 풍미했던 저명한 풍자화가의 작품은 물론 재치와 기지로 대중을 사로잡은 무명 작가들의 작품들이 소개된다. 일반적인 만평과 캐리커처뿐 아니라 게임카드와 게임보드 형식의 풍자화, 여러 장면을 달팽이 형태로 연결해서 보여 주는 파노라마식 풍자화, 위아래로 돌리면 상반된 이미지가 나타나는 풍자화 등 다양한 기법과 형태의 풍자 이미지도 보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폭력적 천황·남성 중심 문화가 전쟁 지지하고 위안부 부정해”

    “폭력적 천황·남성 중심 문화가 전쟁 지지하고 위안부 부정해”

    “일본 내에서도 위안부에 대한 비판이 있습니다. 아베 총리와 달리 국민들의 사죄 의식은 강합니다. 국가가 진심으로 사죄하고 배상해야 합니다.” 일본이 자랑하는 세계적인 노작가는 단호하면서도 분명하게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의 책임을 강조했다. 1994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일본 현대문학의 거장 오에 겐자부로(80)는 13일 오전 서울 마포구 동교동 한 찻집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 백발이 성성한 얼굴로, 목 위 마지막 단추까지 꼭 잠근 모습으로 들어섰다. 외모에서 드러나는 고지식함은 양심적인 지식인으로서의 단호함을 한껏 드러내고 있다. 그는 사실적 고백을 담은 장편소설 ‘익사’의 국내 출간에 즈음해 방한했다. 오에는 이와 함께 일본 우익정권을 떠받치는 천황·남성 중심 사고를 정면 비판했다. 소설이 담고 있는 문제의식과 맞닿는 부분이다. 그는 일본의 우경화에 우려를 지속적으로 표시해 왔고, 일본의 평화헌법 9조를 지키는 운동을 벌이고 있다. 그는 “일본의 천황·남성 중심 폭력적 사고방식은 여성 차별에서 기인한다. 근대 이후에도 줄곧 이어져 왔고, 지금도 여성들은 폭력에 노출돼 있다. 위안부를 부정하는 건 여성을 경시하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최근 극단적인 우경화 경향을 보이는 일본 정권에 대한 날 선 비판도 이어졌다. “위안부는 존재했다. 식민지 여성들을 동원했고, 범죄적인 수단도 동반됐다. 위안부는 전체주의 일본이 군인을 위한 여성의 역할을 담당하도록 한 존재다. 일본은 이 문제를 사죄해야 한다. 일본 역사에서 여성에 대한 폭력을 정당화한 구조를 만든 일본의 후진성을 인정해야 한다. 앞으로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국민 의식 구조도 바꿔야 한다.” 2009년 일본에서 출간된 ‘익사’는 작가의 분신(소설의 주인공)의 입을 빌려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내용이다. 소설 속 아버지는 우익 사상가나 군인보다 더 우익적이며 전통적인 천황 중심의 전체주의 국가사상에 빠져 있는 인물이다. 또 다른 주요 등장인물인 여성 ‘우나이코’는 큰아버지에게 강제로 강간당해 임신한다. 일본 우익정권을 정면 비판하는 상징적인 설정이다. 일본에서 ‘익사’가 우익정권에 대한 불경 소설로 분류되는 이유다. 지난해 발표한 ‘만년양식집’(晩年樣式集)이 그의 마지막 소설이다. 그의 부인과 여동생이 중심 화자로 등장하는 자전적 소설로, 이 작품 역시 문학동네에서 내년 국내에 번역 출간할 예정이다. 그는 “‘히로시마 노트’, ‘오키나와 노트’와 함께 나의 여성관이 잘 표현된 소설이다. 앞으론 보다 명쾌하고 명료한 문장의 에세이를 쓰려 한다. 여러 집회에서 일본의 평화 문제와 생활 문제 등을 발언한 내용을 중심으로 소설적 색채가 강한 에세이를 1~2권 정도 더 쓸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아베, 軍위안부 문제 지금이 사과할 때”

    에니 팔레오마바에가(72) 전 미국 연방하원 의원이 일본 아베 신조 총리를 향해 “군 위안부 생존자들에게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며 “지금이 바로 사과할 때”라고 지적했다. 2007년 연방하원의 일본군 위안부결의안(H.R.121) 통과의 주역 중 한명인 팔레오마바에가 전 의원은 이날 의회 전문지 더 힐에 기고한 글에서 “아베 총리가 미 의회 연설을 할 경우 2차 세계대전을 둘러싼 과거사 문제에 종지부를 찍는 게 마땅하고 적절하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팔레오마바에가 전 의원은 “아베 총리가 연설하게 될 하원 본회의장은 바로 위안부 결의안이 통과된 장소”라며 “특히 미국이 일본으로부터 진주만 습격을 받은 다음 날인 1941년 12월 8일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그 유명한 ‘치욕의 날’ 연설을 행했던 곳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아베 총리는 1995년 (과거 침략행위와 식민지 지배 등을 사과한) 무라야마 담화를 재확약할 수 있다”면서 “과거 루스벨트 대통령이 연설했던 곳에서 과거 침략행위에 대한 공식 사과를 재확약하는 것은 미국 의회뿐만 아니라 미국인들, 위안부 생존자들, 그리고 아시아 주변국에 깊은 인상을 남길 것”이라고 덧붙였다. 팔레오마바에가 전 의원은 “진지한 사과는 정치지도자의 진정한 행위”라고 말했다. 이어 “위안부 피해자인 김복동 할머니가 2013년 캘리포니아주 글렌데일 시의 위안부 기림비 건립행사에서 ‘우리에게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고 말했다”며 “지금이 아베 총리가 사과할 때”라고 강조했다. 1998년부터 사모아 지역에서 의정 활동을 해 온 팔레오마바에가 전 의원은 지난해 12월 정계를 은퇴했다. 은퇴 직전 연방의회 의사록에 “26년간의 의정 생활 가운데 가장 가슴에 와 닿았던 이슈는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부 장관이 ‘강제 성노예’(enforced sex slaves)라고 표현한 위안부 문제”라고 썼다. 워싱턴 김미경 특파원 chaplin7@seoul.co.kr
  • 김기종 변호인 “종북 몰이로 정권안보 이용”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 대사를 흉기로 공격한 김기종(55)씨를 수사 중인 경찰은 김씨에게서 압수한 물품 가운데 추가로 6점이 이적표현물에 해당한다는 감정결과를 회신받았다. 앞서 경찰은 13점의 압수물품에서 이적성이 확인됐다고 밝힌 바 있다. 10일 미국대사 피습사건 수사본부에 따르면 경찰이 추가로 이적성을 확인한 문건은 사월혁명회가 발간한 ‘4월혁명 회보’와 ‘한국진보연대’, ‘통일단결 대행진의 서곡을 울리며’ 등이다. 경찰이 김씨의 국가보안법 위반에 수사력을 집중하는 것과 관련, 김씨 변호를 맡은 황상현 변호사는 “김씨는 이번 미 대사 공격을 2010년 시게이에 도시노리 일본 대사를 공격한 것과 같은 차원으로 생각하고 있다”면서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수사를 확대하려는 것은 종북 공안몰이로 몰고 가 정권 안보에 이용하려는 속셈”이라고 말했다. 황 변호사는 또 “전날 발표된 ‘김일성은 20세기 민족 지도자라고 생각한다’ ‘일제하에 항일운동을 했고 38선 이북을 접수한 후 자기 국가를 건설해 잘 이끌어온 것을 봤을 때 20세기 훌륭한 지도자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반식민지 사회이지만 북한은 자주적인 정권이라고 생각한다’는 등의 김씨 진술은 경찰이 앞뒤 맥락을 고려하지 않고 입맛대로 꼬리와 머리를 다 자르고 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김씨 서적들은 북한에서 들여온 것이 아니고 고서점, 헌책방 등에서 구입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날 오후 5시쯤 서울 송파구 경찰병원으로 이송된 김씨는 10일 오후 오른쪽 발목 복숭아뼈에 핀을 박는 수술을 받았다. 김씨는 3~5일가량 입원할 예정이며, 경찰은 김씨를 병원에서 계속 조사할 계획이다. 한편, 북한은 정부와 여당 등이 리퍼트 대사 피습을 ‘종북세력’ 사건으로 규정한 데 대해 “황당한 중상모략”이라고 비판했다.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논평에서 “통일애국세력을 전멸하고 반공화국 모략소동에 더욱더 매달리기 위한 기도”라고 비난했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 해외여행 | MACAU 마카오에서 동화처럼, 아이처럼-콜로안,코타이 스트립,마카오 반도

    해외여행 | MACAU 마카오에서 동화처럼, 아이처럼-콜로안,코타이 스트립,마카오 반도

    천진난만한 표정을 짓고 있으면 어딘가 밑지는 것처럼 느껴져 얼굴에 덕지덕지 못생김을 붙이고 있던 겨울의 어느 날, 마카오행 비행기에 올랐다. 번쩍번쩍 화려함에 압도당하리라 예상했던 것과 달리 마카오에서의 3일 밤낮, 나는 아이처럼 즐거웠다. ●Coloane콜로안 마카오의 끄트머리에서 턱은 저 어딘가 허공을, 눈빛은 그 너머 어디쯤을 물끄러미 응시한다. 해변의 벤치에 비스듬히 기대앉은 누군가, 제방 위에 걸터앉아 포장 음식으로 요기하는 그 누군가의 표정과 눈빛도 크게 다르지가 않다. 마주보이는 땅은 중국 본토의 주하이珠海라고 했다. 통통배로도 충분히 닿을 것처럼 가까운, 물결도 차분하게 일렁이니 파도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 해질녘 마카오 끄트머리의 콜로안은 차분했다. 중국 영토였으나 오랫동안 포르투갈의 지배를 받아 온 마카오에는 자연스레 동·서양 전반의 문화가 고루 녹아들었다. 콜로안처럼 작은 마을의 일상 풍경에 그 모습들이 더욱 선명하다. 골목 군데군데 지신地神을 모시는 자그마한 사당은 물론이고 마을 한가운데 자리한 성 프란시스코 자비에르 성당Igreja de S. Francisco Xavier의 선녀 같은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 그림 등은 모두 도교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한편 주택가의 파스텔톤 외벽과 외벽에 타일을 박아 장식한 도로명 표지판 등은 포르투갈풍이며 아코디언 주름처럼 좌우 방향으로 접히는 상점가 셔터는 마카오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거리 풍경이다. 콜로안의 좁다란 골목길을 지그재그로 걷다 보면 제 집인 양 길 한가운데 널브러져 있는 개가 한둘이 아니다. 아무리 작고 귀여운 애완견이라 해도 쉽게 다가가지 못하는 나는 혼자 놀라 멈칫. 그런데 이 녀석들은 움찔하는 내 스스로가 무안할 만큼 도통 반응도 관심도 없다. 콜로안은 그랬다. 무심한 듯 평화롭고, 나른하지만 어딘가 익숙하고도 정겨운. 마카오 여행의 이유, 에그타르트 로드 스토우즈 베이커리Lord Stow’s Bakery 200년 전 포르투갈의 한 수도원에서 탄생한 에그타르트가 지구 반 바퀴를 돌아 마카오 미식 탐방의 대명사가 될 줄이야. 마카오 에그타르트의 원조 ‘로드 스토우즈 베이커리’가 콜로안섬에 둥지를 틀고 있다. 바삭한 페스추리 안을 가득 채운 에그 커스터드. 한 입 가득 촉촉하게 녹아들고 달콤하게 퍼져 나가는 이곳 에그타르트의 식감은 마카오 그리고 이 작은 섬 콜로안을 여행하게 만드는 이유다. 1 Rua do Tassara, Coloane Town St 07:00~22:00 +(853) 2888 2534 www.lordstow.com ●Cotai Strip 코타이 스트립 누구에게나 동심은 있다 여행 첫날밤은 아주 꿀맛. 개운하게 깨어났다. 소풍 가는 날, 알아서 척척 일어나는 어린애마냥. ‘슈렉퍼스트Shrekfast’ 때문이었을까? 슈렉과 아침식사breakfast를 조합한 이름에서 감을 잡았다. 그렇다. 슈렉퍼스트는 슈렉을 비롯한 드림웍스Dream Works의 대표 애니메이션 캐릭터들과 함께하는 쉐라톤 마카오 호텔Sheraton Macao Hotel의 특별한 아침 식사. 실내장식과 테이블 세팅이 애니메이션 캐릭터 일색인 것은 당연지사. 딤섬, 머핀, 쿠키 등 몇몇 인기 메뉴도 캐릭터 모양으로 만들어 조리를 했으니 먹는 재미에 보는 재미까지 더했다. 본격적으로 맛 좀 볼까 포크를 들기 무섭게 무대 한쪽에서 무언가 요란하게 등장한다. “슈렉이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식사는 뒷전. 실은 아이들보다 어른들이 더 신났다. 무섭다고 뒷걸음치는 아이와 손을 붙잡고 기어코 무대 위로 다가가는 아빠의 실랑이가 이날 내 기억의 하이라이트였던 것처럼. 동화 속 풍경은 쉐라톤 마카오 호텔이 위치한 샌즈 코타이 센트럴Sands Cotai Central에서 구름다리로 건너간 베네시안 호텔The Venetian Macao에서도 계속됐다. 베네시안 호텔은 코타이 스트립에서 가장 먼저 문을 연 엔터테인먼트 블록. 이곳에 드림웍스의 캐릭터들이 새로운 동화 세계를 펼쳤다. 렌털숍에서 두툼한 외투를 빌려 입고 마다가스카 펭귄들이 맞아 주는 아이스월드Penguins Undercover Ice World 속으로 들어간다. 중국 하얼빈의 얼음 장인들이 조각한 캐릭터들은 애니메이션 속의 익살맞은 모습 그대로다. 얼음 세상 밖으로 나오면 대운하, 마르코 폴로, 산 루카 등 3개의 인공 운하와 함께 이탈리아 베네치아를 그대로 옮겨온 듯 장식한 베네시안의 상점가가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 운하를 따라 노 젓고 다니는 곤돌라는 베네시안에서 빼놓을 수 없는 액티비티. 학창시절 음악 시간에 배웠던 나폴리 민요 ‘오 솔레 미오O sole mio’의 가사가 입 안에서 맴맴, 뱃사공과 함께 입을 맞춘다. 그의 노랫가락에 맞춰 입모양만 벙긋거릴 뿐이었지만. 꿈의 도시 마카오는 아름다운 야경을 자랑한다. 그러나 이보다 더 마카오의 밤을 화려하게 물들이는 것이 세계 최대 규모의 수중 쇼 <더 하우스 오브 댄싱 워터The House of Dancing Water> 공연이다. 폭풍우와 함께 시작하는 공연의 내용은 어둠의 여왕으로부터 아름다운 공주를 구하는 이방인과 그를 돕는 콜로안의 어부가 엮어내는 서사적인 러브 스토리. 스토리는 서사적이지만 2,000여 관중석이 270도로 둘러싼 중앙의 원형 무대 위는 물이 차고 빠지기를 수차례 반복한다. 그리고 곧이어 분수쇼, 모터사이클 스턴트 등의 다양한 무대 효과와 아티스트들의 발레, 서커스, 다이빙 등 두 눈을 의심케 하는 공연들이 쉴 틈 없이 이어진다. 이 반전의 무대를 채우는 물의 흐름도, 아티스트의 몸짓도 자유자재로 움직이니 놀라움과 감탄이 뒤엉켜 물개 박수가 저절로 나온다. 코타이 스트립은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지도상에 존재하지 않던 곳이었다. 타이파섬과 콜로안섬 사이의 바다를 메워서 만든 복합 리조트 단지로 태생부터가 꿈만 같은, 혹은 꿈이 실현된 공간이다. 어른이 되면 애써 감추곤 하지만 누구에게나 동심은 있다. 그 동심을 마음껏 누려 볼 수 있었던 코타이 스트립은 유독 반짝거린다. 슈렉과 함께 아침 식사를 슈렉퍼스트Shrekfast 쉐라톤 마카오 호텔은 드림웍스의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활용해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이 바로 슈렉퍼스트. 아침 식사 동안 드림웍스의 대표 캐릭터들이 공연을 펼치고 함께 기념사진을 찍는 등의 이벤트가 제공된다. character.breakfast@staystarwood.com +(853) 8113 0398 토~일요일 10:00~11:30, 화~금요일 9:00~10:30 성인 HKD238, 아동 HKD138, 4인 가족 HKD688 *아침 조식이 포함되어 있는 쉐라톤 투숙객은 1인당 HKD100 정도를 추가하면 이용 가능 베네시안이 들려주는 얼음 동화 아이스월드Penguins Undercover Ice World 베네시안의 대표적인 겨울 시즌 프로그램인 아이스월드는 6가지 테마로 장식한 아시아 최대 규모의 실내 아이스 테마파크다. 아이스월드의 얼음 조각은 애니메이션의 색채 그대로이지만 분명 얼음이 맞다. 습하고 무더운 날씨의 마카오에서 아이스월드는 매우 신선한 액티비티이다. 이번이 4번째 시즌. 2015년 3월8일까지 계속된다. 베네시안 내 코타이 엑스포 F홀 www.venetianmacao.com 매일 11:00~20:00 3세 이상 1인 MOP120, 4인 가족 MOP312 (베네시안 투숙객은 35% 할인) 중세 도시 속을 떠다니는 듯 베네시안 마카오The Venetian Macao 물의 도시 베네치아를 본딴 베네시안 호텔의 상점가. 여기저기 박수를 보내는 구경꾼들에게 손을 흔들어 보이는 곤돌라 뱃사공이 여행자들의 기분을 더욱 들뜨게 만든다. 티켓은 베네시안 내의 곤돌라숍에서 구입할 수 있다. 그러나 국내에서 곤돌라 바우처를 구입하여 현지에서 티켓으로 교환하는 것이 조금 더 저렴하다. 대운하 & 마르코 폴로 11:00~22:00, 산 루카 11:00~19:00 성인 MOP118, 아동 MOP88 시티 오브 드림즈 더 하우스 오브 댄싱 워터The House of Dancing Water 크라운 호텔, 하드락 호텔, 그랜드 하얏트 마카오 호텔이 쇼핑센터, 카지노 등과 한데 모여 거대한 리조트 단지를 이루고 있는 시티 오브 드림즈City Of Dreams는 베네시안, 샌즈 코타이 센트럴 등과 함께 코타이 스트립의 대표적인 엔터테인먼트 구역. 이곳에서 바다와 육지를 넘나드는 수중 대서사시 <더 하우스 오브 댄싱 워터> 공연이 펼쳐진다. thehouseofdancingwater.com +(853) 8868 6767 2015년 성인 기준, VIP구역 HKD1,480, A구역 HKD980, B구역 HKD780, C구역 HKD580 ●Macau 마카오 반도 우둘투둘 물결치는 타일 바닥 위로 마카오 반도와 타이파, 코타이 그리고 콜로안섬까지 다 합한 마카오 전체 면적은 26.8km2로 서울의 종로구 면적23.91km2과 비슷하다. 그런데 이 작은 땅에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 무려 서른 개나 된다. 그중에서도 마카오 반도는 포르투갈 식민시절의 활동 거점으로 도심 골목골목 그 시절의 흔적들이 그대로 남아 있어 역사의 발자취를 찾아 도보 여행을 즐기기에 제격이다. 마카오 반도의 랜드마크라 할 수 있는 세나도 광장Largo do Senado에서 성 바울 성당의 유적Ruinas de S. Paulo까지는 마카오 여행자 대부분이 우둘투둘한 타일 바닥을 걸어서 구경하는 구간. 안내 책자를 손에 들고 차례차례 답사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그저 발 닿는 대로 걸으며 분위기에 흠뻑 취해 보는 이도 있다. 짧은 시간을 핑계로 나는 망설임 없이 후자를 택한다. 마카오는 거리의 바닥마저 문화유산이 되는 곳. 모자이크처럼, 또는 물결이 일렁이듯 기하학적인 모양으로 장식된 바닥은 카우사다Calcada라고 하는데 대표적인 포르투갈 문화다. 또한 건물 외벽에 붙은 도로명 표지판은 하얀색 바탕에 푸른색 무늬가 들어간 포르투갈의 타일 장식 아줄레주Azulejo로 장식했다. 식민지 시대의 소소한 장식문화는 물론이고 그 시절의 문화유산 대부분이 본래의 기능을 잃은 채 상징성과 유적의 가치로만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마카오 사람들의 일상 속에 자리하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닮은 구석이라곤 전혀 없는 것만 같은 동양과 서양이 만났으나 그럼에도 언제 어디에서나 삶은 계속되는 법. 중국인과 포르투갈인의 피가 섞인 혼혈 그리고 그들의 문화 전반을 일컬어 매캐니즈Macanese라고 하는데 마카오의 환경에 맞게 변형된 포르투갈 요리가 대표적이다. 세나도 광장 언저리의 매캐니즈 레스토랑에서 바칼라우 크로켓, 오리밥 등 지중해 향이 물씬 나는 요리를 한 상 받아들고 마카오의 오늘을 맛본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지만 보이는 것만이 또 전부는 아니다. 마카오 사람들 스스로 ‘아주 작다’고 표현하는 마카오지만 아직도 궁금한 것이 무궁무진하다. 이 궁금증을 풀기 위해 또다시 마카오행 비행기에 오르게 될 것만 같다. 에디터 트래비 글·사진 Travie writer 서진영 취재협조 마카오정부관광청 kr.macautourism.gov.mo ▶travel info MACAU AIRLINE 에어마카오와 진에어가 인천에서 마카오 구간을 오가는 직항편을 운항하고 있다. 김해국제공항에서는 에어부산이 직항 노선을 주 3회 운항하고 있다. 비행시간은 3시간 30여 분. 마카오행 비행기는 대부분 아침 일찍 출발하고, 돌아오는 편은 새벽에 도착하기 때문에 여행 일정을 효과적으로 구성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에어마카오 www.airmacau.co.kr, 진에어 www.jinair.com, 에어부산 www.airbusan.com LOUNGE 플라자 프리미엄 라운지Plaza Premium Lounge 2014년 8월18일 마카오국제공항에 ‘플라자 프리미엄 라운지’가 새로이 문을 열었다. 편안한 좌석에서 초고속 인터넷과 전화, 팩스 등을 이용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샐러드 바에서는 갓 조리한 음식과 커피부터 맥주, 와인 등 다양한 종류의 식음료를 제공한다. 매일 오전 5시에서 새벽 2시까지 운영하며 2시간 MOP400, 5시간 MOP600. 플라자 프리미엄 라운지 홈페이지를 통해 예약할 수 있으며, 에어마카오 비즈니스 승객의 경우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출국장 5번 게이트에서 에스컬레이터를 이용. Mezzanine Level에 위치하고 있다. plaza-network.com +(853) 8898 2150 HOTEL 쉐라톤 마카오 호텔 코타이 센트럴 Sheraton Macao Hotel, Cotai Central 화려한 코타이에서도 가장 중심이 되는 ‘샌즈 코타이 센트럴’에 위치하고 있어 코타이 지구의 모든 명소를 둘러보기에 편리하다. 비즈니스 여행객에게는 Microsoft를 이용한 최첨단 Link@Sheraton 환경이, 가족 여행객에게는 유료 보모 서비스를 비롯해 다양한 키즈 프로그램이 구미를 당기게 한다. 거기에 넉넉한 객실 공간에 숙면을 위해 침구의 공기 순환이 잘 되도록 특별히 설계된 쉐라톤 스위트 슬리퍼Sheraton Sweet Sleeper 침대가 책임진다. 한마디로 카지노, 레스토랑, 쇼핑시설을 중심으로 한 다양한 오락 자원과 더불어 편의성, 세련미, 편안함을 고루 갖추고 있다는 말씀. sheraton.com/madao +(853) 2880 2000 RESTAURANT 계단 위 아늑한 보물창고, 에스까다ESCADA 세나도 광장 뒷골목 계단 위의 아늑한 레스토랑 에스까다. 포르투갈어로 계단이란 뜻. 노란색 칠을 한 식당 건물도 매력적이지만 번잡한 세나도 광장을 살짝 비켜서 차분히 식사를 할 수 있다는 점도, 오리밥과 정어리 요리 등 꽤 근사한 매캐니즈 음식을 맛볼 수 있다는 것도 놓칠 수 없는 즐거움이다. Rua de Se N 8 Macau +(853) 2896 6900 12:00~15:00(lunch) 18:00~22:00(dinner) 마음에 점을 찍는 시간, 루아 아줄Lua Azul 고급스러운 광둥요리를 서비스하는 레스토랑. 그러나 점심시간에 즐길 수 있는 ‘얌차’는 맛은 물론이고 가격 면에서도 만족스럽다. 은은한 차를 한 입 머금고 쫄깃한 피와 구수한 육즙이 고루 어우러진 딤섬 한 입을 오물오물. 바삭한 껍질이 일품인 베이징덕을 비롯해 다양한 광둥요리를 맛볼 수 있다. Level 3 Macau Tower convention & Entertainment Ceter +(853) 9888 8700 11:00~15:00(lunch) 18:30~23:00(dinner) 마카오의 우아한 밤, 메차 나인Mezza 9 매캐니즈, 그릴, 일식, 중국식 냄비요리, 찜 요리, 델리카트슨, 파티셰리, 바, 여기에 와인 셀러까지 9가지 테마의 풍성한 다이닝을 선보이는 인터내셔널 레스토랑. 조리하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 주는 쇼키친은 분명 차별화된 경험을 제공한다. 수영장 옆의 야외 테라스에서는 코타이의 야경을 함께 즐길 수 있으니 마카오의 밤이 우아하게 물든다. Grand Hyatt Macau, City of Dreams, Estrada do Istmo, Cotai +(853) 8868 1920 17:30~23:00(dinner), 12:00~15:00(Sunday lunch)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 김기종 “김일성 20세기 훌륭한 지도자” 찬사…경악

    김기종 “김일성 20세기 훌륭한 지도자” 찬사…경악

    김기종 김기종 “김일성 20세기 훌륭한 지도자” 찬사…경악 경찰이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를 흉기로 공격한 김기종(55)씨로부터 압수한 서적 등 10여점에 대해 이적성이 있다고 보고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입증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미국 대사 피습사건 수사본부(본부장 김철준)는 9일 오전 브리핑에서 “김씨에게서 압수한 서적과 간행물 중 30점을 외부 전문가 집단에 감정을 의뢰한 결과 10여점에 대해 이적성이 있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9일 밝혔다. 경찰은 지난 6일 김씨의 집 겸 사무실에서 압수한 물품 219점 중 이적성이 강하게 의심되는 북한원전 등 30점에 대해 감정을 의뢰한 바 있다. 일부는 아직 감정 결과가 마무리되지 않았다. 여기에는 김정일이 쓴 영화예술론과 주체사상 교육용으로 많이 쓰이는 정치사상강좌 유인물 등의 사본과 원본이 포함돼 있다. 김두연 서울경찰청 보안2과장은 브리핑에서 “이적성이 확인된 만큼 앞으로 소지의 목적성 등을 입증하고, 이적 표현물 소지로 국보법 혐의 적용을 검토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씨는 지금까지 경찰 조사에서 “김일성은 20세기 민족 지도자라고 생각한다”면서 “일제하에 항일운동을 했고 3·8선 이북을 접수한 후 자기 국가를 건설해 잘 이끌어온 것을 봤을 때 20세기 훌륭한 지도자라고 생각한다”고 진술했다. 이같은 진술은 경찰이 김씨를 상대로 범행동기와 행적 등을 조사하는 과정 중 나온 것이다. 김씨는 남한에는 훌륭한 대통령이 있느냐는 질문엔 “없다”고 답했다. 김씨는 우리나라와 북한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우리나라는 반식민지 사회이지만 북한은 자주적인 정권이라고 생각한다”고도 진술했다고 경찰은 전했다. 앞서 경찰은 김씨가 1999∼2007년 7차례 방북한 전력과 2011년 대한문 앞에 김정일 분향소를 설치한 사실, 북한 관련 토론회를 수차례 개최한 사실 등을 확인했다. 경찰은 공범과 배후, 자금지원 통로 등이 있는지 다각적으로 분석, 구체적인 혐의를 찾아내면 검찰과 협의해 종로서에 보관중인 압수품 중 국보법 관련 증거품에 대해 재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또한, 경찰은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해 미국 연방수사국(FBI)과 수사 공조를 적극적으로 벌여,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 미국에 서버를 둔 SNS에서 김씨가 활동한 내용을 살펴보고 있다. 김씨는 그러나 “북한 관련 서적이나 표현물 등은 집회나 청계천 서점 등지에서 구했다”고 진술했다. 김씨는 또한 “지난 2010년 일본대사를 콘크리트 덩어리로 공격했을 때 별로 위협적이지 않아 (이번에) 칼을 준비하면 더 위협적일 것 같아 과도와 커터칼을 준비했다. 절제력을 잃어 범행했지만 살해의도는 없었다”고 진술했다고 경찰은 전했다. 경찰은 “목격자 진술을 토대로 김씨가 최소 2회 이상 대사를 가격한 것으로 판단되며, 대사 상처부위가 깊고 범행도구로 함께 준비한 커터칼 대신 위험성이 높은 과도를 선택한 점 등으로 미뤄 살해의 고의성이 인정된다”고 말했다. 경찰은 수사를 마무리 하고 늦어도 13일까지 검찰에 사건을 송치할 계획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격동의 한·일 70년] 영토분쟁

    [격동의 한·일 70년] 영토분쟁

    해마다 2월 22일 무렵이 되면 주한 일본대사관을 비롯해 전국 각지에서 일본을 규탄하는 집회가 잇따라 열린다. 일본 시마네(島根)현이 매년 2월 22일을 ‘다케시마(竹島)의 날’로 지정해 행사를 개최하는 걸 규탄하기 위해서다. 일부 시민단체는 신한일어업협정 파기와 쓰시마섬 반환까지 주장하고, AP 등 외신은 “오랜 지역 분쟁 사안”으로 보도한다. 하지만 독도 ‘분쟁’이라는 프레임이 형성되면 일본에는 무조건 ‘수지맞는 장사’다. ‘강력한 의지 표현’이 결과적으로는 일본을 도와주게 되는 역설이다. 이석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 부분을 ‘독도 문제 새롭게 보기’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독도 문제는 여러모로 독특하고도 복잡하다. 일단 식민지배를 당했던 국가와 식민지배를 했던 국가 사이에 벌어지는 갈등이라는 점에서 비슷한 해외 사례를 찾기가 어렵다. 식민지배를 받았던 국가가 실효 지배하고 있는데 식민지배를 했던 국가에서 문제를 제기하는 상황까지 맞물리면서 독도는 한·일 간 갈등의 중심축 가운데 하나가 돼 버렸다. 한국은 분쟁이라는 말 자체를 막아야 하는 처지다. 일본으로서는 ‘밑져야 본전’이다. 결국 일본은 쓸 수 있는 카드가 아주 많고, 한국은 아주 적다고 할 수 있다. 국제법과 해양법 전공자로서 오랫동안 독도 문제를 고민해 온 이 교수는 5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를 “영토 문제의 해결에서 식민지 문제에 대한 인식이 반영된 경우는 흔치 않다. 과거사 청산이라는 역사적 접근 방법을 중심에 두고 해법 위주의 접근을 해야 한다”는 말로 시작했다. 특히 그는 “그런 관점을 당사국이 아닌 제3국에서 제기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한국의 독도 문제에 대한 접근 방식에서 가장 큰 문제점은 우리만의 시각으로 접근한다는 점”이라면서 “제3자가 보기에도 한국의 주장이 타당한지 반문하는 것에서 다시 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인터뷰 내내 “조심스럽지만”이란 말을 자주 썼다. 또 한 가지 설명을 위한 전제를 길게 언급함으로써 독도 문제에 대해 조금이라도 다른 의견을 말하는 것 자체가 얼마나 조심스러운 상황인지 떠올리게 했다. 그럼에도 그는 “가장 걱정하는 것은 우리 의지와 무관하게 넓은 의미의 독도 문제가 국제사법기관으로 가는 상황”이라면서 “세계를 아우르는 전략적 접근이 절실하다”며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이 교수는 “정부 안에 독도 문제를 포함해 통일 이후 전체적인 영토 문제까지 고민하는 상설 조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현재 남중국해를 둘러싼 중국과 필리핀 간 갈등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중국은 2006년 유엔해양법협약 제298조에 따라 해양경계획정 등의 문제에 대한 국제 법원의 강제관할권을 배제하는 선언을 했다. 하지만 중국이 재판 참가 자체를 거부함에도 불구하고 남중국해 해양분쟁은 현재 중재재판소에서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해양경계획정 관련 사안의 강제적 분쟁 해결에 대한 선택적 배제 선언을 한 한국 역시 선언의 해석과 적용 과정에서 제소 가능성을 전적으로 배제할 순 없다. 가령 현재 건설이 잠정 중단된 독도 해양과학기지를 두고 일본이 건설 중단의 잠정 조치를 신청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교수가 제시하는 해법은 ‘컨트롤타워 설치’를 빼고는 여러모로 ‘상식’과 배치된다. 그는 “2006년 이후 급증하는 독도 관련 예산을 구조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나서서 독도 교육을 강화할 것이 아니라 “정부가 나서서 독도 열기를 가라앉혀야 한다”고 주문한다. 특히 미국 신문에 독도 광고를 하는 것에 대해 대단히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 교수는 “‘독도는 한국 땅’이라고 국제사회에 외치는 것은 곧 갈등이 있나 보구나 하는 인상을 준다”고 지적했다. 그는 “프레임 이론에서 말하듯이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라고 하면 코끼리를 떠올리는 것과 동일한 작용”이라고 설명했다. “일본 정부에 독도 문제는 꽃놀이패 같은 것”이라는 지적도 곱씹어 볼 대목이다. 그는 “일부에선 일본 정부가 치밀한 계획 아래 차근차근 도발(?) 수위를 높인다고 말하지만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고 일축했다. 그는 “현재 일본 정부에 1순위는 센카쿠, 2순위는 남쿠릴 4개 섬, 그 다음이 독도”라고 분석했다. 그는 “한국이 일본측 ‘도발’에 즉각 즉각 반응하는 것이 오히려 일본에 학습효과를 심어 준 측면도 있다”면서 “역설적이게도 독도에 대한 일반의 지나친 관심이 독도 해법을 위한 정책 방향 설정에 부담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한국 정부의 기존 독도 정책에 대해 “‘내 아내론’과 적극 대응 사이에서 갈지자 걸음을 했다”고 평가했다. ‘내 아내론’이란 자기 아내를 두고 ‘내 아내다’라고 떠들 이유가 없듯이 독도가 명백한 한국 땅인데 국제사회에 강조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것으로, 이른바 ‘조용한 외교’를 상징한다. 하지만 이는 국내 비판 여론과 ‘독도 문제의 정치화’에 밀려 정책적 변화를 겪게 된다.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2006년 4월 대국민 담화와 이명박 전 대통령의 2012년 8월 독도 방문에 대해 “넘어선 안 되는 선을 넘어 버렸고, 한국 정부가 선택할 수 있는 카드를 거의 소진시켰다”고 지적했다. 2006년 당시 노 전 대통령은 특별담화문을 통해 독도 문제를 식민지배와 연관시키며 일본을 강하게 비판했다. 이 교수는 “그 전까지 견지하던 동북아평화 노선에 대한 국내 비판 여론이 워낙 거셌던 것도 영향을 미쳤다”면서도 “대통령까지 굳이 나서야 했을까 싶다. 독도 문제에 대한 정부 대응에서 담화문이 일종의 마지노선이 되면서 정부 스스로 퇴로를 막아 버렸다”고 말했다. 2012년 당시 이 전 대통령의 독도 방문에 대해서는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한 것”이라고 혹평했다. 그는 “독도 방문을 계기로 이른바 ‘양심적’인 일본 지식인과 시민단체가 발언권을 잃어버렸다”고 안타까워했다. 강국진 기자 betulo@seoul.co.kr
  • [문화마당] 자유민주주의/계승범 서강대 사학과 교수

    [문화마당] 자유민주주의/계승범 서강대 사학과 교수

    요즘 ‘헌정질서’니 ‘국론통일’이니 ‘자유민주체제’니 ‘태극기’니 하는 단어들이 유독 많이 들린다. 법무부 장관은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는 행위에 엄정히 대처할 것을 촉구했으며, 검찰총장도 자유민주체제 수호를 검찰의 사명으로 강조했다. 대통령의 국론통일 강조는 이제 새삼스러운 일도 아닌데, 얼마 전에는 여당의 한 국회의원이 국론을 분열시키려는 세력들에 대한 대책 마련을 촉구하기에 이르렀다. 그런가 하면 행정자치부에서는 국기 게양식과 하향식의 부활과 함께 국경일에 일반 가정(아파트)의 태극기 게양을 강제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이런 일련의 언행은 권력의 핵심부에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이어지고 있는데, 이는 바로 ‘국가주의’를 강화하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다. 국가주의는 국가중심주의 내지는 국가우선주의로 풀이할 수 있는데, 여기서 국가는 바로 대한민국이다.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헌법을 갖고 있으니 그런 헌정질서를 수호해야 하며, 따라서 헌법의 가치를 부정하거나 국론을 분열시키는 행위에 대해서는 강력하게 공권력을 투입해 제압하겠다는 것이다. 또한 현 정부의 이런 취지를 국민들에게 시각적으로 보여 주기 위해 태극기 게양을 강제하겠다는 것이다. 나라 없는 식민지 신민으로 살았던 경험이 그리 오래지 않은 우리 한국인에게 대한민국은 그 자체로 감격이요, 자부심이다. 대한민국은 우리가 주권을 누리는 어엿한 국민으로 살아갈 수 있는 소중한 공간이자 터전이기 때문이다. 집 없는 설움을 겪다가 집을 장만했을 때 갖는 뿌듯함이나, 나라 없는 설움을 겪다가 나라를 세웠을 때 느끼는 벅찬 감정이나 그 크기는 다를지언정 감격의 본질은 같다. 바로 독립이다. 그런데 문제의 핵심은 저런 일련의 발언들이 전혀 자유민주주의적이지 않다는 데 있다. 예를 들어 국론통일과 국기 게양 강제는 자유민주주의 가치와 본질적으로 상충한다. 상식으로만 보아도 국가가 국민에게 어떤 일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것은 자유민주주의와 맞지 않는다. 국론이 다양한 것을 부정적 의미의 ‘분열’로 범죄시하고, 국론통일을 강요하는 행위도 자유민주주의와는 상극이다. 자유민주주의에 대해서는 학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다양해 한마디로 잘라 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요체의 하나는 자유주의다. 또한 자유주의에서 말하는 ‘자유’는 완전한 독립체로서 개인이 갖는 선택의 자유를 이른다. 단순히 반공의 의미가 아닌 것이다. 실제로 역사상 개인의 완전한 독립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자유주의자들과 충돌한 대상은 대개 국가 권력이나 관습적 권위체제였다. 요컨대 자유주의는 국가주의와 궁합이 맞지 않는다. 현재 지구상의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모두 동일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자유민주주의 사회라면 적어도 개인보다 국가를 우위에 두지는 않는다. 자유민주주의가 무르익은 선진국에서 양심과 표현의 자유를 매우 공평하게 중시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실제로, 개인의 이해와 국가의 이해가 충돌할 때 개인의 자유선택을 최대한 인정해 주는 게 바로 자유민주주의의 기본정신인 것이다. 이런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는 획일성이 아닌 다양성을, 일방적 통일이 아닌 상호 조화를 추구한다. 요즘 자유민주체제의 수호를 강조하는 일련의 발언을 들으며 오히려 자유민주주의의 위기를 느낄 수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 남인도, 숨은 속살 ‘낯선 끌림’

    남인도, 숨은 속살 ‘낯선 끌림’

    인도 여행 하면 대개 타지마할이 있는 아그라, 혹은 뉴델리와 자이푸르를 연결하는 골든트라이앵글 등을 첫손에 꼽는다. 하지만 이들이 인도의 전부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남인도에도 북부와는 다른 특유의 여유로움과 아름다운 자연을 간직한 곳이 많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곳이 타밀나두주(州)의 주도 첸나이와 향신료 무역의 역사가 서린 케랄라주(州)의 코치다. ●첸나이, 어촌마을서 인도 무역항 거점으로 첸나이는 뉴델리와 뭄바이, 콜카타와 함께 인도를 대표하는 4대 도시 중 하나다. 인도에서 가장 산업화된 도시로 현대자동차를 포함한 세계 주요 자동차 회사와 정보기술(IT) 기업들이 진출해 있다. 사실 고대 왕국인 촐라왕조 시절 첸나이는 작은 어촌 마을에 불과했다. 그러다 1639년 영국이 동인도 회사를 세운 이후 인도 무역항의 거점이 되면서 천지개벽했다. 무역항 보호를 위해 세운 세인트조지성은 지금도 굳건하게 자리 잡고 있다. 영국과 프랑스가 첸나이의 지배권을 놓고 1746년 치열한 전투를 벌여 상당수가 파괴됐지만 이후 재건됐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첸나이가 인도 식민지 전락의 첨병 역할을 했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이제 세인트조지성에서 영국인은 물러가고 인도인이 자리 잡았다. 현재는 타밀나두주 청사로 이용되고 있다. 세인트조지성에서 멀지 않은 곳에 정부 박물관이 자리 잡고 있다. 1851년 개관해 인도 4대 박물관 중 하나로 불릴 정도로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곳이라지만, 겉으로는 다소 초라해 보였다. 이런 곳에 ‘특별한 유물이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들 정도다. 하지만 이런 기우는 박물관 안에 들어서자마자 금세 사라졌다. 9~13세기 번성했던 촐라왕조 시대의 유물이 가득했다. 인도 남부를 지배했던 촐라왕조는 스리랑카는 물론 미얀마·베트남까지 진출했다. 그래서인지 청동 조각상은 서구적인 인도인의 모습과 동양인의 모습이 적절히 혼합됐다. 특히 힌두신인 시바가 그의 부인인 파르바티를 얻고 나서 기쁨에 겨워 춤추는 모습을 나타낸 나트라즈 조각상은 시바신의 섬세한 춤 동작을 그대로 표현했다. 마치 시바가 현세로 다시 살아돌아 온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우리를 안내해 준 가이드 다르마는 “나트라즈 조각상은 파괴의 춤 탄다바와 함께 인도 무용의 기원으로 추앙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 박물관을 둘러봤다면 마리나 해변도 가볼 만하다. 무려 13㎞에 달하는 백사장은 가볍게 걸으며 산책하기에 그만이다. 다만 벵골만의 거친 파도가 그대로 밀려와 수영하기에는 부적합하다. 현지인이 잡은 물고기를 파는 작은 어시장도 곳곳에 있다. 해변에서 가장 도드라지는 건 거대한 하얀 첨탑이다. 기독교 유적지인 성토머스 성당으로, 예수의 12제자 중 한 명인 토머스 신부의 무덤 위에 세웠다. 1504년 포르투갈인이 세운 것을 1893년 재건축했다. 인도는 국민의 80%가량이 힌두교를 믿는다. 한데 남부는 다소 다르다. 서기 1세기쯤 토머스 신부가 인도 남부에 정착하면서 기독교도 함께 뿌리를 내렸다. 신자만도 2600만명에 달하며 현재 인도 제3의 종교로 자리 잡았다. 네오고딕 양식으로 죽 뻗은 새하얀 건물 지붕을 보면 인도가 아닌 유럽의 어느 한 지역에 온 듯한 착각이 든다. 12사도의 무덤이 모셔진 곳은 이곳 외에 이탈리아와 스페인뿐이라고 한다. 기독교 신자 여부를 떠나 이곳은 인도인의 또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도 1986년 2월 이곳을 방문했다. 첸나이에서 남쪽으로 해변을 따라 60㎞가량 내려가면 마말라푸람이 있다. 7~9세기 팔라바 왕국의 수도였던 마말라푸람은 거대한 바위에 새겨진 조각상이 유명하다. 고대 중국을 비롯해 페르시아와 로마의 동전도 발견됐다. 일찍부터 교역 항구로서의 역할을 했다는 얘기다. 인구 1만 2000명의 작은 도시인 마말라푸람의 위용은 도시 중심에서 볼 수 있다. 높이 15m, 폭 27m의 거대한 바위를 깎아 만든 아르주나의 고행상을 마주하니 입이 딱 벌어졌다. 바위에는 인도의 각종 신화를 새겨 넣었다. 시바신에게 물을 달라 애원하는 모습이나 히말라야에서 머리에 이고 온 물을 주는 모습, 소원을 성취하기 위해 고행하는 사람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조각돼 있다. 심지어 실제 크기의 코끼리까지 벽에 담아냈다. 고양이가 고행하는 모습도 눈에 띈다. 아르주나가 한쪽 발을 드는 고행을 통해 소원을 성취했다는 소식을 듣고 자신도 따라하는 모습을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조각해 냈다. 이게 전부는 아니다. 아르주나 고행상에서 걸어서 불과 5분 거리의 해안엔 해변 사원이 있다. 1985년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해변 사원은 촐라왕조 시절인 7세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두 개의 탑은 멀리서 보면 나눠져 있지만 가까이 갈수록 한 몸으로 합쳐진다. 남녀가 합쳐질 때에만 비로소 완전해 진다는 인도인의 생각이 반영됐다는 해석도 있다. 원래 7개의 사원이 있었다고 알려졌지만 현재는 이곳만 남아 있다. 일출이나 일몰 때 바라보는 사원 풍경은 아름다움의 극치라고 현지인들은 자랑한다. 소금기를 잔뜩 머금은 인도양의 바닷바람을 막기 위해 주변에 방풍림이 조성돼 있다. 거대한 크기의 화강암을 깎아 만든 판치 라타스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다. 판치 라타스는 ‘5대의 전차’란 뜻이다. 인도의 대서사시 마하라바타에 나오는 5형제의 이름을 본떠 이름 지어졌다. 하나의 바위 덩어리를 48년 동안 조각한 남인도 양식의 힌두사원으로, 7세기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사원 내부에는 시바신이 탔다는 암소 난디의 조각상도 있다. 실제 크기의 거대한 코끼리 조각상은 인도의 힘을, 사자는 용맹을 상징한다. ●칸치푸람, 팔라바 왕조 수도로 힌두사원 즐비 첸나이에서 남서쪽으로 72㎞ 떨어진 칸치푸람은 3~9세기 번성했던 팔라바 왕조의 수도였다. 힌두교도에게는 성스러운 7개 도시 중 하나로 꼽힌다. 종교 성지인 까닭에 외국인 관광객은 드물다. 도시 곳곳에 힌두 사원이 널려 있어 ‘1000개의 사원이 있는 황금도시’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팔라바 왕조 당시에는 불교도 융성해 당나라의 현장 법사가 칸치푸람을 방문하고 쓴 기록이 남아 있을 정도다. 현장 법사는 “도시의 둘레가 10㎞에 달하고 주민들은 용감하고 정의를 사랑하며 학문을 존중한다”고 기록했다. 특히 남인도 힌두 사원의 건축 양식인 고푸람은 엄청난 위용을 자랑한다. 고푸람은 힌두 사원마다 높게 솟은 사각형의 탑이다. 외벽에 수많은 신을 조각한 뒤 원색으로 아름답게 치장해 놨다. 우리 사찰 입구의 사천왕각이라 보면 틀림없다. 고푸람의 크기로 사원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엑암베스와라 사원은 칸치푸람에서 가장 높은 58m짜리 초대형 고푸람이 인상적인 곳이다. 사원을 이루는 1000개의 기둥홀은 돌로 만든 조각이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하다. 中·페르시아·유럽 문화 뒤섞인 인도 향신료 무역의 거점 ‘코치’ 히브리어 간판부터 중국식 어망까지 이색 풍경… ‘세계 10대 낙원’ 첸나이에서 서쪽으로 비행기를 한 시간여 타고 오면 인도 향신료 무역의 거점인 코치가 자리잡고 있다. 코치를 포함한 케랄라주는 수려한 해안 풍광을 갖고 있다. 미국의 내셔널지오그래픽 잡지는 코치를 포함한 케랄라 주를 세계 10대 낙원으로 선정하면서 반드시 가봐야 할 50곳 중 하나로 선정하기도 했다. 예부터 코치는 중국과 페르시아, 유럽 상인이 드나들면서 여러 문화가 자연스럽게 혼합된 지역이다. 수메르인의 기록에 따르면 기원전 3000년쯤부터 코치를 비롯한 주변 항구는 후추와 강황, 육두구 등 향신료 수출의 중심지였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코치에는 향신료 무역을 위해 정착한 유대인의 후손들이 아직도 살고 있다. 한국의 인사동 거리를 방불케 하는 옛 건물 양식이 그대로 남아 있는데 상점의 간판이 히브리어로 씌여진 경우도 있다. 유대인들은 이곳에 기원전 573년 도착했다. 유대인뿐만 아니라 포르투갈인도 정착했다. 세계사 수업시간에 이름을 들었음직한 바스코 다 가마가 1498년 코치 인근에 도착했었다. 바스코 다 가마는 코치를 근거지로 삼아 유럽과 인도를 잇는 무역로를 개척했다. 포르투갈이 총독부를 설치했던 곳이 바로 코치다. 한때 2500여명에 달했던 유대인은 상당수가 이스라엘로 돌아갔다. 지난 2001년 조사 때 7가구 22명에서 최근에는 겨우 7명만 남았다. 대부분 기념품 가게를 운영하는데, 운좋게 최고령 유대인인 사라 코헨(93) 여사를 만날 수 있었다. 그의 후손은 대부분 코치에서 자수 등 기념품을 팔며 생활을 이어간다. 아직도 정정한 코헨 여사는 “한국인들이 이곳에 와서 둘러보고 물건을 사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유대인 마을과 함께 해변을 따라 있는 중국식 어망은 코치를 상징하는 볼거리다. 6~8명이 한 조를 이뤄 네모난 그물을 드리운 뒤 다시 끌어올리는 방식인데 사진 찍기에는 좋을지 몰라도 고기를 잡기에는 그렇게 효율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중국식 어망은 중국 광둥성에서 전래된 것으로 코치가 향신료와 차 등을 동서로 연결해주던 주요 통로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해넘이에 맞춰 중국식 어망이 설치된 해안을 바라보니 이국적인 풍경에 취해 한동안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해안가 주변엔 각종 해산물 요리가 발달했다. 해산물 카레를 맛볼 수 있는 좋은 곳이기도 하다. 인도관광청 코치 지부의 고빈드 부얀 부국장은 “타지마할이 있는 북부 골든트라이앵글보다 코치를 비롯한 남부 지역의 매력이 상대적으로 한국에 알려지지 않았다”며 “이곳에서 색다른 매력을 느껴보길 진심으로 바란다”고 말했다. 글 사진 첸나이·마말라푸람·코치(인도) 이제훈 기자 parti98@seoul.co.kr [여행수첩] →가는 길:첸나이와 코치로 가는 직항편은 없다. 뉴델리에서 갈아타야 한다. 에어인디아가 인천~뉴델리 구간을 매일 운항한다. 뉴델리에서 첸나이나 코치로 가는 비행편은 많다. 인천에서 뉴델리까지 비행 시간은 대략 10시간. 에어인디아 직항편으로 돌아올 경우 귀국 시간이 밤이라 낮에 반나절 정도 뉴델리 시내를 둘러볼 여유가 생긴다. 싱가포르나 방콕을 경유한 뒤 첸나이로 가는 방법도 있다. 첸나이에서 코치는 비행기로 1시간이다. 남인도는 11~2월이 여행 적기다. 첸나이는 평균 29℃로 습도가 높지 않으며 코치는 이보다 높은 32℃ 정도로 아라비아해의 습한 해풍이 불어온다. →맛집:첸나이는 인도 채식의 3대 고향 중 하나다. 바나나잎에 밥과 각종 카레를 담아 먹는 밀즈를 어디서나 맛볼 수 있다. 값은 150루피(약 2700원). 코치는 해산물이 풍부한 곳이다. 포르투갈 식민지 영향으로 서구식 요리가 혼합됐다. 케랄라 카타칼리 센터 인근에 음식점이 많다. 마말라푸람의 그란데베이 리조트 또한 검증된 남인도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곳이다. →잘 곳:첸나이에서는 래디슨블루 시티센터 호텔의 위치가 좋다. 부대시설도 잘 갖춰져 있고 불과 2㎞ 떨어진 곳에 익스프레스 애비뉴 몰도 있다. 기념품과 선물 등을 살 수 있다. 코치는 유적지와 볼거리가 몰린 포트 코치 쪽이 좋다. 유대인 마을, 중국식 어망 등 핵심 볼거리를 걸어서 볼 수 있다. 자전거 렌트 비용은 하루 80루피(약 1400원). →놓치지 말 것:코치에서는 인도 4대 무용으로 꼽히는 카타칼리 공연을 꼭 보자. 과장된 복장과 화장으로 중국의 경극을 연상시킨다. 매일 오후 6시부터 1시간 30분 간 공연이 이어진다. 케랄라 카타칼리 센터(www.kathakalicentre.com)에서 보면 된다. 요금은 300루피(약 5300원).
  • 남인도, 숨은 속살 낯선 끌림

    남인도, 숨은 속살 낯선 끌림

    인도 여행 하면 대개 타지마할이 있는 아그라, 혹은 뉴델리와 자이푸르를 연결하는 골든트라이앵글 등을 첫손에 꼽는다. 하지만 이들이 인도의 전부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남인도에도 북부와는 다른 특유의 여유로움과 아름다운 자연을 간직한 곳이 많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곳이 타밀나두주(州)의 주도 첸나이와 향신료 무역의 역사가 서린 케랄라주(州)의 코치다. ●첸나이, 어촌마을서 인도 무역항 거점으로 첸나이는 뉴델리와 뭄바이, 콜카타와 함께 인도를 대표하는 4대 도시 중 하나다. 인도에서 가장 산업화된 도시로 현대자동차를 포함한 세계 주요 자동차 회사와 정보기술(IT) 기업들이 진출해 있다. 사실 고대 왕국인 촐라왕조 시절 첸나이는 작은 어촌 마을에 불과했다. 그러다 1639년 영국이 동인도 회사를 세운 이후 인도 무역항의 거점이 되면서 천지개벽했다. 무역항 보호를 위해 세운 세인트조지성은 지금도 굳건하게 자리 잡고 있다. 영국과 프랑스가 첸나이의 지배권을 놓고 1746년 치열한 전투를 벌여 상당수가 파괴됐지만 이후 재건됐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첸나이가 인도 식민지 전락의 첨병 역할을 했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이제 세인트조지성에서 영국인은 물러가고 인도인이 자리 잡았다. 현재는 타밀나두주 청사로 이용되고 있다. 세인트조지성에서 멀지 않은 곳에 정부 박물관이 자리 잡고 있다. 1851년 개관해 인도 4대 박물관 중 하나로 불릴 정도로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곳이라지만, 겉으로는 다소 초라해 보였다. 이런 곳에 ‘특별한 유물이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들 정도다. 하지만 이런 기우는 박물관 안에 들어서자마자 금세 사라졌다. 9~13세기 번성했던 촐라왕조 시대의 유물이 가득했다. 인도 남부를 지배했던 촐라왕조는 스리랑카는 물론 미얀마·베트남까지 진출했다. 그래서인지 청동 조각상은 서구적인 인도인의 모습과 동양인의 모습이 적절히 혼합됐다. 특히 힌두신인 시바가 그의 부인인 파르바티를 얻고 나서 기쁨에 겨워 춤추는 모습을 나타낸 나트라즈 조각상은 시바신의 섬세한 춤 동작을 그대로 표현했다. 마치 시바가 현세로 다시 살아돌아 온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우리를 안내해 준 가이드 다르마는 “나트라즈 조각상은 파괴의 춤 탄다바와 함께 인도 무용의 기원으로 추앙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 박물관을 둘러봤다면 마리나 해변도 가볼 만하다. 무려 13㎞에 달하는 백사장은 가볍게 걸으며 산책하기에 그만이다. 다만 벵골만의 거친 파도가 그대로 밀려와 수영하기에는 부적합하다. 현지인이 잡은 물고기를 파는 작은 어시장도 곳곳에 있다. 해변에서 가장 도드라지는 건 거대한 하얀 첨탑이다. 기독교 유적지인 성토머스 성당으로, 예수의 12제자 중 한 명인 토머스 신부의 무덤 위에 세웠다. 1504년 포르투갈인이 세운 것을 1893년 재건축했다. 인도는 국민의 80%가량이 힌두교를 믿는다. 한데 남부는 다소 다르다. 서기 1세기쯤 토머스 신부가 인도 남부에 정착하면서 기독교도 함께 뿌리를 내렸다. 신자만도 2600만명에 달하며 현재 인도 제3의 종교로 자리 잡았다. 네오고딕 양식으로 죽 뻗은 새하얀 건물 지붕을 보면 인도가 아닌 유럽의 어느 한 지역에 온 듯한 착각이 든다. 12사도의 무덤이 모셔진 곳은 이곳 외에 이탈리아와 스페인뿐이라고 한다. 기독교 신자 여부를 떠나 이곳은 인도인의 또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도 1986년 2월 이곳을 방문했다. 첸나이에서 남쪽으로 해변을 따라 60㎞가량 내려가면 마말라푸람이 있다. 7~9세기 팔라바 왕국의 수도였던 마말라푸람은 거대한 바위에 새겨진 조각상이 유명하다. 고대 중국을 비롯해 페르시아와 로마의 동전도 발견됐다. 일찍부터 교역 항구로서의 역할을 했다는 얘기다. 인구 1만 2000명의 작은 도시인 마말라푸람의 위용은 도시 중심에서 볼 수 있다. 높이 15m, 폭 27m의 거대한 바위를 깎아 만든 아르주나의 고행상을 마주하니 입이 딱 벌어졌다. 바위에는 인도의 각종 신화를 새겨 넣었다. 시바신에게 물을 달라 애원하는 모습이나 히말라야에서 머리에 이고 온 물을 주는 모습, 소원을 성취하기 위해 고행하는 사람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조각돼 있다. 심지어 실제 크기의 코끼리까지 벽에 담아냈다. 고양이가 고행하는 모습도 눈에 띈다. 아르주나가 한쪽 발을 드는 고행을 통해 소원을 성취했다는 소식을 듣고 자신도 따라하는 모습을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조각해 냈다. 이게 전부는 아니다. 아르주나 고행상에서 걸어서 불과 5분 거리의 해안엔 해변 사원이 있다. 1985년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해변 사원은 촐라왕조 시절인 7세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두 개의 탑은 멀리서 보면 나눠져 있지만 가까이 갈수록 한 몸으로 합쳐진다. 남녀가 합쳐질 때에만 비로소 완전해 진다는 인도인의 생각이 반영됐다는 해석도 있다. 원래 7개의 사원이 있었다고 알려졌지만 현재는 이곳만 남아 있다. 일출이나 일몰 때 바라보는 사원 풍경은 아름다움의 극치라고 현지인들은 자랑한다. 소금기를 잔뜩 머금은 인도양의 바닷바람을 막기 위해 주변에 방풍림이 조성돼 있다. 거대한 크기의 화강암을 깎아 만든 판치 라타스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다. 판치 라타스는 ‘5대의 전차’란 뜻이다. 인도의 대서사시 마하라바타에 나오는 5형제의 이름을 본떠 이름 지어졌다. 하나의 바위 덩어리를 48년 동안 조각한 남인도 양식의 힌두사원으로, 7세기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사원 내부에는 시바신이 탔다는 암소 난디의 조각상도 있다. 실제 크기의 거대한 코끼리 조각상은 인도의 힘을, 사자는 용맹을 상징한다. ●칸치푸람, 팔라바 왕조 수도로 힌두사원 즐비 첸나이에서 남서쪽으로 72㎞ 떨어진 칸치푸람은 3~9세기 번성했던 팔라바 왕조의 수도였다. 힌두교도에게는 성스러운 7개 도시 중 하나로 꼽힌다. 종교 성지인 까닭에 외국인 관광객은 드물다. 도시 곳곳에 힌두 사원이 널려 있어 ‘1000개의 사원이 있는 황금도시’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팔라바 왕조 당시에는 불교도 융성해 당나라의 현장 법사가 칸치푸람을 방문하고 쓴 기록이 남아 있을 정도다. 현장 법사는 “도시의 둘레가 10㎞에 달하고 주민들은 용감하고 정의를 사랑하며 학문을 존중한다”고 기록했다. 특히 남인도 힌두 사원의 건축 양식인 고푸람은 엄청난 위용을 자랑한다. 고푸람은 힌두 사원마다 높게 솟은 사각형의 탑이다. 외벽에 수많은 신을 조각한 뒤 원색으로 아름답게 치장해 놨다. 우리 사찰 입구의 사천왕각이라 보면 틀림없다. 고푸람의 크기로 사원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엑암베스와라 사원은 칸치푸람에서 가장 높은 58m짜리 초대형 고푸람이 인상적인 곳이다. 사원을 이루는 1000개의 기둥홀은 돌로 만든 조각이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하다. 첸나이에서 서쪽으로 비행기를 한 시간여 타고 오면 인도 향신료 무역의 거점인 코치가 자리잡고 있다. 코치를 포함한 케랄라주는 수려한 해안 풍광을 갖고 있다. 미국의 내셔널지오그래픽 잡지는 코치를 포함한 케랄라 주를 세계 10대 낙원으로 선정하면서 반드시 가봐야 할 50곳 중 하나로 선정하기도 했다. 예부터 코치는 중국과 페르시아, 유럽 상인이 드나들면서 여러 문화가 자연스럽게 혼합된 지역이다. 수메르인의 기록에 따르면 기원전 3000년쯤부터 코치를 비롯한 주변 항구는 후추와 강황, 육두구 등 향신료 수출의 중심지였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코치에는 향신료 무역을 위해 정착한 유대인의 후손들이 아직도 살고 있다. 한국의 인사동 거리를 방불케 하는 옛 건물 양식이 그대로 남아 있는데 상점의 간판이 히브리어로 씌여진 경우도 있다. 유대인들은 이곳에 기원전 573년 도착했다. 유대인뿐만 아니라 포르투갈인도 정착했다. 세계사 수업시간에 이름을 들었음직한 바스코 다 가마가 1498년 코치 인근에 도착했었다. 바스코 다 가마는 코치를 근거지로 삼아 유럽과 인도를 잇는 무역로를 개척했다. 포르투갈이 총독부를 설치했던 곳이 바로 코치다. 한때 2500여명에 달했던 유대인은 상당수가 이스라엘로 돌아갔다. 지난 2001년 조사 때 7가구 22명에서 최근에는 겨우 7명만 남았다. 대부분 기념품 가게를 운영하는데, 운좋게 최고령 유대인인 사라 코헨(93) 여사를 만날 수 있었다. 그의 후손은 대부분 코치에서 자수 등 기념품을 팔며 생활을 이어간다. 아직도 정정한 코헨 여사는 “한국인들이 이곳에 와서 둘러보고 물건을 사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유대인 마을과 함께 해변을 따라 있는 중국식 어망은 코치를 상징하는 볼거리다. 6~8명이 한 조를 이뤄 네모난 그물을 드리운 뒤 다시 끌어올리는 방식인데 사진 찍기에는 좋을지 몰라도 고기를 잡기에는 그렇게 효율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중국식 어망은 중국 광둥성에서 전래된 것으로 코치가 향신료와 차 등을 동서로 연결해주던 주요 통로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해넘이에 맞춰 중국식 어망이 설치된 해안을 바라보니 이국적인 풍경에 취해 한동안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해안가 주변엔 각종 해산물 요리가 발달했다. 해산물 카레를 맛볼 수 있는 좋은 곳이기도 하다. 인도관광청 코치 지부의 고빈드 부얀 부국장은 “타지마할이 있는 북부 골든트라이앵글보다 코치를 비롯한 남부 지역의 매력이 상대적으로 한국에 알려지지 않았다”며 “이곳에서 색다른 매력을 느껴보길 진심으로 바란다”고 말했다. 글 사진 첸나이·마말라푸람·코치(인도) 이제훈 기자 parti98@seoul.co.kr ■여행수첩 →가는 길:첸나이와 코치로 가는 직항편은 없다. 뉴델리에서 갈아타야 한다. 에어인디아가 인천~뉴델리 구간을 매일 운항한다. 뉴델리에서 첸나이나 코치로 가는 비행편은 많다. 인천에서 뉴델리까지 비행 시간은 대략 10시간. 에어인디아 직항편으로 돌아올 경우 귀국 시간이 밤이라 낮에 반나절 정도 뉴델리 시내를 둘러볼 여유가 생긴다. 싱가포르나 방콕을 경유한 뒤 첸나이로 가는 방법도 있다. 첸나이에서 코치는 비행기로 1시간이다. 남인도는 11~2월이 여행 적기다. 첸나이는 평균 29℃로 습도가 높지 않으며 코치는 이보다 높은 32℃ 정도로 아라비아해의 습한 해풍이 불어온다. →맛집:첸나이는 인도 채식의 3대 고향 중 하나다. 바나나잎에 밥과 각종 카레를 담아 먹는 밀스를 어디서나 맛볼 수 있다. 값은 150루피(약 2700원). 코치는 해산물이 풍부한 곳이다. 포르투갈 식민지 영향으로 서구식 요리가 혼합됐다. 케랄라 카타칼리 센터 인근에 음식점이 많다. 마말라푸람의 그란데베이 리조트 또한 검증된 남인도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곳이다. →잘 곳:첸나이에서는 래디슨블루 시티센터 호텔의 위치가 좋다. 부대시설도 잘 갖춰져 있고 불과 2㎞ 떨어진 곳에 익스프레스 애비뉴 몰도 있다. 기념품과 선물 등을 살 수 있다. 코치는 유적지와 볼거리가 몰린 포트 코치 쪽이 좋다. 유대인 마을, 중국식 어망 등 핵심 볼거리를 걸어서 볼 수 있다. 자전거 렌트 비용은 하루 80루피(약 1400원). →놓치지 말 것:코치에서는 인도 4대 무용으로 꼽히는 카타칼리 공연을 꼭 보자. 과장된 복장과 화장으로 중국의 경극을 연상시킨다. 매일 오후 6시부터 1시간 30분 간 공연이 이어진다. 케랄라 카타칼리 센터(www.kathakalicentre.com)에서 보면 된다. 요금은 300루피(약 5300원).
  • “아베, 초선 의원 때부터 ‘과거사 사죄’ 인식 없었다”

    “아베, 초선 의원 때부터 ‘과거사 사죄’ 인식 없었다”

    “우리나라(일본)가 일방적으로 부전(不戰)의 결의를 하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1995년 6월, 2년차 신인 자민당 의원이었던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국회에서 이렇게 열변을 토한다. 당시 연립정권을 이룬 자민·사회·신당 사키가케 3당이 종전 50주년을 맞아 과거 전쟁을 반성하고 평화에 대한 의지를 표명하는 국회 결의안을 추진할 때의 일이다. 1993년 아버지의 지역구를 물려받아 처음으로 중의원에 당선된 아베는 의원연맹 사무국장 대리로 발탁돼 있었다. 국회 결의안에 ‘부전’이나 ‘사죄’ 등의 표현을 넣자고 주장한 사회당에 맞서 자민당 내 신중파 ‘종전 50주년 국회의원 연맹’ 등은 “후세에 역사적 화근을 남길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결국 결의안은 타협 끝에 ‘부전’이나 ‘사죄’ 대신 ‘식민지 지배’, ‘침략적 행위’라는 문구가 들어가는 것으로 수위가 낮아졌다. 6월 9일 중의원 본회의에서 이 결의안은 찬성 다수결로 채택됐지만, 여·야당에서 불참자가 속출했다. 아베도 불참했다. 만장일치가 원칙인 국회 결의안이 좋지 않은 모양새로 채택되자 무라야마 도미이치 정권은 큰 내상을 입었다. 이후 무라야마 총리는 총리 담화를 통해 식민 지배와 침략에 대한 명확한 반성과 사죄를 담기로 한다. 4일 아사히신문이 보도한 ‘무라야마 담화의 탄생 배경’이다. 신문은 아베 총리가 종전 70주년을 맞아 올여름 발표할 ‘아베 담화’의 내용이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른 상황에서 전후 50주년의 무라야마 담화와 60주년의 고이즈미 담화의 작성 경위와 당시 아베 총리의 입장을 소개하는 특집 기사를 실었다. 소장파 의원 시절 무라야마 담화보다 수위가 낮았던 국회 결의안을 거부한 아베 총리는 자민당 간사장 대리를 맡고 있던 2005년 전후 60주년 결의 채택 때도 중의원 본회의장에서 중도 퇴장했다. 당시 결의안은 ‘식민지배’, ‘침략’ 등의 표현 없이, ‘10년 전의 결의를 상기하고’라는 문구만 들어갔음에도 아베 총리는 동의하지 않았다. 이후 아베 총리는 2006년 총리로 취임한 뒤 무라야마 담화에 대해 “역사적인 담화”라고 평가하며 계승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총리 퇴진 후인 2009년 2월 월간지 ‘정론’에 실린 대담에선 “자민당이 야당으로 전락하기 전에는 어떤 총리도 ‘침략’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았는데 무라야마 담화 이후 정권이 바뀔 때마다 그 계승 압박을 받게 됐다”면서 “나는 (총리 시절) 무라야마 담화를 수정한 ‘아베 담화’를 내려고 했다”고 ‘소신’을 밝혔다. 2012년 12월 두 번째 총리 임기를 시작한 이후에는 무라야마 담화를 “전체적으로 계승한다”면서도 지난 1월 NHK에 출연해 “지금까지 (역대 담화의) 문언을 쓰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아베 정권이 어떻게 생각하느냐의 관점에서 (담화를) 내겠다”고 말해 역대 담화의 핵심 문구를 뺄 수도 있다는 인식을 표출했다. 도쿄 김민희 특파원 haru@seoul.co.kr
  • 학술, 아프리카를 보다

    학술, 아프리카를 보다

    철학·사회학·문학 등 한국의 인문학은 꽤 오랜 시간 동안 서구의 이론을 수입, 모방, 재생산하는 것으로 존재 의의를 삼았다. 학문의 종속성은 그만큼 깊어졌지만, 덕분에 외국에서 유학해 해당 언어가 상대적으로 편한 학자들이 빠르게 이론을 수집했고, 그것을 바탕으로 학계의 어른 역을 자임할 수 있었다. 물론 전통문화를 다루는 몇몇 분야는 제외되겠지만, 이들은 오히려 서구 혹은 또 다른 제3세계를 배척하거나 무관심하게 절연시킴으로써 스스로 고립되는 문제를 낳기도 했다. 지난달 말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산하에 문을 연 범아프리카문화연구센터는 학술적 차원에서 세계의 변방 아프리카를 주목한다. 소장을 맡은 고인환 경희대 교수를 비롯해 김재용 원광대 교수, 고명철 광운대 교수, 이석호 한국외대 교수, 조해진 고려대 교수, 차선일 경희대 교수 등이 서구 중심의 교양 교육이나 담론에서 벗어나 보자는 뜻으로 오랫동안 준비해온 첫 번째 결실이다. 고인환 소장은 “서구중심 담론을 벗어나는 학문적 풍토 마련이라는 과제는 당장 가시적 성과를 바랄 수 없을 정도로 해묵은 과제”라면서 “그간 학계에서 문제의식은 많았지만 단발 행사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고, 최소한 3~5년 이후 성과를 내다봐야 한다면 (연구소 개설을)이제 더이상 늦출 수 없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는 서구적 근대성과 구미중심주의를 넘어 아프리카·아메리카·아시아 등 비서구 세계와 문화적으로 소통하고 연대하겠다는 의지의 발현이기도 하다. 또한 그동안 서구 학계의 창을 통해 바라본 서구 바깥의 개별 학자, 개별 이론 등을 주체적 시각으로 해석하고 수용하며, 한국적 상황에 접목시킨다는 복안을 갖고 있다. 예컨대 그동안 영문학자들이 오로지 서구적 상황에서 해석하고 반복해온 셰익스피어를 우리의 시각으로 바라보고 해석하며, 비판할 수 있는 학문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때 비로소 단순히 서구 중심의 문화담론을 벗어나는 것을 넘어 문화적 균형감각을 가질 수 있고, 한국 문화 및 학문적 수준과 태도를 더욱 발전시킬 수 있는 자양분으로 삼을 수 있다는 생각이다. 지난달 26일 연구센터 개소 기념으로 가진 학술대회에서 구미 중심으로 최근 진행되는 세계문학론의 불균형성을 중점적으로 논의하는 한편, 프랑스 식민지 출신의 실천적 지식인 프란츠 파농(1925~1961)의 한국적 수용 사례를 심도 있게 다룬 이유이기도 하다. 김재용 교수는 “괴테가 180년 전 세계문학론을 처음으로 언급할 때만 해도 중국 소설, 인도 희곡 등 아시아문학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갖는 등 유럽문학과 아시아문학을 모두 아우르며 세계문학론을 펼쳤다”면서 “산업화 시기를 거치면서 유럽 바깥의 문학은 세계문학의 대열에 낄 수 없는 존재로 격하되고 말았다”고 말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중요한 문학의 생산이 비서구 지역이나 구미에 거주하는 비서구 출신의 경계인 작가들에 의해 이뤄지고 있는 데도 여전히 구미의 이론가들이 세계문학론을 주도하는 현실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세계문학론 담론의 주체가 비서구 지역으로 이동해야 하는 당위성을 주장했다. 또한 프랑스령 마르티니크 출신의 흑인으로 정신의학자이자 철학자였으며, 알제리 민족해방운동에 나선 혁명가인 프란츠 파농은 영문학자를 통해 한국에 소개됐다. 서구에서 파농을 수용하는 학문적 이론의 흐름은 그를 민주화 투사로 바라봤다가, 학문적 영역에서 내쳤다가, 또 어느 순간 탈정치화된 이론가로 해석했다. 한국에서도 고스란히 같은 흐름으로 소개되는 데 그쳤다. 차선일 교수는 “파농이라는 제3세계 출신의 흑인 사상가를 수용하고 이해하는 우리의 시각이 서구 중심주의와 식민주의·인종주의 등에 감염돼 있거나 암묵적으로 동조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지적했다. 올해 하반기 무크지 형태로 비서구적 담론을 공유·확산할 수 있는 잡지를 창간시키는 한편,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지도자 넬슨 만델라(1918~2013)의 삶과 정치 철학 등을 연구하며 한국적 상황에 맞게 수용하는 작업을 벌일 예정이다. 라틴아메리카·아프리카 대학들과 학술·문화 교류도 병행할 예정이다. 범아프리카문화연구센터는 역사학· 철학· 문학 등 인문학 분야에서 궁극적으로는 학회 차원으로까지 발전시킬 전망을 품고 있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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