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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ㆍ소의 「세계위기 억제력」약화/쿠웨이트 사태계기로 본 위상진단

    ◎금수등 양국의 협조에도 해결엔 한계/핵무기 틈바구니서 준강국 입지 강화/“이라크 패권주의 잠재울 수 있느냐”가 새 시험대로 미국과 소련은 지난주 동서협조시대의 새로운 적대행위 앞에 무력한 초강국의 모습을 여실히 드러냈다. 이라크의 전격적인 쿠웨이트 침공은 세계가 미소의 통제권 밖의 분쟁에 직면하기 시작했음을 보여 주었다. 워싱턴과 모스크바가 세계문제의 해결을 위해 밀접하게 협조하더라도 세계의 안정과 평화를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이 냉전이후 시대의 아이러니일지 모른다. 핵초강국 미소는 아직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동서의 군비경쟁은 세계의 경제경쟁으로 변모하고 있다. 경제대국 서독과 일본은 서방에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고 제3세계에서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대통령은 기름과 중동패권을 위해 쿠웨이트를 침공했다. 한때 팽창주위를 지향했던 소련은 국내 경제문제가 심각해지자 눈을 안으로 돌리고 있으며 이로 인해 베트남과 쿠바는 소련의 원조감소와 더불어 재정난에 직면하고 있다. ○새 적대행위에 무력 제임스 베이커 미 국무장관과 예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 소 외무장관은 최근 일련의 회담에서 지난 10년간 양국의 재정 및 정치적 힘을 약화시킨 캄보디아 및 아프가니스탄 문제해결 방안을 논의했다. 지난주 두 외무장관은 불과 1년전만 해도 생각할 수 없었던 전례없는 협조를 과시하면서 이라크의 쿠웨이트 「불법 침공」을 비난했다. 그리고 이라크의 최대 무기공급원인 소련은 바그다드에 대한 무기수출을 중단했다. 셰바르드나제도 밝혔듯이 오랜 맹방인 이라크에 대한 소련의 물기금수 조치야말로 「어려운 결단」을 내린 것이었다. 베이커와 셰바르드나제는 모스크바 회담에서 이라크를 고립시키는데 다른 나라들을 어떻게 끌어들일 것이냐에 관해 논의했다. 셰바르드나제는 군사력에 의지한 사태해결을 원치 않는다는 소련의 입장을 분명히 했다고 미 관리들은 전했다. 많은 미 정부관리들과 국제문제 전문가들은 이제 워싱턴과 모스크바가 다른 나라의 행동을 변화시키는데 한계가 있다고 말한다. 예컨대 지난번 워싱턴 정상회담에서 부시 미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소 대통령은 내전 속에 기아로 허덕이는 이디오피아에 대한 긴급 식량원조 계획을 발표했으나 두 나라의 막강한 군사력에도 불구하고 이 식량의 공중 및 해상수송계획은 반군측 거부로 좌절됐다. 미국과 소련은 페르시아만에 중요한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 그러나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한지 수일이 지나도록 미소 양국중 어느나라도 후세인의 행동을 변화시키지 못했다. ○냉전으로 국력 소모 이라크가 사우디아라비아를 공격하지 않자 두 초강대국과 그들 우방은 이라크로 부터의 원유 수입금지 등으로 후세인을 조이기 시작했으나 이같은 경제제재조치가 효과를 나타내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이다. 브루킹스 연구소의 중동 문제전문가 주디드 키퍼는 「미국과 소련은 격랑의 바다에서 작은 배에 함께 타고 있는 신세」라고 비유하며 『이라크와 같은 소강국들은 이제 어깨 너머로 미소의 눈치를 살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비민주적이고 무모하며 역내문제에 독자 견해를 갖고 있는 소강국들이 자신의 작은 문제를 정리하는데 있어(강대국등으로부터) 벌을 받지 않고 행동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0여년간 세계 도처에서 미소의 지원으로 타오르던 지역분쟁은 미소의 개입 철회노력과 더불어 사그라들고 있다. 70∼80년대에 미국은 지역분쟁을 제3세계에서 소련의 팽창에 대해 군사적으로 직접 개입하지 않고 대응하는 수단으로 보았다. 보수파들은 이 정책을 레이건 독트린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1989년초 부시 대통령이 집권했을 때 미소는 모두 탈진해 있었다. 지역분쟁이 미국에서 주로 행정부와 의회간의 정치적 소모전을 야기했다면 소련에선 경제적 고갈을 가져 왔다. ○국제문제 개입축소 정치 평론가 리처드 코헨은 『미국은 냉전의 승자가 아니라 패자』라고 말하고 있다. 냉전시대 미국의 안보 우산 아래서 번영의 전기를 잡은 서독과 일본은 금력 외교로 세력을 뻗쳐 나가고 있으나 미국은 금년만도 1천6백8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는 재정 적자로 인해 세계문제에 대처하는 역할을 축소하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다. 이라크의 쿠웨이트 무력점령은 미소외교의 큰 위기로 인식되고 있다. 냉전의 소모전으로 악화된 소강국 미소가 냉전 이후에도 과연 세계를 이끌어 갈 수 있으냐가 바로 지금 시험되고 있다.〈워싱턴=김호준특파원〉
  • 쿠웨이트취업 근로자/신변안전책 강구 요청/노동부,현지 대사관에

    노동부는 2일 하오 외무부를 경유해 주쿠웨이트대사에게 보낸 훈령을 통해 쿠웨이트에게 취업중인 우리 근로자들의 각 사업현장별 신변안전대책을 수립,시행토록 하는 한편 우리 근로자의 피해 현황을 파악,알려줄 것을 요청했다. 노동부는 현대건설ㆍ대림산업 등 쿠웨이트에 진출한 건설업에의 본사에도 공문을 보내 현지 사업장에서 차량ㆍ유류ㆍ비상식량ㆍ약품 등을 준비하고 안전지대로 이동,대피토록 하는 등 근로자 신변안전 및 전쟁피해 예방에 만전을 기해줄 것을 지시했다. 노동부의 한 관계자는 현재 쿠웨이트엔 현대건설소속근로자 3백55명,대림산업근로자 2명,외국인업체 개별 취업 근로자 1백22명,간호원과 보조원 61명 등 모두 5백40명이 진출해 있다.
  • 제네바협상의 진동을 보며…/허신행 한국농촌경제연 원장

    ◎「우루과이라운드」 역이용하라 우루과이라운드 농산물협상 내용이 심상치 않게 진행되고 있다. 27일 끝난 무역협상위원회(TNC)의 협의결과가 유보상태에 머물고 있는 것 같으나 드주농산물협상그룹 의장이 매우 열정적인데다 그를 밀고 있는 수출국들의 힘이 막강하기 때문에 낙관적인 예측을 불허한다. ○홍수거쳐간 들판 연상 미국및 케언즈그룹의 당초 제안을 대부분 수용한 의장초안이 나오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농산물에 관한 한 수출국과 수입국 제안의 중간 어디에선가 타결될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런데 협상종료 5개월을 남겨놓고 이번 협상이 실패하는 경우 보호무역으로 역행하게 된다는 위기의식을 가진 드주의장이 수입국들의 허를 찌른 채 전격적인 초안을 내놓자 우리나라처럼 개방화에 대비하지 않은 국가로서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만일 의장초안이 그대로 통과되는 날이면 우리 농업은 뿌리채 흔들릴 판이다. 2천년까지 점진적으로 단행된다고는 하지만 농가소득의 35%를 차지한 쌀의 2중곡가제 실시가 어려워진다. 주요 양념류와청과물 특용작물 축산물 등에 적용되고 있는 각종 가격지지정책이나 수매비축제의 추진도 포기해야 될 판이다. 농업용 자재의 일부지원이나 보조사업도 시행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장·단기 저리영농자금의 지원도 못하게 된다. 물론 수출보상금도 줄 수 없다. 설상가상으로 지금 수입을 제한하고 있는 4백6개의 농산물을 개방해야 되는 동시에 관세제도도 전환시켜야 한다. 국내가격과 국제가격의 차이만큼 고율의 관세상당액을 부과시키도록 허용한다고 말하지만 합의기간안에 모두 감축토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결과는 자유무역 그대로 나가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 농업은 결정적인 영향을 받게 된다. 쌀 보리 밀 콩 옥수수 팥 녹두 등 대부분의 국내산 곡물가격이 국제가격보다 3배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국내 생산기반이 온전해질리가 없다. 설령 식량안보 조건으로 쌀은 괜찮다 치더라도 나머지 곡물류의 생산을 포기해야 된다면 농가경제의 위축은 치명적일 수 있다. 열대과일은 말할 것도 없고 유제품과 쇠고기는 물론 땅콩·고추·마늘에 이르기까지 다른 주요농산물의 규내가격마저 국제가격의 3배를 넘고 있으니 농업생산이 어떻게 될 것인가는 대홍수피해 이후의 들판을 연상해보면 어떨지 적당한 비유가 생각나지 않는다. 결국 오는 2천년까지 대부분의 농업생산 기반이 붕괴될 위험에 놓이게 된다. 비싼 농지를 놀리면서 농산물을 수입할 수밖에 없고 실업자가 대량으로 발생,각종 도시문제가 증폭될 것이다. 도농간의 격차와 빈부격차가 더욱 심화되고,정치 사회적인 불안까지 가중될 것이다. 이러한 추리는 어디까지나 수출국들의 제안이 최종협상 타결의 모습으로 나타날 때의 일이고,EC의 12개국과 일본 스위스 오스트리아 한국 등의 강력한 요구가 반영된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도 있다. 각국의 서로 다른 농업발전 단계와 농업의 비교역적 기능등이 최종협상안에 반영된다면 우리는 오히려 우루과이라운드를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을 수도 있다고 본다. ○전화위복 기회삼아야 쌀생산은 양질미 위주로 바꾸고,농협으로 하여금 쌀의 수급조절을 기하도록 내맡기면 정부의 개입없이도농민들은 높은 미곡소득을 획득할 수 있다. 농가 부채경감이나 각종 보조금을 농업구조개선사업 자금으로 전환시키는 동시에 새로운 농업기술의 혁신과 인력양성에 집중투자해 나간다면 우리 농업도 해외농업과 한번 겨루어 볼 수 있다. 지금 세계농업은 땅 중심에서 기술중심의 농업으로 전환되고 있기 때문에 아이로닉하게도 멀지 않은 장래에 우리나라의 「자본·기술 집약형의 농업」이 주요 수출국의 토지조방적 농업보다 앞설 수 있다. 중·소 가축과 고급채소 과일 특용작물 꽃 산나물 약초분야에서 우리나라는 50여개의 유망한 전략품목을 가지고 있다. 이 가운데서 절반은 장차 국제시장으로 얼마든지 수출 가능한 품목으로서 한국농업을 이끌어 나가게 될 것이다. 농산물 생산은 공산품과 달라서 그 나라의 기후풍토로부터 결정적인 영향을 받는다. 식품소비가 고급화될수록 농산물의 맛과 향 모양 등이 중요해지며 이런 시각에서 네계절이 분명한 한국의 농산물은 앞으로 그 진가를 발휘할 날이 반드시 오게 된다. 그 대표적인 품목이 신고배 사과 감감귤 유자 매실 각종버섯 인삼 엽연초 장미 카네이션 백합 작약 등 찾아보면 수두룩하다. 이들 품목이 세계시장으로 향해 수출된다고 할 때 한국농업의 양상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탈바꿈할 수도 있다. 그러기에 한국농업은 지금 중대한 갈림길에 놓여 있다. 농산물의 수입개방 여부에 대한 흑백논쟁이나 「설마」하는 안이한 생각,또는 농업의 종말을 점치는 패배주의에 사로잡혀서 아무런 대안없이 우루과이라운드를 맞이한다면 그야말로 우리 농업은 소생할 수 없이 끝장이다. 그렇지 않고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각오로 새로운 탈출구를 모색한다면 우리 농업에 희망은 있다. 우리 농민들이 겪게 될 상황은 다른 모든 GATT회원국의 농민들에게도 마찬가지이므로 누가 먼저 한발짝 앞서느냐에 따라서 농업의 성장여부와 수출입의 분기선이 달라질 것이다. ○누가 앞서느냐가 관건 정부가 추진중에 있는 농발대책이 바로 개방화에 대비한 하나의 정책의지이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농업기술 혁신과 인력양성에 있어서 획기적인 정책전환이 시급하게 요청된다. 농가단위에 농산물 가공산업을 육성,농가 또는 협동조합별로 특색있는 가공농산물을 생산케 유도하여 수입품과 품질면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 그리고 농산물의 수출시장 개척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면서도 부단하게 노력한다면 우리는 오히려 우루과이라운드의 물결을 우리 농업의 순항로로 역이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 “시장경제 이행에 소,서방 경원 절실”/고르바초프 밝혀

    【모스크바 로이터 AP 연합】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은 26일 소련이 앞으로 2년동안에 걸쳐 소비 산업을 재건하기 위해 서방측 원조를 필요로 하고 있으며 이 2년동안에 서방원조로 시장경제의 초석을 세울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소련을 방문중인 줄리오 안드레오티 이탈리아 총리와 가진 공동기자회견에서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가 최근 이 군사동맹체의 형태를 바꾸기로 한 결정이 통일독일의 나토참여에 동의키로 그가 결정하는데 열쇠가 되었다고 말했다. 그는 외국원조가 어떤 도움이 될수 있느냐는 기자질문에 소련은 방위산업을 평화산업으로 전환하고 식량과 소비재의 증산에 원조가 필요하며 각 공장에 생산성 향상을 위해 외국 회사들과 접촉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답변했다.
  • 정부미도정「방앗간싸움」뜨겁다/「자유화」싸고 기획원ㆍ농림수산부 맞서

    ◎쌀값안정위해 가공소확대 불가피 기획원/부정유통ㆍ품질저하 우려… 극력 반대 농림수산부 경제기획원과 농림수산부간에 때아닌 방앗간 싸움이 한창이다. 지난 50년부터 정부양곡 도정공장에 대해서만 허용해온 정부미 도정을 일반도정 업자에게도 허용하느냐의 여부를 놓고 두부처가 팽행히 맞서고 있다. 정부가 사들이는 쌀은 연간 1천만섬 정도로 이것을 누가 찧느냐는 것은 대단한 이권일수도 있고 쌀값과도 직결된다. 정부미는 벼상태로 사들여 벼상태로 보관했다가 필요에 따라 도정한다. 수매량 1천만섬은 쌀기준이기 때문에 벼로 따진다면 1천4백만섬이 넘고 쌀로는 1천8백만 가마에 이른다. 쌀1가마 도정비가 3천원이 넘어 연간 도정비만 5백억원 이상이다. 방앗간 싸움은 경제기획원이 그동안 정부 양곡도정업체에만 허용해온 정부미가공권이 정부미 방출정책에 차질을 주어 쌀값안정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지적,25일 정부미(조곡)의 매출대상을 앞으로 일반민간도정업체와 양곡 도ㆍ산매상 등까지 확대하겠다고 일방적으로 발표한데서 비롯됐다.농림수산부는 이에 대해 정부미 가공권을 정부양곡도정업체에만 주어온 것은 가격안정지도와 품질유지 및 안정공급등 때문이었다고 설명하고 영세 소규모업자가 대다수인 일반도정업체에 이를 허용할 경우 부정유통과 품질저하와 함께 가격안정지도에 어려움이 적지않아 쌀값안정에 오히려 차질을 빚을 수 있다고 극력 반대 입장을 보이고 있다. 기획원이 이같은 방침을 세운 것은 정부양곡도정업체들 가운데 상당수 업체가 정부가 보유한 조곡(벼)의 매입을 꺼리고 정부미의 임가공만을 희망하고 있어 정부미 방출이 순조롭지 못하다고 진단한데 따른 것이다. 정부양곡 도정업체들중 상당수가 이처럼 조곡매입을 기피하는 것은 정부가 보유한 조곡을 80㎏가마당 가공된 정부미방출가에 비해 3천원 싸게 구입,자율적으로 가공해 포장ㆍ판매하는 것보다 정부미의 임가공 수수료가 가마당 3천2백60원 수준이어서 위험부담이 적고 안정적이라는 계산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정부양곡 도정업체는 4백6개 업체이며 이중 조곡매출 대상업체는 83개에 불과하다. 나머지 3백23개 업체중 3백개업체는 정부미 임가공만 전담하고 있고 23개는 휴업중이다. 기획원은 이같은 여건에서 정부와 농협이 보유하고 있는 일반미를 현재 하루 7만2천가마에서 10만가마로 늘려 방출,쌀값안정을 꾀하기 위해서는 정부미의 매출대상 도정업체를 전국 1만6천3백64개 일반도정업체까지 확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경제기획원은 또 정부미를 지역별로 특정정부양곡도정업체에만 가공토록하는 조곡원료권제도도 폐지,정부미의 가공ㆍ유통을 시장자율기능에 맡기기로 방침을 세웠다. 농림수산부는 이에 대해 정부가 허가한 도정업체에만 정부미 가공권을 주고 있는 것은 국민의 기본식량인 쌀의 품질관리와 부정유통에 대한 감독ㆍ지도를 위한 것이며 특정업체에 특혜를 주기위한 것이 아니라고 극구 부인하고 있다. 특히 최근 정부양곡 도정업체의 연간가동률이 20%에 불과하고 지난해의 경우 1개 도정공장의 정부미 임가공비가 7천만원 수준이었음을 들어 일부의 특혜라는 지적을 일축했다. 농림수산부는 원료권도 운송비 등을 절약하기 위해 근거리 조작원칙에 따라 형성된 관행이며 아무런 법적근거가 없기 때문에 정책상 필요한 때는 원료권을 조정,지역간 수급조절을 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정부미 방출대상업체를 전국 일반도정업체까지 확대할 경우 쌀값안정 효과보다는 부정유통ㆍ품질저하등 갖가지 문제가 초래될 우려가 높다고 지적했다. 우선 정부미 도정업체가 많아짐에 따라 일반미에 정부미를 섞어 일반미로 둔갑시켜 판매하는 혼합가공판매등 부정유통에 대해 정부의 사전ㆍ사후감독이 어렵게 된다는 점을 들었다. 같은 이유로 정부의 효과적인 가격통제가 불가능하며 이에 따라 쌀값안정이 어려워지게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농림수산부는 이와 함께 일반도정업체가 정부미의 안정공급으로 그동안 해왔던 산지의 쌀수집기능을 소홀히 할 가능성이 높고 따라서 농가출하량의 감소로 시중일반미의 가격상승을 가져올 수도 있으며 조곡을 구입했다가 이를 정부수매때에 높은 값에 되팔 수 있다는 극단적인 예까지 들며 기획원의 방침에 반대입장을 거듭 밝혔다. 이밖에 일반도정업체가대부분 시설이 부족한데다 노후화돼 정부미의 가공에서 미질을 떨어뜨려 오히려 정부미의 인식을 현재보다 더 나쁘게할 우려가 없지않다는 점도 거론했다. 농림수산부의 이같은 반대논리에 대해 경제기획원은 전체 물가안정 차원에서 일반도정업자에게도 정부미 도정의 허용을 밀고 나갈 방침이어서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 정치범 곧 전원 석방/국민투표 내년 실시/잠비아

    【루사카 로이터 연합】 케네드 카운다 잠비아대통령은 25일 모든 정치범을 석방할 것이며 지난달 식량폭동이후 루사카지방에 내려졌던 통금을 해제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는 또 오는 10월로 예정했던 다당제통치로의 복귀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내년 8월로 연기한다고 밝혔다. 국민투표연기는 일당통치 반대운동자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유권자들의 새로운 등록을 허용하려는데 목적이 있다. 카운다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새로 시작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용서해야 하며 다시 하나로 뭉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서울신문,일 방위청장관 단독인터뷰

    ◎“북한ㆍ중국 고립되면 아시아정세 경색”/「평양빗장」스스로 풀도록 도와줘야/“일 전략은 방어”… 군사대국화는 기우/동ㆍ서 신데탕트 맞아도 일의 즉각군축 없다 탈냉전시대를 맞아 일본의 방위전략은 어떻게 변모하고 있는가. 특히 한반도군사정세에 대해 일본의 최고방위책임자는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는가 등을 알아보기 위해 서울신문 강수웅 도쿄 특파원은 지난 20일 이시가와 요죠(석천요삼)방위청장관과 인터뷰를 가졌다. 일본 방위청장관으로서는 처음으로 한국의 신문과 단독인터뷰를 가진 이날 이시가와장관은 북한의 고립에 따른 체제 경직화를 우려하고 소련이 변했다해서 일본의 방위정책을 당장 바꿀수는 없다고 밝혔다. ­일본의 방위당국자 입장에서 아시아,특히 한반도정세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 ▲북한의 고립화에 따른 위험성에 충분히 주의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북한을 고립시켜서는 곤란하다. 북한 뿐만아니라 중국도 고립되면 경색화될 염려가 있다. ­북한의 무기개발설에 대해서는 어떻게 판단하고 있는가. ▲핵과 관련된 시설이 있다고 인식하고 있다. 핵전략에의 관련여부는 알수 없으나 충분히 주의하지 않으면 안된다. ­한반도에서 무력충돌이 일어날 가능성은…. ▲북의 고립화가 어떻게 될 것인가에 따라 달라진다. 다만 위험성이 전혀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북한이 세계의 조류를 타게되면 지금의 국제정세 속에서 충돌을 일으키리라고는 상상할 수 없지만,경색된 자세로부터 스스로 어떻게 탈피할 것인지가 문제다. 한국의 노태우대통령은 긴장완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한반도에서 무력충돌이일어났을때 가장 곤란해지는 것은 일본이다. ­한반도에서 격한 움직임이 일어나 북한쪽으로부터 난민이 일본에 오는 사태 등을 상정한 「위기관리」를 생각해본 일이 있는가. ▲일본의 평화는 한반도의 움직임에 따라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다. 한반도에서 분규가 터지면 그 영향은 아시아 전체에 미친다. 일본으로서도 한반도가 가장 평화롭기를 바라고 있다. ­북한군대 내부의 움직임에 대해 어떤 정보를 갖고 있는가. ▲잡히지 않고 있다. 가장 파악되지 않는 나라이다. 기껏해야 소련의 최신병기를 상당량 받아들이고 있다는 정도이다. ­일본의 방위비에 대해 아시아 여러나라가 위협을 느끼고 있다고 보는데. ▲군사비 대국이라는 것은 참으로 반론하기 힘든 면이 있다. 동남아시아 국가연합(ASEAN) 6개국에 오스트레일리아를 넣어 비교해 보더라도 일본의 방위비가 막대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방위관계비가 많다고는 하지만 군사대국이라고는 말 할수 없다. 내용과 성격의 문제로서 공격적이 아닌 전담방위라는 사실,핵을 갖고 있지 않은 점,징병제가 아니라는 것,시빌리언 컨트롤(문민통제)이랄까. 여러가지 요소를 보더라도 군사대국은 아니다. 그렇더라도 액수가 많은 것은 사실이다. 왜냐하면 자위대가 경찰예비대 시절로부터 40년이 지났으나 방위력의 비축이 없었기 때문에 단기간기 대폭 늘린 탓이다. 일본의 위협론이라는 것은 다소 과장된 것이라고 생각되나 이를 불식하기는 힘들다. 동남아시아를 순방했을때 그런 말을 많이 들었다. 일본 헌법 제9조에 따라 군사대국은 될 수 없다고 말해도 헌법은 고치기 쉬운것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납득시키기 어려운 면도 있었다. ­이제까지는 동서긴장 속에서 방위정책을 추진해 왔으나 동서의 긴장완화가 이루어진 지금부터는 지역분쟁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에 방위정책의 중점을 두어야 할 것이 아닌가. ▲동서 양블록의 대치가 상호간에 부담을 주어왔기 때문에 민주화의 방향으로 진행되는 것은 좋으나 거꾸로 일부 지역에서는 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긴자(은좌)의 큰길은 평온하지만 뒷골목은 위험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 논리다. 그같은 사태에 대비,군사공백이 초래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소련이 제아무리 민주화의 길을 걸어가고 베를린장벽이 무너졌다 하더라도,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통일독일이 편입되더라도 일본의 방위정책엔 직접적으로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범지구적인 긴장완화의 진전,지역분쟁의 위험이 해소됐다면 방위계획 대강의 수준을 변경해도 좋겠으나 아직 거기까지에는 이르지 못했다. ­미군의 아시아로부터의 철수계획진행,소련의 민주화가 진전되고 있는 가운데 야당측으로부터 자위대감축요구의 소리가 높다. 솔선해 군축을 추진할 생각은 없는가. ▲미국 및 소련이 군축을 한다 하더라도 일본은 줄일 수 없다. 그것은 4조엔에 달하는 일본방위관계비의 80%가 의무적 경비로서 인건비ㆍ식량비는 오를 수밖에 없다. 아무 것도 하지 않더라도 자연증가만으로 5%정도가 늘어난다. ­지난번 휴스턴 선진 7개국 정상회담때 발표된 정치선언에선 소련의 위협론이 후퇴한 것으로 밝혀졌는데 일본 방위당국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확실히 지금까지의 정치선언과는 달리 국제정세에 대한 인식이 변했으나 소련의 위협이 없어졌다고는 단언할 수 없다. 소련이 민주화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은 바람직하며 환영할만한 것이라고 솔직히 평가한다. 그러나 거기에따라 일본의 방위정책을 즉시 변경해야만 하는가. 그렇다고는 결코 생각지 않는다. ­소련의 「잠재적 위협」이라는 일본의 구도는 기본적으로 변화가 없는가. ▲지금의 국제정세는 다이내믹하게 움직이고 있다. 정치와 외교는 민주화를 향해 격동하고 있더라도군사적으로는 대단히 어려운 점이 있다. 그것은 양의 동서를 막론하고 마찬가지다. ­앞으로의 세계정세에 대한 견해는…. ▲소련이 배가 고프더라도 다시 레닌ㆍ스탈린의 시대로 되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민주화노선은 상당기간 지속되지 않겠는가. 같은 의미에서 군축이 정착돼 갈 것이라고 말해도 틀림없을 것이다.
  • 비 2백여차례 여진 /아키노,루손섬전역에 비상선포

    ◎“한국인 2명 사망” 현지 공관 보고 【마날라ㆍ바기오 로이터 AP 연합】 16일 필리핀 루손섬을 강타한 강진으로 공식 확인된 사망자수만도 3백11명,비공식집계로는 5백여명이 사망하고 1만여명이 부상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18일 새벽 피해지역에 또다시 강도 6.3,5.9를 기록하는 두차례의 강진을 비롯,2백여차례의 여진이 발생해 주민들을 공포에 몰아넣고 있다. 북부 바기오시에서는 한국인 1명을 비롯한 5명의 외국인을 포함,1백42명의 사망이 공식 확인됐고 시 외곽 공업단지에서 일어난 화재로 1백50명의 필리핀 근로자들이 사망한 것으로 새로 추정되고 있으며 건물잔해 발굴작업이 진척됨에 따라 사망자수는 5백명이 넘을 것으로 보인다. 코라손 아키노 대통령은 이날 수도 마닐라와 바기오를 포함한 루손섬 전역에 비상사태와 가격통제령 및 1개월간 휴교령을 선포했으며 헬리콥터로 바기오시를 방문한뒤 구호품 수송을 위해 도로를 최우선적으로 복구하도록 지시했다. 바기오의 장의업소인 바기오 메모리얼 홈즈사는 평소 10명의 장의능력을 갖고 있으나 60∼70구의 시체가 밀려들어 관을 비롯한 장의용품이 태부족이라고 밝히고 접수된 시체중 2구는 한국인을 비롯한 외국인의 것이라고 확인했으나 자세한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 진앙지인 카나바투안시에서는 필리핀­미국 합동구조반이 아코디언처럼 허물어진 6층짜리 학교건물의 잔해발굴작업을 계속했으나 50명이상의 어린이들이 매몰돼 있을 것으로 보이는 이 잔해더미에서는 17일밤 이후 신음소리조차 들리지 않아 구조반은 매몰자 전원이 사망했을 것으로 판단,생존자 구조는 포기했다. 한편 프랑스는 이날 구호금으로 18만달러를,호주는 20만달러를,대만은 20만달러를 각각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으며 일본은 30만달러의 구호금과 함께 26명으로 구성된 구조반을 파견,바기오에 도착했다. 지진 발생 직후부터 전기와 수도공급이 중단된 바기오시에서는 앞으로 2∼3주간 계속될 것으로 보이는 여진으로 이미 파손된 집이 무너질 것을 우려한 대부분의 주민들이 한데서 밤을 새우고 있으며 식량과 연료,약품이 떨어져 많은 주민들이 다른 지역으로 속속 빠져나가는 바람에 유령의 도시로 변하고 있다.
  • 알바니아 각료 5명 또 경질/난민 2진 40명 곧 헝가리행

    【빈ㆍ로이터 AP 연합】 일반 국민들의 전례없는 저항에 부딪치고 있는 알바니아 지도부는 9일 각국 대사관에 몰려있는 약 6천명의 난민이 출국을 준비하고 있는 가운데 3일만에 두번째의 지도층 개편을 발표했다. 알바니아 관영 ATA통신은 부총리겸 국가통제위 위원장과 경공업장관,식량산업장관이 퇴임하고 공공사업장관과 대내무역장관이 다른 직책에 전보됐다고 보도했다. 약 6천명의 난민중 반이상은 서독 대사관에 피신하고 있으며 기타는 이탈리아 프랑스,그리고 체코 폴란드 헝가리 및 터키 등의 대사관에 피신했는데 헝가리 대사관측은 그들의 대사관에 있는 40명의 알바니아인들이 체코 대사관 난민들의 예를 따라 곧 출국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으며 유고 대사관 당국자도 유고 대사관 난민들에게도 2일내에 출국에 필요한 서류가 발급될 것이라고 말했다. 【프라하 로이터 연합】 알바니아 수도 티라나 주재 체코슬로바키아 대사관에서 출국을 요구하며 피신중이던 알바니아인 중 1진 51명이 10일 아침 체코 수도 프라하에 도착했다. 공항에까지 이들을 마중나간 체코의 지리 디엔체스트 비에르 외무장관은 『체코에 온 것을 환영한다. 여러분을 도와줄 수 있었던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 알바니아인은 버스를 타기전에 『우리를 자유롭게 해준 하벨 대통령에게 감사한다』고 말했으며 버스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하벨,하벨』을 연호하기도 했다.
  • “미래학의 석학” 다니엘 벨 내한 강연

    ◎“정보ㆍ통신이 「제3의 기술혁명」이끈다”/총체적 사회변동 초래,탈공업화 가속/첨단기술 개발 뒤지면 낙오… 국가가 기반 조성토록 미래학의 세계적인 석학인 다니엘 벨 박사가 한국전기 통신공사(사장 이해욱)의 초청으로 내한,9일 하오 서울 힐튼호텔에서 「지금 우리는 제3의 기술혁명을 맞고 있다」라는 주제로 강연을 했다. 벨박사는 이날 강연에서 『정보통신분야가 주도하는 제3의 기술혁명은 증기력 도입이나 전기ㆍ화학의 혁신에 의한 이전의 두 기술협명보다 훨씬 큰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지적하고 이러한 기술혁명 대열에서 낙오하는 국가는 정체를 면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변화를 수용하고 이행을 순조롭게 하기 위한 사회적 토대를 창출하는 것이 정책수행의 최우선적 과제라고 강조했다. 「이데올로기의 종언」(1960년)「후기산업사회의 도래」(1973년) 등의 저서를 펴낸 벨 박사는 그동안 꾸준하게 미래 정보화사회,즉 탈공업사회에 대한 대변혁을 예고하면서 현제도에 대한 강한 비판과 함께 미래사회를 지향하는 비전을 제시,『앞으로는세계가 하나로 될 것』이라는 주장을 펴왔다. 그는 또 2010년쯤 되면 태평양지역이 세계경제의 중심지가 될 것이라고 예측하기도 했다. 1919년 미국 뉴욕에서 출생한 벨박사는 뉴욕시립대학을 졸업한뒤 「뉴리더」「포천」 등 잡지의 편집장을 지냈으며 시카고ㆍ콜롬비아ㆍ하버드대학 등에서 30여년동안 사회학 교수생활을 했고,현재 하버드대학 명예교수ㆍ미국 전기통신 및 컴퓨터에 관한 국가자문위원회 위원ㆍ미국 2천년위원회 의장 등을 겸하고 있다. 벨박사의 강연요지는 다음과 같다. 우리는 바로 지금 제3의 기술혁명을 맞고 있다. 이 혁명은 증기력의 도입,전기와 화학의 혁신 등 앞서 있었던 두번의 기술혁명이 지구상의 모든 지역에 산업화라는 형태로 끼쳤던 것보다 훨씬 큰 영향을 파급시킬 것이다. 제3의 기술혁명의 근저를 이루는 4가지 변화는 ▲기계적ㆍ전기적 시스템의 전자적변화 ▲전도장치나 전파변환장치의 소형화 ▲정보가 숫자로 표시되는 디지틀화 ▲기술혁신을 이끄는 독립프로그램인 소프트웨어 등으로서,이러한 기술혁신은 이미 발명과 혁신의 단계를 지나 혁명의 파급효과가 확산되는 단계에 접어들었으며 돌이킬 수 없는 대변혁의 시대를 열었다. 우리는 현재의 새로운 변화를 생각할 때 신기술을 사용하기 위한 장치나 방법인 컴퓨터ㆍ전자통신 등을 주로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이들 기술은 사회적 변동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수단과 가능성을 제공할 뿐이며 그 선택과 이용은 각 사회가 책임지게 된다. 신기술의 가장 핵심적인 측면은 「하이테크」라는 말이 암시하듯 각각 분리된 영역이 아니라 사회의 모든 분야에 영향을 끼치고 기존의 모든 사회관계를 재조직하는 총체적 사회변동이라는 점이다. 다음 세대에서는 우리는 컴퓨터에 파묻히게 될 것이며 단하나의 마이크로칩으로 된 컴퓨터가 가정과 직장ㆍ사회를 엄청나게 변화시킬 것이다. 요즘의 컴퓨터는 10억분의1초,또는 1조분의 1초 속도로 계산해낼 수 있으며 심지어 AT&T의 벨연구소에서는 1초에 20억비트를 증폭없이 80마일까지 전송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이는 브리태니카 백과사전 30권 전부를 수초만에 전송할수 있는 속도이다. 통신수단 역시 전화(음성)ㆍ텔리비전(화상)ㆍ컴퓨터(데이타)ㆍ팩시밀리(문서) 등으로 구분하던 개념이 퇴색하고 대신 디지틀 교환방식으로 상호 연결되는 원격전송이라는 단일통합체제로 굳어져 가고 있다. 컴퓨터는 이제 가정ㆍ학교ㆍ직장ㆍ정부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필수불가결한 것이 되어 컴퓨니케이션 사회라는 새로운 말까지 탄생시켰다. 정보통신의 발달과 활용에 따라 도래한 후기산업사회,탈공업사회의 기본적인 활동은 처리ㆍ제어,그리고 정보에 관한 활동 및 인간끼리의 경쟁이다. 후기산업사회의 특징은 「서비스사회」로 압축되며 새로운 종류의 서비스가 계속 생겨나고 확장된다. 확장되는 서비스는 교육ㆍ보건ㆍ사회사업ㆍ사회복지 등과 같이 「인간과 직접관련되는 것」과 분석ㆍ기획ㆍ설계ㆍ프로그래밍 등처럼 「전문적인 것」이 있다. 서비스사회의 확산에 따라 미국의 경우 노동인구의 70% 이상이 전문직ㆍ기술직ㆍ관리직 등 서비스분야에 종사하고 있으며 불과 4%의 농민들이 지금 미국에서 남아돌 정도의 식량을 생산하고 있다. 1990년 당시 농민 비율은 50%였다. 또 통신수단의 비약적인 발전에 따라 탈집중화,즉 탈도시화 현상도 가속되고 있다. 이제까지는 수송수단ㆍ자원ㆍ에너지수단 등에 따라 도시가 이뤄졌었으나 앞으로는 통신수단이 사회의 중추적기능이 됨으로써 사람들이 점차 도시를 떠나 일과생활을 하게 될 것이다. 그동안 사람을 얽매 놓았던 지리적 여건은 더이상 활동의 통제수단이 되지 못하게 될 것이다. 통신에서의 혁명은 인간행위의 규모를 점점 더 변화시키고 있는데,국제사회 역시 점점 더 불안한 상호의존적 경쟁체제로 나아가고 있어 어느 한부분에서의 충격이 전체적으로 큰 파문을 일으키게 된다. 뉴욕이나 도쿄 증권시장이 곧바로 세계증권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좋은 예이다.〈김용원기자〉
  • 북한 경제 위기 시인/정준기 대외연락위장/개방정책 가능성 시사

    【도쿄 연합】 북한 대외문화연락협회 위원장 정준기는 북한이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고 솔직히 인정했으며 이는 북한이 경제면에서 부분적으로나마 개방정책을 취할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한 것으로 보인다고 아사히신문이 4일 평양발로 보도했다. 이 신문은 정준기가 일조 우호방문단을 수행취재중인 일본 기자들과 회견한 자리에서 『최근 3∼4년간 큰 가뭄이 들어 「식량정책」이 일부 영향을 받았다』면서 『인민이 유복하다고는 할 수 없으나 평등하게 살고 있다』고 말한 것으로 전했다. 정준기는 북한이 추진중인 제3차 7개년계획(87∼93년)에 관해 설명하는 가운데 『현재의 석탄 생산량은 8천5백만t으로 목표량 1억2천만t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으며 철강 생산량도 7백만t에 그쳐 목표량 1천만t에 미달되고 있다』고 구체적 수치를 들어 설명했다. 한편 아사히는 정이 이례적으로 구체적 수치를 들어 가며 북한이 놓여 있는 경제상황을 솔직히 밝힌 것은 정치적으로는 노동당 일당독재를 유지하고 김일성­김정일로 이어지는 세습체제를굳히면서도 소련·동구 등 국제정세의 격변을 받아들여 경제면에서는 부분적이나마 개방정책을 취할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고 말했다.
  • 알바니아 변혁의 도화선될 가능성

    ◎「반정인사 대사관피신」의 배경과 파장/「장벽붕괴」부른 동독인 대탈출과 흡사/40년 일당독재ㆍ개혁늑장에 불만 표출 지난달 28일부터 시작된 것으로 알려진 알바니아 반체제인사들의 외국대사관 피신사건은 향후 알바니아 정국에 전면적인 변혁을 몰고올 하나의 정치적 도화선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세계의 이목을 끌고 있다. 특히 동구권국가 가운데 가장 느린 개혁속도를 보이던 알바니아에서 지난 며칠동안 반정부소요가 발생해 4백여명의 반체제 인사들이 수도 티라나주재 외국대사관으로 피신,이 가운데 일부가 정치적 망명을 요청하고 나선 이번 사태는 지난해 베를린장벽 붕괴의 도화선이 됐던 동독인들의 동구주재 서독대사관 피신사건과 그 양상이 흡사하다는 점에서 남다른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현지 외교소식통들은 『4백여명의 알바니아인들이 대사관으로 피신하기 위해 담을 넘거나 트럭을 이용해 대사관 정문으로 돌진해 왔으며 알바니아 보안군은 이들에게 총격을 가해 적어도 4명 이상이 부상했다』고 전하고 『현재 티라나주재 10여개 대사관에는 모두 4백여명이 피신중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동구의 대변혁에도 불구하고 스탈린식 공산독재체제를 고수해오다 최근 굳게 걸어 잠갔던 빗장을 서서히 풀고 「위로부터의 점진적 개혁」을 시도해온 알바니아 알리아 정부가 이번에 직면한 사태의 표면적 원인은 지난 5월8일 발표한 여행자유화 조치와 새로운 여권법이 지나치게 차별적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지난 40여년 동안 공산당 일당 독재하에서 누적돼온 국민들의 불만이 개혁물결을 틈타 폭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인구 3백만명에 1인당 국민소득 9백만달러를 밑도는 알바니아의 현경제상황은 정치ㆍ경제ㆍ외교적으로 자주 고립노선을 선언한 지난 70년대 중반보다 오히려 더 악화됐으며 높은 실업률과 생필품부족은 개선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특히 최근 수년간 알바니아를 강타한 가뭄으로 식량마저 바닥나 국민들의 불만은 최고조에 달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때문에 알바니아의 최고통치권자 라미즈 알리아 노동당 제1서기는 국민들의누적된 불만이 현 체제의 붕괴를 가져올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에서 지난 5월 중앙집권경제체제를 완화하고 개인의 인권을 보장하는 제한된 개혁조치를 단행한 바 있다. 그러나 알리아정부는 이같은 민주화개혁조치를 단행하면서도 사회주의체제 강화라는 단서를 단채 루마니아식의 형식적 개혁만을 추진,국민들의 개혁열망을 수용하는데 미흡할 수 밖에 없었다. 이번 사태와 관련,알바니아관영 ATA통신은 『외국대사관으로 피신한 알바니아인들이 「범죄자」와 「징집통지서를 받은 청년들」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현지 서독소식통은 『이들은 알바니아의 반체제인사들』이며 『서독정부는 이번 사건은 유럽경제공동체(EEC)회의에 상정,공동입장을 취할 것』이라고 밝혀 이에 대한 대응이 알리아의 개혁의지를 가늠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으로 관측통들은 내다보고 있다. 유럽안보협력회의(CSCE)에 가입의사를 밝힌데 이어 국민들의 해외여행을 허용하는 등 일련의 개혁조치를 취해온 「동구의 고도」 알바니아가 이번 사태를 계기로 동구대변혁의 「막차」에 오르게 될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 “「시장경제」 서두른 나라가 잘산다”(차동세의 경제기행 동구:하)

    ◎헝가리,비교적 부유… 체코는 훨씬 궁핍/개방ㆍ개혁 이끌 「경영두뇌」없어 애태워 1인당 국민소득통계로 보면 폴란드가 소련보다 훨씬 못사는 나라여야 하는 데도 공중에서 내려다 본 폴란드의 모습은 소련보다 훨씬 나아 보였다. 농장의 집들도 제법 깨끗했고 길거리에 차들도 더 많았다. 만나본 사람들도 소련보다는 활기차 보였으며 어느 정도 개혁에 대한 확신이 있어 보였다. 시장경제에 대한 예비지식도 꽤 축적되어 있는 것 같았다. 동독 체코 헝가리 등 방문 5개국중 헝가리가 가장 잘 살고 그다음이 동독 체코 폴란드이고 소련이 가장 못사는 것 같았다. 국민의 실제 생활수준은 국민소득에 관한 통계와는 거의 정반대였다. 시장경제를 가장 먼저 도입한 나라가 생활수준도 가장 앞서있고 시장경제도입이 늦은 나라는 가장 뒤져 있는 셈이다. 경제발전에 있어 시장의 힘이라는 것이 그토록 강한 것에 새삼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번 방문국중에서 폴란드의 농가가 유독 잘 살아 보였고 주택도 농장도 깨끗이 정돈되어 있는 것을 보고 의아하게 생각되어 물었더니 폴란드에서는 공산주의 체제하에서도 농토만은 80%가 사유지라는 것이었다. 공산주의하에서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는지 의문스럽기도 했지만 어떻든 현재 폴란드에서는 식량이 오히려 남아도는 이유를 알수 있었다. 동구권국가들 대부분이 그렇지만 특히 동독사람들은 자기들이 언제 공산주의자였더냐는 듯 하였으며 그들의 머리속에는 이데올로기 대신에 독일민족의 위대함과 경제적 풍요에 대한 기대가 가득차 있는 듯하였다. 동독 사회과학원 간부급인사에게 독일이 통일을 눈앞에 두고 있는 것을 보니 같은 분단국의 국민으로서 대단히 기쁘다는 말과 함께 남ㆍ북한도 가까운 장래에 통일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가 뒤통수를 한대 얻어 맞았다. 그의 얘기인 즉,독일의 경우와 한국의 경우는 사정이 판이하다는 것이다. 독일은 비유하면 사랑하는 남녀가 부모에 의해 강제로 떨어져 살아온 격이지만 남ㆍ북한은 서로 치고 받고 싸우는 것을 부모들이 겨우 떼어말려 놓은 것과 같지 않느냐고 했다. 또 하나 동독은 오래전부터 서독과 교류를 실행해왔고 서로 내왕이 있었으며 김일성이 같은 독재자도 없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남ㆍ북한 통일에 대해 너무 성급한 기대를 하지 않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반문하는 것이었다. 눈앞이 캄캄하고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로 약이 올랐지만 할 말이 없었다. 결국 무안을 당한 꼴이 된 채 겨우 늘어 놓은 변명은 베를린장벽도 그렇게 쉽게 무너질 줄은 아무도 모르지 않았느냐. 그러니 우리의 휴전선도 어느날 갑자기 무너져 내릴지 모르지 않겠느냐는 말로 대신하였다. 일부러 시간을 내어 동서독분계초소를 지나 서베를린에 가서 저녁을 먹었다. 한국인이 경영하는 식당에서 모처럼만에 김치를 실컷 먹고 나니 속이 얼얼하였지만 살것만 같았다. 그러나 서베를린의 번화한 모습과 바로 경제하나 넘어 동베를린의 침울하고 정체된 모습이 너무나 큰 대조를 이루어 그것이 인간의 장난인가 아니면 신의 조화인가 실로 감회가 착잡하였다. 체코에서는 19세기에 지어진 왕궁의 하나를 사무실로 쓰고 있는 과학원산하 경제연구소를 방문하였다. 서구세계 같았으면국보급 문화재로 지정해 놓고 박물관이나 기념관으로 써야할 왕궁을 삐거덕거리는 소리가 나는 마루며 무너진 벽,망가진 화장실을 고치지도 않고 그대로 사무실로 쓰고 있는 모습을 보고 계획경제란 것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를 다시 한번 실감하였다. 천장의 화려한 벽화가 부서진 난간이나 허물어진 벽과 좋은 대조를 이루었다. 경제가 무너지면 문화도 긍지도 자존심도 다 무너지는 것인가. 체코경제연구소의 한 경제학자는 동구권국가들의 공통된 애로사항은 시장경제를 이끌어 갈 기업인이 없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경제건설을 위해 가장 다급한 것은 시장원리에 따라 상품을 만들어 국내에도 공급하고 세계시장에 수출하는 일인데 막상 그일을 수행해 낼 경험있는 기업인이 없어 큰 문제라는 것이다. 우리와는 퍽 대조적인 상황이었다. 부르주아계급으로 지탄받아야 할 사회주의 국가에서 파탄에 이른 경제를 되살려 내 줄 기업인을 애타게 찾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이번 여행 마지막 체류국인 헝가리에서는 서구 여느나라와 별차없는 자유로운 분위기를 맛볼 수 있었다. 수도 부다페스트에서는 상점마다 각종 소비재가 수북이 쌓여 있었고 시내 번화가에는 세계유명브랜드 상품을 파는 패션상점도 즐비해 있어 사람사는 곳 같았다. 사람들의 얼굴모습도 한결 활기차고 무엇인가 하려는 의욕에 넘치고 있었다. 이번에 돌아본 동구권국가들은 모두 지금 시장경제의 도입이라는 엄청난 개혁의 물결속에 휩싸여 있었고 서방의 기술과 자본을 끌어들이는 데 혈안이 돼 있었다. 그들은 두려워하면서도 개혁에 마지막 승부를 걸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러한 혁명적인 변화를 보고 지금은 경제가 어려우니까 시장경제니 개혁이니 하며 떠들지만 일단 급한 불만 끄고나면 다시 공산주의로 되돌아가는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 여러 사람들에게 공산주의로의 회귀가능성을 묻는 유도성질문을 해보았다. 그들의 대답은 한결같이 그럴 가능성은 결코 없다는 것이었다. 그 이유로 그들은 처음부터 공산주의가 아니었는데도 소련의 힘에 눌려 할수 없이 공산체제를 택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역사적으로도 소련은 줄곧동구권국가들을 침략하고 괴롭혀 왔기 때문에 비록 소련이 다시 옛날로 돌아간다 해도 그들은 이번기회에 완전히 소련의 영향권에서 벗어나기를 바란다는 것이었다. 그들의 얘기에는 충분한 설득력이 있었다. 결국 소련을 비롯한 사회주의국가들의 계획경제가 참담하고 쓰라린 실패로 끝나게 된 것은 근본적으로 사회제도와 인간본성의 괴리 때문이라 생각된다. 그러나 보다 현실적으로는 경제문제의 해결에 관한 한 정부관료와 정치인들의 치밀한 머리로 짜낸 그럴듯한 경제조치들이 엉성하고 결점투성이 같아 보이는 시장기능 보다 훨씬 못 하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데 직접적인 원인이 있다고 하겠다. 인간은 이윤추구와 개인의 욕망충족을 위해 일할 때는 보람을 느끼고 기운도 나지만 자기가 원하지 않는 일을 할 때는 한낱 무기력하고 쓸모없는 존재로 변해 버린다는 사실을 이번 여행에서 눈으로 직접 확인한 셈이다.
  • G77그룹ㆍFAO회의/한국,의장국으로 피선

    우리나라가 G­77그룹 로마지역회의 및 FAO(국제식량농업기구)관계 국제회의의 의장국으로 선출됐다. 2일 농림수산부에 따르면 이탈리아 로마에서 지난달 21일 개최된 G­77 아시아 그룹회의에서 회원국들의 만장일치로 한국이 로마지역회의와 FAO등 국제농업 관계회의에 아시아지역을 대표할 의장국으로 선출됐다는 것이다.
  • 분단 45년… 북한의 생활상 어떻게 이질화됐나

    ◎다른 길로 달린 「남과 북」… “한핏줄의 이방인”/서울신문 6ㆍ25 40주 특집 한핏줄의 남북한은 하나의 역사,하나의 언어,그리고 공통된 생활관습 등을 지켜왔다. 그러나 1945년 해방과 더불어 분단의 길로 들어선 남과 북은 6ㆍ25전쟁이라는 민족최대의 비극을 겪으면서 분단이 고착화됐고 이 결과 전쟁후 40년이 지난 오늘까지 삶의 모든면에서 이질화가 심화되어 왔다. 최근 동서독이 통독의 길로 나아가는등 세계의 냉전구조가 타파되면서 세계유일의 분단국이 되고만 한반도에도 냉전의 장벽을 허물어 뜨릴 수 있는 변혁의 물결이 밀려들고 있다. 분단 45년,전쟁발발 40년이 지난 오늘 제각기 달려온 남과 북의 삶의 모습이 어떻게 변화됐고 이질화됐는가를 살펴봄으로써 언젠가는 맞이할 통일에 대비해 서로가 극복해야 할 과제로 삼고자 한다. ◎문화ㆍ예술/인간개조의 도구화… 순수예술 명맥 끊겨 지난해 우리는 두개의 서로 다른 경험을 했다. 그 하나는 비록 결렬되고 말았지만 북경아시안게임 출전을 위한 남북단일팀 구성논의에서 「아리랑」을 단가로 하자는데 양측이 비교적 손쉽게 합의,문화적 민족정서의 공유가능성을 확인한 일이다. 또 하나는 남북이산가족의 재회를 무산시킨 이른바 북한의 혁명가극 「꽃파는 처녀」와 「피바다」 공연여부를 둘러싼 논쟁에서 실감했던 남과 북의 현저한 문화ㆍ예술관의 차이다. 이렇듯 남과 북의 문화ㆍ예술은 공감대를 같이하는 한 뿌리에서 출발했으나 분단이후 45년간 서로다른 이념과 사회체제 속에서 이질화의 과정을 밟아옴으로써 오늘의 남과 북사이에는 엄청난 높이의 문화적 장벽이 가로놓이게 됐다. 한국의 문화정책이 이어령 문화부장관의 구상처럼 『후기산업사회로의 급격한 전환에 따른 세대간ㆍ계층간ㆍ지역간ㆍ성별간의 이질화와 갈등현상을 문화의 힘으로 치유』하는데 놓여져 있다면 북한의 문화ㆍ예술은 주체사상과 3대혁명에 입각한 공산주의적 정치사회화의 수단적 목적만을 강조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북한의 문화예술은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의 기초하에 체제보위 및 최고통치자에 대한 우상화 및 공산주의적 인간개조를 위한철저한 도구로 기능함으로써 전통적 순수예술의 성격은 물론 대중예술과도 거리가 먼 주체예술ㆍ혁명예술ㆍ이데올로기예술로 변모돼 있다. 가령 북한가요 45년사에서 3대명곡으로 꼽히고 있는 「조선의 별」,「김일성장군의 노래」「동지애의 노래」 등이나 최고의 명작으로 꼽히는 시작 「묘향산의 가을날에」,80년대 최고의 미술작품이라는 「강선의 저녁노을」 등은 모두가 김일성과 관련된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북한의 문화ㆍ예술의 성격을 대변해 주고 있다. ▲사상성이 좋고 ▲가사가 좋으며 ▲선율이 부드럽고 지루하지 않다는 점에서 불후의 「혁명송가」라는 「조선의 별」은 김일성이 항일빨치산 투쟁을 할때 그의 추종자들이 김일성을 흠모해 지었다는 노래이며,「동지애의 노래」는 김일성에게 충성을 다할 것을 촉구한 노래이다. 「강선의 저녁노을」은 남포시 강선제강소를 소재로 김일성을 찬양한 조선화이며 주체예술의 상징인 5대혁명가극의 하나인 「피바다」는 항일혁명투쟁을 주제로 김일성의 주체사상을 앞세운 목적극이다. 특히 6ㆍ25전쟁 전까지 순수예술과 목적예술간의 대립속에서 독자적인 영역을 개척하지 못한채 주로 소련에 의존해왔던 북한의 문화ㆍ예술은 전쟁중 전쟁의식을 고취하는 내용의 전쟁영웅 형상화에 몰두,목적예술적 경향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후 전후복구와 「주체」의 슬로건 등장등 상황적 요청에 따라 문예정책은 사회주의 건설에 역점을 두는 새로운 전형을 형상화하는 한편 소련식 문화활동에서 탈피,김일성체제를 뒷받침하는 혁명전통확립과 주민들에 대한 공산주의 교양을 주제로 한 창작활동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또한 자연만을 노래하거나 예술지상주의 태도는 반혁명적이고 형식주의적인 문화예술이라는 인식하에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와 ▲당성ㆍ계급성ㆍ인민성의 구현이 모든 창작활동중에서 반드시 지켜야할 원칙으로 대두됐다. 현재 북한에서는 이러한 문화예술의 원칙과 과제의 이행을 지원하기 위해 작가 미술가 영화인 연극인 무용가 사진가 등 모든 예술인들을 망라한 조선문학예술총동맹이란 조직이 결성돼 있으며 당은 이 조직을 통해 각 분야 종사자들에게 창작 및 공연활동계획서의 제출을 강요,▲혁명전통(30%) ▲전쟁(30%) ▲사회주의건설(20%) ▲조국통일(20%) 등 4개 주제별로 창작활동을 하도록 하고 있다.◎의식구조/어휘마다 정치색… 전투ㆍ파괴적 성격 강조 『서울말은 남존여비사상과 썩어빠진 부르주아적 생활이 지배하는 말로서 오늘 남조선방송에서는 여자들이 남자에게 아양을 떠는데 쓰이는 코맹맹이 소리를 그대로 쓰고 있으며,그것마저 고유한 우리말은 얼마 없고 영어 일본말 한자어가 반절이나 섞인 잡탕말이다. 우리는 혁명의 수도이며 요람지인 평양말을 기준으로 해야한다. 오늘 평양말은 서울말보다 비할 바 없이 우월하다』 김일성이 1969년 평양말을 「문화어」로 삼은 이유를 설명한 교시의 내용으로 북한의 언어정책을 잘 보여준다. 김일성은 또 「표준말」이란 용어 대신 「문화어」를 쓰는 이유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표준어라고 하면 마치도 서울말을 표준하는 것으로 그릇되게 이해될 수 있으므로 그대로 쓸 필요가 없다. 「문화어」란 말도 그리 좋은 것은 못되지만그래도 그렇게 고쳐쓰는 것이 낫다』 특히 북한은 「언어를 혁명투쟁과 건설사업의 힘있는 무기」로 보는 언어관을 토대로 일찍부터 용의주도하고 치밀한 언어정책을 펴옴으로써 분단 45년이 지난 현재 남북한간에 벌어지고 있는 언어의 이질화는 단순한 언어 자체의 문제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남북한간의 사고와 행동양식 및 의식구조의 이질화에까지 파급되고 있다. 실제 북한에서는 언어를 씩씩하고 힘있는 무기로 다듬는다는 명분하에 『미제의 각을 뜨자』『돌탕을 쳐 죽이자』는 등의 살벌하고 소름끼치는 말들이 공공연히 사용되고 있다. 언어가 인간의 사고와 성격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않음을 감안할때,북한의 이같은 극단적인 언어관과 언어정책은 결과적으로 이러한 언어를 쓸 수 밖에 없는 북한주민자신을 공격적이고 전투적이며 파괴적인 성격으로 만드는 잠재요인이 된다는 점에서 남북한간의 언어이질화에서 빚어지는 문제의 심각성이 있는 것이다. 북한의 언어정책은 1949년에 단행된 한자폐지와 이에 따른 한글전용정책에서 시작된다. 문맹퇴치와 인민대중의 조속한 사상교육을 목표로 추진된 한자폐지는 결과적으로 한글전용화로 이어졌고 이결과 북한의 각급학교 교과서 문예작품 신문 및 대중매체에서 한자는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다만 한자교육은 통일후 남한문헌을 읽기 위해 또한 고전연구를 위해 하나의 외국어처럼 전공과목으로서만 남게됐다. 한글전용에 이어 가로쓰기도 시행되었으나 한자어의 어원을 가진 낱말을 한글로만 표기,잘못 사용하는 경우가 속출하면서 「말다듬기운동」이 새로 일어났다. 이에 따라 1954년 일제하 조선어학회에서 제정한 「한글맞춤법 통일안」을 수정한 「조선어철자법」이 생겨났고 1966년에는 「조선말규범집」과 함께 「문화어」라는 새로운 개념의 어휘까지 등장했다. 문화어의 등장은 남북한간 언어이질화의 본격적인 시발점이 되고 말았는데 그 성격은 서울말을 배격하고 평양말을 토대로 다듬은 그들의 공용어를 표준어로 삼는 데 있다. 한편 한자폐지와 한글전용,말다듬기운동의 결과 새로운 사전의 편찬이 불가피하게 됐는데 1968년 나온 「현대 조선말사전」의 경우 18만어휘가 수록됐던 「조선말사전」(61년)에 비해 어휘가 5만으로 크게 줄었다. 그 이유는 한자가 하나도 없고 옛말 사투리 고유명사 및 이른바 「퇴폐적 사상표현」등을 완전히 제외했기 때문. 또 어휘마다 정치성이 담겨져 있어 김일성의 인용구는 굵은 활자에 별표까지 달아놓았다. 현재 남북한의 언어는 발음의 차이,리듬의 차이,억양의 차이 등과 같은 음성학적인 차이를 비롯해 어휘ㆍ문법ㆍ의미ㆍ문체 및 맞춤범 등 언어전반에 걸쳐서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는데 가장 심각한 차이는 어휘부문에서 나타난다. 예를들면 산책길→유보도 채소→남새 화장실→위생실 고기잡이→추어전 개고기→단고기 도시락→곽밥 레코드→소리판 대중가요→군중가요 투피스→동강옷 커튼→창문보 그룹→그루빠 소년단→삐오네르 주제→쩨마 등이다. ◎경제생활/「남농북공」무너져 GNP 남한의 12%/생필품 부족… 암시장 쌀값 배급의 18배 8ㆍ15해방 당시 남북한의 산업배치는 「남농북공」으로 일컬을 만큼 지역적 보완관계가 가능한 상태였다. 그러나 뜻하지 않은 남북분단으로 이같은 보완관계는 무너졌으며 설상가상으로 6ㆍ25가 남과 북 모두의 각종 산업시설을 파괴,경제활동의 토대조차 송두리째 무너뜨리고 말았다. 이후 남과 북은 40여년간 천연자원 및 산업구조의 불균형이라는 악조건속에서 통합적 발전이 아니라 개별적이고 분리적인 발전을 계속해왔다. 서로 다른 이념과 체제로 굳어진 한국과 북한은 각기 다른 경제질서를 형성ㆍ유지하면서 치열한 체제경쟁을 벌여왔고 이 결과 88년을 기준으로 국민총생산액(GNP)의 차이는 한국이 북한에 비해 8배나 앞서는 비교우위로 나타났다. 한국은 62년 제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에 착수한 이래 고도의 경제성장을 거듭,개발도상국에서 일약 중진국의 일원으로 도약했다. 1960년 1백달러 미만이었던 1인당 국민소득은 89년말 현재 5천달러에 육박해 있다. 반면 6ㆍ25로 인해 공업생산 수준이 1949년에 비해 3분의 2 수준으로 떨어진 상태에서 출발했던 북한경제는 전후복구 3개년계획(1954∼56년)과 뒤이은 5개년계획(1957∼61년)에서는 이례적으로 높은 성장을 기록했으나 그후 침체의 늪에 빠져들었다. 이에 따라 북한은 70년대전까지만 해도 한국에 비해 부분적인 비교우위내지는 형평을 유지해 왔으나 이후부터는 전분야에서 큰 격차를 보이고 있다. 체제가 다른 북한의 국민총생산액등 각종 경제지표의 개념은 우리와 크게 다를 수 있지만 국토통일원이 북한의 각종 선전자료를 검토ㆍ분석해 추정한 수치는 다음과 같다. 국민총생산액은 88년을 기준으로 2백6억달러로 우리의 1천6백92억달러에 비해 8분의 1 수준이며 1인당 GNP는 9백80달러(한국 4천40달러),자동차 생산능력은 연간 2만대(한국 1백70만대),TV보유율은 10%(한국 1백%),전화는 7%(한국 67%),냉장고는 6.5%(한국 79%) 등이다. 한편 북한주민의 의ㆍ식ㆍ주는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소비하는」 평등한 방식에 의해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직종과 직급에 따라 차등적으로 지급되는 임금과 그 임금에 따른 불균형한 소비형태로 이뤄지고 있다. 임금은 당간부 및 고위직 군인의 급료가 상대적으로 높으며 사무직보다는 기술직이 높다. 또 경노동 보다중노동이,중노동 가운데도 위해노동종사자들이 더 많은 임금을 받으며 85년부터는 「사회주의적 노동보수제」가 도입돼 동일직종이라도 숙련도나 생산성 등 노동의 질에 따라 급수를 달리하는 「차등임금제」가 실시되고 있다. 북한은 이같은 화폐소득의 차이를 완화하기 위해 보건ㆍ교육분야를 국가예산으로 충당하는 한편 대중소비물자의 가격을 낮게 책정하고 사치품의 가격을 높게 매기고 있다. 이에 따라 쌀ㆍ채소ㆍ옷감ㆍ비누ㆍ치약 등 생필품의 경우 아주 싼값으로 공급되는데 가족수와 연령,직업에 따라 품목과 수량,종류가 정해진 구입카드에 의해 국영상점에서 구입한다. 그러나 최근 몇년간 「먹는 문제」의 해결이 최우선 과제이듯이 국가에서 싼 값으로 공급하는 생필품의 배급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일반주민들은 부족분을 구하기 위해 1㎏당 8전에 불과한 쌀을 「장마당」이라고 부르는 암시장에서 이 가격의 18배가 넘는 1㎏당 15원에 구입하려해도 어려운 실정이다. 주택은 협동적 소유로 행정당국에 의해 직업과 직급에 따라 차등적으로배분되며 그 보급율은 70% 안팎. 북한은 주택건축률이 경제발전을 대변하는 전시적 기능이 크고 남북한 사회비교의 중요한 징표가 된다는 점에서 70년대 이후 평양ㆍ남포ㆍ원산ㆍ함흥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현대식 고층아파트를 신축하는 한편 농촌의 문화주택을 2층 3가구용,3층 5가구용으로 다양화하고 문화적으로 보이도록 하는 등 주거양식에 상당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또한 북한은 지난 40년간 중공업위주의 경제정책을 펼친 결과 주민들의 소비생활이 크게 압박을 받아 불만의 소리가 높아지고 있다는 판단에 따라 지난해를 「경공업의 해」로 지정하는 등 최근 경공업발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생활풍습/“봉건잔재 없앤다” 관혼상제도 통제ㆍ규격화 북한은 우리민족의 전통적 예의범절에 대해 『봉건지배계급이 착취하는데 편리하게 만들어 놓은 규칙』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우리민족 고유의 예절이나 유교적 도덕관은 북한의 사회주의체제와 당의 이익에 맞도록 변형되어 있다. 또 관혼상제를 포함한 전통적인 민속과 세시풍속 등도사회주의적 내용으로 변질됐다. 북한에서의 결혼은 『철저히 동지적이고 혁명적인 관계에 의해 이뤄지며 일생을 동지로서 당과 수령께 충성할 수 있는 정신적 풍모가 조건이 된다』고 정의되고 있다. 따라서 결혼연령도 노동과 생산력을 높이기 위해 남자 29세 여자 26세로 제한해 놓고 있으나 불만이 많아 80년대 이후에는 조혼추세가 묵인되고 있다. 배우자선택은 중매(60%)와 연애(40%)가 병행되고 있으나 최근 북한의 남녀대학생들은 서로 손을 잡기도하고 데이트를 즐기는 등 연애결혼 풍조가 확산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일반 노동자계층의 남녀가 만나는 채널은 연애보다는 부모 친척 등을 통한 중매가 지배적이다. 신랑감으로는 직업에 관계없이 평양거주총각이 최고의 배우자로 꼽히고 있으며 길흉을 가리는 결혼의 택일 풍습은 사라져 대개 일요일이나 공휴일에 치러진다. 회갑이나 생일,돌잔치는 50년대에는 경제적 여유가 없다는 이유와 식량절약이라는 명분으로 일체 금지되었으나 60년대 후반기부터 묵인되고 있다. 그러나 「60청춘 90회갑」이라는 구호아래 공식적인 회갑잔치는 거의 치르지 못하고 있으며 고위간부의 경우에만 김일성이 하사하는 일정한 규격의 회갑상을 받는다. 장지는 지정된 공동묘지만을 쓰도록 돼있다. 상복은 따로 만들어 입는 것이 없고 머리에 건을 쓰고 팔에는 검은 천을 두른다. 장례식과 매장은 도시의 경우 녹화사업소,편의협동조합 등이 맡아서 처리해 주며 직계존속이 사망했을 경우 상주에게는 3일간의 공식휴가와 장례보조금 10원,쌀 1말이 배급된다. 제사도 다른 풍습과 같이 6ㆍ25전까지는 별다른 통제를 받지 않았으나 휴전후부터 단속대상이 되었었다. 그러나 60년대 후반기부터 추석에 성묘하는 것과 직계존속에 대한 탈상까지의 제사는 묵인하고 있다. 또한 북한은 60년대 중반까지 「봉건잔재를 뿌리 뽑아야 한다」는 김일성 교시에 따라 추석등 고유의 세시풍속을 공식명절에서 제외하고 김일성의 생일,김정일 생일,북한정권 창건일,노동당 창건일,사회주의 헌법제정일 등을 「사회주의 명절」로 지정,공휴일로 해왔으나 지난 88년부터 추석 음력설 단오 한식 등을명절로 부활시켰다. 또한 70년대까지만 해도 인민복,검은 통치마 차림이었던 주민들의 옷차림이 두드러지게 바뀌기 시작해 80년대 중반이후부터는 남자는 양복이나 잠바,여자는 양장이나 짧은 치마차림이 보편화됐으며 머리모양이 다양해지고 화장을 한 여자들도 눈에 띄기 시작했다. 그러나 올해초부터 시행될 것으로 보이던 주민들의 부분적 여행자유화 조치가 전면 보류됨으로써 일반 주민들의 북한내 여행 및 휴가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이에 따라 금강산ㆍ묘향산 등 유명관광지의 이용자는 주로 외국인 관광객이며 주민들의 경우 공장ㆍ직장별 단체관광 정도일 뿐 가족단위의 여행은 거의 없다. 따라서 북한주민들의 주요한 오락수단은 TV와 라디오이다. 또 최근 바둑협회가 새로 결성되고 실내 골프장이 생기는 등 부분적인 변화가 있으나 대중이용은 상상조차 할 수 없으며 주민들이 가장 많이 즐기는 놀이는 주패놀이로 불리는 서양식 카드놀이와 장기이다. 가정생활은 지난 80년 『셋은 양심이 없습니다. 둘은 많습니다. 하나가 좋습니다』라는 김정일의 지시이후 가족계획이 보편화되기 시작해 점차 대가족에서 핵가족 형태로 옮아가고 있다. 남녀평등권에 관한 법령이 제정되는 등 남녀평등이 제도적으로 보장돼 있으나 실제로는 가부장적 사회가 유지되고 있으며 여자들이 가정경제의 주도권을 쥐고 있다. 남편들이 봉급을 타서 여자들에게 넘겨 주기는 우리와 마찬가지다. ◎언론ㆍ교육/비판기능은 무시… 선전ㆍ선동의 매체로 활용 최근 북한은 소련언론들의 잇따른 대북한 비난보도에 대응,소련의 평양주재 기자들에 대한 취재봉쇄조치를 취한데 이어 타스통신기자 1명을 추방함으로써 내외의 관심을 끌었었다. 특히 북한은 『우리 혁명을 지지하는 기사를 쓰라,그러면 당신들의 요청이 충족될 것』이라고 주장한데 반해 소련언론들은 북한언론들의 보도태도와 관련,「목적지향성」보도에만 집착할뿐 진실을 숨기고 있다고 비난해 같은 사회주의 국가이면서도 북한과 소련의 언론관이 상이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줬다. 현재 북한에서 발행되는 신문은 노동당기관지인 「로동신문」과 정무원기관지인 「민주조선」을 비롯해 도단위 일간지 등 모두 30여종. 방송은 TV의 경우 「조선중앙TV」(평양TV)「만수대TV」「개성TV」 등 3개가 있고 라디오는 「조선중앙방송」「평양방송」「구국의 소리방송」「평양인민 FM방송」 등이 있다. 북한에 있어 언론이란 「김일성의 교시와 당의 정책을 해설ㆍ선전하며 그것을 철저히 비호ㆍ관철하고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가일층 강화하여 인민들을 수령의 두리에 튼튼히 묶어세우는데 복무해야 한다」는 정치사전(73년도판)의 규정처럼 정치선전도구의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다. 또한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기사가 아닌 모범적이고 감동적인 이야기로써 사람들을 교양해야 한다는 김일성의 교시(1960년 11월)에 따라 우리의 사회면 기사에 해당되는 범죄나 비행ㆍ사고 등의 기사는 신문ㆍ방송 등 언론매체에 일체 실리지 않는다. 우리의 언론들이 사회의 비리ㆍ부조리 등을 파헤침으로써 비판적인 기능을 하고 있는데 반해 북한은 긍정적ㆍ모범적인 기사를 통해 사회를 계도하겠다는 언론관을 고집하고 있다. 또 북한의 언론은 자본주의언론이 중시하는 속보성보다는 매스미디어의 이념적 이용,즉 당의 정책적 선전에 중점을 두고 있다. 특히 「정론성」과 「당성」이 강조되고 있는데 정론성이란 어떤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도하는 것이 아니라 선전ㆍ선동ㆍ조직ㆍ교육ㆍ동원에 필요한 요소들을 가미하여 「사실」을 각색하는 것을 말한다. 한편 북한의 방송은 정무원직속 조선중앙방송위원회의 지도아래 운영되고 있는데 이 기구는 조직ㆍ편제상 정무원에 속해 있지만 당중앙위 선전선동부의 지시와 통제를 받고 있어 사실상 2원화 되어 있다. 북한의 새 학기는 우리와 달리 9월에 시작된다. 북한은 지난 75년부터 유치원 1년,인민학교 4년,고등중학교 6년과정으로 된 「11년제 의무교육」을 실시하고 있으며 우리의 국민학교에 해당하는 인민학교의 취학연령은 만6세. 그러나 만4세부터 시작되는 2년과정의 유치원교육중 「높은반」부터 의무교육기간에 포함되므로 실질적인 의무교육은 만5세부터 시작되는 셈이다. 11년제 의무교육기간에는 수업료는 물론 면제이며 교과서ㆍ교복ㆍ학용품이 무상 또는 일부 부담으로 지급된다. 16세부터 시작되는 고등교육단계로는 2∼3년 과정의 고등전문학교와 교원대학(3년),종합ㆍ단과ㆍ사범ㆍ공장대학(4∼6년) 등이 있다. 현재 북한에는 인민학교 5천여개,고등중학교 4천2백여개,전문학교 5백여개,대학 2백70여개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북한은 80년중반부터 낙후된 과학기술을 진흥하기 위해 각 시도별로 「제1고등중학교」를 세우는 한편 기술계 대학의 수를 크게 늘리고 있다. 학생들은 또 「한가지 이상의 기술과 기능을 소유해야 한다」는 당의 방침에 따라 예능 또는 실업 등의 실기과목을 배우고 있으며 소년단이나 사로청 등의 조직에 의무적으로 가입,단체활동을 한다. 특히 의무노동이 중시돼 인민학교는 연간 2∼4주,고등중학교는 4∼8주,대학교는 12주정도씩 생산현장노동에 참여한다. 한편 북한은 마르크스­레닌주의와 이것을 주체적,창조적으로 적용했다는 「주체사상」을 교육이념으로 삼고있다. 또 계급투쟁을 위해서는 「공산주의적 인간」이,경제발전을 위해서는 「생산기술적 인간」이,전쟁승리를 위해서는 「체력이 튼튼한 인간」이 바람직하다는 「이상주의적인 인간상」때문에 정치사상교양 및 과학기술교육,그리고 국방체육이 북한교육내용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 “말라빠진 감정이 문제로다”/윤남중 새순교회 담임목사(서울시론)

    ◎보리고개ㆍ꿀꿀이죽이 어제 같은데… 「요즘 젊은이들이 왜 그렇게 포악해졌을까?」하고 소위 기성세대들이 모이면 걱정한다. 10대들의 성폭행도 그 도가 점점 심화되고 있다. 각종 범죄형태는 더욱 잔혹해지고 있다. 데모를 했다 하면 투석과 화염병 투척 등 파괴와 피를 보아야 직성이 풀리는 듯한 인상을 보인다. 아무리 자기들의 이해관계가 충족되지 않는다 해서 스승을 감금ㆍ삭발을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자기학교 총장을 내쫓을 수가 있을까? 왜 그렇게 되었을까? 가정교육이 잘못되었다고 한다. 아니면 학교교육이 잘못되었거나 사회구조가 잘못되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연로하신 분들은 『배가 불러서 그래,사흘을 굶겨 놓으면 자기를 알고 세상을 알게 되어 감히 그런 짓은 엄두도 못낼거야!』라고 탄식한다. 구세대적인 관념일지 모르나 옛날 배곯던 시대엔 감히 오늘날과 같은 행동은 상상도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사실 우리 민족은 정이 많은 사람들이다. 홍수가 나고 재난이 났다하면 돈과 쌀과 의류를 언론기관에 기꺼이 보내는 인정있는 사람들이다. 사랑의 쌀 나누기 운동도 너도 나도 줄을 이어 주는 것을 보면 분명히 인정이 있는 백성들이다. 그래서 필자는 이 파괴적인 인성이 정으로 치유할 수 있다고 믿게 되었다. 이제 우리 젊은이들의 눈을 절대빈곤속에서 고통당하는 사람들과 지구촌에 굶어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돌려야 할 때이다. 한국국제기아대책기구(Food For the Hungry International지부)에서 발행한 자료에 의하면 지금 지구촌에서는 1분간에 24명(그중에 18명이 어린이들)이 굶어 죽어가고 있다. 1시간에 1천4백명,하루에 3만5천명,1년에 1천3백만명,그러니까 서울인구 정도가 먹지못해 굶어죽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1983년에서 1985년 3년사이에 후진국에서 전체인구의 21%인 5억1천2백만명이 굶주림으로 고통받았다. 현재로는 7억 이상이 굶주리고 있다. 매년 1천8백명에서 2천만명이 배고파 죽어가고 있는데 그중 1천4백만명이 어린아이들이다. 이것은 매일 4만명의 어린이가 죽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3일동안 일본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폭의 피해보다 더 많은 셈이다. 이와 같이 빈곤의 가장 잔인한 대가는 어린이들의 생명이 희생되는 것이다. 소득이 점점 줄어가지만 가족들의 규모는 커져만 가고 있다. 그 결과 세계적으로 볼때 15세 이하의 어린이들이 절대빈곤에 있는 사람의 3분의2가량을 차지하게 된 것이다. ○하루 4만명 굶어죽어 질병과 충분한 영양 및 깨끗한 음료수의 부족으로 만신창이가 되기 때문에 어린이들 가운데 3분의1은 다섯살이 되기도 전에 죽어간다. 살아남은 아이들 가운데 많은 수는 생후 6개월부터 2년 사이의 중요한 시기에 만성적으로 굶주린 결과 신체적으로 손상을 입고 있다. 1989년도 UNICEF(유엔국제아동구호기금) 보고서에 의하면 한 개발도상국가에서 발전이 주춤해지거나 정체된 결과 지난 12개월 동안 적어도 50만명의 어린이가 굶어 죽었다. 이러한 기근지역의 반 이상은 아시아에 분포하고 있다. 아프리카는 숫적인 면에서는 적지만 굶주린 사람의 비율이 상당히 높은 편이다. 특히 가뭄과 전쟁피해지역은 더 그렇다. 더욱이 이 지역들은 비상식량이나 다른 생필품들이 거의 닿지 못하는 지역들이다. 그래서이 문제로 많은 시골사람들이 도시로 이동하여 판자촌과 빈민가에 정착한다. 후진국에서는 전체 3분의2가 도시로 이동하고 있다. 이러한 빈민국의 특징은 빈곤과 비위생과 높은 실업상태인데 가난은 장소를 옮긴다고 해서 해결이 되는 문제는 아니다. 가난이 그들보다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너무나 배가 고픈 나머지 땅에 기어다니는 생물체는 다 잡아먹는다고 한다. 국제기아대책기구 총재 야마모리 데쓰나오 박사가 페루에 갔을때 어느 아기 엄마가 포장용 상자를 잘게 찢어서 끓인물을 아이들에게 먹이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아마 풀기와 펄프 원료가 국물처럼 보였기 때문에 허기진 배를 채우려는 시도였을 것이다. 필자의 제자중 월남인 바우 목사에게서 들은 이야기이다. 보트 피플들이 바다에서 표류하면서 너무 배가 고파 제비뽑기를 해서 노약자를 잡아먹기로 했는데 그 희생자의 딸이 『제발 아버지의 눈만은… 』하고 절규하더란다. 상황은 다르지만 우리도 한때 굶주렸던 민족이었다. 50대이상 나이의 사람들은 왜정때보리고개와 강제공출후엔 콩깨묵ㆍ소나무껍질ㆍ풀뿌리 등으로 연명했고 해방후와 6ㆍ25전쟁때 꿀꿀이 죽과 미국에서 보내온 구제물자ㆍ시레이션 등으로 살았던 사람들이다. 잡지나 TV화면에서 굶어 죽어가는 사람들,특히 뼈만 앙상하고 머리통은 크고 눈망울이 툭 튀어나오고 눈꼽이 끼고 온몸은 헐었는데 파리떼가 붙었으나 쫓을 기운조차 없는 아기를 안고 있는 엄마의 모습을 볼때 우리는 가슴이 울렁거리고 목이 메이고 눈시울이 뜨거워지는데 전후세대들은 그 참상을 보고도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것을 보았을때 『이 말라빠진 감정이 바로 문제로다!』라고 탄식한다. 우리들의 냉담ㆍ무관심ㆍ몰인정ㆍ무자비가 생명경시로 치닫고 있지 않은가? 최근들어 전후세대들이 해외여행을 많이 하는데 미국을 비롯한 자유세계 등 대개 잘사는 나라들을 보기 때문에 가난과 굶주림을 느끼지 못하고 온다. 오히려 사치와 과소비 풍조를 도입하는 경향이다. 그러나 동남아나 남미와 아프리카 등 앞에서 말한 가난한 나라를 여행해 본 사람이라면 한국에서 태어난 것을 행복하게 생각하고 감사하지 않는 사람은 별로 없다. ○착한 사마리아인 필요 얼마전 일본의 TV대담에서 청소년들을 잘 먹고 잘 사는 나라보다는 동남아나 아프리카 여행을 보내어 해이해진 일본정신을 뜯어 고칠 필요가 있다는 말을 들었다. 바른 자녀교육을 위해서 동정심과 인정을 길러주기 위해 여행할 기회가 있다면 아시아의 기아현장을 구경시킬 필요가 있다. 인간은 물질만으로 사는 것은 아니다. 이웃이 서로 돕고 사랑하고 협력하는 정신을 자연스럽게 심어 주어야 한다. 불한당에 의해 매맞고 상하고 찢겨 고통당하는 나그네를 보고도 못본체 하고 가버린 레위사람과 제사장보다는 상처를 싸매주고 친절히 돌봐준 착한 사마리아인이 나타나야 할 사회이다. 무엇보다 삭막한 우리 사회는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요구된다. 긍휼이란 함께 고통을 경험한다는 뜻인데 예수 그리스도는 그의 산상보훈에서 『긍휼히 여기는 자는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이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과거에 우방국가에 의해 도움받은 우리가 이제 긍휼을 베풀 때이다. 우리보다 더 가난하고 불행한 나라들을 도와야 할 때이다.
  • 고르바초프의 국내시련(사설)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의 금년 여름은 문자 그대로 「무덥고 긴 위기의 여름」이 될 것 같다. 미국방문을 끝내고 귀국하기가 무섭게 제기된 러시아공화국의 사실상의 주권선언은 그러한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발트3국등 소수민족 문제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될 것이며 악화일로의 경제위기와 정치불안을 가중시킬 것이 틀림없다. 그리고 고르바초프대통령이 이들 문제에 대해 효과적이고도 현명한 대응을 하느냐의 여부는 그 자신의 정치생명은 물론 소련과 세계의 향방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 특림없다는 점에서 비상한 주목거리가 아닐 수 없다. 러시아공화국 문제는 고르바초프대통령이 방미길에 오른 지난 5월29일 급진개혁파 지도자 옐친이 러시아공화국 최고회의 의장에 당선되었을때 이미 예고되었던 문제였다. 옐친은 중도온건노선을 지향하는 고르바초프대통령의 개혁이 이것도 저것도 아닌 우유부단한 것이라고 비판하면서 오늘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선 보다 급진적인 개혁을 단행해야 한다고 주장해온 인물이다.그는 러시아공화국 최고회의 의장에 입후보하면서 이미 러시아공화국의 정치ㆍ경제적 주권의 확립을 공약으로 내세웠었으며 고르바초프는 그의 당선을 저지하기 위한 치열한 공작을 전개했으나 실패 했었다. 그가 지도하는 러시아공화국의 주권선언은 소연방 헌법을 완전히 무시하는 것으로 고르바초프 연방대통령에 대한 정면 도전인 것이다. 옐친의 이러한 도전이 그대로 성공을 거둘 것으로는 예상되지 않으나 러시아가 소련 전국토의 70%,인구의 52%를 점하는 중핵의 공화국이란 점에서 큰 위협이 아닐 수 없다. 고르바초프나 옐친 두사람 공히 협력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으며 그 길만이 두 사람이 공생할 수 있는 길이란 점에서 사태를 파국으로까지 몰아가지는 않을 것으로 기대해도 될지 모른다. 민족문제 못지 않게 금년 여름 고르바초프를 괴롭히고 있는 문제는 경제문제다. 집권 5년인데도 좀처럼 개선의 기미를 보여주지 않는 경제는 고르바초프의 가장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경제상태가 나아지기는 커녕 악화되고 있는 데 대한 강한 불만과 불신감이 국민 각계각층에 팽배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급진개혁파와 전통보수파에 공히 설 자리를 제공함으로써 고르바초프에 대한 압력을 가중시키는 결과를 낳는 악순환으로 정치적 불안정을 심화시키고 있기도 하다. 심각한 소비재 부족에 따른 국민적 불만의 해소를 위해 작년말께부터 각종 소비재 수입을 촉진시킨 결과 이제는 심각한 외화부족 사태가 빚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소비재와 식량수입으로 외화의 수요는 급팽창하고 있는 데도 외화수입은 오히려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중요외화 수입원인 석유의 생산이 한계에 이르고 국내소비는 늘고 국제가격은 떨어지고 있으며 또 하나의 수입원인 금의 경우도 페레스트로이카로 빈번해진 파업 등으로 생산량이 줄었으며 무기수출도 데탕트 덕분에 격감하고 있다는 것이다. 외화의 부족사태는 수입에 따른 외화지불의 중단사태를 유발하고 있다. 영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금년 5월 현재 지불치 못하고 있는 수입대금이 1백억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렇게 살펴보면 고르바초프가 당면하고 있는 국내문제에서 고무적인 것은 거의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때문에 그는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의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미국 방문도 그러한 지원을 모색하려는 데 내면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부시 미국대통령은 발트3국 등의 문제는 의식적으로 외면하면서 대소무역협정에 서명하는 등 적극적인 지원자세를 보였다. 냉전과 대결의 세계를 화해와 공존의 세계로 변모시킨 그는 세계의 지원을 받을 자격이 있는 지도자인지 모른다. 7월2일 개막되는 28차 공산당대회가 주목된다. 우리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한국과의 수교에도 동의한 그가 당면한 위기를 훌륭히 극복해 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 한ㆍ소 정상회담 이후 「동북아 역학」진단(전문가 좌담)

    ◎“한반도 긴장완화의 「지렛대」본격 작동”/크렘린,「두개의 코리아」사실상 인정한 셈/중국도 장기적으로 북한개방 유도할 듯/평양,대소의존 높아 「단절」어려울 듯/미군철수 겨냥… 전략차원서 대미접근 가능성/한ㆍ소발전은 서울ㆍ북경 개선의 촉매 노태우대통령과 고르바초프대통령간의 역사적인 한소 정상회담을 통해 수교원칙이 합의됨에 따라 양국관계는 급격히 개선될 전망이다. 이에 따라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정세도 큰 변화의 길을 걸을 수 밖에 없을 듯 하다. 특히 한소정상회담을 격렬히 비난해온 북한이 이같은 사태변화에 어떻게 대처해 갈지,과연 북한도 개혁ㆍ개방정책을 추진해 갈 것인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으며 북한­중국­소련의 북방3각관계가 어떻게 변모해갈지도 궁금하다. 이같은 문제들을 풀어보기 위해 신승권(한양대ㆍ소련정치) 박두복(외교안보연구원ㆍ중국정치) 윤병익교수(통일연수원ㆍ북한정치)의 좌담을 마련했다. □참석자 신승권교수 박두복교수 윤병익교수 ▲신승권교수=한소정상회담을 계기로 양국관계의 급진전과 한반도의 긴장완화가 기정사실화되고 있다. 한국과의 수교원칙에 합의한 소련측의 결정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적어도 금년 3월 이전까지는 북한과 동맹관계를 유지하고 한미군사동맹 관계를 인정하면서 한반도에서의 1코리아(1Korea) 정책을 고수한다는 것이 소련의 입장이었다. 그러나 앞으로는 한소간의 정치ㆍ경제ㆍ문화교류를 발전시킬 뿐 아니라 북한으로 하여금 대남관계를 개선토록 하고 개방과 개혁의 방향으로 압력을 가하는 2코리아(2Korea) 정책을 펴나갈 것이다. 한국과 관계개선은 하되 국교정상화까지는 가지 않겠다고 북한측에 다짐했던 소련이 금년들어 학자와 언론인 등을 통해 김일성체제를 비판하기 시작한 것도 이같은 근본적인 정책변화없이는 불가능 했을 것이다. ▲박두복교수=한소관계의 발전은 장기적으로 한중관계의 발전을 촉진하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중소분쟁 완화이후 한소ㆍ한중관계는 상호 보완적이고 상호 상승적인 작용을 해왔다.우리 정부의 북방정책도 이런 대전제에서 출발했다고 볼 수 있다. ○체제유지에 한계성 ▲윤병익교수=북한도 소련에 대해 상당히 불편한 입장을 표시할 수는 있지만 구조적으로 군사ㆍ경제면에서 대소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소련의 정책을 인정 내지 묵인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북한과 소련관계가 단절되면 공장이 가동을 멈추고 무기공급이나 수리도 불가능한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고 전적으로 수용하기는 어렵고 한소수교와 국제화해 및 한반도 정세변화 상황을 나름대로 대남정책에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2코리아 정책으로 입장을 바꾼다면 북한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조선정권과 대한민국자체를 부인하는 등의 대남전략 기본속성은 그대로 유지하되 한반도의 평화정착 분위기를 최대한 활용,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자는 등의 군사문제 타개책을 내세울 것으로 생각된다. 최근 군축과 신뢰회복,외국군의 단계적 철수를 들고 나온 것은 그런 맥락에서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여러면에서 체제유지에 한계가 있다. ▲박교수=중국은 대북한관계에 있어서 소련보다는 많은 제한요소를 안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소련은 분단극복과제를 안고 있지 않기 때문에 한반도정책을 펴나가는데 있어서 자유롭고 고르바초프 등 지도자들이 2차대전 당시 징집연령에 이르지 않았던 혁명 3세대로 실용주의적 가치체계를 갖고 있으며 군사ㆍ경제적으로 북한에 대해 확고한 제재수단을 갖고 있다. 이에 반해 중국은 대만과의 관계에서 「하나의 중국」 (1 China)정책을 고수하기 때문에 한반도정책에 있어서도 행동반경이 좁고 등소평을 비롯한 실세지도층이 혁명 1세대들이다. 따라서 한반도에서 한국을 인정하게 되면 결국 2코리아 정책을 받아들이는 꼴이 돼 1차이나원칙과 배치되는 모순을 자초하게 된다. 우리의 북방정책방향도 중국보다 행동반경이 넓은 소련과의 관계개선을 추진함으로써 한중 관계발전의 자극요인을 개발하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 ▲신교수=소련은 정치개혁면에서는 중국에 앞서 있지만 경제개혁면에서는 훨씬 뒤져있다. 중국은 실용주의 경제노선에 착수한지 오래고 소련은 이제서야 시작하겠다는 것이다. 따라서 중소간의 경제발전 경쟁과 협력이 이뤄져 북한에 개혁개방압력을 가하면 북한은 빠져나갈 수 없을 것이다. 73년이란 가장 오래된 공산주의국가 소련에서 경제가 엉망이 됐고 동구권이 붕괴한 것을 보고도 북한이 계속 통제경제를 추진하는데는 무리가 있을 것이다. ○선택놓고 고심예상 ▲윤교수=올가을 북경 아시안게임에 노대통령이 방문하는등 중국과 접촉할 경우 한중 관계개선을 통해 중국의 1코리아정책에 중대한 변화합력을 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북한도 결국 남북한 평화공존모델로 갈 수 밖에 없는데 1코리아정책에서 2코리아정책으로 전환해야 하는 정책선택의 어려운 단계에 와 있다. ▲박교수=천안문사태와 동구민주개혁이후 중국의 정치상황은 전반적으로 위축돼 있다. 이같은 급진적 변화가 중국공산당체제에 대한 위협으로 받아들여져 정책결정과정에서 이데올로기요인이 부각되고 현실주의적 목소리가 약화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북한체제에 대한 인식도 이데올로기 요인에포함된다. 그러나 이는 외적변화에 대한 반사작용으로 과도기적 현상에 불과하다. 중국도 근본적으로는 북한의 체제변화와 개혁을 유도하는 정책을 지향하고 있다. 따라서 단기적으로는 한소관계가 한중관계발전으로 직결되지는 않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유리한 영향을 미치리라 본다. 중국사람들을 만나보면 한중관계는 한소관계진전보다 반발짝 늦게 따라간다고 얘기한다. ▲신교수=중국과 소련이 라이벌입장이긴 하지만 고르바초프 등장이후 한반도긴장완화와 군축문제에 있어서 한소관계가 정상화돼야 한중관계도 이를 구실삼아 북한의 비판을 받지않고 부드럽게 정상화될 수 있다는 사실에는 견해를 같이 할 것이다. 중소관계도 냉각관계를 뛰어넘어 뭔가 진전을 봐야할 것이며 작년 중소정상회담에서 뭔가 합의를 보지 않았겠는가. ▲윤교수=중국은 천안문사태이전까지는 정경분리원칙에 입각,2코리아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전제위에서나마 한국과 상당한 경제접근이 있었다. 그러나 천안문사태 이후 상황이 달라져 북한과 밀착되는 징후를 보였다. 그에 비해 소련은 86년 블라디보스토크선언을 통해 아시아국의 일원임을 자처한 이래 88올림픽직전 글라스노야르스크선언에서 남북한을 같은 비중으로 취급하는 등 사실상 2코리아정책으로 가고 있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소련매스컴이 김일성을 소련군대위출신으로 소규모 빨치산을 이끈데 지나지 않으며 6ㆍ25가 남침전쟁이라고 폭로한 것은 김일성위상격하 의도가 아닌가 생각된다. 이런 상황에서 한소국교수립상태까지 가면 평화공존은 「2개의 조선」을 조작하려는 책동이라는 입장의 북한의 1코리아정책은 수정될 수 밖에 없고 이같은 기본논리의 와해는 북한체제에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게 된다. ▲박교수=북한의 1코리아정책은 유한성을 띤 시간문제다. 1코리아정책은 국제사회의 대결논리시대의 산물로서 이제 국제적인 데탕트의 물결이 한반도에까지 투영되는 상황에서 결과적으로 남북교류가 불가피하고 서로 정치실체를 인정할 수 밖에 없다. 북한은 진실성을 갖고 군축문제에 임해야 하며 1코리아 정책으로의 변화를 가져와야 한다. 대남강경노선을 평화공존노선으로 전환하기 위해 체제변화가 불가피하다. 북한이 단기적으로는 어렵더라도 장기적으로는 변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당장은 동구의 변혁이 김일성체제를 위협,오히려 더욱 경직화되고 이념을 강조하겠지만 이는 외부자극에 대한 조건반사일 뿐이다. 김일성이 거의 80세가 다된 만큼 김정일에게 권력을 이양시키는 과정에서 어떤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서라도 정치ㆍ경제개방을 촉구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신교수=김일성 사망이후 획기적인 계기가 있을 수 있고 김정일집권을 계기로 국민들에게 내놓을 수 있는 것은 경제개혁이다. 그런 의미에서 낙관할 수 있다. 북한이 석유ㆍ원자력 등 자원면에서 소련에 의존하고 있고 전력ㆍ식량난 등 경제사정이 워낙 어렵다. 소련은 지난 84년 체르넨코서기장시절 김일성의 소련방문 당시 원자력발전소 설치를 약속했지만 체르노빌 사건이후 소극적으로 변해 북한의 원자력발전소 건립자체를 주저하고 있다. ○소련ㆍ북한 갈등 예상 ▲박교수=소련이 탈스탈린화 하는데 북한이 스탈린주의를 고수하는데는 한계가 있다. 결과적으로 소련과 북한간의 갈등으로 나타나겠지만 북한의 경제ㆍ군사 구조상 지탱하는데 한계가 있다. 중국도 소련보다 먼저 탈스탈린화에 나섰기 때문에 중소가 동시에 변혁을 추진하고 이 변혁이 상호상승작용을 일으키고 있다. 중국도 천안문사태 이전에는 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를 긍정적으로 평가했었다. 중국이 현재는 위축현상을 보이고 있지만 그동안의 개방정책으로 인한 빈부계층과 지역갈등의 해결을 통한 국민일치감 회복을 위해서는 경제합리화보다 정치개혁이 더 쉬운 방법이다. 중국이 난국을 슬기롭게 해결,개혁과 개방정책으로 회귀하지 못한다면 한소관계발전은 오히려 중국에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 ▲신교수=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는 중국에서 배운 것이다. 만일 페레스트로이카가 없었다면 중소분쟁이 심화됐을 것이나 양국이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중소관계도 진전될 것이다. 박교수는 중국이 사회혼란 극복문제때문에 잠정적으로 위축돼 있다고 했는데 소련은 개혁과 개방을 중단할 수 없는 단계에와있다. ▲박교수=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가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중국의 개혁ㆍ개방정책이 2단계로 접어든다면 중소 관계발전은 북한체제를 변화시키는 엄청난 압력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신교수=현재 소련만이 북한에 개방압력을 가해도 시간문제인데 중국까지 압력에 가세한다면 북한은 그야말로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 중국과 소련처럼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사실을 북한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내부개혁 서둘러야 ▲윤교수=모든 문제는 결국 북한의 변화가능성문제로 귀착된다. 대외개방정책면에서 북한은 중국처럼 대외개방경제를 추진하되 주체사상논리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내에서 조총련계기업을 받아들이는 등 변명을 추진하려할 것이다. 김일성이 지난 84년 소련과 동구를 돌아보고 이들의 경제발전상에 쇼크를 받은뒤 중국을 본받아 합영법을 실시했으나 서방자본은 거의 들어오지 않고 있다. 중국이 인민공사를 해체하고 시장경제를 부분 도입한데 반해 북한은 시장경제도입을 꺼리기 때문에 국내경제개혁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중국은 대내적개방의 바탕위에서 대외개방을 추진,조화를 이룰 수 있으나 북한은 국내변화는 도외시한 채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를 위하여 」라는 식의 교조적인 방향으로 흐르고 있기 때문에 진전이 없는 것이다. ▲박교수=유물변증론에서 봐도 외적요인은 내적요인과 연관지어서만 움직일 뿐이다. 북한에서도 국가최우선 목표를 계급투쟁에서 생산력발전으로 전환시키는 내적변화가 있어야 진정한 군축과 평화공존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중국에서는 모택동사상과 현대화개념이 대립됐었으나 모사망후 현대화론 노선화가 이뤄졌다. 북한에도 김일성사망후 주체사상수정을 통해 78년이후의 중국이 치른 과정이 있어야 한다. ▲윤교수=현재로서는 북한의 대외경제개혁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경제개혁은 물론 정치개혁은 더욱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다원민주체제가 일반적 추세인데도 북한은 김부자세습체제를 뒷받침하는 이데올로기로 1당독재체제의 변형인 주체사상을 더욱 확고히 하고 있다. 대내개혁이 안되기 때문에 대남정책의 변혁도 어려운 것이다.최근까지 몇차례 남북대화를 했지만 북한의 남조선해방인민민주주의 통일전선전략에는 추호의 변화도 없기 때문에 진전이 없는 것이다. ▲신교수=소련이 지금까지는 북한에 대한 개방압력을 주저해 왔다. 북한이 내부개혁을 하지 않으려 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으로는 중국과 함께 설득하는 색다른 방법을 들고 나올 것이다. 북한이 아무리 철두철미한 통제사회라 해도 차우셰스쿠정권처럼 밑으로 부터 붕괴되지 않으려면 정권유지차원에서라도 지금같은 스탈린체제를 유지할 수 없을 것이다. 소련이 김일성사망후 차기정권에 대해서도 생각해 봤겠지만 소련이 루마니아처럼 북한에도 개입할지는 알 수 없다. 소련이 전세계 천연가스생산량의 40%,석유 20%,목재 40% 등 엄청난 자원을 갖고 있는데도 미일학자들이 고르바초프가 곧 쓰러질 것이라고 전망하는 이유는 공산주의가 망해가고 있다는 얘기다. 고르바초프가 집권한 85년에 비해 요즘은 모든 물건이 비싸며 품귀현상을 빚고 있다. 일을 잘하면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의욕고취요인이 없기 때문에 서방세계에서 1시간이면 할 일을 3∼4시간 동안 하고 시설마저 낙후돼 있어 근본적으로 공산주의자들은 프로레타리아 룸펜기질이 몸에 배 있는 것이다. 소련도 그런 상황인데 석유한방울 안나는 북한에서야 말할 나위도 없다. ○「폐쇄경제」날로 악화 ▲윤교수=북한은 주체적방식에 의해 자립적 사회주의민족경제를 건설한다는 목표아래 물질대신 정신적인 인센티브제를 도입하고 있다. 요즘은 잘 안되니까 물질인센티브를 병행하고 있지만. 북한이 자립경제를 한다고 나서는데 대해 소련의 타스통신은 북한기간산업 70여개가 소련에 의해 건설됐고 기술자도 소련에서 배워간 것 아니냐고 폭로하기도 했다. 북한경제의 특징은 군인력을 포함한 노동력동원을 통한 경제건설이다. 경제가 어려운데도 정치선전목적을 위한 전시효과를 노려 1백5층짜리 유경호텔까지 짓고 경영능력이 없어 싱가포르인에게 운영을 맡기기도 했다. 북한에서 4년간 농업지도를 하다 얼마전 일본으로 돌아온 조총련계농업전문가에 따르면 심각한 식량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김일성의 발상으로 경사도45도까지의 산을 소위 다락밭으로 만들어 옥수수를 심도록 했는데 산을 전부 깎고나니 여름에 홍수가 지고 산사태가 나 논에까지 토사가 쌓이는 바람에 대부분의 논까지 버렸다고 한다. 세계농업기술 수준에서 인정받지 못할 비과학적인 방법을 주체적발상이란 미명아래 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주의의 비능률성에다 주체적발상까지 겹쳐 북한경제의 한계를 앞당기고 있는 셈이다. ▲박교수=한소관계 발전이 북한을 고립화시키는 방향으로 나간다면 리더십의 특성상 중국과 북한이 관계를 강화할 수 밖에 없으며 고립화 방향이 아닐 경우 북한이 미일등 서방과 관계개선하는 방향으로 진전돼 한소관계 발전이 한중관계,나아가서는 남북한관계에 유리한 여건을 제공하게 될 것이라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윤교수=한소수교때문에 북한이 미일과 접근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고 북한이 미군유해송환등 화해제스처를 쓰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북한의 목표는 미국과 수교하려는 것이 아니다. 주한미군을 철수시키고 북한ㆍ미국간 평화협정체결을 위한 대남전략차원에서의 대미접근일 뿐이다. 한소수교원칙합의를 계기로 대남전략에 변화를 보인다면 한국정부를 승인하고 대화하며 동서독식 평화공존을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한반도통일을 원하는 대내외적 갈망분위기를 활용,군사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선전공세를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단기적인 전망이고 장기적으로는 여러가지 변화요인에 의해 압박을 받게돼 결국 우리의 정책노선에 응해올 수 밖에 없지 않나 생각된다.
  • “유가하락이 페레스트로이카 불러”/WP지,소 경제위기 분석

    ◎85년이후 오일달러 약세,수입 격감/국내경제 급속 악화… 동구지원 한계 소련의 중앙통제경제체제는 지난 70년대초 이미 비효율적이라는 사실이 드러났으나 서시베리아에서 막대한 양의 원유가 생산되기 시작하면서 70년대를 그럭저럭 버텨왔으며 최근의 원유생산 감소와 유가하락이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개혁)에 불을 댕긴 요인이 된 것으로 보도됐다. 워싱턴포스트가 미소정상회담을 앞두고 소련원유생산이 소련의 외교 및 경제에 미친 영향을 28,29일에 걸쳐 보도한 바에 따르면 1차 에너지 쇼크가 있은 후 크렘린당국은 서시베리아의 유전개발에 박차를 가해 사우디아라비아와 쿠웨이트의 생산량을 합한 것보다 더 많은 일일 1천2백만배럴까지 생산,이중 75%는 국내소비에 충당하고 10∼15%는 동구국가들에 헐값으로 수출해 왔으며 나머지 10∼15%를 서방측에 판매함으로써 지난 15년간 2천억달러를 벌어들였다는 것이다. 72년초 배럴당 7∼8달러선의 원유가 1차 에너지 쇼크를 겪고난 후 74년초부터 23∼24달러선으로 뛰어올라 원유수출로 막대한 달러를 벌어들인 소련은 이 자금으로 국내경제를 지탱하고 동구권 등 공산제국에 원조를 늘릴 수 있었다는 것이다. 소련은 풍부한 석유달러로 75년부터 제3세계에 대한 진출을 늘려왔다. 75∼76년의 쿠바군 3만6천명 앙골라 파견,77∼78년 쿠바군 1만2천명의 에티오피아 파견,79년의 산디니스타반군의 니카라과 소모사 정권 전복,그리고 79년말의 소련군 아프간 침공 등이 풍부한 석유달러 수입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소련이 지난 15년동안 서시베리아산 원유와 천연가스의 수출로 벌어들인 돈은 전체 대외수입의 60%에 이르렀다. 최근에 공개된 소련정부의 한 통계는 소련이 공산제국과 제3세계에 원조형태로 빌려준 돈은 1천3백60억달러에 이르는 데 이는 장부상의 금액일 뿐 대부분은 상환받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막대한 돈은 소련이 제3세계에서 영향력 유지를 위해 사회국제주의의 이름으로 사용됐는데 인도의 제철소 건립지원,시리아에 대한 최신식 전투기 공급,이라크에 대한 탱크와 헬기 공급,에디오피아와 앙골라에 대한 기술진 파견 등에 들어갔다. 예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 소련외무장관은 최근 아프간의 10년전쟁에 도합 6백억루블(미화 1천억달러)이 소요됐다고 말했다. 소련은 원유수출대금으로 제3세계에 대한 군원 및 경제원조 이외에 국내식량부족을 메우기 위해 곡물을 사들였는데 곡물수입은 지난 70년에서 83년사이에 4배가 늘어났다. 소련에 석유위기의 충격파가 몰아친 것은 원유가가 배럴당 30달러에서 15달러로 무너진 85년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시베리아의 원유생산이 처음으로 하강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권좌에 오른 고르바초프는 시베리아의 원유생산시설을 방문,생산을 독려했다. 시베리아에는 아직도 방대한 양의 원유가 매장돼 있다. 유전에 물을 집어넣어 경질유를 지상으로 끌어올리는 원시적 방법을 사용하고 있어 중질유의 채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원유산업에 막대한 돈을 투입하지 않으면 앞으로 5년이내에 생산이 크게 줄어들 전망이다. 지난 수십년동안 소련은 동구권 국가들이 정치적 충성을 바쳐온 대가로 이들 국가들에 원유를 40%정도 헐값에 판매해 왔다. 이로인해 지난 88년 한해에 소련은 동구권 국가들에 대한 원유수출로 40억달러를 손해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시베리아의 원유가 없었다면 소련체제가 어떻게 발전돼 왔을 것인가에 관한 논란이 소련에서 일어왔다. 고르바츠프의 보좌관들은 시베리아의 원유가 없었다면 페레스트로이카가 더일찍 왔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반면,이에 반대하는 견해도 있다. 지난 85년 고르바초프가 아닌 다른 지도자가 소련에 등장했다면 현재의 페레스트로이카는 없었을 것이며 병영과 같은 사회주의로 돌아갔을지 모른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며 브레즈네프와 같은 지도자가 권력을 쥐고 있었다면 제2의 루마니아가 됐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 경제성 높은 「사료용 단백질」 개발/과기원 박무영교수팀 개가

    ◎미세 조류 활용,물고기 배설물로 합성/식량으로 이용 가능… 미ㆍ일에 특허 출원 가축사료등으로 이용되는 미생물 단백질의 경제적인 생산방법이 국내에서 개발,앞으로 식량자원문제 해결에 큰 역할을 할것으로 보인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생물공학과 박무영교수(64)는 29일 『미생물에서 얻어지는 단백질을 경제적으로 대량생산하는 방안을 마련했다』고 발표했다. 박교수에 따르면 몸속에서 사는 미생물인 미세조류를 장어나 미꾸라지 등의 물고기와 동생시켜 대량생산하는 방안을 개발했다는 것이다. 박교수는 하루에 1㎡당 22g의 미세조류단백질을 생산할 수 있다는 것. 이 방법은 2백달러 이하의 생산비로 미생물 단백질 1t을 생산할 수 있어 현재 가축사료용으로 거래되는 콩찌꺼기 1t가격(국제시세 2백37달러)보다 훨씬 저렴하다. 미생물을 길러 단백질을 얻어내는 방안은 이미 30여년전부터 프랑스등 각국에서 연구되어져 왔으나 미생물의 성장에 팔요한 탄소나 질소의 공급방법이 비경제적이어서 대량생산에는 이용되지 못해왔다. 박교수는 미세조류가 생장하는데는 질소나 탄소가 원활히 공급되어야 한는데 물고기가 대사과정중에서 질소와 탄소를 방출한다는 데서 착안,연구를 성공시킬 수 있었다고 밝혔다. 박교수는 『이번 연구가 물속에서 자라는 2만5천종류의 미세조류중 스파이로지라와 클로렐라등 번식력이 특히 강력한 종류를 선택해 이루어졌다』며 『이미 국내는 물론 미국 일본 프랑스에 특허를 출원해 놓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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