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식량
    2026-07-26
    검색기록 지우기
  • 유독
    2026-07-26
    검색기록 지우기
  • 민영
    2026-07-26
    검색기록 지우기
  • 법령
    2026-07-26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2,791
  • [인사]

    ■ 농림부 △유엔 식량농업기구(FAO)파견 李相載 ■ 국회 사무처 ◇수석전문위원 전보 △행정자치위원회 張仁植 △농림해양수산〃 林仁圭 △건설교통〃 李昌熙 △정보〃 安秉玉◇1급 승진 △법제실장 金鍾斗 △기획조정〃 鄭順泳 ■ 서울시 ◇사무관 전보 △홍보기획관실 최지영△경영기획실 박진영△감사관 김재경△산업국 윤재삼△산업국 김준수△환경국 김재진△국민고충처리위원회 파견 이희일△서울문화재단 파견 김남진 ■ 서울보증보험 △홍보실장 丁玄榮 ■ 동부화재 △글로벌사업파트장 沈載日 ■ 굿앤리치자산운용 △부사장 趙盛宣 ■ SK증권 ◇부장 승진△금융상품영업1팀 白種大△〃2팀 李秉輝△채권영업팀 朴永完△투자전략팀 金俊基△역삼역지점 朴英秀△안산지점 孔坪根△전주지점 金東勳△광주지점 金相洙△대구지점 吳寅澤
  • ‘외국인 납치’ 고도의 전략?

    저항세력의 잇따른 외국인 납치사건이 이라크 사태를 또 다른 국면으로 이끌고 있다.지난 8일 일본인 3명에 이어 11일 중국인 노동자 7명이 납치되는 등 현재까지 40명가량의 외국인이 인질로 붙잡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팔루자의 보복 미군이 이끄는 연합군에 맞서 이라크 저항세력들이 택한 납치작전은 팔루자에서 저지른 미군의 만행에 대한 보복적 성격을 갖고 있다.알 자지라 방송 등에 따르면,이라크인의 성소 이슬람사원 폭격 등 지난주부터 1주일가량 이어진 미 해병대의 무차별 공격으로 팔루자에서는 200여명의 여성과 100여명의 어린이 등 모두 600여명이 숨졌다. 이처럼 무고한 민간인 희생과 이슬람 성지에 대한 공격이 이라크인들의 분노를 폭발시켰다는 것이다.저항세력과 연합군의 교전이 격화되자 팔루자로 향하는 식량과 무기 수송차량이 줄을 이을 정도로 팔루자는 성전(聖戰)의 무대가 됐다.일본인들과 중국인들이 납치된 장소도 팔루자 인근이었다.외국인들을 납치한 세력들은 연합군 철수와 함께 ‘팔루자 공격을 중단하고 군대를 퇴각시킬 것’을 인질 석방의 조건으로 내걸고 있다. ●체니 방문 앞둔 전략? 지난 8일 일본인들에 이어 11일 중국인들이 납치되자 저항세력들이 딕 체니 미 부통령의 이들 국가 방문을 염두에 두고 납치 사건을 일으킨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12일 체니 부통령과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와의 회담을 4일 앞두고 일본인들이 납치됐고,베이징 회담을 이틀 앞둔 11일엔 중국인들이 납치됐다. 일본인 납치 사건으로 이미 저항세력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 있다.12일 AFP통신 등은 아직까지 일본 내에 파병 지지 입장이 많지만 자위대를 철수하고 인질들을 살리라는 인질 가족들의 눈물어린 호소에 공감하는 분위기도 퍼지고 있어서 정부측에 압력이 되고 있다고 분석했다.11일 영국인 1명과 연합군에서 트럭운전사로 일해 온 아시아 출신 노동자 9명이 풀려난 것과 달리 일본인들의 생사는 확인조차 되지 않고 있다.12일 일본인 인질들의 석방 협상이 진척을 보이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으나 일본 정부는 인질들의 안전을 확신할 수 없다고 밝혔다. 한편 미국의 이라크 공격을 지지하며 자위대를 파병한 일본과 달리 중국은 미·영의 무력 사용을 강력히 반대했던 국가인 만큼 납치 배경에 대해서 의견이 분분하다.일본인으로 착각하고 납치했다는 해석도 있으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인 중국의 위상을 감안해 미국에 대한 국제적 압력을 행사하려 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일본인으로 착각해 납치했다 할지라도 미국과의 회담을 앞둔 중국측에 압박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황장석기자 외신 surono@seoul.co.kr˝
  • [인사]

    ■ 농림부 △유엔 식량농업기구(FAO)파견 李相載 ■ 국회 사무처 ◇수석전문위원 전보 △행정자치위원회 張仁植 △농림해양수산〃 林仁圭 △건설교통〃 李昌熙 △정보〃 安秉玉◇1급 승진 △법제실장 金鍾斗 △기획조정〃 鄭順泳 ■ 서울시 ◇사무관 전보 △홍보기획관실 최지영△경영기획실 박진영△감사관 김재경△산업국 윤재삼△산업국 김준수△환경국 김재진△국민고충처리위원회 파견 이희일△서울문화재단 파견 김남진 ■ 서울보증보험 △홍보실장 丁玄榮 ■ 동부화재 △글로벌사업파트장 沈載日 ■ 굿앤리치자산운용 △부사장 趙盛宣 ■ SK증권 ◇부장 승진△금융상품영업1팀 白種大△〃2팀 李秉輝△채권영업팀 朴永完△투자전략팀 金俊基△역삼역지점 朴英秀△안산지점 孔坪根△전주지점 金東勳△광주지점 金相洙△대구지점 吳寅澤
  • [12일 TV 하이라이트]

    ●불새(오후 9시55분) 세훈은 지은을 사랑하는 대가로 받아야만 했던 고통,상처,분노를 뒤로하고 유학을 준비한다.세훈이 미국으로 떠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지은이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로 집을 뛰쳐나가고 이상범은 지은의 뒤를 쫓는다.지은을 멈춰 세우려던 이상범이 지은이가 보는 앞에서 사고를 당해 목숨을 잃는다.세훈은 이 사실을 모른 채 미국으로 떠난다. ●사이언스+(오전 8시30분) 나라의 운명을 건 종자전쟁을 알아본다.국내 종묘시장의 약 50% 이상을 외국계 종묘회사가 점유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종자상품 대부분이 외국계 기업 제품들이다.하지만 정작 씨앗을 사고 파는 상인들과 소비자들은 이러한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다.식량안보를 위해 투쟁하고 있는 국내 종자시장 현황을 취재했다. ●일과 사람들(오후 8시20분) ‘생생!직업속으로’ 코너에서는 영업·판매 분야에 대해 알아본다.유용하고 좋은 물건들을 최첨단 방식으로 잘 만들었다 한들 이를 팔지 못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특히 관련 상품에 관한 전문적인 지식을 활용하여 판매하고 고객에게 기술적인 지도를 수행해야 하는 기술영업사원에 대해 알아본다. ●리얼TV 경찰24시(오후 10시55분) 남동 경찰서에서 실적이 가장 부진한 강력5반 형사들에게 사건은 마치 전쟁과도 같다.백화점 위조 상품권,편의점 강도,마약 복용 용의자 신고까지 계속 터지는 사건들로 형사들은 점점 지쳐가고 있다.그러나 형사들은 말한다.형사에게 사건은 끝없는 기다림의 싸움이라고.그렇게 강력 5반의 싸움은 계속되고 있다. ●야심만만 만명에게 물었습니다(오후 11시15분)박신양,염정아,백윤식,이문식이 말하는 ‘친한 친구에게 사기당했다는 느낌이 들 때’를 들어본다.6년 된 친구지만 알고보니 한 살 어린 친구,나만 빼고 단체미팅 나간 친구 등 기발하고 황당한 답변을 들어본다.또 ‘부부 싸움할 때 아내의 이런 행동이 겁난다.’를 주제로 대한민국 기혼 남자들의 답변을 들어본다. ●폭소클럽(오후 11시) 김인석,한상규의 ‘남자이야기’에서는 이 시대 남자들의 불만을 들어본다.이번 주는 탤런트 양택조의 출연으로 원조격 불만을 듣는다.재치만점,마술사 최현우의 신기한 퍼즐마술이 펼쳐진다.한편 장하나의 ‘첫사랑의 숨겨진 본능’에서는 새로운 스탠드업 장르로 떠오른 과학코미디 편으로 연애심리와 과학을 엮어 웃음의 본능을 자극한다. ●한민족 리포트(밤 12시10분) 미국 스탠드업 코미디 계에서 제2의 마거릿 조로 인정받고 있는 티나 김.어디서나 당당하게 자신을 표현하고 큰 소리로 웃는 티나 김. 그녀에게는 동양 여인 특유의 조신함은 없다.그녀에겐 슬픔을 웃음으로 극복할 줄 아는,보기만 해도 유쾌한 코미디언의 모습이 보인다.그러나 LA,할리우드에 막 입성한 그녀에게는 갈 길이 멀다. ˝
  • [Doctor & Disease] 이상일 삼성서울병원 알레르기 센터장

    물을 찾아 우물을 팔 경우 중요한 점은 한 곳을 파야 한다는 것이다.이곳저곳 옮겨 파다가는 끝내 물맛을 못볼지도 모른다.최근들어 ‘창궐’이랄 정도로 늘어난 아토피성 피부염 치료에도 이 ‘우물론’은 유효하다.이런저런 얘기에 귀가 솔깃해 검증되지 않은 치료법으로 병을 키우거나,금방 치료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이 병원,저 병원 기웃거리는 것은 금물이다. ●아토피, 문명과 인체가 충돌하는 병 “아토피성 피부염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기본’을 지키는게 무엇보다 중요합니다.‘기본’이란 게 알고 보면 너무 쉬워 더러는 ‘이걸로 정말 치료가 될까?’하고 의아해 하는 사람도 있지만,아직 이 ‘기본’을 능가하는 치료법은 없습니다.” 삼성서울병원 알레르기센터장을 맡고 있는 소아과 이상일(58) 박사의 아토피성 피부염에 관한 견해는 자신있고 명쾌하다.그가 말하는 ‘기본’이란 도대체 뭘까. “아토피성 피부염은 문명과 인체가 충돌하는 병증이라고 보면 됩니다.그걸 이해하면 답이 나오지 않습니까? 제가 말하는 기본이란 크게 3가지로 요약됩니다.첫째가 식품문화고,둘째는 주거문화,셋째는 위생문화입니다.이 안에 답이 다 들어있는데,너무 쉽습니까?” ●나쁘다고 무조건 안먹어도 문제 계속 그의 설명을 듣자.“사실,요즘은 상품화된 식품이 워낙 많고 첨가물도 다양해 이걸 대상으로 아토피성 피부염과의 상관성을 낱낱이 규명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일반적으로는 계란,우유,메밀,콩 등이 문제의 식품으로 꼽히는데,가족 중에 아토피성 피부염을 앓는 사람이 있다면 우선 계란을 갖고 시험해 해보세요.그걸 일정 기간 안먹였더니 증세가 호전됐다면 계란이 문제인거죠.이런 식으로 자주 먹는 식품을 검증해 나가면 자연스레 먹어도 되는 식품과 먹어서는 안될 식품이 구분됩니다.” 이 부분에서 그는 성장기 어린이나 청소년들의 영양실조를 거론했다.“이런 검증없이 남의 말만 듣고 음식을 가리다 보면 애들 영양실조가 옵니다.그런 경우를 종종 봤어요.그런 방식은 불합리합니다.일정 기간 식품일지를 작성하면서 내 아이에게 안맞는 음식을 가려내야지,남의 아이가 닭고기에 이상반응을 보인다고 내 애에게도 그걸 먹이지 않으면 주먹구구지요.쉽게 말하자면,유아를 포함한 어린이들에게는 일반적·보편적인 것을 먹이는 게 좋습니다.비싼 수입식품이나 특별히 개발했다는 것들,대부분 문제가 있지요.그런 검증되지 않은 식품보다 예부터 먹여온 것을 먹이는 게 과학적이겠지요.” ●건조한 주거환경… 악순환 계속 일상적으로 먹는 음식을 가린다는 게 쉽지 않을 텐데. -물론이다.계란만 하더라도 집에서 삶아 먹고,부쳐 먹는 게 전부가 아니다.전,튀김,오뎅,우동,소시지는 물론 튀김가루에도 계란이 들어간다.그걸 가려 먹는 게 지혜인데,그런 과정이 정 귀찮다면 아예 쌀로 된 식품만을 먹이는 것도 좋다.쌀은 알레르기 반응이 거의 없는 식품이다. 주거문화는 어떤가. -아파트 등 건조한 도시 주거가 문제다.생활환경이 너무 건조해 항상 피부가 바싹 말라 있다.또 이런 환경에서는 주요 알레르기 항원으로 작용하는 집먼지진드기가 왕성하게 서식한다.알다시피 집먼지진드기는 피부부스러기를 먹고 자란다.이 진드기가 가려움증을 유발하고,가려우니 긁고,긁으니 상태가 악화되는 악순환이 되풀이되는 것이다. 위생문화는 아토피성 피부염과 어떤 상관성이 있나. -가장 최신 학설이 위생가설이다.인체의 면역에 관련된 T림프구에는 세균감염에 작용하는 TH-1과 알레르기에 작용하는 TH-2라는 세포가 따로 있는데,이 가운데 TH-2의 기능이 저하돼 아토피성 피부염이 발현된다는 것으로,학계에서도 주목하고 있다. ●안일한 대처… 의사들 반성해야 그는 이런 고백도 덧붙였다.“과거 우리나라에는 아토피를 전문으로 공부한 의사가 많지 않았어요.그래서 환자가 찾아오면 ‘그냥 놔두면 낫는 병’이라고 말하곤 했는데,그런 대응이 의학적 치료의 불신을 초래한 면이 없지 않습니다.반성해야 할 부분입니다.” 우리나라의 발병 실태는 어떤가. -가장 최근 조사에 따르면 학령기(초등학생) 아동의 10∼15%가 아토피성 피부염을 갖고 있으며,12∼15세가 되면 7.3% 정도로 준다.인종적 차이는 있지만,학령기 유병률은 뉴질랜드의 30%,일본의 25%에 비해 낮다.다행인 것은 최근들어 증가세가 크게 누그러졌다는 점이다. 유전적 요인도 작용하나. -아토피라는 용어에서 보듯 유전적 소인이 강하다.그러나 유전적 소인이 있더라도 식품이나 주거 등 발병에 유리한 환경에 노출되지 않으면 발현되지 않는다.도시화와 함께 환자가 급증한 것도 이 때문이다. 진단 기준은 무엇인가. -그게 단순하지 않다.일반적으로는 피부가 건조하고 가려움증이 심하다.또 거칠게 손상된 피부가 붉게 변하며 더러 진물이 나오기도 한다.예외도 있지만,이런 경우 검사를 통해 특정 음식에 반응하는 면역글로브린E와 백혈구의 증가 여부를 확인해 진단한다. 치료가 가능한 질환인가. -사실,성인이 되면서 100명중 99명은 자연치유되는 질병이다.더러는 이걸 평생 안고 살아야 하는 불치병으로 여겨 불안해 하는데,그건 오해다.문제는 이걸 단번에,빨리 낫게 해준다며 이런저런 위험한 치료법으로 유혹하거나,거기에 현혹되는 사람이 뜻밖에 많다는 점이다.그런 치료법은 대부분은 병증을 최악으로 만들어 병원을 찾게 한다.당연히 치료도 어렵다.다시 말하지만 아토피성 피부염은 기본만 지키면 90%는 치료된다. ●기본론, 아토피 세대에의 경고 그의 ‘기본론’은 일견 상식적 얘기같지만,그 상식을 이해하지 못해 애는 애대로,어른은 어른대로 속앓이를 하는 이른바 ‘아토피 세대’에 보내는 하나의 준엄한 경고였다.그래서 ‘먹거리 때문에 요란을 떨기 보다는 부작용이 철저히 검증되지 않은 상품화된 식품을 피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는 마지막으로 한 마디 덧붙였다.“신생아에게 분유 대신 모유를 먹이는 것과 같이 자연스러운 것이 기본이고 상식이지요.” 글 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 사진 안주영기자 jya@ ■ 이상일 박사 △서울대의대 박사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소아알레르기·면역학과 전임의 및 일본동애기념병원 소아호흡기·알레르기과 초청교환교수 △삼성의료원 알레르기센터장 △아시아태평양소아알레르기호흡기학회장 △미국알레르기학회(ACAAI) 평의원 △미국알레르기천식학회(AAAAI) 국제위원 △국제천식 및 알레르기역학조사위원회 한국책임자 △세계보건기구 및 세계식량농업기구 유전자재조합식품 안전성평가 자문위원.˝
  • 北 식량배급 중단설 “사실 아니다” 부인

    개성 경제실무회의에 참석하고 있는 북측의 회담 관계자는 9일 북한에서 식량배급제가 전면 중단됐다는 남측내 언론 보도와 관련,“사실이 아니다.”고 밝혔다.개성 자남산 여관에서 열리고 있는 남북 철도·도로 실무협의회에 참석하고 있는 이 관계자는 ‘식량배급제가 전면 중단됐다는 게 사실이냐.’는 남측 기자들의 질문에 “그런 얘기는 처음 듣는다.”며 “지금도 식량배급은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개성 공동취재단˝
  • [이라크 ‘제2전쟁’] 수니파 거점 팔루자 반미 저항 심장부로

    ‘이라크인들이여 팔루자로 가자.’무슬림 중 수니파의 거점인 팔루자가 반미 저항의 심장부로 부각되면서 팔루자로 향하는 길에는 대미 항전 대열에 가세하려는 이라크인들로 붐빈다.바그다드 서쪽 팔루자에서는 지난주까지만 해도 적대적이었던 수니파와 시아파 이라크인들이 한마음이 돼 반미항쟁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한명의 미군이라도 더 죽여 미군을 이라크 땅에서 몰아내야 한다는,오랜만에 공동의 목표를 갖게 됐다. 외신들에 따르면 자신들도 먹을 것이 부족한 시아파 이라크인들이 식량과 의약품을 거둬 팔루자로 보내고 있다.미군 봉쇄로 5일째 외부와 단절된 팔루자는 식량과 식수가 떨어지고 전기마저 끊겼다.사람들은 총에 맞을까봐 길거리에 나뒹구는 시신마저 거두지도 못하고 있다.바그다드의 사원 주위는 헌혈하려는 이라크인들로 장사진이다.시아파니 수니파니 따지는 이는 없다. 뉴욕타임스는 9일 이라크 주둔 미군의 말을 인용,현재 팔루자에서는 무크타다 알 사드르가 이끄는 과격 시아파민병대 메흐디와 급진 수니파인 모하메드 군대가 느슨한 형태의 연합전선을 형성하고 있다고 전했다.팔루자시에 잠입한 시아파 무장세력들은 지도부로부터 동족을 도우라는 명령이 내려왔다고 말해 이같은 사실을 뒷받침했다. 전투기를 동원한 공습으로 팔루자시의 4분의1을 탈환한 미군은 수니파 무장세력들을 색출하기 위해 집집마다 이슬람 사원마다 돌며 탐문조사를 실시,반미 감정을 부채질하고 있다. 카타르의 위성방송 알자지라 인터넷판은 8일 팔루자시가 1968년 확전의 전기가 된 설날 대공격 직후 베트남 시내에서 펼쳐진 게릴라전을 연상시킨다고 보도했다.미 해병대는 얼굴없는 적에 노출돼 언제 어디서 날아드는 총탄이나 포탄에 맞을지 모르는 두려움에 떨고 있다고 전했다. 김균미기자˝
  • [세상에 이런일이] ‘약발’은커녕…

    |리우데자네이루 연합|브라질 법원은 최근 발기부전 치료제인 비아그라 등 의약품을 공짜로 나눠 주고 유권자들의 표를 산 혐의를 받고 있는 하원의원에 대해 의원직 박탈 결정을 내렸다. 브라질 피아우이주 선거법원은 1일 안토니오 호세 데 모라에스 소우자 의원에 대해 매표(買票) 혐의로 유죄를 인정하고 의원직 박탈을 선고하는 한편 2만 1000레알의 벌금을 부과했다.소우자 의원은 선거전이 펼쳐지던 지난 2002년 8월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모자,옷 등을 입은 선거운동원을 통해 선거구에서 비아그라를 비롯한 무료 의약품을 나눠주는 것이 적발돼 기소됐다.법원은 당시 선거에서 2위로 낙선한 후보에게 의원직 승계를 명령했고,의원직을 박탈당한 소우자 의원은 항소의사를 밝혔다. 한편 브라질에서는 상대적으로 빈곤한 북동부 지방을 중심으로 정치인들이 식량에서 의약품,노동력 등 모든 것을 제공하면서 유권자들의 표를 사는 행위가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 北, 식량배급 전면중단

    북한이 지난 3월 1일부터 모든 기업과 개인에 대해 일부 실시해 오던 식량 배급제를 전면 폐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관계자는 8일 “북한은 지난 2002년 가을 이후 주민들이 필요로 하는 식량의 50%에 대해선 배급표를 발급해 국정가격으로 판매하고,나머지는 자력 조달하도록 해왔다.”면서 “지난 3월 1일부터 50% 국정가격 판매제마저도 폐지했다는 첩보와 정황이 포착됐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모든 인민들이 필요한 식량을 알아서 조달하라는 내용의 ‘식량자력조달제’가 시행되고 있는 정황”이라면서 이 첩보에 대한 사실을 추적,확인 중이라고 밝혔다. 이어 “북한은 2002년 ‘7·1 경제관리개선 조치’조치 이후 배급제를 꾸준히 손질해 왔다.”며 “다만 당간부를 비롯한 소수 특권층에 대한 배급제도는 그대로 실시하고 있는 것으로파악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북한은 2002년 7월 물가를 대폭 인상해 현실화하고 기업의 채산성을 강조하며,장마당에서 공산품 거래를 허용하는 내용을 담은 7·1 조치를 발표하면서,50여년간 시행해온 식량배급제를 전면 폐지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 관계자는 “북한의 식량배급제 전면 폐지가 사실일 경우,이것이 북한의 경제 살리기를 위한 개선 조치인지,아니면 극심한 식량난에 따른 고육지책인지 판단하기는 이르다.”고 밝혔다. 김수정기자 crystal@˝
  • 청소년 공동식수 제안 로리젠씨

    “북한 당국도 황폐화된 산림 복구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남한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지원 또한 절실합니다.” ‘제2회 남북청소년 적십자 공동나무심기’ 행사에 참석한 노르웨이 적십자사의 할버 포슨 로리젠(45)국제부장은 6일 “남북 청소년들의 공동 식수는 한반도의 푸르름과 평화조성이라는 측면에서 매우 상징적인 의미와 효과를 갖는다.”고 말했다. 로리젠은 남북 청소년 공동나무심기 행사를 제안하고 지난해 첫 행사를 성공시킨 주역. 로리젠은 “북한은 전력난으로 인한 난방용 벌목과 지난 70년대부터 시작된 산지 개간으로 산림 황폐화가 심각한 상태”라면서 “남한의 산림전문가들이 방북,홍수나 산사태에 취약한 북한의 산림실태를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혔다.그는 이제까지 북한을 9차례나 방문했다. 북한의 식량난과 관련,로리젠은 “식량난은 여전하고 지금부터 가을 수확때까지가 제일 어려운 시기”라며 국제사회의 지원을 호소했다. 노르웨이 적십자사는 지난 95년부터 각종 구호활동을 벌이고 있다. 금강산 공동취재단˝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27)그리운 사람 그리운 이름,문익점(下)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27)그리운 사람 그리운 이름,문익점(下)

    낯선 이국땅에서의 유배생활은 가을이 세 번 지나도록 계속되었다.유난히도 길게 느껴지는 유배생활 중에 선생이 가장 고통스러워한 것은 고향에 계신 어버이를 섬기는 도리를 다하지 못한다는 점이었다.평소 선생은 잠깐동안이라도 어버이 곁을 떠나지 않고 살피며 모셨다.관직에 있을 때에도 일년 동안에 휴가를 두 번 갈 수 없음을 걱정하여 관직에 임명된 지 닷새도 못 되어 직임을 그만둔 적도 있었다.어버이를 모시기 위해서였다. 이렇듯 선생이 유배지에서 다만 충절 때문에 고초를 겪고 있을 때 원나라 순제는 거듭되는 기황후의 애원을 뿌리치지 못하고 고려 침공이라는 뜻밖의 결정을 내렸다.상국(上國)인 원나라를 배반하고 반역을 행한 고려 공민왕을 폐함과 동시에 응징하면서 덕흥군을 고려의 새로운 왕으로 옹립한다는 명분이었다.이같은 명분을 받들어 실행하는 총 책임을 진 것은 고려의 반역자인 최유였다.최유는 기황후와 음모하여 공민왕을 폐한 다음 덕흥군이 고려의 왕이 되면 막강한 권세를 장악하여 고려를 기황후와 함께 지배하기로 한 뒤였다. ●고려와 첫 싸움서 처참히 무너진 원나라 원나라 군사 1만명을 얻어 고려 침공에 나선 최유는 일단 요동 반도까지 순조로운 진군을 했다.그런 기세대로 간다면 고려로부터 항복받는 일은 시간 문제처럼 보였다.침공을 시작한 이듬해인 1364년 1월 최유가 지휘하는 원나라 군사는 의주를 점령한 다음 계속 남쪽으로 공격해 들어왔다.거칠 것 없는 기세였다.그러나 정주 달천에 이르렀을 때 최영,이성계가 이끄는 고려군의 저항에 부딪쳤다.고려의 상징적인 두 장군 최영과 이성계는 최유의 인간됨은 물론 그의 지휘를 받는 원나라 군사의 전술과 기백을 잘 알고 있었다. 첫 번째 접전에서 최유의 원나라 군대는 처참하게 붕괴되었다.재기 불능 상태에 빠진 최유는 살아남은 원나라 장군들의 호위를 받아 간신히 목숨을 건져 원나라로 되돌아 갔다.원나라 순제는 패전하여 돌아온 장수들로부터 최유의 작전 실패와,고려 공민왕이 원나라에 반역했다는 말이 거짓이었음을 전해듣고 크게 분노했다.작전실패에 따른 문책을 엄하게 하려 했으나 기황후가 다시 애원하는 바람에 비교적 가벼운 형별에 처해졌다.이때 고려에서는 최유를 고려로 송환할 것을 강력하게 요청했다.순제는 자신의 오해를 미안하게 여겨 고려의 요청을 받아들이려 했지만 최유의 등창이 심하여 나을 때까지만이라도 송환을 보류해달라는 기황후의 말에 따라 송환이 사실상 무기한 연기되었다. 최유의 이같은 사건으로 하여 운남성 교주국에 유배되어 있던 문익점 선생에 대한 순제의 오해도 풀어질 수 있었다.선생이 유배에서 풀려나 원나라 수도 연경으로 돌아오는 만리길은 광활한 황무지와 비옥한 땅이 끝없이 펼쳐진 대지 위로 나 있었다. ●우연히 발견한 연둣빛 열매의 목화 귀로에서 선생은 피곤을 달래기 위해 며칠씩 머물기도 했다.강남(江南) 땅 어느곳을 지날 때였다.강줄기를 따라 드넓게 펼쳐진 비옥한 땅에서 처음 보는 꽃이 아름답게 피어 있었다.이랑을 지어 심은 것으로 봐서 관상용 화초가 아닌 것은 분명했다.그런가하면 꽃이 진 가지에는 큰 골무만한 연두색 열매가 매달려 있기도 했다.선생은 그 낯선 꽃이 피어있는 밭에서 잡초를 뽑고 있는 노파한테 그 꽃이 피어 있는 나무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목화(木花)라는 식물이라 대답했다.그 식물로 뭘 하느냐는 물음에 노파는 자신이 입고 있는 옷을 가리켰다.촉감은 부드럽고 따뜻하며 땀을 잘 흡수하는데다 가볍고 질기다는 설명을 곁들였다.그제야 선생은 유배생활 중에 보고 느꼈던 의아스러운 점들이 이해되었다.중국인들이 즐겨 입는 옷들은 대부분 그 노파가 입고 있는 옷감과 닮은 것이었다.목화꽃이 지고 난 자리에 주렁주렁 달리는 열매가 다래였고,그 다래가 익으면 네 곳으로 터지면서 눈처럼 흰 솜이 그 안에서 부풀어 오르고,햇볕을 잘 받아 익으면 솜을 빼내어 옷감을 만든다고 했다. 선생은 그 목화라는 식물을 고려로 가져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를 곰곰 생각하기 시작했다.그 당시 원나라에서는 인도로부터 목화 종자를 들여와 대대적으로 재배하여 중국인과 북방 민족들의 의류혁명을 완성해가고 있는 중이었다.목화는 고온다습한 기후를 좋아하며 다래가 익어 터진 뒤에는 청명한 날씨가 많을수록 좋은 품질의 솜을 얻을 수 있었다. 선생은 고려의 백성들을 떠올렸다.추위를 막아줄 수 있는 옷감이 많지 않은 탓에 겨울만 되면 지옥 같은 나날을 살면서 얼어죽지 않기 위해 절규하는 이들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겨울철에도 삼베옷밖에 입지 못하는 서민들의 처량한 몰골이 선생의 눈시울을 적셨다.고려에도 부자나 귀족들은 명주옷을 겹으로 입으면 얼마만큼 추위를 막을 수 있었지만,삼베와 칡껍질로 엮은 옷으로는 아무리 겹쳐 입어도 추위 앞에서는 견디지 못했다.추운 계절에 먼 길을 떠나야만 하는 서민들은 거적대기를 뒤집어쓰거나 가마니를 뜯어 아랫도리를 가리고 다녔다.그러나 추위가 심한 날엔 백리 길을 가도 사람 그림자 구경하기 어려웠고 겨울철 내내 방안에만 틀어박혀 봄 오기만을 기다렸다. 입성의 초라함과 옷감 부족은 비단 겨울뿐만이 아니었다.여름철에도 아예 윗몸을 통째로 드러내 놓고 사는 서민들이 많았다.무더위 때문이 아니라 입을 옷이 없기 때문이다.그런 몰골로도 나라가 필요로 하는 온갖 부역과 부담을 온 몸으로 떠받쳤다. ●목화씨를 고려에 가지고 갈수만 있다면 목화씨를 고려로 가져가고 싶었다.노파에게 씨를 좀 줄 수 있느냐고 묻자 노파는 선생을 의심쩍게 훑어 보았다.그동안 이것저것 물었던 일과 연관을 지으면서 선생의 정체를 수상하게 여기기 시작했다.선생은 영문을 몰랐다. 잠시 뒤 그 지방 관헌이 선생을 찾아왔다.짐을 뒤지고 온 몸을 수색했다.그 까닭을 묻자 관현이 말했다.목화는 원나라의 귀중한 보물이기 때문에 외국인은 그누구도 목화 종자를 가져갈 수 없다는 황제의 칙명이 내려져 있다고 했다.그제야 선생은 목화가 얼마나 소중한 재산인지 짐작이 갔다.한 국가에서 국민이 입는 옷은 먹는 식량과 함께 가장 중요한 근본의 하나였다. 추위와 더위를 막을 수 있는 옷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고는 왕이나 국가의 치세를 신뢰하지 않는 것이 백성이다.백성은 무슨 이상향이나 신기루 같은 세상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견딜 수 있는 최소한의 양식과 옷,집과 이웃의 평화가 있다면 왕과 국가를 위해 기꺼이 헌신하는 삶을 산다.그렇다면 이제껏 고려의 백성들이 겪어온 헐벗음의 고통이 얼마나 컸을지를 뒤늦게야 깨우치며 선생은 눈물지었다.추위를 막아줄 옷도 제대로 마련할 수 없는 나라에서 끊임없는 부역과 무거운 세금에 짓눌리면서도 묵묵히 견뎌온 백성들이야말로 진정한 고려의 주인이라는 깨달음에 눈을 떴다. 그 유배길이 아니었다면 깨달을 수 없는 너무나 소중한 생각이었다.선생은 기어코 목화씨를 고려로 가져오리라 결심했다.원나라가 엄중하게 지키는 최고의 국가 기밀이자 재산이기도 한 목화 종자를 숨겨오다 들키게 되면 처형된다는 것도 알았다.옷을 발가벗기고,벗은 옷을 뒤집어서 털고,상투머리를 풀어 머리카락 속까지 뒤졌다.그러니 여행자들의 짐이야 말할 필요도 없었다. 선생은 우여곡절 끝에 목화씨 열 알을 손에 넣었다.궁리 끝에 숨겨갈 만한 자리를 생각해냈다.붓을 이용하자는 것이었다.먼저 털로 된 붓을 뽑아내고 붓대롱 속에다 목화씨를 숨겼다.그런데 국경 검문소에도 붓통까지 검사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고려로 갖고 들어온 목화씨는 선생의 장인 정천익과의 공동 실험을 거쳐 마침내 이 땅에 의류혁명을 일으키게 되었고,선생의 큰 은혜로 하여 추위에 얼어 죽는 사람이 사라지게 되었으니 선생이야말로 진정한 이 땅의 구세주라 부를만 하지 않은가. 개인의 불행과 고통을 정치적 출세 수단으로 활용하는 이땅의 숱한 정치꾼들이야말로 문익점 선생의 삶 앞에서 참회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27)그리운 사람 그리운 이름,문익점(下)

    낯선 이국땅에서의 유배생활은 가을이 세 번 지나도록 계속되었다.유난히도 길게 느껴지는 유배생활 중에 선생이 가장 고통스러워한 것은 고향에 계신 어버이를 섬기는 도리를 다하지 못한다는 점이었다.평소 선생은 잠깐동안이라도 어버이 곁을 떠나지 않고 살피며 모셨다.관직에 있을 때에도 일년 동안에 휴가를 두 번 갈 수 없음을 걱정하여 관직에 임명된 지 닷새도 못 되어 직임을 그만둔 적도 있었다.어버이를 모시기 위해서였다. 이렇듯 선생이 유배지에서 다만 충절 때문에 고초를 겪고 있을 때 원나라 순제는 거듭되는 기황후의 애원을 뿌리치지 못하고 고려 침공이라는 뜻밖의 결정을 내렸다.상국(上國)인 원나라를 배반하고 반역을 행한 고려 공민왕을 폐함과 동시에 응징하면서 덕흥군을 고려의 새로운 왕으로 옹립한다는 명분이었다.이같은 명분을 받들어 실행하는 총 책임을 진 것은 고려의 반역자인 최유였다.최유는 기황후와 음모하여 공민왕을 폐한 다음 덕흥군이 고려의 왕이 되면 막강한 권세를 장악하여 고려를 기황후와 함께 지배하기로 한 뒤였다. ●고려와 첫 싸움서 처참히 무너진 원나라 원나라 군사 1만명을 얻어 고려 침공에 나선 최유는 일단 요동 반도까지 순조로운 진군을 했다.그런 기세대로 간다면 고려로부터 항복받는 일은 시간 문제처럼 보였다.침공을 시작한 이듬해인 1364년 1월 최유가 지휘하는 원나라 군사는 의주를 점령한 다음 계속 남쪽으로 공격해 들어왔다.거칠 것 없는 기세였다.그러나 정주 달천에 이르렀을 때 최영,이성계가 이끄는 고려군의 저항에 부딪쳤다.고려의 상징적인 두 장군 최영과 이성계는 최유의 인간됨은 물론 그의 지휘를 받는 원나라 군사의 전술과 기백을 잘 알고 있었다. 첫 번째 접전에서 최유의 원나라 군대는 처참하게 붕괴되었다.재기 불능 상태에 빠진 최유는 살아남은 원나라 장군들의 호위를 받아 간신히 목숨을 건져 원나라로 되돌아 갔다.원나라 순제는 패전하여 돌아온 장수들로부터 최유의 작전 실패와,고려 공민왕이 원나라에 반역했다는 말이 거짓이었음을 전해듣고 크게 분노했다.작전실패에 따른 문책을 엄하게 하려 했으나 기황후가 다시 애원하는 바람에 비교적 가벼운 형별에 처해졌다.이때 고려에서는 최유를 고려로 송환할 것을 강력하게 요청했다.순제는 자신의 오해를 미안하게 여겨 고려의 요청을 받아들이려 했지만 최유의 등창이 심하여 나을 때까지만이라도 송환을 보류해달라는 기황후의 말에 따라 송환이 사실상 무기한 연기되었다. 최유의 이같은 사건으로 하여 운남성 교주국에 유배되어 있던 문익점 선생에 대한 순제의 오해도 풀어질 수 있었다.선생이 유배에서 풀려나 원나라 수도 연경으로 돌아오는 만리길은 광활한 황무지와 비옥한 땅이 끝없이 펼쳐진 대지 위로 나 있었다. ●우연히 발견한 연둣빛 열매의 목화 귀로에서 선생은 피곤을 달래기 위해 며칠씩 머물기도 했다.강남(江南) 땅 어느곳을 지날 때였다.강줄기를 따라 드넓게 펼쳐진 비옥한 땅에서 처음 보는 꽃이 아름답게 피어 있었다.이랑을 지어 심은 것으로 봐서 관상용 화초가 아닌 것은 분명했다.그런가하면 꽃이 진 가지에는 큰 골무만한 연두색 열매가 매달려 있기도 했다.선생은 그 낯선 꽃이 피어있는 밭에서 잡초를 뽑고 있는 노파한테 그 꽃이 피어 있는 나무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목화(木花)라는 식물이라 대답했다.그 식물로 뭘 하느냐는 물음에 노파는 자신이 입고 있는 옷을 가리켰다.촉감은 부드럽고 따뜻하며 땀을 잘 흡수하는데다 가볍고 질기다는 설명을 곁들였다.그제야 선생은 유배생활 중에 보고 느꼈던 의아스러운 점들이 이해되었다.중국인들이 즐겨 입는 옷들은 대부분 그 노파가 입고 있는 옷감과 닮은 것이었다.목화꽃이 지고 난 자리에 주렁주렁 달리는 열매가 다래였고,그 다래가 익으면 네 곳으로 터지면서 눈처럼 흰 솜이 그 안에서 부풀어 오르고,햇볕을 잘 받아 익으면 솜을 빼내어 옷감을 만든다고 했다. 선생은 그 목화라는 식물을 고려로 가져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를 곰곰 생각하기 시작했다.그 당시 원나라에서는 인도로부터 목화 종자를 들여와 대대적으로 재배하여 중국인과 북방 민족들의 의류혁명을 완성해가고 있는 중이었다.목화는 고온다습한 기후를 좋아하며 다래가 익어 터진 뒤에는 청명한 날씨가 많을수록 좋은 품질의 솜을 얻을 수 있었다. 선생은 고려의 백성들을 떠올렸다.추위를 막아줄 수 있는 옷감이 많지 않은 탓에 겨울만 되면 지옥 같은 나날을 살면서 얼어죽지 않기 위해 절규하는 이들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겨울철에도 삼베옷밖에 입지 못하는 서민들의 처량한 몰골이 선생의 눈시울을 적셨다.고려에도 부자나 귀족들은 명주옷을 겹으로 입으면 얼마만큼 추위를 막을 수 있었지만,삼베와 칡껍질로 엮은 옷으로는 아무리 겹쳐 입어도 추위 앞에서는 견디지 못했다.추운 계절에 먼 길을 떠나야만 하는 서민들은 거적대기를 뒤집어쓰거나 가마니를 뜯어 아랫도리를 가리고 다녔다.그러나 추위가 심한 날엔 백리 길을 가도 사람 그림자 구경하기 어려웠고 겨울철 내내 방안에만 틀어박혀 봄 오기만을 기다렸다. 입성의 초라함과 옷감 부족은 비단 겨울뿐만이 아니었다.여름철에도 아예 윗몸을 통째로 드러내 놓고 사는 서민들이 많았다.무더위 때문이 아니라 입을 옷이 없기 때문이다.그런 몰골로도 나라가 필요로 하는 온갖 부역과 부담을 온 몸으로 떠받쳤다. ●목화씨를 고려에 가지고 갈수만 있다면 목화씨를 고려로 가져가고 싶었다.노파에게 씨를 좀 줄 수 있느냐고 묻자 노파는 선생을 의심쩍게 훑어 보았다.그동안 이것저것 물었던 일과 연관을 지으면서 선생의 정체를 수상하게 여기기 시작했다.선생은 영문을 몰랐다. 잠시 뒤 그 지방 관헌이 선생을 찾아왔다.짐을 뒤지고 온 몸을 수색했다.그 까닭을 묻자 관현이 말했다.목화는 원나라의 귀중한 보물이기 때문에 외국인은 그누구도 목화 종자를 가져갈 수 없다는 황제의 칙명이 내려져 있다고 했다.그제야 선생은 목화가 얼마나 소중한 재산인지 짐작이 갔다.한 국가에서 국민이 입는 옷은 먹는 식량과 함께 가장 중요한 근본의 하나였다. 추위와 더위를 막을 수 있는 옷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고는 왕이나 국가의 치세를 신뢰하지 않는 것이 백성이다.백성은 무슨 이상향이나 신기루 같은 세상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견딜 수 있는 최소한의 양식과 옷,집과 이웃의 평화가 있다면 왕과 국가를 위해 기꺼이 헌신하는 삶을 산다.그렇다면 이제껏 고려의 백성들이 겪어온 헐벗음의 고통이 얼마나 컸을지를 뒤늦게야 깨우치며 선생은 눈물지었다.추위를 막아줄 옷도 제대로 마련할 수 없는 나라에서 끊임없는 부역과 무거운 세금에 짓눌리면서도 묵묵히 견뎌온 백성들이야말로 진정한 고려의 주인이라는 깨달음에 눈을 떴다. 그 유배길이 아니었다면 깨달을 수 없는 너무나 소중한 생각이었다.선생은 기어코 목화씨를 고려로 가져오리라 결심했다.원나라가 엄중하게 지키는 최고의 국가 기밀이자 재산이기도 한 목화 종자를 숨겨오다 들키게 되면 처형된다는 것도 알았다.옷을 발가벗기고,벗은 옷을 뒤집어서 털고,상투머리를 풀어 머리카락 속까지 뒤졌다.그러니 여행자들의 짐이야 말할 필요도 없었다. 선생은 우여곡절 끝에 목화씨 열 알을 손에 넣었다.궁리 끝에 숨겨갈 만한 자리를 생각해냈다.붓을 이용하자는 것이었다.먼저 털로 된 붓을 뽑아내고 붓대롱 속에다 목화씨를 숨겼다.그런데 국경 검문소에도 붓통까지 검사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고려로 갖고 들어온 목화씨는 선생의 장인 정천익과의 공동 실험을 거쳐 마침내 이 땅에 의류혁명을 일으키게 되었고,선생의 큰 은혜로 하여 추위에 얼어 죽는 사람이 사라지게 되었으니 선생이야말로 진정한 이 땅의 구세주라 부를만 하지 않은가. 개인의 불행과 고통을 정치적 출세 수단으로 활용하는 이땅의 숱한 정치꾼들이야말로 문익점 선생의 삶 앞에서 참회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 빌딩숲 보리밭! 여의도

    따뜻한 햇살과 살랑살랑 부는 바람이 싱그러운 4월초.“봄기운을 느끼러 어디로 가볼까.”하고 고민하지 말자.3일부터 시작되는 황금연휴에 서울을 떠나지 못했다면 무조건 지하철을 타고 ‘여의도’로 가보자. 눈이 부시게 푸른 보리밭과 분홍빛 벚꽃이 기다리고 있다. 지하철을 이용하면 차 막히는 스트레스도 없고 고유가 시대에 기름값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입장료도 없다. ●서울 도심 한복판 녹색의 보리밭 물결 4일 오후 여의도 문화마당으로 가면 당신은 놀랄 것이다.“아니 여기 언제,누가 이렇게 큰 보리밭을 만들었지.”,“빌딩 숲 사이에 보리밭길이라,노래가 절로 나오네.보리밭 사잇길로 걸어가면….”아이들과 손잡고 거닐면 저절로 노래가 나온다. 4일과 5일 이틀 동안 서울 여의도 문화마당에 9000평의 보리밭이 조성된다.아이들과 아내 또는 연인의 손을 잡고 금난새가 지휘하는 오케스트라 선율에 맞춰 ‘짠짠짠∼ 짠짠짠∼ ’스텝을 밟으며 보리밭 사잇길을 거닐어 보자.생각만 해도 유쾌하지 않은가. 우리 농산물의 소중함을 일깨우고,시장개방에 맞서는 농촌의 힘겨운 현실을 조금이나마 알리기 위한 ‘빌딩숲 보리밭 축제’가 농림부와 농협중앙회 주최로 4,5일 서울 여의도공원에서 열린다.서울신문사와 KBS가 주관하고 하이트와 포커스가 협찬한다. 이 축제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우리 농업의 무한가치를 알리고 우리 농업에 대한 관심과 지지를 촉구하는 대국민 퍼포먼스로 농촌 특유의 ‘어메니티(Amenity)’를 직접 체감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기 위한 것이다. 어메니티란 어떤 사물이나 환경에서 느끼는 ‘쾌적성’을 말한다.농업은 식량생산,환경적·공익적 기능뿐 아니라 그 경관이 지닌 어메니티만으로도 무한한 가치를 지닌 소중한 자원.그 소중함을 녹색 보리밭을 걸어 보며 느껴보자. 빌딩 숲 사이에 녹색의 바다처럼 펼쳐질 보리밭은 경기도 이천의 보리 재배농가 10여 곳에서 겨우내 정성 들여 가꾼 보리를 작은 화분 40만개에 담아 농촌 들녘의 보리밭처럼 만든 것이다. 70∼80㎝ 정도 자란 싱그러운 보리밭 사이를 거닐면 농촌의 정취가 저절로 느끼질 것이다.전시된 보리 화분은 ‘생분해성 비닐포장지’에 담아 4일 오후 3시와 5일 오전 10시 방문객들에게 무료로 나눠준다.학생들의 산 교육을 위해 보리를 잘 키우는 법도 알려준다. 또한 문화마당 3곳의 화분 배포처에는 ‘농촌학생돕기 장학금 모금함’이 설치돼 있다. 보리밭 축제의 부대행사도 좋은 볼거리다.4일 오후 7시부터는 금난새가 지휘하는 유라시안필하모니 오케스트라의 ‘쉼표 음악회’가 열린다.비발디의 ‘사계’ 가운데 봄과 우리 가곡 ‘보리밭’ 등이 화려한 조명 속에 연주돼 봄밤을 아름답게 장식할 것이다. 이에 앞서 이날 오후 1시10분부터는 KBS가 전국 들녘의 실제 보리밭을 위성으로 연결,건강한 농업인들의 모습을 도시민들에게 전하는 특별 생방송 ‘보리밭 사잇길로’를 진행한다. 보리밭 앞에 설치될 ‘희망나무’도 눈길을 끈다.나무 앞에 설치된 코너에서 오색지에 소망의 글을 적어 3.5m 높이의 철제 골조로 만든 희망나무에 걸어보자.마치 나뭇잎처럼 물결칠 것이다.아이들과 함께 적으면 더욱 좋을 것이다.‘우리 농업 만세’,‘극복하자 WTO’,‘힘내세요,농업인 여러분.우리가 있습니다.’ 등 격려의 글이 농업인들에게 큰 힘이 될 것이다. 자 이제 푸른 보리밭의 정취를 맘껏 누렸다면 벚꽃이 한창인 여의도 윤중로나 63빌딩으로 옮겨도 좋을 것이다. Go! Go! 여의도 ●벚꽃이 흩날리는 윤중로 서울에서 벚꽃으로 가장 유명한 곳은 영등포구 여의도동 윤중로.국회의사당 뒷길(서강대교 남단∼파천교 북단) 1.5㎞를 따라 30∼40년 생 왕벚나무 1621그루가 해마다 이맘때면 화려하게 꽃망울을 터트린다.또 여의도 강변을 따라 약 10㎞가 아름다운 벚꽃으로 물결친다. ‘벚꽃 터널’을 걸으며 꽃냄새를 가슴 깊이 마셔보자.운좋아 시원한 강바람이 불어 우수수 떨어지는 ‘꽃비’에 흠뻑 젖는 ‘행운’을 만나는 사람은 그야말로 부러울 게 없는 사람이 될 것이다. 벚꽃행사는 12일까지 계속된다.이 기간중 윤중로구간의 교통이 전면 통제된다.또 청소년 음악회와 거리의 악사를 위한 자유 공연장이 운영되며 풍물패,고적대,경찰악대 등의 연주회도 열린다.볼거리 제공을 위해 경찰기마대 행진이 있고 벚꽃 사진작품 전시회 등도 개최된다. 총 450만여명의 꽃놀이 인파가 여의도를 찾을 것으로 예상된다.많은 인파에 휩싸여 아이들을 잊어버릴 수도 있으므로 특히 주의해야 한다. 국회주변도 차량들이 통제된다.여의서로(파천교 북단에서 국회,서강대교 남단)와 국회뒤편 고수부지 하단도로는 축제기간에 전면통제된다.또 올림픽대로 여의하류 IC에서 파천교북단은 출근시간(아침 6시∼ 낮 12시)을 제외하고는 통제된다. 행사기간중 여의도 일대는 극심한 차량 정체가 예상되므로 승용차를 가지고 갈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 좋다.지하철 5호선 여의도역이나 여의나루역,2호선 당산역을 이용하면 걸어서 5분에서 10분이면 갈 수 있다. ●다양한 이벤트와 벚꽃이 만나는 63시티 오는 11일까지 ‘63벚꽃대축제’를 한다. 3일과 4일,11일에 63빌딩 만남의 광장에서는 전자 현악기로 신나고 경쾌한 클래식 선율을 들려주는 여성 4인조 ‘벨라트릭스’의 ‘전자클래식 연주’,화려한 의상과 현란한 율동이 돋보이는 ‘밸리댄스 공연’이 펼쳐진다. 만남의 광장 통로를 인조벚꽃으로 꾸며 포토존으로 제공하는 ‘63벚꽃터널’을 만들었고 여기서 찍은 사진을 응모하면 우수작에는 푸짐한 경품을 제공한다. 또한 ‘뚝딱이 아빠’ 개그맨 ‘김종석’의 사회로 일본 어린이 댄스 신동들이 갖가지 무용과 율동을 선보이는 ‘일본어린이댄스페스티벌’ 등도 연다. 구경하다 출출할땐… ●구마산 어른들을 모시고 갔다면 점심에 보양식인 추어탕 한 그릇이 제격일 것이다.여의도 백화점옆 미원빌딩 2층에 위치한 ‘구마산’은 옛날 마산식 추어탕집이다.전직 대통령과 전 서울시장 등이 찾은 곳으로,추어탕과 석쇠구이 갈비가 유명하다.추어탕 7000원,석쇠갈비 1인분에 2만원.(02)783-3269. ●마라김치방 “집에서 먹는 김치도 지겨운데 나와서도 김치요리 먹으라고?”라며 투정 부릴 필요없다.일단 한번 먹어보면 맘이 달라진다.KBS별관 뒤쪽에 위치한 ‘마라김치방’은 김치요리 전문점으로 빨간 김칫국물에 하얀 국수를 말아내는 김치말이국수를 비롯해 김치주먹밥,김치전,김치전골,김치보쌈,김치해물전골 등이 주 메뉴이다.김치말이국수 4000원,김치주먹밥 3000원 (02)780-2489. ●스카이뷰 연인과 함께 ‘폼’나게 먹으려 한다면 63빌딩 꼭대기에 위치한 ‘스카이 뷰’와 ‘스카이 라고’를 강추한다.두 음식점은 서울에서 가장 높은 건물인 63빌딩의 59층에 위치해 수려한 전망을 만끽하며 서양 음식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스카이 뷰’는 안심스테이크와 바닷가재가 메인 요리인 ‘미식가 C코스’가 인기다.1인당 9만원.‘스카이 라고’는 낙지 스파게티 1만 5000원. 두 곳 모두 (02)789-5902로 문의하면 된다. 한준규기자 hihi@˝
  • [국제플러스] 유엔, 가자지구 일부 업무 중단

    유엔은 이스라엘이 인도적인 구호업무를 방해하고 있다며 이에 대한 항의표시로 29일부터 가자지구 내 일부 업무를 중단할 방침이라고 CNN 인터넷판이 27일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현지 유엔 대변인 아드난 아부 하스나는 유엔난민구호사업기구(UNRWA)와 세계식량계획(WFP)이 식량선적을 중단할 것이며 유엔아동기금(UNICEF)도 어린이 대상 일부 보건사업을 중단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유엔의 이번 조치는 이스라엘이 외교관 여권이 없는 유엔 직원에 대해 차량을 이용해 에레즈 검문소 통과하지 못하도록 한 데 대한 항의의 표시로 결정된 것이라고 이 대변인은 설명했다.
  • [씨줄날줄] 보리밭/이상일 논설위원

    “보리밭 사잇길로 걸어가면/뉘 부르는 소리있어 나를 멈춘다/옛 생각에 외로워 휘파람 불면…”윤용하 작곡 박화목 작사의 ‘보리밭’은 1970년대 한 대중가수가 부르면서 크게 인기를 모아 국민 가요가 됐다.서정적이면서 다소 쓸쓸한 기분의 이 노래가 보릿고개가 거의 끝나가는 시점에 널리 불린 것은 아이로니컬하다. 그때까지만 해도 쌀 생산은 크게 늘었지만 자급률 100%에는 미치지 못했다.가을에 수확한 양식이 동났는데 보리가 미처 여물지 않은 5∼6월,일부 농촌은 먹을거리가 부족해 여전히 보릿고개를 넘기기 힘들었다.학교와 관공서가 보리밥 먹기 운동을 펴고 선생님이 쌀에 보리를 섞었는지 도시락을 검사하던 시절이었다.그래서 중장년층은 보리와 보리밭을 보면 먼저 궁핍,그리고 생활난을 떠올린다. ‘보리밭 화가’로 불리는 이숙자(62·여)씨가 보리밭을 집중적으로 그리기 시작한 것도 그즈음이었다.그는 화가로서 자신의 능력에 회의를 품은 30대 후반기의 좌절감을,보리밭 그리기로 극복했다.“화가로서의 ‘업’을 보속(補贖)하는 마음으로 한알 한알의 보리알을,실같은 수염을 한 줄씩 무수히 그려서 거대한 화판을 보리수염으로 덮어나갔다.”그는 ‘슬픈 보리밭’이란 글에서 “어느 날 본 보리밭에서 6·25 피란시절 시골의 기억을 떠올렸다.”며 “보리밭에서 느껴지는 서정성에는 우리 민족의 애환이 깃들어 있다.”고 말했다. 이제 대체식량 보리의 역할과 이미지도 달라졌다.지난 2002년 한해동안 국민 한 사람당 쌀을 87㎏ 먹은 반면 보리쌀은 1.5㎏ 소비에 그쳤다.보리쌀 자급률은 60% 수준으로 대부분의 맥주와 사료용 보리는 수입한다.가난해서 보리밥을 먹기보다 건강식으로 찾는 사람이 더 많다. 푸른 보리밭은 싱그러운 봄 나들이 풍경이 됐다.전남 영암 들판의 보리밭은 월출산 일대의 하얀 벚꽃과 대비를 이루면서 여행객을 끌어모으고 있다.서울신문사가 새달 4,5일 여의도에서 보리밭축제를 연다.화분 40만개로 보리밭 9000평이 조성된다.도시 한복판에서 보는 보리밭은 ‘농촌에 대한 향수와 진한 감동’을 줄 것 같다.도심의 아스팔트위에서 아련한 옛날 ‘보릿고개’의 쓰라린 추억과 초록의 아름다움을 동시에 느껴볼 만하다. 이상일 논설위원˝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25)이걸이 저걸이 갓걸이(下)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25)이걸이 저걸이 갓걸이(下)

    진주농민항쟁이 일어난 19세기 후반을 ‘민중의 시대’라고 부른다.진주지방농민들이 일으킨 항쟁은 ‘민중의 시대’를 알리는 서곡이었다.1862년 2월18일의 진주농민항쟁을 시작으로 하여 1894년 동학농민혁명에 이르는 32년 동안 조선전역에 걸쳐 70여 차례의 농민항쟁이 들불처럼 타올랐었다. 그래서 진주농민항쟁을 동학혁명의 씨앗이라고도 하며,성리학 이념에 봉사한 유생들의 허망한 정치실패를 입증한 피와 박해의 증거라고도 부른다. ‘이걸이 저걸이 갓걸이’라는 류계춘 원작의 이 노래는 농민항쟁이 일어난 지역마다의 중요한 쟁점에 따라 약간씩 노랫말이 바뀌는데,그것은 그 지역 농민들에게 공통된 분노와 모순을 첨예하게 드러냄으로써 농민들의 결집을 강화시키고 투쟁력을 높이기 위한 전략이기도 했다.류계춘 선생의 세상을 읽어내는 통찰력이 또 한번 돋보이는 부분이기도 하다. 아무튼 19세기 후반은 풍양 조씨와 안동김씨 세도정치로 인한 사회 질서의 문란이 극점에서 폭발하기 직전이었다.여기에다 조선왕조의 조세제도 핵심인 삼정(三政)의 실패가 겹쳐 조선은 국가로서의 통제력을 상실하여 가난한 민중의 삶은 참담했다. ●민중 오랜 착취와 압박에 신음 순조,헌종,철종년간 조선사회의 모순은 이미 깊어져 있었고,봉건제도 붕괴 과정에서 민중은 오랜 착취와 압박으로 신음했다.지옥같은 학정의 세월 한 가운데서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횃불이 맨 먼저 진주에서 타올랐다. 그 혁명의 전주곡인 나팔소리를 맨 처음 낸 나팔수가 류계춘 선생이었던 것이다.왜 그는 혁명의 나팔소리인 ‘이걸이 저걸이 갓걸이’라는 노래를 지어 퍼뜨렸을까? 조선왕조 조세제도인 삼정(三政)은 전정(田政),군정(軍政),환곡(還穀)을 말한다. 전정은 토지세,군정은 병역의무와 관련된 세금,환곡은 봄철의 식량부족과 파종기 종자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국가에서 곡식을 빌려주었다가 가을 수확 때 이자를 붙여 되돌려 받는 제도였음은 일반 상식이다. 이 같은 국가 조세제도의 골격인 삼정제도가 오랜 모순으로 폐단이 커지자 이에 따른 구체적인 폐해는 농민들의 부담으로 귀결되었다. 국가가 필요로 하는 노동력과 세금은 결국 가장 낮은 계층인 농민들의 육신과 농사 지은 곡식,베틀로 짠 포목이기 때문이다.양반 사대부는 병역의 의무도 없었고,부역 등 노동력을 바쳐야 할 필요도 없었으며,아무리 재산이 많더라도 세금 낼 까닭이 없었기 때문에 국가가 어려울수록 항상 고통받는 것은 농민들뿐이었다.끊임없이 늘어만가는 삼정폐해에 따른 부담은 농민들을 살아갈 수 없도록 만들고 있었다. 전정 즉 토지세 모순은 전 국토를 쑥대밭으로 만든 임진왜란,정묘 병자호란으로 더욱 심각해졌다.오랜 전쟁 때문에 많은 토지가 황폐해진데다 양반,관리,토호들이 고의적으로 토지대장에 등록하지 않고 숨겨둔 토지와,세금을 안내는 면제토지가 늘어나자 국가의 조세수입은 그만큼 줄어들었다. 그렇게 줄어든 세금을 모두 농민들에게 부담시켰으니 농민들의 삶은 고통뿐이었다.여기에다 관청에 근무하는 관리들이 개인적으로 탕진해버린 공금을 채워넣기 위하여 도결(都結)이라는 이름의 세금을 만들어 마음대로 부과하여 거둬들였다. ●일부 농민들 세도가에 붙어 병역기피 군정,즉 병역의무와 관련된 세금은 군포(軍布)라는 이름의 베를 징수하는 것이다.그런데 양반,아전,관노(官奴)는 병역이 면제된데다 정치기강이 문란해지자 일부 농민들도 세도있는 양반가문에 붙어서 병역을 기피하는 폐단이 생겼다. 환곡제도는 앞의 두 제도보다 더 심했다.아예 고리대(高利貸)로 변질되어 지방관청 관리들의 탐욕을 키우는 가장 악질적인 농민수탈 방법이었다.처음부터 월급이 없는 아전들은 농민을 착취하고 공금과 관청곡식을 횡령착복하는 협잡을 하도록 되어 있었다. 얼마만큼의 부정부패를 국가가 공식적으로 묵인해 주고 있었던 것이다.이 얄궂은 제도는 오늘날 공무원들의 부정부패를 심판할 때 일정액수 이하의 금액을 뇌물로 받거나 횡령했을 때 이른바 ‘통상적인 떡값 또는 관례’라 하여 면죄부를 주는 원류가 되었다. 이같은 모순이 계속되다 보니 탐관오리의 간악한 작폐로 인하여 농민의 생활은 눈뜨고 볼 수 없는 참상으로 변했고,고통에 허덕일 수밖에 없었다. 국가의 재정은 고갈되고,착취를 견디다 못한 농민들은 고향을 버리고 도망하여 유민이 되기도 했다.유민들 중에는 장길산처럼 도둑떼로 변질되기도 했고,깊은 산중 절간에 찾아가서 절 머슴이나 승려가 되기도 했다.살아남기 위하여 긴급피난한 농민들이 사찰로 몰려들어 승려가 되는 것은 한 때 커다란 유행이었다.실제로 한때 승려 숫자가 조선 인민의 10분의 1이 된적이 있었을 정도였다. ●한때 조선인민 10분의1 승려 되기도 아무튼 참을 수 없는 정도까지 불만이 쌓이자 농민들은 필연적으로 정부에 항거하는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이래도 죽고,저래도 죽을 바엔 할말이나 해보고 죽자는 공감대가 조선의 모든 농민들 가슴에 자리잡기 시작한 것이다. 이같은 전 국가적 모순에 저항의 횃불을 맨 처음 쳐든 것이 진주지방 농민들이었다.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은 조선 어느 지방보다 진주지방의 모순이 더 크고,착취가 심했기 때문이었다. 진주는 진주목사가 다스리는 행정관청 외에 경상우도 병마절도사가 다스리는 군사기관인 병영까지 있어서 관리와 아전의 숫자가 그만큼 많았다.아전 숫자가 많다는 것은 곧 농민들을 수탈하는 정도가 그만큼 극심하다는 뜻이다. 또한 향교와 서당이 많아서 향교의 교생(校生),서원의 원생(院生)은 모든 의무에서 면제되는데,그 면제액만큼 농민들의 부담은 늘어났다. ●농민들 존재 양반의 ‘갓걸이’ 에 비유 ‘이걸이 저걸이 갓걸이’에서 모든 힘없는 농민들 숫자는 곧 양반들의 갓을 걸어두는 ‘걸이’,즉 양반을 위해 존재하는 목숨없는 말뚝이나 갓 걸어두는 도구에 불과하다는 지독하고도 절묘한 은유인 것이다. 1862년 이전 류계춘 선생은 이 같은 진주목과 병영아전들의 혹독한 수탈에 대하여 여러해 동안 문제제기를 했었다.해당 관청에 진정서를 내거나 고발장을 접수시키기도 하면서 폐단을 고쳐달라고 애원했다. 그러자 아전들은 류계춘선생을 온갖 방법으로 박해하고 괴롭혔다.구속시켜 매질을 하기도 했다.이런 선생을 지켜보던 진주지방 농민들은 자신들의 억울함을 대변하는 선생에게 직·간접적인 지지를 보내면서 격려해주었다. 그러는 사이에 농민수탈은 더욱 심해졌다.농민들은 최후의 방법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류계춘 선생이 농민의 대표자로 뽑혔다.그때부터 선생은 최후의 결전을 준비해 나갔다.먼저 농민들을 결속시키고 투쟁력을 높이기 위해서 노래를 만들어 퍼뜨렸다. 그런 다음 몇 가지 방법을 고안하여 농민들을 결속시키는 일에 착수했다. 농민들에게 가장 악랄한 아전으로 알려진 자와 양반으로서 가장 탐학과 착취가 심한 자들을 선정하여 그들의 구체적인 비리내용과 이름을 적은 일종의 전단을 만들어 사방에다 붙이고 뿌렸다.모두 한글로 적었기 때문에 이를 언방(諺榜)이라 했다.농민들이 더 이상 참기만해서는 안되는 이유,구체적으로 어떤 인물이 왜 농민의 적이 될 수밖에 없는지를 소상하게 적어서 비밀리에 돌려 읽히는 회문(回文),거사 날짜가 정해지면 각자의 임무를 차질없이 수행하겠다는 맹세를 하는 통문(通文)등 방법으로 농민들과 조직 책임자를 정하고 준비했다. 마침내 1862년 2월 18일 이른 아침부터 농민들은 미리 정해진 시간과 장소에서 봉기를 시작하여 약속된 장터나 공공 집회장소로 집결했다. 머리에 흰 수건을 두르고 손에는 몽둥이와 농기구를 들고,‘이걸이 저걸이 갓걸이’를 소리높여 부르면서 농민시위대를 만들어 갔고 시위대의 규모가 순식간에 홍수처럼 불어났다.겁을 먹고 숨어있던 자,반대하던 자,피신해있던 자들까지도 농민시위대의 함성과 노랫소리에 이끌려 합류했다. 이렇게 결집된 농민들은 진주성문을 열고 들어가 우병사 백낙신,진주목사 홍병원으로부터 항복을 받고,악질 관리로 손꼽히던 권준범,김희순을 불태워 죽였다. 그리고 자진해산하기까지의 4일동안 농민들의 원성을 산 토호들과 양반,부패관리들을 응징하고 끝났다.누구의 강압이나 회유에 의해서가 아니라 농민들 스스로 정한 목적에 따라 자진해산한 것이다. 그리고 류계춘 선생과 동지들 또한 스스로 관청에 나가 진실을 밝히면서 잘못된 제도를 폐지할 것을 요구했다.그러나 그 대답은 반역죄에 따른 참수형이었다.그들이 죽은 뒤 조선의 농민들은 32년간의 긴 기간에 걸쳐 정부에 책임을 물었고,동학농민혁명으로 승화되었다. 선생이 떠난지 140여년이 지난 오늘날 한국의 농민과 농업은 여전히 고난에 처해있다.선생의 초라한 무덤이 자꾸 오늘날 한국 농업의 상징처럼 다가온다.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25)이걸이 저걸이 갓걸이(下)

    진주농민항쟁이 일어난 19세기 후반을 ‘민중의 시대’라고 부른다.진주지방농민들이 일으킨 항쟁은 ‘민중의 시대’를 알리는 서곡이었다.1862년 2월18일의 진주농민항쟁을 시작으로 하여 1894년 동학농민혁명에 이르는 32년 동안 조선전역에 걸쳐 70여 차례의 농민항쟁이 들불처럼 타올랐었다. 그래서 진주농민항쟁을 동학혁명의 씨앗이라고도 하며,성리학 이념에 봉사한 유생들의 허망한 정치실패를 입증한 피와 박해의 증거라고도 부른다. ‘이걸이 저걸이 갓걸이’라는 류계춘 원작의 이 노래는 농민항쟁이 일어난 지역마다의 중요한 쟁점에 따라 약간씩 노랫말이 바뀌는데,그것은 그 지역 농민들에게 공통된 분노와 모순을 첨예하게 드러냄으로써 농민들의 결집을 강화시키고 투쟁력을 높이기 위한 전략이기도 했다.류계춘 선생의 세상을 읽어내는 통찰력이 또 한번 돋보이는 부분이기도 하다. 아무튼 19세기 후반은 풍양 조씨와 안동김씨 세도정치로 인한 사회 질서의 문란이 극점에서 폭발하기 직전이었다.여기에다 조선왕조의 조세제도 핵심인 삼정(三政)의 실패가 겹쳐 조선은 국가로서의 통제력을 상실하여 가난한 민중의 삶은 참담했다. ●민중 오랜 착취와 압박에 신음 순조,헌종,철종년간 조선사회의 모순은 이미 깊어져 있었고,봉건제도 붕괴 과정에서 민중은 오랜 착취와 압박으로 신음했다.지옥같은 학정의 세월 한 가운데서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횃불이 맨 먼저 진주에서 타올랐다. 그 혁명의 전주곡인 나팔소리를 맨 처음 낸 나팔수가 류계춘 선생이었던 것이다.왜 그는 혁명의 나팔소리인 ‘이걸이 저걸이 갓걸이’라는 노래를 지어 퍼뜨렸을까? 조선왕조 조세제도인 삼정(三政)은 전정(田政),군정(軍政),환곡(還穀)을 말한다. 전정은 토지세,군정은 병역의무와 관련된 세금,환곡은 봄철의 식량부족과 파종기 종자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국가에서 곡식을 빌려주었다가 가을 수확 때 이자를 붙여 되돌려 받는 제도였음은 일반 상식이다. 이 같은 국가 조세제도의 골격인 삼정제도가 오랜 모순으로 폐단이 커지자 이에 따른 구체적인 폐해는 농민들의 부담으로 귀결되었다. 국가가 필요로 하는 노동력과 세금은 결국 가장 낮은 계층인 농민들의 육신과 농사 지은 곡식,베틀로 짠 포목이기 때문이다.양반 사대부는 병역의 의무도 없었고,부역 등 노동력을 바쳐야 할 필요도 없었으며,아무리 재산이 많더라도 세금 낼 까닭이 없었기 때문에 국가가 어려울수록 항상 고통받는 것은 농민들뿐이었다.끊임없이 늘어만가는 삼정폐해에 따른 부담은 농민들을 살아갈 수 없도록 만들고 있었다. 전정 즉 토지세 모순은 전 국토를 쑥대밭으로 만든 임진왜란,정묘 병자호란으로 더욱 심각해졌다.오랜 전쟁 때문에 많은 토지가 황폐해진데다 양반,관리,토호들이 고의적으로 토지대장에 등록하지 않고 숨겨둔 토지와,세금을 안내는 면제토지가 늘어나자 국가의 조세수입은 그만큼 줄어들었다. 그렇게 줄어든 세금을 모두 농민들에게 부담시켰으니 농민들의 삶은 고통뿐이었다.여기에다 관청에 근무하는 관리들이 개인적으로 탕진해버린 공금을 채워넣기 위하여 도결(都結)이라는 이름의 세금을 만들어 마음대로 부과하여 거둬들였다. ●일부 농민들 세도가에 붙어 병역기피 군정,즉 병역의무와 관련된 세금은 군포(軍布)라는 이름의 베를 징수하는 것이다.그런데 양반,아전,관노(官奴)는 병역이 면제된데다 정치기강이 문란해지자 일부 농민들도 세도있는 양반가문에 붙어서 병역을 기피하는 폐단이 생겼다. 환곡제도는 앞의 두 제도보다 더 심했다.아예 고리대(高利貸)로 변질되어 지방관청 관리들의 탐욕을 키우는 가장 악질적인 농민수탈 방법이었다.처음부터 월급이 없는 아전들은 농민을 착취하고 공금과 관청곡식을 횡령착복하는 협잡을 하도록 되어 있었다. 얼마만큼의 부정부패를 국가가 공식적으로 묵인해 주고 있었던 것이다.이 얄궂은 제도는 오늘날 공무원들의 부정부패를 심판할 때 일정액수 이하의 금액을 뇌물로 받거나 횡령했을 때 이른바 ‘통상적인 떡값 또는 관례’라 하여 면죄부를 주는 원류가 되었다. 이같은 모순이 계속되다 보니 탐관오리의 간악한 작폐로 인하여 농민의 생활은 눈뜨고 볼 수 없는 참상으로 변했고,고통에 허덕일 수밖에 없었다. 국가의 재정은 고갈되고,착취를 견디다 못한 농민들은 고향을 버리고 도망하여 유민이 되기도 했다.유민들 중에는 장길산처럼 도둑떼로 변질되기도 했고,깊은 산중 절간에 찾아가서 절 머슴이나 승려가 되기도 했다.살아남기 위하여 긴급피난한 농민들이 사찰로 몰려들어 승려가 되는 것은 한 때 커다란 유행이었다.실제로 한때 승려 숫자가 조선 인민의 10분의 1이 된적이 있었을 정도였다. ●한때 조선인민 10분의1 승려 되기도 아무튼 참을 수 없는 정도까지 불만이 쌓이자 농민들은 필연적으로 정부에 항거하는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이래도 죽고,저래도 죽을 바엔 할말이나 해보고 죽자는 공감대가 조선의 모든 농민들 가슴에 자리잡기 시작한 것이다. 이같은 전 국가적 모순에 저항의 횃불을 맨 처음 쳐든 것이 진주지방 농민들이었다.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은 조선 어느 지방보다 진주지방의 모순이 더 크고,착취가 심했기 때문이었다. 진주는 진주목사가 다스리는 행정관청 외에 경상우도 병마절도사가 다스리는 군사기관인 병영까지 있어서 관리와 아전의 숫자가 그만큼 많았다.아전 숫자가 많다는 것은 곧 농민들을 수탈하는 정도가 그만큼 극심하다는 뜻이다. 또한 향교와 서당이 많아서 향교의 교생(校生),서원의 원생(院生)은 모든 의무에서 면제되는데,그 면제액만큼 농민들의 부담은 늘어났다. ●농민들 존재 양반의 ‘갓걸이’ 에 비유 ‘이걸이 저걸이 갓걸이’에서 모든 힘없는 농민들 숫자는 곧 양반들의 갓을 걸어두는 ‘걸이’,즉 양반을 위해 존재하는 목숨없는 말뚝이나 갓 걸어두는 도구에 불과하다는 지독하고도 절묘한 은유인 것이다. 1862년 이전 류계춘 선생은 이 같은 진주목과 병영아전들의 혹독한 수탈에 대하여 여러해 동안 문제제기를 했었다.해당 관청에 진정서를 내거나 고발장을 접수시키기도 하면서 폐단을 고쳐달라고 애원했다. 그러자 아전들은 류계춘선생을 온갖 방법으로 박해하고 괴롭혔다.구속시켜 매질을 하기도 했다.이런 선생을 지켜보던 진주지방 농민들은 자신들의 억울함을 대변하는 선생에게 직·간접적인 지지를 보내면서 격려해주었다. 그러는 사이에 농민수탈은 더욱 심해졌다.농민들은 최후의 방법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류계춘 선생이 농민의 대표자로 뽑혔다.그때부터 선생은 최후의 결전을 준비해 나갔다.먼저 농민들을 결속시키고 투쟁력을 높이기 위해서 노래를 만들어 퍼뜨렸다. 그런 다음 몇 가지 방법을 고안하여 농민들을 결속시키는 일에 착수했다. 농민들에게 가장 악랄한 아전으로 알려진 자와 양반으로서 가장 탐학과 착취가 심한 자들을 선정하여 그들의 구체적인 비리내용과 이름을 적은 일종의 전단을 만들어 사방에다 붙이고 뿌렸다.모두 한글로 적었기 때문에 이를 언방(諺榜)이라 했다.농민들이 더 이상 참기만해서는 안되는 이유,구체적으로 어떤 인물이 왜 농민의 적이 될 수밖에 없는지를 소상하게 적어서 비밀리에 돌려 읽히는 회문(回文),거사 날짜가 정해지면 각자의 임무를 차질없이 수행하겠다는 맹세를 하는 통문(通文)등 방법으로 농민들과 조직 책임자를 정하고 준비했다. 마침내 1862년 2월 18일 이른 아침부터 농민들은 미리 정해진 시간과 장소에서 봉기를 시작하여 약속된 장터나 공공 집회장소로 집결했다. 머리에 흰 수건을 두르고 손에는 몽둥이와 농기구를 들고,‘이걸이 저걸이 갓걸이’를 소리높여 부르면서 농민시위대를 만들어 갔고 시위대의 규모가 순식간에 홍수처럼 불어났다.겁을 먹고 숨어있던 자,반대하던 자,피신해있던 자들까지도 농민시위대의 함성과 노랫소리에 이끌려 합류했다. 이렇게 결집된 농민들은 진주성문을 열고 들어가 우병사 백낙신,진주목사 홍병원으로부터 항복을 받고,악질 관리로 손꼽히던 권준범,김희순을 불태워 죽였다. 그리고 자진해산하기까지의 4일동안 농민들의 원성을 산 토호들과 양반,부패관리들을 응징하고 끝났다.누구의 강압이나 회유에 의해서가 아니라 농민들 스스로 정한 목적에 따라 자진해산한 것이다. 그리고 류계춘 선생과 동지들 또한 스스로 관청에 나가 진실을 밝히면서 잘못된 제도를 폐지할 것을 요구했다.그러나 그 대답은 반역죄에 따른 참수형이었다.그들이 죽은 뒤 조선의 농민들은 32년간의 긴 기간에 걸쳐 정부에 책임을 물었고,동학농민혁명으로 승화되었다. 선생이 떠난지 140여년이 지난 오늘날 한국의 농민과 농업은 여전히 고난에 처해있다.선생의 초라한 무덤이 자꾸 오늘날 한국 농업의 상징처럼 다가온다.˝
  • ‘난타’서 뉴욕 名주방장들 ‘칼솜씨’

    PMC프로덕션(대표 송승환)의 비언어퍼포먼스 ‘난타’(Cookin’)가 뉴욕 오프브로드웨이에 전용극장을 마련하고 브로드웨이 상업 무대에 본격적으로 도전장을 냈다. 지난달 20일부터 2주간 프리뷰 공연을 가진 ‘난타’는 7일 밤 미네타레인극장(400석)에서 공식 오프닝 행사를 가졌다. 이번에 선보인 공연은 브로드웨이를 겨냥한 전략적 포석이 곳곳에 추가돼 이전 공연들과 확연히 다른 느낌을 줬다. 영화 ‘와호장룡’에서 무술감독을 맡은 중국계 미국인을 영입해 쿵푸신이 파워풀하고 화려하게 변신했다.배우들이 공연중 대형 철판에 불고기를 굽는 요리쇼 등도 까다로운 현지 관객들의 입맛을 노린 것이다.미국 사회의 개방적인 성개념을 반영해 극중 남녀 요리사의 성적 코드를 부각시킨 것도 국내 공연과 비교해 달라진 점이다. 지난해부터 요리를 주제로 하거나 실제 음식이 등장하는 무대가 오프브로드웨이에서 붐을 일으키고 있는 현상도 ‘난타’의 흥행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뉴욕타임스 요리평론가가 음식에 얽힌 이야기를 펼쳐 놓는 1인극 ‘디너 위드 디몬스’는 흥행에 성공한 대표적인 작품. 오는 30일 개막하는 ‘셰프 시어터’는 TV요리쇼와 공연을 결합한 새로운 형태의 뮤지컬이다.유명 요리사 15명이 출연해 무대에서 3코스의 식사를 준비하고,관객들은 직접 요리를 맛볼 수 있다.물론 식사비용은 티켓 가격에 미리 포함된다. 오는 24일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이 개최하는 후원기금 모금 행사에 뉴욕의 최고수 주방장들이 ‘난타’ 무대에 서기로 한 것도 고무적이다.‘뉴욕 매거진’이 올해 최고의 레스토랑으로 선정한 ‘장고’와 ‘일레븐 매디슨 파크’‘바오 111’‘올리브 레스토랑 체인’ 등의 수석 주방장들이 ‘난타’ 출연진과 ‘칼솜씨’를 겨루기로 했다. 뉴욕의 인터내셔널 푸드마켓 가드 오브 에덴이 후원하는 이날 행사는 ‘난타’ 관람뿐만 아니라 맨해튼의 일식 뷔페에서 식사와 상품 추첨 등으로 진행되며 수익금 전액은 85개국의 굶주리는 어린이들에게 지원된다. 이런 분위기에 힘입어 ‘난타’는 프리뷰 공연 전에 이미 6주일분의 티켓이 매진되고,한 인터넷사이트의 오프브로드웨이 공연 예매율 순위에서 2위를 기록하고 있다.송승환 대표는 “10년 이상 장기 공연이 목표”라고 강한 의욕을 나타냈다. 한편 ‘난타’의 공식후원업체인 LG전자는 미네타레인극장 입구와 맨해튼 타임스 스퀘어,6번 애비뉴 전철역 입구 등에 대형 광고판을 설치하여 뉴욕시민들에게 적극 홍보하고 있다. 뉴욕 이순녀기자˝
  • [폭설대란] 피해키운 정부 늑장대응

    정부의 늑장·안일 대응으로 인해 ‘폭설’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지고,고속도로에서 오도가도 못하고 발이 묶이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자 국민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100년 만의 폭설이 ‘고속도로 대란’을 불렀던 1차적인 원인이지만,결국 정부의 안일한 대처가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기 때문이다.한마디로 ‘인재’라는 얘기다. 최대 30시간을 고속도로에 갇혀 밤새 추위에 떨어야 했던 일부 국민들은 “도대체 이 나라에 제대로 된 정부가 있느냐.”며 격앙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건교부등 홈페이지에 비난글 연이어 고속도로 운영의 1차 책임기관인 한국도로공사와 건설교통부 홈페이지에는 정부의 늑장대처를 비난하는 글 1000여건이 연일 빗발치고 있다. 한 네티즌은 “고속도로에 11시간 갇혀 있다가 추위와 배고픔을 이기지 못해 고속도로 한가운데를 걸어서 탈출했다.”면서 “도로공사측의 안일한 대처로 입은 재산상,정신적 피해를 보상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른 네티즌은 “최근 내린 폭설을 보면서 과연 대한민국에 정부가 존재하는지 의문이 들었다.”면서 “정부는 총선만 신경쓰지 말고,재발 방지책을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성기오씨는 “도로공사에 경멸보다는 비애를 느낀다.도공 사장은 책임지고 물러나라.”고 주장했다. 박천길씨는 “26시간 만에 출발지로 되돌아왔는데 통행료를 내라고 한다.우리나라 행정에 염증이 난다.고속도로 안내판에는 불통안내 대신 요금인상 안내만 나온다.미친X들….”이라고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이처럼 파문이 수그러지지 않자 도로공사는 6일 홈페이지에 ‘국민 여러분 정말 죄송합니다’라는 제목의 사과문을 올렸다. 공사측은 “죄스러운 마음에 머리를 들 수 없다.”면서 “이번 일을 거울 삼아 두번 다시 고속도로가 멈춰서는 일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사과했다. ●高총리 “재해본부 3번이나 들렀건만…” 고건 국무총리도 정부가 ‘폭설’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며 관계자들을 강도높게 질타했다.6일 오전 중앙청사에서 열린 ‘폭설대책 관계장관회의’에서다. 고 총리는 “폭설 초기 중앙재해대책본부를 세번이나 들러 철저한 대처를 지시했지만,초기에 안일하게 대응했다.”면서 관계자들을 크게 나무랐다. 이어 “긴급구호도 조직적으로 해달라고 부탁했으나 그렇지 못했다.”면서 “기술 전문성이 없고 무계획적이고 구태의연하고 희망적인 관측에만 매달려 결과적으로 긴급 제설대책의 실효성이 없었다.”고 안일한 자세를 질책했다. 특히 제설작업에 대해 “왜 실효성이 없었는지 자성하고 대책을 보완해야 한다.”며 ‘반성’을 촉구한 뒤 “부족하고 미흡했던 부분을 하나하나 체크해서 재해 관련 대책을 효율적으로 시스템화해 나가야 한다.”고 촉구했다. 고 총리는 또 음료수,비상식량,담요 등이 균등하게 배분되지 못한 점,정체 도로에선 500m 등 일정 간격으로 공무원을 배치해 승객들에게 정보와 안내를 제공하지 못한 점,구호물자를 곳곳의 정체 구간으로 체계적으로 나눠줄 수 있는 ‘보급지휘소’가 없었던 점 등을 일일이 거론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관계장관회의가 6일에서야 열렸다는 사실은 고 총리에게도 아픈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김용수 조현석기자 dragon@˝
  • [오픈코리아-소통하는사회를만들자](3부)개방압력 파도 슬기롭게 극복을(상)”

    올해 우리나라의 농업과 농촌이 중대한 기로에 섰다.쌀을 포함한 농산물이 우루과이라운드(UR)협상 때보다 더 큰 폭의 시장개방을 요구받고 있기 때문이다.지난 10년의 농정실패를 교훈삼아 향후 10년의 농정방향을 정해야 할 시점이다.농림부장관을 지낸 김성훈(金成勳·65)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대표를 권혁찬 경제부장이 만나 개방파고를 헤쳐 나갈 ‘지혜’를 들어봤다. 최근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이 국회비준을 받았습니다만,난항이 컸습니다.보고 느끼신 점이라면. -한·칠레 FTA는 태어나서는 안 될 잘못된 선택이었습니다.그러니 진통과 갈등이 클 수밖에 없었지요.일찍이 YS(김영삼)정권 때 계륵(鷄肋)이라며 칠레와의 FTA를 폐기했었습니다.그러다 단순히 칠레가 지구 남반구에 있어 우리 농업에 별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는 잘못된 판단으로 추진된 것입니다. 우리나라 전체 수출에서 칠레가 차지하는 비중은 0.2%에 불과하지만 돌(Dole) 등 다국적 기업이 대형 농장을 좌지우지하는 과일수출 강국입니다.그런데 양국 전문가들의 공동연구도 생략된 채 통상교섭본부에서 강하게 밀어붙인 것입니다. FTA는 지리적으로 가깝거나 무역에서 상호 보완적인 나라끼리 맺는 것이 관례입니다. 이제 결과에 대한 책임은 정부가 져야 합니다.우리나라는 대폭적인 관세감축 또는 ‘영세화(零稅化)’가 목적인 세계무역기구(WTO)의 도하개발어젠다(DDA) 농업협상을 앞둔 시점에서 1000여개 품목에 대해 무관세를 약속했기 때문에 DDA 협상에서도 똑같이 약속해야 합니다.잘못된 파트너를 선택한 정책의 실패라 할 수 있습니다. 농업시장 개방이 대세 아닙니까. -93년 UR 타결과 95년 WTO 가입으로 우리나라 농업시장은 이미 개방됐습니다.DDA 협상에선 정부보조금과 관세를 완전히 철폐하느냐 또는 대폭 삭감하느냐 여부가 당면과제입니다.우리나라가 나라별 식량사정과 농업기반 조건 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일괄적인 철폐에 합의하면 농지가격이 중국 등에 비해 10배 이상 높은 우리나라에서는 도저히 농업이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우리나라의 식량자급률은 지난해 기준 26.9%에 불과합니다.또 논농사는 단순히 10조원이 조금 넘는 상품(쌀)의 생산에 그치지 않습니다.홍수방지,지하수 함양,청정산소 공급,국토의 균형발전,경관 유지,전통문화 보전,식량안보 등 헤아릴 수 없는 다양한 공익적 기능(NTC)이 있습니다.이를 일부만 돈으로 환산해도 23조원이 넘는 혜택을 국민에게 무상 제공하고 있는 셈입니다.우리 국민이 즐겨먹는 중·단립종 자포니카 쌀은 생산지가 미국 캘리포니아와 중국 동북3성,호주 등 일부 국가에 불과합니다.이들의 수출여력은 우리 국민 쌀 수요의 4분의1도 안됩니다.우리의 쌀 산업이 한꺼번에 무너지면 아무리 비싼 값을 주어도 절대 수요량 확보가 어렵습니다. 쌀 재협상에서 관세화 또는 관세화 유예에 대해 논란이 있습니다만. -올해 쌀 재협상에선 현재 4%인 MMA(최소시장개방) 물량을 몇%로 더 늘려주느냐의 ‘관세화 유예’논의만 있을 뿐 별 대안은 없습니다.일본 등이 시장을 완전히 개방하는 관세화를 선택했으나 우리와는 처지가 다릅니다.일본은 UR 협상때 미리 값싼 수입쌀을 조금 수입하는 발빠른 조치를 통해 99년 관세화로 돌아설 때 1300%의 고(高)관세율을 적용받을 수 있었습니다.2000년 타이완도 660%의 높은 관세벽을 인정받아 자국 쌀을 보호하고 있습니다.하지만 우리 정부는 그렇게 대처하지 못해 이제 340% 수준을 유지하기도 어렵게 됐습니다.따라서 관세화 유예의 조건을 얼마나 유리하게 얻어낼지에 협상전략을 집중해야 합니다.일본의 특례(1300% 관세 인정)에서 보듯 관세화 유예협상에서 미국의 의사결정 시스템을 꿰뚫어 미국 쌀 업계에 로비를 하고,해당 의원들을 우군으로 확보하는 초동 전략이 중요합니다.중국이라는 새 변수에 대해서도 중국식 ‘콴시(關係)’를 근거로 ‘주고받기식’ 전략이 필요합니다. UR 이후 농정의 잘못된 점은. -98년 농림부장관으로 취임했을 때 농촌경제는 일반기업의 사업장 폐쇄나 은행의 대량실직 사태와 비교해도 그 이상의 참상이었습니다.부실기업과 은행은 150조원의 공적자금을 수혈받았지만 빚더미에 눌린 농촌은 방치됐습니다.62조원의 구조개선 및 농특자금은 농가 자부담액 등을 제외하면 40조원도 채 안되는데,그 대부분이 융자형태여서 고스란히 부채로 남았습니다.농가부채는 정책실패의 결과였습니다.아쉬운 점은 공적자금 투입을 농가부채에 적용하지 못한 것입니다.재정사정도 어려웠지만 농업대책이 우선 순위에서 밀려 있었던 것입니다.부채소각(탕감)에 대해 ‘도덕적 해이’라는 여론몰이 탓도 있었습니다.문제는 또 있습니다.농산물 관련 국제통상협상을 외교채널에서 총괄함으로써 농림부의 과장(부이사관급)이 중국과의 마늘협상,한·칠레 FTA 등에서 교섭팀의 말석을 겨우 차지하고 있습니다.비전문기관의 일방적인 교섭논리에 떠밀려 다닐 수밖에 없지요.수세적 통상외교에서는 품목별로 전문성을 띤 개별 정부부처에 교섭권을 분산시켜 대응해야 합니다. 농업·농촌을 실질적으로 살릴 수 있는 방안으로 무엇이 있을까요. -첫째로 농업경쟁력 증대를 가격과 비용,규모화 측면에서만 접근하면 십중팔구 실패하게 된다는 점입니다.쌀은 생산비 중 44%가 땅값(토지용역비)입니다.이는 미국·중국의 10배가 넘고 호주에 비하면 20배가 넘는 금액입니다.캘리포니아 쌀의 생산비와 비교하면 우리 쌀이 3.9배쯤 생산비가 높지만 토지용역비를 뺀 생산비만 따지면 1.8배밖에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땅값은 장기적으로 내리도록 유도하되 그 대가로 직불제와 가격보상,그리고 농업·농외 소득기회의 확대가 필요합니다. 둘째,범국가적으로 친환경유기농업을 대대적으로 육성·지원해야 합니다.환경 생태계를 살리고 국민건강을 지키며,우리 농축산물이 차별성을 갖는 길입니다.셋째,소득안전망을 선진국 수준으로 대폭 보강해야 합니다.농촌의 교육,의료,보건,복지,정보화 정책을 범정부 차원에서 통합 지원해야 합니다.농촌을 살기 좋고 쾌적한 삶의 터전으로 가꿔야 합니다.선진국은 도시와 농촌의 인프라에 별 차이가 없도록 하고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넷째,농가부채 문제는 옥석을 구분해 정책실패에서 비롯된 부분은 부실기업과 마찬가지로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혁명적 조치가 필요합니다.일찍이 다산 정약용 선생이 진언한 바와 같이 농사를 일반상업과 같이 수지가 맞도록 후하게 키워야(厚農)하고,공업처럼 편리하게 해야(便農) 하며,농민을 사회적으로 다양한 공익기능 수행의 대가로 존중받게(上農)해야 할 것입니다. 요즘 농협개혁 문제가 논란인데요. -자주 불거지는 농협문제는 농정실패의 부산물입니다.농림부가 해야 할 일을 농협에 떠맡겨 생긴 일이지요.감시·감독 기능을 소홀히 해서 발생한 구조적인 문제들입니다.농협개혁은 선출직인 지역농협 조합장이나 중앙회장에게 맡길 성질이 아닙니다.정부가 개혁을 주도해야 합니다.선출직은 악역을 맡지 못합니다.유통 중심의 품목별 조직을 육성하고 도·군지부 등 군더더기 중앙회 조직은 축소·폐지해야 합니다.지역농협에 책임운영제를 도입해야 합니다. 도시자본의 농촌 유치정책은 방향이 제대로 됐다고 보십니까. -모든 선진국은 예외없이 농지의 공익적 기능을 보전하고 있습니다.그에 따라 농민의 사적재산 사용권이 억제(가격하락)되는 대가로 정부는 과감한 소득보상 직접지불을 하고 있습니다.미국 농민은 소득의 45%,유럽연합(EU)은 60%가 정부 직접보상의 결과입니다.농지전용은 억제돼야 합니다.이미 대도시 근교의 농지 70%가 도시민에 의해 불법·편법으로 소유돼 투기대상이 돼 있는 마당에 더 많은 도시민의 투기를 불러들이면 천추의 한을 남길 것입니다.현행 농지제도(농업진흥지역)가 마치 경제활성화의 걸림돌인 것처럼 주장한다면 이는 고의적으로 농업포기를 강요하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습니다. FTA 후속대책도 중요하지만 농가소득 창출에 장애가 되는 규제들을 과감히 풀어야 합니다.농민들이 된장,고추장,간장,순대,편육 등을 만들어 팔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왜 국세청이 조선총독부 시절부터 갖고 있던 주세법을 틀어쥐고 있습니까.주류에 붙는 세금이 비싸다 보니 알코올 40도짜리 민속주가 밸런타인 양주보다 비싸게 팔리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민속주가 경쟁력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외국에서는 ‘홈 메이드’ 치즈나 잼이 제일 비쌉니다.우리는 식품위생법에 걸려 농민들이 된장·고추장을 만들어 팔 수 없습니다. 평소 정책 수혜자와 피해자의 형평성을 강조하셨는데.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사회주의를 극복하고 보편적 제도로 정착한 데에는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J R 히크의 ‘보상의 원칙’과 존 롤스의 ‘최약자 보호원칙’이 경제·사회 정책의 기조를 이루어 왔기 때문입니다. 어떤 한 정책에서 수혜자와 피해자가 함께 발생하면 정부가 나서 그 혜택을 고루 공유할 수 있도록 형평성과 보상대책을 강구해야 합니다.우리 사회에는 승자에 대한 찬사와 대책은 있어도 패자와 피해자에 대한 배려가 부족합니다. 국토대청소 운동을 제안하셨다고 들었는데요. -얼마 전 대통령이 주재하는 ‘일자리 창출’ 경제지도자회의에 경실련 대표로 참석했습니다.그 자리에서 단기대책에 더해 후세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범국가적인 공공사업을 제안했습니다.1930년대 미국의 테네시강유역개발공사(TVA) 등을 예로 들었습니다.쓰레기로 썩어가는 바다와 하천,저수지 등을 대청소하는 공공근로사업을 전개해 일자리도 만들고 깨끗한 환경을 후손에게 물려주자는 뜻입니다. 정리 김경운기자 kkwoon@˝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