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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통주 빚는 방법에 사연까지 술술

    전통주 빚는 방법에 사연까지 술술

    한국의 전통주 주방문 1~5/박록담 지음/바룸/896~1014쪽/각권 6만원 소싯적 술잔 좀 까딱거려봤다 싶은 사람이라면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운운하는 시구를 읊조리곤 했다. 식량난과 일제의 수탈에 시달리던 일제강점기 어느 농가에서 한가하게 술을 담갔겠느냐는 타박도 있었지만, 우리네 사람들이 전통적으로 방방곡곡, 가가호호 다양한 양조법으로 수백, 수천 종의 술을 빚어 먹었다는 사실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일제강점의 후과와 식량난 등을 이유로 전승 가양주는 사라지고 그저 쉬쉬하며 전해지는 밀주(密酒)의 형태로만 남게 됐다. 30년 전통주 외길을 걸어온 명인 박록담이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양조법 기록인 ‘산가요록’(山家要錄)을 비롯해 ‘언서주찬방’(諺書酒饌方), ‘수운잡방’(需雲雜方), ‘음식디미방’ 등 80여 종의 문헌에 수록된 술의 이름과 주방문(酒方文)을 집대성해 100년 동안 끊긴 전통주의 맥을 잇고자 했다. 주방문이란 술 빚는 방법을 적은 글을 일컫는다. 그렇게 꼬박 7년의 시간을 들여 520여 종의 전통주 이름, 1000여 가지 주방문을 체계적으로 분류, 서술했다. 탁주, 두강주, 삼일주, 백하주, 이화주 등 널리 알려진 술 외에 과하백주, 녹하주, 벽매주 등 다양한 술이 건네는 사연들이 술술 풀려나온다. 여기에 술을 빚는 구체적인 방법 및 지켜야 할 주의사항을 문헌의 원문과 함께 소개하고 있다.1권 잔치술부터 시작해 ‘방향과 청향의 술’, ‘효도하는 술’, ‘세월을 담는 술’ 등 탁주, 청주, 약주를 총 다섯 권으로 분류했다. 쌀 생산이 수요를 넘어서고 있는 세태에서 쉽지는 않겠지만 책의 주방문을 따라가며 전통주 빚기에 도전해보는 것도 긴긴 겨울날 소일 삼을 만하겠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1955년 주민이 직접 동장 선출… 1999년 동사무소 → 주민자치센터로

    지금은 잊힌 역사가 됐지만 동장을 직접선거로 선출하던 때가 있었다. 조선시대만 해도 향회 등의 이름으로 활발했던 주민자치는 제헌의회가 1949년 지방자치법을 제정하면서 정식 지방자치 조직으로 자리매김했다. 동사무소가 처음 생긴 것은 192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부산을 통해 콜레라가 유행하자 서울 북촌에서 주민들이 자체적으로 전염병 관리를 하면서 삼청동에 사무소를 연 것이 시초다. 1950년대 동회는 동 재산을 관리할 권한을 갖고 있었고 식량 배급과 인구관리를 담당했기 때문에 적지 않은 권력을 행사했다. 전쟁 기간 혼란상을 극복하기 위해 1955년에는 새로운 동제를 실시하고 주민 직접선거로 동장을 선출했다. 서울에서는 제1회 동장 선거를 1955년 5월에 실시했다. 816명이 입후보해 동장 245명을 뽑았다. 하지만 이승만 정권 당시인 1958년 12월 24일 지방자치법을 개정해 동장을 임명제로 바꿨다. 4·19혁명 이후에는 민주적인 지방자치법 개정이 이뤄져 시장, 읍장, 면장, 동장, 이장까지 직선으로 선출했다. 1961년 3월 10일 부산에서 동리장 선거를 실시했고 서울은 5월 말에 실시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이후 들어선 군부 정권은 모든 동장을 해임하고 임명제로 바꿨다. 1970년대 동은 완전한 말단 행정조직이 되었다. 동사무소 직원들은 1977년부터 지방공무원으로 자리잡았다. 1990년대부터 사회 발전상에 걸맞은 동 제도 개혁 필요성에 대한 논의가 확산됐다. 동사무소를 아예 없애자는 행정개혁론, 주민자치조직으로 바꾸자는 주민자치론, 주민 교육시설로 전환하자는 평생교육론, 복지를 위한 지역 조직 활용 방안 등이 등장했다. 1999년 정부는 기존 동사무소를 주민자치센터로 전환했다. 주민자치센터와 함께 자문기구인 주민자치위원회도 생겼다. 고성 강국진 기자 betulo@seoul.co.kr
  • 농식품부 “韓·中 FTA 국내 쌀시장 영향 없다”

    농림축산식품부는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돼도 국내 쌀 시장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다는 입장이다. 김종훈 농식품부 식량정책관은 1일 “쌀은 한·중 FTA 양허 대상에서 제외됐기 때문에 중국 쌀이 싼값에 수입될 일은 전혀 없다”면서 “오히려 지난 10월 중국의 식물위생검역 조건이 개정돼 내년부터 우리 쌀의 중국 수출이 가능해져 FTA가 기회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국내에 수입되는 밥쌀용 쌀도 한·중 FTA 때문에 물량이 늘어나거나 값이 싸지지 않는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쌀 의무 수입 물량은 연간 40만 8700t이고 이 중에서 30%(12만 2610t)를 밥쌀용으로 들여와야 한다. 수입 쌀에는 5%의 관세가 붙는다. 다만 지난해 농식품부가 올해부터 쌀 시장을 개방하기로 하면서 세계무역기구(WTO)에 쌀 의무 수입 비중을 없앤 양허표 수정안을 통보했다. 그래서 농식품부는 올해 밥쌀용 쌀을 3만t만 들여오기로 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일부 농민단체는 양허표 수정안에서 쌀 의무 수입 비중이 없어져 밥쌀용 쌀을 수입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지만 일부 국내 수요가 있어 일정 비율 수입하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세종 장은석 기자 esjang@seoul.co.kr
  • [심재억 기자의 헬스토리 24] 까치밥, 똘레랑스 그리고 정신건강

    [심재억 기자의 헬스토리 24] 까치밥, 똘레랑스 그리고 정신건강

    한 때 우리 사회에서 ‘똘레랑스(Tolerance)’라는 말이 회자됐었지요. 프랑스 사람들이 ‘다름’을 인정하고, 자신이 아닌 타자, 자기 것이 아닌 다른 문화과 관습을 능동적으로 포용한다는 것인데, 저는 오래 전 홍세화씨의 책에서 이 말을 실감나게 접했습니다. 이 말을 아름답게 기억하는 것은 이타적인 삶, 타자를 위한 배려가 부럽기도 했고, 그렇게 너그러운 그들의 삶에 자꾸 낯설게만 투영되는 ‘나’와 ‘내 주변’의 옹색한 현실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저의 이런 생각이 한 때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을 건설한 유럽의 강대국들이 전세계에 이식시킨 패권적 이념에 길들여진 식민적 속성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영국을 ‘신사의 나라’로 여기지도 않고, 프랑스 문화가 재밌을지언정 우월하다고 믿지도 않으니까요. 하지만 그들이 부러울 때가 있습니다. 국부(國富)나 인종적 특성이 부러운 게 아니라 문화적 다양성에 대한 그들의 열린 자세가 부럽고, 그로부터 발원한 그들의 치열하면서도 자유분방하고, 발랄하면서도 격조가 있는 삶의 자세를 부러워합니다. 아마 그런 그들의 삶이 상당 부분 똘레랑스와 결부되어 있지 않을까 하는 게 필자의 생각입니다.  ●가지지 못한 자의 아름다운 나눔 언제부턴가 우리는 자기중심적인 생각에 매몰되어 살아 왔습니다. 그 정도가 지나쳐 톨레랑스의 가치를 알고 실천하는 사람들의 눈에는 마치 ‘문명 밖의 문명’처럼 낯설거나 이질적으로 비치기도 할 것입니다. ‘나만 좋으면 된다’거나 ‘항상 내가 우선’이라는 이 몰염치한 습속은 일제 암흑기와 한국전쟁 등 독하지 않으면 살아 남기 어려운 핍진한 환경을 헤쳐나오면서 체득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바둑의 ‘아생연후살타(我生然後殺他:먼저 내 말을 살린 뒤 상대방의 말을 공격하라)’라는 격언처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구명도생부터 해야 했으니, 그 참담한 삶 속에서 다른 사람이나 다른 것에 관심을 둘 여유가 없었던 것이지요.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옛말에서 보듯, 항상 궁핍하고 불안정한 일상 속에서 도태되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챙겨야 했고, 그렇게 아등바등 뺏고, 감추며 살았지만 쌀독은 항상 비어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들 했으니, 그런 터수에 언감생심 무언가를 베풀면서 사는 여유를 갖는다는 게 호사이고 꿈일 뿐이었지요. 그렇다고 우리네 삶이 똘레랑스와 전혀 무관했던 것은 아닙니다. 아니, 우리 조상들은 유럽의 똘레랑스보다 훨씬 본원적인 베풂을 알았고, 그런 가치를 존중했습니다. 가진 자의 시혜보다 가지지 못한 자의 배려가 더 아름다운 것은 먹고 쓰고 남은 것을 덜어 주는 것이 아니라 당장의 허기와 필요를 덜어야 하는 일이고, 최소한의 자기 몫을 쪼개는 일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살았고, 그 덕분에 살아남을 수 있었는데, 이는 개국 이래 단 한번도 국통이 끊이지 않았던 장구한 역사가 증언하는 사실입니다. 시골집 뒤란의 늙은 감나무 가지 끝에 매달린 ‘까치밥’은 또 어떻습니까.  ●‘오로지 주고자 했던’ 까치밥의 철학 ‘초록이 지쳐 단풍 들더니’ 가을이 깊어져 갑니다. 이슬이 서리로 변하면서 이내 살풍경한 겨울이 되어 온 산야를 흰눈이 뒤덮을 무렵이면 텅 비어 삭막한 풍경 가운데에다 마치 누군가 작심하고 붉은 물감으로 방점이라도 찍어놓은 듯 선연한 붉음이 눈길을 끌곤 했지요. 바로 까치밥입니다. 가을걷이의 마지막은 감을 따 갈무리하는 것인데, 개량되기 전의 예전 감은 겉이 붉어보여도 속살을 베어물면 여간 떫지 않았습니다. 그걸 따모아 항아리나 석작 속에 차곡차곡 쌓아 두었다가 달디 단 홍시가 되면 하나씩 꺼내 먹곤 했던, 요긴한 겨울 군입거리였지요. 요즘의 개량종 단감과 달리 예전의 토종 감나무는 집안의 조왕신 같은 것이어서 크게 키워 비바람을 막고, 시원한 그늘도 드리우며, 먼 동구밖에서 봐도 한 눈에 우리 집임을 아는 장소성까지 부여했으니 감나무가 바로 산이고, 정자이며, 스카이라인이고, 랜드마크였지요. 스무 척, 서른 척 키를 키운 탓에 감을 딸 때면 큰 가지를 타고 올라가 간짓대로 투덕거리곤 했는데, 해거리를 하지 않을 때는 워낙 많이 열려 그걸 따는 것도 일이었습니다. 정신없이 따다 보면 어느 새 가지가 텅 비고, 꼭대기 가지 끝에 잔챙이 감이 서른 개, 마흔 개씩 남습니다. 그럴 때면 어머니는 “그건 까치밥하자. 그만 내려와라”시며 일을 매조졌지요. 아닌 게 아니라 날이 추워 먹거리가 마땅찮으면 까치가 가지 끝에 내려앉아 남은 감을 쪼곤 했는데, 그래서 까치밥이라고 불렀겠지요. 찬서리에 익어서 더 붉어진 까치밥이 얼음 들어 푸르딩딩한 하늘을 배경으로 매달린 모습을 보노라면 문득 가슴 한 켠이 따뜻해지는 느낌이 들곤 했는데, 그런 느꺼운 마음이 미물에게라도 뭔가를 베풀 수 있다는 은전의 여유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까치를 위해 가지 끝에 감을 남겨두는 일은 어떤 강제나 규율도 없이 온전히 스스로 결정하는 있이었는데, 지금보다 훨씬 궁핍하게 살았던 예전 사람들은 일상 속에서 표도 나지 않게 그런 덕성을 실천함으로써 스스로의 체온을 느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하루 하루 끼니 걱정을 하며 사는 사람들이 빈 콩밭에 ‘참새 몫’으로 수수목을 남겨두거나, 대보름날 정성껏 무친 나무새를 이것 저것 바가지에 덜어 소에게 먹일 턱이 없지요. 까치든, 소든 사람에 견주면 하찮은 미물이고 축생인데도 말이지요. 우리의 핏속에는 미물일지라도 곁에 머무는 것이면 무엇이든 챙기고 걱정해주는 미덕이 있었습니다. 제 목구멍으로 무엇을 넘겼는지도 모를 궁핍 속에서 살면서 그런 짓이 가당키나 하냐고 생각한다면 조상들의 정신세계를 더 찬찬히 들여다봐야 합니다. 그들이 넉넉하지 못한 것도 맞고, 그래서 짜디 짠 자반 한입 못 먹어보고 해를 넘기는 일이 다반사였지만 그걸 그다지 아쉽게 여기지도 않았습니다. ‘고기도 먹어본 놈이 잘 먹는다’는 말처럼 살림이 요족해 육고기를 줄창 먹고 살았다면 간사한 입맛이 남아 ‘땡기기라도’ 했겠지만 누가 시키지 않아도 원래의 삶이 안빈(安貧)에 길들여진 탓에 배만 채울 수 있으면 그것으로 만족했지요. ‘사흘 고기맛을 못 보면 소증 난다’는 말은 덜 떨어진 권문세가의 논다니들 말이지, 하냥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살았던 사람들의 말은 아니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까치 같은 미물까지 챙기며 살았으니 그걸 먼 유럽의 똘레랑스와 견준다는 게 오히려 이상합니다. 유럽의 똘레랑스가 관습과 제도의 결과라면, 우리의 나눔은 태생적인 끌림의 결과이니까요. 예전에 흔했던 보시(布施)는 어떻습니까. 불교의 수행법으로, 베푸는 모든 행위를 이르는 보시는 불가에서 이타정신(利他精神)의 정점으로 이해합니다. 더러는 보시를 복을 받기 위해 하는 ‘이기적인 이타’라고도 보지만, 제 생각은 다릅니다. 설령 보시를 하면서 되받을 일을 생각했더라도, 그 복이라는 게 실체도 없고, 아무도 담보할 수 없는 불확실한 대가여서 거기에 기대 자기 것을 나눌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보다는 자기 것을 나누면서 스스로 위로받기 위해 ‘복’을 생각했다는 게 현실적이지요. 마찬가지로 까치밥 역시 ‘오로지 주고자 했던’ 아가페적인 나눔의 실천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니 서구의 똘레랑스 정신을 ‘우리는 갖지 못한 포용이자 관용’이라고 부러워만 할 일은 아니지요.  ●정신 건강 혹은 영혼의 안식 이치가 그렇지 않습니까. 프랑스의 똘레랑스는 1789년의 대혁명 이후에 사회적 통합을 위해 주창한 근대화의 기제 속에서 체화된 개념인데, 우리의 그것은 어떤 이념이나 사상도 작용하지 않은 자연발생적 정서였고, 또 모르긴 해도 자연의 모든 것에 정령이 깃든다는 원시 토테미즘과도 무관하지 않을 터이니 비록 우리의 정서가 반듯하게 각이 잡혀 세련되지 못하고 투박하단들 제도적 산물인 똘레랑스와 같은 선에서 견준다는 게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게 사실입니다. 그런 까치밥을 보면서 궁핍하지만 영혼이 건강하게 사는 지혜를 배웁니다. 지혜라고 했지만, 대단한 사유나 거창한 논리가 필요한 게 아닙니다. 그냥 물이 흐르듯, 아니면 밥 먹고 숨 쉬듯 자연스럽게 마음의 부름에 따르면 되는 일이고, 거기에 대단한 결심이나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지도 않습니다. 한 가지 사례를 소개하지요. 필자가 어렸을 때의 경험입니다. 유월 더운 날, 온가족이 나서 산비탈 보리밭에서 보리를 베고 있었지요. 거진 다 베어갈 무렵, 갑자기 까투리 한 마리가 요란하게 꿩꿩 거리며 나대는 게 아니겠습니까. 시골에 흔한 게 꿩이라 대수롭게 여기지도 않았는데, 그 때 할머니가 허리를 펴시더니 “오늘은 여기서 손 털자”고 하시는 게 아니겠습니까. 아직 베지 못한 보리가 예닐곱 평이나 남았는데 마치자는 말에 다들 의아해 하자 할머니는 “저 쪽에 새끼를 쳐놨길래 꿩이 저 난리지”라며 “한 이레면 새끼 데불고 나갈테니 그 때 와서 마저 베면 된다”고 확실하게 선을 그으시더군요. 집안 어른 말씀에 가타부타할 수도 없어 그렇게 일을 마쳤는데, 아니나 다를까 며칠 후 보리밭에 다녀 오신 아버지가 “꿩이 산으로 갔는지 둥지가 비었더라. 내일 가서 남은 보리 정리하면 되겠다”고 하시는 게 아니겠습니까. 돌이켜 생각하면, 할머니는 그 일을 통해 우리에게 두 가지를 가르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하찮은 꿩이라도 새끼를 거느릴 때는 해코지해서는 안 된다는 공생의 철학이 하나이고, 보리밭 어름에서 꿩이 우짖는 걸 보고 사연을 헤아릴 줄 아는 지혜가 둘입니다. 보리야 며칠 뒤에 베어도 축날 일이 없으니 흔쾌히 그리 한 것이지만, 그렇더라도 나 아닌 남을 생각하는 일은 누가 시켜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요. 할머니와 어머니는 김장김치나 간장·된장 등을 넉넉하게 준비해 이웃들과 나누기도 했는데, 그렇게 나눈 뒤에는 항상 “전답이 넉넉치 않아 가을이라고 거둔 것도 없을텐데, 겅개라도 좀 나누니 맘 편하다”며 기꺼워들 하셨지요. 그래선지 할머니는 그 시절의 여건을 생각하면 무병장수하셨고, 돌아가시기 직전까지도 집안 일을 하시는 등 강건하셨습니다. 그게 어디 제 할머니만의 일이겠습니까. 살림이나 품성에 따라 차이는 있었지만, 확실히 예전에는 다들 그렇게 나누고, 살피며 살았습니다. 그런 삶은 확실히 건강했습니다. 필자가 낳고 자란 마을이 100여호 쯤 됐는데, 치매를 겪은 노인은 딱 두 사람만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더러는 ‘노망’이니 ‘망령’이니 수근대기도 했지만, 삼이웃이 너나 없이 돈독했고, 우애가 깊었지요. 그러니 온 마을이 떵떵거릴 만큼 크게 잘 사는 집은 없었어도 굶주릴 일도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오고가다 마주치면 살갑게들 인사를 나눴고, 철부지들이라도 위, 아래를 알았습니다. 쌀독이 비면 아무 집에나 찾아가 손을 벌렸고, 장날이 되어 뭐든 돈을 바꾸면 식량을 곧 되갚았습니다. 농투산이들 사이에 흔한 물꼬싸움을 해도 악다구니가 없었습니다. 늙수그레한 노친네들이 다툴 일 없도록 거중조정을 해줬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더러는 앓거나 다치기도 했지만, 젊은 나이에 폐병으로 요절한 누구를 빼고는 흉변이랄 게 거의 없었습니다. 그 시절엔 다들 가난을 팔자라고 여겼으니 유리걸식하는 처지만 아니라면 그걸 딱히 불행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차고 넘치지는 않았지만, 욕심이 없으니 많든 적든 자기 처지가 요족하다고 여기며 살았고, 그런 중에 서로 보듬고 나누었으니 심화를 끓이거나 안달복달할 일도 없었지요. ●“당신은 건강한 삶을 위해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지금이야 ‘칠십 청춘’이라고들 하지만, 예전에는 태어나 육십갑자를 다 채우고 맞는 환갑이 흔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환갑잔치는 놀이판이기도 했지만 혈족들 모인 자리에서 자신의 삶을 정리하는 자리이기도 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평생 농삿일로 허리가 굽은 채 환갑을 맞은 마을 어르신이 말합니다. “내가 육십평생을 어떻게 살았는지 모를 일이다. 한눈 안 팔고 살아 전답도 장만했고, 자식 대학도 보냈는데, 그러느라 허리는 휘고 낯바닥은 감탕이 되었지만 못 살았다는 생각은 안 든다. 헤프지도 않았지만, 필요할 땐 인심도 쓰면서 산 덕분에 죽어서 연옥은 면할 듯도 하고…”. 그 어르신은 술로 목을 축인 뒤 말을 이어갑니다. “나야 배우지 못해 세상의 이치를 알 턱이 없지만, 사는 게 별것 아니다. 혼자 사는 세상이란 없으니 형제끼리는 우애로, 이웃끼리는 정으로 살믄 될 일이다. 죽고 사는 것이야 인력으로 어쩔 수 없으니 그건 걱정할 것 없고, ‘나 하나 잘하믄 세상이 다 좋은 것이다’고 믿고 살았는데, 진짜로 내가 그렇게 살았는지는 나보다 식솔들과 이웃 지기들이 더 잘 알 일이다.” 건강하게 사는 많은 조건들 중에서 당신은 무엇을 첫 손에 꼽겠습니까. 물론 정답은 없습니다. 각자 주관적인 판단이 있을 뿐이지요. 무섭다는 암도 피하고 싶고, 암 아니라도 안 아프고 살기를 바라기도 할 것입니다. 어떤 이는 죽을 때까지 자기 몸 자기가 건사하기를 바랄 것이고, 또 어떤 부류는 돈 좀 많이 모아 쭈글거리지 않은 노후를 보내고 싶어할 수도 있습니다. 모두 옳고, 부러운 바람이지만 저는 여기에 한 가지만 보태고 싶습니다. 스스로 가진 능력 이상을 거머쥐려는 욕심은 좀 덜고, 가진 것 조금이라도 떼어서 베풀며 살았으면 하는 소망이 그것입니다. 물론 의무감으로 할 일은 아니고, 떼돈 들여 큰 일을 벌이자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의 어버이가 그러셨듯이 감나무 가지 끝에 까치밥 몇 알 남겨두거나 꿩의 처지를 살펴 보리 베는 일 며칠 늦춰주는 그런 일을 하며 살자는 뜻입니다. 더불어 산다는 것은 자기 배만 채우려 하지 않고 욕심을 덜어내는 일이며, 자기 주장만 하지 않고 이기의 벽을 허무는 일이며, 좀 번거롭더라도 남의 처지나 형편에도 한번쯤 따뜻한 눈길을 주는 배려입니다. 빨갛게 언 발가락을 털어가며 겨울을 나야 하는 까치 등속의 미물에 대해 갖는 측은지심이 어디 불가(佛家)만의 가르침이겠습니까. 그 사소하다 못해 하찮기까지 한 까치밥에서 서구의 똘레랑스에는 없는 ‘우리다운 나눔과 배려’의 원천을 봅니다. 그럴 수 있다면 조금씩 베풀면서 남들의 따뜻한 시선 속에 머무는 것, 그리고 편안한 자기 위안을 얻는 것, 그런 삶이 건강한 삶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정신세계가 강퍅하지 않고 풍요로워서 갈수록 환자가 늘어난다는 우울증이나 착란, 도착 그리고 치매까지도 사회적 유병률이 훨씬 낮아질 것이고, 그런 변화가 우리들 개개인의 건강으로 확인되지 않겠습니까. 병이야 의사가 고치는 것이지만, 병문(病門)으로 들어가지 않도록 하는 것은 우리들의 몫이니까요. 베풀며 산다고, 여유롭게 산다고 모든 병마를 피해 갈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정신의 세계만큼은 훨씬 정갈하고 넉넉해질 것이며, 그렇게 살다보면 흔히 말하는 세상의 번뇌와도 조금은 멀어지게 되고, 거기에서 비롯되는 병마도 피할 수 있어 우리의 삶이 더 따뜻하고 안온할 것이라는 믿음, 그것이 마음의 병을 가진 모든 이들에게 양지가 되지 않겠습니까. jeshim@seoul.co.kr
  • ‘자연 반 현실 반’ 작지만 온전한 삶 찾기

    ‘자연 반 현실 반’ 작지만 온전한 삶 찾기

    반농반X의 삶/시오미 나오키 지음/노경아 옮김/더숲/254쪽/1만 4000원 자연과 더불어 새로운 삶을 설계하려는 귀농, 귀촌 인구가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이는 성공 신화에 빠져 있던 개인과 사회의 삶에 대한 가치가 바뀌어 가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 책은 자연 속에서의 삶과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함께 추구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한다. ‘반농반X’란 농업을 통해 정말로 필요한 것만 채우는 작은 생활을 유지하는 동시에 저술, 예술, 지역 활동 등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X)을 하면서 적극적으로 사회에 참여하는 삶의 방식이다. 스스로의 온전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 자신을 지키는 지혜와 하나의 일을 완수하는 역량이 필요한데 여기서 지혜는 농사, 역량은 X를 뜻한다. 하지만 무리한 귀농이 아니라 베란다나 텃밭에서 자신이 먹을 것을 조금씩 재배하는 것에서 시작하고, X 역시 지금 내가 갖고 있는 것을 살펴보며 천천히 찾아 가라고 조언한다. 저자는 20년 전 환경 문제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다가 반농반X라는 삶의 방식을 깨달았고 10년간의 회사 생활을 정리해 가족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가 본격적으로 반농반X의 삶을 시작했다. 저자는 환경, 식량, 교육, 의료, 복지, 사회 불안 등 현대 사회가 갖고 있는 수많은 문제가 이러한 삶을 통해 해결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식량을 자급함으로써 ‘순환형 사회’를 추구하고 타고난 재주를 세상을 위해 활용함으로써 인생은 물론 사회를 행복하게 만드는 대안적 삶의 방식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영화 자막 번역가, 화가, 민박집 주인, 웹디자이너, 간병인, 심리치유사 등 숨 막히는 삶과 막다른 골목에서 반농반X를 실천한 많은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실천 가능한 삶의 방식으로서의 반농반X를 자세히 소개한다.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 반 총장의 비서실장, 아르헨 외교 수장 된다

    마우리시오 마크리 아르헨티나 대통령 당선자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비서실장(사무차장급)인 수사나 말코라(61·여)를 외교장관에 지명했다고 로이터통신 등이 2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마크리 당선자는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아르헨티나의 성장과 번영을 위해 세계 국가과 연결고리를 만들 필요가 있다”며 말코라를 발탁하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2012년 3월 반 총장의 비서실장에 임명된 뒤 시리아 내전에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분쟁까지 지뢰밭 같은 주요 외교 현안에 대해 조언해 온 그녀는 다음달 10일 새 대통령 취임식 이후 아르헨티나 외교 수장을 맡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혁명가 ‘체 게바라’의 고향인 아르헨티나 산타페주 로사리오에서 태어난 말코라 지명자는 로사리오대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했다. 아르헨티나 텔레콤에서 최고운영책임자(COO), 최고경영자(CEO) 등의 요직을 거쳐 2004년 유엔 산하 세계식량계획(WFP)으로 자리를 옮겨 사무차장을 역임했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자유시장주의자인 마크리 당선자가 말코라를 외교장관으로 지명한 것은 폐쇄적인 보호무역주의로 줄곧 미국 등 서방 국가들과 냉랭한 관계를 유지해 온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대통령 정부와의 차별성을 부각시키려는 목적이 있다고 분석했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글로벌 시대] 중국 대륙에 울리는 둘째 아이들의 울음소리/민재홍 덕성여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글로벌 시대] 중국 대륙에 울리는 둘째 아이들의 울음소리/민재홍 덕성여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현재 중국의 35세 이하는 대부분 외동 아들딸이다. 1980년 9월 25일 중국 중앙위원회가 계획생육(計劃生育·산아제한정책)에 따라 한 가구 한 자녀 정책을 전면적으로 시행했기 때문이다. 이 정책은 이후 중국의 사회제도와 가족제도, 80년 이후 출생한 세대의 가치관 문제까지 중국 사회를 변화시킨 중대한 조치로 평가된다. 80년대에 태어난 바링허우(80後), 90년대의 주링허우(90後)로 대별되는 세대 간의 성향 문제, 소황제(小皇帝)라 불리는 외동의 특성이 이 제도로부터 비롯됐다. 외동끼리 결혼해 아이를 낳게 되면 그 아이에겐 고모, 이모, 삼촌, 외삼촌이 없는 기형적인 가족 구조가 된다. 공산성과 집체성을 강조하던 전체주의 사회에서 개인과 자기를 중시하는 개성 중심의 사회로 변모하는 계기도 됐다. 최근 2018년 월드컵 예선에서 고전하고 있는 중국 축구의 문제점으로 소황제의 개인주의를 언급하기도 한다. 팀워크를 내세워 중국 축구 굴기(?起·우뚝 세움)를 외치는 시진핑 입장에선 한 자녀 정책에 변화를 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1980년 결정은 중국인들에게 강력한 조치였다. 농촌에서 자녀를 많이 낳는 가정의 집이 철거되고, 식량 압수에 벌금까지 받았다. 1가구 1자녀 정책을 위반하고 둘째 아이를 낳으면 베이징의 경우 약 25만 위안(약 4500만원), 상하이는 약 16만 위안(약 2900만원)의 벌금을 내야 한다. 막대한 벌금을 낼 수 없어 호적에 못 올리고 몰래 아이를 키우는 헤이하이쯔(黑孩子·어둠의 자식)들이 전국적으로 양산됐다. 1980년 한 자녀 정책은 이후 ‘도시에서는 부모가 모두 독자인 경우 두 명의 아이를 낳을 수 있고, 농촌에서는 첫아이가 여자인 경우 한 명을 더 낳을 수 있다’ 등으로 조정되기도 했다. 2011년엔 부모가 모두 독자인 경우 두 자녀 출산 허용을 전국적으로 확대했다. 2013년엔 부부 중 한쪽만 외동이어도 두 자녀를 출산할 수 있다는 단두얼하이(單獨二孩)로 완화했다. 그러나 여전히 출산율이 1.4명에 불과하자 결국 지난달 29일 시진핑 정부는 중국 중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한 자녀 정책’을 폐기하고 ‘한 부부 두 자녀 정책’을 전격적으로 결정했다. 두 자녀 정책(二孩政策)으로 앞으로 4년간 3000만~3500만명의 인구가 늘어나 2030년쯤에는 인구수가 14억 5000만명으로 최정점에 이를 전망이다. 당장 평수가 큰 주택이 인기를 끌고 둘째를 갖고 싶었던 부부들의 정자은행에 대한 문의가 폭증하고 있다. 출산·육아 관련 주식도 호황이다. 마침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이 체결된 상황이라 중국의 인구 정책 변화에 따라 우리 기업의 전략적 진출을 모색할 시점이다. 그러나 부정적인 시각도 있다. 이번 발표 이후 젊은 부부 5만명 대상 인터넷 조사 결과 20%만 둘째 출산을 생각해 보겠다고 답변했다. 결혼한 여성들이 대부분 직업을 갖고 있고 조부모가 아이를 봐주는 현 상황에서 둘째 출산이 쉽지 않아 보인다. 중국 초등학교 하교 때 손자 손녀를 기다리는 조부모들의 모습은 정말 진풍경이다. 중국 정부는 가장 기초적인 국민의 삶까지도 전체주의적으로 관리하려 한다. 개인적 출산까지 관여하는 것을 그만둘 생각이 없어 보인다. 중국 인구 계획가들은 중국의 인구 숫자까지 조정해 낼 수 있다는 치명적 자만을 갖고 있는 것 같다. 두 자녀 정책 시행이 중국 정부의 의도대로 출산율을 높이고 육아시장을 활성화시키며 중국 내수 경기 진작 및 고령화 사회 해결로 이어질지 지켜볼 일이다.
  • ‘슈퍼 엘니뇨’ 오지만 농산물값 폭등 없다

    ‘슈퍼 엘니뇨’ 오지만 농산물값 폭등 없다

    다음달부터 내년 2월까지 18년 만에 ‘슈퍼 엘니뇨’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농산물값은 크게 오르지 않을 것이라는 세계은행(WB)의 보고서가 나왔다. 최근 엘니뇨 때문에 세계 주요 식량 가격이 들썩이고 있다는 유엔식량농업기구(FAO)의 분석과는 차이를 보인다. 기획재정부는 20일 세계은행의 ‘3분기 상품물가 동향’을 분석해 전했다. 세계은행은 “엘니뇨로 인한 기후변화만으로 국제 농산물 가격이 폭등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엘니뇨는 적도 부근의 무역풍이 약해져 에콰도르 서부 바다의 수온이 평년보다 높아지는 현상을 말한다. 수면 온도가 평년보다 0.5도 높은 기간이 6개월 이상 계속되면 엘니뇨, 2도 이상 높은 기간이 3개월 이상 이어지면 슈퍼 엘니뇨다. 가뭄이나 폭우, 폭설 등 전 세계적인 기상이변을 불러와 농산물값 폭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번 슈퍼 엘니뇨는 1997년 이후 최대 규모로 예측된다. 하지만 세계은행은 엘니뇨 때문에 기후변화가 시작된 지난 4월부터 9월까지 주요 국제 농산물값이 1년 전보다 오히려 8~32% 떨어진 점에 주목했다. 특히 국제 농산물값이 급등락하려면 주요 농산물 생산국의 가격이 큰 폭으로 변해야 하는데 각국의 가격은 통화 변동, 운송비, 품질 차이, 무역정책 등 복합 요인으로 형성된다고 설명했다. 엘니뇨로 나타나는 기후변화만으로는 국제 농산물값 폭등이 일어나기 어렵다는 것이다. 세계은행은 올해 쌀, 옥수수, 소맥 등 주요 곡물 재고가 지난 10년 동안의 평균치를 크게 웃돌아 수급에도 큰 문제가 없다고 분석했다. 세계은행은 국제 유가, 금값 등 주요 상품 물가도 당분간 하락세가 계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란 핵 협상 타결로 원유 생산이 늘어날 것이라는 기대감과 중국의 경기 부진 때문에 올 3분기 에너지(원유·천연가스·석탄 등) 물가는 전 분기 대비 17% 떨어졌다. 달러 강세와 미국 금리 인상 전망으로 금 등 귀금속 가격은 같은 기간 7% 하락했고, 금속·농산물·비료 등 비에너지 물가도 5% 내렸다. 반면 FAO는 앞서 엘니뇨의 영향으로 브라질과 동남아시아 등 주요 농산물 생산국에 기상이변이 나타나 지난달 세계식량가격지수가 162포인트로 한 달 새 3.9% 상승했다고 밝혔다. 특히 설탕값은 세계 최대 설탕 생산국 브라질의 중남부 지역에 폭우가 내려 17.2%나 급등했다. 세종 장은석 기자 esjang@seoul.co.kr
  • [The Best 시티] 서울 금천구 ‘2030 중장기’ 개발 사업

    [The Best 시티] 서울 금천구 ‘2030 중장기’ 개발 사업

    “‘G밸리’가 살아남는 방법은 끊임없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뿜어내는 청년들이 이곳으로 찾아오게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한마디로 ‘벤처·창업 천국’을 만들어야죠. 지역발전의 원동력요? 뉴타운 재개발·재건축으로 발생하는 이익은 소수 토지주와 부동산 개발업자에게 돌아가지 주민들에게 오지 않아요. 제조업에 기반을 둔 산업 경쟁력을 확보해야 좋은 일자리가 생기고, 주민들도 살 수 있는 겁니다.”(차성수 금천구청장) 올해 스무 살을 맞은 금천구는 지난달 ‘2030 금천발전 중장기 계획’을 발표했다. 대부분 지역 발전계획안은 높은 경제성장률과 늘어나는 인구와 일자리가 기본. 여기에 북유럽 수준의 복지제도는 덤이다. 그런데 금천구가 발표한 중장기 발전 계획에 담긴 키워드는 인구절벽, 고용절벽, 기후위기, 식량위기 등 어두운 단어들뿐이다. 한마디로 유토피아의 환상은 없고 디스토피아를 어떻게 헤쳐나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다. 2030 금천발전 중장기 계획에는 공무원뿐만 아니라 지역의 기업인과 주민, 직능 단체 관계자들도 대거 참여했다. 차성수 금천구청장은 “금천이라는 도시에 사는 주민들의 삶을 지키려면 현실과 문제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이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 한다”면서 “2030 금천발전 중장기 계획에 이런 고민을 오롯이 담으려 노력했다”고 말했다. ●제조업에 기반 둔 산업도시를 꿈꾸다 굴뚝 대신 아파트형 공장이 들어서고, 산업역군으로 불리던 여공들 대신 말끔한 차림의 정보기술(IT) 전문가들이 거리를 활보하고 있지만, 금천구 G밸리는 아직도 서울 제조업의 중심이다. 그 때문에 금천의 발전계획도 G밸리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차 구청장은 “제조업을 포기하면 위기가 닥쳤을 때 견디기 힘들다”면서 “지금 독일이 유럽에서 큰소리를 치는 것도 탄탄한 제조업을 기반으로 경제구조를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서울시와 금천구는 지난달 ‘G밸리 종합발전계획, G밸리 비상 프로젝트 2’를 발표했다. 먼저 정보통신기술(ICT) 등 지식기반산업이 밀집한 G밸리 1·3단지는 사물인터넷(IoT)을 매개로 융복합을 통해 제조업을 더욱 발전시킨다는 계획이다. 차 구청장은 “사물인터넷 시장이 날이 갈수록 커가고 있다”면서 “기업이 기술 개발부터 시제품 제작까지 한번에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형 패션 아울렛이 모여 있는 2단지는 패션산업 메카로 키운다. 구 관계자는 “서울 외곽의 프리미어아울렛과 인터넷으로 옷을 사는 이들이 늘면서 도심 아울렛의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다”면서 “현재 마리오와 W몰, 현대아울렛 등 빅3의 공동마케팅을 통해 이런 위기를 극복하려 한다”고 설명했다. 아울렛의 빈 곳 등을 이용해 신예 디자이너들이 패션쇼와 창업공간으로 이용할 방법도 마련하고 있다. 산업경쟁력 강화와 함께 근무환경 개선 작업도 추진된다. 구 관계자는 “현재 ‘공개공지 개선사업’을 통한 쉼터 조성, 옥상 녹화 및 텃밭가꾸기, 가로정원 등의 녹지공간을 G밸리 곳곳에 조성해 2018년까지 39곳 2만 1200㎡를 추가로 확충할 방침이다. ●공병·공군 떠난 자리 주민으로 채운다 G밸리만 있다고 도시가 발전하는 것은 아니다. 구 관계자는 “인근에 주거·상업 시설이 전혀 없다 보니 퇴근시간이 지나면 도시 자체가 어두워진다”면서 “직장과 주거지가 근접할 수 있도록 지역에 주거시설과 상업시설의 확대가 절실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아무리 서울의 변방이라 해도 금천구도 서울 안에 있는 만큼 땅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다. 때마침 공병부대와 공군부대 이전이 진행돼 확보한 땅들은 금천구에 또 다른 기회였다. 현재 도하부대가 이전한 12만㎡에는 롯데건설이 4400가구의 아파트를 짓고 있다. 구 관계자는 “G밸리 근무자들의 배후 주거지가 없었는데, 도하부대 부지가 개발돼 이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했다”고 말했다. 독산동 공군부대 부지 12만 5000㎡는 ‘사이언스 파크’로 개발된다. 구는 이를 위해 SH공사와 업무제휴 협약(MOU)도 맺었다. 공군부대 부지 개발은 국철 1호선(경부라인)을 따라 금천구의 발전 축이 완성된다는 의미다. 차 구청장은 “단순히 연구·개발시설을 밀집시키거나 산학단지를 조성하는 수준이 아닌 IT·소프트웨어 등 첨단산업이 생존할 수 있는 기반이 되는 곳으로 만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판교는 민간 기업들이 모여 시너지를 낸다는 측면에서는 강점이 있지만, 신생기업을 위한 연구개발 지원 시설 등은 부족하다. 우리는 이를 공공개발을 통해 해결하려 한다”고 설명했다. SH공사가 개발자로 참여한 것도 이 때문이다. 변창흠 SH공사 사장은 “민간이 개발하면 수익성이라는 덫에 걸려 그 지역의 산업이나 경제에 필요한 시설은 빠지고 상업·주거시설만 빼곡하게 들어서는 경우가 많다”며 “금천구는 서울시와 협의해 이곳을 G밸리와 연계한 2030 서울형 창조경제의 성공모델이 될 수 있게 할 것”이라고 전했다. ●주거환경 정비… 더이상 달동네는 없다 아직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있다. 바로 시흥대로 동쪽이다. 구 관계자는 “아직 독산동 일대는 외부에서 ‘달동네’로 부를 정도로 낙후되어 있다”면서 “이곳은 2000년대 중반 부동산 광풍이 불었을 때도 소외된 지역”이라고 털어놨다. 구의 복안은 G밸리의 활력을 시흥대로 동쪽으로 넘기는 것이다. 구가 독산동을 중심으로 주거환경 정비사업을 준비한 이유다. 차 구청장은 “G밸리에는 고소득층도 있지만 중산층·서민이 대부분”이라면서 “정비사업을 통해 이들에게 적합한 주거환경을 만들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구는 시흥3동 박미사랑마을을 중심으로 저층 주거지 형태의 주거지 재생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곳에선 그린파킹과 쓰레기 공동화 시설, 보레·두레주택 패키지 등 다양한 아이디어가 현실화할 것이다. 차 구청장은 “금천이 서울의 중심은 아니었지만, 앞으로 서울 시민 경제와 산업발전에 든든한 버팀목이 될 것”이면서 “가장 부유한 사람들이 사는 도시가 되기보다 땀 흘려 일하는 노동자가 행복한 도시를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전했다. 김동현 기자 moses@seoul.co.kr
  • “반기문 총장 방북 의사 9월 北 리수용에 전달”

    “반기문 총장 방북 의사 9월 北 리수용에 전달”

    반기문(얼굴) 유엔 사무총장이 지난 9월 유엔을 방문했던 리수용 북한 외무상에게 방북 의사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자유아시아방송(RFA)이 대북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17일 보도했다. RFA는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스위스 유학시절 후견인 역할을 했던 리 외무상이 반 총장의 평양 방문을 직접 주선했다”며 “남북관계와 국제관계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RFA는 북한이 반 총장을 초청한 이유와 관련해 “김 제1위원장이 권력을 장악했다는 자신감을 가진 상태에서 반 총장을 평양으로 불러들여 체제 선전에 이용할 가능성이 있다”면서 “반 총장이 한국에서 대통령 후보로 꾸준히 거론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전했다. 반 총장이 평양을 방문할 경우 김 제1위원장과 만날 가능성이 높은 가운데 RFA는 “북한 핵 문제와 남북한 통일 관련 논의를 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와 관련, 방송은 또 다른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체육과 지식 강국 건설을 표방하는 김 제1위원장이 올해 부족한 식량을 유엔 국제구호기금에서 타내기 위해 반 총장을 초청했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제훈 기자 parti98@seoul.co.kr
  • 엘니뇨 영향 국제 설탕값 한달새 17% 폭등

    엘니뇨 영향 국제 설탕값 한달새 17% 폭등

    지난달 설탕을 비롯해 세계 주요 식량 가격이 급등했다. 엘니뇨(적도 부근 바닷물 수온이 평균 0.5도 상승하는 현상)의 영향으로 브라질과 동남아시아 등 세계의 농장에 기상 이변이 생겨서다. 농림축산식품부는 8일 유엔 식량농업기구(FAO)가 발표한 10월 세계 식량가격지수가 162포인트로 한 달 새 3.9% 상승했다고 밝혔다. 2012년 7월 이후 최고 상승폭이다. 설탕 값은 전월 대비 17.2%나 급등했다. 세계 최대 설탕 생산국 브라질의 중남부 지역에 폭우가 내렸고 인도와 태국, 필리핀, 남아프리카공화국, 베트남 등에 건조한 날씨가 계속돼 사탕수수 재배가 타격을 입어서다. 유지류 가격도 엘니뇨 때문에 동남아시아 지역의 내년도 팜유 생산량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면서 한 달 새 6.2% 올랐다. 세계기상기구(WMO)는 이달부터 내년 3월 사이에 1997~1998년 이후 18년 만에 ‘슈퍼 엘니뇨’(적도 바닷물 온도가 평년보다 2도 이상 높은 기간이 3개월 이상 계속되는 현상)가 발생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어 세계 농산물 가격은 더 들썩일 전망이다. 세종 장은석 기자 esjang@seoul.co.kr
  • [열린세상] 국제개발협력의 한국형 모델이 없다/강태혁 한경대 교수

    [열린세상] 국제개발협력의 한국형 모델이 없다/강태혁 한경대 교수

    지난 9월 말 유엔개발정상회의가 열렸다. 세계 193개국 대표들이 모여 2030년까지 향후 15년간 개발 협력의 지침이 될 ‘지속 가능 개발을 위한 2030 의제’를 채택하는 자리였다. 여기에는 빈곤 퇴치, 기아 추방, 보건의료 말고도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 인프라 구축 및 산업화, 생태계 보호 등 모두 17개 목표에 169개 세부 과제가 포함돼 있다. 막대한 투자 소요가 예상된다. 향후 매년 3조 5000억∼5조 달러로 추정되는 재원 마련을 위해 국제사회는 개발협력자금(ODA)을 확충하고 개도국의 조세 개혁, 사업 유형에 따라서는 민간 부문의 재원과 기술까지 적극 활용할 예정이다. 인도주의적 가치를 존중하면서도 개발 협력을 보다 확대하고 효과를 낼 수 있는 지속 가능한 접근이 필요한 것이다. 늪에 빠진 한국 경제엔 기력을 되찾을 수 있는 기회가 숨겨 있음직도 하다. 세계 곳곳의 개도국들은 한국을 닮고 싶어 한다. 전후 식민지에서 독립한 가난한 동방의 은둔국 코리아, 그들 눈에 한국은 전후 폐허로 가난에 찌든 달동네 판잣집이 전부였다. 그랬던 한국이 반백년 만에 선진 민주국가 대열에 들어서 있고,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으로 변모했다. 그런 한국이니 개도국에는 그야말로 ‘닮고 싶은 나라’인 것이다. 이들 중에는 한국전쟁에 참전해 자유 수호를 위해 피를 흘린 나라도 있다. 한국개발협력단 단원을 마주한 현지인이 더듬더듬 말을 고른다.“우리 부친이 젊은 날 한국을 도우려고 한국전쟁에 참전했었다.” 망중한을 즐기는 군인 몇몇이 찍힌 낡은 사진 하나를 자랑스럽게 내보이는 주름진 손에서 가벼운 전율이 느껴진다. 파병 군인에게 추잉 껌을 구걸하며 꺼먼 손 내밀던 꼬마 소년이었을 반백의 단원과 마주한 늙수그레한 현지인은 복잡한 회한에 잠긴 듯 고개를 떨군다. 그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것은 보통 사람의 인정이다. 인도주의니 인류애니 하는 고품격 어휘를 동원하지 않아도 우리의 발전 경험을 함께 나누는 것은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한국인에게 맡겨진 역할이 아닐까. 미래세대가 꿈을 펼쳐 나갈 세상으로 디딤돌을 놓는 일이기도 하다. 한국의 국제 개발 협력이 본궤도에 오른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2010년에서야 비로소 기본법을 만들었다. 개도국 원조 사업에 투입하는 재원은 연간 2조원 규모다. 국민총소득(GNI)의 0.14% 수준이다. 국제사회에서 권고하는 지원 규모(GNI의 0.7%)에 훨씬 못 미친다. 퍼낸 곳간은 금세 눈에 들지만 채운 곳간은 표가 안 나는 법이다. 재원을 여러 나라로 나누다 보면 개발 협력이란 말이 민망한 규모다. 한정된 재원이나마 그들의 삶에 보탬이 되려면 더 진심 어린 고민과 치밀한 전략이 필요하다. 경제 개발 역사는 짧지만 우리는 세계적으로 귀감이 될 일들을 많이 했다. 새마을 운동, 식량증산, 산림녹화, 과학기술, 인력개발, 수출진흥 등…. 많은 개도국들은 이것이 ‘한강의 기적’을 가져온 마법이라고 믿고 또 물어 온다. 그런데 우리는 찬사에 도취돼 으스대기만 할 뿐 그들에게 가르쳐 줄 지혜가 별로 없다. 새마을운동하라고 빌딩 지어 주고, 농촌 개발한다고 지하수 관정 뚫어 주고, 국민 교육 하라고 시골 학교 지어 주고, 메마른 산에 나무 심는 것만으로 한국의 발전 경험을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한국은 남이 지어 준 빌딩에서 새마을운동을 한 것이 아니다. 선진국 원조를 받아 학교를 짓고 산림녹화를 하거나 농촌 개발을 하여 경제 개발을 이룬 것도 아니다. 즉흥적 아이디어나 특수 이해관계에 따라 단편적 유사 사업을 반복하는 것으로는 개발 협력이 잘 될 수 없다. 그들이 진정으로 한국에 원하는 것은 결코 그런 것들이 아니다. 한국형 국제 개발 협력의 모델이 필요하다. 우리 나름의 경쟁력 있는 개발 협력을 추진하려면 고유의 개발 경험을 재구성해 한국형 경제 발전 전략의 이론 모델로 재창출해야 한다. 이런 모델을 기초로 거시적 발전 전략을 개도국과 공유하고 그 틀 속에서 미시적 개발 협력 사업이 유기적으로 연계돼야 한다. 여러 참여 기관의 다양한 개발협력 사업을 유연하게 조율할 수 있는 성능 좋은 컨트롤타워도 필요하다. 지금 우리는 세계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이야기 34] 합덕제가 알려주는 내포평야 농업의 역사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이야기 34] 합덕제가 알려주는 내포평야 농업의 역사

     우리는 옛 사람의 지혜와 기술을 종종 과소평가하곤 한다. 농업의 역사에서도 마찬가지다. 바다를 메워 간척을 하거나, 저수지를 만드는 노력은 생각보다 일찍 시작됐다. 김제 벽골제가 백제시대 축조된 저수지라는 것은 ‘삼국유사’에도 기록이 남아있다. 고려가 강화도로 수도를 옮겨 오랫동안 항전할 수 있었던 것도 간척사업으로 식량을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충청남도 서북부 지역, 이른바 내포(內浦)의 경우 오래 전부터 간척사업이 활발했고 방죽을 만들어 농업 용수 공급에 나섰다. 이 지역의 농업 용지와 용수를 인위적으로 확보하려는 노력은 빠르면 백제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으로 학자들은 보고 있다. 아직 문헌 증거를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은 대부분 민간사업이어서 기록을 남기지 않았기 문이다.  오늘날 예당평야로 불리는 당진과 예산 일대의 평야는 그 상당 부분이 오래 전부터 간척사업에 따라 새로 만들어진 농토다. 당진 합덕제(堤)는 과거 내포평야로 불리던 이 곳에서 물 걱정없이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쌓은 인공 저수지였다. 저수면적만 103정보에 이르렀다.  합덕제의 축조 시기는 두 가지 설이 있다고 한다. 후백제의 견훤이 왕건의 고려와 싸우고자 우물을 판 것이 시초하는 설이 그 하나다. 다른 하나는 ‘신증동국여지승람’의 ‘면천 산천’에 나오는 벽골지가 곧 합덕제로 삼한시대나 삼국시대 축조되었을 것이라는 설이다. 어쨌든 합덕제의 축조 시기는 고려시대 이전으로 올라가는 것은 확실하다는 것이 정설이다.  합덕제는 당진시 합덕읍 합덕리에 있다. 일대는 광활한 평야지대다. 합덕제 바로 옆에는 이 지역 농업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도록 2005년 세워진 합덕수리박물관이 있다. 합덕제는 1964년 예당저수지가 완공됨에 따라 역할을 잃으면서 논으로 바뀌었다. 합덕제의 서쪽 끝으로는 당진과 예산을 잇는 4차로 큰길인 예당평야로가 지난다. 이렇듯 예나 지금이나 예당평야와 합덕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  예당평야로가 고가도로로 이어지는 곳에는 합덕제와 관련된 비석이 줄지어 세워져 있다. 지금도 8개의 비석이 남아있는데, 가장 오래된 것은 영조 43년(1767)에 세워진 ‘연제중수비’다. 조선시대에는 연제(蓮堤)로도 불려졌음도 알 수 있다. 지금도 적지 않은 넓이의 연밭이 남아 있다. 동네 노인들의 이야기로는 과거에는 훨씬 더 많은 비석에 있었다고 한다. 오랜 역사 만큼이나 보수도 잦았음을 알 수 있다. 이 때문인지 남아있는 제방의 석축은 매우 튼튼해 보인다.  당진군은 합덕제를 단계적으로 복원할 예정이다. 1771m의 석축제방을 복원해 과거 담수면적의 절반에 조금 못미치는 46만 769㎡의 방죽을 다시 조성하겠다는 것이다. 합덕제는 김대건 신부의 생가인 솔뫼성지와 다블뤼 주교의 유적인 신리성지가 지척이다. 1929년 지어진 합덕성당은 합덕수리민속박물관에서 불과 200m 정도 떨어져 있을 뿐이다. 김대건 신부와 다블뤼 주교도 제방길로 자주 오갔을 합덕제가 복원되면 지역의 새로운 명소로 떠오를 것이다.  합덕제는 관광용 저수지에 그치지 않을 것 같다. 최근 충남 지역의 가뭄으로 예당저수지도 바닥을 드러내면서 금강 백제보의 물을 관로로 수송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기후 변화에 따른 환경 변화는 예측하기 어렵다. 예당저수지 만으로 예당평야를 적시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이 합덕제도 과거의 유물에 그치지 않고 수리시설로 다시 생명력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  글 서동철 수석논설위원 dcsuh@seoul.co.kr strong>☞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 이야기’ 시리즈 전체보기
  • 적과 싸우다…일과 싸우다…시대 변해도 계속되는 ‘숭고한 희생’

    적과 싸우다…일과 싸우다…시대 변해도 계속되는 ‘숭고한 희생’

    2013년 3월 1일 밤 11시 24분. 인천 강화경찰서 내가파출소 소속 정옥성 경위는 외포선착장에서 바다 쪽을 향해 달려가는 남자를 전력을 다해 뒤쫓았다. 그는 자살을 하려는 사람이었다. 정 경위는 물가에서도 발을 멈추지 않았다. 거친 물살에 발이 묶여 앞으로 넘어지며 풍덩 빠졌지만 자꾸만 깊은 곳으로 들어가는 남자에게 손을 뻗으며 한 발, 한 발 따라 들어갔다. 잠시 후 그의 모습이 사라졌다. 밤바다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시커멓게 출렁였다. 정 경위는 그렇게 밤바다의 별이 됐다. 시민의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 밤낮 없이 일하다 목숨을 잃는 경찰관이 매년 수십명씩 나온다. 서울신문은 경찰 창설 70주년을 맞아 경찰청으로부터 순직 경찰관 1만 3542명의 사망 경위가 담겨 있는 명단을 23일 입수, 분석했다. 70년간 순직한 경찰관들의 이야기는 광복 이후 대한민국 역사의 굴곡을 보여 준다. ●광복 후 극심한 좌우 대립… 1562명 잠들다 광복 직후인 1945년 9월부터 6·25전쟁 직전까지 경찰 순직자는 1562명이었다. 이들 중 90% 이상이 ‘폭도’, ‘반도’, ‘좌익 불순세력’, ‘공비’와의 교전이나 작전 중 사고로 숨졌다. 미국과 소련이 남과 북을 나눠 점령했던 시기, 북쪽에서 들어온 무장공비와의 잦은 교전 탓이었다. 1946년 10월 1~3일 대구, 경북 영천시, 칠곡군 등에서 44명이 순직한 것으로 기록됐다. 당시 대구에서는 10·1사건이 일어났다. 진실화해위원회에 따르면 10·1사건은 미 군정의 친일관리 임용과 강압적인 식량 공출 정책에 반발한 민간인과 일부 좌익 세력이 경찰, 행정 당국과 충돌한 사건이었다. 1948년 제주에서는 4월 3일 5명, 4월 12일 1명, 5월 13일 8명, 5월 22일 4명, 6월 16일 2명의 경찰관이 공비와 교전하다 사망했다. 이들은 ‘제주 4·3사건’의 초기 경찰 사망자들이다. 제주 3·1절 기념집회에서 경찰의 발포로 6명이 숨지고 민심이 들끓자 남로당은 투쟁위원회를 만들어 경찰을 공격했다. 미 군정은 제주도민 토벌 작전에 나섰고, 이로 인해 2만 5000~3만명으로 추정되는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4·3사건 당시 진압을 위해 출동하라는 이승만 정부의 명령을 일부 부사관이 거부하면서 1948년 10월 19일 ‘여수·순천 사건’이 일어났다. 20~24일 전남 여수, 순천, 고흥, 장흥 등지에서 270명의 경찰이 숨진 것으로 기록됐다. 반란은 10여일 만에 진압됐지만 이후에도 계속된 교전으로 이 지역에서 수백명의 순직자가 더 나왔다. ●6·25전쟁 발발부터 휴전까지 8823명 순직 1950년 6월 25일부터 휴전협정일인 1953년 7월 27일까지 8823명의 순직자가 명단에 올랐다. 경찰은 이들이 모두 전사한 것으로 보고 있다. 단일 전투로 가장 많은 경찰 희생자를 낸 것은 1950년 7월 19일부터 치러진 강경 전투였다. 83명의 경찰관이 목숨을 잃었다. 휴전협정 뒤에도 전사자는 속출했다. 휴전 직후부터 1955년까지 469명 중 60.3%에 해당하는 283명이 크고 작은 교전 중에 숨졌다. ●1962년 간첩 수색하던 25명 한꺼번에 숨져 1960년 4월 19~20일에는 6명의 경찰관이 4·19혁명 현장에서 진압 중 숨진 것으로 집계됐다. 간첩을 체포하거나 수색하는 과정에서 습격을 받거나 폭발물이 터져 목숨을 잃은 경우도 있었다. 특히 1962년 4월 1일에는 울산에서 간첩 수색을 위해 출동하던 경찰관 25명이 자동차 사고로 한꺼번에 사망했다. 1963년 6월 25일엔 장승포에서 산사태가 일어나 주민 61명이 사망했다. 이때 18명의 경찰관이 주민 대피를 돕다 숨진 것으로 기록돼 있다. ●3명의 목숨 앗아 간 김신조·실미도 사건 1966년부터 1975년 사이 순직자 중 주목되는 사람은 ‘1968년 1월 21일 무장공비 검거 작전 중 적탄에 전사’라고 기록된 최규식 서울 종로경찰서장과 1971년 8월 23, 24일에 인천에서 각각 순직한 두 명의 순경이다. 1968년 1월 21일 게릴라전 특수훈련을 받은 김신조 등 북한 124군부대 무장간첩 31명이 당시 서울 세검동 자하문초소까지 진입해 경찰과 교전을 했다. 현장을 지휘하던 최 서장이 전사하고 경찰 2명이 중상을 입었다. 그 뒤 우리 군은 124군부대와 똑같은 규모로 북파 부대를 창설했다. 인천 중구의 무인도인 실미도에서 실전과 똑같은 훈련을 받은 북파 부대원들은 1971년 8월 23일 기간병들을 살해하고 서울로 향했다. 인천의 경찰관 두 명이 이 과정에서 희생됐다. ●광주민주화운동 진압하다 스러진 순경 4명 1979년 10·26사건으로 박정희 시대가 막을 내렸지만 전두환, 노태우 등 신군부가 집권하면서 민주화운동이 곳곳에서 나타났다. 1980년 5월 18일 시작된 5·18광주민주화운동 당시 191명이 숨지고 852명이 부상한 것으로 발표됐다. 이 기간 중 전남 함평경찰서 소속 순경 4명이 사망했다. 순직자 명단엔 ‘80년 5월 20일 데모 진압 중 자동차에 밀려 사망’이라고 적혀 있다. 1989년 5월 3일에는 ‘동의대 사건’이 일어났다. 시위대로 위장한 사복경찰 5명이 학생들에게 발각돼 도서관에 감금됐다. 경찰은 도서관에 진입했고 학생들과 충돌하는 과정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경찰 4명이 사망했다. 공식 서류에는 ‘동의대 학생들에게 납치된 전경 5명의 구출 작전을 벌이던 중 학생들이 석유 등을 뿌리고 화염병을 투척, 화재로 인한 화상 및 질식하여 사망’이라고 나와 있다. ●시간 지날수록 경찰 ‘과로사’ 점점 늘어 전쟁과 휴전 직후엔 교전으로 인한 전사자가 많았지만 이후 과로로 순직하는 경찰이 크게 늘었다. 시기별 순직자의 사망 경위 중 과로·졸도 사망은 전쟁 직후에는 15명에 불과했다. 그러나 1956~1965년엔 전체 사망자의 28.9%로 급증했다. 1966~1975년에는 42.3%로 껑충 뛰었다. 1976~1985년 37.1%, 1986~1995년 40.1%에 이어 1996~2005년에는 과로 순직이 58.4%로 급등했다. 최근 10년간은 경찰 149명이 순직한 가운데 53.7%인 80명이 과로사한 것으로 집계됐다. 과로로 숨진 경찰관들의 사망 경위를 살펴보면 밤새 당직을 서거나 잠복근무를 한 뒤 충분히 쉬지 못하고 다음날 다시 근무에 투입된 경우가 많았다. 1998년 말엔 탈옥수 신창원 검거를 위한 특별근무 등으로 업무가 과중돼 간경변이 재발한 순직자가 있었다. 2000년엔 전년도 ‘인천 호프집 화재 사건’ 뒤 유해업소 특별단속으로 피로가 누적된 상태에서 철야 근무를 계속한 경찰관이 가슴 통증을 호소하다 숨지기도 했다. 2010년엔 천안함 사건으로 인한 을호 비상근무 등으로 적절한 휴식을 취하지 못한 이송범 광주지방경찰청장 등 2명의 경찰관이 쓰러져 숨졌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 유엔의 날 맞아 살펴본 한국과 유엔 ‘그때 그 시절’

    유엔의 날 맞아 살펴본 한국과 유엔 ‘그때 그 시절’

    1991년 9월 17일 남북한은 동시에 유엔 가입 승인을 받았다. 국명표기 알파벳 순서에 따라 북측(DPRK)이 160번째, 남측(ROK)이 161번째로 이름을 올렸다. 남북한 유엔 가입은 한반도에서 양측의 정통성 및 합법성 논쟁에 마침표를 찍고 화해와 공존의 시대를 열었다는 평가를 듣는다. 그러나 별개의석 가입에 따른 분단 영구화에 대한 우려도 낳았고 휴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바꾸는 일, 쌍방의 실체를 부인하는 실정법 개정 문제 등의 과제도 안겼다. 우리나라에선 1950년 9월 당시 유엔 창설일인 10월 24일을 법정 공휴일로 지정해 1976년 기념일로 바뀔 때까지 유지했다. 1950년 6월 한반도는 전쟁에 휩싸였지만 유엔의 신속한 대응 덕분에 숨을 돌릴 수 있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는 북한군 철수를 촉구하는 결의문을 채택하고 회원국에게 군사 및 식량 지원을 요청했다. 또 유엔한국통일부흥위원단(UNCURK)과 유엔한국재건단(UNKRA)을 설치해 구호물자 제공, 주택·의료·교육시설 건립 등 전후 복구와 경제 재건에 힘을 쏟았다. 우리나라는 1986년 유엔개발계획(UNDP), 유엔공업개발기구(UNIDO)와 협력기금을 설치해 개발도상국 재정지원을 시작했고 유엔아동기금(UNICEF) 집행이사국으로서 수백만 달러에 이르는 기여금을 내놨다. 원조를 받다가 돕는 나라로 보답한 셈이다. 소말리아, 동티모르, 레바논 등엔 평화유지군(PKO)을 보내 안정을 도왔다. 2007년엔 ‘세계의 대통령’으로 불리는 유엔 사무총장을 배출해 위상을 한껏 높였다. 행정자치부 국가기록원은 유엔의 날을 하루 앞둔 23일부터 홈페이지(www.archives.go.kr)를 통해 1950~1970년대 관련 기록물 28건을 공개한다. 1956년 유엔 가입을 촉구하는 국민 총궐기대회 등 동영상 6건, 1974년 유엔 한국대표부 개관식 등 사진 20건, 1953년 한국유네스코위원회 설치령 등 문서 2건이다. 송한수 기자 onekor@seoul.co.kr
  • ´북한인권상황보고서´, 반기문 총장이 유엔총회에 제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22일(현지시간) 제70차 유엔총회에 ‘북한인권상황보고서’를 제출했다.  유엔에 따르면 이날 반 사무총장이 제출한 보고서에는 북한의 인권 상황 개선을 위해 국제사회와 북한이 교류할 것을 권장하는 것 외에 인권 문제와 관련한 북측 최고책임자 처벌을 강조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보고서는 또 북한이 자행한 국제 납치 및 이산가족 문제, 표현과 이동의 자유 제한, 북한내 식량 사정과 보건 문제, 아동·장애인·여성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열악한 보호 환경, 국제사회의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가 대북 인도적 지원 활동에 미치는 영향 등을 지적했다.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해 유엔 등 국제사회 차원에서 그간 펼친 노력 등도 포함됐다. 무엇보다 보고서는 “북한의 열악한 인권 상황에 전혀 변화가 없다”면서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해 국제사회가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번에 제출된 보고서는 지난해 9월부터 올 8월까지 북한의 인권 상황을 담고 있다. 이는 지난해 유엔총회에서 채택된 북한 인권 결의안에 따른 것이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열린세상] 다가올 통일 준비, 북한 산림녹화가 먼저/윤영균 국민대 특임교수, 전 국립산림과학원장

    [열린세상] 다가올 통일 준비, 북한 산림녹화가 먼저/윤영균 국민대 특임교수, 전 국립산림과학원장

    “식량난 해소를 위해서 다락밭(계단밭)을 만들었고, 땔감용으로 나무를 모조리 베어내 산이 헐벗어졌으며, 심지어 중국 접경 지역의 울창했던 산림도 식량과 교환하기 위해 마구 베어내 없어졌습니다. 학교에서는 나무를 심고 길러야 가뭄과 홍수를 극복할 수 있다고 가르치지만 당장 급한 현실 때문에 소용이 없습니다.” 북한 양강도 혜산 출신 새터민 방송인 김은아씨의 증언이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보아온 고향의 산림이 하루아침에 황폐해진 이유를 생생하게 설명해주었다. 사실 혜산시는 말 그대로 ‘산의 혜택을 받은 곳’인데 이제는 그 이름이 무색할 지경이 되었다. 북한 산림의 황폐화는 그녀의 증언뿐 아니라, 국립산림과학원에서 1998년부터 위성영상을 통하여 모니터링한 결과로도 증명되었다. 2008년 기준 북한의 전체 산림면적은 899만㏊로, 그중 황폐 산지가 전체 산림의 32%인 284만㏊에 이른다고 한다. 또한 지난 5년 동안 평양, 개성, 혜산, 봉산, 고성 등 5개 지역 산림을 정밀 관찰한 결과 개간 산지가 무입목지(無立木地·나무가 서 있지 않은 땅)나 나지(地·나무나 풀이 전혀 없는 땅)로 전환되는 등 황폐의 정도가 심각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것은 전 세계 산림 황폐화 순위 3위를 차지할 만큼 심각한 수준이다. 앞으로 복구사업을 실행할 때 일반 조림이 아닌 사방(砂防) 복구가 필요한 면적이 확대되는 것임을 의미하는 동시에, 복구 비용 또한 많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것이 북한의 산림녹화사업을 통일 전에 해야 하는 이유이다. 얼마 전 북한 내각 부총리 최영건이 산림녹화 관련 지시가 현실과 동떨어졌다며 불만을 나타내다 총살됐다는 소식이 있었다. 앞서 지난 1월에도 북한 산림녹화를 담당하고 있는 임업성 부상이 녹화사업이 부진하다는 이유로 처형되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현실과 동떨어진 지시란 대체 무엇이었을까.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해 11월 평양 중앙양묘장에서 ‘고난의 행군’ 시기에 산림이 황폐화된 것을 지적하고, 군인들에게 나무를 심어 조기에 복구할 것을 지시했다고 한다. 이는 북한도 과거 잘못된 다락밭 조성정책을 인정하면서 10년 안에 벌거숭이산을 모조리 수림화(녹화의 북한식 표현)한다는 것으로, 황폐된 산지 168만㏊에 65억 그루의 나무를 심겠다는 것이다. 이 수치는 연평균 6억 5000만 그루에 해당하는 것으로, 올해 우리나라가 심은 5000만 그루의 13배다. 현재 북한은 현실과 동떨어진 거창한 녹화 계획만 내놓고 해마다 봄, 가을철만 되면 군인과 인민들을 동원해 수백만 그루의 나무를 심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 나무들이 잘 자라고 있다는 증거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실정이다. 어쩌면 구호로만, 숫자로만 심는 것이지 실제로 산에 묘목이 심어지고 있는지는 모를 일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이러한 북한 산림 황폐화를 우리 민족이 그저 보고만 있지는 않다는 사실이다. 얼마 전 사단법인 한반도녹색평화운동(KGPM)은 함경북도 두만강 인근 지역에서 ‘광복 70주년, 분단 70년, 통일화합 나무심기 발대식’을 가졌고 이에 필요한 묘목과 씨앗을 보낸다고 한다. 또한 재미교포 기독교인들이 주축이 된 원그린코리아운동(OGKM)이라는 단체도 북한의 산림복구를 위해 그동안 수백만 그루의 나무를 심었고, 앞으로도 더 심어나갈 계획이라고 한다. 민간단체의 움직임뿐만 아니라, 산림청에서도 북한 측의 요청을 받아 우리 전문가들이 금강산 병해충 피해 현장을 방문하여 소나무 숲 피해를 조사하였고, 지난 9월 중순 방제 약제와 기자재 지원과 함께 우리 전문가들의 기술 지원으로 시범 방제작업을 하였다. 아울러 지난 10월 초 남북강원도협회 관계자들도 북한을 방문하여 병해충 방제용 분무기, 방제복, 마스크 등의 물품을 전달하고 공동 시범사업도 하였다. 이 가을, 모처럼 찾아온 이산가족 상봉과 함께 남북 교류의 불씨가 살아나고 있다. 이번 기회에 아시아녹화기구(Green Asia Organization) 등 민간단체가 추진하는 조림과 혼농임업(混農林業·농업과 임업을 겸하는 형태) 시범사업뿐만 아니라 올가을 조림부터 북한 산림복구 지원사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되기를 기대해 본다.
  • [新국토기행] 제주 우도

    [新국토기행] 제주 우도

    ‘섬 속의 섬’ 우도는 제주도의 축소판이다. 쪽빛 바다와 오름(기생화산), 해안 절경, 푸른 초원과 검은 돌담, 하얀 등대와 물질하는 해녀…. 우도는 제주 본섬의 풍광을 쏙 빼닮았다. 제주도에 딸린 여러 섬 가운데 가장 큰 섬으로 면적은 6.18㎢, 해안선 길이는 17㎞에 이른다. 소가 드러누운 형상이라고 해서 우도라고 불리며 1700여명의 주민이 농업과 수산업, 관광업에 종사한다. 우도는 요즘 변화의 바람이 거세다. 관광객이 늘어나면서 한적했던 해안가에는 카페가 즐비하게 들어섰다. 펜션과 게스트하우스 등의 숙박시설도 앞다퉈 문을 열었다. 2010년 12월 제주 본섬과 연결되는 해저 상수도가 통수되면서 고질적인 물 부족 문제는 말끔하게 해소됐다. 한때 일부 주민들이 우도와 제주 본섬을 연결하는 연륙교 개설을 주장했으나 ‘섬이어서 더 아름답고 매력적’이라는 여론에 밀려 없던 일이 됐다. ‘우도에 가기 위해 제주에 온다’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요즘 우도의 인기는 상한가다. 한 해 150만명의 국내외 관광객이 우도를 찾는다. 우도 절경을 찾는 중국인 관광객이 부쩍 늘었다. 바야흐로 우도 전성시대다. 제주도 개발 광풍이 작은 부속 섬에까지 불어닥치면서 우도도 ‘개발이냐 보존이냐’의 갈림길에 서 있다. 최근에는 우도의 대표적 해안 절경 중 한 곳인 돌칸이해안과 인접한 곳에 대규모 체류형 숙박시설 조성이 추진돼 경관 파괴와 환경 훼손 논란을 빚고 있다. >>볼거리 ●현무암과 대비되는 강력한 풍경의 홍조단괴해빈 국내에서 유일하게 해빈 퇴적물이 홍조단괴로만 이뤄진 해빈(바닷가)으로 우도의 대표 명소다. 홍조단괴해빈은 우목동 해안에 길이 300m, 폭 15m 정도로 백사장처럼 펼쳐져 있다. 홍조단괴는 홍조류가 석회화되면서 암석처럼 단단하게 굳어져 만들어진다. 우목동 해안 앞바다에 서식하는 홍조류가 강한 조류와 태풍 등의 영향을 받아 뒤집히고 굴러다니면서 점차 성장하고 돌멩이처럼 굳어진 뒤 떠밀려 와 해빈을 형성하고 있다. 홍조단괴해빈은 너무 하얗다 못해 푸른 빛이 돈다. 2004년 천연기념물 제438호로 지정됐다. 화산섬의 검은색 현무암과 대비되는 하얀 홍조단괴해빈은 강렬한 풍경을 연출한다. 과거에는 ‘산호사 해빈’으로 알려져 왔으나 수년 전 해빈 퇴적물이 홍조단괴로 밝혀졌다. 태풍 등 기상이변과 온난화 등으로 해마다 홍조단괴해빈은 침식돼 면적이 줄어들고 있다. 1979년 10월에는 홍조단괴해빈 면적이 1만 8318㎡였으나 2013년 8월 조사에서 1만 2765㎡로 34년 새 30.3%(5553㎡)가 사라졌다. 기후변화에 따른 해수면의 상승으로 수심이 깊어져 같은 파도라도 해안에 미치는 영향이 커진 데다 인공 구조물인 호안이 설치돼 홍조단괴해빈이 계속 침식되고 있다. 1995년 이곳에 해안도로가 건설됐다. 2005년에는 파도와 모래가 제방 등을 넘어 날리는 것을 막기 위해 높이 0.4∼2.5m, 폭 0.3∼4.8m, 길이 282.5m의 호안벽이 설치됐다. 환경단체 등에서는 이런 인공 시설 때문에 홍조단괴 해빈이 훼손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세계자연유산’ 성산일출봉을 조망할 수 있는 우도봉 우도의 동남쪽에 솟아 있는 소머리오름인 우도봉(132m)은 우도 전체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명소다. 우도봉 아래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는 17㎞ 해안선을 따라 해안 절경이 펼쳐진다. 우도봉 정상에서는 세계자연유산인 성산일출봉의 동쪽 모습을 조망할 수 있다. 성산일출봉의 동쪽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은 우도봉 정상이 유일하다. 정상에는 제주에서 가장 먼저 들어선 우도 등대가 있다. 우도 등대는 1906년 3월 무인 등대로 점등됐다가 1959년 9월 유인 등대로 바뀌었다. 2003년 12월에 신등탑을 신축했고 97년간 불을 밝히던 서쪽 옛 등탑은 2003년 11월 문을 닫았다. 옛 동탑은 역사적 가치 등으로 원형대로 보존 중이다. 신등대 설치와 함께 들어선 국내 최초의 등대 테마공원도 볼거리가 많다. 덴마크 안홀트, 미국 킹스턴, 프랑스 코르두앙, 일본 다테이시사키, 독일 브레머하펜, 이집트 파로스와 부산 오륙도, 인천 팔미도, 포항 호미곶, 강원 대진, 제주 마라도 등대 등 우리나라와 세계의 유명한 등대 모형이 전시돼 있다. ●옛 돌담 등 가장 제주다운 풍경 선물하는 우도 올레 제주 올레 1~1 우도 올레는 푸른 초원과 검은 돌담, 하얀 등대 등 가장 제주다운 풍경을 연출한다. 터벅터벅 걸으며 사계절 내내 쪽빛 바다색을 자랑하는 우도의 절경을 만끽할 수 있다. 쇠물통언덕을 지나 제주도의 옛 돌담을 고스란히 간직한 돌담 올레를 걷고 호밀과 보리, 땅콩이 자라는 밭둑 올레도 즐길 수 있다. 기존 우도봉 산책 코스는 바로 올라 전망대로 가지만 우도 올레는 해수를 담수로 만들었던 우도저수지 옆길을 지나 우도봉으로 오르도록 길을 냈다. 이 길은 꽃양귀비와 크림손클로버로 뒤덮인 아름다운 초원 풍경을 보여준다. 천진항을 출발해 홍조단괴해빈 해수욕장~하우목동항~산물통 입구~파평윤씨공원~하고수동 해수욕장~조일리 오거리~연자마~우도봉 입구~우도 등대~천진항으로 돌아오는 우도 올레는 17㎞로 4~5시간이 걸린다. 관광객이 늘면서 우도 올레는 요즘 방해꾼들이 많아졌다. 하루 내내 관광객이 대여한 사륜차와 모터사이클이 굉음을 내며 우도를 휘젓고 돌아다녀 호젓한 올레길을 즐기기는 어렵게 됐다. 또 이들의 잦은 교통사고도 골칫거리다. 한가롭고 호젓한 분위기를 기대했다가 하루 내내 시끄러운 모터사이클 소리가 끊이지 않는 우도에 실망하고 돌아가는 관광객들도 많다. 우도에서 모터사이클을 추방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지만 대여업을 하는 주민들의 생계와도 연결돼 있어 이러지도 저리지도 못하고 있다. 다행히 여름 성수기에는 하루 600대의 차량만 우도 반입을 허용하는 차량총량제를 실시 중이다. ●집담·산담·밭담 등 제주만의 풍경 간직한 돌담 우도는 집담, 산담, 밭담 등 화산섬 제주의 독특한 돌 문화 풍경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집 울타리 역할을 하는 집담은 집의 경계를 나타내고 소나 말의 출입을 막기 위한 것이다. 산담은 무덤가 울타리 돌담이다. 밭 울타리인 밭담의 경우 산에는 짐승들이, 들에는 소나 말, 가축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경계하며 수시로 부는 바람과 태풍 등을 막기 위해 쌓아 올린 것이다. 누군가 쌓아 올린 우도의 돌담은 오랜 시간의 흔적이자 노동 축적의 산물이다. 무너진 돌담은 세대를 이어 쌓고 또 쌓았다. 우도의 해안 돌담은 13㎞나 된다. 북쪽 지역의 돌담 높이는 무려 3m가 넘는다. 바다 한가운데에 있는 우도는 바람을 막기 위해 돌담을 더 높이 쌓았다. 밭을 일구고 씨앗을 뿌리면 그 씨앗이 바람에 날리지 않게 높은 돌담을 쌓아야만 했다. 돌과 돌 사이에는 구멍으로 바람 길을 냈다. 무너질 듯 무너지지 않고 오랜 세월을 이겨낸 견고한 제주 돌담의 비결이다. 돌담은 2013년 국가중요농업유산에 이어 지난해 세계식량농업기구(FAO)의 세계농업유산으로 등재됐다. ●자연스러운 울림·선율이 흐르는 고래콧구멍동굴 고래콧구멍동굴(경안동굴)은 우도 검멀레해안에 있는 해식동굴이다. 넓은 실내 공간과 동굴의 자연 울림으로 1997년 동굴음악회를 시작한 이래 해마다 음악회가 열린다. 1992년 ‘동굴소리연구회’가 제주의 여러 동굴을 직접 답사한 후 최적의 동굴음악회 장소로 낙점했다. 동굴이 지닌 공명 등 자연 음향의 우수성을 직접 체험할 수 있어 음악회에는 전국에서 팬들이 찾아온다. 동굴소리연구회는 오는 25일 오후 2시 30분 고래굴에서 ‘한국 가곡의 대향연’이라는 주제로 ‘2015 우도 동굴음악회’를 연다. ‘자연스러운 소리 감각이란 자연스러운 울림 공간에서 더 효과적으로 체득된다’는 게 동굴음악회가 주는 매력이다. 동굴 공간 울림의 뛰어남을 알리고 동굴을 문화 공간으로 활용하는 동굴음악회는 우도의 대표적인 문화 상품이다. 검멀레해변은 이름처럼 검은 모래로 이뤄졌다. 응회암이 부서져 만들어진 덕에 독특한 빛깔을 낸다. 이곳에서 올려다보는 우도봉은 해안 절벽의 높이가 20m나 된다. 인근 남서쪽의 돌칸이해변은 둥글고 큰 먹돌이 지천이다. ‘돌칸이’는 소의 여물통이라는 뜻이다. >>먹거리 ●껍질째 먹어야 맛있는 우도 땅콩 우도는 바람, 토지, 기후 등 3박자를 모두 갖춘 땅콩 재배 최적지다. 타 지역에 비해 땅콩이 작고 껍질은 얇고 부드럽다. 우도 땅콩은 껍질째 먹어야 더 맛있다. 우도 땅콩은 불포화지방산과 비타민E, 니아신, 엽산 등 비타민 공급원을 다량 함유해 치매 예방과 노화 방지에 도움을 준다고 알려져 있다. 타 지역 땅콩은 조단백질과 조지방 위주로 구성됐지만 우도 땅콩은 조단백질, 조지방 외에도 탄수화물까지 골고루 함유하고 있다. 우도 땅콩으로 만든 땅콩아이스크림은 우도에서만 맛볼 수 있다. 땅콩밥, 땅콩국수 등도 색다른 맛을 느낄 수 있다. 해마다 10월이면 세계 땅콩요리 페스티벌, 땅콩아이스크림 만들기, 땅콩 수확 체험 등 우도 땅콩 축제가 열린다. 최근에는 ‘치맥’(치킨과 맥주) 대신 ‘땅맥’도 우도에서 인기다. 고소한 우도 땅콩과 맥주 한잔은 궁합이 잘 맞는다는 입소문을 타면서 인기몰이 중이다. ●바다향이 그대로 살아 있는 우도 소라 우도 소라는 크기부터 다르다. 제주에서 가장 큰 소라가 우도 바다에서 잡힌다. 수심이 깊은 데다 물살도 세 우도 바다에서는 큰 소라가 자란다. 해녀들이 갓 잡아 올리는 우도 소라는 다소 비리지만 바다 향이 그대로 살아 있는 소라 특유의 맛을 자랑한다. 소라회로도 먹고 소라구이로도 먹는다. 소라구이를 할 때는 소라를 석쇠 위에 올려 놓은 후 물을 조금 부어 끓기 시작하면 부어낸 뒤 소주를 넣고 다시 굽는다. 어느 정도 끓으면 소주잔에다 비우고 또 소주를 부어 끓인다. 이렇게 2, 3회 한 후에 소주는 소주대로 알맹이는 알맹이대로 꺼내 먹는다. 생소라에는 경단백질인 콜라겐이 다량으로 함유돼 있다. 비타민, 미네랄도 풍부하다. 우도에는 소라구이집이 수두룩하다. 연간 2000여t을 생산해 일부는 일본으로 수출한다. 해마다 10월이면 추억의 소라목걸이 만들기, 맨손으로 소라 잡기, 소라구이 시식회 등 소라 축제가 열린다. 글 제주 황경근 기자 kkhwang@seoul.co.kr
  • 독일도 난민유입 막는 ‘베를린 장벽’ 쌓는다

    독일도 난민유입 막는 ‘베를린 장벽’ 쌓는다

     “독일은 지구와 다른 별인가. 난민 정책으로 유럽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앙겔라 메르켈 총리야말로 히틀러를 쏙 빼어 닮았다.”(bestie) “유럽인들은 폭탄을 싣고 날아가 (난민 사태의 발원지인) 중동 전역을 쓸어버려야 한다.”(bongabonga)  영국의 진보 일간지인 인디펜던트 게시판은 19일(현지시간) 하루 악성 댓글로 봇물을 이뤘다. 하루가 멀다 하고 유럽으로 몰려드는 수만명의 난민과 이를 포용하려는 메르켈 총리를 싸잡아 저주에 가까운 악담이 이어졌다. 최근 유럽에 불고 있는 반(反) 난민 정서의 단면을 극명하게 드러낸 셈이다.  인디펜던트는 이날 독일 유력 일간 빌트를 인용, 메르켈 총리가 지난 8월 유럽 난민 사태 발발 이후 최대 위기에 처했다고 전했다. 메르켈 총리가 속한 집권 기독민주당 의원 과반수가 난민 유입을 저지하기 위한 국경 장벽 설치 계획을 비밀리에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310명의 소속 의원 중 188명이 찬성한 이 법안은 오스트리아 등과 잇닿은 동부 국경에 옛 베를린 장벽에 비견될 인위적 장애물을 만드는 데 방점이 찍혔다. 가시철조망 형태로 들어설 벽은 두터운 콘크리트로 이뤄진 베를린 장벽과 다르지만, 품고 있는 정치적 함의를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지난 16일 크로아티아와의 국경을 폐쇄한 헝가리도 난민 유입을 막기 위해 앞서 장벽을 설치했고, 독일과 프랑스 등 유럽연합(EU) 주축국들로부터 드센 비난을 받았다.  ‘비밀계획’으로 명명된 법안은 어떤 형태의 인위적 장벽 설치에도 반대해 온 메르켈 총리의 입장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것이다. 법안을 주도한 기민당의 보수파 크리스티안 폰 슈테텐 의원은 “2주 안에 법안을 표결에 부칠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어느 정도 예견된 상황이다. 기민당 내에선 난민 정책을 놓고 내홍이 끊이지 않았고, 연정 파트너인 사회민주당조차 국경에 임시로 들어설 난민 수용소를 반대해 왔다. 불과 한 달 전 식량과 물을 들고 난민들을 환대했던 독일의 인도주의적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난민 폭증 탓으로, 독일 정부는 애초 올해 난민 신청자를 80만명 안팎으로 추산했으나 지금 추세대로라면 150만명을 넘어설 전망이다.  앞서 유럽 곳곳에선 ‘반이민’ 극우정당이 총선에서 약진하고, 헝가리, 폴란드 등 동유럽 지도자들이 난민 혐오 발언을 쏟아내는 등 이상기류가 흘러왔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알쏭달쏭+] 매머드 멸종 ‘범인’은 인간일까? 기후변화일까?

    [알쏭달쏭+] 매머드 멸종 ‘범인’은 인간일까? 기후변화일까?

    한 때 유럽에서 아시아, 아메리카 대륙에 이르기까지 광대한 지역에 살았던 전설의 동물이 있다. 바로 긴 털과 거대한 엄니를 자랑하는 털매머드다. 시베리아에서는 약 1만 년 전, 북극해의 한 섬에서는 약 3,700년 전 까지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매머드는 그러나 어느순간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져 멸종동물에 이름을 올렸다. 최근 미국 미시간 대학 연구팀은 매머드가 고대인류의 사냥에 의해 멸종한 '증거'를 찾았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이번에 연구팀이 발표한 논문은 기존에 같은 주장을 펼친 연구결과와 비교해 보다 과학적이다. 미시간 대학 연구팀이 주목한 연구대상은 매머드의 상징인 엄니다. 연구팀의 가설은 이렇다. 학계에서는 매머드 멸종의 '용의자'를 기후변화와 사냥으로 보고 있다. 만약 당시 기후환경이 매머드를 멸종에 이르게 할 정도였다면 어린 매머드가 젖떼는 시기가 늘어나고 반대로 사냥에 의한 것이면 훨씬 짧아졌을 것이라는 추론이다. 연구팀은 15마리의 각기 다른 어린 매머드의 엄니 성분 중 질소-14, 질소-15 동위원소의 비율을 조사한 후 현재의 코끼리 새끼와 비교해 젖떼는 시기가 가속화 됐음을 확인했다. 연구를 이끈 마이클 처니 박사는 "엄니는 코끼리처럼 매머드의 연령 및 성장 상태와 깊은 관계가 있다" 며 "멸종원인이 기후 변화가 아닌 인간의 사냥이라는 가장 강력한 증거" 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박사는 "이번에 조사대상에 오른 매머드 엄니가 모두 러시아에서 발굴된 것이라 논쟁의 여지는 남아있다" 고 덧붙였다. 처니 박사의 주장처럼 그간 학계에서는 매머드의 멸종 이유를 놓고 다양한 이론이 발표됐다. 이중 가장 대표적인 학설이 당시 인류가 매머드를 사냥해 ‘씨’가 말랐다는 것. 그러나 2000년대 들어 운석 충돌의 영향으로 매머드가 멸종했다는 이론이 학계에서 힘을 얻어왔다. 이 가설을 세운 대표적인 학자가 캘리포니아 대학 제임스 케네트 교수다. 그는 혜성 충돌의 영향으로 지구의 온도가 급격하게 떨어져 매머드를 비롯한 거대 동물 멸종, 인류 문명이 소멸됐다는 이른바 ‘영거 드라이아스기 충돌 이론’(Younger Dryas impact theory)을 펼쳐왔다. 또한 지난 8월에는 다른 각도의 연구방법으로 매머드 멸종 이유를 분석한 논문이 나온 바 있다. 영국 엑시터 대학과 케임브리지 대학 연구팀은 매머드의 멸종 이유를 밝히기 위해 통계 분석을 이용했다. 그 결과 고대 인류가 각 대륙과 섬으로 퍼져나가는 것과 맞물려 그 지역에 사는 매머드가 급격히 사라졌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는 곧 고대 인류가 매머드를 식량으로 사냥해 씨가 말랐다는 이론의 강력한 증거가 된다. 이 연구를 이끈 엑시터 대학 루이스 바렛 박사는 “마치 50년 논쟁에 못질을 한 기분” 이라면서 “인류가 매머드 멸종의 주요한 원인이며 기후 변화 등은 이를 가속화시킨 요인으로 보인다” 고 주장했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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