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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맥주보이·치맥 배달 새달부터 합법화

    단속에 걸리면 과태료를 내야 했던 야구장 ‘맥주보이’와 치킨집의 맥주 배달이 8월부터 허용된다. 국세청은 이런 내용으로 주류 관련 고시와 규정을 개정했다고 7일 밝혔다. 국세청과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 4월 야구장에서 이동하면서 생맥주를 파는 맥주보이가 주류를 허가된 장소에서만 팔도록 하고 있는 주세법을 위반한 것으로 보고, 이들이 활동하고 있던 잠실, 수원, 대구, 부산 연고 구단에 규제하겠다는 방침을 전했다. 하지만 이미 야구장의 주요한 문화로 자리잡은 맥주보이를 규제하는 것은 안 된다는 야구팬의 거센 반발에 부딪혔다. 이에 규제를 철회하기로 했던 당국은 관리 범위가 야구장 등 ‘한정된 공간’으로, 다른 법령의 제한이 없으면 주류를 팔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했다. 또 옥외 치맥(치킨+맥주) 페스티벌과 치킨집의 맥주 배달도 허용된다. 현행법상 식당 바깥으로 주류를 반출하는 것이 금지돼 있지만, 치킨집의 맥주 배달은 공공연히 이뤄져 왔다. 이와 함께 슈퍼마켓 등 소매점의 주류 배달 서비스와 와인 택배도 가능하도록 규제가 완화된다. 세종 장형우 기자 zangzak@seoul.co.kr
  • 바그다드 자폭테러 사망자 281명으로 늘어···최악테러 기록

    바그다드 자폭테러 사망자 281명으로 늘어···최악테러 기록

    이라크 바그다드의 상업지구 카라다에서 지난 3일(현지시간) 새벽 자살폭탄 테러로 인한 사망자가 281명으로 집계됐다.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 이후 발생한 단일 테러로는 최대 인명 피해다. 7일(현지시간) 이라크 국영방송 알이라키야에 따르면 이날 바그다드 시민 수천명은 지난 6일 오후부터 테러 현장에 모여 자발적인 추모 행사를 열었다. 추모 행사엔 이라크 국기와 촛불을 든 시민이 속속 모여들었으며, 희생자를 기억하면서 울음을 터뜨리는 이도 많았다. 폐허가 된 테러 현장을 둘러보고 일부 참가자는 자기 가슴을 주먹으로 치면서 애통해하기도 했다. 앞서 지난 3일 새벽 1시 이라크 바그다드 중심가인 상업지구 카라다에서 자살폭탄 테러가 발생했다. 이 지역은 이슬람교 시아파 주거 지역이다. 테러가 발생했던 당시는 ‘라마단’(이슬람 금식 성월) 기간이었다. 테러 발생 후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인 이슬람국가(IS)는 테러가 본인들의 소행이라고 주장했다. 이슬람교 수니파 조직이기도 한 IS는 시아파를 겨냥해 이 테러를 자행했다고 주장했으나 이라크 현지 언론들은 “카라다 지역은 수니파 주민과 기독교인도 상당히 섞여 사는 곳”이라며 IS의 무분별한 테러를 비판했다. 특히 이 지역이 식당과 상가, 호텔이 모인 곳인 탓에 라마단 금식을 마치고 밤늦게 식사하거나 사흘 앞으로 다가 온 명절(이드 알피트르)을 준비하러 장을 보러 온 가족 단위 희생자가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추모행사에 나온 아델 카나씨는 AFP통신에 “희생자 유족에게 인내와 용기를 달라고 신께 기도했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엔 시아파뿐 아니라 수니파와 기독교인 등 종교를 가리지 않고 추모객이 모였다. 이라크 정부도 이번 최악의 테러로 민심이 동요하면서 황급히 뒷수습에 나섰다. 이번 테러 사건으로 이라크 치안 책임자인 모하마드 알갑반 내무장관이 물러났다. 또 골프공 탐지기용으로 개발돼 무용지물인폭발물 탐지기 826억원어치를 9년 전 영국에서 들여온 부패 연루 사건을 뒤늦게 조사하고 있다. 이라크 내무부는 이번 자살폭탄 테러를 저지른 범인이 바그다드 북부 디얄라 주에서 폭발물을 싣은 트럭을 몰고 바그다드 시내로 진입했다고 밝혔다. 이 트럭은 오는 도중 여러차례 군경 검문소를 거쳤지만 별다른 제지를 받지 않았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종로에서 한복 입으면 밥값 10% 깎아줘요

    종로에서 한복 입으면 밥값 10% 깎아줘요

    ‘서울 종로에서 한복 입고 밥 먹으면 10% 할인’ 한복사랑에 앞장서는 서울 종로구는 7일 한복사랑 실천음식점 시범사업을 다음달부터 시작한다고 밝혔다. 전주 한옥마을에서 시작된 한복관광은 최근 서울 삼청동, 인사동, 북촌, 광화문 등으로 이어져 외국인뿐 아니라 중·고등학생, 젊은 연인들이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셀카봉을 든 채 서울 한복판을 거니는 모습을 쉽게 만날 수 있다. 구는 한복 열풍이 일시적 유행이 아니라 한복의 대중화와 생활화로 이어지도록 다음달부터 한복을 입고 한복사랑 실천음식점을 찾으면 음식 가격을 10% 이상 할인해 준다고 설명했다. 한해 종로구를 찾는 국내외 관광객은 4080만명에 이른다. 7월까지 인사동, 북촌, 세종마을, 대학로 등 종로구 주요관광지의 일반음식점 100곳을 대상으로 한복사랑 실천음식점 신청을 받는다. 위생적인 식당 100여곳을 확정해 8월 초부터 한복사랑 실천음식점 사업을 시작할 예정이다. 이번 한복사랑 사업은 한복문화를 확대할 뿐 아니라 역사문화도시 종로에서 음식점을 한다는 영업주들의 자부심도 높일 것으로 구는 기대한다. 한복사랑 실천음식점으로 선정되면 현판을 제작해서 배부하고 관광객들의 이용률을 높이기 위해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구에서 적극적으로 홍보에 나선다. 또 고등학교와 대학교에 공문도 발송해 젊은이들의 참여를 유도한다. 우수 참여 업소에 대해서는 한복으로 앞치마를 제작해 보급하는 등의 인센티브를 지급할 계획이다. ‘전통문화의 종가’란 자부심을 지닌 종로구는 ‘한복입기 운동’을 꾸준히 벌였다. 2013년부터 간부회의, 명절, 구민의 날 등에 구청 직원들이 ‘한복 입는 날’을 정해 실천하고 있다. 올해는 한복 포럼, 한복 퍼레이드 등을 연다. 김영종 종로구청장은 “한복사랑 실천음식점은 지역경제 활성화와 한복 대중화를 한꺼번에 이루는 사업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운빨로맨스’ 류준열, 황정음에 프러포즈? 키스+베드신까지 “보통의 연애”

    ‘운빨로맨스’ 류준열, 황정음에 프러포즈? 키스+베드신까지 “보통의 연애”

    ‘운빨로맨스’ 류준열이 황정음에게 프러포즈를 준비하는 장면이 포착돼 시선을 모은다. 7일 오후 10시 14회를 방송하는 MBC 수목미니시리즈 ‘운빨로맨스’(극본 최윤교, 연출 김경희, 제작 화이브라더스c&m)가 ‘보호 커플’ 심보늬(황정음)와 제수호(류준열)의 사랑 넘치는 스틸컷을 공개했다. 지난 13회 방송에서 제제팩토리의 대표직과 주식, 사재까지 모두 내놓은 제수호가 심보늬의 집으로 들어가면서 한층 더 달콤하고 뜨거운(?) 연애를 즐기는 모습을 엿볼 수 있다. 특히 이날 방송에서 두 사람은 ‘평범한 연애’가 하고 싶었다는 심보늬의 소원에 따라 영화관, 식당, 집 등 다양한 장소에서 애정행각을 펼칠 전망. ‘보호 커플’을 사랑하는 시청자들에게 ‘운빨로맨스’ 14회는 ‘백수’ 제수호와 졸지에 뒷바라지를 하게 된 심보늬의 ‘보통의 연애’를 만나볼 수 있는 최고의 한 회가 될 예정이라 기대를 모은다. 함께 공개된 스틸컷에서는 꽃다발을 든 제수호가 먼 발치에서 환하게 웃으며 연인을 바라보고 심보늬 역시 미소로 화답하는 모습이 담겨 있다. 본격적인 프러포즈를 암시하는 사진이라 제수호가 청혼에 성공할 수 있을 지에도 관심이 집중된다. 지난 회에서 심보늬는 ‘모든 걸 걸었으니 모든 걸 잃게 될 것’이라는 무속인 구신의 경고에 수호를 떠나야겠다는 마음을 먹은 상황. 과연 이들의 사랑이 아름다운 결실을 맺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운빨로맨스’ 14회는 7일 오후 10시 방송된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최첨단 지식산업센터, 대세는 ‘신도시 인근’

    최첨단 지식산업센터, 대세는 ‘신도시 인근’

    - 기업체들 경기도행, 서울 못지 않은 교통여건, 기반시설 매력 - 기업들 밀집한 안양에서는 신도시 옆 ‘평촌 디지털 엠파이어’ 분양 중 서울을 떠난 기업들이 수도권 신도시, 택지지구에 속속 둥지를 틀고 있다. 교통여건이나 기반시설이 개선되면서 굳이 서울에 비싼 임대료를 내고 사무실을 유지할 이유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최근 몇 년간 IT기업들은 판교 테크노벨리로 대거 이동한 것만 봐도 알 수 있고 몇몇 기업들은 구조조정으로 사무실 면적을 줄이거나 경기도행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이 중 중소기업과 벤처기업들이 주로 선호하는 도심형 지식산업센터로 신도시 옆에 자리잡은 곳이 비상한 인기를 얻고 있다. 보통 도시가 계획적으로 조성되는 신도시는 주거환경이 뛰어나 젊은층의 인구 비중이 높은 편이며 이로 인해 중소기업의 애로사항인 인적 자원 확보 문제가 보다 쉽게 해결될 수 있다. 또 신도시는 교통여건이 잘 정비되어 있어서 수도권은 물론 전국 광역교통망을 손쉽게 이용할 수 있다는 점도 기업들의 경기도행을 부추기는 요인이다. 이밖에 신도시를 기반으로 풍부한 생활편의시설, 기반시설 등이 있어 근로자들의 정주여건이 좋은 편이다. 대표적으로 평촌신도시와 가까이 있는 산업단지를 예로 들 수 있다. 평촌신도시는 안양시의 새로운 중심업무지역으로 우수한 교통여건, 교육환경 및 생활편의시설이 잘 갖춰져 있어 주거선호도가 높은 곳, 현재 20여만 명이 거주하고 있는 거대신도시로 발전했다. 이처럼 평촌신도시가 수도권 핵심지역으로 자리매김하면서 주변에 위치한 지식산업단지들도 꾸준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서울접근성이 우수한데다 과거에는 전국 25개 벤처기업육성촉진지구 평가에서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중소기업, 벤처기업 입지로 좋은 환경까지 갖췄다. 이 중에서도 안양벤처밸리의 중심인 ‘평촌 디지털엠파이어’에 기업체들의 분양문의가 이어지고 있다. 건물은 지하 3층~지상 13층, 연면적 5만1,145㎡ 규모로 지어진다. 시공은 국내 대형건설사인 대림산업과 고려개발이 맡아 책임시공한다. 지하철 4호선 평촌역과 인덕원역이 가까이 있어 근로자들의 출퇴근이 편리하며 도로망도 매우 잘 갖춰져 있다. 차량 이용시 1번국도를 이용하면 서울 강남권까지 약 20분 정도 소요되고 경부고속도로와 서해안고속도로, 제2경인고속도로 등을 통해 수도권 주요지역은 물론 전국으로 빠르게 이동할 수 있다. 주변에 스마트스퀘어, 안양IT단지, 안양국제유통단지 등이 있고 과천지식정보타운과 군포, 의왕 공업지역, 판교 디지털단지도 가까워 산업 및 비즈니스의 시너지효과도 기대된다. 사무·업무공간은 전용 23㎡~275㎡으로 다양하게 구성되어, 업종의 성격에 맞게 입주할 수 있다. 또 5.1m~6m의 높은 층고를 적용해 대형물품이나 기계 등을 보관하거나 설치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며 화물하역이 손쉬운 드라이브인 시스템(지하2층~지상4층)도 적용된다. 근로자들을 위한 휴게공간도 극대화한다. 건물 내 3층, 5층, 13층, 옥상에는 휴게공원으로 꾸며지고 지하 썬큰광장도 휴게공간으로 사용한다. 이 외에도 입주기업의 편의를 높여줄 수 있도록 단지 내 근린생활시설(편의점, 식당 등)도 설치된다. 이밖에 센터 내에는 기업체 임직원들의 건강 증진을 위해 피트니스센터, 업무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다목적 공용회의실도 배치된다. 분양홍보관은 안양시 동안구 흥안대로 현장 건너편에 마련해 운영 중에 있다.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요섹남’ 중구청장님 “저염식 실천해요”

    ‘요섹남’ 중구청장님 “저염식 실천해요”

    최창식(가운데) 서울 중구청장이 6일 구 청사 구내식당에서 남자 직원들과 함께 유기농 재료로 저염식 파스타를 만들고 있다. 이날 행사는 건강한 조리 문화를 확산하려는 취지로 기획됐다. 최해국 선임기자 seaworld@seoul.co.kr
  •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사진작가 김중만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사진작가 김중만

    김중만(62)과의 만남은 금요일인 지난 1일 저녁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정문 앞에서 예정돼 있었다. 그 주 수요일부터 수영 박태환을 리우올림픽에 내보내자는 1인 시위를 국회 정문 앞에서 벌여 온 그가 일단은 그곳에서 보자고 제안해 왔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오후에 쏟아진 폭우로 그는 철수를 해야 했고 결국 청담동 스튜디오로 장소가 변경됐다. 폐렴 증세가 있는데 비까지 흠뻑 맞은 그는 컨디션이 별로 좋지 않아 보였다. 그런데 좀 있으니 그에게 깜짝 놀랄 만한 소식이 전해졌다. 법원에서 박태환의 올림픽 출전 자격을 인정했다는 뉴스였다. 그의 표정이 갑자기 환하게 밝아졌다. -“그럼 이제 정말 사자도 보고 침팬지도 보고 하마랑 코뿔소도 보고 그러는 거예요?” 1970년 여름 어느 날 저녁 나는 만세를 불렀다. 끓어오르는 희열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서울에서 홍대부고 1학년에 다닐 때였다. 아버지는 충남 한산에서 외과의원을 운영하셨는데, 가족들을 불러 앉혀 놓고 상상도 못했던 말씀을 하셨다. “정부에서 아프리카 봉사활동 파견 의사들을 모집하는데, 거기에 지원했다. 거기 가면 여기에서보다 더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을 거다.” 나와 동생은 기뻐 날뛰기만 했지, 아버지의 입가에 흐르는 씁쓸한 미소는 보지 못했다. 그리고 대접받는 의사의 자리를 버리고, 자식들 교육도 제대로 안 되는 나라로 떠나갈 결심을 한다는 게 얼마나 깊은 번민의 산물이었을지는 나중에 좀더 철이 든 뒤에야 짐작할 수 있었다. -아버지는 6·25 참전 군의관이셨다. 내가 휴전 이듬해 강원도 철원에서 2남1녀의 맏이로 태어난 건 그래서였다. 아버지는 군인들이 이 땅을 계속 통치하는 것을 견디지 못하셨던 모양이다. 요즘 ‘헬조선’이라며 이민을 떠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다고 하는데, 아버지는 46년 전에 그걸 몸소 실천에 옮기셨던 것이다. 그것도 가난과 모래폭풍이 지배하는 아프리카 오지에 가는 걸로 말이다. -아버지는 전역 후 당신 아버지의 고향인 전북 군산 대신에 어머니의 고향인 한산에 정착해 의원을 차리셨다. 나는 초등학교 입학 즈음만 해도 우리 집이 양계장을 하는 줄 알았다. 아픈 사람들이 돈이 없으면 닭을 가져왔고 아버지는 늘 그걸 웃으며 받아주셨다. 매일 닭 요리가 밥상 위에 올라왔는데, 그때 물리게 먹어서 지금도 닭을 안 좋아한다. -내가 아프리카행에 그토록 환호했던 것은 탐험 소설가를 꿈꾸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대니얼 디포의 고전 ‘로빈슨 크루소’를 주셨는데, 난생처음 밤을 새워 읽은 책이었다. 이후 내 머릿속에는 무인도나 정글 생활 같은 것들이 꽉 들어찼고, 중학생이 돼 서울로 올라와서는 틈만 나면 청계천 8가 헌책방 거리로 달려갔다. -아버지의 중대 발표가 있고 보름 후 부모님과 우리 형제, 이렇게 네 식구가 탄 비행기가 서아프리카 오트볼타 상공에 도착했다. 오트볼타는 지금은 부르키나파소로 개명된 옛 프랑스 식민지였다. 하지만, 비행기가 랜딩 기어를 내릴 즈음 나의 얼굴은 하얗게 질리고 말았다. 창밖의 풍경은 내가 상상했던 그림이 전혀 아니었다. 밀림이나 사자는커녕 아래로 온통 시뻘건 모래사막뿐이었다. 나무 한 그루 보이지 않았다. 사하라 남쪽에 위치한 오트볼타는 거대한 사막의 끝자락이었다. ‘아프리카면 다 똑같은 줄 알았더니….’ 게다가 우리가 살 곳은 수도인 와가두구에서 버스로 20시간도 더 들어가야 하는 오지였다. 철판으로 벽을 세운 묘한 형태의 집에 방 두 칸과 나무침대가 전부였다. 옆에서 흐뭇하게 웃고 계시는 아버지가 야속했고, 할머니와 함께 서울에 남은 여동생이 부러웠다. -아버지는 그 길로 평생을 아프리카 사람으로 사셨다. 오트볼타에서 의료 활동을 마친 후에는 더 남쪽에 있는 보츠와나로 옮기셔서 돌아가실 때까지 계셨다. “내 통장에 2000풀라(보츠와나의 화폐 단위)가 있는데, 그 정도면 괜찮겠냐.” 1999년의 어느 날 생이 얼마 안 남았다는 걸 직감한 아버지가 미국에서 돌아와 병 수발을 들고 있는 나에게 물으셨다. 그게 장남인 나에게 남겨 주시는 전 재산이란 얘기였다. 아버지의 표정은 대단했다. 2000풀라면 우리 돈으로 200만원 정도인데, 거의 200억원을 물려주시는 듯한 그 당당함이란. 얼마 후 돌아가셨을 때 당신이 남긴 거라곤 정말로 그 2000풀라와 양복 2벌, 청진기 3개, 모자 3개, 모터 달린 자전거 1대 그리고 ‘김정’이란 이름 두 글자가 전부였다. 하지만 이보다 더 위대한 유산이 그리고 이만큼 멋진 분이 또 어디에 존재하겠는가. -나는 동생보다도 아프리카 생활을 못 견뎌했다. 일단 마을에 학교가 없어 답답했다. 불어를 익히는 것 말고는 나를 채워 줄 것이 없었다. 신물 나게 양배추 김치만 먹어야 하는 것도 싫었고, 독거미에 물려 사경을 헤맸던 일도 끔찍했다. 1971년 나는 아버지가 수소문한 끝에 프랑스 서부의 작은 도시 숄레로 보내져 고1부터 학교생활을 시작했다. 인생의 황금기가 열렸다. 사방이 포도밭이었는데, 모두가 와인을 만들어 먹고살았다. 학교건 기숙사건 와인이 넘쳐났다. 그리고 1500명 학생 중에 유일한 동양인인 나에 대한 남녀 학생들의 관심과 배려는 한이 없었다. 꿈결 같은 3년을 보냈다. -원래 꿈대로라면 문학을 전공해야 했는데, 그러기엔 수학 실력이 너무 달렸다. 수학 시험을 안 보고 갈 수 있는 대학 전공은 미술밖에 없었는데, 그건 자신 있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그림으로 숱하게 상을 받은 나였다. 1974년 니스에 있는 국립응용미술대 서양화과에 입학해 1년을 보내고 난 어느 날, 기숙사에서 사진을 취미로 하는 법대생 친구가 인화 작업을 도와 달라고 했다. 사진 한 장이 어떤 과정을 거쳐 나오는지 처음으로 보게 됐다. 3~5분 만에 인화지에 그림이 새겨지는 건 미술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내 그림은 석 달이 걸려도 완성이 될까 말까인데. “맞다 저거야. 내 성격엔 저게 딱이야.” 친구에게 카메라를 빌렸다. 잠자고 씻을 때를 빼고는 카메라를 품고 살았다. 풍경, 얼굴, 동물 등을 닥치는 대로 찍었다. 아르바이트해서 몇 푼 손에 들어오면 무조건 필름 가게로 달려갔다. 늘 필름에 목이 말랐다. 주변에 있는 여자들의 누드도 찍었는데, 이는 내가 작가로서 초기에 명성을 얻게 되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데뷔 시절 나의 주제가 아름다운 여성의 몸이었기 때문이다. -1975년 대학 2학년 때 일찌감치 아들을 보았다. 아이의 엄마는 특수교육을 전공하던 한 살 어린 프랑스인 여자친구였다. 가장이 됐으니 생활비가 필요했고 필름값도 벌어야 했다. 돈을 아끼려고 기숙사에서 친구들과 아이를 몰래 돌보다 쫓겨난 적도 있었다. 주말이건 심야건 닥치는 대로 식당에서 접시를 닦고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었다. 디스코텍에서 DJ도 했다. 점심때 식당 주방에 설거지를 하러 가면 늘 4~5m 높이 분량의 접시들이 쌓여 있었다. 당시 아버지가 아프리카 의료 활동으로 받는 돈은 고작 석 달에 500달러였다. 멀리 프랑스에 있는 아들에게 전혀 도움을 줄 수가 없었다. -사진에 대한 절박함 때문이었을까, 얼마 안 돼서 나는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전공을 살려 사진에 과감하게 미술적인 프레임을 접목한 게 먹혀들었다. 주어진 것을 찍는다는 생각보다는 그림을 그린다는 생각으로 장소를 정하고 모델을 세웠다. “니스에 동양인이 한 명 있는데 사진을 잘 찍는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나를 찾는 곳이 늘어갔다. ‘프랑스 오늘의 사진 80인’ 등 몇몇 중요한 상을 거머쥐고 나는 파리로 진출했다. 자연히 니스에서의 학업은 더이상 이어갈 수가 없었다. 파리에서는 유명작가들 밑에서 패션 사진 촬영을 시작했다. 당시는 세계적인 대가일수록 동양인 어시스턴트를 두는 게 유행이었다. 이게 나에게는 매우 유리하게 작용했다. 어떠한 다른 동양인 사진작가도 나만큼 불어를 유창하게 구사하지는 못했다. -1977년 서울에서 첫 전시회를 열었다. 23세 때였다. 칸 미술제 참석을 위해 프랑스에 온 우리나라 화가들이 우리 집에 왔다가 내 사진을 보더니 “한국에는 이런 사진이 없다”며 전시회를 열어 보라고 했다. 전시회는 성공적으로 끝났고 그 인연으로 한국에 계속 머물게 됐다. 이듬해 배우 오수미(1950~1992)를 만났다. 남편인 신상옥 감독이 납북되고 혼자 살고 있던 그녀를 처음 본 순간 나는 아름다움에 현기증을 느꼈다. 얼마 후 한국에 같이 머물고 있던 첫 번째 아내에게 “새로운 운명을 만났다”고 말했다. 그리고 용서를 구했다. 아내는 별말 없이 아들을 데리고 프랑스로 떠났다. 그녀는 지금도 니스에서 전공을 살려 정신지체아들을 돌보고 있다. 지금도 아내와 아들과는 자주 연락하며 지낸다. 그녀는 가히 천사다. 방학이면 해마다 인도에 가서 봉사활동을 한다. 나는 테레사 수녀님을 따서 그녀를 ‘마더 테레사’라고 부른다. 지금도 우리들은 자주 연락하며 지낸다. 아들은 나와 같은 사진작가의 길을 걷고 있다. -나는 이 땅에서 두 번의 추방을 당했다. 1985년에는 프랑스 국적의 외국인이면서 당국에 신고도 하지 않고 전시회를 열었다는 이유로, 1986년에는 알 수 없는 이유로 정보당국에 붙들려가 일본과 미국행 비행기에 강제로 태워 보내졌다. 두 번째 추방은 신상옥 감독이 북한을 탈출한 것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정확한 이유는 지금도 모른다. 그걸 계기로 오수미와는 자연스레 결별을 하게 됐다. -1988년 프랑스 국적을 버리고 한국인이 됐다. 당시 나는 프랑스에서도 톱클래스에 있었다. 그런데 오기가 생겼다. 두 번이나 나를 추방한 이 나라에 뭔가를 보여 주고 싶었다. 그리고 그해 당시 톱 모델이던 이인혜와 세 번째 결혼을 했다. -1995년 5월에는 서울시립정신병원에 강제로 입원됐다. 검찰이 일부 마약사범의 진술에 의존해 나에게 대마초 흡연 혐의를 씌웠는데, 나는 이미 2년 전에 같은 혐의로 구속돼 55일 동안 구치소 생활을 했고, 이후로는 완전히 절연한 상태였다. 검찰은 소변 검사에서 마약 성분이 검출되지 않자 13일간 나를 정신병원에 가뒀고, 이는 인권탄압 사례로 신문 등에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어쨌거나 이 일로 나는 국립종합예술학교 영상원 강사에서 잘리고 아내에게 이혼까지 당했다. -다섯 살 된 아들을 데리고 미국 로스앤젤레스(LA)로 갔다. 1년을 아이와 둘이 살고 있으니 아내가 다시 찾아왔다. LA에서 3년 동안 패션사진, 상품 카탈로그 등을 찍으며 세 식구가 괜찮게 먹고살았다. 그런데 1997년 말 한국 외환위기의 파고가 멀리 LA까지 밀려왔다. 주된 고객이던 한국 기업들이 도산을 하거나 경영난에 빠지면서 일감이 뚝 끊겼다. 결국 월세 3000~4000달러짜리 아파트에 살다가 빈민들이 사는 300달러짜리 집으로 옮길 수밖에 없었다. 거기서 꼬박 1년을 살면서 전당포를 세 번을 갔다. 고기가 너무 먹고 싶었다. 500달러에 카메라를 잡히면 그날은 LA갈비를 배불리 먹을 수 있었다. 거기에서 얻은 건 가족애였다. 극심한 가난 속에 우리 셋은 정말로 하나가 됐다. 너무도 소중한 가치였다. -“형, 처자식 고생 그만 시킬래. 한국으로 돌아갈 거야. 형이 사진전 좀 열 수 있도록 주선해 줘.” 1999년 LA라디오 사장이던 가수 이장희에게 귀국을 고했다. 떠나기 전에 라디오코리아에서 내 작품들의 전시회를 열었다. 어느 정도 돈이 모였다. 사람들에 신세진 것들 좀 갚고 남은 돈으로 비행기표를 끊었다. 부모님 계신 보츠와나를 거쳐 서울로 오는 티켓이었다. 그런데 카메라 장비며 책이며 옷가지 등 해서 짐이 250kg이나 됐다. 추가 화물 비용을 지불하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했다. 수중에 남은 돈이 고작 400달러 밖에 안됐기 때문이다. 사진 5장을 별도의 휴대용 박스에 넣고 우리가 예매한 독일 루프트한자 항공사의 카운터를 찾아갔다. 책임자를 보자고 했다. 후덕해 보이는 여성이 나왔다. “저는 사진을 하는 예술가입니다. 짐이 좀 많은데, 추가 비용을 낼 형편은 안됩니다. 저의 작품을 보아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제게 힘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녀는 내 사진을 한 장, 두 장 보더니 곧바로 ‘오케이’ 사인을 냈다. 이에 더해 우리 가족의 티켓을 이코노미석에서 비즈니스석으로 업그레이드해 주었다. 내가 절실할 때, 진실할 때 정성이 통한다는 것, 그것이 바로 사진의 힘이란 걸 새삼 뼈저리게 느낀 순간이었다. -보츠와나에서 아버지를 떠나보내고, 그의 30년 아프리카 여정을 기리는 뜻에서 카메라 장비를 챙겨 초원으로 나갔다. 요하네스버그, 세렝게티, 타랑기레 등의 동물들을 담아 2001년 8월 15일 광복절에 한국에 돌아왔다. -막상 귀국을 하니 가진 게 아무 것도 없었다. 내 한 몸은 고사하고 아내와 아들이 머물 수 있는 집 한 칸이 없었다. 상업사진을 시작했다. 명함을 만들고 압구정동에 스튜디오를 차렸다. 패션, 영화포스터, 음반표지 등 닥치는 대로 작업을 했다. 3년을 일하니까 서울 전농동에 아파트 한 채를 살 돈이 모였다. 3년을 더 하니까 한 해에 15억원 정도가 손에 들어왔다. -‘이게 내가 추구하던 삶인가? 맹목적으로 일만 하고 있는 건 아닌가.’ 먹고 살 만 해지니까 또 다른 생각에 발동이 걸렸다. 2006년 고비 사막으로 여행을 갔다. 보름 동안 50대, 60대의 김중만은 어때야 할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돌아와서 아내에게 말했다. “나 상업사진 그만할게. 그래도 괜찮겠지?” 6년 동안 상업사진을 찍으면서 50억원 이상을 벌었는데 남은 건 거의 없었다. 빌딩 한 채 사 두라는 주위의 말들 무시한 채 어려운 나라에 학교 지어 주고, 카메라 장비 사고, 스튜디오 운영하고, 먹고 놀고 했더니 남은 게 없었다. -2008년 관광공사의 외주를 받은 것을 계기로 한국의 풍경을 집중적으로 앵글에 담기 시작했다. 한국의 이미지는 나에게 새로운 전기가 되어 주었다. 그동안 나는 우리나라의 이미지에는 별 관심을 두지 않고 있었다. 어느날 경북 안동의 병산서원에 갔다. ‘600년 된 학교인데 앞에는 강이 흐르고 뒤에는 산이 있고, 옆에는 숲이 있다. 우리 조상들은 이미 600년 전에 이런 학교를 지었던 것이다.’ 내가 그동안 우리나라를 너무 피상적으로만 보아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의 이미지 촬영은 나에게 새로운 전기가 됐다. 무엇보다도 해외에서 호평이 이어졌다. ‘극단적으로 동양적인 본질을 소유하고 있으면서 극단적으로 서양적인 표현력을 갖고 있다’, ‘동양과 서양을 겸비한 이중성을 갖고 있는 유일한 작가’ 등 평가들이 나왔다. -예술사진으로 다시 돌아와 시간이 흐르니 내 작품 가격이 2500만원, 5000만원, 7500만원 등으로 해가 다르게 뛰었다. 대부분 외국에서 구매하는데 3개월 전에 처음으로 작품 하나를 파리에서 1억원에 계약했다. 작품의 가격은 작가의 자존심이다. 5억원까지는 올려보고 싶다. 어떤 상황에서건 나의 철칙은 지키려 한다. 작품의 영역에서 만큼은 그 누구보다 순결해지자는 것이다. 김태균 경제정책부장 windsea@seoul.co.kr ■사진작가 김중만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한국을 대표하는 사진작가다. 10대 중반 아프리카를 거쳐 프랑스에 유학해 21세 때인 1975년 니스에서 개인전을 열고 데뷔했다. 1977년 ‘프랑스 오늘의 사진’에 역대 최연소 작가로 선정되면서 주목받았다. 인물, 동물, 꽃, 풍경, 패션 등 다양한 주제에서 틀에 짜인 관습과 앵글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독특한 미학을 창조해 왔다. 현재 스튜디오 ‘벨벳 언더그라운드’를 운영하고 있다. 2006년부터 상업 활동을 중단하고 예술 사진에 집중하고 있다. 아프리카 어린이 지원과 캄보디아, 베트남 학교 건립 등 사회공헌에도 적극적이다. ▲1954년 강원 철원 출생 ▲한산초, 홍익중, 프랑스 숄레 고등학교, 니스 국립응용미술대 서양화과 중퇴 ▲프랑스 아를 국제 사진페스티벌 젊은 작가상(1977), 올해의 패션사진가상(2000), 마크 오브 리스펙트상(2010), 한국패션 100년 어워즈(2011) ▲ 작품집 ‘불새’, ‘인스턴트 커피’, ‘동물왕국’, ‘아프리카 여정’, ‘애프터 레인’, ‘네이키드 소울’, ‘오키드’ 등
  • 아낌없이 주는 ‘할아버지 나무’

    아낌없이 주는 ‘할아버지 나무’

    손녀가 다니는 중학교에 수년간 수천만원의 나무를 기부한 멋쟁이 할아버지가 화제다. 주인공은 36년째 서울 중구에서 삼계탕 식당을 운영해온 남월진(68)씨. 중구 정동에 있는 창덕여중 정문을 들어서면 손바닥만 한 교정에 빼곡한 나무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전교생이 230여명에 불과한 작은 학교지만 산책길과 정원이 나무와 꽃으로 둘러싸여 서울 도심 한가운데서 고즈넉함이 물씬 풍긴다. 거의 남씨가 기부한 반송, 사과나무, 철쭉 등이다. 1980년 중구 서소문동에서 삼계탕집을 개업했다가 2001년 순화동 지금의 자리로 옮겨온 남씨는 식당을 홍콩 TV 프로그램에 소개되는 그래서 외국 관광객들이 문전성시를 이루는 한류 식당으로 키워냈다. 그런 그가 작은 중학교 조경으로 눈을 돌린 것은 2012년 손녀가 창덕여중에 입학하면서다. 남씨는 학교 운동장 옆 언덕이 텅 빈 것을 보고 “왜 비어 있느냐”고 교장에게 물었다. “휴식공간과 놀이 공간으로 조성하려 한다”는 대답을 듣고 그는 “나무를 심자”고 건의했다. 고향 울산에 있는 조경 농장에 전화해 반송·사과나무 150그루, 철쭉 3100그루를 주문했다. 비싼 나무값 탓에 시교육청, 시청, 농협중앙회를 발로 뛰며 나무를 구해왔다. 문을 닫은 공원의 나무도 옮겨 심었다. 이 학교 조경은 남씨 손에서 거듭난 셈이다. 남씨는 “갓 싹을 틔운 나무들이 학생들과 함께 자랄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뿌듯했다”며 “손녀와 친구들이 마음 편하게 학교에 다니고 공부하도록 도와주는 게 할아버지의 마음”이라고 말했다. 학교에는 주변 공사장에서 가져온 벽돌로 산책로도 꾸며졌고, 분수 정원에 관상용 물고기도 들였다. 정원에는 음향시설과 운동기구도 설치됐다. 남씨의 남다른 노력과 학교 측의 관심에 힘입어 창덕여중은 2012년 서울시 최우수 조경학교로 선정됐다. 남씨는 “손녀는 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생이 됐다”며 “초등학교 3학년인 둘째 손녀가 창덕여중을 들어갈 때쯤이면 사과나무에 사과가 열릴 것 같다”며 활짝 웃었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中 국빈 만찬주 ‘조어대 국빈주’ 호텔신라 ‘팔선’에서 판매한다

    中 국빈 만찬주 ‘조어대 국빈주’ 호텔신라 ‘팔선’에서 판매한다

    호텔신라가 중국에서 국빈 만찬 때 제공되는 ‘조어대 국빈주’를 중국 외 지역에서 세계 최초로 선보인다. 호텔신라는 6일 서울 중구 장충동 서울신라호텔 내 중식당 ‘팔선’에서 조어대 국빈주를 독점 공급받아 오는 12일부터 판매를 시작한다고 밝혔다. 중국을 비롯해 세계 70여개국 현지 중국대사관 및 영사관, 면세점 등 제한된 곳에서 판매되고 있는 조어대 국빈주가 식음업장에서 식사와 함께 판매되는 것은 처음이다. 조어대 국빈주는 누룩을 빚어 만든 53도 백주다. 박재홍 기자 maeno@seoul.co.kr
  • “먹거리 부족하고 비싸요”… 충북 관광객 60%만 ‘만족’

    충북 관광의 가장 큰 단점은 ‘먹거리’로 나타났다. 6일 충북경제경영연구원 등에 따르면 지난 5월 10일부터 20일까지 11일간 최근 1년간 관광차 충북을 다녀간 외지인(20세 이상) 117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만족한다’는 답변이 59.1%로 나타났다. 하지만 ‘그저 그렇다’ 37.4%, ‘불만족’ 2.5%, ‘매우 불만족’ 1% 등 부정적인 반응도 적지 않았다. 이들이 꼽은 충북 관광의 단점은 비싼 음식가격(26.5%)과 음식 맛(20.1%), 숙박시설 부족(12.5%), 음식 청결상태(8.5%), 식당 종업원 서비스(7.5%) 등 먹거리와 관련된 게 많았다. 충북 음식이 보완할 점은 유명 맛집 부족(44.2%), 지역특색 부재(28.2%), 비싼 가격(19.2%) 등으로 지적됐다. 이들이 여행하면서 가장 많이 접한 음식(복수응답)은 단양 마늘정식(24.1%), 보은 산채비빔밥( 21.9%), 청주 삼겹살 (20.6%), 괴산 올갱이국 (20%), 청주 해장국 (17.6%) 등 충북의 대표 음식이었다. 도내 특산품을 구매한 경험이 있는 관광객도 41.8%에 그쳤다. 반면 충북지역의 장점은 보존이 잘 된 자연경관(42.3%)이 가장 높았고 조용한 휴식처(31.0%), 지리적 가까움 및 당일여행(20.7%), 편리한 교통(2.6%) 등이 뒤를 이었다. 외지인들이 가장 많이 찾은 도내 관광지는 충주호, 고수동굴, 청남대, 수안보 등으로 조사됐다. 충북경제경영연구원 관계자는 “지역 특색을 살린 기념품과 음식 개발, 관광 종사원 친절교육 강화 등이 시급한 것 같다”고 말했다. 청주 남인우 기자 niw7263@seoul.co.kr
  • [김영탁의 시식남녀] 객이 토박이 되는…강진의 情을 먹다

    [김영탁의 시식남녀] 객이 토박이 되는…강진의 情을 먹다

    강진은 두 번 와야 했다. 첫 번째는 지난해 가을이었다. 목포를 거쳐 강진까지 허위허위 찾았다. 목포라고 가만히 읊조리면 금방 눈시울이 그렁그렁해질 듯하다. KTX 목포역에 서니 서해 일몰의 기운이 저물면서 붉다. 애먼 감상은 얼른 떨쳐낸다. 강진의 이수희 시인이 강진문화원 일에다 늘 약속이 법성포 굴비 두름처럼 엮여 있는 마당발 이성구 시조시인을 닦달하여 목포역까지 애써 고마운 길 마중을 나오도록 했다. 영랑생가에서 300m 쯤 떨어져 있는 사의재(四宜齋)를 찾았다. 사의재에서 다산의 뒤를 밟다 그곳은 다산 정약용이 1801년 11월 23일 낯선 강진으로 유배되는 길 처음 묵은 주막이다. 사의재는 이곳 주막집 주인 할머니의 배려로 골방 하나를 거처 삼은 곳이다. ‘생각과 용모와 언어와 행동’네 가지를 올바로 하는 이가 거처하는 집이라는 뜻을 담아 다산이 붙인 이름이다. 스스로 경계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공간이다. 사의재는 창조와 희망의 공간이며 혁신의 시발점이라 할 수 있다. 사려 깊은 주막 할머니의 “어찌 그냥 헛되이 사시려는가. 제자라도 기르셔야 하지 않겠는가.”라는 얘기에 다산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유배지에서 만난 촌로의 외침은 절망에 빠진 다산에게 심기일전의 계기가 된 것이다. 자신을 새로 추스른 다산이 1802년 10월 초부터 최초 제자 황상을 시작으로 강진읍 여섯 제자에게 자신이 편찬한 『아학편』을 주교재로 교육을 했다. 당대 최고 권위의 학당이 이곳 강진에 창설된 셈이다. 다산은 1801년 겨울부터 1805년 겨울까지 꼬박 4년을 이곳에서 머물렀다. 그리고 그곳 '사의재 주막'에서 중씰하고 인심 좋은 주모를 만나 소박하고 맛난 술상을 받았다. 200년하고도 십수 년 전 다산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추어탕과 메생이전을 앞에 두고 다산이 강진에서 처음 밥상을 받았던 그 마음을 되짚었다.시레기가 담뿍 담긴 추어탕을 호호 불며 숟가락을 들어 올리는 이수희 시인의 입술이 붉다. 고향의 풋내를 느끼는 듯하다. '봉숭아 물이 든다/ 입안 가득 괴어오는/ 분홍빛 풋내'(이수희, '고향') 강진과 짧은 만남 뒤 한동안 앓았다. 강진의 맛과 정이 입안에 가득 머물러 있었던 탓이다. 이부자리 안에서 괜스레 입맛 다시며 뒤척거리는 밤이 이어졌다. 서울의 일상에서도 강진의 여운은 계속되었다. '저 강진만 들녘에 새떼 쫓은 아이/ 너도 목마르겠구나/ 올벼도 다 익어 가는데/ 배진강 물 흘러 술 빚고/ 쪽빛 청자에 병영곡주 담아서/ 보고 싶은 사람들과 함께하자꾸나'(송행숙, '강진은 우주다') 마음은 강진만 언저리를 늘상 휘적거렸지만, 길은 멀었고 삶은 질척거렸다. 두 번째 강진은 선물처럼 찾아왔다. 어느 날 김미진 시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강진군청에서 '김영탁의 詩食男女'를 초대하고 싶다는 전갈이다. 전남 강진군 성전면 월평리 '석천한정식'으로 내달렸다. 강진의 들판과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으로 눈을 씻고, 멀리 월출산을 바라보며 눈인사를 한다. 다시 왔다고, 반갑다고, 배고프다고. 잘 차려진 강진 전통한식이 한상이다. 율무죽으로 술적심을 시키더니 남도의 너른 들판과 바다에서 마음껏 당겨온 풍부한 식재료로 밥상을 풍요롭게 연출한다. 후덕하고 정이 넘친다. 게장은 짜지 않은 심심한 절제가 좋다. 고구마 줄기 요리는 그냥 삶아서 무친 게 아닌 묵은지처럼 오래 묵은 맛이 난다. 고구마 줄기와 함께 붕어찜이 숨은 그림처럼 줄기 속에 숨어있는데, 꼬집어 말할 수 없는 깊은 토속의 맛이 우러난다. 물천어 요리의 진수다. 병영성, 병영주조 막걸리 맛을 보다 수백 년 전, 파란 눈의 사내가 거친 풍랑을 맞아 표류하다가 제주도에 불시착하고, 다시 곡절을 거친 뒤 이곳 강진 병영성까지 끌려온 역사가 실감도 나지 않는다. 병영성 곁에는 하멜기념관이 있다. 결국 고향 네덜란드로 돌아간 하멜은 『하멜표류기』를 썼다. 엄밀히 얘기하면, 하멜이 조선에 억류된 기간 동안의 임금을 동인도회사에 청구하기 위해 작성한 업무보고서였다. 국역판 『하멜표류기』는 1917년 재미교포 잡지 『태평양』에 연재된 것을 최남선이 발견하고 이를 『청춘』에 실은 것이 국내에 처음 알려진 것이다. 10년 계획으로 복원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병영성은 남도의 군사요충지였다. 전쟁의 칼바람이 늘 가시지 않던 이곳은 이제는 한가롭고 평화로운, 그저 막걸리 익는 냄새 가득한 공간이다. 60년이 곧 되어가는 전통적인 술도가 병영주조장이 코 앞이었다. '꿈속 눈 녹아 지은 터에/ 만월이 뜨고 지고/ 천변 버들개지 피고 지고/ 수인산 안개 풀어/ 강진만 한 사발,/ 노을 한 사발'(김미진, '설성만월(雪城滿月) 막걸리') 병영주조장은 오랜 세월을 견디며 잘 익은 술 냄새로 해 지는 어스름한 강진의 나그네에게 코를 벌름거리게 했다. 54년의 전통을 오롯이 간직한 술도가는 초기의 건물과 사세를 확장하면서 새로 지은 술도가가 마주 보고 있었다. 김견식 대표가 반겨준다. 술맛이 얼마나 좋은지 대한민국식품명인 제61호 지점으로 지정되었고, 일본으로도 수출하고 있었다. 일본 수출용 막걸리는 일반 막걸리병에 담아서 일본으로 수출하는 술도 있으나, 생수통처럼 생긴 용기에 담은 설성동동주도 있다. 일본인들은 막걸리를 생수통처럼 거꾸로 꽂아서 생수를 받아먹듯 술잔을 꼭지에 대고 마신다는 것이다. 서로 권커니 잣거니 하며 먹는 게 술 먹는 맛인데 말이다. 술 익는 술도가 안을 거니는 것만으로 적당히 취기가 오르는 듯하다. 갑자기 노래를 부르고 싶어진다. 일본에 막걸리를 소개한 정은숙 작가는 왜 병영주조가 인기냐는 질문을 던진다. 김견식 대표는 "뭐 별거 있간. 강진쌀 중 가장 실한 놈으로 술 빚고, 누룩과 주정도 최고급 쓰믄 되지. 뭐, 월출산 물 좋은 것은 다들 아실 것이고."라며 가볍게 받는다. 술도가 안은 술이 발효하는 소리와 시식남녀 일행들이 침 삼키는 소리가 합창이 되어 꿀꺽꿀꺽 술 넘어가는 소리처럼 들린다. 울대가 꿀렁거린다. 일본수출용 생수형 막걸리를 방문 기념선물로 받았다. 차속에서 술병에 담긴 막걸리는 우윳빛으로 찰랑거렸다. 마량포구(馬養浦口) 봉별기(逢別記) 마량(馬養)을 포구로 부르다가 지금은 규모가 커지면서 강진을 대표하는 항구로 발돋움했다. 마량이라는 뜻은 한양에 바치는 제주도 말이 잠시 거쳐 가는 데서 비롯됐다. 현재는 제주도뿐만 아니라, 부산 목포 여수 등 여러 곳으로 뱃길이 열려 있다. 토요일, 마량포구는 수산시장이 문을 여는데 전국적인 축제가 된다. 실물경제에도 능했던 다산의 후예답게 다양하고 풍부한 상품을 만들었다. 가령 된장 물회, 강진 삼합(전복+매생이+라면), 소낙비(소고기+낙지+비빔밥), 강진만 장어탕, 오감만족회 등 자칭 5대천왕이라는 먹을거리를 내놨다. 마량에서는 어디를 갈까 고민할 필요가 없다. 굳이 단골을 정하지 말고 여기저기 떠돌며 무엇을 먹어도 좋다는 뜻이다. 간밤에 헤어진 박수철 강진 부군수와 임채용 마량면장이 늦은 점심 식당으로 들어와 요란한 이별식을 치른다. 왁자지껄한 만남과 이별의 시공간이다. 힐끔힐끔 뒤돌아보며 강진을 나섰다. 두 번으로는 부족했단 생각이 문득 들었다. 세 번째는 언제일지 아직 모른다. 글·사진 김영탁 시인 tibet21@naver.com
  • 검찰, ‘함바 비리’ 부산시 고위공무원 사무실·자택 압수수색

    검찰이 ‘함바(건설현장식당) 비리’에 연루된 것으로 알려진 부산시청 고위인사 등 간부 공무원 3명의 사무실과 자택을 압수수색했다. 부산지검 특수부(부장 임관혁)는 6일 오전 수사관들을 보내 부산시청 도시계획실장 J(56·2급)씨와 Y(55·4급·교육 파견)씨, K(55·5급)씨의 사무실과 자택을 압수수색했다. 검찰은 압수수색이 끝나고 나서 J씨와 K씨를 임의출석 형식으로 부산지검으로 동행해 조사하고 있다. 검찰은 이들 공무원이 ‘함바 브로커’로 유명한 유상봉(70·수감)씨에게서 금품을 받은 정황을 포착, 압수수색과 함께 검찰로 동행해 조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이미 유씨로부터 “공사 현장의 식당 운영권을 따낼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청탁을 하고 이들 공무원에게 돈을 건넸다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J씨와 Y씨는 건축직 공무원으로, 업무와 관련해 이전에 유씨와 자주 접촉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또 압수수색에서 확보한 컴퓨터 하드디스크와 함바 관련 서류 등을 분석하고 있다. 부산지검은 이들 외에도 전·현직 부산시 고위 공무원들이 함바 운영권과 관련해 편의를 제공하고 유씨로부터 금품을 받은 정황을 잡은 것으로 알려져 부산시청 공무원들이 술렁이고 있다. 유씨는 현재 사기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고 수감돼 있다. 부산 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 김해 국도변에 400대 주차 가능 화물차 휴게소 건립

    경남 김해시 진영읍 국도변에 자동차 주차·정비·세차·주유를 하고 운전자들이 무료로 사우나와 체력단련 등을 할 수 있는 화물자동차 휴게소가 건립된다. 김해시는 SK에너지㈜와 6일 시청 소회의실에서 김해 진영 화물자동차 휴게소 건립 실시협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진영 화물자동차 휴게소 건립은 국토교통부 화물자동차 휴게시설 확충 종합계획에 따라 추진하는 사업이다. 김해시가 부지를 제공하고 SK에너지㈜가 민자로 시설을 지은 뒤 시에 기부채납하는 민자투자방식(BTO)으로 추진한다. 진영읍 진영리 진영공설운동장 근처 국도 14호선 옆 5만 2360㎡ 부지에 국비 19억 5000만원과 도비 20억원, 시비 25억 5000만원, 민자 76억 9000만원 등 모두 141억 9000만원을 들여 내년 12월 준공 예정이다. 주요 시설로 소형차 126대와 대형차 266대를 주차할 수 있는 차고지를 비롯해 정비소, 세차장, 사무실, 근린생활시설, 휴게실 등이 설치된다. 휴게실에는 사우나와 수면실, 체력단련실, 세탁실, 식당 등이 마련된다. 사우나와 수면실, 체력단련실 등은 운전자와 주민 등 누구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SK에너지㈜는 휴게소를 기부채납 한 뒤 28년간 관리운영권을 갖고 운영하며 투자금을 회수한다. 허성곤 김해시장은 “휴게소가 건립되면 대형 화물차 등의 주차 불편과 불법주차에 따른 민원이 줄어들고 운전자와 주민들의 복지증진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김해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창덕여중에 5년째 나무심는 삼계탕집 남월진 사장

    창덕여중에 5년째 나무심는 삼계탕집 남월진 사장

    손녀가 다니는 중학교에 수 년간 수천만 원의 나무를 기부한 멋쟁이 할아버지가 화제다. 주인공은 36년째 서울 중구에서 삼계탕 식당을 운영해온 남월진(68)씨. 중구 정동에 있는 창덕여중 정문을 들어서면 손바닥만한 교정에 빼곡한 나무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전교생이 230여명에 불과한 작은 학교지만 산책길과 정원이 나무와 꽃으로 둘러쌓여 서울 도심 한가운데서 고즈넉함이 물씬 풍긴다. 거의 남씨가 기부한 반송, 사과나무, 철쭉 등이다. 1980년 중구 서소문동에 삼계탕집을 개업했다가 2001년 순화동 지금의 자리로 옮겨온 남씨는 식당을 홍콩 TV 프로그램에 소개되는 그래서 외국 관광객들이 문전성시를 이루는 한류 식당으로 키워냈다. 그런 그가 작은 중학교 조경으로 눈을 돌린 것은 2012년 손녀가 창덕여중에 입학하면서다. 남씨는 학교 운동장 옆 언덕이 텅 빈 것을 보고 “왜 비어 있느냐”고 교장에게 물었다. “휴식공간과 놀이 공간으로 조성하려 한다”는 대답을 듣고 그는 “나무를 심자”고 건의했다. 고향 울산에 있는 조경 농장에 전화해 반송·사과나무 150주, 철쭉 3100그루를 주문했다. 비싼 나무값 탓에 시교육청, 시청, 농협중앙회를 발로 뛰며 나무를 구해왔다. 문을 닫은 공원의 나무도 옮겨 심었다. 이 학교 조경은 안씨 손에서 거듭난 셈이다. 남씨는 “갓 싹을 틔운 나무들이 학생들과 함께 자랄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뿌듯했다”며 “손녀와 친구들이 마음 편하게 학교에 다니고 공부하도록 도와주는 게 할아버지의 마음”이라고 말했다. 학교에는 주변 공사장에서 가져온 벽돌로 산책로도 꾸며졌고, 분수 정원에 관상용 물고기도 들였다. 정원에는 음향시설과 운동기구도 설치됐다. 남씨의 남다른 노력과 학교 측의 관심에 힘입어 창덕여중은 2012년 서울시 최우수 조경학교로 선정됐다. 남씨는 “손녀는 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생이 됐다”며 “초등학교 3학년인 둘째 손녀가 창덕여중을 들어갈 때 쯤이면 사과나무에 사과가 열릴 것 같다”며 활짝 웃었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충북 관광 최대 약점은 먹거리…맛 없고 비싸고 특색 없고

    충북 관광의 가장 큰 단점은 ‘먹거리’로 나타났다.… 6일 충북경제경영연구원 등에 따르면 지난 5월 10일부터 20일까지 11일간 최근 1년간 관광 차 충북을 다녀간 외지인(20세 이상) 117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만족한다’는 답변이 59.1%로 나타났다. 하지만 ‘그저 그렇다’ 37.4%, ‘불만족’ 2.5%, ‘매우 불만족’ 1% 등 부정적인 반응도 적지 않았다. 이들이 꼽은 충북 관광의 단점은 비싼 음식가격(26.5%)과 음식 맛(20.1%), 숙박시설 부족(12.5%), 음식 청결상태(8.5%), 식당 종업원 서비스(7.5%) 등 먹거리와 관련된 게 많았다. 충북 음식이 보완할 점은 유명 맛집 부족(44.2%), 지역특색 부재(28.2%), 비싼 가격(19.2%) 등으로 지적됐다. 이들이 여행하면서 가장 많이 접한 음식(복수응답)은 단양 마늘정식(24.1%), 보은 산채비빔밥( 21.9%), 청주 삼겹살 (20.6%), 괴산 올갱이국 (20%), 청주 해장국 (17.6%) 등 충북의 대표 음식이었다. 도내 특산품을 구매한 경험이 있는 관광객도 41.8%에 그쳤다. 반면 충북지역 장점은 보존 잘된 자연경관(42.3%)이 가장 높았고 조용한 휴식처(31.0%), 지리적 가까움 및 당일여행(20.7%), 편리한 교통(2.6%) 등이 뒤를 이었다. 외지인들이 가장 많이 찾은 도내 관광지는 충주호, 고수동굴, 청남대, 수안보 등으로 조사됐다. 충북경제경영연구원 관계자는 “지역특색을 살린 기념품과 음식개발, 관광종사원 친절교육 강화 등이 시급한 것 같다”며 “잘 보존된 자연 속에서 조용한 휴식을 누릴 수 있는 관광지로의 이미지 구축도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청주 남인우 기자 niw7263@seoul.co.kr
  • 골목 상권 살리고

    서울 강남구 주민들이 침체한 골목상권을 살리고자 발로 뛰어 만든 ‘동네점포 모음’ 홈페이지가 입소문을 타고 있다. 영세한 생계형 동네 상인들도 살리고 지역 활력도 도모하는 상생의 자치 정신이 엿보인다. ‘개포4동 상가정보 웹사이트’(www.gp4.co.kr)가 그것이다. 5일 강남구에 따르면 개포4동 주민센터와 주민자치위원회가 지난해 10월부터 운영을 시작한 ‘개포4동 상가정보 웹사이트’가 방문자 5만여명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이 사이트는 개포4동 관내에 있는 식당, 카페, 의원, 학원 등 1000여개 점포를 20여개 업종으로 분류하고, 사진과 영업시간, 전화번호, 위치(주소), 소개 글을 등록했다. 주민들은 집 근처 상가 정보를 스마트폰 앱으로도 찾아볼 수 있다. 전입 주민들이 20% 안팎의 할인 가격으로 상가를 이용할 수 있는 할인권도 제공된다. 업주들은 회원 가입 후 가게 홍보용 글을 무료로 올릴 수 있고, 미니 홈피를 부여받을 수 있다. 직접 구인도 할 수 있다. 일반주거지역인 개포4동은 대중교통도 불편하고 대로와 양재천으로 사면이 막힌 탓에 유동 인구가 거의 없어 ‘강남구의 섬’ 같은 지역이다. 자영업 상권도 자연히 쪼그라들었다. 용기를 잃지 않고 개포4동 주민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주민센터·주민자치위 공동으로 지난해 약 6개월에 걸쳐 동네 모든 상점을 검색할 수 있는 웹사이트 구축을 시험 삼아 시작했다. 김상태 개포4동 주민자치위원장은 “처음엔 ‘잘될까’ 반신반의했는데 주민들이 먼저 상권의 활기를 느끼고 있다”고 전했다. 웹사이트에 가게 정보를 올리는 방법을 문의하는 인근 상인들의 전화도 오고, 삼성1동·일원1동도 벤치마킹에 나섰다. 강남구 관계자는 “주민자치위가 자발적으로 시작한 사업이지만 자치구도 동네 상권 활성화 아이디어를 적극 뒷받침하겠다”고 말했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식당 손님 거리로 뛰쳐나와… 수도권서도 감지

    식당 손님 거리로 뛰쳐나와… 수도권서도 감지

    5일 오후 8시 33분쯤 울산 동쪽 해상에서 규모 5.0의 지진이 발생하면서 진앙과 가까운 울산은 물론이고 인천과 서울, 강원 등에서까지 진동이 감지됐다. 갑작스러운 진동에 음식점과 술집 손님들이 거리로 뛰쳐나오기도 했다. 특히 울산 일대에는 원자력발전소와 석유화학공장이 밀집해 있어 주민들의 긴장도를 한층 높였다. 그러나 고리 원자력발전소 등에는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 국민안전처는 “5일 오후 9시 현재 접수된 지진 감지신고는 모두 6679건”이라고 밝혔다. 지역별로 경북 1650건, 울산 1365건, 부산 1210건 등이다. 충청권과 경기도 일부에서도 지진을 느껴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정수민(48·울산 동구)씨는 “쿵하는 소리가 나서 액자가 떨어진 줄 알았다”면서 “그런데 전등과 의자가 흔들리면서 비로소 지진이 났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진도 5로 우리나라 역대 5번째 강력한 지진이었지만 인명이나 재산 피해는 없었다. 한국수력원자력은 “이날 지진이 월성 원자력본부 안에 설치된 정밀 지진감지기에 감지됐으나 구조물 계통 및 기기의 건전성을 확인한 결과 이상이 없다”고 말했다. 한수원은 지진이 발생하자 경주 본사에 있는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에 대해 재난 대응 상황 4단계 중 2번째인 ‘주의’ 단계를 발령하고 상황을 주시했다. 울산 석유화학공단 내 기업들도 정전사태 등에 대비해 비상 근무에 들어가기도 했다. 석유화학제품 특성상 석유 원료가 정전으로 배관 안에서 굳으면 공장 가동에 지장이 생기고 막대한 피해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날 지진과 관련해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은 한반도에서 대형 지진이 일어날 가능성은 낮다고 밝혔다. 지헌철 지진센터장은 “이번 울산 앞바다 지진은 주향 이동단층에 의한 것으로, 일부에서 제기하는 일본 활성단층과의 연관성은 적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국내에서 규모 5.5 이하의 지진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지만, 대형 지진은 일어나기 어려운 구조”라면서 “단층들이 서로 연결돼 있지 않기 때문에 한반도에서 대규모 지진이 발생할 가능성은 낮다”고 설명했다. 한편 지난 3일 북상한 장마전선이 4일에 이어 5일까지 중부지방에 머물면서 서울과 경기, 강원, 충청 지역에 200㎜ 안팎의 많은 비가 내렸다. 전국적으로 232명의 이재민이 나고 4명의 실종자가 발생하는 등 호우 피해가 잇따랐다. 경기지역에서는 새벽부터 쏟아진 폭우로 주택 파손 2채, 주택 침수 59가구, 농작물 침수 9.43㏊, 축대 붕괴 6건, 산사태 1건, 교통통제 9곳 등의 피해가 발생했다. 기상청은 6일까지 중부지방을 중심으로 돌풍과 함께 천둥, 번개를 동반한 강한 비가 내릴 것으로 전망했다. 5일 오후 5시부터 6일까지 중부지방은 30~80㎜(많은 곳은 120㎜ 이상), 남부지방은 10~40㎜, 제주 산간지역은 5~20㎜의 비가 추가로 내릴 것으로 보인다. 이번 장맛비는 7일 낮부터 그쳐 소강상태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전국종합 남인우 기자 niw7263@seoul.co.kr
  • 울산 규모 5.0 강진… 영남권 ‘흔들’

    울산 규모 5.0 강진… 영남권 ‘흔들’

    안전처 “재산 피해 등 아직 없어”중부 ‘물폭탄’… 전국 4명 실종 울산 앞바다에서 규모 5.0의 강진이 발생하면서 부산과 경남, 경북 등까지 지진동이 감지됐다. 5일 울산기상대에 따르면 이날 오후 8시 33분쯤 울산 동구 동쪽 52㎞ 해역에서 규모 5.0의 지진이 발생했다. 1시간 뒤인 오후 9시 24분 여진도 발생했다. 이날 발생한 5.0 규모의 지진은 우리나라에서 관측이 시작된 후 역대 5위 규모다. 기상청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일본처럼 판의 경계가 아니라 판의 내부에 있기 때문에 규모 5.0이 넘는 지진은 거의 일어나지 않을 정도로 드문 사례”라고 설명했다. 이날 울산발 지진으로 부산·경남·경북·광주·대전·경기 일대까지 진동을 느꼈다는 제보가 이어졌다. 울산의 한 고층 건물 식당에서는 비상계단으로 고객들이 대피를 하기도 했다. 또 부산 해운대의 80층짜리 아파트 등 고층건물이 몰려 있는 해운대 마린시티에서는 “건물이 크게 휘청거렸다”면서 “지진을 느꼈는데 맞느냐”는 신고가 잇따랐다. 경남 양산의 한 고등학교에서 야간자율학습 중이던 학생들이 대피하는 소동도 벌어졌다. 하지만 다행히 인명이나 재산 피해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안전처 관계자는 “규모는 컸지만 진앙이 다행히 바다여서 재산이나 인명 피해는 없었다”고 말했다. 한편 중부지방을 중심으로 5일까지 많은 비가 내리면서 전국적으로 4명이 실종되고 232명의 이재민과 일시 대피자가 발생했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이민영 기자 min@seoul.co.kr
  • 서울 강남구 주민들 골목상권 살려요! ‘개포4동 동네가게 사이트’

    서울 강남구 주민들이 침체한 골목상권을 살리고자 발로 뛰어 만든 ‘동네점포 모음’ 홈페이지가 입소문을 타고 있다. 영세한 생계형 동네상인들도 살리고 지역 활력도 도모하는 상생의 자치정신이 엿보인다. ‘개포4동 상가정보 웹사이트’(www.gp4.co.kr)가 그것이다. 5일 강남구에 따르면 개포4동 주민센터와 주민자치위원회가 지난해 10월부터 운영을 시작한 ‘개포4동 상가정보 웹사이트’가 방문자 5만여 명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이 사이트는 개포4동 관내에 있는 식당, 카페, 의원, 학원 등 1000여개 점포를 20여 개 업종으로 분류하고, 사진과 영업시간, 전화번호, 위치(주소), 소갯글을 등록했다. 주민들은 집 근처 상가정보를 스마트폰 앱으로도 찾아볼 수 있다. 전입 주민들이 20% 안팎의 할인가격으로 상가를 이용할 수 있는 할인권도 제공된다. 업주들은 회원 가입 후 가게 홍보용 글을 무료로 올릴 수 있고, 미니 홈피를 부여받을 수 있다. 직접 구인도 할 수 있다. 일반주거지역인 개포4동은 대중교통도 불편하고 대로와 양재천으로 사면이 막힌 탓에 유동인구가 거의 없어 ‘강남구의 섬’ 같은 지역이란다. 자영업 상권도 자연히 쪼그라들었다. 용기를 잃지 않고 개포4동 주민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주민센터·주민자치위 공동으로 지난해 약 6개월에 걸쳐 동네 모든 상점을 검색할 수 있는 웹사이트 구축을 시험 삼아 시작했다. 김상태 개포4동 주민자치위원장은 “처음엔 ‘잘 될까’ 반신반의했는데 주민들이 먼저 상권 활기를 느끼고 있다”고 전했다. 웹사이트에 가게정보를 올리는 방법을 문의하는 인근 상인들의 문의전화도 오고, 삼성1동·일원1동도 벤치마킹에 나섰다. 강남구청 관계자는 “주민자치위가 자발적으로 시작한 사업이지만 자치구도 동네 상권 활성화 아이디어를 적극 뒷받침하겠다”고 말했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효봉선사 가라사대, ‘너나 잘 하세요!’ 순천 송광사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효봉선사 가라사대, ‘너나 잘 하세요!’ 순천 송광사

    영화 ‘친절한 금자씨' 속 금자씨(이영애)의 명대사는 바로 “너나 잘 하세요.‘ 이다. 이 말은 한동안 유행어 반열에서 빠지지 않더니 이제는 아예 일상으로 쓰이는 말이 되었다. 하지만 이 대사의 원래 모습은 이러하였다. 대한불교 조계종 초대종정이자, 판사 출신 스님으로 알려진 효봉(曉峰)스님(1888∼1966)에게 어떤 제자가 와서 다른 스님의 잘못을 이른다.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고, 여색(女色)까지 합니다. 그런 자에게 중요한 소임을 주시면 안 됩니다” 그러자 효봉스님 되묻기를, “수행자는 술마시면 안 되나?” “그렇습니다” “담배를 피우면 안되나?” “그렇습니다” “여인을 가까이 해서도 안 되나?” “그렇습니다” 이때 나오는 불세출의 명대사. “그리 잘 알면, 너나 잘 해라! 너나 잘 해.” 옳고 그름을 그리 잘 안다면서도 남을 헐뜯는 것이 더 큰 잘못인지는 모르는 제자에게 한 바탕 버럭 소리를 지른 일화는 유명하다. 이후 '너나 잘 해라 스님'으로도 불리운 ‘효봉선사’가 1937년부터 10년을 머문 곳이 순천 송광사(松廣寺)다. 송광사에서 스님은 꿈에서 16 국사 중 마지막 국사인 고봉화상을 만나 “이 도량을 빛내 달라”며 내린 법명 ‘효봉(曉峰)’을 받는다. ● 승보사찰(僧寶寺刹)의 맥(脈)을 잇는다 순천을 애둘러 지나 한적한 국도로 접어들면, 맞은 편에서 차 한 대 오지 않는 담담한 풍경은 참으로 평화롭다. 사찰이 당연히 있을 만하다. 처음부터 송광사는 절의 자리 앉음새가 애당초 조계산 한 자락 넉넉하다 보니 가는 길 또한 고즈넉하다. 우리나라 3대 사찰이자 조계정의 발원이라 하니, 펜 움켜쥔 손 한 줌에 옮길 만한 만만한 내력이 아니다. 말 그대로 1000년 세월 깊이가 단단한 절이다. 워낙 유명하다보니 기대감 한층 드높여 드디어 사찰 입구인 일주문에 이르면, 가지런히 높이 솟은 요사채 지붕들 칸칸이 흡족한 모양새로 둘러 있다. 더욱이 눈빛 맑은 젊은 납승(衲僧·누더기로 기운 옷을 입은 스님)들이 공부하는 절이라면 마땅히 이러해야 한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듯 송광사의 첫 인상은 반듯하고, 정갈하고, 소박하고, 준수하며 깊다. 부처님, 가르침, 스님을 두고 일찍이 한국 불교에는 세 가지 보배라고 일컫는다. 그리고 이를 가리키는 삼대 사찰이 있는데 흔히들 삼보사찰(三寶寺刹)이라고 한다. 곧 경남 양산의 통도사, 경남 합천의 해인사 그리고 전남 순천의 송광사이다. 통도사에는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져있기 때문에 불보사찰(佛寶寺刹), 해인사에는 부처님의 가르침인 팔만대장경의 경판이 모셔져있기 때문에 법보사찰(法寶寺刹), 그리고 송광사는 한국불교의 승맥(僧脈)을 잇고 있기 때문에 승보사찰(僧寶寺刹)이라고 한다. 송광사의 역사는 고려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흐트러져가는 불교를 바로세우고자 보조국사 지눌스님을 중심으로 정혜결사(定慧結社) 즉, 세속화되고 정치와 연관되어 타락한 불교를 지양하며 산림에서 선(禪) 수행에 전념하자는 운동을 단행했던 곳이 송광사다. 이후 왕사제도가 폐지될 때까지 보조국사의 법맥을 이은 ‘나라의 스승’ 국사들을 많이 배출해 지금까지도 명실상부한 승보종찰의 맥을 잇고 있다. 흔히들 송광사를 조계총림(叢林)이라고도 일컫는다. 총림은 승속(僧俗)이 화합하여 한 곳에 머무름이(一處住) 마치 수목이 우거진 숲과 같다는 뜻을 담고 있는 말이다. ● 삼무(三無) 사찰로 수행에 전념하다 예로부터 송광사에는 다른 사찰과 달리 세 가지 없는 것(三無)이 있다. 석탑, 주련(기둥에 새기는 글귀), 풍경이다. 지형적으로 연꽃의 중심이기에 무거운 석탑이나 석등을 세우지 않았고, 설익은 지식을 경계해 글로 기둥에 새기지 않았다. 그리고 수행에 거추장스런 소리조차 만들지 않고자 풍경을 달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하니 송광사 안에 텔레비전이 없어 2002년 월드컵 당시 TV수상기를 빌려다가 대중이 모여 시청했던 일이 지금도 시중에 회자되고 있다. 이쯤 되면 송광사에서 대중 생활하는 것만으로도 깨침을 향한 스님들의 구도열이 얼마나 간절한지를 짐작케 한다. 막상 송광사 경내로 접어들면 완연히 공부하는 절이라는 느낌이 든다. 젊은 스님들이 바삐 길을 가면서도, 그 눈매는 언뜻 보아도 매섭기 끝이 없다. 그러다보니 부처님이나 관음상을 모신 불전보다는 지금도 학승들이 기거하는 승방이나 요사채들이 훨씬 많다. 송광사의 많은 건축물들을 살펴 보자면, 시간에 따른 부침이 많았다. 1842년(헌종 8)에 큰 화재가 일어나 모든 건물이 불타 없어지고, 삼존불(三尊佛), 지장보살상, 대종(大鐘) 및 기타 보물과 《화엄경(華嚴經)》 장판(藏板) 약간만 남게 되었다. 이후 1922년부터 1928년까지 퇴락한 건물들을 중수하였지만 또다시 1948년의 여수·순천사건과 6·25전쟁으로 사찰의 중심부가 불에 타버리는 아픔을 겪게 된다. 따라서 현재 남아 있는 건축물들은 1983년부터 1990년까지 대웅전을 비롯해 30여 동의 전각과 건물을 새로 짓고 중수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석불이나 탱화와 같은 조형미와 예술감각이 넘치는 문화재보다는 고려후기부터 내려오는 불교 관련 문서와 유물을 많이 소장하고 있다. 지금 송광사에는 국보 56호 국사전이 있으며 보물로는 하사당, 약사전, 영산전 등이 있다. 현재 송광사는 지눌스님까지 포함하면 모두 열여섯 명의 국사를 배출한 한국 선종의 전통을 굳건히 지켜나가는 조계총림의 본원으로 그 역할을 단단히 하고 있다. 또한 일반 대중들을 위하여 템플 스테이나 각종 세미나를 열고 사보(寺報) 발간 및 홈페이지를 개설하여 E-Book으로 된 송광사 소식지를 만드는 등 일반 대중과 함께 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다 알 듯이 사찰이 유명하다면 허명(虛名)이 없다. 대개 이름날만하고 정성스러운 구석이 하나라도 있다. 이런 면에서 송광사는 도시 삶에 메마른 사람들에게 참으로 여유롭게 정성되게 푸른 조계산 큼직한 그늘 한 폭을 내어준다. 함초롬하니 뻗어있는 송광사 편백나무 숲 사이로 햇무리가 지는 광경을 일주문에서 바라보는 것만으로 마음의 평안을 얻는다. 1000년 도량 처음 중건할 때부터 온새미로 남아있는 송광사의 곱고 맑은 정신은 앞으로도 변함없이 내려갈 것이다. <송광사에 대한 여행 10문답> -아래 질문은 실제 독자들이 가장 많이 묻는 질문을 바탕으로 만든 10문답입니다. 1. 꼭 가봐야 할 정도로 중요한 여행지인가요? -당연하다. 한국사람이라면 우리나라 삼보사찰인 양산의 통도사, 합천의 해인사, 순천의 송광사는 기회를 만들어서라도 가 보길 바란다.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언제 갈 것인가 시간의 문제이다. 녹음이 짙어지는 여름을 추천한다. 2. 교통편은 어때요? -송광사의 홈페이지가 굉장히 잘 만들어져 있다. 확인바람. -교통편 : http://www.songgwangsa.org/about/about07.jsp?top_menu_idx=1&sub_menu_idx=8 -대중교통의 경우 KTX 순천역에서 111번 시내버스를 타고 1시간 30분정도 소요된다. 3. 인근 편의시설, 주차장 등의 시설환경은 괜찮은가요 ? -주변에 숙박시설이나 편의시설이 풍부하지는 못하다. 따라서, 순천시내나 광주 등지에서 숙박을 하는 것이 좋다. 주차장에서 내려 약 20분 정도 걸어올라 가야 한다. 4. 유명세에 비하여 실제 모습은? -송광사도 아름답지만, 송광사까지 올라가는 길을 걷노라면 천년고찰이라는 이름이 함부로 만들어 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깊고 그윽해서 순천이나 여수 주변을 갈 일이 있다면 꼭 들리길. 절대 후회하지 않는 장소다. 5. 자동차로 가는 경우 주의해야 할 점은? -국도 주변에 뜻하지 않게 과속 단속 카메라가 많다. 꼭 속도를 지켜 주행하기를. 꼭! 꼭! 꼭! 과태료가 만만치가 않다. 6. 홈페이지 주소 및 도움되는 사이트 주소는? - 사찰의 홈페이지가 이렇게 알차도 되는지 감탄한다. E-Book도 볼 수 있고 자료도 풍부하다. - http://www.songgwangsa.org/ 7. 먹거리 정보와 식당 정보는? -송광사 버스 공용주차장 주변에 식당가가 있다. 대개 관광지 식당들의 경우 뜨내기 손님들을 상대하는 모습이 역력해서 늘 식당선택에 망설여질 때가 많다. 하지만, 송광사 주변의 식당들의 경우 1인분에 8000~9000원 선에서 훌륭한 남도 식당 특유의 푸짐한 식사가 가능하다. 8. 주변에 가 볼만한 다른 공간도 있나요? -당연히 여수와 순천 지역이다. 송광사가 있는 곳이 순천이다. 국가 정원이나 순천만 생태공원, 오동도 등 볼 만한 곳이 많다. 9. 이 곳에서 꼭 추천하고픈 공간이나 장소는? -해우소다. 비록 1993년에 새로 증개축하여 예전의 모습과는 많이 변했지만 그래도 천년고찰의 해우소의 모양이 흥미롭다. 10. 총평 및 당부사항, 기타정보 -비록 송광사가 최근에 많은 건축물들을 만들었다고는 하나, 송광사가 들어 있는 조계산의 산세가 이미 1000년을 품고 있다. 종교가 불교가 아니더라도 경치 수려한 산행을 한다고 생각한다면 굉장히 흡족한 여행 공간은 될 듯 하다. 글·사진 윤경민 여행전문 프리랜서기자 vieniame201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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