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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종로의 아침] 인맥으로 굴러가는 나라에서/함혜리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세종로의 아침] 인맥으로 굴러가는 나라에서/함혜리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최순실 파문으로 온 나라가 혼란스럽다. 그동안 나돌았던 괴이한 풍문들이 사실이었음을 밝혀 주는 정황들이 속속 드러나면서 국민 모두는 허탈감과 자괴감에 빠져 있다. 최순실 게이트가 이슈의 블랙홀이 돼 모든 뉴스를 덮어 버리는 가운데 문화예술계의 성추문도 어물쩍 꼬리를 감추는 분위기다. 나라가 결딴나려는 상황에서 그게 무슨 뉴스 거리나 되겠으며 덮고 간들 어디가 덧날 것이냐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최순실의 국정 농단이나 문화예술계의 성추문이 파급효과나 죄질의 경중만 다를 뿐 권력형 갑을 관계를 악용한 범죄라는 점에서는 매 한가지다. 문화예술계의 지명도 있는 인사들은 대단하게 사회적 영향을 미치는 실력자는 아니지만 그들이 활동하는 세계 안에서는 절대적인 권력을 지닌다. 전시회 기획을 하며 작가 선정 권한이 있는 큐레이터도, 대학의 예능계 학과 교수들도 마찬가지다. 무명 작가, 작가 지망생 등 이해관계에 있는 여성들에게 이들은 절대 갑의 위치에 있다. 그들과 관계가 형성되면 문화계라는 상상계 진입이 가능하고, 반대로 잘못 보이면 그 세계에서 경력을 아예 포기해야 한다. 그러니 무슨 말이나 행동을 해도, 어떤 요구를 해 와도 거절할 수 없는 것이다. 문화예술계 내에서 갑을 관계에 따른 성추행은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었다. 봉건적인 가부장적 문화가 예술계라고 예외가 될 수 없고, 예술가들은 자유로운 영혼까지 지녔으니 문제가 생겨도 욕망에 충실했다고 하면 그만이었다. 순수예술 분야는 사회적으로 크게 주목받지 않았던 까닭에 윤리의식이 결여된 사람들의 추행이 그동안 잘 알려지지도 않았다. 누군가에게는 낙원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지옥이었을 것이다. 세상은 완전히 달라졌다. 할 말은 하는 자존감 있는 세대가 불이익을 감수하고 용기 있게 증언을 하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인터넷은 세상 좁은 줄을 모르고 이 소식을 실시간으로 전파하면서 그간의 사건과 위선적인 행위들이 고구마 줄기처럼 세상에 드러나고 있다. 가장 순수해야 할 문화예술계마저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병폐에 잠식당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사람들을 경악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예술이란 자유로운 의지에서 비롯된 균형 잡힌 관계 속에서 형성될 때에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것인데 이런 추악한 민낯이 백일하에 드러났으니 이제 어디에서 감동을 얻을 수 있겠는가. 이번 문화예술계의 홍역이 성장통이 되려면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갑과 을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권력형 범죄를 양산한 주범은 실력보다 인맥으로 움직이는 이 사회의 관행이라고 본다. 이는 누구 한 사람의 힘으로는 고칠 수 없는 어려운 문제이지만 우리 사회가 처한 전근대적 상황에서 벗어나고 예술이 예술 본연의 기능을 할 수 있게 하려면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다.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의 생각과 행동이 바뀌어야 한다. 끼리끼리 끌어주고 밀어주는 질서를 은근히 정상으로 받아들였다면 반성해야 한다. 인맥으로 굴러가는 나라에 미래는 없다는 것을 명심하자. 노력하면 된다는 생각은 더이상 망상이 아니어야 한다. lotus@seoul.c.kr
  • [김석동의 한끼 식사 행복] 찬 바람의 계절이 권하는 칼국수

    [김석동의 한끼 식사 행복] 찬 바람의 계절이 권하는 칼국수

    밀가루가 귀하던 시절, 밀 수확기인 여름 즈음에나 맛볼 수 있었던 칼국수는 귀한 별미 요리였다. 그러나 이제는 어느 집에서나 언제든지 쉽게 요리해 먹을 수 있는 식단으로 자리잡았다. 먼저 밀가루를 반죽해 도마 위에서 방망이로 얇게 민 다음 칼로 가늘게 썰어서 면을 만든다. 그리고 사골, 멸치, 닭, 해물 등으로 국물을 내고 감자, 애호박 등을 넣어 끓이면 완성이다. 입맛이 별로 없을 때나 메뉴가 떠오르지 않을 때 언제 선택해도 후회가 없는 음식이 칼국수다. 칼국수를 잘한다고 입소문이 난 식당들은 일일이 셀 수 없을 정도다. 그런 유명한 집들이 동네 곳곳에 자리잡고 있어 구태여 소개하는 것이 큰 의미가 없을 수도 있으나 그래도 발걸음이 잦아지는 집들이 있다. 먼저 강북지역이다. 성북동 한성대입구역 인근에 ‘국시집’이 있다. ‘대통령 칼국수집’이라 불리기도 하는, 유명 인사들이 많이 다니던 집이다. 깔끔한 사골 국물에 부드러운 면이 나오는 안동식 칼국수다. 혜화동 로터리에서 성북동 방향으로 가다 오른편 골목으로 빠지면 혜화동 ‘손칼국수’가 있다. 간판이 작아 찾기 어렵지만, 칼국수 하면 빠지지 않는 집이다. 푹 끓인 사골 국물과 부드러운 면발, 양지머리 고기, 호박이 잘 어우러져 나온다. 종로 2가 낙원상가 인근 골목길에는 1965년에 개업한 ‘찬양집’이 있다. 바지락을 많이 넣은 해물칼국수로 면, 국물, 김치 모두 무한리필이다. 혼자 가서 먹는 자리도 있고, 식당 안에 자리가 없을 때는 골목길에도 상을 차려 준다. 종로 5가 광장시장 좌판에 자리잡은 ‘강원도 손칼국수’는 대를 이어오는 집이다. 주인아주머니가 직접 반죽해 그 자리에서 면을 썰어 끓인다. 진한 멸치국물에 푸짐한 시장칼국수를 맛보기 위해 손님이 끊이지 않는다. 장보러 온 사람들과 부딪치며 옛 향수를 맛볼 수 있다. 을지로 3가 인근에서 1968년 시작한 ‘사랑방 칼국수’는 충무로 대표 칼국수집이다. 찌그러진 양푼냄비에 담긴 약간 풀어진 면에 김, 파, 고춧가루를 대충 얹어 놓은 것 같지만 보기만 해도 침이 넘어가는 훌륭한 비주얼과 맛을 자랑한다. 그 맛과 분위기에 푹 빠져 주인아주머니가 선물한 오래된 냄비가 지금도 내 서재 한쪽에 있을 정도로 자주 다녔다. 연희동 우체국 근처에는 1988년 문을 연 걸쭉한 사골 국물을 자랑하는 ‘연희동칼국수’가 있고, 중림동 약현성당 인근에서 같은 해 개업한 ‘원조 닭한마리 칼국수’는 시원하고 깔끔한 육수, 즉석 만두로 명성을 날리고 있다. 강남에도 이름난 칼국수집들이 여럿 있다. 방배동 카페골목에 자리잡은 ‘일미칼국수’는 1973년 이수역 부근에서 개업해 이곳으로 이전했다. 콩가루를 조금 섞은 손칼국수는 면발이 가늘고 부드럽다. 밀가루 음식이 안 맞는다는 사람도 이 집 면은 괜찮다고 한다. 다진 소고기, 계란지단, 김 등 고명이 화려하다. 서초동 양재역 부근 ‘산동칼국수’는 전남 구례 산동 출신 임병주 사장이 이름을 걸고 직접 면을 밀어 만든다. 바지락 칼국수와 김치가 잘 어울리는 맛집이다. 양재동 구룡사 앞에는 콩가루를 섞는 안동식 국시로 서울 사람들 입맛을 바꿔놓은 ‘소호정’이 있다. 1985년 압구정동 시절부터 다니던 집인데 가늘고 부드러운 면발에 한우 살코기로 우려낸 육수가 일품이다. 함께 나오는 깻잎, 부추도 맛을 돋우는데 무조건 리필이다. 찬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따끈한 칼국수가 발길을 끄는 계절이 또 돌아왔다.
  • [김남경의 예술마을 기행] 역사가 흐르는 삶터, 알록달록 물든 예술

    [김남경의 예술마을 기행] 역사가 흐르는 삶터, 알록달록 물든 예술

    광주 양림동은 광주 남구 양림산과 사직산 아래 있는 작은 마을이다. 마을 아래로 광주천이 흐르고 양림산에 올라서면 무등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해발 100m의 양림산 기슭에는 현재 호남신학대학이 들어서 있고 그 아래 올망졸망한 옛날 주택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양림동 한쪽으로 아파트 단지도 들어서 있지만 마을 중심은 개발의 그림자가 비켜 간 모양새다. 오랜 주택 사이로 고택과 한옥들도 꽤 남아 있고 100년 역사를 품은 서양식 건물들도 있다. 주택과 주택 사이에는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내려앉은 골목이 미로처럼 얽혀 있다. ●선교사들 활동 터전에 사회운동가·예술인 모여 이곳은 옛날부터 버드나무가 울창해 ‘양림’(楊林)이라고 불릴 만큼 숲과 들판, 언덕, 교회가 어우러진 아름다운 마을이다. 광주의 중심지인 광주역과 충장로 등에서 살짝 비켜나 있는 탓에 100여년 전 파란 눈의 선교사들이 들어와 교회를 짓고 선교 활동의 터를 잡은 역사를 갖고 있다. 광주기독병원, 호남신학대, 수피아여고, 숭일학교 등의 역사가 이때부터 시작됐다. 광주의 근대 역사가 꽃핀 곳이다. 이때 지어졌던 우일선 선교사 사택(1908년), 오웬기념관(1914년) 등이 지금도 남아 있다. 그 당시 활동했던 선교사 22명은 양림산 기슭에 묻혀 오늘도 양림동을 지킨다. 선교사들은 종교와 봉사 정신만 남긴 것이 아니다. 신문물과 자유, 평등 등으로 대표되는 새로운 가치관도 남겼다. 시대를 앞선 분위기 덕분에 많은 지식인, 사회운동가, 예술인들이 양림동을 찾아들었다. 근현대사에서 알 만한 이들이 양림동에 둥지를 틀거나 거쳐 갔다. 예술가들로는 문학에서 ‘가을의 기도’로 잘 알려진 시인 김현승, ‘징소리’ ‘타오르는 강’의 소설가 문순태, ‘첫사랑’ 등을 집필한 드라마 작가 조소혜, ‘사평역에서’의 시인 곽재구, ‘봄비’의 시인 이수복 등이 대표적이다. 미술에서는 서양화가 배동신, 이강하, 황영성, 한희원, 음악에서는 정율성, 정추, 정근 등이 양림동과 큰 인연을 맺고 있다. 양림동의 인물들을 보려면 마을 중심에 위치한 다형 다방을 찾아가면 된다. 양림동의 시그니처처럼 알려진 이곳은 작은 전시관이자 찻집이다. 커피를 좋아했던 시인 김현승의 호를 따 ‘다형’이라고 이름 붙이고 양림동 주요 인물들을 소개하고 있다. 이 외에도 다형 김현승 시인의 시비, 음악가 정율성 거리 전시관, 거리의 조형물 몇 점 정도만이 전부였다. ●토박이 화가 한희원 ‘양림동 정신’ 전시에 담아 그러던 양림동에 2015년 7월 한희원미술관이 문을 열었다. 서양화가 한희원은 양림동에서 태어나고 자란 토박이로 골목 안 작은 한옥을 직접 미술관으로 꾸미고 ‘양림동’을 주제로 다양한 전시를 열었다. 작지만 알찬 전시로 소문이 나 미술관이 생긴 후 지난 1년간 약 7만명이 다녀갔다. 그의 그림에는 사라져 가는 양림동의 순간이 박제돼 있다. 새벽, 아침, 밤 등 시간과 계절별로 다른 양림동의 골목과 집, 교회, 사람들이 그림 속에 작가의 시선으로 담겨 있다. 현실과 같으면서도 다른 그림 속의 양림동은 묘하게 보는 이의 감수성을 자극한다. 마치 그 세계로 문을 열어 주는 것 같다. 한희원 작가는 “양림동이 가진 정신을 남기고 알리는 것이 주어진 과제”라며 “무분별한 개발보다는 양림동의 가치를 세우는 작업을 먼저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6년간 양림동 축제 추진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축제로 양림동의 예술과 가치를 알리는 작업을 하고 있다. 올해 양림동에는 광주 민주평화운동의 대모인 조아라 여사의 기념관, 최초의 선교사인 유진 벨과 서양인 선교사들을 기리는 유진벨기념관, 양림동 여행의 중심이 될 양림마을 이야기관 등이 문을 열었다. 내년에는 동사무소를 리모델링한 서양화가 이강하 미술관이 문을 열 계획이다. 예술마을로서의 양림동의 명성은 일반 주민들과 젊은 예술가들이 잇고 있다. 양림동 입구에 있는 펭귄마을이 대표적이다. ●폐품·골동품으로 담벼락 꾸민 ‘펭귄마을’ 인기 주민 김동균씨가 3년여 전부터 폐품과 골동품을 이용해 만든 작품을 하나둘 텃밭과 담벼락에 걸기 시작하면서 설치미술 마을로 거듭났다. 입소문이 나자 젊은 작가들과 주민, 방문객들도 가세해 일대 골목이 노천 전시관이 됐다. 지금은 주말은 물론 평일에도 관광객들의 필수 방문 코스가 됐다. 젊은 예술가들도 양림동을 찾아든다. 문화기획자 정헌기 대표는 호남신학대 아래 옛 건물을 개조해 게스트하우스와 예술가들을 위한 레지던시로 꾸미더니 최근엔 옛 차고를 개조해 미술관을 오픈했다. 앞으로 컨템포러리 작품들을 전시하는 젊은 미술관으로 꾸려 나갈 계획이다. 디자이너가 운영하는 515갤러리에서는 양림동의 작가들이 주체가 되는 작품 전시회를 계속 열고 있다. 시민들도 양림동 공공미술 프로젝트에 참여해 마을 곳곳에 작품을 남겼다. 양림동이 속한 광주 남구는 2017년의 관광도시로 선정됐다. ‘예술가들이 만든 간판’이 올 연말 양림동 상가의 모습을 한 차례 바꿀 예정이다. 혹자는 양림동이 너무 개발되는 것 아니냐고 한다. 앞서 그렇게 망가진 마을도 많이 봐 왔다. 하지만 ‘양림동이 남긴 100년의 가치’를 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주민들이 버티고 있다면 양림동의 변화는 또 다를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글 사진 여행작가 enkaykim@naver.com ■ 여행수첩(지역번호 062) →가는 길 : 용산역에서 광주송정역까지 KTX로 두 시간이 채 안 걸린다. 송정역에서 광주 지하철을 타고 남광주역에서 하차한다. 남광주역에서 양림오거리까지 도보 15분. 한희원미술관(653-5435)은 매주 화~일요일 오전 11시~오후 7시 문을 연다. →함께 둘러볼 곳 : 양림동 입구 파출소 부근에 위치한 양림마을이야기관(676-4486)을 먼저 들러 보자. 양림동의 역사와 인물 등에 대해 멀티미디어 등으로 알아볼 수 있다. 문화해설사와 구석구석을 누비며 이야기를 듣는 ‘양림동 근대문화투어’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 사직전망타워에 오르면 양림동 일대와 무등산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한희원미술관 부근 이장우 고택은 낮 시간 동안 개방돼 함께 돌아볼 수 있다. →맛집 : 양림동 오거리 골목 안에 있는 한옥식당(675-8886)은 애호박찌개, 청국장, 돌솥밥 등이 맛있다. 자연스럽게 멋을 살린 한옥 분위기와도 잘 어울린다. 어니스트 6T(456-0011)는 피자, 미트볼 스튜 등을 주 메뉴로 하며 젊은층에게 인기 있다. 빈티지한 분위기와 주인장의 세심한 배려가 음식과 어우러진다.
  • 아픔 뒤, 더 깊어진 가을 古都

    아픔 뒤, 더 깊어진 가을 古都

    경주 단풍은 소박하다. 이름난 관광지들이 많아 화려할 것이라 생각될 뿐, 단풍나무처럼 붉은 빛을 내는 수종보다는 벚나무, 느티나무 같은 주황, 노랑 등의 수수한 빛깔을 내는 나무들이 더 많다. 그래도 워낙 아름다운 문화유산들과 함께 있으니 평범한 단풍인데도 더 화려하고 웅숭깊게 느껴진다. 단풍 나들이로는 다소 이르게 경북 경주를 돌아봤다. 중부 지방과 달리 아랫녘은 아직 단풍이 절정에 이르지 못했다. 화려한 풍경 너머로 까닭 모를 스산함, 애잔함이 느껴지는 것이 고도(古都)의 가을일 터. 이런 서정들과 마주하려면 아무래도 11월 중순은 돼야 하지 싶다. 경주 간다고 하면 주변에서 걱정부터 한다. 부러움 일색이었던 예전과 사뭇 다른 모습이다. 물론 경주 지진 이후에 생긴 현상이다. 경주에 가면서 지진을 의식하지 않을 강심장이 있을까. 계획을 세우고 돌아올 때까지 지진은 늘 장삼이사들의 머릿속을 맴돈다. 경주 단풍을 두고 ‘5대 명소’ 운운하는 이들이 있다. 어디 다섯 곳뿐이랴. 사람에 따라 보는 시각도 다르니 명소 숫자 또한 대단한 의미는 없지 싶다. 다만 누구나 첫손 꼽는 곳은 있다. 불국사다. 가을이면 석굴암과 불국사를 잇는 산책로 곳곳이 다양한 빛깔의 단풍으로 물든다. 불국사에 들면 누구나, 반드시 찾아 ‘인증샷’ 찍는 장소가 있다. 백운교와 청운교가 한 화면에 들어오는 자리다. 이곳에 늙은 단풍나무가 서 있다. 보통 불국사 단풍 하면 연상되는 사진의 거의 대부분이 여기서 촬영됐다고 봐도 틀림없다. 불국사 단풍은 이제야 홍조를 띠기 시작했다. 11월 첫 주말쯤 절정에 달하기 시작해 둘째 주까지 짙은 단풍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보문관광단지는 전체가 단풍 명소라 불러도 좋겠다. 특히 늙은 벚나무들이 전하는 주황빛 단풍이 인상적이다. 보문관광단지는 봄철 벚꽃으로 이름났다. 1970년대 심은 벚나무들이 아름드리 나무로 자라나서 무게감 있는 가을 풍경을 펼쳐낸다. 먼저 차로 보문단지 전체를 한 바퀴 돌아본 다음, 보문호 주변을 천천히 산책하는 순서로 여정을 꾸리면 무난하지 싶다. 보문호 단풍은 10월 말 현재 절반 정도 물들었다. 11월 초, 중순 절정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이른바 ‘경주 단풍 5대 명소’ 가운데 하나로 꼽혔던 보문정은 공사 중이다. 보문정 역시 이른 봄 벚꽃으로 명성 높은 곳이다. 벚나무들이 주황색 나뭇잎은 매달고 있겠지만 다소 산만한 풍경에 머무르고 말 듯하다. ●봄 벚꽃·가을 단풍… 어여쁜 보문단지 경주 시내로 들어오면 계림을 먼저 찾아야 한다. 첨성대와 반월성 사이에 있는 작은 숲이다. 신라의 시조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히는 김알지의 탄생 설화가 담긴 곳이다. 흰 닭 울음 소리로 찾아간 숲속에 금궤가 있었고, 이 안에서 사내아이가 나왔다는 게 설화의 얼개다. 계림의 면적은 7300㎡(약 2200평) 정도다. 물푸레나무, 단풍나무 등 늙은 나무들이 펼쳐내는 단풍이 수수하면서도 깊이가 있다. 계림 입구는 교촌마을이다. 저 유명한 경주 최 부자 고택이 이 마을에 있다. “흉년에 곳간을 열어 사방 100리(40㎞) 안에 굶어 죽는 이가 없게 하라”며 한국의 부자로는 드물게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했던 경주 최씨 가문의 800석 곳간을 엿볼 수 있다. 아울러 포석정지도 붉은 단풍으로 이름났다. 경북 산림환경연구원은 다양한 수종의 단풍들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동학 창시자 최제우가 수련했다고 알려진 용담정 단풍도 현지인들에겐 꽤 알려져 있다. 여기까지가 호사가들 입에 흔히 오르내리는 곳이다. ●양동마을, 유네스코 지정 ‘韓 역사마을’ 이제 막 알려지기 시작한 명소들도 있다. 운곡서원은 350년 이상 묵은 거대한 은행나무가 노란 꽃구름을 만드는 곳이다. 반면 도리마을은 수령은 짧지만 쭉쭉 뻗은 은행나무들이 군락을 이룬 곳이다. 둘 다 경주 외곽에 있어서 찾아가는 데 시간이 제법 걸린다. 방향도 운곡서원은 경주 동쪽, 도리마을은 서북쪽이어서 두 곳 모두 보기는 쉽지 않다. 운곡서원 은행나무는 고색창연한 정자 유연정 앞에 서 있다. 나뭇잎이 오리발을 닮았고 가지가 오리 다리와 비슷해 압각수라고도 불린다. 운곡서원, 유연정 모두 안동 권씨 시조인 권행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건물이다. 11월 중순께 가면 은행잎이 노란 꽃비처럼 떨어지는 장면과 마주할 수 있다. 양동마을은 안동 하회마을과 함께 ‘한국의 역사 마을’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곳이다. 160여 가구에 이른다는 초가집, 기와집들이 마을 뒷산의 단풍과 어우러진 모습이 평화롭다. 월성 손씨의 종가인 서백당, 여강 이씨의 종가 무첨당, 집과 정자를 겸한 양식이 독특한 관가정, 중종이 이언적을 위해 지어준 향단 등이 대표적인 건물로 꼽힌다. 무장산은 짧은 억새 산행을 즐기기 맞춤하다. 두 시간 정도면 억새꽃이 흐드러진 무장산 일대를 돌아볼 수 있다. 억새철엔 찾는 사람이 워낙 많아 주말에 셔틀버스가 운행된다. 11월 27일까지 무장산 1, 2주차장에서 산행 기점까지 등산객을 실어 나른다. 경주까지 왔으니 바다 구경 안 할 수 없다. 경주 시내에서 31번 국도를 타고 불국사, 감은사지 삼층석탑을 줄줄이 지나면 갈림길이 나온다. 왼쪽은 감포항을 지나 포항 구룡포 쪽으로 가는 길이다. 감포항은 탑모양을 새긴 등대가 인상적인 포구다. 오른쪽으로 꺾어지면 볼거리가 좀더 많다. 사실 이 길에서 가장 이름난 여행지는 문무대왕릉이었다. 흔히 대왕암이라고도 불리는 문무대왕릉(사적 제158호)은 삼국통일을 이룬 신라 문무왕의 산골처, 혹은 수중릉이라 여겨지는 곳이다. ●지진 여파로 펜션 등 숙박비 낮아져 한데 요즘은 순위가 뒤바뀌었다. ‘동해의 꽃’이라 불리는 양남면 주상절리군(천연기념물 제536호)을 찾는 이들이 꽤 많다. 양남면 읍천항 일대는 용암이 만든 여러 가지 형태의 주상절리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그 가운데 가장 볼만한 건 부채 형태의 주상절리다. 보통 수직으로 형성되는 일반 주상절리와 달리 완벽한 쥘부채 모양을 하고 있다. 신생대 제3기에 형성됐다는 것엔 대체로 학계의 견해가 일치하는데, 어떤 경위로 부채 모양을 하게 됐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파도소리길’을 따라 1.7㎞에 달하는 주상절리 전 구간을 돌아볼 수 있다. 일부 구간에 출렁다리도 조성됐다. 파도 위를 걸으며 주상절리를 엿볼 수 있다. 산책로 전 구간에 조명이 설치돼 밤에도 돌아볼 수 있다. 글 사진 경주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여행수첩 →가는 길:경주 시내를 가려면 경부고속도로 경주 나들목으로 나와야 한다. 양동마을, 도리마을 등 경주 서북쪽의 관광명소들을 먼저 보겠다면 익산포항고속도로 서포항 나들목으로 나오는 게 빠르다. 경주시가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주차장을 관광활성화 차원에서 10월 내내 무료로 운영하겠다고 했지만 이는 사실과 달랐다. 경주를 찾는 관광객들이 얼굴 붉히는 일 중 하나가 주차료 시비인데 도로 곳곳에 주차선을 그어놓고 주차료를 받는 건 여전했다. 경북 산림환경연구원은 숲해설사 동행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홈페이지(www.kbfoa.go.kr) 참조. 778-3800. →맛집:교촌마을 초입의 요석궁(775-7557)은 경주 최씨 14대 종부가 만드는 반가 음식으로 유명하다. 다만 음식에 따라 10만원을 넘는 것도 있어 값이 부담스러울 수 있다. 경주 최씨 집안에서 대대로 전해 오는 육개장을 냈던 최가밥상은 아쉽게 사라졌고, 대릉원 주변 식당 등에서 육개장을 맛볼 수 있다. 경주 최씨 고택 바로 옆에 교리김밥이 있다. 점심 때엔 줄을 서야 할 만큼 이름난 집이다. 시내 성동시장엔 정식골목이 형성돼 있다. 뷔페식 한정식 등을 판다. 우엉김밥을 파는 집도 몇 곳 된다. 김밥에 우엉을 곁들여 먹는데 제법 별미다. 보배김밥(772-7675) 등이 알려졌다. →잘 곳:요즘 경주를 찾는 관광객들을 가장 즐겁게 하는 건 숙박비다. 지진 여파로 관광객이 줄면서 숙박비도 낮아졌기 때문이다. 호텔 등 숙박료가 정해진 업소들은 별 혜택이 없지만 일반인이 운영하는 펜션 등은 말 그대로 ‘파격가’다. 보문단지만 고집하지 않고 주변으로 눈을 돌리면 ‘가성비’ 높은 숙소들이 즐비하다.
  • [단독]“崔, 대통령 관저 들어오면 제집처럼 굴어 모두가 귀찮아했다”

    [단독]“崔, 대통령 관저 들어오면 제집처럼 굴어 모두가 귀찮아했다”

    평일에도 들어와…음식까지 싸가 목소리 크고 주변 전혀 의식안해 대통령 순방땐 옷 디자이너 대동 독일은 2~3개월에 한번씩 오가 관저에서 잠자고 간적은 없는 듯 서울신문이 2일 취재를 종합한 결과, ‘청와대 사람들’은 최순실씨를 누구보다 싫어했다. 한가해야 할 일요일 저녁, 청와대 경내를 긴장시키는 사람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대통령 관저와 관저 주변을 담당하는 경호 공무원과 청소 및 식당 담당 기능직 직원들에게, 최씨는 ‘청와대 저녁을 즐기러 오는 사람’쯤으로 간주됐다. 저녁을 먹고 늦게 들어올 법도 했는데 늘 오후 6시 이전에 들어와 꼭 따로 밥을 챙겨 먹으면서 미운털이 박힌 것으로 추정된다. 심지어 “매번 음식까지 싸 간다”는 말이 회자되면서 단단히 미움을 샀다. 그는 관저 별실에서 밥을 혼자 먹었거나 비서관 3인방과 함께 저녁을 먹었을 수 있다. ‘관저에 저녁에 온 손님인데, 대통령과 따로 먹었겠느냐’는 질문에 한 인사는, “대통령은 관저에서는 3인방과도 식사를 같이한 적이 없다는 것 같더라. 관저에서만큼은 늘 혼자 식사하는 것을 큰 원칙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여권의 또 다른 인사도 “대통령은 옛날부터 사적인 공간에서는 홀로 있는 것을 보장받고 싶어 했다”고 전했다. 최씨의 청와대 출입이 중단되는 것은 대통령 순방 기간과 2~3개월 한번씩 자신이 독일을 들를 때이다. 이 ‘청와대 사람들’도 어느 순간부터는 최씨가 독일을 오간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한다. 최씨는 2~3개월에 한번씩은 독일을 다녀왔다. 그러나 2~3주면 곧 돌아왔다. 최씨도 처음에는 나름대로 조심스럽게 청와대를 출입한 것으로 보인다. 초기에는 시내 S호텔에 차를 대고 자신을 마중 나온 청와대 차량을 타고 들어왔다. 또한 초기에는 거의 의상 등 대통령의 개인적인 필요를 보충해 주는 인물쯤으로 여겨졌다. 순방 직전이면 한복 디자이너 등을 대동하고 평일에도 청와대에 들어왔다. 그 외에는 일요일에만 혼자서 들어왔다. 일요일 출입과 관련, 한 전직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 일정이 평소 얼마나 많고 바쁜데, 평일에 들어올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면서 “평일에 출입했다가는 보는 눈이 많아 금방 알려질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가 초기에 조심성을 보인 또 하나의 사례는 관저 화장실 이용 문제다. 처음에는 내실이 아니면 관계자들도 관저 화장실을 사용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최씨는 관저에서 낯선 관계자들과 눈이 마주치는 것이 꺼려졌는지 어느 때부터 화장실 사용을 안 했다. 그러나 최씨의 조심스러움은 오래가지 못했다. 목소리도 커지고, 주변을 의식하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대통령 관저인데, 이것저것 관여하고 자기 집처럼 굴며 ‘청와대 사람들’을 귀찮게 한 것 같다”고 한 인사는 진단했다. 알려진 것과 달리 ‘최씨가 잠을 자고 갔다’는 주장에 수긍을 한 이는 없었다. “‘청와대 사람들’이 말들을 안 해서 그렇지 그럭저럭 돌아가는 내용들은 대강 안다. 청와대가 그런 곳은 아니다. 정윤회를 봤다는 사람도 못 봤다”고 했다. 청와대에는 ‘사슴도, 청설모도 비표가 있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정직원도 비표 없이는 출입이 까다롭다는 얘기이다. 그러나 최씨는 유일한 예외였다. ‘101경비단 소속 경찰들이 최씨의 진입을 제지하다가 2014년 초 경질됐다’는 일부 보도가 있었으나, 당시 인사는 다른 이유에서 이뤄졌다는 것이 정설이다. 부속실 차량을 이용했기 때문에 최씨는 ‘청설모도 소지의 의무가 있는’ 비표 없이 청와대를 드나들었다. 청와대의 한 인사는 “청와대 출입 공무원은 비표 없이는 주민등록증을 맡겨야 하고 비표를 잃어버리면 감봉 조치까지 내려지는데…”라며 말을 흐렸다. 특별취재팀
  • [단독] 최순실, 일요일 저녁마다 대통령 관저 드나들었다

    [단독] 최순실, 일요일 저녁마다 대통령 관저 드나들었다

    독대 추정… 문고리 3인방도 만나 ‘정윤회 사태’ 6개월만 출입 안 해 최순실씨가 정기적으로 일요일 저녁 청와대를 들른 것으로 서울신문 취재 결과 2일 최종 확인됐다. 청와대 및 경찰, 여권, 최씨의 측근들 말을 종합하면 최씨는 박근혜 대통령 집권 초기부터 청와대 대통령 관저를 드나들었다. 최씨는 정권 출범 초기에는 시내 S호텔에 자신의 차를 주차시켜 놓은 뒤 청와대에서 마중 나온 차를 타고 청와대를 출입했다. 그러나 1년쯤 지나고부터는 최씨는 자신의 차를 직접 몰고 청와대 경내로 들어왔다. 출입구는 지금까지 알려진 것과는 달리 정문(11문)이 아닌 영빈관 쪽 시화문이었다. 최씨를 이동시킨 것은 이영선 청와대 부속실 행정관이 대개 전담했다. 최씨는 일요일마다 대부분 들어오다 ‘정윤회 문건’ 사건이 터진 2014년 11월 말부터 6개월가량은 출입하지 않았다. 이때는 최씨의 남편인 ‘정윤회씨가 청와대 차량을 이용, 청와대를 출입해왔다’고 알려졌었다. 최씨는 오후 5~6시 사이 고정적인 시간대에 들어왔으며 오후 8~9시쯤 나갔다. 최씨가 들어오는 일요일 저녁에는 대부분 비서관 3인방이 관저에 모였으며 최씨와 대화를 나눴다. 이와 같은 사실은 “관저와 관저 주변을 담당하는 경호 공무원과 청소 및 식당 담당 기능직 직원들 사이에서는 대강 널리 알려진 사실들”이라고 한 인사는 서울신문에 증언했다. 이 인사는 “최씨는 단 한 차례도 잠을 자고 간 적은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최씨는 대부분 대통령을 독대한 것으로 추정되나 대통령과 식사는 함께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도 말했다. 최씨는 일요일에는 항상 단독으로 들어왔으며 평상시 출입은 삼갔다. 단 해외 순방을 앞두고는 의상 등의 문제로 평일에 몇몇 사람을 대동하고 드나들기도 했다. 특별취재팀
  • [단독] 최순실, 매주 일요일 저녁때 靑 대통령 관저 드나들었다

    [단독] 최순실, 매주 일요일 저녁때 靑 대통령 관저 드나들었다

    오후 5~6시 들어가 8~9시 나와‘문고리 3인방’ 만나 대화 나눠대통령 독대 추정… 식사는 안해 최순실씨가 정기적으로 일요일 저녁 청와대를 들른 것으로 서울신문 취재 결과 2일 최종 확인됐다. 청와대 및 경찰, 여권, 최씨의 측근들 말을 종합하면 최씨는 박근혜 대통령 집권 초기부터 청와대 대통령 관저를 드나들었다. 최씨는 정권 출범 초기에는 시내 S호텔에 자신의 차를 주차시켜 놓은 뒤 청와대에서 마중 나온 차를 타고 청와대를 출입했다. 그러나 1년쯤 지나고부터는 최씨는 자신의 차를 직접 몰고 청와대 경내로 들어왔다. 출입구는 지금까지 알려진 것과는 달리 정문(11문)이 아닌 영빈관 쪽 시화문이었다. 최씨를 이동시킨 것은 이영선 청와대 부속실 행정관이 대개 전담했다. 최씨는 일요일마다 대부분 들어오다 ‘정윤회 문건’ 사건이 터진 2014년 11월 말부터 6개월가량은 출입하지 않았다. 이때는 최씨의 남편인 ‘정윤회씨가 청와대 차량을 이용, 청와대를 출입해왔다’고 알려졌었다. 최씨는 오후 5~6시 사이 고정적인 시간대에 들어왔으며 오후 8~9시쯤 나갔다. 최씨가 들어오는 일요일 저녁에는 대부분 비서관 3인방이 관저에 모였으며 최씨와 대화를 나눴다. 이와 같은 사실은 “관저와 관저 주변을 담당하는 경호 공무원과 청소 및 식당 담당 기능직 직원들 사이에서는 대강 널리 알려진 사실들”이라고 한 인사는 서울신문에 증언했다. 이 인사는 “최씨는 단 한 차례도 잠을 자고 간 적은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최씨는 대부분 대통령을 독대한 것으로 추정되나 대통령과 식사는 함께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도 말했다. 최씨는 일요일에는 항상 단독으로 들어왔으며 평상시 출입은 삼갔다. 단 해외 순방을 앞두고는 의상 등의 문제로 평일에 몇몇 사람을 대동하고 드나들기도 했다. 특별취재팀
  • 청라 시티타워 건설, 인근 수익형 오피스텔 개발 프리미엄 기대

    청라 시티타워 건설, 인근 수익형 오피스텔 개발 프리미엄 기대

    1인 가구가 급증하면서 소형 오피스텔이 새로운 주거시설로 떠오르고 있다. 이에 최근 신규로 공급되는 오피스텔은 아파트에 버금가는 인테리어와 주거시스템을 갖춰 소비자들의 다양한 주거환경 니즈에 대응하고 있다. 이러한 시대의 변화에 투자자들은 수익형 오피스텔을 눈여겨보고 있다. 1%대 저금리 시대에도 상대적으로 금리영향을 적게 받으며 매달 임대료를 받아 환금성에도 유리하기 때문이다. 또한 대형 개발 사업이 진행되는 지역의 오피스텔은 향후 프리미엄도 기대할 수 있어 현재와 미래를 동시에 대비할 수 있는 좋은 투자처로 평가 받고 있다. 최근 개발사업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신도시 중에서는 인천경제자유구역(IFEZ) 내 청라국제도시를 꼽을 수 있다. 이 지역 내에서는 청라 시티타워 건설이 뜨거운 감자로 부상했다. 청라 시티타워는 호수공원의 중심 3만3,058㎡에 높이 453m의 초고층빌딩으로 지어질 예정이며 지난달 20일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청라 시티타워 주변 복합시설개발 프로젝트 사업자로 보성산업 컨소시엄을 선정함으로써 청라 시티타워는 본궤도에 올랐다. 이 같은 소식에 인근 부동산 시장에 훈풍이 불고 있다. 현대BS&C(현대비에스앤씨)가 청라 중심지에서 선보인 복합형 오피스텔 ‘청라 현대썬앤빌 더테라스’ 역시 청라 시티타워 건설 소식과 함께 분양에 활기를 띠고 있다. 이 오피스텔은 청라 내에서도 인구 집결지라 할 수 있는 커낼웨이 인근에 들어서며, 주거형오피스텔 518실, 테라스하우스텔 332실의 총 850실이 공급된다. 전 실 소형타입(전용면적 23~56㎡) 위주로 구성돼 비교적 소자본으로 분양 받을 수 있다. 층 수는 지하 5층~지상 28층이며, 현재 일부 타입이 마감된 가운데 C타입, F타입, A타입이 선착순 동, 호 지정 분양 중이다. 청라 현대썬앤빌 더테라스는 전 실에 테라스가 설치돼 탁 트인 공간에서 주변 조경시설을 조망할 수 있다. 또한 하층부에는 상업시설 240호가 공급될 예정으로, 슈퍼마켓, 세탁소, 식당 등 생활편의시설을 가까이 누릴 수 있다. 이밖에도 북카페와 키즈카페, 영화감상실 등 입주민 편의를 위한 커뮤니티 시설이 다양하게 마련된다. 특히 청라 지역의 경우 하나금융타운, 차병원 의료복합타운, 로봇테마파크, 신세계 복합쇼핑몰 등 대형 개발사업들이 진행되고 있다. 단지 인근에는 제2외곽순환도로가 개통될 예정으로 타 지역간 이동이 편리해질 전망이다. 또한 지하철 7호선 커낼웨이역이 개통될 예정으로 최근 청라시티타워 건설이 가시화 되면서 지하철 7호선 연장구간 예비타당성 조사도 긍정적인 결과로 이어질 전망이다. 분양 관계자는 2일 "1인 가구가 증가하면서 부동산 시장에도 소형 오피스텔 수요가 늘어남에 따라 투자자들도 소형 주거시설에 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며 "청라 호수공원, 커낼웨이 중심으로는 유동인구와 유입인구가 증가하고 있고 대형개발사업들이 진행됨에 따라, 오피스텔 임대수익의 안정화는 물론 프리미엄까지 기대할 만하다"고 전했다. 청라 현대썬앤빌 더 테라스의 주택홍보관 위치는 인천시 서구 경서동이며 방문객의 안전과 원활한 관람을 위해 방문 전 대표번호를 통해 방문예약을 받고 있다.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 맑은 가을햇살 느끼며 옛 ‘경성 월스트리트’를 걷다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 맑은 가을햇살 느끼며 옛 ‘경성 월스트리트’를 걷다

    서울신문은 서울미래유산을 시민들과 공유하기 위해 서울시·문화지평과 함께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을 매주 토요일 진행한다.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 홈페이지(futureheritage.seoul.co.kr)에서 답사 코스 확인과 참가신청을 할 수 있다. 오는 5일 답사는 ‘인권을 생각하며 걷는 남산둘레길’을 주제로 이필용·손안나 서울미래유산해설사가 진행한다. 서울미래유산 중에서 긴급한 보호조치가 필요한 것들은 ‘위기의 미래유산’으로 지정할 수 있다. 관리주체가 없어서 보전이 어렵거나 적극적인 수리·보수가 필요할 경우 미래유산 보존위원회 심의를 거쳐 선정한다. 이 경우 소유자는 적극적인 개방을 통해 시민들과 유산의 가치를 공유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다. 최근 문화지평이 답사하는 과정에서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된 성우이용원의 이남열 대표이발사는 건물이 노후해 수리가 시급한 실정이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건물은 실제로 삐딱하게 기울어져 있고 비가 많이 오면 빗물이 줄줄 샌다고 한다. 또 다른 서울미래유산인 공씨책방의 경우 건물주가 퇴거를 요청하면서 미래유산으로서의 공유가치가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 이들 모두 위기의 미래유산인 셈이지만 먼저 미래유산 보존위원회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서울 남대문부터 광교까지 뻗은 남대문로는 일제강점기 조선은행(한국은행)을 비롯해 수많은 은행이 밀집했던 금융 1번지였다. 13회차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은 ‘경성 월스트리트를 가다’를 주제로 지난달 15일 오전 10시부터 세 시간 가까이 진행했다. 이 해설사는 이런 역사적 배경을 바탕에 두고 해설하는 한편 곳곳에 흩어져 있는 서울미래유산들을 꼼꼼하게 챙겼다. 전형적인 가을 날씨로 하늘이 맑은 데다 도심 한복판 평지를 걷는 편안한 코스라서 다른 때보다 많은 40명 가까운 인원이 답사에 참여했다. 이날 참석한 선현호 아시아나국제특허법률사무소 관리부장이 어린아이 주먹만 한 약식 30여개를 싸와 답사팀 간식으로 나눠주었다. 약식은 선씨의 부인이자 이바지 음식 전문가인 강기숙씨가 아침에 손수 만들어 보낸 것이라 온기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국보 1호 숭례문(남대문) 옆 작은 공원에서 답사팀은 모였다. 2008년 2월 10일 설날 연휴에 방화로 완전히 불타 버린 숭례문은 2013년 5월 지금의 모습으로 복구돼 일반에 공개됐다. 화재 전에는 도로 위에 섬처럼 서 있어서 일반인의 접근이 어려웠지만 지금은 공원화되면서 출입이 자유롭다. 문화재 관리의 소중함을 교훈으로 간직한 숭례문에서 이번 답사 여정이 시작됐다. 이 해설사는 “오늘 답사길은 시내 한복판이라서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하고 친밀하게 느껴지는 곳”이라며 “서울에서 보기 드물게 가로세로 동서남북형 도로와는 다르게 소공로처럼 대각선 도로와 연결되는 특징이 있다”고 말했다. 남대문에서 소월로를 따라 남산 쪽으로 조금 오르면 남산육교 고가차도가 나온다. 1961년 말 만들어진 일반교량으로 오래된 구조물이라는 점에서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됐다. 남대문시장 안에는 은호식당이란 노포가 있다. 1932년 ‘은성옥’이란 상호로 문을 연 꼬리곰탕집이다. 한국전쟁 때는 부산 피란처에서도 임시로 문을 열었다가 휴전 후 지금 자리에 건물을 짓고 재개업했다. 현재 4대째인 정용식씨가 운영하고 있고 서소문, 여의도에 직영점이 있다. 같은 지역에서 84년 동안 운영되면서 남창동 일대의 시대 흐름을 고스란히 보여 주는 장소라는 이유로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된 곳이다. 남대문시장 전체도 서울미래유산이다. 1414년 정부 임대시전으로 남대문 근처에 가게를 지어 상인들에게 빌려준 게 시장의 시초다. 종로 시전과 동대문 이현과 함께 남대문 칠패는 조선 내내 주요한 시장의 기능을 했다. 1608년(선조 41년) 선혜청이 지금의 남창동에 설치되면서 지방의 특산물 등을 매매하는 시장이 자연스럽게 형성됐다. 1911년 3월 을사오적 중 한 명인 내부대신 송병준이 조선농업주식회사를 설립하면서 남대문시장은 정식 근대시장으로 자리매김했다. 이 해설사가 남대문시장 초입의 선혜청 표지석 앞에서 답사팀을 멈춰 세웠다. 17세기 초 조선시대 대동법 실시에 따라 대동미(米)·대동포(布)·대동전(錢) 출납을 관장한 관청이 있던 자리다. 쬐끔 과장해서 월스트리트는 이미 17세기 조선조부터 시작된 셈이다. 대동법은 조선시대에 공물(貢物)을 쌀로 통일해서 바치게 한 납세제도다. 벼농사가 어려운 산간지방이나 쌀 납부가 어려운 경우에는 베·무명(대동포), 돈(대동전)으로 대납할 수 있었다. 선혜청의 의미는 대동법 실시 이후 등장한 공납 대납업자들이 산업자본가로 성장해 수공업과 상업발달을 촉진시켰다는 데 있다. 이렇듯 돈이 흘러가는 곳이다 보니 자연스레 운송활동도 증대하면서 교환경제가 발달하게 됐다. 서울역이 남대문시장 인근에 위치한 이면에는 아마도 이런 이유가 큰 몫을 했을 것이다. 남대문 2층 한옥 상가벽돌 쌓아 올린 한·양 절충식 건물 남대문 지하보도 역시 서울미래유산이다. 정확한 준공 시기는 알 수 없고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남대문 4가 대로변에는 생소하게 한옥 기와를 이고 선 2층 건물 공사가 한창이다. 바로 남대문로 2층 한옥상가다. 올해 문화재청 등록문화재 제662호로 등록됐다. 1910년대 만들어진 벽돌조 한양(韓洋) 절충식 건물로 전통적인 단층 목조 건축 양식에서 벗어난 벽돌조란 특징을 갖는다. 업무상 중국 출장이 잦은 김유림(40·넥스나인 대표)씨는 “중국 VIP 및 비즈니스 고객들이 한국을 방문하면 남대문 일대 관광을 매우 좋아하는데 그동안 흔하게 알려진 것만 설명하는 데 그쳤다”며 “이번 답사를 통해 새롭게 알게 된 역사적 사실을 중국인들에게 보다 풍성하게 설명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이 해설사는 답사팀을 북창동 먹자골목을 통과해 플라자호텔 쪽으로 이끌었다. 길 건너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는 때마침 수문장 교대식이 한창이다. 수문장 교대식은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국립극장장을 지낸 허규씨가 병상에서 아이디어를 내 관광 콘텐츠로 발전시킨 ‘작품’이다. 즉 역사에 이런 수문장 교대식은 없었다. 명동 나석주 열사 동상 나 열사가 동양척식회사에 폭탄 던진 곳 이 해설사는 “대한문 앞 도로는 대한제국을 선포한 고종황제가 근대적 도시 발전을 도모하기 시작한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며 “환구단을 거쳐 소공로를 뚫어 광화문으로 이어지는 길을 개설했고 남대문으로 이어지는 도로 역시 구체화시켰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도로의 확장과 직선화가 사회 구성원 간 소통의 부재라는 예기치 못한 부작용을 초래한다고 지적했다. 이 해설사는 “도로가 넓어지면 교통은 편리해지지만 사람이나 차가 빠르게 이동하면서 교류가 어려워지게 된다”며 “이는 도로의 발달이 사람보다 자동차에 우선권을 주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도로는 사람들이 담소를 나누고 편리하게 걸어가면서 정보를 얻고 교류할 수 있는 구조로 만들어져야 사람 간 교류가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환구단 일대 호텔가일제강점기 경성 대표적 상업지역 눈을 조선호텔 쪽으로 돌리자 사적 157호 환구단이 나타났다. 2007년 수유리 그린파크호텔 재개발 과정에서 호텔 정문으로 사용하고 있던 문이 환구단 정문이라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이전 복원된 사연을 갖고 있다. 환구단 일대는 지금도 각종 호텔이 빼곡하지만 일제 강점기에도 경성을 찾는 외국인이 묵는 호텔이 많았다. 교통이 편리하고 물산이 풍부한 경성의 대표적인 상업지역이었던 셈이다. 백화점과 양판점이 들어서면서 막대한 시장 자금이 돌자 자연스레 금융시설도 들어섰다. 한국은행 화폐박물관 자리에는 조선은행, 신세계백화점 옆 건물인 SC제일은행에는 조선저축은행, 한국은행 소공별관 자리는 조선상업은행, 롯데 애비뉴엘에는 조선신탁주식회사가 있었다. 그 바로 옆 롯데백화점은 식산은행, 길 건너편에는 제일은행, 외환은행 자리엔 동양척식주식회사가 있었다. 이 밖에도 시청 을지로별관에는 제국생명, 신한은행 광교빌딩은 한성은행, 광교약국 자리에는 동일은행 등이 있었다. 우리은행 종로지점은 조선상업은행 종로지점으로, ‘1924년 8월에 문을 열었다’는 동판이 벽에 부착돼 있다. 이렇게 금융회사가 밀집해 있었던 역사로 인해 ‘경성의 월스트리트’였다는 표현이 자연스러운 거리다. 한국은행 앞 사거리부터 을지로입구역까지 남대문로 일대를 아우른다. 한편 소공로는 조선총독부와 경성부청을 대각선으로 잇는 짧은 도로였지만 모던보이들이 즐겨 찾던 신식 양복점이 즐비했다. 소공로 중간쯤 있는 서울미래유산 해창양복점은 1945년 문을 열었다. 부산에서 양복점을 운영하던 창업주 이용수씨가 소공동으로 이전 운영하다가 1958년 아들 이순신씨에게 가업을 넘겼다. 1995년 재단사로 일하던 한창남씨가 경영에 참여한 이후 2004년 완전히 인수했다. 지금은 일대가 부영그룹에 의해 개발되면서 조선호텔 건너편으로 이전했다. 소공로 해창양복점 거리모던보이들 즐겨 찾던 신식 양복점 을지로입구역에서 명동으로 들어가는 하나은행 옆 골목 초입에는 나석주 열사의 동상이 있다. 이곳은 1926년 12월 나 열사가 동양척식주식회사에 폭탄을 던지고 일본 경찰과 총격전 중 자결한 곳이다. 답사단은 광교 위에서 이번 답사를 정리했다. 고등학생인 두 딸과 함께 참석한 이은순씨는 “오늘 답사를 하면서 그동안 익숙하게 들어 왔지만 자세히 알지 못했던 사실들을 새로이 알게 됐다”며 “그 안에 숨겨진 이야기를 통해서 앞으로 우리가 사는 도시에서 따뜻한 사람들의 체온을 느끼고 싶어졌다”고 후기를 전했다. 이 해설사는 “이번 답사 지역은 조선후기와 대한제국, 일제강점기를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150여년간의 수많은 역사적 사실들이 우리들 기억 속에 내재해 있는 대표적인 곳”이라며 “일제 치하 경성 금융가, 도로 확장이 주는 사람들 사이 소통의 문제를 엮어서 진행해 봤다”고 끝맺음을 했다. 을지로입구에서 답사를 마무리한 팀 일부는 청계천을 따라 을지로4가까지 걸었다. 그곳에 있는 서울미래유산인 춘천막국수집에 들러 막국수와 돼지고기 보쌈을 나눠 먹으며 훈훈하게 답사를 정리했다. 유성호 ‘문화지평’ 대표
  • 부산 달맞이 고개에도 100억대 최순실 여동생 부부 건물

    부산 달맞이 고개에도 100억대 최순실 여동생 부부 건물

    국정농단 중심에 선 최순실의 여동생 부부가 서울 강남 일대의 요지뿐 아니라 부산 해운대 달맞이고개에도 상가 빌딩을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상가건물은 앞에 동해가 한눈에 들어오고 맑은 날에는 멀리 쓰씨마섬(대마도)의 윤곽이 뚜렷하게 보이는 등 해안 경치가 매우 뛰어난 곳에 자리잡고 있다. 지역 부동산업계는 이 일대의 땅값이 3.3㎡당 3000~4000만원에 달해 이 상가건물의 경우 땅값과 건물 등을 포함해 100억원대에 이를 것으로 평가했다. 1일 부산해운대구청 등에 따르면 이 건물 5층에는 최순실씨의 여동생 최순천씨가 대표로 있는 가구·외식업체 ㈜에스플러스인터내셔널이 지난 2012년 7월부터 이탈리아 식당을 운영 중이다. 에스플러스인터내셔널은 이 건물 4층에서 고급 빵집을, 6층에는 갤러리도 보유하고 있다. 또 해당 건물의 1~3층은 최순천 씨의 남편 서 모 씨가 대표인 ㈜서양네트웍스의 아동복 매장이 자리 잡고 있다. 부산에서도 복합 라이프 공간을 지향하면서 문을 연 ‘에스플러스’는 아이 옷이나 가구, 그림, 고급 빈티지 소품을 감상할 수 있고 식사도 가능한 데다, 유명 연예인까지 방문하면서 유명해졌다. 특히 4층 빵집에서는 엄마와 아이가 함께 빵을 만드는 쿠킹 클래스도 운영돼 마린시티 등 이 일대 부유층 주부들이 많이 찾는 곳으로 알려졌다. 한편,이 건물 등기부등본에는 부산 해운대구 중동 달맞이고개 해월정 맞은편에 대지 644.6㎡ 건평 1249㎡, 지하3층, 지상 5층짜리 규모의 상가 건물이다. 하지만 건물 안내판에는 6층짜리 건물로 표기돼 있다. 건물 소유주가 에스플러스인터내셔널로 등재돼 있다. 지난 2012년 8월 31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 서양네트웍스로 소유권이 최초 등기됐다가 2012년 10월 17일 서양네트웍스에서 분할된 회사 ㈜퍼시픽에스앤씨로 소유권이 이전됐다. 이어 올해 9월 30일 에스플러스인터내셔널이 퍼시픽에스앤씨를 합병하면서 이 건물의 최종 소유주가 됐다. 건물의 층수가 8층이 아니라 6층으로 표기된 것과 관련해 구청은 건물이 경사지에 지어져 있어 지상 1층으로 보여도 건축법상 지하로 분류돼 법적으로 문제되지 않는다고 했다. 구청 직원은 “산비탈에 지어진 건물은 50.1%가 땅에 묻혀도 등기부등본상에는 지하층로 규정하지만 건물소유자가 영업편의 등을 위해 임의로 1층으로 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고 말했다. 부산 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 계략으로 재력 있는 음식점 주인을 속여 거액 뜯어낸 사기꾼에게 징역 1년 선고

    대전지법 형사1단독 이경훈 부장은 1일 계략으로 재력가를 속여 돈을 뜯어내 사기 혐의로 기소된 A(49)씨에게 징역 1년을 선고했다. A씨는 2012년 7월 초 평소 골프를 치면서 가까워진 유명 식당 주인 B씨에게 ‘내가 경비를 댈 테니 골프도 치고 아가씨와 놀자’고 꼬드겨 중국 선양으로 데려갔다. B씨는 같은 달 14일 A씨와 함께 주점에서 술을 마시고 한 호텔에서 주점 여종업원과 성관계를 가진 뒤 여성의 권유로 약물을 흡입했다. 잠시 후 중국 공안이 나타나 B씨를 상대로 간이소변검사를 하고 공안당국으로 연행해 조사한 뒤 이튿날 풀어줬다. A씨는 호텔 방에서 울고 있는 B씨에게 “중국에서 사업하면서 알아놓은 사람이 있으니 뇌물을 써서 해결하자”고 제안했다. B씨는 A씨의 요구대로 사건 무마비로 다음날 1억 7500만원을 건넸고 10여일 뒤 3000여만원을 추가로 줬다. 하지만 모든 게 A씨가 꾸민 계략이었다. A씨는 출국 전 조선족 C씨에게 2000만원을 줘 주점 여종업원과 공안을 매수하도록 하고 B씨를 데려가 이 같은 짓을 저질렀다. 이경훈 부장은 “사람과의 신뢰관계를 악용해 함정에 빠뜨린 뒤 고액을 뜯어내고 4년간 도피하는 등 죄질이 나쁘다”고 밝혔다. 대전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 최순실 곰탕 사랑…유럽 도피생활 중에도 인스턴트 ‘사골곰탕’

    최순실 곰탕 사랑…유럽 도피생활 중에도 인스턴트 ‘사골곰탕’

    박근혜 정부의 ‘비선 실세’로 지목돼 국정 농단 의혹을 받고 있는 최순실(60)씨의 ‘곰탕 사랑’에 1일 온라인 상에서 네티즌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최씨는 지난 31일 검찰에 출석해 조사를 받다가 저녁 시간에 곰탕을 시켜 한 그릇을 거의 다 비운 것으로 알려졌다. 최씨는 당초 검찰에 출석하면서 공황장애 등 건강이 좋지 않다고 밝혔고,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곰탕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운 것이다. 최씨는 유럽에서 도피생활을 하던 중에도 곰탕을 즐겨 먹은 것으로 보여진다. 지난달 20일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최씨 모녀가 머물렀던 것으로 추정되는 호텔 식당 안에 전기밥솥이 있었고 지하 창고 쓰레기봉투에 사골곰탕 봉투 2개, 김, 커피믹스 등 한국 음식의 포장지들이 들어 있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여승(女僧)되어 만난 첫 가을은…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여승(女僧)되어 만난 첫 가을은…

    "사바(娑婆·세상)는 고(苦)의 세계니까 뜻도 두지 말고, 마음도 두지 말고, 돌아도 보지 말아라." 비구니 스님들의 백흥암 수행 생활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길 위에서’ 속‘영운스님’에게 보낸 어머니의 편지 글귀였다. 영화는 끝까지 담백 진중하다. 미국 유학에서 돌아와 교수 임용 면접을 앞두고 돌연 출가한 ‘엄친딸’ 상욱 행자, 어렸을 때 부모님을 잃고 스님이 될 운명인 ‘동진 출가’의 업(業)을 안은 선우 스님. 3년 동안 하루 한 끼, 극도의 고행 수행인 무문관(無門關)을 향해 떠나는 지엄 스님, 인터넷 검색을 통해 불교를 접한 신세대 활기 발랄 민재 행자 등의 수행과 고민을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사바세상의 고통을 맘으로 느끼게 해 준다. 2016년 10월 현재, 대한민국은 한 여염집 여인네의 천격(賤格)이 만든 사바세계 속 고통을 온 국민이 감내하는 중이다. 가을 나들이 한 번 선뜻 나서기가 맘 무거운 이때, 극락정토 대덕(大德) 여승이 되고픈 맑고 고운 언니들(?)의 절집에서 위로를 받는 것은 어떨까? 김천 청암사다. ● 장희빈에 쫓겨난 인현왕후의 한(恨)이 서린 곳 각설(却說), 객지 밥 좀 얻어먹고 다녔다는 여행 고수들에게 물어본다. 영남권에서 가을 절경 빼어난 곳 하나만 알려주셔요. 네? 경상북도 김천에 있는 청암사는 가 보셨나요? 정답은 이미 나왔다. 그러면서도 꼭 두 개의 사족을 귀에 달아준다. ‘비구니 스님들 계시는 곳입니다’와 '계곡길 운전 조심하십시오' 라고. 청암사는 경상북도 김천시 증산면 평촌리 불령산(佛靈山) 깊디 깊은 계곡 아래 터를 잡은 사찰로 대한불교 조계종 제 8교구 직지사의 말사이다. 그리고 조금은 특이한 절집이다. 바로 여승들의 거처이면서 비구니, 사미니를 배출하는 불교 강원(講院)의 맥을 잇는 율원(律院), 즉 승가대학으로 운영되는 절이다. 청암사를 방문하기 전 비구니, 사미니같은 기본 용어는 알아둘 필요가 있다. 불교에서 비구(比丘)라는 말은 출가해서 구족계를 받은 남자를 가리키는 단어이다. 비구니(比丘尼)는 산스크리트어 ‘bhikkhuni’를 음차한 낱말로 비구와 동일한 절차를 밟은 여성을 뜻하는 표현이다. 한편 사미(沙彌)라는 표현은 ‘samanera’의 음역이다. 갓 출가한 승려, 견습승, 일정한 교육을 끝마치면 비구가 될 수행자를 의미하는 말이며 여자는 사미니(沙彌尼)라 부른다. 청암사는 통일신라시대인 859년(헌안왕 3)에 도선국사(827~898)가 창건한 절로 이후 조선시대까지 거의 연혁이 내려오지 않은 심산구곡 작은 사찰이었다. 그러다 역사의 뒤안길에 얼굴을 보이는 때가 있었다. 바로 조선 숙종의 둘째 왕비인 인현왕후가 이 곳에 은거하는 일이 생기게 된다. 숙종 15년(1689년) 장희빈의 무고로 폐서인(廢庶人)이 된 왕후가 3년간 눈물을 흘리며 목숨을 부지하였던 곳이 청암사다. 이러한 인연으로 청암사는 이때부터 궁녀들의 은거처이자 여인들의 발원(發願) 장소로 명맥을 잇게 된다. 또한 청암사는 학풍 높은 불교 강원으로도 이름을 드날리기도 한다. 서정주 시인의 스승인 박한영 스님, 고봉 선사 등 우리나라 대표적인 학승들의 강론처로 알려져 공부 전통은 지금까지도 내려온다. 이는 전국에 유명한 비구니 승가대학인 동학사(공주), 운문사(경북 청도), 봉녕사(수원)와 더불어 청암사 역시 손꼽히는 비구니 사찰로 유명한 이유이기도 하다. ● 궁녀(宮女)들의 시주로 다시 일어나 청암사는 화재가 자주 일어났던 절로도 유명하다. 조선 말기까지 늘 화재로 절이 중건이 되는 일은 반복되었고 1911년 9월에는 대화재가 일어나 전각이 전부 불타버리는 일도 있었다. 이렇듯 늘 화재로 사찰내 법당이나 온전한 요사채가 드물었다. 이런 청암사가 다시금 크게 중건되는 일이 있었다. 바로 또 한 여인과의 인연 때문이었다. 청암사 곳곳 절벽과 바위에는 ‘崔松雪堂’(최송설당)이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다. 최송설당은 어린 시절 외가가 홍경래 난에 연루되어 힘든 삶을 살다 39세에 불교에 귀의 정진하였다. 이후 상궁이 되는 변신을 통해 영친왕의 보모가 되었고 이후 귀비(貴妃)에 봉해지고 고종으로부터 송설당이라는 호를 하사받았다. 그녀는 1931년 전 재산을 정리하여 지금의 청암사를 재건하였고, 당시 주지였던 대운스님 또한 많은 궁녀들로부터 시주를 구해 두 차례에 걸쳐 청암사를 크게 중건할 수 있었다. 여인들과의 인연이 깊디깊은 곳은 분명하다. 청암사는 절 자체가 아름다운 곳이어서 어디를 보아도 가을 흥취를 넉넉히 느낄 수가 있다. 우선 절의 초입에 있는 맞배지붕의 일주문을 지나 앞으로 곧장 나아가면 천왕문이 나온다. 천왕문을 넘어서면 청암사의 명물인 우비천(牛鼻泉)이 있다. ‘소의 콧등에서 나오는 샘’이라는 뜻의 우비천은 청암사의 지세가 소가 왼쪽으로 누운 와우형(臥牛形)이어서 나온 말이다. 예로부터 부자가 되게 해준다는 속설이 있어 청암사에서 가장 유명한(?) 명물이 되었다. 앞으로 곧장 나아가면 대웅전과 범종각, 진영각, 육화료 등의 건물이 눈에 띈다. 그 중 육화료(六和寮)는 현재 청암사승가대학의 중심인 대방채로 쓰이고 있다. 또한 언덕 위에는 과거 인현왕후가 머물렀다고 전해지는 궁궐 건축 양식의 극락전(極樂殿)과 왕후의 복위를 기원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보광전(寶光殿)이 있다. 특히 보광전 내부에는 한국 사찰에서는 만나기 힘든 42개의 손을 지닌 관음상이 있어 참배객들의 불심을 자극한다. 청암사의 가을은 참으로 고즈넉하면서도 맑다. 그러하기에 비구니 스님들의 생활 도량으로서는 제격인 듯하다. 올 가을 청암사에서 감히 근접할 수 없는 불심으로 여승(女僧)이 된 우리네 언니들의 곧은 맘을 한껏 응원하는 것도 좋을 듯 하다. <청암사에 대한 여행 10문답> 1. 꼭 가봐야 할 정도로 중요한 여행지야? -가을 경치 아름다운 곳이 많다. 고창의 선운사나 인근의 직지사도 훌륭하지만, 불령산 계곡 아래 호젓한 가을 경치를 조용히 누릴 심사라면 이 곳을 추천한다. 주말도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곳이다. 2. 누구와 함께? -연인들. 무흘계곡을 돌아 나가는 계곡길 드라이브와 함께. 없던 사랑도 만들어질 듯. 3. 가는 방법은? -깊은 산속이다. 김천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청암사로 오는 버스는 오전 7시 30분, 11시, 오후 4시 20분이며 청암사에서 김천 시외버스 터미널로 돌아오는 버스는 오전 9시 15분, 오후 1시 25분, 6시 15분이다. 주소는 경상북도 김천시 증산면 평촌2길 335-48번지. 4. 감탄하는 점은? -가을 나들이 한창인 주말인데도 관람객들이 많지 않다는 사실. 비구니 스님들의 표정들이 하나같이 밝다는 점. 그리고 불령산 계곡의 깊디 깊은 가을 운무들. 청암산 들어오는 길에 비단처럼 펼쳐지는 무흘계곡. 5. 명성과 내실 관계는? -한 번도 안 온 사람들은 전혀 모르겠지만, 한 번이라도 와 본 사람들은 매 가을마다 반드시 들리게 되어 있는 곳이다. 6. 꼭 봐야할 장소는? -우비천, 육화료, 극락전, 보광전, 부도탑 7. 먹거리 추천? -김천 지역이 의외로 먹거리가 풍부하다. 전라도와 경상도의 중간에 위치하기 때문이다. 우선 가장 유명한 곳은 방송에서도 소개되어 유명세가 전국적인, 삼거리식당이라고 불리는 파란 간판의 '장영선원조지례삼거리불고기식당'(054-435-0067), '지례흑돼지식육점식당'(054-435-0011), '호박해물칼국수'(054-430-6875) 등이 있다. 8. 홈페이지 주소는? -www.chungamsa.org 9. 주변에 더 볼거리는? -김천은 직지사로 유명하다. 청암사 가는 길에 끝없이 펼쳐진 무흘계곡도 추천. 10. 총평 및 당부사항 -김천 청암사는 비구니, 사미니, 행자 스님들이 기거하며 공부하는 집절이다. 따라서 조용히! 조용히! 글·사진 윤경민 여행전문 프리랜서 기자 vieniame2017@gmail.com
  • [최순실 국정농단 파문] 丁·여야 중진, 崔특검·거국내각 2시간 논의

    정세균(7선) 국회의장이 31일 서울 여의도의 한 일식당에서 4선 이상 여야 중진 16명과 회동을 갖고 최순실 국정농단 파문에 대한 국회 차원의 대응을 모색했다. 2시간 가까이 이어진 만찬에서 중진들은 거국중립내각 구성은 물론 ‘최순실 국정농단 파문’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제 도입 등을 허심탄회하게 논의했다. 회동에는 새누리당 서청원(8선) 김무성(6선) 정병국 나경원(4선), 더불어민주당 이해찬(7선) 문희상(6선) 원혜영 박병석(5선) 박영선(4선), 국민의당 천정배(6선) 정동영(4선) 의원 등 3당 중진들이 참석했다. 김영수 국회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현 시국이 엄중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고, 국회가 중심이 돼 상황을 해결하는 데 함께 노력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나 의원은 “서로 입장을 이해하고 공감대를 좁힐 수 있었고 중진들이 더 역할을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박영선 의원은 “거국중립내각이 헌법, 법률에 나오는 게 아닌 만큼 대통령의 진심 어린 의지를 읽을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가 나왔다”고 밝혔다.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 [단독] 최순실 “10배 비싸게 팔아주겠다” 사업가 수십명 줄 세워

    [단독] 최순실 “10배 비싸게 팔아주겠다” 사업가 수십명 줄 세워

    “나랑 마주 앉는 것도 큰 기회” 崔, 대통령 들먹이고 고자세 카페·홈쇼핑사업 신통치 않자 공공법인 통한 ‘모금’ 선회한 듯 “일단 시작하면 당신이 파는 것보다 10배는 더 받을 수 있다.” 최순실씨는 2013년 전후로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한 중식당 독실에 앉아 수십 명의 사업가들을 줄세워 만나며 이렇게 사업을 제안했다. 이 식당은 2014년 ‘정윤회 문건’ 사건 당시 현 정권 비선 실세들이 이른바 ‘십상시’ 모임을 가졌다고 알려진 장소다. ‘사업가’들 중 대부분은 최씨의 ‘숨은 조력자’로 확인된 데이비드 윤씨를 거쳐 최씨를 만났다.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된 뒤부터 윤씨는 최씨의 지원을 받아 사업 아이템을 확보하느라 애썼다. 패션, 잡화, 요식업, 주방용품 등 다방면에 걸쳐 관련 사업자들을 윤씨가 발굴한 뒤 일정 부분 신뢰가 쌓이면 ‘최 원장과의 면담’으로 이어진다. 최 원장은 자신의 입으로 “이 자리에 마주 앉았다는 것만으로도 큰 기회”라고 얘기하곤 했다. 그러고는 “나는 얼마든 돈을 더 받아 줄 수 있다”며 초고위층을 언제든 고객으로 끌어당길 수 있다는 취지로 상대방을 기죽이곤 했다. 스스로 “내가 최순실”이라며 자랑하기도 했다. 최씨는 ‘대통령’도 자주 들먹였다. ‘청와대에서도 얼마든지 쓰게 할 수 있다. 물건을 사갈 사람도 얼마든지 있다’고 했다. 증언자들의 말을 종합해 보면 최씨는 고영태씨의 가방 브랜드 ‘빌로밀로’ 사례처럼 자체 브랜드도 만들어 대통령이 사용하게 한 뒤 유력인과 부유층 등에게 비싼 값에 팔려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최씨를 면담했던 인사들은 “대통령을 직접 들먹이고, 식당 주인이 정중히 인사하는 모습 등을 보면 기죽지 않을 수 없었다”고 전했다. 한 사업가가 최씨를 만나고 식당을 나가면 뒤에 기다리고 있던 다른 업자가 독실로 들어가곤 했다. 최씨는 강남에 산재한 자신의 건물에 부유층을 상대로 하는 ‘상설 매장’ 등을 설치하는 방안 등을 구상했으나 막상 사업은 신통치 않았다. 2013년 말엔 윤씨를 대표이사로 등재한 법인을 설립해 이탈리아 여행가방 브랜드의 판권을 획득, 2개월 만에 한 TV홈쇼핑 방송으로 1차례 판매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회사 관계자는 “해당 제품의 품질 문제로 방송을 1회밖에 진행하지 못하고 중단했다”고 전했다. 최씨의 주요 아지트였던 강남 논현동의 테스타로싸 카페도 폐업 전 하루에 커피 10잔을 팔지 못했던 날이 많았다고 한다. 결국 최씨와 윤씨는 좀더 확실한 수익 보장을 위해 공공법인을 통해 대기업 자금을 모금하는 쪽으로 사업 방향을 틀고 2015년 미르재단, 2016년 K스포츠재단을 설립한 것으로 보인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 [단독] “데이비드 윤, 박대통령이 獨 갈 때마다 꼭 만나는 사람”

    朴 프랑크푸르트서 대선출마 선언 獨 마이바흐 ‘송도 1조원 사업’ 윤씨 브로커 역할 정황 포착 최순실씨의 ‘숨은 조력자’로 확인된 ‘데이비드 윤’씨는 독일에서 ‘박근혜와 통하는 사람’으로 소개되기 시작하면서 유력자들 사이에서 거물급 인사로 성장해 왔다. 국내 한 대기업 관계자는 31일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2012년쯤 윤씨를 네댓 번 만난 적이 있다”면서 “박근혜 대통령이 대통령 되기 전부터 독일을 갈 때마다 꼭 만나는 사람이라고 소개받았다”고 말했다. 윤씨와 박 대통령의 만남이 공식적으로 드러난 것은 10여년 전이다. 박 대통령이 2006년 당시 한나라당 전 대표 자격으로 독일을 방문했을 때 윤씨가 현지 통역을 맡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통령은 이전에도 사적으로 프랑크푸르트 등 독일을 종종 방문해 온 것으로 전해져 현지에서는 2000년대 초반에도 서로 만났을 것으로 보고 있다. 윤씨는 최순실씨를 통해 박 대통령을 만났고 이후 그의 배경은 ‘대통령’이 됐다. 그의 명성은 그의 출생지인 프랑크푸르트를 중심으로 독일 내 유력자들 사이에서 회자되기 시작했다. 세계 3대 명차 브랜드 중 하나인 마이바흐 가문은 국내 사업 진출을 노리며 한국 쪽 업무대행자를 물색하던 중 윤씨를 소개받았다. 이후 마이바흐코리아는 2019년까지 인천경제자유구역 송도국제도시에 1조원 규모의 마이바흐 비즈니스센터 건립을 추진했고 윤씨가 중간에서 ‘브로커’ 역할과 독일어 통역사 노릇을 했다는 정황도 포착됐다. 또 다른 국내 대기업의 관계자는 “윤씨가 몇 번 만난 후 서류를 가져다주면서 독일 쪽 회사를 인수하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해 검토한 적이 있다. 결국 계약이 성사되지는 못했다”고 전했다. 박 대통령의 ‘프랑크푸르트 사랑’도 윤씨의 입지를 탄탄히 했을 수 있다. 박 대통령은 2006년 9월 프랑크푸르트의 한 한식당에서 17대 대선 출마를 선언했고 2014년 3월 독일 드레스덴에서 대통령의 핵심 통일구상을 발표한 뒤 이례적으로 동포간담회만을 위해 프랑크푸르트에서의 몇 시간짜리 일정을 만들었다. 윤씨는 영화 ‘국제시장’의 주인공을 연상케하는 파독 광부·파독 간호사의 아들이기도 하다. 송수연 기자 songsy@seoul.co.kr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 최순실 검찰 출석, 저녁식사 ‘곰탕 한 그릇’ 다 비워…밤까지 조사 계속

    최순실 검찰 출석, 저녁식사 ‘곰탕 한 그릇’ 다 비워…밤까지 조사 계속

    박근혜 정부의 ‘비선 실세’로 지목된 최순실(60·최서원으로 개명) 씨가 31일 오후 2시쯤 검찰에 출석해 조사를 받고 있다. 검찰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에 따르면 최씨는 서울중앙지검 7층 영상녹화실에서 조사를 받는 중이다. 이날 포토라인에 제대로 서지 않고 인파에 둘러싸인 채 엘리베이터를 타고 청사 7층으로 직행한 최씨는 한웅재 형사8부장과 약 20분간 면담했다. 검찰 관계자는 당시 최씨가 매우 당황해 소위 ‘멘붕’(멘탈 붕괴·큰 정신적 혼란) 상태였다고 전했다. 한 부장검사는 최씨와 관련해 여러 의혹이 제기됐고 온 나라가 이 사건으로 시끄러운 만큼 최씨에게 “책임질 부분이 있으면 책임지고, 억울한 점이 있으면 소명하라”고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한 부장검사는 자신의 쌍둥이 딸 사진을 보이며 최씨에게 “나도 딸이 있다. 독일에 있는 딸을 생각해서라도 이런 의혹이 규명되도록 잘 진술하고 판단하라”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최씨는 자신 때문에 이런 혼란이 생겨 매우 죄송하며 조사를 잘 받겠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수사본부 관계자는 전했다. 면담 이후 한 부장검사 방 옆에 있는 영상녹화실에서 조사가 시작됐고, 5시간 넘게 이어지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현재까지는 큰 문제 없이 조사는 잘 진행되고 있다. 본인도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검찰은 최씨의 건강에 큰 이상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아 보이지만 심장이 좋지 않고 공황장애가 있어 약을 먹어야 한다는 최씨 측 요청에 따라 변호사 입회 상태에서 약을 먹게 하고 있다. 저녁 식사는 근처 식당에서 배달된 곰탕 한 그릇을 거의 비운 것으로 전해졌다. 형사8부가 주로 진행하는 이 날 조사는 밤늦게까지 이어질 예정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최순실 태블릿 PC서 ‘외조카’ 등 가족 사진 발견…중식당서 최씨 생일 파티

    최순실 태블릿 PC서 ‘외조카’ 등 가족 사진 발견…중식당서 최씨 생일 파티

    박근혜 정부의 ‘비선 실세’로 지목된 최순실(60) 씨의 태블릿 PC에서 최씨의 외조카 등 가족들의 사진이 추가로 발견됐다. 31일 JTBC 뉴스룸에 따르면 최씨의 태블릿 PC에서 최씨의 외조카 장씨와 이씨 등 친인척의 사진이 나왔다. 이들은 이번 최씨의 국정개입 의혹과 직간접적으로 관계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씨의 외조카가 나온 사진은 이 태블릿 PC로 직접 찍은 사진으로 알려졌다. 사진을 찍은 날짜는 2012년 6월 25일 오후 7시쯤으로 최씨의 주민등록상 생일의 이틀 뒤였다. 이들은 한 중식당에서 모임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찍힌 최씨의 가족들 사진도 나왔다. 최씨가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태블릿 PC가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지만 거짓 해명이라는 의혹이 더 커지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김영탁의 시식남녀] 송어 뛰노는 물 맑은 생수골, 충주

    [김영탁의 시식남녀] 송어 뛰노는 물 맑은 생수골, 충주

    충주엔 생수(生水)가 있다. 충주댐이 가까이 있고 서울 수도권에 물을 공급하는 한강의 상류다. 충주엔 김생수(金生水) 시인도 있다. 그를 처음 만난 건 충북 제천시 백운면 가을 들판을 날고 있는 장수잠자리가 '원서문학관' 문학행사장 위로 투명한 헬리콥터 비행할 때였다. 김생수 시인은, 김생수입니다, 라고 본인을 소개했다. 돈 주고 사먹는 생수가 아니라, 아득한 시절 아무 데서나 공짜로 퍼마시던 맑은 우물 속 생수 같은 이미지였다. 말하는 게 어딘가 어눌하고 얼굴을 붉히면서도 통기타를 안고 노래를 멋들어지게 잘 부르는 사람이다. 늘 국방색 군용잠바를 걸친 더벅머리, 가인 김생수 시인. 충주시 버스터미널 바깥까지 나와 김생수 시인이 기다리고 있다. 그가 '조리터 명가'로 손을 이끈다. 2대째 가업을 이어온 식당이다. 양채영, 강순희, 김영옥, 안춘화, 이정애 시인이 기다리고 있다. 특히 몸이 불편한데도 애써 참석한 원로 양채영 시인을 보자 가슴이 뭉클했다. 충주에서 큰 상징으로 있는 그는 주변의 시인들에게도 큰 나무로 있다. 식탁 위 송어와 향어가 정갈하다. 붉은색으로 빛이 나는 송어는 상큼한 향과 부드러운 육질이 혀를 자극했다. 이 집만의 독특한 소스도 충분히 조연으로서 괜찮다. 향어는 연한 핑크색으로 식욕을 돋우며 유혹한다. 일단 일미一味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충분히 하나의 맛을 느끼는 것도 좋다. 송어를 먹다가 향어를 먹는 건 부드러움에서 약간 졸깃한 맛으로 이동하는 것. 그러다가 큰 그릇에 갖은 야채를 넣고 송어를 넣고 비벼 먹다가 향어를 넣어서 먹는다. 향어는 한국 전역을 비롯해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에서 분포하고 있다. 잉어목 잉어과의 민물고기다. 향어는 70년대 소양호에서 처음 가두리양식장을 설치하여 양식했으나 초기에 실패가 많았다. 수온을 맞추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나중에 소양호와 충주호에서 대량 양식되어 비교적 싼 값에 서민들도 먹을 수 있었다. 그러나 소양호와 충주호 식수원이 오염된다 하여 90년대 중반쯤 모두 철거되었다. 지금은 논이나 밭 등에 향어양식장을 만들어 운영되기 때문에 비교적 값이 비싼 편이다. 송어는 1급수에서 양식이 가능하므로 월악산 계곡 등 산골 맑은 물에서 주로 양식한다. '충주 남한강변/ 송어횟집에서/ 붉은 고추장 송어회 한 점/ 입에 넣고 소주 한 잔/ 부어 넣고 매운 건지 쓴 건지/ 아! 눈물이 난다.'(양채영 '식시식食詩食') '향어는 물결무늬처럼 접시에 가지런히 누었고/ 송어는 계곡물 소리로 냄비에 펄펄 끓었다/ 꽉 다문 입, 한마디 투덜거리지 않았다/ 머지않아 다시 살과 뼈들이 되어 헤엄치리라'(김생수 '살과 뼈들의 운행') 시인은 향어회와 송어매운탕을 앞에 두고 물결의 파동과 물소리를 듣는다. 물의 화신化身이 물고기이듯 돌고 도는 선순환 구조 속에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법. 역시 생수生水 시인답다. 일행은 아이들처럼 조잘거리며 놀다가 마즈막재로 이동했다. 마즈막재는 계명산과 남산 사이에 있는 고개다. 청풍과 단양의 죄수들이 사형 집행을 받기 위해 충주로 들어오려면 반드시 이 고개를 넘어야 했다. 이 고개만 넘으면 다시는 살아 돌아갈 수 없어 마지막재가 되었다는 애처로운 전설이 있다. 우리는 고개를 넘어가 다시 돌아오지 못한 영혼들의 얘기와 마즈막재 부근에 피어 있는 별꽃을 보면서 우주와 블랙홀 얘기에 빠졌다. 아마 바람을 타고 있는 별꽃이 유난히 눈에 밟히는 탓인지도 모를 일이다. 다들 별꽃이라고 할 때 최준 시인은 별에서 먼 꽃이라고 했다. 김생수 시인이 운영하는 카페 '시인의 집'에 다시 자리를 틀었다. 주인장을 닮은 카페는 소박하면서 털털했다. 흑백 LP판 돌아가면서 노래 '해 뜨는 집'이 나왔다. 공직에 근무하면서 알뜰하게 저축해서 자투리땅을 사서 지은 집이다. 주인이 챙겨오는 마른안주와 과일을 두고 가볍게 맥주 한잔하며 드디어 그의 노래를 들을 수 있었다. 계속 앙코르다. 나중에 음성에서 온 김시영 가인이 합세하여 노래를 불렀다. 밤에 어울리는 음색이다. 시나브로 어두워질 무렵 우리는 강순희 시인이 운영하는 '행복한 우동가게'로 달렸다. 마침 우동가게 옆 시인공원에서 김생수 시인이 불우이웃돕기 자선공연을 하는 날이다. 우선 강 시인이 자랑하는 돌솥우동을 먹었다. 투박한 돌솥에 우동을 끓인 것인데 모양새가 묵직하며 고급스럽다. 숙성된 반죽을 손으로 쳐서 만들어서 면발도 쫄깃하면서 좋다. 착한 가격에 맛과 양이 만족스럽다. 이렇게 팔아서 남을까 싶다. 우동가게는 새벽까지 영업하는데 밤새도록 문턱이 닳도록 손님이 몰려왔다. 우동뿐만 아니라 다양한 먹거리와 술안주가 풍성했다. 강 시인의 친정인 강진 솜씨와 충주 물 솜씨로 메뉴에 없는 먹거리와 안주가 만들어졌다. 일부러 갖은 산나물을 다듬고 데치고 묻혀서 상큼한 밥상으로 태어났다. 아무리 불금이라도 놀라운 건 충주 사람들은 밤잠도 없나 싶게 밤새 북적거렸다. 충주는 강으로 둘러싸여 있고 다리가 세 개나 되고 나머지는 산으로 마감되어 있어 어쩌면 내륙의 섬이라 할 수 있다. 그런 환경에 영향을 받는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외지 사람들도 많이 들락거렸다. '우동이란/ 매끈하게 와 닿아/ 척하고 안기는 어떤 숨결 혹은,/ 사랑 같은 것.'(강순희, '우동') 우동의 면발이 아니, 우동이란 후들거리며 찰랑거리는 부드러운 살결이 척하고 감길 땐 살갑다. 사랑이라는 말을 하면 달아날까 봐 조심스럽다. 강 시인은 그런 촉감을 숨결과 사랑으로 수렴한다. 그리고 과감하게 사랑이라고 한다. 그는 사랑 앞에 용감한 여인이다. 춤의 리듬이 살아 움직이는 부드러움이 '행복한 우동가게'의 면발 속에 끈끈하게 응집되어 있다. 거기에 사랑이라는 특별하고 강력한 소스까지. 밤은 길지만 술쟁이, 시쟁이들에겐 늘 짧다. '천일해장국'은 올갱이로만 해장국을 만드는 집이다. 올갱이도 인근에서 직접 갖고 온 거라 색깔도 좋고 속풀이로 좋단다. 청동구리 같은 올갱이의 식감은 간밤에 시달렸던 간을 위로해줄 것 같다. 큰 냄비엔 올갱이로 가득 차 있고 부추가 조연으로 들어가서 까슬한 올갱이를 풍부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봄이면 하얀 사과꽃이 눈부시고, 가을에는 그 꽃자리마다 빨간 사과가 주렁주렁 탐스럽게 열리는 길 위에서 각자의 곳으로 향했다. 고향의 느낌 넘실거리는 곳을 떠나려니 간밤에 들었는지, 예전에 읽었는지 머릿속에서 시 한 편이 번뜩 되뇌어진다. '주홍빛 늙은 호박 으깨어/ 김치 호박국 끊여 저녁 밥상 올리면/ 유년 시절 추억이 늬엇늬엇 안겨온다'(이정애, '호박국') 서울 오기 전 음성 최준 시인의 집에 잠시 들렀다. 가게에서 술맛 좋다는 음성막걸리를 샀다. 시인의 집 허름한 식탁에 배추와 된장을 놓고 물맛이 좋다는 음성막걸리를 마셨다. 시원하다. 글·사진 김영탁 시인 tibet21@naver.com
  • [새 영화] 로스트 인 더스트

    [새 영화] 로스트 인 더스트

    “참 어리석네요. 은행을 털면서 하루하루 사는 인생, 그런 시절은 진작 지났어요. 한참 지났어요.” 2인조 복면 은행강도를 쫓던 노년의 레인저(미 텍사스주의 법 집행관) 마커스(제프 브리지스)에게 식당에서 마주친 촌로가 건넨 말이다. 21세기에 은행강도라니. 시계를 150년 정도 거꾸로 돌려 서부 개척 시대로 돌아가면 적당할 것 같은 일이다. 게다가 영화 배경이 텍사스 아닌가. 2인조는 말 대신 자동차로 텍사스를 돌아다니며 은행을 턴다. 돈다발을 쓸어 담는 것도 아니고, 낱장의 소액권만 챙겨 줄행랑 치는 태너(벤 포스터)·토비(크리스 파인) 하워드 형제다. 대부분 별것 아닌 것으로, 귀찮게 여기는 사건인데 은퇴가 얼마 남지 않은 마커스는 동물적 육감이 발동한다. 사법 당국의 관심을 피할 정도로 적당히 은행을 터는 영리한 사건이라고. 여기까지라면 그저 옛 서부극을 현대로 옮긴 추격전으로 그쳤을 텐데, 더이상 낭만이 존재하지 않는, 황폐해진 텍사스의 현실이 녹아들며 이야기가 묵직해진다. 하워드 형제가 스쳐 가는 텍사스 곳곳에는 신용 대출, 채무 상담의 간판이 넘쳐난다. 토비가 맞닥뜨린 현실 또한 마찬가지다. 부모가 피땀으로 일궈 남겨 준 농장은 대출금 때문에 은행 차압 일보 직전이다. 장차 석유 회사가 꿀꺽할 형편. 소 100여 마리는 스테이크 한 장 나오지 않을 정도로 비쩍 말랐다. 사랑하는 아들들에게 지긋지긋한 가난을 대물림하고 싶지 않았던 토비는 은행을 털어 은행 빚을 갚으려 계획을 세우고, 사고뭉치 형 태너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하지만 어느 날 은행 강도 과정에서 사망자가 나오며 완전 범죄 계획은 뒤틀리기 시작한다. 텍사스의 황량한 분위기와 뒤섞인 세 배우의 연기가 무척 인상적이다. 특히 상업영화에서 매끈한 연기를 뽐내던 크리스 파인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과묵한 연기를 보여 준다. 인생 연기를 펼쳤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특히 제프 브리지스와 마주하는 마지막 장면이 압권이다. 관록의 대선배에게 전혀 눌리지 않는 그에게서 대배우 풍모가 느껴진다. 벤 포스터 또한 믿고 보는 연기파 배우로서 필모그래피를 하나 더 추가한다.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의 이야기를 빚어낸 테일러 셰리던이 시나리오를 맡았다는 게 또 다른 감상 포인트다. 감독이 다른 두 작품이 여타 범죄 드라마와 다른 결을 비슷한 느낌으로 보여 주는 것은 오롯이 셰리던의 힘으로 여겨진다. 조연 배우로 TV 드라마나 영화에 얼굴을 비치며 간간이 각본도 쓰는 셰리던은 범죄 드라마에 천착하고 있는데, 엘리자베스 올슨과 제레미 레너 주연의 ‘윈드 리버’를 통해 곧 감독 데뷔한다. 인디언 보호 구역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후반 작업 중이다. 11월 3일 개봉. 15세 관람가.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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