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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일 반파시즘영화 감상회」 마련/한국 영상자료원서 7일∼11일

    ◎「살인자는 우리안에」 「거짓말쟁이」 등 6편/왜곡된 정치성 재조명… 예술성 뛰어나 구 동독시절 반파시즘은 지성세계를 광범위하게 지배한 기본사조였다.그러나 그것은 주로 공산주의 투쟁과 연계됨으로써 획일적인 정치이슈로 의미가 축소되는 경향이 있었다.볼프강 슈타우테,에리히 엥엘,프리드리히 볼프 등 40년대 주요 반파시즘 감독들.이들은 이같은 정치적으로 왜곡된 반파시즘을 거부하고 그 참된 의미를 역사적으로 재조명하려는 시도를 거듭했으며,이를 통해 주제의식에서뿐 아니라 예술적으로도 주목받는 다양한 반파시즘영화들을 만들어냈다. 한국영상자료원(이사장 신우식)은 7일부터 11일까지 반파시즘영화에 대한 이해를 돕기위한 「독일 반파시즘 영화감상회」를 마련한다.소개될 작품은 △「살인자는 우리안에」(감독 볼프강 슈타우테,7일 상영) △「글라이비츠사건」(감독 게르하르트 클라인,8일) △「거짓말장이 야곱」(감독 프랑크 바이어,9일) △「약혼녀」(감독 귄터 뤽커·귄터 라이쉬,10일) △「너의 알려지지 않은 형제」(감독 울리히봐이스,11일) △「여배우」(감독 지그프리드 퀸,11일) 등 6편.이 가운데 특히 주목할만한 작품은 동서독을 통틀어 전후에 만들어진 첫 독일영화로 꼽히는 「살인자는…」을 비롯,「글라이비츠…」「너의 알려지지 않은…」등 3편이다. 「살인자는…」은 나치시대 무고하게 희생된 영혼들에 대한 죄책감을 갖고 있으면서도 단지 명령에 복종했을 뿐이라는 식으로 책임을 회피하려는 독일인의 이중 의식구조를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글라이비츠…」는 19 39년 나치에 의해 저질러진 폴란드 라디오방송국 글라이비츠 습격사건을 재연한 작품.또 「너의 알려지지 않은…」은 한 영사기사가 느끼는 사회의 냉대,배신에 대한 공포,부조리,고립 등 심리묘사에 초점을 맞춘 작품으로 기존 투쟁영화와는 달리 주인공을 탈영웅화시켜 통제사회에서의 인간의 심리적 파멸과정을 그리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상영시간은 평일 하오 6시,토요일 하오 2시·4시.
  • 「나」보다는 「우리」가 좋은 사회여야(박갑천 칼럼)

    얼마전 「한국대학생의 가치성향과 상담효과」라는 책이 나왔다.전국의 대학생 1천2백여명에 대한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대학교수들이 쓴 것이다. 거기에 오늘의 젊은이들 의식구조가 밝히 나타난다.『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61.5%),『길에서 연인과 포옹이나 키스를 할수 있다』(64.3%),『내이웃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싶지 않다』(80.1%),『버스나 지하철에서 내가 피곤하고 지쳤을 때는 노인이 앞에 섰더라도 자리를 양보않는다』(67.4%)는 반응들이다.새삼스러운 얘기는 아니지만 「나」를 위하는 마음들이 널리 자리잡으면서 상대적으로 「우리」라는 공동체의식은 엷어져가고 있음을 드러낸다. 「나」라는 뜻을 갖는 한자는 「사」다.그 옛글자는 「사」인데 자신을 둘러쌈(포환)을 뜻하는 지사문자였다.후세로 내려오면서 「화」(벼화)가 붙어 물질적·이기적 성격을 띠게 된다.그에 비해 「공」은 「팔」과 「사」로써 이루어진 지사문자.「팔」은 「여덟」의 뜻이 아니라 「사」를 등져 멀리한다(배거)는 뜻이다.이 글자들의 생겨남을 두고 「한비자」(오두편)는 『공사가 서로 배치되는 것임을 창힐(창힐:한자를 만들었다는 전설적 인물)은 알고 있었다』고 써놓고 있다.「나」와 「우리」는 그렇게 부딪쳐야 하게 돼있는 관계라는 말인가. 여기서 우리말 「우리」도 한번 생각해보게 한다.그 「우리」는 모든 「나」가 하나로 있게 하는 「큰나」였다.따라서 「우리」는 한우리(한울타리)속에 있다.한우리 속에서 이해를 함께 해야하는 존재가 우리들이었다.그러니까 백제초기의 서울 위례성(창례성)도 토박이말로는 「울ㅅ기」(안재홍 「조선상고사감」).이 「울­우리」는 「□」에서 출발되는 말로서 알(난)·얼(영)과는 4촌간이다.그런 운명공동체로서의 「우리」가 「나」앞에서 굽잡혀야 할 것인가. 한무제때 사람 동방삭(동방삭)은 나 좋을대로 했던 기인으로 알려져온다.임금과 함께 식사하다 남은 것을 호주머니에 담고갈 정도로.이건 남을 언걸먹이는건 아니니 그래도 낫다치자.하지만 감기노이로제에 걸린 앙드레 지드같이 극장안 객석에서 바지를 벗고 샤쓰를 껴입는 것은나 좋으려면서 저지르는 염의없는 짓이다.나만이 아닌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 『나를 이기고 예로 돌아가는 것(극기복례)』(「논어」 안연편)은 예나 이제나 지켜져야할 덕목 아닐까 한다. 「나만 좋으면 고만」이 아니다.오히려 나는 좋지 않아도 우리가 좋을수 있게 살아가는 사회가 바람직스럽다 할 것이다.
  • 자연 휴식년제 5년째… 「설악」의 두 모습

    ◎등산길 “중병” 휴식구간 “울창”/등산로­인파에 나무뿌리 노출… 곳곳 쓰레기/휴식구간­원시림 복원속 희귀식물 등 회생 5부능선까지 곱게 물들어 만산홍엽의 절정을 이룬 설악산이 수많은 등산객들로 몸살을 앓고 있다.그러나 5년째 자연휴식년제가 실시되고 있는 일부 등산코스는 어느덧 원시림의 자태를 찾아가고 있어 현행 등산로와 좋은 대조를 이루고 있다.남한 제1의 명산 설악산의 두 모습을 르포로 구성해본다. 10월 초순의 설악산은 뼈대를 자신만만하게 드러내고 있는 기암괴봉과 절정에 이른 단풍 옷을 껴입은 능선,능선과 능선 사이 고적한 계곡,높고 맑은 하늘이 얽혀 가을 한복판에 접어든 명산의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었다.그러나 내설악·외설악·남설악을 합쳐 3백73㎦에 이르는 설악산을 들여다 보면 군대의 행군같은 등산객들의 무수한 발걸음으로 곳곳이 심한 중병을 앓고 있다. 지난 8일 낮 12시쯤 설악산의 정상인 1천7백8m 대청봉에 오르는 가장 빠른 길인 오색코스 매표소 앞은 원색 차림의 등산객들로 시장터처럼 붐비고 있었다.이날 설악산을 찾은 6만명 가운데 1만4천여명이 이곳을 통해 대청봉을 올랐다. 예상했던대로 5㎞의 이 구간의 대부분은 등산로라고 하기보다는 잘 닦인 비포장 길 같았고 어떤 곳은 많은 사람들의 발걸음으로 너비가 5m이상 될만큼 훼손돼 있었다. 수많은 발걸음으로 흙이 파여 곳곳에 나무 뿌리가 드러나 있는가 하면 이들 뿌리를 지팡이로 쓰려고 서슴없이 꺾어대는 사람도 있었다. 5부능선까지 내려와 곱게 물든 단풍을 기념품 삼아 꺾기도 하고 계곡에서 음식을 먹어가며 노름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지친 발길을 쉴만한 곳이면 어김없이 담배꽁초는 물론 사탕이나 초콜릿 봉지,나무젓가락,심지어는 쓰레기 비닐봉지등으로 어수선하기만 했다. 자연을 보존한다는 취지로 지난 91년부터 등산로를 폐쇄하고 5년째 자연휴식년제가 실시되고 있는 대청봉∼권금성간 8㎞ 등산로. 북동쪽으로 난 이 구간 초입은 길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산죽이 수북이 덮고 있어 아주 보기 좋았다.만경대로 내려가는 갈림길의 칠성봉∼집선봉∼권금성 구간은 불과 5년의휴식에도 불구하고 원시림의 원기를 되찾은 모습이었다. 등산로 같으면 손길이 닿아 벌써 따갔음직한 빨간 마가목 열매가 그대로 달려 있었고 한해에 8㎝정도 자란다는 단풍나무도 40㎝남짓 크기로 오솔길 같은 등산로를 덮고 있었다.금강초롱도 사람의 발길에 채이지 않아 보라빛 꽃자태를 유감없이 자랑하고 있었다.길도 몇년째 낙엽이 쌓이고 쌓여 어떤 곳은 길인지조차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으며 기고 나는 짐승들의 움직임도 어느곳보다 활기찼다. 나무와 풀은 물론 바위·흙까지도 자연의 휴식이 왜 필요한지를 실감케 하는,세계적 자연보존지구 설악산의 두 모습이었다.
  • 은행 팔 걷어붙인 행장… 직접 고객 유치(새틀짜는 금융산업:4)

    ◎「금융계 황제」 옛말… 실적 올리기 안간힘/집에 팩스 설치… 직원 건의 24시간 수렴 은행원들은 요즘 흰 와이셔츠에 넥타이만 맸을 뿐 막노동꾼이나 다름없다고 푸념한다. 연봉 1억원에 월 판공비 3천만원,,점포수 4백∼5백개,휘하의 직원 1만명,기업의 생사여탈권을 가진 「금융계의 황제」인 은행장도 예전과 같지 않다.경영성적표인 주가변동,수신계수,정기주총에서의 배당률,개방화시대의 생존대책 등 행장에게는 끊임없이 스트레스가 쌓인다.한 시중은행장은 『하루 빨리 임기를 무사히 마치고 쉬고 싶다』는 말로 고충을 토로한다. ○적당주의 추방 게다가 한 직원의 과실로 올 봄 영국의 명문은행인 베어링증권이 몰락하고 일본의 다이와은행이 생사의 귀로에 서게 되자 「은행도 망할 수 있다」는 당연한 명제가 현실로 와닿고 있다.김상훈 은행감독원 1국장은 『행장은 첨단 금융기법까지 익숙해져야 한다』는 교훈을 던져준 사건으로 평가한다.따라서 행장들은 금융의 신조류도 파악해야 하고 X세대로 불리는 젊은 직원들의 의식구조도 이해해야 한다. 게다가 직원들을 부리려면 솔선해서 영업일선에 나서야 한다.행장부터 변혁의 물결에 몸으로 맞서야 하는 것이다. 지난 해 11월 행장에 오른 이관우 한일은행장은 한동안 본점 입구에서 출근하는 직원들에게 90도로 머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궁금한 일이나 지시사항이 있으면 말단 행원에게도 직접 전화를 건다.일선 지점장들은 일체 본점에는 얼씬거리지 못한다.업적과 능력에 따라 처리할테니 본점 간부들에게 쏟는 정력을 고객유치에 쏟으라는 뜻이다.소신껏 일하라는 의미에서 임원과 부서장 방에 설치된 재실 표시등도 없앴다. 상업은행의 정지태행장은 「대리급 행장」으로 불린다.모든 궂은 일을 도맡아서 한다고 붙여진 별명이다. ○인사청탁 배제 행장이 이처럼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다 보니 영업담당 임원들은 본점에 앉아있을 엄두를 못낸다.직원이나 노조에 대한 정행장의 최대 협박무기는 「나도 전임 행장들처럼(적당히) 해볼까」라는 말이다. 조흥은행의 우찬목 행장도 사정은 마찬가지다.취임 직후 지방의 조그만 거래처까지 찾아가 협조를 호소했다.「행장부터 달라지겠다」는 뜻으로 창구에서 고객을 응접하기도 했다.일선 지점의 직원들과 구내 식당에서 식사하며 건의사항을 듣기도 한다.행장이 떴다하면 지역본부의 전 지점장들이 총 출동하던 과거에 비하면 엄청난 파격이다. 손홍균 서울은행장은 행장실은 물론 집에도 팩시밀리를 설치,직원들의 건의나 불만을 24시간 수렴한다.지난 7월에는 정치권의 십자 포화를 감수하면서 보배그룹을 부도처리했다.2∼3년 전이라면 상상도 못할 일이다. 이규징 국민은행장은 인사청탁을 배제하기 위해 임원을 선임할 때 행장도 다른 임원처럼 1표만 행사한다.시류에 뒤지지 않기 위해 금융관련 세미나가 있다 하면 어디든 달려간다. 「금융계의 돌아온 장고」 또는 신출귀몰의 뜻인 「마카우리 장」으로 불리는 외환은행의 장명선행장도 영업을 위해서라면 국내외 어디든 마다하지 않는다.주 2회인 이사회도 영업에 지장을 준다며 1회로 줄였다.영업이 본궤도에 오르면 임기를 못채우더라도 언제든 물러나겠다고 입버릇처럼 되뇌인다. ○이사회 횟수 줄여 4년9개월째 행장자리를 지키고 있는 나응찬 신한은행장은 보스형 전문경영인으로 꼽힌다.등산·술은 물론 요리강습에 이르기까지 무엇이든 앞장 선다.「내일모레 환갑인 나도 했으니 따르라」는게 나행장의 주문이다. 요즘 은행장들의 시세는 대리급으로 「폭락」(?)한 대신 고객의 몸값은 행장급으로 올랐다고 금융계 인사들은 말한다.
  • 자유총연맹 송파지구 자유산악회(산하 파수꾼)

    ◎전국 유명산·사적지 찾아 정화 앞장/매월 1·3주 화요일의 정기산행때 쓰레기줍기/오염지역 사전답사… 휴지조각 하나없이 청소 『민족의 혼이 담겨져 있는 의미있는 지역을 찾아 자유의 중요성을 심어주며 나라사랑을 몸소 실천하고 있습니다.아름다운 자연을 가꾸고 보존하는 것은 바로 후손들에게 자유와 평화로운 삶의 터전을 물려주는 우리의 사명이라 생각합니다』 한국 자유총연맹 서울 송파구지부 자유산악회(회장 이학찬)는 전국 유명산을 찾아 등산로 주변과 사적지 부근을 말끔히 청소하는 산악 환경파수꾼이다. 회원 비회원을 합쳐 무려 8백여명의 대식구를 거느리고 있는 이들은 오염된 지역을 사전에 답사해 아무리 넓더라도 삽시간에 휴지쪽 하나없이 말끔하게 청소해 「개미군단」이라는 별명을 듣고 있어 그동안 환경정화의 실적은 대단하다. 자유산악회가 서울신문사 깨끗한 산하지키기운동 환경감시위원 단체로 가입한 것은 지난해 8월1일.정회원 3백명으로 참여한 이들은 당초 건강을 위해 등산을 시작했으나 아름다운 산의 계곡과 등산로가행락객들이 버린 쓰레기로 간곳마다 오염돼 있는것을 발견하고 깨끗한 산을 지키기기로 의견이 모아졌던것. 이들은 환경감시위원에 동참하면서 매월 1·3주 화요일을 정기 산행일로 정하고 깨끗한 산하지키기 운동에 적극 앞장서 건전한 시민정신을 함양하는 캠페인을 벌이기로 했다. 그동안 수거한 오물만도 줄잡아 10여트럭분.그중에 대표적으로 내세운 활동은 지난 1월10일 강화의 마니산 참성단에서 『단일민족의 영원한 삶의 터전인 우리의 국토가 깨끗한 자연속에서 영화를 누리도록 해달라』는 축원의 시산제를 올리고 주변정화를 시작하면서 올해의 환경운동에 나섰다. 그리고 지난 4월7일에는 강원도 평창군 월장사입구 「이승복기념관」 주변에서 민족분단의 쓰라림을 되새기며 쓰레기 수거작업을 벌였다. 이어 지난 7월18일 전북 변산의 관음봉을 등산한후 피서객들을 대상으로 국토청결 캠페인을 실시했다. 자유총연맹 송파지부가 결성된 것은 지난 89년4월1일.자유민주주의의 우월성과 남북통일에 대비한 국민 자세의 확립을 위해 활동해 오면서 그가운데 전국토를 청정지역으로 지키는 것이 애국하는 값진 길임을 느끼고 깨끗한 산하지키기 운동에 앞장서게 됐다는 것이다. 그러자 산악회원이 아닌 비회원들도 줄지어 동참해 한번 현장캠페인에 2백∼3백여명이 자원하고 있어 즐거운 비명을 올리고 있다.
  • 재경위·건교위(국감초점)

    ◎재경위/“제2금융권 신보기금 출연 유도”/“「고액보증」 줄여 중기 실질혜택 늘려라” 30일 신용보증기금에 대한 국회 재정경제위 감사에서는 중소기업 대출을 늘리기 위해 기금이 확충돼야 한다는 당위론과 고액보증 과다 등 신용보증기금이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점이 중점적으로 다뤄졌다. 김원길 의원(국민회의)은 『보증중단 사태를 막기 위해서는 정부출연 규모를 대폭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1억원이하 소액보증 심사기준을 완화,영세중소기업에 대한 보증을 확대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서청원 의원(민자)은 『8월말 현재 신용보증은 4천1백68억원으로 목표(1조)대비 41.7%에 그치고 있다』며 『신용보증기금이 중소기업의 부도를 방치하고 있는 것 아니냐』고 따졌다. 정필근(민자)·이석현 의원(국민회의)은 『인기위주의 단기적 중소기업지원책이 오히려 대상업체 적격성 여부를 판별할 기회를 봉쇄하고 있다』며 실질적인 지원책 마련을 촉구했고 유돈우 의원(민자)은 보증기업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시스템 도입을 제안했다. 김덕룡·노승우 의원(민자)은 『15억원을 초과하는 고액보증액은 7천7백1억원으로 전체 보증액의 9.53%로서 전체보증액의 0.5%에 불과한 3백66개 업체에 편중돼 있다』고 지적했다.나오연(민자)·제정구 의원(민주)은 『대다수 영세중소기업들은 여전히 신용보증의 편중지원으로 혜택을 받지 못해 「빈익빈 부익부」현상이 빚어지고 있다』고 지적했고 최돈웅(민자)·유준상·박태영 의원(국민회의)은 『보증이 수도권 57.1%,영남권 25.3%등 심한 지역편중 현상을 보이고 있다』며 시정을 촉구했다. 특히 유의원은 『93년이후 매년 3천억원 이상의 당기순손실을 내고 있는 것은 경영능력부족 때문』이라고 지적했다.장재식 의원(민주)은 『과학적인 신용심사기법 개발로 보증사고를 줄여나가야 한다』면서 『정부의 재정출연에만 기대지 말고 적극적인 구상채권 회수등을 통해 기본재산을 확충할 수 있는 다각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이정보이사장은 『내부개혁과 경영혁신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하고 『예산심의 때 출연금 확대에 의원들의 협조를 부탁한다』고 당부했다.이이사장은 『수출 중소기업을 위해 수출입은행에 대한 부분보증을 적극 검토하겠다』면서 『보험·단자회사등 제2금융권의 신용보증 활성화를 위해 자금조달창구를 늘리고 일정비율의 출연금을 유도하는 방안을 강구할 방침』이라고 답변했다. ◎건교위/“부실추방” 정부­업계 합심 긴요/담합 수주·하도급 횡포 집중 질책 30일 국회 건설교통 위원회의 대한건설 협회와 국토개발연구원 등 건설교통부 산하 단체·연구소에 대한 국정감사에서는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와 관련한 부실공사 문제가 비중있게 다루어졌다. 의원들은 부실공사가 일어날 수 밖에 없는 건설업계의 구조적 문제점을 다양하게 지적하고 이에 대한 대책마련을 촉구했다. 하순봉 의원(민자)은 『지난 89년 건설업에 대한 면허개방 이후 경쟁이 치열해진 결과 담합을 통한 나눠먹기식 수주가 늘어나고 있다』면서 『건설협회가 이같은 부당한 행위를 자체정화하지 못하고 정부가 규제하기에 이른 것은 직무유기』라고 질책했다. 유성환 의원(민자)은 『현재 건설업은 서비스업으로 분류돼 있어 대출을 받을 때 제조업보다 1%높은 가산금리를 적용받고 있는 데다 민간건설공사의 상업어음은 재할인도 되지 않는다』면서 『이같은 금융압박도 부실시공의 한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이윤수 의원(국민회의)은 『하도급 문제의 해결은 부실공사문제의 절반을 해결하는 것』이라면서 『그럼에도 하도급분쟁은 갈수록 폭증하고 있고,그 이유 또한 부실공사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는 것들』이라며 대책을 요구했다. 김봉호 의원(국민회의)도 『저가 하도급 심사제가 폐지된 뒤 원도급 가격의 50% 이하로 하도급을 받는 비율이 제도폐지 이전 5% 수준에서 30.6%로 무려 5배나 증가했다』면서 『원청회사의 횡포와 부당이득을 근절할 수 있는 대책은 무엇이냐』고 따졌다. 송영진 의원(민자)은 『최근 실태조사에 따르면 현장 감리자의 69%가 발주처로부터 권한을 넘겨받지 못해 공사중지나 재시공명령 등 실질적인 감리권에서 소외되고 있다고 응답하는 등 부실감리가 보편화되고 있다』면서 대책을 물었다. 답변에 나선 정주영 건설협회장(부산 자유건설대표)은 『삼풍백화점 붕괴 등 일련의 사고는 시공상의 문제뿐 아니라 부적격한 설계와 유지관리의 소홀,최저가낙찰제,불건전한 의식구조 등 여러가지 문제점이 복합되어 발생한 것으로 건설업계에서는 이같은 부실공사의 구조적인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회장은 그러나 『부실시공에 대한 처벌규정의 강화는 국민들의 감정상 당연하지만 최근 이로 인해 우수한 건설기술자들이 현장근무를 기피함에 따라 건설공사의 수행 자체가 어려워지고 있는 현상은 정부와 업계가 함께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덧붙였다.
  • “주치의를 정합시다”(최선록 건강칼럼:83)

    ◎가족건강 상담… 가정의학 전문의가 좋아/큰 병에 걸리면 의료기관·의사 소개해줘 우리나라에서 주치의를 두는 가정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몇년전까지만 하여도 주치의는 대기업의 중역이나 부자들만이 갖는 의료제도로 인식되어 왔지만 이제는 온가족의 건강문제를 스스럼 없이 상담하고 일반 질환의 진료를 몇시간씩 기다리지 않고 바로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적극 권장된다. 일면 단골의사로 불리는 주치의는 자신이나 가족의 건강을 지속적으로 돌봐주는 의사를 말한다.주치의로 가장 적합한 의사는 가정의다.그러나 국내에는 가정의학과 전문의가 아직 부족한만큼 직장이나 가정에서 이용하기 편리한 내과·소아과·산부인과 의사를 주치의로 지정,정기적으로 진료와 상담을 받는 것이 좋다. 처음 주치의를 만날때는 『내 건강문제를 선생님께 지속적으로 상담하겠다』는 점을 분명히 밝혀야 주치의와의 긴밀한 유대가 앞으로 계속될 수 있다. 주치의는 건강문제의 체계적·과학적 관리와 치료의 조정자 역할을 해준다.예를 들어 환자에게 중대한 질병이발생할 경우 즉시 가장 적합한 의료기관과 전문의를 지정해주기 때문에 헛되게 돈쓰고 시간 낭비할 필요가 없다. 특히 주치의는 지속적인 진료와 상담을 통해 환자의 건강상태를 가장 잘 알고 있다.따라서 비싼 종합검진 대신 환자의연령이나 신체조건·생활환경·병력 등을 감안,주치의가 정해준 검사나 치료만 받으면 된다.또 정기적으로 병원을 방문,의사와 상담하므로 병을 예방하고 조기에 발견하며 쓸데없는 불안감을 말끔히 해소시킨다. 그렇다면 이상적인 주치의는 어떤 의사일까? 감기·소화불량·설사·가벼운 상처·종기 등 흔한병을 잘 다루고 언제라도 자신이나 가족의 건강상담에 기꺼이 응해주며 나타난 병뿐 아니라 환자의 전체적인 건강관리에 항상 깊은 관심을 기울이는 의사라면 주치의로서 모든 조건을 구비하였다고 볼 수 있다. 30대 중반을 넘은 사람은 누구나 위장과 복부의 초음파 검사를 1년에 한번 정도 주치의를 통해 받아보는 것이 바람직하다.이 검사를 받으면 대부분의 위장병은 쉽게 발견되고 적절한 치료와 예방이 가능하다. 더욱이 가족중에 성인병 환자나 이 병에 의해 사망자가 있을 경우 다른 식구는 주치의로부터 정기적인 종합검진을 받아야 한다.가족적으로 유전성이 높은 성인병은 고혈압·당뇨병·유방암·위암·대장암·난소암·전립선암·뇌종양·백혈병 등을 들 수 있다.또 혈당·혈압·콜레스테롤 측정과 간 및 콩팥검사도 필수적이다.
  • “시댁식구 합세 며느리 구박/시아버지도 위자료 배상을”/인천지법

    【인천=김학준 기자】 남편을 포함한 시댁 식구들이 합세해 며느리에게 매우 부당하게 대우했다면 시아버지에게도 위자료 배상책임이 있다는 판결이 나왔다. 인천지방법원 가사2부(재판장 홍성무 부장판사)는 22일 김모(33)씨가 남편 박모(33)씨와 시아버지(61)를 상대로 제기한 이혼및 위자료,재산분할 청구소송에 대해 『남편과 시아버지는 원고 김씨에게 연대해서 위자료 1천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또 『원고와 피고 박씨는 이혼하고 피고는 재산분할금 1천만원과 아이2명에 대한 양육비로 매월 40만원씩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원고 김씨가 결혼 직후부터 남편과 시댁 식구들로부터 욕설과 집단폭행을 당한 사실과 남편 박씨가 산후 조리중인 김씨를 친정어머니가 보는 앞에서 뺨을 때린 사실 등은 배우자 또는 배우자의 직계존속으로부터 심히 부당한 대우를 받은 경우에 해당된다』고 밝혔다. 김씨는 지난 91년 박씨와 결혼했으나 시댁식구를 대하는 행동이 불손하다는 이유로 시댁식구들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자 지난해 2월 소송을 제기했다.
  • 땅밑 탈것 속에서 보는 일들은(박갑천 칼럼)

    땅밑교통 이용하는 일이 많아졌다.서울사는 사람이면 누구나 느끼겠지만 믿을건 땅밑.얼른 타기 편하다고 땅위교통 이용하다가 황그리는 일은 적지않다.짬짜미시간 제대로 못대고서 뒤통수 긁적인 연인들도 많으렷다. 출근시간에 땅밑탈것 타면서 볼일 못볼일 다본다.물론 지금은 김유정의 수필 「전차가 희극을 낳아」의 전차안같이 한가로운 풍경일 수는 없다.우선 글을 써붙여 노약자와 장애자가 앉게 돼있는 자리부터 보자.대체로 젊은이가 차지하고 있다.글소경 아닌가 생각되는.더러 그앞에는 늙은이가 손잡이에 매달려 서있기도 한다.가끔씩 방송도 나온다.그자리는 노약자·장애자에게 양보해야 한다는.하지만 말귀(마이)에 부는 샛바람(동풍)이다. 가만히 훑어보노라면 앉은 사람은 거의라 할만큼 졸고들 있다.끄덕끄덕 꾸벅꾸벅.일본사람들이 말하는 너구리잠인지 아니면 여우잠인지.무슨 연유로 엊저녁잠을 설친 것일까.아니더라도 흔들거리는 탈것은 졸음을 불러들이는 법이긴 하다.한데 역에 닿으면 영락없이 벌떡 일어난다.눈만 감고 있었든지 수잠들어 있었든지의 어느쪽일 게다. 어떤 역에서 중늙은이 여성이 탄다.그는 일반석 여학생 앞으로 간다.『아이고고!』 물탄꾀 비명을 연발하면서.일어서는 여학생.두말없이 그자리에 털썩 앉는다.권리라도 찾은듯 사뭇 당당하다.고맙다는 말한마디 안나오는 것일까.그 나이또래의 한 남성은 숫제 자리를 「강탈」한다.요즘 젊은것들 도무지 예의범절이 없다고 엄펑소니치면서.자기가 앉지않고 남을 앉혔다면 듣기 민망한 「고담준론」이 그래도 나을 뻔했다. 성인은 희미한 조짐만 보고도 그것이 이르게될 결과를 안다고 했다(「한비자」설림편).그래서 기자는 주왕이 상아로 젓가락 만드는걸 보면서 천하의 앙화를 미루어 알았다.상아젓가락에 어울리는 밥그릇·밥상을 만들어야 하고 또 그에 걸맞을 산해진미하며 미주·미녀가 뒤따를 것이라는 데서였다.땅밑탈것 속의 이런저런 풍경은 오늘의 우리 의식구조 민모습을 그림그리고 있는것.우리의 내일이 어떻게 펼쳐질지 짐작케한다. 어른이 어른답지 못하면 젊은이도 젊은이답지 못해진다.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며 아비는 아비다워야 하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군군신신부부자자:「논어」안연편).하건만 스스로는 답지 못하면서 남만을 탓하는게 과연 옳은 자세일까.제각기의 자리에서 다워질수 있는 길을 찾아야겠다.
  • 일선경찰서 추석에도 썰렁

    ◎관내유지들 떡돌리며 전·의경 위로격려 옛말/자치시대 「홀로서기」 움직임에 사정한파 겹쳐 추석 연휴를 사흘 앞두고도 일선 경찰서가 썰렁하다. 구청이나 구의원 등 관내 관청 관계자나 유지들이 떡을 돌리고 전·의경등을 위해 격려성 위로금을 내놓던 예전 모습은 찾을래야 찾을 수가 없다.지방 자치시대를 맞아 기관별로 홀로서기움직임이 확산되면서 예전의 구청이나 시청 등 일선 행정관청과 경찰서사이에 찾아 볼 수 있던 「집안식구 챙기기」의 분위기가 사라져가고 있기때문이다. 게다가 최근 지자체나 정계를 휩쓸고 있는 사정 바람의 여파도 한몫하고 있다. 일선 경찰관들은 한결같이 『격세지감을 느낀다』고 말한다. 한 경찰관은 『문턱이 닳도록 들락거리던 구청 관계자들의 그림자도 찾아보기 힘든 지경이니 세상이 변하긴 변한 모양』이라고 씁쓸해 했다. 연일 각종 시위로 두터운 진압복을 입고 무더운 여름을 보낸 전·의경들의 실망감(?)은 더할 수 밖에 없다. 지난달 21일부터 25일까지 실시됐던 을지훈련때부터 이러한 조짐이 보였다.그때도 전·의경을 위문하기 위해 음료수등을 들고 찾아오는 구청이나 구의원들은 종전과는 달리 거의 없었다. 지난해보다 엄청나게 「말라버린」 을지훈련을 치르는 경찰들의 속마음에는 섭섭함도 없지 않았다.더구나 민족의 명절이라는 추석을 앞두고는 마음이 편할 리가 없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찰 간부들은 『차라리 잘된 일』이라며 자위하고 있다. 종전에는 얼마안되는 떡이나 격려금을 받고 구청의 사소한 민원성 시위에도 일일이 경찰병력을 배치해야 하는등 관청의 체면을 세워줘야 했지만 이제는 애써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서울시내 한 일선 경찰서장은 『업무한계가 명확하고 서로 눈치를 볼 필요가 없어 오히려 마음은 편하다』며 『시대가 달라졌으니 적응해 나가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니겠느냐』고 털어놨다.
  • 남편이 과연 범인일까/치과의사 모녀피살 사건

    ◎정황증거 빼곤 결정적 물증 확보못해/경찰 “범인 확신” 하지만 공소유지 신경 지난 6월 12일 서울 은평구 불광1동 미성아파트 5동 708호에서 발생했던 치과의사 모녀살인사건은 경찰이 2개월여만인 2일 피해자의 남편인 이도행(32·외과의사)씨를 살인 등 혐의로 구속함으로써 외양상 해결국면에 접어든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경찰이 이씨를 범인으로 지목,구속한데에는 정황증거와 거짓말 탐지기 반응,이씨의 잦은 진술 번복외에 명확한 물증이 뒷받침되지 않아 공소유지가 가능할 지에 의문의 여지가 많다. 무엇보다도 경찰이 이씨에게 혐의를 두고 있는 첫번째 이유는 범행시간이 이씨의 진술과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부검결과와 일치하지 않는 점이다. 이씨는 사건당일인 지난 6월 12일 상오 7시쯤 부인 최수희(31·치과의사)씨와 딸 화영(1)양의 배웅을 받고 병원으로 출근했으며 따라서 사건이 7시이후에 일어났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시체부검결과는 늦어도 이날 상오 5시이전에 사망한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또 범행동기가 뚜렷하다는 것도 경찰의 심증을 더욱 굳게 하고 있다. 경찰은 부인 최씨가 평소 시댁식구와 마찰이 심했고 이씨의 내성적인 성격때문에 불화가 잦았으며 특히 강릉에서 군복무를 하던 지난 92년 6월 최씨가 인테리어업자 전모씨(32)와 사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부인의 처신과 함께 딸의 친자여부까지도 의심해 왔음이 그의 일기내용에 적혀있다고 밝혔다. 제2의 인물에 의한 범행가능성에 대해서도 여러가지 정황으로 미루어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판단이다. 우선 범행장소가 7층이어서 아파트 현관문을 통하지 않고는 침입이 불가능한데 아파트 경비원들은 범행당일 아침에 외부인의 출입이 없었다고 진술하고 있다.또 피해자가 살해당시 반항한 흔적이 전혀없고 가방안에 들어있던 수표,현금 등 51만8천원이 그대로 들어있는 점도 면식범의 소행임을 뒷받침하고 있다는 것이다. 안방에 난 불은 이씨가 범행시간을 조작하기 위해 일부러 장롱안에 불을 지른뒤 방문을 닫아 산소를 차단해 연소속도를 느리게 해 범행시간이 실제보다 훨씬 늦은 것처럼 꾸며 자기의 알리바이를 합리화하려는 치밀한 조작극이라고 보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정황을 뒷받침해줄 결정적인 물증이 없어 재판에서도 논란이 예상된다. 검찰도 이 때문에 일찌감치 이씨에게 혐의를 두었으면서도 구속영장신청을 미루어오다 사건발생 2개월 20여일만에 이씨를 구속했다. 이씨도 이에 대응해 구속적부심을 신청하려 하고 있어 앞으로 물증이나 자백이 없는 한 검찰과 이씨사이의 진실밝히기 줄다리기는 계속될 전망이다.
  • 장백진의 탑산(압록강 2천리:3)

    ◎발해의 기상 말하듯 「5층 전탑」 고고히…/높이 12.64m의 네모꼴… 꽃무늬 벽돌로 쌓아/조선인 2가구 19세기 이주,현재 4만명으로 중국 길림성 장백조선족 자치현 장백진의 탑산은 산에 탑이 서 있기 때문에 탑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그 탑산의 탑은 이른바 영광탑인데 벽돌을 쌓아 만든 5층 전탑으로 되어있다.네모꼴을 기본형으로 한 이 탑의 높이는 12.64m에 이른다.탑 꼭대기 지붕(옥개)위에는 마치 조롱박 5개를 포개 올린 것처럼 보이는 높이 1.98m의 청동제 상륜을 세워놓았다. 아름답기 그지없는 불탑이다.청회색 꽃무늬 벽돌을 쌓아 마감한 상층기단 남쪽에는 아치형 문을 냈다.그리고 각층의 탑신 남쪽 벽에 네모꼴 창을 뚫었다.지붕의 추녀와 추녀 받침은 벽돌쌓기를 통해 마치 목조건물이 풍겨주는 것과 같은 그런 멋을 부렸다.상층기단 아래에는 길이 3.2m,너비 3.4m,깊이 1.49m의 지하공간 지궁을 갖추었다.지궁 뒷벽에는 사리함을 봉안했던 것으로 보이는 대좌가 마련되었다. ○청동제로 상윤 세워 이 탑이 후대에 들어 발해의 탑으로 고증된 것은 19 82년께다.중국 동북고고대의 소춘화와 중국과학원 장어환 교수가 2년에 걸친 검증에서 발해시대 불탑임을 확인했던 것이다.그러나 어느때 누가 세웠는지,또 불탑의 이름이 무엇이었는 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의문으로 담아있다.다만 19 08년 청나라 장백부 관리였던 장풍대가 이 탑을 보고 생김새가 노나라 때 영광전을 닮았다고 해서 영광탑으로 불러왔다. 이 탑에 대한 전설도 있다.장백조선족자치현 문화관 이성태 관장이 들려준 전설은 발해의 퇴락을 간접적으로 이야기 한성 싶다.전설에 의하면 어느 해 어느 날 괴상한 사람들이 탑속으로 스며들어 이레를 보냈다.그리고 금불상을 훔쳐 배에 싣고 가다 배가 뒤집히는 통에 금불상이 강에 가라앉았다고 한다.그 뒤에 늘 빛을 훤히 드러내던 탑은 광채를 잃고 말았다는 것이다.그러자 독사가 탑주변에 살면서 사람과 가축을 마구 잡아먹었다는 것이 전설의 요지다. 장백현 일대는 발해가 융성한 시기의 강역 압록부에 해당한다.그 중심지 서경이 하류에 있었는 데 장백진에서 그리 멀지 않다.이 탑은 물론발해가 융성했던 시기에 세웠을 것이다.오늘 날도 탑이 있는 산아래 압록강변 장백진의 벌이 탑전이고 보면 탑산의 탑은 아직도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이 탑의 영향력이 어디 장백진에만 국한했으랴.강건너 북한땅 혜산시 역시 옛 발해의 압록부였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압록강 유역의 양안은 본래 고구려 강역이었다.그러나 고구려는 당에 정복되어 장백진에는 정복자의 전설이 더 많이 남아있을 뿐이다.고구려의 유민과 말갈족이 함께 세운 발해가 멸망한 이후 중국의 역대 왕조들이 더 많은 세월을 지배했기 때문에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는 쇠잔하기 이를 데 없는 잔영에 불과했다.그런 탓인지 탑산에는 당의 장수 설인귀의 전설이 남아있다.탑산에 세운 한 비석에다 설인귀가 말에 올라 군사를 호령했던 자리라고 기록해 놓았다.그리고 말발굽자리처럼 자연적으로 푹 파인 커다란 화산돌은 설인귀가 탔던 말발굽자리라 해서 과마석으로 묘사했다. ○정복자의 전설남아 역사의 흥망성쇠를 두고 「삼국지연의」머리시는 「한 마당 꿈」이라고 했다.정녕 그런 것인가.민족의 고대국가 강역에서 중국의 역사도 흥망성쇠를 거듭했다.발해가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지면서 요,금에 이어 명이 숨가쁘게 지나가고 청이 시작되었다.청은 중국의 동북을 만족(만주)자신들의 발상중지로 여기고 이를 보호하기 위해 봉금령을 내렸다.그리고 나서 청은 16 77년 백두산과 압록강,두만강 이북의 1천여리 넓은 땅을 봉금구로 정했다.특히 장백현은 경위장이라는 이름의 그들 사냥터가 되었다. 그러니까 장배현은 짐승들만 들끓는 무인지경이었다.19세기 초엽에 와서야 밥짓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기 시작했다.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이다. 「장백현황」에 따르면 청나라 연호로 도광 11년(서기18 31년)오늘날 길림성 임강 부근인 모아산 북탕하지방에서 조선인 2가구를 발견했다는 기록이 나온다.이어 도광25년에 조선인 10여명이 임강으로 건너왔고,함풍 2년(서기 1852년)에는 함경도 단천군 사람들 10여명이 와서 농사를 지었다는 것이다. ○함경도서 많이 이주 이들이 바로 압록강을 건너온 이주민 선구자들이다.그로부터 세월리 흘러 20세기에 접어들어 19 05년에는 압록강 유역 장백·임강·집안 등지에 사는 조선족 이주민은 8천7백가구 3만9천4백여명을 헤아리게 되었다.그 무렵 장백현으로 들어온 평안도 출신의 이주민2세 이동근(82)노인은 압록강을 건너와서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살아야 했던 뼈 아픈 사연을 회고했다. 『고향을 떠나서리 들어온 데가 장백진 탑전 사탕골이었댔시요.내 나이 연네살이었는데 자꾸 고향 생각이 납데다.그런 판에 부친은 한 해치 품삯 60원을 받고 연치산이라는 조선족 집에 머슴으로 들어가고 모친은 삯일을 했수다.부친이 만 네해 머슴을 살고 여섯식구가 다시 모였디요.기쁜 맘도 잠시고 여러 식구가 먹고 살게 있어야디.그래서 내 열여섯살 나던 해에 김세익 집에 데릴사위로 들어갔시요.저 노친(김증손·77)이 겨우 열한살이었던가 기래요.다섯 해 데릴사위 노릇을 하다보니 어린 처가 숙성해집데다.그래서리 결혼을 해버렸디요』 이 노인은 딸 넷과 아들 하나를 두었다.딸들은 모두 인근으로 출가하고 막둥이로 둔 아들도 커서 장가를 들었다.아들은 장사를 하는데 조선(북한)을 자주 드나든다는 이야기다.노인은 묻지도 않았는데 『조선에 물건만 가지고 가면 다 돈이 된다고 기래요』라는 말을 했다.노인의 말을 입증이라도 하듯 해관(세관)이 있는 압록강변 국경지대로 짐을 실은 차들이 몰려들었다.물건이 잔뜩 든 골판지 상자와 큰 부대자루들이 장백진 쪽에서 통관을 기다리고 있었다.
  • “개성있는 언어” 산문집 4권 눈길

    ◎유년시절 고백·분단현실 등 소재 다양/신경숙 「아름다운 그늘」/김하기 「마침내 철책끝…」/함광복 「DMZ… 아니다」/고종석 「고종석의 유럽통신」 한국문학의 지도에서 산문의 위치는 모호하다.붓 가는 대로 쓴 수필로서 감상적인 여고생이나 주부의 심심파적 정도로 치부되기도 하고 시나 소설에서 맛볼 수 없는 깔끔한 언어로 삶에 대한 직접적인 통찰을 드러내는 글로 대접 받기도 한다. 감상적인 수요층을 노골적으로 겨냥,감미료를 잔뜩 친 수필집들이 서점의 에세이 진열대를 가득 메우고 있는 가운데 최근 독특한 산문집 4권이 나왔다.작가 신경숙씨의 「아름다운 그늘」을 필두로 김하기 산문집 「마침내 철책 끝에 서다」,함광복 산문집 「DMZ는 국경이 아니다」,고종석 산문집 「고종석의 유럽통신」등이 그것.이 책들은 주제와 스타일은 다르지만 개성적인 언어로 산문정신의 본질인 「삶의 진실」을 추구하고 있다. 젊은 여성작가 중 가장 주목 받고 있는 신경숙씨의 「아름다운 그늘」은 마음의 떨림을 섬세한 언어에 담아온 소설가의 사적인고백.농촌에서 식구들과 부대끼며 자란 유년시절,글쓰기와 문단 친구들 이야기 등을 특유의 섬세한 문체로 속삭이며 작가는 언어로 드러나지 않는 삶의 비의에 가 닿고자 한다.이 책의 소제목인 「말해질수 없는 것들」이란 말은 그의 감성의 세계를 한마디로 드러내면서 유행어가 돼버렸다. 「마침내 철책끝에 서다」는 지은이가 휴전선을 따라 여행하며 통일에 대한 염원을 담은 기행문.백령도·강화도·민통선을 거쳐 최전방 철책 끝에 이르기까지 서로 대치하고 있는 민족의 고단한 운명을 보며 한층 불댕긴 지은이의 민족애가 열정적으로 뿜어져 나온다. 「DMZ는 국경이 아니다」역시 분단 현장인 DMZ을 글감으로 한 글.하지만 사회부 기자의 글답게 DMZ의 생태계와 거주지·역사 등에 대한 방대한 보고서의 성격이 짙다.천연기념물의 보고로서,주말 외출한 군인들이 애인과 어울리는 최소한의 삶의 터전으로서,그리고 예술가가 월북하고 남북이 정치적으로 충돌했던 역사의 현장으로서 DMZ의 중첩된 의미가 간결하고 차분한 문체에 실린다. 「고종석의 유럽통신」은 현재 파리에 체류중인 신문기자출신 지은이가 한국의 선후배·동료들에게 띄우는 편지글 형식.1백23년전의 실패한 파리 코뮌,일본인의 노벨문학상 수상,대선을 앞둔 파리의 분위기 등 현안을 보는 소감과 현지에서 본 앙리 레비의 영화,반 고흐,생텍쥐페리 등에 대한 여러가지 상념이 지은이의 두터운 문학적 소양과 사회를 보는 매운 눈에 걸러져 명쾌하게 드러나 있다. 문학동네 차창룡 편집차장은 『산문집이라면 이미 발표한 글을 모으는 것으로 흔히 알려져 있지만 최근엔 시골로 내려가서 산문집에 실을 글을 따로 쓰는 시인도 있다』면서 『산문이 푸대접받는 시대라지만 산문을 통해 아름답고 정확하면서도 감각에 맞는 국어에 도전하고자 하는 젊은 문인들도 적지 않은 듯 하다』고 말했다.
  • 장백진과 혜산시(압록강 2천리:2)

    ◎장백진에 조선족 2∼4세대 1만3천명/다리하나 건너 혜산시,북한철도 종착점/“못가는 고향땅”… 가슴엔 증오의 그리움만 일제치하에 우리민족이 무리지어 건넜다가 8·15 감격속에 다시 우르르 몰려 고국땅으로 넘어갔던 국경의 강.백두산기슭 장백조선족자치현 탑산에서 내려다본 국경의 강 압록수는 올해 8월 아침에도 유유했다.그러나 역사는 의구한 산하와는 달리 운명이 바뀌어 강건너 고국은 분단된 지 50년이 되었다. 그 강건너 지척에다 고국을 두고 중국에 눌러앉은 조선족은 백두산 아래 장백현에도 보금자리를 이루었다.장백조선족자치현이라는 행정구역상의 명칭처럼 장백현에는 조선족이 많이 산다.최근 통계에 따르면 장백현의 조선족 이주민 후손들은 1만3천1백명으로 전체인구의 17.1%를 차지하고 있다.조선족이 가장 많이 살았던 1929년에는 4천2백57가구 2만4천3백49명이나 되었다. ○전체 인구의 17% 차지 장백진 조선족에게 고향을 물어보면 모두가 고국의 고향을 댄다.이주민 1세들이야 모두 세상을 떠났지만,2세는 물론 4세들 까지도 고향을 그리는 마음은 대단했다.그러나 강건너 북한 땅에 고향을 둔 사람은 여권이나 통행증이 없어서 못 가고,한국에 고향이 있는 사람은 혈육이 없거나 연령제한으로 선뜻 귀향길이 열리지 않고 있다.이래저래 애만 태우는 조선족은 고향이 원수 같다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장백진에 사는 이태원(80·강원도 회양군 태생)노인은 갈래도 갈 수 없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증오 섞인 말로 표현했다. 『누군들 고향 떠나기가 소원이겠수.등 따뜻하고 배 고프지 않으면 안 떠났을 거우다.그래도 고향은 핏줄 같아서 가보고 싶을 때가 많수다.나이들면 새록새록 더 생각이 나디만 맘대로 갈 수가 없다우다.어려서 떠나서리 잊을 만한 나이도 되았는데….어떻게 고쳐 맘먹으면 가지도 못하는 고향이 고향이가 하고 단념할 때도 있수다.그런데 그 맘이 오래가지 않으니 어찌하갔수.그놈의 고향이 뭔디…』 이태원노인은 13살 나던 정월 열엿새날 고향을 떠난 것으로 정확히 기억했다.헐벗고 굶주려도 고향과 선산을 지키겠노라던 아버지도 더 버티지 못하고 짐을 꾸렸다.만주를 목적지로 하고 떠났지만 함흥에 이르러 생각이 달라졌다.조선땅을 떠나기가 싫었을 뿐 아니라 신흥군 발전소공사장에 가면 돈을 번다는 말을 듣고 발길을 돌렸다.신흥군 장진에 막상 들어갔더니 발전소 일이라는 것이 도수로터널공사여서 하루에도 수십명씩이 죽어나온다는 것이었다. 그 말에 정신이 퍼뜩 들어 삼수 개원을 찾아나섰다.그런데 길에서 일곱식구가 개원에 들어갔다가 다 죽고 혼자 살아온다는 사람을 만났다.거기도 살곳이 못된다 싶어 결국은 조선땅을 떠나기로 하고 6식구가 혜산을 거쳐 장백현으로 들어와 눌러앉았다.조선족이면 그만한 사연은 다 가지고 있다.그럼에도 지지리도 못 살아 버리고 온 고향을 그리워하는 까닭은 동물적 귀소본능에서일까. ○한족도 망향탑 세워 탑산에는 망향봉이라고 이름한 산봉우리가 있다.그리로 발길을 옮겨보았다.조선족이 그런 이름을 붙여놓은 것이 아닌가 했지만 사실은 고향을 그리워하는 한족이 모이는 곳이라 했다.웬 한족의 실향인가 하겠지만,장백현에는 하북성이나 산동성 사람들이 많다.그들은 중양절이면 망향봉에 올라 서남쪽을 향해 꿇어앉아 절을 올리며 고향과 혈육에 대한 그리움을 달랜다는 것이다. 이 망향봉에는 비석 하나가 서 있다.거기에 「그제날 고향이 그리워 눈물 짓더니 오늘은 고향을 바라보며 환히 웃네」라는 한시가 보였다.「고향을 바라보며 환히 웃는다」는 한족의 그 마음과 우리 조선족의 마음은 사뭇 달랐다.조선족의 심사를 읊조리라면 「고향을 바라보며 눈물 짓는다」라고 했을 것이다.손을 뻗으면 닿을듯 가까운 강건너 혜산시도 마음대로 갈 수 없는 처지고 보면 조선족의 망향의 한은 뼈에 사무치고 있다. 혜산시는 지난 1954년 함경북도와 함경남도 일부를 합해 신설한 양강도의 중심 도시다.삼수와 갑산을 이웃한 이 국경도시의 인구는 약 22만명이라고 한다.이른바 백두산청년선(길주∼혜산간),삼지연선(혜산∼삼지연간),북부내륙선(혜산∼운봉간)등의 철도 시발점이자 종착점이기도 하다.특히 삼지연선은 백두산의 그림자가 수면 위에 일렁이는 삼지연이웃에 닿는 철길인데,삼지연 일대는 북한이 자랑하는 혁명 사적지라고한다. 혜산시는 조선전쟁(한국전쟁)때 운명이 바뀔뻔했다.장백진의 노인들은 19 50년11월께 혜산에 들어왔던 미군들을 먼 발치로 보았던 일을 기억하고 있다.노인들 뿐아니라 50대들도 강건너에 온 미군들을 기억해냈다. ○미군기 폭격도 받아 그리고 나서 며칠이 지난 뒤에 미군들은 없어졌으나 장백진 사람들은 혜산쪽을 향해 곤두박질하면서 폭격을 해대고 다시 치솟는 미군 비행기 꼬리를 전쟁 내내 목격했다.장백진 조선족 중에는 연변조선족처럼 조선의용군 자격으로 전쟁에 참전한 사람들도 더러 있다. 어떻든 조선전쟁을 피부로 느꼈을 만큼 혜산과 장백진은 다리 하나를 사이에 둔 이웃이다.장백진 사람들은 모진 사람 곁에 있다 벼락 맞는 꼴로 전쟁을 간접적으로 치른 셈이다.돌 팔매질은 아니나 혜산의 돌이 장백현으로 날아올 때도 있다.지난 1971년 혜산시에서 도로공사를 하느라고 터뜨린 다이너마이트가 폭파하면서 돌멩이가 압록강을 넘어 장백현 마록구로 날아들었다.이 때에 호옥방이란 중국사람이 돌에 맞아 불구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와는반대로 지난 1977년 4월25일 장백현 마록구 도로공사 현장에서 폭파작업을 할때 날아간 돌이 강을 넘어 혜산시 청동고등중학교 학생 김경옥양을 때렸다.그 학생은 아예 생명을 빼앗겨 버렸다.이러한 사건이 일어나면 가해자 쪽에서 으레 위문대표단을 피해자 쪽에 보냈다.그러나 어디까지나 압록강은 국경이어서 사사로운 도강은 어림없는 일이다. 이 팔월 무더운 날에 옛 함경도 땅 양강도 냉면 한 그릇을 맛보는 것도 좋으련만 생각으로 그쳐야했다.함께 동행한 서울신문 김명국기자도 함경도 냉면 이야기를 했더니 침을 삼켰다.김기자는 아마도 통일이 되어야 함경도 냉면을 제바닥에서 맛볼 수 있을 것이다.서글픈 감회가 들었다.
  • 「쌀 북송선 억류」를 보고/김학준 단국대 이사장(기고)

    ◎항구외양 찍은게 어떻게 정탐인가/북 강경파 「입지 강화용」 가능성 높아/인질외교 펼쳐 추가양보 얻을 속셈/이번 「폭거」 교훈삼아 남북관계 정관하는 자세 필요 북한이 우리 선박 삼선비너스호와 그 선원들을 억류했다는 통일원의 공식 발표는 우리 국민 모두를 분노하게 만든다.그 배가 어떤 배인가? 북한에 쌀을 무상으로 주기 위해 청진항에 입항한 배가 아닌가? 다른 배라고 해도 분노하게 마련인데,바로 북한의 식량난을 풀어주기 위해 쌀을 싣고 들어간 배를,그리고 그 배의 선원들을 억류했다고 하니,어찌 분노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북한의 설명으로는 삼선비너스호의 항해사 이양천씨가 항구 사진을 찍은 것이 북한에 대한 「정탐행위」라는 것인데,이것은 우리로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보통 카메라로,그것도 배에서 항구의 외양을 찍은 것이 어떻게 「정탐행위」가 될 수 있겠는가. 그동안 남북회담이 있을 때마다 서울을 방문한 북한 대표들이나 기자들은 서울을 수없이 찍어갔다.그렇다면 그들 역시 한국을 상대로 「정탐행위」를했었단 말인가. 설령 이항해사의 사진 촬영행위가 북한 당국의 비위에 맞지 않았다고 하자.그렇다면 필름을,또는 백보를 양보해 문제의 카메라를 압수하는 것으로 충분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선박과 21명의 선원 전원을 억류하는 속셈은 무엇인가? 그뿐 아니다.이 일을 구실삼아 8월10일에 베이징(북경)에서 열릴 예정이던 3차 회담을 연기했는데 그 속셈은 무엇인가? 첫째 북한 내부의 강경파가 저지른 소행일 수 있다.북한의 교조주의자들은 남북 사이에 쌀교섭이 진행되던 때에 이미 『다른 나라로부터 쌀을 얻어먹어서는 나라의 자립이 흔들린다』는 방송을 내보내면서 남쪽으로부터 쌀을 원조받는 것에 대해 반발했었다. 사실 주체를 내세우는 북한이 다른 나라로부터,더구나 「미 제국주의의 식민지」라고 경멸해 온 남한으로부터 쌀을 원조받는 것에 대해 북한 내부에서는 이론 투쟁이 심각하게 벌어졌을 것이며,지금도 벌어지고 있을 것이다.자신들이 배급받은 쌀이 「조선 인민의 철천지 원쑤」라는 일본으로부터 왔고,또 「아이들이 깡통차고 다니는 곳」이라는 남한으로부터 온 것임을 북한 주민들이 깨닫게 될 때,북한 주민들의 의식구조에 동요가 발생할 것임을 북한의 통치자들은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래서 쌀 수송선 자체를 억류해 남북사이에 더이상 쌀 교류가 없게끔 만들고자 획책한 것일 수 있다. 둘째,국제적 예양으로는 도저히 맞지 않는 일이지만,북한 나름으로는 자신의 체면을 세워보겠다는 속셈에서 취한 대응 방식일 수 있다.『우리가 비록 너희에게 얻어먹기는 얻어먹어도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과시하겠다는 뜻에서 무례를 저질렀을 것이라는 풀이이다. 셋째,인질 외교의 전술일 수 있다.남한 내부에서 『북한에 대해 더 이상 무상으로 쌀을 줄 필요가 없다』는 목소리가 거세지는 것을 보고,문제의 삼선비너스호와 선원을 억류해 인질로 삼은뒤 한국정부로부터 양보를 얻어내려는 전술을 쓰고 있다는 판단도 든다. 이 점과 관련해 주목되는 것은 남북 쌀회담의 북쪽 대표인 전금철이 우리에게 보낸 설명문에서 『쌀지원을 변함없이 추진시켜 나갈 것을 보장하라』고 요구한 사실이다.이것은 북한이 여전히 우리로부터 쌀을 무상으로 지원받고 싶어함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넷째,8월15일에 발표될 것으로 보도된 김영삼대통령의 「획기적 대북제의」에 미리 찬물을 끼얹으려는 속셈도 개입된 것으로 보인다.한국정부가 현행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기 위한 조처를 발표할 것으로 알려지자,북한으로서는 그러한 제의 자체를 사전에 봉쇄 또는 약화시키기 위해 쌀 수송선 억류라는 강수를 놓았다는 풀이이다. 북한의 속셈이 그 무엇이든,한 가지 확실한 것은 북한은 남북관계의 개선에 큰 마음이 없다는 사실이다.우리로부터는 급할 때 공짜로 얻을 것이 있으면 얻어나가면 그만이고,그럴 일이 없으면 남북관계를 그대로 교착시켜 놓겠다는 뜻이 분명하다.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이와 같은 폭거를 저지를 수 있단 말인가. 이렇게 볼 때,우리도 남북관계에 신중히 대처하는 쪽으로 방향을 정하는 것이 옳겠다.더 이상 북한에 대해 유화적이거나 타협적으로 비치는 조처는 취하지 말고,오히려 북한이 우리를 다급히 찾을 때까지 정관하는 것이슬기롭겠다. 그러나 우선 삼선비너스호와 선원 전원은 반드시 돌아오도록 해야 한다.우성호와 선원 전원의 무사 귀환도 거듭 요구해 반드시 실현시켜야 한다.그렇지 않은 상태에서의 남북 교류라면 국민들이 동의하기 어려울 것이다.
  • 「문학과 사회」 가을호작품에 몰두/소설가 오정희씨(작가와의 대화)

    ◎“문 닫아걸고 원고지와 씨름”/나는 굼뜬 작가… 조바심 치지만 하루 한장이 고작/「고통없이 쓴 글은 흉내」 박경리 선생 말은 큰 위안 「작가로서의 광기도 없고 특별한 삶을 살지도 못한다는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던 몇해전 박경리 선생님을 처음 뵈었어요. 외딴 곳에서 아무 걸릴 것없이 문학만 하는 것 같은 선생님이 너무 부러워 저처럼 가정의 울타리에 갇혀서야 무슨 큰 글을 쓰겠느냐고 투정을 부렸습니다. 선생님은 자신의 고단한 체험에서 우러나지 않은 글은 흉내고 관념일뿐 진짜 문학이 아니라고 저를 달래며 웃으시더군요」 삶의 속됨과 누추함을 가차없이 드러내면서도 이를 명징한 언어로 포현해 오히려 아름답게 느끼게끔 하는 작가 오정희씨(48).주부노릇 엄마노릇에 1년에 많아야 단편 세편으로 숨바꼭질하듯 독자와 만나온 그가 요즘 부쩍 바빠졌다. 계간 「문학과 사회」 가을호에 실을 작픔을 쓰느라 문고리를 걸어잠근채 한여름을 나고 있기대문. 또 멀잖아 그간 발표한 작픔들이 문학과지성사에서 창작집으로 묶여 나온다. 「글쓴답시고 훌쩍 어디 놀러도 못갈만큼 항상 마음죄며 살아요. 그러면서도 이리 더딘것을 보면 제가 굼뜬 작가인가 봐요」 최근 동료들이 두번이나 그의 작품세계를 집중 조명한 것도 그의 마음을 바쁘게 한다. 얼마전 나온 책 「오정희 문학앨범」(웅진출판사)은 그를 아끼는 문인들이 작품론과 작가론을 하나씩 내놓아 「오정희 문학」의 웅숭깊은 세계를 해부한 기획. 보석을 깎듯 글을 다듬고,단정하게 가족을 건사하면서도 웃사람에겐 너그러운 벗으로 살아온 삶의 여러 층위를 짐작케 해준다. 이 책엔 지인들이 쓴 연대기와 작품론,작가와의 사연을 담은 이경자·이제하씨의 글,그가 손수 고룬 산문 세편,또 「유년의 뜰」「동경」 「옛우물」 등 소설 세 편을 수록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흥미있는 글은 작가가 직접 밝힌 「소설쓰기,소설짓기」이다. 식구들이 집을 나선 아침 7시부터 하루를 써내려간 이 글엔 정확하고 아름다운 한줄을 위해 원고지칸과 피를 말리는 씨름을 해야 하는 작가의 생활이 드리워져 있다. 그것을 한없이 확장되는 희고 텅빈 종이앞에서 커피를 마셨다,집안을 치웠다 조바심을 치지만 하루에 원고지 한 장을 다 못채우는 언어 세공인의 운명이다. 또 계간 문예지 「작가세계」 여름호도 「오정희 특집」을 실어 그의 작품세계를 소개했다. 고교시절 「인생따위는 아무래도 좋다, 다만 책을 읽고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까지했던 그녀가 어떻게 반복되는 살림살이를 덤덤히 받아들이게 됐을까. 「젊은 날엔 본디 환상과 열정이 승한 법이지요, 하지만 이젠 지루하고 권태로운 일상이 구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라는 게 여유있게 웃는 작가의 대답이다.
  • 타국에서 부른 노래(두만강 7백리:23·끝)

    ◎민족의 한 서린 「선구자의 무대」/연변 원로 음악인 김종화씨,윤해영·조두남에 얽힌 이야기 들려줘/해란강변 말 달리던 선구자 간 곳 없고/일송정 그 자리엔 기념비만 외로이… 중국 동북3성.이른바 만주라고 불렀던 북지에는 민족의 한이 어디 못지않게 서려있다.그리고 그 한을 노래로 달랬던 사연도 숱하게 간직했다.오늘날까지도 민족이 널리 애창하는 애수 어린 가곡과 구슬픈 유행가들이 여기서 잉태되었다. 용정시 시가지에서 4㎞ 떨어진 비암산과 일송정,비암산에서 바라본 해란강은 유명한 가곡 「선구자」노랫말의 무대다.지금으로부터 58년전만해도 돌기둥에 흡사 청기와를 덮은 듯 싶은 두 아름드리나 되는 소나무 한 그루가 서 있어 일송정이라는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그 자리에 지금은 일송정 기념비와 정자가 들어섰다.또 근래에 정자로 올라가는 길에 「선구자탑」이 세워졌는데,무슨 영문인지 몰라도 곧 폭파되었다. ○노래유래 등 사라져 그 바람에 탑에 새겨두었던 「선구자」의 노랫말도,노래의 유래도 사라졌다.그러나 1990년 「선구자탑」을 세운다고 했을 때 꼬깃꼬깃 접어 간직했던 「선구자」노래와 작사자 윤해영,작곡자 조두남에 얽힌 사연을 증언한 분이 생존해 있다.1921년 화룡시 용문향 태생의 연변 원로음악인 김종화(74)선생이 그 분이다.연길시 흥안향에 사는 그를 찾았다.지금도 틈틈이 기타를 칠 정도로 아주 건강했다. 『1939년 이른 봄이었디요.부친과 함께 일곱식구를 거느리고 훈춘 양수를 떠나 흑룡강 목단강시에서 80여리 떨어진 신안진으로 이사를 한 것입네다.신안진은 60리 넓은 벌판이라 18개나 되는 큰 마을들이 자리잡은 반도시 반농촌이었댔는데,학교만 해도 10개에 병원도 3군데나 됐드랬디요.내가 꾸린 동양사진관 같은 사진관도 5개나 되고….벌판을 질러 흐르는 해랑강에 뗏목을 띄워 해림을 거쳐 목단강으로 들어갔기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몰려들었디요.그래서 여관이며 식당이 흥청대고 기생집들도 적잖았수다.그런데 신안진에는 음악을 좋아하는 의사 한 분이 안전병원이라는 병원을 경영하셨댔디요.기타연주와 작곡법을 배우던 나도 그 병원을 드나들던 사람중의하나였습네다』 그는 신안진에서 1942년 겨울 조두남을 먼저 만났다.자그마한 유랑극단에서 아코디언 주자였던 조두남의 첫 인상은 키가 커 보이고 깡마른 것이었다.「라 콤파르시타」와 「마리네라」를 연주하면서 정서전환점에 다다르면 으레 히죽 웃곤 했다.깡마른 체구에서 어떻게 저런 음악이 나오나,하는 찬탄이 절로 나올 정도였다.조두남의 왼손엔 붕대가 감겨있었다.할머니의 강권으로 일찍 고향 평양에서 장가를 들었던 조두남은 이참저참 집을 뛰쳐나왔던 것으로 김종화선생은 기억했다. 안전병원을 개업한 안의사댁은 음악을 한다는 사람들로 늘 붐볐다.조두남도 그 집에 묵었다.1943년 가을 목단강시 유랑극장에서 「동만총성 추기 민족예술전」을 열 때 신안진악단연주로 조두남 창작이 모두 무대에 올랐다.「한 사나이의 반평생」「농촌의 사시절」「고향생각」이 인기를 끌었다.그 무대에서 「고향생각」을 불렀던 남수억(74)은 지금 화룡시 팔가자진에 살고 있다. ○「용정의 노래」로 불러 김종화 선생이 윤해영을 만난 것은 1944년 봄의 일이다.조두남이 집에 찾아와 영안에서 갖는 신곡 발표공연에 나와 기타를 쳐달라는 부탁을 받고 영안에 갔다가 만났다.물론 조두남의 소개를 받았다.그 발표공연에서 오늘날 「선구자」로 더 널리 알려진 「용정의 노래」가 처음으로 발표되었다.이밖에도 윤해영 작사 조두남 작곡으로 된 「목단강의 노래」 「산」 「흥안령 마루에 서운이 핀다」등을 선보였다. 윤해영과의 첫 만남을 쉽게 떠올린 김종화 선생의 얼굴에는 연민의 그늘이 스쳐갔다.김종화선생의 말을 들으면 윤해영은 매우 불행한 삶을 산 것 같다. 『작사자 윤해영 선생은 조두남 선생 보다 두 세살 위이었디요.키는 작았지만 아주 친절합데다.학교에서 선생질을 하다가 영안 협화회에서 일을 보고 있다고 기랬어요.그날 신곡발표공연이 끝나고 윤해영 선생 집에서 소박한 술자리를 벌였디요.다가 「목단강의 노래」를 합창한 기억이 납네다』 그 「목단강의 노래」에는 윤해영이 인간적으로 겪었던 불행한 사연을 담았다는 것이 김종화 선생의 설명이다.윤해영의 집 술자리에서 「목단강의 노래」합창이끝나자 윤해영은 벽에 걸린 사진액자를 거두어 한 없이 흐느꼈다고 한다.아이를 안고 있는 윤해영의 부인 모습이 든 사진액자였는데 얼마전에 세상을 떠난 부인을 추모하기 위해 쓴 가사가 「목단강의 노래」라고 실토하더라는 것이다. 1945년 9월 윤해영은 신안진 대성백화점 김광호의 여동생을 후처로 맞았다.후처는 소학교 선생이었다.처가에 왔을 때 김종화선생을 불러 「해저문 마을」의 작곡을 부탁했다.김종화선생은 신문에 난 윤해영의 시 「동북인민 행진곡」에 곡을 붙여 발표한데 이어 1946년 7월 목단강시 서장안회관에서 같은 방법으로 윤해영 작사 「동북인민 자위송가」를 내놓았다.윤해영은 「동북인민 자위송가」발표 마지막 날 김종화선생을 찾아와 술을 마셨다.그 술자리에서 윤해영으로부터 후처가 결혼 일곱달만에 아이를 낳아 이혼했다는 것과 혼자 떠돌아 다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것이다. 그 이후 윤해영이 떡국 장사를 했는지 어느 식당에서 보았다는 사람이 있다.그러나 김종화선생의 판단은 그가 북한으로 건너갔다는 것이다.왜냐하면 1949년 우연히 입수한 북한 노래집에서 윤해영 작사의 「분여받은 땅」인가 하는 노랫말을 보았기 때문이다.「장군님 주신 땅에 밭갈이 하세」등의 내용이 들어있는 북한정책 찬양노래라 했다.윤해영의 소식은 그렇게 끝나고 말았다. ○가사도 조금 달라져 김종화 선생의 이야기는 다시 조두남에게로 이어졌다.1944년 봄 신곡발표회 이후 평양 고향에 갔다가 그 해 겨울 신안진으로 다시 돌아온 조두남의 인생에는 새로운 변화가 있었다.그것은 조두남의 두번째 결혼이었다. 『첫번째 부인은 남편이 밖으로만 돌자 개가를 했더라고 기래요.그런데 새로 맞은 부인은 늘씬한 서울나기 여성이었디요.그때 조두남선생은 목단강시에서 극단을 조직하고 있던 관계로 태평양레코드 전속가수 서태림과 조두남선생이 손수 키우던 21살 짜리 손풍금수 안향락을 데리고 와 함께 만났댔습네다.날 더러도 극단에 가자는 것을 식구들 생계 때문에 사양했디요.기리고 나서 1945년에 조두남선생이 신안진에 와서 안전병원 안원장과 내가 사진을 찍은 것이 마지막이야요.한참 세월이 흐르고 나서 우연히 서울방송을 듣다가 「용정의 노래」가 나와 귀를 번쩍 떴디요.그런데 가사도 좀 바뀌고 곡목도 「선구자」로 바뀌었습데다.이 말을 다 한 것은 역사는 언젠가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생각에서 우다』
  • 중견작가 유순하씨 새 장편소설 「아주 먼 길」

    ◎“가진 자의 탐욕 날선 언어로 해부” 지난 8∼9년간 집중적인 글쓰기로 주목 받아온 중견작가 유순하씨(52)가 새 장편소설 「아주 먼 길」을 문학과 지성사에서 펴낸다. 희곡 「인간이라면 누구나」로 68년 사상계를 통해 데뷔한 그가 첫 소설집을 낸 것은 지난 88년.이후 그는 마치 늦은 물오름에 한풀이라도 하듯 1년에 두세권씩 단행본을 쏟아냈다.노동문학으로 분류되는 「생성」「배반」,일본에 대한 민족감정을 다룬 「고궁」,우리 사회 중간층의 목소리를 묶어낸 창작집 「벙어리 누에」를 거쳐 94년 여성운동의 문제점을 추궁한 「한 몽상가의 여자론」,올초 대기업 삼성의 실체를 파헤친 비평서 「삼성,신화는 없다」까지 그는 남들이 손대지 않는 곳으로 끊임없이 글감의 폭을 넓혀온 소설가로 꼽힌다. 하지만 이처럼 많은 그의 작품을 하나로 묶는 끈이 있다.그것은 바로 상식을 존중하는 균형감각이다.사람살이의 소박한 윤리를 믿는 그의 소설은 간혹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이것이 작품을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게끔 하는 받침대 역할을 해왔다. 「아주 먼 길」은 이런 점에서 지극히 유순하적인 작품이다.서울의 대학휴학생 영선과 농촌 처녀 준희의 눈으로 번갈아 쓰이는 이 소설은 가진 사람들의 탐욕과 타락을 날선 언어로 해부하면서 인간됨의 본질을 묻고 있다. 물욕에 휘둘리는 아버지와 아귀 같은 어머니를 미치도록 증오하는 영선은 어머니가 작은 부인임을 알게되고부터 스스로를 타락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다.그런 그에게 뒷산의 들풀처럼 스스럼 없는 준희가 나타난다.또 자신보다 더 버거운 삶을 버텨온 이복형제들,식구들의 패악을 감싸는 가정부 재윤 어머니도 그의 마음을 흔드는 인간성의 소유자다.소설은 결국 아버지의 죽음과 「한때 소녀시절엔 미래에 대한 보랏빛 꿈을 꾸며 흰천에 꽃수를 놓던」 그러나 지금은 욕망 때문에 쓰러진 어머니의 비참한 발작앞에서 모든 것을 용서하기로 하는 영선의 깨어남의 과정을 그리고 있다. 어찌보면 밋밋해뵈는 얼개지만 우리말의 아름다움이 책읽는 즐거움을 더한다.「맑은 공기가 콧구멍을 거쳐 가슴에까지 이어 흐르는 소리가 호르르 울리는듯했다」「문득문득 들국화가 나타났다.더러는 두셋이 함께,더러는 홀로,더러는 건성드뭇이 무리를 지어」같은 아름다운 문장에서 지은이의 농익은 붓끝을 엿볼 수 있다.
  • 4당 체제속 구 양김구도 복원노려/김대중씨 복귀와 정국전망

    ◎세대교체 맞불 확산땐 정치권 긴장 지속/신당의 지역당 이미지 극복 노력이 변수 ○대권도전 의심 안해 김대중 아태재단 이사장은 18일 기자회견에서 정계은퇴 선언을 2년7개월만에 번복하게 된 이유로 두가지를 들었다.하나는 지금이 국가적 위기라는 것이고 또 하나는 민주당이 제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그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민주당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열거하며 신당창당의 불가피성을 역설했다. 정계복귀 선언이 그의 네번째 대권도전을 위한 것이라면 신당은 그의 목표달성을 위한 확실한 발판인 것이다.물론 그는 이날 대권도전에 관해서는 명확한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 점을 의심치 않는다. 무엇보다 지방선거 승리가 그의 「원초적 본능」을 자극했고 『이번만은 상황이 다르다』며 대권도전의 야망에 불을 지폈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내년 총선에 승부수 김이사장은 이제 더이상 장막뒤의 지도자가 아니다.그가 만들 신당은 민주당 의원들의 대거 합류로 원내 제2당이 확실하다.그는 신당의 총재를 맡을게분명하다. 그의 복귀로 정치권은 민자·민주·자민련과 신당 등 4당체제로 재편된다.그러나 민주당은 남은 식구들간의 당권경쟁으로 한동안 자기위치를 찾지 못할 것이고 따라서 실질적으로는 3당구도로 봐야할 것 같다.이는 곧 「신 3김시대」의 도래를 의미한다.당분간은 DJ(김이사장)와 JP(김종필 자민련 총재)가 연대한 가운데 김영삼대통령에게 맞서는 형국이 될 가능성이 높다.김이사장은 이날 회견에서도 『향후 자민련과의 연대를 적극 모색할 것』이라고 분명히 했다.또 『개인적으로 대통령제를 지지하지만 내년 총선에서 나타날 민의를 겸허히 수용,필요하면 태도를 바꿀 수도 있다』고 내각제 개헌문제에 관해 한자락을 깐 것도 자민련을 의식했기 때문이다.실제로 지역적 기반에 의존해 온 김이사장으로서는 자신의 「태생적 한계」를 감안할 때 내각제가 보다 현실성이 있다. ○내각제 무력화 시도 그러나 권력구조에 대한 김이사장의 선택은 내년 총선 결과에 따라 좌우될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자신의 목표대로 내년 총선에서 민자당을 제치고 신당이 원내 제1당이 된다면 야권의 대표주자로 김대통령과 정국주도권을 양분하는 양김시대가 이루어질 수 밖에 없다.자연스레 권력구조에 대한 선택권도 김이사장의 수중에 떨어질 공산이 커지게 된다.이에 이르기까지 DJ와 JP 두사람은 줄기차게 자신들의 실체 인정을 요구하며 내각제 개헌문제를 적절히 활용할 것 같다. 그러나 김대통령이 이들의 요구에 응할 조짐은 아직 없다.오히려 대대적인 세대교체 공세로 두사람의 무력화를 꾀할 전망이다.좋든 싫든 세대교체와 내각제 개헌은 이제 정치권의 핫이슈가 돼 버린 셈이다.당연한 결과로 정국은 긴장의 연속일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신당의 앞날이 그리 밝지만은 않은 것 같다.우선 지역당의 한계극복이 문제다.사당의 부정적 이미지도 강하다.까닭에 「전국정당」은 여전히 요원한 과제다.8월말로 창당일정을 늦추면서 잔류 민주당과의 통합을 내심 바라고 있지만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70%에 가까운 비난여론도 신당의 행동반경을 제약할 요소로 꼽힌다. 마지막 대장정의 길을 떠난 DJ가 과연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을지 두고볼 일이다. ◎김대중씨 회견문 요지 오늘 저는 참으로 고뇌에 찬 마음과 죄송한 심정으로 저의 정계복귀에 대한 의사를 국민 여러분께 밝히는 바입니다.1992년12월19일 국민 여러분께 드린 정계은퇴 약속을 지키지 못한데 대해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저는 정계은퇴시 김영삼대통령의 당선을 축하하고 그 분의 국정운영을 편안하게해 드리고자 영국으로 떠났습니다. 그러나 2년반이 지난 오늘의 현실은 너무나 실망스러운 것입니다.이 점은 구구히 말씀드리지 않더라도 이번 지방선거에서 나타난 준엄한 국민적 심판으로 명백해졌습니다. 민주당이 걸어온 상황을 보면 야당의 역할을 제대로 못해 왔을 뿐 아니라 김대통령으로부터 대화의 상대로 조차 취급받지 못할 정도가 되었습니다.민주당이 견제와 비판의 기능을 제대로 했던들 오늘처럼 현정권이 오만에 빠져서 국정을 이토록 그르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민주당내 사정을 보면 당은 「한지붕밑 아홉가족」 같은 파벌양상을 보여왔습니다.당은 없고 파벌만 있습니다.당대표의 지도력부재,나눠먹기식 당운영,파벌과 금력을 동원한 당권경쟁으로 당은 절망적인 혼란과 기능마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만일 제가 은퇴 당시 기대했던 대로 정부와 민주당이 해야 할 일을 다하고 있었다면 제가 다시 정계에 복귀할 엄두도 낼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저는 오랜 시간 숙고에 숙고를 거듭했습니다.그 결과 비록 지금은 비판을 받더라도 당과 국정을 바로잡는데 저의 조그마한 힘이라도 보태는 것이 「행동하는 양심」을 평생의 신조로 살아온 제가 택할 길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 것입니다. 저는 많은 국민들과 당원들이 왜 당내에서 개혁을 하지 않고 신당을 만들어야 하느냐고 의아해 하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그러나 현재 민주당으로서는 당내개혁이 전혀 불가능합니다. 첫째,현 민주당지도부는 당을 잘못 이끌고도 책임을 지지 않고 있습니다.둘째,지금 상태로 전당대회를 치른다면 또다시 6천여명의 대의원을 상대로 파벌이기주의와 금력에 의한 매수가 판을 칠 것은 분명합니다.셋째,참신하고 역량 있는 인재를 영입하여당의 체질을 개선하고 정책을 발전시켜야 하지만 지금의 나눠먹기식 정당의 현실로서는 이것이 전혀 가망이 없습니다. 저는 지난 40년동안 많은 시련을 무릅쓰고 민주화와 평화통일에 노력해 왔습니다.이제 그 노력의 완성을 신당을 통해서 이룩하여 국민 여러분께 마지막 봉사를 하고자 합니다.
  • KT측/「당권 잡기」 일전 “초읽기”/구당파

    ◎반쪽 민주당 앞날 어찌될까/대의원 확보 우위… “퇴진 불가” 고수­KT측/“자퇴 않으면 전당대회 통해 장악”­구당파/이총재 재장악땐 또한번 탈당사태 올수도 신당파가 짐을 싸고 떠난 뒤에도 민주당은 한동안 바람잘 날이 없을 것 같다.남은 식구들간의 한판승부가 예정돼 있기 때문이다.이미 본격적인 당권 레이스에 돌입한 이기택 총재와 「구당파」의 당권싸움은 처절한 한판승부가 될 것으로 점쳐진다. 이번 싸움은 현실과 명분의 대결이라고도 한다.대의원 확보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이총재와 당개혁의 명분에서 앞서는 구당파를 빗댄 표현이다. 이총재는 8월 전당대회에서 당권을 재장악하겠다는 뜻에 변함이 없다.구당파의 총재직 사퇴요구를 『신당파의 청부를 받은 것』이라고 일축하며 퇴진불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특히 구당파들의 사퇴공세는 자신을 몰아내고 당권을 잡은뒤 신당과 합치려는 음모라고 치부한다. 현실적으로도 동교동계의 집단탈당으로 80%정도의 대의원 확보는 가능하다는 주장이다.무엇보다 이총재는 자신의 정치생명을걸고 이번 전투에 임하고 있다.상당액의 자금을 조성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하지만 『이총재로는 안된다』는 정서가 팽배한 현실은 그에게 「아킬레스 건」이다.환골탈태의 전혀 새로운 모습을 보이지 않고는 엉뚱한 결과가 나올 소지도 충분하다.개혁성향의 이부영 부총재와 연대를 적극 모색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김원기·조세형·김근태·노무현 부총재등을 주축으로 한 구당파는 당을 살리기 위해서는 이총재의 사퇴가 「필요충분조건」이라고 보고 반드시 당권을 빼앗겠다는 자세다.끝내 사퇴요구에 불응한다면 전당대회를 통한 합법적인 당권 장악을 도모하고 있다. 구당파는 이날부터 『신당반대와 이총재 퇴진은 별개 사안』이라며 이총재 사퇴에 무게중심을 싣고 있다.특히 신당의 「오류」를 명확하게 하기 위해서도 명분에서 앞선 구당파가 당을 장악해야 한다는 논리다. 당총재직을 겨냥한 후보단일화도 구당파가 가장 신경쓰는 대목이다.김정길 전 최고위원은 『단일화만 이뤄지면 우리가 이길 수 있다』고 말한다.단일후보로는 김원기 부총재가 유력하다.그와 친분이 두터운 노무현 부총재가 이미 사전 정지작업에 착수했다는 소문도 들린다. 하지만 구당파에게는 결속력이 문제다.신당이 제모습을 갖추면 그쪽으로 옮겨갈 의원도 있다.당권을 장악하면 신당에 「헌납」할 것이라는 루머도 「악재」다.특히 김부총재의 경우 그 정도가 심하다. 이번 당권경쟁은 그 결과에 따라 또한번의 분당사태를 초래할 수도 있다.이총재가 당권을 재장악하면 구당파들이 또다시 집단탈당할 가능성이 엿보이기 때문이다. 동교동계가 빠져나간 휑뎅그렁한 민주당사엔 이제 혈투를 앞둔 고요만이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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