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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료 에세이] 열린 마음으로/ 더불어 사는 세상

    “제주의 남쪽 앞 바다에서 배 한 척이 난파하여 좌초하였기로 대정현감과판관으로 하여금 현장에 나가 진상을 조사케 하였으나 어느 나라 사람인지알아낼 수 없었습니다.그들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과 처음 보는 문자를 사용하고 있었습니다.이 사람들은 눈이 파랗고 코가 높으며 머리는 붉고 수염은짧게 기르고 있는데 개중에는 아랫수염은 밀고 윗수염만 남긴 사람도 있습니다” 이는 효종 5년(1654년) 제주목사 이원진이 제주에 상륙하였던 하멜일행을 발견하고 조정에 올린 장계(狀啓) 내용의 일부분이다. 350년전 조상들이 우리와 전혀 다르게 생긴 이방인을 보고 이들에 대하여가지고 있던 호기심과 의구심을 읽을 수 있는 한 단면이다.지금과는 격세지감(隔世之感)이 있다. 20세기 들어 교통 통신의 발달로 국내는 물론이고 국가간의 교류가 급격히증가하고 있다.작년 한해동안 우리나라를 출입국한 사람은 1,820만명으로 매년 증가추세에 있다.금년에는 ‘ASEM회의’‘경주 세계문화엑스포’등이 열리고,‘2001년 한국방문의 해’를 거쳐 월드컵이 개최되는2002년에는 2,800여만명이 출입국할 것으로 예상된다.이미 우리 사회는 지구촌의 다양한 식구가 모여 사는 다원화시대에 들어서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국가간의 교류가 증가함에 따라 외국인에 대한 비자발급,공항과항만에서의 출입국심사,국내에 체류중인 외국인관리,불법체류자에 대한 단속과 강제퇴거,그리고 난민심사 등 일련의 외국인관련 업무가 폭증하고 있다. 법무부는 이러한 업무와 관련하여 단체여행객에 대한 출입국절차를 대폭 간소화하고,외국인이 국내에서 자유롭게 투자나 경영을 할 수 있도록 각종 규제를 완화하였다.그리고 재외동포들의 국내에서의 활동과 법적 지위향상을위하여 소위 ‘재외동포법’을 마련,시행하고 있으며,외국인 근로자들의 인권보호를 위해 여러 가지 대책을 강구하는 등 원활한 국제교류와 환경변화에탄력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이제 세계는 상생(相生)의 시대로 나아가고 있다.‘나 홀로'가 아닌 ‘더불어'라는 인식에 바탕을 둔 세계가 도래하고 있는 것이다.더불어 산다는 것은다른 사람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이해와 포용,그리고 상황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는 유연함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대사회는 더불어 사는 이들의 자유와 권리가 존중되고 자율성이 보장되는 가운데 개개인의 인격이 충분히 발현될 수 있어야 한다.상생(相生)의 정신은 개인과 개인뿐만 아니라 민족과 민족,그리고 인종과 인종 간에도 필요하다.그러기 위해서는 법이 존중되고 질서가 유지되어야 하고 경우를 지켜야한다.그래야만 한국을 방문하는 많은 외국인들이 편안하게 여행하고 한국에대한 좋은 인상을 갖게될 것이다. 金正吉 법무부장관.
  • ‘사면초가’ 현대 버티기 성공할까

    채권단과 현대가 마지막 샅바싸움에 들어갔다.채권단은 ‘은행장 합의’ 파기,재무구조개선 재약정 등 초강경 카드를 흘리며 현대를 옥죄고 있다. ■1·2라운드,현대 버티기 성공 현대건설 자금난의 1차고비는 1,090억원의 CP(기업어음) 만기가 돌아온 지난 7월24일이었다. 그러나 현대는 이를 자체 자금으로 막았다.2라운드는 1,466억원의 물품대금결제가 돌아온 29일.외환은행은 현대의 백기투항을 받아낼 수 있는 기회라고판단, 28일 ‘자금지원을 해줄 테니 사재출연과 문책인사 등을 단행하라’는조건의 공문을 현대건설측에 전달했다.그러나 현대건설은 ‘집안식구’인 현대상사에 ‘SOS’를 쳐 CP 500억원어치를 지원받았다.현대의 ‘백기투항’을기대했던 채권단의 계산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은행장 합의’ 깰 수 있다 채권단과 정부는 이번주 들어 현대를 바짝 몰아붙이기 시작했다.이를 감지한 현대도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다.외환은행 관계자는 “현대의 태도변화가 감지되고 있다”면서 “늦어도 다음주안에는 ‘계열분리’ 등의 발표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2일로 예정됐던 정몽헌(MH) 현대아산이사회 회장의 귀국이 늦춰지면서 현대는 다시 ‘버티기’에 들어가는 양상이다. 이에 채권단이 비장의 카드를 꺼내들었다.현대건설 여신 만기연장을 결의했던 ‘은행장 합의’ 파기 가능성을 흘리는가 하면,재무구조개선 재약정을 맺을 수 있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현대건설은 연내 만기도래하는 8,600여억원의 1금융권 여신이 만기연장되지않을 경우 심각한 자금난에 봉착하게 된다.채권단의 공공연한 ‘재약정’ 언급도 현대의 ‘용단’을 끌어내기 위한 ‘압박용’으로 보인다. ■현대전자 주식매각도 대안 채권단은 현대가 제시한 추가 자구계획안의 일부는 실현가능성이 낮다고 보고 있다. 외환은행 관계자는 “현대가 서산농장을 활용해 2,000억원을 마련하고 현대아산 주식을 매각해 668억원을 마련하겠다고 했으나 서산농장의 경우 정부와의 합의가 필요하고,아산 주식은 회사가 적자투성이인데 어떤 외국투자가에게 팔겠다는 건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은행측은 “현대로부터 처분권을 위임받은 주식 4,000억원어치중 팔고남은2,700억원어치는 중공업을 제외하면 석유화학·정공 등 모두 조기 현금화가어려운 비상장주식”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현대전자 주식을 매각하거나 MH가 보유하고 있는 전자 주식을 채권단에 위탁하는 방안이 가장 현실성 높은 유동성 확보방안중 하나라고 제시했다. 안미현기자 hyun@
  • [여성 선언] 여성의 힘과 종교

    평일 날 집에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기독교를 전도하는 사람들의 방문을 받아 보았을 것이다.방문하며 전도하는 사람들은 거의 여성들이다.그러한 방문을 통해서 전도되는 사람들의 수가 얼마인지는 모르지만 정말짜증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다년간의 경험에 따르면 아예 문을 열어주지 않고 “됐어요”라는 답변만으로 돌려보내야지,만일 문이라도 열고 예의상 정중한 거절이라도 할라치면 결코 물러서지 않고 설득하려 든다.모든 논쟁에 대한 대비와 인내심 있는 설득을 할 각오로 철저하게 무장하고 있음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나름대로 자신이 믿고 있는 진리를 전하고 싶은 소명감으로 그러한 수고를 마다하지 않으리라고 이해를 해보면서도 진리를 전한다는 그 방법이나 태도에 호감보다는 혐오감을 느끼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사회의 종교현상을 보면 호감과 혐오감 두 가지 감정이 교차한다.꽃동네마을,소쩍새 마을,나자로마을,무소유를 지향하는 공동체마을 등 널리 알려진 곳 뿐만이 아니라 사회 곳곳의 구석진 곳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찾아 헌금과 자원봉사 활동 등으로 그들이 믿는 말씀을 실천하는 모습을 보면 존경과감탄을 금할 수 없다.자기 가족이나 친척도 아닌 남들에게 어떻게 저렇게 할수 있을까라는 감탄은 종교의 힘에 호감과 존경을 갖게 하고 그러한 가르침에 따르고 싶은 마음까지 들게 한다. 반면 이 종교만 믿으면 복을 받고 하는 일이 다 잘된다는 이상한 주장을 하면서 다른 종교에 대해서는 배타적인 독선종교,나와 내가족이 잘되기만을 비는 새벽기도나 백일기도를 신앙의 실천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종교지도자들의권력다툼과 지위세습을 신앙의 이름으로 미화하고 거기에 부화뇌동하는 사람들,이런 현상들을 보면 그 종교에 따르고 싶기는 커녕 혐오감만 든다. 나는 비종교인이지만 현실의 여러 종교현상들에 관심이 많은 제3자의 입장에서 볼 때,내세에 대한 교리는 서로 다를지라도 “현세를 어떻게 살아야하는가”라는 가르침에 있어서는 모든 종교의 가르침이 동일한 정신 위에 서있다고 생각한다. 기독교의 사랑이나 불교의 자비는 모두 자기를 벗어나 이웃에게로, 혹은 중생에게로 그 실천의 범위를 확대하라는 가르침이다. 1998년의 한국갤럽 조사에 따르면,“한국인의 80%는 여러 종교의 교리는 얼핏 생각하면 서로 틀리는 것 같아 보이지만 결국은 같거나 비슷한 진리라고말한다” 더욱이 “78.1%의 한국인은 종교단체들이 경제적 여유가 있을 때,포교활동보다는 가난한 이웃을 돕는 데 그 돈을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포교활동이 더 중요하다는 사람은 9.9%이다”라고 보고한다.그렇다면 종교적 실천은 이러한 한국인들의 의식구조를 세속에서 현실화시켜주는 방향으로 나아갈 때만 사람들을 감화시킬 것이다. 교회나 절에 가보면,아마도 전통적으로 약자의 위치에 있었던 한국의 여성들이 종교를 통해 위안과 평안을 얻었던 탓인지는 몰라도 신도들의 대부분이여성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다. 결국 현재 한국의 종교는 여성신도들의 신앙행태에 따라 긍정적으로도 부정적으로도 나타날 수 있다는 말이다.여성들의 종교적 실천이 가정 안에서부터기복신앙보다는 이웃사랑의 행태로 나타날 때,그 자녀들은 바람직한 종교인이자 인간으로 성장할 것이고 다른 가족의 존경을 받을 것이다. 예를 들어 신앙의 힘으로 결식아동을 위해 도시락 하나 더 싸주는 실천은,그 자녀들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비종교인도 움직일 것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행동은,하고 싶은 마음은 있어도 이 핑계 저 핑계로 실천하지 못하고 겨우 사회단체에 소액의 기부금을 보내는 것에 그치고 마는 우리 자신들을 부끄럽게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김성옥 장안대 교수·철학
  • 출판단체 쌍두체제로 간다

    결성이후 임의단체에 머물렀던 한국출판인회의(회장 김언호 한길사대표)가최근 정보통신부 산하 사단법인체로 설립허가를 받아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그간 대한출판문화협회(출협)만이 업계 정식단체로 활동해왔다. 출판인회의는 금제금융 여파가 한창이던 지난 98년 11월 단행본 중심의 310여 개 출판사들이 모여 출판 시장의 불황을 타개하고 정보화 사회에서 새 방향을 모색한다는 취지 아래 결성된 단체.그간 문화관광부로부터 ‘단체의 중복등록 설립 불가’ 입장에 따라 임의단체로 활동해오다 열흘 전 정통부로부터 법인설립 허가증을 받았다. 기존의 출협(회장 나춘호 예림당대표)이 단행본 출판사를 비롯해 전집류를만드는 출판사,교과서나 학습서를 만드는 출판사까지 모두 망라된 반면 출판인회의는 단행본 출판사가 중심이다.출판인회의 소속사 가운데 120여 개는출협에도 소속된 것으로 알려졌다. 김언호 출판인회의 회장은 “사단법인 타이틀에 ‘지식정보화 사회 구현을위한’이란 구절이 들어가 있다”면서 “어느 정부 부처로부터 설립허가를받았는가는 크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지만 문화부가 아닌 정통부와 손잡고 일하게 된 것은 정보화 시대의 추세에 걸맞은 변화”라고 의미를 부여한다.출판인회의는 향후 활동방향으로 미래 콘텐츠산업의 중심역할 담당,출판업의사회적 의무중 핵심인 ‘정보복지’를 위한 노력,조직력과 실천력을 갖춘 조직으로서 출판현실 개선 노력 등을 꼽고 있다. 이와 관련 김회장은 “앞으로 고급 지식정보 산업으로서의 출판 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전자책(e-book) 활성화와 출판 유통시장의 현대화 등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또입법 추진중인 출판문화산업진흥법 제정에주도적으로 나설 계획이며 소속사들이 공동설립한 인터넷 전자책 업체 ‘북토피아’의 본격 서비스를 다음달 하순부터 시작하기로 했다.이밖에 지난해4월 시작한 ‘이달의 책’선정 사업을 더욱 활성화하고 전문 교육기관인 한국출판아카데미를 중심으로 출판인 교육에 힘쓸 방침이다. 출판인회의의 김회장은 “출협과는 기본적으로 한식구”라고 말하고 있지만 출협과 경쟁관계에 돌입했다는시선이 한층 강하다. 김재영기자
  • [외언내언] 아버지와 방학

    현대사회의 병폐로 ‘가정 붕괴’를 지적하는 학자가 많다.그 원인 가운데하나로 흔히 ‘아버지의 부재(不在)’가 꼽힌다.우리 사회의 전통적인 부모구실은 ‘엄한 아버지와 자애로운 어머니’,곧 ‘엄부자모’(嚴父慈母)였지만 요즘은 거꾸로 되었다고도 한다.엄하건,자애롭건 아버지가 가정에서 일정한 구실을 해야 그 가정이 건강하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지만 아이들과 시간을 나누는 아버지는 많지 않다.아버지로서도 할 말은 있다.국제통화기금(IMF)사태가 완화됐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구조조정이다 기업퇴출이다 ‘살벌한’ 판에 바깥 일에 전념해야지 집안일에 눈 돌릴 틈이 없다는 것이다.그렇더라도 틈틈이 짬을 내서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그것은 ‘아이들과의 피부접촉’을 늘리는 일이다. 저서 ‘털 없는 원숭이’‘맨 워칭’등으로 유명한 동물학자 데스먼드 모리스는 “인간은 다른 어떤 동물보다 접촉(intimacy)을 필요로 하는 존재”라고 갈파한 바 있다.신체 접촉 없이 자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세상을바라보는 태도가 다르다는 것은 정설이다.굳이 학술이론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지금의 아버지들은 대부분 어린 시절 자신의 아버지와 관련된 작지만 따뜻한 기억을 갖고 있을 것이다.동네 목욕탕에 함께 가 등을 밀어주던 투박한 손,소나기로 넘쳐난 개울을 건너면서 업혔던 그 너른 등짝 등…. 전국의 초·중·고교가 여름방학에 들어간지 일주일쯤 지났다.방학은 학생인 아이에게뿐만 아니라 가족 모두에게 소중한 의미를 갖는다.평소엔 각자생활에 바쁘던 부모·자식이 한 공간에서 마주칠 기회가 많아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방학에 아이를 돌보는 일은 여전히 어머니만의 몫으로 남아서,방학에 아이들과 지내는 일을 ‘전쟁’이라고 표현하는 어머니들이 적지 않다.이번 방학에는 아버지들이 한번 나서보는 게 어떨까? 아이에게 아버지의 따뜻한 체온을 전하는 것은 며칠씩 집을 떠나는 여행으로만 가능한 일은 아니다.집에서 언제라도 할 수 있는 일이 적지 않다.공중목욕탕 함께 가기는 고전적인 방법이다.갖가지 핑계를 만들어 아들·딸 업어주기를 하는 것도 좋다.때로는 온 식구가한 방에 모여서 자보자.밤새 오순도순 얘기하면서 아이들 생각을 들어보면 아이들과 훨씬 가까워질 수 있다. 아이에게 운동하라고 잔소리하기 전에 롤러블레이드·줄넘기·자전거타기를함께 즐기자.그러기 위해 아버지들은 하루의 골프,한두번의 술자리를 기꺼이 포기해야 한다. 다만 잊지 말고 꼭 챙길 일이 있다.아버지 사랑을 받을 수 없는 주위의 아이들에게도 사랑을 나누어 주자.이웃에게 사랑을 베풀 줄 아는 사람으로 키우는 것,그것은 부모된 이의 의무 가운데 하나이다. 李容遠 논설위원ywyi@
  • 통일시대 이렇게 준비하자/ 동질성 회복 어떻게

    “남북이 하루빨리 이질감을 극복하지 않으면…”과거 남북한의 화해나 통일을 말할 때마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은 이런 전제를 내놓곤 했다.분단 55년만에 남북한은 다시 만나 함께 살기 힘들 만큼 이질적이 된 것일까.그러나‘6·15 공동선언’ 이후 국민들이 북한동포들에게 느끼던 이질감은 조금씩동질감으로 바뀌어가고 있는 것 같다.남북 사이 문화적 이질화의 실체는 어떤 것이고,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해결해야 할 문제는 무엇일까. 지난달 평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을 TV로 지켜보던 사람들 가운데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말솜씨에 감탄했던 사람들이 적지않았다.그리고는 다음 순간 김위원장의 말씨가 우리 이웃에 사는 북한 출신 실향민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않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적지않게 놀라기도 했다. 분단 이후 남북 사이의 언어가 심각하게 이질화되어가고 있다는 것이 그동안의 상식이었기 때문이다. ‘곧’을 북한에서는 ‘인차’라고 한다든지,‘몸무게를 줄여야지’를 ‘살을 깎아야지’라고 하는 등 다른 표현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그렇다해도 서울 토박이와 경남·전남 토박이가 서로 만났을 때보다 결코 이해가 어렵지않다는 것을 김위원장의 말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오히려 다양해진 언어생활은 우리말의 발전을 위해 긍정적이라는 지적도 있다.특히 북한이 한자어를 포함한 외래어를 적극적으로 우리말로 고쳐쓰고 있는 것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코너킥’을 ‘구석차기’로 표현하는 등 어색한 점도 없지않다지만 ‘석실봉토분(石室封土墳)’을 ‘돌간흙무덤’으로 부르는 등 일부 북한의 우리말고고학 용어들은 정상회담 이전부터 자연스럽게 남쪽학계에 수용되는 추세다. 남북의 다양성은 예술분야에서도 긍정적으로 작용한다.남북예술교류가 시작되면 무용계 사람들은 북한 전통예술인들의 춤사위가 동구의 영향이 진하게느껴지는 데 놀랐다. 반대로 북한쪽에서는 남한의 춤사위에서 서구전통의 개입을 느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냉전 시대라면 ‘이질감의 심화’로 비쳤을 이런 현상이 최근에는 ‘바람직스러운 다양성’으로 해석된다. 생활문화에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최근 북한의 가정을 방문했던 사람들에따르면 저녁식사를 할 때 아버지와 큰아들이 겸상을 하고 어머니와 다른 식구들은 다른 상에 모여앉아 먹는 것이 일반적이었다고 한다.오히려 가족안에서 부모에 대한 공경은 남쪽보다 북쪽이 더 큰 것 같았다고 전한다. 관혼상제에서도 제사 등의 형식은 달랐지만 전통이 그대로 남아있는 등 민족 고유의 전통이 그대로 지켜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가족안에서 부모에 대한 공경은 식생활에서도 이른바 밥공장을 이용해야하는 협동농장의 상황이 조금 다르고,남쪽에 조미료를 사용한 짙은 양념에 입맛이 길든 반면 북쪽은 순수 담백한 맛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 정도가 다를 뿐이다. 교육면에서 북한은 1945년부터 2년의 유치원 교육과 4년의 인민학교,6년의고등중학교 등 12년의 의무교육을 실시하여 100% 문맹퇴치를 1990년에 달성했다.12년의 의무교육을 마치면 대학에 진학하거나,공장·농장에서 일하거나,군대에 입대하는 3개의 길이 열려있다. 그러나 고등학교 졸업 이후 3년 이상 일하면 공장이나 농장에에서 일하는 사람도 직장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다.북한의 문맹퇴치율은 오히려 남한보다도높다.이렇게 세계적으로 유례가 드문 남한과 북한의 높은 학력은 통일 이후동질성 회복에 큰 자산으로 작용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 만큼 문화적 이질감은 남한과 북한의 통일 혹은 통합과정에서 그렇게큰 문제는 되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대신 어떤 종류이든 ‘균열’양상이 보인다면 그것은 이질감 보다는 남한 주민들의 북한 출신에 대한 사회적 차별이 이유가 될 수 있다는 지적에 귀기울여야 할 것 같다. 독일에서도 통일 이후 동독주민들은 심각한 차별의 대상이 되어 설움과 열등감을 맛보았다.서독주민들은 동독 출신과 이웃에 살게 됐을 때 공포심마저느꼈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동서독 주민의 긴밀한 교류가 오히려 서로에 대한 고정관념과 편견을 강화시키는 결과를 낳았기 때문이다. 장수현 부산외국어대교수는 “조선족과 북한난민에 대한 남한주민들의 부정적 이미지를 감안하면 경제적·사회문화적 격차가 심각한 남북주민들이 만날 때 독일보다 훨씬 심각한 불신과 갈등이빚어질 것”이라면서 “따라서 단순한 문화의 이질감 극복이라는 차원을 넘어 사회적 차별을 극복할 수 있는준비를 지금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동철기자 dcsuh@
  • 프로농구 구조조정 몸살

    ‘식구는 늘고 엔트리는 줄고’-.프로농구 10개구단이 요즘 ‘구조조정’몸살을 앓고 있다. 한국농구연맹(KBL)이 00∼01시즌 한팀의 국내선수 엔트리를 13명으로 줄였기 때문이다.프로원년인 97년 15명이던 국내선수 엔트리는 해마다 1명씩 줄었고 앞으로 12명까지 축소한다는 게 KBL의 구상이다.물론 이같은 방침의 밑바탕에는 구단들의 경제논리가 짙게 깔려 있다. 구단들이 올들어 ‘구조조정’의 부담을 크게 느끼게 된 이유는 그동안 신인들을 상당수 수혈한데다 프로 초창기 군에 입대한 12명이 이달 초 대거 제대했기 때문.구단으로서는 2∼5명을 솎아내야 하는 상황을 맞게 됐고 연봉협상 1차마감 시한이 이달 말로 다가오면서 ‘퇴출 선수’를 골라내느라 골머리를 앓게 된 것. 이러한 분위기를 반영하듯 일부 구단에서는 아마추어 시절 ‘억대 몸값’을 주고 스카우트한 선수를 프런트나 주무로 보직을 바꾸는가 하면 “아무런조건없이 데려만 가라”며 트레이드 시장에 내놓는 등 아이디어가 백출하고있다. 전문가들은 “프로의 속성이라는 점은 인정하지만 2군제도의 실질적인 정착 등이 선결돼야 한다”며 “보완장치를 마련하지 않은채 엔트리 축소에만 매달리는 것은 자칫 농구저변을 무너뜨릴 우려가 있다”고 경계했다.또 퇴출위기에 몰린 선수가 현재 3,000만원으로 제한된 최저연봉 이하를 감수하고서라도 ‘연습생’으로의 신분 변화를 선택할 수 있는 길을 터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일부 스타들이 상식을 벗어난 초고액 연봉을 내걸고 구단과 줄다리기를 벌이는 뒤안길에서 엔트리에 못낀 선수들이 쓸쓸히 팀을 떠나는 ‘프로농구판의 7월’은 왠지 어수선한 느낌이다. 오병남기자 obnbkt@
  • [황석영의 맛따라 추억따라](7)잃어버린 먹거리

    최초의 도시락은 아마도 주먹밥이었을 것이다. 집 부근의 논이나 밭에 나가 일하는 동안에 아낙네들이 대광주리나 채반에 밥과 반찬을 얹어 나르던 일은 오래된 행사였을 터이다.조선 시대의 민화에보면 들밥 먹는 그림이 심심찮게 나온다.춘향전에도 걸인 차림의 어사또가들밥을 얻어 먹는 장면이 나오기도 한다.나도 예전에 남도를 방랑하던 청소년 시절에 들밥을 종종 얻어먹은 적이 있었다.당시에는 아직도 농촌이 별로넉넉하지 않던 시절이라 여름철에는 대개가 푹 삶아 퍼진 보리밥을 먹었다. 깡보리도 있고 이밥에 보리를 나우 섞은 밥도 있었다.지금 생각해 보아도 호박나물이나 알감자 조림 또는 가지나물 등속의 맛이라든가 상추며 깻잎이며데친 호박 잎에 장을 쳐서 풋고추 툭 부러뜨려서 싸먹던 기억이 새롭다. 들밥은 품앗이나 두레로 이루어진 공동 노동의 산물이기도 하였다.한 마을에서 집집이 돌아가면서 여럿의 농사 일을 협동하여 서로 해주는데 이 때에 새참이나 끼니도 공동으로 해결하였다.비록 햇보리밥에 제철 푸성귀 뿐이었지만 인심은 풍성하여 일하는 남정네는 물론이고 부엌 일을 거드는 노약자나집에서 놀던 어린 것들까지 손목 잡혀 나와서 함께 먹었다.그뿐인가,지나는나그네라도 보이면 서로 손짓하여,들밥 좀 같이 자시고 쉬어서 가시라고 불러대는 것이었다.들밥에 빠질 수 없는 것이 막걸리인데 대광주리에는 식반찬과 함께 닷되들이 술병이 들어있다.밥 먹으랴 서로 권커니 잣커니 하는 밥주발의 막걸리 마시랴 하다보면,식곤증으로 축 늘어져서 제각기 땡볕을 피하여 나무 그늘을 찾아가 짧은 낮잠 한 숨을 부치게 된다.담배 한 두어 죽 피울만치 오침을 하고나서 다시 일을 시작하면 아침처럼 새로운 기운이 부쩍난다. 덧붙여 말하자면,이제 이러한 들밥은 사라져 버렸다.요즈음은 농촌에서도 일손 구하기가 쉽지 않은 데다 하루 일당 노임이 전국적으로 또박 또박 정해져 있고 서로 나누는 인심 따위는 없어졌다.들에서 일하다가 핸드폰으로 짜장면 시켜 먹고 커피까지 배달해다 먹는다.새참이라고 하여도 대광주리로 이어나르는 일은 없고 빵이나 우유나 코카콜라 음료수가 나온다. 집 근처에서는 식구와 동네 사람들이 들밥을 어울려 먹었지만 혼자서 깊은산에 나무나 약초를 하러 간다든가 먼길을 떠날 적에는 주먹밥이나 떡이나곡물가루 같은 비상식량을 해가지고 다녔다.옛날 전쟁 기록에서도 그렇고 구한말 동학사 같은 데서 보자면 병정들도 마찬가지였다.밥을 주먹만하게 뭉쳐서 가운데에다 장을 찍어 바르거나 소금을 적당히 풀어 놓은 물에 두 손을담궜다가 간간하게 밥을 뭉쳐서 주먹밥을 만들었다.육이오 때에는 나도 그런 주먹밥을 먹은 기억이 있고 전선의 군인들도 고지 위로 보급 되어 올라온돌처럼 얼어붙은 주먹밥을 으깨어 먹었다고 기록되어 있다.동양에서는 봉건시대의 전형으로 알려진 일본에서 오래전부터 그리고 최근까지도 주먹밥 문화가 생생하게 남아있는 편이다. 주먹밥과 다꾸앙은 사무라이의 야전식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김밥이나 각종스시의 원형도 그러할 것이다. 주먹밥에서 시작하여 가랑잎,연잎,파초잎,호박잎 같이 넓적한 나뭇잎에 밥을 싸서 간수하는 데서부터 베보자기나 헝겊에 싸기도 하다가 도시락이 탄생한다. 도시락은 대나무나 왕골이나 덩굴 줄기로 작은 고리 상자를 짜서 만들었다. 이것을 허릿춤 또는 지게 모퉁이에 매달기도 하고 일터에 가서는 바람이 잘통하는 서늘한 나뭇가지에 걸어 놓기도 하고 옹달샘에 담궈 두었다. 하여튼 입맛이란,여럿이 함께 먹는 음식과 노동을 한 뒤의 것이 훨씬 맛있고풍성한 자연 속에서는 더욱 살아나기 마련이다. 우리 기억 속에 ‘도시락’은 우리말 가꾸기로 나중에 바뀐 말일뿐 그 맛과함께 남아있는 말은 일본 말인 ‘벤또’였다.근대를 일제의 식민지로 치뤄낸 우리의 점심 문화는 벤또로 시작했던 것이다.즉 직장이며 학교며 근대적 의미에서의 일터란 모두 일제가 가져온 것들이었다.알미늄으로 만든 그릇들을총칭해서 양은 그릇이라고 했는데 어른들은 아르마이또 라고 불렀다.아낙네들은 일터에 나가는 가장에게 알미늄으로 만든 깊숙하고 네모난 벤또를 작은 손수건만한 보자기에 싸서 주었고 남정네는 제 점심을 자전거 화물칸 위에얹고 출발했다.퇴근 길에는 빈 벤또 속에서 젓가락이 부딪치는 소리가 딸그락거렸다. 나는 소학교 시절부터 장성해서까지 오랫동안 이 벤또를 ‘까먹고’ 하루를보냈다.겨울날 조개탄 난로 위에 이것을 층층이 올려놓고 식은 밥과 김치를데워 먹던 생각이 난다. 도시락 반찬의 변천사도 만만치 않다.반찬 칸이 밥과 함께 있던 터라 뭔가양이 적으면서도 짭짤한 것이 필요했다.김치가 도시락 반찬의 대종을 이루었지만 때로는 멸치볶음이니 콩자반이니 각종 건어조림이나 어포 볶음 등이 많았고 해방 뒤에 무슨 서양요리처럼 등장한 계란 프라이는 밥 위에 그대로 얹어서 부잣집 반찬 행세를 했다.그러나 어디 우리네 전래의 장아찌에 비길만한 도시락 반찬이 있을 건가!철철이 나오는 채소와 해물을 뒷뜰의 장독대에 있는 간장 된장 고추장을 덜어내어 담궈 두기만 하면 되었다.대개는 한 해만 묵히면 깊은 맛에 쫄깃하고 아삭거리는 장과를 만들 수 있었다.채소를 일단 소금에 절여서 풀을 죽이거나 수분을 줄이고 간이 배게 한 다음에 장에 박거나 담근다.가장 기초적인것이 무나 마늘이나 오이를 된장 고추장 그리고 간장에 담그는 것이다.특히된장과 고추장에박은 무는 노랗고 발갛게 색깔이 서로 다르고 맛도 다르다. 소금에 절이기만한 오이와 무도 담백한데 참기름과 고춧가루를 쳐서 무치기도 한다.마늘과 마늘쫑은 각각 간장과 고추장에 담근 것이 맛이 다르다.더덕은 고추장에 담근 것이 맛있고 풋고추와 깻잎은 간장에 담근 것이 맛이 있다.감이나 오이 참외 가지 등속은 된장에 담그면 아삭거리고 깊은 맛이 든다. 무말랭이는 간장에 담았다가 무칠 때에 고춧가루 등속을 쓴다.김이며 미역다시마 등속은 고추장에 담근 것이 맛있다. 작년에 제주도에 갔던 일이 생각난다.망명과 투옥으로 십여년 이상이나 국내여행을 못했다가 오랜만에 찾아가니 친구들이 반겨주었다.하루는 나를 바닷가의 사라봉으로 점심 초대를 하길래 따라 나섰다.몇집에서 그날 먹으려던음식들을 제각기 싸가지고 나왔는데 모두 싱싱한 푸성귀에 짭쪼롬한 밑반찬종류였다.콩잎에 멸치 젓을 넣어 밥을 싸먹기도 하고 잘게 토막쳐서 양념에버무린 자리돔을 상추에 싸먹기도 하였는데 특히 입맛을 돋구었던 것은 된장에 버무려 담은 제주도식의 갓김치였다. 하여튼 돌아온 뒤에도 그런 소박한 반찬을 싸들고 집 부근으로 나가서 점심이나 저녁을 먹는 취미가 생겼다.또 달랑 제 식구만 나가는 게 아니라 이웃이나 친구 가족도 불러서 함께 갔다.어떤 날은 옛날식 양은 도시락에 짭짤한 밑반찬과 밥을 싸서 하다못해 동네 공원에 나가서 먹기도 했다. 언제부턴가 아이들은 정체도 모를 미국식 패스트푸드로 점심을 때우고 어른들도 야외에만 나가면 그저 고기를 떡 벌어지게 지글지글 구어서 독주에다실컷 마시고 쿵쾅거리는 가라오케 기계 틀어놓고 법석댄다. 장아찌는 장독대가 사라지면서 백화점의 반찬가게로 옮겨갔고,서로 담 넘어로 장을 빌리거나 찬을 나누고 들밥을 함께 먹던 문화는 식구끼리의 외식문화로 바뀌었지만 실천에 따라서는 회복하지 못할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황석영
  • 교육부 令이 안선다

    전국 69개 학교가 규정을 어기고 고교 1·2학년 학생들에게 모의고사를 보도록 해 물의를 빚고 있다. 특히 일부 시·도 교육청은 교육부의 강력한 징계 요구에도 불구,모의고사를 치르도록 한 학교장을 지도·감독만 하고 말아 ‘제 식구 봐주기’라는비난마저 받고 있다. 교육부는 지난달 21일 전국의 7개 시·도 교육청 산하 69개 고교의 1·2·3학년생 5만5,307명이 사설기관의 모의고사를 시행한 사실을 확인,교육청에해당 학교장 등을 엄중 문책토록 요구했다고 7일 밝혔다. 이 가운데 2학년은 63개교 2만6,374명,1학년은 62개교 2만4,594명이다. 하지만 98년에 만든 모의고사 지침에 따르면 고교 3학년은 사설기관의 모의고사를 두차례 볼 수 있으나 고교 1·2학년은 치르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교육부 고위 관계자는 “거의 모든 학교가 새입시제도의 정착과 서열화를막기 위해 모의고사 지침을 지키고 있다”면서 “이를 어긴 학교장은 경고·주의 등의 행정조치가 아닌 징계처분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학부모연대 전풍자(田豊子)회장은 “교육풍토 확립과 공정한 경쟁을 위해학교장들이 확고한 교육 철학을 가지고 지침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홍기기자 hkpark@
  • [황석영의 맛따라 추억따라](6)잃어버린 먹거리

    *피란시절 동태탕은 가족 결속시키고... 전쟁 전이나 휴전 뒤에 생활이 다시 안정 되었을 때에 우리가 고기 대신 먹었던 여러 가지 생선들이 생각난다.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지금은 사라져버린 물고기들이 많은 것 같다.또한 있다고 하여도 다른 먹거리가 많아서 찾지않게 된 경우도 있을 것이다. 아침 저녁 무렵이면 동네 골목마다 장사꾼들이 차례로 등장하기 마련이었는데 호객하는 소리도 독특해서 재미가 있었다.콩나물이나 무 배추 따위의 채소장수들에서부터 새우젓 어리굴젓 장수들 그리고 생선장수들은 모두들 팔려는 물건 뒤에다 ‘사료’나 ‘사우’를 부쳐서 목청을 높였다.두부장수는 자루가 달린 놋쇠 요령을 가지고 다니면서 딸랑 딸랑 하고 흔들었다.나중에 쓰레기차가 오면 청소부들이 그런 손 종을 치곤 했다. 비웃드렁 새,하는 소리는 청어를 사라는 생선장수의 소리였다.전쟁 전에는청어가 서울 인근에서는 가장 좋은 비린 반찬이었고 주점에서도 어른들이 제일로 쳐주는 안주감이었다.청어는 생선도 있고 소금에 절인 것도 있으며 꾸덕꾸덕 말린것도 있었다.숯불 풍로에 철사로 얼기설기 엮은 석쇠에다 굵은천연 소금을 뿌려서 구운 청어는 기름이 자르르 하고 고소하며 살집이 푸짐했다.집집마다 담장을 넘어서 골목길에까지 청어 굽는 냄새가 가득찼다.생선은 찌개도 끓이고 찜도 하고 소금에 절인 것은 조리기도 하며 그냥 숯불에굽기도 하고,꾸덕꾸덕 말린 것은 갖은 양념하여 재어 두었다가 북어나 조기처럼 구었다. 아지라는 생선도 많이 먹었는데 나는 무어니 무어니 하여도 어머니가 뼈를발라 간장과 설탕과 양념을 섞어서 장을 내어서는 아지 생선 위에다 바르면서 천천히 구워낸 아지의 맛을 잊을 수가 없다. ‘썩어도 준치’라는 말이 있듯이 그 맛이 생선 중의 으뜸이라는 준치도 굽거나 조림이 고작인 셈인데 나는 가시가 많아서인지 별다른 기억이 없다.다만 그 맛이 남도 사람들이 친다는 전어와 비슷하지 않았는지.전어는 소금 뿌려 놓았다가 기름에 지지거나 구어 먹는 것이 제일 좋은데 봄철 나물과 번갈아 먹는 맛이 그럴 듯 하다. 이면수와 가자미는 살이 담백하고 기름지지 않다.이면수는살갗이 꺼칠하고두꺼운 느낌이 들어서 별로 맛들이지 못했고,다만 가자미는 손바닥 두어배되는 큰 놈을 소금 뿌려서 태우지 않고 껍질이 바짝 마를 정도로 숯불에 구워서 통째로 먹는 맛이 기막히다.일본에서 그렇게 먹었던 기억이 나는데 전혀 비리지 않고 무슨 바다의 감자를 먹는 느낌이었다.그러나 어려서는 별로맛있는 줄 몰랐다. 소학교 때까지만 하여도 어머니는 해마다 봄철이 되면 인천에서 들어온 조기를 몇판씩 사들여다가 뒷마당에서 이모와 같이 김장 때처럼 법석대며 손질을 했다. 소금에 절이고 자잘한 놈은 젓갈을 담기도 했는데 메주 말리던 넓다란 대나무 채반을 몇 개씩 늘어놓고 소금에 절인 조기를 말렸다.당시에는 집집마다담장에 널어 말리는 조기를 볼 수가 있었다.바싹 마르면 굴비가 되었고 장사꾼들은 굴비의 대가리를 새끼로 줄줄이 꿰어서 팔러 다녔다.요새처럼 ‘영광 굴비’가 특상품이라고 하지는 않고 ‘연평 굴비’라고 외쳤다.연평 굴비는 수백년 동안 서울 사람들의 여름철 반찬이었다.굴비를 두었다가 구어 먹는것이 보통이지만통째로 여러 마리를 고추장에 박아 두었다가 몇 달이 지나서 꺼내어 살을 잘게 찢어서 저장한다.살이 쫄깃하고 암갈색이 되는데 쇠고기 장조림의 열 배는 더 맛이 있었다.무더운 여름날 먼길을 걸어서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면 배가 고픈데도 당장 점심을 먹기도 지겹고 할 적에 어머니가 구운 굴비를 찢어서 열무김치와 함께 밥상을 차려 준다.찬물에 밥을 말아서 굴비와 열무김치로 먹기 시작하면 그제사 식욕이 왕성해지던 것이다. 조기철에 뒤이어 초여름 무렵부터는 꽃게가 들어왔다.꽃게는 어머니와 누나들이 마당의 수돗가에서 손질을 하려면 사방으로 달아나 어떤 놈은 장독대뒤의 독 사이로 숨고 어떤 놈은 판자 담장 아래로 빠져서 행방불명이 되기도 한다. 게장을 담그는데 시골에서는 오종종하게 작은 밤게를 쓰지만 사실은 물산의왕래가 불편하던 옛날의 일이고 기생충도 많고 다리는 살이 적고 몸통마저도 먹잘 것이 없어서 귀찮기만 할 것이다.서울 같은 대도시에서나 바닷가에서는 꽃게를 많이 썼다.또 요즈음 식당에 가면 시뻘겋게 양념을 해서 꽃게장을 담아 즉석에서 먹어 치우기에 간편하지만 최근의 남도 식이지 옛날 식은 아니다. 꽃게를 솔로 박박 문지르며 소금물에다 깨끗이 닦아서 털 같은 아가미와 세모의 등딱지며 모래주머니를 모두 떼어내고 발가락 끝을 잘라내어 손질을 한다. 간장에 생강 마늘 고추 등속을 넣고 끓여서 붓는 것은 얼추 같은데 여기에맛의 비방이 첨가 되어야 한다.기름기 없는 쇠고기 다진 것을 넣고 물 대신에 사이다를 부으면 짜지도 않고 깊은 맛이 생겨난다.팔팔 끓인 양념 장을식혀서 손질하여 채곡채곡 항아리에 담은 게 위에 붓는다.사흘쯤 지나서 다시 장을 따라내고 끓여 붓기를 모두 세 차례쯤 하고 나면 먹을 수 있게 된다.알과 내장이 맛깔스러운 게딱지는 물론이고 살이 푸짐하고 쫄깃한 다리와집게발마저 먹을 것이 많다.그리고 남은 간장 또한 밥에 비벼 먹을만 하다. 남도에서는 밤게를 담을 적에 항아리 밑에다 다진 쇠고기를 두고 게를 깨끗이 씻어 넣어 하룻밤 재운다고 하였다.그러면 게들이 밤 사이에 쇠고기를 모두 먹는다는데 여기에다 간장을 붓는다고 한다.중세 유럽의 서민들을 살린 것은 난류와 한류가 합치던 대서양의 대구와 아메리카에서 들어온 감자였다고 한다.당시만 하여도 고기는 특권층의 먹거리였고 대구는 엄청나게 잡혔다.인구의 팽창과 곡물의 흉작은 전쟁과 굶주림으로 이어졌는데 감자가 주식으로 등장하게 된 것은 거의 신의 은총이라고 여겨졌다고도 한다. 우리에게도 다른 맛있는 생선들이 근해에서 하나 둘씩 자취를 감추거나 희귀해져서 값비싼 생선이 되어갔지만 가난한 시절부터 지금까지 서민들의 영양을 담보해준 것은 꽁치와 고등어였다.한때 갈치가 많이 잡힐 적에는 그 신세도 많이 졌는데 이전에는 갈치가 탐스럽게 커서 두툼하게 썰어놓은 식빵만했다.역시 소금구이와 조림이 주종이었고 무를 반달형으로 큼직하게 썰어 넣고 풋고추와 고춧가루를 벌겋게 버무려 지진 호남의 갈치 조림은 입맛을 돋군다.나중에 여행지 이야기를 하면서 제주 갈치의 여러 가지 조리법이 소개가되겠지만 지방마다 생선의 조리는 조금씩 다르다. 장에 갔던 가장이 어스름한 달밤에 막걸리 한 잔으로 거나해져서타령 한 소리 읊조리며 영을 넘어올 제 새끼에 꿰어 들고 오던 것이 간고등어 한 손이다.산지가 많은 영남 사람들은 지금도 평야 지방의 그들먹한 한정식 보다도경상도 막장으로 끓인 찌개와 구운 간고등어 한 토막을 더 쳐줄 정도가 아닌가.고등어 역시 생선 조림이나 양념하여 꾸둑꾸둑 말린 것을 무를 넣어 조리거나 굽는다. 꽁치는 또한 그 무렵의 사철 고기반찬이었다.소금 뿌려서 연탄 화덕에 구운것을 질리지도 않고 거의 하루 걸러서 먹었다.나중에 통조림이 쏟아져 나와등산길에서도 군대에서도 콩나물 국에 고기 대신 왕건이가 되어서 다투어 건져 먹곤 했다. 지금은 그러한 신문기사를 찾으려고 눈을 씻고 보아도 없지만 그 시절에는버려진 복어알을 주워다 온 가족이 끓여먹고 죽었다는 이야기가 심심치않게신문에 오르내렸다.전쟁 때 피란 시절에는 어쩌다 먹는 동태 탕이 식구들을따뜻하게 결속 시켰다.당시에는 저 먼 남의 나라 바다에 나가서 잡아오는 참치 같은 맛들일 수 없는 고급 생선은 존재하지 않았다.이제는 허드레가 되었거나 희귀해져서 최고급이 되어버린 생선 대신에,나는 오늘도 지금까지 내가 맛나게 먹은 고등어의 놀란 눈을 떠올리며 슬며시 웃는다. 황석영.
  • [황석영의 맛따라 추억따라](5)잃어버린 먹거리

    *북서 먹어본 단고기 별미...겨자로 무쳐 새콤달콤 북에서 먹은 음식 가운데 매우 독특한 찌개가 생각난다.언젠가 전주에 갔다가 ‘오모가리’라는 민물고기로 끓인 일종의 고추장 찌개가 별나다고 생각했던 것과도 같았다. 북에서는 여러 초대소를 다녀 보았는데 그중에 오래 있던 곳이 서재골 초대소와 철봉리 초대소였다.서재골은 외국 사절들이 묵는 곳이어서인지 주방의조리 방식이 다분히 중국 요리나 서양식으로 뒤섞여서 나왔다.장기간 머무는이에게는 일종의 연회 음식이 이내 질리기 마련이다. 철봉리에서는 삼십대의 주방장과 연회가 있을 적에는 노인 한 분이 지원차오곤 했다.주방장의 이름은 잊었지만 황해도 안악이 고향이라는데 나중에 그의 집도 방문했다.그의 어린 두 딸이 고사리 손을 조물거리면서 무용을 하고노래를 하던 모양이 잊혀지지 않는다. 나는 정성스럽게 차려주는 연회 음식 먹기가 지겨워서 나중에는 스스로 외환상점에 나가 일제 카레를 사오거나 라면을 사다가 점심을 직접 해먹기도 하였다. 이런 얘기가 밝혀져도 괜찮을까는 모르지만 북쪽 초대소의 남녀 접대원에서요리사와 운전수에 이르기까지가 모두 호위총국 소속의 군인들이었다.나중에그들과 한 식구처럼 친해진 뒤에야 그들의 계급도 알 수가 있었다. 여성 접대원들은 대개는 소위 중위들이고 때로는 사격 훈련도 한다고 하였다.따라서우리 주방장이 소좌라는 사실도 나중에야 알았다. 선생님,토속으로 자시고 싶다 그거지요?그는 돼지고기 김치 찌개도 만들고 된장 뚝배기도 내왔다.북의 통조림으로나오던 볶은 고추장이 해외동포들에게 인기였는데 나는 아무래도 된장이 더먹고 싶었다.그렇지만 가정식 장독대가 거의 사라져버린 고장에서 맛깔스러운 된장을 구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었다.역시 우리가 예전에 진짜 일본의 미소 된장하고는 다르면서도 왜된장이라고 부르던 공장에서 대량으로 속성되어나오는 된장이었다. 북한 문인들 말을 들어보면 전후 복구에 힘을 쏟던 ‘천리마 운동’ 기간에 가정음식들이 많이 사라졌다고 한다.구역마다 밥 공장과반찬 공장을 두어 단체로 식사를 하거나 타다가 먹었다고 하는데, 경제복구가 끝나고도 직장이나 기업소마다 단체급식을 하는 생활은 남아있는 셈이었다.즉 손님 접대는 연회 음식이 될 수 밖에 없었다. 하루는 주방장이 고심을 했던지 김치도 보다 맵게 담그고 간고등어도 굽고저 유명한 서해안 곤쟁이젓도 내왔는데 못보던 음식이 나왔다.구수하고 짭짤한 것이 입맛이 확 살아났다.이게 뭐냐고 했더니 ‘호박짠지 지지개’라고한다.열무와 호박이 섞여 있는데 애호박이 보통 호박찌개처럼 물컹하지 않고설익은 것처럼 설컹거렸다. 그는 평양에서 한 시간 반쯤 거리인 안악의 고향 집에 다녀왔다고 한다.역시북에서도 장이나 밑반찬 같은 먹거리는 고향 부모님들이 보내준다고 하였다. 이제 노인님들이 다 돌아가시면 젊은 아낙들은 음식을 못해서 큰일이라고사내들마다 걱정인 것은 우리와 같다.그가 안악에 가서 가져온 것은 된장과바로 이 ‘호박짠지’였다. 열무나 배추로 짠지를 담글 적에 호박을 쑹덩쑹덩 썰어서 김치 담그듯이 한켜씩 소금을 뿌려가며 항아리에 담는다.소금에 충분히 절인 다음 풀물이나뜨물을 부어 사나흘이 지나면 대충 익게 된다.호박짠지를 꺼내어 물에 헹구고 된장과 까나리 또는 조개를 넣고 찌개를 끓여내는데 파와 마늘과 풋고추를 썰어 넣으면 된다. 내가 이 음식을 기억하게 된 것은 실로 십 년 만의 일이었다.충청도 덕산으로 이사와서 한 마을에 혼자 사시는 할머니 한 분이 집안 일을 도와 주러 오게 되었는데,곁에서 며칠 동안 나의 식성을 지켜 보고나서 무슨 음식을 냄비에 담아 왔다. 좋아하실까 모르겄지만 한번 잡숴봐유. 그래서 뭐냐니까 충청도 ‘호박김치’란다.그러면서 덧붙이는 말이 이랬다. 호박짐치는 원래가 찌개 끓여 먹을라구 당그는기유. 어허,가만 있어 봐.어디선가 먹은 기억이 나는데.그제서야 이북에서 먹었던생각이 났다.충청도 호박김치는 늙은호박을 속을 긁어내고 쓰는데 무청이며배추를 섞어서 김치를 담그듯이 갖은 양념하여 새우젓까지 쓴다.그냥 먹기에는 호박이 입 안에서 뱅뱅 맴도는 것이 어쩐지 김치 맛이 나질 않고 찌개를끓여 먹으면 담백하고 구수하다.얼핏 제주도의 갈치 찌개 생각이 나서 이 호박김치에 잔 갈치를 토막 쳐서 넣고 끓였다.역시 호박김치 찌개의 훌륭한 완성이 아닌가. 같은 서해안에 지형과 풍토가 비슷해서 그런가 충청도와 황해도의 음식은 여러 가지로 비슷한 점이 많이 있다. 북에서 먹은 음식 가운데 여러 가지 기억이 나지만 그중에서도 ‘단고기’는아주 특별하다. 개장국은 각 지방마다 서로 다르지만 특히 서울식은 사라져버렸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옛날 개장국은 지금 보다는 맑고 오히려 육개장 비슷했던것 같은데 남도식과 섞여 버렸다.들깨나 깻잎을 많이 쓰는 것이 그렇다. 남도 식은 오리탕도 그렇지만 들깨를 거의 죽처럼 갈아서 넣고 고구마순도 함께 넣는다. 북쪽의 개장국도 평안도쪽과 함경도 식이 서로 다른데 평안도 식이 서울의예전 개장국 비슷하다면 함경도 식은 요즈음 서울의 두루치기와 비슷하다. 하여튼 단고기를 먹은 중에서 대단히 맛이 있었던 것은 가장 부드러운 목둘레의 살을 얇게 저며서 해파리 냉채 무치듯 겨자를 넣고 새콤달콤하게 무친것이었다. 백두산 지방을 돌아다녔을 때 삼수에서 먹은 산천어 구이는 특별했다.두만강상류라고 하지만 폭이 오륙미터 밖에 안되는 개천인데 이쪽은 조선이고 저쪽은 중국이라 하였다.개천에 그물을 쳐두고 기다렸다가 건지면 팔뚝만한 산천어가 걸려서 퍼덕였다.산천어는 송어가 강을 따라서 올라왔다가 붙박이 고기가 된 것인데 백두산 천지에 방류하여 양식에 성공하였다고 한다. 안내인은여러번 해왔던지 부근의 반질거리는 반석 아래 장작불을 때어서 달군 다음에참기름을 두르고 소금을 뿌려 살아있는 산천어를 던졌다.그리고 그 사이사이로 백두산 송이버섯을 얇게 저며 함께 굽는다.꼬리와 머리에 은박지를 감아쥐고 옥수수 먹듯이 산천어를 뜯으며 송이로 입가심을 한다.고기의 살이 솜처럼 부드럽고 향긋한 물비린내가 입맛을 돋구었다. 이런 식의 자연식은 이를테면 해금강에서 먹었던 대합 구이에 비길만 했다. 해금강은 군사분계선 구역이라 무인지경이었는데 주먹만한 자갈이 깔린 바닷속이 온통 대합의 밭이었다.삽시간에 군인들이 두 양동이나 건져 나왔다.해변 자갈 위에 늘어놓고 알콜 한 병을 들이붓고 불을 붙이니 파란 불이 좌악퍼져 나가면서 조개들이차례로 입을 벌렸다.사실은 익히려고 불을 놓는 게아니라 대합의 굳은 입을 벌리기 위해서란다.그대로 초장을 조개 안에 한숫갈 치고는 후루룩,하는데 입안이 가득찬다.그리곤 소주 한 잔 캬아! 하면서넘기고. 황석영
  • 여름 특집/ 청소만 잘해도 ‘짭짤한 절전’

    *'에너지 저소비형'구조 정착 국민 관심이가장 중요. 지난 해부터 계속된 고유가 상황이 좀처럼 수그러들 줄 모르고 있다. 산유국들의 증산합의와 미국의 전략비축유(SPR) 방출 소식 등으로 국제유가상승세는 다소 주춤해 진 상태다. 하지만 지난 해 같은 기간에 비해 10∼14%오른 값을 유지하고 있다. 유가가 오르면서 올들어 4월까지 지난해 같은 기간의 2배에 가까운 124억달러의 외화를 에너지 수입에 썼다.이런 상황이 연말까지 계속된다면 올해 에너지 수입액은 예상치인 300억달러를 넘어서 경제운영 전반에 심각한 타격을 줄 것이 틀림없다. 경제가 발전하고 생활수준이 나아짐에 따라 에너지 소비량이 느는 것은 불가피한 현상이다.그러나 선진국들의 에너지 소비량 변화를 살펴보면 에너지소비증가율이 점차 낮아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사회구조 자체가 에너지를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따라서 자원빈국인 우리나라가 국제유가 급등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려면 선진국과 같이 에너지 절약을 생활화하고,사회구조를 에너지 저소비형으로 바꾸어 우리경제의 저항력을 길러나가야한다. 주요 에너지 절약시책으로 92년부터 에너지 소비효율 등급 표시제도를 실시하고 있다.에너지 이용 고효율 기기 보급확대의 일환으로 99년부터는 대기시간동안의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하도록 한 절전형 사무·가정용 기기를 적극 보급하고 있다.또 아파트 단지의 조명기기를 에너지전문기업(ESCO)을 통해 고효율 조명 등으로 교체하여 좋은 결과도 얻고 있다. 가장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는 산업체에 대해서는 스스로 에너지절약 목표를설정하고 정부가 지원하는 자발적 협약제도(VA;Voluntary Agreement)를 도입해 에너지 절약을 지원하고 있다.산업체에서 버려지는 폐열과 미활용 에너지를 재활용하는 사업도 적극 펼치고 있다. 특히 최근의 유가폭등에 대처하기 위해 지난 4월 말과 6월 초,두 차례의 에너지위크 행사를 통해 가두 캠페인,에너지 절약기기 비교 전시회 등 다양한행사를 펼쳐나가고 있다. 그러나 에너지 절약의 성패는 결국 에너지를 최종적으로 사용하는 일반 국민들의 작은 관심으로 완성된다.제품의에너지 소비효율이 구매의 중요한 판단기준이 된다면 에너지 절약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것이다.그러한 작은 실천들이 여러 제도,여러 기술들과 합쳐질 때 비로소 우리 경제는 국제유가에대한 강한 저항력을 가질 수 있고,지속 가능한 발전의 밑바탕을 마련할 수있을 것이다. 앞으로도 여러가지 예기치 못한 원인들로 에너지 위기상황이 언제든 재연될수 있다. 이 점을 항상 염두에 두고 유가 폭등을 극복하고,장기적으로는 날로 더해가는 국제 환경규제에 대비하는 자세로 에너지 저소비형 사회구조로바꾸어나가야 한다. 에너지관리공단 김홍경이사장. *가정 가전품 절전 이렇게. 주부 김영자(金英子·41·고양시 마두동)씨는 동네에서 알뜰하기로 소문나있다. 4명의 식구가 함께 사는 36평형 아파트에서 김씨가 한달에 내는 전기료는 2만5,000원 남짓이다.30가구 평균 3만5,000∼4만원에 비교한다면 현저히 적은액수다. 냉장고를 비롯,청소기·세탁기 등 대부분의 가전제품을 쓰고 있지만,사용하지 않을 때는 플러그를 뽑아두는 등 일상생활에서 실천할 수 있는‘절약의 미덕’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김씨도 여름철이 다가오자 걱정이 앞선다.지난해 큰 맘먹고 장만한에어컨을 비롯해 아이들의 방학 등으로 가전제품의 사용이 늘어날 수 밖에없기 때문이다. 가정에서 실천할 수 있는 ‘가전제품 절전요령’을 소개한다. ◆에어컨 냉방 중에는 창문 등을 통한 실외의 공기침입이 없는지 확인한다. 냉방시 실내 온도는 26∼28℃가 적당하고,실외 온도의 차이는 5℃ 정도로 유지한다.강·중·약 등 사용강도에 따라 단계마다 30%씩 절전효과가 있다.항균필터는 1∼2주에 한번,열교환기는 1∼2달에 한번 청소한다.필요 공간만 냉방할 수 있도록 사용하지 않는 공간(방)은 닫아 놓는다. ◆선풍기 날개에 먼지가 쌓이지 않도록 주기적으로 청소한다.2∼3시간 계속사용하면 건강에 해를 끼치므로 20∼30분 간격의 타이머를 사용한다.자연풍과 같은 방향으로 설치하고,잠들기 전에는 반드시 끈다. ◆냉장고 뒷면 벽과 10㎝ 이상,윗 부분의 차폐물로부터 30㎝ 이상 띄워 설치한다.통풍이 잘되는 곳에 두고 사용한다.뜨거운 음식은 반드시 식힌 다음 넣는다.냉장고 안의 음식물은 냉장고 용량의 60∼70%를 넘지 않도록 한다.수분이 많은 식품은 밀폐용기에 넣거나 랩에 싸서 밀봉시킨 후 적당한 간격으로보관한다. ◆세탁기 지면과 수평이 되도록 설치한다.세탁물은 섬유의 종류 및 유색물,흰색 등으로 분류하여 세탁분량 만큼만 넣는다.세탁기 1회 사용시 시간은 10분 이내로 한다.헹구기전 반드시 탈수하고,탈수시간은 3분 이내가 적당하다. ◆청소기 큰 쓰레기는 미리 줍고,필터는 자주 청소해준다.호스와 청소기 본체로부터의 공기누설이 없는지 항상 점검한다.청소면에 따라 속도를 알맞게변환한다. ◆전기밥솥 밥솥에 표시된 용량을 초과하지 않는다.취사시 따뜻한 물을 사용하면 사용시간을 줄일 수 있다.뚜껑을 자주 여닫지 않는다.열판에 이물질이끼지 않도록 유의한다. ◆다리미 전력소비가 많은 시간을 피해 사용한다.옷감은 모아서 다린다.옷감의 종류에 따라 온도를 알맞게 맞춰 사용한다.손수건 등 얇은 옷감은 스위치를 켠 즉시 또는 끄고 남은 열을 이용한다. ◆조명 고효율 형광등기구를 사용한다.조명기기 및 반사판을 주기적으로 청소한다.조명등 스위치는 개별 및 타임스위치,자동점멸 장치를 부착해 필요한때만 사용한다. 백열등은 전구형 형광등으로 교체하면 70∼80%가 절전되고수명도 연장된다.형광등의 전자식 안정기는 자기식 안정기보다 20∼30% 절전효과가 있다. ◆기타 가전제품 전기히터는 방의 용도에 맞춰 적정온도(거실은 17∼19℃,침실은 14∼16℃)를 유지한다.커튼을 치면 방의 온도가 3℃정도 올라간다.전기장판은 장판밑에 두꺼운 요를 깔면 보온이 잘되고,사용하지 않을 때는 전원플러그를 빼놓는다. 김미경기자 chaplin7@. *'원격제어 에어컨' 전력낭비 대폭 '제어'. 올해도 예외없이 전력부족 얘기가 나오고 있다. 안정적인 전력 예비율을 확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름만 되면 전력수급에 대한 불안을 떨칠 수 없는 것은 에어컨의 보급이 급증하기 때문이다. 지난 여름 냉방에 필요한 전력수요는 98년 여름보다 150만㎾ 늘어난 732만5,000㎾였다.이 수치는 지난해 최대 전력수요의 19.6%를 차지한 것이다.올해도 여름철 최대 전력의 20% 정도가 냉방에 사용될 것으로 전망된다.이같은추세가 지속될 경우 2005년의 냉방부하는 99년보다 44.9% 증가한 1,061만6,000㎾로 예상되고 있다. 한국전력은 전력비상의 대표적 주범으로 꼽히는 에어컨을 무선으로 원격조작해 오후 시간대에 집중되는 냉방부하를 합리적으로 조절하는 원격제어 에어컨 보급사업을 올해부터 본격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500대를 시범보급한데 이어 올해에는 6,000대를 목표로 지난 4월부터 설치희망 고객을 공개모집 중이다. 한전에 따르면 지난해 시범사업 운영결과 제어명령 수행시 소비전력은 평균75W였다. 이는 에어컨 운전시 평균 소비전력의 2.5%에 불과하다.사용자의 입장에서는 10분간의 제어명령 동안에 실내온도가 제어시작 온도보다 섭씨 0.7∼0.8도 정도 올라가다가 제어명령이 끝나고 약 2분 후부터 원래 기온으로낮아져 큰 불편을 느끼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설문조사 결과 사용자의 만족도는 70%로 높았다. 이같은 직접 제어방식은 사용상에 큰 불편이 없는데다 일반 제품보다싸게구입할 수 있어 이용자들로부터 호응을 받을 수 있다.한전으로서는 효과적인수요관리 기법인 셈이다. 올해 보급되는 제품은 삼성전자·LG전자·대우캐리어·만도기계·센추리 등5개사의 패키지형 10개 모델로 원격제어용 수신기를 부착하고 있다. 소비전력은 2∼6㎾ 수준으로 주택과 소규모 점포 등에 적합하다.한전에서는 보급확대를 위해 원격제어 에어컨 제조업체에 1㎾당 20만원,대당 42만∼128만원을지원해 준다.소비자는 한전 지원금을 공제한 가격으로 제품을 살 수 있다. 한전 수요관리실 홍성규(洪性奎) 과장은 “원격제어 에어컨 100만대를 보급하면 오후 2∼4시 피크타임에 약 58만㎾의 제어효과를 거둘 수 있다”며 “앞으로 원격제어 에어컨의 성능기준을 제시하고,다양한 지원방안을 수립해보급을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함혜리기자 lotus@
  • 이건희 삼성회장 후계구도 첫 언급

    이건희(李健熙) 삼성 회장은 “재용(이회장 장남)이가 경영에 흥미와 자질을 보이는 것 같으나 지금 경영에 참여하는 것은 이르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고 18일 월간조선이 보도했다. 이 회장은 이날 발간된 월간조선 7월호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일찍부터 전문경영인 중심의 경영을 해온 삼성은 앞으로 누가 경영을 맡더라도 어려움은 없을 것으로 본다”고 전제하며 이같이 말했다. 이 회장이 삼성의 후계구도에 대해 직접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회장은 “재용이가 젊은 사람으로서 인터넷 사업이나 디지털 경영쪽에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것 같아 이런 새로운 사업분야에서 가급적 많은 경험을 쌓아보도록 권유하고 있다”면서 “사실 아버지 입장에서는 기업경영이고민과 결단의 과정이고 피 말리는 정신적 고통이 따르기 때문에 사명감없이 경영에 참여하는 것은 말리고 싶다”고 덧붙였다. 이 회장은 장자 상속과 관련,“가통을 장자가 이어가는 것은 동양의 미덕이지만 사업은 집안 식구들만 딸려있는 것이 아니고 주주,종업원 등 여러 사람이관여하고 있는 만큼 자식 중에서 경영 능력이 있는 사람이 맡아야 하고없을 경우 밖에서 찾아야 한다”고 밝혔다. 이 회장은 폐암 수술 이후 건강에 대해 “전보다 더 좋아진 것 같다”고 밝혔다. 육철수기자 ycs@
  • [황석영의맛따라추억따라](2)노티맛으로 이산가족의 연줄이어

    어머니는 목사이며 교육자였던 집안의 둘째 딸이었다. 큰오빠가 있었고 위로 맏딸인 언니가 있었으니 형제들 순으로 따지자면 셋째인 셈이다.어머니 아래로 여동생이 둘이고 남동생이 하나 있었단다.그러니까 딸 넷에 아들 둘,모두 육남매였다는데 내가 어릴적에 부모님이 월남했기 때문에 나는 그들을 본적이 없다. 그들 중에서 우리 식구처럼 월남했던 어머니의 바로 아래인 셋째 이모와 오라비인 큰아버지(이북에서는 외삼촌의 경우에도 큰아버지라고 부른다)만을알고있을 뿐이다. 셋째 이모는 딸 하나를 낳았는데 네 살 때인가 죽었다.이름이 인옥이었다.셋째 이모네는 우리 보다 좀 뒤늦게 월남해서 어떻게 수소문을 해가지고 우리동네에서 가까운 이웃 동네로 이사를 왔다.이모부는 몸집이 마르고 얼굴도창백한 병약한 사람이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인옥이도 보채기를 잘하고 병치레를 많이 했다.내가 여섯 살 때였으니까 나하고는 아마 두 살 차이가 날 것이다. 인옥이는 오빠 오빠,하면서 나를 따라다녔고 내가 세발 자전거를 타고 영등포 로타리를 한바퀴 돌아오려고 출발하면 징징 울면서 쫓아왔다.이모부는 그래서 나를 아주 못마땅하게 여겼다.그 애가 죽었을 때 이모네 집에 가보았는데 비좁은 마당이 있는 방 세 칸짜리 한옥이었다.맞은편 담 가에 우리 집 뒷마당처럼 일년초가 피었는데 분꽃이 빨갛게 피어 있던 게 기억난다.이모부는 마루에 앉아서 술에 취한 채 담배를 피워대고 있었고 이모는 계속해서 울기만 했다.그들이 살던 마루의 건넌방 미닫이가 열려 있었는데 멜방처럼 광목끈을 매어 놓은 작은 널판자의 상자가 보였다.나는 그것이 뭔지 대번 알아보았다.어릴적에 인옥이 생각만 하면 후회했다.자전거를 좀 많이 태워줄걸. 어머니의 오라비인 큰아버지는 일본 유학까지 다녀온 의사였다.내가 오래 전에 그분을 빌어서 ‘한씨년대기’라는 중편소설을 쓴 적이 있다. 전쟁이 터지고나서 1.4후퇴 때에 우리 식구는 대구로 피난을 갔다.대구 역에서 중앙통은 그때에도 제법 대도시처럼 붐볐는데 아버지와 내가 둘이서 길을가다가 큰아버지를 만났던 것이다. 어린 내가 보기에도 큰아버지는 멋쟁이었다.그이는 어머니처럼 키가 크고 굽실굽실한 긴 머리를 뒤로 넘기고 있었는데 깃이 넓은 헐렁한 검은 외투를 입고 있었다.안에는 당시에 미군부대에서 나온 목 앞에 단추가 달린 국방색 털쉐타를 입고 있었다. 아버지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었고 앞에서 우리를 지나쳐 가려던 키 큰 남자가 우뚝 섰다.두 사람은 잠시 그대로 서서 외마디 고함을 지르더니 서로 부둥켜 안았다.그래서 어머니는 오라비와 바로 손아래 여동생을 가까이 두고살수가 있었다. 셋째 이모는 교사가 되었는데 중년에 남편과 이혼하고 자식도 없이 혼자 살았다.이모부가 다른 데서 아들을 낳고 살림을 따로 냈던 것이다. 큰아버지는 소설에 썼던 대로 오십년대의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허무러졌다. 그를 고용했던 무면허 의사의 모함으로 동창생들과 술자리에서 말 몇마디 한 것으로 반공법에 걸려서 호된 고문을 당했다.그리고는 다른 죄목으로 기소되었다가 풀려난 뒤로 세상살이에 뜻을 잃어버린 듯했다.그이도 두 번인가재혼을 하더니 말년에 딸 하나 보고 외롭게 살았다.그들은 요즈음 말로 이산가족 일 세대인 셈인데 이제는 모두 세상을 떠났다. 내가 이러한 쓸쓸한 기억을 떠올리는 것은 ‘노티’ 때문이다.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얼마 전부터 먹고 싶다고 몇번이나 말했다는 그것 때문이다. 사실 나는 잊고 있었다.어머니쪽 외가 식구들이 영등포에 모여 살 적에는 추석이나 설이 되면 꼭 이틀 밤낮을 모여서 명절을 같이 쇠고는 했다.좁아 터진 집에 세 집이 모이면 불편할 것 같지만 이모는 독신이고 큰아버지도 그때는 아직 혼자여서 다른 집처럼 아이들로 붐빌 것도 없었다.큰아버지는 노상술만 마셨는데 그의 주정을 아버지 혼자 다 감당하곤 했다.그는 언제나 술이취하면 어머니에게 성화였다. 야야 노티 좀 해먹자꾸나. 오라반두 참…여게 어디 고향 같은 기장쌀이 있습네까. 어쨌든 어머니가 그 무렵에 구정 설이 되면 찹쌀을 빻아서 노티를 했다.그렇지만 나는 그 맛을 잊고 지냈다.아마도 약과 비슷한 것도 같고 모양은 지짐이(녹두 빈대떡) 비슷했을 것이다.얼마 후에 아버지도 돌아가시고 나는 장성해서 떠돌다가 뒤늦게 어머니를 모셨는데 어머니는 그동안한번도 노티 얘기를 꺼낸 적이 없었다. 어머니는 내가 어릴 적부터 재봉틀을 돌리거나 뜨개질을 하면서 여러 이야기를 해주었다.워낙에 말 재간과 기억력이 대단한 분이라 도깨비 이야기며 소설책 이야기며 고향 이야기들이 재미 있어서 나는 졸린 눈을 부비며 자꾸 되묻고는 하였다. 당신이 어릴 적에 형제들과 방에서 하던 놀이도 많이 배웠다.팥을 쪼개어 종이를 둥글게 말아서 그 안에 집어 던지는 벼룩이 윷이며,남포불이 비춘 벽위에다 그림자 놀이를 하는 법이며,서로 다리를 포개고 헤아리면서 ‘한알대 두알대 삼새’하다가 끝나는 다리의 임자가 술래가 되는 놀이며,손을 서로잡고 엄지 손가락을 세워서 상대방의 엄지를 찍어 누르는 엄지 씨름,뭐 끝이 없었다. 어머니는 이남 것은 과일도 밭 작물도 별로 맛이 없다고,이를테면 내가 참외를 맛있게 먹고 있는데도 그런 식으로 입맛을 버려 놓고는 했다.나중에 커서야 그게 일리가 있음을 알았다.어머니의 입맛은 고향을 그리는 향수였던 셈이기도 하고,또한 선배들의 말에 의하면 위도나 기후 상으로도 그렇고 논 보다는 밭이 많던 북선 지방의 작물이 맛이 월등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만드는 방법도 모르고 그 맛도 잃었던 나는 팔십 구년에 방북했을 적에 기적처럼 노티와 만나게 된다. 누나와 내가 어렴풋이 기억한 외가 식구들과 사촌들의 이름을 적어 갔는데정확하게는 큰외삼촌네 아들 형제들,그러니까 내 사촌 형제들과 어머니의 여동생인 막내 이모를 찾았다.막내 이모네도 아들이 셋에 딸 하나가 있었다. 고려 호텔의 지정된 방에 갔더니 낡은 한복 차림의 할머니가 낯선 형제들과앉아 있었는데 나는 가슴이 저려오는 느낌이었다.어쩌면…돌아가신 어머니가 거기 앉아 있는 게 아닌가.어머니의 말년 모습과 똑같았다.울고 불고,서로소식 묻고,형제들 소개하고,그런 법석을 하다가 차츰 침착해졌다.나는 특별히 시내에 있는 사촌 맏형의 집에까지 따라갈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아서 밤늦게까지 이모와 함께 수많은 이야기를 했다.물론 어머니의 임종 얘기와 노티 이야기가 나왔다. 그리고 떠나오던 날 이모는 사촌들과 순안 비행장에 배웅을 나왔다.헤어지기전에 휴게실에서 이모가 푸른색 보퉁이 하나를 내밀었다. 이거 개져다 먹어보라. 그게 노티였다.나는 비행기 안에서 남의 눈치 볼 것 없이 두 개나 먹었고 북경에서 나머지를 다 먹어 치웠다.이모가 일러준 대로 한번 만들어 먹어 볼작정이지만 내 기억이 맞는지는 잘모르겠다. 요즈음은 구수한 기장쌀을 구하기 힘들테니 찹쌀을 빻아다 시루에 찐다.엿기름가루에 물을 내려 우려낸다.익은 찹쌀가루와 엿기름가루를 섞어,우려낸 엿기름 물을 붓고,소금 간을 하고 참기름 넣어서 반죽을 한다.반죽을 아랫목에 한 두 시간 덮어 두어 삭힌 다음에 손바닥만한 크기로 약한 불로 지져낸다. 이것을 식혀서 꿀에 재어 항아리에 채곡채곡 넣어서 장독대에 내다 놓고 먹는다고 한다. 순안 비행장에서 막내 이모와 그렇게 헤어진 것이 마지막이 되었다.그로부터 석 달 뒤에 이모는 이산가족 일세대의 마지막 사람으로 세상을 떠났다.나의 어거지 방북으로 겨우 혈육의 연줄을 이은 셈이다. 어머니의 언니인 큰이모와 남동생은 진작에 전쟁 때 죽었다고 하는데 나는어머니가 갖고 있던사진은 본 적이 있었다.큰이모는 여학생 때부터 광주학생사건 등이 전국으로 번졌을 때 주동자 노릇을 하더니 일찍이 만주로 달아나서 독립군에 들었고 해방이 되어서야 돌아왔다고 한다. 언니가 어찌나 노티를 좋아했던지,겨울 밤에 몰래 장독대에 나가 동생들 몫까지 먹어치우는 바람에 둘째 딸인 어머니와 다투곤 했다고 하는데. 황석영
  • [황석영의 맛따라 추억따라](1)잃어버린 먹거리

    내가 잃어버렸다고 하는 것은 지금은 먹을 수 없다거나 만들 수가 없다는 말은 물론 아니다.그때의 맛이 나지 않는다는 소리다.사람이 변했든지 세월이변했든지 했을 터이다. 나는 다 알려져 있듯이 만주에서 태어났고 해방이 되면서 외가가 있던 평양으로 나와서 다섯 해를 살았다.따라서 기억이 나는 것은 평양에서의 한 두해가 될 것이다.태어나자마자 줄곧 피난 길이었는데 이것은 전쟁이 끝날 때까지 팔 년 동안이나 계속 되었다. 평양에서는 이른바 적산집이라고 일본인이 버리고 간 이층 목조 집에서 살았는데 가파른 나무 계단과 모든 방마다 다다미가 깔려 있던 게 생각난다.방안쪽에는 또한 일종의 붙박이 벽장인 오시이레가 있어서 혼자 들어가 숨기에맞춤했다.오시이레 안에서는 나프탈린 냄새가 났다.그 냄새는 우리 가족이륙색이나 봇짐을 지고 이리 저리 남한의 산하를 돌아다닐 적에도 내내 따라다녔던 냄새였다. 우리 식구가 아버지의 취직으로 남한으로 내려올 때 삼팔선을 넘었는데 해주의 어느 사공 집에서 저녁을 먹었던 일이 어렴풋하게 남아 있다.갯가에서 흔하게 주을 수 있는 작은 게를 장에 조린 반찬이 신기했다.앙징맞게 작았지만집게발과 두 눈의 생김새가 그대로 있는 통째로의 게여서 입 안에 넣기가어쩐지 징그러웠다. 나는 나중에 어른들에게 듣고서야 거기가 개성의 피난민 수용소임을 알았는데,지금 기억에 남은 건 운동장의 무너진 담 사이로 보이던 작은 언덕에 봉긋봉긋 솟아난 한아름 크기의 새 무덤들과 그 앞에 사이다 병에 꽂아놓은 들꽃들이다. 만주에서부터 육로로 나온 일본인 귀환자들이 많았다는데 대부분의 작은 무덤은 그들 어린 아이들의 것이었다고 한다.내게는 다만 사이다 병에 꽂힌 들꽃들이 선명하게 기억 속에 남아 있다.서울에 와서도 효창동의 일본집들이가득찬 골목에서 세를 들었는데 분위기는 평양의 이층 집과 비슷했던 것 같다.하여튼 그 시절에 길 위에서도 새로운 고장에 도착했을 적에도 언제나 어른이 내 손에 쥐어준 것은 김밥이었다.그냥 밥 몇 술을 펴담고,조글조글하고아작아작한 (단무지가 아니라)다꾸앙을 길게 박아서 마른 김 한 장에 둘둘만 김밥은 어린내 눈에 굉장히 커 보여서 아마도 오랫동안 손에 쥐고 자다깨다 하면서 먹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오래된 일본식 집에 가서 무심코 오시이레 문을 열면 나프탈린냄새가 떠오르고 다꾸앙과 김밥 냄새가 나곤 했다.그 김밥은 요즈음에 패스트푸드가 되어버린 체인점의 김밥과는 달랐다.그 뒤 전쟁이 터지고 다시 피난길에 오르면서부터 김밥의 속이 달라지고 주먹밥이나 개떡을 먹는 일이 흔해졌지만 나중의 일이다. 해방 뒤부터 전쟁 때에는 물론이고 전후에도 오랫동안 양식이 부족해서 도회지에서는 밀가루로 연명하는 날이 많았다.어머니는 언제나 없는 재료로 아이들이 좋아할 뭔가 색다른 반찬들을 만들어내야 했다.그럴 적에 등장했던 것이 바로 ‘장떡’이었다.훨씬 뒤인 칠십년대에 와서야 어머니가 정식으로 어릴 적에 할머니로부터 전수 받은 진짜 장떡을 먹어보고서야 당시의 그것이얼마나 엉터리였는지를 알았다.어머니가 당시에 된장국과 김치 한 보시기를달랑 올려놓기가 거북했을 때에 급조했던 장떡은 우리 형제들에게는 대단한특식이요 별찬이었다.어머니가 부엌에서 장떡을 지지는 냄새를 풍기면 우리어린 것들은 둥그런 밥상 주위에서 야,장떡이다 장떡! 하면서 맴돌았다. 어머니가 급히 지져낸 장떡은 사실은 고추장떡이었다.밀가루를 묽게 반죽해서 거기에 고추장을 타고 그때 그때 눈에 띄일 때마다 파나 마늘이나 풋고추를 썰어 넣고 지진 기름끼가 도는 음식이었다.이것은 지져낸 당시에 방금 먹지 않으면 나중에는 흐물흐물해져서 풀때죽이 되어버리고 만다. 대개 장떡은 이북 음식으로 알려져 있는데 지방에 따라서 고추장을 넣든가된장을 넣든가 아니면 둘 다를 섞어 조리하기도 한다. 평안도나 황해도에서는 된장을 주로 쓰는데 밀가루와 찹쌀을 섞어서 맛을 돋굴 마늘이나 부추 또는 깻잎 등을 다져 넣고 시루에 쪘다가 한 낮의 햇볕에한 사날 말려서 갈무리해두고 먹을 때마다 참기름이나 들기름에 지져 먹는다. 개성에서는 햇된장을 건질 적에 아예 장떡 조리용으로 소금을 치지 않고 두었다가 찹쌀가루와,다진 쇠고기며,깨,파,마늘 고춧가루 참기름을 섞어서 동그랗게 빚는다.그리고 앞서와 같이 말리거나 쪄두었다가 지져 내지 않으면구워서 낸다.여기서는 햇된장에 고춧가루를 섞는 것이 특징인데 그냥 고추장떡 보다 훨씬 맵쌀한 게 특징이다. 미나리와 부추를 섞어서 밀가루와 멸치가루 등속을 넣고 파 마늘 다진 것에고춧가루나 고추장을 버무려 동글납작하게 빚어서 담백하게 그냥 즉석에서쪄먹기도 한다. 똥그랑뗑처럼 다진 쇠고기나 다진 돼지고기를 역시 으깬 두부에 섞어 된장고추장과 밀가루에 반죽해서 기름에 지져내기도 한다. 얼마 전에 큰 아이가 장가를 갔는데 사돈 댁의 법도에 따라 우리 집에 오면서 ‘이바지’ 음식을 며느리 손에 들려 보내왔다.한과니 전이니 과물이니는 제사 때 보던 것과 같은데 유난히 눈에 띄는 음식이 있었다.그것이 바로 사돈댁의 고향인 강화의 수수장떡이었다.수수를 빻아다가 찹쌀을 섞고 된장을넣어 부추와 마늘을 다져 넣은 것이었다.며늘아이가 말하기를,수수장떡의 주의할 점은 반죽할 때 절대로 물을 타지 않는다는 점이란다.된장과 부추의 물기로 반죽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색깔을 보니 어두운 회색 빛인데 속으로부추의 푸른 빛이 어른거린다.강화의 장떡은 다른 지방과는 달리 수수로 빚으면서 그냥 날것인 채로 햇볕에 말린다는 특징이 있다.꾸덕꾸덕하게 한나절 햇볕에 말린 다음 그대로 쪄서 먹거나 역시 참기름에 지져 먹으면 된다.아이들에게는 조부모가 되는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조촐한 젯상을 차리고 ‘이바지’ 음식을 드리고 참배했다. 그때 물이 스미는 것처럼 영등포의 그 작은 집 안방의 가난했던 밥상이며 어머니가 부엌에서 음식을 만들던 생각이 났다. 방은 두 칸이었고 마루방 하나가 딸려 있었는데 부엌은 비좁은 편이었다.시멘트로 바른 부뚜막에는 중간 크기의 쇠솥 두 개가 걸려 있었고 부엌 문 앞의 처마 밑에 숯을 사용하는 풍로가 있었다.어머니는 두 솥에다 밥과 국을짓고 풍로는 아궁이의 잔불이 사라진 다음에 밑불로 타다 남은 숯을 작은 부삽으로 꺼내어 풍로에 옮기고는 그 위에서 석쇠로 생선을 굽거나 찌개를 끓이거나 번철에 뭔가 지지곤 했다.나는 누나와 함께 가끔씩 부엌에서 어머니를 도와 잘 붙지 않는 밑불을 살리노라고 풍로를 돌리곤 했다. 우리는 비 오는 날이나 또는 일요일 오후에 어머니가 부엌 봉당에 주저앉아밀가루 부침개를 붙이거나 고구마를 삶거나 할 때에 나직하게 부르던 노랫소리를 기억한다.일본 노래도 부르고 전쟁 때에 나온 유행가도 불렀다.어머니는 당시 표현대로 교육을 받은 신여성 인텔리였다.그래서 나중에 전후의 가난이 어느 정도 가셨을 때에는 요리책에 나온 특별한 서양 음식도 해주곤 하였다. 제를 끝내고 아이들과 둘러앉아 물린 상을 먹으면서 그제서야 실로 몇 십년만에 장떡을 먹어 보았는데 어쩐지 물컹하고 아무런 맛도 없어서 저도 모르게 구워낸 굴비쪽으로만 젓가락이 가는 것이었다.아이들은 더해서 한 점을밥 위에 올려 놓고 떼어 먹는 품이 못내 내키지 않는 양이다.그래도 보낸 쪽의 성의와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더해져서 서너 점을 먹고나니 밥이 한참이나 그릇에 남았는데도 벌써 배가 불렀다.수저를 놓고나서야 장떡의 미덕을알게 된다.밥을 보통 때보다 적게 먹었는데도 어쩐지 덧부룩하고 든든한 느낌이었다. 어머니는 내가 광주에 살던 시절 모시고 있었는데 광주사태 있고나서 내가당국의 권유로 제주도에 유배 비슷하게 머물던 그해 겨울에 돌아가셨다.암이라서 식구들도 모두 포기하고 병원에서 모셔내다가 진통제나 놓아 드렸다.아내가 내게 ‘노티’가 뭐냐고 물었다.글쎄…그게 뭘까,했더니 그네가 말했다.어머니가 돌아가시기 며칠 전에 몇번이나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노티를 꼭 한 점만 먹고 싶구나.
  • [황석영의 맛따라 추억따라] 작가와의 대화

    본지에 연재될 작가 황석영의 ‘맛따라 추억따라’는 두 가지의 커다란 새로움을 한꺼번에 독자에게 선사할 전망이다.잊어버린 맛의 기억을 새롭게 되살려주고 작가 ‘황석영’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케 하는 것이다.모두 우리의삶을 살찌우는 새 기억이고 새 모습임이 틀림없다. 충남 홍성 부근의 덕산에 신축한 집에서 작품활동에 여념이 없는 작가를 서울에서 잠깐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출간하자마자 베스트셀러 리스트에 오른‘오래된 정원’의 독자사인회 상경길이었다.웬 요리 이야기냐는 등의 질문에 논리정연한 대답을 내놓았다.그만큼 이 연재물에 대한 생각과 준비가 숙성된 표시였다. 작가는 우선 요리가 “새로운 세기에도 대단히 중요한 일거리로 남을 것임”을 강조한다.사람끼리의 사적인 관계와 소통,인간적인 작업,비획일성,다양함,생산의 창조적인 과정 등이 사라지는 후기 산업사회에서 요리는 인간적이고 가족적인 영역으로서 한층 소중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거기에 세계화에도불구하고 요리는 지역적 전통적 특수성을 잃지 않으면서 서로 어우러지고섞여 새롭게 태어난다는 점에서 새 세기의 인간적 ‘모델’이 될 수 있다고덧붙인다. “한 시대의 먹거리는 당대 삶의 표현입니다.이 점은 글쓰는 사람한테 굉장히 중요하게 다가옵니다.담론의 형식이 바뀐 것이 분명하다면 요리를 통해서 시대를 새롭게 조명할 수 있다고 보여지는 거죠” 시대의 실체를 밝히는 소설을 쓰듯 이번 연재물에 접근하겠다는 마음가짐이 엿보인다.소설이 재미있어야 하듯 ‘맛따라 추억따라’는 작가의 구수하고흥미진진한 음식 이야기가 먼저 독자들의 구미를 당길 것이다.장떡 개떡 수제비 술찌게미 보리밥 장아찌 등 우리 모두가 잃어버린 음식은 물론 베트남유럽 중국 일본 미국 그리고 북한에 체류하면서 작가가 유일하게 경험한 음식 이야기가 ‘입담좋게’ 펼쳐질 전망이다. 그러나 ‘맛따라 추억따라’는 이런 구상적인 소재와 소품 일색이 아니다. 작가는 음식,요리로 인간과 삶을 꿰뚫어보고 싶은 것이다.작가가 그간 작성한 집필 메모를 읽어보면 이같은 인문학적인 시선과 각오가 손에 잡힐 듯 다가온다. “일정한 기간 단식을 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침 점심 저녁의 식사가 하루 중에서 얼마나 중요한 행사인가를 알게되었을 것이다.‘끼니’를 잇는 일은 생명을 위해서도 그렇지만 잠자는 시간 외에 깨어나 활동하는 사람들의 ‘시간’을 적절히 분할해주고 매 단락을 맺어준다.아무것도 먹지 않고 있으면 하루가 엄청나게 길고 모든 것이 갑자기 무의미해진다” “그리고 매우 소중한 발견은 만남이나 헤어짐이나 대화나 목소리 얼굴의인상 따위와 같은 사람끼리의 관계가 빠져버린다는 점이다.천하가 적막하고고요할 뿐이다.남과의 소통은 당연히 끊기고 자기 자신마저 살아있는 것 같지 않다.먹지 않는 시간은 시간이 아니다.” “우리는 모든 맛을 잃어버렸다.맛있는 음식은 노동의 땀과,나누어 먹는 즐거움의 활기,오래 살던 땅,죽을 때까지 언제나 함께 사는 식구,낯설고 이질적인 것과의 화해와 만남,사랑하는 사람과 보낸 며칠,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는 궁핍과 모자람이라는 조건이 그 기억을 최상으로 만든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미식가나 식도락자를 ‘맛을 잃어버린’ 사람으로 규정한다.마치 진정한 사랑을 찾아서 끝없이 헤매는 돈 쥬앙처럼 말이다” 이어 작가 황석영은 “무엇보다 인생살이와 사람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볼작정”이라는 말로 음식에 관한 멋지고 선도적인 담론을 쓰기 위한 집필메모를 마무리하고 있다. 김재영기자 kjykjy@. *삽화 민홍규 화백…“우리색채로 고유의 맛 우려낼 것”. 황석영씨와 함께 일을 하게 되어 기쁘다.새달부터 시작되는 새연재 제목처럼 황씨의 파란만장한 삶속에 녹아있는 구수한 맛의 향수를 단화(單畵)로 승화시키는 작업은 만만치 않을 일로 본다. 맛을 그림으로 그려낸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감응과 묘한 맛이 배어있어 때론 정반합의 역설화법이 필요하다.삽화의 획일성에서 가끔 벗어나는 일도 있어야 한다. 독자들의 일방적 ‘감상 들추기’에 폭넓은 구상,비구상 형식이 전개될 것이다. 된장찌개는 할머니의 손맛으로,장떡은 코흘리개 아이들의 가슴으로,보리개떡은 늦은 봄 야윈 어머니의 미소로 그려내고 싶다.밥상 위에 다양한 맛의반찬이 있듯 ‘우리색채’로 맛을 우려내려고 한다.아울러 고단한 우리네 삶을 녹여주는 숱한 표상을 그려내고 싶다. ■프로필 1952년 경남산청에서 출생했다.중학시절 석불문하에서 ‘옥새전각’전수생활을 했고 극장간판을 그리기도 했다.90년 옥새전각의 종합성으로새로운 미술사조인 LAP ART(선묘,문자예술) 장르를 정립했다.1991년 ‘현대서예협회’를 창립해 서예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기도 했다.현재 옥새복원작업을 하고 있으며 해외 LAP ART 작가로도 활동 중이다.
  • [각료 에세이] 열린 마음으로/ 유연한 근로문화의 확산

    만원 버스와 교통 체증에 시달리며 출근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한번쯤 집에서 편안하게 일하는 모습을 상상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그런데 자신이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일하고 이메일 등 정보 네트워크를 통해 동료들과 업무협의를 하는 모습은 이제 상상에 그치지 않고 이미 주변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모습이 되었다.인터넷을 중심으로 하는 정보화는 사회의 많은 것을 바꾸었고 일상의 근로 형태에도 큰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일본의 한 세계적 필름업체는 ‘오후 늦게 나와도 되고,아예 며칠씩 쉬어도 좋다.일만 제대로 하면 된다’는 소위 ‘재량노동제’를 도입해 화제가 되고 있다.늘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서 일하는 직장의 모습은 이제 필수적인 것이 아니다.집중이 잘되는 밤에 나와서 일해도 되고,집에서 일을 해도 된다.네트워크를 통해 상사와 의사 소통을 하고 결과를 보고하면 회사는 업무성과만 체크한다. 과거 농경사회에서는 온 식구가 하루종일 일해야 하루 먹을 것을 벌 수 있었다.산업사회에서는 집안의 가장 한 명이 하루 8시간만 일하고도농경사회보다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산업사회의 기술 발전이 생산성을 훨씬 더높인 결과다.정보화사회에서는 정보기술과 고도화된 정보인프라를 통해 훨씬 더 높은 생산성을 얻을 수 있게 될 것이고 이것은 생활에 필요한 근로시간을 단축시킬 것이다. 정보기술과 초고속 네트워크를 이용해 근무시간·장소를 자유롭게 결정할수 있게 되면 회사가 어느 곳에 있든 자기가 편리한 곳에서 근무할 수 있다. 남편이 해외로 발령 나서 외국에 가야 할 경우에도 아내가 직장을 그만둘 필요가 없어진다.주중에는 직장 옆에서 살고 주말에야 가족 곁으로 돌아가는주말부부는 앞으로 찾아보기 어렵게 될 것이다. 유연한 근로 여건이 가져다 줄 이런 편리함 속에서 한편으론 지금처럼 한사무실에서 일하며 얻을 수 있는 많은 것들이 새로운 문화 속에서 사라질 우려가 있다.서로 부대끼면서 일할 때 느낄 수 있는 인간애,동료애 등이 점점사라져갈지 모른다.인터넷이 가져다주는 근로문화의 변화 속에서 긍정적 요소만을 취사 선택할 수 있는 현명함을 갖고 변화를 맞이해야 할 것이다. 安炳燁 정보통신부 장관
  • 어린이 책 세상

    ●자주 울거나, 밥을 먹지 않는 아이…. 이같은 문제행동을 주입식 잔소리나 강요 식으로 다그치지 않고 지혜롭게 고쳐주는 방법은 없을까? 동화작가 호원희씨가 펴낸 ‘친구하고 싶은 아이로 바꿔주는 책’(세상모든책)은 아이들의 생활습관을 바로잡아주는 클리닉 동화다. 공공장소에서 소란을 피우는 아이에게 들려주는 ‘마법의 식당’은 식당에서소란을 피워 음식을 흘리면 음식이 요리되기 전 모습으로 돌아가 버리는 이야기다.포도주스가 흘러 포도넝쿨이 무성해지는가 하면 통닭이 암탉으로, 소고기가 황소로 각각 바뀌어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난장판을 만든다.은진이네식구는 간신히 도망치듯 식당을 빠져 나온다.병아리가 너무 씻지 않아서 까마귀의 아이로 자라게 되는 ‘까마귀 둥지에 간 병아리’ 등 아이들을 스스로 변하게 만들 만한 재미있는 이야기들로 구성돼 있다.값 9,500원. ●동화책과 비디오,CD롬을 유기적으로 결합시킨 멀티미디어형‘베이비 맘마구연동화’(한국브레인) 시리즈가 출시됐다.스위스의 교육철학자 장 피아제의 인지발달이론에따라 유아들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내용으로 구성됐다.‘베이비 맘마 구연동화’는 ‘큰 동화책’과 ‘리틀 베이비 북’ 각 10권씩을 포함해 동화책 38권과 18편의 비디오로 구성됐다.비디오는 애니메이션,드라마,인형극 등 다양한 표현기법을 활용해 디지털 방식의 첨단기법으로 제작했다.테마CD는 동요와 클래식 등 세계 각국의 노래를 4개의 주제로 나눠 수록했다.32매의 그림 이야기 카드와 1권의 스토리 북으로 된 ‘연상동화’는 교육 방향만 제시하고 유아 나름대로 이야기를 꾸며 나가도록 돼있다.(02)861-4114. ●내 아이에게 맞는 장난감 고르기(이미숙 지음)0∼36개월 아기들에게 필요한 장난감과 놀이를 체계적으로 알려주는 안내서.마루벌 7,800원. ●꿀강아지 똥강아지(신현배 엮음)목숨을 던져 주인을 불길에서 구한 ‘오수의 개’ 등 우리 옛이야기 속의 개 이야기.우리교육 7,500원. ●우리 짱한테는 뭔가 비밀이 있다(신완선 지음)어린이들에게 리더십을 길러주는 생활동화.세손교육 7,000원. ●숲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윌리엄 재스퍼슨 지음,이은주 옮김)숲에 관한궁금증을 속시원히 풀어주는 이야기.비룡소 6,000원. ●노자도덕경(어린이선비교육연구소 지음)자연과 조화를 강조한 노자 철학을재미있게 풀어썼다.자유지성사 3권 각 6,000∼6,500원. ●소망 도깨비 뿌뿌(김남숙)뼈가 약해지는 찬이의 병을 뿌뿌가 고쳐줘 소망을 되찾게 해주는 그림동화.가교 6,000원.
  • [외언내언] 개팔자

    서울시가 올 1월부터 3월까지 ‘떠돌이 개’에 대한 광견병 예방조처를 하면서 보니 주인에게 버림을 받았거나 집을 잊어버려 거리를 서성대는 개들이모두 476마리였다고 한다. 148마리는 주인의 품으로 돌아갔으나 불구가 됐거나 질병에 걸린 14마리는 안락사 시키고 나머지는 동물구조관리협회에 넘겼다고 한다.떠돌이 개가 하루 5마리꼴이면 적은 숫자가 아니다. 우리나라도 동물보호법이라는 게 있다.떠돌이 개는 이 법에 따라 지방자치단체가 보호하도록 돼있다.그러나 대부분 지방자치단체들은 예산과 인력 부족 등을 이유로 보호소를 설치하지 않고 한달에 40만∼50만원을 주고 보호업무를 민간단체에 위탁하고 있다.민간단체에 넘겨진 개들은 일부 일반 분양되고 나머지는 안락사 처리되고 만다고 한다.길바닥을 헤매다가 결국은 낯선사람의 손에 안락사 당하는 그 개들이 애처롭다. 졸지에 직장을 잃고 거리를 헤매는 노숙자가 시글시글한 판에 무슨 ‘개 타령’이냐고? 오해 없기 바란다. 필자도 가끔씩 ‘군치리’에 출입하는지라 뭐 그리 대단한 동물애호가도 아니다.필자가 떠돌이 개들의 ‘최후’를 애처로워 하는 것은 어릴적 고향에서아무나 ‘워리 워리!’ ,‘독구 독구!’부르면 식구나 이웃 가리지 않고 쏜살같이 달려와 꼬리를 흔들어대며 펄쩍펄쩍 뛰던 그 ‘흰둥이’‘누렁이’에대한 그리움 때문이다. 잡아먹을 땐 잡아먹더라도 개는 그렇게 우리와 가까운 생명체였다.게다가 루이스 부뉘엘감독의 명화 ‘안달루시아의 개’는 접어두더라도 우리 모두 어렸을 적에 ‘플란더스의 개’를 읽고 눈물을 흘리지않았던가. 최근 애완동물사육이 늘어나면서 숨진 애완동물의 장례(?)를 치러주는 전문업체가 등장해서 성업중이라고 한다.한달에 60건 정도를 처리하는데 화장 처리할 경우 12만원에서 60만원을 받는다고 한다.업체 소유 납골당이 비좁아서애완동물 전용묘역을 조성할 계획이라고 한다. 행려병사자가 있는 마당에 애완동물의 납골당과 묘역 이야기는 무척 선진국적이다. ‘개팔자 상팔자’라고 할 것인가.그러나 대도시에서 살다가 제명에 죽어간개들도 불행하기는 마찬가지다.그것들은 철저히 사육됐을뿐이다.동네 길을알겠는가,쥐를 잡는 재미를 알겠는가,아니면 애들의 배설물을 별미로 먹어봤겠는가.지난날 고향집 마루 밑에서 늘어지게 게으름을 피우던 개들은 복날동네 사람들에게 단백질을 제공함으로써 자신들의 소임을 완성했던 것은 아닐까. 장윤환 논설고문.
  • 집중취재/ 국제자유도시 추진 중간점검-제주

    제주도를 국제자유도시로 탈바꿈시키려는 움직임이 탄력을 받고 있다.경제적인 기대 성과는 차치하더라도 제주가 아시아권 허브의 축에 자리하면서 국가위상이 크게 향상되리라는 분석이다.더구나 2년 앞으로 다가온 월드컵축구라는 세계적인 이벤트를 십분 활용한다면 성과를 훨씬 증폭시킬 수 있을 것이다.제주도 국제자유도시 지원위원회를 비롯,각계 각층이 자유도시 지정을서두르고 있는 까닭이기도 하다.2001년 12월에 있을 월드컵 축구 조추첨행사를 제주에서 갖자는 논의가 반향을 불러 일으키고 있는 시점을 계기로 제주도 국제자유도시 지정작업을 중간 점검해본다. 제주도를 국제자유도시로 만들려는 움직임이 가시화된 것은 2년전쯤이었다. 98년 9월25일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제주도를 방문하자 우근민(禹瑾敏)도지사가 국제 자유도시 지정을 건의하고 나선 것이다. IMF체제를 힘겹게 넘기고 있던 무렵이었던 터라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해 제주도를 활용해야 한다는 의견은 쉽게 공감대를 형성했다.홍콩을 대신할 국제자유도시로 중국이 상하이(上海) 푸둥(浦東)지구 자유무역지대 조성사업,일본이 오키나와(沖繩) 무역자유지역 개발사업 등을 추진하고 있다는 게 촉매제가 됐다.제주도는 이들과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나름대로 차근차근 준비해왔다.대통령에게 처음 건의한 이후 6개월이 지난 99년 3월15일에 제주도가청사진을 제시했다. 2002년까지 관광 자유도시로 가꾸고 이어 2006년까지는비즈니스·물류·교역 자유도시로 확대한 후 2010년이면 금융을 포함한 환경친화적 복합형 국제자유도시로 개발토록 한다는 것이었다. 청사진이 곧바로국무회의 의결을 통과했고 건설교통부는 그해 8월 미국 컨설팅업체인 존스랑 라살르사(社)와 ‘제주국제자유도시 개발 타당성 조사 및 기본계획 수립을 위한 용역’을 체결했다. 국토연구원과 존스 랑 라살르사는 지난 3월에 내논 2차 보고서에서 제주를5개권역으로 나눠 제주시 권역은 자유무역지대로 정해 교역과 물류중심지로육성하고 중문·서귀포 권역은 국제 관광거점 지역으로,동부권역은 해양관광단지로,서부권역은 전원도시로,한라산국립공원을 중심으로 한중앙권역은 자연친화형 레크레이션 지역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밝혔다.서귀포시에 짓고 있는 2002년 월드컵경기장이나 2001년의 세계태권도대회 등 각종 국제체육대회를 유치하려는 것도 청사진에 맞춰 이뤄지고 있음은 물론이다. 오는 6월말이면 제주도를 국제자유도시로 지정해 개발하는데 필요한 관계법령 개정문제,출입국절차 간소화 문제,역기능을 최소화할 대책,내국인 카지노도입방안 등을 담은 최종 용역보고서가 나와 모든 밑그림을 마무리짓게 된다. 제주 김영주기자 chejukyj@. *제주도 개발 당위성. 개방의 물결에 휩싸이면서 세계 각국은 저마다 국제 경쟁력을 높이려는 노력이 한창이다.적자생존의 무한경쟁이 시작됐기 때문이다.한국 역시 경쟁력강화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 IMF체제를 겪으면서 총체적인 국가 경쟁력 기반을 다져야 한다는 요구가 절실해졌고 그 과정에서 제주도의 특성을 십분 활용하자는 의견이 제시됐다.제주도를 국제자유도시로 지정해 육성하려는 것이다. 제주도는 홍콩 등 외국의 국제자유도시들 보다 뛰어난 자연환경을 갖추고있지만 지난 40여년에 걸친 수차례 개발계획에도 불구하고 국제적 경쟁력을갖추는 데는 실패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제주도를 국제자유도시로 지정,관광명소로서 뿐만 아니라 금융·투자·비즈니스·무역의 전진기지로 육성키로 하고 종합적 마스터플랜 수립을 위한 연구용역을 의뢰했다. 6월말을 전후해 최종안이 나오면 더욱 구체적으로 추진 계획이 세워지겠지만,중간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제주도는 천혜의 자연환경과 관광을 바탕으로국제자유도시로 개발되는 데 조금도 손색이 없을 것이란 전망이다. 단기적으로는 제주도의 장점인 관광자원을 최대한 활용함으로써 관광객들을자연스레 유치하고 자유도시에 걸맞는 인프라를 구축해 투자·무역·비즈니스의 중심지로 키운다는 것이다.장기적으로는 국제수준의 기반시설 확충과외자유치를 통해 동북아 지역의 정보·물류·국제금융·첨단산업의 중심지로발돋움토록 한다는 계획이다. 전광삼기자 hisam@. *국제자유도시란, 관세 없는 자유무역특구. 국제자유도시는 크게 자유무역지대와 특별경제지대로 구분되지만 기능이나역할은 같다. 이곳들은 특별법이나 특별 내규로 해당국가의 국내법 적용대상에서 제외된다는 게 가장 큰 특징이다. 특히 관세 당국의 통제권에서 제외되고 상품과 재화의 자유로운 유출입이보장돼 말 그대로 관세의 부과에서 자유로운 자유무역이 가능해진다. 홍콩 등 국제경제에서 큰 위상을 갖춘 자유무역지대는 최소한의 관세 절차,재정 및 조세상의 특권,투자 인센티브 등이 보장되어 있다. 공항이나 항만시설 등 원활한 운송수단을 비롯해 도·소매 물류복합단지,국제적 금융시설,첨단산업,호텔 등도 완벽하게 갖춰 비즈니스를 위한 다양한서비스가 확보되어 있는 것도 또 하나의 특징이다. *제주도 시너지 효과. 2002년의 월드컵 축구경기가 다가 오면서 제주도 국제자유화도시 일정을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큰 힘을 얻어가고 있다.갖가지 이벤트가 이어질 것이고 하나하나가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빅 이벤트이고 보면 국위를 높이고 국력을 크게 보강할 수있는 기회로 활용할 수있기 때문이다. 당장 2001년 12월에 월드컵 본선 조추첨이 지금 서귀포시에 짓고 있는 월드컵 경기장에서 실시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자그마치 20억명 이상의 지구촌식구들이 TV를 통해 지켜볼 행사이고 보면 제주도는 이 행사 하나로 세계적인 명소로 떠오를 수 있게 된다. 최근 국제축구연맹(FIFA) 조직위원회에 참석했던 정몽준(鄭夢準) 대한축구협회장은 “조추첨 장소로 서귀포가 유력하다”고 밝히기도 했었다.또 이달초 한국을 방문했던 FIFA 조사단의 안토니오 마타레세 단장 역시 “서귀포는좋은 날씨와 경관을 가졌다”며 호의적 반응을 감추지 않았다. 여기에 제주도가 국제자유화도시로 지정돼 개발된다면 일거에 이를 전세계에 알리면서 거두게 될 경제적,국제적 효과는 엄청날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나름대로 근거가 충분하다.프랑스 마르세유에서 열렸던 98프랑스 월드컵 조추첨 행사를 190여개국 20억여명이 TV 생중계를 통해 지켜봤었다. 한국관광공사는 올해 500만명으로 예상되는 한국의 관광객 수가 월드컵 직후인 2003년에는 700만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한국개발연구원(KDI)은 월드컵 유치로 총생산액 7조9,000억원,수입 6,750억원이 증가하고 24만5,000여명의 고용이 창출될 것으로 점치고 있다. 서귀포시 월드컵기획단의 이병남(李炳南) 행정팀장은 “조추첨 행사의 파급효과를 계량화하기는 어렵지만 관광 및 휴양지로서 청정한 제주의 이미지를전세계에 알림으로써 엄청난 부가가치를 창출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해옥기자 hop@. *제주도 역기능 뭔가. 제주도가 국제자유도시로 되면 대규모 외국인 직접투자가 이뤄져 호텔 등관광기반 시설이 확충되고 건설경기 활성화로 지역경제가 크게 활기를 띌 것으로 기대된다. 실제로 인천대 송희연(宋熙秊) 교수는 국제자유도시 계획이 마무리되는 2010년부터 향후 10년 동안에는 외국인 직접투자와 관광수입으로 누적 외화수입이 800억∼1,000억달러에 이르고 100만명 이상의 상시 고용효과를 얻을 수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적지 않은 주민들은 국제자유도시 청사진을 못마땅해 한다.제주문화의 정체성이 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국제자유도시가 될 경우 외래문화에의동화와 종속을 초래해 결국 전통문화와 미풍양속을 해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특단의 법적,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지 않는다면 대규모 개발사업과 인구 증가로 제주도의 청정환경을 훼손하고 오염시킬 것이며 향락산업이 번성하면서범죄가 증가하고 수입개방으로 사치풍조가 만연돼 지역산업의 경쟁력이 오히려 떨어질 것이라는 염려도 많다. 따라서 개발에 따른 규제는 최소화하되 사회·환경적 규제는 강화하는 다양한 대책을 마련,계획을 추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또 개발이익이 외부로 유출돼 주민들이 소외감이나 위화감을 느끼지 않도록 주민들이 주체적으로 참여하는 갖가지 장치가 적극 모색돼야 할 것이라는 지적이 공청회 등을 통해제시됐다. 일본 오키나와의 경우 일본 정부가 막대한 비용을 투입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순 관광지로 머물고 있을 뿐 투자가 거의 유치되지 않고 있다는 점을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일부 전문가들은 강조한다.예외적인 법규정을 마련해 특정 지역에만 적용하는데 대해 중앙정부와여타 지역이 거부감을 보일 수 있다는 점도 오키나와의 예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이라고 말한다. 제주 김영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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