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식구
    2026-06-19
    검색기록 지우기
  • 상선
    2026-06-19
    검색기록 지우기
  • 조율
    2026-06-19
    검색기록 지우기
  • 전분
    2026-06-19
    검색기록 지우기
  • 당황
    2026-06-19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7,523
  • [명문대 교육혁명] (19)중국 베이징대

    [명문대 교육혁명] (19)중국 베이징대

    |베이징 이지운특파원|‘세계 각 방면의 초일류 인사를 손쉽게 만나는 방법….’아마 세상살기에는 중국 베이징대학 캠퍼스에 눌러 앉아 있는 것도 빠르고 편한 길이 될 수 있을 듯하다. 세계 여러나라의 대통령부터 유명대학의 총장과 석학, 유력기업의 총수와 최고경영자(CEO), 고위 관료들과 정치인에 이르기까지 베이징대로 몰려들고 있기 때문이다. 2002년 12월에 있었다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강연을 들을 수 있었다. 코피 아난 유엔사무 총장도 최근 연설을 하고 돌아갔다.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도 재임 기간에 연설을 했다. 미국과 유럽 등 서방 각국의 장·차관들의 강연은 부지기수다. 현재 위르겐 하버마스 등이 체류 중이고 운이 좋으면 노벨상 수상자들의 강연도 접할 수 있다. 청룽(成龍) 등 초일류급 연예인의 강연도 들을 수 있다. 이처럼 세계 유력인사들이 베이징대에서의 강연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은, 무엇보다 중국의 미래 지도자들과 미리 인연을 맺을 수 있는 자리가 되기 때문이다. 초강대국으로 성장해가고 있는 중국에 나름의 연결 고리를 걸어둘 수 있는 기회인 셈이다. 이처럼 중국과 함께 이 대학을 주목하고 있는 세계의 ‘눈’과 ‘관심’은 베이징대의 ‘미래 경쟁력’이 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오늘날 베이징대의 가치를 여기서 찾는다. ●미래 지도자의 산실 중국에는 ‘다칭(大淸)제국, 베이다황(北大荒)’이라는 표현이 있었다. 그간 칭화대는 국가지도자급 인사를 많이 배출했지만, 베이징대는 그렇지 못해 ‘황량하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제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이공계 전공에 칭화(淸華)대 출신 인맥이 4세대를 이끌고 있다면,5세대 미래 지도자군에는 인문사회과학을 전공한 베이징대학 졸업생들이 눈에 띈다. 차세대 주자의 상당수가 베이징대 출신이며 실무급 간부진도 베이징대 졸업생 비율이 높아져가는 상황이다. 우선 탕자쉬안(唐家璇) 외교담당 국무위원이 베이징대학 일본어과를 나왔다. 리자오싱 중국 외교부장, 쉬관화(徐冠華) 과학부장도 베이징대 졸업생이다. 차세대 지도자들의 선두주자인 리커창(李克强) 랴오닝(遼寧)성 서기는 베이징대학 법학과를 졸업하고, 베이징대학에서 경제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상무부장 보시라이(薄熙來)도 베이징대 역사학과 출신이다. 리위얜차오(李源朝) 장쑤(江蘇)성 서기 등도 베이징대 동문이다. ●최고의 인재 집결지 ‘인구 100만명당 1명꼴´로 들어갈 수 있는 베이징대는 줄곧 중국인에게 경외의 대상이었다. 최근 모집 정원이 크게 늘었지만, 베이징대는 엄청난 ‘바늘구멍 뚫기식’의 입학만으로도 경쟁력을 갖는다. 때문에 입학생들은 수재로 간주된다. 국가의 재정 배려도 상당하다. 정확한 액수나 비율은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 국가 교육예산의 상당 부분을 ‘독식’하는 바람에 다른 대학의 원성과 불평이 이마저만이 아니다. 최근에는 타이완대 우허마오(巫和懋) 국제학 교수, 주자샹(朱家祥) 경제학 교수, 훠더밍( 德明) 경제학 교수 등 타이완의 석학들이 잇따라 베이징대로 옮겨오면서 타이완 학계에 충격을 던져주기도 했다.“급성장 중인 중국 경제를 현장에서 연구할 수 있고 좋은 인재들이 넘쳐나기 때문에 옮기기로 결정했다.”는 그들의 말은 베이징대의 미래 경쟁력을 가늠케 한다. 반면 베이징대 교수들은 미국·유럽에서 쏟아져오는 강연 요청을 정리하기에 바쁘다.‘방학 때 베이징대에는 교수들이 없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다. 중국 관련 학과와 연구소를 개설한 세계 각 대학에서 몇주씩 관련 강의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jj@seoul.co.kr ■한국유학생 600여명 학점이수·관리 철저해 |베이징 이지운특파원|베이징대학에 재학 중인 한국인 유학생 수는 분명치 않다. 중국 교육부와 한국 교육부가 파악하고 있는 수치가 크게 다르다. 한국 유학생회가 파악하기로 학부 재학생만 600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석·박사 과정을 합치면 수는 더욱 늘어나게 된다. 베이징대는 일부 학과의 외국인 입학을 불허하는 등 다른 나라 대학과는 다소 다른 점들이 있다. 사회주의 국가의 특성이다. 최근 교내 스피치 대회에서 상을 받은 신문방송학과 1학년 정금아씨는 “조별 과제가 이어지고 끊임없이 조별 토론을 해서 인터넷에 올려야 한다.”고 소개했다. 같은과 3학년 윤현정양은 “베이징대는 남학생들이나 여학생들이나 외모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 캠퍼스 밖으로 잘 나가지도 않는다. 늘 책을 끼고 다니면서 이곳저곳에서 보곤 한다.”고 말했다. 경제학과 3학년 허철씨는 “학생들의 경쟁 의식과 학습열의가 대단하다.”고 전했다.“복수 전공을 택한 학생들이 많아 일요일에도 거의 정상 강의가 이뤄진다.”고 덧붙였다. 해외파를 비롯한 유명 교수들이 ‘비주얼’에 강한 점도 하나의 특색으로 꼽았다. 출석 체크는 하지 않지만, 베이징대의 학사 관리는 엄격하기로 유명하다. 커닝은 제적감이다. jj@seoul.co.kr ■신문화 운동의 중심지 중국 지성과 양심 대표 |베이징 이지운특파원|베이징대학은 중국 근·현대사에서 늘 주동(主動)의 위치에 섰다. 우선 1919년 5·4운동이 베이징대 학생들의 시위로 촉발됐다. 그래서 개교 기념일도 5월4일이다. 이 전통은 1989년까지 이어진다. 톈안먼(天安門) 광장으로의 집결 역시 베이징대학 학생들이 주도했다. 중국에서의 마르크스 사상도 여기서 태동했다. 중국공산당 창당자인 천두슈(陳獨秀)는 문과대학장을, 리다자오(李大釗)는 문과대학 교수 겸 도서관 주임을 지냈다. 마오쩌둥(毛澤東)은 리다자오의 조교와 도서관 사서를 맡았다. 마오는 여기서 러시아혁명과 마르크스·레닌주의 서적을 탐독한 것으로 알려진다. 베이징대가 지난 100년간 중국의 지성과 양심을 대표하는 학교로 꼽힐 수 있었던 데는 이 같은 역사적 배경이 있다. 대학의 전신은 1898년 창설된 경사대학당(京師大學堂)이다.1912년 중화민국이 성립된 이후에 베이징대학으로 이름이 바뀌었다.1910년대 중반에는 천두슈, 후스(胡適) 등의 젊은 교수들이 등용되면서 신문화 운동의 중심지가 됐다. 당시 정치적으로 성향이 대립된 20대 초반의 젊은 교수들이 한 학과에 배치되는 등 개성이 중시됐다. jj@seoul.co.kr ■ “능력 안되는 교수는 떠나라” |베이징 이지운특파원|그러잖아도 질시를 많이 받는 베이징대가 다른 대학교수들로부터 듣는 불평이 하나 더 있다.‘교수 평가제’ 시행이다. 논란은 여전하지만, 베이징대가 처음으로 실시한 뒤 전국 대학과 연구기관 등으로 퍼져갔으며 중앙 당교(黨校)도 이를 뒤따랐다. 이 제도는 2002년 시행 이후 지금까지 전국에서 수십명의 교수, 연구원들을 ‘과로사’로 내몰 정도로 큰 파문을 일으켰다. 그 장본인은 바로 쉬지홍(許智宏) 총장.1999년 부임과 함께 이른바 ‘티에판완(鐵飯碗·철밥그릇)’과 ‘다궈판(大鍋飯·다함께 먹는 큰 솥의 밥)을 뒤집기 시작했다.‘베이징대학 교수 초빙과 승진제도 개혁 방안’은 대학 사회를 술렁이게 했다. 쉬 총장은 끊임없이 교수들을 닦달했다.“논문을 국제 세미나에서 발표하라.”고 몰아세웠다.“능력이 안되면 대학을 떠나라.”고까지 했다. 물론 압박 기준은 서양 대학들에 비하면 대단히 관대하다. 부교수 이하는 6년 계약제로 채용해 두 번의 임용 기회를 주고, 이를 통과하지 못하면 내보내는 식이다. 부교수 이상은 12년 계약제로 역시 두 번의 임용 기회를 준다. 그럼에도 ‘한번 베이따(北大) 교수면 영원한 베이따 교수’라는 ‘종신 고용제’를 깼다는 것 자체가 큰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다. 교수들 사이에 등급차를 두고 월급도 크게는 3배 이상 차이가 나도록 만들었다. 교수들 사이에서는 ‘나가거나, 올라가거나(Out or Up)’로 불린다. 한 교수는 “교수간의 빈부격차가 커지고 교수간 경쟁이 말할 수없이 심화하고 있다.”고 전했다. 지금까지 이 제도로 교수의 15% 이상이 밀려난 것으로 알려진다. 언론들은 “베이징대 전체 교수의 3분의1이 학교를 떠나야 할 것”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그 빈자리는 실력있는 유학파들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최근 해외 초빙 교수 조작 논란이 제기되기는 했으나, 교수 교체의 목표는 분명했다.‘학술상의 근친 번식’을 막겠다는 의도였다. 석·박사 연구원과 지도교수, 그 지도교수의 교수가 모두 한 식구로 구성되는 상황을 타파하자는 것이다. 따라서 다시 베이징대학 출신을 신임 교수로 임용하지 않고 각계 전문가를 기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베이징대 출신이 외국 학위를 다시 취득하거나, 다른 대학에서 일정한 경력을 쌓은 경우에 채용을 허용하는 등의 조치가 뒤따랐다. jj@seoul.co.kr
  • [쿠바는 지금] (상) ‘피델’ 없이도 차분한 아바나

    [쿠바는 지금] (상) ‘피델’ 없이도 차분한 아바나

    중남미 사회혁명의 전초기지 쿠바는 어디로 가는가. 피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이 권력을 일시 이양한 지 20여일이 흘렀지만, 쿠바의 향배는 명확해지지 않고 있다. 미국은 민주화 프로그램을 작동한다고 공언하고 플로리다만의 망명객들은 카스트로 정권의 붕괴를 목하 기대하고 있지만, 쿠바는 여전히 정중동(靜中動)이다.‘포스트 카스트로’의 향배를 아바나 현지 르포로 2회에 걸쳐 살펴본다. |아바나(쿠바) 최병규특파원|“피델은 매우 강한 사람이지요. 우린 사회주의자도 공산주의자도 아닌, 피델주의자입니다.” 지난 8월20일.6시간이나 출발이 지연된 ‘아에로 유로파’의 여객기는 스페인 마드리드의 바라하스 공항을 떠난 지 꼭 10시간만에 아바나의 호세 마르티 공항에 안착했다. 그렇지 않아도 좁다란 청사가 밤 12시를 넘겨 도착한 250여명의 인파로 북새통을 이뤘다. 하지만 공항 관리들은 매캐한 담배연기 속에 삼삼오오 TV 앞에 모여 위성으로 방영되는 미국의 쇼 프로그램을 보며 깔깔대기만 한다.“사회주의의 맹점은 자본과 물질보다는 시스템 부족에 있다.”는 누군가의 말이 새삼스럽게 와닿았다. “어디서 왔느냐.”는 확인 질문에 ”코레아 델 수르(Corea del sur·남한)라고 간단히 대답한 뒤 굳게 닫혀진 입국심사대 쪽문을 연다. 공항 도착 2시간만이다. ●쿠바와 피델주의자들, 지금은 ‘정중동’ 후텁지근한 바람을 맞으며 나선 청사 앞에서 마리아 로드리게스(48)와 작별인사를 나눴다. 마드리드공항 탑승구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는 동안 꽤 여러 차례 얼굴을 마주쳤지만 그와 얘기를 시작한 건 아바나 도착 30분 전쯤부터였다. 통로 건너편에 앉아 있던 그에게 넌지시 “피델(카스트로)은 괜찮은 것 같냐.”고 묻자 “피델은 매우 강한 사람”이라면서 “내 자신은 물론 주변의 사람들도 그가 곧 병실을 박차고 나올 것으로 믿고 있다.”고 잘라 말했다. 이어 “쿠바 사람들은 사회주의자가 아니라 ‘피델주의자’”라고 강조했다. 서울을 떠나기 전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은 “그의 신변에 큰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미국 행정부의 전망을 비웃기라도 하듯 여러 장의 신문 사진을 통해 건재함을 과시했다.‘사진 조작설’이 나돌자 이번엔 자신의 80세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방문한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과의 기념사진으로 ‘설’을 일축해 버렸다. 그러나 지금 카스트로의 동향 기사는 종적을 감췄다.‘카스트로 와병’ 이후 비교적 상세하게 그의 근황을 전하던 스페인 일간지 ‘엘 파이스’에 관련 기사는 더 이상 실리지 않는다. 아바나의 숙소에서 어렵게 받아든 ‘그란마’,‘후벤투드 레벨데’ 등 쿠바 공산당 기관지들도 그의 동정엔 입을 꾹 다물고 있다. 그리고 카스트로가 다시 침묵에 들어간 지금 쿠바의 모습은 여전히 지난 47년간의 철권통치에 길들여진 ‘평온함’과 미국의 경제봉쇄 조치 이후 계속된, 그리고 치열한 ‘생존 투쟁’이 뒤섞인 ‘정중동’의 상태다. ●불법, 더 이상 불법 아니다 비행기 안에서 만난 마리아는 쿠바 사회주의 혁명의 발원지인 ‘산티아고 데 쿠바’ 출신이다. 아바나국립대학을 졸업한 뒤 한동안 학교 교사를 했던 그는 지금은 아바나항구 주변 ‘아바나 비에하(올드 아바나)’ 구역에서 기념품 장사를 하고 있다. 의사와 교사 등 전문직을 포함한 노동자들의 한 달 평균 임금은 많아야 625페소(약 25달러) 정도다. 그래서 차라리 외국 돈을 만질 수 있는 장사를 하기로 했다. 부업도 있다. 스페인 북부 빌바오에 살고 있는 외가쪽 먼 친척이 1년에 두 차례씩 초청장을 보내온다. 물론 돌아올 때는 짐이 한 보따리다. 극심한 물자 부족에 시달리고 있는 쿠바에서 짭짤한 수입을 올릴 수 있는 방법 중의 하나는 ‘보따리 장사’다. 세관의 ‘입막음 장치’는 필수적이다. 사실 이같은 불법은 ‘쿠바노’들에겐 더 이상 불법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50년 가까운 혁명과정에서 누적된 서민경제의 피곤함이 불러온,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아바나항 입구 ‘모로요새’에서 만난 루이스 알레한드로(44)는 불법택시를 몰고 있다.‘파나택시’와 ‘OK택시’ 이외에는 전부 불법이다. 그러나 칠이 다 벗겨진 그의 54년형 크라이슬러 지붕에는 버젓이 ‘TAXI’ 간판이 달려 있다. 그 역시 한때 정부 기관에서 통계 연구원으로 일하던 공무원이었지만 5년 전부터 ‘불법’에 뛰어들었다. 그는 “퇴직한 2001년 당시 쿠바 가정의 90% 이상이 한 달을 보내기 위해 불법에 의존하고 있었다.”면서 “‘불법의 일상화’는 요즘 사회 전체에 더 만연돼 있다.”고 털어놓았다. 아들과 딸을 포함해 돈을 버는 네 식구 가운데 고급 호텔에서 팁으로 외국 돈을 만지는 아내가 가장 고소득자라는 말도 빼놓지 않는다. ●말레콘,‘아바노’들의 마음의 고향 새벽의 ‘말레콘’은 쿠바의 앞날과는 관계없다는 듯 평온하기만 하다. 말레콘은 인구 200만명의 아바나시 4개 구역을 연결하는 약 7㎞의 방파제 해안도로다. 서쪽 미국 특수이익대표부(SIEU)에서 시작, 동쪽의 아바나항구까지 이어지는 이 도로는 관광객들에게는 한 번쯤은 걸어야 하는 명소다. 서민들에겐 일상의 피곤을 터는 휴식처이고, 혁명을 겪지 못한 젊은 세대들에겐 둘도 없는 데이트 장소다. 외교관저 밀집지역인 ‘미라마르’를 출발, 동쪽으로 내디딘 새벽 발걸음이 신흥 개발 구역인 ‘베다도’에 이르자 지난밤 흥겨움과 부산함에 들썩이던 ‘아바노’들의 모습이 나타난다. 대표적인 쿠바 맥주 ‘부카네로’의 빈 깡통이 나뒹구는 널찍한 방파제 위에서는 아직도 젊은 남녀들이 몸을 비비고 있다. 다음달 결혼을 앞두고 있는 카를로스(27)는 “쿠바가 분명 천국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옥은 더더욱 아니다.”면서 “그건 우리에게 말레콘이 있기 때문”이라는 말을 내던진 뒤 구 소련제 소형차인 ‘라다’에 약혼녀를 태우고 떠나버린다. 떠오르는 해를 마주보며 동쪽으로 갈수록 아바노들의 지친 삶이 그대로 드러난다. 방파제를 따라 인구 밀집 지역인 ‘센트로’ 구역으로 들어서자 부시 미국 대통령과 아돌프 히틀러의 얼굴을 합성시킨 기괴한 모습의 간판 밑으로 출근 행렬이 이어진다. 건너편 방파제 밑 바닷가에서는 허름한 반바지 차림의 헤수스 파라(66)가 물고기를 잡고 있는 모습이 대조적이다. 그는 지난 1959년 혁명군 소속으로 마에스트라 산맥에서의 게릴라 활동에 이어 아바나 입성까지 카스트로를 따라간 쿠바혁명의 산증인이다. 그는 “미국의 경제봉쇄가 아니었다면 쿠바는 지금 많이 달라졌을 것”이라면서 “그러나 피델과 말레콘이 있는 이상 지금 별다른 아쉬움은 없다.”고 말했다. cbk91065@seoul.co.kr ■ 카스트로 근황은 지난달 31일 장 출혈 증세로 수술을 받은 피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의 근황은 베일에 가려 있다. 다만 그의 건강이 회복되고 있다는 주변 인사들의 간접 증언이 있을 뿐이다. AP통신은 지난 19일(이하 현지시간) 형(兄)으로부터 권력을 이양받은 동생 라울 국방장관과 공산당 기관지 그란마의 인터뷰를 인용해 보도했다. 라울 장관은 “형이 점차 회복되고 있고 치료 과정도 매우 만족스럽다.”고 밝혔다. 14일 그란마 인터넷판에 공개된 두번째 병상 사진이 가장 최근의 모습이다. 전날 80세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카스트로 의장을 방문한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과 라울 장관이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다소 창백한 모습에도 밝은 표정을 지으며 차베스 대통령과 웃음을 주고 받는 장면이었다. 국영TV도 같은 날 카스트로 의장이 차베스 대통령과 환담하는 장면을 방영했다. 앞서 13일 공개된 아디다스 운동복 차림의 카스트로 사진도 화제를 모았다. 주먹을 불끈 쥐거나 전화통화를 하는 일상 생활이 드러나 있다. 카스트로를 방문했던 차베스 대통령이 그러나 “생존투쟁을 벌이고 있다.”고 표현하는 등 고령의 나이를 감안할 때 회복을 낙관하기 어렵다는 전망도 나온다. 집권 47년 동안 “혁명가에게 은퇴란 없다.”며 원기를 자랑하던 카스트로의 만년 와병은 쿠바의 변화를 예고하는 전주곡으로 작용하고 있다. 안동환기자 sunstory@seoul.co.kr
  • 극동항공「스튜어디스」현숙희(玄淑姬)양 - 5분 데이트(62)

    극동항공「스튜어디스」현숙희(玄淑姬)양 - 5분 데이트(62)

    왼쪽 입가를 살짝 치켜서 활 모양을 만들어 웃는 입모습이 매력 있다. 미인들이 대개는 다 지닌 그 유별스러움이 없는 얼굴이다. 건강한 사람에게서 어쩔 수 없이 발견하는 양식(良識)을 숨기지 못하는 점에 관해서 만은 미인(美人)답지 않은 아가씨. 극동항공(極東航空) 「스튜어디스」가 된지 4개월쯤 된 현숙희(玄淑姬)양. 신장 1백 65cm의 늘씬한 몸매. 1946년. 춘천(春川)여고를 졸업하고 한양대학교 체육대학 무용과를 졸업했다. 집은 춘천(春川). 현홍석(玄弘錫)씨의 4남매 중 맏딸. 여동생 하나를 데리고 자취하는 두식구 서울 살림. 『어머니께서 자주 다녀 가세요. 여자애 둘을 내 보내 놓으시니까 안심이 안되신다고 늘 걱정이시죠』 얼마 전까지만 해도 무용이 전공이었다. 68년에는 한국민속예술단의 한 「멤버」로 「멕시코」에 다녀 온 경력 보유자. 『아직 시집 가고 싶은 생각은 없고 직장생활도 자기 발견을 하는 한가지 길인 것도 같고』 「패티·페이지」의 노래를 듣기 좋아하는 「센치」도 있다고 생긋 웃는다. [선데이서울 69년 12/21 제2권 51호 통권 제 65호]
  • [위기를 기회로 만든 노사] (8)대우건설

    [위기를 기회로 만든 노사] (8)대우건설

    대우건설이 창립 33년 만인 올해에 시공능력평가 1위에 오른 것을 놓고 재계는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우선 일감을 안정적으로 밀어주는 든든한 그룹이 없는 상태에서 이뤄낸 결과라는 점에서 모두가 놀란다. 재계 1,2위를 다투던 대우그룹 시절에도 이루지 못했던 것을 단일 회사가 일궈냈기 때문이다. 또 지옥 문앞까지 떨어졌던 회사가 기사회생한 것도 장한데 불과 몇년 만에 국내 최고 건설사로 태어난 것에 의미를 둔다. 하지만 대우건설이 1등 건설사로 성장할 수 있는 저력이 ‘위기를 기회로 만든’ 노사관계에 있었다는 것을 알고 나면 다시 한번 놀란다. ●위기때 노조 설립… 회사 업계1위로 대우건설 노조는 외환위기 직후인 2000년 초 태어났다. 공룡 그룹이 쓰러지면서 대우건설 또한 공중분해될 위기였다. 이때 기획·인사·감사팀 과장급 직원들이 회사를 살리기 위한 돌파구를 찾아나섰다. 하지만 방법은 역(逆)발상적이었다. 노조를 설립하는 것이었다. 때문에 노동계로부터는 어용노조라는 의심을 받았고, 회사로부터는 배신자 소리를 들어야 했다. 업계는 회사를 말아먹는 행동이라며 손가락질을 했다. 회사는 침몰하는 배를 구하기 위해 구조조정 카드를 내놨다. 식구 700여명을 내보내야 하는 상황을 맞았다. 노조는 설립과 동시에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했다. 임금 삭감이나 근로조건 악화 등이 아닌 직장을 그만둬야 하는 문제여서 노조의 반발이 심할 법도 했다. 하지만 노사는 머리를 맞대고 협상을 거듭한 끝에 직원들이 동의하는 합리적인 기준을 마련하는 데 성공했다. 그만두는 직원들도 투쟁이나 법적 대응보다는 후배들에게 회사갱생을 신신당부할 정도였다. 회사도 정상화되면 그들을 다시 불러들일 것을 약속했다. 관할 근로감독관을 감동시킬 정도로 모범적인 구조조정을 이끌어냈다. 뼈를 깎는 아픔은 계속됐다.3년간 임금동결, 상여금 400% 삭감, 복리후생비지원 중지에도 직원들을 꿈쩍하지 않았다.1등 건설사 등극은 그만둔 직원의 희생, 남아 있는 직원들의 고통분담이 만들어낸 작품이다. ●경영실적 공개… 명퇴 300명 재고용 재계는 대우건설의 1등 기업 성장 배경에 궁금해한다. 정창두 노조위원장은 “일류 건설사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우수한 인적 자원”이라고 분석한다. 신체가 건강하기 위해서는 작은 세포 하나하나가 건강해야 하듯, 대우건설은 조직원 모두가 우수한 집단이다. 노사 신뢰감 또한 남다르다. 노조는 2003년 워크아웃 졸업 전 회사가 어려울 때뿐만 아니라 회사가 잘 나갈 때에도 임금인상을 회사에 맡겼다. 지난해에는 4000억원의 순이익을 냈지만 노조는 회사측에 임금인상을 일임했다. 경영진도 이에 보답했다. 회사 실적을 공개하고, 회사가 정상화되면서 떠났던 직원 300여명을 수혈하는 등 약속을 지켰다. 박세흠 사장은 “노조도 회사의 한 축이며, 노조를 품고 같은 틀에서 움직이는 조직으로 대했다.”며 믿음을 줬다. ●거리로 나간 노조활동 한번도 없어 신뢰를 쌓을 수 있는 제도도 완벽하다. 매달 1회 노사가 함께하는 경영실적 설명회를 연다. 중요 사항이 생기면 언제든지 머리를 맞댄다. 매달 두세 차례 비공식적 회의를 갖는다. 최근 열린 회의에서는 박 사장과 정 위원장 모두 대화 테이블에서 사전 노사 요구사항이 담긴 서류없이 회의를 가질 정도로 믿음이 깊다. 번지르르한 노사관계는 사절한다. 명분을 내세운 노조행동은 없다. 정 위원장은 “그동안 거리로 뛰쳐나오는 노조활동은 한번도 없었다.”며 “회사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행동은 앞으로도 자제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주는 노사관계 우수상도 구조조정 때 희생한 선배들 생각에 거절했다. 최고 회사에 걸맞은 최고 수준의 노조활동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노사는 금호아시아나그룹에 인수되는 것과 관련,“다시는 부실화되지 않고, 세계 1등 건설사로 도약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갈 것”이라고 한목소리를 냈다. 류찬희기자 chani@seoul.co.kr
  • 일 없습니까?

    “한국 남자들과 결혼한 조선족 여자들은 결혼 초기 시어머니, 시누이 등 시댁 식구들로부터 매우 큰 스트레스를 받게 됩니다. 이것만 잘 극복하면 이후 한국에서의 결혼 생활을 주체적으로 이끌어 나갈 수 있을 겁니다.” 한국에 유학 온 조선족 여성 최금해(32)씨는 오는 30일 ‘한국 남성과 결혼한 조선족 여성들의 한국생활’이란 제목의 논문으로 서울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는다. 최씨는 1998년 중국 연변과학기술대학 국제무역학과를 졸업하고 2000년 한국에 건너왔다.●조선족 여성 다섯 유형으로 구분 최씨는 한국 남성과 결혼해 한국에서 생활한 지 1년 이상 된 기혼 조선족 여성을 만나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연구를 진행했다. 그는 조선족 여성들의 한국생활 유형을 ▲지속 노력형 ▲불가피 순응형 ▲긍정적 인내형 ▲변화 시도형 ▲유동형 등 다섯 가지로 구분했다.‘지속 노력형’은 여성의 학력 수준이 상대적으로 높은 경우로 한국생활에 잘 적응한 유형이다.‘불가피 순응형’은 모든 가능성을 포기한 상태로, 중국으로 돌아갈 수도 없고 한국에서 이혼할 수도 없는 최악의 유형이다.‘긍정적 인내형’은 남편이나 시댁과의 갈등을 필연적인 것으로 인식하고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유형이다. ‘변화 시도형’은 결혼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을 경우 이혼까지도 고려하는 경우로 중국어 강의나 개인사업 등 남편으로부터 경제적으로 독립돼 있는 사람들이 많다.‘유동형’은 자기에게 불리한 상황에서는 ‘불가피 순응형’의 모습을 보이다가 상황이 유리해지면 ‘변화 시도형’으로 변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는 유형이다.●한국 남성, 조선족 여성에 가부장적 최씨는 “한국 남성과 결혼하는 조선족은 공식적으로 연간 7000여명에 이르며 파악되지 않은 경우를 고려하면 2만여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면서 “더 이상 이들의 문제를 정부가 외면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조선족 여성들은 언어장벽이 확연한 다른 외국인 여성들보다 오히려 더 많은 정서적, 언어적 학대에 노출된다.”면서 “한국 남성들이 조선족 여성들에게 유난히 가부장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도 문제”라고 꼬집었다.최씨는 중국에서 같은 대학을 나와 함께 유학온 조선족 남성과 2001년 결혼했다.“한국 남성과 결혼한 것은 아니지만 한국 생활에 적응해 가는 어려움은 다른 사람들과 비슷했어요. 앞으로 활발한 연구를 통해 한국내 조선족 여성들의 권익 향상에 기여하고 싶습니다.”김기용기자 kiyong@seoul.co.kr
  • [토요일 아침에] 지도자는 길 안내자일 뿐/현고 스님 조계종 전총무원장 대행

    지난 1일 속초항을 출발해 우수리스크와 블라디보스토크에 다녀왔다. 비록 공해지만 북한 앞바다를 지나 삼국의 역사가 교차한 연해주를 밟은 심정은 미묘했다. 연해주는 한민족의 치열한 삶의 역사가 깃든 땅이다.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에서부터 구한말 안중근 의사와 이상설 선생의 항일 독립운동의 흔적이 남아 있다. 중국으로서도 수천㎞가 접경돼 있고, 전조(청나라)의 국토였던 땅이다. 그럼에도 베이징조약(1860년) 이후 자신들이 써온 역사를 들추는 것은 물론 자유로운 왕래마저 감시받는 억울한 땅이기도 하다. 우리 세계청년봉사단(Copion) 임원진이 연해주를 방문한 것은 1937년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되면서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 등지에 흩어져 살던 고려인들의 연해주 귀환과 정착을 지원하기 위해서였다. 소련 해체 이후 중앙아시아로 내몰린 고려인들이 3대에 걸쳐 피와 땀으로 개척하고 정착한 땅을 뒤로 하고 다시 연해주로 되돌아온다는 소식에, 그들이 대체 누구인지 보고 싶었다. 서구화에 짓눌린 우리의 원형을 그들에게서 느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상황은 달랐다. 고려인들의 귀환 발길은 더뎠고 정착노력도 활발하지 못했다. 국가주의, 민족주의의 표본이라 할 전체주의 공산국가에서 살아온 고려인들이 10여년의 짧은 자본주의 경험을 통해 이미 민족사상보다는 개인, 가치보다는 돈을 중시하며, 개인의 행복을 위해 치열한 선택을 하는 것을 봤다. 민족 정체성을 상실하게 한 70년의 세월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10여년의 짧은 자본주의 경험이 벌써 그렇게 변화시켰다니…. 그런데도 나는 그들을 민족이라는 깃발 아래 눈물 흘리며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고 희생하는 식민시대의 헌신적인 민족정신을 가진 사람들로 추상하고 미화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성직자인 나 자신의 내부에도 민족주의에 대한 동경이 숨쉬고 있어 개인의 안전과 행복보다는 국가와 민족을 앞세우는 국가주의의 시선으로 그들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생각이 연장되면서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쟁 도발과 항전을 정당화하는 집단의식이 되고,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처럼 분쟁을 장기화시켜 수많은 동족이 살상되는데도 멈추지 못하게 되는 동일한 의식구조임을 알게 됐다. 그리고 출가 35년을 다하도록 내 안에 아직 씻지 못한 극단과 전제의 무서운 업을 느꼈다. ‘나와 우리는 모든 국민 자신이 잘 조어(調御)되는 자기 확립과 자기 형성의 길을 갈 때 궁극의 자유와 안정이 있다.’는 부처님 말씀처럼 내 안에서 자유와 안정을 찾는 데 가일층 노력해야 한다. 더 나아가 가장 불교적인 국가 형태가 모든 사람이 말 그대로 평등해 계급도 없고, 통솔자도 없고, 통솔되는 자도 없고, 대통령과 지도자마저 그 속의 한 일원에 지나지 않은 상태라고 할 때, 국가주의와 민족주의는 큰 장애가 된다는 사실을 다시 깨닫고 전체 속의 개인보다 개인을 위한 전체를 이룩해가는 조화로운 노력을 구상하는 계기가 됐다. 민족과 개인의 행복, 전체와 개인의 행복이 어느 지점에서 어떻게 조정돼야 하는가 하는 생각으로 뒤척거리다 텔레비전을 통해 들려온 대통령의 8·15 경축사 “민주주의 원리와 핵심은 상대주의와 관용입니다.”라는 언급에서 해답을 찾았다. 이 상대주의의 근원은 불교의 연기관이며, 존재에 대한 연기적 사고만이 대통령이 짧은 경축 연설문에서 12번이나 언급한 ‘평화’를 담보할 근본사상이다. 부처님은 우리에게 있어서 어떤 사람이냐고 묻자 “나는 오직 길을 가르쳐주는 사람일 뿐이다.”라는 말로 자신의 역할을 정리한다. 이를 본받아 우리 지도자도 구제자(메시아)라고 말하지 말고, 모든 국민의 ‘좋은 벗(善友)’이 되고 대통령이 좋은 길 안내자가 되는 날 국가주의와 민족주의는 날개를 접고, 절대주의자의 극단적 선택은 발 붙일 곳을 잃어 이 세상에 진정한 평화가 올 것이다. 현고 스님 조계종 전총무원장 대행
  • [18일 TV 하이라이트]

    ●시네마 천국(EBS 오후 11시55분) 윌리엄 스테이그가 펴낸 동화를 원작으로 만들어진 애니메이션‘슈렉’. 애니메이션으로는 드물게 1편과 2편 모두 칸 국제영화제에 진출해 인기를 누리며, 흥행 돌풍을 일으켰다. 기발하고 절묘한 ‘패러디’에서 더욱 큰 매력을 발산해내고 있는 ‘슈렉 2’ 속에 숨겨진 패러디의 유쾌한 매력을 만나본다.   ●열아홉 순정(KBS1 오후 8시25분) 웨딩드레스를 고른 신형은 행복해하고, 윤후는 신형을 보는 것이 괴롭다. 신형은 아버지에게 속마음을 털어놓지만 돌아온 대답은 결혼은 환상이 아니라 현실이니 정신 차리라는 말뿐이다. 한편, 윤후는 청소용역실 사람들에게 회식을 시켜주다가 국화가 다른 곳으로 일자리를 옮긴다는 말을 듣게 된다.   ●사랑과 전쟁(KBS2 오후 11시5분) 세미는 고등학교 3학년 때 남자친구 영철의 아이를 가져 학교를 중퇴하고 결혼을 한다. 어린 나이에 결혼을 했으니 할 줄 아는 것이 변변치 않다. 매일 잠만 자고 그나마 깨어있을 때는 친구들과 통화하느라 휴대전화를 붙잡고 있기 일쑤다. 안그래도 세미를 탐탁하게 여기지 않던 시어머니는 미칠 지경인데….   ●신동엽의 있다!없다?(SBS 오후 7시5분) 초음파로 촬영된 태아의 동영상에 숨겨진 진실 혹은 거짓. 신나게 가속페달을 밝고 브레이크는 물론 핸들까지 능숙하게 조작하는 모습의 태아. 누가 봐도 영락없이 운전을 하는 모습인데…. 산모의 뱃속에서 운전을 하는 놀라운 모습의 태아가 정말 있을까? 태아를 둘러싼 비밀의 문이 열린다.   ●있을 때 잘해(MBC 오전 7시50분) 순애는 계속해서 유미의 정신 치료를 위해 정신병원을 찾아가고, 전문의 진우와 대화를 나누며 조언을 듣는다. 진우의 조언대로 유미의 의견을 존중해 금례가 보고 싶다는 유미를 데리고 시댁으로 향한다. 한편, 영조는 자신의 에이전시 모델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는 패션쇼에 동규네 식구들을 초대한다.   ●사이언스+(유산균 과학)(YTN 오후 1시20분) 김치와 요구르트를 비롯해 여러 가지 식품에 함유돼 있는 유산균은 대장 등 우리 몸에 여러 가지의 이로움을 준다. 면역 증강 기능과 콜레스테롤의 흡수, 억제 등 성인병 예방에도 도움이 된다. 유산균 연구소에서 유산균이 우리 몸에 어떤 영향을 주고 어떻게 좋은지 직접 확인해 본다.
  • “감찰 강화”… 약효는 글쎄?

    “감찰 강화”… 약효는 글쎄?

    법원이 16일 전국 법원장 회의를 통해 내놓은 법조비리 근절대책은 법관 징계·감찰기능 강화로 요약된다. 하지만 이번 대책도 상당부분을 법관 개인의 양심에 의존하고 있고 법조비리의 근본 원인은 결국 판·검사의 과도한 재량권에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근본대책이 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법원은 우선 감찰을 강화하기 위해 대법원 행정처 윤리감사관실에 감찰업무를 전담하는 법관을 배치하는 등 인원과 조직을 확대해 사전예방적 감찰을 할 수 있도록 했다. 대법원 홈페이지에도 ‘법조비리 신고센터’를 설치해 상시 감찰 기능을 보완하는 방안도 마련했다. 또 고등법원별로 법관윤리위원회를 설치해 각 법원 실정에 맞는 법관윤리가이드라인을 만들 방침이다.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회에 9명의 위원 중 5명을 외부인사로 위촉하고 위원회에 법관 징계·감찰에 대한 심의 자문기능을 새롭게 부여,‘제식구 감싸기’라는 비판에 대한 보완책을 마련했다. 비리 판사를 재판업무에서 배제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비리사실이 적발되고도 사표만 내고 변호사로 개업하는 관행을 없애기 위해 문제 판사는 내부 징계절차를 밟은 뒤 사표를 수리하고, 변호사 개업을 위해 대한변호사협회에서 징계 사실 등을 조회할 때 비리 내용을 제공하는 방안도 마련했다. 아울러 현행 2년인 징계시효도 3년으로 늘릴 계획이다. 판사의 신규임용과 재임용 심사때 도덕성 및 청렴성 등에 대한 심사를 대폭 강화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브로커 등의 접촉을 막기 위해 법관사무실의 출입통제를 강화해 일반인 출입 여부를 별도로 기록할 방침이다. 지금은 변호사만 출입대장을 작성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이번 대책도 추상적이고 선언적인 내용에 불과하며 결국 법관 개개인의 판단에 맡기는 인상이 짙어 실효성에 의문을 나타내고 있다. 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17일 TV 하이라이트]

    ●열아홉 순정(KBS1 오후 8시25분) 문구는 서울에 교육을 받으러 온 김에 국화를 보러 왔다가, 앞치마까지 두르고 저녁을 준비하는 우경을 보고 호되게 꾸짖는다. 일도는 홍영감과 혜숙 사이에 뭔가가 있다고 확신한다. 한편, 국화가 다른 회사 면접에 갔다는 말에 속이 상한 우경은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 테니 도망치지만 말라고 부탁한다.   ●웃는 얼굴로 돌아보라(KBS2 오후 9시25분) 덕화는 여전히 곤이가 마음에 들지 않자 곤이의 약점을 알아내려고 작전을 세우며 테스트를 하지만, 곤은 쉽사리 넘어오지 않는다. 과연 덕화는 곤이의 트집 잡기에 성공할 수 있을까? 희진은 꼴통의 양대 산맥 대용과 도영에게 과외를 해주게 되는데, 그들의 파란만장한 첫 과외가 시작된다.   ●책 읽어주는 여자, 밑줄 긋는 남자(EBS 오후 11시55분) 소설가 김연수의 ‘청춘의 문장들’을 소개한다. 저자가 자신을 사로잡은 문장들을 곁들이며 들려주는 성장기와 청년기의 이야기가 풀어진다. 지금 청춘의 시절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과 청춘을 보낸 사람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통해 청춘의 의미를 새롭게 찾아본다.   ●글로벌 코리안(YTN 오전 10시25분) 미국에서 한국인의 위상을 높인 인물에 수상하는 ‘자랑스러운 한국인상’ 제1회 시상식이 열렸다. 수상자인 전신애씨는 연방정부 노동부 여성국장이고, 이경원씨는 미 주류 언론에 진출해 50여년 활동한 기자다. 이 행사를 주관한 동포사회 발전재단은 ‘자랑스러운 한국인상’을 매년 지속할 예정이다.   ●얼마나 좋길래(MBC 오후 8시20분) 선주는 형철에게 자신을 사랑하느냐고 묻고, 당황한 형철은 얼른 사랑한다고 대답한다. 형철의 고백이 본능적으로 진심이 아니라는 것을 안 선주는 동수를 생각하며 형철에게 이것저것 물어본다. 한편, 옥심은 자신의 생일을 몰라주는 식구들에게 서운해 하지만, 내색도 못한 채 속만 끓인다.   ●웰빙!맛 사냥(SBS 오전 9시) 벌써 입추가 지났는데도 여전히 땀이 흐르는 뜨거운 날씨가 계속되고 있다. 여름에 몸을 지켜주는 보양탕들이 뭉쳤다. 여름에 먹으면 보약보다 좋다는 민어. 민어 한 마리면 궁중음식을 먹는 임금이 부럽지 않다고 한다. 민어와 함께 힘이 나게 하는 대게 보양탕에 다슬기 삼계탕까지 여름철 보양탕을 맛본다.
  • 내 여보냐 네 여보냐

    내 여보냐 네 여보냐

    성(姓) 둘을 가지고 두 여자와 각각 결혼, 두 부인을 모두 정 부인으로 호적에 따로 올려 데리고 살던 현대판 「야누스」가 경찰에 입건됐다. 한 남자 밑에 서로 다른 성(姓)을 가진 자식만도 여섯명-. 송경화(宋京和)(36·일명 김경화(金京和)·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씨가 서울 서대문 경찰서에 잡혀와 조사를 받고 있는데 형법 제231조. 234조, 228조인 사문서 위조 및 동 행사, 공정증서원본 불실기재 등 혐의-. 호적상으로나 실제로나 宋씨 에게는 김원미(金元美)(36·가명·서울 서대문구 충정로)여인, 황경산(黃京山)(46·가명·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여인등 어엿한 두 아내가 있다. 누가 본처도 누가 후처도 아닌- 서로가 남편이 바람정도 피우는 것으로 알았던 두 여인이 우연찮게 만나 『내가 본 부인이다』『아니 내가 본 부인이다』라고 지난 달 대판 벌인 싸움 끝에 이 요절복통할 宋씨의 정체가 드러나고 말았다. 의젓하게 법을 속이고 두 여인을 정실부인으로 아이들까지 각각 낳고 살다 경찰에 잡힌 宋씨의 직업은 사법서사 사무소의 사무원. 경력 12년의 「베테랑」급이다. 호적상 「宋」씨로 金여인과 결혼해 살던 宋씨는 자기 본명이 국내에 없는양 무호적 증명서를 사법서사 사무원으로 서의 재간을 발휘, 허위로 꾸며 「金」씨로 둔갑한 새 호적을 만들곤 黃여인에게 새 장가를 들었다. 金여인과의 사이에 3남1녀, 黃여인과는 2남 등 6명의 자식중 4명은 宋씨요 2명은 金씨 성을 가졌다고 담당형사에게 눈하나 깜짝않고 대꾸해댔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이 해괴한 둔갑은 「宋」씨이자 「金」씨인 경화(京和)라는 사나이가 사법서사 경력 12년에 귓전으로 배운 기막힌 잔 재주의 결과였다. 그러나 경찰에 온 宋씨이자 金씨는 『나에게도 설명하기 힘든 슬픈 과거가 있었다』는 독백이다. 金씨(그때까지는 金씨였다)는 황해도에서 아버지를 김동산(金東山·가명)씨, 어머니를 나(羅)씨로 하고 태어났다. 얼마 안가서 어머니 나(羅)씨를 두고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다. 곧 나(羅)씨는 이웃마을 송용만(宋龍萬·가명)씨에게 재가해 아들 경화(京和)를 데리고 새 남편과 함께 살았다. 1·4 후퇴 때 세 식구는 월남, 서울서 살았다. 의부 송용만(宋龍萬)씨는 부인이 재가할 때 데려온 경화(京和)를 송(宋)씨로 서대문 구청에 가본적을 만들 때 취직시켰다. 이때부터 핏줄만은 金씨인 경화(京和)씨는 법적으로 宋씨가 됐다. 그때만 해도 군 입대는 복잡한 서류가 필요하지 않았으므로 金씨로 입대, 제대까지 했다. 宋씨 성으로 1956년 10월 김원미(金元美)여인과 평택(平澤)에서 중매로 결혼했고 다음해 11월엔 혼인신고까지 마쳤다. 직업은 사법서사 사무소 사무원. 4명의 자식을 차례로 낳고 탈 없이 아내와 알뜰히 살았다. 집도 3채나 되었고 월수는 5만원대. 그러나 결혼생활 10년이 되던 해부터 이들 사이엔 가정불화로 싸우기가 일쑤였다. 불화가 계속되자 宋씨는 아내 金여인이 평소 시부모를 모실 수 없다고 버틴다는 이유를 들어 처가 어른들의 동의를 얻어 (宋씨의 주장) 1965년 1월 부인과 이혼한 것으로 되어있으나 金여인은 자신은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펄쩍 뛴다. 3년을 별거 끝에, 자식들이 넷이나 되는데 이혼까지 해서 갈라 설 이유가 어디 있느냐는 주위의 충고와 꾸지람을 이기지 못해 宋씨는 金여인과 다시 살게됐다. 이 별거중인 3년동안 宋씨는 새 여자를 얻기 위한 방편으로 또 하나의 성(姓) 金씨를 만들어 냈던 것. 金여인과의 가정불화로 이혼이다, 아니다로 다투고 있을 때 宋은 대서업무관계로 자주 사무실을 드나들던 황(黃)여인과 우연히 알게 됐다. 10년이나 연상의 黃여인을 宋은 누님이라고 불러댔다. 黃여인도 남편과 이혼하고 혼자 살아오던 터였다. 누님과 동생 사이는 끊을 수 없는 사랑으로 변해 둘은 남모르게 동거생활을 벌였다. 宋씨는 부인 金여인과 이혼, 함께 살 것을 黃여인에게 다짐했다. 黃여인은 宋씨가 부인 金여인과 이혼한 것을 호적열람으로 확인, 68년 혼인신고를 서울 종로 구청에 했다. 이 때 宋씨는 사법서사로 익힌 재간을 유감없이 발휘해내고 있었다. 『나는 원래 金씨의 피를 받았는데 법적으로 이상하게 된 宋씨로야 살 수 있느냐』며 黃여인을 꾀어냈던 것. 宋씨는 아내 金여인의 호적을 말소시킬 수 없음을 알고 무적신고를 내서 또 하나의 호적을 만들 것을 결심했다. 宋씨는 2명의 무적보증인을 세우는데 성공했다. 金씨로 되어있는 제대증명서, 병적증명서를 첨부, 자기가 위조해낸 무적증명서를 만들어 서울 종로 구청에서 김경화(金京和)란 새 호적을 떼어냈고 그 위에 黃여인과의 혼인신고를, 두 아이의 출생신고까지도 마쳤다. 그 후로는 두 아내집을 거의 반반씩 드나들며 살았다. 이미 이혼한 원부인 金여인의 집엘 왜 자주 가느냐는 黃여인의 반발로 가끔 싸움도 벌였지만 자식들 문제란 핑계로 교묘하게 부인 黃여인을 속였다. 그때까지 원부인 金여인은 남편이 잠시 첩을 얻어 바람을 피우는 것으로 알았을 뿐이다. 두여인은 물론, 두 여인의 아들 딸들은 저마다 아버지 성이 宋씨요, 金씨임을 믿는데 의심이란 있을 수도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두 성으로의 둔갑은 들통이 났다. 지난 달, 첩살림으로만 믿고 있는 宋씨의 부인 金여인은 서대문구 연희동 黃여인 집을 찾아 남편을 포기해 줄 것을 호소(?)했다. 이 말을 들은 黃여인은 『내가 어째서 첩이냐』 『제 남편이 싫어서 이미 이혼한 것이 무슨 낯짝으로 찾아와 귀찮게 구느냐』 고 金씨가 자기의 정식남편이라며 대들어 두 여인사이엔 서로 떠밀고 밀치는 싸움이 벌어졌던 것. 이튿날 黃여인은 종로구청에서 떼어 온 호적등본을 남편 金씨의 어머니 나(羅)여인에게 들이대고 자기의 정당함을 호소했다. 이에 질세라 金여인도 宋씨가 남편임을 증명하는 호적등본을 떼어 호적상 적법한 부인임을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두 부인은 이 엄청난 사실에 아연실색, 남편에게 宋씨와 金씨 중 어느것이 가짜 성이냐고 울면서 호소했다. 경찰에 잡혀온 그는 문초 형사에게 본명은 김경화(金京和), 일명 송경화(宋京和) 라고 거침없이 대답. 한편 자기가 진짜 宋씨와 金씨의 아내임에 틀림없다고 경찰에서 진술하고 있는 이들 두 부인은 서로 양보를 거부, 끝까지 버티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金여인은 남편 宋씨의 처벌을 원치 않으나 새 여자를 얻기위해 법을 어기고 성까지 바꾸는 파렴치 행위는 참을 수 없다고 말하는가 하면 10년이나 손 아래인 내 남편이 그런 사람인줄은 몰랐다고 黃여인 은 한탄. 주인공 宋씨이자 金씨는 이미 엎질러진 물인데 법의 심판을 달게 받겠지만 어떻게 하면 한 사람 밑에 각기 다른 두개의 성을 가진 자식들을 정리할 수 있겠느냐면서 앞날을 걱정하기도 했다. 담당 경찰쪽은 『宋씨에 대한 적용법규가 63년 12월에 공포된 일반사면령에 해당된다』면서 법의 약점을 처음부터 잘 알고 있는 宋씨의 행위가 백번 벌을 받아야 하지만 근거가 흐려졌다고 수사상의 난색을 표하기도 했다. <최광일(崔光一) 기자> [선데이서울 69년 12/14 제2권 50호 통권 제 64호]
  • 담당판사 “술한잔 해야 잠 올것같다”

    조관행 전 서울고법 부장판사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는 8일 한밤중에야 결정됐다. 오후에 영장실질심사를 하고 밤 9시 전후에는 발부 여부가 결정되는 보통의 사건보다는 훨씬 시간이 많이 걸렸다. 밤 11시45분쯤에야 서울중앙지법 영장담당 이상주 부장판사실의 문이 열렸다. 고심을 거듭한 끝에 결정을 내린 지 10분이 지나서였다. 이 판사의 첫 마디는 “참담하다.”였다. 한때 영장 발부가 늦어지자 검찰 주변에서는 기각될 것이라는 추측이 나돌기 시작했다. 실질심사 과정에서 이 판사가 금품제공자인 김홍수씨의 진술이 사실인지 확신할 수 없고, 여러 정황 증거도 상식선에서 이해되지 않는다고 언급했기 때문이다. 발부 결정을 내린 뒤에도 이 판사는 “과연 김홍수씨의 진술을 믿을 수 있는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진술이 한번 바뀌었고, 공판전 증인신문도 거부했다. 김씨 진술을 믿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본안에서도 계속 다툴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조씨가 돈을 받았다는 게 입증되면 대가성 여부는 제쳐두고 유죄로 판단될 수밖에 없는 사건”이라면서 “조씨도 나름대로 억울한 사정이 있겠지만, 법관이기 때문에 더 엄격하게 심리했다.”고 말했다. 이 판사는 10시간이 넘게 김영광 전 서울중앙지검 검사와 민오기 전 서울서대문경찰서장, 그리고 조씨를 잇달아 신문했다. 조씨를 신문하는 데만 6시간 정도가 걸렸다. 영장이 청구된 직후부터 여론은 영장을 발부해야 한다며 법원을 압박했다. 일부 시민단체는 조씨 등에 대해 구속영장을 발부해야 한다며 성명을 냈다. 이 판사는 “여론을 일일이 살펴보고 발부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고 볼 수도 없다.”고 고백했다. 사건을 둘러싸고 악화된 여론을 무시하고 법리적 판단만으로 발부 여부를 결정할 수는 없었다는 것이다. 영장이 발부되고 한숨 돌린 수사팀도 한 식구였던 검사가 구속된 탓에 밝은 표정을 짓지 못했다. 자신의 선후배들 영장을 발부한 뒤 이 판사는 “술이라도 한 잔 마셔야 잠이 올 것 같다.”고 침울하게 말했다.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사설] ‘판·검사 구속’ 치욕의 날 잊지 말라

    브로커에게 억대의 금품을 받고 재판에 개입한 조관행 전 서울고법 부장판사(차관급)가 그제 밤 구속 수감됐다. 거액을 받은 김영광 전 검사와 민오기 총경도 영어(囹圄) 신세가 됐다. 고위직 판사가 비리혐의로 사법처리된 것은 사법사상 처음이며, 판·검사와 고위 경찰관의 동시 구속사태도 초유의 일이다. 법원은 ‘치욕의 날’로 여기고 조만간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한다. 정상명 검찰총장은 “한없이 부끄럽고 참담한 심정”이라며 고개를 바로 들지 못했다. 법과 양심에 따라 재판해야 할 법관과, 법을 수호하고 집행해야 할 검찰·경찰이 브로커와 한통속이 돼서 법과 정의를 농락했으니 국민 앞에 무슨 면목이 있겠는가. 더구나 이들이 저지른 비리가 국가·사회에 미칠 악폐와 파장을 생각하면 더 참담한 쪽은 오히려 국민이다. 조씨에 대한 구속영장이 일각의 기각 예상을 뒤엎고 발부된 것은 국민감정을 고려한 조치로 여겨진다. 이들의 구속은 법을 다루는 공직자에 대한 엄격한 자기관리와 경종의 의미이며, 죄를 보다 엄중히 묻겠다는 뜻일 것이다. 조씨는 대가성이 없다고 주장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으며, 또 그렇게 믿을 순진한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따라서 우리는 조씨 등에 대한 재판 과정도 특별한 관심을 갖고 지켜볼 것이다. 아울러 이번 사건은 법조비리의 극히 일부라고 판단한다. 조씨가 영장심사 때 밝혔듯 브로커와 놀아나며 ‘돈판·술판’을 벌인 판·검사는 한둘이 아닐 것이다. 검찰은 이번이 사법불신을 씻는 마지막 기회라는 자세로 수사를 확대해 한 점 의혹도 남기지 말아야 한다. 판사든 검사든 이번 같은 치욕적 사태를 다시 맞지 않으려면 자신에게,‘내 식구’에게 더 엄정해야 함을 꼭 기억해야 할 것이다.
  • 은행권 ‘역모기지론 활성화’ 회의적

    은행권 ‘역모기지론 활성화’ 회의적

    내년부터 본격 도입되는 종신형 역(逆)모기지론을 정부가 보증해 주기로 함에 따라 시중은행들이 관련 상품을 개발할 뜻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역모기지론이 활성화될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회의적이다. 역모기지론(주택담보 노후연금)은 65세 이상의 고령자 가운데 기준시가 6억원 이하의 집을 갖고 있는 사람이 금융기관에 집을 담보로 맡기고 대출금을 매월 일정액으로 연금처럼 받는 것을 말한다. 대출금을 일시에 받고, 매월 원리금을 갚아 나가는 기존 모기지론이나 주택담보대출과 정반대 개념이다. 은행권에서는 신한은행이 유일하게 15년 이내에 매월 또는 분기별로 일정액을 지급하는 역모기지론을 판매하고 있지만 지난 3년간의 계약액은 668억원에 불과할 정도다. 다른 은행들은 아예 검토조차 하지 않았다. 은행이 그동안 역모기지론을 외면한 가장 큰 이유는 리스크(위험)가 컸기 때문이다. 집값이 떨어지거나, 대출자가 오래 살아 집 가치 이상으로 계속 돈을 받게 되면 금융회사로서는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그러나 이런 리스크를 정부가 주택금융공사를 통해 공적 보증으로 해결키로 한 이상 은행들은 당연히 상품을 개발하겠다는 입장이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세제혜택 등으로 많은 노인들이 역모기지론에 관심을 갖고 있다.”면서 “정부가 금리 변동, 주택가격 하락, 장수에 따른 리스크를 보증해 주면 은행이 팔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은행들은 또 역모기지를 활용해 ‘실버 고객’을 유치할 수도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나 역모기지론이 쉽게 활성화되기는 힘들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우선 주택이 처분 대상이라기보다는 보유의 대상이고, 자녀에게 상속해 줘야 한다는 사회의 의식구조가 바뀌지 않았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부모가 역모기지론을 신청해도 자식들이 해지하는 경우도 있다.”면서 “역모기지를 놓고 부모 자식간 불화가 생길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은행들은 또 집값의 60%까지만 대출되는 담보인정비율(LTV) 규제가 역모기지론에도 적용되면 매월 지급액이 너무 적어 신청자가 많지 않을 것으로 본다. 주택금융공사 관계자는 “역모기지론은 대출금을 일시불로 받는 게 아니어서 투기자금으로 쓰일 가능성이 거의 없다.”면서 “역모기지론에 한해 LTV 적용을 배제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 [위기를 기회로 만든 노사] (1) 남양유업

    [위기를 기회로 만든 노사] (1) 남양유업

    치열한 글로벌 경쟁시대를 맞아 노사문화도 개선되고 있지만 아직 만족스럽지는 않다.‘비온 뒤에 땅이 더 굳어진다.’는 속담처럼 한때 노사관계가 좋지 않았던 기업들이 노사 상생의 정신으로 잘 나가는 사례가 적지 않다. 파업이나 외환위기의 어려움, 워크아웃의 위기상황, 구조조정의 아픔 등을 노사가 한 마음으로 극복한 회사들이 있다. 위기를 기회로 바꾼 모범적인 사례들이다. 종업원지주제여서 노조는 없지만 전 임직원들이 하나가 돼 경쟁을 헤쳐나가는 기업들도 있다.‘과거의 아픔’을 딛고 노사가 하나가 돼 ‘미래’로 나아가고 있는 기업(사업장)들을 찾아가 본다. 남양유업 이형섭(48) 노조위원장은 지난해 가을 영업담당 간부들이 모인 자리에 나가 ‘산삼주’를 내놓았다. 주말이면 ‘심마니’처럼 산을 찾아다니며 산삼캐기를 즐기는 그가 직접 채취해 담근 것이다. 그는 이 자리에서 “이 산삼주 드시고 힘내라.”고 말했다. 지난해 9000여억원의 매출을 목표로 했지만 출산기피 현상과 모유 선호분위기, 수입증가로 목표 달성이 어려울 것으로 보이자 영업직을 위로하고 나선 것이다. 이에 영업담당 직원들은 노조에 ‘운동화’를 보냈다.“품질관리를 위해 열심히 뛰어 달라.”는 뜻을 담은 답례였다. 예전 같으면 영업직원들과 노조는 ‘다른 식구’일 뿐이었다. 영업직원은 비노조원이다. 하지만 두번의 극심한 노사분규를 겪은 후 분위기가 달라졌다. ●칭찬카드 비치 9일 오후 2시쯤 충남 공주시 장기면 봉안리 남양유업 공주공장. 정문을 통과할 때 게이트 양쪽에서 하얀 소독약이 승용차를 향해 뿜어져 나온다. 청결을 제일로 치는 식품회사임이 단번에 느껴졌다. 남양유업 로고를 단 지입원유차 수십대가 쉴 새 없이 드나들고 있었다. 이완주 인사총무팀장의 안내로 ‘이오’ 등 요쿠르트와 1.8ℓ 우유를 생산하는 생산3팀 탈의실로 들어갔다. 벽에는 ‘2&1/2’이란 조그만 나무상자가 매달려 있다. 상자에 ‘칭찬카드’와 ‘고충처리 신청카드’가 꽂혀 있다. 이 팀장은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하잖아요.”라고 말했다.2003년부터 설치했단다. 생산팀은 물론 공장 탈의실마다 1개씩 놓여 있다. 매주 칭찬이 4∼5건씩 들어오고 있다. 생산1팀장 이교덕(49)씨는 “칭찬을 많이 하고 서로를 위해 주면서 가족적인 분위기로 변했다.”면서 “10년 전에는 그렇지 않았다.”고 말했다. ●오너 친척 회사에 한명도 없어 1989년 6월말 첫 파업이 발생했다. 임금인상률을 놓고 노사간 10여차례 협상을 벌였지만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노조본부는 공주공장에 있지만 집행부가 천안공장에 집결했다. 머리띠를 두르고 철야농성에 돌입했다. 정문을 폐쇄한 뒤 창업자인 당시 홍두영 대표이사를 나가지 못하게 막는 바람에 쪽문으로 탈출할 정도로 갈등이 극심했다. 파업은 이틀만에 끝났지만 공장 가동이 중단되면서 집유도 이뤄지지 않았다. 젖소 사육자들에게 손해배상을 해야 했다. 1992년 파업 때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해 7월 천안과 신설된 경주공장까지 800여명의 전 노조원이 공주공장에 집결했다. 문선대, 사수대 등 좀더 조직적으로 파업이 이뤄졌다. 떠먹는 요구르트 ‘꼬모’를 막 출시하고 대대적으로 광고전을 펼치던 때였다. 한규만 공주공장장은 “3일간의 파업이었지만 소비자들의 신뢰가 실추됐다.”면서 “이것은 재정적 손실보다 더 큰 타격이었다.”고 회고했다. 이 노조위원장은 대책위원과 회계감사로 두번의 파업에 깊숙이 관여했다.“이러다가는 큰 일 나겠다. 회사가 있어야 노조도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노조에 경영설명회 회사측의 태도도 달라졌다. 연초에 경영진이 노조 간부들 앞에서 경영상태와 영업전망 등을 설명한다. 남양유업에서는 한달마다 ‘노사 소위원회’가 열린다. 현장 근로자든 사무직이든, 노조원이든 비노조원이든 가리지 않고 모여 현안과 불만사항을 쏟아낸다.‘현장사원 1일 팀장제’도 실시된다. 이런 과정에서 문제가 걸러져 노사협상이 훨씬 부드러워졌다.‘삼정(正-규정을 준수하는·情-정감있는·晶-명확하게 성과를 배분하는)주의’란 노사문화가 생긴 이유이다. 이런 노사문화가 전직원 월급에서 매달 1000원씩 떼어 난치병 환자나 소년소녀가장 등 불우이웃을 돕는 데로 확산되고 있다. 자연 직원들의 관심도 노사관계에서 품질개선 쪽으로 옮겨갔다. 노조위원장이 연구소장을 만나 “좋은 제품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할 정도다. 회사는 ‘에러 모음집’을 만들어 실수를 줄이게 하고 있다. 파업 전에는 불평불만이 많던 직원들도 자기계발에 힘쓰면서 정부가 지정하는 ‘명장’이 3명이나 나왔다. 남양유업은 1964년 창업이래 한번도 적자를 내지 않았다. 노사화합 문화의 역할이 컸다. 빚도 없다. 그런 회사가 사옥 하나 없다. 연구·개발과 공장 신설에는 아낌없이 투자한다. 오너의 친인척이 회사에 한명도 없다. 박건호 대표이사도 신입사원 출신으로 CEO 자리에 오른 전문경영인이다. 이런 점도 노조의 신뢰를 사고 있다. 공주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한국생활 15년 ‘행복살림 전도사’ 이다도시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한국생활 15년 ‘행복살림 전도사’ 이다도시

    카사노바는 초콜릿을 ‘사랑의 특효약’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행복의 묘약은 없을까. 작년 이맘 때였다. 프랑스의 유력 일간지 ‘르 피가로’는 이례적으로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서 뜬 스타’라는 제목으로 전면을 할애해 다음과 같은 기사를 게재했다. ‘당신에게는 생소한 인물일지 몰라도 한국에선 지단이나 소피 마르소, 파트리샤 카스보다 더 유명한 프랑스인이다. 그와 함께 서울 거리를 걷다 보면 얼마나 유명한지 곧 알 수 있다. 사람들이 사인을 부탁하고 휴대전화 카메라로 찍느라 분주하다….’ 그러면서 ‘해외에서 가장 성공한 프랑스인 중 한 사람’이라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맞다. 분명 그는 한국인으로 귀화한 외국인 가운데 성공한 모범 사례로 꼽힌다. 방송 데뷔시절, 특유의 밝은 표정에다 서툰 한국말을 섞어 ‘울랄랄(어머나) 아줌마’로 인기를 끌었다. 강산이 한번 반이나 변한 요즘에는 이미지를 확 바꿨다.‘한국문화 홍보대사’이자 ‘행복살림 전도사’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것. 또한 ‘살림 9단’에다 얼마 전 ‘소믈리에 6단’의 실력을 새로 추가해 행복의 향기를 더욱 뿌려가고 있다. 또 두 아들을 키우며 ‘빡세게’ 살아가는 ‘대한민국 주부’이기도 하다. ●10월초 프랑스서 자전에세이 출간 방송인 이다도시(Daussy Ida·37).1991년 기업체 연수시절을 시작으로 한국에서 생활한 지 꼭 15년째를 맞는다. 최근 자신의 네번째 저서인 ‘이다도시의 행복공감’을 펴내 숨겨진 수필가의 자질을 한껏 드러내 주목을 끌고 있다. 뿐만 아니다. 지난달 프랑스 굴지의 출판사인 ‘JC라테스’와 출판계약을 맺었다. 오는 10월초 ‘이다도시, 조용한 아침의 방문’이라는 자전적 에세이를 출간하기 위해서다. 책 내용이 대부분 한국의 전통문화와 토속생활을 담고 있어 단순히 개인적 영예보다도 유럽에 한국을 제대로 알리는 모처럼의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개방적인 외국여인이 보수성이 강한 경상도 집안의 외아들 며느리로 살면서 온몸으로 체험한 생활문화이기에 유럽인들에겐 어쩌면 가장 솔직하게 다가갈 것이기 때문이다. 유럽판 출간 자체가 흔치 않은 일이다. 이다도시를 만난 곳은 서울 서초구 반포동 서래마을의 한 레스토랑. 출판계약 겸 프랑스 와인축제에 한국대표 자격으로 다녀온 직후였다. 한국의 몽마르트르 언덕이라고 불리는 서래마을에는 프랑스인 500명가량 모여 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다(Ida)는 노르망디 지역의 한 신(神)에서 유래됐다. 또 도시(Daussy)는 조상 대대로 물려받았으며 프랑스에서는 희귀 성에 속한다. 먼저 최근 보르도 와인축제에 다녀온 얘기부터 시작했다.2년마다 열리는 보르도 축제는 행사 4일동안 35만명이 찾을 정도로 아주 흥겨운 이벤트라고 강조했다. 여기에서 와인 홍보대사로 위촉장을 받았으며, 내년에는 와인엑스포가 열리는데 이 행사에도 초청을 받았다고 귀띔했다. 포도주를 한국의 막걸리와 비교해달라고 하자 “막걸리는 텁텁하고 곡식주라는 점에서 다르지요.”라고 했다. 와인에 취해 본 적은 없지만 반병 정도 마시면 기분 좋아진다며 웃는다. 프랑스에서도 한국처럼 인기가 좋을까.“고향인 노르망디에 가면 알아보는 사람이 많아요. 지나가던 동네 사람들에게서 ‘고향 잊지 말고 자주 오라.’는 얘기를 하지요.”라고 했다. 또 이번에 파리의 출판사에 갔을 때 여러 기자들과 만나 인터뷰도 했다고 덧붙인다. 유럽판 출판과 관련,“원고는 5개월정도 도서관에 틀어박혀 준비했어요.‘다빈치코드’를 출판한 곳인데 사장이 대우를 아주 잘 해주더군요.”라고 말했다. 다른 유럽나라의 출간도 고려하겠다는 대답을 전해들었다. 담겨질 주요 내용은 ▲맏며느리로서 1년에 제사 다섯번을 치르는 얘기 ▲한국인 남편을 택한 과정 ▲왜 방송을 하는지 ▲이다도시가 본 한국 ▲대학원생부터 한국에서 겪은 일 등이다. 단행본 312쪽 분량이다. ●‘한국문화 홍보대사´ 어깨 무거워 “한국을 알린다고 생각하니 정말 어깨가 무거워져요. 하지만 한국의 문화, 한국이란 나라가 어떤 곳인지 있는 그대로 오해 없이 전달될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프랑스는 축구 등을 통해 한국을 어느정도 알기 시작했지만 아직도 동방의 고요한 나라정도로만 여기고 있으며 한국문화에 대해 잘못 알려진 것도 많다고 강조했다. 예를 들어 개고기의 경우 기르던 개를 무참하게 잡아먹는 것으로 인식돼 있다는 것. 그래서 만나는 프랑스인에게 “한국의 정육점에는 개고기가 전혀 없어요. 옛날부터 복날이라는 전통이 있는데 좋아하는 사람은 먹고, 싫어하는 사람은 먹지 않아도 돼요.”라고 꼭 설명해준단다. 그러면서 프랑스인들 사이에 말고기와 비둘기고기, 달팽이요리를 먹는 전통과 다를 바 없지 않으냐고 이해를 시킨다. 한국의 보신탕을 먹어본 적이 있느냐고 하자, 남편은 소음인이라 열량 높은 것을 잘 안먹고 자신은 아직 경험이 없다고 대답했다. 독일 월드컵 때에는 각자 자기네 나라를 응원했는데 한국과 프랑스가 1대1로 비기자 프랑스 출판사 사장이 현지에서 직접 전화를 걸어와 “너무 잘 됐다. 어느 한쪽이 이기거나 졌으면 감정이 생겨날텐데 책 내는 일에도 좋게 작용될 것”이라고 격려를 해줬다. ●바이킹의 후예… 어릴 적 꿈은 여행가 화제를 바꿔 고향인 노르망디에 대한 추억을 떠올려 달라고 했다. 아버지는 바이킹의 후예로 회계사이고 어머니는 학교 선생. 지금도 고향에 부모가 살고 있으며 부친이 정년 퇴임하는 올 가을에 한국으로 초청할 예정이다. 바닷가에서 자란 이다도시는 어릴 적 할머니한테 자주 옛날 얘기를 들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자전거를 타고 할머니네 집에 가는 것이 가장 큰 즐거움이었다. 특히 2차대전 당시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대한 얘기도 접했다. 어느날 연합군 낙하산부대원들이 마을에 우수수 떨어졌다. 할머니는 그 낙하산을 얼른 주워다가 천과 실로 아이들의 속옷과 웨딩드레스까지 만들어주곤 했다는 얘기는 지금도 또렷하다. “어릴 적 꿈은 여행가였어요. 일찍부터 여행 바이러스에 걸렸지요. 방학 때면 식구들끼리 유럽 전지역을 다니곤 했으니까요. 학창시절에는 장난꾸러기로 소문나 선생님께서 제게 영화배우나 연극배우가 되라고 했지요.” 끼가 풍부해 고교 때 문학과 철학을 별도로 공부한 뒤 대학에 진학, 경제를 전공했다. 대학원에서는 아시아 비즈니스 분야를 택했다.88서울 올림픽 등을 통해 역동적인 한국을 알고 싶어서였다. 석사학위 논문제목이 ‘남북통일이 가능한가’라고 할 정도로 한반도에 관심이 많았다. 결국 91년 석사학위 준비차 부산의 신발 공장에서 3개월동안 연수과정을 마쳤다. 다시 프랑스로 돌아간 후 박사과정에 들어가려 했지만 한국에 대해 1,2년정도 머물면서 연구를 더하기로 결심했다. 이때만 해도 한국인 남편을 만나고 방송인으로 활동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 그러던 92년 EBS방송국에서 ‘봉주르 라 프랑스’라는 수업을 진행해달라는 부탁을 받은 것이 계기가 됐다. 이후 외국인 친구들과 사귀면서 우연한 기회에 남편(사업가)을 만났다. 곧 친구가 됐고 나중에는 사랑하는 사이로 발전했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한국어를 배우게 된다. 연애시절 때부터 둘은 여행을 자주 다녔다.7번국도로 동해안을 몇차례 답사했고 제주도만 해도 수십차례 다녀올 정도였다. ●“행복의 묘약은 습관 속에 있나봐요” 결혼생활 13년, 두 아들을 키우는 엄마가 됐다. 유진(10)·태진(4)은 아버지와 있을 땐 한국어로, 어머니와 있을 땐 프랑스어를 사용한다. 가족들의 건강을 위해서는 될 수 있는 대로 스트레스를 안 주고 서로 스킨십을 습관화한다. 특히 요리할 때 비타민, 단백질, 무기질 등 골고루 영양소를 섭취할 수 있도록 신경을 쓴다. 아이큐가 얼마냐고 묻자, 똑같은 기회를 주기 위해서 절대 비밀로 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처음에는 ‘울랄랄 아줌마’라는 개그우먼으로 쳐다봐서 좀 힘들었습니다. 이젠 ‘행복살림 전도사’로 불러주세요. 인생은 너무나 짧고, 또 단 한번뿐이잖아요. 그러니 즐기셔야죠.” 제사 다섯번을 치르는데 고생이 되지 않느냐고 하자 “일년 365일 중에 딱 5일이잖아요. 보고싶은 친척들도 오고…. 습관 속에 행복의 묘약이 있지 않을까요.”라고 하면서 특유의 함박웃음을 짓는다. ■ 그가 걸어온 길 ▲1969년 프랑스 노르망디 출생 ▲89년 르아브르(Le Havre) 대학교 언어·경제학 학사 ▲91년 동 대학원 경영학 석사(아시아 비즈니스 전공) ▲92∼96년 연세대학교 불문학·불어과 강사 ▲92∼95년 교육방송 불어 강사.▲93년 결혼, 한국으로 귀화 ▲95년 KBS 아침마당으로 데뷔 ▲96년∼현재 방송 3사 및 라디오, 케이블 채널 등에서 방송인으로 활동 ▲2003년 프랑스 여성부 주최 ‘프랑스의 이미지상’ 수상 ▲05년 보르도 와인 테스팅, 와인 전문가 과정(디플로마 취득). 경찰청 주최 인권마라톤 대회 홍보대사 위촉 및 대통령표창 ▲06년 2월 까사 리빙아트스쿨 ‘플라워 데커레이션 전문가 과정’ 이수 ▲06년 3월 프랑스 도빌영화제 심사위원 ▲06년 5월 외국인 정책회의 민간위원 위촉(법무부) ●주요 저서 봉주르 여봉 싸랑해요(96년), 이다도시의 참 맛있는 요리(97년), 이다도시의 생활체험 프랑스식 감성교육법(00년), 이다도시의 행복공감(06년) km@seoul.co.kr
  • [사설] 수뢰혐의로 영장 청구된 판사·검사·총경

    검찰이 어제 법조 브로커에게 거액을 받은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한 판사·검사·총경은 우리 사회의 ‘영감님’이었다는 점에서 충격이 아닐 수 없다. 판사·검사·총경이 한 사건으로 영장이 청구된 것은 광복 이후 처음이고 앞으로도 있을 것 같지 않다. 그들은 법을 적용하고 집행하는 권력기관으로서 우리 사회가 모두 부러워하는 ‘영감님’에 대한 기대를 저버렸다. 그 중에서 전 검사와 총경은 브로커로부터 돈을 받았다고 시인하고 있어 영장을 발부받는 데 어려움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전 고법부장에 대해 구속영장이 청구되는 것은 처음이라는 점에서 법원에서 반발이 적지 않았다. 또 오늘 있을 영장실질심사에서 어떻게 결론지어질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전 고법부장은 대가성이 없는 적은 돈을 받았을 뿐이라고 항변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법원이 이번 사건에서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것은 국민의 법감정이다. 물론 형사사건에서 불구속 수사의 원칙은 지켜져야 한다. 그래야 피고인이 검찰과 대등하게 다툴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경우가 다르다. 만에 하나 법원이 영장을 기각한다면 국민들은 법 앞의 평등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법관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수신(修身)이다. 자기 자신에게 엄중하지 않고서는 국민이 부여한 사법권을 행사할 수 없다. 자신에게 흠집이 발견되면 읍참마속하는 것이 당연하다. 장기적으로 보면 그것이 국민으로부터 사랑받는 사법부로 거듭나는 길이다. 제 식구 감싸기에 급급하다가는 국민의 불신과 저항에 직면할 수 있다. 김홍수 법조 비리 사건은 아직도 갈 길이 멀다. 검찰은 이들에 대한 1차 사법처리가 마무리된 뒤에도 관련자에 대한 수사에 박차를 가해야 할 것이다.
  • “檢잘못 감추려 판사수사” 일부법관 한때 반발

    못하면 싫은 소리를 듣고, 잘해도 좋은 소리 못 듣는 게 법조비리 수사다. 혐의를 못 밝히면 ‘제 식구 감싸기’라는 평을 듣고, 비리를 샅샅이 적발해도 ‘제 살 깎기’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수사의 메커니즘을 아는 법조인들에 대한 수사라 의도와 달리 와전된 소문과 억측이 번지는 일도 흔하다.●고법 부장판사 받은 금품액 수십만원대에서 수천만원대로 김홍수씨에게서 금품을 받은 고법 부장판사의 이름이 나오자 일부 법관들은 “연루된 검사의 죄질이 더 나쁘다. 검찰이 스스로의 잘못을 감추기 위해 언론 플레이를 한다.”며 반발했다. 대법원 자체 진상조사에서 “김씨에게 30만∼40만원밖에 받은 게 없다.”고 한 조씨의 말을 그대로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검찰은 조씨가 수천만원대 금품과 수억원대 향응을 받은 정황을 포착했다. 법원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조씨는 7번의 검찰 조사에서도 ‘꿋꿋’했다. 검찰 관계자는 “조씨의 해명을 듣느라 수사진도가 늦어진다.”고 말할 정도였다. 올해 초 김씨가 금품제공 내역을 검찰에 털어놓았다는 말을 전해들은 조씨는 “직접 경위를 설명하겠다.”며 수사팀 고위간부를 찾아갔다가 면담을 거절당하기도 했다.●“내 이름 공개하면 안돼” 브로커들의 자기애 지난해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은 뒤 법조인들에게 서운함을 느끼던 차에 수사망이 좁혀 오자, 김씨는 결국 금품제공 내역을 털어놓았다. 하지만 그는 금품제공이 자신의 혐의로 귀결될 때는 진술을 거부하거나 혐의를 부인했다. 김씨는 다년간의 브로커 생활을 통해 법률상식과 법조계 생리를 궤뚫고 있었다. 법조인들의 인간적 배신보다 김씨를 더 비애에 젖게 한 것은 자신의 실명이 보도되고 사진이 공개된 것이다. 그는 공판에서 “가족들이 창피해할 것”이라면서 “내가 마치 대단한 브로커처럼 묘사되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다.●연수원 28기 괴담 김씨에게 1000여만원을 받은 김모 검사가 사시 38회이자 사법연수원 28기라는 점 때문에 ‘연수원 28기 괴담’이 떠돌기도 한다.2003년 양길승 전 청와대 제1부속실장에 대한 몰래카메라 사건을 주도한 혐의로 기소돼 징역 2년6월의 실형을 선고받은 김도훈 전 검사도 연수원 28기다. 최근 소송 관련자인 지역 유지가 제공한 아파트에 살아 물의를 일으킨 전 군산지원 판사 2명도 같은 기수다. 한 법조인은 “300명이던 사시 선발인원이 28기부터 500명으로 늘어 윤리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법조인들이 생긴 탓”이라며 비리를 ‘그들만의 것’으로 애써 치부하려 했다.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北 “현대와 경협사업 변함없다”

    北 “현대와 경협사업 변함없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 이후 남북경협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는 가운데, 북한이 금강산관광 등 현대그룹과의 남북경협 사업을 변함없이 추진해 나갈 뜻을 밝혀 주목된다. 북한 아시아·태평양 평화위원회는 고(故)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 3주기를 맞아 지난 1일 현대그룹에 보낸 조문을 통해 “6·15 공동선언의 이념에 따라 정몽헌 선생이 심혈을 기울여 온 금강산관광 사업을 비롯한 남북 경제협력 사업에서 새로운 성과가 나올 것으로 확신한다.”고 밝혔다. 명승지종합개발회사도 전문을 보내 “앞으로도 온 겨레의 지향과 고인의 염원에 따라 금강산관광 활성화를 위한 귀사의 사업에 보다 큰 성과가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한 후 남측이 쌀과 비료 등 인도적 지원을 중단하자 북측은 이산가족상봉 및 금강산 면회소 건설 중지 등으로 맞섰다. 이에 따라 남북경협이 중단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됐었다. 하지만 이번에 북측이 ‘남북 경협사업에서 새로운 성과’라는 표현을 쓰면서 전향적인 입장을 보여 현대그룹측은 1년 가까이 표류 중인 개성관광 등이 곧 본 궤도에 오를 것을 기대하고 있다. 한편 현정은 회장은 5일 금강산 외금강호텔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북한의 미사일 발사 등으로 남북 관계가 어려운 상황이 됐지만 금강산관광 등 남북 경협사업은 차질없이 진행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면서 “앞으로 현대건설 인수에도 주력하고 개성관광과 백두산관광 등도 차질없이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현 회장은 “현대건설은 원래 현대그룹에 속해 있었고, 정몽헌 회장도 어려워진 현대건설을 살리기 위해 많은 애를 썼었다.”면서 “내부 유보 등 인수자금은 충분하며 인수파트너를 확보하는 등 현대건설 인수에 매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 회장은 KCC와 현대중공업그룹 등 범(汎) 현대가와의 ‘경영권 분쟁’에 대해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수 및 합병(M&A)은 당연한 것이고 약육강식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그러나 같은 집안 식구가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경제논리보다 사람 사는 관계에서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금강산 공동취재단·류길상기자 ukelvin@seoul.co.kr
  • 범죄 피해 유가족들 방치 실태

    범죄 피해 유가족들 방치 실태

    “아빠가 우리 주위를 떠도는 것 같아요.” 석태(가명·15·중3)와 석준(가명·13·중1)이 형제는 수시로 악몽을 꾸고 환청을 듣는다. 주의가 극도로 산만해 하나의 일에 집중을 못한다. 대화할 때에는 상대와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말도 뚝뚝 끊어서 한다. 학교에선 멍하니 먼 산만 바라보기 일쑤고 어려운 일을 만나면 지레 포기하고 집에 와 버린다. 모르는 사람에게는 이유 없는 적대감을 보이기도 한다. 형제는 서울 답십리동에 살던 지난해 11월15일 집에서 엄마(37)가 술 취한 아빠(당시 49세)를 목졸라 살해하는 모습을 현장에서 목격했다. 알코올 중독에다 매일 가족에게 폭력을 휘두르던 아빠였다. 엄마는 아이들에게 주려고 쌈짓돈을 털어 사놓은 돼지고기마저 남편이 술로 바꿔 마시자 격분해 범행을 저질렀다. 엄마가 교도소에 들어가면서 형제는 현재 경북에 있는 외삼촌 집에 살고 있지만 범죄 현장을 두 눈에 담았던 충격으로 심각한 스트레스성 장애를 앓고 있다. 강력범죄 피해자들이 당국의 허술한 지원시스템 때문에 정신적·경제적 고통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방치돼 있다. 강력범죄 피해자와 유가족은 심각한 ‘충격 뒤 스트레스성 장애(PTSD)’를 겪지만 정신치료 지원은 전무한 실정이다. 지난달부터 시행된 개정 범죄피해자구조금제도도 피해자가 일일이 복잡한 절차를 직접 처리하도록 돼 있는 데다 단발성이어서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강원도 강릉시의 한 보육원에서 사는 정우(가명·13·중1)는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종일 책만 읽는다. 또래보다 의사소통 능력이 떨어진다. 똑같은 질문에도 대답이 제각각일 때가 많다. 젖은 빨래를 걷어오는 등 기초생활능력도 모자란다. 정우는 누나 민정(가명·16·고1)이와 지난달 이곳에 입소했다. 아이들의 엄마(41)는 지난 5월20일 아이들의 고모부(36)에 의해 살해됐다.7년 전 뇌졸중으로 남편을 잃고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병원·목욕탕 청소로 월 60여만원을 벌어온 아이들 엄마는 힘들게 모은 3000만원을 고모부에게 잘못 빌려줬다가 못받게 되자 재촉을 했다가 화를 당했다. 남매는 둘만 남겨진 채 무서움에 떨어야 했다. 하지만 고모부가 범죄에 연루돼 체포됐는데도 큰집 친척들은 매일같이 남매를 돕겠다며 집으로 몰려왔다.“전에는 쳐다보지도 않다가 엄마가 돌아가시자 보호자를 자처하며 전세금과 보험금 등을 알아보고 다녔어요.” 정우는 큰집 식구들이 올 땐 정말 싫었다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동네사람들로부터 소식을 들은 동사무소를 통해 남매는 사건이 터지고 한달 반이 지난 7월8일에야 보육시설로 왔다. 보육원 김영식 사무국장은 “민감한 사춘기에 남매에게 내재된 범죄 피해의식이 사회적 불만으로 표출될 우려가 있다. 신경정신과 치료를 받게 해 볼 예정이지만 전문적인 치료가 가능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경제적인 어려움도 외면당하고 있다. 전세금 1200만원과 시청 환경미화원이던 아빠의 연금 월 20만원, 얼마가 될지 예측할 수 없는 보험금과 범죄피해자 구조금 500만원이 전부다. 그나마 아이들에게 구조금의 존재를 알려준 건 관할 당국이 아니라 사건 담당형사였다. 강릉서 강력팀 조원석 경사는 “범죄 피해로 고아가 된 아이들에겐 단발적인 도움보다 정기적으로 지원해줄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글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MLB] 박찬호 “내몸에 미국 피가…”

    [MLB] 박찬호 “내몸에 미국 피가…”

    ‘나의 몸에는 미국인의 피가 흐른다?’ 장 출혈로 인한 빈혈증세로 부상자명단(DL)에 올랐던 ‘코리안특급’ 박찬호(33·샌디에이고 파드리스)가 클럽하우스로 돌아왔다. 박찬호는 5일 구단 홈페이지에 실린 인터뷰에서 “몸 상태가 100%에 가깝다. 두통도 완전히 사라졌다.”고 밝혔다. 박찬호의 회복에는 동료들의 도움이 컸다. 우디 윌리엄스와 크리스 영, 엘런 엠브리 등 동료 투수들이 서로 나서 박찬호에게 수혈을 해주려 했던 것. 다만 컨디션에 악영향을 줄 것을 우려해 박찬호가 고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찬호는 “구단의 마사지 치료사인 켈리 카라브레스, 제이크 피비와 케이티(피비의 아내),LA에 사는 한 친구의 도움으로 수혈을 받았다.”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특히 “피비의 아내는 나에게 수혈을 해준 뒤 졸도까지 했다. 그 일로 피비에게 ‘넌 이제 나와 한 식구’라고 농담을 했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지난달 31일 15일짜리 DL에 오른 박찬호는 당초 오는 11일 복귀 예정이었지만 좀더 정밀검사를 받을 계획이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