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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길섶에서] 명절 설거지/이용원 수석논설위원

    결혼해 분가한 뒤 한동안은 명절 전날 새벽에 온 식구가 형 집에 갔다. 아침을 먹고 어머니가 두 며느리를 인솔해 장보러 가시면 짐꾼 노릇 하는 것과, 형과 함께 놀며 쉬며 날밤을 치는 것이 내가 기여하는 몫이었다. 그러다 아이들이 크니까 학원이다 뭐다 해서 하루 전 출발이 어려워졌다. 대신 아내가 상에 올릴 음식 몇가지를 해서 당일 새벽 가는 걸로 업무를 분담했다. 그러다 보니 짐꾼 노릇도 날밤 치기도 손을 떠나 차례 지내면서 할 일이 없어졌다. 그래서 생각 난 것이 설거지였다. 사실 음식 장만에 고생한 형수와 아내가 설거지까지 도맡아 하는 모습이 안쓰럽기도 했다. 그래서 어머니께 설거지는 내가 하겠다고 말씀드렸더니 단박에 거절하셨다.“며느리들이 있는데 아들이 부엌일 하는 꼴은 못 본다.”고 말씀하셨다. 매사에 진취적이신 어머니의 반응으로선 의외였다. 그러기를 여러해, 이제는 형수도 아내도 쉰을 넘었다. 이번 설에는 설거지를 허락하실까. 차례 지내는 동안 할 일 따로 없는 내 마음을 알아주셔야 할 텐데. 이용원 수석논설위원 ywyi@seoul.co.kr
  • 그리스 로마 서사시로 고전읽기의 해법 제시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스’에는 같은 사물이나 인물이 늘 같은 말로 표현돼 있다. 예컨대 가만히 앉아 있는 아킬레우스를 묘사할 때에 ‘발 빠른 아킬레우스’라고 하는 식이다. 왜 그런 어색한 표현을 쓴 것일까. 서양고전학을 전공한 강대진(서울대 강사)씨는 그의 저서 ‘고전은 서사시다’(안티쿠스)에서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그것은 이른바 ‘공식구(formula)’라 불리는 것으로, 음송시인이 운율을 맞추기 위해 외우고 있던 구절을 필요할 때마다 반복해서 사용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탄탄한 구조를 지닌 고전작품이라는 말을 흔히 듣는다. 하지만 정작 그 구조라는 것이 어떤 식으로 짜여져 있는지는 잘 모른다. 저자는 그리스·로마 서사시의 구조를 하나하나 짚어가며 작품들 간의 연관성을 분석한다. 저자에 따르면 ‘아이네이스’의 전반부 4장은 ‘오디세이아’를 본받아 이동과 모험을 그린 것이며, 후반부 4장은 ‘일리아스’를 따라 전투내용을 담은 것이다. 두 작품의 소재가 모두 ‘저승여행’이라는 점도 같다. 요컨대 ‘아이네이스’는 호메로스를 모방하면서도 그 내용을 변형한 것이라는 얘기다. 저자는 그리스·로마 서사시를 통해 구체적인 고전 읽기의 해법을 제시한다.‘시인은 과거의 행복과 현재의 고통을 대조한다.’ ‘이야기가 등장하는 순서는 시간 순이 아니다.’ ‘때로는 모순적인 내용이 나란히 놓인다.’ ‘시인은 로마 역사를 찬양하지 않는다.’ 등등.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고전을 직접 읽고 느껴야 한다는 점이다. 저자는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에게 내린 계시의 말을 독자에게 결론으로 들려준다.“들어서 읽어라!” 1만 8000원.김종면 기자 jmkim@seoul.co.kr
  • [국악인] 거문고 악성 옥보고 맥 이으려는 김무길 명인

    [국악인] 거문고 악성 옥보고 맥 이으려는 김무길 명인

    글 최종민 철학박사, 국립극장예술진흥회 회장, 동국대 문화예술대학원 교수 민속악은 음악가 집안 출신이어야 잘 할 수 있다. 세습적인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나야 피에 음악이 흐르고 몸에 음악이 녹아 있어 조금만 배우면 저절로 잘 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실제 전설적인 명인 명창들 대부분은 음악가 집안 출신이었다. 송흥록 명창이나 박종기 명인이 모두 음악가 집안 출신이다. 간혹 음악가 집안 출신 아닌 사람이 음악가가 되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그런 경우는 ‘비가비’ 또는 ‘비개비’라 하여 좀 낮추어 보려 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 ‘비가비’란 비갑(非甲)에서 온 말인데 ‘갑이 아니다’ 즉 ‘동류가 아니다’는 뜻이고 그 반대말인 동류를 가리킬 때에는 ‘관동’이라 한다. ‘관동’이란 양반들이 쓰는 ‘동관(同官)’이란 말을 뒤집어 그렇게 쓰는 것이다. 김무길은 음악가 집안 출신이고 부인인 박양덕 역시 음악가 집안 출신이다. 부부가 음악가 집안 출신으로 남편은 거문고의 명인이고 부인은 판소리 명창인데 자녀들도 모두 국악을 전공하여 식구가 모두 음악을 하며 살고 있다. 김무길은 지금 남원국립민속국악원 지도위원을 하면서 많은 제자를 양성하고 있고 박양덕은 전라북도 지방문화재 판소리의 예능보유자로 남원시립국악단 지도위원을 하고 있다. 부부가 지리산 자락의 폐교를 인수하여 ‘운상원 소리터’를 만들었는데 ‘운상원(雲上院)’은 옥보고가 지리산 운상원에 들어가 거문고를 공부했다는 그 운상원이다. 우리네 공부하는 방법이 산에 들어가 혼자 연습하며 공력을 쌓는 것인데 그런 독공(獨工)을 통해 깨닫고 또 깨닫고 하는 과정을 끝없이 반복하면서 천인합일(天人合一)의 경지에 이르고자 했기 때문에 옥보고가 지리산 운상원에 들어가 공부했다고 본다. 삼국사기에 있는 옥보고의 기록을 보면 남원은 거문고의 성지(聖地)이다. 옥보고가 지리산 운상원에 들어가 거문고를 공부한 지 50년에 새로 30곡을 지었고 그것을 속명득(續命得)에 전했는데 속명득은 그것을 귀금(貴金) 선생에게 전했다. 귀금 선생은 다시 안장(安長)과 청장(淸長)에게 전했는데 이때 신라왕은 혹시 금도(琴道)가 끊어질까봐 그 음악을 잘 전승하도록 하라고 남원공사에게 부탁하기까지 했다. 극장(克上)과 극종(克宗) 이후에 신라에서는 거문고를 업으로 하는 사람이 많아졌다고 하니까 고구려에서 발달한 거문고 음악이 남원 땅인 지리산 운상원에서 재창조되어 신라의 음악이 되었던 것이다. 이런 점으로 보면 김무길과 박양덕이 가꾸고 있는 ‘운상원 소리터’는 역사적 사건과 맥이 닿는 대단한 곳이다. 무엇보다 이 시대 한국 최고의 거문고 명인이 서울을 마다하고 이곳을 택하여 소리 터로 가꾸고 있다는 것이 주목할 만한 일이다. 시대는 다르지만 그 옛날 옥보고가 했던 것과 비슷한 일을 김무길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무길은 1962년 서울국악예술학교를 졸업했다. 그 당시의 국악예술학교는 고등학생 또래가 다니는 학교이긴 했지만 그야말로 국악을 모두 배우는 예술학교였다. 그 학교에서 배운 국악 실력으로 국악단체나 연주자로 얼마든지 활동할 수 있었다. 김무길도 국악예술학교를 졸업한 다음 연주자로 활동하면서 본격적인 거문고 산조를 공부하게 되었는데 한갑득 명인에게 배웠다. 당시의 수업방식은 완전히 옛날식 구전심수(口傳心授)의 방법이어서 악보도 없이 매일매일 배운 것을 구음으로 외우고 충분히 익힌 다음 그 다음을 배우는 식으로 배웠다. 김무길은 정말 열심히 배우고 매일 구음을 외웠다. 지금도 학생들을 지도할 때 구음을 척척 해가면서 지도하는 것은 다 그때 그렇게 무한히 외고 열심히 거문고로 탔기 때문이다. 한창 열심히 배우던 시절 한갑득 선생에게 “저는 선생님과 똑같이 탄다고 타는데 실제는 그렇게 되지 않으니 어떻게 하면 선생님과 같이 탈 수 있습니까?” 라고 물었을 때 선생께서는 “이 놈아 수만 독(數 萬讀; 수만 번) 하면 돼”라고 했다는데 이제야 그 의미를 알 것 같다고 한다. 김무길은 한갑득을 철저히 사사했다. 거문고도 배우고 음악에 대한 태도나 생각도 배우고 술도 배웠다. 특히 거문고산조를 타면서 그 음악이 그려내고 있는 자연의 경치나 타는 사람의 심성에 따라서 음악이 변하는 것에 대한 한갑득의 설명은 무한한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게 했고 거문고 소리가 온 우주의 것을 담아 표현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그런 식으로 한갑득과 쌍벽을 이루던 신쾌동 선생까지 사사했다. 최고의 거문고 명인 두 분 밑에서 철저히 배우고 열심히 노력한 덕분에 김무길은 한국 최고의 거문고 연주자이자 최고의 사범이 될 수 있었다. 김무길은 지리산 운상원 소리 터에 있지만 전국에서 많은 제자들이 그를 찾아와 배운다. 국공립단체에서 활동하는 전문 연주가들 다수가 그의 문하에서 거문고 산조를 배우고 있다. 한갑득류나 신쾌동류의 긴 산조는 김무길의 전유물처럼 되어 있어 그런 큰 제자들이 찾아오는 것이다. ”김무길과 박양덕이 서울에 있으면 훨씬 많이 활동하고 돈도 잘 벌 텐데… 왜 그런 산골에 많은 투자를 하면서 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들 내외의 생각은 다르다. 꿈이 있는 것이다. 돈이나 명예를 좇는 꿈이 아니다. 정말 순수한 인간 순수한 음악가로서의 꿈이다. 무엇보다 어려서 가졌던 꿈을 실현하고 싶은 것이다. 지금의 건물과 시설도 토요일과 일요일에 몰려오는 제자들과 두 부부가 살기에는 너무 클 정도이다. 그러나 그런 시설에 공연장 하나를 더 지어 정말 좋은 음악을 듣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멋진 음악을 들려주고 싶은 것이다. 본인들의 음악도 더욱 공력을 쌓고 싶고 다음 세대를 위한 더 좋은 작품도 만들어 볼 작정이다. 옥보고가 운상원에서 득음하고 새 음악을 많이 만들었던 것처럼 김무길도 운상원 소리 터에서 거문고 음악의 새 장을 열고 싶은 것이다.     월간 <삶과꿈> 2007.01 구독문의:02-319-3791
  • 이주 노동자에 ‘죽음의 그림자’

    ‘베그 바하두르 라나(2005년 감전사·당시 38세), 고빈더 바하두르 채트리(2005년 화학약품 중독·당시 36세), 고버던 차우더리(2002년 과로사·당시 35세)’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한국에 들어왔다가 산업재해 등으로 숨진 네팔 미등록(불법체류) 이주노동자들의 안타까운 죽음이 자료집으로 발간됐다. ‘베그 바하두르 라나(2005년 감전사·당시 38세), 고빈더 바하두르 채트리(2005년 화학약품 중독·당시 36세), 고버던 차우더리(2002년 과로사·당시 35세)’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한국에 들어왔다가 산업재해 등으로 숨진 네팔 미등록(불법체류) 이주노동자들의 안타까운 죽음이 자료집으로 발간됐다. 아시아인권문화연대는 낯선 이국땅에서 숨진 네팔 노동자들의 죽음의 역사를 기록한 자료집 ‘꿈 그리고 악몽’을 최근 발간했다고 13일 밝혔다. 이 단체는 정확한 사망자 통계조차 없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의 삶을 짚어보기 위해 다른 외국인들에 비해 숫자가 상대적으로 적어 파악하기 쉬웠던 네팔 노동자들의 죽음에 초점을 맞췄다. 현재 네팔 이주노동자는 5000여명으로 전체 이주노동자의 3∼4%에 불과하다. 그러나 지금까지 사망한 사람 수는 60여명에 이를 정도로 많다. 자료집에는 과로, 화학약품 중독, 감전, 사고 등 각종 재해로 숨진 13명의 죽음이 수록돼 있다. 베그 바하두르 라나는 2002년 산업연수생으로 입국해 파이프 공장에서 일했다. 월급을 받으면 바로 네팔에 보냈고, 식구들은 그 돈으로 빚을 갚았으며, 아이들을 학교에 보냈다. 그러던 그가 2005년 어느 날 뜨거운 파이프를 식히기 위해 물 속에 넣던 중, 물 속에 흐르는 엄청난 전류에 감전돼 사망했다. 그가 한 줌 뼛가루로 네팔에 돌아간 건 한국에 온 지 3년만이었다. 고빈더 바하두르 채트리는 2005년 가족들에게 안부 전화를 건 뒤 며칠 뒤 숨진 채 발견됐다. 평소 일하던 공장을 무척 힘들어하던 그는 수차례 공장을 옮길 수 있게 해달라고 사장에게 부탁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회사측은 집안일 때문에 화학약품을 먹고 자살했다고 설명하고 있지만 목격자는 나타나지 않았고, 종이컵엔 지문도 남아 있지 않았다. 사고사란 주장과 자살이란 주장이 여전히 맞서고 있다. 고버던 차우더리는 두 차례에 걸쳐 한국에 왔다. 두 번 다 산업연수생 신분이었고, 같은 염색공장에서 일했다. 한국에 오기 전 인도에서 군인으로 일했던 그는 땅을 팔아 송출 비용을 마련했다.3년간 번 돈으로 식구들은 땅을 되찾았지만, 동생이 한국으로 오는 과정에서 다시 팔아야 했다. 그는 2002년 힘든 노동일을 마치고 집에서 잠을 자다 돌연 세상을 떠났다. 이란주 아시아인권문화연대 대표는 “수많은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에 와서 일하며 죽어가지만, 왜 한국사회는 이 생명들의 죽음에 대해 경각심을 갖지 않는지를 묻고 싶었다.”면서 “온갖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되면서도 불법이란 멍에 때문에 늘 쫓겨다녀야 하는 현실이 개선되지 않는 한 여수 화재참사는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아시아인권문화연대는 아름다운재단의 지원을 받아 자료집을 만들었다. 자료집은 후원 회원들과 관련단체에 배포했다.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CMA체크카드’로 재테크 시작해볼까

    지난해 말 증권사 종합자산관리계좌(CMA) 통장을 만든 직장인 김성수(가명)씨. 얼마 전에는 주로 이용하던 전업계 카드사에서 CMA 통장과 연계된 체크카드까지 만들었다. 월급통장도 이 통장으로 새로 지정했다.CMA 통장의 다양한 장점과 더불어 기존 신용카드의 혜택까지 다 받을 수 있기 때문. 연회비도 면제받았다. 김씨는 “계획적인 소비와 함께 월급통장으로 재테크를 쉽게 시작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지난해 11월 삼성서 처음 출시 CMA 체크카드는 CD기나 ATM기를 통해 보통예금처럼 자유로운 입출금이 가능하지만 연 4%대의 높은 이자를 준다는 CMA 통장의 장점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대부분의 상품이 CD 출금과 은행 이체 수수료도 면제 혜택을 받는다. 여기에 잔고만큼 신용카드처럼 사용할 수 있어 계획적인 소비까지 가능하다. CMA 체크카드는 삼성카드에서 지난해 11월 가장 먼저 선보였다.CMA 통장의 혜택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동시에 CMA 통장을 월급통장으로 지정하거나 적립식 10만원 이상 자동이체를 하면 이체 수수료까지 무제한 면제받는다. 거래 실적에 따라 삼성증권 공모주 청약 때 한도 2배 우대 혜택까지 기대할 수 있다. 또한 최고 500만원의 소득공제 혜택, 항공권 할인, 에쓰오일 주유 시 ℓ당 40원 적립, 연회비 면제, 사용액에 따른 대한항공 마일리지 적립 등 다양한 부가서비스가 제공된다. 현대카드도 현대증권과 제휴, 현대 CMA 체크카드를 지난달 말 출시했다. 이 상품의 가장 큰 특징은 다양한 캐시백 서비스. 체크카드를 사용해서 적립된 포인트는 매월 회원의 현대증권 CMA 계좌로 입금된다. 포인트는 현대 오일뱅크에서 주유하면 ℓ당 40원, 주요 백화점 및 할인점에서 사용하면 1%가 쌓인다. 이밖의 모든 매출은 0.5%가 적립된다.●LG카드 남녀 전용 상품 발매 신한금융지주 아래 ‘한 식구’가 된 신한카드와 LG카드도 굿모닝신한증권의 CMA 통장을 결제계좌로 하는 체크카드를 최근 출시했다. 신한 체크카드의 기본 적립률은 사용액의 0.3%.3,6,9가 들어가는 날에 현대오일뱅크,GS칼텍스에서 주유하면 ℓ당 80원,GS,E1 가스충전소에서 LPG를 충전하면 ℓ당 30원을 적립해 준다. 적립한 포인트는 각종 상품이나 상품권 신청을 할 수 있고,3만 포인트 이상이면 현금으로 되돌려 받을 수 있다. 아시아나항공권 10% 할인,CGV 영화티켓 2000원 할인 등도 부가서비스다. LG카드의 체크카드는 남성 고객을 위한 2030, 여성을 위한 레이디 등 2가지로 발급된다.2030카드는 현대오일뱅크 고시가 기준 휘발유 ℓ당 40원 할인, 레이디카드는 안면상해보험 무료 가입 등의 서비스가 주어진다. 여기에 ▲롯데월드, 서울랜드 등 테마파크 50% ▲영화 티켓 1500원 ▲LG 야구·농구 2000∼3000원 ▲베니건스 등 패밀리 레스토랑 10∼40% 등의 공통 할인 혜택도 받을 수 있다. 롯데카드도 지난달 31일 대신증권과 포괄적 업무제휴 협약을 맺고,CMA 체크카드 등 다양한 금융 마케팅을 공동 추진할 예정이다. 오는 4월 안에 상품을 출시한다는 계획이다.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재계 ‘부부 상속’ 경영 는다

    재계에 ‘부부 상속’ 경영이 늘고 있다. 남편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기업을 이어받는 여성 최고경영자(CEO)들이 늘고 있다. 경영 능력이 검증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주위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하지만 비슷한 부담을 안고 출발했던 장영신 애경그룹 회장·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등이 성공적으로 뿌리를 내리면서 이같은 부정적 시선은 많이 엷어졌다. 13일 재계에 따르면 고(故) 조수호 한진해운 회장의 부인 최은영(45)씨가 부회장 직함으로 경영에 참여한다. 최씨의 경영 참여는 지난해말 그가 고인의 유지로 설립된 양현재단 이사장을 맡으면서 예고됐었다. 한진해운측은 “최 이사장이 부회장을 맡아 경영에 참여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한진해운 당분간 전문경영인 체제 유지 하지만 회사측은 최 이사장이 기업을 경영해본 경험이 없어 당장 대표이사를 맡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당분간 전문경영인인 박정원 사장을 주축으로 하되, 최 이사장이 경영 현안을 파악해가는 과정이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최 이사장이 고 조 회장의 지분(4.59%)을 상속받으면 양현재단 지분(4.56%)과 더불어 총 9.15%를 확보, 최대주주가 된다. ‘미망인 CEO’의 대모(大母)는 단연 애경그룹 장 회장이다. 채몽인 사장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면서 기업을 떠맡아 오늘날 매출 2조원대의 그룹으로 키워냈다. 고인보다 장 회장의 족적이 훨씬 커 ‘미망인 CEO’라고 이름붙이기 민망할 정도다.●`뱃심´ 두둑한 현정은회장 현대그룹 현 회장은 ‘제2의 장영신’으로 불린다.2003년 졸지에 남편(고 정몽헌 회장)을 잃고 서울 적선동 사옥으로 출근했다. 시댁 식구들과의 경영권 분쟁 등 고비가 적지 않았으나 타고난 뱃심으로 ‘현정은 체제’를 정착시켰다. 현 회장은 13일 현대상선 등기이사(이사회 의장)로 재선임됐다. 이어룡 대신증권 회장도 빼놓을 수 없다. 폐암으로 세상을 떠난 양회문 회장의 뒤를 이어 회장직에 올랐다. 올해 경영 키워드로 ‘신기원(New Era)’을 제시하는 등 의욕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박경자 울트라건설 회장과 양귀애 대한전선 고문도 있다. 박 회장은 2003년 강석환 회장이, 양 고문은 2004년 설원량 회장이 각각 세상을 뜨면서 회사 경영에 참여했다.●전업주부서 최고 경영자 변신 이들에게는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 재벌가의 보수적 풍토로 인해 남편과 사별하기 전까지는 대부분 ‘전업주부’였다는 점이다. 나이어린 아들·딸을 대신해 기업을 맡은 것도 똑같다. 그 2세들이 차츰 성장해 지금은 경영 수업을 받고 있거나 경영권을 넘겨받았다. 장 회장은 장남인 채형석 부회장에게 사실상 실질적인 권한을 넘겼다. 현 회장의 큰딸인 정지이 현대유엔아이 전무와 박 회장의 둘째딸인 강현정 울트라건설 대표이사 사장은 각각 어머니를 보좌하며 ‘모녀(母女)의 힘’을 보여주고 있다. 양 고문의 장남 설윤석 과장과 이 회장의 장남 양홍석씨도 각각 대한전선과 대신증권에 입사해 경영수업을 받고 있다. 한진해운 최 이사장의 두 딸은 현재 학생이다. 한 재계 인사는 “회장 사모님이라는 이유만으로 어느날 갑자기 경영 전면에 나서는데 대한 부정적 시각이 엄연히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라면서 “이같은 부정적 시선을 불식시키는 것은 오롯이 당사자의 몫”이라고 지적했다.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HAPPY KOREA] 폐교 사들여 예술촌 열고 수십억 들여 가족호텔 짓고

    ”외지인들은 한번 왔다가믄 그만이다. 다 잊어삔다. 한두번 쏙았나. 우리가 해야 한다, 아이가.” 사재를 몽땅 털어 폐교된 물건초등학교를 연간 20만명 이상 찾는 문화예술 공간으로 바꾼 ‘해오름 예술촌’ 정금호(61) 촌장의 말이다. 정 촌장은 인근 창선고교에서 수학을 가르치다 지난 1999년 사표를 던진 뒤 예술촌을 꾸미기 시작했다. 교직 생활 25년간 모은 돈과 퇴직금도 모자라, 부모가 물려준 논밭까지 팔았다.2003년 문을 연 예술촌은 화랑과 전시실, 도자기실, 판화공방, 천연염색실, 다실 등을 두루 갖추고 있다. 정 촌장은 “무모하다고 손가락질도 많이 받았지만, 제가 태어난 고향에 제대로 된 문화공간 하나쯤 만들고 싶었습니다.”면서 “저처럼 미친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어야 마을이 조금이라도 변하죠.”라며 미소지었다. 또 2005년 문을 연 남송가족관광호텔 이기평(66) 회장은 정통 은행원 출신이다. 바쁜 서울 생활에도 80년대부터 한푼두푼 모은 돈으로 물건마을에 땅을 사들이기 시작했다.20년 가까이 6000여평의 땅이 확보되자, 은행을 퇴직한 직후인 2003년부터는 물건마을에 직접 내려와 호텔을 손수 짓기 시작했다. 모든 재산을 쏟아 붓다시피했다. 지금은 아내와 함께 마을에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이 회장은 “변변한 숙박시설 하나 없던 물건마을에 수십억원을 들여 호텔을 짓는다고 하니, 식구들까지 나서서 반대했다.”면서 “방문객 유치와 지역 발전에 도움이 됐다는 사실에 만족한다.”며 흐뭇해 했다. 독일 교포들이 국내에 되돌아와 정착할 수 있도록 조성된 독일마을의 숨은 공로자는 주민 강중식(57)씨다. 강씨는 지난 2001년 물건마을 인근에 독일마을을 유치하기 위해 자신이 갖고 있던 땅을 헐값에 내놓은 것은 물론, 유치지역에 땅을 보유하고 있던 외지인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설득했다. 결국,3만평 규모의 독일마을은 이곳에 조성됐다. 정 촌장과 이 회장, 강씨 등은 서로를 ‘미친 사람’이라 부른다. 강씨는 “마을이 발전하려면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미친 사람이 많아야지예.”라고 말했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엿장수로 팔도 누빈 윤팔도씨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엿장수로 팔도 누빈 윤팔도씨

    # 질문1‘엿 먹어라.’가 왜 욕이 됐을까.1964년 12월 전기 중학입시 공동출제 선다형 문제 중 ‘엿기름 대신 넣어서 엿을 만들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있었다. 정답으로 채점된 것은 ‘디아스타제’. 하지만 보기 중에 ‘무즙’이 있었는데 무즙을 정답으로 표기했다가 낙방한 학생의 어머니들이 법원에 제소하는 등 집단항의에 나섰다. 급기야 직접 ‘무즙’으로 만든 엿을 들고 관련기관 등에 찾아가 “엿 먹어라! 무즙으로 만든 이 엿 먹어봐라!”하며 엿을 들이댔다. 결국 당시 한상봉 문교부차관과 김규원 서울시교육감이 사표를 냈고 무즙을 답으로 썼다가 낙방한 38명은 정원에 관계없이 경기중학에 합격했다. # 질문2 엿장수는 1분에 가위질을 몇번이나 할까.‘초딩’시절, 시골동네에 ‘엿장수’가 찾아와 가위질을 하며 “엿 바꿔먹으라.”고 소리칠 때 여러번 들었던 추억의 문제다. 초롱초롱 눈알을 굴려가며 애써 답을 생각하다가 “야, 그거야 엿장수 맘대로지.”라는 답을 듣고 허탈했던 기억을 떠올리면 지금도 ‘피식’ 웃음이 나온다. 어릴 적 가장 반가웠던 손님은 뭐니뭐니 해도 ‘엿장수’였다. 마을 어귀에서부터 절겅대는 가위소리가 들려오면 약속이나 한듯이 다들 쪼르르 달려가 엿장수의 뒤를 따랐던 그 때 그 시절. 오는 날짜도, 가위질 하는 것도 ‘엿장수 맘대로’였지만 늘 반갑기 그지 없었다. 다 떨어진 고무신 한쪽, 망가진 양은 냄비 조각, 심지어는 누나의 긴 머리카락까지 내밀면, 엿장수는 끌과 가위로 탁탁 잘라주며 “옜다, 엿먹어라.”하며 던져주곤 했다. 가끔 “쟤는 왜 많이 주고 저는 쬐금만 주나요?”라고 항의하면 “야, 엿장수 맘이여.” 하며 꿀밤을 맞기도 했다. 윤팔도(81) 할아버지. 어쩌면 어렸을 적 동네에서 한번쯤 만났을 법한 추억의 할아버지다. 지난 66년의 세월동안 ‘엿장수’라는 외길인생을 살아오면서 전국 팔도 구석구석 안 가본 데가 없다. 원래 이름이 석준이었지만 ‘팔도(八道)´로 바꾼 것만 봐도 그의 인생역정이 어떠했는지 짐작이 간다. 한때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엿장수들이 모인 엿가위질 경연대회에서 우승을 차지, 국가대표로 인정받기도 했다. 팔순을 넘긴 나이에도 여전히 현역으로 뛰기에 최장수 ‘엿장수’이자 살아 있는 ‘엿가위 예술의 달인’으로 꼽힌다. 더욱 눈길 끄는 대목은 그의 막내아들이 5년 전에 아버지와 합류했고 최근에는 손자까지 가세해 그야말로 3대째 ‘엿장수 집안’이 된 셈이다. 설날이 가까워오면 자연스럽게 정겨운 시골추억이 생각나기 마련, 그래서 지난 6일 오후 경기도 일산의 한 백화점 앞에서 엿장사로 가업을 잇는 이들 3부자를 만났다. 청주에 살고 있는 이들은 때마침 백화점측의 초청으로 설 대목 행사에 참석해 길거리에서 흥겨운 엿판을 벌이고 있었다. “일락 서산에 해 떨어지고 이내 목판에는 엿 떨어졌구나. 청춘 과부 잠못 잘 적에 먹는 엿이요, 큰애기 허벅지맹키로 희건 엿이 왔어요. 부산 동래 사탕엿, 울릉도에 호박엿, 전라도 봉산의 생강엿, 강원도 금강산 생청엿….” 윤 할아버지의 구성진 엿타령이 길가는 행인들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아들과 손자는 엿가위로 어깨를 들썩들썩 하며 척척 장단 맞추는 모습에 절로 흥이 돋아난다. 잠시 짬을 낸 윤 할아버지와 마주 앉았다.81세의 나이보다 10년은 더 젊게 보였다. 비결을 물었더니 “즐겁게 사는 거여.”라며 그저 호탕하게 웃을 뿐이다. 지나온 인생살이가 간단치 않을터. 일찍 부모를 여읜 그는 8세 때 남사당패에 들어갔다. 왜소한 체구 ㅜ때문에 주로 3층 꼭대기에 올라가는 역할을 맡았다. 잘못되는 날엔 매맞기 일쑤였다.3년 뒤에는 창극단에 들어가 노래를 배웠다. 하지만 배고픔은 여전했다. 14세되던 겨울, 그는 호구지책으로 엿장수로 나섰다. 동네 어른을 통해 충남 공주시 계룡면 경천리(경씨가 1000명 산다는 마을)에 위치한 엿방(엿공장)에 취직했다. 이때부터 하루 밥 세끼를 먹게 되면서 엿장수 생활에 만족과 즐거움을 느꼈다. “엿방에 갔더니 장작불 지펴놨지, 엿물로 밥지어 먹지, 그렇게 좋을 수가 없어. 비록 머슴 신세나 다름없었지만 남사당 가락으로 가위질 하며 용돈도 벌었어.” 19세되면서 세상 보는 안목이 넓어지자 홀로 독립한다. 음악을 알고 재주가 남달라 자신감이 더욱 생겼던 것. 우선 몽둥이만 한 엿을 만들었다. 이어 리어카를 구입하고 엿가위 두 개를 장만하면서 전국을 돌아다녔다. 가는 곳마다 어린 아이들은 “몽둥이 엿장수가 왔다.”며 떼지어 몰려들었다. 윤 할아버지는 기분 좋은 날이면 “자, 엿먹어라.” 하며 길다란 몽둥이 엿을 몇개씩 집어주기도 했다. 서른 한살 때 군복무를 마친 어느날, 충남 광천의 시골에서 엿판을 벌일 때였다. 창극 노래, 트로트 등으로 이어지는 흥겨운 놀이마당이 한바탕 끝나자 어여쁜 처녀(김종숙·70·지금의 부인)가 다가와 뒤따라가겠단다. 가만 보니 부잣집 딸이었다. 고생 바가지도 얼마든지 감수하겠다는 처녀의 진심을 알고는 친척이 사는 논산으로 함께 야반도주했다. 결국 연산면 살포리에 신혼살림을 차린다. “엿장수한테 누가 딸을 주겠나 싶어 결혼 생각을 안 했지. 허긴 엿가위 장단에 처녀들이 담 넘어 올 정도로 꽤나 인기를 모았어. 생각보단 결혼을 일찍했지만 부인은 늘 독수공방이었지. 리어카 끌고 집을 나가면 1년만에 돌아왔으니까 말야. 그러면서 하나 둘 낳은 아이가 나중에 5남매가 되더군.” 1969년 어느날이었다. 전남 영암 출신으로 큰 엿공장을 운영하는 한 부자의 주최로 서울 신당동에서 전국 엿가위질 경연대회가 벌어졌다. 호남의 송산갑, 부산의 김항구, 경기·인천의 백대가리, 서울의 윤팔도 등 내로라하는 고수들이 모였다. 여기에서 유일하게 ‘쌍가위’를 들고 출전한 윤팔도가 최우수상을 차지, 전국 최고수임을 입증했고 부상으로 쌀 20가마를 받았다. 1985년 12월이었다.KBS 전국 노래자랑 연말결선에서 인기상을 받고 방송국 정문을 나서는데 “오라버니 타세요.” 하면서 누군가 승용차 문을 연다. 얼굴을 보니 코미디언 배연정씨였다. 그 길로 간 곳이 서울 돈암동의 유흥업소. 곧바로 무대 위에 올라 ‘물레방아 도는 내력’‘고향무정’‘돌아가는 삼각지’등 세 곡을 불렀다. 그랬더니 50만원이 든 봉투를 받았다. 며칠 뒤에는 MBC 차인태의 ‘출발 새아침’에 초대받았고 이 방송을 본 신소걸씨한테 연락이 와 2년동안 밤무대에 출연했다. 낮에는 엿장수, 밤에는 가수로 활동했던 것이다. “휴전선으로 가로막힌 이북을 제외하곤 전국 안 가본 데가 없지. 엿가락 길이로 따지면 지구 수십번은 돌았을 거야. 그런데 요새는 엿가위 만드는 곳도 없어지고 뭔가 아쉬워.” 지난 2003년이었다. 윤 할아버지가 뇌경색으로 쓰러지자 막내 아들 일권(36)씨가 잘 다니던 직장에 사표를 쓰고 아버지의 뒤를 이었다. 일권씨는 “60여년동안 일해온 아버지가 존경스러웠다. 만약 돌아가시면 엿불림(구전 판소리)도 끊길 것 같았다.”고 의미 부여를 한다. 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한 일권씨는 2년 전 아버지와 함께 ‘엿불림 음반’(대표곡 ‘엿가위 인생´)을 냈다. 아버지의 만류에도 가업을 이은 아들은 초보답지 않게 2005년에는 2억원, 작년에는 3억원을 벌어들여 아버지를 놀라게 했다. 해마다 명절 때 식구들이 다 모인 자리에서 엿판시합이 벌어진다는 일권씨는 “도저히 아버지를 따라갈 수 없다.”며 고개를 흔든다. 아울러 “이제는 초콜릿 대신 우리의 전통 엿을 사랑해야 한다.”면서 폐백이나 입학·졸업시즌에 애용되는 엿을 건강식 웰빙 스타일로 바꾸고 있다고 귀띔했다. “엿은 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인정을 나눠주는 메신저 역할을 합니다. 아버지가 해온 66년과 제가 합류해 100년을 꼭 채우겠습니다. 또 제 아들이 100년부터 다시 어어가겠죠.” 손자 경식(13)군도 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엿가위를 잡아 엿불림을 구성지게 부른다. 중학교에 진학하는 경식군은 휴일과 방학을 이용, 할아버지를 돕겠다며 활짝 웃는다. 인물 전문기자 k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26년 충남 논산 출생 ▲34년 남사당 입문 ▲40년 엿장수 생활 ▲69년 전국 엿장수 경연대회 최우수상 수상 ▲85년 KBS전국노래자랑 연말결선에서 인기상 수상 ▲2002년 윤팔도 전통엿집 개업(충북 청주시) ▲현재 사단법인 전통식품연구회 고문
  • [한종태 정치전문기자의 정가 In&Out] 손학규의 선택

    [한종태 정치전문기자의 정가 In&Out] 손학규의 선택

    한나라당의 대권후보인 손학규 전 경기지사가 범여권 행(行)을 택할까. 요즘 대선 정가의 화두다. 물론 손 전 지사와 측근들은 아니라고 손사래를 친다. 한데 단서가 있다. 한나라당이 경선 후유증으로 갈라지거나 깨질 때는 ‘내 마음 나도 몰라.’라는 것이다.“내가 한나라당을 자랑스럽게 지켜온 주인이고 기둥”이라며 결코 말을 갈아타는 일은 없을 것이라던 종전 입장과는 다른 뉘앙스다. 당을 먼저 깨지는 않겠지만, 그런 상황이 되면 당을 지키기보다는 적극적으로 독자 생존의 길을 모색하겠다는 뜻으로 비쳐진다. 그 길은 중도통합과 개혁의 깃발을 들고 한나라당 후보에 맞서는 것일 게다. 이명박-박근혜 후보간의 검증 공방이 재연되는 등 얼음 위를 걷는 것 같은 한나라당 상황을 보면 당의 분열 가능성은 상존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여권의 ‘군불때기’도 강도를 더하고 있다. 고건 전 총리의 낙마 이후 방향타를 잃은 몇몇 의원이 손학규 영입론을 제기하더니, 이제는 범여권의 지도층 인사들까지 공개적으로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그제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은 “손 전 지사는 하루빨리 한나라당에서 나와 선의의 경쟁을 벌여야 한다.”고 말했다. 손 전 지사와 정 전 의장은 범여권 후보군 여론조사에서 1,2위를 다투고 있다. 탈당파들은 물론이고, 열린우리당 내에서도 그를 마치 ‘우리 식구가 될 사람’인 양 그윽한 눈길을 보낸다. 손 전 지사의 최근 행보도 거침이 없다. 특히 한나라당의 당론과 배치되는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우선 대북정책이다. 그는 ‘북한이 핵 포기 수순을 밟는다면’이란 전제조건을 달긴 했지만 여권의 대북 포용정책인 햇볕정책을 계승·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북 퍼주기라며 햇볕정책을 실패로 규정한 당론과는 크게 다르다. 남북정상회담 개최문제도 그렇다. 정치적 이용 가능성 때문에 노무현 대통령의 임기 중 남북정상회담 개최에 반대하는 것이 당론임에도 그는 “노 대통령이 마지막날까지 할 수 있는 일은 해야 한다.”며 찬성하고 있다. 당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는다. 한풀이 식으로 이번 대선에서 무조건 정권을 잡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반드시 정권을 되찾아 오겠다는 당의 정서와는 거리가 있다. 이·박 후보에 대한 비판의 칼날도 더욱 곧추세우고 있다. 하지만 보수적 성향의 한나라당 당원들이 그를 후보로 뽑을 가능성은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품질은 좋은데 소비자가 잘 찾지 않으니 답답할 노릇이다. 그러다 보니 손 전 지사가 대권고지를 위해 우회도로를 택하는 것 아니냐고 의심한다. 그의 행보는 여권 후보로 가기 위한 ‘자락 깔기’라는 시각이다.‘아니 땐 굴뚝에 연기나랴.’인 것이다. 이런 상황이 더 진전되면 그가 여권 후보인지, 야당 후보인지 헷갈릴 수도 있다. 과거 같지는 않지만 ‘사쿠라’ 논쟁에 휘말릴 수도 있다. 손 전 지사는 한나라당 후보 중에서 실질적으로 당을 가장 오래 지킨 사람이다. 그가 흔들리지 말았으면 한다. 한나라당에 남아서 자신의 컬러로 승부를 걸고, 여의치 않으면 차차기에 다시 도전하면 되지 않겠는가. 그것이 손학규의 정치인생에도 긍정적이리라. 여권도 그래서는 안 된다. 지난날 의원 빼가기는 봤어도 이번처럼 대권후보 빼가기는 참 희귀한 일이다. 최소한의 정치도의는 지켜져야 한다. 한나라당 역시 명실상부한 집권세력이 되기 위해서는 손 전 지사에 대해서도 후한 지지를 보내는, 다양성과 포용성을 갖춰야 할 것이다. jthan@seoul.co.kr
  • 당신을 잃고 우리는 읊네

    지난해 이맘때 56세를 일기로 작고한 시인 이영유씨의 1주기를 맞아 유고시집 ‘나는 나를 묻는다’(문학과지성사 펴냄)가 9일 출간된다. 시집은 표제작을 비롯,2003년부터 영면 직전까지 쓰여진 56편의 시를 담고 있다. “…/거친 大地를 뚫고 새싹들이/온 누리에 푸르름의 이름으로 덮일 때쯤/한곳에 숨죽이고 웅크려/나는 나를 묻는다/봄이 언 땅을 녹이며 땅으로부터/올라온다.”(‘나는 나를 묻는다’ 가운데) 시인은 자신의 운명을 예감했던 것일까. 시처럼 시인은 스스로를 땅 속 깊은 곳에 묻어버렸다. 동료 시인 함성호는 “그가 아무 아픔없이, 어떤 그리움도 없이, 거기서 자유로웠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시인들은 그와 웃음을 떼서 생각하지 않는다. 항상 그의 얼굴에서는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술자리에서 항상 분위기를 주도했던 인물로도 기억된다. 그러나 시인은 항상 거부했다. “나는 집을 버릴 것이다/식구들을 버릴 것이고/아들과 딸, 이웃들을/버릴 것이다/그래서 내 집이 하늘 아래/홀로 빛날 때/나는, 개천 건너/버드나무에게로 가/하늘과 집과 식구들과/이웃들에 대해서/이야기할 것이다/….”(‘누가 내 집 위에 집을 짓고자 한다면’ 가운데) 그가 한사코 버리려고 했던 것들은 왜 그렇게 가장 친근한 것들이었을까. 역설적으로 그 끈을 놓기 싫어서는 아니었을까. 시인은 연극 연출과 소극장운동에 참여,‘새’ ‘수업’ ‘의자들’ 등 20여편의 작품을 연출한 연극인이기도 하다. 시집으로는 ‘그림자 없는 시대’ ‘영종섬 길’ ‘유식한 감정으로 노래하라’ ‘홀로 서서 별들을 바라본다’ ‘검객의 칼끝’ 등을 남겼다. 유고시집에 실린 시들은 출간일 저녁 서울 삼성동 ‘테이크아웃드로잉’에서 후배 문인들인 윤병무, 박성원, 이응준씨 등에 의해 낭송됨으로써 비로소 세상에 빛을 발한다.박홍환기자 stinger@seoul.co.kr
  • 물리적 폭력서 ‘자본 폭력’으로

    서방파의 옛두목 김태촌이 탤런트 권상우를 협박한 혐의로 구속 기소됨에 따라 조직폭력배와 연예인의 끈질긴 ‘악연’이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권상우 사건과 관련해 폭력조직만 세곳이 거론되는데다 이들이 연예기획사와 얽혀 파장이 확산될 조짐이다. 연예인과 조폭과의 연계는 시대를 거치면서 폭력→처첩→매니저→기획사 순으로 ‘물리적 폭력’에서 ‘자본의 폭력’ 게임으로 진화화고 있다. 물론 그 중심에는 돈과 이권이 결부돼 있다. 이들의 악연이 처음 세간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5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잘 나가던 희극배우 김희갑의 갈비뼈를 부러뜨리는 폭력을 저지르고도 벌금 3만환의 형을 받은 임화수. 그는 자유당 정권시 영화계의 황제로 군림했던 정치깡패로 수많은 여배우를 자유당 권력자에게 소개하면서 정권과 결탁하고, 평화극장을 아지트로 삼아 폭력을 행사한 것으로 알려진다. 그는 이런저런 이유로 당시 유명했던 배우 김승호를 비롯해 김진규, 윤일봉 등을 구타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로부터 시작된 조직폭력배의 그늘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셈이다. 1970∼80년대 중반까지는 조폭들이 일부 인기 연예인의 유흥업소 출입을 관리하고 매니저 겸 보디가드로 기생을 해왔다는 게 업계의 전언이다. 이후 건설업과 사채업을 해오다 2000년대 초반에 일부가 이름을 하나 둘씩 OO연예기획사 식으로 바꾸면서 양지(?)를 지향하게 됐단다. 바로 이때 벤처 캐피털과 건설업계 등에서 비축한 엄청난 ‘자금’이 연예산업으로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일부 폭력조직은 막강한 자본력과 물리적 힘을 바탕으로 급속히 세를 확장해 어엿한 연예기획사로 자리잡았다. 그래서 연예계와 폭력계는 빛과 그림자처럼 하나가 되어버린 경우가 있다. 지난해 2월 부산에서 유명가수 J씨의 공연이 끝난 뒤 뒤풀이에서 공연기획사 대표가 폭력배들을 동원해 술자리에 오라며 J씨를 위협하자,J씨 역시 조직폭력배를 동원해 두 조폭의 행동대원들이 충돌했다. 또한 서울 신촌 이대식구파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유명 연예인들이 연계된 사실이 드러났고, 교도소에 수감 중인 거물급 조직폭력배가 시의원 출마자의 선거운동을 돕는 과정에서 기획사를 통해 연예인들을 동원한 사실이 검찰에 적발되기도 했다. 각종 연예인 관련 성매매 사건에서도 조폭의 이름이 거론되기도 했다. 이와 함께 중국, 일본 등지에 부는 한류의 바람을 타고 해외 조폭조직과 국내 조폭과의 연계설도 설득력을 얻고 있는 마당이다.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충남 태안군 버스안내양 ‘숙자매’ 정화숙·김미숙씨

    충남 태안군 버스안내양 ‘숙자매’ 정화숙·김미숙씨

    “오라∼이. 빠꾸 빠꾸….” 8일부터 충남 태안 공영버스터미널∼이원면 내리 만대항간 버스에서도 이런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됐다. 지난해 1월 국내 처음으로 터미널∼안흥항 구간에서 ‘버스안내양’을 부활시킨 태안군이 만대항 노선을 추가해 시범운행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태안군 관계자는 6일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해 지난해 22년 만에 부활시킨 안내양버스가 태안을 전국적으로 알려 기대 이상의 효과를 거두었고 운행수익이나 주민서비스에서도 좋은 성과를 낳아 확대하게 됐다.”고 말했다. 또 “터미널∼안흥 구간 버스의 대당 월평균 운행수입이 800여만원에 불과하지만 안내양버스는 1100만원에 달해 인건비를 빼고도 남는다.”며 “올해도 4개 노선 주민들이 안내양을 원했으나 초기비용이 많이 들어 한 군데만 도입했다.”고 덧붙엿다. 안내양은 70∼80년대의 고풍스러운(?) 유니폼을 입고 일한다. 자주색 빵모자를 쓰고 있고 돈과 승차권을 담은 가죽가방도 옛모습 그대로다. 버스 안에 ’고교얄개’‘바보들의 행진’ 등 1970∼80년대 영화포스터도 붙여 놓았다. 옆면에 ‘추억으로 가는 포구여행’이란 문구가 새겨 있다. 터미널∼안흥구간 안내양인 정화숙씨는 “재미 있다.”면서 “주민들이 떡을 해가다 자기 식구보다 내게 먼저 건네고 집안 대소사도 거의 알고 지낼 정도로 친하다.”고 말했다. 이번 터미널∼만대항간 안내양으로 선발된 김미숙(43)씨도 “어릴적 추억도 있고 버스기사로 일하는 남편과 같은 버스에서 일할 수 있어 지원했다.”면서 “오늘 처음 일해 보니 노인들이 무척 좋아한다.”고 흐뭇해했다. 안내양은 버스 옆면을 ‘탕탕’ 치면서 “오라∼이” 하고 출발신호를 보내고 노인들의 짐도 들어주고 관광객에게 지역 관광지나 행사를 소개한다. 1주일에 2번 정도 안내양버스를 이용한다는 안흥항 주민 김광숙(53)씨는 “안내양이 짐을 들어줘 기분이 좋다.”며 “농어촌이어서 노인들이 많은데 좌석에 앉아서 요금을 내고 부축도 받아 안정감이 든다.”고 전했다. 안내양버스는 안흥항 구간은 경우 하루 4번, 만대항은 3번을 왕복 운행하고 있다.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일한다. 월급은 130여만원이다. 안내양은 서울에서 1961년부터 남자에서 여자로 바뀌면서 65년 전국적으로 1만 7160명에 이르렀으나 82년 시민자율버스가 생기고 자가용 증가로 버스회사가 적자를 내 인력감축에 나서면서 85년 대부분 사라졌다. 태안군 관계자는 “안내양버스를 원하는 마을이 많아 매년 1∼2개 노선을 늘려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태안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07일 TV 하이라이트]

    ●클로즈업(YTN 오후 1시30분) 민주노총이 새 위원장을 뽑았다. 노동현장에서, 길거리에서 민주노총은 파업과 시위를 주도해 왔다. 이번에 선출된 이석행 위원장은 온건파라고 하는데 그래서 기대도 있고 우려도 있다. 이석행 위원장에게 노사정 불참이유와 코오롱, 대림건설 등의 대형 노조 탈퇴 등 민주노총의 현안과 활동방향을 들어본다.   ●살림의 여왕(EBS 오전 11시) 주부들은 과연 전기밥솥과 압력밥솥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있을까? 조리시간을 3분의1로 줄이고 영양 파괴를 최소화시켜주는 장점을 지닌 압력솥. 게다가 전기밥솥을 이용할 때보다 전기를 60∼70%나 절약할 수 있다. 압력솥을 좀 더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관리하는 방법을 알아본다.   ●잘 살아보세(SBS 오후 6시50분) 월수입이 곧 식비로 쓰이는 화목한 영등포 5남매네.11년 동안 임신과 출산을 반복한 아내는 5남매를 돌보다 가계 운영은 뒷전이다. 부부의 천하태평으로 수입은 늘지 않고 빚은 불어나고 아이는 다섯인데 사교육비는 제로다. 미래 계획도 없고, 현재 계획도 없는 마음만 부자인 아빠를 위해 제작팀이 나섰다.   ●거침없이 하이킥(MBC 오후 8시20분) 해미는 식구들에게 다 같이 양평으로 놀러가자고 제안한다. 민용은 빠지려고 해보지만 순재가 무조건 가라고 윽박지르는 바람에 할 수 없이 같이 가기로 한다. 해미는 그런 민용의 모습을 보며 고소해한다. 한편 윤호는 학원에서 찬성이 한 여학생을 괴롭히는 모습을 보고 구해준다.   ●달자의 봄(KBS2 오후 9시55분) 강태봉은 집을 나가 일주일째 돌아오지 않는다. 아무래도 다른 여자와 함께 지내는 것 같아 점점 신경이 쓰이는데, 할머니 이끝순이 달자와 태봉의 동거 사실을 눈치채고 무섭게 추궁한다. 한편 달자에게 내려진 징계가 풀려 마침내 MD팀으로 돌아오게 되지만 상상도 못한 시련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   ●환경스페셜(KBS1 오후 10시) 늪이라고 하면 더럽고 질척한 죽음의 땅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죽어 있는 듯 조용한 습지에는, 놀라운 생명이 약동하고 있다. 습지는 각종 수생식물과 곤충, 어류, 철새들이 살아가는 터전이며, 대지를 촉촉히 적셔주는 젖줄이다. 푸릇푸릇한 봄내음 풍기는 동화 속 그림 같은 우포늪의 아름다운 모습을 만나본다.
  • [03일 TV 하이라이트]

    ●라이프n조이(YTN 오전 11시35분) 하늘과 땅이 맞닿는 지평선의 고장, 전북 김제. 너른 들판의 김제평야를 지나 바다를 바라보며 서 있는 사찰, 망해사를 둘러본다. 산책로를 따라 전망대에 올라 땅과 바다와 하늘이 한점으로 만나는 광경을 감상한다. 모악산 기슭에 위치한 금산사를 찾아 미륵전과 주변의 석탑도 둘러본다.   ●스페이스-공감(EBS 오후 10시) 세상과의 대화, 소통을 갈망하는 음악 ‘오소영’과 ‘이다오’. 이 둘의 공통점은 조동익, 조동진, 장필순 등이 함께했던 포크음악 공동체인 ‘하나뮤직’의 멤버. 조동익의 프로듀싱으로 첫 앨범을 발표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들려주는 음악은 확연히 다르다. 이들의 새로운 곡들을 감상해본다.   ●그것이 알고 싶다〈혼테크의 그늘, 혼수파혼〉(SBS 오후 11시5분) ‘결혼은 투자다.’ 혼수 갈등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혼수에 대한 부담감으로 차라리 혼자 살겠다는 예비신부부터 아예 재혼시장에서 좋은 상대를 만나겠다는 여성들도 있다. 허세와 거품, 사치로 물든 혼수문화의 실태를 들여다 본다.   ●누나(MBC 오후 7시55분) 지나 할머니는 승주 아버지에게 아들 민준기와 형제의 연을 맺어 한 가족처럼 우애있게 지내자고 한다. 갑작스러운 제안에 승주네 식구들은 놀라지만 승주 아버지는 자신도 평생 어머니처럼 모시겠다며 흔쾌히 대답한다. 병원에서 돌아온 수아는 주스 두병을 꺼내 뚜껑을 열고 가루약을 털어넣는다.   ●행복한 여자(KBS2 오후 7시55분) 하영은 준호에게 미국에 남자친구가 있다고 말하고, 두 사람은 기한을 정해 놓은 시한부 연애에 빠져든다. 닥터 고와 함께 교외에 나갔던 선영은 준호와 하영이 함께 모텔에서 나오는 것을 목격한다. 태섭은 세종이와의 마지막 시간을 보내고 입양기관에 보내지만 마음을 잡지 못한다.   ●걸어서 세계 속으로(KBS1 오전 10시) 적도 아래편 1만 7000여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세계 최대의 섬, 인도네시아. 동부에 자리한 아름다운 섬 발리는 세계 모든 여행자들이 한번쯤 여행을 꿈꾸는 휴양지다. 발리는 휴양지, 관광지의 모습 외에도 이 섬만의 독특한 문화를 품고 있는 섬이다. 인도네시아의 작은 보석, 발리로 떠나본다.
  • 탈북 ‘꽃제비’들 둥지 잃는가

    탈북 ‘꽃제비’들 둥지 잃는가

    “봄이 오면 정든 집을 떠나 이사를 가야 한대요. 그러면 남쪽에서 사귄 같은 반 친구들도 못만날 수 있는데….” 2일 오전 9시 경기도 안산시 주택가에 자리잡은 새터민(북한이탈 주민) 청소년 쉼터인 ‘다리 공동체’가 아침부터 분주했다. 겨울 방학을 맞아 오전 10시까지 늦잠을 자던 형민(14·가명·초등 5년)이와 인선(13·가명·여·초등 4년)이가 1시간 일찍 일어나 졸린 눈을 비비며 청소에 나섰다. 마침 인권현장 방문에 나선 안경환 국가인권위원장 등 반가운 손님들이 쉼터를 찾아 오기 때문이다. 안 위원장 등은 다음달 전세 기간이 끝나 새 보금자리를 찾아야 하는 쉼터 가족들의 절박한 고민을 들어 줄 수 있는 사람들. 그동안 도움을 주던 개인 독지가의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새 보금자리를 찾으려면 3억 5000만∼4억원 가량이 필요하다. 다리공동체는 1998년 중국 옌볜(延邊)에 설립된 ‘꽃지모(꽃제비를 지원하는 모임)’에서 출발,2001년 이 곳에 터를 잡았다.‘다리’는 남북을 잇는 교량이 되자는 의미로 이 곳에는 초등학생부터 대학생까지 16명이 생활하고 있다. 쉼터의 ‘마스코트’인 형민이가 이날 손님들에게 이곳 저곳을 안내하며 너스레를 떨어 귀여움을 독차지했다. “저는 전기 자동차를 만드는 과학자가 될래요. 나쁜 자동차에서 배기가스가 많이 나와 지구가 아프대요. 그러면 남쪽은 물론이고 북쪽에 남아 있는 친구들도 아프잖아요.” 형민이는 북에서도 고아원에서 자랐다.3년전 형민이를 친자식이라고 생각한 한 탈북자가 손을 써 중국에서 남쪽으로 데려왔지만 친아들이 아니라 이 곳에 맡겨졌다. 두 번째로 고아가 된 형민이는 다리공동체에 온 뒤에야 비로소 웃음을 되찾았다. 형민이는 영양 상태가 좋지 않아 키가 초등학교 2∼3학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성장호르몬 주사도 맞고 남들보다 밥도 많이 먹지만 쉽게 크지 않았다. 하지만 운동과 노래를 잘하는 데다 얼굴도 잘 생기고 매너가 좋아 여자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다. 이날도 손님들의 주머니에 밤을 한 움큼씩 넣어줄 만큼 애교도 만점이다. 다리공동체의 ‘막둥이’ 인선이도 손님들과의 대화에 끼어 들었다. “저는 꼭 선생님이 돼서 아이들을 돌보고 싶어요. 언젠가 북쪽에 있는 동생도 같이와서 살날이 올 거예요.” ‘함경도 어딘가(?)’에서 할머니, 동생과 살았던 인선이는 4년전 동네 주민들과 함께 두만강을 건넜다. 부모님은 그보다 훨씬 전에 ‘곧 돌아올 게. 동생 잘 돌보고 있어라.’는 말을 남기고 떠난 뒤 소식이 끊겼고 할머니는 돌아가셨다. 인선이는 너무 어려 어쩔 수 없이 떼어놓고 온 두 살 아래 동생이 지금도 꿈자리에 아른거린다며 잠시 눈시울을 적셨다. 인선이는 5학년이 되지만 겨우 한글을 받아쓰기 할 수 있을 정도다. 병원에서 ‘외상후 스트레스장애(PTSD)’ 진단을 받았다. 부모로부터 버림받고 탈북한 뒤 중국에 잠시 머물 때 돌봐주던 동포에게 맞는 등 충격을 받은 탓인지 아직도 혼자 잠을 자지 못한다. 살림살이를 맡고 있는 마석훈 사무국장은 “다음달 전세 기간이 끝나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야 하기 때문에 식구들의 걱정이 크다.”면서 “아이들이 해맑게 클 수 있도록 주변의 도움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다리공동체 (031)408-6317. 글 사진 안산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데스크시각] 검찰 수사의 한계/오승호 사회부장

    요즘처럼 검찰 수사가 지지부진한 적은 드문 것 같다. 사회의 이목을 끄는 굵직한 사건을 수사하고 있지만 어느 것 하나 속시원히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론스타의 외환은행 헐값 매각 의혹 사건 수사가 대표적인 예다. 이에 대한 검찰 수사는 법원과 구속영장 발부를 둘러싸고 갈등만 빚다 끝나는 것 같은 느낌이다. 며칠 전엔 현대차그룹의 ‘계열사 채무탕감 로비 의혹’과 관련해 뇌물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변양호 전 재정경제부 국장이 1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검찰은 항소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만 이길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검찰은 변 전 국장을 론스타 사건의 핵심 인물로 여겼지만 혐의를 밝혀내지 못하자 다른 사건으로 옭아맨 뒤 계속 수사한다는 복안이었다. 그러나 그는 뇌물 사건에서마저 무죄 판결을 받아 론스타 수사는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게 됐다. 이제 검찰이 기댈 곳은 체포영장이 발부된 스티븐 리 론스타코리아 전 대표나 마이클 톰슨 법률고문 정도다. 그런데 이들은 여러차례 소환에 불응한데다 현재 미국에 체류하고 있다. 법원도 외환은행 헐값 매각 로비 의혹 재판에서 이들을 소환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에 마이클 톰슨은 “체포영장을 집행하지 않는 것을 보장해 주면 증인으로 나가겠다.”고 이메일을 보내왔다고 한다. 미국사회에서 범죄 혐의자나 변호인은 한국에선 체포가 곧 구속으로 이어진다고 인식한다. 결국 그동안 검찰에 숱하게 불려다닌 이들의 명예만 심하게 훼손하고 진실은 가려내지 못하는 무리한 수사였다는 지적에 직면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법무부 고위 관계자는 “외환은행 헐값 매각의 피해자가 국가이기 때문에 수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토로했다. 일반 국민이나 기업이 피해자였다면 피해 사실을 적극 알리는 등 수사를 촉구하는 여론의 강도가 더 컸을 것이고, 그러면 수사도 탄력을 받았을 것이란 요지였다. 여론몰이식 수사나 포퓰리즘에 기대던 발상은 아닌지, 헷갈리게 했다. 인권을 소중히 여기면서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수사로 사회정의를 실현해주기를 바라는 국민의 여망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제이유 사건은 더 가관이다. 사건 피해자나 시민들은 정상명 검찰총장이 “사상 최대 사기 사건이 될 수 있다.”고 밝혔을 당시만 해도 큰 기대를 걸었다. 다단계 업체인 제이유에 투자했다가 돈을 날리는 바람에 현재까지 직업군인 출신을 포함해 4명이 투신 자살했다. 그런데다 경제적·정신적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투자자들이 수십만명으로 추정될 정도로 파장이 큰 사건이다. 검찰은 다음주 2차 수사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라고 한다. 구속된 주수도 제이유그룹 회장과 정치인, 전·현직 공직자와의 유착 관계를 속시원히 밝혀낼지 두고 볼 일이다. 사실이 아니겠지만 검찰총장 발언이 나왔을 때 일각에선 론스타 수사가 어려움에 봉착하자 여론을 제이유로 쏠리게 하려는 것이라는 추측도 나왔다. 김흥주 로비의혹 사건 역시 현직 검찰 간부에 대한 수사로 이어지지는 않고 있다. 소환 여부를 질문하면 “대검이 감찰 조사를 하고 있으니 그쪽에 물어보라.”는 짤막한 멘트만 한다고 일선기자들은 전한다.‘제 식구 감싸기’ 논란에 휘말리지 않으려고 그러는지는 몰라도 검찰 수사의 한계를 느끼게 한다. 왜 이렇게 수사가 지지부진한 것일까. 일부 검찰 간부들은 “젊은 후배들이 옛날 같지 않다.”고 빗대기도 한다. 악착같이 달려들지 않는다는 얘기일 게다. 그러나 혹시 영화속의 장면처럼 진실을 파헤치려는 젊은 검사와 이런저런 눈치를 보느라고 이를 말리는 상사와의 갈등 때문인 것은 아닌지 궁금하다. 정치권에선 제이유 사건에 대한 특검 추진도 제기되고 있다. 뒤늦게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치우침 없는 수사를 다짐할 때다. 오승호 사회부장 osh@seoul.co.kr
  • [02일 TV 하이라이트]

    ●신동엽의 있다!없다?(SBS 오후 6시50분) 한 주일 동안 대한민국을 들었다 놨다 한 사진과 동영상 BEST 5를 감상한다. 무려 2m가 넘는 초대형 고려청자가 나타났다. 과연, 그 어떤 청자보다 화려한 빛을 뽐내는 2m 고려청자가 있는지, 없는지 살펴본다. 몸속을 투시하는 종이, 모래 주머니로 만든 바지가 있는지 없는지도 살펴본다.   ●있을때 잘해(MBC 오전 7시50분) 장을 봐서 집에 들른 진우모가 금방 자리를 뜨자, 순애는 뭔지 모르게 불편한 감정을 느낀다. 오랜만에 세 식구 외식을 하려다 좌절되자 은수는 낙심하고, 승현은 은수의 마음을 읽지 못한 채 순애와 아버지만 챙긴다. 한편 정화와 유진은 각각 환이 민박집에서 사라졌다는 소식을 접하게 된다.   ●생방송 60분-부모(EBS 오전 10시) 아이를 키우면서 몸이 아프거나 힘들면 친정엄마에게 아이를 맡기거나, 도움 받기도 한다. 하지만 친정엄마와 양육방법이 다르면 그것이 화근이 되어 다투기 일쑤다. 엄마보다 외할머니를 더 찾는 딸아이. 그것 때문에 질투 아닌 질투를 느끼고, 친정엄마와 자꾸 다투게 되는 강태숙씨의 사연을 만나본다.   ●사랑과 전쟁(KBS2 오후 11시5분) 라디오에 사연을 써 보낸 현숙. 그런데 당첨이 되어 세탁기를 경품으로 받게 된다. 우연히 경품 맛을 본 현숙은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경품으로 살림 장만하기’에 나서게 되고, 없는 얘기까지 지어내며 ‘경품 테크’에 열을 올리게 된다. 급기야 경품계의 달인들과 어울려 경품 사기행각까지 저지르는데….   ●사이언스+〈이제 대한민국도 종자선진국이다〉(YTN 오후 1시40분) `종자 한 알이 세상을 바꾼다.´는 말처럼 세계는 지금 종자전쟁 중이다. 종자가 도대체 무엇이기에 전쟁이란 말까지 등장한 것일까? 종자에 우리 미래가 달렸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나라도 수입농산물 개방시대에 발맞춰 종자를 개발·보호하는 데 혼신의 힘을 쏟고 있다.   ●하늘만큼 땅만큼(KBS1 오후 8시25분) 은주는 가족이 외식을 하기로 했다는 약속을 내세워 시댁에서 빠져나온다. 하지만 정작 혜경에게는 시댁 핑계를 대며 외식 장소에 못 가겠다고 말해 상현의 입장을 곤란하게 만든다. 한편 목욕탕에서 갓 나온 모습으로 종훈을 본 명주는 얼른 피하지만 종훈에게 들키고, 두 사람은 함께 자장면을 먹는다.
  • 현대차→도요타, 기아차→혼다 차별화 시동

    ‘현대차는 도요타, 기아차는 혼다’. 현대·기아차그룹이 이같은 차별화 전략을 공표함에 따라 구체적으로 일본 도요타와 혼다차가 어떤 차별성을 갖는지 궁금증이 커지고 있다. 한 집안 식구이면서도 현대·기아차간의 시장 잠식이 치열한 만큼 브랜드 차별화를 적극 모색키로 한 데 대해 일단 시장은 긍정적인 평가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기아차의 방향을 혼다로 설정한 데 대해 갸우뚱하는 시선도 있다. 그룹 내부에서조차 명확한 개념 정립이 없어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현대차=도요타, 기아차=혼다의 의미는? 29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현대차 임원들은 공·사석에서 “앞으로 현대차는 도요타, 기아차는 혼다로 간다.”는 말을 부쩍 자주 한다. 박동욱 재무관리실장도 지난 25일 기업설명회(IR)에서 “현대차의 정체성은 도요타, 기아차는 혼다에 가깝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업계에서 흔히 얘기되는 도요타의 이미지는 ‘다품종 대량생산’이다. 대중차 캠리에서부터 고급 렉서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차종을 갖추고 있다. 현대차의 쏘나타처럼 쉽고 편하게 탈 수 있는 차의 이미지가 강하다. 반면 혼다는 ‘양’보다는 ‘질’을 추구한다. 모든 차종(풀 라인업)을 갖추기보다는 시빅이나 어코드 등 정예차종으로 승부한다. 따라서 차종은 많지 않아도 판매량은 많다. 대당 수익성이 높다는 얘기다. 남이 만든 차를 무작정 따라가지도 않는다.‘마니아층’이 두껍다. 혼다 앞에 흔히 ‘기술’ 또는 ‘효율성’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것은 그래서다. ●혼다,“기아차와 우리는 성격 달라” 흥국증권 송상훈 애널리스트는 “현대차가 기아차를 인수한 뒤 플랫폼을 공유하면서 기존의 현대·기아만의 이미지가 많이 희석됐다.”면서 “특히 현대차와 점점 닮아가는 기아차의 타격이 컸다.”고 지적했다. 그는 “두 차의 이미지를 적극 차별화시켜 나갈 필요가 있다.”면서 “현대차가 도요타를 추구하는 것은 공감이 가지만 기아차를 혼다와 연결시키는 것은 잘 맞지 않는다.”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기아차 일각에서도 선뜻 공감하지 않는 분위기다. 혼다코리아 박종석 자동차사업부장은 “현대·기아차 그룹이 어떤 의미로 혼다를 언급했는지 모르겠지만 기업의 경영철학이나 상품(차) 구성에 있어 기아차와 혼다는 성격이 확연히 다르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현대차의 한 임원은 “혼다가 젊고 역동적이라면 도요타는 좀 더 나이가 있고 성공한 사람들이 타는 차”라며 “그런 점에서 기아차와 현대차의 방향으로 잡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룹 내부에서도 명확한 차별성을 제시하지 못한다.IR에 나선 박 실장조차 “그냥 ‘브랜드 전략’ 책자를 보고 말한 것”이라고 할 정도다. 송 애널리스트는 “원래 기아차는 닛산을 추구했었는데 닛산이 프랑스 르노그룹에 흡수되면서 혼다로 말을 바꾼 것 같다.”며 “중요한 것은 앞으로 현대·기아차의 시장 잠식이 더 심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디자인을 차별화시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안미현기자 hyun@ seoul.co.kr
  • [신연숙 대기자의 금요초대석] 군의관 출신 첫 3성 장군 김록권 의무사령관

    [신연숙 대기자의 금요초대석] 군의관 출신 첫 3성 장군 김록권 의무사령관

    “어머니 앞으론 저를 장군님이라 불러주세요.”천신만고의 경쟁 끝에 별을 단 아들이 감격에 겨워 어머니께 했다는 얘기라고 한다. 별을 다는 순간부터 신분은 장관급 장교가 된다. 별을 달기 전보다 대우가 몇십가지는 달라진다고도 한다. 김록권(53) 중장. 별이 세개인 의무사령관이다. 지난해 12월1일 의무병과에서는 최초로 3성 장군에 올라 관심을 끈 인물. 고 노충국씨 위암 사망사건 등 줄이은 군의료 사건으로 여론이 들끓던 뒤라 3성장군의 탄생은 정부의 강력한 군의무 개선 의지로 읽혔다. 그러나 그는 군 안팎에서 철저한 업무는 물론 독특한 개인적 소신과 실천으로 더 많은 화제를 뿌리고 있다. 경기도 분당의 육군 수도병원 집무실에서 만난 김 사령관은 소문대로 그가 왜 창군 이래 의무병과로는 첫 3성장군이 됐는가를 웅변했다. 그의 요즘을 요약한다면 두 가지 전도사를 하고 있다고 말해야 할 것 같다. 하나는 군 의료에서 가장 취약한 고급인력 확보를 위해 군의관 직의 매력을 전하는 ‘군의관 전도사’. 또하나는 사생활 측면에서 문자 그대로 자신의 신앙에 충실한 종교적 전도사다. 먼저 군의관 관련 질문부터 해보았다. -현재 군 의료인력은 임상경험이 거의 없는 단기 군의관이 대부분입니다. 이는 병사들이 거의 실습 수준의 서비스를 받고 있는 것 아닙니까. “단기 군의관이라고 해도 의사 자격을 가지고, 소정의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임상경험이 풍부한 전문인력이 부족한 것은 사실입니다. 현재 직업적으로 일하는 장기 군의관은 전체 군의관 중 3%에 불과합니다. 그것도 정원의 25%밖에 채우고 있질 못합니다. 국·공립 병원의 58% 수준에 머물고 있는 보수체계가 문제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고급인력을 군에 오라고 할 수 있습니까. “‘군의무발전추진계획’에 따라 대우를 개선하려고 합니다. 올해 ‘군의관 임용 등에 대한 특별법’을 제정해서 2008년까지는 국·공립병원과 동등한 수준으로 대우를 높이겠습니다. 또 우수한 인력 선점을 위해 국방 의·치의학전문대학원을 운영할 계획입니다. 이미 각 의학대학원에 정원 외 40명을 더 뽑아 미래의 군의관으로 위탁교육한다는 데 합의가 돼가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의사로서 군의관으로 일하는 것은 블루오션이라고 생각합니다. 경제적으로 조금 부족할 뿐이지 일반사회에 못지 않은 지위와 명예, 보람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지요. 특히 군에서는 장군으로 승진할 수도 있고, 대규모 조직을 관리할 수 있는 기법을 터득할 수 있습니다. 또한 국가와 국민 전체를 생각하면서 일하는 데서 느끼는 보람도 특별합니다.” 군의관이라고 누구나 다 장군이 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했더니,“현재도 정원의 75%가 부족한데 무슨 큰 걱정이냐.”며 내년부터는 의무병과의 장군 숫자가 현행 4명에서 10명으로 늘어나게 돼 문호는 더 넓어지는 것이라고 정색을 한다. 사실 김사령관은 앉은 자리에서 계급만 3성장군이 된 것이 아니다.‘군의무발전 추진계획’에 따라 앞으로 의무사령관의 역할 자체가 달라진다. 지금까지 의무사령관은 16개 군병원을 관장하는 ‘의료원장’격에 불과했다. 반면 병사들의 의료 불만이 주로 발생하는 야전은 각 군에 속해 의무사령관의 소관 밖에 있었다. 이번 승급은 다원화된 의무지휘 체계를 단일화해 효율성을 높이자는 취지에서 이뤄졌다. 이에 따라 내년부터는 의무사령관이 국방부 의무본부장이 돼 육·해·공군 의무를 통합 관장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의무병과 장군 숫자도 6명 늘게 됐다. -전반적인 군 감축추세와 안맞는 것 아닙니까. 저항도 있을텐데요. “일단 군의무를 단일화하는 것은 미국만 예외지 세계적 추세입니다. 또한 의무 강화는 국민적 요구입니다. 국가가 무기 획득에만 치중하고 가장 중요한 무기체계인 병사의 건강에는 소홀하다면 계산이 잘못된 것이지요. 그러나 병과가 커지는 데 대한 어느 정도 역풍은 각오하고 있습니다.” 김 사령관은 이 대목에서 언론의 보도에 대해 불만을 토로했다.‘군의무발전계획’의 핵심은 병사의 의료접근권 보장인데 언론은 3성장군 배출이나, 국방의학대학원 신설 등 조직적 측면만을 주목한다는 것이다. 앞으로 군 의무체계가 단일화되면 2500명의 군의관을 효율적으로 배치해 1차의료를 자유롭게 받고, 후송체계를 통해 군병원에서 고급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계획을 짜고 있다. 군인복무기본법에 의료접근권 보장도 명기하도록 했다. 과도기 대책으로 민간서비스 연계, 군야간병원 운영 등도 시행에 들어갔다. -군 의무발전 추진계획은 올해부터 7년간 총 1조 3000억원이 소요되는데 첫해 예산 1200억원은 너무 적은 것 아닙니까. “올해는 제도 개선과 장비 등에 역점을 두고 있으므로 적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군 병원의 기초진단 및 검사장비 보강, 중형 구급차 및 환자수송 전용버스 구매, 전역전 건강 검진물자확보, 전방사단 의무시설 환경개선 등이 우선 착수됩니다. 의무발전계획은 어떻게든 실현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우선 올해 군병원에 대해 신임평가를 받겠습니다. 민간병원들처럼 보건복지부와 병원협회 주관의 병원평가를 받는 겁니다. 내부에서는 반대가 많지만 잘 나오면 잘나오는 대로, 못나오면 못나오는 대로 큰 자극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종교 이야기는 사적인 주제라 공개적으로 거론할 부분은 못된다. 그러나 김사령관의 경우 군 투신 자체가 선교 목적에서 비롯되었다기에 질문을 던져보았다. -군생활 중 종교를 갖게 됐다는데 무슨 계기가 있었습니까. “의대 졸업하고 결혼한 뒤 5년 동안 아내를 시집살이 시켰습니다. 정형외과 전문의를 따면서 처음 살림을 나갔는데 그동안 고생을 보상할 길은 이것 밖에 없다 싶어 아내가 다니는 교회에 나가게 된 겁니다.” 장기 군의관으로 눌러앉게 된 종교적 개인체험은 공개하기 뭣하지만, 종교적 신념은 그 후 군과 가정생활을 끌어가는 버팀목이 돼 주었다. 무의촌 진료를 나가 주민들과 옥수수를 쪄 먹으며 대화를 나누던 때나 승진에 누락돼 낙심했을 때, 이런 신념이 함께 있었다. 무엇보다 서울 강북에 살며 사교육도 제대로 못받았던 자녀들이 바르게 커준 것도 이런 실천적 삶의 영향이 컸던 듯하다. 아내는 지금껏 매달 월급날이면 아이들을 불러 아버지에게 한달 동안 수고하셨다며 절을 하도록 하고 자신도 함께 인사를 한다. 김 사령관도 술담배는 전혀 안하며 주말에도 골프모임보다는 가족을 선택할 정도로 가정적이다. 그렇게 자란 장남이 지금 신학대학 4학년생이다. 김 사령관은 주변을 밝게 하는 얼굴을 가졌다. 중년 이후의 얼굴은 그의 삶을 말한다고 한다. 그의 긍정적 힘이 자식 군대 보낸 부모들의 걱정을 가시게 해 줄 수 있을지 궁금하다 yshin@seoul.co.kr ■ 김록권이 걸어온길 1954년 서울에서 태어나 경기중고등학교와 가톨릭대 의대를 졸업했다.6남매 중 다섯째로 대식구였지만 가정형편은 넉넉지 못했다. 부친은 전당포를 자주 들락거릴 정도였다. 의대생일 때 형과 누나까지 집안에 대학생이 셋이었다. 부친이 학자금 대출을 위해 여기저기 보증인을 찾아다니는 것을 보고 뭔가 다른 방법을 찾아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군 위탁 장학생’ 제도였다. 덕분에 본과 1학년 때부터 군 장학금을 받으며 공부할 수 있었고, 졸업 후 입대해 7년을 군의관으로 근무했다. 의무 복무기간을 지난 후엔 전역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직업 군의관의 길을 택했다. 이유는 군복무 중 갖게 된 신앙 때문이었다. 군 선교를 필생의 소명으로 받아들이게 된 ‘개인적인 계기’가 있었다.1990년 국군 현리병원 원장을 시작으로 창동, 부산, 서울지구, 대전 등 전국의 국군병원에서 근무했다. 가는 근무지마다 화장실을 짓고, 교회를 세웠다. 주말엔 무의촌 진료, 여름휴가 땐 해외봉사활동을 다녔다. 국군군의학교장, 육군본부 의무감을 거쳐 2005년 11월 의무사령부 사령관에 취임했다. 사령관 취임 다음해인 2006년 1월 소장으로 진급했고, 같은 해 12월1일 중장으로 진급을 거듭했다. 진급속도도 초고속이었지만, 의무병과 사상 최초의 3성 장군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얼핏 순탄하게 출세가도를 달려온 것 같지만 시련도 있었다. 이른바 잘나가는 보직을 벗어나 갑자기 외곽으로 돌려졌고, 동기생보다 진급이 뒤처지기 시작했다. 장성 진급이 2년이나 늦어 이젠 옷을 벗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상황까지 몰렸다. 갈등하기도 했지만 ‘소명의식’으로 버텼다. 그러나 이 시기에 군 최초로 ‘군의무비전 2015’를 입안한 것이 전화위복이 됐다. 이를 바탕으로 ‘군의무비전 2020’을 세웠고, 고 노충국씨 위암 사망 사건으로 온나라가 들끓을 때 의무사령관에 올라 ‘군의무발전 추진계획’을 신속하게 내놓을 수 있었다.
  • [김형기의 영화, 99가지 모놀로그] 검은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사랑의 결정체를 결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많다. 그 이유야 나무랄 일은 아니지만 일종의 통과의례거나 사회적 일방통행의 형식적이고 필요충분조건의 절대적 요소라고들 믿는 모양이다. 그 형식적 의미를 나름의 잣대로 나누어 논쟁거리로 만들자는 것은 아니고, 결혼의 의미에 대해서 한번쯤 곱씹고 가 봐도 나쁘진 않을 듯. 평생을 두고 나만을 사랑하고, 나만이 사랑할 단 한 사람을 원하고 바라지만 그것이 곧 결혼은 아니다. 하지만 사랑을 믿는다.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될 때까지 온전히 사랑의 감정을 유지하는 것은 무리일 수 있으나 최소한 지키고 가꾸려 노력하는 정도에 따라 영원해질 가능성은 많아진다. 사랑의 맹세, 그 약속을 당신은 얼마나 지키고 있는가? 사랑은 기억에 의해 기록되는 것. 사랑도 속도전인 시대에 ‘추억’은 서로가 사랑했다는 유일한 증거로 남는다.‘첫 키스만 50번째(50 First Dates,2004년)’는 사랑하는 여자가 매일매일 새롭게 자신과 사랑에 빠지도록 만들어야 하는 남자의 눈물겨운 노력을 담고 있는 독특한 로맨틱 코미디다. 헨리는 기억을 잃고 반복된 하루를 사는 연인 루시에게 기억이 사라진 이후의 일들을 비디오 테이프로 보여주며 그녀가 새로운 하루를 살고 미래를 채워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동시에 우리들 모두에게 사랑을 기억하기보다는 매일 다시 새롭게 사랑을 시작하면 되는 거라고 달콤한 목소리로 속삭인다. 웃음이 끊이지 않는 툴라네 식구들의 결혼 방해 작전!‘나의 그리스식 웨딩(My Big Fat Greek Wedding,2002년)’은 막내딸의 결혼을 막기 위해 온 가족이 벌이는 코미디. 유쾌한 에피소드와 조연들의 코믹한 캐릭터는 영화적 재미를 배가시키고, 결혼을 지상 과제로 생각하는 가족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여러 광경은 저절로 웃게 하는 매력을 선사한다. 영화 속의 그리스 가족들을 보고 있노라면 우리 가정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아 놀라게 된다. 그리고 코믹한 상황 속에서도 이상적 사랑과 현실적 결혼 사이에서 갈등을 해결해가는 가슴 찡한 가족애는 이 영화의 최대 미덕이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 사랑을 한다. 완성은 스스로의 감정을 유지하고 지키려 노력하는 것. 그것이 누군가는 결혼일 것이고 누군가는 마음의 다짐이어도 덜하거나 모자라지 않다. 일부일처제가 신화가 되어버렸다는 주장에 대해선 안타깝고 씁쓸하지만 결혼제도를 사랑의 완성으로 보는 견해에는 여전히 부정적이다. 자신의 마음속에 안착한 사랑을 지키기 위한 법적 구속력 없이도 책임과 노력의 여지는 무한으로 열려 있다. 처음으로 눈을 마주치고 방긋 웃던 모습을 기억하자. 서로에게 가슴 설레며 마주잡던 손끝의 떨림을 잊지 말자. 혼수와 사회적 지휘 등의 조건을 따지는, 지나가는 개도 안 물어갈 허례허식을 경계하자. 그리고 처음의 마음, 그 순간의 약속을 되새기자. 이상을 좇는 비현실주의자란 비판 따윈 아랑곳 하지 말자. 사랑의 완성은 내 마음의 약속에 달린 거다. 당신의 가슴도 사랑으로 물들 수 있다. 시나리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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