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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12)日·淸도 인정한 역관시인 홍세태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12)日·淸도 인정한 역관시인 홍세태

    인왕산 호걸 임준원의 집에 가장 오래 얹혀 살았던 위항시인은 홍세태(洪世泰·1653∼1725)이다. 중인들은 대대로 같은 직업을 물려받았다. 그는 할아버지와 아버지, 아우들까지 무인으로 활동하던 집안에 태어나 역관이 되었다.23세에 역과에 합격하고 30세에 통신사를 따라 일본에 가면서 문단에 이름이 알려졌다. 이에쓰나(家綱)가 1680년에 죽고 그의 아들 쓰나요시(綱吉)가 쇼군(將軍)직을 계승한 뒤에, 통신사를 보내 축하해 달라고 조선에 청하였다. 조정에서는 경상도관찰사 윤지완을 정사에, 홍문관 교리 이언강을 부사에 임명하여 474명의 사절단을 구성했다. 일본어 소통에 필요한 역관은 물론이고, 글을 짓는 제술관, 글씨를 잘 쓰는 사자관(寫字官), 그림을 잘 그리는 화원(畵員), 음악을 맡은 전악(典樂), 치료를 맡은 양의(良醫), 마술 곡예를 보여주는 마상재(馬上才)와 광대에 이르기까지 여러 종류의 전문가들이 총동원되었다. ●에도시민들 비싼 자릿세 내고 통신사행렬 구경 정사나 부사는 자제군관(子弟軍官)이라는 명목으로 개인 수행원을 데려갈 수 있었다. 이언강은 홍세태를 데리고 갔다. 홍세태는 일본어 역관이 아니었으므로, 통역이 아니라 일본 구경을 하기 위해 따라간 것이다. 개인적인 자격으로는 일본에 갈 수 없어 일본을 구경하려면 사신의 수행원 신분을 얻어야 했다. 통신사 일행이 귀국한 뒤에 사신과 역관들에게 상을 주었지만, 그는 공식적으로 한 일이 없어 상을 받지 못했다. 대신 조선과는 아주 다른 일본의 산천문물을 구경하고 시인들에게 시를 지어주며 국제적으로 평가받았다. 중국과 외교를 단절하고 있었던 에도막부는 조선을 통해 중국 중심의 세계 문물을 받아들였다. 쇼군 일생의 가장 성대한 의식인 조선통신사 행렬을 백성들에게 보여주며 권위를 확고히 했다. 무사 중심의 다이묘(大名) 행렬은 자주 구경했지만, 조선통신사 행렬은 쇼군이 즉위할 때만 구경할 수 있었다. 에도(江戶·지금의 도쿄) 시민들은 비싼 자릿세를 지불하고 음식을 먹어가며 질서있게 줄지어 기다렸다. 일본의 수행원까지 포함한 몇 천명의 행렬이 중심가를 지나려면 한나절이나 걸렸다. 1636년의 행렬을 구경한 네덜란드 상관장 니콜라스 쿠케바켈은 그날 일기에 “이 행렬이 전부 지나가는 데 약 5시간이나 걸렸다.”고 기록했다. 조선에서는 중인을 하찮게 여겼지만, 일본이나 중국에서는 오히려 말이 통하는 역관을 더 친근하게 대했다. 쉴 틈 없이 손님들이 찾아와 시를 지어 달라고 청했다. 몇 백리 멀리서 음식을 싸들고 며칠 걸려 찾아온 손님들이기에 거절할 수도 없었다. ●그림에도 소질… 조선 선진문물 전도사 역할도 홍세태는 시만 지어준 것이 아니라 그림도 그려 주었다. 조선에 없는 그의 그림이 일본에 전하는 것도 조선 문화를 얻어보고 싶어 했던 일본인들의 염원 덕분이다. 첫기착지인 쓰시마부터 홍세태는 인기가 대단했다. 수석역관 홍우재가 기록한 ‘동사일록(東 日錄)’ 6월28일자에서 “서승(書僧) 조삼(朝三)과 진사 성완, 진사 이재령, 첨정 홍세태가 반나절 동안 시를 주고받았다.”고 적었다. 사무라이가 지배하던 일본의 지식층은 승려와 의원, 그리고 얼마 안 되는 유관(儒官)이었다. 조삼이라는 승려는 쓰시마에서 에도까지 안내하며 틈만 나면 홍세태와 시를 지었다.9월1일 일기에는 에도에서 받은 윤필료(潤筆料) 가운데 홍세태 몫으로 ‘30금’이 적혀 있다. 화원 함재린의 윤필료도 30금이었으니, 홍세태가 일본인들에게 시를 지어주고 받은 원고료가 화원의 그림값과 같았던 셈이다. 정내교는 홍세태가 일본에서 활약한 모습을 묘지명에서 이렇게 묘사했다. “섬나라 오랑캐들이 종이나 비단을 가지고 와서 시와 글씨를 얻어 갔다. 그가 지나가는 곳마다 그들이 담처럼 죽 늘어서면, 그는 말에 기대선 채로 마치 비바람이라도 치는 것처럼 써갈겨 댔다. 그의 글을 얻은 자들은 모두 깊이 간직하여 보배로 삼았는데, 심지어는 문에다 그의 모습을 그리는 자까지 있었다.” 에도에서 공식적인 행사를 마치고 돌아갈 때에는 일정에 쫓기지 않아 더 많은 손님들을 만났다. 쓰시마에서 윤필료를 청산할 때에 홍세태는 많은 돈을 받았을 것이다.1711년 통신사 때에 일본측 접반 책임자였던 아라이 하쿠세키(新井白石)는 정사 조태억과 환담하면서 홍세태의 안부를 물었다. 30년이 지난 뒤에도 기억할 정도로 깊은 인상을 남겼던 것이다. 그러나 조선에 돌아온 홍세태는 다시 천대를 받으며 가난한 생활을 했다. 역관시인 홍세태의 이름은 일본뿐만 아니라 중국에도 널리 알려졌다. 1695년에 청나라 한림학사 상수(尙壽)가 사신으로 왔다. 그는 ‘동문선(東文選)’과 ‘난설헌집(蘭雪軒集)’, 그리고 최치원(崔致遠)·김생(金生)·안평대군의 글씨를 구해 달라고 했다. 아울러 홍세태에게 시를 짓게 하여 가지고 갔다. ‘연려실기술’ ‘사대전고(事大典故)’에 실린 이 기록은 중국 사신이 우리나라 최고의 작품집, 명필의 필적과 홍세태의 시를 같은 수준에 놓고 보았음을 뜻한다. 청나라에서 온 사신들은 으레 뇌물을 요구했으며, 요구하지 않더라도 우리 조정에서 온갖 방법으로 뇌물을 주었다. 그런데 1723년에 사신으로 왔던 도란(圖蘭) 일행은 아무런 뇌물도 요구하지 않고, 작은 부채 하나를 내놓으며 시 한 편만 지어 달라고 하였다. ●문집 출판비 은전 70냥 베갯속 저축 경종 3년 7월11일 실록에 의하면 “시인 홍세태로 하여금 율시 1수를 지어주게 하였다.(이들이 뇌물을 받지 않고 돌아간 적은)근래에 없었다.”고 했다. 우리 조정에서도 홍세태를 국제적인 시인으로 인정했음을 알 수 있다. 이때 경종은 몸에 종기가 나서 왕세제(王世弟·뒷날의 영조)가 여러 행사를 대신 치렀다. 영조는 30여년 뒤에 홍세태에 관해 예조판서 홍상한에게 이렇게 말했다. “홍세태는 노예라는 이름이 있었으나 문장이 고귀하다고 내가 어렸을 때에 그 이름을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 사람을 시켜 그의 시를 받아오게 하였다. 그러나 내가 일찍이 몸을 삼가고 조심하여 여항(閭巷)의 사람들과 교제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얼굴을 알지는 못한다.”(영조실록 34년-1758 10월7일 기록) 영조가 왕세제 시절에 몸을 삼가고 조심했다는 것은 장희빈의 아들인 이복형 경종의 후사가 없어 왕세제로 책봉돼 남인과 노론, 소론의 삼각관계 속에서 처신을 조심했다는 뜻이다. 또한 홍세태의 ‘노예’라는 신분 때문에 만나기를 꺼렸다는 뜻이기도 하다. 왕권이 확고해진 뒤에야 홍세태를 기억했지만, 이미 그는 세상을 떠난 뒤였다. 그로부터 12년이 더 지난 뒤에야 홍세태의 아들 홍서광을 불러보고 벼슬을 주었다. 홍세태는 자신의 작품에 자부심이 컸다. 문집의 머리말을 미리 써놓을 정도였다. 간행할 비용까지 미리 저축해 두었다. 역시 가난하게 살았던 서얼 시인 이덕무는 그러한 사실을 마음 아파하며 ‘이목구심서’에 이렇게 적었다. “홍세태가 늙은 뒤에 자신의 시를 손질하고, 베갯속에 백은(白銀) 70냥을 저축해 두었다. 여러 문하생들에게 자랑삼아 보여주면서 ‘이것은 훗날 내 문집을 발간할 자본이니, 너희들은 알고 있으라.’하였다. 아! 문인들이 명예를 좋아함이 예부터 이와 같았다. 지금 사람들이 비록 그의 시를 익숙하게 낭송하지만, 유하는 이미 죽어 그의 귀가 썩었으니 어찌 그 소리를 들을 수 있겠는가.(줄임)어찌하여 살아 있을 적에 은전 70냥으로 돼지고기와 좋은 술을 사서 70일 동안 즐기면서 일생 동안 주린 창자나 채우지 않았는가.” ●뛰어난 재주로도 신분 벽 못넘어 이덕무의 집에서 좋은 물건이라곤 ‘맹자’뿐이었는데, 굶주림을 견딜 수 없어 200전에 팔아 식구들과 밥을 지어 먹었다. 친구 이서구에게 편지를 보내 “맹자가 밥을 지어 나를 먹였다.”고 자랑한 이덕무였기에 은전 70냥으로 시집을 출판하는 것보다 고기를 먹고 술을 마시며 70일 동안 즐기는 게 낫지 않으냐고 말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어찌 이덕무의 속마음이었으랴. 서얼과 중인의 벽을 넘어, 재주와 능력이 있으면 인정받고 활동할 수 있는 사회를 염원한 것이 아니었을까. 홍세태가 고기와 술을 먹지 않고 시집을 출판한 덕분에 우리는 그의 시를 읽고 그 시대의 아픔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허경진 연세대 국문과 교수
  • [사설] 검사 거짓진술 강요가 경징계감인가

    대검찰청 감찰위원회가 그제 제이유 사건 피의자에게 거짓진술을 강요한 의혹을 받고 있는 전 서울 동부지검 검사와 부장검사에게 각각 정직 3개월과 견책의 징계를 내리도록 권고했다. 감찰위의 권고는 예상했던 징계 수위에 비해 가볍다는 게 우리의 시각이다. 민간위원 7명으로 구성된 감찰위에서도 수사방법의 부적절성, 사건의 사회적 여파, 검찰신뢰를 추락시킨 점에 비춰 중징계를 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고 한다. 그러나 검사가 피의자에게 거짓진술을 요구한 것으로 보이지 않고, 피의자의 녹음사실을 모르는 상태였다는 점을 참작해야 한다는 반대의견이 고려돼 정직이라는 권고를 내렸다. 지난달 28일의 특별감찰에서 검찰이 밝혔듯이 이 검사가 허위자백을 강요했다고 판단할 소지가 충분히 있었고, 여차하면 다른 수사를 통해 피의자를 처벌하겠다고 강압한 사실이 드러났다. 뿐만 아니라 수사에 협력하면 장래에 드러날 범죄혐의에 관계없이 피의자를 기소하지 않겠다고 약속하거나, 특정인을 겨냥한 짜맞추기 수사 의혹도 일정부분 밝혀진 상태였다. 그렇다면 권고 의견은 사건의 중대성을 감안해 정직이 아니라 면직이 옳다고 본다. 법무무 징계위원회의 최종결정이라는 절차가 남아있다. 검찰이 이례적으로 대국민사과를 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한 사건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수사체계나 관행의 구조적인 문제를 살피고 근본적인 개선을 해야 한다는 국민들의 주문을 법무부는 잘 알 것이다. 권고는 권고일 뿐이다. 제식구를 감싸는 미흡한 결정으로는 국민 불신만 더할 것이다.
  • [길섶에서] 추사 회상/최태환 수석논설위원

    채제공이 걸음을 멈췄다. 대문 앞의 범상찮은 글씨 때문이었다. 집안으로 들어섰다. 어린 추사의 글씨였다. 독특한 개성과 타협하기 어려운 힘을 보았다. 커서 조정에 나가면 화를 입지 않을까 걱정했다고 한다.1990년대 어느 평론가가 그랬다. 조선후기 파당분포로 볼 때, 채제공의 김씨 집안 방문은 사건이라고. 재야의 문익환선생이 세도가인 박철언씨를 찾은 파격에 비유했다. 추사는 그랬다. 출사후 10년 가까이 제주에서 유배생활을 했다. 세한도 등 숱한 작품이 그곳에서 탄생했다. 그의 작품전은 챙겨보는 편이다. 볼수록 가슴과 눈이 커진다. 수많은 작품이 전하는 건 모두의 행복이다. 위작시비 작품이 적지 않지만…. 위작논란의 ‘명선’(茗禪)이 진짜라는 주장이 나왔다. 명선이 추사와 교분을 나눈 초의선사의 아호라는 사실을 확인한 게, 진품 주장의 근거다. 추사와 교유했던 이는 초의와 소치 허유 정도다. 식구들과의 서신도 남아 있다. 쇠약해진 자신을 걱정하고, 음식 보내라는 글이 많다. 한꺼풀 벗겨보면 그도 연약한 인간이었다. 최태환 수석논설위원
  • 현대차 그랜저 2.4 라이벌은?

    현대차 그랜저 2.4 라이벌은?

    ‘SM7이냐, 쏘나타냐.’ 15일 자동차업계에 따르면 현대차가 전날 내놓은 그랜저 2.4의 경쟁모델을 놓고 화제가 분분하다. 현대차는 르노삼성차의 SM7 2.3을 노린다. 하지만 오히려 ‘집안 식구’인 쏘나타 2.4를 잠식할 것이라는 관측도 적지 않다. 현대차는 2.7(2700㏄)로 시작되던 그랜저 모델에 더 작은 2.4(공식명칭 Q240)를 추가했다.2.4는 2400㏄를 의미한다. 차값은 기본형 2513만원, 딜럭스 2681만원이다. 지난해 1만 4000대가 팔린 SM7 2.3 시장을 겨냥해 내놓은 상품이다. SM7(2.3,3.5)의 판매량 80%는 2.3 모델이다. 차값은 2630만원. 가격만 놓고 보면 그랜저 2.4가 다소 경쟁력이 있다. 하지만 6기통인 SM7 2.3과 달리 그랜저 2.4는 4기통이다. 힘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그랜저 2.4의 동생격인 쏘나타 2.4는 일단 배기량이 같다. 엔진(세타)도 똑같다. 차값(2552만원)도 별 차이가 없다. 현대차측은 “쏘나타 2.4의 판매량(지난해 1468대)이 미미해 SM7 2.3의 타격이 더 클 것”이라고 자신했다. 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3% 퇴출… “가족도 밤잠 설쳐”

    서울시 각 실·이 15일 우여곡절 끝에 ‘퇴출 후보 3%’를 일단 제출했지만 시 안팎에서는 ‘선정 후’의 진행과정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서울시는 이날 오후 6시까지 시의회를 포함한 모든 실·국에서 3% 퇴출 대상자(240여명 추정) 명단을 제출했다고 밝혔다. 이들의 명단은 전보를 자원한 직원과 장기근속에 따른 의무전보 대상자 등과 섞여서 제출했다. 이들은 모두 드래프트(직원 지명권제도) 시장에서 각 실·국에서 지명을 받아 소속부서를 찾아가야 하며, 지명을 받지 못한 공무원은 현장시정추진반에 배속돼 단속업무 등을 맡게 된다. 현장시정추진반에서도 업무능력을 인정받지 못하면 퇴출될 수 있다. 이처럼 공무원 퇴출제에 대한 찬반양론이 분분한 가운데 서초구 박성중 구청장은 6∼7월 인사 때 하위직 공무원으로부터 ‘일 안 하는’ 4,5급 국·과장의 명단을 받아 소명 기회를 준 뒤 문제가 있을 경우 주차단속 등에 투입하겠다고 밝혀 관심을 모았다.●가족까지 나서서 전망 묻기도 공무원 가족도 퇴출후보 확정에 당사자 못지않은 관심을 보였다. 한 공무원 가족은 본사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와 “퇴출자 선출에 부서별 예외는 없느냐.”면서 “앞으로 이들은 어떻게 되느냐.”고 물었다. 그는 이어 “시장 입장에서는 일을 소신껏 추진한다고 하지만 당사자는 물론 집안 식구들까지 밤잠을 못잔다.”고 하소연했다.●간부들 후유증 우려도 이번 명단 확정은 과장들이 총대를 메고 1차 명단을 추린 뒤 실·국장들이 회의를 통해 최종확정했다.퇴출 명단 확정을 놓고 14,15일 이틀 사이에 5차례 회의를 했다는 한 과장은 “고심 끝에 나름대로 객관적으로 평가를 했다고 자부하지만 마음은 무겁다.”면서 앞으로 있을 후유증을 우려했다. 또 다른 과장은 “퇴출 후보 선정에 구체적인 기준이 없어서 어려움을 겪었다.”면서 “투표와 다면평가, 근무평정, 실·국장 의견 등 종합평가방안이 없었던 점이 아쉽다.”고 말했다.●하위직 인사폭 커질 듯 이번 인사는 ‘전보 자원자+장기근속에 따른 직권 전보자+3% 퇴출 후보’ 등을 모아서 인사과에 명단을 통보했다. 문제는 직원들이 다른 부서로 옮기고 싶어도 퇴출 후보로 낙인 찍히는 것을 우려해 전보를 자원한 사례가 많지 않았다는 점이다. 일부 국에서는 장기근속자는 의무적으로 전출 명단에 포함시키는 등 철저한 인사원칙을 적용했다. 이에 따라 언론과의 경우 38명의 5급 이하 직원(계약직 제외) 가운데 장기 근속자 6명(전보 자원자,3% 대상자와 별도)을 모두 인사대상에 포함시켰다.●노조, 오 시장에 화살 서울시의 퇴출후보 3% 선정 마감을 전후해 서울시공무원노조는 시청 별관에서 항의집회와 삭발식을 갖는 등 강력하게 반발했다. 노조는 또 시 주요 고위직에 대한 오세훈 서울시장의 인사에 문제가 있다는 문제 제기를 했다. 일종의 ‘역공’을 펴기도 했다.김성곤기자 sunggone@seoul.co.kr
  • [빚탈출 희망찾기-김관기 채무상담실] 3층 건물 있지만 대출금 감당 못해

    Q3층 건물 소유자입니다.1층은 보증금 8000만원에,2층은 보증금 7000만원에 상가 전세를 줬습니다.3층에는 저희 식구가 살고 있습니다.2003년 모 상호저축은행에서 1억 6000만원 대출을 받고 근저당권을 설정했습니다. 집의 시가는 3억원 정도 됩니다. 그밖에도 친지에게 빌린 사채까지 포함해 제 빚이 1억원 정도 됩니다. 수입은 월 100만원 정도인데, 개인회생을 신청했다가 기각당했습니다.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 답답합니다. 세입자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는 않습니다. - 김영수(가명·55) A우선 세입자들은 충분히 보호받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영세상인의 보호를 위하여 2002년 11월부터 시행되는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에 따라 상가 건물의 임차인, 즉 세입자가 임대차 계약을 하여 상가 건물을 넘겨받아 점유를 개시하고 또 관할 세무서에 적법한 사업자 등록을 신청한 때에는 그 다음날부터 제3자에게 대항력이 있습니다. 보통의 경우 건물이 경매로 넘어가면 임차권은 소멸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대항력이 부여된 임차권은 소멸하지 않으며 임차인은 보증금을 전액 반환받을 때까지 상가건물을 계속 사용할 수 있습니다. 요즘 세상에 사업자 등록을 하지 않고 영업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으며 또 상가임대차보호법 시행 이후에 저당권이 설정된 경우이므로 김영수씨에게도 이 법이 적용될 것으로 보입니다. 상호저축은행이 경매신청을 하여 건물이 타인에게 넘어가더라도 새 건물 주인은 입주한 상인들에게 보증금을 주지 않는 한 이들을 나가라고 할 수 없으니 결과적으로 시가에서 보증금만큼 깎아서 응찰하게 될 것입니다. 예를 들어 경매에 참여하는 사람 중 최고가로 써낸 사람이 시가보다 1000만원 싼 2억 9000만원에 취득하려고 할 경우 보증금 합계 1억 5000만원을 미리 뺀 1억 4000만원에 응찰할 것이고, 그것을 전부 상호저축은행이 가지고 간다고 해도 결과적으로 2000만원을 손해보게 됩니다. 저당권을 가지고 있지 않은 일반 채권자는 경매에 참여해봤자 한 푼도 받아갈 수 없습니다. 앞으로 재산처분 대가가 위와 같이 분배될 것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제 김영수씨가 3층 건물을 소유하고 있다는 말을 하기 어렵게 됩니다. 물론 부동산 등기부에 김영수씨 앞으로 소유권 등기가 되어 있으므로 법률적으로는 김영수씨가 소유자로서 여기에 살 수 있고 타인이 함부로 집에 들어오면 쫓아낼 수 있습니다만, 경제적으로는 오히려 1순위로 1억 5000만원어치가 입주한 상인들의 것이고,2순위로 1억 6000만원어치가 상호저축은행의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의 경제적 이익이 집의 시가를 초과하는 것이 분명한 이상 김영수씨의 몫은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초과하는 분만큼은 김영수씨의 일반 채권에 가산되는 것이지요. 파산법은 민사법상의 소유권에 관심을 두기보다는 경제적 실질을 봅니다. 또 파산법은 담보를 가지지 않은 일반채권자들에 대한 평등한 분배를 목적으로 합니다. 따라서 파산 절차에 따라 일반채권자들에게 나누어줄 것이 없는 이와 같은 상황에서는 정식의 파산절차를 개시하지 않고 바로 면책 심리를 진행하게 됩니다. 따라서 김영수씨의 경우 그냥 파산신청을 하시면 됩니다. 물론 입주한 상인들과 상호저축은행은 건물에 관하여 이미 가지고 있는 권리는 영향 받지 않습니다. 즉, 채권은 물건으로 담보된 한도 내에서 소멸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상호저축은행은 경매를 신청할 수 있고, 입주한 상인들은 상가임대차보호법에 의하여 권리를 행사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상호저축은행이나 상인들이 회수하지 못한 금액이 있으면, 그 나머지에 대하여는 면책결정의 효력이 미치게 되어 더 이상 채무자인 김영수씨에게 달라고 하지 못합니다.
  • 미스·동국대(東國大) 정수정(鄭秀貞)-5분 데이트(91)

    미스·동국대(東國大) 정수정(鄭秀貞)-5분 데이트(91)

    「미스·동국」 정수정양은 올해 18세의 풋나기 여대생. 연극영화과 1학년에 재학중. 사업을 하시는 정운달씨(鄭雲達·48)의 2남3녀중 맏딸. 처음으로 연극을 한 것은 서울사대부중(師大附中) 3학년때. 차범석(車凡錫)작 『불모지(不毛地)』에 주역으로 발탁된 이후부터란다. 고등학교때는 「아기별」극회 회원으로 KBS, CBS의 전속성우를 지내기도 했고. 대학에 들어와서는 연극반원으로 활약, 얼마전에는 「카페·떼아뜨르」에서 상연한 『아무도 모른다』에서 주역을 맡았다. 집안식구들은 정양이 연극을 하는 것을 찬성하고 적극 도와준다고. 그는 연극을 하는 이유를 『막이 내리고 끝나면 허전해지고, 그것을 메우기 위해 또 연극을 하고…』 이렇게 어른스럽게 설명하고 있다. 학교를 다니는 동안은 물론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도 계속 연극을 할 생각이란다. 제일 하고 싶은 역은 「토머스·하디」의 작품 『테스』의 여주인공 역. 하루중 자신이 가장 아름답다고 느끼는 순간은 세수를 하고 난 뒤 거울을 통해 물방울이 맺힌 자신의 얼굴을 바라볼 때라고. 감명깊게 읽은 책은 『좁은문』. [선데이서울 70년 7월 19일호 제3권 29호 통권 제 94호]
  • [사설] 돈 앞에 윤리 팽개친 전직 부장검사

    부장검사 출신 변호사가 골프장 사장 납치사건에 깊숙이 간여한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경찰 수사에 따르면 이 변호사는 지청에 근무하던 시절 알게 된 범인과 짜고 납치 모의에서부터 실행에 이르기까지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2년간 국가정보원에 파견근무했던 경험을 살려 납치 대상자를 ‘간첩혐의로 체포한다.’는 작전을 짜는가 하면 가짜 영장까지 만드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14년간 검사로 재직하면서 익힌 법률지식과 수사경험을 한탕 범죄에 활용하는 뻔뻔함을 보여줬다. 변호사들의 범죄가 증가일로에 있다. 범죄내용도 횡령과 사기, 미성년자 성매매, 상습도박, 세금체납, 뇌물공여 등 일반인 범죄를 뺨치게 파렴치해지고 있다. 지난 한해 대한변호사협회의 변호사 징계는 47건으로 전년에 비해 13건이나 늘었다. 이처럼 변호사들의 위법 행위가 늘어나는 것은 수임할 수 있는 시장은 일정한데 매년 1000명의 법조인이 탄생하면서 변호사 숫자가 증가하는 것이 큰 이유다. 사무실 유지조차 힘든 변호사가 넘쳐나고 과당경쟁을 하면서 직업윤리가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납치극에 가담한 변호사도 거액의 보수를 받기로 했다고 한다. 돈 앞에선 윤리도 내팽개치는 변호사는 법조계에 발을 못 붙이도록 해야 한다. 제식구 감싸기에 급급해오던 변협이 변호사 범죄에 엄격해지고 있다고 한다. 변호사 신뢰의 추락을 막기 위해서라도 부적절한 변호사를 걸러내는 기능을 강화하고 변호사 징계 등에 관한 정보를 공개하는 일에도 더 이상 망설이지 말아야 할 것이다.
  • 인간?신선? 33년째 무릉도원서 사는 노부부

    인간?신선? 33년째 무릉도원서 사는 노부부

    “이곳이 바로 도연명(陶淵明)이 말한 유토피아인 ‘무릉도원(武陵桃源)’입니다.” 중국 대륙에 33년동안 세속을 등지고 첩첩산중 깊은 산속에서 부부가 신선처럼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져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화제의 주인공들은 중국 중부 후베이(湖北)성 언스투자주먀오주(恩施土家族苗族)자치주 리촨(利川)시의 심심유곡에서 생활하고 있는 친다이화(秦代華·67)·리차이메이(李才梅·65) 부부.이들 부부는 지난 1974년 아무도 찾을 수 없는 첩첩산중 심산유곡에 너새집을 마련,세속의 일들은 까마득히 잊은 채 농사를 지으며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사실이 공개돼 주목받고 있다고 중경신보(重慶晨報)가 최근 보도했다. 지난달 26일 기자가 찾은 리촨시 치야오산(七耀山)의 첩첩산중 심산유곡.이 깊은 산골짜기에는 천인단애(千*斷崖)의 절벽이 우뚝 솟아있었다.절벽을 쳐다보고 있으면 아찔한 현기증을 일어날 정도였다. 절벽으로 올라가는 초입에서부터 허위단심으로 험난한 조도(鳥道)와 잔도(棧道)를 30여분 따라 올라가면 한 사람이 겨우 들어갈수 있을 만한 동굴이 나타난다.동굴 안쪽으로 얼굴을 들이밀자 눈앞에는 햇빛이 쏟아져 눈을 뜨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잠시 눈을 감았다가 다시 뜨니 험준한 산봉우리가 앞을 가로막았다.산봉우리에 난 좁장한 소로길을 이리 구불,저리 구불 한참을 걸어가니 좁은 동굴이 또다시 나왔다.이 동굴 속으로 들어가자마자 답답한 마음이 확 트이게 하는 개활지가 나타나고 그 앞에는 수백m 높이의 절벽이 기자 앞으로 몸을 던지듯이 맞는다. 이 절벽 앞에 난 자드락길을 따라가니 또다른 동굴이 나오고,동굴 속으로 발을 내딛자 싸리 울바자로 단장한 아담한 너새집이 기자를 가로막는다.싸리 울바자 너머로 집안을 슬쩍 엿보니,낯선 사람을 본 닭이 놀라 울기 시작하고 개가 짓는 등 너새집은 한바탕 야단법석이다.이곳이 바로 도연명이 염원하던 바로 그 이상향인 ‘무릉도원’이었다. 집안의 닭과 개짓는 소리를 들은 이들 부부는 농삿일을 준비하다말고 달려나와 손님들을 맞았다.하지만 33년만에 처음으로 사람들을 만난 탓인지,어딘가 어색해 한참을 우두망찰 바라만 보고 있었다. “이곳은 바로 청정무구한 세상입니다.특히 세사나 사람들과 다툴 일이 없으니 신선처럼 지낸다고 보면 됩니다.” 이곳이 ‘무릉도원’이라고 서슴없이 말하는 친씨는 “이곳에 온 사람은 당신들이 처음”이라고 털어놨다. 이들이 이곳에 온 것은 지난 1974년.당시 리촨시 보양(柏楊)진에 살고 있던 이들은 문화혁명(文化革命)의 광풍이 불던 막바지 시기여서 세상이 피폐할대로 피폐한 데다 형제는 많고 땅은 별로 없어 먹고 살기가 힘든 상황이었다.해서 이들 부부는 세상사를 잊어버릴 수 있는 곳으로 떠나 살기로 마음먹었다.부부 두 식구가 배불리 먹고 마음 편하게 살 수 있는 ‘낙토’를 찾아서…. 이들 부부는 괴나리봇짐을 메고 ‘무릉도원’을 찾아 먼 길을 떠났다.그러던중 첩첩산중 심산유곡의 해발 1200m의 고지에 고즈넉하게 자리잡은 이 삶터를 발견했다.부부는 여기가 삶과 죽음,사랑을 만끽할 수 있는 ‘낙토’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에서의 생활이 부부에게는 마치 신선과 같은 생활 그 자체였다.두 사람이 먹을 만큼 농사짓고 세속을 등지니 마음이 정갈해지고,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고….부부는 6000여평의 임야를 개간해 농사를 짓고 양돈·양봉·양계 등으로 자급자족의 생활을 하고 있다.이들은 이곳을 스스로 두 사람만의 자유공간인 ‘정인곡(情人谷·연인곡)’이라고 불렀다. 부인 리씨는 “우리 부부가 이곳에 정착한지 33년이 지났는데.아직 한번도 바깥으로 나간 적이 없다.”며 “이곳 생활이 습관이 된 만큼 죽어도 세상으로 나가고 싶은 마음이 없다.”고 말했다.옆에 있던 친씨도 “그렇고 말고.”라고 아내의 말에 추임새를 넣었다. 온라인뉴스부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11일 TV 하이라이트]

    ●진실(YTN 오후 11시5분) ‘납북어부 가족은 간첩이 될 수 있다.’는 시각이 너무나 당연했던 시절. 가난과 차별, 감시의 3중고,4중고에 시달렸던 납북 어부 가족들의 문제를 다룬다.400여명에 이르는 납북 어부들. 북으로 끌려간 어부들과 가족들은 가장 기막힌 분단의 피해자들임에도 불구하고 보상과 위로 대신 오히려 가혹한 고통을 받았다. ●코리아 코리아(EBS 낮 12시50분) 남편은 하늘, 부인은 땅이라는 개념이 일반화되어 있는 북쪽. 그에 비해 남편과 아내가 수직 관계에서 수평 관계를 넘어 이제는 여성상위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는 남쪽. 새터민들에게는 충격적일 수밖에 없는 남쪽의 남편들. 남쪽에 정착한 새터민들의 솔직담백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도전! 1000곡(SBS 오전 8시30분) 33대 왕중왕전 2부를 펼친다. 지난 1부에서 가수 하동균을 꺾고 준결승에 진출한 뮤직컬 배우 최정원은 가수 현미와 노래 대결을 벌인다. 뛰어난 가창력과 카리스마로 가수들을 제치고 무대를 제압한 최정원이 강력한 우승 후보로 무대에 오른다. 최정원의 노래실력을 지켜 본다. ●신비한TV 서프라이즈(MBC 오전 10시50분) 1810년 영국. 남편 없이 혼자 어렵게 어린 딸을 키우고 있는 켈리. 그녀는 객식구가 있다는 이유로 일자리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다른 조건 없이 주인과 마주치지만 않으면 된다는 특이한 조건을 내건 하녀 구인광고를 보게 되고, 딸과 함께 그 집을 찾아가게 된다. ●최강! 울엄마(KBS2 오전 8시55분) 직장에서 돌아온 강이 엄마는 초저녁부터 엎어져 자고 있는 강의 한심한 꼴을 보고 홧김에 강의 침대를 방에서 치워 버린다. 미니냉장고를 넣어 주며 이제는 물 마시러 나오지도 말고 가만히 틀어박혀 공부만 할 것을 강요한다. 엄마의 잔소리에 자존심이 짓밟힌 강은 욱해서 집을 뛰쳐 나가는데…. ●역사기행(고구려 음악 대탐사)(KBS1 오후 11시) 인도에서 만나는 고구려의 춤과 음악. 고구려 악기와 꼭 닮은 악기로 굿거리장단을 두드리고 고분벽화속 고구려 춤사위가 인도춤에 그대로 남아 있다.2000년전, 드넓은 세상과 교류했던 고구려의 문화. 인도, 파키스탄, 중국 등 3개국에 걸쳐 멀고도 험난한 고구려 음악루트를 추적한다.
  • [08일 TV 하이라이트]

    ●인간극장(KBS2 오후 7시30분) 출장에서 돌아온 남편에게 야단을 맞는 아내 묘행씨. 남편과는 달리 무섭지 않은 엄마인지라 아이들이 엄마에게 대들어 속상한 묘행씨는 아이들 앞에서만큼은 자신의 위신을 세워 달라고 요구한다. 둘째 내영이가 성적이 떨어지고 연예인에게만 관심을 보이자 부부는 지용씨의 고등학교 은사를 찾아간다.   ●하늘만큼 땅만큼(KBS1 오후 8시25분) 종훈과 지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지웅과 미애는 한밤중에 이사를 한다. 막상 둘이 들이닥치자 종훈은 지웅 가족을 따뜻하게 반겨줘 모두를 의아하게 만든다. 혜경은 상현을 만난 재두를 책망하며 상현과 헤어지게 된 건 은주한테 잘된 일이라며 단정짓지만, 은주는 상현과의 헤어짐이 쉽지만은 않은 눈치다.   ●외과의사 봉달희(SBS 오후 9시55분) 건욱은 중근이 폐암전공의에게 수술을 부탁하라고 하자 오래 살고 싶으니 꼭 네가 수술을 하라고 한다. 소리를 지르고 나온 중근은 안타까움이 밀려든다. 문경은 중근에게 건욱이 폐암이라는 사실을 듣는다. 건욱을 본 문경은 마누라 잘못 만나 마음고생만 한 당신이 왜 폐암에 걸리냐고 울부짖는다.   ●있을 때 잘해(MBC 오전 7시50분) 승현은 은수의 외박사실을 식구들에게 알리지만, 순애와 진우, 아버지까지 일부러 모르는 척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다. 혼자 분을 삭이던 승현은 은수네 회사로 전화를 해 은수가 심야방송을 맡아 밤 늦게 출근한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한편 환의 형은 정화네 집에서 환의 물건들을 모두 정리하고 떠난다.   ●글로벌 코리안(YTN 오전 10시35분) 캐나다의 한 공립학교에서 한국어가 정규수업으로 채택돼 수업이 진행되고 있다. 토요학교와 방과 후 수업으로 한국어 과목이 있었지만 2월부터 정규수업으로 확정됐고, 한국어를 배우겠다는 학생은 꾸준히 늘고 있다. 한국어 정규과정 편입으로 동포 가정도 수업료 납부로 인한 경제적 부담을 덜게 됐다.   ●다큐10(EBS 오후 9시50분) 로마시대 여성들에 대해 살펴본다. 로마에서 가장 중요한 신 가운데 하나인 베스타 여신을 모시는 베스타 신녀(神女)들에 대해 알아본다. 베스타 신전의 최고 여사제인 코르넬리아란 여성이 순결 서약을 깨고 파멸로 치닫게 되는 과정을 당시 로마 여성의 성과 그들의 지위, 일 등과 함께 살펴본다.
  • [서울대공원 동물원에 가보았지] 야생독수리 ‘삐뚤이’

    [서울대공원 동물원에 가보았지] 야생독수리 ‘삐뚤이’

    아픈 동물들이 사는 서울대공원 진료과. 건물 뒤쪽에는 몇 년째 우리 한쪽을 차지하고 있는 뻔 뻔한 ‘장기입원자’가 있다. 천연기념물 제243호인 야생 독수리 ‘삐뚤이’다. 몸집이나 힘으로 따지면 건강한 여느 독수리에 뒤지지 않는다. ‘방귀뀐 놈이 성낸다.’고 3년간이나 무단취식을 하면서도 뭐 하나 제 성질에 안 맞으면 사육사들에게 덤벼들기 일쑤다.‘삐뚤이’란 이름도 그래서 붙었다. ●독수리가 웬 성형수술(?) 얼마 전 삐뚤이는 성형수술을 받았다. 부리를 그냥 놔둘 경우 제 살을 파들어 갈 상태였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녀석의 윗부리는 태어날 때부터 왼쪽으로 45도 이상 심하게 휘어 뾰족한 끝이 제 얼굴 옆쪽을 향하고 있다. 삐뚤이는 관람을 위해 들여온 동물원 식구가 아니었다.2004년 6월15일 녀석은 강원도 한 야산에서 아사(餓死) 직전의 상태로 발견돼 급히 서울대공원 진료소로 이송됐다. 가뜩이나 먹이가 부족해 멀쩡한 독수리들도 굶어죽는 상황에서 부리까지 휜 녀석에게 먹잇감이 돌아갈리 만무했다. “거의 뼈만 앙상했어요. 그때부터 급한 데로 핀셋으로 먹이를 줬죠. 부리의 구조상 덩어리째 주면 혼자선 못 먹거든요.” 진료소 식구들 덕분에 녀석은 빠르게 건강을 회복했다. 하지만 문제는 부리였다. 놓아준다면 지금이라도 훨훨 날아갈 테지만 그 부리로 사냥은 여전히 무리였다. 자연에서는 보름도 못가 죽을 것이 뻔했다. 건강한 놈이 장기입원자가 된 이유다. ●“언젠가 자연으로 돌아갈래” 사실 새들은 비행 중 무언가에 부딪치거나, 싸우고 사냥하는 과정에서 종종 부리가 부러지기도 한다. 이럴 때 부러진 부리를 강력접착제로 붙여주거나 보형물을 제작해 인공부리를 만들어준다. 일종의 임플란트(implant)다. 하지만 이것도 어느정도 기본형태가 잡혀 있을 때의 얘기다. 휜 부분을 모두 잘라내고 전체를 틀니 끼듯 인공부리로 대치할 수도 없다. 부리에는 혈관과 신경조직이 얽혀 있어서 무리한 수술이 생명을 앗아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여홍구 진료계장은 “미국 코넬대 등 해외학계와 동물원 등에도 자문을 구해봤지만 어렵다는 대답뿐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계속 자라는 부리 탓에 더 시간을 끌 수도 없었다. 결국 진료팀은 임시방편으로 부리 중 4분의1정도를 잘라내는 성형수술을 감행했고 다행히도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한 결 가벼워진 부리 탓인지 얼마 전부터 녀석은 혼자서 조금씩 먹이를 먹기 시작했다. 동물원에 들어온 지 2년 6개월여 만에 거둔 장족의 발전이었다. 담당사육사인 손천수씨는 “의심많고 성격까지 사나운 녀석이지만 진료소 식구 모두 녀석에게 정이 푹 들었다.”면서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녀석이 다시 자연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길 기원한다.”고 말했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안녕하셔요] 『선생님』의 가수 조미미(曺美美)양

    [안녕하셔요] 『선생님』의 가수 조미미(曺美美)양

    『「찬스」라는 것이 있는가 봐요. 그렇게 큰 기대를 가졌던 노래도 아닌데-』요즈음 한창 「히트」하고 있는 『선생님』(이호(李湖)작곡)의 주인공 조미미(23)는 자신도 신기하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했다. 가수생활 5년만에 찾아온 행운- 『선생님』의 「히트」에 조미미는 벌린 입을 못다물고 있다. 「뜻밖의 행운」이라고 『선생님』의 음반을 내놓은 「오아시스·레코드」사쪽은 이 「디스크」가 발매 1개월만에 3만장을 돌파했다고 자랑했다. 「레코드」계가 전례없는 불경기라고 울상인 요즈음 이 3만장 돌파기록은 확실히 사건이 아닐 수 없다. 1만장이 팔려도 「디스크」계가 온통 떠들썩한 판에 3만장이란 기록은 1년에 몇 개 나올까 말까한 「클린·히트」, 소동이 일어날 법도 하다. 조미미에게는 가수 5년만의 행운을 안겨준 셈이다. 그녀는 65년 7월 DBS의 가요 「콩쿠르」에서 1등에 입상함으로써 가요계에 「데뷔」했다. 그동안 알려진 노래로는 『강화도 처녀』(강보중(姜甫中)곡), 『삼현육각(三絃六角)』(김인배(金仁培) 곡) 『서산 갯마을』(김학송(金鶴松)곡)등이 있다. 『선생님』이 네 번째 독집이니까 독집으로 발표된 것도 근 50곡. 그렇지만 조미미의 줏가는 그다지 높은게 못되었다. 극장·방송국의 「개런티」로 따져봐도 그녀는 항상 B급 가수. 한번도 화려한 각광을 받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그녀와 비슷한 시기에 출발한 이른바 민요 삼총사가 金「세레나」·김부자(金富子)·조미미. 이들 세 아가씨중 김「세레나」는 국내 가수중 최고수입의 「달러·복스」가 돼 있고, 김부자에 대한 대중적 인기도 올해 들어 부쩍 상승해 있다. 이들 두 아가씨에 비해 침체한 느낌을 주던 조미미가 뒤늦게 「홈·런」을 날린 것은 조미미의 표현대로 『신기한 행운』. 히트하자 자가용도 그래서 조미미도 김「세레나」김부자에 이어 자가용차를 사게 됐단다. 제작사쪽에서 절반을 대주기로 약속 받고 그녀는 마땅한 「코티나」를 물색하고 있다. 가수가 「히트」하면 무엇보다 먼저 나타나는게 자가용차인데 『이제는 차 없는 허전함을 면하게 될 것같다』고. 조미미가 자가용차를 물색한다는 소식에 누구보다 반색하는 사람은 평소 그의 사생활을 아는 측근 연예인들이다. 한 작곡가는 조양이 7식구의 생계를 맡고 있는 착실한 「가장」이라면서 색다른 동정론을 폈다. 오래전에 아버지를 잃은 그녀는 현재 서울 동대문(東大門)구 창신(昌信)동에서 홀어머니, 다섯동생과 함께 살고있다. 다섯동생중 3명이 중·고등학교 재학생. 이들의 학자금과 생활비 일체가 맏딸인 조양의 수입으로 지탱되고 있다는 이야기. 한 가수는 조양의 잦은 도일(渡日)공연은 생활비의 「블랭크」를 메우기 위한 것이었다고 귀띔했다. 그녀는 68년 9월부터 69년 2월까지 일본에 있었고 올해 2월에 다시 도일, 5월초에 돌아왔다. 『일본가면 국내에서보다 2배 가까운 「개런티」를 받고 또 목돈을 가질 수 있다』고 털어놓기도. 사치 모르는 실속파 『답답한 고비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가계부를 적으며서 느끼는 보람도 커요. 돈은 벌기보다 적절하게 쓰는데서 보람을 느끼게 됩니다』- 살림꾼다운 체험담. 그녀의 가장 큰 즐거움은 『동생들이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성적표를 들고 돌아올때』라는걸로 보아 이 맏딸 가수의 심경을 알 수 있다. 사실상 조미미가 연예계에서 받는 귀여움은 이 살림꾼적인 착실한 성격 때문인 것 같다. 조금 인기가 오르면 사치와 허영에 들떠 날뛰는 것 같은 속성이 그녀에게서는 거의 찾을 수 없다. 돈에 관한 한 『미장원에도 안간다』는 실속파. -결혼은? 이 물음에 조양은 『요즈음 들어 그 문제를 자주 생각하게 된다』고 털어놓았다. 『좋은사람 나타나면 결혼하고 싶어요. 혼자 뛰어다니느라면 벅찰 때가 많고 자연 외로운 생각도 들어요』 - 좋은 사람 이란? 『첫째 나를 「리드」해줄만한 사람, 연예인은 가급적 피하고 되도록 사업가였으면 좋겠어요. 가난한 생활은 짜증 날테니까, 재산 없는 것보다 있는 편이 좋고-』 [선데이서울 70년 7월 12일호 제3권 28호 통권 제 93호]
  • [생각나눔] ‘군입대 세아이 아빠’ 구제방법 없나

    [생각나눔] ‘군입대 세아이 아빠’ 구제방법 없나

    오는 12일 논산훈련소에 입소하는 신대광(30)씨는 자녀가 셋이다. 어린 아이들을 돌보느라 직장에 나갈 수 없는 아내까지 부양가족 4명을 둔 가장이다. 대학 졸업, 다른 대학 학사편입, 대학원 재수와 입학 등을 거치면서 지금에 이르렀다. 아이를 ‘바쁘게’ 낳은 것은 여섯살 연상인 아내를 위해서다. 늦어지면 출산하기에 나이가 너무 많아지기 때문이다. 자신 말고는 네 식구를 마땅히 부양해줄 사람이 없는 신씨는 각계에 선처를 호소했다. 병무청, 국가인권위, 청와대 신문고, 국민고충처리위 등등. 그러나 각 민원은 결국 병무청 담당자에게 패스됐고,‘병역법상 구제해줄 수 없다.’란 대답만 돌아왔다. 신씨는 훈련 뒤 가족 거주지 인근 부대에라도 배치해줄 것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군 복무 중에라도 조금이나마 가족을 돌보고 싶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방부는 ‘사정을 봐줄 수 없다.’란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민·관 합동으로 구성된 저출산·고령화대책 연석회의(공동의장 한명숙·강신호 등)는 다자녀 가장에 대한 병역 관련 개선 방안을 검토하고 나서 주목된다. 연석회의는 우리 군이 자녀를 둔 기혼 입대 예정자들과 사병들을 외면하고 있다는 지적에 귀 기울이고 있다. 현행 병역법상 장남인 신씨의 경우 미혼인 3명의 동생·누나들 때문에 병역 혜택을 받을 수 없다. 군 입대자를 빼고 남은 가족 중 부양의무자 대비 피부양자의 비율이 1대3을 초과해야만 면제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미혼으로 법적 분가가 안 된 형제 자매들은 신씨 자녀들의 법적 부양 의무자가 되어 있다. 연석회의 지원단 관계자는 6일 “군복무기간 단축 혜택 부여, 상근예비역 또는 공익근무요원 복무, 가족 주거지 인근부대 배치, 자녀 출산·양육시 휴가제 도입 등을 골자로 한 방안을 마련중”이라고 밝혔다. 연석회의 지원단은 최근 국방부에 신씨의 사례를 들어 다자녀를 가진 입대 예정자의 병역 혜택 방안을 공식 문의했다. 하지만 병역 혜택은 물론 주거지 인근 부대 배치 인센티브도 주기 어렵다는 입장만 전달받았다. 극소수의 병역 혜택을 위한 병역법 개정은 어렵다는 이유다. 그러면서도 국방 인력자원 부족현상이 해소되는 2011년 이후엔 논의가 가능하다고 언급,‘미래의 과제’로 넘기려는 태도다. 특히 거주지 인근 배치 거부에 대해 연석회의 관계자는 “명백한 차별”이라고 주장한다. 지난해 8월 육군은 ‘군인·군무원의 인사관리 제도’를 개선, 하사관 이상의 군인 및 군무원이 셋째 자녀를 출산했을 경우 본인이 희망하는 지역으로 보직을 옮길 수 있는 인센티브를 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국방부는 현재 우리 군내 기혼 사병이 몇 명인지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국방부 관계자는 “기혼사병 수가 얼마나 되는지, 이들이 몇 명의 자녀를 두고 있는지에 대해 조사한 적이 없으며, 자료도 없다.”고 밝혔다. 연석회의 지원단 관계자는 “기혼자라고 무조건 병역혜택을 주자는 게 아니라, 가족간 부양과 생계 문제 등을 제대로 반영할 수 있는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라며 “군 인력자원 관리에 지장이 없는 한 복무중인 기혼사병에 대해서도 다양한 배려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CEO칼럼] 춘화만개/한기선 두산주류BG 사장

    [CEO칼럼] 춘화만개/한기선 두산주류BG 사장

    춘색(春色)이 완연한 계절이 왔다. 춘풍화기(春風和氣)로 대지가 꿈틀거리고 만물이 소생하니 잔뜩 움츠렸던 긴장도 풀어지는 이 계절, 새해의 다짐이 따뜻한 햇살에 봄눈 녹듯 사라지지 않도록 마음을 다잡아야 할 시점이 되었다. 청춘(靑春)과 춘궁(春宮·황태자의 별칭)에 씌어진 춘(春)자에는 미래 지향적인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봄이란 계절은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에너지와 아지랑이 피어오르듯 새롭게 도약하고 싶은 열정을 불태우게 하는 에너지를 내뿜고 있다. 또한 만물이 태동하는 시기인 만큼 일을 시작함에 있어 새로운 다짐을 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신(新)이라는 한자의 뜻은 ‘새롭다’ 혹은 ‘처음’이라는 뜻을 갖는다. 사계절 가운데서는 유독 봄에만 신춘(新春)이나 새봄과 같이 접두사 ‘신’(新) 혹은 ‘새’를 붙인다.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해마다 기업들은 신입사원을 채용한다. 새 식구들을 맞아들이는 기업이나 어려운 취업 관문을 뚫고 입사한 이들은 매우 분주한 시간을 보내기 마련이다. 그들에게는 서로가 얼마나 빨리 새 환경에 적응하고 조직에 동화하느냐가 중요하다. 그러나 학생이라는 신분에서 사회인으로 신분이 바뀐 사회 초년병들에게 더 이상 ‘자라나는 새싹’이라고는 표현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제 사회에서 책임과 의무를 요구하는 성숙된 인격체로 대접받게 된다. 또 가능성을 실현시킬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그러나 사회는 곧 전투현장이요, 세상은 승리하는 자에게만 미소 짓고 기회를 줄 뿐이다. 모든 이는 성공을 꿈꾼다. 그 성공의 열쇠를 찾아내는 일은 만만치 않다.“젊은이여 야망을 가져라.”라는 말이 있지만 무조건 원대한 야망을 품는다고 이루어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달성 가능성이 높은 뚜렷한 목표와 의식을 가지고 끝없는 자기 혁신과 계발, 도약으로 담금질할 때만이 실현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그리고 타인에게는 관대하나 자신에게는 인색해지도록 노력해야 한다. 자신에 대한 채찍질은 나태를 용납하지 않으며 자기 발전에 한발 더 앞으로 나가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성공한 사람들은 실패한 사람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성공한 사람들은 단지 자기가 가진 목표의 힘으로 하기 싫다는 생각을 극복하고 앞을 향해 나아간다. 새로움과 참신함, 웰빙은 이 시대의 중요한 트렌드로 자리잡았다. 의(衣), 식(食), 주(住) 모든 것에서 재빠르게 변화하는 소비자의 기호를 어떻게 읽어내느냐가 경제 현장의 성패를 판가름하는 관건이다. 새로운 것에 대한 끝없는 연구와 언제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은 약진의 발판을 마련한다. 경제 일선에서는 언제나 ‘내가 임하는 이곳은 전투현장, 내가 행하지 않으면 상대가 행하리라.’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경제 현장에서 크고 작은 일에 부딪칠 때마다 ‘다윗과 골리앗’의 일화를 떠올리며 그 일화가 주는 교훈을 되새기곤 한다. 처음에는 미약하더라도 매 순간 도약하고 목표 달성에 매진하다 보면 시나브로 피던 봄날의 꽃들이 한꺼번에 활짝 피듯 춘화(春花) 만개(滿開)하는 화려한 날이 오리라는 확신을 갖는다. 정해년 새봄, 지난겨울의 움츠렸던 어깨를 펴고 기지개를 켜듯 역동하는 우리 경제로 가정이나 기업이 모두 웃음짓는 춘삼월(春三月) 호시절(好時節)의 기쁨을 누리길 기대해 본다. 한기선 두산주류BG 사장
  • [문화마당] 문화의 동반자, 권력/코디 최 문화이론가·화가

    19세기에 시작된 산업화와 도시화는 새로운 노동관계를 형성하며 그에 따른 노동계급을 만들어 냈다. 이러한 계급의 변화에 따라 새로운 형태의 문화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기존의 전통적인 문화의 개념을 위협하고 권위에 도전하는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두가지 상이한 문화가 나타났다. 하나는 노동계급의 소비를 목적으로 하는 상업주의 문화로 대량문화, 대도시문화, 그리고 대중문화가 여기에 속한다. 다른 하나는 새로운 집단과 문화가 급진적 개혁론자들에 의해 정치적 선동에 이용된 것을 지적할 수 있다. 한 예로 새로운 노동계급과 문화는 1838년 영국 노동계급의 개혁운동(Chartism)의 근간이 됐으며, 훗날 그것은 노동당이 영국에서 득세하는 신좌파 운동으로까지 연결됐다. 1차 세계대전 이후 사회구조가 급변하면서 노동계급의 불만은 극에 달했고, 기득권은 더욱 위협받으며 기존문화는 그 방향성을 잃어갔다. 문화연구는 바로 이 시기에 문화의 방향성과 사회의 혼란을 해결하기 위한 동기에서 시작된 것이다. 필자는 20세기말 한국의 문화와 1960년대 영국문화가 겪은 혼란의 과정 속에서 흡사한 부분을 발견한다. 1960년대 미국의 로큰롤에 매료된 영국 젊은이들의 모습과 20세기말, 한국의 청년문화 속에 뿌리내린 미국의 힙합, 그리고 새롭게 형성된 젊은이들의 의식구조가 그것이다. 1960년대 영국은 문화적 가치관이 흔들리고 청소년 비행이 사회문제로 대두되면서 이른바 ‘테디보이(teddy boy)’로 인한 진통을 겪게 된다. 남부 런던의 노동자 계층을 배경으로 한 그들은 기름을 잔뜩 발라 뒤로 빗어 넘긴 머리, 발목이 좁아 꼭 끼는 바지, 벨벳 깃이 달린 소매 긴 재킷, 구두 끈 모양의 넥타이, 고무로 창을 댄 구두 등. 1차 세계대전 이전 에드워드 7세 때의 상류층 차림새를 흉내냈다. 그것은 곧 계급상승을 꿈꾼 노동자들의 반항심리의 표출이었다. 당시 수입된 미국의 로큰롤은 노동자 출신가수 엘비스 프레슬리를 앞세웠다. 이는 귀족계급으로부터 소외된 노동계급 젊은이들의 구미에 딱 들어맞는 것이었다. 사업가들은 그들의 기호에 맞춰 이를 재빨리 상품화했다. 마침내 영국의 문화는 변해갔고, 영국은 ‘로큰롤의 천국’이 됐다. 미국 문화가 영국의 대중문화를 장악하는 문화적 권력이동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우리는 1990년대 들어 어느 정도 경제적 안정을 누리게 됐지만 젊은이들은 ‘후진적인’ 정치행태와 기성세대에 대한 불신과 불만으로 가득하다. 그러나 그들은 60∼70년대 정치적 이데올로기로 갈등하거나 80년대 정치적 부조리에 대항하던 세대가 아니다. 자유분방한 미국의 대중문화가 대대적으로 유입되면서 미국에 대한 증오와 연민이 교차하는 가운데 기성세대에 대한 추상적 불만을 간직한 세대라고 할 수 있다. 당시 수입된 미국의 문화 중에서도 힙합은 미국의 기득권 백인사회에 대한 불만 속에 흑인 스스로를 소외그룹으로 규정하고, 성난 짐승처럼 저항과 폭력, 섹스와 물질만능을 노래했다. 힙합의 이같은 특성은 우리 젊은이들의 불만감과 소외감을 해소해주는 유력한 돌파구가 될 수 있었다. 또한 사업가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문화상품이 됐다. 결국 힙합은 우리 사회에서 나름의 여과과정을 거쳐 젊은이들의 상징문화로까지 발전했다. 이처럼 20세기 이후의 문화의 침략과 혼종, 나아가 새로운 문화의 탄생과정을 살펴보면 정치사회적 현실이야말로 ‘문화의 반려자’임을 알 수 있다. 요컨대 정치와 사회, 그리고 문화가 서로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선순환의 트라이앵글’을 만들어가는 것은 우리 모두의 몫이다. 코디 최 문화이론가·화가
  • 남편죽인 17세 신부(新婦)와 시동생

    남편죽인 17세 신부(新婦)와 시동생

    너무도 끔찍한 사건이 충남(忠南) 금산(錦山)군의 어떤 외딴집에서 일어났다. 17살짜리 형수와 19살짜리 시동생이 28살의 친형을 죽여놓고 그 시체옆에서 또 한번 불륜의 정을 통했다. 형수아가씨는 결혼1개월도 못되어 시동생과 패륜에 빠지고 넉달만에 남편을 공모살인 한 뒤 보따리를 싸들고 줄행랑을 쳤다가 드디어는 쇠고랑을 차고 말았다. 가난한 신혼에 짜증내자 그때마다 시동생이 위로 형수 김정임여인(가명·17)은 전북 정읍(井邑)에서 태어나 어릴때 어머니를 여의고 서모밑에서 자랐다. 3년전부터 전주, 광주 등지에서 식모살이를 해오다가 서모도 세상을 떠나자 식모살이를 그만두고 지난 1월20일쯤 서외삼촌 되는 전복남씨(가명·38·충남 금산군)집에 들른 것이 사연의 실마리였다. 전씨는 2월초순 같은 마을에 사는 박윤직씨(가명·28)와 생질녀 김여인과의 혼담을 진행시켜 『두 집이 가난하니 서로 결혼시켜 알뜰히 살도록 해주자』고 지난 2월24일 약혼식, 이틀 뒤인 26일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다. 신랑 박씨는 입이 딱 벌어지게 좋아했다. 젊은 신부에 마음이 온통 쏠려 3만원의 이잣돈과 장리쌀 2가마를 누이인 박정숙 여인(가명·32)을 통해 얻어다가 동네사람들과 가까운 친척들이 모여 축복을 보내는 가운데 결혼식을 올렸다. 가난한 살림에 신혼여행을 갈 수 없는 이들 부부는 신랑집인 이 마을 맨끝 산마루집 흙담 2간의 아랫방에 신방을 차리고 첫날밤을 즐겼다. 『내 비록 국민학교 조차도 못다니고 가난하지만 몸뚱이 하나는 튼튼해. 젊은 몸뚱이니까 밥은 안 굶겨. 당신만은 꼭 행복하게 해줄께…』 귀엣말로 속삭이는 남편에게 김여인은 『한번 재미있게 살아보더라고 잉! 이몸도 식모살이 하다가 시집온게 참 재밌구만!』하고 신아나서 좋아했다. 그런데 17살짜리 마누라는 싫증을 너무 빨리 느꼈다. 이유는 남편이 촌스럽다는 것. 재산이라고는 겨우 인삼밭 3간(약50평) 밖에 없고 남의 땅을 소작하고 있는 박씨의 가정에 대해 도시에서 잘 사는 집 식모살이라도 해 본 김여인은 촌스럽게 생긴 남편 박씨와의 시집살림에 며칠이 안가 싫증을 느꼈다. TV도 없고 전화도 없다. 설멋이나마 눈에 찰 것이 하나도 없었다. 결혼 10일이 지날 무렵부터는 남편에게 『촌사람 같다』고 노골적인 불만을 털어놓게 됐다. 이 때마다 친시동생인 박성직군(가명·19)이 17살짜리 형수를 위로하며 싸움을 말리곤 했다. 패륜은 우연히 시작되고 현장들키자 살해를 공모 결혼한지 만1개월에서 하루가 모자라는 지난 3월25일 아침에도 사소한 일로 김여인과 박씨는 언쟁을 한 뒤 박씨는 집을 나가 마을로 갔고, 홀로 있는 시어머니 홍여인(51)과 13살 된 시누이는 인삼밭에 가고없는 낮 4시쯤. 이날따라 봄 기운은 고사하고 매섭게 추운 날씨였는데 시어머니와 남편 박씨를 비롯한 5식구중 3식구가 집을 나가고 나니 남은 것은 형수인 김여인과 시동생인 박군 둘이만-. 형이 결혼한 뒤부터 박군은 거의 매일 저녁 뜬 눈으로 밤을 새우다시피 했다. 그간 흙담집 얄팍한 장지문을 사이에 두고 형내외의 야릇한 숨소리가 흘러 나올때마다 박군은 못견디게 몸부림쳤었다. 이 날 낮에도 아랫목 이불속에서 간 밤의 야릇한 숨소리에 사로잡혀 있을 무렵, 형수인 김여인이 부엌일을 끝내고 박군이 누워있는 이불속으로 몸을 녹이려 파고든 것이 불륜의 시초. 박군은 참을 수 없는 충동에 형수인 김여인을 부둥켜안았고, 김여인도 그만 순식간에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남편에게 불만이 있는데다 시동생 박군이 항상 자기 편에서 두둔을 해주곤 했기에 호감이 가던중 연령으로도 10여살 위인 남편보다 홀가분한 시동생의 품에 손쉽게 파고들고 말았다. 이들의 불륜은 거의 매일같이 계속되었다. 식구들이 일하러 가거나 마을을 간 틈을 타 벼락같이 진행되었다. 이들은 남의 눈을 두려워할 겨를도 없이 인삼밭이 띄엄띄엄 있는 뒷산으로까지 장소를 옮겨 가면서 육체의 향락을 즐겼다. 그러던 지난 6월5일 새벽 4시쯤. 논물을 보러 남편이 집을 나간 사이 시동생과 함께 어울리고 있다가 그만 돌아온 남편에게 2개월10일간이나 비밀리에 지속해 온 부정의 현장을 들키고 말았다. 이 날부터 가정불화는 더욱 심해졌고, 겨우 빚까지 얻어 맞아들인 아내를 쫓아버리자니 가난한 살림에 새로 장가를 갈 수도 없는 박씨는 부인과 함께 딴 집으로 이사를 나가면 되겠지 하는 생각에서 이사준비를 하고 있을 때였다. 부정이 남편에게 탄로난 김여인은 그날부터 남편을 죽일 결심을 하고 그 방법을 곰곰 생각하게 됐으며, 시동생인 박군과도 의논이 됐다. 박군을 시켜 금산장날인 6월12일 읍내 모농약점에서 15원을 주고 극약 한알을 샀다. 나흘뒤인 15일 남의 집 모내기를 하고 막걸리 두어잔을 먹고 울적해진 박씨는 같은 마을에 있는 누이 박정숙여인 집을 찾아가 『내일 방을 얻어 이사를 갈테니 독 2개와 잔그릇 몇개만 장만해 달라』는 부탁을 남기고 16일 상오 0시쯤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온지 약 30분뒤 아내 김여인이 갖다주는 극약이 든 냉수를 아무 의심없이 벌컥벌컥 들이켰다. 이날밤 시어머니 홍여인은 13살된 시누이와 인삼밭을 지키러 나가고 없었다. 고통으로 신음하는 박씨를 동생인 박군이 준비했던 막대기로 이마를 내리쳤다. 머리가 깨진 박씨는 약물중독에 겹쳐 그 자리에 쓰러져 비명 한마디 지르지 못한채 숨지고 말았다. 죽여놓고 자연사를 위장 장례 치르고 도망쳤으나 박윤직씨를 죽이는데 성공한 이들은 자연사를 가장하기 위해 숨진 박씨를 마당으로 굴러뜨려 얼굴에 상처를 입게 하고 다시 방으로 끌어들여 잔인한 살인연극을 끝냈다. 박군은 이 날 새벽4시30분쯤 동이 트자 같은 마을에 살고있는 누이집으로 달려가 『형이 소변보러 간다고 밖에 나가다가 넘어져 죽었다』고 태연히 말했다. 이 소식을 들은 박여인이 허겁지겁 뛰어 갔으나 이미 빳빳이 굳은 시체. 일단 자연사로 넘겨 날이 밝자 약 5백m 떨어진 마을뒤 밭에다 시체를 매장해버렸다. 이것으로 일단 사건은 끝났으나 매장을 한 다음날인 17일낮 11시쯤 김여인과 박군은 『남편과 형이 죽은 집에서는 살기 싫다』는 구실로 옷가지를 싸들고 중매를 선 전씨집에 들러 『집을 나간다』고 전한 뒤 자취를 감추자 약간의 의심을 품었던 전씨는 박윤직씨의 사인에 부쩍 의심이 짙어졌다. 박씨 어머니 홍여인으로부터 이와같은 사실을 들은 박씨의 6촌형 박모씨는 홍여인과 함께 경찰의 문을 두드려 박씨의 사인이 이상하다고 신고, 금산 경찰은 연고지를 토대로 수사에 착수하여 김연인과 박군을 긴급수배했다. 박군과 김여인은 금산읍 모하숙에서 이틀동안 단꿈(?)을 즐기다가 돈이 떨어지자 금산군 군북면에 있는 박의 고종사촌 형인 황모씨(45)집에 숨어 있다가 잡혔다. 이들은 경찰앞에서 박씨가 숨지고 난 다음 시체옆에서 『성교를 했다』고 진술하고 『약간 겁은 났지만 마음놓고 즐길 수 있었다』고 말했다. <금산=김앙섭(金昴燮) 기자> [선데이서울 70년 7월 2일호 제3권 27호 통권 제 92호]
  • 6년만에 유괴된 딸 찾은 모정(母情)

    6년만에 유괴된 딸 찾은 모정(母情)

    5살 때 유괴당한 외동딸을 찾기위해 전국에 「펜·팰」을 맺어 호소하기 6년만에 드디어 딸을 찾았다. 이 집념 강한 모정(母情)의 주인공은 그동안 딸을 찾으려다 지쳐 「송장 2번」의 인생을 살았다는 이야기. 춘천시 소양로 2가 24 박옥자(朴玉子·45)씨 집에 세든 박미영여인(35) 집에는 6년전에 행방불명됐던 외동딸 오진숙양(11)을 맞으면서 온통 잔치기분에 들떠 있었다. 행상을 다니던 박여인이 딸 진숙양을 잃어버린 것은 65년 한겨울. 행상을 나갔다가 돌아오니 청천 벽력이었다. <당신 딸 진숙이를 데려간다. 그렇게 알고 찾지 마시오!> 세든 방 문틈에 끼워놓은 쪽지 한 장뿐이었다. 박여인은 부산 모여고 2학년에 재학하던 54년 그때 육군에 복무하던 오유식(吳有植)상사와 사귀다가 홀어머니를 남겨두고 결혼했었다. 오씨가 일선지구로 전속을 하자 남편따라 일선지구를 전전, 그동안 상철(相喆)군(13·춘천국교5년)과 진숙(珍淑)양의 남매를 낳고 가난하지만 그런대로 행복했었다. 그러나 군대생활로는 가족들의 장래가 어둡다고 오씨는 제대, 사업을 한다고 이리뛰고 저리뛰다가 실의에 빠져있던중 64년 고혈압으로 불귀의 객이 되어버렸다. 하루 아침에 과부가 된 박여인 앞에 남은 유산이라고는 아비없는 어린 남매와 가난뿐. 이 때부터 세식구의 입에 풀칠을 하기위해 삯바느질을 하다가 행상을 시작했다. 피륙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간성 대진에서부터 속초 울진 등 강원도 일대는 안가본 곳 없이 다 다녔다. 이처럼 고달픈 생활 속에서도 며칠만이고 솜같이 피곤한 몸을 이끌고 돌아오면 어린 남매가 「버스」정류장에 나와 엄마 오기만 기다리고 있는 것이 대견해 고생도 몰랐었다. 그러다가 지난 65년1월, 강바람이 살을 에는 듯이 휘몰아치던 날 행상에서 돌아와보니 진숙양 대신 문틈에는 당신 딸을 데려간다는 쪽지한장. 그때부터 딸을 찾기 위해 신문 잡지등 「펜·팰」난을 뒤적여 열심히 편지를 보냈다. 그렇게 해서 맺어진 벗이 전국 곳곳에 60여명. 딸을 찾기 위한 애절한 호소는 전국 곳곳에서 메아리져 되돌아 왔다. 당신 딸과 처지가 비슷한 어린이가 있으니 한번 와서 확인해보라는 편지가 몰려들었다. 이번에는 행상 보따리 대신 편지에 적힌 주소쪽지 하나를 들고 전국을 누볐다. 그러나 몇백리씩 고생해가며 찾아가봐도 번번이 허탕, 엉뚱한 사연을 안은 인연 없는 어린아이들 뿐이었다. 이렇게 딸을 찾아 한달에 2~3회 「출장」을 나가다보니 가난위에 빚더미만 쌓이게 됐다. 나중에는 「양키」물건을 암매하면 벼락부자가 된다는 「브로커」를 따라 물건을 사러갔던 68년12월,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단속반에 걸려 징역 6개월을 선고 받았다. 서툰 도둑질이 첫날밤에 들킨다더니 「양키」물건 한번 만져보고 징역살이를 하게 되자 홧병에 영양실조가 겹쳐 다죽게 됐다. 딸이 징역살이를 한다는소식에 부산에 살던 친정어머니 이숙화노파(68)가 달려와 고아아닌 고아가 된 외손자 상철군을 맡아 지금 세든 집에 식모살이로 들어가 월급 3천원씩 받아 뒤를 거뒀다. 박여인이 교도소에 들어간 4개월째 되던 68년 4월초, 박여인이 죽었으니 시체를 인수해가라는 연락이 왔다. 그 1주일 뒤 또다시 두 번째로 시체를 인수해 가라고 재차 연락이 왔다. 그랬는데 죽었다던 박여인이 살아온데는 한국인 수녀와 미국인 수녀의 사랑의 「릴레이」덕택이었다. 박여인이 죽었다던 지난 4월 10일, 매주 교도소를 방문하던 성심여대 수녀원 한순희수녀(현 미국「샌디에고」대학에서 수학중)가 들것에 실려 나가는 시체에 마지막 「미사」를 드리다가 목숨이 붙어 있는 것을 발견, 치료를 맡겠다고 나섰다. 한수녀는 죽더라도 절차에 의해 처리하겠다고 약속, 「골롬반」병원으로 옮겨 온 의료진을 동원, 산소호흡을 시켜 겨우 20시간만에 회생시켰다. 그리고 다시 한달동안 가료, 지난 5월8일 어머니 날을 기해 퇴원시켰던 것이다. 병원에서 퇴원한 박여인은 또다시 딸을 찾기 위해 「펜·팰」을 열심히 하는 한편 법원의 도움으로 지난해 10월부터 춘천가내공업「센터」에 일자리까지 얻었다. 이같은 기구한 어머니에게 지난 5월초순 전남 영광에 있는 「펜」벗 김선미씨(32)로부터 자기 시댁이 있는 영광군 군남면 옥슬리에 진숙이 같은 아이가 있으니 한번 와보라는 연락이 왔다. 연락을 받은 박여인은 그동안 많이 속기도 했지만 직장에서 5천원을 가불해서 영광으로 갔다. 가보니 이 마을 이용석씨(43)의 고명딸로 입적, 그 집에서 심부름을 하고 있는 영희양이 바로 6년전에 잃었던 자기딸이 아닌가. 다짜고짜 붙들고 울어버렸다. 어리둥절한 진숙양은 진짜 어머니의 돌연한 출연에 『엄마 저여자가 누구야』하면서 가짜 엄마품으로 달아나버렸다. 이씨는 어떤 방법으로 진숙이를 데려왔는지 경로를 밝히지 않았다. 단지 그같이 어수룩한 시골 사람이 진숙이를 유괴했을 것 같지는 않고 누가 유괴해다가 팔아버렸을 것 같다는 얘기. <춘천(春川)=김선중(金瑄中) 기자> [선데이서울 70년 7월 2일호 제3권 27호 통권 제 92호]
  • 한몸되어 숨진 처녀총각

    한몸되어 숨진 처녀총각

    물속에 빠져서도 떨어지기 싫어 네다리는 꼭꼭 엉겨서 용왕(龍王)님 앞으로 간 총각·처녀. 시집 못간 몽달 귀신의 원혼을 풀어주기 위해 무당 꼭둑각시 혼례식이 두 집 사돈들의 통곡속에 벌어졌다. 5색(色) 색지로 꾸민「넋혼(婚)」의 기막힌 이야기를 쫓으면-. 싣고온 채소를 팔고 사며 전부터 다정한 처녀 총각 뙤약볕이 뜨겁게 내려 쬐던 6월16일 낮3시. 강원도 춘성군 서면 신매리 고산 호숫가 잔디밭에서는 소꿉장난같은 꼭둑각시 신랑·신부가 백년가약을 맺는 영혼결혼식이 베풀어져 장관을 이뤘다. 『넋이라도 이제 한을 풀었겠구만! 저봐, 저봐. 신랑 신부가 서로 꼭 붙드네』 『아이고 어쩔거나! 기막혀라 아무렴 죽어서도 서로 못 떨어졌으니 이렇게 두 집 사돈네가 둘러선채 시집 장가보내 주는데 얼마나 좋을라고!』 바람이 한들거려 소꿉같은 신랑·신부 꼭둑각시 옷이 파르르 떨릴 때마다 구경꾼들은 제멋대로 떠들어 댔다. 꼭둑각시 신랑·신부 몸에 넋이 올랐다고-. 모여든 4백여 구경꾼들은 어쩐 일인지 축복은 고사하고 웃는 빛조차 찾아볼 수 없어 그저 침통한 표정들-. 용떡대신 백미가, 청실 홍실 대신 종이「테이프」를 차려 놓은 혼례식은 집례를 맡은 고물무당의「신부배례」라는 선언에, 빨간 갑사 치마 저고리로 예쁘게 차려 입은 신부 꼭둑각시가 어색하게 큰 절을 했고, 흰 색 옥양목 바지 저고리에 회색 조끼 차림의 신랑 꼭둑각시도 역시 어색하게 대례를 했다. 그러자 몰려든 구경꾼들 속에서는 오열섞인 통곡이 터져 나왔다. 지난 14일 하오 4시쯤 물놀이를 나간채 돌아오지 않은 총각과 처녀. 두사람은 이룰 수 없는 사랑을 비관했음인지 고요한 호수에 부둥켜 안은채 수중고혼이 된 신랑 신정구(申正求·22·춘천시 사농동2구6)군과 신부 육영자(陸英子·20·춘천시 소양로1가46)양-. 신랑 신군 가정과 신부 육양 집은 옛날부터 친하게 지내던 사이. 안사돈과 바깥사돈이 모두 절친한 사이였다. 신군집은 오이 배추등 채소를 가꿔 서부시장에서 채소전을 벌이고 있던 육양네 가게에 넘겨주는 사이였다. 이같은 내력으로 신군과 육양은 어려서부터 잘 아는 처녀 총각이었다. 그러던중 육양 아버지가 지난달 중순 신병으로 사망하고 오빠인 득호(得鎬)씨가 사업으로 생활을 이끌어가고 채소전은 그만뒀다. 신군이 시골에서 오이랑 배추등을 한「리어카」씩 싣고 오면 육양이 쫓아나가 거들어주고 하는동안 이들의 정은 깊을대로 깊어져 누가 봐도 정답고 알뜰하게 사랑하는 사이였다. 그러나 호사다마라 할까? 지병(持病)으로 고민했을 지도 놀러 간다고 집나가더니 이들은 서로가 알아서는 안될「프라이버시」를 간직하고 있었다. 신군은 착실한 일꾼이었으나 어렸을 때부터 술고래. 육양의 경우는 3남2녀중 막내딸. 남녀공학인 모중학교를 졸업했지만 지병인 간질병이 때때로 발작, 입에서 거품을 뿜어대고 성격이「와일드」한데다가 비교적 친구가 많아 한번 나가면 며칠씩 외박을 하기 일쑤였다. 그러던 것이 신군과 사귀면서부터는 사람이 몰라볼만큼 정숙해졌다. 몸에서는 처녀티가 나기시작했고 또 성격도 온순해져 오히려 지나치게「멜런컬리」해 가끔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할 정도. 이들 사랑의 밀도는 젊음만큼이나 활활 타올라 이제는 서로가 서로를 갈망하게끔 됐다. 그러나 육양의 지병인 간질병과 신군의 술주정뱅이 버릇은 근본적인 치유가 어려웠다.둘이 죽던 날도 육양은 아침 일찍 어머니에게 놀러간다고 돈 1천원만 달라고 조르다가 그대로 뛰어나갔고, 그날밤 10시쯤 끔찍한 소식을 가져다 준 것이다. 워낙 친하던 두 집안에서 생전의 원을 풀어 주자고 아버지가 죽은지 불과 한달만에 당하는 참변에 온식구는 슬퍼할 겨를도 없었다. 이들의 시체를 죽은지 20시간만인 다음날 하오 1시15분쯤 찾았을 때는 두 몸은 완전히 한몸이 되어있었다.「체리·보이」와「체리·걸」은 발까지 뒤엉킨 채 어찌나 단단히 끌어안았는지 잘 떼어낼 수도 없을정도로 엉킨채 건져 올려지자 양가 부모들의 통곡소리는 고요하던 호숫가를 출렁이며 멀리멀리 메아리져 갔다. 이들이 죽은뒤 신군집에서 먼저 육양집으로 통혼을 했다. 육양집에서도 승낙했다. 그렇게 해서 택일을 하고 신랑 집에서는 채단으로 신부가 입을 갑사 치마 저고리 한벌값을 보냈고 신부 집에서는 흰 옥양목 바지 저고리 조끼까지 한벌을 보냈다. 이날 성스러우면서도 비탄에 잠긴 결혼식을 집례한 고물무당이 신랑으로 현신하여 지난 3월28일밤 소양로 호숫가를 거닐면서 속삭인 밀어(蜜語)를 들어보면-. 신군=(취기 어린 목소리로)영자 우리 빨리 결혼해서 장사라도하며 재미있게 살아보자. 육양=(맘껏 애교를 떨며)당신이 술을 너무 마시니 술끊을 때까지 결혼을 않겠어요. 신군=내말 안들으면 너를 죽여 버리고 나도 죽을테야. 『세상에 알려진것 처럼 우리 영자가 그렇게 간질병 환자도 아니고 함께 물에 뛰어들만큼 오늘의 사랑이 절박했던 것도 아닐 것입니다. 그들이 정사를 하려면 유서 한장이라도 남겼을 것이고, 또 왜 죽을 각오였다면 팔뚝시계를 물가에 풀어 놨겠읍니까? 정사나 간질병이 발작해 죽은 것이 아니고…』 신군이 술에 취해 물속에 들어갔기때문에 심장마비를 일으켰을 것이라고 말하는 육양의 어머니 박씨. 젊은 애들이 불쌍하고 또 총각이 죽으면 몽달귀신이 돼 이 자리에서 자꾸 사고가 나게된다니 처녀 총각 귀신이나 면해 주자는 것이며, 젊은 애들끼리 함께 용왕님께 불려 갔으니 어른들의 도리로 생전 그 애들의 한이 결혼이었다면 한이나 풀어주기 위해 많은 혼례비용을 들여 영혼결혼식을 올렸다는 것. 또한 신랑 어머니가 가끔 사돈을 맺자고 농담을 하더니 그야말로 농가성진(弄假成眞)이 돼버렸다고 안타까와했다. 불청객들고 혼례가 끝나자 저세상에 가서나 다정한 내외가 되기를 기원하기도. [선데이서울 70년 6월 28일호 제3권 26호 통권 제 91호]
  • [HAPPY KOREA] “멜론 재배로 1년 열두달이 농번기”

    [HAPPY KOREA] “멜론 재배로 1년 열두달이 농번기”

    농산물 가격 폭락으로 수확은 고사하고, 논밭을 갈아엎었다는 상처받은 ‘농심(農心)’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농촌도 이제는 소득원을 다양화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한 우물만 파는’ 시대는 지났다. 위험을 줄이고 수익을 높이기 위해 분산 투자하는 ‘포트폴리오’ 전략이 단순히 주식시장에서만 한정된 것은 아니다.‘살기좋은 지역만들기’ 대상지역으로 선정된 경북 고령군 고령읍 쾌빈3리 가얏고마을 주민들도 알게 모르게 포트폴리오를 짜고 있었다. ●멜론으로 일어선 ‘작은 거인’ 가얏고마을은 주민이래 봐야 41가구 88명이 고작이다. 고령지역의 특화 쌀인 ‘흑미’가 주산물이지만, 그동안 별다른 재미를 못 봤다고 한다. 이에 주민들은 5년 전부터 가을 추수가 끝난 논에 비닐하우스를 설치해 멜론을 재배하기 시작했다. 멜론은 3∼6월이 수확철로, 멜론 수확이 끝나면 곧장 비닐하우스를 철거한 뒤 벼농사를 다시 짓는다. 이를 통해 1년 열두 달이 농번기로 바뀌었다. 600평 규모의 논에서 벼농사를 지을 경우 매출은 150만원에 그친다고 한다. 게다가 농기계 운영비와 비료값 등 각종 비용을 제하고 나면 남는 게 거의 없는 실정이다. 반면 같은 규모에서 멜론 재배를 통해 거둬들이는 매출은 1000만원, 순수익은 600만∼700만원 수준이다. 이렇게 마을 주민들이 멜론으로 얻는 수입만 연간 4억∼5억원에 이른다. 때문에 마을 주민들의 연평균 소득은 2300만원으로 적지 않은 수준까지 올랐다. 배(쌀)보다 배꼽(멜론)이 더 커진 셈이다. 대다수 농촌지역에서 급증하고 있는 빈집도 가얏고마을에만은 비켜가고 있다. 홍석진 이장은 “지난해부터는 도매상인을 거치지 않고, 농협으로 멜론 판로를 일원화한 것도 소득 향상에 기여했다.”면서 “벼농사는 안 지어도 멜론 농사는 반드시 지을 정도”라며 미소지었다. ●“우리는 아직도 배 고프다” 주민들은 여기서 만족하지 않는다. 살기 좋은 지역만들기 대상지역 선정을 계기로 새로운 소득원을 발굴,‘제2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인근 중화저수지에 자연생태학습장을 조성하고, 우륵과 가야금을 테마로 한 농촌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한다는 계획이다.1차 산업에 치우친 소득기반을 2·3차 산업으로 넓혀 나간다는 구상이다. 홍 이장은 “마을을 찾는 방문객이 늘면 직거래도 활성화돼 생산자와 소비자가 모두 이익을 얻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가얏고마을 주민들을 위해 이 지역 대학인 가야대도 거들고 나섰다. 주민들을 위한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고, 마을 경관을 정비하는 데 필요한 전통가옥 양식을 개발·보급한다는 구상이다. 고령지역에 숙박시설이 부족한 만큼 학교 기숙사를 활용할 수 있도록 개방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김원태 가야대 교수는 “마을이 자생력을 가져야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터전을 닦을 수 있고, 소득 증대보다 소득 분배가 훨씬 더 중요하다”면서 “방문객이 아닌 주민 관점에서 변화가 이뤄질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태근 고령군수는 “마을 주민들의 평균 소득을 오는 2010년까지 4700만원으로 지금보다 2배 이상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글 고령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사진 고령 이언탁기자 utl@seoul.co.kr ■ 촌부들의 희망가 “젊은 사람들 많은 마을 만들고 싶데이” 살기 좋은 지역만들기 대상지역으로 선정된 경북 고령군 가얏고마을 주민들의 바람은 소박했다. 하지만 절실했다. 표현 하나하나에는 자식에 대한,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물씬 풍겼다. ●이숙희(56·여) 서울 사는 맏딸 진경이, 수원 사는 큰아들 진봉이, 대구 사는 둘째 딸 보경이, 구미 사는 막내아들 덕봉이. 살기 좋도록 만들어준다 카이끼네. 흩어져 가지고 사는 4남매가 마을로 드와서(돌아와서) 다같이 살 수 있으면 좋겠데이. ●손욱수(55) 마을에서 아기 울음소리가 끊긴 지 5년이나 됐데이. 가구 수는 그대론데, 주민 수는 옛날보다 반도 몬(못) 미친다. 전형적인 농촌마을 아이가. 젊은 사람들은 모두 떠나뿌고, 젊은 사람들이 드오는 마을로 만들고 싶데이. ●조인제(50) 나이 50에도 우리 마을에서는 젊은 축에 더간다(든다). 아~들(아이들) 통학시키려면 어려움이 많테이. 내 집 고치는 것조차 불편한 게 이만저만 아이다. 나보다 젊은 사람들이 들어올라카믄 이런 불편을 없애주는기 맞다. ●손봉화(77) 우리야 크게 잘 살 것도, 불편할 것도 없다. 다만 마을 옆에 우륵박물관이 들어서고 나서 드오는 사람 한 명 없던기 마을에 사람들이 드오고 있다. 예전처럼 활기를 되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 ●변추자(51·여) 1979년에 여(이곳에) 시집 왔는데, 지금은 친정보다 좋다. 친정 식구들이 들으면 서운해 할 낀데, 기사에는 쓰지 마이소. 외지에서 시집온 나도 이제는 마을 사람 다 됐는데, 마을이 좋아지면 나 같은 사람이 계속 생길끼다. ●이일균(59) 나락(쌀) 농사만 지으면 20마지기(논 4000평)가 있어도 자식 교육 몬 시키는 게 농촌 현실이다.4남매 대학까지 보내느라 땅 팔고, 안 빌린 학자금이 없데이. 우리처럼 나이 든 사람이야 고향을 등지긴 어렵지만, 젊은 사람들이 돌아올라마 소득부터 불라야(늘려야) 한다. ●홍석진(62) 농사만 짓고 사는 것은 어려우이끼네 새로운 소득원도 찾고, 마을 경관도 정비해야 한다. 뭐 할라카마(해야 할지) 잘 모르겠고, 뭐든 힘을 모아서 열심히 할 끼다. ●김조자(67·여) 농촌을 발전시킬라꼬 하면서, 뭐 할라카마(하려고 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뭔 규제가 많노. 마을 발전이라는 게 별 게 있나. 하고 싶은 게 있으면 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하는 거 아이가. ●손용수(67) 농촌이 어렵기는 어딜 가나 마찬가지지만, 우리 동네는 그동안 살기 좋다는 말은 들어왔다. 이웃끼리 단합도 잘 되고, 마을 일에 너나할 것 없이 거든다. 살기 좋은 마을 만든다며 좋은 분위기 뿌사지지 안을랑가 걱정이데이. ●김태선(62·여) 살기 좋은 지역을 만들겠다는데 의심부터 든다. 주민들끼리 갈등이나 불만 없이 이뤄졌으면 좋겠다. 주민들 마음부터 헤아리는 게 살기 좋은 지역 만들기 아이가. 그라믄 뭘 한다고 해도 걱정 없다. ●김종순(55·여) 인생은 육십부터잉께네, 마을을 바꾸마 인자(이제)부터 올키(제대로) 인생을 살끼 아이가. 아직 50대 청춘인데 걱정 안 한다. ●김순자(56·여) 인자는 농촌도 농번기, 농한기 구분없이 일을 많이 해야 한다. 팔, 다리 아픈데 운동시설도 넣어주고, 목욕탕이라도 하나 있어야 일 마치고 시원하게 풍덩 빠질 수 있는 거 아이가. 그라믄 된다. 고령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가얏고마을’ 이렇게 변신 ‘관광 안내원’을 자청한 이태근(60) 고령군수를 따라 나섰다.1만 1000여명이 거주하는 고령읍내는 차로 2∼3시간 정도면 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아담했다. 고령은 4∼5세기에 번성했던 대가야의 도읍지였으나, 남아 있는 사료가 충분치 않아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 하지만 읍내 뒷산인 주산 능선을 따라 올록볼록 솟아 있는 200여기의 고분들, 고분에서 발견된 문화재를 모아둔 대가야박물관·왕릉전시관, 우륵이 가야금을 만들고 탔다는 정정골, 선사시대 바위그림인 양전동 암각화 등 다양한 문화유적으로 둘러싸여 있어 하루 종일 다리품을 팔아도 지루하지 않다. 이것도 모자라 한창 공사 중인 70만평 규모의 수목원,5만평 규모의 대가야테마파크 등이 올해 안에 모습을 드러낼 예정이다. 이 군수는 “지난해 180만명 정도가 고령을 찾았지만 대부분 사지도 않고, 쓰지도 않고, 하룻밤 머물지도 않고 그냥 가는 게 현실”이라면서 “도로 하나 덜 내더라도 역사와 문화를 되살리는 게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살기 좋은 지역만들기 대상지역인 가얏고마을은 읍내 동북쪽에 위치한 정정골이다. 정정이라는 마을 이름도 맑은 가야금 소리에서 유래했다. 마을 양 옆으로는 각각 중화저수지와 우륵박물관이 자리잡고 있다. 때문에 가얏고마을의 변신은 대가야를 대표하는 가야금과 맞물려 있다. 마을 인근에는 현악기전시장과 가야금체험관, 예술인촌 등 ‘하드웨어’가 구축될 예정이다. 국제현악기축제와 농촌체험프로그램과 같은 ‘소프트웨어’도 마련된다. 전통 현악기의 ‘메카’로 자리매김시킨다는 구상이다. 이를 위해 올해부터 3년 동안 국비 34억원, 지방비 38억원, 민자유치 30억원 등 100억원 이상을 투자할 계획이다. 이 군수는 “읍내를 중심으로 동서남북 사방에 흩어져 있는 역사·문화 인프라를 하나로 묶어낼 것”이라면서 “필요하다면 고령군에서 가야군으로 개칭도 검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고령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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