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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깔깔깔]

    ●구명보트 두목:“이번 여름에 바닷가에 가서 극기 훈련을 하려고 하는데 어떤 장비가 필요한지 말해 봐라.” 부하:“형님.구명보트가 필요한 것 같은데.” 두목:“우리 인원이 전부 타려면 구명보트 몇 개가 필요하지?” 부하:“우리 인원이 다 타려면 5개가 필요한 것 같은데요.” 두목:“이 자식아, 우리 식구들 인원이 45명인데 5개 가지고 되겠어?” 부하:“아따, 형님. 구명보트가 왜 구명보트인지 모르시죠? 탑승가능인원이 총 9명이어서 구명보트라고 하잖아요.” 두목:“이 돌대가리야. 그러면 구명조끼의 경우는 조끼 한 개를 9명이 입는다고 구명조끼냐?”
  • 코믹액션 영화 ‘7급 공무원’ 특급 웃음태풍 불까

    코믹액션 영화 ‘7급 공무원’ 특급 웃음태풍 불까

    ‘7급 공무원’(감독 신태라, 제작 하리마오 픽쳐스)에 대한 기대가 높다. 애초엔 대작들의 기세에 밀려 큰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최근 시사회에서 베일을 벗은 이후 제2의 ‘과속스캔들’이란 찬사까지 얻고 있다. 하지만 이견도 만만치 않다. ‘과속스캔들’ 같은 흥행몰이는 영화의 힘만으로는 쉽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과연 ‘7급 공무원’은 충무로에 몇 급짜리 훈풍을 불러일으킬까. 코믹 액션 영화 ‘7급 공무원’은 신분을 위장한 채 속고 속이는 커플이 주인공이다. 국가정보원 6년차 요원 안수지(김하늘)는 일방적으로 이별을 통보하고 떠나버린 이재준(강지환)을 생각하면 지금도 이가 갈린다. 밥 먹듯 하는 수지의 거짓말에 지쳐 러시아로 유학을 떠난 재준은 국정원 신참 요원이 되어 돌아온다. 3년 만에 우연히 마주친 두 사람. 서로의 정체를 모르는 그들은 사건현장마다 나타나는 옛 애인의 모습에 당황해한다. 첩보원 커플이란 소재는 할리우드 영화 ‘미스터 앤 미세스 스미스’를 떠올리게 한다. 때문에 아류 아니냐는 우려가 일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7급 공무원’ 천성일 작가는 각본을 쓸 당시 ‘미스터 앤 미세스 스미스’를 알지도 못했다는 전언이다. 유머와 액션이 겸비된 점에서 ‘트루라이즈’, ‘나쁜 녀석들’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그렇더라도 분위기는 확연히 다르다. ‘7급 공무원’엔 고추장과 된장이 팍팍 버무려진 까닭이다. 그렇다고 한국 코미디 영화 하면 떠올릴 법한 과도한 음담패설과 비속어, 눈살 찌푸려지는 가학적 폭력은 거의 없다. 총성은 오고가지만 죽는 이도 피흘리는 이도 없다. 신태라 감독은 “처음부터 유해성 없는 영화, 깨끗하고 건강한 영화로 만들고 싶었다.”고 말한다. 배우들의 살아있는 연기가 볼 만하다. 주인공 역을 맡은 김하늘은 승마와 제트 스키 등 갖은 액션과 여유가 빛나는 능청스러운 코미디로 수준급 연기를 보여준다. 지난해 ‘영화는 영화다’로 국내 영화제 신인상을 휩쓸었던 강지환은 능력보다 의욕이 앞서는 신참 역을 맡아 주연으로서의 몫을 톡톡히 해냈다. 류승룡, 장영남, 강신일 등 감초 조연들의 매력도 빼놓을 수 없다. 다수의 캐릭터가 실존인물을 모델로 했다는 점도 흥미롭다. 이재준(강지환)과 원석(류승룡), 홍팀장(장영남), 상봉(김형종), 삼성맨(박성민)은 모두 천 작가 주변 인물들에게서 성격과 행동 특성을 따왔다. 이 때문인지 ‘7급 공무원’의 인물들은 제각각 독특하면서도 일관성 있는 개성을 보인다. 직업이 직업이니만큼 국정원 요원의 생활 묘사도 필수적일 터. 하지만 사실성을 기대한다면 실망할 수도 있다. ‘7급 공무원’의 관심사는 사실적 재현보다는 재미에 있기 때문이다. 허구를 듬뿍 가미한 몇몇 장면에 관객들이 ‘실제로도 저렇대?’하고 의문을 제기하더라도 이상할 일이 아니다. 물론 국정원의 적극적인 협조와 자문을 거쳤다. 국정원 전경, 사격장 장면도 실제 내부촬영을 통해 이뤄졌다. 그밖에도 음지, 양지에서 많은 도움을 얻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영화관계자는 “규정상 자세히 밝힐 수 없다.”는 첩보물다운 답변을 내놓았다. 언론·일반 시사회에서는 열띤 반응이 나왔다. 이에 힘입어 영화사는 18,19일 전국 7개관 유료 시사회도 벌인다. 초반부터 입소문을 확보하겠다는 전략이다. 일각에서는 올 초 800만 관객을 동원한 ‘과속스캔들’처럼 의외의 대박을 올리는 것 아니냐는 전망도 나온다. 그러나 ‘과속스캔들’ 보다 여건이 호락호락하지 않다. 경쟁작이 드문 개봉 첫주는 희망적이지만 ‘박쥐’, ‘인사동 스캔들’ 등이 몰려드는 둘째주부터는 장담하기 어렵다. 젊은 세대에 맞는 코드와 컨셉트도 ‘과속스캔들’ 만큼의 성적을 기대하기 어렵게 하는 요소다. 영화평론가 김봉석씨는 “‘과속스캔들’은 가족 이야기를 다뤄 넓은 세대의 공감을 얻을 수 있었다.”면서 “한국에서 500만 이상이 보려면 아무리 재미있는 오락영화라 해도 여러 세대가 공유할 수 있는 국민적 이슈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12세 이상 관람가. 23일 개봉. 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신태라 감독 “탄탄한 시나리오·배우들 열연 덕에 호평받아” 썰렁하기로 유명한 기자시사회. 객석 곳곳에서 키득키득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웃음은 얼마 뒤 폭소로 변했다.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는 박수와 환호가 터져나왔다. “저도 깜짝 놀랐어요. 긴장을 많이 했거든요. 반응이 좋아서 이분들이 혹시 기자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어요.” 사흘 뒤인 16일 만난 ‘7급 공무원’(23일 개봉) 신태라 감독은 아직도 시사회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듯했다. ‘7급 공무원’은 그가 처음 도전한 코믹 액션물이자 세 번째 장편영화. 스릴러물인 전작 ‘브레인웨이브’와 ‘검은 집’을 기억하는 이들은 ‘뜻밖의 선회’라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친구들은 “딱 맞는 과를 찾았다.”, “유치한 네게 잘 어울린다.”며 등을 두드려 주었다. “원래 SF나 판타지를 좋아하는데 아직은 어려운 여건이니 시도를 많이 해볼 수 있는 영화를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검은 집’ 이후 한동안 공포 시나리오만 들어오더라고요. 사실 전 무서워서 공포 영화를 잘 보지도 못하는 편이거든요. ‘검은 집’은 도전해볼 가치가 있다 싶어서 한 거였죠. 어떡하나 싶던 차에 ‘7급 공무원’ 시나리오가 들어왔어요. 읽는데 진짜 재밌더라고요. 바로 하자고 했죠.” 2007년 여름 즈음이었다. 덜컥 맡았지만, 걱정이 많았다. 코미디는 잘 만들면 본전, 못 만들면 ‘개망신’이라는 게 충무로 통념이었다. 하지만 고민은 오래 가지 않았다. 시나리오가 가진 힘이 워낙 탄탄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 초 시작한 촬영은 두 달 동안 60회차 만에 끝을 봤지만, 감독은 또다시 3개월 동안 죽을 힘을 다해 편집에 매달렸다. 리듬감 넘치는 편집은 편집실에 살다시피 한 땀방울의 산물이다. 무엇보다 관객들이 영화에 편안하게 몰입할 수 있는 것은 배우들의 힘이 크다. 김하늘과 강지환은 마치 물 만난 고기처럼 펄떡거린다. 알고 보면 그같은 호연에는 감독의 배려와 내공이 숨어 있다. 감독은 수지, 재준의 캐릭터로 ‘버럭녀’, ‘삽질남’이란 키워드만 던져준 채 마음껏 풀어줬다. 고춘자·장소팔의 만담쇼 같은 이미지는 그렇게 해서 탄생했다. “주연은 물론 조연들에게도 각 신별 요점만 정리해 줬죠. ‘내가 원하는 건 그 안에 다 써있으니 그것만 지켜달라. 나머지는 알아서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했어요. 그게 좋았던지 신나서 준비를 더 해오더라고요. 특히 강지환씨는 슛 들어갔는데 리허설 땐 없던 새로운 뭔가를 계속 보여줬어요. 스태프들이 웃음을 못 참고 깔깔거리곤 했죠. 서로 즐거웠어요. 이번 기회로 저도 많이 가두면 안 된다는 걸 배웠어요.” 시사회 이후 호평이 쏟아졌다. 가장 마음에 드는 반응이 뭐냐고 물으니 “영화가 착하다, 솔직하다는 말이었다.”고 했다. 작품은 주인을 닮는다고 했던가. 신 감독의 인상이 딱 그랬다. ‘착하고 솔직하게 보인다.’ 아닌 게 아니라, 촬영현장에서의 별명도 ‘천사 감독님’이었다는 게 홍보관계자의 귀띔이다. 각본을 쓴 천성일 작가는 이 영화의 투자가 결정되자 내친 김에 제작사를 차렸다. 회사명은 다름 아닌 ‘7급 공무원’에 등장하는 국정원 정예파트 ‘하리마오팀’을 따서 ‘하리마오 픽쳐스’. ‘하리마오’는 용맹한 호랑이를 뜻하는 인도네시아어다. 벌써부터 속편을 기대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제목은 ‘5급 공무원’이 될 거라는 믿거나 말거나 소문도 있다. 감독은 “우선 ‘7급 공무원’ 성적이 좋아야죠.”라며 손사래를 치면서도 내심 기분이 좋은 표정이다. “‘검은 집’은 공포물이어서 식구들에게 보여주기 민망하고 그랬는데, 이번 영화는 가족들에게도 보여주려고요. 관객들도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즐기러들 오셨으면 좋겠어요.” 글 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사진 손형준기자 boltagoo@seoul.co.kr
  • [스포츠 라운지] 핸드볼 대표팀 막내 정수영

    [스포츠 라운지] 핸드볼 대표팀 막내 정수영

    베이징올림픽 남자핸드볼 조별리그 덴마크전이 한창이던 지난해 8월12일. 경기장 전광판의 숫자는 30-30을 가리키고 있었다. 종료 3초전. 순간 숫사자를 연상시키는 갈기머리의 정수영이 공중으로 붕 뛰어올랐고, 공은 그대로 골망을 갈랐다.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유럽 챔피언’ 덴마크는 한국팀 ‘막내’에게 그렇게 무너졌다. ●‘어머니의 눈물을 던진다’ 센터백, 라이트백, 라이트윙 등 어느 자리를 맡겨놔도 척척 해낼 정도로 만능인 올라운드 플레이어 정수영은 윤경신(36·두산)의 계보를 잇는 차세대 골게터였다. 하남 동부초등학교 4학년 때 정수영은 우연히 핸드볼장에 구경갔다. 쭉 뻗은 체형이 맘에 들었던 이재서 감독(현 웰컴코로사 감독)이 공을 쥐어주며 “한 번 던져보라.”고 권했고, 왼손으로 던지는 야무진 모습에 감독은 ‘꽂혔다’. 이후 정수영은 15년 동안 핸드볼을 손에 달고 살았다. 배고픈 ‘한데볼’을 하면서 굳건히 버틸 수 있었던 원동력은 뭘까. “원래 제가 고집이 세요.”라고만 말하며 씩 웃는다. 물론 고비도 있었다. 강압적이고 혹독한 훈련이 견디기 힘들어서 도망가기도 여러 차례. 감독에게 맞고 도망쳐 방황하던 정수영이 다시 공을 잡은 건 ‘어머니의 눈물’ 때문이다. “도망간 저 때문에 우시는 어머니를 보고 번쩍 정신이 들었죠. 운동에 집중하겠다고 마음 먹고 이를 악물었어요.” 이후 그의 핸드볼 인생은 승승장구였다. 고등학교 3학년 2월에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달았다. 벤치에 있었지만 가장 감격적인 순간이었다. “얼떨떨했어요. 국가대표는 최고의 꿈이잖아요.” 그는 경희대 재학시절엔 8번 우승, 코로사에 입단한 지난해에는 3차례나 우승하는 감격을 누렸다. ●해체위기 아픔 딛고 이젠 운동에만 전념 사실 정수영은 그동안 마음고생이 심했다. 소속팀 코로사가 자금사정으로 해체위기에 처했던 때문. 지난해 11~12월에는 월급 줄 사정이 안돼 단체로 휴가를 써야 했다.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우울했던, 그러나 악에 받쳐 뛰었던 핸드볼큰잔치가 끝날 즈음 언론으로부터 연일 ‘해체임박, 고별전’ 등이 전해졌다. “그 때 정말 곤란했어요. 팀 사정이 나쁘단 소식에 다른 구단의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왔어요. 결국 팀 동료들도 눈치챘죠.” 다시 생각해도 난처한 듯 머리를 긁적인다. “다들 말은 안했지만 어색했어요. 나중에 술자리에서 형들이 어깨를 두드리면서 ‘네가 다른 팀을 가도 좋지만 그래도 우리랑 같이 했음 좋겠다.’고 말하는데 눈물이 핑 돌았어요.” 정수영은 끈끈한 전우애(?)를 느꼈다. “항상 같이 있는 식구들이잖아요.”라며 팀에 대한 애틋함을 숨기지 않는다. 다행히 절박한 사정을 전해들은 스폰서가 나타나 이제는 운동에만 전념할 수 있게 됐다. 현재는 지난 10일 개막한 ‘슈퍼리그 코리아’ 대회 때문에 부산에 머물고 있다. “많은 게임을 하니까 실력도 늘고 도움이 돼요. 피곤하긴 한데 재밌네요.”하며 들뜬 모습이다. 탄탄대로를 달리고 있는 정수영의 목표는 뭘까. “일단 내년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따서 군면제를 받고 싶어요. 또 실력을 키워 해외진출도 하고 싶고요. 참, 장기적으로는 지금 자라나는 왼손잡이들의 우상이 되면 행복할 것 같아요.” 눈을 반짝이며 거침없이 포부를 드러내는 정수영은 욕심많은 왼손잡이다. 글 조은지기자 zone4@seoul.co.kr 사진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 정수영은 누구 ▲ 1985년 10월17일 경기 하남 출생 ▲ 185㎝ 83㎏ AB형 ▲ 학력 : 하남 동부초-남한중-남한고-경희대-코로사 입단(2008년) ▲ 포지션 : RW, RB, CB 등 올라운드 플레이어 ▲ 경력 : 2003~04 신인상, 2008베이징올림픽 국가대표, 2009핸드볼큰잔치 베스트7 ▲ 별명 : 수발이, 싸가지 ▲ 닮고 싶은 선수 : 이재우(30·일본 다이도스틸) ▲ 징크스 : 경기에서 쏜 첫 슈팅을 성공시켜야 한다.
  • [뉴스 다큐 시선] 도봉산 산악구조대

    [뉴스 다큐 시선] 도봉산 산악구조대

    서울 도봉산에 가면 다른 산에서 좀체로 보기 힘든 이들이 있다. 해발 650m 지점에 자리잡은 산악구조대, 전국에 3개뿐인 경찰산악구조대 중 하나다. 서울에선 북한산구조대와 더불어 등산객들의 지킴이 역할을 해 왔다. 상춘객들의 이어지는 이맘 때, 그들에겐 봄을 즐길 여유가 없다. 26년간 등산로에서 조용히 사람과 산을 지켜 왔을 뿐이다. 생명을 지키는 의무감과 끈끈한 동료애로 뭉친 그들이 ‘산에서 배워 사람들에게 베푸는’ 등정길을 따라가 봤다. 글·사진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산악구조대’라는 글씨가 새겨진 녹색점퍼 차림의 구조대원들의 순찰길을 따라나섰다. 구조대 산장에서 마당바위 쪽으로 가다 신선대로 방향을 트는 비교적 짧은 코스였다. 10분쯤 지났을까 숨이 턱 밑까지 차올랐다. 그러나 대원들은 축지법을 쓰며 날아다니는 손오공 같았다. 다들 아무리 20대 초반이라지만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았고 발걸음은 마치 솜털 같이 가벼워 보였다. 세 갈래 길 앞에 다다르니 등산로를 벗어나 낙엽이 쌓인 좁은 길로 접어들었다. 인명을 구조할 때 이용하는 단축 루트라고 한다. 김준석(22) 대원은 “구조할 때 헬기가 뜰 수 있는 날은 절반밖에 안 된다. 대부분 우리들이 들쳐 업거나 들것에 싣고 119구급대가 있는 산밑까지 무조건 뛰어야 한다.”고 말했다. 신선대부터 주봉, 포대능선을 거쳐 사패산까지가 구조대의 영역이다. 하루 24시간 비상대기체제다. 도봉산은 대부분 암반과 기암절벽으로 돼 있어 안전사고가 잦은 편이다. 지난해만 해도 125명이 다치고 2명이 목숨을 잃었다. 올해는 3월 현재까지만 17명이 다치고 3명이 숨졌다. 지난달 28일엔 1만 4245명이 방문해 하루 동안 구조 헬기가 세 번이나 떴다. 구조대원이라고 다치지 말란 법은 없다. 김병철(54) 대장은 “지난해 송추에서 신선대로 오는 길목에서 사고가 접수됐는데 우리 대원이 구조하러 뛰어가다가 돌 사이에 발이 끼어 넘어지는 바람에 다리가 골절됐다.”면서 “사람 구하기도 전에 대원들이 먼저 일 치르겠다는 생각이 번쩍 나더라.”며 아찔했던 순간을 떠올렸다. 전득주(45) 대장은 아침에 올라오면 근처 석굴암에 들러서 다치는 사람이 없게 해달라고 기도부터 올린다. 종교는 없지만 지난해 5월 도봉산으로 거처를 옮긴 이후 생긴 버릇이다. ●산에서 인생을 배운다 의경 신분이라 아직 어린 대원들은 산에서 인생의 첫 죽음을 경험했다. 홍기문(22) 대원이 겪은 첫 사망자는 아직도 그의 가슴에서 떠나지 않는다. 지난해 5월 칼바위에서 떨어져 죽은 20대 남자다. 어려운 집안사정 때문에 결혼을 미뤄 왔다고 한다. 결혼할 때까지 약혼녀가 뒷바라지해 준 끝에 어렵게 취직했다며 좋아하던 얼굴이 떠올랐다. 이 남자는 약혼녀와 등산복을 맞춰 입고 다정하게 손잡고 도봉산을 찾았다. 가파른 암벽 앞에서 약혼녀를 산에서 내려가는 길로 먼저 보내고 혼자 바위를 탄 게 마지막이었다. 싸늘한 주검이 되어서 돌아온 것이다. 이렇듯 죽음이 쌓여갈수록 그들은 삶을 배운다. “구조하면서 오히려 저희가 더 배웁니다. 삶에 감사하고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돼요. 산 앞에서 겸손해지기도 하고요.” 홍 대원은 순찰을 돌다 사망지점을 밟을 땐 이 곳에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이 눈에 선해진다. 그럴 땐 영혼이 산을 맴돌지 말고 편한 곳으로 가시라고 잠시 두 손도 모아 본다. 대원들의 목소리는 하나 같이 차분하고 얼굴은 부처처럼 온화하다. 분초를 다투는 응급현장에선 나이가 서너배 많은 어르신도 그들의 등에 의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리라. 산은 인생이다. 오르막과 내리막길이 쉼없이 이어진다. 급한 맘에 성급히 추월하거나 준비없이 덤벼들면 사고가 나게 마련이다. 날이 궂은 날엔 오히려 사고가 적다. 노인들의 사고 빈도도 낮다. 험한 날엔 일부러 조심하고 노인들은 자신의 약점을 알기 때문이다. ‘등산 좀 했다.’고 자부하는 30~40대들이 잘 다친다. 사고는 순간이다. 대원들은 “산에선 1초도 만만히 봐선 안 된다.”라며 신신당부했다. 구조대원들에게 시간은 곧 생명이다. 때문에 ‘One for all, all for one(모두를 위한 하나, 하나를 위한 모두)’의 정신이 강조된다. 고참이니 신참이니 하는 위계 질서는 중요치 않다. 서로에 대한 믿음이 로프처럼 단단히 엮여져 있어야 한다. 전득주 대장은 “팀워크가 중요하기 때문에 대원을 뽑을 때 신체조건보다 인성을 더 본다.”고 소개했다. ●“등산도 경쟁의 장이 돼서 안타깝다” 조난 접수가 들어오면 실종자를 찾을 때까지 몇 시간이 걸려도 온 산을 헤매고 다녀야 한다. 김준석 대원은 “그럴 땐 머릿속에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제발 빨리 찾아서 구하게 해달라는 간절함 뿐이다.”라고 말했다. 구급장비가 담긴 20㎏짜리 배낭을 짊어지고 힘든 걸 느낄 새도 없이 뛰고 난 다음날이면 옴짝달싹 못한다. 등산객들이 봄꽃을 즐기는 쉼터가 그들에겐 촉각을 다투는 응급현장이자 삶의 배움터다. 사망자가 생길 땐 내 탓인것 같아 죄책감에 시달리는 경우도 많다. 전 대장에겐 지난해 12월에 사망한 40대 여성의 경우가 그랬다. 영하 12도가 넘는 칼바람 추위에 해질 무렵쯤 만장봉에서 추락자 신고가 접수됐다. 전 대장은 “갈비뼈가 부러지고 머리를 심하게 다쳤는데 헬기 예열시간을 벌려고 미리 헬기 요청을 띄워 놓고 현장에 나선 사이 최종 결재를 기다리다 시간이 좀 걸렸다.”면서 “그날따라 사정상 헬기는 뜨지 못했고 구조대가 병원으로 옮겼지만 환자는 결국 숨졌다.”며 안타까워했다. 주5일제 이후 등산객이 급증했지만 등반 문화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즐기는 게 아니라 남보다 앞서서 산 정상을 올라가기에 바쁘다는 지적이다. 전 대장은 “원래 우리의 산 문화는 ‘입산(入山)’이다. 굳이 정상을 밟지 않아도 물 좋고 바람 좋은 바위에 걸터 앉아 시 한 수 읋고 피리부는 풍류를 즐기는 쪽이었다.”면서 “그런데 서양식 산행 문화가 도입되면서 언제부턴가 정상탈환이 목표가 돼버렸다. 등반시간을 단축해야 된다는 생각에 산도 대결의 장으로 바뀐 것 같아 안타깝다.”며 멀리 산너머로 눈길을 돌렸다. ●몸짱·마음짱으로 다시 태어나기까지  등산로는 대원들에겐 생명길이다. 구조대에 들어오면 먼저 도봉산 등산로 지도를 그리고 읽는 법부터 배운다. 지난달 23일 입산한 막둥이 김수호(21) 대원은 아직도 등산 루트를 정확하게 외지 못했다. 마당바위~관음암~칼바위~신선대~포대능선 등 주 순찰 코스는 서너곳. 그러나 산악구조대원이라는 명함이라도 들이밀자면 등산로 수십 개를 훤히 꿰고 있어야 한다. 김 대원은 그러면서도 “사고 다발지역인 칼바위, 포대능선쪽은 자신있다. 순찰 때마다 앞장서서 가보곤 한다.”며 자랑했다.  등반대에 들어오면 3주 정도는 구조요청 접수, 응급처치 연습 등 실전에 투입될 준비를 한다. 대원들에게 주어지는 덤이라면 시간이 지날수록 단련되는 몸이다. ‘물살’로 입산해서 한 달이 지나면 배가 들어가고 6개월이 지나면 잔근육이 튀어 나오기 시작한다. 하산할 때쯤엔 다들 몸짱으로 변신한다. 자신만의 은신처도 생기게 마련이다. 홍 대원은 “마당바위로 가는 길목에 아지트가 있다. 사람들의 왕래도 적고 햇볕이나 바람을 피할 수 있는 데다 바위가 험하지 않아 힘들 때면 찾곤 한다.”고 귀띔했다. 입산해서 처음 내려다 봤던 서울 야경에 푹 빠진 적이 있었다. 홍 대원은 “새까만 바탕에 별빛처럼 박힌 도심의 불빛을 보고 고참들에게 ‘절경 보고 왔습니다.’고 보고했더니 막 웃더라. 그것도 한달만 지나면 지겨워진다고.”라며 웃어 보였다.  하산이 두 달도 채 남지 않은 최고참 박서광(22) 대원 눈에 비친 산과 사람들의 모습은 어떨까. 박 대원은 “의외로 어른 같지 않은 어른들도 많다. 술이 취했거나 다투는 사람들, 불법취사를 하거나 인화물질을 소지한 이들까지. 안 된다고 말하면 막 대하는 분들도 많다.”며 씁쓸해했다. 의무경찰기간을 대충 때우라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박 대원은 “우리에게 ‘대충’이란 없다. 산에서 생명을 구하는 이들은 우리뿐이고 또 그 우리도 그 속에서 많은 걸 배운다.”며 힘주어 말했다. ■ 도봉산 산악구조대는 총8명 24시간 비상대기 26년째 ‘생명 지킴이’로 1983년 3월 북한산 인수봉에서 대학생 산악연맹 소속 7명이 암벽에 매달려 동사한 사고가 일어났다. 119구조대가 출동했지만 꽁꽁 언 로프 때문에 바위 아래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이 비극을 계기로 북한산과 도봉산에 산악구조대가 생겼다. 24시간씩 교대근무하는 대장 3명과 대원(의경) 5명이 한 식구다. 도봉산 정상 선인봉 약 300m 아래의 암벽 밑에 위치한 구조대는 2003년 12월, 99㎡(약30평) 남짓한 아담한 단층 목재건물에 둥지를 틀었다. 침실 2개와 주방, 화장실을 갖췄지만 대원들은 그전까지 움막 같은 곳에서 쪽잠을 자야 했다. 물도 맘놓고 쓸 수 없었지만 지난해 11월 근처 샘(푸른샘)을 연결해 그나마 생활이 나아졌다. 대원들은 “이제는 등산객들이 언제고 방문해도 마음껏 물동냥을 할 수 있다.”고 자랑했다. 1t짜리 물탱크와 정화조를 갖춰 도봉산 환경 문제도 해결했다. 이들의 하루 일과는 순찰로 시작해 순찰로 끝난다. 아침 6시30분쯤 일어나 끼니 때와 쉬는 시간을 제외하면 항상 2인 1조로 짜여 무전기를 동반하고 순찰을 돈다. 하루 최소 7시간 이상을 산 속에서 보낸다고 한다. 구조대에 도착하면 마스코트인 혼혈 진돗개 ‘마초’가 먼저 맞아 준다. 앞서 자리를 지켰던 흑삽살이가 병으로 아쉽게 저 세상으로 간 뒤 들여온 녀석이다. 등산객들의 왕래가 잦은 곳이라 심하게 짖지는 않지만 눈빛이 날카로워 ‘마초’란 이름이 붙었다. 낯을 익히면 금방 짓궂게 달려드는 놈이다. 구조대를 힘빠지게 하는 것은 오래된 구조 매뉴얼과 부실한 현장 지원이다. 구조헬기는 소방방재청장의 최종 결재가 떨어져야 뜰 수 있다. 분초를 다투는 현장에선 가슴이 터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대장까지 6명, 소규모 살림에 의경 한 끼 부식비 1200여원은 빠듯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산을 오르내리며 등산객들이 건네는 ‘수고하십니다.’ 한 마디, 도움받은 이들이 고맙다며 산 아래 맡겨 놓는 김치 한 통에 오늘도 대원들은 밤낮없이 도봉산을 누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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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엄마와 읽는 동화] 참꽃이 피면/이상배

    [엄마와 읽는 동화] 참꽃이 피면/이상배

    이런 수수께끼가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넘기 힘든 고개가 무엇일까?” 그 답은 ‘보릿고개’입니다. 보릿고개가 어떤 고개일까요? 이 동화는 보릿고개 시대에 어린 시절을 보낸 우리의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이야기입니다. 강남 갔던 제비 오고 꽃 피고 새 울어도 우리네 농군 박 서방은 웃을 줄 모르네. 해 다 지고 저문 날에 저녁 연기 사라지고 찬물 켜고 문 닫아 걸고 초저녁잠만 자네 어히야, 어히야 태산보다 높은 이 보릿고개를 어히 넘어갈꺼나. 태산보다 높다는 보릿고개는 해마다 봄이 오면 시작되었습니다. 어느 해인가 가뭄이 오래도록 계속되었습니다. 농부들은 새봄이 오는 것이 겁이 났습니다. 올해도 가뭄이 들면 어쩌나 하는 걱정과 한편으로는 양식이 바닥났기 때문입니다. 해마다 찾아오는 보릿고개. 바로 그 배고픔의 긴 고갯길이 닥쳐온 것입니다. 그해, 은행골에는 유난히 아이들이 많았습니다. 모두들 그해에 초등학교를 졸업한 또래들로 그중 여러 아이들이 중학교에 가지 못했습니다. 공부를 못해서가 아니라 너무 가난했기 때문입니다. 또래들은 어린 농부가 되었습니다. 저마다 몸에 맞는 지게를 하나씩 맞췄습니다. 또래들은 농부가 되어 지게질하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이미 쇠꼴쯤은 한 짐씩 해 나르던 일이라 스스로 멜빵을 알맞게 줄이고 등받이를 두껍게 받쳐 편안하게 손질까지 해 두었습니다. 어린 농부들이 할 일은 여러 가지입니다. 겨우내 재워 둔 두엄을 져 나르고 가까운 산으로 나무를 하러 갔습니다. 나무하러 갈 때는 혼자 가지 않고 여럿이 함께 갔습니다. 하지만 나무 한 짐을 하기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먹을 양식보다도 땔감이 먼저 떨어져 가까운 산에는 할 나무가 없었습니다. “우리도 먼 산으로 나무하러 가자.” “어른들이 데려가 주지 않잖아.” “먼 산에 가면 좋은 솔가리가 무지하게 많다는데.” 또래들은 작은 나뭇짐을 받쳐 놓고 떠들고 있습니다. 먼 산! 그곳은 해마다 봄이 오면 어른 일꾼들이 나무를 하러 가는 산입니다. 가까운 산에는 아무리 뒤져도 솔가리 나무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시오리도 넘는 백마산으로 나무를 하러 다녔습니다. 나무꾼들은 새벽밥을 먹고 먼 산 나무를 떠납니다. 머리에 수건을 질끈 동여매고, 꽁보리밥에 고추장 반찬을 싼 도시락을 지게뿔에 댕그라니 매달고 집을 나섰습니다. 나무꾼 행렬은 길었습니다. 집집마다 솔가리 나무라도 해다 팔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또래들은 어른 나무꾼들이 무척 부러웠습니다. “우리도 데려가 주지….” 마을 고갯길을 넘으면 커다란 저수지가 있습니다. 나무꾼 행렬은 저수지 둑을 지나 산길로 접어듭니다. 집집의 식구들은 저수지 둑까지 배웅을 나갔습니다. 나무꾼들이 가는 먼 백마산 봉우리는 그곳에서도 잘 보였습니다. 아침 안개에 싸여 그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 백마산의 상상봉은 또래들의 꿈이었습니다. 그곳에 가면 무엇인가 신기하고 신비스러운 것들이 숨어 있을 것 같았습니다. 어른 나무꾼들은 나무하러 갔다 와서 늘 이렇게 말했습니다. “백마산이 명산은 명산이지. 물 좋고 나무 흔하고, 오고 가는 시간이 많이 걸려 문제지 나무 한 짐 하는 건 순식간이지.” 나무꾼들은 매일같이 먼 산을 다녀오면서도 조금도 힘들어하지 않았습니다. 이른 새벽에 떠난 나무꾼들은 석양 무렵이 되어서 돌아옵니다. 또래들은 저수지 둑으로 마중을 나갔습니다. 그 나무꾼들 중 아버지 아니면 삼촌이나 형이 끼여 있기 때문입니다. 나무꾼들은 떠날 때처럼 나란히 행렬을 지어 왔습니다. 닭쌈이나 씨름을 하던 또래들 중 누군가 먼저 본 동무가 큰 소리로 외칩니다. “온다, 저기 온다!” 또래들은 마치 장에 갔다 돌아오는 엄마를 반기듯 뛰어갑니다. 나무꾼들은 숨이 차 씩씩거리며 둑으로 올라섭니다. 얼굴에는 굵은 땀방울이 줄줄 흘러내립니다. 나무꾼들의 그을린 얼굴이 놀빛 속에서 더 붉게 보였습니다. “쉼세.” 맨 앞의 나무꾼이 소리치자 뒤따르던 나무꾼들이 한쪽 편을 향해 나뭇짐을 받쳤습니다. 노을진 둑에 나뭇짐이 긴 행렬을 이루었습니다. “휙휙.” 나무꾼들은 휘파람을 불 듯 긴 숨을 토해 냈습니다. 또래들은 제각기 아버지, 삼촌, 형들의 나뭇짐을 찾기에 바쁩니다. “아부지!” 누군가 부르면, “오냐. 별일 없었지?” “야!” 하는 인사가 오고 갑니다. 또래들은 인사가 끝나기 바쁘게 나뭇짐을 살핍니다. 멀고 먼 백마산에서 온 나뭇짐에는 선물이 한 아름 있었습니다. “옛다, 백마산에는 참꽃이 한창이다.” 참꽃으로 부르던 진달래 한아름. 커다란 꽃다발이 나뭇짐에 쿡 박혀 왔습니다. 또래들은 참꽃다발을 받는 순간 환성을 터뜨렸습니다. 먼 산에서 따 온 참꽃은 향기도 달랐습니다. 한 잎 한 잎 따서 입에 넣으면 달착지근한 것이 맛이 좋았습니다. 저수지 뒤 숲에서 꿩이 울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먼 산 나무도 마지막입니다. 농부들의 발길은 먼 산이 아닌 밭이나 논으로 가야 됩니다. 바로 마지막 먼 산 나무 길에 오르던 날, 은행골의 또래들은 큰 나무꾼들을 따라 백마산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농군이 되려면 백마산엘 다녀와야지.” 또래들은 새벽부터 법석을 떨었습니다. 낫과 갈퀴를 챙기고, 어머니에게 점심밥과 반찬을 꾹꾹 눌러 싸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 날의 나무꾼 행렬은 더 길었습니다. 어머니, 할머니들이 따라 나와 어린 나무꾼들의 먼 길을 배웅해 주었습니다. 어린 나무꾼들은 어른 나무꾼들이 낸 나뭇길을 앞서 걸으며 웃고 떠들고 신이 났습니다. 어른 나무꾼들은 발걸음도 흥겹게 노랫가락을 뽑았습니다. 백마산이 어디메뇨 새벽 어둠 찬바람에 길 떠나는 나무꾼아 어히야, 어히야 이 다리 다 휜다. 어린 나무꾼들에게 백마산은 정말 벅찬 산이었습니다. 시오리 길이라고 하지만 구불구불 오르막에 가파른 길은 삼십 리도 넘는 듯했습니다. 그래도 또래들은 뒤떨어지지 않고 앞서 갔습니다. 멀리서 바라만 보고 말로만 듣던 백마산. 어린 나무꾼들은 백마산에 다다르자 ‘아!’ 하는 탄성을 터뜨렸습니다. 몇 아름이 넘는 나무들이 빽빽이 우거진 산 속은 대낮에도 동굴처럼 어두컴컴했습니다. 듣던 대로 솔가리가 지천이었습니다. 고운 솔가리를 갈퀴로 긁어모은 다음 단단하게 전을 쳤습니다. 한 차례 땀을 흘리고 나니 어느 새 알맞은 나뭇짐이 되었습니다. “자, 점심들 먹세.” 너른 양지쪽에 모여 앉아 점심 보따리를 풀었습니다. 보리밥에 고추장, 된장 반찬이지만 맛은 꿀맛이었습니다. 점심을 먹고 난 어른들은 여기저기 양지바위에 누웠습니다. “계절은 왜 이리 좋을꼬. 꽃 피고 새 울고….” 나무꾼들은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며 낮잠을 청했습니다. 어디선가 꿈결인 듯 깊은 산울림이 울려오고, 새들은 제 세상인 듯 재잘재잘 지저귀었습니다. 어린 나무꾼들은 계곡을 따라 올라갔습니다. 계곡은 온통 참꽃밭이었습니다. 마치 불을 싸지른 듯이 붉디붉게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또래들은 어질어질 꽃향기에 취하도록 뒹굴며 놀았습니다. 이윽고 한숨씩 자고 난 나무꾼들이 돌아갈 채비를 하였습니다. 돌아가는 길은 지름길로 처음부터 가팔랐습니다. 이마를 타고 내리는 땀방울이 눈과 입 속으로 흘러들었습니다. 나뭇짐 행렬은 점점 더뎌지고, 어린 나무꾼들의 나뭇짐에 찔러진 참꽃다발은 흐트러졌습니다. 쉬는 참이 몇 번이나 거듭되었습니다. 이제 지름길 중 가장 험한 고갯길을 넘으면 내리막길입니다. 좁은 길 한쪽은 깊은 낭떠러지였습니다. “힘들 내!” 중간 중간에서 어른 나무꾼들이 소리쳤습니다. “이 고개만 넘으면 힘든 길은 다 왔다.” 어린 나무꾼들은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먼 산 나무 길이 이렇게 힘든 줄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눈은 쓰리고, 입안은 짜고, 다리는 후들거리고, 어깻죽지는 금방이라도 내려앉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누구도 입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내일은 읍내 장날입니다. 오늘 한 솔가리 나무는 모두들 내일 장에 나가 팔아야 합니다. 그러니 자주 쉬면 나뭇짐이 흐트러져 모양이 나빠집니다. 어린 나무꾼들은 이를 악물었습니다. 먼 산 나무를 다녀오는 것이 진짜 농사꾼이 되는 길이라고 했습니다. 해마다 이맘때면 어른들은 근심 띤 얼굴에 말이 없었습니다. 그것은 닥쳐온 보릿고개 때문입니다. 어린 또래들이 농사꾼이 되겠다는 꿈은 아버지, 어머니의 그 근심 어린 얼굴을 조금이라도 펴 드리기 위해서였습니다. 아버지들은 또래들이 농사꾼이 되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겼습니다. “모두 쉬었다 가세.” 길잡이가 쉴 곳을 정하고 소리쳤습니다. 여기저기서 지친 숨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그때, “엇, 조심해!” 누군가 급하게 소리치는 순간, 외마디 비명 소리가 들렸습니다. 한 어린 나무꾼이 벼랑 쪽에 나뭇짐을 받치다가 비틀거리며 뒤로 넘어졌습니다. 어린 나무꾼은 나뭇짐과 함께 훌떡훌떡 재주를 넘듯 굴러 떨어졌습니다. “쟤 태수 아냐. 태수야, 태수야!” 나무꾼들이 목이 터지게 소리치며 아래로 내달았습니다. 하지만 그날 태수는 집에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어린 나무꾼 태수는 그 고갯길 양지쪽에 고이 묻혔습니다. 그 후, 봄이 되면 그곳을 지나는 나무꾼들은 어린 나무꾼의 일을 되새기며 참꽃 꽃다발을 놓아주곤 하였습니다. 그러나 얼마만큼의 세월이 흐른 뒤 태수의 조그만 묘지는 나무꾼들이 편히 쉬어 가는 쉼터가 되었습니다. 지금도 참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봄이 되면, 아버지는 그 시절의 어린 나무꾼들의 숨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어린이 여러분, 보릿고개가 얼마나 높았는지 마음 속으로 가만히 헤아려 보세요. ●작가의 말 ‘보릿고개’는 지난날, 묵은 곡식은 다 떨어지고 보리는 아직 여물지 않아 시골 농가 생활에서 가장 어려운 때(4~5월)를 이르던 말이지요. 옛날 우리 할아버지 시대에는 정말 가난하였습니다. 누구나 농가의 생산자가 되어 땀흘려 일하고 아꼈으며, 또 나누어 먹었습니다. 지금은 넘치는 풍요 속에서 무엇이든 귀한 줄 모르고 낭비하고 있습니다. 우리 어린이들이 성경의 말씀처럼 “이마에 땀을 흘려야 낟알을 얻어먹으리라.”라는 노동의 소중함을 알고, 우리 할아버지들의 옛 삶에서 살아가는 정을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작가약력 ▲1982년 월간문학신인상에 동화 ‘엄마 열목어’가 당선되면서 동화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펴낸 책으로 ‘꽃이 꾸는 나비꿈’, ‘눈물꽃’, ‘북치는 소년’, ‘옛날에 울아부지가’, ‘아리랑’, ‘도깨비 아부지’, ‘별이 된 오쟁이’ 외 여러 권이 있습니다. ▲대한민국문학상, 한국아동문학상, 이주홍문학상, 방정환문학상 등을 받았습니다.
  • [노무현 자금수수 파장] “노건호씨도 연씨와 朴회장 만나”

    ‘의혹의 500만달러’의 정체가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지금까지 알려진 돈의 흐름은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조카사위인 연철호씨에게 줬다는 것이다. 이 과정은 박 회장과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과의 교감을 통해 이뤄졌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500만달러의 거액이 노 전 조카사위에게 흘러간 점은 석연찮다. 물론 노 전 대통령의 퇴임 이후를 위해 정 전 비서관과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 박 회장 등이 3자 회담을 가졌다는 점을 감안하면 납득은 된다. 이 대책회의가 거사를 위한 수단이라는 점에서그렇다. 따라서 박 회장이 돈의 완벽한 전달을 위해 정 전 비서관을 끼워넣었고, 정 전 비서관은 돈을 보관하기가 편한 연씨 계좌를 이용했다는 게 지금까지의 총괄적인 흐름도다. 앞서 박 회장도 “500만달러를 송금하기 직전 정 전 비서관에게 ‘돈을 줘도 되냐.’고 물어봤고, 정 전 비서관이 ‘보내라.’고 해서 노 전 대통령의 퇴임 직전 연씨의 계좌로 송금했다.”고 진술한 바 있다. ●檢 “홍콩 APC계좌 80% 분석” 이 같은 진술과 정황 등은 검찰이 주목하고 있는 APC 계좌를 분석하면 어렵지 않게 풀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이미 APC계좌를 홍콩사법당국으로부터 넘겨받아 작업에 들어갔으며 상당 부분 돈의 흐름을 파악해 놓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홍만표 대검 수사기획관은 8일 “500만달러와 관련 APC계좌 자료를 80%까지 분석했다.”면서 수사가 막바지에 달했음을 시사했다. 이런 가운데 노 전 대통령의 아들 건호씨가 연씨와 함께 박 회장집을 찾아갔다는 일부 정황이 포착되면서 돈의 주인을 찾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되고 있다. 돈의 진짜 주인이 노 전 대통령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가운데 노 전 대통령의 아들이 등장한 것은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이는 같은 식구라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연씨계좌는 ‘보관창고’ 가능성 검찰은 노 전 대통령이 권양숙 여사가 박 회장한테서 수억원을 받았다는 사과글을 올리면서 조사에 응하기로 한 점도 500만달러의 실체를 밝히는 데 결정적인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로서는 의혹의 당사자를 직접 조사할 수 있는 만큼 실체적 진실에 접근할 수 있게 된 것이다. 500만달러의 주인을 찾는 판도라 상자는 관련 인물들에 대한 소환·조사 이후 노 전 대통령의 ‘입’을 통해 구체적으로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슈퍼 놀부 쇠고랑

    광주(光州)경찰서는 11일 무면허 「불도저」운전사 노모씨(35)를 살인미수·재물손괴 혐의로 긴급구속. 노씨는 광주시 토지정리구획사업 제2지구에서 일하는 「불도저」조수로 10일 낮 술에 취해 지나가는 여자를 희롱하다 현장감독 조모씨(38)에게 꾸중을 듣고는 그 앙갚음으로 11일 상오 2시쯤 「불도저」를 몰고 나와 곤히 새벽잠에 취해 있는 조씨의 집을 급습, 안방벽부터 밀어붙인 다음 조씨가 잠자는 방을 뭉개어 침대 등을 박살내 버린 것. 다행히 재빨리 잠에서 깬 조씨 식구들은 허겁지겁 피난하여 생명엔 이상이 없다고. - 72년도 최고의 심술. <광주> [선데이서울 72년 6월 25일호 제5권 26호 통권 제 194호]
  • 치타ㆍ사자 등 ‘애완 맹수’ 기르는 여성

    치타와 재규어, 사자가 애완동물? 최근 남아프리카에 치타와 재규어 등 맹수를 애완동물로 키우는 여성이 관심을 모으고 있다. 평소 고양잇과 동물을 좋아해온 ‘리아나 반 니웬후이젠’(46)은 현재 여러 마리의 치타와 재규어, 표범 그리고 사자와 함께 생활하고 있다. 그녀의 집을 찾는 사람들은 10여 마리의 사나운 맹수와 덩치 큰 개들에 주눅이 들고 뒷걸음질치기 일쑤지만, 라이나의 ‘애완 맹수’들은 잘 길들여져 있기 때문에 사람을 공격하는 일이 극히 드물다. 특히 이 애완 맹수들은 하루에 25kg의 닭고기를 먹어치우면서 대단한 식성을 자랑하며 치타 중 한 마리는 방문이나 찬장 문을 여는 법까지 배워 주인에게 친절함을 베풀기까지 한다. 이들은 서로의 몸을 부둥켜안고 뒹굴며 장난을 치기도 하고 주인의 침대에 올라와 자리를 차지하기도 하지만 다투는 일 없이 평화로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리아나는 “여름에는 다들 마당에서 잠을 자지만, 겨울에는 내 침대에 올라와 함께 잠을 잔다.”면서 “내 삶에서 없어서는 안될 가족”이라고 전했다. 그녀가 새 가족을 맞이한 때는 지난 2006년. 우연히 큰 돈을 벌게 됐고 그녀는 치타를 살 수 있는 좋은 찬스라는 생각에 동물들을 사들였다. 이후 일까지 그만두고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후원금을 받아 생활하는 리아나는 식구를 점차 늘여 자신의 집을 작은 동물원으로 만들고 싶다는 꿈을 밝혔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엄마·아빠 없는 복동이 슬프기만 할까

    소설가 박완서씨가 가정 해체로 상처 받은 아이들이 늘어가는 요즘 이들을 감싸 안는 따뜻한 성장 동화를 펴냈다. 태어나자마자 엄마를 잃고 아빠마저 떠난 뒤 이모와 외할머니의 손에 커온 초등학생 5학년 복동이. “아이고 이 지지리 복도 없는 새끼”라며 외할머니는 눈물을 훔치지만 기실 복동이는 이름처럼 어느 정도 행복을 누리며 사는 아이다. 시집도 안 가고 복동이만을 바라보며 사는 이모가 있고 겉으로 구박하는 듯하지만 누구보다 복동이를 아끼는 외할머니의 보살핌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또 함께 있으면 ‘삼총사’ 부럽지 않은 국일이, 준걸이가 있어 늘 즐겁다. 하지만 한편으론 “나는 버림 받은 아이다. 되는 대로 살아도 뭐랄 사람이 없다.”는 어두운 생각도 품고 있다. 여름 방학 동안 영어를 배울 요량으로 미국에 사는 아버지, 이질적인 새 식구들과 살게 된 복동이는 더이상 상처 받지 않으려는 듯 아버지에게 별로 기대하지 않는다고 자신을 다독인다. 하지만 함께한 시간 속에서 가족의 의미를 발견하고 미국 학교에서 만난 한국인 입양아 브라운 박사의 이야기를 듣고 처음으로 자신을 긍정하게 된다. 박씨는 작가의 말에서 “아이들이 편견 없는 사람이 되어 태어나길 참 잘했다며 감사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이 이야기를 썼다.”고 밝혔다. 동화의 출발은 지인에게서 건네받은 짤막한 기사였다. ‘송곳에 찔린 것처럼 아픈’ 기사의 내용은 책 속에 브라운 박사의 이야기로 녹아 있다. “나 같은 게 이 세상에 왜 태어났을까 하면서 살 때하고 이 세상에 태어나길 참 잘했다 하면서 사는 세상이 같을 수가 없죠.” 브라운 박사의 입을 빌려 할머니 작가가 손자뻘 아이들에게 건네는 위로와 긍정의 메시지다. 9000원.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 절대 공무원은 안 될 거야

    절대 공무원은 안 될 거야

    추석 전날 저녁이었다. 어머니와 누나, 작은형, 나는 두터운 이불 하나를 나누어 덮고 누워 있었다. 이웃들은 차례 준비를 하느라 부산한 것 같았다. 전 부치고 생선 굽는 냄새가 우리 안방까지 흘러들어 왔다. 우리는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당장 저녁 지을 쌀이 떨어졌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대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공무원인 아버지가 능력 있다며 취직 시켜준 청년이 감사하다고 쌀 두 가마니를 싣고 온 것이다. 한참을 망설이던 어머니는 결국 쌀가마니를 집안으로 받아들였다. 평소 같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어머니는 쌀가마니를 뜯어 곧바로 저녁을 짓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보시면 큰일 나는데’ 나는 조마조마했다. 그때 아버지가 퇴근해 들어오셨다. 사실을 알고 놀란 아버지는 “당장 되돌려주라”며 호통을 치셨다. 죄인처럼 서 계시던 어머니는 “죽으러 가자”며 막내인 내 손을 잡고 집을 나섰다. 어둠이 내린 부두는 무서웠다. 어머니는 차마 뛰어들 엄두를 내지 못하고 나를 안고 펑펑 울기만 했다. 그때 “철아~!” 하고 나를 찾는 소리가 들렸다. 큰형이었다. 우리는 서로 부둥켜안고 한없이 울었다. 나는 그날 밤바다의 파도를 아직 잊지 못한다. 어머니와 나는 큰형 손에 이끌려 집으로 돌아왔다. 다섯 식구는 그날 눈물 속에 저녁을 먹었다. 우리 형제들은 그날 이후 절대 공무원은 안 한다는 무언의 다짐을 했다. 가족들을 고생시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해 나는 그 다짐을 깨고 뒤늦게 공무원이 되어 어린 시절 원망스러웠던 ‘공무원 아버지’와 내 모습을 가끔 번갈아 거울에 비춰본다. 그때마다 하늘을 보며 용서를 빈다.“아버지, 아버지는 언제나 옳으셨습니다.” 2009년 3월
  • [생활 속 행복 찾기] 실직 후에 찾아온 행복

    [생활 속 행복 찾기] 실직 후에 찾아온 행복

    2008년 6월 다니던 출판사를 퇴직했다. 아내는 지금 같은 불경기에 회사를 그만두면 어떻게 하느냐고 계속 만류를 했지만 더 이상 다닐 수가 없었다. 나이가 50이 되면서 업무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감당하기 힘들었고 여기저기 온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앉아서 근무를 하다 보면 허리도 아프고 몇 달 전부터는 이빨이 아파서 제대로 씹을 수가 없었다. 더구나 이유 없이 발이 부어올라 신발을 신을 수가 없는 지경이 되었다. 더 이상 업무를 감당할 수 없었다. 표면적인 이유는 질병 때문이지만 진짜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나 자신을 찾는 것. 직장생활을 하면 할수록 남의 밑에서 일한다는 것이 얼마나 고된 일인가, 얼마나 나 자신을 갉아먹는 일인가 하는 것을 처절하게 느낄 뿐이었다. 회사를 나와서 어떻게 하겠다는 구체적인 생각도 없이, 앞길이 막연했지만 더 이상 늦출 수도 없었다. 퇴직할 때의 마음은 딱 한 가지. 내 행복을 남에게 맡길 수 없다! 직장생활을 할 때 나의 별명은 투덜이스머프였다. 별명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깜짝 놀랐다. 나 자신은 스스로를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들의 눈이 정확했다는 것을 인정한다. 나는 정말 투덜이스머프였다. 일거리는 많으면서 월급은 조금 준다고 사장에게 투덜거렸고, 알아서 척척 일처리하지 못한다고 직원들에게 투덜거렸다. 집에서는 해주는 음식이 맛이 없다고 투덜거렸으며 아들이 하는 일도 못마땅해 투덜거렸다. 나 아닌 다른 사람 때문에 내가 행복하지 못할 수는 없었다. 직장을 그만 둔후 나는 적극적으로 행복을 찾아 나서기로 했다. 나를 투덜거리게 한 모든 요소들을 극복하기로 한 것이다. 제일 중요한 경제적인 문제. 처음 얼마 동안은 퇴직금과 실업수당으로 버티었다. 하지만 그것은 얼마 안 가 바닥이 났다. 아내가 어느 정도 수입이 있었지만 그것만 믿고 있을 수는 없었다. 일거리를 찾아 나섰다. 인터넷을 통해 여기저기 수소문을 하기도 하고 아는 사람을 만나 부탁하기도 했지만 쉽게 일거리가 생기지 않았다. 그즈음 108배를 하기로 했다. 처음에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 힘들게 108배를 채웠지만 하면 할수록 어떤 묘미가 있었다. 피곤한 날도, 술을 마시고 들어온 날도 108배를 하고 잤다. 108배를 하면 몸과 마음이 정화되는 기분이 든다. 그리고 마지막 108배를 할 때 소원을 빈다. 몇 달 지나자 명확하지 않았던 목표도 분명해지고 일거리도 점차 생기기 시작했다. 수입이 생기면서 아내에게 경제적인 독립을 선언했다. 아파트 관리비와 월세, 차량유지비, 보험료, 반찬값 등을 내가 내기로 한 것이다. 다음은 건강.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 내가 취한 방법은 쑥뜸을 뜨는 것이었다. 요양을 겸해서 찾아간 경남 함양에서 쑥뜸으로 유방암을 치유한 사람을 만났다. 내 건강상태를 말했더니 쑥뜸을 떠보라고 했다. 별 의심없이 쑥뜸을 했더니 다음날부터 바로 반응이 있었다. 부었던 발이 가라앉고 숙변이 설사로 빠지기 시작했다. 설사는 석 달여 동안 지속되었는데 가을에 다시 쑥뜸을 시작하자 바로 멈추었다. 신기한 일이었다. 이즈음 15년 동안 살던 곳을 떠나 조그마한 동산 밑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전에 살던 곳은 도심지 길가에 있어서 늘 차 소리가 들리고 밤에는 잠이 잘 오지 않았는데 새로 이사한 곳은 공기가 좋고 집 뒤에 산이 있어서 산책하기 좋은 곳이다. 차 소리도 들리지 않고 밤에 잠이 잘 오는 것이 무엇보다 좋았다. 이사를 하고 건강이 회복되자 생활의 많은 부분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베란다에 꽃들을 들여놓자 집이 환해졌다. 수족관에 가서 열대어 몇 마리도 사들였다. 부모님 댁에서 난 화분 두 개도 가지고 왔다. 전에는 화초를 가꾸지 못해서 얼마 안 가 죽어버리던 것이 이제는 겨울에도 싱싱하다. 추운 날을 피해 물을 조금 데워 물을 주는 등 정성을 다한 결과였다. 열대어는 몇 마리 죽긴 했지만 헤엄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즐겁다. FM 라디오를 산 것도 기쁨을 주는 일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습관적으로 TV를 켰는데 잠결에 들리는 소리가 유쾌하지 못한 뉴스들로 가득 채워져 있어서 하루의 기분이 엉망이었다. 이젠 TV 대신 라디오에서 들려나오는 경쾌한 음악을 들으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식구들을 위해 요리도 하고 설거지도 한다. 전에 느끼지 못했던 즐거움이다. 나는 지금 행복하다. 아니 행복을 느끼기 시작했다. 나이 50에 행복을 찾기 위한 첫걸음을 시작한 것이다. 글 공윤복 자유기고가
  • 공금횡령 형사고발 의무화 추진

    공공기관들이 자체 감사에서 직원의 거액 횡령 사실을 적발하고도 형사 고발 없이 자체 징계로 사건을 마무리하고 있어 ‘제식구 감싸기’란 지적이 일고 있다.국민권익위원회는 지난 2006년부터 2008년까지 3년동안 적발된 공금횡령 공직자 490명을 분석한 결과 검·경찰 등 수사기관에 직접 적발된 159명(32.4%)은 모두 사법처리됐다고 25일 밝혔다. 하지만 행정기관의 자체감사 등 내부 적발된 331명 가운데 사법처리된 공직자는 128명에 불과해 큰 차이를 보였다. 공공기관들은 자체 적발한 공무원 중 193명(58.6%)에 대해 고발조치 없이 자체 징계한 것으로 조사됐다.특히 3000만원 이상 거액을 횡령한 113건 가운데 형사고발되지 않은 것도 35.5%인 40건에 달했으며 1000만~3000만원 미만은 47%, 1000만원 미만은 78% 자체 징계만으로 마무리됐다.권익위에 따르면 경기 성남시의 한 7급 공무원은 지난 2007년 직무와 관련, 4200만원을 횡령했다가 자체 감사에서 적발됐다. 그러나 시는 그가 전액 변상했다는 이유로 형사고발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해임하는 선에서 사태를 마무리했다. 특히 농협은 지난해 2억 7100만원을 횡령해 주식투자에 사용한 정모(4급)씨에 대해 면직결정만 내리고 고발은 하지 않았다. 농협은 최근 3년간 3000만원 이상 공금횡령 19건 중 10건을 고발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권익위는 “기관 내부의 제식구 감싸기 식 징계가 비리 발생의 중요 원인이 된다.”면서 “공금횡령사건의 경우 사법기관 고발을 의무화하도록 구체적인 고발기준을 마련해 각급 기관에 권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이동구기자 yidonggu@seoul.co.kr
  • [오풍연 대기자 법조의 窓] 제2의 홍준표를 기대한다

    [오풍연 대기자 법조의 窓] 제2의 홍준표를 기대한다

    1993년 김영삼 정부가 출범한 직후, 이른바 슬롯머신 사건이 터졌다. 정·관계의 내로라하는 인물들이 줄줄이 검찰청사에 불려 나왔다. 슬롯머신 업계의 대부 정덕진씨에게서 돈을 받은 혐의로 소환됐던 것. 표적수사 논란 속에 ‘6공 황태자’로 불렸던 박철언씨가 제일 먼저 구속됐다. 이어 이건개 전 대전고검장, 엄삼탁 전 병무청장, 이인섭 전 경찰청장 등이 등이 차례로 영어의 몸이 됐다. 검찰 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당시 사건의 중심에는 홍준표(현 한나라당 원내대표)검사가 있었다. 서울지검 강력부 소속으로 저돌적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선배를 잡아먹은 검사’ ‘모래시계 검사’ 등의 평판을 얻었다. 공사를 분명히 했던 홍 검사는 사회적 통념을 훌쩍 뛰어넘었다. 이 전 고검장은 검찰 상관, 이 전 경찰청장은 Y고 선배였음에도 정의의 칼을 들이댔다. 그 뒤 친정은 ‘수사 검사’를 희망했던 그에게 한직으로 발령냈다. 그래서 1996년 신한국당 공천을 얻어 총선에 출마하게 된다. 기자가 16년 전 얘기를 꺼낸 것은 현재 진행 중인 박연차 사건이 그때 사건과 유사해서다. 슬롯머신 사건이 ‘실세’들에게 집중된 반면 박연차 사건은 보다 광범위하다. 대검 중수부의 수사가 속도를 내면서 하나 둘씩 검찰에 소환되고 있다. 2005년 재보궐 선거 경남 김해 갑에 열린우리당 후보로 출마했던 이정욱씨와 송은복 전 김해시장, 추부길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은 이미 구속됐다. 이광재 민주당 의원, 박정규 전 청와대 민정수석, 장인태 전 행정자치부 2차관도 구속 초읽기에 들어갔다. 그렇다면 ‘박연차 리스트’는 있는 걸까. 검찰은 리스트라는 말에 거부감을 느낀다. “범죄 혐의가 있으면 수사를 한다.”는 원칙론을 편다. 이를 위해 계좌 추적을 강화하고 있다. 물증을 확보하겠다는 뜻에서다. 그렇지 않으면 박씨의 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일부 언론의 보도에는 70명까지 거론된다. 이에 검찰은 “아직 확인된 게 없으며 수사 단계”라고만 거듭 강조하고 있다. 검찰을 더욱 당황하게 하는 것은 전·현직 검찰 고위간부의 연루설이다. 현직 검사장에 이어 고검장 얘기까지 나오는 마당이다. 검찰은 “확인해 줄 수 없다.”며 애원조로 얘기한다. 하지만 “현재까진 그렇다.”라는 소리로 들린다. 슬롯머신 사건 때도 그랬다. 기자는 지난해 12월10일자 ‘카드값 검사 중징계하라’는 칼럼에서 태광실업 박연차 회장 사건도 언급한 바 있다. “마당발인 박 회장이 여야 정치인뿐만 아니라 검찰 간부와도 친분이 돈독했다.”며 수사를 촉구했었다. 박씨의 그간 행적을 볼 때 검찰간부들도 울타리로 삼으려 했을 게 뻔하다. 특정 지역에서 근무했던 사람들이 주로 거론되고 있는 형국이다. 당사자들은 모두 떨고 있을 터. 검찰이 지금 들이대고 있는 사정의 칼날을 공평하게 써야 한다. 내 식구라고 해서 감싸려 해서는 안 된다. 읍참마속(泣斬馬謖)의 고사성어를 되새기기 바란다. 잘못한 일에 대해서는 누구를 막론하고 벌하는 것이 마땅하다. 모든 국민은 검찰을 주시한다. poongynn@seoul.co.kr
  • ‘박연차 쓰나미’ 잠 못드는 여야

    ■움찔하는 한나라 한나라당이 움찔하고 있다.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을 겨냥한 검찰 수사의 불똥이 한나라당에까지 튀고 있기 때문이다. 여야를 가리지 않고 ‘마당발’로 불리는 박 회장의 전방위 로비가 한나라당 인사들에게도 이뤄졌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노 전 대통령이 당선됐던 2002년 대선 전까지, 박 회장이 한나라당 재정위원을 지냈다는 점도 주목할 부분이다. 무엇보다 박 회장의 사업 기반인 부산·경남(PK)의 중진 의원 일부가 최근 들어 실명으로 거론되면서 긴장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친박(친박근혜) 정서가 강한 지역이라 “검찰 수사가 ‘친박·PK’를 겨냥한 것 아니냐.”는 흉흉한 얘기까지 들린다. 이에 대해 친박 쪽의 한 의원은 23일 “지켜보고 있다.”면서도 “17대 국회에서 PK 지역은 친박보다 친이가 더 많았다. 그렇게 구별지어 볼 것은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실제 계파를 가리지 않고 이 지역 중진의원들의 이름이 꾸준히 ‘박연차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경남지역의 한 의원은 “참여정부에서 박 회장이 뭘하고 다녔는지 지역에서는 다 알고 있다.”면서 “정권이 바뀌면 박 회장이 가장 먼저 사법처리될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는데, 그런 박 회장에게 금품을 받았겠느냐.”고 반문했다. 부산의 한 의원은 “부산에서 정치를 오래한 사람치고 박 회장과 이런저런 인연이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며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공식 논평은 엄정한 수사를 촉구했다. 윤상현 대변인은 이날 “누구든 잘못이 있으면 바로잡아야 하고, 깨끗한 정치를 구현하는 데 여야나 지위고하의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김지훈기자 kjh@seoul.co.kr ■사면초가 민주 민주당이 사면초가에 빠졌다.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의 귀국으로 인한 당내 분열 조짐에 검찰의 사정(司正) 수사까지, 엎친 데 덮친 격이다. 거대 여당을 상대로 슈퍼 추경, 비정규직법, 미디어 관련법 등의 해법을 찾느라 갈길 바쁜 민주당이 단단히 발목이 잡힌 형국이다. 4·29 재·보선에서 승리해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의 실정을 심판하겠다던 다짐도 공염불이 될 위기에 놓였다. 돌파구도 마땅치 않아 보인다. 재·보선을 앞두고 시간이 흐를수록 공천을 둘러싼 당내 계파간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그렇다고 검찰의 사정 수사를 무작정 탓할 수만도 없는 처지다. 두 차례 소환조사를 받은 이광재 의원이나 참여정부 때 민정수석을 지낸 박정규 변호사, 행정자치부 2차관 출신의 장인태씨가 모두 뇌물이나 불법정치자금 수수 등 ‘비리 혐의’로 수사 대상에 올랐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 들어 첫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 출신인 추부길씨가 첫 사정 대상에 올라 있는 상황에서 민주당이 선뜻 ‘제식구 감싸기’의 모습을 보일 수도 없다. 정세균 대표가 23일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정치보복과 야당 탄압을 중단하고, 표적사정과 공안탄압을 그만두어야 한다.”고 주장하긴 했지만, 당 차원의 대응은 아직 시기상조라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당의 한 고위 관계자는 이날 “다음 수사 선상에 누가 올라있는지 파악도 안 되는데, 무작정 검찰을 비난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면서 “당장 이번 재·보선에 악재가 될 수 있다.”고 걱정했다. 민주당이 당내 갈등과 사정 수사로 멍들면서 재·보선 승리는 물론 정부와 여당의 ‘속도전’ 저지도 장담할 수 없다는 기류가 감돌고 있다. 홍성규기자 cool@seoul.co.kr
  • [뉴스&분석] 연체이자 폭탄… 서민들 신불자 늪에

    경기 수원에 사는 한모(40)씨는 몇 해 전 칠순을 앞둔 부친이 위암으로 쓰러지면서 은행과 카드사에서 1000여만원을 빌렸다. “금방 갚아야지.”라며 시작한 대출이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부인까지 당뇨로 몸져누운 데다 이동통신 가게까지 매출이 급감하며 대출금은 2600만원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가장 무서운 것은 가산금리였다. 은행과 카드사는 연체 기간과 비례해 경쟁하듯 금리를 올렸고 그 사이 빚은 무려 3배가량이 늘어 6800만원이 됐다. 한씨는 “사업을 접고 보험 일을 시작해 한 달 200만원가량을 벌고 있지만 부모님을 포함한 여섯 식구가 살아가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연체이자에 고민하던 그는 결국 지난달 신용회복위원회에 개인회생 절차를 신청했다. 금융기관들이 빚을 제때 갚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지나치게 높은 이자를 물리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높은 연체 이자 때문에 한번 연체의 늪에 빠지면 빚에서 헤어나올 수 없는 지경이 된다. 기준금리는 연일 떨어지지만 높은 연체 이율은 요지부동이다. 23일 금융계에 따르면 금융기관의 연체이율은 시중은행은 최고 연 25%, 보험사 연 20%, 카드사 연 30%, 저축은행은 연 40%에 육박한다. SC제일은행의 연체이율은 연 최고 25%에 이른다. 신한과 국민은행 연체이율은 각각 연 16∼21%와 연 14∼21%다. 일부는 유예기간을 주기도 하지만 이자는 금세 폭등한다. 하나은행과 우리은행의 예를 보자. 대출 원금이 1000만원이고, 정상 이자가 월 10만원(연리 12%)일 때, 연체 후 첫달은 이자에만 추가 이자(+17%)가 붙어 11만 7000원을 내게 된다. 하지만 두 번째 달부터는 바로 17% 이자가 적용돼 한달 이자가 14만 1666원으로 불어난다. 석 달 이상을 연체하면 금리는 19%로 뛴다. 한 달 이자만 15만 8333원이다. 저축은행들은 1개월 이상 10%포인트 안팎의 가산금리를 물린다. 신용도 7등급 이하 신용대출자가 금리 30%에 돈을 빌린다고 볼 때 연체가 시작되면 이자는 40%대까지 치솟는다. 카드사는 대출 고객이 연체를 하면 25~30%에 이르는 높은 이자를 받는다. 반면 대출 금리의 기준이 되는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는 지난해 한때 연 6%가 넘었지만 지난 20일 기준 연 2.43%까지 떨어졌다. 예금은행의 가중평균 주택담보대출 이율도 지난해 10월 연 7.58%에서 올 1월 연 5.63%로 2%포인트 가까이 내려왔다. 연체이자도 이에 걸맞게 떨어져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은행들은 반대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연체이자를 높이는 것은 빠른 상환을 독촉하는 의미도 크다.”며 “연체를 해도 엇비슷한 금리를 내면 누가 돈을 꼬박꼬박 갚겠느냐.”고 반문했다. 도덕적 해이를 막고 다른 고객들의 예금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연체자에겐 높은 이자를 물려야 한다는 주장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 김현욱 연구위원은 “연체자의 현실적인 어려움을 고려하면 연체금리를 다소 낮출 필요도 있지만, 개인신용 부분에서도 구조조정이 필요한 만큼 부실은 (개인파산이나 회생 등으로)털어내야 한다.”면서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우선 저신용 등급에 대한 정확한 실태 파악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열린세상] 종교계 큰어른들의 청빈/박준철 한성대 역사문화학부 교수

    [열린세상] 종교계 큰어른들의 청빈/박준철 한성대 역사문화학부 교수

    김수환 추기경이 우리 곁을 떠난 지 어느덧 한 달이 지났다. 명동 한복판에 운집한 수십만명의 추모 행렬이, 일생을 참된 목자로 산 그의 선종을 애도하던 광경이 우리 기억에 생생하다. 분열과 갈등으로 얼룩진 격동의 한국 현대사에서 그가 가르치고 실천한 사랑과 나눔의 큰 뜻은 종교와 이념을 불문하고 모든 이에게 진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성직자 김수환의 진면목은 청빈한 삶에서 두드러진다. 얼마 되지 않는 사재를 털어 줄곧 불우계층을 도왔던 그는 정작 식구들에게는 물질적 도움을 주지 못해 미안해했다고 한다. 대주교이자 추기경의 반열에 오른 그가 남기고 간 것은 낡은 의복과 안경 그리고 푼돈이 들어 있는 통장이 전부였다. 그는 권력에서도 청빈했다. 엄격한 위계가 규범화한 사제 조직의 수장이자 수백만 가톨릭 신자의 영적 지도자이지만 그는 권위를 내세우며 민중 위에 군림하는 존재가 아니었다. 오히려 자신을 ‘바보’로 지칭하고 모든 것을 ‘내 탓이오(Mea Culpa).’라고 고백하면서 소외되고 버림받은 자들에게 다가간 소탈한 이웃집 할아버지였다. 노사연의 ‘만남’을 즐겨 부르곤 했고, 몸소 철거민의 발을 씻어 주었으며, 명절 때는 성당에서 일하는 아주머니를 위해 혼자 나가 식사를 했다고 한다. 이처럼 권위주의에 대해 자성의 칼날을 세웠기에 서슬 퍼런 군부독재의 그릇된 권력을 그는 주저 없이 질타할 수 있었다. 청빈이 도리어 베푸는 삶으로 승화할 수 있고 권위에 대한 초연함이 진정한 권위로 귀결된다는 메시지를 남긴 셈이다. ‘가야산 호랑이’ 성철 큰스님도 청빈의 전범이었다. 조계종 종정인 그는 누더기가 될 때까지 승복을 손수 기워 입었고, 이쑤시개를 한 번 쓰고 버리지 않았으며, 화장지도 몇 조각으로 나누어 사용하곤 했다. 무소불위의 권력자 박정희 대통령이 해인사를 찾았을 때 그는 백련암에서 내려오지 않았고, 5공화국 시절에도 종교인과 정치인은 가는 길이 다르다며 청와대 방문 요청을 번번이 거절했다. 물질과 권력을 초개와 같이 여기며 구도자로서 외길을 걸은 그는 정녕 성직자의 사표였다. 개신교에는 한경직 목사가 있다. 한평생 봉사와 헌신에 매진한 그는 이산의 고통과 가난에 시달리는 월남민의 친구였고 고아와 병자와 장애인들의 아버지였다. 별다른 재산이 없었던 그는 1992년에 받은 템플턴상의 상금 100만달러를 북한 선교에 쾌척했다. 한국 개신교의 상징인 영락교회를 이끈 기라성 같은 목사였건만 그는 은퇴 후 남한산성에 마련된 조그만 외딴집에서 기거하다 여생을 마쳤다. 많은 것을 주고 갔다. 불교와 기독교는 모두 청빈을 본연의 정신으로 삼는다. 한낱 찰나에 불과한 이승의 부질없는 욕심을 버리라는 것이 부처의 가르침이다. 현세의 부귀영달은 그저 덧없다는 것이 기독교 신학의 요체다. 요컨대 극락정토와 천상낙원은 철저한 자기부정과 무소유를 통해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땅의 종교계는 과연 청빈의 정신을 실천하고 있는가. 웅장한 사찰과 화려한 교회를 무조건 탓할 수만은 없지만, 빈곤에 허덕이는 중생과 피조물들을 보면 왠지 심사가 뒤틀린다. 사판승 요직을 둘러싼 스님들의 난투극에 당황했던 우리는 최근 한 개신교 교단에서 감독회장 직을 놓고 벌이는 치열한 공방에 또다시 좌절한다. 사찰을 개인의 생활방편으로 악용하는 승려와 교회의 공금을 횡령하고서도 한없이 당당한 목사 앞에서 무소유의 정신을 본받기가 만만치 않다. 성직자와 종교단체가 권력과 물질에 미련을 두는 것은 명백한 자기모순이다. 또 거듭되는 자기모순은 준엄한 응징을 초래한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청빈을 온몸으로 실천한 종교계 큰어른들이 새삼 그립다. 박준철 한성대 역사문화학부 교수
  • [엄마와 읽는 동화] 김꽃분 할머니를 찾습니다/이규희

    [엄마와 읽는 동화] 김꽃분 할머니를 찾습니다/이규희

    “혜미야, 할머니 잘 보고 있어야 한다.” 엄마가 나들이를 나가며 단단히 일렀습니다. “알았어요.” 혜미는 마땅찮은 듯 퉁명스레 대답했습니다. 할머니는 지난 겨울 쓰러진 후 말하는 거며 걷는 거 모두 어린아이처럼 변해버렸습니다. 걸핏하면 온 집안을 어질러 놓고 날이 따뜻해지자 자꾸만 밖으로 나가려고만 하였습니다. 혜미는 그런 할머니와 단 둘이 집안에 있는 게 싫었습니다. 비스듬히 열린 방문으로 안을 들여다보니 다행히 오늘은 낮잠을 주무시고 있습니다. ‘헤헤, 잘됐다!’ 마음이 놓인 혜미는 책상 앞에 앉아 컴퓨터 게임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렇게 한참 시간이 지나갔을 때였습니다. ‘이상하다?’ 할머니가 이렇게 오래 낮잠을 주무실 리가 없는데 방안이 너무 조용했습니다. 혜미는 고개를 갸우뚱하곤 살금살금 할머니 방으로 들어가 보았습니다. 그러다가 그만 깜짝 놀랐습니다. 할머니가 어느 틈에 혜미의 책가방에서 공책을 꺼내서는 온통 낙서를 하고 있었거든요. “몰라, 몰라! 내 공책에다 이게 다 뭐야!” 혜미는 할머니 손에서 공책을 휙 빼앗으며 버럭 소리를 질렀습니다. “나, 공부했어, 공부! 참 재미있어.” 할머니는 아기처럼 웃었습니다. 혜미는 어이가 없었습니다. “바보할머니! 꼴도 보기 싫어. 어디로 없어졌으면 좋겠어.” 혜미는 화를 풀풀 내며 할머니 옷소매를 잡아끌고는 방에다 모셔놓았습니다. 하지만 생각할수록 속이 상했습니다. 늘 깨끗하고 곱기만 하던 예전의 할머니는 어디로 가고 이상한 가짜 할머니 하나가 집안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었습니다. 할머니는 툭하면 혜미의 책을 북북 찢어놓거나 혜미가 먹던 과자를 빼앗아 먹기 일쑤였습니다. 게다가 얼마 전에는 집으로 놀러온 친구를 보며 갑자기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순이야, 어서 와. 우리 각시놀이 하자.” 할머니는 그 친구를 옛날 소꿉친구로 생각한 모양이었습니다. “혜미야, 너희 할머니 이상해. 무서워.” 친구는 겁먹은 얼굴로 말했습니다. 혜미는 그 후 친구들을 집으로 데리고 올 수가 없었습니다. “치, 저런 할머니는 없었으면 좋겠어.” 혜미는 입을 쑥 내밀고 공책에 그어놓은 낙서를 지우며 투덜거렸습니다. 하긴 할머니가 쓰러진 후 온 집안의 분위기도 달라졌습니다. 엄마는 할머니 목욕을 시키랴 옷을 갈아입히랴 지칠 대로 지쳐 있었고 아빠도 거의 웃는 적이 없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렇게 한참이 지나고 혜미가 방에서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아 있을 때였습니다. “혜미야, 왜 이렇게 현관문을 열어놓고 있니? 할머니는?” 밖에 나갔던 엄마가 놀란 눈으로 할머니 방을 가리키며 물었습니다. “몰라, 몰라! 할머니 미워요! 또 내 공책에다 몽땅 낙서를 해놓았단 말이에요.” 혜미는 엄마를 보자 잔뜩 어리광을 부렸습니다. 하지만 엄마는 혜미의 말에는 대꾸도 없이 부리나케 할머니 방을 열어보았습니다. “이런, 안 계시잖니, 어디 가셨지?” “아까 방에 계셨는데요?” 혜미도 깜짝 놀라 할머니 방으로 달려갔습니다. 하지만 할머니 방은 텅 비어 있었습니다. “엄마가 그렇게 신신당부를 했는데 도대체 뭐하느라 할머니 나가신 줄도 몰랐단 말이니?” 엄마는 버럭 화를 내며 안방이며 목욕탕 거실 구석구석을 살피기 시작하였습니다. 언젠가 할머니가 숨바꼭질을 한다며 옷장 속에 꼭꼭 숨어있는 걸 찾아낸 적도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온 집안을 다 찾아봐도 할머니는 온 데 간 데 없었습니다. “현관문 여는 소리 안 났는데….” 혜미는 몸 둘 바를 몰랐습니다. 컴퓨터 게임에 정신을 팔고있느라 할머니가 나가신 줄도 모르고 있었으니까요. “안되겠다, 빨리 밖으로 나가보자.” 엄마는 부리나케 밖으로 달려 나갔습니다. 혜미도 허둥지둥 그 뒤를 따라 나갔습니다. “아저씨, 저희 어머니 나가시는 거 못 보셨어요?” 엄마는 경비 아저씨에게 물었습니다. “글쎄요, 여태 화단 손질 하고 이제 들어왔거든요.” 경비 아저씨도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렇다면 혼자 엘리베이터를 타지 못하는 할머니는 아파트 10층에서 계단을 걸어 내려와 경비 아저씨도 모르게 어디론가 나가신 것입니다. 엄마는 아파트 단지는 물론 큰 길까지 나가 할머니를 찾아 나섰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묻고 또 물어보았지만 아무도 할머니를 본 사람이 없었습니다. 경비아저씨가 안내 방송을 했지만 소용없었습니다. “할머니를 못 찾으면 어쩌면 좋으니.” 엄마는 거의 울 듯한 얼굴이었습니다. 그건 혜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혜미의 방을 마구 어질러놓고 공책이나 책을 찢고 과자를 빼앗아 먹긴 하지만 할머니가 보이지 않자 겁이 더럭 났습니다. ‘다, 나 때문이야. 내가 꼴도 보기 싫다고 소리 질렀잖아.’ 혜미는 집 주소는커녕 전화번호도 자기 이름도 알지 못하는 할머니를 자기가 내쫓은 것만 같아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혜미는 부리나케 집으로 돌아와 스케치북을 부욱 찢어서는 마구 글씨를 썼습니다. 김꽃분 할머니를 찾습니다. 분홍색 스웨터에 파란 바지를 입었습니다. 마음이 급해서인지 글씨는 삐뚤빼뚤 했습니다. 하지만 혜미는 한 장 두 장 스케치북을 자꾸 자꾸 찢어서는 할머니를 찾는 광고지를 만들었습니다. 누군가 강아지를 잃어버린 후 전단지를 써놓은 걸 떠올린 것입니다. “아저씨, 이것 좀 붙여주세요, 네?” 혜미는 경비 아저씨랑 함께 아파트 여기저기에 전단지를 붙였습니다. 그러나 할머니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고 어느 틈에 날은 금방 어둑어둑해졌습니다. 그 때 회사에 있던 아빠가 핼쑥한 얼굴로 달려왔습니다. “그래, 파출소 쪽에는 가보았소?” “아까 신고를 했는데 아직 연락이 없어요. 어떡하지요?” “허허, 참!” 엄마도 아빠도 발을 동동 굴렀습니다. 혜미는 그럴수록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만 싶었습니다. ‘다 나 때문이야, 제발 우리 할머니 무사히 돌아오게 해주세요!’ 혜미는 할머니만 무사히 돌아오면 공책을 찢어도 마구 낙서를 해도 좋았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엄마의 손전화가 다급하게 울렸습니다. “네, 뭐라고요? 양지말 지구대에 하, 할머니가 계시다고요?” 엄마는 소스라쳐 놀랐습니다. 양지말이라면 읍내로 이사 오기 전까지 살던 곳이었습니다. “방금 파출소에서 연락이 왔는데 어머니가 양지말에 있는 지구대에 계시대요. 어, 어서 그리로 가봐요!” 엄마, 아빠, 혜미 세 식구는 아빠 차를 타고는 부리나케 양지말로 달려갔습니다. 그곳은 낡은 집들을 다 헐어내고 아파트를 짓느라 예전의 모습은 온 데 간 데 없었습니다. 그 바람에 혜미네도 읍내로 이사를 온 거였고요. 엄마, 아빠, 혜미는 부랴부랴 지구대로 달려갔습니다. 그러자 할머니가 지구대 의자에 앉아 웬 소쿠리 하나를 들고는 환하게 웃고 있는 게 보였습니다. “아이쿠, 이제야 보호자가 나타나셨군요. 어느 분이 저 뒷산에서 길을 잃고 있는 할머니 한 분을 이리로 모셔왔답니다. 저흰 혹시나 보호자가 일부러 버리고 간 게 아닐까 걱정했습니다. 가끔 이런 봄철에 몸이 불편한 노인들을 버리고 가는 분들이 있거든요. 그런 노인들을 보호소로 보낸 적이 아주 많답니다.” 경찰 아저씨가 웃으며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혜미는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자칫하면 할머니가 그런 곳으로 갈 뻔했으니까요. “할머니이!” 혜미는 와락 달려가 할머니를 붙잡았습니다. “순이야, 이것 봐라. 내가 나물 많이 뜯었지? 쑥도 있고, 냉이도 있어.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달래랑 씀바귀는 보이지 않더라. 옛날에는 저기 아주 많았는데….” 할머니는 어린 시절 소꿉친구의 이름을 부르며 소쿠리에 든 냉이랑 쑥을 가리켰습니다. “혜미야, 할머니가 옛날 생각이 나서 봄나물을 캐러 오신 모양이구나. 그래서 양지말까지 오셔서 저렇게 나물을 뜯은 거야.” “도대체 여기까지 어떻게 오셨을까요….” 엄마 아빠는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혜미는 그때서야 문득 깨달았습니다. ‘할머니는 진짜 아기가 되신 거야. 그러니까 이제부터 내가 돌봐 드려야 해. 내가 아기일 때 할머니가 나를 돌봐주신 것처럼.’ 혜미는 흙이 잔뜩 묻은 할머니의 앙상한 손을 꼬옥 잡았습니다. 할머니는 나물이 잔뜩 든 소쿠리를 소중하게 안고 차에 올랐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엄마는 할머니를 위해 서둘러 쑥국을 끓였습니다. 된장을 넣고 조물조물 냉이도 무치고요. “어머니, 어서 드세요.” “에구, 맛있겠구나. 벌써 쑥이랑 냉이가 나왔던? 냄새가 시장에서 파는 거하곤 딴판인 걸 보니 네가 어디 가서 캐온 모양이구나. 자, 어서 먹자.” 할머니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과 쑥국, 냉이무침이 차려진 식탁 앞에 앉아 서둘러 수저를 들었습니다. 온 집안에 가득 한 봄 냄새에 잠시 정신이 되돌아온 듯 보였습니다. “할머니, 너무 맛있어요!” 혜미도 아빠도 엄마도 얼른 국그릇에 코를 박고는 숟가락으로 국을 퍼 넣었습니다. 모두 할머니한테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 고개를 푹 숙인 채 말이지요. ●작가노트 봄이 되자 문득 잊혀져가는 우리의 봄 향기가 떠올랐습니다. 시장이나 백화점에서 파는 향기가 아닌 우리의 봄 들판에서 풍겨오던, 흙냄새 묻은 향긋한 향기가. 하지만 들판에 지천으로 나던 쑥이며 달래, 민들레, 씀바귀, 두릅, 고들빼기, 냉이… 이런 봄나물들은 다 어디로 사라진 걸까요? 치매를 앓고 있는 할머니가 그 향기를 찾아가듯 우리들도 가끔은 그 향기를 찾아 나서보는 것도 좋겠지요. ●약력 ▲성균관대 사서교육원 졸업 ▲1978년 ‘소년중앙문학상’ 동화 ‘연꽃등’ 당선 ▲한국아동문학인 협회, 문인협회, 펜클럽 회원 ▲‘이주홍문학상’, ‘세종아동문학상’, ‘방정환문학상’ 등 수상 ▲지은 책 ‘열세 살에 만난 엄마’, ‘흙으로 만든 귀’, ‘왕비의 붉은 치마’, ‘부엌 할머니’ 외 다수.
  • 뻐꾸기 소년과 기러기 아저씨의 우정

    헐레벌떡 아파트 9층으로 올라간 동재는 가슴을 쓸어내린다. 동재는 사다리차만 보면 혹시나 자신을 두고 외삼촌네가 이사를 가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시달린다. 여섯 살 때 엄마는 동재를 이곳에 데려다 놓은 뒤 5년째 연락이 없다. 공부도 잘하고 부반장인 동재는 애써 씩씩하게 생활하지만 한번씩 “가슴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른다.” 집 앞에서 바지에 오줌을 싸는 실수를 한 동재는 옆집 902호 아저씨에게 창피하지만 도움을 받게 된다. 식구들은 안 보이고 쓰레기에서는 오로지 술병만 나와 이상하게 생각했던 아저씨다. 알고 보니 아저씨는 가족들을 미국으로 떠나 보낸 ‘기러기 아빠’, 남의 둥지에 사는 동재는 ‘뻐꾸기’. 둘은 친구가 되고 의지할 곳 없는 마음을 서로에게 둔다. 주인공들은 경제 위기, 지나친 교육열로 인한 가족해체가 만들어낸 새로운 소외 계층. 암울한 현실이지만 밝고 건강하게 극복하는 동재와 아저씨의 우정이 훈훈함과 더불어 많은 깨달음을 준다. 40대 늦깎이로 데뷔한 주부 작가 김혜연의 따뜻한 시선이 느껴진다.비룡소가 주관하는 제 15회 황금도깨비상 장편동화 부문 수상작. 초등학교 3학년부터. 9000원.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 [16일 TV 하이라이트]

    ●문화지대(KBS1 오후 11시30분) TV와 공연 전반에서 활약 중인 중년스타들! 그 중심에 있는 배우 전인화, 최명길, 강부자 등을 만나 대중문화의 흐름을 짚어 본다. 배순훈 전 정보통신부 장관이 최근 국립현대미술관장에 임명됐다. CEO형 미술관장이 열어가는 새로운 길은 어떤 것인지, 배순훈 관장에게 들어본다. ●미녀들의 수다(KBS2 오후 11시10분) 개그 콘서트의 봉숭아 학당에서 최고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노브레이크 엔터테인먼트 사장 한민관이 출연해 미녀들에게 유머를 전수하고, 미녀들도 유머를 공개한다. 미수다엔 초 엘리트 미녀만 모였다? 반장은 기본, 회장과 치어리더 대표까지 역임한 미녀들. 그들의 화려했던 과거를 들어본다. ●내조의 여왕(MBC 오후 9시55분) 학창 시절, 뛰어난 미모로 일대 남학생들을 사로잡던 천지애는 신데렐라를 꿈꾸며 서울대 의대 재학중인 온달수를 잡아 결혼을 했다. 하지만 우유부단, 의지박약한 남편은 해부학강의 시간마다 졸도해 결국 학교를 중퇴했고, 현재 멘사 출신 실업자 모임 회원이다. 지애는 남편 달수에게 이혼을 요구한다. ●TV로펌 솔로몬(SBS 오후 8시50분) 남편이 외국 지사에 나간 사이 첫사랑 준수와 외도를 하고 있었던 정아는 남편에게 외도사실을 들키지 않고 이혼할 방법을 궁리하다 내연남 준수에게 남편 행세를 하게 한다. 이를 통해 모든 재산을 빼돌리며 남편 몰래 이혼에 성공했지만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남편은 법원에 찾아가 항의하는데…. ●요리비전(EBS 오후 10시40분) 낭푼밥상은 제주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먹던 상차림을 말한다. 먹는 시간을 줄이고 노동에 투자할 시간을 늘리기 위해 밥은 큰 낭푼에 하나만 퍼놓고, 반찬 몇 개에 국만 식구 수대로 떠놓은 형태다. 오름 전문 사진작가 고남수와 함께 제주 사람들의 삶, 그리고 ‘낭푼밥상’의 숨은 이야기를 찾아 나선다. ●세계 세계인<미국 LA 레스토랑>(YTN 오전 10시30분) 요식업계에서 최신 유행을 이끌고 있는 LA의 레스토랑들은 저마다 양은 적고 영양과 맛은 뛰어난 요리들을 내놓고 있다. 특히 요즘처럼 경기가 좋지 않을 때에는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전채요리인 타파스나, 중동의 메츠 스타일의 요리 등 양이 적고 가격도 적당한 요리가 인기를 끈다고 한다.
  • “1000억원도 사양합니다”

    “1000억원도 사양합니다”

    세상에 준다는 돈 마다하는 이가 있을까. 하지만 요즘 금융권에선 뭉칫돈을 앞에 두고 싫다며 손사래를 치는 모습이 여기저기서 보인다. 천덕꾸러기 신세가 된 것은 단기자금이다. ●기업 단기자금 찬밥 신세 A기업체 자금담당 부장은 수출대금으로 받은 여유자금 1000억원을 3개월 정도 운용하려고 자산운용사에 문의 전화를 했다. 답변은 “죄송하지만, 받을 수 없습니다.”였다. 다른 곳에 전화를 해봐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서로 높은 금리를 부르며 자금부장 모시기에 바빴던 1년 전과 비교하면 상전벽해다. 13일 금융계에 따르면 최근 자산운용사나 법인을 대상으로 한 증권사의 수신 영업은 사실상 올스톱 상태다. 이유는 세가지 정도다. 우선 개인과 달리 법인 자금 대부분은 머니마켓펀드(MMF) 등 단기성 상품에 지나치게 많이 집중돼 적정 운용수익을 확보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밑지는 장사는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신규 자금이 들어오면 과거보다 수익률이 떨어진 채권 등을 사 혼합해 관리해야 한다. 하지만 기존 투자자들의 수익률 평균을 깎아먹게 돼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자금이 한꺼번에 빠져나갈 수 있다는 점도 법인의 뭉칫돈을 덥석 받지 못하는 요인이다.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소액은 몰라도 거액의 법인 자금은 받기 어려운 상황”이라면서 “법인에서 자산 운용이 가능하냐는 문의가 오면 대놓고 거절하고 있다.”고 말했다. 계열사끼리 이른바 안면거래도 통하지 않는다. 대기업 계열의 증권사 관계자는 “다른 곳 돈은 안 받아주면서 제식구만 챙겼다는 소문이라도 나면 항의가 빗발치기 때문에 이마저도 쉽지 않다.”면서 “법인 자금이 몰리는 단기상품은 수수료도 낮아 수익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귀띔했다. 이런 가운데 이날 자산운용사 사장들은 시중자금 단기화를 막아야 한다며 MMF의 수탁고 규모를 3개월간 점진적으로 줄이고 규모도 50조원 미만으로 유지하기로 결의했다. ●돈 많이 넣으면 금리를 덜준다(?) 애물단지가 된 자금은 은행을 찾지만 역시 홀대받는다. 시중은행들은 법인고객들이 단기로 목돈을 굴리는 데 애용해온 수시입출식예금(MMDA) 금리를 개인고객의 금리보다 더 낮게 책정하고 있다. 13일 현재 신한은행은 개인이 MMDA에 1억원 이상 맡기면 연 1.45%의 이자를 주지만, 법인은 10억원 이상을 맡겨도 1.25%만 주고 있다. 10배나 많은 돈을 맡기는 기업고객에는 이자를 0.2%포인트 빼고 준다는 계산이다. 다른 은행도 기업고객의 MMDA 고시금리는 개인에 비해 0.1%포인트 정도씩 낮다. 국민과 하나은행은 개인이 1억원을 맡기면 각각 1.4%와 1.75%의 금리를 적용하지만, 기업이 10억원을 맡기면 1.3%와 1.65%의 금리를 준다고 고시했다. 돈의 규모가 큰 법인에는 고맙다는 표시로 우대금리를 쳐 줬지만, 단기자금이 넘치다 보니 금리를 4~5%였던 1년 전의 3분의1 수준으로 낮췄다. 시중은행의 한 자금부장은 “언제 빠져나갈지 모르는 단기자금은 요즘 같은 시기 반가운 손님이 아니다.”면서 “단기자금의 은행 쏠림 현상도 은행이 감당해야 할 수준을 이미 넘었다고 본다.”고 말했다. 100년만이라는 금융위기 탓에 금융계의 전통적인 갑을 관계에도 변화의 조짐이 읽힌다. 돈을 가진 법인이 갑에서 을로, 돈을 운용하는 자산운용사가 을에서 갑으로 바뀌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경기 침체로 투자처가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는 당분간 이런 현상이 지속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유영규 장세훈기자 whoam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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