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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동성, 딸 배수진 시집가는 날 공개 “곧 할아버지 된다”

    배동성, 딸 배수진 시집가는 날 공개 “곧 할아버지 된다”

    코미디언 배동성이 딸 배수진과 사위 임현준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17일 방송된 SBS ‘본격연예 한밤’에서는 배동성 딸 배수진과 뮤지컬 배우 임현준의 결혼식 현장이 공개됐다. 배수진과 임현준은 지난 14일 서울 강남구 잠원동의 한 호텔에서 백년가약을 맺었다. 이날 배수진은 결혼과 관련 아버지 배동성이 “언제하든지 상관없다고 했다”며 결혼 전 이야기를 꺼냈다. 이에 배동성은 “저렇게 잘생긴 친구가, 저렇게 마음 착한 친구가 저의 사위가 된다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라며 “100점 만점에 99.5점”이라고 사위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배동성은 사위와 함께 손주도 얻게 됐다. 배동성은 “8~9월이 되면 할아버지가 된다”며 기쁜 마음을 표했다. 이날 방송에서 공개된 결혼식 현장에서 배동성은 딸을 위해 피로연에서 직접 디제잉을 해 눈길을 끌었다. 한편 배수진은 뷰티 크리에이터로 활동 중이다. 뮤지컬 배우인 임현준은 ‘레미제라블-두 남자 이야기’, ‘사랑은 비를 타고’, ‘전설의 리틀 농구단’ 등에 출연했다. 당초 두 사람은 내년쯤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었지만, 배수진의 임신으로 결혼식이 앞당겨졌다. 사진=SBS 연예팀 seoulen@seoul.co.kr
  • 누구였을까… 내게 신은

    누구였을까… 내게 신은

    유희경(38) 시인의 새 시집 ‘우리에게 잠시 신이었던’(문학과지성사)은 제목부터 곱씹게 된다. 나에게 잠시 신이었던 것은 무엇일까. 이때 신은 초월적 존재를 일컫는 것일까. 한때 믿고 따랐던 동경의 대상일까. 그것도 아니면 보잘것없지만 나를 지탱하게 한 작은 기쁨일까. 곧바로 되묻게 되기 때문이다. 시집의 제목이자 1부 앞머리에 놓인 시에서 ‘신’의 정체를 헤아려 볼 수 있다. 바로 ‘당신’이라는 2인칭이다.시인은 빛이 부재하는 순간, 가시적인 판단이 불가능한 어둠 속에서 ‘당신’이 나타난다고 믿는다. 당신이 구체적인 성별과 이름을 가지게 될 때 내가 매만질 수 있는 당신의 의미는 줄어든다는 것. 오히려 어둠 속에서 희미해진 당신을 자유롭게 어루만질 때 온전히 그 존재에 가닿을 수 있다는 깨달음이다. ‘어떤 인칭이 나타날 때 그 순간을 어둠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 어둠을 모래에 비유할 수 있다면 어떤 인칭은 눈빛부터 얼굴 손 무릎의 순서로 작은 것이 무너져 내리는 소리를 내며 드러나 내 앞에 서는 것인데 (중략) 인칭이 성별과 이름을 갖게 될 때에 나는 또 어둠이 어떻게 얼마나 밀려났는지를 계산해보며 그들이 내는 소리를 그 인칭의 무게로 생각한다. 당신이 드러나고 있다. 나는 당신을 듣는다.’(우리에게 잠시 신이었던) 유 시인은 “우리 삶을 변화하게 하는 것들은 어쩌면 작은 것들이 아닌가 싶다”며 “그래서 이 시집에서도 작지만 막대한 것들에 대해 쓰고 싶었다”고 말했다. “사람의 마음이 변하는 과정도 미세하게 쪼개다 보면 그사이에 많은 것들이 존재하겠죠. 그 모든 작은 것들은 저의 바깥에 있죠. 그 모든 것들이 당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시인의 말대로 때때로 신은 그 이름을 벗고 호명 가능한 대상을 넘어선다. 부르는 순간 생겨나는 당신은 꽃말처럼 몇 자 적어 보내고 싶었던 ‘그’일 수도, 영영 돌아오지 않을 그를 추억하는 참담한 ‘봄밤’일 수도, 바람이 부는 날 ‘시를 읽는 시간’일 수도 있다.해설을 쓴 김나영 문학평론가가 “흔히 ‘당신’이라고도 달리 부를 수 있는 대상인 그는 가족이거나 연인이거나 친구이거나 그저 한두 번 스쳐 지나간 타인일 수도 있다. 때로 당신은 길가 꽃나무이거나 꽃나무 위로 날아가는 새이거나 바람 소리일 수도 있다. 요컨대 신은 화자가 ‘그것은 거기에 있었다’고 진술할 수 있을 만한 모든 대상의 다른 이름”이라고 한 이유다. ‘그의 얼굴을 본 적이 있니, 우리는/묻지 않았지 그의 얼굴은 비밀이었으니/그가 주머니에 감추어 둔 것도/언젠가 그가 날려버렸던 푸른 저녁도/우리는 묻지 않았네 거기/생이 재잘대는 소리를 듣자고/손을 펼쳤을 때 보이던 들판과 구름들/흘러가고/여린 풀입들 발돋움하던/그러나 여전히 그것도 아니었지’(우리에게 잠시, 신이었던 것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시집가는 날’ 안소미 결혼식 본식 사진 공개...미녀 개그우먼 총출동

    ‘시집가는 날’ 안소미 결혼식 본식 사진 공개...미녀 개그우먼 총출동

    코미디언 안소미 결혼식 사진이 공개됐다. 14일 코미디언 안소미(29)는 이날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 위치한 한 호텔에서 동갑내기 연인과 결혼식을 올렸다. 지인 모임에서 만나 1년 4개월 열애 끝에 결혼이라는 결실을 맺은 두 사람은 이날 많은 하객들의 축하 속에 평생 함께할 것을 약속했다. 이날 결혼식 사회는 KBS2 ‘개그콘서트’ 동료 류근지가, 축가는 케이윌이 맡았다.이외에 두 사람의 결혼을 축복하러 온 수많은 코미디언 동료들이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이날 안소미 결혼식에는 코미디언 김지민, 박소영, 김혜선, 김나희, 박소라 등이 참석해 축하를 전했다. 한편 안소미는 ‘개그콘서트’ 일정으로 결혼식 이후 신혼여행을 잠시 미룰 예정이다. 신혼집은 서울 강서구에 마련됐다. 사진=해피메리드컴퍼니, 웨딩디렉터 봉드, 데니스냅 연예팀 seoulen@seoul.co.kr
  • 김재욱 아내 박세미, 시댁서 눈물 “비교하면 안 되지만...”

    김재욱 아내 박세미, 시댁서 눈물 “비교하면 안 되지만...”

    김재욱 아내 박세미가 시댁에서 눈물을 보였다.지난 12일 방송된 MBC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에서는 개그맨 김재욱 아내 박세미가 출연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이날 박세미는 김재욱 없이 혼자 시댁으로 향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박세미는 설날 당일 공연이 있는 김재욱에게 “일을 빼”라고 말했지만, 김재욱은 “그게 무슨 소리냐”며 공연을 하러 갔다. 결국 박세미는 임신 8개월 차에 20개월 아들 지우를 안고, 짐을 챙겨 혼자 시댁으로 향했다. 박세미가 시댁에 도착하자 시어머니는 “나도 며느리고, 너도 며느리고 우리 집안에 시집왔으니까 풍습대로 해야지”라며 음식 준비부터 하게 했다. 저녁 시간이 왔지만 박세미는 지우를 재우러 방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시끄럽게 이야기하는 시댁 식구들의 목소리에 지우는 깊게 잠을 자지 못했다. 새벽 늦게서야 들어온 남편도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하고 가족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박세미는 “비교하면 안 되지만 친정 식구들은 지우 재운다고 하면 숨도 안 쉰다. 친정 가면 20개월 아들을 다 돌봐준다. ‘너 밥먹어. 엄마 이따 천천히 먹을테니까 너 밥 먹어’라고 말해준다”며 눈물을 보였다. 사진=MBC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 방송 캡처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광주 주부 정미주씨,신문은 글쓰기 선생님이자 살아있는 교과서입니다

    광주 주부 정미주씨,신문은 글쓰기 선생님이자 살아있는 교과서입니다

    “아이들 교육에는 신문 만큼 중요한 자료가 없습니다.그래서 ‘살아 있는 교과서’라 불리기도 하죠” 스마트폰만 펼치면 넘쳐나는 뉴스 속에서 오로지 종이신문만을 고집하는 정미주씨(53·광주 남구)는 요즘 신문활용교육(NIE) 전도사로 뛰느라 하루가 바쁘다. 올해로 6년째다.정씨는 11일 “수업을 준비하다보면 늘 세상이 새롭게 보이고 내가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배운다”며 신문의 가치를 치켜 세웠다. 그의 일상도 이와 무관치 않다. 이른 아침 눈을 뜨자마마 지역과 중앙 일간지를 ?는다. 그날의 주요 이슈를 메모하고, 신문활용 수업 일정을 짠다. 그는 광주 남구 도담·양지·대촌·봉주 등 4개 지역아동센터에서 초·중학생들의 방과후 수업을 맡고 있다. 신문을 활용한 글쓰기,토론,독서 등을 가르친다. 그는 아이들이 직접 신문 기사를 읽도록한다. 이후 그들의 눈높이에 맞춘 뉴스의 배경과 사회적 의미,연관 어휘까지 보충 설명을 곁들인다. 가령, 핫 이슈인 남북예술단 평양공연 관련 신문기사 속에서 ‘통일’이란 단어가 나오면 한국전쟁과 평화 정착방안 등을 설명해 준다. 무등산이 주제인 기사는 산의 보존 가치와 생태,환경 등을 알려주고 ‘맵핑’ 방식으로 생각을 정리하도록 도와준다. 아이들이 기사를 읽은 뒤 쓴 글에 대해서는 일일이 ‘코멘트’를 달아준다. 그는 “기사를 놓고 ‘스토리리 텔링’ 방식으로로 수업을 진행하다보면 호기심이 생긴 아이들로부터 질문을 받게될 때 가장 기쁘다”고 말했다. 정씨가 ‘신문 교육’에 나선 것은 외동 아들(23)이 초등학교에 입학한 20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평범한 주부였던 그는 아들에게 초등학교 6년 동안 글쓰기와 신문읽기를 지도하면서 ‘교육 효과’에 자신감을 얻었다. 그때 만든 신문스크랩이 책장을 가득 메울 정도다. 아들의 신문 일기는 그가 초등 6학년이던 2008년 ‘엄마 때문에 못살아’란 책으로 세상에 나왔다. 전국의 백일장을 휩쓸다시피한 아들은 중학교를 마칠때 ‘파란 하늘에 젖어’란 시집을 출간하기도 했다. 이어 ‘2013년 대한민국 인재상’(대통령상)을 수상했다. 엄마의 극성스런(?)까지한 신문 활용교육이 주변의 시선을 끌었다. 정씨는 이후 아들이 다니는 초등학교와 지역아동센터 등지에서 ‘재능기부’ 봉사활동에 나섰다. 내친김에 사회복지사,아동 심리지도사,NIE지도사 등의 자격증을 땄다. 정씨 자신도 용아박용철 백일장, 사랑의 일기 공모전 등 여러 대회에서 참여,각종 상을 탈만큼 문학적 소양이 남다르다. 정씨는 “가짜 뉴스가 판치는 세상에서 신문기사는 객관적이고 폭넓은 시각을 갖게 한다”며 “특히 아이들에게는 종합적인 사고와 학습·글쓰기 능력을 향상 시킬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자신했다. 그는 “엄마들이나 선생님들에게도 신문활용교육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기꺼이 봉사할 수 있다”며 “아이들이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사고의 틀을 갖게 하려면 어른들의 지도가 필요하며, 신문 활용은 그 해답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광주 주부 정미주씨,신문은 글쓰기 선생님이자 살아있는 교과서입니다

    “아이들 교육에는 신문 만큼 중요한 자료가 없습니다.그래서 ‘살아 있는 교과서’라 불리기도 하죠” 스마트폰만 펼치면 넘쳐나는 뉴스 속에서 오로지 종이신문만을 고집하는 정미주씨(53·광주 남구)는 요즘 신문활용교육(NIE) 전도사로 뛰느라 하루가 바쁘다. 올해로 6년째다.정씨는 11일 “수업을 준비하다보면 늘 세상이 새롭게 보이고 내가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배운다”며 신문의 가치를 치켜 세웠다. 그의 일상도 이와 무관치 않다. 이른 아침 눈을 뜨자마마 지역과 중앙 일간지를 ?는다. 그날의 주요 이슈를 메모하고, 신문활용 수업 일정을 짠다. 그는 광주 남구 도담·양지·대촌·봉주 등 4개 지역아동센터에서 초·중학생들의 방과후 수업을 맡고 있다. 신문을 활용한 글쓰기,토론,독서 등을 가르친다. 그는 아이들이 직접 신문 기사를 읽도록한다. 이후 그들의 눈높이에 맞춘 뉴스의 배경과 사회적 의미,연관 어휘까지 보충 설명을 곁들인다. 가령, 핫 이슈인 남북예술단 평양공연 관련 신문기사 속에서 ‘통일’이란 단어가 나오면 한국전쟁과 평화 정착방안 등을 설명해 준다. 무등산이 주제인 기사는 산의 보존 가치와 생태,환경 등을 알려주고 ‘맵핑’ 방식으로 생각을 정리하도록 도와준다. 아이들이 기사를 읽은 뒤 쓴 글에 대해서는 일일이 ‘코멘트’를 달아준다. 그는 “기사를 놓고 ‘스토리리 텔링’ 방식으로로 수업을 진행하다보면 호기심이 생긴 아이들로부터 질문을 받게될 때 가장 기쁘다”고 말했다. 정씨가 ‘신문 교육’에 나선 것은 외동 아들(23)이 초등학교에 입학한 20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평범한 주부였던 그는 아들에게 초등학교 6년 동안 글쓰기와 신문읽기를 지도하면서 ‘교육 효과’에 자신감을 얻었다. 그때 만든 신문스크랩이 책장을 가득 메울 정도다. 아들의 신문 일기는 그가 초등 6학년이던 2008년 ‘엄마 때문에 못살아’란 책으로 세상에 나왔다. 전국의 백일장을 휩쓸다시피한 아들은 중학교를 마칠때 ‘파란 하늘에 젖어’란 시집을 출간하기도 했다. 이어 ‘2013년 대한민국 인재상’(대통령상)을 수상했다. 엄마의 극성스런(?)까지한 신문 활용교육이 주변의 시선을 끌었다. 정씨는 이후 아들이 다니는 초등학교와 지역아동센터 등지에서 ‘재능기부’ 봉사활동에 나섰다. 내친김에 사회복지사,아동 심리지도사,NIE지도사 등의 자격증을 땄다. 정씨 자신도 용아박용철 백일장, 사랑의 일기 공모전 등 여러 대회에서 참여,각종 상을 탈만큼 문학적 소양이 남다르다. 정씨는 “가짜 뉴스가 판치는 세상에서 신문기사는 객관적이고 폭넓은 시각을 갖게 한다”며 “특히 아이들에게는 종합적인 사고와 학습·글쓰기 능력을 향상 시킬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자신했다. 그는 “엄마들이나 선생님들에게도 신문활용교육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기꺼이 봉사할 수 있다”며 “아이들이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사고의 틀을 갖게 하려면 어른들의 지도가 필요하며, 신문 활용은 그 해답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침묵의 한국문학 여성들이 말해요 변화가 시작됐죠”

    “침묵의 한국문학 여성들이 말해요 변화가 시작됐죠”

    “한국 문학은 침묵을 지나치게 사랑하는 것 같아요. ‘벙어리 3년, 귀머거리 3년, 장님 3년’이라는 말도 있듯이 여자라면 모름지기 입 다물고 묵묵히 일하는 맏며느리감이어야만 하죠. 이것이야말로 부정과 불의를 키우는 요인입니다. 러시아 소설가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이 ‘침묵으로 일관한 진실은 거짓’이라고 했습니다. 비로소 한국 여성들이 말하기 시작한 것은 중요합니다. 변화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뜻이니까요.”문정희(71) 시인의 새 시집 ‘작가의 사랑’(민음사)은 이 땅의 여성들을 위한 진혼곡이다. 틀에 갇힌 여성에 대한 자유와 해방을 꾸준히 노래해 온 시인은 4년 만에 낸 열네 번째 시집에서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이름을 빼앗기고 무차별하게 짓밟힌 이들의 울음을 곡조에 담아 노래한다. 해방 공간에서 간첩이라는 죄목으로 처형당한 김수임, 여성이라는 이유로 공쿠르상에서 탈락하자 스스로 페미나상을 제정한 프랑스 시인 안나 드와이유, 독재자 앞에서 차도르를 찢은 이탈리아 기자 오리아나 팔라치, 성폭행을 당한 뒤 휴지에 증거를 들고 파출소로 뛰어갔지만 도움을 받지 못한 이방인 여성 등을 호명한다.특히 문단에서 남성들에게 인격살해당한 작가 김명순의 이야기를 다룬 ‘곡시’는 마치 오늘날 수많은 여성의 현실을 대변하듯 적나라하다. ‘이성의 눈을 감은 채, 사내라는 우월감으로/근대 식민지 문단의 남류들은 죄의식 없이/한 여성을 능멸하고 따돌렸다./(중략)/꿈 많고 재능 많은 그녀의 육체는 성폭행으로/그녀의 작품은 편견과 모욕의 스캔들로 유폐되었다./이제, 이 땅이 모진 식민지를 벗어난 지도 70여년/아직도 여자라는 식민지에는/비명과 피눈물 멈추지 않는다.’(‘곡시’ 중) “김명순은 한국 최초의 여성 소설가이자 여성 최초로 시집을 낸 시인이에요. 일본에서 데이트 강간을 당했고 이것이 빌미가 되어 많은 한국 남성 문인들에게 사회적인 폭력을 당했죠. 이후 행려병자가 되어 문단에서 사라졌어요. 한국 현대문학사는 남성 중심의 기술이 만들어낸 반쪽의 문학사이기 때문이죠. 이 시는 제가 갑자기 쓴 게 아니에요. 4년 전부터 여러 논문을 읽으며 자료 조사를 하다가 2년 전에 한 계간지에 발표했어요. 최근의 흐름과 맞물려 주목받고 있는 걸 보면 이 시가 중요한 분수령을 이루는 역사적 시점에 서 있는 듯합니다.” “눈물에서 태어난 보석” 같은 이 땅의 딸들을 위한 문 시인만의 생명력 넘치는 시는 많은 이들에게 위로를 건넨다. 내년이면 등단 50주년을 맞는 시인은 자신이 남성 중심 문단에서 견뎌 온 무수한 시간을 되돌아보며 현재 아픔을 겪고 있는 여성들을 격려했다. “창작 자체에서 좌절감을 느낀 적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패거리의 견제에 의해 기회를 박탈당하고 뒤로 물리는 일은 무수히 겪었죠. 그럴 때마다 난 슬프지 않았어요. 오히려 ‘좀더 앞으로 가자’고 생각했죠. 제가 외국에서 강연할 때도 한 이야기지만 여성의 몸속에 있는 자궁은 단지 여성의 자궁이 아니라 인류의 자궁입니다. 창조의 모태이자 대지모(大地母)죠. 여성들 스스로 사회적 타자, 압박받는 존재가 아니라 아름다운 모태임을 자각해야 합니다. 더이상 머뭇거리거나 슬퍼하거나 그늘에 서 있지 말고 찬란한 꽃을 피웠으면 좋겠습니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김흥국 지인 A씨 “월드컵 당시에도 여성 추행…지켜보기 힘들었다”

    김흥국 지인 A씨 “월드컵 당시에도 여성 추행…지켜보기 힘들었다”

    “지켜보기 힘들었습니다. 몇 번이나 실망해 연을 끊으려 했습니다” 최근 가수 김흥국의 성폭행 의혹이 불거졌다. 한 여성은 2년 전 김흥국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주장했고 이에 대해 김흥국은 해당 여성이 의도적인 접근을 했다며 부인했다. 양 측은 진실 공방을 벌이며 첨예한 입장 차를 보이고 있다.이와 관련해 30년 이상 김흥국과 함께했던 지인 A씨는 스포츠서울에 김흥국의 또 다른 성추행에 대해 증언했다. A씨는 “이건 아니라고 생각됐다”며 조심스럽게 자신이 목격한 김흥국의 성추행에 대해 전했다. 이하 A씨와의 인터뷰 - 과거 김흥국과의 술자리에서 여성들과 어떤 일이 있었나.지난 2002년 월드컵 당시 (한국 축구 국가대표 팀이) 승승장구하고 있었던 시기다. 경기장에서도 서로 기쁘니 얼싸안는 분위기였다. 특히 김흥국은 유명 연예인이기도 하고 당시 축구장에서는 우상인 분위기였다. 광주의 한 호텔에 술집이 있었는데 김흥국과 일행들은 여성들과 함께 술을 마셨다. 그 당시는 축구가 워낙 잘 돼 뭘 해도 기분 좋은 분위기였다. 김흥국은 그 낌새를 포착하고 (마음에 드는 여성을) 찍어서 추행을 했다. 이건 아니라고 하니 나가있으라 하더라. 말릴 수 없었다. - 그 이후에도 유사한 일이 있었는지. 2006년 독일 월드컵 당시에도 그런 일이 있었다. 독일 월드컵 응원차 현지에 갔는데 한국에서 온 여성들과 술을 마셨고 결국 추행을 했다. 나중에 피해 여성들의 부모님들이 알고 김흥국을 끝장내겠다고 했다. 그런데 김흥국 측에서 오히려 부모님들에게 딸들의 장래가 촉망되고, 시집도 가야 하는데 문제가 된다면 어떡하냐며 앞으로 사회생활을 어떻게 할 거냐고 했다. 그랬더니 되려 부모님들이 겁을 먹었고 결국 그렇게 마무리됐다. - 김흥국은 술자리에서 주로 어떤 모습을 보이나. 술자리에서 마음에 드는 여성이 있다면 술을 먹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특히 도수가 높은 담금주를 가져와 술을 먹이기도 했다. 취하게 한 뒤 여성이 거의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가 되면 추행을 했다. 상대방이 원치 않는데 그렇게 하는 것을 보며 이건 아니라 생각했다. - 또 다른 김흥국의 추행 사건을 목격했는지. 지난 2012년 경 카페를 운영했는데 김흥국이 새로운 아르바이트생을 보게 됐다. 카페 안쪽에 방이 있었는데 자꾸 거기서 다른 손님이 갔냐고 묻더라. 결국 손님들이 모두 간 뒤 김흥국이 남아 그냥 술 좀 마시다 가겠지 생각했다. 그런데 방 안에서 “사장님!”이라 외치는 비명 소리가 났다. 김흥국이 문을 잠그고 아르바이트생을 추행한 것이었다. 어떻게 하려 했지만 미수에 그쳤다. 나중에 아르바이트생의 부모님이 찾아왔고 내가 죄송하다고 사정했다. - 해당 사건 이후 김흥국의 반응은 어땠나. 그는 거리낌이 없었다. 해당 사건에 대한 사과도 없었다. - 김흥국의 이와 같은 행동에 대해 다른 지인들도 아는지.너무 많은 사람들이 안다. 김흥국의 측근들도 상황을 알 것이다. - 현재 한 여성이 김흥국의 성폭행 의혹을 제기하며 고소했고, 김흥국 측은 이를 반박하며 맞고소했다. 지켜보며 어떤 생각이 드나. 정말 터무니없더라. 그 여성분이 어떤 사람이던, 강제로 하는 것은 아니지 않나. 나는 (술자리에서의) 그런 수법을 숱하게 봤다. - 김흥국의 오랜 지인이었는데 성추행 의혹에 대해 폭로하는 이유가 궁금하다.도의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김흥국에게 실망해 전화도 받지 않고 몇 번이나 인연을 끊으려 했다. 이것은 아닌 것 같았다. 대한가수협회 회장이라는 직책을 맡고 있는데도 이렇게 하는 것은 잘못된 것 같다. 만약 경찰 조사에 있어서 발언이 필요하다면 할 수 있다. 한편, 김흥국은 지난달 한 여성으로부터 강간·준강간·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서울동부지검에 피소됐다. 검찰 측은 해당 사건을 서울광진경찰서로 내려 보내 수사하도록 했다. 경찰 측은 지난주 해당 여성의 조사를 마친데 이어 오는 5일 김흥국을 상대로 조사를 진행한다. 의혹에 대해 김흥국은 해당 여성이 소송 비용을 빌려 달라 하는 등 의도적인 접근을 했다며 부인했다. 또한 김흥국은 해당 여성을 명예훼손 및 무고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맞고소했고 정신적, 물리적 피해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도 제기한 상태다. 스포츠서울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씨줄날줄] 박근혜 선고 TV 중계/김균미 수석논설위원

    [씨줄날줄] 박근혜 선고 TV 중계/김균미 수석논설위원

    1961년 4월 11일 이스라엘 예루살렘에서 유대인 600만명을 추방하고 학살한 전직 나치 장교 아돌프 아이히만에 대한 재판이 열렸다. ‘세기의 재판’은 전 세계 37개국에 최초로 TV 생중계돼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제작진 이야기를 다룬 영화 ‘아이히만 쇼’가 지난해 3월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심판 선고를 앞두고 국내 개봉돼 화제가 됐었다.법원이 박 전 대통령에 대한 1심 선고 공판을 TV로 생중계하기로 3일 결정했다. 1심 선고 재판이 생중계되는 것은 사상 처음이다. 서울중앙지법은 오는 6일 오후 2시 10분에 열리는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선고 재판을 법원 내 자체 카메라로 촬영해 외부에 송출하는 방식으로 생중계하기로 결정했다. 지난해 7월 개정된 대법원 내부 규칙에 따라 박 전 대통령이 생중계에 동의하지 않았지만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판단해 이같이 결정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구속 기간이 연장된 뒤 재판을 보이콧하고 있는 박 전 대통령은 선고 재판에도 출석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앞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최순실씨에 대한 선고 공판은 공익 달성보다 피고인들이 입을 손해가 더 크다며 생중계하지 않았다. 국내에서 재판이 생중계된 첫 사례는 2013년 3월 21일 대법원 심리로 열린 한국으로 시집온 베트남 여성이 남편 동의 없이 갓난아이를 데리고 돌아간 사건이다. 이후 통진당 이석기 재판, 세월호 승무원 재판, 박 전 대통령의 탄핵심판이 생중계됐다. 우리나라에서는 1973년 만들어진 ‘법원 방청 및 촬영 등에 관한 규칙’에 따라 재판장이 허락할 경우 재판 개시 전 사진 촬영 등이 허용돼 왔다. 해외에서도 재판을 생중계하는 범위가 넓어지는 추세다. 미국은 1976년 앨라배마주와 워싱턴주가 TV 중계를 허용한 이후 현재 워싱턴DC를 제외한 50개 주가 원칙적으로 생중계를 하고 있다. 백인 전처와 애인을 살해한 미국프로축구(NFL) 최고 스타 O J 심슨에 대한 재판은 1994년 6월부터 1년 넘게 TV로 생중계돼 어지간한 프로그램보다 시청률이 높았을 정도로 관심이 높았다. 영국 대법원은 재판 전 과정 생중계를 허용하지만 1심 중계는 ‘무죄 추정의 원칙’에 따라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독일과 프랑스, 일본은 생중계는 허용하지 않고 첫 재판 시작 전 법정 모습을 촬영하는 정도만 허용하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의 1심 선고 TV 생중계는 다시는 대통령들이 법정에 서는 일이 없도록 그 엄중함을 각인시키는 계기가 돼야 의미가 빛을 더할 것이다. kmkim@seoul.co.kr
  • 김해 ‘전국 차그릇 공모대전’

    경남 김해시는 3일 차그릇 연구가와 도예 작가·수강생 등의 창작 의욕을 북돋우고 차 문화 확산을 위해 ‘2018 김해 전국 차그릇 공모대전’을 개최한다고 밝혔다. 김해는 대표적인 분청사기 고장이며 서기 48년 아유타국 공주 허황옥이 가락국 시조 김수로왕에게 시집오면서 혼수품으로 차 씨앗을 가져와 차를 재배하기 시작한 전통차의 고장이다. 공모하는 차그릇은 전통 및 현대 차그릇 창작품이며 한 작품당 수량은 12개까지이다. 오는 11~13일 작품을 접수한 뒤 전문가 심사를 거쳐 대상, 금상 각 1점은 상금 500만원과 300만원, 은상 2점은 100만원씩 준다. 동상 4점은 각 50만원, 특별상 5점은 30만원씩 시상한다. 오는 25일 오후 5시 김해문화의 전당에서 시상식을 하고 입상 이상 작품은 5월 6일까지 전시한다. 김해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강산에의 ‘라구요’에 눈물 훔친 북한 주민들

    강산에의 ‘라구요’에 눈물 훔친 북한 주민들

    3일 평양 류경정주영체육관에서 북측 예술단과 함께하는 남북 합동 공연 ‘우리는 하나’가 열렸다. 실향민 부모를 둔 가수 강산에는 ‘라구요’를 부르며 결국 눈물을 보였고, 이를 지켜보던 관객들도 숙연해졌다.강산에의 대표곡 ‘라구요’는 그의 어머니 이야기를 담은 노래다. “두만강 푸른 물에 노 젖는 뱃사공을 볼 수는 없었지만” “눈보라 휘날리는 바람 찬 흥남부두 가보지는 못했지만” 등 북한 지명이 나오자 공연장 분위기가 밝아졌다. 노래하면서 눈시울이 붉어진 강산에는 “오늘 이 자리가 굉장히 감격스럽다. 돌아가신 저희 어머니, 아버지도 생각난다”며 “뭉클하다. 가슴 벅찬 이 자리에 왔을 때부터 많은 분들이…”라고 말하며 결국 말을 잇지 못했다. 관객들은 그가 눈물을 흘리자 열화와 같은 박수를 쏟아냈고, 함께 눈물을 보이는 관객도 있었다. 강산에는 “많은 분들이 따뜻하게 해주셔서 내내 누르고 있었는데 한번 터지면 잘 안 멈추더라”며 손으로 눈물을 닦았다. 이어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라고 인사했다.그는 이어 ‘넌 할 수 있어’를 열창했고, 관객들은 감격 어린 표정으로 무대를 지켜봤다. 자신의 무대를 끝난 강산에는 “건강하시고 오래오래 사십시오”라고 인사했다. 충청도 출신인 강산에의 어머니는 함경도로 시집을 가 1949년 첫 아이를 출산했지만, 이듬해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어머니는 남편과 생이별하고서 아이만 둘러업고 흥남부두에서 배를 타고 피란해 거제에 정착했다고 한다. 함경남도 북청 출신인 아버지 역시 전쟁으로 피란 통에 처자식과 뿔뿔이 흩어지게 됐고, 거제에 둥지를 틀었다. 한의사였던 아버지는 같은 피란민 처지인 어머니와 가정을 꾸렸고, 거제에서 강산에와 그의 누나가 태어났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헌정시 펴낸 시인들 ‘순이 삼촌’은 재공연

    제주 4·3 사건 70주년을 계기로 여전히 치유되지 못한 4·3의 상처를 조명한 예술 작품들이 때맞춰 나와 눈길을 끈다. ●시인 90명의 헌시 ‘검은 돌 숨비소리’ 먼저 4·3의 아픔을 기리고 평화를 기원하는 시집, 그림책 등 문학 작품이 잇따라 나왔다. ‘검은 돌 숨비소리’(걷는사람)는 한국작가회의 소속 90명 시인의 시를 모은 4·3 70주년 기념 시집이다. 김수열·이종현·홍경희 등 제주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시인과 신경림·정희성·이시영 등 원로 시인, 안현민·장이지·김성규 등 젊은 시인들이 각각 신작시 1편을 발표했다. 4·3을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한 이산하 시인의 ‘한라산’(노마드북스)도 이번에 복간됐다. 1987년 ‘녹두서평’ 창간호에 소개된 이후 암암리에 필사되며 많은 이들에게 전달돼 읽혔다. 2003년 6월 시집으로 출판됐다가 절판돼 구하기 어려웠으나 이번에 이 시인의 제자들이 페이스북 온라인 펀딩을 통해 마련한 비용으로 다시 나왔다. ●‘무명천 할머니’ 출간 ‘나무 도장’ 전시 제주를 아름다운 휴양의 섬으로만 알고 있는 어린이들에게 섬에 깃든 아픈 역사에 대해 알려줄 그림책도 출간됐다. ‘무명천 할머니’(스콜라)는 마을에 들이닥친 토벌대의 무차별한 총격에 턱을 맞은 진아영 할머니의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했다. 간신히 목숨은 건졌지만 평생을 약 없이는 견딜 수 없는 고통 속에 살아야만 했던 할머니의 고통을 통해 현대사의 비극을 되짚는다. 학살의 현장에서 살아남은 한 소녀의 이야기를 그린 권윤덕 작가의 그림책 ‘나무 도장’(2016)의 감동을 전시로 만나 볼 기회도 마련된다. 오는 29일까지 서울 종로구 낙원상가 417호에서 ‘나무 도장’의 원화와 책에 담지 못한 회화 작품이 전시되며, 그에 앞서 7일 광화문광장에서는 권 작가와의 만남도 진행된다. ●4·3 알린 ‘순이 삼촌’ 6월 연극 무대에 4·3을 알린 대표적인 소설인 ‘순이 삼촌’을 원작으로 한 동명의 연극도 5년 만에 다시 무대에 오른다. 이 작품은 4·3 65주년인 2013년, 양희경·백성현 주연으로 공연된 바 있다. 현재 제작사는 오는 6월 공연을 예정으로 캐스팅 작업을 진행 중이다. 제주 출신 소설가 현기영이 쓴 ‘순이 삼촌’(1978)은 학살 현장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순이 삼촌이 환청과 신경쇠약에 시달리다 끝내 목숨을 끊는 비극을 그린다. 최근 4·3 70주년을 캠페인 광고 영상에 내레이션을 맡기도 한 현 작가는 오는 6일 오후 7시 광화문광장에 마련된 분향소에서 4·3을 소재로 한 소설 ‘까마귀의 죽음’, ‘화산도’를 쓴 재일교포 작가 김석범과 함께 ‘4·3에 살다’를 주제로 대화를 나눌 예정이다. ●영화 ‘레드 헌트’ ‘지슬 2’ ‘비념’ 등 상영 영화계에서도 4·3 사건을 다룬 작품들로 기획전을 꾸려 현대사의 비극을 되새기는 자리를 마련했다.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는 3~4일 ‘제주 4·3 제70주년 특별상영: 끝나지 않은 세월’을 통해 6편의 영화를 선보인다. 영화 ‘레드 헌트’(조성봉 감독)를 비롯해 김경률 감독의 ‘끝나지 않은 세월’, 오멸 감독의 ‘이어도’, ‘지슬: 끝나지 않은 세월2’, 임흥순 감독의 ‘비념’, 이상목 감독의 로드 다큐 ‘백년의 노래’가 상영된다. 서울 성북구 아리랑시네센터에서는 6~8일 ‘제주를 넘어, 4·3 영화 특별전’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관객들을 만난다. 9편의 작품을 소개하는 특별전은 ‘오멸 감독의 제주, 끝나지 않은 역사’, ‘다큐, 기록과 기억 사이’, ‘장르, 비극적 역사의 재구성’ 등 3개 섹션으로 구성돼 4·3 사건을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보게 한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이지애, ‘1대100’으로 친정 복귀 “이 프로 덕분에 김정근과 결혼”

    이지애, ‘1대100’으로 친정 복귀 “이 프로 덕분에 김정근과 결혼”

    이지애가 ‘1대100’ 덕분에 결혼하게 된 사연을 공개했다.KBS 아나운서 출신 방송인 이지애는 최근 진행된 KBS 2TV 퀴즈프로그램 ‘1대100’ 녹화에 참여했다. 이날 MC가 이지애에게 “KBS 첫 복귀작으로 1대100 선택 이유는 무엇이냐”고 질문하자 이지애는 “KBS는 저의 고향이고, 저를 시집 보내준 프로그램이 1대100이다”고 말해 100인들의 궁금증을 자아냈다. 이지애는 “2009년 1대100에 출연한 나를 보고 지금의 남편이 허일후 아나운서에게 주선을 부탁해 만나게 됐다, 만약에 그때 1대100에 나오지 않았다면 지금의 남편이, 지금의 남편이 아닐 수도 있었다”고 말해 100인들을 폭소케 했다. 한편 ‘1대100’의 또 다른 1인으로는 가수 배기성이 출연해 5천만 원의 상금에 도전하며 100인과 경쟁했다. 과연 이지애는 5천만 원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을지 3일 화요일 밤 8시 55분에 KBS 2TV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같이 살래요’ 장미희, 유동근과 36년 만의 재회 ‘복수의 빅픽처’ 실패

    ‘같이 살래요’ 장미희, 유동근과 36년 만의 재회 ‘복수의 빅픽처’ 실패

    ‘같이 살래요’ 유동근, 장미희가 36년 만에 다시 만났지만, 서로에 대한 오해만 쌓였다. 이에 시청률은 21.8%(닐슨 코리아, 전국 기준)를 기록하며 주말드라마, 동시간대 1위 자리를 지켰다. 지난 31일 방송된 KBS 2TV 주말드라마 ‘같이 살래요’(극본 박필주, 연출 윤창범, 제작 지앤지프로덕션) 방송분에서 이미연(장미희)은 자신을 배신한 박효섭(유동근)에게 복수의 빅픽처를 그렸으나, 시작도 못하고 실패, 오히려 꽃뱀으로 몰리고 말았다. 더 자존심이 상한 그녀는 상가 재개발이라는 두 번째 복수 계획을 꾸몄다. 미연은 효섭에게 복수하기 위해 스무 켤레의 수제화를 주문, 자신이 투자한 YL그룹 결산보고회에 효섭을 불러냈다. 성공한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고 효섭을 모르는 척하려했던 것. 그러나 미연의 계획은 다른 투자자들에 의해 완벽하게 망가졌다. 그들이 팔아치운 유령 건물이 능력 있는 세입자 청년들에 의해 살아났고, 대학교 캠퍼스까지 들어섰기 때문. 투자 정보를 미리 알고 사기를 쳤다며 미연을 협박했지만, 투자의 성공은 그저 미연의 타고난 감각과 운 덕분이었다. 믿기 힘든 미연의 말에 투자자들의 반발은 더욱 거세졌고, 몸싸움으로 번져 실랑이 끝에 미연이 쓰러지고 말았다. 수제화 주문을 받기 위해 YL빌딩으로 향하던 효섭과 현하(금새록)가 그 모습을 목격, 사기꾼으로 싸움에 휘말린 여자가 미연인 것을 알아챈 효섭은 구급차를 불러 병원까지 동행했다. 사실 크게 다치지 않았으나 창피함에 눈을 뜨지 못하고 병원에 도착한 미연. 뇌출혈을 의심하는 의사에게 “뇌출혈 아니다. 근데 자존심에 출혈은 크다”며 효섭 몰래 도망을 쳤고, 자신을 찾는 효섭을 보며 “나 지금 머리 엉망이야. 하이힐도 없어. 화장도 다 번졌다고” 속상해하는 미연은 여전히 그에게 좋은 모습만 보이고 싶은 소녀 같은 면모를 간직하고 있었다. 미연을 궁금해하는 현하에게 “아빠 첫사랑”이라고 말해준 효섭의 친구 마동호(최철호). 다른 동창들에게 미연이 사기꾼 같다는 말을 전하기 시작했고, 미연이 꽃뱀이라는 소문이 동창 채팅방까지 퍼졌다. 소문의 근원지가 효섭이라고 생각한 미연은 “사람한테 절대 하면 안되는 제일 치사한 짓이 뭔 줄 알아? 바로 밥줄을 끊는 거야”라며 효섭의 밥줄인 공방을 건드리기로 결심, 상가거리의 재개발을 지시했다. 미연이 효섭에 대한 배신감으로 몸서리치는 이유는 36년 전 효섭이 미연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 사업이 망하고 빚쟁이들에 쫓기던 미연(정채연)과 미연의 아버지(최재성). “너 나 데리고 어디든 갈 수 있지?”라고 묻는 미연에 효섭(장성범)은 그렇다고 대답했지만, 효섭은 미연의 집 앞에서 되돌아가야 했다. “미연이는 결혼할 사람이 있다”며 미연을 전처럼 살게 해줄 수 있는 부잣집에 시집보내기로 했다는 미연의 아버지가 “제발 내 딸 흔들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기 때문. 한편 이날 방송에서 박유하(한지혜)는 이혼 도장을 찍고 구직에 나섰다. 시누이 채희경(김윤경) 앞에서 유하가 불임이라 은수를 입양할 수밖에 없었다고 거짓말을 한 남편 채성운(황동주). 유하는 그런 성운의 뺨을 때리며 “고마워, 미련 버리게 해줘서”라고 일침했고, 이혼을 서둘렀다. 이혼과 은수 양육의 조건은 재산과 위자료를 모두 포기하는 것. 결혼 전 의대를 졸업하고 인턴까지 마쳤지만, 결혼 이후의 경력단절로 인해 구직은 쉽지 않았다. 싱글맘이 된 유하는 씩씩한 성격대로 잘 헤쳐나갈까. ‘같이 살래요’, 오늘(1일) 저녁 7시 55분 KBS 2TV 제6회 방송.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황인숙의 해방촌에서] 말, 말, 말

    [황인숙의 해방촌에서] 말, 말, 말

    아주 오래전 파리에서 가장 가까운 바닷가 도시라는 디에프에 다녀온 적이 있다. 디에프는 바다를 굽어보는 백악 절벽이며 성당이며 볼거리가 많은 곳이라는데, 바다 냄새도 맡지 못하고 딸랑 해산물식당에서 밥만 먹고 왔다. 식사에 초대한 이는 노르망디 바다의 음울한 아름다움에 대한 사랑을 지극하게 토로했는데, 오후에 파리를 떠나 어둠이 내릴 때 도착한 데다 식당에서 훌쩍 시간이 지났고, 내내 비가 흩뿌리고 있어서 그랬을 테다. 파리를 벗어나기 전부터 내리던 비가 점점 거세졌었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바다로 간다는 흥에 더해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비의 장막을 뚫고 달리는 몽환적인 기분에 겨워서 내가 “와, 멋있다!” 환호성을 지르자 차를 몰던 초대자가 울컥해서 무안했던 순간이 있었다. 운전대를 잡은 사람으로서는 그렇잖아도 신경이 곤두서는데, 뭐 이런 덜떨어진 인간이 있나 싶었을 테다.버터에 구운 커다란 바닷가재며 생굴이며 포도주를 곁들인 잘 차린 식탁에 둘러앉아 두 시간 넘게 떠들면서 먹었다. 한 초로의 신사가 계산대로 향하던 걸음을 돌려 머뭇머뭇 우리 자리에 오더니 수줍은 표정으로 물었다. 혹시 스페인 사람들이냐고. “아니다, 한국인이다” 라는 대답에 그는 역시 수줍은 미소를 띠고 갸웃거리던 고개를 살짝 숙이며 인사를 하고 물러났다. 그는 동양인들이 스페인어로 떠드는 게 이상하고 참을 수 없이 궁금했던 게다. 스페인어도 한국어도 모를, 스페인어를 들어 본 적은 있을 프랑스 사람에게 우리가 하는 말이 스페인어처럼 들렸다는 게 신기했다. 일행 모두 표준 한국어, 서울 말씨 사람들인데 말이다. 음성학자라면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을까.버스 안에서 사람들이 떠들썩하니 얘기를 주고받을 때, 의미를 소거하고 들어 본 적이 있다. 목소리에 실린 강세와 리듬을 음미하면서 외국인은 우리말을 이런 느낌으로 듣겠구나 생각했다. 길을 가다가 지나치는 사람들의 대화가 귀에 콕 박히는 때가 있다. 언젠가 연인 사이로 보이는 청소년 둘이 스쳐 가는데, “걔, 개~못생겼어!” 하는 여자애 말이 들렸다. 남자애와 나는 동시에 쿡, 웃음을 터뜨렸다. ‘개소리’ ‘개 같은’ 등 전에는 부정적으로 쓰였던 ‘개’가 요즘엔 최상급을 표하는 접두사로, 종종 긍정적으로 쓰인다. 긍정적이지도 부정적이지도 않은 말이지만, 단박 ‘개이득’이 떠오른다. 어쩜 그리도 뜻이 확 와 닿을까. 감각적으로 와 닿는 신조어들은 대개 소위 ‘급식체’에서 비롯된 말일 테다. 아, 청소년! 최근에 나온 사노 요코의 이야기집 ‘꿈틀꿈틀 해줘 고릴라야. 그저 돼지지만’에서 가장 짧은, 두 줄짜리 이야기 ‘벌레’를 읽고 감탄했다. ‘송충이라든가 애벌레라고 부르지 말아 줄래요?/우리는 그저 사춘기일 뿐이에요.’ ‘중2병’이라는 말이 생각나는 이야기다. 미국에 사는 내 조카 하나가 사춘기일 때 툭하면 건방진 표정으로 뱉던 말이 “생큐 포 너싱”(Thank you for nothing)이었다. 나는 영어를 거의 못한다. 그 애가 제 동생과 서울에 왔던 10여년 전(방학을 맞은 애들이 제 친구들과 즐거운 계획이 있어서 오기 싫어했는데, 언니가 혼자 다녀가다 비행기 사고가 나서 애들 고아 만들면 어떻게 하느냐고 끌고 왔다) 사랑하는 조카들과 제대로 얘기를 나누지 못하는 게 안타까워서 영어 공부를 하자고 결심했는데 이때껏 실행하지 못했다. 지난 2월에 평창동계올림픽을 본다고 그 건방졌던 조카가 다녀갔다. 한마디, 한마디, 머리에 쥐가 나도록 쥐어짜는데, 귀에 쥐가 났을 조카는 간간이 차마 못 들을 말인 듯 내 영어를 바로잡아 주었다. 사노 요코가 이야기의 달인이라면 우리 시인 김언은 언어의 달인이다. 그의 시집 ‘한 문장’은 이 시인이 언어 운용에 얼마나 빼어난 재능을 가졌는지 절감시킨다. ‘간장공장 공장장은’으로 시작되는 문장으로 얼마나 바르고 빠르게 읽는지 시합하던 생각이 난다. ‘한 문장’은 언어폐색증이 온 시인들의 굳은 혀나 굳은 뇌를 풀어 줘서 글쓰기 시동을 거는 데 썩 유용한 시집이라고 하면 김언에게 실례일까. ‘실례’라고 하니, 그 옛날 한 친구가 나이트클럽에서 외국인과 부딪치자 농담이랍시고 던진 “익스큐즈 유!”가 생각난다.
  • ‘시를 잊은 그대에게’ 이유비 “시 오글거려” 차였던 장동윤과 재회

    ‘시를 잊은 그대에게’ 이유비 “시 오글거려” 차였던 장동윤과 재회

    ‘시를 잊은 그대에게’ 첫방에서 이유비와 장동윤의 과거 인연과 재회가 그려졌다. 26일 tvN 월화드라마 ‘시를 잊은 그대에게’가 첫 전파를 탔다. ’시를 잊은 그대에게‘는 의사가 주인공이 아닌 병원 드라마로 물리치료사, 방사선사, 실습생들의 일상을 시(詩)와 함께 그려낸 감성 코믹극이다. 이날 방송에선 3년차 계약직 방사선과 물리치료사 우보영(이유비) 앞에 대학시절 알고 지내던 신민호(장동윤)가 실습생으로 나타나 재회했다. 두 사람은 과거 안좋은 일이 있었던 듯 서로 데면데면한 모습을 보였다. 신민호는 “이제 겨우 다 잊었는데 여기서 딱 만나냐”며 그녀와 잘 지낼 뜻이 없다고 말했다. 이후 우보영의 과거가 공개됐다. 우보영은 고교시절 아빠의 죽음과 빚 앞에 힘든 상황에 놓였다. 여기에 아빠의 혼외자식까지 동생으로 들어와 그녀를 황당하게 만들었다. 이에 고교시절 알바를 시작했고 서점에서 일하며 우연히 시집을 보게 됐다. 그녀는 “힘든 시절, 시는 내 인생에 위로가 됐다”며 시를 좋아하게 된 사연을 밝혔다. 그러나 대학진학을 앞두고 그녀는 그토록 가고 싶어 하던 국문과 대신에 취직이 잘되고 4년 전액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물리치료학과를 선택했다. 대학시절 우보영 앞에 신민호가 나타났고 시를 좋아하는 그녀를 멋있다고 말해주며 우보영을 설레게 만들었다. 우보영은 신민호에게 시를 적어 보내며 마음을 고백했지만, 신민호는 “우린 안 맞는다. 네가 보내는 시, 오글거린다”며 거절했다. 이는 과 전체에 소문이 났다. 우보영은 이를 신민호가 이야기했다고 생각했고 이후부터 두 사람의 악연이 시작됐다. ‘시를 잊은 그대에게’는 매주 월,화요일 밤 9시 30분 방송된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가혹한 운명… 가혹한 ‘파친코의 굴레’

    가혹한 운명… 가혹한 ‘파친코의 굴레’

    파친코1·2/이민진 지음/이미정 옮김/문학사상/각 권 368·400쪽/각 권 1만 4500원재미교포 작가 이민진(50)의 장편소설 ‘파친코’는 한국과 일본 어느 나라로부터도 환대받지 못한 재일 조선인들의 뼈저린 애환을 담은 책이다. 1910년부터 1989년까지 약 80년간의 한국 근대사를 배경으로 4대에 걸친 일가족이 경계인으로서 겪었던 파란만장한 역사를 좇는다. 재일 조선인들이 겪은 차별과 멸시, 이를 극복하기 위해 애면글면 애썼던 생존의 역사는 한 편의 영화처럼 생생하고 극적이다. 작가는 대학교 3학년 때였던 1989년 미국 예일대의 한 강의에서 조선계 일본인과 그 후손을 일컫는 ‘자이니치’의 역사와 고충을 처음 접했다. 조선계라는 이유로 졸업 앨범을 훼손당한 중학생 남자아이가 건물 옥상에서 뛰어내려 사망했다는 이야기는 그에게 충격이었다. 이를 실마리로 1996년 소설의 초안을 쓰기 시작한 작가는 2007년 도쿄로 발령 난 남편을 따라 일본에 살면서 조선인을 직접 만나 취재하며 원고를 수차례 다듬어 지난해 이 책을 내놨다. 책은 언청이에 절름발이인 훈이에게 시집가는 가난한 집 막내딸 양진이의 이야기에서 시작한다. 훈이와 함께 하숙집을 운영하던 양진은 온갖 궂은일을 다하면서도 딸 순자를 묵묵히 키운다. 엄마를 닮아 매사에 진중하고 착실하던 순자는 인생의 항로를 크게 뒤흔든 생선 중매상 한수와 사랑에 빠진다. 그가 유부남이라는 사실을 모른 채 그의 아이를 임신한 순자는 절망에 빠지지만 그녀를 가엾게 여기던 목사 이삭과 결혼해 이삭의 형 요셉 가족이 살고 있는 일본 오사카로 떠난다.순자는 오사카에서 한수의 아이인 노아를 낳은 뒤, 이삭의 아들 모자수도 낳는다. 공부를 잘하는 노아는 일본 명문대에 입학하지만 가족의 품을 떠나 파친코에서 일을 한다. 공부에 소질이 없었던 모자수 역시 파친코 사업에 뛰어들어 두각을 드러낸다. 모자수의 아들 솔로몬은 미국에서 유학한 뒤 영국계 투자은행의 일본 지사에 취업하지만 일본인 동료의 배신으로 결국에는 아버지의 파친코 사업을 물려받는다. 양질의 교육을 받은 노아와 솔로몬도 끝내 선택하는 ‘파친코’는 재일 일본인들의 굴레와 같은 삶 그 자체다. 일본인들에게는 ‘더러운 조선인’들이 일하는 ‘더러운 업계’인 파친코 사업은 ‘조국 같지 않은 조국’에서 조선인들이 돈과 권력을 쌓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한 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도박 같은 운명 앞에서 작품의 등장인물들은 모두 각자의 한계에 갇혀 고립된 삶을 산다. 양진과 순자, 순자의 동서인 경희는 여자로서의 인생은 잊은 채 강인한 엄마, 헌신하는 아내로서 자신의 삶을 오롯이 가족에게 바친다. 경희의 남편이자 이삭의 형인 요셉은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은 채 스스로 가정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에 짓눌려 있다. 순자의 두 아들 노아와 모자수는 건설적인 미래를 꿈꾸지만 ‘자이니치’라는 굴레에서 헤어나올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이어 나가는 이들의 끈질긴 노력은 내 가족을 지키겠다는 일념 때문에 가능했다. 순자가 세상을 먼저 떠난 남편 이삭의 묘석 앞에서 흐느껴 울던 끝에 아들들의 사진을 묻고 집으로 돌아오는 장면은 잔잔한 울림을 남긴다. 주저앉지 않고 일어나 일상으로 돌아온다는 건 가혹한 운명을 피하지 않겠다는 굳건한 의지와 다름없기에. 이 마지막 장면을 마주한 뒤에 책의 첫 문장을 본다면 그 의미가 남다르게 다가올 터다. “역사가 우리를 망쳐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고전의 향연-옛 선비들의 블로그] 평생 ‘울울한 삶’을 산 지식인… 생육신으로 절개를 지키다

    [고전의 향연-옛 선비들의 블로그] 평생 ‘울울한 삶’을 산 지식인… 생육신으로 절개를 지키다

    생후 8개월 만에 글을 알고 세 살에 시를 짓고 다섯 살 때 ‘중용’, ‘대학’에 통달해 신동으로 불렸던 사람. 이런 기이한 재주를 세종 임금이 전해 듣고 직접 불러 시험하고 ‘뒷날 크게 쓰겠노라’ 다짐했던 사람. 그러나 평생 울분과 방랑으로 전국을 떠돌아다니다 충청도 허름한 절간에서 생을 마감했던 사람. 우리 한문소설의 명편 ‘금오신화’(金鰲新話)를 지은 김시습(金時習·1435∼1493)이다.그가 쓸쓸한 삶을 살게 된 계기는 거듭된 가정사의 참극으로 지쳐 가던 중 접한 수양대군의 왕위 찬탈 사건이었다. 불의의 소식을 들은 젊고 순수했던 21세 김시습은 문을 걸어 잠근 채 몇 날 며칠을 통곡했다. 그러다 돌연 서책을 모두 불태워 버리고 나서 승려의 행색으로 전국을 떠돌기 시작했다. 어린 조카의 왕위를 빼앗은 것도 모자라 영월로 쫓아 보낸 뒤 죽음으로 내몰았던 그의 반인륜적 행위를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다. 전국을 방랑하던 끝자락, 경주 금오산 용장사에서 한동안 지내며 금오신화를 지었다. 그리고는 “뒷날 반드시 나, 김시습을 알아줄 자가 있으리라”면서 그 책을 석실에 감췄다. 당대 현실과 화해할 수 없던 자신의 고뇌, 그리고 한번도 펼쳐보지 못했던 자신의 꿈을 기이한 이야기에 은밀하게 담아두었음을 짐작게 하는 일화이다. 그런 점에서 금오신화는 울울한 삶을 살아간 한 중세 비판적 지식인의 소설적 독백이라 일컬을 만하다. 우리는 지금 그의 바람처럼, 그의 이름과 삶을 뚜렷하게 기억한다. #산사를 전전하던 자의 자기 초상 평생 전국을 전전하며 지내던 김시습은 충청도 홍산 무량사에서 59세를 일기로 쓸쓸하게 생을 마감했다. 이런 최후는 자신이 젊은 시절 썼던 ‘금오신화’에 등장하는 주인공과 너무도 닮았다. 소설 속 주인공들도 모두 깊은 산속으로 홀연 자취를 감춰 버리거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삶을 마감했는데, 김시습은 자신의 비극적 최후를 젊은 시절부터 그렇게 예감했는지도 모른다. 실제로 그는 궁벽한 산사에 몸을 의탁하고 지내며 자신의 초라한 몰골을 직접 그림으로 그린 뒤, 거기에 다음과 같은 찬시를 적어두기도 했다. 나의 초상에 쓰다(自寫眞贊) 俯視李賀(부시이하) 이하(李賀)도 내려 볼 만큼 優於海東(우어해동) 조선에서 최고라고들 했지. 騰名譽(등명만예) 높은 명성과 헛된 칭찬 於爾孰逢(어이숙봉) 네게 어찌 걸맞겠는가. 爾形至(이형지묘) 네 형체는 지극히 작고 爾言大閒(이언대동) 네 언사는 너무도 오활하네. 宜爾置之(의이치지) 너를 두어야 할 곳은 丘壑之中(구학지중) 이런 산골짝이 마땅하도다. 흔히 이백을 ‘적선’(謫仙)으로 부르듯, 당나라 시인 이하는 ‘귀재’(鬼才)로 불리던 천재 시인이었다. 김시습은 찬시 첫머리에서 당시 사람들이 자신을 ‘오세 신동’으로 부르며, 그런 이하와 견주었던 어린 시절을 회고한다. 아름다운 과거였다. 하지만 이하가 27세라는 젊은 나이에 요절한 것처럼 그 자신도 뛰어난 재주를 타고났음에도 세상에 한번도 쓰이지 못한 자신의 현실에 몸서리치고 있다. 깊은 자괴, 아니 자조와 자기 경멸이 뼛속까지 배어들었다. 실제로 김시습의 문집 ‘매월당집’에는 이런 소외된 자의 울울한 심경을 담아낸 작품이 많다. 자신의 상처받은 마음을 어루만져 줄 것이라고는 오로지 시밖에 없었던 셈이다. 그의 “마음이 세상살이와 어긋나기만 하니, 시를 빼놓으면 즐길 것이 없다네(心與事相反, 除詩無以娛).”라는 고백은 결코 허투가 아니었다. 불의에 영합하지 않고 평생 방외인, 곧 ‘아웃사이더’로 살아간다는 것은 혹독한 일이었다. 물론 그런 대가를 치러낸 덕분에 지금 우리는 그를 생육신(生六臣)이라는 이름으로 기억하고 있지만.#서울로 복귀한 또 다른 삶의 면모 김시습을 기억하는 우리 대부분은 머리를 깎고 승려의 복색을 한 채, 평생 산사를 전전했던 행적만을 주목한다. 그러나 김시습은 삶의 가장 중요한 장년기에 서울의 저잣거리를 누비며 다니기도 했다. 그가 38세 때인 성종 3년(1472년) 경주에서 서울로 올라오고 나서 49세 때인 성종 14년(1483년) 다시 관동으로 떠날 때까지다. 이 12년 동안 수락산에 거처를 정해 놓고 종종 도성으로 내려와 당대 인물들과 교유했다. 어린 시절 교분이 있던 서거정, 김수온과 같은 고관대작도 만났지만, 진정 마음으로 교유한 부류는 자기보다 스무 살쯤 어린 젊은 선비들이었다. 그들 중 가장 절친했던 남효온은 그런 사실을 ‘사우명행록’에서 이렇게 증언하고 있다. “사람들은 김시습의 행동을 위태롭게 여기고는 교유하던 자들이 모두 절교하고 왕래하지 않았다. 그러자 홀로 저잣거리의 미치광이 같은 자들과 놀다가 술에 취해 길가에 쓰러져 자기도 하고, 바보처럼 웃고 돌아다니기도 했다. 뒤에 설악산에 들어가기도 하고 춘천 산에서 살기도 하여 드나듦에 일정함이 없었으니 사람들이 그 종말을 알지 못했다. 그가 좋아한 사람은 이정은, 우선언, 안응세 그리고 나 남효온이다.” 남효온은 김시습이 영의정 정창손의 행차를 만나자 길거리에서 “너 같은 놈은 벼슬을 그만두어야 한다”고 소리쳤다는 일화를 소개한다. 모두 위태롭게 여겨 절교할 만하지만, 이정은, 우선언, 안응세, 남효온 등과는 절친하게 지냈다. 이들은 모두 20대의 젊은이들이다. 수양대군 왕위 찬탈을 용납할 수 없어 서울을 떠났던, 바로 그 혈기 왕성한 나이들이었다. 김시습은 그런 맑고 순수한 그들에게 자신이 20대 때 목도한 반인륜적인 비화를 들려줬다. 성종대의 젊은 신진사류들이 세조대의 일그러진 역사를 바로 세우려는 분투를 시작하는 결정적 계기도 생겼다. 김시습보다 스무 살 어린 남효온은 성종 9년(1497년) 스물다섯 나이에 단종의 생모인 소릉을 복위해야 한다는 상소를 올림으로써, 모두 침묵하고 있던 세조의 행태를 역사 무대 위로 끄집어냈다. 또한 역적의 이름으로 죽어간 인물들을 충절의 인물로 복권하기 위해 ‘육신전’을 짓기도 했다. 그 대가로 남효온 또한 김시습처럼 평생 전국을 떠돌며 울울한 삶을 살게 된다. 이처럼 김시습은 승려의 행색으로 산사에 숨어 살며 은둔의 길만 걸었던 것은 아니다. 잘못된 과거를 바로 잡아 바른 세상을 만들기 위한 시대정신을 당대 젊은이들과 함께 벼려가기도 했다. 뒷날, 선조 임금의 분부를 받아 ‘김시습전’을 지은 율곡 이이는 그런 면모를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그는 절의를 세우고 윤기를 붙들어서 그의 뜻은 일월과 그 빛을 다투게 되고, 그의 풍성을 듣는 이는 나약한 사람도 용동하게 되니, ‘백세의 스승’이라 한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애석한 것은 김시습의 영특한 자질로써 학문과 실천을 갈고 쌓았더라면, 그가 이룬 것은 헤아릴 수 없었을 것이다.” 율곡은 김시습을 미친 자가 아니라 ‘백세의 스승’으로 마음에 간직했다. 실제로 김시습은 서울로 복귀해 지내다 환속해 머리를 기르고 결혼도 하며, 유자의 삶을 살아가겠노라고 굳게 다짐도 했다. 그러나 세상은 그런 그를 받아들여 주지 않았다. 김시습은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다시 승려의 행색으로 관동으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가 보여준 꼿꼿한 삶의 자세 덕분에 그가 서울을 떠났다 해도 결코 감춰질 수 없었다. 그 뒤로도 많은 지식인이 그를 추모했던 까닭이다.#마음은 유자, 자취는 불자(心儒跡佛) 율곡은 김시습의 삶을 ‘심유적불’(心儒跡佛)이라는 네 글자로 집약했다. 마음은 유자였지만, 불자의 행적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 실제로 김시습은 승려 생활을 하면서도 머리는 깎았지만, 수염은 깎지 않았다. 그 이유를 “머리를 깎은 것은 세상을 피하기 위함이요, 수염을 남겨둔 것은 장부의 뜻을 드러내기 위함”이라 설명하기도 했다. 김시습은 유교와 불교의 삶을 함께 살았다고 할 수 있지만, 도교의 세계에도 조예가 깊었다. 유·불·도에 정통했기에 많은 사람이 그를 다양한 사유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든 자유인으로 치켜세우기도 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김시습의 그런 삶은 그 어디에도 심신을 잠시도 누이지 못했던, 극심한 방황의 흔적으로 읽는 게 올바른 독법일 것이다. 정출헌 한국고전번역원 밀양분원장·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매월당집’은 김시습 사후 이자가 첫 유고 수집…선조의 명으로 총 23권 9책 발간 남효온은 ‘사우명행록’에서 “그가 지은 시문은 수만 편이 되는데,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바람에 거의 모두 흩어져 없어졌다. 조정의 신하들과 선배들이 혹 그의 글을 절취해 마치 자신의 작품인 양 하기도 했다”고 증언한다. 작품을 도적질해 갔던 것이다. 실제로 김시습의 시문을 그의 사후, 그를 존중하던 이자가 중종 16년(1521년) 여기저기 흩어진 유고를 수습해 겨우 3권으로 묶을 수 있었다. 그 뒤에도 박상, 윤춘년 등이 꾸준히 모아 가며 정식 간행했다고 하는데, 현재 그 매월당집은 사라지고 없다. 지금 전해지는 매월당집은 선조 16년(1583년) 임금의 명을 받아 경진자 활자로 간행한 중간본이다. 분량은 총 23권 9책으로, 시집이 15권이고 문집이 8권이다. 매월당집 서두에는 이산해가 쓴 서문과 이이가 쓴 ‘김시습전’이 실렸다. 1927년 후손이 김시습 관련 기록을 부록으로 덧붙여 신활자로 간행하기도 했다. 1979년 세종대왕기념사업회에서 5책으로 번역·출간했다.
  • 40대 여배우, 봄날이 왔다

    40대 여배우, 봄날이 왔다

    멜로가 주류인 우리나라 드라마 시장에서 여배우는 결혼하거나 30대를 넘기면 주요 배역에서 점점 멀어지게 마련이었다. 운이 좋으면 시집에서 고군분투하는 주부의 이야기를 다룬 가족극의 주인공 정도가 우리나라 드라마 시장에서 여배우를 바라보는 시선이었다.그런데 최근 이런 분위기가 달라졌다. 요즘 안방극장에선 유독 40대 여배우들의 활약이 돋보인다. 김남주의 ‘미스티’(JTBC)와 김선아의 ‘키스 먼저 할까요’(SBS)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안정적인 연기력을 바탕으로 자신들만의 확고한 캐릭터를 구축하면서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20대 연예인들을 내세운 ‘라디오 로맨스’(KBS2)와 ‘위대한 유혹자’(MBC)가 저조한 시청률로 고전하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미스티’에서 앵커 고혜란 역으로 6년 만에 안방극장에 복귀한 김남주(47)는 요즘 드라마 안팎에서 독보적인 카리스마를 내뿜는다. 극 중 고혜란은 탁월한 능력으로 유리천장을 뚫고는 메인 뉴스의 원톱 앵커가 됐지만, 끊임없이 치고 올라오려는 후배와 동료들의 시기를 견제하며 자리를 지켜야 한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입신양명과 목표 달성을 위해 포기하지 않고 도전한다. 고혜란은 실제 배우 김남주의 이미지와도 많이 겹친다. 도회적이고 세련된 이미지로 스타덤에 올랐던 김남주는 결혼 후 ‘내조의 여왕’(2009), ‘넝쿨째 굴러온 당신’(2012) 등에서 코믹한 연기 변신과 함께 직장맘의 애환을 담아내며 인기를 끌었다. 이제 40대 후반에 접어든 그는 성공한 커리어우먼이자 자신을 사랑하는 세 남자를 모두 위험에 빠트리는 팜파탈적 이미지를 동시에 담아내며 또 한번 연기 정점을 찍었다. 그는 최근 드라마 간담회에서 “예전 같으면 마흔 여덟살에 주인공을 할 수 있을 거라 상상조차 못했을 것”이라며 “나이가 들어도 주인공을 할 수 있다는 의미가 됐으면 좋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어른들의 멜로’를 표방한 SBS ‘키스 먼저 할까요’의 김선아(45) 역시 코믹하면서도 애잔한 연기로 30~40대 여성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시청률 8.1%로 시작해 최근 12%대까지 상승했다. 극 중 ‘안순진’이라는 이름처럼 결혼으로 인생 굴곡을 맛본 그가 더이상 순수한 사랑을 믿지도, 기대하지도 않는 40대가 돼서야 진실된 관계와 사랑을 발견한다는 이야기다. 2005년 ‘내 이름은 김삼순’(MBC)에서 삼순이라는 촌스러운 이름에 뚱뚱한 외모, 30대 노처녀라는 설정의 캐릭터로 기존 멜로 주인공의 공식을 깬 김선아는 40대 중반이 된 지금 또 한번 나이에 대한 선입견을 깨며 영역을 확장했다는 평이다. 김남주, 김선아에 이어 40대에 들어선 이보영과 최강희 역시 나이가 들수록 연기에 깊이를 더하며 호평을 이끌어 냈다. 올해 마흔인 이보영은 최근 끝난 tvN ‘마더’에서 학대받는 아이를 데리고 도망가 그의 엄마 역할을 대신하는 수진을 연기해 이목을 끌었다. 최강희(41)는 지난해 주연한 장르드라마 ‘추리의 여왕’(KBS2)이 마니아층을 형성하며 인기를 끌면서 현재 시즌2에서도 ‘추리퀸’ 유설옥으로 활약하고 있다. 이처럼 드라마에서 40대 여성들의 보폭이 커진 것은 전문직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장르 드라마가 많아지고 캐릭터 변주가 다양해져서다. 공희정 드라마 평론가는 “과거에는 지상파를 중심으로 드라마 수가 한정적이어서 20대의 젊은 톱스타만을 선호했는데 최근에는 드라마 수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할 수 있는 연기력 좋은 배우를 찾아내려는 경향이 강해졌다”면서 “상대적으로 영화에서 여배우가 설 자리가 많지 않아 연기파 배우들이 TV 드라마 쪽으로 넘어오는 경향도 있다”고 분석했다.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 [봄단장하는 우리 동네] 종로, 김소월 흔적 따라~

    [봄단장하는 우리 동네] 종로, 김소월 흔적 따라~

    서울 종로구는 최근 ‘시인 김소월의 옛집’ 현판 제막식을 가졌다고 20일 밝혔다. 김소월이 1925년 12월 26일 매문사에서 펴낸 시집 ‘진달래꽃’은 한국 근대시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시집 중 하나이다. 구는 최근 이 시집의 초판본에 기재된 필자의 주소와 출판사인 매문사의 주소가 경성부 연건동 121번지로 기록된 것을 확인하고 지금은 다른 건물이 들어선 이 터에 시인 김소월의 자취를 남기기 위해 현판을 제막했다. 답사는 사단법인 한국문인협회 종로지부에서 했다. 이곳에서 1920년대의 모습을 떠올리기는 어렵지만 김소월이 한때 머물렀음을 알릴 수 있는 현판을 설치한 게 의미 있다. 앞서 구는 윤동주 하숙집이 종로구에 있었다는 점에 착안해 청운동에 윤동주 문학관을 건립하기도 했다. 주현진 기자 jhj@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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