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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경수 면회 온 의원들에게 “대통령 잘 지켜달라” 당부

    김경수 면회 온 의원들에게 “대통령 잘 지켜달라” 당부

    서울구치소에 구속 수감된 김경수 경남지사가 7일 면회를 온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에게 “대통령을 잘 지켜달라”고 부탁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지사는 자신에게 유죄를 선고하고 법정구속을 명한 1심 재판부의 판결이 아직도 의아하다며 심경을 밝혔다. 김 지사는 7일 민주당 박주민 최고위원, 박광온 최고위원, 강훈식 전략기획위원장, 기동민 의원 등을 면회한 자리에서 “이런 판결이 날 줄 상상도 못 했다”며 “드루킹 일당의 진술 신빙성에 큰 하자가 있어서 이런 결론이 날 것이라고 나는 물론 변호인도 상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김 지사는 판결 자체가 무리했다는 의원들의 지적에 대체로 공감하면서 “변호인과 잘 협의해서 앞으로 있을 2심 재판에서 진실을 밝히기 위해 차분하게 준비를 하겠다”고 언급하기도 했다.기동민 의원은 페이스북 글에서 “김 지사는 윤동주 시집과 신영복 선생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두 권의 책을 다시 차분히 펼쳐 들었다”며 “면회를 마치면서 ‘대통령을 잘 지켜달라’고 당부의 말을 남겼다”고 전했다. 김 지사는 경남도의 도정공백을 걱정했다고 참석자들은 전했다. 그는 “경남지사에 당선되고 나서 역점을 두어 추진해온 사업들이 있는데, 지금 부지사의 직무대행 체제로는 그 사업들의 책임 있는 추진에 한계가 있다”며 “서부 경남 KTX, 신항만과 신공항 문제가 다 부산과 연결돼 있어 누가 책임 있게 결정하고 추진해야 하는데, 잠시 때를 놓치면 차질이 발생할 수 있다”고 걱정했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우후죽순 쏟아지는 ‘국회의원 이해충돌방지법’…‘제2의 손혜원’ 막을까

    우후죽순 쏟아지는 ‘국회의원 이해충돌방지법’…‘제2의 손혜원’ 막을까

    설 명절을 앞둔 정치권이 ‘국회의원 이해충돌방지법’을 앞다투어 내놓고 있다. 무소속 손혜원 의원, 더불어민주당 서영교 의원, 자유한국당 장제원·송언석·이장우 의원 등 소속 상임위원회와 관련된 국회의원의 사적 행위가 사회적 논란으로 불거지며 빚어진 풍경이다. 마치 지난 2016년 국회가 국회의원의 친인척 보좌진 채용과 출판기념회 금품 모금 논란 등으로 ‘국회의원특권내려놓기추진위원회’를 만들었던 열풍이 연상된다. 당시 친인척 보좌진 채용 논란으로 당 윤리심판원 중징계를 앞뒀던 서 의원은 탈당 후 복당했고, 출판기념회 시집 강매 논란으로 총선 불출마를 발표했던 노영민 전 의원은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금의환향했다. 이번 국회의원 이해충돌방지 논란이 민심을 얻기 위한 임시 방편이 아닌 진정한 정치 개혁으로 이어지도록 국민적 관심이 필요한 이유다. 민주평화당 정동영 대표는 지난 1일 목포 부동산 투기 의혹이 제기된 손 의원을 겨냥해 공직자 이해충돌방지 법안인 ‘손혜원 방지 2법’(국회법·국정감사 및 조사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당론 발의했다고 밝혔다. 정 대표는 “국회의원의 이해충돌 방지 의무를 강화하고 제2, 제3의 손혜원 사태를 막기 위해 ‘손혜원 방지 2법’을 당론으로 발의했다”며 “국회의원이 해당 상임위원회 직무와 관련된 영리행위와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행위, 개인이나 기관, 단체에 부정한 특혜를 주는 행위를 금지하고 소관 상임위 직무와 관련된 부동산 및 유가증권 등의 거래를 금지하는 내용”이라고 설명했다. 또 개정안은 상임위원이 해당 상임위 직무와 관련돼 이해충돌 방지 의무를 위반하거나 위반할 가능성이 높은 경우, 상임위원의 직계존·비속이 상임위 직무와 관련된 법인·기관 또는 단체의 임직원이나 사외이사인 경우 등 사적 이해와 관련돼 공정하고 청렴한 직무수행이 어렵다고 인정되는 경우 해당 상임위원이 될 수 없고, 국정감사나 국정조사에 참여할 수 없도록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민주당 표창원 의원도 설 연휴 이후 국회윤리법 제정을 추진하겠다며 지난달 31일부터 국회윤리법 초안을 페이스북을 통해 공개하고 국민들의 의견 수렴 절차에 들어갔다. 표 의원은 “영국은 의회윤리청, 미국은 의회윤리실이라는 국회의원을 감사하는 기구를 이미 설치해 운영하고 있다”며 “대한민국도 국회의원의 의정활동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 지금이야말로 오히려 국회가 스스로를 혁신할 기회로 보인다”고 강조했다. 국회윤리법은 국회의원이 준수해야 할 윤리규범을 법제화하고 국회의원의 의정활동을 감사할 별도의 독립적인 기구인 국회감사위원회를 설치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민주당 박영선 의원도 지난 1일 국회의원의 이해충돌행위 발생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공직자윤리법과 국회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박 의원은 “국회의원이 경제적 이익 등 이해관계와 관련된 예산안 및 법안을 심사하면서 관련 기관을 압박하는 등의 방법으로 사익 추구를 한다고 하더라도 제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며 “공직자였던 사람은 국회의원으로 선출된 후 3년간 근무했던 기관과 관련된 상임위의 위원으로 임명되지 못하게 함으로써 이해충돌행위의 발생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또 개정안은 국회의원과 이해관계가 있는 예산이나 법안 심사 시 제척사유를 명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같은 상황 속에 국회 윤리특별위원회는 오는 7일 여야 3당 간사 회동을 갖고 의원 징계안이 제출된 손 의원과 서 의원 등에 대한 처리 절차를 논의할 예정이다. 여야가 설 명절 이후 민심에 따라 이해충돌 논란을 일으킨 자당 의원에 대한 엄중한 판단을 내릴 수 있을지 주목된다.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 설 지나도, 열한 번의 초하루가 남았잖아

    설 지나도, 열한 번의 초하루가 남았잖아

    사람들은 새것을 좋아한다. 새 옷, 새 신발, 새 집, 새 차. 가족도 ‘새 가족’을 신청해 얻을 수 있는 거라면, 신청을 받아 달라고 사람들이 몰려들지도 모른다. 설날은 음력 정월 초하루다. 해, 달, 날이 모두 새것인 시간, 모든 ‘첫’을 품은 상서로운 날이니 덕담을 나누고 계획을 세우는 것이리라. 지난 해 운이 나빴던 사람, 실패한 사람도 설에는 굽은 어깨를 펴고 새 마음을 가지려 한다. 평소에는 잊고 지내던 조상을 생각하고, 누군가에게 절을 하고, 세뱃돈을 주고받으며 ‘다시 한번’ 화목한 삶을 꿈꾼다. 설을 맞아 생각해 본다. 올해는 뭔가를 끊으려고만 말고, 안 하던 일을 해 볼까. 싫어하는 것의 목록을 늘리지 말고 좋아하는 것의 목록을 늘려 볼까. 아끼지 말고 헤퍼져 볼까. 매사에 조심스럽게 말고, 우당탕탕! 소란스러워져 볼까. 할 일을 또박또박 하지 말고, 하지 않아도 될 일만 찾아서 해 볼까. 짜릿하다. 작심삼일이라지만 작심(作心)은 얼마나 귀한 마음이며, 삼일(三日)은 얼마나 충분한 시간인가! 사실 무언가를 끊거나 바꾸는 일은 전부터 내가 수시로 시도해 온 일이다. 중독이 의심되어 작년 봄에 스마트폰을 폴더폰으로 바꿨다. 날마다 몇 잔씩 마시던 커피를 두 달 동안 끊고(이게 가장 힘들었다!), 얼마 전엔 인스턴트 음식과 설탕 함량이 많은 디저트를 끊었다. 요즘은 집중력이 떨어져서 30분짜리 모래시계를 놓고 훈련 중이다. 모래알이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30분 동안은 절대 하던 일을 멈추지 않기, ‘딴짓 않기’가 규칙이다. 모래시계를 뒤집어 가며 일하다 보면 나중엔 모래시계를 잊고 집중하게 된다. 고요히 떨어지는 모래를 보고 있으면 숨어 있던 시간의 속살을 보는 것 같아 오싹하다. 지금도 모래시계를 뒤집어 놓고 이 글을 쓰는 중이다. 자아 단련을 위해서라지만 스스로에게 너무 인색하게 굴었나? 더 할까, 덜 할까 그것이 문제로다. 김현승 시인은 “파도가 될 것인가 / 가라앉아 진주(眞珠)의 눈이 될 것인가”라고 노래했다. 나는 진주도 아니면서 가라앉은 보석 흉내를 내느라 애써 왔는지도 모른다. 한편 솟구치는 파도가 되기 위해선 얼마나 까치발을 서고 점프를 해야 할까. 애쓰지 말자. 설렁설렁 해찰을 하며 살자. 올해의 원대한 목표로 정해 두었는데 자꾸 잊는다. 나는 진주도 모르고 파도도 모르니, 그냥 나다운 상태로 꾸준하고 소소하게 빛났으면 좋겠다. 몸에 마음을 가져다 댈 때 그 ‘꼭 맞음’의 느낌으로. 허리가 구부러질 때 마음이 허리에 가 같이 구부러지고, 누군가의 손을 잡을 땐 마음도 손에 가서 얼른 잡히는, 몸과 마음이 따로 놀지 않는 상태로 지내면 좋겠다. 올 설에도 여전히 나는 (팔자 좋게도) 아무 데도 가지 않고, 집에서 보낼 것이다. 떡국을 끓이고 잡채와 갈비찜을 만들고, 동그랑땡은 반찬가게에서 사 올 것이다. 명절 음식을 먹으며 금세 질리겠지. 며칠 동안 기름진 음식을 먹으니 역시 물리는군. 새콤한 동치미를 떠먹고 싶군. 그러다 정색하고 존 버거의 문장을 곱씹어 보겠지. “음식도 일종의 전언(傳言)이다. 먹는다는 것은 전갈을 받는 것이다. 누가 어디로부터 보낸 전갈인가?” 먼 곳에서 이쪽으로 전갈을 보낸 사람들을 생각해 보겠다. 잘생긴 당근을 보며 놀라야지. 당근아, 너는 사랑으로 가득 차 있구나. 흙 망토를 두르고 있는 여왕 같아. 양배추야, 너는 한 겹 한 겹 뜯기지만 뭉쳐 있을 땐 무기처럼 단단해. 대단하구나! 하지만 원활한 사회생활을 위해 속으로만 외치겠다. 공책에 ‘할 생각이 전혀 없던 일’, 혹은 ‘싫어하는 일 좋아하기’ 목록을 만드는 것도 재미있겠다. 먼저 떠오른 건 내가 싫어하는, ‘바퀴벌레 사랑하기’인데 차마 못 쓰겠다. 이건 패스. 스노보드 타기, 삐삐처럼 무릎까지 오는 짝짝이 양말 신고 친구 만나기, 동네 할머니랑 친구 되어 보기는 어떨까. ‘숨은그림찾기’를 만들어 인생이 한없이 지루하단 표정을 짓고 있는 사람에게 줘 볼까. 존경하는 스승에게 덕담은 괜찮으니 세뱃돈 주세요, 생떼 부려 볼까. 날 이상하게 보겠지…. 노다지다! 날마다 재미있는 일을 찾아보자. 모래시계를 뒤집으며 생각한다. 설 지나면 어때. 밤이 지나면 늘 새 날이 기다린다. 정월 초하루도 숱한 날 중의 하루일 뿐. 달마다 초하루를 시작점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에겐 매 달 열한 번의 초하루가 남아 있다. 변신로봇처럼, 자꾸 변신을 꿈꾸는 자에겐 기회가 많다. 올해 설날은 갓난아이가 맞은 인생 첫날처럼 맞이하자. 해 보자. 처음처럼 아니라, 진짜 처음 하는 일을!■ 박연준 시인은 1980년 서울에서 태어나 동덕여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2004년 중앙신인문학상에 시 ‘얼음을 주세요’가 당선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스물 다섯 살 차의 장석주 시인과 나이를 뛰어넘은 ‘시인 부부’로 유명하다. 시집 ‘속눈썹이 지르는 비명’, ‘아버지는 나를 처제, 하고 불렀다’, ‘베누스 푸디카’, 산문집 ‘소란’,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 ‘내 아침인사 대신 읽어보오’가 있다.
  • ‘박보검 시집’서 못다 한 이야기… 인생, 사랑 그리고 행복

    ‘박보검 시집’서 못다 한 이야기… 인생, 사랑 그리고 행복

    등단 49년차. 올해 일흔 넷인 노(老)시인의 이름을 포털 사이트에 치면 ‘드라마 남자친구 책’이 뜬다. 극 중 배우 박보검이 송혜교에게 선물한 책이 시인이 2015년에 낸 시집 ‘꽃을 보듯 너를 본다’이기 때문이다. 세월을 뛰어넘어 남녀노소에게 사랑받는 나태주 시인이 시집에서는 못다 한 이야기들을 담아 산문집을 냈다. ‘좋다고 하니까 나도 좋다’는 크게 인생, 사랑, 행복에 관한 이야기다. 가장 자주 눈에 띄는 단어는 ‘행복’이다. 시인이 말하는 행복은 단촐하다. “저녁때/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힘들 때/마음속으로 생각할 사람이 있다는 것//외로울 때/혼자서 부를 노래 있다는 것”(시 ‘행복’ 전문). 그는 우리가 소망하는 행복은 이미 내 안에 내재해 있으며, 다만 발견하지 못했을 뿐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할 일은 그 행복을 찾아내고 그것을 밖으로 표현하고 좋은 쪽으로 성장시키는 일이다.”(181쪽) 가장 사랑받은 광화문 교보생명 글판으로 알려진 시인의 시 ‘풀꽃’에 대한 설명도 나온다. ‘자세히 보아야/예쁘다//오래 보아야/사랑스럽다//너도 그렇다.’ 초등학교 아이들에게 물어도 ‘풀꽃’에서 가장 와닿는 지점은 ‘너도 그렇다’였다고 한다. 시인은 “그 말이 독자에게 가면 ‘나도 그렇다’가 된다”며 “물아일체, 나아가 우아일체의 사상으로 너와 나를 분별하지 않는 너그러운 심정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어쩌다 이렇게 나이 많은 사람이 되었는지 모를 정도로 늙어 버렸다’는 시인. 그러한 시인이 톨스토이와 윤동주와 달라이 라마에게 보고 배운 이야기와 ‘박보검의 시집’으로 불리어 하염없이 기뻐하는 모습을 책에 모두 담았다. 그는 시가 자신의 삶에 힘이 돼 주었던 것처럼 자신의 시 또한 다른 이들에게 도움·위로·기쁨이 되기를 바란다. “그들이 목마른 사람이라면 한 모금의 찬물이 되고, 그들이 지친 사람이라면 따스한 악수가 되고, 그들이 먼 길을 준비하는 사람이라면 동행이 되고, 그들이 외로운 사람이라면 가슴에 꽃다발이 되어 다오.”(141쪽)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젊은 시인들아, 가난한 사람이 따뜻해지는 詩를 쓰자”

    “젊은 시인들아, 가난한 사람이 따뜻해지는 詩를 쓰자”

    “후배들 언어 유희로 난해한 망상만 가득 필 오면 끄적이지 말고 24시간 몰두해야”“좋은 시인가 아닌가 아는 방법이 있어요. 시 쓰면서 우는 거예요. 대상하고 교감이 완벽하게 이뤄지면 그 동질감 속에서 눈물이 나오는 거죠.” 시 ‘사평역에서’를 쓴 ‘아기 참새 찌꾸’ 아빠, 곽재구 시인이 여덟 번째 시집을 냈다. ‘푸른 용과 강과 착한 물고기들의 노래’(문학동네)다. 지난 28일 전화로 만난 시인은 “내 시가 좋다는 말은 아니지만 동화 ‘아기 참새 찌꾸’의 마침표를 찍을 때, 이번 시집을 쓸 때 눈물이 나왔다”고 말했다. 73편의 미발표시들로 빼곡히 채운 시집은 시인이 자신의 터전인 전남 순천의 샛강 동천을 걸으며 나왔다. ‘평생 강물의 노래를 들었으나/자신의 노래를 부른 적 없는 이가 눈보라를 맞는다/피아노의 검은 건반이 하얀 눈보라 속에 묻힌다’(‘징검다리’), ‘물고기 두 마리/입맞춤하네/가을에 사랑하다 헤어지면 봄 온다네’(‘나와 물고기와 저녁노을’) 등이 다 그렇게 나왔다. 일곱 번째 시집 ‘와온 바다’에서 느껴지는 따뜻한 생명력, 삶에의 거룩함은 신작에서도 그대로다. ‘니 좋으면 나 좋으니/나한테 더 좋은 일인지도 모르겄다/이번 달 시급 만 원 계산했다/새 정부에서 2020년부터 시행할 모양인데/힘들어도 함께 힘든 게 낫지 않겄냐?’는 삼겹살집 주인의 마음 씀씀이가 ‘난 가난한 사람이 따뜻해지는 시를 쓸 거예요’라는 점원의 다짐으로 돌아오는 식이다.(‘라면 먹는 밤-성래에게’) “강은 쉽게 말하면 한반도, 착한 물고기들은 반도 안에 사는 우리나라 사람들, 푸른 용은 반도와 사람들이 꿈꾸는 아름다운 세상으로 가는 에너지예요. 촛불집회하는 사람들 모습도 다 착한 물고기 속에 들어 있는 거죠.” 1981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올해로 39년차인 시인. 그는 이번 시집에서 처음 시 쓰던 때, 도서관에서 윤동주 시집을 훔치던 때로 돌아갔다. ‘도서관에서/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초판본을 훔쳤지/(중략)/당신만큼 쓸쓸하고 순정한 시를 쓰리라 혼자 다짐했네.’(‘고교 1학년’) 초심을 되새긴 것이냐는 질문에 뜻밖의 날 선 대답이 돌아왔다. “방금 초심 이야기를 했는데, 저도 인제 우리 나이로 6학년 6반이에요. 근데 우리나라 시가 너무 자잘해요. 젊은 친구들 쓰는 시가 비전도 없고, 언어 유희에다가 난해한 망상들을 집어넣고…, 진정성이 없어요.” 순천대 문예창작학과에서 19년째 시를 가르치고 있는 시인은 ‘신인상 당선작에서 쓰레기 냄새가 난다’(‘물고기와 나’)고까지 썼다. 그렇다면 그가 말하는 진정성이란 무엇일까. 시인이라면 모름지기 하루 24시간을 시에 몰두해야 한다는 거다. 잠자다 꾸는 꿈에서까지. “정말로 좋아하고 사랑하면 꿈에 나와요. 무의식 세계하고 현실 세계의 경계에 있는 게 꿈이에요. 꿈이라는 일주문을 들어가야지 미지의 세계로 나갈 수 있는 거죠. 일주일에 하루, 뭔가 ‘필’이 오면 끄적끄적 쓰고 시라고 발표하는 거, 그건 시가 아니에요.” 하루 열 편씩 쓰겠다는 초심을 지금도 이어 나가는 시인이다. “방탄소년단도 분명히 꿈에서 춤추고 노래할 것”이라고 덧붙인 시인은 “만약 그렇지 않다면 제 말은 다 틀린 것”이라며 ‘허허’ 웃었다. 시어에 김소월과 윤동주가, 해설 대신 직접 쓴 산문에는 정지용, 백석 등 먼저 간 선배 시인들이 나오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는 백석의 시를 일컬어 ‘번역이 불가한 도저한 조선의 시’, 김소월은 ‘눈보라 날리는 날 배고픈 내 손에 쥐여 준 따뜻한 고구마’, 윤동주는 ‘극한 상황에서도 모국어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시인’이라고 적었다. “이 시집을 낸 의미 중 하나가 ‘젊은 시인들아, 좋은 시 좀 쓰고 살자’ 하는 겁니다. 한반도 미래를 위해서도 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그거밖에 없어요.” 시인이 말하는 좋은 시란 ‘쉽고 깊고 따뜻한 것’이다. 아주 쉬운 언어로 깊은 의미를 담고 있으면서도 따뜻함이 느껴지는 것. 커튼에 햇살 비치는 무늬만 봐도 시를 떠올린다는, 39년차 순정한 시심(詩心)이었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은빛자서전 프로젝트<5>] “어디선가 꽃씨 날아와 강가에 피어난 노랑꽃처럼”

    [은빛자서전 프로젝트<5>] “어디선가 꽃씨 날아와 강가에 피어난 노랑꽃처럼”

    정지환 감사경영연구소장은 충북 옥천신문과 손잡고 ‘은빛자서전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한 사람의 일생은 그 자체가 역사이고 작은 박물관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80세 이상 주민의 구술(口述)을 풀어내 자서전으로 정리하는 프로젝트다(서울신문 3월 16일 자 ‘인터뷰 플러스’ 참조). 이번에는 옥천군 동이면 조령2리(새재마을)에 사는 여경자 씨(80)를 만났다.●꿈속에서라도 어머니 얼굴을 보았으면 나(여경자)는 1940년 영동군 학산면 지내리에서 태어났다. 친정은 가난한 농사꾼 집안이었다. 나는 세 자매의 막내였는데, 불행이라는 불청객이 우리 가족을 연이어 찾아왔다. 나보다 먼저 태어난 두 언니가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내가 여섯 살이 되던 해에는 어머니마저 돌아가셨다. 나에게는 한(恨)이 있다. 어머니가 너무 일찍 돌아가셔서 얼굴이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는 사실이 바로 그것이다. 그게 지금까지도 내 가슴을 아프게 한다. 어머니는 ‘곽 씨’라는 성만 가지고 있었을 뿐 유일한 혈육에게 당신의 이름조차 남겨주지 못하셨다. 꿈속에서라도 어머니 얼굴을 뵙기를 기원했지만 그 소원은 아직도 이뤄지지 않았다. 아버지(여하현)는 새 아내를 맞아 슬하에 4남매를 더 두셨다. 막내였던 내가 졸지에 5남매의 맏이가 되었다. 친엄마를 잃은 나는 학교 문턱에도 가보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어린 시절의 추억이 가물에 콩 나듯이 메마를 수밖에 없었다. ●가난하지만 열심히 일해서 행복했던 시절 나는 열여덟 살이 되던 1957년 가을에 옥천군 동이면 새재마을(조령2리)로 시집왔다. 군대에 가 있던 신랑의 얼굴 사진으로 맞선을 대신했고, 혼례식도 신랑의 휴가 기간 중에 치렀다. 양가의 고모가 중매를 섰는데, 우리 고모가 설명한 ‘중매의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신랑이 아주 잘 생겼어.” 신랑은 잘생겼는지 몰라도 시댁 역시 지독하게 가난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다 쓰러져 가는 오두막에서 시할머니, 시아버지, 시누이가 살고 있었다. 새재마을은 친정보다 더 오지 중의 오지였다. 마을에 들어가려면 높은 고개를 넘어야 했는데, 새소리밖에 나지 않는다 해서 ´새재´라고 불렀다. 나는 영동에서 심천역까지 열차로 이동한 다음 가마를 타고 우산리를 거쳐 금강 여울을 건넜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넘어 마을에 도착했는데, 마을 뒤쪽에 금강과 보청천이 버티고 있었다. 산촌(山村)이자 강촌(江村)인 새재마을은 말 그대로 하늘 아래 첫 동네였다. 혼례식을 치르고 귀대했던 남편(성연호)이 몇 개월 뒤에 제대했다. 우리 두 사람은 부모가 물려준 땅 한 평 없는, 말 그대로 맨바닥에서 살림을 시작해야만 했다. 더욱이 시댁에는 약간의 빚까지 있었다. 열심히 일할 수 있는 건강한 몸뚱이가 우리의 유일한 삶의 밑천이었다. 우리 두 사람은 정말 열심히 일했다. 남의 논밭에 가서 일해주고 품삯을 받았고, 남는 시간에는 비탈진 땅을 일구어 깨와 콩 등을 심었다. 추수를 해놓으면 심천에서 장사꾼들이 곡물을 사러 왔다. 남의 소를 키워주고 대가를 받기도 했다. 그렇게 한 푼 한 푼 피땀 흘려 번 돈으로 빚도 갚았고 한 뙈기 한 뙈기 땅도 사기 시작했다. ●날마다 안부 전화 걸어오는 고마운 7남매 우리 부부는 모두 7남매를 낳았다. 장남 재영, 장녀 금년, 2남 은영, 2녀 미숙, 3남 현영, 4남 대영, 3녀 미애가 차례로 태어났다. 지금도 자식들에게 가장 미안한 것은 한창 커야 할 때 먹을 것 제대로 먹이지 못한 것이다. 셋째 아이가 태어날 때까지 끼니를 보리밥과 고구마로 버텼기 때문에 쌀밥은 아예 구경할 수 없었다. 얼마나 질렸는지 요즘에도 자식들이 고구마는 잘 먹으려 하지를 않는다. 보리는 쌀처럼 바로 밥을 지어 먹을 수 없다. 우선 물에 불려 박박 문지른 다음 솥에 넣고 쪄야 했다. 더욱이 그때에는 동네에 우물이 없어서 강에서 식수를 길어다 먹어야 했다. 겨울에 강물이 얼어붙으면 얼음에 구멍을 뚫었는데, 그것이 마을 사람들에겐 우물인 셈이었다. 나는 강물을 담은 동이를 머리에 이고 미끄러운 빙판길을 걸어서 산기슭 가장 위쪽의 우리 집까지 날라야 했다. 자식들은 좋은 학교를 보내주지 못했지만 건강하게 잘 자라주었다. 7남매가 모두 마을에서 가장 가까이 있는 우산초등학교와 동이중학교를 다녔다. 자식들은 매일 아침 안부 전화를 하고 내 생일 때는 온 식구가 여행을 가거나 작은 잔치를 연다.●청춘학교에서 깨우친 한글로 써본 시 팔십 평생 까막눈으로 살았던 나에게 광명이 찾아왔다. 대전의 한 여고에서 교장을 하다 퇴직하고 귀촌한 오광식 이장님이 지난해에 청춘학교를 열어주셨다. 우리는 이곳에서 한글교실과 한지공예 등 다양한 공부와 체험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나는 한글교실에서 한글을 깨우쳤다. ‘ㄱ’, ‘ㄴ’, ‘ㄷ’ 등 자음과 ‘ㅏ’, ‘ㅓ’, ‘ㅗ’ 등 모음을 가지고 평소 쓰는 말과 내 생각을 문자로 써 보는 과정이 참으로 신기했다. 한글로 내 이름을 쓰는 순간 짜릿한 감동이 밀려왔다. 다만 받침, 그중에서도 쌍받침을 쓰는 것이 여전히 헷갈린다. 예를 들면 ‘젊다’라고 써야 할 때 쌍받침 ㄹ과 ㅁ의 순서가 자꾸만 바뀌곤 한다. 청춘학교에서는 반장과 부반장도 뽑았다. 선생님들이 수업을 시작하며 출석부에 적혀 있는 우리 학생들의 이름도 불러주셨다. “여경자.” 나는 학생의 마음으로 대답했다. “네.” 그렇게 나는 어린 시절 가난으로 이루지 못한 학생의 꿈을 70여 년이 지난 뒤에야 이루었다. 이 나이에 누가 내 이름을 불러주겠는가. 내심 기분이 너무 좋았다. 한지공예 시간에는 팔각대상도 만들었다. 지난해 가을에 이장님 자택 잔디마당에서 청춘학교 교육과정 발표회가 열렸다. 나는 연분홍 저고리와 진분홍 치마를 꺼내 입었다. 자식들이 꽃다발을 들고서 축하해주러 왔다. 술과 담배를 너무 좋아했던 남편은 환갑을 넘기자마자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나와 함께 살고 있는 3남 현영 부부를 비롯해 7남매가 모두 12명의 손주를 낳아주어 감사하고 행복하다. 다음은 늦은 나이에 배운 한글로 내가 직접 써본 시다. 강가에 노랑꽃 예쁘게도 피었구나 어디서 날아왔니 메마른 자갈밭에 아름답게도 피었구나 강가에 노랑꽃 젊은 시절 나와 같구나 서원호 객원기자 guil@seoul.co.kr
  • 미혼 여교수에 “결혼도 못해 불쌍” 모욕한 동료 “150만원 배상”

    미혼 여교수에 “결혼도 못해 불쌍” 모욕한 동료 “150만원 배상”

    남자 교수와 동석한 술자리에서 미혼 여교수에게 성적 모욕을 한 혐의로 벌금형을 선고받은 다른 여교수가 피해 교수가 제기한 민사소송에서도 패소했다. 부산지법 백효민 민사28단독 판사는 부산 모 대학 교수 A씨가 같은 대학 교수 B(56)씨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B씨가 A씨에게 150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고 27일 밝혔다. B씨는 2016년 4월 동료 남자 교수들과 같이 술을 마시던 중 A씨를 향해 큰 소리로 “불쌍한 인간 아닙니까. 이 나이에 시집도 못 가고, 성관계도 못 하고 얼마나 불쌍합니까. 솔직히 얘기해서 바보 아닙니까”라는 취지로 모욕한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벌금 100만원을 선고받았다. B씨는 판결에 불복해 항소, 상고했지만 모두 기각됐다. B씨는 1심 재판 과정에서 “해당 발언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단순 농담에 불과하고 사회 상규에 반하지 않는 행위로 위법성이 없어진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경멸적인 표현으로 피해자의 사회적 평가를 깎아내리기 충분했고, 도를 지나치게 넘어선 부적절한 언행으로 미필적으로 명예훼손의 고의가 있었다고 본다”면서 유죄가 인정된다고 판결했다. 이후 피해자 A씨는 이 판결을 근거로 지난해 9월 B씨의 모욕적 발언으로 피해를 입었다며 500만원을 지급하라는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해 일부 승소, 150만원을 배상받게 됐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황규관의 고동소리] “살미 그대를 쏘길지라도”

    [황규관의 고동소리] “살미 그대를 쏘길지라도”

    지난 금요일 그러니까 1월 18일에 김재환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칠곡 가시나들’ 시사회에 다녀왔다. ‘칠곡 가시나’들은 경북 칠곡군 약목면 복성2리 할머니 일곱 분의 일상을 담은 영화다. 그런데 감독은 왜 칠곡에 거주하는 할머니들의 삶을 카메라를 담은 것일까? 그것은 그곳의 할머니들이 시를 쓰기 때문이다. 칠곡군에서는 ‘인문학 도시 조성 사업’의 일환으로 관내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 문해 교육을 다년간 해 왔다. 할머니들은 한글을 배우면서 그림도 그리고, 연극도 하고, 시도 썼다. 그리고 그 성과를 ‘시가 뭐고?’와 ‘콩이나 쪼매 심고 놀지 머’라는 시집으로 묶어 냈다. 나는 이 시집들의 편집자로서 연을 맺게 됐는데, 감독은 창비 팟캐스트 ‘김사인의 시시한다방’에 소개된 손점춘 할머니의 시를 듣고 연락을 줬고, 나는 감독을 칠곡군에 연결시켜 줬다. 이렇게 시작된 영화 작업은 해를 두 번 넘기고 반년의 편집 작업을 거쳐 드디어 작품이 돼 우리 앞에 나타났다. 자의였든 아니면 불가피한 상황 때문이었든 감독은 약목면 복성2리 할머니들을 집중 조명함으로써 영화의 밀도를 확보하는 데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따분하리라는 선입관을 뒤흔들어 놓는 것은 단연 할머니들이 한글 공부를 하면서 쓴 시가 중간중간에 등장하기 때문이다. 또 도시인들에게는 드문 할머니들의 우정이 칠곡의 자연과 어울려 감동을 주기 때문이다. 수줍음이 많아 보이는 박월선의 할머니의 ‘사랑’이란 시는 이렇다. “사랑이라카이/부끄럽다/내 사랑도/모르고 사라따/절을 때는 쪼매 사랑해조대/그래도 뽀뽀는 안해밧다” 맞춤법에도 맞지 않는 이 시를 처음 읽을 때 알 수 없는 설렘이 웃으면서 물결 지어 왔던 것은 마지막 구절에 배어 있는 수줍음 때문이었다. 박월선 할머니는 영화에서 이 시를 낭송하고 난 다음 시에서 다 하지 못한 말을 웃으며 한 줄 더 넣었다. “왜 안 해 봤겠노!” 나는 어쩐지 박월선 할머니가 이 이상 말하지 못하는 아픔이 있을지 모른다는 예감에 휩싸였다. 이 영화에서 할머니들에게 가려졌지만, 인상적인 인물은 복성2리 배움학교 교사인 주석희다. 나는 그가 등장하자마자 요즘 말로 ‘빵’ 하고 터져 버렸다. 강한 경상도 사투리와 어우러진 그의 개성 있는 외모는 하나의 캐릭터로서도 손색이 없었다. 주석희는 특유의 하이톤으로 할머니들의 엄한(?) 선생 노릇을 하기도 하고, 개구진 친구가 되기도 하고, 살가운 딸이 되기도 한다. 이 영화는 복성2리 할머니 일곱 분과 교사인 주석희가 거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지금껏 살아왔고 지금도 살고 있는 칠곡이라는 구체적인 장소와 그녀들의 삶이 서로를 함축하면서 말이다. 시집에서도 일부 드러나지만, 할머니들의 내면에는 미처 펼쳐 놓지 못한 강물 같은 서사가 웅크리고 있다. 극영화 형식도 아니고 또 노인들을 대상화하는 예능 프로그램처럼 작가나 PD가 개입하지 않기에 할머니들의 서사는 그들의 웃음과 울음 사이에서 깨진 사금파리처럼 빛난다. 그것이 보는 내내 아프게도 했고 웃게도 했다. 등장인물 중 박금분 할머니는 가장 활달하고 가장 울음이 많은데, 나는 박금분 할머니의 이 웃음과 울음이 같은 모태를 가졌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 영화의 막바지에서 박금분 할머니는 푸시킨의 시를 필사한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시대에 대해 너무 많은 언어를 발화하고 필요 이상의 정념을 재생산하는 시간을 사는 우리에게 이 영화는 여태껏 자신의 삶을 표현할 언어를 갖지 못한 존재들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반대로는 우리가 가진 언어가 과연 역사와 삶을 얼마나 진실하게 표현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묻는다. 특정한 시대적 상황과 국면을 맞아 우리는 너무도 쉽게 절망하고 희망을 과장하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닌 걸까. 자유의 이름으로 표현의 소비는 마음껏 누리며 살고 있지만, 내면은 텅 비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도 계속 맴돌았다. 그런 나를, 아니 당신의 삶을 위로하려는 듯 강금연, 곽두조 할머니와 저수지 둑에서 나물을 캐던 박금분 할머니는 푸시킨의 시를 읊조리며 화면 저편에 있는 당신의 자리로 돌아간다. “살미 그대를 쏘길지라도….”
  • 채광석 시인, 두 번째 시집 ‘꽃도 사람처럼 선 채로 살아간다’ 출간

    채광석 시인, 두 번째 시집 ‘꽃도 사람처럼 선 채로 살아간다’ 출간

    채광석 시인이 27년 만에 두 번째 시집 ‘꽃도 사람처럼 선 채로 살아간다’를 출간했다. ‘꽃도 사람처럼 선 채로 살아간다’는 시집 출간 일주일 만에 예스24 신간 시집/희곡 분야 1위를 기록했으며 2쇄에 돌입했다. 현재 신간문학 5위 및 시집/희곡 TOP 20에 진입했다. 이번 시집에는 잠시 시단을 떠나 있던 채광석 시인의 삶과 철학이 녹아 있다. 30대, 40대를 지나 50대에 들어선 현재까지, 시인의 삶이 현실적이면서도 서정적인 언어로 담겨 있다. 특히 3.8.6 시대를 치열하게 살았고 그래서 386세대라고 불렸던 사람들이 갖고 있는 불안, 죄책감, 체념 그리고 새롭게 살아나는 희망과 기대까지 지극히 개인적이면서 동시에 시대상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자전적 시들이 가득하다. 관계자들은 오랜만에 만나는 ‘리얼리즘 시학의 귀환’이라고 평한다. 시인이자 문학평론가 방민호(서울대학교 국문과 교수)는 “채광석 시인의 시집은 내가 걸어온 모든 것을, 상처와 고통과 죄책감과 새롭게 일어나는 꿈까지도 함께 나누어 갖도록 한다. 이 새로운 시적 자서전이 우리들로 하여금 가슴 깊이 도사린 슬픔과 아픔을 어루만져주고, 타인들의 삶에 대한 새로운 자각으로 이끌어줄 것”이라고 해설했다. 시집 ‘꽃도 사람처럼 선 채로 살아간다’는 총 4부로 나뉘어 있다. ‘제1부 90 그리고 서른’은 20대 후반과 30대의 삶이 담겨 있다. ‘제2부 마흔, 무늬 몇 개’에 담긴 40대의 삶은 슬픔과 회한으로 가득하다. ‘제3부 쉰 즈음’에 실린 시를 통해서는 세상을 바꾸고자 했으나 스스로 선(善)이 되지 못한 동료들과 자신의 삶을 반성한다. 마지막 ‘제4부 역사의 바깥’은 잘 알려지지 않은, 이름 없이 스러져간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담았다. 한용운의 아내 전정숙, 기미년의 기녀들, 중국과 러시아 등 이국 땅에서 나라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수많은 이들의 삶을 기록하고 애도한다. 특히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는 시 ’역사의 바깥32 과꽃‘은 故채광석 시인의 유작 시로 잘못 알려져 회자되기도 했는데, 본 시집의 출간을 계기로 바로잡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한편 27년 만에 리얼리즘 시학으로 귀환한 채광석 시인은 현재 대통령직속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이미혜의 발길따라 그림따라] 레스토랑의 번성

    [이미혜의 발길따라 그림따라] 레스토랑의 번성

    춥고 배고플 때 따끈한 국물 한 사발만큼 기운을 북돋아 주는 특효약이 있으랴. 레스토랑은 애초에 식사를 제공하는 장소가 아니라 원기를 회복시켜 주는 국물을 의미했다. 1765년 파리 루브르궁 근처에 근대적 식당이 문을 열었다. 여기서는 고기 국물로 만든 맑은 수프와 몇 가지 요리를 내놓아 인기를 끌었는데, 사람들은 이 수프를 레스토랑이라 불렀다. 레스토랑 파는 곳이 하나 둘 늘면서 문 앞에 그날 먹을 수 있는 요리를 알리는 표지판을 내걸고, 테이블에 앉은 손님에게는 작은 표지판을 제공해 음식을 고르게 하는 아이디어도 등장했다. 레스토랑이 만개한 것은 19세기의 일이었다. 1789년 프랑스대혁명이 일어나자 귀족들은 목숨을 잃거나 파산하거나 망명길에 올랐다. 그들이 거느린 요리사들은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됐다. 이들은 까다로운 귀족의 입맛에 맞추느라 갈고 닦은 솜씨를 무기로 식당을 열었다. 부르주아 계층은 요리별로 가격이 매겨진 메뉴판을 보고 원하는 것을 골라 식사하는 데 재미를 붙였다. 1830년대 파리에는 식당이 2000여개로 불어났다. 레스토랑은 수프가 아니라 식당을 의미하는 어휘가 돼 프랑스 아카데미사전에 올랐다. 제르벡스는 불로뉴공원 안에 있는 레스토랑 ‘프레 카탈랑’의 한때를 보여 준다. 1905년 파리시는 이곳에 카지노와 고급 레스토랑을 건설하려는 계획을 추진했다. 카지노 건설은 무산됐으나 레스토랑은 문을 열자 곧 명소로 떠올랐다. 신고전주의풍으로 지어진 레스토랑은 식당이라기보다 상류층 사교클럽 같은 분위기다. 주렁주렁 드리워진 샹들리에가 앞마당까지 훤히 밝히고 있다. 테이블에 앉아 있는 손님들은 당대 사교계를 주름잡던 인사들이다. 앞마당에서는 초록색 드레스를 입은 애너 굴드, 그녀의 남편, 화가의 부인이 인사를 나누고 있다. 미국 부호의 딸인 애너는 막대한 지참금을 싸들고 대서양 건너 시집을 왔다. 사람들은 “애너의 예쁜 데는 등뿐”이라고 농담을 했다. 등(dos)과 지참금(dot)의 발음이 같은 데 착안한 말장난이다. 화가는 짓궂게도 그녀를 뒷모습으로 그려 넣어 이 농담에 동조했다. 이 사치스런 레스토랑은 오늘날도 건재하다. 미술평론가
  • ‘동상이몽2’ 한고은 여동생 “집안 이끌어준 언니 고마워” 남다른 ‘미모’

    ‘동상이몽2’ 한고은 여동생 “집안 이끌어준 언니 고마워” 남다른 ‘미모’

    ‘동상이몽2’ 한고은의 여동생이 공개됐다. 21일 방송된 SBS ‘동상이몽2-너는 내 운명’에서는 한고은-신영수 부부가 여동생 부부를 만나는 모습이 그려졌다. 이날 한고은 신영수는 미국에서 오는 동생 부부를 맞이하기 위해 공항으로 향했다. 한고은 여동생 나라 씨는 남편 데이빗과 두 딸을 데리고 나타났다. 1년 만의 만남이었다. 자신들을 향해 뛰어오는 조카들을 본 한고은 부부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집에 도착한 한고은 자매는 함께 음식 준비에 나섰다. 한고은은 동생에게 엄마표 갈비찜의 비법을 알려줬고, 소고기 뭇국, 스테이크 등 다른 음식들도 척척 완성해갔다. 한고은이 동생에게 엄마표 레시피를 전수한 뒤 뚝딱뚝딱 요리를 완성하는 이 장면은 시선을 사로잡으며 분당 최고 시청률 9.05%를 차지했다. 요리를 할 동안 조카들과 놀아주라는 말에 “섣불리 못 가겠다”면서 영어 대화를 두려워하던 신영수는 이내 “마술을 보여주겠다”면서 화투로 놀아줘 눈길을 모았다. 식사를 마친 뒤 아이들이 잠에 들자 네 사람은 솔직한 얘기를 나눴다. 한고은은 동생과 어린시절을 이야기하며 “어릴 때 장난감을 갖고 논 기억이 없다. 너무 형편이 어려워서 살 수가 없었다. 그림을 그려서 그걸 오려서 인형놀이하면서 놀았다”고 말했다. 한고은의 동생은 언니를 향한 고마움을 표현했다. 동생은 “언니가 고등학교 때부터 일을 많이 했다. 집을 이끌어가면서 가장 역할을 했다. 언니가 저를 시집 보내준 셈”이라며 “땡큐 언니”라고 인사했다. 이에 제부는 “나라가 언니를 진심으로 존경하고 언젠가는 꼭 보답하고 싶어 한다”고 말해 훈훈함을 더했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어느새 8주기… ‘소설의 어머니’ 지상으로 내려오다

    어느새 8주기… ‘소설의 어머니’ 지상으로 내려오다

    “소설의 어머니이자 소설의 집이다.”(함정임 작가) “박완서 소설가는 한국어로 소설을 읽는 사람이 남아 있는 한, 언제까지고 읽힐 것이다.”(정세랑 작가) 박완서 작가 8주기를 맞아 그의 문학 정신을 기리는 짧은 소설집 2종이 출간됐다. 박 작가 최초의 짧은 소설집 ‘나의 아름다운 이웃’(개정판·이하 작가정신)과 한국 대표 작가 29명의 짧은 소설을 엮은 ‘멜랑콜리 해피엔딩’이다. 짧은 소설, 콩트에 대해 ‘방 안에 들어앉아 창호지에 바늘구멍을 내고 바깥세상을 엿보는 재미’로 비유했던 박 작가. 짧은 소설은 개념이 명확지 않고 분량이 짧다는 이유로 독자들의 관심 밖이었지만 그는 달랐다. ‘나의 아름다운 이웃’에서 작가는 10페이지 안팎의 소설 46편에 산업화가 한창 진행 중이던 1970년대 사회의 단면을 예리하게 포착했다. ‘멜랑콜리 해피엔딩’은 박완서 문학의 세례를 받은 작가들이 ‘인간다운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에 끊임없이 천착한 그의 문학 정신을 기린다는 의미로 기획됐다. 강화길, 김사과, 김숨, 박민정, 임현, 손보미, 정세랑, 조남주, 정지돈 등 문단의 최전선에서 활약 중인 젊은 작가들과 권지예, 김종광, 백민석, 이기호, 이장욱, 전성태, 조경란, 최수철, 한창훈, 함정임 등 문단의 중추를 담당해 온 중견 작가들까지 참여했다. 고인을 직접 언급하지 않은 소설들이 대부분이지만 후배 작가들은 고인 특유의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은 그대로 가져간다. 생활고에 치인 가장이 술김에 아들 장난감으로 고가의 레고 블록을 샀다가 아내의 지청구를 듣고 환불하러 가는 길을 그린 이기호 작가의 ‘다시 봄’ 등이 그렇다. 반면 함정임 작가는 과거 편집자로 일할 당시 계간지에 고인의 장편소설 연재를 받거나 작품 세계를 망라하는 특집호 기사를 냈던 기억을 떠올리며 그를 향한 각별한 애정을 직접적으로 고백한다. 작가와 편집자라기보다는, 시집간 딸과 딸을 갸륵하게 바라보는 친정 엄마 같았다는 회고다. ‘한국 문단의 대모’ 고인의 온기가 곳곳에서 느껴지는 책이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황후의 품격’ 오늘(16일) 결방..몰아보기 편성 [공식]

    ‘황후의 품격’ 오늘(16일) 결방..몰아보기 편성 [공식]

    ‘황후의 품격’이 오늘(16일) 결방한다. 지난 11일 SBS 수목드라마 ‘황후의 품격’ 측은 “16일 오후 10시 지금까지의 방송분을 압축한 하이라이트 형식인 ‘황후의 품격 몰아보기’를 전격 공개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16일 예정이던 ‘황후의 품격’ 33회와 34회는 오는 17일 방송된다. 지난해 11월 21일부터 방송된 SBS 수목드라마 ‘황후의 품격’은 어느 날 갑자기 신데렐라가 돼 황제에게 시집온 명랑 발랄 뮤지컬 배우(장나라 분)가 궁의 절대 권력과 맞서 싸우다가 대왕대비 살인사건을 계기로 황실을 무너뜨리고 진정한 사랑과 행복을 찾는 이야기다. 시청률 7%대로 시작한 이 드라마는 지난달 27일 자체 최고 시청률인 17.9%를 기록하는 등 수목극 정상을 달리고 있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전우용 “손혜원 투기 의도 있었다면 내게 자랑했겠느냐”

    전우용 “손혜원 투기 의도 있었다면 내게 자랑했겠느냐”

    손혜원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그 친인척들이 전남 목포시 근대역사문화공간 내의 건물을 투기목적으로 사들였다는 의혹과 관련해 역사학자 전우용씨는 16일 “투기꾼들은 소유 건물이 ‘문화재’로 지정되는 걸 아주 싫어한다”며 손 의원의 투기 의혹을 부인했다. 전우용씨는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같은 취지의 긴 글을 게재했다. 전씨는 이 글에서 “재작년에 손혜원 의원과 함께 페북 라이브로 목포의 역사 얘기도 했다. 손 의원이 목포의 오래된 골목과 필지를 보존하기 위해 애쓰는 건 진즉에 알았다”며 “(손 의원이) 목포의 역사를 지우려는 대규모 재개발 사업이 추진 중인데, 그걸 막고 싶다. 마침 폐가로 방치된 건물 하나가 있는데, 누가 사서 헐어버리면 골목 전체를 지킬 수 없게 된다. 그래서 내 조카더러 시집갈 때 주려고 했던 돈 미리 줄 테니 사서 들어가 살라고 했다.”고 말한 것으로 밝혔다. 전씨는 또 “만약 그에게 투기 의도가 있었다면,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이 사실을 자랑하듯 얘기하진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전씨는 이어 “자기 소유지와 건물이 ‘등록문화재’로 지정되는 것이 이익인지 손해인지는, 건물주들이 잘 안다. 문화재 지정 공고가 나기 전에 구역 내 소유 건물을 팔아치우거나 헐어버리는 건, 투기꾼은 물론 보통 건물주의 ‘상식’이다”며 “투기꾼들은 자기 소유 건물이 ‘문화재’로 지정되는 걸 아주 싫어한다”고 주장했다.다음은 전우용씨의 페이스북 글 전문이다. 1999년 서울 을지로에 있던 국도극장이 헐렸습니다. 국도극장은 일제강점기인 1936년 황금정(黃金町= 현재의 을지로)에 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어진 황금좌(黃金座)를 1948년에 개칭한 극장이었습니다. 건축사적으로 아주 가치가 높은 건물이어서 많은 사람 - 특히 건축학자, 역사학자, 문화재전문가 - 들이 철거에 반대했으나 건물을 매입한 사람은 철거 반대 여론이 확산할까 봐 서둘러 허물어버렸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근대 건축물’을 보존하기 위한 각계의 노력이 본격화하여 2001년 ‘등록문화재 제도’가 만들어졌습니다. 당시에도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의 흔적을 다 지워야 한다는 사람이 많았으나, 식민지 폭정을 함께 겪은 집단 기억이 현대 한국인의 ‘정체성’ 일부를 구성하는 이상, 그 ‘기억의 요소들’을 보존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전문가들 사이에 폭넓은 동의를 얻었습니다. 등록문화재 제도가 시행된다는 소문이 돌자마자, 종로구 계동에 있던 옛 ‘건국준비위원회 청사’가 헐렸습니다. 본래 일제강점기 마포 거부 임종상이 지은 저택이었는데, 해방 직후에는 건국준비위원회 청사로 사용됐습니다. 이 건물이 헐리기 몇 해 전, 고 송남헌 선생의 안내로 안에 들어가 본 적이 있습니다. 여운형 선생의 집무실이 어느 방이었으며, 회의실은 어디였는지 등에 관해 들은 기억이 생생한데, 게다가 아주 튼튼하게 잘 지은 건물이어서 무너질 기미도 전혀 없었는데, 갑자기 사라진 걸 보니 마음 한구석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습니다. 건국준비위원회 청사조차 보존하지 못하면서 광복 몇 주년 운운하는 게 참담했습니다. 만약 임시정부 청사가 서울에 있었다면, 진즉에 사라졌을 겁니다. 한 나라에서 역사가 어느 정도의 비중을 차지하는지 아는 방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개발 이익을 얻기 위해 역사적 건물을 함부로 파괴하는 나라에서, 역사는 아주 하찮은 비중만을 점할 뿐입니다.등록문화재 제도가 시행된 이후,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많은 건물이 ‘문화재’로 등록됐지만, 대개는 국공유 건물이었습니다. 절대다수의 개인 건물주는 ‘사유재산권’이 침해될까 봐 문화재 등록을 거부했습니다. 아무리 문화재 가치가 높은 건물이라도, 소유자의 동의 없이는 등록문화재로 정할 수 없었습니다. 일단 등록된 건물이라도 소유주가 원하면 해제할 수밖에 없었고요. 이런 제도적 맹점을 악용하는 악덕 건물주도 있었습니다. 재개발 지구 내에 오래된 건물을 소유한 사람이 자기 건물을 등록문화재로 신청해서 지정되면, 재개발 사업 전체가 중단됩니다. 소유자는 조합 측과 협상해서 건물값을 ‘아주 비싸게’ 받기로 약속한 다음에 등록해제를 요구합니다. 등록문화재 제도가 ‘알박기’ 용도로 변질되는 거죠. 이런 사례도 있었으나, 일단 자기 소유 건물이 등록문화재가 되면 재산권 행사에 제약을 받기 때문에 건물주들은 등록을 회피하는 게 일반적입니다. 손혜원 의원이 목포의 오래된 골목과 필지를 보존하기 위해 애쓰는 건 진즉에 알았습니다. 재작년에 손의원과 함께 페북 라이브로 목포의 역사 얘기도 했었죠. 이번에 문제가 된 건물에 대해서도 그때 직접 얘기를 들었습니다. “목포의 역사를 지우려는 대규모 재개발 사업이 추진 중인데, 그걸 막고 싶다. 마침 폐가로 방치된 건물 하나가 있는데, 누가 사서 헐어버리면 골목 전체를 지킬 수 없게 된다. 그래서 내 조카더러 시집갈 때 주려고 했던 돈 미리 줄 테니 사서 들어가 살라고 했다.” 등등. 만약 그에게 투기 의도가 있었다면,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이 사실을 자랑하듯 얘기하진 않았을 겁니다.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는 일에는 입 다물고 있는 게 현명한 선택이란 걸 너무나 잘 압니다. 하지만 연고도 없는 지역의 역사 경관을 살려 보겠다고 제 돈 들여 애쓰는 사람조차 변호하지 못하면 이 나라의 역사 경관이 건설업자들과 투기꾼들에 의해 소멸해 버리고 말 거라는 위기의식을 느낍니다. 자기 소유지와 건물이 ‘등록문화재’로 지정되는 것이 이익인지 손해인지는, 건물주들이 잘 압니다. 문화재 지정 공고가 나기 전에 구역 내 소유 건물을 팔아치우거나 헐어버리는 건, 투기꾼은 물론 보통 건물주의 ‘상식’입니다. 투기꾼들은 자기 소유 건물이 ‘문화재’로 지정되는 걸 아주 싫어합니다. 그들은 문화재 가치가 있는 동산만 사지, 부동산은 안 삽니다. 그래서 도시 재생 사업 지구 내 문화재 가치가 있는 건물은 공공이 사들여 민간에 임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게다가 등록문화재 내부와 외관의 1/4은 현상변경 신고 없이 임의로 개조할 수 있습니다. 용도에도 특별한 제한이 없습니다. 건물을 리모델링해서 사람이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건 문화재청이 권장하는 바이기도 합니다. 사람이 이용해야 건물이 유지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SBS는 손의원이 해당 건물에 ‘문화재 가� ?� 있다는 걸 알고 자기 조카 명의로 사들였으며, 건물을 함부로 개조하여 오히려 건물의 가치를 훼손했다는 식으로 보도했습니다. 등록문화재 제도와 그에 대한 건물주들의 대응을 잘 모르는 사람이 보면, 깜빡 속을 만한 내용입니다. SBS 취재진이 등록문화재 제도와 도시재생사업, 부동산 투기 사이의 관계에 대해 몰랐다면 너무 불성실하게 취재한 셈이고, 알고도 이랬다면 그 진짜 이유가 궁금할 수밖에 없습니다. ---------- ps. 저는 오래된 필지를 뭉개고 건물들을 헐어내는 것보다는 그걸 보존하는 게 경제적으로도 더 나은 선택이 될 수 있어야, 도시의 역사가 보존된다고 봅니다. 물론 토건업자들은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아주 싫어합니다. ps.2. 옛 건국준비위원회 청사 건물의 소유주는 모 재벌가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그가 이 기념비적 건물을 헐었을 때, 이 행위를 비난한 ‘언론’은 단 한 곳도 없었습니다. 귀중한 역사 유산을 헐어버리는 행위에는 침묵하고 보존하려는 행위를 비난하는 언론이 다수인 한, 한국은 ‘역사와 단절된 땅’이 될 겁니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문화재에 깃든 100년 전 그날] 가엽슨 빡쥐여!…육사의 詩, 대한 독립을 외쳤다

    [문화재에 깃든 100년 전 그날] 가엽슨 빡쥐여!…육사의 詩, 대한 독립을 외쳤다

    “광명(光明)을 배반(背反)한 아득한 동굴(洞窟)에서/다 썩은 들보라 문허진 성채(城砦) 위 너 헐로 도라단이는/가엽슨 빡쥐여! 어둠에 왕자(王者)여!/쥐는 너를 버리고 부잣집 곳(庫)간으로 도망했고/대붕(大鵬)도 북해(北海)로 날아간 지 임이 오래거늘/검은 세기(世紀)의 상장(喪裝)이 갈가리 찌저질 긴 동안/비닭이 같은 사랑을 한번도 속삭여 보지도 못한/가엽슨 빡쥐여! 고독(孤獨)한 유령(幽靈)이여!(하략)”일제강점기 시인이자 독립운동가인 이육사(본명 이원록·1904~1944)의 영탄이다. 일본에 국권과 터전을 빼앗긴 채 어둠 속을 헤매는 우리 민족의 서글픈 현실은 이육사의 눈에 박쥐의 삶과 다를 바 없었다. 빛이 들어오지 않는 동굴에 거꾸로 매달린 채 목소리를 숨기고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가엾은 사람들을 바라보며 시인은 설움을 토해냈다. 경북 안동의 이육사문학관이 소장하고 있는 이육사의 시 ‘편복’(·등록문화재 713호)은 일제의 사전 검열 탓에 발표되지는 못했으나 이육사의 조카인 이동영 전 부산대 국어교육과 교수가 1956년 ‘육사시집’에 처음 수록하면서 알려졌다. 신석초 시인은 1940년 1월 발행한 ‘시학’ 5집에 실린 서간문 ‘육사에게’에서 “지금 막 형의 시편(詩篇)인 ‘편복’을 생각하는 중이오. 이 시편은 형의 많은 시사(詩詞) 가운데에서 가장 훌륭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는 것이오”라고 적었다. 식민지 현실에서 느끼는 절망감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편복’은 이육사의 시 가운데에서도 중량감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평가된다. 더욱이 이육사의 시 40여편 중 남아 있는 친필원고는 ‘편복’과 더불어 ‘바다의 마음’(등록문화재 738호) 두 편 뿐이다. 이위발 이육사문학관 사무국장은 “사람들에게 비교적 잘 알려지지 않은 시 ‘편복’은 이육사가 직접 독립운동을 하면서 바라는 바를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슬픔과 암울한 역사에 대한 한탄을 잘 드러낸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어린 시절부터 한학을 배웠던 이육사의 철학은 ‘내가 배운 것 그대로 몸으로 실천한다’는 뜻의 ‘지행’(知行)이라는 단어로 축약할 수 있다”면서 “그에게 시 쓰기는 곧 독립운동과 다름 없었다”고 강조했다. 이육사는 1927년 10월 조선은행 대구지점으로 신문지에 싸인 폭탄이 배달된 ‘장진홍 사건’에 연루되면서 대구형무소에 수감됐다. ‘육사’라는 호 역시 당시 수인번호인 264에서 따왔다. 1931년 대구 격문사건 등 여러 독립운동에 가담하여 투쟁하던 그는 17차례 옥고를 치렀다. 1930년 조선일보에 시 ‘말’을 발표하면서 문단 활동을 시작한 이육사는 1935년 시 ‘황혼’ 등을 ‘신조선’에 발표하며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펼쳤다. 1943년 중국으로 갔다가 잠시 귀국한 이육사는 국내에서 체포돼 베이징으로 압송됐고 1944년 1월 베이징 일본총영사관 감옥에서 숨을 거뒀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책꽂이]

    [책꽂이]

    헤어진 사람의 품에 얼굴을 묻고 울었다(장석주 지음, 문학동네 펴냄) 올해 등단 40주년을 맞는 시인의 신작 시집. 전방위 글쓰기의 선봉에 서서 다양한 장르의 글을 선보였지만 결국 그 글쓰기의 기원은 시심(詩心)에서 비롯됐다는 시인이다. ‘아내 박연준에게’라는 살뜰한 도입부에 마지막 4부는 시극으로 맺었다. 148쪽. 1만원.바다에서 본 역사(하네다 마사시 엮음, 조영헌·정순일 옮김, 민음사 펴냄) 바다를 중심으로 다시 쓴 동아시아 700년의 역사. 도쿄대 부학장인 석학 하네다 마사시를 필두로 일선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소장학자들에 이르기까지 스물여덟명이 참여해 육지와 동등한 역사의 공간으로서의 바다를 조망했다. 404쪽. 2만원.달을 보며 빵을 굽다(쓰마모토 구미 지음, 서현주 옮김, 더숲 펴냄) 저자는 일본의 소도시 단바에서 달의 주기에 따라 20일은 빵을 굽고 나머지 10일은 여행을 떠나는 제빵사다. 그는 여행 기간 빵에 쓰는 모든 식재료의 생산자들을 직접 만난다. 그의 사연이 TV 전파를 타면서 저자는 무려 5년을 기다려야 빵을 받아볼 수 있는 스타 제빵사로 거듭났다. 일을 지속하며 즐기는 삶, 그 조화에 관한 이야기. 212쪽. 1만 4000원.악취와 향기(알랭 코르뱅 지음, 주나미 옮김, 오롯 펴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 ‘향수’의 탄생에 영향을 준 저작. 후각의 영역에서 나타난 감각의 혁명이 근대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과학과 의학, 도시계획, 공중위생, 예절규범, 건축양식 등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제시한다. 464쪽. 2만 5000원.문학에 뛰어든 세계사(김영진 지음, 들녘 펴냄) 고전 문학 속 영웅과 그가 활약했던 시대의 굴곡을 통해 역사를 파헤치는 저작. ‘일리아스’에서 고대 그리스 문명의 형성 과정을 살피고 ‘니벨룽겐의 노래’와 ‘롤랑의 노래’를 통해 중세 시대 게르만족 유입과 크리스트교 확산에 대해 되짚는다. 384쪽. 1만 5000원.카레라이스의 모험(모리에다 다카시 지음, 박성민 옮김, 눌와 펴냄) 한 달에 세 번은 먹는다는 일본인의 솔푸드, 카레라이스. 본래 인도 요리였던 카레가 어쩌다 일본에서 사랑받는 음식이 됐을까? 음식 저널리스트인 저자가 추적한 음식문화사. 252쪽. 1만 3800원.
  • ‘황후의 품격’ 신성록, 로맨스 연기로 시선 집중 ‘남다른 존재감’

    ‘황후의 품격’ 신성록, 로맨스 연기로 시선 집중 ‘남다른 존재감’

    ‘황후의 품격’ 신성록이 본격적인 로맨스 연기로 시청자들의 시선을 끌고 있다. 지난주 방송 엔딩 장면에서 시청자들을 가슴 설레게 만들었던 신성록이 이번 주 방송에서도 장나라(오써니 역)와 로맨스 기류를 형성하며 시청자들을 극에 집중하도록 만들었다. 극 중 신성록은 자신을 자꾸만 거부하는 장나라에게 “우리 부부야. 황제인 내가 황후의 방에 들어오는 게 뭐 잘못 됐어?”라고 말하며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면서도 자신 때문에 장나라의 어머니를 죽게 만든 10년 전 사건에 괴로워하는 연기로 안타까움을 자아내며 극에 흥미를 더했다. 또한 신은경(태후 역)의 계략으로 인해 장나라가 위험에 빠지자 태후와 팽팽한 대립각을 세우며 극에 긴장감을 불러 일으킨 것은 물론 “어마마마한테서 황후를 지켜야겠습니다!”라는 대사로 마음속에 깊이 자리한 장나라를 위해 신은경과의 전쟁을 선포해 황제의 카리스마를 여과없이 드러내는 등 몰입도를 높이는 극강의 연기력으로 TV 앞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특히 신성록은 황실 바자회의 폭탄테러 사건으로 장나라가 위험에 빠진 순간, 자신도 알아보지 못하고 흥분한 최진혁(나왕식, 천우빈 역)에게 묘한 감정을 느끼는 연기로 앞으로 두 사람이 연적이 될 것을 암시했으며 이로 인해 신성록이 앞으로 보여줄 황제의 폭발적인 감정연기에 대해서도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이처럼 신성록의 열연으로 매주 방송마다 화제의 중심에 선 SBS 수목드라마 ‘황후의 품격’은 어느 날 갑자기 신데렐라가 돼 황제에게 시집온 명랑 발랄 뮤지컬 배우가 궁의 절대 권력과 맞서 싸우는 황실로맨스릴러 드라마로, 신성록은 절대 권력의 황제 이혁으로 완벽 변신해 브라운관을 장악하며 남다른 존재감을 뽐내고 있다. 한편, SBS ‘황후의 품격’은 10일 오후 10시에 방송된다. 사진제공=에스엠라이프디자인그룹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2019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당선작] 시지프스의 나무, 그 역설의 존재론-이영광론/신수진

    1. 경사지고 거꾸로 선 각도의 위상학 인간을 위해 죽음의 신을 쇠사슬로 묶었지만 신에게 붙잡혀 영원한 벌을 받는 시지프스의 신화를 통해 카뮈는 부조리에 대해 사유한다. 1) 그가 주목한 것은 바위가 정상에 닿자마자 다시 저 아래로 굴러 떨어지는 순간, 주저 없이 고통의 근원으로 다시금 향하는 시지프스의 바로 그 돌아서는 순간이다. 시지프스는 자신의 비참한 존재 조건을 감히 통찰하고 부조리한 삶을 무한히 들어올림으로써 결코 패배하지 않는 반항적 인간으로 거듭나고 있기 때문이다. 시지프스의 결의와 반복처럼 이영광은 계속해서 쓴다. 우울과 명랑을 진자처럼 오가며 그는 끝없이 굴러떨어지는 바위를 지고 절벽을 오른다. 유토피아에 대한 희망, 아니 그건 너무 SF적이다. 그저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사람은 끝까지 사람이어야 하지 않겠냐고 하는 이 바람과 좌절은 그 자체로 시지프스의 은유와 부합한다. 1998년 등단 이후 서정적 주체의 환부를 드러내고 그 통증의 발로를 소상히 추적하고자 하는 시정신으로 그는 이제 ‘끝없는 사람’에 당도했다. 다섯 권의 시집에서 아픔을 갱신하며 정신의 높이를 몸의 위치로 끌어내린 그는 기꺼이 병실로 치환된 세계를 겪어낸다. 곰팡이와 거미줄이 쉴 새 없이 자라나는 위태로운 상태일지라도 그는 적어도 자기 세계를 가진 자로서 이 경사지고 거꾸로 선 각도의 입지는 이영광의 정신적 배후로, 그의 위상학으로 건재해왔다. 이영광은 “답이 없”다고 생각했다가 문득 “한 번도 문제가 돼본 적”(‘문제’) 없는 역설적인 세계를 깨닫는다. 합리와 효용만을 쫓는 병리학적 사회에 대한 통찰과 반성이 예의 그 반동의 시작점에 있었다면 그의 시를 구성하는 또 다른 축은 역설적 사유의 방식이다. 이를테면 그에게 죽음이라는 테마는 삶보다 더 압도적이다. 죽음은 미학적 감수성의 대상으로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의 삶을 도약시키는 극단이기 때문이다. 이는 2010년대 한국시에서 진단되는 시대적 감각이나 향유적 양상과는 다른 방식으로 세계와의 대결구도를 견디는 주체의 극기를 보여준다. 세계에 대한 자의적인 해석과 윤리는 자칫 자기 동일성에 포섭될 수 있음을 경계하면서도 그는 계속해서 폭력의 메커니즘이 확산되고 있는 세계를 주시한다. 2) “죽기 전에”(‘오일장’) 죽기 위함이라는 역설과 비판적 실천 의지는 자해에 가까운 자학으로 점철되었고 마침내 이러한 기근 속에서 이영광의 시적 주체는 나무의 존재로 현현한다. 나무와 숲이라는 식물적 상상력과 가공할 병실로 환원된 세계 인식을 근거로 계속해서 “간다”, “가야한다”(‘나무는 간다’)를 역설하는 이영광의 이 길은 지금, 여기,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있는가. 3) 2. 상실과 존재의 원환(圓環)으로서 병폐의 징후 : 미치다, 아프다, 병들다 이영광의 시에는 상실과 결여의 수사가 넘쳐난다. 상실은 존재를 표상하고 존재는 다시 상실을 견인한다. 그에게 상실은 존재에 대한 자신만의 의식화이다. 대상이 충족되고 있을 때 우리는 그 대상을 의식하지 않는다. 충분한 사랑을 받고 있는 자는 사랑을 갈구할 필요가 없다. 사랑을 찾는다는 것은 사랑의 상실에서 비롯된 것이고, 이때의 상실은 사랑의 존재에 대한 의식화인 것이다. 나무는 미친다 바늘귀만큼 눈곱만큼씩 미친다 진드기만큼 산 낙지만큼 미친다 나무는 나무에 묶여 혓바닥 빼물고 간다 누더기 끌고 간다 눈보라에 얻어터진 오징어튀김 같은 종아리로 천지에 가득 죽음에 뚫리며, 가야 한다 세상이 뒤집히는데 고문받는 몸뚱이로 나무는 간다 뒤틀리고 솟구치며 나무들은 간다 결박에서 결박으로, 독방에서 독방으로, 민달팽이만큼 간다 솔방울만큼 간다 가야한다 얼음을 헤치고 바람의 포승을 끊고, 터지는 제자리걸음으로, 가야 한다 세상이 녹아 없어지는데 나무는 미친다 미치면서 간다 육박하고 뒤엉키고 침투하고 뒤섞이는 공중의 결승선(決勝線)에서, 나무는 문득, 질주를 멈추고 아득히 정신을 잃는다 미친 나무는 푸르다 다 미친 숲은 푸르다 나무는 나무에게로 가버렸다 나무들은 나무들에게로 가버렸다 모두 서로에게로, 깊이깊이 사라져버렸다 ―‘나무는 간다’ 전문 이상(李箱)에게 열두 명의 무서워하는 아해와 무서운 아해가 있었듯, 이영광에게는 미치고 푸르고 가고 가버린 나무가 있다. 시인의 자기의식은 나무로 환유되고 있는 이지러진 시적 주체의 자화상으로부터 기인한다. 그의 시 세계를 관통하는 가장 주요한 지평으로서 나무는 시적 주체의 술에 취한 가계(家系)와 생활과 속내를 목도해왔을 뿐 아니라 그 울음을 위로하던 내밀한 기억으로 인하여 제 자신 역시 깊은 병을 앓게 된다.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아주 조금씩 미쳐가는 나무는 제 스스로의 몸에 묶여 혀를 빼물고 있으면서도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디로 가야 하는 것일까. 도망치지 못한 채 순순히 미쳐가고 있던 나무는 “천지에 가득 죽음에 뚫리”면서도 계속해서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명징한 로고스를 탈각한 채 세계를 거대한 병실로 치환하면서 그것과 한몸인 나무가 겨우 붙어 있는 숨으로 뱉어내는 전언, 이 신음이 바로 이영광의 시가 육박해가는 시의 음성이다. 그것은 “고문받는 몸뚱이”의 형상이리만치 처절하게 으스러진 어떤 것이다. 변형되고 훼손되고 상실하면서 이제 나무들은 간다. “결박”과 “독방”이라는 이 문제적 존재의 필요충분조건 위에 그가 가고자 하는 길은 나 있다. 그것이 설령 “제자리걸음”일지라도 가고자 하는 까닭은 세상이 “뒤집히”거나 “녹아 없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불가분의 관계로서 나무의 뿌리격인 세상은 나무의 존재를 끊임없이 몰락시키며 역설적으로 바로 그 허물어지는 순간들로부터 나무가 재건될 수 있는 가능성을 도출해낸다. 나무는 미친다. 미치면서 간다. 미쳤기 때문에 가는 것이고, 미치지 않고서는 갈 수 없는 길이다. 이 광기와 착란의 고투는 “공중의 결승선”에서 마침내 분신하듯 정신을 잃고 제 몸을 산화하고 만다. 정신을 잃고 나서야 푸르게 미친 나무와 푸르게 미친 숲은 모두 서로에게로 사라져버리고 만다. 온통 상실과 결여의 비존재로 읽히는 세계에서 에포케가 발생하는 이 공명의 찰나로부터 이영광의 시집은 시작된다. 정체와 암전에서 시동을 걸 때 나타나는 재부팅의 효과, 그 광포한 분란을 통과할 때에만 겨우 돌아오는 불규칙한 심호흡이 바로 이영광 시에서 나타나는 병폐의 첫 번째 징후인 ‘미치다’의 증상을 말해준다. 그렇다면 미친, 혹은 미쳐버린 이 나무들의 진격은 삶의 벼랑 끝에서 발휘되는 재기의 몸부림이자 고유한 주체 확보의 계기가 된다. 시끄럽게 부서지고 피 나던 집이었는데/누구도 아이를 욕하거나 때리지 않았다/조용한 아이였다/조심하는 아이였다/모든 걸 알고 모든 것에 준비된 표정으로/떨려고 하지 않았다/난 어떻게 돼도 상관없어 상관없습니다/(중략)/아프지 않겠습니다/아이가 되지 않겠습니다/온몸을 희끄무레한 붕대로 감고 있어서/아플 곳이 없었다/죽으면 죽으리라. 4) /살면 살리라/벗은 아이였다/벗겨진 아이였다/생각하지 않고,/늘 남의 생각만 생각하는/망가져가는 아이였다 무섭고 많은/시간이 잡은 아이였다/하루는 사십년처럼 흐르고/사십년은 하루처럼 멎어/어느 날, 돌아온 아이였다/도대체 왜 도대체 왜 도대체 왜/아직도 망가져가는 아이였다 ―‘망가져가는 아이’ 부분 상실과 결여로 화하는 존재의 나쁜 사정(아프거나 혹은 죽거나)은 핏속을 흐르는 불가해한 광기와 걷잡을 수 없는 슬픔, 시라는 것에 붙들려 오도 가도 못하는 몹쓸 운명에 다름 아니다. 문명과 역사의 폭압으로부터 거세된 욕망은 이제 생태적 상상력을 넘어서 가족 내력으로부터 발생한 병폐적 징후들, 상실된 존재라는 치부로 고백된다. 폭력과 방임과 유기라는 총체적인 학대 속에서도 아이는 자라야만 한다. 조용히, 조심스럽게, 숨죽여 자라는 동안 모든 걸 알아차려버린 아이는 어느덧 “난 어떻게 돼도 상관없어 상관없습니다”라고 말하는 아이가 된다. 온몸을 붕대로 감고 있어서 아플 곳이 없는 그는 “죽으면 죽으리라”는 성경을 외우는 동안 죽고 또 죽어 역설적으로 그 죽음 속에서만 살 수 있다. 그러나 사십년의 세월 속에서도 조금도 빛바래지 않는 “도대체 왜 도대체 왜 도대체 왜”라는 물음은 여전히 유효하다. 아이의 하루는 사십년처럼 고통스러웠을 것이고, 사십년은 하루처럼 그 자리에서 버티고 있었을 것이다. 발가벗겨지고 죽임당한 채 자신을 영구히 복원하지 못하는 이 시적 주체의 내력은 질병의 코드로 나타나며 역설적으로 바로 이 상실과 결여의 반대급부로서만 존재의 기표에 가까스로 다다를 수 있다. 모든 곳이 아파서 아플 곳이 없는 아이, 아픈데도 아프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아이, 아픈 속이 투명하게 보이는데도 안 보이는 아이로 아픔이 재현되는 양상에서 볼 수 있듯, 이영광이 상실의 주체를 존재의 그것으로 전복시키는 역설을 보여줄 때 그 도화선은 병폐적 징후로 드러난다. 병폐적 징후의 두 번째 시어로서 ‘아프다’ 역시 꺼져가는 삶에 대한 각성과 의지의 기제로 작동되고 있으며 이는 역설적으로 새 활로의 모색을 담당하는 기저가 된다. 바깥은 문제야 하지만/안이 더 문제야 보이지도 않아/병들지 않으면 낫지도 못해/그는 병들었다/내가 가장 좋아하는 건 전력을 다해/가만히 멈춰 있기죠/그는 병들었다, 하지만/나는 왜 병이 좋은가/왜 나는 내 품에 안겨 있나/그는 버르적댄다/습관적으로 입을 벌린다/침이 흐른다/혁명이 필요하다 이 스물네평에/냉혹하고 파격적인 무갈등의 하루가,/어떤 기적이 필요하다/물론 나에겐 죄가 있다/하지만 너무 오래 벌받고 있지 않는가, 그는/묻는다, 그것이 벌인 줄도 모르고/(중략)/저녁은 모든 희망을 치료해준다/그는 힘없이 낫는다/나는 아무런 이유가 없다/나는 무장봉기를 꿈꾸지 않는다/대홍수가 나지 않아도,/메뚜기떼가 새까맣게 하늘을/덮지 않아도 좋다/나는 안락하게 죽었다/나는 내가 좋다/그는 돼지머리처럼 흐뭇하게 웃는다/소주와 꿈 없는 잠/소주와 꿈 없는 잠 ―‘저녁은 모든 희망을’ 부분 이영광은 “병들지 않으면 낫지도 못”한다는 뒤바뀐 선후 관계를 통해 병의 중의적 차원을 암시한다. 이는 낫기 위해서는 먼저 병이 들어야 하는 논리적 인과성에 대한 일종의 언어유희이기도 하지만 병폐의 징후를 보여주는 동시에 그것은 본래 어떠해야 했는지를 복기시키는 반동의 기제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나’는 병들어 있는 ‘그’의 곁을 지키고 있고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더욱 격렬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기 위해 “전력을 다”한다. 전력을 다해 멈춰 있기 위해 “혁명”이라든가 “기적”과 같은, 존재의 근원을 통째로 뒤바꿀 만한 지각변동을 꿈꾸지만 현기증을 일으키는 이 소요 사태 속에서 ‘나’는 도리어 병이 좋다고 말한다. (그렇기에 여기에서도 어김없이 병은 푸르게 미쳐가는 생의 긍정적 요소로 읽어내야 한다.) 시어들을 모두 거꾸로 뒤집어놓은 이러한 양상들은 이제 죽음 속에서만 살 수 있음을 가시화하기 위한 이영광식의 역설로 정립된다. 그래서 이영광이 쓰는 존재의 본질은 언어로 포착되지 않으며 계속해서 움직이고 변화하며 와해되고 생성한다. 이 유동적인 성질은 시인으로 하여금 시를 쓰게 하는 추동력으로 작용한다. 존재가 되기 위해 ‘그’는 “버르적”대고 “입을 벌”리고 “침”을 흘린다. 그렇게 마주하게 된 ‘그’는 또 다른 ‘나’이지만 ‘나’는 ‘나’를 만듦으로써 도리어 더 외로워지는 아이러니에 처한다. 고통과 쾌락, 경험과 선험,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며 시인이 접근하고자 하는 ‘나’는 다가갈수록 멀어질 뿐 한시도 오롯한 ‘나’가 되지 못한다. 이영광의 시적 주체는 몸이라는 집을 한 채 지니고 있다. 집은 일종의 병실로 나타나며 그는 이 무력한 “스물네평”에 “변혁”, “새날”, “자폭”, “재앙”, 혹은 “천재지변”이라도 일어나 대혼란이 벌어지길 기도한다. 그것은 더 완벽하게 미치고, 더 못 견디게 아프며, 더 깊이 병들어 차라리 그 병세에 차도가 없어져버리도록 하는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벌인 줄도 모르고 오래도록 희망을 앓아온 ‘그’는 싸워보지도 못한 채 힘없이 완치되고 만다. 이것은 패배조차 허락되지 않는 참담한 실패를 증거한다. 상실을 경험함으로써만 존재로 거듭날 수 있는 이러한 역설적 구조는 이영광이 반복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사유의 패러다임으로 병폐의 세 번째 징후인 ‘병들다’의 의미다. 내 것조차 될 수 없는 고통의 전유물인 ‘나’ 앞에서 시인은 그의 유일한 도구인 시만을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는 시지프스가 되는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이 시는 이영광의 시 전반을 관통하는 문제의식인 상실과 존재의 원환을 공유하고 있다. 그의 세계 속에서는 어느 것 하나도 멈춰 있는 것, 불변하는 것, 영구적인 것은 없다. 그래서 논리적 명쾌함은 불가능해지고 점점 수식어가 많아질 뿐이다. 이 구태의연한 언어의 불가능성은 상실과 결여로서 존재에 대한 회의와 그대로 닮아 있다. 영원히 도달할 수 없는 ‘나’와의 간극은 모순으로 일관하고 있는 세계의 이원성, 이를테면 안과 밖, 전력과 정지, 죄와 벌, 아침과 저녁, 빛과 어둠, 삶과 죽음, 현실과 꿈 등을 통해 구조화된다. 마침내 모든 상실이 존재를 부상시킨다는 것을 예감하게 된 ‘나’는 “소주와 꿈 없는 잠”에 혼곤하게 빠져든다. 만해의 “잠 없는 꿈”(‘잠 없는 꿈’, 님의 침묵, 회동서관, 1926)에 대한 오마주로 보이는 이 구절 속에는 모든 대상이 뒤집어진 거울 속 같은 세계가 놓여 있다. 현상과 이면이 전복되는 세계를 목도하며 ‘나’는 세계의 안도 아니고 밖도 아닌 트랙을 돌며 남겨진 부분(병폐로 나타나는 이상 징후)을 확보하고 그것을 존재로 변환할 궁리에 몰두한다. 3. 시지프스의 역설 : 나무의 존재론 지난 시력으로 볼 때 이영광의 작업은 상실과 존재의 원환으로서 병폐의 징후를 포착하는 동시에 시대적 데카당스를 향한 분기였고 시적 실천에 의한 궐기였다. 구조적 모순으로부터 기인하는 디스토피아와 대치하면서 그가 겪어내는 소외와 환멸은 미치고, 아프고, 병든 시적 주체의 상태로 반복된다. 시인은 조금도 비켜서지 않고 이 고통을 직면함으로써 사람다움의 정의에 대해 생각한다. 세월호 삼보일배가 살려고, 기어서 남녘에서 올라오고 있는데/잃은 아이 언니인가 누나인가 하는/그 여린 아가씨, 옷이 함빡 젖고 운동화가 다 해졌데/(중략)/마음이란 거 그거, 찌르지 마, 자꾸 피가 샌다고/중환자실 천장에 달려 뚝뚝 떨어지는 피 주머니 같은 그것에게 ―‘마음 1’ 부분 아니, 아니…… 돌아가야 해요/예쁘고 미운 친구들과 괴롭고 즐거운 학교와/인사하던 골목길과 상점들에게로 그렇고 그런 사람들에게로/돌아가야 해요, 꿈꾸고 꿈꾸고 꿈꾸면 괜찮아지던 곳에,/끝없는 사람으로 돌아가야 해요 ―‘수학여행 다녀올게요 ―유령 6’ 부분 시집 곳곳에 기록된 4월 16일은 우리로 하여금 섣불리 환부를 봉합하는 대신 고통을 날것 그대로 경험하도록 한다. “오늘도 무사하지 않았느냐고” “겁도 없이”(‘겁’) 이야기하는 자신을 견디지 못해 차라리 “징역 살고 싶”(‘무인도’)은 심정을 토로한다. 고통의 근원지를 밝히고 불편과 부끄러움을 마주함으로써 우리가 “끝없는 사람으로 돌아”갈 때만이 유령처럼 출몰하는 이영광의 피 흘리는 세계는 사람의 것으로 돌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이영광에게 존재가 되기 위한 상실과 병폐의 과정은 다음 시들에서 죽음의 이미지들로 변환된다. 시집 전반에 걸쳐 삶과 죽음이라는 시어는 전도되어 있으며 자주 몸 바꾸어 나타나는 죽음의 현시들은 삶의 부장품처럼 예상치 못한 일상의 곳곳에서 불쑥불쑥 출토된다. 이는 삶과 죽음을 매 순간 견디어내면서 끝없이 굴러떨어지는 바위를 밀어올려야 하는 형벌과도 같다. 정말 하지 말아야 할 일은 자기를/살려주는 일/정말 해야 할 일도 저에게 위로를/던지지 않는 일/입이 말을 못하겠나/손이 구원을 못 쓰겠나/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하지 않는 것을 해내는 일 ―‘깔깔대는 혼’ 부분 고독이 안되자 그는 삶을 물어뜯었다/사람이 안되면 사람을,/진심에 지피면 진심을 무찔러야 했는데/삶을 쓰러뜨렸다/죽음이 안되면 죽음을 여의어야 했는데/삶을 버렸다 ―‘하지만’ 부분 자기를 순순히 살려주는 일만은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 일이라고 하는 이 전언은 스스로를 구원하지 않으려는 저 위악과 자위의 역설이 얼마나 지키기 어려운 것인가를 잘 보여준다. 때문에 내가 나로 태어나기 위해서는, 이영광식으로 다시 말하자면 내가 나로 죽기 위해서는 죽을 힘을 다해 “진심을 무찔러야”하고, “죽음을 여의여야”만 하는 것이다. 그 견딤의 미학이 그에게는 시를 쓰는 행위, 존재를 성립하기 위한 방법론적 양상으로 나타난다. 시의 외연에 등재시킨 상실과 결여의 병폐적 현상들을 주체의 확립과 존재로 복귀시키며 재구조화하는 이영광의 시도는 그것이야말로 시의 임무와 사명임을 숙연하게 보여준다. 뒷밭이 우릴 먹여주지 않니 시인은 싫다 너는 학교에서 라디오도 타왔지 않니 취직도 안하고 출세도 안되고 시인이 되어 내려갔을 때는, 나는 네가 시인만은 되지 말길 죽 바랐다, 이젠 객사하지 말라고 기도해야겠다, 어머니는 말했다 나보다 더 어두운 짐승,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시인이 되지 말자고 다짐했다 뒷밭이 북풍한설이어서 굳게 다짐했다 시인이, 나는 아니다 언젠가는 가짜를 들킬 것 같아 두렵다 어쩌다 어머니 말을 잊어먹을 때면 그 짐승이 불쑥 머리를 내밀기도 한다 그때 깊이 눌러 감추어버렸던 시인이란 것을 들킬까봐 또 나는 무섭다 세상 모든 밭들은 왜 다 기근인가 객사 얘기는 그만하세요 뒷밭은 언제나 우릴 굶겼어요 저는 그냥 방랑만 하는 거예요 시늉만 하는 거예요 ―‘뒷밭’ 부분 시인님이 되느니/땅끝까지 실종되고 말겠다/시인님이 되느니/살처분 당하는 분홍 돼지가 되겠다//높이지 않아도 시인은/만장처럼 드높으므로/아무리 높여도 시인은/꿇은 상주처럼 낮으므로 ―‘시인님’ 부분 자전적 시임이 분명한 위의 메타시들에서 시인은 시 쓰기를 업으로 삼고 영원한 삶을 견디는 시지프스로 화한다. 평생 뒷밭에서 일을 하신 어머니는 시인이라곤 트랜지스터 라디오가 들려주던 김삿갓밖에 알지 못한다. 그런데 김병연의 전기를 가능케 한 드라마틱한 방랑과 객사에만 방점을 두어 마치 시인이 되면 반드시 떠돌다가 죽게 될 것이라고 믿는 듯 아들의 행보를 심려한다. 시인이란 대개 시대의 병폐를 가장 먼저 진단하는 첨병으로 부나 권력과 같은 가치들을 풍자하며 으레 속세를 떠난 듯 자유로운 자들로 통용되지 않는가. 문학을 알지 못하는 어머니에게도 시인의 입지가 지닌 이 변방의 좌표가 어렴풋이 짐작되었으리라. 시인이 되겠다는 아들이 겪어야 할 그 정처 없는 빈곤도 싫었겠지만 도무지 숨길 수 없는 저 반역과 모반의 기질, 세상을 척지고 홀로 싸워나가야 하는 어두운 예감 같은 것이 서늘히 엄습해왔을 것이다. “나보다 더 어두운 짐승”인 어머니에게 불효를 자처하면서 기어이 멋대로 시인이 되어버린 시적 주체는 그러나 간혹 제가 가짜임이 들통날까봐 저어한다. 또 제가 정말 시인이 되어버린 것은 아닌지 그것 역시 두려워한다. 자신은 그저 시인 “시늉만 하는” 것이라고 어머니를 안심시키는 그의 말은 어쩐지 자신을 더 안심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으로 보인다. 시인이 되느니 “땅끝까지 실종되”거나 “살처분 당하는 분홍 돼지가 되”고 말겠다는 이 호언장담, 이 비하와 경멸의 자기모멸감 속에는 기실 시의 쪽배로밖에는 이 깊은 생을 건널 재간이 없는 한 사람의 떨림이 고스란히 응축되어 있다. “만장처럼 드높”고 “꿇은 상주처럼 낮”은 이 고결하고도 비천한 이름 곁에 선 시인의 결연함은 슬프도록 장엄하고 눈물겹도록 어리석다. 뭇사람들이 그 눈에서 “죄인”과 “천치”를 읽고 간 미당의 피맺힌 아침과도 같은 부끄러운 혼, 그러나 뉘우치지 않는 그 오만한 자세를 이영광은 어딘가 닮아 있다. 나무의 적은 얼굴을 드러낸 적 없는 세력/빈 들은 이글거리는 뿌리들을 비끄러맨다/바람은 잡념의 가지들을 조각조각 부러뜨린다/나무의 정권들이 나무 속으로 들어간다/나무는, 오직 나무로 지워진다/한 점 배후도 없이 나무는/삭풍과 눈보라와 흙먼지의 백만 대군을,/백만 대군을 호령하는 무한의 지평선을/한그루 장창으로 막아선다 ―‘한점 배후도 없이 나무는’ 부분 맨주먹을 쥐고 눈밭에 선 나무, 시적 주체로 형상화된 이 강인한 나무는 무방비 상태의 싸움꾼이다. “저렇게, 싸우지 않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저렇게 싸”우고 있기 때문이다. 그 싸움의 상대는 바람이다. 바람은 “얼굴을 드러낸 적 없는 세력”으로 나무와 교전한다. 제 뿌리를 간직하고 있는 나무의 정직한 생의 기록은 어디서부터 불어왔는지 모를 홀연한 바람의 태생과는 사뭇 다른 것이다. 나무가 거역할 수 없는 피투성(被投性)의 존재로서 육중한 삶을 떠메고 가야 한다면 바람은 무한한 가변성이라는 무상함을 상징한다. 제 몸을 한그루 장창 삼아 “삭풍과 눈보라와 흙먼지” 불어오는 지평선을 제압하는 나무 안에는 뜯겨나간 뿌리와 부러진 가지들의 비명이 난무한다. 이 부서진 한 그루의 육체 안에는 삶과 죽음이 온통 뒤엉켜 있어 그 둘의 이분법을 넘어서는 하나의 세계가 열린다. “나무는, 오직 나무로 지워”지게 된다는 이 유연한 나무의 병법을 통해 시적 주체는 상실과 병폐를 넘어서는 영원한 시지프스의 시 쓰기와 존립을 이루게 된다. 언제나 환한 볕보다는 그늘의 모서리를 맴돌던 시적 주체는 마침내 “한 점 배후도 없이” 맨몸으로 제 삶을 일궈내는 나무가 된다. 당신이 한낱 사람의 몸 사람의 말로 날 죽여 나는 음 사월 물푸레나무같이 푸르렀습니다 푸르고 튼튼하게 병났습니다 물푸레나무 곁에서 춤추는 물푸레나무같이 기쁨을 못 이겨, 나는 당신이 한없이 외로웠습니다 당신은 한낱 사람의 말 사람의 몸을 그쳐 날 다시 살려내고, 사랑 없는 사랑이 되어 떠났습니다 마른 가을이 살찐 여름을 단숨에 쓰러뜨리듯 나는 모든 기쁨을 힘없이 무찔러 이기고, 음 시월 물푸레나무같이 시들어 병 나았습니다 ―’물푸레나무같이’ 전문 당신이 건넨 “사람의 몸” “사람의 말”로 인하여 병들고 죽어가는 ‘나’는 기쁨에 못 이겨 춤을 추면서도 당신이 외로웠다고 말한다. 당신이 “사람의 말” “사람의 몸”을 그치자 ‘나’의 병은 나았지만 나는 사랑도 기쁨도 잃은 채 시들게 된다. 시인의 책무란 본래 사람의 것으로 아플 때 죽음과도 같은 병폐 속에서 도리어 시퍼렇게 살아나 그 한없는 외로움을 읊는 것이며, 사람의 것이 떠났을 때 힘없이 시들어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채 상실과 존재의 아포리아 속으로 망명하고야 마는 것이 아닌가. 시적 주체는 이제 자신의 생애보다 오래된 나무의 부동자세가 불러일으키는 바람의 무한수열을 느낀다. 그 바람은 상실과 존재의 원환으로 시시각각 얼굴을 바꾸며 나무의 안도 아니고 바깥도 아닌 곳에서 분다. 그 바람을 관장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바람보다 먼저 미치고, 먼저 아프고, 먼저 병들어버리는 자로서 시인뿐이다. 시적 주체는 필연적으로 역설의 폐허에서 기아와 고독과 광기에 휩싸일 수밖에 없으며 이러한 존재의 상실이야말로 새 존재를 생성해내기 위한 회로의 추동장치로 작동한다. 이영광은 병폐라는 허구적 장치를 통해 결국 시를 앓을 때만 존재가 도래할 수 있는 기반을 예비해두고 있었던 것이다. 아픔으로 인하여 시적 주체는 소진되거나 무화되는 것이 아니라 죽음으로 내려가는 순간에 시를 통한 삶을 발견함으로써 형이상학적 존재로 재탄생한다. 사랑과 상실, 기쁨과 슬픔, 병과 치유, 죽음과 생명이 마치 한몸처럼 붙어 있는 이 역설의 시학은 나무의 존재로 부활하는 이영광식의 신화를 재현하고 있다. 시적 주체는 바람이 일으키는 병폐의 징후를 통해 생사의 영원한 지평 위로 나무의 삶을 고양시키고 재편한다. 그때 들려오는 푸른 존재의 잎사귀 소리는 원래 자기 몸 안에서 울리던 소리였는지도 모른다. 천지의 울음을 내재하고 있는 나무의 존재론은 이제 이영광 시의 아이덴티티가 될 뿐 아니라 지금 여기의 시를 기억하는 주요한 하나의 축으로 자리할 것이다. 4. 역설의 폐허에서 자란 존재의 아포리아 2000년대 이후 미정형 주체들의 등장은 기존의 논리로 편입되기를 거부하고 서정시라는 장르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독자적인 체계를 생성했다. 스스로 자기 존재의 기원이 되고자 했던 그들의 시도는 난해함에 유폐된 것일지라도 기성을 극복했다는 점에서 새로운 발명의 의의를 인정받았다. 그러나 경제 위기와 정치적 추문이라는 2010년대의 현실에 직면한 시는 윤리적 문제에 봉착한다. 해체환상유희적 계보에 틈입한 윤리의 맥락 속에서 이영광은 가장 클래식한 발성과 감성으로 노래할 때만이 구축될 수 있는 자기 세계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어떤 담론보다 광활하고 가변적이며 모순적인 존재로서 ‘끝없는 사람’을 구현하는 시. 그가 세속성의 탐닉이나 언어의 실험에 동참하지 않고 자신의 좌표를 확보한 까닭은 사람이 가진 그 예외적 불가능성만이 시의 자기복제가 아님을 믿었기 때문이다. “너무 나 같아서 나 같지 않”고, “너무 나 같지 않아서 나 같”(‘불을 끄려고 한다’)다고 하는 시적 주체의 음성은 소외와 환멸로 점철된 우리 시대의 메아리다. 안도 아니고 밖도 아닌 세계의 트랙을 돌며 이영광은 미치고, 아프고, 병들어 있는 이상 징후들을 감지하고 그 상실의 집합들을 지속적으로 출몰시킨다. 병을 앓듯 자신을 오래도록 앓는 자만이 존재로 거듭날 수 있기 때문이다. 병의 중의성을 비롯한 역설적 언어의 고안은 시 안에 자신의 존재론을 도입하기 위한 장치이자 다의적 층위를 포섭하기 위한 그의 기획을 보여준다. 나무는 나무들 사이로 사라져버리고 마침내 한 무더기의 푸른빛만이 단지 거기에 남아 흔들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이영광의 숲은 마음껏 길을 잃도록 안내한다. 그는 병들어 있는 주체를 통해 그 존재 자체가 곧 황폐한 세계의 산물임을 증거하고, 현실 맥락 속에 은폐된 이력과 배후를 드러낸다. 그러나 병의 의미가 긍정과 부정의 이중적 층위로 활용되면서 더 깊이 병들어 죽어버리는 지경에 이를 때라야 그 죽음으로서 삶의 진리를 체득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했다. 소외되고 병든 주체의 착란과 광기는 가고 가고 또 감으로써만 이 견고한 세계를 꿰뚫고 장악하고 넘어설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덩어리의 푸른 흔들림으로 산화한 나무의 기투는 결국 “나는 자꾸자꾸 미쳐서 반드시 삶이 되고 말 것”(‘오일장’)이라는 다짐 속에서 두터운 자기 그늘을 겹겹이 축적해간다. “산은 산이다. 산은 산이 아니다. 다시 산은 산이다.”라는 선문답이 있다. 이 변증법에 의하면 이영광의 시도 나였다가, 나가 아니었다가, 다시 나로 재편됨으로써 영원성을 획득한다. 그래서 “산 채로 죽어보는 건 커다란 일”(‘동구릉’)이라고 그는 말한다. 이영광은 간다. 간다는 말에는 저 피안으로 향하기 위해 이곳의 정신을 놓아버렸다는 뜻도 숨어 있다. 이영광은 간다. 더 잘, 더 곱게 가기 위하여 그는 “나으려 하지 않는 병”을 쉽사리 떠나보내지 않는다. 언제까지고 “덜 살고 덜 살고 덜 살아서” “숱한 사랑의 말”(‘세한’)을 찾기 위함이다. 그것만이 시지프스가 되어 기꺼이 감당해내야 할 자신의 길이기 때문이다. 1) 알베르 카뮈, 오영민 옮김, 시시포스 신화, 연암서가, 2014, 201~208쪽. 2) 들뢰즈의 차이(difference)나 레비나스의 타자성(alterity)과 같은 숱한 담론에서 주체와 타자의 이분법을 극복하고자 한 것처럼 상호 존립 가능한 관계의 회복은 이영광 시에서 여전히 화두로 존재한다. 3) 최근 두 권의 시집 ‘나무는 간다’(창비, 2013)와 ‘끝없는 사람’(문학과지성사, 2018)을 대상으로 하며 시를 인용할 때는 작품의 제목만 표기한다. 4) 에스더서 4장 16절.
  • 남의 가방 해진 것만 봐도 슬프지만, 에둘러서… 타인의 슬픔 어루만지다

    남의 가방 해진 것만 봐도 슬프지만, 에둘러서… 타인의 슬픔 어루만지다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박 준 지음/문학과지성사/115쪽/9000원‘아랫집 아주머니가 병원으로 실려 갈 때마다 형 지훈이는 어머니, 어머니 하며 울고 동생 지호는 엄마, 엄마 하고 운다 그런데 그날은 형 지훈이가 엄마, 엄마 울었고 지호는 옆에서 형아, 형아 하고 울었다’(시 ‘연년생’) ‘어머니 어머니’하며 성숙한 줄 알았던 형은 결정적 순간엔 ‘엄마’ 하고 울었다. 만날 엄마만 찾던 동생은? 이번엔 형을 찾았다. 슬프다. 사무치도록 슬프다. 산문집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을 쓴 슬픔 공부학자 신형철 문학평론가가 쓴 발문 때문인지 슬픔이 더욱 구체화된다. 박준의 새 시집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다.지난 21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시인은 ‘왜 이렇게 슬프냐’는 질문에 “시 쓰기라는 행위가 슬픔을 잘 보내는 일 같다”라고 답했다. 남들보다 오래 기억하는 슬픔을 어느 순간에는 ‘쓴다’라는 행위를 통해, 그제서야 보내준다는 것. “제 천 가방이 찢어져 실밥이 뜯어져 있어요. 지하철을 탔는데 옆에 있는 분도 가방이 해진 거예요. 그런 거 보면 슬프거든요. 무심코 보더라도 그것을 보고 남은 이야기를 채워 나가는 게 제 일인 거 같아요.”‘우리가 함께…’는 예정보다 출간에 2년이 더 걸렸다. 첫 시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가 11만부, 산문집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16만부 등 전작들이 워낙 히트했던 탓일까. 첫 시집도 발문을 쓴 고 허수경 시인이 ‘더 엄격한 시집 원고를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말에 1년을 묵혔었다. “제가 그렇게 시를 많이 쓰지 않은 것도 있지만 원고의 편수는 다 찼는데, 허수경 선배가 저한테 했던 것처럼… 불안의 산물인 듯, 심중의 결과물인 듯 시집을 내는 마음이 조심스러웠어요.” 대중들에게 받은 사랑이 감사하지만 문학적으로 좋은 시를 쓰고자 하는 마음이 컸다. 그렇게 낸 시집은 초판만 3만부에 현재까지 5만부가 팔렸다. 이번 시집에서는 ‘슬픔’ 중에서도 ‘나’보다는 타인의 슬픔에 집중했다는 게 시인의 설명이다. 시집 제목이 담긴 시 ‘장마-태백에서 보내는 편지’ 같은 데서 ‘갱도에서 죽은 광부들의 이야기’가 나오는 식이다. 그러나 굳이 전작들과의 차이를 따지는 건 의미 없는 일 같다.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울어도 된다고 했던 그 감성은 그대로 이어지니까. “학교 다닐 때 선배가 그러더라고요. ‘너는 왜 만날 이런 시만 쓰냐’ 그래서 다른 시를 써 갔더니 ‘세상에서 제일 멍청한 게 자기 잘하는 거 두고 딴 거 하는 놈’이라고.” 박준의 시어(詩語)는 보통 사람에게서 온다. “쥐어뜯으면서 쓰는 말도 있지만 별 생각 없이 한 말인데 아름답고 자연스러운 말이 있어요. 별거 아닌 말인데 이 말은 어떤 문장을 만나면 말보다 훨씬 커지겠구나, 하는 것들.” 그런 말들을 가만가만 굴려 가며 만드는 게 그의 시다. 버스나 지하철 안에서 노래도 안 나오는 이어폰을 끼고서 가만히 타인의 소리를 수집한다는 그다. 문 닫은 식당을 보고, 남의 가방 해진 거 보고도 슬프면 ‘진지충’ 소리 딱 듣기 좋은 시대. 그런 시대에 왜 시인의 시가 흥할까. “누구에게나 진지가 있어요. 근데 그게 너무 갑자기 툭 튀어나오면 진지충 소리를 듣죠. 너무 급격하게 심해로 내려오거나 갑자기 올라오면 탈이 나잖아요? 그러지 않게 빙빙 돌면서 어떤 감정의 심연으로 가는 것. 공교롭게도 제 문장이 그런 식이네요?”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 하며 에둘러 말하는 것, 그것이 사람들이 박준의 시를 찾는 이유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손창민 ‘황후의 품격’ 깜짝 출연 “‘언니는 살아있다’ 김순옥 작가 인연”

    손창민 ‘황후의 품격’ 깜짝 출연 “‘언니는 살아있다’ 김순옥 작가 인연”

    손창민이 SBS ‘황후의 품격’에 깜짝 출연한다. SBS 드라마 ‘황후의 품격’은 어느 날 갑자기 신데렐라가 되어 황제에게 시집온 명랑발랄 뮤지컬 배우가 황실을 무너뜨리고 진정한 사랑과 행복을 찾는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손창민은 극중 황실병원 신경외과 의사 과장 ‘구필모’ 역으로 깜짝 등장할 예정이다. 제작진에 따르면 손창민의 출연은 ‘내 딸 금사월’, ‘언니는 살아있다’ 등의 작품을 집필한 김순옥 작가와의 인연으로 성사됐다. 손창민은 드라마 ‘오만과 편견’, ‘내 딸 금사월’, ‘엽기적인 그녀’, ‘언니는 살아있다’ 등을 통해 폭넓은 연기력을 선보이며 시청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명실공히 ‘명품 배우’라 불리우는 그가 보여줄 모습에 기대감이 더해지고 있다. 한편, 손창민의 깜짝 출연은 26일 방송되는 SBS ‘황후의 품격’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사진제공=블러썸 엔터테인먼트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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