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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간안내] ‘당신을 행복하게 하는 단 하나의 詩’ ··· 조서희

    [신간안내] ‘당신을 행복하게 하는 단 하나의 詩’ ··· 조서희

    시인 겸 문학평론가인 조서희 교수(동국대 문화예술대학원 주임교수)가 신간 ‘당신을 행복하게 하는 단 하나의 시’를 출간했다. 저자는 “살다 보면 꼭 여민 틈새로 켜켜이 쌓인 그리움들이 툭 터져 나와 마음을 힘들게 할 때가 있지요. 그럴 때가 시를 읽을 때입니다”고 말한다. 끝이 보이지 않는 깊은 절망 속에 지칠 대로 지친 심신을 뉘이고 있을 때, 우리는 우연히 펼쳐 든 시집 한 권에서 위로와 희망을 찾는다. 저자는 이 책에서 사랑과 상처, 눈물과 그리움, 슬픔과 고통, 화해와 용서 그리고 행복에 관한 시를 소개하고 있다. 백석과 청마의 이야기가 있는 통영, 김용택의 섬진강 매화꽃길도 따라간다. 우리는 지금 어떤 사랑을 하고 있을까. 저자은 ‘사랑은 상처를 허락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사랑은 이렇게 두 팔을 활짝 벌리고 오지 않을 너를 맞이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저자는 랄프 왈도 에머슨의 ‘무엇이 성공인가’, 심종덕의 ‘양평 두물머리’등 45편의 시를 이 책에 싣고 있다. 한편 한편에 시평을 써 시를 이해하게 하고 시를 읽는 이에게 더 깊이 있는 울림을 가져오게 한다.(아마존북스刊 / 신국판(142×210) 256쪽 / 1만3000원)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 태연, 욕설 메시지 “어디서 추태를 부려” 그녀의 대처는?

    태연, 욕설 메시지 “어디서 추태를 부려” 그녀의 대처는?

    가수 태연이 자신이 받은 욕설 메시지를 공개했다. 17일 태연은 자신의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통해 자신이 받은 DM(다이렉트 메시지) 내용을 공개했다. 태연은 앞서 자신이 읽은 시집의 인상적인 페이지를 찍어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게재한 바 있다. 이를 본 한 네티즌은 “그만 하랬지. 더럽게 어디서 추태를 부려. 남자가 그리도 없냐. 있을 때 잘 하지” “인스타그램은 네 팬들과 소통하는 공간 아니니? 미련 보이면서 추악한 짓 하는 꼴 팬들에게 보여주고 미안하지도 않음? 이것도 좋다고 같은 시집 산다고 하는 네 팬들은 그냥 호구니?”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또한 욕설도 담겨 있다. 태연은 별다른 메시지를 덧붙이진 않았지만, 발신인과 메시지 내용은 숨김없이 공개한 것만으로도 강경한 대응이라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태연이 공개한 해당 악플러의 계정은 현재 삭제된 상태다. 한편 태연은 지난 3월 ‘사계’ 발표에 이어 일본 미니 앨범 ‘보이스’를 발표했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세계에 5·18 처음 알린 김준태의 詩 재조명… 日평단 “3·1운동의 연장선”

    세계에 5·18 처음 알린 김준태의 詩 재조명… 日평단 “3·1운동의 연장선”

    1980년 5·18광주민주화운동 당시의 참상을 외부 세계에 처음 알린 김준태(71) 시인의 작품들이 일본의 유력 시 전문지를 통해 집중적으로 조명됐다. 일본의 시 전문지 ‘시와 사상’은 5월호에 김 시인의 시집 ‘광주로 가는 길’ 일본어판에 대한 서평을 크게 다뤘다. 1972년 창간된 ‘시와 사상’은 일본의 대표적인 시 전문잡지다.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고교 교사였던 김 시인은 1980년 6월 전남매일에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의 일부를 게재했다가 해직당하고 투옥됐다. 시집 ‘광주로 가는 길’은 지난해 10월 나고야 후바이샤를 통해 처음 번역 출간됐다. 일본의 시인이자 한국문학 연구자인 사가와 아키(65)는 ‘고난에서 창조로-독립운동 기념의 해에 광주로 가는 길을 읽는다’라는 제목의 서평에서 광주민주화운동의 시대정신과 이를 담아낸 김 시인의 시가 올해 100주년인 3·1운동의 연장선에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문재인 정부가 역사문제에 대해 엄격한 태도를 보이는 것도 한국인의 마음 깊은 곳에 있는 독립정신과 관계가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현대 문학 시초와 친일파, 그 사이… 춘원 이광수 전집 출간

    현대 문학 시초와 친일파, 그 사이… 춘원 이광수 전집 출간

    한국 현대 문학의 시초인가, 친일 반민족 행위자인가. 항상 논란의 중심에 있는 춘원 이광수(1892~1950) 전집이 출간된다.태학사는 춘원연구학회와 함께 춘원이 남긴 모든 글을 묶은 ‘춘원 이광수 전집’을 기획, 1차분 ‘무정’, ‘개척자’, ‘허생전’ 세 권을 선보인다고 15일 밝혔다. 춘원 전집은 1962년 삼중당(전 20권), 1979년 우신사(전 11권)에서 발간된 적이 있으나 당시 편찬자의 판단에 따라 배제·누락된 글, 이후 새로 발굴된 글들을 모두 모았다는 게 태학사 측 설명이다. 1차분 세 권에 이어 목록이 확정된 것은 근대 문학의 제1형식으로 불리는 ‘재생’, ‘흙’, ‘유정’ 등의 장편들과 ‘마의태자’, ‘이차돈의 사’, ‘단종애사’, ‘이순신’ 등 삼국시대부터 조선왕조에 이르는 역사 소설 등 총 25권이다. 이어 시, 산문, 평론 등을 모아 춘원 70주기인 내년 하반기까지 30여권으로 완간할 계획이다. 이번 전집에 새롭게 수록된 작품들은 25권 ‘사랑인가 외’에 수록된 일본어 소설 14편이다. 그들 중 단편 ‘아들의 원수’는 미완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이번에 나머지 1회분을 찾아 완결된 소설임을 확인했고, ‘처’도 2회분을 더 찾아내 보완했다. 한국 최초의 현대소설인 제1권 ‘무정’에 이어 제2권 ‘개척자’는 한국 소설 최초의 여성독립선언에 가깝다. ‘무정’과 달리 ‘개척자’는 작중 주인공이 여성이다. “우선 딸이란 무엇인지, 아내란 무엇이요 지아비란 무엇인지, 시집이란 무엇인지를 생각해보아야 하겠고, 무엇보다도 사람이란 무엇인지 생각해보아야 하겠다.(중략) 내 두뇌로, 내 이성으로 생각해보아야 하겠다.” 이러한 주인공 ‘성순’의 선언을 두고 책 감수를 맡은 정홍섭 아주대 다산학부대학 교수는 “이 문장들이 매일신보에 실린 날은 1918년 2월 5일로, 여성 해방이라는 선구자적 의식을 담았던 나혜석의 ‘경희’가 같은 해 ‘여자계’ 3월호에 발표된 것을 보더라도 ‘개척자’의 선구자적 의미를 인정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연암 박지원의 작품을 각색한 제3권 ‘허생전’은 순 한글의 언문일치체로 쓰여져 눈길을 끈다. 전집발간위원장이자 춘원연구학회장인 송현호 아주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15일 전화 인터뷰에서 “친일과 독립·민족운동 행적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논의를 할 수 있는 공론의 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며 출간 의의를 밝혔다. 2006년 창립된 학회의 명칭이 춘원학회가 아닌 춘원연구학회가 된 것도 여기에서 기인한다. 춘원 전집 발간 작업은 2015년 9월 처음 중지를 모은 이래, 2016년 9월 발간위원회와 실무위원회가 구성되며 본격 추진됐으나 출판 경비와 출판사를 구하는 일로 한때 난항을 겪었다. 송 교수는 “옛날에 출간된 것들은 세로쓰기에 오늘날의 어법과는 달라 현대어로 만들어 학생들이 읽기 쉽게 하는 데 중점을 뒀다”며 “30~50대 젊은 연구자들이 여러 판본을 토대로 저본을 확정 짓고, 실명으로 해당 작품을 감수·해설하게 했다”고 밝혔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중국에 시집 보낸다”며 파키스탄 여성들 성매매 조직에 넘겨

    “중국에 시집 보낸다”며 파키스탄 여성들 성매매 조직에 넘겨

    6개월 전 파키스탄 동부 파이살라바드에 사는 기독교도 여성 ‘소피아’가 중국인 기독교도 남성과 결혼했을 때 모든 것이 완벽해 보였다. 그녀는 19세로 미용 기술자였고, 신랑은 21세 화장품 판매사원이었다. 소피아 가족은 가난했지만 신랑이 결혼 비용을 모두 부담해 한없이 기뻤다. 신랑이 까다롭기 그지 없는 파키스탄 전통을 조차 하자는 대로 다 하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신부는 새로운 인생이 열린다며 기껍게 집을 떠났다. 그런데 한달도 안돼 친정에 돌아왔다. 파키스탄 여성을 중국인의 성노예로 인신매매하는 조직에 넘겨진 것으로 믿고 있다. 사실 결혼 전에도 조금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긴 했다. 중국인 신랑이 엄청 서두르는 게 눈에 보였다. 그런데 그는 중국 남자는 원래 모든 비용을 부담하니 따르라고 해 가족들도 따랐다. 중국으로 떠나는 여행 서류도 준비되지 않았는데 신랑은 한사코 라호르의 방갈로로 가자고 했다. 거기 가보니 자신들과 비슷한 신혼부부가 몇 커플 있었다. 파키스탄 신부들은 중국어를 배우게 했다. 곧 소피아는 남편이 기독교도도 아니며 자신을 신부로 여기며 아끼지도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언어로 소통하지 않는데도 그는 한사코 성관계만 맺으려 들었다. 먼저 중국에 시집 간 친구에게 물었더니 그녀 역시 남편 친구들로부터 성관계를 강요당하고 있다고 했다. 결혼중개업자에게 그만 두겠다고 했더니 부모들이 결혼 비용을 모두 물어내야 한다고 했다. 부모는 그렇게 못하겠다며 라호르로 찾아왔다. 그러자 중개업자는 그제야 돌아가라고 했다. 기독교 인권단체 활동가인 살림 이크발은 이렇게 중국 남성에 시집보내는 식으로 1년 만에 700명 가량의 파키스탄 여성들이 팔려간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몇주 동안 가톨릭 사제 한 명을 비롯해 스무여명의 중국인과 파키스탄 거간꾼들이 사기결혼을 주선하려 한 혐의로 파키스탄 연방수사국(FIA)에 체포됐다고 영국 BBC가 15일 전했다. FIA는 “중국인 범죄자 갱단이 파키스탄 여성을 결혼으로 꾀어 성매매 조직에 넘겼다”고 말했다. 이들은 한 갱단원이 발전소 엔지니어로 위장해 결혼한 다음 중국에 데려가 인신매매 조직에 1만 2000~2만 5000달러를 받고 넘겼다고 밝혔다.가난하고 지역사회에서도 별다른 대우를 받지 못하는 파키스탄 기독교도 여성들은 인신매매 조직원들에게 몇백 달러나 몇천 달러만 부모에게 넘기면 손쉽게 결혼에 동의해 손쉬운 타깃이 되고 있다. 파키스탄 기독교도 인구는 250만명으로 전체의 2%도 되지 않는다.다만 최근에는 무슬림들도 이런 사기결혼의 타깃이 되고 있다. 중국 당국은 파키스탄 여성들이 집창촌에 팔려간다는 사실을 부인하며 “일부 매체가 허위 사실을 날조하고 헛소문을 퍼뜨린다”고 반박하곤 했다. 하지만 이번주에 올해 들어 파키스탄 신부들의 비자 신청이 140건으로 갑자기 늘었다는 점을 인정했다. 이 정도 양은 지난해 전체 건수에 맞먹는다. 이슬라마바드 주재 중국 대사관의 한 관계자는 현지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적어도 90건 정도는 불허했다고 밝혔다. 이렇게 중국에 시집 가는 파키스탄 여성의 숫자가 늘어난 것은 중국인들이 이 나라에 많이 입국하는 상황을 일정 부분 반영하는 것일 수도 있다. 중국은 중국-파키스탄경제회랑(CPEC)의 일환으로 항만과 도로, 철도, 에너지 프로젝트에 많은 투자와 인력을 보내고 있다. 두 나라는 최근 밀착하고 있으며 중국인이 도착하면 곧바로 비자를 발급해줘 CPEC에 연결되지 않은 기업인과 인력들이 물밀듯이 파키스탄에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알리 임신고백 “세 식구가 인사드립니다” [공식]

    알리 임신고백 “세 식구가 인사드립니다” [공식]

    가수 알리가 임신 사실을 고백했다. 지난 14일 방송된 SBS ‘본격연예 한밤’에서는 가수 알리의 결혼식 현장 모습이 공개됐다. 하얀 드레스를 예쁘게 입은 알리는 “알리 시집갑니다”라며 ‘한밤’ 제작진을 향해 밝게 인사했다. 앞서 지난 11일 알리는 서울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에서 연인과 결혼식을 올렸다. 알리의 남편은 평범한 직장인으로, 두 사람은 3년 동안 만난 것으로 전해졌다. 알리는 소속사를 통해 “희로애락을 함께할 사람을 찾게 돼 기쁘다. 함께 하는 기쁨이 제게 깊이 있는 음악과 또 다른 세상을 경험시켜줄 것을 기대한다. 오랫동안 지켜봐 주신 팬 여러분, 앞으로 더 성숙한 모습 보여드리겠다. 감사하다”고 결혼 소감을 전하기도 했다. 알리는 “기분이 어떠냐”는 질문에 “떨리진 않는다. 아직도 공연하러 가는기분이 든다. 아마 입장할 때 실감이 나지 않을까 싶다”고 전했다. 이어 “이 자리에서 말씀드려도 되겠죠?”라며 “세 식구가 여러분께 인사드린다”고 임신 사실을 고백했다. 알리는 “황금돼지띠인 만큼 여러분들께 복을 가져다주는 아이인 것 같다. 많이 축하해주시고 예뻐해주세요. 잘 살겠습니다”라고 인사를 전했다. 사진=SBS ‘본격연예 한밤’ 방송 캡처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김용택 어머니·나태주 아버지 ‘예술가의 장한 어버이상’ 수상

    문화체육관광부는 8일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김용택 시인 어머니 박덕성(91)씨와 나태주 시인 아버지 나승복(93)씨 등 6명에게 올해 ‘예술가의 장한 어버이상’을 수여했다. ‘섬진강 시인’ 김용택 시인의 어머니 박덕성씨는 시인이 ‘내 모든 시는 어머니에게서 나왔다’고 고백할 정도로 시인의 시 세계에 원형적인 영향을 끼쳤다. 나태주 시인의 아버지 나승복씨는 가난에도 아들이 시집을 출간할 수 있도록 쌀 열 가마니 값을 주는 등 물심양면으로 지원했다. 한국인 최초로 워싱턴 국제콩쿠르에서 1위를 차지한 이경선 바이올리니스트의 어머니 최석순(82)씨는 작은 가게 한편에 연습실을 따로 마련해주며 딸을 키웠다. 조묘자(79)씨는 불의의 사고로 시각장애인이 된 아들 이상재씨가 미국 3대 명문 음악학교 피바디 음대 최초의 시각장애인 음악 박사, 세계적인 클라리넷 연주자가 되기까지 헌신적으로 지원한 어머니다. 김정순(68)씨는 서춘영·서은영·서진희 세 딸을 모두 국악인으로 키워낸 어머니다. 김세연은 세계적인 발레단에서 수석 무용수로 활약 중이다. 아버지 조명상(79)씨는 어려운 형편에도 딸을 위해 남대문 새벽시장도 마다하지 않고 뒷바라지했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천변풍경·성북동 비둘기… ‘저항의 아지트’에 깃든 예향

    천변풍경·성북동 비둘기… ‘저항의 아지트’에 깃든 예향

    서울신문이 서울시,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9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2회 성북동 편이 5월의 첫 주말인 지난 4일 성북동 일대에서 진행됐다.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 6번 출구 평화의 소녀상 앞에 모인 참가자 40여명은 작곡가 채동선이 살던 집~시인 김광섭 집터~시인 조지훈 집터를 차례로 돌고 돌아 석가탄신일을 일주일 앞두고 화려한 연등의 숲을 이루는 길상사에서 시인 백석과 자야의 연가를 떠올렸다. 이어 소설가 이태준의 수연산방~시인 한용운의 심우장~소설가 박태원 집터로 이어지는 코스를 2시간여 동안 더듬었다. 송재민 해설사가 서울미래유산 투어에 첫선을 보였다.성북동은 근현대 문학과 예술의 고향 같은 동네다. 수많은 문인, 예술가가 이곳에 깃들였다. 시인 한용운·김일엽·김기진·김광섭·조지훈·백석의 집터와 사랑이 남았고 소설가 염상섭·이태준·박태원·조정래가 살면서 주옥같은 작품을 창작했다. 작곡가 채동선·윤이상과 화가 김용준·김기창·김환기·박래현·변종하·김향안의 예향이 진동한다. 오세창, 이홍근, 전형필, 최순우, 임종국의 생애가 남았다. 어쩌다 이다지 지독한 문예의 혼이 성북동에 깃들었을까. 조선시대 한양도성의 북쪽 큰 문 숙정문과 동쪽 작은 문 혜화문 구간 밖 첫 동네 성북동은 누에치기의 풍요를 기원하는 선잠단이 있는 엄숙한 공간으로 역사에 등장한다. 선잠단은 종묘와 사직, 선농단과 더불어 왕실의 주요 제례공간이다. 태종 때 단을 쌓았고, 왕비들이 찾아와서 선잠제향을 지내던 곳이다. 선잠단 옛 터는 복원 중이고, 선잠박물관이 이를 기리고 있다.성북동은 영조 때 도성을 지키는 어영청 소속 군사들에게 논과 밭을 나눠준 북둔(북쪽 진지)이기도 했다. 그러나 숲이 우거지고 계곡이 깊어서 농사를 짓기 어려워지자 주민들에게 생포목을 삶아 표백하는 일과 메주를 쑤는 일을 줘 생계를 도왔다. 서울역사박물관에 있는 ‘성북동포백훈조계완문절목’이라는 책자에 포백(베나 비단)과 훈조(메주)를 관아에 바치던 계(조직)의 운영방식과 노동조건 등이 상세하게 기록돼 있다. 오늘날 마전터와 ‘메주소리가 북적북적 한다’고 해 붙여진 북정마을 지명의 기원이다. 성안 사람들에게 내다 팔 목적으로 복숭아와 자두를 심었는데 18세기 후반 ‘북둔도화’(北屯桃花)라는 말이 회자할 정도로 도화가 만발, 시인문객과 상춘객의 발걸음이 들끓었다. 이때부터 조선 3대 정원 중 하나로 꼽히는 성락원(城樂園) 같은 별서가 들어섰다. 성락원이라는 이름은 ‘도성의 풍광을 즐기는 동산’이라는 뜻이다. 대개의 별서가 성 안에서 성 밖을 내다보지만 성락원은 거꾸로 성 밖에서 성 안을 들여다보는 특이한 지역성을 갖고 있다. 일제강점기가 절정을 이룬 1930년대 성북동에 근대 문예의 새벽이 활짝 열렸다. 작곡가 채동선이 1931년 가장 먼저 성북동에 자리잡았고, 만해 한용운이 1933년 심우장에 거주했으며, 상허 이태준이 수연산방을 신축하면서 문단의 기린아들로 결성된 구인회의 회동이 잦았다. 성북동에 살던 오성 장승업의 맥을 이은 문인화가 김용준이 노시산방(옛 수향산방, 현 수월암)으로 이사 온 건 1934년의 일이다. 음악가-시인-소설가-화가의 순으로 성북동 예술가마을에 입주한 셈이다. 성북동을 찾은 문인, 예술가들의 면면을 뜯어보면 민족주의와 저항성이 유독 강한 게 특징이다. 도성을 등진 성북동의 지형에서 연유한 것인지도 모른다. 일제강점기 나라 잃은 예술가들이 도성을 떠나 도성 밖으로 피신한 격이다. 만해의 심우장은 아예 도성을 등지고 집을 지었는데, 왜놈의 꼴을 보고 싶지 않아서였다고 한다. 마치 빼앗긴 나라의 수도 밖으로 망명한 사람들 같았다.성북동 사람들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3·1만세 당시 한용운은 독립선언서의 공약삼장을 썼고, 오세창은 독립선언서 인쇄·배포의 총책임자였다. 성락원을 별궁으로 쓴 의친왕 이강도 끝까지 항일의지를 버리지 않은 왕조의 자존심이었다. 임시정부가 이강을 중국으로 망명시키려고 여러 차례 시도할 정도였다. 일본 게이오대학 유학생 염상섭은 비록 불발에 그쳤지만 오사카 독립선언대회의 독립선언서 작성자였다. 1924년 5월 4일자 시대일보에는 ‘성북동에 둔 의열단 근거’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릴 정도로 ‘불령선인’(不逞鮮人)들이 집결했다. 1936년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우승자 손기정 선수의 일장기 말소사건의 주인공 이길용 동아일보 기자도 한용운, 전형필, 이태준과 교류한 뼛속까지 성북사람이었다. 만해가 만년을 보낸 심우장은 ‘조선 유일의 조선 땅’이라고 일컬어졌다. 성북동은 저항의 아지트였다. 이 중 오세창-전형필-최순우는 문화보국의 기치 아래 성북동에 모인 삼총사였다.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사립미술관 간송미술관(보화각, 북단장)을 선잠단이 있던 북단에 세워 일본과 외국으로 팔려 나가는 우리 문화재 5000여점을 지켰다. 국립박물관에 버금가는 소장목록을 자랑한다. 간송미술관 길 건너 간송의 스승 오세창 집터와 간송의 평생 동지였던 미술사학자 최순우의 옛집이 지척이었다. 오세창의 소장품을 보관했고 사후 부인이 살았던 성북동 128번지 옛집은 허물어 사라졌지만, 바로 옆 최순우 옛집은 2002년 내셔널트러스트 시민문화유산 제1호로 보존되고 있다. 민족문학의 주류를 형성한 ‘구인회’와 문예지 ‘문장’ 그리고 청록파가 성북동에서 탄생했다. 저항의식을 품은 문화예술인들이 대거 성북동으로 거주지를 옮기면서 성북동이 식민지문학을 벗어나 한국적인 가치를 구현할 수 있는 대안 문화공간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1933년 결성된 구인회는 이태준을 좌장으로 정지용, 이효석, 김기림, 김유정, 이상, 박태원 등 이름 그대로 아홉 명의 예술가가 이태준의 집 수연산방을 근거지로 활동한 순수문학 단체였다. 구인회 주도로 발간된 문장을 통해 청록파’ 조지훈, 박목월, 박두진이 등단했는데 해방 후 조지훈의 성북동 집 방우산장에 모여 발간한 시집 ‘청록집’에서 딴 이름이다. 조지훈은 수필 ‘방우산장기’에서 자신이 기거했던 모든 집을 방우산장이라고 지칭하면서 “마음속으로 소를 한 마리 키우면 직접 키우지 않아도 소를 키우는 것과 다름없다”는 뜻에서 붙였다고 설명했다. 조정래는 덕수교회 옆에 살면서 장편 대하소설 ‘한강’을 썼다. 우리나라의 선구적 작곡가 중 한 명인 채동선은 성북동에서 살면서 모두 12편의 가곡을 작곡했는데 그중 8편이 정지용의 시를 가사로 사용했다. 가곡 ‘고향’은 당대 지식인들의 최고 인기곡이었다. 월북한 정지용의 고향이 금지곡이 되면서 채동선의 곡은 이은상의 ‘그리워’, 박화목의 ‘망향’이라는 다른 가사가 붙여져 불렸다. 세계적인 음악가의 반열에 오른 윤이상도 1953년부터 4년여 조지훈의 집 개울 건너편에 살았다. 조지훈의 시 ‘고풍의상’과 박목월의 ‘나그네’에 곡을 붙였다. 김기창과 김환기, 국내 동양화와 서양화의 양대 거두 모두 성북동 사람이었다. 1913년 동년배인 두 사람은 나란히 성북동에 보금자리를 꾸몄다. 운보 김기창은 동반자 우향 박래현과 함께 살던 집 이름을 운보의 ‘운’과 우향의 ‘우’를 각각 따서 지었다. 운우미술관이다. 한국 추상미술의 아버지로 불리는 수화 김환기가 이상의 전 부인 변동림(김향안으로 개명)과 살림을 차린 곳이 수향산방이다. 수화의 ‘수’와 향안의 ‘향’을 따 수향산방이라고 불렀다. 본래 문인화가 김용준의 집이었는데 늙은 감나무가 있다고 해 이태준이 노시산방이라고 명명했던 바로 그곳이다. 집터는 흔적도 없고 수월암으로 변했다. 또 한 명의 서양화단의 거목 변종하도 말년을 성북동에서 보냈다. 그의 작업실은 석은 변종하기념미술관이 됐다. 김환기는 친구 김광섭의 ‘저녁에’라는 시의 마지막 구절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을 인용한 동명의 그림을 남겼다. ‘성북동 비둘기’를 발표한 시인 김광섭은 “…성북동 산에 번지가 새로 생기면서/본래 살던 성북동 비둘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라고 터전을 잃은 성북동 비둘기의 상실을 노래했다. 이 작품으로 성북동을 대표하게 된 시인이 1961년부터 1967년까지 살았던 건축가 김중업이 설계한 집은 빌라로 변했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남긴 시인 백석은 연인 자야(김영한)와의 사랑을 맺지 못했고 성북동과도 인연이 닿지 않았다. 그러나 자야가 ‘무소유’의 법정 스님에게 시주한 길상사를 통해 영겁의 인연과 불멸의 사랑을 이어 갔다.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장사진 김학영 연구위원 ■ 다음 일정: 제3회 창신동 ■ 일시 및 집결장소: 5월 11일(토) 오전 10시 동대문역 7번 출구 앞 ■ 신청(무료): 서울미래유산 홈페이지(futureheritage.seoul.go.kr)
  • 문학사상 새 사장에 고승철 씨

    도서출판 문학사상(회장 임홍빈)은 7일 고승철 전 나남출판 사장을 신임 사장에 선임했다고 밝혔다. 고 신임 사장은 경향신문 파리특파원, 동아일보 출판국장, 나남출판 사장 등을 역임한 언론·출판인이다. ‘소설 서재필’, ‘개마고원’, ‘여신’, ‘은빛 까마귀’ 등 장편소설과 시집 ‘춘추전국시대’를 낸 문인이기도 하다. 문학사상은 1972년 창간된 월간 문예지 ‘문학사상’과 ‘총·균·쇠’를 비롯한 단행본을 펴내는 종합 출판사다.
  • “일기 셀프 연재… 스스로 직장 선물하는 느낌”

    “일기 셀프 연재… 스스로 직장 선물하는 느낌”

    4월 한 달, 구독료 1만원을 냈더니, 각양각색의 글이 메일함으로 들어왔다. ‘이슬아’라는 발신자는 ‘할아버지가 있어서 기뻐요’를 ‘깊어요’로 쓰는 어린 사촌 동생의 이야기, 서평, 누군가에 대한 인터뷰, 웹툰을 보내왔고, ‘문보영’이라는 발신자는 시 또는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픽션인지 알 수 없는, 우롱당하는 재미가 있는 글을 보내왔다.독자의 메일함으로 직접 원고를 보내는, 이른바 ‘셀프 연재’를 이어 가는 27세 동갑내기 작가 둘을 만났다. 지난해 2월,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학자금 대출 2500만원을 갚겠다”며 연재를 선언했던 이슬아 작가는 그렇게 써내려 간 글로 본인이 차린 독립출판 헤엄출판사에서 ‘일간 이슬아 수필집’과 그림 에세이 ‘나는 울 때마다 엄마 얼굴이 된다’(문학동네)를 냈다. 등단 후 최단기 김수영문학상 수상에 ‘유튜브 브이로그를 하는 시인’으로 알려진 문보영 시인은 지난해 12월부터 연재를 시작해 태국살이, 동료 시인과의 교환 일기 등을 선보이고 있다. 그사이 이 작가는 대출 빚을 다 갚았고, 문 시인은 최근 첫 산문집 ‘사람을 미워하는 가장 다정한 방식’(쌤앤파커스)을 냈다. 4월분 연재를 마친 4월의 마지막 날, 서울 서교동의 한 카페에서 두 사람을 만나 ‘셀프 연재’와 지속 가능한 글쓰기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셀프 연재,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이슬아 작가(이하 이) 웹툰계에 애매하게 발을 걸치던 시기가 있었어요. ‘잇선’이라는 만화 작가 친구와 고정적이지 않은 수입에 대해서 자주 얘기했어요. 잇선씨가 작은 사업 아이템이 있다고, 일기를 메일로 독자에게 직거래하는 서비스 어떠냐고 하더라고요. 아무도 안 하고 있고, 심지어 초기 자본이 전혀 들지 않는다고. 마침 학자금 대출을 갚아야 하던 시기여서, 갑자기 ‘파박’ 시작했어요. 문보영 시인(이하 문) 저는 슬아씨가 하니까….(웃음) 심심해서요. 작가들은 문예지가 무대인데, 그 무대가 낡다고 느껴졌어요. 시를 발표했을 때, 누군가 읽는다는 느낌을 받아야 되는데 그렇지가 않더라고요.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거기 내는 글을 엉망으로 쓰게 되는 거예요. 그러다가 슬아씨가 하는 걸 보게 됐어요. 일기 쓰는 사람을 원래 좋아하는데, 일기로 돈 버는 사람은 더 좋았어요. -셀프 연재의 장점은 무엇인가요. 문 등단하고 스트레스를 받았던 게 글 청탁이었어요. 출판사의 연락을 받아 문예지라는 무대에 오르거나 시집을 내는 구조잖아요. 청탁을 받는 과정에서 권력이 생기는데요, 누군가한테 잘 보여 청탁을 받을 수도, 밉보여서 뺏길 수도 있다는 생각에 위협을 많이 느꼈어요. 전화 받는 게 무서워서 아예 도서관 사물함에 휴대전화를 넣고 다니기도 하고요. 셀프 연재를 하니까 그런 권력을 악용하는 사람들을 쳐낼 수 있는 힘이 생기더라고요. 이 진짜 중요한 문제인거 같아요. 등단을 안 해서 이 구조를 경험하진 않았지만, 책 내는 구조는 기본적으로 똑같잖아요. 청탁을 받지 않고 고용되지 않는 날들이 너무 불안했기 때문에 스스로한테 안정적인 직장을 선물하는 느낌이에요. 20대 초반부터 카페 알바, 누드모델, 글쓰기 선생님처럼 다른 일을 많이 했는데 다른 일을 줄여서 글 쓸 시간을 확보할 수 있는 것도 좋았어요. 말로 돈 벌기 싫고, 싫은 지면에 글 쓰기 싫은데 내가 가장 문제의식을 느끼는 지점에 대해 허락받지 않고 쓸 수 있다는 점. -스스로 만든 글 감옥 속에서 힘들지 않나요. 이 CS(Customer Service)가 힘들어요. 첫 달에는 메일 발송 오류 같은 것도 많이 있고요. 입금, 수금 관련 일도 많아요. 가끔씩 사람들이 제 글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할 때도 있어요. ‘돈을 냈는데 서비스에 문제가 있다’는 내용의 글이 굉장히 길게 정돈된 언어로 오면 굉장히 공을 들여서 빈틈없는 장문의 사과를 해야 해요. 욕먹고 싶지 않다는 두려움을 갖고 글을 쓰는 게 힘든 거 같아요. 문 연재를 하니까 남의 시선을 신경 쓰게 되더라고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글은 블로그에 싸지르는 글인데, 그 글을 사람들한테 이메일로 보낼 때는 찝찝한 거예요. 파편적이고, 완성되지도 않고, 주제도 안 잡히는 글을 사람들이 재밌어 할지 모르겠고…. 그런 생각들이 저를 갇히게 하기도 해요. 그래서 최대한 SNS에 안 들어가고, 안 보고 그래요. 그래서 죄송해요. 답장도 빨리 못하고.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요. 문 문예지를 시작했는데요. 스스로 마감을 만들어서 거기 넣을 시를 많이 써 두려고요. 일기랑 소설도 있고, 노래 가사도 쓸 생각이에요. 이 여름까지 연재를 지속하고, 올해 ‘서울 아트북 페어’에 낼 단행본을 제작할 거예요. 연재 끝나고 부지런히 책 작업도 하고요. 어떤 물성으로 만들까 고민하고 있어요.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불타는 청춘’ 김부용, 최민용에 ‘막내로 사는 법’ 전수 “이런 상황에..”

    ‘불타는 청춘’ 김부용, 최민용에 ‘막내로 사는 법’ 전수 “이런 상황에..”

    ‘불타는 청춘’ 김부용이 최민용에게 ‘불청에서 막내로 사는 법’을 전수하며 티격태격 톰과 제리 케미를 선보인다. 7일 방송되는 SBS ‘불타는 청춘’에서 청춘들은 곡성의 마지막 아침을 맞아 곡성 쌀과 참게장으로 아침상을 준비했다. 청춘들은 막내라인 부용과 민용, ‘용용 브라더스’에게 식사에서 빠질 수 없는 계란후라이를 주문했다. 부용은 민용과 나란히 앉아 계란후라이를 부쳤다. 부용은 자신만의 노하우를 민용에게 알려줬지만 그는 흘려들었다. 하지만 “계란후라이가 제일 쉬워 보이지만 어렵다”면서 형, 누나들의 반숙, 완숙 등 계란후라이 취향을 꼼꼼히 외우는 부용의 모습에 신뢰의 눈길을 보냈다. 광규가 밥을 가지고 오다가 실수로 넘어지자 민용은 달려가 상태를 확인했다. 이 모습을 본 부용은 흐뭇해하며 “형, 누나들이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하니 저런 상황이 오면 지금처럼 막내가 달려가 안아주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청춘들이 본격적으로 식사에 돌입하려고 하자 부용은 민용에게 은밀한 손짓(?)을 보냈다. 민용은 처음에 이해하지 못하다 부용의 귀띔을 알아차리고 청춘들에게 물을 나눠줬다. 이를 본 박선영은 “부용이 네가 가르친 거냐”며 물었고 부용은 “하나씩 가르쳐야죠”라며 귀여운 허세를 보였다. 민용은 “시집살이가 이런 거냐”며 투덜대면서도 손수 물을 전달하며 성실히 막내 업무를 수행했다. 한편 SBS ‘불타는 청춘’은 7일 오후 11시 10분에 방송된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문학사상 신임 사장에 고승철

    문학사상 신임 사장에 고승철

    도서출판 문학사상은 7일 언론·출판인 출신 고승철(65)씨를 사장으로 선임했다. 신임 고 사장은 경향신문 파리특파원, 동아일보 출판국장, 나남출판 사장 등을 역임했다. 장편소설 ‘소설 서재필’, ‘개마고원’, ‘여신’, ‘은빛 까마귀’와 시집 ‘춘추전국시대’를 쓴 문인이기도 하다. 문학사상은 1972년 창간된 월간 문예지 ‘문학사상’과 재레드 다이아몬드 교수의 고전 ‘총, 균, 쇠’ 등의 단행본을 출판하는 종합출판사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어린이 책] 동시집으로 만나는 가수 김창완의 동심

    [어린이 책] 동시집으로 만나는 가수 김창완의 동심

    무지개가 뀐 방이봉방방/김창완 글/오정택 그림/문학동네/96쪽/1만 1500원“감히 고백을 하자면 어른이 되어서 더 알게 되는 세상은 그리 대단하지도, 또 그렇게 영광스럽지도 않아요. 나이가 들면서 얼마나 많은 별을 잃어버리고, 얼마나 많은 강물을 흘려버리고, 얼마나 많은 것이 하잘 것 없어졌나요. 오늘이라도 우리가 감히 폐기해버리려고 했던 동심을 다시 만난다는 게 보통 큰 축복이 아니에요.”가수 겸 연기자에 이제는 동시집을 낸 시인인 김창완은 이렇게 말했다. 지난달 29일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열린 동시집 ‘무지개가 뀐 방이봉방방’ 출간 간담회에서다. 그는 2013년 동시 전문지 ‘동시마중’ 3·4월호에 ‘어떻게 참을까?’, ‘할아버지 불알’ 외 3편의 동시를 발표하면서 시인이 됐고, 그간 써내려 간 동시를 모아 첫 동시집을 냈다. ‘방이봉방방’은 개가 뀌는 방귀 소리를 말하는 의성어다. 여기서 ‘개’는 길거리에 어슬렁거리는 개가 아니고 ‘받아쓰기’ 동시에 등장하는 무지개다. ‘무지개’를 ‘무지게’로 쓴 아이가 무지개는 ‘무지 무서운 개’ 같다고 귀여운 볼멘소리를 하는 그 무지개. 이렇듯 아름다운 무지개의 방귀는 곧 해소를 말하고,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방귀 소리로 둔갑한다. 동심이 비눗방울처럼 터지는 소리가 ‘방이봉방방’이라는 게 제목에 대한 시인의 해석이다. “저희 동네 철쭉이 만발입니다. 거기에 붓을 들어서 연두색 물감을 튀긴 것처럼 꽃잎 세 개에 초록 물감이 튀어 있어요. 동심은 하얀 철쭉 안에 색점 같은 것이 아닐까. 우리 마음속 동심을 솎아내 보세요.” 간담회 말미에 시인이 한 말이다. 한 행 한 행 읽다 보면 아이가 되는 것은 비단 나이의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책이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전남대에 윤상원 열사·김남주 시인 기념홀 개관

    5·18 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 대변인 역할을 하다 숨진 윤상원(1950∼1980) 열사를 기억하는 공간이 모교인 전남대에서 문을 열었다. 전남대는 2일 오전 사회과학대학 본관 1층에서 ‘윤상원 열사 기념홀’ 개관식을 했다. 기념홀은 ‘윤상원의 방’과 ‘윤상원 길’로 구성됐다. 방 안에는 들불야학 활동상, 그의 어록, 박기순 열사와의 영혼결혼식에 쓰였던 ‘님을 위한 행진곡’ 가사, 윤상원 열사의 출생부터 산화하기까지 기록을 연보 형태로 사진과 함께 게시했다. 윤상원의 길은 평탄치 않은 삶의 여정을 물결무늬 빛으로 형상화했다. 연설문과 일기 일부를 5·18 사진 속에 담아 세상을 향한 따뜻한 손길과 발자취를 자연스럽게 느끼도록 했다. 김경학 전남대 사회과학대학장은 “일기 등을 살펴보면 윤상원 열사는 흥도 많고 놀기도 좋아하는 청년이었다”며 “시대의 부조리에 맞서 어떻게 살 것인지 고민했던 청년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는 공간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3일 오후에는 전남대 인문대학 1호관에서 김남주(1946∼1994) 시인 기념홀이 문을 연다. 근대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인문대학 1호관 강의실을 복층형 기념공간으로 조성했다. 대표 시 ‘자유’ ‘조국은 하나다’ 5·18 관련 시 ‘학살’ 등과 서정시를 벽에 새겨 넣고 시집, 산문집, 번역집 등 25권 저서를 전시한다. 특히 김남주 시인이 감옥에서 화장지에 쓴 ‘바람에 지는 풀잎으로 오월을 노래하지 말아라’ 등 육필원고와 편지글도 원본으로 전시된다. 시인의 육성 시, 이이남의 미디어 아트, 안치환의 노래, 영상·인터뷰 자료 등도 설치돼 교육적 기능도 함께 하도록 했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현대시작품상에 오은 시인

    현대시작품상에 오은 시인

    제20회 현대시작품상 수상자로 오은(37) 시인이 선정됐다. 월간 ‘현대시’는 1일 오 시인의 시 ‘O와 o’ 외 9편을 수상작으로 선정한다고 밝혔다. 2002년 ‘현대시’로 등단한 오 시인은 시집 ‘호텔 타셀의 돼지들’, ‘우리는 분위기를 사랑해’,‘유에서 유’, ‘나는 이름이 있었다’, ‘왼손은 마음이 아파’를, 산문집으로 ‘너랑 나랑 노랑’을 썼다. 오 시인은 개성 넘치는 말놀이를 바탕으로 자아의 실존을 드러내며, 세계에 대한 날카로운 인식을 보여주고 있다. 심사위원인 문학평론가 오형엽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오은의 시는 언어유희의 미학을 극단까지 밀고 가면서 사회 비판의 메시지를 던지는 방법을 통해 한국 현대시의 새로운 한 방향을 제시해왔다”고 평했다. 수상자에게는 상금 500만원이 지원된다. 시상식은 오는 31일 오후 6시 30분 서울 마포구 동교동 ‘가톨릭청년회관 다리’에서 개최된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조영학의 번역과 반역] 우리 모두의 페미니즘

    [조영학의 번역과 반역] 우리 모두의 페미니즘

    어울리지 않게 대학원 박사과정 전공이 페미니즘이었다. 1990년대 중반경 포스트모더니즘 비평이 유행처럼 번지면서 얼떨결에 발을 담갔다가 결국 페미니즘 이론에 매료된 것이다. 페미니즘에 혹했던 이유는 여성 인권 문제에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 속에서 평등한 세상의 가능성을 보았기 때문이다. 마지막 순간 학위를 포기하고 공부를 중단하기는 했지만, 그때 접한 페미니즘 세계관이 지금껏 내내 내 시각을 잡아 주고 삶을 이끌었다고 말할 수 있다. 제일 흥미로웠던 주제가 ‘언어’다. 세계가 유럽ㆍ백인ㆍ남성 중심으로 돌아가면서, 언어는 유럽ㆍ백인ㆍ남성이 지배하고 그 나머지들은 침묵을 강요당하거나 지배자의 언어로 자신을 표현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문학작품 속에서 여성이 (남성의 언어를 도구로) 어떻게 자신을 표현하고 또 어떤 식으로 표현되는지를 살폈다. 자크 라캉에 따르면 언어란 개별 인간 이전에 존재하고 개별 인간은 언어를 받아들이면서 사회화한다. 여성은 스스로의 언어가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남성의 언어를 체득하며 사회화하므로 곧바로 사회적 약자로 전락하고 만다. 남성 중심 언어에서 남성은 기준이 되고, 여성은 배제되거나 부차적으로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프로이트는 여성의 히스테리를 ‘남성 성기의 결여’에서 찾고(기준은 늘 남성이다), 여성을 가리키는 단어 ‘우먼’(woman)은 남성 ‘맨’(man)에 의존해서만 존재한다. ‘우리 몸이 세계라면’에서 김승섭 교수는 “과학에서 여성의 몸이 사라진 현상”에 대해 언급한다. 과학적으로 정했다는 사무실 적정 온도 21도는 몸무게 70㎏의 성인 남자를 기준으로 한다. 불면증 치료제 졸피뎀의 기본 처방 용량 10㎎은 남성보다 여성에게 부작용 가능성이 크다. 새 신부에게 남편 식구들을 ‘서방님’ ‘아가씨’ ‘도련님’이라고 부르는 예법은 누가 만들었을까. 명절에 시집부터 찾는 풍습은 언제부터 생겼을까. 부모 재산은 왜 남자들이 다 가져갈까. 우리는 왜 이런 불평등들을 당연하다고 여기는 걸까. 남성의 몸에 맞게 만든 옷이 여성에게 편할 리가 없다. 페미니즘 문화 이론가이자 철학자 크리스티나 폰 브라운은 히스테리, 거식증, 분열성 정체성 장애 등 여성 특유의 질병이 남성 주도적 문자 사회에서 비롯했다고 지적한다. 남성의 상징체계가 여성의 몸에 강제적으로 이식되면서 여성들이 끊임없이 고통을 겪어 왔다는 것이다. 20대 남성 70%가 페미니즘을 부정적으로 본다는 뉴스를 접했다. 군대 문제를 비롯해 오히려 역차별을 당한다고 생각한다는데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어느 통계를 보아도 남성은 이 불평등 사회의 수혜자다. 20대라고 다를 바 없다. 사실 더 큰 문제는 여성이 부당하게 취급받는 게 아니라 그걸 당연시하고 고착화하려는 사회 분위기다. 페미니즘에 주홍글씨 낙인을 찍고 심지어 페미니즘을 남녀의 성대결 구도로 몰아가는 정당도 있다. 페미니즘은 남성과 싸우자는 이론이 아니다. 기득권, 주도권을 빼앗겠다는 싸움도 아니다. 우리 어머니, 누이, 연인이 겪고 있으며 또 미래의 아내, 딸이 겪어야 할 질병과 고통에 대한 얘기다. 지금까지의 가부장적, 남성주도적 세계관을 잠시 내려놓고 어머니의 눈으로, 아내와 여동생, 딸의 입장에서 세상을 이해해 보자는 운동이다. 경쟁자로서의 여성이 아니라 바로 내 가족을 위한 노력이고 운동이다. 나는 여전히 페미니즘이 우리 사회를 구할 수 있다고 믿는다. 남녀가 평등한 사회여야 남녀가 모두 행복해진다고 믿는다. 스웨덴의 통계학자 한스 로슬링 카롤린스카도 2015년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얘기했다. “여성의 권익이 향상되면 남성도 살기 좋아진다. 남성의 어깨에 있는 짐을 일부 내려놓으면 남성도 편해진다. (페미니즘이) 한국을 구할 것이다.” 페미니즘이 우리 모두의 페미니즘이어야 하는 이유다.
  • 배현진 “시집도 못가고 회사에서 쫓겨난 37세 청년”[종합]

    배현진 “시집도 못가고 회사에서 쫓겨난 37세 청년”[종합]

    배현진 자유한국당 송파을 당협위원장이 문재인 정부 규탄 집회에서 한 발언이 화제다. 27일 서울 광화문광장에 열린 한국당의 문재인 정부 규탄 집회에 참여한 배현진은 “한선교 사무총장께서 자신을 꿩대신 닭이라고 했지만 나도 회사에서 쫓겨났다.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아닌 대한민국”이라고 주장했다. 아나운서로 몸담았던 MBC의 퇴사 과정에 대한 억울함을 피력했다. 배현진은 “저는 청와대와 여당의 주구가 된 민주노총, 언론노조의 뜻에 굴하지 않았다고 해서 ‘반동’ 취급을 받아 회사에서 쫓겨났다. 이게 맞는 일이냐. 반드시 자유대한민국을 사수해 달라”로 말했다. 더불어 “문재인 정부는 자신들의 정치적 이념을 관철하기 위해 국민의 반을 개, 돼지로 여긴다”고 강력 비판했다. 배현진은 자신을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37세 청년”이라고 소개한 뒤 “일하느라 시집도 못 가고 부모님을 모시며 열심히 살았다. 세계 어느 곳을 여행 가도 대한민국이라고 하면 대접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여기 계신 부모님들, 그리고 나와 같은 청년들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한 “이곳에 나와 있는 여러분과 저, 모두를 한심하게 보는 이 정권은 우리를 대표할 수 없다”면서 “‘이니 하고 싶은 것 다해’를 외쳤던 청년들은 이제 ‘이니 스톱’을 외치고 있다. 이 브레이크 없는 열차를 멈출 수 있도록 한국당에 힘을 실어달라”고 부탁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있던 한선교 사무총장은 “여러분, 우리 배현진이 이러지 않았다. 늘 예쁜 아나운서였다. 이 나라가, 문재인의 나라가 배현진, 예쁜 우리 배현진을 민주투사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후 배현진 위원장은 자신의 SNS에 ‘나는 문재인 정권의 반동분자요, 민주 노총의 반동입니다’라는 게시글을 올리고 “오늘만 광화문에 5만 국민이 모여 호소했다. 권력자의 뜻에 반하면 ‘반동’이 되는 저급한 국가가 아닌 누구나 노력하면 잘 살 수 있는 자유 시장경제가 유지되는 헌정 자유대한민국 지킬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한편 배현진 위원장은 2010년부터 8년 동안 MBC 뉴스데스크 앵커를 지냈다. 그러나 2012년 시작한 MBC 노조 파업 도중 노조를 탈퇴하고 앵커로 복귀해 논란을 빚기도 했다. 이후 배 위원장은 2017년 12월 최승호 MBC 신임 사장이 취임과 동시에 앵커 자리에서 제외됐고, 지난해 3월 8일 퇴사했다. 퇴사 후에는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의 권유로 입당해 지난해 6월 송파을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이후 비상대책위원회 대변인을 맡았으나 홍준표 전 대표가 정계에 복귀하면서 대변인직을 내려놨다. 현재는 홍준표 전 대표의 유튜브 ‘TV홍카콜라’ 제작자로 활동 중이다. <이하 배현진 위원장이 SNS에 올린 글 전문> <나는 문재인 정권의 반동분자요 민주노총의 반동입니다> 권력의 삼엄한 틈에 외쳤습니다. 경찰은 혹시 오늘 낮 광화문 cctv를껐습니까? 오늘만 광화문에 5만 국민이 모여 호소했습니다. 우리는 반통일 세력도 아니며 무엇보다 친왕조세력이 아닙니다. 권력자의 뜻에 반하면 ‘반동’이되는 저급한 국가가 아닌 자유 민주주의! 자유! 누구나 노력하면 잘 살 수 있는 자유 시장경제가 유지되는 헌정 자유대한민국 지킬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통일도 ‘자유’의 기틀아래 이뤄집니다. 여당 당 대표도 산수 못하는 선거법꼼수 막아 주십시오. 깨어난 국민들이 나라를, 우리 가정을 지킬겁니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배현진 “‘이니 다 해’를 외치던 청년들이…” 한선교 “예쁜 배현진이 민주투사로”

    배현진 “‘이니 다 해’를 외치던 청년들이…” 한선교 “예쁜 배현진이 민주투사로”

    MBC 아나운서 출신인 배현진 자유한국당 송파을 당협위원장이 지난 27일 한국당의 문재인정부 규탄 집회에서 “이니 스톱”을 외치며 “문재인정부가 자신들의 정치적 이념을 관철하기 위해 국민의 반을 개돼지로 여긴다”며 정부를 맹비난했다. 배 위원장은 이날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집회에서 MBC 선배 아나운서였던 한선교 한국당 사무총장에게서 마이크를 넘겨받은 뒤 “청와대와 여당의 주구가 된 민주노총, 언론노조의 뜻에 굴하지 않았다고 해서 ‘반동’ 취급을 받아 회사에서 쫓겨났다. 이게 맞는 일이냐”면서 “우리가 사는 곳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아닌 대한민국”며 이렇게 주장했다. 배 위원장은 이어 “‘이니 하고 싶은 것 다 해’를 외쳤던 청년들이 이제 ‘이니 스톱’을 외치고 있다”면서 “브레이크 없는 열차를 멈출 수 있도록 한국당에 힘을 실어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또 “난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37세 청년이다. 일하느라 시집도 못 가고 부모님을 모시며 열심히 살았다”면서 “세계 어느 곳을 여행 가도 대한민국이라고 하면 대접받을 수 있었던 것은 여기 계신 부모님들, 그리고 나와 같은 청년들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배 위원장은 “여러분과 저, 모두를 한심하게 보는 이 정권은 우리를 대표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한 사무총장은 배 위원장이 발언한 뒤 “우리 배현진이 이러지 않았다. 늘 예쁜 아나운서였다”면서 “문재인의 나라가 예쁜 우리 배현진을 민주투사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2008년 MBC에 입사한 배 위원장은 2010년 MBC ‘뉴스데스크’를 진행했다가 2012년 파업 중 앵커직을 내려놨다. 이후 노조를 탈퇴하고 다시 뉴스데스크로 돌아가 최장수 앵커를 기록했다. 2017년 최승호 MBC 사장이 보도국을 대대적으로 개편하며 앵커직에서 물러나 2018년 3월 퇴사한 뒤에 자유한국당에 입당했다.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길섶에서] 자서전/김균미 대기자

    글을 쓰는 ‘보통 사람’들이 늘고 있다. 문화센터나 주민센터의 시와 문학 강좌 수강생이 줄을 잇는다. 자비로 시집과 수필집을 내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장편소설에 도전하는 사람들도 있다. 세상 살기 바빠 그동안 고이 접어뒀던 젊은 시절 문학도의 꿈을 살포시 꺼내 펼쳐 본다. 더 많은 사람이 읽어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아도 상관없다. 픽션만이 아니다. 나의 이야기, 부모님의 이야기를 쓰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부모님 칠순, 팔순, 구순에 맞춰 자식들이 기억과 추억을 더듬어 직접 쓰기도 하고, 전문작가에게 의뢰하기도 한다. 사회적기업인 출판사 꿈틀은 ‘모든 삶은 기록할 가치가 있다’는 기치 아래 평범한 사람의 자서전 ‘기억의책’ 시리즈를 내고 있다. 지금까지 200여권이 나왔다고 한다. 사회적기업 ‘허스토리’는 워크숍을 열어 엄마의 자서전을 제작하는 방법을 도와준다. 자서전 쓰기 강좌를 여는 지역 서점도 여럿 있다. 옛 사진을 정리하고 부모님과 가족·친지들 얘기를 들으면서 몰랐던 부모님을 조금씩 알아가게 된다고 한다. 잘 안다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제대로 알고 있는 게 거의 없을 때 때늦은 후회가 몰려온단다. 하물며 부모님이 기다려주시지 않으면…. 나는 부모님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kmkim@seoul.co.kr
  • 이 총리 “세월호 유족 고통, 남의 잣대로 함부로 위로해선 안돼”

    이 총리 “세월호 유족 고통, 남의 잣대로 함부로 위로해선 안돼”

    이낙연 국무총리는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생일’을 관람했다. 이 총리는 세월호 배지를 착용하고, 세월호 추모시집 ‘언제까지고 우리는 너희를 멀리 보낼 수가 없다’가 든 채 오늘(20일) 오후 서울 강남의 한 영화관을 찾았다. 이 시집에 참여한 관계자 13명과 ‘생일’의 각본과 연출을 맡은 이종언 감독, 제작자인 이준동·이동하씨가 관람을 함께 했다. 이 총리는 영화가 끝난 뒤 참석자들과 함께 한 차담회에서 “실제로는 영화보다 훨씬 더 다양한 고통이 있다”며 “가족들은 우주에서 유일무이한 고통을 겪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남의 잣대로 함부로 말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이어서 전남지사 시절 진도와 목포 등지에서 세월호 유가족들을 만난 경험을 소개하며 “그때 얻은 결론이 ‘함부로 위로하지 말자’였다”고도 말했다. 특히 “곧 나아질 것이라고 말하는 것도, 위로한답시고 더 심한 고통을 겪는 사람이 있다고 말하는 것도 안 된다“면서 “고통은 비교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그러면 뭘 해야 하냐면 옆에 있어줘야 한다”며 “세월이 한참 지나 말을 걸어주면 된다”고 덧붙였다. 한편 차담회에 참석한 임성용 시인은 “황교안 전 총리 때는 지나가기만 해도 2시간 동안 길을 막는 등 의전 때문에 여러 번 논란이 됐는데 오늘 이 자리는 경호원이나 그런 불편함이 전혀 없고 굉장히 자연스러웠다”며 “나라가 바뀌긴 바뀌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에 이 총리는 “고통도 비교하면 안 되지만 이것(의전)도 비교하시면 안 된다”고 답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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