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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가 블로그] 조국 논란에… ‘원칙주의자’ 김조원 행보 주목

    [관가 블로그] 조국 논란에… ‘원칙주의자’ 김조원 행보 주목

    인사 부실 검증 책임론도 나와 “金수석 관여안해” 보호막 눈총조국 법무장관 후보자를 둘러싸고 각종 의혹이 불거지면서 인사 검증을 맡은 김조원 청와대 민정수석에게도 불똥이 튀고 있습니다. 조 후보자가 민정수석에서 물러난 것은 지난달 26일, 장관 지명은 8월 9일입니다. 조 후보자가 민정수석에서 바로 법무장관으로 직행하지 않고 이처럼 2주일 시차를 둔 것은 조 후보자의 ‘셀프 검증’ 논란을 피하기 위한 것이었지요. 이는 거꾸로 말하면 김 수석에게 조 후보자에 대한 철저한 검증 책무를 부여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지금 관가에서 “그 2주일 동안이 조 수석에 대한 검증의 골든타임이었다”는 탄식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청와대가 “김 수석이 검증에 관여하지 못했다”며 보호막을 치고 있는 것과는 달리 관가의 분위기는 싸늘합니다. “지난 5일 김 수석은 취임 이후 첫 공개조치로 ‘일본 수출 규제 계기 공직사회 특별감찰’ 지시를 내리며 존재감을 보였는데 정작 조 수석의 검증 부분에서는 ‘구멍’이 뚫린 것 아니냐”는 지적이지요. 인사 검증을 했는데도 여러 의혹을 제대로 걸러내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문재인 대통령이 아끼는 참모라 아예 손을 놓고 있었는지, 어느 쪽이든 김 수석은 부실 검증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지요. 2주일이 검증하기는 짧은 기간일 수 있지만 언론이 지명 일주일 만에 각종 의혹을 제기하는 것과 대조를 이루는 것이 사실입니다. 인사 검증을 위한 모든 정보를 취합할 수 있는 자리가 민정실 아닙니까. 더구나 김 수석은 노무현 정부 시절 문 대통령이 민정수석일 때 그 밑에서 공직기강비서관을 지내며 고위공직자 인사 검증 매뉴얼을 처음으로 만든 인사 검증의 최고전문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공직 감찰 업무를 맡고 있는 감사원에서 잔뼈가 굵고 사무총장까지 지냈으니 더욱 그렇지요. 특히 그는 2015년 문 대통령이 새정치민주연합 당대표일 때 당무감사원장을 맡아 깐깐한 원칙주의자의 면모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당시 친문 핵심인 노영민 의원이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카드단말기를 설치해놓고 피감기관들에 자신의 시집을 강매했다는 의혹이 나오자 그는 좌고우면하지 않고 당원권 정지를 내려 노 의원은 20대 총선에 불출마했지요. 그가 읍참마속의 조치를 취해 당도 살리고, 나아가 대선 승리의 길도 열어 놓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뚜렷한 소신을 가진 김 수석이기에 관가에서는 자고 나면 눈덩이처럼 커지는 조 후보자의 논란에 어떻게 대응할지 주목하고 있지요. 정부의 한 관계자는 “민정수석은 인사 검증 등의 업무를 수행하지만 더욱 중요한 일은 조 후보자 관련, 들끓는 민심을 제대로 읽고 대통령에게 전달해 바른 판단을 취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최광숙 선임기자 bori@seoul.co.kr
  • ‘자수견본집’·‘저녁의 고래’ 첫 한영대역 신작 시집 출간

    ‘자수견본집’·‘저녁의 고래’ 첫 한영대역 신작 시집 출간

    한국어와 영어로 동시에 읽을 수 있는 최초의 신작 시집이 나왔다. 아시아 출판사는 김정환(왼쪽·65) 시인의 ‘자수견본집’, 정일근(오른쪽·61) 시인의 ‘저녁의 고래’를 한영대역으로 출간했다고 20일 밝혔다. 한영대역 시집은 한국어 시와 영어 시가 상호 보완하며 독자의 해석을 돕는다는 장점이 있다. 이전에 안도현·고은·백석 등 시인들의 시선집이 한영대역으로 나오긴 했지만, 신작을 이렇게 선보이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만해문학상·백석문학상 등을 수상했으며 번역가로도 활동 중인 김 시인은 직접 자신의 시를 번역했다. 김 시인은 이날 서울 종로구의 한 식당에서 기자들을 만나 “자기를 표현하는 매체를 하나 더 갖는다는 것, 표현할 수 있는 영역이 넓어졌다는 점에서 보람 있었다”며 “번역을 하다 보니 앞으로는 쉽게 (시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며 웃었다. 세계 최초로 고래 시집을 출간하며 생명·생태·평화의 관심을 이어 간 정 시인은 “내 시가 영역된다는 것에 대한 공포가 있었다”며 “어떻게 시가 번역될 것인가 고민을 하다가 ‘이건 내 몫이 아니다, 번역자의 몫이다’라고 생각을 바꿨다”고 했다. 정 시인의 시집 ‘저녁의 고래’는 ‘허수경 시선’ 등을 번역한 지영실·대니얼 토드 파커 부부가 번역했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김성환, 결혼 위해 거짓말 “8남매→3남매, 점점 형제수 늘려”

    김성환, 결혼 위해 거짓말 “8남매→3남매, 점점 형제수 늘려”

    배우 겸 가수 김성환이 거짓말로 결혼에 골인했다고 털어놨다. 20일 오전 방송된 KBS1 교양프로그램 ‘아침마당’은 ‘화요초대석’ 코너로 꾸며졌다. 1부에는 가수 남진, 배우 김성환이 출연했다. 개그맨 김학래가 패널로 참석하고, 김재원 이정민 아나운서가 진행을 맡았다. 이날 김성환은 8남매 중 장남이라며 “장가를 가는데 애 먹었다. 시골에서 올라와서 8남매의 장남이라고 하면 누가 좋아겠냐. 그래서 3남매 중에 장남이라고 했다”고 거짓말 했다고 고백했다. 그는 “아내와 만나려고 하니까. 8남매란 말이 안 나왔다”면서 만나면서 점점 형제수를 늘려왔다고 설명해 웃음을 안겼다. 김성환은 “8남매 이야기가 나오니까 장모님이 ‘절대 안 돼’라고 했다. 8남매 장남한테 시집간다는 게 너무 걱정됐다보나”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광주의 인물’ 문화콘텐츠로 개발해 역사 도시로 육성

    ‘광주의 인물’ 문화콘텐츠로 개발해 역사 도시로 육성

    경기 광주시는 광주의 인물들을 문화 콘텐츠로 개발해 광주를 문화와 역사의 도시로 육성하기로 했다. 광주시는 지역 대표 인물인 해공 신익희 선생을 기념하는 ‘해공 민주평화상’을 제정한 데 이어 지역 출신 배우를 기리는 ‘최은희 영화제’를 개최한다고 18일 밝혔다. 강원 강릉에서 광주로 시집와 생을 마감한 여류 문인 ‘허난설헌 문화제’도 연다. 해공 신익희 선생은 광주의 자랑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탄생과 지속에 지대한 공헌을 했으며 광복 후에도 민주당을 창당해 대통령 후보까지 오르는 등 근현대 정치사에 방점을 찍은 인물이다. 시는 해공 기념사업을 지역 역사·문화 콘텐츠로 육성하기 위해 해공 민주평화상을 제정, 민주평화에 대한 기여와 의지가 확고하고 존경을 받는 이들에게 지난달 첫 시상을 했다. 이와 함께 올해 처음으로 지난달 8일부터 14일까지를 해공 기념주간으로 정하고 해공 선생의 사상과 업적을 고찰하는 포럼과 세미나, 학술대회 등을 가졌다. 사랑과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는 ‘최은희 영화제’도 계획하고 있다. 배우 최은희는 광주에서 태어나 영화 같은 삶을 살아왔다. 최은희 영화제를 통해 그의 용서와 사랑을 그려 낼 계획이다. 시는 이를 위해 최은희의 대표 작품인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열녀문’, ‘소금’ 등을 재상영하고 초청작 상영회, OST 음악회 등을 개최하는 복합 영화문화축제를 구상하고 있다. 조선의 천재 여류 문인 허난설헌 문화제는 올가을 열릴 예정이다. 허난설헌은 어렸을 때부터 한시를 지어 천재성을 드러냈으며 광주로 시집온 후에도 시를 통해 제도에 갇힌 여성의 문제점을 표출했다. 허난설헌이 27세의 나이에 안타깝게 요절한 이후 남동생 허균이 누나의 유작으로 ‘난설헌집’을 펴냈고 중국 문인들에게도 격찬을 받았다. 허난설헌의 묘는 시가인 초월읍에 있다. 신동원 기자 asadal@seoul.co.kr
  • 지상에 남은 술잔-김익두 교수 다섯번째 시집

    지상에 남은 술잔-김익두 교수 다섯번째 시집

    정년을 앞둔 노교수가 세상과 인연을 맺고 살아오며 느낀 체험들이 시어로 재탄생했다. 전북대 국문학과 김익두(64) 교수가 펴낸 ‘지상에 남은 술잔’은 시인의 감회를 몸에 배인 체험의 몸말로 풀어낸 96편의 시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햇볕 쬐러 나오다� �(1990) ‘서릿길’(1999), ‘숲에서 사람을 본다’(2015) ‘녹양방초’(2017)에 이어 다섯번째 시집이다. 시인은 골수에 사무친 체험들을 자연스럽게 시라는 장으로 갈무리했다. 간결한 시어 속에는 인생의 희로애락과 삶에 대한 경건한 성찰이 깃들어 있다. 늘상 접하는 일상들을 꾸미지도, 탐색하지도 아니하면서 초연하고 심오한 문체로 풀어냈다. 마치 문장학의 본체를 보는 듯하다. 시의 구절을 읊조리다보면 한 폭의 풍경이 그려지며 절로 숙연해진다. 때로는 가슴이 아려오고 잔잔하면서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전라도 방언과 시늉말들은 생경스럽거나 난삽하지 않고 오히려 기미상합(氣味相合)의 극치를 보여준다.김 교수는 시인의 말에서 “이제 세상의 인연으로부터 벗어나 세상을 보니 그만큼 더 벗어나 세상을 보게 됐다”며 “그만큼 세상을 다양하게 볼 수 있게 됐다. 우리의 소중한 아픔들도 이젠 꽤 잘 보인다”고 전했다. 호병탁 평론가는 “김익두의 시들은 그가 평생을 젖어 살아온 전라도 민요, 판소리 가락과 전라도 방언들이 한몸져서 시세계를 융숭깊고 훤출한 득음의 경지로 인도해간다”고 평가했다 이병천 소설가는 “젊은 날의 분노, 피울음, 좌절, 욕망, 환희, 방황 등이 모두 한 데 버무려져 곰삭은 시김개의 절창을 듣는듯 하다”고 평했다. 윤효 시인도 “그의 시는 존재의 그늘에 어른대는 서늘한 결핍의 무늬들을 충일감으로 바꿔내는 시학의 결정체”라고 표사했다. 정읍 출생인 김 시인은 전북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1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우리나라 민요, 판소리, 민속, 연극, 공연학, 대중가요를 꿰뚫는 다수의 저서를 펴냈다. 판소리와 민속문화 전문가로 폭이 넓은 학자로 유명하다. 제2회 예음문화상, 제3회 노정학술상, 제3회 판소리학술상 등을 수상했다. 콜로라도대 해외파견교수, 옥스포드대 초빙교수 등을 역임했고 현재 전북대 인문대 국문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해남 물결 따라가니 남도 묵객 붓끝이네…화맥 길러낸 몽유진도

    해남 물결 따라가니 남도 묵객 붓끝이네…화맥 길러낸 몽유진도

    남도는 예부터 유배의 땅이었습니다. 수많은 정객들이 유배돼 시인 묵객으로서의 삶을 살았지요. 반도의 끝이라 할 전남 해남, 진도 등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재능은 고스란히 지역의 후예들에게 이어졌습니다. 밭고랑에서 풀 뽑는 아낙조차 즉석에서 절창(絶唱)을 뽑아낸다던가요. 진도에 들면 시, 서, 화는 물론 소리 자랑 말라는 말이 전하는 것도 그 때문일 겁니다. 해남 역시 녹우당을 중심으로 ‘남도 문화르네상스’를 꿈꾸고 있지요. 그렇게 해남으로, 진도로, 예술이 꽃 피는 해안선을 따라 ‘남도 예술기행’을 다녀왔습니다.외지인들이 해남과 진도를 묶어 돌아볼 경우 해남을 거쳐 진도로 가는 게 순서다. 그래야 좀더 효율적으로 두 지역을 돌아볼 수 있다. 해남에선 ‘예술이 꽃피는 해안선-예술가와 함께하는 남도 수묵 기행’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1박2일(2박3일) 동안 예술가, 큐레이터 등과 동행하며 예술을 체험하고 답사하는 프로그램이다. 대흥사 수묵화 체험, 템플스테이, 해창 막걸리 체험 등의 프로그램으로 구성됐다.●고산의 녹우당… 윤두서 자화상 압권 녹우당으로 먼저 간다. 해남 윤씨의 종택이다. 무엇보다 당호가 독특이다. 푸를 녹(綠) 자에 비 우(雨) 자를 쓴다. 말 그대로 ‘초록비’라는 뜻이다. 바람 불면 집 뒤 비자나무에서 우수수 빗물 떨어지는 소리가 난다고 해서 이런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지금은 녹우당이 고택 전체를 뜻하는 말이 됐지만 원래는 이 집의 사랑채를 가리키는 당호였다. 녹우당은 조선의 17대 왕 효종이 고산 윤선도에게 하사한 집이다. 82세 되던 해 낙향을 결심한 고산이 당시 수원에 있던 집을 뜯은 뒤 배로 싣고 와 해남에 다시 지었다. 차양 역할을 하는 사랑채 앞쪽의 겹처마, 높낮이로 아버지와 아들의 기거 공간을 구분한 공간 배치, 회랑 형태의 나무 기둥 등이 인상적이다. 지금도 고산의 14대 손이 거주하고 있다. 집 뒤 풍경도 웅숭깊다. 300년 묵은 늙은 소나무와 고풍스런 돌담길이 멋지게 어우러져 있다. 녹우당 아래는 고산윤선도유물전시관이다. 해남 윤씨 관련 유물을 전시, 보관하고 있는 곳이다. 전시관은 단층 건물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2층 건물이다. 1층은 로비 등 손님맞이 공간이고, 대부분의 작품은 지하층에 전시돼 있다. 도드러지거나 위압적인 느낌을 주지 않고 주변 풍경과 차분하게 어우러지려는 건축 의도가 읽힌다. 이곳에 국내 최고의 초상화로 꼽히는 ‘윤두서 자화상’(국보 제240호)이 있다. 강렬한 눈빛과 굳게 다문 입술, 극사실주의 작품을 보듯 한올 한올 섬세하게 묘사된 수염이 보는 이를 압도한다. 이 작품 하나만 보더라도 ‘본전’은 뽑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깊은 울림을 안긴다. 아울러 윤선도가 실제 사용한 나침반, 교과서에 실릴 만큼 유명한 ‘오우가’ ‘어부사시사’, 고려시대 유일한 노비문서인 ‘지정14년 노비문서’(보물 제483호), 윤두서가 자신의 초상화를 그릴 때 보던 옛 거울과 동국진체의 서예 작품 등 흥미로운 유물들을 진품으로 만날 수 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대흥사서 차 한잔 대흥사는 해남을 대표하는 대가람이다. 지난해 ‘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 절집에서 사법시험을 준비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대흥사에서는 사찰음식 체험, 템플스테이 등의 프로그램이 준비됐다. 수묵화 체험도 재밌다. 쥘부채에 삐뚤빼뚤 자신만의 수묵화를 그려 넣는 프로그램이다. 체험장은 대흥사 무량수전이다. 추사 김정희가 편액 글씨를 남긴 곳. 오래된 건물의 그늘에 들어 저만의 부채를 만들다 보면 더위는 저만큼 물러나고 없다. 대흥사에서는 차와 관련된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다. 그야말로 다반사(茶飯事)다. 차 시음 행사는 저 유명한 일지암에서 열린다. 대흥사에서 산길을 따라 20분 정도 발품을 팔아야 닿을 수 있다.일지암은 우리나라 차의 중흥조 초의(1786~1866) 선사가 차와 더불어 선(禪)을 수행하던 곳이다. 일지암(一枝庵)이란 이름은 “뱁새는 나무 끝 한 가지(一枝)에 살아도 편안하다”는 중국 당나라 시승 한산의 시구절에서 따왔다. 뱁새는 흔히 황새 쫓다 가랑이 찢어지는 동물로 인식되지만 불가에서는 다소 다른 모양이다. 불가피하게 오지랖을 넓혀야 하는 재능 많은 새가 황새라면 뱁새는 모든 것을 내려놓은 평범한 새다. 스스로가 뱁새여서 얼마나 좋은지, 얼마나 행복한지 일지암에서 여실히 느낄 수 있다. 풍경도 빼어나다. 두륜산과 멀리 남해 바다가 네모 창틀 안에 다 담긴다. 이 정도면 뱁새의 호사라 할 만하다.●왜구 물리친 울둘목에 서린 이순신 정기 예향을 찾아가는 여정이지만 울돌목에 서면 느낌이 다르다. 일본에 난데없이 한 방 맞은 요즘엔 더욱 그렇다. ‘바다가 울면 물이 돈다’는 울돌목(명량·鳴梁)은 해남과 진도 사이를 흐르는 해협이다. 이순신 장군이 일본 수군을 대파한 명량대첩(1597)의 현장이기도 하다. 당시 이순신 장군은 시속 20∼30㎞의 빠른 속도로 흘러가는 조류를 이용해 왜선을 수장시킨 것으로 전한다. 진도의 대표적인 민속놀이 중 하나인 ‘강강술래’(국가 무형문화재 8호)도 바로 이곳에서 비롯됐다. 해남 쪽에 우수영관광지, 진도 쪽에 녹진관광지가 각각 조성돼 있다. 실경산수화 같은 울돌목 풍경을 보려면 녹진전망대를 찾는 게 좋다. 진도대교와 주변 바다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울돌목 인근의 우수영문화마을도 둘러볼 만하다. 명량대첩과 해남사람들의 이야기를 벽화 등 조형미술 작품에 담아 조성한 마을이다. 약 2㎞ 안에 갤러리, 카페 등이 밀집해 있다.우수영관광지에서 진도대교를 건너면 진도 땅이다. 다리를 건너자마자 진도아리랑 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오는 듯하다. 이쯤에서 진도 민초들의 노래 한 자락 들어보자. ‘진도사랑 시 공모전 수상시집’에 실린 시 ‘운림산방으로 오시어요’(서지은 지음)의 한 구절이다. “노오란 울금을 곱게 빻아//(…) 첨찰산 병풍에 첩첩이 발라놓고//(…) 귀하디귀한 새빨간 보석알 닮은, 홍주(紅酒)를/ 그대 오시는 쌍계사 언덕 어귀에//(…) 비단치마 폭처럼 넓게 펼쳐 올리겠나이다//(…) 가만히 가만히/ 그대, 어서 오시어요” 이런 은근한 초대를 받고도 다리가 움직여지지 않는다면 사람도 아니다. ●시·서·화·창 뛰어난 진도… 첫 민속문화예술특구 진도는 우리나라 최초의 민속문화예술특구다. 시·서·화·창,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는다. 진도에 전해 오는 민속음악들은 대개 섬사람의 삶과 애환을 꿰고 있는 것들이다. 하지만 시름을 슬픔으로 끝내지 않고, 한을 눈물로 맺지 않는다. 고된 삶을 노래하면서도 결국엔 내일의 희망을 그린다. 군립민속예술단의 김오현 단장은 “다른 지역 씻김굿과 달리 진도의 씻김굿은 음악적 요소가 강하다”고 했다. 진도의 씻김굿은 경쾌하다. 장단조차 슬픔의 절정에서 어깨를 들썩이게 한다. 슬퍼도 비통에 빠지지 말라는 애이불비(哀而不悲)의 정서를 여기서 본다. 진도에서는 ‘토요민속여행’ 등 상설 공연 4개를 비롯해 예능보유자와 함께 하는 ‘진도 전통 문화공연’ 7개 등 모두 13개의 민속공연과 만날 수 있다. 그야말로 ‘민속공연 부자’다. 이 가운데 진도씻김굿(국가무형문화재 72호) 진도다시래기(국가무형문화재 81호) 진도만가(도 무형문화재 19호) 등에 대해 ‘진도 상·장례문화’로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가 추진되고 있어 관심이 쏠린다. ‘보배섬’ 진도(珍島)의 옛 이름은 ‘옥주’다. ‘비옥할 옥’(沃) 자를 쓴다는 게 정설이지만, 어차피 그마저 불확실한 것이라면 ‘구슬 옥’(玉) 자로 바꿔 쓴다고 해서 그리 틀리지는 않을 터다. 구슬은 곧 보배다. 물론 잘 뀄을 때라야 그렇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야 보배라고 했으니 말이다. 지금 진도가 예향으로 이름을 날리는 건 역사 속 수많은 ‘구슬들’의 예기가 잘 드러나도록 섬사람들이 음으로 양으로 북돋웠기 때문일 것이다. 그 첫자리가 운림산방이다.●조선 대가의 화실 ‘운림산방 ’ 서지은 시인이 “겹이어 몇 대를 붓을 들던 그 옛날 조선의 대가의 화실”이라 표현했듯 운림산방은 조선 후기 소치 허련(1808~1893)에 이어 5대에 걸쳐 직계 화맥(畵脈)이 이어지고 있는 남종화의 산실이다. 오각형 모양의 연못 운림지와 소박한 정자 사이로 소치가 손수 심었다는 배롱나무가 절정의 붉은 빛을 토해 내고 있다. 정자 뒤로는 진도의 진산 첨찰산이 운림산방을 감싸고 있다. 진도 사람 몇몇은 이 같은 안온한 풍경을 두고 ‘몽유진도’(夢遊珍島)라 부른다. 안견의 ‘몽유도원도’에 빗댄 표현으로, 진도의 실경산수화를 보는 듯하다. 운림산방 옆은 소치기념관이다. 소치 허련의 작품은 물론 미산 허형과 남농 허건, 임전 허문 등 후손들의 수묵화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수묵화의 특징 중 하나는 여백이다. 여백은 단순히 그림이 그려지지 않은 공간이 아니다. 전시 작품들을 꼼꼼하게 살피다 보면 여백이란 것이 그리지 않음으로써 그림이 그려지는 매우 독특한 공간이란 걸 알게 된다. 글 사진 해남·진도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여행수첩 (지역 번호 061) →진도의 4개 상설 공연 가운데 ‘토요민속여행’은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에서 선정한 전국 15개 ‘상설문화관광 프로그램’ 중 하나다. 한 해도 거르지 않고 23년째 이어져 오고 있어 진도의 ‘프랜차이즈 공연’이라 할 만하다. 지난해 ‘한국관광의 별’에도 선정됐다. 진도 아리랑과 강강술래, 씻김굿 등 무형문화재 공연이 한 시간 남짓 펼쳐진다. 공연 뒤에는 관객과 출연진이 어우러지는 흥겨운 춤판이 벌어진다. 매주 토요일 오후 2시 진도향토문화회관에서 군립민속예술단 주관으로 열린다. 공연은 무료다. 544-8978. ‘금요국악공감’은 매주 금요일 오후 7시 국립남도국악원에서 열린다. 역시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수요일엔 진도군 보유 무형문화재 중심의 ‘진수(水)성찬’(1만원)이 오후 7시 30분 무형문화재전수관에서, 일요일엔 ‘일요상설공연’(5000원)이 오후 2시 해창민속전수관에서 각각 관객을 만난다. 이 밖에 ‘진도아리랑 오거리’ 등 버스킹 공연을 수시로 진행한다. →해남의 ‘예술가와 함께하는 남도 수묵기행’은 오는 11월까지 진행된다. 참가 신청은 행촌문화재단(533-3663)에서 받는다. →해남 읍내 천일식당(536-4001)은 80년을 이어온 떡갈비로, 진일관(532-9932)은 한정식으로 각각 소문난 집이다. 진도 신호등회관(544-4449)은 전복비빔밥을 잘한다. 전복의 암수 내장을 함께 쓰는 게 독특하다. 양념장이 강해 다소 맵게 느껴질 수 있다.
  • [문화마당] 올여름 북캉스/송정림 드라마 작가

    [문화마당] 올여름 북캉스/송정림 드라마 작가

    “여름휴가 어디로 가?” “여행 어디로 갔다 왔어?” 최근 자주 들은 안부 인사다. 긴 기간 준비한 드라마를 지난봄에 방송하고 난 뒤라 충전을 위해 멀리 여행을 다녀왔을 거라고 추측한 지인들 문자였다. 그 문자에 대한 답은 이렇게 보냈다. “북캉스 다녀왔어. 장소는 세 군데. 내 방, 식탁, 그리고 동네 카페.” 올여름 나는 북캉스를 길게 보냈다. 책(Book)과 여름휴가(Vacance)의 합성어인 북캉스를 채워 준 동지들은 그동안 드라마 쓰느라 미뤄 뒀던 읽고 싶은 작가의 신간, 언제 읽어도 감동인 고전, 그리고 주로 여름에 하게 되는 선택인 스릴과 추리가 들어 있는 소설이다. 드라마 작가로서 읽어야 할 책들이 아니라 그냥 읽고 싶은 책들을 본다. 즐거운 바캉스니까. 드라마 쓰면서도 동네 서점에 나가 책 사는 일은 거르지 않았기 때문에 사 놓고 읽지 못한 책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김영하, 정유정, 스티븐 킹, 밀란 쿤데라로 폭염의 낮을 건넜고, ‘비하인드 도어’, ‘마지막 패리스 부인’, ‘퍼펙트 마더’ 등의 이야기로 열대야를 달렸다. 습관 중의 하나인데, 책을 꺼내 들 때마다 책장 사이에 놓아 둔 그림을 본다. 르누아르의 ‘독서하는 여인’, 한 소녀가 책을 들고 열심히 그 속에 몰입하는 그림이다. 볼 때마다 궁금하다. 저 소녀는 무슨 책을 읽고 있을까? 어느 작가가 어떤 글로 소녀의 두 볼에 햇살을 스며들게 했을까? 그 옆에 ‘독서하는 두 소녀’라는 그림도 있다. 긴 머리를 머리핀으로 묶은 소녀와 그 옆에 머리를 단정하게 위로 틀어 올린 소녀가 책 한 권을 보고 있다. 장소는 풀밭이다. 한 소녀는 책 내용이 흥미로운 듯 손을 입가에 대고 흠뻑 빠져들어 있다. 또 한 소녀 역시 책 내용에 완전히 몰입돼 두 볼이 빨개졌다. 두 소녀가 보고 있는 책은 어쩌면 시집이 아닐까? 읽고 있는 시는 로맨틱한 사랑을 꿈꾸는 시는 아닐까? 즐거운 상상을 해 본다. 그림 속 소녀들은 책의 내용이 스며들어 빛을 머금은 얼굴이 됐다. 지금 눈으로 보고 있는 그것이 바로 나 자신이 된다고 했던가. 시를 보고 있으면 시가 얼굴로 스며들고, 철학을 읽고 있으면 철학이 얼굴로 스며든다. 그러니 책을 읽는다는 것은 천천히 지성적인 얼굴로 성형하는 일이다.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독서 장소를 바꿔 볼 생각이다. 동네 풀밭이든 공원이든 강변이든 나가서 햇살 속에 앉아 책을 읽고 싶다. 르누아르 그림 속 소녀처럼…. 그러면 햇살이 나의 두 볼에도 스며들어 주지 않을까. 어느 날인가는 종일 책만 읽다가 노을빛까지 스며든 얼굴로 마지막 책장을 넘겨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퍽퍽한 현실을 잊게 하는 수단은 다양하다. 한 편의 영화 속으로 들어가는 기쁨도 있을 테고, 스포츠에 몰입하고 싶을 때도 있다. 그런데 어쩐지 책 속에 파묻혀 현실을 잊는 맹렬 독서파는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지하철에서 독서 삼매경에 빠진 사람, 버스 속에서 책을 읽다가 내릴 정류장을 지나치는 사람, 비행기에서 책 읽는 재미에 몰입해 있는 사람, 공원 벤치에 앉아 책을 읽는 사람, 카페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며 독서하는 사람, 가족을 기다리는 식탁에서 책을 보는 사람…. 그런 독서광이 그립다. 동네 서점에 들러 책 한 권씩 고르는 재미는 절대 놓치고 싶지 않은 내 인생의 낙이다. 전자책도 있지만 종이로 된 책의 독특한 냄새와 감촉이 좋다. 읽고 나서 책장에 꽂아 두면 추억이 된다. 누군가에게 그 책을 건네는 것도 좋다. 작정 없이 동네 서점에 들러서 좋아하는 사람에게 선물할 책을 고르는 일은 내가 다섯 손가락에 꼽는 일상의 행복 중 하나다.
  • “다양해지는 여성 서사 작품…‘여배우’ 아닌 배우로서 영광”

    “다양해지는 여성 서사 작품…‘여배우’ 아닌 배우로서 영광”

    독립·진취적 여성 역할로 잇단 활약 “비운의 여인 마리 앙투아네트에 주목 편견과 다른 강인한 여성 보여줄 것”“예술의 가장 큰 목적은 다양성을 추구하는 거잖아요. 관객들에게 많은 것을 보여 주고 또 생각하게 하는 게 우리(배우)의 의무니까, 그런 면에 있어서 여성 서사 작품들이 생기고 그런 캐릭터를 연기하는 건 너무나 감사한 일이죠.” 내년이면 데뷔 20년을 맞는 배우의 말은 막힘이 없고 시원했다. 상냥하고 조곤조곤한 말투는 넓은 무대 위를 총총히 뛰어다니는 소녀가 떠올랐지만, 말속에는 한 우물만 파온 베테랑 배우의 철학이 무겁게 담겨 있다. 뮤지컬 ‘마리 퀴리’로 올해의 문을 열고 ‘루드윅: 베토벤 더 피아노’, ‘투란도트’, ‘엑스칼리버’를 거쳐 ‘마리 앙투아네트’로 다시 관객을 맞을 준비 중인 뮤지컬 배우 김소향(38)을 12일 서울 남산 연습장 인근 카페에서 만났다. 그는 약속 장소에 15분 정도 늦게 나타났다. 사정은 이랬다. 카페로 오는 길에 ‘마리 앙투아네트’ 제작진이 다급하게 그를 불러 차를 돌렸다. 그가 직전까지 진행한 런스루(끊지 않고 공연처럼 진행하는 연습)에 쓰던 마이크를 단 채 연습장을 떠난 탓이다. 연신 “늦어서 죄송하다”는 그의 눈은 다소 충혈돼 있었다. 개막 12일을 남긴 공연 연습에 본공연과 같은 에너지를 분출하며 눈물도 함께 쏟아낸 탓이다. 조금 번진 배우의 화장은 작품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김소향은 올해 상반기부터 유난히 기존 뮤지컬 속 여성 캐릭터보다 독립적이고 주체성이 강한 역을 맡아 연기해 왔다. 지난 6~7월 열린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DIMF)에서는 냉혹한 공주를 연기한 ‘투란도트’로 여우주연상을 받았고, 6월 개막해 이달 4일 막을 내린 ‘엑스칼리버’에서는 주인공 아더왕의 아내 기네비어 역에 능동적이고 진취적인 성격을 입혔다. “그런 역을 맡는 건 정말 영광”이라는 김소향은 공연계의 이런 흐름에 대해 “‘여자 배우’가 아닌 그냥 배우로서 정말 좋다”고 말했다. 김소향은 부정적이고 왜곡된 정보가 많은 마리 앙투아네트를 연기하기 위해 그에 대한 많은 책과 영화를 독파했다. 허영과 사치를 일삼은 철부지 어린 왕비이라는 편견을 벗기고, 열다섯 어린 나이에 부모의 일방적 결정으로 이웃 국가 프랑스 왕가로 시집 가 시민혁명 때 단두대에서 생을 마감한 비운의 여인에 주목했다. 김소향은 “그에게 잘못이 없다고 미화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그는 모략에 많이 시달린 왕비”라면서 “이번 작품은 ‘진짜 정의란 무엇인가’를 묻기도 하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하나의 작품을 끝내고 나면 너무 큰 공허함이 밀려든다는 그에게는 새 작품을 맞기 전 치르는 의식이 있다. 전작 ‘엑스칼리버’ 마지막 공연을 끝낸 날엔 집에 돌아와 첫 연습 사진과 영상부터 마지막 공연 사진과 영상을 모두 돌려봤다. 작품을 함께 한 배우들과 주고받은 휴대전화 메시지도 하나하나 다시 읽었다. 그는 이런 행동을 “작품과 캐릭터를 보내주는 준비”라고 했다. 그가 보여 준 그의 휴대전화 속에는 ‘엑스칼리버’ 공연 당시 녹음한 파일들로 가득했다. 그렇게 기네비어를 떠나보낸 김소향은 자신만의 마리 앙투아네트를 무대 위에 세운다. 그는 설렘과 자신감이 함께 묻어나는 목소리로 말했다.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 강인한 여성, 그리고 모성애 강한 여성을 보여드릴게요. 아마도 그동안 김소향에게 보이지 않았던 모습도 보실 수 있을 겁니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 티아라 출신 한아름, 결혼 발표 ‘달달+훈훈’ 예비남편 공개

    티아라 출신 한아름, 결혼 발표 ‘달달+훈훈’ 예비남편 공개

    그룹 티아라 출신 한아름이 내년 2월 결혼을 알렸다. 한아름의 예비신랑은 사업과 직장생활을 하는 일반인으로 알려졌다. 13일 한아름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남자친구의 사진을 공개하며 “제가 26살이라는 어엿한 성인이 된 이 나이에 드디어 시집을 가게 되었습니다”라고 결혼을 발표했다. 한아름은 “사랑하는 법을 알려준 고마운 사람을 만나게 되었어요. 받는 법도 알려주었고, 힘이 들어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위태롭게 살아갈 때 저를 단단하게 붙잡아준 고마운 사람입니다. 제가 소중한 존재라는 걸 매일매일 알려주는 편안하고 사랑하는 사람이에요”라며 예비신랑에 대한 사랑을 드러냈다. 이어 “말씀을 드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참 많이 망설였지만, 제 자신을 바로잡고 현실을 바라보니 말씀드려야 하는 게 맞는 것 같았어요. 응원해주시고, 지지해주는 팬분들과, 제 주변에 감사한 지인분들 친구들까지. 지금까지 저에게 가장 큰 힘이 되어 주셨기 때문에. 당연히 함께 축복을 나눠야 한다는 판단을 내려 이렇게 갑작스럽게 소식을 전합니다! 2020년 2월 9일로 좋은 날을 받아 웨딩홀 예약은 마무리되었고 그전까지 열심히 서로 맞춰가며 준비해야 할 것들이 참 많네요”라고 밝혔다. 한아름은 “저는 이제 앞으로 살아감에 있어서 혼자가 아닌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어떤 일을 하던 더 책임감 있고, 세상에 더 선한 영향력을 펼칠 수 있는 올바른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더 반듯하게 살아가겠습니다”라고 다짐했다. 공개된 한아름의 남자친구는 큰 키에 또렷한 이목구비 등 훈훈한 외모로 눈길을 끌었다. 한아름을 사랑스럽게 바라보기도 하고, 꽃다발을 건네는 로맨틱한 모습도 담겨 있다. 한아름은 이후 추가로 글을 게재하며 “제가 사랑하는 사람은 사업과,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저와 다르게 잔잔한 물결에서 누군가의 시선에 힘들었던 시기를 보낸 적 없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어쩌면 많은 사람들에게 비치는 것에 부담을 느낄까 숨겨주고 있었던 것도 있고, 저로 인해 피해가 갈까 염려되어 지켜주고 싶은 마음에 저 혼자 간직하고 있던 그런 사람입니다! 여러분들께서 이쁜 마음으로 이 사람에게 피해 가는 행동은 피해주실 거라 믿습니다! 정말 소중하고 착한 사람입니다. 상처 갈만한 행동은 삼가 부탁드려요”라고 예비 남편을 걱정하는 마음을 드러내기도 했다. 지난 2012년 티아라 멤버로 합류한 한아름은 건강 상의 문제로 2013년 탈퇴했다. 지난 2017년에는 KBS2 ‘아이돌 리부팅 프로젝트-더 유닛’에 출연했다. <이하 한아름 결혼 발표 전문> 사랑하는 법을 알려준 고마운 사람을 만나게 되었어요. 받는 법도 알려주었고, 힘이 들어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위태롭게 살아갈 때 저를 단단하게 붙잡아준 고마운 사람입니다. 제가 소중한 존재라는 걸 매일매일 알려주는 편안하고 사랑하는 사람이에요. 이 말을 하는 이유는 다름 아니라, 제가 26살이라는 어엿한 성인이 된 이 나이에 드디어 시집을 가게 되었습니다! 말씀을 드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참 많이 망설였지만, 제 자신을 바로잡고 현실을 바라보니 말씀드려야 하는 게 맞는 것 같았어요. 응원해주시고, 지지해주는 팬분들과, 제 주변에 감사한 지인분들 친구들까지. 지금까지 저에게 가장 큰 힘이 되어 주셨기 때문에. 당연히 함께 축복을 나눠야 한다는 판단을 내려 이렇게 갑작스럽게 소식을 전합니다! 2020년 2월 9일로 좋은 날을 받아 웨딩홀 예약은 마무리되었고 그전까지 열심히 서로 맞춰가며 준비해야 할 것들이 참 많네요.결혼하신 분들 정말 존경. 끝으로 저는 이제 앞으로 살아감에 있어서 혼자가 아닌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어떤 일을 하던 더 책임감 있고, 세상에 더 선한 영향력을 펼칠 수 있는 올바른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더 반듯하게 살아가겠습니다. 이토록 좋은 생각을 할 수 있도록 곁에서 용기를 주고 투정도 받아주는 착한 우리 오빠. 정말 밝은 힘을 끝없이 제게 준 우리 예랑이 정말 고맙고, 감사해! 우리 지루한 인생길이 되더라도, 행복할 인생길이라도, 언제 어떤 상황이 와도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어 멀리 손잡고 걸어갈 수 있도록 해요. 힘이 들면 둘이서 나누고 기쁜 일은 더 크게 많은 이들과 나누며, 그렇게 살기로 해요! 잘 살게요 근데 나를 너무 사랑스럽게 바라봐준다 내가 그렇게 좋으니? 제 새로운 가정의 시작이 조금 더 아름답고, 사랑스러울 수 있도록 많이 응원해주세요.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모두가 함께 나누는 빵’ 같은 詩를 만나다

    ‘모두가 함께 나누는 빵’ 같은 詩를 만나다

    “우리 시인들은 낯선 사람들과 섞여 살아야 한다. 그리하여 낯선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해변에서 낙엽 속에서 문득 시를 읊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럴 때만 우리는 진정한 시인이며 시는 살아남을 수 있다.”시의 효용을 노래했던 시인, 분명하게 민중의 삶을 향했던 시인. 칠레의 국민 시인이자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파블로 네루다(1904~1973)의 시집 ‘너를 닫을 때 나는 삶을 연다: 기본적인 송가’(민음사)가 완역 출간됐다. 이번 시집은 단순한 언어의 미학으로 높은 예술성을 달성한 네루다 후기 시 미학을 잘 보여 주는 대표작이다. 모든 시는 짤막한 시행으로 구성돼 있는데, 이는 신문 지면에 싣기 위해 판형에 맞췄기 때문이다. 네루다는 지역 일간지에 일주일에 한 번씩 시를 연재하기로 하면서, 문화면이 아니라 스트레이트 뉴스를 싣는 면에 시를 실어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그는 시는 모름지기 모두가 함께 나누는 빵 같은 것이 돼야 하며 최고의 시인은 우리에게 일용할 빵을 건네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쉽게 읽히는 그의 시들은 그가 평생에 걸쳐 옹호해 온 가난한 민중에 의해 폭넓게 읽혔다. 시집에서 시는 알파벳 순서대로 정렬돼 있다. 공기(Aire)에서 시작해 포도주(Vino)까지, 그는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을 시로 썼다. 이 순서에는 위계나 차별이 존재하지 않고, 소박한 일상 사물에서부터 기쁨과 슬픔 등의 감정, 아메리카라는 땅과 세사르 바예호 같은 자신이 사랑했던 동료 시인 등 세상 온갖 것들이 시가 됐다. 소박한 보통 것들은 시인이 노래함으로써 숭고의 차원으로 격상됐다. ‘가난한 사람들의 별이여,/ 고운 종이에/ 싸인/ 요정 대모여,/ (중략)/ 부엌칼이/ 널 자를 때/ 하나뿐인 고통 없는/ 눈물이 솟는다./ 넌 괴롭히지 않고도 우리를 울게 했다.’(‘양파를 기리는 노래’ 중)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안도현의 꽃차례] 시와 식물

    [안도현의 꽃차례] 시와 식물

    나는 정말 애기똥풀의 이름을 모르고 살았다. 나의 무지와 무관심 덕분에 눈앞의 모든 식물은 이름 없는 들꽃일 뿐이었다. “나 서른다섯 될 때까지/ 애기똥풀 모르고 살았지요/ (…) /해마다 어김없이 봄날 돌아올 때마다/ 그들은 내 얼굴 쳐다보았을 텐데요// 애기똥풀도 모르는 것이 저기 걸어간다고/ 저런 것들이 인간의 마을에서 시를 쓴다고” 나는 참회의 시를 썼다. 그 이후 식물의 이름을 알아 가는 일은 내게 매우 흥미로운 일의 하나가 됐다. 이름을 아는 일은 그 존재의 입구로 들어서는 일이다. 이름이라는 형식은 존재의 기호이기 때문이다. 데이비드 에튼버러는 ‘식물의 사생활’ 서문에서 식물은 볼 수 있으며 서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고 정확하게 시간을 잴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것은 과학의 발견이지만 시적 통찰이기도 하다. 식물은 단순히 동물에게 영양소와 목재와 그늘을 공급해 주는 객체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식물은 동물과 마찬가지로 이 세계의 중요한 구성원이다. 한국에서 식물을 과학적으로 체계화하기 시작한 사람은 나카이 다케시노라는 일본인이었다. 그는 1913년 조선총독부 촉탁 식물학자로 들어와 4000종이 넘는 조선 식물을 근대적 분류법으로 등록했다. 특히 미선나무, 금강초롱 등 440여종의 조선 특산식물에 자신의 이름을 붙여 학계에 보고했다. 그의 식물 채집과 통역을 도운 정태현, 생약학 전공자로 출발한 도봉섭이 조선인으로서는 최초의 식물분류학자라고 할 수 있다. 도봉섭은 한국전쟁 때 월북해 북한 식물학의 기틀을 잡았다. 1937년 정태현·도봉섭·이덕봉·이휘재의 이름으로 발간한 ‘조선식물향명집’은 우리 학자들이 식물명을 집대성한 최초의 단행본이다. 이 책은 식물에 ‘조선명’을 부여하는 확실한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그들은 수십 년간 전국 각지의 현지조사에서 식물명을 수집했고 실제로 조선인이 사용하는 이름을 우선으로 했다. 지금 덕수궁미술관에서는 ‘절필시대’라는 주제로 근현대화가 여섯 사람의 전시가 열리고 있다. 전시는 9월 15일까지 이어진다. 이 중에 도봉섭의 부인 정찬영의 식물 세밀화는 이 분야의 원조라고 할 만하다. 그는 남편을 도와 식물 세밀화를 그렸지만, 부부가 함께 준비했던 식물도감은 남편이 행방을 감추자 출간되지 못했다. 정찬영은 1930년대에 모윤숙·최정희·노천명 등과 교유한 흔적이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시인 백석이 이 여성 문인들과 친분이 두터웠다는 점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당시 백석은 조선일보에서 잡지 ‘여성’과 ‘조광’의 편집을 담당했는데 그가 국내 식물학 분야의 성과를 눈여겨보았으리라는 추측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백석은 1935년부터 1962년 북한에서 마지막 시를 발표할 때까지 모두 115편의 시를 남겼다. 여기에서 식물 이미지로 분류할 수 있는 시어가 350여개 등장하며 국가표준식물목록에 수록된 식물명이 105개에 이른다. 백석의 시에는 쇠조지(쇠서나물), 가지취(빗살서덜취), 이스라치(이스라지), 스무나무(시무나무), 들매나무(들메나무), 바구지꽃(미나리아재비)과 같은 일반인들에게는 낯선 식물명이 자주 출몰한다. 한국인들은 식물도감이 아니라 백석의 시 ‘남신의주유동박시봉방’을 통해 ‘갈매나무’를 처음 만난다. 그는 갈매나무의 생태적 특성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백석은 식민지의 현실을 받아들이거나 거기에 동조하는 대신에 그 현실을 응시하면서 현재를 견디는 상징으로서의 갈매나무를 설정했다. 그 갈매나무는 일제에 전면적인 저항을 하지 않으면서 친일의 길에 들어서지도 않았던 백석의 생애와 유사하다.1935년 간행된 정지용의 첫 시집 ‘정지용 시집’에는 모두 89편의 시가 수록돼 있다. 여기에는 48종의 식물명이 등장한다. 정지용은 자극적이면서 도발적인 감각을 구사하면서 외래어를 시에 끌어들이는 데도 주저하지 않았다. 백석과 달리 그는 장미, 바나나, 다알리아, 종려나무와 같은 외래식물에 뚜렷한 관심을 보인다. 정지용은 동백을 ‘춘나무’라고 쓰거나 ‘홍춘’(紅椿)이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이는 동백나무의 일본식 표기인 ‘쓰바키’(椿)를 사용한 것이다. 평안도 출신 백석이 통영에서 ‘동백’을 발견하고 그 표기를 그대로 쓴 것과 뚜렷이 대조된다. 백석이 제대로 된 식물도감 하나 없던 시절에 매우 구체적인 식물명을 시에 끌어들였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하나의 경이라고 할 수 있다.
  • 경계인 저항을 읊조리다

    경계인 저항을 읊조리다

    ‘식민지 소년인 나를 열렬한 ‘황국(皇國) 소년’으로 만들어 낸 예전의 일본어와 그 일본어가 자아내던 음률의 서정은 삶이 있는 한 대면해야 할 나의 의식의 업(業)과 같은 것이다.’(‘잃어버린 계절’ 92쪽) 아흔 평생 자신의 업을 갈고닦은 시인, 재일 조선인 김시종의 시집과 비평서가 나란히 출간됐다. 세계인 혹은 경계인으로서의 김시종을 조명하려는 움직임이다. ●反일본적 서정 담긴 7번째 시집 ‘잃어버린 계절’ 창비에서는 2010년에 출간된 시인의 일곱 번째 시집 ‘잃어버린 계절’을 번역 출간했다. 철학자 이진경(본명 박태호) 서울산업대 기초교양학부 교수와 한국문학 연구자 가게모토 쓰요시의 공동 번역으로 국내에 첫 소개되는 완역본이다. 부산에서 태어나 제주로 건너간 김 시인은 제주 4·3항쟁에 휘말려 목숨이 위태로워지자 1949년 일본으로 탈출, 오사카의 재일 조선인 거주지 이카이노에 정착해 줄곧 일본어로 시를 써왔다. 시인에게 일본어는 자신의 감성과 의식 체계의 밑바탕이 되는 모국어나 다름없다. 그러나 스스로 ‘일본어에 대한 보복’으로 문필 생활을 하고 있다고 밝혔듯, 그의 시는 일본식 문체가 아닌 데다 반일본적 서정이 담겨 있다.‘고향도 연고도 잃은 새가/ 쓰레기밖에 주울 게 없는 일본에서/ 나의 말을 모이로 살아가고 있다./ 나는 점점 까악까악 외칠 수밖에 없는/ 새가 되어가고 있다./ 곧 입술이 붉게 물들 것이다.’(‘조어(鳥語)의 가을’ 중) 낯선 발음을 붙이거나, 쓰지 않던 한자어를 만들어 내고, 한자 아닌 단어들도 익숙한 어법을 피해 어색함과 생소함을 만들어 내는 것이 김시종의 시다. 이 때문에 오랜 기간 일본 문단에서 비주류 취급을 받았으나 이후 마이니치출판문화상(1986), 오구마히데오상 특별상(1992) 등을 수상했다. ‘잃어버린 계절’은 2011년 다카미준 수상작이다. ●‘김시종, 어긋남의 존재론’ 전설의 시인을 말하다 시집의 번역자이기도 한 이진경 교수는 김시종의 문학을 존재론적 관점에서 비평한 ‘김시종, 어긋남의 존재론’(도서출판 b)도 함께 펴냈다. ‘철학과 굴뚝청소부’, ‘맑스주의와 근대성’ 등 사회학·철학 등 다양한 학제 간 경계를 넘나든 저자의 첫 문예비평서다. 일본에서는 공산주의를 지향하다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와 갈등을 빚어 결별하는 등 남한도 북한도 아닌 일본에 살고 있지만 일본인도 아닌 존재로서 시인의 삶과 시에 대해 분석했다. 이 교수의 표현에 따르면 김 시인은 ‘삼중의 디아스포라’다.시인이 일본에서 재일조선인으로 살아가는 의미를 형상화한 장시 ‘니이가타’, 오사카의 재일조선인 집단거주지의 삶을 풍자적으로 그린 ‘이카이노 시집’, 광주민주화운동이 3년 지난 시점에서 ‘광주사태’를 들춰본 ‘광주시편’ 등 대표 시집을 각 장에서 한 권씩 다루고 있다. 저자는 서문에 이렇게 썼다. “이런 삶이, 이런 시가 어떻게 전설이 되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8쪽)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모던패밀리’ 백일섭, 곽진영과 26년 만에 부녀상봉 “시집 왜 안 가”

    ‘모던패밀리’ 백일섭, 곽진영과 26년 만에 부녀상봉 “시집 왜 안 가”

    ‘종말이’ 곽진영이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난 아버지 이야기를 처음으로 털어놓으며, 백일섭 앞에서 눈물을 쏟는다. 9일 밤 11시 방송하는 MBN ‘모던 패밀리‘(기획/제작 MBN, 연출 송성찬)에서는 ’종말이‘로 큰 사랑을 받았던 곽진영이 백일섭과 26년여 만에 ’부녀상봉‘ 하는 모습이 공개된다. 두 사람은 국민 드라마 ‘아들과 딸’(1991년)에서 첫 인연을 맺었지만, 같은 여수 출신이라 친부녀처럼 각별한 사이였다고. 그동안 사는 게 바빠, 오랜만에 재회하게 됐지만 곽진영은 백일섭을 보자마자 “아부지~”라며 팔짱을 끼고, 백일섭 역시 “예쁜 가시네~” 하며 꼭 끌어안는다. 특히 고향인 여수에서 상봉한 터라, 감격은 더했다. 백일섭은 “세월만 변했지 사람은 안 변했다”면서 “왜 시집을 안 갔냐”고 안부를 묻는다. 곽진영은 “이제 곧 오십”이라며 “사실 아빠가 많이 아프셨다. 임종을 못 지켜서 마음이 더 아프다. 아빠가 돌아가신 지 2년이 되어 가는데, (백일섭) 선생님을 만나니 아빠 생각이 더 많이 난다”며 눈물을 쏟는다. 곽진영이 부친상에 대해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 이 같은 소식을 몰랐던 백일섭은 안타까워하며 곽진영의 인생사를 묵묵히 들어준다. 곽진영은 “아빠가 하늘나라 가시고 일을 할 마음이 사라졌다. 서울 집도 내놓고 (고향에) 혼자 계신 어머니와 살려고 여수로 내려왔다. 방송 출연 제의도 다 거절했다. 그런데 선생님이 오신다고 하니까, 너무 좋았다”라고 털어놓는다. 백일섭은 “지금부터라도 어머니와 마음 편하게, 행복하게 살아야지”라며 투박하지만 진심 어린 위로를 건넨다. 이후 두 사람은 여수 해안가가 한눈에 들어오는 레일 바이크를 타고, 곽진영의 남동생과 함께 배낚시를 즐기는 등 진짜 부녀처럼 따뜻한 시간을 보낸다. 제작진은 “부친상 후 처음으로 세상에 나온 곽진영이 친아버지 같은 백일섭과 재회해 모처럼만에 미소를 되찾았다. ‘아들과 딸’의 정겨운 부녀 모습 그대로, 26년 만에 여수에서 재현된 두 사람의 데이트가 시청자들에게도 가슴 따뜻한 시간을 선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백일섭과 곽진영의 ‘부녀상봉’ 외에도, ‘남해 자연인’ 박원숙이 ‘김미화 가족 음악회’에 초대받아 감동에 젖은 사연과 ‘40대 싱글남’ 김민준이 죽음을 미리 경험해보는 ‘입관 체험’에 나선 속사정 등이 9일 ‘모던 패밀리’에서 공개될 예정이다. MBN ’모던 패밀리‘는 매주 금요일 밤 11시 방송.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황규관의 고동소리] 근대문명과 시

    [황규관의 고동소리] 근대문명과 시

    ‘녹색평론’ 발행인 김종철이 얼마 전 낸 ‘근대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는 여러 가지로 의미심장한 책이다. 대부분의 글은 ‘녹색평론’을 통해 읽었지만, 한데 모아 놓은 것을 다시 탐독하니 그의 생각과 사상이 보다 더 뚜렷하게 다가왔다. 독서는 어쨌든 자신의 앎을 모름의 상태로 만들어 놓고 읽어야 제맛이다. 또 그래야만이 기왕의 앎이 흔들리고 갱신된다. 독자가 자신의 앎을 굳건히 고집하는 상태에서는 독서만큼 지루한 경험도 없을 것이다. 아는 사람은 다 알고 있지만 김종철의 정신적 고향은 ‘문학’이다. 그의 예전 문학비평을 읽어 보면 지금도 살아 숨쉬는 생동감을 느낄 수 있는데, 이 책보다 몇 달 앞서 나온 ‘대지의 상상력’이 그것을 증명한다. 혹자들은 김종철의 문학론을 고답적인 리얼리즘론이라 평하지만 중요한 것은 김종철의 생각과 사상이 그런 문학적 카테고리 안에 갇히지 않는다는 점이다. ‘근대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에서 집중적으로 나타난 김종철의 ‘생태사상론’의 맹아 또는 문학적 버전이 ‘대지의 상상력’에서 블레이크, 리비스, 파농, 리처드 라이트, 이시무레 미치코 등을 통해서 숨막히게 펼쳐진다. 오래전 글이지만 아직도 가슴을 뛰게 하는 것은 그가 예민하게 인식하고 있는 ‘근대문명’이 우리의 삶을 나날이 피폐하게 하기 때문일 것이다. 김종철이 문학을 떠나 ‘녹색평론’을 창간한 것은 어떻게 보면 문학의 기존 영역을 허물고 넓힌 것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김종철의 ‘생태사상론’ 자체가 시적 직관으로 번득이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김종철의 박학다식(?)에 어리둥절해하지만 나는 김종철이 가지고 있는 단단한 눈빛은 바로 이 시적 직관 때문이라고 꽤 오래전부터 생각해 왔다. 직관은 정념이나 기분에 좌우되지 않는다. 특히 시적 직관은 이성의 활동과 기억(경험)이 응축된 바탕에서 솟아오르는 것이다. 이 시적 직관은 단박에 사태의 기원으로 거슬러 올라가기도 하는데, 나는 이것이 니체가 말한 ‘반시대적인 것’(unzeit)이라고 생각한다. ‘시대적인 것’은 당대의 통념에 묶여 있는 예가 허다하다. 김종철이 말하는 민주주의에 대한 정의를 그 예로 들어 볼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민주주의는 고작 보통선거제도로 귀착된다. 거기에 표현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가 덧붙여지고 그것들이 잘 운용되면 민주주의 사회라고 일컬어진다. 하지만 김종철은 민주주의를 간략하게 ‘민중의 자기 통치’라고 정의 내린다(민주주의는 국가주의와 양립할 수 없고 도리어 고(故) 권정생 선생이 말한 ‘애국자가 없는 세상’에 가깝다). 민주주의에 대한 이 정의는 고대 아테네에서 200년 동안 실제 존재했던 경험에서 유래한다. 그런데 ‘민중의 자기 통치’라는 정의에 입각할 때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사회일까? 근대 자본주의 문명과 민주주의에 대한 김종철의 근본적인 비판도 여러 생각을 하게 하지만, 나는 ‘근대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를 읽으면서 ‘시의 길’을 줄곧 생각했다. 이 책에는 ‘시’에 대한 이야기도 없을뿐더러 저자의 ‘시론’이 지나가는 말로나마 언급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김종철의 글에서 자주 ‘시의 심장’ 소리를 듣고는 했다. 언제부터인가 시집을 읽으면서 느낀 왜소해진 시적 자아에 대한 갑갑함 때문이었을까? 적잖은 선배 시인들에게는 감상주의적인 서정이 도드라지고 꽤 많은 후배 시인들에게는 내적 필연성이 결여된 언어유희 혹은 조탁이 대부분이다. 다시 말하면 ‘테크네’로 써진 작품은 많은 반면에 ‘포이에시스’로 써진 작품들은 아주 귀하다. 어떤 시인들은 사회적 이슈와 추문에 대한 원한 감정으로 쓰기도 하는데, 씁쓸하게도 이런 작품들이 독자들의 주목과 사랑을 받는다. 참고로 ‘테크네’는 외부의 세공 작업으로 탄생한 조형물을 비유로 들 수 있고, ‘포이에시스’는 내면에 도사리고 있던 정신과 영혼의 상태에서 터져 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이데거는 포이에시스를 “겨울 내내 웅크려 있다가 봄바람, 햇살, 이슬비, 그리고 땅의 기운을 받아 봉오리를 터뜨리는 순간의 기운으로 설명했다”고 한다. 하이데거의 이 말은 포이에시스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사태에 대한 깊은 고뇌와 그것을 뒤집으려는 실천이 필요한 것인지 암시해 준다. 따라서 ‘근대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를 읽으면서 ‘시의 길’을 떠올린 것은 그렇게 엉뚱한 일만은 아닐 것이다.
  • 장정일이 돌아왔다 장정일식 詩語 들고

    장정일이 돌아왔다 장정일식 詩語 들고

    ‘냉무’(내용 없음)로 돌아왔다. 출판사는 ‘장정일이 돌아왔다’고 했고 누군가는 ‘시마(詩魔)가 돌아왔다’고 했다. 그러나 인터뷰 요청 메일을 보낸 기자에게 불과 몇 분 만에 돌아온 것은 ‘냉무’였다. 해설도, 추천사도 없는 시집을 덜렁 낸 시인. 32년 전, ‘무명’ 장정일의 시집에도 없던 그것들은 지금도 없고, 유명해지거나 말거나 장정일은 여전했다. 장정일(57)이 새 시집 ‘눈 속의 구조대’를 냈다. 그간 소설, 에세이, 희곡 등은 꾸준히 써 왔지만 시집은 꼬박 28년 만이다. 문학 교과서에도 나왔던 시 ‘햄버거에 대한 명상’을 쓴, ‘희대의 문제작’ 소설 ‘내게 거짓말을 해봐’를 쓴 그 장정일이다. ●28년 만에 내놓은 시집… 바뀐 것은 현실 인식 32년 전, 현대 자본주의 문명을 비판한 ‘햄버거에 대한 명상’을 쓴 시인은 여전히 문화적 기호에 민감하다. 예순을 바라보는 시인의 시에는 방탄소년단이 등장하고, ‘쇼미더머니’와 ‘고등래퍼’가 나온다. 성역이 없기도 마찬가지다. ‘국위선양의 총체’ 방탄소년단 보고 ‘꺼지라’ 한다. 신에게도 마찬가지다. 하느님은 돌연, 성소수자 담론의 한복판으로 뛰어든다. ‘하느님 아버지, 하느님 아버지 하는데/논리적으로/하느님 어머니는 어디에 계신가?//하느님 아버지에게 부인이 없다면/논리적으로/우주는 하느님 똥구멍으로 나왔을 테지?//만약 하느님 혼자서 부인과 남편을 겸했다면/논리적으로/하느님은 쉬메일(Shemale) 아니신가?’(‘성소수자인 하느님’) 이 문제적 시에 대해 박혜진 문학평론가는 “성소수자를 배제하는 언어들에 대해 바로 반격하는, 정언에는 정언으로 대치해 누구나 보편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장정일식 퀴어 언어”라고 말했다. 바뀐 것은 오로지 현실 인식 하나다. 이는 ‘햄버거에 대한 명상’의 바통을 이어 받은 시 ‘시일야방성대곡’을 보면 알 수 있다. ‘2018년 3월 30일/맥도날드 경희대학교점이 폐점했다’로 시작하는 시는 ‘온통 맥도날드인 세상에서/우리는 장소를 잃어버렸다’로 끝맺는다. 그 시절 신(新)문물 햄버거에 열광했던 우리는, 이제 사라진 맥도날드 앞에서 나라 잃은 백성처럼 목놓아 운다. 시 ‘눈 속의 구조대’에서 ‘현대빌라’를 찾는 구조대는 마을 사람들도 모르는 ‘신현대빌라’ 앞에서 난감해한다. 눈으로 덮여 길이 없으며, 어디로 가야 하는지, 무엇을 잃어버렸는지도 알 수 없는 기묘한 현대상이다. ‘눈 속의 구조대’는 ‘K2’, ‘불타는 집을 교대로 지킨다’ 같은 B안들 중에서 시인이 직접 고른 시집 제목이다. 그만큼 시인의 문제의식이 집약된 시라 할 것이다.●특유의 직설화법·노골적 표현… 장정일 “사회 비판 시집” ‘57년산 아웃사이더’ 시인에게서는 뜻밖에 얼핏 낙담이 보인다. 일련의 레시피를 읊던 ‘햄버거에 대한 명상’, 김춘수 ‘꽃’에 대한 패러디 ‘라디오같이 사랑을 끄고 켤 수 있다면’ 같은 발랄함이 더는 보이지 않는다. 허희 문학평론가는 “웃음으로 치환되지 않는 강고한 현실이나 이 세계의 발전 가능성에 대해 근본적으로 회의를 품고 있는 게 아닐까 한다”며 “예전에는 ‘아버지’라든가, ‘미국’ 같은 기표 등 뚜렷한 적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현대 그 자체가 시인의 적이 된 느낌”이라고 말했다. 시인은 ‘내가 없는 완벽한 세상/내가 없으면 더욱 아름다운 세계!’(‘내가 없는 세상’)라고 느낌표를 찍었다. 시인은 이번 시집을 80년대 스타일, 사회 비판 시집이라고 했다고 한다. ‘28년 만에 돌아온 한국 시단의 가장 날카로운 자리’라는 헤드카피를 붙인 편집자 서효인 시인은 “자기비판도 치열하고, 여전히 가장 날카로워서”라고 했다. 시 곳곳에 드러나는 시인 특유의 직설어법, 노골적 표현(가장 자주 등장하는 시어는 ‘항문’이다)은 누군가의 심기를 건드릴 수도 있다. 그러나 문학이 꼭 아름다워야 할 필요는 없고, 그래야 한다면 문학은 문학일 필요도 없다는 생각이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리얼 힙합’일지도.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광주,10일 한 여름밤의 별빛음악회

    광주,10일 한 여름밤의 별빛음악회

    광주시립광지원농악단은 10일 오후 7시30분 청석공원에서 제4회 한 여름밤의 별빛음악회 ‘COOL! 야행’ 공연을 한다고 1일 밝혔다. 이번 공연은 라키즈 익스트림퍼포먼스 팀의 BMX자전거 묘기와 신체 부위를 이용해 축구공을 다루는 프리스타일 축구 퍼포먼스 등 다양한 볼거리를 준비했다. 또 광주시립광지원농악단의 공연과 연희컴퍼니 유희, 국악실내악단, 재즈밴드, 판소리 등 장르를 구분하지 않고 보고, 듣고, 즐길 수 있는 공연이 진행된다. 방학기간을 맞아 가족단위 관람객을 고려해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캐릭터 조형물 로보카 폴리, 엠버, 변신로봇, 시집가는 여인 등 10여점의 등장식이 청석공원에 자그마한 불빛축제를 만들어 줄 예정이다. 시 관계자는 “여름철 열대야를 피해 공원을 찾은 시민들에게 신명나는 공연으로 더위와 스트레스를 풀어주기 위해 마련했다”며 “이번 공연으로 광주시립광지원농악이 시민과 함께 어울리고 즐기는 대중예술로 승화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신동원 기자 asadal@seoul.co.kr
  • 스롱 피아비, 한국 남성과 결혼→당구 여제..남다른 외조

    스롱 피아비, 한국 남성과 결혼→당구 여제..남다른 외조

    2010년 남편 김만식(58)씨와 국제결혼으로 한국으로 시집 왔다가 당구선수가 된 캄보디아 출신의 스롱 피아비(30)의 사연을 소개됐다. 최근 방송된 KBS1 ‘인간극장’에서는 2010년 남편 김만식(58)씨와 국제결혼으로 한국으로 시집 왔다가 당구선수가 된 캄보디아 출신의 스롱 피아비(30)의 사연을 소개했다. 스롱 피아비는 10년 전 결혼과 함께 캄보디아에서 한국으로 건너왔던 주부였다. 낯선 타국생활에 외로워하던 아내가 안쓰러웠던 만식 씨, 우연히 데려갔던 당구장에서 아내의 놀라운 재능을 발견했고 “당신은 당구만 잘 쳐!” 하며 외조에 돌입했다. 처음에는 강행군으로 수저도 들지 못했던 피아비, 힘들어 울면서도 큐만은 놓지 않았고 선수등록 1년 반 만에 국내 여자 랭킹 1위, 세계 여자 랭킹 3위의 당구선수가 되었다. 남편 만식 씨는 혼자 인쇄소를 운영하며 당구선수인 아내를 뒷바라지하고 있다. 사진 = 서울신문DB 연예부 seoulen@seoul.co.kr
  • 황병승 시인 자택서 숨진 채 발견

    황병승 시인 자택서 숨진 채 발견

    시인 황병승(49)씨가 지난 23일 오후 2시 20분쯤 경기 고양시 덕양구에 있는 한 연립주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황씨는 수년 전부터 이곳에서 혼자 살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24일 경찰과 소방 당국에 따르면 황씨의 모친이 “아들이 한 달가량 연락이 끊겼다”며 집 주소를 알려줘 119구조대가 출동해 창문을 통해 집 안에 들어가 보니, 작은 방에 엎드려 숨진 채 발견됐다. 발견 당시 황씨 시신은 피부가 검게 변색됐을 만큼 부패가 진행된 상태였다. 집 안은 옷가지 등이 제대로 정리·정돈되지 않은 상태였으며 음식물쓰레기는 비닐봉투에 담긴 채 거실에 있었다. 황씨는 평소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2003년 ‘파라21’을 통해 등단한 황 시인은 2000년대 중반 실험적인 시를 쓰는 ‘미래파’로 분류돼 조명받았다. ‘트랙과 들판의 별’, ‘여장남자 시코쿠’, ‘육체쇼와 전집’ 등 시집을 남겼으며 미당문학상, 박인환문학상을 받았다. 2016년 문단 내 성폭력을 고발하는 ‘미투’ 과정에서 고인이 강의를 나갔던 서울예대 캠퍼스에 성추문을 폭로하는 대자보가 붙으며 타격을 받았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박진성 시인 “황병승 사망, 명백한 사회적 타살”[전문]

    박진성 시인 “황병승 사망, 명백한 사회적 타살”[전문]

    시인 박진성(42)이 시인 황병승(49)의 사망 소식에 애도를 표하며 “명백한 사회적 타살”이라고 했다. 박진성 시인은 24일 자신의 블로그에 ‘황병승 시인의 죽음을 애도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게재했다. 그는 “황병승 형이 죽었다. 죽은 지 보름 만에 가족들이 발견했다고 한다”며 “황병승 시인은 몇몇 무고한 사람들에 의해 성범죄자로 낙인 찍힌 후 황폐하게, 혼자 고독하게 살다가 생을 마감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명백한 사회적 타살이자 무고의 희생자”라며 “문단이라는 거대 이해 집단이 황병승 시인을 죽인 공범들”이라고 지적했다. 박진성 시인은 “두 명의 학생이 12년 전 있었던, 일방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주장을 대자보로 폭로했다. 확인되지 않은 일방적인 주장, 의혹은 진실이 되어버렸다”면서 “황병승 형은 전화 통화를 할 때마다 ‘자신은 그런 일을 한 적이 없다’고 항변했고 무고를 입증할 방법을 찾고 있었다. 세간의 관심은 빠르게 무관심으로 변해갔고 모든 고통은 온전히 황병승이라는 개인에게 남겨졌다”고 밝혔다. 끝으로 그는 “우리가 한 시인을 죽이고, 한 시민을 죽인 것”이라며 “생업을 잃고, 동료를 잃고, 문학을 잃고 그렇게 황병승 형은 죽어갔다. 가슴이 찢어진다. 도대체 우리는 무슨 짓을 한 것이냐”고 애통해했다. 앞서 황병승 시인은 이날 오전 경기도 고양시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혼자 살던 황병승 시인의 시신은 그의 부모에 의해 발견됐다. 경찰은 시신을 수습해 원당 연세병원으로 옮겼으며 황병승 시인이 사망한 지 보름 정도 된 것으로 추정했다. 유족에 따르면 황병승 시인은 알코올 중독과 우울증을 앓는 등 건강 상태가 좋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황병승 시인은 서울예술대학교 강사로 재직하던 2004년, 여제자를 상대로 성추행했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문예창작과 학생들은 12년이 지난 2016년, ‘문단 내 성폭력 서울예대 안전합니까’라는 제목의 대자보를 통해 황씨가 제자에게 성관계를 요구했다고 주장했다. 논란이 거세지자 황병승 시인은 “저로 인해 정신적 고통과 상처를 입은 분들께 진심으로 사죄드린다“며 ”참회하는 마음으로 자숙하겠다“고 사과한 바 있다. 황병승 시인의 빈소는 그의 본가가 있는 경기도 양주의 병원에 차려질 예정이다. <이하 박진성 시인 글 전문> 황병승 시인의 죽음을 애도합니다 황병승 형이 죽었습니다. 죽은 지 보름 만에 가족들이 발견했다는 뉴스입니다. 정말 슬프고 또 끔찍한 일입니다. 생물학적 사인은 더 기다려 봐야 하겠지만 이 죽음은 명백한 사회적 타살입니다. ​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2016년 10월, 트위터를 중심으로 #문단_내_성폭력 해시태그 운동으로 몇몇 시인과 소설가들이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되었었습니다. ​ 병승 형의 모교인 서울예술대학교에 황병승 형이 성폭력을 행사했다는 대자보가 게재되었고 병승 형은 실명과 사진이 그대로 노출된 채 매스컴에 보도되었습니다. ​ 병승 형에게 확인 전화를 했습니다. 12년 전 강의실에서 있었던 일을 두 명의 서울예술대학교 학생이 대자보에 붙인 사건입니다. 2016년의 일이니까 2004년에 있었던 일을, 그것도 확인되지 않은 일방적 주장을 대자보를 통해 두 명의 학생이 학교에 붙였고 그 ‘의혹’은 진실이 되어버렸습니다. ​ 그 후로 병승 형과 연락을 주고받기도 했고 마포에서 만나기도 했습니다. ​ 1970년 생 황병승 형은 30대 초반에 데뷔해서 특별한 직업 없이 전업 시인으로 살던 사람입니다. 성폭력 의혹 제기 이후, 모든 문학 전문 문예지에서 청탁을 하지 않았고 또한 어떠한 출판사에서도 시집 출간 제의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생계 수단이었던 시 창작 강좌도 모두 끊겼습니다. ​ 소송을 하라고 제가 몇 차례 권유를 했었는데 12년 전에 있었던 일의 진위 여부를 다투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그러니까 황병승이라는 시인은 ‘성폭력 의혹 제기’(강단에서의 성희롱 의혹)만으로 모든 사회적 관계가 단절되었고 생업이 끊겼고 지인들과의 연락도 끊겼습니다. ​ 이것은 명백한 사회적 타살입니다. 병승 형은 전화 통화를 할 때마다 자신은 그런 일을 한 적이 없다고 항변했고 자신의 무고를 입증할 방법을 찾고 있었습니다. 세간의 관심은 빠르게 무관심으로 변해갔고 모든 고통은 온전히 황병승이라는 개인에게 남겨졌습니다. ​ 우리가 죽인 겁니다. 우리가, 한 시인을 죽인 거고 한 시민을 죽인 겁니다. 12년 전, 자신이 하지도 않았던 발언이 문제가 되어 하루 아침에 생업을 잃고 동료를 잃고 문학을 잃고 그렇게 황병승 형은 죽어 간 것입니다. ​ 병승 형과의 통화 내용을 남겨둡니다. “10년 동안 만났던 애들도 전화를 안 하더라고...” ​ 엎드려 울면서 한 시인의 외로운 목소리를 듣습니다. 가슴이 찢어집니다. 도대체 우리는 무슨 짓을 한 것입니까.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쓸모없는 별이 되었네”…문인들 시인 황병승 추모글

    “쓸모없는 별이 되었네”…문인들 시인 황병승 추모글

    시인 황병승(49)씨가 경기도 고양에 있는 자택에서 24일 오전 숨진 채 발견됐다. 황씨는 경기도 고양시 원당 연립주택에서 혼자 살아왔고 사망 현장은 부모가 발견했다. 사인은 아직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다. 경찰은 황 씨가 사망한 지 보름쯤 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유족에 따르면 황 씨는 알코올 중독 증세 등으로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유족은 본가가 있는 경기도 양주에 병원에 빈소를 차려 장례를 치르고 문인들 조문을 받을 예정이다. 2003년 ‘파라21’로 등단한 황시는 ‘트랙과 들판의 별’, ‘여장남자 시코쿠’, ‘육체쇼와 전집’ 등 시집을 남겼다. 그는 미당문학상, 박인환문학상을 받았다. 동료 문인들은 SNS를 통해 고인을 애도했다. 시인 정병근씨는 “아, 이렇게 간다는 말인가. 가면 된다는 말인가. 이 사람아, 황병승 시인, 이 사람아. 너무 가슴이 아프네. 명복을 빌기엔 내 말이 가볍네. 그만 쓸모없는 별이 되었네. 병승아, 이 사람아”이라고 적었다. 시인 조동범씨는 “마음이 너무 아프다. 아무도 그의 죽음에 대해 섣부른 판단을 해서는 안 된다. 조롱과 멸시의 언사는 더더욱 안 된다. 어떻게 이런 일이. 명복을 빈다는 말조차 마음이 너무 아프구나. 눈물이 자꾸 나온다. 병승아 잘 가렴”이라고 추모했다. 소설가 신승철씨는 “내게는 공손하고 수줍어하던 예대 문창과 후배였는데 그는 비참하게 세상을 떠났다. 울컥울컥 해지는 게. 왠지 서럽다”고 글을 남겼다. 시인 박진성씨는 “불과 몇 달 전에도 연락을 했었는데. 문단이라는 이상한 집단이 죽인 ‘사회적 타살’”이라며 “황폐하게, 혼자 고독하게 살다가 생을 마감했다. 문단이라는 거대 이해 집단이 황병승 시인을 죽인 ‘공범들’이다”라고 했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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