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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병선의 시시콜콜] 마크롱이 랭보와 베를렌의 팡테옹 이장 막은 이유

    [임병선의 시시콜콜] 마크롱이 랭보와 베를렌의 팡테옹 이장 막은 이유

     프랑스 시인 아르투르 랭보(1854∼1891년)와 동성 연인이었던 시인 폴 베를렌(1844∼1896년)은 각각 벨기에 국경이 멀지 않은 샤를빌메지에르와 파리 외곽의 공동묘지에 묻혀 있다.  생전에 화해하지 못한 채 외롭게 죽어 따로 묻힌 이 동성 연인들을 파리 소르본 대학의 ‘위인 묘역’ 팡테옹으로 이장해야 한다는 온라인 청원에 프랑스 예술계는 지난해 가을부터 몸살을 앓아왔다. 빅토르 위고, 에밀 졸라 같은 세계적인 문학가, 계몽주의를 대표하는 사상가 볼테르, 노벨 물리학상과 화학상을 받은 마리 퀴리 등 프랑스를 빛낸 위인 75명이 잠들어 있는 팡테옹에 묻힐 만한 자격이 충분하다는 주장과 동성애자들에게 위인 묘역을 허용해선 안된다는 주장이 대립했다. 물론 둘이 뜨겁게 사랑했던 시절에도 동성애 혐오론자들이 대놓고 둘을 공격하곤 했다. 프랑스판 오스카 와일드로 불린 이유다.  문화부 장관 로즐린 바슐로나르캥을 비롯해 이름난 문화·예술계 인사들은 지난해 랭보와 베를렌을 팡테온으로 이장하자는 온라인 청원에 서명하면서 논의에 불씨를 댕겼다. 이들은 75명의 위인 가운데 시인이 단 한 명도 없음을 개탄했다. 자크 랑, 프랑수와즈 니센 등 무려 9명의 전직 문화부장관들이 동참하고 5000여명이 온라인 서명한 청원은 랭보와 베를렌이 남긴 족적을 생각했을 때 팡테옹에서 다른 위대한 문인들과 함께 기억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팡테옹 이장을 주장하는 청원이 나왔을 당시 후손인 자클린 테시에 랭보는 두 사람을 함께 팡테옹으로 이장하는 것에 반대한다고 못 박았다. 특히 두 사람이 함께 삶을 시작하지도, 끝내지도 않았고, 연인으로 보낸 것은 젊은 한때일 뿐이었다며 둘의 관계에 지나친 의미를 부여하는 분위기에 선을 그었다.  랭보는 열일곱 살이던 1871년 스물일곱 살의 유부남 베를렌과 파리에서 만나 사랑에 빠졌고, 2년 뒤 벨기에 브뤼셀에서 언쟁을 벌이다 베를렌이 자신에게 두 차례 총을 쏜 것을 계기로 헤어졌다. 19세기 프랑스 상징주의 문학을 대표하는 ‘천재 시인’ 랭보는 베를렌과 결별한 뒤 고향으로 돌아와 쓴 산문 시집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을 대표작으로 남겼다. 10대 때부터 프랑스 문학에 한 획을 그은 작품들을 남긴 랭보는 술과 마약에 찌들어 살다가 21세에 절필을 선언하고 그 뒤 유럽·중동·아프리카 등을 유랑했다. 사막을 건너는 대상 행렬에 끼어들었다가 다리의 종기가 덧나 프랑스 마르세유 병원에서 한쪽 다리를 자르고 몇 달 뒤 숨졌다. 37세의 허망한 죽음이었다.  베를렌은 파리코뮌 시절 랭보와 함께 무정부주의자들과 어울렸다. 랭보에게 총상을 입혀 금고 2년형을 복역하며 가톨릭에 귀의했다. 수도원에 들어가 생활하기도 했다. 나중에 독일 슈투트가르트에 있던 랭보를 찾아가 다시 만나자고 애원했으나 난폭한 거절을 당했다. 어머니가 1866년 세상을 떠나자 다시 술과 방탕한 생활에 빠져들었다.  저서 ‘고백, 자서전적 기록(Confessions, notes autobiographiques)’은 그 자신을 비롯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동시대 작가들을 다시 보도록 했다. 그는 1886년에 랭보의 ‘일뤼미나시옹(Illuminations)’을 출판해 랭보를 유명하게 만들었다. 1896년 1월에 나이 든 창녀 외제니 크란츠의 셋방에서 쓸쓸히 눈을 감았다. 팡테옹 이장 결정은 오롯이 프랑스 대통령의 권한이다. 우리네 사면권과 비슷한 권한이 아닌가 싶다. 프랑스 혁명 등 숱한 피를 흘려온 나라답게 대통령만이 팡테옹 이장 권한을 쥐게 했다. 2002년 자크 시라크 당시 대통령은 걸작 ‘몽테크리스토 백작’을 쓴 알렉상드르 뒤마의 팡테옹 이장을 결정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전날 랭보 후손들에게 서한을 보내 그를 팡테옹으로 이장하지 않겠다고 밝혔다고 AFP 통신이 1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우선 랭보를 “프랑스 문학에서 중요한 인물”이자 “우회하지 않는, 반항 정신을 대표하는 시인”으로 칭하며 “우리 역사에 계속될 이름”이라고 경의를 표했다. 이어 “가족이 원하는 바를 거스르고 싶지 않다”며 “그가 태어나고 말년을 보낸 샤를빌메지에르에서 그의 가족과 함께할 것”이라고 썼다. 베를렌과 엮이고 싶지 않다는 후손들의 뜻을 존중하기로 한 것이다.  랭보의 후손을 대리하는 변호사 에마뉘엘 뤼도는 “기대하지도 않았는데 마크롱 대통령이 가족의 뜻을 존중해줬다”며 “마크롱 대통령의 인간미에 감동했다”며 감사의 뜻을 밝혔다고 일간 르몽드가 전했다.  임병선 논설위원 bsnim@seoul.co.kr
  • [책꽂이]

    [책꽂이]

    권력 쟁탈 3000년(조너선 홀스래그 지음, 오윤성 옮김, 북트리거 펴냄) 철기 시대부터 현대에 걸친 3000년 전쟁과 평화의 역사를 조명하고 전쟁이 벌어지는 원인을 탐색한다. 저자는 ‘상업과 무역은 정말 국제평화를 증진할까’, ‘민주주의와 참여가 전쟁을 예방할 수 있을까’라는 본질적 질문을 던지고 평화를 당연한 것으로 여겨서는 안 되는 이유를 설명한다. 632쪽. 3만 7000원.홀로 선 자들의 역사(김동완 지음, 글항아리 펴냄) 우리 조상들이 전국 곳곳에 지은 누정(樓亭) 35곳을 역사와 함께 이야기한다. 안동 고산정부터 청송 찬경루까지 누정은 조선시대 시문학의 정수가 모인 곳이자, 철학·풍수·건축·지리를 담은 ‘인문학 사전’이다. 400쪽. 1만 9800원.7개 코드로 읽는 유럽 도시(윤혜준 지음, 아날로그 펴냄) 기원전 5세기 아테네부터 2020년 밀라노 두오모 성당까지 유럽 도시의 현재와 과거를 들여다본다. 영문학자인 저자는 돌·물·피·돈·불·발·꿈 등 7개 코드를 따라 유럽 도시 역사 속 49개의 결정적 장면들을 독자들에게 풀어놓는다. 아름다운 사진과 과거 역사 흔적을 추적할 단서가 담긴 도판이 돋보인다. 348쪽. 1만 7000원.창의성의 기원(에드워드 윌슨 지음, 이한음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 하버드대 교수인 저자가 인간 창의성의 기원과 미래, 그 잠재력을 억누르는 게 무엇인지 압축적으로 설명한다. 저자는 창의성을 계발하고 확장하려면 인문학과 과학이 섞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간 창의성에 대한 기존의 인문학적 연구는 작은 공기 방울에 갇혀 있다는 것이다. 272쪽. 1만 9500원.배리어 열도의 기원(김가경 지음, 도서출판 강 펴냄) 소설가 김가경의 두 번째 소설집으로 ‘유린 이야기’, ‘다소 기이한 입장의 C’, ‘배리어 열도의 기원’ 등을 담았다. 의약품 재료인 오줌에 대해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는 여성을 다룬 유린 이야기처럼 이번 소설집에는 ‘불청객’들이 등장한다. 소외된 타자들이 선사하는 팽팽한 긴장과 복잡한 심경들로 가득하다. 232쪽. 1만 4000원.보리 익을 무렵(김향기 지음, 하나로 선 사상과 문학사) 김향기 시조 시인의 첫 번째 시집으로 옛 농촌, 보리 익을 무렵의 향토 정서를 보여 주기 화법으로 표출했다. 낮고 평온하면서도 소박한 인생론을 담았다. 감칠맛 나는 순우리말을 발굴해 잠재적 본질을 일깨운 점이 돋보인다. 124쪽. 1만원.
  • 법원 “박원순 음란 문자 확인”… 경찰 5개월 수사 ‘빈손’ 논란

    법원 “박원순 음란 문자 확인”… 경찰 5개월 수사 ‘빈손’ 논란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사망함에 따라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된 그의 성추행 혐의가 다른 성범죄 사건의 판결 과정에서 언급된 데 이어 일부 피해 사실까지 인정됐다. 일각에선 기소도 되지 않은 별도 사안에 대해 재판부가 반대 진술 없이 단정적 표현을 한 것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오지만, 그럼에도 박 전 시장 사건을 5개월간 수사했음에도 ‘빈손’에 그친 경찰에 대한 비판 여론이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14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1부(부장 조성필)는 동료 직원 B씨를 성폭행한 혐의(준강간치상)로 기소된 서울시 공무원 A씨에게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하는 과정에서 박 전 시장의 B씨에 대한 성추행과 그로 인해 B씨가 입은 피해를 언급했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박 전 시장의 성추행으로 정신적 고통을 받은 것은 사실”이라며 그 근거로 B씨의 병원 상담·진료 내용을 내세웠다. B씨는 지난해 중순부터 상담을 받으며 “박 전 시장으로부터 음란한 문자와 사진을 받았다”고 피해를 호소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전 시장의 사망으로 그의 성추행 의혹을 직접 규명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피해자의 진술과 관련 기록을 토대로 간접적인 판단을 내린 것이다. 재판부는 “피해자는 박 전 시장 밑에서 근무한 지 1년째부터 ‘냄새를 맡고 싶다’, ‘사진을 보내 달라’는 식의 문자를 받았고, 2019년엔 ‘넌 남자를 모른다. 남자를 알아야 시집을 간다’며 성관계 과정을 얘기해 줬다는 진술을 했다”고 밝혔다. 재판부가 박 전 시장의 성추행 혐의를 일부 인정한 부분에 대해 피해자 측 법률대리인인 김재련 변호사(법무법인 온세상)는 “피해를 말하고 판단받을 수 있는 기회를 봉쇄당한 피해자로선 추행 사실과 피해를 인정받는 게 절박한 상황이었다”면서 “부당한 공격이 멈춰질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다행”이라고 말했다. 재판부의 판단이 부적절하다는 일각의 지적에 대해서는 “피고인이 무죄를 주장했기 때문에 재판부로서는 판단을 할 수밖에 없었던 대목”이라고 답했다. 앞서 경찰은 박 전 시장의 혐의를 밝히지 못한 채 사건을 마무리했다. 지난해 7월 피해자의 고소장을 받은 서울경찰청은 같은 해 12월 29일 ▲성추행 사건 ▲서울시 비서실의 추행 방조 사건 등을 불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경찰은 박 전 시장의 사망 경위를 밝히고자 휴대전화를 디지털 포렌식했지만 “사망 동기는 밝힐 수 없다”며 함구했다. 그러나 박 전 시장에게 피소 사실이 알려진 경위를 수사한 서울북부지검은 이튿날 보도자료를 통해 박 전 시장이 자신의 성추행 의혹을 시인하는 듯한 발언을 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박 전 시장이 사망 전날 임순영 당시 서울시 젠더특보에게 “피해자와 4월 사건 이전에 문자를 주고받은 것이 있는데 문제 삼으면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검찰은 박 전 시장이 언급한 문자메시지의 존재 여부 및 내용은 수사 대상과 무관해 확인할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한편 서울북부지검은 이날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김영순 한국여성단체연합(여연) 상임대표의 박 전 시장 성추행 혐의 피소 사실 유출 의혹 사건을 형사2부(부장 임종필)에 배당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여연은 이날 정기총회를 열고 김 대표를 사실상 해임했다. 민나리 기자 mnin1082@seoul.co.kr김주연 기자 justina@seoul.co.kr
  • 다니엘 바렌보임, 5월 국내 첫 피아노 리사이틀

    다니엘 바렌보임, 5월 국내 첫 피아노 리사이틀

    현대 음악의 거장 다니엘 바렌보임이 오는 5월 국내 첫 피아노 리사이틀을 갖는다. 1984년 파리 오케스트라와 2011년 서동시집(West-Eastern Divan)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로 내한했던 바렌보임이 국내에서 피아노 독주회를 여는 건 처음이다. 공연기획사 해프닝피플에 따르면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인 다니엘 바렌보임은 코로나19로 힘든 시간을 보낸 관객들에게 평화와 위로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5월 19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리사이틀을 열고, 중국·일본 투어도 계획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리사이틀에선 지난해 베토벤 탄생 250주년을 조용히 넘긴 아쉬움을 더해 자신의 장기인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를 연주할 예정이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BTS가 시조 운율로 랩을? 전 세계서 대박 터질걸요”

    “BTS가 시조 운율로 랩을? 전 세계서 대박 터질걸요”

    “부드러운 리듬감이 힙합과 잘 어울려요간결·자유로워 디지털 시대 청년과 궁합시조 소재 무궁무진… 편견 없애고 싶어”금기시되던 외래어 사용 등 다양한 시도“우리 민족 고유의 시조는 부드러운 리듬감을 담고 있어 읽기에도 좋고, 그 운율은 현대 젊은이들의 랩(힙합) 음악과도 잘 어울립니다. 방탄소년단(BTS) 등 한류 스타가 시조 운율을 활용해 노래하면 전 세계적으로 유행할 잠재력을 충분히 지닌 문학입니다.” 최근 등단 50주년을 맞아 신간 시집 ‘시인은 하이힐을 신는다’(현대시학사)를 낸 한분순(78) 시인은 7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일본은 전통시 ‘하이쿠’를 계승하려 대외적으로 홍보도 많이 하는데 우리는 아직 정부 차원의 노력이 미흡하다”면서 “시조 한 수는 휴대전화 화면에서 한번에 볼 수 있을 정도로 간결한 맛도 있어 디지털 시대 청년들에게 잘 어울린다”고 말했다. 이어 “시조라고 하면 3행으로 된 고시조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현대 시조는 자유롭게 행갈이하며 소재도 무궁무진하게 시상을 펼칠 수 있다”면서 “요새 트로트 열풍이 다시 부는 것처럼 시조에 대한 관심이 다소 늘어나 고무적”이라고 말했다. 한 시인은 국민신문 기자로 재직하던 197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시조 ‘옥적’(玉笛)이 당선돼 등단했다.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한국시조시인협회 및 한국여성문학인회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작품집으로 ‘실내악을 위한 주제’, ‘손톱에 달이 뜬다’, ‘저물 듯 오시는 이’가 있다. 대한민국문화예술상, 한국문학상 등을 수상했고 현대시조의 맥을 잇는 대표 여성문인이다. 현대시조의 선구자로 불리는 고 김상옥 시인도 칭찬을 아끼지 않을 정도로 한국적 리듬과 압축, 여백의 미를 잘 표현한 작가란 평가를 받는다. 시조의 매력에 대해 한 시인은 “초장·중장·종장으로 이뤄진 시조의 구성이 기승전결로 이어지는 소설과 비슷해 시인이 자신의 생각을 집약해 클라이맥스를 이끌어내는 재미가 있다”고 소개했다. 한 시인은 시조의 대중화를 위해 끊임없이 도전하는 젊은 감성을 지녔다. 이번 시집에선 읽기 쉬우면서도 서정성이 강한 작품들을 엮었고, 시조에 대한 편견을 없애고자 이전엔 금기시되던 외래어 등 다양한 시도를 했다. 예컨대 ‘노을, 멋을 갓 배운 젊은 게이처럼’에선 “멋을 갓 배운/게이같이/슬프기에는 너무 예쁜”으로 ‘게이’(gay·동성애자)를 빌려 노을의 아름다움을 묘사했다. ‘카페 호접몽’에선 “흰구름 채집해 놓은/눈앞의 카페 라테/거품처럼 잠입하여/앉아 있는/커피빛 나비”라고 우유를 넣은 커피 ‘카페라테’로 꿈과 현실을 구분하기 어려운 장자의 ‘호접몽’을 표현했다. ‘가르마, 카르마 유희’에선 머리 가르마와 카르마(업보)를 활용한 연어로 재미를 이끌어냈다. 이봄 시인은 한 시인의 시 시계에 대해 “미물 속 경이로움을 조용히 신의 기적처럼 찾아낸다”고 평가했다. 한 시인은 “50년이 지났어도 문학은 늘 제게 연인처럼 현재진행형이며 항상 부족함을 느끼는 대상”이라고 말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나경원 다운증후군 딸 “올해 29살, 시집가고 싶어해” [TV픽]

    나경원 다운증후군 딸 “올해 29살, 시집가고 싶어해” [TV픽]

    나경원 전 국민의힘 의원이 가족과의 일상을 처음으로 공개했다. 나경원 전 의원은 5일 방송된 TV조선 ‘아내의 맛’에 출연해 남편 김재호 서울고등법원 판사, 다운증후군 딸 유나양과의 일상을 보여줬다. 아내이자 엄마로서의 일상은 평범해서 특별했다. 나경원 전 의원은 딸 유나를 살뜰히 챙겼다. 나경원 전 의원은 “딸이 정말 살인미소다”라며 행복해 했다. 나 전 의원은 딸과 함께 아침으로 토스트를 만들었다. 나 전 의원은 “딸이 올해 29살인데 시집을 가고 싶어한다. 그래서 이것도 해봐라, 저것도 해봐라 시켜본다”라고 말했다. 나경원 전 의원은 “처음 아이 낳았을 때 좀 막막했다. 장애아를 낳아 처음에는 걱정이 많고 힘들고 그랬다. 그런데 이제는 할 수 있는 게 많아졌다”라고 말했다. 딸 유나는 최근 1년간의 취업사관학교 과정을 마쳤고, 여러 자격증을 스스로 땄다.나경원 전 의원은 “아이가 좀 늦다. 한번 할 때 오래 걸리지만 그것만 넘어서면 잘한다. 아이들에게 자꾸 기회를 주고 도전하면 사회에서 자신의 역할을 잘하게 되더라. 그러면 사회에 보탬이 된다. 우리가 자꾸 기회를 주는 게 중요한 것 같다”라고 말했다. 김재호 판사는 딸이 시집가고 싶어한다는 말에 서운한 표정을 지었다. 딸 유나는 “결혼하면 무조건 자립이야. 내가 돈 벌면 엄마, 아빠 먹여 살려야 해. 난 다 컸고 시집도 갈 건데 언제까지 엄마, 아빠 도움 받을 수는 없잖아”라며 씩씩하게 말했다. 영상을 지켜본 나경원 전 의원은 “우리 유나가 예쁘게 나와서 좋다”라며 “또 불러주시면 영광일 것”이라고 출연 소감을 전했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여행 갈 수 없는 답답함에…‘인스타그램’에 띄운 시

    여행 갈 수 없는 답답함에…‘인스타그램’에 띄운 시

    코로나19로 꼼짝없이 발이 묶인 사람들은 ‘코로나 블루’의 고통을 호소한다. 좋아하던 여행을 가지 못하게 된 장창영(산들) 여행작가가 최근 이런 아쉬움을 해소하기 위해 인스타그램을 활용한 시집 ‘우리 다시 갈 수 있을까’(북컬쳐)를 발간해 주목받고 있다. 장 작가는 인스타그램에 있는 사람들의 삶을 구경하면서 이를 대상으로 시를 쓰기로 했다. 처음부터 기획하고 시를 쓴 것이 아니라, 올여름 여행을 갈 수 없는 현실적 답답함을 없앨 대안을 인스타그램에서 찾은 것이다. 코로나 시대가 빚은 우연한 결과물이다. 장 작가는 인스타그램에 올라 있는 인스타 친구의 사진과 이야기를 토대로 시를 써서 선물했다. 그의 시를 선물 받은 이들은 친구들과 여행 갔을 때의 행복했던 기억과 추억들을 떠올릴 수 있어 좋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장 작가로부터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시를 선물 받은 이들도 위로를 받고 행복을 느꼈다고 전했다. 이 시집에는 장 작가의 인친(인스타그램 친구) 50명이 참여하고 있다. 대부분 한국사람이지만, 일본, 홍콩, 러시아, 미국와 포르투갈에 사는 사람들도 함께했다. 장 작가는 시집 곳곳을 여행사진으로 채웠다. 장 작가는 “여행에 대한 그리움이 짙어질수록 인스타 사진이 더 눈에 들어왔다”면서 “그동안 여행을 많이 다녔지만 여전히 세상은 넓고 가야할 곳은 많았다. 팔로잉을 하고 팔로워를 받으면서 조금씩 아는 인친이 늘었고, 그분들이 남긴 행간의 이야기를 만나며 하나 둘, 시가 쌓이면서 나의 삶도 훨씬 더 풍요로워졌다”고 말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신춘문예 평론 당선작] 만질 수 없음을 만지는 언어:촉각의 소노그래피/전승민

    문학의 칼 칼날과 포옹할 수 있을까? 한강에게 언어는 세계와 자신을 가르는 칼이다. 언어는 전체 의미 중에서 표현 가능한 부분만을 잘라 기표에 담으므로 진실은 이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왜곡된다. 그래서 문학 하는 이들에게 언어는 축복이면서 동시에 영원한 고통이다. 문학의 괴로움은 그것이 진실에 가까워질수록 비-진실해지는 이 운명에서 비롯한다. 현실의 경험을 기표로 쪼개어 재조합하는 언어로는 그 어떤 실재에도 완벽히 다다를 수 없다. 현실을 조각내지 않는 언어는 과연 가능할까? 한강의 장편소설 ‘희랍어 시간’(문학동네·2011)은 진실을 조각내는 언어의 칼금과 대결하며 날것 그대로의 진실을 포착하려 한다. 그것은 현실을 분절하는 한계로서의 언어가 아니라 현실을 가장 훼손하지 않는 순수한 상태의 언어에 의해 가능하다. 그러나 이는 언어가 언어이기를 포기할 때 획득되기에 순수를 추구할수록 더욱 비-순수해지는 역설 속에 있다. 그 ‘순수’는 볼 수 없는 것을 보고,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는 사람에게서 비롯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실은 어떤 인과나 합리적 추론으로 증명되는 참인 명제가 아니라 오직 몸으로 살아낼 때만 느끼는 힘의 압력으로 다가온다. 소설의 남자와 여자는 이 거대한 진실을 유한한 인간의 몸뚱이로 견디는 사람들이다. 남자의 진실은 영원한 실명, 여자의 진실은 계속되는 실어이다. 그러나 그들의 상실과 고통은 보상이나 처벌의 체계에서 비롯하지 않으며 당위나 인과에 의해 설명되지 않는다. 인간이 인간을 이해하는 일이 각자의 진실을 이해하는 것이라면 바로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자신과 타인을 이해하는 데에 영원히 실패한다. 예정된 실패의 운명 속에서 ‘희랍어 시간’이 길어 올리는 물음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인간은 삶을 이해하기 위해 끝없이 발버둥치는가이다. 이 궁극의 물음에 대해 소설은 질문으로 되돌아가 그것을 파괴하는 재귀적인 답을 제시한다. 삶이 인간에게 들이미는 통각은 소거되어야 할 병증이 아니라 그가 살아 있음을 감각하게 하는 생의 반증이기 때문이다. 한강의 소설은 인물의 아픔에 관한 원인을 굴착하기보다 그 아픔을 온몸으로 함께 통과한다. 서사는 플롯의 인과와 시간의 합리적 흐름에 복무하지 않고 다만 고통의 양태와 통각을 소슬히 응시하기 위해 흐른다. 그래서 ‘희랍어 시간’에서의 시간은 선형적이지 않고 소설의 언어 역시 일반의 언어로부터 탈구되어 있다. 요컨대 한강은 인간과 문학이 삶에 대해 제기하는 근본적인 질문, 그러나 ‘왜’로 시작할 수밖에 없으므로 언제나 오류일 수밖에 없는 어떤 질문과 대결한다. “인간의 혼은 왜 그 어리석고 나쁜 속성들로 인해 파괴되지 않는 겁니까?”(105쪽) 신성의 잠재태로서의 고통 ‘희랍어 시간’의 시간은 환(環)으로 흐른다. (“세상은 환이고 산다는 것은 꿈꾸는 것입니다.” 26쪽) 소설에서 읊어지는 보르헤스의 말처럼 첫 번째 장은 ‘1’에서 시작해 21번째 장까지 진행된 후 마지막 장에서 ‘0’으로 돌아간다. 시간이 1에서 0을 향해 구부러지는 이유는 남자와 여자의 삶이 전생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 전사(前史)는 작가의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문학과지성사·2013)에 상세히 기록돼 있다.1) 남자와 여자는 ‘해부극장’ 연작에 나오는 백골의 전생이며, 백골의 고통은 곧 여자가 느끼는 통증이다. 그것은 말의 소리가 신체의 발음 기관을 경유해 공기 중으로 퍼져 나갈 때 발생하는 비릿하고 붉은 통각이다.2) 세 치의 혀와 목구멍에서 나오는 말들, 헐거운 말들, 미끄러지며 긋고 찌르는 말들, 쇳냄새가 나는 말들이 그녀의 입속에 가득 찼다. 조각난 면도날처럼 우수수 뱉어지기 전에, 막 뱉으려 하는 자신을 먼저 찔렀다.(‘희랍어 시간’·165쪽) 여자의 고통이 언어가 파열될 때 발생한다면 남자의 고통은 반대로 무언가가 덩어리로 뭉개질 때 발생한다. 완전히 실명하게 되리라 진단받은 마흔을 목전에 두고, 그는 마치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것처럼 16년간의 독일 생활을 접고 모국으로 돌아온다. 사물과 풍경의 날카로운 경계는 그의 시야에서 점차 사라진다. 그는 실명 이후의 삶에 대한 확신이 없다. 남자의 삶 역시 독일과 한국에서 보낸 시간으로 분절되어 있으므로(“그때 내 인생은 거의 정확히 절반씩 두 언어, 두 문화로 쪼개어져 있었던 셈입니다.” 40쪽) ‘희랍어 시간’은 여자와 남자가 공유하는 고통 그 배면의 시간이다. 여자는 두 번째로 찾아온 실어 증상을 스스로 극복하기 위해 강의를 신청하고, 남자는 자신을 둘로 쪼개는 힘을 피해 “수천 년 전에 죽은 언어 (…) 마치 고요하고 안전한 방”(119쪽)과 같은 희랍어 속으로 숨어든다. 이 공통의 시간 너머에 있는 그들의 고통에는 이유가 없다. 백골들이 그러하듯 그들의 아픔은 단지 붉은 피와 살로 이루어진 육체성에서 비롯한다. 달리 말하자면 그저 인간의 몸을 가지고 있으므로 아파야만 하는 것이다. 까닭 없이 고통받는 인간은 신을 찾아 헤맨다.3) 소설의 1인칭 화자는 마지막 장 한 곳을 제외하고 모두 남자의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그의 고해는 세 통의 편지로 이루어진다. 가장 먼저 발송되는 편지는 독일에서 살던 시절 사랑했던 여자에게 보내는 사과문이다. 그녀는 청각장애인이다. 그러나 그는 그녀의 장애를 조금도 고려하지 않은 채 그녀를 욕망한다.(“우리는 언젠가 함께 살게 될 것이고, 나는 눈이 멀 것이라고. 내가 보지 못하게 될 때, 그때는 말이 필요할 거라고.” 47쪽) 그는 “백치처럼 순진하게”(47쪽) 그녀에게 독순술 수업에서 배운 대로 말을 해 보라고 요청한다. 남자는 그녀의 청각장애를 자신의 예정된 실명과 동등하게 고려하지 못한다. 그녀의 독순술이 그의 ‘결핍’을 보충하는 자질이 될 이유는 조금도 없다. 누군가의 언어 행위는 그의 자발적 선택과 의지에 의한 것이지 다른 이의 필요를 충족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요컨대 언어는 강요되어선 안 되는 것이다. 그가 그녀에게 품는 모든 욕망은 사랑이라는 단어로 정당화되고 그것이 그녀에게도 좋은 것이라 ‘백치처럼’ 그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그녀는 사과하는 그의 얼굴에 주먹을 날린다. 세계를 두 눈으로 또렷하게 볼 수 있다고 해서 타인의 고통을 왜곡되지 않은 상(像)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외부 사물을 보는 눈과 인간의 고통을 보는 눈은 다르다. 한편으로, 인간이 누군가를 상처 입힐 수 있다는 것은 그 또한 다른 인간으로부터 상처받을 수 있음을 내포한다. 두 번째 편지의 수신인은 여동생 란이다. 그는 여동생에게, 앞으로 어둠 속에서 살아가게 될 그의 운명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바로 똑같은 병을 앓았던 아버지였음을 말한다. 그의 시력 상실은 부계 유전질환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 어스름이 정말 완전한 밤으로 이어지는지”(82쪽) 아버지에게 묻고 싶었으나 아버지는 자신과 똑같은 아들을 끝까지 멀리한다. 아버지는 자신의 고통을 받아들이는 데에 결국 실패하면서 삶으로부터의 자기 소외 속에 생을 마감한다. 그는 어둠을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에 삶의 빛 속으로 한 발짝도 걸어 나가지 못했던 셈이다. 이제, 앞서 소설이 던진 유일한 질문에 대한 첫 번째 답이 도착한다. 인간이 부서지지 않는 이유는 그의 영혼 안에 어리석고 나쁜 것과 함께 어떤 좋음 또한 거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고통을 감각하고 수용하는 능력이다. 소설에 등장하는 ‘새’는 그것의 체현물이며(“그의 얼굴 속에 새 같은 무엇인가가 살아 있다는 것을, 그 따스한 감각이 그녀에게 즉각적인 고통을 일깨운다는 것을 곧 깨닫는다.” 147쪽) 개별 존재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영혼과도 같은 것이다.(“새 같은 무엇인가가 문득 육체를 떠났고, 그 육체는 더이상 어머니가 아니었다.” 145쪽) 말하자면 새는 인간이 생의 통각에 반응하는 마음의 일부로서 육체와 정신을 이어 준다. 새를 통해 인간은 육체의 통증을 실존적인 고통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뒤에서 논의되겠지만, 인간은 역설적으로 바로 이 ‘새’로 인해 자기 파멸로부터 구원받을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새를 두고 인간이 각자 품고 있는 어떤 신성(神性)의 잠재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이 유한자로서의 운명에 함몰되지 않고 ‘인간적이지 않은’ 차원으로 도약하게 만드는 그 무엇은 분명 신성하다. 요컨대 인간은 선험적인 신성을 배태하므로 고통받는다. 여자는 특히 이 신성의 언어적 측면이 육화된 존재다. 문자가 소리로 변할 때 언어가 겪는 분절의 고통을 그녀는 자기 몸의 통증으로 겪는다. 심장과 혀를 경유하여 귀로 도달하는 모든 파열하는 소리는 여자에게 폭력이다. 그래서 실어증은 파괴하는 힘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한 대응이다. 침묵은 그녀를 에워싸고 보호한다. 실어의 원인은 심리치료사가 말하는 것처럼 “그렇게 간단하지 않”(55쪽)다. 여자는 언어의 신성 그 자체이지만 이 신은 전지전능하지 않다. 그녀 역시 구원을 바란다. 어머니가 뱃속의 그녀를 지우려 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현실 속 무언가의 실존이 얼마나 연약하고 위태로운 우연에 기대고 있는지 아는 그녀는, 그래서 무언가의 존재를 위협하거나 변형시키는 힘에 대해 온몸으로 대항한다. 그녀에게 폭력은, 어떤 존재를 그것의 고유한 자리로부터 박탈시키는 모든 종류의 유형력이다. 목소리 역시 그러하다. 음성은 공간을 점유하면서 다른 존재들을 밀어낸다.(“그녀는 공간을 차지하는 것을 싫어했다. (…) 목소리는 훨씬 넓게 퍼진다. 그녀는 자신의 존재를 넓게 퍼뜨리고 싶지 않았다.” 51쪽) 여자에게 말은 육체적인 고통이다. 그러므로 실어는 존재들을 지켜내기 위해 고통을 온몸으로 견디는 사랑의 행위-신의 사랑이다. 그녀는 말하지 않는 대신 언어를 시선으로 번역한다. “신은 보는 존재이거나, 시선 그 자체인 건가요?”(104쪽)라는 대학원생의 물음은 반쯤 정답을 향해 있다. 타인의 고통을 무참히 다룬 죄를 고해하고 받은 상처를 토로하던 남자가 여자를 만나는 것은 그래서 우연이 아니다. 남자가 찾던 신의 모습은 여자의 몸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점점 희미해지는 시야 속에서 그는 과연 그녀를 ‘볼’ 수 있을까? 신과 인간의 소노그래피 그녀가 희랍어로 힘겹게 써 내려가는 시는 마치 예수가 부활하기 전 무덤 속에서 썼으리라 짐작되는 것이다. 한 여자가 땅에 누워 있다. 목구멍에 눈(雪) 눈두덩에 흙. (64쪽) 차가운 무덤 속에 묻힌 신의 눈에는 흙이 있고, 입과 목은 차가운 눈으로 막혀 있다. 그녀는, 신은 말할 수 없다. 무덤 안은 남자와 여자가 발 딛고 있는 현실 세계다. 카타콤베 묘지에 갔던 남자의 기억이 떠오른다. 여러분, 왜 관 속에 유골이 없을까요? (…) 박물관에 가져다놓은 거 아니에요? (…) 누군가가 훔쳐갔나요? (…) 다아 여기 있습니다. (…) 관 속에 보이는 흙을 분석하면 칼슘과 인 성분이 많이 나온다고 합니다. 수천 년이 흐르면, 사람의 뼈가 삭아서 이런 흙이 되는 겁니다.(153쪽) 백골은 전생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으므로 남자는 자신이 곧 그 백골이라는 것을 안다.(“수천 구의 육체들이 뼈까지 깨끗이 삭아버린 거대한 무덤 속에, 그토록 따뜻한 몸을 가진 우리가 모여 있었다는 게.” 155쪽) 그는 구토감을 느낀다. 온몸에 묻은 죽음의 흙냄새와 어둠을 두려워하고 있음을 여자에게 고해한다. 그러나 그는 자신 앞에 서 있는 이가 자신을 구원할 수 있음을 전혀 알지 못한다. 마치 부활한 예수를 알아보지 못한 채 그가 정원지기인 줄로만 알고 예수의 시신이 어디에 있느냐 묻는 막달라 마리아와 같다.(요한복음 20:15) 그는 앞으로 펼쳐질 영원한 어둠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신에게 거듭 질문한다. 그러나 그녀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내 말, 거기서 듣고 있나요?(161쪽) 두 사람의 과거로 구부러졌다 돌아오곤 하던 현재는, 남자와 여자가 ‘어둠’ 속에서 서로 마주하게 되는 배타적인 둘만의 시간, 즉 17장부터 21장까지의 시간 동안 직선으로 그러나 더 천천히 흐른다. 건물 안으로 날아온 새를 구하려던 남자는 발을 헛디뎌 안경을 깨뜨리고 강의실로 돌아가지 못한다. 밖으로 나온 여자가 남자의 소리를 듣고 그에게로 향한다. 그런데 그녀가 그에게로 다가간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녀는 무언가를 감지하고 밖으로 나간다. 빈자리들이 이상한 통각을 띠고 그녀의 눈으로 파고들었다. 그녀는 질끈 눈을 감아보았다. 그녀의 시간과 다른 모든 사람들의 시간이 어긋난 것 같았다.(160쪽) 남자의 시간이 그녀에게로 다가갔던 것이다. 그는 점점 흐릿해지는 자신의 시야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 적 있다. 잘 보이지 않으면 가장 먼저 소리가 잘 들릴 거라고 사람들은 생각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 가장 먼저 감각되는 것은 시간입니다. 거대한 물질의 느리고 가혹한 흐름 같은 시간이 시시각각 내 몸을 통과하는 감각에 나는 서서히 압도됩니다.(39쪽) 두 사람의 대화는 남자의 빈자리가 발생시키는 시간의 진동을 여자가 감지하면서 시작된다. 이 시간의 감각은 파동의 형태로 전달된다. 남자는 여자의 구두 소리를 듣고 난간을 주먹으로 두드려 자신이 있음을 알린다.(“듣지 못하는 사람이라 해도 이 진동은 느낄 수 있을지 모른다.” 133쪽) 여자가 ‘들은’ 것은 귀로 들어오는 소리가 아니라 그녀의 몸 전체, 피부 세포에 닿아 그것들을 흔드는 진동이다. 그들의 대화는 시신경에 의한 시선도, 청신경에 의한 소리를 통해서도 아닌 바로 이 촉각의 소노그래피(sonography)를 통해 이루어진다.4) 시인이 존재들에게 엑스선을 투과시켜 백골들의 영상을 얻어낸다면(“검푸른 뢴트겐 사진에 담긴 나는/그리 키가 크지 않은 해골” ‘해부극장 2’) 소설 ‘희랍어 시간’에서는 소노그래피를 통해 육체의 말랑한 조직들, 피부나 혀, 심장에서 반향된 영상을 보여 준다. 엑스선은 말랑한 것들을 찍을 수 없고 초음파는 뼈를 투과할 수 없다. 통증은 말랑하고 붉은 것의 감각이다. 뼈에는 통각 세포가 없기 때문이다. 소설은 뼈가 육신을 가졌을 적의 고통의 서사다. 소노그래피의 언어는 존재 자체가 내뿜는 파동이므로 소리로 쪼개지지 않는 언어다. 이것 역시 몸으로부터 유래하지만 “폐와 목구멍과 혀와 입술을 움직여, 공기를 흔들어 상대에게 날아”(55쪽) 가는 목소리가 갖는 폭력성은 없다. 여자가 말 대신 택한 시선의 언어 역시 그런 점에서 비육체적이다.(“시선만큼 즉각적이고 직관적인 접촉의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그녀는 느꼈다. 접촉하지 않으면서 접촉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었다.” 55쪽) 이때 접촉의 감각은 시각이나 청각이 배제된 상태의 대리보충, 즉 실제 피부의 감각만을 의미하지 않는다.5) 소노그래피의 촉각은 오감의 유무와 관계없이 존재가 뿜어내는 살아 있음의 파동, 즉 여자가 말한 ‘시간’의 감각이다. 한강은 특유의 독특한 문체로 두 인물 사이에 반향되는 소노그래피를 형상화한다. ‘희랍어 시간’에는 큰따옴표나 작은따옴표가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래서 언뜻 자유간접화법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자유간접화법은 문장 안에서 형식적 서술자와 서술 내용이 담는 의식의 주인을 불일치시키며 서술자보다 인물을 부조한다. 그러나 한강의 문장에서 3인칭 화자는 남자와 여자의 의식 이면으로 유보되지 않는다. 따옴표 없이 곧장 전해지는 말은 인물의 목소리를 3인칭 서술자와 동일한 층위에 위치시키며 그들 간의 위계를 무너뜨린다. 모든 소리는 세계의 일부로 스며들어 있다. 소설은 이 지점에서 자기 안으로 시를 틈입시킨다. 인용부호에 의해 절단되지 않는 하나의 커다란 말뭉치(corpus)를 만들어 내는 서술은 남자와 여자, 그리고 3인칭 서술자 각각의 인격을 부각한다. 목소리들이 어우러지는 한 공간-소설 안에서 인물의 목소리는 그 자체로 시가 되고 그들의 모든 말은 행과 연의 형식으로 배열된다. ‘희랍어 시간’은 세 인격의 목소리가 만들어 내는 소리 풍경(soundscape)이다.6) 그녀는 그의 말을 똑똑히 듣고 있다. (…) 그녀는 그를 똑똑히 보고 있다. (…) 그늘진 그의 얼굴을, 그녀는 지금 온 힘을 다해 건너다보고 있다.(169쪽) 촉각의 소노그래피가 만드는 소리 풍경 안에서 듣는 일은 곧 보는 일이며, 보는 일은 곧 듣는 일, 존재의 파동을 온몸으로 감각하는 일이다. 진동은 소리가 글자로 박제되는 것과 달리 발생하고 감각되는 즉시 사라진다. 나타남과 동시에 사라지는 소노그래피는 존재를 파열시키거나 변형시키지 않고 다만 투명하게 통과한다. 모든 인물의 말이 인용부호 없이 제시되지만 특히 여자의 목소리는 서사 세계 안에서도 음성화되지 않는 가장 시적인 목소리다. 여자의 문장들은 기울어지면서 남자의 목소리와 구분된다.7) 19장 ‘어둠 속의 대화’ 후반부에는 이렇게 목소리가 뒤섞이면서 두 사람의 파동이 중첩되는 대목이 있다.8) 서사 표층에서 실제로 발화되는 음성은 남자의 목소리뿐이므로 소노그래피가 아니라 일반적인 감각으로 읽어낼 경우, 소설은 오직 남자의 독백으로만 가득 찬다. 그러나 여자와 남자의 대화는 각자가 소환하는 기억의 단위들로 교환되며 소리가 아닌 언어, 파동의 접면들이 교차하며 이루어진다.(“잉크 위에 잉크가, 기억 위에 기억이, 핏자국 위에 핏자국이 덧씌워진다.” 155쪽) 언어의 칼금을 막아내기 위해 언어가 아닌 언어를 사용하는 소설은 서로 다른 목소리들이 서로 겹치며 일으키는 간섭을 현상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화해할 수 없었다. 화해할 수 없는 것들이 모든 곳에 있었다. (…) 독한 취기 같은 피로가 그녀의 의식을 둔하게 만든다. 그의 목소리가 마치 꿈인 것처럼, 아주 먼 곳에서부터 토막토막 끊긴 채 울려온다.(166쪽) 여자의 파동은 남자에게로 전해진다. …당신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순간이 있어요. 더이상 아무것도 말하고 싶지 않은 순간이 있어요. 그녀는 그의 얼굴을 응시하려 애쓴다. 초점 없는 그의 눈을 또렷이 마주 보려 애쓴다.(167쪽) 여기서 남자의 응답은 여자의 파동과 똑같은 기울임체로 발화된다. 두 존재가 고막을 통해 소리를 교환하지 않고도, 살을 맞대지 않고도 그 무엇보다 깊은 층위에서 교감하는 장면이다. 진실을 받아들이지 못해 과거로 여러 통의 편지를 쓰던 인간은 신의 고통 안에서 그와 함께 현재적으로 공명한다. 이 장면에서 남자의 목소리는 여자의 그것으로 중첩되며 같은 기울임체로 서술되지만, 여자의 목소리는 남자의 그것으로, 다시 말해 기울어진 목소리가 평평하게 바뀌지는 않는다. 여자는 신성의 체현자이기 때문이다.(“살아 있는 사람에게서 그런 침묵을 본 건 처음이었어.” 78쪽) 구원의 빛이 침묵의 어둠 속에서 새어 나온다. 나를 만지지 마라 이제, 소설의 질문에 대한 두 번째 답이 제시된다. 인간의 혼이 파괴되지 않는 이유는 고통을 감각하는 신성이 서로에게 중간태인 동사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고대 희랍어에는 수동태와 능동태가 아닌 제3의 태, 중간태가 있다.(18쪽) 중간태는 어떤 행위가 주어에 재귀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을 말한다. 대상에게 했던 행위가 다시 주체로 돌아오는 이 재귀적 운동은 소노그래피의 언어가 보이는 양태다. 소노그래피의 방식은 그 자체로 중간태적 추론이다. 그는 대상에게로 뻗어 나간 자기 파동의 반향을 소노그램으로 읽어 낸다.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는 것은 그것의 원인을 축자적으로 밝혀내는 것이 아니라 다만 그에게 계속해서 질문하는 일이다. 아무리 유사한 경험을 하더라도 고통은 결코 동일한 정도로 감각될 수 없기 때문이다. 남자의 아버지는 남자와 같은 유전질환으로 인해 시력을 이미 잃은 사람, 그래서 누구보다도 그를 잘 이해할 수 있을 사람이었다. 그러나 타인을 이해하는 방법은 동일한 조건을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다른 주파수를 오롯이 피부로 느끼는 일이다. 그것은 타인의 삶을 결코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전제하에 그의 삶을 추체험하는 일이다. 가령, 남자가 곧 실명하리라는 진단을 받았을 때 불투명한 비닐봉지를 자기 눈에 갖다 대며 “이건 소파고 이건 책장이야. (…) 이렇게 걸어도 안 넘어질 수 있어.”(146쪽)라며 일부러 왔다 갔다 하던 여동생처럼 말이다. 동생은 오빠를 놀리는 것이 아니라 그에게 닥칠 ‘어둠’이 “생각만큼 끔찍하지 않을 거라는”(147쪽) 위로를 보낸 것이다. 이처럼 타인의 고통은 내가 영영 닿을 수 없는 점근선의 영역이다. 반면 마지막 고해, 요아힘과의 이야기는 남자 역시 언어의 육체성이 자아내는 폭력을 경험했음을 들려준다. 그 폭력은 곧 타인의 고통을 주체의 자기동일성 안으로 포획하여 해석해 버리는 일이다. 요아힘은 남자를 사랑한다. 그러나 그는 자기의 욕망을 타인과 자신의 고통 안에서 어떻게 겹쳐 두어야 하는지 모르므로 남자에게 상처만을 남긴다. 그는 고통의 완전한 극복과 단절을 믿는다. 시한부 선고의 생존자이기 때문이다. “병실의 벤젠 냄새 속에서 성장한 사람이 아니라면 누구도 자신을 이해할 수 없을 거라고”(10쪽) 말하는 그는 누군가가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와 꼭 같은 경험을 몸의 기록으로 가져야 한다고 확신한다. 어둠과 죽음의 병실을 물리친 그에게 생의 감각은 생동하는 육체의 폭발적인 감각, 물컹하고 뜨거운 것이다. 요아힘은 여자에게는 고통이었던 육체적인 것과의 접촉을 갈망한다. 남자가 어둠을 품은 이라면 요아힘은 빛의 질서를 품은 이다. 남자가 비논리와 모순을 껴안는 문학을 사랑한다면 요아힘은 사고를 명징하게 자르는 철학을 사랑한다. 고통으로부터 스스로 벗어났다고 믿는 이의 강한 확신은 타인의 고통 앞에서 누구보다도 눈을 멀게 만든다. 자신이라면 완전한 어둠이 다가올 그때를 위해 점자를 배워 두겠다는 철학자의 명랑한 조언은 남자의 신앙인 소멸의 이데아를 산산조각 낸다. 다시 한번, ‘백치처럼’ 순진한 이 조언은 남자에게 상처를 주기 위해서가 아니다. 요아힘에게 그것은 단지 논리적으로 성립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만일 소멸의 이데아가 존재한다고 가정한다면 말이야… 그건 깨끗하고 선하고 숭고한 소멸 아닐까? 그러니까, 소멸하는 진눈깨비의 이데아는 깨끗하게, 아름답게, 완전하게, 어떤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진눈깨비 아닐까?(118쪽) 이것 봐. 죽음과 소멸은 처음부터 이데아와 방향이 다른 거야. 녹아서 진창이 되는 진눈깨비는 처음부터 이데아를 가질 수 없는 거야.(118쪽) 빛이 소멸한 세계에서 앞으로의 생을 계속해야 하는 남자에게 요아힘의 논증, 어둠 속에는 좋음의 이데아가 결코 있을 수 없다는 반박은 그의 마지막 희망을 꺼트린다.(“네 말을 들은 순간, 덧없는 전 세계가 빛을 잃었지.” 118쪽) 그래서, 점자를 통해 남자와 진정으로 닿기를 바라던 요아힘의 욕망은 언어의 폭력적인 육체성과 실상 같은 것이다. 남자는 요아힘으로부터 깨닫는다. 자신이 독일에서 여자에게 던진 사랑의 말, 너는 나의 목소리가 필요할 테니 같이 살게 될 것이라는 그 고백이 폭력이었음을 알게 된다. 자신이 받은 상처로부터 타인에게 준 상처를 깨달은 마리아는 이제 눈앞에 현전한 예수ㅡ언어의 육신을 본다. 신과 인간의 목소리는 구별되지 않고 한데 뒤섞인다. 남자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신의 파편들, 진눈깨비의 이데아는 희랍어 시간의 여자 그 자체다. 그녀의 이름은 “펄펄 내리는 눈의 슬픔”(100쪽)이다. 고통받는 두 인간의 신성은 한데 섞이고 소노그래피는 중첩된다. 말할 수 없는 이와 볼 수 없는 이의 불가능할 것 같았던 이해는 공통원소 없는 그 존재들의 배면에서 투명한 파동을 통해 전해진다. 파동은 한 곳으로 수렴하지 않고 서로의 몸 안을 투과하며 지나간다. 이제, 신은 요아힘과는 다른 ‘접촉’의 방식으로 남자를 구원하고 눈으로 목이 막혔던 그녀 역시 그 구원으로 인해 부활한다. 따로따로 제시되던 목소리는 한 연으로 묶이면서 말을 주고받는 직접적인 대화의 국면에 도달한다. 1인칭 단수 화자들은 ‘우리’를 직감한다. 어두운 초록색 흑판에 백묵으로 문장을 쓸 때 나는 공포를 느껴요. (…) 태연하게 내 혀와 이와 목구멍으로 발음된 모 음운들에 공포를 느껴요.(167쪽) 구원은 끝없이 멀어지는 존재가 내 안으로 들이닥쳐옴을 느낄 때 일어난다. 부활한 예수는 마리아에게 “나를 만지지 마라”(Noli me tangere)는 말을 남기며 떠나간다.(요한복음 20:17) 멀어지는 자신을 붙잡지 말라는 이 말은 타자를 주체의 자기동일성 안으로 납치하지 말라는 명령이다. 타자를 몇 번이고 무한히 떠나보냄으로써 그의 존재를 부조하라는 율법이다. 앞이 보이지 않는 남자를 부축해 그의 집까지 데리고 온 여자는 손가락으로 남자의 손바닥에 쓴다. 그녀가 그에게 최초로 대답한 말은 떠난다는 말이다. 첫 버스를 타고 갈게요.(171쪽) 두 사람이 가장 가까워지는 이 접촉은 소설이 시종일관 지양해 온 폭력적인 접촉과 다르다. ‘어둠 속 대화’의 절정 이후 남자는 여자의 어깨를 끌어안는다. 그러나 두 몸의 접촉 이후 다만 ‘모른다’는 진실의 무자비한 범람만이 남자를 압도한다.(“심장과 심장을 맞댄 채 여전히 그는 그녀를 모른다.” 183쪽) 그가 그녀를 안자마자 뒤이어 열네 번의 ‘모른다’가 연속해서 등장한다. 그래서 그가 그녀에게 입을 맞출 때까지도 둘의 접촉은 항구적인 비접촉이 되는 것이다. 강력하게 현전하는 단 하나의 진실은 “맞닿은 심장들, 맞닿은 입술들이 영원히 어긋”(184쪽)나는 ‘시간’이다. 마리아는 이제 떠남 속에서 빛이 아닌 어둠을 본다. 이때의 ‘봄’은 시각과 무관하게 생의 파동을 온몸으로 수용하는 행위다. 그러므로 예수의 부활은 멈추었던 심장이 다시 뛰는 기적을 의미하지 않는다.9) 그것은 죽음 안에서 떠나가는 생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구원은 영생이 아니라 떠나감의 현전 안에서 일어난다. 보르헤스가 말한 시간-존재를 태우는 불(122쪽)이 여자와 남자를 통과하고 나면 새는 날아가고 백골만이 남는다. 개별 존재의 신성이 육신 속에서 체현된 것이 새라면 죽음 이후부터 그 신성은 뼈들이다. 플라톤이 말했듯 진실에 대한 앎은 전생으로부터 온다. 우리는 그것을 다만 상기할 뿐이다. 전생의 기억은 시로 돌아온다. 그때 우리는 바다 아래의 숲에 나란히 누워 있었어요. 빛도 소리도 그곳에는 없었지요. (…) 마침내 당신이 아주 작은 소리를 낼 때까지, 입술 사이로 둥글고 가냘픈 물거품이 새어나올 때까지 우리는 그곳에 누워 있었어요.(185~186쪽, 21장 ‘심해의 숲’) ‘심해의 숲’의 다른 이름은 ‘해부극장 3’으로 부활 이후 무덤가에 나란히 누운 여자와 남자의 그림이다.10) 죽었던 신과 고통받는 인간이 함께 나란히 누울 수 있다면, 인간의 신성은 더는 논증이 불필요한 문제가 아니겠는가. 인간의 혼이 파괴되지 않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신의 신성과 달리 인간의 신성은 죽음으로부터 몸을 ‘일으켜’ 고통을 내려다보는 일이 아니라 다만 죽음 안에서 옆에 누운 다른 이의 뼈를 쓰다듬는 일이다.11) 구원을 바라던 신은 부활하여 드디어 입술을 연다. 시종일관 남자의 목소리를 사용하던 1인칭 화자는 마지막 장 ‘0’에서 오직 한 번 여자의 목소리로 발화한다. 현전하는 이 말씀, 로고스는 음성도 문자도 아니다. 그것은 그 무엇도 파괴하고 밀어내지 않는 언어, 촉각으로 전해지는 파동의 말씀이다. 남자와 여자는, 우리는, 그리고 인간은 영원히 어긋나는 방식으로 영원히 함께할 수 있다. 결국, 구원의 반증은 ‘우리’라는 단어다. 그래서 소설은 ‘0’의 끝에서 다시 ‘1’로 돌아간다. 신은 말한다. 에모스, 에메테로스. 나의, 우리들의.(10쪽) 역설의 구원 한강의 문학에서 시간은 정말로 환(環)처럼 흐른다. 그러므로 ‘희랍어 시간’이 이곳에 당도하기 전에 이미 읽은 이가 있다는 사실은 놀랍지 않다. 그는 눈사람이다.(‘작별’12)) 언 몸이 진눈깨비로 흩날리며 조금씩 사라지는 중이다. 눈사람은 남자가 갈망하던 소멸의 이데아의 현현이면서 새와 백골의 중간태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가장 많은 것을 안다. 그는 고통스럽지 않기 위해 몸 안의 심장을 얼리는 한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안다. “피와 살과 내장과 근육이 있는 몸을 다시 갖고 싶지 않”(150쪽)다고 확신한다. 아이와 애인과 가족과 작별하며 그가 마주하는 최후의 질문은 “그러니까 어디까지가 한계인지. 얼마나 사랑해야 우리가 인간인 건지”(150쪽)이다. 이는 ‘희랍어 시간’이 던지는 질문과 같은 물음이다. “사는 일이 거대한 장례식일 뿐이라면/우리에게 남은 것은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13)는 물음이다. 그리고 그 최후까지 남는 것은 바로 사랑이다. 눈(雪)이 모습을 드러내면서 동시에 소멸하는 것처럼 한강의 인물들은 사랑할수록 점점 멀어져 간다. 그러나 바로 그 닿을 수 없는 거리가 서로의 “진동이 출발하고 도착하는 투명한 접지”(‘작별’, 133쪽)가 된다. 나와 당신은 같아질 수 없으므로, 당신은 언제나 나를 떠나는 중이므로 나는 당신과 연결된다. 눈사람은 두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감각의 실체는 다만 촉각의 소노그래피뿐이며 그것은 “변함없이 진동하며 두 사람 사이에 고요히 걸쳐져 있”(134쪽)음을 안다. 그리고 이 파동을 타고 전해지는 “무색무취인 데다 마치 영원처럼 느껴지는 고요함이어서 거의 인간적인 것으로 느껴지지 않는”(134쪽) 것이 바로 사랑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사랑은 강렬한 접촉이 아니라 다만 끝없이 멀어지는 ‘사이’에서 전해진다. 언어는 이때 비로소 완전한 순수에 도달한다. 의미는 분할되거나 상실되지 않는다. 따옴표로 분절되지 않는 목소리들이 행과 연을 만들면서 소설 속에 시를 쓴다. 그것은 인간을 구원하는 인간의 모습이다. 그래서 죽음 안에서 삶은 몇 번이고 다시 태어난다. ‘작별’과 ‘희랍어 시간’의 마지막 장면이 모두 두 존재의 입맞춤으로 끝나는 것은 붉은 혀와 입술이 인간을 가장 고통스럽게 하는 것이지만 또한 그것이야말로 우리를 가장 인간적으로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는 뜻일 테다. 우리는 서로를 만지지 않음으로써 서로의 진실을 감각한다. 나의 파동이 쓰다듬을 수 있는 것은 당신의 살이 아니라 다만 당신의 뼈, 시간의 불에 타고 남은 마지막 눈의 결정이다. 내가 당신으로부터 멀어지기에 당신은 나를 구원한다. --------------------------------------------------------------------------------------------- 1) 시집의 해설을 쓴 비평가 역시 한강의 시들은 “말과 동거하는 인간의 슬픔과 고통을 근본적인 차원에서 제시한다”는 점에서 시의 화자들을 ‘희랍어 시간’ 속 남자와 여자로 잠시 연결하며, ‘희랍어’를 “순수한 언어의 능력에 집중하는 소설”이라 평한 바 있다. 조연정, 해설 ‘개기일식이 끝나갈 때’, 한강,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문학과지성사, 2013, 142~143쪽. 2) “나에게 혀와 입술이 있다.// 그걸 견디기 어려울 때가 있다.//(…)// 구불구불 휘어진 혀가/ 내 입천장에/ 매끄러운 이의 뒷면에/ 닿을 때//(…)// 나에게 붉은 것이 있다,라고/ 견디며 말한다” 한강, ‘해부극장 2’, 한강, 위의 책. 3) “진심이야./ 후회하고 있어./ 이제는 아무것도 믿고 있지 않아.” 한강, 위의 글. 4) 소노그래피는 초음파를 이용해 시각 영상을 재현하는 기술이다. 5) 양현진은 실명과 실어가 몸짓, 촉각에 의한 소통에 주목하게 한다고 본다. 그러나 피부의 직접적인 접촉과 몸짓만을 대화로 보는 것은 국소적인 독해다. 소설에서 시각과 청각이 배제될 때 도드라지는 것은 시간, 즉 파동의 흐름이다. 양현진, ‘한강 소설의 촉각적 세계 인식과 소통의 감수성’, ‘한국문학이론과비평’, 70집, 한국문학이론과비평학회, 2016. 6) 사운드스케이프는 여러 가지 소리의 구성으로 이루어지는 ‘듣는 영상’으로 단지 소리가 만드는 공간적 환경 그 자체라기보다 그것을 지각하는 청취자의 지각 속에서 그려지는 풍경이다. 7) 한강은 대상의 목소리를 키우기 위해 기울임체를 사용한다. 시집에 수록된 ‘해부극장 2’의 백골과 ‘조용한 날들 2’에 등장하는 달팽이의 목소리가 그렇게 나타난다. “(건드리지 말아요) (…) (하지만 상관없어, 네가 찌르든 부숴뜨리든)” 8) 서로 다른 두 개의 물질이 동일한 시공간을 점유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서로 다른 두 개의 파동은 동일한 공간에 동시적으로 존재할 수 있다. 두 파동이 동일한 지점에서 교차할 때 일으키는 상호작용을 파동의 중첩 현상이라 한다. 9) “죽은 몸이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걸 믿는 게 아니라, 죽음 앞에서 꿋꿋한 자세를 견지하는 것이다.” 장뤼크 낭시, ‘나를 만지지 마라’, 이만형·정과리 옮김, 문학과지성사, 2015, 37쪽. 10) 한강의 시 ‘해부극장’ 연작은 두 편뿐이지만 소설의 ‘심해의 숲’은 남자가 쓰는 또 한 편의 시다. 11) 낭시는 예수의 부활을 수직 변화로 이해하지만 소설이 말하는 인간의 신성은 수평적이다.“이 ‘자세’가 (…) ‘부활’을, 다시 말해 ‘들어올림’이라는 사태를 만든다. (…) 무덤의 수평성과 직각을 이루는 수직성으로서의 들림 혹은 일으켜 세움인 것이다.” 장뤼크 낭시, 위의 글. 12) 한강, ‘문학과 사회’, 2017년 겨울호, 문학과지성사. 13) 한강, ‘회상’, ‘서랍에’, 문학과지성사, 2013.
  • [오길영의 뾰족한 읽기] 한 해의 끝

    [오길영의 뾰족한 읽기] 한 해의 끝

    잊기 힘든 한 해를 보낸다. 끝이라는 시간은 삶의 행로들, 특히 그 행로의 마지막인 죽음을 사유하게 만든다. 최근에 그런 작품 둘을 읽었다. 황동규 시집 ‘오늘 하루만이라도’는 노년의 시각에서 포착한 감각적 구체성의 세계를 보여 준다. 시인은 죽음의 기척을 느끼지만 삶의 생기를 아예 외면하진 못한다. “그러나 잠깐, 지금도/ 마음 홀리는 와인 한 병 잡으려/ 주머니 사정 살펴가며 마트의 와인 부스를 뒤지고/ 늦저녁 전철에서 빈자리 놔둔 채 꼭 껴안고 서 있는/ 젊은 남녀를 멍하니 바라보기도 한다./죽음이 없다면/ 세상의 모든 꽃들이 가화가 되는 건 맞다.”(‘죽음아 너 어딨어?’ 부분) 죽음을 생각해야 세상의 꽃들을 제대로 느끼게 된다. 하지만 쉽게 죽음의 시각에서 삶을 논할 수 없기도 하다. 그래서 “마지막 날이 오면 나비나 벌처럼 조그맣고 가벼운 것/이 되어/ 꽃잎들에게 바쁘면 먼저 자리 뜨게! 하고/혼자 천천히 날아갈 텐데.”라고 초탈의 꿈도 꾸지만, “삶의 짐 다 부려놓고 홀가분하게 누워 있는 꽃잎들”(‘날개 비벼 펴고’ 부분)이 되는 건 쉽지 않다. 죽음의 순간까지도 삶의 짐은 벗기 힘들다. 황정은의 단편 ‘파묘’는 삶과 죽음의 밀착된 끈을 사유한다. 이순일과 둘째 딸 한세진이 “찾아오는 이도 없이 버려진 듯 산속에 남을” 외조부의 묘를 파묘하는 과정을 다룬다. 죽은 자를 영원히 떠나보내는 파묘라는 사건은 사람들의 내면에 숨겨진 사연들, 관계에서 발생하는 갈등과 갈라짐의 지점을 땅 위로 드러나게 한다. 어린 이순일을 거둬 기른 외조부, 서로 다른 감각을 지닌 모녀관계, 그리고 다른 가족들을 둘러싼 상념들이 파묘의 과정에 적절하게 끼어든다. 파묘되어 망각의 세계로 들어가는 존재와 각자의 생활을 꾸려 가야 하는 사람들 사이의 간극이 또렷하게 부각된다. 삶과 죽음의 거리다. 그래서 한세진은 “아무것도 빌지 않고 절을 올리면서, 그쪽 방향엔 그의 뼈가 이미 없다는 것을 생각했다.” 이순일은 다르게 느낀다. “할아버지한테 이제 인사하라고, 마지막으로 인사하라고 권하는 엄마의 웃는 얼굴을 보았다면 누구라도 마음이 아팠을 거라고, 언제나 다만 그거였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이 마지막 장면에는 언어로 채 담을 수 없는 마음의 격동이 전해진다. 얼마 전 선산을 이장해야 했다. 선산이 도로공사 부지로 수용된 탓이다. 몇 달에 걸쳐 이장 준비를 하면서 황정은의 ‘파묘’를 떠올렸다. 묘를 개장하면서 드러난 어머니의 유골을 수습하면서 어쩌면 나도 이게 “마지막 인사”일 거라는 느낌을 받았다. 문득 죽음의 의미를 생각했다. 이장 과정에서 많이 불거진다는 가족이나 친족 사이의 해묵은 감정들이 뾰족하게 나타나지 않아 다행이었지만, 미묘하게 부딪치는 감정들이 없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힘든 결정은 어떻게 이장할 것인가였다. 여러 논의 끝에 가장 자연친화적이라는 수목장으로 모셨다. 좁은 나라에서 그나마 자연을 덜 훼손하고 왔던 곳으로 돌아가는 장례 방식이 수목장이라는 의견, 하지만 여전히 전통적인 장례 방식을 원하는 의견 사이에서 설왕설래도 있었다. 그런데 그 모든 말들은 ‘파묘’가 보여 주듯이 영원히 망각의 세계로 들어가는 이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느낌도 들었다. 살아 있는 이들이 내놓은 말과 의견들은 다른 곳으로 영원히 떠나가는 이들을 위한 것처럼 짐짓 들리지만, 실은 어떻게든 삶을 각자 꾸려 가야 하는 이들을 위한 것이다. 죽음을 ‘돌아가셨다’라고 종종 표현한다. 우리는 언젠가 왔던 곳으로 되돌아간다. 어디로 돌아가는가? 어느 철학자는 ‘우리는 우주에서 왔으니 우주로 돌아간다’라고 썼다. 그렇게 우리는 바다에서 왔으니 바다로 돌아간다. 흙으로 돌아간다. 혹은 불교에 기대면 원소(흙, 물, 불, 공기)의 결합이 생명체이니 때가 되면 다시 흩어져 원소로 돌아간다. 그러나 그렇게 떠나 왔던 곳으로 돌아가는 죽음을 떠올리고 그런 죽음을 사유한다 해도 삶의 중력을 쉽게 벗어날 수는 없다. 지금, 여기에서 어떻게든 붙들고 살아야 하는 삶과 현실에 대한 애착과 욕망을 초월하지는 못한다. 손쉬운 초탈을 허용하지 않는 삶의 무거운 중력이다. 한 해의 끝은 삶과 생활이 지닌 무게를 예민하게 느끼는 때다. 새해에는 올해보다는 삶의 무게가 조금은 가벼워지길 소망한다.
  •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눈 나린 길/박남수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눈 나린 길/박남수

    눈 나린 길/박남수 겨울 밤, 눈 나리는 밤하아얀 눈을 밟으며 밟으며 가신 이가 누구일까 머얼리 발자최 조고만 발자최 건넌 마을로 건너갔고나 한 줄기 입김에도 흐려지는 유리창 앞에호올로 호올로 금붕어처럼 직히며흰 눈 나려, 나려서 쌓이는이 아츰 우편배달부가 지날 상한 아츰 행여 돌아올 리 없을 이그이를 그리 그리며내 마음은 자릿자릿 설였다 태고 적 서름이 서린 이 아츰에알지도 보지도 못한 이 가신 길에 어찌하여 조고만 발자최에 슬픈 전설을 맺으려는 걸까 눈 오는 날은 옛 생각이 납니다. 1989년 겨울, 백두산 아래 이도백하 마을에서 하룻밤 잤습니다. 여관은 난방이 없었습니다. 옷을 있는 대로 껴입고 침낭과 이불 속에서 이를 덜덜 떨었지요. ‘잉크병 얼어붙는 밤’, 김기림의 시 구절 절로 생각났지요. 아침에 일어나니 눈이 창틀을 덮었습니다. ‘눈 나린 길’은 1940년 출간된 시집 ‘초롱불’에 실린 작품입니다. 어릴 적엔 초롱불을 켜고 저녁을 먹었지요. 식구들의 얼굴 그림자가 황토벽에 어룽거렸습니다. 80년 전의 우리말 읽는 느낌 어떤지요? 지금보다 다정하지 않은지요? 눈 쌓인 들판 너머 우리가 그리워한 세상 있을 것만 같습니다. 곽재구 시인
  • 한강·최승자 등 여성시인 4인 시집, 새 디자인으로 재출간

    한강·최승자 등 여성시인 4인 시집, 새 디자인으로 재출간

    소설 ‘채식주의자’로 맨부커상을 수상한 작가 한강을 비롯해 여성 시인 4명의 시집이 새로운 디자인으로 재출간됐다. 문학과지성사는 ‘시인선 디자인 페스티벌’의 일환으로 최승자·허수경·한강·이제니 시인의 시집 1편씩을 주목받는 여성 북디자이너 김동신, 신해옥, 나윤영, 신인아의 디자인을 입혀 새롭게 출간했다고 23일 밝혔다. 이번에 선보이는 시집은 최승자 시인의 ‘이 시대의 사랑’(1981), 고 허수경 시인의 ‘혼자 가는 먼 집’(1992년), 한강 작가의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2013), 이제니 시인의 ‘그리하여 흘려 쓴 것들’(2019)이다. 이근혜 문학과지성사 주간은 “1980년대부터 최근까지 폭넓게 사랑받은 여성 시인들을 선별했다”면서 “표지만 바꾼게 아니라 모바일에서는 보기 어려운 종이책의 질감을 맛보고 책 읽은 재미를 더하도록 구성했다”고 말했다.●최승자 ‘이 시대의 사랑’ 최승자 시인의 첫 시집인 ‘이 시대의 사랑’은 유신과 군사독재의 억압 속에서, 정통적인 수법으로는 감당할 수 없었던 뜨거운 비극적 정열을 뿜어올린다. 이 시대가 부서뜨려온 삶의 의미와 그것의 진정한 가치를 향해 절망적인 호소를 하고 있다. 여성으로서 또한 인간으로서 사랑과 자유로움을 갈망하는 언어적 결단이다. 격동의 1980년대를 청춘의 이름으로 관통해온 이들에게 시인 최승자는 처절한 분노로, 치명적인 중독으로, 그리고 가슴 먹먹한 이름으로 자리한다.●허수경 ‘혼자 가는 먼 집’ 2018년 작고한 고 허수경 시인의 ‘혼자 가는 먼 집’은 세간의 비참과 내면의 허기를 노래해온 시집이다. 일말의 포즈 없이 진정성을 향한 열망으로 씌어진 시편들은 하나같이 버림받다, 아프다, 무너지다 같은 절망적 어사들로 짜여 있다. 하지만 동시에 울기를 그만두고 다시 살아가려는 의지 또한 드러낸다. 시를 읽은 일은 삶의 지속이 곧 상처를 증식시키는 것임을 인지하면서도 이를 기꺼이 수용하며 나아가는 시적 고행을 조심스레 뒤따라보는 과정이 된다.●한강 ‘서랍에 저녁을 넣어주었다’ ‘서랍에 저녁을 넣어두었다’는 1993년 ‘문학과 사회’ 겨울호에 시를 발표하고, 이듬해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 소설이 당선돼 본격적 활동을 시작했던 작가가 등단 20년 차를 맞은 2013년 틈틈이 쓰고 발표한 시들 중 60편을 추려 묶어낸 시집이다. 부서지는 육체의 통각을 올올이 감각하면서도 쓰고 사는 존재로서 열정에 불을 지피는 시적 화자의 거대한 생명력은 읽는 이에게 무한한 영감과 용기를 북돋는다.●이제니 ‘그리하여 흘려 쓴 것들’ ‘그리하여 흘려 쓴 것들’에서 이제니 시인은 “어제의 여백을 돌아본다. 상실과 고통이 지나간 자리에 남겨진 흔적들, 오래 품고 있던 미처 다하지 못한 말들은 시에서 문장들 사이사이 문득 끼어드는 어떤 목소리로 되살아난다. 그 목소리들은 한 개인의 목소리이자 그 개인이 지금껏 겪어온 모든 사람, 헤쳐온 삶의 자취이기도 하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책꽂이]

    [책꽂이]

    마음의 일: 재수×오은 그림 시집(재수·오은 지음, 창비교육 펴냄) 동갑내기 친구인 만화가 재수와 시인 오은이 시와 그림으로 펼쳐 낸 마음 이야기. 시집이면서 그림책인 이 책은 그들의 청소년기, 장래 희망에 대한 고민, 다짐 등을 시와 그림으로 표현했다. 시를 만화로 읽고, 만화를 보며 시를 읽는 경험을 할 수 있다. 240쪽. 1만 4000원.기자를 위한 실전 언론법(김상우 지음, 한울아카데미 펴냄) 하루 평균 10건의 기사가 분쟁에 휘말리는 상황에서 일선 현장의 기자가 옆에 두고 참고할 만한 언론법의 핵심 내용을 쉬운 언어로 담았다. 신문과 방송에서 두루 기자 생활을 한 저자가 저널리즘의 비판적 감시 기능을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조언해 기자 지망생들에게도 유익하다. 256쪽. 3만원불안한 승리 자본주의의 세계사 1860~1914(도널드 서순 지음, 유강은 옮김, 뿌리와이파리 펴냄) 역사학자 도널드 서순이 1860년 무렵부터 1차 세계대전 전까지 자본주의가 어떻게 세계를 지배했는지 총체적 역사를 서술했다. 자본주의는 민주주의, 제국주의, 민족주의로 이어지며 끝없는 불안을 불러일으킨다. 현재를 성찰하는 것은 우리의 몫임을 강조한다. 1088쪽. 5만 5000원.인간 공자, 난세를 살다(리숴 지음, 박희선 옮김, 메디치미디어 펴냄) 춘추시대라는 난세에 열국을 주유한 공자의 부침 많은 일생과 인간적 모습, 그를 둘러싼 미스터리를 집대성했다. 기존의 수많은 공자 전기와 달리 한 편의 다큐멘터리처럼 춘추시대 사회·정치·제도를 복원해 냈다. 672쪽. 3만 2000원.베토벤 현악 사중주(나성인 지음, 풍월당 펴냄) 베토벤은 교향곡, 협주곡, 피아노소나타 등 클래식 음악의 거의 모든 분야에 위대한 작품을 남겼지만 현악 사중주의 매력에 접근하는 애호가는 많지 않다. 저자는 베토벤의 생애와 함께 현악 사중주를 좀더 쉽고 즐겁게 들을 수 있도록 작품 해설과 사회문화적 배경을 함께 짚었다. 416쪽. 1만 8000원.나의 가련한 지배자(이현주 지음, 코난북스 펴냄) 1970년생인 딸이 칠순을 넘긴 엄마와의 관계를 회상하며 성장과 결혼, 가사와 양육을 담은 연대기. 저자는 엄마와 딸의 관계란 연민과 지배와 구속과 구원이 뒤엉킨 복잡한 연대라고 말했다. 딸이 특별히 원하지 않지만 엄마가 딸을 간섭하고 통제하는 경우를 ‘김치 권력’으로 규정하고 자유를 갖지 못한 엄마의 삶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260쪽. 1만 5000원.
  • 분노했다, 어긋난 윤리… 강해졌다, 저력의 여풍… 탄생했다, 코로나 문학

    분노했다, 어긋난 윤리… 강해졌다, 저력의 여풍… 탄생했다, 코로나 문학

    2020년의 한국문학은 그 어느 때보다도 새 시대의 문단, 창작 윤리를 치열하게 질문했다. 여성 작가들의 강세가 여전한 가운데 코로나19 팬데믹을 문학에 담는 작가들의 노력이 보였다.●이상문학상·김봉곤 사태, 문학 윤리를 묻다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 중 하나로 연초마다 문학 애독자들을 설레게 했던 이상문학상이 일으킨 사태의 파장은 길었다. 우수상 수상 예정자였던 김금희·최은영·이기호 작가가 저작권 양도에 문제 제기를 하며 수상을 거부해 불거졌고, 이후 전년도 대상 수상자인 윤이형 작가의 절필 소식이 알려졌다. 작가·시인들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문학사상사_업무_거부’ 운동을 벌이며 사태가 커졌다.7월에는 사적 대화를 소설에 무단으로 인용, 사생활 침해 논란을 낳은 김봉곤(35) 작가의 책이 전량 회수 및 환불 조치에 들어갔다. 김 작가는 이 작품으로 수상한 제11회 젊은작가상을 반납했다. 이를 기점으로 ‘오토 픽션’(자전 소설)에서 실제와 허구는 어디까지 구현돼야 하는가를 놓고 논의가 일기도 했다. 출판·창작 윤리에 대한 활발한 문제제기는 세대교체의 한 흐름이라는 게 문학계의 평가다. 노태훈 문학평론가는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문학을 신비화한 예술로 보기보다는 계약에 따라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는 행위라는 인식들이 퍼져 있다”며 “관행적인 부조리를 더는 이어 가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젊은 여성작가 강세… 청소년 소설 인기 상승 지난해 문학계를 이끈 장르가 에세이였다면, 올해는 소설이었다. 이달 교보문고가 발표한 2020 종합 베스트셀러 100위 내에 소설 분야만 17종이 포함됐다. 특히 한국소설과 청소년소설의 반향이 두드러졌다.한국소설의 약진은 젊은 여성 작가들이 견인했다. 정세랑 작가는 최근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선보인 ‘보건교사 안은영’(민음사)을 비롯해 교보문고의 소설 부문 베스트셀러 30위 내에 3종을 올렸다. ‘영 어덜트 소설’(청소년과 어른이 함께 보는 소설)의 대표로 자리매김한 손원평 작가의 ‘아몬드’(창비), 신예 이미예 작가의 ‘달러구트 꿈 백화점’(팩토리나인)은 청소년, 성인 독자 모두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코로나19 여파로 청소년들의 개학이 미뤄지고, 학원도 휴원하면서 독서할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난 것도 이들 소설의 판매고를 올리는 데 영향을 미쳤다. 특히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 텀블벅을 통해 전자책으로 먼저 출간됐다 종이책으로도 나온 ‘달러구트 꿈 백화점’은 20만 부 이상 출고되며 신예 작가의 저력을 보여 줬다. ●이 시대를 선명하게 담은 ‘코로나 문학’ 코로나19는 작가들의 삶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쳐 이른바 ‘코로나 문학’을 낳았다. 코로나19를 소재로 한 소설 앤솔러지, 기획 시집, 수필집들의 출간이 이어진 것이다. ‘여기서 끝나야 시작되는 여행인지 몰라’(알마)와 ‘혼자서는 무섭지만’(보스토크프레스)은 코로나19로 위축된 일상을 살아가는 작가들의 작품집이다. 시인과 소설가, 에세이스트, 그림 작가, 사진작가 등 다양한 필진이 참여해 감정 교류를 시도했다. 코로나19가 보여 주는 사회 모순을 고발하는 소설 앤솔러지로 젊은 여성 작가 네 명(조수경, 김유담, 박서련, 송지현)이 써내려간 ‘쓰지 않을 이야기’(아르테)도 있다. 김초엽, 듀나, 배명훈 등 SF(과학소설) 작가들은 전염병을 소재로 미래 사회를 떠올린 앤솔러지 ‘팬데믹: 여섯 개의 세계’(문학과지성사)를 쓰기도 했다. 18개국 56명의 시인들도 코로나19 극복을 노래하며 프로젝트 시집 ‘지구에서 스테이’(앤드)를 펴냈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언젠가 돌아올 일상 그리며…세계 시인 56명 희망의 노래

    언젠가 돌아올 일상 그리며…세계 시인 56명 희망의 노래

    코로나19라는 미증유의 사태를 극복하리라 노래하며 전 세계 시인들이 프로젝트 시집 ‘지구에서 스테이’(앤드)에서 손을 맞잡았다. 시집은 18개국 세계 시인 56명이 코로나19 극복기로 채워졌다. 일본에서 한국문학을 소개하고자 설립한 쿠온출판사에서 지난 9월 말 펴낸 시집을 번역해 앤드 출판사에서 한국어판으로 출간했다. 김혜순, 김소연, 오은, 이장욱, 이원, 야마자키 가요코(일본), 피오나 샘슨(영국), 천이즈(대만) 시인 등이 참여했다. 시인들은 코로나19가 바꿔 놓은 일상에서 느끼는 우울한 단상을 희망의 노래로 바꿔 불렀다. 여기에 대구시인협회 회원을 중심으로 발간된 코로나19 앤솔러지에 실린 시 6편도 함께 수록됐다.시인들의 시를 보다 보면 형체 없는 재난을 사는 우리들의 오늘날이 더욱 구체적으로 그려진다. ‘나는 산책이 늘었다/나는 요리가 늘었다/ 나에게 시간이 너무나도 늘었다/축제가 사라졌다/장례식이 사라졌다/옆자리가 사라졌다/재난영화의 예감은 빗나갔다/잿빛 잔해만 남은 도시가 아니라/거짓말처럼 푸른 창공과 새하얀 구름이 날마다 아침을 연다’(24쪽, 김소연 ‘거짓말처럼’ 일부) 과거 재난영화에서나 보던 잿빛 도시는 아니지만, 푸른 창공도 평화만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코로나19를 통해 알게 됐다. 미국 시카고에서 태어나 독일 등에서 활동하는 힙합 뮤지션 에드거 바서의 ‘랩시’도 새롭다. 그는 건강염려증 환자를 뜻하는 ‘히포콘더’라는 시에서 코로나19 시대를 살며 끊임없이 자신의 몸 상태를 걱정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담았다. ‘히포콘더’와 편집증을 의미하는 ‘파라노이아’가 반복해서 등장, 운율을 만들며 불안감을 고조시킨다. ‘아파트 공동현관에 이르러 비밀번호를 누르고 문을 열기 딱, 5초 전’의 풍경을 그린 황유원의 시 ‘여름밤 칵테일’을 읽으면 이 환난 속에서도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어렴풋이 알게 된다. ‘오늘도 마스크를 끼고 보낸/숨이 턱 막히는 날의 귀가였지만/그 5초가 나를 살렸다고 생각하며/어머나,/아찔하고/짜릿했다/살면서 겨우/그런 게 좋았다’(38쪽)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시 제목도 집 이름도 ‘필경’… 원고지에 농사짓는 심훈의 삶 오롯이

    시 제목도 집 이름도 ‘필경’… 원고지에 농사짓는 심훈의 삶 오롯이

    심훈은 1930년에 ‘필경’(筆耕)이라는 제목의 시를 발표했다. 당시 일제에 짓밟혔던 조선인들의 마음을, 원고지에 붓으로 논밭을 일구는 것으로 말하고자 했다. 이는 후에 심훈이 충남 당진으로 낙향해 지은 집 ‘필경사’의 당호가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일제 치하의 농민들의 현실을 필경하듯 지은 소설 ‘상록수’를 창작한다. 그는 어찌하여 시도 집도 모두 ‘필경’이라 칭했던 것일까. 게다가 또 무슨 이유로 당대의 인기 소설가이자 시인, 연극과 영화배우이면서 감독이고 시나리오 작가였으며 경성방송국의 아나운서이자 프로듀서, 신문사의 기자이기도 했던 팔방미남이 농촌 계몽 소설인 ‘상록수’를 썼던 것인가. 그 이유를 찾아 충남 당진에 있는 심훈의 필경사로 가 보았다.1901년 경기 시흥군 신북면 흑석리(현 서울 동작구 흑석동)에서 태어난 심훈의 본명은 심대섭이다. 1926년에 동아일보에 연재를 시작하면서 필명인 ‘훈’을 쓰기 시작했다. 그는 흔히 수재들만 입학한다는 경성고등보통학교에 들어갔지만 3·1운동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투옥됐다. 학교에선 퇴학을 당하고, 법원에선 6개월형을 선고받았지만 이미 그 당시 복역한 지 8개월이 지난 뒤였다. 출소 후 중국으로 건너가 연극과 영화를 공부했고 이때 단재 신채호, 석오 이동녕 등과 교류하며 조선의 독립에 대한 의지를 불태웠다. 조선에 돌아와 최초의 영화소설을 썼고, 영화 ‘장한몽’의 이수일 역으로 출연해 큰 인기를 얻었다. 그 기세를 이어 영화감독으로도 활동했지만 심훈이 제작한 영화가 식민지의 현실을 그렸다는 이유로 상영이 금지됐다. 이후에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기자로 근무하면서 시와 신문 연재소설을 쓰며 영화로 미처 다 말하지 못한 울분을 토해 냈는데 이 역시도 일제에 의해 연재 중단 조치를 당하게 된다. 다시 식민지 조선의 처지를 암시했다는 이유였다. 연이어 1930년 3·1운동을 기념하고자 쓴 시 ‘그날이 오면’을 완성해 시집으로 출간하려던 계획 역시도 출간금지에 처하면서 무산됐다. 이때 출간하지 못한 시집은 심훈의 사후 13년이 지나서야 세상에 나왔다. 시집 ‘그날이 오면’의 이야기다.“삼십이면 선(立)다는데 나는 배밀이도 하지 못합니다. 부질없는 번뇌로, 마음의 방황으로, 머리 둘 곳을 모르다가 고개를 쳐드니, 어느덧 내 몸이 사십의 마루터기 위에 섰습니다. 걸어온 길바닥에 발자국 하나도 남기지 못한 채 나이만 들었으니 하염없게 생명이 좀썰린 생각을 할 때마다, 몸서리를 치는 자아를 발견합니다. 그러나 앞으로 제법 걸음마를 타게 되는 날까지의 내 정감의 파동은, 이따위 변변치 못한 기록으로 나타나지는 않으리라고 스스로 믿고 기다립니다.”(시집 ‘그날이 오면’의 머리말 중에서) 3·1운동 이듬해 경성방송국 문예담당 기자로도 입사했지만 사상 문제로 퇴직한 심훈은 아버지와 친척 일가붙이들이 살고 있던 충남 당진으로 낙향한다. 장조카인 심재영의 집에서 2년여간 기거하면서 필경사의 터를 닦고 집을 짓는다. 이후 필경사에서 쓴 소설 ‘상록수’가 1935년 동아일보사의 ‘창간 15주년 기념 장편소설 특별공모’에 당선돼 그해 9월 10일부터 1936년 2월 15일까지 동아일보에 연재하면서 소설가 심훈은 큰 인기를 얻기 시작한다.●언제나 푸르른 나무의 눈, 계몽 소설 ‘상록수’는 당진 부곡리에서 심재영이 벌이고 있던 야학운동과 공동경작회 활동을 토대로 경기도 반월면에서 농촌계몽운동을 벌이다 요절한 최용신의 이야기를 배경으로 한다. 소설 속에서 심재영은 박동혁으로, 최용신은 채영신으로 등장했다. 소설은 심훈이 조선일보 기자로 재직하던 시절에 사측에서 벌인 문자보급운동을 소설의 첫머리에 두고 시작한다. 일제가 추진한 민족 말살 정책의 일환으로 한글 교육이 금지되고 우리 민족에 대한 수탈이 강화되기 시작하던 그때, 농촌의 삶은 피폐하기 이를 데 없었다. 심훈은 이 소설을 통해 현실을 고발하고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고자 했다. 소설은 채영신과 박동혁, 두 주인공이 만나 사랑을 하고 함께 계몽운동을 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이 중에서 박동혁과 채영신의 러브 라인만 심훈의 상상이고 그 외의 모든 정황들은 그 당시 농촌의 현실을 그대로 그려 넣어 리얼리즘 소설이라는 평을 듣는다.“아는 것이 힘 배워야 산다.”(소설 ‘상록수’ 중에서) 심훈은 이렇게 빼앗긴 나라의 선각자이자 지식인으로서 할 수 있는 최대치의 힘을 불어넣어 농촌계몽소설을 썼고, 사람들이 앞다투어 읽기 시작했다. 소설이 연재되는 동안 동아일보의 판매 부수가 늘었고, 신문을 구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가판대에 줄을 서서 기다렸다는 이야기는 소설가 심훈의 인기와 계몽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방증한다. 심훈은 동아일보 공모전에서 받은 상금을 상록학원에 기증해 더 많은 사람들의 교육에 힘을 썼다. 1936년 상록수의 단행본 작업을 위해 서울에 올라온 뒤 장티푸스에 걸려 서른다섯 해 짧은 생을 마친다.●손기정의 베를린올림픽 금메달과 호외 당진에서 잠시 상경했던 심훈은 때마침 손기정의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우승 소식을 전하는 신문의 호외를 접하게 된다. 너무도 감격에 겨웠던 나머지 시 “오오, 조선의 남아여!”를 호외의 뒤쪽에 썼는데 그것이 그의 마지막 작품이 됐다. 그 작품은 당진의 심훈기념관에 손기정의 우승 사진과 함께 전시돼 있다. “오오, 나는 외치고 싶다! 마이크를 쥐고/ 전 세계의 인류를 향해서 외치고 싶다!/ 인제도 인제도 너희들은 우리를 약한 족속이라고 부를 터이냐!”(시 ‘오오, 조선의 남아여!’ 중에서)●바다 옆에 놓인 심훈기념관 심훈이 일생 동안 부르짖었던 민족정신과 독립운동의 가치 그리고 농촌계몽운동의 산실인 당진의 필경사 주변으로는 심재영 고택과 심훈기념관이 위치해 있다. ‘그날이 오면’ 기념비와 심훈의 동상도 오롯하게 서 있는 곳이다. 심훈의 생전에는 필경사 바로 앞까지 바다였으나 간척사업으로 인해 개간된 이후로는 바다가 조금 멀어졌다고 한다. 필경사의 창은 바다를 향해 나 있는데, 그 안에 심훈이 썼던 책상이 보존돼 있다가 훼손이 심해지자 기념관 내부로 책상을 옮겼다.한때 교회로 이용되기도 했던 필경사는 유족들과 심훈의 뜻을 기리는 사람들의 의지가 모여 다시 본연의 필경사로 돌아왔다. 서른다섯 해를 살다간 그의 사후에 서른여섯 해의 두 배가 훌쩍 넘도록 이렇게 사람들의 발걸음을 모으고, 널리 회자되는 것은 그의 다양한 활동만을 이름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가 지녔던 민족성에 대한 고취, 식민지 지식인으로서의 고뇌, 농촌계몽운동과 후학 양성에 힘썼던 일들과 그의 시와 소설이 만난 자리의 깊은 울림이 아닐까. 상록학원은 현재 상록초등학교가 돼 여전히 꿈과 희망을 노래하는 이들의 배움터로 남아 있다. 이것이야말로 상록수이자 심훈 정신의 발현이 아닐까. 한 글자씩 배운 글로 모두가 입을 모아 읽는 ‘그날이 오면’과 ‘상록수’ 그리고 심훈.바닷가 옆 필경사의 자리는 심훈만의 터가 아니라 누구의 말이든 한 글자씩 정성스럽게 받아 적는 모든 손길들이 주인인 곳이다. 누구든 와서 무엇이든 깨우치고 가는 자리, 그리하여 다시 이 자리는 이파리가 푸른 나무 밑에 앉아 어쩌면 아직도 오지 않은 ‘그날’을 헤아리며 하늘의 뜻을 받아 적는 자리인 당진 심훈기념관이다. 소설가 이은선
  • 20세기 美시인들의 노래, 21세기 우리를 위로하네

    20세기 美시인들의 노래, 21세기 우리를 위로하네

    치열하게, 혹은 경이롭게 생을 노래한 20세기 미국 대표 시인들의 시집이 연이어 출간됐다. 앤 섹스턴(1928~1974)의 ‘밤엔 더 용감하지’(민음사)와 메리 올리버(1935~2019)의 ‘천 개의 아침’(마음산책)이다. ●앤 섹스턴, 용감함 뒤 숨은 불안 표현 앤 섹스턴은 실비아 플래스 등과 더불어 ‘고백시파’에 속하고, 에이드리언 리치처럼 여성의 이야기를 대범하게 그린 시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인기 시인이면서 보스턴대에서 정교수로 문학을 가르친 성공한 작가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평생을 조울증과 자살 충동에 시달렸다. 백인 남녀가 결혼해 아이 둘을 기르는 가정을 의미하는 ‘아메리칸 드림’이 지배적이던 1950년대 미국에서, 섹스턴은 보수적인 어머니상에 순응하지 못하는 여성이었다. 자유로운 한편으로 사람들에게 이해받지 못했고, 사회가 요구하는 옷을 완전히 벗어던지지도 못했다. 그는 여기서 오는 죄책감, 자괴감 사이에서 오는 분열을 ‘밤엔 더 용감하지’에 실린 68편의 시를 통해 맹렬히 고백했다. ‘나는 홀린 마녀, 밖으로 싸돌아다녔지./ 검은 대기에 출몰하고, 밤엔 더 용감하지.’(23쪽·시 ‘그런 여자 과(科)’ 일부) 책을 번역한 정은귀 한국외대 영미문학문화학과 교수는 “그녀의 작품을 소개하는 건, 시인의 용감함과 그 용감함 뒤에 드리운 불안을 이해해야 가능한 일”이라고 말한다. ●메리 올리버, 생사의 다층적 고찰 ‘천 개의 아침’은 한국에 첫 출간되는 메리 올리버의 시집이다. 광대하고 아름다운 자연 예찬, 일상에서 느끼는 소소한 기쁨과 감사를 담은 36편의 시가 실려 있다. 특히나 올리버의 노년에 출간된 이 시집에는 삶과 죽음에 대한 다층적인 고찰이 두드러진다. 나이 들어가면서, 반려견 퍼시와 같이 교감하던 대상들과의 이별을 경험하면서 죽음의 이미지는 점차 긍정으로 나아갔다. 그가 끊임없이 시 안에 사랑하는 대상을 등장시켜 회상하며 새로운 추억을 덧입혔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 위로와 즐거움과 활력을 주는 시를 쓰고 싶다”던 생전의 바람 그대로, 올리버의 시편들에서는 생명력이 꿈틀댄다. 가령 이런 식이다. ‘춤을 추고 있을 때는,/ 규칙을 깨도 돼./ 규칙을 깨는 게 가끔은/ 규칙을 확장하는 거지.// 규칙이 없을 때도 가끔 있어.’(43쪽·시 ‘세 가지를 기억해둬’) 김연수 작가는 추천사에 이렇게 썼다. ‘메리 올리버의 시는, 내가 그대로 따라 추고 싶은 춤이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향촌동 르네상스 … 바흐가 흐른다

    향촌동 르네상스 … 바흐가 흐른다

    지금은 흔적 없이 사라졌지만, 대구 역시 오래전엔 읍성이 있었던 도시였다. 대구읍성의 북쪽 성벽 아래, 그러니까 향촌동 일대가 지금 르네상스를 맞고 있다. 쇠락한 도심에서 문화와 예술의 성지로 다시 태어나는 중이다. 새삼 이 공간에 주목하는 건 옛 명성 때문만은 아니다. 향촌동에 담겨 있는 역사와 문화, 그리고 독특한 정서 때문이다. 그 시절의 이야기만 따라가도 한나절이 후딱 지나간다. 대구가 코로나19 초반의 악몽에서 회복됐다고는 해도 여전히 거리두기는 이어지고 있다. 외지인, 특히 수도권 지역 사람들에 대한 경계심이 높은 편이니 방역 수칙을 잘 지키며 다니는 게 좋겠다. 먼저 향촌동의 역사를 간략하게 살피자. 그래야 왜 대구 사람들이 ‘향촌동 르네상스’를 꿈꾸는지 알 수 있다. 향촌동은 옛 대구읍성의 북쪽 성곽(현 북성로) 일대를 일컫는 지명이다. 현 대구역 맞은편에 있다. 조선 선조 때 일본 침략에 대비해 쌓은 대구읍성이 사라진 건 1906년이다. 당시 ‘야마모토 군수’라고 불렸던 친일파 박중양 대구군수가 이런저런 핑계를 들어 대구읍성을 불법 철거했다. 향촌동의 최전성기는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였다. 헌병대 등 권부가 몰린 옛 경북도청 앞이 낮의 중심지였다면, 밤을 지배하는 곳은 향촌동이었다. 당시 대구 유흥의 중심이었던 향촌동 골목에는 사미센(일본 악기)과 일본인들의 게다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광복 이후 일제가 떠나며 쇠퇴하던 향촌동은 1950년대 한국전쟁 피란 예술인들로 다시 전성기를 맞는다. 전쟁 중이었지만 골목에는 바흐와 베토벤 음악이 흘렀고, 문학이 꽃을 피웠다. 당시 한 외신기자가 ‘폐허에서 바흐를 듣는다’고 썼던 기적의 공간이 바로 향촌동이었다. 오늘날의 향촌동이 꿈꾸는 모습 역시 바로 이 시기의 살롱 문화다. 피란 시절 북적댔던 향촌동은 예술인들이 떠나면서 다시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1970~1980년대 김치에 막걸리를 마시던 젊은이들마저 대구 신도심으로 눈을 돌리면서 향촌동은 60대, 70대들의 공간이 됐다. 그 골목에 이제 막 젊은이들의 발걸음이 보태지기 시작한 것이다.이 동네의 모양새가 참 독특하다. 좁은 골목길을 경계로 한쪽은 젊은이들의 양지, 또 한쪽은 어르신들의 성지다.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 향촌동 르네상스의 중심지는 복합문화공간인 ‘대화의 장’이다. 이 안에 카페 겸 펍인 대화살롱, 대화주방, 대화강당, 대화공방, 대화스튜디오 등이 밀집돼 있다. 이름에서 보듯 음식이나 장식 등이 젊은이 취향이다. 옛 한옥을 리모델링한 대화강당에서 토론 모임을 갖거나 젊은 작가들이 입주한 공방에서 여러 소품들을 살 수도 있다. ‘개화기 복장’을 갖춰 입고 인증샷을 찍으러 오는 ‘인싸’ 커플도 흔하다.대화의 장에서 50m쯤 떨어진 ‘꽃자리 다방’도 젊은이들의 핫플레이스다. 화가 이중섭이 그려 준 표지화로 유명한 구상 시인의 시집 ‘초토의 시’ 발간기념회가 열렸던 공간이다. 건물도, 이름도 예전 그대로다. 한옥을 개조한 카페 ‘퍼센트 14-3’도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다. 1955년 대구 군예대에서 근무하던 명배우 허장강이 이 집 안채를 세내 잠시 살았다고 한다. 아마 당시 군예대 동료였던 영화배우 박노식 등도 문턱이 닳도록 이 집을 들락거렸지 싶다. 이 카페는 수제화 골목 지나서 있다.어르신들의 중심 공간은 ‘판코리아 성인텍’이다. 이곳은 농반진반 ‘60금’ 건물이다. 60세 이하 ‘아이들’은 출입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이영숙 문화해설사에 따르면 겉으로는 작아 보여도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수백 명의 어르신들로 북적댄다고 한다. 어르신 놀이터는 해거름이면 파장이다. 오후 6시 무렵이면 대부분의 어르신들이 집으로 가거나, 주변 공간으로 삼삼오오 사라진다. 화려한 복장의 어르신들을 만날 수 있는 것도 이 무렵이다. 향촌동 골목은 좁고 구불구불하다. 그 좁은 골목을 따라 하꼬방(단칸 가건물) 같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적산가옥도 많다. 보통 적산가옥 하면 목조 주택을 연상하기 마련이지만, 향촌동 일대 옛 살롱들의 대부분은 시멘트로 지은 건물이다. 숱한 기억들을 갈무리하고 있는 옛 건물들을 엿보며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가장 널리 알려진 곳은 시인 구상이 즐겨 묵었다는 화월여관(현 판코리아 성인텍), 지독히 가난했던 화가 이중섭이 생애 마지막 예술혼을 불살랐던 백록다방(현 갤러리모텔), 음악감상실 르네상스(현 판코리아 식당) 등이다. 이 건물들에 얽힌 이야기가 재밌다.피란 시절 향촌동을 넉넉하게 만든 이는 구상 시인이다. 주머니가 솜털처럼 가벼웠던 예술인들은 무시로 외상술을 마셔댔고, ‘향촌동 귀공자’ 구상 시인은 이들의 밀린 외상값을 지갑을 털어 내줬다. 이중섭이 1955년 담뱃갑 은박지에 그림을 그렸다던 백록다방은 경북여고 동기인 두 인텔리 여성이 마담이었다. 둘의 빼어난 미모와 지성미는 숱한 예술인들을 불러모았다고 한다. ‘음악은 르네상스에서, 차와 대화는 백록에서’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나. 이중섭이 캔버스 삼아 그렸던 은박지는 미국산 ‘럭키 스트라이크’ 담배에서 나온 것이다. 당시 이중섭을 흠모하던 시인 김광림이 구해 줬다고 한다. 물론 이중섭은 이때 번 그림값을 술값으로 탕진해 버렸다. 그가 전시회를 열었다는 미 공보원 건물은 아쉽게 사라졌다. 르네상스는 클래식 음악감상실이었다. 박용찬이란 호남의 갑부 아들이 1951년 1·4 후퇴 때 레코드 한 트럭분을 싣고 내려와 문을 열었다고 한다. 화가 김환기, 건축가 김중업, 배우 최은희와 감독 신상옥 등이 즐겨 찾았다. ‘북성로 허브’가 세 든 건물은 해방 공간의 세도가 이기붕의 신혼집이 있었던 건물이다. 고딕풍으로 멋을 낸 외관이 인상적이다. 아울러 이중섭과 소설가 최태응이 묵었던 경복여관(현 의류 가게), 이육사의 시 ‘청포도’에서 이름을 딴 청포도 다방(현 갤러리모텔 주차장), 음악다방 백조(현 아파트 공사장) 등도 안내판으로만 남은 공간들이다.대구에 가 볼 만한 일몰 전망대가 생겼다. 앞산 중턱에 있는 ‘해넘이 전망대’다. 앞산 일대의 소박한 집들과 도심의 거대한 마천루들이 붉게 물드는 장면이 제법 곱다. 입장료를 내고 올라야 하는 앞산 전망대의 해넘이가 압도적일 만큼 화려하다면 ‘해넘이 전망대’의 일몰 풍경은 어딘가 나른하면서도 애잔한 느낌을 준다. 해넘이 전망대 아래는 빨래터 공원이다. 이 일대 주민들의 옛 빨래터를 공원으로 꾸몄다. 빨래터 앞엔 두 그루의 수양벚나무가 있다. 지금은 잎이 졌지만 수양벚꽃이 흐드러지던 봄엔 아마 전국에서 가장 화사하고 요염한 빨래터였을 게 틀림없다. 세상 어느 남정네가 벚꽃 아래에서 빨랫방망이를 내리치는 여인네를 보며 가슴이 두방망이질 치지 않았으랴. 빨래터에서 두어 블록쯤 아래에 봉준호 영화감독의 어린 시절 집이 있다. 지난 국회의원 선거 때 ‘봉준호 생가 복원’ 운운하는 선거 구호가 등장해 여론의 질타를 받는 해프닝이 일었던 곳이다. 해넘이 전망대에서 굽어보면 이런저런 일들이 그저 봄날의 꿈에 불과하다는 걸 느끼게 된다. 글 사진 대구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치열하게, 경이롭게… 삶을 노래한 20세기 미국 대표시인들

    치열하게, 경이롭게… 삶을 노래한 20세기 미국 대표시인들

    치열하게, 혹은 경이롭게 생을 노래한 20세기 미국 대표 시인들의 시집이 연이어 출간됐다. 앤 섹스턴(1928~1974)의 ‘밤엔 더 용감하지’(민음사)와 메리 올리버(1935~2019)의 ‘천 개의 아침’(마음산책)이다. 앤 섹스턴은 실비아 플라스 등과 더불어 ‘고백시파’에 속하고, 에이드리언 리치처럼 여성의 이야기를 대범하게 그린 시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인기 시인이면서 보스턴대에서 정교수로 문학을 가르친 성공한 작가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평생을 조울증과 자살 충동에 시달렸다. 백인 남녀가 결혼해 아이 둘을 기르는 가정을 의미하는 ‘아메리칸 드림’이 지배적이던 1950년대 미국에서, 섹스턴은 보수적인 어머니상에 순응하지 못하는 여성이었다. 자유로운 한편으로 사람들에게 이해받지 못했고, 사회가 요구하는 옷을 완전히 벗어던지지도 못했다. 그는 여기서 오는 죄책감, 자괴감 사이에서 오는 분열을 ‘밤엔 더 용감하지’에 실린 68편의 시를 통해 맹렬히 고백했다. ‘나는 홀린 마녀, 밖으로 싸돌아다녔지./ 검은 대기에 출몰하고, 밤엔 더 용감하지.’(23쪽, 시 ‘그런 여자 과’(科) 일부) 책을 번역한 정은귀 한국외대 영미문학문화학과 교수는 “그녀의 작품을 소개하는 건, 시인의 용감함과 그 용감함 뒤에 드리운 불안을 이해해야 가능한 일”이라고 말한다.‘천 개의 아침’은 한국에 첫 출간되는 메리 올리버의 시집이다. 광대하고 아름다운 자연 예찬, 일상에서 느끼는 소소한 기쁨과 감사를 담은 36편의 시가 실려 있다. 특히나 올리버의 노년에 출간된 이 시집에는 삶과 죽음에 대한 다층적인 고찰이 두드러진다. 나이 들어가면서, 반려견 퍼시와 같이 교감하던 대상들과의 이별을 경험하면서 죽음의 이미지는 점차 긍정으로 나아갔다. 그가 끊임없이 시 안에 사랑하는 대상을 등장시켜 회상하며 새로운 추억을 덧입혔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 위로와 즐거움과 활력을 주는 시를 쓰고 싶다”던 생전의 바람 그대로, 올리버의 시편들에서는 생명력이 꿈틀댄다. 가령 이런 식이다. ‘춤을 추고 있을 때는,/ 규칙을 깨도 돼./ 규칙을 깨는 게 가끔은/ 규칙을 확장하는 거지.// 규칙이 없을 때도 가끔 있어.’(43쪽, 시 ‘세 가지를 기억해둬’) 김연수 작가는 추천사에 이렇게 썼다. ‘메리 올리버의 시는, 내가 그대로 따라 추고 싶은 춤이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거울 속 넌 누구니” 소설에 자신 비춘 일흔한 살 하루키

    “거울 속 넌 누구니” 소설에 자신 비춘 일흔한 살 하루키

    남성 화자 둘러싼 괴이한 일의 연속인생 자체에 빗대 자기 뿌리 찾는 듯비틀스·클래식 등 올곧은 취향 투영“중요한 분기점 거쳐 지금의 나 존재”‘일인칭 단수’는 하루키가 ‘여자 없는 남자들’ 이후 6년 만에 내는 소설집이다. ‘여자 없는 남자들’이 하나같이 남성 화자 ‘나’의 일상을 장악했던 여성이 사라진 뒤에 남은 공기의 서라운드를 써 내려갔다면, ‘일인칭 단수’는 공기보다 남성 화자의 내면에 집중했다. ‘나’라는 일인칭 단수의 남성 화자에게는 늘 괴이쩍은 일이 일어난다. 주로 여성인 등장인물이 불현듯 나타나 난데없이 ‘나’의 집에서 자고 가길 청한다거나(‘돌베개에’), 열리지 않을 피아노 리사이틀에 부러 초대하는(‘크림’) 등의 무람하고 대담한 행동을 하는 식이다. 이후로 ‘나’의 인생은 적어도 이전과는 다른 것이 된다. 어떻게든. ‘일인칭 단수’는 ‘여자 없는 남자들’보다 ‘하루키 월드’ 특유의 환상성이 배가됐다. 가령 시골 여관에서 시중을 드는 원숭이를 만나 맥주를 나눠 마시며 이야기를 들었다든지(‘시나가와 원숭이의 고백’), 홀연히 나타나 ‘중심이 여러 개 있으면서 둘레를 갖지 않는 원’을 묻는 노인의 존재(‘크림’) 등이다. 심지어 이미 작고한 색소포니스트가 살아서 미래의 음악을 연주한다는 설정의 ‘찰리 파커 플레이즈 보사노바’에서는 세상에 없는 음악을 묘사하는 솜씨가 신묘할 지경이다. 비틀스와 클래식, 야구로 치환되는 하루키의 취향을 공유하는 재미도 있다. 수록작 중 일부는 그의 취미에 관한 이야기가 지배적이라 자전적 에세이가 아닐까 하는 의문도 든다. 야구장의 외야에서 날아가는 야구공을 보다 문득 ‘소설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소설가가 되었다는 하루키의 전설은 그가 평생을 응원하는 야구팀에 관한 소설 ‘야쿠르트 스왈로스 시집’에 담겼다. 비틀스 LP판을 듣고 걷던 소녀와 조우한 찰나를 잊지 못한다는 ‘위드 더 비틀스’, 함께 슈만이라는 음악가를 향유했던 미스터리한 여인에 관한 이야기 ‘사육제’(Carnaval)에서는 하루키의 올곧은 취향이 다시 한번 드러난다.그래서인지 ‘일인칭 단수’는 지금껏 살아온 하루키라는 스스로에 대한 복기로 보인다. 올해 일흔한 살의 하루키는 최근 출간한 에세이 ‘고양이를 버리다’를 통해 평생 소원한 관계였던 아버지를 처음 수면 위로 끌어올리기도 했다. 뿌리를 찾는 적극적인 자아 탐구로 보이는 행보다. 인생이라는 그 자체로 괴이쩍은 일에 대한 탐구가 ‘일인칭 단수’들의 삶이며, 그것이 바로 문학이다. 하루키와 호흡을 같이해 온 독자라면, ‘일인칭 단수’가 그의 소설을 좋아했던 ‘나’라는 인간을 다시 한번 환기할 기회가 될 법하다. 좀 길지만 책을 집약하는 구절을 통째로 따라가면 그 길이 더욱 명료해질 것 같다. ‘지금까지 내 인생에는-아마 대개의 인생이 그러하듯이-중요한 분기점이 몇 곳 있었다. 오른쪽이나 왼쪽, 어느 쪽으로든 갈 수 있었다. 그때마다 나는 오른쪽을 선택하거나 왼쪽을 선택했다.(중략) 그렇게 나는 지금 여기 있다. 여기 이렇게, 일인칭 단수의 나로서 실재한다. 만약 한 번이라도 다른 방향을 선택했더라면 지금의 나는 아마 여기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거울에 비친 사람은 대체 누구일까?’(‘일인칭 단수’, 223~224쪽)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책꽂이]

    [책꽂이]

    은유로 보는 한국 사회(나익주 지음, 한뼘책방 펴냄)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은유를 분석한 저작. 언어학자인 저자는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프레임 전쟁은 곧 은유 전쟁이며, 진보 대 보수의 대결은 정의, 자유, 평등, 공정성, 차별 등의 가치를 담은 개념의 해석을 차지하는 데 있다고 본다. 그에 따르면 ‘세금 폭탄’이라는 단어는 은유 전쟁에서 보수가 크게 성공한 사례다. 248쪽. 1만 5000원.짐을 끄는 짐승들(수나우라 테일러 지음, 이마즈 유리 옮김, 오월의봄 펴냄) 인간 편향을 넘어서는 비장애중심주의에 대한 논저. 선천성 관절굽음증이라는 장애를 가진 저자는 동물과 장애인이 겪는 억압을 교차적으로 사유한다. 비장애중심주의와 인간중심주의, 종차별주의가 공모하는 폭력을 인지하면서도 서로 다른 두 존재의 고유성을 놓치지 말자고 말한다. 424쪽. 2만 2000원.눈치(유니 홍 지음, 김지혜 옮김, 덴스토리 펴냄) 한국의 성공 요인을 ‘눈치’로 분석했다. 저자는 여러 세대에 걸친 자기중심적 사고방식이 우리의 발목을 잡게 됐고, 오히려 우리가 원하는 대로 살아가려면 눈치의 기술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직원들과 직장에서 잘 지내는 법, 첫인상에 대한 오류 등 직장인을 위한 현실적인 조언도 담겨 있다. 216쪽. 1만 4000원.지정학의 힘(김동기 지음, 아카넷 펴냄) 세계의 지정학 내에 위치하는 한반도 지정학에 관한 분석과 활용법을 담았다. 외국과 한국을 오가며 국제 문제를 연구하는 저자는 한반도가 냉전적 세계관을 허물고 영국, 미국, 독일, 러시아, 일본, 중국 등 글로벌 플레이어들의 치밀한 지정학적 전략 구사를 이해해야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 360쪽. 1만 8000원.식물에게 배우는 네 글자(이선 지음, 궁리 펴냄) 식물 생태학 박사가 들려주는 식물 인문학. 식물에 관한 지식에 방점을 두기보다 식물사회와 인간사회를 사자성어로 비교해 보는 데 주안점을 뒀다. 하늘을 향해 뻗은 소나무의 가지들을 보며 ‘누울 자리를 봐가며 발을 뻗는다’라는 속담에 부합되는 사자성어 ‘양금신족’(量衾伸足)을 떠올리는 식이다. 290쪽. 1만 7000원.천 개의 아침(메리 올리버 지음, 민승남 옮김, 마음산책 펴냄) 국내에서 첫 출간되는 퓰리처상 수상 시인 메리 올리버의 시집. 출간 직후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선정됐던 시집에는 광대하고 아름다운 자연 예찬, 삶과 죽음에 대한 고찰, 일상에서 느끼는 소소한 기쁨과 감사 등 올리버의 시 세계를 관통하는 36편의 시가 실렸다. 164쪽. 1만 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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