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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야한소설 ‘광마잡담’ 펴낸 마광수 교수

    야한소설 ‘광마잡담’ 펴낸 마광수 교수

    마광수 (연세대 국문과)교수 가 새 소설을 낸다는 얘기를 듣고 가장 궁금했던 점은 그 내용에 앞서 ‘사회적 반응이 어떨까.’하는 것이었다.13년 전의 작품 ‘즐거운 사라’가 그에게 구속과 수감생활, 학교로부터의 추방(2년 전 복직)을 가져왔다면,2005년의 새 작품은 그에게 무얼 가져다줄까. 하는 ‘우려 섞인 기대’가 머리 주변을 맴돌았다. 소설 ‘광마잡담’(해냄)과 에세이 ‘자유가 너희를 진리케 하리라’(해냄)를 낸 마 교수는 기자간담회에서 “사회가 많이 변했다. 당시만 해도 금기시됐던 성담론이 넘쳐 흐른다.”며 일단 낙관적 태도를 보여주었다. 그러면서도 “지난해 두 권짜리 소설 ‘별것도 아닌 인생’을 내려고 원고를 출판사에 줬다가 ‘겁나서’ 되찾아왔다.”며 악몽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음을 내비쳤다. ‘광마잡담’은 예전에 내놓았던 옴니버스 소설 ‘광마일기’의 속편에 해당하는 작품. 주인공이 현실과 상상 속을 넘나들며 다양한 성희의 즐거움을 만끽하는 모습을 9개의 이야기로 풀어냈다. 마 교수는 “예전의 ‘권태’나 ‘즐거운 사라’가 페티시즘을 모티프로 한 성적 묘사에 치중했다면 ‘광마잡담’은 팬터지 요소를 결합한 서사적 스토리텔링이 특징이다. 성희에 대한 묘사는 훨씬 덜 야하지만, 매우 속도감 있게 읽힐 것”이라고 말했다. 에세이 ‘자유가 너희를 진리케 하리라’는 대학 3학년때부터 올 1월까지 썼던 글 중 출판하지 않고 묵혀두었던 것을 손질해 낸 것. 책 제목은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성경속 예수 말씀을 거꾸로 해석해 붙인 것이다. 마 교수는 “자유 없는 진리는 오히려 폭력·권력·도그마가 되기 쉽다. 자유는 행복 그 자체이고, 오히려 진리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게 한다.”고 에세이를 관통하는 주제를 요약해 설명했다. 책은 작가의 핵심사상인 에로티시즘적 사고를 바탕으로, 한국인의 이중적 성의식, 거기서 파생되는 판단력의 부재, 학벌·외모 등 외형적인 것에 몰두하는 사람들의 우둔함, 지적 사유를 권리로 인식하는 지식인들의 표리부동한 모습 등을 비판한 글들로 구성돼 있다. 마 교수는 앞서 철학에세이 ‘비켜라, 운명아 내가 간다!’를 냈다. 또 1일부터 7일까지 관훈동 인사갤러리에서 18년지기 이목일 화백과 ‘이목일 마광수 2인전’이란 그림전시회도 연다. 올 가을엔 시집도 내고, 지난해 내놓으려다 포기한 소설 ‘별것도 아닌 인생’과 ‘절망보다 더 두려운 희망’도 잇따라 선보일 계획.‘관능적 상상력의 풍경화’를 표방한 콩트 ‘마광수의 섹스토리’ 연재(서울신문 주말매거진 ‘WE’)도 시작했다. 13년 전 ‘즐거운 사라’ 이후 빠져들었던 고통과 우울의 기나긴 터널을 빠져 나와 힘찬 재기의 몸짓을 시작한 마광수. 당시만 해도 ‘첨단’으로 받아들여졌던 성에 관한 자극적 이미지들이 보편화된 지금, 그가 시간의 간극을 극복하고 ‘제2의 전성기’를 맞을 수 있을지 자못 기대된다.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책꽂이]

    ●나는 유령작가입니다(김연수 지음, 창비 펴냄)소설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로 2003년 동인문학상을 받은 작가의 세번째 소설집. 인간의 진실을 찾아, 기록된 사실의 이면을 다각도로 파헤친 9편의 연작을 담았다.‘뿌넝숴(不能說)’‘이렇게 한낮속에 서 있다’는 독백체의 서술문으로,‘거짓된 마음의 역사’는 서간문으로,‘연애인 것을 깨닫자마자’는 개화기 지식인 문체로 쓰는 등 다양한 글쓰기 실험이 돋보인다.9500원. ●아르갈의 향기(이시영 지음, 시와시학사 펴냄)몽골어 ‘아르갈’은 우리말로 소똥이다. 몽골을 여행하던 중 초원에서 아르갈의 연기가 퍼져오르는 것을 보고 고향의 훈훈한 저녁을 상기했다는 시인.‘전라남도 구례군 마산면 사도리’‘괴목역’등 고향마을에 관련된 시를 비롯해 1970∼80년대 시인들의 모습을 서사적으로 그린 시 등 총 99편의 작품이 수록돼 있다.9000원. ●춤(박형준 지음, 창비 펴냄)최근 시단에서 가장 주목받는 시인인 저자가 ‘물속까지 잎사귀가 피어 있다’이후 3년 만에 펴낸 네번째 시집.‘絶海孤島,/내리꽂혔다/솟구친다/근육이 오므라졌다/펴지는 이 쾌감’(‘춤’중)등을 비롯해 세상에 대한 연민과 비애를 담은 시들이 실려 있다.6000원. ●키스하기 전에 우리가 하는 말들(알랭 드 보통 지음, 이강룡 옮김, 생각의나무 펴냄)철학적 연애소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로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알랭 드 보통의 신작.‘왜 나는‘,‘섹스, 쇼핑, 그리고 소설’과 더불어 일상의 연애를 독특한 사유로 바라보는 작가의 3부작 중 하나다. 주인공이 나이트클럽에서 만난 이사벨의 전기를 쓰면서 사랑하는 사이로 발전하는 과정을 그렸다. 일상의 문제에 대한 위대한 철학자들의 처방을 소개하는 철학에세이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도 함께 출간됐다.1만∼1만 2000원. ●진한 꽃내음이 그대에게 물들게 하는 편지(은학표 지음, 천우 펴냄)2003년 ‘문학세계’로 등단한 시인의 시집.‘고운 빛깔에 걸맞는 꽃향기로/한사발 웃음을 마시며/달빛같은 편지가 되고 싶다’(‘별’중)등 수록.6000원.
  • [마광수의 섹스토리] ① 어느 여대생의 ‘에덴동산’여행

    나는 어느날 대낮의 환몽(幻夢)중에 지상낙원이라는 에덴동산엘 가보았다. 그곳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신 더 야(野)한 곳이었다. 나는 에덴동산은 문명화되기 이전의 곳이라서 원시적인 모습을 상상했었다.‘성경’에서는 아담과 이브가 처음에는 완전히 벌거벗은 상태로 살았다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더 그런 생각을 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에덴동산은 생각했던 것보다 ‘인공미’와 ‘섹시미’의 극치였다. 나는 처음엔 아담을 만날 수 있었는데, 그렇게 잘생긴 사람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계란형 얼굴에 쌍꺼풀 진 눈, 제대로 오똑 솟아있는 코, 잘 빠진 인중, 그리고 조금 아래 있는 빨간 입술. 그 아래 다듬은지 얼마 안되는 것 같은 2㎜ 정도 자라난 콧수염과 턱수염에서 난 페티시(fetish)를 느낄 수 있었다. 특이한 것은 아담의 속눈썹이 비정상적으로 길다는 점이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인조 속눈썹 같아 보였다. 흡사 여장남성(transvestite)을 보는 듯했다. 하느님이 ‘야한 외모’ 중심주의자이시기 때문에 아담에게 속눈썹을 붙이라고 요구했든지, 아니면 아담 스스로가 나르시시즘에 겨워 긴 인조 속눈썹을 붙인 것 같았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그의 가느다랗고 긴 손가락이었다. 그 손가락은 Y대 M교수의 긴 손가락들을 연상시켰다. 손가락을 움직일 때 보이는 관절의 움직임조차 아름다웠다. 왼손 검지와 오른 손 검지에는 실 같이 가는 얇은 금사(金絲)가 둘둘 말려져 있었고, 왼쪽 새끼 손가락과 오른 손 약지, 새끼 손가락에는 큼지막한 메탈로 된 커다란 반지들이 끼워져 있었다. 물론 손톱들도 다 10㎝ 넘게 길러져 있었다. 그는 위에는 안이 훤히 비치는 메시로 된 파란색 저지를 입고 있었는데, 이게 바로 무화과 나뭇잎 그물 옷인 듯했다. 웃옷이 비치지 않는 것이었다면 나는 그의 가슴 근육과 배 근육을 볼 수 없어 무지 안타까웠을 것이다. 액세서리들로 온몸이 감싸인 그는 제대로 된 ‘힙합맨’이었다. 나는 평소에 힙합에 관심이 많아 ‘힙합 스타일’의 남자를 보면 눈을 떼지 못했는데 아담은 이 부분에 있어서도 완벽했다. 연한 베이지색 듀렛을 써서 머리를 깔끔하게 밀착시키고 그 위에는 앞이 가죽으로 된 메시캡을 옆으로 15도 정도 기울여서 썼다. 그리고 배꼽까지 내려오는 긴 메탈 목걸이를 두개나 걸고 팔에는 황금 암릿(armlet)과 팔찌를 하고 있었다. 특히 두 젖꼭지에 박혀 있는 커다란 피어싱(piercing) 고리가 인상적이었다. 나는 아담의 손가락을 유심히 쳐다보고 나서 그의 손을 잡았다. 부드럽고 살풋했다. 나는 그의 긴 손가락을 하나씩 살짝 잡아당겨 보았다. 그리고 긴 손톱 끝부분을 깨물어보기도 하였다. 재미있었다. 정말로 갖고 싶은 손이다. 나는 그와 이야기하는 동안 내내 그의 손을 놓아주지 않았다. 그는 나에 대해 다 알고 있는 눈치였다. 그러나 내가 모르는 게 더 많다고 말하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 심볼에 손을 갖다 대봐요. 그리고 내 신체 부위중 아무 곳이나 긁어보세요.” 그래서 나는 그의 심볼을 살며시 잡아 보았다. 그랬더니 그의 페니스 한 가운데 커다란 황금 링이 피어싱돼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저 심볼을 갖고서 인터코스를 하면 여자의 질(膣)에 얼마나 큰 오르가슴을 선사할까’하는 생각에 나는 나도 모르게 가슴이 쿵쾅거리는 것을 느꼈다. 아담은 자기도 역시 나의 치구(恥丘) 부근을 슬금슬금 쓰다듬어 주면서 또 이렇게 말했다. “하느님은 ‘야한 사람’을 좋아하셔서 나같은 남자한테도 여자처럼 치장할 권리를 주었죠. 그래서 나는 어느새 ‘탐미적 평화주의자’가 된 것이랍니다. 손톱이 짧으면 오히려 남을 할퀴게 되지요. 그렇지만 손톱이 길면 손톱이 부러지는 게 아까워서라도 남을 할퀴지 않게 되거든요.” 아담의 얘기를 듣고나서 나는 어서 빨리 이브를 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나는 아담에게 이브를 소개해달라고 졸랐다. 아담이 내 곁에서 떠난 후 얼마 안 있어 이브를 데리고 나타났다. 이브는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섹시하고 야(野)한 외모를 갖고 있었다. 적어도 3m는 될 것 같은 긴 머리는 하늘색으로 염색되어 중간중간에 흰색과 노란색으로 블리치가 되어 있었다. 이 긴 머리를 앞머리와 옆머리는 남긴 채 가체(假 )처럼 틀어올린 모습이 무척이나 관능적이었다. 가체 위에는 여러개의 나비장식을 하고 있었는데 계속해서 움직이는 것을 보니 장식품이 아니라 진짜 살아있는 나비인 듯했다. 위 아래로 헐렁하게 붙어있는 연보라색 원피스는 속이 훤히 비치는 시폰 소재로 만들어져 있었는데, 가슴을 깊게 파 옷깃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여미게 되어 있었다. 허리에는 굵은 요대(腰帶) 비슷한 황금벨트 장식이 있고 모든 옷 끝마다에는 은빛 레이스가 연결돼 있어 여성스러움이 돋보였다. 손톱의 길이는 15㎝가 넘었고 손톱 끝에는 아주 가느다란 황금 체인들이 꿰어져 있었다. 특히 나를 놀라게 한 것은 음부(淫部) 부분을 온통 뚫어놓았다는 사실이었다. 그녀의 질구(膣口)에서는 두 개의 사파이어 사슬이 무릎 근처까지 늘어져 내려와 있었는데, 하나는 음순걸이였고 하나는 클리토리스걸이였다. 나는 이브의 섬뜩한 염정미(艶情美)에 놀라 어째서 이토록 야한 몸매를 갖게 됐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이브는, “하느님이 워낙 야한 여자를 좋아하셔서 이렇게 차린 것이랍니다. 당신도 에덴동산으로 들어오고 싶으면 하루라도 빨리 야한 여자가 되어야 해요.”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다시 한번 이브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았다. 짙디짙은 화장이 무척이나 고혹적이었다. 옷색깔에 맞추어 연보라색 아이섀도우를 칠하고 아이 라인을 눈꼬리 바깥까지 길게 뻗어나가게 하여 더욱 신비감이 난다. 그리고 왼쪽 눈에는 하늘색 콘택트 렌즈를, 오른쪽 눈에는 노랑색 콘택트 렌즈를 끼고 있었다. 특히 숱이 많고 길이가 긴 황금색 인조 속눈썹이 인상적이었다. 립스틱 대신 파란색 글로스 틴트를 바른 입술은 두터운 입술 고리와 함께 더욱 음음(淫淫)한 빛을 자아내고 있었다. 내가 멍청한 모습을 하고 있자 이브는 매트릭스와 쿠션으로 사용할 수 있으리 만큼 크고 빵빵하게 부풀어 오른 젖가슴 사이에서 뭔가를 꺼냈다(이브의 옷에는 주머니란 게 없다. 그녀의 두 가슴 사이가 주머니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다름아닌 스프레이식 파운데이션이었다. 그녀는 햇볕 때문에 화장이 번진다면서 스프레이를 자신의 얼굴에다 대고 뿌렸다. 스프레이에서 나오는 미세입자 하나하나가 그녀의 얼굴 표면에 닿을 때마다 그녀는 ‘꺄약’하고 행복한 비명을 질렀다. 스프레이를 잡고 있는 오른 손에서 파아랗고 창백한 핏줄이 보였다. 이브의 가느다란 팔목에 있는 형광색 팔찌 세 개 아래로 힐끗힐끗 엿보이는 힘줄 두 개가 나를 이상하게도 흥분시켰다. 그것은 나에게 있어 전혀 새로운 페티시였다. 또 이브는 남자같이 허스키한 목소리를 갖고 있어서 묘한 양성성(兩性性)을 느끼게 했다. 나는 그녀와 함께 한번 멋진 페팅을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때 아담이 문득 끼어들었다. “우리는 생식을 위한 성관계를 갖지 않습니다. 모든 게 다 비생식적인 성희(性戱)뿐이지요. 남자든 여자든 ‘정력’보다 ‘정열’이 더 중요해요. 부디 이 말을 명심하세요.” 그래서 나는 그들에게 내 앞에서 한뻔 멋진 성희 장면을 보여달라고 청했다. 그랬더니 아담은, “그건 뭐 어려운 일이 아니지요. 우리는 누군가가 우리의 성희를 봐줄때 더 노출증적인 쾌감을 느끼니까요.”하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드디어 두 사람의 페팅이 내 앞에서 시연되었다. 두 사람은 먼저 옷을 훨훨 벗어던지고 식스티 나인(sixty-nine) 형태로 포개졌다. 그러고는 서로가 열심히 그리고 진지하게 펠라티오와 쿤닐링구스를 하는 것이었다. 이브는 길고 날카로운 손톱으로 이따금 아담의 페니스를 자극해주기도 했다. 그리고 아담은 자신의 수염을 이용하여 이브의 치구와 불두덩이 따끔거리도록 슬슬 비벼댔다. 두 사람이 땀을 뻘뻘 흘리면서 구강성희를 즐기는 것을 보면서 나는 군침이 꼴깍꼴깍 넘어갔다. 어느새 나의 음부 언저리는 애액(愛液)으로 흥건히 적셔졌다. “나도 빨리 애인을 구해 저런 페팅을 해봐야지. 그리고 먼저 손톱부터 길게 길러야겠다.”라고 나는 마음 속으로 중얼거렸다. ■약 력 1951년 경기 수원 출생. 연세대 국문과 졸업(문학박사). 현재 연세대 국문과 교수. ▲저서 ‘윤동주 연구’ ‘상징시학’ ‘카타르시스란 무엇인가’ ▲장편소설 ‘권태’ ‘즐거운 사라’ ‘불안’ ‘알라딘의 신기한 램프’ ▲시집 ‘가자 장미여관으로’
  • 대사와 함께하는 요리COOK 조리TALK

    대사와 함께하는 요리COOK 조리TALK

    반도의 기질일까? 우리나라와 이탈리아는 공통점이 많다. 노래부르기 좋아하고, 쉽게 흥분하며, 정이 많은 것이 그렇다. 함축한다면 ‘화끈하다.’는 것이리라. 음식에서도 뇨키는 수제비, 라비올리는 만두, 코테키노는 순대, 카르파초는 우리의 육회와 비슷하다. 이래서 입맛에 맞는 까닭일까. 서울과 근교에서 성업 중인 이탈리아 음식점이 6000∼7000곳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처음 주한 이탈리아 대사관에 이탈리아 음식에 관해 취재하고 싶다고 제안하자 대사관측은 5월26일로 날을 잡고 아예 프란체스코 라우지 대사의 만찬을 보여주겠다고 회신했다. ■ 이탈리아 와인의 숨겨진 진실-모든 포도주는 Vino로 통한다? 만찬에서 처음 선보인 포도주는 베네토의 소아베. 이탈리아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드라이한 맛의 백포도주다. 로미오가 줄리엣을 만나기로 약속한 다음 하인이 가져온 와인을 맛보고 ‘Soave(향기로운)’라고 말한데서 유래됐다는 전설같은 이야기가 전한다. 이탈리아에서 음식을 말할 때 ‘아비나멘토(Abbinamonto)’라는 말이 있다.‘음식과 와인’의 궁합을 가리킨다. 안토니오 파텔리는 “이탈리아 사람들은 식탁에서 와인을 빼놓는 법이 없고 음식에 어울리는 와인 고르는 일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시금치 스파게티와 작은귀 모양의 파스타는 토스카나의 베르나치아 디 산 지미냐노와 궁합을 맞췄다. 이탈리아 최초의 DOC(원산지통제와인) 와인이며, 최고급인 DOCG(DOC 가운데 최고)로 승격됐다. 역대 교황들이 즐긴 것으로 알려져있다. 화이트 드라이지만 깊은 맛이 났다. 농어요리에는 캄파니아의 그레코 디 투포를 맞췄다. 역시 화이트. 기원전 1세기에 그려진 폼페이 프레스코의 벽화에서도 발견된 고고학적인 와인이다. 주요리 소고기 안심구인엔 역시 토스카나의 로소 디 몬테풀치아노가 나왔다. 레드, 드라이하지만 약간의 신맛이 돌았다. 이탈리아 와인의 자존심이다. 달콤한 디저트엔 백포도주 베르나치아 디 오리스타노가 달콤한 맛을 강조했다. 기포(스파클링)로 상큼하면서 개운하게 했다. 오랜 옛날, 사르데냐의 전염병을 퇴치한 건강에 좋은 와인으로 전해온다. 거듭되는 와인 건배 속에 흥겨운 만찬 분위기, 우리의 잔치와 닮은 듯 낯설지가 않았다. 글 이기철기자 chuli@seoul.co.kr ■ 이탈리아 대사가 콕찍은 맛집 ●푸치니 대사의 만찬 메뉴를 짜고 와인을 구성했던 안토니오 파텔리가 총지배인으로 있는 이탈리아 음식점. 서울 강남역 7번출구와 나와 시티극장과 아트박스 사이의 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하얀색 건물에 통유리문이 예쁘게 달린 푸치니가 보인다. 안토니오는 우리말도 곧잘 한다. 대사와의 만찬에선 김원기 조리사가 작은 귀모양의 오레키에테 파스타를 냈다. 푸치니는 ‘정통을 알고 즐기자.’는 게 모토. 국적불명의 요리가 아닌 정통 이탈리아 음식을 표방하고 있다. 대표 메뉴는 푸치니 스페셜(1만 8000원), 이탈리아 산간 고지대에서 먹는 토속 스파게티로 큰 북모양의 레지아노 치즈를 이용한다. 가운데를 파낸 치즈안에 럼주를 붓고 불을 붙여 주위 치즈를 녹인 다음 스파게티와 야채를 섞는다. 국내에서 보기 힘든데 요리사가 직접 테이블에 와서 만든다. 식사중에 들려오는 피아노에 고개를 돌려보면 안토니오가 연주한다. 단순히 식사만 하는 공간이 아니다. 철갑옷의 중세 병정, 청동조각품과 명화들, 지중해빛 통유리문…. 인테리어가 아주 좋다. 요즘은 감나무가 있는 파티오에서 식사해도 그만이다. 메뉴의 가격은 일품은 1만∼2만원선이고, 코스는 가격대가 다양하다.552-2877 ●토스카나 르네상스서울호텔의 이탈리아 음식점으로 외국인이 많이 찾는 곳. 이유는 테이블 간격이 고 손님들의 방해를 적게 받으며 대화할 수 있기 때문. 만찬에서 디저트로 대미를 장식한 사르데냐출신 알렉산드로 파치는 홍콩, 일본 등을 거쳤다. 토스카나는 르네상스의 발상지이자 이탈리아의 맛을 대표하는 곳. 입구에 들어서면 매콤한 고추향과 친근한 듯한 마늘향이 식욕을 일으킨다. 점심으로 비즈니스 맨들을 위한 런치(2만 4500원)을 준비한 것이 특징. 주방장이 매일 12가지 이상의 메뉴를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2222-8647 ●일폰테 호텔업계 최초의 이탈리아 식당으로 최고의 맛을 자부한다. 오픈키친 시스템으로 요리 전과정이 공개된다. 콧수염으로 옆집 아저씨 같은 분위기의 클라우디오 쿠키아렐리씨가 주방장. 만찬에서 송로버섯향의 시금치 스파게티로 진한 여운을 남겼다. 로마 중심가에서 아버지가 운영하던 식당에서 자라 자연스럽게 조리장돼 전세계를 누볐다. 밀레니엄 서울 힐튼 일폰테는 수제 파스타, 장작에서 금방 구워내는 피자, 신선한 샐러드가 가장 큰 특징이다. 생선과 소고기의 이탈리아식 요리로 단골 고객도 확보하고 있다. 로마 출신의 조리장 클라우디오가 매일 새롭게 선보이는 조리장 추천 메뉴가 인기.10명까지 식사가 가능한 별실과 50명 규모의 행사까지 치를 수 있는 리알토가 마련돼 있다.317-3270 ●라스텔라 대사의 만찬에서 농어요리와 쇠고기 안심구이·레몬 셔벗을 책임진 마우리지오 세카토가 부조리장. 그는 이탈리아의 유명음식점을 거쳐 미슐랭스타 출신으로 해산물 요리에 특히 자신있다고 한다. 그의 부인은 한국인.1996년 부인의 나라 한국에 와서 신라호텔·워커힐호텔 등을 거쳤다. 라스텔라는 별이 빛나는 아름답고 은은한 밤과 같은 낭만적인 분위기다. 월∼금 점심은 뷔페(1만 8000원)로 운영된다. 저민 소고기 안심, 올리브 오일에 절인 문어, 모차렐라 치즈를 곁들인 토마토, 시푸드 샐러드, 훈제 연어 등 각종 샐러드와 과일 및 요구르트 등 요리 30여 가지가 마련된다. 또 채식을 즐기는 이들을 위한 새송이 버섯구이, 가지, 파프리카 등의 야채구이 및 랍스터 다리찜 메뉴 등 담백한 메뉴도 나온다. 주말 뷔페(2만 5000원)에는 알래스카연어를 비롯해 요리가 더욱 풍부해진다.710-7276 ●보나세라 서울 도산공원 맞은편에 위치한 이탈리아 레스토랑. 미식가들의 수첩에 이미 전화번호가 상위에 적힌 음식점이다. 건물 가운데 아담한 정원이 있어 시골같은 운치를 더한다. 대사의 만찬에서 발사믹소스를 곁들인 쇠고기 카르파초와 토마토·모차렐라치즈 테린을 낸 마시밀리아노 산니노가 요리하고 있다. 요즘엔 시금치와 리꼬타치즈로 속을 채운 토르텔리와 당근 크림의 토마도가 요름 메뉴로 나온다. 정통 요리뿐만 아니라 창의적인 이탈리아 요리까지 선보인다. 일품으로 보통 2만∼3만원선이다. 이탈리아 와인리스트도 방대하다.543-6668 ■ MENU ●발사믹소스를 곁들인 쇠고기 카르파초 재료 쇠고기 홍두깨살 3㎏, 꽃소금 360g, 설탕 150g, 각종 다진 허브(세이지·로즈마리·타임 등)50g,서빙(1인분·크레송 60g, 발사믹식초 1큰술, 엑스트라버진 올리브기름 1큰술) 만드는 법 (1)쇠고기를 얇게 저민 다음 허브와 소금·설탕으로 절이는 마리네이드로 7일간 냉장고에 보관한다.(2)냉장고에서 꺼낸 다음 흐르는 물에 고기를 살짝 씻어내고 통풍이 잘되는 곳(12∼15도)에서 3∼4일간 말린다.(3)접시에 담아 낼 때 크레송을 놓고 (1)의 슬라이스를 한장씩 얹는다.(4)발사믹 식초와 올리브 기름을 뿌려낸다. ●송로버섯을 곁들인 스파게티 재료 생파스타 100g, 베이컨 50g, 트뤼플 크림 50g, 후추 5g, 파르메산치즈 15g, 올리브 기름 적당량 만드는 법 (1)파스타를 끓는 물에 삶는다.(2)팬에 올리브 기름을 두르고 다진 베이컨을 트뤼플 크림과 섞고 볶다가 (1)의 삶은 파스타를 넣고 같이 요리한다.(3)접시에 담고 파르메산치즈를 뿌린다. ●오레키에테 파스타 재료 밀가루 400g, 소금 10g, 미지근한 물 1/2컵, 토마토소스 1kg 만드는 법 (1)밀가루에 소금을 뿌려 미지근한 물에서 반죽한 다음 공처럼 둥글게 뭉쳐 1시간 가량 숙성한다.(2)(1)의 반죽을 떼어내 손으로 비벼 길게 만든다.(3)과일칼로 (2)를 손가락 마디보다 조금 작게 잘라 엄지손으로 눌러 작은 귀 모양을 만든다. 모두 이렇게 한다.(4)끓는 물(4ℓ)에 소금 25g과 (3)의 오레키에테를 넣고 5분 정도 삶아 건져 물기를 뺀다.(5)삶은 오레키에테에 토마토소스를 끼얹고 섞어 먹는다. 염소젖으로 만든 페코리노치즈가 있으면 뿌려낸다. ●야채를 곁들인 농어요리 재료 농어 150g, 가지 100g, 체리토마토 50g, 양파·다진 마늘 10g씩, 호박·샐러리 30g씩, 올리브 7.5g, 케이퍼 베리 7.5g, 토마토소스 50g, 파프리카 5g, 조개 50g, 통마늘 2개, 올리브 기름 12.5g 만드는 법 (1)팬에 올리브 기름과 다진 마늘을 넣고 볶는다.(2)양파, 호박, 가지, 샐러리는 작게 썰어 넣고 볶는다.(3)녹색 올리브, 다진 바질, 체리 토마토, 토마토 소스, 케이퍼 베리를 넣고 볶아 접시에 둥글게 담는다.(4)팬에 올리브 오일을 두르고 통마늘을 으깨 넣고 타임, 소금, 후추로 농어살 껍질쪽을 먼저 볶는다.(5)다시 뒤집어서 껍질이 위로가게 하여 굽는다. 껍질을 바삭하게 굽는 것이 중요. ●쇠고기 안심구이 재료 쇠고기 안심 150g, 데미글라스소스 38g, 발사믹 식초 10g, 메시 포테이토 100g, 파르메산치즈 5g, 루콜라 10g, 포치니버섯 20g, 소금·후추 약간씩 만드는 법 (1)쇠고기 안심을 석쇠에서 굽는다.(2)메시 포테이토를 접시에 담고 구운 안심을 올린다.(3)발사믹 식초를 곁들인 데미글라스 소스를 뿌린다.(4)고기 위에 루쿨라 야채를 올리고 그 위에 파르메산치즈를 올린다. ●올리베라 사이다스 재료 반죽(밀가루 300g, 소금 2g, 올리브기름·미지근한 물 50㎖씩, 달걀 흰자 1개),소(리코타치즈 400g, 설탕 50g, 레몬껍질),소스(꿀 200g, 오렌지 1개, 샤프란 1g) 만드는 법 (1)모든 반죽 재료를 섞어 반죽해 냉장고에 30분 가량 둔다.(2)리코타치즈를 꽉 짜서 말린 다음 레몬 껍질·설탕과 함께 잘 섞는다.(3)사이다스 반죽을 위해 얇게 펴서 수제비처럼 방망이로 밀어 동그랗게 자른다.(4)(3)의 안에 리코타치즈 40g씩을 넣고 만두처럼 반죽 껍질을 붙인다.(5)(4)를 뜨거운 올리브 기름에 잠기도록 넣어서 튀긴다.(6)샤프란과 꿀, 잘게 다진 오렌지 껍질을 뜨겁게 데워 섞은 다음 (4)에 끼얹어 차려낸다. ■ 이탈리아 대사와 함께한 만찬 미켈레 사바티노 상무관은 “한국에선 이탈리아 음식 하면 피자와 스파게티가 전부인 줄 아는데, 사실은 오늘날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음식의 기초”라고 자랑했다. 그는 “이탈리아 요리는 고대 로마제국까지 기원이 거슬러 올라간다.”며 “르네상스시대 피렌체의 공주 카트린 데 메디시스가 프랑스로 시집가면서 요리사와 조리법, 재료 등을 가져갔다.”고 설명했다. 라우지 대사는 “이탈리아 음식은 올리브 기름, 곡류와 야채, 치즈와 과일, 허브를 많이 써 건강에 이상적인 식단”이라며 “이탈리아 요리는 지방마다, 집집마다 맛이 다르다.”고 강조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탈리아가 통일된 지는 불과 130여년. 지방마다 특유의 향토요리가 발달했다. 겨울이 긴 밀라노·베네치아를 비롯한 북부지방은 진한 맛의 요리가 발달했고, 파스타와 크림도 풍부하다. 로마·피렌체의 중부지방은 파르메산치즈와 햄이 유명하다. 시칠리아와 나폴리를 비롯한 남부지방은 올리브와 토마토, 건면 파스타, 모차렐라치즈가 널리 알려졌고 해산물을 이용한 요리도 발달했다. 대사의 만찬은 이탈리아 전역의 음식을 조금이라도 맛보게 하기 위해 식단을 짰다. 우리의 반찬에 해당하는 요리로는 식초에 절인 작은 양파, 절인 버섯, 햄 2종류, 칼라브리아(소금간으로 햇빛에 말린 토마토 슬라이스)를 큰 접시에 내놓았다. 필요한 만큼 덜어 먹도록 했다. 만찬 메뉴를 짠 안토니오 파텔리는 “이탈리아 음식은 기본적으로 전채·첫번째 코스(파스타·리조토), 두번째 코스(생선요리), 메인요리(육류), 디저트와 커피의 순으로 구성된다.”며 “소스나 재료가 겹치지 않게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이탈리아에선 첫번째와 두번째 코스를 함께 먹어야 ‘식사다운 식사’라고 인정한다.”고 덧붙였다. 전채는 북쪽 피에몬테지역의 카르파초와 토마토·모차렐라치즈 테린, 남쪽 풀리아의 해물요리를 냈다. 문어와 조개·멸치·새우 등을 데쳐낸 해물 모둠데침이다. 첫 코스는 중부 라치오의 송로버섯(트뤼플)으로, 향을 낸 시금치 스파게티. 이탈리아의 한적한 시골집에서 만들어 먹는 스타일이다. 세계 3대 진미인 송로버섯을 갈아 넣어 특유의 신비한 향이 오래도록 남았다. 여기에다 잘게 다진 베이컨을 넣어 같이 익혀냈다. 풀리아의 오레키에테(작은 귀 모양의 파스타)도 나왔다. 씹는 느낌은 쫀득쫀득했다.“수백가지의 파스타를 만들 수 있다.”는 상무관 부인 로자는 “한국에서 가장 맛있는 이탈리아 음식점은 우리집”이라며 은근히 요리 실력을 자랑했다. 두번째 코스는 시칠리아 농어요리. 살코기를 토마토를 넣고 삶은 것이 이색적이었다. 그린빈을 비롯해 여러 야채와 주꾸미도 들어 있었다. 시칠리아를 비롯한 남부에서는 거의 모든 요리에 토마토를 넣는단다. 다음은 레몬 셔벗. 부드럽게 얼려 그냥 마실 수 있게 했다. 레몬의 상큼한 향이 입 안에 남은 생선과 토마토의 냄새를 말끔하게 씻어줬다. 주요리는 북동지역 에밀리아 로마냐의 파르메산치즈와 신선한 루쿨라를 곁들인 쇠고기 안심구이가 나왔다. 보통 파르메산치즈를 파스타에 넣지만 쇠고기 요리에도 얹어냈다. 신선한 루쿨라 향이 고기요리와 잘 어울렸다. 디저트로는 서쪽바다 섬인 사르데냐의 올리베라 사이다스로 대미를 장식했다. 리코타치즈를 넣고 감싸 튀겨낸 다음 잘게 채썬 오렌지와 꿀을 넣고 섞어 만들었다. 황금보다 비싸다는 샤프란 향이 입안을 맴돌며 긴 여운을 남겼다. 글 이기철기자 chuli@seoul.co.kr 사진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 늦봄통일상에 고은 시인

    고은 시인이 사단법인 통일맞이(이사장 장영달) 주관 제10회 늦봄통일상 수상자로 30일 선정됐다. 늦봄통일상 심사위원회는 고 시인이 ▲시집 ‘백두산’‘만인보’ 등으로 민족의 분단체제 극복과 평화체제 구축에 노력했고 ▲민족문학작가회의 통일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며 남북작가대회를 성사시키기 위해 앞장선 점 등을 선정 이유로 밝혔다. 시상식은 6월4일 오후 4시 배재빌딩 1층 고급 세미나실에서 있다.
  • 詩人의 꿈 이룬 ‘헌법 지킴이’

    시인의 마음으로 헌법을 다루는 헌법재판소 연구관이 있다. 황치연(44) 헌재 연구관이 그 주인공. 그가 전속 연구관으로 보좌하고 있는 송인준 헌재 재판관 역시 법조계의 유명한 등단시인이다. 황 연구관은 법학박사 출신으로 1996년부터 헌재에서 일했다. 대학시절 법학을 전공하면서도 시인의 꿈을 놓지 않았다는 그는 마침내 올 봄 종합 문예지인 ‘월간 문학세계’ 공모전에서 신인문학상을 수상, 등단의 꿈을 이뤘다. 그는 지난달 ‘소나무’ 등 수상작 5편을 포함, 대학시절부터 다듬어 온 시 57편을 모은 처녀시집을 선보였다. 시집의 제목은 ‘혁명가들에게 고(告)함’. “헌법학자로 혁명권을 부인한다.”는 그는 “평범한 일상생활 속에서 풍부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타성에 젖지 않는 자유로운 정신을 갖은 사람들”을 ‘혁명가’라 불렀다. 그가 시인의 눈으로 바라본 헌법은 어떤 모습일까. 그는 “헌법수호자는 ‘생명을 유지하는 무의식적인 호흡같은 헌법으로’눈물과 철학을 모두 형량하여 판단해야한다.”고 노래한다. 다음달 세 번째 시집을 준비중인 송인준 재판관은 그의 시에 대해 “맑고 투명한 시적 영혼을 가지고 덤불 가득한 세속에서 건져 올린 반짝이는 시”라는 축사를 했다. 박경호기자 kh4right@seoul.co.kr
  • [녹색공간] 아까시꽃 피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조연환 산림청장

    토머스 엘리엇은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했다. 잔인한 4월이 속히 가고 아까시꽃이 흐드러지게 피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 산림 공직자들이다. 진달래꽃이 필 때면 봄철 가뭄은 계속되고, 이 산 저 골짜기에 산불이 발생한다. 불은 매캐한 냄새와 연기를 흩날리며 온 산을 헤집고 다니며 나무와 풀을 닥치는 대로 삼켜 버린다. 자연히 산림 공직자들은 며칠씩 집에 들어가지 못한 채, 주먹밥 하나 달랑 차고 산마루나 능선에서 밤을 지새며 산불과의 전쟁을 벌인다.‘말리는 시누이’와도 같은 바람이 저도 한몫하겠다고 거들 때면, 산림 공직자의 애간장은 아랑곳없이 산불은 능선을 날아다닌다. 간절히 바라는 비는 내리지 않고 바람만 보내 주는 하늘이 원망스럽고,4월을 잔인한 달이라 노래한 시인까지 미워진다. 진달래꽃이 지고 봄비가 내리고, 또 5월도 중순에 들어 하얀 아까시꽃이 눈처럼 나무를 뒤덮으면 다른 나무들도 저마다 초록잎으로 단장을 한다. 비로소 산림 공직자들은 지치고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휴식을 즐길 수 있게 된다. 이렇듯 아까시꽃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어디 산림 공직자만이랴. 아까시꽃을 따라 꿀을 따는 양봉업자들도 꽃이 피기만을 기다리며 1년 농사를 준비하지 않는가. 그리고 아까시잎을 따는 놀이를 하고 아까시꽃을 따먹으며 뛰놀던, 어릴 적 고향의 그 정취를 떠올리며 향수에 젖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아까시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아까시꽃이 피는 5월이면 “왜 아까시나무를 모두 베어버리지 않느냐.”는 항의를 받곤 한다. 아까시나무가 우리 산림을 다 망치는데도 산림청에서는 이를 방치한다는 것이다. 아까시나무를 왜 베어버려야 하느냐고 물으면 아무 쓸모없는 나무라는 것이다. 정말 쓸모없는 나무일까? 쓸모없는 사람이 없듯 쓸모없는 나무는 없다. 사람에 따라 재능과 성격이 다르듯이 나무도 재질과 용도가 다를 뿐이다. 아까시나무는 중국을 거쳐 우리 땅에 들어와 척박한 우리 산림을 기름지게 한 나무다. 땔감이 없던 시절 우리는 아까시나무의 줄기와 가지는 물론 뿌리까지 캐어서 땔감으로 사용하였으며 잎은 가축 사료로 이용했다. 아까시나무의 목재는 질기고 단단하며 색상과 무늬가 곱고 향기가 있어 고급 목재로 쓰인다. 또 아까시꽃에서는 매년 배·감귤 등에 버금가는 주요 농산촌 소득원인 꿀을 채취하고 있다. 그럼에도 아까시나무는 이름이 제대로 불리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에 자라는 나무는 ‘아카시아’(열대지방에 자라는 나무)가 아니라 ‘아까시’나무이다. 아까시나무는 심어 놓고 잘 돌보아 주면 올곧게 자라지만, 묏자리를 망친다고 베어내면 더 많은 움싹이 돋아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베어내도 자꾸 번성하니 몹쓸 나무라고들 하는데, 이것이 아까시나무 탓은 아니지 않은가. 아까시나무가 귀가 있어 들을 수 있고 입이 있어 말할 수 있다면 어떤 말을 할까? 아까시나무를 볼 때면 어머님 생각이 난다. 가난한 집안에 시집와 9남매를 길러 놓고도 한평생 제 이름 석자를 제대로 들어 보지 못하고 돌아가신 어머니와 어쩌면 그리도 닮은 점이 많은지…. 그렇다고 아까시나무가 가장 좋은 나무라거나 아까시나무를 많이 심어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유별나게 산불 때문에 고생한 잔인한 4월이 가고,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아까시꽃 향기 속에 아까시나무의 한이 묻어 나는 것 같아 오늘은 아까시나무 이야기를 해보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나무가 어찌 아까시나무뿐이겠는가. 그래도 나무는 누구를 원망하거나 변명하려 애쓰지 않는다. 맡은 자리에서 한평생 제 역할만을 묵묵히 감당하고 있을 뿐이다. 산불로 까맣게 타버린 산골짝에도 아까시꽃들이 만발하였다. 아까시꽃 향기가 코끝을 간질이는 이 5월에 다시 한번 아까시나무의 고마움을 아니, 그동안 홀대했던 나무들의 고마움을 생각해 보는 계절이 됐으면 한다. 조연환 산림청장
  • [공초문학상] 수상 천양희 시인

    [공초문학상] 수상 천양희 시인

    며칠 지독하게 감기를 앓았다는 시인의 얼굴은 청정하게 맑았다. 새 시집 출간을 축하하기 위해 문단 후배들이 마련한 조촐한 모임에 나선 길. 서둘러 심신을 추스린 시인의 입가에는 잔잔한 미소가 어렸다. 천양희(63)시인. 온몸으로 삶의 통증을 앓아본 자만이 얻을 수 있는 깊은 통찰로 섬세하게 빚은 그의 시들이 저절로 그 미소에 포개졌다. “공초 선생님을 직접 뵌 적은 없습니다. 그분의 작품세계를 접할 기회도 의외로 많지 않았지요. 요즘 서점에서 공초 선생님의 시집을 보기 어려운데 명성에 비해 작품이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지지 않은 듯해 안타깝습니다.” 때문에 공초문학상 수상 소식이 뜻밖이었다는 시인. 하지만 무욕·무소유의 시심으로 평생을 살다간 공초의 정신은 절제와 결핍을 시인의 운명으로 여기는 천양희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시를 쓰지 못하던 시절이 가장 불행” 수상작 ‘마음의 달’은 이달 초 세상에 나온 여섯번째 시집 ‘너무 많은 입’(창비)에 수록된 작품이다.“달을 좋아합니다. 밤에만 뜨는 달은 어둠과 고통, 가난을 대변하지요. 초승에서 보름, 그믐으로 이어지는 달의 순환은 우리 인생과 비슷합니다. 달이 한번 꺾이듯 우리 인생이 꺾일 때 마음에 둥근 달을 품고 있으면 힘든 일도 견뎌내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했습니다.” 이화여대 국문과 재학 중이던 1965년 박두진 시인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에 등단한 지 40년. 하지만 개인적인 아픔으로 오랫동안 작품활동을 하지 못하다 1983년에서야 ‘신이 우리에게 묻는다면’으로 시작(詩作)을 재개했다. 등단 18년 만에 첫 시집을 내던 당시를 떠올리며 시인은 “시를 쓰지 못하던 시절이 가장 불행했다. 시가 고통에 함몰된 나를 구원했다.”고 말했다. 시를 못 쓰던 회한의 세월이 응어리져서일까. 그는 시만 써서 생활하는 전업시인의 길을 고집하고 있다.“시인은 치열해야 합니다. 적당히 글써서 시인입네 할 수는 없는 일이지요. 늘 자신을 비탈에 세워야 합니다.” 컴퓨터가 일상화된 요즘, 아직도 원고지에 시를 쓴다는 그는 때때로 원고지 사각모서리가 벼랑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거기에서 떨어지지 않으려는 안간힘이 시인으로 하여금 멈추지 않고 시를 쓰게 하는 추동력이라는 것이다. 그는 “‘시가 곧 생활’이라고 한 예이츠와 ‘시는 숨을 쉬는 것과 같다’고 말한 네루다처럼 항상 시하고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자연속으로 돌아가 시상 얻어” 그의 시는 자연에서 나온다. 이번 시집의 표제작 ‘너무 많은 입’도 청계산을 오르내리며 썼다.“다릅나무의 촘촘한 잎들이 바람에 마구 떨리는 모습이 마치 저마다 앞다퉈 얘기하는 사람들 입처럼 보였어요. 말이 많으면 참말은 줄고 헛말이 많아지지요.” 시인은 고요가 없는 시대, 저마다 잘난 척 말 많은 세태를 빗대 ‘재잘나무 잎들이 촘촘하다 나무 사이로 새들이/재잘댄다 잎들이 많고 입들이 너무 많다’고 한탄한다. 그리고 ‘쉰살이 되어도 나의 입은/문득 사라지지 않고/목쉰 나팔이 되어버렸다/어쩌면 좋담?’이라고 자책한다. “모든 자연은 스승이에요. 산을 오를 때와 내려올 때 그 풍경은 다릅니다. 그처럼 언제나 새로운 모습이 시인의 모습이어야 합니다. 또 나무의 영원한 초록빛처럼 시인의 정신도 늘 살아있어야 합니다.” 마음이 지칠 때 그는 훌쩍 여행을 떠난다. 밭갈이를 하듯 ‘정신갈이’를 하는 것이라고나 할까. 바다로, 산으로 정처없이 떠돌다 서울로 돌아오면 온몸에 박인 산새소리, 파도소리가 몇달을 새 기운으로 살게 한다고 했다. 시인 스스로 대표작으로 꼽는 ‘직소포에 들다’와 ‘마음의 수수밭’도 그렇게 여행길에서 추스린 시들이다. ●“읽을때 정신이 번쩍 들면 좋은 시” 커다란 가방에 늘 책과 메모지를 넣어다닌다는 그에게 창작 원칙을 물었다.“시인은 타고난 재능이 7할이고, 노력이 3할이에요. 하지만 3할의 노력이 없으면 결코 좋은 시를 쓸 수 없지요.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은 파지를 내야 합니다.” ‘낮에 산문은 써지지만 시는 도통 안 써진다.’는 그는 주로 밤늦은 시각 글을 쓴다. 새벽 2시에 잠자리에 들어 6시에 기상한다는 시인. 남보다 덜 자고, 덜 쓰고, 덜 말하는 절제와 결핍은 그의 생활원칙이자 창작의 토대다. 그는 “마음에 절 한채 짓는 수행자의 용맹정진을 닮아야 한다.”고 말했다. 좋은 시란 어떤 건지 물었다.“읽을 때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 시, 속이 꽉 찬 시, 여운이 여백을 메우는 시, 울림이 있는 시가 좋은 시이지요. 시는 읽고, 느끼고, 그 다음에 이해해야 합니다. 그런데 중고교에서 입시용으로 달달 외우게 하고, 분석부터 하려드니 어떻게 시와 친해질 수 있겠어요.” 그의 목소리에 안타까움이 잔뜩 묻어났다. ‘돈도, 밥도 안되는’시를 붙잡고 놓지 않는 후배들을 그는 참 예뻐한다. 신인 작가들의 시집도 잘썼든 못썼든 빼놓지 않고 읽는다.“어떻게 해야 시를 잘 쓰냐고 많은 사람들이 묻습니다. 그러면 ‘시를 쓰지 않으면 살아 있는 이유를 찾을 수 없을 때 시를 써라’는 릴케의 말을 들려줍니다.” “좋은 시와 만날 때 가장 행복하다”는 시인은 “시가 안써지면 밤잠을 못자도록 괴롭지만 내 마음이 살아 있는 한 시는 죽지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천양희 시인은 ▲42년 부산 출생 ▲65년 박두진 추천 시 ‘정원(庭園) 한때’로 ‘현대문학’등단 ▲66년 이화여대 국문과 졸업 ▲83년 ‘신이 우리에게 묻는다면’으로 작품활동 재개 ▲96년 소월시문학상 수상 ▲98년 현대문학상 수상 ▲작품집 -시집 ‘신이 우리에게 묻는다면’‘사람 그리운 도시’‘하루치의 희망’‘마음의 수수밭’‘오래된 골목’‘너무 많은 입’ -산문집 ‘직소포에 들다’ ■수상작 심사평 1965년에 등단한 천양희 시인은 1969년부터 1982년까지 아픈 침묵 뒤 1983년 작품 활동을 재개, 쌓인 분노를 하소연처럼 토해냈으나,1990년대를 전후하여 그 고뇌를 도리어 새로운 삶의 원동력으로 바꿨다. 공초문학상 수상작이 실린 시집 ‘너무 많은 입’(창비) 후기에서 그녀는 “시 생각만 하다가 세상에 시달릴 힘이 생겼다.”며 시와 삶과 인간을 변증법적으로 일체화시켰다. 밖을 향한 증오와 염세의 기개를 내면을 향한 사랑과 위안의 정서로 바꾼 이 경이로움은 오상순 시인의 관조와 달관의 미학이 느껴진다. “작은 꽃이 언제 다른 꽃이 크다고 다투어 피겠습니까/새들이 언제 허공에 길 있다고 발자국 남기겠습니까/바람이 언제 정처 없다고 머물겠습니까”(‘좋은 날’)라는 구절에서 우리는 각자의 운명을 보듬을 수밖에 없는 하잘 것 없는 인생살이의 실체를 만난다. 그 삶이란 “오르고 또 올라도 하늘 밑이다”(‘목이 긴 새’)는 한계 인식과 벗어날 길 없는 백팔번뇌의 굴레이기에,“생은 왜 눈물로 단련되나”(‘마음의 경계’)는 위안을 찾을 수밖에 없게 된다. 슬픔의 심연에서 이 시인은 “절망만한 희망이 어디 있으랴”(‘희망이 완창이다’)라며 염세적인 낙천주의자로 변모한다. “나는 부지런히 내 색깔을 바꾸었소 그래서 사람들은 나를 변신의 명수라 하오 변신 잘 하는 나를 변질 잘 하는 놈이라 착각은 마오(중략)/나는 잘 살 수 있소 나는 평생 변신하고 변모하면서 살려 하오”(‘카멜레온’)라는 새 다짐. 그러나 정작 그녀는 모나게 살 줄밖에 몰라 “구르는 것들은 모서리가 없어 모서리/없는 것들이 나는 무섭다 이리저리 구르는 것들이 더 무섭다”(‘구르는 돌은 둥글다’)고 말한다. 변질이 둥근 것이라면 변모는 모난 것이란 은유에서 시인의 “둥글게 살지 못한 사람들이/달보고 자꾸 절을 합니다”(‘마음의 달’)라는 절창의 의미가 밝혀진다. 사회를 혼탁하게 만드는 변질이 얼마나 호사스러운가를 절감하면서도 “발 빠른 세상에서 게으름과 느림을 찬양하면서”(‘시인은 시적으로 지상에 산다’) 고요한 자태로 자신을 제어하는 자세가 얼마나 소중한가. 뻔질난 변질로 잘나가는 사람들에게 짓밟히면서도 변모는 거듭하지만 여전히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아 달에게 계속 빌어야 할 사항만 늘어나는 사람들에게 천양희의 시는 큰 위안이다. 심사위원 이근배·임헌영·정현종 글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사진 정연호기자 tpgod@seoul.co.kr
  • 공초문학상 천양희시인

    공초문학상 천양희시인

    서울신문사가 주관하는 제13회 공초문학상 수상자로 시인 천양희(63)씨가 27일 선정됐다. 수상작은 최근 출간한 시집 ‘너무 많은 입’(창비)에 실린 ‘마음의 달’. 공초문학상은 1992년 서울신문사가 신시운동의 선구자인 공초(空超) 오상순 시인을 기리기 위해 제정한 문학상이다. 올해 심사는 시인 이근배(공초숭모회 회장)·문학평론가 임헌영(중앙대 교수)·시인 정현종(12회 수상자)씨가 맡았다. 1965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한 천양희 시인은 1983년 첫 시집 ‘신이 우리에게 묻는다면’을 비롯해 ‘사람 그리운 도시’‘하루치의 희망’‘마음의 수수밭’ 등 6권의 시집을 냈고,96년 소월시문학상,98년 현대문학상을 수상한 중견 시인이다. 시상식은 새달 3일 오전 11시 서울 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에서 열린다. 수상자에게는 상금 500만원과 상패가 주어진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제2회 서울국제문학포럼] 獨저항시인 볼프 비어만

    [제2회 서울국제문학포럼] 獨저항시인 볼프 비어만

    “여러분이 가는 길은 매우 힘들고 불편하고 비싼 길이 될 것이며, 여러분의 다리는 매우 아플 겁니다. 하지만 반드시 가야 하는 길입니다.” 삶 자체가 독일 분단의 구조적인 모순과 아픔, 통일의 과정을 축약한 대표적인 독일의 저항 시인 볼프 비어만(69). 그는 제2회 서울국제문학포럼 사흘째인 25일 기자회견에 앞서, 기타를 치며 한국의 저항 시인 김민기의 ‘아침이슬’을 독일어로 불러 보였다. 그리고는 특유의 신랄한 어투로 “남한과 북한이 통일되면 동·서독의 경우 보다 더 큰 어려움이 뒤따를 것”이라면서도 “‘나 이제 가노라’라는 가사처럼 모두 손 잡고 그 길을 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분단된 옛 독일에서 험난한 인생역정을 경험했는데, 어떤 이유로 서독을 등지고 동독으로 가게 됐는가. -아버지는 파시즘에 대항해 지하운동을 하는 공산주의자라는 이유로, 나머지 가족은 유태인이라는 이유로 어머니만 남기고 모두 죽임을 당했다. 이후 어머니는 나를 ‘작은 공산당원’으로 키웠고,16살때 동독으로 향하게 됐다. 당시 국경에서 나와는 달리 많은 사람들이 서독으로 들어오고 있어 상당히 놀랐다. 동독에서는 어떤 활동을 했으며, 어떤 이유로 서독으로 추방당했나. -훔볼트 대학에서 경제학, 철학, 수학을 공부했다. 베를린 앙상블이라는 악단에서 연출가로 활동하면서 비판적인 내용의 연극을 무대에 올렸다. 이후 극단은 폐쇄됐고, 대신 체제에 대항하는 시와 노래를 쓰게 됐다. 그 시와 노래들이 수기와 녹음기를 통해 엄청난 속도로 전파되면서 유명세를 탔고, 결국 서독으로 강제 추방당했다. 동독에서의 대표적인 저항 노래는 어떤 노래인가. -‘아침 이슬’에 비견되는 노래로 제목은 ‘격려’다. 사람들은 이 노래의 첫번째 두 소절인 ‘이 모진 시대에 그대, 굳어지지 말라’라는 ‘언어유희’에 공감을 느꼈다. 시대적인 ‘경직성’을 언급하기 위한 노래였으며, 자유를 갈망하던 많은 양심수의 영혼을 채워주는 ‘빵’같은 역할을 했다. 통일을 열망하는 한국의 국민들과 작가들에게 조언이나 충고를 한다면. -충고 같은 것은 할 수 없다. 다른 민족의 경험으로부터 배울 것은 전혀 없다. 한국은 한국의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통일은 한국인들이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힘들며, 실망스러운 일이 될 것이다. 서로 싸우고, 통일을 외치던 사람을 욕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그 길을 가야 한다. 다른 길은 없기 때문이다. ‘사전에 경고 받은 사람이 두배 이상 강해진다’는 프랑스 속담처럼, 내 경고를 듣고 한국 사람이 두배 이상 강해지기를 바란다. 1935년 옛 서독 함부르크에서 태어난 그는 1965년 첫 시집 ‘철사줄 하프’를 발표해 주목을 받았다. 이후 악보가 첨부된 7권의 시집을 내면서 동독의 대표 작가로 떠올랐고,1976년 서독으로 추방당하면서 반체제 작가로 국제사회에 널리 알려졌다.2년 전부터 김민기와 인연을 맺어 왔으며 27일 오후 7시 서울 대학로 학전블루 소극장에서 시·노래 콘서트 무대를 마련한다. 글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사진 도준석기자 pado@seoul.co.kr
  • [제2회 서울국제문학포럼] 케냐 출신 작가 와 티옹오 응구기

    [제2회 서울국제문학포럼] 케냐 출신 작가 와 티옹오 응구기

    “모든 작가들은 자기가 속한 집단의 언어를 사용할 책임이 있습니다.” 소잉카, 고미더, 쿳시 등과 더불어 아프리카를 대표하는 케냐 출신의 작가 와 티옹오 응구기(67).1982년 케냐에서 망명해 미국 캘리포니아 UC어바인대학에서 영문학과 비교문학을 강의하고 있는 그는 24일 기자회견에서 영어 대신 자신의 종족어인 기쿠유어로 저술 활동을 고집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아프리카 탈식민주의 담론에서 영어를 민족문학의 매체로 활용해야 한다는 나이지리아 작가 치누아 아체베와, 식민통치에서 언어는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라고 주장하는 응구기의 논쟁은 유명하다. 소수 인종, 소수 언어 등 마이너에 대한 관심은 그의 문학적 토대를 떠받치는 뿌리다. 제2회 서울국제문학포럼 이틀째인 25일 ‘평화와 차별:성, 인종, 종교’에 관해 기조발제를 할 예정인 그는 “한국 방문은 처음이지만 양국 모두 식민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유대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한국에 대한 남다른 관심과 애정은 시인 김지하에서 비롯됐다. “1973년 일본에서 열린 한국의 민주화운동과 통일에 관한 국제회의에서 처음 한반도 문제를 접했다.”고 밝힌 그는 “몇년 뒤 일본 도쿄에 갔다가 우연히 김지하 시인의 영문번역 시집 ‘민중의 외침(Cry of the People)’을 읽고 큰 감명을 받았다.”고 소개했다. 특유의 토속적인 어투로 근대적인 정치·경제문제를 비판하는 작품 형식뿐 아니라 국가보안법으로 투옥된 시인의 인생에서도 깊은 인상을 받았다는 것. 당시 케냐 나이로비대학 교수였던 그는 김지하의 시를 학생들에게 가르쳤다. 그는 “한국 영사관에서 찾아와 김지하 시인에 대한 비하발언을 하기에 ‘케냐에서는 문학활동 때문에 작가나 시인을 투옥하지는 않는다.’며 쫓아냈다.”고 전했다. 하지만 몇년 뒤인 1977년 자신 역시 정치범이란 이유로 1년간 수감생활을 해야 했다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케냐의 한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김 시인의 작품으로 연극을 했다가 퇴학당하기도 했다.”면서 “케냐와 한국의 관계에서 김지하 시인은 굉장한 역할을 했고, 내 문학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투옥중 쓴 소설 ‘십자가에 매달린 악마’는 ‘오적’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라고 밝혔다.1982년 감옥에서 풀려난 그는 김지하의 작품세계와 한국의 민주화운동을 다룬 ‘작가와 정치’를 출간하기도 했다. 90년대 중반 이후 한국에 대한 소식을 직접적으로 들을 기회가 없었다는 그는 “전세계 시민들이 그렇듯 나 역시 한반도가 하루빨리 통일되기를 바란다.”면서 “통일은 한국 국민들이 자주적으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2002년 정권교체를 이뤄낸 케냐에 대해서는 “국민에게 더 많은 권력을 이양하고, 아직도 남아 있는 식민 잔재를 청산해 케냐가 아프리카와 전세계의 중요한 일원이 되도록 노력할 것”을 주문했다. 망명 22년 만인 지난해 아내와 함께 고국을 방문한 그는 시민들의 대대적인 환대 속에 무장괴한들에게 테러를 당하는 봉변을 함께 겪었다. 그는 이 사건을 구 정권에 얽힌 정치적인 음모로 추측하고 있다. 작품세계와 작업공간이 일치해야 한다는 그는 언젠가 고국 케냐로 귀향할 생각이다. 현재 집필중인 1000장 분량의 장편소설 ‘까마귀 마법사(Wizard of Crow)’는 내년쯤 영문 번역돼 출간된다. 글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사진 강성남기자 snk@seoul.co.kr
  • 獨시인 비어만·김민기 27일 콘서트

    독일 반체제 시인 볼프 비어만(69)과 1970∼80년대 저항문화의 상징 김민기(54)가 노래로 만난다. 제2회 서울국제문학포럼 참석차 내한하는 볼프 비어만은 27일 오후 7시 서울 대학로 학전블루 소극장에서 자신의 시와 노래로 꾸미는 콘서트 무대에 선다. 1965년 첫 시집 ‘철삿줄 하프’를 발표한 이래 악보가 첨부된 7권의 시집을 낸 볼프 비어만은 독일 분단의 구조적인 모순과 아픔을 상징하는 인물. 함부르크에서 태어나 17세때인 1953년 동독으로 이주한 그는 집권당에 대한 비판을 이유로 76년 서독으로 추방됐고, 이후에도 서독 사회의 모순을 비판하고, 풍자하는 참여시인으로서의 면모를 잃지 않고 있다. 사단법인 한국독어독문학회(회장 김충남)와 극단 학전(대표 김민기)이 공동주최하는 이번 콘서트는 비어만과 김민기 대표의 남다른 인연이 계기가 됐다. 몇 해 전 함부르크에서 비어만을 만난 김 대표가 한국에 오면 자신의 소극장에서 콘서트를 열어주겠다는 약속을 지킨 것이다. 비어만은 자신의 글에서 김 대표를 ‘한국의 밥 딜런’이라고 칭송하기도 했다. 비어만은 콘서트에서 자신의 삶과 작품에 관한 이야기와 함께 시대별로 선곡한 9곡의 자작시와 자작곡을 들려준다. 마지막엔 김민기의 대표곡 ‘아침이슬’을 독일어로 부르고, 이에 화답해 비어만의 곡을 김 대표가 우리말로 번역해 관객과 함께 부를 예정이다. 입장료는 무료.(02)820-5106.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초대 기상 통보관 지낸 김동완씨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초대 기상 통보관 지낸 김동완씨

    날씨처럼 인생과 밀접한 것이 또 있을까. 흥미로운 속담도 많다.‘장마는 나이 많은 아내의 잔소리다.’‘봄비가 많이 오면 아낙네의 씀씀이가 헤프다.’‘더위 먹은 소는 달만 봐도 헐떡거린다.’ 올 여름에는 100년 만의 더위가 찾아온다는 얘기가 있어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온다면 어떤 더위일까.‘무더위’는 ‘물더위’에서 유래됐다. 습도와 온도가 매우 높아 후덥지근하다. 끓는 물과 같다는 ‘가마솥더위’나 ‘찜통더위’도 비슷하다. 또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따가운 ‘불볕더위’도 있다. 어쨌든 여름손님(더위)이 있어야 가을손님(열매)도 온다고 했다. ●날씨는 하루에 서른여섯번씩 변해 추억의 방송멘트가 있다.“여우가 시집가는 날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영국의 한 과학자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날씨는 하루에도 서른여섯번씩 변한다고 합니다. 봄날씨는 최소한 하루에 세 번 변합니다. 아침은 썰렁하고 점심은 덥고 저녁에는 바람이 붑니다. 돌아오는 길에 여벌의 옷차림에 신경을 써야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기상대에서 김동완 통보관이었습니다.” 맞다. 이른바 우리나라 초대 기상통보관을 지낸 김동완(71)씨. 특유의 비유법과 정감 있는 목소리로 많은 인기를 누렸다. 나이 30대 이상은 적어도 하루 한번씩 김씨의 목소리를 들었을 정도다. 지금도 ‘프리랜서 기상해설가’로 활동 중이어서 45년 동안 ‘날씨해설 인생’이라는 흔치 않은 길을 걷고 있다. 에피소드 #1. 어린이날이었다. 아침방송에서 김씨는 “오늘은 어린이 얼굴만큼이나 해맑은 날씨가 되겠습니다.”라고 마무리 멘트를 했다. 이어 방송국을 나오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졌다. 김씨는 비를 피하기 위해 다시 방송국 안으로 들어갔다. 비는 계속됐다. 이때였다. 방송 자막을 통해 ‘오늘 효창공원에서 열리기로 한 어린이날 행사는 우천관계로 무산됐습니다.’라고 알렸다. 이를 보는 김씨의 고통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에피소드 #2. 봄날 일요일이었다. 부부동반으로 고향 친구들과 등산을 갔다. 그런데 갑자기 소나기가 내렸다. 다른 친구들은 모두 산밑 음식점 등으로 비를 피했다. 하지만 김씨는 혼자 떨어져 초라하게 비를 맞아야 했다. 사람들과 맞닥뜨릴 경우 얼굴이 알려진 그에게 무슨 얘기를 할지 두려웠기(?) 때문이다. 이날 아침 김씨는 “지역에 따라 한차례 소나기가 내리겠습니다.”라고 예보했다. ●올 100년만의 무더위, 그때 가봐야 지난주 서울 동작구 신대방동에 위치한 기상청에서 김씨를 만났다. 기상예보 역사의 산증인이나 다름없기에 인터뷰 장소를 기상청으로 정했다. 뒤뜰 의자에 앉자마자 다가올 여름 더위의 안부(?)부터 물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100년 만의 더위라는 말은 미 항공우주국(NASA)의 한 박사가 얘기한 것에 불과하다. 큰 더위가 올지 안 올지 아직은 미지수”라면서 “다만 요즘 계절의 변화를 볼 때 예년보다 10여일 이른 이달 하순부터 여름이 시작될 것으로 본다.”고 대답했다. 또한 “우리나라는 본래부터 더운 나라”라고 전제한 뒤 “예부터 겨울을 ‘동장군’(冬將軍)이라 하고 여름을 ‘염제’(炎帝)라고 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면서 “그래서 겨울철에는 방한(防寒)이고 여름철에는 피서(避暑)라는 말도 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아울러 우리나라는 대륙성 기후지만 여름철에는 열대성 기후여서 매년 열대야 현상이 20∼30일, 낮기온이 섭씨 30도 이상인 열대일 현상은 57일가량 이어진다고 덧붙였다. “우리 조상들은 더위를 극복하려는 지혜가 많았습니다. 복(伏)날은 농업 위주의 전통적 생활환경에서 유래됐지요. 한여름철의 낮길이가 가장 길다 보니 노동시간이 자연히 많아지고 대신 휴식은 짧았습니다. 때문에 땀흘려 일했던 머슴들은 온·습도의 상승으로 왕성해진 병원체에 감염돼 죽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나라에서 복날을 정해 영양을 보충하고 하루를 푹 쉬게 했던 것이지요.” 하지(6월21일)에서 셋째 경일(庚日)을 초복, 넷째 경일을 중복, 입추 후 첫 경일을 말복날로 정해 하루를 쉬며 개장국 등으로 기력을 보충했다는 것이 김씨의 설명이다. 또한 머슴들은 소고기나 돼지고기를 먹는 일이 그림의 떡이었기에 집집마다 흔하게 키우는 개고기로 대신했다는 자료가 전해온다고 부연했다. 결국 복날은 노동자의 보건일로 경륜이 높은 정치가가 노동자를 위해 베푼 선정에서 비롯됐다고 강조했다. “속담에 ‘여름손님은 호랑이보다 무섭다.’고 할 만큼 옛조상들은 나돌아다니지 않았습니다. 마을정자에 앉아 부채질 하나로 무더위를 이겨냈지요. 반면 지금의 우리들은 냉장고와 에어컨 등 냉방기구들을 잔뜩 갖추어 놓고도 여름철에 휴가를 떠납니다. 하지만 교통지옥 등으로 진이 다 빠져버리지요.” 지금의 여름철 휴가풍습은 북유럽 바캉스에서 유래됐으며 우리나라 기후로 볼 때 5월이나 10월 중에 휴가를 떠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권유했다. 또한 사람은 섭씨 20도부터 더위를,30도부터는 고통을 느끼며 더위는 빙과류로, 고통은 차가운 음료수로 해결하고자 하는 습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부부싸움 많은 여름엔 말조심을 무더운 여름을 지혜롭게 지내기 위해서는 날씨에 순응하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불쾌지수가 높다고 하지 말고 상쾌지수가 약간 낮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것. 또한 여름철에는 부부싸움이 많기 때문에 각자 말조심하는 것도 가정에 도움을 준다고 귀띔한다. 여성의 의상과 온도관계에 대해 흥미롭게 풀이한다. 예를 들어 겨울철 실외온도가 섭씨 0도일 경우 무릎위 20㎝가량 올라간 미니스커트를 입었다면 체감온도는 영하 4도라는 것. 또 1㎝씩 올라갈 때마다 체감온도는 0.5도씩 더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반면 청바지를 입었을 경우 영상 6도의 체감온도를 느낀다고 한다. 따라서 겨울철에 미니스커트를 자주 입는 여성은 생리적 부담으로 임신했을 때 순산하기가 어렵다는 분석도 있다고 전했다. 김씨는 경북 김천에서 태어나 전두환 전 대통령과 같은 대구공고를 졸업했다. 전씨와의 인연에 대해 “(전씨가)백담사에 머물 때 처음 만나 ‘(24회)선배님 26회 김동완입니다.’고 했더니 어깨를 툭치며 ‘(청와대)재임기간에 한번 오지 그랬느냐.’고 하며 무척 반가워했다. 하지만 곧 ‘그랬으면 지금쯤 청문회에 불려다니겠지.’라고 말했다.”고 회고했다. 이후 서울 연희동의 전씨 자택에서 고교 선후배간으로 몇차례 만났다고 귀띔했다. 김씨는 원래 공군 조종사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대구공고 3학년때 공군사관학교 입학시험에 응시, 합격했다. 그러나 최종 선발과정에서 탈락했다. 이어 조종간부후보생 시험에도 합격했으나 기초군사훈련 중 또 탈락했다. 어쩔 수 없이 공군하사관학교를 나와 조교로 공군복무를 마쳤다. 조종사의 꿈이 무너지자 그는 수학선생이 되려고 마음을 먹었다. 서울대 사대 원서를 접수하러 가던 중 우연히 국립중앙관상대 모집 공고를 보게 했다. 결국 발길을 돌려 관상대 시험에 응시,15대1의 경쟁률을 뚫고 합격했다. 이때가 58년 12월. “사무관 시절 날씨 해설을 할 때 ‘기상대의 김동완 사무관입니다.’라는 어감이 안 좋아 편의상 ‘통보관’을 사용하기 시작했지요.”이후 중앙기상대 예보분석관-통보관-예보과장 등을 거치면서 TV와 라디오 등에서 방송해설을 꾸준히 맡아 기상캐스터의 대명사가 됐다.1남4녀를 둔 그는 요즘 날씨와 관련된 원고를 써주기도 하고 각종 단체와 기업체 등에서 초청강의를 하느라 분주하다. 주말에는 주례를 보느라 더 바쁘다. 지금까지 어림잡아 1000여쌍의 주례를 봤다며 웃는다. 그는 평생동안 날씨에 대해 한번도 짜증을 낸 적이 없다. 이는 곧 자연에 대한 어리석음이기 때문이란다. ■ 그가 걸어온 길 ▲1935년 김천 출생 ▲55년 대구공고 기계과 졸업 ▲59년 중앙관상대 공채8기, 국립기상기술원 양성소 1기 수료 ▲59년∼82년 예보분석관, 통보관, 예보과장 ▲63년 국제대학 법학과 졸업 ▲82년∼92년 문화방송 보도국 보도위원 ▲92년∼현재 프리랜서 활동 ▲97년∼99년 한국일기예보회장 ▲2000년∼2001년 자민련 김천지구당 위원장 ▲2000년∼2002년 기상정보 케이블TV웨더뉴스채널의 김동완 기상뉴스 진행 ■ 저서 날씨 때문에 속상하시죠(좋은벗,1998년) km@seoul.co.kr
  • 靑교육문화비서관 김진경씨

    노무현 대통령은 20일 교육문화비서관에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초대 정책실장을 지낸 김진경(52)씨를 내정했다고 김만수 대변인이 밝혔다. 관료출신이 맡아오던 교육문화비서관에 전교조 출신이 처음 임명돼 관심을 모은다. 김 신임 비서관은 최근에 고교 국어교사를 그만뒀으며,1974년 한국문학에 시 부문에서 당선된 시인이기도 하다.‘갈문리의 아이들’‘광화문을 지나며’등 시집을 냈고 현재는 민족문화작가회의 이사를 맡고 있다. 김만수 대변인은 발탁 배경에 대해 “균형 감각을 지녔다.”면서 “전환시대의 민족교육을 발간하는 등 교육 혁신에 대한 열정, 혁신, 아이디어가 풍부하다.”고 설명했다. 박정현기자 jhpark@seoul.co.kr
  • [인간시대] 평생교육시설 양원주부학교 학생 염성려 할머니

    [인간시대] 평생교육시설 양원주부학교 학생 염성려 할머니

    “그래도 4학년까지 다녔으니, 다른 사람들보다는 나은 편이지요.”(염성려·79·서울시 서대문구 창전동) 햇님 사이로 빗방울이 오락가락하는 18일 오후 1시 서울 서대문구 대흥동 18의4 지하철 2호선 대흥역 쪽 한갓진 골목에 들어서 있는 양원주부학교. 학교 입구에는 ‘경축, 대검(대학입학 검정고시) 전국 최고령 합격 신평림(75세)’이라고 적힌 플래카드가 3층 높이로 건물과 건물을 이어 나부끼고 있었다. ●가정형편 어려워 초등학교 4학년 중퇴 늦은 점심 도시락을 챙겨 먹느라 약간은 시끄러운 가운데 얼핏 보기에도 늦깎이 학생인, 머리가 희끗희끗한 할머니와 아주머니들이 차분한 발걸음으로 들어오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점심시간이 끝나고 1시35분쯤 3층 304호 교실에서 수학 수업시간으로 접어들자 ‘어르신 초등학생’ 50여명은 진지하게 ‘손아래뻘 선생님’의 말에 귀를 쫑긋 세웠다. “자, 계산을 시작해요.…. 분모는 분모끼리, 분자는 분자끼리 곱하는 것 아시죠. 그럼 얘는 누구랑 곱해요?” 수학을 맡은 손미진(35·여) 선생님이 유치원 아이들 앞에 서듯 똑 부러지는 말로 묻자, 대부분 언니뻘일 듯한 학생들 사이에서는 “7요,7요.”라고 대답하는 소리가 교실 구석구석에서 메아리처럼 잇달아 터져나왔다. 평생교육시설인 양원주부학교는 대검 최고령 합격자를 낸 데다, 올해 초 성인을 대상으로는 전국에서 처음으로 학력인정 초등과정이 생긴 덕분에 더욱 활기가 넘치는 모습이었다. 학생은 졸업만으로 학력을 인정받는 초등부, 염 할머니의 경우처럼 그렇지 못한 기초부와 중등부, 고등부, 전문부, 교양부, 평생부 등 7개 부문에 2425명이 향학열을 불태우고 있다. 50분 수업이 끝나고 복도에서 양원주부학교 ‘초등생’인 염 할머니를 만났다.21일 용산고등학교에서 중학교 입학자격 검정고시를 치르는 염 할머니는 “글쎄, 주위에서는 다들 (합격이) 될 것이라고 얘기하는데 큰 일”이라고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평안북도 신의주에서 출생한 염 할머니는 고향에서 4학년까지 다니다 학업의 뜻을 접어야만 했다. 어려운 집안살림에 당시만 해도 딸들에게 공부를 시켜 무엇 하랴는 편견 탓이었다. 염 할머니는 “그래도 오래 전이나마 그 때 배워둔 게 적잖게 보탬이 되는 것 같다.”고 수줍게 웃었다. ●배움 앞에 나이는 숫자에 불과 6·25전쟁 전 미리 서울로 시집와 2남2녀를 뒀지만 36살 때 병약한 남편이 별세해 홀몸이 됐다. 이후 삯바느질과 시장통 배달 등으로 자녀들을 키우느라 때를 한참 넘기고 나서야 배움에 대한 ‘허기’가 느껴져 지난해 이 학교에 입학했다. 슬하에 4남매 가운데 막내만은 아직 결혼하지 않고 함께 살고 있다는 염 할머니는 “신문에 나가면 애들이 ‘왜 뒤늦게 이름을 알리느냐.’고 핀잔을 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염 할머니는 지난해 2년제인 중학교 검정고시를 거쳐 고검 준비를 하고 있는 양정자(80) 학생을 빼고는 2400여명 중 최고령에 속한다.“충남 서산 등 멀리서 몇 시간 들여가며 공부하러 오는 분들에 비하면 난 행운아”라고 한다. 창전동 집에서 지하철로 한 정거장이니, 운동삼아 걸어오기도 한단다. ●빠짐없이 하루 4시간 예·복습 “나만 해도 학생 신분으로 배우는 입장이니, 나이는 당연히 잊어야지요. 진학이 중요해서가 아니라, 어떤 형태로든 공부해야 하는데…. 세월은 기다려 주지 않는데, 학교 다니면서도 게으름 피우는 것은 철없는 탓이어서 나중에 분명 후회하게 됩니다.” 특히 음악과 자연이 어려우면서도 좋다는 염 할머니는 4시간짜리 수업을 마치고 귀가한 뒤엔 저녁 8시부터, 하루 4시간 동안은 무슨 일이 있어도 예·복습을 한다며 각오를 되새겼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지금 울산에선] “고래도시 세계에 알릴 기회” 축제열기 후끈

    [지금 울산에선] “고래도시 세계에 알릴 기회” 축제열기 후끈

    “고래도시 울산 방문을 환영합니다.”수산분야에서 가장 큰 규모의 국제회의로 꼽히는 IWC(International whaling committee·국제포경위원회) 제 57차 연례회의가 우리나라 대표적인 고래도시 울산에서 오는 27일부터 6월24일까지 열린다. 울산시는 1년 전부터 행사준비 전담팀을 구성해 만반의 준비를 했다.IWC 연례 회의는 세계 각국이 고래자원에 대한 적절한 보존과 관리를 통한 포경산업의 질서있는 발전을 위해 1946년 IWC를 설립한 뒤 해마다 1차례씩 갖는 회의다.1차 회의는 1949년 런던에서 열렸다. 이 회의에서 세계 고래정책 방향이 결정된다. 우리나라에서 IWC 연례회의가 열리는 것은 처음인데다 울산으로서는 단독으로 치르는 첫 국제행사다. ●세계 60여개국 정부대표·과학자 집결 울산회의에는 IWC 회원 61개 나라 정부대표와 과학자 각 250여명,NGO 및 언론인 각 150여명 등 모두 600명이 넘는 인원이 참가할 예정이다. 회의를 주관하는 해양수산부와 개최도시인 울산시는 외교통상부·경찰 등 관련기관과 합동으로 올해 초 대책반을 구성해 행사 전반에 걸쳐 빈틈없는 준비를 하고 있다. 회의기간 외국인을 비롯한 참가자들이 불편함이 없도록 외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자원 봉사자 250여명이 뒷바라지를 한다. CNN을 비롯해 세계 100여개 언론사 취재진이 회의장인 롯데호텔에 마련되는 프레스센터에서 시시각각 울산 회의소식을 세계로 전한다.6월 20∼24일 공개로 열리는 전체 회의는 한국어로도 동시통역돼 인터넷을 통해 울산시·해양부·국립수산과학원 등의 홈페이지로 링크해 생중계된다. ●반구대 암각화 참가자 필수 방문코스로 울산시는 IWC 회의를 2002년 월드컵 축구대회에 이어 울산을 세계에 널리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여기고 차근차근 준비를 했다. 고래류를 비롯해 여러 동물 그림이 새겨져 있는, 선사시대 바위그림인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는 외국인들에게 빼놓을 수 없는 자랑거리다. 시는 회의에 참가하는 모든 외국인들을 반구대 암각화로 안내해 울산 고래문화의 진면목을 보여줄 계획이다. 또 주말·휴일을 이용해 울산의 주요 산업시설과 문화유적지를 관광할 수 있도록 무료 시티투어버스도 운행한다. IWC 회의와 연계해 제 10회 바다의 날 전국기념식이 오는 31일 장생포동 해양공원에서 대대적으로 열리는 데 이어 6월4일까지 다채로운 바다 관련 행사가 이어진다. 고래도시 전통을 잇기 위해 해마다 개최하는 고래축제(6월 18∼21일)도 회의기간에 맞추어 준비했다. 김남조 시인을 비롯해 50명의 유명 시인들이 고래를 주제로 쓴 시 50여편을 엮은 ‘고래의 노래’ 시집을 IWC 회의 기념 시집으로 최근 발간했다. 한국어와 영어로 된 이 시집은 IWC 회의 참가자들에게도 나눠줄 예정이다. ●고래도시 울산 국제적 위상 높아질 계기 울산시는 최근 IWC 울산회의 관련 안내책자 초안을 IWC 사무국에 보냈다.IWC측은 초안을 검토한 뒤 회의 및 행사를 울산처럼 다양하게 준비한 도시는 없었다며 울산시의 노고에 감사한다는 내용의 메일을 보내왔다. 정부와 울산시는 IWC 울산 회의를 성공적으로 개최하면 우리나라와 개최도시 울산의 국제적 위상이 동시에 높아질 것으로 기대한다. 울산발전연구원은 IWC 연례회의 개최에 따른 경제창출효과가 숙박·음식·관광·교통을 비롯한 여러 분야에 걸쳐 264억여원에 이를 것으로 분석했다. 박맹우 울산시장은 IWC 과학위원회 리셉션, 총회개회식과 ‘IWC인의 날’ 등 주요 행사에 개최도시 대표로 참석해 인사말을 할 예정이다.60개가 넘는 세계 주요 국가 정부대표단이 참석하는 공식적인 대규모 국제행사에서 시장이 울산을 마음껏 자랑할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다는 것이다. ●‘포경’‘반포경’ 다툼막기 경비·경호에 신경 정부와 울산시는 IWC 울산 회의기간에 불법포경행위가 발생할 가능성과 그린피스를 비롯한 국제환경단체의 포경반대운동에 신경을 쓰고 있다. 해경은 IWC 행사를 앞두고 지난해부터 불법 포경에 대한 강력한 단속을 하고 있다. 회의기간 중 포경과 반포경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맞서고 있는 상황에서 불법포경사례가 발생하면 우리나라 이미지 실추와 더불어 국제적 비난이 쏟아질 것을 어민들도 잘 알기 때문에 불법으로 고래를 잡는 사례는 생기지 않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국제환경단체인 그린피스는 IWC 회의기간 울산에 머물면서 적극적인 포경반대활동을 펼 계획이다. 경찰은 포경을 지지하는 주민·단체와 반포경단체 등과 다툼이 생길 경우에 대비, 각국 대표 숙소와 행사장 주변 등에서 철저한 경호·경비를 한다. 장생포항 주민들은 오래전부터 포경 재개를 기다리며 IWC 연례 회의 때마다 귀를 귀울여 왔다. 해경 등은 주민들이 포경이 재개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지만 국제분쟁이 생기면 국익에 도움 될 게 없다는 판단에서 그린피스 등에 맞대응하는 등의 불미스러운 사태는 생기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울산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울산총회 ‘포경 재개되나’ 세계가 주목 “IWC 울산 회의에서 고래잡이 재개가 결정될 수 있을까?” 고래 관련 전문가 등은 현재 IWC에 가입한 61개 회원국들의 성향 등을 분석해 볼때 올해 울산 회의에서도 포경 재개와 관련된 안건은 통과되기 어려울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포경 재개와 같은 주요 안건은 IWC총회에서 출석 회원국 4분의3이상 찬성을 얻어야 통과된다. 지난해 이탈리아 소렌토 회의때 나타난 각종 안건 투표 결과로 미루어 보면 현재 포경과 반포경을 지지하는 나라는 반반으로 팽팽히 나눠져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따라서 IWC 최대 관심사안인 포경허용 안건은 올해 울산 총회에서도 3분의2이상 찬성을 얻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회원국 가운데 미국·영국·호주·뉴질랜드·네덜란드·독일 등은 반포경 강경국가로, 일본·노르웨이·아이슬란드·덴마크·러시아·중국 등은 포경 추진 국가로 분류된다. 우리나라는 포경 추진을 지지하면서도 미묘한 사안에 대해서는 중립을 지키는 애매한 위치다. 포경·반포경 진영은 서로 영향력을 키우기 위해 포경문제에 별로 관심이 없는 국가에 대해서도 계속 회원국 가입을 권유해 꾸준히 세를 불리고 있다. IWC는 1982년 상업포경 일시금지를 결의하면서 고래자원을 지속적으로 안전하게 이용하기 위해 한정된 포획량을 산출하는 개정관리방식(RMP)과 이를 엄격한 감시 감독 아래 시행하기 위한 개정관리제도(RMS)를 만든 뒤 포경을 재개하기로 의견을 모았었다. 포경추진국가들에 따르면 반포경국가 진영에서 개정관리제도 등이 미흡하다는 이유 등을 내세워 포경 재개를 계속 반대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고래 연구 학자 등은 반포경을 주도하는 미국·호주·뉴질랜드 등이 포경을 반대하는 배경에는 고래보호 외에 또다른 목적이 깔려있는 것으로 본다. 반포경을 주장하는 나라들은 주로 축산국가들이며 고래고기를 먹지 않는 나라들이다. 포경이 허용되면 고래고기를 먹는 한국·일본 등으로 육류수출이 줄어드는 데다 앞으로 식량문제가 나타날 수 있는 중국·러시아의 남극 포경 진출에 대한 우려 때문에 반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울산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울산과 고래-고래새긴 바위등 곳곳 유적 장생포는 대표적 포경항구 고래와 울산과의 인연은 아득한 선사시대부터 이어져왔다.5000년 전에 그린 각종 고래의 형상이 또렷이 남아 있는 국보 285호 ‘반구대 암각화’가 바로 그것. 댐 상류 계곡 넓은 바위 수직 벽면에 범고래·향고래·귀신고래 등 48마리의 각종 고래 그림을 비롯해 여러 가지 물상(物像)과 고래잡이 장면 등이 새겨져 있다.1970년 발견된 이 암각화에 대해 고래 및 암각화 관련 분야에서 국제적 권위를 가진 학자들은 세계적으로 가치있는 선사시대 문화재라며 감탄한다. 1962년 천연기념물 126호로 지정된 울산극경회유해면(克鯨廻遊海面)도 고래도시 울산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문화자원이다. 극경(쇠고래)은 해안가에 가깝게 사는 고래로, 암초가 많은 곳에서 귀신같이 나타난다 해서 귀신고래라고도 부른다. 울산 쇠고래 회유 해면은 고래 사냥으로 멸종위기에 처해 있는 쇠고래가 새끼를 낳기 위해 이동하는 경로를 말한다. 현재 울산 쇠고래 회유 해면이 속해 있는 서부 북태평양과 북대서양 쇠고래는 멸종 위기에 있다. 동부 북태평양 쇠고래는 보호와 감시로 멸종 위기를 벗어난 상태. 상업포경 금지 전까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포경기지였던 남구 장생포항도 고래 연고지로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장생포항에는 4층 규모의 고래박물관이 건립돼 오는 31일 문을 연다. 또 박물관 옆에는 고래자원에 대한 과학적인 연구·조사를 할 고래연구센터(국립수산과학원 산하기관)가 곧 착공돼 내년 초 완공된다. 울산시는 이번 IWC 울산회의를 계기로 울산의 도시브랜드를 ‘세계적인 고래도시’로 정해 성가를 높여나간다는 전략이다. 이를 위해 고래 관련 각종 자원을 활용해 고래테마 관광사업을 적극 추진한다. 울산을 상징하는 캐릭터도 고래를 귀엽고 친근한 모습으로 형상화한 ‘해울이’로 정해 지난 3월 특허청에 상표등록을 마쳤다. 최근 울산시는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고래를 직접 구경하는 고래생태관광이 가능한지 검토작업을 하고 있다. 어업지도선을 이용해 이달부터 다음달 말까지 두달동안 울산지역 연안을 돌며 고래가 얼마나 있는지 조사한 뒤 관광사업 타당성을 분석해 추진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울산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재벌딸 행세 결혼… 시댁돈 80억 ‘펑펑’

    재벌가의 딸이라고 속이고 결혼한 뒤 사업자금 등 명목으로 남편과 시집에서 80억원을 빌려 갚지 않은 30대 여성이 쇠고랑을 찼다. A(37)씨가 B(38)씨를 만난 것은 2002년 초. 둘은 와인바에서 우연히 동석한 것을 인연으로 가까워졌다.A씨는 10년 가까이 다른 남자와 결혼해 자녀도 두고 이혼을 했지만 “나는 서울 명문여대를 졸업한 중견기업 회장의 딸”이라면서 “여러 개의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고 B씨를 속였다. 의사인 B씨도 “재벌가 사위도 되고 병원 운영에도 도움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에 결혼에 동의했다. A씨는 재벌가의 딸로 행세하려고 사채까지 빌려 명품을 구입해 치장하기도 했다.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사채 독촉에 시달리던 A씨는 온갖 감언이설로 남편을 속여 결혼식도 올리기 전에 3억 5000여만원을 빌렸다. 결혼 후 남편의 부정한 행각을 담은 ‘몰카’가 있어 무마하겠다면서 1억여원을 받는 등 16억원을 더 빌렸다. 또 시어머니에게 “국세청에서 탈세를 문제삼아 돈을 요구해 뇌물이 필요하다.”며 40여차례에 걸쳐 64억여원을 얻어내기도 했다. 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현대시 100년사 최고시집 백석의 ‘사슴’

    한국 현대시 100년사에서 우리 시인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시집은 백석의 ‘사슴’(1936)으로 조사됐다. 시인별 조사에서는 서정주, 정지용에게서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계간 ‘시인세계’가 김종길, 김남조, 홍윤숙, 신경림 등 원로에서 젊은 시인까지 156명을 설문조사한 결과다. ‘시인세계’ 여름호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100년간 간행된 시집 가운데 시인들이 ‘가장 큰 영향을 받은 시집’이나 ‘좋아하는 시인의 시집’에 대한 설문조사에서 백석의 시집 ‘사슴’이 12명의 추천을 받아 1위를 차지했다. 이어 김수영의 ‘거대한 뿌리’(1974), 정지용의 ‘정지용 시집’(1935), 이성복의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1980), 서정주의 ‘화사집’(1941) 순으로 ‘현대시 100년사 5권의 시집’에 올랐다. 시인별로는 ‘화사집’ ‘동천’ ‘서정주 시선’ ‘질마재 신화’ 등 여러 권으로 분산돼 추천받은 서정주가 정지용과 함께 각 14명의 추천을 받아 공동 1위를 차지했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LG家 ①-창업주 구인회 일가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LG家 ①-창업주 구인회 일가

    지난 3월31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GS강남타워(옛 LG강남타워)에서 열린 GS그룹 ‘CI 및 경영이념 선포식’. “지난 반세기 동안 LG와 GS는 한 가족으로 지내며 수많은 역경과 고난을 이겨내고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으로 우뚝 섰습니다.GS가 새롭게 출발하는 것을 보니 남다른 감회로 가슴이 뿌듯합니다.” 차분히 축사를 읽어가는 구본무(60) LG 회장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얼굴에는 만감이 교차하고 있었다. 조부(고 구인회 창업주)때부터 계속돼 온 허씨와의 57년간(47년 락희화학 설립 기준)의 ‘동거’를 당대에서 마무리짓는 순간이었다. 사돈이자 ‘동반자’였던 GS그룹 허창수(57) 회장과 임직원 300여명은 축사를 마치고 행사장을 빠져 나가는 구 회장을 기립 박수로 환송했다. 행사장에 울려퍼진 ‘사랑해요 LG’는 앞으로도 두 그룹이 여전히 동반자적 관계를 유지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줬다. 구 회장은 이에 앞서 3월14일 ‘당숙’인 구자홍(59) 회장·구자열(52) 부회장이 이끄는 LS그룹 출범식에도 참석, 새로운 길을 떠나는 집안 어른들을 축하했다. 연이어 열린 GS·LS그룹의 출범은 LG의 역사상 가장 큰 행사로 기록될 것이다.‘동업으로 일궈 합작으로 키웠다.’는 LG의 사사가 올해부터는 본격적으로 새로 쓰이게 되는 것이다. GS의 분리로 자산이 지난해 61조 6000억원에서 50조 8800억원으로 줄어든 LG는 지난 4월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자산기준 재계순위에서 현대자동차그룹(56조 400억원)에 2위(한전 제외)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1974년과 1980년에는 삼성과 현대를 제치고 재계 1위까지 올랐던 LG그룹으로서는 다소 자존심이 상하는 대목이다. 조부때부터 늘 확장일로를 걷던 사업을 ‘정리’한 구 회장은 LG의 비전을 ‘요람에서 무덤까지’ 책임졌던 종합그룹에서 전자·화학중심의 ‘글로벌 리딩그룹’으로 재확립했다. 전반적으로 어려운 여건임에도 올해 경영목표를 매출 94조원, 경상이익 4조 3000억원으로 지난해보다 각각 15%,26%나 높게 잡은데서 ‘제3의 창업’을 향한 LG의 의지를 읽을 수 있다. ●부친이 준 자금으로 사업 시작 재계3위 LG그룹의 역사는 1947년 락희화학(현 LG화학)의 설립에서 시작되지만 그 기원은 1931년 7월 경남 진주시 진주식산은행 건너편 2층 건물에서 시작한 ‘구인회 상점’이 출발이다. 구인회 회장은 1907년 8월28일 경남 진양군 지수면 승산마을(현 진주시 지수면 승내리)에서 홍문관 교리를 지낸 할아버지 만회 구연호 공의 외아들 춘강 재서 공과 진양 하씨 사이의 장남으로 태어났다.1921년 지수보통학교 2학년에 편입해 잠시 고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과 같이 수업을 듣기도 했다. 효성그룹 창업주인 고 조홍제 회장과는 같이 학교를 다니지는 않았지만 축구로 교유관계를 쌓았다고 한다. 구 회장은 20세때 서울 중앙고보 2년을 마치고 귀향, 사업에 뜻을 보였는데 엄격한 유교집안의 장손이 장사를 시작한다고 했을 때 조부와 부친의 반대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지만 결국 장손의 고집을 꺾지는 못했다. 24세에 이미 3남 1녀와 아래로 다섯 동생을 둔 집안의 가장이었던 구 회장은 아버지가 건네 준 2000원과 첫째 동생 철회씨의 사업자금 1800원을 더해 자본금 3800원으로 첫 사업을 시작했다. 고 이병철 삼성 회장이 7년 뒤인 1938년 자본금 3만원으로 ‘삼성상회’를 시작한 것에 비하면 출발은 일렀지만 규모는 작았던 셈이다. 구 회장의 첫 사업은 ‘실패’였다. 사업 첫 해 무려 500원의 손실을 본 것이다. 이듬해 고향마을의 땅을 담보로 8000원을 빌린 구 회장은 새로운 각오로 사업을 재개했지만 그 해 장마로 포목이 물에 잠기고 만다. 이후 사업이 제 자리를 잡아 가는 듯했지만 또다시 1936년 대홍수로 가게가 떠내려 가고 말았다. 첫 시련은 가혹했지만 구 회장은 사업가 기질을 발휘해 “장마가 든 해에는 풍년이 들어 살기가 좋아질 것이다.”는 신념을 갖고 주변 사람에게 다시 돈을 빌려 포목사업을 벌였다. 구 회장의 예측대로 그해 풍년이 들어 결혼수요가 폭증하자 포목사업도 번창하기 시작했고 구 회장의 사업인생도 탄탄대로를 걷기 시작했다. ●허씨와의 인연 LG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구씨-허씨 동업을 빼놓을 수 없다. 두 가문의 인연은 구인회 회장의 8대조인 구반공 시절부터 시작됐다. 구반공의 부친이 현풍현감으로 재임할 때 진주의 만석꾼인 허씨 집안으로 장가를 왔고 이후 승산마을에 뿌리를 내린 것이다. 구인회 회장 역시 열네살 나던 해인 1921년 담 하나 사이 이웃인 허만식씨의 장녀 을수씨와 혼례를 올렸다. 조부 만회공의 셋째 딸이 허만식씨의 둘째아들 인구씨에게 출가했지만 신랑이 요절하는 바람에 이어지지 못했던 두 집안이 다시 한번 관계를 맺은 것이다. 이후 구씨와 허씨는 무려 8건의 겹사돈으로 맺어지며 끈끈한 관계를 이어왔다. 구씨와 허씨는 1946년 1월 구 회장 장인(허만식씨)의 재종인 허만정씨가 셋째 아들 준구(당시 24세)를 데리고 당시 구회장이 살던 부산으로 찾아오면서 사돈에서 동업자 관계로 발전한다. 허만정씨는 사업자금을 내놓으며 아들의 경영수업을 부탁했고 구 회장은 동경 유학생 출신의 준구씨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준구씨는 첫째 동생 철회씨의 맏사위였으므로 이미 남도 아니었다. 잘 알려진 대로 고 허준구씨는 LG건설·LG전선 회장 및 그룹 부회장을 지내며 LG의 역사와 함께했고 허창수 현 GS그룹 회장, 허정수(55) GS네오텍(전 LG기공) 사장, 허진수(52) GS칼텍스 부사장, 허명수(50) GS건설 부사장, 허태수(48) GS홈쇼핑 부사장 등 그의 아들들도 LG의 경영에 깊숙이 관여했다. LG의 초기 역사에는 허준구씨말고도 다른 허씨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준구씨의 친형인 고 허학구씨는 락희화학 전무로 일하면서 구자경 당시 상무와 함께 부산 범일동 공장에서 먹고 자며 밤낮으로 일했다고 한다. 구 회장은 또 락희화학 서울사무소를 지원하기 위해 허준구씨의 동생으로 당시 ‘조선통운’에 다니던 허신구씨를 끌어들였다. 허신구씨는 락희유지 상무시절인 62년 동남아출장에서 ‘합성세제’를 처음보고 구인회 회장에게 세제 사업 진출을 건의,66년 ‘하이타이’가 출범하는데 일등공신이 됐다. 허신구씨는 금성사 사장, 그룹 부회장, 럭키석유화학 회장 등을 역임했고 장남 허경수씨는 87년 코스모그룹을 창립하며 독자경영의 길을 걷고 있다. 허만정씨는 8형제를 뒀는데 학구-준구-신구씨는 LG에 발을 담은 반면 장남 고 허정구씨는 삼성 이병철 회장의 ‘창업동지’로 다른 길을 걸었다. 허정구씨의 2남이 허동수 GS칼텍스 회장이다. 허신구씨의 차남 허연수씨도 GS리테일(전 LG유통) 상무로 일하고 있고 허만정씨의 막내인 허승조씨는 GS리테일 사장을 맡고 있다. ●가족들의 맹활약 LG는 그동안 숱한 계열분리를 통해 친족간 재산분배를 마무리지었다. 현재 LG에 남아있는 ‘오너일가’는 구본준(54) LG필립스LCD 부회장이 유일하다. 하지만 몇년전만 해도 주요 계열사 사장과 임원 상당수가 구씨, 허씨일 정도로 가족경영이 활발했다. 오너일가들이 지나치게 많아 그만큼 부작용도 적지 않았지만 LG의 창업과정에서 이들의 공을 무시하기는 어렵다. 앞서 언급했듯이 구인회 회장은 첫째 동생 철회씨와 동업으로 ‘구인회상점’을 창업했다. 철회씨는 형과 함께 사업을 일구며 락희화학, 금성사 등의 사장을 맡았다. 둘째 아우 정회씨도 경성전기학교를 마치고 형의 사업을 돕기 시작했다. 정회씨는 45년 구인회 회장이 ‘조선흥업사’라는 무역회사를 운영하고 있을 때 화장품 기술자 김준환씨를 영입해 화장품 사업에 뛰어드는 계기를 마련했다. 처음 만든 화장품 이름을 ‘럭키(LUCKY)’라고 지어 ‘럭키그룹’의 기반을 닦은 것도 정회씨였다. 셋째 아우 태회씨는 서울대 문리대에 다니면서 창신동 집에서 ‘화장품연구’에 몰입,‘투명크림’을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그는 50년 서울대를 졸업하자마자 락희화학의 전무로 입사, 형의 사업을 돕기 시작했다. 같은 해 장조카 구자경 명예회장도 부산사범대 부속국민학교 교사 생활을 접고 락희화학 이사로 입사했다. 태회씨는 이후 안 깨지는 크림통 뚜껑에 목말라하던 구인회 회장을 도와 LG가 플라스틱 사업에 진출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53년 락희화학이 서울에 사무소를 낼 때 기반을 닦은 것도 태회씨였다. 태회씨는 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 자유당후보로 고향인 진양에서 출마해 당선되면서 정치인의 길을 걷는다. 역시 서울대 문리대를 나온 넷째 아우 평회씨는 락희화학 지배인 시절인 1954년 멕시코에서 열린 국제청년상공인회의(JCI)에 참석한 뒤 곧바로 뉴욕으로 날아가 ‘콜게이트사’ 주변에 머물며 치약 제조기법을 알아내는 공을 세웠다. 공전의 히트를 친 ‘훌라후프’도 평회씨의 제안으로 들여왔다.5·16 쿠데타 직후인 61년 ‘부정축재 기업인’ 처벌때는 형을 대신해 6개월간 감옥살이를 하기도 했다. 삼성 이병철 회장의 차남인 이창희씨가 아버지와 형(맹희씨)을 대신해 처벌을 받은 것과 같은 맥락이었다.5년 연속 세계판매 1위를 달리고 있는 LG전자의 에어컨 사업은 구자경 명예회장이 락희화학 전무시절 “고층빌딩이 계속 늘고 있어 에어컨이 앞으로 필요해질 것”이라는 아이디어를 내 시작했다.67년 9월 미국 GE사와 제휴를 통해 국내 첫 에어컨 생산에 들어갔다. 미국 워시본대와 뉴욕시립대 대학원을 나온 구자두씨는 금성사 관리부장 시절인 62년 동남아 통상사절단을 수행하며 홍콩의 바노사로부터 라디오 200대를 주문 받아오는 등 LG의 첫 수출 물꼬를 트는데 기여했다. 럭키치약 광고판을 부산 연지동 공장에 세우는 등 본격적인 광고개념을 도입한 것도 자두씨의 아이디어였다고 한다. ●6남4녀의 ‘방대한 혼맥’ 구인회 회장은 허을수씨와 사이에 6남4녀를 뒀다. 자손이 워낙 많다 보니 LG가를 ‘재벌 혼맥의 핵’이라고 부르지만 권력 핵심이나 정계쪽과는 인연이 없어 세칭 ‘정략결혼’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평이다.LG가는 특히 아들이 많은데 회(會)자 돌림만 6명, 자(滋)자 돌림은 23명에 달한다. 본(本)자 돌림은 구인회 회장 직계로만 11명이다. 장녀 양세(83)씨는 15세때 경남 남해군수를 지낸 박해주씨의 아들로 진주고보 학생이던 박진동씨에게 출가했다. 박씨는 광복후 좌우익투쟁으로 학병동맹본부 피습사건으로 사망했다. 장남 구자경(80) 명예회장은 17세때인 42년 5월 고향인 경남 진주시 지수면 승산마을과 가까운 대곡면 단목리의 대지주 하순봉씨의 장녀 정임(81)씨와 혼례를 올렸다. 구 명예회장은 당시 진주공립중 4학년이었고 한살 위인 신부는 한문에 뛰어난 소양을 갖춘 사람이었다. 구 명예회장 부부는 올해로 63년째 해로하고 있다. 2남 자승(74년 작고)씨는 56년 부산에서 금성방직 전무로 있던 고 홍재선씨의 딸 승해(71)씨와 선을 본 뒤 4개월만에 결혼했다. 홍씨는 훗날 전경련 회장과 쌍용양회 회장을 지냈다. 구 회장과 홍재선씨와의 우애는 유명한데 홍씨는 훗날 구 회장이 한때 자신을 ‘바람둥이’로 오해해 혼사가 어려울 뻔한 적도 있었다고 회고했다. 홍씨가 평소 안면이 있던 다방 마담과 농담을 주고받는 것을 보고 ‘고지식한’ 구 회장이 오해를 한 것이다. 3남 구자학(75) 아워홈 회장은 고 삼성 이병철 회장의 차녀 숙희(70)씨와 57년 결혼했다. 구 회장은 64년 제일제당(현 CJ) 기획부장으로 삼성에 입사한 뒤 동양TV방송 이사, 호텔신라 대표이사, 중앙개발(현 삼성에버랜드) 사장 등을 거쳐 본가로 돌아왔다. 4남 구자두(72) LG벤처투자 회장은 심계원(현 감사원) 심계관과 국방부 차관을 지낸 고 이흥배씨의 딸 의숙(67)씨와 결혼했다. 이 혼사는 이미 사돈을 맺었던 홍재선씨의 중매로 이뤄졌다. 이씨는 64년 동양TV 사장으로 일하다 삼성과의 동업파기로 물러났고 이후 국제신보(현 국제신문) 사장에 취임했다. 삼성과 LG는 동양TV사장에 이병철 회장의 사돈인 홍진기씨와 구인회 회장의 사돈인 이흥배씨를 나란히 앉혀 ‘공동경영’을 시도했지만 결국 파국으로 끝나고 말았다. 이흥배씨의 장남인 이희종(72)씨도 LG산전(현 LS산전) 사장과 부회장을 지낼 정도로 LG와 인연이 깊었다. 5남 구자일(70) 일양화학 회장은 일찌감치 독립했는데 부인 고김청자(66)씨는 사업가인 김진수씨의 딸이다. 차녀 자혜(68)씨는 대림산업 이규덕 창업주의 장남 고 이재준 대림그룹 회장의 막내 아우인 이재연(74) 아시안스타 회장에게 시집갔다. 이재연씨는 럭키화학 상무로 LG에 입사한 뒤 희성산업 사장, 금성통신 사장, 금성사 사장을 거쳐 LG카드 부회장을 지냈다. 장남에게 외식업을 해보라고 권유, 국내에 패밀리 레스토랑 ‘TGIF’를 처음 들여왔다. 3녀 자영(66)씨는 제일은행장을 지낸 이보형씨의 아들 재원(68)씨와 결혼했다. 구 회장 막내 처남 허윤구씨의 아들인 허남목씨 소개로 만난 뒤 20일만에 ‘초스피드’로 결혼했다. 이씨는 자신 소유의 일성제지 회장을 지냈지만 일성제지는 98년 신호제지에 합병됐다.4녀 순자(62)씨는 류헌열 전 대전지법원장 아들이자 서울지검 검사였던 류지민씨에게 시집갔다. 이 혼례도 사돈인 이흥배씨가 주선했는데 구씨의 혼사는 이처럼 사돈이 연결해 준 경우가 많다. 구 회장은 막내 사위를 무척 아껴 골프장에 자주 데리고 다니는 등 각별한 애정을 쏟았지만 류씨는 43세때 요절했다. 유일하게 구 회장 타계후 결혼한 6남 자극(59)씨는 이화여대 교수인 조필대 교수의 딸 아란(54)씨와 결혼했다. ●창업주 형제들의 화려한 혼맥 LG가문의 혼맥이 늘 주목받는 것은 구인회 회장 형제들의 혼사가 본가 못지 않게 화려하기 때문이다. 첫째 동생 철회(75년 작고)씨는 부인 안남이(작고)씨와 4남 4녀를 뒀는데 딸들의 결혼이 눈에 띈다. 장녀 위숙(77)씨는 허만정씨의 3남인 고 허준구 LG건설 회장에게 출가했다.2녀 영희(74)씨는 의학박사인 고 이호덕씨에게,3녀 자애(66)씨 역시 의사인 정승화(71·전 현대피부과원장)씨에게 시집갔다.4녀 선희(61)씨는 박우병 전 두산산업 회장의 장남 박용훈(63) 두산산업개발 부회장에게 시집갔다. 박우병씨는 박두병 전 두산 회장의 동생이다. 장남인 구자원(70) 넥스원퓨처 회장은 류영희(63)씨와, 차남인 고 구자성 전 LG건설 사장은 이갑희(62)씨 등 평범한 집안의 딸과 결혼했다.3남인 구자훈(58) LG화재 회장,4남인 자준(55) LG화재 부회장의 부인인 임방인(61), 이영희(53)씨도 재계나 정·관계 집안은 아니다. 다만 구자훈 회장의 3녀 문정(31)씨가 금호아시아나그룹 박성용 명예회장의 장남 재영(35)씨에게 시집가 재계 명문가의 위상을 이어갔다. 둘째 동생 정회(78년 작고)씨는 부인 김증문(작고)씨 사이에 5남 2녀를 뒀다. LG유통 사장을 지낸 장남 자윤(작고)씨는 정정자(62)씨와 결혼했다.2남 형우(62) 전 부민상호저축은행 사장은 전 대한석탄공사 전무였던 이길주씨의 딸 화숙(57)씨와 결혼했고 장녀 숙희(59)씨는 이구종 전 대한교과서 대표의 아들 규영(62)씨와,3남 자헌(작고)씨는 조종렬 한일수산 회장의 딸 금숙(55)씨와 결혼했다.LG MMA 사장을 지낸 4남 자섭(55)씨는 최근 LCD 회로부품업체인 한국SMT를 갖고 LG에서 독립했다. 부인은 심영숙(51)씨. 박정화(50)씨와 결혼한 5남 자민(50)씨는 지난해 말 LG전자 부사장으로 승진한 뒤 3개월도 안돼 회사를 그만두고 형 회사인 한국SMT 부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2녀 명희(52)씨의 남편은 하영준(56) 전 세원기업 사장이다. 셋째 동생으로 국회예결위원장·부의장을 지낸 태회(82)씨는 최무(83)씨와 사이에 4남 2녀를 뒀다. 장녀 근희(62)씨는 이계순 전 농림장관의 아들 준범(64)씨와 혼인했다. 장남 구자홍(59) LS그룹 회장은 지순혜(60)씨와 결혼했는데 집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연애결혼에 성공한 ‘러브스토리’를 갖고 있다. 차남 구자엽(55) 가온전선 부회장은 김태향(55)씨와 결혼했다. 구 부회장의 사위가 정몽우 전 현대알미늄 회장의 장남인 정일선(35) BNG스틸 사장이다.3남인 구자명(53) LS니꼬동제련 부회장의 부인은 조영식 경희대 이사장의 딸 미연(53)씨다.4남 구자철(50) 한성 회장의 외동딸 원희(25)씨는 ㈜두산 박용만(50) 부회장의 장남 서원(26)씨와 결혼이 예정돼 있다. 구씨가문으로서는 두산가로 출가한 자혜씨에 이은 두번째 두산과의 혼사다.2녀 혜정(57)씨는 이인정(60) 태인 회장과 결혼했다. 넷째 평회(79)씨는 부산 피란시절인 52년 금릉원예조합 문흥린 이사장의 딸 문남(75)씨와 결혼해 3남 1녀를 뒀다. 장남인 구자열(52) LS전선 부회장은 육군 중장으로 청와대 경호실차장과 성업공사 사장, 전쟁기념관장을 역임한 고 이재전씨의 딸 현주(48)씨와 결혼했다. 차남인 구자용(50) E1사장은 이상돈 전 중앙대 의대 학장 딸 현주(46)씨와 결혼했다.3남 구자균(48) LS산전 부사장은 독고진(46)씨와, 막내 혜원(46)씨는 주진규(49)씨와 결혼했다. 막내동생 두회(77)씨는 유한선(72)씨와 사이에 1남 3녀를 뒀다. 장녀 은정(44)씨는 김택수 전 공화당 원내총무의 아들 중민(48) 전 국민생명보험 부회장과 결혼했다. 김택수씨는 김한수 한일그룹 창업주의 동생이다. 장남인 구자은(41) LS전선 상무는 장상돈 한국철강 회장 딸인 인영(37)씨와, 막내 재희(38)씨는 김세택 전 덴마크 대사 아들 동범(37)씨와 결혼했다. ●점점 ‘소박’해지는 혼맥 구자경 명예회장은 선대 회장 못지않은 4남 2녀를 낳아 ‘다산’의 전통을 이었다. 장남인 구본무(60) 회장은 미국 애슐랜드대 유학을 마친 72년 김영식(53)씨와 결혼했다. 김씨는 충북 괴산의 ‘수재’로 불린 김태동 전 보사부장관의 딸. 장녀 연경(27)씨는 연세대 사회사업학과를 마치고 미국에서 유학중이고 막내 연수(9)양은 아직 초등학생이다. 딸만 둘인 구 회장은 지난해 바로 아랫동생인 구본능(56) 희성그룹 회장의 장남 광모(27)씨를 양자로 영입해 ‘대’를 잇고 있다. 장녀 훤미(58)씨는 구 회장 작고 직후인 70년 4월 김용관 전 대한보증보험 사장의 4남 화중(작고)씨와 결혼했다. 훤미씨의 딸인 김선혜(34)씨는 대림산업 이준용 회장의 장남인 이해욱(37) 전무와 결혼해 대림가와 대를 이은 혼인관계를 이어갔다. 김용관씨는 경방 회장과 전경련 회장을 지낸 고 김용완 회장의 동생이다. 화중씨는 “딸은 경영에 참여시키지 않지만 사돈이나 사위는 아들에 준하는 대접을 해준다.”는 LG의 ‘가풍’대로 계열사였던 희성금속 사장을 지냈다. 95년 일찌감치 독립한 2남 구본능(56) 희성그룹 회장은 차경숙씨와 결혼했다. 3남 구본준(54) LG필립스LCD 부회장은 숱한 계열분리 뒤에도 여전히 LG에 남아있는 거의 유일한 ‘오너 경영인’이다. 사업가 김광일씨의 딸인 은미(48)씨와 사이에 1남 1녀를 뒀다. 2녀 미정(50)씨는 대한펄프 창업주인 고 최화식 회장의 아들인 최병민(53) 대한펄프 회장과 결혼했다. 4남 구본식(47) 희성전자 사장은 조경아(45)씨와 결혼,1남 2녀를 뒀다. ●LG를 떠나는 滋자 돌림 구자경 명예회장의 첫째 동생 자승(작고)씨는 홍승해씨와 3남 1녀를 뒀다. 장남 본걸(48)씨는 LG상사 대주주이자 부사장을 맡고 있고 본순(46), 본진(41)씨도 LG상사 상무로 일하고 있다.LG상사는 LG의 다른 자회사와 달리 ㈜LG가 대주주가 아니어서 자승씨 집안 몫으로 남겨진 것으로 알려졌다.2000년 아워홈을 갖고 독립한 둘째 동생 자학씨는 이숙희씨와 사이에 1남 3녀를 뒀다. 장남 본성(48)씨는 심재석 전 장은할부 부회장의 딸 윤보(44)씨와 결혼했다. 본성씨는 처가인 삼성에서 사장까지 지낸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2000년 삼성캐피탈 부장으로 입사해 삼성경제연구소 상무보까지 지냈다. 장녀 미현(45)씨는 고 이문호 서울대의대 교수의 아들인 이영렬(50) 한양대의대 교수와 결혼했다.2녀 명진(41)씨는 한진그룹 조중훈 회장의 4남 조정호(47) 메리츠증권 회장과 결혼했다. 셋째 동생 자두씨 역시 2000년 LG벤처투자를 갖고 분리했다. 이의숙씨와 사이에 2남 2녀를 뒀는데 장녀 혜란(45)씨는 심창유 청주사대 학장의 아들 현주(50)씨와,2녀 혜선(43)씨는 장홍식 전 극동정유 사장의 아들 원우(44)씨와 결혼했다.LG벤처투자 사장인 장남 본천(41)씨와 차남 본완(39)씨는 각각 22.24%의 지분을 갖고 있다. 넷째 동생 구자일 일양화학 회장은 처음부터 LG경영에 참여하지 않고 독립했다. 본길(39), 은미(38)씨를 자녀로 두고 있다. 차녀 구자혜씨는 이재연 전 LG카드 부회장과 2남 1녀를 두고 있는데 명망가 집안과 혼사를 맺었다. 아시안스타 사장인 장남 선용(44)씨는 고 오세중 세방여행 회장의 딸 은주(40)씨와 결혼했다. 차남 지용(42)씨는 추경석 전 건설교통부 장관의 딸인 재연(38)씨와 결혼했다. 막내 구자극(59)씨는 LG상사 미주법인 회장을 그만두고 대주주로 있던 예림인터내셔널을 통해 전자코일, 변성기 등을 생산하는 이림테크를 인수(현 엑사이엔씨)한 뒤 스피커 전문업체인 모토조이, 성주음향의 중국 톈진공장 등을 인수하며 종합부품그룹을 키우고 있다. 엑사이엔씨 사장인 장남 본현(37)씨와 차남 본우(26)씨는 엑사이엔씨 지분 24%,4%를 각각 보유중이다. ukelvin@seoul.co.kr ■ 그룹 분가-지분율 따라 재산분배… ‘잡음’ 없어 LG는 1999년 LG화재를 시작으로 LG벤처투자, 아워홈,LS,GS그룹 등을 차례로 분리했다. 재산배분을 둘러싸고 ‘집안싸움’이 벌어지는 것이 예사이지만 유독 LG만은 큰 잡음없이 대규모 분가를 마무리지었다. 이는 LG가 엄격한 유교집안으로 집안 어른이 정한 기준을 자손들이 철저히 지키는데다 수십년간 그룹에서 친족들의 지분을 관리해온 덕분이다. 분가에 앞서 일부 친족들이 이의를 제기하면 그동안 정리해 놓은 지분율을 근거 자료로 제시하기 때문에 큰 불만을 가질 수 없는 구조다. 계열분리의 신호탄이 된 LG화재는 정부의 ‘5대 그룹 생명보험사 진출 금지’ 정책에 맞물려 분리됐다. 한때 대한생명 인수전에 뛰어들어 손해보험-생명보험을 영위하려했던 LG는 생명보험사업이 좌절되면서 LG화재를 독립시키려 했고 집안회의에서 고 구철회씨 가족들이 화재를 원해 순조롭게 분가가 이뤄졌다. LG벤처투자를 갖고 떠난 구자두씨 가족은 얼핏 ‘재산’이 너무 적어 보이지만 윗대인 구철회씨 가족에 비해 가족수가 적기 때문에 지분도 그만큼 적었다. 아워홈의 구자학씨는 한때 삼성에서 호텔신라 사장을 지내는 등 유통·서비스쪽에 관심이 많아 이견없이 분배가 이뤄졌다. 2003년 말 분리된 LS그룹은 구태회·평회·두회씨가 LG의 창업공신인데다 자녀들도 적지 않아 상황이 복잡했다. 게다가 LS전선은 허씨 가문의 고 허준구씨가 회장을 지내는 등 오랫동안 허씨들이 경영을 맡아 애착을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이 역시 ‘태평두씨’ 가족이 갖고 있던 지분과 비슷한 가치를 지닌 회사를 묶어 주면서 마무리됐다. LG그룹의 가장 큰 지각변동은 허씨들이 갖고 간 GS그룹의 분리다.GS칼텍스,GS건설,GS홈쇼핑,GS리테일을 주축으로 한 GS그룹은 자산이 18조 7200억원이나 될 정도로 규모가 컸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창업주 형제들이나 구자경 명예회장 형제에 비해 허씨들의 재산이 지나치게 많은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LG관계자는 “고 허만정씨가 처음 사업자금을 댄 이후에도 허씨들은 계속 자금을 출자했고 그 비율은 일찌감치 65대 35로 정해져 있었다.”고 밝혔다. 지분비율은 정해져 있었다고 하더라도 어떤 사업을 가져갈지에 대해서는 잠시 의견이 엇갈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허씨측은 전선사업에 마음이 있었고 지금은 형편이 어려워진 금융관련 계열사도 내심 원하고 있었다. 하지만 구씨측의 어른인 구자경 명예회장과 허씨측의 대표인 고 허준구 회장이 이미 수년전에 정해 놓은 ‘분리원칙’은 흔들리지 않았다. 2002년 허 회장이 타계했지만 두 집안의 자손들은 선대의 ‘약속’을 변함없이 이어갔다. ukelvin@seoul.co.kr ■ 필립스 “具·許씨 동업에 감명 LCD합작” 1999년 9월 LG전자에 16억 5000만달러를 투자하며 LCD합작사를 설립키로 한 네덜란드 필립스사의 크리스털리 전 회장은 합작파트너로 LG를 택한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한국에 투자를 결정하면서 파트너를 찾기 위해 거의 모든 것을 체크했는데 LG그룹의 구씨와 허씨가 50년 이상 동업자로서 아무런 잡음없이 경영하는 걸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LG는 외국기업과의 합작이 이미 13건이나 되는데 이는 LG가 양보와 타협, 신뢰를 바탕으로 한 기업이란 것을 말해 준다.” 구본무 회장의 화답도 이에 못지않았다.“동업은 결혼과 같은 것이다. 생각이 다르고 자라온 환경이 전혀 다른 남녀가 함께 사는 것처럼 동업자도 서로 신뢰를 바탕으로 양보와 타협을 잃지 않아야 한다.” LG의 58년 역사에는 숱한 합작사가 등장한다. 합작사만 한때 20개에 달할 정도였다.60년대에 이미 66년 미국 칼텍스사와 합작으로 LG칼텍스정유(현 GS칼텍스)를 설립했고,68년에는 미국 콘티넨털카본사와 합작으로 한국콘티넨탈카본을 세웠다.70년에는 일본 알프스전기와 합작으로 금성알프스전자를,71년에는 일본 포스타전기와 합작으로 금성포스타를 설립했다. 독일 지멘스, 일본 후지전기와 3사 합작으로 금성통신을 설립했고 74년에는 일본 NEC와 손잡고 금성전기를 세웠다. 80년대 들어서도 합작은 계속됐는데 84년 다우코닝과 공동출자로 럭키DC실리콘을 설립했고 84년에는 제어시스템 메이커인 미국 하니웰과 공동으로 금성하니웰을 만들었다. 이후 동업관계가 끝났지만 87년 미국 EDS와 합작으로 만든 STM(현 LG CNS),96년 IBM과 맞잡은 LGIBM도 합작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다. 현재 남아있는 LG계열사 가운데도 합작사가 적지 않다. 히타치LG는 히타치와, LG MMA는 일본 스미토모상사와 합작한 회사다.LG텔레콤은 영국의 BT가 합작투자했고 필립스와는 LG필립스LCD에 이어 LG필립스디스플레이를 합작했다. 지난해에는 일본 오키사와 함께 루셈을 만들었고 올 상반기중으로 LG전자와 캐나다 노텔사의 합작사인 ‘LG-노텔’이 출범할 예정이다. ukelvin@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김성곤차장 안미현·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시인 최영미 가족소설 ‘흉터와 무늬’ 로 데뷔

    시인 최영미 가족소설 ‘흉터와 무늬’ 로 데뷔

    1994년, 첫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는 그해 문단을 폭풍처럼 강타했다. 불현듯 불어닥친 바람에 사정없이 흔들린 건 50만 독자들만이 아니었다. 작가 자신도 사방에서 불어오는 역풍에 속절없이 몸을 내맡겨야 했다. 인신공격성 폭언과 험악한 글들 속에서 작가도, 작가의 가족들도 심하게 마음을 다쳤다. 십년 세월이 훌쩍 지난 지금, 작가는 그때 일을 사뭇 담담하게 회상한다.“‘잔치’가 ‘운동’의 상징으로 읽힐 줄 알았으면 그렇게 안 썼을 것”이라고.“사회화가 덜 된 탓에 의도하지 않게 오해를 많이 샀다.”고. 그리고 고백했다. 마흔 즈음에서야 지나온 인생을 객관적으로 돌아보게 됐고, 혹독한 자기반성을 거쳐 비로소 자신과 화해했음을. 시인 최영미(44)의 첫 소설 ‘흉터와 무늬’(랜덤하우스중앙 펴냄)는 그렇게 작가가 삶의 한 고비를 아프게 통과하는 과정에서 나온 산고의 결실이다.‘갑자기 왜 소설을?’이라는 궁금증에 작가는 “소설쓰기는 시인이 되기 이전부터 품어왔던 오랜 꿈”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92년 등단하기 전 300장 분량의 습작 원고를 들고 소설가 이문열을 찾아갔던 일화를 들려줬다. 당시 이문열은 “아직은 소설이 아니다. 하지만 세 번쯤 고치면 소설가가 되겠다.”는 말로 소설가 지망생을 격려했다. 그러나 첫 시집이 너무 잘 나간 탓일까. 등단 이후 소설가의 꿈은 뒤로 밀렸고, 마흔이 가까워져서야 옛 꿈이 다시 절실해졌다고 한다. 소설에 매달린 지난 4년간을 그는 “시인이었던 과거의 ‘나’와 소설가가 되려는 현재의 ‘나’가 치열하게 투쟁한 시간”이라고 규정했다.‘엄살 같지만’이라는 단서를 달고,“시는 정신노동이고, 소설은 정신노동에 육체노동이 더해진 노역”이라는 얘기도 덧붙였다. 글을 길게 써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늘였다 조였다 하는 과정’을 숱하게 반복하는 수고로움도 아끼지 않았다. 이렇게 해서 세상에 나온 첫 작품 ‘흉터와 무늬’는 ‘세상에서 가장 긴 이야기이자 끝이 없는 이야기’인 가족 소설이다. 방송작가 정하경을 작중 화자로 삼아 1960년대부터 현재까지 굴곡 많은 한국현대사와 궤를 같이하는 정씨 일가의 가족사를 담고 있다. 소설은 마흔넷의 하경이 거울을 들여다보며 얼굴의 흉터를 의식하는 첫 장면에서 시작해 그녀가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으로 기억을 말살했던 가족의 불운한 과거가 서서히 베일을 벗는 형식을 띠고 있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미국에 입양됐다가 불치병으로 숨진 언니와 한국전쟁에 참전해 실수로 부하를 사살하고, 평생을 우익으로 살다간 아버지 정일도가 있다. 작가는 “한국 현대사 틈바구니에서 고통받은 사람들, 훈장없는 상처를 짊어진 이들을 위로하고 싶었다.”고 했다. 또 신념에 찬 우익 정일도의 삶을 통해 흑백논리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를 보여주고자 했단다. 소설은 현재와 과거가 뒤섞인 137편의 짧은 에피소드들로 구성돼 있다. 인생의 어느 순간, 강렬한 인상으로 각인된 사건을 서술한 글들은 저마다 완결된 형식이면서 동시에 조각보처럼 맞대어져 큰 그림을 완성하는 한 부분으로 작용한다. 불연속적인 장면들로 한 사람의 인생을 재구성하는 형식적 특징은 아쿠다가와 류노스케의 단편 ‘어느 바보의 일생’에서 영향받았다. 작가와 생년월일이 같은 화자, 작가가 지나온 시대적·공간적 배경이 겹치는 탓에 얼핏 자전적 소설로도 읽힌다. 하지만 작가는 “나와 하경은 전혀 다른 인물”이라면서 “그럼에도 자전적으로 읽힌다면 독자가 속아넘어갈 만큼 그럴듯한 이야기를 지어냈다는 칭찬으로 받아들이겠다.”고 비껴갔다. 당분간은 소설만 쓸 생각이라는 그에게 다음 작품 계획을 물었다.“8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시대별로 다른 빛깔의 연애소설 3부작을 구상중” 이라고 귀뜸했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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