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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가 주목한 예술계 샛별 김선욱·박세은 ‘한자리’

    세계가 주목한 예술계 샛별 김선욱·박세은 ‘한자리’

    한국 예술계에 최근 낭보가 잇따랐다. 피아니스트 김선욱(18·한국예술종합학교 3학년)군이 지난달 24일 세계적 권위의 영국 리즈국제피아노콩쿠르에서 아시아인 최초로 우승한 데 이어 지난 8일에는 발레리나 박세은(17·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입학예정)양이 중국 베이징국제발레경연대회에서 2등상 수상소식을 전했다. 박양은 석달 전 세계 4대 콩쿠르의 하나인 USA발레콩쿠르(잭슨 콩쿠르) 주니어부문에서 금상없는 은상을 차지해 발레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둘 다 해외 유학경험이 전혀 없는 순수 국내파라는 사실이 더욱 돋보였다. 세계가 주목한 예술계 샛별들을 지난 15일 오후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만났다. 김선욱군은 “이번이 서른번째 인터뷰”라며 엄살을 부렸고, 박세은양은 “베이징콩쿠르 수상 축하공연 중 왼쪽 발가락을 다쳐 며칠 쉬고 있다.”고 근황을 전했다. 이날 처음 만난 둘은 잠시 어색해하는가 싶더니 예원학교 1년 선후배 사이임을 확인하고는 이내 10대다운 생기를 되찾았다. # 부모의 무간섭·무강요 교육법이 보약 아이가 조금이라도 예술에 소질을 보이면 부모가 나서서 영재교육을 시킨다며 호들갑떨기 예사다. 하지만 김군과 박양의 부모는 극성 부모와는 거리가 멀다.‘힘들다.’며 말리는 부모님을 오히려 설득해야 했다. 김군은 세 살때 형이 다니는 피아노학원에 따라갔다가 피아노 치는 재미에 빠졌다. 초등학교 5학년때 한국예술종합학교(예종)예비학교 시험을 치르면서 자신의 판단으로 김대진 교수의 이름을 지도교수로 지원서에 써넣을 정도로 주관이 뚜렷했다. 교사부부인 김군의 부모는 스스로 제 할 일을 척척 해내는 아들을 두말없이 믿어줬다.“연습하라는 부모님 잔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어요. 그랬다면 아마 중간에 그만뒀을 걸요.(웃음)” 박양은 초등학교 3학년때 할머니의 제의로 국립발레단 문화학교에 들어갔다. 발레는 재밌었지만 노력만큼 실력이 따라주질 않아 한동안 방황했다.“소질이 없는 것 같아 그만둘까 고민한 적이 많았지만 발레가 너무 하고 싶어서 죽어라 연습했지요.” 박양의 부모는 딸의 고통을 안타깝게 지켜볼 뿐 이래라 저래라 간섭하지 않았다. 박양은 “지금도 엄마는 ‘스물다섯까지만 발레하고, 시집갔으면 좋겠다’고 얘기한다.”며 웃었다. # 콩쿠르 수상은 목표 아닌 과정일 뿐 어려서부터 자립심이 강했던 김군은 초등학생때 콩쿠르 출전 일정을 담은 인생 계획표를 짜서 가족을 놀라게 했다. 지금까지 출전한 국제콩쿠르는 모두 다섯번, 이 중 독일 에틀링겐 콩쿠르(2004), 클라라 하스킬 콩쿠르(2005) 등에서 세차례 우승했다. 리즈국제콩쿠르 우승은 특히 의미가 크다. 사이먼 래틀이 지휘하는 런던필하모닉과의 협연 등 100여회의 연주회가 주어지기 때문이다.“매년 콩쿠르에 나간 건 우승이 아니라 세계 무대에서의 연주회 기회를 얻기 위해서였다.”는 김군은 “꿈을 이룬 만큼 앞으로 콩쿠르는 다시 나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양은 지난달 서울국제무용콩쿠르에 참가했다 큰 코를 다쳤다. 잭슨콩쿠르 우승의 흥분 때문인지 어이없는 실수가 이어졌고, 결국 순위에 들지 못했다.“많이 창피했어요. 자만했던 건 아닌데 긴장이 풀어졌었나 봐요. 덕분에 베이징에서는 좋은 성과를 얻을 수 있었지요.” 박양은 또다른 도전을 앞두고 있다. 내년 1월 스위스 로잔콩쿠르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이다. 로잔콩쿠르는 발레리나 강수진이 동양인 최초로 우승한 명성이 높은 대회다. 박양은 “오랫동안 꿈꿔온 콩쿠르여서 정말 잘하고 싶다.”며 눈빛을 반짝였다. # 정규 교육 건너 뛴 영재의 삶 김군은 초등 5학년부터 예종 예비학교에 다녔고, 중학교를 졸업한 뒤 곧바로 예종에 입학했다. 고교 생활을 날린데 대한 후회는 없다. 반면 내년 예종 무용원에 입학하기 위해 얼마전 서울예고를 자퇴한 박양은 “학교에서 친구들이랑 어울리며 배우는 점들도 많아서 갈등이 컸다.”고 털어놨다. 그럼 이성친구는? 쑥쓰러운 듯 고개를 젓는 박양이나 “바빠서 사귈 여유가 없다.”며 유쾌하게 받아치는 김군의 표정은 어느새 영락없는 10대의 모습이다. 이제 막 꽃봉오리를 틔운 이들 예비 예술가가 정명훈, 강수진을 능가하는 세계적인 대가로 성장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기쁨은 오롯이 우리의 몫이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충남 공주 영평사 구절초 축제

    충남 공주 영평사 구절초 축제

    산과 들이 붉고 화려하게 물들어 가는 계절, 가을. 소박하고도 청초한 모습으로 피어나 가을바람에 가녀린 몸을 맡긴 채 하늘거리는 꽃이 있다. 쑥부쟁이, 개미취 등과 뭉뚱그려 들국화로 일컬어지는 구절초다. 퇴락해 가는 계절의 끝자락에 피어나 보는 이의 눈을 아리게 하는 대표적인 가을꽃. 고 박용래(1925∼1980) 시인이 ‘머리핀 대신 꽂아도 좋을 사랑’이라고 노래했듯, 낮고 해맑은 모습이 여간 정겹지 않다. 어느 시인은 또 “비탈진 들녘 언덕에 니가 없었던들 가을은 얼마나 쓸쓸했으랴. 아무도 너를 여왕이라 부르지 않건만 봄의 화려한 동산을 사양하고 이름도 모를 풀 틈에 섞여 외로운 계절을 홀로 지키는 텅빈 들의 색시여….”라며 칭송하기도 했다. 구절초 축제가 한창인 충남 공주시 영평사를 다녀왔다. 붉고 화려한 옷으로 갈아입은 가을산 한자락을 하얀색으로 명징하게 빛내고 있었다. 글 사진 공주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해마다 가을이 되면 그랬듯, 영평사와 장군산 기슭이 온통 구절초로 둘러싸여 있다. 진입로에서 시작된 구절초 군락은 일주문을 지나 대웅전과 요사채 뒤편 산비탈에서 절정을 이루고 있다. 때아닌 횡재를 만난 벌과 나비들이 부산을 떨어댄다. 영평사 주변 1만여평을 하얗게 수놓은 구절초 군락은 자생적으로 생긴 것이 아니고, 영평사 주지 환성 스님이 구절초의 청초한 모습에 반해 10여년전부터 공들여 가꿔온 것이다. “13년전 만행을 하던 때에 구절초를 보았는데 청초한 모습에서 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르더군요. 나중에 알고 보니 꽃말이 ‘어머니의 사랑’이었어요. 수행자의 마음을 포근히 감싸며 순화시켜 주는 꽃이지요. 저 혼자 보기 아까워 축제를 열었는데 오시는 분들마다 마음이 깨끗해지고 행복해진다고 말씀하시더군요.” 꽃을 완상하며 무슨 의학적 효험을 따질까마는, 딸을 출가시킨 우리네 친정 어머니들은 예전부터 9월이 되면 갓 피어난 구절초를 사랑과 정성으로 채집해 그늘에 말려 두었다가 시집간 딸이 해산을 하고 친정에 오면 달여 먹이곤 했다. 그런 까닭에 구절초에는 선모초(仙母草), 신선이 어머니들에게 준 약초라는 별칭이 생기기도 했다. 일년 중 양기가 가장 충만하다는 중양절, 음력 구월구일에 채취해 달여 먹으면 특히 부인병에 좋다고도 한다. 요사채 뒤편에서 미래의 추억거리를 열심히 만들고 있던 안명석(43·대전)씨는 “탐스럽지는 않아도 멀리서 보면 소박하고 평화로운 모습에 절로 마음이 평안해지네요.”라며 머리를 주억거렸다. 안씨는 또 “막연히 가을이면 피는 꽃이려니, 뭔가 청순하지만 서러운 느낌을 간직한 꽃이려니 짐작만 했어요. 그런데 유심히 살펴 보니 닮고 싶을만큼 소박하고 청초한 꽃이네요.”라며 애틋한 여심(女心)을 내비치기도 했다. 구절초를 가까이서 들여다 보면, 깔깔거리며 웃는 어린아이와 닮았음을 느끼게 된다. 노오란 암술을 둘러싼 채 활짝 벌어진 이십여개의 꽃술이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고 있는 어린아이의 모습 그대로다. 구절초밭을 서성이다 보면 어디선가 아이들의 밝은 웃음소리가 쏟아지는 듯하다. 그 아이가 자라 여고생이 되고, 어느새 성숙한 여인이 되어 비단결 같은 머리카락에 ‘머리핀’ 대신 꽂았을 때, 소박한 구절초는 그 어느 꽃보다 화려한 꽃이 된다. # 먹을거리, 볼거리 풍성 영평사에 가면 반드시 맛봐야 할 것이 국수와 백련잎 찹쌀밥. 점심무렵이면 무료로 제공되는 국수를 먹으려는 관람객들이 줄을 잇는다. 사찰음식이 그렇듯, 일체의 조미료를 쓰지 않고 죽염수 등으로만 간을 맞춰 정갈한 맛을 낸다.2∼3년된 된장이 익어가는 장독대를 소반삼고, 청량한 공기를 반찬삼아 먹는데, 노인이건 장성한 청년이건 한그릇을 게눈 감추듯 비워낼 만큼 일품이다. 백련잎에 싸서 쪄낸 찹쌀밥을 이곳에선 연선식이라고 부른다. 반찬이라고는 달랑 고추장아찌 하나. 가격은 5천원을 받는다. 그럼 맛은 어떨까? 백련잎 위에 찹쌀밥과 고추장아찌를 얹어 한쌈을 만든 다음, 입안 가득 넣어 보시라. 화려한 맛에만 길들여져 있던 미각에 새로운 충격이 더해진다. 티베트 승려들이 모래로 재현한 만다라 시연회, 산사에서 열리는 음악회 등은 눈을 즐겁게 한다. 아울러 청소년들이 세시풍속을 재현하는 중양절 잔치, 구절초 사진전시회 등이 볼거리를 더해주기도 한다. 구절초 축제는 오는 22일까지 계속된다.(041)857-1854. # 가는 길 ●경부고속도로→천안논산간고속도로→정안 나들목→논산·공주 방향→조치원·종촌방향→은용리→영평사 ●중부고속도로→서청주 나들목→대전·공주방면 508번 지방도→연기군 조치원읍→36번국도 공주방향→산학리→영평사
  • 儒林(714)-제6부 理氣互發說 제2장 四端七情論(60)

    儒林(714)-제6부 理氣互發說 제2장 四端七情論(60)

    제6부 理氣互發說 제2장 四端七情論(60) 한양에 두고 온 분매를 그리워하면서 지은 퇴계의 영매시는 다음과 같다. “잊혀지지 않는구나, 지난해 봄 서울에서 분매 두고 돌아오는 소매 신선 바람에 스쳤더니, 어찌 오늘에서야 시냇가 나의 서재 속에, 황종률로 변했으니 그 조화 무궁하여라.(痛憶京師二月中 盆梅歸袖仙風 那知此日高齋裏 幻出黃鐘律未窮)” 이처럼 퇴계는 한양에 두고 온 분매를 오매불망 그리워하며 잊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소식을 전해들은 것은 그 무렵 퇴계의 천거로 성균관 대사성으로 근무하고 있던 고봉. 고봉 역시 지병으로 대사성을 사임하고 있었는데, 스승이 한성에 두고 온 매화를 그리워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자 고봉은 이 매분을 퇴계의 문인이었던 김이정에게 전해주어 스승에게 돌려드리도록 하였던 것이다. 김이정은 한성에서 퇴계의 손자 이안도(李安道)를 만나 부탁하며 이 분매를 배로 운반하여 온계리의 본제(本弟)로 돌려보내도록 하였는데, 이 분매가 퇴계에게 도착하였던 것은 바로 올봄. 퇴계는 1년 만에 다시 상봉하는 이 매화꽃을 보자 너무 기뻐서 다음과 같은 시제의 시사를 짓는 것이다. “서울의 분매를 호사자 김이정이 손자 안도에게 부쳐 배에 싣고 오니, 기뻐서 한 절을 읊노라.(都下盆梅好事金而精付安道孫兒船載寄來喜題一絶云)” 그러고 나서 퇴계는 그의 일생일대의 마지막 영매시를 짓는다. “붉은 티끌 일만 겁을 초연히 벗어나, 속세 아닌 이곳 찾아 이 늙은이와 벗하니, 일을 좋아하는 그대(김이정을 가리킴)가 나를 생각하지 않았더라면, 빙설 같은 그 얼굴을 어찌 볼 수 있으리오.(脫却紅塵一萬重 來從物外伴濯翁 不緣好事君思我 那見年年氷雪容)” 퇴계가 노래하였던 ‘빙설 같은 그 얼굴(氷雪容)’은 이미 한양에서 분매와 이별할 때 읊었던 ‘청진한 옥설 그대로 함께 고이 간직해주오.(玉雪淸眞共善藏)’란 내용의 시를 되풀이하여 표현한 것. 그렇다면 퇴계는 어째서 이 매분을 그처럼 그리워하였음일까. 평소에도 매화를 매형, 매군, 매선으로 의인화해 부르면서 인격체로 대접할 만큼 매화를 사랑하여 살아생전 ‘매화시첩(梅花詩帖)’이란 시집까지 간행하였던 퇴계였지만 어째서 이 매분만은 각별히 상사하였음일까. 그렇다. 그 매분은 2년 전 봄. 두향이가 은밀히 남의 눈을 피해 보내왔었던 바로 그 매화. 이 세상에서 그와 같이 얼음과 같은 살결과 옥과 같은 뼈대를 지닌 화괴(花魁)를 가꿀 수 있는 사람은 오직 한 사람. 그 매분은 퇴계와 헤어진 20여 년 동안 오로지 임을 보고 싶은 상사 하나로 분매를 가꾸고, 임을 생각하는 상사 하나로 분매를 가지치고, 임을 그리워하는 상사 하나로 꽃을 피워 퇴계가 평생 동안 처음으로 본 아취고절의 매화 한 그루를 가꾸어낸 두향이가 보낸 사랑의 정표가 아니었던가.
  • [한승원 토굴살이] 꼬마 나폴리 연안 이야기

    [한승원 토굴살이] 꼬마 나폴리 연안 이야기

    ㄹ형, 제 토굴 앞에 0자를 가로 눕혀 놓은 듯한 바다가 펼쳐져 있습니다. 서울을 버리고 온 날부터 ‘연꽃 바다’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그 제목으로 장편소설 한 편을 썼습니다. 호수 같은 바다 남쪽에는 고흥반도 산봉우리들이 뻗어나가고, 남서쪽에는 완도의 섬들이 첩첩 떠 있고, 서북쪽에는 장흥과 보성의 산들이 줄지어 있습니다. 저는 어머니 콤플렉스가 많은 글쟁이입니다. 그것을 자궁 콤플렉스, 혹은 고향 콤플렉스라고 말할 수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40년 동안 바다 이야기를 써왔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다 쓰지 못했다 싶어 고향 바닷가로 돌아왔고,‘멍텅구리 배’,‘물보라’,‘바닷가 학교’,‘검은댕기두루미’에 이어, 이 바다에서 생산되는 ‘키조개’ 이야기를 장편으로 쓰고 있습니다. 여성의 음부처럼 생긴 키조개를 통해 우주 시원의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아침저녁으로 마을 앞 연안을 산책하곤 하는 저의 사전 한 구석에는, 그 연안이 꼬마 나폴리라고 적혀 있습니다. 무지개처럼 휘움한 그 연안 동쪽에는, 사자산 엉덩이에 붙어 있는 삼비산에서 흘러온 냇물로 인해 형성된 거무스레한 모래 잔등이 질펀하게 뻗어나가 있습니다. 거기에는 갈매기 청둥오리 해오라기 물떼새들이 찾아오고, 황새와 검은댕기두루미도 한 발로 서 있다가 돌아가곤 합니다. 이사 오던 첫해 한여름에 저는 아침마다 그 연안바다 모래밭을 혼자서 땀 뻘뻘 흘리면서 청소했습니다. 그 모래밭에는 밀려온 쓰레기들이 해전으로 죽어 늘어진 시체들처럼 볼썽사납게 쌓여 있곤 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가끔 울력을 하여 그것들을 치우곤 하지만, 다음날 곧바로 불어댄 동남풍으로 인해 쓰레기들은 다시 쌓이곤 합니다. 스티로폼 부표, 헌 그물자락, 페트병, 통발들, 수초들…. 그것들을 제가 혼자서 하루아침에 십m씩 치우곤 한 것입니다. 저혼자서 그 바다를 관리하겠다는 영웅심에서 그런 것도 아니고, 저의 환경 사랑 의지를 만방에 선전하려는 만용이나 허세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유배살이를 자청하고, 스스로를 토굴 속에 가둔 저의 고독과 슬픔과 나약해지는 마음을 다잡고, 제 가슴속에 ‘이것은 내 바다’라는 확신을 심고 싶었습니다. 그 바다 한복판에 저의 뿌리를 내리려는 몸부림이었습니다. 비지땀 흘리며 하는 저의 도로(徒勞) 같은 몸짓이 보기에 민망했던지 당시의 김면장이 그해 가을부터 공익 요원들을 투입하였고, 이후로 그 바다는 계속 깨끗함을 유지하게 되었습니다. 환갑을 두 해 앞둔 때였습니다. 저는 소설 쓰는 틈틈이 저와, 바다와 씨름하며 사는 마을 사람들과 거기에 서식하는 물고기 물새 바람 해 달 별 이슬을 시편에 담았습니다. 그것들을 문학과 지성사에서 세 번째 시집 ‘노을 아래 파도를 줍다’로 펴내 주었습니다. 그 시들은, 토굴에 저를 가두고 기르는 제 자신과 바닷가를 산책할 때마다 저를 늘 환희심에 젖어들게 하는 마을 사람들의 삶과 앞바다와 하늘에 바치는 헌사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새로 부임한 젊은 조면장이 그 여닫이 연안 모래 언덕 위쪽의 아스팔트길 가장자리 숲에 600m쯤의 소로를 내고 20m 간격으로 저의 시비 30기를 세워 놓았습니다. 저의 시와 짧은 동화와 소설 한 대목들을 새긴 그 비석들은 각기 7t 무게의 바위와 보조석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바람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져 가야 할 인생임에도 불구하고, 저의 육중한 흔적들을 그 연안바다 모래 언덕길에 놓아두도록 허락한 것은 저의 허망하고 미련스러운 탐욕이 아닌지, 그 탐욕으로 인해서 나라는 인간이 하나의 상업적인 싸구려가 되고 있지 않은지, 자못 두렵고 부끄럽습니다. 그것을 두려워하고 면목 없어하는 저에게 젊은 면장은 말을 합니다.“이것은 억지로 하고자 하여 된 일이 아닙니다. 선생님의 한 발짝 한 몸짓의 일상이 이 연안 바다 모래밭의 전설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소설가
  • 350년 세월, 명품 간장을 빚다

    350년 세월, 명품 간장을 빚다

    종갓집에서 350년간 명맥을 이어온 간장 1ℓ가 500만원에 팔렸다. 충북 보은군 외속리면 하개리 보성선씨 영흥공파 종부 김정옥(54)씨는 16일 “최근 모대기업 회장댁에서 350년여간 명맥이 이어져온 우리집 덧간장 1ℓ를 500만원에 사갔다.”고 말했다. 덧간장은 햇간장을 만들 때 넣는 묵은 간장을 일컫는다. 이 간장은 지난 4월 현대백화점 본점에서 열린 ‘한국 명품로하스 식품전’에서 처음 소개됐다. 값은 1ℓ에 500만원으로 그때도 1병이 판매됐다. 전시회가 끝나고 소문을 전해들은 회장집에서 비서를 보내 현장에서 현금을 내고 가져간 것으로 알려졌다. 보성선씨는 고려말 중국 명나라에서 귀화한 조선조 명문가. 참의공파 종손인 김씨 남편은 시조로부터 21대다. 이 종가는 대대로 종부에게 간장담그는 법을 전수, 매년 20ℓ 가량을 새로 만들어 차례와 제사용으로 쓴다. 350년 전부터 햇간장을 담글 때 지난해 쓰다 남은 간장을 섞어 담근다. 재료도 엄선해 무공해 콩으로 쑨 메주에다 1년 이상된 천일염 간수를 섞어 햇간장을 담그고 아미노산·핵산 등이 풍부한 덧간장에 섞는 전통 비법을 350년간 끊이지 않고 이어왔다. 이 간장은 ‘선병국(시아버지)가옥’으로 불리는 99칸 한옥(중요민속자료 134호) 안채 장독대에 보관된다. 김씨는 가문의 전통에 따라 볕이 잘드는 장독대에 담을 치고 문까지 설치해 외부인의 출입을 엄격 통제하고 있다. 볕 좋은 늦가을 메주를 쑤어 말렸다가 이듬해 정월 장을 담근다. 솔가지와 고추·숯 등을 매단 새끼줄을 독에 쳐 액막이 하는 것도 빠뜨리지 않는다. 이 때문인지 최근 두차례 마을이 온통 물바다가 됐을 때도 간장독은 깨지거나 엎어지지 않고 반듯하게 물에 떠다니다 발견돼 350년 종가의 전통과 맛을 고스란히 이을 수 있었다. 이 간장은 맛이 진하면서도 맑고 깨끗한데다 감칠맛이 나는 게 특징이다. 명맥이 끊기는 것을 막기 위해 김씨는 몇년 전부터 장 담그는 날 시집간 딸을 불러 비법을 가르치고 있다. 한국농어업예술위원회 김진흥 박사는 “오래된 간장이 골다공증과 암 등에 특효가 있어 병을 앓는 부잣집에서 사간 것 같다.”며 “350년 전의 종균이 고스란히 이어지는 조선조 명문가의 전통과 고집이 담겨 식품학적 가치도 높고 워낙 귀해 따로 값을 매기는 자체가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보은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울 경비원 선생님은 창고방 시인이래요”

    “울 경비원 선생님은 창고방 시인이래요”

    아파트 경비원이 관리실 창고에서 어린이 새싹들을 키우고 있어 화제다. 울산시 북구 중산동 경동그린아파트 주민들은 아파트 경비원 조남훈(62)씨가 고맙기 그지 없다. 지난 7월부터 조그마한 이 아파트에서 경비원을 시작한 조씨는 대기업 임원 출신이다.1962년 한 지방지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뒤 ‘잉여촌’ 동인으로 활동하는 시인이기도 하다. 이 같은 이력을 갖고 있는 조씨가 경비원 일을 하면서 아파트 아이들을 위해 저녁시간 과외선생님으로 나섰다. 충청도 음성이 고향인 조씨는 한화그룹에서 1997년 여수 한화교육훈련원장(이사급)을 끝으로 퇴임할 때까지 26년간 근무했다. 재직시 울산의 사회복지시설 메아리학교와 인연을 맺은 것을 계기로 지난해 울산에 정착했다. 경동그린아파트 주민자치회는 지난해 7월 경비원자리가 비게 되자 우연히 조씨에게 경비원 근무를 제의했다. 조씨는 월급은 얼마를 주든지 상관없지만 대신 관리사무실에 공부방을 마련해 아이들에게 공부를 가르칠 수 있는 조건이면 경비일을 하겠다고 했다. 인생경험을 아이들에게 나눠줄 수 있으면 보람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주민들은 아이들까지 가르치겠다는 조씨를 반겨 맞았다. 조씨는 관리실 한쪽에 남아 있던 5평 남짓한 창고를 후배들의 도움을 받아 공부방으로 꾸며 ‘나눔의 글방’이라는 문패를 달고 지난 10일 오후 7시 첫 수업을 했다. 첫 수업시간, 이 아파트에 사는 초등학교 2∼3학년생 10명이 옹기종기 모여앉아 재미있게 수업을 들었다. 현재 수업을 신청한 아이들은 모두 60명. 학년별로 모아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저녁 2시간씩 수업을 한다. 가르치는 내용은 글짓기·독후감 쓰기·생활한자 등이다. 공부하는 방법 위주로 지도하고 학교에서 배우는 내용은 가르치지 않는다. 동시 짓기 실력을 길러줘 1년쯤 뒤에는 나눔의 글방 아이들의 동시집도 낼 계획이다. 수업 교재는 따로 없다. 그때그때 가르칠 내용을 복사해 나눠 준다. 복사기가 준비되지 않아 인근 약수초등학교에서 복사를 해야 하는 것이 좀 불편하다. 약수초등 민광식 교장은 “인생경험이 풍부한 분이 아이들을 가르치겠다고 나선 것은 마을을 위해 참 좋은 일로, 학교에서 도울 것이 있으며 적극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조씨는 “비좁은 공부방이지만 이곳에서 듣고 배운 것들이 밑거름이 돼 아이들이 나중에 시인도 되고, 훌륭한 어른으로 컸으면 좋겠다.”며 “건강이 뒷받침되는 동안 계속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아파트 자치회장인 안은주(43)씨는 “훌륭한 분이 경비일을 맡아준 것도 그렇지만 아이들 공부까지 가르쳐 주고 있어 주민들이 매우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며 아이들 인성교육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인근 아파트 주민들도 이 소식을 듣고 아이들 공부지도를 잇달아 부탁하고 있지만 현재의 공간에서는 다른 아파트 아이들까지는 감당할 수가 없는 형편이다. 울산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Local] 부안에 신석정 문학관 건립

    목가시인 신석정 시인을 기리는 문학관이 고향인 전북 부안군에 건립된다. 부안군은 내년에 탄생 100주년을 맞는 시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생가인 부안읍 선은리 초가집 인근에 문학관을 설립할 계획이라고 11일 밝혔다. 사업비 50억원이 투입돼 연내 4500평의 부지를 매입하고 2009년까지 150여평 규모의 문학관을 건립하게 된다. 신석정 시인은 일제시대 저항적인 시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를 발표했으며, 대표시집으로 ‘촛불’과 ‘슬픈목가’ ‘산의 서곡’ 등이 있다.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겨레말 큰사전’ 남북공동편찬사업회 이사장 고 은 시인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겨레말 큰사전’ 남북공동편찬사업회 이사장 고 은 시인

    불현듯 부질없는 상상을 해본다. 언어가 없는 인간세상을 말이다. 우선 ‘사랑한다’고 못하겠지. 또 ‘미안하다’는 말을 못해 엉뚱한 싸움판도 벌어지겠지. 이래저래 오해와 진실이 마구 뒤엉켜 결국은 멸망? 지구상에서 사용되는 언어는 과연 몇개나 될까. 학자들에 따르면 6000여개는 족히 넘는다. 또 2주에 걸쳐 하나씩 소멸된다고 한다. 이는 지구 생태계 또는 작은 부족의 멸종과 비례한다는 뜻이다. 세상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민족의 상처와 영혼을 켜켜이 담으며 살아온 우리 언어. 남북 분단 60여년, 겨레의 언어 역시 그 세월만큼 간격의 골이 점점 깊어지고 있다. 몇가지 예를 들어 보자. 남쪽에서 사용하는 ‘전업주부’를 ‘가두녀성’으로,‘도넛’을 ‘가락지빵’으로,‘반딧불이’를 ‘에디벌레’로 각각 다르게 사용한다. 또 계산기 하면 남쪽에서는 전자계산기를 연상하지만 북한에서는 컴퓨터로 통한다. 아울러 ‘해커’를 ‘헤살꾼’으로 ‘스파게티’를 ‘구멍국수’ 등으로 사용하며, 전문·학술용어의 경우 그 차이의 정도는 훨씬 심각하다. 만약 남북 의사가 같이 수술대에 있다면 시술이 불가능할 정도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아마 제주도에서 함경도의 방언까지 몽땅 비교한다면? 쉽게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지난 1970년대초였다.7·4 공동 성명과 적십자 회담 등을 위해 6·25이후 남북 당국자가 처음으로 만났다. 남측 요원이 회담장에서 서비스를 하던 북한 여성에게 “아가씨”라고 했더니 정색을 하며 “접대부로 불러주세요.”라고 당황케 했던 일화는 지금도 회자된다. 남과 북이 분단된 후 언어차이를 처음으로 실감케 한 사례였다. ●겨레말은 남한 표준어·북한 문화어·방언 합친 말 1989년 3월이었다. 문익환 목사가 평양을 방문했을 때 김일성 주석을 만나 남북 언어의 이질감을 얘기하면서 ‘통일대사전’을 공동으로 편찬하자고 했다. 이후 논의가 중단되다가 2004년 12월 13일 금강산에서 남북 편찬위원들이 만나 결성식을 가짐으로써 본격적인 출발을 하게 됐다. 이후 지난해 2월 편찬위 1차정기회의(금강산)를 시작으로 그동안 7차례에 걸친 실무접촉을 가졌고 오는 2012년까지 30만여 어휘를 담은 남북한 단일사전, 즉 ‘겨레말큰사전’을 펴내기로 했다.‘겨레말’은 남한의 표준어, 북한의 문화어, 그리고 남북의 방언을 합친다는 뜻이다. 현재 남측과 북측은 각각 방언조사 등 편찬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한글날을 앞두고 ‘겨레말 큰사전 남북공동편찬사업회’ 이사장을 맡고 있는 고은(73) 시인을 만났다. 장소는 서울 마포에 위치한 편찬사업회 사무실. 지난달 말 제7차 편찬위 평양회의에 다녀온 직후였다. 어느 정도 진척이 됐을까. 그는 “현재 ‘ㄱ’과 ‘ㄴ’ 부분을 끝냈다면서 남북 모두 관심이 높기 때문에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ㄱ’의 경우만 하더라도 올림말이 6만 9000여개에 달했단다. 남쪽은 10여군데에 대한 방언조사를 끝냈고 북측도 다섯군데를 조사해 서로 CD로 자료를 교환했다. ●우리말은 세계 10위권 유지하는 민족어 남과 북에서는 현재 ‘표준국어대사전’(50만 9000여 어휘 수록)과 ‘조선말대사전’(33만여 어휘)이 주로 쓰이고 있지만 이 사전들은 현장조사에 바탕을 두고 있지 않다. 이 두 사전에서 공통적인 것과 다른 것 20만개를 뽑고, 이들 사전에 올라 있지 않은 10만개를 새로 추가시키는 작업이다. 예를 들어 최근 조사된 호복이(전북지방, 흠씬 익도록 삶거나 끓이는 모양), 큰아베(경북, 할아버지), 쪼시락허다(전남, 하찮다) 등이 될 수 있다. “언어란 세월이 지나면서 소멸 또는 변질되지요. 우리 근대사 이후 겨레 언어가 여러 지역으로 흩어졌습니다. 연해주, 중앙아시아, 만주 일대는 물론 60년대 이후 미국으로 가지고 간 언어도 조사해야 합니다.” 아울러 “얼마전 사할린 징용자 위령제에 다녀왔다.”면서 30년대 후반부터 우리 동포가 약 15만명이 이주했는데 현재는 3만명밖에 안된다고 했다. 그만큼 우리 순수 언어도 줄어들거나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덧붙였다. 또한 남과 북 각 지역의 방언과 향토어 속에 우리 말을 찾아내는 작업도 병행된다고 부연했다. 따라서 훈민정음 창제 이후 최초로 우리 겨레말을 집대성하는 일이며, 우리 후손들이 만나야 할 ‘대사전’이라고 의미부여를 했다. 때문에 2012년 이후에도 계속 보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작업에 참여하는 남측 편찬위원들은 학자나 교수들이 대부분이지만 북한의 경우 사회과학원 소속 연구원에서 직접 관장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한글은 세계 문자 역사상 가장 경이로운 문자입니다. 또 한국어를 사용하는 인구는 프랑스어보다 많은 세계 10위권 안에 들어갑니다. 러시아어도 푸슈킨 이후 주목을 받았고 독일어는 괴테의 ‘파우스트’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지요.” 우리말도 근대문학 이후 표현력이 아주 좋아졌다고 강조했다. 그 이전의 양반들은 주로 한문 중심이었다는 것. 예를 들어 편지를 쓸 때에도 ‘기체후일향만강(氣體候一向萬康)하시옵고….’라는 식이었다. 결국 활발한 신문학 운동은 모국어 발전에 크게 기여했으며 영어, 스페인어, 중국어 등 대국어들이 횡행하는 오늘날에 우리말이 세계 10위권을 유지하게 된 것도 대단한 민족어가 아니냐고 반문했다. 하지만 고 이사장은 이런 우리글이 다음 세대에 가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걱정이 많다. 인터넷상에 계속 퍼지는 언어와 영어 등의 영향으로 우리 언어가 크게 위협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겨레말 큰사전을 통해 방향타를 잡고 또 자국어 보존을 위한 정책도 꾸준히 펼쳐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아울러 “말이란 한 시대가 지나면 사라진다.6·25 이후만 보더라도 우리말이 많이 달라졌다.”면서 고대시와 지금이 다르듯이 현재 사용되는 우리말이 나중에 고어로 남게 되고 일부는 공중에 흩어져 소멸된다고 했다. ●남북, 문화행위로써 우선 동질성 회복해야 훈민정음 창제와 관련,“당시 세종대왕은 몽골과 여진 지역에도 학자를 파견했다. 또 티베트어 연구는 물론 산스크리스트어를 사용하는 승려도 참여시키는 등 세계적 언어로 만들려고 애를 썼다.”고 했다. 실제로 몽골에 가면 당시 사신이 다녀갔다는 자료가 현재 남아 있다는 얘기를 몽골학자한테 전해들었다고 귀띔했다. 또 세종은 여진과 말갈족들을 끌어들이는 등 이주정책을 펼쳤는데 놀랍게도 아직까지 함경도 지방에 경상도 사투리가 남아 있단다. “아마 당시 한글창제 작업은 중국 몰래 했겠지요. 한자(漢字)와 다른 문자를 따로 만든다는 것은 천자(天子)를 자처하는 입장에서 볼 때 불온하기 짝이 없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래서 공표도 조심스럽게, 즉 보다 쉽게 민중에게 뜻을 전달하기 위한 글이라는 식으로 중국을 달랬지요. 또 비로소 한자 지배의 구속에서 벗어나 최초로 민중문자와 민족언어를 가졌다는 역사적 의미도 있습니다.” 칠순을 넘긴 나이에 겨레말 편찬사업에 남다른 열정을 쏟는 고 이사장. 세상에 놀러오지는 않았다고 강조하는 그는 “남북은 정치·군사적 문제만이 아닌 먼저 문화행위로써 서로 동질성을 회복하고 스며들다 보면 통일도 가능해진다.”고 역설했다. 이어 “겨레말에 의탁하여 살아온 지난 역정을 바쳐 ‘이젠 죽을 수 있다. 이제 죽어도 된다.’라는 몇년 뒤의 궁극적 감회를 예감하고 있다.”며 자신감을 내보였다. km@seoul.co.kr ■ 고은이 걸어온 길 ▲1933년 군산 출생(본명 고은태), 군산고 중퇴 ▲52년 입산,10년간 승려생활(법명 일초) ▲58년 조지훈 등의 천거로 ‘현대시’에 ‘폐결핵’ 발표로 등단 ▲60년 첫 시집 ‘피안감성’ ▲62년 환속, 재야 운동가로 활동 ▲74년 시집 ‘문의 마을에 가서’ 출간. 제1회 한국문학상 ▲86년 ‘세계의 문학’에 ‘만인보’ 연재 ▲89년 제3회 만해문학상 ▲90년 민족문학작가회장 ▲99년 미 하버드대 연구교수. 버클리대 초빙교수 ▲2004년 제4회 베를린문학페스티벌 자문위원 ▲05년∼현재 겨레말 큰사전 남북공동편찬사업회 이사장
  • [딸자랑] KAL경리이사 李起完씨 외따님 李康瑥양

    [딸자랑] KAL경리이사 李起完씨 외따님 李康瑥양

    KAL 경리이사 이기완(李起完)씨(49)댁은 주위사람이 모두 부러워 하는 「스위트·홈」. 사(社)내에서도 그 소문은 더욱 자자한데 맏이자 외동따님인 강온(康瑥)양이 같은 KAL의 2代사원이기 때문. 명주고름 같이 착하고 양순하기만 한 것이 이따님에 대한 아버지의 유일한 걱정이란다. 『얘는 도안실에서 도안을 하고 있어요. 원래 부녀(父女)2대(代)가 같은 회사에 있으려는 계획을 한 것이 아니라 한진상사(韓進商事)와 KAL이 작년에 합치는 바람에 한진쪽에 있던 얘가 이 쪽으로 온 것이죠』 무척 쑥스럽다는듯이 부녀(父女)2대(代) 사원(社員)의 연유부터 해명한다. 배화여고를 거쳐서 이대(梨大) 미대(美大) 생활미술과를 나온 것이 69년 봄, 공예「디자인」이 전공이었단다. 『손 재주가 있어서 그쪽으로 전공을 시킨 것이 잘 된것 같아요. 취직을 했어도 자기의 취미와 전공을 살리고 키우는 셈이니 좋고, 출가 후에 두고 두고 주부로서의 취미생활을 즐길 수가 있을테니 좋지요. 또 혹시 경제적으로 집안을 도와야 할 때도 쓸모가 있고-』 어머니 이(李)여사(47)가 명랑하게 여성다운 해석을 내린다. 어머니 아버지는 이 때 한꺼번에 눈을 아래로 내려 깐다. 「출가」라는 말이 몹시 서운하다는 것이다. 엄마솜씨 익히려고 부엌도 자주 출입 『47년생이니까 벌써 스물이 훨씬 넘었는데 우리 눈에는 아직도 꼭 국민학교 5학년짜리 같거든요. 제 남동생들이 장정이 다 돼서 늘 비교해 보는 탓인지』하는 아버지. 『조것이 벌써 시집갈 나이가 됐나 싶으면 가슴이 아파요. 사실 남에게 보내기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거든요』하는 어머니. 어머니의 눈시울이 젖는듯 하면서 억지 웃음을 웃는다. 『그러나 직장에서 밉상으로 굴지는 않는 모양이고 일도 곧잘 해내는 걸 보면 제 엄마와 나는 자각을 하죠. 아, 이 애도 컸구나 하고-』 아버지 이기완(李起完)씨는 일부러 처럼 화제를 돌린다. KAL배구단 「유니폼」이 강온(康瑥)양의 작품. 한진 방계회사들의 일을 모두 맡고 있는 「디자인」실(室) 이므로 일은 꽤 많고 바쁘다. 『배구단이 「유니폼」때문에 이긴다고 사원(社員)들이 이 애를 놀린답니다. 집에서나 밖에서나 어린애처럼 늘 웃는 얼굴이니까 아버지인 나에게 인사들을 꽤 해요』 요새애답지 않게 어른들에게는 격식을 찾아 인사를 하고 예절을 잘 지킨다는 인사인데 이 댁의 그런 가훈(家訓)에 강온(康瑥)양이 철저히 순종하고 있기 때문. 『제 엄마가 손재주가 있어요. 조화(造花)며 바느질, 음식 솜씨가 괜찮다는 소문인데 요즘 열심히 배우라고 이르고 있죠』 집에서 주부의 손으로 공들여 만든 약과, 강정, 유자차(茶)등이 이댁을 찾는 손님들이 놀라며 드는 음식. 『솜씨를 -대단치 않은 솜씨나마- 물려주려고 손님대접이나 잔치때는 꼭 얘를 부엌에 데리고 들어갑니다』 어머니 이(李)여사의 말이다. 그래서 「잘은 몰라도」 조금씩은 고전(古典)음식들을 할줄 아는 강온(康瑥)양의 진짜 솜씨는 아버지께 선사한 목(木)문갑, 가리개, 그리고 장신구들. 『아버지가 멋장이셔서 제 서툰 솜씨의 「커프·링크」를 별로 안써 주세요. 그 대신 아버지 옷이나 장신구 「쇼핑」은 저의 전담이지요 』 강온(康瑥)양은 아버지의 「셔츠·커프」에 달린 목각「링크」를 만지작거리면서 한마디 한다. 딸의 모습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표정은 마냥 흐뭇하다. [선데이서울 70년 2월 15일호 제3권 7호 통권 제 72호]
  • “설날엔 KTX서 승객 맞았으면…”

    이도경(27·여)씨는 KTX 열차를 타러 온 귀성객들을 바라보며 고향의 부모님을 떠올렸다. 올 1월 설 연휴 때의 기억도 생각났다. 좌석을 가득 채운 승객들과 명절의 들뜬 기분을 함께 나눴던 그 때는 바빠도 좋았다. 이씨는 210여일 동안 파업과 농성을 해온 KTX 해고 여승무원 중 한 명이다.3일 그는 열차 객실이 아닌 용산역 철도노조 건물 옆에 임시로 설치된 컨테이너박스로 나왔다. 연휴 동안 머무를 곳이다.고향인 부산에 내려가는 건 아주 오래 전에 포기했다.“이런 모습으로 고향에 가 무슨 낯으로 식구들을 만나겠어요. 당당한 모습으로 마음 편하게 어른들을 뵙고 싶어요.” 여승무원들은 지난 3월16일부터 철도공사에 정규직 고용을 요구하며 파업을 하다가 5월15일 전원 해고를 당했다. 법원 판결로 지금은 서울역과 용산역의 역사(驛舍) 안으로 들어가는 것 자체가 금지돼 있는 신분이다. 처음에는 딸이 어떻게든 소망을 이루기를 기원했던 부모들도 파업과 농성이 장기화하면서 “노조에게 세뇌라도 당한 것이냐. 정부가 너희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줄 것 같으냐. 이제 시집이나 가라.”고 채근하고 있다. 항공사 스튜어디스 출신으로 철도노조 KTX 여승무원 지부장을 맡고 있는 맡언니 민세원(33)씨는 현재 특수공무집행방해죄로 수배된 상태. 집이 서울이지만 시멘트 바닥에 장판 하나 깔고 100여명 후배들과 농성을 벌이고 있다.“우리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KTX 여승무원 문제가 여성 비정규직 문제의 대표격으로 비쳐져 고민도 많이 했습니다. 동생들을 볼 때마다 속도 많이 상했지만 지금까지 믿고 따라와주는 게 고마울 뿐입니다.”추석을 맞아 고민이 늘었다.부모님이 자꾸 송편 싸들고 찾아오시겠다고 한다. 체포영장까지 발부된 상태라 극구 거절하고 있지만 마음이 아프다. 2일에는 컨테이너박스에 오랜만에 웃음꽃이 폈다. 추석에 집에 내려가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이웃 선교회에서 송편과 과일을 싸들고 왔다. 이들은 연휴 동안 서울역과 용산역 앞에서 승객안내와 함께 자기들의 주장을 귀성객들에게 알릴 생각이다.“내년 설에는 꼭 정복을 입고 KTX 객실에서 승객들을 맞아야죠. 우리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는 걸 꼭 보여드리고 싶습니다.”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강학중 가족클리닉] 명절만 되면 머리 아픈 맏며느리

    Q대학생 아들, 딸을 둔 농사 짓는 맏며느리인데 명절이 다가오면 머리가 아픕니다. 모처럼 내려오는 동서는 직장에 다닌다고 얼굴만 내밀고 시누이들은 손도 까딱 안 하는데 집에 갈 때 시어머님은 뭐든 못 싸 줘서 야단입니다. 시집 와서 25년을 모시고 산 맏며느리는 안중에도 없고 만날 장남, 맏며느리의 도리만 주장하는 남편도 미워 죽겠습니다. 엄마는 왜 그렇게 사느냐며 힘이 돼 주는 자식들만 아니면 전 정말 이 집에서 살고 싶지 않습니다. - 이순임 - A시부모님을 모시고 농사를 지으면서 아들, 딸을 대학교까지 보낸다는 게 결코 쉽지 않은 일인데 맏며느리 역할을 하며 그 억울함을 삭이시느라 얼마나 힘드셨을까요. 남편 하나 믿고 시집 왔는데 그 남편마저 도움을 못 주니 또 얼마나 원망스러우셨을지…. 힘들고 억울한 그 심정을 혼자서만 끌어 안고 괴로워하지 마시고 남편에게 먼저 털어 놓으시기 바랍니다. 그동안 쌓였던 감정이 폭발하면서 자칫 남편을 공격하거나 시집 식구들을 비난하는 투로 비쳐지지 않도록 조심하시고요. 대학교에 다니는 아드님, 따님이 자리를 함께할 수 있다면 어머니를 대변하는 응원군이 되어 줄 수도 있겠죠. 너무 힘들고 괴로워서 남편의 입장까지 헤아리기가 무척 힘들겠지만 남편도 장남으로 살아가기가 얼마나 어려웠을까를 먼저 읽어 주실 수 있다면 금상첨화이고요. 시부모님께는 직접 얘기하기가 어려우시면 남편을 통해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전달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동서나 시누이들에게도 추석 전에 미리 전화를 걸어 부탁조로 협조를 구해 보십시오. 누군가가 내 얘기를 전달할 때 본의 아니게 그 뜻이 왜곡돼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하기 때문에 직접 부드럽게 얘기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농사를 지으면서 명절 음식을 준비하는 것이 쉽지 않을 텐데 음식을 좀 줄이거나 형제들이 음식을 한 가지씩 나누어 해 오도록 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못 먹고 못 입는 시대가 아니어서 먹고 남는 음식을 잔뜩 하느라 허리가 휘는 것보다는 부담을 조금씩 줄여나가는 지혜를 발휘하시기 바랍니다. 물론 한두 번의 시도로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되기는 어렵겠지만 이번 추석보다는 다가오는 설이나 내년 추석이 더 즐거울 수 있다면 먼저 표현하시고 협조를 끌어내셔야 합니다. 연로한 시어머님을 조금도 서운하게 하지 않고 시어머님을 변화시킬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처음에는 다소 서운해하시더라도 머지않아 며느리와 사위를 볼 나이인 맏며느리의 입장도 좀 헤아려 주십사 부탁을 드려보시기 바랍니다. 남편이 날 사랑하고, 알아서 해 주겠지 하는 생각을 갖지 마시고 평소에 원하는 바를 기분 좋게 요청하는 방법을 연구해 보시기 바랍니다. 장남으로서 의무만 많고 권리는 별로 없는 요즈음에도 자신의 할 도리를 다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아드님, 따님이 보고 자랐다면 훌륭한 자녀들로 성장했으리라 믿습니다. 이제 그 자녀들이 어머니의 고충을 이해하고 도와줄 수 있는 나이가 되었으니 자녀들을 최대한 나의 지지자, 응원군으로 생각하고 많은 대화를 나누시기 바랍니다. 커가는 따님을 같은 여자로서 많은 것을 나눌 수 있는 친구로 생각하시고요. 아무쪼록 올 추석 즐거운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한국가정경영연구소장> ●가족클리닉의 상담 의뢰는 인터넷 서울신문(www.seoul.co.kr)에서 받습니다.
  • [붉은 벽돌, 담쟁이덩굴] 엄마 같은 분

    [붉은 벽돌, 담쟁이덩굴] 엄마 같은 분

    올해로 길현자 아주머니(57세)가 샘터식구가 된 지 20년이 됩니다. 아주머니의 어머니도 7년 반 동안 샘터에서 일하셨으니 2대째 인연이지요. 연세도, 키도, 하시는 일도 같은 이순기 아주머니와 더불어 ‘회사 엄마-이모’ 같은 분입니다. 우선 매일 새벽에 출근해서 지하 1층부터 4층까지 화장실을 포함, 건물 구석구석을 말끔히 청소하십니다. 이어 월간 <샘터> 정기구독회원과 파랑새극장 회원들을 위한 안내우편 발송 작업을 도와주시고 나면 아침 10시 반이나 11시쯤 됩니다. 그때부터 식구들의 점심을 정성껏 준비해주시지요. 가끔 오후엔 출출해하는 식구들을 위해 라면도 끓여주시고 국수도 말아주십니다. 두 분 아주머니의 음식 솜씨는 이미 대학로에 소문이 쫙 났습니다. 가끔 우체부 아저씨, 이웃 건물의 경비 아저씨도 ‘초대 손님’이 되고는 합니다. 길현자 아주머니는 샘터의 ‘가수왕’이자 ‘댄스왕’이시기도 합니다. 노래방 나들이에서나 회사 단합회에서 유감없이 그 ‘끼’를 발휘하십니다. 늘 웃음이, 기쁨이 온몸에 배어 있으시지요. 제가 샘터에 온 후 11년 동안 한 번도 아주머니가 찡그린 얼굴을 하시거나 불평을 늘어놓으시는 모습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 아주머니지만 속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편치만은 않으시리라 생각합니다. 거의 혼자 힘으로, 박봉薄俸으로 1남 3녀를 너끈히 키우셨습니다. 얼마 전엔 시집, 장가까지 다 보내셨지요. 돌아가신 아저씨가 아주머니 속을 어지간히 썩인 것,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제가 “힘드시지요?” 물으면 아주머니는 “아니에요. 너무 너무 행복해요. 더구나 책과 가까이할 수 있어서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하십니다. 아주머니의 샘터에 대한 희망은 한 가지인 것 같습니다. 우리 식구들이 모두 건강해서, 기쁘고 즐겁게 좋은 책 많이 만들고 독자들에게 읽혀서, 좋은 일을 많이많이 하는 것이겠지요. 길현자 아주머니! 지금처럼 늘 건강하셔서 저희들 뚱뚱해져도 좋으니까 맛있는 음식 많이 만들어주십시오. 발행인 김성구 월간<샘터> 2006.07
  • [어린이책꽂이]

    ●잘가! 고릴라(윤수천 글, 김수현 그림, 섬아이 펴냄) ‘왕따’문제를 주제로 부각시킨 창작동화. 어린이들 스스로가 만들어 놓은 사회 안에서 의사소통하지 못한 결과로 ‘왕따’를 정의한 책은 친구의 죽음을 통해 죽음 또한 삶의 한 과정이라는 메시지도 전해준다. 초등 저학년.7500원. ●홍길동(홍영우 글·그림, 보리 펴냄) 허균의 고전소설 ‘홍길동전’이 그림책으로 변신했다. 조선사회의 모순과 제도의 부당함을 고발하는 메시지가 소박한 조선화 필치에 잘 녹아 있다. 작가는 북한 인민예술가 칭호를 받은 재일 조선인 2세. 초등생.9800원. ●어린이 동물행동학 사전(오쿠이 가즈미쓰 글, 문창종 옮김, 함께읽는책 펴냄) 인간을 포함한 동물의 행동을 입체적으로 뜯어본 교양서. 개별 종들의 습성과 특성, 여러 종들의 공통점 등을 삽화를 곁들여 체계적으로 설명했다. 초등 고학년 이상.1만 2000원. ●바퀴 달린 집(류경일 글, 박진호 그림, 아이들판 펴냄) 아이들 눈에 비친 현실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덕분에 생기와 깊이가 더해진 동시집.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기금 지원작으로,55편의 동시가 실렸다. 초등생.8500원.
  • “보령 관촌에 이문구 문학관 세우자”

    ‘관촌수필’의 작가 명천 이문구(1941∼2003)의 전집 완간을 기념하는 세미나가 28일 충남 보령시 관촌 솔밭과 대천문화원에서 열렸다. 이문구기념사업회(회장 김주영)가 주관한 이번 행사는 스물여섯권으로 완간한 ‘이문구 전집’(랜덤하우스코리아)의 봉헌제와 더불어 이문구 문학관 건립을 위한 방안을 논의하는 자리로 마련됐다. 전집 발간사업은 2004년 2월 고인의 타계 1주기를 맞아 시작한 사업으로 김윤식 명지대 석좌교수, 이경철 전 문예중앙 주간, 문학평론가 임우기, 구자황 서원대 교수 등이 편집위원을 맡아 추진해 왔다. 전집은 1960년대 등단작부터 산문, 유교시집에 이르기까지 작가의 40년 문학인생을 총 망라한 것으로 권당 300쪽을 기준으로 시기별로 정리했다. 마지막권인 ‘숨 쉬는 장승’은 작가 생전 책으로 출간된 적이 없는 작품 10여편을 실었다. 이와 별도로 이문구 작품을 연구한 논문 10여편도 별책으로 출간될 예정이다. 세미나에선 평론가 김윤식·권영민, 신준희 보령시장, 이형호 문화부 예술정책과장 등 100여명이 참석해 고인의 문학 세계를 기리는 한편 문학관 건립 방안에 대해서도 의견을 나눴다. 소설가 박덕규 단국대 교수는 “이문구의 고향인 충남 보령의 갈머리(冠村)는 이문구의 작품 못지않은 콘텐츠다. 보령을 이문구 문학의 필수 답사지로 다양하게 개발한다면 산업적 효과도 클 것”이라며 문학관 건립을 촉구했다. 또 이문구의 작품들을 주제, 캐릭터, 소재, 작중무대, 어휘별로 분류해 데이터베이스로 구축하는 사이버문학관의 개설 필요성도 강조했다.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딸자랑] 梨大 金用濟씨 막내 따님 金東惠양

    [딸자랑] 梨大 金用濟씨 막내 따님 金東惠양

    이대(梨大) 법정대(法政大) 교수 김용제(金用濟)씨는 여성전유(女性專有)의 「캠퍼스」에서 뿐만 아니라 자택에서도 소녀들 틈에서 시간을 보내는 행복한 신사(紳士)다. 여러방면으로 서로 다른 재능을 보여 흐뭇하게 해 주는 딸만 4공주를 둔 아버지다. 모두 아버지를 숭배하지만 막내따님 동혜(東惠)양은 제일 대단한 숭배자란다. 『딸만 넷이니까 누구를 내 후계자로 삼겠다 하고 기르질 않아서인지 성격들이 같질 않고 취미나 좋아 하는 것들도 다 달라요』 막내인 동혜양은 식품영양학이 전공. 새 봄에 2학년이 되지만 아직은 「프레시맨」. 그위로 셋째따님 동윤(東允)양은 생활미술과 전공. 원래가 조소(彫塑)방면에 취미가 있는 금년 졸업의 학사. 둘째따님 동실(東實)양은 졸업한 독문학사(獨文學士). 시집가서 미국에 살고 있는 맏따님 동진(東眞)양은 가정과(家政科) 전공. 『전공도 이렇게 다른 아이들이 취미도 가지 가지예요. 동혜 이 녀석은 음악을 좋아하고 소질도 있어 보여요. 「피아노」도 곧잘 치고 「기타」를 잘 탑니다. 학교에서 「채플」시간에 「기타」 연주를 하기도 하고…. 이 방면으로 꽤 파고 들어가 보고싶은 의욕을 느끼고 있는가봐요. 그런가 하면 무용에도 소질과 흥미가 있는 것 같아요. 고등학교 때 공부는 물리 화학 수학에 재미를 붙였거든요. 이공과(理工科) 계통을 전공하겠다는 막연한 결심은 그때 벌써 하고 있었어요. 졸업 임시해서 어른이 되더라도 영양(營養)사같은 직업을 가지면 좋겠다고 하면서 식품영양학과를 택하더군요』 그런데 세째는 음악에는 별로 흥미를 보이지 않고 다른 자매(姉妹)들이 악기를 만지는 일을 부러워 하지도 않은채 손으로 만드는 것에만 몰두를 해 왔다는 것. 둘째는 서도(書道)를 하는 독문학사다. 따님들의 다채로운 재능과 취미를 소개하는 아버지를 동혜양은 정말 숭배자답게 자랑스러운 말투로 가로 막는다. 『저희들의 취미가 그렇게 다채로운 것도 아버지 덕택이에요. 아버진 굉장히 하시는게 많으세요. 승마도 하셨죠. 「펜싱」도 하셨고 권투도 하셨대요. 미술, 서도, 음악, 전부 하세요. 셋째 언니가 아마 제일 아버지 닮았나봐요. 재주가 제일 있거든요. 큰 언니들은 아버지 따라서 승마도 하고요』 무척 양순한 표정으로 언니와 아버지 자랑이 끝없다. 딸 넷 모두가 한결같이 이화가족(梨花家族) 『같은 것은 모두 이화(梨花)가족이라는 거에요. 첫째는 이대(梨大)사대부속중고등학교가 생기기 전이어서 이화여고(梨花女高)를 나왔지만 나머지는 모두 「이화부속」에 대학도 이대니까요』 『시중도 곧잘들 들어 주는데 해 주고는 꼭 손을 내밀거든요. 구두 닦았다고, 유리 닦았다고…』 여름이면 아름다운 녹지대(綠地帶)가 되는 넓은 정원을 가꾸는 어머니 李여사를 따님들은 또 열심히 돕는다. 『아버지는 여행도 좋아 하세요』 『68년에는 아버지 어머니 단 두분만의 세계1주 여행을 3개월이나 했어요』 3개월 세계일주끝에는 미국에 있는 맏이 동실씨 집에 엄마만 2개월 더묵었다. 『그동안에 이녀석들 셋이 살림하고 있었죠. 둘째는 은행에 다니는 중이었기 때문에 셋째 넷째가 살림을 맡아 주었습니다』 『셋째 언니는 워낙 살림을 잘 해요. 전 그때 별로 한 일도 없는 걸요』 [선데이서울 70년 2월 1일호 제3권 5호 통권 제 70호]
  •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둘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둘

    글 김성동 | 사진 이승희 길이 끝나는 곳에는 공항이 있었다. 가없고 위 모를 하늘길 좇아 어디론가 떠나고 또 돌아오는 하늘 밑에 벌레들로 공항 기다림방(대합실)은 저자바닥이었는데, 견딜 수가 없었다. 오박육일 동안 필사적으로 곡차만 마셨으므로 화두가 자꾸 끊어졌다. 금방이라도 무엇이 넘어올 듯 구역질이 치밀어오르면서 라리라라리 삼삼은 구요 구구는 팔십일로 어지럽고 울렁거리고 빠개지듯 골치는 또 쑤셔오는 것이었다. 날카로운 쇠붙이로 애를 훑어내리는 것 같은 속쓰림을 달래기 위해서는 다시 또 곡차를 마셔야 할 것이었는데, 사바하. 주막은 보이지 않았고 향고양(담배) 또한 올릴 수 없었다. 눈이 내리고 있었다. 어머니가 시집올 때 풀솜할머니(외할머니)가 원앙금침에 넣어주셨다는 햇솜처럼 희고 탐스러운 함박눈이 만다라꽃잎처럼 쏟아져내리고 있었다. 네 둘레는 온통 깨끗하게 빨아 넌 옥양목 호청 빛깔이었는데 뿡빵뿡빵 자동차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동구권에는 눈이 드물다는데, 손뼉 소리인가. 알제리 바닷가에서 비롯될 토굴생활을 북돋워주는 축하의 박수 소리. 길게 내어뿜는 망상번뇌 너머로 보이는 것은 비행기였고, 나는 숨을 삼키었다. 길라잡이하는 번역원 사람은 내가 인천공항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알고 차례를 밟고 있지만, 미안하다. 나는 알제리 보살과 뫼르소 바닷가로 갈 것이었다. 우리는 남몰래 짬짜미(밀약)를 하였고 이제 그 처녀보살 마하살만 나타나면 된다. 길라잡이한테 인생 노선이 바뀐 것을 말하고 알제리 가는 비행기표를 끊으면 된다. 나는 바지 속에 손을 넣어 강연료가 담긴 봉투를 만져보았다. 청춘의 한 시절이 빗살처럼 스치고 지나간다. “눈을 감으셔요.” “눈을 감으라구요?” “얼르응.” 나는 눈을 감았고 여자사람이 말하였다. “꼭 감으셔야 돼요.” “꼬오옥.” “꼬옥.” 감고 있던 두 눈을 힘주어 더욱 감던 나는 “아” 하고 숨을 삼키었다. 숨이 멎는 것 같았다. 내 입술에 와 닿는 내 것이 아닌 입술의 느낌을 똑똑하게 알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뫼르소 바닷가로 갑니다.” 다식판으로 박아낸 것처럼 선이 뚜렷한 입술을 떠올리며 나는 몸을 돌리었지. 그리고 옆허구리(옆구리) 서늘한 산죽山竹 밭 틈서리로 희미한 치받이(오르막)를 도두밟아(발끝에 무게를 두어 힘들게 밟아) 올라가는데, 아흐. 귀여운 처녀였지. 어여쁜 여자였지. 사랑스러운 보살이었지. 오도독오도독 소리가 나게 이빨로 꼭꼭 깨물어주고 싶을 만큼 너무도 귀엽고 너무도 어여쁘며 너무도 사랑홉아서(사랑스러워서) 아흐 숨 한 번 쉬는 동안에도 팔만사천 번씩 입 주기를 하여주고 싶은 사람이었지. “우우-” 퍼부어내리는 눈발을 향하여 소리를 질렀는데, 대답이 없다. “우우-”는 그 여자사람과 짬짜미한 군호(암호)였다. 산속에서 길을 잃었을 때는 물론하고 보고 싶을 때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입 주기를 하고 싶을 때면 쓰기로 한 비밀주였다. “알제리이이-” 산속 아닌 바닷가라서 거시기하기는 하지만 그곳 또한 중생들 사는 사바세계리니. 무엇을 하든 두 사람 밥이야 굶겠는가. 유럽·아프리카 중생들하고 참선도 하고 명상도 하고 바둑도 두다가 안 되면 진서도 가르치고 붓글씨도 가르치고 정 안 되면 콩트라도 쓰고 에세이라도 써서 알제리보살이 번역해서 원고료 받으면 되지 않겠는가. 지아비는 씨 뿌리고 지어미는 밭 매면 되지 않겠는가. 땀 흘려 일하는 틈틈새새로 본디 성품자리 들여다보면 되지 않겠는가. 나날 삶이 이와 같을진대 서방정토로 가지 않고 또 어디로 가겠는가. 알제리여, 횃불을 밝히지 말라. 우리 함께 어둠 속을 걷자. 그렇다. 집시가 되자. 나는 염불을 때릴 테니 너는 알제리와 불가리아 민요를 불러라. 알제리는 오지 않는데, 나는 무엇을 기다리는가. 진실로 내가 기다리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아침부터 밤까지 그리고 또 아침부터 밤까지 내가 얼을 기울여 기다리고 있는 것은 짜장(정말) 무엇이란 말인가. 부처를 이루기 위한 위없는 깨달음의 세계인가. 한뉘(한평생)를 던져서라도 오직 한 장 그림으로 건지고 싶은 관음보살 미소인가. 영육을 던져 한 자루 뼈로 합쳐질 수 있는 오롯한 여인인가. 넋의 문학인가. 죽음인가. “전화 좀 받아보세요.” 길라잡이한테 잡혀 기다림방으로 들어가는데 손전화기를 건네준다. 알제리였다. “나는 알제리를 못갑니다.” “그런 법이….” “부모님한테 들켰어요.” 서쪽에서 왔다가 동쪽으로 갔고 동쪽에서 왔다가 서쪽으로 갔다니 우습구나 달마 찾는 중생이여 동쪽에서 오면 서쪽이 되고 서쪽에서 오면 동쪽이 되니 온 곳은 어디요 간 곳은 또 그 어드메더란 말이뇨. 내 마음 김성동_열여덟에 고등학교를 자퇴, 출가하였고 스물아홉에 운명처럼 환속했습니다. 하산 이태 후에 대표작 <만다라>(1978)를 세상에 냈고, 그때 평단은 “우리 문학계도 드디어 순도 높은 구도소설 한 점을 얻었다”며 그의 비범한 역량에 찬사를 보냈습니다. 그간 작가는 소설 <풍적風笛> <피안의 새> <꿈> <길>, 산문집 <미륵의 세상 꿈의 나라> <생명기행> 등을 통해 존재의 근원에 대한 치열한 고뇌를 보여주었습니다. 월간<샘터>2006.09
  • [이주일의 어린이책] 故임길택 작가가 엮은 초등생 시집 2권 출간

    “…천천히 걸어서 가는 길은 힘들지만 보고 듣는 것이 많습니다. 하지만 자동차로 후딱 쉽게 가버리면 아무것도 배우지 못합니다.”(동화작가 권정생의 추천글 중에서) 1997년 세상을 떠난 동화작가 임길택 선생님이 엮은 어린이 시집 2권이 보리에서 나왔습니다.‘아버지 월급 콩알만하네’(김환영 그림)와 ‘꼴찌도 상이 많아야 한다’(정지윤 그림)라는 재미난 제목이 붙었지요. 그런데 의미가 보통 깊은 동시집들이 아니랍니다. 평생 교단에 섰던 작가가 그 밝은 눈으로 간추린 코흘리개 초등생들의 천진한 시들입니다. 꼬맹이 작가들의 맑은 시선이 닿은 곳은 저기 멀리 소란한 세상과 담을 친 가난하고 조용한 강원도 산골이구요. 매끈한 글솜씨를 자랑할 리 없는데, 풋내나는 거친 글들이 정말이지 대단한 향기를 뿜어댑니다. 삐뚤빼뚤 맞춤법은 틀렸어도 세상읽는 눈만큼은 한치 틀리는 법 없는 침묻은 연필심 끝에 무심한 동심이 매달립니다.1980년 ‘사북사태’를 맞은 탄광촌 아이들에게 아마도, 선생님이 ‘아버지’를 글감으로 시를 써보라 하셨겠지요. 검댕투성이에 툭하면 술주정을 하는 아빠의 모습을, 신통하게도 따뜻이 끌어안아주는 속여문 아이들입니다. “토요일이라/언니가 교회를 가서/내가 밥을 담았다./나는/아버지가/조금 잡수시는 걸 알면서도/많이 담았다./하지만/아버지는 많이 남기셨다.”(‘아버지의 밥’) “내가 아버지께/우주여행을/하고 싶다고 하니까/아버지께서/아버지도/꼭/데리고 가거라 하셨다./그러자 나는/술 안 잡수시고/담배 안 피우시면요/라고 대답했다.”(‘우주여행’) 책장을 넘기다 보면 권정생 작가의 추천글이 똑 맞는 소리다 싶어집니다. 넘치게 많아 탈인 요즘아이들에게 이 동시집들은 여러 생각거리를 던져줍니다. 누리지 못해도 만족할 줄 아는 마음. 넉넉한 마음이 행복하게 전염될 글들은 ‘골찌도 상이 많아야 한다’에도 수북하거든요. 산골마을(정선 봉정 분교)에서 날아온 손때절은 시들에 가슴 풀리고마는 건 시간문젭니다.“바람 부는 날에는/대추가 지붕 위에/탁탁탁 하면서 떨어진다.//어머니는 방 안에서/대추 돈을 먼저 받아놨는데/대추는 자꾸만 떨어진다고/걱정을 하신다.”(‘바람 부는 날’)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시짱박물관 곳곳 ‘서남공정’ 흔적

    시짱박물관 곳곳 ‘서남공정’ 흔적

    “역사는 우리를 맞으며 달려오고, 우리는 역사를 향해 달려간다(歷史迎我們走來 我們向歷史走去).” 라싸 시내 시짱 박물관의 머리말(前言)은 ‘역사가 현실을 위해 복무(服務)하는’ 중국식 역사 해석의 전형을 드러내고 있다. 박물관은 역사와 유물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보다는 설명에 주력하는 인상이 짙다. 전시실 앞에 내걸린 서문(序文)의 상당수는 ‘중앙과 지방정부간의 관계는’이라고 시작한다. 예를 들어 티베트 특산품 옥(玉)에 대해 “중화민족은 전세계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을 만큼 오랜 기간 옥(玉)을 숭상해 왔다. 원(元)·명(明)·청(淸)나라 시기 티베트와 조국(祖國) 내지(內地)의 관계가 발전 단계에 진입, 티베트는 많은 양의 옥을 조공으로 바쳤다.” 도자기 전시실에는 “티베트가 옥을 조공으로 바친 데 대해 중앙 정부는 도자기 제품을 하사했다.”고 표현했다. 이미 8세기에 의학사전을 펴낼 만큼 발달한 티베트 의학에 대해서는 “중국 의학의 보고(寶庫)로서 진주처럼 빛나는 2000년 역사의 티베트 의학”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박물관 개괄은 “원·명·청나라와 중화민국의 중앙 정부가 하사한 것과 시짱 지방정부가 소장하고 있는 티베트족 유물 등 4만여점이 보관돼 있다.”고 적고 있다.“중공중앙(中共中央)과 국무원, 자치구 인민정부의 정확한 영도 아래 티베트는 세계가 주목할 만한 성취를 이뤄냈다.”는 대목도 나온다. 통일국가 형성 이후 양자의 역사에 대한 해석은 이렇다.7세기 강력한 통일국가를 이룬 송첸감포 왕에게 당(唐) 태종(太宗)이 문성공주를 시집보낸 사실을 소개한 뒤,“정치 관계의 발전에 따라 경제·문화 교류가 강화됐고 이로써 통일국가 형성의 기초를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이같은 내용의 서남공정 관련 자료와 연구 결과는 ‘시짱자치구 당안관(案館·문서보관국)’에 집대성돼 있다. 중국의 원·명·청나라가 시짱에 관리를 파견했다거나 달라이라마를 승인했다는 등의 문서와 인장 등도 포함돼 있다. 당안관의 기록 진열실 입구의 서문에는 “시짱은 중국의 불가분한 영토의 일부이며 이를 주제로 한 귀중한 자료들이 이곳에 보관돼 있다.”고 적혀 있다. jj@seoul.co.kr
  • [공직초대석] 윤보영 시쓰는 청소년위원회 사무관

    [공직초대석] 윤보영 시쓰는 청소년위원회 사무관

    ‘커피에/설탕을 넣고/크림을 넣었는데/맛이 싱겁군요/아/그대 생각을 빠뜨렸군요.’ ‘문학의 죽음’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빠름과 가벼움의 시대에서는 ‘일상 너머의 언어’인 시(詩)를 마음에 품는 이를 찾기 어렵다. 청소년위원회 정책홍보팀 윤보영(45) 사무관은 인터넷을 무기로 잊고 지내던 그리움과 희망을 노래한다. ●3만명 팬 거느린 공무원 시인 윤 사무관은 1998년 겨울, 계간지 ‘지구문학’에서 동시 부문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시를 쓰기 시작한 것은 그해 봄.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산골 송사리의 하소연’을 우연히 읽은 동료가 본격적으로 써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권유했다.1984년 공직에 들어선 뒤 접어두고 있었던 ‘문청(文靑)’의 꿈이었다. 이후 ‘그대가 있어 더 좋은 하루’ 등 모두 11권의 시집을 펴냈다. 작품 소재는 철저히 ‘지상의 것들’이다. 빌딩과 하늘, 그리고 커피 등 일상을 통해 일상 너머에 자리잡고 있는 사랑에 대한 그리움을 담는다. 시를 쓰는 ‘서재’는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에서 성수동 집을 오가는 지하철 안,‘원고지’는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 입력창이다. 그러다 보니 시어가 여간해서 40자를 넘지 않는다. 윤 사무관은 온라인에서 훨씬 유명한 시인이다. 그의 시 카페 ‘바람편에 보낸 안부’(cafe.daum.net/YUNBOYOUNG)의 회원은 초등학생부터 60대까지 3만 1000여명. 수많은 인터넷 카페와 블로그에 그의 시가 인용돼 있을 정도다. ●많이 읽혀 좋은 시 쓸 것 인터넷에서 주로 활동하는 까닭에 그의 ‘정체’는 오랫동안 알려지지 않았다. 감수성 넘치는 문체 때문에 여성으로 오해하는 사람도 많았다. 그는 “독자들이 내가 남자인 것에 놀라고, 또 직업이 공무원인 것에 두번째로 놀란다.”며 미소지었다. 흐뭇한 일도 많았다. 한 40대 여성은 초등학교 6학년 딸아이가 윤 사무관의 시집을 보고 ‘내가 결혼할 때 선물로 해달라.’고 하더라는 사연을 인터넷 카페에 남기기도 했다. 독자들을 위한 전국 규모의 행사도 2년 전부터 갖고 있다. 올해는 새달 28일 그의 고향인 경북 문경의 성보예술촌에서 예정되어 있다. 윤 사무관은 청소년들을 위한 시를 쓰고 싶다고 했다. 이들의 온라인 용어도 시어로 활용할 참이다. 그는 “좁아지는 한국 시의 영역을 넓히려면 다양한 문학적 시도가 나와야 한다.”면서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시를 계속 쓸 것”이라고 말했다. 글 사진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생태농법에 ‘문화농법’까지 곁들여 포도밭 가꾸는 시인 류기봉씨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생태농법에 ‘문화농법’까지 곁들여 포도밭 가꾸는 시인 류기봉씨

    경기도 남양주시 장현리에서 17년째 포도농사를 짓는 ‘농부시인’ 류기봉씨. 고 김춘수 시인의 애제자이다. 스승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매년 9월이면 ‘포도밭 작은 예술제’를 연다. 올해는 포도수확도 좋아 행복한 9월이라며 활짝 웃는다. 오른쪽에 ‘김춘수 나무’ 앞에 생전의 친필시 ‘디딤돌’이 내걸려 있다. 오로지 정직을 흙에 묻어두고 산다. 농부는 아침일찍 포도나무에게 라디오의 시사대담 프로를 들려준다. 밤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궁금할테니까. 해가 떠오르면 클래식 음악을 틀어준다. 모차르트 교향곡 41번 C장조를 더욱 좋아한다. 거친 포도는 곧 부드러워지고 달콤해진다. 그래서 포도는 바람이 난다. 낮에는 민들레와, 달뜬 밤에는 달맞이꽃과 뜨겁게 포옹한다. 지난 주말이었다. 경기도 남양주군 진접읍 장현리, 한 농부시인이 17년째 가꾸는 포도밭에는 ‘아주 특별함’이 있었다. 입구에 들어서자 숙성된 포도냄새가 확 풍겨오더니 시큼한 여운이 어금니를 간지럽힌다. 포도밭을 지키는 하얀 진돗개가 그걸 아는지 고개를 갸우뚱하며 꼬리를 흔들어 반긴다. 포도밭 한가운데서 천진한 아이들 소리가 들려온다. 그 곳으로 귀를 기울이며 다가갔다. 서울에서 왔다는 두 가족의 식구들이 신기한 듯 포도밭을 맨발로 걸어다니고 있었다. 또 아이들은 직접 포도를 따며 마냥 즐거워한다. 농부시인은 손님들에게 이렇게 설명한다. “여기는 자연농법만을 사용합니다. 빗물막이용 비닐하우스가 없고 농약을 전혀 쓰지 않지요. 자연상태에서 햇볕을 받고 자라야 단맛과 신맛이 잘 어우러집니다. 발효된 각종 풀과 한약재료를 지렁이한데 주면 지렁이가 배설하고, 포도나무는 그걸 먹고 이렇게 탐스런 열매를 만들어내지요. 또 자기 몸에서 나온 포도즙, 포도순도 먹이고 있습니다.” 이때 누군가가 이 광경을 무비카메라에 열심히 담고 있었다. 관심있게 쳐다보자 “저희는 대학생입니다. 단편영화를 찍고 있거든요.”라고 소개한다. 주제를 물었더니 ‘시가 있는 포도밭’이란다. 맞다. 포도밭, 농부, 시인, 달빛, 술, 시와 그림들만 하더라도 훌륭한 ‘단편영화’는 되겠지. 여기엔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것들로 가득채워진다. 우선 포도나무마다 시인들의 이름표가 붙어 있다. 그 옆에는 친필시가 내걸려 있어 발길을 붙잡는다. 포도밭 중앙에 2년 전 작고한 김춘수 선생의 시가 문득 눈에 들어온다.‘天使는 프라하로 가서 시인과 함께 즐거운 식사를 하고/반 고흐는 面刀날로 제 한쪽 귀를 베고 있었다./누가 가만 가만히 디딤돌을 하나하나 밟고 간다.’(디딤돌) 조정권 시인의 ‘포도와 당나귀와’도 걸려 있다.‘당나귀는 여름내내 언덕을 오르내리며 고된 물통을 져다 날랐습니다./포도밭의 포도알들이 알알이 익어가고 그 중에서 제일 크고 잘 익은 송이들은 그분의 몫이지요….’. 서정춘 시인은 ‘그가 포도를 따먹고 있다. 그녀의 젖꼭지를 똑, 따먹은 시늉으로….’라는 시구절이 눈길을 끈다. 이밖에도 노향림 문태준 이문재 정진규 박완서 등 내로라하는 문인들의 체취가 포도나무에 걸려 있어 말 그대로 ‘포도밭 시화전’이었다. 이뿐이랴. 포도밭에서는 매년 9월 첫째주 토요일 ‘포도밭 작은 예술제’를 개최해왔다.9년전 김춘수 시인의 아이디어로 시작됐다. 올해에는 지난 2일 이수익 고두현 이덕규 시인 등 20명의 문인과 독자 150여명이 참석, 성황을 이루었다. 시 낭송도 하고 라이브 공연 등 작은 음악회도 열렸다. 끝무렵에는 포도를 발로 밟아 포도주를 만드는데 이때 빚은 포도주는 다음해 예술제 행사때 쓰인다. 포도밭 주인 류기봉(42)씨. 농부시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지난 93년 김춘수 선생의 추천으로 현대시학에 등단했다. 까닭에 생전의 김춘수 선생을 각별히 모셔 문단의 훈훈한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동안 ‘장현리 포도밭’‘포도눈물’‘자주 내리는 비는 소녀 이빨처럼 희다’ 등의 시집을 연달아 발간,‘포도시인’이란 별칭도 생겼다. 최근에는 산문집 ‘포도밭 편지’를 펴내 ‘글수확’의 영역을 넓히고 있다. 또 ‘사단법인 흙살리기참여연대’에서 제정한 ‘2006년 흙사랑생명사랑 상’을 수상했다. 이날 오후 손님들이 돌아간 후 류 시인과 마주앉았다.9월은 1년 농사의 결실을 맺기도 하겠지만 아무래도 스승 김춘수 시인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득한 계절이다. 그래서 스승 얘기를 먼저 꺼냈다. 류 시인은 생전에 스승의 집을 일주일에 두번씩 꼬박꼬박 찾아 안부를 묻곤 했다. 그랬던 것처럼 지금도 매달 한번씩 누워 계신 스승의 묘지(경기도 광주)를 찾아 “스승님, 저 류군 왔습니다.”라고 큰 절을 올린 뒤 주위의 잡풀을 뽑고 돌아온다. 또 가끔 가평, 양평, 광주 등 함께 나들이했던 음식점에 가서 혼자 식사를 하며 생전에 스승과 나눴던 대화를 떠올리곤 한다. 프랑스의 한 시골마을 포도밭에 다녀온 얘기며, 돌아가시던 해에 “올해 포도 예술제 행사는 내가 직접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어 흥을 돋우겠어.”라고 했던 모습 등등을 생생하게 떠올린다. “다행히 선생님과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눴을 때 녹음을 많이 해두었습니다. 그때도 줄줄이 받아적기만 하면 전부 주옥같은 시가 됐지요. 또 ‘류군 이거 가지고 가’하면서 대학때 깨알같이 적어두었던 메모노트 등 여러 흔적들을 제게 남겨주시고 떠나셨습니다.” 그래서 류 시인의 꿈은 ‘김춘수 문학관’ 설립이다. 이곳에 스승이 남겨준 문학적 유품을 전시할 생각이다. 포도농사를 열심히 짓는 것도 꿈을 이루기 위한 과정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올해 포도농사는 어떻게 됐을까.“포도밭은 3000평되지만 출하용으로는 1000평정도밖에 안된다.”면서 나머지 2000평은 포도밭 분위기를 내는 정도라고 말했다. 하지만 올해는 작년과 달리 햇볕을 잘 받아서인지 수확량이 약간 늘어 매출액을 5000만원정도로 추산하고 있다.“유기농으로 재배한 지 10년된 나무들 중에서는 약 80%,5년된 나무에서는 50%가량이 튼실한 열매를 만들어내고 있지요. 보통 유기농으로 자리잡히려면 토양 자체가 바뀌어야 하기 때문에 보통 7∼8년은 걸립니다.” 그가 유기농법으로 바꾼 것은 1994년 어느날이었다. 밭에 제초제를 뿌리는데 풀들이 살려달라는 아우성같은 소리를 들었던 것. 그날로 생각을 바꿔 충북 괴산의 한국자연농업학교에 들어가 유기농법을 배웠다. 하지만 갑작스런 변화로 오히려 나무들이 스트레스를 받아 열매들이 볼품없어지고 또 껍질이 두꺼워진다는 사실을 체험했다. 유기농법을 사용한 첫 해 수확량은 고작 200만원정도. 나무 10그루 중 겨우 1그루만이 열매를 맺었다. “유기농법으로 바꾼 후 포도농사가 자꾸 실패하자 김춘수 선생님이 하루는 이런 제안을 하셨지요.‘포도밭에다 그림도 걸어 놓고, 음악회도 열고, 시낭송도 하고, 문화상품도 곁들이면 어떻겠는가. 마침 자네도 시를 쓰면서 포도농사를 짓고 있으니 좋은 조건 아닌가.’라고 말입니다.” 스승의 권유대로 지난 98년 처음으로 ‘시인 류기봉 포도밭 시 그림전’을 열었다. 이는 유기농법에 이어 최초의 ‘문화농법’을 접목한 셈이다. 이후 해마다 20여명의 시인과 소설가들이 햇포도가 출하되는 9월초에 만나 작은 행사를 꾸준히 열고 있다. 일반인들에게도 소문이 나 올 9월에는 매주 200여명씩 찾고 있다. 원래 류 시인은 신학대학에 입학했지만 평소 시인이 되고픈 열망을 버리지 못해 수업만 끝나면 청계천 헌 책방을 자주 찾았다. 결국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낮에는 농사짓고 밤에는 시를 쓰는 ‘농부시인의 길’을 걸었다. “시 공부를 해서 시인 자격증(등단)을 땄지만 시는 돈이 안된다. 그렇다고 17년 농사했는데도 역시 돈이 안된다.”고 씁쓰레하게 웃는 농부시인. 하지만 “포도밭에 귀 기울자, 내 삶과 시가 꽃을 피웠다. 포도나무는 그렇게 내 삶의 뿌리이자 시감(詩感)의 원천이 아닌가.”라고 하며 구멍뚫린 밀집모자를 푹 눌러쓰고 다시 포도밭으로 향했다. km@seoul.co.kr 사진 김현호 제공 ■ 그가 걸어온 길 ▲1965년 경기 가평 출생 ▲83년 광동실업고 졸업 ▲85년 군입대 ▲90년 한국성서대학 외국어학과 졸업 ▲93년 고 김춘수 선생의 추천으로 ‘현대시학’에 등단 ▲98년∼현재 ‘포도밭 작은 예술제’개최 ●주요 작품 장현리 포도밭(2000년, 문학세계사), 자주 내리는 비는 소녀 이빨처럼 희다(04년, 글나무), 포도눈물(05년, 호미), 포도밭편지(06년, 예담) 등 ●수상경력 2006년 흙사랑생명사랑상 수상(사단법인 흙살리기참여연대 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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