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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제는 공공외교다] 장기적 콘텐츠로 외국인 공감 얻어야

    프랑스 파리에서 지난달 10일 열렸던 한국 아이돌 그룹 공연장 주변은 아침부터 몰려든 유럽 젊은이들로 넘쳐났다. 기대를 뛰어넘은 공연 성공에 한류가 아시아를 넘어 유럽을 ‘점령’했다는 보도가 한국의 신문과 방송을 도배했다. 한국 정부까지 나서서 ‘한국문화교류의 전당(가칭) 건립’을 내세우며 호들갑에 동참했다. 정부가 장기전략 없이 한류 바람에 편승해 단기 실적만 챙기려는 징후가 곳곳에서 감지된다. 지난 9일 영국 런던 트라팔가 광장에선 K팝 팬들이 한국 아이돌그룹 공연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당시 현장을 지켜본 한상희 건국대 법학대학원 교수는 “카세트를 설치하는 한국 사람과 그가 ‘팀장님’이라고 부르는 한국 사람, 한국문화원에서 나온 사람들 … ‘에이 왜 안 모여’라고 정확한 한국어 발음으로 투덜거리는 사람들이 상당수였다.”고 꼬집었다. 프랑스 라호쉘 대학 에블린 셸리키에 교수(한국어·문화 과정)는 유럽 한류의 수준을 냉정하게 진단한다. 그는 “K팝 팬 대부분이 한국에 대해 아는 건 수박 겉핥기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기성세대의 현실은 더 냉정하다. “삼성이나 현대가 일본 브랜드인 줄 아는 경우도 있다. 한국에 대한 인식 수준은 북한보다도 떨어진다.” 한국사회가 ‘한류’에 유럽보다 더 취해 있을 때 파리 에펠탑 인근에 위치한 일본문화원은 평소와 다름없이 차분하게 일본 문화를 알리는 활동을 하고 있었다. 일본문화원이 눈길을 잡는 건 에펠탑 바로 옆 노른자위 땅에 자리한 건물이 아니라 1층 기념품 가게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 프랑스어로 된 일본 관련 단행본 때문이었다. 유럽 어느 한국문화원에서도 볼 수 없는 광경이다. 유럽내 일본 문화의 저력은 헤르만 반롬푀이 유럽연합 정상회의 상임의장이 일본 전통시인 하이쿠(俳句) 시집을 내고, 자크 시라크 전 프랑스 대통령 등 각계에 포진한 친일인사 등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정부가 관심을 쏟고 있는 ‘한류’는 공통점이 있다. 음식, 영화, 드라마, 음악. 모두 당장 ‘돈’이 되는 것들이다. 당장 돈이 안 되는 한국문학 번역지원사업은 “대부분 자비출판 형식인데다 조악해서 읽고 싶은 마음이 사라진다.”는 한 스페인 유학생의 지적처럼 조급증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최근 수십년의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일본학과 지원자가 오히려 더 늘었다는 독일 하이델베르크대학 사례는 한국을 알리는 작업이 얼마나 ‘인내와 끈기’를 필요로 하는지 되돌아보게 한다. 한국의 국가이미지를 높이고 외국 시민 개개인의 ‘이해와 공감’을 얻어 한국의 품격을 높이자는 담론은 넘쳐나지만 장기적이고 큰 그림에 입각하지 않으면 한때 잘나가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 ‘홍콩 영화’ 전철을 밟을 수도 있다. 장기적 안목과 일관성을 강조하는 ‘공공외교’가 한국에 필요한 이유다. 파리·런던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名품, 狂풍] 여중생도 직장女도 신부들도 명품앓이

    명품족은 소수 부유층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명품 브랜드에서 내놓는 제품의 종류와 가격대가 워낙 다양하다 보니 명품을 사는 사람들은 천차만별이다. 여중생들도 명품 브랜드 지갑을 흔히 들고 다니며, 친구들끼리 택시를 이용해 경기 여주나 파주의 아웃렛으로 명품 쇼핑을 떠나기도 한다. 직장 여성들이 명품 가방을 사려고 계를 드는 것도 자주 보는 일이다. 샤넬 가방은 수백만원대이지만 귀걸이와 같은 작은 액세서리는 20만원대 초반부터 시작한다. 명품 가방을 사기 버거운 이들은 유리나 플라스틱으로 된 명품 브랜드의 액세서리라도 사서 ‘명품족’이 된다. 요즘 유행 가운데 하나는 ‘꾸밈비’(시집에서 예단비를 받고서 신부에게 일부 돌려주는 돈)로 명품을 장만하는 것이다. 시어머니와 장모에게도 결혼 때 명품 가방이 선물로 오가는 경우가 많다. ‘샤테크’(샤넬+재테크)를 위해 신혼여행을 아예 유럽으로 떠나기도 한다. 유럽에서 사는 가방 가격과 국내 백화점 가격이 적게는 몇십만원, 많게는 몇백만원까지 차이나기 때문이다. 샤넬이 가방값을 올린다는 소문이 나면 마네킹이 들고 있던 가방까지 팔릴 정도로 매장이 북새통을 이룬다. 하지만 한·EU 자유무역협정(FTA) 발효에 따라 에르메스가 지난 15일 이례적으로 평균 5.6% 가격을 내렸을 때 매장을 찾는 손님이 특별히 늘지는 않았다. 에르메스에서 가장 대중적이며 많이 팔리는 스카프가 세계 시장과의 가격 균형을 이유로 인하 대상에서 제외된 탓도 있지만 한국의 명품족들이 브랜드 충성도보다는 명품 이름값 자체에 민감함을 보여준다는 방증이었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백만장자와 결혼하는 법’ 강좌 개설한 학교 논란

    중국 베이징에 있는 한 학교가 ‘부잣집에 시집가기’라는 이름의 수업을 개설한 것이 알려져 논란이 되고 있다고 로이터 등이 최근 보도했다. 이 학교는 30시간 코스에 3000달러의 수업료를 받으며, ‘고객’들에게 더욱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는 메이크업을 비롯해, 남자의 표정을 읽고 거짓말을 알아채는 법 등을 가르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또 한눈에 남자의 성격을 읽는 방법과 차 따르는 법 등 전통적인 스킬을 빨리 익힐 수 있도록 돕는다. 학교 측은 자신들의 특별 수업으로 이미 30쌍의 커플이 만남과 결혼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중국의 백만장자 숫자는 하루가 다르게 늘고 있는데, 올해 미국 경제지 포브스의 조사에 따르면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100명의 리스트에 포털사이트 바이두의 CEO인 로빈 리가 중국 최초로 순위에 올랐다. 이 학교의 설립자인 퉁 샤오는 로이터와 한 인터뷰에서 “우리학교는 여성들이 자신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돕는다.”면서 “특히 지방에서도 부유한 중산층이 증가하면서 수업이 인기를 끌고 있다.”고 설명했다. 중국에서 돈 많은 남자와의 결혼이 곧 성공한 결혼이라는 물질주의적 인식은 이미 팽배해진 상황이다. 곳곳에서 펼쳐지는 공개맞선 현장에서는 부유한 남성의 아내가 되기 위해 비키니 심사도 마다않는다. 이 같은 현상은 이미 사회적 관심을 넘어 문제로까지 여겨지면서 잘못된 결혼관과 지나친 물질주의를 비판하는 여론이 거세지고 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외국인도시 길을 묻다] 일본어 교습·법률상담 제공… 주민들과의 벽 허물었다

    [외국인도시 길을 묻다] 일본어 교습·법률상담 제공… 주민들과의 벽 허물었다

    일본에서는 외국인들이 모여 사는 밀집 지역이 별로 없는 편이다. 한국인들의 상가가 밀집돼 있는 신주쿠 신오쿠보에 코리아타운이 형성돼 있지만 상업 지구다. 외국인의 주거지는 특정 지역을 중심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 신주쿠를 비롯해 도쿄 전역에 비교적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에도 아시아에서 제일 큰 차이나타운이 있지만 상업 시설 위주로 분포돼 있다. 도요타 자동차가 들어서 있는 아이치현 도요타시를 비롯해 시즈오카현 하마마쓰시 등 공장지대에 브라질 이주민들이 살고 있지만 대부분 일본계 브라질인들이어서 일본 사회에 동화된 측면이 강하다. 오히려 지난 1990년대부터 시작된 국제결혼으로 인해 농촌 지역에 외국인들이 일본인 남편들과 다수 거주하고 있다. 야마가타현이 외국인들의 이주 정책이 비교적 성공한 지역이다. 지난해 12월 현재 야마가타현에는 중국인 2872명을 비롯해 한국인 2032명, 필리핀 682명, 베트남 163명, 브라질 117명, 미국인 155명이 거주하고 있다. 특히 도자와 무라는 20년 전부터 외국인 여성들을 성공적으로 정착시키기 위해 각종 정책을 펴 효과를 거둔 모범 지역으로 꼽히고 있다. 대학교수를 매주 초빙해 외국인 신부들을 대상으로 일본어 교실을 열어 일본말을 배우게 했다. 외국인 신부가 임신을 하게 되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을 것을 우려해 산부인과 의사는 물론 정신과 의사로부터 정기적인 진단도 받도록 배려했다. 외국인 여성이 이혼이나 재산상속, 가족 양육 문제 등과 관련해 법률지식이 없다는 점을 감안해 일본 법률상담 센터도 운영하고 있다. 외국인을 어머니로 둔 자녀들이 원활하게 학교생활에 적응할 수 있도록 ‘학교장과의 간담회’ ‘국제아동의 보육에 대한 의견 교환회’ 등을 정기적으로 개최하고 있다. 도자와 무라 사무소의 마에다 고에는 “국제 결혼이 추진되면서 처음에는 외국인 주부들에게 언어, 자녀보육과 교육 문제 등이 발생했다.”면서 “하지만 지역주민들과의 끊임없는 대화를 추진하는 행정력을 펴면서 이런 문제들을 해소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지난 1990년 이곳에 시집온 이승호(49)씨는 “처음에는 주민들이 자주 조선적이라고 불러 상처를 받았다.”면서 “하지만 행정기관의 도움으로 주민들과 마음을 열면서 고려촌까지 세울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글 사진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최승자 시인 1년 만에 ‘물 위에… ’ 새 시집

    최승자 시인 1년 만에 ‘물 위에… ’ 새 시집

    1980년대를 흔히 ‘시(詩)의 시대’라고 일컫곤 했다. 시인 최승자(59)는 그 시절 한복판에서 시대를 아파하고 절망의 밑바닥을 보여주며 시대에 할퀴어진 사람들을 다독였다. 당대를 대표했던 최승자는 시가 구원이 될 수 있음을 문청뿐 아니라 보통의 사람들에게도 어렴풋이나마 느끼게 했다. 지난해 초 그가 11년 만에 다시 시 동네로 돌아왔을 때 문단 안팎에서 일제히 환호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 최승자가 1년 남짓 만에 다시 시집을 냈다.
  • 정신 극한까지 치올라가 아프고 슬픈 희망을 노래

    ‘물 위에 씌어진’(천년의시작 펴냄)은 시인의 일곱 번째 시집이다. 지난해 시집 ‘쓸쓸해서 머나먼’이 경북 포항의 한 정신병원을 오가며 쓴 작품들이었다면 이번 시집은 그가 첫머리에 밝혔듯 ‘정신과 병동에서 쓰여진 것들’이다. 왜 처음부터 엄포 놓듯 명토 박아둔 것일까. 그는 몸과 마음이 아프다. 시도 한없이 아프고 슬프다. 몸은 한없이 안으로 잦아들고, 마음은 자꾸 몸 바깥으로 벗어나려 한다. 문학과 철학, 심리학, 인류학 등에 걸쳐 광대무변하게 축적된 인문학적 사유들이 최승자의 시어(詩語) 바깥으로 툭툭 튀어 나가 저 스스로 생명 가진 양 행세하는 모양새가 최승자의 바뀐 시 세계다. 특유의 절제되고 압축된 언어는 여전하지만 절망의 극한을 보여주기보다는 초자연적이고 상징적인 주제로 내뻗쳐졌다. 이번 시집을 통해서는 그가 많이 단련되었음을, 그래서 자신을 객관적으로-한 걸음 떨어져서-바라보고 있음을 보여준다. 시인 신경림이 “사람의 정신이 가닿을 수 있는 극한까지 치고 올라가 예사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우주와 사람의 때묻고 얼룩지지 않은 발가숭이 모습을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평한 데는 이유가 있다. 최승자는 ‘나는 다시 돌아왔다/세상의 모든 나무 그림자들이/한없이 길어지는 오후/나는 다시 돌아왔다//사프란으로 떠난 그녀는 돌아오지 않는다/나는 다시 돌아왔지만/사프란으로 떠난 그녀는/영영 돌아오지 않으려 한다’(‘나는 다시 돌아왔다’ 중)라고 노래한다. 그리고 시 ‘하룻밤 검은 밤’에서처럼 ‘그때 누가 자꾸 내 이름을 불러주더라/죽지 말라고/ 아직은 살 때라고’라는 희망도 넌지시 내비친다. 표사를 쓴 시인 김정환이 새삼스레 확인시켜준다. “네 이름이 승자 아니더냐.”라고. 병마와의 싸움에서도 승자(勝者)가 될 수 있다는 어렴풋한 자신감이 시집 앞머리에서 자신의 병력을 당당히 밝힐 수 있는 동력이 됐음을 짐작하게 한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정가은 미코동기들 비키니 몸매 노출 “발리의 여신”

    정가은 미코동기들 비키니 몸매 노출 “발리의 여신”

    정가은 미코동기들이 화제에 올랐다. 정가은과 미스코리아 동기들이 함께 비키니 몸매를 드러낸 것. 방송인 정가은은 지난 14일 방송된 케이블채널 QTV ‘순위 정하는 여자 시즌4’(순정녀)에 출연해 발리 여행 사진을 공개했다. 미스코리아 동기들과 함께 지난 해 찍은 사진으로 정가은은 가장 왼쪽에 서서 검은 비키니 차림으로 늘씬한 몸매를 뽐내고 있다. 정가은은 2001년 미스코리아 선발대회 경남 선 출신이다. 이날 방송에서 정가은은 “시집가기 전 좋은 추억을 만들기 위해 노처녀들끼리 넷이 갔다. 외국인들도 우릴 보고 흐뭇해했다”라고 밝혔다. 네티즌들은 “역시 미코들은 다르다”, “네 미녀에 바다가 호강이다”, “멋진 몸매에 안구정화” 등 뜨거운 반응을 보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nownews@seoul.co.kr
  • 외국 음식 즐기고 다문화 가족 돕고

    안남미에 해물과 각종 양념으로 볶은 태국 볶음밥, 훈제 오리와 각종 생야채를 라이스페이퍼에 싸먹는 월남쌈... 전남 영광군 영광읍에 위치한 다문화 음식점 ‘초원의 집’에서는 베트남, 태국, 일본, 필리핀 등 4개국 8가지 종류의 음식을 한꺼번에 맛볼 수 있다. 전남도의 예비사회적 기업인 연한가지㈜에서 운영하는 기부형 식당으로 수익금 일부분은 이주여성과 함께하는 외국어 교육, 소외계층 청소년 교육사업 등에 기부된다. 사회적 기업은 비영리조직과 영리기업의 중간 형태로 사회적 목적을 추구하면서 영업활동을 수행하는 기업이다. 취약계층 고용창출과 지역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대안기업이기도 하다. 연한가지㈜가 다문화 음식점을 선택한 것은 지역 내 다문화 가정이 매년 증가하는 상황에서 이들에게 일자리를 제공, 경제적 자립을 돕고 내국인들에게 각국의 음식을 소개하는 등 다문화 가정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기 위해서였다. 지난 1월 개업한 뒤 다문화 가정의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식당에는 한국인 조리장과 함께 다문화 가정주부 4명이 현지 음식을 직접 요리하며 손님들을 맞고 있다. 6년 전 필리핀에서 영광으로 시집온 메리안(27·여) 씨는 14일 “요리가 즐겁다. 내가 만든 음식을 먹고 맛있다고 하면 기분이 좋다.”며 “돈도 벌고 일하면서 다른 외국인 친구들을 만날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힘든 점도 없지 않다. 농촌지역이라 아직 외국 음식이 낯선 데다 자치단체 보조금으로는 각종 경비를 겨우 맞출 정도다. 연한가지㈜ 김성덕 대표는 “문화적 이질감을 해소하는 다문화 음식점에 대한 정책적 지원이 아쉽다.”고 말했다. 영광 최종필기자 choijp@seoul.co.kr
  • 귀화 여경 ‘중국댁’ 김영옥 순경, 검거실적 뛰어나 특별승진

    귀화 여경 ‘중국댁’ 김영옥 순경, 검거실적 뛰어나 특별승진

    중국에서 귀화해 해양경찰에 입사한 여경이 특별 승진했다. 2009년 7월 해양경찰 중국어 특채 순경으로 임용돼 현재 목포해경 대형 함정 3009함에 승선하고 있는 ‘중국댁’ 김영옥(34) 순경. 12일 중국어선 검거 실적 등 현장 업무에 공적이 뛰어나 경장으로 특진했다. 김 경장은 지난 한 해 동안 불법조업 중국어선 검문검색 통역요원으로 중국어선 30척, 350명을 검거하는 데 공을 세웠다. 특히 지난해 12월 신안군 흑산도 만재도 해상에서 기상악화로 전복된 화물선에서 15명 선원을 구조하는 데도 큰 몫을 했다. 김 경장은 “사명감을 갖고 더욱 열심히 일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억척 중국댁’으로도 유명하다. 중국에서 전남 해남으로 시집온 지 9년 만에 해남군 문화관광해설사로 활동했는가 하면, 대불대 중국어과에 편입, 교사 자격증을 취득한 1남 1녀의 엄마다. 해양경찰이 되기 위해 바다 관련 서적을 틈나는 대로 읽고, 체력시험을 위해 강도 높은 훈련을 받기도 했다. 목포 최종필기자 choijp@seoul.co.kr
  • “아내와 함께한 30년 그 자체가 감동”

    “아내와 함께한 30년 그 자체가 감동”

    시인 고은(78)은 2002년 이후 매년 가을이면 ‘노벨문학상 홍역’을 앓는다. 유력한 노벨문학상 후보라는 스웨덴 안팎의 전언 속에 경기 안성에 있는 자신의 집 앞으로 몰려든 취재진에 시달려야 했고, 최근 몇 년은 곤혹스러움을 피하기 위해 발표 즈음 아예 집을 비우고 다른 곳으로 떠나 있곤 했다. 앞으로도 노벨상을 수상하기 전까지는, 비슷한 과정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 ●“30년 전 냈더라면 도종환 다음쯤…” 이처럼 지역과 민족, 국가, 시간의 경계를 뛰어넘어 인류의 보편과 우주의 광대함을 웅혼하게 노래해온 고 시인이 연시(戀詩)들을 모아 시집을 냈다. 그의 문학 생애 첫 사랑시집이다. 118편의 시에 한결같이 사랑의 순정과 희열, 감동을 빼곡히 담아낸 ‘상화 시편’(창비 펴냄)은 오롯이 그의 아내 한 사람만을 위해 쓰였다. 제목부터 사뭇 노골적이다. ‘상화’는 부인(이상화·64, 중앙대 영문과 교수) 이름이다. 6일 서울 중구 무교동의 한 음식점에서 기자들과 만난 고 시인은 “한 인간으로서 갖고 있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억제할 수 없어서 나에게 막 찾아오는 시를 그냥 옮겼다.”면서 “30년 가까이 함께 살아온 시간 동안 일상 속 티끌 같은 시간의 집적 그 자체가 감동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1980년대 후반에 이 시집을 내고 싶었는데 아내가 만류해서 내지 않았다.”면서 “그때 냈더라면 도종환(베스트셀러 시집 ‘접시꽃 당신’의 시인) 다음은 갔을 텐데…”라며 껄껄 웃었다. ●“결혼 후 작품 아내 이상화 교수 합작” 고 시인과 이 교수는 1983년에 결혼했다. 28년이 흘렀으니 데면데면해질 때도 됐다. 더욱이 각각 여든,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다. 그럼에도 고 시인은 “이 만용을 용기라고 부르겠다.”면서 내밀하면서도 열정적인 사랑을 세상에 드러냈다. 그래 놓고는 막걸리 두 잔을 거푸 들이켜며 싱글거렸다. 그는 “상화가 없었다면 나는 아마도 15년 전쯤 지수화풍(地水火風)으로 돌아갔을 것”이라면서 “결혼한 뒤 써 나간 내 작품들은 모두 아내와의 합작품”이라고 아내에 대한 찬사를 거듭했다. 또 “우리 부부는 무갈등 이론의 전범과도 같아 한 번도 부부싸움을 하지 않았다.”면서 “보면 볼수록 좋고, 어쩌다가 싸우려면 한 쪽이 없어져 버리니 싸우고 싶어도 싸울 수가 없다.”고 덧붙였다. 점입가경이다. 이쯤 되면 ‘팔불출’도 울고 갈 정도다. 부부는 서로의 생일 때 시와 편지를 주고받는다. 고 시인의 시집 첫 장은 아내 이 교수의 시 ‘어느 별에서 왔을까’가 장식하고 있다. 부창부수다. “아내의 시가 더 좋은 것 같다.”는 말에 고 시인은 “오늘 들은 얘기 중 최고의 찬사다. 집에 가서 꼭 전해줘야겠다.”라며 천진스레 웃었다. 낯간지럽게 드러난 연정이 노골적이라 오히려 자연스럽다. ●“볼수록 좋은데 싸울 틈 없지” 그의 시 한 구절 ‘아내의 둘레를 돌 때마다/ 나의 한쪽이 빛난다’(‘공전’ 중)는 시집의 부제 ‘행성의 사랑’을 설명하는 아내에게 바치는 헌사다. 30년에 걸쳐 30권으로 완간한 ‘만인보’에도 차마 담지 않은, 가장 소중한 사람은 따로 있었던 것이다. 그는 ‘상화 시편’과 함께 또 다른 시집 ‘내 변방은 어디 갔나’(창비 펴냄)도 내놓았다. 인류와 생명의 역사를 아우르는 고은 특유의 웅장한 발화를 접할 수 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이종원 선임기자 카메라 산책] 산부인과 신생아 병동을 가다

    [이종원 선임기자 카메라 산책] 산부인과 신생아 병동을 가다

    “여보! 이 악물고…조금만 더! 힘을 줘. 옳지. 잘한다.…” 지난달 26일 새벽 강남구 차병원 산부인과 가족분만실. 새 생명이 탄생하는 진통이 이어진다. 짧은 순간이지만 출산의 고통을 아내와 함께 나누기 위해 허인환(40)씨가 택한 가족분만실이다. 남편의 손을 잡은 산모의 힘이 다해 갈 즈음, 예쁜 공주님이 힘찬 울음소리로 엄마와 세상을 향해 인사한다. 새벽 2시 33분. 김명희(36)씨는 7시간의 산고 끝에 3.8㎏의 우량아를 낳았다. 아빠가 된 허씨는 “노산이라 걱정을 많이 했는데 건강한 아기를 낳은 아내가 고맙다.”며 엄마와 아기를 이어 주던 탯줄을 자른다. 결혼 6년 만에 어렵사리 들어선 아기. 산모의 나이를 고려할 때 제왕절개로 출산하는 게 맞지만 김씨는 자연분만을 선택했다. 아기와의 감격스러운 첫 만남을 고스란히 느끼기 위해서다. 첫딸을 만난 엄마의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내 아기 맞죠? 내가 엄마가 된 거죠? 감사합니다.” 그녀는 흘러내리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고 고맙다는 말을 연발한다. 엄마를 찾아온 아기에게, 분만 내내 곁에서 지켜 준 남편에게, 생명 탄생을 돕기 위해 분주히 뛰어다니던 의료진에게….생애 최고의 기쁨을 위해 생애 최대의 고통을 기꺼이 감수한 그녀에게 이 순간만큼은 그 모든 게 축복이다. 하루 평균 22명의 신생아가 태어난다는 서울 중구 제일병원. 오전 10시 면회시간만 되면 신생아실 앞은 아이를 보려는 산모와 가족들로 북적인다. 커튼을 젖히고 아기의 번호를 보여 주면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아기와 만날 수 있다. 그렇게 면회를 온 사람들 틈으로 연세 지긋한 어르신들이 한 아기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 “아이고 천상, 오서방 쏙 빼닮았네.” 정순임(62)씨는 3대 독자에게 시집간 딸이 낳은 외손자가 너무도 사랑스럽고 고맙다. 바로 옆 바깥사돈 앞에서 한껏 어깨가 으쓱해진다. “아가야 할아버지~ 해 봐.” 자식 키울 때보다 손자가 더 예쁘다더니 오칠중(66)씨는 휴대전화 카메라로 친손자의 얼굴을 담기에 바쁘다. 간호사들이 3교대로 24시간 아기들을 돌보는 신생아실. 세상에 나오는 과정은 아기들에게도 쉽지 않다. 이곳에서 아기들의 호흡, 맥박, 체온 등을 체크하는데 간혹 안타까운 모습도 있다. 호흡이 불완전해서 산소치료를 받거나 황달로 응급처치를 받는 아기들이다. 초보 엄마들에게 ‘신생아 입원실’이라고 하면 하늘이 무너진다. 조임경씨 아기는 태어나자마자 호흡 불안정으로 신생아 중환자실로 갔다. “무리해서 자연분만을 했나.” “더 나빠지면 어쩌나.” 초산이라 모유 수유도 처음인 데다 출산 직후에는 모유의 양도 많지 않아 이래저래 힘들다. “대부분 하루,이틀이면 좋아져 정상으로 돌아간다.”는 의료진의 말도 전혀 귀에 들어오질 않는다. 그녀는 “아이를 낳아 봐야 엄마 마음을 안다고 하는데 이제야 그 의미를 알 것 같다.”고 울먹였다. 새 생명이 움트는 공간인 신생아병동은 늘 팽팽한 긴장감이 감돈다. 기나긴 고통과 기다림은 생애 가장 아름다운 만남을 위한 통과의례다. 미래의 동량(棟梁)인 새 생명의 탄생. 한 가족에게 그보다 아름답고 신성한 일은 없을 터. 태어난 아기들의 건강하고 멋진 앞날을 기원한다. 글 사진 이종원 선임기자 jongwon@seoul.co.kr
  • [씨줄날줄] 상수(上壽)/박홍기 논설위원

    중국 후한 때 명장 마원이 반란군 진압을 위해 출정할 뜻을 밝히자 광무제가 말렸다. “나이가 너무 들었다.”며 주저하자 마원은 “비록 예순둘이지만 갑옷을 입고 말을 탈 수 있으니 어찌 늙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라며 훌쩍 말에 뛰어올랐다. 광무제는 “확삭(矍鑠·늙은 이가 기력이 정정하고 몸이 잼)하도다.”라며 허락했다. 마원은 평소 말해온 “노당익장(老當益壯)”을 실천해 보인 것이다. 후한서 마원전에 나오는 ‘나이가 들수록 기력과 의욕이 왕성해야 한다.’는 노익장의 유래다. 평균 수명이 길어져 요즘엔 70세 고희(古稀)쯤 돼야 노인 축에 낄 정도다. 세계보건기구(WHO)의 ‘2011 세계보건통계 보고서’는 우리나라 국민의 평균 기대수명을 80세로 잡고 있다. 남성은 76세, 여성은 83세다. 때문에 77세 희수(喜壽), 88세 미수(米壽), 91세 망백(望百) 등 나이를 헤아리는 한자어도 어렵지 않게 보고 들을 수 있다. 특히 나이를 상중하로 나눌 때 최상이라는 상수(上壽), ‘그 나이가 되기를 바란다’는 기원지수(期願之壽)를 일컫는 100세도 낯설지 않다. 그만큼 오래 사는 데다 젊은이들 못지않게 노익장을 과시하는 늙은이들이 세계적으로 적잖다. 나치 점령 때 레지스탕스 운동에 가담했던 프랑스인 스테판 에셀은 93세라는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세계를 향해 “무관심이야말로 최악의 태도”라며 ‘분노’를 외치고 있다. 그의 35쪽짜리 작은 책 ‘분노하라’는 프랑스에서 200만부나 팔렸다. 우리나라에서도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사흘 뒤면 만 100세가 되는 일본인 시바타 도요가 지난해 3월 발간한 첫 시집 ‘약해지지 마’는 올 1월 100만부 판매를 기록했다. 104세의 현직 판사도 있다. 1962년 미국 존 F 케네디 대통령 시절 종신직인 캔자스주 연방지법 판사로 지명된 웨슬리 브라운은 휠체어에 의지하지만 지금도 법정에 나와 재판하는 등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통계청이 그제 발표한 ‘100세 이상 고령자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1일 현재 100세 이상 노인은 1836명이다. 5년 전에 비해 무려 91%나 늘었다. 절제된 식생활과 낙천적인 성격, 규칙적인 생활 등이 비결이라고 한다. 의료시설 및 의술 등 사회 환경 개선도 한몫 하고 있다. 고령화 속도가 빠르게 진행되는 상황에서 노인 복지에 한층 신경써야 할 때다. 노인들의 삶이 즐겁고 따뜻한 사회는 모두가 꿈꾸는 세상 아니겠는가. 시바타가 ‘…난괴로운일도/있었지만/살아 있어서 좋았어/너도 약해지지 마’라고 읊조렸듯 긍정의 힘이 넘치는 그런 세상. 박홍기 논설위원 hkpark@seoul.co.kr
  • ‘배달되지 않는 편지’ 강인섭 전 의원 통일시 낭송행사

    ‘배달되지 않는 편지’ 강인섭 전 의원 통일시 낭송행사

    언론인 출신의 시인 강인섭(75·관훈클럽 33대 총무) 전 의원이 24일 오후 3시 서울 반포동 심산 김창숙 기념관(지하철 9호선 구반포역 5번 출구)에서 ‘배달되지 않는 편지’라는 제목의 시 낭송 행사를 갖는다. 6·25 전쟁 61주년을 맞아 한국시낭송문예협회 주최로 진행되는 이번 행사에서 강 전 의원을 비롯한 여러 시인들과 시낭송가들은 호국영령을 추모하면서 민족의 염원인 통일에 대한 열망을 담은 통일시 18편을 낭송한다. 이 밖에 트럼펫 연주와 판소리 등 다양한 공연도 선보인다. 강 전 의원은 195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산록’으로 등단했다. 동아일보 기자를 거쳐 14대, 16대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시집 ‘녹슨 경의선’, ‘녹슨 경의선과 그 이후’, ‘강인섭 통일시집’ 등과 ‘4·19 그후’ 등의 정치평론집이 있다. 이영준기자 apple@seoul.co.kr
  • [주말 하이라이트]

    ●남자가 운다(KBS2 일요일 밤 11시 15분) 조직에서 잘나가던 조폭 남수(손현주)는 어느 날 암에 걸렸다는 시한부 선고를 받고 충격을 받는다. 조용히 삶을 마감하기 위해 기도원을 알아보던 남수는 과거 자신이 제거한 친구 종길이 결혼하려고 했던 영채를 찾아 강원도로 간다. 그곳에서 종길이 죽기 전 가진 딸 주희와 함께 민박집을 운영하며 가난하게 사는 영채를 보게 된다. ●걸어서 세계속으로(KBS1 토요일 오전 9시 40분) 바알베크는 현존하는 로마 유적 중 가장 거대한 규모를 자랑한다. 400년에 걸쳐 신전을 건축하는 동안 무려 10만 명의 노예가 10세대에 걸쳐 동원됐다고 하는데…. 태양의 신 바알을 모신 고대 신전부터 로마신화의 최고의 신 주피터 신전, 그리고 술의 신 바쿠스 신전 등 장엄하고 뛰어난 신전들을 함께 감상해 본다. ●체험! 삶의 현장(KBS2 토요일 오전 7시 30분)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나라, 대한민국. 그만큼 바다는 우리에게 중요한 곳일 수밖에 없다. 바다 위 사건사고를 해결하고 해양주권수호에 앞장서는 이들이 바로 해양경찰이다. 우리나라 국토면적의 4.5배를 차지하는 넓은 바다를 쉼 없이 누비며, 24시간 바다를 지키는 해양경찰의 업무에 탤런트 현석이 함께한다. ●그것이 알고싶다(SBS 토요일 밤 11시) 고등학교 미적분 문제를 풀어내는 6살짜리 꼬마 등 매스컴을 통해 ‘영재’들을 종종 접해 왔다. 얼마 전 영재 판정을 받은 초등학교 3학년 승호도 그 중 한 명이다. 과연 이 아이가 우리나라 교육 환경 속에서 어떻게 자라가게 될지 함께 알아본다. ●학자의 고향(KBS1 일요일 오전 6시 40분) 탁월한 문장력과 깊은 학식. 최치원은 글로 대륙을 움직인 이방인이었다. 적장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든 격황소서로 최치원의 명성은 날로 높아져 갔다. 그는 당나라에서 더 인정받은 인재였다. 하지만 격황소서로 황제에게 자금어대를 하사받은 그가 돌연 신라로 돌아온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늘 푸른 인생(MBC 일요일 오전 6시 10분) 뽀빠이 이상용의 진행으로 대안(大安)마을을 찾아간다. 이름처럼 편안한 경기도 평택시 현덕면의 마을이다. 시아버지, 며느리로 오해받기 일쑤인 부부, 호된 시집살이에 가출한 아내의 마음을 돌린 것은 과연 무엇일까. 또 집안일도, 아내도 나 몰라라 했던 남편의 꽃보다 예쁜 아내를 향한 사과의 메시지도 함께 전한다. ●신비한 TV 서프라이즈(MBC 일요일 오전 10시 45분) 2009년 영화 한 편이 개봉되자 사람들은 ‘인간의 생과 사’에 대해 관심을 기울였다. 바로 죽은 사람이 장례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영혼으로 떠도는 상태였다는 내용으로 부활을 바탕으로 한 미스터리 영화이다. 인간이 정말 부활할 수 있을지 들어본다.
  • 인생역마차(人生驛馬車)=신방(新房)을 지키는 청상과부 시어머니

    인생역마차(人生驛馬車)=신방(新房)을 지키는 청상과부 시어머니  밤이 무서웠다. 오후가 되면 벌써 소름까지 끼쳐 오는 것이었다. 5시쯤 되면 만사가 귀찮아 진다.그러나 어찌하랴? 어김없이 밤은 오고 어둠이 덮이면 잠은 자야 하고···.  7시가 되자 남편이 돌아왔다. 그녀는 부지런히 밥상을 차려 올린다. 시어머니는 방에서 텔레비전 연속극을 보느라고 정신이 없다.  즐거워야 할 저녁식사 때가 그녀에게는 마치 고문을 당하는 시간 같기만 하다. 밥알은 모래알 같고 그것이 어느 겨를에 들어가는지조차도 모를 지경이다.  신혼 5개월째. 그러나 김숙자 여인(金淑子·24·가명)에겐 신혼생활이 아니라 악몽을 헤쳐온 고통의 나날이었다. 속리산(俗離山)에서 부산(釜山) 해운대(海雲臺)로, 다시 경주(慶州)로 7박8일의 신혼여행이 수10년 전에 있었던 아득한 얘기같기만 하다.  그러니까 2년전. 대학을 갓 졸업한 숙자(淑子)는 어느 여름 날, 이모부로부터 한 총각을 소개받았다.  윤하일(尹夏一·26)이라는 M은행 직원. 첫 눈에 성실하고 든든하게 보였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키에 듣기 좋은 바리톤의 목소리. 돈 씀씀이가 시원시원하면서도 헤프지가 않았고, 양복도 몸에 기막히도록 잘 받는 핸섬한 모습이었다.  자주 만나게 되었다. 호리호리한 숙자(淑子)의 발랄한 모습이 하일(夏一)과 딱 들어맞는 것이었다. 교제를 시작한 지 2개월만에 숙자(淑子)는 하일(夏一)의 식구를 소개받았다. 식구래야 홀어머니 한분과 누이 한사람. 누이는 벌써 시집가서 1남1녀의 주부였다.  식구가 단촐해서 좋을 것같은 생각이 들었다. 시어머니가 될 여인은 따뜻하게 숙자(淑子)를 맞았다. 아직 집을 마련하지 못해서 전셋방 살림이지만 방이 2개. 그것도 바깥쪽 대문 옆에 붙어있는 방이어서 하일(夏一)과의 신혼살림은 아기자기할 수 있을 것 같이 보였다. 숙자(淑子)는 이미 하일(夏一)과 결혼을 해 버리기로 결심한 뒤여서 그런 사소한 문제들에 관해서는 예리하게 살폈다.  그러나 숙자(淑子)가 그녀의 부모들에게 자초지종을 털어 놨을 때 어머니가 딱 한 가지 의문을 던졌다.  『글쎄다. 나무랄 데가 없다만 그 총각이 외아들이고, 어머니는 청상과부라고 한 것이 마음에 걸린다. 과부 외아들집 며느리가 고생하기 마련이야』  어머니의 이 기우에 대해서 아무도 찬성하지 않았다. 걱정하기 잘하는 어머니의 노파심이 또 발동한 것이라고들 가볍게 웃어 넘겼다. 그로부터 1년5개월만에 그들은 결혼식을 올렸다.신랑의 나이가 약간 어리지 않으냐는 이의가 있기는 했지만 그러나 이미 사정이 딱하게 됐던 것이다. 숙자(淑子)는 임신 3개월의 몸이 되어 있었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첫 날. 시어머니는 밤 11시가 되도록 자기방에 돌아가지 않고 있더니『너무 피곤하지. 내가 안마 좀 해 주련?』하며 느닷없이 아들에게 덤벼들어 안마를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럭저럭 시간이 흘러가 자정이 넘었고, 시어머니는 어물어물하며 그 방에서 잠이 들어버렸다.  이것으로 자연스럽게 이해가 된 것이라고 느낀 것인지 시어머니는 그때부터 아들의 신혼방에서 잠을 자기 시작했다. 2주일만에 하일(夏一)은 화가 난 얼굴로 몹시 신경질을 부렸기 때문에 시어머니는 일단 자기방으로 철수하기는 했다. 그러나 방법이 달라졌을뿐이었다.  방문 밖에서 헛기침 소리가 계속 들렸고, 까닭없이 부엌문을 여닫는가 하면 분통처럼 말끔하게 치운 부엌에서 그릇 부시는 소리가 밤 자정이 넘도록 계속되는 것이다. 둘이서 꼭 껴안고 자다가도 이 교묘한 소음 때문에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다.  신부는 마치 송곳으로 몸을 찌르는 것 같은 고문을 당하는 듯했다. 시어머니의 소음 공세는 새벽 3시까지, 심할 때는 4시까지 지속적으로 파상공격을 가해 왔다. 그러고 낮으로는 마치 밤의 일을 위해 준비라도 하려는 듯 깊은 잠에 빠지는 것이다.  사실 숙자(淑子)는 어느 일면 시어머니의 심정을 약간 이해할 수 있었다.  26살에 얻은 아들. 그리고 백일도 되기 전에 남편을 공산당 애들에게 잃고 눈물을 밥삼아 서럽게도 키워 왔었던 것이다.  생선을 받아다 목판 장사도 했고, 풋과일이며 김을 팔아 아들을 키워온 세월이었다. 26살 청상과부에 개가하라는 강요와 뭇 유혹 속에서 오로지 아들 하나를 의지하고 26년을 살아왔다.  그렇게 자신의 욕망을 억제하며 키워온 아들이다. 며느리가 아니라 죽은 남편이 살아 돌아와도 뺏기고 싶지 않은 아들.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밤이 무섭다. 방문 밖에서 거니는 여자가 시어머니가 아니고 마귀할멈 같은 착각도 든다. 그러나 한편 생각하면 불쌍한 노인네다. 그녀는 아들을 며느리에게 잃은 것으로 착각하고 있으며 아들을 잃은 것은 그녀의 모든 것을 잃어 버리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숙자(淑子) 자신이 아니더라도 어떤 여자가 이 집안에 들어와도 똑같은 비극은 되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자기가 그 비극을 감당해야 할 이유는 없다. 되도록 즐겁고 편하게 살고 싶다. 이혼? 아마 마음 먹으면 가능할 지도 모른다. 더 상처가 깊어지기 전에 헤어져? 숙자(淑子)는 그 처절한 고민으로 하루를 보낸다. 이혼을 하려면 어떤 절차를 밟아야 할까?    [이런 경우엔]  청상과부를 시어머니로 둔 며느리들이 대개는 겪어야 할 비극인 듯합니다. 이제 신혼 5개월밖에 안된 귀하에게는 감당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나 이혼은 마지막이자 불가항력의 수단입니다.지금 귀하는 아직도 해결의 여지는 충분히 있읍(습)니다. 이혼문제는 일단 덮어두고 다른 방법을 연구해 봅시다.  TV를 시어머니 방으로 옮기십시오. 결정적인 것은 아니지만 우선 그렇게 시작해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시어머니의 취미가 무엇일까를 연구하십시오. 취미가 없다고 해도 끈질기게 인내하며 취미를 살려 주어야 합니다. 여행도 권해 보고 낮으로 고궁이며 쇼핑이며 오락장으로 함께 다니십시오. 교회나 절에 나가도록 해보는 것도 좋겠읍(습)니다. 그리고 아이를 낳으면 상당히 달라질 것입니다. 할머니의 사랑은 손자에게로 쏠릴 테니까··· 출산할 때까지 꾹 참고 견디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용태영(龍太暎) 변호사>  [선데이서울 73년 7월15일 제6권 28호 통권 제248호]  ●이 기사는 ‘공전의 히트’를 친 연예주간지 ‘선데이서울’에 38년전 실렸던 기사 내용입니다. 당시 사회상을 지금과 비교하면서 보시면 더욱 재미있습니다.
  • 목사와 스님의 ‘영혼을 울리는 책’

    목사와 스님의 ‘영혼을 울리는 책’

    종교계에는 글쓰기를 병행하는 성직자들이 종종 있다. 그들은 중생구제와 구원이라는 본래의 종교적 활동 말고도 글을 통한 영혼의 울림을 높이 산다. 우리 종교계의 대표적 글쟁이로 이름 난 스님과 목사가 나란히 울림의 책을 세상에 내놓아 화제가 되고 있다. 불교방송 ‘행복한 미소’를 진행하고 있는 남해 용문사 주지 성전 스님(‘어떤 그리움으로 우린 다시 만났을까’·마음의숲 펴냄)과, 경기도 죽전의 작은 개척교회를 굴지의 주목받는 공동체로 일궈낸 소강석(‘영혼의 글쓰기’·쿰란출판사 펴냄) 새에덴교회 담임목사가 그들이다. 소강석 목사는 시장 상가의 작은 교회에서 출발해, 교인수 3만명이라는 지금의 새에덴교회를 일군 목회자다. 탄탄한 신학적 배경을 바탕으로 도시의 감성이 밴 설교와 저술로 유명한 차세대 목회자로 주목받는다. 문예지를 통해 등단한 뒤 벌써 시집 5권을 낸 목회자 시인답게 “목회자야말로 머리를 넘는 감성으로, 감성을 넘는 영혼의 글쓰기가 필요하다.”는 지론을 일관되게 펼친다. 새 책 ‘영혼의 글쓰기’는 우리 목회자가 대부분 간과하기 마련인, 글을 통한 영성의 전달법을 체험으로 제시한 글쓰기 방법이다. 글의 모티브 잡기부터 구도와 중심 내용을 짚어내고 글의 묘미를 살려 가독성을 높이는 글쓰기의 7단계를 관찰과 해석, 질문과 사색, 논리와 서사 등 핵심 키워드를 정해 설명한다. 틈틈이 적고 쌓아온 글쓰기의 노하우를 읽다 보면 이어령 이화여대 석좌교수가 “시와 글을 사랑하는 목회자”로 지목한 그의 독특한 영성 전달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성전 스님은 불교계의 소문난 글쟁이다. 스님이 아름다운 글을 통해 줄곧 전하는 메시지는 단연 자연과의 교감과, 거기에서 얻는 성찰이며 깨달음이다. 이번 에세이집 ‘어떤’ 역시 그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 짧고 아름다운 글들의 모음. ‘강에겐 모든 것이 현재이고 지금일 뿐, 그래서 강은 흘러도 지치지 않는다.’는 스님. 그래서 스님은 너무 미워하지도, 집착하지도 말고 그냥 강처럼 흐르라고 말한다. 바람과 햇빛이 전하는 말, 밤하늘 별과 지상의 꽃들이 그리워하는 이야기는 모두 자연의 찬미를 넘어 바쁜 현대인들이 그냥 편하게 깨달음을 생각해볼 수 있는 쉼터와도 같은 ‘자연의 경전’이다. 꽃을 봐도 아름답게 느끼지 못하는 마음, 도움을 받아도 감사할 줄 모르는 마음…. 탐·진·치의 삼독에 찌든 세상 사람들에게 그는 이렇게 쓰고 있다. “햇살은 내게 다가와 말합니다. 무게를 버리라고. 무게를 버리면 너도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나는 너무 많은 무게를 지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저 햇살처럼 가볍게 중에서) 김성호 편집위원 kimus@seoul.co.kr
  • 안시국제페스티벌 초청 ‘소중한 날의 꿈’ 안재훈 감독

    안시국제페스티벌 초청 ‘소중한 날의 꿈’ 안재훈 감독

    고교 졸업 후 무작정 서울로 왔다. 만화를 그리고 싶었다. 제대 직후인 1992년 9월 어느 날, 신문광고에서 ‘고소득 보장, 애니메이터 모집’이란 광고를 봤다. 당시 신림동에 수없이 많던 일본 애니메이션 주문자 상표부착방식(OEM) 하도급업체 중 한 곳. 출근 첫날 밤샘을 하고 신문지를 덮은 채 쪽잠을 잤다. 한 달에 1000장 이상의 그림을 그려야 했지만, 서울 하늘 아래 그림을 그릴 책상이 있다는 것만으로 기뻤다. 미국 할리우드의 OEM 작업을 하면서도 창작 애니메이션의 꿈을 놓은 적은 없었다. 단편 ‘히치콕의 어떤 하루’(1998), 중편 ‘순수한 기쁨’(2000) 등을 거치면서 무르익었다. 1997~98년부터 ‘연필로 명상하기’란 창작공간에서 한솥밥을 먹은 동료들에게 오랫동안 준비해온 밑그림과 메모를 내놓은 것은 2000년 무렵. “그때가 기로였다. OEM 대신 우리 작품을 선택하면 (경제적) 어려움이 예상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 정도라면 포기하지 않겠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11년이 흐른 뒤 결실을 보았다. 오는 26일 개봉하는 애니메이션 ‘소중한 날의 꿈’은 10만여장의 그림을 한땀한땀 이어붙인 장인들의 수공예품이다. 일본 히로시마, 캐나다 오타와, 크로아티아 자그레브와 함께 4대 애니메이션 페스티벌로 꼽히는 프랑스 안시 국제 애니메이션 필름페스티벌 경쟁 부문에도 초대받았다. 페스티벌 참가를 앞두고 분주한 안재훈(42) 감독을 출국 전날인 지난 7일 서울 용산 CGV에서 만났다. 안 감독은 “어린 시절의 나, 혹은 여러분이 오늘의 나와 여러분에게 보내는 기분 좋은 응원을 담았다.”고 설명했다. 작품은 1970년대말 아우내(충남 병천의 우리말 표현)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트라우마(정신적 상처)를 간직한 소녀 오이랑과 서울에서 전학 온 한수민, 꿈많은 소년 김철수의 풋풋한 성장드라마다. 한혜진 감독과 ‘소중한’을 공동연출한 안 감독은 “가진 게 종이와 연필뿐인 우리 팀이 할 수 있는 건 잠 안 자고 그림 그리는 것밖에 없었다.”며 그림 수준에 강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기획에서 개봉까지 11년이다. 제작비와 인력은 얼마나 투입됐나. -제작비는 18억원쯤 들어갔다. 20명이 채 안 되는 ‘연필로 명상하기’ 식구들을 포함해 컬러(색칠) 작업에 투입된 중국 OEM 인력까지 300명 정도 투입됐다. →11년이면 도중에 ‘자빠질’ 뻔한 위기도 많았을 텐데. -처음부터 7~8년은 각오했다(웃음). 5~6년은 콘티 짜고 자료 조사하는 데 보냈다. 비용을 아끼겠다고 버너를 들고 숙식하면서 전북 군산 경암동 철길과 전주 기전여고 부근, 서울 이화동, 천안 아우내장터 방앗간 등 전국을 돌아다니며 헌팅(촬영장소 물색)했다. 그 무렵 할리우드 OEM은 끊고 애니메이션 ‘겨울연가’ ‘미안하다 사랑한다’(일본에서 유료 케이블채널로 방송됐다) 등을 작업하면서 ‘소중한 날의 꿈’에 몰두했다. 재미있었던 점은 전국의 방앗간 구조가 다 똑같더라. 기억의 흔적이 공유된 공간이란 점에서 좋았다. →영화 ‘아내가 결혼했다’, 드라마 ‘달콤한 나의 도시’ 등을 쓴 송혜진 작가가 시나리오를 썼던데. -2003~2004년쯤 만났다. 내가 쓴 시나리오가 너무 만화 같다고 생각했다. 관객들한테 통할까라는 두려움이 있었다. 내가 갖지 못한 무언가를 채워줄 사람을 찾던 찰나에 송 작가가 연출한 단편영화 ‘안다고 말하지 마라’를 만났다. 질투가 날 정도였다. 더욱 내 작품을 맡기고 싶었다. →목소리 연기를 박신혜(이랑 역)와 송창의(철수 역)에게 맡겼는데. -철저하게 경험과 청력에 의지해 접근했다. 연기자들이 녹음에 임하는 태도나 스튜디오에 와서 애니메이터들과 감성을 공유하는 걸 보고 잘 (선택)했구나 싶더라. →배경이 1970년대 말이다. 2011년의 관객이 받아들이기 어렵지 않을까. -또래의 고민은 1970년대나 지금이나 차이가 없을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 애니메이션으로 줄 수 있는 가장 어색하지 않은 판타지는 나이 든 어른들은 기억으로, 젊은이들은 흑백사진으로 본 장면을 컬러로 재현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우리 애니메이션이 아직 문화적 다양성이나 깊이를 갖지는 못했지만 기억의 흔적으로 공유하는 작업은 누군가 해야할 일이다. 윽박지르는 영화가 아니라 담소를 나눌 수 있는 작품이면 좋겠다. →주인공의 모습에 감독의 과거가 투영된 것 같은데. -세 명에게 고루 반영됐다. 이랑의 모습에는 나만 아는 트라우마가 겹쳐져 있다. 내가 항상 달리기는 꼴찌였는데 부정한 방법으로 3등을 한 적이 있다. 차라리 손가락질을 받았으면 다행인데 아무도 몰랐던 게 트라우마가 됐다. 수민이가 자살 운운하는 건 어릴 때부터 내가 죽 써온 일기장에서 발견했다. ‘시집 한 권과 만화책 한 권을 내고 33세에 자살할 거야‘라고 써 있더라. 철수의 밑도 끝도 없는 당당함도 마찬가지다. →안시 국제 애니메이션 필름페스티벌에 초대 받았는데. -내일(8일) 출국이다. 주위에선 말씀들 많이 하시는데 입상에는 관심 없다. 아시아 애니메이션 하면 일본 지브리 스튜디오를 떠올릴 프랑스 관객에게 한국의 풍경을 선물하는 기분으로 간다. 지난해 11월 런던 한국필름페스티벌에서 상영했을 때 영국인들이 작품의 감성과 가치를 공유하는 걸 보고 놀랐다. 연필로 그린 진짜 애니메이션이란 표현방식은 물론, 소소한 꿈 때문에 고민하는 어린 시절의 모습에 공감하더라. →한국 애니메이션의 기술력은 세계 정상이다. 그런데 국내 업계는 여전히 영세한 까닭은. -아직 기회가 없었을 뿐이다. 테크닉은 좋은데 감성과 스토리가 부족하다는 평가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건 OEM을 따기에 급급하던 시절의 논리다. ‘소중한 날의 꿈‘이 편견을 바꾸는 작은 걸음이 됐으면 좋겠다. 글 사진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7000개 피어싱·초록색 얼굴 ‘피오나 공주’ 시집갔다

    “외모가 아닌 그녀의 아름다운 마음을 보았다.” 영화 ‘슈렉’의 피오나 공주처럼 얼굴을 초록색 문신으로 물들이고, 온몸 곳곳에 7000여개에 달하는 피어싱을 한 40대 브라질 여성이 지난 8일(현지시간) 한 남성의 부인이 됐다. 6924개에 달하는 피어싱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피어싱을 한 사람’으로 알려진 일레인 데이비슨(46)은 지난 8일(현지시간)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 전직 공무원 더글라스 왓슨(60)과 정식 부부로 거듭났다. 신랑과 신부는 전혀 딴판인 외모로 눈길을 끌었다. 얼굴에만 192개의 피어싱으로 장식한 데이비슨과는 달리 더글라스는 평범한 짙은색 양복에 피어싱은 단 하나도 하지 않은 것. 그러나 두 사람은 주위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결혼식 내내 팔짱을 끼고 키스를 하며 애정을 과시했다. 스코틀랜드로 이민가 간호사로 일했던 데이비슨은 “몸을 이용한 예술로 정체성을 찾겠다.”는 목표로 7000개의 달하는 피어싱을 했다. 몸에 하고 있는 피어싱의 무게만 3kg로, 2000년 5월 데이비슨은 기네스기록까지 거머쥐었다. 데이비슨의 모습은 화려함을 뛰어넘어 자칫 괴기해보이기도 하지만 왓슨은 이런 그녀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한다고 밝혔다. 왓슨은 “15년 전 글래스고에 있는 커피숍에서 처음만난 뒤 줄곧 함께 했다.”며 “사람들은 겉모습만 보지만 그녀의 마음은 누구보다 아름답다.”고 말했다. 일각에서 데이비슨을 두고 고통을 즐기는 ‘패티시’가 있는 것이 아니냐고 인상을 찌푸리기도 하지만 그녀는 “피어싱은 고통스러운 작업일뿐 그 자체를 즐기지 않는다.”면서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듯 나를 표현하기 위해서 몸에 예술을 한 것”이라고 당당하게 밝힌 바 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
  • 36세男에 시집가던 12세소녀 ‘극적 구조’

    케냐의 키저리안의 한 작은 마을에서 지난 2일(현지시간)12세 소녀가 36세 남성과 강제로 결혼식을 올리던 중 인권단체와 경찰에 극적으로 구조되는 일이 벌어졌다. 현지 경찰에 따르면 소녀는 이틀에 걸쳐 이 남성과 ‘의식’을 치르고 있었다. 소녀의 아버지는 말리기는커녕 뒤로 돈을 챙긴 뒤 마을에서 도망쳤고 삼촌은 이 의식을 주관한 것으로 전해져 충격을 줬다. 내셔널지오그래픽에 따르면 인도, 케냐, 예멘 등지에서 사춘기도 되지 않은 소녀가 중년 남성에게 강제로 시집을 가는 풍속이 남아 있다. 개발도상국에서는 매년 1200만 명의 소녀 가운데 10%가 조혼을 하고 있으며, 심지어 5세에 비밀결혼식을 치르는 곳도 있다. 3년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예멘 소녀 누주드 알리의 경우도 비슷했다. 10살이 되던 해 아버지의 강요로 30대 남편에 시집을 갔지만 법원에 이혼소송을 내서 자유의 몸이 됐다. 현재 소녀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와 학교를 다니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은 “대부분의 소녀들이 누주드와 같은 행운을 얻는 건 아니다.”고 지적했다. 예멘이나 아프가니스탄, 에티오피아 등 조혼률이 높은 나라에서는 부인을 잃은 성인남성 등이 소녀를 강간한 뒤 나중에 부인으로 삼는 경우도 흔하다는 것. 대부분의 조혼은 법률로 금지돼 있으나 가족 간의 거래나 사업을 위해서 이뤄진다. 인권 전문가들은 “어린 나이에 결혼한 여성들은 교육의 기회를 박탈당하며, 이른 임신과 출산으로 건강에도 좋지 않고 신체적 학대를 겪다가 죽음에 이를 수 있다.”고 경고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
  •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34) 경남 하동 축지리 문암송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34) 경남 하동 축지리 문암송

    한 톨의 솔씨가 바람을 타고 섬진강을 따라 지리산 자락으로 올랐다. 수백 년을 살아가야 할 아늑한 보금자리를 찾느라 기력을 다한 솔씨는 햇살 따스하게 내리쬐는 양지 바른 곳에 내려앉았다. 한 줌의 포근한 흙에 묻혀 솔씨는 천년의 영화를 꿈꾸며 평안한 잠에 들었다. 그러나 그가 오랜 망설임 끝에 겨우 찾아내 잠든 곳은 얄궂게도 큰 바위 위에 포슬포슬 얹힌 한 줌의 흙이었다. 이미 1000년을 살아온 바위 위의 한줌 흙만으로 산다는 건, 애당초 견디기 힘든 고통이 뒤따르거나 불가능한 일일 수밖에 없었다. 어린 솔씨는 애면글면 바위 틈을 파고들어 뿌리를 내렸고 가끔은 강철같이 단단한 바위를 쪼개기도 했다. ●물 한 모금 없는 곳에 터 잡은 나무 씨앗이 뿌리를 내리고 큰 소나무로 자라는 고난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산 아래에는 사람들이 들어왔다. 어린 솔씨처럼 사람들도 황무지 위에 논밭을 일구고 생명을 키우며 풍요로운 농촌을 이뤘다. 경상남도 하동 악양면 축지리 대축마을이다. “그 큰 바위 덩어리 위에서 나무가 어떻게 그리 오래도록 크게 자랐는지. 만날 보는 나무지만 볼 때마다 신기하다니까. 그런 거 보면, 나무가 힘이 좋은 거야. 바위까지 뚫고 자랐으니 말이야.” 마을 입구의 한적한 버스 정류장 앞 점방을 지키는 조분수(77) 노파는 뒷동산 큰 바위 위에 서 있는 한 그루의 소나무를 바위보다 강한 나무라고 이야기한다. 나무를 ‘문암송’이라고 부르고 나무를 떠받치고 있는 바위는 문암, 혹은 문바위라고 부른다. 나무와 바위는 모두 대축마을 사람들에게 경외의 대상이다. 누구는 이 소나무의 나이를 300년이 됐다고 하고, 또 누구는 600년도 넘었다고 한다. 나무의 나이를 정확히 가늠하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나무로서 생명을 유지하는 데 꼭 필요한 물 한 모금 스며들지 않는 바위 위는 문암송에게 최악의 조건이다. 문암송의 나이를 비옥한 땅에 터 잡은 여느 소나무들의 크기와 비교해 짐작할 수 없는 이유다. 나무가 자라려면 어쩔 수 없이 바위를 쪼개고 뿌리를 내릴 수밖에 없는데, 바위가 쪼개지면 나무는 보금자리를 잃게 된다. 문암송이 여느 나무들처럼 자랐다면 바위는 산산조각으로 부서져 나무도 생명을 잃었을지 모른다. 하여 문암송은 사람도 바위도 전혀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조금씩 그것도 아주 천천히 자랐다. 그게 애당초 문암송에게 주어진 숙명이었다. ●지리산 선비들 음풍농월 즐기던 곳 “내가 시집온 게 열일곱 살 땐데,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아. 더 자라지도 않고, 부러지거나 시들지도 않고, 그때 그대로야. 외려 나무 밑에 있는 바위가 조금 더 갈라졌지. 그건 알 수 있어.” 조 할머니는 처음 시집왔을 때 보았던 나무를 또렷이 기억할 수 있다고 말한다. 나무도 자람의 숙명을 받아들여야 하는 생명이거늘 어찌 60년 동안 변하지 않았겠는가. 다만 사람들의 눈으로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천천히 자란 것이다. 문암송도 봄이면 송홧가루를 날리고 가을에는 솔방울을 맺으면서, 차갑고 견고한 바위 위에서 제 몸을 키웠다. 12m의 키, 줄기 둘레 3m의 훤칠한 소나무가 됐다. 살아남기 위해 나무는 바위를 파고들었지만, 바위가 바스라지지 않도록 조금씩 자라야 했다. 다른 소나무가 한 아름 자라는 동안 이 나무는 고작 한 뼘쯤 자라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했다. 또 나무의 보금자리인 바위가 부서지지 않도록 나무는 바깥으로 낸 뿌리로 바위를 감싸 안았다. 가운데에서는 바위를 쪼개고 바깥에서는 더 이상 쪼개지지 않도록 붙들어 안으며 나무는 긴 세월 동안 변증의 생명을 살았다. “우리 마을에는 문암계라는 게 있어. 대축마을하고, 저 아래 소축마을 사람들이 함께 하는 계야. 해마다 7월 백중에 계원들이 문암송 앞에 모여서 잔치를 벌이지. 나무 앞에 정자 있잖아. 그게 문암정이야. 그래서 그 나무도 문암송이라고 불러. 우리는 그냥 ‘문바위 나무’ 라고 부르곤 해.” 문암송이 자리 잡은 곳은 멀리 악양들녘이 한눈에 내다보이는 경관 좋은 자리여서, 옛날에는 문인들이 모여 자주 시회(詩會)를 열곤 했다. 사람이 지은 정자는 필요 없었다. 바위를 뚫고 솟아오른 신비로운 나무 한 그루가 드리우는 상큼한 그늘이면 너끈했다. 문암송이 드리우는 그늘은 곧 하늘이 지은 정자였다. 천연의 소나무 정자에는 오랫동안 지리산 자락에 흩어져 사는 문인 선비들이 모여들어 호연지기를 익히며 음풍농월의 흥취를 즐겼다. 맑은 바람 밝은 달을 노래하기에 나무 그늘만큼 알맞춤한 자리가 또 어디 있겠는가. ●고통·풍요 조화 이룬 생명의 변증법 “문암송 곁에 있는 한 그루 나무 또 봤수? 그건 서어나문데, 기가 막히게 그 나무도 바위에 뿌리를 내렸잖아. 큰 바위는 아니지만, 쪼개고 감싸면서 자라 오르는 건 똑같아. 우리 동네 나무들이 죄다 힘이 좋다는 이야기지 뭐. 허허.” 나무가 바위 위에서도 잘 자랄 수 있을 만큼 건강하고 활기찬 마을이라는 게 조 할머니의 자랑이다. 한평생 농촌 마을에서 잔뼈가 굵은 조 할머니의 건강한 웃음에는 간단없이 부닥쳐 온 농촌 살림의 모든 고통을 감내한 관록이 배어 있다. 이곳 사람들이 조 할머니처럼 건강하고 평화롭게 살 수 있는 건 어쩌면 사람보다 먼저 바위를 뚫고 생명을 키운 한 그루의 소나무가 있는 탓인지도 모른다. 살림살이가 어려울 때마다 사람들은 마을 뒷동산에 서 있는 문암송의 고통과 강인한 생명력을 바라보며 스스로를 격려했던 것이다. 바위를 뚫고 솟아오른 문암송! 그는 지금 이 순간에도 거친 바위 표면에 생살이 찢기는 아픔을 삼키며 바위 틈을 조금씩 벌리면서 뿌리를 밀어 넣는다. 뿌리가 파고들수록 차츰 벌어지는 바위를 꽁꽁 붙들어 안아야 하는 바깥쪽 뿌리의 아픔은 더 커지기만 한다. 애처로운 운명의 문암송이 펼쳐 보이는 생명의 변증법이다. 글 사진 하동 고규홍 나무칼럼니스트 gohkh@solsup.com >>가는 길 경남 하동군 악양면 축지리 산83-1. 하동에 가려면, 섬진강을 따라 이어지는 아름다운 국도 17호선을 타고 가는 맛이 일품이지만, 최근 개통한 순천~완주 간 고속국도를 이용하면 빠르게 갈 수 있다. 속도를 얻을 것인가, 풍경을 즐길 것인가에 대한 선택이리라. 어느 길을 선택하든 하동 축지리에 가려면 구례를 거쳐야 한다. 구례에서 하동 방면으로 20여㎞를 가면 악양면에 이른다. 악양면 삼거리에서 좌회전하여 1.5㎞를 더 가면 대축마을 버스정류장이 나오는데 여기에서 오른쪽으로 난 마을 길을 따라 800m쯤 산으로 올라가면 마을 끝에서 문암송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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