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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말 인사이드] 사춘기 청소년들의 반항적 심리 상태 ‘중2병’ 급증

    [주말 인사이드] 사춘기 청소년들의 반항적 심리 상태 ‘중2병’ 급증

    #1. 중학교 2학년 박모(14)양은 인터넷 채팅으로만 이야기한다. 결혼 이주 여성인 박양의 어머니는 딸이 공부를 잘해 성공하기를 바란다. 남편과 나이 차이도 크고, 시댁과 사이도 나빠 딸에게 거는 기대가 컸다. 그런데 중간고사를 앞두고 공부는 하지 않고 침대에 누워 휴대전화로 채팅만 하는 딸을 보고 어머니는 폭발하고 말았다.‘내가 힘들게 한국으로 시집와서 누구 때문에 험한 일을 하는데, 그것도 모르고 노는 딸은 엄마에 대한 배신’이란 생각이 든 어머니는 딸을 때리고 휴대전화를 부쉈다. 그러자 박양이 갑자기 손을 떨고 말을 더듬으며 과호흡증상을 일으켰다. 신경정신과에서는 박양을 공황장애와 전환장애(히스테리성 운동기능 이상)라고 진단했다. #2. “상관없어요. 어차피 고등학교 안 가요”김모(14)군은 학교에서 가장 자주 찾는 곳이 상담실이다. 수업이 싫다며 상담실에 드러누운 김군에게 담임선생님의 허락이 없으면 무단결과란 상담 교사의 말은 들리지 않는다. 학교 다니기 싫다며 결국 커터 칼로 자신의 팔을 그어 버린 김군은 “학교에서 자해 소동을 벌인 아이들이 상담실에서 매일 1~2시간씩 쉬는 것을 봤어요. 저도 쉬고 싶었어요”라고 털어놓았다.김군은 전국체전에 출전할 정도로 축구 실력이 뛰어났지만 부모는 ‘운동선수는 부상당하거나 탈락하면 대안이 없고, 진학에 실패할 확률도 높다’며 축구로 유명한 중학교의 스카우트 제의도 거절했다. 부모는 공부만 하라고 하지만, 김군은 교실에 앉아 있으면 숨이 막혔다. 상담 교사의 도움으로 럭비, 승마, 조정 같은 비인기 종목을 추천받은 김군은 다시 활기를 찾았다. 중2병이란 유령이 한국을 배회하고 있다. 중2병이란 일본어 ‘추니뵤’(中二病)에서 나온 신조어로 사춘기 청소년들의 반항적인 심리 상태를 빗댄 말이다. 일본에서는 1999년쯤 만들어진 속어로 지난해 ‘중2병이라도 사랑이 하고 싶어!’란 애니메이션이 제작돼 인기리에 방영됐다. ‘김정일은 방위 때문에, 김정은은 중2가 무서워서 남침을 못 한다’는 우스개가 있을 정도로 요즘 중2는 무섭고 거칠 것이 없는 그야말로 ‘질풍노도의 시기’다. 중2병은 인터넷의 발달과 산업구조의 변화에 맞물려 경쟁과 입시 교육이 낳은 병리 현상이다. 중학교 때부터 특목고, 특성화고, 일반고 등으로 학생의 서열화가 낳은 비극이란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중2병은 타인에 대한 공격 성향 증가, 무기력, 비행, 다양한 중독 등으로 나타난다. 실제로 중2병 청소년들의 자살과 학교폭력, 가출 등 적잖은 문제가 보고되고 있다. 보이스카우트 등 청소년 활동이 발달한 영국에서 청소년 교육을 맡은 수 워커(50) 국제청소년성취포상협회 사무국장은 “오늘날의 청소년들은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발달로 심각한 경쟁사회에서 성공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고 있다”며 ‘중2병은 선진국 청소년들도 겪는 증상’이라고 진단했다. 중2병과 같은 청소년들의 사춘기 증상은 이르면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나타난다. 부모들이 겪는 중년의 위기와 겹치면서 증세가 악화된다는 분석이다. 성나경 전국전문상담교육자협회 대표는 “중2병은 청소년 발달 과정의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도 있지만 부부 갈등, 직장 스트레스, 오춘기 등으로 중년의 위기를 겪는 부모와 증폭되면서 심각한 가정 갈등으로 나타날 수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중2병의 원인으로 양육 실패, 지나친 학업 스트레스와 왜곡된 입시제도, 사회성을 가르치지 못하는 교육제도, 흔들리는 가정을 꼽았다. 맞벌이 부모들이 ‘제 시간에 밥 먹이고 준비물 챙겨서 학교 보내기’와 같은 기본적인 훈육에 실패하면 아이들은 친구에게 지나치게 집착하거나 학교 부적응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전업주부가 아이를 보더라도 ‘공부를 잘하니까 다 괜찮을 거야’라며 사회성 발달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왕따가 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대한민국에는 2만여개의 직업이 있지만, 자녀를 기르는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일러주는 직업은 공무원, 대기업과 공기업, 의사, 변호사 등 20여개도 안 된다. 특히 일반고 슬럼화 현상이 중2병을 더욱 확산시킨다는 지적이 많다. 정병오 좋은교사운동 대표는 “우리나라는 중학교부터 정식 입시 체제에 들어간다. 내신성적이 고입, 대입과 연결되기 때문에 아이의 부담이 커진다”며 특히 이명박 정부 5년간 학업성취도평가(일제고사), 고교 다양화 정책 등으로 중2병이 심각해졌다고 분석했다. 일제고사를 치르면서 초등학교 6학년 때 한 차례 성적 스트레스를 받은 아이들은 고교 서열에 좌절하고 만다는 것이다. 고교 다양화 정책은 사실상 고교 평준화를 해체하고, 고등학교 수직화를 가속했다는 게 교육 현장의 중론이다. 예전에는 웬만하면 인문계 고등학교 진학이 가능했기 때문에, 고입 스트레스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중학교 2학년 정도면 특목고, 자사고, 일반고 식으로 고교 진학이 거의 결정되기 때문에 ‘대포’(대학 포기) 증상이 중2병으로 나타나고 있다. 정 대표는 “핵가족과 부모의 생활고로 충분한 가정교육을 받지 못하고, 자연과 친구들이랑 어울릴 기회 없이 학원 뺑뺑이만 돌다가 인터넷과 게임에 빠진 아이들이 사회화 기회를 아예 박탈당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청소년들의 극심해진 스트레스는 통계로도 확인된다. 통계청에 따르면 청소년 사망 원인 1위는 자살이며 그다음이 교통사고, 암, 심장질환, 익사 순서다. 청소년의 11.2%는 자살 충동을 느꼈으며, 그 원인은 성적과 진학문제, 가정불화, 경제적 어려움 등이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청소년들은 도피처이자 정보 획득을 위해 사용하는 스마트폰에 중독된다. 12~19살 청소년들의 스마트폰 사용률은 80.7%다. 전년의 40.7%와 비교하면 1년 만에 배로 늘어났다. 하루 평균 이용시간은 2.6시간이며, 3시간 이상 사용한다는 비율이 36.4%로 가장 높았다. 중학생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는 블로그, 미니홈피, 커뮤니티 순서였다. 이를 통해 다른 학생들과 비교하면서 중2병은 더욱 심화되기도 한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청소년기 특징이 가장 두드러지는 중학교 2학년은 본격적으로 학업 스트레스를 받는 시기”라며 “사춘기 때는 다 불안하고 우울한데, 또래들과 신나게 뛰어놀고 그림을 그리거나 악기를 다루며 스트레스를 풀지 못하는 입시환경 속에서 아이들은 놀 기회를 잃어버렸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학교 교과목에 예체능 시간을 단순히 늘린다고 해서 중2병을 해소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결국 중2병은 일방적인 지식 주입보다는 다양한 활동 기회를 제공하는 공교육의 정상화로 치유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중학교 교사인 김태훈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위원은 “최근 자사고가 늘어나고 일반고의 교육환경이 열악해지면서 중학생들에게 입시 스트레스와 좌절감을 심어 주는 것이 문제”라고 밝혔다. 김 위원은 교육과 사회의 근본 환경은 변화하지 않고, 청소년들의 스트레스를 푸는 활동 몇 가지로 중2병을 풀 수는 없다고 말했다. 특목고나 자사고에 들어가는 학생은 좋은 대학에 가고, 사회적 성공을 거둘 수 있다는 주변의 기대로 또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중하위권 학생은 경쟁에서 처졌다는 생각에 미래가 불안하다. 그는 “특목고나 자사고는 교육부 말처럼 학교 다양화가 아니라 대학 입시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한 경쟁일 뿐”이라며 “고교 진학에 중학교 교육이 휩쓸리지 않아야 중학생들의 불안함도 완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애니메이션 ‘중2병이라도 사랑이 하고 싶어!’에서 중2병 소녀는 같은 병을 앓았던 선배의 조언으로 중2병을 탈출한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자사고·특목고 못 가면 대포”… 고3만큼 고달픈 중2 ‘나’를 버리다

    “자사고·특목고 못 가면 대포”… 고3만큼 고달픈 중2 ‘나’를 버리다

    #1. 중학교 2학년 박모(14)양은 인터넷 채팅으로만 이야기한다. 결혼 이주 여성인 박양의 어머니는 딸이 공부를 잘해 성공하기를 바란다. 남편과 나이 차이도 크고, 시댁과 사이도 나빠 딸에게 거는 기대가 컸다. 그런데 중간고사를 앞두고 공부는 하지 않고 침대에 누워 휴대전화로 채팅만 하는 딸을 보고 어머니는 폭발하고 말았다.‘내가 힘들게 한국으로 시집와서 누구 때문에 험한 일을 하는데, 그것도 모르고 노는 딸은 엄마에 대한 배신’이란 생각이 든 어머니는 딸을 때리고 휴대전화를 부쉈다. 그러자 박양이 갑자기 손을 떨고 말을 더듬으며 과호흡증상을 일으켰다. 신경정신과에서는 박양을 공황장애와 전환장애(히스테리성 운동기능 이상)라고 진단했다. #2. “상관없어요. 어차피 고등학교 안 가요”김모(14)군은 학교에서 가장 자주 찾는 곳이 상담실이다. 수업이 싫다며 상담실에 드러누운 김군에게 담임선생님의 허락이 없으면 무단결과란 상담 교사의 말은 들리지 않는다. 학교 다니기 싫다며 결국 커터 칼로 자신의 팔을 그어 버린 김군은 “학교에서 자해 소동을 벌인 아이들이 상담실에서 매일 1~2시간씩 쉬는 것을 봤어요. 저도 쉬고 싶었어요”라고 털어놓았다.김군은 전국체전에 출전할 정도로 축구 실력이 뛰어났지만 부모는 ‘운동선수는 부상당하거나 탈락하면 대안이 없고, 진학에 실패할 확률도 높다’며 축구로 유명한 중학교의 스카우트 제의도 거절했다. 부모는 공부만 하라고 하지만, 김군은 교실에 앉아 있으면 숨이 막혔다. 상담 교사의 도움으로 럭비, 승마, 조정 같은 비인기 종목을 추천받은 김군은 다시 활기를 찾았다. 중2병이란 유령이 한국을 배회하고 있다. 중2병이란 일본어 ‘추니뵤’(中二病)에서 나온 신조어로 사춘기 청소년들의 반항적인 심리 상태를 빗댄 말이다. 일본에서는 1999년쯤 만들어진 속어로 지난해 ‘중2병이라도 사랑이 하고 싶어!’란 애니메이션이 제작돼 인기리에 방영됐다. ‘김정일은 방위 때문에, 김정은은 중2가 무서워서 남침을 못 한다’는 우스개가 있을 정도로 요즘 중2는 무섭고 거칠 것이 없는 그야말로 ‘질풍노도의 시기’다. 중2병은 인터넷의 발달과 산업구조의 변화에 맞물려 경쟁과 입시 교육이 낳은 병리 현상이다. 중학교 때부터 특목고, 특성화고, 일반고 등으로 학생의 서열화가 낳은 비극이란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중2병은 타인에 대한 공격 성향 증가, 무기력, 비행, 다양한 중독 등으로 나타난다. 실제로 중2병 청소년들의 자살과 학교폭력, 가출 등 적잖은 문제가 보고되고 있다. 보이스카우트 등 청소년 활동이 발달한 영국에서 청소년 교육을 맡은 수 워커(50) 국제청소년성취포상협회 사무국장은 “오늘날의 청소년들은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발달로 심각한 경쟁사회에서 성공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고 있다”며 ‘중2병은 선진국 청소년들도 겪는 증상’이라고 진단했다. 중2병과 같은 청소년들의 사춘기 증상은 이르면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나타난다. 부모들이 겪는 중년의 위기와 겹치면서 증세가 악화된다는 분석이다. 성나경 전국전문상담교육자협회 대표는 “중2병은 청소년 발달 과정의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도 있지만 부부 갈등, 직장 스트레스, 오춘기 등으로 중년의 위기를 겪는 부모와 증폭되면서 심각한 가정 갈등으로 나타날 수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중2병의 원인으로 양육 실패, 지나친 학업 스트레스와 왜곡된 입시제도, 사회성을 가르치지 못하는 교육제도, 흔들리는 가정을 꼽았다. 맞벌이 부모들이 ‘제 시간에 밥 먹이고 준비물 챙겨서 학교 보내기’와 같은 기본적인 훈육에 실패하면 아이들은 친구에게 지나치게 집착하거나 학교 부적응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전업주부가 아이를 보더라도 ‘공부를 잘하니까 다 괜찮을 거야’라며 사회성 발달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왕따가 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대한민국에는 2만여개의 직업이 있지만, 자녀를 기르는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일러주는 직업은 공무원, 대기업과 공기업, 의사, 변호사 등 20여개도 안 된다. 특히 일반고 슬럼화 현상이 중2병을 더욱 확산시킨다는 지적이 많다. 정병오 좋은교사운동 대표는 “우리나라는 중학교부터 정식 입시 체제에 들어간다. 내신성적이 고입, 대입과 연결되기 때문에 아이의 부담이 커진다”며 특히 이명박 정부 5년간 학업성취도평가(일제고사), 고교 다양화 정책 등으로 중2병이 심각해졌다고 분석했다. 일제고사를 치르면서 초등학교 6학년 때 한 차례 성적 스트레스를 받은 아이들은 고교 서열에 좌절하고 만다는 것이다. 고교 다양화 정책은 사실상 고교 평준화를 해체하고, 고등학교 수직화를 가속했다는 게 교육 현장의 중론이다. 예전에는 웬만하면 인문계 고등학교 진학이 가능했기 때문에, 고입 스트레스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중학교 2학년 정도면 특목고, 자사고, 일반고 식으로 고교 진학이 거의 결정되기 때문에 ‘대포’(대학 포기) 증상이 중2병으로 나타나고 있다. 정 대표는 “핵가족과 부모의 생활고로 충분한 가정교육을 받지 못하고, 자연과 친구들이랑 어울릴 기회 없이 학원 뺑뺑이만 돌다가 인터넷과 게임에 빠진 아이들이 사회화 기회를 아예 박탈당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청소년들의 극심해진 스트레스는 통계로도 확인된다. 통계청에 따르면 청소년 사망 원인 1위는 자살이며 그다음이 교통사고, 암, 심장질환, 익사 순서다. 청소년의 11.2%는 자살 충동을 느꼈으며, 그 원인은 성적과 진학문제, 가정불화, 경제적 어려움 등이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청소년들은 도피처이자 정보 획득을 위해 사용하는 스마트폰에 중독된다. 12~19살 청소년들의 스마트폰 사용률은 80.7%다. 전년의 40.7%와 비교하면 1년 만에 배로 늘어났다. 하루 평균 이용시간은 2.6시간이며, 3시간 이상 사용한다는 비율이 36.4%로 가장 높았다. 중학생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는 블로그, 미니홈피, 커뮤니티 순서였다. 이를 통해 다른 학생들과 비교하면서 중2병은 더욱 심화되기도 한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청소년기 특징이 가장 두드러지는 중학교 2학년은 본격적으로 학업 스트레스를 받는 시기”라며 “사춘기 때는 다 불안하고 우울한데, 또래들과 신나게 뛰어놀고 그림을 그리거나 악기를 다루며 스트레스를 풀지 못하는 입시환경 속에서 아이들은 놀 기회를 잃어버렸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학교 교과목에 예체능 시간을 단순히 늘린다고 해서 중2병을 해소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결국 중2병은 일방적인 지식 주입보다는 다양한 활동 기회를 제공하는 공교육의 정상화로 치유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중학교 교사인 김태훈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위원은 “최근 자사고가 늘어나고 일반고의 교육환경이 열악해지면서 중학생들에게 입시 스트레스와 좌절감을 심어 주는 것이 문제”라고 밝혔다. 김 위원은 교육과 사회의 근본 환경은 변화하지 않고, 청소년들의 스트레스를 푸는 활동 몇 가지로 중2병을 풀 수는 없다고 말했다. 특목고나 자사고에 들어가는 학생은 좋은 대학에 가고, 사회적 성공을 거둘 수 있다는 주변의 기대로 또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중하위권 학생은 경쟁에서 처졌다는 생각에 미래가 불안하다. 그는 “특목고나 자사고는 교육부 말처럼 학교 다양화가 아니라 대학 입시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한 경쟁일 뿐”이라며 “고교 진학에 중학교 교육이 휩쓸리지 않아야 중학생들의 불안함도 완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애니메이션 ‘중2병이라도 사랑이 하고 싶어!’에서 중2병 소녀는 같은 병을 앓았던 선배의 조언으로 중2병을 탈출한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열린세상] 詩가 없는 봄날이라/문흥술 서울여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

    [열린세상] 詩가 없는 봄날이라/문흥술 서울여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

    시인 친구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돈에 대한 욕심은 전혀 없고 어떻게 하면 좋은 시를 쓰느냐만 골똘히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평소 조곤조곤하게 말한다. 그런 그가 이날은 핏대를 올리면서 문학에 대한 정부 정책, 특히 ‘문학나눔’ 사업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했다. 해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문학나눔 사업을 통해 문화 소외 지역 및 계층에 우수 문학 도서를 선정해 무상 보급하고 있다. 그런데 올해 사업 내용에 대해 문인들, 특히 시인들의 불만이 거세다. 작년에 비해 소설은 연간 116종으로 조금 늘어났지만, 시집은 40종으로 대폭 줄어들었다. 그리고 예산도 작년보다 2억 3000만원밖에 증가하지 않아, 종당 구입 호수도 전체적으로 줄어들었다. 지난해까지 소설과 시 모두 종당 2000부를 구매해 배포했는데, 올해부터는 1200부로 줄어든 것이다. 5월의 따사로운 햇살을 받아 봄꽃이 만개했다. 철쭉꽃, 목련꽃, 모란꽃, 벚꽃 등이 천지를 화려하게 수놓고 있다. 겨우내 집안에만 계시던 팔순의 노모와 시간이 날 때마다 공원을 산책한다. 공원의 모든 이들이 봄꽃의 아름다운 자태에 탄성을 발한다. 청년은 애인에게 꽃보다 자기가 더 예쁘다고 엄지손가락을 세워 보이고, 애인은 봄 햇살 같은 환한 웃음을 터뜨린다. 향긋한 꽃 앞에서 누가 돈을 생각하고, 출세를 생각하겠는가. 꽃처럼 아름답고 가치 있는 삶, 순결한 영혼과 정신, 황홀하면서도 고귀한 사랑 등을 생각하지 않겠는가. 봄꽃은 세속에 찌든 우리의 몸과 마음을 정갈하게 치유해주고, 삭막한 우리네 삶을 화사한 온기로 따뜻하게 데워준다. 팔순의 노모께서 공원에 핀 꽃을 보시고는 “해마다 봄이면 꽃은 저렇게 아름답게 피는데, 사람은 늙으면 다시 젊어지지 않는구나”라고 말씀하신다. 봄꽃은 우리 모두를 시인으로 만드는 마력도 있는 듯하다. 많은 시인이 꽃을 시의 중요한 소재로 삼았다. 김소월은 시 ‘진달래꽃’에서 “영변에 약산/진달래꽃/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라고 노래했다. 임에 대한 절대적 사랑을 진달래꽃에 투사해 임이 나를 버리고 떠날지라도 임이 가시는 길에 자신의 분신인 진달래꽃을 뿌려드리겠다는 것이다. 김영랑은 시 ‘모란이 피기까지는’에서,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모란이 피기까지는/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이라고 노래했다. 모란과 같은 삶을 살고자 한 시인, 그래서 모란이 지면 삶의 모든 것이 끝났다고 절망하는 시인, 그런 시인에게 모란이 피고 지는 봄은 ‘찬란한 슬픔’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시인이 봄꽃을 좋아하는 이유는 시와 봄꽃이 같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리라. 시는 본래적으로 갈등과 대립이 아닌 화해와 합일의 세계를, 물질적인 가치가 아닌 정신적 가치를 지향한다. 시는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이 하나가 되어 영혼의 교감을 이루는 세계를 강렬히 갈망한다. 그런 시를 통해 모든 존재가 평화롭게 공존하는 황홀한 세계와 만나게 되고, 동시에 인간이 인간을 지배하고 자연을 파괴하는 이 시대에 대해 뼈아픈 반성을 하게 된다. 사회가 아무리 물질적 측면에서 풍족하다 하더라도 정신적 가치를 지향하는 문화를, 그 문화의 정수인 시를 푸대접한다면 그 사회는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 스마트폰에 영혼을 팔아버린 아이들에게 시집을 읽도록 해야 하는 당위성이 여기에 있다. 시인 친구가 돈에 대한 욕심 없이 좋은 시를 쓰려고 애쓰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할 정부가 오히려 앞장서서 시를 찬밥 대우하고 있는 현 상황은 그래서 한심하다 못해 기가 막힌다. 시인 친구는 “그렇지 않아도 시집이 팔리지 않아 시집 내기가 어려운 판국인데 정부가 아예 시를 말살시키고 있다”면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시인의 시선을 따라 창밖을 보니 진달래꽃이 지고 있다. 떨어지는 모습마저 아름다운 저 소중한 봄꽃이 없는 봄을 상상해 보다가, 불현듯 우리 사회에서 시가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시가 없는 사회와 봄꽃 없는 봄은 무엇이 다를까.
  • 동아시아 미학의 정수 ‘이십사시품’ 한글로

    동아시아 미학의 정수 ‘이십사시품’ 한글로

    “소박하게 살아가며 침묵을 지키나니(素處以默) 오묘한 천기는 더욱 미묘하다(妙機基微) 자연의 큰 기운을 들이마시고(飮之太和) 외로운 학과 더불어 난다(獨鶴與飛)” 당나라 말 시인 사공도(837~908)가 웅혼, 충담, 섬농 등 스물네 가지 풍격(風格)으로 표현한 시학서 ‘이십사시품’(이하 시품) 가운데 충담에 들어있는 16자에 대한 안대회(52)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의 해석이다. 중국은 물론 한국, 일본, 베트남의 전통사회에서 이 ‘시품’은 유별나게 취급되었다. 구체적인 시인이나 시를 다루지 않고 추상적인 단어 24개에 각각 48자의 운문을 곁들인 이 시품은 본문 전체가 겨우 1152자에 불과해, 200자 원고지로 따지면 6장 분량도 되지 않는다. 그 자체가 시 같기도 하고, 시 해설서 같기도 하다. 그래서 ‘고란과업본원해’는 “문장이 고고하고 예스러우며, 의미를 기탁한 것이 멀고도 깊다”고 했고, 오히려 근현대에 와 중국 소설가 첸중수(1910~1998)는 이 책을 두고 “아름다운 시로 보고 읽어야지, 지나치게 천착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경계했다. 학문을 사랑한 청나라 강희제(1654~1722)는 ‘전당시’(全唐詩)에서 사공도의 시집 뒤에 이 시품을 붙여넣으라고 했고, 스스로 편지에 시품의 구절을 자주 인용했다. 강희제의 손자인 건륭제(1711~1799) 역시 시선집 ‘당송시순’ 등 다양한 편찬물에서 시품의 미학적 기준을 자주 이용했다. 시품에서 영감을 얻어 시를 쓰기도 하고, 서예로 나타나거나 반시직이나 장부, 제내방 등은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연극이나 소설 등에서도 시품의 영향이 나타났다. 조선에서도 윤춘년(1514~1567)이 ‘시가일지’와 ‘묵천금어’라는 시학 저작에 시품을 실어 알려졌다. 덕분에 임진왜란 이후 일본에 시품이 널리 알려졌단다. 18세기에 겸재 정선은 시품으로 ‘사공도시품첩’(司空圖詩品帖)을 그렸다. 19세기엔 추사 김정희도 ‘시인과 화가가 늘 곁에 놓고 봐야할 대상’이라고 했다. 그래서 안 교수가 이 시품을 동아시아 미학의 정수라고 생각해 ‘궁극의 시학’(문학동네 펴냄)으로 펴냈다. 200자 원고지 6장도 안 되는 분량을 715쪽에 담아내는 괴력을 발휘했다. 안 교수가 2011년 매주 금요일 네이버 문학동네 카페에 연재했던 글이기도 한데, 당시 독자들과 교감한 내용이 요즘 유행하는 참여저널리즘 같기도 하다. 독자들은 글자의 오류를 지적하는 일부터, 새로운 해석을 제시하기도 하고, 타이완 국립고궁박물관에 반시직과 장부의 화첩이 있다는 것을 안 교수에게 알려줬다는 것이다. 좋은 책은 좋은 독자와 함께한다. 문소영 기자 symun@seoul.co.kr
  • 유시민, 노무현 前대통령에게 추모시 바치다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4주기를 앞두고 노무현재단 홈페이지에 ‘대답하지 못한 질문’이라는 추모시를 올렸다. 유 전 장관은 지난 2일 게재한 추모시에서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나라/특권과 반칙이 없는 세상을 만들 수 있을까/그런 시대가 와도 거기 노무현은 없을 것 같은데/…(중략)…/2002년 뜨거웠던 여름 마포경찰서 뒷골목/퇴락한 6층 건물 옥탑방에서 그가 물었을 때 난 대답했지/노무현의 시대가 오기만 한다면야 거기 노무현이 없다한들 어떻겠습니까/솔직한 말이 아니었어”라며 노 전 대통령과의 추억을 떠올리는 내용을 담았다. 노무현재단은 오는 10일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 헌정 시집을 발간할 예정이다. 헌정 시집을 위해 지난 3월부터 일반 시민들과 작가들의 작품 200편을 모았다. 한편 지난 3일 트위터를 통해 탈당의사를 밝혔던 문성근 민주당 상임고문은 이날 탈당신고서를 민주당 부산시당에 정식 제출했다. 문 상임고문은 탈당신고서에 첨부한 ‘부산 북·강서을 지역분들께 드리는 글’에서 “대선 실패 이후 당은 전당대회 지도부 선출방식을 대의원 50%+권리당원 30%+국민여론조사 20%로 정함으로써 실질적으로 ‘국민참여’를 배제했다”면서 “이는 합당정신을 부정하고 문재인 후보의 대선공약을 파기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문 상임고문은 민주진영의 정당재편을 앞당기기 위해 시민으로 돌아가는 것이 효과적이라 판단했다고 탈당이유를 밝히기도 했다. 또 친노(친노무현)계에게 지난해 대선 패배의 책임을 물은 대선평가보고서에 대한 아쉬움도 밝혔다. 문 상임고문은 “모두의 노력으로 대선에서 문 후보가 48%를 받았으면 모자란 2%를 채울 방안을 찾아야 하는데 당내에서 손가락질을 선택함으로써 지지자들의 마음에 상처만 남겼다”고 주장했다. 김효섭 기자 newworld@seoul.co.kr
  • 최동호 교수의 30년 연구 결실 ‘정지용시와 비평의 고고학’ 발간

    시인·평론가인 최동호(65) 고려대 국문과 교수가 1982년부터 30년간 꾸준히 연구해온 시인 정지용(1902~1950) 관련 논문 15편을 모아 ‘정지용시와 비평의 고고학’(서정시학 펴냄)을 최근 펴냈다. 최 교수는 1976년 겨울 납북시인 정지용의 시집을 우연히 서울 종로구 인사동 경문서림에서 구해 읽은 뒤로 이상한 감흥에 휩싸여 그 기운으로 여기까지 몰아붙인 듯하다. 시가 무엇인가 의문이 들 때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과 유협의 ‘문심조룡’, ‘정지용시집’을 펼쳐들었다는 그는 1999년 안식년에 미국 UCLA대학 방문학자로 가서 정지용 전집을 끼고 매일 한두 편씩 정독하며 시간을 보냈다. 덕분에 귀국해 정지용 시어를 중심으로 한 ‘정지용 사전’(2003년)을 발간할 수 있었다. 문소영 기자 symun@seoul.co.kr
  • [깔깔깔]

    ●기적의 혼동 종로에 사는 아버지 멀구는 작년에 결혼한 딸이 얼른 임신하길 바랐다. 그래서 기적의 성모상 앞에 가서 소원을 빌었다. “빨리 외손자가 태어나게 해 주세요.” 그리고 얼마간 시간이 흘렀다. 멀구는 다시 기적의 성모상을 찾아가 원망 섞인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성모님! 물론 제 기도를 들어주셨어요. 하지만, 약간의 혼동을 일으키셨나 봐요. 외손자를 낳은 건 시집 간 딸이 아니라, 시집 안 간 우리 막내딸이지 뭐예요. 성모님 이거 어떻게 책임지실 겁니까! 네? ” ●난센스 퀴즈 ▶친구와 싸울 필요가 없는 사람은? 친구가 없는 사람. ▶김태희가 차를 타고 가다 이완을 만났을 때 하는 말은? 타이완.
  • [커버스토리] 한국 시집온 베트남 여성의 꿈… 1년 만에 악몽으로

    [커버스토리] 한국 시집온 베트남 여성의 꿈… 1년 만에 악몽으로

    2006년 12월. 스무살이 되던 해 응우옌(26·베트남)은 얼굴도 모르는 남편을 만나려고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응우옌은 TV 속 한국 드라마의 따뜻하고 자상한 한국 남자를 상상했다. 한국으로 시집가면 부자 남편과 남부럽지 않게 살 수 있다는 고향 언니들의 말도 떠올렸다. 결혼할 사람은 서울에서 노래방을 운영하는 부자라고 했다. 그러나 꿈은 악몽으로 변했다. “내가 너를 얼마에 데려왔는데 이년아. 넌 평생 벌어도 만져 보지도 못할 돈이야. 뭘 그렇게 쳐다봐!” 18살 차이가 나는 남편은 외출 자체를 못 하게 했다. 한국어 교실에 나가고 싶다고 해도 “돈이 드니 안 된다. 어디를 도망가려 하느냐”고 소리를 질렀다. 한국말을 못 알아듣는다며 남편과 시어머니는 응우옌에게 걸핏하면 욕설을 퍼부었다. 남편은 술만 마시면 손찌검을 했다. 비 오는 날 두들겨 맞고 거리로 내쫓기기도 여러 번이었다. 함께 사는 시어머니는 늘 못 본 체했다. 이국에서 응우옌에게 허락된 유일한 공간은 인터넷뿐이었다. 남편과 시어머니가 외출하면 응우옌은 베트남어로 채팅이 가능한 ‘깻방’에 접속했다. 베트남어로 누군가와 말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위안이 됐다. 깻방은 베트남 결혼 이주 여성들의 이야기로 가득했다. 응우옌처럼 맞거나 갇혀 살다 가출하는 등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이 많았다. 응우옌은 깻방에서 새로운 꿈과 용기를 얻었다. 감옥 같은 집을 탈출하면 뭘 하든 먹고살 수는 있을 것 같았다. 식당 일을 하면서 베트남 가족들에게 돈을 부치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2007년 12월 응우옌은 잠옷 바람으로 가출했다. 결혼 1년 만이었다. 수중에는 단돈 800원이 전부였다. 경기도 안산에 위치한 한 공장이 그의 새로운 터전이 됐다. 깻방에서 소개받은 일자리였다. 매일 12시간씩, 시급 4500원을 받고 일하지만 마음만은 편했다. 이혼하면서 한국어도 배울 수 있게 됐고 가고 싶은 곳에 갈 수도 있게 됐다. 응우옌은 “현미경으로 휴대전화 부품을 일일이 점검하는 일을 해서 늘 눈이 아프고 머리가 어지러웠지만 갇혀 살았던 결혼 생활보단 낫다”면서 “7년이나 지났지만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면 가슴이 너무 아프다”고 했다. 2010년에 그는 공장을 나와 휴대전화 판매원으로 취직했다. “그땐 한국말도 서툴러서 맨날 벌벌 떨고 울었어요. 달려들고 소리 지르고 때리니까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가출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그냥 저는 행복하게 살고 싶었을 뿐인데….” 글 사진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커버스토리-결혼 이주여성의 위험한 탈출 그 이후] 남편이 죽자, 시아버지가 매일 밤 찾아왔다

    [커버스토리-결혼 이주여성의 위험한 탈출 그 이후] 남편이 죽자, 시아버지가 매일 밤 찾아왔다

    # 스무 살이 되던 해 그녀는 베트남 시골 마을 고향을 떠나 한국에 왔다. 나이는 까마득하게 많고 말도 전혀 안 통하는 낯선 남자와의 결혼. 하지만 그게 찢어지는 가난보다는 나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곳은 결코 그녀에게 포근한 보금자리가 되지 못했다. 정신질환을 앓는 남편은 허구한 날 폭력을 휘둘렀다. 그녀의 유일한 위안은 베트남어로 대화가 가능한 인터넷 메신저 ‘깻방’이었다. 이곳에는 한국에 시집온 베트남 여성들의 한숨과 눈물이 가득했다. 채팅을 하다가 숙식과 일자리를 제공하겠다는 사람을 만났다. 베트남 유학생인 그는 “힘들면 집에서 나오라”고 했다. 2년 만에 그녀는 집을 나왔다. 그렇게 해서 간 곳이 휴대전화 제조 공장. 고달픈 노동이 이어졌다. 그래도 행복했다. 베트남의 엄마 아빠에게 돈을 부칠 여유도 생겼다. 그러는 사이 남편과 이혼소송을 벌여 한국 영주권까지 얻었다. 이제 그녀는 자유다. # 그녀(29)는 9년 전 필리핀을 떠나 전남 지역으로 시집왔다. 신혼은 짧았다. 마늘 농사를 짓던 남편은 알코올 중독자에 자주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아이가 생겼지만 달라진 건 없었다. 남편은 결혼 8개월 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팔자려니 했다. 유복자이긴 했지만 아이도 낳았고 서서히 한국 생활에도 적응이 되는 듯했다. 하지만 악몽은 시아버지가 그녀의 방을 찾으면서 시작됐다. 매일 밤 시아버지는 며느리의 방을 찾아 문을 잠갔다.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구박하기 시작했고 그녀는 매일 밤마다 공포에 질려야 했다. 시아버지의 기행이 1주일 이상 이어지자 결국 그녀는 아기를 업고 몰래 짐을 쌌다. 결혼 1년 8개월 만이었다. 장을 보러 간다고 둘러댄 후 택시를 불렀다. 아이를 쉼터 어린이집에 맡기고 공장에 다녔다. 새벽 6시 30분부터 오후 9시 30분까지 15시간을 일했다. 그렇게 3년을 일했다. 그녀는 지금 손발에 마비 증상이 와 고생하고 있다. 집세를 내고 나면 네 살배기 아이와 입에 풀칠하기도 버겁다. 고향을 떠날 때 그렸던 그녀의 한국 생활은 대체 어디로 갔을까. 결혼 이주 여성의 가출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취업을 목적으로 결혼한 뒤 일자리를 찾아 사라지는 경우도 있지만 언어·문화·경제적인 문제로 시댁과 갈등을 겪거나 남편의 폭력과 폭언을 피해 가출하는 여성도 적지 않다. “(남편과) 보통 10~20년씩 나이 차이가 나다 보니 여성들이 도망갈까 봐 집 밖에 못 나가게 하고 가두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결혼 이주 여성 A(26)씨는 “결혼 이주 여성이 한국에 오는 이유 중 하나가 고국의 형편이 어려운 가족을 돕기 위해서인데 자꾸 집 안에 가두려고만 하니 목적 실현 자체가 불가능해지는 경우가 많다”면서 “많은 결혼 이주 여성이 이 문제로 갈등을 겪는다”고 했다. 이어 “일부에서는 돈 받고 팔려 왔으니 고분고분 살아야 한다는 식으로 결혼 이주 여성을 깔보는 심리도 있어 정 붙이기가 더욱 어렵다”고 했다. 실제 다양한 이유로 한 해 3000명 이상의 결혼 이주 여성들은 가출을 택하고 있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2008년 3777명, 2009년 3617명, 2010년 3613명, 2011년 3551명, 2012년 3731명이 한국 가정으로부터 도망쳤다. 올해에도 이미 3월 말까지 805명이 집을 나갔다. 다문화가정의 경우 가출 신고를 꺼린다는 특성을 고려하면 그 수는 더 커진다. 지난 5년간 성사된 국제결혼이 한 해 통상 2만 5000건 안팎인 것을 감안하면 매년 15% 정도가 가출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하고 있는 셈이다. 26만여 가구에 달하는 다문화가정 중 이혼 또는 별거 중인 가구도 4.5%에 달한다. 더 나은 삶을 위해 선택한 가출이지만 집 밖의 현실은 녹록지 않다. 가출한 결혼 이주 여성을 돌보는 쉼터 등에 입소하는 경우는 행운에 가깝다. 대부분 여권을 두고 몸만 도망쳐 빠져나오거나 남편이나 시부모가 여권을 관리하는 경우가 많아 당장 체류 자체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 상황을 맞는다. 체류 연장을 하지 못해 불법 체류자 신세로 전락하게 된다. 한 쉼터 관계자는 “가출한 결혼 이주 여성들이 비교적 쉽게 찾을 수 있는 쉼터 측에서 신원 보증을 한다 해도 체류 연장 기간이 3개월에 불과하다”면서 “더 큰 문제는 전국 18개 국비 지원 쉼터(각각 12~23명 정원으로 총 225명) 수용률도 정원을 초과한 상태라 폭력과 학대를 피해 집을 나왔다가도 귀가 조치되는 경우도 있는 게 사실”이라고 했다. 수용 인원 자체가 절대적으로 적기 때문에 물리적·언어적 폭력을 얼마나 심하게 당했느냐, 피해가 얼마나 크냐와 상관없이 빈자리가 있는지 없는지가 주요 입소 기준이 된다. 머물 수 있는 기간도 길어야 2년으로 한정돼 있다. 2년 후에는 독립을 해야 하지만 결혼 이주 여성들에겐 막막하기만 하다. 생활비는 많이 들지만 그들이 잡을 수 있는 일자리는 뻔하기 때문이다. 한국어가 안 되기 때문에 박봉의 공원이나 청소 도우미 이외에는 대안이 없다. 서울은 그나마 조건이 좋아 2차 쉼터에서 자립을 위한 기술을 배운다. 그러나 여건이 갖춰지지 못한 곳에선 일정 기간 후 머물 곳조차 없는 신세가 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모텔 청소 도우미인 ‘조바’(도우미)로 숨어드는 사람들이 많다. 젊은 여성들의 경우 공단에 숨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나이가 있는 한국계 중국인의 경우 여관이나 모텔에서 청소 도우미를 자처하며 숙식을 해결하는 경우가 많다. 한 모텔 관계자는 “신분이 드러날 일이 없어 많은 결혼 이주 여성들이 조바를 자처한다”고 전했다. 최근에는 인터넷 메신저 등을 통해 가출 정보를 얻거나 가출 후 도와줄 남성을 구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13년 전 베트남 여성과 결혼한 황재석(44·무역업)씨는 “혈기 왕성한 남성들은 성욕을 충족시킬 수 있고, 여성은 생활비를 아껴 번 돈을 최대한 많이 베트남 가족에게 보낼 수 있다는 점에서 가출 후 동거와 같은 또 다른 계약이 성립된다”면서 “주위를 보면 가출해서 혼자 사는 경우는 거의 없고 유학 등을 온 자국민들과 함께 사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일부 결혼 이주 여성을 도와주려는 남성들은 가출 후 이혼 소송에서 승소하면 영주권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노려 이혼을 부추기는 경우도 있다. 가출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만은 않은 이유 중 하나다. 이는 악순환을 낳기도 한다. 좋지 못한 사례가 알려지면 알려질수록 결혼 이주 여성과 결혼하는 남편과 가족들은 여성의 바깥 생활에 대한 불안과 통제에 대한 집착이 심해진다. 여성의 사회생활을 통제하면서 갈등이 계속되는 식이다. 김해성 지구촌사랑나눔 이사장은 “자신을 희생하며 건전하게 사는 결혼 이주 여성들이 대부분인데도 일부 사례 때문에 ‘결혼 이주 여성들은 다 도망간다더라’ 식의 선입견이 확산돼 있다”면서 “실제로 남성 쪽에 신체적, 경제적 어려움이 있는 게 문제 되는 경우가 더 많다”고 했다. 김현미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우리나라가 이 여성들을 결혼 이주자로 불러들였기 때문에 이를 제대로 완성하지 못한 가출 여성들에 대한 편견이 많고 쉽게 낙인을 찍는다”면서 “다문화가족지원센터도 건강한 가족의 유지에만 초점을 맞춰 운영되기 때문에 심각한 부부 갈등이나 폭력을 겪고 있는 가정 등 좀 더 개입이 필요한 문제에 대해서는 방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 남편이 죽자, 시아버지가 매일 밤 찾아왔다

    남편이 죽자, 시아버지가 매일 밤 찾아왔다

    # 2007년 스무 살이 되던 해 그녀는 베트남 시골 마을 고향을 떠나 한국에 왔다. 나이는 까마득하게 많고 말도 전혀 안 통하는 낯선 남자와의 결혼. 그게 찢어지는 가난보다는 나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곳은 결코 그녀에게 포근한 보금자리가 되지 못했다. 정신질환을 앓는 남편은 허구한 날 폭력을 휘둘렀다. 그녀의 유일한 위안은 베트남어로 대화가 가능한 인터넷 메신저 ‘깻방’이었다. 이곳에는 한국에 시집 온 베트남 여성들의 눈물이 가득했다. 채팅을 하다가 숙식과 일자리를 제공하겠다는 사람을 만났다. 베트남 유학생인 그는 “힘들면 집에서 나오라”고 했다. 2009년 그녀는 집을 나왔다. 그렇게 해서 간 곳이 휴대전화 제조 공장. 시급 4500원에 아침 9시부터 밤 9시까지 고달픈 노동이 이어졌다. 그래도 행복했다. 베트남의 엄마 아빠에게 돈을 부치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 남편과 이혼소송을 벌여 한국 영주권까지 얻었다. 이제 그녀는 자유다. # 그녀(29)는 9년 전 필리핀을 떠나 전남 지역으로 시집왔다. 신혼은 짧았다. 마늘 농사를 짓던 남편은 알코올 중독자에 자주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아이가 생겼지만 달라진 건 없었다. 남편은 결혼 8개월 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팔자려니 했다. 유복자이긴 했지만 아이도 낳았고 서서히 한국 생활에도 적응이 되는 듯했다. 하지만 악몽은 시아버지가 그녀의 방을 찾으면서 시작됐다. 매일 밤 시아버지는 며느리의 방을 찾아 문을 잠갔다.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구박하기 시작했고 그녀는 매일 밤마다 공포에 질려야 했다. 시아버지의 기행이 1주일 이상 이어지자 결국 그녀는 아기를 업고 몰래 짐을 쌌다. 결혼 1년 8개월 만이었다. 장을 보러 간다고 둘러댄 후 택시를 불렀다. 아이를 쉼터 어린이집에 맡기고 공장에 다녔다. 새벽 6시 30부터 오후 9시 30분까지 15시간을 일했다. 그렇게 3년이 흘렀다. 그녀는 지금 손발에 마비 증세가 와 고생하고 있다. 집세를 내고 나면 네 살배기 아이와 입에 풀칠하기도 버겁다. 고향을 떠날 때 그렸던 그녀의 한국 생활은 대체 어디로 갔을까. 결혼 이주 여성의 가출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취업을 목적으로 결혼한 뒤 일자리를 찾아 사라지는 경우도 있지만, 언어·문화·경제적인 문제로 시댁과 갈등을 겪거나 남편의 폭력과 폭언을 피해 가출하는 여성도 적지 않다. “(남편과) 보통 10~20년씩 나이 차이가 나다 보니 여성들이 도망갈까봐 집 밖에 못 나가게 하고 가두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결혼 이주 여성 A(26)씨는 “결혼 이주 여성이 한국에 오는 이유 중 하나가 고국의 형편이 어려운 가족을 돕기 위해서인데 자꾸 집 안에 가두려고만 하니 목적 실현 자체가 불가능해지는 경우가 많다”면서 “많은 결혼 이주 여성이 이 문제로 갈등을 겪는다”고 했다. 이어 “일부에서는 돈 받고 팔려 왔으니 고분고분 살아야 한다는 식으로 결혼 이주 여성을 깔보는 심리도 있어 정 붙이기가 더욱 어렵다”고 했다. 실제 다양한 이유로 한 해 3000명 이상의 결혼 이주 여성들은 가출을 택하고 있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2008년 3777명, 2009년 3617명, 2010년 3613명, 2011년 3551명, 2012년 3731명이 한국 가정으로부터 도망쳤다. 올해에도 이미 3월 말까지 805명이 집을 나갔다. 다문화가정의 경우 가출 신고를 꺼린다는 특성을 고려하면 그 수는 더 커진다. 지난 5년간 성사된 국제결혼이 한 해 통상 2만 5000건 안팎인 것을 감안하면 매년 15% 정도가 가출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하고 있는 셈이다. 26만여 가구에 달하는 다문화가정 중 이혼 또는 별거 중인 가구도 4.5%에 달한다. 더 나은 삶을 위해 선택한 가출이지만 집 밖의 현실은 녹록지 않다. 가출한 결혼 이주 여성을 돌보는 쉼터 등에 입소하는 경우는 행운에 가깝다. 대부분 여권을 두고 몸만 도망쳐 빠져나오거나 남편이나 시부모가 여권을 관리하는 경우가 많아 당장 체류 자체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 상황을 맞는다. 체류 연장을 하지 못해 불법체류자 신세로 전락하게 된다. 한 쉼터 관계자는 “가출한 결혼 이주 여성들이 비교적 쉽게 찾을 수 있는 쉼터 측에서 신원 보증을 한다 해도 체류연장 기간이 3개월에 불과하다”면서 “더 큰 문제는 전국 18개 국비 지원 쉼터(각각 12~23명 정원으로 총 225명) 수용률도 정원을 초과한 상태라 폭력과 학대를 피해 집을 나왔다가도 귀가 조치되는 경우도 있는 게 사실”이라고 했다. 수용 인원 자체가 절대적으로 적기 때문에 물리적·언어적 폭력을 얼마나 심하게 당했느냐, 피해가 얼마나 크냐와 상관없이 빈자리가 있는지 없는지가 주요 입소 기준이 된다. 머물 수 있는 기간도 길어야 2년으로 한정돼 있다. 2년 후에는 독립을 해야 하지만 결혼 이주 여성들에겐 막막하기만 하다. 생활비는 많이 들지만 그들이 잡을 수 있는 일자리는 뻔하기 때문이다. 한국어가 안 되기 때문에 박봉의 공원이나 청소 도우미 이외에는 대안이 없다. 서울은 그나마 조건이 좋아 2차 쉼터에서 자립을 위한 기술을 배운다. 그러나 여건이 갖춰지지 못한 곳에선 일정 기간 후 머물 곳조차 없는 신세가 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모텔 청소 도우미인 ‘조바’(도우미)로 숨어드는 사람들이 많다. 젊은 여성들의 경우 공단에 숨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나이가 있는 한국계 중국인의 경우 여관이나 모텔에서 청소 도우미를 자처하며 숙식을 해결하는 경우가 많다. 한 모텔 관계자는 “신분이 드러날 일이 없어 많은 결혼 이주 여성들이 조바를 자처한다”고 전했다. 최근에는 인터넷 메신저 등을 통해 가출 정보를 얻거나 가출 후 도와줄 남성을 구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13년 전 베트남 여성과 결혼한 황재석(44·무역업)씨는 “혈기 왕성한 남성들은 성욕을 충족시킬 수 있고, 여성은 생활비를 아껴 번 돈을 최대한 많이 베트남 가족에게 보낼 수 있다는 점에서 가출 후 동거와 같은 또 다른 계약이 성립된다”면서 “주위를 보면 가출해서 혼자 사는 경우는 거의 없고 유학 등을 온 자국민들과 함께 사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일부 결혼 이주 여성을 도와주려는 남성들은 가출 후 이혼 소송에서 승소하면 영주권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노려 이혼을 부추기는 경우도 있다. 가출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만은 않은 이유 중 하나다. 이는 악순환을 낳기도 한다. 좋지 못한 사례가 알려지면 알려질수록 결혼 이주 여성과 결혼하는 남편과 가족들은 여성의 바깥 생활에 대한 불안과 통제에 대한 집착이 심해진다. 여성의 사회생활을 통제하면서 갈등이 계속되는 식이다. 김해성 지구촌사랑나눔 이사장은 “자신을 희생하며 건전하게 사는 결혼 이주 여성들이 대부분인데도 일부 사례 때문에 ‘결혼 이주 여성들은 다 도망간다더라’ 식의 선입견이 확산돼 있다”면서 “실제 남성 쪽에 신체적·경제적 어려움이 있는 게 문제 되는 경우가 더 많다”고 했다. 김현미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우리나라가 이 여성들을 결혼 이주자로 불러들였기 때문에 이를 제대로 완성하지 못한 가출 여성들에 대한 편견이 많고 쉽게 낙인을 찍는다”면서 “다문화가족지원센터도 건강한 가족의 유지에만 초점을 맞춰 운영되기 때문에 심각한 부부 갈등이나 폭력을 겪고 있는 가정 등 좀 더 개입이 필요한 문제에 대해서는 방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영업하며 쌓은 노하우가 도움될 것”

    “영업하며 쌓은 노하우가 도움될 것”

    “시집가는 기분이에요. 민간기업에서 관 성격의 감독기관으로 가는 거니까요. 조직이 다른 만큼 시댁(금감원)에도 잘 보여야 하고, 가서 일도 잘해야 하는데 걱정입니다.” 3일 금융감독원 신임 금융소비자보호처장(부원장보)으로 임명된 오순명(58)씨는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이렇게 소감을 밝혔다. 새 정부가 금융소비자 보호를 각별히 강조하고 있어 그에게 쏠리는 관심이 남다르다. 게다가 그는 12년 만에 탄생한 여성 부원장보다. 훗날 국회의원과 금융통화위원을 지낸 이성남씨가 2001년 마지막 부원장보를 지냈다. 오 신임 처장은 우리은행 자회사인 우리모기지 대표이사 출신이다. 영업 분야를 두루 거친 경험과 노하우가 금융소비자 보호 업무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게 최수현 금감원장의 발탁 배경 설명이다. 오 처장도 “은행에서 바닥부터 훑어 나갔고, 영업을 오랫동안 해온 만큼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 적이 많아 소비자가 어떤 점을 불편해하는지 더 세심히 살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복잡한 금융 상품을 단순화해 소비자 보호에 나서겠다는 의견도 피력했다. 한국외대 출신으로 1978년 한국상업은행(현 우리은행) 여성 대졸 공채 1기로 입행했다. 상업은행에서 인천영업본부장까지 지냈으며 2001년부터 우리모기지 대표로 일해 왔다. 일선 창구 업무에서 시작해 최고경영자 자리에까지 오른 셈이다. 오 처장은 “여성을, 그것도 민간기업 출신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보수적인 우리나라 금융계가 많이 달라졌다고 생각한다”면서 “35년 금융 경험을 바탕으로 소비자의 눈높이에 맞는 소비자 보호 개선책을 마련하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핵심 현안인 금융소비자원 분리 독립과 관련해서는 “금감원 산하가 좋을지 독립 기구가 좋을지는 아직 생각해 본 적이 없다”며 즉답을 피했다. 백민경 기자 white@seoul.co.kr
  • 아이들의 생각 주머니가 ‘무럭무럭’

    아이들의 생각 주머니가 ‘무럭무럭’

    어린이날 선물을 고민하고 있다면 주저 말고 책을 선물하라고 권하고 싶다. 때맞춰 감동과 재미를 담은 어린이책들이 쏟아져 나왔다. 미취학 어린이를 위한 양장본 그림책이 풍성하다. 이 중 ‘소원을 그리는 아이’(책읽는곰 펴냄)는 우리 민화 이야기다. 정처 없이 길을 나선 주인공 실실이가 그림 그리기를 통해 가족과 이웃의 웃음을 되찾아준다는 줄거리. ‘여우 제삿날’(학고재 펴냄)은 친숙한 우화를 통해 ‘원초적 가족’인 조상의 의미를 되새긴다. 젯밥에만 정신이 팔린 여우가 자연스럽게 조상의 의미를 깨달아가는 과정을 담았다. 볼로냐 아동 도서전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인 이지선씨가 그림을 그렸다. ‘엄마가 제일 잘 알아!’(길벗어린이 펴냄)는 하고 싶은 것도 많고 궁금한 것도 많은 아기곰 브래들리와 엄마의 교감 이야기. “낮에 잠옷 입고 있어도 돼요?” “아침 대신 아이스크림 먹어도 돼요?”라고 묻는 브래들리에게 엄마는 늘 왜 안 되는지 친절하게 궁금증에 답해준다. ‘따라와, 멋진 걸 보여 줄게’(낮은산 펴냄)는 너트, 고리, 병뚜껑, 나사의 유쾌한 여행기다. 섬세한 조명을 활용, 대담한 사진 이미지로 재구성했다. ‘우리 할아버지’(노란돼지 펴냄)는 치매 때문에 과거의 기억을 하나둘씩 잃어가는 할아버지와 손녀의 애틋한 사랑을 담았다. 점점 다른 사람이 되어가는 할아버지를 바라보는 어린 손녀의 복잡한 심리가 잘 묘사됐다. 유아·어린이를 위한 해외 시리즈도 눈길을 끈다. 토베 얀손의 ‘무민’ 시리즈가 대표적. 무민 골짜기에서 무민과 친구들이 벌이는 핀란드판 ‘뽀로로의 모험’이다. 무민은 아기 하마나 눈사람을 닮은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전설 속 동물로, 1945년 동화로 탄생했다. 최근 국내에 출간된 ‘무민과 봄에 온 편지’(어린이작가정신 펴냄)는 시리즈의 12번째 책. 무민 일행이 친구 스너프킨을 찾아 떠나는 모험을 그렸다. 네덜란드 작가 카리나 샤프만의 ‘꼬마 생쥐 샘과 줄리아’(문학수첩 펴냄)의 ‘극장에 놀라가요’ 편도 흥미를 자극한다. 재활용품으로 3년간 손수 제작한 방 100개짜리 ‘생쥐 아파트’가 고스란히 사진에 담겼다. 공연을 앞두고 긴장해 밥도 못 먹는 소심쟁이 샘이 가슴 따뜻한 이야기를 풀어간다. 초등학교 저학년을 위한 창작동화도 있다. ‘꼬마 구두장이 흘라피치’(산지니 펴냄)는 견습공 흘라피치가 구둣방을 도망쳐 나와 겪는 모험 이야기. 1913년 크로아티아에서 처음 발간된 뒤 100년간 전 세계 어린이들의 사랑을 받았다. ‘하느님, 제가 가르쳐 드릴까요?’(봄나무 펴냄)에선 아홉살 소녀 라우라가 친구와의 우정, 타인에 대한 용서 등 주변 사람의 행복을 기원한다. “하느님, 제가 가르쳐 드릴까요?”라는 조언 같은 기도가 이어진다. ‘벼룩처럼 통통’(단비 펴냄)은 서울·경기지역 11곳 대안학교 어린이들이 쓴 동시집. 어린이들이 직접 시를 쓰고 그림을 그렸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이름 모를 食口에게… 매일 밥상 차려주는 시인

    이름 모를 食口에게… 매일 밥상 차려주는 시인

    둥글넓적한 소반에 문어를 넣고 반달로 썬 애호박이 수제비와 어우러져 한 그릇, 뒤에 찐 채소에 싼 주먹밥과 쌈장, 갓김치 한 보시기가 놓여 있다. 찐 채소로 싼 주먹밥의 형태와 놓여 있는 모양새가 정갈하고 여간 정성이 깃들어 있는 것이 아니다. 밥상의 색깔은 하얗고 푸르고, 붉다. 어느 날은 조개 애호박국, 강낭콩밥에 구운 생선 두 마리, 갑오징어 숙회 그리고 진도홍주가 밥상에서 석류알처럼 붉게 빛난다. 먹음직스럽다. 그런데 수저는 한 벌, 다시 말해 독상을 받았다. 경상남도 남해 미조초등학교 교사로 일하는 시인 오인태(51)의 저녁 밥상이다. 사택에 혼자 사는 그는 자신을 위해 정성껏 상을 차린다. 그리고 지난해 말부터 자신이 직접 차린 정갈한 저녁 밥상을 거의 매일 페이스북에 올려 낯선 친구들과 그림 속의 밥을 함께 나누고 있다. 밭일에 바쁜 어머니가 얼른 솜씨를 부려 순식간에 차려낸 것 같은 소박한 이 밥상에 사람들은 ‘좋아요’를 800~1000개씩 눌러댄다. 함께 올리는 그의 시 때문일지도 모른다. “너에게는 참 할 말이 없다.// 위로 누나 넷으로 늦본 맏이 그늘에 묻혀/ 입는 것 하나 제대로 네 몫으로 산 것 없고/ 먹는 것 하나 따뜻하게 네 것으로/ 챙겨진 일 없던/ 아우야// 형이 네가 못 나온 고등학교를 나오고/ 값싼 교육대학이나마 졸업한 것은/ 누나들이 그랬던 것처럼/ 보리밥으로 덮은 형의 쌀밥 도시락과/ 쌀밥으로 덮은 네 보리밥 도시락의 차이를/ 묵묵히 눈물로 삼켰을 아픈 인내와/ 희생의 대가임을 이 형인들 모를까// 네가 책가방보다 또래들의/ 주먹다짐에나 어울리고/ 어렵게 입학한 공고를 몇 달 만에/ 네 말대로 때려치우고 나온 것도/ 아우야// 이 형은 네 속 깊은 마음을/ 두려움으로 간직하고 있다.” 밥상과 함께 소개한 오인태의 첫 시집 ‘그곳인들 바람불지 않겠나’(1992년)에 수록된 ‘아우에게’ 중의 일부로, 고단한 1960~70년대를 보낸 중년 아저씨 아줌마의 눈물을 찔끔거리게 했다. 오인태는 지난 29일 전화통화에서 “‘아우에게’는 우리집 가족사죠. 제게는 ‘고흐의 테오’ 같은 아우가 있습니다. 1980~90년대는 리얼리즘의 시대였고, 나의 가족사에 문학성을 덧입혀서 쓴 시들이 나왔던 것”이라고 했다. 그는 밥상에 대해서는 “혼자 있을 때, 혼자서 쓰는 물건, 결국은 자기 자신에 대해 소홀하기 십상인데 ‘내 스스로 존중하기 위해’ 격식 있는 밥상을 차리는 것이죠. 또 실제로 혼자 먹지만 친구들과 밥상을 나누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정치적인 담론 생산에 열을 올렸던 시인 오인태가 ‘밥상의 인문학’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 시점은 지난해 말 대통령 선거가 끝난 뒤였다. 정치이야기에 관심이 떨어졌다. 두 번째 시집이 ‘혼자 먹는 밥’(1998년)이고, 블로그 이름도 ‘시야, 밥먹고 놀자’로 지었던 그는 이제 사람들에게 밥을 챙겨 주고 싶었단다. 그는 1년에 봄·가을로 1박2일 동안 사람들을 불러모아 밥을 지어주고, 밥을 사주곤 하는 행사를 10년째 하고 있다. “공동체의 가장 작은 단위 ‘식구’(食口)이다. 어떤 공동체에 자신이 성원임을 확인하는 것이 밥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밥 먹는 행위는 삶을 같이한다는 의미죠. 그런데 요즘은 다들 바빠서 식구들끼리도 같이 밥을 먹지 않잖아요. 공동체가 깨진 것이죠. 밥을 같이 안 먹고 뿔뿔이 흩어져 혼자 밥을 먹으니까, 젊은이들이 밥 먹는 행위를 ‘흡입한다’라고 하지 않겠어요. 자동차에 휘발유를 집어넣듯이 그저 밥을 에너지원으로만 생각하는 것이죠.” 그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 ‘상호부조’라고 했다. 댓글도 달고 ‘좋아요’를 누르면서 서로 소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림 속의 밥상’이지만 그가 차려내는 밥상은 몇 가지 원칙이 있다. 우리 땅에서 난 재료인지 원산지를 확인하고, 재래시장에서 장을 보고, 재료의 맛을 살리기 위해 양념을 많이 하지 않는 것이다. 다섯 번째 시집 ‘별을 의심하다’(2011년)을 내고 동시집 ‘돌멩이가 따뜻해졌다’(2012년)을 펴낸 오인태는 “올해 어린이 문학에 집중하고 싶고 동화도 쓰고 싶다”고 했다. 자신의 저녁 밥상을 ‘밥상의 인문학’ 수준으로 더 격상시키겠다니 기대가 크다. 문소영 기자 symun@seoul.co.kr
  • 끝없이 준 어머니, 더 원하는 며느리… 여자의 적은 정말 여자인가?

    끝없이 준 어머니, 더 원하는 며느리… 여자의 적은 정말 여자인가?

    ‘구강건조증’, 안구건조증과 비슷한 것이었다. 인공눈물이 있듯이 인공침도 있었다. ‘사회파 작가’ 김숨(39)의 장편소설 ‘여인들과 진화하는 적들’(현대문학 펴냄)이 표현한 ‘여인’ 정순자씨가 앓는 고통스러운 병이다. 정순자는 1949년생 소띠로 충남 부여가 고향이다. 초등학교를 겨우 졸업하고 17살에 서울에 올라와 동대문 직물가게를 하던 친척집 일을 돕다 남자를 만나 결혼해 딸 둘과 아들 하나를 낳았다. 36살에 과부가 돼 파출부, 요구르트 배달, 버스회사 청소부, 식당 주방일 등 안 해본 허드렛일이 없다. 맞벌이를 포기하지 않은 홈쇼핑 콜센터 상담원인 며느리의 요청으로 살림을 합쳐서 5년 동안 말없이 살림과 보육을 도맡았다. 며느리는 시어머니를 두려워하기는커녕 대놓고 무시하고 핍박한다. 지방 3류 대학을 나와 중소건설사 직원으로 출장이 잦은 아들은 대한민국 귀한 아들답게 저밖에 모르고, 못났다. 정순자의 며느리 김미선은 누구인가. 구세대 어머니를 표상하는 ‘여인’들을 압박하는 ‘진화하는 적’이 아닐까 싶다. 그녀는 시어머니를 ‘여자’라고 부른다. 정규직 홈쇼핑 콜센터 상담원으로 15년 다녔던 회사에서 최근 해직됐다. 전문대 출판학과를 나온 그녀는 교사를 어머니로 둔 ‘노량진 고시촌의 번데기’ 같은 남자와 사귀다가 계층, 신분의 차이를 뼈저리게 느껴 포기하고 32살에 36살의 중소건설사 직원과 결혼했다. 해직되자 구강건조증 환자 시어머니를 내쫓으려 한다. 김숨은 중세적 권력관계가 역전된 ‘며느리 시집살이’의 전형을 보여주는데, 자본주의적인 진화일지도 모르겠다. 시어머니 덕분에 신생아의 칭얼거림 없이 개운하게 잠을 자고, 시어머니가 6시 30분 남편의 아침밥을 대령하는 등으로 육아와 가사일에서 완전히 벗어났는데도 야박한 수고비를 책정한다. 그 쥐꼬리만 한 수고비마저도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자 절반으로 잘랐다. 필요가 사라지자 버리려고 한다. 그러나 김미선은 “부모가 뒷바라지를 얼마만큼 해 주느냐에 따라 자식 인생이 달라지는 것 아니냐”고 당당하게 정순자를 비난한다. 순박하고 희생적인 정순자는 “얼마나…인생이 얼마나 달라진다는 거냐?”고 되묻지만 “브랜드 아파트에 살고, 외제 차 끌고, 휴가 때마다 온 가족이 해외로 여행 다니면서 사는 게 성공한 인생이 아니겠느냐”는 김미선 앞에서는 말복을 채워 주기 위해 어머니 세대가 마땅히 누려야 할 행복을 박탈하고 침해하는 것이 마땅할까. 이것이 오늘날의 진화다. 문소영 기자 symun@seoul.co.kr
  • [30일 TV 하이라이트]

    ■인간극장(KBS1 오전 7시 50분) 늦은 밤 집으로 돌아온 희수씨를 반기는 것은 아내 정원씨와 딸 소윤의 잠든 뒷 모습뿐이었다. 희수씨에게는 하루하루가 고단하고 왠지 모를 공허함의 연속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정원씨는 희수씨에게 여행을 제안하며 가슴 속으로 늘 꿈꾸었던 길을 찾아 떠나자고 한다. 그렇게 이들은 2012년 6월 유랑 길에 오른다. ■꼬마신랑 쿵도령(KBS2 오후 5시) 시집온 지 얼마 안 된 금룡이의 색시 연화는 아무리 잘하려 해도 자꾸 고모한테 꾸중을 듣는다. 이런 게 만수가 말한 시집살이인가. 고생만 하는 연화를 위해 금룡은 자신이 얼마나 든든한 남편인지 보여주려 한다. 하지만 오히려 색시를 곤경에 빠뜨리고 마는 금룡이. 과연 꼬마신랑 금룡이는 색시를 지켜 줄 수 있을까. ■구암 허준(KBS1 밤 8시 55분) 아들 낳는 비방을 알려주는 의원에게 찾아간 구일서(박철민)와 함안댁(견미리)은 부산포(김중기)를 만난다. 도지(남궁민)는 갈수록 의술이 깊어지지만 허준(김주혁)을 찾아오는 사대부들을 보며 자존심이 상한다. 한편 허준은 돈을 벌기 위해 부산포의 제안을 받아들이지만, 오히려 부산포는 허준을 이용한다. ■현장 21(SBS 밤 8시 55분)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것들을 적은 목록’이라는 뜻으로 시한부 인생을 통보받은 사람들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버킷리스트가 진화하고 있다. 먹고사느라 바빠 잊고 지냈던 자신의 꿈을 버킷리스트의 실천을 통해 이뤄나가는 기회로 삼는 것이다. 과거 버킷리스트와 다르게 지금은 미래지향적인 성격으로 바뀌고 있었다. ■엄마 없이 살아보기(EBS 밤 8시 20분) 전남 곡성의 어느 마을 깊숙이 자리 잡은 외딴집. 첩첩산중에서 일어나는 형제의 여행기가 펼쳐진다. 굽이굽이 산골길을 오르던 열 살 근수와 일곱 살 시우 형제. 여행 가방을 사이에 두고 동생 시우의 울음이 터지고야 만다. 한편 이곳에 살고 있는 장갑용·김춘화 부부가 아이들을 맞아준다. ■멜로다큐 가족(OBS 밤 11시 5분) 경남 통영에서 조금 떨어진 섬 추도에는 결혼 14년 차 늦깎이 부부가 살고 있다. 바로 남편 심춘우씨와 아내 이정순씨다. 가족을 챙기느라 노처녀가 되어버린 정순씨와 상처를 안고 추도로 도망치듯 내려온 춘우씨. 두 사람을 부부의 연으로 이어준 건 누구도 아닌 추도였다고 하는데….
  • “믿던 동네형님이…” 노량진 뒤흔든 곗돈 46억 사기사건

    “믿던 동네형님이…” 노량진 뒤흔든 곗돈 46억 사기사건

    “계 타면 이제 우리 애들 결혼 좀 시키겠구나 했어요.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뻔히 아는 계주가 어떻게 그 돈을 들고 사라져….” 계주 이모(63·여)씨가 잡혔다는 소식을 들은 박모(55·여)씨는 눈물부터 쏟았다. ‘그날’ 이후 박씨는 죄책감에 고개 한번을 제대로 들지 못했다. 스트레스로 거북이 등껍질처럼 쩍 갈라진 박씨의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박씨는 1990년대 중반 지인의 소개로 이씨 집에서 가사 도우미로 일했다. 이씨는 동네에서 유명한 계주였다. 지인은 박씨에게 “이씨가 계 모임의 큰손이다. 은행보다 낫더라”며 계에 들 것을 권유했다. 새마을금고 이사장인 남편과 공부도 잘한다는 자식을 둔 이씨를 평소 동경해왔던 박씨는 약 20년 가까이 모은 돈을 모조리 계에 쏟아부었다. 남편 없이 자식 셋을 홀로 기르며 가사도우미, 피부 마사지, 식당 설거지 등을 하며 모은 전 재산이었다. 직장에 들어간 자식들도 월급을 보태, 계에 쏟았다. 그렇게 이씨에게 맡긴 돈이 1억 7000만원. 그러나 박씨가 믿고 따랐던 이씨는 지난해 여름 박씨의 돈을 들고 홀연히 행방을 감췄다. 박씨를 포함한 계원 43명의 46억 2000만원도 순식간에 사라졌다. “2009년부터 곗돈 주기를 계속 미뤘어요. 탈 때가 지나서 불안한 마음에 전화를 하면 ‘왜 집으로 전화를 하느냐. 나를 못 믿는 거냐’고 소리를 질렀죠. 그전까진 누구보다 곗돈 관리에 엄격한 분이시라 불안해도 크게 의심하지 않았어요.” 이씨는 1970년대부터 노량진 일대에서 ‘번호계’ 방식으로 계를 운영했다. 계원들이 3년간 매달 일정 금액을 넣고 순번대로 곗돈을 타가는 식이다. 이씨는 잠적 전까지 매월 86만∼143만원을 내고, 순서대로 3000만∼5000만원을 태우는(곗돈을 탄다는 의미) 이른바 ‘새마을계’ 9개를 운영했다. 5000만원짜리 계는 월 143만원씩, 3000만원짜리 계는 월 86만원씩 넣을 수 있게 했다. 36순위까지 있는 순번표에 1~2번은 이씨가, 그 이후에는 순서대로 계를 타게 했다. 이씨는 야박한 계주로 악명이 높았다. 박씨를 비롯해 이씨에게 돈을 뜯긴 피해자들은 하나같이 이씨가 보통내기가 아니었다고 했다. 계원들과 가까이 지내다가도 돈을 내기로 한 약속시간을 어기면 인정사정 봐주지 않았다. 독촉전화는 물론 계원 집에 드러눕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한 계원은 곗돈을 못내 이씨에게 집 문서를 가압류당하기도 했다. 계원 관리도 철저했다. 계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재정보증서를 제출하고 연대 보증인을 세워야 했다. 인감도 제출하게 했다. 곗돈을 못 내는 계원이 생기면 추천인이 대신 곗돈을 내주는 규칙도 엄격히 적용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친목모임을 통해 계원 확장도 독려했다. 피해자들은 누구보다 독하게 계를 관리했던 이씨를 보며 안심하고 돈을 맡길 수 있었다고 했다. 이씨의 배경도 한몫했다. 노량진의 한 새마을금고 간부인 남편, 회계사가 된 아들, 명문가에 시집간 딸 등 이씨는 동네 주부들에게 본받아야 할 큰언니이자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이씨는 동네 주부들에게 형님이란 의미의 ‘오야’로 불렸다. 이씨의 계는 35년여간 아무 문제가 없었다. 때문에 자녀, 조카 등 기본 3대가 참여하는 집이 많아졌다. 곗돈 규모도 계속해서 커졌다. 하지만 2008년 말부터 이씨의 행동이 미묘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이씨는 새마을금고 이사장이었던 남편과 유명 회계법인에서 일하는 회계사 아들을 앞세우며 기존 계원들에게 “계 하나만 더 하자. 나 좀 믿고 도와달라”고 했다. 1억원짜리 계였다. 약속했던 곗돈도 자꾸 미뤘다. 곗돈을 못 받은 계원이 곗돈 이야기를 꺼내면 소리를 지르거나 신경질적으로 대꾸했다. 계원들은 불안했지만 믿고 기다렸다고 했다. 그러나 하루 이틀 연락이 닿지 않던 이씨는 지난해 7월 아예 집을 빼고 야반도주했다. 계원들은 그달 말 서울 동작경찰서에 이씨를 고소했다. 이씨의 잠적은 대부분 가정주부였던 피해자들의 삶을 산산조각 냈다. 박씨는 사건 발생 후 대상포진과 손가락 마비에 시달리고 있다. 이씨에게 6억원을 뜯긴 김모(69·여)씨도 이씨가 잠적한 10개월간 하루도 빠짐없이 신경안정제를 복용해야 하는 지경이 됐다. 2억 2000만원가량 곗돈을 떼인 이모(46·여)씨는 “노량진 토박이인 엄마가 결혼자금을 모으라며 이씨를 소개시켜 줬다”면서 “조카도 내 말만 믿고 300만원가량을 부었는데 내가 모두 물어 주게 생겼다”고 한탄했다. 10개월 내내 경찰서로 매일 출근도장을 찍었다는 이씨는 “3년전 빚을 청산하려고 살고 있던 아파트를 처분하고 다섯 명의 식구들이 10평대 공무원아파트에서 살았다”면서 “빚을 갚고 남은 1억원도 곗돈으로 썼는데 아파트도 이제 비워 줘야 돼 길거리에 나앉게 생겼다”고 했다. 이씨를 30년간 알고 지냈다는 김모(58·여)씨는 3000만원짜리 계 3개와 5000만원짜리 계 4개에 들었다가 총 4억 400만원을 날리게 됐다. 김씨는 “남편과 딸 3명이 벌어온 월급 3년치가 몽땅 계를 붓는 데 들어갔다”고 말했다. 또 다른 피해자는 고향인 전라도 순천에 사는 일가친척들 돈으로 계를 부었다가 피해를 보기도 했다. 계주 이씨는 남편과 함께 고향인 경남 진주시의 한 연립주택에 월세로 숨어 지내다 지난 25일 경찰에게 붙잡혔다. 살림살이는 밥솥 하나와 이불 두 개가 전부였다. 이들은 경찰의 눈을 피하려고 3개월마다 거주지를 옮겼다. 계약 문서도 남기지 않았다. 경찰은 10개월 뒤에서야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전립선암 치료를 받고 귀가하던 남편 양씨를 미행, 집에 숨어 있던 이씨를 배임·사기 혐의로 검거했다. 이씨는 경찰 조사에서 “곗돈 중 10억원을 사업 투자용으로 지인에게 빌려줬는데 이를 돌려받지 못하면서 계원들에게 곗돈을 주지 못하게 돼 도망갔다”고 진술했다. 이씨는 잡혔지만 피해자들이 곗돈을 돌려받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씨는 대부분의 돈을 빚을 갚고 병원비를 내는 등 생활비로 쓴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가 붙잡혔다는 소식에 피해자들은 한달음에 경찰서를 찾았다. “평생을 고무 슬리퍼만 신고 다닌 사람들한테 어떻게 이런 사기를 칠 수 있나요? 피 같은 내 돈은 돌려받을 수 있는 건가요? 정말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글 사진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투데이 인사이드] 60대 계주에 46억원 떼인 사람들

    [투데이 인사이드] 60대 계주에 46억원 떼인 사람들

    “계 타면 이제 우리 애들 결혼 좀 시키겠구나 했어요.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뻔히 아는 계주가 어떻게 그 돈을 들고 사라져….” 계주 이모(63·여)씨가 잡혔다는 소식을 들은 박모(55·여)씨는 눈물부터 쏟았다. ‘그날’ 이후 박씨는 죄책감에 고개 한번을 제대로 들지 못했다. 스트레스로 거북이 등껍질처럼 쩍 갈라진 박씨의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박씨는 1990년대 중반 지인의 소개로 이씨 집에서 가사 도우미로 일했다. 이씨는 동네에서 유명한 계주였다. 지인은 박씨에게 “이씨가 계 모임의 큰손이다. 은행보다 낫더라”며 계에 들 것을 권유했다. 새마을금고 이사장인 남편과 공부도 잘한다는 자식을 둔 이씨를 평소 동경해왔던 박씨는 약 20년 가까이 모은 돈을 모조리 계에 쏟아부었다. 남편 없이 자식 셋을 홀로 기르며 가사도우미, 피부 마사지, 식당 설거지 등을 하며 모은 전 재산이었다. 직장에 들어간 자식들도 월급을 보태, 계에 쏟았다. 그렇게 이씨에게 맡긴 돈이 1억 7000만원. 그러나 박씨가 믿고 따랐던 이씨는 지난해 여름 박씨의 돈을 들고 홀연히 행방을 감췄다. 박씨를 포함한 계원 43명의 46억 2000만원도 순식간에 사라졌다. “2009년부터 곗돈 주기를 계속 미뤘어요. 탈 때가 지나서 불안한 마음에 전화를 하면 ‘왜 집으로 전화를 하느냐. 나를 못 믿는 거냐’고 소리를 질렀죠. 그전까진 누구보다 곗돈 관리에 엄격한 분이시라 불안해도 크게 의심하지 않았어요.” 이씨는 1970년대부터 노량진 일대에서 ‘번호계’ 방식으로 계를 운영했다. 계원들이 3년간 매달 일정 금액을 넣고 순번대로 곗돈을 타가는 식이다. 이씨는 잠적 전까지 매월 86만∼143만원을 내고, 순서대로 3000만∼5000만원을 태우는(곗돈을 탄다는 의미) 이른바 ‘새마을계’ 9개를 운영했다. 5000만원짜리 계는 월 143만원씩, 3000만원짜리 계는 월 86만원씩 넣을 수 있게 했다. 36순위까지 있는 순번표에 1~2번은 이씨가, 그 이후에는 순서대로 계를 타게 했다. 이씨는 야박한 계주로 악명이 높았다. 박씨를 비롯해 이씨에게 돈을 뜯긴 피해자들은 하나같이 이씨가 보통내기가 아니었다고 했다. 계원들과 가까이 지내다가도 돈을 내기로 한 약속시간을 어기면 인정사정 봐주지 않았다. 독촉전화는 물론 계원 집에 드러눕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한 계원은 곗돈을 못내 이씨에게 집 문서를 가압류당하기도 했다. 계원 관리도 철저했다. 계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재정보증서를 제출하고 연대 보증인을 세워야 했다. 인감도 제출하게 했다. 곗돈을 못 내는 계원이 생기면 추천인이 대신 곗돈을 내주는 규칙도 엄격히 적용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친목모임을 통해 계원 확장도 독려했다. 피해자들은 누구보다 독하게 계를 관리했던 이씨를 보며 안심하고 돈을 맡길 수 있었다고 했다. 이씨의 배경도 한몫했다. 노량진의 한 새마을금고 간부인 남편, 회계사가 된 아들, 명문가에 시집간 딸 등 이씨는 동네 주부들에게 본받아야 할 큰언니이자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이씨는 동네 주부들에게 형님이란 의미의 ‘오야’로 불렸다. 이씨의 계는 35년여간 아무 문제가 없었다. 때문에 자녀, 조카 등 기본 3대가 참여하는 집이 많아졌다. 곗돈 규모도 계속해서 커졌다. 하지만 2008년 말부터 이씨의 행동이 미묘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이씨는 새마을금고 이사장이었던 남편과 유명 회계법인에서 일하는 회계사 아들을 앞세우며 기존 계원들에게 “계 하나만 더 하자. 나 좀 믿고 도와달라”고 했다. 1억원짜리 계였다. 약속했던 곗돈도 자꾸 미뤘다. 곗돈을 못 받은 계원이 곗돈 이야기를 꺼내면 소리를 지르거나 신경질적으로 대꾸했다. 계원들은 불안했지만 믿고 기다렸다고 했다. 그러나 하루 이틀 연락이 닿지 않던 이씨는 지난해 7월 아예 집을 빼고 야반도주했다. 계원들은 그달 말 서울 동작경찰서에 이씨를 고소했다. 이씨의 잠적은 대부분 가정주부였던 피해자들의 삶을 산산조각 냈다. 박씨는 사건 발생 후 대상포진과 손가락 마비에 시달리고 있다. 이씨에게 6억원을 뜯긴 김모(69·여)씨도 이씨가 잠적한 10개월간 하루도 빠짐없이 신경안정제를 복용해야 하는 지경이 됐다. 2억 2000만원가량 곗돈을 떼인 이모(46·여)씨는 “노량진 토박이인 엄마가 결혼자금을 모으라며 이씨를 소개시켜 줬다”면서 “조카도 내 말만 믿고 300만원가량을 부었는데 내가 모두 물어 주게 생겼다”고 한탄했다. 10개월 내내 경찰서로 매일 출근도장을 찍었다는 이씨는 “3년전 빚을 청산하려고 살고 있던 아파트를 처분하고 다섯 명의 식구들이 10평대 공무원아파트에서 살았다”면서 “빚을 갚고 남은 1억원도 곗돈으로 썼는데 아파트도 이제 비워 줘야 돼 길거리에 나앉게 생겼다”고 했다. 이씨를 30년간 알고 지냈다는 김모(58·여)씨는 3000만원짜리 계 3개와 5000만원짜리 계 4개에 들었다가 총 4억 400만원을 날리게 됐다. 김씨는 “남편과 딸 3명이 벌어온 월급 3년치가 몽땅 계를 붓는 데 들어갔다”고 말했다. 또 다른 피해자는 고향인 전라도 순천에 사는 일가친척들 돈으로 계를 부었다가 피해를 보기도 했다. 계주 이씨는 남편과 함께 고향인 경남 진주시의 한 연립주택에 월세로 숨어 지내다 지난 25일 경찰에게 붙잡혔다. 살림살이는 밥솥 하나와 이불 두 개가 전부였다. 이들은 경찰의 눈을 피하려고 3개월마다 거주지를 옮겼다. 계약 문서도 남기지 않았다. 경찰은 10개월 뒤에서야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전립선암 치료를 받고 귀가하던 남편 양씨를 미행, 집에 숨어 있던 이씨를 배임·사기 혐의로 검거했다. 이씨는 경찰 조사에서 “곗돈 중 10억원을 사업 투자용으로 지인에게 빌려줬는데 이를 돌려받지 못하면서 계원들에게 곗돈을 주지 못하게 돼 도망갔다”고 진술했다. 이씨는 잡혔지만 피해자들이 곗돈을 돌려받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씨는 대부분의 돈을 빚을 갚고 병원비를 내는 등 생활비로 쓴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가 붙잡혔다는 소식에 피해자들은 한달음에 경찰서를 찾았다. “평생을 고무 슬리퍼만 신고 다닌 사람들한테 어떻게 이런 사기를 칠 수 있나요? 피 같은 내 돈은 돌려받을 수 있는 건가요? 정말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글 사진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평등 위해 즐겁게 투쟁하는 이슬람 여성들

    평등 위해 즐겁게 투쟁하는 이슬람 여성들

    북아프리카의 외진 시골 마을. 보수적인 이슬람 사회에서 레일라는 눈에 띄는 존재다. 열네 살이면 무조건 얼굴도 모르는 남자에게 시집을 가야 하는 이곳 여자들과 달리 그녀는 교사인 남편 새미와 연애결혼을 했다. 글을 읽고 쓸 줄도 안다. 레일라는 산비탈의 샘물에서 물을 길어 오다 수없이 유산하는 마을 여자들을 독려해 ‘파업’을 일으킨다. 남자들이 수도를 놓아 줄 때까지 잠자리를 거부하자는 것. 파업 초기에는 반응을 안 하던 마을 남자들이 점점 폭력적으로 변해 가고 레일라에게 압박을 가해 온다. EBS에서 26일 밤 11시 15분 방송되는 ‘소스’는 이슬람 영화, 여성 영화, 코미디 영화 등등 관점에 따라 여러 방식의 접근이 가능하다. 라두 미하일레아누 감독은 시작부터 이슬람 사회의 모순과 열악한 일상을 보여 준다. 현실을 고쳐야 한다는 요구는 묵살되고 잠자리 거부라는 카드를 꺼내 든 여성들에게 폭력이 가해진다. 더는 동화로 볼 수 없겠다고 생각할 때쯤 감독은 다소 김빠지지만 코믹한 상황으로 갈등을 해소시킨다. ‘소스’는 이슬람 여성이 주인공이다. 종교적 근본 원리에 따라 불평등한 삶을 인내하고 살아가는 여성의 슬픈 드라마라는 섣부른 편견은 걷어도 좋다. 모로코 전통 춤과 노래, 연희를 선보이며 남녀평등을 위해 투쟁하는 용감하고 아름다운 여성들이 있다. 노년에서 10대까지 베일 아래 얼굴을 가렸지만, 개성으로 채색된 여성들이 각자의 사연을 풀어 놓거나 한데 모여 춤추는 장면은 영화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루마니아 태생의 감독은 1980년 차우셰스쿠 독재 정권의 폭압을 피해 프랑스로 이주했다. 스탈린 체제하에서 루마니아 반체제 시인의 역경을 다룬 ‘밀고’,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독특한 관점으로 풀어 나간 ‘트레인 오브 라이프’, 2006년 세자르영화제 최우수 각본상을 받은 ‘리브 앤 비컴’ 등을 찍었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25일 TV 하이라이트]

    ■한국인의 밥상(KBS1 밤 7시 30분) 고려시대 송나라와의 무역선에서 게젓항아리가 발견됐다. 그만큼 일찍부터 게장은 우리가 즐겨 먹었던 음식이다. 그중 가장 보편화된 것은 간장으로 담근 간장게장이었다. 과연 간장게장이 ‘밥도둑’이라 불리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꽃게장, 참게장, 돌게장, 쫄장게장 등 다양한 게장도 만나 본다. ■의뢰인 K(KBS2 밤 8시 50분) 혼전 임신으로 남편과 결혼한 의뢰인. 결혼 전 남편은 의뢰인에게 자신이 대기업에 다니고, 한 달에 적금도 100만원을 넣으며 아버지 차 할부금도 자신이 내고 있다고 말하는 등 경제적으로 안정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결혼 후 남편의 거짓말이 들통 났다. 변변한 직장도 없던 남편은 무일푼의 빚쟁이였는데…. ■고향을 부탁해(MBC 오후 6시 20분) 전국에 숨은 싱싱한 음식 재료와 손맛 고수를 찾아서 송은이, 김숙, 노주현이 떴다. 20살에 시집와서 무려 50년 동안 살림과 음식을 해 온 재치 만점 이민자 어머니. 그 맛의 비법은 어디에 있을까. 오늘의 주 재료는 당진에서 맛볼 수 있는 실치다. 쫀득한 실치회 무침을 맛보고 싶다면 서둘러야 한다.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SBS 밤 8시 55분) 아내가 바람이 났다는 남편의 걱정스러운 제보를 받고 강원도 강릉의 한 식당으로 달려간 제작진. 문제의 아내는 뭐가 그리 급한지 앞치마도 안 벗고 꽃구경에 한창이다. 드디어 공원에서 기막힌 불륜 현장 포착, 아주머니는 누가 봐도 영락없이 사랑에 빠진 여인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대한민국 화해 프로젝트 용서(EBS 밤 9시 50분) 한 집안의 장남으로 살았지만 돌연 여성의 삶을 선택한 트랜스젠더 문채은씨. 하루를 살더라도 여자로 살고 싶다던 그녀는 가족들에게 깊은 상처를 입히고 만다. 한편 아들을 너무나 사랑했기에 가슴이 아팠던 어머니. 서로를 이해하고자 낯선 땅에서 시작되는 모녀의 용서 여행은 그렇게 시작된다. ■더 워(OBS 밤 9시 50분)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기 위해 준비해야 하는 핵심은 군 전력의 기동성이다. 전쟁의 승패는 ‘진격의 법칙’에 달렸다. 2륜 마차부터 최신 C17 수송기에 이르기까지 전쟁을 통해 발전한 수많은 장비를 통해 과거와 현재, 미래의 전쟁을 예측해 본다. 이를 통해 전쟁의 승패를 가른 놀라운 역사의 현장도 만나 본다.
  • [명사가 걸어온 길] (9)평생을 민중의 아이콘으로 살다 백기완(하)

    [명사가 걸어온 길] (9)평생을 민중의 아이콘으로 살다 백기완(하)

    백기완(80)의 마음은 찰랑거린다. 가득 차서 찰찰찰 흘러넘친다. 부조리에 대한 울분만은 아니다. 그는 “혁명이 늪에 빠지면 예술이 앞장서는 법”이라고 했다. 시와 이야기, 영화를 빼놓고 백기완의 삶은 성립하지 않는다. 시집만 네 권을 썼다. 그는 “샘물이 콸콸 넘쳐서 메마른 땅을 적시듯, 엄마가 우물에서 뜬 물동이 찰찰 넘치듯 찰랑찰랑 넘치는 것이 시인의 마음”이라고 했다. 첫 시는 어린 시절 냉이의 싹을 보고 썼다. 나물 캐던 어머니는 “비바람을 이기고 살아남는 목숨들, 너무나 수북해 보듬어 주고 싶은 싹에는 손을 대는 게 아니다”라며 싹은 뽑지 않았다. 시심(詩心)이 싹텄다. 그는 “그런 걸 보고 어떻게 시가 안 나오겠느냐”고 했다. 예술을 향한 그의 사랑은 민초(民草)에 대한 사랑만큼 깊다. 찰랑거림의 시작은 이야기다. 이야기는 그의 민중 미학을 이루는 알맹이다. 그도 자신이 이야기꾼임을 부정하지 않는다. 좌중은 그의 이야기에 발을 동동 구르며 자지러지거나 왈칵 눈물을 쏟아낸다. 그 화산 같은 입심의 근원은 무엇일까. “어렸을 때 우리 집은 하루가 멀다 하고 쌀이 떨어졌어요. 아무리 밥 달라, 떡 달라 해봐야 어떡해요, 쌀이 없는데. 할아버지는 왜놈들한테 매를 맞고 돌아가셨지요. 쫄딱 깨진 아픔과 배고픔에 내가 만날 우니까 엄마랑 할머니가 달래느라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어요.” 그래서 그의 이야기는 배고픈 민중을 닮아 있다. 학교에서 배운 글보다는 거리에서 체득한 말에 가깝다. 이야기의 주체도 ‘머리’가 아닌 ‘몸’이다. 몸으로 사는 민중을 이해하지 않고 그의 민중 미학을 파악하기는 어렵다. “가진 거라고는 알통밖에 없는 무지렁이 민중들이 뭘 흘려요. 땀밖에 흘릴 게 더 있겠어요. 흘린 땀은 땅으로, 자연으로 갑니다. 흘러서 넘치는데 네 것 내 것이 없지요. 자본주의 문명이 몸으로 일한 사람들의 열매까지 뺏어 먹는 것과는 달라요. 땀 흘리는 사람들은 병들고 배고파서 죽고 약 올라서 죽고 대들다가 반역자로 몰려서 죽어요. 이런 민중들이 꾸는 꿈을 ‘바랄’이라고 합니다. 이 바랄의 세계가 이야기입니다. 온몸으로 일구지 않으면 바라던 사람이 죽는 게 바랄이에요.” 그가 땅과 대륙을 자주 입에 올리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땅은 민중들의 한 자락 꿈인 동시에 몸으로 일구는 대상이다. 민중은 땅을 일구듯 이야기를 일군다. 장준하 선생과 문익환 목사는 백기완을 두고 “대륙적 정서를 가졌다”고 평했다. 그는 ‘저치 가는 이야기’를 했다. “옛날에 아무리 일을 해도 살 수 없는 무지렁이들이 거역의 등불을 치켜들었습니다. 조정에선 그 들불을 끄려고 오랑캐를 끌어들였지요. 뿔대 돋힌 젊은이 6만명이 오랑캐를 물리치고 같이 압록강을 건너가요. 이 땅별(지구)을 손아귀에 넣으려고? 아니에요. 그 자리에 사랑과 나눔과 영원을 상징하는 진달래와 밤나무, 은행나무를 심으면서 가요. 남이 뚝 자른 손바닥만 한 땅에서 서로 죽기 살기로 싸우고 그 안에서도 ‘나는 몇 평이다’, ‘나는 몇 뙈기다’ 하면서 ‘짜나리’(좀팽이)처럼 배배 꼬지 않아요. 그 넓은 대륙의 마음이 ‘저치’예요.” 민중은 몸으로 이야기한다. 그는 이야기의 고유한 성질로 ‘말림’을 꼽았다. 말림은 소리꾼이 몸짓으로 상황을 연출하는 ‘발림’과 가깝다. “소설은 머리로만 쓰지만 이야기는 온몸으로 한다. 본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소설과 이야기를 비교하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하다”는 설명을 덧붙인다. 말을 잇는 그의 목소리가 격해진다 “내가 지금 이야기하는 게 어때요? 눈빛도 이상하고 손가락도 막 움직이고 발가락도 쑤시고. 어떻게 보면 깡패 같기도 하고 우악스럽기도 하고. 또 어떻게 보면 춤추는 것 같기도 하고. 온몸으로 이야기하는 것, 그게 말림이에요. 말림은 듣는 사람과 이야기하는 환경에 따라 달라져요. 뼈대는 그대로지만 정서는 달라지는 거예요. 뒷골목에서 이야기하느냐 시장 바닥에서 이야기하느냐, 듣는 사람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는 게 민중들의 이야기예요.” 백기완은 “재워주고 밥 준다는 사람에게 이야기를 해주면서 젊은 시절을 보냈다”고 했다. 주머니 가벼운 사람들이 모이는 서울 명동의 뒷골목에서 이야기판을 벌이며 술을 얻어 마시기도 했다. 그는 그 자리에서 ‘이심이 이야기’를 여러 번 되풀이했다. “전쟁이 끝난 뒤 이기주의와 정신적 허무주의가 판을 쳤다. 그 막판에 ‘용이냐, 이심이냐’를 들이대고 싶었다”고 했다. “이심이는 착하고 힘없는 바닷물고기예요. 힘센 물고기들에게 부대끼다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맞아요. 용왕을 찾아갑니다. 용왕은 ‘힘센 놈이 힘없는 놈을 먹는 게 용궁의 법도’라며 ‘저놈 잡으라’고 내쫓아요. 오갈 데 없어진 이심이는 목숨을 걸고 싸우기로 하지요. 싸우다 보니 온몸에 쇠비늘이 하나둘 생겨나요. 다시 용왕에게로 쳐들어가니 어이쿠 놀란 용왕이 팍삭 상어로 변해 버려요. 그 대단한 줄 알았던 용왕이 고작 상어라니…. 용왕을 물리친 이심이는 힘없는 물고기들을 위한 ‘벗나래’(세상)를 만들고 함께 살아갑니다.” 그는 “썩은 수챗구멍에서 구슬이 생기기만을 기다리며 용꿈만 꾸는 것은 출세주의의 환상”이라면서 “그 환상을 깨부수고 부정과 싸우는 이심이에게서 배우자는 이야기”라고 덧붙인다. 모질게 고통받다 벼랑 끝에서 삶을 이겨 낸 장산곶매의 또 다른 변주 같다. 민중은 그의 영화에서도 중요한 소재다. 그가 영화에 깊은 애정을 갖고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영화야말로 오늘의 종합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단돈 만원’, ‘대륙’, ‘쾌지나 칭칭나네’ 등 영화 대본도 3편 썼다. 그가 영화에 처음 눈을 뜨게 된 계기도 민중의 활력 때문이었다. “1954년 경기도 여주에 농민 운동을 하러 갔어요. 농부들하고 열심히 일을 하는데 웬 아낙네가 딸이랑 절구질을 하는 모습이 보이더라고. 아낙은 서른 서넛, 딸은 열일곱이나 되었을까. 둘 다 젖가리개가 없어요. 어머니는 서른서넛밖에 안 돼도 그때는 애 키운 뒤니까 젖이 출렁출렁, 딸은 탱탱하고 포동포동해요. 둘이 번갈아가면서 쿵, 쿵, 쿵, 쿵 맞절구질을 하는데, 그 역동성에 깜짝 놀랐어요. 쿵, 쿵 절구를 찧을 때마다 출렁이는 음악적인 그림. 내가 그 모습을 잡아야 한다고 그랬어요. 이 땅의 농기구가 움직이는 모습을 다 영상으로 꾸려보자 했는데 그때 뭐 카메라가 있어 필름이 있어 돈이 있어. 그래서 대신 ‘농민’이라는 시를 썼어요.” 1965년 한·일 협정 때도 백기완은 영화를 만들 생각을 했다. 독립군을 도와 일제에 맞서 싸우다 숨진 어린 엿장수 이야기였다. 그때만 해도 드물었던 16㎜ 카메라를 동성영화사에서 빌렸다. 백기완은 “어떤 놈이 술 먹겠다고 카메라를 몰래 가져가 술집에 잡혀먹는 바람에 영화를 만들지 못했다”고 했다. “그렇게 영화의 꿈은 깨졌지만 지금도 영화를 만들고 싶어요. 젊었을 때는 배는 고프고 할 게 있나, 나 혼자 영화 이론 책을 뒤적거리고 그랬어요. 다시 영화를 만든다면 ‘들쑥이’ 이야기를 하려고 해요. 들쑥이는 열일곱 먹은 어여쁜 춤꾼인데 깡패들이 잡아다 양놈한테 팔아버리려고 하거든. 순결을 지키려고 끝까지 싸우다가 두 다리가 부러져요. 그래도 ‘짓밟혀도 일어나 이 세상을 휘젓는 춤을 다시 빚으리라’ 하며 온몸으로 춤을 춰요. 지금도 떠올리기만 하면 눈물이 나는 실화예요. 사람의 몸짓, 말림이 뭔지 보여주려고 해요. 지금은 몸이 아니라 다 돈으로 움직이잖아. 들쑥이의 일생을 영상 언어로 꾸리겠다는 생각은 지금도 버릴 수가 없어요.” 길을 돌아 영화에서 시로 다시 온다. 백기완은 “참된 예술은 찰(시)밖에 없다. 영화는 찰을 오늘의 예술로 만드는 일”이라고 했다. 백기완의 예술 세계에서 시와 이야기와 영화는 환상(環狀)을 이룬다. 그는 “시는 걸레 짜듯 쥐어짜는 게 아니다. 사람의 역사적 삶에서 나온다”고 했다.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사람들이 ‘시’라는 말을 압니까. 시라는 말도 모르고 써본 적도 없어요. 민중들은 사는 게 괴로워요. 혼자만 울어요. 샘물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샘이 곧 자기 땀샘이라. 자기가 보여요. 뭔가 퍼뜩 끓어 넘쳐요. 그게 시예요.” 그가 본격적으로 시를 쓰기 시작한 것은 감옥에서였다. “배알이 튕겨져 나올 만큼 모질게 맞았다”는 차디찬 옥에서 무슨 뜨거운 것이 그리 넘쳤을까. 그는 “굳이 가장 아끼는 시를 말하라면 감옥에서 군사 양아치들한테 매를 맞고 죽음의 숨결을 먹으로 삼아 썼던 ‘묏비나리’와 별 볼품은 없지만 ‘아, 나에게도’를 꼽겠다”고 했다. 백기완은 온몸을 들썩이며 감옥에서 처음으로 쓴 시를 읊었다. 모이면/ 논의하고 뽑아대고/ 바람처럼 번개처럼/ 뜨거운 것이 빛나던 때가 좋았다 (중략) // 추렴거리도 없이 낚지볶음 안주 많이 집는다고/ 쥐어박던 그 친구가 좋았다/ 우리는 두려운 것이 없었다/ 헐벗고 굶주려도/ 결코 전전하지 않았다 (중략)// 그렇다 내 이십대 초반/ 민족상잔 직후의/ 강원도 어느 화전민 지대였지/ 열 여섯쯤 된 계집애의/ 등허리에 핀 부스럼에서/ 구데기를 파내주고/ 우리는 얼마나 울었던가 (중략)// 백번을 세월에 깎여도/ 나는 늙을 수가 없구나/ 찬바람이 여지없이 태질을 한듯/ 다시 끝이 없는 젊음을 살리라/ 구르는 마룻바닥에/ 새벽이 벌겋게 물들어 온다 (‘젊은 날’ 중) 그는 오랜 시간의 인터뷰 중 몇 번이나 시를 읊고 노래를 부르고 눈물을 글썽였다. “아, 나에게도 회초리를 들고 네 이놈 내려칠 어른이 한 분 계셨으면”(‘아, 나에게도’) 하고 외기도 했다. “사람은 늘 그리움으로 산다. 어떻게 하면 사람다운 사람이 되고 사람 이상의 사람이 되느냐 하는 그리움이 예술이고 문화”라는 말도 덧붙인다. 이야기를 마치는 그의 마음은 가만히 찰랑인다. “내 이야기를 듣고 발을 구르던 젊은이들이 지금은 다 뭘하는지…. 내가 죽는다 산다 해도 전화 한 번 없네. 그런 면에서 보면 내 이야기꾼의 삶은 실패라고 볼 수도 있겠지. 그러나 나는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좋은 이야기를 하고 그걸 듣는다고 꼭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법은 없으니까. 가슴에 심어주는 게 중요하지 반드시 성공하는 게 중요한 것은 아니에요. 거두지 못했다고 해서 실패의 역사는 아닙니다. 심어주는 것 자체가 성공의 역사라고 믿는 것, 그게 진보 사상이고 이야기예요.” 배경헌 기자 baenim@seoul.co.kr ■ 주요 작품 <시집> 1982년 젊은 날 1985년 이제 때는 왔다, 해방의 노래 통일의 노래 (공저) 1989년 백두산 천지 1996년 아, 나에게도 <극본> 1994년 단돈 만원 1995년 대륙 1996년 쾌지나 칭칭나네 <이야기·소설> 1991년 이심이 이야기 2004년 장산곶매 이야기 2009년 따끔한 한 모금 2012년 하얀 종이배 (시나리오 작업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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