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시집
    2026-01-30
    검색기록 지우기
  • 죽음
    2026-01-30
    검색기록 지우기
  • 여장
    2026-01-30
    검색기록 지우기
  • 무효
    2026-01-30
    검색기록 지우기
  • 방해
    2026-01-30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6,541
  • [문학 새 책]

    ●불온한 응시(이재웅 글, 실천문학사 펴냄) 2001년 등단한 작가의 두 번째 소설집. 단편 9편은 인력시장과 PC방을 전전하는 도시 빈민, 인종 차별에 내몰린 이주 노동자를 주인공으로 중심부에서 배제된 인간 군상을 그렸다. 한국작가회의 사무처장 출신답게 특유의 저항의식을 담아냈다. ●인상과 편견(정명환 글, 현대문학 펴냄) 원로 불문학자 정명환이 대학생 시절부터 메모해온 단상을 묶었다. 2011년 1월부터 지난해 3월까지 월간 ‘현대문학’에 연재된 원고를 다듬은 것이다. 종교, 예술, 철학, 기술 등 다양한 소재가 눈에 띈다. ●나 하나 꽃 피어 안철수 전 대통령 후보가 지난해 11월 한 토론회에서 낭독해 더 유명해진 시 ‘나 하나 꽃 피어’가 발표 20년 만에 시집으로 초록숲에서 나왔다. 1978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조 부문으로 문단에 데뷔한 조동화의 작품이다. ‘나 하나 꽃피어/ 풀밭이 달라지겠느냐고/ 말하지 말아라/ 네가 꽃피고 나도 꽃피며/ 결국 풀밭이 온통/ 꽃밭이 되는 것 아니냐’는 시는 하나의 작은 변화가 세상 전체의 변화를 이끌어 낸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던진다.
  • ‘시조사랑’ 70대 할머니, 박사학위 받아

    ‘시조사랑’ 70대 할머니, 박사학위 받아

    여고생 시절부터 시조를 사랑했던 70대 할머니가 ‘시조 박사’에 올랐다. 17일 청주대에 따르면 김선옥(77·청주시 상당구 우암동) 할머니가 ‘가람과 노산 시조의 비교연구’란 논문으로 오는 22일 문학박사 학위를 받는다. 이 논문은 일제강점기 때 시조를 통해 조선인의 혼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한 가람 이병기(1891~1968) 선생과 노산 이은상(1903~1982) 선생의 시조 정신을 논리적으로 알기 쉽게 풀어 비교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 할머니는 “컴퓨터를 다루는 게 미숙하다 보니 논문을 쓰다가 내용이 모두 날아가는 등 숱한 어려움을 겪었다”면서 “앞으로 창작 활동에 매진하겠다”고 말했다. 그가 시조의 매력에 빠지기 시작한 것은 17세이던 공주사범학교 1학년 때다. 수업시간에 시조를 배운 게 계기였다. 일찍이 작가를 꿈꿨지만 부모님의 권유로 시조와 거리가 먼 숙명여대 약학과에 진학하면서 약사의 길을 걷게 됐다. 숙대에서 2년 수료한 뒤 충북대 약학과를 나왔다. 하지만 청주로 시집와 30여년간 약국을 운영하면서도 시조에 대한 열정은 식을 줄 몰랐다. 1995년 ‘어머니’란 작품을 통해 ‘창조문학’ 시조 시인상을 받았고, 그해 한국 시조시인협회와 한국문인협회 회원이 됐다. 꿈에 그리던 시조시인이 됐지만 도전은 멈추지 않았다. 시조를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왕성한 창작활동을 해야겠다며 청주대 대학원에 진학, 2000년 석사학위에 이어 박사과정 3년 만에 박사학위까지 취득하게 됐다. 그는 “그동안 쓴 시조가 100여편인데 이 시조들을 모아 책을 내고 싶다”고 했다. 청주 남인우 기자 niw7263@seoul.co.kr
  • [6개 부처 장관 후보 발표] 朴, 여야 진통 정부조직 개편안에 “당당하고 설득력 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13일 미래창조과학부의 기능 등을 둘러싸고 여야 간 진통이 계속되는 정부조직개편안에 대해 “현 조직 개편안은 당당하고 설득력이 있다”고 원안 통과 필요성을 거듭 밝혔다. 박 당선인은 이날 서울시내 안가에서 가진 새누리당 비례대표 의원들과의 오찬에서 미래창조과학부에서 정보통신기술(ICT) 부문은 분리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ICT라든가 과학기술과의 융합기술을 통해 각 산업 분야가 경쟁력을 가지고 새 시장을 만들어 내야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이어 “우리나라는 ICT가 그동안 흩어져 있어 제 역할을 못 했다는 이야기가 많아 공약으로 ICT 전담 부처를 만들어 잘 챙기겠다고 했다. ‘제2의 한강의 기적’의 핵심은 창조경제이고 창조경제를 이루는 핵심 내용이 미래창조과학부인데 여기서 ICT 부문을 떼어 내겠다는 것은 핵심이 다 빠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당선인은 “야당에서도 선거 때 ICT를 전부 모아 하겠다고 했는데 지금 와서 안 된다고 하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박 당선인은 방송통신위원회 개편 우려에 대해서도 “개편안대로 하면 방송의 공공성이 훼손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과 다르다”면서 “지상파, 종편, 보도채널에 대한 규제는 모두 방통위에 그대로 남겨 두었고 미래창조과학부에는 그런 규제와 같은 것이 일절 없다”고 말했다. 박 당선인은 대선 승리를 ‘출산’에 비유하면서 “선거로 대통령을 뽑는 건 아이를 출산한 것이나 마찬가지로 이제 10%만 된 것”이라면서 “젖도 먹이고 양육·교육도 하고 시집 장가도 보내고 결혼도 시킬 때까지 90%나 일이 남았는데 애 낳았다고 안심해서 되겠느냐. 성인으로 잘 성장시키는 게 우리의 과제이며 저도 끝까지 될 때까지 가겠다”고 했다. 송수연 기자 songsy@seoul.co.kr
  • [씨줄날줄] 예술가 정치인/서동철 논설위원

    직장인들에게 ‘가장 행복할 것 같은 직업’을 묻는 조사가 있었다. 1위가 예술가, 2위가 국회의원이었다. ‘하고 싶은 일을 할 것 같아서’라거나 ‘권위와 사회적 위치가 있어서’를 이유로 들었다고 한다. 문인 출신 국회의원이라면 보통사람들이 선망하는 두 개의 직업을 가진 셈이다. 그런데 문학적 역량과 정치적 역량이 비례하는 것 같지는 않다. 엊그제 교과서의 정치적 중립성을 주제로 한 공청회가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주최로 열렸다. 계기를 제공한 사람의 하나가 국회의원 도종환이다. 1986년 시집 ‘접시꽃 당신’으로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던 주인공이다. 지난해 민주통합당 비례대표로 제19대 국회에 입성한 데 이어 대선 캠프 대변인으로 정치에 더욱 깊이 발을 담갔다. 그러자 교과서에 실린 그의 작품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논의가 시작됐고, 이날 ‘정치인의 작품은 정계에 입문하기 전 발표한 것에 한해 수록할 수 있다’고 잠정결론이 내려진 것이다. 그의 작품이 교과서에 그대로 남을 수 있게 됐다는 뜻이다. 역시 단편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 교과서에 실린 소설가 이문열을 정치인으로 볼 것인가 하는 논란도 있었다. 그와 ‘객주’의 작가 김주영은 2004년 제17대 총선을 앞두고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의 공천심사위원으로 나란히 활동했다. 시인 안도현도 지난해 대선에서 민주당의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았다. 시인 출신 국회의원은 모윤숙, 김춘수, 양성우도 있다. 도 의원은 “온 국민이 사랑하는 ‘꽃’과 같은 시도 교과서에서 빼야 하느냐”고 반발한 적이 있다. 김춘수 시인의 ‘꽃’은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로 시작하는 바로 그 시다. 김 시인은 1981년 유정회 국회의원이 됐다. 그는 훗날 “고사했음에도 대학 교수로 잘 있던 나를 억지로 끌어냈다”고 밝히기도 했다. 1948년 유엔총회에 한국대표로 참석하기도 했던 모윤숙은 1971년 민주공화당 전국구로 배지를 달았다. 유신시절 ‘겨울공화국’의 저항시인 양성우는 자유실천문인협의회 대표를 거치며 1988년 서울 양천구에서 평화민주당 공천을 받아 당선됐다. 소설가 출신 국회의원은 김한길 민주통합당 의원과 김홍신 전 한나라당 의원이 대표적이다. 김한길 의원의 ‘여자의 남자’는 300만부, 김홍신 전 의원의 ‘인간시장’은 560만부가 팔렸다. 대통령의 딸이 국회의원이자 재벌 총수와 정략 결혼하는 내용의 ‘여자의 남자’와 사창가를 무대로 무협지 같은 재미를 주는 ‘인간시장’은 모두 장편소설로 ‘교과서에 실릴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이젠 노년의 유연함을 노래하네

    ‘즐거운 편지’의 작가인 시인 황동규(75)가 열다섯 번째 시집 ‘사는 기쁨’을 내놓았다.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사소한 일일 것이나(중략)’라며 사랑을 노래하던 시인은 이제 ‘(중략)매에 가로채인 토끼가 소리 없이 세상과 결별하는 풀밭처럼/ 아니면 모르는 새 말라버린 춘란 비워낸 화분처럼/ 마냥 허허로울까?/ 아니면 한동안 같이 살던 짐승 막 뜬 자리처럼/ 얼마 동안 가까운 이들의 마음에/ 무중력 냄새로 떠돌게 될까?/(중략)’이라며 노년을 노래한다. 요즘은 10대만 되어도 사는 일이 즐겁거나 기쁘지만은 않다는 것을 아는데, ‘종심’(從心)을 넘어선 작가는 공자의 말씀대로 ‘마침내 마음이 하고자 하는 대로 따라 해도 법도에서 벗어나지 않았다’는 경지에 이르른 것일까. 물리치료를 받고 돌아오는 길에 ‘장기 기증’을 의뢰받는 전화 통화에 ‘아직 상상력 난폭하게 굴리는 고물차 다 된 뇌나 건질 만할까’라는 시인의 대응에 슬그머니 웃음이 나온다. 늙고 병든다는 의미는 10대나 20대, 30대가 수천 번의 역지사지를 해도 알아낼 수 없는 비밀에 속한다. 육체가 곡사포처럼 하늘 높이 올라가 정점을 찍을 때 누가, 하강의 슬픔을 알까. 홍정선 평론가는 이 시집을 두고 ‘시인이 정점을 찍은 것인지 종점을 찍은 것인지’ 묻고 있다. 시어가 여전히 날생선처럼 퍼덕이는데, 행간에서 버석거리는 느낌이 나는 것은 사유의 깊이 탓이려나. 문소영 기자 symun@seoul.co.kr
  • 타인의 삶, 쉽게 판단하지마 속을 들여다봐야 알지

    타인의 삶, 쉽게 판단하지마 속을 들여다봐야 알지

    1990년 빨치산 부모의 이야기를 담은 자전적 소설 ‘빨치산의 딸’ 출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판금조치. ‘노동해방문학’ 활동으로 수배생활. 1996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고욤나무’로 등단한 작가 정지아(48)의 이력은 순탄치 않았다. 단편소설 ‘풍경’(이효석 문학상·올해의 소설상), 소설집 ‘봄빛’(한무숙 문학상)으로 문단의 주목을 받아온 작가는 5년 만에 세 번째 소설집 ‘숲의 대화’(은행나무 펴냄)로 돌아왔다. 11편의 단편소설은 과거 두 편의 소설집이 그랬듯이,‘빨치산의 딸’에서 보여줬던 무거운 주제의식에서 확연히 벗어났다. ‘봄날 오후, 과부 셋’으로 2009년 이상문학상 우수상을 받았을 때 ‘화해와 승화의 길’이라는 해석을 들었지만, 작가는 아니라고 손사래를 쳤다. 정지아는 지난 4일 전화통화에서 “그리 대단한 것도, 특별한 ‘개념’의 변화도 없었다”고 했다. 이어 “어느 순간 보니 이른바 ‘자본가’나 ‘강남사람’이라고 고통이 없겠나, 슬픔이 없겠냐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누군가의 삶을 옳지 않다고 재단하고, 인간이란 숲을 보지 않는 것은 독선”이라고 말했다. 숲을 보려는 작가의 노력은 표제작 ‘숲의 대화’에 묻어난다. 새 세상을 꿈꾸던 주인집 도련님이 자기 아이를 밴 하녀를 종놈 운학에게 시집 보내고 토벌군의 총에 맞아 숨진다. 하녀는 평생 도련님을 그리다 죽었고, 아내를 짝사랑해온 남편은 도련님의 영혼과 교감한다. “고로크롬 살아봉게 니는 좋디야?” “알콩달콩, 나도 그리는 못 살아봤소.”(30쪽). 작가는 운학의 입을 빌려 “인민의 천국이라는 시상을 지둘렸소? 그런 시상이 워딨겄소? 죽어서나 그런 디로 가게 될랑가”(32쪽)라며 한 시절 부는 바람 같은 이데올로기의 가벼움을 지적했다. 작가는 2년 전 고향인 전남 구례로 낙향했다. 지리산 왕시루봉이 훤히 마주 보이는 섬진강 자락에 살고 있다. “아침, 저녁으로 크기와 모습이 제각각인 호박을 보면 인생도 호박 찾듯이 찬찬히 봐야 알 것 같다”고 말했다. “동그랗고 먹음직스러운 호박과 못난이 호박을 비교하다가, 못난이 호박 밑에 고인 돌을 보며 뒤틀린 것에는 아픔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잣나무 가지가 쉴 새 없이 살랑이고 그 사이로 갓난아이 눈망울 같은 햇살이 어룽거린다‘(9쪽)는 시구같은 소설 속 문장은 고추, 가지, 오이를 골고루 돌보는 전원생활에서 우러나왔다. 삶의 무게를 켜켜이 담은 작가의 단편들은 정여울 평론가의 말처럼 ‘주변부 인생들이 만들어내는 작은 우주’ ‘간신히 존재하는 것들을 향한 사랑’으로 축약된다. 온갖 풍상에 치매까지 달려들어도 어린 시절 질투심을 그대로 간직한 채 티격태격 추억을 곱씹으며 살아가는 80대 할머니들(봄날 오후, 과부 셋), 헌 교복을 입히자 학교를 안 가겠다 버티는 딸에게 찬물을 끼얹어 쫓아보낸 엄마(목욕 가는 날), 교통사고로 식물인간이 된 작은아들을 포기하지 않고 전 재산을 들여 재활시키는 부모와 큰아들의 갈등(브라보, 럭키 라이프)이 그렇다. 서슬 퍼런 시대에 굳이 빨치산을 소재로 글을 썼던 이유가 궁금했다. 작가는 “부모님의 이야기로, 젊은 시절 경험을 그대로 옮겨놨다”며 “역사 뒤편에 묻힌 이야기를 들춰 세상에 이런 삶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사람들 사는 것은 다 힘들지 않겠냐. 찌그러졌다는 이유로 내가 경멸했던 것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고 덧붙였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지방시대] 결혼이주여성과 다문화 정책/김민배 인천발전연구원장

    [지방시대] 결혼이주여성과 다문화 정책/김민배 인천발전연구원장

    ‘결혼이주여성들과 어떻게 상생할 것인가’. 지난 주말 일본의 기타큐슈 아시아 여성 교류연구포럼이 개최한 ‘일·한·미 다문화 공생’에서 필자가 행한 기조 강연의 키워드다. 2011년 말 현재 우리나라에는 14만 5000여명의 결혼이주여성들이 있다. 그 가운데 많은 분들이 한국 국적을 취득하지 못하고 있다. 인천의 경우 1만 2000여명 가운데 국적을 취득한 사람은 4000여명에 불과하다. 한국에 시집 와서 남편과 살고 있지만 65% 정도가 한국 국적을 취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국적 미취득의 이유는 다양하다. 일본에서 시집 온 신부들은 자국 국적을 포기해야 한국 국적을 취득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엄격한 국적취득요건이 한몫을 하고 있는 셈이다. ‘국내거주 5년, 혼인신고 후 2년’ 조건이 그것이다. 외국인의 입장에서 보면 귀화시험도 난제다. 언어와 풍습도 다르고 관련서류 구비도 버겁다. 남편의 의심도 문제다. 결혼하고도 위장결혼을 의심하는 남편들이 아내의 국적 취득에 소극적이다. 정부는 ‘외국인과 더불어 살아가는 열린 사회’라는 슬로건을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결혼은 허락하고 국적 취득을 어렵게 하는 정부의 정책에 대해 외국인들은 할 말이 많다. 2011년 국제결혼은 2만 9762건으로 9%에 달한다. 그리고 140만명의 거주 외국인 시대를 맞이하였다. 불법체류 외국인도 28만여명에 달한다. 불법체류자가 늘어나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차별적 대우로 나타나는 비자제도가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제도적 차별 이외에도 결혼이주민들은 또 다른 고통에 직면하고 있다. 배우자와의 나이 차이, 자녀양육과 경제적 자립 문제, 문화적 차이와 언어 소통의 문제 등도 무거운 짐이다. 물론 외국인을 무조건 모두 받아들일 수는 없다. 그러나 이주노동자의 장기체류와 정착이 가져올 사회적 부담과 갈등을 강조하는 점이나 국익에 부합하는지 여부에 따라 외국인을 대하는 정책과 의식에는 자성할 점이 많다. 외국인을 노동시장 교란 주범이라거나 기초생활보호대상자라는 시각에서 과장되게 강조하는 것도 문제다. 불법 체류자에 대한 단속과 추방 그리고 범죄자 이미지가 외국인에 대한 적대 원인이 아닌가에 대해서도 검토를 해야만 한다. 그것은 좋은 문화와 나쁜 문화, 본질 문화와 가짜 문화라는 이중기준에 기초한 인종차별과 민족차별의 잣대와 같은 논거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우리들은 단일민족을 강조하는 한편으로 수직적 질서를 당연시해 왔다. 우리들에게 내재된 그런 사고방식과 행동들이 결혼이주자와 외국인 노동자 그리고 가족들을 배제하는 논리와 편견의식으로 진행된 것은 아닌지 자성할 때다. 글로벌화는 필연적으로 다문화 시대를 초래한다. 다문화에는 서로 다른 언어, 기억, 가치, 관행 등의 존재와 그에 대한 저항이 혼재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인습, 편견, 무지가 뒤섞여 충돌과 투쟁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다문화 사회가 진행될수록 상대방에 대한 동질성 강요가 아니라 다름을 인정하고 공존하는 세상을 강조한다. 바람직한 다문화 정책은 소수자에 대한 관용과 배려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 [주말 하이라이트]

    ■명불허전(OBS 일요일 밤 10시 15분) 뚝심 있게 원칙을 지키는 경영인 배중호 대표. 누룩과 전통술 연구로 유명한 배상면 회장의 3남매 중 맏이다. 국순당을 설립해 건강에 좋은 술이라는 콘셉트의 백세주를 히트시키면서 이름을 알렸다. 세계 30여개국이 출품한 ‘2012 브라질 세계식품박람회’에서 ‘혁신제품상’에 선정되는 쾌거를 이룬 배 대표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대왕의 꿈(KBS1 토요일 밤 9시 40분) 덕만이 백제와의 화친 파기를 선언하고, 김유신은 백제 화친파로 몰려 위기에 처한다. 세월이 흘러 백제 의자왕자가 국왕으로 즉위하고, 당항성을 되찾기 위해 대대적인 공격을 준비한다. 한편 법민은 연화를 만나지만, 연화가 신라 조정의 실세가 된 비담의 비호 아래 기녀로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내 딸 서영이(KBS2 토요일 밤 7시 55분) 이혼수속을 마치고 법정을 나선 우재와 서영은 함께 식사를 하며 서로에게 담담한 작별을 고한다. 호정은 상우와 만난 자리에서 불안한 상상에 결국 울음을 터뜨리고, 호정의 속마음을 알고 맘이 아픈 상우는 오해를 풀어준다. ■아들 녀석들(MBC 토요일 밤 8시 40분) 현기와 인옥은 행복한 신혼 생활을 시작하고, 정숙은 내심 시집살이를 시킬 생각으로 인옥에게 집안 살림을 시킨다. 한편 신혼 여행지에서 인옥은 태주를 만나게 되고, 인옥은 당황스러워한다. 승기는 미림의 곁에 있는 석진의 모습을 보며 질투를 느낀다. ■KBS 스페셜(KBS1 일요일 밤 8시) 2012년 ‘10억원 뇌물 김광준 검사 사건’이 터지자 검찰은 그간 경찰이 8개월이나 해온 수사를 단 하루 만에 특임검사를 임명해 사건을 가져갔다. 부장급 검사 여럿이 관련돼 있다는 의혹을 받는 세무서장 비리 사건도 검찰은 경찰의 관련 압수수색 영장을 6차례나 기각하며 수사를 방해했다는 의혹을 사게 되는데…. ■아빠! 어디가?(MBC 일요일 오후 4시 55분) 아내 없인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대한민국 보통 아빠들의 소외된 자리를 채우기 위해 아빠가 된 다섯 남자들이 나선다. 두번의 여행을 통해 어느새 서로 가까워진 다섯 아빠와 아이들. 세 번째 여정에서는 이들에게 조금 더 특별한 여행이 시작된다. ■SBS 스페셜(SBS 일요일 밤 11시 5분) 날카로운 발톱, 칼날 같은 부리, 심장을 꿰뚫는 듯한 참매의 눈에 한 소녀가 사랑에 빠졌다. 6살 때부터 아버지와 산행을 다녔다. 16살이 된 소녀는 참매의 용감함과 카리스마에 가슴이 두근거려 아버지의 친구로, 또 매사냥의 수제자로 겨울 산을 동행한다.
  • [저자와의 차 한잔] ‘신비롭고 재미있는 직지 이야기’ 펴낸 박상진

    [저자와의 차 한잔] ‘신비롭고 재미있는 직지 이야기’ 펴낸 박상진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으로 공인을 받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직지’(直指)는 한국인에게는 분명히 문화 민족으로서의 뿌듯함과 자부심을 가지게 해주는 책이지만 정작 그 뜻과 명칭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직지’의 정식 명칭은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白雲和尙抄錄佛祖直指心體要節)이다. 하지만, 무려14자나 되는 제목을 다 기억하기 어려워 ‘불조직지심체요절’ ‘직지심체요절’, 혹은 판심제(版心題)에 따라 ‘직지’라고 줄여 부르기도 한다. 영어권에서도 직지(Jikji)로 알려졌다. 신간 ‘신비롭고 재미있는 직지 이야기’를 펴낸 박상진 씨는 이 같은 ‘직지’는 그동안 학술서로 여러 차례 나왔으나 대중들을 위한 ‘직지’는 없었다며 ‘직지’ 이야기를 흥미롭게 풀어나간다. 우리의 자랑스러운 세계기록유산(2001년)인 직지에 대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스토리텔링 식으로 집필했다고 설명한다. 직지에 담긴 내용을 간단히 설명하면 부처와 여러 고승들의 법어, 대화, 편지 등에서 중요한 내용을 뽑아서 편찬한 것이다. 중심 주제인 직지심체는 사람이 마음을 바르게 가졌을 때 그 심성이 곧 부처의 마음임을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직지는 현재 상·하 2권 중 하권만이 남아 프랑스 파리 국립도서관 동양문헌실에 소장돼 있습니다. 구한말 주한 프랑스 초대공사와 3대 공사를 지냈던 콜랭 드 플랑시가 구입해 프랑스로 가져갔습니다.” 이어 직지의 원저자인 백운화상(백운경한선사·白雲景閑禪師,1298~1374)에 대해 설명한다. 백운은 태고보우선사, 나옹혜근화상 등과 함께 3대 선승의 한 사람으로 꼽히고 있다. 그는 1351년 (충정왕 3년) 54살의 늦은 나이로 원나라로 선불교를 공부하러 유학길에 올랐다가 이듬해에 귀국할 때 스승인 석옥청공선사가 직접 저술한 ‘불조직지심체요절’ 1권을 정표로 받아서 돌아왔다. 하지만 내용이 너무 소략하다고 느껴 1372년(공민왕 21년) 성불산(成佛山)에서 제자 법린(法隣)선사의 도움을 받아 2권으로 증보한 것이 현재 우리가 직지로 부르는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이라는 것이다. 박씨는 그동안 직지를 편집한 성불산의 위치에 대해 경북 영천과 대구, 충주, 황해도 황주와 해주, 평산, 함북 길주 등이 문헌에 나와 그 위치를 두고 분분했는데 이 가운데 황해도 황주군 주남면에 있는 정방산(해발 480m, 전 이름은 성불산)에 위치한 성불사가 바로 백운화상이 직지를 편집한 곳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또 “목판본 직지와 백운화상어록의 서문을 함께 작성한 목은 이색(李穡)의 시집인 ‘목은시고’ 중 ‘용두의 대선(大選)이 황주에 가서 새로 절을 얻었다고 말하다’라는 시에서 ‘성불산 안에는 옛 절들이 많기도 한데’라고 읊은 대목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한다. 직지는 1377년(우왕 3년) 청주 흥덕사에서 금속활자로 약 100권정도가 인쇄됐는데 그동안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으로 알려진 독일 구텐베르크의 ‘42행성서’보다 78년 앞선 명실상부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이다. 박씨는 이번 책에서 “그동안 소설과 다큐멘터리로 소개된 바 있는 플랑시 공사와 조선 궁녀 이심의 로맨스를 스토리텔링해 소개했다”면서 특히 국사편찬위원회가 소장한 플랑시 공사와 이심의 추정 사진을 처음으로 공개했다고 덧붙였다. 박씨는 1963년 경북 예천 출생으로 성균관대학교에서 한국철학 박사과정을 수료했으며 ‘내시와 궁녀’ 등 여러 권의 책을 펴냈다. 김문 선임기자 km@seoul.co.kr
  • [깔깔깔]

    ●고집 센 며느리 갓 시집온 고집 센 며느리가 생선을 굽고 있었다. 한쪽만 계속 태우는 걸 보다 못한 시아버지. “얘야, 뒤집어 굽지 않고 한쪽만 그렇게 태우느냐?” “아버님, 걍 냅두세요. 제깟 놈이 뜨거우면 돌아눕겠죠.” ●사냥개와 토끼 사냥개가 산토끼를 잡아 물고 와 바닥에 내려놓더니 얼굴을 핥기 시작했습니다. 산토끼가 지쳐서 한마디 했습니다. “이봐요! 제발 나를 물거나 키스를 하거나 한 가지만 하시오. 그래야 내가 당신의 먹이인지, 친구인지 구별할 수 있을 것 아니오.” 그러자 사냥개가 하는 말. “이보게, 내가 배가 고프면 먹이가 되는 것이고, 배가 부르면 친구가 되는 것이겠지.”
  • 영국이 사랑한 라킨의 시를 아십니까

    영국이 사랑한 라킨의 시를 아십니까

    “소설이 어휘의 문학이라면 시는 문법의 문학이다.” 김정환(59) 시인은 ‘세계시인전집’ 두 번째 권 ‘필립 라킨 시전집’(문학동네 펴냄)을 출간한 기념으로 서울 중구 정동의 한 음식점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29일 그렇게 말했다. 김 시인은 “시는 해당 국가의 문법과 끊임없이 대결하여 새로운 문법을 만들어 가는 것”이라며 “원작 시의 정보 전달 순서를 지켰고 원작이 난해해 못 알아볼 시면 번역도 그렇게 했다. 상투적이면 상투적으로 번역하면서 원작 시의 묘미를 살렸다”고 덧붙였다. 필립 라킨(1922~85)은 잉글랜드 워릭셔 주 코번트리에서 시 재무담당관의 아들로 태어나 W H 오든과 T S 엘리엇의 작품을 모델로 시와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그의 시는 전후 영국 도시인의 일상을 스냅숏을 찍듯 포착해 내며 현대의 도시 문명과 중산층의 세계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03년에 타임스가 선정한 ‘전후 가장 위대한 작가 50위’ 1위에 선정(당시 루시디 13위)됐고 2008년에도 조지 오웰을 누르고 1위에 선정됐다. 국내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시인이지만 영어권 인터넷에서 인용 시로 1위를 차지하는 라킨은 독자의 사랑을 받았지만 인생은 불행했다고 한다. 김 시인은 “도서관 사서로 일하면서 10년에 한 번씩 시집을 냈고 결혼도 못 했다. 재즈를 좋아하는데 귀가 먹었고 계관시인이 되는 것을 거절했다”고 했다. “안나 아흐마토바(러시아)와 즈비그뉴 헤르베르트(폴란드),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스페인), 콘스탄티노스 페트루 카바피(그리스) 등 시선집은 12명으로 구성했는데 근대를 재해석해 보자는 의도를 담았다”고 그는 밝혔다. 환갑 전에 12권 모두 출간할 생각인데 늦어도 내년 말까지 완간할 예정이다. 문소영 기자 symun@seoul.co.kr
  • [25일 TV 하이라이트]

    ■행복한 대한민국 국민대토론 제1편(KBS1 밤 10시) 세계 경제 위기 속에서 한국 경제도 위기를 맞고 있다. 한국 경제의 새로운 도약을 위한 숙제인 가계부채, 일자리, 경제민주화 등의 문제를 경제 세 주체인 가계, 기업, 정부의 관점에서 풀어 본다. 프로그램은 행복한 대한민국의 방안을 사회 각계각층이 참여하는 국민대토론으로 진행된다. ■사랑과 전쟁 2(KBS2 밤 11시 10분) 잘생긴 외모와 매너를 갖춘 국제변호사 남편. 거기다 미국에 사는 시집 식구들 덕분에 자연스레 분가까지. 자신이 원하던 조건을 완벽하게 갖춘 남편과 이상적인 결혼생활을 하는 아내. 그러던 어느 날 아무런 연락 없이 귀국해 신혼집을 찾아온 시어머니는 아내에게 괜한 트집을 잡으며 무언의 요구를 한다. ■스타오디션 위대한 탄생 3(MBC 밤 9시 55분) 출중한 실력파 참가자들. 예년과 달리 여성 참가자들의 활약이 돋보이며 호평을 받아 왔다. 그동안 멘토들의 강력한 트레이닝 시스템을 통해 프로 연예인 못지않은 끼와 비주얼을 뽐내며 화려한 모습을 드러냈다. 첫 생방송 경연을 앞둔 본선 진출자 12명의 화려한 모습을 공개한다.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SBS 오후 5시 35분) 밤마다 엄마 젖을 찾는 지우 때문에 지우 엄마는 1년 넘게 제대로 자 본 적이 없다. 만성 피로에 푹 자지 못하는 지우의 건강도 걱정이다. 이런 방법, 저런 방법 엄마표 처방에도 밤중 수유 끊기는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밤중 수유를 끊고 싶은 초보 엄마들에게 꼭 필요한 밤중 수유의 비밀을 밝힌다. ■명의(EBS 밤 9시 50분) 혈관벽이 약해져 일부가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는 동맥류는 언제, 어디에서 터질지 모른다. 이 동맥류는 뇌와 복부에 가장 흔하게 생기는 질환이다. 특별한 자각 증상이 없어 더 치명적인 동맥류. 발병률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고, 터지는 순간 사망까지 이르는 무서운 질환 동맥류에 관한 모든 것을 두 명의를 통해 알아본다. ■흡혈형사 나도열(OBS 밤 12시 5분) 2006년 서울의 밤 도로 한복판. 루마니아 트란실바니아의 고성에서 항공기를 타고 서울에 잠입한 흡혈모기는 먹이를 찾는 한 마리의 하이에나처럼 날아든다. 그러던 중 도로 한복판에서 일어난 충돌사고 현장에서 열혈형사 나도열의 도드라진 혈관을 포착한다. 그리고 그의 목을 인정사정없이 물어 버리는데….
  • [김문이 만난사람] 연극 데뷔 50주년 맞는 이 시대의 어머니 손숙

    [김문이 만난사람] 연극 데뷔 50주년 맞는 이 시대의 어머니 손숙

    한 시대의 어머니였다. 여자이기 때문에 말 한마디 못한 채 참으로 모진 ‘여자의 일생’을 살았다. 글 공부는 근처에도 못 갔다. 첫사랑과 헤어지고 다른 남자와 억지 결혼을 했다. 남편의 바람기와 혹독한 시집살이, 게다가 자식의 죽음까지 가슴이 찢어지듯 처절하게 감내해야만 했다. 어머니는 손녀에게 자신의 이름 석 자를 배우고 죽은 남편을 따라 저승으로 가면서 유리창에 자신의 이름을 쓴다. 그렇게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 분단의 현대사를 눈물로 겪은 어머니였다. 연극 ‘어머니’에 나오는 내용이다. 이 연극은 1999년 2월 초연된 이후 지금까지 매년 공연되고 있다. 그래서 연극 ‘어머니’ 하면 우선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초연 당시 어머니 역으로 백상예술대상 연기상을 받았고 그해 5월 러시아 타캉가극장에 초청돼 ‘마마’라는 환호 속에 기립 박수를 받았다. 하지만 당시 공연 때 한국 기업가한테 격려금을 받았다는 구설수로 32일 만에 환경부 장관직을 그만두는 시련을 겪기도 했다. 바로 한국을 대표하는 연극배우 손숙(69)이다. 흔히 배우들은 타인의 삶을 산다고 한다. 자신과는 다른 사람들의 역할을 주로 맡기 때문이다. 그렇게 무대에서 살아온 지 50년을 맞는다. 이를 기념해 손씨는 다음 달 1일부터 17일까지 서울 대학로 예술극장 대극장 무대에 하용부, 윤정섭, 김미숙, 김철영 등과 함께 오른다. 이 연극이 끝나면 오는 4월 임영웅 연출가와 함께 극단 산울림에서 치매 노인을 다룬 신작 ‘나의 황홀한 실종기’에 출연한다. 또 7월에는 예술의전당에서 손씨의 자전적 이야기를 다룬 연극을 공연한다. 10월쯤에는 극단 신시와의 공연이 예정돼 있다. 손씨는 연극 공연에 항상 남다른 의욕을 보이지만 올해만큼은 더욱 바쁘고 의미 있는 한 해가 될 것 같아 지난 18일 서울 중구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 카페에서 잠시 만났다. 단발머리에 편한 티셔츠 차림, 그리고 소탈한 웃음이 인상적이다. 50주년을 맞는 소감부터 물었더니 “글쎄 바쁘게 살다 보니 인생의 반은 다른 인생으로 산 것 같다”고 웃으면서 “힘든 시절도 있었지만 연극으로 견딜 수 있었고 다시 일어서게 됐다. 고스란히 내 인생만 살았다면 무척 힘들었을 것이다. 관객들의 박수에 많은 용기를 얻었다”고 말한다. 특히 ‘어머니’는 연극 인생 중 자신에게 각별한 작품이라고 의미를 부여한다. ‘어머니’ 덕분에 자신의 고향인 밀양에서 매년 연극제가 열리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어머니’는 10여년 동안 늘 밀양연극제 폐막작으로 무대에 오르는 단골 레퍼토리가 됐다. 이를 보려는 지역 주민들이 객석을 꽉꽉 채운다. 자연스럽게 고향 시절 얘기가 먼저 나왔다. “밀양에서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해에 6·25가 발발했습니다. 우리는 학교에서 쫓겨나고 대신 육군병원으로 바뀌었지요. 그러는 바람에 입학식만 본교에서 하고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면서 공부를 했습니다. 강변 솔나무나 들판 돌멩이 위에 칠판 올려놓고 공부하고 겨울에는 창고를 빌려서 공부했던 기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전쟁과 가난이라는 환경 속에서 우유 가루와 학용품 등 구호물자를 실은 미군 트럭이 오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습니다.” 당시는 말 그대로 춥고 배고팠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초등학교 시절을 시골에서 보낸 것이 큰 축복으로 남는다고 술회한다. 또한 밀려오는 피란민들을 보면서 전쟁의 참상이 어떠한지 생생하게 목격하게 됐다. 중학교는 부산에서 다녔다. 그러다가 부산여중에 입학한 지 6개월 만에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무작정 서울로 왔다. 잠시 어머니를 회고한다. “어머니는 교육열이 대단했습니다. ‘여자도 배워야 한다. 배우지 않으면 여자의 일생이 힘들다’고 입버릇처럼 말했지요. 어머니는 16살에 결혼했지만 아버지는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버리고 시집살이를 혼자 도맡아 했습니다. 그러던 어머니는 자식들이라도 배워야 한다며 저와 동생을 데리고 서울로 오게 됐습니다.” 서울로 온 손씨는 돈암동에 살면서 시골 아이 취급을 받아 처음엔 적응이 힘들었다. 하지만 풍문여고에 진학하면서 문학소녀의 꿈을 키워 나갔다. 글짓기 대회에서 여러 번 상을 받기도 했다. 문예반장을 맡아 인근 고등학교에 다니는 황석영·조해일 등 여러 학생들과 문학의 밤 행사를 개최하기도 했다. 그때만 해도 손숙 학생은 작가가 되려고 했다. 프랑스 시인 보들레르와 폴 발레리 등에 심취했다. 종로2가에 있는 음악홀에서 국내외 유명 시인들의 작품을 얘기하는 것이 공부보다 훨씬 재미있게 느껴졌다. 매년 신문사에서 주관하는 ‘신춘문예’에도 몇 차례 도전할 만큼 작가 지망에 대한 열의를 가졌다. 그는 살아오면서 ‘울며 웃으며 함께 살기’, ‘손숙이 만난 사람’, ‘섬마을 소년 김대중 전 대통령’ 등의 책을 썼는데 이 또한 그의 문학적 바탕에서 이루어졌다. 그 문학소녀는 고3 어느 날 서울 남산드라마센터에서 유진 오닐의 연극 ‘밤으로의 긴 여로’를 접하게 됐다. 이해랑 선생이 연출하고 황정순·장민호·여운계 등 당대의 기라성 같은 배우들이 출연한 이 작품은 문학소녀의 마음을 송두리째 사로잡았다. 갑자기 찾아온 연극의 전율은 인생의 방향을 바꾸게 했다. 고려대 사학과 재학생이던 그는 1963년 개교 60주년 기념 연극 ‘삼각모자’(스페인 작가 알라르콘 이 아리사의 작품)의 여주인공으로 발탁돼 꿈에 그리던 남산드라마센터 무대에 올랐다. 남자 주인공은 당시 고대극회 선배인 김성옥(77·목포시립극단 예술감독)씨가 맡았다. 이런 인연으로 사랑이 시작돼 2년 뒤 결혼하게 된다. 1968년에는 극단 동인극장에 들어가 유진 오닐의 ‘상복을 입은 엘렉트라’에서 주인공 엘렉트라 역을 맡아 직업 배우로 연극 인생을 시작했다. 이후 극단 산울림 창단(1969년)에 참여해 평생 스승으로 모시는 임영웅(77) 연출가와 인연을 맺었다. 또한 2년 뒤에는 국립극단에 들어가 이해랑(1989년 작고) 선생을 만나면서 새로운 활력을 얻었다. 그는 자신의 연극 인생을 회고하면서 “산울림과 국립극단에서 청춘을 다 바쳤다”고 말했다. 잊지 못할 작품으로는 산울림 시절의 ‘그 여자에게 옷을 입혀라’, ‘홍당무’, ‘바다의 침묵’ 등을, 국립극단 시절의 ‘파우스트’, ‘간계와 사랑’, ‘천사여 고향을 보라’ 등을 꼽았다. 그는 “15년 동안 지낸 국립극단 시절에는 훌륭한 스승과 선배들을 만나 나름대로 좋은 면도 있었으나 여러 가지 제약과 작품의 한계도 많았다”면서 “이런 분위기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맞지 않아 자꾸 반발했더니 미운털이 박히고 나중에는 싸움닭이 되더라”며 웃었다. 다시 현재 진행형인 ‘어머니’로 화제를 돌렸다. 환경부 장관과 맞바꾼 연극이기 때문이다. 하여 당시 상황을 물었다. “러시아 공연 1주일 전에 장관 제의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이전에 체결된 국가 간 약속을 도저히 취소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공연을 강행했지요. 평생 잊지 못할 무대였습니다. 관객들이 15분 동안 ‘마마’를 외치며 기립 박수를 쳤습니다. 그런 분위기에서 무대에 올라온 기업인들로부터 액수도 모른 채 격려금을 받았지요. 단원들에게 나눠 주고 지방 공연을 하지 못해 위약금으로 썼는데 그게 뇌물이라고 하더군요. 장관직 사퇴 후 너무 억울해서 열흘 동안 잠도 못 자고 울었습니다.” 마음을 달래기 위해 미국 그랜드캐니언으로 친구와 함께 여행을 다녔다. 얼마 후 귀국한 그는 임영웅 선생한테 위로의 전화를 받고 다시 연극무대로 돌아오게 된다. 돌이켜 보면 ‘어머니’로 시련을 겪었지만 오히려 ‘어머니’로 빨리 제자리를 다시 찾을 수 있었다. 그는 동료 배우들이 TV드라마로 넘어갈 때에도 오로지 연극무대를 지켰다. 하지만 먹고살기는 여전히 빡빡했다. 게다가 남편이 사업에 실패한 후 많은 빚을 졌다. 때마침 라디오 진행 섭외가 들어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1989년부터 MBC ‘여성시대’를 진행하게 됐다. 이때 다양한 청취자들의 사연을 접하면서 사회에 관심을 갖게 됐다. 여성과 환경문제 등에 대해 공부를 하면서 칼럼과 강연 등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조금씩 뱉어 냈다. “연극은 관객과 같이 호흡하는 현장 예술입니다. 배우와 관객이 서로 시선을 마주하고 호흡하는 것은 굉장한 일입니다. 또 스크린이나 TV드라마와 달리 관객으로부터 치유받을 때도 많지요. 연극이 열악한 환경이긴 하지만 그걸 다 초월해 연극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는 연극 인생을 다시 회고하면서 ‘담배 피는 여자’, ‘그 여자’, ‘셜리 발렌타인’ 등 모노드라마를 잊지 못한다.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선 지금 자신의 인생 모노드라마를 잠시 떠올리는 것 같다. 앞으로의 인생 모노드라마는 어떻게 이어 나갈까. “대사를 외울 수 있을 때까지 연극을 하지 않겠느냐. 연극을 할 때마다 늘 새로운 관객을 만나는 일이 매우 즐겁다”고 말하고, 웃으면서 그런 관객을 위해 연습하러 가야 한다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선임기자 km@seoul.co.kr ■연극인 손숙은 1944년 경남 밀양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 졸업 후 부산여중 시절 서울로 왔다. 풍문여중과 풍문여고를 졸업했다. 고려대 사학과 1학년 때 개교 60주년 기념 연극 ‘삼각모자’의 주인공으로 데뷔했다. 1969년 극단 산울림 창단 멤버로 참여했고 1971년 국립극단에 입단, 고 이해랑 선생 등 당대 최고의 연출가들과 작품을 함께 했다. 1989년 MBC ‘여성시대’를 시작으로 20여년 동안 라디오 방송을 진행하고 있다. 1999년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를 맡았고 환경부 장관을 지냈다. 이 밖에 ‘아름다운 가게’ 공동대표(2002) 등 여러 사회단체에서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활화산’(1975), ‘객사’(1979), ‘어머니’(1999)로 백상예술대상 여자연기상을 세 차례 수상했다. 이 밖에 대한민국연극제 여우주연상(1986), 이해랑연극상(1997), 은관문화훈장(2012) 등을 받았다. 저서로는 ‘울며 웃으며 함께 살기’, ‘손숙이 만난 사람’, ‘여성수첩’, ‘섬마을 소년 김대중 전 대통령’ 등이 있다.
  • [커버스토리] 위기의 활자매체, 미래는

    [커버스토리] 위기의 활자매체, 미래는

    몇 년 전 작가들과의 출장길. 기자와 작가들이 신나게 떠드느라 바빴다. 그 와중에 동승하게 된 외국인 몇 명. 자리 잡고 앉자마자 저마다 가지고 온 신문, 잡지, 책을 척 펴든다. 낮에는 다들 분노했다. “저런 행위는 관광의 기본 자세에 어긋난다”는 규탄이었다. 저녁 자리에 모여서는 다들 한숨만 폭폭 내쉬었다. 솔직히 부러웠다. 요즘 신문 사서 보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 시집 따위를 누가 사 보느냐, 잘 썼다고 밀어붙였는데 초쇄 2000~3000부조차 소화를 못 했다는 소리에 기죽어 지내던 기자와 작가들이었으니 말이다. 정제된 지식의 보고였던 신문·출판 산업의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활자매체의 몰락이 현실화될까 하는 우려다.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디지털 혁명에 대한 전망이 난무하던 1990년대부터 나온 예상이었다. 인쇄매체는 디지털 혁명에 적응하지 못한 일부 노년층을 위한 매체로 전락할 위험이 크다는, 그래서 활발한 소비층을 선호하는 광고주 입장에서 가장 매력 없는 매체가 될지 모른다던 예측 말이다. 신문사가 신문활용교육(NIE)을 외치고, 출판사가 세계문학전집을 내놓는 이유도 어쩌면 여기에 있을는지 모른다. 신문의 위기는 현재진행형이다. 일간지 구독률은 2001년 51.3%에서 2011년 24.8%로, 열독률 역시 69.0%에서 44.6%로 추락했다. 해외에서도 우울한 소식이 들린다. 지난해 미국의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인쇄판 출간 포기를 선언했다. 상대적으로 우리 귀에 익은 매체여서 화제였을 뿐 뉴스위크보다 앞서서 미국과 유럽에서 인쇄판을 포기한 매체들은 많다. 아직 한국에서 이런 상황은 없지만 더 위험할 수도 있다. 해외 매체는 오프라인을 포기하는 대신 온라인 유료화 전략이라도 구사할 수 있지만 포털 중심의 한국은 이마저도 여의치 않다. 출판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온라인 서점을 통한 할인 행사가 일상화되다 보니 출판 생태계 붕괴에 대한 경고음이 지속적으로 울려 퍼졌다. 가장 큰 경고음은 책 출간 부수 자체의 감소다. 연도별 출고 동향을 보면 2009년 4.2% 증가를 끝으로 2010년 -9.0%, 2011년 -7.2%, 2012년 -12.3%를 기록했다. 내놓는 책 자체가 지속적으로 줄고 있는 데다 그나마 내놓는 것도 손쉬운 번역 출판이다. 2011년 기준으로 신간 가운데 번역서 비중은 26.1%, 단행본 및 베스트셀러에서 번역서 비중은 50%에 이른다. 전문가들은 다른 의견을 내놓기도 한다. 김위근 언론진흥재단 연구위원은 “신문산업의 위기는 신문산업 전체의 위기라기보다 종이 신문에 한정된 위기”라며 “스마트폰 환경이 되면서 오히려 뉴스 소비가 증가하고 있다는 점에서 신문은 활로를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외국 사례지만 뉴욕타임스가 온라인 뉴스 유료화를 재차 강행했는데 성과가 나쁘지 않은 것도 희소식이다. 출판업계에서 30여년 몸담은 강무성 열린책들 주간은 “출판에 최적화된 콘텐츠를 확보한다면 종이 책은 살아남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신문·출판 산업에 대한 국가 차원의 지원 방안에 대한 요구가 높다. 현장의 얘기를 들어 봤다. 조태성 기자 cho1904@seoul.co.kr
  • [책꽂이]

    기적의 모험놀이(방승호 지음, 이지스퍼블리싱 펴냄) 어른과 담을 쌓은 냉담한 아이들은 대화 자체를 거부하거나, 어쩌다 억지로 대화를 해 봤자 단 한마디도 제대로 듣거나 말하지 않는다. 저자는 14년간 모험놀이 상담을 해 온 이 분야 전문가다. 모험놀이란 말썽을 일으키는 아이들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일단 다 함께 어울려 노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1970년대 미국에서 개발된 상담 기법이다. 실내에서 할 수 있는 간단한 놀이법, 단계적 접근법에다 놀이가 끝난 뒤 아이들과 대화를 어떻게 이끌어 나갈지에 대해서도 소개해 둬서 부모나 교사가 바로 응용할 수 있도록 해뒀다. 1만 3000원. 이조시대 서사시 1, 2(임형택 지음, 창비 펴냄) 한문학자이자 성균관대 명예교수인 저자가 조선시대 서민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서사시를 모았다. 20년 전 시 104편을 묶어 낸 책에 18편을 추가하고 손질했다. 왜적 손에 백성들이 목숨을 잃고, 아버지의 탐욕으로 나이가 많은 소경에게 시집 가는 딸의 모습, 막대한 부를 축적한 상인의 위력, 병자호란 때 포로로 끌려갔다가 고국으로 돌아와 떠도는 늙은이 등 역사적 사건은 물론 개인의 삶을 이야기하는 시까지 다양하게 담았다. 각 2만 5000원. 서당의 사회사(정순우 지음, 태학사 펴냄) 조선후기 교육사와 지성사의 권위자인 저자는 한국 교육의 발원지이자 사회 변화상을 포착할 수 있는 핵심으로서 서당을 조명했다. 서당은 조선시대 농촌경제체제에 가장 적합한 형태로 고안된 교육 시스템이자 특유의 폐쇄적 신분제를 극복하는 고리가 됐다고 말한다. 지역 주민의 교육·문화 욕구를 해소하는 종합 교육기관이기도 했다. 늙수그레한 모습으로만 그려진 훈장들이 알고 보면 불온세력으로 몰린 양반으로 나름의 교육개혁 주체였다는 사실도 재미있다. 2만 5000원.
  • [씨줄날줄] 구로다 나쓰코/함혜리 논설위원

    일본 최고권위의 신인문학상인 아쿠타가와상 올해 수상자로 ‘75세 문학소녀’ 구로다 나쓰코가 선정돼 화제다. 이 상의 최고령 수상자이다. 그런 나이의 작가에게 최고권위의 신인문학상을 안겨준 선정위원회의 결정도 놀랍지만, 그 나이에 신인상에 도전한 구로다의 열정은 더욱 놀랍다. 수상작 ‘ab산고’는 지난해 와세다문학 신인상을 받기도 한 구로다의 데뷔작. 전후 한 가족이 엄마의 죽음을 시작으로 서서히 소소한 일상을 잃어가는 과정을 그렸다. 일본 문학에선 드물게 가로쓰기를 채택했는가 하면 인칭대명사가 없고, 히라가나만을 사용한 독특한 표현방식도 눈길을 끈다. 도쿄 출생인 구로다는 그림책과 소년소녀 동화를 보며 문학소녀의 꿈을 키웠다. 와세다대학 교육학부에 들어가 동인지 활동을 했고 20대에 신문사 주최 공모전에서 단편상을 수상했지만 고교 교사가 되면서 문학도의 꿈을 접어야 했다. 그러다 프리랜서로 출판사의 교정 일을 하면서 다시 글쓰기에 도전했다. 33세에 1000장 분량의 소설을 완성해 출판될 뻔했지만 무산됐음에도 글쓰기를 계속했다. 자기만의 스타일로 10년에 작품 하나씩을 완성하는 게 목표였다. 좋아하는 글쓰기를 하는 것에 만족했던 그가 생각을 바꾼 것은 70세가 넘어서다. 살아 있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작품을 읽어주면 기쁘겠다는 생각에서였다. 10년에 걸쳐 완성한 작품을 정성스레 가다듬고 곳곳의 응모요강을 읽은 뒤 가장 적합해 보이는 와세다 문학상에 도전했고 신인상을 수상했다. 장수대국 일본에서는 노년신예작가의 등장이 늘고 있는 추세다. 100세 할머니 시바타 도요의 시집 ‘약해지지 마’는 한때 일본 서점가를 뜨겁게 달궜다. ‘굿바이 귀뚜라미군’으로 지난해 군조 문학상 우수상을 받은 후지사키 가즈오(74)는 학습지 편집장을 하다 은퇴 후 본격적으로 글쓰기에 도전한 케이스. ‘화산기슭에서’를 발표한 마쓰이에 마사시(53)는 잡지사 편집장을 하다 퇴직 후 전업작가로 데뷔했다. 지난해 쇼가쿠칸 문고 소설상을 받은 주부작가 기리에 아사코(61)는 52세에 대학원에 들어가 글쓰기를 시작했다. 구로다는 그제 수상자 발표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이런 나이가 되어서 젊은이들에게 방해가 되면 안 된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었지만, 숨어 있는 장년층 작가들을 찾아내는 계기가 된다면 그것이 나의 역할이라 생각하고 기꺼이 상을 받겠다”라고 수상소감을 밝혔다. 10여년 전 이미 고령화사회에 진입한 우리나라에도 그런 열정의 울림이 널리 퍼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퇴임 2막’ 준비하는 MB 참모들

    ‘퇴임 2막’ 준비하는 MB 참모들

    박근혜 당선인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정권 인수작업이 한창인 요즘 퇴임을 40일 남짓 앞둔 이명박 대통령의 참모들은 제각각 청와대 이후의 인생 설계를 짜느라 여념이 없다. 청와대 고위급 참모들은 휴식과 재충전 등 인생 재설계에 나서고 있지만, 비교적 젊은 일부 중·하위직은 취업 걱정을 해야할 처지라 표정이 대비된다. 특히 각 부처에서 파견된 관료 출신들은 친정으로의 원대 복귀를 기다리지만, 일부 비공무원 출신은 공공기관으로의 전직을 타진하다 박 당선인이 지난달 25일 “공공기관에 낙하산으로 사람을 보내는 것은 잘못”이라고 언급한 이후 미련을 접었다는 후문이다. 고위급 참모들 가운데 SBS 사장 출신인 하금열 대통령실장은 고향 거제로 낙향할 생각을 갖고 있다. 하 실장은 최근 펴낸 시집 ‘강이 끝나는 산 너머로’ 첫머리에서 “달빛을 좇아 고향에 돌아갈 날을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고 있다”고 심경을 피력했다. 김대기 정책실장은 공직생활 중 틈틈이 해온 메모를 바탕으로 저술작업에 몰두할 것으로 알려졌다. 본인이 청와대와 경제부처 등 공직생활에서 경험한 사례들을 바탕으로 정책 의사결정에 관한 내용을 담을 계획이다. 천영우 외교안보수석비서관은 휴식을 취하며 재충전할 생각이다. 천 수석은 평소 “퇴임하면 좋아하는 낚시를 하며 세월을 낚을 것”이라고 말해왔다. 최금락 홍보수석비서관은 퇴임 이후 부인과 함께 지리산 종주에 도전할 계획을 세웠고, 김상협 녹색성장기획관은 해외 여행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정진영 민정수석비서관은 변호사 업무를 재개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고위급 참모들은 퇴임 이후에도 이 대통령과 꾸준히 만나기로 했으며, 이 대통령이 계획 중인 것으로 알려진 재단 설립에 참여하는 등 이 대통령과 인연을 이어나갈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관료 출신이 아닌 비서관·행정관 대부분은 아직 여행과 휴식 말고는 뚜렷한 계획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 오랫동안 이 대통령을 보좌해온 임재현 제1부속실장 정도가 퇴임 이후 이 대통령의 법정 비서관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청와대의 ‘입’ 역할을 해온 박정하 대변인은 해외에서 공부를 하면서 ‘내공’을 쌓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으며 이종현 춘추관장은 뚜렷한 진로를 확정하지 못한 채 당분간 여행을 하거나 휴식을 취할 것으로 알려졌다. 김재윤 국정홍보비서관은 청와대 인근에 냉면집을 차릴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명사가 걸어온 길] 1.바람의 시인, 예술과 삶을 말하다(하)

    [명사가 걸어온 길] 1.바람의 시인, 예술과 삶을 말하다(하)

    시인 고은(80)을 이야기하면서 그의 예술과 문학론, 사랑과 술을 빼놓을 수 없다. 한 30대 문학평론가는 고은에 대해 “선생은 지리산 자락 깊은 곳에 핀 이름 모를 꽃의 존재에 대해서도 경남의 꽃, 대한민국의 꽃, 아시아의 꽃, 지구의 꽃, 태양계의 꽃, 우주계의 꽃으로 인식하고 들여다보는 확장된 시각을 이미 1960~70년대부터 드러낸 것이 특징”이라고 평했다. 지금이야 당연한 시각인 것 같은데 당시에 일반적인 것은 아니었다. 시에 대한 고은의 욕망은 이런 것이다. “이 세상이 끝나야 끝나는 시. 아니 모든 멸망 뒤에 다시 이어지는 시. 우주 허공계의 시. 나라는 존재 따위 다 사라져 버린 영구 부재의 시. 시. 시.시. 미치겠다.” (1974년 9월 24일 일기) 고은이 유신체제에 저항하는 활동을 강화할 때 그의 문우이자 술친구인 민음사 박맹호 사장과 문학과지성사 김병익 사장은 ‘문학을 지켜라. 정치의 자승자박은 안 된다’라며 찬성하지 않았지만, 고은은 자신의 방식대로 문학을 끌어안았다. “시대에 지지 말자./ 시대를 팽개치지 말자./ 시대는 가고 문학은 남는다./ 문학은 그가 태어난 시대를 떠난다.”(1974년 12월 23일 일기) 세상이 흰 눈으로 뒤덮인 지난 연말, 경기도 안성 자택 서재에서 고은은 “내 운명은 시다. 평론도 소설도 써봤지만, 시로서 내 삶을 완결해야 한다. 이제 막 새로운 시 세계가 열리기 시작했다. 다른 시들이 들어오고 있다. 시인으로서 끝 무렵이 아니라 시작 무렵이다. 나에게는 종결이 없다”라고 말하며 얼굴에 홍조를 띠었다. 1958년 등단한 고은은 첫 시집 ‘피안감성’(彼岸感性, 1960년)을 시작으로 41살까지 6권의 책을 냈다. 그의 저작활동은 1980년대에 폭발적으로 왕성해져, 1986년 1권을 시작으로 2010년까지 24년 동안 만인보 시집만 30권을 냈다. 외국에 고은이 ‘만인보’의 작가로 널리 알려진 이유다. 만인보 외에 시집과 소설, 평론집, 산문집, 시선집, 여행서, 동화집, 동시집, 전기, 자서전, 편집한 책까지 합치면 150여권이 된다. 2013년 새해 벽두에는 1973~1976년까지 일기를 묶은 ‘바람의 사상’과 평론가 김형수와 대담한 ‘두 세기의 달빛’을 한길사에서 펴냈다. 대담집은 앞으로 7~8권 더 나올 예정이어서 고은이 낸 책은 조만간 160여권을 훌쩍 넘을 것이다. 시인으로 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고은은 “모국어로 시인이 되어야 할 운명인 사람인데, 소학교에 입학하니 조선어 사용이 금지됐다. 모국어를 상실함으로써 배움을 시작했다”고 토로한다. 식민지 시대에 태어난 죄다. 학교에서 일본어를 배우고 밤이면 머슴 대길에게 비밀리에 한글을 배웠다. 그렇게 배운 한글 덕에 해방되자 3학년에서 4학년으로 월반했다. ‘국문을 아는 사람 손들어’라고 했을 때 고은이 유일했단다. 흔히 그의 프로필에 종교는 불교로 나와 있다. 20대에 10년을 승려로 살았으니, 으레 그리 짐작한다. 그러나 흰 종이에 육필로 시를 적어나가는 고은은 “나에겐 백지가 종교다. 다른 종교가 들어올 여지가 없다. 완벽한 백지가 있으니까, 다른 완벽함이 필요없다”고 말했다. 삶은 힘들어지고, 문학하는 사람들은 늘고 있다. 고은은 “한국전쟁 당시 사람들 속에 진짜 시적인 것이 있었다. 그 시대를 견뎌온 힘은 강력한 정서, 시적인 품성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때 시가 더 풍부했다. 시단의 시적인 성취나 완성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때 사람들은 시와 함께 있고 싶어했다. 지금은 시와 함께하는 사람들은 줄었는데, 오히려 시인들은 늘어나고 있다. 그 시인들이 시적인 품성이 갖춰져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역설적이다”고 현상을 분석했다. 그는 오히려 예비 작가나 기성 작가들에게 조언했다. “자아의 골짜기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작가들이 많다. 산 너머 이웃마을의 소식이 전혀 들리지 않는 자아의 골짜기에서만 머물지 말고 나와서, 세상을 돌아보고, 바라보고 해야 한다. 현대인의 특징은 시력이 약해져, 먼 곳을 보지 못한다. 인류가 짐승일 때는 멀리까지 바라봤다. 문명 속에서 익숙해진 시야라서, 아파트 단지의 건너편 창문을 바라본다. 시야가 연장되지 않고 누에고치처럼 내면에 둥지를 튼다. 그러면 어떤 때는 자신에 충실하지만, 자칫 자폐가 된다. 예술은 끊임없이 열려 있어야 한다. 문이 열리고 닫히는 ‘삐걱삐걱’ 소리가 들려야 하고, 뜨거운 숨결이 밖으로 나가고 밖의 차가운 공기가 들어와야 한다. 안 그러면 사막이 돼 양쪽이 다 죽어버린다.” 1974년 자유실천문인협의회 대표간사를 맡아 ‘참여파’는 물론이고 ‘순수파’까지 101명을 그러모아 ‘101 선언’을 추진한 저항시인다운 문학론이다. 그렇다고 그가 정치적이었느냐? 1974년 12월 27일의 일기를 보자. “문학은 비겁한 것인가. 문학은 현실에 대해, 힘에 대해, 이렇게밖에 존속될 수 없는 것인가. (중략) 절대로 권력에 굴복하지 않아야 한다. 만약 그런 일이 있게 되면 우리는 팔 하나씩 잘라버려야 한다. 자유실천문협은 한국문협, 자유문협, 그리고 한국문인협회의 그것일 수 없기 때문에 현대 한국문학사를 새로 쓰는 문학의 운동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문학이 정치의 도구로 전락하는 일도 경계할 것이다. 문학은 문학으로 끝난다.” 지금은 하회탈 같이 속탈한 웃음을 짓는 고은이지만 1951년 교사시절이나 승려로 지낸 시절의 사진은 자의식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여간 부담스러운 얼굴이 아니다. 고은은 “고비와 극한을 많이 경험해서 그렇다. 마음의 평화는 인생의 후반기, 지금부터 한 20여년 전에서야 얻었다”고 했다. “내 마그마는 마음의 지하에서 여전히 타고 있는데, 지층까지 올라오지 않도록 달래놓고 유보시키고 하는 것이다. 어느덧 내 무의식의 일상이 지하의 마그마를 노출시키지 않도록 조절하고 달래주고 있다. 나는 본능의 신성성을 인정한다. 본능은 천하고 나쁜 것이 아니라 아주 신성한 것이다. 그것을 내 규범에 의해 억압하면 내가 싫어한다. 그것이 나의 자연이다. 불이 나의 친구다. 그러니까 ‘얘가 덜 필요한가보다’ 하면 자기가 물러나주고, 필요한 듯싶으면 기꺼이 다가오고 그래준다.” 본능의 신성성을 높이 평가한 덕분인지 고은의 여성편력은 화려했었다는 것이 문단의 평가다. 그러나 그는 1974년 9월 5일에 만난, 당시 덕성여대 강의를 나가던 15세 연하의 이상화(66·중앙대 영문과 교수)를 만난 뒤로 사랑에 빠졌다. 이 즈음 고은은 “한 달도 안 됐는데 결혼을 생각해야 할 처지가 되어가고 있다”고 일기에 써놓았다. 결혼식은 만난 지 약 10년 만인 1983년에야 했다. 고은의 나이 50살 때다. ‘생활은 문학의 무덤’이라던 고은의 부인 사랑은 지극하다. 2008년 고은이 그림 전시를 한 뒤로는 생일이 되면 고은 부부는 그림을 그려 생일선물을 대신한다. 문학평론가 권영민은 “결혼 이후 성실한 가장으로 살았고, 특히 딸을 얻은 뒤로 우주를 얻은 듯 기뻐했다”고 회고했다. 올해 정년을 맞는 부인 이상화 교수는 고은의 통역을 자청해 왔다. 흔히 전문통역사들이 외국인들이 이해하기 쉽게 고은의 발언을 풀어 설명한다면, 이 교수는 그러지 않는다. 이 교수는 “고은 시인은 발언 자체가 시다. 시를 산문으로 만들어서는 안된다”고 했다. 고은과 술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친구’이다. 고은은 “사람들이 그렇게 술 마시며 언제 시를 쓰느냐고 묻지만, 나는 일을 다 털고 난 뒤에 술을 마신다. 일을 했으니 나를 방임하고, 해방시켜줘야 한다”고 변명 비슷하게 말했다. 그는 젊은 시절 황홀했던 주막을 사랑했다. 그렇다면 주량은? “어리석은 질문이다. 주량은 내가 측정한 적이 없다. 가장 오래 마신 기록은 이틀을 잠 안자고 계속 마신 적이 있다. 서너 명이 마시다 다 떨어지고, 최종적으로 둘이 대작했는데 내가 졌다. 고은을 이긴 사람이 누구냐고? 다들 죽었다”라며 쓸쓸한 표정으로 입을 꽉 다물었다. 고은에게 술은 대부분 “대취”와 “뻗었다” 사이에 있었다. 맑은 소주를 좋아했다. ‘대취’ 무렵의 그의 술친구를 직함을 생략하고 순서 없이 대충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박맹호, 박성룡, 김현, 이청준, 이어령, 남재희, 한승헌, 김병익, 황석영, 손소희, 이시영, 김승옥, 조해일, 백낙청, 김동리, 이문구, 서정주, 최순우, 조세형, 김현종, 최인호, 김기영, 신경림, 염무웅, 권영민, 민음사 여직원 3명 등등. ‘황홀한 주막’은 서울 종로구 청진동 가락지와 열차집, 신촌 역전 술집, 낭만, 서린동 술집 등등으로 무교동과 청진동, 광화문 언저리다. 그가 기억하는 최고의 술자리는 1960년대 어느 날 새벽 1~2시에 혼자 마시던 술이다. 잠든 세상에서 비장한 비극성을 즐기며 “나는 세상을 숙직하는 자다. 세상을 지키는 취기다”라며 마셔댄 것이다. 연세도 있는데 술을 끊을 것인가? “술을 끊으면, 수사자에게 수염이 없는 것 같다, 원숭이에게 꼬리가 없는 것 같다, 조가비에게 진주가 없는 것 같다. 이별하지 말고 작별을 했다가 다시 만나야지. 옛날 삼거리 주막집에서 나그네들이 만나서 술 마신 뒤 언젠가 다시 만납시다 하면서 손을 흔들면서 헤어지듯이 그래야지. 술에게 가혹하게 굴면 안 된다. 얼마나 헌신적으로 잘해줬느냐. 술이 운다. ” 글 사진 문소영 기자 symun@seoul.co.kr
  • [3일 TV 하이라이트]

    ■한국인의 밥상(KBS1 밤 7시 30분) 험하디험한 산길에 ‘인제 가면 언제 오나’라는 한 맺힌 가락이 전해오는 백두대간의 첩첩산중 강원 인제 용대리. 이곳에는 영하 20도를 넘나드는 추위와 살을 에는 듯한 매서운 바람을 축복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한편 용대리에서 처음으로 황태덕장을 연 최귀철씨는 올해 50년째 덕장을 운영하고 있는데…. ■의뢰인 K(KBS2 밤 8시 50분) 평소처럼 집으로 가려고 택시를 탄 한 여자. 그런데 택시기사가 다짜고짜 피해자에게 휴대전화를 빌려 달라고 한다. 기사는 여자의 휴대전화를 숨긴 뒤 차문을 잠가버린다. 남자는 택시기사로 위장한 납치범이었던 것. 그렇게 여자를 협박하며 으슥한 곳으로 끌고 가려는 남자. 이에 여자는 당황했지만 기지를 발휘한다. ■일일연속극 오자룡이 간다(MBC 밤 7시 15분) 공주는 자룡에게 첫사랑 마리와 재회했는지 묻는다. 그리고 자신이 자룡을 좋아하는 것이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며 자룡에 대한 마음을 접지 않을 것을 다짐한다. 한편 신제품 아이템으로 떡볶이를 내세운 공주. 레시피와 시장 파악을 위해 자룡네 떡볶이 포장마차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다.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SBS 밤 8시 50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오직 한 스타일로 등산한다는 남자가 있다. 도대체 어떤 스타일로 등산하는지 궁금하던 찰나, 갑자기 신발을 벗고 맨발로 산에 올라가는 오늘의 주인공 윤영창씨를 만날 수 있었다. 그는 등산용 신발에 아이젠까지 착용한 등산객들보다도 빠르게 산에 오르며 제작진을 놀라게 하는데…. ■다문화 휴먼다큐 가족(EBS 밤 12시 5분) 5년 전 한국으로 시집 온 네팔인 라마 다와돌마. 지금은 지리산 자락인 경남 함양에서 곶감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 감 깎는 작업이 힘들어 혼자 우는 날도 많았던 그녀. 그럴 때마다 항상 옆에서 보듬어 주는 남편의 사랑은 힘이 되었고, 어느덧 동네에서 예쁨받는 며느리가 되었다. ■올리브(OBS 밤 11시 5분) ‘2013년 사상체질로 건강 계획 세우기’를 주제로 성대현과 더불어 올리브 식구들의 체질을 진단한다. 이에 한의학 박사 김수범 원장은 태양인, 태음인, 소양인, 소음인으로 나뉘는 체질의 각 특성에 따라 건강계획도 달리 세워야 한다고 권장한다. 한편 성대현은 신혼 초부터 지금까지 각방을 쓰고 있다고 털어놓는다.
  • 더는 외롭지 않아, 더 살고 싶어졌지… 할머니 넷, 깨소금 동거중

    더는 외롭지 않아, 더 살고 싶어졌지… 할머니 넷, 깨소금 동거중

    #충남 공주시 반포면 온천1리 최숙려(79) 할머니 집 60여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사는 이 마을에서 가장 ‘행복한 집’이다. 대문도 없고 창호지를 바른 방문 틈 사이로 찬바람이 숭숭 들어오는 촌집이지만 웃음꽃이 지질 않는다. 이 집에는 최 할머니와 오순기(79)·정옥주(72)·윤명자(66) 할머니 등 4명이 모여 산다. 다 독거노인이다. 이 마을로 시집 와 형님, 동생 하며 지내던 이웃사촌이 한 가족이 된 것이다. ‘고독사’. 적어도 이 집에서는 낯선 용어다. 충남의 일부 자치단체들이 도입한 ‘독거노인 공동생활제’ 덕이다. 농사일을 품앗이하던 전통적 공동체 방식을 뛰어넘은 신개념의 농촌공동체다. 자식과 떨어져 사는 독거노인들이 이웃과 형제·자매처럼 한집에 어울려 살면서 서로를 보듬는 생활공동체다. 1일 최 할머니 집을 찾았을 때 할머니 넷이서 점심을 먹고 있었다. 변변치 않은 찬이지만 할머니들의 맛있는 수다가 펼쳐졌다. 자식 얘기 등 정담이 끊임없이 오갔다. 상을 물리고는 윷놀이를 하며 함박웃음꽃을 터뜨렸다. 남편을 먼저 저세상으로 보내고 자식들마저 타지로 떠나 외로움에 사무치던 예전의 모습과 딴판이다. 20년 전 혼자가 된 최 할머니만 해도 밥을 거르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몸이 아파도 도와줄 사람이 곁에 없어 병원도 제때 가지 못했다. 밤마다 무서움에 잠을 설쳤고, 겨울이면 추위에 떨었다. 하지만 사정이 비슷한 이웃 할머니들과 함께 살면서 삶이 180도 달라졌다. 2년 전 최 할머니 집이 독거노인 공동생활 터가 됐기 때문이다. 동생뻘인 할머니 여럿과 식사하면서 밥맛도 좋아졌고 무료함이나 막연한 두려움도 말끔히 사라졌다. 막내 윤 할머니가 식사준비를 하는 사이 나머지는 집안청소를 했다. 몇 달 전 갑상선 암 수술을 받은 정 할머니는 “퇴원하고 집에 혼자 있었더라면 무척 힘들었을 텐데 옆에서 식사와 약을 챙겨 주고 팔다리까지 주물러 줘 회복이 빨랐다”면서 “같이 음식을 해먹고 얘기하다 보면 하루가 금방 간다”고 웃었다. 최 할머니는 “마음이 맞는 이웃끼리 모여 사니까 이렇게 좋을 수가 없다”고 자랑했다. 공주시가 1200만원을 들여 집을 고쳐 줬고, 연간 운영비로 480만원을 지원한다. #충남 청양군 목면 대평2리 마을회관 낮에 마을 노인 20여명이 찾아와 점심을 해먹고 놀다 집으로 돌아가면 할머니 5명만 남는다. 이들은 한 방에서 잠을 자거나 TV를 본다. 김장도 함께 담갔다. 김윤단(80) 할머니는 “무엇보다 외롭지 않아서 좋다. 말벗이 있어 웃을 일이 참 많아졌다”고 말했다. 얼마 전 김 할머니가 대상포진으로 가슴 통증이 엄습했을 때 같이 사는 할머니가 119 구조대에 전화해 병원에 다녀왔다. 김 할머니는 “혼자 있었으면 고통과 서러움에 몸서리쳤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로당에는 냉장고, 에어컨에 노래방기기와 김치냉장고까지 없는 게 없다. 청양군이 재작년 325만원을 들여 사준 것들이다. 방도 뜨끈했다. 군은 매달 경로당에 주는 낮시간대 기름값 40만원 외에 25만원을 더 얹어 주고 있다. 쌀과 반찬 등 생필품 구입비로 다달이 30만원을 대준다. 10년 전 남편과 사별한 김해영(66) 할머니는 “객지에 사는 아들이 같이 살자고 하는데 눈치 보면서 뭣하러 그러느냐”면서 “여기서는 자매처럼 편하게 살 수 있는데…”라고 좋아했다. 강옥재(74) 할머니는 “5년 전 남편 잃고 혼자 살다 우울증이 심해졌는데 여기 온 뒤로 훨씬 나아졌다”고 기뻐했다. 겨울철 기름값으로 30만~40만원이 들었다는 강 할머니는 요즘 자신의 집 보일러를 ‘외출’로 해놓고 대부분 이곳에서 지낸다. #청양군 정산면 대박리 마을회관 혼자 사는 할머니 5명과 할아버지 2명이 이 회관에서 방을 달리해 산다. 할머니들이 교대로 밥을 하고, 할아버지들을 불러 함께 먹는다. 최인자(85) 할머니는 “혼자 살 때는 겁났다. 아프면 이불을 붙잡고 꾹꾹 참았다”며 “밥 해먹기도 귀찮아 깡통(통조림)만 먹고 지냈다”고 옛 생활을 회고했다. 양인정(81) 할머니는 “여기 온 지 석 달 만에 살이 3㎏이나 쪘다”며 활짝 웃었다. 남자방의 김성렬(91) 할아버지는 “작년 봄에 할망구가 죽고 여기로 왔어”라면서 “가져갈 게 있나 먹을 게 있나. 집에 뭣하러 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현석(76) 대박리 노인회장은 “함께 살다가 맘이 안 맞는다고 삐쳐서 집으로 돌아가는 노인도 있지만 대부분 잘 지낸다”고 귀띔했다. 충남도와 시·군은 2010년부터 16개 마을회관과 3개 노인 개인주택을 활용해 독거노인 공동생활제를 시행하고 있다. 허인강 충남도 주무관은 “공동생활제가 농촌 노인문제를 해결하는 단초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면서 “적어도 사회문제로 대두된 고독사는 아웃(OUT)”이라고 말했다. 글 사진 청양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공주 남인우 기자 niw7263@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