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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를 쓴다는 목표 있기에 절망 안해”

    “시를 쓴다는 목표 있기에 절망 안해”

    ‘숭고한 노이로제’는 낯설고 불온한 책이다. 책보다는 책의 형태를 띤 실험 예술에 가까워 보인다. 쪽수 표기도 없다. 쪽마다 서체도, 활자의 크기도 다르다. 새빨간 배경 위에 인쇄된 ‘白日夢’이라는 제목의 글은 상하 좌우가 바뀌어 있다. 콜라주처럼 삽입된 이미지가 불러일으키는 감정은 쾌(快)보다 불쾌에 근접한다. “우레탄 군홧발로 팔각궁륭형 천장을 마구 돌아다닌다”, “인간은 외롭고 의롭고 야해야 한다” 같은 난해한 문장들이 적혔다. 이런 문장도 있다. “살아가면서 가장 어려운 일은 제정신이 아닌 짓을 저지르지 않는 것이다.” ‘성귀수 내면일기’라는 부제가 붙은 ‘숭고한 노이로제’는 말 그대로 성귀수(52) 시인의 내면을 옮겨 놓은 책이다. 시인이기도 한 까만양 출판사의 신종호(49) 대표가 처음으로 내놓은 ‘내면일기’ 시리즈다. 지난 12일 서울 창천동의 한 카페에서 시인과 함께 만난 신 대표는 “가장 순수한 모습을 위해 자기검열 없이 사유와 상상력의 극한을 분출하고자 한다”고 책의 취지를 설명했다. 그러나 여기에서 ‘내면’은 에세이 등의 형식을 통해 보기 좋게 정돈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폭발하듯 분출된 내면의 모습은 난삽하고 불편하다. ‘숭고한 노이로제’는 언어와 이미지의 형태를 띠고 있으나 그것들과 불화하고 긴장하면서 규범적 한계에서 부단히 멀어진다. 시인은 이 책을 두고 “자기를 정의하고 규정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일상성과 규범을 초월하려는 것이 노이로제라면 진정한 노이로제의 본질은 숭고하다”는 설명을 덧붙인다. 1991년 ‘문학정신’을 통해 등단한 시인은 2003년 ‘정신의 무거운 실험과 무한히 가벼운 실험정신’이라는 시집을 발표했다. 모리스 르블랑의 ‘아르센 뤼팽’ 전집과 가스통 르루의 ‘오페라의 유령’, 조르주 심농의 추리 소설 등을 한국어로 옮기고 지금은 마르키 드 사드의 전집 번역을 준비하고 있는 불문학 번역가이기도 하다. ‘숭고한 노이로제’는 그가 아르센 뤼팽 홈페이지를 만들어 ‘성귀수 작전실’이라 이름 붙인 공간에서 2004년부터 기록한 글들을 묶은 책이다. 그가 “몇 번이나 그만두려는 생각도 들었다. 발가벗는 것 같았다”면서도 이 책을 만든 이유는 뭘까. 책의 말미에 시인은 “존재의 오지랖일랑 집어치우고, 자네 속에 용쓰는 코모도 왕도마뱀과의 사투에 사활을 걸어보는 것은 어떨까”라고 적는다. “크게 보면 책에는 삶이나 감정, 욕망에 관한 글이 있고 시와 미학에 관한 글이 있다. 전자를 존재의 오지랖이라고 한다면 책을 씀으로써 거기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조금 더 자세한 설명을 들어보자. 시인과 신 대표는 “이 책은 시집이 아니다”라고 단호히 선을 긋는다. 시인에게 시란 “아직 밝혀지지 않은 언어체계가 존재한다는 신념”을 구현하는 것이고 “증축을 통해 미학적 형태를 개념으로 만드는 일”이며 “신(神)을 위해” ‘순수한 관념’을 쓰는 일이다. 나머지 글은 불필요한 과잉에 지나지 않지만 불완전한 시인은 불완전한 글로 자신의 불완전함에 대해 부연하고 변명할 수밖에 없다. ‘숭고한 노이로제’는 불완전함에 대한 자기 고백인 동시에 완전함을 향한 강박적 갈구다. “시는 죽기 직전까지만 쓰면 된다. 시를 써야 한다는 목표가 있기 때문에 절망하지 않고 살 수 있는 것이다.” 신 대표는 “앞으로 다른 시인들과 김기덕 감독, 이현세 만화가의 내면일기 시리즈를 내보고 싶다”는 희망을 밝힌다. “사회적인 관계에서 가면을 벗는 처절한 자기 고백”을 듣고 싶다는 것이다. ‘숭고한 노이로제’는 신 대표에게는 시리즈의 출발점이고, 시인에게는 종착점이다. 시인은 “어떤 책을 쓸 때 그 책을 쓰는 이유는 그 책 속에 모두 담겨 자폭해야 한다”고 적었다. “책을 쓰면 존재의 고통스러운 상태에서 해방될 것 같았다. 중요한 건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는 것이다. 나는 하나의 문으로서 이 책을 만들었다.” 배경헌 기자 baenim@seoul.co.kr
  • [글로벌 시대] 경제 이웃, 문화 이웃 베트남/배종하 주베트남FAO대표

    [글로벌 시대] 경제 이웃, 문화 이웃 베트남/배종하 주베트남FAO대표

    하노이 시내 중심에 있는 호안끼엠 호수는 늘 관광객으로 붐비고 하노이 시민의 휴식 공간으로 사랑받는 곳이다. 호안끼엠은 ‘환검’(還劍)의 베트남어 발음인데 여기엔 이름과 관련된 전설이 있다. 15세기 중국 명나라가 베트남을 침입했는데 당시 베트남의 레로이 왕은 이 호수의 거북이에게서 칼을 한 자루 받았고 그 칼로 싸워 명나라를 이겼다고 한다. 승리한 왕은 거북이에게 승전 소식을 전하기 위해 호수를 찾았고 거북이는 그 칼을 되돌려 받아 갔다고 한다. 그래서 ‘검을 돌려주었다’는 ‘환검’, 즉 호안끼엠이 호수 이름이 됐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야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설과 비슷하다. 같은 한자 문화권이라 호안끼엠처럼 한자에서 유래된 단어는 우리와 발음이 비슷한 단어가 많다. 곧 추석이 다가오는데 여기도 추석은 큰 명절이고 중추(仲秋)의 베트남식 발음은 ‘쭝투’이다. 11세기에 생겼다는 옛날 교육기관이 시내에 있는데 그 한자 이름이 ‘국자감’(國子監)이고 ‘사서오경’(四書五經)을 즐겨 익혔다는 설명도 있다. 뿐만 아니라 제일 안쪽에 자리 잡은 공자 모신 사당에는 입시철이 되면 아들딸 합격하게 해 달라고 향 피우고 기도하는 학부모들이 문전성시를 이룬다. 우리 못지않게 교육열이 높아 소득이 낮음에도 사교육이 대단하다. 오랜 전쟁으로 모든 산업 기반이 붕괴된 베트남이 1980년대 중반 도이머이 정책으로 대외 교류를 확대하고 경쟁을 중심으로 하는 자본주의 시장원리를 도입해 놀랄 만한 경제발전을 이룩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아세안(AEAN) 중에서도 캄보디아, 라오스, 미얀마, 베트남은 후발 국가로 분류되는데 그중에 베트남은 단연 독보적인 경제성장을 보이고 있다. 특히 농수산업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루어 80년대 초에는 극심한 식량 부족을 겪었던 국가이나 지금은 세계 제1의 쌀 수출국이며 제2의 커피 수출국이고 고무, 수산물 수출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 오늘날의 베트남이 있기까지에는 베트남 국민의 근면하고 부지런함, 풍부한 양질의 노동력 등이 큰 원인이지만 한편으로는 많은 국가들로부터 도움을 받은 것도 사실이다. 특히 한국은 베트남 개발 협력의 중요한 파트너로 의료, 교육, 농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원조를 해 왔다. 우리 기업들도 신발·의류 등 제조업을 중심으로 많은 투자를 했고, 최근에는 IT산업까지 베트남에 생산기지를 확장하고 있다. 한국과 베트남은 수교한 지는 20년밖에 되지 않지만 경제협력은 급속히 신장하고 있다. 양국 간의 교역 규모는 매년 20% 이상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2008년 100억 달러를 돌파한 후 불과 4년 만인 2012년에 200억 달러를 돌파했다. 이 추세대로라면 2015년쯤이면 300억 달러를 넘어설 전망이다. 이미 베트남은 이미 우리의 여섯 번째 수출시장이며 앞으로도 밀접한 교류가 확실한 미래의 시장이다. 이번 박근혜 대통령의 베트남 방문을 계기로 양국 관계는 더욱 공고해질 것이고 내년에 자유무역협정(FTA)이 체결되면 새로운 협력의 장이 열릴 것이다. 베트남에서 경제활동을 하는 한국 교민이 10만명을 훌쩍 넘어섰고, 한국에 시집 온 베트남 여성이 6만명에 달한다. 우리 교민의 경제활동은 나날이 커지고 있고 한국에 시집 온 외국 여성 중 베트남 여성이 제일 잘 적응한다고 한다. 베트남은 문화 이웃인 동시에 경제 이웃이다.
  • [여행 가방 ‘전통주 테마 기행’]

    한국관광공사가 한가위에 가볼 만한 곳을 선정했다. 충북 충주 등 다섯 지역이다. 전통주를 테마로 삼아 인근의 볼거리를 묶었다. 충주 청명주 - 찹쌀과 밀의 진한 만남 음력 3월 청명에 마시는 절기주다. 일제강점기 때 맥이 끊긴 것을 1986년 충북 충주시 가금면의 김영기 옹이 집안에 전해오던 ‘향전록’을 바탕으로 복원했다. 청명주는 찹쌀과 밀 누룩으로 만든다. 곡주 특유의 진한 향과 맑은 황금빛이 특징이다. 인근에 세계의 술 역사를 엿볼 수 있는 술박물관 리쿼리움과 삼림욕으로 유명한 충주행복숲체험원, ‘왕의 온천’이라 불리는 수안보 온천 등 즐길거리들이 많다. (043)842-5005. 홍천 동몽·만강에 비친 달 - 향긋한 약주 ‘동몽’은 누룩과 홍천에서 나는 찹쌀, 단호박 등으로 빚는다. 알코올 도수 17도. 약주에 속한다. ‘만강에 비친 달’도 재료는 같다. 다만 알코올 도수가 10도로 낮고, 탁주 형태로 빚어진다. ‘전통주조 예술’에서 맛볼 수 있다. 수타사생태숲은 가을 들꽃이 아름다운 곳. 고찰 수타사도 점차 가을색이 짙어지고 있다. 홍천생명건강과학관은 아이들과 함께 방문하기 좋다. (033)435-1120. 영주 오정주 - 구기자 등 약재가 듬뿍 480여년 전 반남 박씨들이 터를 잡은 경북 영주의 귀내마을에서 오랜 세월 빚어온 전통주다. 솔잎과 구기자 등 한약재가 원재료로 많이 쓰인다. 노란 술 빛깔도 이들 한약재에서 우러나온다. 술은 알코올 도수 24도와 35도로 나뉜다. ‘소백산 오정주’에서 맛볼 수 있다. 주변에 소수서원과 부석사 등 ‘국보급’ 관광지들이 산재해 있다. (054)633-8166. 광주 남한산성 소주 - 조청 풍미 독특 알코올 도수 40도의 증류주다. 쌀, 누룩 외에 조청이 가미되는 게 이채롭다. 조청 덕에 독특한 맛과 그윽한 향이 더해지고, 저장성도 높아진다. 일제강점기 때 맥이 끊긴 것을 강석필(무형문화재 13호) 옹이 재현했다. 막걸리로 발효, 숙성시킨 ‘쌀찐빵’도 인기다. 남한산성과 경기도자박물관, 분원백자자료관, 팔당호 등을 연계하면 가을 여행 코스로 안성맞춤이다. (031)764-2101. 해남 진양주 - 임금님 드시던 바로 그 술 조선의 임금이 마시던 술로 유명하다. 조선 헌종 때 술을 빚던 궁녀 최씨가 궁을 나간 뒤 김권의 후실로 들어갔고, 최씨에게 술 빚는 법을 배운 김권의 손녀가 해남의 장흥 임씨 집안으로 시집 가면서 맥이 이어졌다. 순수하게 찹쌀과 누룩으로 빚는다. 2011년 프랑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의와 2012년 여수세계박람회 만찬주로 선정되기도 했다. 천년 고찰 대흥사와 두륜산 등이 지척이다. (061)532-5745.
  • [길섶에서] ‘쉼표 인생’/정기홍 논설위원

    어느 시인이 그랬다. 시는 연가(戀歌) 아니면 애가(哀歌)라고···. 요즘 시집을 옆에 두는 경우가 많아졌다. 십수년간 안 하던 ‘짓거리’인데, 지하철에서도 가끔 펼친다. 어느 구절 앞에선 진도를 못 낸 상념들이 난장(場)을 펼치며 속마음을 휘젓는다. 이팔청춘도 아닌데 대체 뭔 일인가 싶다. 며칠 전 ‘쉼표’의 뜻을 못 헤아린 채 시집을 덮고 말았다. 언어 조각이 이토록 읽는 이의 감정을 팔색조처럼 펼쳐낼까…. 소싯적 ‘쉼표의 꾐’에 빠진 적이 더러 있었다. 소설은 시말(始末)이 뻔하다며 그 끝을 보지 못하던 차에 ‘시(詩)쟁이’가 글길에 찍어준 쉼표에 혹했던 것. 그로부터 가끔 접한 쉼표는 삶의 길잡이로, 드잡이로 자리했다. 그제 펼친 시집에서 엄한 꾸중을 들었다. ‘무엇에나 이기면 좋고 지면 화나지/지고만 살아 와서/마음은 늘 화나 있고 몸은 늘 병든 걸… 뭐가 달라져야 말이지/내상으로 골병든 부상병인 걸’(유안진의 마이너리티 중). 악다구니가 많았냐고 죽비를 내리친다. 그러고 보니, 자존심의 ‘따옴표’만 찍으면서 살아온 듯하다. ‘쉼표 인생’도 그 얽음이 무진장할진대…. 정기홍 논설위원 hong@seoul.co.kr
  • 8세 소녀, 40대와 강제결혼 첫날밤 뒤 사망 ‘충격’

    8세 소녀, 40대와 강제결혼 첫날밤 뒤 사망 ‘충격’

    예멘의 8세 소녀가 강제 결혼 뒤 첫날밤을 치르고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충격이 일고 있다. 예멘 북서지역세 살던 소녀 라완은 40대 남성과 강제로 결혼해 첫날밤을 보낸 뒤 사망한 채 발견됐다. 이 사건을 폭로한 현지 시민단체들은 라완이 심한 장기손상으로 인한 출혈로 사망했으며, 이 소녀의 가족들을 체포해 법의 심판을 받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이번 사건이 일부 빈민가에서 어린 딸을 나이 많은 남자에게 강제로 시집보내는 관행을 없앨 수 있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예멘에서는 어린 소녀의 결혼 풍습이 공공연하게 이뤄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0년 현지 인권단체의 조사에 따르면 예멘에서 15세 이전에 결혼하는 여성의 비율은 약 25%에 달한다. 또 어린 신부가 순종적이면서 유혹에 덜 흔들리는 정숙함을 가졌으며, 아이를 더 많이 낳을 수 있다는 관념 역시 이 같은 풍습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0년 9월 12세 소녀 신부가 출산 도중 숨지는 사건 등은 예멘 뿐 아니라 전 세계에 충격을 안기기에 충분했다. 이에 세계 최대의 어린이보호단체 등은 이를 막기 위한 법적 장치를 구비해야 한다며 예멘 정부를 압박해 왔지만 사실상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예멘 정부는 과거 법적으로 결혼이 가능한 연령을 최소 15세로 지정했지만, 1990년대에 들어 딸의 결혼 시기는 부모가 직접 결정해야 한다며 법률을 무효화했다. 한편 어린 소녀의 인권이 짓밟히는 곳은 비단 예멘뿐만이 아니다. 어린이인권보호단체의 조사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에는 5700만 명이 넘는 어린 신부들이 있으며, 인도 소녀들이 이중 46%를 차지한다. 의학 전문가들은 15세 이전에 결혼하는 여성은 20대 여성에 비해 출산 도중 사망할 확률이 5배나 더 높다고 지적하고 있다. 사진=자료사진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다 늙어갖고 춤이나 춘다고, 흉 안 볼랑가

    다 늙어갖고 춤이나 춘다고, 흉 안 볼랑가

    “찌렁찌렁 나간다. 기생 아가씨 나간다. 안 비키면 다쳐~.” 1930년대 군산. 해질녘이면 요정으로 향하는 기생의 인력거를 쫓아가며 소녀는 이렇게 놀려대곤 했다.운명은 짖궂었다. 열한살이 되던 1939년 소녀는 ‘채 맞은 생짜’(회초리를 맞으며 제대로 학습한 예기(藝妓))가 되어야 했다. 가야금 명인 김영주의 수양딸로 군산 소화 권번(券番)에 들어갔다. 일제 강점기 전문 기생을 길러내던 교육기관이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큰오빠마저 병석에 몸져 눕자 생계가 육남매의 셋째인 소녀의 몫이 된 것이다. “친구들과 그렇게 일 나가는 기생을 놀려댔는데 내가 기생이 됐지. 사람 일은 장담 못하는겨.” 8일 군산 중국집 빈해원에서 만난 소녀는 여든다섯의 여인이 되어 있었다. 오는 12일 LG아트센터 ‘해어화’(解語花·‘기녀’를 일컫는 말) 공연에서 기약할 수 없는 민살풀이춤을 선보일 이 시대 마지막 예기, 장금도 할머니다. 권번에서 시조, 단가, 춤, 일본어 등 4년간의 혹독한 훈련을 마친 1942년 소녀는 1등으로 예기 허가증을 받아냈다. 춤으로는 군산, 김제, 전주 등지에서 단연 으뜸이었다. 낮이면 환갑집, 밤이면 요릿집·요정 등에 코피 날 정도로 불려다녔다. ‘장금도를 불러달라’는 손님들의 요청이 빗발쳤다. 아침에 단장을 하고 집을 나서면 매일 자정을 넘기기 일쑤였다. “하루에 승무, 살풀이를 수도 없이 췄어. 이 방, 저 방에서 ‘장금도 춤 좀 보자’고 불러대니 ‘뽀이’들이 서로 날 잡아당겨 소매가 찢어지기도 했지. 큰 기생들도 나를 데리고 다닌 게 내가 추면 팁이 많이 나오거든.” 하지만 급작스레 활동을 중단해야 했다. 일본군의 정신대를 모집을 피해 1944년 열여섯 소녀는 떠밀리듯 부여로 시집을 갔다. “기생들은 발에 흙 안 묻힌다는 말이 있어. 그런데 시집을 갔으니 뭘 할 줄 알간? 시어머니가 버선을 꼬매라고 줬는데 할 줄을 몰라 멍하니 있다 혼났지. 밥도 못하니 시어머니가 ‘그럼 뭘 헌다냐’하고 기막혀 했지.” 2년 뒤 그녀는 군산으로 ‘화려한 컴백’을 했다. 이유는 역시 생계였다. 배 속에 아이를 밴 채였다. 김제만경에서 손님이 오면, 포구에 큰 배가 들어오면, 장금도 춤을 보자는 사람이 여전히 줄을 섰다. 임신 8개월까지 춤을 췄다. 애를 낳은 장금도를 부르려면 인력거 두 대를 동원되어야 했다. 한 대는 장금도, 한 대가 아기와 유모 몫이었다. “소리하고 춤추고 나면 애가 한창 배고플 때야. 딴 사람들 공연할 때 얼른 뒤뜰에 나가서 젖 주고 그랬지. 다른 남자들과 놀고 그러지도 않았어. (사람들이) 춘향이도 아님서 열녀 났다고 했응께.” 인기 비결을 묻자 할머니는 주름진 손으로 입을 가리며 수줍게 웃었다. “나는 예쁘지는 않응께. 몸매는 괜찮았지. 젊었을 때는 살결이 희고 복슬복슬허니 ‘뾰똑뾰똑’(반짝반짝)하다고 했어. 운이 좋았는가베.” 하지만 그녀는 결국 춤을 작파해야 했다. 어느 날 아들이 울면서 집으로 쫓아 들어왔다. 친구가 “니기 엄마, 우리 집서 춤 췄다”고 놀려댄 것이다. 1956년부터 1983년 국립극장 명무전에 오르기 전까지 30여년을 그는 ‘보통 엄마’로 살았다. 기생의 흔적을 없애기 위해 옛날 사진은 모조리 불태웠다. “마음 속으로는 늘 춤을 추고 있었지. 간혹 춤을 가르쳐 달라는 사람들이 있어서 비밀리에 알려줬어.” 어미의 길을 가로막았던 아들은 2008년 저 세상 사람이 됐다. 고엽제 후유증 때문이었다. ‘춤의 달인’은 30년간 춤을 못 춘 것보다 아들을 먼저 앞세운 한에 한동안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었다. “아들 죽고 난 게 후회되더라고. ‘내가 너 땜에 꼼짝을 못했는데, 억지로 참고 있어야 했는데’ 했지. 하지만 아들이 먼저 간 게 제일 큰 한이야. 그건 뭐라 말할 수가 없어.” 2005년 처음 어머니의 공연을 보러온 늙은 아들은 꽃다발을 내밀었다. 당시를 떠올린 예인의 눈가가 붉게 물들었다. “아이구. 그때 내가 안 쓰러진 게 다행이구만. 아들이 ‘어머니가 정 허시고 싶으시면 허세요’ 하대. 나 참 희한한 일도 다 있다 했지.” 춤꾼 장금도는 또 다시 무대에 선다. 마지막일 수도 있겠다는 말에 그녀는 순하게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섭섭한 기색은 미처 지워내지 못했다. “이렇게 굳어갖고 또 춤을 출까. 마지막이라는 게 좋을 것은 없어. 젊었을 땐 워낙 춤을 추고 살어서 (무대에 나가도) 자신만만하더라고. 지금은 남들이 ‘늙어갖고 춤이나 춘다’고 흉이나 안 볼랑가 싶어. 부끄럽지.” 2만~7만원. (02)3011-1720. 군산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대한민국예술원상 허만하·박남재·박명숙

    대한민국예술원상 허만하·박남재·박명숙

    대한민국예술원이 제58회 대한민국예술원상 수상자로 시인 허만하(왼쪽·81), 화가 박남재(가운데·84), 무용가 박명숙(오른쪽·63)씨를 선정했다. 문학 부문 수상자인 허만하씨는 고신대 의과대 교수, 한국시인협회 고문 등을 지냈다. ‘해조’ ‘시는 목마름 쪽으로 흐른다’ ‘야생의 꽃’ 등의 시집을 펴냈다. 미술 부문 수상자인 박남재씨는 원광대 미술대 교수와 대한민국 미술대전 운영위원 및 심사위원, 한국미술협회 고문 등을 지냈다. ‘한국의 자연전’(국립현대미술관·1981), ‘한중현대미술전’(세종문화회관·2008), ‘화업 60년 발표전’(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2011) 등을 열었다. 무용학회장을 지낸 박명숙씨는 연극·영화·무용 부문 수상자에 이름을 올렸다. 서울현대무용단 예술감독, 경희대 무용학부 교수로 활동 중이다. 주요 작품은 ‘초혼’(1981), ‘결혼식과 장례식’(1986), ‘혼자 눈뜨는 아침’(1993), ‘바람의 정원’(2008) 등이 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방랑식객’ 자연요리연구가 임지호

    [김문이 만난사람] ‘방랑식객’ 자연요리연구가 임지호

    여름의 끝자락, 그 언덕에 섰다. 눈앞에는 마지막 뜨거운 정열을 품은 푸른 산들이 여전히 힘차게 펼쳐진다. 서울 도심을 벗어났다. 강가에 이르자 바람은 벌써 선선해진다. 가을이 성큼 다가오는 소리가 들린다. 강물이 어느 지점에선가 서로 만나듯 계절의 교차 또한 역동적이되 소리없이 움직인다. 그렇게 자동차로 40여분, 경기도 양평군 강하면의 한 숲속에 도착했다. 새들이 조잘거리며 낯선 손님을 맞이한다. ‘산당’(山堂)이라는 아주 작은 간판이 나무 사이로 살짝 눈에 들어온다. ‘방랑식객’과 만나기로 약속한 장소에 도착했다.‘산당’은 그의 아호이자 방랑식객이 머물면서 찾아오는 손님들을 정성껏 음식으로 맞이하는 공간이다. 마당 앞에는 크고 작은 장독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얼핏 봐도 지극한 정성의 세월이 켜켜이 담겨진 장독대임을 알 수 있다. 이리저리 구경하고 있을 때 방랑식객이 바람처럼 나타났다. 그러고는 슬쩍 미소를 짓는다. ‘방랑식객’으로 유명한 자연요리연구가 임지호(58)씨. 지난달 28일 오후 산당의 뒤뜰에 있는 평상에서 방랑식객과 마주 앉았다. 수양버들처럼 길게 늘어진 나뭇가지가 그늘을 만들어 시원했다. 옆에는 작은 연못이 있다. 그 물에 기대어 창포들이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린다. 숨쉬는 자연의 놀이터였다. 산당 주변 공간에 대해 물었다. 6600㎡(2000평) 정도이며 15년 전에 임대했다고 한다. 요즘에는 어떤 일로 바쁘냐고 했더니 “요리도 하고 그림도 그리고 별로 달라질 것이 없다”고 대답했다. 그림? 한 번 더 물었다. 어떤 그림일까. 다음 달에 미국 뉴욕 첼시 갤러리에서 전시회가 있다고 했다. 해외 개인전은 세 번째이고 뉴욕 전시는 올 2월에 이어 두 번째라고 했다. 알고 보니 10년 전 싱가포르에서 첫 개인전을 가진 이후 지금까지 개인전만 7차례나 했다. 이 정도면 중견급 화가? 어쨌거나 방랑식객으로 알려진 그가 언제부터 그림에 심취했을까. “스승도 없고 같이 공부하는 동료도 없으니 제게 단체전이란 없습니다. 음식이나 그림이 별로 다를 게 없지요. 음식으로 보면 음식이고 그림으로 보면 그림인 것입니다. 그저 자연이고 자유입니다. 자연에 맡겨 발효된 이상적인 상태를 갖고 행하는 자유로움이라고나 할까요.” 그림을 그리게 된 계기는 이렇다. 리콴유 총리 재임 시절 만찬 요리 담당으로 싱가포르에 갔을 때 밤거리를 밝힌 ‘루미나리에’에서 발산하는 빛을 보고 문득 그림을 그려야겠다는 충동에 사로잡혀 드로잉을 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시작을 열어젖히듯 세상에서 궁금한 것을 그렸다. 또한 치유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 있으면 죄다 그렸다. 나뭇잎은 자유로웠고 편하게 흐드러져 있음을 알게 됐고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희로애락을 그렸다. 최근에는 그런 완성품만 35점이나 된다. 뉴욕 전시는 어떻게 하느냐고 묻자 “제목은 ‘미국의 미래’이다. 구상은 이미 다 돼 있고 현지에서 직접 그린다. 배운 사람은 배운 틀로 가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고 했다. 우리나라는 어느 대학, 누구의 제자를 따지지만 미국은 결과를 중요시 여긴다는 말도 곁들인다. 그는 자신의 자유분방한 철학을 계속 읊조린다. “육체란 시공의 한계가 있지만 영혼은 그런 한계가 없습니다. 영혼이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는 공간이 캔버스이며 영혼의 쉼터입니다.” 얘기가 조금 무르익었다. 방랑식객은 절에서 대중공양, 노인들을 위한 밥보시를 많이 했다.그래서 문득 선문답이나 해볼까 하는 생각에 시비(?)를 걸었다. “요새는 화가인가요, 요리사인가요?” “요리사입니다.” “그림이 있으니 요리 예술가라고 표현해도 됩니까?” “접시에 올려 놓으면 음식예술이고 캔버스에 올려 놓으면 그림 예술입니다.” “행복하신지요?” “피아노를 배운 적이 없는데 요새 가끔 그냥 칩니다. 그게 저만의 창작이지요. 악보도 없습니다. 행복하고 더 행복합니다. 숨쉬고 있는 것처럼 감사합니다. 행복은 자기가 디자인하는 대로 되는 것입니다.” “시인이신가요?” “일부러 시를 쓸 일은 없지요. 음식에는 스토리가 있습니다. 저기(평상 옆 작은 연못) 보세요. 물박하, 창포, 각자의 DNA가 있지만 땅의 소식을 하늘에 똑같이 전하고 있잖아요. 땅은 어머니의 살이요 모든 것을 포용합니다. 뿌리는 땅에 있고 머리는 하늘로 향해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어떤가요?” 잠시 침묵이 흐른다. 다시 물었다. “음식에는 어떤 철학이 있습니까?” “복잡할 거 없습니다. 보이지 않지만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습니다. 자연과 자유이지요.” 방랑식객은 잠시 담배를 피워 물었다. “선생님이 진정 추구하는 것은 어떤 것인가요?” “굳이 장르별로 나눈다 해도 그 속에 들어 있는 것은 다 똑같습니다. 제 스스로가 자연이고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제안하는 것입니다. 작가는 그런 생각으로 작품을 하겠지만 보는 시각은 다를 것입니다. 그림이나 음식은 영혼의 쉼터입니다. 밥을 먹는 것이 아니라 철학을 먹는 것이지요, 민족의 철학 말입니다.” “자연요리연구가이신데 어떤 음식을 좋아합니까?” “아무거나 즐겨 먹지요. 주어진 대로 맛있게….” 이어 민족철학으로 넘어간다. “우리 민족은 창의력이 매우 뛰어납니다. 개성이 독특하지요. 서슴없이 비난하는가 하면 또 칭찬도 많이 하잖아요. 음식을 먹을 때도 우리 민족의 철학을 먹는다고 생각해야 돼요. 우리가 맛있게 먹고 사는 것은 조상님들이 희생하신 결과거든요.” 잠시 장독대 얘기를 한다. 장독대는 반찬의 중요한 창고이고 손수 담근 된장, 고추장, 간장, 매실 장아찌까지 맛의 뿌리는 민족에 있단다. 잘 익고 있는지 자주 들여다본다. 그때마다 자연에 대한 고마움도 있지만 이 땅을 딛고 살면서 자신들의 희생으로 우리에게 여러 가지 식재료를 골라줬던 조상들에게 늘 감사하는 마음을 되새긴다. 지금이야 옻을 먹으면 옻이 오르고 버섯색이 고우면 독이 있다고 알고 있지만 조상들은 그것을 먹고 심하게 고생하거나 심지어 목숨까지 잃지 않았느냐고 말한다. 때문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요리를 만들고 또 먹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음식은 심장의 울림이고 손의 기운이 담겨진 정성이라고 했다. 가을철에는 어떤 음식을 먹어야 하는지 물었다. “버섯 종류를 즐겁게 먹으면 됩니다. 싸리버섯은 우리 몸의 혈관과 비슷하고, 송이버섯은 정력제이고, 표고버섯은 검은 빛 도는 갈색을 골라야 합니다. 잘 말린 표고버섯은 비타민D가 풍부하지요. 능이버섯은 강력한 소화제이고 표고버섯은 향기가 기가 막힙니다. 어떤 음식 재료도 다 향기가 있습니다. 사람도 각자 모양이 다르게 살아가듯이 식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땅에 뿌리 내린 풀과 나무들은 모양과 성질, 맛, 향기가 전부 다르지만 하늘로 땅의 소식을 전하는 것은 똑같다고 다시 한 번 강조한다. 수많은 풀들이 이름 없이 살아도, 각자의 DNA가 있어도 자기 죽음에 대해 원한을 품지 않는다는 것이다. 스스로 선택해서 뿌리를 내렸기 때문이란다. 자연에 순종하고 따르는 자세가 인간보다 훨씬 낫지 않으냐는 뜻으로 해석된다. “새싹은 인간으로 치면 어린아이들입니다. 독기가 없지요. (잠시 주위를 둘러본다)여기저기 나무들 보세요. 섹스 없어도 서로 마주 보고 사랑하고 후손을 번식시킵니다. 인간은 진화를 멈췄어요. 자연의 진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200년 후면 인간은 멸종할 수도 있습니다. 자연은 진화하는데 인간의 저항력은 약해지고, 바이러스의 변종이 생겨나고 그러면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결과는 우리가 만든 재앙이며 욕망으로 가득 찬 인간들은 진화하는 자연 앞에서 한순간에 사라지는 것이지요.” 그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2년 뒤에 강원도 화천에 힐링요리, 미술전시 등을 할 수 있는 자연요리학교가 세워진다고 했다. 외국인 학생을 많이 받아들여 우리 민족의 음식철학을 다른 나라에 알릴 수 있도록 하겠단다. 한식의 세계화라는 차원이 아니라 비록 나라는 다르더라도 음식끼리 서로 친구가 되자는 점을 가르치겠다는 것이다. 아울러 앞으로 우리 민족이 빚어낸 음식의 전설을 잘 담아내는 일을 할 것이라고 했다. “이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받는 밥상은 어머니의 품입니다. 그 밥상은 참으로 따뜻합니다. 그런 전설, 그런 뿌리 깊은 철학을 버리지 않고 계속 나아갈 것입니다.” 선임기자 km@seoul.co.kr >>임지호씨는 11살 때부터 전국 돌며 요리 배워… 2006년 ‘경기 으뜸이’ 선정 1955년 안동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한의사였다. 그의 생모는 결혼 전 아버지를 사랑한 처자였다. 생모는 그를 임신한 채 다른 집으로 시집을 갔다. 나중에 이런 사실이 알려져 독자를 잃을까 봐 아버지가 아이(임지호)를 데려와 키웠다. 11세 때 돈을 벌기 위해 일본으로 밀항하려고 부산과 목포, 제주 등을 다니며 춥고 배고픈 시절을 보냈다. 요리를 배운 것도 이때였다. 시골 중국집 주방장에서 유명 호텔까지 두루 섭렵했다. 전국 각지를 다니며 자연의 요리를 연구했다. 해외에서도 그의 명성이 높아 2003년 유엔 한국음식 축제, 2004년 미 캘리포니아 사찰음식 퍼포먼스, 2005년 독일 슈투트가르트 음식 시연회, 아르헨티나 수교 기념 한국 음식전, 베네수엘라 수교 40주년 한국 음식전 등에 참가했다. 미국의 대표적 고급 요리 잡지인 ‘푸드아트’의 커버스토리와 표지모델이 되기도 했다. 2006년 외교통상부 장관 표창을 받았으며 ‘경기 으뜸이’로 선정됐다. 현재는 경기 양평에서 ‘산당’이라는 한정식 전문 식당을 운영하면서 자연요리를 연구하고 있다.
  • “농사 안 짓고 발명만 할 거유?” 아내 속 모르는 발명왕 완수씨

    “농사 안 짓고 발명만 할 거유?” 아내 속 모르는 발명왕 완수씨

    야심한 밤, 충북 옥천군 청성면 능월리에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울려 퍼진다. 사과밭을 망쳐놓은 멧돼지떼를 쫓기 위해 경보기가 작동한 것이다. 기계를 발명한 주인공은 농사꾼 노완수(51)씨. 흰머리 돋도록 발명에 몰두했지만 정작 돌아오는 주변 반응은 썰렁하다. 남편 탓에 홀로 농사일을 도맡은 아내 박영옥(47)씨는 “때를 놓치면 할 수 없는 게 농사”라며 볼멘소리부터 늘어놓는다. 올여름에도 “농사부터 짓자”는 아내와 “발명 없이는 살 수 없다”는 남편 사이에 다툼이 끊이지 않았다. KBS 1TV ‘인간극장’은 ‘발명왕 완수씨의 인생수첩’을 2~6일 오전 7시 50분 다섯 차례에 나눠 방영한다. 완수씨 부부의 갈등 원인은 ‘발명’이다. 굳이 설계도를 그리지 않아도 마음먹은 대로 뚝딱 발명품을 쏟아내는 완수씨. 어릴 적 공부하기가 싫어 시험장에 가다가도 되돌아왔던 그이지만 독학으로 발명가가 됐다. 젊은 시절, 큰돈을 벌겠다며 도시에 나갔지만 고향만큼 푸근한 곳을 찾을 수 없어 되돌아왔다. 농사를 천직으로 알았던 완수씨는 열악한 농촌 현실을 마주하면서 자연스럽게 발명가의 길로 들어섰다. 지하수 파는 기계, 깨 터는 타작 기계, 애견 ‘깜둥이’를 위한 선풍기, 다리 아픈 아내를 위한 빨래 건조대까지 그의 작업장에는 25년간 발명해온 50여개의 발명품이 즐비하다. 18살 어린 나이에 동네 오빠였던 완수씨에게 시집와 스물아홉 해를 넘긴 영옥씨는 지난했던 세월만큼 한도 많이 쌓였다.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갖은 고생을 했던 아내는 한 뼘 한 뼘 황무지를 개간해 1만 5000㎡가 넘는 밭을 일궜다. 그런데 요즘 발명생각에 정작 농사에는 무심한 남편을 생각하면 열이 오르기 일쑤다. 아내를 돕는 건 4남매뿐이다. 아빠를 닮아 똘똘한 막내 상훈(15)이와 부모 생각하는 마음이 지극한 딸 청하(17), 넉살 좋은 둘째 아들 상호(26), 깨물어 유난히 아픈 손가락인 첫째 윤호(28)까지…. 장손이 없는 큰형님 댁에 양자로 보냈던 윤호는 20살 무렵 우연히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됐다. 윤호는 낳은 부모와 기른 부모 그 어디에도 마음 둘 곳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기도 했다. 제자리를 찾아오려는 윤호와 완수씨 부부가 만들어내는 가족 재탄생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문화마당] 힐링이 필요해/이애경 작가

    [문화마당] 힐링이 필요해/이애경 작가

    더위가 너무 길었던 탓일까. 사람들의 감정이 모두 날 선 느낌이다. 정부 방침에 따라 실내온도를 조절해야 한다는 사실에 불만이 폭발했다. 가요계에는 전쟁이 났다. ‘힙합계의 디스전’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이 싸움에서 모두들 싸움구경을 하느라 안테나를 세우고 흥미진진해하고 있다. 싸움구경만큼 흥미로운 게 없다는 대한민국의, 그것도 가십의 중심인 연예계 한복판에서 일어나고 있는 싸움이 아닌가. 종군기자들 또한 시시각각 누가 폭격을 가했는지, 어느 쪽이 전세가 유리한지 기사를 전송해야 하기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이 싸움이 나기 전에는 크레용팝을 둘러싼 ‘일베’(일간베스트저장소) 논란이 일어 인터넷에 대폭발이 일어났다. 무명 걸그룹이 가요계를 급습하며 대히트한 원인을 둘러싸고 벌어진 논란이었다. 대한민국의 현재 이슈를 보여준다는 포털 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은 누군가의 ‘노출’, ‘열애’, ‘자살’, ‘사망’ 혹은 ‘연예인 구설수’ 등 자극적인 단어들이 휘몰아칠 때면 폭풍을 만난 듯 널뛴다. 연예계에 시시각각 터져 나오는 사건들을 마주하고 있자면 웬만한 막장드라마는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자극적이다. 연예인 부부의 결별이 진흙탕 싸움이 되고, 시집 가는 딸과 남은 가족 간의 싸움이 적나라하게 공개되는 일도 생긴다. 옛날만큼 TV 드라마 시청률이 높게 나오지 않는 이유가 있다. 현실이 더 드라마틱하기 때문이다. 불과 10여년 전만 해도 하루에 한 번 신문을 통해 뉴스를 접하고 나면 이후에는 다른 일에 집중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마음만 먹으면 24시간 인터넷을 들여다보며 살 수 있는 시대가 됐다. 정보를 받아들이는 속도가 벅찰 정도로 빨라졌고 그만큼 자극이 유입되는 사이클도 짧아졌다. 여행을 다니면서 그 나라의 뉴스를 자주 시청하는데 그걸 보면서 우리나라만큼 다이내믹한 나라도 없는 것 같다는 걸 여실히 느낀다. 캐나다에서 큰 사건 사고가 전혀 없는 뉴스를 5일간 내리 시청한 적이 있다. 이유를 물으니 원래 그렇게 나라가 조용하단다. 한국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혀가 얼얼하고 불이 날 정도로 매운 음식을 선호하는 습성 때문일까? 매운맛은 미각이 아니라 통증을 느끼는 통각이라는데, 우리는 다사다난한 사회를 보면서 강하고 매운맛을 느낀다고 착각하는 건 아닐까? 나와 이웃, 그리고 사회에 대해 갖는 열정은 좋은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우리나라를 이끌어온 원동력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열정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그 과정에서 주위 사람들에게 무슨 일들이 일어나는지에 대해서는 한 번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나도 모르게 날 선 감정들과 자극에 익숙해져 웬만한 자극에도 끄떡없는 강심장이 되어버렸을 수도 있고, 이 과정에서 상처받은 사람들이 많을 수도 있다. 우리나라에 힐링 열풍이 사그라지지 않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 아닐까. 맛있게 맵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 나와 다른 이들에게 상처를 주는 통증이었음을 깨닫는다면 몸뿐 아니라 마음에도 디톡스나 간헐적 단식을 시행해 보는 것은 어떨까. 인터넷을 통해 내게 들어오는 자극적인 것들을 잠시 차단하고 간이 심심하면 심심한 대로 견뎌 보는 것이다. 몸에 좋은 것을 주듯 마음에도 좋은 것을 주기. 그것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힐링일지도 모른다.
  • [깔깔깔]

    ●삼국지 위인이 파리를 죽이려 할 때 3 1. 제갈량:파리에게 50명의 군사를 주면서 위나라를 정벌하라고 한다. 패하고 오면 군법에 따라 사형에 처하고 파리를 참수하며 눈물을 흘린다. 누가 왜 우느냐고 물으면 “선제께서 이전에 ‘파리는 겉으로는 번지르르해 보이지만 실속이 없소, 크게 기용하지 마시오’ 라고 말했다”는 엉뚱한 소리를 한다. 2. 황충:한 화살로 파리의 가슴팍을 꿰뚫는다. ●난센스 퀴즈 ▶일본의 쩨쩨한 구두쇠 이름은? 겐자히 아끼네. ▶가장 오래된 망고는? 할망고. ▶파리 중에서 가장 무거운 파리는? 돌파리. ▶쥐 중에 가장 멋진 쥐는? 간쥐. ▶암탉은 어느 집에서 시집왔을까? 꼬꼬댁. ▶장사를 가장 잘하는 고양이는? 슈퍼마켓.
  • [지상파 하이라이트]

    ■우리말 겨루기(KBS1 밤 7시 30분) 8월의 불볕더위만큼이나 뜨거운 우리말 열정을 지닌 사람들이 신나는 잔치 한마당을 펼친다. 이날은 독서를 통해 고유어 내공을 착실히 쌓은 강성수씨와 전신 마비의 어려움을 딛고 우리말 달인에 도전장을 내민 윤명수씨를 포함해 각 지역의 내로라하는 우리말 고수들이 대결을 벌인다. 도전하는 이들의 열정에 진한 감동을 느낄 수 있다. ■월화드라마 굿 닥터(KBS2 밤 10시) 시온(주원)은 자신을 믿어주지 않는 사람들이 답답하기만 하고, 입장이 난처해진 최 원장은 부원장으로부터 생각지도 못한 도움을 받지만 마음이 편치 않다. 도한 역시 소아외과에 대한 병원의 처우에 분개해 부원장을 찾는다. 한편 경찰서에서 풀려난 은옥의 고모가 병원에 찾아와 은옥을 강제로 데려가려 한다. ■일자리 창조 프로젝트 드림헌터(MBC 오후 6시 20분)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려 연일 30도를 웃도는 8월. 숨 막히는 더위 속에서도 1500도의 용광로 도가니가 식지 않는 곳이 있다. 한편 고졸 출신의 입사 1년차 신입사원부터 48년 공장의 역사와 함께한 성형팀 최고참 직원까지. 유리 제품 하나를 생산하기 위해 500여명의 사람들이 굵은 땀방울을 흘리는 현장을 따라가 본다. ■백세건강시대(SBS 오전 5시 10분) 시도 때도, 원인도 없이 찾아오는 골치 아픈 질환 두통. 우리나라 국민 약 90%가 경험했다는 두통에서 당신도 안전할 수만은 없다. 두통은 많은 사람이 경험하는 질환인 만큼 치료 방법 또한 천차만별이다. 그러나 정확한 진단과 철저한 예방만이 당신을 두통에서 지켜 줄 수 있다. 그렇다면 생활 속 불청객 두통의 원인은 무엇일까. ■요리비전(EBS 밤 8시 20분) 한입 베어 물면 고소함이 입 안에서 사르르 퍼지는 갈치 뱃살 구이. 거문도 처녀들은 이 갈치 뱃살 맛에 반해 육지로 시집가는 것을 망설였을 정도라고 한다. 과연 처녀들을 홀딱 반하게 한 거문도 갈치 맛은 어떨까. 고된 노동의 피로를 잊기 위해 불렀다는 뱃노래의 흥겨운 가락을 따라 은빛 갈치들이 돌아오는 거문도로 떠나본다. ■경찰 25시(OBS 밤 11시 5분) 경기 일산 일대의 상가에 비상등이 켜졌다. 손님들이 돌아간 후 문 닫힌 가게에 예기치 못한 사람이 다녀간 흔적이 있다. 밤이 되면 찾아오는 사나이는 오로지 굳게 닫힌 상가들만 대상으로 범행한다. 어떻게 닫힌 문을 열고 범행을 할 수 있었을까. 범인은 상가에 주인이 남겨둔 현금 이외에도 전복, 담배 보루 등 돈이 될 만한 것들은 모두 훔쳐 간 상황이었다.
  • [지상파 하이라이트]

    ■KBS 파노라마(KBS1 밤 10시) 15년 전 한국에 산업연수생으로 와 한 남자를 만났다. 결혼 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남편이 수천만원의 빚을 남기고 떠난 것이다. 계속되는 빚 독촉과 협박에 결국 파산신청을 하고 빈털터리가 됐다. 그러나 그녀를 더욱 힘들게 한 것은 두 아들을 괴롭히는 차별이었다. 한국에 시집와 엄마로 살아가는 베트남 여성의 가슴 아픈 이야기를 소개한다. ■황금 카메라(KBS2 밤 8시 55분) 그동안 출연했던 주인공들은 현재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지난 방송에서 오후 7시 이전에는 술을 입에 대지 않겠다고 전 국민에게 약속했던 술고래 3인방. 과연 약속은 잘 지켜지고 있을지 궁금한 제작진이 마을을 다시 찾았다. 한편 낮에는 음료 배달, 밤에는 대리운전으로 쉴 틈 없이 달려야 했던 최윤성씨도 만나본다. ■도전! 발명왕(MBC 오후 6시 20분) 매주 ‘발명왕’ 자리를 두고 전국 방방곡곡의 발명가들이 나와 겨룬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전 국민이 발명가가 돼 참여할 수 있다. 소소하더라도 기발하고 실제로 사용하고 싶은 생활 밀착형 발명품을 자유롭게 자랑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한다.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무장한 기발한 발명품들이 잇달아 발명왕 자리에 도전장을 던진다. ■꾸러기 탐구생활(SBS 오후 4시 30분) 수산시장을 찾아 신나게 구경을 하는 예원 대원. 그러다 수산시장에 걸려 있는 비닐장갑을 발견하게 된다. 비닐장갑을 걸어 놓으면 파리가 도망간다고 하는데, 파리가 비닐장갑을 무서워하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한편 신라시대 고분에서 발견된 유리병은 어디서 만들어졌고 어떻게 신라에 올 수 있었을까. ■세계테마기행(EBS 밤 8시 50분) 알래스카는 일만년의 시간이 켜켜이 쌓여 순백의 신비로 남은 빙하의 땅이다. 그 속에는 길들지 않은 원시 그대로의 자연이 있다. 여름이 되면 곳곳에서 긴 겨울을 이겨낸 생명이 꽃을 피우고 연어들은 모천을 찾아 마지막 생명을 불태운다. 프로그램은 그 넓은 품으로 사람을 안아주는 곳, 태고의 자연에서 인간을 위로하는 알래스카로 떠나본다. ■아버지와 딸(OBS 밤 11시 5분) 아내가 출산 후에도 계속 회사에 다니길 원하자 자발적으로 전업주부가 된 아빠 오성근씨. 남자가 주부로 살아간다는 것이 쉽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딸 하나는 잘 키우겠다는 집념으로 딸을 위한 홈스쿨링까지 감행했다. 남들이 아빠가 가정주부라고 수군댈 때도 아빠 편을 들어줬던 딸이 있었다. 하지만 그토록 착한 딸에게 사춘기가 찾아왔다.
  • [열린세상] 물려줄 게 없는 늙은 베짱이의 고민/문흥술 서울여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

    [열린세상] 물려줄 게 없는 늙은 베짱이의 고민/문흥술 서울여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

    대학생 딸이 이번 여름에 2주 동안 몽골로 혼자 배낭여행을 다녀왔다. 제 딴에는 온갖 자료를 뒤져 철저히 계획을 세웠으니 걱정 말라 했지만, 외동딸을 혼자 먼 이국땅에 보낸 부모 입장에서는 노심초사할 수밖에 없었다. 카카오톡으로 자주 연락한다기에 휴대전화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몽골의 고원 지대에서 일주일 체류하는 동안은 그마저 되지 않았다. 잠은 잘 자는지, 밥은 잘 먹는지, 온갖 걱정으로 입술이 바짝바짝 타들어갔다. 매일매일이 가시방석에 앉아 있는 기분이었다. 즐겨 먹는 술도 자제하고, 기도하는 심정으로 집에 일찍 들어갔다. 나만 유달리 그런가 싶어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딸을 혼자 보냈다고 나보고 다들 미쳤다고 한다. 부모 마음은 다 똑같은가 보다. 그래도 나는 딸의 마음을 조금은 헤아리는 좋은 아빠라고 스스로를 위안하는데, 한 친구가 그렇게 귀한 외동딸 시집 보낼 자금은 마련해 두었냐고 묻는다. 나이도 어린데 무슨 결혼 하면서 말머리를 돌렸지만, 억대 결혼 비용이라는 말이 남의 일 같지 않았다. 집도 없고 월급쟁이인 내가 딸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자 한숨만 나왔다. 이러다가 딸 시집도 못 보내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이 앞섰다. 딸이 도착하는 날 공항에 마중을 나갔다. 피곤할 만도 한데, 딸은 ‘홉스골’의 드넓은 호수와 끝없이 펼쳐지는 광활한 지평선에 대해, 한국의 봉고차 같은 러시아제 ‘푸르공’을 타고 스무 시간을 달려간 길에 대해, 말을 타고 초원을 달린 일에 대해, 몽골의 민속가옥인 ‘게르’에서 추위에 떨면서 불을 지피던 일에 대해, 세계 각지에서 온 배낭족과 사귄 일 등에 대해 쉴 새 없이 조잘거린다. 해외여행을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뭐가 뭔지 잘 모르겠지만, 딸의 이야기를 종합해 본즉 대단히 열심히 여행을 했다는 의미 같았다. 여행을 다녀온 후 딸은 몽골에서 찍은 사진을 정리해서 기념 책자로 만들고, 그동안 못 만난 친구들을 만난답시고 집에 붙어 있질 않았다. 그런데 딸이, 뭐라 할까, 어른스러워졌다고 할까, 아무튼 달라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행동거지가 조금 진중해진 것 같고, 전문 서적도 열심히 읽고, 또 일찍 일어난다. 대충 곁눈질로 딸을 지켜보니, 자신의 인생에 대해 고민을 시작하는 모양이다. 딸은 더 이상 엄마 아빠를 따라 계곡에서 텐트를 치고 물놀이를 하던 그 어린아이가 아니었다. 어느새, 가치 있는 인생을 꿈꾸면서 그 꿈을 이루기 위해 한 걸음 한 걸음 세상과 대면하는 젊은이가 되어 있었다. 몽골이라는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과 홀로 부대끼면서 보낸 2주를 딸은 자신이 앞으로 살아갈 인생 여행의 축소판으로 받아들인 듯하다. 딸은 이제 자신만의 인생 여행을 떠날 채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내 인생 여행에서 첫걸음을 내딛던 스무 살 시절이 떠오른다. 고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상경해 하숙을 하면서 대학을 다니던 때이리라. 어떻게 사는 것이 가치 있는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고, 문학이 무엇인가를 두고 밤새 토론하고, 사랑이란 것에 눈떠 열병을 앓던 시절, 그 시절이 엊그제 같은 데, 이젠 그런 꿈도, 열정도, 고민도 무뎌질 대로 무뎌진 모양이다. 올여름이 시작될 때, 논문을 두 편 쓰고 책을 한 권 낸다는 계획을 세웠건만, 여름 끝자락에서 보니 모두가 공염불이 되어 버렸다. 여름 내내 덥다는 핑계를 대고 늘어져 시원한 그늘만 찾아다니는 늙은 베짱이, 그것이 이번 여름의 나이다. 딸 보기가 부끄럽다. 이래서야 어찌 인정받는 아빠가 되겠는가. 딸이 또 충격적인 선언을 한다.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아 이번엔 터키와 그리스로 여행을 떠난단다. 이번엔 걱정하지 말자, 스스로 알아서 잘하겠지. 그리고 여행을 통해 자신의 인생에 의미 있는 뭔가를 또 체득하겠지. 더구나 딸 결혼할 때 혼수 비용 댈 능력도 없는 내가 아닌가. 그러니 여행을 간다 할 때, 다른 아버지와는 다르게 흔쾌히 잘 다녀오라고 어깨를 다독여 줘야지. 그럼 결혼 비용 마련 못 해줘도 크게 뭐라 하지 않겠지, 그렇게 생각한다. 그렇지만, 막상 혼자 배낭여행을 떠난다고 짐을 싸면 ‘아빠도 같이 가면 안 돼’라는 말이 먼저 튀어나올 것이 뻔하다.
  • “울진 보부상 비석, 30년 잠자던 ‘객주’의 열정 깨워”

    “울진 보부상 비석, 30년 잠자던 ‘객주’의 열정 깨워”

    “‘객주’의 등장인물들에겐 갖은 시련이 닥칩니다. 용감한 인물도, 비겁한 인물도 있죠. 가만 보면 또 나만큼 시련을 많이 겪은 사람도 없어요. 아버지라고 하면 맞은 기억밖에 없지. 정부인 아닌 어머니에게서 태어나 멸시도 많이 받았지요. 초등학교는 교과서 하나 없이, 월사금 한 번 못 내고 졸업했어요. 이런 시련에서 벗어난 게 10년도 채 안 됩니다. 하지만 시련을 두려워하지 않는 게 나를 살리는 길입니다. 오히려 삶이 탄탄해지거든요.” 가난과 결핍이 자신의 삶과 글을 밀고 나가는 추동력이었다는 작가 김주영(74). 그가 소설 ‘객주’를 통해 청년들에게 건네는 충언이다. 19세기 말 조선 보부상들이 21세기의 현대인에게 건네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장돌뱅이들의 땀내 밴 삶을 담은 ‘객주’가 서울신문 연재 34년 만에 완성됐다. 객주는 당초 1979년 6월 1일부터 1984년 2월 29일까지 1465회(1~9권)로 중단됐다. 사라졌던 주인공 천봉삼을 다시 불러낸 건 4년 전 우연히 발견된 보부상 길(경북 울진 흥부장~봉화 춘양장)이었다. “앞으로 내가 온전히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은 4~5년쯤 남았다고 봐야겠지. 소설에 대한 열정이나 기량이 퇴색되지 않았을 때 못 다한 작업을 마무리해야겠다는 생각은 늘 있었죠. 하지만 계기가 없어서 30여년의 세월을 흘려보냈어요. 그러다 우연히 경북 울진에서 당시 보부상들이 남겨 놓은 비석, 서낭당, 숙소 등을 보고 가슴 속에 스러지지 않고 남아있던 객주의 싹을 확인했습니다.” 그렇게 지난 4월 1일 본지에 다시 연재를 시작한 보부상들의 삶은 21일 108회(10권)를 끝으로 그야말로 대장정의 마침표를 찍었다. ‘객주’를 교과서처럼 읽던 장년 세대뿐 아니라 청년 세대들의 반응도 뜨거웠다. 신문뿐 아니라 인터넷 교보문고에서도 함께 연재된 데다 작가의 낭독 콘서트 등을 통해 독자들과 꾸준히 교감했다. “남녀가 서로 정분을 나누는 회에는 온라인에서의 반응이 굉장합디다. 허허. 신문이나 인터넷으로 10권을 먼저 읽은 젊은 독자들은 ‘소설에 빨려들어 1권부터 다시 보기 시작했다’는 분들이 많았어요. 조선시대 막걸리 한 주발, 짚신 한 켤레 값까지 적시했더니 당시 민초들의 애환을 고스란히 느꼈다는 젊은이들도 있었고요.” ‘객주’는 질박하고 아름다운 우리말을 읽는 맛도 안겨줬다. 그러나 조선 말기를 실감 나게 전달하느라 요즘 세대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당시의 어휘를 곳곳에 동원해야 했다. 작가는 “(젊은 독자들이 읽기 힘들 줄)알면서도 도리가 없었다”며 웃었다. “난해하고 말고. 하지만 소설의 현재성을 살리기 위해서는 도리가 없는 거지. 옛 사람들이 쓰던 말을 버리거나 훼손시켜서는 안 되겠다 싶었죠.” 1~9권과 30여년의 간극을 두고 쓰인 10권에는 현재에 대한 비판과 반성도 담겨 있다. 사회지도층의 부정부패라는, 과거와 무섭도록 닮은 현 세태를 반영한 것이다. “새 연재물에서는 지방 관리들이 어떻게 서민들을 착취하고 횡포를 부렸는지, 수령들이 어떤 식으로 뇌물을 주고받고 직책을 사고팔았는지 명확히 서술했어요. 요즘도 정부 관리와 기업인들이 주고받는 부정부패가 엄청나게 드러나고 있지 않습니까. 그걸 보면 70년 넘게 살아온 저도 ‘부정부패라는 우리 사회의 혹을 떼기란 참으로 어렵구나’ 하고 절실히 느낍니다.” 작가의 표현대로 ‘객주’는 “거창하게 떠들지 않은 이상향”으로 마무리됐다. 보부상들이 배곯는 농민들에게 땅을 사주며 정착을 돕는다. 가난과 결핍이 움츠린 곳에 늘 시선을 주었던 작가다운 결말이다. 지난 6월부터 기획분과위원장으로 합류한 대통령 직속 국민대통합위원회에서도 그는 이런 소신을 폈다고 했다. “정말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질러 혼자 낭떠러지에 서 있는 사람, 바람 부는 벌판에 서서 눈물 흘리는 사람을 찾아내 이들의 손을 잡아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얘기했습니다. 젊은이들에게 많은 공간을 내주자고도 했죠.” 유년 시절 저잣거리 풍경에 매료돼 문학 인생을 바쳐 ‘장터의 서사’ 대장정을 이어온 작가에게 대하소설이란 “견디는 힘으로 쓰는 것”이었다. 요즘 문단에서 그런 대하소설의 명맥이 끊기고 있는 데 대한 아쉬움은 없을까. 노 작가의 눈빛에서는 우려보다는 기대가 더 빛났다. “요즘 젊은 작가들은 소재를 개발하는 능력이나 감성적인 호소력, 관계를 다루는 솜씨는 (우리 때보다) 뛰어나요.” 천생 이야기꾼 김주영의 다음 주제는 사람 이야기다. “고은 선생의 시집 ‘만인보’처럼 살면서 내가 만났던 사람들, 나를 감동시키고 비난했던 사람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봤으면 합니다. 내가 원래 장편 체질이잖아(웃음).” ‘객주’ 10권은 다음 달 25일 문학동네에서 출간될 예정이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World 특파원 블로그] 베이징 ‘골드미스’ 50만명…A급 신랑감은 어디로 갔나

    지난 13일은 중국의 밸런타인데이 격인 칠월칠석. 베이징 서우두(首都) 체육관에서 열린 ‘칠석 특집-2013 연인 가요 콘서트’는 남녀 커플을 타깃으로 기획된 행사였지만 한눈에 보기에도 여성 관중들이 압도적이었다. ‘남자친구를 구하지 못했느냐’는 사회자의 질문에 1만 6000평 규모(1만 8000명 수용)의 거대한 체육관은 비명에 가까운 고함소리로 떠나갈 듯했다. 중국에선 ‘골드미스’를 ‘성뉘’(剩女·잉여 여성)라고 부른다. ‘시집을 가지 못하고 남아 있는 여성’이란 의미다. BBC 중문망은 14일 중국 최대 결혼중개사이트 스지자위안(世紀佳緣)의 통계를 인용해 베이징 20~30대 여성 인구 가운데 3분의1인 50만명이 신랑감을 구하고 있는 ‘성뉘’라고 보도했다. 중국은 1979년부터 실시된 한 자녀 정책으로 성 감별에 따른 낙태가 암암리에 성행하면서 극심한 성비 불균형을 겪고 있어도 골드미스들은 넘쳐난다. 중국 인구 통계에 따르면 1970년에 태어난 남성은 여성의 두 배이며, 1980~2000년 사이에 태어난 남성은 여성보다 무려 3331만명이 많다. 그럼에도 ‘성뉘’가 양산되는 이유는 단연 전통 관념이 꼽힌다. 신랑이 신부보다 높은 학력과 사회적 지위, 재력을 가져야 한다는 고정관념 때문이다. 이 같은 조건들로 남녀를 A·B·C·D 4개 등급으로 나눌 경우 A급 여성과 D급 남성만 선 시장에 남게 돼 골드미스가 넘친다는 결론이 나온다. 여기까지는 한국과 상황이 다르지 않다. 다만 ‘성뉘’라는 용어에서도 알 수 있듯 결혼에 대한 강박이 극심해 중국 미혼 여성들의 심적 스트레스는 한국보다 한 수 위라는 설명이다. 런민대 경제학과 4학년 왕타오(王濤)는 “중국 엄마들은 딸이 대학생만 되면 빨리 신랑감을 구하라고 닦달할 정도로 결혼이 최대 목표여서 여자애들과 함부로 연애하기가 겁난다”고 말했다. 중국 젊은이들 사이에는 “결혼을 전제로 하지 않는 모든 연애는 깡패짓”이란 말이 유행어가 됐을 만큼 여성들이 결혼에 목을 매 남성들도 덩달아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이다. 베이징 주현진 특파원 jhj@seoul.co.kr
  • [광복 68돌…역사 부정하는 日] 한국 역사 소개하는 일본인… 강화군 문화해설사 와카즈키 에이코씨

    [광복 68돌…역사 부정하는 日] 한국 역사 소개하는 일본인… 강화군 문화해설사 와카즈키 에이코씨

    “일본에서 8월 15일은 전쟁이 끝난 날이고, 미국에 패배한 날이에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이날을 ‘광복절’이라고 해서 느낌이 사뭇 달랐어요.” 150여년 전 강화도 조약으로 한국의 슬픈 근대사가 시작된 현장에서 한·일 사이의 아픈 역사를 극복하고자 팔을 걷어붙인 일본인이 있다. 주인공은 인천 강화군 문화관광해설사로 일하는 와카즈키 에이코(50)씨. 그는 14일 30도가 넘는 불볕더위 속에서도 문화관광 안내소 문을 두드리는 사람들에게 강화도의 역사를 설명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1995년 한국으로 시집오면서 강화군에 정착한 와카즈키씨는 2006년부터 8년째 관광객에게 강화도의 문화 유적지를 소개하고 있다. 와카즈키씨는 “한국에 와서 역사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면서 “일본에서는 한·일 근현대사가 1910년 한일 강제병합 얘기로 끝난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의 역사교과서와 비교해 보니 일본 교과서는 한·일 관계사를 왜곡한 것도 많고 아예 다루지 않는 사실도 많은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에 와카즈키씨는 일본 사람들이 그동안 잘못된 역사 교육을 받은 것은 아닌지 의문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특히 일본군 위안부의 강제 동원에 대해서는 일본 정부가 위안부 할머니께 마땅히 사죄하고 보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와카즈키씨가 한국에서 역사 공부를 시작한 것은 시아버지의 영향이었다. 시집온 첫날 시아버지가 보여준 전주 이씨 족보에 매료됐다. 이후 강화군에서 지원하는 해설사 교육을 받았고 정식으로 문화관광 해설사가 됐다. 그는 “한국의 문화 유적지에는 일본과 얽힌 아픈 역사가 적지 않아 설명할 때 조심스럽다”면서 “한 번은 열심히 설명하고 있는데 한 어르신이 일본을 욕해서 얼굴이 화끈거린 적도 있다”고 털어놨다. 와카즈키씨는 한국을 방문한 일본 관광객들에게 올바른 역사를 알리는 일이 뿌듯하다고 했다. 그 가운데 일본의 친정어머니가 한국에 대한 생각 자체를 바꾼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밝혔다. 그는 “어머니는 한국인을 ‘조선인’이라고 불렀고, 한국에 시집간다고 했을 때는 아예 모녀의 연을 끊자고 했을 정도였다”면서 “그런데 경복궁을 보고서는 ‘한국은 참 고운 나라’라며 ‘그동안 한국을 잘 알지도 못하고 무조건 결혼을 반대해 미안하다’고 말했다”고 소개했다. 그는 “한국과 일본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부부와 같은 나라”라면서 “후손들을 위해서라도 일본이 역사를 정확하게 바라봤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돈만 있으면 개도 명첨지 대접받는 세상인데…. 배고령이 가진 것이라고는 댕댕 소리 나는 불알 두 쪽밖에 없는 혈혈단신 가난뱅이라는 것입니다. 계집이 시집갔을 때, 시댁이 미주알이 찢어질 듯 가난하면 필경 매파를 원망할 것이고, 지각 없이 혼인을 주선한 어미를 미워할 것이고, 그 불평이 하늘에 닿을 것이다. 급기야 남편을 원수로 알 것이고, 바라보는 얼굴에 차디찬 원망이 사라질 날이 없을 것이다. 음식 수발은 시늉일 뿐일 것이니, 그 음식이 입에 달기는커녕 비상처럼 쓰디쓰겠지. 집안일은 물론이고 비가 내려도 비설거지 같은 것은 거들떠보지도 않을 것이다. 걸핏하면 울고불고 화내고 욕하고 집안을 발칵 뒤집어 놓을 뿐만 아니라, 매사에 트집 잡고 늘어지겠지. 행패를 보다 못한 시부모가 꾸중을 한다 해도 귀담아 듣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낯빼기를 비틀어 꼽고 대들어서 시부모의 복장만 태울 것이다. 부모님께 아침에 문안 드리고 저녁에 자리까지 보아 드리는 것은 며느리로서 당연한 일인데, 시부모가 핀잔이라도 주면, 흰자위를 굴리면서 동네방네 쏘다니며 게거품을 물고 비방을 일삼겠지. 그렇게 되면 누가 시부모이고 누가 며느리인지 도무지 경계가 흐트러져 온 집구석이 억울함과 원망으로 바람 잘 날이 없을 것이다. 설사 제가 가진 재능이 남편의 열 배 스무 배가 된다 하여도 그 재능을 다른 남자를 찾아 헤매는 데 쓸 테지. 집안은 부창부수인데 매일 저녁마다 암탉의 울음소리가 담장을 넘어 마을에 울려 퍼지게 된다면, 그 집안에는 필경 재난이 닥치지 않겠느냐고…. 숫막을 열고 난 뒤 오가는 길손들로부터 들은 풍월은 많아서 구구절절이 주워섬기는데, 시생의 등에 진땀이 흘렀습지요.” 만기의 말에 정한조는 허허 웃고 나서, “오죽했을까…. 천지개벽이 된다 하여도 사태를 되돌릴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알고 넋두리에 하소연을 늘어놓았겠지…. 월천댁도 숫막을 열고 있다지만, 옹색하기는 배고령과 다름없겠지.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옹색한 살림에 찌들다 보니까 푸념인들 오죽했겠나. 그 아낙네가 심덕이 무던해서 걸핏하면 덧거리를 많이 주어서 이렇다 할 이문을 바랄 수 없었지. 서둘러 혼수 장만하고 주과를 마련하기는 어려울 것이니, 우리 접소에서 십시일반으로 갹출하여 혼수 장만해서 혼례를 치러야 하겠지. 배고령은 아직 모르고 있을 터, 흥부장에서 돌아오면 데리고 나가서 혼례를 치르게 되었다고 조용히 일러 주게.” 아침부터 내리던 비가 그치지 않아 흥부장 어물 도가로 갔던 일행이 흥정을 하다 말고 허행하고 돌아오고 말았다. 배고령이 장가들게 되었다는 소문은 누가 발설한 적도 없었으나 어느새 퍼져 만기가 조용히 불러내어 여러 사연을 통기할 것도 없게 되었다. 말래 접소에서 그런 소동을 벌이는 동안 천봉삼과 곽개천은 길세만을 데리고 내성장 임소에 머물러 있었다. 안동 부중으로 떠난 반수 권재만이 임소로 회정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반수는 진작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안동 임소 도회에서 하회가 어떻게 떨어질지 궁금하여 목이 빠질 지경이었다. 내성 임소에서 양류밥이나 축내며 하회 기다리기를 사흘째가 되는 날 보발꾼으로부터 통기가 왔는데, 장차 열흘 정도는 기다려야 도회가 열릴 것 같으니 말래로 돌아가라는 전갈이었다.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꼴이 되었으나, 나선 김에 들러볼 곳이 없지는 않았다. 바로 내성에서 서벽(西碧)을 지나 옥돌봉* 아래의 박달령을 넘어 오래전 보부상들이 발견하였다는 오동나무골 약수터가 지척인 생달에 이르는 상로를 찾아가는 일이었다. 생달을 오동나무골로 잘못 부르기도 하는 것은 서로의 상거가 오리정밖에 되지 않는 까닭도 있었는데, 서벽은 물야(物野)를 거쳐 주실내나 예비재를 거쳤고, 영주(榮州)는 삽재를 거치거나 입석(立石)에서 시냇물을 건너야 했다. 그러나 그 상로는 사기점 사람들이 간혹 이용하는 장삿길일 뿐 내왕이 빈번한 곳은 아니었다. 생달 마을이나 그곳에서 오리정인 오동나무골 약수터에서는 성황당이 있는 박달령만 넘으면 곧바로 영월 땅이란 얘기만 들었지, 천봉삼이에겐 발새 익은 길이 아니었다. 아니래도 반수 권재만으로부터 말래에서 눈 빠지게 바라고 있는 하회가 떨어지면, 곧장 생달 마을을 얼추나마 둘러보고 말래 접소로 돌아갈 참이었다. 곽개천과 작반한 것은 그와 같은 까닭이 있었기 때문이다. 박달령 오른쪽으로는 옥돌봉과 구룡산 높은 뫼가 버티고 있고, 왼쪽 멀리로는 늦은목이를 껴안은 선달산이 버티고 있어 영월과 태백으로 오가는 등짐장수들은 필경 박달령을 넘는 지름길로 내왕해야만 일정을 줄일 수 있었다. 천봉삼이 그런 청을 하였을 때, 행중에서 지름길 찾는 일에 달통한 곽개천이 흔쾌히 승낙하였다. 길세만은 내성에 두고 가려 하였으나, 일행과 떨어져 있다가 큰 봉변을 당했던 일이 바로 엊그제 같았던 길세만이 거의 우는 얼굴로 두 사람의 소매를 잡고 놓지 않았다. 내성에서 생달까지는 불과 40리 노정이라, 발바닥에 날개를 달았다는 장정들 걸음으로는 반나절도 걸리지 않았다. 새벽에 발행하여 저녁 중화 먹기 전에 당도한 생달 마을에는 예견했던 것과는 달리 유숙할 길손을 받아 주는 숫막이라곤 허리는 매화나무 등걸처럼 휘고 얼굴에 저승꽃이 핀 노파가 경영하는 한 집밖에 없었다. 생달이 그처럼 피폐하게 된 연유는 강원도 영월 태백으로 드나들던 부상들이 박달재를 넘다가 고개치에서 출몰하는 도적에게 크게 봉변을 당한 뒤로, 내성에서 옥돌봉 기슭을 지나 구룡산 아래의 도래기재를 넘어 영월로 가는 길목을 선택했기 때문이었다. *옥돌봉: 일명 옥석산
  • [김문이 만난사람] MC 데뷔 40년 영원한 뽀빠이 이상용

    [김문이 만난사람] MC 데뷔 40년 영원한 뽀빠이 이상용

    낙천적이다. 언제나 웃음을 선사한다. 온갖 역경을 이겨 낸다. 위기에 처했을 때 시금치를 먹고 초인적인 힘을 발휘한다. 그랬다. 원조 뽀빠이는 그렇게 탄생했다. 1929년 1월 ‘골무극장’(Thimble Theater)이라는 잡지 만화의 조연으로 처음 나온 캐릭터였다. 이후 뽀빠이는 플라이셔 스튜디오를 통해 파라마운트의 애니메이션 ‘베티 붑의 대나무 섬’(Betty Boop’s Bamboo Isle)에 등장해 인기를 누린다. 뽀빠이 덕분에 1930년대 미국에서는 시금치 소비량이 30%나 증가했을 정도였다. 이에 감격한 텍사스주의 시금치 재배 농부들은 뽀빠이 동상까지 세워 주기도 했다는 얘기가 전한다. 영원한 뽀빠이 이상용씨. 우리 나이로 올해 70세. 방송 프로그램 ‘우정의 무대’를 진행하며 인기 MC로 각인된 그가 방송을 통해 시청자들을 즐겁게 한 지 올해로 꼭 40년이다. 그동안 어수선한 세월을 겪어 왔음에도 여전히 ‘젊은 뽀빠이’로 살고 있다. 우여곡절도 많았겠다. 송해씨가 1925년생, 김동건씨가 1939년생, 그다음 세 번째 ‘장수만세’ 하는 방송인은 아마 이씨가 아닐까 싶다. 이씨는 요즘 매주 일요일 아침 ‘늘 푸른 인생’이라는 방송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전국 오지라는 오지는 죄다 돌아다닌다. 자신과 나이가 비슷한 할머니를 만나도 ‘어머니’라는 표현을 정감 어리게 한다. 물론 ‘아버지’라는 표현도 그렇다. 8월의 더위가 시작되던 지난 1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그의 비밀 아지트(?)에서 만났다. 66㎡(약 20평) 정도 공간의 바닥에는 운동기구가 있고 벽에는 김수환 추기경, 요한 바오로 2세, 법정 스님 등 종교계 인사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 걸려 있었다. 만나자마자 그는 “20분 뒤 밀양 가야 돼 빨리 (인터뷰) 하자고”라면서 바쁜 일정을 얘기한다. 이어 “지난 7월에도 강연을 100번이나 했어. 나 무척 바쁜 사람이야. 강연할 때 처음부터 두 시간 동안 배꼽 잡게 하지. 야한 얘기도 섞어 가면서. 그러면 다들 아주 웃겨 죽겠대”라고 한다. 얼른 야한 얘기 한 토막 들려 달라고 했다. “가만 있어 보자. 신문에 나올 수 있는 걸로 할까. 응 그래, 하나 들려줄께. 고급 아파트 단지에 가서 바자회를 열었어. 경비실에서 ‘주민 여러분, 안 쓰는 물건이 있으면 갖고 나오세요’라고 했지. 그랬더니 아줌마들이 남편을 데리고 나오는 거야(웃음).” 그의 강연 제목은 항상 ‘인생은 아름다워라’이다. “나는 말이야. 강연 소재가 3만 3000가지야. 왜냐구. 한 달에 책을 70권 읽어. 닥치는 대로. 주로 새벽에 읽어. 외국 갈 때는 책을 20권 갖고 가. 비행기, 버스, 기차만 탔다 하면 책을 읽어, 그러니까 강연 소재가 풍부하지.” ‘에구, 그러니까 영원한 뽀빠인가부다’라고 생각하는 순간 다시 말을 잇는다. “나는 말이야. 키 작지, 얼굴 까맣고 못생겼지, 돈도 없지. 이런 것들을 극복하려면 독서밖에 없어. 잘생기고 키 큰 남들보다 하나라도 더 알아야 하잖아. 머리를 비우면 바람 소리가 나. 이 나이에 매일 운동하는 것도 다 그런 까닭이지. 하하하, 어때 얘기 되지 않아. 스스로 당당하게 살면 되는 거야.” 거침이 없다. 묻지 않아도 시원시원하게 말을 한다. 인생을 그렇게 ‘건강하게’ 살아왔음을 느낄 수 있다. 건강 얘기가 나오자 일화 하나를 들려준다. 어느 날 실업자 한 사람이 그를 찾아왔다. 다음은 두 사람의 대화. “저는 건강한데 왜 돈을 못 벌죠? 어쩌면 되나요?”(실업자) “자네 우측 팔 하나 자르고 1억 주면 될라나?” “아뇨, 미쳤어요.”(실업자) “그럼 80 먹은 노인네 만들어 주고 10억 줄까?” “안 해요, 미쳤어요? 나, 갈래요.”(실업자) “그렇다면 자네는 지금 11억원을 갖고 있는 셈이네.” 이러한 예를 들면서 건강에 관해 강연을 할 때 “여러분 팔다리, 두 눈, 입. 멀쩡하다면 불평 말고 열심히 사세요”라는 말로 끝을 맺는다. “어제 죽은 재벌은 오늘 아침 라면도 못 먹어. 살아 감사야. 튀지 말고 잘난 척하지 말고 건강하게 열심히 사는 거야. 인생 뭐 별거 있어.” 그는 ‘늘 푸른 인생’을 60살부터 10년째, 운동은 60년째 꾸준히 해 오면서 ‘푸르고 건강한 인생’을 살고 있다. 데뷔 40년에 대한 소감을 물었더니 “기분이 40살이야. 이렇게 (보람되게) 살 줄은 몰랐어. 여섯 살 때 생각하면 덤으로 사는 인생이야”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왜 ‘여섯 살 때’라는 말이 나왔을까. 그는 기구한 운명을 안고 태어났다. “어머니는 나를 뱃속에 넣고 아버지가 계시다는 백두산까지 걸어갔다가 아버지를 못 만나고 친정인 부여에 오셔서 날 낳으셨지. 병 덩어리 그 자체였고 못 먹어서 거의 시체이다시피 했지. 주위 친척 식구들이 이런 나를 보고 평생 걱정거리에다 어머니는 시집도 못 가는 신세를 만든다고 땅에 묻어 버린 거야. 이를 본 이모님이 묻은 나를 꺼내 솜에 싸서 뒷산으로 도망갔다가 이틀 만에 나를 데리고 내려왔고, 이후 6년을 누워서 살았어.” 결국 6살 때 걸음마를 시작해서 12살까지 온갖 병치레를 하면서 겨우 목숨을 이어 나갔다. 하지만 13살부터 아령을 시작해 18살에 미스터 대전고와 미스터 충남에 뽑혔다. 1966년에는 미스터 고려대와 응원단장을 지낸 뒤 ROTC 기갑장교로 군 복무를 마쳤다. 제대 후에는 번데기 장수, 북어 장수, 다시마 장수 등 22가지 외판원을 하다가 28살 때 TV에 나와 뽀빠이가 됐고, 그때부터 ‘덤 인생’을 살아왔던 것. 태어날 적 아버지는 동아일보 기자로 있다가 친일을 했다는 이유로 눈총을 받아 백두산과 회령 등지에서 숨어 지냈다고 이씨는 회고한다. “세상에서 가장 약하게 태어나 가장 건강한 뽀빠이가 됐으니 더 바랄 게 있나? 세상 어디에나 무엇에나 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지.” 건강 비결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자신감이지. 자신만만하게 사는 게 제일이야. 덕분에 나는 아직도 바쁘게 일하고 있잖아”라고 대답한다. 그는 새벽 3시에 일어나 5시 30분까지 독서를 하고 두 시간가량 아령과 역기로 건강을 다진다. 지금도 팔뚝 근육은 젊은 헬스 선수 못지않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술과 커피, 담배를 입에 댄 적이 없고 식혜나 수정과 등을 주로 마신다. 그가 인생을 살면서 뜻하지 않은 오해를 받기도 했다. 김영삼 정부 때 여당 측으로부터 대전 지역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할 것을 요구받는다. 그러나 이씨는 “국회의원은 4년밖에 못 한다. 나는 영원한 뽀빠이가 되겠다”며 거절했다. 얼마 후 KBS ‘추적 60분’ 프로그램에서 ‘뽀빠이 이상용 심장병 어린이 돕기 성금 유용 의혹’이라는 방송을 내보냈다. 이런 여파로 MBC ‘우정의 무대’ 등 모든 방송에서 중도 하차했다. “그때가 1996년 11월인가 그랬어. 화천에서 우정의 무대를 녹화하던 중 프로그램이 없어졌다는 통보를 받고 집으로 돌아와야 했지. 참 어이가 없어서. 심장병 어린이 600명을 도와 동백장 훈장을 받았고 군 위문만 3000번을 해 대통령 표창을 받은 사람이야. 나를 조사하던 강남경찰서 경찰관이 ‘선생님, 너무 깨끗합니다. 오히려 훈장을 더 주어야 할 것 같아요’라고 하더군. 결국 4개월 뒤 무혐의 처분을 받았어. 그런데 언론에서는 그 사실을 안 다뤄 주는 거야. 오히려 김수환 추기경과 법정 스님 같은 분은 ‘하늘이 (이씨를) 크게 쓰려고 그런다’며 위로해 주더군.” 이씨는 당시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던지 한국을 떠나 미국에서 관광버스 안내원 생활을 2년 동안 하면서 분노를 삼켜야 했다. 관광버스 안내는 주로 미국에 오는 한국인 관광객들을 상대로 했다. 세월이 약이라는 말이 있듯 죽고 싶어도 진실한 국민들의 격려로 참고 살아왔더니 지금 이렇게 사랑받고 살고 있다고 술회한다. 그는 정치 얘기가 나오자 “개그맨들은 국민을 즐겁게 하지만 정치인들은 국민을 아프게 한다”면서 “남자의 코털과 국회의원의 공통점은 뽑을 때 잘 뽑아야 하는 것이다. 국회의원이 가장 좋아하는 고사성어는 파란만장(1만원권 만장)이다”라는 말로 꼬집었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는 “그동안 전국 오지란 곳은 다 다녀 봤다. 오로지 농민을 아끼는 생각밖에 없다. 버스 한 대 사서 ‘고향 어르신 곁으로 뽀빠이가 갑니다’라는 행사를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버스에 가수, 악단, 의료봉사단 등을 태워서 오지를 찾아가 어르신들을 즐겁게 하고 비상약을 전달하는 것이란다. 또 장날 막걸리 파티라도 열어 주면 어르신들이 아주 좋아할 것이라면서 1, 2년 안에 그 뜻을 꼭 펼치겠다고 다짐한다. 선임기자 km@seoul.co.kr 이상용은 누구 ‘유쾌한 청백전’으로 방송 데뷔… ‘우정의 무대’ 통해 국민 MC로 1944년 충남 부여에서 미숙아로 태어나 서천에서 자랐다. 여섯 살 때 걸음마를 시작했다. 책가방을 들 힘이 없을 정도로 유약하게 자라면서 12살 때까지 여덟 가지 병을 앓았다. 13살 때부터 이를 극복하기 위해 아령을 들기 시작했다. 18살 때 미스터 대전고와 미스터 충남에 뽑혔다. 고려대 농대에 진학해 미스터 고려대에 선발됐고 응원단장을 지냈다. ROTC 기갑장교로 군 복무를 마쳤다. 제대 후에는 취직을 하지 못해 번데기와 북어 장수 등 22가지 물건을 파는 외판원 생활을 했다. 1973년 MBC의 ‘유쾌한 청백전’으로 방송에 데뷔해 많은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1989년부터 장교로 군 복무한 점이 인정돼 MBC ‘우정의 무대’의 MC로 발탁되면서 군인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또한 연예인으로 활동하면서 중앙대학교 사회개발대학원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해 심장병 어린이 돕기 등 많은 선행과 자선사업을 활발히 펼쳤다. 주요 수상으로는 국민훈장 동백장(1987년), 대한민국 5·5문화상(1995년), 문화관광부장관 표창 선행연예인(1998년), 제5회 대한민국 환경문화대상 MC상(2007년) 등이 있다.
  • [주말 인사이드] 정도전 쥔 황우여 vs 조정래 든 김한길… 여의도, 한여름 인문학 열전

    [주말 인사이드] 정도전 쥔 황우여 vs 조정래 든 김한길… 여의도, 한여름 인문학 열전

    기록적인 폭염이 연일 한여름의 대지를 달구는 요즈음 여의도 정가에 인문학 바람이 뜨겁다. 휴가철마다 국회를 벗어나 각자 지역구에서 이름 석 자를 알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던 국회의원들이 이번 여름은 유독 인문학 공부에 열을 올리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정과제인 창조경제의 원동력으로 인문학을 꼽은 것도 이런 열풍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책보다는 의정활동 보고서를 쥔 모습이 더 어울리는 의원들이 인문학 고전 읽기 모임 등에 앞다퉈 참여하고 있다. 인문학 열풍의 주역은 민주당 소속 신학용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장이 지난 5월 만든 ‘책 읽는 국회의원 모임’이다. 결성 두 달여 만에 회원이 40명을 넘는 등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를 비롯해 유승우·강은희 의원, 민주당 이용섭·최재천·김재윤·도종환 의원 등 여야 의원들이 초당적으로 참여 중이다. 6월 첫 모임엔 당시 개봉 영화 ‘고령화 가족’의 원작 소설가인 천명관씨가 연사로 초청됐다. 지난달 모임 땐 기자 출신 소설가 김훈씨가 초대돼 ‘작가로서 본 우리 사회의 모습’에 대해 강연하고 의원들과 대화의 시간도 가졌다. 신 위원장은 “훌륭한 작가들의 인생관, 세상을 보는 눈을 이해하면 직접 사회를 해부해 볼 기회가 생기고 입법활동도 더 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모임 배경을 설명했다. 강은희 의원은 “역사소설이 의외로 감성적인 면에 도움이 되더라”면서 “정보기술(IT) 기업 CEO 출신이라 예전엔 경영서적, 디지털 관련 책들만 들여다봤는데 김훈 작가의 책을 읽으니 잠시 다른 세상으로 빠져나갔다가 오는 것 같아 매료됐다”고 전했다. 다른 의원들도 “삶에 대한 통찰력이 있는 작가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으니 영감을 얻게 된다”, “한동안 안 읽던 책을 다시 읽게 되더라”는 소감을 내놓았다. 김세연 새누리당 의원은 최근 친분 있는 당내 의원들 몇 명과 뜻을 모아 공부 모임을 결성했는데 주요 테마가 ‘인문학 고전’이다. 세계 주요 명연설과 선언, 국제협약, 헌법재판소 결정 등을 기본 삼아 공부한 이후에 인문학 고전 읽기로 범위를 넓혀가기로 했다. 김 의원은 “인문학을 통해서 정치 현안에 대한 시각을 더 깊게 만들어 가자는 취지에서 시작했는데 여름 휴가 시즌이 끝나면 참석하는 의원들이 훨씬 더 늘어날 것 같다”고 말했다. 고전 읽기 목록은 ‘서울대 선정 인문학 고전 50선’을 참고해 결정하기로 했다. 국회도서관이 9일 지난해 4월 11일 이후 의원들이 많이 대출한 인문교양 분야 도서 20권을 뽑은 결과 1위는 제임스 길리건의 ‘왜 어떤 정치인은 다른 정치인보다 해로운가’가 차지했다. 2위는 장하준 교수의 ‘나쁜 사마리아인들’, 3위는 로버트 B 라이시의 ‘슈퍼 자본주의’였다. 올해 서정태 시인이 27년 만에 낸 시집 ‘그냥 덮어둘 일이지’, 무라카미 하루키의 베스트셀러 ‘1Q84’, 홍석중의 소설 ‘황진이’ 등도 의원들의 사랑을 받았다. 법륜 스님의 주례사를 모은 ‘행복한 결혼생활을 위한 남녀 마음 이야기’가 랭크된 것도 눈길을 끈다. 혜민 스님의 베스트셀러 에세이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도 순위에 이름을 올렸다. 여야 지도부가 탐독한 인문학 서적들은 무엇일까. 독실한 크리스천인 새누리당 황 대표는 최근 읽은 책으로 성경과 정도전의 문집 ‘삼봉집’, 필립 페팃의 번역서 ‘신공화주의’를 꼽았다. 고대 그리스·로마의 공화주의를 현실 정치에 접목한 ‘신공화주의’는 상생의 정치를 고민하는 여당 대표의 관심사를 반영해 준다. 김한길 민주당 대표는 ‘메이커스’, ‘생각에 관한 생각’, ‘정글만리’를 완독했다고 한다. 팍팍한 장외투쟁 국면이긴 하지만 손에서 인문 분야 책을 놓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측근들은 “베스트셀러 소설가였던 만큼 신간은 두루 섭렵하는 편이고 책 읽는 속도도 굉장히 빠르다”고 전했다. 강창희 국회의장은 평소 옆구리에 시집을 끼고 다니는 것으로 유명하다. “강팍한 정치현장에서 심신을 달래 주고 삶의 해법을 찾아 주는 것은 순수 시”라는 게 강 의장의 지론이다. 사석에서 장석주 시인의 ‘대추 한 알’, 김용석 시인의 ‘가을이 오면’을 즐겨 암송하는 등 인문학 사랑을 몸소 실천하고 있다. 휴가철을 맞아 전국 민생탐방에 나선 정몽준 전 새누리당 대표는 수행차량 안에 알랭 드 보통의 ‘철학의 위안’을 갖고 다니면서 읽는다고 측근이 전했다. 국회 사무처가 의원 및 1급 이상 국회 공무원을 대상으로 매년 개설하는 ‘인문학 최고지도자 과정’도 부쩍 인기가 높아졌다. 2011년 9월 12주 과정으로 처음 열렸을 때 의원 38명이 신청했지만 지난해에는 51명으로 늘었다. 인문학 서적 읽기 붐은 ‘인문학 속에 답이 있다’는 진리 앞에 정치권도 예외가 될 수 없음을 방증한다. 특히 박 대통령이 문화계 인사들과의 오찬에서 “새 정부가 추구하는 창조경제도 인문학적 상상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등 유별난 인문학 사랑을 보이는 것도 여의도의 ‘인문학 바람’에 불을 댕긴 것으로 분석된다. 문화부장관을 지낸 4선의 새누리당 정병국 의원은 “정치권이 뒤늦게 인문학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정치가 가장 후진적’이라는 비판도 한몫했다”고 설명했다. 정 의원은 “과거 세상이 권력의 힘으로 장악됐다면 이제는 정보의 힘으로 장악된다”면서 “인문학의 가치·철학적 측면을 이해하지 못하면 빛의 속도로 변하는 기술변화 과정도 따라잡을 수 없고 어떤 리더십을 발휘해야 하는지도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정치인들이 인문학에 관심을 갖지 않으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 중진 의원은 “서민정치, 현장정치를 지향하는 의원들이 작가들이 고발하는 당대 사회상 속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고 인문학 예찬론을 폈다. 초·재선 의원들에게 인문학 서적은 큰 교훈이자 벗이 되기도 한다. 새누리당 김세연 의원은 “인류의 경험과 지혜가 녹아 있는 인문학에서 사회를 조정해 나갈 수 있는 지혜를 찾기 위해 인문학 서적을 접한다”고 말했다. 같은 당 민현주 의원은 “인문학은 사회 현안을 최종 조율하는 역할을 하는 정치인들에게 설득력 있는 해답을 준다”고 강조했다. 민 의원은 또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이유로 옛것을 지나치게 폄훼하는 경향이 있는데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고, (옛것은) 새로운 것의 탄생 근거가 된다”면서 고전 읽기의 중요성을 설파했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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